전강선사 일대기2020. 10. 24. 08:35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8-2호) (일대기 끝) 선지식들과 법거량. 만공스님 전법게. 안국사 시절.

 

**전강선사(No.306)—전강선사 일대기 제18호(계축1973년 7월 2일 새벽. 음) (1973년 7월 31일)

 

(1/3) 약 19분.

 

(2/3) 약 16분.

 

(3/3) 약 17분.

 

(1/3)----------------

 

강사로는 한국의 박한영이 그만—더 과거에도 오히려 박한영 같은 이가 없다고 헐 수가 있고, 그때도 큰 강사가 많지마는 박한영 스님을 제일 쳤고, 그다음에는 한국에서 문사(文士)가 그렇게 많지마는 문사가, 첫째는 최남선이요, 둘째 이광수요. 다 알제? 이광수 소설이라고 참, 유명허제.

 

최남선씨, 역사에 유명혀. 이광수씨, 소설에 유명혀. 이광수, 그다음에는 무슨 저 한학에는 정인보인가? 정인보요, 시에는 백기만이요, 무슨... 뭐 여럿이제. 팔문사(八文士)를 치는데.

아, 그러헌 문사가, 그러헌 유명헌 문장(文章)들이 왔다 하니 좀 물어볼 밖에 없다고.

 

아, 갖다가서는 공안을 묻되 경(經)에 있는 놈을 물었어. 내가 뭐 깊은 조사 공안을 물은 게 아니라, 경에 있는 놈을 물었다 그말이여.

 

"약인(若人)이 욕료지(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이라고 있으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뻑뻑이 법계관을... 응관법계관(성)이면 뻑뻑이 법계관(성)을 관해 봐라. 일체가 유심조니라. 일체가 마음으로 지었느니라 했으니, 응관법계성 하나 일러주십시요. 법계성(法界性)을 어떻게 관(觀)해야 허겄습니까?"

 

강사가 입이 떨어져야제. 아무리 글로써는 더 헐 수 없이 했다 하지마는, 글부텀 이로(理路)요 어로(語路)인디, 이로 · 어로가 끊어진 자리는 말 못허거든.

 

'언어도단(言語道斷)허고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해 버렸는디, 거다가 무슨 말을 붙일 것이냐' 이런 말이나 답하제.

그것 답 아니여. 답이라고 해 봤던들 긍정헐 수가 없어.

 

그렇게 물어서 자기가 말을 맥혔으니, 나를 찬(讚)헐 수밖에 없어.

그다음에, 나 밖에 나가고 없는 사이에 주인한테 물었어. "여그 뽀이로 있는 사람이 그 이름이 누구냐?"

 

"거, 이름이 정영신입니다"

"응! 정영신이여!" 그랬어. 다 듣고 알아.

 

그래 옷을 벗어 번지고는 거그서 뽀이질을 허면서—그 쇠약해서 공부허다가 피 흘리고, 어떻게 흘려 놨던지 그 병 낫을라고 그렇게 자재행(自在行)을 했어. 빌어먹고 댕겨야 자재허제.

 

산도 넘고 물도 건너고 집집이 들어가서 밥도 얻고. 그래서 또랑 개천에 와서 먹고.

남은 놈이 있으면은, 남은 놈이 있을 게 아니라—내가 왜, 너도 불성(佛性)이 있고, 이 자유헌 강수(江水)에서 네 맘대로 노는 그 어족(魚族) 한 덩어리 덜어서 주고, 한 덩어리 덜어서 바우 우에 올려 놓고 산중 깍깍 허는 까마구가 와서 먹어라. 나, 분식(分食)해서 먹고.

 

이러고 지내면서 책을 요만큼 매 가지고 구녁을 뚧어서 그놈을 차고 연필 하나 달아 가지고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옴마니반메훔' 써서 간 곳마당 하나씩 떼주고.

내가 이렇게 까장은 말 안 했어, 거그.

 

가다가, 짚부채는 왜 들었냐 하면은 그 짚부채가 깔고 앉지. 가다 깔고 앉지.

요만허니 맨들어 꼭 대가지고 엮어서, 끝에는 잘게 엮고 안에는 드물게 엮고, 이 끝에는 요리 달아 맨들아 가지고. 깔제, 더우면 부치제.

 

이놈이 무엇도 음식도 얻을라면, 깐 놈이지마는 뭐 그 뭣 묻었나? 가 씻거 버리면.

음식도 거다가 놓을 만헌 건—괴기 같은 거, 콩나물 같은 거, 대사(大事) 치를 때 들어가면은 두부 같은 거 주면 그놈 거다 받는다. 받아 가지고는 그놈 먹제.

 

내가 술도 잘 먹을, 술도 먹으면 뭐 한두 잔 그까짓 녀러 것은 훌훌 들어 마셔 버리고, 많이 먹으면 그까짓 녀러 것 병술로도 먹고 그때.

술도 한 잔 따라 주면은 좀 먹다 마시고, 부채 가지고 놓고는 들고. 상(床)도 되고. 이놈 괴기 한 점 먹고 콩나물 먹고.

 

아, 이러고 지내다가 댕기다가 벗어 번지고 해인사에서 고기를 얻어먹을라고 뽀이질 헌 것이란 말이여. 고기를 내가 무슨 뭐 날 줄라고 따로 해 주나?

그 귀빈실에 귀객(貴客)들이 와서 먹다가 남은 놈이 수북허니 남거든. 그까짓 것 뭐, 남은 놈 그놈 거두어서, 좀 마음이 안 되았으면 씻거서, 씻거서 다시 불에다 놓아서—그 주인이 또 뭐라 하나? 남는 것 다 먹으라 하제. 그놈 꾸어서 그래 먹고.

 

그래도 이동수라고 주인이 참선을 믿는 사람이기 따문에 나보덤 더 숭배허는 사람은 없어. 즈그 집이서 여관질을 해도 극존극대(極尊極待)를 혀.

가만히 있을 때에는 와서 '이까짓 인생이, 이렇게 살다가 뒈질 때 밖에 안 오는디 뭣 할 것이냐?' 좀 이래.

 

어릴 때 같이 커났으니께 '너, 내' 허고 지내지마는, 차마 나를 '너, 내' 못혀. 내 몸에는 법(法)이 있다 해 가지고 '너, 내' 를 못허고.

나는 '너, 내' 를 마음대로 혀. 즈그 마누라도 내가 '해라' 했제, '예' 헌 법 없어.

 

이동수한테 내가 여관질, 뽀이질 허고 있을 때, 그 숙박계나 가지고 갔다왔다허고 있을 때...

저 수암 스님이 알 것이구만. 들어서도 알고 알 것이구만. 우리 한 산중이니께. 나보덤 몇 살 떨어져 한 십여 차가 있은께.

허지마는 그때는 못 봤을 것이고. 들어서 다 알제, 몰라?

 

얻어먹다가서 한용운(박한영) 최남선씨도 아, 그만 혼났지!

"아, 누구냐?"고, 정영신이라고 깜짝 놀랬단 말이여.

 

그놈을 그러고 지내다가는, 사람이 합천 해인사 모여들 때에는 몇만 명 모여들어. 4월 초파일 같은 때는. 그때는 그만! 그만 마음이 울쩍! 여부건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해야제!

 

아, 그대로 머리 이렇게 기른 놈 이대로 가지고는, 옷 떨어진 것 그대로 입고.

누가 올라가라 말라 헐 것도 없이 법상에를 뿌르르르, 술 한잔 얼근허니 먹었을 땐디.

 

올라가서는 그만!

누가 뭐 부끄러워서 말 못혀? 입이 맥혀서 말 못혀? 그때 시대인디.

 

지금도 주제넘게 내가 내 자랑 맘대로 허고 내 마음대로만 허는디, 그때는 무슨 뭐 주제니 어디가 있나? 말 못허고 헐 것이 무엇이 있어?

 

그까짓 것 천만 명 모였다 한들 개미 새끼처럼 막 볼 때인디, 내가 아만(我慢)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느그가 법(法) 모르는 중생들이 그 중생인디 뭘 허는 것이냐? 느그 중생 때꼽재기 밖에는 없는 것들인디' 아, 이렇게 보고 앉었는디 뭐여.

한대 부란대[brandy]를, 그 손님이 먹다가 냉겨 논 부란대가 있어 한 잔을 따라 먹었다. 압싼이라는 술이 그때 있었어. 아, 그놈을 먹고서는 그것 뭐! 취헌 바람에 올라가서는,

 

"자연적이냐 천연적이냐?" 막 고함을 질러서 "만겁에 현안이냐? 천지의 비밀이냐?"

아, 그 강연석상에 서서, 법상(法床)에서 서서 했어. 속말이 안 나오니까.

 

"자연적(自然的)이냐? 천연적(天然的)이냐? 만겁(萬劫)에 현안(懸案)인 천지(天地)의 비밀(秘密)이냐?

자연도 아니요, 천연도 아니요, 현겁 비밀도 아니요, 뭐냐? 도무지 '내'라는 것이 뭣이냐? 이것도 모르고 살아? 어느 곳을 향해서 느그가 사느냐?" 그만 이렇게 막 들입대 나간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그놈을 풀어내려서 "생로병사라는 것이! 이 몸뚱아리는 있구나. 몸뚱이만 애착하고, 몸뚱이만 착(着)해 가지고 날마당 죄업만 퍼지어 가지고 무간지옥고가 있구나. 본래 없는 것이어늘 어째서 이것이, 이것이 네 몸뚱이에, 이 몸뚱이 요것이 옷이 되아 가지고는 달려 가지고 이따구 죄업만 퍼짓느냐?

눈 한번 깜짝하면은 아비지옥(阿鼻地獄) 간다. 저 소를 봐라. 소! 살 툭툭 찌워 가지고는 결국에는 도살장에 들어가서 모가지 사형무대 뚝! 떨어져. 그것이 곧 앞에 있지 않나?

 

우리도 그보담 더허다. 우리는 무간지옥을 가니, 또 살리웠다 죽이는 놈이 또 있다. 거, 아비지옥이라는 것은 쉴 새도 없이 받는다. 이것이 앞에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등한과일(等閑過日)을 허느냐?

네 마누라를 천년 보고 미치면 뭣 허며, 네 자식을 만년 데리고 들여다보면 뭣 하며, 만년 다 살고 나면은 도로 이 생로병사에 처백힐 것이고 뒈질 무대에 꺼꾸러질 것인데"

 

아, 이놈의 법문을 한번 해놓으니, 중들한테는 들을 수 없는 말이네.

 

'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하사 일백이십 저 뭐, 이십오 명을 거느리고 차제걸이(次第乞已)하시고 환귀본처(還至本處)하사 위기본분(爲其本分)이니라' 어쩌고, 모도 요런 것이나 그저 듣고 앉었다가, 이놈을 들어보니 참, 맛있다 그말이여.

 

아, 그만 야로 청년과 그 가까이 청년, '홍도여관, 여관뽀이가 기가 맥히다!' 소문이 나왔다 그말이여.

 

아, 그런 소문이 나자 그다음에는 머리 이놈을 지르고서는—합천 해인사 동구(洞口) 좋기로는 제일인디 얼마나 좋으냐 그말이여. 거그 날마당 내려가서, 그 사중(寺中)에 술 먹는 모도 백채승이, 오입쟁이들, 정홍근이, 그때 이동수, 날마당 비루(ビール 맥주) 한 짐씩을 짊어지고 내려가서 홍류동 옥류동이니 자하동이니 애기소니 그 좋은 계변에, 계곡에 담가 놓고 술을 먹는데,

야로장에, 야로장터에서 쇠괴기 찜을 짊어지고 팔러 그 동천으로 오면은, 홍류동으로 오면은 기달코 있다가 뭉텅 사다가는 막 그 장만허라고 해서 물가에서 들입대 먹고 날마당 날 데리고 댕기고, 내가 빠지면 놀음이 안되아.

 

그렇게 얻어먹고 댕겼지마는 거가서 한잔 먹으면은 그만 그 자유스러운 내 행동에, 거침이 없는 내 행동에 모도 그릇 보지를 않고 바로 봐.

한잔 먹고 춤을 내가 처억 그 진양을 추면 참! 멋지게 춥니다. 뭐 보통 춘 게 아니여. 진양 가락 딱딱 맞제. 장단 한 배도 어기지 않지. 그러헌 춤을 추었다 그말이여.

 

노래도! "산학이 잠형허고, 음풍이 노호헌디 수변에 우난 새는..."

아, 이놈을 가락을 빼서—내가 홍록이한테 좀 배웠거등, 충청도 괴산에.

딱딱 들어맞는다 그말이여. 경계에 들어맞어.

 

"산학이... 산학(山壑)이 잠형(潛形)허고..." 그놈이 산학은 높은 놈인께 좀 기가 있게 허고.

"산학이 잠형허고 음풍(陰風)이 노호(怒號)헌디" 이놈은 음풍이 노호헌 놈은 가만히 부르거든.

 

"관산(關山)이 머~다~더~니~~ (긴 음조)" 그놈 관산은 먼 놈인께.

"건너 관산이 분명허나" 그 '건너'가 가까이 놓으면, 가까이 떡! 되아.

아, 이렇게 붙여서, 멋을 붙여 해 놓으니 안 좋단 사람이 없제. 그렇게 놀 때여.

 

 

놀다가... 아! 쬧겨났네.

그,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한번 지내다가 쬧겨나는 것이 그게 참, 좋은 것이여. 그게 향상(向上)이여. 향상일로(向上一路)여.

 

내비두었으면 거그서 아무리 내가 견성을 옳게 했다 한들 그대로 그만 굳어지고 그대로 영원히 못쓸 것이 되아번지면, 우리 부처님의 정법을 믿는 학자가 그러헌 행동을 해 버렸으면은 부처님 정법부텀 비방 듣고 망(亡)우와.

 

 

아, 그런데 뜻밖에, 서울서 상궁이 하나 내려와서 "아, 우리 부처님 저 장경각에..." 그 마음은 났던 것이여.

"좌복을 깔고 앉었는디, 보십시요. 그 좌복이 좀 때가 저렇게 찌고, 그 좌복 좀 해다 깔았으면—장경각 가운데 부처님! 얼마나 소중헌 부처님, 거룩헌 부처님이니 그 좌복 좀 갈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고, 그래야 하고!"

 

그만 좌복을 깔면서 삼불(三佛) 좌복이 이렇게 큰 놈인데, 걷어 내고 깔았다 그말이여.

걷어 내놓고 보니 새 이불인데, 비단이 썩 좋은 비단이여. 인자 그놈을 불에다 사룬다.

 

사판중은, 사판(事判) 스님네는 그런 것을 부처님한테 깨끗이—부처님한테, 엄중헌 부처님한테 깔았던 것을 불에 태와야제, 갖다가 사용허면 못쓴다는 그런 것으로 태울라고 헌다 그말이여.

그러나 율문(律門)은 어디 나온 디도 없지마는, 율문에 분소의(糞掃衣)라는 게 있어. 이 자작큼헌 법문을 해서 안되았구마는, 송곳이 끝부텀 들어가는 법이여.

 

그놈을 갖다가 태울라 하길래, 내가 거두아서 솜은 솜대로 잘—인제 수좌 오면 '아, 그 입으라'고 그렇게 모도 말도 권허고.

그렇게 홍도여관 뽀이로 있어도 선방(禪房)은 무관히 올라가거든, 퇴설당(堆雪堂)은.

 

막 올라가면 "아이고, 여관에 계시다 오셨습니까?" 모도 성의 배(拜)를 허제, 아무때나 못 봐.

"야, 이놈들, 뭣 하냐?" 그래도 꼼짝 못햐!

그렇게 얻어먹고 있다가 들어와서 그 '합천 해인사 선지(禪旨)는 제일이다' 이거이 나와 나서, 모도 숭배를 하거든.

 

그놈을 그만 내가 그 중생들 보면... 모도 빼 놓고.

내가 시주(施主)는 해서 새 좌복 깔았은께, 그놈을 몰리—퇴설당을 잘 올라가니께, 올라가서 '태우지 말라'고, 그래 내가 뒤에다가 감춰놨다가... 내가 '말라'고 하면 말제, 별 수 없어.

 

그때 우화 스님도 같이 있었구만. 우화 스님이 있는데, 우화 스님한테 살살 꾀와서...

시방도 그런 얘기 헌다는구만. 돈, 그때 얼맨고 몰라? 시방 그때 돈으로 10원이든가 6원이든가 얼매를... 그때 6원, 10원이면 참, 큰 돈이구만.

어떻게 우화 스님은 댕기면서 그때부텀 돈을 모으는 성격이 있어. 뭐 돈을 억지로 모을라 헌 것이 아니라 안 써. 살살 꾀와서 그놈을 끄집어냈다 그말이여.

 

"그 돈 날 주면 내가 인제 다 잘 갚아 주고 그럴턴게 날 돌라"고. 아, 나를 믿기 때문에 주어.

지금은 뭐 별로 안 믿지마는, 날 그때는 퍽 믿을 때고.

그놈을 주길래 그놈 가지고 또 가서 술 먹는 데 가, 그까짓 나는 그날 써 번지제, 이틀도 가지지 않제. 그냥 써 번지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그러고 지낼 때란 말이여.

 

그런디 그 좌복을 뜯어 가지고는 이불을 맨들아서, 비단 이불을 맨들아 가지고는 아, 그놈을 갖다 가서는 이거 퇴설당 뒷방 쬐그만헌 방에 거다 넣어 놨제.

가끔 거그 올라오면 눕기도 허고, 내가 그런다 그말이여. 선방이라도 아무리 홍도여관 뽀이일지언정 막 올라가서 덮기도 허고 이러고.

 

아, 그놈 또 남은 쪼가리가 많이 있어서, 그놈 모도 초막에 그런 여자들, 그 어린아들도 해 입히고 여자들도 해 입으면 좋은 비단 옷, 좀 좋아. 그래 모도 나놔 주었단 말이여. 몇을 나놔 주었제. 안 살라, 안 태워 버리고.

 

분소의라고, 율문에 세 오락지만 해도 태우지 말라는 게 있거든. 왜 태와?

그러니 시불급승(施佛及僧)이요. 부처님한테 펴고 남저지(나머지)는 중한테 모도 미치는 법이고, 중생한테 미치는 법이제. 그래서 그렇게 허고는...

 

아, 그랬더니...

아! 이렇게 제산 스님 겉은 이도 모도 부처님 좌복 하나 안 내버리고, 그 좌복을 모도 잇어서 잘 맨들아서 문장(門帳) 다 해 치고 아, 그랬는디 뭐.(56분18초~1시간14분59초)

 

 

 

 

(2/3)----------------

 

그래 그놈을 그렇게 했더니 주재소(駐在所)에다가 사판중이 고발을 했어.

'홍도여관 뽀이라고, 제가 도가 있는지 없는지 뭐인지 모르는 것이...'

 

그러지마는 나를 그렇게 업신여기든 못혀. 막 법상에도 올라오란 말 안 해도 올라가서 어떻게 한바탕 그때 젊을 때, 말 잘헐 땐디 한바탕 해 놨던지. 그런 말이 없거든.

 

"천연적이냐? 자연적이냐? 만겁의 현안인 천지의 비밀이냐?"헌 것이 문제(文題)여. 없제!

나 말로 허제, 경서(經書)도 무슨 뭐 경구(經句)로 갖다가 그렇게 허들 안헌께.

 

'왕복무제(往復無際)요 동정일원(動靜一源)이며 천겁불고(千劫不古)요 만세장금(萬歲長今)이라'고, 그런 놈을 해석해서 해 놓으면 하나 모를 게 없제.

헌디 아, 그놈을 갖다가 한문으로 해 놓으니 알 수 있어? 고런 것만 툭탁 해 놓고 '회마(會麼)'해 놓고.

 

내, 에! 이 녀석들, 차라리 중국말을 모르는 사람한테 대국놈, 중국놈 말을 허고, 영어 모르는 놈한테 영어를 허고, 일본말 모르는 놈한테 일본말이나 허제, 고따구 놈의 소리가 무엇이여?

저는 잘헌 체허고 아주 아는 체허고. 이런 글을 안다 그것인가? 때찐 놈의!

아! 그놈을 번역을 해서 내야제. 인자 그래 놓고는.

 

주재소에다가 먹어 쳤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말인께, 잘못 들으면 분간이 없어.

주재소에다가 먹어 쳐놓으니깐 정상술이가 잡으러 나왔다 그말이여.

 

"나, 당신네가 잡을 것이 없소. 내가 좌복 갈아 놓고, 나, 깔든 좌복 그거 갖다 불에 태와 버리라고 해서, 불에 태우란 말이 부처님 말씀에 없고. 그건 모도 속가(俗家)에서 공연히 사람 죽으면 죽은 송장이 입고 가는가? 그런데 태우는 미신(迷信) 소용없고.

아, 또 시불급승(施佛及僧)이라 했으니, 중이 모도 다 이불도 해 깔고 허는 법이제, 왜 그걸 태울 것이 무엇이 있소? 율문에도 분소의란 말이 '태우지 말라'는 말이 다 있고, 세 오래기만 돼도 태우지 말라 했는데. 그 시주것 갖다 태워 버리면 죄만 된다 했는데. 또 그러허고 초막에 거, 내가 아들 해 입히란 것, 내 친고 마누라 아! 그런 좋은 놈 해 입으라고 내가 주었소"

 

"아, 대체 그런 말이 있소?"

"아, 있고 말고야"

 

"쳐진 좌복 불 태운 것보담도 수용헌 것이 좋단 말이 있소?"

"있소. 수용이 좋은 거 있고 말고"

 

'시불급승이란 말이 있고, 분소의란 말이 있다'고 해석을 떡 해 준게, '아, 그렇겄다'고 허고 내려가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고 나서 '그런 것을 먹어 치는 산중이, 이놈의 중들이 중이냐? 느그들이 중이냐? 에라, 무연처(無緣處)는 떠나는 게 옳다!'

그만 그날부텀, 내가 누데기 안 버리고 있는 것이 있고, 짚오장치는 인자 안 지고 누데기만 하나 척 걸쳐 입고. 에라, 이놈 삭발허고, 재삭발(再削髮)을 허고 중이 되았어.

 

머리 깎어 번지고는. 그 그렇게 있은게 담배 막 피우고 술 한잔 잘 먹고 했으니 그놈 착 버리고.

오장치 하나 아니, 걸망 하나 인자 넣어 맨들아 짊어지고 누데기 그놈 한벌 입고는, 그러고 머리 싹 깎고 안국사를 들어갔소. 무주 안국사를 들어가.

 

안국사를 들어가서... 아주 폐사(廢寺)는 그런 폐사 없지.

법당을 보니 쥐 법당이여. 어떻게 쥐가 많던지. 안 뚫은 데가 없어.

 

'에라, 여그 좀 머물 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얻어먹고, 빌어먹고 댕기다가 여관 뽀이로 댕기다가 처중(處衆)에 갈 수 없고, 여그 좀 있을 밖에 없다'

안국사에 방 하나 밖에는 노전(爐殿)방 없고, 그 다음에는 누각(樓閣)이 있는데 다 썩어 가지고 큰 누각이—옛날에는 큰절이니까—썩어.

 

거그다 짐을 벗어 놓고서는 법당부텀 참견(參見)허네.

법당 먼지를 다 쓸고, 법당 탁자를 다 쓸고 걸레로 다 닦고, 쥐구녁이 꽉 찬 디를 내가 돌로도 막고 어쩌고 청을 모도 치고, 그러고는 그만 깨끗이 해놓고는 늘 절을 허고 인자 참배 절을 헌다.

 

참(懺), 예참(禮懺)이라고 그려. 부처님께 절하는 건 예참이라 햐. 예경(禮敬) 예참이라 햐.

참(懺)이라 하는 것은 내 지은 죄를 참(懺)헌다 그말이여. 예참허는 게 그게여. 무량겁 지은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허는 그것이 예경이여.

그래 여그는 막 그만 십악참회(十惡懺悔)로 막 들어가. 부처님이 당시에 설허신 십악참! 꼭 부처님이 해논 고대로 시방 헌다 그말이여.

 

가사(袈裟)를 좋은 놈 이런 걸 수(垂)해 놓으면은 모도 가져가 버린게 안되아. 사흘도 못 되아 없어져. 그래 저 가사도 아닌 것을 이렇게 모도 만들아 놓고, 그러고는 세 폭썩 해서 이렇게 입힌 것이여. 인자는 본격적 가사를 헐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 수도승 입는 가사를 모냥 좋게, 빛깔도 부처님 당시에 입은 빛깔 꼭 혀. 내가 다 봐 보고 알아.

 

한국 큰스님네가 갔다 와서 다 말해 주어서 알아. 돌아가신 동산 큰스님께서도 그 가사! 그 가사를 나 한 벌 이렇게 주어서 내가 그 가사를 받았어. 꼭 빛이 저 빛이여.

아! 그 이거 돌아가신, 아니 고인이지마는 서산(西山) 스님 가사도 보니 노른 가사, 대흥사에 노른 가사거든. 자장 스님 율사도 가사 노른 가사, 다 떨어졌지마는 빛이 그 빛이 있어.

 

그래 빛깔부텀 취허고. 또 그때 시대, 그 빛깔 모도 정해 논 그것이 옳제. 있다면, 입는다면.

중간에 천 쪽 가사니, 중간에 뭔 가사니 모도 해 쌓지마는 그거 옳도 않여. 옳지 않어.

시방 입는 가사가 뭐 글르다는 게 아니라, 제방 큰스님네가 모도 가사불사(袈裟佛事)해서 입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가사 빛은 아니다 그말이여. 모도 여다가서 여러 색을 타서 모도 들여. 그 이상혀. 그 노른 가사여.

 

그래 예복 지정위원이 다섯인가 나가지고 우리가 서너 씩이 다, 다섯 의견이 어긋나서 말아 버렸어. '에라, 그까짓 것 말아 버린다' 나왔는디.

뭔 말을 허다가 여까장 되아가지고 인자 이 결론에 가서는 막 하도 등갈이 나서 야단이로구만.

 

그러다가 그놈 딱~ 때려 다 치워 뻔지고는 오장치 하나 짊어지고 적성산 들어와서, 무주 덕유산(德裕山) 적성산(赤城山) 안국사(安國寺)를 들어와서 그놈을 치우고 닦고 그 발르고, 야단을 나 혼자 치고는 참선허고 앉었다 그말이여.

 

무주(茂朱)서 신도 하나가 올라왔는데, 쌩이 어머니라고 그런 분인데, 내가 불명을 법계화(法界華)라고 해주어 가지고, 나이도 많고 경인생이니까.

내가 법계화라고 이름을 지어 주되, 여그 지금 인자 법계화는 아는 분이 시방 하나 왔제? 무주 읍내서. 그래 우리 스님한테로 이름을 지어 주었어. 은사 스님한테로.

 

그러고는 내가 허지 않고 법계화라 지어 주고는 "우리 불형제(佛兄弟) 간이니, 우리 스님 제자가 되았으니 나하고 형제를 헙시다. 우리 법형님허고. 남녀가 없으니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우리 서로 인자 우리 스님한테 제자가 되았으니 법형님 노릇을 허시요"

내가 이 다음에는 "우리 법형님오요?" 인자 이러고 지내다가, 백일기도를 내가 시작했다.

 

우선 혼자라도 돈을 법당에다 15전을 놓아. 아무것도 아닌 절에 와, 돈 15전을—그때 돈도 15전이면 설찬혀. 돈 15전을 가지고는 향촉(香燭)을 준비해 가지고 향촉을 꽂고는 기도를 헌다.

기도를 허는데 무슨 기도를 허는고 하니, 참(懺)이니까 예참(禮懺)을 똑 해서, 나도 예참을 백여 배 외우거든. 여그 노장님, 같이 여그 나 우리 배울 때 배왔는디, 남녀가 다르고 비구니이니까 비구니 처소에 있어서 그렇제, 잘헌 걸 내가 안다 그말이여. 나보덤 한 몇 배를 더 외아.

 

나도 합천 해인사 들어와서 나 혼자 밖에는 예참을 못혀.

수일이라고 예참을 허지마는, 수일이는 재주가 나보담 더 있지마는, 잠깐 외우지마는 저습든 못혀, 재간이 없어서. 나는 헌 대로 꼭 혀.

 

아, 그렇게 예경 예참이여! 예경 예참 기도를 했어.

내가 천만 겁 중에 지은 죄업을 부처님한테 참회허고, 죄 참회허고. 공경진성(恭敬眞性)이라. 내의 진성을 내가 깨달라서 생사해탈허게 해 줍소사.

 

인자 고 돌아댕김서 얻어먹고, 괴기 모도 술 먹고 야단치고 돌아댕긴 경계를 쏴악 씻거 번지고, 없애 번지고, 부처님께 참회해 번지고 '다시 안 짓겄습니다' 맹서(盟誓)불 피우는 것이여. 여다가 맹서헌 거여.

허고는 공경진성(恭敬眞性)이라, 내가 나를 깨달라서 거기에 공경히 허겄습니다.

 

목불(木佛)은 부도화(不火)요. 목불은, 낭기로 맹근 부처님은 불에 집어 넣어 버리면 타 버리고, 진흙은 물에 넣어 버리면 풀어져 버리고. 진불(眞佛)이 낸디, 나 깨달은 게 부처인디, 나를 깨달지 않고 뭐를 헐 것이냐?

착! 믿고는 기도를 허제. 뭔 시주가 와서, '돈 가져 오니라, 쌀 가져 오니라' 그런 것도 없고. 기도를...

 

아! 이렇게 허는 도중에 한 50일, 한 반 때도 못 되았는디, '산성에 유명헌 도인이 와서 기도를 드리는디 가자'

고, 돈 15원(전) 논 놈 가지고 기도를 드려서 허니까, 그 인자 법형님이 그만 발심이 되아 가지고는, 큰 부자인디 아, 그만 신도를 들입대 끄집어내는디, 나중에는 회향(廻向)에 가서는 몇백 명이여.

 

어떻게 많이 모았든지 순사가 날 잡아갈라고 왔어. 잡아갈 수가 있나?

"나는 도 닦는 사람인데, 여기에 와서 기도허요"

 

"그 돈은? 모두 돈을 착취해서"

"돈은 내가 착취했으면 무슨 돈을 착취하오? 내가 내 손에 돈 한푼 넌 때가 없고, 내 손으로 돈 거둬 본 때가 없소"

 

"그러면 웬 돈을 모도 착취했다고?"

"거, 모르겄소. 조사해 보시요"

 

돈을 그렇게 갖다 놔야—무주가 신심(信心)이, 조그만 신심이 있거든—한번 거둔 일이 없어.

거둬 보지도 않고, 내 밑에 뭐 상좌(上佐) 하나 없으니까 누가 해 줄 사람도 없고. 거...(녹음 끊김)

 

좋은 논, 그때 한 삼천 원씩 갔어. 삼천 원이 아니라, 지금 돈 삼천 원이면 그때 얼맨고? 백만 원, 백 원 짜리는 없고, 그 뒤에 백 원이 되었지.

그놈을 말키 사 가지고는, 이 뭣이 대서방(代書房)에 가서 말키 내 줄 방이 내 앞으로 다 해 놨네.

그러더니, 안성 논이 가서... 안성 논은 내가 잽혔고 80마지기를. 또 보현이라고, 그런 보안이라고 허는 중이 한 60석지기 가진 논을 내 앞으로 이전을 다 해 놨어. 아, 그래 가지고는 자기네가 해 놨으니 조사가 되았자 하나 소용이 없네.

 

"난, 내가 이 돈 온 것도 못 봤소. 내 돈 모아 논 것도 못 봤소" 돈을 주어야제?

나중에는 그놈이 나 앞에 쏴악 옮겨서, '아, 돈이 이만 했으면 상당허구나'

그 돈을 가지고 나와서 대구 봉산정, 대봉정인가? 봉산정인가? 서봉사 절 있는 것을, 그때는 신도가 요리집 헐라고 지어 놓은 것을 내가 샀어.

 

그래도 돈이, 그놈의 디가 그때 돈 천만 원이 넘으니까 살 수는 없고, 그놈 갖다 가서 산다고, 장차는 살지언정 계약을 했제. 산다고 계약을 해 놓고. 무주 돈을 쏵 팔어다가 거다 다 집어 넣었소, 내가.

 

그래 가지고 포교당에 있을 땐디 경봉 스님이 선암 스님의 청첩장을 가지고 왔어.

그래 내가 경봉 스님을 따라가서—안 갈라고 그렇게 해도 나를 끄집고 가서, 따라가서 내가 보광사, 양산 통도사 조실(祖室)이 되았어.

그 포교당 포교사로 인자 좀 있으니까—그 인연으로 서로 법담했든, 거량(擧揚)했든 인연으로 갔는디, 전연 부인허기에 나 내버렸어. 거짓말을 허고 있다고.

 

아, 그러니 그때에 경봉 스님은 법열이 나서, 법광(法狂)이 나서 막 그럴 때인디 알 것인가 말이여?

법광도 그런 것이여. 당신 마음이야 마음이지마는 법광이니까, 뭐 법으로 모도 그만 법견(法見)이 나서 그런 것이니까, 세상사 뭐 알 것이여?

그때에 누가 봤냐 그말이여. 그 보광전에... 모도 죽어 번지고, 지금 거 알기를 상근이, 대월이 다 알지.

 

아, 그렸는디 저렇게 신문에다 내놨어.

내 변명헐 것도 없고, 거짓말 했소 안 했소 헐 것도 없고, 나 내비두어 버렸지. 그대로 두어 버려.

 

암말도 않고 있지마는, 내가 극존극대를 해놨는데, '거짓말했다' 햐!

'거짓말했다'고 당신이 그때 일른 걸 말해 놨는디, 뭐 부채로 어쨌다니 뭐, 세상에! 이럴 수가 없다 그말이여.

 

내가 인자 딱 가서 들어가서 인자 둘이 대(對)해서 거짓말이라든지 참말이라든지 내가 가서 한바탕 어서 죽기 전에 헐라는구만.

여까장 그놈은, 그때는 그렇게 안 해놨지마는, 거짓말했다는 말에 반박성명이 났기 따문에 오늘 마침 기회가 있어 여까장 말헌 것이여.

 

그러고서는 만공 스님 12문답에 턱! 대답 다 하고 턱! 나설라 하니까, 만공 스님이 게송(偈頌)으로 그 참, 허락허는 게송 아니고 뭣인가? 인가허는 게송 아니고 뭣이여?

내가 이놈 헐라다가 그리 되았거든.(1시간15분1초~1시간31분3초)

 

 

 

 

(3/3)----------------

 

가 밥혀. 나가서 밥혀. 어서 나가, 밥혀. 이놈 듣다가 시간이 늦었는데.

나는 이 법문이 오늘 아침에는 갈팡질팡허는 법문이여. 그래도 다 알 법문이고.

 

이것은 법문 듣는다고 졸고만 앉었으니 너는 나가! 나가서 바람 쐬고 그려. 법상에 앉어 졸면은...

일어나라면 일어나지, 잠 깨! 일어나, 어서 나가! 여그 자올지 말고.

 

그래도 안 일어나? 이놈아! 나가!

안 나가? 나가! 옷 벗고 너는 나가!

 

이놈, 이런 데 와서 아무리 시봉질을 잘허고 아무리 잘해 주어도 요따구로 인자 스무살도 못 된 것이 지내면 못써. 그렇게 일러주어도 이놈 잠만 퍼자빠져 자고 있어.

법문 듣는 데서 안 잔다고 해도 이놈... 아, 그게 뭐냐 이말이여!

선방에 들어와 놀라고 들어왔어? 잠이나 자고, 시주것이나 먹고. 차라리 빌어먹지!

공부도 안 허고, 부모 밑에서 자석 노릇도 안 허고. 뭣 헐라고...

 

다른 사람 공부허든지 안 허든지 탁! 척량골(脊梁骨) 받치고 앉어서 어서 속히 '이뭣고?'를 허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든지, 조주 무자(無字)를 하든지, 그 화두를 해서 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지.

죽고 사는 생사가 곧 문앞에 그 날마당 기달리고 있는디, 오늘 이럭저럭 내일 이럭저럭, 뭐여 도무지 그것이!

 

내가 걸려서 여가 이런 것이 올라와서 죽을 지경 되아서—오직 해야 남해를 갔게, 이 몸뚱이 가지고. 갔다가 죽을 뻔허고 와서, 저거 시방 앓았구만. 갔다 오더니 앓아서 죽도 밥도 못... 그래 내가 기어니 "내려와 밥 먹어라, 이놈 그래가지고 아, 그런가 보다" 막 죽어 지금. 나는 그래도 꿈쩍 않구만.

 

이렇게 쳐밀려 가지고 이렇게 팔때기가 말라서, 이거 봐, 여가 주름살이 다 이렇게 잽히고, 이 퉁퉁허든 것이. 아랫도리는 벗고 설 수가 없어, 픽 꾀어서. 요렇게 꾀어 버렸어.

 

신심(信心) 하나로, 분심(憤心) 하나로, 그렇게 내가 얻어먹고 퍼먹고 퍼 얻어먹고 지냈지마는, 강상(江上)에 앉어서 공부허고, 시냇가에 앉어서 공부허고, 밥 얻어먹으면 공부허고. 안 했어?

내 몸뚱이가 사방 피가 나오는디 대중에 지낼 수가 있어야제. 여그는 팍! 부스럼이 여가 터져서, 나서 머리를 깎을 수가 없고. 이거 그때 써 버릇해 가지고 시방도 밤낮 쓰는구만.

 

그래 가지고는 내가 열여섯 살 먹어 들어왔지마는, 열여섯 살 먹어서 들어와서 공부허면서 좌복 하나를 깔고 내가 누워 본 배 없기 따문에, 시방도 좌복을 깔면 잠을 못 잔게. 자다가 보면 뭔 조금 잠들다 보면 좌복은 내놓고 잔다 그말이여.

 

일생을 막! 광주서 내가 하꼬방 장사헐 때, 저어 법광 선생이 다 알고 다 봤지.

거그서 공부를 내가 무척 했다 그 말씀이여. 그래 뵈어도. 제자 하나를 또 데리고, 묵언수좌를 데리고.

'어떻게 도인은 청정해야 하고, 도 닦는 사람은 아무리 장사를 해도 장사에 우리가 무엇이냐?' 밤으로는, 밤중에 묵언 시킨 놈을 법문허고.

 

작대기로 막 패댄다! 시주것 먹고 내가 잘못 가리켜서 무간지옥(無間地獄) 갔다고 한탄허니까 못써. 내 허물이 더혀. 막 때려 패댈텐게.

 

더군다나 여자 대중은 내가 같이 안 있은게 모르지마는 여자로 들어와서도, 더군다나 이 무서운 디 들어와서 발심은 해가지고 들어왔으면은 발심행(發心行)을 해야 허는 것이고, 자꾸 어쩌튼지 도 닦는 태도가 보여야 허고 그래야 허지.

도를 닦고 앉어서, 그만 다 도 닦고 앉었는디 돌아댕김서 혼자 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무엇이여!

 

부모한테는 도 닦는다고 나왔지? 또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 닦는다고 도학자가 되아 방부(房付) 받았지? 아, 그런 데가 받아 있으면은 존중헌 행동을 해야 혀.

존중헌 행동이란 건 무엇인고? 존중헌 행동이 도 닦는 것이여.

 

도 닦는 모냥이 보여야지!

그 무엇이여? 있어야 뭣 할 것이여?

 

도문에 들어와서 오늘 이럭저럭, 내일 이럭저럭, 명일야 이럭저럭, 일년을 이럭저럭, 일생을 이럭저럭.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헌들, 만만천천을 때려 죽인들 무슨 죄가 있어?

어디 그 말이 있어? 고봉 스님께 여기 있어. 내가 증거 댈 것 다 있어.

 

또 늦게, 노장들을 갖다가 중 맨들아 줄 때, 놀라고 내가, 도 닦지 않고 놀라고 허락했어? 못혀!

그럭저럭 밥이나 얻어먹고, 귀중헌 산중에 와서 그 귀여운 쌀 한 톨을—한 톨, 시방 쌀은 들어오도 안 혀. 공일날이라고 해야 쌀 한 주먹 안 들어와. 돈 백원썩 얼매 몇 푼 논, 몇 놓고는 안 놔.

그놈을 다 수용헐라면 쌀이 몇 말 들어가. 그 밑에 반, 삼분의 일도 안 되아.

 

조계사 같은 디는 법문만 듣고 나갔제, 밥도 대접 안 헌데야. 허지마는 여그는 이렇게 먼 디 왔으니까 대접 안 헐 수도 없고, 안 헌다 하면은 '밥 안 해 주드라'헐 것이고.

밑구녁 트고는 아무것도 없네. 인자는 시주, 입재(入齋)할 때 결제(結制)헐 때 쌀 한 톨 안 들어와. 누가 머냐는 그래도 어떻게 쌀가마라도 팔아주고 다 이래도, 없어 안 들어와. 이것 가지고는 헐 수가 없다 그말이여.

 

우리 부저 때 사실 말이여, 본 대중만해도 힘이 잔뜩 들어서 뭘로 헐 수가 없는데, 여자 대중도 아, 지끔 돈 만오천 원을 내도 쌀 한 가마니에 만오백 원이여. 그때 사천 원 갈 때에도 아, 돈으로 모도 내면은 만원썩 냈다 그말이여.

지끔 만 원 내면 돈 만 원 가지고 쌀 한 가마니도 못 파는디. 그 뭣이여, 석 달 열흘을 그 밑에 해주자면 뭣 혀? 안되거든.

 

허지마는 결제 때 만 원이면 만 원, 이만 원 내서 여그서 승락해서 받았으면 더 내란 말 안 혀.

허지마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되니까 '만오천 원은 내라' 그러면 만 원은 쌀 한 가마니값 허고, 오천 원은 그건 모도, 어쩌서 어떻게 허든지 말든지 헐 일이제. 그 식량대 부속대로 쓰고.

 

아, 그렇게 허라고 했더니 만오천 원은—다른 디도 한 달에 팔천오백 원썩을 받는데야. 헌디 받으면 받고 안 받으면 그냥 지내. 그냥 안 받는 이는 그냥 지내라고 허니 기양 방부 받아 그만이고. 허지마는 얼매씩 결정 딱! 해 놓은 이는 꼭! 내야 허는 것이여.

 

결정을 부처님한테, 부처님을 모시고 대중을 모시고 조실 스님 앞에서 승낙한 것을 안 내면은 그것이 문서에 올라 가지고는 언제든지 고놈이 빚이 돼 나와.

인제 염라국에 가서 "너, 왜 결제(結制)헌디 그걸 안 냈느냐?"헌 게 다 나와서 못써.

타산반전(打算飯錢) 헐 때 나와. "네 세상에서 밥값 얼매냐?"

 

공송세월(空送歲月)을, 공연히 도도 안 닦고 선방에 그대로 놀고 지내는 사람은—서호 봐. 서호당, 내가 법문했제? 서호 법문 했제? 다 들었제?

큰일나! 큰일나. 늦게 입산했다고 큰일나!

 

밥이나 얻어먹고, 해 준 반찬이나 얻어먹고, 오늘 이럭저럭, 내일 이럭저럭, 무슨 도 닦아?

그랬다가는 그런 입산(入山)은 큰일나! 입산했다가도 당장 퇴태헐... 퇴치헐 때가 있어.

"나가거라. 옷 벗고 나가거라"

그럴 때가 있으니 함부로 갖다가 불쌍해서, 처지가 불쌍해서 지내라, 그거 아니여.

 

사정없어! 열철냄비에다 볶아 죽여! 눈만 감으면 그런 지경이 와.

그러니 세상에서 벌어먹고 자석 새끼 낳았으면 자석 새끼한테 얻어먹제, 왜 중이 되아 가지고는 중옷을 입고 시주것만 먹고, 그럭저럭 지내아?

그럭저럭 지내는 것은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해라. 아주! 그것이 있어.

 

왜 노장님 하나는 들어오지 않았을까? 없나? 왜 법문을 안 들어? 법광 스님은 없네.

"안 나왔습니다" "밤에 저 몸살이 나서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그렇제. 그렇게 노인이면은 몸살 나지. 그래도 몸살이 나드래도 에지간헌 몸살이면 법문을 들어야제.

이건 별상(別相)이고. 별상 법문헌 거고.

 

 

만공 스님께서 그 12문답, 답 그 못혀. 참, 못혀!

노장님 뜻을 다 바로 답해야 되거든. 노장님 뜻이 공안이니까, 안 허면 안 되야.

 

답을 마지막 딱! 해 놓으니까... 그 안에 뭐 절허고 뭣허고, 아니네 기네 헌 것도 많이 있지만 그건 빼 놓고, 인자 이것 꼭다리, 이건 이렇게 내가 헌 건 없어.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불조(佛祖)도 또한 얻지 못허고.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니라.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다.

불조미증전 아역무소득이 그것이 그게 바로 해 준 말씀이여. 고 밑에,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인디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인디, 이날에는 추색(秋色)이 저물었는데,

원소(猿嘯)는 재후봉(在後峰)이로구나.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바로 인가송(印可頌)이여!

 

자, 뭐 법담(法談)을 했다는 건 법전(法戰)에다 모도 있지마는, 만공스님 문집에 그 있는가 없는가 보란 말이여. 그게 증명이여!

송(頌), 딱 나왔어! 한 귀 송 딱! 있지.

 

그 끝에 헐 말이, 내가 혜봉 스님한테 찾아가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시요"

"무(無)!"

"반이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면 자네가 일러 보소. 무자 의지(意旨) 반만 이르소"

"무!"

 

"고인이 말씀허기를 거년(去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여, 금년 가난이 참 가난이라, 진(眞) 가난이라.

거년 가난은 가난이 시가난이라, 이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이 진 가난이여. 참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했으니, 어떤 게 조사서래의인가?

 

"무!" 아, 그때 내가 그래 놨으면은... 기맥혀! 파수공지(把手共持)여. 손잡고...

흥! 이것 하나 못 받은 게 원통허다 그말이여.

 

내가 이걸 내놔야지. 내가 곧 죽게 됐은게 내놔야 혀.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道德)을 중히 여기지 않여, 나를 위해 설파치 않는다.

그거 설파(說破) 아니여. 거 조사공안, 여래선(如來禪) 조사공안 일러 놓은 것이제, 설파 아니여.

 

'무!' 그놈 바로 봤어?

거, 무(無)허면 무(無)면은, 예를 들면은 무(無)라고 했으니 무(無)는 무엇이여? 무슨 무여?

 

만약 봤으면 일러 봐. 그것 설파여? 설파 아니여.

그놈을 여의고 일르면은 학다리 짤라 버리고 오리다리 잇고, 가마구다리 잇어 논 거여.

눈 먼 놈이고, 중생 눈을 다 멀려!

 

학자들이 인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두고 보란 말이여.

 

 

오늘은 날이 시원해서 왔다갔다 갈팡질팡 한 법문이 너무 지루했소.

주의해 줄 거. 앞으로써, 인자 오늘부텀 15일이 남았으니까, 15일 만에 일 마치도록 혀.

 

좀 공부 좀 잘혀. 아침 저녁 시원허고, 비가 왔으니 시원허지마는, 그럭저럭 지내지 말어.

인자는 그럭저럭 지내면 하루 남았다 하드래도 쫓겨나게 만들 것이여.

쫓아냈다, 쫓겨났다. 선방에서 쫓겨나면 그만이여. 그건 인자 선방에 못 나온 것이여.

 

그러고 늦게 입산헌 저 두 노장들 주의혀. 옷을 암만 입혔자 시방 옷 입힌 게 아니여. 인자 시험해 보는 것이제.

시험해 봐서 옳게 참, 도를 닦을 사람이면 극존극대(極尊極待)해 주고, 인자 아무디로 가라면 가야 허고, 다 방부 들여 놓고 가라 한 것이니까. 거그 잘 지내게 해놓고 가라 한 거여.

노장들은 보내면 그저 보내는 게 아니여. 편지 딲아서 다 보내는 것이니까.

 

여그는 인자 결제만 허고 해제 산림에는 쏵 헤어지니까, 사방 댕기면서 산산수수(山山水水)에 득의묘지(得意妙旨)를 허고, 뜻을 얻고 묘지(妙旨)에 가서 또 한바탕 댕겨서, 인제 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 모도 여그서 지낼 수도 있지마는, 방부 인자 들이기 어려와.

 

아주 그만 주먹이나 내밀고, '양말 한 짝이요' 고따구 허고 돌아댕긴 것들은 쏵 숙청!

바로 보지 못허고 거짓 견성해 나온 거, 맨 그뿐이니께 못해. 요새 그만 어떻게 퍼지든지 말헐 수가 없어. 말로 헐 수가 없다니까.

 

가시나들, 계집애들도 다 "견성해... 내가 알았습니다" 견성했다고 대드는디.

아니! 대들만 허면 처자(處子)는 어떠허며, 문둥이는 어째? 뭔 관계 있어. 반갑게 환영하제.

 

벌써 물으면 입 벌릴 때 아는데, 그런 행동...

요놈을 주장자로 여그서 막 드리 가라고 쭟아내도 꿈쩍도 안 허고 있어? 나를 업신여기고.

그래 봐! 네까짓 놈이 나를 업신여긴가, 내가 너한테, 네 공국에 떨어지는가 봐!

 

당장에 이놈 옷 벗고 너는 쫓겨날 놈이니께. 옷 벗고 나가든, 쫓아내서 나갈텅께 네 발로 가.

이놈, 선방에 들어와서 허리 꾸부려놓고 자올고만 앉었어?

 

저 대중도 여자 대중도, 입승이 다 모두 골라서 공부 안 허는 사람은 나한테 보고혀. 공부 안 허고 돌아댕긴 사람 소용없어.(1시간31분5초~1시간48분20초) (일대기 18호 끝) (일대기 전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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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文士 글월 문/선비 사) ; ①학문으로 입신(立身 세상에서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 지위를 확고하게 세움)하는 선비. ②문필(文筆 글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일)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③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져 이름난 사람.

*문장(文章 글월 문/글 장) ; ①문장가(文章家 글을 뛰어나게 잘 짓는 사람)의 준말. ②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글자[文]로 표현하여 적은 글[章].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 ; 진리는 깊고도 묘하여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찬탄하는 말.

*대사(大事 큰 대/일 사) ; ①큰[大] 일[事]. 중대(重大)한 일[事]. 다루는 데 힘이 많이 들고 범위가 넓은 일. ②결혼 · 회갑 · 초상 따위의 큰 잔치나 예식을 치르는 일.

*극존극대(極尊極待 극진할·지극할·다할 극/높다·높이다·공경하다 존/대접하다·모시다 대) ; 극진(極盡)히 높이어[尊] 극진히 대접(待接)함. 극존대(極尊待).

*극진히(極盡히) ;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이나 대접을 매우 정성스럽게.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아비지옥(阿鼻地獄) ;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비루(ビール) ; 맥주(麥酒). [어원] 네덜란드어 bier(발음 '비르').

*향상일로(向上一路) ; ①언어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끊어진) 최상의 진리(경지). ②절대의 부처님의 경지[上]를 체득해야 할 수행에 전심하는[向] 것. 깨달음에 이르는 한줄기의 길.

향상일관(向上一關) · 향상일착(向上一著) · 향상일규(向上一竅) · 향상사(向上事)와 같은 뜻.

*향상(向上) ; 향하(向下)의 대(對). ①아래로부터 위에 이르고, 말(末)로부터 본(本)에 이름. 이와 반대로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고, 본(本)으로부터 말(末)에 이름은 향하(向下)라 한다. ②절대평등의 경지. 또 그를 향해 나아가는 것.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7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유주(幽州) 반산(盤山) 보적선사(寶積禪師)'에서. p449~450.

師上堂示衆曰 心若無事萬象不生 意絶玄機纖塵何立 道本無體因道而立名 道本無名因名而得號 若言卽心卽佛 今時未入玄微 若言非心非佛 猶是指蹤之極則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들에게 말했다. "마음에 일이 없다면 만상(萬象)이 나지 못했을 것이요, 뜻이 현묘한 이치조차 끊어 없애면 가는 티끌인들 어디에 서랴? 도(道)는 본래 체(體)가 없거늘 도를 인하여 이름[名]을 세우고, 도는 본래 이름이 없거늘 이름을 인하여 호칭[號]이 생긴다.

만약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고 말한다면 지금 현묘한 진리[玄微]에 들지 못하고, 만약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말한다면 여전히 자취를 가리키는 극칙(極則)일 뿐이다.

 

向上一路千聖不傳 學者勞形如猿捉影 夫大道無中復誰先後 長空絶際何用稱量 空旣如斯道復何說 夫心月孤圓光呑萬象 光非照境境亦非存 光境俱亡復是何物

 

향상(向上)의 한 길[一路]은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하거늘, 학자의 노고하는 형상이 마치 원숭이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무릇 대도(大道)는 중간도 없거늘 무엇이 앞이며 무엇이 나중이랴? 아득한 허공은 경계[際]를 끊었으니 무엇으로써 측량을 하겠으며, 허공이 이미 그와 같다면 도(道)는 다시 어떻게 설하겠는가?

마음달이 홀로 둥근데 그 광명은 만상을 삼키니, 광명이 경계를 비추는 것도 아니고, 경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광명과 경계가 모두 없어지면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분소의(糞掃衣 똥 분/버릴 소/옷 의) ; 똥이나 먼지구덩이 속에 쓰레기로 버려진 낡은 옷과 찢어진 헝겊 조각을 깨끗이 씻은 다음 조각조각 기워서 만든 가사(袈裟). 납의(衲衣), 백납의(百衲衣) 등이라고도 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퇴설당(堆雪堂) ; 해인사에 있는 전각(殿閣)으로 최근까지 상선원(上禪院)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총림 방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1899년에 경허 선사께서 이곳에 주석하시면서 동수정혜결사[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 함께 정혜를 닦아 함께 도솔천에 나서 함께 불과를 이루는 계사(모임의 조직)]를 한 역사적 장소로서 의미가 깊다.

*문장(門帳 문 문/장막 장) ; 창이나 문에 치는 휘장(揮帳 베나 무명, 비단 따위의 천을 여러 폭으로 이어서 빙 둘러치는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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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소(駐在所) ; ①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1910년의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의 시대)에, 순사(巡査)가 머무르면서 사무를 맡아보던 경찰의 말단 기관. 8 · 15 광복 후에 지서(支署)로 고쳤다. ②일정한 임무를 띠고 머물러 있는 곳.

*폐사(廢寺) ; 폐(廢)하여져 스님이 없는 절.

*처중(處衆) ; 대중(大衆)의 처소(處所). 많은 스님, 또는 사부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절(도량)을 말한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에서 아침저녁으로 향불과 부처님 공양을 일과(日課)로 받드는 스님.

*참견(參見 참여하다·관계하다 참/볼 견) ; ①어떤 일이나 말에 끼어들어 간섭하거나 관계함. ②어떤 자리에 직접 나아가서 봄.

*예참(禮懺 예절·절·의식 예/뉘우치다·회개하다 참) ; 예경참(禮敬懺). 부처님이나 보살, 또는 삼보(三寶)에 예배드리고 죄를 참회함.

*예경(禮敬 예절·절·의식 예/공경 경) ; 불보살께 예배와 공경을 드리는 일. 경례(敬禮)라고도 한다. 몸으로는 법식에 따르고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가사(袈裟) : [범] kasaya  범어를 음대로 쓴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가사불사(袈裟佛事) ; 절에서 가사를 짓는 일.

*'목불(木佛)은 부도화(不渡火)요. 목불은, 낭기로 맹근 부처님은 불에 집어 넣어 버리면 타 버리고, 진흙은 물에 넣어 버리면 풀어져 버리고. 진불(眞佛)이 낸디, 나 깨달은 게 부처인디, 나를 깨달지 않고 뭐를 헐 것이냐?' ;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조주의 세 마디 말' 선종의 화두[벽암록 96칙].

조주선사(778~897)가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후에 벽암(碧巖 : 圜悟克勤 1065~1135)이 평창(評唱)하기를 「저 옛사람이 독특한 안목으로 사람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이 말(삼전어)을 빌려서 이 소식(깨달은 경계)에 통하게 한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중략)...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게 되면 풀어지고,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가게 되면 녹아 버리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가게 되면 타 버리고 만다」

 

삼전어(三轉語)란 깨달음의 결정적 전기가 되는 세 가지 어구. 전어(轉語)는 미혹을 깨달음으로 반전시키는 어구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삼전어는 철벽(鐵壁)과 같은 궁지(窮地 매우 곤란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처지)를 마주치고 나서 그것을 뒤집어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는 화두의 기능을 지닌다.

 

[참고]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제14권)』 (卍續藏 제68책) '趙州眞際禪師語錄之餘'에서.

師上堂 示衆云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조주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금으로 만든 부처님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참부처님[眞佛]은 안에 앉아 있다. 보리 · 열반 · 진여 · 불성은 모두 몸에 걸친 의복과 같으니, 이 또한 번뇌라고 이름한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28권 「諸方廣語 - 十二人見錄(제방 선사들의 긴 법어 - 12인 기록 있음)」 '조주 종심 화상(趙州從諗和尙)‘에서.

上堂云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대서방(代書房) ; 남을 대신하여 서류나 편지 따위를 써 주고 돈을 받는 곳.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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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척량(脊梁 등마루 척/대들보 량) ; 등마루의 거죽 부분. *등마루 ; 등골뼈가 있어서 울룩불룩하게 줄진 등의 가운데 부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묵언 수좌(默言首座) ; 송담(松潭) 스님의 별명. 10년간 묵언을 하며 수행을 해서 '묵언수좌'라는 별명이 생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인들 유십마죄과(有甚麽罪過)리오’ ;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모두 때려 죽인들 무슨 죄가 되랴’

[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二)’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52, 58 참고.

若是此念이 輕微하야 志不猛利하야 [毯-炎+畏][毯-炎+畏][毯-炎+崔][毯-炎+崔]하며 魍魍魎魎하야 今日也恁麽하고 明日也恁麽인댄 說使三十年二十年用功이라도 一如水浸石頭相似하야 看看逗到臘月三十日하면 十箇有五雙이 懡㦬而去하야 致令晚學初機로 不生敬慕하리니 似者般底漢이 到高峰門下인댄 打殺萬萬千千인들 有甚麽罪過리오

 

만일 이 생각(참선하려는 뜻과 소원)이 흐지부지하여 시원찮고, 뜻이 맹렬하고 날카롭지 못하여 조는 개처럼 멍하거나 도깨비처럼 산란하여 오늘도 그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지낸다면 설령 20년 30년을 공부하더라도 마치 물이 돌의 표면만 적시는 것 같아서,

어느덧 섣달 그믐이 되면 열에 다섯 쌍이 모두 창피한 꼴이 되어 늦게 배우는 이와 처음 출가한 이들에게 존경심을 내지 않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놈이 고봉의 문하에 온다면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모두 때려 죽인들 무슨 죄가 되랴.

*타산반전(打算飯錢 셀 타/계산 산/밥 반/값 전) ; 밥값[飯錢] 계산[打算].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용화선원刊)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p119~122. (가로판 p117~119)

大凡行脚은 須以此道로 爲懷호리니 不可受現成供養了하고 等閒過日이니라. 須是將生死二字하야 釘在額上하야 十二時中에 裂轉面皮하고 討箇分曉하야사 始得이니라

 

대저 행각할 때에는 모름지기 이 도(道)로써 회포(懷抱)를 삼을지니, 현성(現成)한 공양을 먹고 등한히 날을 보내지 말지니라. 모름지기 이 생사(生死) 두 글자를 가져, 이마에 두어 열두 때 가운데에 면피(面皮)를 열전(裂轉)하고 이것을 찾아 분명히 알아야사 비로소 옳으니라

 

若祗隨群逐隊하야 打空過時하면 他時에 閻羅老子가 打算飯錢하리니 莫道我與爾不說이니라

 

만약 무리를 따르고 떼를 좇아서 헛되이 시절을 지내면, 다른 때에 염라노자가 밥값[飯錢]을 타산(打算)하리니, 내가 너를 위해 「설해 주지 않았다」고 이르지 말지니라.

 

若做工夫인댄 須要日日打算하며 時時點檢호대 自轉鼓起來로 至二更히 看那裏是得力處며 那裏是不得力處며 那裏是打失處며 那裏是不打失處오호리라 若如此做將去하면 定有到家時節하리라

 

만약 공부할진댄, 모름지기 나날이 타산(打算)하며 때때로 점검하되, 북치고 일어나서부터 이경(二更)에 이르도록 「어느 곳이 힘을 얻은 곳이며 어느 곳이 힘을 얻지 못한 곳이며, 어느 곳이 잃은 곳이며 어느 곳이 잃지 아니한 곳인가?」하고 살펴볼지니라. 만약 이와 같이 공부하여 가면, 결정코 집에 이를 시절이 있으리라.

*공송세월(空送歲月) ; 하는 일 없이 세월을 헛되이 보냄. 또는 그 세월.

*열철(熱鐵) ; 고열로 뜨겁게 달아오르거나 녹은 쇠.

*별상(別相) ; ①구별. 종류 구분. ②부분. 개개. ③육상(六相)의 하나. 사물에 존재하는 특별한 상(相). 특수한 모습.

*전강 스님이 만공선사로부터 받은 전법게(傳法偈)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법전(法戰) ; 스승과 제자가 서로 문답하고 견해를 주고받는 것을 전쟁에 비유한 말.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입각하여 서로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일반적 문답을 가리킨다.

법전과 문답을 때로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법전은 보통 이미 공부가 성숙되어 자신의 안목을 갖춘 분들이 서로간의 견지를 나누는 것이며, 문답이란 스승이 아직 공부하는 단계에 있는 학인들을 이끌어주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고인이 말씀허기를 거년(去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여~' ;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원주(袁州)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712.

師問香嚴 師弟近日見處如何 嚴曰 某甲卒說不得 乃有偈曰 去年貧未是貧 今年貧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也無 師曰 汝只得如來禪 未得祖師禪

 

앙산대사가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아우[師弟]의 요즘 견처(見處)는 어떠하오?"

"제가 갑자기 말하려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하나 바쳤다.

 

작년의 가난은 아직 가난이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 없다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여래선(如來禪)만을 얻었을 뿐, 조사선(祖師禪)은 얻지 못했다"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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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10. 15. 13:41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8-1호) 선지식들과 법거량. 만공스님 전법게. 안국사 시절.

 

**전강선사(No.306)—전강선사 일대기 제18호(계축1973년 7월 2일 새벽. 음) (1973년 7월 31일)

 

(1/3) 약 19분.

 

(2/3) 약 21분.

 

(3/3) 약 16분.

 

(1/3)----------------

 

악의(惡衣)는 감수절(甘守節)이요  암곡호장신(岩谷好藏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청산(靑山)은 고금동(古今同)이요  녹수임자재(綠水任自在)니라

나무~아미타불~

 

악의(惡衣)는 감수절(甘守節)이다. 이 떨어진 옷, 이 험악헌 옷, 옷도 아닌 것 너절헌 것을 입고, 밥 겉은 것도 그 아무 무슨 양분 없는 거, 그저 풋나물 그 한 가지 놓고 이렇게 먹고, 이것이 분(分)에 족(足)허다.

차외(此外)에 뭣이 꾸며 대고 지분단장(脂粉丹粧) 바르고, 뭣 허니라고 그려. 뭣 헐 것이여?

얼굴을, 얼굴을 모시 모도 이쁘게 그리고 모도 만들고, 뭐 눈썹을 갖다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거 그런 짓이 거 무슨 짓이것냐 그말이여.

 

터억 이 떨어진 옷, 내던져 버려도 안 가져가는 옷. 도적놈이 안 가져가.

여기 와 도둑질을 해감서, 일곱 번 강도가 들었어. 여 지방에 아무 집도 없고, 공장도 그때는 허다 말다 허고. 일곱 번 강도가 들어왔는데, 내가 여그서 강도를 겪은 건 아니지마는...

 

 

그 즈그 오빠를 내가 중을 만들아 주었더니 그 인연으로, 동생된 분이 점쟁이인디 작두를... 작두란 건 풀 써는 작두가 있어. 발로 디디고 써는 풀...

그러헌 그 작두를 날카롭게 그 칼날을 세워 가지고는 고 작두를 발을 밟고 걸어가. 점쟁이가 사빡사빡 그 딛고 걸어간데야. 그런 걸 보면은 왼통 모도 반하고.

"네 이년들! 또 저년 저년, 오늘 뭐 무슨 죄짓고 왔구만. 네 이년들!" 아 이렇게 막을 해도 그저 "아이고!" 그 이렇게 모도 바치고 거 말헐 것 없어. 그런 짓이나 허면 기특허게 알제.

 

새파러니 작두에다 가서 작두를 그 등이 땅으로 가게 그렇게 놓고 아, 그 우에 발을 딛어? 그 어떻게 그 디디겄냔 말이여? 참, 거 위험헌 짓이여.

작두를 발을 딛고 올라서고 막 댕기고 이러니까 그 모도 사람들이 왼통 그만, 그러헌 도인이 없고 그러헌 신통이 없다고 야단났어.

 

아, 그런 분이 내가 인천 보각선원에 있는디 찾아와서 "아이고, 우리 동생을 제자해 주었으니 내가 스님한테 귀의(歸依)허겄습니다"허고 대들어.

아, 이건 내가 그런 것을 뭐 작두 아니라 무슨 번갯불 칼에, 번개칼에 걸어간다 헌들 그까짓 것을 보고 내가 그까짓 녀러 것을 보고 눈이나 깜짝하며, 고런 짓을 내가 봤어?

 

그렇지마는 내가 만공(滿空) 스님한테 큰 기대를 가지고, 세상에는 한국에 만공 큰스님밖에 없다 하고, 찾아가서 내가 절을 떡 허고 보니까, 좋은 외씨버선을 신고, 버선 위에다가—우리 중은 버선목을 옷으로 그 빼서 이렇게 신는 것인데—안으로 딱 겹쳐서 댓님을, 비단 댓님을 딱 매고.

거 옷도! 어떻게 모냥 있게 그때 시대의 옥양목으로 딱 감고, 젓대 하나 앞에 놓고, 앞에는 금선대 헌(軒) 안에 매화꽃이 모도 거 피어서, 꽃 핀 놈 있고 꽃 열매 맺은 놈 있고, 향내가 온통 앞뒤로 풍기는 놈이 있고, 헌 안에 굉장허다 그말이여.

 

아, 그걸 봐도 또 나는 그래도 '한국에 제일가는 도인이다' 이것만 믿고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 내가 이름도 잊었구만. 성(姓)은 권가인디 아, 그 사람이 들어와서 몇 철 모시고 지냈는데, 그 어른의 허물을 낱낱이 들이대는데, 한 번 들어 두 번 들어 몇 번 들으니까, 천연스러운 내 마음이 조끔도 사(邪)가 없고 그런 것 볼 줄도 모르고.

 

외씨버선에다가 비단 댓님에다가 왼통 그래 감고 있고 아, 또 하나는 옷 맨들아 주는 복수좌라고 참, 돌아가신지 얼마, 거년(去年)인가 돌아가셨구마는 그 젊을 때인디, 인물이 그렇게 예쁜 인물은 아니라도 볼수록에 귀태가 주르르 흐르고, 얼굴이 그 그렇게 무슨 미인이라고 잘났다고는 헐 수 없지마는 볼수록에 얼굴이 구성구성허니, 눈이 큼직허니 지금은 보면 현대 미인이라 할 것이여.

그때는 여자가 눈이 크면 미인으로 보지 않고 눈이 간조즈럼허니 예쁘게 생겨야 미인이라 하는데, 지금 현대 미인들은 눈이 크고 키가 훨씬 크고, 그 보는 법이 따로 있드구만.

 

그러헌 여자가 상궁(尙宮)으로 있다가 내려와서 그 일등 솜씨에 옷을 해서 올리고, 또 모시고 있는 시봉(侍奉)이 둘이 있는데, 거 내가 뭐 법사(法師) 스님이라 해서 그 어른의 좋은 행동만 내가 들내고 나쁜 행동은 감촤 줄 것인가?

뭣이여, 나 그대로 말허는 것이제, 감추고 무슨 뭐 나투어 내고 헐 것이 있는가? 그대로 시방 말허는 것이제. 그때 학자는 다 보았는디, 나만 보았나?

 

아, 그래 가지고는 하나는 반찬 장만허는 채공(菜供)을 허고, 하나는 공양 지어 올리는 공양주(供養主)가 되고. 똑같은, 나이도 아마 동갑 될 것이여. 그 두 분이 그렇게 시봉을 허고 있고.

그 허는 법식이 참 그렇게 짬 될 수가 없고, 반찬 겉은 것 장만해 놓은 거 보면 천상(天上) 하날의 무슨 공양 겉제. 그렇게 잡수고 있으니 거다가서...

 

아, 오직해야 삼십본산(三十本山), 본산 그 거(巨) 주지들이, 큰 주지들이 모아가지고는,

"송만공 스님 체탈도첩(褫奪度牒)해야 겄다.우리 불가에 송만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허는 짓이 세상 무슨 큰 부귀 장자(富貴長者)보담도 이상간 그러헌 호화로운 생활에 그런 장쾌한 생활에다가 원 당최 이거 될 수가 있나? 중으로서. 우리 칠천 명 승려가.....” 그때는 칠천 명이든 것이여.

 

"우리 칠천명 승려가 낯을 들고 나설 수가 없다. 그 만공 스님이, 제일이라고 허는 분이 그렇게 행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칠천 명 승려한테 낱낱이 다 미친다. 중놈들이 그렇게 헌다는 놈들부텀 들어갈 것이고, 이거 이래 두어서는 안되겄다"

삼십본산 주지가 회의를 해 가지고는 체탈도첩을 헐라고 했다 그말이여.

 

그 말씀을 만공 스님이 듣고 "흥! 체탈도첩을 헐라면 체탈도첩을 허고, 나를 산문출송(山門出送)을 시킬라면 산문출송을 시키고, 느 마음대로 해라"허고 그 앉어 계시는 엄연(儼然)헌 거동이 도인이여!

별별 악평을 다하고, 지금도 만공 스님 말허면은 '만공 스님, 모도 팔선녀를 거느렸다. 뭐 처녀를 데리고 시봉질을 했다. 뭐 퉁수를 불고 뭐 요릿집에 갔다' 별별 말씀이 다 있제.

 

당신은 그런 말씀을 듣고는 회과자책(悔過自責)을 허는 것이 아니라, 뭐 회과허고 뭐 자책지신(自責之身)을 해서, 내 몸뚱이를 살펴서 그런 거 안 헐라고 헌 것이 아니라 그대로제.

그대로 계시면서 그 엄연헌 거동, 행동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이 헐 수 없어!

천하 없는 사람이 별 허물을 다 헌다 헌들 왼눈 하나 깜작도 없지마는, 동작이 그렇게 엄연헐 수가 없제. 그 왈(曰) 참, 도인(道人)의 인격이시제.

 

"응, 체탈도첩을 나를 시킬라고 언제 허는가? 아무 말이 없나?" 그러시곤,

"산문출송을 시킬라면 어느 날 헌단 말이나 있으면은 내가 좀 그걸 미리 알고 무슨 방침을, 내가 퇴속을 헌다던지 내가 헐 것인데, 아무 말이 없구나" 그러고 계셨단 말씀이여.

 

도인을 찾아갈 때 무슨 모냥이여?

똥을 싸서 옷에다 바르고 계신다 헌들 '저것이 도인 아니다' 요래?

요까짓 상견(相見)을 가지고 들어와서 상 없는, 상견 없는 도를 깨달고 도를 배와? 어림도 없제.

 

도인은 시험허는 법이 학자한테 비방 듣고 배척 당하고, '아이고 저래, 저게 도인이여?'

이러헌 행동을 갖추는 것이 그 도학자에 시험허는 것이여. '네가 참으로 믿어 왔느냐?' 도학자 시험이라는 게 그것이여.

 

부처, 당래교주(當來敎主), 용화교주는 포대화상이 되았다가, 쌍용 부대사가 되았다가—포대화상(布袋和尙)이 되아 가지고, 글쎄 늘 말했지마는 포대(布袋)를 짊어지고, 그놈의 포대 속에 뭐가 들었냐 그말이여.

다맛 포대 속에는 포대, '자리 포(布)'자, '자리 대(袋)'자, 포대라는 것은 이놈을 얼마나 짊어지고 얼마나 끌고 돌아댕겼던지 지름 보재기도 그럴 수 없고, 맨놈의 코만 발라지니까 겉으로는 코가 칠처럼 되아 가지고 발라져 있는 그러헌 포대여. 그놈의 포대 속에는 옆에 가도 못혀, 추물 냄새가 나서.

 

그 속에는 또 천하에 개란 놈이 그놈이 더러워서 그런 것인지 모도 추육(醜肉)이라고 헌디, 개란 놈 그 잡아서 모도 내버린 뼉다구를 걷어 짊어지고 댕김서 "뼉다구, 개 뼉다구 사시요" 그러고 외고 댕긴다 그말이여.

다 증(證)해 버렸으니, 깨달라 증했으니 그 무슨 중생견(衆生見) 중생고(衆生苦) 그 뭣이 있을 것이여?

 

중생이라 하는 것은 고(苦)밖에 없다. 괴로운 것밖에 없어.

이 몸뚱이 하나, 어머니한테 받아 가지고는 이 몸뚱이 어머니가 길러 줄 시대에도 배 아프제, 어린것이 뱃속에 탈나도 알 수 없고 울기만 울제, 젖꼭대기를 물어도 그 울기만 울제.

그 다 아파서 그런 것이고, 몸뚱이 사방 모도 어릴 때 통증이 많이 있고, 감기 잘 걸리고 굉장한 것이여. 아프다 소리도 못혀.

 

그때 어머니 뱃속에서 이 몸 하나 얻어 나와 가지고 온 그때부터서 시작해서 이 몸뚱이 고통이 얼마냐 그말이여.

 

자신이 아지도 못허고, 그때는 뭘 보는 것이 옳게 보지 못허고, 육근(六根)으로 듣는 것이 옳지 못허고, 그저 부정류... 염염... 그 무슨... 이렇게 보제, 무슨 알고 보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해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지마는 맨 고통 뿐인디 차츰차츰 인자 커나면서 철 알면서 그 고통이 어떠헌가?

천만 고통이라는 것이 그 인자 그때부텀 고통도 알고 괴로운 것도 알고 신내재본(身乃災本)이라는 것도, 몸뚱이라는 건 재앙의 근본이란 것도 알고 다 알제. 알지마는 그 괴로움이 얼만가?

 

얻지 못헌 괴로운 것이 있고, 그 내 마음대로 못허는 고러헌 괴로운 것이 있고, 이놈의 몸뚱이 부자유가 어떠헌가?

차츰 건강헌 시대는 가버리고 노년 시기가 오니 늙는 고통—늙어 가지고는 호흡도 저축대고, 장갱이 뼈는 톱날 같이 되고, 음식 맛없고, 왼갖 마음 다 일어나제. 그런 놈의 몸뚱이가 오니 병들어 죽제.

 

요놈의 이 몸뚱이 얻어, 일생 고(苦)도 우리가 이렇게 받고 있는데, 전생 과거에는 얼마나 삼악도(三惡途)를 들어갔으며, 세 가지 악헌 지옥을 들어갔으며, 감옥을 들어갔으며, 죄수가 되았으며.

한량도 없는 무량 과거, 왜 무량(無量) 과거냐?

 

내가 어디, 때가 난 때가 있고 없어지는 때가 있어야제.

항상 나는 그대로 있는디, 왜 엉뚱헌 몸뚱이, 이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색상 몸뚱이 애착을 해가지고—상견(相見)에 애착허고 사견(邪見)에 애착만 해 가지고는,

 

상견(相見)이라 하는 것은 내 몸뚱이, 항상 가지고 있는 이 눈 · 코 · 귀때기 모두 있는 요놈을 착(着)해서, 형상 있는 것을 착해서 그것이 내 몸뚱이인만 아는 것이 그것이 상견이고.

빛깔이—내 몸뚱이, 얼굴 잘나고 뭐 색상이 그 색이 좋고, 빛깔 좋고 허는 것을 애착허는 것이 상견이여. 다른 게 아니여.

 

그거, 이 몸뚱이를 애착해 가지고 상견에 집착해 가지고는 색상에, 그 상(相) 모도 빛깔에 '얼굴 잘생겼다, 예쁘다, 색이 좋다' 모도 이런 데 착(着)해 가지고는, 죄만 퍼짓는 것을 중생이라 햐.

중생이라 하는 것은 모도 상견 · 사견에만 집착한 것을 중생이라 햐.

사견도 여러 가지가 다 들어 있고, 상견도 여러 가지가 다 들어 있지 않는가? 낱낱이 말헐 것 뭐 있나? 이렇게만 해주면은 알제?(처음~19분27초)

 

 

 

 

(2/3)----------------

 

「나」는 몸뚱이, 이 상견 몸뚱이 · 사견 몸뚱이를 끌고 댕기는 주인공, 이 마음 자리는 부단불멸(不斷不滅)이여. '끊어짐도 없다'는 것은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아니여. 나왔다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온, 어머니 뱃속에 들어와 몸뚱이 얻은 그놈이나, 몸뚱이 얻기 전이나 과거 천만 겁 중 역사가 없는 그놈이나 불변부단(不變不斷)이여. 변함도 없고, 없다 있다 헌 법도 없어. 단상견(斷常見)이 없다 그말이여.

 

그놈이 들어서, 그놈이 그놈이! 들어서 죄를 짓는 법이제. 그 제육상이 있고 제육근이 있고 제칠식(第七識)이 있고 제팔식(第八識)이 있고 제구 백정식(第九白淨識)이 있는데, 제구 백정식은 부처님이래야 백정식을 갖추아져 가진 것이고, 중생은 아주 근본무명(根本無明) 딱! 미(迷)해서 잠을 자나 꿈을 꾸나 알 수 없이 잠자고 들어앉었는 거, 그것이 무몽무상(無夢無想) 경계, 그것이 제팔식이여.

 

제팔식장 거그에 종식(種識)이 하나 있어서 깜깜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식(識)을 칠식이 들어서 가서 인자 가지고 나와. 그러면 팔식장이 깨나도 분별이 없는데, 거그서 분별을 칠식(七識)이란 놈이 인자 만들아 가지고는 육식(六識)으로 전해 주어.

눈으로 전해 주고 보게 만들고, 귀로 전해 주어 듣게 만들고, 코로 냄새 맡게 만들고, 입으로 쎗바닥 놀려서 '달다, 시다' 고런 분별 만들고, 뜻으로 생각해서 원증회고(怨憎會苦)를 만드는 것이여. '원수다, 저 사람은 나허고 은인이다' 고러헌 모도 분별을 만들아.

 

그다음에는 의식(意識), 뜻으로써, 그 인자 내 뜻으로써 왼갖 천만사를 다 그놈이 분별허게 만들고, 요 칠식이란 놈이 그리 전해 주어. 육식(六識)이 있어야사 전허제, 육식이 없으면 못 전혀.

눈이 있은게 눈으로 전해 주고, 귀로 전해 주고, 코로 전해 주고, 입으로 전해 주고, 몸뚱이로 전해 주고, 뜻으로 전해 주어. 아 요놈이, 칠식 요놈 농간이 굉장하제.

그래서 육식이 들어서 인자 죄업을 퍼짓는 거, 중생상(衆生相)에 처백히고 색상(色相)에 처백히게 만드는 거.

 

아, 그러니 제팔식도 영 당치않고 칠식, 육식에 당치않고, 제팔식장 근본무명(根本無明)이여. 꽉 미해 버린 그 팔식장을 때려 부수는 것이 공안법이여.

공안(公案)이 아니면 제팔식 부동상(不動相)을 쳐부술 수가 없어. 백정식으로 척 깬, 툭! 깬다 그말이여. 탁! 깨닫는다 그말이여. 의식으로는 소용없어. 제팔식장 부동식에 들어가서는...

 

자! 신선이 장자(莊子)는 현빈(玄牝)이다. '감을 현(玄)'자, '암소 빈(牝)'자여. 그건 내나 바로 듣게 말허자면 공(空)밖에는 안되아.

그 공도, 그놈 내가 공이라고 허니까 공이제, 공이 아니여. 중생이 색상 따문에 공을 바로 볼 수가 없는 것이여. 말을 들으면 '옳다! 저, 텅 비어 없는 것을 공이라 하는구나' 그거 아니여.

 

깨달라 가지고도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볼 줄 알어야 하는데, 진공묘유를 볼 수가 있나?

공을, 몇 공을 갖다 때려붙여, 삼공(三空) 정관(定觀), 관공(觀空)을 때려붙여, 별 공(空)을 다 떼고 여의여 붙여도 중생의 그 육식장(六識藏)에 떨어져서 헌 것이제, 그 묘용 진공(妙用眞空)은 꿈에도 못 봐.

 

'뭐, 뭐, 조사관(祖師關)은 공 아니나? 말허자면 공이제. 공도 안 붙어?'

허지마는 조사관을 공으로 갖다가 봐 가지고는 저 죽고 남 죽이는 것이여.

 

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는 평상화(平常話)로 '뜰 앞에 잣냉기니라' 보통 평상화로 이렇게 했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는 모르는가?

경계부텀 머냐 알아야 되거든. 조사관에 경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여. 그건 깨달랐자 똥 없는 똥을 갖다가서 낯반대기에다 바르고 나온 것이여.

 

깨달라? 무엇을... 기가 맥히제. 사람이, 왜 그러면 저만 깨달았단 그 말인가?

자기만 깨달랐으면 자기 깨달은 도리로 바로 말해 주는디는 어째, 또.

일체 누진(漏盡)이 다해 가지고 턱 바로 봐 가지고 말허는 데는 어째, 그 겸양이 있을 것인가? 겸양도 없제.

 

 

아, 글쎄 내가 지금, 돌아가시고 없으니까 참...

아! 내가 왜 그분한테 기맥히게 인가 받고 그 와서 참! 수기(授記)를 해 줄턴디, 마정수기(摩頂授記)까장 해... "참 착하다, 선재(善哉)로구나!"하고.

 

아! 만공 큰스님한테 십이 문답을 그날 밤에 탁! 가려내고, 뭐 마조원상, 보월 스님 실수헌 것을... 실수인가? 학자한테 탐간(探竿)허는 것이제.

아, 바로 본 공안을 가지고는 학자한테, '저 학자가 눈이 바로 갖춰져 있나 없나?' 해서 엉뚱헌 놈을 한마디 턱 일러주는 것이제.

 

그러면 학자 거그, "예!..."

"야, 이 저석아, 뭣이 예여?" 절단나는 것이여.

 

거그서 학자 눈을 턱 가리울 때, 그 포장을 턱 걷고 착! 들어서서...

어쩌? 학자를 속였지마는 방(棒)은 면치 못허제. 바로 못 일러주었으니 방은 면치 못허제.

 

학자 눈을 속일라고 한바탕 턱 했지마는 학자가 속아야제.

원앙수출(鴛鴦繡出)에 속은 법이 없어. 금침(金針) 있는 곳을 안다 그말이여.

 

속지 않고 건네와서 "큰스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방장(方丈)에 누워 계시다가 "무슨 말씀이 있는고?"

 

"보월 큰스님이 그...!"

나는 소문(所聞)만, 옳게 못해 주었다는 것만 가지고 말허제, 뭐 탐간을 했느니, 나를 무슨 뭐 시험을 했느니, 그런 말헐 것이 무엇이 있나. 없어!

 

"아, 그만 마조원상을,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헌디, 한마디 일러 줍소사'허고 말씀을 허니까, 원상(圓相)을 뭉켑디다. 그러니 학자를 갖다가 속여서 진흙 밭에 파묻는 것 아닙니까?"

 

진흙 밭에란 건, 진흙 소(沼)라는 것은 집어넣으면 건질라고 헐수록 더 들어가거든. 밑에 뭐, 뭐 받침이 있어야제. 사뭇 들어간다 그말이여. 수천 질 되는 진흙이 그대로 껍데기도 물컹물컹 허지마는 속에 딴딴한 흙도 없으니 막 그저 파묻힌 곳이여.

 

"학자를 갖다 가서 타니대수(拖泥帶水)를—진흙을 한 짐 짊어지고 물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 타니대수를 허지 않았습니까? 원상을 뭉케다니 될 수 있습니까?"

"자네는 어떻게 헐라나?"

 

그 김초안(金初眼)이라고. 참 장헌 사람이 있었는데,

"그러면 자네가 나한테는 못 이른다면 저 용담(龍潭)한테 이르소. 그래 용담이 저 주장자를 가지고 원상을 하나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 한번 물어보소"

 

허! 용담이 시킨대로 헐 수밖에 없제. 주장자를 들고 원상을...

벌써 '그러면 용담한테 묻소', 주장자를 내 주면서 '원상을 그리고 묻소'헐 때 만공 큰스님의 답이다 그말이여.

기맥히제, 그 법로(法路) 밟는 법이 뭐 보통 아니시제. 보통이 아니시지마는 법을 쓰는디 묘(妙)해. 같은 법이라도 그 쓰는디 기가 맥혀!

 

아! 금당 고운루에 올라가서, "금도고운루(今到孤雲樓)허니 주앵야두우(晝鶯夜杜宇)로구나, 오늘 고운루에 이르니 낮에는 꾀꼬리 울더니 밤에는 두견새가 우는구나. 직지착지냐(直指錯指耶)? 이게 바로 가르킨 도리냐, 그릇 가르킨 도리냐? 이렇게 묻는데,

답이 하나 나오기를 "구구 팔십일(九九八十一)이니라" 잘 나온 답이거든, 그 답이.

 

그놈을 갖다가 바로 쓰지 않은 것이다 그말이여.

 

그놈을 바로 쓰자면 "금도고운루(今到孤雲樓)허니, 이제 고운루(孤雲樓)에 이르니, 주앵야두우(晝鶯夜杜宇)다. 낮 꾀꼬리요 밤 두견이로구나. 이게 직지(直指)냐 착지(錯指)냐? 바로 가르킨 것이냐, 그릇 가르킨 것이냐?"

그러면은 그놈을 갖다 턱 이르되, "주앵야두우(晝鶯夜杜宇)니라" 이렇게 일러주어사 바로 일른 것이다 그말이여. 법이란 게 그러헌 길이 있어. 법로가.

 

왜 내가 이런 말을 해 주어?

『염송(拈頌)』에는 없는가? 바로 다 일러주는 공안이 있지. 『속전등록(續傳燈錄)』에 가서 또 있어. 속전등이라는 게 있는디, 그 전등에도 96전어(轉語)에 답이 다 있어.

나는 답도 모르는, 속전등커니는 겉전등도 안 봤는데 어떻게 내가 알 것인가? 그때 처음.

 

뭐 그다음에, 아, 저 저 수공, 수공! 그때는 어릴 때 일공이 때구만. 그때 뭐, 그 뒤엔께 우리는 그 전이니깐, 그건 모를런지 모르지마는 현당에서 그 뒤에사 인자 내가 경 본다고 보았제.

뭐 경이나 아니나 뭐 얼매 뭐 보기나 했나마는. 보니 의견이 틀려서 볼 수가 있어야제.

 

아, 강사라고 이력을... 문강(講)을 허는데, 대번 들어가서 보는데, '노로조계전제수, 우도본래무일물이라. 고금다소천하인을 불석미모행방할이라' 아, 이놈 가지고 문강이 되았는디 그...

 

아따, 이 파리 한 마리가 왜 그리 이 대들어 쌓는고? 그놈이 법문 들을라고 그러나? 법문 듣는디 마구니 노릇을 허니라고 그러나.

 

끝에 가서 '우도본래무일물, 고금다소천하인을 불석미모행방할이라' 그놈이 있는데.

 

 

노로조계전제수(曹溪傳諸受)허고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을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분(本分)에서 볼진대는 아무리 육조 스님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했지마는 방맹이거리다 그말이여. 그러니 육조 스님이 전수(傳受)가 없는데 오조 스님한테 법을 받아?

발써, 오조 스님한테 법 받을 때, 무슨 전수가 있나? 거기에 가서 뭔 전수가 있어? 전허고 받을 것이 뭐가 있어?

 

또, 전제수(傳諸受)도 없지마는, 받으고 전헐 것도 없지마는, 육조 스님은 본래무일물이라고 허셨으니,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도 막도무사이호(莫道無事而好)타' 보태 '한 물건도 없다'해도 벌써 누()는 짊어진 것이다.

그러니 입만 벌려서 무슨 법을 일러 놓던지, 법누(法)를 막 들어서 다소천하인(多少天下人)을 방(棒)으로 때려 잡으리라, 그렇게 일른... 불석미모(不惜眉毛), 미모(眉毛)를 애끼지 않고,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맹이를 행하리라. 이러헌 법문이 있어.

 

그러면 눈썹 터럭 애끼지 않는 도리는 무슨 도리냐 그말이여?

 

낱낱이 법이라는 것은 법로(法路), 길이 있어. 이치 길이 분명히 있어.

이치 길이 어디가 있을까마는, 말허자면! 공안이라는 것이 그래서...

 

그러면 낙처(落處)는 공안에, 천칠백 공안에 낙처는 다 진공(眞空)으로만 보자. 진공으로만 때려 보면은 주장자 든 경계나, 주장자 놓는 경계나, 할이나 방이나, 이놈 저놈,

"네 이놈, 똥 쌌냐?"

"예, 쌌습니다"

 

모두가 그것이 진공이제, 아님이 어디 있어? 똑같제.

그 공안 하나를 진공으로만 때려 봐, 공(空)으로만 봐버렸으면은 천칠백 공안에 뭐 또 맥힐 것이 무엇이 있어?

 

바로 보지를 못했기 따문에 천칠백 공안에 그 선사(禪師)의 도리는 그 이르는—공안 만들아 논 스님의 도(道) 이치는 꿈에도 보지 못허고 제 공(空)만 가지고 보거든.

 

제 공(空)만 가지고 보니까, 그 중생 공만 가지고 보니까, 빈 걸로만 보니까, 작대기도 내가 들어 작대기라 했제, 이 작대기가 어디 본래 '내가 작대기다' '내가 무슨 뭔 가무태냉기다' '질다 짜룹다' 있는가?

이, 이 이름은 제가 가졌지마는 제가 가진, 제 의견이... 뭐 제 의견을 붙일 것이 무엇이 있나? 이놈은 이놈대로 공이제. 일체 공이 이놈이 뭐 공도 허락지 않제. 그러니 공견(空見)도 여의였제, 이놈이.

 

이놈 뿐인가? 이놈도 그러허제, 책도 그러허제, 아, 이런 뭐 녹음기도 그러허제.

어디가 있나? 맨 우리가 중생들이 붙여서 '가무태다' '질다 짜룹다' '무슨 빛깔이 어떻구나' '붉구나 곱구나' 별 놈의 도리를 다 붙이제.

 

제 이놈, 들어가서 보아. 가무태냉기 자체(自體)에 들어가 보란 말이여. '내가 가무태냉기다' 부텀 없제. 일체제상(一切諸相)이 다 여의여졌제.

 

하! 이런 제기, 이놈은 제상(諸相)이 다해 졌으니 이놈을 명상공(名相空)이라 햐.

그러면은 진진찰찰(塵塵刹刹)이 모도 다 있어. 일체 티끌 티끌이 다 그러헌 자체 공(空)한, 자체공(自體空)이 있어. 그 모도 명상공이 있어.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가 있어. 백초두(百草頭) 가운데 다 조사의(祖師意)가 있고 다 진공이 있어.

 

공안을 바로 깨달지 못허면은 바로 진공(眞空)을 보는 법이 없어!

공안이 아니면, 공안을 의심해서 깨달지 못하면은 그 공안은, 제팔식 뢰야식장(賴耶識藏)은 뿌술 수가 없어.

그러니 거다가서 그 인자 공안법을 다 일러 놨는데, 아무리 일러준들 파설(破說)을 해 준들, 알어?

 

아 그러면은 "꿀 먹을 때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달다!"

 

그 공안이 나왔는디,

"'달다', 옳제! 그놈이 인자 참, 꿀 먹었으니까 꿀 먹은 놈은 달제. 그 꿀 먹은 놈은 '달다'헌 그놈이 바로 공안이요, 바로 가까운 놈이요, 꿀 먹는 놈 밖에 격외(格外)를 갖다 쓰면은 뭐요, 꿀 먹은 놈 그놈이 대체 '달다' 그놈이 그 가까운 공안이요, 거그 붙어 있는 공안이요"

요러헌 해석 가지고는 백만년을 했자 견성(見性)도 못허고, 미륵하생(彌勒下生)에 이르렀자 거, 불쌍헌 물건이여.

 

따지는 법 아니여! 공안을 요리조리 해석 따지는 법 아니다 그말이여.

강사처럼! 맨 강사가 그 격외선(格外禪) 다 따지제.(19분29초~40분43초)

 

 

 

 

(3/3)----------------

 

그러면 그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라, 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했다' 눈썹 털을 애끼지 않은 게 무슨 도리냐 그말이여?

 

'나는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할을 행허겄다'

세상에! 그게 참, 어려운 법문이다 그말이여.

 

거다가 좀 때짝거려 놓으면 또 모도 해석을 붙이고 해석 내고, 넘의 것 도둑질해다가 제 살림 만들아 가지고 거짓 도인노릇 헐라는 것들에는 그것이 방해여.

 

허지마는 진실헌 이는 그럴수록에 더 진실을 갖추고 내가 아무때라도 내가 깨달라서 내 생사해탈을 해야 내가 그때 가서 입을 벌리고, 뭔 법도 '그르치면 그르쳤다, 옳으면 옳다' 탁마(琢磨)해 내가 마음대로 헐지언정,

내가 지금에 앉어서, 깨달도 못허고 앉어서, 내가 깨달랐다고 남의 것 갖다가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이면서, 저는 돈 한푼 없으면서 남의 돈만 갖다 세서 주고 제 못 쓸 것 무슨 소용이 있어?

 

아, 이놈을 뜩 내가 허는디, 그 그이는 또 해석해 놓은 것이니까 내가 해석을 해주어.

그 강사인디, 강사로는 일등인디, "아, 그게 불석미모(不惜眉毛)라는 것은 방(棒)으로 때리니까 전신(全身)을 때린 거 아닌가? 눈썹같은 조그만헌 털도 다 때려 부순다 그말 아닌가?"

 

세상에! 강사의 지견(知見)이라는 게 그렇네. 해석을 헌다는 지견, 글 안다는 지견이 그뿐이네. 사람 죽제.

 

아, 그러니 거가서 무슨 놈의 경(經)을 펴? 거가서 경 펼 것이 무엇이 있어?

무엇을 들을라고 봐. 글귀 글귀 다 속는디. 저도 속아 가지고 남 속이는디. 저도 속아 가지고 헌 것이여.

 

대체 방(棒)이라 하는 것은—눈썹 터럭이 조그만헌 털... 왜 조그만헌 털이면 눈썹 터럭만 조그만헌가, 장갱이에 털 하나 난 것, 그런 것이 드문드문 났지마는 그 드물제.

그런 것 아니여. 그렇게 엉뚱허게 따지고 있으니 그게 뭐냐 그말이여.

 

불석미모(不惜眉毛)허고 행방할(行棒喝)이다. 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허겄다.

그놈을 가지고 싸우다가 경 덮어 버렸어. 내가 뭐, 뭐 그까짓...

나는 이력(履歷) 한 벌 마친 것보덤 더 훌륭하고 더 낫다 그말이여. 자찬(自讚) 하나 거다 붙여 놔!

 

일체 경을 확... 나는 그런 그 조사관만 나오면 그만 입이 절로 열리는디. 아, 이런 엉뚱헌 소리를 해 놓으니, 그러면 "아니요!" 그 내가 해석해 줄 것이여? 그래 못혀.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않고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면은 그 설파(說破)가 내가 그 '달다'만 일러 놨제, '달다'는 놈을 설파했는가? 내가 또 그 '달다'는 놈...

 

그 보월 스님 그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에 내가, 탐간(探竿)으로 턱 해 준 것 속지 않고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 속을, 학자를 진흙 속에다 몰아, 진흙 흙탕에다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조실 방문을 닫쳐도 보통 닫친 것이 아니라 탁! 그냥 역부러 그만 탁! 한번, 그 기운이 있으니까, 탁! 치고는 탁마헐 곳이 있으니까, 만공 큰스님이 있으니까 얼마나 미더워지고, 참, 얼마나 가는 걸음이 쾌활스럴 것인가?

 

그때 처음 지견이 나 가지고는 팍! 보이는 것이 마조원상(馬祖圓相) 입야불입야에 가서 하나도 걸림이 없이 다 보았는데.

그러면 마조원상 법문만 보아 가지고는—그때 학자가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하니, 원상 안에 쑥 들어갔거든. 마조 스님은 탁! 쳤다 그말이여. 허니까,

"모갑(某甲)을 치지 못했습니다"헌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거든. 양구(良久)도 아니고 휴거여. '쉴 휴(休)'자, '갈 거(去)'자여. 휴거(休去)여. 기가 맥혀! 그런 것을 못 보는 것이여.

 

처음에 하나 답허면 그놈 답했다고 '옳다' 그래 주어? 그것 되아?

인가(印可)가 그려? 그러면 그 썩은 놈의 인가여.

 

그때 가서, 그 법로(法路)가 끊어지고 이로(理路)가 끊어지고, 거 이치 길, 법로 없는 곳을 바로 봐야 혀.

각견(覺見) · 지견(知見)에 떨어져서 이로(理路)에 떨어져서 어로(語路)에 처백히면 그것 되아?

 

가서 만공 스님한테 가서 말씀허니까, 주장자를 척 내주어. 그게 결론이여!

"입야타불입야타, 해라!" 입야타불입... 그리고 그리고 "입야타불입야타!"허제.

 

거그서! 뭐... '이-'가 무엇이여? '이-'혀?

'그런것인가'허고 일러? '이러면 옳다'허고 일러?

 

거 뭔, 뭐 이른 줄도 몰라. 옆에 앉었어도 모르는 법이여.

 

벌써 만공 큰스님은 주장자 내밀면서 "자네가 묻게"헐 때, 초안이를 보고 묻게 헐 때 발써 점검 다 해 버린 것이여. 그래 무섭다는 것이여.

그 그렇게 척 해 놓으니, 그렇게 해 놓았지마는 그 공안에서 그렇게 끝났고, 십이 문답에 가서 내가 척! —주욱 한암 스님, 만공 스님 그 다 한 그 문답을 십이 문답이라 햐.

 

답허고 또 답허고, 답허고 또 답허고, 번복을 이렇게 허다가 끝에 가서 백지(白紙), 네모진 백지 저 한쪽 귀텡이에다가 원상(圓相)을 그려 놨어.

백지, 네모진 놈에다가 한쪽 귀텡이에다가 원상을 그려 논 것을 그걸 원상으로, 마조(馬祖)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허는 그 원상으로 보아서는 틀려! 같은 원상이라도 천지 차(天地差)가 있어.

 

십이 문답을 가려낸 뒤에사, 인가허거나 말거나 나는 쾌활스럽게 답허고 어디 맥힘이 없이 답했으니까.

내 학자들인디 나를 믿고 다 온 내 학자들한테 숨기고 내가 나투어 낼 것이 무엇이 있나?

답했으면 '했다'하고, 내가 그때 옳게 견성을 했든지 그르게 공안을 보았든지, 본 건 '보았다'하고 헌 건 '했다'하제, 내가 '안 했다'햐? 원 거가서 거짓말이 있으리오.

 

 

아, 경봉 스님이 그렇게, 그때 경봉 스님 견성해 가지고는 경계가 뒤집어져서 법광(法狂)이 났단 말은 다 알고 있는데, 그 내가 거짓말 그것도 했어?

 

내가 빌어먹고 금당에 들어가 얻어먹고 들어가다가 짚부채 놓고 앉었는디, 거그 추산 스님, 이름은 내가, 추산 스님인가? 하여간 추산 스님 겉은디, 입승(立繩)으로 있는 노장이 나를 두 번이나 와서, 세 번이나 와서 하도 간청을 해서 키껴 들어가니까,

보광선원에서 이렇게 앉어서 눈이 벌게 가지고 앉어서 법광(法狂)이 나 가지고 식광(識狂)이 나가지고 계실 때인디, 내가 척 들어가서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허니까, 원상을 뭉케서 아, 내가 "그 자리에 쓸어 묻으라"고 고함을 질르고는.

 

아, 그래 한참 앉었다 "옳다! 내가 알았다!" 그래서, 대중은 물러가라 하고는 딱 그 어른을 내가 서로 같이 그 물 흐르는 디를 가서, 아, 답을 해서 아, 그 답을 처억 해서 “허허! 어떠 허시요?”

점두(點頭)허고 내려오신 뒤에는 그만 그 경계 싹 가라앉고 그때부텀은 일체 없고, 똑! 선원에 가만히 앉어서 정진만 일생을 해 나와서, 그 경계를 찬(讚)에는 더 못 찬허고.

 

그다음에 내가, 그 나는 인자 오장치 벗어 버리고 짚부채 놓아 버리고 빌어먹든 그 경계 치워 번지고, 아, 내가 대구 교당에 와서 포교사로 있으니까,

아, 당신이 그 최설암 스님 밑에 감원(監院)을 보다가 청첩장(請牒狀)을 가지고 와서 내가 들어가서 보광전 조실(祖室)에 있다가 아, 조실에 한철 산림을 못허고는—그 젊은 때인디, 나이 그때 신미년이여. 서른세 살 먹었을 때인디, 아, 서른세 살 먹어 조실(祖室)헌 사람이 누가 있냐 그말이여?

 

아, 그런데 그때에 최상근이가 대월이여. 대월이 내 밑에 있었고, 아, 그때 인자, 요새는 참, 별로 없구마는, 그 모두 지낸 사람들이 여그저그 있었는데.

그놈 이름이 무엇인고? 그때 지낸 놈이 시방 살아 있는데.

 

아, 내가 그렇게 했는데, 법문... 해제 대중법문 헐 때 했더니, 그 법문을 보시고는 영 거부를, 부인을 해버리고 거짓말 했다고 그러길래, 또 하나 냈제. 허거나 말거나 또 하나 냈제.

극존극대(極尊極待)를 내서 나는 해 놨더니, '내가 언제 그때에 원상을 뭉케야?'고, '내가 부채로 밀었다'고 해야, 뭐라고 허디야.

그래 놓고는 아, 나를 거짓말헌다고. 제방(諸方)에서 그래도 조실 종사(宗師)로 있으면서 그런 말을 거짓말허냐고.

 

나는 그 거짓말이라고, 거짓말했다 안 했다 변명 발명도 없고, 또 헐 법문 그대로 내놨제.

그랬더니 그 반박 신문을 냈드구만. '나는 그러헌 일이 없었는디 그런 일이 있다'고. '이 모도 거짓말을 해서 위조해서 했다'고 이렇게 했드구만.

 

내가 거짓말했자 위조했자 뭐 내가 뭐 뭐 무슨 거짓말 위조를 했냐 그말이여.

또 거짓말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내가 또 그 변명헐 것이 있어야제. 뭔 변명을 혀? 내비두어 버렸제.

 

원, 세상에 그때 그렇게 헌 법문이래야 조리도 있고, 내가 나이 어릴 때고 당신은 나이 나보담 한 칠팔 년 존장(尊長)이니까 그렇다 하지마는, 그 어디 나이가 있는가? 나이란 게 어디 있어?

 

오조 스님 회상에는 구봉이 나이 그 어릴 때지마는, 입승을 막 갖다가서는 어쨌냔 말이여?

"스님! 선사(先師)의 도리는 보지 못했소. 스님이 석상(石霜) 스님 대(代)를 못 잇습니다" 그 나서서 헌 것 보란 말이여. 법문 서로 탁마허는 디 가서 무슨 노소(老少)가 있냔 말이다.

요까짓 놈의 몸뚱이는 응, 한 살 두 살 무슨 연조가 무엇이 있지마는, 법에 가서야 무슨 연조가 있나? 한 살 먹어 깨달랐으면은 뭔 그 무슨 한 살 먹었으니까 법을 안 배와? 그런 법이 있어?

 

아, 기껏 나는 탁마허고 나와서, "우리나라에는 경봉 스님 밖에는 지금 학자라도 데리고 가리킬 이가 없으시다"하고는 여그서 내가 그렇게 내가 통 대중께 말을 했고,

그때 그렇게 해서 내가 가서—당신이 청첩장 가지고 와서, 조실(祖室)에 있을 때에....

 

아, 당최 고기가 먹고 싶어서 당최, 고기도 얻어먹고 댕기다가 교당에 있다가, 교당에 있닥 하니까 약으로는 허락했으니—몸이 그렇게 수척했으니, 그 무슨 고기 제일 그래도 약보담도 식보(食補)를 해야 헌다고 허면서...

 

그 지금 고불심은 살아 있구만. 그 고불심(古佛心)이 대구 있을 때에 내가 가서 그 포교사가 되아 있고, 고불심도 나허고 동갑(同甲)인디, 시방 김천 직지사 있다 그말이여.

아, 그렇게 있을 땐디—갖다 조실에 앉혀 놓으니, 그 견성했다고 알았다고 왼통 동서남북을 그렇게 이 집 저 집 댕기면서 가거(假居)를 허고 이렇게 지내다가 잠깐 들어와서 옷 벗고 가만 어쩌다가 그저 그...

 

그것도, 그거 그놈만 따서 그 뭔 얘기해 놓은 거 있지마는, 순서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여. 지금 순서가 어떻게 된지도 모르지마는,

오장치를 막 벗어 번지고는 뽀이질로 들어갔다 그말이여. 뽀이질로 들어가서... 합천 해인사에서 그래 설해 놓은 거 다 있제.

뽀이질을 허는데, 한용운(박한영) 스님, 최남선씨 둘이 한국 문장이니까... 거그를 구경 왔어.

 

머리는 안 깎았은게 이만큼 길으니, 요새 현대의 모도 학생들도 요까장 길러 가지고 댕기드구만.

나는 여지없이 길러 가지고 여까장 내려온 놈, 감투나 아니거나 이렇게 쓰고 머리가 앞으로 나와싼게 써서 끈을 달아 여다 짬매고, 짚으로 부채 맨들아서 들고, 오장치 지고 이러고 댕겼으니깐 말헐 것이 있나 그말이여.

 

그러다가 그놈을 벗어번지고는 홍도여관에 들어가서 그 머리 그대로 두고는 탯머리 하나 쨈매고, 그러고는 옷을 뭐 아무 때나 인자 그때 가서는 그 양복이니, 떨어진 옷이니, 누데기니 그런 것도 입지 않고... 그러고 있는데, 아! 최남선 씨, 뜻밖에 박한영 스님이 왔다 그말이여.(40분47초~56분17초)

 

*전강선사 일대기 제 18-2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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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惡衣甘守節 岩谷好藏身'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일선자(一禪子)' 참고.

*분(分 직분·신분·분수 분)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限度 일정한 정도. 또는 한정된 정도). 분수(分數).

*족하다(足-- 충족하다·가득 참 족)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지분단장(脂粉丹粧 입술 연지 지/가루·안료 분/붉을 단/단장할 장) ; ①연지(臙脂 입술이나 뺨에 바르거나 찍는 붉은 빛깔의 염료)와 백분(白粉)으로 곱게 꾸밈[丹粧]. ②연지(臙脂)와 분대(粉黛 분과 눈썹먹)로 단장하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외씨버선 ; 오이씨처럼 볼이 조금 가늘고 긴 듯하여 맵시가 있는 버선(천으로 발 모양처럼 만들어 양말처럼 맨발에 신는 것).

*옥양목(玉洋木) ;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솜을 자아 만든 실인 무명실로 짠 천). 빛이 희고 얇다.

*생목(-木) ; 당목(唐木). 서양목. 두가닥 이상의 가는 실을 되게 한 가닥으로 꼰 무명실로 나비가 넓고 발이 곱게 짠 천. 광목(廣木 : 무명실로 서양목처럼 너비가 넓게 짠 베)보다 실이 가늘고 하얗다.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헌(軒 집·추녀·처마·창 헌) ; 집.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법맥(法脈)을 전해 준 스승. ②불법(佛法)을 정통(精通 깊고 자세하게 앎)하고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불법을 강설하는 이.

*30본산(三十本山) ;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병합 조약) 직후에 시작된 조선총독부는 1911년 6월 3일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공포하고 시행하여 그동안 독립적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조선의 불교 사찰을 30개의 본산, 중심 사찰을 선정해 한 지역의 다른 사찰을 관할하게 한 제도.

30본산의 주지는 조선총독이, 말사(末寺)의 주지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서 임명하도록 하였다. 1924년 11월에 화엄사가 본산으로 되어 31본산(三十一本山)이 되었다.

*체탈도첩(褫奪度牒 빼앗다·옷을 벗기다 체/빼앗을 탈/승려가 되다 도/명부·증서 첩) ; 스님의 자격을 박탈하고 교단으로부터 축출하는 것. 산문출송(山門黜送).

*산문출송(山門黜送 뫼 산/문 문/내칠 출/보내다·쫓아버리다 송) ; 스님네로서 큰 죄를 지은 이에게 승권(僧權)을 빼앗고, 절에서 내쫓는 제도. 일정(日政)시대의 사법(寺法)에는 '체탈도첩(褫奪度牒)'이라 하고, 속어에는 '명색(名色)을 뗀다'고 한다.

그 방법은 대중회의를 열고, 승단에서 쫓아내기로 결정되면 의발(衣鉢)을 빼앗고, 도첩을 거두고, 속복(俗服)을 입혀서 산문 밖으로 쫓아낸다. 혹은 대중회의 대신에 사승(師僧)의 권한으로 실행하기도 함.

*엄연하다(儼然-- 의젓하고 점잖다근엄하다 엄/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 연) ; (사람이나 그 언행이) 엄숙하고 점잖다.

*회과자책(悔過自責 뉘우칠 회/허물·잘못 과/스스로 자/꾸짖을 책) ; 허물을 뉘우쳐[悔過] 스스로[自] 책망(責望 잘못을 나무라거나 꾸짖으며 못마땅하게 여김)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당래교주(當來敎主) ; 장래의 교주(敎主),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용화교주(龍華敎主) ; 당래용화교주(當來龍華敎主),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에서 중생을 제도할 교주,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 자기가 자칭하는 이름은 계차(契此)였다. 체구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불룩하고, 말이 일정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에 베자루 하나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다 넣었다. 저자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혹 사람들에게 무엇을 달라 했다가 돈을 주면 돌려 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

미륵 부처님, 참 미륵 부처님이 분신(分身)해서 천백억 부처님이 되었다.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되,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아지를 못하는구나.

 

게송을 마치고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그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포대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참고] 『전등록 3』(제27권) (동국역경원 | 김월운 옮김) p459-463 참고.

*부대사(傅大士) ; (497 - 569) 남조(南朝) 양(梁)나라 스님. 동양(東陽 : 浙江省) 오상(烏傷 : 義烏) 출신. 이름은 흡(翕). 자는 현풍(玄風). 호는 선혜(善慧). 선혜대사 · 쌍림대사(雙林大士) · 어행대사(魚行大士) · 동양대사(東陽大士) · 오상거사(烏傷居士) 등 많은 호를 가지고 있다.

 

16세에 유묘광(劉妙光)과 결혼하여 보건(普建) · 보성(普成), 두 아들을 낳았다. 24세에 기수(沂水)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인도의 숭두타(嵩頭陀 : 達摩)를 만나 마침내 어구(魚具)를 버리고 오상현(烏傷縣) 송산(松山)의 쌍도수(雙檮樹) 밑에서 암자를 짓고 스스로 '쌍림수하당래해탈선혜대사(雙林樹下當來解脫善慧大士 : 쌍림수 밑에서 장차 해탈할 선혜대사)'라는 호를 붙이고 자신이 도솔천(兜率天)의 미륵궁전으로부터 와서 설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암자로 돌아와 좌선을 하며 7년을 고행한 끝에 스스로 수능엄정(首楞嚴定)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가와 도가의 전적에도 능통하여 점차로 배우고자 몰려드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들 모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진하였다.

 

534년(양 대통6) 제자 부담(傅暀)을 시켜서 양무제(梁武帝)에게 상중하(上中下) 3선(善)의 정책에 관한 내용의 서신을 올렸다. 그해 윤 12월에 무제의 초청으로 궁궐에 들어가 중운전(重雲殿)에서 경전을 강의하였다.

539년(대동5) 종산(鍾山)으로 가서 3월 16일 수광전(壽光殿)에서 무제와 더불어 진제(眞諦)에 관하여 문답을 주고받은 다음 게송을 바쳤다. 540년(대동6) 송산의 쌍도수 사이에 불전(佛殿) · 구층전탑(九重塼塔)을 짓고 그곳에서 경 · 율 천여 권을 서사(書寫)했으니 이것이 곧 쌍림사(雙林寺)이다.

544년(대동10) 집과 전답을 희사하여 대시회(大施會)를 베풀었다. 548년(태청2) 자신의 몸을 불살라 삼보를 공양하고자 했으나 제자들이 간곡히 만류하면서 19명의 제자가 대신 분신하겠다고 하자 그만두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전쟁에서 패하여 양나라는 멸망했다.

 

대장경 독송을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윤장대(輪藏臺)를 건립함으로써 대중들이 그것을 돌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후세에 만들어진 윤장대에는 모두 부자(父子) 3인의 형상을 안치했음.

569년(진나라 태건1) 4월 24일에 대중을 불러 놓고 "이 몸은 극히 더러운 것이니 뭇 고통이 모인 바이니, 모름지기 3업을 삼가고 6바라밀을 부지런히 닦아라. 만일 지옥에 떨어지면 끝내 벗어날 수 없으니 항상 참회하라" "나는 넷째 하늘(도솔천)에서 왔는데, 그대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석가의 다음 보처(補處)가 되었다" 등의 말을 마치고, 결가부좌한 채 세수 73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쌍림산 정상에 묻고 미륵하생(彌勒下生)이라는 호를 붙였다. [참고] 『전등록(傳燈錄)』 제27권 '선혜대사(善慧大士)'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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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제칠식(第七識) ; 말나식(末那識).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意)라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백정식(白淨識) ; 9식설(九識說)에서 제8아뢰야식을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보아 수행을 통하여 모든 번뇌가 사라져 아뢰야식을 부수어 버리면 나타나는 영원하고 한결같고 그릇됨이 없는 진여의 경지. 제9 아마라식(阿摩羅識), 무구식(無垢識)이라고도 한다.

*근본무명(根本無明) ; 모든 번뇌(煩惱)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깨닫지 못하고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리킨다. 곧 진여(眞如)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한 생각으로 가장 미세하게 움직이는 마음이며, 생사윤회의 근본이 된다.

지말무명(枝末無明)의 상대어. 무시무명(無始無明), 근본혹(根本惑), 근본불각(根本不覺), 근본번뇌(根本煩惱), 원품무명(元品無明) 등과 같은 뜻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원증회고(怨憎會苦 원망할 원/미울 증/만날 회/쓰다·괴롭다 고) ; 팔고(八苦)의 하나. 원한이 있거나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서 생기는 괴로움. 비애회고(非愛會苦) · 원증오고(怨憎惡苦)라고도 한다.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八]의 괴로움[苦].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 일체를 공(空)이라 하여 부정했을 때, 갖가지 사물은 그대로 긍정되어 묘유(妙有)라고 하는 것. 또 진리 내지는 진여(眞如)가 일체의 망상을 떠나 증가하지도 줄지도 않는, 집착을 떠난 모습을 진공(眞空)이라 칭하며, 상주불변(常住不變)하고 더욱이 현실을 성립시키는 진실의 유(有)인 점을 묘유(妙有)라 함. 본래, 진실의 공은 묘한 현실의 생성, 전개가 되는 것임을 말한 것.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누진(漏盡) ; 번뇌[漏]가 다하다[盡]. 누진이란 모든 번뇌가 영구히 다한 것이다. 무루(無漏) · 진루(盡漏)라고도 한다.

누(漏 : 산스크리트어 āsrava)는 번뇌(煩惱 :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동의어로 누주(漏注) · 누설(漏泄) · 누실(漏失) 등으로도 한역한다. 일반적으로 번뇌로 말미암아 중생의 6근으로부터 항상 과실(過失 결점. 과오. 허물)이 흘러 나온다는 뜻에서 번뇌를 누(漏)라고 한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大智度共摩訶比丘僧釋論第六’

三界中 三種漏 已盡無餘 故言漏盡也

 

삼계 안에서 세 가지 번뇌[三種漏]가 이미 다 없어져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으므로 누진이라 한다.

*삼종루(三種漏) ; 삼계(三界,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번뇌를 세 가지로 나눈 것. 욕루(欲漏 : 無明을 제외한 欲界의 모든 번뇌) · 유루(有漏 : 無明을 제외한 色界와 無色界의 일체 번뇌) · 무명루(無明漏 : 三界의 無明) 등 세 가지 유루법을 말한다.

*수기(授記) ;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만공 큰스님한테 십이 문답을 그날 밤에 탁! 가려내고~' ;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탐간 영초(探竿影草) : 어부가 고기를 잡을 때에는, 먼저 물이 깊고 얕음을 알아보기 위하여 막대기를 사용하는 것이고,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가려 할 때에, 먼저 불 꺼진 방 안에 주인이 잠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풀묶음을 달빛에 흔들어서 그 창문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도인들도 법을 문답할 때에 상대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써 시험하게 된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원앙수출(鴛鴦繡出)에 속은 법이 없어. 금침(金針) 있는 곳을 안다' ; 원앙수출종교간(鴛鴦繡出從敎看) 원앙새 수놓은 것은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거니와,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 수놓은 그 금바늘은 그대에게 건네줄 수가 없노라.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진리의 차원에서는 말이 있을 수 없지만, 자신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감수하고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명(明)의 원극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36권 및 목록 3권. 1635년(숭정8)~1636년(숭정9) 간행.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서 6조 혜능(慧能) 문하 제10세 수산성념(首山省念)의 제자 분양선소(汾陽善昭)부터 제20세 영은숭악(靈隱崇嶽)의 제자에 이르는 법계를 수록하였다. 모두 1,203인에 대하여 기어(機語)를 중심으로 수록하였고 사적(事蹟)은 상대적으로 비중을 줄였다. 법명만 수록된 이들까지 포함하면 모두 3,110인에 대한 기록이다.

편집 · 수정되는 과정에서 『오등회원(五燈會元)』 · 『불조혜명(佛祖慧命)』 ·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 · 『선문종파도(禪門宗派圖)』를 비롯하여 여러 조사들의 어록 등에서 자료를 채록하였다.

*문강(問講) ; 조선 중기 이후 불교전문강원에서 행해진 간경(看經) 제도와 관련된 용어. 학인(學人)들이 논강(論講)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강주 스님 앞에 가서 묻는 것을 문강이라 하는데, 추첨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행할 사람으로 뽑힌 자를 또한 문강이라고 한다.

*(게송) '노로조계전제수(盧曹溪傳諸受)~'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백운암가(白雲巖歌)'(32구) 중에서. [원문] 傳至曹溪盧老手 又道本來無一物 可笑古今天下人 不惜眉毛行棒喝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 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 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누(累 괴롭힐·근심 루) ; 재난. 속박. 번뇌.

*낙처(落處) ; 안정된 곳. 결국의 장소. 귀착점(歸着點 최종적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결론). 요지(要旨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1,701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진공(眞空) ; ①아트만(산스크리트어 ātman)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②소승불교에서 설하는 열반을 가리켜 말함. 허위가 아니므로 진(眞)이라 하며, 일체의 상(相 : 특성)을 떠나 있는 까닭에 공(空)이라 함. ③유가 아닌 유인 묘유(妙有)에 대하여 공이 아닌 공을 말함. 이것이 대승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임. 진실의 공.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참고]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 (3분 57초)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파설(破說) ; 설파(說破).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달다 ;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의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달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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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 석취미모(惜取眉毛).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면 미모(眉毛, 눈썹)가 빠진다는 뜻으로 요설(饒舌)을 경계한 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 ; ‘온종일 남의 보배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다’

[참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강설』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 무비 스님 강설 | 담앤북스)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p220~230 참고.

爾時 文殊師利菩薩 問法首菩薩言 佛子 如佛所說 若有衆生 受持正法 悉能除斷一切煩惱 何故 復有受持正法 而不斷者 隨貪瞋癡 隨慢 隨覆 隨忿 隨恨 隨嫉 隨慳 隨誑 隨諂 勢力所轉 無有離心 能受持法 何故 復於心行之內 起諸煩惱

 

그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법수보살에게 물었습니다.

“불자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중생이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면 다 능히 일체 번뇌를 끊어 제거한다 하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도 끊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고, 아만을 따르고, 감춤을 따르고, 분심(忿心)을 따르고, 한(恨)을 따르고, 질투를 따르고, 인색함을 따르고, 속임을 따르고, 아첨을 따르는 세력의 구르는 바가 되어 떠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능히 바른 법을 받아 지닐진댄 무슨 까닭으로 다시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모든 번뇌를 일으킵니까?”

 

時 法首菩薩 以頌答曰 佛子善諦聽 所問如實義 非但以多聞 能入如來法

그때에 법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습니다. 불자여, 잘 들으소서. 물은 것이 사실과 같으니 다만 많이 듣는 것으로는 능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如人水所漂 懼溺而渴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면서 빠질까 두려워 목말라 죽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設美饍 自餓而不食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좋은 음식을 늘어놓고도 스스로 주리면서 먹지 않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善方藥 自疾不能救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약방문을 잘 알면서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하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有生王宮 而受餒與寒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왕궁에 태어난 사람이 배고프고 추위에 떨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聾奏音樂 悅彼不自聞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귀머거리가 음악을 연주하되 남은 기쁘게 하나 자신은 못 듣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盲繢衆像 示彼不自見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눈먼 이가 온갖 형상을 수놓되 남에게는 보이면서 자신은 못 보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譬如海船師 而於海中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비유하건대 바다의 뱃사공이 바다에서 죽는 것과 같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在四衢道 廣說衆好事 內自無實德 不行亦如是

마치 네거리 길에서 온갖 좋은 일을 널리 말하되 자신에게는 실다운 덕이 없듯이, 행하지 아니하면 또한 이와 같도다.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력(履歷 밟을·행할·겪을 이/지낼 력) ; ①지금까지 거쳐[履]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來歷). ②어떤 일을 오랫동안 또는 여러 번 겪으면서 몸에 배게 된 태도나 버릇. ③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참고 ⑤] 전등록(傳燈錄)』 제11권.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p718~720.

鄧州香嚴智閑禪師靑州人也 厭俗辭親觀方慕道 依潙山禪會 祐和尙知其法器 欲激發智光 一日謂之曰 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 本分事試道一句來 吾要記汝

 

등주 향엄지한 선사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潙山)의 선회(禪會)에 의지했다. 영우(靈祐) 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一句]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

 

師懵然無對 沈吟久之 進數語陳其所解 祐皆不許 師曰 却請和尙爲說 祐曰 吾說得是吾之見解 於汝眼目何有益乎 師遂歸堂 遍檢所集諸方語句無一言可將酬對 乃自歡曰 畵餠不可充飢 於是盡焚之曰 此生不學佛法也 且作箇長行粥飯僧兔役心神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沈吟)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諸方)의 어구(語句)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心神)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遂泣辭潙山而去 抵南陽覩忠國師遺迹遂憩止焉 一日因山中芟除草木 以瓦礫擊竹作聲 俄失笑間廓然惺悟 遽歸沐浴焚香遙禮潙山 賛云 和尙大悲恩逾父母 當時若爲我說却 何有今日事也 仍述一偈云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이르러 혜충국사(慧忠國師)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지었다.

 

한 번 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조해 하는 근기에 떨어지지 않네.

곳곳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통달한 자들이 모두 상상기(上上機)라 말하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80-181) (가로판 p171~172)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참고 ⑦]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에서.

학자(學者)에게, 참선(參禪)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일어나기가 틀린 것입니다.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57분59초~59분25초)

 

*각견(覺見) ; 깨달음[覺]에 집착하는 견해.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깨달음[覺]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청첩장(請牒狀)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존장(尊長) ; 일가친척이 아닌 사람으로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음. 또는 그런 사람.

*'구봉이 나이 그 어릴 때지마는, 입승을 막 갖다가서는 어쨌냔 말이여? "스님! 선사(先師)의 도리는 보지 못했소. 스님이 석상(石霜) 스님 대(代)를 못 잇습니다" 그 나서서 헌 것 보란 말이여' ; 구봉불긍(九峰不肯) 또는 구봉시자(九峰侍者). 석상경저(石霜慶諸 807~888)의 입적 후에 대중이 큰방의 수좌(首座)를 주지 자리에 잇게 하려는 것에 대해, 이것을 승낙하지 않았던 구봉도건(九峯道虔 ?~921)의 기용(機用)을 보인 공안.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2권 제932칙 '휴거(休去)' (혜심·각운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61~62. 『종용록(從容錄)』 제96칙 '구봉불긍(九峰不肯)‘ (천동정각 송고頌古, 만송행수 평창評唱 | 석지현 역주·해설 | 민족사) p359~360.

筠州九峯道虔禪師 在石霜爲侍者 霜遷化後 衆欲請堂中首座 接續住持 師不肯乃云 待某甲問過 若會先師意 如先師侍奉

 

균주 구봉도건(九峯道虔) 선사가 석상경저(石霜慶諸)의 시자로 있었다. 석상이 입적하자 대중들은 큰방의 수좌(首座)를 청해서 주지 자리를 잇게 하려고 하였다. 구봉[師]은 수긍하지 않고 말하였다. "제가 물어 보기까지 기다리십시오. 만일 선사(先師, 석상)의 뜻을 알면 선사(先師)께 했던 대로 시봉할 것입니다"

 

遂問 先師道 休去歇去 一念萬年去 寒灰枯木去 一條白練去 且道 明什麼邊事 座云 明一色邊事 師云 恁麼則未會先師意在

 

그리고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쉬어라 푹 쉬어라[休去歇去]. 한 생각이 만년 가게 하라[一念萬年去]. 식은 재와 마른나무 같게 하라[寒灰枯木去]. 한 필 흰 옷감 같게 하라[一條白練去]' 하셨는데, 일러 보십시오. 무슨 변(邊)의 일(도리)을 밝힌 것입니까?"

수좌가 말하였다. "일색변사(一色邊事)를 밝힌 것이다"

구봉[師]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사(先師)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座云 你不肯我耶 裝香來 座乃焚香云 我若不會先師意 香煙起處脫去不得 及至香煙 才起便坐脫 師乃撫其背云 坐脫立亡則不無 先師意未夢見在

 

수좌가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가? 향을 준비하라"

수좌가 향을 사루면서 말하였다. "내가 만일 선사(先師)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일어나는 곳에서 몸을 벗지 못할 것이다" 향 연기가 일어나자 이내 앉은 채로 몸을 벗어 버렸다.

구봉[師]이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은 없지 않으나, 선사(先師)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변(邊) ; 유 · 공(有空), 고 · 락(苦樂), 단 · 상(斷常) 등의 이변(二邊). 이변 중 어느 한 변 또는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색변(一色邊) ; 일색(一色)은 곧 순일절대(純一絶對)의 뜻이니, 차별 상대의 모습을 뛰어넘은 평등절대의 경지, 순일한 청정의 경지를 말한다. 중생과 부처가 일체인 곳.

그러나 선(禪)에서는 이 절대청정 향상의 일색변(一色邊)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식보(食補 밥·음식·먹다 식/돕다·개선하다·보태다·채우다 보) ; 좋은 음식(飮食)을 먹어 원기를 보충(補充)함.

*가거(假居) ; 임시로 거처함. 또는 그런 곳.

*뽀이(boy) ;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남자.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10. 8. 20:0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7호) 설악산, 금강산 행각. 재발심.

 

**전강선사(No.033)—전강선사 일대기 제17호(경술1970년 12월 29일.음) (1971년 1월 25일) (85분)

 

(1/4) 약 22분.

 

(2/4) 약 22분.

 

(3/4) 약 21분.

 

(4/4) 약 20분.

 

(1/4)----------------

 

산벽연무색(山碧煙無色)이요  청산고금동(靑山古今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악의감수절(惡衣甘守節)이요  암곡호장신(岩谷好藏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벽(山碧)에는 연무색(煙無色)이요. 산이 퍼래서 그 푸른색이, 산색이 푸르면은 아무리 연기가 그 청산 푸른빛을 덮을래야 덮을 수 없고, 가리울래야 가리울 수 없고, 그거 연기 거 뭣을 공중에 날라가서 산을 아무리 쌀래야 쌀 수 없는 거다. 그것은 무슨 말인고?

산이 푸르러서 떠억 서 있는 디는 무슨 연기 겉은 것이, 인간 연기 겉은 것이 들어가서 공중으로 퍼져 올라가서 산을 아무리 가리운들 소용이 있나? 그대로 산빛은, 청산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지.

 

도인(道人)의 근본, 도인의 자격이란 건 그와 같다 그말이여. 한번 믿는 마음과 그 도인의 그 참! 청산허고도 바꿀 수 없는 본뜻, 도인의 본(本) 절개를 말한다.

도인으로, 도를 닦는 도인이 발심해 도 닦은 마음이, 있다 없다, 허다 말다, 해 볼까 말까 허다가, 그럴 수가 있겠나?

 

도심(道心)이라 하는 건, 도 마음이라 하는 건, 천하에 도무지 꺾을 수 없고 없앨 수 없고, 아무리 바가지를 들고 얻어먹어도 천하에 안빈낙도(安貧樂道)다. 가난헌 것을 편히 허고, 가난헌 것이 역득(亦得)이다.

내가 부(富)헐 것 같으면 뭣 헐 거냐? 그놈 갖다가, 거 무슨 세계 돈을 다 갖다가 내 것 만들아 놓고 보금자리 지고 앉었으면 뭣 헐 거냐? 내 몸뚱이란 이것도 필경 가버리고 마는 것이고 내버리고 말 것이어늘, 빈(貧)해 죽지 않으면 득(得)이다. 가난해도 내가 가난해서 굶어 죽지 아니허면 족허다.

 

굶어 죽을 이치가 있겠는가? 천하 없는 뭐, 부귀는 굶어 죽어도 도인은 굶어 죽는 법이 없겄다.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이요. 제석천왕(帝釋天王)이 그 전부 부담해 가지고 있는디, 도인이 왜 아사(餓死)를 혀.

 

안빈낙도(安貧樂道)다. 가난헌 것을 편히 허고 도를 즐거워헌 것이 청산에다 비유해서 그런 연기 같은 것이 아무리 와서 때를 찌을라 하고 막을라 하고 못 닦게 만들고 별 방해를 다 헐라 허지마는, 청산! 퍼런 청산 색이야 그대로 있제. 그 잠깐 바람 한번 불면, 퍼떡 벗다가도 없어지고, 이리 휘딱 저리 휘딱...

사견(邪見)이 정(正)에는 범치 못허느니라.

한번 정직헌 도학자에게야, 도인에게야 무엇이 와 덤빌 것이며, 무엇이! 연기와 같은 것이 갬히 찌어서 가릴 것이냐?

 

청산(靑山)은 고금동(古今同)이니라. 그 청산은 고(古)과 금(今)이 항상 다른 법이 없지.

도인의 경계도 역부여시(亦復如是)니라. 도인 경계도 이와 같은 법이여!

 

갬히 흔들어. 갬히 흔든다고 안 닦아.

안 닦을 수는 또 어디 있는가? 한번 발심해도 도를 닦을 것 같으면은 안 닦을래야 안 닦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악의(惡衣)는 감수절(甘守節)이다. 악헌 옷은 뜻, 절개에 그 험악헌 옷을—험악헌 걸 악헌, 떨어진 옷을 악의(惡衣)라 햐. 아조 떨어져서 형편없는 옷은 감수절(甘守節)이다. 도인의 절개에 마땅허다. 도인이 그런 것을 입어야 한다.

파납소식(破衲蔬食)은 필시경이적음(必施輕而積陰)이여. 떨어진 옷과... 떨어진 옷, 나물 밥은—괴기도 아니고 간략헌 나물밥은 시은(施恩)은 없어지고, 그 시주 은혜가 모도 죄업인디 죄업 시은은 없어지고 음덕이 쌓인다. 도덕이 쌓인다 그말이여.

 

음덕(陰德)은 도덕(道德)이여. 그 도를 깨달라서 장한 그 공덕이 쌓여.

공덕이라는 것은 그 인자 참, 일체 중생을 모도 이익을 입혀 주고, 일체 중생 배고픈 중생을 배불르게 맨들아 주고, 그저 일체 나는 오히려, 내 부귀를 모도 헡어서 일체 중생을 잘 살리와 주는 것이니란 말이여. 그건 도덕이 쌓여.

 

암곡(岩谷)은 호장신(好藏身)이다. 그래 그 떨어진 옷 그런 놈 입고 나물밥이나 먹고 이렇게 도를 닦아 나가면서 그 시은은 하나 짓지 않고, 뭔 시은 지어? 나물밥이나 먹고, 이러고 따악 그 가난헌 것을 편히 허고 도를 닦아 나가는데.

이런 선방에서 참선허는 방에서 몸뚱이를 강직허고 있는디, 뭐 비단 옷 무슨 필요가 있으며 옷 잘 입는 것이 어하(於何)에 하익(何益)고? 어디 이익이 있어? 어따 그런 헐 배냔 말이여?

아무 옷 떨어진 놈 그 아무것도 아닌 거, 그런 것 뭐 입고 지낸들 뭣혀? 어디가서 잘 입고 잘 먹고 뻐떡뻐떡 돌아댕길 것이냐?

 

자꾸 그저 그만 그저, 제우(겨우) 죽지 않고 이 목숨이 걸려 있으면 이병위사(以病爲師)하라. 병으로써 스승을 삼아라.

병(病)이라는 놈이 그놈이 나를 한량없이 조도(助道)해 주기도 허고, 까딱허면 내가 죽기도 허니, 그 꼭 죽게 될 때에는 지혜 있게 살펴서 이 몸을 잘 낫워 가지고 도를 닦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부처님이 약은 다 허락했느니라.

 

약이라 하는 것은 술 아니라, 무슨 괴기 아니라 더 헌 것이라도 그놈을 먹고 도를 닦을 바에는 해라.

그 시은이 그렇게 무섭지마는 일소만금(日消萬金)이라도 역득(亦得)이다. 하루 만금을 녹혀도, 시주 돈을 만금을 써도 옳니라. 위성도업(爲成道業)하야, 도업을 이루어서 아, 그 시은도 갚을 것이며 천하 중생을 제도헐 턴디, 거 무슨 시은이 그렇게 내게 무슨 그 거그는 걸릴 것 없다.

 

도를 안 닦는 사람 말이제. 도를 제가 닦지 않고 도를 믿지도 않고 함부로 시은을 먹어.

진독(進毒)이여! 그건 독을, 독약을 먹고 죽는 것보담 더하다!

 

그러니 도를 위해서 허는 일은, 위성도업(爲成道業)하야 응수차식(應受此食)은 일체 제불(諸佛)도 다 그랬제, 무슨 뭐 헐 수가 있어?

 

'에이, 그것 나는 뭐, 나는 뭐 죽어도 시은 안 받는다'고. 계(戒)에 그만 착(着)해 가지고, 계에 그만 착해 가지고는 그냥 그 시주것 먹지 않고 죽는다. 목숨을 바쳐 죽어. 그것이 무엇이여?

그건 숭악한 그건 축물위사(逐物爲邪)제. 물건에 꺼꾸러져서.

 

당장 천하 없는 음식이라도 받아 먹고, 살생을 그렇게 말라 했지마는 소라도 먹고 그 병이 나을 것 같으면, 소 한 마리 잡아먹고 당장에 도를 닦아서 아, 그것이 우리 대도법이제.

 

소, 그놈, 그놈 죽이면은 '아이고! 살생죄 범하니, 아이고! 그놈의 소를 내가 어떻게 잡아먹고 도를 닦아? 죽제. 내 몸이 죽제, 나는 안 허겄다'하고는 죽어?

고것이 거 그것 죽어? 그거, 그거 소승(小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천하에 또 그렇다고 해서 그런 병도 없는 것이 병 핑계 대고 거짓 참, 소를 잡아먹는 거 큰일나제.

허지마는 참말로 발심헌 도학자가 꼭 소 한 마리를 먹고 도를 능히 닦아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성공 헐 것 같으면은 거기에 국한될 것이 무엇이 있어? 거가서 무슨 뭐 그, 거가서 왜 그렇게 탐득위사(貪得爲事)를 헐 것이 있는가?

 

허니깐, 모도 그런헌 것을 방편으로 꾸며 놨는데, 부처님 말씀 말씀이 천담만설(千談萬說)이 다 가서 봐, 어떻게 해 놨는고.

똑! 방편인데, 천 가지 만 가지 방편을 해서 49년 동안을 그렇게 부처님께서 모도 꾸며 놓으셨지마는, 결국은 단위차사(但爲此事)니라, 다만 이 일을 위했느니라. 이 일이 무엇인가?

어서 속히 확철대오를 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허여라. 일체 중생을 제도헐 것이니라. 다시 거기에 지내간 것이 어디 있어? 이차무로(離此無路)제. 여기에서는 다시 길이 없제.

 

 

내가 그렇게 합천 해인사에서 본사(本寺)에 들어와 가지고, 해필 타사에 들어가서 안 듯 모른 듯 어떻게 좀 지냈드라면...

그 한바탕 기행 다 했으니, 한국 전체에 댕기면서 어디어디 댕기면서 다 그 기행을 다 했으니, 절에도 안 갔다고 했지마는 내가 갈만헌 디는 다 찾아갔제.

 

오대산도 또 그 두째 들어간 거여, 이건 또.

그때 또 들어가 북대(北臺)로 해서 그리 들어갔자 뭐, 그 얼매 만에 또 올 수 있고 또 올 수 있으니까. 얻어먹는 길이라는 것이 뱅뱅 도는 길인디, 뭐 언제 뭐, 꼭 어디 올 때가 있나. 한 달 만에도 올 수 있고, 이레 만에도 올 수 있는디.

그래 또 저리 둘러서 또 그다음에 둘러온 것이었다. 먼첨은 그대로 북대로 해서 명주사로 넘어감서 그 죽을 뻔 했지마는, 다시 한번 척 들어왔다.

 

인자 그때는 날도 개고 그 가을장마도 다 걷히고, 그때 어느 때인지 그 뭐 몰라. 뭔 날자도 모르고 어느 땐지 그런 건 모르니까.

아, 그러고 돌아댕긴게 연대갑자(年代甲子)를 총부지(總不知)제. 내가 언제 그런 것을 세알리고 '오늘이 며칠이다, 오늘이 몇년 뭐이다' 그것이 소용있나? 그런 건 도모지 계산헐 겨를도 없고.

아무리 내가 일없이 척! 나선 그 앞도 없고 뒤도 없는 길이지마는, 내 혼자 바쁜 것은 거 참 기찼제. 연대갑자를 세아릴 겨를도 없어.

 

아무리 산을 대허고, 아무리 물을 대헌다 헌들 내가 거그에 게으름이 있으리요! 게을타니. 그때 참말로 내 나아가는 곳인디.

뭣 헐라고 누데기 하나 얻어 입고 바가치 하나 차고, 강호에 백구 꿈을 깨우면서 그렇게 거쳐 나가는 것이 무엇일 것인가 말이여. 참으로 내 일을 내가 허는 사람이요, 참으로 내가 바쁜 사람이제.

 

홍록이! 괴산에 있는 박홍록이! 내가 가야금을 턱 메고 따라갈 때 그때에 내가 내 일을 안혀? 참말로 그때가 내 일헐 때인디?

고까짓 놈의 것. 내가 껕으로만 한번 그러고 나갔제, 뭔, 내가 그 속에는 어쩔 것이여 말이여.

 

그 무슨 뭔 내가 병고에 아무리 찔린다 헌들, 그같은 병을 내가 그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하고, 자! 이보담 더 죽게 된 일이 있다 한들, 내가 이까짓 병마(病魔)에 내가 끌려서 말 것이냐 이게여.

다행히 그러헌 그 자연치료를 허라고 백용남이가 말을 했기 따문에 내가 그 말을 듣고 의원 말을 믿고, 참 한번 나섰지.

 

"약으로는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는 가히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허라"해서 "자연치료 방법이 어떤 거냐?"헌게,

"그렇게 막 나가면서 그저 산도 밟고 물도 건너고, 암! 맘대로 마음을 그 자유자재하게 그렇게 써 나가라”고. 의약법에도 있는가 보드구만. 그게 제일이라는구만, 요법에.

 

진찰을 해보니 진찰기를 가지고도 몰라, 이놈의 병을!

육단(肉團)이 동(動)해서 도를 닦다 났는지 어쩐지 아는가? 그 사람들은 생리적으로만 치료허지.

 

 

두번째 내가 그렇게 인자 휘~ 둘러서 들어오다가, 서대암에는... 서대, 동대, 남대, 북대 그려. 헌데 서대에는 수공 스님이 계신다햐. 다 들었어 내가. '수공 스님이 거그서 독(獨)으로 혼자 암자 가지고 있다'

퍽 탈속(脫俗)헌 이제. 만공 큰스님 제자신디, 아조 탈속헌 이여. 견성은 했단 말 없지마는 탈속헌 인데.

 

거그를 들어가면서, 누데기는 자연 허연 놈을 똑 신선이 하강허디끼 누데기 똑 그 어떻게 용케—어떻게 때 묻은 누데기를 갖다가, 걸레 쪼가리 같은 걸 갖다가 허수아비한테 같은 데 씌워 놨지마는 그놈이 강상(江上)에서 모도 그 들에서 비를 맞고, 그 비 맞아 가지고 축축헌 놈이 또 바람 불어서 풍마(風磨)헌 디서 오래오래 되아서 깨끗이 바래졌네.

허어여! 더 빨 것도 없어. 똑 고런 놈만 좀 떼어, 어디서 똑 구했던지 고런 것만 구허고, 저어 질(길) 가다가 그 서낭당[城隍堂]에 뭘 걸어 놓은 헝겊이 있으면은 그 베짜치 걸어 놓은 것도 있고 저 북선우가 많이 있어.

 

그 모도 그 비니라고. 그 큰 동애줄 실 같은 걸 바늘로 뀌메다 역부러 달아 놓고 있거든.

'그놈 좋다, 옳다!'허고 가서 성황당에 가 뜯어다가 실, 그놈 올 빼고 그놈 걸레 그 허연 놈 갖다가선, 집되 이놈을 똑 바로 땅겨가서 빤듯이 내려 가지고는—내가 누데기를 잘 집는구만. 그래도.

요리, 거시기 흘치지 말고 그냥 고대로 해야 또 그 우에다 또 입히고 또 입히고 해도 그 뭐 몽오리가 없어. 안혀. 판판혀.

 

고래 이렇게 집고 집고 해서, 그런 놈을 참, 집었으되 예술적이여!

그렇게 못나게 안 집고, 너무 삐뜰어져 보기 싫게 안 집고, 고대로 이렇게 척척척척 집어서 입었는데, 우아개 하나 입고 하나 짊어지고 둘이거든. 더 헐 필요없어.

그러고 안옷은 어쩌튼 그래도 내가 깨끗헌 놈을 속에 입었어. 다 내가 나갈 때 오장치, 저 오장치는 그때 안 져, 그 저 보따리 속에다 준비를 했었지.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걸 헐라 해도 영리해야 되는 것이고, 예산 속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 거지로 나간다 해서 예산 없이 그만 그대로 준비 없이 나가? 안 되는 것이여.

사람이 한 가지 계획이 있으면 열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도학자도 그런 것이여.

 

'무심(無心)이면 도 닦는다. 무심이 도 닦는다' 소용없는 소리여. 무심이면 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똥멍청이가 무심 아니여. 밝기를 여간 밝어야 허는 것이여.

 

아, 그래 가지고 뭐 나섰는디 뭐.

그래 가지고서는 그 누데기를 입고 척 나섰는디 보면은 인자 머리 속은 막 터져서 머리 못 깎지마는, 머리 내가 그녀러 것 뭐, 머리에 탐이 나서 머리 기루어서 뭐 모냥헐라고 안 깎는 것도 아니고, 뒷꼭지가 터져서 깎들 못혀. 물이 출출출 흘러 싸서 깎들 못혀.(처음~21분46초)

 

 

 

 

(2/4)----------------

 

그래 가지고는, 그러나 저러나 물이 흐르거나 말거나, 뒷꼭지가 터져서 야단나거나 말거나 씻기는 늘 씻거.

물이 흐른게 안 씻글 수 없어. 끈끈 들어붙어. 요래 들어붙어 가닥가닥! 그것 참. 고약하구만. 내가 해 봐서 안다 그말이여.

 

그놈을 거 어디 가서라도, 그래도 어디 가서 물을 얻든지 해 가지고 비누로 꽉 씻거 버려야제, 그냥 허면 끈끈해 못써.

그런게 어떻게 해서 인자 참, 물 좀 얻어 씻기도 허지마는, 그래 가지고는 그냥 그만 저 항상 손으로 이렇게 다듬어 놓은게 번적번적! 그놈 머리인들 손으로만 다듬아 놓으면 지름 바를 것 없어. 번칠번칠 허니....

 

아, 이런, 이런 자질부라한 말을 다 허고 앉었으니... 법문(法門)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여.

노바심절(老婆心切)이 여차(如此)허구나. 늙은 할마니의 말이 이렇구나. 늙은 할마니가 손자한테 말허는 말이 그 잘잘헌 말이어지만 하나 내버릴 말 없는 것이여.

 

'뭐, 법상에 올라앉어서 저런 너절한 말만 헌다' 요러고 앉었구만, 모도.

그거 뭐 너절헌 말허면... 너절헌 말만 허고 있다고 숭보면 자기만 손해여. 다 이게 들어 헐만헌 말인디.

이유언(以有言)으로 지무언(至無言)이다. 말로써 말 없는 디까장 가는 법이여.

 

아, 그렇게 누데기를 보기 좋게 허연 일색으로만 집어 입고, 머리는 척! 해서 뒤로 지드란헌 놈을 장발을 귀밑에까장 흘러내려 온 놈을 두고, 우게는 감토를 하나 집어 쓰고 끈을 달아 딱 쓰고, 뽀한 청년—아, 스물네 살인가 그때 세살인가 그때인디, 뭐 말헐 것 뭐 있나. 세살에 안짝이구만.

 

처억 들어가면서 서대 앞을 들어가 뜰을 올라서면서, 수공 스님이 방에 있는 줄 안다 그말이여.

 

자지, 자지 마시요. 코 소리 나서 이거 못허겄소.

내가 또 한자리 불러야제. 거그서 허든 놈을 그렇게 늙어 가지고 허니 되아?

그때 한참 젊을 때인디, 응 그 되냔 말이여. 시방, 안되지마는 숭내를 낼라니까 그려.

 

거가 인자 오대산이 그 좋은...

나만 노래 부른게 아니여. 옛날에 참, 큰스님네 노래 부른 스님네도 많다 그말이여. 아, 노래가 모도 창가(唱歌) 아니요? 뭐 다른 거요?

 

"만고강산...." 아니, 만고강산 안 했어 그때는, 어따 내 잘못했구만.

 

"산학이 잠형허고...." 이건, 인자 이건 단가(短歌)에 아주 참, 그 좋은 놈입니다, 이게.

"음풍이 노호헌디...." 그놈이 거, 그게 그 곡조도 제일구(第一句)구만.

 

"산학(山壑)이 잠형(潛形)하고 음풍(陰風)이 노호(怒號)헌디, 수변에 우난 새는 천병만마(千兵萬馬) 서로 맞아 철기도창(鐵騎刀槍) 이어 난듯 처마 끝에 급한 형세 백척폭포(百尺瀑布)가 쏴우...."

젊을 때 내 잘했다 그말이여 그때는! 늙은게 못하제.

 

"대숲을 흩뿌릴 저 황영(皇英)의 깊은 한(恨)을 잎잎이 호소허니 소상야우(瀟湘夜雨)라 허는도 칠백평호(七百平湖) 맑은 물은 상하천광(上下天光)이 푸르렀다.

얼음 바쿠 문득 솟아 중천에 배회하니 계궁항아(桂宮姮娥) 단장(丹粧)허고 새 거울을 열어 난디 적막헌 어룡(魚龍)들은 세(勢)를 얻어 출몰허고 풍림(楓林)의 귀화(鬼火)들은 빛을 놀라 사라지니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이 아니냐"

 

한마디 해 놓고는 아, 그렇게 올라감서 뜰앞에서 해 놓고는.

모른다 그말이여.

 

'웬 거지 저석이 들어옴서 노래를 이리 부르고 있는고?' 그 수공 스님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거든. 밖에서 노래 소리가 난다 헌들 푹 나올 사람도 아니거든.

웬 노래를 부르는 놈이 구슬프게 한자리를 부르는데, 그놈의 노래가 초동가(樵童歌)가, 초동 노래가 아니여. '아, 보통 그 단가인디...' 능히 그 알만 헌 이거든.

 

'그 웬 녀석이 저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고?' 싶어서... 나도 나오기를 기대리고 부르고 앉었겄다.

그래도 안 나오고 그냥 그러고 그래서, 그만 끝에 소리를 크게 내서 "이, 서대암에는 수공 스님도 있을듯 허다마는 소식이 적막허구나. 강산 구경을 다 허라이면 몇 날이 될지를 모르겄구나!"

아, 이러고 한마디 부른게 쫓아나온다 말이여. 쫓아나와.

 

아! 이거 보니 "아! 이게 무슨 경치지? 아, 이게 누구냐?"허고, 아따 나를 보듬는디, 기맥히다 그말이여. 내가 그거 벌쎄 과거지하... 천하에 나를 그렇게 반가헌 이는 없어.

 

"허, 아이고 이게 누구냐?"허고 고함지름서, 나 알겄거등, 암만 이리 썼어도! 면목을 알아.(웃음)

그러고 댕긴다는 말은 들었거든. 어떻게 반가헌지.

 

그래 그만 벗어 놓고.

어서 들어오라고 야단이지.

 

들어왔지. 그냥 그저 그만 어쩔 줄을 모르고 머리를 뒤집어 보고 야단이더니, 대번에 쫓아 들어가더니, "에이, 지랄..." 그만 가새를 가지고 와서 머리를 잡고는 깎을라고. 하! 이런 놈의 꼴이 있나.

 

"가만히 있어. 내가 그 뭐 그 아까와 그런 게 아니여. 그 머리 속 좀 보라고"헌게. 어쩌 요리 헤쳐 본게 대체 안 되겄거등.

"하아, 그렇구나!"허고.

 

그래 인자 그렇게 잠깐 여기 있다가는 내가 필경 하룻밤만 자면 머리 깪일 것이고, 하룻밤만 자면 내 살림살이 다 돌라갈 것이고, '에라 이거 안 되겄다'고 그러고는, 점심 먹고 한 오후 얼매 돼서 가만히 몰리...

그래 미리서 단속을 혀. 그런 것을 짐작하고 만약 그 갖다 감추... 재없이 감춰 버립니다. 걸망 저저, 그런 것 감춰 버리니까, 살짜기 두었다가 살짝 짊어지고 나와야제. 아, 틈탈 수 있지 않어? 뭐 왜 못 타?

 

살짝 들고는 그만 죽자 가지. 뒤에 그만 쫓아온가 그만 돌아보도 않고 주살(走殺)해야 하거든. 참, 그래 나왔지요.

오대산 또 그렇게 나와 가지고는, 그 산에도 그때도 그렇게 가끔 댕겨. 안 댕긴 건 아녀. 그러지만 자주 절을 들어 댕길 건 없고.

 

거그서 나서 가지고는 오대산! 아니 저 오대산이 아니라 설악산이제, 설악산!

에, 또 인자 거그 들어갔어. 설악산에서 가되, 또 명주사에서... 설악산 명주... 여 가 본 이가 있는가 몰라.

 

또 넨장 내가 거짓말했다가는 안 될 것인게. 가본 이가, 가본 이가 거짓말했다고 헐 것 아니여? 그러니께 거짓말도 못하네.

공안(公案)도 마찬가지제. 어디를 갔으면 간 그 지형을 다 말해야 헐 턴디, 그 지형 말 못허면 거짓말 아닌가? 공안도 꼭 같여.

 

또 명주사서, 그러나 저러나 그때 하도 오래되아서 그 자서허지는 않구마는...

명주사에서 내가... 오대산! 아니 오대산 아니라 설악산이여. 설악산을 넘어가는디, 고 명주사에서 설악산 넘어가는 재가 마등령(馬等嶺)이여. 내 안 잊어버렸구만. 마등령!

 

마등령이라는 재는 대관령보덤도 몇 배여! 인제 혹 가서 마등령을 한번 넘어가 봐. 그놈의 어뜬 놈의 잰고?

시방 거가 아마 설악산이 아닌가? 우리 이남(以南) 아닌가? (이남 맞습니다!)

맞제? 그 가봤는가 보네? 가 봤으면 참말로 거짓말 조금 널라고 혔더니 못허겄구나.

 

그 신계사에서 마등령을 넘어가는 놈의 디는 바우길인디 길이 없네. 내, 그런 놈의 길은 생전 처음 넘어 봤네! 뭐 쑥밭재니 벽소령이니 지리산에 다 넘어 봤지마는 그런 놈의 재는 못 넘어 봤네. 마등령!

마등령을 넘어가는디, 새벽 아마 3시 치고, 3시 치고 나서야 되아. 일찍 밥을 먹고 나서야 마등령을 넘어서 그 설악산 오세암을 갈 수 있어. 한참...

 

봉정암은 따로 가고 오세암 가는디, 아, 이놈의 디를 올라가는디, 그때 월암 스님이 오세암 원주여.

거 월암 스님이 오... 월암 스님이라고 허면 또 노인이니까 모를 것이여. 얼굴이 얼금얼금헌 듯허니 이렇게 생긴 이인데, 힘이 장대한 분인데.

양양(襄陽), 뭔 그 장(場)을 봐 가지고는 그 재를, 오세암을 올라가는디, 오세암에 그때 동산 스님이 계셔. 동산 스님이 계셔도 그때 입승 스님인가 이리 계셔, 뭐 조실은 아니고.

 

거그를 넘어간다 해서, 나는 인자 명주사에서 또 하룻밤 자고는 걸망, 내 망태 그거 하나 짊어지고, 내 망태만 짊어져도 설찬한디, 그 뭐 그저 이리저리 모두 소지품 짊어지고 올라가는데, 아, 월암 스님이 장을 봐 가지고 장짐을 지고 올라간디, 참, 그놈의 무게는 내 짐으로는 까득 한 짐 되아.

 

하지마는 아, 이녀러 영감탱이가 지고 올라오는데—영감탱이는 아니제, 한참 때제. 아조 배곡배곡 그 당최 못 지고 올라와.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저, 저런 짐을 좀 져다 주어야제. 그 저 나보담은 나이 많은 분인디, 저 고생을 허고 훌훌 거리고 올라가기가 안 되았다' 싶어서, 아, 그놈을 내가 짊어졌네. 내 보따리에다 첨부해서.

 

그놈의 그 중간에 가다가 갈라서 질 만헌 것이 있으면은 갈라 졌으면은 좋으련마는, 갈라 질 수도 없는 것이고. 그거 내가 또 내가 짊어진 걸 뭐 또 거다가 바꾸자 헐 것도 없고. 아, 고놈을 좀 덮어서 짊어졌네. 그놈을 짊어지고 그놈의 마등령을 넘어가는디, 내 평생 처음 고생했구만.

 

그렇게 고생을 허지마는 내가 고생이다 싶은 마음 없고, 또 내가 이렇게 나선 사람이 운수(雲水) 응, 풍상고(風霜苦)를 내가 역부러 맛보기 위해서 댕긴 사람이 '이걸 안 져다 줘야?'고, 꼭 참고 그놈을 지고 올라간디, 내 평생 참, 그런 놈의...

그래 가지고는 말랑에 척 올라갔다. 악착같이 내가 지고 올라갔단 말이여. 올라가 가지고 정에 한참...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인자 뭔 사람인지는 모르겄으나, 저렇게 채리고 나서 가지고 나를 이렇게 모도 이익을 주는구나'허고. 머리는 보니 세상, 중은 아니고.

그거 그까짓 놈의 묻거나 말거나 '내가 과거에 정영신이다, 뭐이다' 헐 것도 없고, 그런 말은 뭐 일무(一無)해 버려. 그런 뭐, 내 과거 무슨 내... 뭣 뭣 어떻다는 뭔 역사 말헐 것 없고.

 

아, 그래 한참 내려가니깐, 아, 이놈의 웬 나무가 하나 저짝으로 보이는디, 그 진 큰 나무에 버섯이 꽉 난단 말이여! 아, 그놈의 버섯이 보니깐 그 참나무에서 났는디, 표고래 그것이. 자연 표고!

자연 표고가 그렇게 많이 꽉 나버렸어 그만 전체에! 아, 이걸 보고는 이 노장이 환장을 혀. "좀 따야 되겄다"고.

 

아, 그놈을 또 연중(然中)에 따 가지고 가져올 디가 있나?

잠뿍 저 따놓고는, 한 짐이나 더 된 놈을 따놓고는. 아! 이놈을 또 어떻게 가지고 갈라고, 가지고 갈 수가....

 

"아, 이것은 나중에 가져가십시요"

"아, 이 버섯이 굉장헌 버섯인디, 이걸 여따 두고 거다가 둘리면 어떠며, 이게 또 임자가 있는 버섯인지 천연 표고인지 알 수가 없다"고.

 

"아, 여보시요, 임자가 있는 것 같으면은 도둑 아니요?"

"도둑이나 뭐이나 이런 산중에서 이렇게 난 놈을 두고 그냥 가?"

아, 그러고서는 두루막을 벗어 가지고는 두루막에다가 쳐싸 가지고는 뭉텡이 싸 가지고는 또 그놈을 메네!

 

거서, 약간 거그서도 내려 가지고 올라가는디 '아이고, 이거 나 죽었다. 이건 나 죽어, 이놈의 것 또 저놈을 가져 가네, 저 노장!'

'도망쳐 버릴거나 어쩔거나, 이놈의 것' 그 고상을 허고 올라오니께 '에이, 도망을 쳐 버린 게 옳지' 싶었다가도.

또 그럴 수가 있나. 거까장 왔다가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서 그래도 그 동산 스님도 좀 서로 만나보고, 옛날에 같이 갈렸지마는 또 가 좀 볼 수 밖에 없고. 내가 들어가야지 싶어. 죽으면 죽었지 별수가 있냐 허고는.

 

아, 이놈을 노장이 또 지는데, 더 무겁네! 어찌 무겁던지 물이 더 무거.

내 짐을 주고는, 고 짐을 자기 주고는, 자기 짐을 주고는 내 짐에다 고놈을 내가 도로 졌네, 그 버섯을!

그놈의 버섯이 또 얼매나 무거워, 물버섯. 그놈을 내가 지고, 자기는 자기 짐 지라 하고, 오세암을 올라왔다 그말이여.

 

오세암 올라와서, 어쩍 들어와서 인자 저녁, 저녁때가 해가 넘어가. 거그서 넘어가. 해가 넘어가. 곧 넘어가. 저녁밥...

거그서 인자 들어가니, 대체 동산 스님도 보더니 "아, 이 지랄 봐라. 이것 봐라!" 거 뭐 별 야단치든 않고 날 보더니 "이 지랄!" 알드구만, 그때가. "이 지랄 봐라. 이 뭐여 이게!" 이러고는.

 

그날밤을 거그서 그만 자고는 그 이튿날 아침에 일찍허니 암도 모르게 "나, 간다. 넨장칠 느그 잘 있거라"허고는 떠나가지고 설악산을 그렇게 댕겨서 떠나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또 금강산을 들어갔다 그말이여. 재회여 재회! 이거, 이게 재회여!

그때 그래 가지고 금강산 막 들어가자, 그때 용담(龍潭)이란 사람이 마하연(摩訶衍)서 지냈드구만.

마하연, 말 들으니깐—그때에 다 듣거등—말 들으니깐, 만공 큰스님이 거기에 올라와서 여름 산림허고 계신다고 그려. 그래서 그저 그래저래 인자 말 듣고는 마하연을 갔더니 만공 큰스님은 나가고 안 계시고, 용담이 거그 있어.

 

용담(龍潭)이라고 허는 사람이 누군고 하니 김초안(金初眼)인디. 나와 같이 그 전에 도 닦을 때 같이 인자 수덕사에서 도 닦은 사람인디. 일인이여! 아조 이름이 높아!

어떻게 도를 고상하게 잘 닦고, 마음이 심지가 어떻게 깊고, 여간 훌륭헌 사람이지. 아조 일인이여! 일인이라고 소문난 사람이여. '김초안이! 김초안이!'

 

학교는 오성학교 졸업은 못했지마는 며칠 안 두고 나와서 발심해 가지고 한용운 스님 제자가 되아 가지고 수덕사 도 닦는 사람인디, 나와 같이 도를 닦는 사람이여.

헌디 저와 나와 같이 도 닦다가 내가 저보덤도 먼첨 득력(得力)을 했다 해서 나를 여간 숭배를 하지. 보통 숭배가 아니여. 나도 또 저를 그렇게 기가 맥힌 참 도 벗으로, 친고로 숭배를 허는데.

 

그 사람이... '함경도 길주 명천'허면 유명허게 깊은 디여. 그런디 이 사람은 함경도 명천 사람이여.

명천 사람인디 즈그 아버지는 군수인디. 어머니 아버지를, 오성학교 댕길 적에 어머니 아버지한테 아무 '출가헌다, 뭣헌다' 뭐 그런 뭣도 없이 슬쩍 나와 버렸거든.

 

나와 가지고 덕숭산 수덕사 와서 그렇게 오래 몇 해 동안 도를 닦고 있으니 즈그 집안에서 소식을 다 알아 가지고는, 어떻게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그 편지, 장서(長書)와 즈 아버지의 또 그 엄교(嚴敎)가 기맥힌 집안인데,

아, 즈 아버지 편지와 즈그 어머니 편지가 참, '인생의 일생이 너를 두고 내가 못 보다니, 나는 아자(兒子)가 죽은 줄 알았구나'허고 그 참, 편지를 했는데, 편지를 차마 못 봐.

 

헐 수 할 수 없어 그 편지를 받아 보고서는, '나는 너를 보고 싶어 눈을 못 본 지가 몇 달이라'고, '너만 봤으면 감은 눈을 뜰 것 같다'고, 아조 편지를...!

헐 수 없어서 초안이가, 그 김초안이가 즈그 어머니를 보러 들어갔는데, 내가 어머니 보러 들어갔다가 한 서너 달 안 나와서 대성통곡허고 울었소.

 

그러헌 친고! 도 닦는 친고! 내가 앉어서 도 닦으면은 내 등을 쳐 주고, 내가 도 닦을 때에 내 다리를 찔러 주고, 그렇게 나도 또 잠 오면 나를 해달라고 이렇게 애쓰고, 백일정진도 같이 하고, 기가 맥힌 참, 그 도 벗을 어쩌다가 즈그 집안 사정에 의해서 아, 그만 들어가 가지고 석 달을 안 나와. '아, 이 사람은 인자 영 안 나올 사람이구나'

갈 때 뭐라고 헌고 허니 "내가 만약 갔다가 못 나오거든 나를 찾아 주소. 어쩠든지 나를 찾아 주소!" 그러고 떠났느니란 말이여. 즈그 집에 가 못 나오거든.

 

그때는 째끄만해 장가를 들어. 장가들어 가지고서 핵교 댕겨.

아, 그러니 나이 뭐 그때 스물 서너살, 너덧살, 고 때인디—아, 무슨 놈의 일찍이 장가, 한 열댓 살 먹어 장가들었든 것이 있어. 장가가 그렇게 일찍 가, 그때는. 참 나.

 

마누라가 있제. 어머니는 그렇게 야단치제. 들어가드니 못 나와.

그놈의 명천, 길주 명천이 얼마나 먼 놈의 딘데, 그래도 내가 찾아간다고 간다고 허고.

무엇이 걸려서 못 찾아갈꺼요? 그렇게 댕긴 사람이 또?

 

허지마는, 명천 고을 사는 그 명천 군수 아들이라 이렇게만 내가 알았제 무슨 그, 뭐 내가 주소 뭐 그거 알았나?

그 막연허게 안 걸 내가 어떻게 찾을 수도 없는 것이지마는, 그럭저럭 찾도 못했지마는, 아! 이놈에 보고 싶어서 내가 대성통곡을 했네.(21분47초~43분25초)

 

 

 

 

(3/4)----------------

 

거 참, 아! 내가 부모 여의고 저 부모, 뭐 내가 자석 있어?

부모 여의고 내가 고향 여의고 아, 뭐 다 여의고 나와 도 닦든 사람이 뭔 놈의 그놈의 친고 좀 생각헌다고 울음이 나올꺼요? 나, 평생 참, 통곡허기 처음이구만.

그렇게 내가 울어 봤어. 제일로! 도무지 참 못 견디겄드구만, 이래 막 북받친데.

 

그런 사람이 마하연(摩訶衍)서 지내고는, 나를 보더니 그냥! 어짤 것이여 그렇게.

나와서, 보덕굴(普德窟) 와서 기도를 허고 있어. 즈그 집이서 인자 어떻게 빠져 나와 가지고는...

 

자, 어머니도 눈이 멀었제. 어머니가 눈이 멀어 버렸어. 눈까장 먼 어머니를 떼 버리고 그 자기 마누라가 기가 맥히게... 어릴 때 장가들어 가지고는, 열댓 살 먹은 게 장가들어서 무슨 놈의 내외간 정을 알 것이여? 내외간에 무슨 뭐, 그만 정몽도 한번도 이뤄 본 일도 없이 아, 그만 출가해 버렸으니, 그 마누래가 더 했다 그말이여.

 

'세상에, 남편이라고 내가 시집을 와 가지고는...' 여자는 또 나이 많이 먹을 때제. 몇 살 더 먹어.

아, 그래 참, 동생겉이 아, 사랑해 가지고는 남편이라고 인자 참, 어떻게 마음으로, 마음속으로 깊게 아, 이랬지마는 존망이 없어져 버린게 기가 맥혀가지고.

만났으니 어쩔 것이여? 그래저래 못 나오는디, 억지로! 몰리몰리 참! 발심을 지독히 헌 사람이여, 몰리몰리 밤낮 지킨 것을 참, 도주를 해 나와 가지고는, 거 금강산 보덕굴이 있어. 그 다 본 이가 있냐?

 

보덕굴은 외나무 지둥인디, 그 지둥을 서로 괴와 세워 가지고는, 보덕굴—그 관세음보살님이 그 굴속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거다가서 집을 이렇게 굴에다, 바위에다 의지해서 하나 이렇게 지둥을 내려 지어 놓은 디여. 가면 타타 요리되지.

거그서 기도를 허고 있어. '그저 우리 어머니, 그저 우리 처, 우리 아버지가 자식을 그저,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식을 잊지 마시고, 우리 처자도 애욕을 끊어 버리게 해 달라'고, 고 기도를 했어.

 

그 관세음보살이 천하에 유명헌 그 참 보살님이 관세음보살님이시니, 생관음도량에서 기도헌다고 기도를 올려. 그때 마침 백일기도 회향(廻向)을 했어.

거그를 들어가니께 얼마나! 나도 반갑지마는, 자기도 반가울 것이여. 기가 맥히제!

 

그 쪼쟁이 해가지고 들어가. 헐 수 없이 붙잽혀 가지고 이놈의 것을 가서, 내 보따리 허고 내 전부를 갖다가 물에 처넣어 버렸어.

보덕굴, 고 밑에 올라가면 그 저 세분댐이라고 있는데, 거다 처넣어 버렸어!

아, 이런 쏵! 갖다 그만 집어 처넣어 버렸어.

 

아, 이런 놈의 보소! 아, 인자 짊어질 것도 암 것도 없고.

아, 그래 나중에 오더니 "너 견뎌 봐라. 너 견뎌 봐. 너 그러고 댕긴다고, 내 그 말 들었다"

 

함경도 놈들이란 건 사정없대. 참말로!

그 서로 친고간에 그 좋은 좀 사정을 볼 테지만, 사정없어. 쏵 갖다 물에 집어넣어 버리고는 가새를 이만헌 놈 가져 오더니 어떻게 갖다 한 바람에 쏵 베어 버려, 여그를! 그래 가지고 꽁지 빠지게 이렇게 되어 버렸어, 여가!

 

그래도 나중에 '이것 보라'고 해, 이것 본 게 안 되겄거든. 어떻게 좀 안 되겄거든.

그래 안 깎아서 나중에 그냥 고것만 좀 요리 좀 틀어 가지고는 또 길워 버렸제. 그걸 보고는 못 깎았서.

 

그래 버리고서는 나한테 법문을 해 주는디, 말 잘헙니다.

보통 말헐 때는 "으으, 응응응, 뭐뭐뭐, 엉엉"이려. 말 한마디 못혀. "응..." 입이 어눌해서.

"아니 그러니깐... 그러니깐... 아니, 응" 그러다가 겨우 한마디씩 허는데, 연설만 내놓으면은 굉장허다! 하나 맥힘없이 좌악...

헌디, 고런 부애가 나서 법문으로 헌 디는 절찬이 하나도 없어. 잘허제!

 

"네가 이놈! 도인인 체허고, 네가 이놈, 공부 좀 했다고 도인인 체해 가지고 행동을 그따구로 해가지고 돌아댕기면서 '내가 도인이다'허고, 이러고 돌아댕겨? 머리 똑, 머리 기뤄 가지고? 저따구로 해 가지고? 더럽다!" 아, 이 지랄허고는 그만 들입대... 헐 수 없이 당했제, 안 당헐 수 있어? 당했제.

그 사정을 얘기해 봤던들 "변명이다, 싫다! 변명은 더 더럽다!"

 

"아, 용남이가 글쎄 자연치료..."

"야! 자연치료를 그따구로 해?" 아, 이것 당최...

 

"아, 돌아댕김서 괴기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을라니 중옷 입고 댕길 수가 있나?"

"중옷을 입어도 분수가 있고 안 입어도 분수가 있제? 네가 저따구로 돌아댕겨? 그 사람 속일라고 그러제. 이놈! 뭐여? 도인인 체허고"

 

아따, 욕을 퍼붓고 헌디, 당최 들을 수가 없네. 허! 그것 참!

그러지마는 뭐 그따구 소리에 뭐 내가 헐쩍거릴 수가 있나?

 

그래 가지고 거그서 인자 해제허고 풀려 나온다고, 나를 데리고 나왔소. 하! 옷도 인자 그만 제 옷을 입고 나왔으나 뭐 별 도리가 있나? 뭐 그럭저럭...

고것 또 인자 또, 그 합천 해인사에 들어왔을 때, 그 합천 해인사 벗어나서 헌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헌 것이라.

 

그러나 인자 합천 해인사에서는 박한영 스님허고 인자 최후 법담을 마치고, 그 화엄경 도리를 묻고.

박한영 스님은 화엄경 도리에 대답헐라면은 얼마든지 헐 수 있고, '아, 그 마음은 뭐가 지었소?'헌디 못혀? '마음은 뭐가 지었소?'헌디, 별 답 다 헐 수 있제.

어디가 없어? 그말이. 『설화(說話)』에도 있고, 의리선으로 얼마든지 답헐 수도 있고, 의리로 일체 이치 길 밖에, 말 길 밖에, 아, 그 격외선으로 헌다면은 격외가 어디 없어 다 답 못할 것이여?

 

다 답헐 수 있지마는, 발써 그렇게 묻는 것을 보고, 또 여관 귀빈실에 들어 있으니 여관에 이동수한테 그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알기도 허고.

또 사무실 제원(諸員)—그때 백채승이가 날 따라 여그 와 있었지마는, 백채승이! 백선생, 그 저 용명 말이여. 용명!

그다음에는 허능산!—허능산, 시방 정능, 그 대명사에 있소. 허능산! 그 허능산이 사무실... 허능산, 그때에 모도 인자 정홍건이가 감사인디, 정홍건이!

 

요러헌 사무소에 모도 직원들이 한용운 스님이, 저 박한영 스님이 이렇게 합천 해인사 들어왔다 해서 아침저녁 문안하고, 왼통 사중이 덜썩—사판(事判) 사람들이라 강사를 제일 치니까, 덜썩 모도 아침저녁 가서 절을 허고 모도... 아니 문안하고 모도, 진지상 잘 채려서 대접허고 귀객 대접을 기맥히게 헌디 모를 이치가 있냐 그말이여.

 

또, 그 4월 8일에 올라가서 그 설법을 어떻게 그때 참.....

쳇! 자꾸 내가 내 설법 잘했다 허니 그놈의 거...

 

허지마는 어째? '잘했다' 그말이제, 뭐 어쩌? 그 '못했다'햐?

잘했다고 헌게 잘했다고 하지! 그 많은 청중이 덜썩 해버렸어.

 

"자연적(自然的)이냐 천연적(天然的)이냐, 만겁(萬劫)에 현안(懸案)인 천지(天地)의 비밀(秘密)이냐? 자연도 아니요..." 고놈을 내가 넌출지게 했다 그말이여.

"자연도 아니요 천연도 아니요..." 거다가 여러 말 했제. 요것 또 해야제.

 

"비철학이요 비종교다. 무슨 철학이며 무슨 종교냐? 선천(先天)에 무기시(無其始)요. 선천에도 비롯함이 없고, 후천(後天)에도 무기종(無其終)이여. 후천도 종이 없느니라. 시(始)와 종(終)이 없는 이 도리가 심마도리(甚麼道理)냐, 이게 무슨 도리냐?"하고서는,

"거 누가 없느냐? 사람 사람이 다 갖촤 있으며, 사람 사람만 갖촤 있겠느냐? 우주 삼라만상이 다 갖촤 있는 진리다. 진리는 영존(永存)이니라. 영존진리니라"허고, 한번 일러 보라고 막 들입대 치워.

 

의리로 죽였제, 나는 그렇게 저 무서운 무슨 격외 공안 갖다가 '이게 무슨 도리냐?' 이러 안 해.

해 놓고 내가 거그 나아가서 무슨 조사 공안을 한바탕 묻는다든지 허제, 그런 짓 안 혀.

 

뭣 올라가서, 고인(古人)들 해 놓은, 저 지나(支那)에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이나, 척! 허니 '금사탄두(金沙灘頭)에 마랑부(馬郞婦)니라. 회마(會麼)아?' 툭 치고 내려오고 그런 짓 안 해! 그렇게 안 헌다 그말이여.

 

지나 사람이 그러제, 우리 한국 사람이야 우리 한국말로 알아듣도록 해 가지고, 말로써 보일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가서는 아, 그때 가서는 이언(以言)으로 지무언(至無言) 도리니—말로써 말 없는 도리니까, 아, 거까장 턱 그 시상두를 해야 하는 것이제.

 

이건 뭐, 무조건 올라가서 그만, 뭐 고인의 공안이라고 해서 툭탁 치고 이 지랄허고 어쩌고 헌다. 그래 가지고 요새 고따구로 내놓고. 저 지나에 옛날 임제 스님이나 그러라 하제.

 

'청천에 벽력(靑天霹靂)이요, 평지에 기파도(平地起波濤)니라. 할(喝)! 일할 하고는 이고주장하좌(以靠柱杖下座)다'

요래 놓으니 뭐, 뭐여 그게? 요 여서 그렇게 써 놓으면 뭣 헐게여. 우리나라 말로 족 가르켜 나가도 얼마든지 헐 수 있는 것이어늘.

 

아, 또 그렇게 안 헐 수도 없어. 허지마는 우리 선객(禪客)이라도 다 자기와 같이 강사지견(講師之見)이 있으면, 진리는 알지 못허드래도, 거! 인자 이치는 모르드래도, 강사니까 같이 글을 잘허니께 글, 아무리 문답으로 허드래도 못 알아들을 것인가?

 

아, 그런 디를 몰라 그러허되, 뭐 우리 뭐 선객들 무슨 어디 그렇게 강(講) 다 마쳤나?

아, 그런 디다 갖다가 똑 영어 말허데끼, 넨장칠 거, 영어 모르는 사람들한테 영어 허니 소용 있나? 일본말 못허는 이한테 일본말 해 뭐 소용 있어?

그런다 그말이여! 얼마나 그것이 때에 어긋지고, 얼마나 그것이 상식 부족이여, 오히려!

 

합천 해인사에서 그렇게까지 참 존대 받는 한국의 박한영 스님이 왔다가, 모도 그 사무실 사람들한테 "아, 그 수좌(首座)가 머리 기르고 이상헌 사람이 홍도여관에서 뽀이질 허고 있으니..."

그 별 다를 거 아니여? 이상허지. 얼굴은 뽀얗고—얼굴에 뭐 때가 묻었나, 내가? 깨끗이 씻고 그대로 아, 허니 뭐—지끔은 모냥다리가 요따구로 되아 버렸소마는, 그때는 껍데기가 다 그래도 주름살 안 찌고 그럴 때 아닌가?

그때, 나 또 내가 말여. 그때 그래도 내가 "아따, 그 사람이 얼굴이 예쁘다" 이랬제, "에, 그녀석 밉다" 이런 소리 안 들었어. 사실이여.

 

아, 그런 사람이 홍도여관에서 물을 것 아닌가? 물어본즉,

"아주 지금 한국에서 그만, 한국 시방 선지식(善知識)을 모도 바삐 가서 뒤집어 한바탕씩 법담하고 그러고 지끔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는 저렇게 그저 참, 견성헌 후에 두타행(頭陀行)으로 나서서 두타행 일주(一周)를 허고, 시방 여관에 와서 또 똑 문수 보현처럼, 문수 보현이 쓰레기 쓸고..."

 

아! 문수(文殊) 보현(普賢)이 어쨌소? 자, 문수 보현이 어디 중이라 했소, 속인이라 했소?

문수와 보현이 머리 그렇게 길러 가지고는 양상투 떡 꽂고는, 아 돌아댕김서 문전 쓸고, 거리노상 쓸고... 어쨌소? 거 뭐, 얼마나 고불 고조사 옛날...

어째? 문수는 어쨌으며... 문수는 칠불(七佛) 조사의 스승이고, 문수보살이 불불(佛佛)이 출세헐 것 같으면 문수보살이 나와서 그 상수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전부 그 부처님의 법을 조불양화(助佛揚化)를 안했소? 조양진화를, 조불양화를, 모도 부처님 법을 나토아서 모도 이렇게....

 

어느 존자(尊者)인가,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어느 존자가 턱! 견성은 못허고 타심통을 해 가지고는 떡 보니까, 그 무량과거 천만 겁 중에 그 생사 죄를 지어 가지고 죄 받아 나온 것이 어떻게 기가 맥히던지!

무슨 존자인가 거? 아, 강사 좀 말해 주어, 모도 이 강사도 오고 다 이랬는데.

이 굉장혀, 우리 대중이! 굉장헌 모도 이 지식가가 모았는디 암말도 안 해 주어.

 

뭔, 부처님 제자 누구제, 거? 그래가지고는 타심통을 타심통(他心通)을 했네.

그래 신통(神通)머냐 나면 못써. 신통부텀 나면 못쓴 것이여. 타심통으로써, 아니 타심통이 아니라 숙명통(宿命通)! 숙명통으로 전생일 아는 것, 숙명통이 나가지고 보니까, 과거에 어떻게 죄를 짓고 죄를 받아 왔든지, 하도 기가 맥혀서!

과거라고 허니까 무슨 과거가 무슨 뭐 연조(年條)가 있나, 몇 년조? 몇 억만 연조가 어디 있어? 역사가 있어?

 

어떻게 두렵던지, 무섭던지 지긋지긋해서 "아이고! 나 죽겄다"고 울어, 발을 뻗어 울었다 그말이여.

그 우니까, 부처님... 그 저, 저 문수가 칼을 들고 부처님한테 칼을 찌를라고 했네. 벌써 그 모도 방편이제.

칼을 찌른게, 부처님이 "주(住)해라!" 법문을 허니까 문수가 칼을 놨는데, 그때에사 그 존자가 계상(戒相)에만 떨어져 가지고는 그만 그 후회헌 것을 돌렸제.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여. 붉은 손 홑칼로 불(佛)을 죽이고 조사(祖師)를 죽이는 것도 그게 근본 대진리에 가서, 대체 그 명상(名相)이니 그 뭐 상 같은 거, 몸뚱이 뭐 상 모냥 그런 것이, 그것이 모도 무슨 무엇일 것이냐?

죽었다가 살았다 한 것이 다 무엇이며, 본래(本來) 당처(當處)에 죄 없는 곳을 바로 보인 것이다.

 

본래 죄가 없거늘, 본래 생사도 없거늘, 죽어야 생사가 없고 생사 죄가 없는디, 어디가서! 천하 없는 일체 죄업이 아무리 죄업이 있다 헌들, 구타부득(拘他不得)이여! 바로 얻지 못헌 곳이 있어!

어디 가서 죄가 있느냐? 죄 없는 곳을 바로 보이기 위해서 이런 법을 썼드라 그말이여.

 

아, 그 박한영 스님이 사무실에 와, 왼 사중(寺中)에서, 대중에서, 산중에서 그 말 딱 듣고서는 "참, 비로소 처음 내가 선객을 보았다!" 이러고 찬을 허고 나간 일이 있는데.

그 찬탄이라는 것은 박한영 스님의 대답보담도, 그 법문을 내가 물을 때, 부처님의 화엄경 아주 대의(大意)라는 것이여.

'만약 사람이 삼세일체불을 알고저 할진댄[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뻑뻑이 저 법계성을 봐라.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니라. 일체가 마음으로 지었느니라'

 

그 대의인디, 화엄대의인디, 그걸 대답을 턱 헌 것보담도 나 하나 찬성을 턱 해놓고 나가는 것이 그게 거, 박한영 스님의 참! 그 덕이고, 덕도 덕이지마는 박한영 스님의 그게 여간헌—그 그렇게 돌아댕기면서 그 질서 없이 댕긴 사람, 수좌 선객을 그때 볼 때 그 우습게 볼 터이지마는, 여러 가지를 턱 보고 한번 나를 대칭찬허고 나간 것을, 나는 내가 그렇게 찬성을 해 주었으니, 나 같은 걸 찬성해 주었으니 고맙다 그래서 그런 것 아니여.

 

자기가 강사인 줄을 알고 있는 이고, '나는 선(禪)에 들지 못해서 한탄이다' 이게여.

내가 말 많이 들었어. '한탄이다'

 

왜 강사만 되아 가지고, 천경만론(千經萬論) 논설(論說)만 내가 봐 가지고, 자기는 보지 못허고, 내가 나를 깨달지 못허고 고인(古人)의 조박(糟粕)만 가지고, 고인의 짜먹고 내버리는 문서 쪼가리, 조박만 가지고 일평생 살림을 해 왔느냐?

나는 실질로 증허지를 못허고 바로 깨달라 오지를 못했으니 함부로 입 열어서 선지(禪旨)를 대답해 줄 수는 없다, 이게여.

 

그 선객들이 알뜰히 알뜰히 공부에 애써서 자각자득(自覺自得)을 헌 이한테 가서 내가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만 해 가지고, 날이 밝도록 남의 보배만 세다가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이여! 내 돈은 한푼도 없는데, 내가 거다가서 뭔 입을 내루어야 해가지고—그 참, 나한테 헌 것, 고마운 양반이여! 보통 알 거 아니여!

솔직히, 당신은 강사로서 보지 못했다는, 깨달지 못허고 내가 답을 헐 수가 있다는... 그 고마운 이제.

 

강사가 그러지 않어. 다 알았다 하제. 강사의... 강사의 거만이라니!

무조건 "참선, 그까짓 게 무슨 놈의 소용 있나?" 막 반대해 버리고 그런 건디, 그러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교(敎)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오지 못헌 것을 한탄허고. 큰 강사는 또 그런 법이고.(43분26초~64분21초)

 

 

 

 

(4/4)----------------

 

음! 여그서, 합천 해인사에서 이렇게 내가 마치고.

그 인자 다 못했기 따문에 한번 해 나오다 구석구석이 빠진 놈을 그 모도 인자 아까 월암 스님 뭐 설악산 사건 모도 그런 거, 그 서대 가서 그 수공 스님 만나 노래 부르든 그 단가 허든 거, 그걸 내가 집어 넣은 것이다 그말이여. 인자는 저번에 허든 놈 연속해서, 여그서 끝을 마치고.

 

해인사에서 끝 마치고는... 어째 끝을 마쳤냐? 다행히 병이 나았네!

그 어떤 병이 나았든고? 출출출 흘러 내려오는 피는 없지마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지침을 콱 허면 간뎅이 같은 놈의 피가 푹 넘어오거든. 푹 넘어오면은 비린내가 나서 당최 살 도리가 없어.

 

그 비린내가 푹 날 때는 무엇을 먹어도 소용없어!

인단(仁丹) 같은 거 먹어도 소용없고, 별것 먹어도 비린내가 동(動)해 놓으면은 그냥 밥을 못 먹어. 아, 그거 이상혀. 밥을 못 먹어 며칠 그런 고통이 없어. 혹 그런 놈이 툭툭 넘어오든 안 해도.

 

그러면 소금을 먹어서 가라앉히고는. 불가불 담배를 먹어도 좋은 놈을 먹어야 한단 말여. 가끔 먹어 놓은게 인자 질이 들어서 좋은 놈을 먹는디, 제일 좋은 담배 안있는가?

나쁜 건 먹도 못혀. 씨그리 헌 거, 고약해서 못 먹어.

 

좋은 놈을 풀어 가지고, 히부를 안으로 들이는 것 있지, 왜?

후우~ 해 가지고 푹~ 피어 내면 가라앉어. 생강이니, 건강(乾薑)이니 소용없어.

나는 담배를 먹어도 사실 꼭 참 약(藥)에 먹었제. 그러니께 담배 한 갑을 가지면은 고놈 똑 내룰 때만 먹제, 똑 두 모금 밖에는 안 피워. 훅 빨어 가지고 쑥 들어가면 푹~ 피워, 가라앉거든. 고래서 그놈의 담배를 먹고.

 

술은 참, 한참 얼근허니 먹어 놓으면, 주면 또 먹고 또 먹고, 내가 글쎄 저번에 또 얘기허지 않씁뎌?

오목식기로 아마 다섯 식기는 먹었다고 허지만 그건 거짓말일 것이고, 아마 한 세 식기는 먹었을 것이여. 오목식기로 이놈으로. 그 동당주라든가, 돈방주라든가?

그 왜, 뭐 어디 가 잤다고 안했어? 비 피하니... 그놈이 설찬헌 주량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퍼먹고.

 

세상에 한번 춤도 추고 놀기도 허고. 나 언제 한번 춤추는 걸 보십시요.

내가 뭐 거짓말허는 건가? 내 춤이라는 것이 장단 다 맞춰 춥니다. 내가 진양춤도 다 춥니다.

 

숭내 한번 내 보까요? 한번 처억 춤서 돌아서면, 척! 돌면 내 춤 아무도 못 당헙니다.

천하없이 저 구식 춤추는... 아, 글쎄 어디 내, 인천에 하나 봤소. 여자가 추는디, 그 진양춤 추는디 제일 낫게 춥디다. 처억 왔다가 이렇게 돌려 가지고는 치매 자락을 요리허고 돌아가는 게 있습디다. 고 하나 내, 가락 봤습니다.

 

그다음에 그까짓 뭐, 뭐 춤, 애라 때려치워! 몇 해를 밤낮 배워 놨다고 와서 춤추면 내가 피해 버리요.

잘 춘 춤은 말이여, 내가 피헌 게 아니여. 가락이 벌써 틀렸어. 춤 가락이라는 것이 그 긍경(肯綮)을 다 나타내거든요. 노래 가락도 그래요. 내가 늘 안해?

 

백구란 놈, 글쎄 백구란 놈이...

어쩌요? 이 잔소리허고 앉어 있으니깐 법문 안 같으오? 허어, 이거!

 

백구란 놈이 저그 있는디, "(소리지르듯이)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그도 소리가 되기는 되거든.

"(소리지르듯이)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그러면 백구를 쫓은 놈이라 못쓴다는, 곡이!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음조를 맞추어서 하심) 이래야 그 곡조가 되제.

"백구야, 훨훨 나지 마라" (음조를 맞추어서 하심) 요놈, 이래야 되는 겁니다.

 

그와 같애서, 춤가락도 그려. 조꼼만 이놈을 처억 이 도는 놈을 돌아가다가 써억 그러면, 그냥 얼른 요래 이거, 거 틀려 버려. 안 되아. 그거 예술이란 게 그런 것입니다!

 

내가 글쎄 인자 합천 해인사에서, 어디서 술을 한잔 먹고 야로를 내려가는데, 야로를 내려가면서 차 안에서—차가 비었어, 많이. 그때는 또 차 안에서, 그때서야 다 나올 때인디,

호사를 그만 이놈을 쏵—나올라고 인자 한바탕 그래 봤어—쏵 깎아 가지고 머리팍을 여다가 쏵 깎아 가지고 잘혀서 넹기고는, 옷을 참! 자유롭게 입었어. 그도 입을라면 내가 다 입어.

 

그 고령(高靈)에 이정기씨 집에 들어가서, 내가 인자 가서 약 얻어먹을라고 인자 약제사 노릇을 좀 했어. 약, 이거 심부름을. 그 약 얻어먹고 낫았어.

 

낫아, 병 낫으니깐—병 낫았제, 아직 청춘이제, 머리는 기룬 놈이 있겄당. 그대로 그만 쏴악 하이칼라를 해가지고 맥고자를 턱 집어 쓰고는 아주 양복을, 일등 양복을 한 벌 해 입었습니다. 이 다 해 주어. 이정기가 해 주어서 입었어.

입고, 좋은 구두, 그때에 꺼먼 구두 안 신고 그 붉은 구두를 신을 때, 붉은 구두 알아 줄 때요. 거 붉은 구두를 탁 하나 신고, 일등! 멋쟁이 하이칼라로 턱 나섰네. 나서 가지고는, 또 술을 한잔 치뤄주니 잘 먹고서는.

 

그래도 저래도 하여간 아무리 채리고 아무리 별짓 다해도 정영신(鄭永信)이는 인자 알아 줄 때라. 나서 가지고서는...

그러고 또 그때에 그렇게 저 통도사 둘러 와 가지고 경봉 스님 한번 냅대 법전(法戰)을 해서, 그러고 나와서 다 내가 소문이 다 나 버렸어. '아조 경봉 스님도 정영신이...'

 

뭐, 경봉 스님이 그런 말 안 헌다 해도—점잖헌게 안 허제—경봉 스님이 나 바로 청해 갔어!

그 뒤에 인자 내가 그렇게, 그 뒤에 날 청허러 와서 그때 설암 스님이 주지인디, 설암 스님이 인가장 써 가지고 경봉 스님이 가지고 대구 와서—남산정에 내가 그때 포교사로 나가 있을 때인디, 왔어!

아, 경봉 스님이 와서 그렇게 헌디, 기가 맥혀.

 

음! 도(道)도 아는 이고 기가 맥혀서 "아, 그렇겄다!"허고, 내가 그래 같이 가서 신평장터를 들어가...

신평! 통도사 그 밑에 신평장터 십리를 두고 올라가는디, 통도사 스님네가 다 나왔어. 주욱 나와서, 학인 모두 다 나와서 그 길로 연접해 서서 내가 들어감서 모두 이리 절을 받고 들어갔어. 경봉 스님이 와서 갈 때!

 

그랬는디, 경봉 스님이 그런 말 한마디라도 학자한테 헐 것이지마는, 당신 위신 타락할까 싶어 안 허는가?

'째깐헌 정영신이, 얻어먹고 댕긴 사람한테 내가 법문해서 거기에 어쩠다'고, 그래 안 허는가? 그것 틀려.

 

아, 여기, 여기 저 금강심 보살님이 마산(馬山)서인가 오셨는데, 거가서 늘 지냈는데, 금강심 듣는 데도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허요? 와 말 한마디도 않게. 원, 그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

그거 다 그때에 그렇게 한번 그랬다가, 서로 법 탁마(琢磨)헌 것을 한번 말헐 것이지마는, 나는 이렇게 가끔 말해도 한마디 헌 말, 못 들었어.

 

위신이 원 참, 점잖헌이제. 점잖해서 그런 거지마는, 남전(南泉) 스님 같은 옛날 큰스님도 조주(趙州) 스님—어린 아, 조주 스님한테 막 그만 한 방맹이 맞고, 아, 그런 말씀을 밤낮 학자한테 했고.

부처님! 부처님 방(棒)을 운문(雲門)이 주었는데, 운문이 300년 후에 저 손자인디, 손자한테 말로 방 맞는 것도 지금 전부 전통해 나오거든. 선법(禪法)이라는 것이.

 

그러나 저러나 내가 기행사를 말허다 보니 여까장 헌 겁니다.

 

옷을 그렇게 잘 입고 거 뭐 굉장히 채려 입고는, 아, 십리를 내려오면서 차 안에서 노래를 부름서 춤을 추었소 그려. 내 춤이! 인제 그래 날 한번 시켜 보란 말이여, 내 춰 주께. 왜 그러냐?

거짓말이다 싶은 생각을 가질까 싶어 그려. 참말로 옳은 말해도 안 듣고. 이런 말을 또 안 믿으면 왜, 뭣...

 

한번 춤춘 것이 무슨 곡인데? 춤 한번 척! 춘 것이 그 무슨 도리인지 아시요?

공연히 그걸 갖다 춤추면 웃음 웃고 어쩌고 그런 것인 줄 알어?

그게, 그게 참, 춤이 한번 내둘러 추는 바람에 활연대오(豁然大悟)가 있는 것이여.

 

법문이라는 게 또 어떻게 되느냐?

격을 잃지 않고 격외(格外)가 나와야 되아. 바로 본 사람은 격을 잃은 법이 없어, 법문이.

 

"꿀 딱! 먹을 때 어떻게 살아가겄느냐?"

"달다!"

 

어째요? 응, 어쩌냔 말이여?

인제 견성(見性) 바로 해 가지고 보란 말씀이여. 그놈부텀 봐!

 

이것은 다 있어! 공문(孔門)에도 있고, 천주교 문에도 있고, 다 있어.

우리 불교에도 있고, 다 있는 말인데, '달다' 답 나온 데가 없다 그말이여. 있는가 보란 말씀이여.

 

'달다!'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이 그대로, 한 분도 다시 두말 못허는 것이여. 어떻게 '아니다, 기다'헐 수가 있어야제. 바로 나왔는데.

그 격(格)을 잃지 안해야 하는 법이거든.

 

말허자면, "저 거문고, 저 거문고를 저렇게 잘 뜯고 있으니, 거문고를 잘 타고 있으니, 저 거문고 소리를 한번 잡아오너라. 저 거문고 소리가 어떠하냐? 저 거문고 소리를 가 잡아오너라" 그럼 뭐라고 답햐?

그럴 때에, 거문고 소리를 잡아오라고 헐 때에는 고 답이 어떻게 나왔느냐? 가만히 생각해 봐.

 

또, 저 빨래 소리를, 저 산촌에서 산촌 마을 집에서 빨래 소리를 헌다 밤중에. 뚜닥 딱딱딱딱 뚝딱딱딱딱 요러는 "너 저 빨래 소리를 잡아오너라"

그 소리는 마찬가지제? 빨래 소리, 다듬이 소리를 잡아와, 마찬가지제? 거문고 소리, 소리는 마찬가지제?

 

허지마는 "거문고 소리 잡아온 것과 다듬이 소리 잡아온 것을 분단(分段) 있게 일러 봐라!” 어떻게 답혀?

 

알고 묻는 데는 헐 수가 없고, 모른 사람한테 가서 도인 노릇허고, 모른 사람한테 가서 도를 보이고 그것은 천하에 저, 사람 속이고 저 죽는 법이고, 아는 이 앞에 가서는 입을 열 수 없는 거고. 못혀! 헌 법 없어!

 

내가 여그서, 인자 일로써 끝마쳐.

 

그렇게 한바탕 채리고 나섰다가, 이까짓 놈의 것을 내가 입고 인자 뭣 할 것이냐 대관절?

이렇게 옷을 잘 입고, 잘 양복 입고, 붉은 구두 신고 또 거다가 연중에 되게 한번 해 볼라고 그랬어.

'그 빌어먹을 녀러 것! 세상에 났다가 내가 오장치만 지고 돌아댕기다가, 한번 하이칼라 노릇해 봐야겄다'고, 멋진 하이칼라 노름을 해 봤다 그말이여.

 

세상에 그저 사람이 나왔다가 '시집이나 한번 가 보고 중노릇허겄다' 이러데끼.

가 보면 그놈의 것, 거그 상습(常習), 그만 정이 들어, 오는가?

 

나도 그때 하이칼라 척! 그래 가지고 그만 한바탕 '옌장, 그 사람이 나왔다가, 장부(丈夫)가 나왔다 장가나 한번 가 봐야겄다'고.

'장가를 한번 들어 보까 어쩔까, 빌어먹을 녀러 것! 뭐 그것 무슨 상관이여? 도(道)는 뭐, 못허나? 장가 들면 못혀?' 별생각 다 한바탕 해 봤지.

 

천하에 요따구 짓놈의 짓을 허고 댕기다가, 인자 밤낮 하이칼라 했으니 머리 깎제. 머리 깎고는 모도 인자 분세수(粉洗手)허제. 면도 다 하제. 곱게 채리제. 옷도 잘 입고, 이놈 보고 인자 이것 해야제. 넥타이 탁탁 달아 매고 이러고 돌아댕겨야제, 인자 뭣 할 것이냔 말이여.

 

자, 내가 또 장가를 들어 보자니, 어디 돈 모아 논 게 있나? 어디 집이 있나? 어디 또, 뭐 어디 내 어떻게...

가다오다가 어디 빤드란헌 여자나 뭣이나 아, 쌔버렸으니까 하나 얻을라면, 그런 것 하나 얻어 가지고 둘이 인자 산다고 돌아댕김서 어쩔 껀가?

 

거리 노상에 가 무슨... 혜월 스님은 신이나 삼았지만 나는 신도 못 삼지. 뭔 지랄헐 것이냐 말이여?

어디 가서 그만 둘이 가서 살면서 술이나 팔아 가지고 얻어먹고 살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드라 그말이여. 해 보니 소용...

 

그놈의 운전수나 한번 내가... 그때 운전수, 7인을 태우고 댕기면은 돈을 버는디, 운전수가 돈 제일 잘 번다 했어. 왜정(倭政) 당시에.

'그놈의 운전을 배워 가지고 운전수나 해 가지고 마누라 데리고 살아 보까?' 요런 생각도 다 했네.

 

그놈의 인자 다시 그 지랄허다가 내가 돌아댕김서 이러고 댕기다가, 다시 승복 입고 절에 들어가서 수좌로 또 가만히 도 닦고 앉었을 수도 없고. 에이, 이놈의 것!

어째 이렇게도 허다가... 그만 때려치워 버렸습니다.

 

내가, 내가 본래에 중노릇허든 마음! 그 마음을 도로 찾어야제. 내가 조꼼이라도 달리, 그때 마음 한번 달리 내면 나는 영원히 인자 화택(火宅) 귀신 노릇 못허고 삼악도(三惡途)에 그대로 갈 것이고.

요까짓 것, 내가 조끔 내가 공부 득력(得力)해서 얻었다고 해 봤던들 득이수난(得易守難)인디.

환히 알거든! 얻어 가지고 지키기가 어려운데, 내가 얻어 깨달라 가지고 지켜야 할턴디, 여지없이! 모암토동(茅庵土洞)에 들어가 고락수연(苦樂隨緣)을 하고 참, 용맹정진을 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시지부지 가서 무슨 뭐, 마누래 얻어 가지고 살면서 능히 헐 것이다는 능위지심(能爲之心)을 가지고, 마누래 얻어 가지고—좋은 마누래, 잠 잘 자고, 인자 옷 잘 입고 잘 먹고, 자석 들여다보고, 잘 혀? 안된다! 이상과 실행과는 달라. 안되아!

 

싸악 때려치와 버리고는, 누데기를 전에 항상 그전에 입었든, 우게 하나 입었든 것은 둔 것이 하나 있어. 어따 쌌든지 내 두었거든. 똘똘 말아.

그놈 하나 턱 뒤집어 입고, 이 모자 고놈을 홱 틀어서 내던져 버리고는, 머리 요놈을 그냥 내가 둥쳐 버려. 내가 그냥 이리저리 깎고는... 누구 보고 기계로 그놈 좀 깎아 달라고 싯방(셋방)에서 그러니, "아! 왜 깎아? 깎지마"

 

"깎아, 그냥!" 쏵 깎아 버리고는, 인자 그러고는 그만 누데기 그놈 하나 입고 오장치를, 아니 오장치 아니라 걸망 하나 해서 뒤집어 짊어지고는—머리 깎았은게. 깎아보니까 인자 머리가 참, 병이 나았은게 참 그렇지마는, 이것 나았어.

나았지마는 희끗해 뵈기 싫은게 그 뭣 하나, 보기 싫으니 요리 둘러쓰고는 딱 짊어지고는, 아무도 내가 간다온다 말 않고 해인사 문 턱! 나서 가지고는 해피정재를 넘어와 가지고는 거창으로 턱 넘어와서는 그만 김천으로 나와서 차를 타고. 그 돈은 조끔... 무주 와서, 저저 영동 와서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영동 와 내려 가지고는 차를 타고 조끔 한 십리쯤 나오니 거가 무슨 뭔, 나무 목(木)정이여. 목정인디..... 수좌 옷을 딱 입고는 나오는디—아, 거기에 항상 합천 해인사 들어와서 일류 기생인디, 아, 거그 와서 인자 술장사를... 뭐 장사도 허고 인자 기생 노릇하고 있어. 그 젊은 아이인데.

항상 그 놀면 내가 그렇게 춤 잘 추어 노래 잘 불러, 아주 거그서 그만 일등 그렇게 우습게 지내도 뽀이로 이렇게 지냈지마는, 뽀이로 알지를 않아. 누가 뽀이로 알다가 그만 속마음으로는 다, '아따, 저 이가 유명한 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제. 그러지마는 흔요허게 지내기는 지내제.

 

아, 그런 사람이 머리를 쒝! 깎아 버리고 요거 두루막 하나 입고 온게, 깜짝! 놀라 밖으로 뒤집어지면서 허면서 "아이고! 술이나 한잔 대접해야겄다"고, 제딴에는 들어가서 '조끔만 계시라'하고 옷을 갖다가, 내 있는 걸망을 갖다가 줏어다 놓고는 그래 놓고는 아, 그래 장만허고 있단 말이여.

 

예이, 때려치워라! 네 고따구 놈의 뭐, 술 한잔 대접헌다고 내 술 먹을 것이냐? 내 결심이 어떤디. 예이, 요너러 것들아!

아, 이러고 살며시 나와서 그만 그놈 짊어지고는, 거그서 인자 내려 가지고 있다가 차가 또 오드구만. 7인용 탄 놈이 오길래, 차에 올라앉어서 "도화야, 나는 간다"허고 있은게 (웃음) 와서 "허! 허!"허고 웃드란 말이여.

 

그길로 들어와 가지고서는 안국사에 들어왔습니다. 여까장! 안국사까장!

안국사 법문이 또 한바탕 있은게 인자.(64분22초~1시간24분59초) (일대기 17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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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10. 2. 12:5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6호) 홍도여관에서의 무애행.

 

**전강선사(No.031)—전강선사 일대기 제16호(경술1970년 12월 27일 새벽.음) (1971년 1월 23일) (67분)

 

(1/4) 약 18분.

 

(2/4) 약 16분.

 

(3/4) 약 13분.

 

(4/4) 약 20분.

 

(1/4)----------------

 

유명무신자(有名無信者)야  하처가안심(何處可安心)인고

나무~아미타불~

비석우비석(飛錫又飛錫)허여도  입산공불심(入山恐不深)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명무신자(有名無信者)야. 이름만 가지고 신용 없는 자야.

도는 닦는다고, 도학자(道學者)가 되었다. 참 천상천하에 없는 도학자다.

 

도를 닦는다. 천하에 도학자보담 더헌 자가 누굴 것이여. 이상이 누구여? 그 이상이.

 

'제석천주(帝釋天主)'허면 하늘에서도 제일 높은 천주(天主)인데, 제석천주가 제일 높은데, 도학자 밖에는 숭배허는 법이 없어. 별 사람 뭐, 별것 다 있어야 소용없어.

더 높은 자는 없으니깐. 자기보덤 저 꼭대기는 없으니까. 똑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사바세계에서 도 닦는 도학자 밖에는 없어!

 

더 높을 수 없고, 더 귀헐 수가 없고, 참! 학자다. 그 도학자를 위해서, 그러기 따문에 위해서 제일 복(福)은 많이 있으니까 복을 준다 그말이여. 제석천(帝釋天)이 여의식(與衣食)이다, 의식을 주느니라.

그 도학자가 누데기 하나 척 입고 그 옷 한 벌 떡 걸치고 나오지마는, 어디 의발도처임군찰(衣鉢到處任君拶)이제. 바리때 하나 짊어지고 누비 하나 옷 입고 척 들어가면, 도처에 '어서 오십시오' 그 뭐, 참 대접헌 법이 이러허제.

 

유명무신자(有名無信者)야, 도학자가 되았다고 이름만 가지고 턱 나섰다마는, 무신자(無信者)야. 그 참말로 믿어서 닦지 않은 자야. 그 고약허다.

 

공연히 헛이름만 떠억 하나, 몸뚱이다가 의관(衣冠) 둘러쓰데끼 뒤집어 써 붙여 놓고는, 하나도 없다!

내무소득(內無所得)은 사후주(似朽舟)다. 안으로 아무것도 믿음이 없으니 뭘 닦을 것인가?

속으로 공부를 혀? 무슨 녀러 공부인가?

 

하처가안심(何處可安心)고, 어디 가서 그... 속에는 썩은 배 같고, 속에는 신심 하나 없고 참말로 껍딱만 있어 가지고 안은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가 안심(安心)헐 꺼여? 벌써 제가 제 마음을 이렇게 가졌으니 안심헐 곳이 있는가?

 

천하 만사가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인디. 마음속에서 안심을 얻고 마음속에서, 제 자신 속에, 제 자신에서 그 즐거운 낙이라든지 모든 것을 다 만족을 얻고 헌 것이제, 마음 밖에 어디가 있을까?

마음이, 그런 신심(信心)이 그런 전체가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 가서 안심을 헐 것이냐?

 

비석우비석(飛錫又飛錫)을 헌들, 작대기를 날리고 또 날린들, 주석작지, 공부헌다고 법장(法杖)은 짚고 나섰지마는 그 작대기를 집고 가는 곳마당 '저 자석, 저 빌어먹을 것, 저 숭악헌 깡패 저런 거, 저걸, 저놈을 받아 뭣 혀?' 아무디나 벌써 한 간데 축출허면 전부 축출헌다.

발써 천주(天主)가 미워허고 천주가 의식을 안 준디, 어디서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인가. 비석우비석이 소용이 없다.

 

입산공불심(入山恐不深)이니라. 아무리 좋은 선원에 들어간다 헌들, 산중에 선원에 도 닦은 처소를 들어간다 헌들, 모도! 깊이 해 주지를 안 해. 그건 다 쫓가내. 다 싫어헌다. 깊어 해 주지를 안 해.

'아! 참 도학자로구나. 참 청정헌 학자로구나. 귀엽구나' 받아들이들 안 혀.

 

벌써 대중이 미워허고, 도량신(道場神)이 미워허고, 천주가 미워허고, 갈 곳 올 곳 없고, 그건 속가(俗家)에 가도 못쓰는 물건, 산에 들어와 도 닦는 도문에 들어와서는 썩은... 어림도 없다.

 

만약에 이름만 있어 가지고 도 닦는다고, 도 참선허네 허고 고런 이름을 가지고서 돌아댕기면서 그러헌 행동을 해 봐. 고런 행동을 해서 일생을 지내 봐!

차라리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않고 세상에서 같이 파고, 같이 갈고, 부모 모시고 사는 것 그것이 참말로 떳떳헌 일이제.

 

인생이라 하는 것이 도문(道門)을 모르고, 갈고 그저 심고 그저 일하고 밥 먹고 사는 것도 그놈의 것이 참, 그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두고 그렇게만 나가니 그놈의 인생사가 말로 헐 것 없지마는, 차라리 그것이 오히려 낫지! 도문에 들어와서 여차(如此)헐까 보냐. 참, 참! 이것을 깨달라야 하느니라.

 

여, 상좌에 늘 허는 말이지마는, 그렇게 신(信)이 없이, 그렇게 활구참선(活句參禪), 바로 그 닦아 나가는 활구참선을 해서—활구(活句)밖에는 선(禪)이 아니요, 활구를 깨달라야사 공안을 깨달라야사 생사해탈허는 법이고, 또 생사 없는 곳을 증득(證得)헌 것이제. 그건, 그밖에는 선이 아니거든.

 

무얼 선이여? 참선헌다고 앉었으면 선인가?

꼭 간화선(看話禪)이래야 허고, 화두선이래야 허느니라.

 

그것이 없으면은 썩은 괴(고양이)새끼여. 죽은 괴새끼!

산 괴새끼는 예뻐허제 모도. 죽은 괴는 썩어, 뭐 괴 썩으면 천하에 제일 더럽다는 거여. 괴기만 잡아먹고 살기 따문에, 쥐만 먹고 살기 따문에 추접고 더러워. 냄새가 기가 맥히고. 벌거지만 생겨 그거는. 벌거지가 출출출출 흘러버려. 그러니깐 불가불신(不可不愼)이냐. 이걸 어찌 삼가치 아니헐까 보냐.

 

 

어제 아침 법문에 합천 해인사에서, 내가 합천 해인사가 내 본사(本寺)인데, 내 본산에 들어와서, 그 우리 학자는 행각(行脚)이라 하제. 행각사를 마쳤다 그말이여, 거그서.

 

그렇게 내가 그만 홍도여관에 있어서... 한 서너 번째 허는구만, 지끔.

그렇게 여관 뽀이로 있다가 그만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세상에 그 어떻게 올라갈 것이여? 내 지금 생각하면, 지금 내 뭐 암만 별별 그 용기를 내봤던들, 지금 못 올라가겄어.

 

그렇게 산중 종사(宗師)들이, 산중 그 무슨 종사야 없지마는 강사(講師)들이 짜여 있고 석덕(碩德)들이 모도 꽉 찼고, 나 도저히, 그때 만약에 그 여관 뽀이로서—모도 정해 놓은 법사가 차례 설법을 헐 것인데, 내가 쫓아 올라 등단(登壇)에 올라갈 때,

그 젊은... 합천 해인사같이 꺼끄러운, 유명헌 청년이 없는데, 합천 해인사 청년들, 그 강당(講堂)에 그 대교(大敎) 학인(學人)들, 중강(中講)들, 그거 또 관음전 사판중들, 선방에 또 새파란 젊은 선객(禪客)들 이렇게 찼는디, 거다가 각처에서 모아 든 대중이 그 몇만 명이라 햐. 몇만 명!

 

법당에 들어앉는 대중도 아마 몇천 명은 들어앉을 수 있느디, 뜰까장 꽉 차 가지고 구광루 앞에까장 그냥 꼭 콩나물 대가리처럼 차 있는데, 글쎄 거그를 비지고 들어가서 수건 그걸 머리다 쓰고는 법상을 쫓아 올라갈라고 미리 대비허고 있는데, 쫓아 올라갈 수가 있어? 그건 못하제!

그거 법상에 만약 올라갈 때, 그 청년들이 그냥 둘 꺼여? 끄집어 내루제. '저런 미친 놈이 어디서 이렇게 상비되아 있는 저 설법상에 법사가 다 있는 디도 불구허고 제가 제멋대로 올라가? 아, 저런 놈의 자식, 저걸 그냥 두어?' 끄집어내리고는, 끄집어내려다가 매가지 한번 틀어서 어디다 내던질 거란 말이여. 뭐 틀림없제.

 

헌디 척! 올라간다 그말이여. 못 끄집어내루아. 도저히 못혀! 끄집어내룰 꺼여?

합천 해인사에서는 내가 그와 같이 한번 기행을 허고 오장치를 걸머지고 북회우동류를 척 해가지고는 사방 법전법담(法戰法談)하고 선지식 다 친견해서 내가 다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마치고, 거기를 척 들어와서 여관 뽀이질 허고 있는 것을 다 알고, 벌써 허능산이여, 뭐 임한경이여, 뭐 고경당이여, 뭐 장보해여, 다 알고.

 

이동수가 그 숭악헌 사람이여. 이동수가—자꾸 나오는구만, 해인사 건이—중노릇을 척 헐때, 그때는 보통학교 4학년 졸업허면 지방림이 있어, 지방학림이 있어.

지방학림이 그것도 3년인가 얼매 졸업허면은 그때 중의 자격으로서 상당했다는 것이여. 우리 어릴 때니까 뭐. 그때 뭐 학교가 있나? 뭔 사립 모도 그럭저럭 모도 해서...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벽상(壁上)의 괘종(掛鍾)을 들어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오니,

인생의 백년 가기 주마(走馬)같도다

 

요러고, 요러고 인자 그 창가(唱歌)헐 때여. 그러 돌아댕기고 창가해 그려 가지고 4학년 졸업허고는 인자 지방학림(地方學林)허고 이럴 때인데.

 

거 동수가, 동수라는 사람이 지방학림 학생이로되, 우리의 나이 두 살 더 먹었으니깐 똑똑하제! 그저 뭐 보통 똑똑헌 사람이 아니제. 그런 사람이 그만 중옷 벗어 버리고 여관, 합천 해인사 여관 주인 딱 되아 가지고 있으면서 여관 사람허고는 말도 않는 사람이여, 고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그 뭐, 아만이 있어 그런 것보담도 참, 설찬히 가시가 센 사람인데, 나를 보고는 그만 즈그 할아버지보담 더 반갑게 알고는, 친고간이지마는 아, 이래 가지고 나를 우대하고. 그래 있어 내가 있는 것이지, 무슨 놈의 내가 홍도여관에 참말로 뽀이여? 뽀이가 다 무엇이여.

 

그래 가지고는 척 들어와서 있는데, '정영신이다!' 이렇게 믿어 주고 '정영신이는 참말로! 견성헌 분이다' 내가 참 견성을 했던지, 거짓 견성을 했던지 그때에 그러헌 모도 알아주는 그 신용을 속으로는 받았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있을 때인디, 내가 머리는 기루어서 여까장 내려왔지만 수건 쓰고 있었지마는, 그놈 때려 벗고 그냥 수건 들고 법상에 척 올라가는디, 누가 나를 끄집어내룰 꺼여, 못혀.

 

"그 되았다! 잘되았다!"고. "정영신이 법상에 올라갔다. 가 보자!"

웨에~ 그 해인사 앞에 건달패가 아니라 그 모두 오입패가 있거든. 돌아댕기면서 술 잘 먹은. 그 패가 쏵 올라가서 막 듣는다 그말이여. 그럴 때인디 그렇게 용기 있게 한번 퍼대 놓으니 뭐 끔쩍 딸싹 못 했제.

 

그깟 강사들! 여그 강사 또 있지마는 뭐, 뭐 별 수 있나?

강사가 무슨 뭐,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이제. 제 돈 한푼 없이 타보(他寶)가지고, 남의 보배 가지고 종일 셌제, 뭐 소용 있어? 내놓을 게 뭐여?

 

그런 불향권중구(不向卷中求)제. 책 가운데에서 구허지 마라. 권(卷) 속에서 모도 붙어 나온 것, 고런 것 가지고 뭐 소용있어?(처음~18분11초)

 

 

 

(2/4)----------------

 

그거 법문이 막, 그 한바탕 했으면은 기가 맥히게 된 법문인데, 그 처음 고 총상(總相)만 고거 허제, 그 다음 잊어 버려서 못혀.

누가 듣고 가슴이 시원... '세상에 내가 나를 몰랐다니 참, 내가 나를 깨달라야겄구나'허는 생각이 다 들게 되었제.

 

그렇게 법문을 마치고는 내려오니까, 그 뭐 합천 해인사 그 청년 대중이 나를 뒤어쌌구만. 홍도여관에 뽀이는 간곳없고, 내가 일등 아주 큰스님 노릇했구만.

 

그때에 허능산 강사, 유명헌 강사인디, 허능산 강사가 지끔 시방 정능 대명사란 데가 있어. 정능 아파트 뒤로 올라가면 대명사, 요맨헌 절 하나 지어 가지고 있는데, 지금 나이 경인생이니까, 올해 경술년(庚戌年)이니까 81살이요. 81살에 시방 거그 있는디, 나 밖에는 몰라! 지금도.

그래 가지고는, 여그 정공 같은 사람 뭐 허능산 모르는가? 그래 가지고는 여그 여 황산곡 그 처사 엊저녁에 와서 그 내, 책 수집해 가지고 지금 뭐 동아일보 뭔 기사에다 자꾸—그깐 짓 말아 버리라고 내가 그랬지만, 자꾸 적어서 낼라고 와. 그 사람도 거그서 말을 듣고 나한테 시방 온 사람이여.

 

그때에 모도 그 오장치 벗고 내려와서 뽀이질 헌다고 허면서 그때에, 그 산중 그만 합천 해인사 법당, 법보종찰(法寶宗刹)인디—법보종찰 아니여?

일대 강사, 제일 강사가 그때 누구냐 하면은 변설호, 시방 변설호 서울에 살았어. 자꾸 나와 그런게.

 

대교 학인이 수십 명이고, 중강 모도 그 또 사집 학인이 모도 있고, 사교 학인이 있고, 사집 학인이 있고 꽉 찼는데, 문강(聞講)헐 때 그게 육조단경(금강경) 오가해(五家解)여.

육조단경(금강경) 오가해에... 육조단경 오가해에... 그 무슨 스님이지? 아따, 이런 놈의 참...

 

야부(冶父) 스님 야부송. 야부 스님 야부송인데, 금강경을 이렇게 인자 금강경 패가 있거든.

원각경 · 능엄경 · 금강경 · 기신론, 그 사교(四敎)니까, 그 사교 그 패가 있는디, 그 사교에 야부송에 가서 요런 것이 나와 있어.

 

 

노로조계전제수(曹溪傳諸受)요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을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오늘 법문이 해인사 기행에 마지막인데 법문이 그대로 돼야 헐 텐디, 어떻게 될라는고.

법문은 진짜 법문이여. 법문은 이렇게 들어야사 옳은 법문 옳게 듣제.

 

관음재일 법문, 거 안 되아. 우리 이 본분학자(本分學者)들이 바로 도 닦는 인자 이 법석에서 설법이 그대로 되는 것이제. 잘 들어 봐야 혀.

 

그 오가해, 야부 스님 송(頌) 법문인데. 금방 뭐라고 해 놨노? (야부스님 송)

뭐라고 했노? 옳게 말허제. 더 모르게 말혀.

야부 스님 송인데 첫 송을 내가 뭐라고 했노? 그걸 잊어 버렸네. 허고 금방 잊어버려.

 

노로()가 조계전제수(曹溪傳諸受)다. 노로가, 늙은 노행자(盧行者)가 조계산에서 그 육조(오조) 스님한테 안 받았는가? 전제수를 했다 그말이여. 전제해서 받았다 그말이여.

노행자가 법 받아 가지고 안 나갔는가? 저어 육조 스님이 오조 스님한테 조계에서 그랬제. 노로가 조계에서 전제수를 했는데, 법을 받았다 했는데.

 

받았는디, 그 또 이르기를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이니라, 또 이르기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일렀느니라.

육조 스님, 방아 찧다 본래무일물이라 안 했는가? 육조 스님이 본래무일물이라고 일렀는디, 또 조계산(曹溪山)에서 전제수(傳諸受)를 했느니라. 도(道)를 전허고 받았느니라 그말이여.

 

그 다 그걸 바로 봐! 바로 듣고. 바로 알란 말이여. 바로 들어 보란 말이여.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 고금다소천하 사람을,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다. 눈썹 털[眉毛]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했느니라.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할을 행했느니라. 고거 무슨 소리일까?

 

왜 내가 자꾸 묻는가?

 

언하대오(言下大悟)라! 말 아래에 깨닫는 법이다.

언하대오래야 되는 거여. 혼자 허다가 공안에서 끄덕끄덕 보담도 언하대오래야 혀! 언하대오니라.

 

아, 그런다는구만 인자. 내가 내 몇 번 들었구만 나.

나, 사람은 못 대겄구만. 다 봐! 책 발간해서 판 사람들 다 얘기허드구만. 수십 명이 그 책을 모도 어떻게 칠백, 칠천 부를 맨들었는디 다 나가고, 허면서 다 나가 버렸데.

 

그런디 언하대오라는 법문에 모도 이랬다고.

여그, 여 야들, 야들도 언하대오에 뭐 듣고 와서 나한테, 그러고 여 그대로 딱 왔다는구만.

 

좋지, 언하대오! 말 아래에 깨. 책 제목이 좋아야 허는 거여. 글의 제목이!

언하대오니라. 말 아래에 깨달는다. 대오헌다.

 

내가 자꾸자꾸 묻는 것이, 법문허면서 자꾸 묻는 것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내가 목적허고 묻는 것이여. 백지(白地) 물어? 왜 물어? 뭣 땜에 자꾸 물을 것이여?

물으니깐 귀찮여? 답을 안 한께 귀찮냔 말이여? 실력이 있으면 답을 허는 거 아닌가?

아무것도 꽉 맥혀서 넨장! 요리요리 허다 뭐 일러. 그거 참선 학자여?

 

바로 턱! 뵈이는디 뭐헐라고 애껴, 왜 답을 애껴.

척 일러서 탁마상성(琢磨相成)이라니! 깨달라 가지고 탁마하는 것이 천하에 제일인데. 탁마 없으면 못쓴 것이여.

설사 한 공안, 두 공안 봐 가지고도 탁마 없으면 학자를 가르키들 못허고 학자를 눈을 멀려.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라. 고런 것도 한마디 얼른 생각이 들어 가거들란, 거 한번 여그 와서 우리 탁마해 봐!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맹이, 할을 행했다는 건 무엇일까? 여까장 두고.

 

어제 아침에, "그 마음을 터억... 마음은..."

내가 묻기를, 박한영 스님한테 묻기를 "화엄경에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만약 사람이 삼세 일체불을 알고저 헐진댄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니라.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뻑뻑이 법계성을 보아라. 일체가 유심조니라. 일체가 마음으로 지었느니라' 이랬으니, 그 마음은 뭐가 지었습니까?

일체는 다 마음으로 지었다 했으니, 일체는 다 마음으로 지었거니와 마음은 뭐가 지었습니까? 그 한용운[박한영] 큰스님이 참, 오셨다 해서 내가 이걸 꼭 그 큰스님께 물을라고 들어왔으니 좀 일러주십소사"

 

"아! 무엇 허는 사람인고?"

"나, 야로, 요밑에 야로에 있는데, 여그 이 홍도여관에 뽀이로 있습니다"

 

"그러냐!"고, 깜짝 놀래면서.... 얼른 대답을 헐 수가 있는가?

강사의 지견이, 천하에 구두선(口頭禪)이라는 것은 못 붙일 것이 없고, 못 이를 것이 없고, 뭐 그 입을 누가 막아내. 강사 입을!

거기에 무슨 말을 못 붙이고, 뭔 답을 못해서 말이 없느냐 그말이여.

 

말이 없고는 대찬(大讚)을 했다 그말이여! 나를, 보통 찬이 아니여!

대답 못헌 곳을 향해서 나를 올려 세웠는지 어쨌는지는 몰라 그러허되, 대찬을 했거든! 귀빈실에 앉어서.

 

박한영, 저 최남선 씨는, 최남선 씨는 그렇게 문장이지마는 세상 문장이제. 역사 문장이로제, 선법(禪法)을 알 것이여? 불교 또 문안을 알 수 있나?

왜 그래도 그 문장이기 따문에 불경, 화엄경은 안 봐서? 다 봤지마는 그 오히려 침묵을 지켜 있고, 그 한용운[박한영] 스님은 척, "그 문(問), 문이 참, 기가 맥힌 문이라"고.

"일체는 다 마음이 지었거니와 마음은 뭐가 지었느냐? 참 그, 그 참말로 내 참 선객(禪客) 한 분을 봤다!"고 칭찬해.

 

그 이튿날까장, 그 문답 끝난 뒤에 그 이튿날 홍도여관 주인 이동수 보고 물었다 그말이여.

"그 여기에 뽀이라고 있는 이가 그 어떤 사람이냐?"고.

 

그래 또 이동수의 솔직헌 구변으로써 답을 허되, 간단히 답허면서 명랑허게 답했거든.

"한국의 정영신인디, 곡곡(曲曲) 선지식 다 돌아서 제일귀 탁마 다 하고, 지금 저 북회로 우동류해서 한 바퀴 돌아서 여까장 시방 여가 기행 도중에 우리집에 와 있는 것입니다. 행각 도중에 내가 좀 더 있자고 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러면 그렇지!"

 

그러고는 사무실 그 무슨 청년 대중, 사무소 대중, 박한영 스님이 거그 들어가니까 나중에... 그 나, 4월 8일 지낸 뒤에 오셔서, 4월 8일 지낸 뒤엔께 그 인자 모도 사중(寺中)은 나서서 그 모도 송별(送別) 대중이 다 모여서 그 송별을 허고 이럴 때인디, 감서 서서 사람 모아 놓고 서서 내 찬을 했다 그말이여.

 

'거, 참! 그 박한영 스님이 합천 해인사 들어왔다가 정영신한테 아주 한 방맹이 맞았다' 그것도 모도 있었지마는, 대찬했다는 것 다 알고 있제. 춘성 스님도 알고 다 알제. 그렇게 했느니란 말이여.

 

사흘 아침을 시방 연거퍼 인자 허는 거여, 이게 잉!

 

그게 거 물어도 박한영이 대답 못헌 것이 대답 못헌 것이 아니라, 참말로 강사라도 체면을 아는 분이여.

한마디 한마디 쎄 내룰 데가 있고, 쎄 못 내룰 데가 있고, 쎄 불일 데가 있고, 쎄를 애낄 데가 있어.

그런 데 가서, '일체는 유심조인디, 마음은 뭐가 지었느냐?' 거! 못 일러. 도무지 댑이 없어.(18분12초~34분29초)

 

 

 

(3/4)----------------

 

마음, 마음, 무슨 마음이 무슨 한 모냥이 있으며, 뭔 한 빛깔이 있으며, 거가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그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일러라!"허니까,

어제 아침에 여그 일호, 일호당이 척! 나와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곳에서 무엇을 이르랍니까?" 그랬던가? 그랬나? 응? 그랬제?

 

"왜 나한테다가 떠넹기느냐? 늙은 나한테다 떠넹기는가?" 내가 어째 이러고 내려왔네. 그랬지? 아, 옳게 들었나 어쨌나? 그랬지?

 

그것 참, 마음이 대체 그 모냥다리도 없고 빛깔도 없는데, 육조 스님도 '한 물건도 없다'했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했고.

아, 이것 뭐 가서 무슨 생사(生死)도 없는디, 또 무슨 마음 모냥이 거가 뭣이 있으며, 명상(名相)이 어디 붙어 있으며, 그 대체 어떻게 이를 것인가?

 

"대체,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이오?" 아, 그 설찬히 아프거든. 그 방맹이가 무서운 방맹이거든.

허, 그! 그 "아이고 아야!" 내가 허면은 그 어쩔란고?

 

내가 어제 아침에 헐 놈을—그때 언제 늙은 사람이 언제 그 방맹이를 맞고 통증... 을찌거니 아파서 정신이 있어야 이르제. 못 일렀지마는.

아, 이른 게 아니라 못 물었지마는, "아이고, 나 죽는다. 아야!"헐 때는 거 뭐라고 한번 해야 할까?

 

오늘 아침에 다시 물으면 또 어째!

시간이 흘렀으니깐 안 된단 말인가?

 

내가 또 얼른 답허는 것이 아니여. 한바탕 거그서 실수를 허면 큰일날 것이여. 옳게 쎄를 내루지 못허면은 나 죽는 곳이여. 하! 이거 될 것인가?

 

"아야, 아이고 죽겄다! 아야!"할 때는 어째야 할까?

음! 그런 것은 못헌다.

 

대체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역불식(亦不識)이요 또한 알들 못했고. 불불(佛佛)도 불상견(不相見)이여, 부처 부처가, 불불이 서로 보지 못하고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여, 우리 부처님, 석가도 오히려 몰랐고.

'마음은 뭐가 지었냐?' 어떻게 뭐라고 이를 꺼냔 말이여? 뭐라고 답허며, 대체.

 

그것 한용운(박한영) 스님이 답 못헌 것이 아니라, 체면을 아는 이라!

나만 찬성(贊成)을 그만 기맥히게 허고는 허! 그대로 갔겄당.

 

그런 것을, 그런 공안을, 한번 옳게 듣고 거그서 마음 모냥을... 마음이 어디 없나 그러면 또?

그러면, 일물(一物)도 부중(不中)이여. 마음 모냥도 없고 빛깔도 없고, 허! 거 없으면은 그대로 마음을 못 이르고, 아무것도 없는 걸로 그대로 거그다가 떨어뜨려 버리고 말아?

 

마음 자체가 모냥도 없고 빛깔도 없고 명상이 다 없으니, 거그 나가 보니 어디 생사가 있나? 생사도 없다! 불불도 서로 보지 못허니 불견도 거기에 가선 붙들 못한다.

천성(千聖)이 역불식(亦不識)헌디, 천성이 역불식, 불식, 이로(理路)까장 거가서 어디 가서 붙어 있을 것이냐? 차라리 말을 마는 것이 옳겠다. 무슨 말이든지 말만 해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이 곧 그만 본분누(本分累)가 되고, 거기에서 그만 뭐... 성누가, 성해(聖解)가 되니까 말 말아 버리자 그녀러 것!

 

자! 이래 놓고 보자. 거그 쳐백혀서, 거그서 썩어져서 뭣 헐 것이냐?

고것이 선(禪)인가? 가당(可堂)찮다!

 

거그 나가서, 거 가서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느니라'했으니, 대저학자(大抵學者)는 수참활구(須參活句)요. 활구를 참상(參詳)해라. 알 수 없는 것이 활구다.

 

이치 길도 없다. 말로도 헐 수 없는, 말 길도 없다. 듣고 알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언제 거, 요리조리 이해해서 생각해서 송장이 주뎅이 벌리지 말어라.

그것 없어.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것이 조사(祖師) 공안이다. 조사 공안을 급히 참구해라 이거여.

 

그 의리선(義理禪), 고 말 길 있는 데로, 이치 길도 다헌 곳에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듣고 알고 보고 생각허고 헐 것이 모도 있는 그런 데 가서 도깨비 선을 말아라.

마음 찾다가 '대체 뭐가 마음 지었느냐?' 암 것도 없으니, 답도 없으니, 거가 떨어지지 말어라. 고런 디 가서.

 

음! '찾다가 죽느니라' 글안했어? 그 내가, 내가 헌 말이여?

'멱즉지군불가견(覓卽知君不可見), 찾은 즉은 알거라, 그대가 보지 못허느니라' 그 죽는다는 거 아닌가. 영가(永嘉) 스님 말씀에 '멱즉지군불가견이니라. 찾은 즉은 알거라. 그대가 보지 못헐 것이니라' 어쨌는고?

 

참! 천상(天上)에도 다 없고, 사주세계(四洲世界)에도 다 없고, 이러헌 생사해탈법이, 이러헌 생사 없는 법이 우리 남섬부주에 있으니 얼마나 중허냐! 참, 인생 문제를 해결허는 법이 여기 있구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업보, 생로병사(生老病死) 악마가 그 뭐냐?

나와서 늙어 병들어 뒈지고 또 나와서 병들어 뒈지고, 또 나가서 지옥 갔다오고, 또 가서 아귀 되아 오고, 그놈의 맨 고통뿐이로구나.

그 내 본래면목(本來面目), 그놈을 바로 깨달라 증(證)허지 못하면은 고(苦)뿐이니, 맨 괴로운 고(苦)뿐이니, 이걸 어떻게 헐 꺼여? 깨달지 못허면은 전부 고통 장엄 그만 괴로운 것!

 

눈 뜨고 있으니까 고(苦) 없는가, 우리가?

눈 한번 척 감고 돌아선 날이 자, 이 몸 내버리고 가는 곳인데, 북망산(北邙山) 길인데, 그놈의 길 어디로 가느냐? 갈 길은 대관절. 아지 못허니 죽겄다. 답답해 죽겄다.

 

자! 내가 살인강도가 되아 가지고는 저놈을 죽였다마는, 죄수가 되아 가지고 내가 잽혀서 감옥문으로 들어가는구나. 고까짓 것보담 천 배다!

여그 신문에 났데. 그 정인숙이 죽인 오빠가 무기 징역(無期懲役)받아 가지고 무기 징역에다 턱 넣은게, '아이고!' 그러드래. 인자 그때 가서 깨달렀던가 보지. 뭐 한숨을 드리 쉬었대.

 

'고까짓 놈의 거, 그 뭐 무기(無期)라도 그까짓 이 몸뚱이 죽으면 나오겄지. 뭐, 뭐 별거 있나?'

하지마는, 우리 이 몸뚱이, 깨달지 못허고 나를 찾지 못하고 내딛는 놈의 그놈의 길! 다 내버리고 돌아가는 놈의 길에 가서 그 참, 어느 곳으로 향하느냐?

 

아, 그놈의 임방울이가 참말로 법문 옳게 했다니까. 참내!

"앞산도 첩첩(疊疊)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우리 마누라는 어느 곳으로 향하느냐?" 아, 이것 참 잘했데! 그 뭐....

 

참, 좋다! 어쩌다 우리는 이러헌 대도문(大道門)으로 들어와서 참말로 옳게 닦는 활구학자가 되았느냐? 참말로 다행하니라!

정전강(鄭田岡)이 옳은 스승이 되았다면은 그러헌 스승을 만났으니 얼마나 장헌가? 얼마나 복 많은 학자인가.

 

정전강이 만약에 옳은 스승이 아닐 것 같으면 그것 뭣 헐터냐?

희사심(喜捨心)이 있어야 허느니라. 바로 걷어차 버려라! 왜 있어? 왜 머물러?

 

옳은 스승이거들랑 바로 믿어라.

 

이 법! 천하에 없는 생사해탈 정법을 우리가 다루어 잡드리해 닦아 나가는 대학자 아닌가.

왜 그렇게 유명무신자(有名無信者)가 될 것이냐. 이름만 턱 하나 떡! 둘러쓰고서는 속으로는 썩은 배같이, 신(信)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그럭저럭 그럭저럭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 일생을—내년 임마, 우내년 임마, 이 30년 임마, 일생을 임마, 이럭저럭 허다가 썩어지냐? 왜 그렇게 허망 썩어져.

 

그 뭐여. 아무것도 아닌 도괴(倒壞) 일생을, 일생을 이렇게 헛되이 무너뜨려 버리고, 허수신시(虛受信施)만 하고, 헛되이 시주의 은혜만 받고.

좋은 두상(頭上)에는 늘 비춰 주는 이 광음(光陰)! 이 우리를 이렇게 비춰 주는, 오늘 있고 내일 있고 비춰 주는 그 광음 시은을! 그 얼마나 시은인가. 하나님에 일월의 시은이 어떠허며, 이놈을 짊어지고는, 이거 무슨 놈의 능력이 있어야지.

 

생사! 숭악헌 악업만 퍼지어 짊어지고는, 뭐 다 알제 뭐, 알아 뭐.

턱! 뒈질때 수망각란(手忙脚亂) 혀. 그만, 숨 뚝 떨어지자 그만 그 숭악헌 악취(惡趣)에 꺼꾸러져서 그놈의 죄고(罪苦)를 받을 때 누가 대신허며, 그때 가 누가 문안이나 할 것인가?

 

같이 재세시(在世時)에, 세상에 살 때 내오간(內外間)이 되아 살면서 같이 지었건마는, "나는 그런 일 없다"고 자꾸 남편한테 떠 붙여 주고, 남편 그놈은 "아, 저년이 그렸다"고 떠 붙여 주고. 거 가서 사정이 있어?

 

죽을 지경이다. 인생 문제, 어떻게 헐 것이냐?(34분30초~47분27초)

 

 

 

(4/4)----------------

 

허어! 내가 어릴 때—그 저번에 초기 문에, 처음 그 헐 때 내가 했지마는, 일곱 살 먹드락까장은 그 촌간(村間)에서라도, 촌에서라도 그래도 굶지 않게 살면서 그저 우리 어머니가 늦게 나를 낳았는데, 늦은 늦게 낳았어. 일찌기 낳들 못허고, 아들 못 낳는다고 허다가 낳았단가, 어쩠단가?

서른 살이 다 되아도 못 낳으니까 옛날에, 아조 늦게 늦게 낳아가지고 나를 길르는데, 참! 귀허게 키웠데야. 그때 클 때 내가 알겄어?

 

일곱 살 먹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디, 그 동산에 노는 거 뭐 이런 거, 우리 어머니 얼굴도 환히 알아 내가 지금. 요래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 얼굴이 질드구만. 요리 질고, 좀 미련허게 생긴 것 같고. 잘 생기든 못했어, 내가 보기에, 어릴 때. 시방 생각컨댄.

그래도 기운이 세었어. 기운이 세서... 아조 뭐 그런 것도 알겄고 헌데.

 

나를 어떻게 귀엽게 키웠던지 일곱 살 먹어서 자기 자식밖에 없는가, 하나 났다고 그렇게 야단치고, 자기 자석을 이쁘다고 해 싸면 누가 좋아할 것인가?

넘, 좋아한지 나빠한지도 모르고, 그냥 한 서너 살 먹은 거 이러고 댕김서 주착없이 그렇게 예뻐했든 갑드구만. 내 생각컨댄 그려.

 

'에따, 젠장 뭐, 늦게 났다고 자기 자식밖에 없는가 보다' 뭐 이런 말 헐 거 아니여, 거? 비웃고 모도.

그 못난 사람이제 말허자면. 근게 촌사람으로 그만큼 못난든 것 같애, 내 지금 생각허건댄. 어머니 숭은 본 건 아니로되.

 

그렇게 길르다가 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서모가 들어와 가지고 서모 밑에 있으면서 어째 그렇게 천둥이 행세를, 숭악한 천둥이가 되아 가지고 왜 그랬든고? 나 알 수가 없어.

그렇게 나를 음식도 안 주도 않고, 옷도 그래도 촌옷, 옛날에 촌옷, 그 닷새 베인가 뭐 엿새 베인가 고런 거. 그 뭐 등등 젓어서 나 가지고 왜, 틀어서 모두 해 준 거. 그런데다 인자 설 돌아오면 뽈고스롬헌 물들여서 어쩌고 저쩌고... 그놈 입고 좋다고 말이여.

 

아, 그래 쌓고 이래도, 어짠지 그만 속이여. 자꾸 내가 속인게 그게 뵈기 싫어 가지고 말이여, 패대다가 어쩌다가, 그만 쥐어뜯다가 아, 이렇게 커나기를 열네 살까장 커났소.

 

그래가지고 거그 우리 오촌 당숙, 내가 저번에 다 얘기했지만 또 헌다 그말이여.

오촌 당숙한테 가서 있는데,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시집가 가지고 시집 살다가 남편이 죽어서 오기도 허고, 생갈림도 허고 갔다왔다 한 놈의 여자가 하나가 오촌 당숙(五寸堂叔)이라고 인자 들어왔는데, 딸은 푸잽이고 아들은 뭉치여. 고 둘을 데리고 온 것이 있어서 고것들이 있고.

 

고 또 오촌 당숙모라는 고것은—내 시방도 고것이라고 허제, 당숙모라고 안해야. 하도 얼굴은 말대가리 같이 생겼어. 모가지는 기다러니 생겨 가지고 어떻게 허리가 질던지 꾸꾸럭 해가지고 팔대장상 같이 된 것인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 입을 열면 저녁에 눈 깜아야 입이 붙어. 뭔 놈의 얘기를 그렇게! 또 묻고 또 허고 또 남 보고 야단이여, 종일 그 아조 동네에서도 그놈의 소리는 듣기 싫어서 '아이고 또 저 도깨비 울어 큰일났다'고. 이러고 있는 덴데. 거가 좀 붙여 있는데.

 

아, 밑에 방, 헛방을 우리 자라고 주는데—시방도 원명, 저 내 동생 안 오나? 우리 동생도 그 말허면 "그랬지요" 그러제. 시방도 그래.

다섯 살 먹은 게 피똥 싼 걸 갖다 거기다 같이 누어. 벼룩이가! 헛간 벼룩이가 워르르르, 내 틀린 말 하나도 안혀. 개미처럼 올라와. 내 그렇게 얼마나 이 빌어먹을 놈의 벼룩이! 회사가 되아가지고 모아서 손자 고손자를 놔 놨든지 굉장혀. 쥐 벼룩은 동네 쥐 벼룩은 다 모았네, 다 모아.

 

그걸 얘기허면 내 동생 그 참, 그때 죽어도... 알아! 다섯 살 먹은 게 알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울어!" 허면 나는 자꾸 쓸어 줌서 데리고 자. 이런 놈의 꼬라지를 당해.

 

그렇게 내가 그 숭악헌 데서, 조금만 내 살 여유가 있으면은 거그서 내가 그대로 그만 촌사람이 되아 버리고, 절집에 무슨 중, 나 모르고 거그서 그대로 나는 인자 아마 발써 죽었을런지 모르고. 그 촌, 대판이란 놈의 골짝에.

제일, 한국에도 제일 가려서 높은 놈의 산이요, 그러헌 데서 나 가지고는 절이 뭣이며, 내가 중이 무엇이며, 불법이 무엇이며, 거그서 그럭저럭 조끔만 내 살 길이 있고, 내 편안헌, 조끔만 편한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가 있다면, 내가 거그서 내가 어떻게 이 정법을 만났겠소?

 

이것을 생각하니! 일곱 살 먹어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것이 그렇게 다행헐 수가 없어, 내게는! 부모가 일찍 죽은 걸 좋다고 헌 것은 입으로써 헐 수 없는 말이지마는, 사실이여!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따문에 서모 밑에 그만헌 고생을 허다가 그놈의 오촌한테 가 붙어 있는디, 죽어도 살 수가, 죽어도 뭐 하루를 지낼 도리가 없어!

 

오직해야사 그때는 귀신이면 다 아는 줄 알고, 마음대로 또 헌 줄 알고, 우리 어머니가 날 데려가라고, 잡아가라고, 묏등에 가 우는 것은 웬 일이냐.

그 죽은 귀신이 뭐 알 것이요 뭣 헐 것이요, 수업감보(隨業感報)해 버렸는데. 무덤이 무슨 소용이 있어서.

 

무덤 앞에 가서 들입대 울고 또 울고 그래도 안 잡아가. 죽도 않고.

에이! 이거 안되니 용소(龍沼) 우에 바우 언덕에 가서 솔냉기가 나가지고, 바우 우게가 흙 갈려 가지고 난 놈의 솔냉기가 뭔, 뭔 백지장 같은 데 가서 솔이 모도 붙었는디, 이렇게 굽어 가지고 쭉 굽어 가지고는 이렇게 올라갔는데 고 밑에는 깊은, 명주꾸리가 다 들어간다는 놈의 용소여.

그놈의 용소는 세상에, 내가 산이 높고 산중에 그런 산 밑에 질에다가 집 지은 놈의 딘께, 그렇게 높은 산꼴짝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저어 똑 요새(要塞) 감옥처럼 저 「해왕성(海王星)」에 볼 것 같으면은 그 요새 감옥이라는 감옥이 있지 않았어? 그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놈의 디제.

 

이런 놈의 용소에 가서, 요렇게 굽어 가지고 가서 밑에는 물인디, 요까장 나가 가지고 나가면 물이가... 설찬히 큰 냉긴게 빠지든 않지마는 근들근들, 거 가서 서 가지고 빠져 죽을라고 말이여, 손을 놨다가도 못 죽어. 거 그렇게 죽는 것이 쉽지 못허드구만.

 

또 그러고 내가 죽지 않고 나와서 도를, 내가 도를 닦을라고 그런 정법 인연이 있어서 그랬던지, 참! 아주 몇 번을 갔었어, 몇 번을.

살 길이 없어. 아, 이런 놈의 꼴이 있는가? 참말로 거!

 

거, 그때 그 나이 어리니, 그때 어린 것이 열여섯 살 먹은 것이 어디로 갈 수도, 떠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그러다가 오직히야 할 수 없어 동생 고것을 앞세우고 나섰소 그려. 나 혼자도 안되고 다섯살 먹은 걸. 서모는 가버렸은게, 어디로 가버렸은게 어디 간 줄 아나?

 

그 이모 집을 찾아가, 이모. 서모 이모! 밥을 안 주고 쫓아내아.

말 처음에 했으니 인자 이 끝말에 가서 이놈 조져야 겄어. '왜 또 저번에 헌 걸 또 헌고?' 그럴거지.

 

그 가짜 이모한테를 찾아가니 밥도 안 주고 쫓아낸디 그걸 앞세우고 또 나왔네.

글쎄, 굴비 한 마리를 도둑질혀 가지고 와서 산에가 뜯어 먹고 꾸어 먹고는 짜와서 그냥 그놈을 가지고 먹고는 어떻게 둘이 다 설사를 허고, 물 자꾸 먹고는 설사를 했구만.

 

그래 또 우리 내 진짜 고모집을, 그 고모가 있는데 찾아간게, 우리 고모는 얼굴이 박색(薄色)이라. 숭악허게 생기고 얼굴값을 혀. "저런 못된 것이 여기를 찾아왔다"고 험서 들어서도 못허게 헌다 그말이여.

그런게 아들도 없어. 거지반 늙었는데. 마음이 나쁜게 근가 아들도 없어.

 

"천하, 저렇게 생겨 가지고 고모라고, 개똥뎅이 같다. 빌어먹을! 가자!"

고모한테 욕을 한번 해 부쳐 버리고는 도로 데리고 나와서 우리 서모 시집간 데 찾아 주었네. "당신 낳은 것, 알아서 해버리라"고는 주고는 내가 나섰소 그랴.

 

그때에 그러헌 내의 그 빈한(貧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니, 가난허고 찹고 살 길이 없는 디서 내 도(道) 길을 발견했느니라 그말이여. 그때에 발견을 했어.

그러면 내가 그때에 그걸 갖다 내던져 버리고는 바로 내가 도문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것이 인연이 되았다 그말이여.

 

그 숭악한 산, 그 나오도 못 헐 곳에서 내, 겨우 안신(安身)헐 디만 있었으면은 나오덜 못했을 텐데, 그때에 나온 그것이 인자 도(道)에 인연이 되고 도문으로 찾아오는 그 인연이드라 그말이여.

만약 그때에 내가 그렇게 천둥이가 안 되았드라면 어떻게 내가 도문으로 들어왔겄소?

 

지끔 생각컨댄, 그때에 내가 나와서 도문으로 차참차참 허다가, 그때도 그때 나가 가지고 인자 고생이 무수(無數)했은께, 나, 다 했은게 말헐 것 없제.

그 뭐, 저 왜놈한테 있다가 지갑 도둑질헌 것도 있고, 풀무 분 것도 있고, 유부 장사 나간 것도 있은께 그건... 고거 있지마는, 고것도 다 그 인자 그 인연으로써 그렇게 되아 가지고 나왔다 그말이여.

 

생각컨댄 그러헌 그때에 그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내게는 참으로 무척 만나기 어려운 도문으로 나오는 인연이여.

 

허니,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인디, 호걸스럽고 귀여우면 도 닦기 어려운디, 극히 또 호걸스러우면, 훌륭허게 호걸스러우면은—우리 부처님, 부처님같이 정반왕위를 받아 가지고 호걸스러운, 그러헌 부귀 호걸 소굴 속에도 딱! 떼 번지고 나와서 출가성도(出家成道)를 했으니, 그런 호귀헌 가운데에서도 도를 이루어서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가 됐지.

 

허지마는 그 지경은, 우리 부처님은 시현(示現), 시현이니깐. 다 그 시현으로써 나오셨으니, 응화성(應化聖)으로 나왔으니, 다 깨달라 증해 가지고서는 나왔으니, 그 의호이 그렇게 될 것이언만, 우리 부처님 역시 과거 십행기를 본다면은 과거 십행, 도 닦을 때 나올 때 어쨌소?

내게다 대? 내게다, 나는 그까짓 것 뭐 내가, 부처님은 십생에 어쨌소?

 

일지(一地)에는 노루로 있다가, 노루로도 편안히 있지 못해서 임금이 노루 잡으러 나오니까, '아이고, 즈그를 다 잡아가면 괴기를 썩후실 터이니 하루 한 마리썩 잡숩소사'

"아, 짐승이라도 그런 말을 하니 그 군신지의(君臣之義)가 있는 짐승이로구나. 그러면 그래라!"

한 마리썩 똑 보내 주어서 그래 한 마리썩 안 자셨오? 그러니 그렇게 노루로도 그렇게 닦아 차츰차츰 인자 그다음 사람 되아, 나중에 태자 되아 또 태자 되아.

 

그래도 그 선우니, 악우니 동생한테 눈을 빼이고 창파(滄波)에다 집어넣어 던져버려서, 그 기어 나와서 어쩌다 다행히 대밭으로 나와서 대를 하나 베 가지고는 대를 어떻게 어떻게 용케 그래도 퉁수를 맨들어 달라고 했던지, 만들아 놔가지고 쌍목(雙目), 눈은 잃어 버리고 아, 퉁수로 불어서 그 주욱 역사를 퉁수로 부니까, 차차 발견되아서 이런 일이 다 있었으며.

 

칠지(七地)에 가서는 어쨌어? 도반 부인, 거 무슨 정덕 부인, 뭔 분, 세 분 마누라가 있는데, 그 태에 거가... 도반 부인, 끝에 부인한테 태어나가지고, 그 모도 그 큰 부인, 중간 부인이 갖다가 모두 호랭이에다 주어서 호랑이가 안 먹으니께 암소에다 주어서 암소가 그만 먹어버리고 금송아지를 난 것, 아 모도 그런 것 뭐, 어쨌소? 기가 맥히제.

 

그러면 나만 내가 금생에 와서 그런 서모 밑에 있다가 오촌 밑에서 이런 대고(大苦)를 받은 것 같지마는, 뭐 여그 모이신 이 대중들도 다—알 수 있소? 또 커날 때 어쨌는지, 서모 밑에 커났는지. 또 나보담 더 받았는지.

요까짓 요 몸뚱이 받아 가지고 설사 편안헌 부귀영화로 낙만 받아 왔다헌들 그까짓 것을 계산헐 것이 무어여? 돌아서면은 지옥 · 아귀 · 축생, 삼악도(三惡途)라는 것은 말로 헐 수가 없는디, 우리는 벌써 그만 깨달지 못허고 이 몸 내버리고 가는 날, 거가 바로 가는 길이여. 바로 큰 집이라.

 

과거에 얼마나 그놈의 집에서 참, 한량도 없이 그 받아 나온 버릇이 되아서 하도, 하도! 그만 쌩겨[삶겨] 죽고, 타 죽고, 창자 빼 죽고, 훑어 죽고, 갈아 죽이고, 그놈을 하도 무수히 많이 받아 쌓아서 연습이 되고 훈습(熏習)이 되아서 시방 '그럭저럭 지내다 가면 가제, 뭐!' 이러고 있지마는, 과거는 이렇게 받아 왔다마는, 미래는 치워야 한다 그말이여. 안 되어. 미래도 또 그랬다가는 안 되아. 딱! 정신채려.

 

그런 악도(惡道)도 소용없고, 생사고취(生死苦趣)도 소용없고, 바로 깨달은 공안이다. 공안!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이 도리는, 고러헌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일러라'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이르란 말이요?' 고러헌 소리, '천성(千聖)도 알 수 없다' 그 소리, '불불(佛佛)도 서로 보지 못헌다' 고 소리, 뭐 거 다 말로 다한, 어로(語路) 다한 곳이여. 말 길이여, 그것도!

 

'법로(法路), 불법(佛法) 불견(佛見) 법로가 다 끊어진 자리, 더 끊어진 자리, 나아가서 보면은 참말로 진공(眞空)이로구나. 진공에 나아가서 참 진공인데, 진공에 나아가서 뭐가 있단 말이냐? 아무것도 이를 것도 없는데 거가 무슨 생사가 있겠느냐? 생사 없는 곳이요, 이를 것도 없는 곳이다'

고렇게 나가서 빠져 죽지 말어라. 그 널 속에, 고까짓 놈의 널 속이! 뼉따구도 추리지 못헌 놈의 널 속이여.

 

그런 것, 저런 것 다 때려 치우고 화두를 헐지니라. 조사관(祖師關).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났다 했는고?'

 

어제 나를 보고 화두 법문해 달라 했제? 자, 해 주니 어째.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판치생모?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났다....?'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은 고대로 딱! 있어.

 

"없는 걸 어떻게..." 그렇게 말란 말여! 그러면 틀려 버려!

거다가서 무슨 아무리 없는 또 없는 놈 다 떼고, 여의고 떼고 그거이 기다고 허면 못써.

 

'석녀(石女)가, 돌계집이 아들 낳느니, 돌장승이 아들 낳느니 딸 낳느니, 뭐 그런 놈의 소리에 가서, 거 다 없는 것이니 없는 걸 말헌 것이다' 고따구로 모도 분별지견(分別知見) 내서 거다 붙여가지고 죽지 말란 말이여. 택도 없는 놈의 소리여!

 

우리, 우리 이 대중은 어쨌든지 견성이 문제 아니다. 활구학자 바로 돼!

 

요새 학자가 있는 줄 알어? 요새 참선방에 학자가 있는 줄 아냔 말이여?

맨 이놈들 모도 도깨비 참선허다가 견성했다고 일르고 돌아댕기면서 할(喝)이나 하고. 그게 되아?(47분32초~67분20초) (일대기 16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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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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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5. 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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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5호) 동화사 조실, 대구 서봉암 시절

**전강선사(No.030)—전강선사 일대기 제15호(경술1970년 12월 26일.음) (1971년 1월 22일) (70분)

 

(1/4) 약 19분.

 

(2/4) 약 20분.

 

(3/4) 약 18분.

 

(4/4) 약 13분.

 

(1/4)----------------

심원(深院)에 재홍우(在洪雨)요  장림취죽연(長林翠竹煙)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백운응숙령(白雲凝宿嶺)이요  청학상공루(靑鶴上空樓)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소낙비는 '투우우, 오오' 오는 소리가 집 담 말랑이섬부텀 후원까장 그 소낙비 떨어지는 소리 굉장하다. 소낙비가 떨어지며.
또, 멀리 보면은 취죽연(翠竹煙)이로구나. 대밭에, 저 산기슭 모도 솔나무 끝에, 산골짜구니에 연기가 가물가물 끼여 있구나.

또 흰구름은 돌아가다가 잿머리에서 모도 어려 있다. 모도 어려.
청학(靑鶴)은 저어 구름 위에 공중, 반 공중으로 또 날아올라 가는구나.

그것이 도인(道人)의 가풍(家風)이라.

소낙비 떨어져 빗방울 소리와, 모도 대 끝에 어디 모도 어려져 있는 모도 그 연기, 백운 돌아가다가 구름머리에 올라서 있고, 모도 도인의 도경(道境)을 여까장 말헌 것이여.

그런 글이 어디 있어서 내가 올라와서 잠깐 법상에서 한 귀 읊었어.
별 의미 있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말이여.
도인의 경계가 그렇제, 뭣이 있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해인사에 들어와서, 그 전부 돌아댕기면서 그렇게 지내다가는 마지막, 마지막이 아니라 인자 그 절에를 그렇게 안 들어 댕겼어. 어디 절에 들어 댕긴 디 별로 없어.

그래도 그 통도사라든지 그런 디는 그 전에 안 봤거든.
그래 내려와서 인자 통도사를 들어왔는데, 와서 그렇게 경봉 스님과 서로 문답을 하고는 해인사를 들어와서, 저번에 인자 거까장 얘기했지?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그만 그렇게—누가 '법상에 올라가라, 말라' 뭐 헐 것이 없어.
바로 그만 올라가서 그렇게 허고서, 그러고 나서 8일 지낸 후, 8일 전에 온 게 아니라, 8일 지낸 후 며칠 후에 최남선 씨와 박한영 씨가 와서, 그래 인자 홍도여관에서 귀빈실에서 내가 물었어, 그렇게.

고까장 저번에 했제 아마?
문 좀 더 열어야 되겄다. 아따, 열은 받치고.

그 또 한국에 유명헌, 강사로도 제일간 박한영이고, 최남선이 7대 문사에 제일간 유명헌 이고.
거그를 왔는디, 4월 8일 지낸 후에 왔어.

그래 한번 또 물어봐야 되겠길래, 뭐 뽀이로서 뭐 심바람 다 해주고 그러고 나서 앞에 와서 공경히 앉어서 내가 인자 그렇게 물은게, "어디 있는 사람이냐?"고.
이 야로, 야로라는 디를, 해인사 밑에 야로가 있거든.

"야로에 있소" 어디 있다는 말 뭐... "홍도여관에서 심부름 해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냐"고.

"물을 말씀이 있어서 들어왔습니다"
"물으라"고, "무슨 말이냐?"고.

"화엄경에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으니..." 그 강사니까 인자 그런 경(經)에 있는 도리를 물어야제.

"만약 사람이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을 알고저 헐진댄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뻑뻑이 법계성(法界性)을 봐라.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니라. 일체가 마음으로 지었느니라. 일체가 다 마음이 지었느니라 했으니, 마음은 뭘로 짓습니까? 그만 일체는 다 마음으로 지었거니와 마음은 뭘로 지었습니까?"
거 설찬히 답허기 어려운 거여. 보통 들을 게 아니여.

그래 그 박한영과 최남선 씨 있는 디서 내가 물었거든.
꼼짝 못 해아. 다시 뭐, 뭐라고 갖다가 의리(義理)로 집어대서 거다가 무슨 비유를 댄다든지 뭘 대도 소용도 없제. 그건 비유니, 뭐 없어.
꼼짝 못 해아. 그거 꼼짝 못 헌 곳이여.

일체가 다 마음으로 지었다마는, 마음은 뭘로 지었느냔 말이여?
마음은 뭐가 지었어? 누가 지었어? 어떻게 지었어?

그 우리 우리 마음, 누가 지으며 어떻게 지었으며 그 원 당최, 부처도 다 마음이 지었다.
법계성(法界性)도 마음이 지었제,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법계성을 봐라. 법계성품을 봐라.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니라. 다 마음이 지었다.

법계성이고 부처고, 삼세제불 삼세조사고 뭐, 역대 뭐, 일체 무슨 뭐, 불법도리, 세상도리 뭐 어디 마음이 다 지었제.

봐!
일념이, 한 생각이 나와 가지고 하날이니 땅이니, 우주 만상(萬象)이니 삼라(森羅) 전체가 그 다 마음 일어나 가지고, 그 마음 한번 일어난 바람에 거 모도 색상(色相)이 거 모도 뭐 붙어 있고, 모도 이름이 붙어 있고.
뭐 내 마음 하나 안 일어나면 뭐가 있어? 아무것도.

마음은 뭐가 지었냐 말이여, 도대체?
그놈 한마디 물으니 원! 강사가 그 뭐 입이 굉장허지마는 못허네.

거다가서 무슨 뭐 본래법계(本來法界)니, 원융법계(圓融法界)니, 무애법계(無碍法界)니, 뭐 최초법계(最初法界)니 뭐 그걸 들어 붙여? 그런 것 가지고 될 건가? 발쎄 묻는 품이 그건 아닌디.
거따 가서 무슨 뭐 격외(格外)를 붙여 봤던들 뭣 할 거이냔 말이여?

할(喝) 한번 떡 해버리면 뭣 혀? 할, 방(棒)을 내가 그걸 뭐, 뭐 그런 거 가지고 묻는 거여?
할이니, 방이니 헐 거 따로 있제, 그런 디 가서 할, 방 했자 소용없어.

한번 터컥허니 응, 그거 다 방맹이 짊어지고 들어간 곳인디, 멋대가리 없이 툭 치면 벌써 어디서 치는 거여?
정, 저런 제 세상에 그런 멍청헌 놈들 보제. 얼마나 멍청헌 놈들인가. 말헐 것이 어디 있어?


암두가 덕산한테 "종미명(鍾未鳴)이요 고미타(鼓未打)인디, 종도 치지 않고 쇠도 치지 아니...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아니했는데, 바리때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저두(低頭)를, 척 머리를 숙이고 방장(方丈)으로 돌아간다.

"우리 스님이 말후구(末後句)를 몰랐다"
그것 보제. 응, 그거 봐!

나한테 척,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앉어 있으니까 푹 들어오더니, 웬놈이 나한테 와서,
"암두, 암두 스님이 덕산한테 종미명고미타(鍾未鳴鼓未打)커니 귀하처(歸何處)오?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암두가 저두귀방장(低頭歸方丈)했으니 이르시요" 그러드만. "이르시요" 아주 그려 뭐.
"나는 못 이르겄다"

"어째서 못 이르겄소?"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역불식(亦不識)이니라"

곧, "창천(蒼天) 창천(蒼天)" 도망가. 하 이런!
"이리 좀 오너라. 이리 좀 와. 왜 그리 달아나느냐? 이리 와!" 아, 재삼 불러도 가 버리고 없어.

이런 놈의 법이 세상에 돌아가. 불수변거(拂袖便去)인가 어쩐가 그래 버려.
제가 점검허고 가는가 그래 버려.

동화사에 내가 또 조실(祖室)로 있으니까 또, 또 한 놈이 들어오더니 나한테 물어.
"귀방장도리(歸方丈道理)를 이르십시요" 또 그려. 똑같여.

그래 내가 또 내가 똑같이, 내가 아니까. 다 알아, 벌써 어디서 나온 걸 안다!
나 뭐 똑같이 "난 못 이르겄다"

또 "어째 못 이르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불식(不識)이니라"

또 "창천(蒼天) 창천(蒼天)"허고 도망가.
"너, 또 좀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이놈은 말후구(末後句)를 이르는가 어쩐가 모르제. 하, 그것 참 나!
도망가 버려 또.

가더니 간 뒤에 며칠 있다가 내가 소식을 뭔 얘기를 들었는데,
비구니 하나가 척 와서 "아, 조실 스님, 저 아래 가게집에 앉어서, 웬 수좌가 앉어서 '그 동화사 조실로 온 중인가, 조실 중인가 뭔 중인가 있는디'" 여그 금당인가?
"'금당 수좌한테 생똥을 싸, 방맹이를 맞고 똥을 싸, 조실에 곧 떠나게 되았단다'하고 그럽디다. 하도 엄청난 말을 들었기 따문에 스님께 보고를 합니다. 조실 스님께 말씀 여쭙니다. 그런 중이 있습디다"

"아, 그런 중이 있었으면 같이 좀 또 그런 한번, 그런 말 들었으니 같이 한번 또 그 무엇이 되았든지 허지, 뭐 나한테 와 그런 말헐 게 있나? 그런 말도 허고 저런 말도 허고 허는 거제"
나는 그냥 그래 버렸지. 그걸 누가, 어떤 놈이 그러디야 말디야 헐 것도 말 것도 없고.

또 나중에 말이 들어오기를, 그 비구니는 고 우게 삼진암 뭔 암자라, 저 우게 어디 있다고 했는데.
훨썩 올라가서 골짜기, 양진암이라고 허든가 거그 있는 수좌인데 와서, 거그 있는 수좌가 아니라 거그 지내는 수좌인데 와서 그건 말을 들었는데.
듣거나 말거나 그까짓 거 어디 내가 뭐 귀에 어디 붙어 있나 뭐 있나, 나는 그래 버리고 말았는데.

또 말이 듣키기를, 아무개가 그렇게 묻고 와서는 그 자리에 와서, 제가 내려와서 그 가게에 앉어서 그렇게 지금 동구(洞口)에서 조실(祖室) 몰아낼 공작을 허고 있다. 쫓아내 버릴라고 공작하고 있다.
그래 즈그 몇 동무를 모아 가지고, 그런 제들도 믿는 학자가 뭣이—내 누구라고 말헐 것 없고. 그 내 사실에 없는 것을 얘기헐 이치가 없고.

몇, 고런 사람 모도 들어 가지고 한 대여섯 짜 가지고는 쓸어 내버릴라고 하! 이런 공작을 허고 있었다 그말이여.

그러지마는 쓸어 내버리드락까장 뭐 내가 기대리고 있을 거제, 내가 미리서 동(動)해서 이렇게 쓸어 낼락하니 그놈을 가서 모도 뭐 폭로시켜?
거 내가 아직 앉어서 있는 사람이 조실로써서 그 무슨 체면대기여, 쫓겨났으면 쫓겨났제, 그걸 뭐 내가 그걸 모도 내가 댕기면서 그럴 꺼여? 뭣 헐 꺼여? 내비두고 앉었었제.

또 고 동류(同類) 가운데에서... 그래 이놈들이 짜기를 또 좀 더 잘 짰으면 헐턴디, 지랄겉이 그놈들이 모도 짜놨는가 어쩠는가.
고 뒤에 또 며칠이여. 고 며칠 뒤인데.

그놈의 참, 조실이라는 것은 도대체 못헐 꺼여.
흥! 못헐 꺼지마는, 또 안 해서는 어쩔 껀가?

그렇다고 해서 안 해버려? 그럴수록에 해야지! 하! 이렇제.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밖에는 없고, 이 법밖에는 없는데, 안 헐 수가 있어?

또 그런 배들이 그렇게 한번씩 와서 그런 바람에, 그대로가 더 우리 부처님에 정법이지.
그게 무서워서, 아이고 고약하니까 거그서 그만 때려 치워 버리곤, 에이 그놈들 뵈기 싫으니까, 에에 그놈의 구더기 보기 싫어 장 담을 것 없고, 물러가 버려?

그럴수록 좋다 그말이여! 나는 조꼼도 사실이여. 뭐 틀림없어!(처음~19분6초)




(2/4)----------------

아, 웬 놈이 턱! 오더니, "그래 당신이 판치생모(板齒生毛)를 그렇게 이르락 하니, 판치생모를 내가 이를 터니까 어떻소?"
"일러라!"

"흥, 좋소!" 저놈, 모가지를 잡고 턱 대들어.
"아 이놈아! 모가지 잡을 것이 뭣이 있어? 판치생모 이르라는데, 내 모가지 잡는 게 판치생모여?"

"이게! 잉, 죽어 봐라! 이게 쳇!"
아, 이놈이 입을 그냥 어떻게 이상허게 "에이, 엑엑엑!" 아, 사람 죽이는 행동을 헌다 그말이여.

아, 그러면 말이여... 나 그 자석 그 얼굴도 생긴 것이 내 징허구만.
생긴 자식이, 입이 얼굴이 새파라고 눈이 똥 나온 것이 "에이! 이, 이" 아! 이러고 대드는디, 입을 보니 사람 죽어.

이것 싸울 수도 없고, 이놈—내가 늙은 사람이 어떻게 싸운가. 싸울 수도 없고 이놈을 가지고 뭐 어떻게....
"아, 이놈아! 판치생모를 일러라, 이놈아! 응, 이게 판치생모 이른 거냐?"
"아..." 뭐 그냥 막 더 한다.

아, 그때 그 성우란 놈이 옆에 있었은게, 이 성우란 놈 있었으면은 그런 증거가 없는데, 증인이.

'아, 이놈아, 너도 판치생모를 그따구로 이르면 나도 판치생모 일러 봐야겄다'고, 대번 그놈 모가지를 쳐서 능히 그까짓 것 당혀. 한번 치면 절단나. 여지없이 그만...
그 모가지가, 목숨이 뚝 끊어지게 뭐 이래서는 쓸 것인가?

아, 그놈 똑 나한테 이르데끼만 제가 했으면은 아, 그놈이 날 보호허는 놈이 아주 됐는디,
'법이 저런가?'허고 보고서 앉었네. '법은 저런가?'허고 앉었어.
아! 그런 놈의 자식. 나, 그놈. 참, 나.

아, 실직헌 놈이 기운도 센 놈이, '이놈아, 너도 그와 같이... 야! 이놈아, 수지갱유야행인(誰知更有夜行人)고, 이놈아!' 허고 아! 냅대 대들어 한번 그 좀 좋은가!

허! 이거, 막 그렇게 당허고 있는데—눌러 가지고 인자 나를 엎어 놓고 있네, 나를.
꼼짝 못허고는 "아아! 아아! 아아!" 이러고만 있는디, 아 그냥 들여다보고 앉었네.

내 그래, 평생에 성우란 놈 보고, "네, 이놈! 이놈, 그런 놈이 어디 있어? 이놈아! 조실 스님을 네가 시봉허고 보호허고 있는 놈이 그래?"
참 내! 내가 법상에 올라와서 언제 한번 또 헌 것 같구만.

월산이 그때 들어오더니, 월산이 들어와—어쩌고 어쩌고 인자 그도 말로만, 그저 월산도 '에에'허니 점잖은 체허고, 성격이.
아, 월산도 여그 들어오면, 대번 들어와서 주지로 있은게 메가지 탁! 끄집어 척 내면서 '갱도(更道)하라. 다시 나한테 일러라' 아, 그러면 천상 기운이 처억 그 큰 사람이 한번 척 내부침서.

날마당 나한테 와서 절허고, 그저 아침 저녁 조실 스님을 모시고 헌게, 그래 인자 와서 봤으니, 그 좀 좋은가? 키 턱 크겄당, 그건 점잖은 거 아닌가?
눌러 있으니 나를 갖다 빼서 척 잡아 그거 한번 동댕이를 치든지, 그놈 모가지가 비틀져 버리든지 그래 놓고는 '도득(道得)해라. 여하(如何)냐?'허고는, 한바탕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별도리가 다 있지 않는가 말이여.


요렇게 모도 해 가지고는 나를 쫓가낼라고 공작을 해. 고놈들이.
나 참, 기가 맥혀서! '세상에 도문(道門)이라고 이럴 수가 있겠나?' 생각했는디.
그래 떼 놓으니깐, 그길로 갔제.

그것을 가지고 내가—저놈들이 저렇게 짜서 나를 갖다가 모도 산문출송(山門出送)을 시킬락 하니, 내가 그렇다고 해서 개벼이 뭐 조실방을 비워 놓고 나갈 수도 없는 것이고. 뭐 그래 또 그대로 가만히 앉었제.

그 한번 겪었으면, '모가지 안 끊어졌으면 만행(萬幸)이다'고.
똑 모가지를 짤라 버릴라고 했던 모냥이여, 그놈이.

'만행이다'허고는 그저 그대로 또 지내제.

그 안 되아.
그때에 조실에 그렇게 있다가 내가 그런 놈들한테 그냥 모가지 뚝 짤려 죽어 버리면 쓰겄어? 결코 죽지 안 혀야제!

죽다니?
얼마나, 우리 도 닦는 생명이 그 귀중헌디, 잃어 버리면 쓰겄냐 그말이여.

날로서 동화사 선방에 있을 적에 내가 그때 그 목숨 짤려 버렸으면 내게 그런 불행이 없고.
비단 내게만 불행이 있는 거 아니여. 학자들한테는 어떠헌 불행이 있느냐 그말이여.

내가 참말로 내가 정법이 있다면은 나를 믿어서 도 배우는 도학자한테 얼마나 그게 복이냐 그말이여. 그 참, 무루복(無漏福)이여. 그런 복이 어디 있어?
나를 안 믿은 학자에게는 소용이 없고.

또 내가 못쓸 법을 가졌으면은 그때에 죽은 것이 다행이요.
그거 뭐, 그 학자들, 그런 사람들한테 모가지 바쳐 버리는 게 옳제, 살아 뭣 헐 것여? 죽어야 옳제.

허지마는, 내가 정법이 있다면은 꼭 살아나야 한다 그말이여.
나도 살아야 허지마는 학자한테 큰 다행이지.

그러니 우리 지금 이 현(現) 이 대중이라도 나를 바로 믿는 학자한테는 이것 이 척사(斥邪)—거 그런 못된 놈이, 그놈이 그 외도, 사마외도(邪魔外道)가 되아 가지고 절단나야 옳고.
내가 정법이 없는, 법이 없는 사람 같으면은 내가 죽어야 옳은 것이라. 뭐 틀림없어.
그렇게, 그렇게 보라는 것이제, 그렇게 간택허라는 것이제, '내가 제일이다' 그것 아니여.

그때 그렇게 지내고 나서는 그래도 내가 안 가고 그래 있은게—인자 여차 에지간만 허면 내가 보따리 싸고 갈 줄 알았든 것이여.
가다니? 그런 디서 가?

거 뭐 그런 부량(不良)헌 놈들이 짜고 들어와서 고따고 행사헌 것을 그걸 내가 못 이겨서 가? 어림도 없제!
그 보덤 더 헌 일이 있어 봐라. 내가 어디 이 정법문중에서 물러가는가? 점점점 더 강해지제.


그 뒤에 며칠 지낸 뒤여. 인자 해제(解制)가 닥쳐왔다.
그 안에 어떻게 쫓가내는, 쫓가내는 공작을 모도 헌단 말이 다 들어오지마는, 가만 두었제.

내가 여그서 지금 이 용화사에서 이렇게 있으니깐 혹 대중 말을, 누가 뭔 말을 '아무개 어떻고 어떻고' 무슨 이런 말 나한테 허지.
아니, 그런 헌다는 게 아니라, 그런 말 여 하제, 맥여 누가?

듣고 알기는 알아. 하지마는 그말 듣고 내가 가서 나쁘다고 쫓아가서 '어쩌고 어쩌고, 너, 어쩌, 어쩌?' 이런 법 없어. 아직 내 그렇게 행동헌 법 없었어.

뭐라고 허든지 말든지 듣고 나한테만 딱 내가 치부만 해 놓고는, 그놈이 혹 설법 재료에 될만 허면 그 설법으로 내가 하고, 될 만 안 허면 두어 버리고. 대중에다 내가 갖다 한마디 헌 적이 없어.
결국 끝에 그놈이 무슨 폭로되아서 잘못될 경우에는 내가 말해 주지. 이 외에는 소용없어.

내비둬도 그대로 잦아질 것 같으면, 바다에 버큼이 그대로 녹아질 것 같으면 말허는 법 없어.
그놈이 어떻게 확대되아서 못쓰게 되면 내 꼭 처리허는 성격이고. 이거, 내가 있는 사람이여.


그것도 즈그들이 별소리 다 하지만, 가만히 놀아나는 대로 놨어.
자체에 앉아서, 뭐 어디 그 조실 자체라는 것이 그것이 그렇게도 그 간단헌 문제도 아니고, 정법을 가르치는... 가령 조실 스님의 그 무슨 인격이 있는데 그럴 수가 있나.
아무리 개볍게 내가 근본 성격이야 그러헐지언정, 그 자체는 지켜야 헐 거 아닌가?

그래 거기 있다가는... 나 동화사 가서 지낸 걸 생각허면 우습지도 않구만.
그런디 신도—내가 그 뭐, 인자 뭔 다 겪어 온 것이고, 그 당연—신도, 대구 전체, 옛날에야 대구 좀 있은 인연도 있지마는 어떻게 공양이 들어오든지, 이놈의 공양! 당최 말로 헐 수 없어. 그만 막 드리 들어와.
얼매가 들어왔든지 역사적으로 처음이라는 거여. 몇씩 밀려서, 아! 공양만 가지고도 선방대중이 먹고 살고 남았다.

그러고 또 내가 조실로 들어가서 첫 조실, 조실 설법을 얼마나 잘했던지, 참 이름이 나버렸어.
또 내가 또 내가, '내가 잘한다' 허는구만.
어쩔 꺼여 그러면? 누가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아, 그래 가지고서는 소문이 참, 어떻게 났든지 말았든지 공양도 그렇게 많이 들어오니까.
아, 그만 그 나를 반대허는 그 선객(禪客), 그 무슨 몇—그 선객이라고 헐 수가 있는가 모르제—아, 요런 것들 모도 그냥 뭐 시기심이 났는가 원, 어쨌는가, 그 모도 인자 이래 있어 가지고 했든가 보덩만. 쫓가내 버릴 생각이 모도 이리저리 나 가지고는.

안 쫓겨나고 내가 꾹 참고, 해제 법문...
이거 조실... 뜻밖에 지금 내... 거 뭐 기행문에 과거 기행사 좀 말허다가 여그 나와, 시방 이렇게 나왔어. 동화사 조실 그 무슨 그 지낼 때 그 뭔 그놈 나온다 그말이여.

법문이란 그런 거제. 뭐 허다가도 저그 갔다가 또 와 있제.
그것을 거그서 듣다 '왜 저걸 허는고?' 이러면 틀렸제. 그거 괜찮아. 상관없는 거여.

따악 해제 법문이 돌아와서 인자 해제 법석(法席)에 가서 법문을 허되, 그 뭐라고 올라가서 인자 뭐 법문 뭐, 또 다... 하따 요것 기운도 하도 없고, 말문이 맥혀 싸서 이래.

뭐,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라 허는 것을 어디서 물어왔어.
그건 혜암 스님이 물었는데, 보조 스님 <수심결(修心訣)>에 있는 말이여.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라 헌 놈이 물어와서, 그 나한테 월산이 "대답, 답을 해 보내야 허겄는디 답허십시요" 그래.
"법상에 올라가서, 물어라. 내 법상에 올라갈 터이니 물어라"

법상에 올라가 앉었는디 물어서 그놈 답, 내가 다 해 주고, 그래 마친 후에 동화사 사건을 끄집어냈어.
산중이 다 모이고, 그때 비구니가 나한테 말헌 말도 있고.

따악 그 모아 놓고,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을 턱 하는데,
"이런 법석에서 나를 한번 척사현정(斥邪顯正) 방(棒)을, 학자들이 모도 그런 방이 운문방(雲門棒)이 있다면은 이러헐 때 한번 방을 써봐라. 아 이러헐 때 한번 나를, 법상을 메쳐 버리든지, 조실이 응, 그것 여기서 한번 내가 쫓겨날 것이제" 허고는, 인자 그렇게 어떻게 말을 내놓고서는.

"또 봐라! 우리 부처님에 참 우리 불법 정법은, 당시는 아니지마는 우리 부처님 돌아가신 후 그때가 몇백 년이 되았는지는 모르지만, 약, 모도 말허기를 부처님 돌아가신 후, 삼백 년이 되았을 적에 운문선사가 나와서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부처님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이여. 한 방으로 타살해서 구자긱(狗子喫)이라. 개를 주어 씹혔다'
아, 이렇게 했는데, 그게 천하에 제일간 아주 운문 척사현정 대의라고 해서, 거 도무지 이렇게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척사현정이라고 그래 놓았다.

나를 이때 한번 쳐내야 허는 것이고, 나를 한번 비방해야 허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떡! 허는 학자가 그 학자래야 한다. 내가 그 학자를 기대리고 있는 거 아니냐? 나를 거그서 한번 엎어치는...
거그서 칠 것 아니다. 거그서 친 놈도 쳤지마는, 좋다! 천 번이면 무슨 일이 있으며, 만 번이면 무슨 일이 있겠느냐?

또, 아! 거그서 무슨 '창천 창천(蒼天蒼天)이여' 헐 거, 여그서 '이 자리에서 막 방맹이를 주어 쫓아, 막 그만 조실방에 쳐냈다'
그것, 그것 거, 저 뒷방에서 아들 그, 저 콧 장난이나 무슨 눈 장난이나 무슨 뭐 그런 것밖에는 되지 않아. 그런 법 없어. 고렇게 그 비겁허게 약허게 들어가, 법(法)을.
확! 한번 해서 역사도 전통헐 것이고, 용주사(동화사) 우리 선방에 큰 빛이다. 한번 여그서 옳게 하자! 나와서, 그 모도 다 나와서 일러라.

자! 거 '종미명고미타(鍾未鳴鼓未打)하니, 종도 울지 않고 북도 치지 아니했거니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하니, 저두(低頭)허고 방장(方丈)으로 돌아갔으니, 일러라! 여그서!
왜 도망갈까 보냐? 일러라. 또 판치생모를 여그서 일러라! 이렇게 대중이 모아 있는 증처(證處)에서 일러라 허니, 일러라"

한 놈이나 일러야제? 아, 이놈의 저석들이 주뎅이가 어디로 가버리고 없네.

덜썩, 할(喝)을 한번 허고 내가 작대기 치고 참 내려와서, "잡아들여라. 모도 그 사람들 그 못 이르고, 그 야단친 놈들이 한 놈도 못 일렀으니 잡아들여라"
찾으니 어디로 간지 도망가고 없네. 없어, 아무리 찾아도 도망가고 없어!

그때 그, 여그 그때 지낸 사람, 여그 하나도 없나?

동화사서는 내가 그렇게 마치고 해제허고 내가 나왔단 말이여.
그랬더니 아, 그놈, 나를 죽일라는 놈은, 내가 그다음에는 와서 어찌 흥복사에서 좀 지내는데 왔어.
그 여름철이 됐다. 기가 맥히게 와서 그 참회를 허고, "과연 참, 죽을 때 됐습니다"허고 와서 참회허고는 한철 지내더니 거그서 벗거져 나가더니 다시는 종적 없어.

어디로 갔나 물으니까, 어디 가서 무슨 뭐 신도 하나 만나서 초막을 짓고 있다 하더니, 인자 그것도 없다 허더니, 종적도 없어. 그것 참!
아, 그런 학자들이 그 참말로 참말로 그대로 영원히 참, 도를 잘 닦고 있어야 할 턴디, 그 모냥사여.

그때 얘기는 여그서 이대로 마쳐 버리고는.(19분7초~38분55초)




(3/4)----------------

이 박한영 스님이 여그서 답 못했다 그말이여.
"마음은 무엇으로 짓습니까?" (답) 못했네.

박한영 스님은 뭘 물으면은 못 대는 법 없어. 절대로 뭐, 뭘 주어 대든지 그렇게 달아. 우리나라 박사로는 제일이요 그만이여.

하지마는, 선법(禪法)에는 그만이야. 선에는 그만이야.
교리로는 못 대는 법이 없는디, 선에 가서는 다시는 그만... 참선법에 가서는 함부로 쎄를 내릴 수 없다 하는 것을 믿어 버렸어. '내가 모르면 몰랐제 답헐 수는 없다'는 것이여.

그러면 홍도여관에 심부름허는, 그 뭐여? 심부름허는 사람을 뭐, 뭔 '히끼'라고 하냐? 뭐라고 허드나 그걸?
나는 거그서 해도 잊어 버렸구만. 뭘, 뭔 '히꾸'라 허드야, 뭐라고 허드야?
뭐라고 허드구만, 그 그녀러 건 난 알도...

'갸꾸'라고 허드야? '히꾸'라고 허드냐? 뭐라고...
응? '갸꾸히꾸'라고 허든가? 왜놈 말이든 것이여. 그것도 뭐.

아, 그런 그 '갸꾸히꾸'라고 헌다든가—이제는 나감서, 내한테 그런게 아니라 나감서 아주 말을 했어.
"참말로 내가 고등 선객 한번 보았다!"
그 대답 못하고! 안혀!

"참으로 고등 선객 한번 봤다!"
홍도여관에 '개꾸?' 그, 그 뭐여? '개꾸'인가 뭐여 한테 내가 잉.

"참! 선객이다!" 이래 놨단 말이여.
한용운(박한영)이 같은 이가 그래 놓으니깐 왼 산중이 그냥 그만 눈을 확 허니...

자, 그 안에 그렇게 심부름허고, 그렇게 이러고 머리에 수건 하나 동이고—그때는 감투는 다 벗어 버렸소마는, 수건 하나 딱 동이고는... 인자 우스운 얘기 같이 들어 뭐.
그렇지마는 그 법문이제, 그이상 더 법문이 어디 있어?
내가 기운이 떨어지고 이래서 그렇제. 어디 여행 갔다 오면 법문 못 허는구만. 기운 뚝 빠져 버리고.

그래도 이게 법문이여. 법문으로 들어.
나를 믿고 들으면 내가 한번 픽 웃어도 그이상 더 없는 건데, 말헐 것 뭐 있소?

나를 못 믿을 것도 또 뭐냐 그말이여. 바로 믿어야지!
또! 안 믿어지는 이를 내가 바로 믿으란 게 아니여.
안 믿어지면 그만 그까짓 거를 희사(喜捨), 대번에 그만 기껍게 버려 버려야지.

내, 항상 그런 거 아니여?
'날 믿어라' 그려, 내가?
없어!

'갸꾸히끼'한테, 참 내가! 다 아는 말이지마는, 항상 가르키고 항상 허는 말이지마는,
'내가, 하나 봤다!' 그러고 나갔는데.

아, 합천 해인사 헐 것 같으면 강사가 도무지 우리 한국에 이만저만이니까 말헐 거 없어. 무섭고! 거 참, 졸가리 있고.
장보해 같은 사람, 이고경 같은 사람, 그 만응 스님 같은 이, 임한경 같은 이, 기맥힌 그런 디가 그렇게 막 짜 가지고 발건 홍가사(紅袈娑) 입고, 어르르, 사월 팔일날 오면 어르르 허고, 아, 이런 딘디.

'갸꾸'가 수건 동이고, 글쎄 심바람허든 것이 쫓아서, 수백 명이 앉은 법석으로—그래 가지고 시방 그때는 누가 올라갈 차례냐 허면은 고경, 뭔 고경이냐?
이고경이 올라갈 판이여. 그 졸가리 있는 고경 조실이 올라갈 판인디, 헉 해 가지고 척 허는디, 그만 천인이 되려 내가 법상을 떡 올라가 뿌르르 올라가서 앉었네. 여가 인자 이러고 앉었은게, 세상에, 그만!
"아! 저거 뭐여?"

어따가 당최 그 태약헌 법과 내 그 포외(怖畏), 포외가 있으면 올라가겄는냐 그말이여.
'네 까짓 것들이 법문을 혀? 어디서 뉘 앞에서 법문을 혀? 요것들이!' 아, 이런 생각이 확! 나 버린께 어쩔 거여?

척! 올라가서는, 대번에 올라가서—저번에, 저번 날 저녁에 했지만 또 혀.
여그는 또 헌 것이 두째 나온 거여, 두째 법문 나온 거여.
거그 또 나왔나? 중복으로.

"자연적이냐..." 내 똑 그랬구만.
"자연적이냐, 천연..." 그 자리, 바로 거기에 앉어서 막 드리 쏘는데.

"자연적이냐, 천연..." 나는 말을 혀도 말여. 뭐 그렇게 그 옛 한문(漢文), 무서운 한문 그런 거 하나 쓰들 안 혀. 뭘라고 써, 그것을.
쓸 때가 있제. 그 내가 몰라서 못 써?

법문허다가 이려, 내가.

내가 어저께 송담, 용주사 주지스님 송담을 턱 앞세우고 같이 가다가 내가 그...
아, 저 가다 헌 게 아니라, 저 차 안에서 차를 타고 앉었다가... 송담은 내가 대해서도 그랬어.

광주서 차를 타고 서울 올라오면 앉으면 자. 이러고 잔게.
저 서울서 깨아. 아, 그래 서울 정거장 오면 어찌 깬고 몰라? 깨아.
무슨 놈의 잠이 저렇게 많애서 그저 올라오면 자는구만!

숭본다고 또 좀 마음이 좀 어쩔란지 모르겄구마는, 자기 마음 나쁘거나 좋거나 내 그걸 알 것 뭐 있나.
내 법문 내 헐만허면 허제, 거기에 내가 뭐 구애되아서 못헐 건 없고.
과거사인디, 또 그 뭐 그, 그 말 듣고 또 골내아? 골낼라면 내 봐라. 뭐 그거 내가...

아, 세상에 같이 차 타고 가면서 아, 법문도 좀 얘기허고 이래저래 어쩐디, 잠만 자!
아, 이놈의 것.

내가 그 뒤에 가만히 전체를 생각해 보니 자기 일을 했든가 부여.
말도 안 한 사람이 물을 것도 없제. 말까장 안 한 사람이 허송헐 이치가 없지.

십 년을 꼭 그와 같이 지냈네!
세상에, 생병신이... 생사람이 병신 되아 가지고 말 않지.

허어! 아, 어저께 어떤 신도가 그려.
"아, 말도 십 년 안 했다고 허는 묵언스님인데, 앉어서 인자 얘기도 허고 웃기도 허네!" 그러드란게.
허! 나, 인자 그러면 말도 안 허고, 웃지 안 허면 쓸 뻔 했든가 몰라. 그말을 혀.

그 속에서 퍽 무척 참, 시간 없이 다루었든 것이여.
눈 가만히 이러고 잔 체 허제, 이러고 앉어서 이러고 자.

같이 그냥 앉었으면 어째서?
그 여럿이 있은게 참선헌 체허고 떡 앉어서 '음, 음' 이러고 앉었으면, 참선도 헌갑다 이럴테지만.
없어! 이러고 자!

그 속에서 무척 참, 그거 참, 시간 참 그 뭐 무척 그 시간을 애껴서 아마 입정(入定) 공부를 했던 모냥이제. 십 년을 허송허지 않는 것이 거그 있어.


"자연적(自然的)이냐, 천연적(天然的)이냐, 만겁(萬劫)에 현안(懸案)인 비밀(秘密)이냐? 자연도 아니고 천연도 아니고 만겁에 현안비밀도 아니니라. 선천(先天)에 무기시(無其始)요 후천(後天)도 무기종(無其終)이다" 요 한문은 한문투지마는.
"선천도 비롯함이 없고 후천도 종(終)이 없느니라. 무슨 물건인고?" 한번 물어 놓고는 그놈을 연속해서 해 나가는데 다 잊어 버려, 고밑에 잊어 버렸어.

저 얼매 간단히 했제, 오래허면 못써.
고 오래해 쓸 것이여, 강사 설법으로?

그만! 척사(斥邪) 도리로써 종(終)을, 떡 끝을 마치고는, "미안하요. 내가 이 야로에 있는 처사도 아니고, 내가 야로에서 얻어먹고 댕기는 사람인데, 얻어먹고 내가 오장치 벗어 버리고 들어와서" 내 실존재를 그대로 했거든.
"여서, 내가 지금 홍도여관에 뽀이로 있소. 미안하요. 조실 스님네한테 법문 잘 청해 들으시요"허고는.

끝, 이것이 아녀. 끝에 조직이 뭔 그럴 수가 없어.
내가 뭐 조직, 법문 내가 조직 순서를 꾸며 가지고 올라갔나?
없어, 나는 꾸민 법 없어. 나온 대로 허지.
오늘 법문 보지. 누가 이거 꾸며 가지고 올라왔어? 나 지금 나오는 대로 허는 것이제.

냅대 해서 조져대 버리고 내려왔더니 "우우우!" 그래. 그 청중이 "우우"
나를 모도 보고는 "아따 참, 저런!"

머리는 이렇게 흘렀제, 뭐 모냥은 뭐 그저 그때는 그 인자 뭐 누데기는 안 입었지마는 우습게 입고, 아, 홍도여관에서 심부름허고 있는 건 뭐 내가 얼매나 그저...
절대 친고니까, 내 잘 입을라면 잘 입고, 뭔 마음대로여, 그래도 그 속에 그 나를 어떻게 숭배한지 기가 맥히게 숭배하니까, 친고라도 거가 있었거든.

뭐, 내가 뭐 천둥이로 와 있는 거 아니여.
말로 내가 괜히 손님네 먹은 고기를 디리 그놈 거두어서, 모도 그놈 먹고 남은 놈 찌깽이를 거두어서 그놈 다시 끓여서도 먹고 어쩌고 했다고 그랬지만, 나 그것 한번 내 그 무행 경계를 그대로 털어 내놓니라고, 내가 거 더 백 배나 불어 했제, 그러지도 안 했어.

근데 이동수, 내 친고가 기가 맥히게 별 걸 다 해 먹이는데, 뭐 내가 그까짓 그 어디서 그런 더러운 먹든 찌께기까지 먹었을 것이요? 내가 속에는 얼마나 하이칼라인디? 소용없어, 그까짓.
그렇게 내가 대접 받고, 참말로 '내 친고, 정영신이다'고 믿은 사람한테 가 있었제.

그런게 백채승이도 역시 그때 사무실에, 참 이만저만헌 권리, 전 합천 해인사 독권헌 사람이여. 독권헌 사람이 여그 와 안 지냈소? 지냈는디, 강사요, 글 잘혀, 독권이여!
독권인디, 이동수허고 또 서로 사이가 친허니까 그래 나허고도 친했는데, 지가 경(經) 아니라, 뭐 더 헌 걸 해도 말 말에, 내 법문에는 복종을 혀.

한마디 물으면 그냥 꽉 맥혀. 아니 맥힌 게 아니라 환허지마는, 내가 물으면 대답을 못혀.
거, 교외(敎外)에 별전선지(別傳禪旨)가 있는 것을 알기 따문에 즈그 교(敎)로 배워 가지고는 모른다는, 자기가 있어서 헐 수 없어.
이래 가지고 평생 숭배허다가 이렇게 차츰차츰 따라 나와서 여까장 있다가 여그서 있다 죽었소.

얼매나 그만, 산중이 그만 내 홍도여관에서 뭐 '히꾸'로 있다고 해도—나, 그놈의 말은 평생에 잘 못하구만.
내가 또 일본말은 썩 잘했소. 잘허는디, 일본말은 썩, 보통 잘헌 게 아니여.
썩 잘해도 한마디 배와 가지고 고놈만 잘했제, 서로 대화통, 이런 건 한마디 못혀!

그래도 제일 좋은 놈 한마디를 통해 가지고는 '오하요 고자이마스' 이런 말, 안 높은 말이요.
그 '오하요 고자이마스 어쩌고' 그런 건 높은 말인데, 고놈 하나썩 배우거든, 또.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 말도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이러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말인디.
'아리가다이 고도와 스미지미또 가지마스' 그건 참말로 높은 말이여.
'아리가다이 고도와 스미지미또 가지마스' 그건 어전에나 쓰는 말이거등. 요런 놈을 배와 놨단 말이여.

고등헌 놈을 배워 가지고는—저 새 이름도, 저! 새 이름도 기중 고등헌 새, 좋은 새, 고놈 이름을 배와 가지고는.
저어 소짝새, 소짝새 아무도 모르제, 물으면.
'우구이스'라는 게 꾀꼬리인디, 꾀꼬리 그놈은 대강 알지마는, 소짝새 이름은 몰라. 그 왜놈들 시에도 많이 있다는구만.

나는 못 쓰제. 그 하나 보지도 못허고 알도 못허지마는, 그 여러 문사를 대허면 이 얘기도 허고, 우슨 얘기도 허면 다 그런 건 들어서 알제.
'호도도기스', '호도도기스'라는 게 꾀꼬리인디, 아, 그 전에 일본말 다 헌 이들 안 알겠소?
몰라. '호도도기스'라는 건 잘 몰라.

요런 놈만 명조(名鳥), 새 이름을 알어 가지고는 잘헌 체허고 하며 써먹어. 일본말 썩 잘헌 체허고 써먹어.
다 속거든. 내가 다 속일 줄 알아 그런 거. 뭐 제일귀(第一句)로 잡아 쓴다 그말이여.

그래 인자, 요런 것은 법문에다가서 잠 깨우는, 한 그저 희극식으로 하나 넣은 것이고.
응! 설법도 그 우스운 소리 한마디씩 집어넣어 놔사 그놈을 듣고 잠 깨워 가지고는 눈을 뜨거든. 설법은 아니지마는.

성교현장(聖敎賢章), 법문 도리, 그 어진 말씀, 생사해탈법만 가지고 얘기를 허면 알아들을 수가 있나?
하, 이거! 잠만 퍼오고 또 마침 마구니란 놈이 이거 눈가에 붙었다가 자꾸 법문을 못 듣게 만들거든.

그럴 때, 그 모도 성교현장(聖敎賢章)은 고불문(故不聞)이요. 성현의 말씀, 어진 말씀, 참선해서 해탈헐 그런 말씀은 그건 도무지 못 듣고.
사언마어(邪言魔語)는 긍수청(肯受聽)이다. 삿된 말과 마구니의 말은 즐거이 들어오고, 잠 하나 안 온다. 요런 말, 모도 요런 건, 안 들어오제, 잠이.


한바탕 그렇게 그만 분석을—그 자연적이냐? 자연이냐 말여? 천연이냐? 뭐 만겁으로 내려오면서 무슨 현안 무슨 비밀이냐? 그 무슨 자연도 거그는...
'내'라는 이 마음 자리! 일체를 마음이 지었다.
마음은 뭐가 지었느냐? 그놈이란 말이여.

뭐가 지었나?
자연이 지었냐? 천연이 지었냐? 만겁에 무슨 현안, 무슨 비밀이냐?
선천(先天)도 무기시(無其始)여, 선천도 비롯함이 없지. 후천(後天)도 무기종(無其終)이여, 하늘 뒤도 종(終)이 없지.

뭐냐? 누가 지었냐 이 말이여?
이것이 공안(公案)이요.

마음을 뭐가, 뭐가 마음을 지었느냐?
마음이라는 것은 뚜렷이 응, 우리가 모도 '마음 먹기 달렸다. 우리 마음이다' 응.

온 놈도 마음이 왔제. 여그 산림허는 놈, 마음이 허제. 참선도 마음이 지금 허제. 전부가 마음이니라.
심조(心造), 누가 지었느냐?

이거제, 뭐 별거?
이거 아닌가.

심조(心造)여.(38분59초~56분52초)




(4/4)----------------

그놈들은, 내가 찾으니 동화사, 다 그만 내빼 버리고 없네!
아, 여그서 기가 맥힌 조사, 기맥힌 조실 스님 노릇 당당히 내가 하고, 그놈들 그 제대로 물러빠진 놈들, 다 고놈들 간 곳이 온 곳이 없고.
이놈들 나가서는 그 난동패 고런 놈들은 그대로 어디가서 다 즈그 상신실명(喪身失命) 해버렸네.

즈그는 아조 날 쫓아내면 될 줄 알고. 나를 똑 그저 마음대로 쫓아낼 줄 알고.
그거 못하네.
그대로 그놈들 제대로 참, 다 물러가 버리고 제대로 다 절단나제.

우리 정법문중에 들어와서 우리 부처님의 정법은 아무리 그 마구니들, 역대 마구니들,
역대조사가 우리 부처님의 정법, 해탈 생사해탈법! 세상에 당최 무슨 뭐 그렇게 정직헌 해탈법!
어디 가서 그 무슨 그 우리 정법이 뭐 끝이 있나, 무슨 뭐 뭐 한(限)이 있나, 무슨 뭐 종(終)이 있나.

요, 그대로 이 갖추어져 있는 정법을 이렇게 전통해 나온 가운데에 그 정법을 모도 방해헐라는 것이 마구니고, 거기에 와서 별별 짓을 다 하지마는 즈그는 거기에 다 꺼꾸러지는 것이여.
그래서 사불범정(邪不犯正)이니라. 삿된 것은 정(正)에 범(犯)치 못한다. 일체 마구니와 일체 거기에는 뭣이 붙들 못혀.

그 정직, 정법!

내가 그러한 그만 그 척사현정(斥邪顯正) 정법으로 그 동화사서 그놈들 내가 탁! 한마디 해 찾은게 없어. 찾은게 다 도망가 버리고 없네. 그놈들이 그냥 다 흩어져 버렸어. 나, 참말로!
그러더니 나중에 모도 조사해 보니 다 망해버리고 없다.

여그다가 또 이어 연속해서, 여그 인제 결집(結集)헐 때 쓸 것은 없어, 이런 말은.
또 내가! 또 인자 워낙 질팡갈팡 법문이구만.

또 대구에 와서, 내가 인자 서봉암에다 절을 하나 짓고. 역사도 때도 어느 때인지 몰라.
짓고는 인자 법사(法師)라고 헐 때인디, 그때가 나이 아마 서른한 살이나 이렇게 먹을 때인가 그려.

그렇게 인자 해인사 다 다녀 나와서—이건 내 또 엉뚱헌 놈이란게—나왔는디, 그 전강(田岡), 인자 그때는 이름도 전강이라고 다 쓸 때고 그럴 때구만.

아따, 처음 서봉암 짓고 다 이렇게 인자 나왔다 해가지고는, 지어 놓은 놈을 내가 사가지고 했으니께 잠깐 했지.
새파라니 인자 그때가 나와서 인자 포교사로 들어왔는디, 머리, 아 그놈을 그 여까장 질어 나온 놈을 인자 턱! 하이칼라로 깎았네.

하이칼라로 잘해서 착 깎아 가지고 이렇게 해가지고, 여그 가르매 탁! 타서 착 기름으로 뭐 고다리라드냐 뭐라드냐 고런 걸 맨들아서 허고는 맥고자(麥藁子), 그때 맥고자가 나왔을 때로구만.
딱! 빤듯헌 맥고자, 그놈 탁 쓰고. 모시, 좋은 모시, 한산 세모시로 겹두루막을 척 입고, 인자 좋은 구두 턱! 신고, 아, 이러고 나서 인자 포교사로 나왔다. 고 왜정(倭政) 당시에.

좋은 스태기다가 금을 떡 감아서 몇 돈쭝 감아서 척 스태끼를 들고는, 아 이러고는 척 인자 포교사로 나와서 양복도 있다. 그래 꼭 양복을 입었제.
그래도 한복은 또 그렇게 채렸다 그말이여. 어디 양복만 입고 그 있을 수가 있어야제.

한번 머리 길었겄다, 인자 또 내 멋대로 하이칼라로 좀 채려 본다고 멋드러지게 채려 놨단 말이여.
아, 그때 하이칼라 헐 때 그 채려 놓은 사진이 여기 항상 있었는데, 저 묵언스님은 봤을 게로구만. 묵언스님은 다 봤지 뭐.
그 인자 모자 쓰고, 그 안경 쓰고 쓴 놈 탁 있제. 좋은 놈이 있었는데, 인자 어디로 가버리고 없드구만.

아, 그렇게 해가지고는 포교사라고 나와서 그 무슨 지금은, 그때는 선술집이라고 무슨 '다찌노미', 인자 '다찌노미'는 왜놈 말인데, 뭐 우리 선술, 말로 하면 뭐라고 인자 그거 있는데, 이만헌 잔에다가 푸욱 맥주를 쳐서 한잔 준다 그말이여. 그려면 가다오다 먹제, 그때 내가 안 먹어?
한참 먹다 나와 해인사에서 잘 먹다 나왔는데. 병 낫기 위해서 그렇게 먹고 야단치다가 병도 거지반 낫고, 인자 몸뚱이가 참 퍽 무척 좋아 가지고 다 이랬는데.

또 내가 고령 가서 약장사 험서 한번 친 것이 있는데, 그거 다 쓸 수도 없는 것이고. 대충 내가 하나 허는데.

그 턱! 그 문용춘이가 같이 인자 모도 가서 신도고, 날 좋아하고 인자 그럴 땐데, 받아 준다고 큰 걸 받아 주어.
서서 먹는 거여. 푹 따라서 한잔 주길래 이놈을 막 받아 쩍 들어 마시고 난게 참, 좋드구만.

아, 웬 사람이, 시컴허니 한 삼십살 먹은 사람이 들어오더니 발질로 나를 탁! 차. 이 가슴을.
"아이고"허고, "아이고"허고 엎졌단 말이여.

엎어진게 언제 당최 뭐 겨를 없이 그때—일본말로 '마메 다꾸시'여. '마메 다꾸시'라고 그려.
쬐끄만헌, '마메'라는 건 뭘 '마메'라 하노? 콩을 '마메'라 하나 뭐?
쬐끄만헌 '다꾸시(택시)'라고 헌 걸, 그때 50전씩인가 얼맨가 주면 타는 거. 아, 그런 걸 가지고 와서 나를...

그래 가지고 그만 나 있는 서봉암으로 왔다가, 내 방에다가 갖다 딱 눕혔어.
꼼짝 못허고 누어서, 뭔 약을 이리저리 갖다 먹고, 한 일주일 만에 겨우 숨을 쉬었어. 되게 채여서.

아, 일주일 조끔 지내니까, 웬 놈이 배가 하여간 그 보면 북은, 조금 불어서 말헌다면은 송광사, 순천 송광사 큰 북만 혀, 배가.
송광사 큰 북을 안 봤으면 모를 것이고, 본 이는 알 것이고.

아따 이런 물건이 왔어.
와서, 내가 겨우 지금 뭐, 내가 일어나 앉었든가 누었든가 헌데 와서, 내 방에 앞에 와서, 이런 나보담 더 숭악헌 놈의 병을 가지고 와서, 배가 이만헌 놈이 와서 배를, 제 배를 제가 이렇게 쳐다보고 앉었어. 이만헌...

"그저 죽을 때가 되아 왔습니다"
"아니 당신이 누구요" 그저 다 벗어진게.

"죽을 때가 되아 왔습니다"
"아, 당신이 누구? 말 좀 허시요. 알어듣게"

"내가 최석이요. 내가 금동이요"
"아, 최석이 금동이면 왜... 누구요?"

"내가 어저께... 아, 내가 저 한 일주일 전에 스님 배 찬 사람이요. 배를, 가슴을 찬 사람이요. 헉, 헉!"
아, 이러고는 죽어 감서 왔어.

"아, 그러면 당신이 내 배를 찼으면, 왜 당신 배가 그렇게 생겼소?"
"아이고, 당신 배를 차고 내가 돌아와서 그날 저녁부텀 배가 붓기 시작해 붓었는데..."

내가 이걸 만약에 위조로 했다면 그 뭣 되겄어? 큰일나제.
거따가 공사석에 설법상에다 내 이 소리를 혀?

아, 그 이상허다 그말이여. 나도 참말, 내가 알 수 있어, 뭔 짓을 했는지?

"꿈을 꾸니까, 그날 밤에 기맥힌 어떤 사람이 창을 가져와서 내 배를 탁 침서, 찌름서, 그 호령을 헌 뒤에는" 거기 또 뭔 말이 있으나 내 그런 건 추접스러 넣을 것 없고...
"그다음에 이렇게 내가 배가 부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내가 이렇게 배가 부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가서 점을, 어서어서 쫓아가서 그 유명헌 봉사한테 참 잘 아는 봉사한테 점을 허니까" 또 거다가 뭔 말 하나 있지만, 내 그건 빼번지고.

"거, 어떤 이 배를 차서, 그 뭔 배를 그렇게 무슨 일을 저질러서 그 얻은 병이라. 이 병은 꼭 죽으니 다른 도리 없고, 어서 쫓아가서 본인이 쫓아가서 빌고, 앞에 가 빌고, 그 어른한테 가 빌고 그러라" 아, 이랬다고 왔어!

아, 이랬다고 와서 그 꿈도 그렇게 즈그 어머니가, 아니 꿈도 본인이 얻었는데, 즈그 어머니가 점허니까 점괘도 나와. 그래 왔다고 즈그 어머니가 데리고 왔어, 아니 여까지 태우고 왔어, 태우고.
아, 그런 것이 와 가지고, "헥 헥 헥" 나 참말로.

'그것이 내가 도인이기 따문에, 내가 그만한 도가 있기 따문에 내 신장(神將)이 저 놈을 때려서 저랬다'
이따구 놈의 소리가, 어디 그런 것이 어디 도인에게 있을 리가 있는가? 무슨 놈의 도인에게 그런 신장(神將)이 따라댕김서 뭐 어쩌고 어쩌고 혀?

허지마는 그때 대중은 모도 그런다 그말이여.
'아, 전강 스님으로 말허면 어떻게 옷을 입었던지, 어떻게 댕기든지 어쨌든지 그 현대의 선지식 스님네의 다 정화(淨化)를 했고, 선지식 스님과 모도 법(法) 탁마(琢磨)했고 아, 그런 분인데, 그 가다오다가 그 술 한잔 자시기로이 배를 냅대 찼으니 그 과보가 아니냐?' 혀.

나는, '그런 거 아니다. 그렇게 붙이지 말어라. 그, 날 죽이는 소리다'
내가 무슨 놈의 내 도덕이 뭐 그런 뭐, 그래저래 그것은 공연히 어쩌다가 보니, 뭐 어떻게 된 말인지는 몰라도 병날 때가 되아 난 것이고, 어디 그런 것이제.
사람이 무슨 병이 모도 가다오다 그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나는 것이제.

그까짓 놈의 병나니까, 병난 사람에 머리라는 것은 약해지고 모도 그만 약해진, 병 앓는 속에서 그러헌 공연히 약헌, 그런 사기(邪氣)가 모도 일어나 가지고 귀신이니 뭐이니 허제, 그럴 이치가 있느냐?
'때려 치우라'고 내 쏵 그래 버려, 내 그래 버리고는 아, 그렇겄소.

'내 배 찬 것이 이놈 괘씸허고, 너 이놈 내가 너를 이놈 죽여 마땅허고 원수를 갚아야 겄다'는 마음은 꿈에도 없어, 그때. 사실이여 나!
그것 없는 것이 도인이여. 정전강의 그것이 도인이여. 내가 참 그때에 그 마음 하나 없었어.

어떻게 불쌍허던지, 니가 내 배를 차자마자 그런 병을 얻어서 나 따문에 그런 병을 얻었다면은 내가 참, 얼마나 참으로 미안하단 말도 났었고, 또 그럴 이치도 없다마는, 그 병이...

아, 이 무슨 놈의 병이 배가 그렇게 크냔 말이여! 그 제 배를 제가 이 앞에다 놓고 보드란게.
"헤 헤" 곧 숨은 넘어간다 그말이여.
내 그때 그 사람 불쌍한 마음이 어따가 당최, 시방도 찌르르르 햐.(56분53초~1시간10분11초) (일대기 15호 끝)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5. 26. 10:0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4호) 마음은 누가 지었습니까

 

**전강선사(No.027)—전강선사 일대기 제14호(경술1970년 12월 23일.음) (1971년 1월 19일) (38분)

 

(1/2) 약 20분.

 

(2/2) 약 18분.

 

(1)------------------

 

납자평생사(衲子平生事)여  팽다헌조주(烹茶獻趙州)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이요  조제산갱유(鳥啼山更幽)니라

나무~아미타불~

 

납자(衲子)의 평생사(平生事)가, 우리 도 닦는 도학자(道學者)의 평생 일이 세상에 거 뭣이라고 해야 옳을까?

조주 스님 겉은 고불(古佛), 조주 스님 겉은 그런 평생 참, 도학자.

천하에 고불(古佛)이라고 했으니까. 또 그 일생 평생, 학자 가르치는 그 도학자.

 

조주 스님께서, 도를 가서 물으면은 "다(茶) 한잔 먹고 가거라!"

그 세상에, 원! 도가 어찌 그럴까?

 

"다 한잔, 차 한잔 먹고 가거라!" 이거 원, 당최 이건, 그뿐이여.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이다. 바람 그놈이 냅대 불다가 바람 딱! 근치고 고요헌디, 다맛 그 바람 분 뒤에는 그 꽃 피었다가 꽃 뚝뚝 떨어져 버렸다. 꽃 떨어진 소식이다.

바람은 정(定)했는디, 근쳤는디 낙화는 턱 모두 떨어졌구나.

 

조제산갱유(鳥啼山更幽)니라. 꽃 속에 돌아댕기면서 노는 새는 거, 한참 풍정(風定) 속에서 꽃 떨어진 속에서 울다가 소리는 근쳤는디, 새소리는 근쳤는디 산골짜기는 더욱 유유(幽幽)허다. 깊숙하구나.

 

도학자의 경계를 그대로 말해 논 것이여.

 

 

합천 해인사에 들어가서 인자 그렇게...

어쩔 수가 있나? 뭐 이 몸은 병이 들면 나수어야 하제, 병이 들어도 그만 그저 '병들면 죽제 별수 있나'하고는 아, 그만 죽어버리면 될 건가?

아무리 병이 들었드래도 그 병을 나수아서 도를 닦어야 허는 것이제.

 

대체 우리가 이 몸뚱이만 하나 얻어 가지고는 도 닦지 않고 아무리 잘 멕여 살리고, 아무리 별짓을 다 헌들 그 무슨 소용이 있어야지. 뭣 헐 건가?

그건 '돼지'매니로 살만 잔뜩 쪄 가지고는 시은(施恩)만 잔뜩 졌기 따문에 "옜시오" 허고 받치는 것 뿐이제, 뭐 그놈이 잔뜩 준 대로, 갖다주는 대로 양껏 퍼먹고 살은 그뜩 쪘다마는 목숨으로 갚는다.

 

우리가 이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 나와서 아무리 복이 있다 하지마는, 복이 있어서 부자가 된다 하지마는, 그것이 다 생각해 보면은 시은(施恩)이여.

남의 은혜를 막중허게 짓고, 남의 것 갖다가 모도 쌓아 놓고 그래 부자가 된 것이제.

 

돼지란 놈, 잔뜩 갖다 거두어다가 몽땅 모도 그만 갖다가 멕여 살리고 헌 것이 부귀, 그 위에 더 부귀가 있겄는가?

설찬히 참, 부귀다마는, 그놈 살 찌워 가지고는 빚 갚는다. 똥똥 쪄서 그 모가지가 그만 지둥만큼 해 가지고는 살 퍼쪄 가지고는 "옜시오" 허고 갖다 갚는 것이니.

 

우리는 무슨 복이 있다 하지마는, 우리의 복으로써서 갖다주는 대로 처모아 놓고 먹지도 다 쓰지도 못허고 그 빚을 갚는데, 돼지 몸뚱이로 갚는 것보담도 백배 천배다. 안 갚아?

 

허니, 아무리 살 찌워서 복을 받아 아무리 잘살고 이것이 인생의 이 몸뚱이 받은 목적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그거 참, 거 아무것도 아니제, 뭐여 그녀러 것!

돼지 일생이요, 잠충지일생(蠶蟲之一生)이다. 누에란 놈이 뽕 그놈 자꾸, 그놈 뽕나무 길러 키워서 그 잎새기 따다 가서 그놈 밥 자꾸자꾸 주면은 잔뜩 놀고 퍼먹어 똥똥 살찌면은 그 은혜, 뱃속 창자 빼서 아, 그놈 모도 그놈으로 갚는다.

 

그놈 다 갚기 마련이고, 그 몸뚱이는 오그라져—속에 창자를 다 빼내놨으니, 먹은 대로 다 기어 내놨으니 오그라지제 별수 있나?

비틀어져 죽게 척 되면은 그놈 또 갖다 가서 푹푹 화탕(火湯)에다 삶아서 고기까장 먹는구나.

 

우리 인생의 일생은 누에와 다를 것이 뭣이 있어?

가만히 앉어서 우리가 이렇게 먹게 되고, 갖다주니까 좋고 퍼먹고 그럭저럭 일생을 보내는 거! 참으로 무섭구나.

 

돼지에다가 비유허고 누에에다가 비유허니 그 비유가 좀 천박헌듯 하지마는, 틀림없지!

사람은 거그에서 더 나을 게 뭔가?

 

도(道) 없이, 도를 닦지 않고, 도 없이 주는 대로 퍼먹고, 해 준 대로 퍼입고, 그럭저럭 그럭저럭 이 일생을 지내는 우리 인생의 일생사, 거 참, 대단하다. 보통 일이 아니니라.

 

이까짓 몸뚱이, 눈 한번 턱 쳐다보다가 내려다보다가 죽는 것인디, 그렇게도 허망하고 무상한 것인데, 거그서 이렇게도 그만 한만(閑漫)허게 천생 만겁을 살 줄 알고, 애착하고, 놀고, 허송세월(虛送歲月), 허생낭사(虛生浪死), 세월은몰(歲月隱沒) 될까 보냐.

 

그저 어쨌튼지 그놈을 먹드래도 입드래도, 갖다주는 대로 시주것을 먹드래도 참말로 값있이 먹고, 이 몸뚱이 안 멕여 주면 죽을 터이니까, 안 입혀 주면은 헐 수가 없으니, 진독(進毒)을 여살[如箭]이다마는.

그 갖다주는 밥, 해 주는 옷, 그놈 먹고 하루하루 살아 나간다는 것이 여진독(如進毒)이로구나. 독(毒)에 나가는 것이다.

독(毒)이라 하는 것은 독약(毒藥)을 먹고 죽는 데 나간다 그말이여. 여진독(如進毒)이다. 죽으러 나가는 길.

 

그 무수(無數) 은혜가 거기에 그뜩 차가지고는 독에 나가, 독약을 먹고 죽은 후에는 일이 없나?

그 독이라는 것은 한량이 없다. 이 몸도 죽지마는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나 들어가서 그놈의 독을 받을 때 그 지옥고를 받을 때, 아귀취(餓鬼趣)에 가서 그 또 아귀고를 받을 때, 축생취(畜生趣)에 들어가서 축생죄를 받을 때, 어떠허냐?

 

몇천 생(生), 만 생의 미래의 그놈의 고(苦)가 이 몸뚱이 하나로서 지어 가지고는 다 받들 못허느니라.

 

허니, 이렇게 앉어서, 이렇게 한가헌 디 앉어서 농부의 피땀을 그대로 마시고, 직녀(織女)의 고(苦)를, 베 짜는 여인네의 모도 그 시은(施恩)을 그대로 덮어 모도 몸뚱이 두루고 있는 것은 목적이 있다.

그놈을 받아 먹고 그놈을 받아 입고 어쩠턴지 도업(道業)을 이뤄야 한다. 위성도업(爲成道業)한다.

꼭 내가 나를 깨달기를 그것을 한번 원력(願力) 세우고 용맹 신심(信心)을 가지고는 정진을 해야 허느니라.

 

 

그 내가 '이뭣고?'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요놈 한번 들 때, 한번 한번 들 때,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 한번만 거각(擧却)하고, 한번만 들 때라도, 백억 천만 겁(劫) 중의 지은 죄업(罪業)이라도 거그 와서는 다 녹는다.

 

불, 불한테는 일체 냉기와 일체 초목이 안 탈 수 없고, 이 화두(話頭)에 와서는 중생의 일체 죄업이 안 없어질 수가 없다.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요놈 하나 꼭! 거각해라. 다시는 없다!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그 의심이 꽉, 알 수가 없는 놈이 하나가 거기에 꽉 맥힌 것이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중생 죄업 따문에 그게 맥힌 것이다.

 

그 중생 죄업이란 놈이 그놈이 그 안 맥힐 수가 없어.

중생 죄업이 없다면은 그게 왜 (안) 맥혀? 왜 그것이 안 보일 이치가 있고, 왜 (안) 맥혀?

 

그놈이 단지 무엇이냐?

내 눈깔을 내가—내 눈깔, 내 본래 눈깔,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내가 보지 못했기 따문에, 내가 나를 알지 못했기 따문에, 그 아지 못헌 관(關)이여.

 

그놈이 왜 맥히느냐?

 

착! 신심(信心)만 한번 일으켜라. 용맹심(勇猛心)을 한번 내라! 용맹심 없이는 된 법이 없다!

 

불문치소(不問緇素)허고—중이고, 무슨 뭐 속인(俗人)이고, 무슨 뭐 그 늙은 사람이고, 젊은 사람이고 무슨... 소용없어. 글 잘헌 사람이고, 글 못헌 사람이고 그것도 소용없어.

 

단지, 요개일개신자(要箇一個信字)니라. 다맛 신심 하나 가질 것이니라. 꽉 믿는 마음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이 정법문중에서 첫째에 들어오는 법이 신(信)이다. 믿는 법.

 

'신(信)'자, 믿는 법이 아니면은 소용없어. 안 믿고야 어떻게 헐 것인가?

꼭 신심, 믿는 마음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꽉! 믿어 가지고는 거기에는 보면은, 믿어 가지고 보면은 분심(憤心)이 안 날 수가 있나?

 

원 세상에 말이여!

어째 제가 저를 모르다니? 어째 내가 나를 모르다니?

그것이 응, 그 무슨 혹이냔 말이여.

 

왜 몰라?

아조 모르는 법 같으면 말헐 이치가 있는가? 무슨 참선법을 말해 놨겠어?

 

결단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허는 법이 있고. 내가 내 낯반대기,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는 법이 있기 따문에 부처님으로부터서 이렇게 주욱 전통해 내려왔는데, 어째 없을 것인가. 꼭! 있지.

 

왜 그런데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이며, 못허는 원인이 무엇이며, 왜 이렇게 깨달지 못허고 미(迷)해서 오는 원인이 무엇인가?

믿지 못헌 연고니라.

 

어찌 내가 나 찾는 법을 믿지 않어? 왜 또 믿지 못해?

좀 생각해 봐, 여그 대해서.

 

나를 턱! 깨달는 법을 믿었느니, 거기에 '왜 나는 여태까지 못 깨달랐나?' 이러헌 분심이 턱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으니, 어째서 그런 분헌 마음이 나는데, 화두가 의심(疑心)이 안 날 이치가 있는가?

 

'의심 안 난다. 화두가 안 된다'

무슨 짓이여? 그 무슨 말이여?

 

안 된 법이 있어?

 

거 멀쩡헌 소리여. '의심이 안 난다, 안 된다'

왜 안 될까? 의심이 뭔디?

 

의심이 알 수 없는 것인데, 왜 의심이 안 되냔 말이여? 어째?

 

신심 처억! 그런 신심이 한번 믿어져 가지고는, 그만 분심이 한번 일어나 가지고는 화두가 독로(獨露)허면은, 알 수 없는 의심이 턱 독로해 버리면은 그 학자는 선학자(禪學者)인디, 그 선학자는 무슨 죄업이 있나? 죄업이 설사 있다헌들 거그 와서 무슨 보(報)를 받을 것인가.

 

일체죄업(一切罪業)이 구타부득(拘他不得)이니라. 일체 죄업이 거그는 떨어질 수가 없고, 거그는 와서 붙을 수가 없느니라.

 

그 다 거짓 말씀이여? 고인(古人)들이 거짓 말씀이여?

 

다른, 다른 윤회법에 가서는 인과법에, 윤회법에 가서는 죄복(罪福)이 순환이니깐 지은 대로 받고 과보가 돌고 자꾸자꾸 내게 엉켰다가 떨어지기도 허고, 복 많이 지으면 복 받고, 다 받아 버리면 타락허고 이것이 분명히 있다마는, 제천(諸天) 윤회도 허고 임금도 천자도 되고 별짓 다 헌다마는,

당장 내가 내, 내를 내가 툭! 깨달라 내가 나를 믿어 버린 거기에 가서는 죄복이 붙들 못혀. 윤회가 거그는 붙들 못혀.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은, 대오를 않드래도 발써 화두를 턱 추켜 들고 경절문(徑截門)으로 바로 들어가는디, 일체 방편문(方便門)에 떨어지지 않는데...(처음~19분44초)

 

 

 

 

(2)------------------

 

부처님이 뭐라고 말씀했나? 뭐라고 했어?

아, 진리는 영존(永存)헌디—진리는 영원히 그대로 갖춰져 있는디, 부작방편(不作方便)이여. 거그는 방편이 없어. 왜 방편에 떨어져 가지고...

 

부처님께서 바로 척! 깨달라 가지고서는,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널리 일체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의 지혜의 덕상이 그대로 갖춰져있다.

아, 나만 생사 없는 해탈대도를 깨달은 줄 알았더니 아, 느그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로구나. 똑같이 여래의 지혜덕상이, 나와 같은 생사 없는 해탈대도가 아! 그대로 있구나.

 

나는 선각자(先覺者)다. 먼첨 깨달은 각자(覺者)로구나. 아 느그는 깨달으면 내 뒤에 깨달은 사람이로구나.

유차제(有次第)로구나. 차제가 있구나. 나는 먼첨 깨달랐고, 느그는 뒤에 깨달을 것이로구나. 하! 이렇게.

 

그래 가지고는 부작방편(不作方便)이요 이(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인 줄 아는 것은—환화(幻花), 환인 줄 아는 것은, 그만 거기에는 떨어져 버렸어. 붙들 못혀.

 

환(幻)이라는 것이 모도 중생 생로병사(生老病死)니, 생로병사 그 그놈을 가지고는 그만 생사고(生死苦)를 받는 것이 그것이 본래 환(幻)인데, 눈병 난 놈이 공중을 쳐다볼 것 같으면 공중에 꽃이여. 거가 버글버글 피어서 야단이다. 햇빛 광선에 보면은.

 

눈뜬, 눈병 없는 사람이 보면은 무슨 그런 꽃이 있나? 눈꽃[空眼花]이 어디 있어?

같애서 우리 중생의 생로병사라든지, 이와 같이 모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든지, 십악(十惡) · 오역죄(五逆罪)라든지, 그 퍼짓는 전체가 오인분상(悟人分上)에는 없어. 날 깨달라 버리면 없어.

 

해 툭! 떠올라 올 것 같으면, 고일(杲日)이 장공(長空)에 무소부지(無所不至)여.

햇빛이 저 공(空)에 척! 나와서 어디 가서 뭔, 뭐 어둠살이 어디 끼여 있으며 컴컴헌 게 어디 있나. 환헌 무소부조(無所不照), 무소불요(無所不耀)인디.

 

아, 이렇게 깨달라 버리는 것, 일체 죄업이 그렇게도 자최도 없고 본래 덩어리가 없는데.

아, 이녀러 중생이라는 게 환(幻) 해서, 환이 그대로가 중생 살림이다. 허퍼 놓은 망상(妄想) 그놈이 그대로 일어나서 죄업이다.

 

그 진리는 영존헌 놈, 그놈, 내가 나 본래 갖촤아져 있는—제불(諸佛)이나 내나, 부처님이나 내나 똑같은 그 각을, 그 본각(本覺)을 그대로 떠억 봐 버려. 그대로 찾아 버려.

 

어디, 그 어디 숨어 있나, 찾게?

어디 숨었어야제. 하나도 숨지 안 했는데.

 

거기에 무슨 치소(緇素)가, 속인이면 속인은 못허고 중은 허며, 뭐 그럴 꺼여?

남녀도 없고, 노소도 없고, 그대로 깨달라 버릴 뿐이여.

 

허어! 내가 이렇게 기운이 모자라서 당최 설법허자면은 힘이 그렇게 들고...

오늘은 여까지만 좀 해 두고 쉬어야겄구만.

 

 

저 '내 법은 정(正)이고, 거기에서 듣는 건 사(邪)다' 내 그런 말이 아니여.

자신이, 그 본인이 들어보면 그대로 판단 나는 것이여.

 

그러고 또 거기에서 판단도 나지마는, 지인(智人)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여.

그 판단력, 판단력이, 판단허는 것이 그 상근대지(上根大智)요, 지인(智人)이거든.

 

안 헐 수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알고야 어찌 안 헐 수가 있는 건가?

알고 어찌 사굴(邪窟)에 빠지며, 알고 어찌 환주장엄(幻住莊嚴) 속에서 중생견(衆生見)을 버리지 못허고 역겁다생(歷劫多生)을 죄업을 받을 것인가?

 

그 일초지간에,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일향지간(一餉之間)에 나 하나 척! 깨달라 잡아, 나 하나 깨달라 증득해 버릴 것 같으면은 무엇이여 거기에 무슨 뭐,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인디.

한번 뛰어서 여래지(如來地)에 올라가 버리며, 아! 그만 중생성불(衆生成佛)이 찰나간(刹那間)인데, 어디 가서... 그 지혜인 아니고 무엇이여.

 

 

내가 해인사 들어와서, 그 숭악헌 병고(病苦)를 여의기 위해서 한바탕 그렇게 변장을 허고, 머리를 길루어 버리고 그만 그렇게 얻어먹고 댕기다가 들어와서,

다른 데 가서 얻어먹고, 다른 데 가서 그렇게 했으면은 무슨 그런 말 저런 말이 안 났을 터인데, 뭐 나 내가 이 병 낫우어서...

 

다 그만 헐라고 해 놓고 또 연속허는구만. 또 그것도 뭐 헐 수가 없는 거제.

 

그러헌 병이 들어가지고 그 같은 놈의 거, 내가 병들어 죽게 되았으니 그거 뭐, 병 낫을라고 헐 것이 무엇이 있느냐.

목구녁에서 피는 간 겉은 놈이 넘어오고 비린내가 나서 당최 견딜 수가 없고, 속이 미슥거려 나중에는 살 수가 없고.

 

'야, 내가 이 병이라도, 이런 병이라도 나수어 가지고 도를 닦아야제, 내가 이런 병들었으니 그까짓 할 수 없다고 그대로 죽음을 기달라? 그대로 죽어 버려?'

 

무수(無數) 그 방편을 한번 내가 부려서, 무수방편(無數方便)이 개위차야(皆爲此也)로구나. 갓없는 한없는 방편이 <도 닦기 위해서 이 몸뚱이 나수는 것이 방편이로구나!> 해 가지고는 한바탕 자연치료를 해야 한다. 백용남이가 그래 해 주어. 큰 병원 의사인디.

 

자연치료는 어떤 게 자연치료냐?

마음대로 해라. 춤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웃고 싶으면 웃고, 앉었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일어 났다 앉고 싶으면 앉고, 네 마음대로 해라.

 

헌디, 강산임수(江山臨水), 강산에 임수를 마음대로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그게 자연치료니, 허고 싶은대로만 허라는 것이여. 내 마음에 맞는 대로만 허라는 것이여.

 

술도 먹고 싶으면 먹고, 그러나 그 가운데에 또 영양을 취해야 하니, 영양 섭취를 해야 하니 고기 같은 걸 좀 많이 먹으라고, 고기를 먹되 육물(肉物)은 재미없고.

시방 원청 신체가 저렇게 되았으니 바닷가에나 이런 데 가서 그 해어(海魚)를 많이 먹고, 문어 전복을 많이 먹으면은 피를 많이 얻게 되고, 그래 좋다고 이런 말이 있고.

 

누가, 그러나 내가 어디 무슨 뭐 바닷가에 가서 어떻게 그놈 얻어먹는다고, 어디가 그 적당치 못헌 곳에 어척헐 수 있나? 닥치는 대로 헐 수 밖에 없제.

 

그렇게 빌어먹고 댕기기를 약, 그저 세월심(歲月深)으로 허다가 해인사, 하필 내 중 된 해인사 들어와서 스님도 있고, 아, 모도 이런 석덕대덕(碩德大德)이, 나 가르킨 스님도 있고 헌 거그를 들어와서,

또 친고(親故) 집에, 친고가 홍도여관을 허는데, 이동수라고 허는데, 아, 거그 들어와서 그냥 그만 들입대 생긴대로 먹고, 그저 술도 생기면 먹고, 그저 손님네가 올 것 같으면 심부름 해 주고, 괴기 남으면 그놈 얼른 그놈 막 때려 처먹고, 더럽게 입 발라 냉겨 놓은 놈 그런 것은 먹기가 안되아 씻거가지고 내가 다시 거다 양념 붓어서 끓여 가지고 먹었구만. 그놈 먹고.

 

그만 '무행(無行)한다' 그 무행이라는 건 세상에, 아 막 헌게 어쩔 것이여? 아무데라도 가야 얻어먹지.

 

거 모도 인자 젊은 친고, 같이 중된 사람들이 아, 그 중노릇 잘헌 사람들, 스님 밑에서 돈도 많고 그런 사람들이 모도 자최바위 거리에 가서, 그 해인사로 말허면 십리동천(十里洞川)이 한국에 제일입니다.

어떻게 그 밀림도 훌륭허고, 그 몇백 년 역사를 가진 냉기가 이리저리 척 고목이 되아 가지고 모도 그 사이에는 송간(松間) 사이에는 길도 좋고.

 

사이사이, 거! 거 젊은—옛날 샛조개라고 그려. 그걸 샛조개라고.

젊은 여자 한 20여 살, 스물 대여섯 살, 그러헌 여자가 술단지 다 끌어안고 앉었네! 좋은 찹쌀막걸리를 빚어 놓고, 그 좋은 안주를 모도 장만해 놓고는 사이사이에 앉었단 말이여.

 

하, 이것! 거기에 모도 그 젊은 청년들, 내 어릴 때 같이 중 된 사람들이 모도 사는 사람 내려가서 저녁때 쯤 되면 한잔씩 먹고는 춤도 추고 놀면은 아, 그런 데 뛰어들어가야 얻어먹제, 아무것도 없는 내가 얻어먹을 수가 있어야제. 그런게 불가불 그런 데 가서 놀고.

 

'아, 정영신(鄭永信)이 견성했다는 사람이 들어와서는 홍도여관에서 뽀이질을 허고. 그 친고 여관이지마는 거기서 뽀이질을 헌다'고.

뭐, 내가 능히 허제. 내가 뽀이질 허고 얻어먹었제, 내가 즈그 뭐 친고(親故)니까 해 준 대로 폭폭 먹고 안 했어!

 

절대 내가 뽀이질 막 허니깐, 풀빵도 갖다 주고, 이것도 갖다 주고, 그저 심부름도 해주고, 다 했거든. 뭐, 내가 안 헐 이치 없어.

몸뚱이가 죽게 되면 몰라 그러허되, 아직까장 몸뚱이 붙어 있으니까, 주욱 다 해 주니까 즈그들도 좋았제, 뭐 어쩌?

암만 친고(親故)기로이 내가 그렇게 해 주니까—그럼 제가 가만히 앉어 내가 들어와서 무슨 뭐 견성했다고 와서 얻어먹으면 될 것이여?

 

다 그렇게 해 주고 그러고 있는데, 마침... 또 나온다! 또 나와.

 

아, 마침 최남선 씨허고 박한영 스님허고 둘이 왔네. 그 최남선 씨, 박한영 스님은 어떤 이인고?

최남선이는 한국 팔대문장에, 팔대문사(文士)에 최고거든. 역사에 최남선이요, 그때 당시의 철학에는 오상순이요, 다 문사가 달라. 한학에 정인보요, 소설에 이광수요, 다 그렇지 않어? 소설 이광수.

그 다음에 시에는 백기만이, 이상화, 유엽이, 시방 유엽이는 대전에 있소. 그 내 유엽이도 내가 끌고 들어와 내가 중 맨들았구만.

 

문장(文章)도, 문사도 여러 가지지마는 최남선이로 말허면은 독보(獨步)여, 그 가운데에도.

또 우리 절 집안에 강사로는 한용운(박한영) 이상 없어. 그 두 분이 척 왔네.

 

두 분한테 심바람을, 내가 '옳다! 최남선이허고, 박한영이허고 둘이 왔구나'

에라, 이놈, 내가 한바탕 방도 닦아 주고, 머리를 길찍헌 놈을 이리 척 걷어 넹기고 그저 수건을 턱 자루고는, 아주 뽀이처럼 착 나투고는 그 술방도 갖다 주고, 척척척척 심부름 다 해 주고 속 쓸어 주고는, 물 떠오라고 허면 물 떠다 주고, 다 해 놓고는 앞에 척 나가서, "하! 참, 말씀은 우뢰같이 듣고 여그서 뵙습니다"

 

"아이고, 웬 사람?"

"나는 홍도여관에 뽀이입니다"

 

"그러면 어찌 뭔 말을 그렇게 너무 그리 들었는가?"

"예, 들어서 참, 많이 모셨습니다" 말도 참, 한마디 한마디가 퍽 존대스럽게 허제.

 

"그 어디.....?" 내 주소는 어디?

"네, 야로에 있습니다"

그, 요 밑에 야로란 말여. 고 밑에 야로, 동네에 있다 그말여. 머리를 기뤘은게 모르제.

 

"야로에 있는데, 여기 와서 그저 이렇게 뽀이질을 허고 있습니다"

"그러냐"고.

 

해 가지고 그만 그러고는 말도 반거지로 삐닥허니, 어린 나이도 젊기도 허지마는 반거지로 허제, 그 뭐 뽀이를 누가 이해해주리라고? 나도 그렇게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제가 여그 이 뽀이로 많이 있으니까, 합천 해인사에 들어온 문장도 많이 계시고 허지마는, 다 듣기도 허고 큰스님네 법당에서 대웅전에서 설법허면은 내가 설법도 많이 듣고, 여그에 큰 강사 스님이 이만저만 많이 있어서 법문을 많이 들었습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제일가신 한용운(박한영) 큰스님이 오셨고, 또 우리나라에 제일 크신, 제일 거룩헌 문장 최남선 선생님이 오셨으니, 아, 내가 여기에서 의심난 바를 하나 물어야겄습니다"

"응! 물으라고"

 

"화엄경에..." 법문 또 묻는구만.

저번에 안 했제? 그 헐라면 다 헐라면 한정이 없으니깐 다는 못허고.

 

"화엄경에, <약인(若人)이 욕료지(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인댄, 만약 사람이 삼세일체불을 알고저 할진댄,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뻑뻑이 법계성을 보아라.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니라. 일체가 다 마음으로 지었느니라> 이랬으니, 천하에 도무지, 산하대지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이며, 세상에는 다 마음이 짓는다고 했습니다.

하날도 마음이 짓고, 땅도 마음이 짓고, 우주만물,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개시(皆是) 마음으로 지었다 했으니, 마음이 그렇게 다 창조 주인공인데 그 마음은 그건 누가 지었습니까?

그 의심이 나서, 마음은 낱낱이 다 우리 우주인류가 다 가지고 있는 마음인데, 그 마음으로써 모도 지었다 했으니, 마음은 필경 누가 지었습니까? 그 마음 지은 주인공을 좀... 마음은 일체를 다 지었거니와, 마음은 누가 지어 주셨습니까? 그 하나 일러 주십시요"

 

대답헐 수가 있나? 응. 참, 쉽지 못하제.

대답을 못혀.

 

대답 못허는 곳을 향해서 내가 점검을 했네. 응.

 

"여기에 대답을 못허신다면은 내가 불가불 점검을 하나 해야겄습니다"

"점검을 하나 허라"고.

 

여그서 끊쳐. 그만 끊쳐. (19분46초~37분35초) (일대기 14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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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납자평생사(衲子平生事) 팽다헌조주(烹茶獻趙州)'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도운선자(道雲禪子)' 참고.

*(게송)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 조제산갱유(鳥啼山更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고의(古意)' 참고.

*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끽다(喫茶) ;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411칙. '끽다(喫茶)' (혜심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73~174.

趙州問僧 曾到此閒否 僧雲曾到 師云喫茶去 又問僧 曾到此閒否 僧雲不曾到 師云喫茶去 院主問 爲什麼 曾到也敎伊喫茶去 不曾到也敎伊喫茶去 師召院主 主應喏 師云喫茶去

 

조주(趙州)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왔던 일이 있는가?"

스님이 말하였다. "왔었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마셔라"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일찍이 이곳에 왔던 일이 있는가?"

스님이 말하였다. "왔던 일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마셔라"

 

이에 원주(院主)가 물었다. "어찌하여 일찍이 왔었다고 한 이에게도 차를 마시라 하고, 온 적이 없다고 하는 이에게도 차를 마시라 하십니까?"

 

선사가 불렀다. "원주야"

원주가 대답하거늘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마셔라"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유유하다(幽幽-- 그윽하다·깊다·고요하다 유) ; 깊고 그윽하다.

*매니로(맨치로, 맹키로, 멩키로, 맨키로, 맹이로) ; '처럼', '같이'의 사투리.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옜시오(옜소, 옛소) ;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면서 하는 말. 하오할 자리에 쓴다.

*하오하다 ; 하오체(--體)의 말씨를 쓰다.

*하오체(--體) ; 상대 높임법의 하나. 상대편을 보통으로 높이는 종결형의 말체로, 현대 국어의 구어(口語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먼저 가오' '빨리 인도로 나오시오', '왜 꾸물거리시오?' 따위이다.

*설찬히(솔찬이, 솔찬히) ;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잠충지일생(蠶蟲之一生)이다. 누에란 놈이 뽕 그놈 자꾸, 그놈 뽕나무 길러 키워서 그 잎새기 따다 가서 그놈 밥 자꾸자꾸 주면은 잔뜩 놀고 퍼먹어 똥똥 살찌면은 그 은혜, 뱃속 창자 빼서 아, 그놈 모도 그놈으로 갚는다.

그놈 다 갚기 마련이고, 그 몸뚱이는 오그라져—속에 창자를 다 빼내놨으니, 먹은 대로 다 기어 내놨으니 오그라지제 별수 있나? 비틀어져 죽게 척 되면은 그놈 또 갖다 가서 푹푹 화탕(火湯)에다 삶아서 고기까장 먹는구나' ; 아래 유튜브 영상에는 누에가 뽕잎을 먹고 번데기로 변할 때 실을 토하여 제 몸 바깥둘레를 둘러싸 만든 일종의 집인 타원형의 고치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누에고치로 실을 뽑고 명주(비단)를 짜기까지의 직녀(織女)의 고된 노동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한만하다(閑漫-- 한가할 한/가득차다·넘치다 만) ; 한가함[閑]이 가득하다[漫]. 매우 한가하고 느긋하다.

*허송세월(虛送歲月 공허할 허/보낼 송/해·1년 세/달 월) ; 하는 일 없이 세월(歲月)을 헛되이[虛] 보냄[送]. 또는 그 세월.

*허생낭사(虛生浪死 헛될 허/삶 생/유랑할 낭/죽음 사) ; 삶을 헛되이 하여 죽음에 유랑(流浪)하다.

*은몰(隱沒) ; 자취를 감춤. 또는 흩어져 없어짐.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 ;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한역어로는 '무간'이다. 그러므로 '무간아비'는 동어반복 형태의 용어이고, 보통 무간지옥, 아비지옥이라고 한다.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아귀취(餓鬼趣) ; 아귀도(餓鬼道).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용맹심(勇猛心) ; 두려움 없이 용감하며 기운차고 씩씩한 맹렬한 마음.

*속인(俗人 속인·평범하다·대중적이다 속/사람 인) ; ①세속(世俗)의 사람[人]. ②불가(佛家)에서 스님이 아닌 일반 사람을 이르는 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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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 ;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

[참고 ❶]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 지유선사 역)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 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 마음만 알면 항하(恒河)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법문(法門)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않더라도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환(幻)과 같은 변화가 모두 여래의 원각(圓覺)의 묘심(妙心)에서 났다’고 하시니, 이러므로 알라 이 마음을 여의고는 부처를 이룰 수 없도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도 다만 마음을 밝히신 분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도 역시 마음을 닦으신 분이며, 미래에 닦는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에 의지하는 것이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밖으로 구하지 말지어다. 심성(心性)은 물들은 데가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허망(虛妄)한 인연(因緣)에 생각이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인 것이다.

 

[참고 ❷]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八十華嚴)』 (실차난타 역 實叉難陀 譯 | 이운허 번역) 第51卷 ‘37. 여래출현품 ②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二’

 

如來以無障碍淸淨智眼 普觀法界一切衆生而作是言 奇哉 奇哉 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慧 愚痴迷惑 不知不見 我當敎以聖道 令其永離妄想執著 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 卽敎彼衆生修習聖道 令離妄想 離妄想已 證得如來無量智慧 利益安樂一切衆生

 

여래께서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 눈으로 법계의 모든 중생을 두루 관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다.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그리고 곧 저 중생들로 하여금 성인의 도를 닦아서 허망한 생각을 여의게 하며, 허망한 생각을 여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하여 안락케 합니다.

 

[참고 ❸]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六十華嚴)』 (불타발타라 역 佛馱跋陀羅 譯 | 이운허 번역) 第35卷 ‘32. 보왕여래성기품 ③ 寶王如來性起品 第三十二之三’

 

如來以無障碍淸淨天眼觀察一切衆生 觀已 作如是言 奇哉 奇哉 云何如來具足智慧在於身中而不知見 我當敎彼衆生覺悟聖道 悉令永離妄想顚倒垢縛 具見如來智慧在其身內 與佛無異 如來卽時敎彼衆生修八聖道 捨離虛妄顚倒 離顚倒已 具如來智 與如來等 饒益衆生

 

여래께서는 걸림없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일체 중생을 관찰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구나. 여래의 원만한 지혜가 그 몸속에 구족해 있는데 그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나는 저 중생들로 하여금 거룩한 도를 깨달아 망상과 착각의 속박을 아주 떠나고, 그 몸속에 있는 여래 지혜가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완전히 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여래께서는 곧 중생들을 가르쳐 팔성도(八聖道)를 닦아 허망한 착각을 아주 버리게 하고는 여래와 평등한 여래의 지혜를 갖추게 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합니다.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7~88. (가로판 p91~92)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幻城]이라. 세계는 환의 옷[幻衣]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幻食]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覺心]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瘡病)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부동지(不動地) : 마음 바탕(心地)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쳐서, 한없이 밝고 두렷이 고요한 곳에 머물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고, 온갖 주체와 대상이 끊어진 경지를 말함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 생각)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 생각)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무소부지(無所不至 없을 무/곳 소/아닐 부/이를 지) ; 이르지[至] 않는[不] 데[所]가 없음[無].

*어둠살 ; 어두운 기미. 어두운 기운.

*무소부조(無所不照) ; 비추지[照] 않는[不] 곳[所]이 없음[無].

*허프다 ; '헤프다(말이나 행동 따위가 삼가거나 아끼는 데가 없이 마구 하는 듯하다)'의 사투리.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치소(緇素 검다·검게 물들다·검은빛·검은 옷·스님·승복僧服 치/희다·질박하다 소) ; ①검은 옷과 흰옷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스님과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환주장엄(幻住莊嚴) ; 실제가 아닌 방편의 장엄.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중생견(衆生見) ; 중생의 번뇌에 얽매여 전도몽상(顚倒夢想 :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한 잘못된 견해.

*일향지간(一餉之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가다·이를 지/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무행(無行 없다·~하지 않다 무/행하다·계행·행실 행) ; 계행(戒行)이 없다[無]. 계를 지키지 않는 것. 또는 수행(修行)을 하지 않다[無].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4. 29. 19:46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3호) 자연적이냐 천연적이냐.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 (68분)

 

(1/4) 약 18분.

 

(2/4) 약 18분.

 

(3/4) 약 17분.

 

(4/4) 약 15분.

 

(1/4)----------------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허고  와각공명기염정(蝸角功名豈染情)이냐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이요  와청산조일만성(臥聽山鳥一萬聲)가

나무~아미타불~

 

천하에 부귀와 영화와 인생의 향락을 쏴악 벗어 버리고 우리 출가 학자들, 도학자(道學者)들, 이렇게 와서 앉어서 도를 닦고 지낸단 말여.

지끔 세상 뒤끓는 것 보면 굉장해. 그렇게 모도 높은 인물들, 그 잘난 인물들 엊저녁에, 어제저녁에 모도 또 다시—제 몇 대인가? 4대인가, 원 5대인가? 국회의원들, 한국 국회의원들 명단 발표허는데 굉장햐.

 

그런 모도 그, 그 얼마나 출세 모두 인물들인데, 그런 인물들이 그렇게 훌륭허고 참 높은 지위에—헌디, 어째 그 최상 인물들인디, 그렇게나 반성헐 줄을 모를까?

반성헐 줄을 모르니깐... 그렇지마는 세상은 또 그렇게 해야 될 터이지마는, 그렇게 허는...

 

발심(發心)을 해서 도 닦는 그것은 그건 물론 해야 헐 턴디. 아, 그거 허면서도 못헐 까닭이 뭐 있나.

국회의원도 헐 수 있고 대통령도 헐 수 있고, 뭐 별것 다 헐 수 있제.

 

아, 그러면은 그만 그, 그 나라 그 정치가 큰, 무슨 말로 헐 수 없는 부처님의 정치라고 헐 수가 있는데.

왼통 그 가운데에서 그 부귀 · 권리 · 투쟁 · 쟁탈, 그 굉장허다 그말이제.

 

그저 그 그만 어째 그렇게도 지금은 그렇게 그저 무슨 그 사고가 그렇게 많이 있어.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이 죽는고.

사람이 많이 나와 그러나 원! 그렇게 죽는 것 밖에 없단 말이여.

 

이렇게 참, 뒤끓는 세상에 우리 출가 도인(道人)들, 집에 뛰어나서 이 도인들,

이렇게 와서 모아서 이 결제, 삼동결제(三冬結制)허고 도 닦는, 이 참 얼매나 경행(慶幸)허다고 헐 것인가, 만행(萬幸)허다고 헐 것인가, 다행(多幸)허다고 헐 것인가.

 

이런 가운데에서 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허고, 그만 그럭저럭 이 대자연 한가헌 부처님의 그 품속에서 춘일 화창헌디, 춘일(春日)은 쾌청(快晴)헌디 수면만 잠이나 자고, 그럭저럭 허송허고.

 

와청산간(臥聽山間)에 백만성(百萬聲)이다. 저 산속에 일백, 일만 새소리나 그놈이나 듣고, 그럭저럭 허송하다가 은몰(隱沒) 차시 해 버리면, 그래도 이만헌 기회 얻어 나와서, 이, 이때 만약에 그럭저럭 지내다가 이 세상 떨쳐 버리면은 앞에 부닥쳐 온 세상은 어떠헌 세상이 올런지 가만히 생각헐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

 

그 뒤집어지고 야단치고, 그 또 인자 그 김대중씨 뭣 했다고, 운동했다고 또 인자 입건되고 뭣 되고 정치, 그 이리저리 그 참 꿈적도 못허겄드구만. 그것 또 무슨 국회의원 30명인가 다시 뽑아서 어쩌고 야단치고.

이러헌 속에서 우리는 썩 비껴 나와서 이렇게 참, 도 닦고 앉었으니 참 한바탕 닦어야 헐 것이여.

 

암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이 몸 바꾸아 다시 오면은 이 세상은 또 어떻게 될런지 모르겄어. 곧 그저 그만 점점 앞으로 변해 나가니까.

 

그러고 지금은... 그전에는 그저 우리 조선이면 조선이요, 한국이면 한국 울타리 속에서, 저 밖에 다른 나라에는 어찌 되든 말든 모르고 이렇게 살아 왔으니 뭐 어쩌.

지금은 세계가 그만 서로 그 맨 그저 싸움 싸울 준비, 그저 무슨 수소탄이니, 무슨 별별 그 원자탄이니 이런 것 만들어 가지고는 전부 이러고 있다.

 

어쩌튼지 우리는 후생도 미루지 말고 금생에 정진 한바탕해서 일을 마쳐 버려야 할 것 같애.

결국은 각(覺)이니까. 깨달라 버리면은 각세계가 해탈세계고, 우리의 영원히 살 고향이여.

 

 

내가 양산 통도사에서 경봉 스님과 한바탕 서로 탁마(琢磨)를 허고서는, 그때 경봉 스님허고 그 꼭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으로 탁마 한번 허고는 나는 그길로 그날 새벽에, 날도 새기 전에 내 오장치 내 살림살이 걸머 짊어지고 나와 버렸으니까. 거그 더 머무를 필요도 없고.

 

양산 통도사 들어간 그 길이 내 타락 길이라.

거그만 안 들어갔드래도 도로 그만 저어 그저 여름에는 북회(北廻), 북으로 둘러서 영동팔경(嶺東八景)으로 그리 둘러서, 여름에는 그리 둘러서, 겨울에는 또 남해지방으로 이리 둘러, 일 년에 한 바퀴썩만 삥 두르면 일 년 되아.

 

아, 그런디 그만 양산 통도사도 안 봤고, 거그 한번 들어가서 큰 산중이니깐 잠깐 보고 오리라고 들어간 것이 아, 그저 그전에 지낸 추산 스님이 나를 보고서는 그렇게 그만 반가해 가지고 발견해서 들어갔제.

 

보광전에 들어가서 서로 참, 경봉 스님과 한번 서로 닥트린 것도 좋지.

 

암만 천하없이 경봉 스님은 원청 점잖헌 이고, 산중에서도 아주 이름난 분이여. 점잖허고 그 뜻이 고상하고.

그렇게 양산 통도사가 구하 스님파가 있고 그 산중 그전 모도 인자, 스님네의 사상이 다 있고 이래서, 구하 스님을 무척 통도사에서 반대를 해 왔거든. 어디나 그때 그랬지.

 

주지(住持)만 한 근 10년을 주지를 허고 있으니까, 모도 그때 시대는 왜정 시대(倭政時代)니까 별수 없이 그저 도변창(渡邊彰)이가 나와서 고문으로 있고, 거기에 주지는 주지만 할 것 같으면 왜색(倭色)을 안 띠고 헐 수가 없고.

그러니까 모도 30본산(三十本山) 주지는 또 뭉쳐서 왜색을 띠고 다 이러니까, 어느 절을 막론하고 주지를 모도 배신허고 주지 배척 운동(排斥運動)이 일어나고 다 그렇게 했지마는.

 

경봉 스님은 구하 스님의 문중이라도 구하 스님 문중에도 들지 않고, 산중 문중에도 들지 않고 원청 참 그 정직해서 부처님에 정법을 그대로 참, 수행해서 나온 분인데.

마침 통도사에는 더군다나 수좌(首座)로 나오는 절이 아니여. 도 닦으러 나온 절이 아니여. 어째 그렇드냐?

 

양산 통도사에는 그전 과거 시대부텀 자장 율사(慈藏律師)의 율맥(律脈)이 흘러 내려오고, 부귀를 해 나온 절이기 따문에 율종, 율맥을—율사는, 율종 율맥이라는 것은 견성(見性)허는 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여.

율(律)이라는 것은 집착성이 있어서, 생명 하나 딱 죽이면은 '허! 내가 살생을 했구나. 아이고, 내가 죄를 지었구나' 요놈이 그것이, 죄상(罪相)이 꽉 백혀 버려. 거 사진 찍는 것이여.

 

그녀러 죄상이 본래 없는 도리를, 그놈을 바로 보는 것이 불법대의(佛法大意)고, 그것이 참선법(參禪法)이고.

 

죄성(罪性)이 본래 공(空)했어.

'그러면 죄성이 본래 공했으니까 막 때려 죽이는 것이 그거 죄성 공헌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여.

 

죄성이 공헐수록에 때려 죽이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제, 죄성이 공했으니까 막 죽여 버려? 그것은 숭악한 그것은 외도(外道)고.

죄성이 본래 없는데 생명을 죽일 것은 어디 있으며, 그럴수록에 생명을 살리는 것이 그대로 죄성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제. 악성(惡性)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제.

 

이렇게 원만허니 갖춰 가야 허는 것이제, 죄성이 없으니 막 죽이고, 죄성이 없으니 막 잡아먹고, 살생도 막해 먹고, 그래서야 거 쓸 것인가.

 

그렇지마는 율사(律師)라 하는 것은 율에 꽉 집(執)해 놓으니 다시는 별수 없어. 본래 근본도리를 보들 못했으니 집착 안 헐래야 안 헐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기 따문에 참말로 대승율사(大乘律師)는 견성부텀 해 가지고야 정말 율사여. 대승율사래야 허는 것이제. 대승율사라는 것은 벌써, 벌써 계성(戒性)부텀 다루는 것이제.

 

그러니 본래 통도사에 자장율사는 오백생 청정비구(淸淨比丘)로 나와서, 견성해 가지고 오백생 청정비구로 나온 이여.

그러니 그런 거룩헌 자장율사지마는, 그 밑에 율맥을 이어 나온 분들이, 다 이어나온 것은 아니지마는, 어디 견성해 가지고 율맥을 이었나?

 

또 율맥이라는 것은, 율맥도 아무 스님 율을 받았다 하지마는, 그건 부처님 때부텀 율맥이 전해 내려온 것도 아니고.

 

선전어가섭(禪傳於迦葉)허고 교전어아란(敎傳於阿難)이라, 교(敎)는 아난한테 전했다 했지마는, 교가 또 어디 교가 전(傳)이 어디 있나? 교전이 어디 있어? 율종이 어디 있으며?

그대로 선종(禪宗)한테 그대로 그대로 그만 선종한테 꽉 묶어져 있는 율이고, 선종한테 그대로 붙어 있는 교여.(처음~17분52초)

 

 

 

 

(2/4)----------------

 

또 교(선)가 암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니, 문자도 거그는 소용이 없으니 교(敎)가 무슨 소용이 있나 했지마는, 부처님이 또 곧 가르치고 전허고 모도 말로 허신 것이 그 교(敎)인디, 어떻게 또 교를 여지없이 모도 없애 버리고 뭐 선(禪)만 어떻게 헐 수 있는가?

 

그러니 그 가운데 다 뚤뚤 뭉쳐서 전해 내려온 것이 그게 선(禪)이여!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도리를 그대로 전해 내려온 것이 그것이 선이고, 곧 교이고, 그것이 율이고, 그런 것이여. 하나도 떼지 말고 그대로 다 갖춰야 된다 그말이여.

 

우리 몸뚱아리에, 몸뚱이만 가지고 사나?

눈도 있도,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근(六根)이 다 있어야 허는 것이고, 항상 그렇게 보아야 허제.

 

허지마는 통도사에는 율행이, 율사가 나온 디고, 그다음에는 '부자 절'이라. 돈 버는 절이여.

그래서 누룩을 모도 디뎌서 그놈 가지고 팔아서 돈을 많이 벌고, 모도 부(富)헌 디여. 그러기 따문에 걸망을 짊어지고 잘 나오들 못헌 디여.

스님한테 정해 상좌(上佐) 노릇허면은 한 뭉텡이 돈 벌어서 논 사고 다 이런 디제.

 

허지마는 경봉 스님은 그때 시대에도 그렇게 있으면서 나오기도 어려운 도저히 형편도 못 되고, 구하 스님이 주지니 그 밑에 얼마든지 강사(講師)로도 해야 할 것이고, 삼직(三職)으로도 해야 할 것이고, 그 구하 스님이 경봉 스님 일인(一人)이라 했어.

 

아, 그랬지마는 그것 다 턱! 때려 치와 버리고 (해인사) 퇴설당(堆雪堂)에 나와서 참선을 했어. 허다가 어째 또 본산(本山)에 안 들어올 수 없어 들어왔다가는 본산에서 잽혀 가지고, 붙잽혀 가지고 못 나가고 그래 있다가,

인제 그 농사를 통도사는 지니까, 농사를 잘 지어 놓고 물꼬 좀 보러 갔다가 물꼬를 막는 바람에 툭! 터져 버렸다. 툭 깨 버렸어.

 

그 깨는 것이, 툭 터진 것이 대오(大悟), 우리 대오허는 법이 그게—자, 부처님도 경계 보고 깼제. 별 탁! 뜬 놈 보고, 탁! 봐 버렸제.

권렴(捲簾), 주름 턱! 주름 살 턱! 거둔 것 보고 장경(長慶) 도인도 툭 깨 버렸제. 이렇게 경계를 보고 탁 깨아.

 

오히려 경계(境界)를 보고 깨는 것이 말, 언하대오(言下大悟) 보담도 더 힘이 있어.

척! 경계를 척 보고, 툭! 봐 버리는 것이 제일 도력(道力)이 있다는 것이여.

 

도(道)도 그놈 깨달라도 힘이 설찬히 차별이 있어.

여지없이 바로 깨달은 힘이—힘이 있게 깨달을 것 같으면은 보림(保任)도, 보림허기가 퍽 쉽기도 허고, 또 희미허게 깨달라 놓을 것 같으면은 그 힘대가리 없는 각(覺)이라는 게 그 우스운 것이여.

 

그만 그저 공안은 하나 봤다 허지마는 모도 맥힌 대문이 있고, 또 설사 안 맥히드래도 모도 그런가 저런가 허는 희미허고. 그 천(淺)이면 그려, 그것이.

 

경계를 보고 깨는 거, 또 언하, 언하대오, 언하대오가 그것 또 참 언하에 툭! 깨는 거, 말 · 법문 듣다 깨는 거, 이 경계 보고 깨는 것만은 오히려 못허다 했지?

 

그 다음에는 자기가 문자참선(文字參禪), 문자 중에서 글을 보고 깨는 거, 그건 퍽 그 힘대가리 없다는 것이여. 허니 참선은 '강사 참선'이 어렵고. 왜 어렵냐?

어떻게 쪼사 놨던지, 언구(言句)를 이래 쪼사 놨던지 그 어려와.

 

너무 많이 알수록에 아는 놈이 장애가 되어서 의심(疑心)이 잘 일어나들 않고, 해석이 자꾸 붙고 '요런 것이 아닌가?'허다가도 '에, 아니다'고 내던져도, 또 그 따지는 습관이 '향상이다. 오! 향상은 어떤 거제?' '향하다. 오! 향하는 어떤 것이제?'

이래 가지고는 무슨 여러가지 그 모도 그 이해(理解)가 이해, 이치의 해가 나.

 

보통 아무 근원 없이 일어나는 망상보담도 고 향상(向上) · 향하(向下) 같은 그런 이(理)에 가서 이로(理路)가, 이치길이 자꾸 나온 것이 그것이 대해(大害)라. 큰일나! 그녀러 거.

 

안 헌다 해도 자신이 밤낮 허고 앉었거든, 고 짓을.

그래 가지고는 아침 때 그러지, 안 헐라다가도 또 저녁 때 그러지. 자신도 마음대로 못혀.

 

하! 오직 해야사, 얼마나 참, 강(講)을 삼십여 년을 허셨으니, 옛날에 그 누구... 저 무슨 스님이제?

서산(西山) 스님 찾아... 소요 스님! 소요 스님!

 

소요 스님이 그 강(講)을 삼십 년이나 했으니 무척도 했제, 삼십 년이란 세월을.

그 경(經)을 그리 잘 보고, 속서(俗書)는 통달했고.

그래 가지고는 확, 이건 너무 알아 가지고는 당최 뭐 턱! 말헐 것 같으면은 모르는 것이 있어야제. 환허다.

 

허지마는 어디 아는 것이, 어디 아는 것이 그게 참선이여?

그렇게 큰 강사기 따문에 아는 것이 참선 아닌 줄을 확연히 알았거든.

 

알았으니까, '교외(敎外)에 별전선지(別傳禪旨)다. 교(敎) 밖에 별(別)로 전(傳)헌 선지(禪旨)가 있다. 교 밖에 별전선지는 아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이 아니니 세상에 아는 것 밖에 무슨 도리일 것인가 말이여.

 

그러면 모르는 것인가?

꽉 맥혀서 몰랐으면은 우리 범부(凡夫)처럼 과거도 꽉 막혀 모르고, 또 금생에 와서도 지나지 않은 일은 다 꽉 맥혀 모르고, 오늘 있어 내일 일을 모르고, 또 금생에 이 몸 가지고 있지마는 내버리고 갈 일도 모르고, 우리 중생은 그러허니, 그렇게 꽉 맥혀서 모르는 것인가?

 

아는 것이 아니기 따문에 모르는 것도 아니니라.

 

꽉 맥혀 모르는 것이 그것이 법(法)이여?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법이 아니면은 아는 것, 모르는 것 그 중간 사이, 그 아는 놈 모르는 놈 젖혀 놓고 그 중간에 비유(非有) 비무(非無) 뭐 고런 것이 법인가?

그것도 아니여.

 

아는 놈도 아니기 따문에 모르는 놈도 아니여.

그러기 따문에 그 쫌도 아니여. 모르는 놈, 아는 놈 그 중간 토막도 아니여.

그러니 뭣이냐 그말이여? 이런 꼴 좀 보소.

 

뭐라고 해 놓으면 그것은 교외별전(敎外別傳) 선법(禪法)이 아니여!

그 무슨 법이 그러헌 법이 있겄느냐 그말이여?

 

그러니, 모르는 법, 아는 법, 그 중간에 그 가운데 그것,

그다음에 밝은 거, 그러니께 어두운 거, 어두운 것 밝은 것, 그것 짬 사리도 아무것도 아니여.

 

거기에서 만약에 무슨, 무슨 고 밖에 또 도리를 갖다가서 '옳다! 그 도리다'해 가지고는 그놈을 갖다 집착허고 앉었어도 그건 법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러니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 다 해 버렸어. 범부정(凡夫情)은 다 없다.

모르는 범부정, 모르고 알고 모도 그 범부정, 아나 모르나 다 범부정, 중도 제일까장 다 범부정, 그놈의 범부정 쏴악 쓸어 버렸으니, 그러고 인자 성정이 아닐 것인가?

 

성인(聖人)의 정(情), 성인의 뜻, 성해, 이런 제...

별무성해(別無聖解)다!

별도 성해가 어디 있어? 그 성해에 어디가 머무를 것이여?

 

그것, 무슨 법이 이러헌 법이 있느냐 그말이여.

 

교외(敎外)에 별전(別傳), 교 밖에 별전법이니라.

세상에 이런 법이여.

 

 

그러니 '입타불입타(入打不入打)다' 원상 그려 놓고.

원상(圓相)이 그 최고 도리여. 다시 원상 더 나갈 도리는 없어, 입 열어서 말허자면.

 

고불(古佛)이 미생전(未生前)이요, 옛 부처가 나기 전이여.

거, 옛 부처도 생기기 전이니, 거 또 옛 부처가 나기 전이지마는, 천지도 나기 전이지마는, 거기에서 제불(諸佛)이 출세허기도 허고 제불이 열반허기도 허고 그런 디여.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요, 제불열반처(諸佛涅槃處)요, 천성(千聖)도 불식처(不識處)요, 불불(佛佛)도 서로 보지 못헌 곳이요,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요, 오히려 알지 못했어.

 

이러헌 원상을 척 그려 놓고 '거기에 들어가도 죽고, 거그 나와도 죽는다'

하, 이거! 그게 그 최고여! 거 거그서 그 중생 해탈 많이 시키는 공안이여.

 

그러기 따문에... 그러기 따문에 마조(馬祖)가 답살천하인(踏殺天下人)허는 공안이니라. 천하인을 답살해 죽이는 공안이다.

거그서 무슨 상량(商量)으로 답허냐 그말이여.

 

그놈, 당시에 마조 스님이 물으니까, 학자 하나가 원상 안으로 쑥 들어갔다.

응, 그놈 하나 답허면, 그놈 또 봐야 허네. '그 학자가 눈이 있나 없나? 왜 들어갔나?'

 

원상 안에 쑥 들어가니 마조 스님은 쳤다. 따악!

아, 칠 수밖에 없제.

 

치니까, 척! 쳐다 보고 "타모갑부득(打某甲不得)입니다. 모갑을 치지 못했습니다"

마조 스님은 휴거(休去)를 했다. 아무 말이 없어.

 

그 학자는 왜 들어갔으며, 들어가 가지고는 맞아 놓고는 "저를 못 쳤습니다" 그러니께 마조 스님은 쉬어 버렸다.

 

고것이, 그 공안에 응, 거 법로(法路)여. 법을 써.

용무생사(用無生死)여. 용무생사가 그게 현중현(玄中玄) 도리인데.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말이여.

 

 

아, 이 불 피워라. 불 피우고 지침허는 어른은 와서 지침 좀 않게 옆에 앉으시라고 그려.

누가 그리 지침허시는고? 약 좀 잡솼으면 쓰겄는데.

그 차와 그러요. 요리 나오시요. 내가 허라는 대로 해요. 나오시요.

어서! 그 나오시요. 그러고 글안허면 저 방으로 들어가서 앉으셔. 냉해서 그럽니다.

 

법문 안 들어도 괜찮해. 어서! 그러시요. (괜찮아요.) 저 옆으로 가란 말이요. 허허!

지침을 자꾸 해싼게 내가, 내가 법문 안 허고 가면 쓰겄소? 이 법문이 중요헌 법문인디. 인자 여 끝마치는 법문이여.

옳제! 더 들어 앉으시요 쑥! 괜찮해야. 뜨스운 자리 요렇게 앉으면 한결 가라앉습니다. 인자 보시오. 허허! 그 참. 차우니까 그런데.

 

 

이 공안 법문이여. 참말로 공안 법문이여.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생사 없는 걸 그대로 써 나가는 거여.

오(悟)를 허되 참으로 터꺽! 보고 툭 깼네. 힘이 있어야!(17분53초~36분1초)

 

 

 

 

(3/4)----------------

 

그래서 원상을 그려 놓고 '입타불입야타(入打不入也打)'

거그에 한마디 일른다. 옳게 설사 일러.

옳게 이른다 해도, '그 중이 어떻게 들어간 중이냐? 눈이 있나 없나?' 얼른 못 개려내는 거여.

 

어째서 또 들어가서는 "모갑(某甲)을 치지 못했습니다"

마조 스님은 휴거(休去)헌 것은 뭣인가?

 

그런 것은 체중현 도리나, 고렇게 들어서 공안을 어찌 짐작해 알어 가지고 생전 꿈도 소용없어!

'그런 것인가? 어찌 요런 것인가?' 그 때문에 안 되아. 그것이 어디 선(禪)인가? 그 선 아니여.

 

처억! 만공 스님 십대문답 어떻게 된 까닭을 주욱...

'(십대문답) 저 끝에 가서 백지(白紙) 네모진 디다 한 쪽 귀텡이에다가 원상(圓相)을 해 놨느니라'헌 걸 그걸, 그런 것을 바로 선사(禪師) 뜻을 봐야 혀. 그래서 천칠백 공안이니라.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천칠백 선사가 다 그 근본 본대의야 틀림이 없지마는, 그 맨들아 논 공안 그 자물쇠통 채워 놓은 것이 다 달러.

 

그놈이 바로 나가지 못하면 아무리 깨달랐다 해도 안 되아.

하나만 봐 가지고는 넘, 그래 중생 교화를 못하는 거, 용무생사도 안 된 거, 자기도 항상 해 나가도 그렇게 활발치를 못혀. 걸려!

걸리면, 설사 하나는 옳게 했다 하드래도, 그거 안 되아.

 

그러면은 경봉 스님이 물 대다가 툭 깨쳐 가지고는 그만 야단치든 경계는 그거는 체중현이여. 암만 천하없이 그래도, 강사(講師) 소견으로 있든 때여.

 

모도 들어 가지고 대교를 모도 판단해서, 그 다 알아 가지고 모도 인자 허다가 보니 그 들난 곳이 그 강사 처음에 공, 뭐 뭐, 입으로 다루던, 설시(說時)는 사오(似悟)나, 말헐 때에는 설헐 때에는 깨달은 것 같지마는 대경환미(對境還迷)허든 경계, 그 경계와 물구녁에 논 물 대다가 툭 막어 가지고 툭! 그만 보든 경계와는 영 달라. 그러지마는 그것도 체중현이여.

 

그러기 따문에 체중현이기 따문에 체중현을 아는 것 다르고, 또 보는 것 달라.

 

그 체중현을 처꺽 봤지마는, 그러기 따문에 추어망담(醜語妄談)이 개시선(皆是禪)이고 개시묘(皆是妙)고, 그만 막 들입대 그만 부인와도 욕을 막 들입대 했다 그말이여.

 

그때 뭐, 뭐 내가 들어가 야단났었는디, 자기는 그때 경계를 모르든 것이여.

아, 그러기 따문에 내가 그때 가서 그렇게 탁! 해 가지고는 그만, 그 내가 갖다 고함 질러서 옥련봉 밑에로 올라가서 그런 걸 다 모르제. 모르기 따문에 한번도 말 안 혀.

 

"아니, 경봉 스님 더러 안 하더냐?"허면은 "통 못 들었소" 그려.

 

아, 여그, 여그 종성 수좌도 거그 지냈단디, 내가 물어봤어.

흥, "한번 그런 말 못 들었소" 허거덩.

 

그래도 어찌 학자(學者)를 가르키시다가 당신이 어떠헌 경계를 얻었다는 거, 그런 것은 말허는 법이여.

 

만공 큰스님도 다 그런 말했고, 혜월 큰스님께서도 그 견성은, '단지불회시즉견성(但知不會是卽見性)이라'헌 디서 툭 깨가지고는 했다는 말씀 다 학자한테 허고,

전혀 안 허신다는 것은 그 경봉 스님이 그때 시대를, 그만 그때 경계를 모르시든 것이여. 꿈겉이.

 

그래도 그 생리적으로 뭐 그렇게 미친 것은 아니기 따문에 다 아는 것인데, 모른다 한다니,

나 그러나 저러나 또 알아도 그럴 수도 있겠제.

 

그때 경봉 스님이 만약에—암만 천하없이 별소리 다 해도, 정영신이가 얻어먹고 들어가서, 걸식허고 들어가서 한번 안 대질렀으면, 거그서 그만 그대로 경봉 스님은 출세했으면은 안 되아. 되들 안 혀.

그때 그 답허고 점두(點頭) 턱 허고 내려와서는, 점두 척 허고 내려와서는, 보광전에 앉어 가지고는 그 뒤부텀은 한번도 입 뗀 법이 없어. 입을 뗀 법이 없었댜. 그저 앉으면 정진만 허고 앉었었어.

그럴 것이거든. 참말로 정진을 해야 허는 것이거든.

 

턱! 그 경계 들어갔다고—흥! 일예(一翳)가 재안(在眼)이면, 한 가리움이 눈에 있으면은 공화난타(空華亂墮)다. 허공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했으니 뭣 헐 것이 있어. 뭣을 닦아?

 

허어! 참 닦아야 한다. 인자 참 정말이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원각대지가 낭연독존을 해야 헌다.

 

낭연독존은 해서 그건 지킨 건가? 말허자니 그런 것이제.

아, 이거! 말만 허면은 조비모락(鳥飛毛落)이니 그럼 어떻게, 어떻게 헐 것인가? 누() 밖에 어떻게 설헐 것인가.

 

 

벌쎄 거, 거그 와 앉으니께 어디 기침 허시요? 내가 의원보담 더 헌디, 그걸 모르고는 자꾸 지침만 허고 앉었으니 설법도 못허게 만들고.

허어, 그것 참! 내가 어쩌요 여보시요. 또 지침허는 이 나오란 말씀이여. 아, 내가 옳게 일러 드리는데.

 

 

그래 가지고는 내가 그다음에 통도사에서 떠나서 저 인자 밖에 가서 어디로 갔냐 하면—그때 인자 떠나 가지고는 통도 한번 들어갔다가 타락을 했어. 큰 절 그런 데 안 들어가는 법인디, 내 마음대로,

 

(노래) 격안전촌양삼가(隔岸前村兩三家) 밥 짓난 연기 일고, 파조귀래(罷釣歸來) 배를 매고 괴기 주고 술을 사서 많이 먹고 취허네.

 

아, 이러고 돌아댕겼으면 아무 일 없는 디 말이여, 그때.

 

홍록이, 아, 그분 만나서 한자리썩 배우면서 아, 이러고 강촌에, 연기 뜬 강촌에서 그렇게 댕기면은 퍽 무척 참, 그 내 경계인디, 그냥 막 그 내던져 버리고 내가 나와 버려. 그녀러 것, 따라댕기기도 챙피허드구만.

노래 부른다고 그것 배운다고 좀 따라댕겼는데, 아 그려도 배우기는 설찬히 배웠다 그 말씀이여.

 

아, 자꾸 내 요새 한자리 한자리 헌 것이 그것만 배운 줄 아요? 또 있어. 또 있지마는 내가 안 내놓아. 허! 숭보까 싶은게.

그렇지마는 뭐 그 숭보면 뭣 혀? 그거 숭봐 가지고 누가 뭐 숭으로 아나?

숭으로 안 알아. 도인(道人)의 가풍(家風)인 줄 알제.

 

아, 글쎄 가다가 거지가 길가에 앉어서만—인자 그 다음에 배워 가지고 나오다가 말이여. 나오다가...

 

그 이래 법문이 이리갔다 저리갔다 헌 법문이라. 이건 그런 거여. 헐 수 없어.

 

심심허면 말여, 짚부채를 앞에다 놓고는 확! 튕겨, 한번 이렇게 해서, 여럿이 있으면.

미친 행동을 한번 해. 확! 쳐놓고는 앞에다 턱 놓고는 떠억 앉어서,

 

(노래) 산학(山壑)이 잠형(潛形)허고 허! 음풍(陰風)이 노호(怒號)헌디

수변(水邊)에 우난 새는 천병만마(千兵萬馬) 서로...

 

아, 이러고 한바탕허면은 모도 와서 보요. 잉, 모도 듣고 봐. 노래 들을라고.

 

참, 그놈 한마디, 요사 없는 세외한인(世外閑人)은 그놈 배워야겄어.

내 그놈 배워 가지고 설찬히 써먹었구만.

 

아니, 여 거, 그놈을 한바탕하고, "그놈의 것! 참, 꼭 나올 곡조는 나온다마는 배가 고파 못허겄구나!"허면, 그냥 뭣이 막, 막 생기요. 막, 돈도 주고 뭐 사 주고.

아, 받아 가지고 그놈 받아서 모두 사 먹제 어쩌 그 뭐, 돈 받아서 내던져? 주면 받고...

 

허다가 배 고프다고만 해놓으면 뭐 사 주요. 거, 그 꾀가 나더구만 그. 그래 돌아댕겼으면 내가 참, 얼마나 더 좋을런지 몰랐었는데.

 

그만 통도사를 아침에 새벽에 일찍 나와 가지고, 거그서 그만...

홍록이, 내가 가만 아, 그렇게 참 댕기고 허다가 간단 말이나 허고 가야헐 것 아니요?

못쓸, 못쓸 일이제. 허지마는 또 그 간다 온다 하면 어쩌고 어쩌고 허면 그 소용 있어? 휙 돌아서 버렸제. 참 무심허제.

 

자기는 화두를 다 내가 가르켜 주고, 늘 무상헌 설법을 해 주어서 그 같은 놈의 가야금 하나 등에 메고 돌아댕기는 것 아무것도 아니고, '참말로 참선을 해야겄구나'허는 생각이 꽉 들어서 발심(發心)해서 인자는 나를 따라댕길 판이라.

그놈의 가야금을 가지고 댕기든지 말든지 즈그 집안에는 아무 일 없디야. 벌써 나왔으니깐, 따라가 중이나 될 판이여.

 

그렇게 헐 판인디, 그녀러 것 가야금 가지고 댕기면서 노래나 부르고 허던 거 데리고 들어와서 중 맨들아 놓으면은 넨장, 참선헌다고 돌아앉었다가,

 

(노래) 아서라. 풍백(風伯)에 붙인 목숨 아니 놀고 뭣 헐꺼나, 징징 지당당 당징징...

 

어쩌고 하면 그녀러 것, 거 쓸 수가 있나.

그러면 에이, 나 혼자 도망을 쳐가지고 나와서... 그 뭣이, 뭣이 그놈이 그렇거든.

 

 

통도사를 댕겨서, 아 그래 그만 그래 또 해인사를 들어갔단 말씀이여.

안 들어갔으면 아무 일 없는데, 합천 해인사를 들어갔어.

 

합천 해인사는 내가 중 된 디여.

아, 거그서 중 되아 가지고 거그서 나온 디를 들어갔으니 어찌 될 것이여.

 

'정영신이 나가서 견성했단다' 소리는 다 나 가지고는, 발쎄 그렇게 돌아댕긴다는 말은 다 들었는데, 거그를 척 들어가니까 어쩔 것이여.

 

거, 우리 스님도 다 있고, 아, 이런 디인디 들어가 놓으니깐 그 뭐 야단이제.

머리는 그렇게 길러 가지고는 모냥다리는 그 모냥으로 들어갔으니, 그래 인자 여그서 저그서 머리, 모두 머리를 깎을라고 대들고, 그 짐을 모도 뺏아서 불에 태와 버릴라고 하고 야단들이제.

 

다 소용없고, 뭐 천하없는 짓 해야 다 소용없고, 여관에 가서 짐을 떡 벗어 놓고,

여관에 들어가서, 내 중된 본사(本寺)에 들어가서 그 여관 홍도여관에 들어가서...

홍도여관은 그 내 친고여. 세상에 둘도 없는 친고(親故)여. 이동수라고.

 

그 여그 위패(位牌) 이동수, 내가 해놨소. 내 친고라고 이동수 위패를 다 해 놨어.

죽었다 해. 나보담 한 살 더 먹은 것이 한 삼 년 전에 죽었소.

 

그래 내가 아무도 모르게 여다가 내가 영가를 해 놓고, 동수 이동수 영가(靈駕)에 내가 벌어다가, 설법해 품 팔아, 설법 돈 받아다 거다 떡 넣어서 돈 딱 찍어 가지고,

그래 이번에 논 산 디다가 넣어서 사백만 원—삼백만 원 내가 했는디 또 그동안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해 가지고 사백만 원 맨들어 가지고 논 사는디 넣어 놨습니다.

 

그래 이 절, 인자 이 절에다가 이전해서 영원히 위패단을 모셔 가야 헐 것 아니요? 낱낱이 만 원썩 냈으니 그걸 해야 헐 거 아니여.

 

삼백만 원도, 여그 다 알제, 적은 사람이 알제? 상법이가 알제?

삼백만 원도 삼백만 원 다 낱낱 냈음사, 삼백만 원 들어서지마는, 삼백만 원... 한 2나 들어오고 1은 안 들어왔습니다.

안 들어온 그놈, 어찌 안 낼란가 어쩔란가? 3년이 되아 가도 안 내고. 그런 이가 더러 있어.

 

그 안 낸 이는 내가 늘 똑같이 저렇게 불 피우고 법보제자 축원해 나가니, 필경에 다 내야 할 것이지마는, 안 내면은 그이는 공연헌 업(業)만 지어 놨지. 업만...

공(空)으로 해도 영가한테 그 무슨 공(功)이 되기야 되지 안 될리야 없겠지마는, 그 헌 분은 양심상 그 안되거든.

 

허지마는 한번 위패단을 해 놓고 그 돈을 없애면 어쩔거냔 말씀이여.

위패 수대로 내가 다 뀌어 놓았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어떻게 허던지 해서 다 맞촤서 다 뀌어 놓았지.

 

인자 받은 놈 그놈은 내가 받아서 인자 대중 살림살이 해 나가도 좋제. 뭐 내가 뭐, 두말헐 것...

허지마는, 내가 그것도 어디 무슨 뭐 들어오기만 허면 갖다가... 저, 인천 얼른 갔다 나온 것은 저금허러 간 것이여. 그 돈은 뭐 죽어도 목숨이 잘라져도 나 안 내놓는 것이여.

 

내가 그 무슨 간탐(慳貪)으로 내가 무슨 뭐 내 돈 만들라고 내가 그려, 뭣 혀?

법보단(法寶壇) 유지해서 여러 신도 어른네 부모를 위해 놓고, 영원히 천도(薦度)해서 우리 부모, 저 확철대오(廓徹大悟) 세계를 모도 가시게 천도헐라는 원력이 모도 있고 헌 돈을 내가—아, 그 돈보덤 더 헌 사찰 부처님 논도 팔아먹고 절도 팔아먹는 놈의 중이 있어.

 

나, 용주사 주지로 갔는데 거기에 절 땅, 그 위에 우연히 들어온 놈 용주사 땅이라고 팔라고 해서, 내가 대번에 가서 해약을 해버렸습니다.

"중이 땅 팔아먹고 산 팔아먹는 놈, 산 팔아먹는 놈 된 법 없다" 이랬소마는.

 

뜻밖에 또 여까장 돌아와서 이런 얘기까장 했어. 그만 거까장 두고.

나온 대로 헐 수밖에 없으니까.(36분2초~53분17초)

 

 

 

 

(4/4)----------------

 

경봉 스님이 참 나와 만난 것은, 내가 거지로 들어가서 서푼 중이 못 되고, 내가 그때 내 행색도 그렇게 우수운 거지마는, 거지 아니라 백정 자식이라도 무슨 무당 자식이라도 소용없어.

내게 한번 물어서 그 언하(言下)에 그렇게 보셨으면은, 헐 수 없어!

 

'내가 그렇게 해서, 내가 그때 그 병이 그렇게 내가 고만 한바탕 미친 그 지경을 넹겼다'하는 걸, 당신도 학자들한테 그 알려 줘야 나온 곳이 분명하고.

 

그다음에 내가 나와서 인자 그 합천 해인사 들어왔단 말씀이여. 그건 두고 또 헌 거여, 또 이 재차!

재차 한번 헐만헌 게 있는 것이여.

 

거그서 딱! 걷어 잡고는 그만 다시 그 경계 치워 버리고, 그전과 같은 그 추담망담(醜談妄談)이 개시묘법(皆是妙法)이라고 붙이지 않고.

대관, 추담은 추담이고, 묘담(妙談)은 묘담이고, 법담(法談)은 법담이제, '추언망담이 묘담이다, 설법 법담이다'는 건 벌써 그건 체중현인 것이여.

 

그 지경 쏵 없애고서는 그대로 정진해 나가네, 가만히.

들으니 늘 정진을, 다시는 말 한마디 없이 정진헌다. 그 뒤에.

 

그렇게 했기 따문에 지금 경봉 스님이 그 지위를 받는 것이고, 모도 학자들이 거그 가서 도를 배우는 것이제.

당신이 '여기와 도 배우라'고 헌다고 배와? 경봉 스님한테 가 도 배울 거여? 안되는 것이여.

 

당신이 그러헌 참 격외선(格外禪)을, 격외복을 지어놨기 따문에, 해탈복을 지어 그 수행하는 것이 해탈위신을 지켰기 따문에, 그때 딱! 근쳐 버리고 딱 아주 공부했기 따문에 지금 학자가 끓는 거여.

그거 그때에 잠깐 내 인연 부닥친 것도 과거 천만 겁 중에 다 인연이 있어 그렇게 된 것이지.

 

 

통도를 마치고 해인사를 들어와서, 합천 해인사에서 그렇게 그만 인공 스님, 우리 스님은 '견성해 들어 왔다고 헌 놈이 저 지경 되아 가지고 미친놈의 자식이 들어왔으니 조런 것을 상좌라고?'

 

얼마 겪어 보니 지랄이거든. 견성 헌 건 하나도 안 보이고 지랄헌 것만 보이네.

머리 이렇게 키워 가지고는, 나도 그놈의 뱃심 좋기는 설찬허겄다. 스님 앞에도 그 소용없네.

 

가다가도 막걸리 한잔 쭈욱 아, 거 가니께 헐 수...

인자 홍도여관에다가 짐을 붙인 것은, 짐짝을 붙인 것은 어디 뒷방에 들어가서 뒷방 밥 한 숟갈 얻어먹고, 김치 쪼가리 하나 얻어먹고 그러고 살라고 허면은 뭐, 뭐 뒷방 어디 꽉 찼지마는, 그렇게 지낼라하면은 왼통 대접이 하늘 같지마는,

그놈의 대접 받는다고 대접 받고 앉어서 아침에는 죽 한 그릇 얻어먹고, 낮으로는 서곡(黍穀) 밥 그것 한 숟갈 얻어먹고 김치 한 쪼가리 얻어먹고 살면은 나는 살 길이 없어! 그때는.

 

모가지에서 어린, 인자 그때는 그렇게 줄줄 쏟아지는 피는 없어도 모가지에서 간데미 같은 피는 한바탕썩 뱉으면은 팍팍 나와. 그러니 비린내가 나서 살 수가 없거던. 그러니 가서 그렇게 살 도리도 없어, 내 형편이!

그러지마는 내가 그런 말을 허겄어? 누구한테 뭐라고 자랑을 허겄어, 뭣 허겄어?

 

나 혼자만 그저 그렇게 침을 뱉고 있으면서, 머리 속에는 이렇게 보면은 전부 모도 솟아서 모도 그 부스럼이 얽커져서 그래서 껍데기를 기루어 가지고 그러고 있는디.

 

아니 내 상좌라고 허는 것이, 상좌라고 헌 것이 그렇게 들어와서 그 지경허고 여관에가 붙어 가지고 밤낮 보면, 인자는 그 막걸리패에나 가서 막걸리나 한잔씩 얻어먹고,

여관에서, 인자 그 친고, 친고 여관인디 거그서 그만 심부름도 해 주고 그저—내가 암만 뭐 나를 시킬라고 해서 하나? 시키도 않지마는 내가 자진해서 뽀이(boy) 노릇을 허제.

 

역부러 손이 올 것 같으면은 귀빈실 손인가 가서 쫓아가서—인자 그 누데기 고놈 벗어 버리고, 머리 이놈은 이렇게 질워서 나왔은게 움펑 감투는 인자 안 쓰고, 요렇게 해서 그냥 총각머리처럼 했다.

그때는 하이칼라 깎든지 허제, 시방 모냥 더벅이 없어. 그전에는 인자 요렇게 헌디 요놈은 요것도 인자 깎은 것도 요렇게, 다시 요까장, 요까장 내려와 버렸제. 그냥 그놈 그대로 두고는.

 

깎으라고 해 싸도 죽어도 안 깎어. 머리가 못 깎아.

속에 깎으면은 부스럼이 꽉 차 놓아서 깎으들 못혀.

똑, 부스럼 나오면 깨소금 단지라 햐, 모도.

깨소금 단지라고 날 보고 여그, 그런게 못 깎아. 그래 놓아 둔 걸 모르고는.

 

그래 가지고서는... 또 그러고 속인(俗人)이라고 허고—그러고 인자 각처(各處) 먼 디서 올 것 같으면은 내가 속인이라고 해야사 허제, 중이라고는 못하겄단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인자 심부름질이나 허고 이러고 있제. 하루 혀, 이틀 혀, 며칠을 혀도 소용...

 

요 우리 스님이 그냥 뵈기 싫다고 중을 떼 버렸어.

인자 중으로 그때는 있었는데, 인공 스님이 중으로 떼 버려 나를.

'에이, 그녀러 것, 중 두었다 나만 스승 욕 얻어먹고 못된 놈'이라고. '그놈 어디 도 닦다가 왔다고 헌 놈이 저 지경 저 모냥 저 더런, 이런 행동이나 하고, 밤낮 술 처먹고 고기 처먹고 그런다'

 

얻어, 안 얻어먹을 수가 있나? 그거 얻어먹을라고 거기 있는디. 그랬네.

 

그래 가지고도 밉상짓을 참말로 볼 수 없는 행동을 허네.

그거 그 지경 되아 놓은게 못쓰겄드구마는, 사사(事事)에 어긋나서.

 

들어와서, 그러자 저러자 인자 4월 8일이 닥쳐왔네.

아 넨장, 4월 8일이 닥쳐오면은, 그 4월 8일 날은 그 산중에 그 높은 강사(講師)들이 모도 인자 정해져 있어 가지고는 설법을 허는 것인데, 고경 스님이 허고, 여그 능산 스님이라고 혀, 능산 스님도 하고, 환경 스님도 허고, 보혜 스님도 허고 이러헌 그 이름난 큰 강사가 벌건 법복(法服)을 입고, 그 큰 법당에, 하여간 천 명 들어앉어도 그 들어앉을만헌 법당이여.

뜰까장 막 서면 굉장한디, 4월 8일에는 3만 명이 오니, 몇만 명이 오니 그럽니다, 옛날도.

 

꽉! 법당에 와서, 사람이 와서 차고 있는디, 그놈의 강사들이 인자 고경 같은 사람, 이고경 같은 사람, 강사들이 그 좋은 가사를 입고 그 척, 위의(威儀)를 갖추고 설법당에 올라가면은 '저런 것들이 설법을 해 가지고 대중을 그르칠라고 올라가는구나' 그 마음이 난다 그말이여.

 

 

자지 말어! 자지 말어! 잘라면 나가거라!

힘들어서 이렇게 설법허고 있는디 또 자빠져 자고 자빠졌어.

 

몇 억만 년이나 속았냐! 그놈한테.

잠 안 자고 들을만헌 사람들이 그러니 그 더 못쓰겄단 말이여.

 

또 자 봐라, 또 자올라 봐.

자올면 인자 법문헐란께. 인자는 눈 뜨면 안 헐란다. 자올라라.

 

원! 법상에서, '졸면 못쓴다'해도, 그러헌 어디 그 신심이 고래 가지고 뭣 해아? 용맹심이 그래 가지고 뭣 되아?

 

나 법문, 참말로 뭔 말씀을 허고 있던지, 큰스님네가 설법허면 한번 꼬빡해 본 일이 없네.

언제여, 시방도 큰스님네 법문허면 꼬빡도 않네, 나.

 

그까짓 무슨 놈의 그 그럭저럭헌 것 헌다면은 '그까짓 법문이냐'고 있도 앉도 않고.

 

내 법문을 그렇게 들어?

들어봐라. 그렇게 들으면 느 과보가 어떤가.

 

꽉… 4월 8일이 왔는데, 고경 스님이 그때 정해져 있는 법사(法師)인디, 그 법상에 올라갈라고 딱 정리하고 있어. 법상에 막 올라갈라는 것을 소리를!

 

머리를 이렇게 질러 가지고는, 그래 가지고 인자 뭐, 밑에는 그냥 우습게 입었제.

뭣이 인자 심부름허든 옷 그대로—누가, 인자 나 뭐 다른 옷이 있나?

 

소리를 질러!

거, 그런 산중에, 그 짜여져 있는 산중에서 거지 같은 것이 내가, 암만 그 본사(本寺)라고 하지마는, 거그 본사에 그 더군다나 홍도여관 뽀이로 있어 가지고 소리를 지르니 되아?

 

고함을 한번 냅대 질러 버렸단 말이여.

질르고는 “어디라고 올라갈라고 하냐!”고 고함을 지르고.

 

내가 그만 대번에 올라갔단 말이여, 내가!

거 뭣 헐라고 거그 내가 올라갔냐 그말이여? 그런 짓을 해서 쓰겄어?

 

내가 대번, 그냥, 뭐... 아, 법상에 올라갈라고 헌게, 머리를 이래...

하! 이런 놈의 것. 본사에서.

 

내 우세 그때, 곧 죽을 놈의 그런 우세를 했기 따문에 오래 사는가 몰라, 지금 안 죽었는가 모르지.

하! 그런 놈의 짓을 허겄어?

 

참, 그래도 그 기맥히제. 그래도 기맥혀.

 

올라 가지고는, 그때 그놈 법문이여. 똑 그대로 내가 하는 거여. 그 하나도 안 잊어 버렸은게.

시방 왔다갔다허는 그 내, 어느 날 어느 달 어디로 갔다 그건 몰라.

안 외아. 하나도 몰라 시방. 그래 나온 대로 시방 허는 거여.

 

아, 거 척! 가서, 법상에 가서 척 해 가지고 "회마(會麼), 악!" 이래 놓고는, 척 앉어서 이런 법문을 하네.

 

누가 나를 올라가라고 했나? 하 참, 기가 맥혀! 그때에.

시방 못하겄어. 시방 그러라면 못하요. 절대 못해. 체면이 생겨서 못해.

 

 

"자연적(自然的)이냐 천연적(天然的)이냐?"

인자 여럿이 꽉 찼은게 그만... (큰 소리로)

 

"만겁(萬劫)에 현안(懸案)인 천지(天地)의 비밀(秘密)이냐?"

눈을 뚝 뜨고 말여.

 

"자연도 아니요 천연도 아니요, 만겁에 현안인 천지의 비밀도 아니니라!" 이랬네, 그 설법전에서.

 

"자연적이냐 천연적이냐? 만겁에 현안인 천지의 비밀이냐? 자연도 아니요 천연도 아니요, 만겁에 현안인 천지의 비밀도 아니니라!" 그래 놓고는,

 

"선천(先天)도 무기시(無其始)요, 후천(後天)도 무기종(無其終)이다. 선천(先天)도 시(始)가 없고 후천(後天)도 종(終)이 없느니라. 시심마물(是甚麽物)고? 무슨 물건이 이런 물건이 있느냐?

대답해라! 이놈 대답허면은 이 법상에 올라올 자격이 있다! 대답 못허면 나한테 물어라!"하며 이랬다.

 

하 이러고, 이래 조져 대는데, 그때 제일 내가 법문 잘했네, 그때!

'참! 정영신이다' 소문나 버렸네.

 

막 자유 자발적으로 올라가서 한바탕 해 놨는데. 그 군중이 조용허니 말 한마디 없이 들었네.

 

시방 허능산이 살아 있어.

대명사라고. 저 우에 대명사라고, 그 정능아파트 뒤에 올라가면 새로 지은 절, 쪼끄만헌 대명사라고 있어. 거기에 지끔 경인생인데, 81세인가 그려. 나를 독단으로 시방도 얘기혀.

 

여그 온, 여그 저 서울 의정부서 내려온 사람, 젊은 학생이라고 안 있어?

그 사람도 그이가 나를 이리 천도해서 왔어. 대학생이라고 천도해서 시방 댕기는 것이여.

헌디 능산 스님이 말해서 왔다는 이여. 오면 물어 보란 말이여.

 

그것, 강사여. 독신(篤信)이여 독신! 그때, 그때 법문 듣고 그런 거여.

 

그러니 글쎄 그 지경 되아 가지고 법상을 척 올라가서 그 설법 한바탕 해 놓은 것이 기적이란께. 없어.

뭐 말도 좀 좋아, 현대 사람도 들을만 허고. 응, 그전 구식 사람도 들을만 하고.

 

"자연적이냐 천연적이냐?" 많이 혔는디 그 밑에는 몰라, 인자. 그건 다 잊어 버렸어, 설찬히 많이 했는디.

 

"자연적(自然的)이냐 천연적(天然的)이냐? 만겁(萬劫)에 현안(懸案)인 천지(天地)의 비밀(秘密)이냐? 자연도 아니요 천연도 아니요, 만겁에 현안인 비밀도 아니다.

선천(先天)도 무기시(無其始)요, 후천(後天)도 무기종(無其終)이다. 하날 전에도 처음이 없고 하날 후도 종(終)이 없다. 시심마물(是甚麽物)이냐? 무슨 물건고?" 아, 이렇게 한번 물어.

 

"만약에 답헐 사람이면 나오니라. 답허는 사람이면 여그 올라올 설법 법사 자격이 있고, 만약 이 말을 답 못하면은 못한다! 답 못허는 사람이면 나한테 와서 물어라!" 아 이러고 앉었네.

 

이것 법문 잘 됐제!

 

여까장 두고, 그 한번 더 해야 마쳐 지겄구만, 인자.

그러고, 그러고 인자 들어오는구만. 아이고. (53분23초~1시간8분35초) (일대기 13호 끝)

 

 

 

 

----------------(1/4)

 

*(게송) ‘부운부귀비유의~’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上舍草堂’ 게송 참고.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2분 19초)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닥트리다(닥뜨리다) ; ①(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마주하여 가까이 서거나 만나다.

②(사람이 닥쳐오는 일이나 문제 따위에) 직접 맞서다.

③(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다그쳐서 재촉하다.

*원청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왜정 시대(倭政時代) ; '일제 강점기(日帝強占期)'의 이전 말.

*일제 강점기(日帝強占期) ; 일제의 1910년의 국권 강탈(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합방韓日合邦, 한일병합韓日倂合 조약)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의 35년간의 시대.

*도변창(渡邊彰 와타나베 아키라) ; 일본인 불교학자로서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종교과, 고적조사과 등에서 문화, 종교 분야를 담당한 촉탁 직원.

1911년 6월 3일 시행된, 전국의 사찰을 30본산으로 나누어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도 사내(寺內) 총독이 그에게 위촉하여 제정 공포하였다.

 

이에 이듬해, 출범한지 만 1년여 만에 임제종(臨濟宗 :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1910년 경술국치 직후에 당시 유일한 종단이었던 원종圓宗의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하여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의 예속하에 두려고 하자, 이를 개종역조[改宗易祖, 종지宗旨를 고치고 종조宗祖를 바꾸는 것]의 매교적 행위라 규탄하여 1911년 1월 15일에 순천 송광사에서 박한영·진진응·김종래·한용운·오성월 스님 등이 총회를 열고 이회광 중심의 원종을 부정하는 새로운 종단을 세우기로 하였는데 그것이 곧 임제종이다)이 해산되고,

조선불교선교양종각본산주지의원(朝鮮佛敎禪敎兩宗各本山住持議院)이 설립되면서 사찰의 설립과 주지의 임명등 불교계의 모든 행위가 총독부의 승인을 받게 되어 불교계가 일제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왜색(倭色 왜나라·일본 왜/빛깔·모양 색) ; 일본 문물의 영향을 받은 양식을 얕잡아 이르는 말.

*30본산(三十本山) ;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병합 조약) 직후에 시작된 조선총독부는 1911년 6월 3일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공포하고 시행하여 그동안 독립적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조선의 불교 사찰을 30개의 본산, 중심 사찰을 선정해 한 지역의 다른 사찰을 관할하게 한 제도.

30본산의 주지는 조선총독이, 말사(末寺)의 주지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서 임명하도록 하였다. 1924년 11월에 화엄사가 본산으로 되어 31본산(三十一本山)이 되었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계율(戒律)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

계는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의 뜻으로 모든 불자가 지켜야 할 불교도덕이며, 율은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깨달음의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의 통제 규범.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죄성(罪性) ; 죄의 본성. 죄의 실체.

*공(空) ; ①모든 존재는 여러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항상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자성이 없음(無自性).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공은 전혀 없다는 무(無)나, 결국 사라져 덧없다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또 공(空)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 · 본질이 아니라, 존재의 무실체성 · 무자성 등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표이다.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것은 공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참된 공[眞空]이 아니라 무기공(無記空) · 편공(偏空) · 악취공(惡取空)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의 병[空病]에 대한 약으로 '공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차별과 분별로써 인식된 대상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 가치나 감정이 부여된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이 조작한 허구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은 허구라는 뜻.

③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악성(惡性) ; [산스크리트어] akuśala, aśubha 선(善) · 무기(無記)와 함께 삼성(三性 사람의 세 가지 성품)의 하나. 악한 성품. 불선성(不善性). 현세와 후세에 나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탐진치(貪瞋癡) 등의 악한 마음과 이로 인한 일체의 악업(惡業)을 말한다.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2/4)

 

*'또 교(선)가 암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니, 문자도 거그는 소용이 없으니 교(敎)가 무슨 소용이 있나 했지마는~' ;

[참고] 『五燈會元』 제3권 '南嶽下二世 馬祖一禪師法嗣 洪州百丈山懷海禪師者'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영광(靈光)이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나며 체(體)는 진상(眞常)이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 다만 망연(妄緣)을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라.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곧 이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을 곧바로[直] 가리켜[指],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퇴설당(堆雪堂) ; 해인사에 있는 전각(殿閣)으로 최근까지 상선원(上禪院)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총림 방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1899년에 경허 선사께서 이곳에 주석하시면서 동수정혜결사[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 함께 정혜를 닦아 함께 도솔천에 나서 함께 불과를 이루는 계사(모임의 조직)]를 한 장소로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본산(本山) ; 본사(本寺 처음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 절). 그 종파에 딸린 여러 절을 총괄하는 한 종(宗)의 근본 도량(절).

*물꼬 ; ①논에 물이 넘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하여 만든 좁은 통로. ②진전이 없거나 막혀 있는 상태를 푸는 실마리나 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 깨는 것이, 툭 터진 것이 대오(大悟), 우리 대오허는 법이 그게—자, 부처님도 경계 보고 깼제. 별 탁! 뜬 놈 보고, 탁! 봐 버렸제' ; 견명성(見明星). 부처님이 12월 8일 새벽별[明星]을 보시고 성도하였다는 고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저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1) 15분 19초.

[참고 ①] 송담스님(No.405)—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1)------------------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꽉 낀 날은 안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우리도 빛나는 번쩍거리는 그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다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만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 8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 그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해. 7일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 8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 8일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자나 되는 긴 낚시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요, 그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한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그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하신 그 법을 가섭 존자에게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조 스님까지, 6조 스님 이후로 5종 가풍이 벌어져서 전강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도리를 깨닫고 또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꼭 깨달을 것이 있고, 꼭 전할 것이 있고 또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또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그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그 칼을 잘못 놓쳐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해 가지고, 나중에 그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그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뱃전을 쪼아 가지고 표(標)를 해 놨습니다.

언제라도 그 뱃전 그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그 뱃전에다가 표를 해 놔야 그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그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한 마리 보았는데, 그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그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가 있으면 그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한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퍽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날 새벽에 하늘에 뜬 그 별을 보면 혹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가지고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저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아!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담 밖에 담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아! 저 담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뿔 끄터리만 보여도 담 밖에 소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척! 연기만 보고 불인 줄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줄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뿔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줄 알아야 할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8분46초~24분5초)

 

(2) 5분 13초.

(2)------------------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할 때, 시간을 잘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딱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눌 때도 그렇고, 오줌을 눌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안 하면 내가 어쩌리라’고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36분35초~41분48초)

 

[참고 ②] 『선문염송 · 염송설화』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1권 3칙 ‘오도(悟道)’

<염송설화(拈頌說話)>

大慧云 釋迦老子正覺山前 從定而起 因見明星忽然悟道 信知時節若至 其理自彰 但記悟道時節因緣而已 則世尊悟處 不在明星上 香嚴悟處 不在擊竹邊

 

대혜가 이르기를 “석가 노자께서 정각산 앞에서 선정에서 일어나 샛별을 보시는 순간 홀연히 도를 깨달으셨으니, 이는 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도를 깨달은 시절과 인연을 기록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 데 있지 않다.

 

*장경(長慶) 스님 ; (856-932)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속성은 손(孫)씨, 법명은 혜릉(慧陵) 법호는 장경, 시호는 초각(超覺)대사.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힘대가리 ; 이 말은 주로 '힘대가리 없다'는 표현으로 쓰여, '힘이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산 스님 ; 서산대사.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가로판 p87)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 가섭기능전(迦葉豈能傳) ;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2.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현중현(玄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가로판 p215, p219)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良久)와 방망이[棒]와 할(喝)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2분 48초)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한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2분 19초)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2분 26초)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어떤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가려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분 36초)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4분 18초)

[참고 ❺]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 삼구(三句).

 

[참고 ①] [ 別明臨濟宗旨 ]  별명임제종지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6~207. (가로판 p213~214)

大凡一句中에  具三玄하고  一玄中에  具三要하니  一句는  *無文綵印이요 三玄三要는  有文綵印이라  權實은 玄이요  照用은  要라.

 

따로 임제종지를 밝힘 : 일구(一句) 가운데 삼현(三玄)이 갖추어 있고, 일현(一玄) 가운데 삼요(三要)가 갖추어 있는데, 일구는 글발이 없는 인(印)이고, 삼현과 삼요는 글발이 있는 인이다。 권도와 실상은 현(玄)이며, 비침과 씀은 요(要)가 된다.

 

*무문채인(無文綵印) 또는 무문인(無文印) : 선법(禪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수가 있다.

①의리선(義理禪)이란 것은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이름이니, 마치 인장으로써 진흙에 찍으면(印泥) 인발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다.

②여래선(如來禪)이란 것은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어서, 마치 인장을 물에 찍은(印水) 것 같다.

③조사선(祖師禪)이란 것은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이치나 일에 다 걸림 없는 것이 마치 인장을 허공에 찍은(印空) 것과 같은 것이다.

 

[참고 ②]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가로판 p214)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③]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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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참고 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p99~100.

서신 문답 — 한암 스님이 금강산에 있을 때

만공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눈 위에 서리까지 겹쳤도다. 지장 도량(地藏道場)에 업경대(業鏡臺)가 있으니, 허물이 얼마나 되오?』 師云 『漢岩 到金剛 雪上加霜. 地藏道場 有業鏡臺 所作罪業 多少麽?』

한암 『묻기 전과 물은 후를 합하여 30방을 맞았읍니다.』 岩云 『故問以前 此問以後 合喫了三十棒也』

 

만공 『맞은 뒷 소식은 어떠하시오?』 師云 『喫後消息以爲如何』

한암 『지금 곧 잣서리가 한창이니, 이 때를 놓지지 말고 오셔서 같이 먹으면 어떻겠습니까?』 岩云 『今當栢子燒喫時 勿失時機來相遊 亦不樂乎?』

 

만공 『암두의 잣서리 늦은 것은 원통하지만, 덕산의 잣서리 늦은 것은 원통하지 않소』 師云 『唯恨岩頭栢失時 不怨德山栢子遲』

한암 『암두와 덕산이라는 이름은 알았으나, 그들의 성은 무엇이라 합니까?』 岩云 『旣知岩頭德山名 未審其姓 是甚麼?』

 

만공 『도둑놈이 벌써 천리는 도망갔을 터인데 문전 나그네여, 성은 물어 무엇하겠소?』 師云 『賊過去已千里後 來問姓名門前客 問姓作甚麼?』

한암 『금선대(金仙臺) 안에 보배 화관이여! 금 · 은 · 옥 · 백으로 견주기 어렵도다』 岩云 『金仙臺裡 寶貨冠 金銀玉帛 難可比』

 

만공 스님은 최후로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려서 보냈다. 師 最後 (그림) 記畵如是(백지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보냈읍니다)

 

[참고 ②] 『한암일발록(漢巖一鉢錄)』 (한암문도회 | 오대산 월정사) p436~437.

만공스님이 한암스님에게 이르되,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 지장 도량에 업경대가 있으니 지은 죄업이 얼마나 되는가.” 師云 漢岩이 到金剛하니 雪上加霜이라 地藏道場에 有業鏡臺하니 所作罪業이 多少麽아

한암스님이 답하기를,

“이 질문하기 전과 질문한 뒤를 합하여 30방망이를 맞아야겠다.” 岩云 姑問以前과 此問以後에 合喫了三十棒也로다

 

만공 — “맞은 뒤의 소식은 어떠한가.” 師云 喫後消息은 以爲如何오

한암 — “지금은 잣서리 할 때라. 때를 잃지 않고 와서 서로 놀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岩云 今當栢子燒喫時에 勿失時機來相遊가 亦不樂乎아

 

만공 — “암두(岩頭)의 잣서리 할 때를 놓침은 한스럽지만 덕산(德山)의 잣서리에 늦음은 원망하지 않노라.” 師云 唯恨岩頭栢失時나 不怨德山栢子遲로다

한암 — “암두와 덕산의 이름을 알지만 그 성은 무엇인가.” 岩云 旣知岩頭德山名이니 未審其姓은 是甚麼오

 

만공 — “도둑이 이미 지나간 지 천리가 넘었거늘, 문앞에 지나가는 길손이 성을 물어서 무엇하랴.” 師云 賊過去已千里後라 來問姓名門前客이니 問姓에 作甚麼오

한암 — “금선대 속에 보화관이여, 금은 옥백으로 비교하기 어렵도다.” 岩云 金仙臺裡에 寶貨冠이요 金銀玉帛 難可比라

 

만공스님이 최후로 백지에 이렇게 그려 보내다. 師 最後에 記畵如是하다(백지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보내다)

 

*이 문답은 한암선사께서 금강산 지장암 업경대에 계실 때 일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들입대 ; 들입다(세차게 마구).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다만[但] 알지 못할[不會] 줄 알면[知] 곧[是卽]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일예재안공화난추(一翳在眼空花亂墜) ; 일예재안공화난타(一翳在眼空花亂墮).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허공 꽃[空花]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가지가지 망상이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참고 ①] 『전등록(傳燈錄)』 (제10권)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 (전등록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 p691~692)

初參歸宗問 如何是佛 宗曰 我向汝道汝還信否 師曰 和尙發誠實言何敢不信 宗曰 卽汝便是 師曰 如何保任 宗曰 一翳在眼空花亂墜(法眼云 歸宗若無後語有什麼歸宗也)

 

처음에 귀종을 뵙고는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한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화상께서 말씀하시는 정성스럽고 참된 말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대가 부처다”

 

“어떻게 보임(保任)하리까?”

“하나의 그림자라도 눈을 가리면 허공의 꽃이 어지럽게 떨어진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귀종(歸宗)이 뒷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귀종(歸宗 : 조종에 돌아간다는 뜻)이라 할 것이 무엇이랴?라고 하였다]

 

師辭歸宗 宗問 子什麼處去 師曰 歸嶺中去 宗曰 子在此多年裝束了却來 爲子說一上佛法 師結束了上堂 宗曰 近前來 師乃近前 宗曰 時寒途中善爲 師聆此一言頓忘前解 後歸寂諡弘照大師 塔曰圓相

 

대사가 귀종에게 하직을 아뢰니, 귀종이 물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중(嶺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자네가 여기에 여러 해 있었으니, 짐을 꾸려 놓고는 잠시 오라. 내가 자네에게 유일하고 최상인 불법을 말해 주리라”

대사가 짐을 꾸려 놓고 법당에 올라가니, 귀종이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대사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니, 귀종이 말했다. “날씨가 차니, 도중에 조심하라”

대사가 이 말을 듣고는 앞서의 견해를 단박에 잊었다.

나중에 입적하니, 홍조(弘照) 대사라 시호하고, 탑호는 원상(圓相)이라 하였다.

 

[참고 ②]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普照知訥 一一五八 ~ 一二一O)

又僧 問歸宗和尙 如何是佛 宗云 我今向汝道 恐汝不信 僧云 和尙誠言 焉敢不信 師云 卽汝是 僧云 如何保任 師云 一翳在眼 空花亂墜 其僧 言下有省

 

또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화상은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해 주고자 하나 그대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다”

 

“화상의 성실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바로 부처이니라”

 

“어떻게 보림 해야 합니까?”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허공 꽃[空花]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 깨달은 것이다.

 

上來所擧古聖 入道因緣 明白簡易 不妨省力 因此公案 若有信解處 卽與古聖 把手共行

 

위에 든 옛 성인들의 도에 드신 인연이 명백하고 간단하여 수고를 덜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안으로 말미암아 믿어 아는 곳[信解處]이 있으면 바로 옛 성인들과 더불어 손을 잡고 함께 갈 것이다.

 

[참고 ③] 『선문염송(禪門拈頌)』 제 257칙 ‘즉여(卽汝)’

歸宗因僧問 如何是佛 師云 我今向汝道 恐汝不信 僧云 和尙誠言 焉敢不信 師云 卽汝是 僧云 如何保任 師云 一翳在眼 空花亂墜 其僧 於此有省.

 

(6분 29초)

[참고 ④] 송담스님(No.465)—92년 2월 첫째일요법회(92.02.02)에서.

저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라고 하는 큰 선지식이 옛날에 계셨는데, 그 선사가 최초에 귀종(歸宗) 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을 찾아가서 친견을 했습니다.

 

떠억 찾아가서 그 귀종 선사에게 묻기를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니잇고?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매우 엄숙하고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귀종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향해서 일러주되 네가 믿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말하기를 “큰스님께서는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 학자를 위해서 정말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감히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귀종 선사가 가로되 “네가 곧 부처니라”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어떻게 보림(保任)을 해 가야 되겠습니까?”

귀종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空華)가 난타(亂墮)니라.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공화가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이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영훈 선사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보림하는 길까지 눈을 떴습니다.

 

한 장애가 한 티끌이 눈에 있으니, 공화(空華)라고 하는 것은 눈병든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슨 꽃이 피어서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서물서물 서물서물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거든.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일러주기는 어렵지 않지만 네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어찌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고 성실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하니까, “네가 곧 부처니라” 거기서 확철대오를 했거든.

 

부처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도 “부처님, 부처가 무엇이냐?”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삼천 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실달(悉達) 태자 뭐 그런 등등 나름대로 다 말씀하실 수 있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바로 진리를 깨달으신 진리와 하나가 된 성현이다’ 아마 그렇게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네가 곧 부처다. 영훈이 네가 곧 부처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 바로 그놈이 부처다”

이러한 이것은 이론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고 또 영훈 선사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수긍을 해서 ‘아하, 바로 내가 부처구나’하고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어.

 

“네가 곧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툭!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알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그래서 법문(法門)을 듣되 그 법문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상식 모다 그런 것을 통해서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만,

 

이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法寶弟子)는 무슨 법문을 듣던지 바로—법문이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저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 그런 것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평범한 이야기, 무슨 내용의 말이라도 그 말을 그 법문을 즉(卽)해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을 하고, 그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터억! 드러난 거기에서 모든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참으로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거든.(16분28초~22분57초)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조비모락(鳥飛毛落) ;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진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43~44. (가로판 p44~45)

諸佛은 說弓하시고 祖師는 說絃하시니 佛說無碍之法은 方歸一味어니와 拂此一味之迹하야사 方現祖師所示一心이니 故로 云, 庭前栢樹子話는 龍藏所未有底라 하시니라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 없는 법이란 바로 한맛에 돌아가거니와, 이 한맛의 자취마저 털어 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하시니라.

 

(註解) 說弓은 曲也요 說絃은 直也며 龍藏은 龍宮之藏經也라 僧이 問趙州하되 如何是祖師西來意닛고 州答云, 庭前栢樹子라 하시니 此는 所謂格外禪旨也라

【 魚行水濁이요 鳥飛毛落이니라

 

활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요,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것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조사가 서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격 밖의 선지이다.

【 고기가 놀면 물이 흐리고 새가 날면 깃이 떨어지느니라.

 

*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의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에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종(宗)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친고(親故) ; 친구(親舊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위패(位牌 지위·높여서 어떤 사람 위/명찰·위패 패) ; 죽은 사람의 위(位 이름 · 지위.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모시는 나무패.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간탐(慳貪 아낄·인색할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음.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4/4)

 

*서푼 ; 한 푼짜리 엽전 세 개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이르는 말.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禪)을 말한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뱃심 ; 염치나 두려움 없이, 조금도 굽히지 않고 제 고집대로 버티어 내는 힘.

*서곡(黍穀 기장 서/곡식 곡) ; 수수, 옥수수, 조, 기장 따위의 잡곡.

*간데미(肝데미) ; 간더미. 간덩어리. '피덩어리'를 이르는 말.

*부스럼 ; 피부에 나는 종기(腫氣)를 통틀어 이르는 말.

*뽀이(boy) ;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남자.

*속인(俗人 속인·평범하다·대중적이다 속/사람 인) ; ①세속(世俗)의 사람[人]. ②불가(佛家)에서 스님이 아닌 일반 사람을 이르는 말.

*밉상짓 ; 밉상+짓. 보기 싫거나 미운 행동을 하는 일. 밉상(-相)은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리는 데가 있는 미운 모습’을 이르는 말.

*'그거 그 지경 되아 놓은게 못쓰겄드구마는, 사사(事事)에 어긋나서' ; 사사무애(事事無礙).

현상계의 일체의 사상(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卽無碍)인 것을 말함.

단일한 하나의 현상이 다른 모든 모든 현상과 어김없이 하나가 되는 관계처럼, 모든 차별적 존재가 서로 걸림없이 다른 모든 존재를 포섭하고 포섭되며 자재하게 뒤섞여 있는 법계의 실상을 나타낸다.

*위의(威儀 위엄·권위·두려움·거동·공덕·존엄하다 위/거동·법도·법식·예절 의) ; ①위엄이 있고 엄숙한 태도나 차림새. ②예법에 맞는 몸가짐. ③(불교) 계율(戒律 불자가 지켜야 할 규범).

*본사(本寺) ; 본산(本山). ①처음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 절. ②그 종파에 딸린 여러 절을 총괄하는 한 종(宗)의 근본 도량(절).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회마(會麼) ; '알겠는가?'

*현안(懸案 달다·매달다·매달리다 현/안건 안) ; ①이전부터 의논하여 오면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나 의안. '걸린 문제'로 순화. ②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는 일. 또는 안건.

*독신(篤信) ; 깊고 확실하게 믿음.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4. 21. 21:1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2호) 경봉스님과 탁마.

 

**전강선사(No.025)—전강선사 일대기 제12호(경술1970년 12월 20일.음) (1971년 1월 16일) (71분)

 

(1/4) 약 16분.

 

(2/4) 약 20분.

 

(3/4) 약 15분.

 

(4/4) 약 21분.

 

(1/4)----------------

 

참선활구학자(參禪活句學者)여  이가세월심(離家歲月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저성낙매곡(笛聲落梅曲)이여  금일자가보(今日自家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참선 활구학자야! 참선허는 활구학자들, 이렇게 사부중(四部衆)이 이렇게 모였구나.

아무, 세상에 도무지 앞뒤 없는, 앞도 없고 뒤도 없고, 활구를 깨달을라고 몽그리고 나온 학자들이다. 앞뒤, 뭐가 있어.

 

간단허다. 얼마나 진실허고 얼마나 참되고.

 

세상에, 세상에 이 일 밖에 더 있어?

그놈의 숭악헌 그 악업(惡業)만 짓는 일 그거 다 내던지고, 생사 없는 해탈(解脫) 직업 밖에 더 있어? 이 직업 위에 더 있냔 말이여?

 

그대로 진실해 버렸고. 흥! 우리는 인자 원수도 다 끊어져 버렸고, 지옥도 악취(惡趣)도 다 우리에게는 없고, 해탈 대학자다.

 

저성낙매곡(笛聲落梅曲). 인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남았다.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서, 의단만 잘 갖추어 앞으로 나간다.

그 일, 의단독로 일,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언하대오.

 

낙매곡(落梅曲)을 듣고, 낙매곡이라는 곡조가 있는디, 매화 떨어지는 곡조를 터억 첫 소리에 듣고 활연대각이다. 활연(豁然)히 대오(大悟)를 했느니라.

 

세상에, 그밖에 어디 있을 거여. 참, 이상 없제.

출격장부(出格丈夫)요, 격 밖에 뛰어난 장부요. 겁외장부(劫外丈夫)요, 겁 밖에 장부요.

 

활구선학자가 그렇게도 응, 그대로 다 지켜져 있고, 그대로 다 가져져 있고, 본래 그 근본 바탕 고대로가 청정 계행(戒行)이요, 일체 십악중죄(十惡重罪) 거그 지을 것 어디 있어? 뭘 지어?

지을 죄상(罪相)도 다 벗거져 버렸는디, 죄상이 거그 어디 있어? 십악중죄장이 어디 있냐 말이여?

 

가지느니 범하느니, 일체 재계(齋戒)니 일체 파계(破戒)니, 어디 있어?

다맛 활구학자! 그러니 겁외장부요, 겁 밖에 난 장부요.

 

내가 이렇게 응, 그때 암만 내가 병이 들어서 곧 죽게 되았지마는 거그에 가서 힘을 얻어 놓으니,

그렇게 내가 무슨 확철대오라고 헐 건 없지마는, 그래도 큰스님네한테 내가 그만헌 인가(印可), 딱딱 그 법담(法談)헌 게 안 있어?

 

어디 일점난만(一點難謾)이제. 내가 없는 말 그대로 '인가 받았다' 고러고 댕겨?

나, 그런 추접스런 소리는 헐 이치가 없고, 그런 비인격적 행동을 왜 해? 응, 그러헌 활구학자가. 없제.

 

암만 병이 들어서 내가 피 다 흘려 버리고, 몸은 백지장 같이 되아 가지고 나섰지마는.

그래 머리 길루어 버리고 오장치 하나 짊어지고 짚부채 하나 맨들아 들고, 그러고 척 나서서 댕기지마는, 천하에 나보담 참말로 활구학자가 어디 있으며, 나보덤 청정헌 행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느냐?

 

느그는 나를 아무리 무행자(無行者)로 보고 무행—중도 아니제, 무슨 중으로 댕겼나?

바가지 들고 막 얻어먹고, 막걸리면 막걸리, 뭐 고기 겉은 걸 주면은 그놈 콩나물 대가리 겉은 거 얻어서 아 그놈 한점 먹고, 그놈 한점 한점 먹는 바람에 거그서 내가 그 얼마나 청정관(淸淨觀)을 가지고, 깨끗헌 청정관이지.

 

그 돼야지 고기가 무슨 돼야지 고기란 상(相)이 붙어 있나? 거 가서 무엇이 붙어 있어?

'내가 돼야지 고기다. 내가 추육(醜肉)이다, 더러운 고기다. 내가 무슨 뭐 괴기다' 일체제상 (一切諸相)이 어디 거그 붙어 있냔 말이여? 거가 무슨 제상이 붙어 있는가?

 

나는 다맛 그대로 받아서, 아 그놈 먹고 내 소업(所業)을, 내 닦아 행하는 바를 그대로 이루어 나가는데.

뭐 '무행허는 사람'이니, 뭔 '정영신이는 그대로 그만 선방에서 삐끌어져 나가 가지고는 어촌주사(漁村酒肆)에 안하무행(眼下無行)을 허고 댕긴다'

소문이 그만 뭐! 그때 그 뭐 별것 아니지마는 나 하나로서 그러헌 뭐 참 천담만설(千談萬說)이 일어났다 그말이여. 방방곡곡(坊坊曲曲)에 그랬제 뭐.

 

'그거 그래 병 들어 가지고 인자 나가서 주사(酒肆)에 안하무애(眼下無碍) 허고 댕긴디 뭔 도(道)는 뭔 도 어쩌고?'

천(千)이 그럴 것 같으면은 거기에 한두 사람이나 혹 지자지(知者知)헐까, 누가 아느냐 그말이여? 알 사람이 누구겠냐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대승사 가서—인자 갔다왔다 하니까 뭐, 어디 정망헌 데가 있어야제? 갔다왔다 하니깐 정망처(定望處)는 없고, 이리 갔다 또 온 길도 오기도 허고, 저리 갔다 도로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도 허기도 허고 이러제.

 

나, 그 뭐 어느 날 어디 갔고 어느 날 그 알 것이여? 그때 뭐 연대갑자(年代甲子)도 총부지(總不知)허고 나선 사람이. 그런 것 소용 없어.

시방도 다 뀌어 대라 할 것 같으면, 그때가 나이 어느 때 쯤 되았다 그저 그건 알지마는, 소용 없어.

 

혼자 그와 같이 처음에는 보따리 하나 그래 나서 가지고 나중에... 그거 다 고런 건 안 넣었으니깐 그려.

 

또 순흥(順興)까장 가 부석사(浮石寺)에 들어가서—요건 그 시방 족 가는 그 행로(行路)가 아니고 인자 중간 중간이 그건디.

순흥 부석사에 들어가서, 그 순흥 부석사가 소천서 10리 올라가드구만. 영주 소천서 10리를 올라가.

그때는 그 뭐, 영주인지 무엇인지 소천인지 내가 그런 말은 내가 알았는데.

 

올라가니 칠십 주가 보이는 디여. 눈앞으로 칠십 주가 따악, 칠십 고을이 보이니 얼마나 앞이 툭 터졌어.

올라가니까, 주지는 석운이라고 허드야, 뭐 서옹이라고 허드야 헌디, 그 사람은 나가 버리고 없고 아이 하나가 있는디, "야, 내가 배가 고파 죽겄으니 나 밥 좀 도라"

하! 이놈이 어린아이라도 그 거지 숭악헌 거지, 거지로도 볼 수가 없고, 아! 그런 건디, 그놈이 그렇게 나를 그 반가이 허면서 밥을 따뜻허게 채려 준 것이 잊혀지지 않는군.

 

그놈을 얻어먹고, 거그서 내가 짚 한 다발을 얻어 가지고는, 고 짚으로써 가마니 치데끼 그런 꾀를 내가지고는, 노끈을 이렇게 인자 여럿을 이렇게 해 놓고서는, 짚을 조끔씩 가려서 요리 양쪽으로 짚뿌럭대기가 나오게 해 가지고는 요렇게 엮고, 돌 달어 가지고 요렇게 엮고, 또 돌로 요렇게, 이놈을 잘 엮어서는, 양쪽을 요리 뒤집어 싸서 또 요렇게 요렇게 엮어서 오장치를 만들아 놓으니 희한허다 그말이여.

 

그놈에다 갖다가 인자 떨어진 옷을 거다 집어 넣으니깐, 어디 가다가 쉬어도 좋고.

궤짝을 처음에 져, 천하 못쓰겄드구만. 꿰짝은 그 안 되겄드구만. 그것도 경험이 있어야 겄드구만.

짚 오장치를 짊어지고는, 바가지는 인자 그 오장치 속에다 넣기도 허고, 설찬히 큼직허게 해서 지고. 태평이여.

 

짚부채를 하나 인자 거그서 만들아서 팔죽선이락 햐.

짚부채 하나를 팔죽선을 맨들아서, 자리는 이렇게 하나에 묶어 가지고는 끝에가 여럿... 하나, 둘, 셋 엮어가 나중에 넷 엮어 가지고 한 댓 맥기... 끝에는 엮어 놓으면은 넙적허게 되거든.

세상에, 그놈 드니, 참 태평이여.

 

가다가도 아무디라도 땅이 추저도 고놈 놓고 깔고 앉고, 어디 가든지 그놈 깔고 앉기가 좋아. 고 짚방석이라 냉기도 안 올라오고. 고 하나!

또 급허면 어디 가서 뭣 주면 거다 받아. 받아 놓고 먹기가 십상이여. 거 둘!

그다음에 더우면 부쳐. 응 셋!

 

나, 다는 못 하겄구만, 여덟 가지인디.

그 팔죽선이여, 하여간. 여덟 가지를 다 수용허는 것이여.

 

가다가 저 장(場) 겉은 디 가면은 사람이 많이 모여들어. 이래 장으로 모도 가.

봐 가지고 저녁 때 나올 때가 더 좋아, 갈 때보다.

 

짚부채로 한번 툭 둘러.

들고는 서서 "여보시요, 와서 내 말 한마디 듣고 가시오" 그러고 짚부채를 두르네.

 

그 뭣이, 저런 사람이 저 움펑 감투를 쓰고 저런 것이 있는고 싶어서 모아든다 그말이여.

모아들면은 약 처음에 한 여나뭇 그저 이렇게 모아들면은 설법(說法)을 혀. 좋제, 설법 그때!

 

허!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헐 것 같으면은 어떻게 된다는 그런 설법도 해 주고. 대번에 그 무슨 참선법을 말허니 알 것인가?

그다음에는 인자 무슨 그 공덕찬 법문도 해 주고. 모도 고런 디 등등 쓰는 것이여.

 

그 여덟 가지의 팔행선(八行扇)이라고 허기도 허고, 팔죽선(八竹扇)이라고 허기도 허고. 요렇게 만들아 가지고 짊어지고는 한바탕 또 고놈을 댕겼다 그말이여.

고러헌 그 짊어지고 댕긴 고놈 고때가 또 따로 있고, 고 놈을 지고 또 댕긴 게 아니여.

이것은 뒤고, 또 뒤 거를 헌 거여. 이 뒤 것 헌 것이고.(처음~15분38초)

 

 

 

 

(2/4)----------------

 

대승사에서 그 박홍록이를 만나 가지고는 가야금을 인자 내가 짊어지고. 그 대승사 거쳐 왔지.

 

그 장진사 참, 대방(大棒) 내루고... 대방 내룰 수밖에 없지.

갖다가 활구학자를 쭉 모아 놓고 삼십여 명, 근 오십 명 모아 놓고, 예천 또 보살님네도 모였드구만.

그 대중에 앉어서, 글씨 그렇게 법문을 갖다가 옳게 허지 못허고.

 

응! <네가 확철대오를, 조주 무자에 확철대오를 헐 것 같으면은 산승(山僧)의 주장자(柱杖子)로도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허리라. 산승의 주장자로도 너를 갬히 칠 수 없다>

이래 놓은 그 법문인데. 그 어떤 법문인데, 그 대중의 눈을 멀리냐 그말이여.

그걸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있나! 내가 체면만 채리면 뭣 헐 것이여. 벼락이다! 벼락이여.

 

조주무자(趙州無字)는 종문중일관(宗門中一關)인디, 종문 가운데 제일인디, <조주무자를 담하득거(擔荷得去)허면, '무(無)'헌디 툭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산승의 주장자로도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허리라. 산승의 주장자로도 너를 갬히 칠 수 없다>

 

무슨 말이여? 그 주장자가 어떤 주장자냐 그말이여.

아, 이놈 어림도 없네! 어림 택이나 있어? 그건 못혀!

그 방(棒)을 갈려 내아?

 

<조주무자를 담하득거(擔荷得去)허면, 깨달라 얻어 가면, 산승의 주장자로도 너를 칠 수 없느니라>

흥! 무서운 그 조주십절목(趙州十節目) 가운데에 일(一) 절이여.

 

또 그 밑에 내려가다가 또 <상(賞)야, 벌(罰)이냐?>

고 밑에 가서, <조주노인검(趙州露刃劒)이여. 조주 드러난 칼이여. 한상광염염(寒霜光焰焰)이다. 차운 서릿빛이 염염허구나. 의의문여하(擬議問如何)하면 분신작양단(分身作兩段)이다. 어떻다고 헐 것 같으면 너는 몸이 두 쪼가리 나 버렸느니라>

 

고 밑에가 그게 있어.

 

<상야(賞耶) 벌야(罰耶), 상방이냐, 벌방이냐?> 헌 놈이 그 제2절에 있어.

 

그게 무슨, 그거 그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법문을 장진사가 허고 있는데, 장진사가 그때 예천 아주 그 도인(道人)으로 유명혀.

아, 그런 도인인디, 거그 와 앉어서 그것을, 이놈을 갖다 학자들한테다 가서 사구(死句)를 만들아서 설파(說破)를 허고 앉었네! 아, 이런 꼴이.

 

탁! 내가 들어가서 '그런 법이,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막, 환성지안 선사의 일할(一喝)로써, 거 무슨 외도(外道) 잡데끼... 중간에 그 무슨 외도, 뭐 나 만날 얘기헌 것 없는가 왜?

냅대 그만 잡아 한바탕 했단 말이여.

 

거까장 저 엊저녁에 내 했지.

또 허거든. 백 번 허면 어째.

 

어디 가서 그런 데 가서 내가 거지 행동을 허며, 그런 데 가서 내가 체면을 채리며 그럴 것이여?

막 때려 허야지. 내가 나선 길이 어떤 길인데.

 

아, 이놈 그 나를 거지로 보든,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보든 홍록이가 퍽 나를 참...

 

그런게 모도 나와서 그만 절을 헐밖에 없제. 내가 절 다 받았구만.

장진사도 "그렇겄습니다"허고 참 했고. 진사도 나이 뭐 그렇게 늙지도 않고 헌 사람이 법(法)에 가서 어쩔 것이여.

 

그래 놓고 내가 그놈을 즈그가 다 정신채릴 만큼도 해 주었네.

<본분납승(本分衲僧)이라는 게 그 어떤 걸 본분납승이라 하느냐?> 하고는 한바탕 해 주었거든 또.

 

상방 벌방도, '거기에서 상방이다 벌방이다, 상방벌방이다' 허고 앉었어? 바로 일러야지!

하! 그놈 뭐 해 놓으니 뭐 어쩔 꺼여?

 

 

그래 홍록이허고 같이 인자 참, 어울러졌제. 그래 그날 따라댕기면서 인자 가야금을 내가 '가르켜달라'고...

앉으면, 석상(石上)에도 앉으면은 요놈은 요렇게 허고, 요놈은 요렇게 허고, 요놈은 저성이고, 요놈은 탄성이고 뭐 그걸 다 일러 주고 가르켜 주고, 뭐 허잔 대로 해 주어.

 

그러지마는 돈벌이를 헐라니께, 그 사람은 영리(營利)로 나섰으니 돈벌이를 헐라고 하니까 어디 잔치집이던지, 어디 환갑 친 디던지, 고런 디를 댕겨야 허거든.

또 대승사 마냥으로 절 겉은 디, 그런 디 들어가서 한가히 허는 디 가서도...

 

또 고놈이 인자 아주 그 가야금 고놈이 아주 그만 살림살이라. 고놈만 척 놓고 앉으면은 참, 기가 맥힌 사람이다. 천하에 미남자요, 천하에 제일이여! 그러고 댕기다가도 보면.

 

아, 그러니 그분은 절 같은 디를 들어가서 더러 놀아야 할턴디, 절 같은 디 따라 들어가면 아조 곤란혀.

나는 벌써 머리는 길렀고 누데기는 입었지마는, 그놈이 중누데기도 아니고, 이건 뭐 속인 누데기도 아니고, 속인 거지도 아니고, 채림채림이 그 이상해.

 

그래 가지고 가서 그런 디 가면은 그 어울리지도 않고—어울리나, 안 허나, 그까짓 것 상관없제.

어울리고 누가 뭐 안 어울리고, 나를 잘 봐 주고 못 봐 주고, 그런 디 걸려 있지 않으니깐 상관없지마는 어쩐지 가기 싫어.

절 겉은 데 하도 많이 댕겨 쌓고, 그런 데는 가기가 싫어.

내가 끄리니까, 나를 또 대접허기 위해서 곧 갈 절도 안 들어갔어.

 

그러고 댕기면은 거 참 그것도 농세(弄世), 참 우리 활구학자들 거침없이 댕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여. 한번 척 그놈 들어 매고 절에도 가고 환갑집에도 가고, 그냥 홍록이는 이름이 나버려서 가는 디마당 대환영이여.

아, 그래 댕기면서 그 가야금 타고 한바탕 놀면은 그냥 음식이라는 것은 참 대접 잘혀. 그것 참! 내가 부엥이 집을 만났어.

 

혼자 짬짬허니 댕기다가 십 리도 가고 오 리도 가고 그렇게 댕기면서 얻어먹다가, 그게 좀 고적혀. 대단히 고독해.

그게 고독이 뭣이 있을까마는—무슨 놈의 고독이여? 청사십리행을 헌들, 십 리를 바라보고 간들 내가 거기에 무슨 뭐, 거가서 뭣 할 것이여? 십 리 쫓아가 뭣 할 것이여? 그저 가는 길이지.

 

십 리도 행하고 오 리도 행하고, 있고 싶으면 있고, 아 이러고 나가는데 뭣이 고적허고 고독허고 있을 거여?

그 속에서 내가 그저 얻은 독존 경계가 있으면 내가 그 경계나 가지고 나갈지언정, 뭐 내가 뭐, 뭐 하나 임산임수(臨山臨水), 등산도수(登山渡水)에 뭣이 뭐 의심이 있으리요? 아무 무슨 고독이니 무엇이니 없지.

 

그러지마는, 어쩌다 그놈의 습기(習氣)가 갱동(更動)이여. 응, 다생습기(多生習氣), 과거 습기가 갱동을 혀.

다시 동(動)해서 너무 그냥 사람이 하나도 없는 무인지경(無人之境)에 들어가서, 새소리만 너머 듣고, 짤짤 흐르는 계성(溪聲)이나 듣고 앉었으면은, 혹 또 좀 아따 인간이 너무 이래 고요허고, 외롭고 멀어!

고런 지경이 더러 있드구만. 그게 이 뭐 나는 '오! 이것이 다생 모도 습기로구나'하고는 지내다가.

 

 

그래도 또 목적이 그 무엇을 좀 멕여 줘야 할턴디, 이렇게 당초에 그만 몸이 원청 못쓰게 되아 버렸으니, 목적은 나선 것은 이 몸을 좀 어떻게 좀 복구를 해가지고는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내 목적은 나섰는디,

넘이야 웃건 말건, '무행한다' 뭔 '버렸다' 뭐 그까짓 놈의 소리는 관계헐 것도 말 것도 없고.

 

'아, 이것 좀 먹어야 허겄는데...' 이러고 있다가 연기 푸르르 나면 뒤에 조금 있다 들어가면 꼭 밥 푸거든. 밥 푸면은 고 밥 푸고 끝에 눌은밥처럼 붙은 거, 고 훑어서 조금 주제, 많이는 안 주어 그것도. 어떤 집이는 한때 먹게 주어.

 

그놈을 몇 집 얻어야 되는데, 그놈의 것, 댕김서 그까짓 것 얻어 봤던들, 반찬 조끔 달라고 해 얻었던들 그거 뭐 영양이 뭐 있어?

뭐 고기 누가 주나? 안 주어.

 

혹 가다 인자 잔치집을 만나 들어가면은 콩나물 좀 허고 거다가 뭐 콩과자 겉은 것 좀 놓고, 촌에 잉!

고기는 어쩌다 째끔 한 점 주거나 그려. 그도 그놈 참 맛있지. 싸서 그놈 먹고. 막걸리 한잔 그놈 주면 먹고.

헐 수 있어? 그것 뭐, 그것 내가 그런 것을 가리고는 안 먹고 어쩌고 할 꺼여? 그놈이 첫째 제일인디, 좀 먹을라고 나갔는데.

 

그러니 어디 가서 내가 그때 그래 가지고서는, 돈 좀, 아... 또 이것도 중간에 그저 왔다갔다 하네.

 

용성 큰스님께서 망월사에서 날 인삼백합탕(人參百合湯)을 백 첩(貼)을 지어 주어.

그때 약 한 첩에 일 원씩이여. 그 일 원씩이면 굉장헌 약이여. 그렇게 지어 줘.

 

그런 약을 못 얻어먹어 내 나간 것 아니여. 문어 전복 같은 걸 먹기 위해서 내가 바닷가에 어디 가서 사 먹을라고 혀도 얼마든지 사 먹어.

허지마는, 고것이 아니여.

 

막 산도 올라가고, 물도 건네고 풍파고행(風波苦行)을 해 나가면서 생기면 생긴 대로 먹고, 눕고 자고 싶으면 바우 우에 자기도 하고 이렇게 자연치료, 고행치료, 고렇게 해야 된다고 의원(醫員)이, 백용남이 병원에서 의사가 고만 이렇게 아조 말해 주고.

그 병을 뭐 가만히 앉어서 괴기만 얻어먹으면 낫는 게 아니여. 그래서 그렇게 나선 거여.

 

백합탕 그놈 백 첩을 달여 먹어봐도 소용이 없어. 그것 가지고는 되들 안해.

육단(肉團)이 동(動)해서 목구녁에서 피가 어려 가지고 나오니까 안 되아. 오직이야 그랬을 것이요.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해서 도 닦으러 나온 사람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도를 닦다가 그런 병을 얻어 가지고 나온 사람이 무슨 뭔 무행(無行)헐려고 나섰겠어?

그 어리석게 넘의 지경을 알도 못허고 비판이지.

 

그까짓! 세상에 무슨 뭐 조금도 거그서 퇴태심(退怠心)이 있다면 내가 바로 말하지.

거그서 더 무상하고, 나는 거그서 도를 더 닦고. 참 바우 사이에 가에 앉어서라도 참 기가 맥히지.

 

시삼계(是三界)에, 화택삼계(火宅三界)에, 삼악도(三惡途)에 한번 뛰어 날라 하면은 그 보통 그 이마심(伊麼心)을, 이러헌 마음, 이럭저럭 헌 마음, 요걸 가지고 될 것이여?

좀 해 보다가 안 된다고 돌아댕김서 그만 한화(閑話)나 하다가, 잡담이나 하다가 휭 나가, 바람 쐬러 나간다고 삥 돌아댕기다가, 가만히 고 있을 때에 찾아보면 없거든. 하! 이런 꼴 좀 보소.

 

그 사람 어디 갔냐고 조사 안 한 줄 알어, 내가? 날마당 조사여.

오늘은 그 사람이 어디 갔구나. 오늘은 나갔다가 어디로 오는구나.

 

내가 이렇게 이빨 하나 해 넣은다고 해서 갈아 가지고 이 쑤셔 넣고는, 그냥 쑤셔 넣고 바로! 그만 쫓아 온 사람이여. 와서 그저 뒷조사부텀 낱낱이 허는 사람이여.

 

글씨 어디 갔다가 내가 환히 본 중에 문을 하루 잠과 놓고 보니...

그저 바람 쐬러는 가제. 허지마는 한 저 담을 한 댓 장이나 뜯어 놓고는 고리 넘어 댕겨.

내가 다 보고도 "아 여그 어떤 도독놈이 이랬냐, 어쩌냐?" 헌게, "아마 그 무슨 그놈들이 그렸는가 보요" 어쩌고 이려. 흠, 기가 맥혀서!

 

그렇게, 이마도차로 해 나갔다가는 이 한평생 그르쳐 버러. 된 법 없어.

이 한평생뿐 아니다.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해 보아라. 되는 건가? 안 되아.

 

아주 치워 버려. 도 닦기를 치워 버려.

치워 버리면 어떻게 헐 건가? 그 치워 버린 곳이 어떤 곳인가? 기가 맥히다.

 

자, '아무리 오욕락(五慾樂) 그놈의 것 한번 해 보고 이놈의 것 중노릇을 헌다던지, 이놈의 중노릇 때려 치워 버리고 오욕락 한번 받아 봐야겄구나. 좋은 마누라 하나 얻어서 아들 잘 한번 낳아 보고, 나도 세상에 한번 보람 있이 살아 봐야겄다' 어짜고 그래 봐.

그래 가서, 가서 살아 봐. 좋은 마누라, 미인 하나 얻어 가지고 살아 봐.

 

과거에는 안 살아 봤나? 몇천만 겁을 거 살아 왔고, 몇천만 겁을 또 죄 지어서 지옥고도 가 받아 봤고, 안 간 데가 어디일 것인가?

 

대도(大道), 한번 깨달라 본 일은 없어.

 

바로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그건 각세계(覺世界)인디, 깨달은 각세계에 가서, 각세계에 가서 무슨 삼악도가 있나? 삼악도는 무슨 삼악도며, 뭐 지옥이니 천당이니 거가 뭣이 붙어 있냔 말이여?

천하에 거그를 말씀해서 '나 깨달은 해탈 고향, 확철대오' 거가 극락세계(極樂世界) 상품상생(上品上生)이고, 거가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란 말이여. 그런데 뭐 뭐 뭐 두말할 것이 어디 있어. 틀림없어!

 

그런디 어리석은 중생 앞에 헐 수 없어 그 상견(相見) 말을 그렇게 허고, 사견 말을 그렇게 말씀했지마는, 사견 · 상견을 그렇게 말씀을 했지마는, 사견 상견을 여의고는 법을 설헐 수가 없기 따문에 극락세계 상품, 그 말을 해 놓고서는 부처님 말씀에 뭐락 했어?

 

극락세계 상품 봐라.

그 뭐 그 무슨 새가 있으되 보살 화현(化現)이 모도 새가 되아 가지고 있는데 무슨 가릉 · 공작, 거 무슨 별별 모도 그 새가 다 울음을 우는데 그 울음 소리가 모도 법문이고, 모도 뭐 이렇게 모도 말해 놨으며,

금 · 은 · 유리 · 파려 · 차거 · 진주 · 적주 모도 보배가 왼 산이 모두 되아 버리고, 나무가 모도 보배가 되아 버리고, 왼통 이렇게 사견 · 상견을 막 드리 설해 놨다 그말이여.

 

'사견 · 상견이라는 것은 도무지 못쓰니라'고 막 해 놓고는, 거그는 그렇게 해 놨네.

그만 그 중생의, 모도 중생의 그 방편설(方便說)이 아닌가?

 

꽉 맥힌 놈의 중생이라는 것은 상(相) 밖에는 볼 줄 모르고, 사견 밖에는 볼 줄 모르고, 죄 짓는 것 밖에는 모르고, 어디 가서 나를 깨달을 줄 아나? 나를 믿을 줄이나 알며, 내가 뭣인 줄이나 아나?

그러면 어디, '내'라는 그곳에 들어가서 무슨 상견이 있나? 모냥 상견이 어디 있어? 거가 무슨 색상(色相)이 있나? 사견 · 상견, 색상 없는 곳을...

 

그렇게 이렇게 방편으로 설하다가 싸악 돌아와서 『금강경』에 와서 보란 말이여. 여 『금강경』 있는 것 보란 말씀이여.

세상에, 바로 못 봐? 바로 못 믿고, 바로 못 행해?(15분39초~35분10초)

 

 

 

 

(3/4)----------------

 

다, 그래 가지고는 젠장! 이거 좀 고독헌 상이 혹 습기(習氣)로 그 동(動)햐.

그러면 나는, 그저 그려도 그저 그렇게 나섰으니깐 뭐 정처 없이, 연한 연조 없이 좀 댕기리라고 댕기다가 그 마침 홍록이를 만나서 따라댕기니 잘 얻어먹어!

 

나 참 거! 아, 그렇게 한마디씩 놀아 놓으면은 모도 돈 거둬 주제, 좋다 하제, 야단나제. 그러면 상을 턱! 채려 오면은 나도 거그서 얻어먹어.

그려 미안혀 죽겠드구마는, 속으로는 그렇지마는 미안헌 놈의 것을 내가 어따가 뭐 그 뭐 체면 차릴 것이 있나.

 

그냥 앞에 좋은 놈, 홍록이 앞에 놓아 준 놈, 그런 놈 뭐 옆에서 내가 먹으면은 그 대중 중에, 만좌중(滿座中)에 좀 안 되았는갑드구만. 그런게 나를 옷을 좋은 놈 한 벌을 해서 줄터니까 입고 그러고 댕기자고 해.

'에이, 그녀러 것은 싫다. 내가 옷 잘 발라 입고 뭐 머리 잘 하이칼라 허고 그놈 짊어지고 댕기면 내 도리에 어긋난다. 어디 가서 그건 절대 불(不)!'

 

그래 가지고는 뭔 그래 딴엔 좀 챙피헌갑드구마는, 사람 많이 있을 때에는. 속으로는 퍽 나를 무척...

 

그런 디다 가다가 바우 같은 데 앉어서는, '인유생로병사(人有生老病死)하고, 사람의 몸뚱이는 나서 늙어 죽는 그러헌 이 인생이라는 건, 우리 이 몸이라는 건 이런 것이 붙어 있고, 계유성주괴공(界有成住壞空)이 있니라. 이 세상은 암만 장엄 찬란헌 나라라도 성주괴공이 있느니라. 무너지고 없어지는 때가 있느니라'

이래서 그 무상(無常)한 설법해 주는 데 가서 아주 믿었어! 홍록이는 날 꽉 믿어서 '아이고, 나를 참 바로 제도 지도해 줄 선생이다!'

 

사실이제 뭐. 그러고 나는 저헌테 요구헐 것이 노래 좀 배우는 것 뿐이여.

노래 그것도, 그것도 전문으로 이렇게 그걸 배워야제, 생각은 따로 있고 배울라니까 잘 안 되드구만.

 

 

모도 안 자올고 잘 듣는가?

안 자오는가 보다. 이런 소리에는 안 자올거든. 그 묘허제.

하나도 안 자오네. 시방 내가 보니.

 

똑 한 놈이 눈 감고 있구만, 고놈은 안 자온 체험서. 고런 것은 쫓아 내버려야 헌다.

내가 다 알고 혀. 한 놈이 그려.

 

그따구로 공부헌 체허고.

법문 들을 때에는 측이목이청현음(側耳目而聽玄音)이라니.

 

내 법문을 그렇게 슬쩍 들을 법문 아니여!

'허, 참 자기가 법문허면서 자기 법문이 제일이고 자찬(自讚)하고' 그렇게도 듣지 말아.

 

내가 그 거문고를 한번 또 탈 작정이여. 그걸 해야 허제, 안 넣으면 안 되아.

그게 평상화(平常話)요, 그게 제일구(第一句)요, 그게 말후구(末後句)여.

이거 여의고 있어? 보란 말이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뜰 앞에 잣냉기니라"

그 뭐, 그거 바로 그대로 해논 거 아닌가.

 

이런 참! 내가 도장원(都壯元) 법문에 가서 "꿀 딱 받아 먹고 있을 때 어떻게 살아 가겄느냐?"

"달다!"

어디 여의고 했나? 어디 딴 데가 찾어 거다가 붙였는가? 왜 도장원 안 했을 것이여?

 

 

홍록이를 따라댕김서부텀은 참 거 퍽 잘 얻어먹었네!

그러지마는 챙피해서 '옷 한 벌 해 줄라?' 안 입어. 뭘 내가 입어, 그놈의 옷을 얻어 입어?

얼마나 청백(淸白)하며, 내가 얼마나 처억! 그 굳은 절개를 가지고 나섰는데, 그 옷을 내가 벗을 것이여? 소용없어.

 

가지고는 얻어먹고, 인자 가다가 조금 쉴 때 가서 그런 데 가서 배왔어. 어디 그 그런 데가 놈서 어떻게 배울 것이여?

 

그 실없이 여그서 내놓으면은 법상(法床)에서 그 실격(失格)이여. 격이 아니지마는, 아 우리 대중께 뭔 내가 그 뭐 조금 실수허면 뭐 별거 있나?

어디 가서 그 실수헌 것을 비방하고, 어디 가서 모도 비방선전을 해서, '법상에서 저 거문고 가야금 타고 단가(短歌) 하드라' 그러고 모도 비평헐 것이여?

 

무비법(無非法)으로써 아, 이렇게 다 헐지언정, 내가 이런 것도 여그다 넣어 놓으면, 이 모도 보살님네께서 돈을 모도 그 어려운 돈을 모도 합해서 모도 벌어 가지고 녹음 테프를 사 줬는데,

'여그 녹음 테프에다가 좋은 법문을 해서 모도 넣을지언정 이런 음곡(音曲)을 넣어서, 가야금 겉은 거 노래 곡조를 넣어서 해 놨으니' 그렇게 거그서 모도 그렇게 발견헐 것이여?

 

'그게 무진곡(無盡曲)이요, 그게 참으로 법문(法門)이다' 이러셔야 하고.

이 결집(結集)헐 때에는 결집헌 사람이 뺄라면 빼고, 넣을라면 넣고 그럴 것이제.

 

인자 여그서 이 홍록이 편에, 홍록이 만나서 이렇게 지내다가 뚝! 떨어져 갈려 버려.

그까짓 것, 그거 뭐 참 벼락이제 뭐. 물이 청산 지내가는 격이제, 그 뭐 거 내가...

 

허지마는, 우선 댕기다가서 그놈 발심(發心)시켜 놓고. 발심을 시켰으니 간 디마다 노래 한마디씩 불르고는 저도 인자 모도 무상헌 법문도 다 넘 해 줄 것이고.

그때 동사섭(同事攝) 포교(布敎) 허니라고 그랬제.

 

그래도 그것 전공으로 안 배운게 안 되지마는, 무데무데 하나씩 듣고 배운 것이...

그 단가 곡조도, 그것 노래쟁이 곡조라고 다 노래가 아니여. 암만 듣기 좋다고 노래가 아니여.

인자 참말로 그 노래 그것도 거 참 곡조가 상당허고 기가 맥혀.

 

이 '만고강산(萬古江山)'도, '백구야'도.

 

(노래)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이러면, 그 노래 곡조는 돼도 안 된다는 게여. 그 아는 사람은 그려.

 

(노래) 백구야~ 훨~훨~ 나지 마라

요래야 헌다는 거여. 왜 그러냐? 그래야 그놈이 안 날라가제.

 

(노래)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는 거여.

 

(노래)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이래야 이놈이 곡조가 된다는 거여. 그놈 그 격이라. 경이여. 그래 놓고는 그놈을 맞춰서 허거든.

 

(노래)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너를 잡~으러 내 안 간다.

징~ 징징 지당 당~ 징당 동당

 

그것 잘헌다, 참 좋다 말이여!

응, 웃지 말고 들어, 인자 곡조인게.

 

그러고, 고것도 곡조에 들어간 놈이고.

또, 봉래산 좋은 경처 지척... 다녀올라니... 만고강산 유람 갈제...

 

(노래) 봉래산(蓬萊山) 좋은 경처, 지척(咫尺)에 던져 두고 못 본 지가 몇 핼런고.

다행히 오늘날에 만고강산(萬古江山) 유람 갈제, 경포(鏡浦) 동령(東嶺)의 명월(明月)을 구경허고, 청간정(淸澗亭) 낙산사(洛山寺)와 총석정(叢石亭)을 구경허고,

단발령(斷髮嶺) 올라보니 천봉만학(千峯萬壑) 부용(芙蓉)들은 하날 닿게 솟아 있고 백절폭포(百折瀑布) 급한 물은 은하수(銀河水)를 기울은듯 잠든 구름 깨워 맑은 안개가 잠겼으니 선경(仙境)일세가 분명쿠나.

당 징 지당~당당당당 징~징 지당 동징...

 

아! 그 법문이 말후구 법문이 이럴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댕김서 그래 놓으면 얻어먹고도 참 족햐!

그놈을 잘 얻어먹고 아, 그렇게 댕기면은 몇 해 말헐 것도 없이 살도 요렇게 찌고 좋겠어.

허지마는, 그녀러 것 조끔 해 볼 일이제, 그렇게 많이 그것 가지고 돌아댕김서 헐 것도 말 것도 없고.

 

그만 가다가 저 무슨 저리 올라가다 영동 올라가다가 그 '잘 가거라, 잘 있거라' 헐 것도 없고 새벽에 그만 보따리—저 곤해 자는디, 오장치 짊어지고는 '에이! 간다 이놈아 잘 있거라. 너 잘 가거라 이놈아'

나와 버렸제. 나왔어. 나와 가지고 어라, 여까장 왔다가 내가 그전에 안 본 사찰이 있으니 사찰이나 보고.

 

인자는 에지간히 좀 나아져. 확실히 나아져. 기운도 나아지고.

이병위사(以病爲師)하니, 병으로서 스승을 삼았으니 그 병고에 내가 그 야단칠 게 뭐 있나?

그까짓 놈의 내, 좀 나아지니 점점 그 몸도 끌고 댕길만도 하고.

 

나와 가지고는 언양을 왔제. 와 가지고는, '어라, 여까장 왔다가 내가 그 전에 안 본 통도사를 볼 수밖에 없구나' 인자 경봉당을 찾아간...

 

그래 가지고 인자 금당을 들어갔어. 금당에 들어가서, 공소방에 들어가서 밥을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갈라고 공소방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대중에는 간 것도 없고, 내가 대중에 뭣허러 가? 승방같은 디도, 뭐 그 머슴 자는 방도 안 들어가는디.

 

그저 '공소방에서 자라' 해. 어쩐지.

몸이 깨끗하겄당, 뭐 그 인자 좀 그래도 얼굴도 조금 나아지고 뭐 그런게.

 

공소방에서 밥을 이리저리 줘서 그래 밥을 먹고 거그 잘라 한디, 저녁 밤에 아직 한 여덟 시나 됐을까 헌디, 아 노장님이 한 분 내려왔어 보광전 선원에서.

 

"아! 신수좌(信首座)님 아니요?"

 

이리 본 게 추천원 스님! 아니 저 추천원이 아니라, 저 추천원은 금강산 저 호랭이, 저번에 왜 호랭이, 대글빡 줏어다가 묻은 그이가 추천원 스님이고. 아, 이 스님이 누구여? 아따, 그?

아따, 그 뭔 당최 저번에도 다 알았는데 또 이렇게 안 나온다. 그만 두고.

 

그 입승(立繩) 스님이 나왔어. 나 아는 이여. 잘 아는 이여.

 

"아 이거 웬 일이여? 신수좌님!" 그래.

"왜요? 뭐 뭐, 당신 그 나를 놀랠 것 뭐 있소? 그만 그대로 가만히 당신 혼자나 알고 있제, 그 뭐 야단이여" 그런게.

 

"아이고! 우리 신수좌님이 왔냐!”고.

아, 노장님이 내 앞에 절을 그냥—아 이런 놈의, 뜻밖에 이러니깐 마음에 나도 어리둥절허고.

 

채공 · 공양주가 모도 듣고는 가서, 모도 공포(公布)를 해 버렸네.

그만 큰 절에서도 알고, 보광전 선방에서 '신수좌가 여그 왔다'한게, 왁 나왔어. 대중이 다 나왔어.

하! 이런 놈의, '아따 내가 에지간헌갑다' 싶기도 하고. 또 그만 '에이, 내가 괜히 들어왔구나' 싶기도 하고.

 

"자, 어쨌든 여하약하를 막론허고 보광전으로 가십시다" 허고 오장치를 막 쥐어 끌어.

"그까짓 놈, 오장친들 질러 갖고 해. 그러면 내, 나 안 갈란다"고, "내비두라"고 헌게,

 

아 그양, 뭐 그양 그놈도 그저 그양 그것 가지고 짊어지고 갈까 싶은게 그런가, 그양 기어이 끌고는 보광전으로 들어갔어.

보광전에 갖다 보기 싫은가 아무데나 놓길래, 내가 뒤집어다가 딱 놓고는.(35분14초~49분56초)

 

 

 

(4/4)----------------

 

"경봉 스님이 지금 우리 통도사에서는 제일가는 스님인데, 강(講)으로도 제일가고, 참, 뜻도 그 의지도 굉장한 스님이신데, 김경봉 스님, 아주 일 경봉스님이신데, 아! 그분이 참선허다가 그만 견성했다 해 가지고는 저리 야단나 버렸습니다"

"왜 견성(見性)했으면 견성을 했제, 왜 야단나?"

 

"천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견성 후에도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큰스님을 보지 못허면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飜成毒藥)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했으니, 신수좌님이 좀, 꼭 좀 봐 주셔야 허겄습니다"허고, "그저, 그저 자비를 드리우소서. 그저 이 외에 더 있겄습니까"허고.

아, 이 노장님이 설찬히 노장님이여 그이가. 헌디... 같이 있다 한 철 지내고 다 그랬구만. 그래 이름이 시방 안 나오는구만.

 

아, 어떻게 붙잡고 이런지 당최 뭐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있어야제.

 

그런데 경봉 스님은 대체 그 견성했다 해 가지고는 굉장해. 뭐 왼 산중이 다 '경봉 스님은 참선허다가 마(魔)가 들었다'한 사람도 있고, '미쳤다'고 헌 사람도 있고, 이렇게 모두 야단나고 있을 때인디.

 

김구하 스님이 그때에 주지는 아니고 별당으로 나와 있을 때인가, 그때가?

별당에는... 그렇제, 아마 별당으로 나와 있었제. 그 전에 우리 어릴 때 들어와 중이 될 때 그때 주지니까. 여러 해, 여러 철 했제. 그럼 그때 뭐 그때 주지가 누구든고, 내 그건 모르겄구마는.

 

참, 강사 많기는 양산 통도사요, 산중 중 많기는 양산 통도사요, 통도사 또 그 무슨 그때 무슨 절에서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학생이 굉장히 많고, 지방학림이 있고 굉장한 덴데, 중들이 다 모아 버렸네.

'어디서 신수좌라는 뭐 그 중이 아주 그 걸식허고 댕기다가 들어왔다' 소문이 나 가지고는 꽉 들어 모여. 장처럼 들어 모였네.

 

그날 밤 자고, 그날 저녁에는 밤에는 인자 글안코는 인자 그 이튿날 아침에 또 두 번째 와서 그랬어.

새벽에 그 조끔만 허면 떠날 판인디 아, 그냥 일찌거니 들어와서 떠날까 싶은게 와서, 그래서 날 샌 뒤에 갔다 그말이여.

 

 

가니까 그 키가 큼직허니 경봉 스님이 큼직헌 이가 보광전 조실방에 앉어서 "후우, 후우, 푸우" 아 이러고 앉었어! 몸뚱이서 그려. 눈을 뜬게 눈이 벌겨.

그래 가지고 "허! 네가 아느냐, 네가 아는냐?" 아, 이래 쌓고는 망담을 막햐. 추담망담(醜談妄談)을 막햐. 추담망담이라 하면 알겠제, 내가 여그서 똑 그런 말을 해서 되아?

 

그저 글시 양산 언양서 모도 여자, 젊은 여자가 오면, 경봉 스님 견성했다고 모도 와서 절을 허면 "네 이년들, 네 이년들!" 그러고 욕을 혀. 막 욕을 혀.

"네 이년들!" 그래 놓고는 "야, 이년들아! 이것이 화엄경이여"

거다 모도 붙여 가지고 욕을 혀. 아 그러니 뭐 말헐 것이 뭣이 있어?

 

딱 앉었는디, 날 보고 인자 그만 좀 닥트려 달라고, 법담을 좀 허고 물어 달라고 그러니, 아 내가 뭐라고 헐꺼여 가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걸승, 객승 걸승이 그 큰 이가 쫓아와서 빰대기나 한번 냅대 쳐 놓으면 아, 거그 내가 그 볼일 다 봤제. 그런 놈의 우세가 어디 있으며... 내 참, 기가 맥혀.

 

아, 그런데 앞뒤서는 어디로 도망도 못 가게 해 놓고는 좀 해 달라고 헌단 말이여.

참! 만행(萬行)이여. 그때 나 그때 참말로 항상 생각허면 만행이여.

 

그 만좌(滿座), 그 왼 산중이 다 모였는데 그 가운데에서 아, 그 경봉 스님이나 나와 가지고 빰대기나 한번 때리고, "이 자식, 이 거지, 이놈의 자식이!" 발질로 툭 차 버리면 어쩔거여 그거?

 

암만 내가 그 얻어먹고 댕겨도 고상하기를 짝이 없고, 내가 기가 맥힌 원력(願力)을 가지고 댕긴 사람인데, 그 어쩔거냔 말여?

더군다나 또 법담이나 허다가 내가 그 꼼짝달싹 못해 버리면은—마구잽이 제일귀를 일러도 차 버리고, 아무리 좋은 설법을 그대로 해 줘도 "뭐가 이 자석아!" 허면 어쩌? 소용 있어, 그거?

그 본전 못 찾아. 안 된단 말이여.

 

척! 가다듬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될꼬? 응, 꼭 한바탕해서...'

전부! 그 산중 전부 그 보자는디, 나는 뭐 거지로 들어온 사람인디, 내가 그 거그서 인자 날라갈 판이여. 까딱허면 인자 그 누데기고 지랄이고 뭐 거 참, 기가 맥혀.

 

아! 이놈의 거, 달아나도 못하고 이것!

에라, 이놈의 그러나저러나 그까짓 것 내가 그것에 놀래? 전...

 

두어라! 그놈의 것! 냅대 한 번 용맹 용기를 내 가지고는 "경봉당, 이만치 나오시요"

나오드구만, 앞에 은근 '정영신(鄭永信)'이라고 헌게 눈이 둥그레, 그래도!

그래도 다 알아. 뭐 어디 생리적으로 미쳤나?

 

원상(圓相)을 척 하나를 그려 놓고 조끔도 내가 태도에, 조끔도 무슨 뭐 포외(怖畏)가 있어? 무슨 포외여.

그대로 원상을 척 그려 놓고, "이 속에 들어와도 치고, 이 속에 나가도 치느니라... 친다"

마조(馬祖) 화상에 답살천하인(踏殺天下人) 허는 공안이여. "이르십시요"

 

내가 공경히 "이르십시요"

나보담 나이 한 8세나 더 자셨는데.

 

그런게, 그만 나오더니 두말헐 것 없고—그렇지! 자기 경계는 속일 수 없은게—그 원상을 이렇게 응! 이 뭉케.

 

그 어째? 시험헌 법이 어째?

 

원상 그거 뭉켄 것도 상당하지. 응, 고불(古佛)이 미생전(未生前)에, 고불도 생기기 전에, 일상원(一相圓)인디, 한 일상이 둥그렀는데 그 일상까장도, 법상(法相)까장도 다 한 번 뭉케니, 그 지견(知見)이 그 아닌가. 그거 상당헌 지견이제.

강사(講師) 지견은 거그 못 따라. 그거 요새 의리(義理)로, 무슨 체중현(體中玄)으로 뭐 고까짓 거 못 따라, 거 딸치 못햐.

 

법로(法路)로는 막간 것이여. 법로 길로는 막 들어간 거여 그게.

요새 무슨 뭐 어짜고 어짜고 무슨 '한 물건 없는데 없는 놈까장 어쩌고' 고따구 놈의 소리를 가지고서 되아? 어디 거그서 거그서 참말로 봐.

 

"그, 거그다가 때려 묻어라!" 고함질렀네.

"고 원상 저 뭉켄 거기다 갖다 집어 넣고 묻어라!" 내가.

 

얼마나! 환허니까 인자 그때 가서는 어쩔 것인가? 내 힘이 힘대로 나제.

경봉당 그 지금 어디 꺼꾸러진 것을 내가 바로 찾았기 따문에 그래 힘이 일어나는 거여.

 

다루는 걸 보아!

"거다 묻어라" '때려 묻으라!'고 냅대 고함을 지르니께, 턱 허니, 탁! 뜨고 눈을 이래 떠 가지고 나를 보고 앉었어.

 

앉었다가는 "내가 알았다! 알았다!"

 

왜 그래, 왜? 응, 왜 그래? 안 봤으면 그려?

그것이 바로 들어가는 거여. 바로 가는 거여.

 

벌써 눈치 보니 분명 봤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뭐 일러서 내가 아나?

 

아, 여그 보살님이, '그런 말 더러 허드냐?'고 허면 한마디도 그걸 못 들었댜.

그 그때가 경계가 당신이 그 알도 못헌 경계인가, 날 모른지도 몰라. 알 수 없제.

 

뭐 비불발설(非不發說), 안 헌대야. 그런 말 헐 것이여 허기는. 안 허지만.

내야 뭐 안 혀? 내야. 내가 없는 말을 이런 말을 허고 앉었어? 아, 이런 꼴 좀 보소.

 

그만 내가 가서 여그를, 옷을 요짝을 잡고 "나오라"고.

그 안 따라 나와? 나오제, 안 나와?

 

후딱 거그서 둘이 올라가서, 그 건네 물 건너서 옥련암 밑에를 내려간게, 바우가 물 흐르는 것 다 왔네. 물이 짤짤 짤짤. "대중은 다 물러가라"고.

 

거그 딱 앉혀 놓고서는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에, 아는 곳을 향해서 알았다고 고함지른 것을 이르라!"고 헌게, 안 일러? 퍼떡 이르제. 허!

 

"거, 어떠요?"헌게 고개를 끄덕 끄덕. 그 밖이여.

다른 것 아무 것도, 아무 다른 공안 하나 내가 갖다가, 거다가 더 탁마(琢磨) 없어.

그러고는 내가 나와, 내려왔어. 더 헐 것 없는 거여. 뭘 뭘 다른 걸 탁마, 물을 게 없어. 그러고 암만 그때 본 정신은 아니거든.

 

턱 둘이 내려와서 "부디 진중(鎭重)허라"고, 내가 그래 부탁해 놓고는.

인자 그때에—추산이다! 추산. 추산 스님이다! '가을 추(秋)'자 '묏 산(山)'자, 추산(秋山) 스님인데,

입승이 추산 스님인데, "참, 고맙다"고 절을 허고, "좀 두고 봐야겄습니다. 어찌 될른지 인자 모르겄습니다"

 

그냥 그러고 돌아와서는, 점두(點頭)허고 들어와서는 딱 앉더니—그렇게! 요 일 순간도 그냥 안혀, 뭐 욕을 해 놓고는 '화엄경이다, 뭔 경이다' 요래 자꾸, 요러고 앉었어 요러고. 아, 요거 미친 거 아닌가.

그 기운이 딱! 잽히면서 가만히 앉어서 아침 밥 먹드락, 낮 밥 먹드락, 도무지 조는 법도 없고 앉었대.

 

그 나는 떠나와 버렸지. 내가 그 뭐 알 거 뭐 있나?

나 떠나간 뒤에 그만 그 버릇이 딱 고쳐지고.

 

나는 일렀다고, 그 '옳게 일렀다'고 인가(印可) 탁! 했고 뭐 틀림 있어? "어떠냐?" 딱딱...

 

그러고는 내가 통, 나 중 치고 내 평생에 둘이여!

경봉... 그놈에 탁, 내가 '그렇다'고, 그다음에 매곡사에서 은(隱)수좌! 은수좌, 그놈 아침까장 깜깜하더니 밥 딱 먹고 나서 탁! 여지없이 일러.

 

내 여다가서 그 송(頌) 내가 얘기허고. 나, 송(頌) 아직 얘기 안 했어. 그 나오는 것이여, 그 나와.

아침까장 10년 묵언 마지막 헌 날, 아침까장 깜깜하던 것이 밥 딱 먹고 나서는 그저 언하(言下)에 오(悟)지. 언하대오(言下大悟)야. 똑 둘.

 

또 게송을 안 잊어 버리고 나오는가 모르겄다.

시방 그 경봉 스님 또 그 송은 내가 잊어 버렸구만. 그 무슨 원을 가지고 헌 것이 있는데 잊어 버렸어. 그런데 그건 떠나와 버려서 또... 잊어 버려 이렇게.

 

이건 묵언수좌(默言首座), 여 송담(松潭), 시방 이 게송이로구만.

거가 황매산이여. 오조(五祖) 스님 계신 데도 황매산이지마는—여 황매산이제? 응? 알제야. (예, 황매산입니다) 그 모두 매곡리가 있고.

 

 

황매산정하춘설(黃梅山庭下春雪)이다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를

나무~아미타불~

하사(何事)로 십년(十年)을 왕비력(枉費力)고  월하섬진대강류(月下蟾津大江流)를

나무~아미타불~

 

그 황매산정(黃梅山庭)에 하춘설(下春雪), 그때 눈이 올 때여. 정월달이니까.

황매산정(黃梅山庭)에 하춘설(下春雪)이다.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리는데, 한안은, 한안(寒雁)은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라. 그렇구나! 아까 그걸 몰랐네.

 

한안은 여천향북비로구나. 차운 기러기는 저 하늘가로 울면서 향북비(向北飛)라. 북으로 향해 날라 가는구나. 고게 직경이제. 좋제.

한안은 여천향북비다. 차운 기러기는 장천(長天)에 울면서 북으로 향해 나는구나.

 

하사(何事)로 십년(十年)을 왕비력(枉費力)이냐. 무슨 일로 내가 10년을 묵언(默言)을 묵언을 허면서 그 고생을 했는고?

월하섬진대강류(月下蟾津大江流)다. 달 아래에 섬진강이 흐르는구나.

 

참 잘했지! 잘했어.

다 말해 봐! '잘했다'는 말이나.

 

내가 둘을, 틀림없제. 만약 그때에 경봉 스님이 나한테 그 지경 못 잡았으면 안 되아.

지금 경봉 스님이 지금보담 더이상 가는 학자를 데리고 더 교화를 헌다 해도 인증 안 해.

 

인증 안 허면, 내가 인증 안 허면 안 되아. 왜 그러냐?

내가 한국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이 나를 다 인가했는데, 내가 인가 안 허면 되아?

어림도 없는 일이여. 그러니께 내 지금 그러 헌 말이여.

 

나도, 내가 무슨 나 혼자 헌 소리여?

나도, 시방 깨달라 가지고 모두 견성해 조실(祖室)에 앉어 있는 분이 지금 여러 분인데, '나도 당신네 인가를 받아야 허겄으니, 자기네도 내 인가를 받아라' 이러고 있어. 틀림없어.

 

그런 법 없어. 절대로 안 되아!

자기 혼자 인가도 없이 그대로 나와서 즈그끼리 인가허고, 즈그끼리 조실에 앉고 그런다고 되아?

 

활구학자들아! 불가불심(不可不審)이냐, 어찌 살피지 않을까 보냐?

그게 뉘(누구의) 목숨을 자르는 일인가 생각해 봐! 뉘 모가지를 베는 것인가 생각해 보란 말여!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있다면, 확철대오허는 참선법이 있다면 어찌 우리 부처님의 말을 믿지 않고, 우리 부처님에 그 경계를 밟지 않을 것인가?

불불(佛佛)이 이렇게 전통해 왔는데, 어떻게 안 혀?

인가 없는 스승한테 인가를 받아 가지고 될 것이여?

 

'그럼 고불(古佛)은 어디서 인가 받았냐?' 이러고 나와?

왜 왜 고불 이전에, 어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없다고도 해 놨지마는, 위음왕불도 생겨 나온 그런 불도 무슨 당신 그때 깨쳤제 뭐.

거 어디 '없다' 했나? 없다고 했어? '전연 없다'고는 안 했지.

 

인가 없이 깨달은 이는 생이지지(生而知之)보담도 승학(勝學)이다.

그 만(萬) 가운데 드물다 그랬지, 없단 말은 없거든.

 

그러면 해필 거그 쫓아가서 '어디 누구는 인가 있나? 중흥조한테 모도 누가 인가했나?' 요러고 앉었어?

다 있어. 다 대왔어, 또 그러고.

 

요새 요새 사람들은 더군다나 제가 나와서 못혀. 암만 천하없이 그래싸도 못혀.

 

허니, 내가 누가 견성 못했느니, 누가 견성했니 내 그런 말을 허는 건가?

우리 부처님에 이와 같이 밝혀논 그 우리 정법—못 깨달라 가지고 '깨달랐다'하고, 남 죽이고 저 죽고 불법 망허고 이걸 내가 말허는 것이제, 누가 못 깨달랐느니 깨달랐느니 누구 내가 허물허는 사람이여? 내가 어디 그런 허물을 내가 무슨 해서 뭣혀?

 

이렇게 내가 바른대로 척사현정(斥邪顯正), 사(邪)를 배척허고 정(正)을 나투아 놔사 도(道) 배우는 학자들이 여기에서 바로 가제.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헌 것이드라.(49분57초~1시간10분52초) (일대기 12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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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몽그리다 ; 몽구르다.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벼르거나 굳게 다짐을 하다.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악취(惡趣) ; ①악도(惡道). 삼악도(三惡道). 악업을 지어서 죽은 뒤에 태어나는 고통을 받는 악한 세계.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②육도(六道)를 악취라고 하기도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가로판 p53)

當於本參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參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활연히(豁然- 열리다·달達하다·탁 트인 골짜기 활/그러할 연) ; ①앞이 탁 트여[豁] 시원스러운 그러한[然]. ②의문이 갑자기 풀려 막힘이 없이 밝게.

*출격장부(出格丈夫) ; 격 밖에 뛰어난 장부. 보통의 규격을 초과한 장부.

*장부(丈夫 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겁외장부(劫外丈夫) ; 겁 밖에 장부. 우주세계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변화를 벗어난, 곧 우주세계의 생성 · 소멸을 벗어난 불생불멸(不生不滅),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경지의 장부.

겁(劫)은 세계의 성 · 주 · 괴 · 공(成住壞空) 등이 반복되는 헤아릴 수 없이 긴 무상한 변화의 시간을 말한다. 따라서 겁외(劫外)는 세계의 성 · 주 · 괴 · 공(成住壞空) 등이 반복되는 헤아릴 수 없이 긴 무상한 변화의 시간[劫]을 벗어난[外] 초연한 경지를 말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일점난만(一點難謾 한 일/점 점/어려울 난/속일 만) ; 한 점도 속이기 어렵다. '한 점[一點]'은 아주 적은 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무행(無行 없다·~하지 않다 무/행하다·계행·행실 행) ; 계행(戒行)이 없다[無]. 계를 지키지 않는 것. 또는 수행(修行)을 하지 않다[無].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어촌주사(漁村酒肆) ; 어촌(漁村)과 주막[酒肆(술 주/가게 사) 비교적 큰 규모의 술집].

*'연대갑자(年代甲子)도 총부지(總不知)' ; '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다'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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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본분납승(本分衲僧) ; 본분산승(本分山僧), 본색납자(本色衲子)과 같은 말.

새로 닦을 것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또는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스님.

*부엉이 집 ; 부엉이는 집(둥지)에 먹을 것을 많이 모아 두는 버릇이 있다는 데서, 없는 것이 없이 무엇이나 다 갖추어져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다생습기(多生習氣) ; 육도(六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서 생사윤회를 반복하며 살아온 수없이 많은 삶 동안에 익혀 몸에 밴 습관(적인 기운).

*원청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육단(肉團) ; 육단심(肉團心).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화택삼계(火宅三界) ; 화택(火宅). 세상의 쾌락에만 깊이 집착해 지혜롭지 못하여, 온갖 번뇌 · 생로병사 · 우환의 고통을 받는 중생이 살고 있는 이 세상[三界]을 불[火]에 타고 있는 집[宅]에 비유한 말.

온갖 번뇌와 고통, 생로병사의 사나운 불길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무서운 세계.

[참고] 『법화경』 제2권 '제3 비유품(譬喩品)'에서.

一切衆生 皆是吾子 深著世樂 無有慧心 三界無安 猶如火宅 衆苦充滿 甚可怖畏 常有生老 病死憂患 如是等火 熾然不息

 

모든 중생이 다 나[如來]의 자식이건만 그들은 세상의 쾌락에 깊이 빠져 지혜롭지 못하며, 삼계(三界)는 편치 않음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아 온갖 고통이 가득차 심히 두려우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과 우환의 그러한 불길이 사납게 타올라 꺼지지 않고 있다.

*삼악도(三惡途, 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보처보살(補處菩薩) : 보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줄임말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태어나면 성불하여 부처님의 자리[處]를 메우는[補] 것이 예정된 보살을 일컫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수기(受記)를 받아 미래에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을 이른다. 부처님 생존시에 아일다(阿逸多, Ajita)가 도를 열심히 닦아 도솔천에 왕생하여 이 보살의 위치에 올랐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태어나기 전에 호명(護明)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보살의 위치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도솔천보다 낮은 사천왕천이나 도리천·야마천에는 게으름과 욕정이 남아 있고, 도솔천보다 상위의 천들은 고요한 선정에 들어 있어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임.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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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좌중(滿座中) ; 자리에 꽉 차게 늘어앉은 여러 사람 가운데.

*하이칼라(high collar) ; ①머리털을 아랫부분만 깎고 윗부분은 남겨서 가르는 서양식 남자 머리의 모양. ②예전에, 서양식 유행을 따르던 멋쟁이를 이르던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측이목이청현음(側耳目而聽玄音) ; '눈과 귀를 기울여 현미(玄微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미묘함)한 소리를 들으며'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聞法之次 如履薄氷 必須側耳目而聽玄音 肅情塵而賞幽致 下堂後 默坐觀之 如有所疑 博問先覺 夕惕朝詢 不濫絲髮

 

법문을 들을 때에는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여, 반드시 눈과 귀를 기울여 현미(玄微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미묘함)한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 번뇌를 맑히고 그윽한 이치를 완상(玩賞)하다가, 법당에서 내려온 뒤에는 묵묵히 앉아 관하되, 만일 의심스러운 바가 있으면 먼저 깨우친 이에게 널리 물으며, 저녁에 근념(勤念)하고 아침에 물어서 실오라기 털끝만큼도 넘기지 말지니라.

*평상화(平常話) ; ①평범한 말. 평상시의 말. ②평상시(平常時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이야기[話]. 일상생활 이야기. 일상생활.

 

[참고 ❶] 송담스님(No.058)—1977년 동지차례(77년 12월 22일)(정사년 11.12 음)

참선(參禪)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상화(平常話), 일상 생활—밥 먹고, 옷 입고, 똥 누고, 일하고, 소지하고, 걸어 다니고—하는 그 생활을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참선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도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생각으로 성내고 웃고 울고 하는 그 일상,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그렇고 또한 참선도 그렇습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일체 행동 동작을 떠나서 깨달음이 있다면은 그것을 떠나서 찾아야 되겠지마는, 중생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뚱이와 생각, 그놈을 일찰나(一刹那)도 떠나지 아니하고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10분2초~11분29초)

 

[참고 ❷] 송담스님(No.332)—1987년 6월 첫째일요법회.

행주좌와일체처(行住坐臥一切處)여 착의긱반일체시(着衣喫飯一切時)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평상도(君今欲識平常道)인댄 북두남성위불별(北斗南星位不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행주좌와일체처(行住坐臥一切處), 걸어다니고 머물르고 또 앉고 눕고 하는 것 그러한 모든 곳에서,착의긱반일체시(着衣喫飯一切時)라. 옷 입고 밥 먹고 하는 모든 때라.


 

군금욕심평상도(君今欲識平常道)인댄, 그대가 지금 평상도리(平常道理)를 알고자할진댄,


북두남성위불별(北斗南星位不別)이니라.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남두(南斗)의 성(星)이 그 위치가 다르지 않느니라.

 

이 게송은 평상화(平常話) 도리(道理), 평상 도리.

진리(眞理)라고 하면은 저 깊고 깊어서 알라야 알 수 없고, 높고 높아서 볼라야 볼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걸어가다가 서고, 멈추었다가 걸어가고, 또 앉고 눕고, 그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하는 우리 일상생활하는 모든 곳과 밥 먹고 옷 입고 또 똥 누고 오줌 누고 일하고 하는 모든 때가 하나도 진리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착의긱반(着衣喫飯)하는 그러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를 여의고 진리를 찾아서는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찾아도 진리는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처음~5분6초)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가로판 p214)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도장원(都壯元) ; 장원(壯元). ①예전에, 과거(科擧)의 갑과(甲科)에서 일등으로 급제하는 일이나 그 사람을 이르던 말. ②글을 제일 잘 지어 성적이 첫째임. 또는 그런 사람.

*달다 ;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의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달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무진(無盡) ; ①다함이 없는 것. 다함이 없을 만큼 매우. 끝이 없을 정도로 매우. ②무궁(無窮 공간이나 시간 따위가 끝이 없음). 무제(無際 넓고 멀어서 끝이 없음).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섭(四攝 :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이 일하며 어울려 지내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 화복(禍福)을 함께 함으로써 자연스레 중생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단가(短歌) <만고강산>  (소리 / 박초선. 북 / 조용복)

만고강산(萬古江山) 유람(遊覽)할 제 삼신산(三神山)이 어디메뇨 일봉래(一蓬萊) 이방장(二方丈)과 삼영주(三瀛洲) 이 아니냐
죽장(竹杖) 짚고 풍월(風月) 실어 봉래산(蓬萊山)을 구경갈 제
경포(鏡浦) 동령(東嶺)의 명월(明月)을 구경하고 청간정(淸澗亭) 낙산사(洛山寺)와 총석정(叢石亭)을 구경하고
단발령(斷髮令)을 얼른 넘어 봉래산(蓬萊山)을 올라서니 천봉만학(千峯萬壑) 부용(芙蓉)들은 하늘 닿게 솟아 있고
백절폭포(百折瀑布) 급(急)한 물은 은하수(銀河水)를 기울인 듯 잠든 구름 깨어 일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선경(仙境)일세가 분명쿠나
이때마침 모춘(暮春)이라 붉은 꽃 푸른 잎과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춘색(春光春色)을 자랑한다

봉래산(蓬萊山) 좋은 경치(景致) 지척(咫尺)에 던져두고 못 본 지가 몇 핼런고
다행(多幸)히 오늘날에 만고강산(萬古江山)을 유람(遊覽)할제 이곳을 당도(當到)하니 옛일이 새로워라
어화 세상(世上) 벗님네야 상전벽해(桑田碧海) 웃들 마소 엽진화락(葉盡花落) 뉘 없을까
서산(西山)에 지는 해는 양류사(楊柳絲)로 잡아매고 동령(東嶺)에 걸린 달은 계수(桂樹)에 머물러라
한없이 놀고가자 어이하면 잘 놀손가
무정한 친구 벗님네 금잔디 자르르르 깔린 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거리고 놀아보자.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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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가로판 p78)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닥트리다(닥뜨리다) ; ①(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마주하여 가까이 서거나 만나다.

②(사람이 닥쳐오는 일이나 문제 따위에) 직접 맞서다.

③(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다그쳐서 재촉하다.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포외(怖畏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외) ; 두렵고 무서움.

화엄경에서는 ①생활의 두려움. ②명예를 잃을 두려움. ③악도(惡道)에 떨어질 두려움. ④죽음의 두려움. ⑤대중 앞에 나섬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른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2분 19초)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의리(義理)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2분 48초)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한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2분 19초)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2분 26초)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어떤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가려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분 36초)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4분 18초)

[참고 ❺]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 <반기이파>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진중하다(鎭重-- 누르다·지키다 진/무게·정중히 함 중) ; 무게[重]가 있고 점잖다[鎭]. (사람이나 그 생각, 태도가) 묵직하고 진지하다.

*점두하다(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이다.

*송(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묵언 수좌(默言首座) ; 송담(松潭) 스님의 별명. 10년간 묵언을 하며 수행을 해서 '묵언수좌'라는 별명이 생김.

*(게송) '황매산정춘설하(黃梅山庭春雪下)~' ; 송담선사 오도송(悟道頌).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 ; 전강 조실 스님이 수행하시던 1920년대 당시 유명한 혜월 · 혜봉 · 한암 · 용성 · 보월 · 만공 선사를 말씀하신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위음왕불(威音王佛) : [범]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이름. 한량없는 과거의 부처님으로, 이 부처님 이전에는 부처님이 없었다고 하여 ‘지극히 오랜 옛적’을 뜻한다.

*'인가 없이 깨달은 이는 생이지지(生而知之)보담도 승학(勝學)이다. 그 만(萬) 가운데 드물다 그랬지, 없단 말은 없거든'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若自己 以緣會合 得聖人意 卽不用參善知識 此卽是生而知之勝學也 若未悟解 須勤苦參學 因敎方得悟 若自明了 不學亦得 不同迷人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약 자기가 인연을 만나 성인의 뜻을 얻었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而知之] 정말 뛰어난 학인이다.

그러나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부지런히 애써 선지식을 찾아가 배우라.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만일 스스로 분명히 알았다면 배우지 않아도 얻을 수 있으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다르다.

 

*생이지지(生而知之) ; 삼지(三知 ①生而知之, ②학이지지學而知之 도를 배워서 깨달음, ③곤이지지困而知之 고생하며 공부한 끝에 도를 깨달음)의 하나.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도(道)를 깨달음을 이른다.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2. 21. 12:0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1호) 장진사와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023) (No.024)—전강선사 일대기 제11호(경술1970년 12월 19일 새벽. 음) (1971년 1월 15일 새벽)

 

(1/4) 약 20분.

(2/4) 약 17분.

(3/4) 약 16분.

(4/4) 약 17분.

 

 

(1/4)----------------

 

만고고금사(萬古古今事)야  성하수동류(城下水東流)니라

나무~아미타불~

임제일성할(臨濟一聲喝)이여  언하천인안(言下千人眼)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고천만사(萬古千萬事)가, 만고에 고금사(古今事)가,

성하(城下)에 수공류(水空流)다. 저 옛 성 밑에 물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이여.

 

그건, 그건 뭐냐?

항상 물이라는 것은 그놈이 항상 흘러가제. 어디 무슨 뭐 고(古), 옛만 흐르고 이제는 안 흐르는가?

 

물질도 불멸이여. 액체 그놈 물, 어디 그놈이 항상 있제, 만고에 불변이제.

물 그놈이 있다 없다 하는가? 항상 있어 가지고서는 그저 그대로 흘러.

천만사가 모도 변태, 변질은 있지마는 그놈이 그 원료 불멸이여. 항상 이 흘러간다.

 

우리 중생이라는 것은 왜 원소로 한번, 그 근본본각(根本本覺)으로 한번 살아 보지 못하느냐?

저 물의 원료와 같이 하나도 변태 없이 천만겁을 가드래도 항상 원료 불멸로—아 우리도 그 본각을 척 깨달라 버리면은 무수(無數) 변태가 없을턴디.

아! 이렇게 모도 헛된 변태 속에서, 그 변허는 속에서 이게 뭐냐 그말이여.

 

한번도 본각 주인공은 만나 보지 못허고, 내가 가지고 있음서도 그 주인공의 행사 한 번을 못허고 말 것인가? 이렇게도 미(迷)해 가지고 이 죄만 퍼짓고 또 죄만 가서 받고 이것이 중생의 실경인가?

중생의 실로 받는 것이 이것뿐이지. 아, 중생의 업(業)이라는 것은 죄 받는 것뿐이니, 그놈의 짓을 어찌 허고 있는가 말이여?

 

임제 스님의 그 일할(一喝)이 직개천인안(直開千人眼)이니라. 일체 사람의 눈깔을 띄어 줘.

임제 스님의 천인안이라는 것은, 임제 스님의 일성할(一聲喝)이라는 것은 그 언하대오(言下大悟)란 말이여.

 

참선법밖에 없으니, 우리 중생에 그 눈을 바로 띄워 주는 참선법,

임제 스님의 일할법(一喝法)! 일할이라는 것은 부처에도 할(喝)이요, 조사에도 할이요, 법에도 할이요, 비법(非法)에도 할이요, 상(相)에도 할이요, 비상(非相)에도 할이요.

 

이건 뭐 어디 할(喝), 임제 스님 할(喝)이라는 것은 막 그저 할이다. 냅대 할이여.

할이, 할성(喝聲)이 여우적(如雨滴)이다. 빗방울이다.

 

왜 그려? 왜 그러느냐 그말이여?

할(喝)이라는 건 '꾸짖을 할(喝)'자인디, 탁! 쳐 버리는 '꾸짖을 할(喝)'자인디, 왜 그렇게 꾸짖어 할(喝)을 해 번져?

다 해 버리고 나니 그 뭐가 남을 건가?

 

할(喝) 다 해서 할(喝)로써 다 파(破)해 버렸다.

법이든지 부처든지, 비법이든지 비불(非佛)이든지 내지 거기에 무슨 뭐 불조패궐(佛祖敗闕)이든지, 할(喝)에 안 절단나는 것이 없어.

 

척파(斥破)다. 막 때려 파해 버린다.

임제할(臨濟喝)에 직개천인안(直開千人眼)이니라. 그것이 천 사람의 눈깔을 열려 주는, 확철대오(廓徹大悟)허는 할이네.

 

할을 그렇게 수천 할, 수만 할을 다 허고 나서, "할개심마(喝箇甚麼)냐? 할은 어떻게 헐 터냐?" 물을 때에는 그 법주(法主)가 어디 앉어서 묻제? 거 어디, 어디 앉어서 시방 묻고 있제?

 

아 이놈의... 거 어디 앉어 묻고 있는가, 봐!

거 어디 앉어 묻고 있제? 어디 한마디씩...

 

누가 못헐 것이여?

 

 

내가 작년 동짓달에 틀림없이 죽었다 그말이여. 거, 묘하제, 내... (12초 간 미상)

 

숨을 쉬고 말이여. 여 화기가 확! 이 짙어서, 확헌 기운이 있어서 법문을 못혀.

 

법문(法門) 들을 적에는 '법문이고 무엇이고 소용없고 내 화두(話頭)만 한다'하고는 화두만 들어서 딱 그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렇게 허고 들어도 좋은디, 그 과녁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법문이 안 들어온 게 아니여.

 

활살이 과녁에 안 백히지는 않지마는, 백히지마는,

고 관만 딱 가지고 해도 그 화두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고놈을, 고놈을 가지고 있으나 안 있으나, 그 법문만 딱 기울이고 들으면은 측이목이청현음(側耳目而聽玄音)허면, 이목(耳目)을 기울려서 그 법문을 척! 들으면 똑같은 거여. 뭐 다른 게 하나도 없어.

 

그래 법문이 그 듣다 가서는 얼른 푹 들어와 버려. 언하(言下)에 툭 깨 버려.

 

들어서 생각해서 아는 건 틀려 버렸어. '오!' 생각해 가지고 '오! 고렇구나' 요런 건 안되아.

어디 가서 그 사량소해(思量所解)라는 것은, 사량해서 아는 바는 학자(學者)의 원수여. 학자의 독약이여. 고런 것 가지곤 된 법 없어.

 

턱! 들으면은 언제 들었든가, 언제 깼든가, 언제 봤든가가 없어.

그러기 따문에 종사(宗師)가 거법(據法)에 이언(離言)이여.

턱! 험서 벌써 태도부텀 척 봐. 말 없는 경계에 들어가서 태도부텀 보는 거여.

 

"견성 했습니다!"

"견성을 했으면은 일러 보아라"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가지고 왔습니다"

 

손을 척 벌린게 오도송을 주었다.

오도송은 받아 가지고 보지도 않고 이렇게 해 놓고는 또 요짝 손을 내밀었다.

 

하! 이것 보소. 거그서 죽는다.

 

그러니 태도에 벌써, 말허기 전에—양구(良久) 방할(棒喝)이 제일구(第一句)라고 허지마는, 양구 방할 나오기 전에 발써 취두(取頭)여. 머리 다 취해 버렸어.

 

그렇게 할(喝)로써 다 때려 조져 버렸다.

뭐 그저 무슨 뭔 언어, 무언어(無言語) 언어라도 할이요, 비언어(非言語)라도 할이요, 무동착(無動著)이다. 동착(動著)해도 할이요. 전부 할로써 다 조졌는데.

 

빗방울겉이 수수 천만 할로써 다 조져 댄디, 그 법주가 어디 앉어서 지금 묻제?

 

내가... 요놈 한번 더 해 놓고.

만고고금사(萬古古今事)가 성하수동류(城下水東流)니, 우리 이 중생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도 죄업 속에서 그 나를 보지 못허고 이렇게 험악하게, 이렇게 그만 이 중생업 분별 속에서 이러고만 있제?

 

이 법을 믿어서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우리 부처님이 척 깨달랐다. 부처님 한 분이 깨달라 놓고 보니, 천하 중생이 우리 부처님 깨달은 법밖에 없구나.

세상에! 우리 부처님이 발견을 못했드라면, 깨달라 발견해서 우리 중생께 이렇게 모도 배급 주지 아니했으면 어찌 될 뻔 했는가?

 

우리는 이 법을 믿어 들어왔구나.

바로 들어왔지! 바로 들어와서 정법학자(正法學者)가 되아 가지고 지끔 이 문제를 가지고, 이 생사해탈 문제를 가지고 다뤄 나가는구나. 얼마나 감사하고도 경행(慶幸)하고도 참 만행(萬幸)헌가.

 

이렇게 모아서 올 삼동(三冬) 정진허는데, 앞으로 불과혀야 인자 한 달도 못 남았는데,

그동안 앞에 서로 모아서 지내 나오는 가운데, 이렇게도 대원융(大圓融) · 대평등(大平等) · 대자비(大慈悲) · 대무아(大無我), 아무 잡담 없이, 아무 거그서 한화(閒話) · 승부(勝負) 없이, 그저 모도 그 야삼주삼(夜三晝三)에 그 타(他)로 더불어서 이렇게 겨루어. 화두를 이렇게 애써 잡드리해 나와.

 

불과 얼매 안 남아, 불과 한 달도 못 남은, 그러고 나가면 또 인자 서로 또 갈린단 말이여.

갈리지마는 서로 또 어서 모아야지. 또 또! 이렇게 닦아 나가야지.

 

사람 일곱만 모아도 거기에 시비분쟁이 없지 못하고, 서로서로 무슨 별... 다 나는디,

이렇게 여러 우리 참 사부대중이 모아 가지고도 원, 당최 뭐 의복 두 가지면 한 가지씩 갈라 입고, 뭔 돈이 이 세상에 있으면 그저 서로 갈라서 약이라도 사서 모도 병구완 해 주고, 원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 참선학자는 이렇게 들어와서, 그 임제(臨濟) 일성(一聲) 큰 할법(喝法), 임제 일할법(一喝法). 임제 일할법, 부처님의 그 견성오도법, 우리가 또 그 언하대오법(言下大悟法), 하! 이렇게 닦아 나간다 그말이여.

 

우리가 지금 인자 앞으로서 이렇게만 닦아 나가는 데 있어서 퇴타(退墮)만 안 헌다면은 어디로 삐끄러질 건가? 삐끄러질 곳이 있어야제. 우리는 각세계(覺世界)로 그만 그대로 가서.

 

입태(入胎), 태에도 들어가도 이 신심은 태에 들어간들 이 신심이 없을 리가 있는가, 견성은 못했드래도.

입태 또 주태(住胎), 태 중에도 이 발심(發心), 이 마음이 없어질 것인가?

여지없이 믿으면은 그 없어지지 않어. 설사 매(昧)했다 하드라도 그 가운데 딱 갖춰져 있어.

 

그래서 고인(古人)들도, 그 옛조사 스님네들도 말씀허시기를 '설사 견성(見性)은 못했다 하드래도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눈 광명이 땅에 떨어질 때, 죽을 때, 불위악업소견(不爲惡業所牽)이니라. 악업이 끄어가들 못한다'

 

원청 신심이 견고해서 그 떠억 이 참선법을 콱! 믿고 있는 디는 염라대왕이 끄어가들 못하니,

염라대왕이 잡아다가서 모도 제취(諸趣)로 보내는디, "죄 지었으니 너는 죄 받으러 삼악도(三惡途)로 가거라" 모도 이래서 파견해 보내는데, 염라대왕의 철방(鐵棒)이 다루들 못허니 그대로 그건 반야학자(般若學者)기 따문에 그대로 가서 그만 그저 해탈세계에 가서 나는 것이여.

 

내가, 저어 인자 기행문(紀行文)인데, 내 그저 지내 나온 과거에 모도 기행문을 내 기행을 얘기한 것인데—어디 죽을 고비 당헌 거, 뭐 그저 가서 또 서로 문답헌 거, 뭐 이런 거 저런 걸 좀 해달락 해서 지금 허고 있는데.

또 이런 대중이 모아사 허제, 대중이 없으면 못헌다 그말이여. 혼자 어떻게 헐 수도 없고, 그걸 뭘 필기로 적을 수도 없는 거고.

 

과거 벌써 스물 몇 살 먹어서 허든 그땐디, 나이 칠십 몇 살에 어디 뭐 낱낱이 어느 골짜구로 어디 재 넘어서 어디로 댕긴 그걸 다 할 도리도 없는 거고.

어디로 갔다가 또 도로 나왔다가 또 저리 둘렀다가 모도 인자 고 생각난 것만 허고 있어. 그 틀림없어 그것은.(처음~20분5초)

 

 

 

(2/4)----------------

 

오대산까장 가서 그 신배령 넘어서 밤중에 내려가다가 꼭 죽을 뻔을 했는디 살아났네. 이놈의 이 고해(苦海).

그러고 또 그렇게 그놈 하나 딱! 바가치 하나 뀌어차고 착 나선 동기는 자연치료를 헐라고, 내 병 낫울라고 나섰지마는.

 

그놈 그, 그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 산을 만나거나 물을 만나거나, 그저 밤낮 장마를 만나거나, 거 숲을 뚫고 거 나가기 참 그것도 앉어서 생각컨대는 참 퍽 자유스럽고, 냉기가지에서 사는 새처럼 이 가지도 가고, 저 가지도 가고, 험헌 산도 날러 가 보고 괜찮을 거 같지마는,

 

퍽 이렇게 앉어 보면은 구애(拘礙) 없이, 탕탕무애(蕩蕩無碍)허게 호호(浩浩)허게 나가는 경계가 활발스럽고, 아무것도 설사 앞에 걸린 것이 있으나, 그 무슨 걸린 것인가? 임산임수(臨山臨水)에 그 뭐 걸릴 것이 뭣이 있나?

퍽 대활발(大活潑) 대자연 같지마는, 그래 나가 보면은 그놈의 또 그 고통이 여간 심허고 또 마음이 그렇게 고독햐. 참 고독허거든.

 

혼자 척 나서 보면은 내가 거 무슨 뭐 이렇게도 활달해서—아, 견성해 가지고는 산산수수(山山水水)가 각완연(各宛然)인데, 각각 다 완연헌 처(處)에 앉어서 하나도 맥힘이 없고 걸림이 없고 체헐 것이 없는데, 뭐 뭐 고독이니, 뭐 고독이니가 있어?

그건 또 그러허지마는, 또 그대로 또 고독이 있는 것이여.

 

그래 때 되면은 또 밥을 또 얻어먹어야 하제, 또 고것도.

때에 똑 들어가되 아무때나 들어가면 밥 못 얻어먹는구만. 그 참, 거 꾀가 수단이 나고, 수단이 아니라 그 경험이 나야 되아.

 

거 산(山)이라도 잘 생기고 물이라도 잘 흘러서 제 구녁으로, 진사방(辰巳方)으로 수동류(水東流)해 나간 디는 꼭 부자가 있거든.

아무데나 비탈 못쓰게 생긴 놈의 디는 숭악한 가난헌 뱅이가 때도 못 먹고 있거든. 거 묘허다 그말이여.

 

잘만 가서 연기 퐁 난 뒤에 조금 그 밥 풀 때 똑 당도해야 밥을 얻제, 지내가 버리면 없다고 안 줘. 거 큰 일이여. 배는 고프고.

연기 부르르르 나면은 조금 있다 들어가면 재없이 그 밥을 푸는구만. 밥 풀 때 당도허면은 꼭 한 뎅이라도 얻지, 기양은 안 나와. 바가치만 들어대면은 얻거든. 고러헌 참 이상스런 게 많제.

 

 

오대산 그 재를 넘어가다가 꼭 죽게 되았는디, 불 빠딱 거리는 바람에 들어가서 살아 가지고 한 일주일 있다가 일주일 만에는 인자 불가불 거그서 하직허고 떠났다.

 

어저께 얘기헌 것은 그전에 헌 놈 갖다 거다 두고는 멈춰 두고, 그전에 인자 그건 헌 놈이고. 인제 여기서 연속해 간다 말여.

가는디, 한 20리나 나가 가지고는, 쏘나기는 밤낮 그 장마는 져서 사방 꼴짜구니에 물이라는 것은 그 급수가 풍풍 떨어져서 그놈을, 계천(溪川) 그 급류는 못 건너간다 그말이여. 어떻게 건너갈 수가 없거덩. 뛸 수도 없고, 쾅쾅! 쾅쾅!

 

그래 그놈이 떨어져 가지고 저 아래 어디 누수로 흘러간 디로 요리 돌아서 그래서 한 20리를 또 나가니, 사방 인자 그 중류(衆流)가 합해서 내려오는 임제강이 있어, 임제강!

 

그 임제강인디, 강원도 임제강인디, 그 내가 그 어디인지도 몰라. 뭐 면 군, 뭐 내, 임제강만 알아.

임제강이 이렇게 있는디, 물이 사방 곡수(曲水)가 흘러가지고 그렇게 내려오는 가운데에 다른 데는 짚어서 못 건네가고, 이렇게 뜩 내려오다가 쭈욱 그 막아 논 그 전지로 이렇게 물이 팡팡팡팡 넘어가는 데가 있어.

 

차라리 그 깊은 누수 그런 데로 이렇게 건너가면 물이 깊어도 헤엄이나 칠 줄 알 것 같으면은, 헤엄을 쳐 올 것 같으면은 괜찮헌디.

쭈욱 지니까, 물이 요렇게 얕이 내려오니께 흘러 넘어가니까, 거그는 괜찮을 줄 알골랑은 그리 건너온다.

 

보따리, 다 찢어진 놈의 보따리는—뭐 다리고 뭣이고 다 나온, 인자 어디 집어야 할 것은 집도 못허고 그 한 일주일 동안 끌어맸지마는, 그 집에서 했지마는, 그래도 뭐 참 옷이라고는 절박하제.

 

아! 이놈의 임제강수를 대들어 가지고, 이렇게 물이 넘어들어 흐르는데 그렇게 주욱, 그놈의 강이 뭐 당최 이만저만혀. 그놈의 산꼴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놈의 강이라도 얼매나 너룬지 몰라.

아, 중간에 팍 들어간께, 그 쏟아져서 내려오는 놈이 당최 이놈의 폭포가, 내가 속을 그걸 알아야제?

꼭 건네가기는 건네가야 허겄는디, 그 산속에서 그렇게 비는...

 

내가 두 번 거그 죽을 뻔 헌 걸 얘기허니라고 이거 헌 거여.

그때 목숨 잃어 버렸으면 참 그놈의 것 허망허기도 짝이 없고.

 

'내가 어쩠든지 금생에 확철대오를 허리라'허는 마음은—내가 그렇게 나섰으니 무슨 뭐, 대사(大事)집에 들어가서 준 대로 먹고, 막걸리도 주면 먹고, 고기도 주면... 그놈의 것 고기 많이 주나, 그거 뭐 겨우 한점이나 주거나 말거나 그런 것 좀 준 거 그것까지도 고기여, 뭣이여?

 

허지마는 뭐 별수 있어. 그런 거 안 먹고는 먹을 것이 뭣이 있으며, 뭣을 자연치료인데 안 헐 수가 있나, 준 대로 먹어야제.

그걸 누가, 내 계행(戒行) 지킨다고 안 먹을 것이여, 뭣 헐 것이여. 그렇게 내가 나선 사람이 거그에 무슨 구애될 것이 있는가?

 

대중 중에 있어서는 못 혀.

대중 중에서 있으면서 그렇게 함부로 무애행(無碍行)을 허고 함부로 가서 제 먹고 싶은 대로 막 처먹고, 제멋대로 대갈빡 내 돌아댕기면 되아? 그건 못 혀. 그런 법 없어.

 

대중을 위해야지. 대중 중에서 어찌 그러헌 무애행을 해 쓸 것인가.

없어! 절대. 그러기 따문에 안 들어가. 절 같은 데, 안 들어가.

 

그럼서도 그 속에 '계행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안하무애(眼下無碍)제, 한번 깨달라 버리면 일체죄업(一切罪業)이 구타부득(拘他不得)인데, 무슨 놈의 계행에 내가 걸려? 죄도 없는데 무슨 놈의 계행이 지킬 게 있어' 요러헌 생각으로 했다면은 숭악한 마구니 외도 새끼여. 그런 법 없어!

 

아무리 죄도 없고, 죄 자체도 없고, 죄성(罪性)도 없고 다 공해서 비불비조(非佛非祖)요, 별별 지견(知見)이 있다 허기로니,

그놈 그 지경을 턱 봐 가지고 거기에 가서 산산수수(山山水水)가 각완연체(各宛然體) 고대로 갖촤진 그걸 볼수록에, 깨달라 볼수록에 거기에서 낱낱이 계행 가질 건 가져야 하고, 정진헐 건 정진해야 하고, 세상사를 어김없이 그대로 나가야 하고, 그것이 산산수수가 각완연체여.

 

그 산산수수 각완연체가 아무것도 없어, 거기에 무슨 뭐 뭔 도(道)도 없고, 비도(非道)도 없고, 비불비조인디, 거기에 가서 무슨 뭐 허물이 있고 죄가 있고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으니 없는 대로 고대로 행을 혀?

 

그대로 행을 허면은 그거 뭐여, 그것이?

도로 말키 걸려 버린 놈이고, 거가서 그만 그 죄 없는 죄상에 가서 처백혀 가지고는 더 죄 퍼짓는 건디.

 

그래서 그렇게 내가 헌 건 아니여.

다만 이놈 몸뚱이 낫어서, 이렇게 피 한점이 없이 겨우겨우 댕기는 몸이 당최 뭐 뭐 말... 인자 이렇게 자연치료 허러 나선 것이니까, 주면 준 대로 그저 먹을 수밖에 없제.

 

아, 그렇게 나서 가지고는 그만 그저 그 오대산 그 산 넘어오다가 신배령 밑에서, 밤새드락 넘어오다 거그서 꼭 죽을 뻔 했어. 그때 조끔만 못 발견했으면 죽었지, 뭐 별수가 없어.

몸이 좀 기운이나 있으면은—몇 때, 거그 올라옴서 그날 종일 굶었제. 또 배는...

 

그러고 산을 헤매고 바우 틈새기로 거 무슨 전나무 그 바늘 같은 놈의, 가시 같은 놈의 전나무를 그만 비켜가지고, 그 전나무 엎어진 놈은 울장 못 뚫어 그건, 뚫들 못혀, 어디 둘러야제.

그런 놈의 디 밤중에 곰똥을 밟아 가면서. 아, 그 곰 한 마리 안 만난 게 다행이제, 그놈의 디는 곰 구데기인디.

 

아, 그래 가지고는 글씨 그 집에 일주일 있다가 나와서 임계천을 건네는디, 그건 꼭 죽어 버렸어. 아주 나는 수장(水葬).

그렇게 목숨을 잃어 버릴 건디, 어찌도 그 원력은 기맥히게 큰디 내가. '이 병 낫워 가지고는 어째튼지 용맹정진을 허리라. 그 정진 한번 부정진(復精進)해 보리라'뿐이었어.

 

암만, 아무리 대오(大悟)를 헐수록에 정진은 더 해야 허니까. 도력(道力)이 아니면 못하니까.

보기만 봐 가지고,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헌 그것만 봐 가지고 안되아!

고대로 탁! 증(證)해야 허는 거여. 증이 아니면 안되아.

 

"뭐 다 본 견성허면 그리 되제, 뭐가 그 견성이냐?"고.

"아니 그러면 당신은 그 되았소?"

"나는 그리 못 됐다"

 

왜 그런 거짓말허고 앉었냐 그말이여. 당해 보지도 않고!

이건 무슨 소리여?

 

'어쨌튼지 병을 내가 낫워서 한바탕 정진해 보리라'고 생각을 냈었는데.

아, 그놈의 강을 건네가다가 중간에서 돌아오도 못허고 저리 내려가도 못하고, 다리는 약해서 기운이 없은게, 톡 물이 한번 차면 툭 떨어질 놈의 딘디,

아, 이런 놈의 것! 서서, 물은 불어서 내려오는디, 오도가도 못허고는 이러고 있네. 꼭 죽었제.

 

저 비는 자꾸 내려오는데. 그놈의 디를 말여, 꼭 그냥 그저 빠져 죽는디, 자신도 모르게 나는 혼자 그대로 탁! 관(觀)허고 대정진을 허고, 거그서 인자 정진—가다가 죽으면 인자 그 마지막 목숨 잃어 버리는 곳이니, 임명종시(臨命終時)니, 임명종시에 원각대지를 내가 잊어 버릴 수가 있느냐.

 

그러고는 용맹을 부리고는 그냥 어떻게 건너 뛴 것이 아, 이놈의 그만 실족(失足)해서 발이 뚝 떨어져 가지고 밑에 풍 빠져 가지고는, 이렇게 쏟아져 가지고 주루루 내려와서 뒤로 이렇게 물이 이렇게 밀어주는디 나왔네.

 

나, 그때 거 생각하면은 그 관세음보살님이 나를 이렇게 갖다 역부러 그래 준 것이제, 내가 살았는가 싶드구만. 또 거, 타력지관(他力之觀)이 있어. 이상스런 관이 일어나드구만.

아, 그래서 내려 와 가지고, 물에 뭐 말헐 수 없이 해 가지고 풍 젖어 가지고 이런 것을 그래도 그걸 놓지 않고, 건넬 때 내가 모가지에다 요것을 짤라서 요렇게 걸고 건넸어, 빠지면 그냥 한목 갈 요랑허고.

 

아, 그 어떻게 그럭저럭 그 산속에서 살만 허면 좀 더 살다 건넸으면 괜찮허련만, 당최 어디 살 데 없어. 집이 당최...

그 집에 도로 들어갈라니 또 돌아가도 못 혀. 떡 건네기는 건네갔지만 산곡수가 흘러서 가도 못하겠어. 그 산 골 깊고 물 널룹고 산고수활(山高水濶)을, 산 높고 물 널룬 것을 알 수가 없으니까, 생전 처음 지대라.

 

그래 건네 오니까, 이상스런 물건이—건네, 저 건네, 그때는 주재소(駐在所)인디, 주재소에서 나를 보고서는 "그 웬 사람이 이 물을... !" 깜짝 놀래드구만.

놀래나마나 그때가 삼일운동(三一運動) 뒤인디, 삼일운동 뒤에 그렇게 이상스럽게 옷을 입고 그 워낙 젊은 인자 젊은 아주 참 청년이 아! 그 짓을 허고 턱 오니까, '독립군이나 아닌가? 군자금이나 모집허고 댕기는 것 아닌가?' 이래서 고등 조사를 허네.

 

아, 조사허거나 말거나 나는 사실만 말하제.

"나는 그저 나는 인생 문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인데" 요 법문허제, 또. 법문은 막 퍼내놓제, 나온 대로.

 

들어보면 즈그 가슴이 시원허고, 들을 때는 즈그도 참 무상한 것이, 인생무상이 그 귀에 들려 들어오고 어쩔 거여. 오히려 구해 주지.

그래 "배고파 죽겄으니 뭣 좀 주오"허니께, 아! 그럴 것이라고. 그 요기를 모도 시켜 주고. 그래 얻어먹고.

 

그래 가지고 거그서 인자 오대산 거그를 넘어 가지고는 어디로 뭐, 어디로 뭐 설악산으로 어디로 해서 인자 올라, '에이, 이놈' 너무, 이놈의 산도 너무 험악하고 험준허고.

그 명주사라고 해서 인자 어디서 해서, 그 어디 저 명주사 너머에 들어가, 올라가면 뭐 마등령인가 있는가? 뭐 마등령 같은 게 뭐 있고, 마등령 넘으면은 오세암 뭐 그런 게 있고, 뭐 그런 게 있제?

 

하도 그때 오래 되아서 그건 모르겄구만. 그놈의 재도 넘어 봤구만. 그러니까 그건 뒤에 넘었고.

그냥 그대로 얻어먹고 나섰은게 아무데로제.

 

'에이, 이놈의 점진(漸進)허게 저 문경으로, 저리 사불산(四佛山) 대승사로 그리 좀 들어가 볼 밖에, 그리 한번 둘러야겄다'

너무 산이 험준허고, 인자 간디 또 가고 그저 또 돌고 그렇제, 별수 없지.(20분6초~36분44초)

 

 

 

(3/4)----------------

 

문경 사불산 대승사(大乘寺)를 들어갔다.

절에 안 들어가는데, 사불산 대승사가 유명헌 디고, 윤필암(潤筆庵)이 있고 그렇다 해서, 대승사를 척 들어와서는 대중이 모도 있거나 말거나, 내가 대중께 뭐 절을 허나 뭘 허나, 아무 소용없제.

 

구광루에 가서—그때 그 8월 달쯤 되니까, 그때는 인자 비도 좀 개고 날도 쾌청해지고, 가을이 왔으니까 금풍(金風)도 나고. 루(樓)에 가서 가만히 앉었다.

누데기 같은 거 그거, 조금 쌀 한 벌 입는 것 그것 싸고, 바가치 하나 달아 가지고 놓고 가만... 움펑 감투는 써서 쨈매고, 절에 들어가도 그러고 앉었어. 가만히 앉어서...

 

뭔 말헐 것이 뭣이 있나? 역부러 그런 경계 피해서 그 같은 놈의 풍요헌 놈의 세상의 무슨 왕환인사(往還人事)에 무슨 내가 관계 있어?

어떤 놈 뭐 만나야 내가 인사—주지라고 뭐 높아서 뭐 절허고, 뭐 뭐 어린, 불쌍한 사람이나 거지라고 내가 무슨 뭐 천하게 보는가? 내가 제일 천한 사람인디.

 

아무리 높은 놈 봤자, 내 높은 놈 보고 '높다' 내가 그런 생각도 없고.

부자굴(不自屈)이요, 부자고(不自高)다, 굴성도 없고 고성도 없제.

누구한테 내가 고(高)를 허며 누구한테 내가 굴(屈)을 헐 것인가 말이여. 없어!

 

가만히 가서, 그 누각을 잘 지어 놨는 디 가서, 대승암 들어가면 그건, 가만히 가서...

중들이 모도 와서 들여다보네. 이상헌게 들여다봐.

뭐냐고 물어봤자, 내가 말도 안 허니 뭐 그까짓 것 뭐 어떤 놈이 뭐 별수 있나, 말해야지?

 

뭐라고 말허면 그냥 그때는 벙어리 행세를 해 버렸네, 그냥 귀찮은께.

이러고 있으면, 이 짓 허면 "응, 응, 응" 이래 버린게 '벙어리인가 보다'고 그러고는 가고 가고 혀.

멀쩡해 가지고 벙어리 노릇을 헌다 그말이여.

 

그 대승암 그날 인자 종일 있었지.

그래도 모냥이 어디 뭐 그렇게 빼짝 말라서 그렇게 그냥 피만 흘리고 있은게 백지장 같이 그렇지마는, 그때는 젊을 시대니께 그래도 무슨 뭐 때꼽째기도 찌지도 않고, 깨끗이 씻고 다 그랬은게. 뭐 어디 누가 뭐 그 더럽게 허고 댕기는가. 씻글 것 다 씻고 그러지.

 

청천강수(淸川江水)에 깨끗이 씻고, 백구란 놈들이 그 강수에 좋은 강수만 찾아댕기면서 제 털 깨끗이 씻데끼, 아, 나 역시 그렇게 깨끗헌 거지제. 거지는 거지라도 뭐 참, 이상스러운 거지제 뭐.

눈동자든지 코든지 뭐든지 생긴 것은 그렇게 추악하게 안 생겼다 그말이여. 모도 와서 들여다보고 이상스레 보고, 건드려도 보고 '벙어리인갑다'고 이러지. 종일 앉었었다.

 

그 주지가 최월파드구만.

그건 최가인가? 최가는 모르겄구만.

월파드구만, 주지가. 그때 당시에.

 

아, 주지가 나와서 인자 이상스레 허고 앉었다고 헌게, 주지가 나와서 나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그래 봐 쌓는다 그말이여. 모도 근게, 그 벙어리라고, 거지라고 이러고.

채림 채림이 이상허거든. 머리도 깨끗헌 놈이 시커먼 놈이 여까장 흘러내려 오고.

 

'아, 그래 아무래도 벙어리도 아닌 것 같고, 그 사람이 무슨 비관염세에 그 지독허게 걸린 사람이로구나' 그러고는 봐 쌓고 그려. 그러더니 나를 객실을 하나 정해 주어. 아, 그것 참, 고맙드구만.

좋은 객실 하나 정해 주어. 아, 다락에서 잠자고 그럭저럭 자고 나올 건디, 객실을 정해 줘.

 

고마워 내가 그랬제. 정했제.

밥을 채려 왔는데, 고등 객 밥상 채리데끼 고리 자반 굽고, 아, 이래 가져 왔다 그말이여. 그놈을 잘 먹었지.

 

그날 마침 박홍록이라고, 충정도 무슨 괴나무쟁이에 있다고 허는, 괴나무쟁이에 있다고 헌 박홍록이란 사람이 가야금을 들고 왔어. 가야금을 들고 와서 그 가야금 논다, 가야금 헌다 소문이 나가지고는 장소를 큰방에다 정했어.

 

그 대승사 큰방에다 딱 정해 놓고는 가야금을 노는데. 그 꼴짜구니에, 동구(洞口)에 사람들 다 올라오고.

동구에 사람, 여자들은 다 중마누라여. 전부 중마누라여. 많드구만. 중마누라가 다 올라오고 동구에서. 또... 중마누라, 중 천지제, 다른 사람은 없어.

 

그래가지고는 하판(下板)에는 중이 탁 둘러—대중 참 많드구만—앉고, 저 상판(上板)에는...

 

요런 것도 들으시란 말이여. 이거 평상화(平常話)니까, 이 평상화가 그 모도 도인(道人)의 말후구(末後句)인 것이여.

도인의 말후구인 것이 아니라, 중생이 말후구에 깨달라야 하거든.

이런 제행(諸行), 밥 먹고 옷 입는 것이, 가고오는 것이 그 말후구여. 그게 참, 정말 법문(法門)인 것이여.

 

'이거는 뭐 씨잘디 없는 말이다' 듣고, 거그서 인자 옳은 것을 간택(揀擇)하고.

뭣을 옳은 것을 간택해야? 옳은 놈 간택할 것 같으면, 간택이 벌써 그른 놈인디.

 

그래 모도 인자 앞께 어간으로, 하판으로는 중이 딱 둘러앉고, 저 상판, 탁자 밑으로 고리는 부인이 지대방까장 꽉! 맨놈의 젊은 각시인디, 중들 마누래 참 하이칼라드구만.

잘, 이놈의 대처승들 그 부처님 상주물(常住物)을 갖다가서—대처승 들으면은 좀 안 되았겄구마는, 그 모도 이리저리 모도 벌어다가서 금반지 다 해 찌고 뭐, 거 금비녀 다 찔리고 앉었는디, 참 기가 맥힌 하이칼라여, 젊은 각시들이.

 

충청도 괴나무쟁이에서 박홍록이가 왔다 하니까 야단들이여. 얼마나 잘헌지.

참 일등 잘허는 박홍록이여. 그때 '홍록이의 가야금'허면 그만 무등등(無等等)이여. 같은 사람이 없어.

 

그렇게 소문나서, 그 대승사에서 시방 홍록이를 가야금 놀리는데, 박홍록이는 부처님 밑에 탁자 밑에 딱 앉고, 나를 갖다가 주지한테다 옆에다 딱 앉힌다 그말이여. 데려다가, 기어니 데려다 앉혀.

"나는 그런 디 안 간다"

"그 안 갈 것이 뭣이 있느냐"고, 와서 나를 데려가데. '그 좋다' 속으로는 말짱허게 좋아허거든.

 

그래 뵈도 내가 좋아헌디, 참 좋아혀. 음(音)을 퍽 좋아허거든.

아, 그런디 어디 가면 내가 미리서 그만 춤부텀 머냐 추는 사람이라. 잘 추든 못허지마는.

 

왜, 또 그래도 그래도 꽤 잘 추제, 뭐 그렇게도 못 추든 않소.

내가 진양 춤을 다 맞추고 헌디 뭐. 그만 했으면 잘 추지 뭐.

 

아, 그런데 나를 '월파'라고 주지가 갖다 기어니 오라고 앉혀, 옆에 앉혀.

청년이 말이여, 깨끗헌 청년이 이상스런 누데기를 입고, 누데기라도 그렇게 불긋불긋 그런 건 안 입고, 깨끗헌 놈을 일색(一色)으로 이리저리 지어 입고 헌게, 봐도 향내가 나. 뭔 조금도 추접허지 않아.

 

이상스럽게 나를 귀여해 가지고 말여, 처음 봐도.

월파가 아주 이상스런 청년이라 해 가지고 자기 옆에다 어간(御間)에 앉혀. 어간에 누가 거지를 앉히나?

어간에다 나를 앉힌단 말이여. 아, 주지가 그러니께 누가 뭐락 해.

나 앉힌 대로 딱 그대로 앉었어. 가만히 앉어서...

 

박홍록이가 처음에 가야금을 앞에 척 그래 내가 그 시방 그 확—한 50살 먹었는디, 이빨이 깡총헌 게 하얀 사람이, 생긴 것이 참 늙도 젊도 안 헌 것이 퍽 귀엽게 생겼어.

그런 것이 가야금을 놓고는 줄을 고른단 말이여. 떠억 이 골라 가지고는, 아 이놈, 그 가야금을 병창(竝唱)으로 허는디—그놈의 법문이란, 그 법문이라는 건 참말로 들어야겄드구만.

 

거, 잘혀! 참말로 잘혀!

 

이놈의 소리는 듣다가 말이여, 가야금에 병창 넘어가는 소리를 듣다가—월파가 인자 주지인게, 주지가 죽비를 들었어. 암말도 말라고 죽비를 치고 인자 듣는데.

죽비를 들고 죽비를 가지고 장단을 치네, 나중에는. 점잖은 놈의 주지가!

 

탁!(죽비소리) "좋다!"

탁! "어, 좋아!"

"좋은디" 탁탁! 아, 이 지랄을 허고는.

 

아, 이러고 따러가, 주지가 저까장 올라가서 그 앞에 그 가야금 치는 데 가서 맞치고 좋다고 허네. 허허! 어떻게 이놈의 소리에 취했든지. 아, 나도 참말로 좋아 죽겄데. 그거 내가 들었네.

 

여자들이 우에서 다뿍 앉어 가지고 있다가 "으, 좋아! 으, 좋아!" 여자들도 말여.

아, 이 지랄허더니 모도 앞에 모아들었어. 젊은 놈 중은 더 말헐 것도 없고. 나도 참...

 

허다가 "(노래) 강산 구경 다 허라이면 몇날이 될지를 모르겄네"허고, 끝을 넹기는 디는 기가 맥힌 법문이여! (가야금) 침서, 침서 이러면 아울라로 넘어가거든.

"당징지당, 당~당~징당, 지당당당, 징~징징징, 지당동당" 아, 이러고 넘어가는디, 사람 참 진짜...

 

"에이, 나! 그 나를 데리고 댕기시요" 그랬네, 다 마친 뒤에는.

"내가 따라댕기리다" 아, 그러고서는 내가 고만 가야금을 내가 맸네. 근께 이놈 매고 따라댕길라고, 그 거지가.

 

'아, 이런 놈의 거지, 이런 것이 나를 따라댕길라, 내가 어디 이런 걸 데리고 댕길 거냔 말이여'

기어니 따라댕길라고 헌게, 아 나를 뗄라고 애를 쓰네.

 

"뗄 것 없소 응, 날 뗄 것 없어. 나 같이 댕깁시다. 내가 가야금 매다 드릴 것이고, 밥 없으면 나는 내 밥은 내가 빌어먹을께 염려 말고"

안 데리고 댕길라 허네. 허! 이것 참, 꼭 따라댕겨야 겄는디.

이놈을 하나, 가야금 이놈을 배워 가지고...

 

 

나를 좀 쳐다봤으면 허련만, 모도 쳐다보지도 않고 법문만 듣고 앉었소. 원 참, 나!

내 태도도 좀 보련마는, 가야금 타는 거 한번 봐야 헐 것 아니요, 내가 여그서 가야금 타는데.

 

아, 그래 가지고는 따라댕길라고... 따라댕기는디. 거그서 여 윤필암을 넘어가.

거, 이상스럽게 지냈기 따문에 또 이 이야기를 내가 허는구만. 저그 올라가다가 또 도로 내려와서 인자 헌 놈의 또 얘기야.

 

윤필암을 고리 넘어가는디, 요렇게 재 넘어 조끔 또 올라가는디,

윤필암까장 자기도 인자 그 선원이니깐 가서 한번 가야금 타고 놀까 하고 가는디, 나 따라 붙였제. 나도 거까장 갔다 윤필암 볼 작정인데.

거까장 내가 좀 메고 간다고 헌게—나를 데리고 갈라는 게 아니라, 거그를 넘어가면서 좀 들어다 준다고 헌게 나한테 들린 것이여.

 

내가 고개까장은 들고, 들어가서 그 윤필암 앞에까장 가 가지고는 가야금을 돌라고 허길래 주었제.

챙피헌가 보드구만, 내가 들고 간께.

그래 안 들리고는 가면, 속에는 내가 멀쩡헌 대하이칼라인디, 제까짓 거보담은 내가 참, 우에 있는디 말이여. 나를 갖다 업신여겨.

'야, 이 저석아, 네까짓 놈이 나를 업신여기니까, 이놈아, 나는 너를 손톱만치도 못 봐. 이 자석아!' 허지마는, 저 자석은 또 나를 그래 보제.

 

거그 들어가 가지고는, 막 들어가니까 법문대회라. 설법회라.

설법회인디,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허는 것이 아니라, 큰방에 조옥 돌아앉고, 선객이 앉고, 처사 장진사가 설법을 헌다 그말이여.

 

참, 예천에 말헐 수 없는 장진사인디, '장진사는 도통을 했다'

문장(文章)이여. 문장인디, 장진사가 설법을 허는디 무슨 설법을 허냐 허면은.

내, 그 책이 여그 있어. 인제 놓고 내가 얘기헐테여.

 

재미나, 그래도. 이런 설법이 재미난 것이여.

법문 다 나오거든. 고런 것, 댕김서 그런 거 헌 걸 얘기해 달라고 안했어?

해서 내가 허제, 뭐. 안 청한 걸 내가 하는가? 불청을 내가 혀?

 

허, 염치 그. 그런디 왜 그 시원찮이 뻘로 그냥 콧등이로 비웃고 있어.

'법문을 안 허고 괜히 이러고 앉었다'고 콧등이로 비웃는고만. 눈 찔끔 감고 듣도 안 하고 비웃고 있어.

고렇게 비웃어 봤던들 소용없다.

 

조주, 요것을 장진사가 법문을 헌다 그말이여.

제일 참! 이 (몽산)법어에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이 참 어렵구만. 십절 떼기란 거는 못 띠어.

 

여기 강사들이 와서 시방, 이력(履歷) 보고 강사가 와서 참선허고 앉었지만, 내가 한 대문(大文)만 물으면 못 띠어.

그런, 입 벌릴 것 말아! 길음도 나한테 똥 쌌고 다 쌌은게 말헐 것 없어.

한국의 최남선이 박한영 두 분이 와서 합천 해인사 홍도여관에서 나한테 그만 입 끌어매 버렸어, 내 질문에. 그건 틀림없은께.

 

다 그, 그 답이 있는 거여 시방.

뭐, 웃지 말어. 내가 다 알고 있은게.(36분45초~53분2초)

 

 

 

(4/4)----------------

 

어느 대목인고 하니... 여그 그러거든.

 

조주 무자는 구피변... 조주무자선을, 조주선(趙州禪)을 구피변(口皮邊)으로 조고(照顧)인댄, 입껍데기로 돌아 비출진댄, 타일(他日)에 긱철봉(喫鐵棒)하리라. 다른 날에 철봉을 씹으리라.

 

그건 뭔 말인고 하니, 입껍데기로 화두를 혀? 엉?

 

'이뭣고?'를 헌다던지, 판치생모를 헌다든지, 조주무자를 헌다든지, 정전백수자를 헌다던지, 마삼근(麻三斤)을 헌다던지, 입껍데기로만.

'어째 무? 어째 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요렇게 입껍데기로만 허면서 일체 분별계에 떨어져서, 입으로만 괜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지를 관(觀)해라. 의지를 관해라.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그놈이 독로(獨露)해서 관이 나와야 한다.

이걸 알아 들어야 해. 이거 화두해 나가는 디 기가 맥힌 말이여.

 

관(觀)을 해야 한다.

관이라는 것은 뭐 아무것도 없는 걸 관헌다든지, 화두 전(前)을 관헌다던지 뒤를 관헌다던지 그런 것이 아니여.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알 수... (녹음 끊김)

 

전 망상 덤뱅이가 되어 가지고는 꼭 입으로만, 껍데기로만, 그것은 타일(他日)에 긱철봉(喫鐵棒)허리라.

 

이놈을 바로 화두 의심을 확철대오해서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해야 헐턴디,

아, 이놈 껍데기로 입으로만 그럭저럭 그만 무슨 뭐뭐 뭐뭐 '무, 무'허드끼 '이뭣고, 이뭣고'허드끼 그렇게 해서는 생사를 면치 못허고 견성을 못허리라 그말이여.

 

수부지삼세제불(殊不知三世諸佛)의 골수(骨髓)와, 삼세제불의 골수와 역대조사(歷代祖師)의 안목(眼目)을 일기(一期)에 흔출(掀出)하야, 한 번에 뒤집어 내서 재이면전(在爾面前)이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한 것이 삼세제불의 골수요, 역대조사의 안목이요, 네 본래면목 그대로 내논 것이여.

그놈을 바로 의심해서, 알 수 없이 의심해서 톡 뒤집어 깨야지,

입으로만 응? 껍다구로만 응? 헌체 허고 그저 앉었다가 자고, 글안으면 망상하고, 그래 가지고는 그 참선 못쓸 참선이다 그말이여.

 

성조한(性燥漢)이, 참으로 영리헌 놈이 일견(一肩)으로 담하득거(擔荷得去)허면, 한번에 그만 화두 그 대의(大疑)에 필유대오(必有大悟)해서, 의심을 해서 툭! 한번 깰 것 같으면 산승(山僧)의 주장자(柱杖子)로도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허리라. 이 산승, 내 주장자로도 너를 즐거이 칠 수가 없다. 너한테 방맹이 내가 줄 수 없다.

 

요 말에 가서, 장진사가 요 말에 가서 법문허는디,

"'산승의 주장자로도 너를 감히 칠 수가 없다'하니, 그 산승 주장자란 것은 어떤 주장자요?"

 

법문을 허는디 쭉 돌아 앉었는... 내가 거지로 그렇게 우슨 것이 들어가서 얹었다가서 물으니까, 겁이 퉁!, 환성지안(喚醒志安) 도사가(한테) 월봉(月峰) 외도(外道)한테(가) 저 말석에서 놀래데끼 놀래 버렸네.

 

대체 그 사람이 머리를 길어서 중은 아니지마는, 옷 입은 것이 그 심상치 않은 옷이요, 얼굴은 보니 깨끗허고, 노란허니 피는 한점도 없지마는, 행색이 이상한디,

"산승의 주장자로도 너를 갬히 칠 수가 없다, 그 어떤 것을 산승 주장자라 하오?" 거그서 그만 딱 맥힌다 그말이여. 대번 맥혀.

그런 문장이니까 뭔 말을 못 들어대리요마는 거 묻는 것이 이상허거든.

 

"산승의 주장자로 역미긍타이재(亦未肯打爾在)라. 산승의 주장자로써 즐거이 치지 못헌다는 말이 그 무슨 주장자요?"

그놈 대답 못하는 거여. 대답 못혀.

 

'차도(且道)하라. 또한 일러 봐라. 필경(畢竟)에 어떠허냐?' 요렇게 나왔거든.

그래 가지고 저 인자 다 시방 내가 새기는 게 아니니까.

 

혹자(或者)는 위시단명도자(謂是斷命刀子)라 허며 개차별지지약시(開差別智底鑰匙)라고 허니,

혹자는 '화두가 명 끊는 칼이다. 화두란 건 일체 명을 끊는 칼이다. 뭐 유니, 무니, 비유니, 비무니, 허무니 일체도리회니, 일체 막 때려 다 쳐부수어 버리는, 일체 망상번뇌 탁! 때려 쳐부수는 칼이다' 이렇게 허며.

또 어떤 자는 화두를 또 말허되 '일체 차별을 여는 자물쇠통이다' 요렇게도 허니, 호여삼십방(好與三十棒)이니라. 좋게 삼십 방을 주었다. 시(是) 상방(賞棒)이냐, 벌방(罰棒)이냐?

 

요까지 또 내가... 요까장 내가 말, 법문 언두를 뺏어 가지고 새겨 줬네, 거그서.

그녀러 것, 뭐 어떻게 내 채렸든지 말았든지 그 법석(法席)을 만났으니, 냅대 그만 이 법문을 해 줘, 여까장.

 

산승의 주장자라는 것은, 산승이란 건 어떤 것이며, 또 이렇게 거다가서 끊는 칼이며, 여는 자물쇠통, 호여삼십방(好與三十棒)이다 상야(賞耶) 벌야(罰耶),

요까장 쭈욱 내가 해석을, 해석이 아니라 경우를 딱! 말해서 설해 주니께 놀래 버려.

 

물을 것도 아니고, 여러 물었자 대답 못허는 걸 뭣혀.

물을 것도 말 것도 없고 대답이 나왔자 벌써 죽었어.

 

여까장 해석 딱! 해서, 참! 장진사가 절을 해 버렸어, 나한테. 온 대중이 절을 해 버려, 그 선객이 모여서.

그러자 나한테 대들어 가지고는 내 이름을 묻네. 뭔 내가 이름을 가르쳐 줘야제. 꿈돌이라고 댕기는디.

 

하도 인자 묻고 어쩌고 해싼디, 거기에 종식이라고 헌 사람이, 하나 아는 사람이 뜻밖에 왔네, 그 법석에. 어디서 들어 가지고 왔네. 나한테 절을 허네.

'아, 이 신수좌(信首座)님이 여그 왔다' 소문이 나. 아, 그런게 왼 대중이 절을 허네. 큰 절을 해 가지고는 차담을 내는데, 아 저 각 중에 거그서 차담 받았네. 빌어먹고 들어가서 숭악헌디!

차담상 해 놓고 그 '신수좌님!'허고 야단이여. 이놈의 디.

 

박홍록이가 그때 들어가 그거 나를 보고는 나한테 그만 놀래 버렸네.

'아이고, 도인이로구나!' 허! 그 인자 머냐는 거지라서 안 데리고 댕길라 하더니 인자는 도인이기 따문에 무서워서 '내가 어떻게 거다가 그놈을 질 수가 있단 말이냐'고, 아, 이러고는 그런디.

 

"나는, 여그서 나는 오래 있들 못허니 나는 떠나야겄소. 당신은 어디로 갈라오?"

"당신허고 따라댕기리라"고. "우리 같이 갑시다"

 

그때에는 인자 간 다음에... 나가 가지고 산을 둘이 넘어가는디, 나를 믿기를 기맥히게 믿네.

아! 믿으니 나도 인자는 그 참, 좋드구만. 바우 같은 디 가서 앉어서 쉬면은...

 

거그서 인자 그만 하직허고 나와 버렸지.

정영신이는 발써 다 돌아 버렸어. 선방으로 다 돌아 버렸어. 그런 디 들어가면 안 되아. 가면 그냥 그만 야단날 때여. 모도 대접허고 야단나. 그런게 그런 데 안 들어가는디.

 

 

이번에 묵언수좌(默言首座 송담스님)가 꼭 6년 동안을 내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듣고, 저도 한번 해 본다고 나섰어도, 날처럼 그렇게 머리 기루고 오장치처럼 짊어지고 안 나섰는디, 그건 평상 고대로 나섰어. 나서 가지고는... 나, 다 들었고만 이번에.

 

다 들은게, 저 서산 개 막는 데 가서 몇 달 있었고... 개를 막았어. 또 꼴담살이도 해보고, 그놈 닥치는 대로 했어. 또 그다음에는 저, 정거장 비를 쓸고, 이러고 댕겨.

'내가 그렇게 했다'고 고걸 듣고는 똑 그랬겄다.

 

그 사람은 열여덟 살인가 먹어 들어와서 순전히 내 교육 받은 사람이라. 순전히 고대로, 내 교육 딱 받은 사람이기 따문에 별도리 없어.

그저 공부인은 어떻게 지내든지 말든지 의중천하(義重天下)다. 의중천하니까, 의가 있어야 하는 법!

의라도 보통 의가 아니여. 관운장 유현덕이 장비, 고 고런 의(義)보담도 도의(道義)가 있어야 헌다. 도의란 건 천하에 없는 것이니라.

 

내가 도의를 가리켰고, 그다음에는 도의를 가르킨 가운데에서 너를 내가 도인을 맨들라니까 이러헌 일을 시키누나. 10년 묵언을 내가 뒤를 싸 주고, 천하 없는 일이 있어도 내가 협잡꾼 되고.

내가 잽혀... 넘의 자석 갖다 밥 못 멕이고—아, 내가 저번에 법문허지 안 씁뎌?

 

죽어도 나는 내 입에서 말 나간 일 없고, 내가 가서 도립병원에 가서 벙어리 증서를 맡아가지고 주어 감서, 조꼼만 어디 가서 안 돌아오면은 세상에, 내가 자식을 낳아 가지고 그랬다면은 어디 천하에 없제.

그 밤을 내가 안 자고 그것을 기대리고, 어디 인자 말헌 것이 안 허고 댕기니께, 그때 한참 왜놈들, 그 무서운 그 왜정 당시에 솔 뿌렝이 지름을 다 빼서 전장 모두 헐 때 그때여. 기가 맥혀. 별동대, 뭔 대, 무슨 대가 콱 절려 가지고..... 그걸 내가 보호해 냈어.

 

폭격통에 그것 목숨 끊어질까니 내가 진도에다 갖다가 피난을 시켜. 그게 도의(道義)여.

도의적 면에서 '내가 너한테 내가 이와 같이 도의적 면을 헌다'험서도 저를 가르켰어.

 

그 시방 그 사람, 도의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 내가 이번에 "네가 이 주지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참, 나 못 견딜 일이다. 네한테 주지를 너한테로 해 놨길래 내가 벼락 같이 가서 때려 치어 버렸다. 그랬는데 아, 네가 또 이리 올라고 야단을 치고 어쩔 것이냐?"

 

"중앙선원이 된다면 한번 해 보지요. 그러나 삼직(三職)이든지 뭐든지 그 밑에 요만큼이라도 부정헌 행동이 있으면 나는 그날로 싸 지고 갑니다. 천하에, 제가 무슨 욕심이 있습니까?"

욕심 없제, 권리 없제, 나 뭐 지위 모르제. 응! 이러고 탕탕허고 댕긴 사람이 여그 걸려 가지고 무슨 짓을.

 

"아, 돈을 벌라고 허겄습니까? 지위를 가질라고 허겄습니까, 뭣으로 내가 주지를 허겄습니까? 중앙선원이나 된다 하면은 한번 해 보는디, 이 말세에 해 보는데, 전강 조실 스님이 마침 중앙선원 조실이라 하시니, 중생교화(衆生敎化)해 나가시는 데 혹 도움이 되까 싶어서, 한번 책임은 져 보는데, 만약 삼직 겉은 사람이 여차허면은 소용없습니다. 그건 천하 없는 일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이러드라 그말이여.

 

틀림없거든. 틀림없어! 그 주지헐 사람이 아니에요. 허지마는 그렇게 고상허게...

제발, 무슨 뭐 부처님 상주재물(常住財物) 돈을 한푼이나 제 몸에 붙일까 무서워헌 사람입니다.

내가 여그서 여까장 말허는 것은 그 사람의 무슨 고상헌 뜻을 내가 모도 선전허니라고 헌 것 같애서, 여까장 허고 그만두겄습니다.

 

 

그래 홍록이를 따라서 재를 넘어가서 잿말랭에, "나, 그 한 곡조만 가르켜 주십시오"

"그러지. 아, 그 가르켜 드릴... 이걸 그 이거 헐 것이 아닌디"

 

"내가 헐 것이, 내가 헐라고 헌 거 아니라, 내가 강산에 그 내가 도모지 무슨 이렇게 한번 척 나서서 갔다왔다헌 가운데 앉어서 나 혼자 한마디 허드래도 아, 좀 좋소. 인연대로 좀 가르켜 주시요"헌게.

"그러자"고.

 

그래 가지고 나 허잔 대로 해 주어. 그 나한테 가야금을 안 들리고 자기가 늘 들어.

허! 같이 그 나, 원청 인자 그만 거그서, 윤필암서 그 나한테 허는 걸 보고는 자기도 그만 참, 공경심을 갖추고.

 

그럼 나는 인자 그 사람한테, "인생이란 건 무상하다. 허망허다. 당신이 50살 됐지마는 50년 지내온 그 가운데 요것밖에 못했제? 참말로 헐 것이 있는 것이여. 내가 나를 찾고, 생사해탈해야지"

요런 법문에, 법문에 이 사람도 취했네, 내 법문에. 나는 또 제 노래에 취했네.

아, 이래 가지고 둘이 감서 인자 앉어서 얘기도 하고, 나는 또 노래 배우고.

 

그래 내가 노래를 배왔는디, 내 노래가 설찬히 잘 부르는 노래요. 내 노래가 그렇게 뭐 장단 다 맞는다 그 말씀이여.

그래 내 법상에 올라와서 법상에서 장단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겄소? 그건 실격이니께, 내가 않겄소마는, 인제 언제 한번 해제나 허고 우리, 어디 그런데 한번 내 노래를 한번 들어 보고, 내 장단 한번 치는 걸 한번 해 볼라면 나를 한번 청해 보십시요. 내가 한번 헐테니께 잉.

 

그래 가지고 홍록이 허고 댕기면서 그 노래를 좀 배운 걸 여까장 얘기했습니다. 오늘 아침 법문은 또 여까장 두고.

그래도 기행을 허라고 헌께 어떻게 헐 수 밖에 없제. 내가 그 뭐 뭐 불청(不請)이 자청(自請)해서 내가 헌 것이여?

 

내가 불청, 안 청헌디 내가 이런 말을 했으면 내가 싱거운 사람이고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지마는, 자꾸 그걸 갖다가 그저 기행을 좀 해 달라고 하니 또 기행을 이런 걸 빼 놓고 뭘 헐 것이여? 내 여까장 원, 이런 것까장 다 집어넣어서 해야제.(53분2초~1시간9분40초) (일대기 11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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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고고금사(萬古古今事) 성하수동류(城下水東流) 임제일성할(臨濟一聲喝) 언하천인안(言下千人眼)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著) '登鐵城城樓有感(철성의 성루에 올라)', '春日詠懷(봄날의 회포)'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2. 13. 15:3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0-2호) 용성스님과 제1구 문답.

 

**전강선사(No.021)—전강선사 일대기 제10호(경술1970년 12월 18일 새벽. 음) (1971년 1월 14일 새벽)

 

(1/2) 약 17분.

 

(2) 약 14분.

 

(1)------------------

 

간탐(慳貪) 한번 잘못해 가지고 한번 걸려 놓으면, 제가 제 일생, 제 몸뚱이 써보지도 못허고 걸려 놓으면 7년이라고 했지마는, 7억만 년이 될런지 모르는 디가 걸려 가지고 그놈의 고통!

 

참, 그거 어리석다.

얼마나 어리석어서 혜복(慧福)을 닦아 짓지 못하고 왜 그렇게 우죄(愚罪)를 짓느냐.

어리석은 죄를 지어서 무간업(無間業)에 떨어지고 마느냐.

 

 

삼도고본(三途苦本)은 인하기(因何起)요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도고본(三途苦本)은 인하기(因何起)냐?

삼도(三途)에, 지옥 · 아귀 · 축생 삼도에 들어가서 죄 받는 것은 뭣으로 써서 죄를 받느냐?

 

지시다생(只是多生)에 탐애정(貪愛情)이니라.

다만 이 다생에, 많은 생으로 오면서 탐착해서, 부처님 돈 갖다가 제 돈 만들아서, 고놈을 내 돈이라고 갖다 내게 붙여서 애착해 가지고, 애착을 여의지 못헌 탐심죄(貪心罪) 그로써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서 삼도에 벗어나들 못하느니라. 이거 무섭지 않어?

 

 

정전강(鄭田岡)이 여기에 와서 이 집을 짓는다고 턱 앉아서, 시주것 들어온 놈을 다 내가 모아 가지고는, 요놈을 가지고 논이나 내 논 좀 사 놓고, 밭이라도 내 밭 좀 사 놓고, 내 물건이나 내 물건 좀 맨들아 놓고, 나 호신불(護身佛)을 여그 좀 가지고 하나 있고, 내가 금반지... "어쨌든지 이놈을 스님이 쪄 주시요"

내가 이리 했제, 뭐 내가 여그 내 뭔 끈은 끈대로 들어오고 또 요놈도 내가 인자 어따 쓸꼬 뿐이여.

 

'절을 어디다 짖는 데다 쓸까? 내가 이걸 어디다...' 이 맘 뿐이여.

그거 팔아서 어디다 내 몸뚱이 붙일라고는 안 혀.

 

바로 내가 얘기헌 말이여. 자랑헌 게 아니여.

몇 또 그 전에도 또 내가 생겨서 팔아 여다 넣었어. 반지도 내가 거다 넣었어.

 

'내가 이런 시주(施主) 물건 하나를 갖다,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 하나가 들어오면은 이놈을 어떻게 써야사 내가 옳게 써서 그 시주 어른네가 복을 받겄느냐?

내가 돈 이만큼 이놈이 있으니 이놈 갖다가 절도 지었으니, 절 지어서 선객(禪客) 양식허고 선객들 공부허게 만드는 이외에 또 있단 말이냐? 여다가 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내가 모아서 모아서 헌 것이 머냐(먼저) 삼백만 원 가지고 내가 저금을 해 놨더니, 이리저리 또 그 뒤에 또 그렇게 이리저리 해서 내가 또 바로, 아! 그 뒤에 또 백만 원이 되았네. 그때 그 얼마 안 되았는디.

아! 이것 자꾸 모아지네. '야! 내 욕심을 없앤게 더 돈이 들어오는가 보다' 아, 이 생각이 나네.

 

아, 그러자 쓸 놈이 턱! 생겨. 삼백만 원 주고 논 살 놈이, 밭 두 마지기 2천 평이 사백만 원이 딱! 맞아.

사백만 원 그놈 주고 그놈 사 버렸다 그말이여. 인자 이전허라고 돈 주었어, 다. 도장.

 

이래 가지고 우리 재단법인(財團法人)해서 법보선원(法寶禪院)을 만들아서 우리 법보선객들이 여그는—이 말세(末世)에 모두 절만 맡으면 독(獨)살림 맨들고, 제 절 맨들고—절대 그것 없이 그만 우리 참! 똑 도 닦을 사람만 어쩌든지 심사 심사해서 방부(房付) 받아 가지고, 그 괴각(乖角) 놈들은 막 때려 쳐 버려.

 

괴각 놈들 뭣 허게? 도 못 닦게 만드는 놈이 괴각이니까. 그걸 받아?

 

"내 모가지 떼어 갔으면 떼어 갔제 이놈! 너를 갖다 내가 거짓 인가(印可)를 혀? 이놈아! 떼어 가거라. 이놈아!" 내가 그래 버렸어.

뭐, 내가 그때 여기 우리 대중이 다 아는디 뭐, 내가 헛소리 혀? 제 주뎅이로도 그랬는디.

 

"아! 네가 죽일라고 헌게 내 인가해 주마" 그려?

없어!

 

여그서 있음서 '아따, 절을 지을턴디 돈...'

아, 이 탁자 허는데 돈 오천 원이 없어 얻으러 갔네, 내가.

그래 놓고 주어 놓고도 '돈, 돈 헌다'고 허네, 날 보고. 하! 이런 꼴.

 

"나, 오천 원만 주시요. 부처님 모셔..."헌게 겨우 줌서도, 그뒤에 뒷말은 뭐라고 하니 "돈, 돈 헌다"고 해싸.

"그렇겄다"고 허고는, 그래 댕김서 저래 댕김서 그저 이것 고치고 저것 갖다가 주고는 또 이 집을 지어 놓고서는.

 

보살님네를 한 분을 척 갖다가서 잽혔여.

그래서 외상으로 나무대를 얻었는데, 나무대를 얻어 놓고서는 돈을 받으러 왔길래, "내가 다 주었소"허고 거짓말을 했네. '보살님한테 주었다'고.

 

보살님이 아니라 보살님 남편이니깐—거, 세무소 과장이여.

거, 주어 버렸다고 헌게, 주도 않고 주었다고 허니깐, 아! 이 과장이 썽이 나!

 

"아! 주도 않고 나를 주었다고 거짓말을 허고 법당(法堂) 짐서 거짓말을 헐까? 그게 중이여?”

아, 이런다고 해서 내가 직접 그 어른한테를 가 찾아가 만나 가지고는.

"내가 거짓말 했으니 왔소"

"뭔 거짓말 해 왔소?" 안 좋아 가지고.

 

"아, 저 법당을 짓다 어떻게 돈을 달라고, 나무대를 달라고 혀 쌓던지, 아! 그만 세무 과장님을 팔렸습니다. '과장님, 내 다 드려 버렸다'고. 그런게 안 조릅디다.

아! 과장님은, 그 세무소 과장님이 제까짓 놈들이 자꾸 달라고 허다가 세무 과장님이 '너 이놈들, 가만 있거라'허면 저놈들 혼날 거 아니요. 돈 달라고도 않고.

나를 자꾸 달라고 조르니 살 수가 있소? 임시, 거 과장님을 갖다가 좀 모셔 놔사, 드렸다고 해 놔사, 내가 숨을 쉬겄길래 거짓말로 한번 그래 봤습니다"헌게,

 

"허! 그려요. 허허!" 그려.

아, 그래 수단으로 모면해 가지고 얼매 만에 갚기는 갚았소. 이런 짓을 다 내가 다 했소.

 

그래 "돈, 돈! 헌다"고. "욕심 많아 돈, 돈 해"

요놈의 자식들, 제 주뎅이로도 또 해 놓고도 "스님, 욕심 많다고 합디다" 요따우 소리 헌 놈이 있구만, 내 다 알지.

내가 어떠헌 사람인데, 내 앞에 고따우 버르정머리를 해 제껴. 그놈들 삼십 방맹이 나한테 맞을 날이 있을 테니까.

 

내가! 다 까봐야 양으로 질로 질적으로 다 까봐야, 내가 돈 백 원을 갖다 어따가 따로 어디서 내가 맨드는가!

 

나를 보고 욕심 많다고 혀?

재욕무욕(在慾無慾)이지. 욕 가운데 욕이 없고, 내가 내 몸뚱이 속에다가서 내가 돈은 몇십만 원씩 내가 가지고 댕길 때가 있고 모도 허지만, 내가 그것을, 요 몸뚱이가 우리 정법학자(正法學者) 양식 헐라고 내가 이것 보호해 나가는 몸뚱이, 내가 그게제.

 

내 앞으로 다 해 놓기야 해 놨지만, 다 내가 한푼인들 내가, 요놈도 내가 다 갖다 내 놔서 인자 쓸라고 다 허고 작정이 있고. 허! 그런 깨끗헌 나를 갖다가 말이여, "욕심 많네, 무엇 많네"

그러헌 데 속지 말아요, 여러분들! 여그 온 보살님 여러분들 그런 말에 속으면은 오는 선생까장 "아이고, 그 욕심 많은 전강 스님"

 

그래 가지고는 내가 만약에 여러 보살님네께 옳은 스승일 것 같으면은 옳은 스승으로 믿는 그 신앙을 받아 버린 것 아닌가. 신앙을 모도 쫓아 버리고 쓸어 버린 거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욕심 많다 한다고 떨어져 꺼꿀러져서 옳은 법을 반대허고 비방허고 안 배우리요마는.

별 수 없어! 벌써 욕심 많다고 허는디, 그 선전에 떨어지면은 나 욕심 많은 줄 안다 그말이여.

알면은 뭉쳐지는 신심(信心)이 혹 따개질 수도 있고, 혹 다 응, 다 그만 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여.

 

그러헌, 그러헌 모도 그 마구니 놈들이 정법을 믿을라 하면은, 참말로 옳은 큰스님을 믿는 데 가서는 마구니가 되아 가지고 못 믿게 맨들고.

"거, 갈 것 없다"고. "갈 것 없으니, 나한테 법문 들으라"고. 요 또 요렇게 헌 놈이 있단 말이여. 알고 있거든.

 

내가 이렇게 법문 자료로 쓰는 것이여.

 

한 터럭이라도, 내가 이 자리에서 한 터럭이라도 내 찬(讚), 내가 헌 것이 그대로 찬이고, 내가 내 허물 폭로시킨 게 그대로 폭로제.

없습니다! 그 이외에 없어.

 

보살님네께서도 요만헌 것이라도, 일전(一錢) 일푼이라도 부처님께 희사(喜捨)하겄소 적어 놓고, 뒤에 안 내는 거, 말해 놓고는 안 헌 거, 그건 못써.

차라리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가지고 입방(入房)을 턱! 허고, 그대로 도 닦고 그대로 정성껏, 돈 한푼 못 내면 못 내는 원인이 (돈) 없어 못 내니까, 그대로 닦아 나가는 거, 좋아요.

 

무일푼, 한푼도 없어 방부(房付) 들이고 그대로 도 닦고 나가는 거, 좋아요.

허지마는, '낸다'하고 안 내는 거, 딱 결정해 놓고 안 내는 거, 적어 놓고는 안 내는 거, 참 못써요.

 

그것은 아주 그만 '낸다'고 헐 때에는 아주 공덕(功德) 지은 체, 복 지은 체, 시주헌 체 해 놓고, 뒤에 가서는 살짝 양심으로 안 내고 속여 버려?

그건 내 양심에 사진이 백혀 버리고, 고놈이 누대(累代) 천겁(千劫)에 없어진 법이 없어.

 

그것을 대중께 알려 드리는 거여. 내가 법사로서, 법사로서 이런 말을 안 알려 주면은 누가 알려 줄 것이냔 말씀이여.

 

어디 시주책(施主冊)에 시주를 적어 놓고도, 가 권(勸)해서 적었으면, 어떻게 적었던지 한번 적었으면 백 번이라도 가서 받아서 올려야제, 안 준다고 안 받아 놓고 시지부지 그래 놓으면 안되는 거여. 그런 법 없어. 여까장 다 내가 말씀해 드리는 거고.

 

그다음에 축원(祝願)허는디, 내가 여 축원허는데,

결제(結制)헐 때, 결제 대중이 들어와서 혹 식량이 있는 이는 '식량 내라'고, 식량이 없는 이는 한푼도 없어 못 낸다고 그러면 아, 그 못 내는 걸 어쩔 거여. 못 내고 없으면 '못 내는가 보다' 이랬고.

 

'낸다'고 해 놓고 적어 놓고 안 낸 이는 '내라'고 내가 헐 뿐 아니라, 또 '낸다'고 허는 이는 낼 줄 알고 있거든, 나부텀도 거그 증사(證師)가 되아 있거든.

그래 척 뭐, 돈이고 쌀이고 가져오거든. 내 시방 신도 다 그러제.

 

딱! 들어오면은 여다가 부처님한테 올려 가지고 시불급승(施佛及僧)이다.

부처님한테 올렸다가 내려가서 저 아래가 밥을 지어서 우리 도 닦는 대중이 잡숫고 도를 닦는단 말이여.

돈 가져와, 쌀 가져와, 고렇게 들어와서 마지(摩旨) 지어서 대중이 먹고 도 닦는 공덕보담도 더 험이 어디 있으랴. 어디 있어?

 

돈 가져 왔다고, 쌀 가져 왔다고, "아무개 보체(保體), 쌀 좀 가져왔으니 명(命) 좀 주시요, 복 좀 주시요, 우리 아들 무슨 뭐 병 낫게 해 주시요"

뭐 고것이 축원 아니여. 야비(野卑)허다.

 

없는 법인 것을 왜 해?

지나(支那)도, 자유중국도 없으며 태국도 없으며 그렇게 어디 행사허는 데가, 우리 한국도 신라 때도 없었는데 언제부텀 시작되았든고?

 

용호당 때, 그 용호당 견성도 못헌 이여. 용호당 때 중생 살 방편을 만든다고 이렇게 해 놨다.

거그서 벌어진 것이 무당! 첫째, 무당이여. 무당이 벌어졌고 그래 가지고 똑 허는 식이 중 재받이나 거지반 같어.

 

요것이 중간에 그만 인도... 재받이 법이라고 이것이 수(數) 아주 백년도 더 나왔지. 몇백 년!

요것이 그만 커져 가지고는 맨탕 들어오면은 큰 불공은 재받이 "으아"허고 뭣 쓰고 "으아"허드니, 고것이 차츰 조금 줄어서 간단히 헌다고 허지마는 모도 식이 모도 그런 주문 다라니를 맨들아 가지고 이렇게 해 논 것이여.

 

내가, 나는 절을 하나 조그맣게 짓던지 토방을 짓던지, 결코 이것을 내가 개혁헐라고 작정입니다.

지금 말합니다. 그래서 우상, 모도 우상, 산신불공 독성(獨聖)...

 

부처님은 한 분 모셔야 혀. 우리 부처님이시니까.

우리 부처님이 이 중생의, 다시 중생 과보(果報)를 면헐래야 면헐 수 없는 생사악도(生死惡途)에 가서 죄만 퍼짓는 놈의 중생을 위해서 터억—부처님도 같은 과거 중생이지마는, 출세(出世)를 해 가지고는 이와 같이 삼계독존(三界獨尊)이 되아 가지고, "내가 이런 도리를 깨달라 발견했으니 너 깨달아라" 해 주신 은혜가 천하에 없어!

 

그 이외에 어디가 있어? 우리도 지금 믿어 가지고 그거 허지 않어? 참선 말라고 허면 말겠소, 우리가?

 

그러니 고대로 한 분 모시고 거다가 축원허되 "그저 대성(大聖) 석가모니불님 증명해 주십시요. 이 정법! 생사 없는 해탈 정법! 신심불퇴(信心不退) 의단독로(疑團獨露) 확철대오(廓徹大悟) 광도중생(廣度衆生) 해 줍소사"

 

확철대오 광도중생 헌 그 속에 보담도 더 헌 부귀영화 어디 있으며, 그 위에 더 있어요?

또 거, 부귀영화 자손창성, 무슨 향화부절(香火不絶) 거가, 고거 그까짓 자손창성 부귀영화, 향화 만대(萬代)에다 만대 지내가면 어쩔테여. 만대 지내가면 도로 생사굴(生死窟)에 들어간다 그말인가?

 

의단독로 확철대오 아, 이뿐인디 무슨!

그러고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고것이 백혀 놓은 축원이여.(62분~1시간18분51초)

 

 

 

 

 

(2)------------------

 

그래 여그는 법보(法寶)라고 이름 하나 딱! 지어 놓고 "법보재자(法寶齋者) 정법문중(正法門中) 신심불퇴(信心不退) 속성대각(速成大覺) 광도중생(廣度衆生)이라"

아! 고렇게 딱 해가지고... 자꾸 기도 드릴라고 쪼가리 쪼가리 가져오네. 내가 쪼가리 요것 시방 얘기 헐라고 헌 것이여.

 

어쩔 수 없어, 내 하도 해 달라고 해싸니,

"우리 아들 입학허게 축원..."

"그 법보에다만 넣으시요. 아침에 우리 대중이 모아서 예불(禮佛)허고 십악참회(十惡懺悔)허고 '법보재자 정법문중 신심견고 영불퇴전 속성대각'이면은 거그 당신이 여그 부처님한테다 무얼 바쳤든지 말았든지 고대로만 들고 가시면은 되는가, 안 되는가 보십시요.

'아무개 보체, 여 아무 대학 대학에 입학해 주십시요!' 그러다 안 되면 어쩔테요?" 내 그렇게 헌께 "하믄 알아서..."

 

아주 내 그래서 돈이나 무슨 뭐, 그것이 거다가 무슨 뭐, 칠일기도를 헐 것 같으면 칠일기도에 오 회씩, 한번에 한 시간씩, 다섯 시간이나 이렇게 해 주면은, 일주일이나 해 주면은 돈이나 어디 많이 낼데끼 허지만, 돈 이천 원 내고 하나는 천 원 내고, 그래 가지고 그렇게 해 달라는 것을,

아! 내가 그렇게 헐 수가 없은게 못헌다고, 돈 적어 못헌다고 허면 돈 때문에 안 해 준 것 같애서 그 말은 내가 않고.

 

'돈 천 원 가지고 허겄소? 돈 이천 원 가지고 허겄소?' 내 그말은 절대 않고.

"당신네가 갖다 쌀 갖다 올렸던지 돈 갖다 올렸으면 그 돈 갖다가서 그 결제기도라고 있어. 결제에 동참기도라는 게 있는디, 결제 동참기도에 쓰면은 마치드락까장 그 복을 받소"

 

그 동참 결제에 들어오신 분은 식량 가지고 들어와 잡순께 그건 당신 잡숫니라고 허고.

 

그 결제기도란 건 뭐냐?

그 결제기도에 따라 들어온 그 동참이, 내나 결제대중이 "아들딸 며느리 손자 모도 그러니 우리 좀 넣어 주시요"

"아! 그래요" 그래 가지고 넣은 놈이 그 결제 동참기도여.

 

동참기도에 가서 여그 들어오신 우리 보살님네도 다 가족을 다 써서 들어오지마는, 당신 결제에 돈 내고 또 결제 축원 돈 내고 두 가지로 넣거든.

그러면 그 결제 동참축(同參祝)에 들어온 아들딸, '우리 아들딸도 이 법보선원에 선량(禪糧) 좀 대서 그 선량을 대중스님네가 먹고, 이 법보전 우세도 다 해 나가고, 그 거기에 인자 참 이 돈을 모도 써 나가는디 큰 대복이 되아서, 무량 한량없는 겁(劫) 중에 무루복(無漏福)이 되아서 이런 복 좀 지어 주게 해 줍소사' 이것 아닌가!

 

똑같이 기도에 그냥, "법보재자, 그저 동참기도 재자, 법보재자" 이래 버리제. 그게 기도 아닌 줄 알어?

우리 아들, 우리 딸 좀 위허는디 그렇게 모두 보시해서 복 짓게 맨드는 기도축 아니요, 그것이?

기요, 아니요?

따로 어디 허요, 내가? 안 허제!

 

그러면 이 법보기도축이라고 말만 해 놨지마는, 법보기도축 턱 해 놓은데 가서 벌쎄 그 법보축 돈 들어온 것 보란 말씀이여. 내 그놈 오늘 여그서 톡톡 ... 말이여.

뭘 그걸 까바치든 안 혀. 까바치든 안 해도 내 숨기지도 안 혀.

바로만 써주면은 천하에 도무지 그 해탈 비용을 그대로 써 나간 것이제.

 

쌀 열 섬 낸 이가 있어. 열 가마!

열 가마, 따로 또 세 가마 낸 이가 있어. 그 법보동참축에 들어온 이여.

여그 한때도 와 밥도 안 먹어. 밥도 안 먹지만 축원해 달라는 소리 없어.

 

그런 이는 축원도 안 해 주는디, 돈 이천 원, 천 원 낸 거그다가 축원을 "아무개 보체, 입학해 주시요, 병 낫아 주시요" 이러고 앉었어?

이걸 헐 때마다 내 속으로 우스워.

 

그 대신에, 이것 안 허는 대신에 부처님한테 발쎄 올렸으니 작법(作法) 딱! 해 가지고 축원해 주어.

작법이란 게 뭐인지 아오? 벌쎄 앉으면 작법이 되는 법이여.

작법을 거, 작법은 또 아무때나 되는 것이 아니여. 내가 바로 말허지.

 

작법 딱! 해서 이렇게 법보제자 축원 한번 해 준디 복을 못 받을 것이여?

헌디 엉뚱허게 야단, '어서 속히...'

 

여그, 여그 벌써 몇이여! 저, 종원이 누구는 일차에 딱 붙고 시험 딱딱 되았네. 축원 하나 해 준 일 없어.

'일주일 해 달라'고 허면, 어, 그래. 그때 가서 그 사람들은 또 안되아, 안 해 준다고 허면.

또 그 방편으로 해 준다고는 했으나 미안혀.

 

그러지마는 일차에 걸렸다고 쫓아와서 "아이고, 내 일착에 걸렸습니다"

"그 봐라. 부처님이..."

또 그 나중에 일착으로 딱 입학 되았어, 연세대학에. 김종원이라고.

 

와서는 그때는 절을 허고 뭘 사 가지고 야단이여.

똑 내가 작법해서 되았으리요마는, 그때 축원을 "아무개 보체" 일주일 허다 안되면 어쩔 것이여. 비방만 허고 달아나제.

 

그러건 저러건 인자는 앞으로 만 원을 가져오든지, 이만 원을 가져오든지, 오만 원까장 가져온 것도 내가 삼칠일(三七日) 해 달라고 하면 못해 준다고 했은께.

다른 디 가서, 저어 뭔 저, 거시기 그 뭐 기도 잘해서 모두 성취헌, 강화 보문! 그런 데 가서 한 삼칠일 요렇게 뚜드러서 잘허고 해야지.

 

아, 여그서야 선방에서 참선 모도 허고 있는디, 참선허고 있는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것 당최 헐 수도 없고, 여그는 기도 처소가 아니고 도 닦는 처소니까, 그렇게 알라고.

떡 해 올리고 밥 지어 올리는 건 그건 못하고. 영단(靈壇)에도 과실 몇 개 놓으면 그만이제.

저 오천 원 짜리입니다, 오천 원 짜리. 오천 원 짜리 저그 넣어.

 

천 원 낼라고 그러길래, "천 원 내면은 대중이 여그 와서 한 시간이나 금강경 읽고 헌 디도 안되아. 그거 시방 우리 대중이 몇 명인데? 응? 우리 대중이 60명 대중인디, 60명 대중이 앉어서 돈 천 원에 그 무슨 그 복이 되어야 허제. 돈을 내가 탐허는 게 아니라, 못 혀!" 그랬더니 오천 원을 냈어.

 

오늘 아침부텀은 대중께 공포허고, 쪼가리 그 법문 "아무개 보체" 나는 그것 없을 터이니,

그렇다고 해서 인자 '에이, 그것! 입학 불공(佛供)도 못 하겄고, 인자 입학 소용 없다'고 허는 이는 아, 그만이제, 내가 어떻게 그 허라고 해.

 

그럴수록에 더욱 작법해서 법보축에다가 돈 · 쌀만 올려 놓고, 올림서 잊어 버리고 무주상(無住相)으로 해도 더 된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오란 말씀이여. 내가 못 오라고는 안 혀.

그러면 오만 원이라도 뭐 하나 그렇게 해 달라고 해서는 안 했제, 그렇게만 안 허고 넣으라고 허면 내가 넣었어.

 

여그 넣었으면 될런지 모르는데, 오만 원을 가지고 와 허고 나서는 "오만 원에 나, 오천 원도 안 되아서 말았소” 이런단 말여, 여그 와서.

차라리, 들으니께 "스님이 뭐 어떠고 어떠고 허니라고... 여그다 못 해서 한이요" 그렇다고 울라고 해서. 그 내, 거짓말 조금도 아니여.

 

허니, 내가 쪼가리 축원 때문에 오늘 아침에 여까장 말씀허니, 대중은 다 똑같이 이렇게 이 법보원! 이 법보선원!

부처님 예불허는 법도 그러허고, 천도허는 법도 그러허고, 금강경 한 편 읽어서 우리 대중은 "법보재자(法寶齋者) 신심견고(信心堅固) 영불퇴전(永不退轉) 속성대각(速成大覺) 광도중생(廣度衆生)" 좋지요?

 

"법보재자(法寶齋者) 광겁부모(曠劫父母) 무량겁래(無量劫來) 소작지죄업(所作之罪業) 실개소멸(悉皆消滅)" 그놈 해 달라고 허고는,

'제가 깨달라야 허는 법이제'허고는 "속성대각 광도중생!" 요렇게 헌단 말여.

 

그러면은 그만 그 본궁내원, 내원본궁이거든.

내원본궁(內院本宮)이 나 깨달라 생사 없는 해탈 거가 세계고, 해탈 본궁이고, 해탈 본각(本覺)이고! 응, 극락세계 상품(上品)이고, 이렇게 믿어야 참말로 인자 옳게 믿는 정법학자요, 정법 믿는 신도요,

 

'이(지)환즉리(知幻卽離)다' 부처님 말씀이여.

이환즉리다. 환인 줄 알면 여읜다.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방편 인자 없다 그랬어. 방편 안 헌다 그말여.

 

부처님이 그렇게 무수방편(無數方便)을 해서 설허다가, 병난 놈한테는 병다라니 해 주고, 돈 구허는 놈은 돈다라니 해 주고, 인자 뭔 뭔 어디를 가는디 성취헌다고 허면 성취다라니 해 주고, 천안통 헌다면 천안통다라니 해 주고 타심통(他心通) 다라니 헌다면 타심통다라니 일러 주고.

별별 팔만사천 다라니 문(門) 좀 봐. 얼마나 입이 쓰도록 그렇게까지 중생 심리를 맞춰서 다라니를 설했어. 그놈 그대로 해 보니 되아. 아, 미치고 만단 말이여, 미치고 말아.

 

허지마는 그놈이 미칠지언정 정법문중으로 안 들어와서는 안되니까, 미쳐라도 봐 가지고 차츰 정법문중으로 들어와야제, 어쩔 것이여.

중생으로 그대로 내비두면은 어짤 것이여? 그 어쩌? 그 어떻게 혀? 어쩌냐는 말이여.

 

그 중생 그대로 내비두면은 당최 뭐 역사도 없이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말 것인가?

지긋지긋허제. 내가 생사고를 받아 온 것도 내가 생각헐수록에 참, 과거 받아 온 것도 견딜 수 없고 참, 아프다! 통전심부(痛纏心腑)인디,

 

거다가 하물며, 내 모도 무량 만겁에 모도 형제부모, 모도 애족(愛族)들, 그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지옥고 받는 걸 어찌 차마 보냐 그말이여.

어찌 차마 그 고(苦)를 받는 걸 보고 알고 구허지, 제도허지 않을 것인가?

 

제도헐라니까 헐 수 없어서 그와 같은 방편, 방편이 아니고는 아무리 헐래야 헐 수가 없으니까, 본궁(本宮)은 본궁대로 말허고, 본각은 본각대로 말허고, 내원궁은 내원대로 말허니 되는가?

헐 수 없어서, 거다 갖다 들입대 벌려 가지고 야단스럽게 모도 해 가지고는 끄어 돌이킬라고 허다 보니 그것이 방편이드라 그말이여. 그게 환주장엄(幻住莊嚴)이드라 그말이여.

 

본래 모두 없는 것인데, 무엇이 있어?

이 몸뚱아리 하나 받아 나와 가지고 가지고 있으니께 뼉따구도 있고 살도 있고, 물도 있고 춤도 있고 눈깔도 있고 다 있지마는, 거그서 한번 더 봐라, 어디 있나? 뭐가 있어?

 

받아 나기 전도 한번 봐 봐라. 뭐가 있나?

가지고 있다가 내버린 뒤에 썩어 버린 뒤에 또 봐라, 거가 또 뭐이가 있나?

거, 과학적인 현대학적으로도 없는 건 사실 아닌가.

 

유무(有無)에 집착 말고, 유에 취허지 말고, 상견(相見)에 떨어지고 사견(邪見)에 엎어지지 말어라!

 

다만 헐 것은 무엇이냐!

그 고약헌 놈의 사상고에 떨어져서 유(有)니 무(無)니, 비유(非有)니 비무(非無)니 무엇이니 뭐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나아가서, 거 모도 이리저리 해석해서 장만해 가지고 들어앉지 말어라!

 

거그서 나가서 다만 공안(公案)이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1시간18분52초~1시간32분36초) (일대기 10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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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탐하다(慳貪-- 아낄·인색할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다.

*무간업(無間業) ; 무간악업(無間惡業). 무간죄(無間罪).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하는 업(業)으로 오역죄(五逆罪)를 가리키는 말.

오역죄, 곧 다섯 가지 무간업은 ①아버지를 시해하는 것[殺父]. ②어머니를 시해하는 것[殺母]. ③아라한을 죽이는 것[殺阿羅漢]. ④승단의 화합을 파괴하는 것[破僧].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하는 것[出佛身血].

*(게송) '삼도고본인하기(三途苦本因何起)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삼도(三途, 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 · 아귀 · 축생의 생존. 삼악도(三惡途),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愚癡 어리석음)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머냐 ; ‘먼저’의 사투리.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독(獨)살림 ; 독산림(獨山林). ‘독살이’라고도 한다. 토굴 또는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혼자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살림. 또는 사찰 운영을 독단으로 혼자서 처리하는 것. 이에 상대하여 여러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중의(衆意)를 모아 사찰 운영을 하는 것을 원융산림(圓融山林)이라고 한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괴각(乖角 어그러지다·어긋나다·거스르다·비정상이다·비뚤어지다 괴/뿔·모진 데·다투다 각) ; 어긋나고 틀어지다. 언행(言行)이 대중의 질서를 따르지 못하고, 유달리 어긋나는 짓을 말하며, 또는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희사(喜捨 기쁠 희/버릴·베풀 사) ; ①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 : 깨끗하게 내놓는 것), 정시(淨施 : 깨끗하게 베푸는 것)라고도 함. ②기껍게 자기의 의견, 생각을 버리는 일.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는 일.

*입방(入房) ; '선방(禪房)에 들다[入]‘ 수행자가 방부(房付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를 들인 것을 말한다.

*시주책(施主冊) ; 권선책(勸善冊). 시주한 사람[施主]의 이름과 시주한 재물의 액수를 적은 책. 또는 시주하는 사람의 이름과 앞으로 시주할 재물의 액수를 적은 책.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보체(保體 보전할·지킬 보/몸 체) ; 몸[體]을 보호(保護)한다는 뜻. 축원문에 적힌 살아 있는 사람의 성명 밑에 붙이는 축원(祝願)의 뜻이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삼계독존(三界獨尊) : 부처님에 대한 존칭. 삼계에서 오직 홀로[獨] 존귀(尊貴)하신 분.

생사(生死) 유전(流轉)이 쉴새없는 어리석은 세계인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의 중생을 바른 법으로 열반(해탈)으로 이끄시는 오직 홀로[獨] 존귀(尊貴)하신 분.

*'생사 없는 해탈 정법'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향화(香火) ; ①향불. 향을 태우는 불. ②향을 피운다는 뜻으로, ‘제사(祭祀)’를 이르는 말.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 ‘원하옵건대 법계의 모든 중생이 같이, 저희 모두 다 동시에 성불하여지이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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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제자(法寶齋者) 정법문중(正法門中) 신심불퇴(信心不退) 속성대각(速成大覺) 광도중생(廣度衆生)이라" ; 법보재자는 정법문중에서 신심이 견고하여 퇴전치 아니하며 속히 대각을 이루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소서.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삼칠일(三七日) ; 세[三] 번의 칠일(七日). 3 x 7=21, 스무하루.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법보제자(法寶齋者) 신심견고(信心堅固) 영불퇴전(永不退轉) 속성대각(速成大覺) 광도중생(廣度衆生)" ; 법보재자는 신심이 견고하여 영원토록 퇴전치 아니하며 속히 대각을 이루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소서.

*"법보제자(法寶齋者) 광겁부모(曠劫父母) 무량겁래(無量劫來) 소작지죄업(所作之罪業) 실개소멸(悉皆消滅)" ; 법보재자의 광겁의 부모가 한량없는 세월 동안에 지은 죄업이 모두 다 소멸되소서.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7~88. (가로판 p91~92)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부동지(不動地) : 마음 바탕(心地)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쳐서, 한없이 밝고 두렷이 고요한 곳에 머물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고, 온갖 주체와 대상이 끊어진 경지를 말함이다.

*무수(無數) ; 헤아릴 수 없음.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통전심부(痛纏心腑) ; 아픔이 심장과 창자를 휘감는구나.

*환주장엄(幻住莊嚴) ; 실제가 아닌 방편의 장엄.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