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7/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78)—박산무이선사 선경어(7) (갑인.74.01.21.새벽) (전378)

 

약 38분.


풍우황엽락(風雨黃葉落)이요 난지상설한(亂枝霜雪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추천모불각(秋天暮不覺)이요 청산백운비(靑山白雲飛)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기는 행자(行者)라도, 아! 뭐 행자라도 이만저만한 거 모도 한 30살 넘어, 인생의 사람의 그 이모지년(二毛之年)이 있는데, 이모, 이미 저물다 그 말이여. 이모지년, 이미 저문 해. 이모지년(二毛之年)이라는 것은 서른 세 살이면 이모지년이여.
서른세 살까장은 인생이 사람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다 커. 자라. 자랄 대로 자라. 다 살가죽도 다 클 대로 다 늘어져 크고, 뼉따구도 다 크고, 골절도 다 차고, 다 커 가지고서는 서른세 살만 먹으면은 인자 이미 저물어져. 다 커져 가지고는 늙어진 쇠운(衰運)이다 그 말이여. 조금씩 조금씩 인자 어디가 백발(白髮)이 나던지 백발이 나는 거여.

그 서른세 살까장, 요새 대학을 졸업허자면은 근 삼십까장 대학원까장 이렇게 허자면은 한 삼십까장 되어야 되거든. 아! 그렇게 해 가지고 세상에 배울 것 다 배우고, 헐 것 다 하고 척 들어왔으니 그 도학자(道學者)인디, 그 도학자한테 시간도 없이 때도 머무를 것도 없이 도(道)를 가르켜야 할 것 아닌가?
대번 그만 들어오기만 옳게 들어와서 행자(行者)로만 된다면은 그만 법복(法服) 같이 입혀서 화두(話頭), 화두 가르켜서 도(道)를 닦게 만들아. 그 즉시의 그만 도학자를 만들아 가지고 그래 인자 행자 노릇을 그대로 그만 선객(禪客), 활구참선(活句參禪) 선객이 되어 가지고서는 행자 노릇을 막 그저 그만 병행(竝行)해 다뤄 간다 그 말이여. 그렇게 지금 해 나가거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혀. 오늘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몸뚱이가 들어왔는데, 언제 행자 노릇 따로 가르켜 가지고 그다음에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을 시켜? 그러헌 것 없어. 여기에는 들어오면 그저 즉시의 시간도 거다가서 붙일 것도 없고, 때도 기대릴 것도 없고, 화두(話頭)부텀 가르켜 가지고서는 그만 그대로 본분학자(本分學者)가 되어 가지고 인자 행자 겸해서 인자 해 나간다 그 말이여.
서른 몇 살씩 모도 먹은 사람이 들어와서 공양주(供養主) 한 철 다 지내고, 또 하나 들어와서 지금 공양주 시방 허는 판이고. 대학 졸업허고 아! 모도 대학원까장 다 나온 사람들이 지금 가서 판사나 검사나 뭐 처음에는 이래 되어 가지고는 아! 그다음에 차츰 인자 장관 되어 가지고 모두 아! 이렇게 해 나갈 사람들인데, 이 문(門)에 들어와서 이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학자가 되었다 말이다.

그러면은 그렇게 훌륭허게 배운 그러헌 사람들을 갖다가서 저 정지에, 부엌에 공양주(供養主) 채공(菜供)을 시킨다? 그것 참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공양주 채공 거기에서 위덕(偉德)이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고, 배울 것 다 배웠지마는, 거기에 들어가서 참 공양을 짓고 반찬을 장만해서 올리고 대중공양 모도 해 올리는 위덕 공덕(功德)이라는 것은 말로 헐 수가 없어.

합천 해인사 그 스님이 뭐냐? 오래되어서.. 백운 스님!
백운 스님이 아! 처음에 들어와서, 세상에서 헐 짓 다 하고 아주 훌륭한, 백낙산 스님 은사 스님이여. 양반으로서 그 지위 굉장해 가지고 사람 하인 다 부리고 허던 그런 분이 나이 사십이 넘어 중이 되어 가지고 들어와서, "첫째, 중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허니까 "첫째, 중이 배우는 것이 음식해 먹을 줄을 알아야 하고, 밥 짓는 법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 반찬 하는 법을 다 알아야 하고, 대중 시봉(侍奉)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냐"고.

그 양반, 다리 딱 동게고 “에헴!” 하던 고러헌 습관성, 없제. 그만 들어와서는, 그 중이 될라고 중의 집안에 아! 들어왔으면은 불가(佛家)에 들어왔으면은 불가에 허는 법식(法式)을 배워야 허는 법이지, 불가(佛家)의 법식도 배우지 않고 양반의 무슨 뭔 식(式), 인간 속습(俗習)을 가지고 와서 양반 노릇 헐라고 내가 왔나?
쏴악 양반 행동허던 짓을, 그 버릇데기 짓을 행여나 나올까 무서워서 쏵쏵 비벼서 종이 비벼서 불에 태워 버리듯기 마음으로써 그만 그 없애 번지고, "그 정공은 그 백운 스님 알지?" (예!) 그 스님 봤을 터이니까.

그래 번지고서는 아주 초생.. 초학자(初學者)로 무이(無二)여. 아무것도 모른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아! 그만 그길로 공양주(供養主)를 했어. 공양주를 허되 아무리 못허게 해도 “내가 그저 좀 해야겄습니다” 두말 할 것 없고. 공양주를 어떻게 했던지 한 철 혀, 두 철 혀, 세 철 혀, 여섯 철을 했다 그 말이여.
여섯 철일 것 같으면은 그 철이 그것이 겨울철이 있고, 하철 여름철이 있는디, 그 한 3년 되아. 3년 공양주를 허되 어떻게 지극한 정성으로써 밥을—쌀을 똑 처음에 가려. 돌 같은 거, 뉘 같은 것만 가려버리고 수택미(水擇米)를.. 밥을 이렇게 일어서 이렇게 이렇게 쌀을 씻거서 일면은 우게 모도 올라오거든, 뉘 같은 것은. 돌 같은 것은 처지고. 그 수택미(水擇米)로 또 가린다 그 말이여.
암만 가렸어도 혹 뉘가 있을 수 있으니 뉘를 떡 가려내고 흔들 흔들 흔들, 그래 해놓고는 쏴악 쌀을 깨끗이—손을 이래 참 몇 번 깨끗이 씻고는 거기다가 손을 넣고, 손을 안 넣으면은 솔괭이를 주먹처럼 깨끗한 솔을 닦아 가지고 그놈을 가지고는 뒤적거려 가지고 이렇게 민다 그 말이여. 그 깨끗헌 솔.

사람의 손에는 그 땀 같은 것이, 그 구녁이 사람 손에 그 땀구녁이 그 말할 수 없거든. 거기서 항상 흘러나오는 것이여. 부정유출(不淨流出)이 늘 있거든. 그런 것 안 넣을라고 솔괭이를 갖다가 이렇게 넣어서 꼭 이래 닦아 가지고는 따르고, 또 씻거 따르고, 뜨물을 한 댓 번 척 빼버린 뒤의 맑은 물을 잘 일어서 맑은 물을 따악 붓고. 그 물 붓는 그 양수가 다 그릇으로 붓는 것도 있고, 바가지로 대중헌 것도 있고.
그놈 딱 붓어서 넘길 때에 벌써 불 때서 넘기면은, 불도 그놈이 싸게 때는 불이 있고, 마치 맞게 때는 불이 있고, 흐지부지 때는 불이 있다 그 말이여. 그것도 그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 넘길 때에는 풀풀풀풀 넘는 것도 있고, 푹푹 넘는... 나중에 그 짐(김)이 푹푹 나오고 물 안 나오면 물이 없는 것이고, 풀풀풀풀 넘으면서도 나오면 물이 있는 거거든. 그 너무 물이 많이 풀풀풀 나올 때는 조금 넘기고, 푹푹 짐이 셀 때는 그대로 딱 두어 가지고는, 딱! 또 솥을 싸.

솥 안 싸고 밥 잘한다는 것은 당최 방목원중(方木圓中)이여. 된 법 없어. 아주 두터운 그 푸대나 뭐 그런 디다가서 그 헌 솜 같은 걸 뭉쳐 넣어 가지고 솥을 딱 우게 덮어서, 맞게 딱! 덮어 가지고 씌워 놓고, 밥 끓여 넘길 때보담도 그 뜸 돌릴 시간이 조금 더, 한 10분 이상 되어야 혀. 밥 끓어서 넘을 동안은 한 30분 될 것 같으면은 밥 풀 동안은 한 40분 이상 되어야 하거든. 그래 꽉 덮어 놨다가 그놈을 열고 솥전을 딱 둘러 가지고서는, 깨끗이 둘러 가지고는 밥을 써억 푸면은 그 구순 맛이 기가 맥혀. 구시한 밥이 기가 맥히제.

내가 이번에 여기 어디 좀 갔다올 때, 여그 밥이 내 죽 같은 밥을 해 먹다가 그걸 여기.. 없으니까 큰절 밥을 좀 가져오라고 해서 그 밥을 좀 먹어보니 참! 잘됐어. 아! 인자 금방 들어온 우리 선행자가, "정선 행자가 했나?" 헌께 그랬닥 해야. 배운 겨를도 없는데, 이 밥이 합격적인디, '참 잘되었다'고 한 그릇을 거지반 다 먹고 갔어. 뱃속이 편안하기를 한량이 없고 목적지까장 잘 갔다 그 말이여.
우선 그런 놈을 먹을 것 같으면 뱃속이 편안해서 도학자(道學者)가 절로 도(道)가 들어와. 뱃속이 편안하니까. 밥이 이놈이 뜸이 안 돌아서 잘못되어 놓으면은, 들어가 놓으면은 그만 창자를 헤벼 파네. 그건 꼭 그러니까.
질어도 못쓰고, 되아도 못쓰고, 그놈이 뜸만 잘 돌 것 같으면 뱃속에 들어가서 한량없이 그 벌써 혈부(血腑)를 모두 도와주고, 양위(養胃) 위를 어질게 맨들고, 기가 맥힌 것이여. 밥 잘허기 참 좋은 것이다 그 말이여. 참, 사람께 이익이 있다 그 말이여.

백운 스님 역시 그렇게 똑 해서, 한 철 두 철 해서 여섯 철을 공양주를 했어. 그저 그러고는 항상 복혜(福慧)니까, 복과 혜가 있어야 도(道)도 닦는 것이여. 복(福)이 없으면 도(道)를 못 닦으니 복은 지으면 오기 마련이여. 잘 지으면 오기 마련이여. 공양주 허는데 가서 제일 복이 많이 오는 것이여.
그다음에는 도량(道場) 청소여. 도량을 깨끗이 허는데 가서 승복수(勝福壽)여. 복수(福壽)가 더 혀. 내 몸뚱이 애끼지 않고 깨끗이 깨끗이 쓸고 훤허니 해 놀 것 같으면은 자신도 청정(淸淨)허고, 내 마음도 그 경계 따라서 깨끗하고, 일체사람이 다 볼 때 깨끗한 마음이 나고, 도량신(道場神)이 강차지(降此地)하고, 좋다고 모도 깨끗이 모도 신장(神將)이 모도 와서 모도 보호를 허는 법이여. 도량 소지(掃地)하는 공덕품을 내가 한번 인제 새겨줄 것이니 들어 보라 그 말이여.

공양주가 일급(一級)이거든. 제일이거든. 그렇게 깨끗이 허고 밥을 그렇게 잘 짓고 그래야사 또 복이 되지. 손도 씻지 않고, 오줌 똥 누고 손도 씻지 않고 그대로 갖다 손 집어넣어서, 그 더러운 손으로 쌀을 주물럭거려서 씻거서 아무때나 해서, 밥이 잘 되었나 안 되었나 뚝 떠 가지고 그만 먹다가 질질질질 흩치고 들리기도 허고, 모두 이렇게 허는 수가.. 맛본다고.
그렇게 해서는 그놈의 죄(罪)는 주체할 수가 없다. 어따가 쟁일 수가 없어. 하도 많이 지은 죄(罪)라. 똑 그렇게 큰 죄를 짓네. 그렇게 큰 복(福)을 짓는디, 더럽게 부정(不淨)허게 헐 것 같으면은 그러헌 또 죄를 짓는다 그 말이여.

백운 스님은 그렇게 여섯 철을 어떻게 깨끗이 해 가지고는 그 마지(摩旨)를 똑 지어서, 그때는 한국은 모도 밥을 지어서 부처님한테 올리니까, 그렇게 마지를 지어서 밥을 지어서 깨끗이 담아서 입으로는 속으로는 늘 작법(作法)을 허고, 그 작법을 헐 줄 모르면은 천수(千手) 같은 걸 외우고, 불 때면서도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그 천수(千手)를 외우면서 그렇게 지어 가지고는 마지를 그 불기(佛器)를 씻고 또 씻고 깨끗이 해 가지고 밥을 담아 가지고는, 어디 밑에다 이렇게 들고 가? (어깨 위로 받들어) 이렇게 들고 가서 부처님께 올리고 이렇게 다 했거든.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없는 거지마는 한국에 와서 그것이 신라 때 신라 말엽에 그게 되아 가지고는 그런 식이 나왔지. 지금은 인도(印度)도 없어. 가져오면 신도가 가져오면 가져온 대로 싼 채 그대로 놓는 것이여. 여기 시방 그대로 놓았다 그 말이여. 똑 놓고.
부처님이 잡숫나? 부처님은 선열위식(禪悅爲食)인데, 확철대오를 해서 도(道) 선열(禪悅)로 위식(爲食)인디 무슨 놈의 인간 음식을 잡숫나? 무슨 잡수고 안 잡숫는 것이 어디 있어? 생사도 없는데. 부처님은 다맛 중생의 정성(精誠)을 관하고 계시는 거여. 가만히 관찰하는 법이지. 그렇게 허라는 것이여.

그래 여기 한국불교 중간 당시에는.. 중간에는 모도 밥을 지어 올렸기 따문에 백운 스님은 그렇게 갖다가 지어 올리고 절을 무수배례(無數拜禮)를 따악 허고는 가지고 내려와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시키고. 남저지 밥이 있는 놈은 또 깨끗헌 바가치든지 그런 디다가 잘 퍼 가지고 조왕단(竈王壇)에다 또 올려놓고서는 조왕님한테 절을 지극히 허고,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허게 해 주십소사. 복과 덕이 있게 해 주십소사"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그 말이여.

세 철 만에 꿈에는 허연 백수 노인이 나오더니 쇳대를 이만한 놈 한 뭉치를 주면서 “이 쇳대를 가지면은 너 일생에 넉넉헐 것인께, 아나 이놈 받아가져라” 쇳대를 주어. 아! 그 쇳대를 받았다.
받고서는, 인자 여섯 철을 했으니 공양주를 더, 여섯 철 아니라 '또 여섯 철을 허라' 하드래도 마음에 무슨 뭐 염심(厭心)이 없고 더 헐 마음이 증대(增大)한디, 헐 수 없어 그만 어떠헌 인연에 못허게 되어서 공양주는 사면(辭免)을 해 번지고 쇳대는 그것을 꿈에 얻어 가지고 몸에 지녔는데, 그때부텀 아! 유명한 스님이 제자를 떡 만드는데 그 제자 한번 되기 어려운 것이여. 제자 되자마자, 그만 법답(法畓)이 생겼네.
아! 법답이 그만 생기면서 그 법답 가지고는 아! 이리저리 그저 허다, 그때는 승려들도 다 헐 수 없어 어디 돈벌이 뭐 뭐—시주(施主) 뭐 그런 것이 있나? 없으니까 그놈 가지고서는 이리저리 늘리기도 허고, 어떻게 해 가지고는 당대에 아마 근 천석(千石) 했구만.

14통! 해인사는, 합천 해인사는 열 너 말통이 한 섬이여. 14통일 것 같으면은 소두(小斗)로는 28말이여. 대두(大斗)로 14통이니까. 그렇게.. 사람이 못 지어. 그러헌 벼를 근 천석을—중 천석이면 얼마여? 권속이 있나? 무엇이 있나? 그러헌 천석꾼 참 부자가 되었으며, 부자도 되었지마는 덕(德)이 장(壯)해. '백운 스님' 허는 덕(德)이 줄줄줄줄줄 흘러. 거그서 그 공양주 해서 그러헌 복덕을 얻어 가지고는 그렇게 되었다 이 말이여.
처음에 들어와서 천지평이 노장 같은 지평(持平) 벼슬을 허고 들어와서도 사미중한테도 “예” 허고, 벼슬을 불거(拂去)해 번지고 그래 가지고서는 그렇게 큰 지위를 다 얻는 것이여.

행자 노릇 잘못하면은 아무것도 아니여. 그거 어디 가도 평생 손그락질 밖에.. '저건 저 뉘 상좌여?' 앉을 줄도 모르지, 설 줄도 모르지, 뭐 반찬 하나 뭐 헐 줄 모르지, 밥 하나 헐 줄 모르지, 거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만히 앉아서 해다 준 밥이나 얻어먹고, 높은 자리 앉아서 “에헴!” 허고, 밑에 사람 아! 저 아주 밑에 저런 사람을 갖다 하대(下待)해서 하천(下賤)하게 보고, 천하에 박덕(薄德)허기는 그만이고, 그것 참 못쓰는 것이여.

대번에 그만 '밥 잘헌다' 하니 위덕이 생기네. '아! 그리여. 그 잘한다'
밤낮 뭐 밥이나 지어서 멕일라고 무슨 헌 건가? 벌써 그 행자 허는 법식을 다 알려서 가르킬라고 그런 것이지. 그래 가지고 행자 노릇 잘해 가지고서는 그러헌 복덕을 얻어 가지고 터억 그 인자 도를 닦아 보지. 그게 도학자여.


주공부(做工夫)허되, 참선을 허되—참선 법문 조금 더 해 주고—최파비량(最怕比量)이다. 장심주박(將心湊泊)이다. 참선을 떡 잡아 하되, 참선 화두를 떡 가지고서는 비량(比量)해서 주박(湊泊)한다.
비량주박(比量湊泊)이 뭣이여? 요리저리 비교해 보고, 저리요리 비교해 보고, '되는 건가, 안 되는 건가? 이것이 이런 건가 저런 것인가?' 비교를 해 가지고는 주박(湊泊)을 해 본다. 어따 비교해 대본다.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측량허듯기 요리 재 보고 저리 재 보고, 고러헌 비량주박(比量湊泊)을 혀?

그만 믿어 가지고 와서, 큰스님을 믿어 가지고 와서 믿었으면은 큰스님이 화두(話頭)를 주거들랑 화두 하나 받았으면 고대로 해 나가는 거여.

"어떤 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板齒)..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응, 그런 어디 이치가 있겠냐 그말이여? 무슨 이치가 그런 이치가 있어? 판때기 이빨에 털이 뭣이여? 뭔 소리여?
원 원 이사(理事)나, 이치나 사상사나 당헌 말이래야지 그거 뭣이여? 그것이. 무슨 도리냔 말이다.

'어째서 조주 스님은 서래의(西來意)를 묻는디, 서래의(西來意)가 생사 없는, 죽고 사는 생사(生死)가 없는 그 이치다. 생사 없는 그 이치만 깨달으면은 성불(成佛)해서 부처가 되어 가지고는 아정락을, 생사 없는 그 낙(樂)을, 죽고 사는 낙을 얻느니라. 증(證)허느니라. 받느니라'
아! 어떻게 이렇게 일러줄 턴디, 그런 것 저런 것 뭐 아정락이니, 생사 없는 낙이니, 해탈락이니 뭐 그런 건 꿈에도 없고,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 뭐여? 그거 도무지 대체. 그 무슨 도리냔 말이다.

그 공안(公案) 참 거 우습지. 아무것도 당최 어디 이치(理致)에도 당치 않고 사(事)에도 맞지 않으니까, 이치 길도 없고 사상(思想) 길도 없어. 사(事)에도 없고, 사상 이치도 없고, 이치 길도 없다 그 말이여.
거다 이치를 붙이고 사상 이치를 뭐 붙일 수 없으니 말 길도 없지. 뭐 말헐 건 뭐 있나 어데? 비량주박(比量湊泊)이 어디 있나? 이리저리 비량(比量)해 주박(湊泊)할 수 있나?

꽉 맥혔다. 맥힌 놈 하나, 조사관(祖師關) 하나, 큰스님이 이렇게 주거들랑 받아 가지고는 그놈 하나 가지고는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시애(廝睚)다. 밤이고 낮이고 이놈 하나,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헐 때, 그놈의 사량 · 중생 사량(思量) · 중생 망담 · 망념, 그 일어나는 망념 어디가 붙어? 계(戒)를 가지느니, 범(犯)하느니, 파(破)하느니, 가지고 범하고 파한 것이 어디 있어? 계상(戒相)도 없지. 그대로 본분계(本分戒), 그대로 본분학자여.

화두 하나만 따악 있다. 알 수 없는 공안(公案) 하나만 내 품속에, 저 밑에 배꼽 단전(丹田)에 가서 따악 거 자리를 잡고 주(住)해졌다. 그놈만 또 생각하고.
또 이놈이 천만겁(千萬劫) 중, 무량겁(無量劫) 중에 밤낮 중생짓, 그 숭악한 망념 망담만 가지고 죄지어 가지고 죄받던 놈의 그놈의 번뇌망식만 퍼 일어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만 가서 떡 하면은 그놈이 당최 아무리 다생겁 아니라 억다생겁(億多生劫)을 익혔.. 모도 그 숙습(宿習)해 나온 망상번뇌라도 거기 와서는 헐 수 없어. 반야 공안(般若公案)에 와서는 내 마음 내가.. 내 화두한테 와서는 헐 수 없어. 척 생각할 때, 돌이킬 때, 모가지 다 떨어져. 없어.

그래서 당장 본분학자한테는 그걸 본분학자, 판치생모를 해 나가는 본분학자한테는 당장 일체업(一切業)이—그 분별사량 망념이 업(業)인데, 업 짓는 업인데, 일체업이 부득(不得)이여. 얻들 못혀. 거가 붙들 못혀. 알 수 없는 공안 하나만 딱! 그 물 달, 수월(水月) 같이, 물에 달 그림자 같이 거가 백혀져 있어. 그놈이 그놈이 매(昧)허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늘 있을 것 같으면은,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다' '의단독로(疑團獨露)헌 지경, 그 지경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다' 그런 거여.

그 타성일편(打成一片) 의단독로(疑團獨露) 지경이 그 잠깐 와서 있을 수도 있고, 백만 년 해도 없을 수가 있고 그려. 단도리허는 데, 잘 거각(擧却)하는 디, 철저히 믿는 디 그 분심(憤心) 가운데에서 잠깐 오는 것이여.
일일(一日), 하루 만에도 될 수 있고, 7일 만에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석 달 만에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의단독로(疑團獨露)가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어디 그것이 무슨 뭐, 몇 억 만년에 되나? 그까짓 거 무슨 뭐 당장 되는 것이지. 언하대오(言下大悟)가 있는 것이고, 언하(言下)에도 되는 것이지. 지재당인(只在當人)의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당인(當人)의 결정심(決定心)에 있는 것이여.

비량(比量)과 주박(湊泊)을 말아라. 그것 공부하는 학자한테 제일 두려운 것이다. 그 못쓴 것이다. 요리 장심주박(將心湊泊), '참말로 견성법이 있나?' 요리 주박(湊泊), 이까짓 허다가 안 되니 '이거 안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그런 것 저런 거, 저런 것 이런 것이 다 똑같여. 여도(與道)로 전원(轉遠)이다. 도 닦는 학자는 이러헌 마음 가지고는 점점 멀어지지. 소용없어.
그래 보다가 그 과학, 요새 현대 학자들은 과학적으로 따져 보기도 허고, 철학적으로—뭐 철학인가 이것이? 비철학이여. 철학도 아니여. 무슨 철학이여?
비종교여. 무슨 종교인가, 또 이것이? 종교도 아니여. 나 하나 딱! 그저 깨닫는 법인데, 참선법(參禪法)이여.

주도미륵하생(做到彌勒下生)이라도, 요렇게 정신을, 요렇게 그 화두를 헌다든지 요러헌 생각으로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공부헌다고 비량주박(比量湊泊)을 했다가는 미륵하생까장 이르러 봐라. 미륵하생 시절이 지금으로부터서 6억7천만 년이다, 그만. 6억7천만 년까장 해 보아라, 무슨 도(道)가 되는가? 도가 될 거여 그게? 소용 하나 없어.

도(道)를 만약에 못 닦으면은, 내가 도(道)를 깨닫지 못하면은,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면은 이것 뭣이여, 이거? 이거 이 몸뚱이 있으면 사람이고, 이 몸뚱이 없으면 귀신인데, 사람인들 그거 무슨 사람인가 그녀러 것이? 사람이면 사람이 사람이지, 사람 노릇 못하는 게 사람이여?
밤낮 살생이나 허고, 도둑질이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고, 추담망담이나 하고, 십악중죄(十惡重罪)나 짓고 있는 것이 그게 사람이여? 사람케니는 짐승.. 짐승은 개 같은 것은 오히려 그런 죄나 안 지어. 사기 협잡도 할 줄 모르고, 주는 밥이나 먹고 똥이나 마음대로 싸고 살지마는, 사람으로써서는 왼갖 몸의 그 흉칙헌 가슴속에 그 모도 도둑질, 그저 살생허고, 넘의 유부녀 간통허고, 그저 모략 중상이나 하고, 협박 공갈이나 치고 죄만 퍼짓는 거, 그 사람인가? 사람으로서 나와서 요따구 짓만 허는 건데? 그 뭐 사람이여?

이 몸뚱이 또 내던져번질 것 같으면은 그 죄짓는 놈의 귀신이 그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가지고는 별놈의 죄를 다 짓네. 혼(魂)으로써서도.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것이. 꿈에 있는 것도 아니지, 그것은.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가지고는 지옥고(地獄苦) 어디 제 자유가 있나? 지옥고 인자 받고 나와서 또 어디 가서 인자 짐승 몸뚱이를 좀 받아 가지고 나와서는 막 때려 호랭이 같은 놈이 되어 가지고 나와선 남의 목숨이나 짤라 집어먹고, 이렇게 도네. 중생이라는.
이 문제, 이 문제가 이게 중생(衆生) 참 인생 문제다 그 말이여. 이따구로 되어 버리는, 도(道)를 못 닦으면 이 지경 되어 버린다 그 말이여. 그 뭐겄냐 그 말이여? 좀 잘 생각해 봐야 혀.

미륵하생까장 이르드래도 주박(湊泊) 참선, 비교 참선, 요리조리 허다 말다 소용없어. 한 자리 정허거들란 그만 우리 부처님처럼 열두 해 만에 나왔다. 달마도 그렇게 다 깨달라 가지고 권행(權行)으로 나왔지마는 왜 소림(少林)에 가 9년을 면벽(面壁) 했나? 일체 도인이 다 그랬지.
삘삘삘삘 요새 뭐 조금 지내면 그만 해제(解制)날이 바빠. 걸망 싸 짊어지고 그 돌아댕긴다. 그 돌아댕긴 그 거래 고통은 어쩌 허며, 어디 들어가서 밥 한 숟갈 빌라면은 어느 절에 들어가면은 눈치 보이고, 한 숟갈 얻어먹고 자고, 또 이리 가고 저리 가고 그 짓이 뭐여? 언제 화두 챙길 겨를이 있나, 하근기(下根機)가? 상근(上根)은 또 뭐 그런 데 안 끄달리나?

관취몰교섭(管取沒交涉)이다. 아무리 해 봐라, 무슨 참선이 되는가? 고렇게 되어 가지고 무슨 참선이 되나? 앉으면 잠이나 자올고, 서면 산란 망상이나 하고, 비량주박(比量湊泊)이나 하고, 허다 좀 말다 뭐 그 무슨 뭐 뭐이여 거... 그 무엇이겄냐 그 말이여? 도 닦는 마음이 고래 가지고 되겄나 말이여? 관취몰교섭(管取沒交涉)이니라. 천하없이 고렇게 해 가지고는 된 법이 없어. 도(道)는 안 되아.

약시의정(若是疑情)해야, 약시의정(若是疑情)이 돈발적한자(頓發的漢子)인대는, 그 공안에 의단(疑團)이 탁! 들어와서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이 독로(獨露)되어 가지고는, 그 떠억 판치생모가 자리가 잡힌다. 자리가 딱 잡혀!
그만 부모 때려죽인 원수 마음 나듯기, 그 부모 때려죽인 원수가 복(腹) 중에 백혀 있으면은 어디 없다 있다 하나? 그놈이 점점점점 더 분심이 증강되지. 화두(話頭) 역시 자꾸 거각(擧却)할수록 자꾸 증대된다.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점점점점 그거 한정이 없어.

돈발적한자(頓發的漢子)인대는 여좌재철벽은산지중(如坐在鐵壁銀山之中)이다. 저 철벽은산(鐵壁銀山)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 쇠벽이 딱! 되아 있는디 거기에 무슨 뭐 뚫을 재간도 없고, 은산(銀山)에 가서 무슨 마음 날 도리가 있나? 꽉 맥혔으니. 은산(銀山) 맥힌 것 같여. 산 꽉 맥힌 것 같어. 알 수 없는 의단(疑團) 하나뿐이다.

지요득개활로(只要得個活路)니라. 거그서 활로(活路)를 요득(要得)헌다. 확철대오(廓徹大悟)가 있는 법이여. 그렇게 되면은 대오(大悟) 없는 법이 없어. 깨닫는 길밖에는 없어. 다른 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데 가서는 툭! 터지는 법이여. 알 수 없는 놈이 아니면은 일체 번뇌 중생 망념이 어디 그놈이 없어지는 법이 없어.
중생 망념이 알 수 없는 데 와 타버리지. 알 수 없는 건 불 같으면은 망념(妄念)은 나무와 같여. 불에 와서 나무 타듯기 다 녹아버리는 거여. 그놈이 아니면 안 되아. 그래 의단(疑團)이 제일 중요헌 거거든.

여하득안온거(如何得安穩去)냐. 만약 이와 같은 활로(活路)가 없으면, 활구참선법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아니면은 어떻게 안온(安穩)을, 확철대오를 얻겠느냐? 확철대오는 얻들 못한다.

변변치 못헌 말인 거 같지마는, 수수께끼도 아닌 거 같지마는,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추어라. 거기서 무슨 비량주박(比量湊泊), '요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아! 내가 대답하면 되겄다' '옳지! 고 고런 것이다' 고따구로 대들면은 틀려, 그것은.
그건 못된 이견(理見) 학자라는 건 못쓰는 거여. 그건 쓰도 못혀. 벌써 그런 짓을 허면. 여지없이 그를, 그거는 축출 그건 말 것도 없는 것이여.

꼭 그 아무리 거기서 무슨 이치가 생겨 나오고 뭣허드래도 그런 것을... 도무지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춰야 하는 법이여.

단임마주거(但恁麽做去), 이렇게 지어. 알 수 없는 의단독로만 지어 시절(時節)이 도래(到來)하면, 그렇게 탁!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서 이러헌 지경만 갖춰 나갈 것 같으면은 자유개도단(自有箇倒斷)하리라. 결정코 깨닫지 못허는 법이 없으리라. 요까장 한 대문(大文)이여. (처음~38분5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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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6/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77)—박산무이선사 선경어(6) (갑인.74.01.19.새벽) (전377)

 

약 32분.


일장피운삼보립(一杖披雲三步立)이요... 허! 원 이렇게 맥혀서 원.
수명석백고인루(水明石白古人樓)라
나무~아미타불~

똑같이 해야지. '아~' 되야? 넘 똑같이 송(頌)을, 창(唱)을 높여야지. 헤! 그거 참, '아~' 그 되아? 그것 참! 원 허는 짓이 모도가... 똑같이 그 하는 거여.

약사화공모차경(若使畵工摸此景)인댄 기어임하조성하(其於林下鳥聲何)오
나무~아미타불~

창(唱)을 맞춰서 해야지. 게송 창을 맞추고 다 그래 대중창을 맞춰서 해야지. 넘은 ‘어~’ 허고 있는디, 나는 ‘아~’ 그러면 쓰는가? 허! 그것. 그런 걸 다 내가 인자 들어온 사람들을 안 알려주면 못쓰니까.
내가 아침마다 한마디씩 해주는 것은, 그 설법을 들어야사 알지. 설법 안 듣고 될 수가 있는가? 퇴타(退墮)가, 그만 들어왔다가 그만 퇴타하는 것이여. 그만 물러가는 것이여.

뭐 뭐 아무것도 없으니 들어와서 배울 것도 없지. 닦아 보니 참선 화두(話頭)라고 해 보니 천하에 도무지 못할 것은 화두여. 오늘 해 보나, 내일 해 보나, 일 년 해 보나, 십 년 해 보나, 깨닫기 전에는 똑같고. 또 깨달은 뒤에는 뭐가.. 뭐 크드란헌 무슨 물건을 봤나? 뭣을, 무엇을 깨달랐나? 하 이것! 세상에 도(道)라니.

아 신선도(神仙道) 같은 것도 공이여, 공(空)! 모두 있는 유상(有相), 모도 제견(諸見), 모든 견(見) 해(解) 그런 것 없는 허공, 공(空)이여. 공을 보고 앉었는 것이 선법(仙法)인디 신선법(神仙法)인디, 우리 불법(佛法)은 공(空)도 아니여. 공이 뭣이여? 그 같은 공(空)이 거 뭣일 것이여?
그 공(空) 밖에 무슨 거 모냥이 있을 건가? 좀 생각해 보면 알 것 아니여? 뭐 뭔 뭔 물건이 있을 건가? 그러니 그것은 도무지 향상도 못허고, 들어와 보니 참 우습지.
맨 중생견(衆生見)으로써 그 모도 보는 거, 듣는 거, 맛보는 거, 그저 육근(六根) 육식(六識)으로써 모도 그 아는 거 그런 것 그 뭐. 악각악식(惡覺惡識), 악하게 알고, 악하게 죄 짓고, 모두 아는 걸로 죄 짓고 그 뿐이지. 그 밖에 어떻게 헐 수가 있나? 들어와 보니. 물러갈 수밖에 없지.

그러니 이 도문(道門)에 들어와서는 첫째, 설법(說法) 듣는 것이다. 설법을 듣는디 신(信)이 아니면 못 들어. 절대 신(信)이래야 들어. 신심(信心)이 아니면은 설법을 듣는 법이 없고, 설법이 귀에 들어오는 법이 없어. 그래서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源功德母)다. 신(信)이란 건 도(道)에 근원(根源)이요, 공덕(功德)에 어머니다. 제일 신근(信根)이여.

척 믿고 들어오는디 옳은 스승이 아니면—인자 신(信)도 여러 가지인디 정법학자(正法學者)가 바로 정법을 믿는 신(信)이 있고, 그다음에는 사견학자(邪見學者)가 사견을 믿는 신(信)이 있는디, 사견(邪見)도 역시 철저허게 안 믿으면은 그것도 못 배워, 사견도. 외도법(外道法)이지마는.
그래서 그 즈그는 사견인 줄 어디 아는가? 사견이 사견인 줄 알면사 정견학자가 되지마는, 사견(邪見)이 정견(正見)인 줄을 알거든. 저 계룡산 같은 디 모도 병이나 낫우고 뭣허는 거 모도 그런 거, 축지법이나 하고 뭐 능견천리지사(能見千里之事)하고, 능히 천리 일이나 모도 알고 보고 요런 행동허는 거, 기합술 같은 거, 모두 마구니술 같은 거, 그러헌 디 빠져 가지고서는 그것도 기가 맥히게 모도 믿어. 그 사견학자.

우리 정법(正法)이라 하는 것은 참 그건 기가 맥히지. 한번 믿어 들어왔으면은 그 정법학자가 물러갈 곳이 있나? 이 신(信) 하나 좋다. 여지없이 믿어 가지고 들어와서 정법을 자꾸 들어야 하지.
정법을 안 들을 것 같으면은 어떻게 닦아 갈 수가 없어. 어디 의지해서 닦아 갈 수가 있나? 신심이 있어야 닦지. 뭣인지 알 수가 있나? 오늘 해 보나, 화두 하나 얻어 가지고는 스승도 없이 믿는 곳도 없이 해 볼라 하니 되어야지.
그걸 갖다가서 방목원중(放木圓中)이라 그려. 모난 냉기[나무]로, 구녁은 모난 구녁이면은 모난 구녁을 뚫고, 둥근 구녁이면은 둥근 냉기를 박고, 딱딱 그렇게 추문낙구(推門落臼)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안된 법이다 그 말이여. 아침마다 법문 한 대문씩을 내가 이렇게 해 주는 것이거든.

그런데 대번에 그만 뭐 그러헌 무슨 뭐 인과설(因果說) 등등 뭐 그런 것 제외해 놓고 바로 참선법(參禪法)이네. 십중대계, 『범망경』 십중대계(十重大戒) 설헐 때 바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설해 버렸거든, 부처님께서. 계(戒)를 설할 때 계가 그대로가 십중대계가 그대로가 그만 심지법문 활구법문(活句法門)이여.
그렇게 막 다루아 버렸는데 막 가르켜 버렸는데, 뭔 계종(戒宗)이 따로 생겨나? 계만, 그놈 계만, 술 안 먹고, 담배 안 먹고, 고기 안 먹고, 무슨 술 안 먹고, 무슨 계집질 여편네 않고, 뭐 전부 그만 계만 닦을 것 같으면은 그거 인천 과보(人天果報) 밖에는 못 받는 것인데.
인천 과보만 받아 가지고 복(福) 다하면 떨어진 놈의 거, 그것이 어디 구경법(究竟法)인가? 그 어디 심지법(心地法)인가? 그게 어디 참선법인가? 허니 그 참선을 막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그대로 그대로 계(戒)여. 그대로 학자계, 본분계(本分戒). 늘 말하는 거, 이거여. 이걸 내가 여의고 헐 것이 어디 있나?

그저 화두 하나, 날마다 화두(話頭) 하나 매(昧)하지 않고 거각(擧却) 잘 해서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추면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요놈 하나만 참 분명허게, 전념(前念)이 없어지기 전에 후념(後念)이 일어나서 판치생모가 또 일어나고, 알 수 없는 놈이 또 일어나서, 뒤를 자꾸 물방울 똑똑똑똑 떨어지듯기, 시계 딸깍딸깍딸깍 가듯기, 요렇게 연속부절(連續不絶)을 혀. 항상 속(續)을, 후념(後念)을 속(續)해. 이어.
그렇게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그 뭐 거가 모양다리도 없고, 해 봤자 해 논 것도 없고, 뭐 나무 쟁이듯기 쟁여 놓은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마는,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 그놈 독로(獨露)해 나가는 데 가서 그 무서운 기가 맥힌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이 생기고 의단이 독로허고, 거기에는 그만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모도 갖추어져 있고, 일체 팔만사천 계행(戒行)이 거기에 그대로 갖추어져 있고. 파(破)하고 범(犯)할 것도 없고, 계상(戒相)도 없이—밤낮 내 이 소리 허지 않어? 의단(疑團)만 갖춰. 알 수 없구나.

천담만설(千談萬說)과 일체백가(一切百家), 별놈의 그 망상번뇌와 그 무슨 이(理)와 사(事)와 별놈의 경계가 거가서는 안 녹아질 수 없고, 안 없어질 수 없고, 그놈은 다 물러가는 것이여. 제대로 물러가 버리는 것이여. 물러갈 것이나 무엇이 있나? 있어야 물러가지.
판치생모 하나만 거각(擧却)해 봐라. 뭐가 있는가? 없는 그곳에 가서 무상(無相)인들 붙어 있나? 그러니 그 그대로가 계행, 근본계행 아닌가? 본분계행(本分戒行) 아닌가? 이렇게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그게 본분학자(本分學者)여.


공부를 짓되 불가재고인공안상복탁(不可在古人公案上卜度)이다. 고인공안상(古人公案上)에 가서 복탁(卜度)하지 말아라. 공안에 가서. 점(占)허지 마라. 점치지 마라. '요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그런 짓 허지 말아라.
그 알 수 없는 뜻만 하나 챙기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조주 스님 뜻, 어째서 조주 스님.. 조사서래의가, 판치생모가 그 뭐 '어째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나?' 말이여.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그 망가해석(妄加解釋)이다. 해석을 더허지 말아라. 내가 헌 놈 또 허는 것이여. 어저께 헌 놈 또 허는 것이여. 해석허지 말어라. 망령되이 해석허지 말아라. 이 공부허는 사람에게 제일 긴요헌 법문이여. 그 해석과.. 도저히 이건 말아라. 점쟁이 점치는 것 같이, '그 무슨 뜻인가?' 그 이상스럽게 모도 그 따지는 거, 분석하는 거.
일일영해득과(一一領解得過)라도, 낱낱이 그렇게 해석을 해서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뭣이다'고 이치를 붙여서 알아 놓드래도, 여자기(與自己)로는 몰교섭(沒交涉)이다. 제 생사(生死)로는 교섭헐 수 없다. 어저께 여까장 헌 걸 내가 도로 헌다 그 말이여.

자, 그다음에 인자 그 공안에 나아가서 무슨.. 자! 어떤 건 제일구(第一句)다, 어떤 건 제이구(第二句)다, 어떤 건 제삼구(第三句)다, 요런 것을 모도 그 학자가 모도 따지는 분별허는 걸 따라서 그런 것을 다 고인(古人)네가 갈라서 말을 해 놓았다 그 말이여.
상신실명(喪身失命)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는고 하니, 어떤 게 상신실명? 상신실명이... ‘제일구(第一句)는 상신실명’이라고 했거든. 제일구는.

그 제일구(第一句) 상신실명(喪身失命)이라는 게 뭔 소리여? 상신(喪身)은 '몸뚱이 죽는다'는 말이고, 실명(失命)은 '명 잃는다'는 말인디. 명 잃는 것 다르고, 몸뚱이 죽는 것 다른가?
그 왜 둘을 말해 놓았어? ‘상신(喪身)이니 실명(失命)이여’ 왜 그래 놨어? 그것 제일구가, ‘그 제일구니 양구(良久) · 방(棒) · 할(喝)이니라’ 해 놨는디. 양구(良久) 아니면 방(棒) 아니면 할(喝)이란 말이여. 아! 이래 놓았는디. 왜 그래 놓았어?

그러면 제이귀(第二句)는 미개구착(未開口錯)이다.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벌써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하는 놈이 하나가 그 붙어 있다든지, 그러헌 소견을 갖다 거다 멈춘다든지, 그거 어떻게 될 것이여? 뭣 될 것이여?
중생 어디 그 애착에 집착한, 무슨 여편네한테 집착했거나, 자식한테 집착해 가지고, 그거 애집(愛執)이나 똑같지 뭐. 미개구착(未開口錯)에 집(執)허나, 자식한테 애착하나, 여편네한테 애착하나, 뭐 뭐 똑같지 뭐 다를 게 뭐 있나?
제이귀(第二句) 미개구착(未開口錯)은 무엇이여? 숭악한 놈의 소리, 제이귀(第二句)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는 게 뭣이여?

제삼구(第三句)는 분기소추(糞箕掃箒)다. 제삼구(第三句)는 빗자루로 똥을 쓴 것이다. 왼통 빗자루에 똥 묻고, 마당 그 똥자루에 똥 처묻고, 그 똥 천지네? 그런 더러운 것 천지다 그 말이여.
요렇게 모도 그 학자들한테, 따지는 분석허는 학자들한테 그 모도 말해 주는 것이지, 본분학자(本分學者)에게야 어디 그런 거 뭐 있나? 뭐 그런 것이 본분학자한테 있어?
막 갖추어서 들어가는 본분학자, 바로 깨달라 버렸으면은 뭐 부처인들 그 앞에 가서 본분학자의 방(棒)을 어떻게 면(免)혀? 부처님이 본분학자 방(棒)을 면할 수 있나? 어떤 것이 본분학자의 방(棒)인가 말이여?

깨닫지 못했으면은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해 나가는 것이 그게 활구학자(活句學者)여. 그 바로 본분학자 되어갈 활구학자여. 확철대오(廓徹大悟)헐 학자다 그 말이여.
이렇게 들어갈 것 같으면은 발심(發心)한 그날부터, 바로 믿고 닦아 나간 그날부터 분심뿐이요, 신심뿐이요, 분심뿐이요, 의단독로뿐이니, 하우하희(何憂何喜)냐? 뭐 즐거울 것이 뭐 있으며, 근심헐 것이 무엇이 있느냐? 늦게 왔다는 한탄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늦게 들어온 걸 한탄하면 뭣하냐?
오늘을 와서 해서 이렇게 신심 학자, 분심 학자, 의단 학자가 되어 버렸으면 그뿐이지, 다시 다시 여기에 더 족할 게 뭐 있어? 뭘 근심허고 무엇을 기꺼허고 헐 것이 있어?

그러헌 무슨 조금이라도 분석선(分析禪), 해석선(解釋禪), '안 된다, 된다' 요렇게 무슨 따짐서 어쩜서 그런 참선은 그건 자기(自己)로 몰교섭(沒交涉)이여. 생사(生死)를 면(免)허는 디는 아무 소용없어.

고인(古人)의 일어일언(一語一言)이, 고인의 한 말씀과 한 말씀이 그것이 무엇이여? 생사 없는 해탈법(解脫法), 생사 없는.. 생사가 없는디 무슨 놈의 해탈인가? 해탈도 없는 법이지. 바로 견성성불법이여.

공부인은, 참으로 참선허는 학자는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여. 가히 문(文)을 찾고 구(句)를 찾지 말아라. 문(文) 찾고 구(句) 찾아? 무슨 책 속을 더듬어? 책참선이여? 뭔 놈의 책참선을 혀? 참선허는 학자가.
교외(敎外)에 별전학(別傳學)인디, 교(敎)밖에 별전학을 따악 화두(話頭) 하나 들고 나가. 화두 하나 그것 하나뿐이다! 다시 아무것도 없다. 판치생모 하나뿐, 천하에 보배다. 내가 나 깨달을 보배, 내가 나 찾는 보배, 이게 해탈 보배요, 생사 없는 보배다. 이놈을 해 나가는구나.

무슨 놈의 책장을 더듬어서 고인(古人)의 뭐 말해 논 걸 봐, 뭣혀? 고인 맘 아무리 해 놨다 한들 고인의 말에 말에 붙어 있나, 생사해탈법이? 내게 갖추어져 있는데.
뭐 뭐 업력(業力)도 죄지은 것도 부처님도 대신 못허고 천하에 대신할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나 깨닫는 법을 부처님이 깨달라 주어? 부처님이 어떻게 깨달라 주어? 제 일 제가 하는 거지. 이렇게 학자가 되어 가지고 그 공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 탁! 깨닫는 것이여. 알다니, 뭘 알아?
탁! 깨달라 놓으면은 묘오(妙悟)인디, 묘오에 가서는 심로(心路)가 없어. 그 심로(心路)라는 건 마음 길—그저 이 생각 저 생각, 저 생각 이 생각 그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퍼 일어나는 중생 번뇌망상, 그놈이 없어. 그러면 아무것도 없으면은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다 없으면은, 아! 저 냉기나 돌이나 무정(無情) 같지, 그 뭐 있나? 아무것도 없겄네? 응, 그런 거 아니여.

확! 깨달라서 중생 심로(心路)는 끊어졌는데 그 경계가 전부가 밥 먹자, 옷 입자, 중생(衆生) 그대로 범부(凡夫) 그대로 그놈 깨달랐지마는, 깨달은 그 각경계(覺境界)에서 중생 경계 그놈이 낱낱이 묘용가풍(妙用家風), 묘용 인자 가풍이여. 그놈이 심로 끊어진, 묘오(妙悟)는 심로(心路) 끊어진 도리여. 없어. 쓰되 없어.
밥 먹자, 안 허는 게 아니여. 밥 먹자, 옷 입자, 가자, 오자, 그놈이 생사 없는 도리 그대로라. 이치가 그만 그대로 되어 버렸는디, 그놈을 또 이치가 그대로 못 되었으면 증(證)해야 되아. 각(覺)을 증(證)해 버릴 것 같으면은 중생의 그 억상분별(憶想分別)이 낱낱이 그만 그대로가 생사 없는 해탈법이여.

그 부처님은 왜 그렇게 깨달라 성불(成佛)해 가지고는 팔만사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막 드리 설(說)했냐 말이여? 중생보담도 백배나 더 설했냐 그 말이여?
부처님은 원증묘각(圓證妙覺) 도리야, 그거. 원증묘각 속에서 그대로 설법해 논 거여. 그대로가 법(法)이여. 그놈 여의고 있는 거 아니여.
중생은 말로는 성불보담도 더 이상하게 했지마는 깨닫들 못했기 따문에, 근본무명(根本無明) 속에서 더군다나 제칠식(第七識) 제육근으로 죄업만 퍼 짓기 따문에 소용없어. 아무리 부처님이 묘해탈(妙解脫) 경계라도 중생은 망식(妄識)이여, 망법(妄法)이여. 개시망법(皆是妄法) 망담(妄談)이여.

이러헌 절대, 학자가 대학자(大學者)가 화두 하나 이외에 공부한다 하면서 꺼떡허면 문(文)이나 찾고, 글 그 고인의 글이나 찾고, 축구(逐句) 뭐 글귀나 좋은 놈 보면 그 글귀 속에서 뭐 찾고. 그게 뭣이여? 고거 무슨 그런 게 뭐 학자냐 그 말이여?
기언기어(記言記語), 뭐 말이나 모도 요리조리 말해 가지고 이치나 붙여 놓고 부단무익(不但無益)이라. 다만 그 아무 이익도 없고 공연히 들어와서 허송만 하고 시은(施恩)만 녹여 버리고, 배암 개구락지 잡아먹듯기 산목숨이나 씹어 먹고 죄만 퍼 짓는 게지, 그 뭐여? 그거 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도학자라고 들어왔자 큰일난다.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뿐이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노?’ 이것 참 기가 맥힌 간택법(揀擇法)이여. 간택이 없는디 진간택(眞揀擇)이여.

여공부(與工夫) 작장애(作障碍), 공부만 장애될 것이 아니여. 공부도 못헌 것뿐만 아니라 반여연려(返如緣慮)하야, 도리어 그만 들어와서 불법이나 비방 반대하고 정법을 도리어 그만—옛날에는 믿기나, 좀 듣고 그래도 아! 불법이나 어쩐가 했다가, 밑 근본까장 모두 박멸해 버려. '에잇! 그놈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욕득심행처멸(欲得心行處滅)인대는, 그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해 버리고 아주 생사 없는 해탈정법을 바로 깨달을라거들란 기가득호(豈可得乎), 깨달을 도리는 기가득호(豈可得乎)아? 요래 가지고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 주의(注意) 주의라. 아! 크게 주의를 헐 것이니라. 박산무이(博山無異) 선사(禪師)의 설(說)이여.

이거 봐, 이렇게 모아 지내다가 여 학자들이 무엇을 못헐 것이여? 똥이 찼으면 똥 쳐다가 밭에 어따 내서 심어서 먹고, 밥헐 사람이 없으면 밥해서 같이 나눠 먹고, 불 땔 사람이 없으면 가서 불 때...
'나는, 나는 헐 것 아니라'고 편안허니, 다른 사람 해준 것만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고 퍼 앉어서 제가 뭣 헌다고 앉아서, 인자 뭐 뭐 아직 나이도 무슨 뭐 60도 안되고 70도 안되었는데, 고러고 앉아서는 오독하니 얻어 퍼먹고만 앉아서 저는 무슨 제 장헌 체허고, 그것 다 소용없다 그 말이여.
확 벗어 놓고서는 막 같이 그저 애써서 같이같이 서로서로 이렇게 해 나가면서 낮으로는 그런 것 저런 것 다하고, 도량도 깨끗이 깨끗이 해 놓고, 밤정진도 좀 되게 해 제끼고.

아! 우리가 이래야 그 용맹정진 학자요, 고행 학자요. 도학자가 고행이지, 뭐 편안하고 투한(偸閒) 생활, 한가한 걸 도둑질.. 도둑질이나, 차라리 도둑질헌 것이 낫지, 무엇이여? 그것이. 그런 것을 밥을 멕여서 갖다 대중 중에다 두어? 아까와 못혀. 팍! 들입대 그만 막 닦아 나가야지. 행(行)해 나가야 하고.

아! 이건 이건 뭐 말세(末世)라고 그만 들어와서 머리 깎고 중이 되아 들어와 가지고는 그만 이놈 깡패들 돌아댕기면서 그만 인자 한 철 겨우 지낸다. 한 서너 달 떡 지내고는 그만 나가서는 돌아댕긴다.
한 철 겨우 지내, 한 철 지낼 동안에 화두(話頭)인가 무엇인가 한 번씩 생각하다가는, 화두가 그저 들렸다 말았다 망상 속에 그저 잠 속에 이럭저럭 지내다가, 해제(解制)만 지내면은 그만 걸망 하나 짊어지고는 돌아댕긴다.

사방 돌아댕기니 돌아댕기면서 산산수수(山山水水)에 다 팔려버리고 조금 그 자리잽힐라 말라 헌 것도 화두 어디 간 곳 온 곳 없고. 돌아댕기면서 모도 보고 듣고 모도 잡경계에 모도 이래 가지고는 돌아댕긴다, 산철에는. 그러다 또 철 살림에 와 앉어서 좀 또 허다가, 이것 되아? 어디 고인이 그랬어? 견성(見性)허드락까장 일어나는 법 없어.
한자리에서 10년 20년, 그저 부처님도 12년, 부처님 같은 어른이 다 그 후래(後來) 중생 모범으로 권행(權行)을 헌 거 아닌가? 달마선사도 구 세(九歲)를 가만히 그러고 앉아서 공부허신 것 좀 보란 말이여.

삥삥, 그만 뭐 모아서 떠억 공부헌다고 한 서너 달 허다가는 삥삥 돌아댕기는 것뿐이여. 그런 놈의 참선. 차라리 견성(見性)을 했으면은 인자 견성해 가지고 보림(保任)을 해 가지고 증(證)해 가지고 나와서 두타행(頭陀行)을 하는 것이여.
일체처에 불리지 않고, 천하경계에 뭐 조인중(稠人中)이라도 광중중(廣衆中)이라도 조금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흩어진 법이 어디 있어? 일체 경계가 그 그대로인디. 그래 가지고 한번 두타행을 허는 것이여.

그 이외에 무엇으로 무슨 돌아댕기면서, 지랄허고 돌아댕기면서 사방 돈이나 뜯어 가지고는 시주것이나 모도 소비하고 그러고 돌아댕겨.
참! 나, 말을 허기도 그렇고, 그러나 저러나 그 안 헐 수도 없는 것이지. 맨 그뿐이니까. 지금 그렇게 말세에 그래 되아.
글안허면 그만 그 깡패 중 돌아댕기면서 그만 즈그들이 작당해 가지고서는 그만, 어디 가서 그만 어떤 주지한테 협박 공갈이나 쳐 가지고는 돈 뜯어 가지고 돌아댕기면서 그저 한잔 마시고, 그저 그 뭐 어디 가 한잔 마시기도 허고, 뭐 지랄도 다하고 이러고 댕긴다 그 말이여. 맨 이뿐이란 말이여. (처음~31분29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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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5/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72)—박산무이선사 선경어(5) (갑인.74.01.14) (전372)

 

약 17분.


양춘탄일곡(陽春彈一曲)이요  송월만창시(松月滿窓時)니라
나무~아미타불~
개창견정수(開窓見庭樹)허고  만엽일추성(萬葉一秋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참선을 허되, 불파사부득활(不怕死不得活)하고, 죽어 가지고 삶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라.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죽어 가지고 살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라.
한번 참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 말이여. 이 중생 지경을 중생 경계를 한번 여읠라면 죽어야, 한번 죽을 고비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런닥 해서 이 몸뚱이가 무슨 죽는 것은 아니지마는 한번 그런 공부를9 넘겨야 할 것이니라.

그저 편안하고 안락하고 무슨 그런 좋은 경계, 그럭저럭 좀 해보다가—넘 허니께 좀 해 보고, 넘 장에 가니께 좀 나도 장에 가 보고, 그러헌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죽어 가지고 살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마라. 한번 그러헌 고비가 있어야 하리라.
그저 오늘 이럭저럭 좀 허다 말다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이 중생 세계에서 이 중생의 애집(愛執) 속에서 그거 뭐 참선 좀 해 본다고 혀? 그거.

지파활부득사(只怕活不得死)니라. 다맛 살아 가지고 죽음을 얻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라. 한번 죽는 지경 있는 것을, 살아 가지고 죽을 지경 한번 당한 것을 그것을 원해라 그 말이여. 그런 고비, 무척 중대한 그 고비 넘기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 말이여.
어디 이럭저럭 해 가지고 되나? 안 되거든. 그 용맹심(勇猛心)도 한량이 없고, 신심(信心)도 한량이 없고, 분심(憤心)도 양이 없으니, 내 한량없는 신심, 갓없는 그 분심을 좀 내서 한번 고비를 넘겨라.

과여의정(果與疑情)으로, 과연 의정(疑情)으로 더불어서—맨 의심(疑心)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의심뿐이여. 의심 없으면 그건 선(禪)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여.
그러면 그 의심은 따지는 데는 의심이 없어. 요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분석허고 아는 것이 있고, 뭐 떼고 붙일 거 있으면 의심이 아니여. 의심 속에는 그런 것이 없어. 따지고 무슨 뭐 분석허고 해석허고 알고 뭐 그런 것이 붙어 있지를 않어. 다맛 알 수 없는 '이뭣고?'뿐이다.

'이뭣고?' 하나, 그놈 하나 가지고 그만 참 그 의단(疑團)을 하나 가지고 더불어서 시결재일처(厮結在一處)허면은, 그놈을 그 다루어서 잡드리해서 일처(一處)에다가 따악 두어. 단전(丹田), 배꼽 밑에 단전, 그 일처에다 딱 두고서는 알 수 없는 의단 뭉테기가 그 뭐 어디 뭐 파(破)해지나? 항상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그 아는 놈은 아닌디 뭐. 그 지(知) 자를 붙여 봤자 소용없는디 뭐. 부지(不知)도 소용없는디 뭐 뭐 거기다 뭘 붙일까 보냐?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다.

동경(動境)은 부대견이자견(不待遣而自遣)이다. 그 그렇게 화두만 일처(一處)에다가 딱 두고 온당하게 이렇게 의단(疑團)을 갖추어 지어 들어갈 것 같으면은, 동경(動境)은 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스스로 간다.
무슨 놈의 동경이, 그 뭘 나를 동(動)하게 만드는 시끄럽게 만드는 외경(外境)이 들어올 것이 없어. 바깥 경계가 들어올 것이 하나도 없어. 아무리 밖에서 별 요동을 다 한들 들어올 것이 없어. 똑 내 다잽이허는 디, 의단 하나 다잽이허는 디 가서 그렇게도 도무지 힘이 있어. 천하 없는 동경(動境)이 나를 그 끄집어... 나를 끄집지 못해. 나를 동(動)허게 못혀.

망심(妄心)이 부대정이자정(不待淨而自淨)이다. 망령된 마음이, 망상심이 없앨라고 안 해도 절로 거기서 없어지는 거여. 화두를 그렇게 해 보란 말이여. 의단만 착 갖추어 나갈 것 같으면, 항상 알 수 없는 놈만 또 거각(擧却)하고, 또 알 수 없는 의단 의정이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또 뒤에 연속해 붙여서 또 일으키고 또 일으키고, 한 번 혀 두 번 혀, 천념만념(千念萬念) 그놈만 자꾸 그저 거각(擧却)해 나간다 말이여.
망심(妄心)이 뭐 어디가 뭐 망념을 없앨라고 하니 공연히 망심이 있지, 뭔 망심이 거그 들어오나? 그 망심(妄心)이 어디 붙어 있을 것이냐 말이여?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이여, 화두라는 것이.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자연허활활지(自然虛豁豁地)해야, 그렇게 될 것 같으면은, 화두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면은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이 내 몸뚱이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문(六根門)이 허(虛) 비어서 활활(豁豁)해서 아무것도 없으니까, 눈으로 보는 놈이 아무리 봐서 무슨 뭐 경계가 있다한들 그 경계에 뭐 뭐 뭣이 있나?
안 보는 건 아니여. 봐서 경계는 뵈인닥한들 거기에 무슨 어사(於事)에 무심(無心)이지. 아무 무엇이 그 붙을 것이 걸릴 것이 없어. 귀에 들린들 귀에 들리는 것이 무엇이 거기에 걸리며, 쎄로 맛본들 맛에 가서 무엇이 걸리며, 육근문두에 걸릴 것 하나도 없이 비어서 활활(豁豁)허다.
점착즉도(點着卽到)허고, 점착(點着)하면 그만 부딪치면 곧 이른다. 그렇게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헐 것 같으면은 그 모도 부딪치는 곳이 곧 이르는 곳이다.

양춘탄일곡(陽春彈一曲)이요. 양춘(陽春)에 거문고를 탄다. 거문고를 탄, 거문고 곡조가 다른 가풍이 아니여. 다른 도리가 아니여. 그 바로가 바로 그 탄일곡(彈一曲) 그 거문고 곡조 “등 등” 나는 그놈이 해탈곡(解脫曲)이요, 그 생사 없는 곡(曲)이요, 그게 그 견성성불 도리란 말이여.
송월만창시(松月滿窓時)다. 솔 달이 올라와서 창에 가득헌 때, 그거 거 다 그 무슨 다른 도리인가? 비타(非他), 비타물(非他物), 다른 도리 아니여. 모도 자개도리(這箇道理)다.

개창견정수(開窓見庭樹)요. 문을 열매 정수(庭樹)를 본다. 문을 척 열면 저 정수(庭樹) 모도, 나무가 모도 있다. 그것도 다른 도리인가? 그게 모도 무비해탈도리(無非解脫道理)요, 무비견성도리(無非見性道理)요, 아! 무슨 뭐 다른 것이 뭐가 있나?
만엽일추성(萬葉一秋聲)이니라. 일만 이파리가 냉기에서 일만 잎사귀가 그 모도 달려서 바람이 불면 드리 뒤흔들거리는 소리가 우쉬쉬 나는 놈이, 아! 그놈이 모도 한 가을 소리, 가을 소리 그 그 도리가 시(是)라. 뭐 다른 도리가 어디 있나?
이렇게 호착즉응(呼着卽應)이요, 부르면 바로 응하고. 하수불활야(何愁不活也)냐, 뭐 살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거 있을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춰 나가 봐라. 의단독로헌 지경, 그 여지없이 철두철미헌 지경, 곧 죽어 가지고 살지 못헐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한번 그 지경을 가 보아라.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 한번 가 봐라. 한 덩어리 꼭 되어 가지고는 의단독로 지경 한번 가 봐라. 한번 깨달을 지경이 없는가 있는가 보란 말이여. 확철대오가 없을까 염려 말라 말이여.

공부를 짓되, 또 공부를 허되 거기화두시(擧起話頭時)에, 화두를 들어 일으킬 때, '이뭣고?' 한다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한다든지, '판치생모'라든지, 그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어 일으킬 때에, 요역력명명(要歷歷明明)해야, 역력(歷歷)하고 명명(明明)헌 것을 요구해라.
깨끗해서 일체 잡념이 흐리헌 잡념이 거기 안개 끼이듯기, 산에 안개가 끼어서 산인지 돌인지 냉기인지 분간 없이 흐리헌 그러헌 경계가 없이 해라. 깨끗이 아주 맑은 가을 하날 안개 한 점 없이 확 벗겨져서 깨끗헌 추천(秋天)같이 그렇게 한번 해라. 그래서 여묘포서상사(如猫捕鼠相似)다. 괴양이란 놈이 쥐 잡듯기 똑 할 것이다.

고소위(古所謂), 고인이 이르되 불참이노(不斬黧奴)면은 서불휴(誓不休)니라. 고인이 이르기를 이노(黧奴)를 베지 못허면은 맹세코 쉬지 않는다.
이노(黧奴)를 베지 못한 것은 항상 화두가 침미(沈迷)해서, 망상 번뇌 속에 있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늘 흐리헌 그렇게 되어 있을 것 같으면은 맹세코 쉬지 말고 화두를 맹렬히 역력명명(歷歷明明)허게 자꾸 잡드리를 해 나가거라. 이게 공부허는 법이다.

안 된다고, 흐리해서 안 된다고, 의심 안 난다고 내던져 버리고 어떻게 헐래? 그렇게 안 되면은 안 된다고 참선 안 해 버리면 어떻게 헐 테냐? 무량 만겁(萬劫)을 백천만겁(百千萬劫)이나 생사죄에 빠져서 생사죄업(生死罪業)만 받을 터이니 어떻게 할라고 그래?
안 헐 것이 따로 있고, 허다 말 것이 따로 있지, 참선을 허다가서 내던져 버리고 말 것이냐? 그런 법 없다. 안 될수록에 허는 법이고, 더 철저허게 신심을 갖추어라. 서불휴(誓不休)니라. 맹세코 쉰 법이 없고 퇴타(退墮)하는 법이 없느니라.

불연즉좌재귀굴리(不然則坐在鬼窟裏)해야, 만약 그렇지 못헐 것 같으면은 귀신 굴속에 들어앉아서 혼혼침침(昏昏沈沈)해서, 공부도 좀 헐까 말까, 그저 허다 말다가, 좀 해볼까 하다, 공연히 참선헌다고 선방에 와 앉아서 귀굴(鬼窟) 속에 앉아서 잠도 아니요, 망상도 아니요, 무슨 번뇌도 아니요, 그럭저럭 앉으면은 자고. 혼혼(昏昏)허니 침침(沈沈)허니 이렇게 있어서 과료일생(過了一生), 일생을 과료(過了)혀? 헛되이 지내버려?

후(後)를 여하(如何)오? 만약 이렇게 지내다가는 뒤에 어떻게 할 테냐? 이후는 어떻게 헐 테여? 이 몸, 이 몸 내버린 뒤에 이까짓 몸뚱이 가지고 있든 거 이것 뭐, 뭐 언제 내 몸뚱이인가 싶어. 내던져 버리고 돌아가는 날, 귀하처(歸何處) 어디 가서 어떻게 처백혀서 그 지은 죄업 업신(業身)을 어떻게 헐 테냐 말이여?

날마다 이렇게 단속을 해 나가기를 부탁하고 법문을 마쳐. 뭐 쪼끔씩 그저... (처음~16분47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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