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26. 10. 11. 10:24

§(144) (게송)문성시증시~ /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 / 『법화경』에 '옷 안에 보배 구슬' 비유 / 소리를 듣는 그때, 눈으로 무엇을 볼 그때 '이뭣고?' 이것이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그 찰나더라.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을 부르다가, 맨 끝에 가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보시라 / 전강선사께서 최상승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용화선원을 창설 / 업장소멸을 해야 소원성취가 된다. 가장 수승한 업장소멸 방법은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〇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〇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〇최상승법을 여러분께 설해 드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많고도 많은 법문(法門)을 설하셨습니다.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나오셔서 설하신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 '이 뭣고?' 이 법 하나를 설하시고 전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끔 이 용화선원을 창설하신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이 주안에다가 자리를 잡으신 목적도, 바로 우리들에게 이 최상승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이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송담스님(No.144)—1981년(신유년) 부처님오신날(81.05.11) (활구참선최상승법)

(1/3) 약 21분.

144-1:3(1981년 부처님오신날:약21분).mp3
9.48MB



(2/3) 약 21분.

144-2:3(1981년 부처님오신날:약21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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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약 20분.

144-3:3(1981년 부처님오신날:약20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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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요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요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불기(佛紀) 2525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80세를 일기(一期)로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열반에 드신 해를 1년으로, 원년(元年)으로 해 가지고 금년이 2525년이니까, 80세에 열반하신 그 해가 불기(佛紀) 1년이니까 2525에다가 79를 보태면 오늘이 부처님 탄생하신 그 햇수가 되는 것입니다.
2525에다가 79를 보태면은 2604년이 됩니다. 2604회 「부처님 오신 날」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 신자는 마땅히 부처님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기(西紀)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을 일 년으로 해서 금년이 1981년이 되지만,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일 년으로 해 가지고 불기(佛紀)를 지금 따지고 있으니까, 부처님 나신 생신으로 따진다면 2604년이라 하는 것을 우리 불자(佛子)들은 잘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불기에 대해서 경전에 따라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세계 불교학자(佛敎學者)들이 여러 가지로 깊이 연구한 결과 2525년으로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2600년 전 인도(印度) 가비라 왕국(迦毘羅王國)에 태자(太子)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가비라 왕국이 어디냐 하면 지금의 네팔(Nepal) 나라인 것입니다. 네팔 나라에 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은 탄생을 하셨습니다.
태자로 태어나셔서 그 태자의 모든 영광과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온갖 고행(苦行)을 다 겪으시고,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를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그 모진 고행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인간 석가(釋迦)로 볼 때에는 당신의 생사(生死) 문제,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왜 늙어서 병들어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서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항시 마음속 깊이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러시다가 마침내 출가(出家)를 하셔서 '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출가를 하셔서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 그 많은 무서운 고통을 견디시면서 도(道)를 닦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석가로 보지 아니하고, 저 구원겁(久遠劫) 이래로 진묵겁(塵墨劫) 전에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중생(衆生)들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 태어나셔 가지고, 일부러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서 대도를 성취한 그 모습을 우리 중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심으로써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고해(生死苦海)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이렇게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역사, 『팔상록(八相錄)』 또는 여러 가지 부처님에 대한 전기(傳記)를 읽어 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진리(眞理)의 몸으로서의 부처님 또는 일단 사바세계에 사람의 몸을 받아서 태어나신 이상은 인간 석가(釋迦)로서 보는 그러한 부처님의 역사,
각도에 따라서는, '부처님은 저 허공에 오색구름 위에 계시고 한 걸음 옮기실 때마다 그 발자죽에서는 연꽃이 피어나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위대하고 신성하고 거룩하신, 우리 중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러한 훌륭하신 부처님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각도를 바꿔서, '인간 석가(釋迦)다. 일단 인간의 세계에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신 부처님은 설사 대도(大道)를 성취한 성현(聖賢)이시지만, 우리가 언제라도 가까이 모실 수 있고 가까이 가서 무엇이라도 여쭈어 볼 수 있고 무슨 괴로움이라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따뜻하고 자애로우신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성현이다'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 그러한 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부처님' 하면 굉장히 우리하고 거리가 멀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의 할아버지시다. 언제라도 가까이 가서 여쭈어보면 무슨 일이라도 자상하게 인자하게 일러주실 수 있는 그러한 어른이다. 사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우리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 것이 훨씬 우리들에게 더 가깝고 고마우신 성현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어려운 진리를 우리에게 가리키고 설명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하고 우리하고는 아주 바탕이 달라서 도저히 전혀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진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부처님은 그 본바탕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다.

옛날에 ‘양반이다’ ‘상놈이다’ 이러한 계급(階級) 의식이 강할 때, 특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 나라는 네 가지 계급이 있어서 인종(人種)의 차별이 대단이 심했습니다마는—바라문 계급이라든지, 또는 왕족 계급이라든지, 또는 일반 농민 서민 계급이나, 또는 노예 계급, 이러한 사(四) 계급이 있어서 노예들은 바라문이나 왕족의 옆을 지내가지를 못하고 옷만 스쳐가도 큰 벌을 받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계급 타파(打破)를 부르짖어서 부처님의 제자를 만들 때는 농민도 출가(出家)를 허락을 하셨고, 백정(白丁)도 출가를 허락을 하셨고, 또는 왕족이나 바라문(婆羅門)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한 것에 구애(拘礙) 없이 허락을 하셨냐 하면, 동쪽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나 서쪽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나 또는 맑은 물이나 흙탕물이나 일단 물이 바다에 흘러들어 오면, 바다는 깨끗하다고 해서 받아들이고 더럽다고 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에 물을 추호도 차별 없이 다 받아들였습니다.
일단 받아들이면 어떠한 종류의 물이라도 바다에 도달하면 짠맛! 짠맛으로 변하고 마는 것처럼, 어떠한 계급의 인종, 어떠한 죄 많은 사람이라도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면 다 부처님의 혈통을, 진리(眞理)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부처님의 진리(眞理),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해서 불제자(佛弟子)가 되었습니다. 불자(佛子)가 된 이상 우리도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죄 많은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부처님과 같은 성현(聖賢)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자격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에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옛날에 어떤 큰 부자,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들을 하나를 낳아 놓고 그 아들이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렸을 때 그 장자 부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에 가장 훌륭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먹고 쓰고도 남을 만한 그러한 훌륭한 보배 구슬을 그 어린애기한테 전해 봤자 소용이 없어서 자기가 가장 믿는,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그 보배 구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그 보배 구슬을 어린아이의 옷 속에다가 넣고 잘 꿰매 놓았습니다. 그리고서 그 자기 친구에게, "이 간난애기 품 안에다가 보배 구슬을 넣고 잘 꿰매 놨으니 이 아이가 크거든 자네가 ‘이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주어 가지고 그 어린아이로 하여금 먹고 입고 사는 데 궁(窮)함이 없이 잘 살도록 일러주기를 바라네" 이렇게 부탁을 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에 간직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이 자기 몸안에 있는 것을 전연 인식하지를 못하고, 부모 없는 자식이 되어서 고향(故鄕)을 떠나 가지고 천하를 얻어먹고 돌아다니면서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자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그 소년이 자기의 친구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친구의 유언(遺言)에 따라서 그 어린 거지 아이의 몸안에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안에 있는 보배 구슬을 꺼내 가지고 그걸 가지고 집도 사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식량도 사고 또 부릴 사람도 사고, 이래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하는 옷 안에 구슬, 「옷 안에 구슬」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습니다.(처음~20분46초)




(2/3)----------------

이 비유는 우리 안에, 우리는 이 지수화풍(地水火風)—흙 또 물 또 불기운, 바람기운, 이 네 가지의 원소(元素)가 모여 가지고 이 육체(肉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네 가지 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는 일단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한 무상(無常)한 존재에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 속에 영원히 쓰고 또 쓰고 쓰고 남에게 주고 그래도 끊임없이 바닥이 날 줄 모르는 그러한 보물이 이 몸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우리 몸안에 그러한 훌륭한 보배가 있다고 한 사실을 우리에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일러주시기 위해서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에 탄생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배 구슬이 우리 안에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

몸을,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해부(解剖)를 해 보아도 그 구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몸뚱이를 빨가뱃겨 놓고 온 몸을 두루두루 다 살펴보고 눈, 코, 입, 귀, 아홉 구멍을 다 뒤져도 그 보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아홉 구멍을 다 두루 살펴봐도 없다면 대관절 어떻게 해서 우리 몸안에 그러한 위대한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보배 구슬!
여러분들은 ‘다이아몬드’라든지 무슨 그러한 오색(五色)이 찬란한 그러한 보석을 보면 굉장이 기뻐하고 부러워하고 갖고자 원하시지만, 그러한 물질로 된 보배는 언젠가는 내 몸으로부터 떠나고야만 마는 것이고, 아무리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도둑을 맞거나 불에 넣으면 타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부서지거나 또 형편이 어려워지면 내 몸으로부터 떠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일생 동안 복(福)이 있어서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칠십 년 팔십 년 이승을 다 살고 갈 때에는 그것은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왜? 죽을 때 관 속에 넣어 가지고 가면 되지 않느냐!
관 속에 그 보배, 보석을 가지고 가 본들 썩어 가는 육체와 함께 묻어 놓은 뿐이지 내가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몸뚱이는 목숨이 끓어지자마자 10분이 되면 벌써 내장부터 버글버글 썩어 들어 갑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몸으로부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영혼은 이미 떠나가고 없기 때문에 시체와 함께 그 보석을 묻어서 같이 묻어 놓아 봤자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물질로 된 보물을 욕심내고 간직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금생 일생 동안 실컷 쓰고 남고 또 이승을 하직(下直)하고 다시 새 몸을 받을 때에도 그 가지고 갈 수 있는 그러한, 불에 넣어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훔쳐갈 수도 없고 도둑맞을 수도 없는 그러한, 그러한 보배를 우리는 찾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화장(火葬)을 해도 타지 않는 것이냐?"
"이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안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가 있으며, 있는 증거를 내 보여라"

지금 이 송담(松潭)이 여러분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송담의 말을 귀를 기울이고 지금 듣고 계십니다.
"그 듣고 있는 놈이 무엇이냐?"
"귀가 듣지 무엇이 듣느냐?"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이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
지금 이 법상에 올라와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저의 모습을 여러분들은 보고 있습니다. 눈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이 있습니다.

그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공부를 하는 목적, 돈을 버는 목적, 정치를 하는 목적, 모든 목적이 보다 더 잘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행복(幸福)하게 살기 위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하고, 예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돈 많이 번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가 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궁극에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불교(佛敎)를 30년, 40년, 평생토록 절에를 다니면서 아들이나 손자나 손녀가 "불교가 무엇이냐?", "뭣 하러 절에 다니느냐?" (녹음 끊김) ...고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說)하신 팔만장경(八萬藏經) 속에서 많은 경전(經典)을 읽고 연구하고 해서 교리적으로 밝은 지식을 쌓으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전혀 교리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그저 소박한 신앙심으로 그저 절에 와서 공양을 올리고 절을 많이 하고 '어쨋튼지 우리 아들 명 길고 잘살게 해 주십시오' '우리 딸 좋은 데로 시집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 신랑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손이 발이 되도록 10년 20년 30년을 한결같이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다니신 분, 참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하고 기특하고 훌륭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거기에서만 근쳐서는 아니되겠다 이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소박(素朴)한 신앙(信仰)도 대단히 좋고, 어떠한 참선을 하신 분도 또한 그러한 소박한 신심도 가지고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종교인다웁고, 또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또 겸허(謙虛)한 자세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시골 할머니와 같은 소박한 신심도 가져야 하고, 그러나 거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참나를 깨닫는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진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요새 과학 문명이 발달이 되어서, 물질문명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젊은 사람들, 지식층에서는 그러한 소박한 신앙을 강요해 봤자 잘 먹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참나를 깨닫는 참선법(參禪法)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이 불법(佛法)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보겠다. 나의 인간성을 개조하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고 우리의 인간의 본성(本性)을 찾는 그러한 수행법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보겠다'
한마디에 탁! 인식을 하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歸依)한 분을 나는 많이 만났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최상승법을 널리 그리고 높이 선양할 때가 바야흐로 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 문명의 첨단을 걷고 있는 서양사람들이 불교에, 이 참선법(參禪法)에 뜨거운 관심을 나날이 가져가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한국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젊은 분들이 이 참선을 들으려고 그러고, 알려고 그러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옛날에는 절에 오신 분이 대부분 오십 · 육십이 넘은 할머니들만이 절에 오시고, 혹 젊은 부인들은 집안 모다 남편이나 시어른 몰래 친정어머니하고 같이 생남불공(生男佛供)하기 위해서 극히 비밀리에 살짝 왔다가, 와서 공(功)만 들이고 가시던 그러한 때가 불과 십여 년 전에까지도 그래 했었던 것을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면 거의 90%가 젊은 분들이고,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는 겨우 1할 정도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자체는 남녀노소가 없지만 이 시국이 이 시대가 불법,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야만 이 시대를 건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0억 인구 속에 이 최상승법을 믿고 적극 실천한 사람이 과연 몇 프로나 될 것인가?' 생각할 때에, 아직도 우리 불자(佛子)들이 더 신심을 내서 이 불법을 선양(宣揚)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입으로만 '불법', '참선' 하고 떠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철저하게 실천을 해서 나날이 새로와지고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우리 자신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일가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이웃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연히 따라오도록 이러한 수행, 이러한 수행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포교(布敎)의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을 하면서 인연(因緣) 있는 사람에게 권고한다면 따라오지 아니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다, 소리를 듣는 그때가 바로 참나로 돌아가야 할 때다.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요,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산을 보던지 나무를 보던지 또는 사람을 보던지 어떠한 색상(色相)을 본 바로 그때가, 그곳이 참나로 돌아가야 한, 돌아가는 그 곳이다 이것입니다.

'참나는 어떻게 찾는냐?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야만 있느냐, 부처님을 모신 절에만 가야만 찾느냐?'
그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든지 또는 들에서든지 또는 직장에서든지 기차나 버스 속에서든지, 어디에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릴 때 그때 '이 무엇고?' 눈으로 무엇을—산을 보고 새를 보고 기차를 보고 사람을 보고 무슨 빛깔, 청황적백(靑黃赤白) 무슨 빛깔을 보던지, 무슨 모냥을 보던지 볼 그 찰나가 바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참나, 자성불(自性佛),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는 그 찰나(刹那)더라 이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 분 일 분,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가고 닦아가고 공부해 간다면,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더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만 출세하신 것이 아니라,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 할 그 찰나(刹那)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라.(20분47초~41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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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 말씀하시기를,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염부제(閻浮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다음 부처님으로, 다음 교주(敎主)로 탄생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한 생각 한 생각,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에도 '이 뭣고?'를 놓치지 아니할 때, '이 뭣고?'를 관조(觀照)할 때, 그때 그때가 바로 미륵불이 하생(下生)한 때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을 듣고서 여러분 가운데에는, '아하! 내가 여태 불교를 믿어도 헛믿었구나.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태어나신 줄 알았는데, 한 생각 한 생각마다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그 부처님을 뵈올 수가 있다니, 당장 이 자리에서 부터서라도 내가 이 최상승법, 이 참선(參禪)을 하리라' 가만히 내가 눈을 감고 살펴보니까, 이를 악물고 그렇게 결심하신 분이 지금 상당히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말씀을 듣고서도, '그 소리가 뭔 소리냐,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전혀 믿지 아니하고, '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야지, 다 그런 거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고집을 부린 분도 개중(個中)에는 또 몇 분이 계신다 이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미타불만 불러야지 다른 것은 나는 안 하겠다' 그러한 철저한 결심이 있는 분은 계속해서 '아미타불'을 불러도 좋습니다. 또 '나는 부처님한테 맹세하기를, 죽을 때까지 관세음보살만을 부르겠다'고 맹세하신 분이 계시다면 좋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죽을 때까지 열심히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은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육백만 번 부른 만큼의 공덕(功德)이 있다고 한 사실을 나는 이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아니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실컷 부르세요. 부르다가, 맨 끝에 가서 떠억 마음을 가다듬고, ‘이 뭣고?~~~’ 이렇게 한 번 해 보시라 그 말이여. 대관절 여태까지 '관세음보살'을 내가 실컷 불렀는데, '이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한 번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시라 이 말씀입니다.

백팔 염주(百八念珠)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 한 번 부를 때마다 염주알을 이렇게 이렇게 굴리시는데, 다 백팔 번을 굴리면 마지막에 가서 제일 큰 염주알이 딸크닥 걸립니다.
그 염주알 걸릴 때, 그때 떡!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이 뭣고?~~~' 해 보시라 그 말이여. 그렇게만 해 보신다면, 백팔 번 염불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 백팔 번 염불하는 그 공덕을 탁! 합쳐 가지고 그 공덕을 야무지게 뭉쳐서 성불할 수 있는 단계로 비약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하시다가 나중에는 '관세음보살'보다도 '이 뭣고?'가 더 하고 싶은 때가 꼭 올 것입니다. 그때는 여지없이 뒤도 돌아보지도 말고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은 고대로 놔 버리고—버리려고 할 것도 없어. 그냥 고대로 놔 버린 채 '이 뭣고?'만 열심히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에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열심히 한 그 공덕이 완전히 푸욱 썩어 가지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가지고 머지않아서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설해 드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많고도 많은 법문(法門)을 설하셨습니다.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나오셔서 설하신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 '이 뭣고?' 이 법 하나를 설(說)하시고 전(傳)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끔 이 용화사를, 용화선원(龍華禪院)을 창설하신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이 주안에다가 자리를 잡으신 목적도 바로 우리들에게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이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계속해서 이 최상승법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인 진리의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십니다. 지금 우리 용화사 법당 이 탁자에 모셔진 부처님입니다.
다른 절 부처님은 전부 손을 이러한 모습으로 하시던지, 또는 이러한 모습으로 하시던지, 이런 모습으로 하든지, 모다 손 모습이 다른데, 용화사 부처님 모습은 딱 이렇게 손이 되어 가지고 있거든! 이 부처님의 모습은 바로 비로자나불,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이다 그 말이여.

말하자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화신불(化身佛)이여.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화신(化身)으로,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나신 부처님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너희들은 이 육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32상(三十二相)을 받아서 태어난 이 육체의 석가모니불을 믿지를 말아라. 진리, 여래(如來), 진리,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너희들 자신 속에 있는 부처님을 믿어라. 그것을 깨달라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진리의 표상(表象)이 바로 우리 절에 모셔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 진리의 부처님, 참나, 아트만, 그 부처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깨닫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이여. 이 법을 믿는다면 여러분들이 돈과 쌀과 떡과 꽃, 온갖 공양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뜩차도록 공양(供養)을 올린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오늘 들으심으로 해서 여러분들은 가장 훌륭한 공양(供養)을 올리신 것이고, 그것을 실천을 하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거기에서 성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많은 절을 합니다마는, 예배(禮拜)라고 하는 것은 공경진성(恭敬眞性)이요 굴복무명(屈伏無明)이다. 참된 성품, 참된 나 자신의 성품(性品)을 공경하는 것이 이것이 부처님께 예배드린 가장 가까운 예배다.
나무나 쇠나 흙으로 빚어서 만든 부처님께 절하는 공덕도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내 몸안에 있는 참부처님을 공경하고 그것을 닦기 위해서 '이뭣고?'를 하는 이 공부야말로 억만 배, 백억만 배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굴복무명(屈伏無明)이다', 무명(無明)을 굴복(屈伏)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다. 예배(禮拜)의 의의는, 바로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하는 이상의 예배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따라서 '이 뭣고?'를 하면서 기도도 하고, '이 뭣고?'를 하면서 공양도 올리고, '이 뭣고?'를 하면서 예배를 올린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소원을 달성을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용화사를 여기에다 창건한 목적이 그것이요, 이렇게 법당(法堂)을 크게 지어 가지고 법회 때마다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바도 바로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은 입을 통해서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법(法)을 설(說)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에서 연중무휴로 전파를 발송을 해 가지고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우리 자신이 다이알만 딱! 맞추면 그 방송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듯이, 끊임없이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 최상승법, 위대한 진리의 법문을 설하시고 계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 비로자나 부처님의 사신(使臣)으로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신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반하신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도 부처님으로부터 77대의 법맥(法脈)을 이으신 도인(道人)이십니다마는, 그 도인만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누구라도 부처님의 진리법(眞理法)을 전해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법을 이어받으려면, '이 뭣고?' '이 뭣고?를 함으로써 그 다이알을 비로자나 부처님과 다이알을 맞추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리해야만 진리법을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구현(具現)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604회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기어코 실천해서 금생(今生)에 이 몸으로 진리를 구현하겠다'고 하는 각오를 튼튼히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아울러서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 사부대중 여러분은 크고 작은 모든 원(願)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축원을 합니다.
최상승법을 들었기 때문에, 듣고 실천을 하려고 각오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원은 보다 더 빨리 성취가 되실 것으로 나는 믿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소원을, 다 소원을 갖지만 성취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 더디 되는 사람, 빨리 되는 사람, 왜 그 차이가 있느냐 하면 과거에 지은 업(業)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업(福業)을 많이 지은 사람,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뜻대로 잘됩니다. 부자도 되고, 높은 벼슬도 되고, 아들딸도 낳고, 오복을 다 겸비하지만, 과거에 복(福) 지은 것은 적고 죄(罪) 지은 것은 많으면, 그 지은 죄의 장애(障礙)로 인해서 우리의 소원은 그렇게 목마르게 바래지만 잘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지은 업(業)의 장애물을 녹여 없애는 방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염불하고 기도하고 경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한 방법보다도 훨씬 수승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언제 어데서라도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쉬운 방법,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를 드립니다.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원컨댄 법계(法界)에 모든 중생들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다.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일시(一時)에 성불(成佛)하여지이다.

앞으로 일주일 뒤, 음력 사월 보름날은 하안거 결제날입니다. 여름 석 달, 여름 음력 4월 15부터 7월 15일까지 석 달은 하안거(夏安居)라 해 가지고 특별 수련 기간입니다.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이 특별 수련에 동참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직접 오셔서 공부를 못 하신 분도 참례를 하시면 좋고, 또 백일기도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또 법회가 있고,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를 하는 법요... (녹음 끊김) (41분10초~61분3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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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불기(佛紀) ; 불가(佛家)에서 쓰는 연기(年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구원겁(久遠劫 오랠 구/멀 원/가장 긴 시간·겁 겁) ; 아득하게 멀고[遠] 오랜[久] 시간[劫].
*진묵겁(塵墨劫 티끌 진/먹 묵/가장 긴 시간·겁 겁)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팔상록(八相錄) ;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 중요한 사항(八相)으로 헤아려 지은 부처님 일대기.
*팔상(八相) ;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 이 8가지 중에서 성도(成道)가 특히 중심이므로,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생애의 모습. 팔상(八相)은 경론(經論)에 따라 여러 설이 있다.

①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兜率天)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모습.
②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 일곱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선언하는 모습.
③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네 성문으로 나가 동•남•서문에서 각각 늙은•병든•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에 나가서는 스님을 보고서 출가의 뜻을 두는 모습.
④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무상(無常)을 깊이 생각하고, 수행을 위해 백마를 타고 시종을 데리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⑤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⑥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6년의 고행후,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에 달하려는 것을 알고,악마가 모든 수단을 다해 석존을 방해하나, 전부 물리치고 악마의 항복을 받는 모습.
⑦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최초로 5명의 비구에게 설법하는 모습.
⑧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사계급(四階級) ; 인도 카스트(caste) 제도의 네 계급. 인도 특유의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사종성(四種姓), 사성(四姓), 종성(種姓), 카스트 제도(caste制度)라고도 한다.
사제(司祭) 계급인 브라만(brahman), 귀족과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평민인 바이샤(vaiśya), 노예인 수드라(sudra) 계급으로 나뉜다. 현재는 2,500종 이상의 카스트(caste)와 부카스트(副caste)로 나뉜다. 카스트에 따른 직업의 세습이나 카스트 간의 통혼 금지 따위의 엄격한 규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옷 속에 보배 구슬을 꿰매다’ ; 『법화경(法華經)』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 나오는 비유.
*의주유(衣珠喩) ; 『법화경(法華經)』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 나오는 비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다’는 비유로 계주유(繫珠喩), 또는 의리계주(衣裏繫珠)의 비유라고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갔다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데, 친구가 급한 볼일이 있어 그의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고 밖으로 나가니,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는 술이 깨자 그 집을 나와 방황하면서 음식을 구하느라 갖은 고생을 하는데, 훗날 우연히 만난 친구는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던 사실을 말한다는 내용. 여기서 가난한 자는 중생을 상징하고, 친구는 부처님을, 보배 구슬은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누구나 이처럼 귀중한 보배[佛性]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하고 있으며, 선종(禪宗)에서 자가보장(自家寶藏)이라는 용어로 널리 활용된다.
*자가보장(自家寶藏) ; '자기집[自家] 보배 창고[寶藏]' 중생이 각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리킴.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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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 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남불공(生男佛供 날 생/아들 남/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아들[男]을 낳기[生] 위하여 올리는 불공(佛供).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〇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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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彌勒) : 대승보살. [산스크리트어(범어)]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音寫)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보처보살(補處菩薩) : 보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줄임말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태어나면 성불하여 부처님의 자리[處]를 메우는[補] 것이 예정된 보살을 일컫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수기(受記)를 받아 미래에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을 이른다. 부처님 생존시에 아일다(阿逸多, Ajita)가 도를 열심히 닦아 도솔천에 왕생하여 이 보살의 위치에 올랐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태어나기 전에 호명(護明)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보살의 위치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도솔천보다 낮은 사천왕천이나 도리천·야마천에는 게으름과 욕정이 남아 있고, 도솔천보다 상위의 천들은 고요한 선정에 들어 있어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音寫).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사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사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佛典)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 · 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청정법신(淸淨法身) ;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예배(禮拜 예절·절·의식 예/절 배) ;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절을 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법맥(法脈 불법佛法 법/혈맥血脈 맥)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을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온,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의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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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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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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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원(願) 발원2026. 10. 2. 13:53

§(196)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 / 개금불사의 목적, 자각(自覺) ・ 각타(覺他)・ 각만(覺滿) / 무주상(無住相)이라야 그 공덕이 영원하고 한량없다. 무심(無心)으로 보시를 하고 불사를 해야 제일가는 거룩한 불사를 성취할 수 있다 / (게송) 아금지차길상수(我今持此吉祥水)~.


〇법당을 짓는 불사나, 불상를 새로 조성하거나 개금불사를 하거나 또는 범종불사를 하거나 또는 선방을 짓거나, 어떠한 불사라도 구경(究竟)의 목적은 오직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스스로 깨닫고, 모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그래 가지고 이 우주 법계에 깨달음으로써 가득차게 하는 자각 ・ 각타 ・ 각만의 대목적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불사하는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소원은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큰 목적을 달성을 할려면 첫째는 무주상(無住相)이라야 한다 그것입니다. 무주상! 상(相)에 머무르지 아니한다. 무심(無心)으로 보시를 하고, 무심으로 불사를 해야 제일가는 거룩한 불사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

**송담스님(No.196)—1983년 부처님 개금불사 점안식(83.03.10) (용196)(원 발원)

 

약 16분.

196(1983년 부처님개금불사 점안식:83.03.10:약16분).mp3
14.04MB



우리 불자(佛子)들은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지혜(智慧)! 오직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요, 부처님의 지혜에 의해서 우리 자신도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나아가서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자비와 지혜로써 고해(苦海)에서 벗어나서 해탈도를 증득하게 하는 그 거룩하고 원대한 목적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개금불사(改金佛事)를 봉행하는 목적도 구경(究竟)에는 지혜와 자비를 증득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와 자비를 증득허겄게 하는 그 목적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개금불사에 동참(同參)하신 설판재자(說辦齋者)와 동참하신 모든 불자와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사부대중, 그리고 우리가 몸담아 있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모든 중생들까지라도 이 개금불사를 봉행하는 이 공덕으로 하루라도 빨리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정법에 귀의해서 대도를 성취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하는 바입니다.


불사(佛事)는 그래서 아무리 작은 불사라도 버려서는 아니될 것이고, 그래서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다. 이 불사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의도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법당을 짓는 불사나, 불상를 새로 조성하거나 개금불사를 하거나 또는 범종불사를 하거나 또는 선방을 짓거나, 어떠한 불사라도 구경(究竟)의 목적은 오직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자각(自覺) ・ 각타(覺他)・ 각만(覺滿)! 스스로 깨닫고, 모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그래 가지고 이 우주 법계에 깨달음으로써 가득차게 하는 자각 ・ 각타 ・ 각만의 대목적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불사하는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소원은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큰 목적을 달성을 할려면 첫째는 무주상(無住相)이라야 한다 그것입니다. 무주상! 상(相)에 머무르지 아니한다. 무심(無心)으로 보시를 하고, 무심으로 불사를 해야 제일가는 거룩한 불사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

어느 절에 가면, 이 불상(佛像)을 하는데 누가 얼마를 시주하고 누가 얼마를 시주하고, 누가 대들보를 시주하고, 누가 기둥을 시주하고, 누가 주춧돌을 시주하고, 누가 이 계단을 시주를 하고, 누가 이 종을 시주했다고 크게 돌에다 새겨서 그 층계마다 이름을 새겨 논 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는 불사를 성취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신심을 내게 하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러한 이름을 새기는 뜻을 잘 이해하고도 남습니다마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러한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일러주는 그러한 방편은 일찌감치 졸업을 해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치원 학생에게는 유치원 학생에게 알아듣게 얘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치원 학생에게는 그렇게 말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에게도 유치원 학생에게 일러주는 말과 같은 말이 적용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法)이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대상에 따라서 설해지는 것입니다.
유(有)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무(無)라 설하게 되고, 무(無)에 집착하는 사람은 유(有)를 설하게 되고, 유(有)와 무(無)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유비무(非有非無)를 설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요, 비유비무에 집착하는 사람은 시유시무(是有是無)를 설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법문이 때로는 유(有)라 설하고, 때로는 무(無)라 설하고, 때로는 비유비무(非有非無)라 설하고, 때로는 시유시무(是有是無)라 설하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을, 법(法)의 진리(眞理)를 확연히 깨달은 사람은 때에 따라서는 유, 때에 따라서는 무, 때에 따라서는 비유비무, 때에 따라서는 시유시무라,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설하게 될 것이요, 어떻게 법(法)을 설한다 하더라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말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유나 무 또는 그 중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그 낭연독존(朗然獨存)한, 말로 설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계합(契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相)을 통해서 상 없는 도리에 눈뜨게 하고, 말을 통해서 말 없는 경지에 계합하게 하는 이것이 불사(佛事)요, 법(法)인 것입니다.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와 팔만사천 법문이 오직 이 한 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주상(無住相)이라야 한다. 무주상이라야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요, 한량없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는 어떠한 큰 불사를 하더라도 그 불사에 많은 시주(施主)를 한 사람이나, 정성으로 조끔 시주를 한 사람이나, 그렇게 시주를 하고 싶어도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나 그 간절(懇切)한 정성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 시주한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를 아니한 것입니다.
자기가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천만 원도 하고, 백만 원도 하고, 십만 원도 하고, 만 원도 하고, 오천 원도 하고, 천 원도 하고, 오백 원도 하고, 그것도 없는 사람은 빈 몸으로 와서 부처님께 간절히 절 한 자리만 하더라도 부처님의 눈으로 보실 때에는 다 똑같이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사를 해도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아무개 보체’ 하고 그렇게 낱낱이 그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축원(祝願)을 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름을 어디다 써서 붙이거나, 이름을 대중 앞에 공개를 하게 되면 이미 한 상(相)이 나타난지라 무주상(無住相)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그 무주상의 뜻을 여러분께 깊이 인식시켜 드리기 위해서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름을 밝히면 그때 당시에, ‘아! 아무개가 그렇게 했구나. 아! 내가 한 것을 모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구나’ 그때 찰나는 조끔 흐뭇하게 느껴질런지 모르지만, 잠깐 지나고 나면 그것으로써 화면이 잠깐 나타났다가 없어지듯이 환상이 잠깐 나타났다 없어지듯이 아무 실다운 것이 남지를 않는 것입니다. 무주상이 얼마나 거룩하고 훌륭한 것을 여러분은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금지차길상수(我今持此吉祥水)하야  관주일체중생정(灌注一切衆生頂)하노라
나무~아미타불~
진로열뇌실소제(塵勞熱惱悉消除)하고  자타소속법왕위(自他紹續法王位)니다
나무~아미타불~

아금지차길상수(我今持此吉祥水), 내 이제 이 길상수(吉祥水), 이 감로수(甘露水)를 가지고,
관주일체중생정(灌注一切衆生頂)이다. 일체중생,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께, 여러분 이마에 전부 뿌려 드렸습니다.

진로열뇌실소제(塵勞熱惱悉消除), 이 물방울, 감로수를 여러분께 뿌려서 여러분의 무량겁으로 지어 온 모든 생사(生死)의 진로(塵勞)와 모든 업(業)과 뜨거운 번뇌(煩惱)와 이런 것들이 눈 녹듯이 다 녹아져 없어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타소속법왕위(自他紹續法王位)이라. 이 불사(佛事)에 동참하신 분이나 설판재자(說辦齋者)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부대중과 이 육도 법계(六途法界)에 있는 모든 중생 한 사람 남김없이 모두가 다 법왕(法王)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되어지이다.(44분10초~59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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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어(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개금불사(改金佛事)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과 그때 행하는 의식.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설판재자(說辦齋者) ; 법회나 불사(佛事)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스님 또는 신도를 말한다. 설(說)은 '법회, 불사' 판(辦)은 '힘들이다, 주관하다'의 뜻.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사바세계(娑婆世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hā-loka-dhātu.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현실세계. 사바(산스크리트어 sahā)란 사하(沙訶) · 사가(娑呵) · 삭하(索訶) 등으로 음사(音寫)하며, 인(忍) · 감인(堪忍) · 능인(能忍) · 인토(忍土) 등으로 한역(漢譯)한다.
이 세계의 중생들은 십악(十惡)에 안주하면서도 여기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온갖 번뇌, 고뇌를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뜻에서 인(忍) · 감인(堪忍) · 능인(能忍) · 인토(忍土) 등이라고 한다. 사바세계의 삼천대천국토(三千大千國土)는 한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영토이다.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귀의(歸依 돌아가다·돌아오다·몸을 의탁하다 귀/의지하다·믿다·따르다 의)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 ;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에 나오는 구절.
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實際理地는(眞如자리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으나,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범종(梵鐘 부처·불경 범/종·쇠북 종) ;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는 의식을 행하고자 할 때 쓰이는 종(鐘)을 말한다. 법구사물(法具四物) -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 - 의 하나.
사물(四物)은 『일용작법(日用作法)』의 식시시사물연기(食時時四物緣記)에 따르면 범종각(梵鐘閣) 또는 범종루(梵鐘樓)에 함께 설치된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치고, 법고는 축생(또는 세간대중世間大衆)을 제도하기 위해서 치며, 운판은 허공계의 중생(또는 무주고혼無住孤魂)을 위해서 치고, 목어는 수중(水中)의 어족(魚族)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단 하나 크나큰 일로서의 인연. ①깨달음과 중생제도의 중대한 부처님의 임무. ②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연. ③부처님이 정도,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인연. 일단대사인연(一段大事因緣) · 일단대사(一段大事) · 일단인연(一段因緣) · 일단사(一段事) · 일대사(一大事)이라고도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자각(自覺) ; ①자신의 형편이나 처지, 본분 따위를 스스로 깨달음. ②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 ③자신의 생각과 언행에 대하여 그것이 진리성과 성실성이 있는지 자신을 반성하는 일. ④[불교] 삼각(三覺)의 하나. 스스로 깨달아 증득(證得)해 알지 못함이 없는 것 또는 중생이 자신의 미망(迷忘)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깨달음을 이른다.
*각타(覺他) ; 부처님의 3각(三覺 : 自覺 · 覺他 · 覺滿) 중의 하나. 자각(自覺)의 상대어. 다른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8권. (담무참曇無讖 역) 「범행품(梵行品)」 第八之四.
云何爲佛 佛者名覺 旣自覺悟 復能覺他

무엇을 불(佛)이라고 하는가. 불(佛)이란 각(覺)이라고 이름한다. 이미 스스로 깨달았으니, 다시 능히 타인을 깨닫게 한다.
*각만(覺滿) ; 깨달음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 곧 자기자신과 중생이 모두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 각행원만(覺行圓滿) 또는 각행궁만(覺行窮滿) 등이라고도 한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20권(末) (遠法師 撰) 『십호의(十號義)』
旣能自覺 復能覺他 覺行窮滿 故名爲佛

이미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고 다시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 깨달음과 행위가 궁극적이고 원만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라 한다.

[참고] 송담스님(No.196)—1983년 부처님 개금불사 점안식(83.03.10)
불사(佛事)는 그래서 아무리 작은 불사라도 버려서는 아니될 것이고, 그래서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다. 이 불사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의도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법당을 짓는 불사나, 불상를 새로 조성하거나 개금불사를 하거나 또는 범종불사를 하거나 또는 선방을 짓거나, 어떠한 불사라도 구경(究竟)의 목적은 오직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자각(自覺) ・ 각타(覺他)・ 각만(覺滿)! 스스로 깨닫고[自覺], 모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覺他], 그래 가지고 이 우주법계에 깨달음으로써 가득차게[覺滿] 하는 자각 ・ 각타 ・ 각만의 대목적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불사(佛事) 하는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소원은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큰 목적을 달성을 할려면 첫째는 무주상(無住相)이라야 한다 그것입니다. 무주상! 상(相)에 머무르지 아니한다. 무심(無心)으로 보시를 하고, 무심으로 불사를 해야 제일가는 거룩한 불사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46분30초~48분47초)

*삼각(三覺) ; 부처님의 깨침[覺]이 갖는 세 가지 양상[三相]으로 자각(自覺) ・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 : 覺滿) 등을 말한다.
[참고]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贊)』 제1권 (末). (窺基 撰)
梵云佛陀 此略云佛 有慧之主 唐言覺者 覺有三義 一 自覺 勝凡夫 凡夫不自覺故 二 覺他 勝二乘 彼不覺他故 三 覺行圓滿 勝諸菩薩 菩薩雖復修於二 覺行未滿故

범어 불타(佛陀)의 줄임말이 불(佛)이니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고, 각자(覺者)라고 한역한다. 각(覺)에는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자각(自覺)으로 범부중생보다 뛰어남을 말하는데 범부중생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각타(覺他)로 이승보다 뛰어남을 일컫는데 이승은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각행원만(覺行圓滿)으로 여러 보살보다 뛰어남을 뜻하는데 보살이 비록 자각과 각타를 행하지만 그것이 원만구족하지 못하기 떼문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보시(布施) : [범어(산스크리트어)] dāna. 음을 따라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 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비유비무(非有非無) ;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이치. 연기법을 나타내는 중도(中道)의 형식 중 하나이다. 비유비공(非有非空)과 같은 맥락이다.
주관의 인식으로 본다면 유(有)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무(無)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서 양자에 모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객관의 존재로 본다면 연기(緣起)상의 유(有)는 유에 머물지 않고 무(無)도 무에 머물지 않아서 상호 의존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비유와 비무라는 부정을 거쳐 고양된 형식의 존재가 된다.
다양한 인연에 의존하여 생멸하는 존재이면서 결정된 본질을 지닌 자성(自性)의 유가 아니므로 비유라 하고, 항상 인연을 통하여 생멸하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비무라 한다. 따라서 이 비유비무는 연기법으로서 묘유묘무(妙有妙無)와 통하고, 공(空)이면서 중도의 지표가 된다.

[참고 ❶] 『조론신소(肇論新疏)』 상권. (원나라 문재文才 스님 述)
經論 成立非有非無之本意者 正以諸法 賴緣而有 非眞實有 故云非有 以諸法緣起故有 非一向無 故云非無

경론에서 비유비무를 세우는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법은 반드시 인연에 의지하여 있기에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비유(非有)라 하고,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있고 일방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므로 비무(非無)라 한다.

[참고 ❷] 『백장어록(百丈語錄)』(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2)
執非有非無 卽屬空見外道 亦云 愚癡外道 祗如今 但莫作佛見涅槃等見 都無一切有無等見 亦無無見 名正見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것에 집착하면 공견(空見) 외도(外道)에 속하며, 어리석은 외도라고도 한다. 지금과 같이 다만 부처라는 견해나 열반 등의 견해를 짓지 않으면, 일체의 유 · 무 등과 같은 견해가 모두 없을 것이며, 또한 견해가 없다는 생각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바른 견해[正見]라고 한다.

*자유자재(自由自在 스스로·저절로 자/말미암을 유/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인 것.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낭연독존(朗然獨存 밝을 랑/그럴 연/홀로 독/있을 존) ; 밝게 홀로 드러나다.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보체(保體 보전할·지킬 보/몸 체) ; 몸[體]을 보호(保護)한다는 뜻. 축원문에 적힌 살아 있는 사람의 성명 밑에 붙이는 축원(祝願)의 뜻이다.
*축원(祝願 빌·기원할 축/원할·바랄 원)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게송) ‘아금지차길상수(我今持此吉祥水)~’ ; 시수게(施水偈 물을 베푸는 게송).
*감로수(甘露水 달다·맛 좋다 감/이슬·진액津液 로/물·액체 수) ; 감로(甘露). 산스크리트어 amṛta. 팔리어 amata.
①신들(諸天)이 상용하는 음료. 이것을 마시면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된다고 한다. 신약(神藥). 불사의 영약. 도리천(忉利天)에 있다는 감미로운 영액(靈液). 장수하고 죽은 이를 환생시킨다고 함. 최고의 자미(滋味)에 비유함.
②맛은 달고, 마시면 죽지 않는다라고 일컬어지던 것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믿으면 끝없는 공덕과 이익을 얻는다는 뜻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디단 이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③불사(不死). 영원의 생(生)을 의미.
④최대의 경지. 깨달음. 열반(nirvana)과 같은 뜻.
⑤정갈하고 감미로운 물.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상).
*법왕(法王) : [범어(산스크리트어)]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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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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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6. 10. 1. 10:28

§(557) 환경 오염 / 신토불이(身土不二). 정보(正報)와 의보(依報) / 자기가 지은 과보(果報) / (게송)전단목주중생상~ / 마음보를 바로잡는 십선계, 참선 / 생활에 즉(卽)해서 '이뭣고?'


〇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은, 우리의 몸도 우리가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받아난 것이여. 우리가 의지하여 살고 있는 세계(世界)와 국토(國土)도 우리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이러한 세계, 국토를 만나게 된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지은 과보(果報)로 이러한 몸도 받아난 것이여.

〇화두(話頭)는 '이 뭣고?'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이 뭣고?' 화두를 탔습니다. '이 뭣고?'
'이 뭣고?' 처음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만, 법문을 자주 듣고, 녹음법문을 자주 들으면서 자꾸 그 법문대로 '이 뭣고?'를 열심히 하면, 차츰차츰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번뇌(煩惱)가 일어나고 망상(妄想)이 일어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이 뭣고?~~~'만 추켜 들어라 그 말이여. 그러면 번뇌 망상은 원래 뿌리가 없는 것이라 제절로 없어지는 거고,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툭! 터져서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으면 오후(悟後)에 공부해 나가는 법을 지도를 받을 것이요,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 아닐 때에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해 가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No.557)—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557)(인과인연비유)

(1) 약 21분.

557-1(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약21분).mp3
18.53MB



(2) 약 20분.

557-2(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약20분).mp3
17.76MB



(1)------------------

이제 여름이 가고 이에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도 늦은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산에는, 들에는 여기저기 오곡백과(五穀百果)가 익고, 들에는 벼가 익어서 누렇게 금파(金波)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일향(一向)으로 자연을 예찬(禮讚)만 하고 있을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아름다운 산에 골짜구니는 등산객들로 인해서 물을 마실 수가 없는 형편이고, 그 공장 폐수다 생활 폐수다 그러한 것이 흘르고 흘르고 흘러서 한강 · 금강 · 영산강 · 낙동강 · 섬진강, 우리나라에 큰 강들이 그냥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강에서 살고 있는 모든 크고 작은 고기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강물이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면 바닷물이 뿌옇게 오염이 되고, 바다 밑에는 그런 독한 물질들이 가라앉어서 바다 밑은 참 무서운 독약으로 쌓이고 쌓여서, 해일이 일어나고 태풍이 불면 그 바다 밑에 가라앉었던 물이 뒤집어지면 그것이 바로 적조 현상(赤潮現象)이라 하는 거여.
바닷물이 벌게져 가지고, 옛날에는 부분적으로 쪼끔 일다가 말았는데 지금은 그 적조 현상이 일어나 가지고 남해로부터 동해로 막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수억 마리의 고기떼들이 다 죽고, 조개들이 다 죽고, 미역 해조류(海藻類)가 다 썩어 문드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재지변(天災地變)도 아닙니다. 인간들이 어리석어 가지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몰지각(沒知覺)한 인간들의 행위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유유히 흐르는 강이, 그 넓고 넓어서 맑은 물이 물결치던 저 바다가 오염(汚染)이 된 것입니다. 자연이, 산과 강과 바다가 오염이 되면 결국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미역이다, 다시마다, 김, 그리고 많은 생선들 안 먹어버리면 그만이다' 하겠지만, 어민들은 그것에 생계를 유지하고, 모든 국민들은 해산물을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김이나 미역이나 고기들이 병들고 변질되고 그 많은 해변가에 조개들이 모다 썩어 문드러지는데, 아직 안 죽었다 하더라도 독(毒)한 물질로 전부가 병(病)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게 되면은 신경통이 생기고, 암이 생기고, 심장병이 생기고, 골수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공기는 오염이 되어서 밤이면 별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가을 하늘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것인데, 지금은 하늘이 파랗지를 않습니다. 언제나 시커먼 구름이 끼어 있어서... 이것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煤煙),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 먼지와 매연에 의해서 하늘이, 푸른 하늘이 없어진 것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도 먹지 못하고, 또 들에는 독한 농약을 함부로 써서, 유기 비료(有機肥料)를 쓰지 아니하고 화학 비료만을 냅대 쓰고 농약을 처대가지고 곡식도 마음놓고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으니 그나마도 그걸 먹게 되니, 옛날에 그렇게 별로 구경하기조차 어렵던 각종 암(癌) 병이 여기서 저기서 우리의 가족들이 친지들이 암으로 모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을 거리에 나가면 여기저기 모다 쓰여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어라. 외국산 먹지 말고 국산을 먹어라' 그러한 말로 널리 해석되어지고 있습니다.
신(身), 몸뚱이와 땅[土]은 둘이 아니여[不二]. 그러니 둘이 아니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을 먹어야 한다. 그 말이 대단히 좋은 말이나, 앞으로 외국 쌀이 값싸게 들어오고 맛이 좋으면, 농약에 쩔은 국산 쌀, 그리고 비싸고 한 국산 쌀 안 먹을 것입니다. 너도나도 외국 쌀을 사먹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값도 싸고 크고 안전하고 멋있으면 다투어서 외국차를 사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애국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것이 좋지 못하고 비싸기만 하면 누가 우리나라 것을 애용하겠습니까?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아무 설득력이 없을 것입니다. 외제보다 값이 싸고 튼튼하고 멋있고 또 맛도 좋고 몸에 좋아야만 국산품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이 나왔으니, 그 본뜻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정(有情), 우리 모든 중생들이 과보(果報)에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중생에 몸과 마음은 이것을 정보(正報)라 해. 정(正), 바른 과보(果報)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 밖에 세계(世界)와 국토(國土), 산과 강,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입고 있는 옷,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구들은 이것을 '의지할 의(依)' 자, 의보(依報)라 하는 것입니다.

정보(正報)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의탁(依託)하는 환경, 이것이 '의지할 의(依)'자, 의보(依報)인데, 정보(正報)와 의보(依報), 다시 말해서 신토, 신토(身土)—신(身)은 정보(正報)고, 토(土)는 의보(依報)다 그 말이여. 이 정보(正報)와 의보(依報), 2가지는 이것은 2가지가 아니여, 바로 하나다 그 말이거든.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은, 우리의 몸도 우리가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받아난 것이여. 우리가 의지하여 살고 있는 세계(世界)와 국토(國土)도 우리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이러한 세계, 국토를 만나게 된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심식, 심식(心識)을 통해서 지은 과보(果報)로 이러한 몸도 받아난 것이여.

인간(人間)이라 하면, 저 위에 대통령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 인간이여. 그렇지만 지혜, 머리, 지혜도 영리한 사람과 둔한 사람이 있고, 우리의 상호(相好)도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백체(四肢百體)가 아주 멋있게 잘생긴 사람도 있는가 하면은 아주 뵈기 싫고 흉하게 생긴 사람도 있어. 또 복록(福祿)이, 진진(津津)한 복(福)이 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은 아주 박복(薄福)한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이것이 다 자기가 무량겁으로부터 자기가 지은 업(業)으로 인(因)해서 각각 그렇게 다르게 태어난 것이여.(36분15초)

미국이나, 서양이나, 한국이나, 다 지구(地球)지마는, 각 나라마다 산과 강과 바다와 들, 다 다르다 그 말이여. 자기가 지은, 과거에 지은 과보(果報)에 의해서 좋은 곳에 태어나기도 하고, 저 아프리카 저런 대단히 살기 힘든, 사람으로서는 살기 어려운 그러한 곳도 있다 그 말이여. 한 나라 안에서도 또 다르다 그 말이여.
이것도 자기가 지은 과보(果報)에 따라서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에 태어나고, 물도 흔하고 토실도 비옥하고 바다도 맑아서 산에서 좋은 물이 흘러내리고, 들에는 오곡이 잘 익고, 바다에는 좋은 해산물이 많이 나와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그러한 곳을 만나게 된 것은 자기가 과거에 그만큼 잘 지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 태어나는 것이여.

다행히 우리 대한민국은 비록 나라는 조그마하지마는, 산 좋고 들 좋고 물 좋은 그러한 옛날부터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이름할 만큼 대단히 좋은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좋은 나라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그만큼 잘 지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나라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좋은 나라, 좋은 국토에 태어나 가지고 그러한 아름다운 산, 산에 놀러가면 쓰레기를 버리고 마구잽이 함부로 해 가지고 오염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강물을 마구잽이 공장 폐수, 생활 폐수, 쓰레기를 마구 버려 가지고 그 강물이 우리가 마실 수 없는 그러한 독한 고약한 강물로 우리 인간이 만들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이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의 발이 지나가기만 하면 산이고 강이고 바다고 온통 오염이 되고 난장판이 되냐 이거여.

우리의 조상들은 수천 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산과 강과 바다가, 공기가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자연(自然)이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단군(檀君) 이래로 오천년을 내려오면서 우리의 많은 조상들이 이 강산(江山)에서 살다 가셨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운 산, 맑은 물, 맑은 바다를 고대로 우리에 전해 주신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되어서 우리는 옛날을 '미개(未開)한 시대(時代)'라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아주 발달한 '문명(文明)의 시대(時代)'라 해 가지고 뽐내지만, 우리는 어리석기가 곰보다도 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인간들은 잘살기 위해 사업을 하고 나라를 부국(富國)을 만들기 위해서 갖은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이 파손이 되고, 강물이 오염이 되고, 바다가 온통 고기도 살 수가 없고, 미역도 자랄 수가 없고, 김도 자랄 수가 없는 그러한 황폐한 곳이 되고 만 것입니다.
돈은 좀 벌고 외화 획득을 해서는 차도 좋은 차도 타고 살기에 퍽 편리하게는 되었지만, 우리는 병들어 가고 있고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지옥(地獄)보다도 더 고약한 곳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地獄), 지옥은 차라리 하룻낮 하룻밤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살리고 하는 그런 무서운 고문과 고통을 받는 곳이지만, 자기가 살생(殺生)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사음을 하고,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옥에 갔어. 자기가 지은 과보로 지옥에 갔다 그 말이여. 그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그 고통을 받으면서 뼈에 사무치는 정말 참회(懺悔)를 할 것입니다. 저절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지내다가 언젠가는 그 지옥에서 벗어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 것이 우리 중생들인 것입니다.(23분24초~43분35초)





(2)------------------

미리 조끔만 지혜가 있으면, 미리 참회(懺悔)를 하고 그랬으면 지옥에도 안 가게 될 것이고, 조끔만 우리가 앞을 내다보고 지혜(智慧)를 썼으면 산이 저렇게 망가지고, 강이 저렇게 더러워지고, 바다가 저렇게 더러워지지는 안 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우리는 지옥보다도 더 고약한 못된 강토(江土)를 만들어서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그것을 남겨주고 가게 되었습니다.
좋은 공기도 못 마시고, 좋은 물도 마시지 못하고, 맛있는 김도 미역도 해물도 못 먹고 살아야 하는,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후손들은 소아마비와 심장병과 기형아가 많이 태어나게 될 것이고, 차라리 안 태어난 것만도 못한 그런 애들이 점점 많이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기와 물과 온갖 식품과 약품 이런 물질적인 오염의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은 삐뚤어지고 꼬이고 전도(顚倒)된 인간의 마음보, 그것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오장육부와 체내에 흐르고 있는 피가 오염이 된데다, 마음보까지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썩어 문드러진 그러한 인간들 사이에 태어난 우리의 후세가 어찌 온전하게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속담에, 「종기(腫氣)가 크면 고름이 많이 나고, 이다불대(泥多佛大)라, 진흙 덩어리가 많으면 불상(佛像)이 크게 조성이 된다」 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말인데 이 속에는 진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쬐끄맣게 뽀드락지가 난 것은 그 짜봤자 고름이 조끔 밖에 안 날 거고, 종기가 이만이나 하니 등창이 났다든지 허벅지에 났다면 그놈을 짜면 고름이 많이 쏟아지게 될 것이여.
불상(佛像)을 진흙으로 조성하는 데 진흙을 많이 갖다가 그놈을 잘 이겨서 그걸 그 많은 진흙으로 불상을 조성하면 큰 부처님이 조성이 될 것이여. 진흙을 조끔 갖다가 빚어서 불상을 맨들면 쬐끄만 불상 밖에는 못 만들 것이다 그 말이여.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허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라
나무~아미타불~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나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전단 향나무로 중생의 모냥을 조각을 하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다, 부처님 상호와 보살 상호를 또 조각을 한다 그 말이여.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여. 중생의 모습도 갖가지로 조성을 하고, 부처님 모습도 각각으로 조성을 하고, 보살(菩薩)의 모습도 각각으로 조성을 하고, 소나 돼지나 말의 모습도 갖가지로 조각을 했다 그 말이여.
그 모냥이 다 각각 다르지마는,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이여. 내음을 맡어 보면, 부처님 상을 조상한 것도 맡어 보면 전단향(栴檀香) 냄새가 나고,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상(像)을 조각한 것도 맡어 보면 전단향(栴檀香) 냄새가 나고, 중생의 갖은 모습을 조각을 한 것도 맡어 보면 전단향 향내 냄새는 마찬가지다.
왜 그러냐 하면 그 근본이 전단향으로 조성을 했기 때문에 비록 모냥은 달라도 향내는 일반(一般)이다 이거거든.

좋은 공기, 좋은 물, 좋은 음식을 먹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합해서 그 사이에서 애기를 나면 아름답고 착하고 멋진 아기를 낳게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 말이여.
건강(健康)한 육체와 건전(健全)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정치를 해도 바른 정치를 할 것이고, 경제를 해도, 사업을 해도 올바른 사업을 할 것이고, 교육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더라도 올바른 교육자가 되고, 올바른 농사꾼이 되고, 올바른 장사가 되고, 올바른 판검사가 될 것이다 그 말이여.(51분56초)

삐뚤어진 정신을 가진 사람이 공장 하는데, 공장을 하는 데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깊이 100m 이상 깊이 뽐뿌를 박아 가지고, 빠이프(pipe)를 박아 가지고 거기서 물을 뽑아서 쓰는데 몇천만 톤 뽑아 쓰면은 물도 한계가 있어서 안 나오거든.
그러면 공장에서 쓰고 남은 독한 약품이 섞여 있는 공장 폐수를 그 100m 이상 깊은—물이 인자 떨어져서 안 나오는—그 물구녁에다가 공장 폐수를 거기다 집어넣는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 100m 이상 깊은 우물 속으로 공장 폐수를 집어넣으면, 지하의 수맥(水脈)이 있는데 그 수맥으로 그 공장 폐수가 나가면 근처나 멀고 가까운 데에 우물을 파면 그 공장 폐수로 인해서 오염이 된 물이 솟아나옵니다. 저 100m, 1000m 밖에 흘러나오는 물이 바로 공장 폐수가 나오는 그 물을 사람이 먹으면 뭣이 되겠느냐.

자기도 잘살아야 하지만, 자기가 잘살려고 남에게 해를 끼쳐선 안 되는 거여. 자연을 오염을 시키고 자연을 파손을 해선 안 된다 그 말이여.
자기가 좀 돈 좀 벌려고 사업을 한답시고 자연을 파손하고 지하수를 갖다가 오염을 시켜 놓으면, 그러한 마음씨를 가지고 큰 부자 되겄습니까? 그러한 삐뚤어진 마음씨, 불량한 마음씨를 가지고 어떻게 큰 복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 이거여. 그러한 마음으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봤자, 부모를 죽이는 폐륜아 밖에는 그 속에서 태어나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요새 '환경을 보호하자!' 이러한 말이 자꾸 드높여지고 있습니다. 법(法)을 엄하게 제정을 해서 감시를 철저히 하고 벌칙을 강화를 하는 것,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민간 환경을 정화하는 그런 운동이 전국적으로, 조직적으로 확대 전개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선행(先行)되어야 할 중요한 것은,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안 걸리고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보를 고치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의 몸은 '정보(正報)'고, 우리가 몸담아 있는 세계 국토와 가옥과 의복과 음식 기구 이런 것은 '의지할 의(依)' 자, '의보(依報)'라 했습니다마는, 그 정보(正報) 가운데에 진짜 이 '마음보'라 하는 거, 이것이 정보(正報) 의보(依報)를 진짜 바로잡는 것이 우리 마음보입니다.
'마음보' 하나를 바로잡으면 몸도, 이 세계도 영원토록 우리가 살 수 있는 좋은 극락국토(極樂國土)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보 고치는 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보를 고치는데 아까 받은 십선계(十善戒)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말이여.
십선계를 잘 지키면서, 막연하게 십선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건 사실상 이 어려운 일이여.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이냐? 이 뭣고?'

5년, 10년 내지 30년을 '이 뭣고?'를 해도 여전히 마음보를 고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참선(參禪)을 제대로 한 사람이 아니여.
자녀를 기르는 데 맛있는 음식과 고기를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면 그것이 자식을 잘 기른 것이 아니고, 목동이 소나 말이나 돼지를 길르는데 사료만 배가 터지도록 잔뜩 맥인다고 해서 좋은 목동이 아니여. 책상에 밤낮 붙어 있는다고 해서 그 학생이 공부 잘한 것이 아니여.

참선(參禪)도 마찬가지여. 제대로 참선을 하면은 첫째, 우리 마음보가 바로잡아지거든.
마음보가 바로잡어지고 안 잡아지고 한 것은 무엇으로 아느냐 하면은 몸으로 하는 행동을 보고, 입을 통해서 하는 말을 들어보고, 마음씨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마음보가 고쳐졌느냐 안 고쳐졌느냐, 알 수가 있는 거여.
밤낮 참선한다고 해도 썽을 잘 내고 탐욕심이 아주 시커먼 탐욕심을 내고, 심술(心術)궂고 그리고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사음을 하고 거짓말한다면, 그거 어떻게 그 사람이 바로 참선을 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이거여.

말과 행동과 마음 씀, 그것에 즉(卽)해서 '이 뭣고?'를 해야 돼.
'이 뭣고?'를 앉어서나 서서나 걸어가면서나, 일할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이 뭣고?'를 하 자연히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반영이 되고, 생활 속에서 '이뭣고?'가, 생활에 즉(卽)해서 '이 뭣고?'를 자꾸 챙기게 해서 참선과 생활이 둘이 아니여. 바로 '신토불이'가 거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거거든.

'외국산 먹지 말고 한국산 먹자'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뜻이 어찌 그렇게 값없이 해석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몸과 이 세계가 둘이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니 마음보를 고침으로 해서 몸도 건강하고 우리의 주변 환경도 아름다워지고 좋아져서, 그렇게 해서 이 세계를 극락정토로 만들자 이거거든.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의 참뜻이다 이거거든.


오늘 이 법회(法會)에 참석하고 십선대계(十善大戒)를 받고 화두(話頭)를 탄, 그리고 불명(佛名)을 탄 이 공덕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우리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세세생생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화두(話頭)는 '이 뭣고?'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이 뭣고?' 화두를 탔습니다. '이 뭣고?'
'이 뭣고?' 처음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만, 법문을 자주 듣고, 녹음법문을 자주 들으면서 자꾸 그 법문대로 '이 뭣고?'를 열심히 하면, 차츰차츰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번뇌(煩惱)가 일어나고 망상(妄想)이 일어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이 뭣고?~~~'만 추켜 들어라 그 말이여. 그러면 번뇌 망상은 원래 뿌리가 없는 것이라 제절로 없어지는 거고,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툭! 터져서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으면 오후(悟後)에 공부해 나가는 법을 지도를 받을 것이요,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 아닐 때에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해 가야 할 것입니다.(43분36초~62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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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금/수놓을 수/강 강/뫼 산) ; 비단(緋緞)에 수(繡)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향(一向 하나의·한결같은 일/향할 향) ; 언제나 한결같이.
*몰지각하다(沒知覺-- 빠지다·어둡다 몰/알 지/깨닫다·깨우치다 각) ; (사람이나 그 행동이) 깨달아 인식하거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유정(有情) ; [산스크리트어] sattva.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생(生)이 있는 것.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것. 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옛날에는 중생(衆生)이라 번역하고, 현장(玄裝)이후의 새로운 해석에서는 유정(有情)이라 한역함. 정(情)은 마음이라는 뜻. 일체 살아 있는 것의 총칭.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 · 구 · 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 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심식(心識) ; 심과 식. ①식신(識神). 영혼. ②식(識). ③차별에 대한 인식. 분별의식(分別意識).
*복록(福祿 복 복/복 록)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의 녹봉(祿俸 예전에, 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에 대한 보수로 주던 곡식이나 베, 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에서,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진진하다(津津-- 나루터·진액·넘치다·윤택하다 진) ; ①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다. ②물건 따위가 풍성하게 많다. ③재미 따위가 매우 있다.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즉 단국(檀國)을 세워 약 2천 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지옥은 차라리 하룻낮 하룻밤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살리고 하는 그런 무서운 고문과 고통을 받는 곳’ ; 만사만생(萬死萬生).
*만사만생(萬死萬生) ;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하루 밤과 낮에 만번 죽고 만번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고 또 고통으로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기를... 하루 밤낮에 만번이나 겪는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표현한 말.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 성냄 ·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2)

*전도(顚倒 정수리·머리·근본·미혹하다·넘어지다·뒤집히다 전/넘어지다·거꾸로 되다·거꾸로 도) ; ①바른 견해 · 본연의 상태의 반대인 것. 우리들의 미혹하여 있는 견해. 진리에 어긋나는 것. 거꾸로 된 생각. 그릇된 생각. ②사전도(四顚倒). 일체 세간의 무상(無常), 고(苦), 부정(不淨), 무아(無我)인 진리와 배반(背反)한 견해를 취하는 것. ③넘어지는 것. 뒤집히는 것.
*(게송)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删補集)』 (中 < 佛像點眼作法 < 禮八金剛四菩薩) (해동사문海東沙門 지환智還 집集)
*상호(相好) ; ①얼굴의 생긴 모양. ②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일반(一般) ; ①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것. ②서로 다를 바가 없는 마찬가지의 상태.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이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0)계(340:1987년 10월 첫째일요법회:2분3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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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2분3초)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〇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43)즉해서(434:91년2월:9분10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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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9분10초)
〇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 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19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조실(祖室 할아버지·조상·개조 조/집·방·거처·몸 실) ; ①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②조사(祖師)가 머무는 방. 또는 선문(禪門)의 사원에서 가장 어른이신 스님이나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말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번뇌 망상 다스리는 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버려 두고, 즉각 자기 본참공안을 들고 나간다.

[참고] 송담스님(No.531)—1994년 5월 첫째일요법회.
처음에는 암만 망상을 안 할려고 해도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무리 화두를 간단없이 들려고 해도 1분도 안 가서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 끊어지고, 그러지만 끊어지면 또 들고, 끊어지면 또 들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버려 둬 버려. 내버려 두는 것이 망상을 다스리는 법이여.
지나간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그냥 일어난 그 찰나에 그냥 고대로 놔두어 버리고 자기 본참공안을 터억 거각을 해 나가. 「이뭣고?」(18분26초~19분18초)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52분33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선지식(善知識) ; [산스크리트어] kalyāņa-mitra. [팔리어] kalyāņa-mitta.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가라밀(迦羅蜜) • 가리야낭밀달라(迦里也曩蜜怛羅)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지식(知識) • 선우(善友) • 친우(親友) • 선친우(善親友) • 승우(勝友) • 시우(時友)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반대로 악도(惡道)로써 이끄는 사람을 악지식(惡知識)이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으면 오후(悟後)에 공부해 나가는 법을 지도를 받을 것이요’ ; 오후보림(悟後保任).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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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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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