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참공안'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7.06.08 §(627)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수 있다 / 황룡탕 / 여법하게 열심히 도 닦으면 정법시대.
  2. 2016.04.02 §(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3. 2016.01.27 §(523) 십법계(十法界) / 심능천당(心能天堂) 심능지옥(心能地獄) /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 한 생각 단속 / 정념(正念) / (게송)탐착몽중일립미~.
  4. 2016.01.15 §(422)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대혜종고 선사 법문 ‘선(禪)이라 하는 것은~’ / 도(道)가 어찌 꼭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 (게송)수류상출몰~.
  5. 2015.11.11 §(500)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간절 절(切)자 /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몰아 본참공안으로 나아가라 / 화두의 힘.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
  6. 2015.05.12 §(119)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경봉 스님과의 일화 / 참선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 / 이 세상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7. 2015.01.10 §(112) 법문을 옳게 듣는 길 /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 / ‘딴 생각[別念]’해서는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칠통(漆桶) 타파(打破).
  8. 2014.11.08 §(466)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9. 2014.09.30 §(335) (게송)작야시우치~ /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는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 /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
  10. 2014.09.25 §(763) (게송)법계진시비로사~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을 해야 / (게송)삼계진로여해활~.
정진(精進) 수행2017. 6. 8. 11:01

§(627)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수 있다 / 황룡탕 / 여법하게 열심히 닦으면 정법시대.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닦고 모든 생활을  나간다면은 우리는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용627)

 

약 14분.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이여. 만 가지 의심을 모두   의심 덩어리로  그리 몰아붙이라 이거여.

우리는 살다 보면은 여러 가지 의심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경전에 대한 의심, 공안에 대한 의심, 세속의 모든 일에 대한 의심, 정치 경제 모든 의심, 학교의 과학 학문에 대한 의심, 모든 의심이 있을 수가 있으나,  모든 의심을 전부 다 이뭣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하나의 의단(疑團)에다  몰아붙이라 이거거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여.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며, 이뭣고?’ 의심을 스스로  다시 되돌이켜 관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인데, 이뭣고?’

이뭣고?’  -’  -하는 이놈이 뭣고?’ 이것이 의자간(疑自看)이여.

 

의심나는 것을 물어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 가지고 그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무슨 의심이 나던지 바로  의심을 즉(卽)해 가지고 자기의 본참화두 이뭣고?’ 돌아오라 이거거든.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 모름지기 용을 때려잡고 봉(鳳)을 잡는 그러한 용기와 수단을 가진 사람이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다. 한주먹으로 철성관을 쳐서 꺼꾸러뜨릴 수가 있을 것이다. ‘쇠[鐵]로 만든 성(城)에 관문(關門)’이라 한 것은 조사관(祖師關)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하는 것은  조사관을 깨뜨려야 하거든.   없는  의심관, 조사관, 이놈을 !...

 

이뭣고?’ 자꾸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잊어버리고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고 하지만 잊어버리면  이뭣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  생각 버리고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자리에서 이뭣고?’ 자꾸자꾸 하다보면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가지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거든.

 

그래가지고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까지, 저녁에 누워서 이뭣고?’하면서 들고 있는 화두가 아침에 일어나면 고대로 들어져 갔고 있거든. 이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거든.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여.

 

열심히 열심히 하고, 자기 근기(根機)도 따지지 말고 아무것도 따질 것이 없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되는 것이 바로 이거여.

세속의 사업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되기도 하고 실패하기.. 실패율이  많고. 이것은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어도  되고만 마는 것이 바로 이것이여. ?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우리가 모든 인연에 따라서,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빠르면은 7일이요, 늦으면은 3년이요 이렇게 말씀하셨지마는,  기한은 전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빨리 되어도, 빨리 공안을 타파해도 그것에 끝난 것이 아니고, 더디 되어도 더디 되었다고 해서 허송세월 것이 아니어.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빨리 공안을 타파할 수도 그리고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원만구족(圓滿具足)하려면은 깨달은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닦아 가야 하는, 닦을  없이 닦아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는 비록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하고 더러운  몸뚱이지만  속에 법신불(法身佛)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는다면  몸뚱이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거고.  몸뚱이를 소중히 여기고.

애착심을 가지고 집착(執着)하라는  아니고, 지혜롭게  관리를 해야 공부도  수가 있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비록 검소하게 먹고 할지언정,  고기만 많이 먹고  영양가 있는 것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나물에 검소하게 이렇게 먹어도, 보리밥에 잡곡밥에 이렇게 먹어도  씹어서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저작(咀嚼)을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 하면서 먹으면 고기에다가 진수성찬에   먹더라도 건강은 유지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신 황룡탕(黃龍湯)을  잡순 것을 내가 권고를 하고.

 

황룡탕은  몸에서 나온 것을 내가 다시 섭취하는데, 그것이 전혀 더러운 노폐물이 아니고 우리 몸안에 있는 피와 거의 같을 정도로 여러 가지 영양이  속에  들어있고.

의사들이  조사를 해보면 전혀 균이 없는 무독지제(無毒之劑)라고 하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학대사전에도 보면 무독(無毒)’이라고  나와 있고 여러 가지 병에 좋다고 하는 것도 옛날 성현들이  말씀을 하셨고.

 

오죽하면 부처님께서도 걸식(乞食)을  것이며, 분소의(糞掃衣)를 입을 것이며, 수하(樹下) 나무 밑에서  것이며, 그리고 약은 예약(穢藥)을 써라. 예약이라 하는 것은 대변이나 소변으로 만들어진 , 병이 나면 소변을 먹으라고 하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혈압이 높으신 분도 좋고, 각종 암도 좋고, 요새 모다 발표한 것을 보면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병도 소변을 장기적으로 복용을 하면 낫을  있다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마는.

 

이뭣고?’ 하면서 황룡탕을 먹으면서 잡곡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산다면,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한다면  세상이 비록 오탁악세(五濁惡世)요, 말세(末世)라고 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법하게 정법을 믿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말세를 다시 정법시대(正法時代)로 다시 돌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닦고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모든 생활을  나간다면은 우리는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우리 앞마당에는 대장경 전산화 불사(佛事)를 하기 위해서 동참불자(同參佛子)를 받는 대장경연구소 분들이 책상을 놓고 계십니다. 신청하신 분들은 지로를 통해서  성의껏  하고 계신다는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용화사에서  불사에 좋은 촉매가 되고, 탄력을 가질  있게 되었다고 모다 감사한 인사를 듣고 있습니다마는, 드신 분은 열심히 다달이 보내시고  들으신 분은 인연 따라서,  따라서 모다 동참을 하신다면, 그리고 요새  나오는 책을 보니까 전국 모두 여러 사찰들에서도 모다  동참하자고 하는 그런 법회를 모다 여기서 저기서 가지신 걸로 봤습니다.

 

대단히 좋은 현상이고, 이러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어려울  이러한 불사를 우리 불교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대장경 불사를 한다면 틀림없이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우리나라도 잘되고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좋은 공덕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오늘이 입하 · 소만 · 망종일이고, 얼마  있으면  하지에다 소서 · 대서 하면은 삼복성염(三伏盛炎)이  돌아옵니다. 날씨가 더워질  모다 몸조심 하시고 건강한 몸과 건전한 마음으로 열심히 이뭣고?’ 하시기를 다시 부탁 말씀을 드리면서 말을 맺고자 합니다.(4629~60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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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의도취일의단~’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5) '贈蘭法師' 게송 참고.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해(-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이  /잠잘 /하나 /같을 ) ; 자나깨나 언제나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 

 

[참고]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나누기 때문에   가지에 250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저작(咀嚼 씹을 /씹을 )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황룡탕(黃龍湯) ; 황탕(黃湯), 용탕(龍湯)이라고도 한다. 약용으로써 저장한 인간과 가축의 대변과 소변을 말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써 이용하는 오줌을 말함. 요료법(尿療法).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분소의(糞掃衣  /버릴 / ) ; 똥이나 먼지구덩이 속에 버려진 낡은 옷과 찢어진 헝겊 조각을 깨끗이 씻은 다음 조각조각 기워서 만든 가사(袈裟). 납의(衲衣), 백납의(百衲衣) 등이라고도 한다.

*예약(穢藥) ; 부란약(腐爛藥). 대변, 소변등의 배설물로 만든 약.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들이 버려서 아무도 쓰지 않는 재료로 만든 약도 포함한다.

악취가 나고 부패한 것이라는 뜻에서 부란약이라 하고, 버려진 것이라는 뜻에서 진기약(陳棄藥), 잔기약(殘棄藥) 등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법[사의법 四依法 : 乞食, 糞掃衣, 樹下住, 陳棄藥] 중 하나와 관련된 것으로, 수행자는 병이 들었을 때 부란약을 제조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법회, 불공(佛供), ()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삼복(三伏) ; ①일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 아울러 이르는 .

*성염(盛炎 성할 /불꽃·더울 )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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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 (세등09)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법문(法門)이라고 허는 것이 입으로 설헐 것이 있고, 귀로 들을 것이 있는 법문은참법문이라고 수가 없어.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설() 없이 법을 설해야 하고, 들은 바가 없이 들어야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대중스님네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자주자주 들으면서 정진을 애써서 오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이기 때문에 법문을 설사 설한 있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설한 없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자주 듣고 자주 채찍질을 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신심을 일깨우고, 나태(懶怠) 빠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을 가해 나가야 우리의 목적 달성을 단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진(精進) 하는데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써야 하며, 정진을 여법(如法) 나가면은 차츰 우리의 경계(境界) 어떻게 진취있게 나가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가지고 좋은 경계가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계를 살려 나갈 모르고, 애써서 도달한 좋은 경계를 살리지 못하고서 거기에서 그릇 빗나가 버리는 애석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경지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알고 거기에 집착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벌써 결제(結制)—어떻게 지냈는지 반살림을 지내고, 앞으로 해제도 20여일 밖에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러헌 말씀을 택해 왔습니다.

 

 

정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에 의심(疑心)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종(一種) 하고, 말을 하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애를 쓴다고 해도 본참공안,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본참화두에 의심이 없다고 하면은 정진은 옳은 정진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에 의심이 있어야 반드시 크게 깨달을 수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 문제라든지 그밖에 천칠백 공안은 말할 것도 없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루에는 수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있어서 의심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심을 허기로 하면은 보고 듣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의심 아닌 것이 없어. 의심, 의심, 한량없는 의심을 똘똘 하나로 뭉쳐서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면서 정진을 하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본참화두에 간절(懇切)하고 돈독(敦篤) 의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간절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다.

 

법문이 비단 녹음된 조실 스님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것만이 법문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발심을 하고 신심을 일으킨 사람은 바람 부는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고,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건 또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흔들어 놓는 일이건, 그러헌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올 있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일으킨다면은 법문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아니한 , 이것이 우리 정진에 있어서 가장 병이다.

모든 인연세속에 대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중생활 나가는데 있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일체 인연을 놔버려. 누가 잘하건 못허건 그것에 말려들어서는 벌써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못허는 것을 봐도 화두를 들고, 누가 아픈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일체 인연을 놔버리고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하루 종일 다맛 자기 화두를 들고 들고, 생각[別念] 일어난 알면 생각 버릴려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으로 화두를 ! 들면 되는 것이다.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해야 하지마는 있으면은 앉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져나가는 것이 가장 힘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면 앉어서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느냐? 지나치게 눈을 ! 부릅뜨고 억지로 힘을 써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지나치게 몸뚱이를 억제하고 구속하고 무리하게 몸뚱이를 다루어도 되는 것이다.

공연히 헛심을 들여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치게 몸을 억누르고 구속을 가하면은 혈액이 혈액순환 하는 데에 이상이 생겨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그밖에 혈기(血氣) 고르지 못한 병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맛 단정(端正)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무자(無字) 허는 이는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혼침(昏沈) 가지고 꾸벅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한두 소리내어) 화두를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5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5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 소멸(消滅) 되고. ‘마가 소멸된다 것은 혼침도 그것이 (), 산란심(散亂心) 그것도 ()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 안에서 일어나는 (), 모든 것이 (), ()라고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

 

그러니 ()라는 놈이 북적북적하고 그러면은 눈이 안정이 되는 것이고, 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뚱이도 안정이 되아서 괴롭고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때에 이렇게 () 들어갔을 때에, 정에 들어간 고요한 것으로서 능사(能事) 삼아서는 안되아. ‘ 좋다. 이러헌 경지가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벌써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렇게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되고 해서 말로 없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화두를 잊어서는 된다. 그럴 때에 화두를 깨끗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만약에 그러한 고요해진 경지에서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 데에 잠기고, 적적한 데에 () 가지고서 아무리 그러한 경지로 오래오래 나간다고한들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 되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다맛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리만을 말씀을 하셨지, 이렇게 고요한 () 들어가지고 신통(神通) 나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일체 말씀을 하시지 했다.

 

헌들(?) 그래 가지고 오래 지내면은 뭣이 알아지기도 하고 신통도 나고 틀림없이 그런 것은 그렇지마는 견성(見性) 하지 못하고 신통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러헌 신통이 먼저 나는 사람은 그것은 외도(外道), 그것은 벌써 삿된 길에 떨어진 사람이라, 자기도 생사해탈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까지 그르치고 외도 마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목 고요하고 조촐해질 화두를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놓지 아니허되,

있으면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는 것이 아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앉어서 하루에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밖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항시 앉어서 단정히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고, 그러다 잠이 오면 일어나서 바람 쐬고 들어와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혼침에 떨어져 가지고도 계속 일어나지도 않고 앉어서 조는 것으로서 정진을 삼고, 앉아 있는 것에 집착을 가지고 그러헌 정진도 옳은 정진이 아니다.(처음~2051)

 

 

 

 

 

(2/3)----------------

 

이렇게 공부를 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공부가 잘된 같지 아니하고, 계속 몸도 괴롭고 마음도 답답하고 이래서그런데 그럴 때에 공부가 안되는 알고 대단히 번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데,

깨끗이 깨끗이 잘되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맑지를 못하고 몸도 뒤틀리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럴 때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좋은 중요한 고비인데,

좋은 고비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서 공부가 못된 알고 몸부림을 치고 번민을 하는데, 고비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막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그럴 때에 아까 말한 대로 살며시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서 맑은 공기도 쐬고 그렇게 포행(布行) 거니는 가운데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야 고비를 참으로 올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되지,

공연히 번민하고 화두도 놓쳐 버리고 몸부림치고 공부를 그럭저럭 번민으로써 넘어간다면은 애써 공부해 가지고 참으로 좋은 고비 넘어갈 데에 가서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 된다 그말이여.

 

아주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러한 고비를 수없이 차례를 그러헌 고비를 넘기고 나면은 인자 수월하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가 되아가.

그렇게 얼마 동안 나가다가 ! 변해 가지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에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가지고 지혜스럽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서 고비를 넘기고.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성성적적하게 순일하게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 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답답허고 지루하고 몸과 마음이 덤덤하고 답답하고 멍멍하고 이러헌 고비가 오드라도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고 그래야 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 다져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를 못하고,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공부는 옳은 공부가 아니여.

어쨌든지 성성한 가운데에 공부를 나가야 하는데, 성성하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 수밖에는 없고, 고요해지면은 그것이 ()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에 가서 가지가 있는데삿된 ()’바른 ()’ 있다 그말이여.

삿된 ()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삿된 정이여. 고요하고, 일체 마음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진 가운데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 나가야 그것이 바른 ()이지, 화두만 놓쳤다 하면은 그것은 벌써 삿된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명심을 .

 

그렇게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일체 혼침과 산란심이 끊어져서 그렇게 고요하고 정한 데에 들어갔다가 일어설 때에 몸과 마음이 경청(輕淸)해서,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 화두를 들려고 하지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일체처에 공부를 애써서 단속할라고 하지 해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때에 함부로 몸을 거동을 한다든지, 함부로 큰소리로 웃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들어갔던 좋은 경지가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경지에서 아주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자세히 지혜스럽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고요하고 조촐한고요 ()’, ‘조촐헐 ()’, 정정(靜淨) 글자를 여의어서는 되는 것이다. 고요한 것이 고요할수록 고요해지면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조촐한 것이 지극(至極) 경지에 도달하면은 (), 빛이 통달(通達)하게 된다.

 

기운(氣韻) 엄숙해지고 맑아지면은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 우리의 움직임일체 행동, 생활 경계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은 가을 하늘과 같아서, 새파란 가을 하늘에 구름 없는 상쾌하고 깨끗하고 새파란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은 그러헌 경지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첫째 과정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경지를 타서 공부를 단속해 나가야 한다.

 

가을 들에 가면은 농사도 짓고 맑은 물이 출출출출 출출출, 깨끗한 가을 들에 나가면은 가을 들물이 흘러가는데 그러한 가을 들물과 같고, 오래된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그러한 경지, 그래서 적적하고 성성해서 우리의 마음길이 끊어진다 그말이여.

일체 번뇌 망상이 저절로 끊어져 버리고, 일체 혼침도 거기에서는 물러가 버리고, 심지어 우리의 육신이... (녹음 끊김)(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들려 있다 그말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체 우리의 중생의 티끌이 쉬어 없어지고 (), 빛이 발하게 된다. 이것이 둘째 과정이다.

 

만약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가지고 지각심(知覺心) 내면은—‘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깨닫기를 기다리는, 생각이라도 그러헌 생각을 일으키면은, 알기를 기대한다든지, 깨닫기를 기대한다든지 이렇게 되면은 순일(純一) () 끊어버린 것이 되어서 ()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이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지각심을 일으키는깨닫기를 기다린다든지, 뭣이 알아지기를 기다린다든지, 무슨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그러헌 지각심만 내지 아니하고,

오직 동정(動靜) 일여(一如)하고, 오매(寤寐)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해서 마치 깨끗한 물에 달빛이 비치면은 아무리 물결이 일어나도 활발발(活潑潑) 달빛이 변함이 없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흔들어도 우리의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해.

 

외부로부터 어떠헌 충격을 받드라도 순일무잡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보고 듣고 느끼고 간에 경지가 조금도 지장 없게 되어서, 안으로도 적적해서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면 이것이 셋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 터지면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날이 머지않다 그말이여.

 

셋째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자기 자신도 공부 지어 나가는데 있어서 지혜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공부를 나가야 하지마는 주변에 있는 대중들도 역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벌써 밖으로 보면은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면은 밖으로도 보면은 아무라도 보면은 아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을 자꾸 찝쩍거려서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도록 하면은 죄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서로서로 서로서로 보호를 하고 아끼고 조심하면서 공부를 닦아 나가야 된다.

 

그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일으킬라 해도 일으켜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어떤 충격을 가해도 동요함이 없이, 이렇게 저절로 그렇게 되아 가는 , 그것이 셋째 과정인데, 셋째 과정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주일, 오래가도 일주일 가서 결국은 의단(疑團) ()하면서 확철대오 한다.

과거에 고봉(高峰) 스님도 그러헌 과정을 겪으셨고 그밖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러헌 경지를 거쳐서 깨달으신 분이 많은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마치 계란이, 닭이 알을 21 동안을 품고 있게 되면은 안에서 병아리가 차츰차츰차츰 거의 병아리가 되었을 때에 기일이 ! 차면은 밖에서 애미가 좃고,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 좃고 것이동시에 안에서 좃고, 밖에서 좃고 해서 ! 터지게 되면서 병아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맷돌을 무거운 맷돌을 아래짝과 위짝과 맞추는데 있어서 좀해 맞는다 그말이여. 이리 쪼금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허다가 찰크닥! 우아래짝이 맞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 자기를 깨닫게 되고 불조(佛祖) 득인증처(得人憎處) 잡아 ()하게 된다.

 

불조(佛祖)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일대사(一大事)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지마는 불조의 허물이 하나가 있다.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제호를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오후(悟後)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외도 마구니가 되어 수도 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2052~4004)

 

 

 

 

 

(3/3)----------------

 

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 해야 하고, 불조의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 보림(保任)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한바탕 거쳐서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허지 아니하고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있는 면이 있고,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헌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그러헌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 일으키게 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말해 주어도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근기와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경지에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아따, 도인이다. 거리낌이 없고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 줄을 모르고, () ()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죽고,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

 

그리고 공부는 () 없는 것이여.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하고 인자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더이상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끝났으니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세계에 육도법계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가 자리(自利) 이타(利他) 둘이 아니고, 동시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것도 없고 () 것도 없고, () 없고 ()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별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차등(差等)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금년 겨울에 이렇게 좋은 스님네와 좋은 보살님네들이 모여서 이렇게 처음부터서 열심히 열심히 정진을 허더니마는 중간쯤에 와서 더욱 신심이 돈발(頓發)하고 여법히 정진을 하고 해제가 이렇게 가까워 올수록에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원장 스님이나 입승 스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봐도 능히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벌써 ()살림 지내면은 공부할 마음이 풀어져 가지고 공부가 되지를 않고, 하루하루가 빨리 해제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가서 애를 먹고 흔히 그러헌 것인데,

금년에 세등선원에 모인 대중은 전혀 그러헌 기색(氣色) 보이지를 않고 날짜 가는 것이 오히려 애닯고 너무 어떻게 시간 날짜가 지내간지 모르게 벌써 이렇게 지내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만큼 신심(信心) 분심(憤心)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간절해서 공부가 여법허게 잘되어간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여일 남았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지내간 동안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공부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진로해탈(塵勞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라

나무~아미타불~

 

생사해탈(生死解脫)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보통 마음으로 보통 수행해 가지고 성취할 있는 그러한 보통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話頭) 정말 알뜰히 간절히 다잽이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죽을 ()’자를 이마빡에다 붙이고 정말 철저히 단속을 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것이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매화 몽우리가 열려서 향취가 우리의 코에 들어올 수가 있다. 강추위를 허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매화꽃이 피기는 펴도 향취가 없는 것이여. 되게 강추위를 가운데에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에 피어야 매화꽃이 배나 향기로운 것이다.

우리가 되게, 간절히 그리고 골똘히 애써서 정진한 뒤끝이라야 확철대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렁저렁 그저 시시비비와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그렁저렁 지내는 가운데에 어찌 하늘과 땅을 놀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울리게 있는 그러헌 확철대오가 어찌 얻어질 수가 있겠느냐?

 

금생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 받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 헐랴면은 그만큼 철저하게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철두철미하게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간 데에서 목적 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여.(4005~6035)()

 

 

 

 

------------------(1/3)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나태(懶怠 게으를 /게으를 ) ;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그릇 ; 옳지 않고 잘못되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p164-166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헛심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혈기(血氣) ; ①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元氣) 이르는 . ②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 ③혈액과 기식(氣息 숨을 쉬는 기운) 아울러 이르는 .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

*단정히(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흐트러짐이 없이 얌전하고 바르게.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살모시 ; 살며시(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 ; 마구니.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

*산란(散亂 흩을 ,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 : ①계()•()•() 3(三學) 하나. []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능사(能事 능할·잘할 / ) ; ①잘하는 . ②쉽게 잘해 있는 .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 곧바로[] 가리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 ②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 ③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 ④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 ⑤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 ⑥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2/3)

 

*번민(煩悶 번거로울·괴로워할·어지러울 /번민할·마음이 답답할·걱정할 ) ; 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 ; ‘울타리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수월하다 ;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아 하기가 쉽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투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지극하다(至極-- 이를·매우·궁극·극진히 ·깊을 /·다할·막다른 지경·매우 ) ; (마음이나 정성이)더없이 극진(極盡)하다(매우 정성스럽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 모셔 놓은 .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

*향로(香爐 /화로 ) ; 향을 피우는 쓰는 작은 화로.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활발발(活潑潑) : 고기가 기운 좋게 위로 뛰노는 모습.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단(疑團) ()하다 ;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의 덩어리[疑團]’ 깨지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참선법 A’ 에서.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봉(高峰) 스님 ;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담법문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애미 ; ‘어미 사투리. *어미 ; 어머니 낯춤말. ②새끼를 낳은 암컷의 동물.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우아래 ; 위아래(위쪽과 아래쪽).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3/3)

 

*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보살이 근기(根機)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 /인연·이유·연줄 ) ; ①시기인연(時機因緣)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묘할·신묘할·젊을 )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 하며, 학파들을 백가(百家) 부른다. 음양가(陰陽家) 추연, 유가(儒家)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 묵자, 법가(法家) 한비자, 도가(道家)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 설함에, 교묘하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다리 )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 디딤[]( 입장에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 ; [주로없다’, ‘않다’, ‘못하다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기색(氣色 기운 /모양··얼굴 ) ; ①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얼굴빛[]으로 드러나는 기운[]). 얼굴빛. ②어떠한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할 있게 하여 주는 눈치나 낌새.

*애닯다 ; 애달프다. *애달프다 : (마음이나 사연 따위가)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 닳도록 쓰리고 아프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게송) 진로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다잽이하다 ; 다잡이하다.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몽우리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아직 피지는 않고 망울만 맺혀 있는 ).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6. 1. 27. 10:54

§(523) 십법계(十法界) / 심능천당(心能天堂) 심능지옥(心能地獄) / 생사(生死) 본래 없는 것이다 / 생각 단속 / 정념(正念) / (게송)탐착몽중일립미~.

 

지금 우리는 십법계 중에서 마지막 평등일승법을 행해 가지고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리에 모였다 그거거든. 불법계(佛法界) 태어나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생각, 최초의 생각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바른 신심으로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법에 의해서 염념상속(念念相續) 없는 의심으로 자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참구(參究) 가면 곳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는생사(生死) 본래 없는 것이다믿고깨닫기 전에 분명히 우리에게는 생사가 있고 생사가 보이는데, 보이는 생사 속에서 생사가 없다고 믿고생사가 없는 도리를 깨달라 증득하기 위해서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다 이거거든.

 

정념(正念)이라고 하는 것은 경계(境界)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면 수행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정념이다.

 

사람들은 비상이나 그런 짐주를 갖다가 무서운 독으로 알지마는 성현(聖賢) 그런 비상이나 짐주를 독으로 삼지를 않고, 무엇을 독으로 삼느냐 하면은 생각 () 가지고 탐진치 삼독심 일어난 것을 이것을 ()으로 삼는다.

 

생각 ()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면 욕계·색계·무색계 삼계(三界) 온갖 고통이 ! 충만해 가지고 있어. 무서운 생사윤회의 고통이 최초의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그렇게 것이다.

 

모든 것은 인연에다 맡겨. 밥이면 , 죽이면 , 밥이 되면 대로, 질면 대로 숟갈 먹고, 그저 먹는 , 입는 , 사는 일체 것은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그저 우리가 단속할 것은 생각 생각이 눈에 보이는 매서운 회초리로 자기를 채찍하면서이뭣고?’ 단속하는 밖에는 없습니다.

 

**송담스님(No.523)—93(계유년) 성도재 법회(93.12.08.) (용523)

 

(1) 약 20분.

(2) 약 17분.

 

(1)------------------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확철대오해서 성불한 그러한 부처님이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진즉(趁卽) () 세워 가지고 사바세계(娑婆世界) 왕궁에 태어나 가지고 출가하셔서 6 고행 끝에 결국은 확철대오 하셨는데,

6 고행을 하셨느냐?’하면은고행(苦行) 해야만 도를 얻을 수가 있다 사람들이 모두가 믿고 있는데, 고행을 위한 고행은 정말 참다운 바른 성스러운 수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말이여.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맛있는 찾을 겨를이 없고, 좋은 옷을 입을 겨를도 없고, 부귀영화 언제 그런데 한눈 겨를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몸뚱이를 괴롭히는 것으로써 그러한 고행을 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수행이다 착각을 해서는 된다.

부처님께서 몸소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반드시 깨달을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여. 바로 깨달음을 여실(如實)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성도재(成道齋) 의의다 그말이여.


부처님이 그렇게 확철대오 하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서 그것을 믿고 거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우리도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말이여.

 

(도를) 닦건, 닦건 부처님이나 우리 중생이나 모든 꿈적꿈적한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佛性) 가지고 있어. 본성(本性)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했을 뿐이거든.

()했으나, 깨달랐으나 본각성(本覺性) 조금도 차등이 없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마니주(摩尼珠) 보배 구슬이 물속에 들어 있거나, 진흙 속에 들어 있거나, 똥항 속에 들어 있거나 마니주 자체는 변함이 없거든. 그러나 진흙 속에나 똥항 속에서는 마니주의 본래 가지고 있는 찬란한 빛을 발휘를 못하는 거여.

그것을 건져내서 깨끗이 닦아야 비로소 마니주의 본바탕이 여실히 드러나는 거와 마찬가지다.

 


법계(法界) 십법계(十法界) 있는데,

일법계는 천법계(天法界), 하늘나라. 십선업(十善業) 닦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고, 인법계(人法界) 사람이 살고 있는 인법계는 5(五戒) 닦으면은 사람의 몸을 받아날 수가 있어.

수라법계(修羅法界) 교만업(憍慢業) 행하면은 수라법계에 태어나는 거고, 지옥법계(地獄法界) 십악업(十惡業) 지으면은 지옥법계에 떨어지는 거여.

다섯째 아귀법계(餓鬼法界) 간탐업(慳貪業) 지으면 아귀법계에 떨어지는 거여. 여섯 번째 축생법계(畜生法界) 우치업(愚癡業) 지으면, 어리석은 우치업을 지으면은 축생법계에 떨어지는 거여.


성문법계(聲聞法界) 사제법(四諦法) 증득을 하면은 성문법계에 태어나는 거여. 여덟째 연각법계(緣覺法界) 12인연법(十二因緣法) 깨달으면은 연각법계에 태어나는 거다. 아홉 번째 보살법계(菩薩法界)에는 육바라밀(六波羅蜜) 닦으면은 보살법계에 태어나는 거고,

번째 불법계(佛法界), 부처님 법계에는 평등일승법(平等一乘法) 행하면은 부처님 법계에 태어난다.


앞에 말한 아홉 개의 법계에 대해서는 우선 그만 두고 번째 불법계에 태어나는 , 불법계에 태어나는 것은 내가 바로 부처님이 되는 거여. 부처님이 될라면은 평등일승법을 행해야 부처님이 된다.

 

평등일승법이라는 무엇인가?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을 닦아야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상 말한 십법계(十法界) 범부 성현이 십법계를 지은 바에 따라서, 행하는 바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무슨 세계, 무슨 법계에 태어나고자 하느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여러분이 선택할 있는 절대 권리를 가지고 있다.


누가 거기를너는 불법계로 가라’ ‘너는 지옥법계로 가라무슨 절대신이 있어 가지고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하는 아니라, 자기가 지어 가지고 법계에 올라가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기도 한다 그말이여.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자기가 지은 바에 따라서 그것은 다르지만, 최초에 생각 일어나 가지고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일으킨 뒤에 생각 생각이 그것을 상속(相續) 가지고 그것을 성사를 하는 거여.


최초 생각이 축생도에 떨어질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이리저리 자꾸 그놈을 상속을 가지고 그것을 몸으로 행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축생이 되는 거고,

성문(聲聞) 될라면은 성문이 있는 생각, 고집멸도(苦集滅道) 그것을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그것을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고집멸도로 이렇게 해서 그렇게 실천해 나가면 성문이 되는 거고,

보살이 되고 싶으면은 보살이 있는 생각을 일으켜서 () 세워 가지고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해탈로 이렇게 공부를 나가면 보살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금 우리는 십법계 중에서 마지막 평등일승법을 행해 가지고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리에 모였다 그거거든. 불법계(佛法界) 태어나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생각, 최초의 생각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바른 신심으로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법에 의해서 염념상속(念念相續) 없는 의심으로 자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참구(參究) 가면 곳이 없다 그말이여.


그게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무슨 보물을 찾는 것도 아니고, 땅속을 파고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무슨 보물을 찾는 것도 아니다.

 

자기에게 있는, 지금 눈을 통해서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알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을 줄도 알고, 혀를 통해서 맛볼 줄도 아는, 그리고 몸뚱이를 가지고 춥고 더운 것도 알고, 때리면 아플 알고, 욕하면 성낼 아는 바로 그놈 속에중생은 그것이 바로 ()이요, 그것이 생각이고 뜻인데, 그러한 작용을 일으킬 있는 당처(當處) 바로 속에 있거든.

그놈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번뇌 망상 바로 그놈을 여의고 있는 아니라 거기서 그놈을 찾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방법만 바르게 알면 바로 누구라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열심히, 오직 백만사(百萬事) 거기에 신경을 쓰지 말고,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와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드리 나가면 부처님처럼 구태여 설산에 들어가서 피골(皮骨) 상접(相接)하도록 6 고행을 해도 된다 그말이여.


고행을 봤자 우리의 생각을 돌이켜서 자기의 본성을 찾는 그렇게 공부를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미륵불(彌勒佛) 하생할 때까지 56 7천만 년이 다하도록 고행을 봤자 거기에서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착한 일을 하면은 즐거운 () 얻고, 악한 짓을 하면은 괴로운 과를 얻는데, 그것이 생에 끝난 것이 아니고, () 받으면서 () 짓고, () 받으면서도 업을 지어서 () 받았다 () 받았다 십법계 육도법계를 끊임없이 개미처럼 돌고 도는데, 자기가 지은 것은 털끝만큼도 거저 지내가는 법은 없어.

다맛 받는 순서는 다를지언정 낱낱이 받고 넘어가지 받고 넘어가는 법은 없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이심능천당(心能天堂)이요 심능지옥(心能地獄)이라하셨어. 우리의 마음자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천당에도 수가 있고, 지옥에도 수가 있다.

어찌 천당 지옥뿐이겠습니까? 불법계에 수도 있고, 보살법계에 수도 있고, 연각 성문도 수도 있어.

 


부처님께서는 대승 경전에영겁(永劫) 침륜생사(沈淪生死), 영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할지언정 불발소승심(不發小乘心)이다. 소승심은 발하지 말아라


소승심(小乘心)이라는 것은 성문(聲聞) 연각(緣覺)인데, 성문은 생사를 굉장히 두려워 .

그래서 어떻게 하면은 죽음을 면할 것인가? 태어나지 해야 죽음을 면한다. 그래서 태어날라면은 태중(胎中) 들어가야 하는데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태중에 들어갈라면은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 생각을 일으키면은 생각을 일으킨, 생각 일으킨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태중에 들어가서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면은 생로병사 이것을 되풀이하게 되니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구경(究竟) 목적이 멸진정(滅盡定) 들어가는 거여. 그래서 사목고회(死木枯灰)처럼 되어 가지고 영원히 소승의 멸진정 속에 들어가 있는 거여.


이것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키시는 길이 아니여.

우리는생사(生死) 본래 없는 것이다믿고깨닫기 전에 분명히 우리에게는 생사가 있고 생사가 보이는데, 보이는 생사 속에서 생사가 없다고 믿고생사가 없는 도리를 깨달라 증득하기 위해서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다 이거거든.


생각 () 가지고 ()하면은 거기서 일어나는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탐심(貪心) 아니면, 진심(瞋心) 아니면, 치심(痴心)이다 그말이여.

결국은 정념(正念) 지키지를 못하면 우리도 생각을 ()하고정념이 무엇이냐?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 없는 의심이뭣고?’ 정념을 잃어버리면 바로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연결이 되는 거여.


생각을 단속을 하는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즉시이뭣고?’ 돌아와야 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즉각이뭣고?’ 돌아와야 .

 

눈으로 사람을 보나 개를 보나, 산을 보나 들을 보나 물을 보나, 이쁘게 생겼건 미웁게 생겼건, 우리는 과거에 무량겁을 오면서 많은 사람과도 인연을 지었고, 많은 곳에도 인연을 지어서, 보면은 이유 없이 까닭도 모르게 마음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사람을 보면 아무 까닭 없이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고, 보기 싫은 사람도 있고, 그건 과거에 지은 인연관계로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인연을 이대로 인연만 따라가다 보면은 삼악도(三惡道) 면틀 못해.


어떠한 종류의 좋고 나쁜 인연을 만났을 때에도 즉각 그리 따라가지 말고이뭣고?’ 돌아와야 하거든. ‘이뭣고~?’

일체처에 무심(無心)하라 하는데, 무심을 어떻게 우리가 마음대로 무심할 수가 있냐 그말이여. 무심할려고 하면은 (무심할려고) 생각이 하나 일어나서 다시 무심이 되는 거여.


이뭣고~?’ 자꾸이뭣고?’ 돌리거든.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일체 경계에 끌려들어가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이뭣고~?’

처음에는 어렵지만, 어렵기가 말로 없이 어렵지만, 사람이라는 되풀이해서 하면은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자꾸 익어 가면 그것이 체질화가 되어서 할려고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념(正念)이라고 하는 것은 경계(境界)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면 수행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정념이다.(19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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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들은, 성현들은 비상(砒霜)이나 짐주(酖酒)로써 독을 삼지를 .


여러분 비상이라는 아시겠지만 그건 먹으면은 사람이 죽는 거고, 짐주라고 하는 무엇이냐 하면은 중국 광동성에 있는 독한 새의 이름인데, (, )새라고 하는 새가 있는데, 새는 살이나 피나 뼈나 전체가 ()으로 되어 있어.

비상보다도 무서운 독을 품고 있는 새인데, 짐새의 털을 넣어서 술을 담그거나 짐새의 살이나 뼈를 넣어서 술을 담그면 그것을 짐주(酖酒)라고 하는 무서운 독술인데, 그거는 모금만 먹어도 즉사하는 무서운 독이여.


그런데 사람들은 비상이나 그런 짐주를 갖다가 무서운 독으로 알지마는 성현(聖賢) 그런 비상이나 짐주를 독으로 삼지를 않고, 무엇을 독으로 삼느냐 하면은 생각 () 가지고 ()함으로써 생긴 탐심·진심·치심, 삼독심을그래서 이것을 탐진치를 삼독심이라 그러는데,

탐진치, 생각 () 가지고 삼독심 일어난 것을 이것을 ()으로 삼는다 그말이여.


그러냐 하면은 생각 () 가지고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 일어나면 법신(法身) 망가뜨려. 생사해탈해서 진리와 하나가 되는 법신을 망가트리기 때문에 이것이 그런 거고.

혜명(慧命) 끊어 버려. 생각 () 가지고 탐진치 삼독심만 일어나면 우리의 '지혜의 목숨[慧命]' 끊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생각 ()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면 욕계·색계·무색계 삼계(三界) 온갖 고통이 ! 충만해 가지고 있어. 무서운 생사윤회의 고통이 최초의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그렇게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 그것이 간단하거든. 화두(話頭) 들고 최상승법으로 나아가느냐? 화두를 놓쳐 버리고 바깥 경계에 끌려가느냐? 처음에는 별것이 아니여. 생각 일어나는 그냥 최초에 일어날 때는 별것이 아닌데,

그것이 염념상속(念念相續) 가지고 자꾸 번져 가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일을 저지르게 되면은 살생도 그놈이 하게 되고, 도둑질도 그놈이 하게 되고, 사음도 그놈이 하게 되고, 거짓말도 그놈이 하게 되고, 온갖 죄업을 생각 () 데에 부터서 발족이 것이다 그말이여.


처음에 일어나자마자 단속하기는 대단히 쉬운데 그놈이 번져 가지고 차츰차츰 커져 버린 뒤에는 도저히 그놈을 막을 길이 없어.

담뱃불이나 성냥개비로 일어나는 불이 처음에 일어날 때에는 손바닥으로 누르거나 발로 비벼 꺼도 간단히 꺼지는데, 그놈이 커져 가지고 점점점점 번져 가지고 바람이 불어서 일어나면 산불이 여간해서 수가 없어.


명이 달려들어서 끈다고 해도 끄지를 못하고 며칠을 . 그런 무서운 불이 한국에도 가끔 일어나지만 미국같이 그렇게 나라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렇게 커진 다음에는 소방차 소방 비행기, 헬리콥터로 여간 뿌려봤자 소용이 없다 그말이여.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지기나 하면 모를까 사람 힘으로는 여간해서는 끈다.


우리의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 생각으로 인해서 조그만한 성냥불 하나, 담뱃불 하나로 일어나듯이 생각으로 인해서 결국은 무서운 무량겁의 생사윤회가 우리의 과거에 그렇게 왔고, 앞으로도 우리가 생각만 삐끗 단속을 하면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이 말씀마다 거룩하고 훌륭한 법문이고, 좋은 방편설(方便說)이지만 읽어 보고 뒤적거려 봐도 결국은이뭣고?’ 밖에는 없다 그말이여. ‘이뭣고~?’ 생각 단속하는 , 누구든지 하면 되는 거여.


여러분은 숙세의 깊은 정법(正法) 종자(種子) 심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상승법을 금생에 만나게 것입니다. 듣기도 어렵지마는 믿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렵지만 믿고서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행하기가 그것이 어려운 것이여.

그것을 행하는데 무슨 그렇게 힘이 것도 아니고, 큰돈이 것도 아니여. 그냥 앉어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데에 정신만 팔지 말고.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여. 꿈이여. 꿈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 깊이 속지를 말아야 한다 그말이여.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인데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가운데 톨의 쌀에 탐착(貪着)하다가 만겁 동안에 먹고도 남을 금대(金臺) 양식을 잃어버린다.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그러한 것에 탐착한 것도 알갱이 쌀에 탐착한 거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활구 참선객에게는 본래 세속의 무슨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은 일찌감치 내던져버렸으니 그까짓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 속에 눈에 뜨인 , 귀에 들리는 , 일체 것이 찰라 찰라 그것이 알갱이 쌀이여.

밥을 먹을 밥맛이 좋다 나쁘다,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어디서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 옷을 입되 옷이 부드럽다 따뜻하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찰라 찰라 느끼는 그것들이 알갱이 쌀이여.


알갱이 쌀에 탐착만 했다 하면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여. 알갱이 쌀에 탐착하지 않고 터억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무량겁을 먹고도 쓰고도 남는 양식, 영원한 해탈도가 약속된다 말이여.

 

무상찰나(無常刹那) 실난측(實難測)이여. 우리의 몸뚱이도 사대(四大) 뭉쳐져서 허망한 것이라 언제 썩어 문드러지고 그런 허망한 것이지만 그래도 몸뚱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여.


그런데 몸뚱이가 생각 또는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來生)이거든. 그래서 무상한 것이 찰라 동안이여. 찰라 무상한 것이 정말 헤아릴 수가 없어. 언제 어떻게 될는지를 모른다.

언제 교통사고가 일어날지, 언제 다리가 무너질지, 언제 집이 무너질지, 미국이 살기 좋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마냥 사람이 죽고 아수라장(阿修羅場) 된다 그말이여. 언제 한국도 언제 전쟁이 터져서 여기가 불바다가 될지 아무도 전혀 헤아릴 수가 없는 거다.


언제 우리가 넘어질지 누가 있는 일이냐 그말이여. 이래 죽고 저래 죽고 그러니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어찌 뜨겁게 반성을 해서 급히 우리의 생각을 돌리지 않을까 보냐.


바깥 경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정말 우리는 믿지 못할 그러한 꿈이라고 하는 것을,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요달(了達)해야 합니다.


누가 칭찬한다고 그렇게 좋아할 것도 없고, 누가 나보고 욕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싫어할 것도 없어. 좋은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흐뭇할 것도 없고, 끼니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애내고 성을 것도 없어.


모든 것은 인연에다 맡겨. 밥이면 , 죽이면 , 밥이 되면 대로 숟갈 먹고, 밥이 질면 대로 숟갈 먹고, 그저 닥치는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고 먹는 , 입는 , 사는 일체 것은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그저 우리가 단속할 것은 생각 생각이 눈에 보이는 매서운 회초리로 자기를 채찍하면서이뭣고?’ 단속하는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성도재를 맞이해서 사실은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용성(龍城) 큰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하신 법문을 듣고 저는 법상에 올라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듣고 들어도 들을 때마다 대신심과 대분심이 솟구쳐 올라서 제가 올라와서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해야 것인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역시 여러분들께서도 그러한 감격으로 법문을 들으셨을 줄로 생각을 합니다.


성도재를 맞이해서 정말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들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자기의 신심(信心) 과연 철저했는가?

자기의 분심(憤心) 정말 철두철미(徹頭徹尾)했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 생각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단속해 왔는가다시 한번 반성을 하고, 오늘부터 새로 출가한 마음으로 정진하시기를 다짐하면서 내려가고자 합니다.(397~5619)()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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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겁(塵墨劫) ; 티끌[]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진즉(趁卽 좇을·뒤쫓아 따라붙을 /·즉시 )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여실(如實) ; 사실과 같게.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 8(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 날에 행하는 법회.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움직일 /머금을·품을 /신령·신령할 )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각성(覺性). 자성(自性).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마니주(摩尼珠) ; 마니(摩尼)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ṇi 음사(音寫). (), 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똥항(똥缸 항아리 ) : 재래식 화장실(칙간)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법계(法界) : [] dharmadhatu  dharma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들어 말하고  dhatu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萬有)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성품(法性)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십법계(十法界) ;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가지로 분류한 세계. 10가지의 생존의 영역. 지옥·아귀·축생·수라(아수라인간·천상·성문·연각·보살·() 10계를 십법계라 한다.

십법계 중에서 앞의 여섯 계는 삼악도(三惡道 지옥·아귀·축생) 삼선도(三善道 수라·인간·천상) 나뉘는데, 모두 미혹의 세계로서 범부(凡夫) 세계이다. 뒤의 (성문·연각·보살·불佛) 깨달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성인(聖人) 세계이다.

*십선(十善) ; 십악(十惡) 행하지 않는 .

*십악(十惡) ; () () ()으로 짓는 가지 죄악.

〇몸()—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 삿된 음행).

〇말()—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 ).

〇뜻()—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모르는 욕심) ⑨진에( 성냄) 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 신도가 지켜야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 있는 것에 ()하지 말라.

*교만(憍慢) ; (, mada) 자신 스스로 자신의 장점들에 대해 그릇되이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하게 되어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성질을 뜻하고, (, māna)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과 비교하여 갖는 마음의 오만한 상태를 뜻한다.

*간탐(慳貪 아낄 /탐할 )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음.

*우치(愚癡) ; ①삼독(三毒, ··) 하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른다. ②매우 어리석고 못남.

*사제(四諦) ; () ‘sacca’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 괴로움)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

①고제(苦諦,苦聖諦). ‘(,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 ()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 괴로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정어(正語, 바른 )•정업(正業, 바른 행위)•정명(正命, 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 바른 집중)—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 무명(無明)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

무명(無明)---> ()---> ()---> 명색(名色)---> 육입(六入)---> ()---> ()---> ()---> ()---> ()---> ()---> 노사(老死).

무명(無明)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 생겨난다.

형성() 조건으로, 의식() 생겨난다.

의식()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 생겨난다.

명색(名色) 조건으로, 6가지 감역(六入) 생겨난다.

감역(六入)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 이루어진다.

접촉() 조건으로, 감수() 생겨난다.

감수() 조건으로, 갈애() 일어난다.

갈애() 조건으로, 집착() 일어난다.

집착() 조건으로, 존재() 생겨난다.

존재() 조건으로, 태어남() 생겨난다.

태어남()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 생겨난다.

무명(無明)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 사라지고, 형성() 사라지면 의식()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 사라진다.

*연기(緣起)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일어남을 이르는 .

만약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若有此則有彼), 만약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若生此則生彼). 만약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어지고(若無此則無彼), 만약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若滅此則滅彼).” (중아함경)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평등일승(平等一乘) ;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 있다는 가르침을 가리켜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을 닦아야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그곳. 또는 이곳.

*백만사(百萬事) ; 모든 .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 [] 맞붙을[相接]정도로 바짝 마름.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침륜(沈淪 잠길 /잠길·잔물결 ) ; 물속에 가라앉음.

*성문(聲聞) : [] sravaka [] savaka  부처님의 음성() 들은[] 사람이라는 .

모든 중생을 널리 건지겠다는 원을 세우지 않고, 자기의 공부만을 힘쓰는 가운데 부처님이나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소승의 사제법(四諦法) 깨쳐서 번뇌 망상을 끊고, () 없어져서 열반에 들게는 되지마는, 열반은 얕고 작은 나머지 있는 열반(有餘涅槃) 아직 덜된 열반에 들어 있는 이를 이름이다.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①홀로 연기(緣起)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 연각승(緣覺乘) 준말.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사목고회(死木枯灰) ; 고목사회(枯木死灰).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枯木] 불기운이 사그라진 식은 [死灰]. 외형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되어 생기가 없다는 의미.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 마음작용[心所]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 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 적정(寂靜) 비견된다. 멸정(滅定) · 멸진등지(滅盡等至) · 멸진삼매(滅盡三昧) · 상수멸정(想受滅定) ·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생각(叅究一念).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무심(無心) ; ①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意) 있다.

 

 

 

 

 

------------------(2)

 

*비상(砒霜) ; 비석(砒石) 열을 가하여 승화(昇華)시켜서 결정 상태로 만든 한방 약재. 비상은 그의 독성 때문에 사약(死藥)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농약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약용으로 거담제와 학질 치료제로 쓰였으나 독성 때문에 현재는 쓰지 않는다.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킨다.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탐착(貪着) ; 만족할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아수라장(阿修羅場) ; 수라장(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 제석천(帝釋天)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 또는 그러한 상태.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제일구(第一句) ; 처음 한마디 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 ②말로써 표현할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

삼구 : 첫째 구는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 불조(佛祖) 다르지 않다. 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 스승이 되고, 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 스승이 되고, 3구에 깨달으면은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약 12분.

[참고] 전강선사 법문(No.011) (경술 70.12.03)—'전강선사 일대기 4'에서.

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내가 한번 인가(印可) 받고, 물으면 내가 ()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會上)으로 올라갔다 그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벌써 정영신(鄭永信)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모녀(먼저) ‘그렇게 알았다 것도 ,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듣고 있고,

왔다소문이 그래정영신이가 왔다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정영신이가 여기 왔다는디...’ 그런게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 그렇습니다.”

 

, 글안해도(그렇지 않아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 그려(그래)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 한번 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

그때 한참 제방(諸方)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 금당에서 시작이 되었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데,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데, ‘제일 옳게 답을 했다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무렵 스님 답한 제일귀 답을 듣고!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가 그래 버린 거여.

그러면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하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 요렇게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든. 아니니라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구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구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 묻길래, 답을 보란 말이여 .

 

저번에 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이걸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일러주는(읽어주는) 봤지만 어저께 청암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 . “ 잘했다.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얼마를 일렀는데 좋다.

 

,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사투리에 뭣에 , 듣기 싫어! 내가 놓고도.

그런데 인자 () 그대로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 그런게 없드구만. 그런데 나는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높은 음성으로)

대답이 그려?  “허든지 그러지, “?” 그려? ?” ?”그려? 그것 ... 「왜?” 그려?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 세상에...

 

?” 그러니까, ‘여하시제일구여?’ 묻거든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그말이여. . 어른 가운데 불사스럽지마는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허고서는큰스님 일러 줍소사, 큰스님 일러 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

그때는. “?” 그것 아니여. “.” 그러니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내가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말이여.

 

세상에 법전(法殿),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대중이 그때 오십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 했느니라. 전신을 못했구나.”

전신(轉身)—‘구를 ()’, ‘ ()’, “전신을 못했느니라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말이여. 구르지 못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 물어 줍소사.”

 

용성 : “,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하기를... ?,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하기를

영신 : “낙하(落霞)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 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끝에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인가(印可), ‘옳다,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말이여.

그러면 옳다, 그르다 것을내가 무슨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해 주기를 옳다, 그르다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던 날이여. 사흘 되던 날이여. 3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 했어. “!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 영신이가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 하십니까?” 하동산 스님은 그랬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은, 영신이가 어째서 그렇게 속았다고 그런 말씀하십니까?”

어른 말이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말이여.

 

나는 들었는데, 대중에 그랬다 그말여. 그때 대중에는 누가 있었냐 하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죽은 죽었구만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말을 했어.

,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말이여.

 

떠나 버린 뒤에 인가한 것이여! 그게 ,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 무엇이여! 어디 옳다는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했으면은 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당신이 속은 알어. 학자한테는 속지 않나? , 이거.

 

거그서 내가 문답을 터억 마쳤어. 그러면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아니라, 뒤에 그러고 갔는데 거그 말이 퍼져 버렸제.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지금) 내가 이렇게견성했다하고 돌아 댕기면서지마는, 선지식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스님까장 밖에 시방 했다 그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봤거든.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말이여.(6726~7931)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 .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철두철미(徹頭徹尾)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6. 1. 15. 10:37

§(422)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대혜종고 선사 법문()이라 하는 것은~’ /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 (게송)수류상출몰~.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단속해 나갈 것인가? 분명하게 가운데 말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걸 버릴라고도 하지도 말고서 오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일체처 일체시에 떠억 거각을 나가라 그말이여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출가할 하고, 이렇게 선방에 아주 들어와서 방부를 들이고 참선 하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있는 자리에서이뭣고?’ 들으라 이거거든. 이뭣고?’ 눈으로 그때 들고, 귀로 소리를 들을 드는 것이지, 보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라, 듣자마자이뭣고?’ 챙기면 바로 자리가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여.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어찌 머리를 깎은 스님에게만 확철대오(廓徹大悟) 있겠습니까?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한 데에나, 시끄러운 데나, 일용응연처나, 사량분별처우리 중생은 사량분별을 여의고는 1분도 지내지를 못하는데바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걸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들으라 말입니다.

 

**송담스님(No.422)—90 7 첫째일요법회(90.07.01) (용422)

 

(1) 약 20분.

(2) 약 8분.

 

(1)------------------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대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花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야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이요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花村)이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돌고 돌아서 더워졌다 추워지고 추워졌다 더워져.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좋다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 와서 잎이 피고 삼복성염(三伏盛炎) 돌아와. ‘! 이거 더워서 못살겠다하면 어느덧 입추 처서가 돌아오면은 조석(朝夕)으로 서늘바람이 온다.

서늘해서 인제 좋다 싶으면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서 입동 소설 대한이 돌아온다. ‘! 이렇게 추워서 수가 없다, 얼어죽겠다싶으면은 입춘 우수가 돌아온다 그말이여.

 

그러는데, 사람도 나서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우는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금방 유치원을 가고, 금방 유치원을 다니는가 싶으면 얼마 후에 보면 벌써 중학생이 되고, 얼마 후에 보면은 대학생이 되고, 얼마 후에 보면 벌써 첫아들을 낳았다고 그런다 그말이여.

첫아들을 낳은 지가 엊그제인데 금방 환갑이 돌아왔다그러고손자를 봤다 그런다 그말이여. 아마 자리에 앉으신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淸信女) 분께서도 당신의 일생을 돌아다보면 이와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게 되는데, 원숭이란 놈은 꽃이 피고 꽃이 곳에는 맛있는 열매가 열려, 육화촌(六花村)—여섯 가지 꽃이 피는 마을을 항상 그리워한다 그말이여.

 

그런데무엇을 원숭이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고 비유를 했냐?’하면은 시시각각으로 이렇게 죽음을 향해서 우리는 가고 있는데,

눈으로는 예쁜 것을 보고자 하고, 귀로는 좋은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데에 정신을 쏟고, 코로는 좋은 향내를 그리워하고, 혀로는 맛있는 음식에 끄달리고, 몸뚱이로는 부드러운 옷과 가벼운 , 울긋불긋하고 좋은 옷을 입을려고 그러고, 우리의 마음으로는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를 좋아하고 명예와 권리를 탐한다.

 

이러한 것이 마치 원숭이란 놈이 육화촌의 아름다운 꽃과 향기와 맛있는 음식 과일을 그리워해서 밤낮 거기만 들락거린 거와 무엇이 다르냐 그말이여.

귀를 통해서 좋은 소리를 듣는 데에 탐착하고,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탐착하는 동안에(耳聲眼色曾無暇), 생각 생각 초가 지나가면서 우리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망각할 수가 있겠느냐?(念念那知是死門)

 

 

그래서 우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완성을 대혜종고(大慧宗) 선사는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선()이라 하는 것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응연처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때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계를 일용응연처라 그러는 거여.

사람을 만나서 얘기 하나, 일을 하나, 먹고 입고 누는 그것이 일용응연처인데 거기에도 참선은 있지 않어.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어. 과거 일을 생각하고, 미래 일을 생각하고, 현재 일을 생각하고 일체 것을 생각하고 따지는 거기에도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것이냐? 고요한 , 시끄러운 , 일용응연처, 사량분별처를 버리지도 말아라.

거기에, 고요하고 시끄럽고 일용응연(日用應緣)하고 사량분별(思量分別) 거기에 있지 아니하니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단속해 나갈 것인가? 분명하게 가운데 말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걸 버릴라고도 하지도 말고서 오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이뭣고?’ 사람은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사람은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字)’ 사람은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사람은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일체처 일체시에 떠억 거각을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안되어도 안된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이뭣고?’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이뭣고?’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잡드리 나가면 나중에 순일무잡(純一無雜) 경계가 오고야만 말아. 들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면서 순일무잡해지거든.

 

순일무잡해지더라도 조금도 좋아하는 생각도 말고, ‘! 이것이로구나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 이럴 빨리 터졌으면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이럴 어느 선지식을 만나서 깨닫게 해줬으면그러한 생각도 내지 말어.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지각심(知覺心)이라 하는 거여.

애써서 잘되아 가는 데다 뿌린 거여 그게. 그런 생각을 내지 말고 잡드리 나가면 어떠한 찰나에 홀연히 축착합착(築着磕着)해서 ! 터지게 되는 거여.

 

이것이 바로 자신의 몸속에 있는 살림살이여. 자기한테 있는 것을 자기가 깨닫는 견성성불하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병이 나면 건강할 때를 기다리고, 일이 바쁘면 일이 끝나기를 바래고, 시끄럽고 복잡하면은 조용하기를 기다리고, 밤낮 기다리다가 세월이 지내간다 그말이여. 아들 대학이나 들여보내 놓고, 시집이나 보내 놓고, 인제 아들 장가나 보내 놓고 선방(禪房) 가서 하리라.

 

일이라 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어. ‘ 다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이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세상에 온갖 인연을 맺어놓고 많은 빚을 져놨기 때문에 다하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용기를 다해 가지고 ! 끊어 버리고 출가를 하던지—‘자식이고 딸이고 자기 있으면 잘살 것이고, 자기가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은 좋은 시집 장가갈 것이고, 내가 신경 없다. 살림도 자기가 있으면 잘살 거다. 내가 신경 없다

! 끊어 버리고 아주 머리를 깎아 버리던지, 선방에 와서 아주 방부(房付) 들이고 죽이 끓거나 밥이 끓거나 모르쇠 하던지, 대용기가 있으면 한번 그렇게 만한 것이고.

 

그렇게까지 용기가 없으면 괜히 있지도 못한 용기를 가지고 댕겅 머리부터 깎았다가 며칠 가서 가발 쓰고 갈라고...  , 그런 출세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끊고 들어올 수만 있으면야, 중국 청나라 순치 황제는 천자의 지위도 버려 버리고 나온 예도 있고, 부처님은 머지않아 자기가 임금이 있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태자의 신분도 버리고 출가를 했고, 달마 스님도 향지국에 3 왕자의 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버리고 출가하고,

이러한 예를 들자면은 인도, 중국, 한국에 끝도 없지마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기를 나는 여러분께 재촉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출가할 하고, 이렇게 선방에 아주 들어와서 방부를 들이고 참선 하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있는 자리에서이뭣고?’ 들으라 이거거든.

 

이뭣고?’ 눈으로 그때 들고, 귀로 소리를 들을 드는 것이지, 보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라, 듣자마자이뭣고?’ 챙기면 바로 자리가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여.

그렇게 평소에 잡드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와서 선방에 와서 달씩 있을 있게 오신다면 그때는 누워서 먹기야. 잘될 것이다 그말이여.

 

집에서 복잡한 살림살이 속에서 바로 그때 장소에서 자꾸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시간 나는 대로 30분씩 시간씩 잡드리를 나가면, 그렇게 잡드리를 놓으면 나중에 머리를 적당한 ! 깎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가발 같은 쓰게 것이다 그말이여.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어찌 머리를 깎은 스님에게만 확철대오(廓徹大悟) 있겠습니까?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한 데에나, 시끄러운 데나, 일용응연처나, 사량분별처우리 중생은 사량분별을 여의고는 1분도 지내지를 못하는데바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걸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들으라 말입니다.

 

 

, 그러면 10 동안만 죽비() 치고 입선(入禪)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셔서 반가부좌(半跏趺坐) 하고 몸을 좌우로 서너 흔들어요. 흔들어서 한가운데에다 안정을 시켜.

몸은 단정하되 어깨의 힘을 빼고, 목도 머리도 전후좌우로 삐뚤어지지 않게 단정하니 하되 목에 힘을 빼고, 눈은 부릅뜨거나 감지를 말고 평상(平常)으로 떠요. 어금니는 지긋이 물어. 너무 물지 말고 가만히 맞닿도록 그렇게 하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 갖다가 대고서...

 

(죽비입선죽비)

 

이렇게 잠시 같이 입정(入定) 뜻은, 여러분은 댁에 돌아가시면은 집에 가서 삼십 분도 하시고, 시간도 하시고, 시간도 하실 있겠고 선방에 계신 스님네나 보살님네는 하루에 여덟 시간, 시간을 얼마든지 하실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법회에 이렇게 법당에 이렇게 같이 모이셨으니 인연으로같이 죽비를 치고 같이 입선한 인연으로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도 같이 가서, 분도 낙오자가 없이 같이 가서, 거기서 같이 만나, 같이 가서 미륵(彌勒)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같이 확철대오 하고,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연이 있어서 다시 하강하게 되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같은 형제간이 되고, 같은 도반이 되고자 해서 일부러 이런 시간을 갖고자 것입니다.(3248~5210)

 

 

 

 

 

(2)------------------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고  불체왕래종(不滯往來)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하고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고, 흐름을 따라서, 인연 따라서 나왔다 죽었다 왔다갔다 이렇게 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이요. 가고 오는 자취에 맥힘이 없어.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 취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아라. ‘()한다 하는 것은 집착하는 것이고, ‘버린다 하는 것은 그걸 멀리 할려고 하는 거다 그말이여.

 

모든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취할려고 하지도 말고, 취하는데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려고 하지도 말아라. 그러면모든 애착을 버리라그러는데, 애착을 버리면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모두 버리고 사업도 버리면 모든 사람이 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말이여.

 

()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말은 취하되 취한 바가 없고 버리되 버린 바가 없어.

취할 것을 취하되 취한 데에 집착하지 말고, 능히 버려야 것을 버리되 버린 데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거거든.

 

친하고 성근 , 친소(親疎) 끊어 버려라그러는데, 친소를 끊어 버리면 부모자식 간은 친한 사이고 친구 간도 친한 것이고, 스승 상좌도 친한 것인데, 친한 것을 끊어 버리면은 그거 어떻게 되냐 그말이여.

친할 것을 친하되 친한 데에 집착하지 말고, 성근 것을 집착하지 않고 버리되 버린 바에 집착하지 않다이건 대단히 말로는 쉽지마는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히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아니해.

 

그러나 친한 가운데에 화두(話頭) 들면 친한 집착하지 않고, ‘취하되 취한 바에 집착하지 않는다하는 것은 취하되 화두를 들면 집착하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들고,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것으로 생활화하면, 생활 속에 충실하되 집착한 바가 없으니 그것이 바로 취사(取捨) 없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고,

인간은 친소(親疎) 속에서 친소의 인연 속에서 살아가되 화두를 들고 모든 사람을 상대해 나가면 친하다고 해서 애착에 떨어질 것이 없고, 성글다고 해서 원수처럼 원수를 맺을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오늘 가지 광고 것이 있습니다.

해마다 중고등부 학생회 어린이 학생회에서 행하는 수련대회가 있는데 중고등부는 8 6일부터서 8 9일까지 34일로 해인사로 가서 수련대회를 갖게 되고, 어린이 학생회는 8 11일부터서 8 13일까지 23일로 천안 광덕사로 수련대회를 가게 됩니다.

 

구체적인 것은 사무실이나 교무 스님께 의논을 해서, 여러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의 자녀들이 있으면 수련대회에 참석을 하도록 그렇게 권장을 합니다.

 

모두 시험, 입학 시험이다 과외공부다 모든 그런 계획이 짜여져 있어 가지고어떻게 그런 황금 같은 시간을 34, 23일씩 그렇게 수가 있겠는가? 된다. 어쨌든지 시간이라도 공부를 해야 좋은 학교에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이 드시겠지만,

방학 동안에 34일이나 23 수련대회를 갔다오면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고 신심이 돈독해서 마음속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깨끗이 씻어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불보살(佛菩薩) 가피(加被) 짊어지고 가슴 가득히 돌아오면 업장이 소멸이 되었으니 공부가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가 저절로 잘되어 것입니다.

 

어쨌든지 인원 초과가 되어서 교무 스님이 쩔쩔매도록, 차라도 불러야 정도로 그렇게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오늘 법회 법어를 마치겠습니다.(5211~60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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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삼복(三伏) ; ①일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 아울러 이르는 .

*성염(盛炎 성할 /불꽃·더울 )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서늘바람 ; 첫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혜종고(大慧宗)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이라 하는 것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

[참고]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47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30) 【宋 온문(蘊聞)編】 19示妙證居士(묘증거사에게 보임)(聶寺丞)’에서.

禪不在靜處。不在鬧處。不在思量分別處。不在日用應緣處。然雖如是。第一不得捨卻靜處鬧處日用應緣處思量分別處參忽然眼開。都是自家屋裏事.

 

() 고요한 [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때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계)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 정처(靜處) 요처(閙處)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자기 집안의 )입니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 ①자기 집안의 . ②자기의 내부에 갖추어져 있다는 . 가리사(家裏事옥리사(屋裏事)라고도 한다.

불법의 진리를 깨치고 보면 인간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번뇌와 보리, 부처와 중생, 모든 것이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 ; 선지(禪旨) : []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타연나(駄衍那) 쓰고,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하여 닦음(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 등으로 번역한다.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중국에서는 가섭존자가 전한 선법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교법만이 유포되었었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 건너온 뒤로부터 선법이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 완성되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아래짝이 서로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선실(禪室) 같은 .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참선하러 절에 간다또는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모르쇠 ;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모른다고만 하는 .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개당보설(開堂普說)’, 거사(龐居士)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 들어가는 .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身口意) 삼업(三業) 갈무리는 . ②수행하기 위하여 안에 들어앉는 .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2)

 

*(게송) 隨流常出沒  不滯往來 ;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25, 처인선사(蘄州靈泉山處仁禪師) 참고.

*(게송) 頭頭無取捨  處處絶疎親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17, 월암선과선사(潭州大溈月庵善果禪師) 참고.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 사라져 없어짐.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Posted by 닥공닥정
간절 절(切)자2015. 11. 11. 07:58

 

 

§(500)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간절 ()자 /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몰아 본참공안으로 나아가라 / 화두의 힘.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

 

‘간절 ()’, 간절한   글자는 최친절구(最親切句)여. 가장 정진해 나가는데 그보다  요긴하고 친절한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의심이 수만 가지 의심이 있겠으나 그러한 의심, 어떠한 종류의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의심을  군데로 몰아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로 나아가라 그거거든.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혼탁해질수록에 활구 참선객(活句參禪客)은 정말 발심을 하고, 정말 분심을 내서 화두를 드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거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발심한 사람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공덕으로 나라가, 사회가, 세계가 좋아질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청정한 깨끗한 물이 합해져 가지고  강물이 되어서 바다로 들어가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으로 정진해서, 한 마음 한 마음이 깨끗해짐으로 해서 법계(法界)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생각 동(動)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되는 것이고,  생각 동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천상에도 가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진여불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볼품없이 생겼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과소평가해서는  . 우리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라고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 생각을 돌이켜야 한다.

 

**송담스님(No.500)—93 동안거해제  백일기도 회향(93.02.06) (용500)

 

(1) 약 19분.

 

(2) 약 12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진로를 해탈하는 것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여. 긴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 지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같으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강추위한 뒤끝에 매화가 피어야  매화꽃에서 진한 향기가 풍기는 법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 난동(異常暖冬)으로 뜨뜻하고  번도 강추위가 없이 매화꽃이 피면 아무 향취가 그렇게 진하지를 못한다 그거거든.

 

생사해탈(生死解脫),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해탈을 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가행정진, 용맹정진 해서 정말 철두철미(徹頭徹尾) 정진한 뒤에야사 비로소 확철대오가 있지, 정진을 시원치 않게  놓으면 무슨 소견이 나봤자 아무 매카리가 없다 그거거든.

 

정말 크게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여.

의심이 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놈이 터질 때에는 정말 나의 면목을 투철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게송인데,  게송은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데 매우 친절하고 요긴한 게송이라 때때로  게송으로써 경책(警策)을 하면 공부가 자연히 힘이 있고 향상  것이다.

 

 

오늘은 계유년 정월 15일로, 임신년 동안거 구순 안거(九旬安居)의 해제날이여.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해제 법문을 우리가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자리에는 용화사 대중  용주사, 위봉사, 세등선원, 회룡사 그리고  수원 화운사 대중과 여러 사부대중이 해제일에 이렇게 운집을 했으므로 그동안에 삼동(三冬)에 정진하느라고 모다 애쓰고  해제를이렇게 맞이해서 함께 모였으니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에게 불가불 격려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공부는 밤낮 하려고 애를 쓰고, ‘이 철에는 한번 정말 철저하게 한번  보리라’하고 결제를 합니다마는,

하다가 보면 단단히 몽그린,  이를 악물고 시작을 했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일이 지나면 풀어지고, ‘여기서 한바탕  보리라’고 주먹을 쥐어도 1분 2분 3분 지내다 보면 자기도 모른  느슨해지거든.

 

더군다나 우리는 정말 발심(發心)을 해서 오직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가를 했고,

 신남신녀(信男信女),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한바탕 해보려고 가정사를  버리고 이렇게 모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하기는 했지만, 시일이 지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느슨해지거든.

 

그래서 박산무이 선사(博山無異禪師)도 우리 후래(後來)를 위해서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공부를 짓되 ‘ 간절 절(切)’, ‘간절 ()’,  한 자(字)가 가장 요긴하다고 말씀을 해.

 

간절(懇切)한 마음이 없으면 반드시 해태(懈怠)한 마음이 생기고 해태심이 생하면 방일(放逸)하게 된다. ‘방일’이라 하는 것은 그럭저럭 지내는 거여.

그래 가지고 간절한 마음이 풀어져 버리면 결국은 잡담을 하게 되고, 눈으로 보고 듣는 데에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고 거기에 시비심을 내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다 보면은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그래서 정말  생각 간절한 생각이 있으면 방일, 해태가 어디서 나오며 ‘간절 ()’  자만 !  있으면 고인(古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고, 생사를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 없느니라.

간절한  마음이 ! 있으면 선(善), 악(惡), 무기(無記),  삼성(三性)을 당하(當下)에 초월할 수가 있다. 정진해 나가는데 간절한 마음이  있고 보면 선도 생각할 것도 없고, 악도 생각할 것도 없고,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아.

 

정진을 하다 보면은 망상도 없고처음에는 망상이 일어나서  망상 속에서 화두를 들라고 갖은 애를 쓰고 하는데 얼마 동안 애쓰다보면 망상도 없고, 멍하니 화두도 없고 그런 무기(無記)에 떨어진다 그말이여.

그러면 시간이 가는 중도 모르고 하나도 복잡하지도 않고 괴로운 생각도 없고 편안하고  좋은  같은데, 무기한 경지에 떨어지면 그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주 막혀버린 거여.

 

화두가 간절하면은 그런 무기공(無記空)에도 떨어지지 않어야. 화두가 시원찮으니까, 간절한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 무기의 경지에도 떨어지는 것이다. 혼침(昏沈)도 거기서는 간절한 생각 앞에는, 간절한 의단 앞에는 혼침도 거기에는 없고 망상도 거기에는 일어날 수가 없어.

 

정진하는데 매양 혼침과 도거(), 도거는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도거고, 혼침은 졸음에 떨어지는 건데, 여름에는 더워서 혼침에 떨어지고 겨울에는 뜨뜻한 방에 문을 닫고 여럿이 앉았으니공기가 탁해져 가지고 그래 가지고 혼침에 떨어지는 수가 많다.

그래서 겨울에는 참선하는 방이, 선실(禪室)이 너무 더운 것은 별로 좋지 않아. 약간 산산한 기운이 있어야 혼침에도 떨어지지 않고 정진하기에 좋다.

 

‘간절 ()’, 간절한   글자는 최친절구(最親切句)여. 가장 정진해 나가는데 그보다  요긴하고 친절한 것이 없다.

‘간절 ()’자가 하나가 ! 서있으면 공부해 나가는데 화두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들렸다  들렸다  것이 없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두를 들면 있고, 잠깐 지나면  끊어져 버려.

 

간절한 의단이 독로하면 마구니가 틈을 엿볼 수가 없어. 마구니가 들어올 틈이 없다 그말이여.

마구니라 하는  머리에  돋친 그런 무섭게 생긴 귀신을 어릴 적에는 연상(聯想)을 했지마는, 간절한 의심 이외의 생각은 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이나 그게  마구니의  모습이거든.

 

그런 마구니가 모습을 나타날  !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버리면 마구니가  곳이 없어지지만,

일어나는 생각이  생각,  번째 생각,  번째 생각으로 번져가도록 화두를 드는 것을 잊어버리면 정말 마구니의 올가미에 끌려 나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마음이 간절해서 간절한 의단을 추켜들면 사량복탁(思量卜度)— 생각  생각 하고,

심지어는 화두에 대한 사량복탁은 다른 망상보다도  못쓴 것이다 그말이여. 공안을 갖다가 사량분별로 따지고 분석하고 이런 것은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장애가 되는 것이다.

 

번뇌 망상, 보통 세속적인 번뇌 망상보다도 화두에 대한, 공안에 대한 분별로 이리저리 따지고 그런 것은 외도(外道)에 떨어지는 무서운 함정이다. 그래서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간절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그것이 가장 요긴한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를 한철,  ,    나가다보면 이상하게 무슨 시(詩)가 저절로 튀겨져 나와.

어떤 경계를 보면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한글 시가 나오는 수가 있고,  한문을 아는 사람은 한문으로생전 시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그렇게 시가 자꾸 짓고 싶고 속에서 이렇게 저절로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러한 것에  붙여 가지고 시를 짓고 글을 짓고 하면 그것은 수행자가 아니고 그것은 시승(詩僧)이요, 문자승(文字僧)이다. 그런 데에 재미를 붙여서 세월을 보내면은 참선하고는  길이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그런 시를 짓고 글을 짓고 하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역순경계(逆順境界)를 만났을 때에—해제를 하고 나가면은 순경계(順境界)도 만나고, 역경계(逆境界)도 만나고 그러기 마련인데 그러한 경계를 만나서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들도록 하라.

순경계에 만나서 그리 끄달리고, 역경계를 만나서 끄달리다 보면 공부해 나가는 학자에게는  손해가  것이다.(처음~1854)

 

 

 

 

 

(2)------------------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어다

나무~아미타불~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에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야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다.  가지 의심을  몰아서  의단(疑團)으로 나아가라.

 

세상의 모든 의심나라의 의심, 정치에 관한 의심, 경제에 관한 의심, 교육에 관한 의심, 자식에 대한 의심, 그런 의심. 또는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 조사어록이나 조사의 법문에 대해서 어떠한 의심.

자기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여러 가지로 의심이 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공부해 나가는 방법에 대한 의심, 어떠한 경계를 만났을 때의 의심.

 

의심이 수만 가지 의심이 있겠으나 그러한 의심, 어떠한 종류의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의심을  군데로 몰아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로 나아가라 그거거든.

 

그래 가지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여. 의심해 가고 의심에 . 그래서 화두에 대한 의심 ‘이뭣고?’

‘이뭣고?’ 하다가  『그 이뭣고?’  의심하는 그놈』을 다시  의심을 하라!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모름지기  용(龍)을 때려잡고 봉(鳳)을 잡는 그러한 용맹한 사람이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다.  주먹으로 쳐서 쇠로 이루어진 성벽 관문을 갖다가 쳐부술 수가 있을 것이다.

 

눈에 본 대로, 귀로 듣는 대로, 크고 작은 수없는 의심을 낱낱이 그것을 따져서 알라고 그러고, 그러다가 보면 언제 공안을 타파할 것이냐 그말이여.

 가지,  가지의 경계를 당해서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점점 혼탁해지고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비관적으로 본다면 정말 나라꼴도 걱정이 되고, 경제 교육 모든 문제가 걱정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세계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말 발심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우리 학자는 그러한 걱정을 낱낱이 다 하고 있을 겨를이 없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혼탁해질수록에 활구 참선객(活句參禪客)은 정말 발심을 하고, 정말 분심을 내서 화두를 드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거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발심한 사람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공덕으로 나라가, 사회가, 세계가 좋아질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한강이나 낙동강이나 금강이나 그런 강들이 강물이 어디서부터 나왔냐 하면 차츰차츰 거슬러 올라가면  수원(水源), 원천(源泉)이 있거든.

거기서 부터서 물줄기가 흘러내려 오고, 내려오다 보면  다른 골짜구니에서도 또 물이 내려오고 해서 차츰차츰 합해져 가지고 두만강도 되고, 압록강도 되고, 한강도 되고, 낙동강도 되고, 금강도 되고.

 

참선하는 사람이 여기서 저기서, 스님네는 용주사에서, 위봉사에서, 세등선원에서, 회룡사에서, 화운사에서 각기 자기가 결제한 그곳에서 용맹정진 가행정진을 하고,

 청신사 청신녀들도 선방에 방부 들일 때는 방부 들인 선원에서, 해제를 하고 댁으로 돌아가시면 댁에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정진함으로 해서 사람이 정진함으로 해서 주변이 맑아지고, 주변이 청정해져.

 

청정한 깨끗한 물이 합해져 가지고  강물이 되어서 바다로 들어가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으로 정진을 해서, 한 마음 한 마음이 깨끗해짐으로 해서 법계(法界)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 정법(正法)을 믿고 바르게 정진을 하면 십리(十里) 안통이 맑아지고, 더욱 정진을 하면 백리(百里) 안통이 맑아져. 더욱 정진을 하면 천리(千里) 안팎이 맑아진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한 마음이 깨끗하면 법계가 청정하다』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원각경에 말씀하시고, 화엄경에도  말씀을 하셨어.

 

 생각 !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힘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는 이것을 보통으로 생각해서는  .   선지식만이 그런  아니여. 누구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생각 ! 돌이킬  그러한 엄청난 힘이 나온 것이다.

 그러냐 하면은 우리도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

 

 생각 동(動)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되는 것이고,  생각 동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생각 동해 가지고 천상도 가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진여불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볼품없이 생겼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여.

!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과소평가해서는  . 우리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라고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  생각을 돌이켜야 한다 그말이여.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냥 방일(放逸)해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그럭저럭한 인생 밖에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불법의 흥망성쇠가   몸에 달렸다’고 하는 그런 사명감을 우리는 가져야 하는 거여. 그렇게 그런 사명감을 가질  우리는 1 1초인들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1857~302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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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뒤끝 ; ①일의  나중이나 . ②어떤 일이 있은  바로 . ③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공안(公案)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철두철미(徹頭徹尾)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 기운이나 ) 속되게 이르는 .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경책(警策 깨우칠 ,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 하는데하안거(夏安居4 15일부터 7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 15일부터 이듬해 1 15까지)  안거 기간이 90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 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

*몽그리다 ; 몽구르다.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벼르거나 굳게 다짐을 하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박산무이 선사(博山無異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해태(懈怠 게으를 ,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방일(放逸 놓을 , 제멋대로 )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삼성(三性) ; 모든 현상을 윤리적 측면에서 (), (), 무기(無記) 나눈 .

*당하(當下)일이 있는  자리또는 그때.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멍하다 ; (사람이나 그의 머리가)얼이 빠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②몹시 놀라거나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얼떨떨하다.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매양 ; 번번이( 때마다). 항상.

*도거()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散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산산하다 ; 약간 추운 느낌이  정도로 사늘하다.

*최친절구(最親切句) ; 가장 친절한 .

*마구니 ; ().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 붙이다 ; 마음에 당겨 재미와 흥미를 느끼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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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의도취일의단~’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5) '贈蘭法師' 게송 참고.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법계(法界) ; 모든 현상, 전우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안통 ; 안쪽(안으로 향한 부분이나 안에 있는 부분).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5. 5. 12. 11:01

§(119)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경봉 스님과의 일화 / 참선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 / 이 세상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참선은 명예와 이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본참화두를 여법(如法)하게 거각하고 정진을 함으로써만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용119)


약 19분.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에 대해서 여러 차례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조(馬祖) 스님은 중국의 육조(六祖) 스님의 제자, 회양(懷讓) 스님의 제자로서, ‘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이라.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하는 달마 스님께서 그렇게 예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후대에 가서 마조라고 하는 대도인(大道人)이 나와 가지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 정법을 천하에 선양한다’고 하는 뜻으로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마조 스님께서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원상,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이 속에 들어가도 치고, 이 속에 이 둥그라미 안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겠다” 이렇게 어떤 승려, 도를 배우는 승려 앞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승려는 그 원상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딱 앉았습니다. 마조 스님은 주장자로 그 승려를 한 대 후려팼습니다.

그 승려는 탁! 마조 스님을 쳐다보면서 “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은 입을 딱 다물고서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이 공안(公案)은 마조원상(馬祖圓相)이라 해서 종문(宗門) 중에 공안 가운데에 최고 가는 공안으로 천년을 두고 선종 문중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공안은 조실 스님께서 육대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다 받고 만공 스님 회상에 가서 만공 스님의 너무나도 밝고 밝으신 지혜의 눈과 철두철미한 종사의 수단 아래 무릎을 꿇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정진을 하셔 가지고, 다시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공안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매양 ‘소식을 얻었다’고 하는 학자를 대할 때 이 공안을 많이 물으셨습니다.

경봉 스님께서, 지금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계신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처음에 깨달으셨을 때, 바로 마치 그때 거기에 당도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경봉 스님보다는 훨씬 연세가 아래였었지마는 바로 이 마조원상의 공안을 경봉 스님께 물어 가지고,
처음에는 경봉 스님께서 그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켔습니다.
거기에서 조실 스님은 “당장 이 송장을 끌어 묻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거기에서 한참 눈을 웅큼하게 해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 경봉 스님께서 “이제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해서 그때 보시니 아까의 경계와 판연히 달라서 경봉 스님을 산골짜구니로 끌고가 가지고 이 공안을 다시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께서 일르셨다고 한 말씀을 금방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각 선원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납자스님네도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신도 보살님 여러분들도 우리 용화사에서 지내신 분 또 다른 선방에서 공부를 하시고 오신 보살님네들도 여러분이 계십니다. 그동안 석 달 동안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시고 오신 분들입니다.

해제가 되면 으레이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 회상으로 모여 가지고 그동안에 공부했던 것을 탁마하고, 잘못했던 것을 대중 앞에 참회하고, 그렇게 해서 한철동안 지낸 공부를 총결산 하고, 반성하고 참회해서 다시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어서 공부를 해왔었습니다.

이 가운데에 참여하신 청신사 청신녀 그리고 비구 비구니 여러분들,
과연 지난 삼동(三冬) 안거 동안 정진을 하셔서 투철히 깨치신 바가 있으면 이 마조원상, 원상을 그려놓고 이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니 한번 자신 있게 일러 보시기를 바랍니다. 전강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수응(酬應)을 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 못 이르겠습니다”
“환귀본처(還歸本處)하라. 이르지 못할 것을 뭐하러 나왔느냐”

이 공안은 벌써 이를라고 생각을 움직이면 그르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실 때 ‘사자는 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는 축괴(韓獹逐塊)’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개한테 돌멩이를 던지면 개는 그 돌멩이가 무슨 명태 대가리나, 고기 덤뱅이 인줄 알고 그 돌멩이를 물으러 우르르르 쫓아가는 법이고, 사자는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는 쫓아가지 아니하고 돌멩이를 던진 그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명예와 이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답시고 물에 풍덩 뛰어들어가면 빠진 사람을 건지기커녕 자기까지 빠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을 제도할 원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깨닫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나를 깨닫는 길’은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우선(優先)해서 중요하고,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급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밥을 먹는 일도 급하고, 잠을 자는 일도 급하고, 세속에 우리가 맡은 모든 일들이 하나도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망각하고 오직 자식 생각만을 하시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는 우선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끄고 자식 불을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효자라 하더라도—그 효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부모만을 위하는 하늘에서 낸 효자라 할지라도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발등의 불을 쪼끔 오래 놔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잠시 뜨겁다가 마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기 발의 불부터 끄는 것입니다.

하물며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모이고, 권리를 많이 누리고, 명예를 하늘 닿도록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은 나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죽을 때 한 톨도 한 치도 그것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죽어갈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명예를 얻느라고 얻은 죄업(罪業), 재산을 얻느라고 지은 죄업, 권리를 누리느라고 지은 죄만을 산더미처럼 지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통곡을 하고 뉘우치고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과거의 무량겁에 지어 놓은 모든 죄도 소멸을 할 수가 있고, 이 공부에 철저하면서 세속적인 또는 인간적인 책임을 충실히 한다면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진리를 깨닫는 목적을 향해서 걸어가므로 해서 생사해탈을 기어코 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른길, 이러한 지혜로운 길 인간으로서 최고의 길이 바로 이 참선법이요, 불법이요, 정법인 것입니다.


지금 마조원상 법문을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여러분 앞에 물었습니다마는 이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내가 오늘 이르지를 못했으니 당장 집에 가서 경전을 뒤적거리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뒤적거려서라도 기어이 이것을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신다면 잘못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사 공안이 적혀있는 염송(拈頌)이나 무문관(無門關)이나 그 밖의 벽암록(碧巖錄) 같은 어떠한 어록을 뒤적거린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보지를 못했다면 찰나 간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것이 가장 지혜 있고 바른 수행인인 것입니다.

공안은, 화두는 절대로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더듬어서 알아맞출 수도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결론을 얻었다든지 사량심으로 알아졌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이요, 중생의 번뇌 망상으로 얻어진 것이라, 망상에 결국은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보기 좋게 생긴 사람을 만들어 놨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사람이 아니고 흙이나 석고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아무리 이쁘게 조각을 해 놨어도 아내로 맞이할 수는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본참화두를 여법(如法)하게 거각하고 정진을 함으로써만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억울할 때나 우리의 마음에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감정이 일어나건, 그 생각 그 감정 하나하나를 헛되이 놔 보내지 말고, 바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순박하게, 이렇게 진실하게, 이렇게 바보처럼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져 나간다면 결정코 우리는 생사를 해탈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11분49초~31분)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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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馬祖) 스님, 육조(六祖) 스님, 남악회양(南嶽懷讓)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〇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 조실 스님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4 - 26.
내가 25세 때 덕숭산 금선대에 계신 만공 스님을 처음 찾아가서 예배하니 나에게 묻기를 “심마물이 임마래오(甚麽物恁麽來)”하시었다. 내가 다시 예배하니 또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어?”하시었다.
이번에는 내가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니 만공 스님은 그만 얼굴을 찌푸리시면서 “허! 저렇게 주제 넘는 사람이 견성했다해. 네 습기(習氣)냐, 체면없이 무슨 짓이냐?” 이러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나를 보시기만 하면 비웃으며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을 했다 하니 말세 불법이 이럴 수가 있는가”하고 번번이 조롱을 하시었다.
나는 차츰 불안해지다가 분심이 났다. 선지식이 저러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몸은 극도로 쇠약하여 핏기가 하나도 없어 앉으면 잠이 와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짝 말랐다.

그래서 운동대를 붙잡고 서서 ‘에라!  한바탕 해봐야겠다.  그까짓 놈의 몸은 하다가 죽으면 그뿐이지’하고,
나는 만공 큰스님의 말씀을 믿고 그 회상에서 하안거 중 판치생모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하다가 반 철이 지날 무렵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 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확 드러났다.

그 길로 조실 방에 들어가 보월 스님 앞에 원상을 그려 놓고 묻기를 “마조원상 법문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入也打不入也打) >고 하였으니 조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이르시겠습니까?”하니 보월 스님은 곧 원상을 뭉개셨다.

나는 보월 스님께 말하되 “납승을 갈등 구덩이(葛藤窠臼)속에 죽이신 것입니다. 마조방하(馬祖棒下)에 어떻게 생명을 보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월 스님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에 문을 닫고 만공 스님 처소에 와서 다시 묻되,
“마조원상 법문을 보월스님께 물었더니 원상을 뭉개었습니다. 이렇게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하였더니 만공 스님은 도로 나에게 묻되 “자네는 어떻게 이르겠는가?” 하시었다.

내가 답하되, “큰스님께는 이르지 못하겠습니다”하였더니,
만공 스님이 주장자를 초안(初眼)이에게 주시면서 “자네가 묻게”하시니 초안 스님이 주장자로 원상을 그리고 “입야타 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해서, 내가 초안이를 보고 여지없이 일렀다.

그러나 학자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는다. 만공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점검하시되,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誰知更有夜行人)”하셨다.

그런 다음,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과의 서신문답과 기타 중요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를 낱낱이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했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시니,
내가 곧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하니 만공 스님께서 “옳다. 옳다!(善哉善哉)” 인가하시고 곧 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지어 주시되,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라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한데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로다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수응(酬應 응대할 수,응할 응) ; 남의 요구에 응함.
*사자는 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는 축괴(韓獹逐塊) ; ‘사자는 사람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느니라’
*咬(교)물다. 깨물다. *獹(로)개 이름. 전국시대 한(韓)나라 좋은 개 이름. *逐(축)쫓다. *塊(괴)흙덩이.
[참고] ①《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양주 왕경초 상시(襄州王敬初常侍)’에 '師子齩人  韓獹逐塊'
②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獅子咬人  韓獹逐塊'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9,47에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우선(優先)하다 ; (...보다, ...에) 딴 것에 앞서 특별하게 대우하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조사어록(祖師語錄) ; 어록(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15. 1. 10. 11:34

§(112) 법문을 옳게 듣는 길 /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 / ‘딴 생각[別念]’해서는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칠통(漆桶) 타파(打破).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조사(祖師) 공안상에 절대로 따져서 알려고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짐작을 한다든지, 더듬어 들어가는 그러한 식의 참선은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생각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 (용112)

 

약 18분.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우렁찬 음성으로 최상승 법문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따지고 분별(分別)하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장님이 코끼리 구경한 것 같고 또 귀머거리가 음악을 감상한 것 같아서,
한 시간을 통해서 들어도 대관절 내가 무슨 얘기를 들었는가? 무슨 법문을 들었는가? 주욱 종합을 해 보아도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그러한 느낌이 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 뜻은 이해를 못한다 하더라도, 그 법문을 들어서 귀에만 지내가더라도 그 인연으로 해서 무량겁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그 법문을 당장은 이해가 안 가지만 그 법문을 정성스럽게 듣고, 듣는 가운데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자기의 본참화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화두를 생각 생각이 간절한 의심으로 관조해 나간다고 하면은,

오히려 그 법문 내용을 소상하게 잘 이해를 해서 ‘아하! 이런 말씀이로구나. 이런 말씀이로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면서 들은 사람보다도,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그 뜻을 알 수 없는 그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어가는 사람이 훨씬 더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최상승 법문을 옳게 듣는 길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떠억 들어 보임으로서 법을 전하신 ‘영산회상(靈山會上)의 거렴화(擧拈花)’
또 다자탑전에서 자리를, 누더기를 입은 제자 가섭존자에게 자리를 노나서 앉히시는 ‘다자탑전(多子塔前)의 분반좌(分半座), 또 열반(涅槃)하셔서 곽 밖으로 두 다리를 써억 내미시는 ’곽시쌍부(槨示雙趺)‘ 이렇게 해서 3차례에 걸쳐서 법(法)을 전(傳)하신 법문을 하셨습니다.

영산회상에 꽃을 드는 도리나, 다자탑에서 자리를 노나 앉으신 것이나, 또 열반회상에서 곽(槨) 밖에 두 다리를 내보이시는 도리가 아무리 이론적으로 따져서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 도리'가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교리적으로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 이것은 이러한 뜻이로구나’ ‘영산회상에서 꽃을 드신 뜻은 이것은 바로 불교의 진여(眞如)의 체(體)를 전하시고 또 분반좌 하신 것은 용(用)을 전하시고, 곽시쌍부 하신 것은, 체와 용을 한목 전하신 것이다.’
이런 등속(等屬)으로 아무리 따져서 수긍(首肯)을 해봤자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더럽히게 하는 결과 밖에는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참다운 진리가 될 까닭은 더군다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조사(祖師) 공안상에 절대로 따져서 알려고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짐작을 한다든지, 더듬어 들어가는 그러한 식의 참선은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서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이래가지고서는 공부를 기껏 잘해 나가다 중요한 고비에 있어서 자기의 공부를 그르치는 게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여러 가지 공안이 있지만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도 받은 한 공안에 일여(一如)하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곧 잘되어갑니다. ‘이대로 해가면 얼마 안가면은 득력(得力)을 할 수 있겠거니’ 이리 생각하고, 한 철, 두 철을 지내다보면 영 옛날보다도 훨씬 더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번뇌 망상이 더 잘 퍼일어나고 영 자리가 잡히지를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조금도 번뇌심을 내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착실히, 착실히 공부를 다져나가면 그렇게 해서 한 고비를 넘기면은 다시 또 수월하게 공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수월하게 공부가 화두가 잘 일여하게 들리고 잘되어간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입니다.
기뻐하는 생각 내면 벌써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는 그러한 번뇌심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지도 말고 또 잘 안된다고 해서 번뇌심(煩惱心)도 내지 말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를 지어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요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애를 써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잽이를 해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들려고 해도 금방 도망가고,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그랬던 것이, 자꾸자꾸 해가면은 나중에는 헐려고 안 해도 화두가 떠억 들어지게 되면서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언제 지내간지 모르게 시간이 지내가고,
그때는 다리가 저린 것도 없고, 몸이 괴로운 것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없고, 정신도 깨끗하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앉아있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뚱이마저도 의식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싱그럽고 이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화두는 그런 가운데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하고, 너무 편안해서, 까딱하면 화두를 그때 망각(忘却)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러한 경지에서 화두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한 그 가운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깨끗하게 독로(獨露)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잠깐이라도 화두를 놓쳐버리고 ‘아! 좋구나. 이러한 경지로서 계속해서 나갔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툭 깨닫게 해주셨으면, 이러다가 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다가 내가 까딱하면 미치면 어찌할고’ 별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고비에서 그 천길만길 되는 길를 간신히 간신히 올라가 가지고, 발 한번 삐끗해 가지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정진을 하면은 옆에 사람들도 다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저이가 지금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는구나’ 알게 되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렇게 공부가 되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비롯해서 좌우에서 서로서로 잘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대중 가운데에는 혹 ‘지가 공부한 척 하고 그런다’고 아주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공부가 또 순일하게 되어 갈 때가 있을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하게 되어 갈 때 주위에서 잘 보호를 해주고, 자기도 그럴 때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공부를 잘 보호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나가면 나중에는 일어서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똥을 눌 때도 고대로 있고, 천만 명이 우글거리는 시장 속에 들어가도 조금도 화두가 흐트러지지를 아니하고, 딴 생각을 일부러 좀 할려고 해도 딴 생각이 되지를 않고 이러한 경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머지않아서 칠통(漆桶)을 타파(打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를 해야지, 그때에 조심성 없이 또 좌우에서 방해를 친다든지 보호를 안 해가지고 그러한 경지(境地)가 깨져버리면 나중에는 1년, 2년, 3년을 애를 써도 여간해서 다시 또 그러한 경지가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법(如法)하게 알뜰히 정진을 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그러한 경지가 오는 것입니다.(처음~17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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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지내가다 ; '지나가다'의 사투리.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세 곳.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 세째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성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 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노나다 ; ‘나누다’의 사투리.
*등속(等屬) ; 나열한 사물과 같은 종류의 것들을 몰아서 이르는 말.
*수긍(首肯) ; 옳다고 인정함. 옳게 여김.
*조리(條理) ;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득력(得力) ; ①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 ②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칠통(漆桶)을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보살선방 법문2014. 11. 8. 15:12

 

 

§(466)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금생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지 아니하면—편안한 것만 취하고, 맛있는 것만 취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은 사람만이 세세생생에 영원토록 참다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혼은 참 '처옥자쇄(妻獄子鎖)'라고, 장가를 가면은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지어서 받는 업(業)으로 얽혀진 것이니—전생에 지은 빚으로 만난 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지어논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되는 거고. 그놈을 갚으면서도 참선을 해야지, 참선 안 하고 그냥 거기에 빠지면 업으로 인해서 생사해탈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정진하면서도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해야 하죠.


**송담스님(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 (용466)

 

(1) 약 20분.

(2) 약 22분.


(1)------------------

큰 추위는 없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겨울은 좀 춥고 여름은 덥고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좋다고 모다 그렇게 생각되어 왔는데, 여기는 해변가가 되어서 해마다 겨울에는 강한 추운 바람이 불고 그래서 새벽에 모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예불 젓숫고 하는데 노보살님들이 감기에도 많이 걸리시고 모다 그랬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은 것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어피차 편안하고 자유롭고 따뜻한 가정을 떠나서 이렇게 선원에 오셔서 정진하시게 되면, 아무리 고단하고 춥고 힘이 들어도 새벽에는 일어나야 하고 또 잠자리가 편틀 못하고, 눕고 싶을 때 눕지 못하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여러 가지 참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이렇게 와서 서로 다투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또 심지어는 인원이 차서 방부를 못 드리고 또 울고 돌아가신 분도 많이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행을 무릅쓰고 그렇게 정진하라고 하신 여러 신도님네들 또 거사님 보살님, 참 갸륵하고 그 고마움을 원장으로서는 참 가슴깊이 느끼는 바입니다.

금생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지 아니하면—편안한 것만 취하고, 맛있는 것만 취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은 사람만이 세세생생에 영원토록 참다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진을 해 나가는데 처음부터 흡족하게 그렇게 수월하게 정진이 되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는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자기가 지어놓은 업(業)이 있기 때문에, 그 업이 천차만별이어서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정진을 해도 육체적으로 오는 것, 정신적으로 오는 거, 그 나타나는 경계라고 할까 그런 것이 다 다른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보면 자기가 지은 업과 현재 정진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생각들 그런 차이로 해서 여러 가지 경계(境界)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입승(立繩) 스님이 적어 온 걸로 보면 사람 따라서 나타나는 경계가 여러 가지로 있는데,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안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그런 경계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했지만은 그런 경계는 집착(執着)을 하면은—환한 경계가 나타난다던지, 껌껌한 이불 속에서도 환히 머리카락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하다든지, 머리가 시원하고 개운함을 느낀다든지, 미래 일이 나타난다든지, 꿈속에 뭘 느꼈다든지, 꿈속에 어떤 분이 나와서 뭐라고 일러줬다든지, 사람 몸을 보면 환히 오장육부가 다 보이고 어디가 병이 들었는지 그것도 다 알 수가 있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이 어떻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든지, 자기 몸이 풍선처럼 가벼움을 느꼈다든지, 어떠헌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것에 집착하면 공부가 삐뚤어져 나가는 거고, 그런 것에 전혀 생각을 두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좋다 나쁘다’ 생각을 갖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둔 채 자꾸 바른 자세로 화두(話頭)를 들고, 화두를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도리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런 경계가 나타났으니 내가 이거 깨달음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것에 대해서 밤낮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을 자랑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가 지금 공부가 상당한 지경에 이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남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자랑을 하고 이런 것은 진실한 수행자에게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보통 이러헌 철저한 신심과 법문을 들은 사람이 아니면,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스스로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하도 신기하니까.

그러나 그런 법문(法門)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에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고 묘하고 그러니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그런 법문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에 혼탁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그런 것에 집착하면 벌써 사견(邪見)에 떨어진 것이고 공부가 삿된 대로 빠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점쟁이 같은 거, 이상한 모다 신기(神氣)가 있는 그러헌 존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탁! 놔 버려야 하거든.


그리고 정진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몸을 단정히 갖되 몸의 어느 부분에도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허리를 쭈욱 펴고 단정히 앉되 손을 이렇게 수계(手契)를 하는데,
여기도 너무 엄지손에 힘을 준다든지, 또는 엄지손과 엄지손이 떨어진다든지 비뚤어진다든지,
엄지손을 이렇게 손장난을 한다든지 그래서는 안 되고, (양 엄지손을) 대되 전혀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

어떤 분은 힘을 꼭 줘야 화두가 잘된 것 같이 느껴진다는 그런 분도 있는데 그러더라도 (힘을) 꽉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요.
(힘을) 꽉 주면은 나중에는 몸 전체가 힘이 그리 주어지기 때문에 공부해 나가는데 지장이 있을 수가 있으니까, 우선 힘을 주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기만 하고.

또 눈에다가 힘을 주고—간절히 의심을 할라고 하면은 미간(眉間)에 ‘내 천(川)자’가 쓰여질라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거기다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힘을 주지 말고, 단정하면서도 어깨에도 힘을 주지 말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또 미간에도 힘을 주지 말고, 힘을 어디다가 주었다 하면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요소가 거기서 생길 수가 있다 그거거든.

그러면 단전(丹田)에다 힘을 준 것은 어떠냐?
단전은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차츰차츰 홀쭉하게 하니까 거기에는 약간 힘이 들어가질 수가 있는데 그것도 너무 힘을 많이 주어서는 안돼.
기분 상으로만 가볍게 그렇게 하는 것이지 너무 힘을 주어서는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걸 말씀을 드리고.


그 화두를—이 화두를 하니까 잘 안 되어서 저 화두를 하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했다가 ‘무자(無字)’로 했다가 또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를 했다 이러는데, 안 된다고 해서 화두를 자꾸 바꿔 싸면, 새로 바꾸면은 된 것 같다가 나중에 얼마 지내면은 옛날 것이 또 생각이 나 가지고 그것을 들어보면 또 잘되고,

그래서 화두는 아무리 안 되어도 한 화두를 가지고 자꾸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해 나가면 나중에 언젠가는 된 때가 오는 것이지, 안 된다고 해서 또 바꾸고, 또 해 봐서 안 된다고 또 바꾸고, 자꾸 바꿔 버릇하면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니까 ‘여러분들 절대로 화두를 안 된다고 해서 바꾸지를 말아라’ 그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고.

이미 바꿔 가지고 현재 잘 되어간다면 그분은 그냥 그것으로 해 나가십시오.
그 동안에 자꾸 바꾼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이미 바꾼 지가 오래되어 가지고 그대로 쭉 잘 되어가면 그분은 고대로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면 정진하다가, 쭉 해 나가다가 중요한 고비가 닥쳤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여.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것을 조심을 하시고.


공부를 하다보면 확 트인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고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일시적인 경계니까 ‘이것이 좋으네 나쁘네’ 그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요.
좋다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확 트인 것처럼 느끼거나 뭐 성성하거나 적적하거나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데에 좋냐 나쁘냐? 자꾸 그걸 가지고 실갱이를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둬.

좋으면 좋은 대로, 시원하면 시원한 대로, 환하면 환한 대로, 껌껌하면 껌껌한 대로 그냥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아! 사람 건강도 소화가 잘 되다 안 되다, 뱃속이 거북하다 설사하다가 그렇지만, 그때 그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할 거냐 말이여.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고 놔두고 살아가는 거지.

그것이 무슨 큰 괴변(怪變)이나 일어난 것처럼 무슨 큰 일로 취급을 하지 말고, 하다보면 그런 것도 있으려니 하고 그냥 고대로 놔두고 여법하게 정진만 주욱 해나가면 상관이 없는 것이니까.

가끔 말씀을 드렸지만은 어떠한 뭐 밥을 먹다가 한다든지, 차를 마시다가 한다든지, 목욕을 하다가 한다든지, 무슨 소리를 들은 찰나에 그냥 막힘이 확 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슨 시(詩)가 나오기도 하고, 다른 공안에 대해서 그냥 의심이 하나도 막히지를 않고 그런 것을 느끼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 해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그런데 정말 바로 깨달았는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냐, 안 얻었냐’하는 것은 자기 혼자로서는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선지식이 필요한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지 혼자로서는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고.

또 아무한테나 물어보아 가지고 옳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그것도 참 정말 바른 지혜를 갖춘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아야지, 아무한테라도 가서 받아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데 공부하다가 그런 소견이 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인데, 구경의 경지에 이르러지지 않았다면 그러한 소견도 그러한 경계도 깨끗이 놔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거듭 말씀을 드린 것은 누구나 정진하다 보면 텅 빈 경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안에 대해서 아무 의심도 다 없어져 버리고 너무너무 머리가 개운하고 그런 경계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구경각(究竟覺), 확철대오해서 조사(祖師)와 같은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스스로 ‘이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다’한 것을 스스로 그것을 버려버리고, 부정해 버리고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합니다.(처음~18분28초)

 

 

 



(2)------------------

그리고 어떤 분은 항상 자기에 영가(靈駕)가 붙어갖고 있는데, 절 문안으로만 들어오면 영가는 거기서 떨어져서 절에서는 떨어져 버리고 또 절에서 일 다 보고 나가면은 딱 또 들어붙고 그런다는 분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마는, 영가가 그렇게 붙고 떨어지고 하는 거.

또 항상 영가가 눈에 보여. 남 49재 하는 데도 가서 보면 그 49재 하는 그 영가가 눈에 다 보인다 그말이여.
생전시 무슨 옷을 입고 얼굴이 어떻게 생긴 것을 환히 다 알고, 그래가지고 재자(齋者) 보고 ‘지금 오늘 49재 지낸 분이 얼굴이 이렇게 생겼고 무슨 옷을 입고 그랬냐’하면, ‘그렇다’고.

그런 것이 보인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것은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특수한 사람에게는 영가가 보일 수도 있고 또 영가가 붙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道)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여.

영가란 것은 내나 우리는 ‘몸뚱이가 있는 영가(靈駕)’고, 영가는 ‘몸이 없는 사람’이니까, 혹 지금 이 방에도 영가가 있을 수가 있고, 법당에도 법문할 때는 우주법계의 영가를 다 초청을 하니까 다 영가가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우리 이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 일반 사람에게는 그런 영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이죠. 보인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그런데 영가는 사람이 죽어서 49재에 딴 데로 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떠날 수도 있고, 100일에 떠날 수도 있고, 소상(小祥)에 떠날 수도 있고, 대상(大祥)을 지내고 떠날 수도 있고, 소상·대상 다 지내고도 떠나지 않고 자기집에서 그냥 또 그렇게 영가가 머물러 있는 수도 있고, 50년 내지 100년간도 안 떠나고 그 집에서 머물러 있는 수도 있다고 그럼니다마는.

이 영가는 내 눈으로는 아직 영가를 보지 못했고, ‘몸뚱이 있는 영가’는 많이 보지마는 ‘몸뚱이 없는 영가’는 내 눈에는 잘 안 보여요.

그래도 본인이 영가가 자기에게 보이고 자기 몸에 항상 붙어있고 꿈에도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모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니, 그런 분은 내 생각에는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서 또 금생에 와서 지은 업에 따라서 특수한 그런 체질이라고 할까, 특수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가가 보이고 나타나고 또 몸에 항상 따라다니고 하면은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관이 없는 거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그냥 그런 분은 항상 계행을 잘 지켜야 하고 심성을 착하게 곱게 써야 하고 또 백중이라든지 법보재라든지 모다 그런 때는 항상 그런 영가들을 위해서 천도(薦度)를 잘 해 줘야 하고 그렇죠.

대부분 그런 분에게 또 그런 영가가 많이 따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 법계에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런 참 외로운 영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도를 잘 해 주고 또 그분한테 가까이 가야만 천도를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될 경우 그런 분한테 인연 있는 영가가 따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배고픈 사람 밥을 잘 준다’고 소문이 나면은 팔도의 모다 걸인들이 그 집을 찾아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옛날부터.

그와 마찬가지로 영가 천도를 잘 해 주고 자꾸 그런 분에게는 그런 영가들이 꿈에 와서 현몽을 대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천도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까 힘닿는 대로 잘 천도를 해 주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밥 없는 사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 옷을 주고, 직장이 없는 사람 직장을 알선을 해주고, 병든 사람을 병을 치료해 주고 그러면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와서 잘 봐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또 영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영가 천도를 그런 인연이 닿으면 또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또 어떤 분은 염라대왕이 자기를 끌고 갈라고 하는 그런 것을 느낀다고 그러는데, 염라대왕이 일부러 와서 자기를 끌고 간가 어쩐가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면, 끌려가기 싫어서 안 끌려간다면 그건 잘된 일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가게 될 테니까 너무 그것을 미리서부터 걱정하실 것은 없고.

염라대왕이 끌고 갈라고 하거나 염라대왕이 보낸 사자(使者)가 와서 끌고 갈라고 하거나, 참선한 사람은 그럴 때 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를 딱 챙기시면 비명(非命)에 끌려가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꼭 가게 될 인연이 되면은 조금도 두려운 생각하지 말고 ‘이뭣고?’를 하면서 갈 때 되면 가는 것이지 뭐,
이 세상에 한번 왔다가 안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 가게 될 때는 가더라도 ‘이뭣고?’하는 마음으로 가면 그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그리고 한 가지 가끔 내가 듣는 소린데,
본인은 아직 시집을 안 가고 나이가 30을 넘고 그래도 그냥 처녀로 부처님 불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본인이 꼭 안 갈라 한 것은 아닐런지도 모르고 또 좋은 인연이 있으면 갈라고 하는 생각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냥 이대로 보살로써 정진하다가 시절이 돌아오면 출가해서 스님이 될려고 하는 생각도 있는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생각으로 여기 선방에 와서 방부를 드리고 정진을 하고 그러는데, 자꾸 좌우에서 “시집을 안가고 죽으면 몽달귀신이 되니까 시집을 가라”고 자꾸 권고를 하신 분이 있다 이것입니다.

시집을 가라고 권고한 것은 절대로 나쁜 마음으로 그러신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시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것이 뭐 당연한 것이고, 시집가서 남편과 해로하고 자녀도 낳고 그래야 나중에 늙으면 외롭지 않고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그것도 때가 있으니까 좋은 인연있을 때 가라고 권고한 것은 좋은 마음에서 하신 것이지 절대로 뭐 해코자 해서 그러신 것은 아닐 테지마는.

억지로 팔자에 시집 갈 팔자를 타고났는데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갈라고 하는 생각은 있어도 적당한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사주팔자가 되었건, 전생에 지은 인연이 되었건 간에 그런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안 가게 되고, 또 불법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불자로서 참선을 하고, 별로 그렇게 큰 고통이나 불편이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데 자꾸 몽달귀신으로 협박을 하면서 자꾸 가라고 그러실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노처녀로 있다가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서 도를 잘 닦는다면 그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여러분들 다 시집가서 결혼해 가지고 이렇게 50년, 60년, 70년 이렇게 살아보셔서 ‘정말 나는 결혼을 해서 참 행복했다’고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이 가운데는 계시겠지만, 겪어보시면 결혼 생활이라 하는 것이 아마 출가해서 도 닦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스님이 되라’고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본인이 결혼 안 하고 출가할 수 있는 사람을 몽달귀신 얘기를 해 갖고 공포심을 느껴서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가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오신 이 마당에는 공부에 관한 공부 생각만 해야지 다른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좋고 그러니까,

절대로 자꾸 시집가라, 시집가라—막 좀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 좀 할라고 하면—자꾸 시집가라고 그래 싸면 마음이 헷갈리거든. 내가 시집을 가야 옳은가? 안 가야 옳은가?
그 소리가 듣기 싫으니까 한철 나왔다가 안 나와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말이여.

혹 집안에 홀아비가 있어서 저 여자하고 짝을 맞춰줬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자꾸 그러실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은데, 결혼은 참 '처옥자쇄'라고, 인자 장가를 가면은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그래서 '처옥자쇄(妻獄子鎖)'라 그러는데.

참, 결혼생활은 여러분도 다 겪어보셨지만 어쩔 수 없이 다 결혼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하긴 했지만 결혼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습니까.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힘든,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대보살(大菩薩)이 아니고서는 많은 지장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지어서 받는 업(業)으로 얽혀진 것이니—전생에 지은 빚으로 만난 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고.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 하면서 참선을 해야 하니까 굉장히 힘이 드시겠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지어논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되는 거고. 그놈을 갚으면서도 참선을 해야지, 참선 안 하고 그냥 거기에 빠지면 업으로 인해서 생사해탈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정진하면서도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 보살님네들은 참 너무너무 갸륵하고 훌륭하고, 참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끝으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보름 남았는데, 또 이틀 후에 정월 초하루가 돌아와서 또 차례(茶禮) 행사도 있고 어수선하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놓치지 알고 정진하시도록 당부를 드리고, 남은 보름 동안을 정말 알뜰하게 잘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또 제가 말씀을 안 드린 그런 내용에 어떤 당신 나름대로 느낀 바도 있을 것이고, 물어보고자 한 그런 점을 속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낱낱이 여기서 다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어떠한 경계, 어떠한 느낌, 어떠한 소견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각(究竟覺)이 아닌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사(祖師)의 경지가 아니면 그냥 스스로 탁! 치워버리면 그만이여.
없었던 걸로 탁! 놔 버리고 깨끗한 초학자의 마음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조금 어디 아프다고 해서 낱낱이 병원에 쫓아다니면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것은 자기가 스스로 낫어야 하거든.

마을에서는 병원에 자주 간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 병원이라 한 것은 물론 호미로 막아야 할 때 병원에 안 갔다가 가래로 막게 되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는 스스로 집착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딱 놔 버리고 화두만 들면 낱낱이 병원에 안 가도 돼어. 그것이 기다(그렇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면 거기서부터 병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 요점만을 내가 말씀을 드리면 요점만을 잊지 않고 고대로 해 나가시면 어떠한 병도 스스로 고칠 수가 있는 것이여.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자기가 집착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여.

심지어는 확철대오 해 가지고도 ‘나는 깨달았다’하는 생각을 가져도 벌써 그것이 잘못인데, 깨닫지도 못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거든. 그걸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뭐 사람 몸뚱이가 환히 보이거나, 내일이나 모레가 어떻게 되고, 사람을 척 보면 전생에 무엇이다 하는 것도 안다 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그런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어, 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을 속으로 딱 간직하고, 그걸 자꾸 써먹고, 남에게 자랑하고, 자기가 무슨 도통이나 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런데에서 병이 되고 결국은 사도(邪道)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안 떨어지려면 집착하지 않고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뭣고?’만 해 가면 그건 괜찮다 그말이죠.
되었습니다.(18분29초~40분)(끝)

 

 

 



------------------(1)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도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수계(手契) ; 수인(手印)·인(印)·인계(印契)·밀인(密印)·인상(印相)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 mudrā
불보살(佛菩薩)의 내증(內證 깨달은 진리)·본서(本誓 근본서원) 등의 덕(德)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 모양.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2)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소상(小祥 작을 소,제사 상) ;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
*대상(大祥 큰 대, 제사 상) ; 사람이 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사자(使者 사신 사,놈 자)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처옥자쇄(妻獄子鎖 아내 처,감옥 옥,자식 자,자물쇠 쇄) ;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라는 말로 결혼생활의 구속을 비유한 말.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
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無眀)이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구경각(究竟覺)은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를 가리킨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9. 30. 16:52

 

 

§(335) (게송)작야시우치~ /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는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 /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

깨달음은 오래오래 닦아서, 그래 가지고 깨달음에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들어가서, 그래 가지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어젯밤까지는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있던 사람이 하룻밤 새에 툭 터져 버리면 바로 해탈도를 증득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5)-87년 7월 첫째일요법회(87.07.05)에서. (용335)


약 14분.


작야시우치(昨夜是愚痴)가  금조성준걸(今朝成俊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개해탈문(好箇解脫門)이여  석무인맹렬(惜無人猛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작야시우치(昨夜是愚痴)가, 어젯밤에 깜깜한 어리석은 멍청이가
금조성준걸(今朝成俊傑)이로구나. 오늘 아침에 갑자기 준걸(俊傑)이 되어 버렸구나.

호개해탈문(好箇解脫門)이여. 좋고 좋구나 이 해탈문이여.
맹렬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깝구나.(惜無人猛烈)

깨달음은 오래오래 닦아서, 그래 가지고 깨달음에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들어가서, 그래 가지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어젯밤까지는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있던 사람이 하룻밤 새에 툭 터져 버리면 바로 해탈도를 증득을 하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조실스님의 70년도에 성도재 법문으로, 조실스님의 일대기 법문 속에서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리고 보월 큰스님 이 말세에 대선지식(大善知識)들, 그런 선지식들과 함께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를 가지고 염롱(拈弄)하시는,
한바탕 거량(擧量)을 해 가지고 그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두르면서 맞부딪치는 그러한 장면을 녹음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 법문 한 구절밖에 다시 무슨 법문을 더 들을 것이 있겠습니까?
이 법문을 듣고 뼈에 사무치고 온 몸에 털이 거꾸로 떨어 서며, 칼날을 목에다 대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수좌(首座)가 아닐 것입니다.

법문(法門)이라는 게 무슨 경전을 해설을 하고 강의를 하고, 무슨 이론에 대해서 천착(穿鑿)을 하고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리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의 중생 상량심(商量心)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은 그 법문을 듣고 우리가 앞 생각이 끊어지고 뒷 생각이 끊어지며,
다만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이 현전(現前)해서 다시 끊어야 할 망상도 없고, 다시 일으켜야 할 화두도 없으면서, 저절로 의단이 독로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 몸뚱이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다맛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채 찰나(剎那)가 끊어져 버려야 할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어서  당념(當念)에 생멸심을 잃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념에 생사심(生死心)이 끊을려고 하지 안 해도 당념에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여.

보고 듣고 하는 것도—산을 보아도 산이 보이지를 않고, 물을 보아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수백 만 명 속에 있어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아니하고, 별별 소음과 잡음이 있어도 한 소리도 귀에 들리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누가 옆에서 잡담을 하거나, 누가 나를 칭찬을 하거나, 누가 나를 험담을 하거나, 일체 시비·우여곡절이 내게는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내 몸뚱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조차도 모르거늘, 무슨 시비와 흥망성쇠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어.

방금 조실스님께서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설하신 제일구 도리는 술수(術數)가 아닙니다.
배울라야 배울 수 없고 가르칠라야 가르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는 팔만대장경을 뒤적거려도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96종 철학을 통달을 해도 그러한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는 엄격히 말해서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귀신도 들여다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는 고요할 때에는 수미산(須彌山)과 같고, 한 번 움직였다 하면은 큰 불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수미산과 같아서 아무리 움직일라고 해도 끄떡도 아니한 것이며,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한 생각 움직거리면 그 불덩어리에 타 죽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온 세계에 하나도 감춘 바가 없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틀의 땅에서 찾으면 자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은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여. 이론적으로 더듬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을 쉴려고 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서 참선을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호소를 합니다마는 망상을 쉴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은 참선을 잘못 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하는 생각이 벌써 틀린 것이고, 망상을 쉬고 또 쉬고 해서 망상이 하나도 없이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면 참선이 참 잘될 것 같지만은 참선은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를 애당초부터 문제시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과거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일체 선악·시비·원한·애정 천하 없는 생각도 내가 관계할 일이 아닙니다. 그냥 고대로 놔버려.

다만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이여. 거기에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지.

망상도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고,
일체처 일체시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이, 내가 그것을 참견을 하고 취하고 버릴려고 하는 데에서 공부가 그릇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의단만을 자꾸 챙겨서 의단이 현전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리면 또 챙기고, 잃어버리면 또 챙기고, 더우면 더운대로 챙겨 나가면 더위도 잊어버릴 것이고, 추워도 이놈을 추켜들고 비벼대면 추위도 잊어버릴 것이고, 배가 고파도 이놈이요, 배가 불러도 이놈이요,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이 한 의단(疑團)을 가지고 나아갈 뿐인 것입니다.(처음~13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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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야시우치~’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17권 게송 참고.
*우치(愚癡) ; ①매우 어리석고 못남. ②삼독(三毒, 貪·瞋·癡)의 하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른다.
*준걸(俊傑 준걸 준,뛰어날 걸) ; 재주와 슬기가 매우 뛰어남. 또는 그 사람.
*제일구(第一句) ; [참고] [三句] 삼구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염롱(拈弄 집을 념,희롱할·마음대로 다룰 롱) ; 고인의 말을 자유로 다루는 뜻. ‘능정거린다’ ‘잡아 두르다’의 뜻.
*거량(擧揚) ; ①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당념(當念) ; 바로 한 생각.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우여곡절(迂餘曲折) ;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술수(術數) ;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을 꾸미는 교묘한 생각이나 방법.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적나라하다(赤裸裸--) ; (실상이나 감정이)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 더이상 숨김이 없다.
*기틀 ; 어떤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밑받침.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9. 25. 11:07

 

§(763) (게송)법계진시비로사~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을 해야 / (게송)삼계진로여해활~.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정말 알뜰히 정진하는 사람은 결제∙해제가 따로 있을 수가 없고, 입선∙방선 시간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바로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정진을 알뜰히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가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눈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기도 하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지마는 그 찰나찰나를 그리 쫓아가지 말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바로 거기에 정말 깨달음의 길이 거기에 통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63)-2013(계사년) 동안거결제 및 백일기도입재(11.17)-16분. (용763)


약 16분.


법계진시비로사(法界盡是毘盧師)요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애경노유개여불(愛敬老幼皆如佛)하고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법계진시비로사(法界盡是毘盧師)요, 육도법계(六途法界)가 전부 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스승이시다.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인고. 누가 어질고 어리석으며 누가 귀하고 천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중생(衆生)의 눈으로 보면 전체가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생로병사요, 모두가 차별 경계(境界) 속에서 좌왕우왕(左往右往)하면서 윤회의 업(業)을 짓는 것에 불과하지만은, 정말 바른 눈을 떠서 보면, 온 법계가 전부 비로자나 법신체(法身體)요,
그러니 무엇을 누구를 가리켜서 어질다 어리석다, 무엇이 귀하고 천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느냐!

애경노유개여불(愛敬老幼皆如)이요, 나이가 많은 분은 공경하고 어린 사람은 사랑하고 — 공경하고 사랑하기를 다 부처님처럼 부처님을 뵈온 것처럼 그렇게 공경하고 사랑하면,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다. 항상 일체처 일체시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시는 적광전(寂光殿)을 장엄(莊嚴)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오늘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을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이상 법을 설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기에 올라 오지 않고, 여러 도반들에게 앞으로 석 달 동안 정말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으로 여법(如法)하게 정진하자고 여러분께 당부하고 다같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진하자고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할려고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1명, 인제 용화선원 52명, 광주 용화선원 11명, 용주사 중앙선원 19명, 망월사 천중선원 22명, 약사암 11명, 위봉사 위봉선원 24명, 승련사 선원 15명, 원효사 송나선원 17명, 회룡사 선원 18명, 세등선원 21명, 복전암 복전선원 27명, 아산 대윤사 3명 —모두 합해서 251명과 그밖에 신심이 있는 청신사 여러분이 법당에 가득 앉았습니다.

비록 석 달 동안 정진하는 선방(禪房)의 위치는 몇 백 리 떨어져 있고, 몇 십 리가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고, 조실스님의 법에 의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기 때문에 한 선방에서 다같이 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선원에 방부를 드리고 정진하는 스님의 인원 수를 낱낱이 말씀을 드린 것은,
사실은 그 스님네 이름까지 다 불러서 그래 가지고 한 도량에서 한 선방에서 석 달 동안을 정말 신심과 분심과 의단으로 석 달이 아니라 하루를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것과 같이, 그런 마음으로 석 달을 지내자고 하는 그런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정진이라하는 것이—죽비(竹篦) 치고 입선(入禪)하고, 입선하면은 입선 들어가자마자 꾸벅꾸벅 졸고, 그리고 방선(放禪)하면은 방선하자마자 잡담을 하고—그렇게 석 달을 지내 가지고서는 우리는 팔만사천 세를 선방에 앉았다 해도 우리에게는 깨달음은 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득이 해서 결제 동안에 입방선 시간을 정하고 죽비를 치고 하지만은,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 그런 시간에 그런 형식을 취하지만은,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정말 알뜰히 정진하는 사람은 결제∙해제가 따로 있을 수가 없고, 입선∙방선 시간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 시간에는 정말 알뜰하게 정신 차려서 화두를 들고, 방선을 하더라도 입선 때 못지 않게 더욱 성성(惺惺)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화장실에 갔다 나오더라도,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있도록 그렇게 단속(團束)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어떻게 지냈느냐에 따라서 석 달 동안의 안거(安居)가 정말 우리의 수행에 정말 크게 증진(增進)을 가져 올 것이고,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석 달은 아무 우리의 정진에 보탬이 되지 않는 그런 허송 세월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말씀을 정말 가슴속 깊이, 뼛속 깊이 그것을 항상 잊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한 사람은 하루를 올바르게 지낼 것이고,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한 사람은 한 달을 옳게 지낼 것이고,
‘한 생각’을 옳게 단속한 사람은 석 달 동안도 정말 우리의 깨달음, 해탈하는 정진에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바로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정진을 알뜰히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가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요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하야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三界塵勞)가 여해활(如海闊)이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 삼계(三界)의 윤회하고 삼계를 살아가는 그 티끌 수고로운 것이 마치 바다와 같이 한량(限量)이 없고, 넓고 넓다.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고 시끄럽고 버글버글 하다.
온 세계가 지금 말세가 되어가지고 도처가 싸움을 하고 있고, 시비(是非)가 가라앉지 않고 버글버글 하고 있는데,
우리도 비록 불법을 믿고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그러한 삼계(三界) 진로(塵勞) 속에서 우리도 그 한 일원으로서 허송세월(虛送歲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 — 우리가 육도법계(六途法界)의 생사윤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생사해탈을 할 것인가?

일어나는 한 생각 —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볼 때, 귀를 통해서 어떠한 소리를 들을 때, 그 찰나찰나에 그리 가지 말고, 바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가 뜨고 달이 지나, 바람이 불고 새가 우나, 일체처 일체시가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하는 채찍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하고 나가면,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다, 한 생각 나지 아니하여 그 생사 속에서, 변화 속에서 자기 해탈길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루, 1시간,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눈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기도 하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지마는 그 찰나찰나를 그리 쫓아가지 말고,
‘이뭣고~?’를 챙기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바로 거기에 정말 깨달음의 길이 거기에 통하는 것입니다.

산승이 오늘 삼동 결제일을 맞이해서 도반 여러분께 간곡히 이 말씀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처음~15분2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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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법계진시비로사~’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하심(下心)' 참고.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좌왕우왕(左往右往)하다 ; (사람이)올바른 방향을 잡거나 차분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적광전(寂光殿) ;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로 모신 법당.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깊은 선정(禪定)과 지혜의 빛으로 충만하므로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일컬음.
대광명전(大光明殿)·화엄전(華嚴殿)·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한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27권(上)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허송세월(虛送歲月) ; 하는 일 없이 세월을 헛되이 보냄. 또는 그 세월.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