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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26 §(630) (게송)차주비대역비소~ / 참선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 / 할 것은 ‘이뭣고?’ 밖에 없습니다.
  2. 2016.07.22 §(478)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요중선(鬧中禪) / 이판(理判), 사판(事判) / (게송)득지재심응재수~ / 정진을 뒤로 미루지 말라 / 일념즉시무량겁.
  3. 2016.07.18 §(478)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동사섭 / 유루복은 삼생의 원수 / 내가 나를 깨닫는 ‘이뭣고?’가 불법을 전해 나가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좋은 법.
  4. 2016.07.07 §(299) (게송)묵좌허회독엄문~ / 도의 낙(樂) / 활구참선이란? / 『몽산법어』 /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탐진치(貪瞋痴) 삼독심 / ‘참 부처님’이란?
  5. 2016.07.04 § (6)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역력이빈주~, 가귀천연물~)
  6. 2016.06.29 •§•(108) (게송)부운부귀비유의~ / ‘이뭣고?’가 화두 중에는 제일 근본 / 고봉 스님 『선요(禪要)』 / 각차수질(脚蹉手跌) / 월봉 외도 / 무변허공각소현발.
  7. 2016.06.17 §(712) 진정신심(眞正信心)을 발해야 한다. 정성심(情誠心)이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 선방에서 화주(化主) 금지 / 선방 스님과 외호 스님은 같은 도반.
  8. 2016.06.15 §(712)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신심·분심·의심 삼요(三要) / ‘이뭣고?’화두가 화두의 근본 / 진정신심(眞正信心)을 발해야.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발해야.
  9. 2016.06.13 § (5)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신여백운래환계~)
  10. 2016.06.10 §(402)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정진(精進)2016.10.26 14:55

§(630) (게송)차주비대역비소~ / 참선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 / 할 것은 이뭣고?’ 밖에 없습니다.


일어났다 앉았다 행주좌와 간에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도록, 의단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성성적적(惺惺寂寂)하도록 의단만 잡드리해 나가면 지가 언제 터지던지 터지지, 터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고, 올바르게만  나가면  참선이라 하는 것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라고 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이다’ 이것입니다.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송담스님(No.630)—99 10 첫째일요법회(99.10.03)

약 9분.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하고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멱시무물우무종(覓是無物又無)하되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니라

나무~아미타불~


 구슬이 크지도 않고 또한 작지도 않다. 나의 본성(本性) 자성(自性)자리, 나의 주인공을 구슬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고인(古人)의 시(詩)입니다.

 구슬은 크지도 않고 또한 작지도 않다.  때에는 우주 법계를  싸고도 남을 만큼 크고, 작기로 말하면은 인허(隣虛) 보다도 더 작다. 겨자씨 보다도 더 작다.


그런데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다. 낮이나 밤이나 항상  구슬에서는 광명이 나와서  우주 법계를 환히 비추고 있다 이거거든.


멱시무물우무종(覓是無物又無蹤)이요, 그런데 그런  구슬 찾아보면  수도 없고,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어. 자취가 없다 그말이여. 찾아보면 자취가 없어,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여.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따라댕겨. 그림자 따르듯이 항상 따라다니는데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다 그말이여. 대관절 이것이 무엇이냐?


참선(參禪)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위해서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기 위해서 한다니까 어서 빨리 내가 견성을 해야 것다  참선을 바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빨리 깨달으려고 조급한 마음  것이 아니라,   없는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를  사람은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를  사람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야지, 빨리 깨달으려고 생각한다던지 내가 이래 갖고  되겠다. 언제 죽을는지 모르니까 이를 악물고 내가  한바탕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야겠다 그래가지고 이를 악물고 용을 쓰고 하는  아닙니다 이것은.


단정히 앉되 어깨나 목이나 힘을  빼고,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단전호흡이라 하니까 어거지로 무리하게  가지고는 가슴이 답답하고 그런  아닙니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 단전호흡하는 법을 자세하게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무리가 없이 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보통 호흡하듯이 하되, 들어마실 때는 하복부가 약간 볼록함을 느끼면서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조용하니 내쉬되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쭉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것뿐이지 배가 터지도록 잔뜩 하는  아니에요.


무리하게 오래 시간을 걸려서 한번 쉬는데 1분씩을 내가 참아야겠다 그런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참선법(參禪法)’이라고 하는  (법문)테이프를 자꾸 들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없는 의단만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눈팅이를 찡그리면서 용을 쓰면서 하는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하되, 눈은 평상으로 뜨고   없는 의심만 독로하도록잡드리하라.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가끔 이렇게도  다잽이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 일어났다 앉았다 행주좌와 간에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도록, 의단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성성적적(惺惺寂寂)하도록 의단만 잡드리해 나가면 지가 언제 터지던지 터지지,  터지는 법이 없습니다.

빨리 터지기를 기다릴수록에 무장  터지는 거고, 빨리 깨닫기를 바랄수록에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서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고, 행함이 없이 행해야만 한다’ ‘호리지차(毫釐之差)에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부처님도 이런 말씀하시고, 조사 스님네도 말씀하셨는데, 화두를 들되 용을쓰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흐리터분하니 앉아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해야 하고,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이것은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항상 가정에서 틀어 놓고 공부를 하시면 공부해 나가는  묘한관(觀)을 스스로 터득을 하게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고, 올바르게만  나가면  참선이라 하는 것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라고 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이다’ 이것입니다.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많이 벌어나 봤자 자식들 재판하고 서로 차지할라고...  못쓰는 것입니다.  많이 벌려고, 자식들한테 많이 물려주려고 하실 것이 없습니다. 부귀영화 그게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만큼 살면 되는 것이고,  것은 이뭣고?’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한다면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고,  세상에 원수도  없어지는 거고, 밉고 고운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고마운 존재고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고.

재산에 조금 여유가 있으면 나만 못한 사람한테 보시도 하면서 그렇게 복과 지혜를 항상 겸해서 닦아 나간다면 우리는   요대로 바로 도인(道人)이고 바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5635~6517)(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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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차주비대역비소~’ ; [전등록(傳燈錄)] (제30권) 단하화상(丹霞和尙)의 ‘완주음(翫珠吟)’ 참고.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인허(隣虛) ; 인허진(隣虛塵). 허공(虛空)에 가깝다[隣]는 뜻. 신역(新譯)으로는 극미(極微). 색법(色法 : 물질적 존재)의 가장 작은 물질. 허공에 이웃한 색법의 근본.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이라 한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한다.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무장 ; ‘더욱, 한사코 사투리.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고, 행함이 없이 행해야만 한다’ ;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18장(第十八章)

佛言  吾法  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遠乎  言語道斷  非物所拘  差之毫釐  失之須臾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나니,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진리와 가깝지만 모르는 사람은 더욱 멀어지리라.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물질에 매이지 아니하니 털끝 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잠깐 사이에 잃어버리리라.

*호리지차(毫釐之差)에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진다

[참고] [신심명(信心銘)] -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毫釐有差  天地懸隔  欲得現前  莫存順逆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오직 간택함을 혐의(嫌疑)하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없으면 툭 트이어 명백하리라.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지니 () 현전하기를 바라거든 따름[] 거슬림[] 두지 말라.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잇따라 있는.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묘한 ()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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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478)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요중선(鬧中禪) / 이판(理判), 사판(事判) / (게송)득지재심응재수~ / 정진을 뒤로 미루지 말라 / 일념즉시무량겁.


필요한 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진짜 정말 내가 목숨 바칠 곳은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여.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비추는 밝은 밑으로 가서 길이 샘이 없는 조사선(祖師禪) 관하고자 한다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활구참선(活句參禪)이거든.

이뭣고?’ ! 추켜들면 바로 자리가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자리가 선방이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여.

정법, 참선, 정진에 대한 참뜻을 사람은 뒤로 미루지 않어. 뒤를 기다리지를 . 바로 지금! 현재 들을 , 바로 그때 ! 화두를 들어. 화두를 ! 챙기면 그때 바로 정진에 들어간 거거든.

참뜻을 사람은 모든 기회, 모든 경계에서 바로 잡어서 써야 하는 거거든.(得其源也  機境上  把得便用)

하이고! 무량겁을 닦아야 하는데, 우리가 죽을 날이 얼마 남았는데 언제 짓을 해야하지만,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거든. 생각이 바로 무량겁이지, 생각 놓고는 무량겁이 존재하지를 . 그래서 언제나 생각을 바로 단속을 나가면 그것이 바로 무량겁이여.

이뭣고?’ 해서 화두가 순수무잡해서 더이상 의심이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어 타성일편이 되면 의단(疑團) 타파(打破) 되어서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

**송담스님(No.478)—1992(임신) 칠석 법회(92.08.05)

(1) 약 20분.  (2) 약 10분.

(1)------------------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한데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다. 닭장 속에 갇혀 있는 닭들은 맞추어서 먹이를 주기 때문에 먹을 걱정은 없어. 그러나 머지않아서 전골냄비가 가깝더라. 펄펄 끓는 냄비에 들어갈 시간이 온다 그거거든.

야학(野鶴) 무량천지관(無糧天地寬)이다. 들에 날아다니는 학은 아무도 먹이를 주거나 식량이 없지마는 천지가 너그러워.


그것은 무엇에다가 비유한 말이냐 하면은 인간 세상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집도 좋고 차도 좋고, 먹을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좋은 같지마는,

자칫 잘못하면은 본의 아니게 남에게 적악(積惡) 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탐심과 진심으로서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죄를 지었으니 삼악도(三惡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거거든.


그런 부귀영화를 내던지고 다못 불법(佛法) 위해서 도를 닦는 사람들은 천지가 너그러워.

이건 대표적으로는 출가해서 닦는 스님네를 위시해서, 설사 세속(世俗) 몸담아 살고 있지마는 세속의 부귀영화에 그렇게 탐착심이 없이, 세속에 살면서도 정법(正法) 믿고 정법에 의지해서 항상 도를 닦는 사람, 형편 따라서 모다 좋은 일도 하고 그런 사람들도 들에 ()에다가 비유된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불같은 욕심을 가지고 돈을 벌라고 한다고 해서 큰돈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악랄한 생각이 없어도 전생에 지은 복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거나 딱딱 인연이 닿아서 잘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잘살고 못사는 것을 금생에물론 노력 따라서 굶을 사람이 밥을 먹고 겨우 먹을 사람이 넉넉히 살고 그러기는 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부지런히 하다 보면, 그러나 정말 부자는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그것은 속가에서는 하늘이 주어야 한다고 그러지마는, 하늘이 준다는 아니고 과거에 자기가 부자가 만큼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지, 자기가 짓지 않는데 때문에 하늘이 것이냐 그말이여.

반드시 부자는 전생에 자기가 부자가 만큼 복을 짓고 닦은 사람이다 그거거든. 전생에 지어 놓은 것이 없는 사람이 금생에 악착같이 노력한다고 해서 부자 아니여.


그러기 때문에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너무 그것에 연연(戀戀)하고, 너무 국집(局執) 가지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고, 사람으로서 해서는 일까지 하면서 그런 것을 구할 필요는 없어.


필요한 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진짜 정말 내가 목숨 바칠 곳은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여.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비추는 밝은 밑으로 가서 길이 샘이 없는 조사선(祖師禪) 관하고자 한다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활구참선(活句參禪)이거든. 그리고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깊은 산중만을 가르키는 아니라 여기 용화선원이면 선원, 선원에 가서 참선을 하면 그것이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설사 형편상 선원에 가서 방부(房付) 들이더라도 자기집에서도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소제를 하면서 살림하면서도 항상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차를 타면서도이뭣고?’ 시장에 가면서도이뭣고?’ 밭을 매면서도이뭣고?’


이뭣고?’ ! 추켜들면 바로 자리가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자리가 선방이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여.

시끄러운 가운데 복잡한 가운데에서 자꾸 생각을 돌이켜서이뭣고?’ 하면 속에서 정말 살아있는 () 깨닫는 거여. 조용한 데에 가서 일체사(一切事) 끊고 조용한 가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하면 굉장히 잘될 같지만 그렇지도 .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도 자꾸이뭣고?’ 챙기고 하면 속에서처음에는 아무래도 초입 단계에서는 시끄럽고 복잡한 데에는 그런 것들이 귀로 들리고 눈에 띄고 하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화두(話頭) 들어가는 데에 약간 장애는 받겠지마는,

그럴수록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 속에서도 조끔도 시끄러운 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가 들리게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용화사는 비구(比丘) 선방에는 비구 스님들이 팔도에서 모다 모이고, 외국에서도 와서 이렇게 사분정진(四分精進)하고 방선(放禪) 시간에도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애를 쓰고 있는 스님네도 계시고,

사무실이나 후원에서는 사무를 보고—‘원주(院主), 도감이다, 별좌(別座)용상방(龍象榜) 소임에 따라서 소임을 철저히 보면서도 속에서도 정진을 하는 그런 스님네도 있다 그말입니다.


선방에서 정진만을 위주로 하는 스님네도 훌륭하고, 사무실에서 온갖 소임을 보면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스님네도 또한 훌륭하다 그거거든.


선방에 다니던 스님네들도 과거에는 소임을 보다가 인연 따라서 걸망을 지고 나오는 거고, 걸망을 지고 다니면서 정진을 하다 형편 따라서 원주다, 도감이다, 별좌다 주지다 그런 소임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판(理判), 사판(事判) 경우에 따라서 이판이 사판 되기도 하고, 사판이 이판 되기도 하는 것이여. 정말 소임을 볼라면은 이판의 철저한 수행 없이 훌륭한 사판이 나올 수가 없고, 사판을 통해서 () () 갖춰서 닦고, 요중(鬧中)에서 철저한 수행을 쌓지 않고서는 정말 훌륭한 이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소임 보면서도 사무실 뒤에 선실(禪室) 들어가서 정진을 하고, 정진을 하다가 나와서 일을 보고, 보고 잠깐 시간 여유가 있으면 들어가서 정진을 하고.

그래서 용화사는 선방 스님네나, 사무실에서 소임 보는 스님네가 서로 괴리감이 없고 서로 위화감이 없이 서로 대중으로서 이렇게 지내고 있으니 이거 ! 대단히 보기도 좋고 좋다 이거거든.


보살선방에 방부 들이고 정진하는 보살님네나 매일 출퇴근하는 보살님네나 출퇴근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정에 생활하시면서 가운데 정진하신 보살님네나, 알고 보면 발심(發心)해서 어느 어느 시라도 항상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기고,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나가면 모두가 훌륭한 법보제자요 활구참선객이다 그거거든.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다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니라

나무~아미타불~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 마음에 본질을 얻으면 손에 (). 정법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인식을 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터억 화두를 거각하고, 일념이 대의단(大疑團) 현전(現前)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한 사람은 손에 응해.

걸어가거나, 손으로 일을 하거나, 밥을 짓거나, 국을 끊이거나, 빨래를 하거나, 채전(菜田) 가꾸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냥 자체가 바로 정진이거든, 그것이 바로 수행이여.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 겨울에는 밝은 달에 내리고, 봄바람에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천지가 영원무궁토록 그렇게 순환한 것이다 그말이여.

되었다 여름 되었다, 겨울 되었다 가을 되었다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진리의 순환이요, 진리의 표현이더라 그거거든.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 아침마다 오경(五更), 새벽마다 오경이 돌아오면 닭이 울고, 봄이 돌아오면 곳곳이 울긋불긋 꽃이 피는 도리가 아니던가.(春來處處山花秀)


도가 무엇인지, 정법이 무엇인지, 수행을 어떻게 것인지를 똑바로 모르는 사람은 일용(日用) 생활 먹고 입고 세수하고 누고, 일하고 목욕하고 매고 빨래하고 짓고, 회사에 나가서 사무를 보고,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하는 그러한 일용 생활을 떠나서 따로 생애를 구한다 그말이여.(失其旨也  離却日用  別求生涯)


어디 깊고 조용한 산중에 가서 전혀 아무 일도 상관하지 않고, 속에서 아주 그냥 저녁부터 새벽,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직 화두만 들고 철저하게 용맹정진 봐야겠다. 그래야 무엇이 되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러쿵저러쿵 시비 속에서 도대체가 공부를 한다고 해도 되지를 않고...’ 밤낮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거든. 그리고 밤낮언젠가 선방에 갈까? 언제나 가행정진, 언제 용맹정진...’


지금 당장에 지금 당장 눈앞에 거기에서 ! 챙겨야 하는 것이지, 어찌 밤낮언제? 다음철에? 내년에?’

보살님네들은, 아들딸 여의어 놓고, 대학에나 보내 놓고 어떻게 볼까?’ 밤낮 뒤로 미루거든. 그런 생각할 바로 자리에서이뭣고?’ 들어가야지, 어찌 지금을 놓고 언제를 기다리고 있느냐 그말이여.


정법, 참선, 정진에 대한 참뜻을 사람은 뒤로 미루지 않어. 뒤를 기다리지를 .

바로 지금! 현재 들을 , 바로 그때 ! 화두를 들어. 화두를 ! 챙기면 그때 바로 정진에 들어간 거거든.


그런 사람이라야 나중에 여러 가지 좋은 계기가 오면은 공부를 잘할 있는 것이지, 지금 시간을 놓치고, 밤낮 시간은 불평 불만하고 게으름 부리고 그리고 언제 좋은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5 후에도 마찬가지고, 10 후에도 마찬가지고, 30 후에도 마찬가지고, 숨이 끊어져서 죽어도 마찬가진 거여.

그게 바로, 불법(佛法)이라는 뒤로 미루는 법이 아니거든. 속담에나중에 보자는 무섭지 않다, 밤낮 나중으로 미루거든. 사람은 나중이 되어 봤자 일이 없어.


참뜻을 사람은 모든 기회, 모든 경계에서 바로 잡어서 써야 하는 거거든.(得其源也  機境上  把得便用)


앉아서는 앉아서이뭣고?’ 섰을 때는 섰을 이뭣고?’ 일할 때는 일할 이뭣고?’ 먹을 때는 먹을 이뭣고?’ 때는 이뭣고?’

누가 자기를 욕하면, 욕할 바로이뭣고?’ 들어. 칭찬하면은 칭찬한다고 흐뭇하고 좋아할 있어.


옛날 성현의 말씀에칭찬하는 놈은 도둑놈이고,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은 바로 나의 스승이다

공연히 잘한 없는데 칭찬하면 공연히 입이 찢어지면서 흐뭇하게 생각하고, ‘, 사람 좋은 사람이더라그러거든. 칭찬하는 사람 좋아하지 말어.

나를 험담하고 나를 비방하고 욕하고, 나의 잘못을 똑바로 지적해 주고 사람은 참으로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고, 사람이 나의 존경할 만한 스승이여.(2559~4554)



(2)------------------


이렇게 생활을 나가고 이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두두정묘국(頭頭淨妙國)이요 물물(物物) 상주진신(常住眞身)이여. 모든 것이 극락세계(極樂世界) 선불장(選佛場)이요 도솔천(兜率天)이요, 모든 것이 상주진신(常住眞身)이여.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더라그거거든.


어디 죽어서 극락에 바라느냐 그말입니다. 생각만 ! 그렇게 돌이켜서 그렇게 살아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선지식(善知識)인데.


일체성시불성(一切聲是佛聲)이요모든 소리는나를 칭찬하는 소리나, 나를 험담한 소리나, 짖는 소리나,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기차 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고.

일체색시불신(一切色是佛身)이여모든 눈으로 있는 것들은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그거거든.

촉처천진(觸處天眞)이요부딪친 것마다 천진불(天眞佛)이요. 무엇이 좋네 나쁘네 그걸 가릴 있느냐 그말이여. 시비 가릴 필요가 없어.(雌黃無分)


우리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겠다. 이것이 바로 법보제자의 생애요, 참선법!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불자(佛子)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그렇게 닦아 가면 생활해 나가는 데에 얼마나 생기(生氣) 약동(躍動) 것이냐 그말이여.

좋은 일을 당하면 좋은 일을 당한 대로 좋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 속에서 ! 발심을 하거든. 정신을 차리면 아무리 어려운 속에서도 반드시 솟아날 구멍이 있어. 어떠한 어려운 속에서도 반드시 귀인(貴人) 만나게 되어 있어. 귀인이 바로 불보살 화현신이 아니던가.


정말 불법을 믿고 발심을 해서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무엇이 그렇게 부러울 것이 있어? 시기심도 없어져 버리고, 질투심도 없어져 버리고, 모든 사람을 보면 모두가 반갑고, 모두가 고맙고.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모르는 가운데에 정진력이 생기고 수행력이 쌓여서 () () 겸전한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춘 부처님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 일어날 때마다 생각이 바로 시비에 흔들림을 받지 않고 바로 화두를 드는 정법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것이 바로 삼십이상을 닦는 방법이요, 팔십종호를 구비하는 방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경전에는 무량겁(無量劫) 부처님은 그렇게 닦으셨어. 그래서 삼명육통(三明六通) 구족(具足)하시고,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신 것이거든.


무량겁이 무엇이냐?

하이고! 무량겁을 닦아야 하는데, 우리가 죽을 날이 얼마 남았는데 언제 짓을 해야하지만,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거든. 생각이 바로 무량겁이지, 생각 놓고는 무량겁이 존재하지를 . 그래서 언제나 생각을 바로 단속을 나가면 그것이 바로 무량겁이여.


오늘 칠석날, 산승(山僧) 보잘 없는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해서 부귀영화에 너무 집착하고 연연하지 말고, 형편이 어려워져도 사업이 잘못되어도그까짓 ! 그까짓 것이 무엇이냐! 꿈속에 얻었다가 한번 것이지. 꿈속에 있었던 일이 좋으면 뭣하고 궂으면 뭣하냐. 당장 마당에 찰나를 내가 「이뭣고?」를 하자이렇게 단속을 나가면 그까짓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칠석날이니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모다 오셨어. 이어서 법요식이 진행이 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하게 되겠습니다.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성취한 위에이뭣고?’ 해서 대도(大道)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하라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여.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며 있으니 산을 찾지 마라. 재가 산에 있는데 산을 넘어 다니면서 어찌 산을 찾을 것이 있느냐.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 몸이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물을 찾을 있느냐. 찾기를 쉬어 버려라 그거거든.


묘봉정상(妙峰頂上)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 수미산(須彌山)인데, 세계에 최고 높은 산이거든. 수미산 봉우리에서 몸을 굴려.

시방(十方) 그를 만나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十方無處不逢渠].


이뭣고?’ 해서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더이상 의심이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어 타성일편이 되면은 의단(疑團) 타파(打破) 되어서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4556~551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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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농계유식탕와근 야학무량천지관 ; 지공 선사(志公禪師)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참고.

*(게송) 원입송풍나월하 장관무루조사선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호의호식(好衣好食) ;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이라는 뜻으로 입고 먹음을 이르는 .

*적악(積惡 쌓을 /악할 ) ; 남에게 () 짓을 많이 [].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속(世俗)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

*연연하다(戀戀-- 생각할·그리워할 ) ; 무엇에 집착하여 미련을 가지다.

*국집(局執) ;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 사리(事理)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요중선(鬧中禪)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