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20. 2. 10. 15:5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0-1호) 용성스님과 제1구 문답.

 

**전강선사(No.021)—전강선사 일대기 제10호(경술1970년 12월 18일 새벽. 음) (1971년 1월 14일 새벽)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20분.

 

(1/3)----------------

 

춘색(春色)이 하처귀(何處歸)오  장안백만가(長安百萬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승정중출(山僧定中出)허니  공정일타홍(空庭一朶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내가 오대산 북대(北臺)에서는 신배령을 넘어서 명주사, 저 영동 명주사, 양양 명주사를 갈라면은 그리 길은 있는디, 그 높은 오대산 신배령을 넘어서...

그것, 거 안 가 본 이는 거 다 모르지마는 가본 이는 짐작이 있을 것이로구만.

여그 가 본 이 없을테여. 지금 그리 넘어갈 택이 있어야제.

 

그때는 도무지 뭐 어디 자동차가 있나? 무슨 교통이 지금 이렇게 될 수 있어?

사방 대관령도 그저 그만 전체 길인디, 그런 큰 길이 산으로 그만 그저 어디로 뀌어서 막 나갔는디 그렇게 넘어갈 까닭이 있어야제.

 

그때는 교통이 그렇게 뭐, 참! 가시 형극(荊棘)이제. 어디 뚫고 갈 데가 있나?

헐 수 없이 중대(中臺)로 올라서 북대로 해서 북대 뒤에서 그 신배령을 넘어서 가라는데, 그저 물어서 인자 걷기는 거까장은 갔지마는.

그 중간 중간이 그런 산중에 그 뭐 사람을 때려 다디미돌로 때려 죽여서 피 흔적이 있는 걸 보고, 사람이 금방 또 있다고 허는디 가면 없고, 옛날 그때가 언제여.

 

그래 그 오대산을 넘어가다가는, 신배령을 돌아 넘어가야 헐턴디, 밤새드락 가다 보니 비로봉까장 올라갔다가 비로봉서 그만 짐작해서 이리 올라왔으니 저리 넘어간다고 넘어가다가,

그놈의 그 산은 첩첩허고, 산이 첩첩해도 보통 산 말이제, 오대산이란 산은 세계에도 없는 산인디, 우리 한국에서도 제일 큰 산인데 얼마나 첩첩허며,

그 냉기(나무)는, 역사 없이 큰 냉기가 이놈이 제대로 엎어져서 껍데기는 썩고 속 알맹이만 바늘처럼, 그 숭악헌 창(槍)처럼 된 놈을 피해서 또 가다 보면 바우, 험상스런 바우가 모도 있어.

 

그 옷 다 찢기고, 그 헌 것을 집어서 실로 얽어서 입은 놈의 것이,

7월 달인디, 날은 그렇게 춥지 않으니깐 장마는 들입대 와,

그 수풀 속에 비는, 맺혀 있는 비가 이중으로 들입다 쏟아져. 이놈의 수풀처럼...

 

내 참말로 죽을 뻔 했구만. 얻어먹고 나간다는 것도 거 보통이 아니여.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이다. 산 높고 물 널룬 것도 도무지 그 무슨 앞에 끓일 것도 없고 나가는 그놈의 길인데. 말은 그렇지마는, 고행(苦行)이 참 적지 않어.

 

다 겪어 놓고 생각해 보니 엄청나지.

그때는 당해 보니, 정말 고통을 당해 보니—캄캄헌 그믐밤에 그렇게 헤치고 내려가는데, 당해 보니 그래도 그것을 헌다 그말이여. 그짓을 허고 내려가.

 

몸뚱이까장도 다 가시에 한 덩어리썩 모두 찔려 찢기고 이 지경 되았는데, 그놈의 인가(人家)를 만날 수도 없제, 밤이제.

겨우 내려가서 그 불을 하나 발견해 가지고는, 불이 빠짝 해서 발견해 가지고 주인을 찾으니, 주인이 '누구냐?'고 그래서 내가 거그서 서서 얘기를 헌다.

 

"웬 사람이냐?"고 해서,

"내가 오대산 중대로 해서 신배령을 넘어서 온다는 것이 저 비로봉 상꼭대기로 올라갔던 갑디다. 내가 거, 상꼭대기에 '열 십(十)'자 써 놓고 비로봉이라고 써 논 그 돌을 보았소"헌게.

 

아따! 깜짝 놀램서 "거그서 여기를 어떻게 왔느냐?"고.

'여그서 밤인데 어떻게 더 왔느냐?' 이거야. 낮에도 못 오는 길이요.

'거그는 여그서는 뭐, 여그서 신배령으로 돌아서 올라갈지언정, 이렇게는 넘어오지 못하는디' 깜짝 놀래드구만.

"아! 죽은 사람이 살아 왔구나" 아, 그러더니 그만 들어...

 

거그는 집이 똑 하나 있으면 둘은 없어. 한 10리나 가야 집이 있는데.

밑 근가(近家)라고 허면 한 20리나 가고, 거 조끔 가라고 허면 10리 되고 이런 놈의 덴디.

 

밤에 거그를 들어가니까, 나무로 '열 십(十)'자를 짜 올려서 방을 지었는디, 똑 방 한 칸을 지었는디,

아들 하나하고 딸 하나하고 내외허고 너이 산다 그말이여.

 

그 밤중에, 밤중이 아니라 새벽이지.

새벽이라도 겨우 숨이 넘어가게 되았으니까, 배는 고파서 숨이 넘어가게 되았으니,

"뭐 조끔 그 자시다 있든 거 있으면 날 좀 요기를 시켜줬으면 어떻겄습니까?"헌게,

 

"아! 그러고 말고야 그냥....” 나를 들여다보더니 깜짝 놀래야.

암행어사(暗行御史)로, 그 이도령이 춘향집에 당도해서 문깐에 찾아든디, 춘향 어머니가 그 이도령을 턱! 보더니, '아이고! 이게 웬 일이냐?'고 놀래데끼, 놀랠만큼 나도 됐어.

 

다 짜개지고, 보따리 하나 여그다 옆에다가 약장수처럼 맨 놈의 것이 다 찢어지고, 그래 깜짝 놀라고.

사람은 보니 젊은 사람인디 피 한점 없이 생긴 것이, 하! 그래 가지고 오니까.

 

그 노인, 참! 점잖해야.

한 방에 자제, 두 방에... 두 방도 없어.

나무로 짜 올린 집에 방은 설찬히 큰디 거그 들어가 보니깐, 그 네 구석떼기 방이 있는데.

 

꼭 제일귀(第一句) 도리만, 제일귀 법문만 듣고 이런 법문은 그 뭐 얘기처럼 듣기 싫어 허지마는,

자꾸 날 보고 졸라 허라고 해싸니깐 허제, 그거 뭐 헐 거 뭐 있나 그거.

그 뭣혀, 그녀러 것. 지내 버리고 난 거, 그거 뭐 먹고 똥싸 버린 그런 거.

 

허지마는, 옛 역사가 아니면은 되들 안혀. 그 옛 역사와, 우리가 과거 이렇게 역사 없이 미(迷)해서 왔어.

그 미해서 깨달지 못허고 장겁(長劫) 미(迷), 한량도 없이 미해 온 가운데에서 그 세아릴 수 없는 미진수(微塵數) 몸뚱이를 받어 가지고 미진수 대죄를 지어서, 무간악도(無間惡道)로 드리 경유해 온 그런 것으로써 인생 역사가 되고, 인생이 참고거리 되고, 사람으로서 깨달을 바가 되고, 그래 가지고 우리가 금생에 부지런히 닦아서 내생에, 미래에 과를 얻는 것이여. 과증(果證)을 헌 것이여.

 

그러니 처음 없이 어디 가운데가 있으며, 가운데 없이 무슨 뭐 '마침 종(終)', 끝이 있는가?

이것도 다 무슨 뭐 역사 가운데 반다시 알 일이고.

 

아, 그래 빠딱, 불이 빠짝헌 것을 보니 네 구석, 방 네 구석떼기에 한쪽 꾸역대기에다가 이렇게 쌓아 올려서 거다가 중간을 딱 요렇게 싸 가지고, 거다가 관솔불 썬 불 그놈이 한 얼매 동안 초저녁까장 늘 써고 그러니 탄 놈이, 거그서 불이 타면은 우에서는 요렇게 꼭 연기 빠지게 맨들아 논, 내려 와서 요렇게 받아 간 놈이 있어.

고놈이 고리 들어가서 저 집으로 빠지게 맨들아 가지고 그 방에다가 관솔불로 솔가지 공이를 따서 그 불을 써 가지고는 신도 삼고.

 

옛 모도 산에 무슨 뭐 찔갱이 풀 같은 거 갖다가서는 거 꼬아서 새끼도 꼬아 쓰고, 고 질 가운데 나는 그 찔갱이 풀 그 찔긴 거 있거든.

고놈 가지고 새끼를 꼬아 가지고는, 고 새끼를 요렇게 가닥—새끼 구녁에다가, 또 쬐끄만헌 새끼 고놈을 넣어. 그려 놓으면 똑 엮는 것 같이 되아.

이 엮지 않고 새끼를 요리 틀어 가지고 거다가 적은 새끼를 넣어서 고렇게 쪽쪽 넣어 가지고는 방 자리를 만들었드구만. 방 자리를 맨든 그 우게서 자는디, 방은 무척 뜨습고.

 

관솔불은 거그서 탄 끌텡이가 칠팔월 달이라 아직—뭔 종이가 그렇게 있나, 아무것이나 문을 모도 이리저리 모도 얽어매고 헌디, 산막에 그리 바람이 부니까, 바람이 불어서 빠짝거린 놈이 보였든 것이라. 거그 들어가 보니까 그려, 끌텡이가.

 

그래 거그 들어가서 "배가 고프니, 나 요기 좀 해 주겄오?"허니,

그저 그 식기(食器)가 시커먼 뭐 그릇 같은 게 있는데, 거다가 옴목헌 놈인데 수북허니 담어다 주는디, 감자라. 감자를 쪄서 그 먹든 걸 그걸 주어.

 

그 무슨 뭔 밥이라 하드구마는, 메밀밥 말고 또 밥이 있어.

'아, 그것이라도 있었으면 좀 드리겄는데 그 밥이 없다'하면서 감자를 쌂어. 오히려 감자 쪄 주니 제일 좋고, 참! 맛이 있드구만.

 

그 배고플 때 그놈 얻어먹어 봐. 어짠고? 기가 맥혀!

아따, 그놈이라도 그거 쪄 논 놈, 그 먹다 남은 놈, 그놈 얻어먹으니 눈이 뜨이고 참말로 그 살았다 그말여. 배도 고픈 줄 몰랐어 거까장은. 와서 앉으니 배가 고프지.

 

그놈을 얻어먹고 날 새면 갈락 하니, 비는 어떻게 떨어지는지!

웬 놈의 장마라도, 그때쯤 장마졌든고 모르지.

 

아, 갈라고 허면 비가 오고, 갈라고 허면 비가 오고 허는디.

아, 어떻게 뭐 그날 종일 그만 그 이튿날 못 갔제.

그 산막(山幕)에서 너이, 넷 권구(眷口)가 살기도 기가 맥힌... 아, 그런데 그 내가 한때를 얻어먹기가 참, 기가 맥히제.

 

그래도 갈 수가 있어야지, 안개는 퍼 끼고 비는 와 싸니,

비 맞고도 갈 수 있지마는, 거그서 조금 넘어가면은 임계천을 건네야 하는데—임계천이라고 하드구만. 그 다 일러줘서 알았지.

 

임계천을 건널라 허니, 어떻게 건네여? 못 건네여.

어떻게 강은 그 사방 산에서, 깊은 산에서 흘러 모아 가지고 강이 되아 가지고 내려가는 그 거그를 건네야 하는디, 임계천을 건네야 하는디, 거그서는 뚝 떨어져 오도 가도 못허게 된 놈의 디여. 아! 이런 놈의 디가 있는가!

 

그래 '오늘, 내일, 내일'헌 것이 일주일 간을 거그서 그만 못 갔어.

비는 오고, 비는 안 오드래도 인자 거기에 '임계천 강수를 건널 수가 없어 못 간다'하고.

 

또 그 안에는 집이 있다 해도 어디로 어디로 올라가서 어떻게 해야만 가고 헌디 가서 계천수(溪川水)가 그놈은 산에서 급허게 흘러내리니 건네서 어덕으로 갈 수가 없어. 똑 그리밖에 임계천 밖에 갈 데...

 

아, 그 집에서 이레를 쉬는데 영감님은 참, 덕이 있고 할마니는 늙어서, 옷도 말만 남은 놈의 치마를 입고. 옷이 있나? 아무것도 없어.

처녀는 한 열 칠팔 살이나 먹은 것이 있는데, 고것이 밥을 다 해 먹고 허는디, 손등이는 그러나 저러나 까마구도 거다가...

 

얼마나! 이놈의 제 코를 닦아서 그렇게 꺼먼가? 원, 불 때다가서 그 끄시럼에 그렇게 끌려서 꺼먼가?

새까만헌 놈의 손으로 '씩씩'험서 그 방애를 찧는디, '씩씩' 소리가 나면서 아, 그놈을 찧어 가지고선 손은 어디 한번이나 씻는 건 내가 못 봤구만. 그런 놈으로 그저 그만 어떻게 해서 밥을 해서 주면은 참 과연 먹을 수가 없어. 그래도 그저 배고프니께 어떻게 좀 먹기야 먹지만, 얻어먹었지마는.

 

그런 것 저런 것 다 얘기할 것 없고, 이제 그만 두지.

거그서 일주일 있었어. 거까장 두어 버리고.

 

 

안동서, 거까장 가기 전이제, 인자 잉.

그때 그 천석이, 김천석이 형사 만나 외 사주어서 외 그놈 먹고.

 

거 인자 그놈 뭐, 내가 뭐락 하드노? 또 그놈도 이름 잊어 버렸네.

익수! 김익수. 김익수라는 사람은 사람이 몇백 명씩 따라. 유명헌 도인이라고 따르는디, 그놈의 도인의 행사를 보니 제가 제일이여. 천하에 없어.

 

뭐, '하날님밖에는 없다' 하날님 이외에는 다 때려쳐 버려.

중놈이고 뭣이고, 중은 당최 그건 말헐 것도 없고. 그 얘기만 하면 중놈 얘기가 나오네.

그 중놈이 그 아무 때에 거 어떻게 그 했다는 나쁜 고약한 거, 그놈의 얘기는 어쩌 그리도 많이 있는지. 그, 그놈의 얘기 다, 중 얘기 헐 수가 없구만. 못된 놈의 얘기만 똑 중... 인자 끄집어내고.

 

아, 이놈이 그때 그 고운사에 있을 때 그랬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허고 싸울 때. 싸울 때.

글안했으면 싸우도 않고, 글안했으면 하는데, 제까짓 놈이 글쎄 '기차를 이렇게 붙잡으면 그까짓 게 갈 리가 있나, 못 간다'하고.

바둑은 내가 깨서 봤다니까 틀림없이. 이 그놈이 바둑을 요렇게 깬 것이, 그 곧이 듣게 되았제.

 

그래 가지고는 "어디 중들, 그 차력(借力), 내가 한번 그 무슨 그러헌 신통을 부릴터이니 그 중이 그 무슨 차력을 막는... 나는 신차(神借)도 허고 약차(藥借)도 허고 또 뭐, 내 신통도 있고" 다 헌 놈이라. 아, 그런 놈인데.

 

사람을 한 백 명씩 처모아 놓고 허는 지정머리가 고런 소리밖에 안 혀.

그저 "어떤 놈, 그놈이 어째 나를 비방 반대해서 요리 비벼 버릴라다 말았다"고. 요 소리!

그저 그러고도 어데 죽이기야 그렇게 비볐을 것인가마는, 그 소리 뿐이여!

 

그러고는 위험허고 무섭게, 당최 그런 천하에 뭐 그 앞에 가면 무서워 죽게, 요런 놈의 소리만 허고 있어.

그래 가지고는 '당장에 그저 그런 어떤 놈은 그걸 내가 못 죽이고 왔느니, 어떤 놈은 어쨌느니' 고런 소리 뿐이고.

 

그래서 내가 쌈이 붙었는디, 그놈이 그와 같은 별별 천하에 없는 신통 변화를 다 하고,

"네가 이놈, 네 손으로 비벼 버린다 하니, 네 손톱에다 갖다가 허공을 달고 댕기고 네 손톱에다 갖다가 말이여, 응! 허공보담도, 무슨 허공보담도 몇백만 배 더 무슨, 더 큰 무슨 무엇을 갖다가서 나투아 가지고는 신통 변화를 나투아 가지고 승천입지(昇天入地)를 나투아 가지고, 너 이놈 허면 뭣 할 것이여, 이놈아! 너는 외도 아니고 무엇이여, 이놈" 여까장 싸웠다니까.

 

"너는 외도" 그 외도(外道)라는 것을 내가...

"외도라는 게 뭐냐?"고 고함질러.

 

"너 이놈, 외도를 내가 말헐께 들어 봐라"

그놈허고 한참 싸왔기 땀세, 싸운 얘기를 내가 저번에 그만 조끔 허다 지나갔지마는, 또 다시 그놈 되풀이를 한번 헌다 그말이여.

 

"그러헌 네가 신통이 아무리 있기로이, 네가 역전건곤(逆轉乾坤)허는 신통이 있다기로이, 네 하날이 제일 장허니 건곤(乾坤), 하날도 돌려 놓고 네가 땅도 뒤집어 놓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허면은 무엇 허는 것이냐? 그것이 외도 아니냐. 그게 상견(相見), 색상외도(色相外道)가 아니냐”

 

법문(法門)으로 들어가. 이게 법문이 있기 땀에 헌 소리여.(처음~21분19초)

 

 

 

 

 

(2/3)----------------

 

"왜 외(外)냐? ‘밖 외(外)’자, 왜 외도(外道)냐?

외도라 하는 것은—제가 내심을, 제 마음은 항상 '안'이라 한다. '아심(我心)이다, 내 마음이다. 내심(內心)이다, 내 안 마음이다'

응, 그 마음은 항상 안자, '안 내(內)‘자를 떡 거다가서 넣어야 하는 거요, 외도란 건 '밖 외(外)’자를 붙이는 것이다.

 

네가 네 마음밖에 그 상견이, 착상견(着相見)이 그것이 외도 아니냐.

무슨 기차를 잡아 못 가게 하고, 남의 목숨을 파리처럼 문대 버리고, 네가 하날을 돌려 놓고, 땅을 뒤집어 놓고, 우주를 네 마음대로 씹어 뱉아 버리고, 일월(日月)을 갖다 네 눈깔 삼아 네 눈에다 집어 넣고 보고, 그것이 외도 아니냐.

 

그걸 뭣 할 것이냐? 그렇게 갖다가서 저 사람들을 가리키니, 그 사람들이 너 허는 것을 배울 것이냐? 너 허는 그 신통을 그 사람들이 당장 얻을 것이냐?

저 사람들은 얻지 못허게 너 혼자 그렇게, 그렇게 네가 무슨 뭐 외도가 되아 가지고는 천하 만물을 네 마음대로 네 손톱에다 모도 붙여 가지고 넣었다 네대로 쓰지마는, 그 사람들이 너를 따를 수가 있겠느냐?

그러니 그 사람들은 믿었자 뭣 할 것이냐? 너만 믿어 가지고 모도 미쳐 버리고 혹해 버리제 뭣 할 것이냐? 대답해 봐라. 외도란 건, 외경(外境)이란 게 그런 것이제, 뭣 혀?

 

너 만날 얘기헌 게—대체 바둑 깬 것도 봤구나"

요만큼도 무서워 걸려야제, 어디가 걸려? 걸릴 것이 있나 말이여? 응.

 

내가 이까짓 놈의 몸뚱이 하나를—나도 이렇게 허고 그 도를, 참선(參禪)해서 견성(見性)했다 한게, 저놈이 참선해 견성헌 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서웠다 그말이여. 속으로는 무서워했거든. 법식자구의(法識者懼矣)로!

 

저는, 이놈이 외도는 분명허니 무엇 아는 것이 있나. 그까짓 걸 가지고 어떻게 아는 것인가.

그 신차력이니, 무슨 약차력이니, 무슨 그런 것 좀 해 가지고는, 뭐 어떻게 해 가지고는 그따구 짓 헌 것이 무엇이냐 그말이여. 저놈이 법식자구의로 무서웠거든.

 

나는 또 그놈을 냅대 공격헌디 여지없거든!

하나 내가, 제까짓 놈이 네 손톱으로 나를 비벼 버리면 제 손톱 피가 될지언정 말이여. 조끔도 내가 거기에는 무슨 뭐 어디 포외심(怖畏心)이 있어야제.

 

무슨 포외여?

그때 처음 내가 척! 선지식(善知識) 스님네한테 법담(法談)해서, 법전(法戰)해서 탁마(琢磨)해 가지고 인가(印可) 받아 가지고 척 나간 사람인데, 무엇이 그려.

 

내가 학자(學者)를 요새 모도 다룰 적에, 학자한테 모도 말할 때에 그 천하 없는 공(空)에 들어가서라도 공(空)이니, 무슨 비공(非空)이니, 역무공(亦無空)이니, 역유공(亦有空)이니, 고까짓 놈에 처백혀 가지고 알음알이를 턱 집어 내 가지고,

없느니, 무슨 없는 것도 없느니, 뭐 목녀(木女)니, 무슨 뭐 석녀(石女)니, 무슨 뭐 귀신방구 털이니, 토깽이 뿔다구니, 거북털이니, 고따구 놈의 지견(知見)을 때려 붙여 가지고 어쩌고 어쩌고 해싼 놈의 학자를 냅대 쳐 때려 부수어 놓고, 거 가서 공안(公案)이니라.

 

거 공안이 아니면은 그 곳을 뚫어 넘지를 못혀. 꼭 공안이래야 하제!

 

"그 공안 의심(疑心)이 안 나는디 어쩔 것이냐?"

왜, 의심이 안 나? 의심이 안 날 것 같으면은...

 

"그 공안을 한번 해 보자. 일러 봐라"허면 어림도 없어! 어림도.

 

아! 판치생모라 헌게 판치(版齒)가 무엇인디?

 

그게 석녀여? 그것 토깽이 뿔다구여? 그 무무(無無)도 역무(亦無)헌 도리여?

하! 이런 참, 나! 거그는 공(空)이니 유(有)니, 비유(非有)니 비무(非無)니, 허무(虛無)니, 불견(佛見)이니, 부처 패궐(敗闕)이니, 소용없는 디여, 그것이.

 

왜 그려, 왜?

내가 모가지를 바치고 헌 소리니까. 고런 것 가지고서...

 

거다 '생모(生毛)니라' 혀 놨어.

 

그것 당초에 의심, 의심밖에는 없어.

'아무리 해 봐도 알 수 없구나' 아, 이렇게 나가야 하는 것이여, 학자라는 것은.

 

그래서 서산 스님께서, 서산 큰스님께서 뭐라고 했노.

「대저활구학자(大抵活句學者)는, 활구학자는 무어로(無語路)요, 말 길도 없고. 무이로(無理路)요, 이치 길도 없고. 무문해사상고(無聞解思想故)요, 듣고 알고 사상도 생각도 없어」

 

모도 생각해 가지고 무슨 석녀니 무슨 돌계집이니, 돌장승이니, 본래 없으니, 없는 놈까장 없느니, 이 지랄, 이래 가지고 있지. 거그 처백혀 가지고. 어디 그것도 뭐 이치지.

 

'이치 길, 말 길, 사상고' 못혀!

허니 그게 없는 게 활구학자(活句學者)니라.

 

사구(死句)학자라는 것은 이치 길 있지, 말 길 있지. 말 길 있은게 문해사상고(聞解思想故)가 있지.

 

없어. 없어!

아, 이러헌 학자래야 되는 것이제.

 

아, 요놈의 것들, 요런 것들이 생겨나 가지고는 스승 없이 저 혼자 생겨 나가지고는 제가 '옳다, 옳다. 아따야! 그 토끼 뿔따구에, 옳다! 토끼 뿔따구에 거북 털이 났구나. 옳다!'

 

아, 이런 놈의 것 좀 보소!

고봉 스님이 어쩔 수 없어 썼제. 뭘 썼어?

 

내가 여기에 역사를 해 나가다가 이놈을 또 집어넣야 혀.

이걸 집어 넣지 않으면 법문이 죽어 버려. 죽은 법문이여. 소설 법문, 얘기 법문이여.

 

고봉 스님이...

내가 왔다갔다 나오는 대로 내가 법문헌다 하니까, 모도 '그렇게도 왔다갔다, 순서 없이 질서 없이 그런 법문헌다' 그려?

여그 왜 질서가 없어서? 왜 질서가 없어.

 

해저이우(海底泥牛)는 함월주(啣月走)요. 바다 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난다.

암전석호포아면(岩前石虎抱兒眠)이다. 바우앞에 돌호랭이는 아이를 아듬고 조은다.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다. 쇠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가는구나.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다. 곤륜산은 쾨코리를 탔는디, 노사(鷺鷥)가 이끄는구나.

 

이 네 글귀 안에 능히 주기도 허고, 능히 뺏기도 허고, 능히 죽이기도 허고, 능히 살리기도 헌, 그 글귀가 있으니 그놈을 찾아내라.

고봉 스님이 '그놈을 찾아 내면 너를 참학사필(參學事畢)을 했다고 인가해 주마'했지.

 

그건 용헌 말씀이여. 용헌 말이다 그말이여.

그 글귀를 거그서 턱 찾아내야 허겄다 그말이여.

찾아내 가지고도 유격백중관(有隔百重關)이다. 백중관(百重關)이 맥혀 있다.

 

돌호랭이가 아이를 아듬고 조는 고것만 고것만 가지고, 석녀, 돌계집이 아들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뭐, 그 뭐여? 거그서 능살(能殺) 능활(能活) 능종(能縱) 능탈(能奪) 하는 놈을 어디 축말(逐末) 말고, 말(末)을 쫓지 말고, 어디 그렇게 견성했다고 그런 응! 자반(者般), 뭐 어디 그런 양이 있거든, 고러헌 양이 있거든, 나와서 여그 와 척 서서 일러 봐.

 

일러 보면 내가 거그서 척! 해 줄터니 일러 봐. 못혀?

 

 

일 분인들 거그서 멈출 리가 있나!

왜, 이러헌 중대헌 사(事)를 두고 이러헌 생사를—꽉 맥혀 생사가 그 뭣이 생사, 그 숭악헌 생사의 업(業)이 꽉 찼기 따문에 보들 못허고 답을 못하고 이래 죽지.

 

이렇게 앉어 가지고는 그저 그만 조끔 도 닦는다고 와서 왜 그렇게 돌아댕기고, 왜 그렇게 허망허게, 왜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가? 이렇게 허망허게 세월을 보낼 것인가?

 

나도 그때에 선지식(善知識) 인가 다 했다 하지마는 자유, 좀 행각(行脚)을 해서 병을 내가 낫우어 가지고는 으쨌든지 이 병 좀 낫워 가지고 다시 닦으리라.

그때에 생각해 본즉, 내가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인가 다 받았다고 허지마는—인가 다 받았제! 뭐 인가 안 받은 게 어디 있어!

 

인가를 받아도 나는 인가가 딱딱 공안을 해 가지고 넹겨서 받아, 넹겨서!

허락이 아녀! 내가 허락 받았으면 내, 쥐뿔따구도 내 이런 말 안 혀!

 

내 여그, 용성 큰스님 제자가 한국에 꽉 찼는디 내가 뭐 여그서 거짓말, 내가 헛된 입을 벌려?

 

 

용성 :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영신 : "예?"

 

용성 : "어떤 게 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용성 : "아니다. 아녀"

영신 : "큰스님, 어떤 게 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용성 : "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그 어디 있어?

 

용성 :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구나!"

이렇게 내가 인가 받았어. 그게 인가여!

 

인가 받았제. 뭔 일른 게, "옳다" 그랬어?

내 그런 인가 같으면 내 입도 안 벌려! 입도 안 벌린다 그말이여.

 

 

이렇게 생사사대(生死事大)허고 무상(無常) 참 신속(迅速)헌 것이다.

요렇게 이 지경에 앉어서, 그렇게도 그렇게도 마음대로, 이 몸뚱이 마음대로 돌아댕김서 그럭저럭 그럭저럭 이러다가 어쩔 테여? 어쩌?

 

인자 내일모래 해제(解制)허면 '해제했다'허고 또 대가리깨나 내두르고 돌아댕김서 히히헤헤 하고 댕기다 보면 뭐 한철 공부헌 그놈의 자리가 또 희미해져서 참 더럽다. 이렇게 닦어 가지고 더러워.

 

한번 닦어야 헐지니라.

 

못혀!

세상에 내 본각(本覺), 내가 나 깨달은 본각, 이것이 이것이 우리의 정법이고, 우리의 생사해탈법이고, 우리 생사 없는 법이여.

이걸 탁! 「내가 나를 척 깨달라 버린 것」이 내원이여, 내원궁(內院宮) 내원이라.

 

그 이 내원궁(內院宮), 우리는 내원궁 가기를 원력(願力)헌 것이 내 일념 하나 탁! 한 생각 일어나는 놈 탁! 깨 번지면, 고놈 탁 깨져 번진 데 가서 내원궁이여.

우리는 내원궁, 아! 그 원(願) 세운 것 아닌가?

 

응, 도솔 내원궁 간당게 저 하날 내원궁으로 아네. 하, 이런!

또 극락(極樂)도, 극락도 똑같혀.

 

그 왕생극락(往生極樂)이라. 십만 오백십육 국토를 지나가서 유국(有國)허니, 나라가 있으니 극락이니라.

그게 그 생각해 봐, 뭐인가? 뭐라고 했어.

 

십만이란 게 뭐여?

십만(十萬)이란 게 내 십악(十惡)! 십악, 십만이여 고놈이. 십악중죄(十惡重罪) 짓는 놈이 십만이여.

 

십악, 십만 오백십육 국토라는 게 그 무엇이여?

말키 번뇌장(煩惱障)이여, 그 소지장(所知障), 번뇌장.

 

십악중죄를 지어 가지고는, 그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오음(五陰)으로 들어와 가지고는 그 본심(本心), 제 본심을 제가 매(昧)해 가지고는, 그 지옥고, 그 삼악도, 그 오탁악세고(五濁惡世苦), 그 오탁이란 말이여 잉! 오백, 오탁.

 

요놈의 디가 꽉 매해 가지고 해탈장(解脫障)을 뚫지 못해가 생사 없는 고향을 못 가니까 그렇게 일러 놓은 것을 그게 방편설(方便說)에 나가서 어쩔 수 없으니 고놈을 이렇게 모도 일러 가지고는, 끝에 가서 인자 가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재하방(在何方)고? 어디 있냐?

 

내나 십육 국토를 지내가서 유국(有國)헌디, 나라가 있는디 호왈아미타(號曰阿彌陀)라고 해 놓고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재하방(在何方)고?

심두(心頭) 육문상방(六門常放), 네 여섯 문 육문상방에—입에서, 눈에서, 코에서 이런 육문상에 아미타불!

 

"아무개야!"

"예! 아미타불"

 

내 본 아미타불, 내 본각 주인공. 딱 했네.

 

본래 없는 것인디, 그거 없는 것인디, 툭! 깨달라 가지고 우리 부처님이 깨달라 가지고 돌아가실라 하다가 헐 수 없이.

 

"과거 제불(諸佛)도 모도 방편을 설했으니, 금일 석가(釋迦)도 방편을 설해 줍소사"

그 방편문에 나아가서 인자 헐 수 없이 그 설해 놓으시고는.

 

'가명인도(假名引導)다. 내가 거짓말로 이렇게 했다. 가명인도고로, 거짓말로써 내가 인도헌 전차로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권이 실답지 못허고, 추이미묘(麤而未妙)다가 더러운 게 추해서, 심상체신(心相體信) 네 마음 네가 인자 모도 믿은 뒤에사, 이에 실상(實相)을 내가 느그한테 보였다. 그동안 느그한테 이렇게 내가 속여 왔구나.

헤헤! 인자 내가, 보소(寶所)가 재근(在近)하니, 보배가 저그 있으니 궁자(窮子)야 거래(去來)허라. 궁헌 자식들아 오너라'

 

'버리고 오니라' 그말이여. '거래(去來)'도 그 모르는 것이여.

 

거래, '갈 거(去)'자, '올 래(來)'자를 '갔다오니라' 어디로 갔다 와?

'가거라, 가자, 어쩌고' 뭐 소용 없어.

 

궁자야 거래... 화성유품에 가서, 『법화경(法華經)』 「화성유품(化城喩品)」에 가 막 잡아 돌린디 가서 있제.

여기 경(經) 다 본 이, 여기 시방 와서 모도 강사(講師)가, 있제? 궁자거래 있제?

 

궁자거래(窮子去來)가 뭐냐 이말이여. '버리고 오너라. 그 버리고 와'

 

그 모도 네 방편,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추이미묘(麤而未妙)해.

느그를 갖다가 내가 방편으로 팔만사천(八萬四千) 다라니(陀羅尼) 문을 모도 해 가지고 병나면은 정신수대비다라니, '난지니난지니... 사바하' 어쩌고 허면, 이러면 금방 병 낫는다' 이렇게 모도 만들아 놓아. 천담만유(千談萬喩)를 해서.

 

 

내나 그곳 하나, 이 나 깨친 그곳 하나, 내원 소식, 내 안 소식, 내 본궁, 내 본각 도리 그것 하나,

거그에 내가, 턱! 내가 절대 거그서 선지식한테 인가 받고 나온 사람이 고까짓 놈의 제 천하를 갖다가서, 천지 무슨 만물을 갖다가서 제 손톱에 달고 댕기면서 별짓을 다 헌들 그까짓 거 놀랠 수 있나? 막 냅대 해 놨다 그말이여.

 

그 고운사에서 싸웠는디, 아, 그다음에 영회루에 만나, 내가 또 인자 인사헌게 이놈이 좋아하는디, 그 좋아하는 가운데 내가 얼른 알건대는, 그도 견성(見性)헌 도인(道人)이란 바람에 저도 속으로 놀래고 있어.

놀래고 있는 광경을 내가 봤거든. 그 왜 봤느냐?

 

나중에는 제가 손톱으로 비벼 버린단 요런 소리를 했거든.

그놈이 제 속으로는 큰 무슨 참, 벌을 뒤집어쓴 것 같이 느끼고 있드라 이말이여.

 

허지마는 내가, 고것을 내가, 그 정경 광경을 내가 여그서 뒤집어 빠내서 사진도 안 백힌디 뵈일 수 있나? 나는 그 다 봤제.

그러고는 내가 슬쩍 돌아가는디도, 저도 역시 아주! 참말로 그 잘못했다는 상호(相好)가 보이거든!

 

내가 그래 그랬어. "서로 내가 작별허고 가기는 가오마는, 당신과 나와 조끔도 갈리지 않은 곳이 있어! 당신이 내 앞에 숨지 못허고, 당신이 나를 아무리 피헐래야 피헐 수 없는 곳이 있으니 그것만은 잘 알라고!"

"아, 나도 잘 안다!"고.

 

요놈을 법문으로 꽉 잡아 놔, 내가 잡아 놨어. 그 가면서도.

내가 그렇게 행색 없이 나섰어도 고런 놈 잡아 놓고, 김천석이 한테는 법문을 탁! 첫날이니깐 더군다나 힘이 있고.

 

내가 그날, 전번 날 그런 법문을 내가 헐라 하다가 힘이 떨어져서 못했네. 배가 고파 못했어, 참말로.

초저녁에는 뭐, 가리 쬐끔 먹으니 그놈이 어디 되아? 아, 말 못혀.

 

오늘 아침 내가 12시에 일어나서 내가 끓여 먹었어, 밥을.

어떻게 끓여 먹어?

저놈들 뭐 자서, 즈그 어떻게 끓여 먹었는가 증거 가 보제. 내가 거짓말인가? 저 모르지.

 

12시까장 앉어 공부하다가, 내가 거다가서 우벙(우엉) 좀 썰어 갖다 논 놈이, 생놈이 있드구만. 고놈 넣고, 무수 좀 썰어 넣고 감자 한 개 뜩 해 놨드구만.

감자 고놈 삐져 놓고, 무수 그놈 삐져 놓고, 찬물 붓고 거다가 인자 장(醬) 치고, 그려 또 거다가 기름 좀 치고, 거다가 그 깨소금 따 놓은 놈 하나 있길래 고놈 요리조리 쳐서, 떡을 한 여나무 쪼가리 넣어서 푹 끓여서 그놈을 한 그릇 먹었다 그말이여.

 

그놈 끓여서 먹다 보니께 2시가 되았네. 좀 있다 일어나서 소지허고 올라와 놓으니까, 뱃속이 불러. 뱃속이 뜨듯허니 불러.

아, 말이 좀 나오는구만. 아무때라도 기운이 있으면은 되돌아와서 그놈을 헐라고 헌 지경인데, 이놈 다 못허고 지금 올라왔거든.(21분20초~42분23초)

 

 

 

 

 

(3/3)----------------

 

고놈을 거그서—김천석이는, 외 사 준 놈은, 외까장 사 줄 때에는 발써 그놈 교화(敎化)해 놨다 그말이여.

 

생사(生死) 무상(無常)을 내가 설법허고, 인유생노병사(人有生老病死)가 이러헌 무서운 참, 이 내 머리빡에서 항상 찝을라고 헌다.

인생이라는 게, 내처(來處)를 알들 못하고 거처(去處)를 알지 못헌 인생이, 사형선고 받고 있는 인간이 무엇 헐 것이 있느냐!

나, 떨어진 누데기 입고 강호(江湖)에 백구(白鷗)를 날리면서 나는 나를 찾는 사람이다고 해 논게, 이놈이 거그서 믿어 버렸어.

 

그래, 인자 아직 다 허지도 못허고 그냥 쫓아 올라가는 게여, 이놈은.

 

아, 영화도 그런 거여, 영화도! 잘 봐 봐. 그렇지 않는가?

꿈이 나오고 잉, 뜻밖에 어릴 때 다 혀 놓고 어릴 때 꿈이 나오는구만. 그거 글안혀?

 

그 사람을 그 해 가을에—나는 금강산으로 간다 했는디, 가을에 금강산 구경을 와서 만났네.

어떻게 반가와 허든지. 신계사에서 만났어, 외금강서.

참, 기적이제! 김천석, 글씨도 잘 써. 형사놈 치고 내 그렇게 잘 쓰는 놈 처음 봐.

 

그 김천석이가 그래 들어와서 중 맨들었어, 내가 중 맨들았구만.

그래 선객(禪客)으로 중 노릇을 했어. 선객으로 공부를 했어. 그저 고 막연허게 고까장만 해 두어.

 

 

그 집이서 나는 오대산 산밑에서 일주일을 거 가도 오도 못허고 임계천을 못 건네가고, 거그서 비 와서 비 개고 비 피허고 있는 사람이여, 잉. 그때 정영신이는 그래 가지고 있는 거여.

 

여까장, 그 천석이와 그 김익수를—그 김익수란 놈은 아닌 게 아니여, 그놈이 내가 다 들어서 알어. 정초암 스님도 아주 기간 말을 허고. 나는 그건 안 해 봤지만.

 

"아무리 우리가, 천수(千手)를 허라고 해서 천수를 밤새드락 해도, 그 이놈이 그 변화를 한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시간에 안동 있는 놈이, 그 시간에 또 의성 고운사에 있다는 것이고. 10리 같은 거 20, 80리 같은 거 그저 갔다왔다 그 자리에 있고, 그 자리에 가고 그런다는 놈이여.

 

아, 그런 놈이—아, '김익수, 김익수' 중간에 유명했어. 다 알아.

그런 놈허고, 참 대체 그런 놈은 정법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제 눈에 틀리고 제 비위에 거슬리고 저한테 뭣을 말허면 비벼 버릴 놈이여.

비벼 버릴려면 비벼지고 아, 바둑을 요래 버리는디 안 비벼져?

 

그것이 어디 가서 제까짓 놈이 참으로 사불범정(邪不犯正)이제. 어디 가서 그런 짓을 헐꺼냔 말여. 생똥을 내가 쌓여 놨네, 내가 그놈.

"우리가 만나 갈림이 없어, 떠남이 없고. 만나지 않을 곳이니 그걸 알어라"헌께, 제가 더 공포를 집어 먹는다 그말이여, 나는 법으로 했는데.

 

 

이건 또 뜻밖에 이야기여. 이건 또 뜻밖에 이건, 어디어디 얼거리 없는 얘기고, 내가 직접 본 얘기라 그말이여.

 

화장(火葬)을 내가, 가서 그 화장을 헌 뒤에 모도 그때 마침 나갔다가 어느 화장장에서 화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날 상주들도 뚝 들어앉었고, 그 대중도 그 산중 대중도 방안에 그뜩 찼는디, 호상소(護喪所)에서 와, 방안에서 와.

서대암 스님허고 나하고 둘이 화장장에 둘러 다녀서 와서 거그에 객승(客僧)으로 참례를 했는데, 그 죽은 이는 누군고 하니 윤서호인디, 서호여.

윤서호인디, 여 중간에 윤서호도 있었지마는 선객 윤서호도 있지만, 이 이도 윤서호여.

 

그 이는 본사(本寺)가 어디인고 하니, 순창 구암사(龜岩寺)여. 순창 구암사여.

'거북 구(龜)'자, '바우 암(岩)'자, 구암사의 스님인디, 구암사의 그 스님이 저 산은 변산이고, 부안 변산 내소사(來蘇寺)가 있어. 내소사 주지(住持)를 했어. 주지를 허되 40년 했어.

 

그 주지에 40년, 재산을 어떻게 모았든지 삼백 석지기를 모았어. 독(獨)살림 해 가지고.

참, 독살림에 가서, 독살림 해 들어온 돈, 부처님 돈 상주물(常住物)을 제 재산으로 쏵 연년(年年)이 수입해서 딱딱 회계해서 한 삼백 석지기 딱 허자, 주지(住持)가 떨어졌어.

 

삼백 석지기 모은 놈을 '내가 어찌 뭐, 이렇게 내가 알뜰히 모인 놈을 내가 함부로 먹을 수가 있겠느냐' 장가도 안 가고 단신(單身)인디, 꽉 집착을, 간탐(慳貪) 집착을 해 놓고는.

'요놈 삼백 석지기는 내년에 순평 뜰, 어느 좋은 논 사야겄다. 또 그놈을 어째서' 요걸 딱딱 염두(念頭)에다 집어넣어 놓고 딱 지내는데.

 

고 삼백 석 모은 재산을 쌀 한 되라도 안 먹기 위해서 선방에 들어왔어.

백양사, 첫 선방에 들어와서, 그때 백양사 나도 그때 첫 철 지낼 때인디—행용 스님이 조실이고—지낸디, 딱 들어와 앉어서는 나이 오십이 거지반 된 이가 딱 앉으면 요런 법도 없어. 자올도 안 혀.

 

다른 중 모도 조은 걸 보면 숭만 보고, 방선(放禪)만 허면 손가락질혀. 숭만 봐.

저 사람은 얼마 자올고, 요 사람은 얼마 자올고, 고것만 똑 방선허면 보고는 한 철을 그대로 한번 꼬빡 안 허고 자온다 그말이여.

 

어째 그렇게 안 자오는고?

입선(入禪) 허면은 '논 그놈, 순평 뜰 고놈 사야 허겄는디, 가을에 얼마, 그놈 뒤집으면 얼마' 요놈을 요리 한바탕 해 놓으면 한 시간 가고 두 시간 가버려.

그러니 그놈 생각허다 보니 그놈이 용맹정진(勇猛精進)이고, 잠도 안 자고 망상도 안 일어나. 그렇게 한 철을 지냈네.

 

그것 참! 우연헌 일이 아니여.

해제가 미차 못 되아서 병이 났어. 병이 나 가지고는 꼼짝없이 죽게 되았네.

 

그 상좌(上佐)가 다섯인가 되아, 그래도.

독살림 헐 때 자꾸 들여서—혼자는 독살림 못허고, 상좌 들어 들여서 시봉도 시켜 가면서 같이 허든 상좌들이, 돈이 인자 많이 모아져 있으니께 그저 법답(法畓)이나 얻을라고 안 도망가고 있는 상좌가 한 댓놈이 척 되는데.

 

스님을 모셔다가 인자, 백양사(白羊寺)에서 한 10리 되니까 구암사에다 모셔 놓고.

참, 간호를 간병을 허고 모도 해서 스님 병을 다스리는, 병을 모도 인자 병구완을 허고 있는데 돌아가셨어. 앓다 앓다 돌아가셨어.

 

아, 돌아가셔도 세 시간 만에 깨어났어.

깨어나 가지고는 "아이고, 야들아, 물 가져오니라. 아, 아..."

 

물 갖다준께 꼴짝 꼴짝 먹고는 입을 겨우 벌려서 "내가 지옥을 갔는데" 겨우 옆에 사람이 듣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내 죄를 다스리는디, 17년 지옥이라고 허드라. 10년은 감해 주고 7년 만 지옥고(地獄苦)를 받으라 하드라" 아주 죽은 송장처럼 말을 혀.

 

나는 안 들었는디, 그 화장 갔다와서 그 모여 앉어서 헌 얘기를 헌 거여.

 

"내가 쇠약해서 이렇게 꿈에 그랬는가, 어쨌는가? 참말로 죽어 갔는가?"

그 지옥 광경을 다 얘기하고, 10년은 감해 주고 7년 형(刑) 지옥이라고 허드라.

 

지옥 7년이면 7억만 년도 더 되니까. 말헐 것 없어! 그것이 얼른 그 적은 거 같에도.

 

삼보지물(三寶之物)을 갖다 가서, 부처님 돈 갖다가 제 돈 만들아 가지고 글쎄, 저 하나도 쓰지 못허고 업착(業着)만, 업(業)만 착(着)혀 가지고도 그 죄된 것 좀 봐.

하나도 안 쓰고 애껴도. 탐해 가지고! 간탐어물(慳貪於物)은 심어독사(甚於毒蛇)라니.

 

나, 이건 나도 생전에 내가 보고, 생전에 그 화장장에서 듣고.

 

"두고 보자. 사흘 만이면 오라고 다시 오라고 허니, 나 두고 보자"

 

아! 그때에 파재간탐(破財慳貪)해 번지고 '내가 이렇게 많이 모았자, 무슨 소용이 있냐'

다 파재를 해 버리고는, 하나도 자기 앞으로 돌린들 '내 몸뚱이도 내 버리는디 뭣 헐 거냐'하고, 지장답(地藏沓)도 맨들고, 그저 어떻게 시왕전답(十王田畓)도 맨들고, 부처님한테 모도 올려서 아, 이렇게 공양(供養)도 하고.

 

그만 기도를 시작해서 사흘까장 그렇게 했다 하니, 사흘까장 그만 내 돌아가신 뒤에 7일까장, 한 49일까장 막 드리 기도나 허고, 아, 그 큰 재(齋)나 49재나 잘 모시고, 모도 인자 그 염불당에다 토지 드리고, 아, 좀 좋을 거여?

 

"네가 가서 3일 만에 다시 너를 잡아올 터인게 그리 알아라. 그동안에 가서 네가 네 성의껏 헐대로 다 해라"해도 그놈의 업(業) 때문에 소용이 없고.

나와 가지고 꿈 얘기를 허되 꿈으로 돌려 버리고, 그 죽게 된 놈의 물건이 애착은 더하고, 돈은 어떻게 하면 벌벌 떨고, 그러다 사흘 만에 딸끄닥 죽었다 그말이여. 그건 틀림없어.

 

그러니 자기 재산이 그렇게 그놈을 애낄라고 자산(資産)이 있으면서 고런 놈의 짓거리 험서, 선방에 나가서 또 참선헌다는 것이 '고놈 어느 뜰 논 살 거, 고놈 얼맨디 고 논 살 거' 요러고 있어.

그걸 중생(衆生)이라 해. 지독헌 중생이여. 애착 중생이여. 탐심 중생이여.

 

세상에! 응, 그러니 간탐, 그놈을 탐착, 간탐허는 디는 이와 같은 죄업(罪業)이 되고, 자비를 해서 턱 베풀어 보시(布施)를 해서 모도 부처님에 상주가람(常住伽藍), 가람(伽藍)을 일으켜 도웁고, 무너진 절을 모도 고치게 맨들고, 거그다가서 모도 도인이 모아서 공부허게 만드는 돈을 모도 올리고,

아! 이래야사 그것은 도모지 자비스럽게 그 혜시(惠施)허고, 보시허고, 희사(喜捨)하는 것은 천 겁 만 겁에 그 무주상(無住相) 복이 된다 그말이여. 이런 보시 복이 있어서 부처님이 다 말씀해 논 것 아닌가.

 

자비보시(慈悲布施)는 시법왕(是法王)의 자(子)요, 천상천하(天上天下)가 받드는 법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그 복은 막 들입대 또 받고 또 받고 나아가는 것이여.

성불(成佛)을 허드래도 그 복력이 장해서 자꾸 중생을 그렇게 제도헐 복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 복혜(福慧)가 양전(兩全)인디, 오히려 해탈복이라는 건 혜(慧)보담 먼첨 넣는구만. 복혜(福慧)라고. 이게 복이여.

 

불전(佛前)에 또 그런데 보시 복을 허는 디도—내가 이런 것 넣을라고 시방 이렇게 또 내려왔어. 저 가다가 시방 내려온 거여.

지금 정영신이는 거그 들어앉았구만, 비 피허니라고.

정영신이의, 지금 가(假) 정영신이가 내려온 것이여, 여그는. 그때 정영신이가 잉!

 

이렇게 보시를 허는 복이라는 것은 십바라밀(十波羅蜜) 가운데에도 제일이다.

이렇게 보시를 척 했으니 이 법당 하나를 지었다. 이 법당을 지어 놓고 나니 이렇게 모여서 도를 닦고 날마다 이 좋은 해탈 설법을 듣는 것이 그 얼만고?

 

잘 그놈을 잘 요리 그 한번 잘 좀 풀이해 보시란 말씀이여.

이런 설법을 들어야 허겄는가? 안 들어도 괜찮겄는가?

 

그래 이 집 지을 때에 돈 한푼 없다. 내가 어느 보살님한테 "돈 10만원만 해서 설판(說辦)해 주십시요. 내가 이 법당을 지어 내겄소"

"아! 십만 원 갖고 짓겄소?"

"아따, 거 뭐 시작허면 되지"

 

이 돈을 갖다가서 남편도 몰리, 남편이 준 놈을 어디다 누구 취해 주었다고 했네. 해 놓고는 공포심에 못 견뎌. 남편이 찾거드면 어짤고 이뿐이여.

그렇지마는 절을 다 지어 놓고 낙성식(落成式) 헐라고 남편을 데리고 와서,

"그 돈 10만 원을 주어서 지었다고만 해 주십시요"

"아, 내가 당신한테 받았지, 당신 남편한테 받았소?"

 

"그 말만 해 주시요" 아, 그 말 했더니 희색(喜色)이 만면(滿面)해 가지고는 좋아서,

"저 어른이 10만 원을, 바깥 양반이 갖다 허라 해서 가져왔다고 험서 가져와서 이 집을 시작했소"헌게 좋아서...

 

아, 그랬더니 그 내부(內部)에 들어가서 마침 무슨 청부업(請負業) 헌 인데, 여태까장 해 봐도 끝에 가서는 늘 그만 손해가 나고, 늘 그만 그렇게 안되았는데, 아, 뜻밖에 그때는 그 10만 원에 비교허면 몇백 배를 벌었어.

그래 가지고 '부처님한테 이렇게 절을 지어서 되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든 것이여. 그래, 사실 그것 또 그렇지.

 

그 집 지었자, 내가 축원(祝願)도 않고.

"축원 마시요"혀. "축원도 허지 마시요. 축원허면 어디 복 받고, 축원 안 허면 안 받는 답디야" 아, 이러고는 마네.

 

참, 그렇지! "부처님한테 보시허는 법이 무주상이지, 유주상(有住相)이라는 건 소용 없다” 나도 그러고. 절대 축원 하나 헌 일 없었지.

 

그다음에 가서 "인자 연해 연속해서 이 집을 지어 놨으니 수도가 있어야겄다"하니까—나, 인자 얘기하지, 이것도 얘기 안 해.

이 수도를 올리는디, 돈이—저그서 끌어서 뽑아서 전주서 올리는디, 그때 돈으로도 아마 14만 얼맨가 5만원인가 그놈을 들여서 또 수도를 올렸지. 다시 뭔, 수도 시주니 뭐니 없지.

 

나도 마음도 안 냈지만, 자기는 더 "누구한테 했다는 말, 그런 말..."

"내가 누구한테 했다고 자랑해요? 당신이 할라면 몰라도?"

"나야 그거, 나는 어디 그런 것 않습니다" 그랬제.

 

그다음에 땅 산다고 어쩌고, 할 수 없어 이걸 어떻게 어떻게 사야 겄는게, 돈 백만 원을 했는디, 허겄다고 말은 했지만 안 내더니, 정말 낼 때는 암도 몰리 줌서 "내가 했다는 말 마십시요, 뭐"

축원 하나 헌 일 없었제. 무슨 축원?

 

그런디 그때 10만원 냄서부텀 차츰차츰 큰 집도 짓게 되고, 차츰차츰 뭔 일이 또 잘되게 되고 뭐 어떻게 되고 헌 일도 있지마는, 훨씬 배나 불어 버렸네. 시방 생활 전체가, 전면이!

아, 축원을 했으면은 축원 때문에 되았다 하지만, 축원 안 해도 그렇게 되니 '아니, 축원 안 헐수록 더 잘된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가 부여, 바깥 양반이.

 

그래 가지고는 아, 이번에 땅 3천5백 평도 그만 그 자리에 앉아서,

"아이고! 우리가 선방 재산, 선방 토지를 맨들아 버리면은 우리 개인 토지보담도, 누가 개인 뭣 보담도 죽백천추(竹千秋)에 그 선원 토지가 되아 가지고 그 식량을 갖다가 공부인이 먹고 나갈 터이니,

우리는 백골진토(白骨塵土)가 되아서 몇번 이 세상에 왔다갔다 화택문(火宅門)에 윤회(輪廻)헌다 하드래도, 우리가 해 논 그 법보전(法寶殿) 식량이 자꾸 도인을 맨들아 나갈 터이니, 우리가 이것 않고 뭣 허겄냐"고. 아! 이래 가지고 또 해 버린다 그 말씀이여.

 

내가 오늘 뜻밖에 나가다 이런 말이 나와.

이것을 그 과연 참, 보시를 허되 어려운 보시고, 그 마음 내기가 참 어렵다 그말이여.

보시 한번 무주상(無住相) 보시로 들어가서 이렇게 한번 허는 이것이 참 날 수 없는 마음이여!

 

그거 그분들이, 이렇게 헌 분들이 글쎄 이 몸뚱이 마친 후에 무슨 놈의 앞에 무간지옥(無間地獄)이 있으며, 무슨 지옥에서 무슨 그분들을 갖다가서 잡아다 다룰 것이여? 여까장 해 두고.(42분27초~61분58초)

 

 

 

 

 

----------------(1/3)

 

*(게송) '춘색하처귀~'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대사) '洛中卽事' 게송 참고.

'洛中卽事'

春色歸何處 長安百萬家 山僧掩門坐 空落一庭花

봄빛은 어느 곳으로 돌아갔는고? 봄빛은 어디에 와 있는고? 백만, 장안에 가가호호에 봄빛이 와 있구나. 산승이 문을 닫고 좌선을 하고 있는데, 부질없이 하염없이 한 뜰에 꽃은 지고 있구나.

*오대산 북대(北臺), 중대(中臺) ; 오대산 상원사의 산내 암자.

* ; '턱(마땅히 그래야 할 까닭이나 이치)'의 사투리.

*형극(荊棘 가시나무 형/가시 극) ; ①나무의 온갖 가시. ②고난(苦難,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다디미돌 ; '다듬잇돌(다듬이질, 구김이 없이 반드러워지도록 옷감 따위를 두드리는 일을 할 때 밑에 받치는 돌)'의 사투리.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너이 ; '넷(3+1)'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가로판 p214)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무간(無間) ; ①곧. 즉시. 끊임없이. 끊어짐이 없음. 또는 중간에 끼이는 것이 없음. '무간'은 시간적으로 계속된다는 뜻이고, 공간적으로는 끼일 틈이 없다는 뜻. ②무간업(無間業)의 준말. ③무간지옥(無間地獄)의 준말.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과증(果證) ; 깨달음의 결과[果]를 증득한 것. 곧 수행이라는 인(因)에 의하여 얻는 결과를 말한다.

*관솔불 ; 관솔(송진이 많이 엉기어 있는 소나무의 옹이나 가지)에 붙인 불.

*솔가지 공이 ; '공이'는 '옹이(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밑부분)'의 사투리.

*끌텡이 ; 끄슬러(불이 붙어 타는) 있는 나무가지나 나무토막.

*권구(眷口 돌보다·권속·식솔食率·권솔 권/입·인구 구) ; 한집에 사는 식구(食口).

*어덕 ; '언덕'의 사투리.

*글안으면 ; ‘그렇지 않으면’의 사투리.

*차력(借力 빌릴 차/힘 력) ;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보통 사람보다 강한 힘과 기운을 얻음. 또는 그 힘과 기운.

*신차(神借) ; 신에게서 힘을 빌려 얻음. 또는 그 힘.

*약차(藥借) ; 약을 먹어서 몸을 튼튼히 하고 기운을 세게 함.

*지정머리 ; 무엇을 하는 짓이나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색상(色相) ; ①겉으로 드러나 안식(眼識)으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형색(形色). 중생의 생명이나 기세간(器世間 : 일체의 중생이 거주하는 국토세계, 곧 자연계自然界 전부를 가리키는 말)은 모두 이러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 ②색의 특징. 시간적 변화[變壞]와 공간 점유[質礙]의 특징인 변애(變礙 : 변괴變壞와 질애質礙)를 나타낸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2/3)

 

*외경(外境) ; 자기 몸 밖의 모든 바깥 세계. 객관적 대상. 자연계. 외부환경(外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포외(怖畏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외) ; 두렵고 무서움. 화엄경에서는 ①생활의 두려움. ②명예를 잃을 두려움. ③악도(惡道)에 떨어질 두려움. ④죽음의 두려움. ⑤대중 앞에 나섬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른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법전(法戰) ; 스승과 제자가 서로 문답하고 견해를 주고받는 것을 전쟁에 비유한 말.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입각하여 서로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일반적 문답을 가리킨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祖師)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千七百)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서산대사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https://emokko.tistory.com)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대저활구학자(大抵活句學者)는, 활구학자는 무어로(無語路)요, 말 길도 없고. 무이로(無理路)요, 이치 길도 없고. 무문해사상고(無聞解思想故)요, 듣고 알고 사상도 생각도 없어」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활구학자(活句學者) ;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수행하는 학자.

*고봉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https://emokko.tistory.com)에서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노사(鷺鷥 해오라기·백로 노/해오라기 사) ; 해오라기. 왜가릿과의 새.

*참학사필(參學事畢) ; 공부하는 일을 마치다(완성하다).

*백중관(百重關) ; 수없이 겹쳐 있는 관문(關門), 또는 빗장.

*자반(者般) ; 이. 이런. 이러한.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 ; 전강 조실 스님이 수행하시던 1920년대 당시 유명한 혜월 · 혜봉 · 한암 · 용성 · 보월 · 만공 선사를 말씀하신다.

*쥐뿔따구 ; 쥐뿔(아주 보잘것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뿔따구'는 '뿔'의 사투리.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임.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말(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뜻(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번뇌장(煩惱障) ; 인간의 몸은 오온(五蘊)이 화합한 존재에 불과한 것인데, 영구성(永久性) 있는 '나'라고 집착하는 번뇌.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수번뇌(隨煩惱)가 이에 속한다. 이는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도, 즉 성도(聖道)를 장애하여 열반(涅槃)을 얻지 못하게 하고 생사(生死)에 유전(流轉)하게 하므로 번뇌장이라 한다.

*소지장(所知障) ; 번뇌장과 함께 중생의 해탈을 방해하는 근본적 장애. 탐욕(貪慾) · 진애(瞋恚) · 우치(愚癡) 등의 번뇌가 소지(所知 알아야 할 바. 인식대상)의 진상을 그대로 알지 못하게 하므로 이들 번뇌를 소지장이라 하며, 진지(眞智)가 발현함을 장애하는 점에서 지장(智障)이라 한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생사 없는 고향' ; 본고향(本鄕).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계신고?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마음을 부딪쳐 가지고 간절히 잊어버리지 말아라.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이 이르러, 생각이 생각 없는데 이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문(六門)에 항상 자금광(紫金光)을 놓으리라. 부처님한테서 자금광이 나온다.

 

『한가로운 도인의 길 - 나옹화상법어집』 (김달진 역주, 세계사刊).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보임(示諸念佛人/8首)’ 게송 참고. p166.

*제불(諸佛 모두 제/부처 불) ; 모든 부처님.

*석가(釋迦) : [범] Sakyamuni 한문으로는 음대로 써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또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능유(能儒)라 한다。Sakya는 종족(種族)의 이름이고, muni는 존칭이니, 곧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년(<중성점기衆聖點記>를 표준한 연대)에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나시었다。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을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에게 자랐다。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 Siddhartha)라 하였다

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17살에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하여 한 아들을 두었다。그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그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네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늘 품고 있었다.

 

하루는 농부들이 밭 가는 것을 보고, 똑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큰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할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그리하여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열아홉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

 

처음 6년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을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설흔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

그 뒤 49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살(기원전 486년)에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가명인도고(假名引導故)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제1권)에 나오는 구절.

[참고] 〇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衆生垢重根器未純 先說三乘假名引導 故權而未實麄而未妙 及乎諸糞旣除心相體信 乃示實相會歸一乘 則妙而無麄矣 諸佛能事終畢於是也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보물(寶物)이 있는 곳[所]이 가깝다[在近].

[참고]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 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다라니(陀羅尼) ; 산스크리트어 dhāraṇī의 음사(音寫). 총지(總持), 능지(能持)라고 번역.

①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는 능력·지혜.

②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서원(誓願)이나 덕(德), 또는 가르침이나 지혜를 나타내는 신비로운 주문으로, 범어를 번역하지 않고 음사(音寫)하여 읽음. 이 주문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이것을 외우면 한량없는 가르침을 들어도 잊지 아니하고 모든 장애를 벗어나는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보통 비교적 긴 주문을 다라니, 짧은 주문을 진언(眞言)이라 하지만 엄밀하게 구별하지는 않는다.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우벙 ; '우엉'의 사투리.

*여나무 ; ‘여남은('열'보다 조금 더 되는 수)’의 사투리.

*소지 ; '소제(掃除, 청소淸掃)'의 사투리.

 

 

 

 

 

----------------(3/3)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삼라만상의 사상인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세계의 생성소멸 과정을 나타내는 성주괴공(成住壞空)도 동일한 형식이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천수(千手) ;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말함. 82구(句)의 주문(呪文).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것으로, 이것을 외면 모든 죄업이 없어진다고 한다.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大悲心陀羅尼)라고도 한다.

*사불범정(邪不犯正 간사할 사/아닐 불/범할 범/바를 정) ; 바르지 못한 것, 삿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함.

*호상소(護喪所 돕다 호/잃다·죽다·초상 상/곳·처소 소) ; 초상(初喪, 사람이 죽어서 장사葬事 지낼 때까지의 일)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맡아보는 곳.

*객승(客僧 손님 객/중·스님·승려 승) ; 절에 손님으로 잠시 와 있는 승려. 객중.

*'삼백 석지기' ; '-지기'는 (곡식의 양을 나타내는 명사구 뒤에 붙어) ‘그 정도 양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논밭의 넓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독(獨)살림 ; 독산림(獨山林). ‘독살이’라고도 한다. 토굴 또는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혼자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살림. 또는 사찰 운영을 독단으로 혼자서 처리하는 것. 이에 상대하여 여러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중의(衆意)를 모아 사찰 운영을 하는 것을 원융산림(圓融山林)이라고 한다.

*상주물(常住物) ; 승가공동체에서 항상 구비해 놓고 쓰는 물건. 절 소유의 토지와 건물 그리고 각종 기물이나 금전 등을 모두 가리킨다. 상주재물(常住財物) · 상주승물(常住僧物) · 상주(常住)라고도 한다.

 

[참고]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권상 제3 관중생업연품(觀衆生業緣品)에서.

若有衆生 偸竊常住財物穀米 飮食衣服 乃至一物不與取者 當墮無間地獄 千萬億劫 求出無期

 

만약 어떤 중생이 상주재물이나 곡물 · 음식 · 의복 등을 비롯하여 주지 않은 물건을 하나라도 훔쳤다면 장차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 동안 구출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참고]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 권제4. 제6 양서장(兩序章) ‘부사(副寺)'에서.

凡常住財物雖毫末 竝是十方衆僧有分 如非寺門外護官員檀越賓客迎送慶吊合行人事 竝不可假名支破侵漁

 

상주재물은 비록 털끝만한 것일지라도 모두 시방 대중들의 몫이다. 만약 절을 외호하는 관원(官員)이나 단월빈객(檀越賓客)의 영송(迎送) · 경조(慶吊) 등 마땅히 행해야 할 인사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가명을 발급하여 침탈해서는 안 된다.

*연년이(年年-) ;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간탐하다(慳貪-- 아낄·인색할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다.

* ; ①‘들(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 논이나 밭으로 되어 있는 넓은 땅)’의 사투리. ②전북 김제 지역에서 하천이 실어온 토사가 쌓인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

*염두(念頭) ; 마음속. 마음의 속.

*거지반(居之半) ; ①거의 절반. ②거의 절반 가까이.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삼보지물(三寶之物) ; 삼보물(三寶物). 불(佛) · 법(法) · 승(僧), 삼보에 속하는 물건 또는 신도가 삼보에 공양한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신성하므로 서로 혼용하거나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①불물(佛物) : 불상(佛像) · 전당(殿堂) · 향화(香華) 등 불보에 속하는 모든 것.

②법물(法物) : 경전(經典) · 지필(紙筆) · 경전을 보관하는 상자 등 법보에 속하는 일체의 것.

③승물(僧物) : 승방(僧房) · 의발(衣鉢) · 곡물(穀物) 등 승보에 속하는 모든 것.

*업착(業着) ; 업집(業執). 업에 따르는 집착(執着). 업식(業識)으로 유발되는 망령된 견해로서의 집착.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간탐어물(慳貪於物)은 심어독사(甚於毒蛇)' ;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것은 독사보다 더 심하다'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간탐어물(慳貪於物) 시마권속(是魔眷屬) 자비보시(慈悲布施) 시법왕자(是法王子)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것은 마구니의 권속이요, 자비로 보시함은 법왕(부처님)의 자녀(제자)이니라.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재색지화(財色之禍) 심어독사(甚於毒蛇) 성기지비(省己知非) 상수원리(常須遠離)

재물과 색(色)의 화는 독사보다 더 심하니, 자신을 반성하고 그릇됨을 알아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한다.

*'지장답(地藏沓)도 맨들고, 그저 어떻게 시왕전답(十王田畓)도 맨들고, 부처님한테 모도 올려서 아, 이렇게 공양(供養)도 하고' ; 불량답(佛糧畓, 佛粮畓 부처 불/양식糧食 량/논 답). 불량(佛糧)을 제공하기 위한 용도의 토지.

불량(佛糧)은 '부처님께 공양으로 올리는 양곡'을 뜻하나, 불량답은 넓은 의미로는 불사(佛事)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명목으로 불량계(佛糧契)에 의하여 조성된 토지 또는 개인이 시주한 토지를 가리킨다. 불량위전(佛糧位田) · 불량사위전(佛粮寺位田)이라고도 한다.

불량계(佛糧契)는 모든 불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된 계를 말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身口意) 3업(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 악업(惡業)을 짓지 않아 -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신도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 : 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보시(布施) : [범] dāna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상주(常住) ; 과거 · 현재 · 미래 등 삼세(三世)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생멸의 변화를 겪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 상(常)이라고도 하는데, 무상(無常)과 대칭한다.

*가람(伽藍) ; (산스크리트어) saṃghārāma (팔리어) sańghārāma, ārāma 승가람마(僧伽藍摩) · 승가람(僧伽藍) · 아람(阿藍)이라고도 하고, 중원(衆園) · 원(園) · 사원(寺院) 등으로 한역하며, 범어와 한역을 겸하여 승원(僧園 · 僧院)이라고도 한다.

원래 출가자들이 공동으로 생활할 수 있는 장소 등의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뜻이 변하여 토지와 건축물을 모두 포함하는 사원의 총칭이 되었다.

*혜시(惠施 은혜·사랑·자애 혜/베풀 시) ; 은혜로 베품.

*희사(喜捨 기쁠 희/버릴·베풀 사) ; ①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 : 깨끗하게 내놓는 것), 정시(淨施 : 깨끗하게 베푸는 것)라고도 함. ②기껍게 자기의 의견, 생각을 버리는 일.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는 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無所住]'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십바라밀(十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열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육바라밀(六波羅蜜)에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 등 네 가지 바라밀을 더한 것.

*설판(說辦) ; 법회나 불사(佛事)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것. 설(說)은 '법회, 불사'  판(辦)은 '힘들이다, 주관하다'의 뜻.

*희색만면(喜色滿面 기쁠 희/빛 색/찰 만/낯 면) ; 기쁜 빛[喜色]이 얼굴[面]에 가득함[滿].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 ; 남에게 보시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상(相)이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그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

이런 유주상보시는 조그마한 공덕 밖에는 안되고, 얻어봤자 유루복(有漏福) 밖에는 얻지를 못한다.

*'백골진토(白骨塵土)가 되아서' ; 흰 뼈[白骨]가 먼지와 흙[塵土]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르다.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윤회(輪廻) ; 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業)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生死)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②어떤 사물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단계에 따라 차례로 밟아 가거나 되풀이함.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1. 19. 09:31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9-2호) 오대산을 넘으며.

 

**전강선사(No.020)—전강선사 일대기 제9호(경술1970년 12월 17일 새벽. 음) (1971년 1월 13일 새벽)

 

(1) 약 21분.

 

(2) 약 21분.

 

(1)------------------

 

또 그 고운사 주지스님이 선객(禪客)을 좋아하기 때문에 곤로전을 비와 주면서 '그렇게 모도 병이 있어서 고생한다니 거그서 자유허게 공부허라'고.

머리가 이렇게 커졌지마는 그런 것 하나 안 보고 공부 잘 헌 분이라고 이래 놓으니, 아주 고운사 스님네가 무척 대접을 하고 나를 또 퍽 환영하고. 아! 그래 가지고 곤로전에 있는데, 당최 못 있겄어.

 

돈도 많이 생기고, 그래 거그서 돈 생긴 놈 가지고,

가서 무슨 뭐 저 의성장(義城場)에 가서 괴기 같은 거 사다 가서 마음대로 볶아 꾸워 먹고 얼마든지 헐 수 있지마는, 어떻게 내가 그렇게 체면상 할 수가 있나?

 

저그는 금당이고 여그는 큰 절이고, 사이가 곤로전이 있는데,

거그 돈 나온 놈, 부처님한테 나온 놈 가지고 괴기 사다가 그렇게 먹어?

아무리 헌다 한들 그렇게 퍼먹고 그려? 뭐 시주(施主) 재산인데.

 

그것은 양심상 헐 수 없어.

다른 데가 마을에 가서 아주... 부처님 도량은 턱 벗어나서 내가 마을에 가서, 어디 가서 대사(大事) 친 집에 주면은 그놈 갖다 내가 먹고 그렇게는 헐지언정 내가 거그서 어떻게 해? 청정 대중에서.

 

그만 갔다 먹고 나오면 몸뚱이서 냄새는 풀풀풀 나는 놈을 피우고 그 대중에 있어?

그 무슨 놈의 체면없는 놈의 행동이여. 그런 짓을 학자가 어찌 허냐 그말이여.

 

나 그렇게 절대 그런 행동이란 안 했으니께!

뭐 사다가 오히려 그저 또랑가에서 뭐 찌지고 안 했어. 내 그런 법 없어!

 

옛날에 무용 스님도 큰스님이 되아 가지고도 저 송광사, 전라남도 송광사 패방에 있으면서 마을에 내려가서 그 동냥해서 괴기 사 가지고 와서 그 밑에 그 패방 밑에, 송광사 개천 밑에 이런 데서 끓여 잡솼다 하드구만. 그거 내가 다 들었어.

 

그래 뭐 그래 가지고, 얼매나 욕을 얻어—그 욕 얻어먹어야 싸거든—얼마나 욕을 얻어먹고 쫓겨나고.

그 중노릇을 차라리 말던지 허지, 왜 그렇게 중이라 하면서 그 숭악허게 몸뚱이를 거지 옷을 입고 또 갖다 먹는 것이 중 행동은 아니고 막 찌져 먹고 몸에 냄새 나고.

 

아! 그러니 좋아할 것이여? 열두 번을 쬧겨났어, 열두 번.

그래도 기어이 들어왔다 그말이여.

 

그런 이도 있었다고 하지마는.

'내가, 절대로 내가 이런 부처님 도량에서 그런 행세를 헐까 보냐'고. 안 했어.

나를 아주 그때 도와 준다고까장 했거든. 병으로 그러허니까.

 

안 했어! 안 허고, 그때도 그렇게는 지내지만 사상은 깨끗해.

요만큼이라도 내가 절 도량에서 무애행(無碍行) 안 혀야겄다고 아주 작정을 딱 했거든.

 

그래 가지고는 오장치 한 벌 떡! 짊어지고, 한 벌은 입고 그러고 또 며칠—거그서는 안 입었지, 옳다! 안 입었다. 그렇게 입고 나갈라고 작정을 해 놓고.

 

그 꼭 뭐 적어 놓고 내가 몇 번 생각해 보고 일러 본 일이 아니라,

허! 이것도 내가 직접 했지마는 꺼꿀로 갔다 옳게 갔다 이러는구만. 그래도 다 들어보면 순서가 있어.

 

곤로전에서 혼자 그렇게 맨들아서 딱 해 놓고는,

그때는 뭐 인자 처음 나갈라니까, 그 걸망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고 보따리 같은 데다가 인자 짜끄만이 따서 딱 해서, 아침 저녁 누구 사이에 안 볼때 살짝 나갈라고 딱 문 좀 걸어 놓고는.

 

마침 참, 큰절에 가서 산천이나 다시 보고 인자 하직이나 허고 나갈라고는, 만오 스님한테 인사나 허고 나올라 허니까,

 

만오 스님, 주지 스님이 만오 스님인데, 주지 스님 만오 스님 방에 웬 사람이 하나가 이만허게 생긴 놈이 여가 툭툭 불거진 놈이, 키는 작딸막한 것이 하나가 거그 있어 가지고는,

거 뭐 뭐 뭐 내가 그저—그저 큰 대도사 노릇을 허는디, 왼통 그 사람 이름이 김익수인디.

그 사람이 거그 와 만오 스님 방에 있는데, 고 밑에 그 동구로 어디로 그 뒷방으로 사람이 수십 명이여, 고 사람 모도 따른 사람이.

 

그건 뭐헌 사람이냐? 안동에 김익수여. 이름이 김익수여. 내가 알아!

김익수인데, 여가 톡 불거. 사람은 보통 아니게 통 크게 생겼는데, 톡톡 불거진데 얼굴이 요런 놈이.

떡 앉어. 만오 스님 방, 주지 방에 들어와서 앉어서 얘기를 허는디, 만오 스님 주지 스님이 그 사람한테 옴폭 빠졌어.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떠헌 도력이 있는고 하니, 도행이 있는고 하니, 이녀러 자석은 천지에 저 하나밖에 없어. 하늘 땅 밑에는 저 하나 밖이여.

"옛날에 무슨 항우? 항우 그런 거 꽉!" 요렇게만 해 버려. 하날도 제가 하날이여, 그만.

 

아, 이래 가지고서는... 차력(借力)은 대차(大借)를 헌다고 그려, 대차력을 허고.

벌써 차력헌다는 게 고 고놈이 틀렸드만.

 

대차를 허고. 그래 가지고는 그것 뭐 자동차, 저 큰 기차 같은 거, 그때 기차 하나 댕길 때 아니여?

"기차 같은 건 내가 가서 뒤에 가 잡으면 가도 오도 못헌다"고 이러고.

 

"어디 남포 튼데 가면 남포 튼 그놈이 바우가 내려지면 내가 손톱으로 튕겨 버리는구나" 이러고. 아! 요런 것이 있어. 그러고 얘기혀.

그럼서 그 또 그 신통력을 뵈인다 그말이여. 흰 바둑 검은 바둑을 딱 둘이 있는디, 그 바둑이 무슨 뭐 딴 데 있는 게 아니여. 그 방에 바둑이 있는디, 웃방에.

"바둑 요런 거!" 흰 바둑 검은 바둑 둘을 요래 딱 쥐고는 요래 버린게 팩 깨져 버린단 말이여.

 

누가 곧이 안 들을 수가 없어.

기차도 잡으면 소용없고, 자동차도 잡으면 소용없고, 그까짓 자동차 그까짓거 말헐 것도 없고. 남포가 무너져도 때려 버리면 그만이고. 남폿돌이 떨어져도.

 

아, 이런 소리를 해 싸니, 누가 안 미칠 사람이 없어. 거, 누가 혹 그저 인자 그런 소리 뿐이여.

 

여그 누가 혹 그저 그 무슨 천수심경, 절에 그런 것 다 알고.

"천수심경 같은 거 해서, 거 내 신통을 막아낼 사람이 있으면 내보라"고 이러고.

"대중들이 다 목탁침서 해 보라"고, "내가 없어진가 해 보라"고 그러고. 아, 이놈 허는 짓이 굉장혀!

 

나, 그 꼭 봤제. 바둑을 요리 깨는 걸 봤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나중에 바둑을 깨 놓은 것을 이렇게 나중에 봐도 깨져 가지고 있제, 이놈 어떤 신(神)으로 어떻게 했은게 도로 다져 질란가 싶어서 봤어. 소용없어, 깨졌어. 허, 누가 안 무서워 헌 사람이 없어.

 

'에이, 요놈을 내가 한번 다뤄 볼 밖에 없다'고.

 

내가 그렇게 참, 우리 참선법(參禪法)이라는 것은 참으로 정법(正法)이요, 참으로 대도법인디, 제까짓 삿된 놈이 내가 한번 정(正) 되아 버리면 그까짓 삿된 놈이 무슨 소용있냐 이말이여. 기운이면 뭣 허며...

 

어떻게, 그래 가지고는 그 내세우는 것이 있등만.

천주! 천주를 내세워(불이 꺼져 버렸나?) 천주를 내세우는디.

 

내가 그랬어. "천주가 뭐냐? 어떤 게 천이냐?" 내가 그 사람한테 가서.

 

옷을 인자 이상스럽게 입고, 벌쎄 나도 거그서 다 인자 공부 잘헌다는 유명헌 참 정영신(鄭永信)이라고 헌께 그놈도 듣고 있고, 나도 저 인자 듣고 이래.

그 둘이 붙었네, 인자. 차츰차츰 얘기허다가, 가까이 딱 붙었단 말이여.

 

"어떤 게 천주냐? 천(天)이라 하니, 하날이라 하니 어떤 게 하날이냐?"

아, 저 사람은 하날이 제일이요, 천하에 하날이요,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했고, 그건 예수교도 그러지마는, 보통 다 사람도 '하날 밖에 인(人)이다, 사람이 났다. 천(天) · 지(地), 하날 생기고 땅 생기고 인이다‘ 요렇게 봐 노니깐, 천이 그만 제일이다 이게제.

 

한, 사람[人]이라는 건 뭐 그 세째나 된다 이말이여.

고놈 가지고 싸움이 붙었네. 나허고 저허고 이론 싸움이 났다 말이여.

 

내가 인자 묻기를 "어디 하날이..."

그게 인자 그건 예수교도 안 믿는 것이 하날이라고 인자 고런, 그래 가지고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는 천주를 내세우드구만.

 

나는 '내가 하날이다'

저는 '하날이 따로 있어서...'

 

"어째 그러냐? 산하대지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우주 전체가 다 내가 맨들았다. 자천(自天)이다. 모도 하나님이 내제" 내가 아, 이래 가지고 인자 뭐 서로 싸움을... 그놈이 충돌이 되았네.

 

나허고 충돌이 되아 가지고 "조놈을 톡 튕겨 버려?" 나를 그랬다 말이여, 고것이.

"톡 튕겨 버려?" 이럼서 답싹 업신여겨도.

 

나는 "천하를 어쩌치 못헌다. 하날도 나를 어쩌치 못허고, 천하에 제가 기운 센 명장 항우보담 백 배나 더헌 놈도 나를 어쩌치 못헐 것이니라. 어찌 그러허냐! 나는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를 찾는 사람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사람이다" 아! 이래 가지고 저놈한테 그만 내가 들이붙었네.

 

"너 이놈! 내가 이놈! 튕겨 버리면 튕겨지고, 이놈, 벼룩처럼 죽여 버리면 죽여 버리는디, 왜 어째, 야! 이놈아! 해 봐라, 이놈아! 네가 당장 해 봐라" 꼼짝 못허네.

 

내가 뭐 그까짓 참말로 튕기면 없어지제, 뭐 소용 있어?

 

꼼짝 못헌단 말이여! 어떻게 그랬든지, 나는 이(理)로만, 저 참선 도리만 가지고 막 허거든.

"정법을 어떻게 헐꺼냐? 이놈, 삿된 놈들이. 천하를 갖다가 니가, 천하를 비벼 버리고 천하를 갖다 가리를 맨들아 하늘과 땅을 해버릴지언정 나 해 봐라”허고 대든게 꼼짝 못허대.

 

되게 거그서 싸와 놓고는 그 이튿날, 이 자석은 거그 있고 헌디, '에이, 빌어먹을 요런 것들 허고 싸워 놓고는 내가 오래 있어서 못쓰겠다' 그러고는,

고렇게 인자 맨들아 놓고는 보따리를 싸 가지고 고 틈새기 타서 도망을 쳐서 '에이 빌어먹을 놈, 이놈! 네까짓 놈허고 싸울 것도 없고'

 

고놈이 나중에는 날 보고 어디서 날 비벼 버리면 손꼬락 피만 묻히는가 싶고, 대체 그놈 무서운 놈이거든.

그래 안 도망 안 갔는가, 그래 도망가듯이 갔어. 도망을 가 가지고는—인자 그 틈새기서 나와 버렸지, 그 산중을.

 

만오 스님도 덜덜 떨고. 주지 스님이 덜덜 떨어.

'거 무서운 도인인디 건들었다'고. 왼통 야단이여, 뭐 산중에서 이래. 아! '대차력을 허고 무슨 뭐 그런다'고.

 

이러고는 도망을, 그냥 나가 버렸제. 그까짓 그래 놓고는 한번 되게 싸와 놓고는 나와 버렸제.

 

그러고 또 산중에서, 고운사, 의성 저 고운사 선원에 있는 선방 수좌 '정영신'이라고 그래 논께 인자 고운사도 큰일났거든.

내가 그만—이렇게 받드는 큰 대도사인디, 갖다 아무것도 아닌 외도(外道)라고 해 논께—저놈을 갖다 그렇게 질러 놨으니 '고운사가 낭패다'고 아, 이래 떤단 말이여.

 

그래 저래서 그만, 그래 놓고는 나와 도망질쳐서 새벽에 일찍허니 종(鐘) 친 뒤에 나와 가지고, 인자 그때가 그만 막 나온 길이라 인자.

다 준비해 가지고 내가 싸 가지고 인자 그냥 머리 감토도 하나 싸 가지고, 감토도 인자 그때는 맨들아 가지고 그랬어. 끈 달아 가지고, 다급허니께.

 

그래 가지고는 저, 그러다 인자 의성을 나왔다. 저 안동을 나왔어.

의성 고운사에서 안동이 30리인가 그렇등만, 40리인가?

처음 인자 거그를 걸어서, 그때 뭐 탈 것도 없고. 걸어서 나오니깐, 새벽에 나왔지만 한 40리 나오니까 점심때 거지반 되았어.

 

그래서 안동을 척 나와서는 인자 참 아무것도 거침없다.

산산수수도 그대로 내 소유물이요, 보이고 전체가 다 내 모도 그만 그저 흥! 내 소유다.

 

안동 영회루에 올라와서 영회루에다 좌(座)를 정하고 가만히 앉어서 내 도리를 응, 그저 정수진산이다.

그 영회루 밑에 물이 척 흘러 내려가는 안동에 백사탄변(白沙灘邊)이, 산이 있고 산이 모도 사방에 산이 주루루루 내려와서 있으되, 비탈이 길이 모도 있고.

옛날에 그 자동차 그 5인승인가 뭐 6인승인가 타는 사람이... 왜정 당시 고것 밖에는 없고. 좀체로 돈 있어야 그 타제, 못 타고 그런 것은.

 

가만히 앉어서 참선을 하고 앉었으니깐.

청춘남녀가, 참 마침 청춘남녀 둘이—그때도 그 인자 신여성(新女性)이 인자 처음 생겨났을 때로구만, 그때가.

처음 신여성이 생겨났는디, 머리를 이렇게 '히가미사시(히사시가미)'를 턱 허고. 옛날에 히가미사시라고 그랬어, 그걸.

 

히가미사시를 떡 허고 삐쭉 구두, 인자 처음 삐쭉 구두 그때 처음 봤제. 그걸 신고는.

'아따, 참! 저 여자는 신식 여자다. 신지식이 많이 있는가 보다' 모도 이럴 때여.

 

그 또 인자 남자도 하나 올라오고, 올라와 가지고는 붓대를 턱 내놓고는 뭘 그리대.

한참 그린디, 모두 산수를 그려. 산수 그리던 사람인데.

 

그까짓 그리거나 나는 가만히... 인자 그놈 움풍 감투를 딱 써 쨈매고는 옷 그놈 한 벌, 인자 진 놈 그놈 인자 거그서 내 입고, 한 벌은 인자 그 싼 놈 두고, 가만히...

 

세상에! 내가 봐도 그 이상헐 것이여. 내가 내 얼굴은 안 봤지마는.

그까짓 면경(面鏡)이 있나? 뭐 내가 그 보도 않고, 내 채리고 앉었지마는 내가 봐도 속으로 우스워.

내가 이걸 꼬라지를 보면 이상할 꺼다 싶어. 옷도 보면 이상하고.

 

그러거나 이놈 움풍 감투를 딱 쨈매고는 앉아 딱... 대체 나를 들여다볼수록 우습네.

 

그 청춘남녀가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요리 보고 어쩌고 허더니 여자가 더 본다 그말이여.

얼굴은 깨끗허제. 하나... 밤 같여! 인자 어릴 때 내가 그렇게 깨깟했어 얼굴이. 깨깟헌 내 용을 뒤집어 쓰고.

 

피가 한점도 더군다나 없은게 어쩔꺼여. 피가 없어, 말라서.

빼짝 말라 가지고, 그냥 얼굴이 하얀 백지장처럼 되았어.

그래 가지고, 그래도 때도 묻도 않고, 뭔 일도 안 허고 그래 논게 이상한디, 그러고 앉었어.

 

한창 그리더니, "아니, 당신이 무엇 허는 사람이요?" 그래.

"아, 여보시요, 당신 볼 대로 보시요" 암말도 안 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참 그래서 "사람을 보고 뭣 허는 사람이냐고 물어? 볼 대로 보시요, 그려"

"아니요, 하도 이상스러워 물으니 너머 허물허지 말고 대답해 주시요. 어째 무엇 허는 이요? 비관자요? 무슨 염세주의자요? 무엇 허는 분이요? 그 인사나 좀 합시다. 당신 이름은 무엇이요?"

 

한참 저놈 한 댓번 뭐라고 허면 나 한마디 답헌디, 말헐 것도 없제.

 

"나는 이름이 꿈돌이요" 이름을 꿈돌이라고... "꿈돌이요"

"꿈돌이요?" 그러고는.... “대관절...?”

 

자꾸 물어, 내 뒤를. 어떤 사람이냐고.

그래 나는 형사인 줄 알고 말이여, 대답 안 헐 수도 없고 그저, 그래 형사인 줄 알고 그저 이러고 앉어 있으니까.

 

"아! 당신... 우리는 미술허는 사람이요"

그림... 미술학교 대니고 그러다가 인자 지금 나와서 한번 실경(實景)을 그리고 그런다등만, 그것도 잉.

 

"미술허러 올라왔다가 당신을 봐 허니, 당신도 미술헐 줄 아요?" 어쩌고 험서 그려.

나도 스무 살이 넘어서 그때 인자 한 그 스물 그렇게 되었으니께.

 

"내가 당신네 눈에 미술가로 보이면 미술가로 보고, 염세주의자로 보면 염세주의자로 보고 그러제, 날 보고 자꾸 대답만 허라 하니 어떻게 대답을 헐 수 있소? 내가 미술가요, 내가 염세주의자요 허겄소? 그래 고만 당신네 일이나 보시요"

 

"아! 미술 하나 좀 헐 줄 알면 해 봅시다" 어쩌고 그래서.

"아, 여보시요, 이 미술 그대로 두고 보지. 영회루라든지 백사탄변 흘러 내려가는 물이라든지, 저 산들 저렇게 다 그대로 두고 보지, 거다가 왜 애터지게 무슨 붓끝으로 미술을 만들아서 산을 만들아 가지고 볼락 햐? 그대로 보지, 저"

 

아! 이래 논게 그 말이 모도 미술가 말도 같고 그러거든.

말은 터져서 잘혀 그래도. 말을 허면 썩 잘혀.

 

헌디, 즈그는 헐래야 헐 수 없는 말을 내가 허고, 즈그는 들어야 알 수 없는 말을 내가 하거든. 그런게 뭐 제까짓 것들 소용있나?

 

그래 놓고는 말문 딱 닫아 버리고 “당신네 일 보시요”허고는.

'아, 참말로 미술가인가, 참말로 도인인가, 염세주의자인가, 무엇인가?' 이렇게 저놈들이 봐 가지고 나를 자꾸자꾸 알라고 해싸.

 

불고(不顧)해 버리고는, 있다 귀찮허길래 그만 오장치를, 저 보따리를 짊어지고 나 혼자 내려서 살살 영회루를 내려서 한참 걸어오니까, 아! 이 저석이! 그 의성서 싸운 놈, 그놈 그 김익수란 놈이 턱! 나와.

 

'대체 이 자식이 도인인가 보다. 도인이라 이놈이 나를 알고, 어디 간 줄을 알고 잡으러 왔구나, 저놈이. 인자 여그서 나를 갖다가 비벼 버릴라고 왔구나'

그러지마는, 그까짓 것 내가 절대 무슨 그러헌 디, 비벼 버린다고 고런헌 디 뭐 포구심(怖懼心)도 없고, 그때는 그런 것도 없고.

 

저놈이 척 나타나는디, 그놈 전면을 턱 봤자 아무것도 없어! 내 눈에! 아무것도 없어.

고런 놈이 밀대 갓을 딱 썼대. 옷도 잘 안 입고, 밀대 갓을 딱 쓰고는 앞에 척 나타나.

 

그러거나 저러거나... 그려도 내가 또 거그서는 암만 그랬드래도 거그서 턱 만나는디 인사를 했제.

"아! 익수 선생님이요?" 쾌활허게! "아! 익수 선생님 오셨네! 하! 이렇게 참 만날 줄 몰랐네" 그러고 인사를 척 헌게,

"아! 그래요!" 또 반가와허대. 조꼼도 그 어디 이러도 안 허고 반가와해. "아! 그러냐"고.

 

그래 가지고 오면서 그 고운사에서 서로 싸우고 그런 건 꿈에도 내가 얘기 안 해.

그깟짓 것 지내가 버렸으면 지내갔지, 그걸 내가 재개헐 것이 무엇이 있나? 안 두고는, 그냥 같이 내려온게, 인자 그때는 좋아서 반가와 험서 "아, 그 어디로 가느냐?"고 어쩌고...

 

나, 나도 "걸음이 뭐 어디, 내 걸음이 대종이 있소? 나도 이렇게..."(51분22초~1시간12분34초)

 

 

 

 

 

(2)------------------

 

그 거그서는 의성 고운사 지낸 중인 줄만 알고, 고운사 참선허는 선객인 줄만 알았다가, 옷을 또 그때는 그렇게 어디 변장 안 했은께.

옷을 변장을 해서 그리 입고 아, 이놈을 입고 온게 그 저석은 나를 봐도 모를 정도로 됐어. 옷을 그렇게 입고 나온께.

 

그러지만 내가 반가히 인사를 헌게, 아, 저도 반가와 혀.

둘이 떠억... 나를 인자 그만 참 반가와 혀. 아, 그것도 그 이상하등만.

 

반가와 하더니, 뒤에 사람 놈은 그건 무척 당최, 앞뒤를 서서 어디를 간다고 허면 질러간 놈도 있고, 뒤에 따라온 놈도 있고 그러지 같이 가든 안 해. 독행(獨行)을 허지.

그래 둘이 나허고 앞에 저 건네 안동을 바라보고... 영회루가 안동 밖에 있드구만. 뚝 떨어져 있어. 그래 둘이 척 들어가는디, 자꾸 나허고 저 간 데를 가자 햐.

 

'이 자식이 여그서는 좋게 반가히 인사하지마는 나를 어디 데리고 가서는 없애 버릴란가?'

그러지마는 그까짓 것, 뭐 상관없어. "그래 가자"고.

 

그래 간디 어디로 간고, 가 본게 안동 들어가서 그 어디 그 여러 대중 가운데로 들어가서—어디 그 나를 어떻게 죽일라면 죽일 수 있나? 어떻게 없애 버릴 수 있나? 뭐 사람들 많이 있는디.

그런게 안심을 허고는—그냥 산으로나 어디로 험악헌 디로 가자 허면은 나를 없앨 줄 알지마는, 그게 아니고 안동으로 들어간디, 뭐 상관있나?

 

아, 그래 들어가는디, 뻑뻑 얽은 놈이 있다가 하나 턱! 나오더니 "당신, 뭣 허는 사람이여?"

하도 이상헌게 다 그래 되아 버렸어. 그날 첫 날인디 인자, 첫 날 이걸 입고 나섰는디, 아! 이놈의 거!

 

"뭣 허는 사람이여?"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3.1 운동 바로 뒤여. 바로 3.1 운동 뒤라.

대단히 고등계에서는, 왜놈 고등계(高等係)에서는 조사가 기맥힐 때여. 조끔만 이상허면은 군자금 모집허러 댕기는 놈인가? 뭣 헌 놈인가? 글안하면 뭐... 야단이여.

 

그런디 나섰으니 어찌 되아.

조사는 뭐 굉장하제. '조사가 내 옷이고 조사가 내 밥이고 내 길이다' 이러고 나서 버렸은게 말헐 거 있나?

 

"그 뭣 허는 사람이여?" 또 고놈도 그래 물어. 한참 있다, 아무도 모르는 놈이 그렇게 물어.

 

인자 그럴때는 그놈이 분명히 그놈이 묻는 태도가 형사라. 형사가 인자 물어 가지고는 내가 인자 잡혀 가면 가 좀 들어앉을 요랑허거든.

유치장에가 들어앉어 있으면 뭐 밥 주겄당, 그 뭐, 뭐 지가 죽일라고? 그러고 나섰은게.

 

"아, 여보! 사람을 보고 뭐냐고 물어. 왜?" 대번 뭐 대답도... "왜 묻소? 사람 이름을?"

"내가 조사헐라고 묻소"

 

"아, 조사를 허면 뭔 무슨, 무엇을 어떤 조사를 바로 조사를 허제, 사람을 보고 뭐냐고 뭔 사람이냐고 물어?"

그래 놓고는 저놈 조사허기 전에 막 냅대 그만 내 주의 사상을 그만 한바탕 그것 인자 좀 해야 허겄대.

 

"나는... 내가 중이요. 중인디, 턱 그 내가 참 중이 되아 가지고 우리 부처님 정법을 내가 턱 배와 보니, 인유생노병사(人有生老病死)다! 사람은 생노병사가 있다!

생노병사가 있으니, 나서 늙어 병들어 죽은 것 밖에 없으니, 나는 사형무대 밖에 없으니 내가 나를 찾기 위해서 강호에 밥을 두고, 얻어먹고 댕기면서 내가 도 닦을라고 나온 사람이니 그 외에 더 의심헐 것 있으면 의심허라고.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다! 모든 상 있는 것이 다 허망허다! 허망허고 무상해서 나는 다만 이렇게 나선 사람이니까, 그 외에 무엇이 있거든 조사해 보라!"

 

무상허고 허망허다고 허면 그만이거든, 그놈들은.

응, 허망허고 무상허다면 고등계 조직이 아무것도 안 되아.

그래서 그냥 마냥 세상을 무상허게, 세상을 허망허게,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으로 나섰다 하니, 의심헐 것이 없고.

 

이놈 의심이 설설 나게 허면 못써. 그래야 내가 좀 어떻게 내 길이 활발허지.

그래 그만 한바탕 설법을 척 해 버린게, "아! 그러냐!"고.

아! 거그서 오히려 감상담(感想談)으로 듣고 나를 갖다가 그 사람이 좀 가자고 허네. 김익수허고 같이 들어가는디, 가자고 헌다 그말이여.

 

"아, 여보시요. 이분허고 나 지금 같이 가자고 혀서 어디 시방 들어가는디, 이분은 어떡허고 당신을 따라가요?"헌게, "그 어디로 가요?" 물은게,

"나, 어디 좀 여관으로 간다"고 허고 그런게, "그 같이 가자"고. 아, 그래 따라 들어온다 그말이여.

 

그래 김익수허고, 그 형사허고, 나허고 서이 딱 따라오는디, 들어가는디 본 게 그 집이 하성경이—하성경이 나 안 잊어 버렸구만.

안동 읍내 하성경이 여관이여. 하성경이라고 문패가 붙여 있네. 하성경이 여관 집에 척 들어왔네.

 

아, 들어오고는 형사는 나를 보더니—인자 그 사람허고 나허고도 관계가 있어 온지는 모르고, 서이 그러고 온 것 같이 떡 들어오니까, "배 고프지요, 당신?" 그려, 형사가.

"아, 배고프지마는, 어디 내가 뭐 인자 밥을 좀 어디 얻어먹어야겄소" 그런게, "아, 그러냐"고.

 

외 장사가 있은게, 외를 요만헌 놈 하나를 사 주대, 나를. 아! 그놈 좋대.

배는 슬 고픈디, 외 하나를 안동에 유명헌 외를 사 주어. 안동은 외가 좋아.

아! 그놈을 사 주어 먹으라고 해 고맙게 내가 먹었어.

 

그놈 앉어 깎어 먹고는 그럭저럭허다 놀다 가서 가는디, 그놈은 내가 물었어. "형사 이름이 당신 뭐요?"헌게 김천석이여. 그래 거그서 그 정도 얘기허고는 나 외 하나 사 주어서 그 자시고.

 

"내가 여까장 따라 들어와서 그 좀 대접이나 좀 허고 할라고 했더니, 당신이 하도 그 세상을 모도 무상허게 허망허게 보고 이렇게 나왔으니, 나도 그 말을 듣고 참 퍽 감상이 깊었소. 나도 역시 내가 이렇게 진세(塵世)에 살기는 살지마는 모도 무상허고 허망하요. 나도 언제든지 내 이 옷을 벗어 버리고 나도 출가 헐 마음이 있소" 아, 이려!

"그래야"고, 그러고는.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시방 향방(向方)없이, 어디 향방이 별로 없이 가니 어디로 가요?"

그래 내가, "나는 이 길로 여그서 안동서 인자 이리 해서 저 금강산을 바래 보고 가요. 금강산까장 좋은 산천 구경가요"

 

"그러냐"고. "나도 인제 가을에나 금강산 갈런지도 모르겄다"고 이러고... .

그때는 금강산이 뭐 상관있나? 문 다 열렸은게.

 

작별을 허고는, 인자 김익수허고 같이 인자 거그서 지금 좀 있는디, 또 와! 모여들어 가지고는 사람이 또 그만 집이 빡빡햐. 그 가끔 댕기는 집인갑등만.

 

아, 이 저석이 떡 앉었더니 마루장을 발로 요리 디디고, 나를 보라고 헌가 부여. 요리 막 요걸로 요리 해 버린게 폭 들어가 버려, 마루장이.

자석! 그 녀석 또 인자 그걸 보이여. 바둑으로 깬 바둑 내가 봤는디 그 짓을 혀.

 

'자식이 또 나한테 저놈을 뵈이는구나. 나를 저렇게 죽여 버린단 말인가, 어쩐가?' 날 본디 그려.

또 앉었더니, 목침이 옆에 이만헌 놈 있어. 목침을 요리 해 가지고는 요래 가지고 요래 버려.

'아 이 자식이 또 저런 목침을 가지고 나를 갖다 위급(危急)을 주고 저놈이 허는구나'허고.

 

요래 가지고 딱 따개 버려. 그거 참 희한허다 그말이여. 그 아무리 기운 센 사람도 못할 것인데.

그러더니 그 다음에는 또 촌놈이 인자 대통을 가지고 모두 와서 인자 큰 도인 찾아 본다고 와.

 

모도 인사 받고는, 대통 요렇게 큼직헌 놈을 가지고 와 이러고 앉었은게, 요러고 앉었은게,

“그 대 그 좋다! 대가 그 대통이 좋은디!” 쇠, 큰 이만헌 큰 놈 단 놈 그 대가 있어. 대통을 요래 버린게 팩 삐뚜러져 버려. 아! 이놈의 저석 허는 지정머리가 참 굉장해.

 

안동에 '김익수, 김익수' 다 알아.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래도 나는 인자 그래도 그때 처음 들었제, 내가 그 전에 있는지 없는지 몰라.

그래도 뭐 나한테는 인자 그렇게만 보이제, 그렇게 나를 갖다가 요래 버릴라고는 안 헌 것 같애.

 

그래 인자 밥을 사줘. 밥을 사줘, 밥을 잘 사줘서 아! 고맙게 밥 먹었제.

밥 먹고는, 그놈들한테 섞여서 내가 오래 그래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놈이 나를 뭐 붙잡고 어디 가자고도 안 허고.

 

그래 "자, 김선생님 교화 잘 허시고, 모도 다 포교 잘 허시고, 아무쪼록 도인 모도 만들아 주십시요. 나는 갈랍니다"

"아! 어디로?"

"아, 내가 어디로 갈 곳이 어디 있소? 내가 그냥 이대로 나가는 사람인디"

 

"아, 그래야고? 하룻밤만 나한테 자..."

"아이고, 난 인자 가야겄소" 그러고는 나 인자 거그서 떨쳐서 안동 제비원으로 들어왔구만.

 

거그서 또 시작해서 인자 그런 것들을 말이여, 가끔 만나거든. 그리 나서 본께.

이상스러운 놈의 종자를 설찬히 만난단 말이여.

 

절도 인자는 그때는 안 가고, 그다음에 인자 산으로 어디로 해서 가서 인자 그러고 댕기는디.

거그서 인자 그 안동 제비원으로 해서 오대산을 들어갔구만. 큰 명산은 구경허야 되겄길래 오대산을 들어갔구만.

 

오대산을 들어가서 큰 절에 그런데 중들 있는데, 어디 무슨 뭐 거지로 그런데 들어가서 거 어디 무슨 뭐 공소방에 잘 수도 없고.

오히려 또 중노릇 환히 허다가 그렇게 나간 사람이 그런디 저런디 당최 그것들 대허기도 싫고 말도 않고 허니깐, 저 월정사를 그대로 거쳐서 상원사도 그대로 거쳐서 도량만 보고는 거쳐서 그럭저럭 오후가 됐는데.

 

7월 달이여. 그때 7월 달이여. 어떻게 비는 와쌌고, 안개는 꽉 찌어서 험악헌디, 에라! 이것 올라가서 조용헌 데 가 잘밖에 없다고.

상원사에서 오후 아마 한 두어 시나—그때 뭐 시계가 있나, 뭐 있나, 짐작컨댄 오후 한 두어 시나 되아서 떠나 가지고는, 중대(中臺)를 거쳐서 중대에서 인자 북대(北臺)를 올라갔는데.

 

생전 처음이지, 길을 아나?

북대를 올라가는데, 안개가 꽉 찌어서 이슬 속에 비는 촐촐촐촐촐 오는데, 북대를 겨우 올라가 가지고는 북대 절에 가 잘라 하니까,

모도 말허기를 "거, 북대가 그 아주 험악허고 요새 험상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야단났다"고 어쩌고 그려.

 

그까짓 험상스런 일이 나고 뭐 뭐, 무엇이 들어와서 모도 어쨌다고 그러지마는, 그까짓 녀러 것 그런 것 무서워서 못 갈 것도 말 것도 없고, 집이 있으면 자는 것이고 그렇제.

"누가 들어와 있냐"고 헌께, 웬 중 하나가 있다고 그려.

 

북대를 찾아 올라가니까, '다디미 돌을 들어 가지고 사람을 죽여서 때려 죽였다'고 헌 그런 그 무슨 말을 듣고 왔는데, 피가 그대로 있어. 피가 그대로 있고, 사람 비어 버리고 암것도 없어.

 

7월 달인데. 아, 이것!

중 하나도 거그가 있을라고 갔다가 그만 악사(惡事)가 난께 가버렸다 하등구만. 그래 집이 비어 버렸어.

 

나도 그걸 보고는 잘 수도 없데.

에, 이놈의 것 잘 수도 없는 게고, 그놈 그렇게 집이 되았으니 뭐 어디 있을 수도 없고.

 

북대 뒤로 해서 넘어가면은 신계사가 어디 있다 하드구만. 여그 본 사람 다 없는가 몰라도.

신흥사! 북대 뒤에서 어디로 올라가면은 신흥사가 있다고 그래서... 넘어갈 밖에 없다고.

해가 얼매 된 지도 모르고 그냥 시계도 없고, 안개는 꽉 끼었고.

 

그래 거그 들렸다가 북대에서 무슨 신배령을 넘어서 거 어디로 간다고 그래서.

아! 이놈의 거, 여기 요래 요렇게 자꾸 가면은 재니께, 인자 신배령이니께, 신배령 재로 올라간 줄만 알고는 올라가니까, 한참 올라가니까 날이 저물어 버렸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날이 저물어 버렸네.

 

인자 이거 나 가다 고생헌 것이로구만, 이거.

그 고생헌 것 고런 거 좀 집어 넣으라고 해서 시방 말하는데, 요까장은 다 한번 허고 싶어.

 

그런께 내가 비로봉은 생전, 오대산 비로봉은 생전 꿈에도 못 봤지마는, 못 본 디인디, 밤중에 비로봉을 올라간 그 얘기여, 이게.

 

알도 못헌... 뭐 알았나?

이렇게 신배령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는 자꾸 올라간 것이 한참 올라가다가는 질(길)이 없네, 밤에.

 

질은 있다 한들 알 수가 있는가? 조그만허게 질 같은 데 올라가다가는 질이 없어.

오대산... 밤중에 내가 7월 달에 그 비 오는 안개 속에 올라간 건 나 하나밖에 없을 게로구만.

 

그래 올라가는데, 적멸궁(寂滅宮)에서 보면 그대로 본게 바로 터졌는디, 그걸 모르고는 이렇게 올라 가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 가서 길을 잊었는데.

첩첩헌 산중인디, 그 몇 아람드리 된 그런 전낭기가 딱! 그만 엎어졌어. 자빠졌어, 썩어서.

 

엉클허니 이파리 다 떨어지고 뼉따구만 남은 놈이 산을 이리 가로막았는디, 고놈을 뚫고 넘어갈라면 기가 맥혀. 전나무 그 저 뻑다구 생긴 놈 기맥힌... 못 넘어가 그놈은.

 

어디로 어디로 뒤뚫어서 밤인데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넘어가면 또 그런 것 또 있고.

 

곰이란 놈이, 그래도 그 산중에 밤에 곰은 안 보이드구마는, 똥은 담뿍 싸서 똥이 그만 금방 싼 놈이 있어. 아주 곰똥도 시커먼 것이 우습대. 그런 놈을 드리 싸 놨는디.

고 밤에 곰똥인지 뭔 지랄 똥인지 분간도 못허지마는, 그런 디를 뚫고. 가고 또 올라가다가 이런 또 바우가 있으면 바우를 피해서 올라가고. 나는 재인 줄만 알고 그랬다 그말이여.

 

그놈이 신통이 났으면 그 다 알테지마는, 무슨 놈의 신통이 어디 거가서 무슨 신통이 소용이 있나?

 

아, 그래 가지고는 얼마 올라갈 때에 그 담을 딱 싸논 데가 무엇이 있드구만. 이래 판판허니 무엇이 하나 나와.

근데 무엇인고 싶어서 그대로 알고는 아무것도 없은게 도로 얼마 올라가니께 인자 산꼭대기로 올라갔는데, 네모진 돌에다가 이렇게 십자를 그어 놓은 것이 해 놨는디 밤에 봐도, 캄캄헌 밤이자마는 그래도 그 들여다보면 대강 그—구름 속에 달이라도 뭐 있는 날 저녁인가—비로봉이라 써 놨어.

 

내 그래 그때 비로봉인지 알았구만.

비로봉, 오대산 비로봉에 그 '열 십(十)'자 있고 비로봉 돌 박어 놨드구만, 그래도. 그 높은 디도 기명(記名)해서.

 

'아하! 이게 비로봉이로구나. 이게 밤중인지 낮인지 알 수 없다마는, 여그서 내가 이렇게 올라왔으니 이렇게 내려가면 동으로 갈 것이다' 밤에 짐작으로.

 

짐작이 소용있나? 여그인지, 여그인지 몰라, 그래도.

'에라! 이놈의 것 그만 여기서 이렇게 온 데로, 온 데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저리 내려갈 밖에 없다'고.

 

내려가는 놈의 데가 질이 있나, 뭐 있나?

그 첩첩... 오대산이 그렇게 민산 같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올라가면 기가 막히게 험악혀! 속이.

그런 데를 비젓고 내려가면은 이놈의 옷이 보따리 하나는 쥐었지마는, 하나는 짊어졌지마는, 그 가시덩쿨 속에 한 토막썩 다 찢어 갔어. 가시가 다 찢어 가. 옷, 그 다 찢겨 버렸어.

 

다 찢기고는 이런 놈의 데를 내려와 가지고는 날이 샌지, 무엇이 샌지 알 수가 없는데.

앞에서, 밤에 뭐냐면, 무엇이 그 얼매나 되아—이만헌 놈이, 아! 저 작것이 도망가면 허지마는 도망 안 가고 내 앞으로 오네!

 

아, 이 빌어먹을 게 호랭인갑다고. 꿈에 말여, 아니 저 밤에.

호랭인갑다고 그러고는, 이것 호랭이란 놈은 엎뎌서 기어오면 사람을 잡어먹는다는디, 안 달어나고 저 빌어먹을 것이 앞으로 온다 그말이여.

 

그 지경 된게 인자 그렇게 무서운 건 뭐 그런 것은 없등만. 밤에 나서는 그러니... 나도 짐승처럼 기어 내려간께.

아! 그러다가 앞에 오더니 그냥 둥그르르 궁글어 버려!

 

아, 이런 빌어먹을 게 무엇인가 싶어서... 그래 큰 놈이대. 하여간 큰 놈인디, 이만헌 놈인디, 그게 그 고슴도치인가 비여. 인자 생각해 본게, 그전에는 몰랐는디, 보든 안 했는디.

그 나중에 인자 말을 헌게 고슴도치라고 허드구만. 대갈빡도 없고 암것도 없고 터럭만 이렇게 있어. 이렇게 큰... 꾸적 꾸적허니 있어. 그래도 그 인자 대들든 안 허고 그런 것인게, 그냥 그대로 그만 나왔제.

 

그 어떻게, 밤에 어쩔거여. 좀 무섭기도 허고 어쩌고 허지만 그냥그냥 그래 피해서, 좌우간 어디 인가(人家) 있는 디가 내려간다고 내려가니까,

밭이, 산전에 그 모도 냉기를 베서 불을 태운 밭이 있어. 아무리 사방을 봐도 집도 없고 헌디 그런 밭만 있드구만.

 

이게 사람은 분명 사는 데인디, 그놈의 디다가서 밭에다가 뭘 심어 놨는디, 무엇을 심었는고 하니 산중에 그 피—산중에 심는 뭐 요런 주먹같은 놈의, 낮에 본게 그게여.

그런걸 심어 가지고 따 먹는 게 있는데, 고걸 모두 심어 놨는데, 서석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고런 것이 산중 심은 게 있드구만.

그러고 그 다음에 감자 심으고 메밀 심으고 헌디, 메밀은 또 좀 야지(野地)가 메밀이 되지, 그렇게 높은 데는 안 되아.

 

아, 그런데 사방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는디, 샘이가 있는디, 하나가 발견했는디, 흘러 내려오는 샘인디 바가치가 하나 있단 말이여!

 

하! 여그는 사람이 살기는 분명히 사는데 어딘고 싶어서 그 집을 꼭 찾아야겄는데 허고, 조금 있은게 저 밑에서 불이 빠짝해.

아따! 이거 참, 그 불 빠짝허니 아마 그 집인가 보다하고, 거그를 향해서 내려간께 집을 움막집을 요렇게 나무를 요렇게 꺾어서 요렇게 우물 자 정(井)으로 지어 놨드구만.

 

그래 그 앞에 가서 "주인, 주인!" 부르니깐,

한참 있더니 "아! 거 누구요?" 그래서,

 

"아! 여보시요, 내가 길을 그릇 들어 들어왔으니 나를 좀 구해 주시요"

"아, 어디서 이렇게 오요?"

 

"아, 내가 지금 오대산서..." 그 말을 해야 겄길래,

"오대산서 중대로 해서... 오대산 중대로 해서 중대서 이렇게 넘어오다가 그 산상(山上)에서 모두 질을 잃어 가지고는 이렇게 넘어 왔소"헌게, 아!... (1시간12분34초~1시간33분25초) (일대기 9호 끝)

 

 

 

 

 

------------------(1)

 

*고운사(孤雲寺)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騰雲山)에 있는 절. 신라 신문왕 1년(681)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16 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대사(大事) ; 큰일(결혼, 회갑, 초상 따위의 큰 잔치나 예식을 치르는 일).

*무애행(無碍行) ; 거침없는 행동. 거리낌 없는 행동.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자석 ; 자식(子息, 남자를 욕할 때 '놈'보다 낮추어 이르는 말)의 사투리.

*차력(借力) ;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 몸과 기운을 굳세게 함. 또는 그렇게 얻은 힘이나 그런 사람.

*남포 ; 도화선(導火線 폭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 장치를 하여 폭발시킬 수 있게 만든 다이너마이트.

*남폿돌 ; 남포를 놓아 캐낸 석재(石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답삭 ; 왈칵 달려들어 냉큼 물거나 움켜잡는 모양.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감토 ; '감투(예전에, 머리에 쓰던 의관衣冠의 하나. 말총, 가죽, 헝겊 따위로 탕건과 비슷하나 턱이 없이 밋밋하게 만들었다)'의 옛말.

*신여성(新女性) ; ①개화기(開化期) 때에, 신식 교육을 받은 여자를 이르던 말. ②개화기 때에, 서양식 차림새를 한 여자를 이르던 말.

*개화기(開化期) ; ①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바뀌어 간 시기를 이르던 말. ②외국의 사상이나 문물을 받아들여 한 사회의 사상과 풍속이 새롭게 바뀌는 시기.

*히가미사시 ; 히사시가미(ひさし-がみ, 庇髮 챙머리). 앞머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이마 위에 불룩 내밀게 추켜올려 빗고, 뒷머리는 정수리나 후두부에 틀어 올린 머리모양.

일제시대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의 하나로 히사시가미 스타일은 서양에서 먼저 유행하던 것을 1900년 경 일본 여성들이 본떠서 유행시켰고, 그것이 한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당시 여학생들이 열광적으로 따라 해서 1920년대 초까지는 여학생을 부르는 별칭이 히사시가미였을 정도였다. '오가미상おかみさん머리' '북상투' '말똥머리' '쇠똥머리' '쥐똥머리'라고도 불렀다.

*면경(面鏡) ; 주로 얼굴을 비추어 보는 작은 거울.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포구심(怖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마음 심) : 두려워[怖懼]하는 마음[心]. 두려운 마음.

*밀대 ; '밀짚'의 사투리.

 

 

 

 

 

------------------(2)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고등계(高等係) ;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인의 독립운동 및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움직임을 감시하고 탄압할 목적으로 둔 경찰의 한 부서를 이르던 말.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삼라만상의 사상인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세계의 생성소멸 과정을 나타내는 성주괴공(成住壞空)도 동일한 형식이다.

*진세(塵世 티끌 진/세상 세) ; 티끌[塵] 같은 세상[世]. 정신에 고통을 주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

*위급(危急) ; 몹시 위태롭고 급함.

*지정머리 ; 무엇을 하는 짓이나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중대(中臺), 북대(北臺) ; 오대산 상원사의 산내 암자.

*다디미돌 ; '다듬잇돌(다듬이질, 구김이 없이 반드러워지도록 옷감 따위를 두드리는 일을 할 때 밑에 받치는 돌)'의 사투리.

*암것 ; '아무것(①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어떤 것 일체. ②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의 사투리.

*악사(惡事) ; 악한 일. 나쁜 일.

*적멸궁(寂滅宮) ; 적멸보궁(寂滅寶宮).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참고] 당우(堂宇)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민산 ; 겹산(겹山, 여러 겹으로 된 산)이 아닌 홑산(한 겹으로 된 산).

*작것 ; 잡것(雜것, 잡되고 상스럽거나 좋지 못한 사람이나 생물을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서석 ; '조(볏과의 한해살이풀. 오곡五穀의 하나로 밥을 짓기도 한다)'의 사투리.

*야지(野地) ; 산이 적고 들판이 넓은 지대.

*바가치 ; '바가지'의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20. 1. 8. 10:3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9-1호) 오대산을 넘으며.

 

**전강선사(No.020)—전강선사 일대기 제9호(경술1970년 12월 17일 새벽. 음) (1971년 1월 13일 새벽)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11분.

 

(1/3)----------------

 

죽장천리객(竹杖千里客)이  송하만년등(松下萬年燈)일세

나무~아미타불~

몽혼상별리(夢魂相別離)에  초월삼계루(超越三界樓)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죽장천리객(竹杖千里客)이다. 우리가 이와 같이 그만 항상 나그네 손이 되았어. 객(客)이 되았어.

항상 고향은 한번 가보지 못허고, 천리의 이렇게 손 노릇만 허고 지내오다가, 어쩌다가 참, 인자 금생에사 수도산승(修道山僧)이 되아 가지고,

 

송하(松下)에 만년등(萬年燈)이로구나. 이렇게 고향 다 내버리고 부모처자 다 이별해 버리고 수도승이 되아 가지고, 도 닦는 우리 도학자(道學者)가 되아 가지고, 만년등을 얻어. 큰 해탈등만 얻어 버려. 인자 확철대오(廓徹大悟)만 해 버리자 그말이여.

 

수업을 상별리(相別離)다. 그 과거 다생겁 중에, 그 업(業)으로만 싸와 오고 죄만 짓다가 그저 지옥 가고, 화택중(火宅中)으로 놀아나다가, 초월삼계루(超越三界樓)로구나.

 

아! 이렇게 우리가 인자 이번에 이 척에 잠깐 이 몸 얻어서, 이 몸 그저 금생에 그만, 과거는 뚝 떼어버리고—과거는 죄만 받아왔고, 금생에는 인자 참 어쩌다 확철대오를 해서 미래에는 삼계화택(三界火宅), 무슨 놈의 삼계화택인가? 삼계에 뛰어나 버리자.

모든 인자 그 참 생사 과업(課業)을 다 상별 이별해 버리고 삼계 한번 뛰어나 버렸다. 인자 미래 만년루라.

 

 

내가 그동안에 인자 참, 혜봉 스님한테 가서 법을 묻고, 거그서 떠나서 김천 직지사로 해... 응! 저, 지리산 동방장 허태오 스님한테로 또 다녀 거가서 문법(問法)허고, 그다음에 또 지리산 마천면 금선대 올라가서 하동산 스님 또 만나서 문답하고.

 

그다음 인자 도로 김천 직지사 나와 가지고 제산 스님 회상(會上)을 댕겨서 혜월 스님 한테로 갔다가 인자 혜월 스님한테—다 먼첨 말했지마는—댕겨서 인자 고운사를 올라가서 고운사에서 그 편지, 김천 직지사 제산 스님한테 물어서 답을 보고, 그러고서는 그 답을 사방 했어, 내가.

그때 한국에 유명허신 스님네 그저 어디어디를 막론허고 다 하나씩을 물었단 말이여.

 

“증재직지하(曾在直指下)타가 금도고운루(今到孤雲樓)허니 주앵야두우(晝鶯夜杜于)라. 낮 꾀꼬리요, 밤 두견이로구나. 직지착지오(直指錯指耶)이까? 이것이 바로 가르킨 것입니까? 그릇 가르킨 것입니까?” 이렇게 해서 전부 다 물었지.

다, 답이야 참! 다 잘허셨지마는, 많이 왔드구만 답이. 다 잘했지마는, 나 묻는 뜻은 아니거든.

 

공안이 왜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인가? 공안이면 공안 하나가 될 것이지, 왜 천칠백이 될 것인가?

그러면 삼세제불(三世諸佛)로 역대조사(歷代祖師)로 내려오면서 모도 문답이 있거든. 묻는 법문이 왜...

 

이 확철대오, 이 생사해탈법이 그 공안이면 공안이 하나 되면 그만이제, 왜 천칠백 공안인가?

천칠백이란 공안이 까닭이 있다 그말이여.

 

임제 스님 공안이 있고, 임제가풍이면. 조사가풍이라도 임제가풍(臨濟家風)이면 임제가풍 도리가 있고. 조동종, 조동가풍(曹洞家風) 도리가 있고. 위앙종, 위앙가풍(潙仰家風) 도리가 있고. 운문종, 운문가풍(雲門家風)이 있고, 모도 그렇다 그말이여.

 

임제 스님은 할(喝)이요. 임제 스님은 할이 임제가풍이거든.

운문은, 운문선사는 '떡 먹어라' 떡이 가풍이거든, 떡. '떡 먹고 가거라'

조주 스님은 '다(茶) 한 잔 먹고 가거라' 모도 그런 가풍이 있어.

 

가풍 가운데에 또 조사, 모도 관(關)이 있는디, 공안법이 있는디, '천칠백 공안이니라'했단 말이여.

법(法)이란 건 묻는 뜻이 있어. 공안이 똑같이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하면은 정전백수자 하나만 딱 가지고 해 논 것이 아니라, 거기에 천칠백 공안이 있어.

 

그러면 천칠백 공안에 그 근본 공안 대의(大意)가 다른 것이 아니여.

다를 것인가? 똑같제. 생사 없는 법이 같제, 어디 뭐 다를 것이 있어?

같지마는 그 공안에 자물쇠통이 달러! 쐬통 끄르는 법이 달러! 고것을 딱! 봐야 하거든.

 

그러면 그때, 가령 어떠헌 법문이 나와서 어디어디 가서 어느어느 무슨 응, 공이면 공, 색이면 색, 무슨 일체 백천만 가지의 그 무슨 경계가 있다 하드래도 그 경계에서 조사관(祖師關)을 하나 만들아 턱 물거드면은 일체 경계가, 일체 모냥이 다 달지(다르지). 색상이 다 달지. 어디 색상이 다 같는가?

그러면 일체 색상을 여의고 공안이 있는가?

 

공안이라 하는 것이... 그저 늘 헌 말이지.

왜 왜 그렇게 공안이 그러면 왜 다 여의고 떼고, 그러고 인자 어디 무슨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 불불이 서로 보지 못헌 도리, 석가도 오히려 아지 못헌 도리, 삼세제불도 이르지 못헌 도리, 그렇게만 어디가 공안 도리가 백혀 있다면은 그놈만 잡아 내지,

왜 또 공공색색(空空色色)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백천경연상(百千境緣上)에 가서 다 있냐 그말이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라 해놨냔 말이여.

 

백초두(百草頭)에 왜, 일백 가지 꽃머리에 가서 다 조사의(祖師意)가 있느니라 했으니, 꽃이 어디 무슨 한 모냥다리, 한 빛깔, 꽃 한 가지만 있나? 천만 가지 꽃이 다 있지.

그러니 공안이란 그 대의가 그것이, 그 어떻게 생긴 것을.... 거다가 어떻게 혀? 다 있이... 전부 다 있는 것이 조사관이요, 조사 뜻이지.

 

그러니 천 명 조사가, 천 명 조사가 낱낱이 다 일렀다면은 천 인 조사의 공안 아닌가?

천칠백 공안이란, 왜 천칠백인가? 천칠백만 될 것인가?

 

그러니 불법대의(佛法大意)라는 것은 딱 정(定)이 없어. 요렇다고 딱 지정되아 있는 것이 없어. 그것 참!

딱 지정되아 있을 것 같으면은 딱 가르켜 줘 버리고 말지, 왜 모도 그렇게...

 

그러니, 보란 말이여.

견성을 턱! 했다. 그만 견성했다 해 가지고는, 거 참 그렇게도! 뭐, 이것...

 

저 고봉 스님, 옛날에 고봉 스님 경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렇게 3년이나 도를 닦아도 도무지 일향간(一餉間)도, 일향간이란 항상 말했지만 '한 밥 먹을 사이'를 일향간이라 햐. 일향간도 성력성편(省力成片)을 얻지 못했어.

 

성력(省力)이란 것은 힘 덜리는 곳, 애써 허다가 고 힘이 조끔 덜려져. 수월헌 지경이 온다 그말이여.

성력, 성편(成片), 또 편을 이루었다. 그 편을 이루어. 여러 쪼가리, 여러 분가루 같은 망념(妄念)이 모도 그만 제대로 놀아나다가 한덩어리, 쪼각이라도 편편이 되아. 조끔 그 경계가 수월헌 경계여.

 

3년 동안에 글씨(글쎄) 일향간도 성력과 성편을 얻어 본 일이 없어. 얼마나 안 되던지.

 

그렇게 안 되는 원인이 뭐냐? 왜 그렇게 안 될 건가? 내가 나 찾는데 왜 그렇게도 안 되아?

허! 그것 참, 참! 설찬히 어려운 곳이었다.

글쎄, 중생이 부처 지경(地境) 가는 것이, 중생이 부처 되는 지경이 설찬히 땀난 곳이여.

 

아닌 게 아니다. 부처가 다른 것임사 허지마는 중생이 부처요, 찾는 놈이 부처인디 뭐가뭐가 그렇게 설찬히 어려울 것인가?

참말로 무척 쉽제! 그렇게 쉽다마는, 또 그렇게도 설찬히 어렵다 그말이여.

 

그 지경이 원! 걸음자도 하나 고침이 없고, 거기에 한 걸음도 붙일 것도 없고 내딛을 것도 없다.

하! 이러허지마는 오해(悟解), 오해를 못허고야 될 수가 있나?

꼭 깨달라서 그놈을 봐야 헌다 그말이여. 그 보는 것이 제 눈깔 제가 보는 것인데, 어째도 그렇게 멀고 왜 그렇게도 안 보이는고?

 

조사관! 천칠백 조사관.

 

허! 낱낱이 천칠백 도사가 있으면 천칠백 도사가 낱낱이 하나씩 물어 놓으면은 그게 천칠백 공안 도리가 되는데, 그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지마는 천칠백 공안 도리를 다 봐야 헌다 그말이여.

하나만 보고 하나만 보지 못하면은 오(悟)가 아니여!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야 헌다. 천칠백 공안을 한 뀌엄지에 다 뀌어 버려야 허느니라. 바로 봤으면은 어찌 못 뀔 것인가?

 

고봉 스님, 3년 동안을 해도 성편성력이 그렇게도 안 되아.

허다가, 꿈에 얻은 화두에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보니, 하! 모도 요요(了了)네! 다 깨달라 버렸네.

 

반야묘용(般若妙用)이 신불무의(信不誣矣)다. 견성하는 법이 속임이 없는 줄 믿어 버렸구나. 하도 안 되아서 꼭 속인 줄만 알았더니 속임이 없구나. 믿었네, 그때에사.

 

3년을 해도 그렇게 성력성편(省力成片)이 못 되아서 그렇게 애를 쓰고 나부대고 죽을라 하고 허다가, 아따 그때에사 꿈에 화두 얻어 가지고 툭 깨놓고 보니, 허! 신불무의(信不誣矣)다.

 

참말로 고불 고조사 이와 같이 깨달라서 등등상전(燈燈相傳)해 준 이 참선법(參禪法) 왈, 참! 참으로 대도 해탈법 참! 장허고 중허다.

내가 모를 때에 믿고만, 똑 해탈 정법을 믿고만 있을 때보담도 내가 한번 착득 당득을 해 놓고 보니 과연 이렇구나.

 

그래 가지고는 떡! 공안을, 천칠백 공안을 나 아는 놈은 다 알제.

백장야호(百丈野狐),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마삼근(麻三斤),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 금사탄두마랑부(金沙灘頭馬郞婦),

무슨 공안 여하약하 뭔 어떤 공안이든지 다 저 일거험지(一擧驗之)허니, 한바탕 들어서 증험을 해 보니 무불요요(無不了了)다. 뭐, 어디가서 요요(了了)치 아니험이 있나. 안 보인 거 어디 있으며 뭐 있냐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너무 갖다 그만 자재요요(自在了了)를 했네. 너무 그만 야단을 치니, 그 선지식 스님이 한번—그 너무 그래 야단친 그 도인이 하도 나와서 하도 그만 참 요요를 너무 남용을 허니까—물었지.

 

“네가 그렇게 밥 먹을 때도 그러허냐?”

“밥 먹을 때도 그럽니다”

옷 입을 때, 일체처, 행주좌와처(行住坐臥處), 뭔 어디 가서 요요치 아니험이 있어. 항상 요요해서 하나 생사가 없고, 무여시사(無如是事)여. 무슨 이러헌 일이 있어?(처음~20분53초)

 

 

 

 

 

(2/3)----------------

 

"그러면 네가 밥 먹을 때도, 옷 입을 때도, 갈 때도, 올 때도 일체처에 그렇게 요요허니, 정수착시(正睡着時)에, 정히 잠이 꼭 들어서 잠자는 상도 없을 적에 그 잠잔 상도 없지마는 꿈도 없을 적에 주재심마처(主在甚麽處)하야, 어디가 있어서 안신입명(安身立命)허는고? 네가 어디 가서 안신입명을 허는고? 잠이 꼭 들어서 잠잔 상도 없고, 꿈도 없을 때에는 어디 가서 안신입명을 허는고?"

 

"너, 그렇게 지금 깨달라 가지고 안신입명허는 주인공이, 그 생사없는 주인공이 잠 꼭 들어서 잠잔 상, 꿈도 없을 때에는 어디가 있어서 안신입명을 허는고?" 무언가대(無言可對)다. 말 꽉 맥혔다. 못혀.

 

그거 그거 어째 그래? 어째 그래.

무몽무상시(無夢無想時)는 그 뭔디, 거그 들어가서는 그 요요 명랑한 놈도 그때 가서는 없었을까? 그거, 꿈 딱! 들고 잠잔 상도 꿈도 없을 때에는 없을까, 안신입명이?

 

거그 거짓말 되아. 대답만 잘못하면 그만 거짓, 대망어죄(大妄語罪) 범(犯)해 버려! 무섭다. 그런 공안.

앞에 요요자재(了了自在)헌 고놈이 어긋나지 않게 탁! 답이 되야 돼. 공안도 다 그런 것이여.

 

응, 꺼떡허면 공안이여.

그 공안 답을 해야지, 아무것도 없는 놈까장 다 여의고 허공 · 비허공(虛空非虛空)까장 다 여의고, 법 · 불견 뚝 떼어 던져 버리고 깊으드란헌 디 들어가서 장만해 가지고 앉었는 놈이 도둑놈이고, 그놈이 천하 대병신이고, 남 속이는 것이여!

 

공안이라는 건 어떤 것인지 알어?

 

생사 없는 놈까장 다 집어생켜 놓고는 들어가서... 그 묵조사선(默照邪禪)이요 지랄 선이여. 알기나 알고 참선을 허야 헌다 그말이여.

조사관은 딱 내던져 버리고는, 상량선(商量禪)으로 집어 던져 가지고 고따구 버릇이나 해 가지고...

 

사람 속이는, 천하에 사람을 속이는... 어떤 마구니가 속이는 줄 아는가?

견성, 엉뚱헌 견성헌 놈이 나와 '견성했다'고 남 죽이는게 속이는 놈이지, 그 이외에는 없네.

 

내가 선지식을, 한국 선지식을 다 지내서 낱낱이 문법(法), 법담(法談)을 안 했으면 내가 여그 올라와서 요따구 소리를 해서 내가 대중을 속이여? 없다면 내가 그렇게 혀?

다 내가 해 왔기 따문에, 내가 여기에서 이만큼 내가 쾌활스럽게 학자한테 말허는 것이지.

 

내가 그러고 의성 고운사에서 그 문답을 척 해 놓고서는 '아무리 해도 내가 이 병은 낫워야겄다'

 

인자 이 우수운 것들, 내가 만난 것을 얘기헐라고 그런 거여. 오늘 아침 이 얘기 좀 헌 거여. 참, 별...

까딱 허면... 여, 내가 어디 그런 것을 무슨 뭐 글처럼 써 놨나, 뭐 내가 그때 무슨 뭣을 뭐 날짜를 적어 놨나? 막연헌 것을 얘기헐라 하니 그 말밖에는 못하제.

그때 인자 뭐 언제, 내가 그런 것 무슨 적발... 내가 어디 무슨 수첩이나 있어서 그걸 적어 놨나, 뭣 했노?

 

하! 의성 고운사에 가서 인자 그만 들어 앉어서 참! 고인처럼 나도, 선지식 스님네 내가 다 가서 문답, 답 다 내가 올리고, 그저 또 큰스님네께 다 꼭 그저 일러주신 말씀 다 내가 그저 받들어서, 그런 말씀을 다 얻어 들어서, 인자 내 인자 참말로 도를 닦아.

도라는 것은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인디, 미(迷)해 가지고 도 닦는다는 건 무명(無明)만 기루는 것이여. 화두, 공안 하나 타파(打破)한 뒤래야 도를 닦는 것이여.

 

그러니 의성 고운사 금당에 들어가서 인자 참말로 도를 한번 닦아 보리라.

내가 선지식(善知識)께 그만헌 탁마(琢磨)를 해서, 내가 인자 그만큼 내 공부가 내 공부 내가 인자 닦아 갈만 하고, 내가 인자 도 한번 솜씨있게 닦아 봐야겄다고 아, 그래 들어갔느니란 말이여.

 

들어가니 금당에는 참, 선객(禪客)이 많지는 못해도 한 십여 명 있는 선객들이—그때 시대 선객들은 그 참, 또 그저 이상스럽지. 뭐 거그도 다 말헐 것 없지마는.

그 천지평 노장, 천지평 이라고 허는 분이 옛날에 지평(持平) 벼슬을 허고 들어와서 거그서 있고, 그다음에 강사 모도 인자 허응선 강사라고 유명헌 이가 거그 있고, 그다음에 그 모두 몇 분 몇 분이 있는데.

 

거그는 시식(施食), 그 옳게 된 것이거든.

거그는 시식단(施食壇)을 딱 이렇게 해 놨으되, 시식단에 무슨 뭐 금강경도 없제. 아! 무슨 시식단에 금강경이 무엇이여.

 

아! 우리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종(禪宗)인디, 교 밖의 별전 선종인디, 무슨 선종으로써서 영가(靈駕)를 갖다가 무슨 극락세계로 뭐, 뭐... 그런 놈의 짓이 어디 있어?

그건 염불종들이나, 정토종(淨土宗) 발원 정토종이 헐 것이제. 꽉 미(迷)해 가지고 저도 알덜 못헌 사람이... 정토종, 저 무슨 저 참말로 실극락을 구허는 정토종들이나 할 것이고 허지, 뭐 이걸 헐 거냐! 없어.

 

딱 모여, 그저 그 위패단은 있기는 있으되, 위패단에가 작법, 참선 작법 딱! 그 참 옳게 된 것이드구만. 그때 내가 거 가보고 참 그 다 절실히 느꼈구만.

스님네가 딱! 착복 가사(着服袈娑) 딱 허고는 나와 죽비 딱 치고는 작법(作法) 참선을 탁! 헌다 그말이여. 딱 허고서는 밥 내려다 먹지.

 

아, 세상에 그 교외별전 선종, 우리 부처님이 방편 설허기 전, 바로 깨달라 가지고서는 확철대오해 가지고. 그만 그 우리 그 선종.

 

딱! 깨달라 가지고는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내가 깨달라 가지고 일체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 지혜덕상이 딱 갖촤 있구나'

아, 그래 가지고는 그 본분(本分) 본각도리(本覺道理), 아! 거그에 앉어서 그저 중생교화해 나가는 선종.

 

그래 깨달라 가지고 그만 가지고 그거만 딱 가지면 꽉 미헌 중생을 제도헐 수가 있는가? 할 수가 없제. 그놈을 막 설할라고 허니 어떻게 어떻게 혀?

 

아, 그런디 부처님도 그때에 깨달라 가지고 돌아가실란 게 원인이 무엇이여? 왜?

아, 제 참, 아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를 다 갖추았는데 왜 그걸 모르시고는 돌아가실라고 했어?

 

공중(空中)에서 방편(方便)을 설(說)허시라고 헌께, 그때사 깨달라 가지고 방편을 설했어.

천 방편, 만 가지 방편이 그것이 인자 미헌 중생한테 포교허는 방법이, 교화허는 방법이 헐 수가 없어. 그뿐이여.

 

허지마는, 아! 방편을 다 알아 버린 다음에는, 방편인줄 알아 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러니 원각경(圓覺經)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어? 뭔 말인고? 잊어 버렸다. 이것 당초에 잊어 버려서 말이 나와야제?

 

이환! 인자 또 나온다. 이(지)환즉리(知幻卽離)라, 환(幻)인 줄 알면 그거 쓸 것 없다.

환인 줄 알아 버린디 그걸 왜 써. 이환즉리다. 환인줄 알면 그거 여의어 버렸다. 환이면 소용없어.

 

부작방편(不作方便)이여. 환인줄 알은 사람을 방편 지어 뭣 혀. 왜 방편 써. 이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돼.

 

전부가 가설방편(假說方便)이여. 49년 설법, 비로소 아함경 설헐 때 가설방편이여.

그저 비유, 그저 뭔 말 '~해라, 닦아라, 어쩌라' 가설방편(假說方便)이여.

 

이환(知幻)이면 즉리(卽離)니라. 환인 줄 알면 여읜다.

그러니 뭐 환인 줄 아는데 뭣 혀. 그까짓 쓸 것 뭐여. 아무것도 소용없지.

이환즉리라, 부작방편이다. 방편 지을 게 없다.

 

다 49년 동안을 그 애를 써서 그 비유해서 그 말씀해 놓고는 "내가 시종녹야원(始從鹿野苑)으로 종지발제하(終至跋提河)의, 녹야원으로부터서 발제하까장 설법을 했으되" 설법했제 49년 동안.

"어시이중간(於是二中間)에 부증설일자(不曾說一字)다. 내가 그 중간에 한 글자도 설헌 게 없다" 인자 거가서 이렇게 말씀했네.

 

그랬으니, 세상에 부처님, 우리 부처님, 당장에 그만 확 견명성오도(見明星悟道) 탁! 해 가지고는 그게 그 별... 선종이여. 별전 선종!

교도 그건 소용없고, 방편도 소용없고, 거그는 무슨 뭐 아무것도 소용없고, 선종! 그대로 '그저 내가 나 탁! 깨달은 도리에는 방편도 아무것도 없니라'헌 이 종(宗)이여.

 

이러헌 천하에 우리 참선법, 우리 해탈법, 우리 정법.

탁마(琢磨)해서, 이만큼 탁마해서 방편인 줄 알고, 인자는 참말로 도 닦는 법도 알아가지고 그 탁마라 해.

알아 가지고는 도를 닦을라고 내가 인자는, 그래 가지고 도 안 닦어? 또 닦는 것이여. 참으로 그때 닦는 것이여.

 

 

오후수증(悟後修證)이라. 남악회양 선사가 8년만에 척 깨달라 가지고 왔지, 이 도리를.

방편도 없고 수증도 없어. 무슨 수증이 있어? 닦아 증헐 게 뭐여?

 

수증도 없고, 이런 도리는 바로 봐 가지고 왔어. 왔지마는, 수증이 없다 하니까 또 무수증(無修證)이여. 그럼 수증이 없다 해야지, 있다 햐? 닦아 증허는 게 있으면 도로 중생 경계라고.

조끔도 없지. 무슨 놈의 닦아 증험이 있어? 무엇을 닦아 증헐 것인고?

 

“깨달라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에 큰스님께서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대답 못했지. 그길로 가서 8년을 해 가지고는 확철대오 해 가지고 와서 “제가 깨달라 왔습니다”

 

“일러 봐라”

“일물(一物)이라도 부중(不中)입니다” '심마물이라도 부중입니다' 그말이여.

 

“설사 일물(設使一物)이라도 부중(不中)입니다. 맞지 않습니다”

거, 일물(一物)에 때꼽째기를 턱! 누를 잡아냈지. 벌써 일물(一物)이라고 헌 때꼽째기를 턱 찾아냈지!

 

별것 무엇이여?

그러니 설사 일물도 부중인디, 거가서 무엇을 붙일 것이냐 그말이여.

 

허공이니 비허공이니 그런 것 붙여 되아?

여래선(如來禪)이니, 조사선(祖師禪)이니 무슨 뭐, 뭔 선이니, 그런 것도 다 붙여 쓰겄어?

 

다 이른 곳이지마는,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웬 일이여? 거다 수증(修證)을 왜 붙여?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가히 닦아 증하겄느냐?”

“수증(修證)은 역불무(亦不無)입니다마는, 수증은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오렴(汚染)은 부득(不得)입니다”

 

오렴은 무엇이여? 오렴(汚染)! '더러울 오(汚)'자, '더러울 렴(染)'자.

“오렴(汚染)은 부득(不得)입니다”

 

요렇게 듣고 또 거다가서 그 무슨 소견을 또 떡 내는구만.

야! 이놈아, 뒈져. 고따구 지견 냈다가는 뒈지란 말이여!

 

그거 무슨 소린지 알어? 오렴부득을?

 

거가서 공안이여. 거가서 공안이여.

그 못된 병든 학자가 거가서 공안이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가 무엇이여? 판대기 그것이 어디 있어? 판대기도 없는디, 거가서 또 무슨 털까장 나? 털이 그것이 무엇이여?

법도 아니요 비법도 아니요, 불견 법견도 없는 것인디, 그 무슨 판대기가 있고, 거다가서 무슨 털이 있어?

 

구모토각(龜毛兎角)이요, 거북털이요 토깽이 뿔다구. 목녀(木女), 목녀가 돌자식을 낳았다.

모도 이런 고까지로 만약에 소견 붙여 고러헌 것으로 견성했다고 나와 봐.

 

거가서는 공안이래야 되아. 공안이 아니고는 학자를 제접(提接)헌 법이 없어. 학자가 눈뜬 법이 없고.

그러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여.

 

그렇게 알아 가지고, 그런 놈의 것을 고렇게 해서 해상(解相)을 지어 가지고 해 봐.

아무것도 모르는 놈만도 못허고, 그런 범부(凡夫)로서 그대로 자빠진 놈만 못하지. 무슨 도 닦는다고 그러고 자빠졌어.

도학자의 상량(商量)이라는 게 그런 데가 빠져 가지고 그런 데가 속아서 다 때려 망치고 죽이는 것인께, 고것만은 알라 그말이여.

 

판치생모가, 분명히 판치생모라는 것에 탁! 조사관(祖師關)이 붙어 있어. 딱! 들어 있어.

그놈을 잡아 내기 전에는 안 되는 법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고렇게 딱딱 되아 있어. 낱낱이.

 

그래 가지고는 참말로 도학자가, 도를 닦는 도학자가 이밖에 없으니, 공안법 밖에 없으니 화두를 잘 허라는 것이 그것이여.

 

왜 그러면 해 들어가다가 아무것도 없는 데가 고런 소견 해 가지고 견성허고 말아 버리지,

왜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대오다" 그랬고, 그다음에는 또 “너 이놈, 너 이놈 견성했다면 다 알았다. 너 아는 것 가지고는 헐 수 없으니, 너 이놈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증험해 봐라” 그건 뭐여?

 

제, 그렇게 그 알아가지고 고것 가지고서는, 제가 제 지경을 생각해 봐.

말키 공안을 갖다 인자 고렇게 없는 놈 들어대서 다 고렇게 갖다 모도 맨들아 버리고 있어.(20분56초~40분29초)

 

 

 

 

 

(3/3)----------------

 

내가 고운사에서 한번 들어앉어서 참 멋지게 해 보리라.

왜 발심(發心)헌 학자가 얼마나 이 몸 얻은 게 소중허고, 참말로 도학자의 지경이라는 게 이렇게도 백천만 겁에 만나기 어렵고. 그 가지고 있으면서 모른다.

 

지옥고를 받고 있건마는, 지옥고를 받고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는데 아, 거가서 그대로 정법안장(正法眼藏)이 갖춰 있고, 생사해탈 묘법(妙法)이 그대로 있건마는 왜 그 고를 받고 있는가?

이런 꼴 좀 봐라. 그놈 한번 보지 못했기 따문에 그런 거다.

 

그러니 그렇게 내가 딱 인자 참, 공안을 다 서로 피차간 그 고인(古人) 큰스님네께...

아! 그 큰스님도 아무것도 아니라 하면 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괜히 그렇다 하지마는. 자, 그래도 역사적으로 전통해 내려오면서 낱낱이 해 나온 것이 있거든.

 

경허(鏡虛) 큰스님 같은 이가—응, '뭔, 경허 스님은 인가(印可)가 있나'혀? 경허 큰스님 같은 어른의 법문을 좀 봐.

과거 제불(諸佛)도 또 없다고 해도 또 어찌 있냐 그말이여. 과거 제불은 어디서 나왔으며, 위음왕불(威音王佛)은 어디서 나왔는가?

'(위음왕불 이전에는, 이전에는) 위음왕불 이후에는 없다. 위음왕불 이전에 있을런지 모른다' 어째 위음왕불로 똑 본다면은 똑 경허 큰스님 같은 이는 위음왕불로 보면 어뗘?

 

고렇게 갖다 또 요새 것들이 그래?

나는 경허 스님이 인가 없다고 허면 “경허 스님 인가 없는 걸 네가, 경허 스님 큰스님이 나와서 중흥조가 되아 가지고 우리를 가르쳤으니, 과거 제불 생기기 전은 위음왕불 이전에는 어쨌어? 그 그 부처님은 뭐 경허 스님 같이 보면 어째?”

난 이래 버려. 고것 또 고건 용케 찾는구나. 분명히 다 대 나왔지마는, 내 그래 버려.

 

법문을 봐. 경허 큰스님 평생 법문을 좀 보란 말이여.

 

요새 것들, 그런 것들 소용없어! 제가 무슨 뭐 동서철학, 동서 별집 문집을 다 일렀다 하드래도 틀려 버려! 법문 들어보면 고름 냄새가 고름 주머니 터진 것보담 더해.

고인 법을 갖다 툭탁 또 해놓지. 어쩌고 '이와 이잔다' 그저 어떻게 갖다 말만 갖다 이용허지, 그놈 주루루 한번 이 얘기허면 못혀! 입도 벌려 죽어.

 

우리가 경허 큰스님 밑에서, 다 이 큰스님네가 다 나와서 아, 그래 그동안에 이렇게 지끔 도를 모도 닦아 나오면서 요새 나온 것들이, 제가 저도 참선했다고 허는 것들이 '경허 스님은 인가 있냐' 그려?

그런 외도(外道), 그런 것이 더러 있다 하드구만. 훤히 귀에 들린다 그말이여.

 

그래 못혀.

 

중흥조(中興祖), 참 중흥조제! 달마 스님이 우리 초조(初祖)고, 동토(東土)에 나와서 초조고.

우리는 달마 참선을 그대로 봉행해 나온 참선 학자 아닌가. 우리는 격외(格外) 학자란 말이여.

격외선(格外禪)이란 우리 한국참선, 지금 학자밖에는 없으니까. 우리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종이여!

 

‘자! 내가 이만큼 서로 문법(問法) 탁마를 해서 큰스님네가 나한테 인가를 다 해 주셨으니, 나 인자 도 닦아야 겄다. 참말로 가치 있는 도학자가 되야겄구나’ 맹서를 했네.

 

'무슨 죽으면 죽었제, 내가 몸에 이렇게 병 얻은 걸 가지고 걱정헐 게 뭐냐? 여태까장 이놈 내가 병 중에서 공부를 해 나왔는데'

나, 똑! 병 중에서 해 나왔구만. 고 병 여의고 헌 것이 아니라, 첫 철에 병을 얻어 가지고 피 풍풍 쏟아 가면서 거그서 타락 풍! 떨어져 버리지 않고 내가 그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했어. 병으로써 스승을 탁! 삼아.

 

죽으면 그뿐이지. 어떻게 헐 꺼여?

'죽는다고 안 헐 수가 있나? 죽는다고 이 몸뚱이를 위해서 안 해 버리고 말 것인가?' 이놈이 드니까 소용없어.

 

막 자고 일어나면 여가 막 피가 훡 터져. '아이고, 이 병 때문에 나가야겄다. 어디가 병 낫워야겄다' 그 마음 없어.

 

내 시방 질팡갈팡 법문허지마는, 질팡갈팡 법문헌 게 아니여.

그때 고대로 해 나간 걸 허다 보니까, 말이 이렇게 법문 길이 주루루 있는 게 아니라 질팡갈팡 혀.

 

그렇게... 뭐 이건 엉뚱하게 시방 첫 철 공부헐 피 나올때 고놈 또 갖다 얘기허거든.

 

그래 쏟아 가지고 내가 자고 일어나면 내, 땅에 피 닦니라고... 피가 벌거니 사방 묻어서 이놈 갖다 뭉쳐 가지고. 가서 수통(水桶)에 가서 앉었어도 또 줄줄줄줄 나오네.

이런 놈의, 처음에는 코에 나오던 놈이 나중에는 목구녁에 나와 가지고, 목구녁 코구녁이 다 한 구녁이 다 터져 버렸어.

허니 코구녁 막으니 입으로 나오지, 입 막으니 코구녁으로 나와 소용있나? 입에 부터 차 버리지.

 

그렇게 나오든 피가 나중에는 안 나왔어. 하도 토해 버리니까.

그러고 인자 여가 몽쳐. 이 몽친 놈은 언제까지 있어.

자고 일어나면 몽쳐. 콱 뱉으면 푹 나오고 푹 나오고. 두부모, 간뎅이 두부모 같은 것이 나와.

 

나중에는 인자 하다하다 오래오래 된 게, 저그가 알아서 지침을 콱 허면 폭 나오면 비린내가 풍풍 나.

난 뭐. 틀림없어.

 

내가 인자 도를 닦아 보니, 어느 지경 가 놓으니—산산수수(山山水水)가 개묘체(皆妙體)지. 산이면 산 물이면 물, 어떤 놈 여의고 피허고 있나. 그저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두두촉촉이 모도 가풍(家風)인디, 뭐 있냐? 아무것 뭐, 괴기를 먹으면 무슨 걸리며, 술을 먹으면 거그 무슨 걸리며, 어디 가서 무슨 뭐 내가 마누라 얻어 가지고 살림을 살면은 거가서 무슨 하등 관계여, 도가? 도체가 거기에 무슨 상실될 게 있어?—이따구 생각이란 건 꿈에도 없다 그말이여! 그런 법이 없어!

 

참말로, 알수록에 그 경계에 맥힘이 없고, 하구녹수(何拘綠水)가 여청산(與靑山)고? 녹수가 청산에 걸리까 보냐?

하나도 맥힘이 없고 걸림이 없을수록에 더, 다 보이는 것이고 더 잘해야 하는 것이고, 설 데 서야 하고 앉을 데 앉어야 하는 것이지.

 

그까짓 설 데도 앉고, 앉을 데도 앉고 아무데나 오줌 싸고 또... 미친놈이라니까, 거. 그런 미친놈이 없다니까. 그건 미친놈이라는 게여.

도 아니라 더 헌 걸 봐 가지고 깨달라 가지고 더 그러면 더 더럽게 미친놈이여.

 

그래 가지고는 내가 무슨 뭐, 헌 것이 아니여.

잘 한번 닦아 보기 위해서 의성 고운사를 가 가지고는 탁 들어앉어 공부헐라고 허니, 아! 이놈의 당최 피가 이렇게 동(動)해 싸니, 그 할 수가—그런 경계는 나와서 한번 헐 때는 야단치지마는, 목구녁에 그놈이 나오고 원청 몸뚱이가 그놈이 들어서 그만 나를 갖다 너무 고롭게 허니 헐 수가 없어!

 

'똑! 자연치료를 헌다'해서, 자연치료는 어떻게 허느냐?

첫대는 얻어 먹을 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여. '먹을 건 먹어야 한다' 뭘 먹어야 하냐?

바닷가에 가서 해삼 · 문어 · 전복 그놈을 그저 많이 먹고 인자 그 피를 좀 맨들어아 헌다는 게여, 몸뚱이. 맨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여, 식이요법으로.

 

아! 그 병원에 가도 그러제, 모도 그러제.

몸뚱이가 인자 죽게는 되아 버렸으니, 그건 다 '저 사람은 죽제 살들 못헐 사람이다'는 건 다 인증 받고 있었어.

 

그 머리는 터져서 못 깎거든. 머리는 여가 뒷꼭지 다 터져서...

내 머리 이것 왜 쓰고 댕긴고 알어? 뒤꼭지가 하도 터져서 그만 그때 써 버릇해 가지고, 감토 쓰는 버릇이 버릇이 되아, 밤낮 쓰제. 인자는 벗어도 괜찮지마는.

 

전부가 터져서, 뭐 뒤가 터져 가지고 그 피가 덩어리가 나오고 인자 그렇게 되아 버렸으니 뭐 어떻게 해?

그래서 머리를 기루었지. 내가 이까짓 걸 뭐 전부 버리지, 뭐 운치로 기루었나, 뭐 그 모냥으로 기루었나?

 

내비 두었더니 사이사이에 부스럼 난 놈은 그대로 진물이 흘르고 부스럼 나고 허는디, 이놈을 이렇게 휘둘러 가지고 떡 그러고는 인자... 그래 가지고 앉어서 뭐 공부를 헐 수가 있어야지, 피 넘어오면 비린내가 나제.

 

아! 이녀러 것, 당최 사람 살 수가 없다.

조끔 있으면 그만 이놈이 병에 도력이 이기들 못혀. 내 그 경계가 병에 그만 항상...

 

에라! 암만 생각해도 안 돼.

나 혼자—그때에 그 운봉 스님도, 그때는 운봉 스님이 아니라 초암 스님인데, 나 하고 참 도벗인데, 그분도 거그 있고 헌디, 나 혼자 누데기를 장만했제.

 

한 벌을 입게 맨들고 한 벌은 짊어지게 맨들어 가지고—혼자서 뒷방에 가서 공연히 좋은 옷을 이리저리 찢어서 그만 맨들았다 그말이여.

좋은 놈을 입고는 안 되겄길래, 이리저리 모도 찢어서 대서 그저, 그래도 그 뭐 울긋불긋 헌건 안 대고, 걸레 누데기로만 이리저리 누벼서 동애줄처럼 이래 실 두벌 해서 누벼서, 한 벌 입고 한 벌은 짊어 질 요랑하고.

 

바리때는 구녁을 뀌어서—역부러 좋은 바리때, 어싯대를 갖다 그냥 구녁을 뚫어서 끈을 이래 달아 가지고, 나무 숟가락이라도 나무 숟가락 이만헌 놈 하나 해 가지고는 그놈 달아 놓고 그냥, 가만히 나가 버렸제, 대중에 있다가.(40분32초~51분22초)

 

 

 

 

 

----------------(1/3)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또는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임제스님, 운문선사, 조주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종가풍(五宗家風)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제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및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의 가풍(家風, 전통적인 독자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을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제2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은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3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5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7세 나한계심(羅漢桂琛)의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201~206 참고. (가로판 p208~213)

[ 臨 濟 家 風 ]  赤手單刀로  殺佛殺祖로다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劒하야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야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麼아  靑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三玄)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로 알아 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 曹 洞 家 風 ]  權開五位하야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야  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야  截萬機穿鑿이로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壺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麼아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조동가풍 : 권도(權道)로 오위(五位)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견의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 묘하게도 맞추어서 모든 기틀의 천착(穿鑿)을 끊음이로다

위음왕불 나시기 전 눈에 가득한 풍경이요, 공겁 이전 별(別) 세계 경치로다。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정편(正偏)이 유무(有無) 기틀에 떨어지지 않음이로다。

 

[ 雲 門 家 風 ]  劒鋒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掀翻露布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하니  迅電은  不及思量이요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麼아  柱杖子跋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說法이로다

 

운문가풍 : 칼날에는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온 천하의 갈등을 둘러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 버리니, 번쩍 하는 번갯불은 사량으로 미칠 수 없거니,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요。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도다。

 

[ 潙 仰 家 風 ]  師資唱和하며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崢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一搥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潙仰宗麼아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眠少室이로다

 

위앙가풍 :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뾰족하구나。방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를 한 망치로 부수었네。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러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 法 眼 家 風 ]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髑髏는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觸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黃花는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麼아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법안가풍 : 말 가운데 메아리가 있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 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꽃은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달 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할(喝) ; 선종(禪宗)에서 진리를 문답하는데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토하는 큰 소리.

큰 소리로 『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임이니, 이것을 처음 쓰기는 마조(馬祖)가 한 번 할했는데 백장(百丈)이 사흘이나 귀먹고 눈이 캄캄하였다는 것이 첫 기록이다. 그 뒤로부터 흔히 쓰는데, 임제(臨濟)가 가장 많이 썼다. 보통 속음(俗音)의 「갈」로는 발음하지 않는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공안)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3분 57초)

[참고]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고봉 스님의 수행[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 ; >>> 고봉스님의 수행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 경험담 ; >>> 고봉스님의 수행 경험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오해(悟解) ; 산스크리트어 ava-bodha. ①깨달아 앎. 뜻으로 깨달음. ②일정한 지식으로 분별하는 이해. 이치에 대한 지적 분별.

*일관도천(一串都穿 한 일/꼬챙이 관/모두 도/꿰뚫을 천) ;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p137~138. (가로판 p133~134)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허공발염해저생연(虛空發焰海底生煙) :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직전에 정신혁명이 일어나는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

*합착(磕着) :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등등상전(燈燈相傳)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전해지는 것을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3)

 

*안신입명(安身立命) ; 몸을 편안히 하고 명(命)을 세우다. 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존하다.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 생사를 벗어나 심신(心身)이 편안해졌음을 표현한 말이다.

*대망어(大妄語) ;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는데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을 일컫는다.

일반적인 망어(小妄語 거짓말)를 하면 비교적 가벼운 제재를 받는데 비해, 대망어를 하면 승단으로부터 축출되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2. (가로판 p86)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화두],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시식(施食) ; ①죽은 이의 명복을 빌거나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베풀고 기원이나 독경 등을 하는의식. ②불사(佛事)나 법회 때 음식을 공양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선종(禪宗) ;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딱! 깨달라 가지고는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내가 깨달라 가지고 일체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 지혜덕상이 딱 갖촤 있구나' ;

[참고 ❶]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 지유선사 역)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 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 마음만 알면 항하(恒河)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법문(法門)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않더라도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환(幻)과 같은 변화가 모두 여래의 원각(圓覺)의 묘심(妙心)에서 났다’고 하시니, 이러므로 알라 이 마음을 여의고는 부처를 이룰 수 없도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도 다만 마음을 밝히신 분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도 역시 마음을 닦으신 분이며, 미래에 닦는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에 의지하는 것이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밖으로 구하지 말지어다. 심성(心性)은 물들은 데가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허망(虛妄)한 인연(因緣)에 생각이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인 것이다.

 

[참고 ❷]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八十華嚴)』 (실차난타 역 實叉難陀 譯 | 이운허 번역) 第51卷 ‘37. 여래출현품 ②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二’

如來以無障碍淸淨智眼 普觀法界一切衆生而作是言 奇哉 奇哉 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慧 愚痴迷惑 不知不見 我當敎以聖道 令其永離妄想執著 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 卽敎彼衆生修習聖道 令離妄想 離妄想已 證得如來無量智慧 利益安樂一切衆生

 

여래께서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 눈으로 법계의 모든 중생을 두루 관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다.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그리고 곧 저 중생들로 하여금 성인의 도를 닦아서 허망한 생각을 여의게 하며, 허망한 생각을 여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하여 안락케 합니다.

 

[참고 ❸]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六十華嚴)』 (불타발타라 역 佛馱跋陀羅 譯 | 이운허 번역) 第35卷 ‘32. 보왕여래성기품 ③ 寶王如來性起品 第三十二之三’

如來以無障碍淸淨天眼觀察一切衆生 觀已 作如是言 奇哉 奇哉 云何如來具足智慧在於身中而不知見 我當敎彼衆生覺悟聖道 悉令永離妄想顚倒垢縛 具見如來智慧在其身內 與佛無異 如來卽時敎彼衆生修八聖道 捨離虛妄顚倒 離顚倒已 具如來智 與如來等 饒益衆生

 

여래께서는 걸림없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일체 중생을 관찰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구나. 여래의 원만한 지혜가 그 몸속에 구족해 있는데 그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나는 저 중생들로 하여금 거룩한 도를 깨달아 망상과 착각의 속박을 아주 떠나고, 그 몸속에 있는 여래 지혜가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완전히 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여래께서는 곧 중생들을 가르쳐 팔성도(八聖道)를 닦아 허망한 착각을 아주 버리게 하고는 여래와 평등한 여래의 지혜를 갖추게 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합니다.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일체지(一切智) ; ①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부처님. 완전한 지혜를 갖고 있는 이. 전지자. ②부처님의 지혜. 일체를 아는 지혜. ③일체는 공(空)이라고 아는 지혜. ④삼지(三智)의 하나. 내외의 일체의 것에 통달한 지혜를 말한다. 천태에서는 2승소득(二乘所得)의 지혜라 하고, 구사(俱舍)에서는 불지(佛智)라고 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7~88. (가로판 p91~92)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부동지(不動地) : 마음 바탕(心地)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쳐서, 한없이 밝고 두렷이 고요한 곳에 머물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고, 온갖 주체와 대상이 끊어진 경지를 말함이다.

*가설(假說) ; ①임시로 설명하는 것. 언어적 관습. 비유적 표현. 제2의적(第二義的). ②허언(虛言, 거짓말. 실다움이 없는 언어).

*시종녹야원(始從鹿野苑) 종지발제하(終至跋提河) 어시이중간(於是二中間) 미증설일자(未曾說一字) ; '처음 녹야원에서부터 마지막 발제하까지, 이 두 기간 사이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미증(未曾), 부증(不曾) : 일찍이 ~한 적이 없다.

[참고] 『선교석(禪敎釋)』 (서산대사)

世偈云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此固敎外別傳之謂也.<智度論>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처음 녹야원에서부터 마지막 발제하까지, 이 두 기간 사이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교외별전의 취지를 가리킨다.<『지도론』>

*견명성(見明星) ; 부처님이 12월 8일 새벽별[明星]을 보시고 성도(成道)하였다는 고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저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 ; 『육조단경(六祖壇經)』 참청기연품(參請機緣品)에서.

懷讓禪師  金州杜氏子也  初謁嵩山安國師  安發之曹溪參扣  讓至禮拜 師曰 甚處來  曰 嵩山  師曰 什麼物 恁麼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회양 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 숭산의 혜안 국사를 뵈니 혜안 국사는 조계로 보내 공부하도록 하였다. 회양 스님이 찾아뵙고 예배하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어디에서 왔느냐?[甚處來]”  (회양) “숭산에서 왔습니다[嵩山]”

 

(육조)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什麼物 恁麼來]”  (회양)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說似一物卽不中]”

 

(육조) “도리어 닦아 증득할 수 있느냐?[還可修證否]”  (회양) “닦아 증득함은 없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없습니다[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 讖汝足下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讓豁然契會 遂執侍左右一十五載 日臻玄奥 後往南嶽 大闡禪宗 敕諡大慧禪師

 

(육조) “다만 오염되지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라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서천의 반야다라 존자가 너의 발 아래 한 망아지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예언을 하셨으니 네 마음속에 두고 모름지기 함부로 말하지 말라.

회양이 훤칠하게 깨우치고는 육조 스님을 15년 동안 모시면서 날이 갈수록 공부가 깊어졌다. 뒷날 남악으로 가서 선종(禪宗)을 크게 떨쳤다. 왕이 대혜선사라 호를 내렸다.

*일물(一物) ; 일상(一相). 한 물건 •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구모토각(龜毛兎角) ; '거북이 털, 토끼의 뿔'

허공의 꽃[空華]이나, 석녀(石女)의 아들 등과 같이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또 본래 모든 법에는 실체(實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유(實有)의 견해에 빠져 집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참고] 『무문관(無門關)』 (무문 혜개 스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1. 가로판(p63) *絶=絕(끊을 절).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해상(解相) ; 짐작하여 생각하는 모습의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가로판 p53)

當於本參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參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3/3)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수(無數) ; 헤아릴 수 없음.

*정법안장(正法眼藏) ;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라는 뜻.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뜻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위음왕불(威音王佛) : [범]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실려 있다。공겁(空劫) 때에 맨 처음 성불한 부처님이다。그러므로 「무한히 먼 때」 또는 「맨 처음」이란 뜻으로 쓰고, 따라서 종문(宗門)에서는 본분(本分)•향상(向上)•실제(實際)•이지(理地)의 뜻을 표시하는 말로 쓴다。그리하여 향하(向下)•사상(事相)은 위음왕불 이후라고 하는 것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수통(水桶) ; 수각(水閣). 입수(入水 들어오는 물)와 출수(出水 나가는 물)가 적절히 이루어져 언제나 음용 또는 세척 등을 위한 깨끗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도록, 흐르는 물을 잠깐 가둘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물통.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8. 1. 18. 05:3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8호) 직지사에서 첫 설법.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1/4) 약 21분.

(2/4) 약 22분.

(3/4) 약 21분.

(4/4) 약 21분.

 

 

(1/4)----------------

천리장성목저만(千里長城牧笛晩)이요  운납암상낙화홍(雲衲岩上落花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송하(松下)에 월명정다소(月明情多少)오  산계연심추색만(山溪煙深秋色滿)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데.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妄想) 따문에 못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허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話頭)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또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허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헐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금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혀 중생 때에는 전부 망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華嚴)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覺)인디... 낱낱이 각이여.


내가 만공 스님께... 만공 스님 문집(文集)이 여기 인자 이번에 누가 하나 보내 주어서 여기 있구만. 만공 스님 문집을 좀 잘 보시란 말씀이여.

거, 학자(學者)들 모도 뭐 누구누구 모도 다 ‘입실(入室)을 했다’
입실은 견성(見性)허기 전에도 입실을 해 주어. 입실이라고 다 게송(偈頌) 붙여서 그 다 해 주지.
아, 사판(事判)에도 다 그렇게 해 주는 건데. 입실을 헐 것 같으면 당호(堂號) 지어서, 게송 다 지어서 그래 해 주는 법이다 그말이여. 처음에 은사(恩師)로 정해 가지고 그 다음에 법사(法師)를 정헐 것 같으면 그렇게 다 해주어.

그와 달라! 떠억 척! 깨달은 공안(公案)을 척! 가지고서는, 거다가서 게송을 척! 해주거든.
뭐 내가, 내가 허기는 이것 참! 인격답지 못허구마는 거, 안 했어 거?
보란 말이여, 가서 봐. 그만 딱딱 있제!

여태까지 저 각 선지식(善知識) 찾아서 내, 그 모도 그 법담(法談)해 논 거, 다 주욱 다 해 왔제.
그 없는 것을 내가 그렇게 위조로 해 놔? 위조로 헐 수가 있나? 못하는 법이여.

마지막 만공 스님한테,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터억 이거! (전강 스님이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했다) 이것 한번 알아 봐. 이거, 그 무슨 짓일까? 뻘로 그 짓을 헐까?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허고는 그 송(頌) 딱 붙여 놓았지.
나, 그때 그 입실송 아니여, 그건 오도송(悟道頌)이지. 정전강 오도송이지 거, 입실송 아니다 그말이여.

법 배우는 우리 학자들께 내가 무엇 따문에 그걸 감추아 놓으며, 무엇 때문에 겸양 “헤헤 그렇지 않다“ 인자 그런 것 할거 뭐 있나? 그 뭣 헐라고 그려?
화반탁출(和盤托出)이지. 척 까 내놓을 일이지, 뭣 헐라고 감추며 거다가 뭐 그런 겸양이 뭐 그것이 있을 거 뭐 있어?

거그, 학자 그렇게 많이 있어. 뭔 법담 뭐 해 놨자, 고렇게 된 것 없어.
나는 그 몇 말... 나 없을 적에 그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거, 만공 스님 문집을 모도 꾸며 놨드구만.
십대문답(十大問答)도 못쓰게 답을 해 놨어. 즈그가 집험서, 결집(結集)험서 알 수가 있나? 무슨 놈의...

“지장도량내 유업경대(地藏道場內有業鏡臺)허니 업다소마(業多少麼)?”
“차문 이전에 합긱 삼십방(此問以前合喫三十棒)이니라”
그때 그렇게 허셨제, ‘차문 뭐, 뒷문 뭐 후에 어쩌고...’
알아야제. 허, 그것!

내가 그랬구만. “십대문답을 함부로 써놔?” 즈그 집(集)헌 사람 보고 내가 그랬어.
“나한테라도 찾아와 좀 묻제. 즈그까지 그래 놨어?” 내가 그랬구만.

내가 그놈. 그 답, 십대문답 탁! 대답하고는 인자 뭐 다 답했으니, 뭐 내가 인자 목적 달성했으니, 여지없이 인가(印可) 척 받곤 뭐 떠나야지, 뭣 헐 것이여?

나는 그때 입실도 요구 안 했고, 다맛 그저 묻는 도리만 내가 답허고는 척 돌아서서 나올라고 하니까,
그 문답을 물어서,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해서 땅을 터억 내가 이렇게 허니까,
“선재선재라! 잘 이르고 잘 일렀느니라!” 거, 송(頌) 거 해 놓았제.

자! 일 마친 분상에는 아무 일이 없다.
생사 일 밖에 더 있는가? 생사를 두고 그 그밖에 무슨 일이 있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천리나 된 진 성(城) 가운데에서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거 무슨 말인고 하니, 천리장성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모도 인자 이 모도 사바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이러헌 세상에 와서, 어째 이렇게 참,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턱 깨달라 가지고는 내 깨달은 마음을 어디로 도망가지 않게 잘 멕인다 그말이여.

자꾸 이놈 깨달라는 놨지마는, 아! 이놈—이즉돈오(理卽頓悟)다마는, 이치는 몰록 다 깨놨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그 과거에 익혀 내려온 습기(習氣)라는 게 있어서, 자꾸 이놈이 도망간다.
자꾸 그저 풍진(風塵) 경계로 나가니까, 이놈을 못 나가게 자꾸 거두어서 멕여. 그걸 멕이는 젓대가 늦었느니라.

그놈 멕이니라고 연대갑자(年代甲子)를 총부지(總不知)허고, 날이 간 지 온 지도 모르고 멕이다 보니 늦었다. 그놈 멕인다 그말이여.
나를 깨달라 가지고 내가 내 주인공(主人公)을 바로! 인자 이놈을 길들인단 말이여!

밤낮 깨달지 못허고, 이 중생이라는 것은 그저 조금도 잠정(暫停)이 없이 그저 도망간다. 깨달아 놨어도 이놈이 또 그저 업비적시 그러네.
깨달라 놓으면은 안 그럴 줄 알지마는, 오후(悟後)도 그런다 그말이여, 이것이!

그러니,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그랬어.

처꺽 깨달으면—코빼기 만지기보담 쉬우니, 낯 씻다가 코빼기 만질, 그렇게 그 찰나간에 처꺽 깨달라 버리면은 그만 그만인가?
그만인 상근대지(上根大智), 그저 언하(言下)에 척 대오(大悟)허자, 다 증(證)해 버리면은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다시 무슨 후각(後覺) 뭐 그거 소용없지.

허지마는, 그 상근대지라야 그렇게 되아. 없는 것은 아니여.
허지마는 중근이나 하근부텀은 그렇게 된 법이 없어.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保任)을 해야 되아.

잘 참, 깨달기는 밥 먹을 사이에 깨달을 수가 있고, 언하에 대오헐 수가 있고.
허지마는 보림은, 깨달라 가지고 보림은 삼십 년도 허고, 사십 년도 허고, 일생도 허고 일생 다 해도 다할 수가 없어.

또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 밖에 할 것 더 있어?
아! 그놈 잘, 그저 보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슨 뭐 힘든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경계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니까. 척 깨달라 가지고는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토록 항상 반조(返照)를 해 나가는 것이여.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싸래기가 그렇게 좋다마는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된다.
허니, 피운차각(被雲遮却)을 구름이 밝은 달을 가리우데끼 거, 무슨 중생견이 깨달라 버린 뒤에 무슨 망상이 있으리요마는, 그래도 고놈이 그 매(昧)할 수가 있거든. 매해여.
매허니까, 그놈을 매허지 않고 항상 해 나가는것이 그것이 보림인데. 견성헌 후에도 그렇게 보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그게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그 말은 항상 깨달라 가지고는 고 소[牛] 멕이데끼, 내 마음을 자꾸 어디로 도망가지 못허게 깨달은 그 각(覺)을 항상 보호해 나간다 그말이여. 그래 놨제.

그런데 그 지경이 운납(雲衲)은 암상(岩上)에서 낙화홍(落花紅)이로구나.
그 구름같은 납승(衲僧)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놓고 보니, 암상에서 그저 낙화 경계여. 꽃 떨어진 경계다 그말이여.
그 무슨 뭐, 그 무슨 별 경계인가? 처억 깨달라 놓고 보니 암상낙화홍(岩上落花紅)이니라.

송하(松下)에 월명(月明)인디, 정다소(情多少)냐? 솔 아래에 달은 환허니 밝았는디, 그 정이 얼마나 되느냐?
솔 밑에 달 밝았는데 거그서 무슨 그런 인간 정(情), 시시비비(是是非非) 정, 무엇이 있겄느냐 그말이여. 무슨 정다소냐?

산계연심(山溪煙深)헌데 추색만(秋色滿)이로구나. 그게, 그게 해탈 경계, 보림 경계라 그말이여.
산 시내 연기는 깊었는데 추색은 찼구나. 가을빛은 찼다. 그게 그 모도 그저 보림허는 경계여.
보림허는 경계, 송(頌) 하나 갖다가 내가 여기서 말을 했어.


만공 스님, 마지막 거그서 떡 떠나 가지고서는 김천 직지사를 내가 왔어. 또 인자 그전에 있든 디니까.
직지사를 와 가지고는—거, 몸은 형편없지마는, 그 좀 나는 견성했다고 그때 그 지경이 좀 어떻게 되아 영 뭐 그런 병 뭐 여하약하한 것은 잔뜩 그 목구녁에서 피는 차 올라와서 간뎅이같은 건 밭지마는, 그런 데 구애없어.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가지고는 그 무슨 경계에 취해서, 응...
그만 직지사를 척 오니까, 직지사 대중이 한 30명 모아 있다가, 참! 반가허드구만. 소식이 어떻게 앞을 질러서 다 알고 있제. 참! 반가혀.
“아따! 이 신(信) 수좌님이 여기에 돌아왔다”고 야단들이여. 그러더니 법문을 청헌다.

이런 것은 안 넣었으면은 좋겄구마는 그것도 좀 넣으라고 싸니깐, 넣는데.

당최 배가 고파서 영 못허겄구만, 법문을.
엊저녁에 쌀가리 똑 반 숟갈 타 먹었네. 한 숟갈도 못 타 먹고.
그랬더니 당최는 이건 이렇게 안 돼. 되나 안 되나 어찌 올라왔으니깐 또 좀 허고.(처음~21분19초)



(2/4)----------------

나를 법문을 청했어. 그래서 올라갔제. 그 인자 처음이여. 내 생전 처음이여 법상에는, 인자 잉!
아, 거 새파란 사람이 인자 그때가 스물세 살이여. 허! 스물세 살에 무슨 놈의 법상(法床)에 올라갈 것이여?
두 철 만에 나와서, 두 철 만에 지내고 산철이니까, 어디 뭐 얼매 시일이 되았어?

법상에 올라가서 첫 설법이여!
첫 설법이니 한번 대중이 잘 들어요. 잘 듣고 거그 좀 잘, 답도 있어.

이 주장자(拄杖子)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살림 밑천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모도 이것 요놈 가지고 살림해 왔어.
나도 직지사 와서, 주장자 이놈을 처억 들어서 내가 이렇게 보였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이렇게 물었어.
거그, 한마디 다 모도 해. 내가 첫 법문이니깐, 고놈 한마디씩 대답해 보아.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입 열기 전에 그르쳐도 제이구인디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입 열면 그르쳤다”
입 열기 전에 그르친 게 아니여. 이 일은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친다”했제, 입 열기 전에 그르친다 안 했어!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 두어라. 어떤 것이 차사(此事)냐?”
간단혀! 천하에 간단혀.

우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이치부텀 봐야사 도를 닦는 것이여. 이치 보지 않고 어떻게 닦아?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깨달지 못허고 닦는다는 것은 무명(無明)만 기루어. 허니 어서 화두를 타파(打破)해야 하지.

화두 타파한 것이라는 것은 글쎄, 일향간(一餉間)에 있어. 밥 한번 먹을 때에도 깨달을 수 있고, 젓가락 집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잠깐 깨달라 가지고는 그다음 일이 설찬히 크다 그말이여.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쳐? 그르치고, 안 그르치고 그만두라 그말이여.
내가 그르친 걸 뭐 말헌 것 아니여. 그건 그만두어 버리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인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 우리가 밤낮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일로써 그 이렇게 밤낮 쥐어뜯고 있으니 아, 이거 하나 턱 일러 보아.

거그에 그 하나 이르련마는 모도 이렇게 환해도 안 이르고 있는가? 환히 보여도 못 이른가?
의심나면 못 이르제. 더듬으면 못 일러! 찾다가 죽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것 그만두고 어떤 것이 차사오?”
아! 세상에 이렇게, 답을 거다가서 그만 가르켜 놓고 들어가는데.

청송 선생님 하나 일러! 벌써 며칠 했어?
청송 선생 하나 턱 일러! 며칠 동안이여 벌써? 삼 일 동안에도 확철대오하는 것인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직 못 일러? 아주 유명하신 그 뭐 거그서 굉장헌 선생이시란디.
어디, 광명 선생도 한번 일러 보고. 그놈 선생도 못 허겄다 인자, 선생은 무슨 놈의 선생이여?
조실 스님한테 선생 소리 들어 되아? 한 번 일러 봐, 며칠이나 공부했어?

아따, 우리 대중같이 이거 참말로 그것 참, 그렇다 그려.
방(棒) 주는 게 아니여. 벌써 그거 능히 이르고 별짓 다헐터이지마는, 그렇게 참다와. 그런 거여. 그렇게 참다와야 혀.

어름해 가지고 어떻게 이르며. 또 확철히 보이드래도 또 역득(亦得)이여!
그렇게 아무 말이 없이 양구(良久)허고 있는 경계 좋아.

그때 당시에 직지사에서 30명 대중이 있었는데 답을 하나 허되, 그때 초를 요렇게 써 놓았으니 “촉(燭)불이 밝습니다”
그건 누가 그렇게 이른고 하니 병률이가 그렇게 일렀어. 병률이라고 우리 동갑쯤 된 사람인디, 일찍 들어왔다가 일찍 퇴타해 버렸어.
그이가 한번 나와서 답헌디, “촉화명(燭火明)입니다” 그려. “촉불이 밝습니다” 해.

“내가,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 차사(此事)를 내가 이르라 했지, 촉불 밝은 것을 내가 이르라 했나? 뭔 촉불 밝은 걸 왜 거다가 들어대아?” 아! 그래 놓으니 또 꼼짝달싹 암말도 못허제.
“그 역시 무공저(無孔笛)로구나. 그것도 역시 소리 없는 젓대로구나” 내가 그래 놓고.

또 어떤 분이 나오더니 또 이르기를 “도리(桃李)가 환다사(還多事)하니, 도화꽃과 오얏꽃이 오히려 일이 많으니, 도화꽃 복숭아꽃 없어지면은 이르겄습니다” 이래서,
“그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이르라 한디, 그르친 도리를 일렀나? 그르치지 않는 도리를 일렀나?” 그 아무 말이 없어.

그것도 그저 그대로 둘 일이제, 거 다시 무슨 야행인(夜行人)을 끄어 일받을 것 없고, 밤사람 행헌 것을 다시 얘기헐 것 없고.
그 몇이 그러고는, 법문은 인자 그다음 뭐라고 인자 헌 것 다 내가 지금 알 수 있어야제. 고것만 내가 헌 것 지금 기억허제, 그밖에 여러 소리 뭣헌 건 알 수 없고.

마치고 내려와서, ‘내가 처음 법문헌 것이니까, 만공 큰스님헌테 이 법문을 보내야겄다’해 가지고는 만공 큰스님한테다가,
「영신(永信)이가, 첫 법문을 직지사에서 청해서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시중(示衆)허고, 들어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오?’ 이렇게 물었으니 큰스님 수시일구(垂示一句)하야 주시옵소서. 큰스님 여기에 대해서 일구를 드리워 보여 줍소사」

그래 편지를 올렸더니, 며칠 내가 거기 오래 있든 않고 있는데, 편지가 왔는데 고 편지에다가, 답장에다가 까꾸라 한 걸 이래 그려 보냈어.
요 까꾸라 요렇게 된 걸 그려 보냈어. 응, 요렇게 생긴 것을. 요렇게 된 걸 그려 보냈어.

그것! 그것 다 모르겠제? 알다니? 모르제.
삼매(三昧)로 다 써 논 것이니깐 모르제. 그 첫 법문을 했기 따문에 그래 올렸더니 그렇게 해 보냈드구만.


직지사에서 며칠 쉬고서는, 동래온천이나 가서 온천을 좀 허고—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고.
간뎅이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쌌고 살 수가 있나. 그래 인자 동래 온천을 내려갔지.

가서, 금정사를 들어갔더니 기인벽이가—그 사람이 유담인데, 유담이 반가와, 아주 반가와험서 오! 참 반가와 혀.

사방서 선지식 스님 찾아, 큰스님 찾아다니면서 인가 다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까장 다 돌아서 왔다는 것 다 알고. 뭐 그러니깐 뭐, 대접헐 건 사실이지 뭐.
오히려 그 조실 큰스님네 오신 것보담도 더 반갑지.
새로 그렇게 인자 참, 학자로써서 아! 그렇게 모도 인가 맞고, 아! 그랬다고 인자 사방 가면 그 대접허는 것이 너무 과했제.

그런디 이번에 금정사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나쳤지.
척 들어가니까 유담이 그때 감원(監院)을 허고 있는데, 그 만찬을 해 가지고는 적을 굽고 다시마를 잘 모도 굽고 그래 잘해서, 부꾸미 떡도 부치고 뭐 혀 가지고는 좋은 술을, 참! 좋은 술 일등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아! 신수좌님, 참 내 뜻대로 내가 한번 이런 걸 차렸으니 잘 잡솨 주십시오. 내 어떻게 했으면 더 잘 좀 대접헐까 싶고, 얼마나 내가 좀더 잘 만족스럽게 헐까 싶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좀 많이 잡수아 주십시오” 아! 출출헌 판에 참, 좋드구만.

뭐, 그때쯤 인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해라” 자연치료를 허라고 떡 허니 의사가 그래 주어.

“그 어떻게 헌 것이 자연치료입니까?”
“뭐든지 그저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고, 그저 어디가서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고. 내 마음을 활발스럽게 펴놓고, 그저 임산임수(臨山臨水)에—물을 대하나 산을 대하나 어떠헌 그 노는 경계를 대허나 구김살이 없이 활발스럽게 아주 이렇게 놀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활발발(活潑潑)허면은 병이 나을 수 있으니”
아! 그러고는 ‘약으로는 못 낫우겄다’고 나를 갖다가 턱 퇴병을 혀.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인자 대체 그렇게 되었어.
공부허다가 나온 놈의 피가 그것이 어디 그쳐져야제. 인자는 하도 나오다 나올 것이 없으니까 목구녁 가슴속에 가서 간뎅이처럼, 묵 어리데끼 어렸어.
그려가지고 콱 뱉으면은 뎅이 하나씩 나와. 인자 줄줄 흘리든 않고. 그러면은 그만 비린내가 들입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제.

그래 그만 인자는 뭐, 인자 이렇게 좀 돌아댕기는데, 여그도 갔다 저그 돌아댕기는데 속마음으로는 인자 자연생활을 헐 판이여. 자연치료를 헐 판이여.

인자는 욕을 먹던지 누가 찬성을 허던지 그런데 얽힐 것 없고, 중옷을 입고 돌아댕김서 막행막식헐 수 없고.
첫째, 고기를 얻어먹어야 허겄으니, 고기도 맘대로 먹고, 술도 맘대로 그저 먹고, 춤출 디 있으면 내 멋대로 춤도 좀 춰 보고 이렇게 활발스럽게 인자 지낼 판인디, 속으로는 딱 작정해 놨지마는,
그동안에 선방에 댕김서 지낸 숙습(熟習)이 있어서, 그렇게 어떻게 당장에 태도를 행동을 고칠 수는 없고. 그래도 인자 어디 가면 대접헌다고, 날 대접헌다고 허면은 받아 먹지, 뭐 어쩌?
아직 그때는 안 헐 때인디, 아! 안 헐 때고 잘 그저 옷 입고 그러고 거그를 들어갔는데, 인벽 수좌가—요런 놈 다 넣어야제. 거 넣어서 허제, 별수 있나?—대접헌다고 그래 내놨네.

뭘 빼고 좋은 것만 넣으면 쓸 수가 있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넣어야지.
술도 먹었다고 허면은 거, 술 먹은 중이라고 허면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계를 파(破)헌 중이라고 하지마는 안 넣을 수가 있나? 넣을 건 넣어 버려야지.

술을 따라 주는데, 안주 좀 먹고 술을 한잔 척 받아서 막 부을라 하니까, 병에 붓떼끼 때려 부을라 하니까—경명 스님이 일대 강사(講師)여! 강사라도 이만저만헌 강사여.
그만 저 안에 선방에 계시다가, 어째 누가 일렀는가 어쨌는가, 이짝 방에서—저짝 방은 선방이고, 내가 선방에 들어가서는 안 먹고 이짝 방에서, 주지실에서 먹는디.

누가 일렀든고 일러, “저 수좌가 와서, 정영신이가 와서 막 술을 먹는디, 잔뜩 뭐 채려놓고 술 먹는디 거, 스님께서 좀 혼을 내시요” 인자, 수좌가 어째 그랬던가 부여.
그러니 쫓아 나왔어. 와서는 착 들어오더니 “여그가 어디라고 술을 먹어! 에이! 술이 뭐여? 에이!”
아, 이러면서 그만 노장이 입이 그냥 덜덜 떨면서 고함을 지르고 들어와.

그것 참! 나보담 나이 많으시고—나이 그 어른은 근 오십되고, 나는 인자 뭐 스물 서너 살 인자 되았는데. 아! 이거 참, 죄송도 허고, 일대 강사고.
아, 그것 참 ‘이놈의 술잔을 내던지고 그냥 나올까, 달아나 버릴까? 그냥 빌어먹을 것, 먹어 버릴까?’ 쳐다 보고는. 그러다가는 ‘에이 이놈의 것...’

“내가 기이 든 술잔입니다. 좀 가라앉히시고, 심로허시고 들어보십시오” 술잔 들고.
“화엄경이, 상본(上本) 화엄경이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니” 상본, 중본, 하본, 약본(略本) 그렇거든, 화엄경이.

“화엄경이,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이거 법, 무서운 법이여. 보살님들 다 알란 말이여. 여 술값 내는 것이여.

“이거, 화엄경 몇째 품입니까? 이거 좀,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고함을 내, 더 크게 질러 버렸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아!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뭔 안 든 것 있나? 중생(衆生) 환화(幻化)가 다 들었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다 들었지.

아! 그러니깐 경봉 스님도 물 대다가, 논에 물 대다가 막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만, 막 들입대 그만 이러고 앉어서 그만—거그 그 인자 참, 한번 봐 노니까 아마 그러든 것이지. 그만 이래 가지고는.

양산서, 언양서, 여자가 모도 올라왔다 그말이여.
경봉 스님 견성했다고 헌게 모도 와서 친견을 허고 절을 허니께, 이러고 앉어서 “네, 이년들! 응!” 아! 욕을 냅대 퍼붓고. “이게 화엄 도리지! 이게 화엄경이지!”(21분23초~43분)



(3/4)----------------

욕을 해도 이만저만헌 욕을 해 놨어. 내, 그 욕은 안 혀!
뭐 욕이, 그 욕이 화엄 도리라고 헌 것이여, 그게. 일대 강사인디 또 견성을 해 가지고 보니깐 틀림없거든!

추어망담(醜語妄談)이, 추헌 말과 거짓말이 어디 무슨 하나나 무슨 뭐, 어디 어김이 있나? 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界)에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이 다 딱딱 들어맞는 거여, 법에.

그러나 그 법은 그건 체중현(體中玄) 법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조사 공안은 안되아.
공안이라는 것은 그런 법 없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그건 안될 말이고.

그래 그만 들입대 욕을 막 드리 퍼붓고는 “이게 화엄경이야, 화엄경이여!” 아! 이러고 있었어.
그러니 뭐, 무엇이 도무지 무슨 뭐 일사천하미진수품 속에 안 들어갔어?

“이 술은 화엄경 몇째 품이냐?” 고함을 지르며 “몇째 품입니까?” 묻는디, 입이 딱 붙어 버렸네, 입이. 응!
아, 그렇게 고함을 질러 “술을 먹느냐?”고 허더니 입이 그냥... 어림도 없네.
내가 참, 기운이 나데! 아, 이런 놈의 것!

그래 가지고 대듬서, 막 대듬서 멱살이나 쥐고 “나가라 이놈!”허면 큰일날텐디.

그냥 거기 쩔려 가지고. 강사는 강사인디, 화엄경 바로 분명히 있거든! 그런게 뭐 꼭 물을 말이지, 뭐.
‘몇째 품이냐?’고 묻는데, 딸싹 못했네. 허! 그것 참. 아무리 글을 잘해도 글 가지고는 못혀.

그만 암말도 않고 이리 쳐다보고 있는디, 술을 들고는 쭈욱 마셨어. 쭉 들어마시고서는, 안주 턱 한 점 먹고 입을 싹 닦고는,

니우(泥牛)는 입해성룡거(入海成龍去)헌디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니라
나무~아미타불~

니우(泥牛)는 입해(入海)하야 성룡거(成龍去)헌디,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 용이 되아 갔는데,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로구나. 다리 뿌러진 자라는 앞을 의지해서 그물에 들어갔구나.
아, 이렇게 점검을 탕! 해 버렸제. 딸싹 혀?

술 잘 먹고, 그 잘 채려 논 놈 배 그거 잘 먹고, 나 그러고 오래 안 있었구만.
또 그러고 그냥 나오제 뭐 그렇게, 처억 한번 나온 일이 있고..... .


그래 가지고는 인자 그만 갔다왔다 하네, 인자는.
뭐 공연히 아무 일없이 가되 어떤 데를 가는고 하니, 그 만공 큰스님한테 있으면서 모도 공부 잘했다고, 한 소식 얻었다는 사람들만 찾아다니네. 찾아다녀.

그래 부안(扶安), 청련암 금봉 스님한테를 갔다.
금봉 스님한테 가서—금봉 스님은 어떻게 성질이 급헌지, 입에서 말허면은 입속에 침이 툭투투투 튀어나오제. 투투투투투투 그러니까 그 뭔 말 함부로 못혀. 당신 말만 하제, 남은 말 못혀.

그러니깐, 차근차근 “조주(趙州)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내가 당신 밑에 와서—당신네 한참 공부 잘헐 때 나는 들어와서 공부했으니 후학으로, 당신 밑에 저 후학으로 납짝허니 보고.
거그 앉어서도 들었어, 듣기는. ‘그 영신이가 돌아댕김서 뭐, 사방 뭐 선지식의 인가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 둘러오고’ 그런 다 듣고 앉었으면서도 눌러.
‘요까짓 게, 뭐 저놈 저게 뭐’ 이렇게 눌러 버려.

나는 환혀!
어떤 공안에 어떻고, 어떤 공안에 어떻고 착착 보고 앉었는디, 어쩔거냐 이 말이여! 틀림없거든 다시.

“조주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일러 주십시오”
안 이를 수 있나? 뭐라고 일러.

“아이고! 그거 안됩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입니다”
“네가 뭘 알아서 응? 응? 네, 뭐 응?” 아따, 이러고 일어나서.
아, 그 좀 홰 안 내고 그냥 허면 어째서—그래도 뭐 주먹질허거나 그러지는 안 혀. 성질이 급해서 툭툭 허제.

그러면 또 내가 사르르 눅어져 버려. 암말도 안 허고 “아! 그만 그만 두시오” 그래 놓고는 또 한참 있다가 “조주 신짝 이고 간 의지를 한마디 일러 주시오”
“아! 저놈이 또 그래 또 응? 또”

아, “또” 할 것이 아니라, 헐 수 없어.
아, 그래 놓으면은 그만 훌떡훌떡 뛰는구만. 한참 뛸 때에는 말 못혀.
와서 쿡 한볼테기 때리면 큰일나겄다 그말이여. 그래 때리든 않지마는 허들 못혀.

그러면 내가 도로 숙어져 암말도 않다가 또 다, 또 개면 또 와서 “아! 조주 신짝 이고 간 의지 한마디만 일러 주시오”
“야! 가 이놈아 가! 가 이놈아 가! 어디서 이놈아 가!”

“아! 가고 안가는 것이야 그거 무슨 별 문제요, 그 내 가는 것은 별거 아니지마는.
스님, 그 나를 가르켜 나오지 안 했소, 여태까지. 나 초학으로 어릴 때부텀 나를 잘 가르켜 나오고 그랬은께 아, 내가 스님 밑에서 배워 여지없이 해 가지고 나가야지, 자꾸 가라 하요” 그래 놓고는.

몇 번을 애를 멕였든지. 달포를 그랬어, 달포를. 그냥 두고 있을 수가 없어, 달포를 그랬어!
나도 에지간하지. 가라고 허면 안 가네. 내가 이래 뵈도 체면도 무척 있고 그런 사람이지마는, 체면 없을 때는 이렇구만. 뭐 무가내하(無可奈何)제.

아! 그래 놓으니 그만, 그 조주 굉이 법문이 무서운 법문이거든, 신짝 이고 나간 법문이.

또 묻고 또 묻고, 그러나저러나 내가 한 달을 기댔소 거그서. 한 달 동안을 있었어. 그런데,
“자, 그러시지를 말고 나를 그렇게 업신여기지 마십시요. 내가 큰스님네한테 전부 나오면서 인가 다 받았소. 인가 다 받고 내가 인가 다, 그래 가지고는 내가 인가 받은 공안 쏵 다 털어 내놓을텐게 들어 보실라우?
나를 왜 그렇게 해요? 내가 잘 몰랐으면 스님께 다시 내가 인가를 얻어야 헐꺼고, 스님이 잘 몰랐으면은, 못 봤으면 나한테 인가를 얻어야 헐 것이고 그런 것이제, 어디 선참 후참이 있소?
또 그러고 그래 어째 그렇게 그만 그냥, 그렇게 그만 고함을 지르고 홰를 내시고 그냥 바쁘고 그려요? 왜 그러시요, 글쎄?” 아, 그래 따져 놓고는.

“저 조주 굉이 법문을 스님도 격외(格外)로 그렇게 뭐든지 일르고 나도 격외로 일르고.
스님만 내가 이르시라 하고 나는 내가 감추고 안 이르고 되겄습니까? 스님도 일러 놓고 나도 일러 놓고 둘이 앉어서 탁마(琢磨)헙시다. 우리 그놈을 막 의리(義理)로도 막 합시다” 그러고 대들었다 그말이여.
허니 “그러자 그려! 해 보자!”

그래 둘이 앉아서, “거 스님 머녀 이르시오”
“네가 머녀 일러라!”

“예! 내가 이릅니다” 내가 척 일렀다. 헌게 당신도 일렀다.

일러 놓고,
“자! 그러면 인자 큰스님 이른 것, 인자 저 금봉 스님 이른 것 허고, 내 이른 것 허고 우리 이놈을 가지고 우리 탁마합시다. 저 의리로 우리 분석헙시다. 뭐, 의리로 못헐 것 뭐 있소. 우리 의리 분석 한번 합시다”
내한테 꼼짝 못했네! 꼼짝 못해. 응? 의리로 막 물으니까 덜덜덜덜 험서 더 못허네.

“자! 이것이 이런 것입니다”허고는... 고것도 했구나, 참! 고거.
남전 스님이 계시다가—그때 처음 고걸 먼저 해놨고.

남전 스님이 조실에 계시다가 조주가 밖에서 척 들어오니까, 척! 남전 스님께서 일어나시면서,
“작야삼경(昨夜三更)에 문수보현(文殊普賢)을 이십방 축출(二十棒逐出)이다. 어제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을 이십방 주어 쫓아냈다”
조주 스님이 있다가 “화상봉(和尙棒)은 교수긱(敎誰喫)고? 화상 방맹이는 누구로 하여금 씹히리까?” 요렇게 된 말이여. 그것 새기도 못허는 것이여, 한문에.

그러면 또 알아듣게 내가 말허자면,
“큰스님께서는 어젯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을 이십방을 주어 쫓아냈지마는, 큰스님은 조실 스님은 뉘 방맹이를 씹으실랍니까?” 그말이여.
응, 고래야 그 법문이 되는 것 아닌가?

“왕노사(王老師)는 과재심마처(過在甚麽處)냐? 이 왕 늙은이는 허물이 어디 있느냐?
조주가 예배를 썩 허고 출거(出去)했거든.

그놈을 내놓고서는, “의리로 분석합시다. 그 조주 예배는 무슨 예배며...”
영! 뭐 뭐! 침, 튀튀튀튀 허니라고 못혀! 자서히 못혀. 하등 그 성격이 그려.
탁마도 그러기에 그렇게 몽그라지게 좀 몽글몽글허니 다 해야 허는 것인디, 그냥 뭐, 그러고 되아?

그놈을 내가 해석을 주욱... 어쩔 수 없어. 안 헐 수 없어. 해석은 죽어도 않는 것이지마는, 헐 수 할 수 없어.
한번 해 놓으니까, 그래도 공부를 많이 허신 이기 따문에 서로 해석 답도 헐만 하거든.
아무것도 초대야 어떻게 헐 것인가? 초대는 해석해 주니 뭐 아나? 소용없제. 지금 이런 말허니 누가 알겠어.

“옳다! 옳다! 옳다! 옳다! 옳다!” 허고는 한번 고함지르더니 그 다음부텀은 뭐 뭐 여지없이 나를 믿어! 말로 헐 수 없이 믿어!
공안 공안 얘기허면 “참! 네가 옳게 알어. 옳다! 옳다!”
그 다음부텀은 공안을 드리 놓고 해야, 뭐 그저 묻기만 허면 놀래네.

그만 해야 되아. 암만 자기가 암만 뭣이 좀 있다 헌들, 고까짓 것을 갖다가 내놔?
그래가지고서는 금봉 스님 평생에 말씀이 있지. 여그 다 들은 학자 있지? 있을 거여!

그래서, 가서 한 달 동안에 금봉 스님을 턱 내가 탁마를 참 한바탕 멋지게 허고.
그러고는 인자 사방 댕김서 뭐 헌 것이 있는디, 그런 것을 다 내가 어떻게 얘기를 다 헐 것이여?
조금 조금씩 허다가 말고, 인자 차츰 법문을 해야제. 응.


조금 화두 허는 경계나 내가 한마디 얘기허고 내려갈까? 여까장 해두고 잉.
기운 없어 못허겄구만. 법문이 고함지르기 시작허먼 법문 못해야. 뱃속에서 안 나오니깐 고함을 지르거든.

약론차사(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의논할진대. 이 일은 무엇인고? 참선법, 화두법이여.
여대화취(如大火聚)다. 큰 불무더기 같다. 불무더기가 조그만헌 불무더기가 아니라 큰 불무더기다.

어째 큰 불무더기냐? 집채라도 큰 집채에 불이 타면 클 것이고, 적은 집에 불타면 적은 불무더기일 것이다.
불무더기라 하는 것은 나무가 많이 쟁여져 있어야, 거그 불이 붙어야 큰불이다. 나무 없으면은 불이 붙을 수가 있나? 나무가 가뜩 쟁여져 가지고 그 불붙어야사 큰 불무더기니라.

그런 참선법도 여차(如此)하다.
망상이 잔뜩 있는 사람, 습기(習氣)도 많고 망상도 많고 그렇게 그만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뜩 괴어 차 있는 사람일수록에 그 사람이 공부를 허는 것이여.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안 되지마는, 그 사람이 공부를 해야사 공부가 인자 된다 그말이여.

그렇게 많이 구원겁(久遠劫) 중으로 오면서 그 많이 탐진치를 익혀 왔고, 그 망상—망상이 무엇인가, 모도 그 습기 망상이지. 살생 · 도둑질 · 거짓말 그저 모도 이런 망상, 그거 모도 그런 것으로써 습기 지어서 그 망상이지.

그러니 그런 망상이 많이 있는 사람이래야 화두가 떠억 되는 것이여.
큰 불무더기가 냉기가 많이 있으면은 불이 잘 타데끼—불은 화두인디, 나무는 그놈이 번뇌 망념인디, 나무 그놈을 막 들입대 큰불이 태워 버린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마침 화두를 배워 놓으니, ‘판치생모(版齒生毛),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을 배워 놓으니, 잔뜩 불 땐 굴뚝에 연기 뻥뻥 나오는데 들여다보는 것 같지.
그 들여다볼 수 있나? 막 연기가 눈으로 푹 대들고, 코로 입으로 막 대든디 들여다볼 수 있어? 그와 같여.

그와 같기도 허고. 문자상철우상사(蚊子上鐵牛相似)여. 모구란 놈이 쐬소, 쐬로된 소 뚫는 것 같여.
그 모구 부드러운 주뎅이, 고것으로 쐬소를 뚫으니 되아? 그렇게, 안 들어가. 되도 안혀. 그렇다 그말이여.

그러지마는, 화두라 하는 것은 그러헌 사람이 해야 혀.
젠장! 영리해서 말, 법문 잘 알아듣고 이치를 딱딱 분석해서 알고, 그 사람 못혀. 고 영리한(靈利漢)은, 날카로운 영리헌 사람은 이치길을 자꾸 만들아, 이치를 모두 뭘 만들아서 그래서 못혀.

망상이 꽉 찬 사람이 척 들어와서 화두를 배워 보면 깜깜 칠통(漆桶)이여. 무슨 어떻게 헌 지도 몰라.
그래도 그만 그대로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렇게 그만 무식허게 대들어야 혀. 영리허게 요리조리 주박성(湊泊性)으로 대들면 못써. 상량선(商量禪)으로 대들면 아무짝에도 못써.

확 대들어서 알 수 없는 놈을 하나 추켜들고는 자꾸 이놈을 챙긴다. ‘어째서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그놈 없어지기 전에 어서 또 끄집어 일받고 일받고 허면은 그놈의 망상이 어디 틈, 비집을 틈을 어디 얻어서 나올 수가 없어. 못 나와.
그까짓 거 나오거나 말거나 판대기 이빨에 털만 자꾸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아! 요놈만 자꾸 거각(擧却)하는데, 어디 망상이 어디서 불거져?

그까짓 염(念), 일어나는 망상 두려워허지 말어라. 자꾸 화두만 이놈 이렇게 자꾸 챙겨라.
그러면 맹렬헌 불이 낭기 태우데끼, 일체 망상이 판치생모 생각하는디 당최 어리대도 못헌다. 그와 같여.

그러헌 더운 불꽃[烈焰]이 큰 불무더기가 긍천(亘天)이다. 하늘까장 뻐질렀다. 원청 큰 불무더기기 따문에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그 불무더기가 원청 냉기가 하도 많이 쟁여져 있으니까, 그 큰 불무더기가 타도 ‘일찌기 조금도 사이가 없다’ 어떻게 많이 드리 타는지.(43분1초~1시간4분22초)



(4/4)----------------

그러니 망상 번뇌가 많이 있는 그 사람은 화두 그놈이 점점점점 불무더기 타데끼 자꾸 커지제. 망상이 있을수록에 화두가 점점 커져!
소유지물(所有之物)을—비단 냉기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일체 도모지 모냥 있는 물건은 다 태운다. 옥석(玉石)도 태우고 쐬도 녹아 버리고 무슨 물건이든지 다 태와 버린다.

실개투지(悉皆投至)면은, 거다가 집어넣어 봐라. 뭣이 안 타는가? 유여편설(猶如片雪)이다.
그 큰 불무더기가 불이 많이 크게 탈수록에 더 열이 많고 굉장한 강해서 여간 천하없는 무슨 못 태울 물건이라도 거그 들어가면은 봄눈같이 녹아져 버린다.

이 비유인디, 화두를 이와 같이 다루어라.
화두만 자꾸 챙기면은, 알 수 없는 의심만 턱 챙기면은 의심 그놈이 불인디 뭐가 안 녹아지겄나? 무슨 망상이 거 와 붙겠나?
자꾸 화두 의심만 길러라! 알 수 없는 놈만 키워 길러 나가거라.

세상에! 이 법같이 쉬운 참선법이 없는데, 더군다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인데 어째서 안된다고 하냐 그말이여.
그저 바람 쐬다가도 또 한번썩 생각하고, 들어가 또 좌(座)에 앉어서 생각허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을 그놈을 자꾸 생각해야제.
고것 의심 없이 지해(知解) 상량(商量)으로 들어가 봐. 요리 알고 저리 알고, 무슨 이치고, 뭐 요따구 놈의 선(禪) 해봐, 무엇이여?
그런 선은 그건, 무슨 그러니 그러기 따문에 뭐 신선도도 못 되제. 그것이 무엇이여?

점착변소(點着便消)다. 그 불무더기에는 그저 집어넣기 전에 다 탄다. 어디 뭐, 거그 부닥쳐서 타나? 들어오도 못혀.

화두가 일념이 이렇게 의심이 성대(盛大)헐 것 같으면은 큰 불무더기와 같애서 참!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만(萬)이 참선허는데 하나도 잃은 법이 없어. 하나도 안된 법이 없어.

쟁용호말(爭容毫末)이냐? 호말(毫末)같은 것, 터럭겉은 걸 집어넣어 봐라. 거가 어디 어리댈 수나 있나?
화두 의심이 돈발(頓發)되면은 그깥은 무슨 세상, 무슨 번뇌 망상이 무슨 소용이 있어? 번뇌 망상 그까짓 걱정헐 게 뭐여?
또 잠이 그것이 어디서 와? 잠! 잠이 그것이 뭐 근본이 있는 것인가, 그것이? 근본도 없는 것이 공연히 들어와서 심월(心月)을 어둡게 만들지?

약능임마제지(若能恁麼提持)를 해 봐라. 활구참선 허는 사람이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화두를 제지(提持)해 봐라. 똑 날로 날로 다루어 해 봐라.
다맛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요놈에서, 알 수 없는 요놈 거각한 디서, 망념이 무엇이 생겨날 디가 없어!

아, 해 보면 알제.
헐똥말똥 좀 허다 말다 “아이고, 이놈의 것! 안 되니 그만 말아 버릴까 어쩔까” 요렇게 헌 놈의 참선이래야 안 되지.
기인용허고, 목숨을 한번 그까짓 것 죽고 사는 걸 불고(不顧)해 버리고 한번 해보아라, 안 되는가?
죽도 않느니라, 그래도.

안 허고 어떻게 헐 꺼여? 이렇게 한바탕해서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봐야제, 그 요따구로 살다 말아? 요따구로 살다 죽고 말아?
어디 가 처백힐 것이며, 그놈의 곳 참! 궁금혀. 어디가 처백힐 것인가?

참, 이놈 안 갈 수 없다. 가는 길이로구나. 돌아오지 못헐 놈의 길을 간다.
다시는 못 와. 요까짓 몸뚱이 가지고 어떻게 오나? 요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를 와?
한번, 부모 처자 권속이라도 작별허고 이별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그건 못 만나는 것이여.

그까짓 영(靈), 그것 뭐 이 몸뚱이 안에 있든 거, 누가 보기나 알기나 허간디? 그놈의 처백힐 곳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말세(末世)다. 지금 가장 말세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그놈의 처백힌 곳이 무간지옥인가, 아비지옥인가, 소 배때기인가, 말 배때기인가, 귀신 배때기인가 알 수는 없다마는, 한번 처백히면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누가 저번에 질문허기를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이 생겨 나오는디 참, 사람 때문에 주체 못허겄는디, 그렇게 사람 몸뚱이가 나기 어렵다고 그래 놨답니까? 그 가뜩 사람 땜에 못 살겠는디” 이러드구만.
“야, 그것도 설찬히 질문도 헐만한 말이다마는, 그게 어리석느니라” 내가 그랬어.

“그놈이 모도 그 이 몸뚱이 있는 물건, 몸뚱이로 모도 생명 붙어 있는—사람 몸뚱이 말고—짐승 몸뚱이, 벌거지 몸뚱이, 날라댕기는 연비(蜎飛) 몸뚱이, 바다 가운데 있는 몸뚱이, 큰 놈 작은 놈 다 모도 한량도 없는 놈 다 그놈 숫자를 좀 쳐 보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개구락지니 꺼갱이니, 뭐 또 저 물속에서 모도 그 해치깡에서 생겨난 그런 충이니, 박테리아 충이니, 공중 드리 전부 수륙공해(水陸空海) 전부를 다 쳐서, 사람 인명허고 그놈 비교 좀 해 보자.

부처님 말씀에 영(靈)은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돼지 영이나, 소 영이나, 사람 영이나, 개 영이나 똑같다 했으니 또 뭐 벌레 몸뚱이는 달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부처되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그놈이, 대구 같은 놈 저런 놈이, 그 큰 놈이 알 낳아 놓으면은 처음에 나올 때는 찌끄만 눈만 생겨 가지고, 허다가 그놈이 차츰차츰 이물성대(以物盛大), 뭘 많이 먹고 크면 이만큼 커지고. 그렇제, 어디 본래 그놈이 무슨 뭐 불성(佛性)이 적고 큰가?

허니, 그렇게 한번 따져 보아라. 짐승취에 들어가거나, 공계에 일체 중음신(中陰身 ), 귀신 배때기에 들어가던지 이렇게 허제, 이 사람 몸뚱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겄나? 허니 그 어리석은 말이다”
내가 그랬어.

이 몸뚱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턱 가서 얼른 장만해 오면 거 괜찮허제. 허지마는, 그렇게 못 되아. 과약(果若) 참, 어렵다 그말이여!
그래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사람 몸뚱이 다시 장만허기가 그렇게 어려우니라.
그거, 허니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생각해 봐라. 몸뚱이 다시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라. 지어서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

지금이 말세다. 지금 이 말세가 어떤 말세인고?
우리 석가모니불 나오신 이 사바세계 출세(出世)—백세에 출세허셨는데, 인자 백 년 지나가면 1년씩 감해져서 천 년 지나가면 10년 감해져서 육천 년만 지나갈 것 같으면 10세 정명(定命)이 온다.

10세 정명 올 것 같으면은 인자 거기에서 도병겁(刀兵劫) 일어나, 무슨 질병겁은 뭐, 도병겁, 도창겁이 막 일어나 가지고는 다 거그서 몸뚱이 생긴 것들 다 뿌어져 버리고 다 모가지 잃어 버리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되는디,
중음신으로 삼재(三災) 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속에서 이 육신 몸뚱이는 없지마는, 중음신 몸뚱이라는 것이 꿈에 있는 몸뚱이같은 것, 몽혼신(夢魂身)도 아니제, 이것은 아주 꿈도 없제. 업신(業身)이지.

업신이 그 중에 들어서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네! 그놈의 고(苦)라는 것은, 중음신의 고라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여.
그렇게 얼마를 고를 받고 있을 터이니, 거그 한번 빠져 놓으면 6억(56억) 7천만년 후에도 미륵회상(彌勒會上)을 못 참예혀. 언제 그것들이 나와서 미륵존불 회상에 참여헐 것이여?

지금 잘 닦아야, 잘 닦아서 견성을 했다고 하드래도 견성해 가지고 입태(入胎) 태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주태(住胎) 태에 들어가서도 안 매하고, 출태(出胎) 태어날 때도 안 매할 정도가 되어야사 허느니라. 미륵회상에 참여하니라.
우리가 그때 어디 가 있을 거여? 다시 사바세계 나오드래도 그래 깨달라 가지고 나와야사 환허제.

이렇게 이렇게 미해 가지고 이렇게 멍청해 가지고 오늘 이 목숨 잊어버리면은 향하처거(向何處去)오?
요 지경, 요 따위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이 숭악한 말세, 이 삼재(三災)에 들어가버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그서 이렇게 해 놓은 거 무언 줄 아시요? 뭔 줄 알아?

여다가 딱! 예불(禮佛)은 고대로 하고, 예불은 각 사찰에서 허는 대로 고대로 예불 내가 딱 해 놓고는, 거다가서 우리 참선 학자들, 우리 선학자들 부처님께 축원(祝願) 하나,
‘그저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퇴타(退墮) 않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나도 깨달라서 일체 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그러면은 거그에 수명 부귀 장수가 거그 다 들었고. 수명 부귀 장수가 무엇이여, 정법문에 물러가지 않고 확철대오 허면은 천하에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축원 딱 해 번지고는, 고 밑에 가서는 떡! 십악참(十惡懺)을 허거든.
십악참이라 하는 것이 그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 범망경(梵網經)에서 나온 것이여.
십중대계를 딱, 그 심지법문(心地法門)이거든. 견성(見性)해야사, 견성헌 이야 법(法)을 설혀. 견성해야 대승계(大乘戒)를 설혀.

멋대가리도 없이! 그깟...
비구계! 내가 그걸 비방하는 게 아니여! 비구계(比丘戒) 이백오십 계, 비구니계(比丘尼戒) 오백 계, 받아 놓았자 그 당장에 잊어버리는 거, 계상(戒相)도 모르는 거. 내가 설허는 것 안 됐다고 혀?

십중대계는 그대로 환해서, 참선화두 학자면 그대로 가지게 되아. 다 십중대계 딸렸거든.
그러면 계행(戒行)도—살생도 않는디, 또 살생도 않지만 파(破)할 것이 어디 있어?
가지고 범허는 것이 없으니 계상(戒相)까장 다 없어, 화두를 해 나가니까.

화두 학자가 십선(十善)을 봉행(奉行)해야 되아. 십악(十惡)을 이렇게 참회(懺悔)하고 십선봉행을 해야사 대번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간다 했거든.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선봉행만 하면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간다 그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갈 것 같으면 불과(佛果) 증해 가지고 내려오지, 그냥 범부(凡夫)로 내려오는 법은 없어.

허니까, 똑 이렇게 예불허고, 아침에는 십중대계 그 참회를 딱, 십악참회를 허면은—십악을 안 하면은, 내가 십악 죄를 안 지으면은 십선봉행이여. 지악위선(止惡爲善)이니까.
꼭 십선봉행을 해야사, 십선봉행허고 화두를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인자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우리가 피난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성불(成佛)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사바세계 어름어름허다가는 안 되아.
응! 그 말 잘 듣겠소? 그걸 잘 알아, 잘 알아 들어야 되아.

그러니 여그서 이렇게 예불 똑 하고, 그 십악참 허는 거 고것 알고, 화두 딱 배운 보살님네 고렇게 해서 아침이라도 일어나시거들랑 방에서 딱 고렇게 예불 젓수고.

일어나서—모도 잠자고 그런디, 모도 뿌시럭 뿌시럭 일어나서 잠 못자게 그러지 말고, 가만히 혼자 일어나서 심배(心拜)라도, 마음으로라도 딱 이렇게 앉어서 도솔천 내원궁을 향해서 저! 제오천 도솔천인게.
극락세계(極樂世界) 가버리면은, 극락세계 가서 넨장! 몇천만 겁을 나오도 않고 말 것이여 고대로?
속히 또 나와서 사바세계 우리 모도 인연(因緣) 중생을 제도(濟度)해야지.

고렇게 똑 해 주십시오.
내가 여다가 이렇게 해 놓고—다른 데야 허든 말든, 내 여그서 딱 작정을 해 놨습니다. 작정해 가지고는 고대로 꼭 해 나가니까.

그래 가지고 나, 또 용주사도 중앙선원이라 해서 거그도 “그렇게 해라!” 거그도 그렇게 합니다.
나! 다른 디야, 내가 관계없는 디야 내가 뭣 헐라고 내 말 비방허고 안 들을턴디 뭣 헐라고 그렇게 헐 것이여. 안 혀.

여, 장삼(長衫)도 이렇게 맨들아서, 예복 장삼 간단허게 맨들아서 이렇게 떡 입고.
여그서만 내 입지, 다른 데 나가서 입으라고 안 허거든. 여그 딱 대중이 걸어 놨다가 요렇게 똑 허고 그럽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안 가르켜 논 짓을 내가 혀? 거, 외도(外道)라고?
부처님 꼭 고대로 해논 대로 내가 딱 해 논 것입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하생경(下生經) 보시란 말씀이여. 거기에 어떻게 해 놨는가.
십선봉행을 허면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서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미륵회상에 오는 것과. 환혀!

그런디 요새 모도 사교(邪敎)라는 것은 ‘곧 미륵님이 나온신다. 명년에 나오신다, 우명년(又明年)에 나오신다’ 요렇게 잡아 꾀이여. 어디 그건가?

이거 이대로, 부처님께서 미래불(未來佛) 그대로 다 설해서 수기(受記) 주어서 해 놓은 미륵회상을 내가, 다 미륵상생 하생경을 보고 내가 이렇게 딱 했지, 벌로 내가 이렇게 해 논 줄 아십니까?

꼭 우리 화두 학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상사(事象事) 그까짓 소용있나? 참선허면 그만이제”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화두, 화두... 여까장 내가 그랬는데.
되아서 그만 허고 내려가야써.

이렇게만 화두를 잡드리헐 것 같으면 극일지공(剋日之功)이, 날로 허는 공(功)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조금도 실(失)이 없다. 잃어진 법이 없어.

꼭! 화두 의심만 찾어라.
의심이 아니면은 그 모든 중생의 번뇌 망상을 태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일체 번뇌 망상을 화두가 태워 버리는 법이고.

일체 티끌 우주 삼라만상, 초목 총림 다 태우는 건 불이 태우는 것인데, 불 그놈이 일체 냉기 초목 총림 산하대지를 막 다 태워 버린 뒤에는 불도 없네. 불 자체도 없어.
그놈으로 인해서 불이 있다가 냉기 다 타 버리면 불도 없네. 그걸 연소화멸(煙消火滅)이라 그려. 연소(煙消), 연기도 없어지고 불도 멸해 버리고 냉기 다 타 버리고 없어.

우리 화두도 화두 고놈이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모도 집어생켜 버려! 찌깽이도 없이 다 먹어 버려! 판치생모(版齒生毛), 알 수 없는 의심이!
다 씹어 쌔그라 돌려 없애 버린 뒤에는 화두도 없어. 화두 없어. 번뇌 망상 꽉 맥힌 놈이 화두인디, 화두도 없어.

아! 화두도 없고 번뇌 망상도 없네! 그 지경을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이라 햐.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경계도 없어진 곳이여. 거그서 그대로 근쳐 버리면은 될 것인가?

확철대오허는 공안이, 그걸 깨닫는 공안이 거그 있어! 그래야사 인자 거그에 생사 없는 곳까장 다 봐 버리지.(1시간4분22초~1시간25분13초) (일대기 8호 끝)



----------------(1/4)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입실(入室) : ①선문(禪門)에 있어서 수행자가 깨달은 바를 점검받기 위해서 조실에 들어가 직접 가르침과 지도를 받는 것。 ②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는 것.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사판(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함. 또는 그 일을 하는 스님.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풍진(風塵 바람·풍속 풍/티끌·더럽히다 진) ; ①세상의 속된 일 또는 속세. ②바람에 날리는 티끌. ③병진(兵塵 :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티끌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인한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일이나 분위기를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연대갑자(年代甲子) 총부지(總不知) ; ‘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참고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55칙 ‘대사(大事)’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妣]”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妣]”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고 하였다.

“고비(考妣)”라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고(考)라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비(妣)라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先妣)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상(喪)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는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②]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1206칙 ‘대사(大事)’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고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증(證)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것.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납승(衲僧 옷을 꿰맴 납/중 승) ; 납자(衲子).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2/4)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上堂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 처음 한마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문(問), “무엇이 제2구(第二句, 다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문(問), “무엇이 제3구(第三句, 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2.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화두(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일향간(一餉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촉불(燭- 촛불 촉) ; ‘초에 켜 놓은 불’ 촛불, 촉화(燭火)도 같은 말.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활발발(活潑潑)하다 ; 더없이 활발하다(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스럽다).
*숙습(熟習) ; 익숙하여 몸에 밴 습관.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3/4)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두(頭)‘는 사물이나 사람의 단위. ‘각각의 존재[頭頭]와 모든 사물[物物]’이라는 말. 곧 모든 것을 가리킨다. 온갖 사물과 현상.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조주(趙州)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제7권) 207칙 ‘참묘(斬猫)’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南泉이 一日에 因東西堂이 爭猫兒하여 師遂提起云하되 大衆아 道得則救取요 道不得하면 卽斬却也하리라하니  衆이 無對어늘 師斬爲兩段하다 復擧前話하여 問趙州한대 州便脫草鞋하여 於頭上戴出이어늘 師云하되 子若在런들 恰救得猫兒로다하다

남전(南泉)이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서 고양이 때문에 싸우자, 고양이를 번쩍 쳐들고는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말하면 살릴 것이요, 말하지 못하면 베리라.”
그러자 대중에서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에 선사가 두 동강 내었다. 나중에 이 일을 들어 조주(趙州)에게 물으니, 조주가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니, 선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 도저히 될 가망이 없이 사리(事理)에 맞지 아니함.
*무가내하(無可奈何) ; 막무가내(莫無可奈 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의리(義理)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머녀 ; ‘먼저’의 사투리.
*남전문수(南泉文殊)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제7권) 215칙 ‘문수(文殊)‘ (헤심, 각운 지음)
南泉 有時云 文殊普賢 昨夜三更 每人 與二十棒 趂出院也 [別本 云 貶向二鐵圍山] 趙州云 和尙棒 敎誰喫 師云 且道 王老師過在什麽處 州禮拜而出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초대(初-) ; 어떤 일에 경험이 없이 처음 나선 사람. 또는 그 일.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영리한(靈利漢) ; 명석한 이해력을 지닌, 두뇌가 민첩한. 또는 그러한 사람. 영리(靈利). 영리(伶利)라고도 한다. 분별에 치우쳐 불도(佛道)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주박(湊泊 모일·항구 주/머무르다·배를 대다 박) ; ‘배가 정박한다’는 뜻. 머뭇거리다. 머무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4/4)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해(知解) ; 상량(商量). 알음알이.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심월(心月) ; 마음의 달. 밤의 어둠을 비추는 달처럼 밝고 깨끗하게 닦인 마음으로 실상을 밝게 아는 ‘지혜’를 비유한다. 대상을 비추어보는 마음 자체를 나타내보이기도 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꺼갱이 ; ‘지렁이’의 사투리.
*해치깡 ; ‘수채, 시궁창, 늪, 진흙, 해감’의 사투리. 해초, 해초깡, 해치 등도 같은 뜻의 사투리이다.
*수륙공해(水陸空海) ; 물[水]과 육지(陸地)와 바다와 같은 하늘[空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과약(果若) ;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알고 보니 정말로.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난조지상(難遭之想 어려울 난/만날 조/갈 지/생각 상) ;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도병겁(刀兵劫) ; 중겁(中劫)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도병겁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만 여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도병재(刀兵災) · 도재(刀災) · 도병중간겁(刀兵中間劫)이라고도 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혼(夢魂) ; 꿈속의 넋.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일구난설(一口難說 한 일/입 구/어려울 난/말씀 설) ;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서 한[一] 입[口]으로는 다 설명(說明)하기 어려움[難].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⑩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범망경(梵網經) : 이 경은 범어나 파리어(巴利語 pali)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백이십 권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 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 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만을 번역하여 상•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상권에는 심지 법문(心地法門)을 말하였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 경구죄(輕垢罪)를 말하였는데, 경구죄란 것은 중대한 죄악은 아니나 깨끗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뜻이다.
보살계는 심지 법문을 주장하는 대승계이며 성계(性戒)이다。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律部)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들게 된다.
이 경을 해석한 글이 많지마는 신라의 대현(大賢)이 지은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과 원효(元曉)의 <사기(私記)> 2권과 의적(義寂)의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상•하권 같은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 법문.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계(戒)의 상(相). 계율에 대한 생각. 그 계상(戒相)의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권10 제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어름어름하다 ; ①말이나 행동을 똑똑하게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꾸 우물쭈물하다. ②일을 대충하고 눈을 속여 넘기다.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미래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함.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미래불(未來佛) ; ①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彌勒佛)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예정되어 있다.
②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가능성을 가진 중생을 일컫는 말.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애, 여러 가지 수행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중생을 미래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기(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사상(事象 일 사/모양 상) ; 관찰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과 현상(現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찌깽이 ; ‘찌꺼기’의 사투리.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 사료간(四料揀)의 하나.
*사료간(四料揀) :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人)은 주체로서의 자기(自己)。경(境)은 객관(客觀)。탈(奪)은 부정하는 것.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p208. 212.
〇四料揀(사료간)
奪人不奪境(탈인불탈경)은  待下根(대하근)이요  奪境不奪人(탈경불탈인)은  待中根(대중근)이요  人境兩俱奪(인경양구탈)은  待上根(대상근)이요 人境俱不奪(인경구불탈)은  待出格人(대출격인)이라.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하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고,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중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며,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은 상등 근기를 다루는 법이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격 밖의 사람[出格人]’을 다루는 법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8. 1. 9. 11:0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7호) 만공스님 인가.

**전강선사(No.014)—전강선사 일대기 제7호(경술1970년 12월 10일 새벽. 음)

 

(1/5) 약 21분.

(2/5) 약17분.

(3/5) 약19분.

(4/5) 약20분.

(5/5) 약18분.


(1/5)----------------

초옥무삼벽(草屋無三壁)이요  노승죽상선(老僧竹床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산사면우(靑山四面雨)인디  정중천년몽(定中千年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 도인(道人)의 청빈(淸貧) 생활이다.
도(道) 닦는 우리 도인들은 청빈이여. 아주 ‘깨끗 · 맑을 청(淸)’자, ‘가난헐 빈(貧)’자. 아주 깨끗허고 가난혀.

부귀 밖에, 권리 밖에, 지위 밖에.
향당(鄕黨)도 여의어 버리고, 가족도 다 그만 사별해 버리고 이렇게 외로운, 고독헌 객이 되아 가지고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 산 높고 물 널룬 것을 꺼리지 않고, 관계허지 않고.

집도 절도 없는 것을 도무지 관계없이 모도 이런 데 이렇게 토굴 하나 지어놓고 이렇게 모여서 야삼주삼(夜三晝三)에, 밤이나 낮이나 도 닦는 마음!
이렇게 깨끗허게 도 닦는 마음. 청빈이여! 가난허고 깨끗혀.

사면(四面)에 무삼벽(無三壁)이다. 사면에 삼벽이 없어.
아무 어디 뭐, 벽(壁)이 서이 다 없으니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구나!

이렇게 모인 이 자리에서 도밖에는 닦을 것이 없어. 아무리 해 봤던들 도밖에, 도 닦는 마음밖에는 없다. 아무것도 없지.

사면에 우급(雨急)이여. 사면에 들입대 그저 모도 비밖에는 오지 않고, 험악헌 눈밖에는 오지 않어.
비 오고 눈 오는 것은, 모도 그저 이 세상 풍파 속에 사바세계(娑婆世界) 이 모도 그 기가 맥힌 괴로운 속을 말헌 것이여.

정중천년몽(定中千年夢)이다. 정(定) 가운데 가만히 화두(話頭) 하나를 들고서는 천년 꿈같이, 꿈속에, 꿈에 뭐 아무 무슨 세상사에 무슨 뭐 실무애착(實無愛着)이지. 무슨 애착이 있는가?

다맛 정중에서... 인자 무량만겁(無量萬劫) 어서 속히 성불(成佛)해서, 오늘 당장 그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해서, 오늘 성불해서 그저 곧 중생 제도허면사 그런 다행이 없지마는, 왜 허지 않고,
다맛 철두철미허게 헐지언정, 각(覺) 깨달을 마음을 두느냐. 어서 못 깨달은 걸 한탄하고, 어서 헐려고 급속심을 두느냐.

그러헌 급속심(急速心)도 다 내버리고, ‘늦게 발심(發心)했다’는 마음도 다 그만두어 버리고, 오늘부텀 믿었으니, 오늘부텀 도를 닦는 학자가 되았으니, 닦아 갈지언정...

처억 그 믿는 마음, 제일(第一)에 신근(信根)이다. 처음에 들어와서는 믿는 마음, 철저히 믿는 마음.
‘나 찾는 법을 믿지 않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다시는 이 법밖에 없구나!’ 믿었다.

믿었지마는 분심(憤心), 분헌 마음이 있어야 헐 것이다.
원! 세상에 여태까지 나를 내가 알지 못허고 살다니! 이게 무슨 꼬라지인가.

나를 모르고 살아온 동안이 이거 얼마인지, 몇 년인지, 몇천 년인지, 몇억만 년인지, 시간 뭐 공간 아무것도 알들 못허고는 이렇게까지 미(迷)해 와. 이렇게 미래구의(迷來久矣)여.
안 분헐 수 없지. 참말로 분허다. 분심(憤心).

분심이, 아무리 또 철저히 허지마는 의단(疑團)이 없으면 안된다. 절대 화두를 들고 의심(疑心)이 있어야 하느니라.
화두에 의심이 없으면은 시위대병(是爲大病)이다. 화두에 의심이 없으면은 제일 병이다.

신심, 분심, 의심, 삼요(三要)다. 세 가지가 제일 중요허다.
구궐기일(苟闕其一)이면, 그 하나만 궐해도, 신심이 없던지, 신심은 있지마는 분심이 없던지, 그 다음에 의심이 없던지 허면은 세 가지가 다 못쓴다. 세 가지 고놈이 똑같이 중대헌 놈이여.

절족지정(折足之鼎)이 종성폐기(終成廢器)니라.
솥이 발 서이래야 되지, 발 하나만 없어도 못쓴다. 걸어 놓으면 그만 기울어져 버리고 가라앉어 버리고 안 된다. 고 셋을 꼭 갖춰야 헐 것이니라.
도 닦는 디는 고 삼요여. 세 가지 요긴 헌 것이 신심이요, 분심이요, 의심이드라.


“여하시(如何是)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인고?”
생사해탈법이 서천(西天)에서, 서역(西域)서 왔으니까 서래의를 물은 것이여. 서래, 그때는 그 인도(印度) 모도 저 서래(西來) 아닌가. 서쪽 아닌가, 여그서.
확철대오(廓徹大悟)헌 생사 없는 대해탈법이 서쪽에서 왔으니까 서래의를 묻는 것이여.

“그 서쪽에서 온 그 뜻이 어떻습니까?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자 이빨에 털이 났느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느니라”

그 원, 세상에 그... 따지면 그 뭐 아무데나 붙일 수 있제. 수수꺼끼, 아(兒)들 수수꺼끼처럼.
뭐 수수꺼끼나 뭐 다를 것이 무엇이 있어.

수수꺼끼 그녀러 것, 그것 참 처음에 들어 보면 깜깜 알 수 없지. 그러지마는 그 따져서 모도 붙여 보면은 다 알 수 있는 것이여.
허지마는, 그 수수꺼끼 그거 천 개, 만 개를 다 알아 봤던들 그 뭣허는 것이여? 따져서 모도 아는 것이니.

이리저리 생각해 마음으로 따져서 아는 것은 소용없다 그말이여. 그걸 해석이라 그래.
모도 해석해서, 모도 생각을 붙여서, 뉘기 짜서 아는 것 가지고는 소용없어.

그러기에 지지일자(知之一字) 중화지문(衆禍之門)이여. 아는 것이라는 것은 중화(衆禍)의 문이여.
아는 걸로는 소용없어. 참선법은 그게 아니여.

‘어째서 판자 이빨,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조주 스님이 그렇게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으니,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법상(法床)에 올라올 때마다 내가 해 주지. 왜 이래?
이놈을 가지고 모도 대중이 지금 철두철미허게 정진해 나가니까, 이걸 해 줄 수밖에 없지. 제일 중요헌 것이니까.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저 나무 판자 말이여, 나무 판자. 나무로 썰어 논 판자 말이여!
‘판자 이빨에 터럭이 났다’ 어떤 것을 판자 이빨이라 하며, 판자 이빨에 뭔 털이 나? 털이 왜 거가 나?

원 당최, 세상에 거 뭔 소리냔 말이여? 무슨 뜻이여?
알 수 없구나! 알 수 없는 그 의심. 알 수 없는 걸 의심이라고 안해?
가령, 사람을 내가 하나 잊어버렸는디, 그 사람이 도망갔는디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을까?’ 간 곳을 알 수 없다.

‘응! 그 사람이 아무 디가 있을 것이다. 거그 있는가?’ ‘아무 디 찾아가면 거 있을 것이다. 아! 거그는 저, 어디 무슨 지리산 가 있을까?’ 고렇게 따지지를 말어.

그 사람이 갔는데, 어디로 갔는고? 알 수 없구나.
‘어디로 갔는가? 금강산으로 갔는가? 태백산 속으로 들어갔는가?’ 이렇게 분석허지를 말고.
‘어디로 갔는고?’ 알 수 없어. 그저 무조건 여하약하허고 알 수 없다.

수참활구(須參活句)언정, 수참참구(須參參句)언정, 모름이 참구를 헐지언정—참구, 참구헐 참자, 연구헐 참자.
수참활구언정, 활구를 참상(參詳) 헐지언정. 참(參)이여, 참(參). 참의(參意)가 아니라, 참이여.

참의(參意)라는 것은—참구와 참의와 달라. 참구(參句)라 하는 것은 그대로 활구(活句)여, 그것이. 살 활(活)자, 글귀 구(句)자, 활구여.
활구를 참상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상허지 말어라.

사구라 하는 것은 그건 내가 먼첨 죽고 남 죽이는 것이여, 그거. 천하에 못쓴 것이 참선에 사구다 그말이여.
사구라 하는 것은 모도, 아는 것이여. 이치도 있고, 모든 이치가 거그 들어 붙고. 모도 아는 것이고, 모도 해석해서. 그것이 선(禪)이 아니여, 참선이라는 것은 그걸 선이라고 안 혀.

허니, 탁! 맥혀서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을 활구(活句)락 햐.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 당장에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도리를 알 수 없지.
그 도리를 알 수 없는 것이 조주의 뜻이니라. 조주의 뜻이여.

‘어째서 조주 스님은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그 조주의 뜻을 찾는 것이,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는 놈을 알 수 없는 것이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난 놈이 다르고, 조주 스님의 뜻이 다르고, 요리 가서 찾고 조리 가고, 그거 못써. 그걸 참의(參意)라 햐.
‘조주 스님 뜻은 무엇이여, 판대기 이빨에 털은 무엇이며, 그건 다른가 어쩐가?’ 모도 참의여.
참구(參句)가 못 되고 참의(參意)여! 활구가 못 되고 사구여!

요것을 분간해서, 화두를 똑! 한 밥 먹을 동안을 허드래도 고렇게 야물딱지게 다루어 들어가야 혀.

화두 잘못허면은, 화두병 들어 버리면은 그만이니까.
무슨 공부여. 공부는, 무슨 공부가 그런 공부가 있나? 그건 소용없는 공부여.

이치로 모도 그 수수꺼끼 같은 거, 왜 그런 것도 처음에 들으면 꽉 맥혀 모르제. 그놈을 자꾸 상량(商量)허면은, 사량(思量)을 붙이면 그만 알거든.

인방(寅方), “호랭이는 질고, 용단(龍短)이라. 용은 짜룹다. 그게 무언 뜻이냐?”
아, 그놈의 것, 용은 지드란헌 지드란헌 배암 같이 생긴 진 놈이고, 호랭이는 쪼끄만헌 짜룬 것인디, 어째서 호랭이는 질고 용은 짜룹닥 했는고? 아, 그거 알 수 없거든.

그것 따져 보면 안다 그말이여.
용단(龍短)이다. 용이라 하는 것은 진방(辰方)을 용이라 햐, 진방.
동서남북에 방우가 다 있어. 열두 방우가 있지 않어? 자축인묘진사오미(子丑寅卯辰巳午未)...

진방이 거, 용 진(辰)자, 진방. 용(龍)이라고 헌단 말이여.
진방에서 해가 뜰 때에는 해가 자룹고, 인방(寅方)에서 해가 뜰 때에는 해가 질다 그말이여. 그러니께 호랭이는 질고 용은 짜룹다 그말이여.
그놈을 갖다가서 “무엇이냐?” 물으면, 따지면 알거든. 그 방우를 따지면 아는 그런 것이여.

“퇴깽이 알을 닭이 집어먹는다. 그 무언 뜻이냐?” 아, 그거 설찬히 어렵다 그말이여.

그 생각해보면 또 그것도, 퇴깽이는 묘방(卯方). 동방(東方)이 묘(卯)거든. 동쪽이 묘니까, 묘에서 해가 올라와 가지고, 퇴깽이 알이란 말이여.
저 유방(酉方)으로 넘어가거든. 해 넘어가는 데 유방(酉方)이니까. 유방, 닭이 집어먹는다 그말이여. 퇴깽이 알을 닭이 집어생킨다 그말이여. 아, 거 모도 설찬히 수수께끼라도 그렇게...

그렇게 따지는 건 절대 아니여, 선(禪)이라는 것은.
또 그러고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그대로 딱!

내가 어제 아침에, “그 꿀 먹을 때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 가겄느냐?”
“달다!”

내가 도장원(都壯元)했다고 안혀? 내가 도장원했다고 안혀?
역사적으로 도장원이지! 당시에 어찌 바로 해 놨는데, 아니라고 헐 수가 있는가? 못 하지.

그, 고렇게 공안이란 게 딱! 조사관(祖師關)이란 게 백혀 있어.(처음~21분23초)


 


(2/5)----------------

조사관은 도무지, 뭔 데서 갖다와서 무슨... 어떻게 무슨 저... 뭐락 하노? 그 출처(出處)같은 거, 그런 것도 없어.
출처가 어디 그 조사관에 가 출처같은 것도 소용없는 것이고, 어록같은 것도 소용없는 것이여.

다맛 조사서래의에 딱! 답해 논 것이 ‘판치생모’여. 그 조사관 딱! 해 놓은 것이여.

내가 한암 스님한테 터억 참 여지없이 그놈 그...
그놈을 내가 일렀으면 허지마는, 이를 수가 없어. 그런 것은 아주 드러나 버리기 따문에 학자(學者)를 위해서 헐 수가 없어.

선사도덕(先師道德)을 중히 여긴 것이 아니라,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서 설파(說破)치 말아 줍소사.
그런 거여. 진실헌 학자가 그 남의 살림살이 무엇 허게? 남이 일러서, 남이 딱 해논 것을 내가 무엇 허게?

내가 바로 깨달라서, 자각해서, 내가 증(證)헐 일이지, 남 살림살이 갖다 뭣혀?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허면, 날이 맞도록 남의 보배만 세면 뭣 헐 것인가.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이여. 제 돈 없어 돼? 거, 못혀.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허는디,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고 했지마는, 바리때 전헐 수가 없다. 어떻게 너는 답을 했으면은, 일렀으면은 인가(印可)를 네가 받겄느냐?”
그런디 거그 대해서 수수 천 답(答)이 있어, 천 답이! 다 했지마는 “아니다”

오종가풍 석상 스님 답에 “아니다” 이려.
다 아니라고 했는데, 마지막 인가 받아 간 답이 있어. 고놈이 딱 붙어 있는데, 그 답이 아니면은 백억 답이라도 소용없어. 이런 공안이 있어.

아, 그놈을 내가 바로 찾아 탕! 이르니, 물팍을 탁! 칠 밖에 더 있어?
그렇게 답했으니 무슨 의심이 있으리요.

혜봉 스님한테 인가 받아. 혜월 스님한테 가서 ‘공적영지(空寂靈知), 영지공적영지 등지(等持)’ 답해서 인가 받아. 아! 이거, 뭐 조꼼이라도...

여기에 모도 모여서 시방 온, 모도 여그 올 삼동(三冬)에 지낸 학자들, 아! 여그 여러분들,
뭐, 늦게 나왔지마는 그동안에 다 댕김서 들어도 알았을 터이제, 못 들었어? 뭐, 다 들었을 터인디, 뭐 그걸 못 듣고 있어?

그 다음에 용성 스님한테 처억 가서 또 여지없이 제일구(第一句) 답, 천하에 제일구 답...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공산에 무렴 스님이—아! 여그 일호 스님이, 일호가 아는구만 그려. 무렴 스님, 노스님이라고.
무렴 스님이 그때 공부 잘헌다고 아주 한국에서 다 이름난 분인데, 그이가 제일구 답을 했다고.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야?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허느냐?”
이 답이 제일 했다고, 장원헌 장원 답이여, 그것이. 장원(壯元) 답이여.

내 답 나온 뒤에는 쑥 들어가 버렸제! 내가 제일구 어디 일렀나?

용성 : “영신아! 제일구를 일러라. 어떤 것이 제일구냐?”
영신(전강) : “예?”(높은 음성으로)

용성 : “어떤 게 제일구여?”
영신 : 박장(拍掌) 가가대소(呵呵大笑)지.(손뼉을 치며 “허허!”)

용성 : “아니다”
영신 : “여하시 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 머냐 ‘예?’와 이것 ‘예’와 달러. “예”

“영신아!”
“예”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또 박장(拍掌) 가가대소(呵呵大笑)지.(손뼉을 치며 “허허!”)

그거 내가 일렀어. 딱딱 있제. 그거 다 답해 논 거, 내가 낱낱이 다 말하지.

용성 : “전신(轉身)을 못했네”
영신 : “전신구를 물읍소사”

용성 : “여하시 전신구냐?”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아! 그래서 그렇게 그때는 쾌히 “옳다!” 그런 말은 없이 방장(方丈)으로 가셨지마는,
그 뒤에, 뒷 날에 “하!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 속은 것을 대중께 공포했으니.

동산 스님이 “왜 그 영신이 무엇이라고 그런, 무엇에 속았다 하십니까?”
“흥! 자네가 영신이 그 답을 알겠는가?” 이렇게까장 허신 것이 있고. 머냐 다 해 마쳤거니와, 여까장 두고.


한암 스님한테 그 답을 처억 헌 뒤에는, 여름을 마치고 어서 만공 큰스님한테를 가서 한번 내가 인자...

본래 거기에 가서 공부를 두 철째, 첫 철은 직지사에서 허고 두 철째 그 애를 쓰다가, 그만 중간에 ‘견성했다’고 한번 허고 생혼(生魂)이 나고,
만공 스님한테는 그때 별 방맹이 뭐 별일 없었지마는, 보월 스님한테 원청 혼이 나고는 산철에 나와 가지고, 인자 그만 그 산철에 곡성 동리재 넘어가다가 견성했다고 인자 그때부텀 나서 가지고는.

아! 그래 그렇게 죽을 지경 되아, 몸은 당최 백지장(白紙張)같이, 어떻게 피를 다 흘려 버렸든지 몸뚱이 핏기 한점 없어. 그러지마는 말아 버릴 수가 있어야제.
기운이 원청 없어. 피 기운으로 사는데 피를 다 쏟아 버렸으니, 공부 잘못해 가지고는 그만 피를 다 쏟아 버렸으니 공부헐 기운이 있어야지.

그 사람 몸뚱이는 피가 제일인가 보드구만. 피 그놈, 피 기운 아니면은 살 수 없는 것이여.
걸음도 조금도 못 걷겠어. 그러고 피 기운이 없으니깐 어려도 숨이 가빠. 당최 숨이 가빠서 헥헥 쉬고.

도무지 뭐 어찌 헐 수 없지마는, 원청 그만 내 딴에는 더 발심(發心)헐 수 없이 했거든. 여지없이 발심을 했거든.

이까짓 놈의 몸뚱이 가지고 이것 무슨 뭐 병이 없다고 해서 믿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병이 있으면은 곧 죽을 놈의 몸뚱이니 더 해야지. 어서 해야지, 그녀러 것.
에라, 이놈의 것! 병 들었으니 죽음으로 더불어서 같이 작정허고 그만 해 버렸어. 꽉 깨물고 그만!

수혈을 해야 사느니, 뭐 뭣을 해야 사느니 허지마는, 뭐 피를 어디가 넣을 거여? 어디 가 사 넣어? 그때.
무슨 돈이 있으면 누가 나를 위해서 수혈해 줄 누가 있나? 내, 바래지도 안 했고.
빼짝 그냥 얼굴만, 가죽만 남아 가지고는 그래 가지고는 허제. 한시인들 놓아?

그러기에 내가 늘 말, 부탁이 그것이여.
여지없이 발심을 해야사 신심이 거그서 일어나고, 분심이 거그서 일어나고, 거기에서 의단이 일어나제. 발심을 못허면 소용없느니라 그말이여.

발심 못허고 괜히 들어와 가지고, 넘 참선허니깐 참선 좀 해 본다고 며칠 허다가 ‘에, 그녀러 것! 안 된다’고, 망상이나 퍼일어나고 잠 오고 허니까 집어 내던져 버리고 응, 그만이여.
그래 가지고는 청정헌 대중에 같이 규칙을 좀 지키고 잘 맹렬히 허들 못혀. 자연히 그만 그 발심이 안 되아 놓으니까.

생사의 무상헌 마음이, 죽고 사는 이 생사심(生死心)!
그 생사! 인생이라는 건 이 몸 얻어 와 가지고 곧 이 몸뚱이 내버릴 그 생사심.
받아와 가지고 내버릴 걸 생각하니 세상에 이렇게 무상(無常)해. 갈 바도 모르고 올 바도 몰라.

눈 감으면 죽었다. 그만 뚝 떨어진 곳이 무서운, 그놈의 감옥은 참말로 무서운 감옥이다. 그 지옥 감옥이란 게 어떠헌가?
이같은 뭐, 뭐 우리 이 몸뚱이 가지고 죄 지어서 가는 감옥 같을까니? 그 감옥은 참 기맥히다!
몸뚱이도 없는 업신(業身), 죄몸뚱이가 들어가지마는, 나올 수 없다. 도저히 못 나오는 놈의 감옥.

온 곳도 컴컴헌 어느 세상에서, 무슨 감옥에서 겨우 나와 가지고 이 몸 하나 얻어 가지고는 또 이 오탁, 사바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는 감옥 아닌가? 이 감옥에 들어와 가지고 또 인자 전근(轉勤), 그 전근 가는 거 아닌가?
이 감옥 내버리고는 인자 또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는 놈의 감옥은, 변시신후지감옥마(便是身後之監獄麽)? 이 몸뚱이 내버린 뒤에 감옥을 아느냐? 백 배나 더 무서운 놈의 감옥이 있다 그말이여.

요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사대(四大) 색상, 색신 몸뚱이, 이놈을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놈의 사바세계에서 맨 사는 전체가 우리도 뭐 고통이지, 뭐 고통 빼놓으면 뭐 있나? 맨 고통뿐이제.

‘아주 요까짓 몸뚱이 하나 얻었으니 고통 없다’
없는가? 이것도 감옥이여.

뒷 감옥, 참! 무섭다.
포구발심(怖懼發心)을 혀. 두려운 응, 포구발심. ‘두렵다, 무섭다’ 그말이여.
이 몸 내버린 뒤에 그 무서운 감옥으로 처백힐 걸 생각해봐. 무섭다!

그래, 포구발심을 제일 쳤어.
발심만 해버리면은 설사 이 몸이 죽게 되아도 화두를 안 헐 수가 없어!

‘사부득활(死不得活)이다. 죽어 가지고 살지 못헐까 두려워허지 말아라. 활부득사(活不得死)니라. 살아가지고 죽지 못헐까 근심해라’ 고인(古人)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

한번 죽을 고비에 들어가야 되느니라.
설사 공부허다가 그런 피가 좀 나와서 몸뚱이에 피 한 방울 없다고—목숨 붙어 있는 동안에는 해야제, 안 해 될 것이냐 말이여. 참으로 해야 한다!

병이 나고 더 죽을 지경이 있다 하드래도 더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라. 병으로써서 스승을 삼어라. 병 있다고 내던지고 말면 어찌 될 것이냐. 참말로 꺼꾸러지는 곳인디.
거그서 맹렬헌 마음을 가져라! 맹렬헌 마음이다마는, 분심(憤心)도 거그서 가져. 거그서 의심은 절로 일어난다.

내가 나를 몰랐으니, 내가 내 면목(面目)을 몰랐으니 알 수 없는 그놈이 내나 해야 조사관(祖師關)이여.
조사관 꽉 맥혀 알 수 없는 게 ‘판때기 이빨에 털났다’는 놈이, 고놈이 바로 탁! 깨달으면은 불조(佛祖)의 패궐처(敗闕處), 부처님의 얼굴을 바로 잡아 내는 것이고, 조주 스님의 면목을 바로 깨달라 아는 것이고, 내 면목은 그대로 나오는 것이여.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은 거그서 출현헌다 그말이여.


만공 스님한테 척 내가 벼르고 벼르고 인자 참, 최후로—한국 선지식(善知識) 스님은, 볼 선지식은 내가 다 보았으니 만공 큰스님한테로 척 왔다.
와서는 쾌활허게 여지없이 큰스님한테 인자 참, 인가 받고는 한국 선지식한테 인가 다 받았으니 인자는 내가 그때 가서는 어떻게 될른지, 병을 낫우든지 어쩠든지...

그렇게 병에 걸렸지마는, 속으로는 참! 또 이상스럽게 좋다 그말이여.
그놈 아니였었으면 그 몸뚱이 가지고 그만 정신에 끌려서, 정신에 고로워서 그대로 죽었을 것이여.

그놈에 그만, 아! 그 병 들어 가지고 글쎄 백지장같이 되아 가지고 그렇게 가다 얻어먹고 나가다가, 아! 그 소식을 얻었으니.
그 한번 바로 얻어 봐야제, 따져서 분석해서 ‘요것인가?’했다가는 큰일나! 뭣 헐 꺼여?(21분24초~38분22초)

 

 



(3/5)----------------

아미타불(阿彌陀佛) 부르는 사람이 ‘아미타불밖에 없으니,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은 극락세계 간다’ 이렇게 믿고는 고성염불(高聲念佛) 헌다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러고 앉었지.
그 부르면서 그 속에는 아미타불 한마디 부른 가운데에 구백 생멸심(九百生滅心)이 거그 그 속에 들어 있다. 온갖 분별심이 거 다 붙어 있네.

멸업장진언(滅業障眞言) ‘옴 아로륵계 사바하’ 업장 녹인다고 “옴 아로륵계 사바하, 옴 아로륵계 사바하”
그놈 소리, 고성염불 소리에, “아로륵계 사바하, 아로륵계 사바하” 뭔, 저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이 부르는 속에 가서 미세헌 생사념(生死念)이 꽉 들어찼네. 이것을 알아야 혀.
그러니 그 “구피변(口皮邊)으로, 입껍데기로 헌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느냐?” 그랬거든. 그 이익이 없어.

경을 읽드래도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불재사위국(一時佛在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그거 뭣이여?
심불반조(心不返照)면 간경무익(看經無益)이니라. 네 마음 네가 한번 반조(返照)를 못허면은, 알 수 없는 놈이 반조여.

내가 나를 몰랐으니까 아지 못헌, 알 수 없는 놈을 하나 추켜들어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거기에는 그 미세한 가리같은—가리 찌클으면 부우 허데끼—고러헌 망념(妄念)이 없어.
알 수 없는 의심이래야 중생념을 항복 받는 것이지, 그 이외에는 없는 것이여.
그래서 그 의단독로를, 구피변을 제일 말했거든. 입껍데기로만 말어라 이 말이여.

그래서 ‘옴마니반메훔’이라든지, 정상화불수(頂上化佛手) 주문(呪文)이라든지, 팔만사천 주문 읽는 법이 거, 고성지(高聲持)가 있지. 소리 높여, 높을 고(高)자, 소리 성(聲)자, 가질 지(持)자, 고성지가 있고.
그 다음 미성지(微聲持)가 있고, 가늘 미(微)자, 소리 성(聲)자, 가질 지(持)자, 미성지가 있고. 그 다음에 유가지(唯加持)가 있고, 오직 유(唯)자, 더할 가(加)자, 가질 지(持)자, 유가지가 있고. 그 다음 금강지(金剛持)가 있어, 금강지. 금강지라는 것이 그것은 뭐...

“옴마니반메훔” 그것 고성지고, 내 귀에만 들린 것 (작은 목소리로)“옴마니반메훔” 그것 미성지고, 유가지라 하는 것은 셋바닥도 동(動)치 않고, 설근(舌根)도 동치 않고 헌게 유가지고, 그 다음에 금강지여.

금강지라 하는 것은, 당초에 금강지라는 것은 셋바닥이고 무슨 뭔, 동치 않고 동허고...
거그는 천성(千聖)도 불식(不識)이여! 불불(佛佛)도 불상견(不相見)이여!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여! 금강지라는 것은.
‘금강지로 들어가야 헌다’ 해 놨어. 그러니 그게 바로 곧 그 선(禪)보담도 더 혀. 그 밀(密)이여. 밀교(密敎)라는 게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여.

그래 가지고는 처억 그 관법(觀法)이 있는디, 이사무사지묘(以思無思之妙)다. 생각으로써 생각 없는 묘가 있어. 그 헐래야 못허는 것이여.
반사영염(返思靈焰)에 무궁(無窮)이다. 도리어 영염(靈焰)에 신령스런 불꽃, 영염에 무궁을 관한다. 영염무궁(靈焰無窮)을 관한다.

또 그 생각도, 사진(思盡)이 환원(還源)이다. 그 생각이 다하여 근원에 돌아가느니라.
그 근원이 어디가 근원인가? 근원이 어디인디 근원으로 돌아가는가 말이여?

생전 해야 그건 중생념으로 되지 않어! 관법과 반조법(返照法)과 다 그려. 이렇지. 어떻게 허는 것이 불...
허니, 우리 중생은 성상상주(性相常住)해서 사리불이(事理不二)헌 곳이 어느 곳인가 말이여?

그 나가상정(那伽常定)이니라. ‘나가상정에 들어온다’허는 게, 그것이 참으로 바로 돌아가는 귀향처인디, 구경처(究竟處)인디 어떻게 혀? 중생념으로 되아?

이 중생은 도무지 눈만 뜨면, 잠만 잘 것 같으면 제팔 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에 가 딱 잠겨서, 근본식(根本識), 근본무명(根本無明)에 가 딱 주저앉어 잠겨 가지고는, 천지(天地) 분간(分揀) 아무것도 모르고 매(昧)해 버리는 건디.

거그서 일념이 나올 것 같으면은 그만 육식(六識)으로 벌어져, 육정(六情)으로 벌어져 육근의식이 되아 가지고는, 그 육백 생멸심이 퍼일어나 가지고는 전부 생멸심 뿐인데 어떻게 헐 거냔 말이여.
거, 그래 가지고는, 그걸 가지고는 뭐 아무리, 뭐 지성으로 해 보고 그대로 되는가?

‘옴마니반메훔’을 많이 많이 부를 것 같으면은 그만 부귀, 굉장헌 부귀를 헌다 했어. 어디 그 되나?
정상화불수(頂上化佛手)는 칠 일만 헐 것 같으면은 아, 그만 육신통(六神通)이 막 난다 했어. 그 되나?
미쳐 버리지. 중생견(衆生見)으로 되냐 그말이여? 벌써 금강지를 턱 들어가서도 그와 같은 관법이 있는디.

허니, 우리 범부선(凡夫禪)이라는 것은 범부는, 우리 지금 중생이라 하는 것은 그저 이 말세선, 우리도 지금 말세선이여. 이 말세선이기 따문에 말세(末世) 학자라는 건 상근이 없어.
뭐 상근(上根) · 중근(中根) · 하근(下根)이 언제는 있고 언제는 없으리오마는, 헐 수 없이 또 그놈의 말세가 있어.

말세 중생이라는 것은 너무 간혜(乾慧)가 많아. 마른 그 간혜가 너무 많여. 간혜 많은 것이, 너무 퍼떡 퍼떡 잘 아는 것이 그것이 하근이여.
상근대지(上根大智)는 분석, 따지는 게 없어! 그만 막 들어가지. 그대로.

허니, 우리 하근 중생이 어쩔 수 없어! 화두밖에는 없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版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그놈의 중생념 속에, 중생 그 망상 번뇌 속에서 요것 하나를 처억 그놈을 어떻게 만들아 가지고, 받아 가지고 해볼라니 되냔 말이여? 죽어도 안 되는 것이 그뿐이다.

오직해야 ‘역수탱주(逆水撑舟)니라’
물을, 들입대 흘러가는 기맥힌 급류 중에, 급허니 흘러가는 물에 사람이 거그 발자취도 거그 뭐 대보지 못헐만헌 그러헌 그 급류에 배를 끄집어 올린 것 같다.

그러니 왜 그렇게 안 될 꺼여? 화두가 왜 그렇게 도망가?
유구유원(悠久悠遠)이여. 더욱 멀어져. 헐라고 허면 더 멀어져. 아! 이런 화두를 끄집을라면 더 멀어지네. 이런,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왜 그렇게 안 된 원인이 뭐냐 이말이여.
그렇게 화두가 안 들린 원인이라는 것은 뭐냐 허면은 이 못된 중생념—그 살생이나 하고, 도둑질이나 하고, 사음 음행질이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고, 두 가지 양설(兩舌), 그저 악구(惡口), 고런 놈의 습기(習氣), 그저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
이 십악(十惡) 그 중죄짓는 버르쟁이, 그 마음 고놈으로써, 일어나는 마음으로써 퍼진 고놈이 전면의지(纏綿意地)해서—뜻 땅에, 내 뜻 뿌럭대기가 꽉 솜처럼 때리 얽허져 가지고는 그놈 조금 잠복시켜 놓고 화두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해도, 그놈이 그만 도로 퍼일어나.

이놈의 것은 도무지 백억천만 겁에 내 생겨난 때가 없이 오면서 지어 논 놈의, 그놈의 그만 그 번뇌 망상이 그놈이 뒤끓어 일어나니,
도모지 화두를 추켜 들라면은 그렇게도 급류 중에 배 끌어올릴라 헌 것처럼 조금 이러면, 한 일 고쯤 끄집어 올려 놓으면 십 고나 물러가고, 십 고 끄집어 올려 놓으면 백 고나 물러가고, 이놈이 이렇다 그말이여.

허지마는, 불가불 이 말세 학자가 닦을 것은 선(禪)이여.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났다 했는고?” 의심, 알 수 없는 놈만 찾어.

안 되면 또 허고, 안 되면 또 허고, 안 돼도 또 해서 물러가지 말어라.
그 신심(信心)만 물러가지 아니허면, 참으로 발심해서 그 철저헌 신심만 물러가지 아니헐 것 같으면은 수불견성성불(誰不見性成佛)이냐? 누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할 꺼냐?
허! 물러가지 아니허면 다 된단 말이여.

허니, 처음에 화두학자가 처음 들어와서, 한 사나흘이나 한...
여그 선생님도 저 봐. 아주 참, 세상에서 아주 강연도 참, 웅변대회에서 제일가신 선생님이시고, 학교 선생님도 여태까장 수십 년을 해 나오시고 또 다 저 종교계에서 근 20년 동안 종교를 참, 그렇게 도를 닦아 오셨지마는, 무척 깊으라니 연구를 많이 허셨어.

그래 가지고 저렇게 오셔서 지금 참말로 이... 그래도 참선은 아마 그렇게 몇 철을 앞두고 해 보시지는 안 했는가 어쩐가 말씀은 그러지마는, 또 많이 허셨는지도 모르제.
이렇게 오셨지마는, 마음은 그저 한 일주일에 그만 일 마치고, ‘참선법이 참말로 그와 같이 깨달은 법이 있다면은 내가 일주일 동안에, 일주일 꺼리 밖에 될 것 뭐 있나?’
그래가지고 한 일주일 한번 해 보신다고 어저께 오셨는디 아, 이렇게 오셔서 엊저녁부텀 무척 고생을 하셨겠지.

그같이 편안헌 방에서 잠 편안히 잘 주무셨을 것이고, 좋은 그저 참, 이부자리 속에서 편안히 주무셨을 터인디, 여기에 오셔서 그만 같이 모도 한방에서 이렇게 고생허고 주무시고,
인자 앞으로 일주일 동안을 한번 저렇게 고생을 같이 해보신다고 밥도 같이 그만 그 반찬도 아무것도 없고, 또 아침부터 죽 자시고, 이것을 모도 저렇게 견뎌 가시면서 한 일주일 동안 해보신다고 하는 그러헌 용맹심(勇猛心)을 가지고 오셨는데. 무척 참, 그 용맹심 거룩헌 마음이시여.

“계시라”고. 이렇게 해놨는데.
일주일 동안에 한번 용맹심으로써 일 마칠 마음을 가지신 것이여. 허지만 일주일 동안에 못헌다고 해서 퇴타(退墮)가 있으면 안 된단 말씀이여.
또 일주일, 또 일주일, 그저 언제까지든지 일주일 일주일이 자꾸 계속되아 나가야 허신단 말씀이여. 여까장.

내 그저, 내가 그래 정성스런 마음으로써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여.

미국사람 같은 사람은 손이 오면은 반찬이 있건 없건 한 가지면 한 가지 채려 놓고 “정성껏 채렸으니 많이 잡사 주십시오” 우리 동양사람은 잔뜩 채려 놓고도 “반찬이 없지마는 많이 잡사 주십시오”
그래 동양사람 인사는 그 좀, 그 서양사람 인사만치 바르지 못혀. 그대로가 못 된다 그말이여. 모도 꾸며대서...
내 있는 대로 헌 말씀이여. 여까장 했습니다.


만공 스님께 와서 절을 척 했다.
대번에 와서 절헐 것 아니여? 그전에 모시고 있다가 나갔다 인자 휙 둘러서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를 해서 왔으니까.

절을 척 허니까 “심마물(甚麽物)이냐? 무슨 물건이 왔느냐?” 묻네.
절을 한 자리 해 놨으니까 또 절을 나붓이 했다. 절 두 번 했지.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똑같이, 조끔도 변태 없이.
그래 그때는 주먹을 불끈 들어. 아! 이런 놈의, 다시 의심 없이 주먹을 불끈 들었다.

허! 그만 거그서... 아따! 그때 그 큰스님의 얼굴! 그만 찌푸리시면서,
“저! 저렇게 체면없는 사람이 견성했닥 햐? 네, 습기(習氣)냐? 네가 그 무슨 체면이 없어 이러허냐. 무슨 짓이냐” 아따! 이러고는...

헌디, 나는 그래도 말이여. 나는 옳게 바로 일렀는데, 나를 그만 여지없이 방(棒) 주니라고 그런 줄만 알았어.
방맹이는, 그저 방맹이라는 것은 이 선문(禪門)에는 방할(棒喝)이니까, 방(棒) 아니면 할(喝)이니깐 ‘그저 학자 제접(提接)하는 법이 여차(如此)헌가 보다’ 그랬어.

그래놓고는 나는 그 나대로 ‘알았다’ 한다. 나대로.
나대로 그만, 하나 그런 거기에 구애없이 그만 내대로 이렇게 지냈다.

그다음에는 나를 보기만 하시면은 비웃어 버려.
“허!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했다 하니, 저것 참! 불법이 이것 말세 불법이 이렇게도 이럴 수가 있는가? 저 선지식 스님네 다 가서 모도 뭐 인가 맞고 왔고, 가 다 뭐 법문허고 왔다고 그런 자반대구(者般大口)를 벌려?”
아! 이러고는 늘 조롱을 허네. 한번 들어 조롱을, 한번 나를 갖다 이렇게 비웃어 주어.

또 두 번째 늘 그만, 뭐라고 말허면 “그 사람이 자네보담은 낫네” 아! 이래 주고. 뭔 말만 허면 이려!
아! 이런, ‘모도 나보담 낫다’ 해 버리고 나를 비웃어.

한 번 혀. 두 번 혀. 그래 따나덜 못혀, 갈라고 해도.
여지없이 다른 큰스님네처럼 인가(印可)만 척 해주면은 나는 거그서 인자 떠날 작정만 허고 있는데, 안 해 주어.

몸뚱이는 지금 뭐 당최 병이 들어서 그 피를 하도 쏟아서, 다른 병은 없는디 피를 다 빼 버리는 놈의 병이여. 그래 (숨이) 가빠서 못 살아.
그러니 어디 가서 무슨 약이라도 해 먹고, 어디 가서 무슨 뭐 별짓이라도 해 봐야 허겄는데, 인가를 해 주시야제? 인가를 안 해 주어.

“왜, 학자가 바로 깨달랐을 것 같으면은 어떻게 인가를 안 해 줄 수가 있나? 인가를 안 해 주어 봤던들, 내가 오히려 인가 안 해 준 사람이 학자한테 거 벌써 밟혔는데, 어떻게 인가를 안 해 줄 것인가”
아! 이렇게 말씀을 허다가 또 비웃다가. 이것 참! 큰스님이 그래싼게 안 되았어.(38분23초~57분32초)

 

 



(4/5)----------------

한 번 그려, 두 번 그려. 누차 그러니까 떠날 수도 없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러면은 네가 그렇게 다 깨달라서 알았다 하니, 저 매미가 저렇게 우는데 저 매미 우는 소리를 그만 두고, 우는 소리는 그 그만 두고, 매미 울음 나온 그 전(前)을 향해서 매미의 그 면목을 잡아오너라” 아! 그렇게 묻는다 그말이여.

그래 그 소리에 모도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가지 대답을 다 이렇게 헌디, 석암 스님이라고 있어. 이석암. 아! 이석암이라고 헌 이는.

“매미 마음을 잡아오면은 내가 한 택 내고, 매미 우는 놈, 그 소리 그만 두고 그 매미 울기 전의 그 마음을 못 잡아오면은 내가...
잡아오면은 내가 한 택을 내고, 못 잡아오면은 못 잡아온 사람이 한 택씩을 내라” 여름 산림, 해제 산림 끝에 그렇게 물었어.

물으니까... 내가 이 법문은 처음이여. 그거 뭐, 그런 것 그전에는 안 했어.

다 뭐라고 대답을 허고, ‘매앰 매앰’ 소리를 허기도 허고, 무슨 뭐 뭐 그저 모도 자기 멋대로 뭐라고 말헌디, “다, 매미 마음은 못 잡아왔다. 안 된다” 허고는.
이석암이라고 헌 이가 다 이른 뒤에 돈을 떡 가지고 와서, 돈을 그때 얼맨지 몰라. 돈을 상당히 얼매를 가지고 와서 앞에다가 돈을 척 놓고 “저는 한 택 냅니다” 그러고는 절을 척 허고 나가.
“아! 저 사람이 매미 마음을 잡아왔나?” 그러신다 그말이여. 그 말뿐이여, 다른 말은 없고.

이렇게 법문을 묻다가 그래 놓고는 “그 의지가 무슨 의지인고?”
아! 이래도, 그 전 같으면 뭐 당최 무슨 주먹을 못 내밀면 할(喝)이라도 한 번 헐 수 있고, 뭐 예배라도 허고 갈 수도 있고, 별짓 다 헐 수 있지마는 거 당최 대답 못하겠어, 그때부텀은.

절려서, 아니라고 벼락내는 바람에 절려서 당최 못허겄어.
말 나오지도 않고, 원! 정이 떨어져서 당최 입도 못 벌리겄고 아, 이거 불안해 죽겄고!

참! 그때 부애... 그 분심(憤心)이 일어나는 거. 분심이지, 뭐 부애가 날 것이여?
“어째서 내가 걸려 가지고는 저 조실 스님 밑에 저래 꼼짝을 못하고. 에이! 이놈의 것, 한바탕 해 봐야 겄구나! 그까짓 놈의 몸뚱이는 허다가 죽으면 뿐이제! 거, 뭐 더 말헐 것 뭐 있나”

앞에, 여름이니까 그 보덕사 요렇게 앞에 나가는 조그만헌 그 큰방 앞에서 보면 나가는 산이 있는데,
그 산 위에다가서 운동대를 딱 요렇게 짬매 논 게 있는데, 고놈을 붙잡고 서서—안 잘라고.

어디 앉으면 잠이 오고, 앉으면 그냥 이려. 피가 하나도 없으니께, 뭐 앉어서도 못해, 인자 정진도.
빼짝 말라 가지고 죽게 된 것인게, 공부를 허라는 소리도 안 혀, 만공 큰스님이.

나 혼자 허거나 말거나—누가 허라고 해서 헐 것이여? 내가 내 생사 무서운 발심헌 사람이 누가 허라고 해서 할 것이여? 누가 ‘해라, 마라’ 할 것이여. 규칙을 안 지킬라니, 안 지킬 수 있어?

뭐라고 그 장난을 내고, 그저 그만 제멋대로 혼자 지내고, 제멋대고 휙 달어나고 그럴라면 뭣 헐라고 글쎄 청정대중에 와 지내냐 그말이여.
청정대중에 그렇게 공부를 헐 수 없지마는, 내 그때 산철에 들어와 가지고 아직 결제도 안 했는데 그대로 대중에 내가 섞여 있지만, 어디 말 한마디 혀? 무슨 말을 혀?
한마디 없어! 다른 말 없어. 제대로 묵언(默言)이제, 무슨 놈의 말이여.

그러니 거기에 무슨 내가 갔다왔다 허는 것, 규칙 어기는 것 뭐 있는가? 하나도 규칙 어길 것 없제.

그러고 나서 가행정진(加行精進)을—넘 잘 때는 나 혼자 가서 이놈을 붙잡고, 양쪽 손으로 딱! 붙잡고는 착 해서.
발, 이렇게 손 닿으면 붙잡으면 대져, 여그 인자 붙잡으면. 올라가면 올라가지만, 대면 발이 땅에 닿아져.
그래 조끔 짤루어서, 좀 키가 절루어서, 밑에다가 돌을 하나 납닥헌 놈 하나 갖다 놓고 올라서서 따악 붙잡고서는 공부를 허네.

공부를 허는디, 하나도 화두가 맥혀야 하지! 화두 의심이 있어야 하지! 다 뭐, 의심 하나도 없어.
없는데, 아니라고만 헌다. 아, 이런 놈의...

그래 거그서... 다 그렇게 여지없이 공안을 봐버렸으니깐 의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혼자 내 딴에 의심이 없든 것이제, 응.

아! 우선 봐 봐.
세상에! 무슨 뭐 뭐 화두가 어디 걸릴 것이 무엇이여?

불불(佛佛)이 불상견(不相見)도 걸릴 것이 없고, 석가(釋迦)가 유미회(猶未會)라고 해도 걸릴 것이 없고, 천성(千聖)이 역불식(亦不識)이라고 해도 걸릴 것이 없고,
유(有)도 아니요, 무(無)도 아니요, 비유(非有)도 아니요, 비무(非無)도 아니요, 허무(虛無)도 아니요, 뭐 허공(虛空)도 아니요, 비허공(非虛空)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닌 그곳에 나아가서 무엇이 하나가 있다 헌들, 그것도 패궐(敗闕)이라. 그것도 허물이라고 해 놨으니, 아! 무엇이 걸릴 거냔 말이여?

일체 공안이 다 그런 것이지 뭐 다를 것이 무엇이 있어? 천 공안, 만 공안이 일관도천(一串都穿)이라고 했으니 한 도리(道理)지 두 도리가, 둘 될 게 뭐 있어?

아, 이래 가지고는 그만 탕탕호연(蕩蕩浩然) 해 버려서 걸릴 것이 있어야지?
아! 이런 놈의 꼴 보소. 뭣이 탁 맥혀야 허는데, 맥힐 게 있어야지.

아! 그래가지고 공부를 헐라니 되어야지.
당최 아니라고는 허시는데, 뭐라고 말하면 대답험서도 인자 그놈의 대답을 헐 수가 없네.
또 뭐라고 꼭 맞게 뭐라고 해야 헐텐디, 뭐라고만 해 놓으면 아니라고 해버리니, 이거 참말로 큰일나...

그래 가지고 가만히 화두를 자꾸 여러 공안을 갈려 보다가, 요놈도 좀 해보고—거그서 인자 혼자, 화두 내버리고 지내다가 요놈 좀 해보고.
소용없어. 안 걸린 게 못혀. 의심이 나야 하지.

참! 거그 걸려 놓으면 큰 병이여. 그게 체중현(體中玄)이거든. 체중현이여.
체중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인디, 체중현이여.
지무생사(知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거든. 그 지무생사여. 생사없는 이치, 그게 지무생사여.

오늘 아침 법문이 이랬다저랬다, 이리갔다 저리갔다, 동서남북 야단이여. 그러지마는 거기에 무슨 뭐, 그 질서가 다 있어! 없는 것 아니여.
그 지무생사(知無生死)만 허드래도... 뭐여, 이것, 이런 것 분석해서 얘기헌 것은 화두 학자한테, 현구(玄句) 학자한테 자미없는 것이여. 허니까, 너무 많이 말자 그말이여.

허지마는, 위산 스님 같은 이가
“모도 다 옛 일이니, 지내간 사(事)가 다 왕사(往事)는 물론 왕사다. 왕사는 그만두자. 여하시(如何是) 지금 사(事)냐? 지내간 일 그만두어. 어떤 게 지금 일이냐?” 허니께,
위산(앙산) 스님이 차수근전(叉手近前)이라. 차수(叉手), 이렇게 손을 이렇게 차수해 가지고 앞으로 척 왔다.

“유시(猶是) 지금 사(事)니, 오히려 지금 일이니 왕사(往事)를 자마(作麽)냐?”
(앙산 스님이) 뒤로 물러가버렸다.

그런 것이 그것이 뭣이냔 말이여?
왕사도... 내 혼자 허는 거여 이게. ‘왕사도 쓸데없는 것인데, 지금 사(事)면 또 뭣허는 것이냐?’
아! 이렇게 해 가지고, ‘지금 사, 왕사가 그것이 어디 가서 무슨 뭐 무엇이여 그것이’

말키 도무지 걸림이 하나도 없으니까 화두를 들을 수가 없어. 이러고 잡고 섰어도.
그 가운데 화두를 한번 척, 그 여러 화두를 이놈을 한번 해보니, 판치생모가 제일 걸렸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版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났다’는 놈이 걸렸거든. 어째 걸렸든지 걸렸어.

‘판대기도 본래 그까짓 놈의 것이 무슨 없는 것이요, 거기에 터럭이는 또 뭣이 그 있는 것이냐? 판대기니 무슨 뭐 터럭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없는 것이 그것이 생사 없는 것이다. 생사 없는 곳을 일러 주니라고, 판대기고 털이고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 다 붙여 놓은 것이로구나’
이렇게 했다가도 ‘그게, 고인(古人)의 공안이라 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여. 그런 것이 아니여! 전부 모도 이렇게 고인네가 모도 말씀해 논 것이 그렇게 그만, 무무(無無)로만 때려 붙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 이렇게 차츰차츰 들어가면서... 분석을 안 했어. 따지들 안 했어.

고래 따지면은 고런 못된 버릇이 나와!
‘판대기는 그 어디 있는 것이며, 터럭은 어디 있는 것이며, 본래 생사가 없는 곳에다가 그놈 때려 붙여 논 것이제’ 요렇게 따져 놓으면은 참선케니는 문둥이여 그게! 문둥이 참선이라! 그게.

그 말, 부디 들으란 말이여.
그런 짓 헐라거들랑 당최 그만 선방에 들어올 것도 없어. 하루인들, 한 시간인들 왜 들어와서 공송(空送)을 왜 해? 왜 그 죄를, 대죄를 지어?

참으로! 조사 면목(面目)이 거기 있고, 조주 면목이 거기 있고, 내 면목이, 생명이 거기 붙어 있어.

그 꿀 한 방울 먹을 때에 “달다!”헌 놈, 고 말은 그 일러 놨지마는 절대 몰라!
얼른 들으면은 “달다! 헌 놈이 그 참 그 맞는가 보다. 어쩌고” 그거 소용없는 소리여. 안 되아.

바로 척! 바로 깨달라야 헌다 그말이여. 되들 안해.
그렇게 잘 일러... 그만두고.

그래 그놈이 걸려서 그때부텀은 따지는 법 없어.
절대 따지지 않고, ‘어째서 판대기 이빨이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나?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아! 요놈만 헌다. 밥만 먹으면 고놈 허고, 밥 먹을 때도 그놈 인자, 고놈만.

‘내가 따진 데 가서, 분석헌 데 가서 큰 죄를 짓고 있구나’ 때려 치워번지고는.
그전에도 그래 따지든 안 했지마는, 내가 점점 내가 나를 단도리 허기를, 단속허기를 그렇게 했다 그말이여.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아! 요렇게 한... 그냥 인자 그러다가 결제(結制)가 돌아와서 결제를 안 갔지. 인자 못 가지.
큰스님한테 인가를 받아야 가지, 인가 없이 가? 죽어도 안 가지! 뭔, 천만 번 가라고 해야 소용없어.

백지장같이 되아 가지고는 뭐, 당최 앉어 좌선은 못허니께, 헐 수 없은게 어디 밖에 가서 혼자 그저 섰다가 앉었다, 인자 이러고 허지. 가다니?
죽으면 거그서 그 자리에서 죽었지, 내 가기는 어떻게 갈 수 있느냔 말이여?

그래가지고는 인자 결제를 허고선 결제 헌 뒤에 반 가량 되았구만, 반까장.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뿐이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뿐이지, 조주의(趙州意)를 가 찾을 것도 말 것도 없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해야 알 수 없거든.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그러면 그 알 수 없는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 없는 의심 뿐이여. 아지 못헌 게 의심이니까.
이놈을 가지고 했네! 화두를 그것.

내가 그래서 이렇게 판대기 이빨을, 판치 이빨 생모를 처억 내가 바로! 봤기 따문에 내가 이것 화두를 주지, 어떻게 내가 만약에 이놈을 가지고는 바로 못 봤다면은 천하 학자를 다 죽이게?
어떻게 인가헐 것이여? 당장 공부를 모도 시켜 놓고는 깨달라 가지고 오면 어떻게 인가헐 꺼여?

아, 합천 해인사에서 그러헌 일이 있지 않는가?
저도 깜깜해 아지 못헌 사람이 제가 입 벌려서 넘 화두를 가르켜? 천하에 그런 법 없어! 그거 못 가르키는 거여. 말 한마디지만.
그거 무슨 주둥이로써 그런 죄를 짓냐 그말이여. 큰일나지!

내 일전에도 ‘누가 무슨 화두를 어떻게 허라고 가르켰다’고 그래. 버릇때기 없는 것! 그 나오라고 헌 게, 안 나오는구만 지금.

화두를 떠억 그 무슨 가르켜 주었네. 안산, 그 저 해인사 그 내원인가 뭐, 저 가야산 밑에 있지. 내원터에 들어가서 토굴을 짓고 화두를 했다. 강사나 되든 것이여.
화두를 가르켜 놨는데 그대로 가 공부를 했네. 아! 공부허다가 이거 참 그 얼마 후에 견성했다고 그만 나왔어.

“아, 내가 견성했으니, 이것 옳은가 보라”고 턱 이른게, “아따, 옳다! 그것 참, 옳게 견성했다!” 그랬네.
무엇을 그 깨달은고 하니, 내원암에 앉어서 가만히 참선을 헐 것 같으면, 홍류동서 사람이 몇이 올라온 것 다 보이고, 구광루(九廣樓)에 와서 사람 몇 선 것 다 보이고, 법당에 사람 왔다갔다 헌 게 환히 보이여.

내원암이 어디인디, 가야산 밑에 산골짜기인디, 해인사가 보이지도 않는데.
앉어서 가만히 참선만 허면 홍류동 사람 오는 것 다 보이지, 어디 뭐 사람 다 보이지.
심지어 사람만 보인 것이 아니다. 산 밑 구녁에 어디 호랭이 토깽이 있는 것 다 보인다.

아! 이렇게 환히 다 보이니, “내가 견성했소!”헌게, “아! 그렇다”고, “잘 되었다!”고 인가를 했다.

그때부텀은 좋아서, 눈만 깜아도 보이고, 눈 떠도 보이고, 산산수수(山山水水)가 각(各) 완연체(宛然體)가 다 보이면서, 연비지류(蜎飛之類)까장 날라댕기는 것 다 보이네. 아! 이런 좀 꼴 봐. 그런 광명이 나왔네.

그런 가운데서 아, 그만 공부허는 젊은 사람이, 공부허는 사람이 그러헌 무슨 색심(色心)이 안 동(動)헐 것인가, 공부허다가?
아, 색심이 뿌르르 동험서 아! 그놈 자지가 일어나버렸네. 일어나니께, “아! 이놈이 이런 못된 놈이 일어난다”고 칼로 탁 쳐버렸네.

그러고 나서는 그만 그놈이 들입대 거가 막 부어 가지고는 야단쳐 가지고는 그만, 그길로 그만 어떻게 죽을 고생 고생허다가 그 낫으기는 겨우 낫어 가지고는,
그런 경계켕이는 아! 그런 광명이라도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항상 비쳐 주면 좋제, 허기야. 허지마는 그것이 무슨 그 어디 견성인가?

광명을 무슨 뭐 고까짓 놈의 광명보담도 제 몸뚱이 전체가 광명장인들 뭣 하며, 세계가 그런 광명이면 뭣 헐 것인가? 어디 그 견성인가?
그건 숭악한 사견(邪見)이지. 색견(色見) 아니여? 색견.

부처님이 말했지. ‘색견아 음성구아 행사도(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라고 안 했어?
색을 보거나, 무슨 상을 보거나, 별걸 다 나온 걸 본다한들 그 사견(邪見) 아닌가?

그래가지고 그만 그 경계 하나도 없어져 버리고는, 영 그만 그때부텀 영원히 못쓰게 되아 가지고는, 엉뚱헌 모도 제 보배를 끊어 버리고 못쓸 물건 되아 가지고는, 영 그래 죽어 버렸어.
그런 게 한 둘이 아니여. 잘못 들어가 다 그런 것이여.

그러니, 심사(尋師)면, 곧 스승을 찾지 않으면은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니라.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이게지.(57분35초~1시간17분16초)

 

 



(5/5)----------------

어찌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해논 놈만 했더니, 그저 그저 서서 아무리 기운은 있으나 없으나 그것 못혀? 그밖에는 헐 것 없은게.
‘판치생모? 어찌 판치생모?’ 하도 말라 배틀어 피도 없으니까, 다른 망상 날 것도 없어! 그걸로만 앉아 있다 해 나왔은께. 몇 철을 그래 놔.

아! 뜻밖에 그 판대기 이빨에 털은 그만두고...
그래 내가 늘 그 시방 묻는 게 그거여. 제일 학자가 바로 깨달을 곳이여! 그것이!

마조(馬祖)가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원상 속에 들어가도 치고 원상에 나와도 친다”
그놈이 그놈이 참! 마조가 답살천하인(踏殺天下人)헌 공안이여! 천하인을 답살(踏殺)해 죽이는 공안이여!

세상에! 이 공안에 가서, ‘아! 나는 그 공안 뚝 원상 그려논 놈이 그것이 그만 고불(古佛)이 미생전(未生前)에, 부처도 생기기 전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허는 곳인디, 응연일상원이라고 말은 했다마는, 거기에 일상원이라는 이름도 붙일 것도 없이 그거 곧, 그거 곧 비심(非心)이요, 비불(非佛)이요, 도역가명(道亦假名)이요, 무일물(無一物)이요,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요, 고불(古佛)도 생기기 전이요. 그것 뭐, 뭐 의심헐 것이여!’

아! 이렇게만 그거 알고 있었다가, 아! 뜻밖에 판치생모를 턱 허다가는 판치생모는 그만두고, 원상(圓相)에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헌디, 탁! 그만 보이는디 말이여!
세상에! 그놈의 그...!

거, 잘못 떨어져 가지고 그놈의 함정인디, 저 빠져 죽는 놈의 함정인디, 고따구 견해를 가지고 그렇게 봤다가, 참! 고인을 비방을 해도 분수가 있고, 정법 비방도 분수가 있지.

바로 보이는데.
아따! 인자는 아! 그전 경계가 아니란 말이여, 틀림없이!
하, 이런 놈의 꼴 좀...

대번에 보월 스님한테 쫓아 들어갔제.
만공 스님한테서 시방 이 방맹이를 맞고는—저 별실에 가서 계시는데, 쫓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조실 스님 방부텀 머냐 들어갔다.

문 앞에 가서 문을 척 열고 들어가서, “마조 스님이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들어가도 치고 나가도 친닥 했으니, 조실 큰스님께서 일러줍소사”

공경히 묻는 법이여! 법도 묻는 법이 그려.
건방지게! 툭 가서는 어디... 어디 그런 법이 있어? 만고에 그런 법이 있어? 학자의 공경이라는 것이...

가서 절을 허고는,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조실 스님 일러줍소사”하고 절을 허고 물은게, 아! 그 어른이 원상을 척 뭉켄다. 원상까장 뭉케아.

그러니, ‘원상은 본래 당처(當處)를, 근본당처(根本當處)를 가서 뭐라고 거다가 붙일 것인가? 근본당처까장 만들아 놓고 당처지해(當處之解)까장 응, 허공인데 허공지량(虛空之量)까장 쏴악 쓸어 버리는 것이로구나’
요렇게 나도 본 그 원상, 그 나 그전 도리, 원상 뭉켄 걸 보인다 그말이여.

거그서 그만, “조실 스님!” 건방진 행동은 조금도 아닌 것이여. 인자 거그서는.

“납자를, 천하납자(天下衲子)를 사재갈등과굴리(死在葛藤窠窟裡)입니다. 갈등과굴(葛藤窠窟) 속에다가 죽입니다. 조실 스님, 그렇게 일러 가지고는 타니대수(拖泥帶水)요, 진흙을 짊어지고 진흙 속에 빠지게 맨들아 학자를. 그렇게 해 되겄습니까?” 이랬네.
아! 여지없이 보이니 그런 점검을 안 혀?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닙니다”허니까, “허! 그 사람...” 그 어른이 인자 “아, 그 사람 보소! 저 사람 봐!”
그래서 내가 거그 두말 헐 것이 없거든. “저는 물러갑니다”

물러와서, 만공 큰스님이 그 건네—퇴실(退室)해 조실방 인자 내 놓고 가 계시는데, 들어갔어.
들어가서 “큰스님께 사룰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말인고”

“보월 큰스님한테 가서, 조실 스님 큰스님한테 가서, 마조 원상 법문을 물었습니다. 원상을 그려놓고 ‘입야타 불입야타 이렇게 마조 스님이 물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실 스님, 일러 줍소사. 여하즉득(如何卽得)입니까? 어떻게 일러야 되겄읍니까?’ 물으니까 원상을 뭉켔습니다. 원상을 뭉켔으니, 학자를 갖다가서 진흙 속에다가 파묻은 것 아니에요. 그래 가지고 조실방에 계셔요?” 이랬다.

벌떡 일어나시더니 “그러면 나한테 하나 자네가 이르소. 마조가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 불입야타’했으니, 여하즉득인가?”
그래서 합장을 허고 서서 “조실 큰스님한테는 이르들 못허겄습니다” 그랬네.

그게 무슨 말인고? 어디.
내가 합장허고 서서 “조실 스님한테는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 무슨 말이고? 거, 어떻게 된 말인가? 고런디 가서 봐야 혀.

그 법량(法量), 법견(法見). ‘무도 아니고, 유도 아니다, 유무(有無)도 다 아니다’ ‘무슨 범정(凡情) 다하고 성해(聖解)도 없다’ 고런 건 법량인 것이여. 법굴로 들어가.
법(法)이니, 비법(非法)이니 고런 것 가지고 얘기해선 틀린 곳이라, ‘일물(一物)도 없다,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다’ 고런 것 가지고는 틀려!

이것 바로 오늘 아침 법문이라는 것은 그대로 내가 지금 대중께 헌 거여.
어따가 이 법문을 헐 것인가?

고 무엇일까? 그놈 알아버리면 그만인데, 그 뭐여?
합장을 하고서는 “큰스님께는 못 이르겄습니다” 무슨 소리일까? 응?

그것! 참말로 이거, 내가 이거 참말로 이거, 이...

그러니까, 인자 또 인자 장만헐 밖에는.
그때에 마침 용담(龍潭)이라고 김초안(金初眼)이여, 이름이. 참! 좋은 학자지. 김초안이가 옆에 있어.
나허고 똑같이 도를 닦는 사람인데, 내가 그때 한창 알았다고 야단친게 내 뒤를 따라. 어떻게 답헌가 이런 걸 볼라고 따라.

“저 초안이한테, 그러면 나한테 자네가 못 이른다니 저 초안이한테 그러면 이르소. 초안이가 묻게. 자네가 묻소. ‘마조 원상에 입야타 불입야타 했으니 여하즉득이냐’고 자네가 묻소” 헌게,
초안이가 나한테 “입야타 불입야타, 여하즉득고?” 허고 묻제.

허. 내가 거그서 답을 여지없이 했지. 안 헐 수 있나, 해야지.
답했다는 것을 내가 여그서 그건 안 해 주어! 못혀. ‘어떻게 했느니라’ 못혀. 그건 알아야 혀.
내가 학자를 위해서, 내가 감출 것은 여지없이 감추거든. 헐 수가 없으니까.

그래 이르니깐, 그다음 만공 큰스님께서 점두(點頭)를 끄덕끄덕,
이래 척 앉어 계서서 “수지갱유야행인(誰知更有夜行人)인고? 누가 밤사람 행헌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

“큰스님! 그때 그 법문 다시 헐랍니다. 처음에 와서 절헐 때에, 절허고 나니께 ‘심마물(甚麽物)고?’ 그 또 절을 한 자리 허니까 또 ‘심마물고?’ 허셨지요? 다시 헐랍니다. 다시 물어주십시요” 헌게,
“허! 허! 허!” 물을 것도 없어. “허! 허! 허!”허더니 “거 보게”
벌써 알아버려. 뭐 다시, 대답 물을 게 없어.

“허! 허! 허!”허더니 “거 보게” 그뿐이여. 그뿐이여.
“거 보게”

(다 했냐? 그 다 해버려야지)

그때가서는, 인자는 나는 큰스님께 여지없이 허락받았으니 ‘인자 갑니다’여.
떠난단 말이여. 뭐 두말헐 것 없어. 뭐 해제고 뭐이고 헐 것도 없어. 나는 떠난다 그말이여.

‘어디 가서 치료를 허든지, 괴기를 먹어야 헌다’고. 영, 죽게 되았으니 ‘고기를 먹어야 헌다’고 이래 싸나, 괴기를 먹으러 갔다가 괴기를 먹을라고 허면 ‘왜액’허고 나와 버려. 못 먹어. 당최 맡도 못해. 그 틀려. 뭐, 누가 사줄라고는 많이 허는데 못 먹어.

또 내가 대중 중에 있으면서 그런 걸 내가 죽어도, 그 어디 가서 그런 법이 있어? 나가서 괴기나 먹고 들어오고. 어디 가서 모도 그런 어디가 그런 행동을 헐 거여?
저 혼자 가서 어디 가서 먹었으면 먹었지, 그런 행사를 안 혀. 절대 그런 법이 없지. 청정대중 가운데 먹고 냄새 피우고 돌아댕기고 모도, 같이 모도 그만 군대를 이루고, 떼를 이루고 그 될 것인가 말이여? 그래 못혀.

나가서 인자 괴기를 먹던지, 뭘 하든지 내 멋대로 지낼 밖에 없다고 그러고는.
(다 있어? 어째? 그 빼면 안 되야. 이것 뭣, 모두 헌다고 허니께 내가 이렇게 허고 앉었는 것이여)

그래 가지고는 떠나가지고 갈라고 나온께—오! 그러고 그 십대문답(十大問答)! 저번에 내 다 해놨지, 그 십대문답.
십대문답 낱낱이 다 물으시고. 한암 스님한테 처음 물은... 그 고문차문이전합긱삼십방(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도 다 해 놨지. 네모진 백지, 백지 네모진 데 한 귀텡이에다 원상 그린 놈, 그 원상으로 봐 틀리거든. 그런 놈 다 물어서...

뭐, 하나 알면 다 알아 버린게. 하나 봐 버린디 모를 게 있나, 열 가지 일을. 어디서 죽고 어디서는 어떻게 된 거 다 아는 거지, 환허니!

세상에! 세상 일은 뭐, 서울 가서 낱낱이 장안 전체 모도 동물원까장 다 살펴본 것은, 눈으로 다 본 것은
오히려 혹 어름헌 데가 있을랑가 몰라, 공안은 그런 법 없어. 어름이라니! 무엇이 어름이 있어. 구긴 대문이 어디 있으며.
틀리여! 호리무차(毫釐無差)지! 호리(毫釐)도 차별없어. 확 해버려 물을 게 없는 것이여!

딱! 해버린 뒤에는 “인자 갈랍니다”허고 하직을 허고, 금선대 내려가 하직허고 올락하니까. 새벽이여 그때.

“저 하날에 별이... 부처님은 샛별을 보고 오도(悟道)허셨지만, 자네 오도헌 별은 어떤 별인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엎드려 땅을 헤집는 시늉) 이러고 이랬다.

이런께, 턱! 보고서는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
그 선(善)자가 ‘착헐 선(善)’자인디 ‘잘했다’는 선자입니다. 그 잘 선(善)이여. ‘옳다, 옳다!’ 그 선(善)이여. ‘옳다’는 선자여.

“옳고 옳다!” 그말이여. “옳다, 옳다!” 바로 인가여, 그게!

“옳다, 옳다!” 그러고는 그 게송(偈頌), 송구(頌句)로 마쳤습니다.
그 송구 내가 여기서, 오늘 아침에 인자 이 송구로 마지막 합니다.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다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잘했다!” 그거 잉, “잘허고 잘했다!”

불조(佛祖)도 미증전(未曾傳)인디, 불조도 일찌기 전허지 못했다.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다.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다.

차일(此日)에 추색모(秋色暮)인디, 이날에 추색이 저물었는데,
원소(猿嘯)는 재후봉(在後峰)이로구나.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이것이 인가송(印可頌)입니다!

자, 만공 스님 문집(文集)에 있는가 없는가를 한번 보시란 말씀이여. 만공 스님 문집에 다 내놨으니까.
나도 그래서 나도 고승집(高僧集)에 그런 것 한번 내놨을 것이요. 왜 털어내 놓지 못혀. 왜 겸양을 혀? 탁! 털어내 놓아야제. 뭣 때문에 싸두어?

뭐 금이나, 금같으면은 도둑놈이 가지고 갈까 싸놓지마는, 이 법을 싸놔? 왜 싸놔? 바로! 거 퍼트려 내놓아야지.
모도 이 법은 모도! 모도 다 낱낱이 다 가지고 있는 법인데, 무얼 싸놓을 것인가 말이여.

거기서 내가 인가 척 받고서는, 그러고 인자 떠나왔습니다.
떠나와 가지고는 인자 그... 여기서 다음 법문으로써 잇으겄습니다.(1시간17분18초~1시간34분58초) (일대기 7호 끝)

 

 



----------------(1/5)

*(게송) ‘초옥무삼벽~’ ; 『청허당집(淸虛堂集)』 ‘초옥(草屋)’ 참고.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향당(鄕黨 시골·마을·고향 향/마을·향리鄕里 당) ; 자기가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시골의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서이 ; ‘셋’의 사투리.
*들입대 ; 들입다(세차게 마구).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신근(信根) ; 신(信, 진리에 대한 확신)의 뿌리. 신념(信念,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기초. 신근의 근(根)은, 나무뿌리와 같이 능히 유지시키는 것과 생기게 하는 것을 뜻함.
[참고] 〇신(信) : ①진리에 대한 확신。 ②신은 마음을 맑게 하고 해태를 막는 정신작용이다。 마치 수정주(水精珠)가 능히 탁한 물을 맑게 하듯이 마음에 신(信)이 있으면 마음으로 하여금 맑게 하는 것이다.


보살본업경(菩薩本業經)에 「만약 일체중생이 처음에 삼보의 바다에 들어오매 신(信)으로써 근본을 삼고 불가에 머무르거든 계(戒)로써 근본을 삼으라」하시고, 지도론(智度論)에 「불법대해(佛法大海)에는 신(信)으로 능입(能入)을 삼고 지(智)로 능도(能度)를 삼는다」하시며, 화엄경에 「신(信)은 도(道)의 으뜸이 되고 공덕의 어머니가 된다(信爲道元 功德母)」하신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서천(西天) ; ①서쪽 하늘. ②서천 서역국(西天西域國 : 인도의 옛 이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지지일자(知之一字)가 중화지문(衆禍之門) ; 「‘알 지(知)‘자 한 글자가 온갖 재앙의 문이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참구(參句) ; 언구(言句 화두)를 참상(參祥)하는 것.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參意)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參句)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참상(參祥) ; 참구(參究).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 刊) p49~52.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 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질다 ; ‘길다’의 사투리.
*짜룹다 ; ‘짧다’의 사투리.
*방우 ; ‘방위(方位)‘의 사투리.
*진방(辰方) ; 이십사방위(二十四方位)의 하나. 정동(正東)에서 남으로 30도 방위를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의 방향이다. 진(辰)은 십이지(十二支)의 다섯째 지지(地支)로 용(龍)을 상징한다.
*퇴깽이 ; ‘토끼’의 사투리.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도장원(都壯元) ; 장원(壯元). ①예전에, 과거(科擧)의 갑과(甲科)에서 일등으로 급제하는 일이나 그 사람을 이르던 말. ②글을 제일 잘 지어 성적이 첫째임. 또는 그런 사람.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2/5)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증(證) ; 증득(證得).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 ; ‘온종일 남의 보배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다’
[참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강설』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 무비 스님 강설 | 담앤북스)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p220~226 참고.
爾時 文殊師利菩薩 問法首菩薩言 佛子 如佛所說 若有衆生 受持正法 悉能除斷一切煩惱 何故 復有受持正法 而不斷者 隨貪瞋癡 隨慢 隨覆 隨忿 隨恨 隨嫉 隨慳 隨誑 隨諂 勢力所轉 無有離心 能受持法 何故 復於心行之內 起諸煩惱

그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법수보살에게 물었습니다.
“불자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중생이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면 다 능히 일체 번뇌를 끊어 제거한다 하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도 끊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고, 아만을 따르고, 감춤을 따르고, 분심(忿心)을 따르고, 한(恨)을 따르고, 질투를 따르고, 인색함을 따르고, 속임을 따르고, 아첨을 따르는 세력의 구르는 바가 되어 떠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능히 바른 법을 받아 지닐진댄 무슨 까닭으로 다시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모든 번뇌를 일으킵니까?”

時 法首菩薩 以頌答曰 佛子善諦聽 所問如實義 非但以多聞 能入如來法
그때에 법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습니다. 불자여, 잘 들으소서. 물은 것이 사실과 같으니 다만 많이 듣는 것으로는 능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如人水所漂 懼溺而渴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면서 빠질까 두려워 목말라 죽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設美饍 自餓而不食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좋은 음식을 늘어놓고도 스스로 주리면서 먹지 않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善方藥 自疾不能救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약방문을 잘 알면서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하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물팍 ; 무르팍. ‘무릎’의 사투리.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머냐 ; ‘먼저’의 사투리.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생혼(生魂)나다 ; 몹시 혼나다.
*원청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백지장(白紙張 흰 백/종이 지/낱·얇고 넓적한 조각 장) ; ①흰 종이의 낱장. ②’핏기가 없이 창백(蒼白)한 얼굴빛’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핏기(-氣) ; 사람의 살갗에 드러난 불그레한 피의 기운.
* ; (인칭 대명사 뒤에서 ‘딴은’, ‘딴에는’, ‘딴으로는’ 꼴로 쓰여)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기준.
*한시(-時) ; ①같은 시각. ②잠깐 동안.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불파사부득활(不怕死不得活) 지파활부득사(只怕活不得死) ; ‘죽고 살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살고 죽지 못할까 두려워하라’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2.
做工夫호대 不怕死不得活하고 只怕活不得死이니 果與疑情으로 厮結在一處하면 動境은 不待遣而自遣하고 妄心은  不待淨而自淨하리라  六根門頭自然虛豁豁地에 點着卽到하고 呼着卽應이어니 何愁不活也리요

공부 지어 가는데 죽고 살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살고 죽지 못할까 두려워할지니 과연 의정(疑情)으로 더불어 한곳에 맺어 두면, 동(動)하는 경계는 보내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가고, 망녕된 마음은 맑히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맑아지리라。 육근문(六根門)이 저절로 환하게 열려서, 손짓하면 곧 오고 부르면 곧 대답할 것인데 어찌 살지 못할까 걱정하리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불조(佛祖)의 패궐처(敗闕處) ;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곳.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곳)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불조(佛祖)의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일대사(一大事)를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그 길을 열어 주신 큰 은인이지마는 그 불조의 큰 허물이 하나가 있다. 그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그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난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패궐처(敗闕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곳 처) ; ①허물과 모자란 부분. 잘못된 부분. ②살아온 과정. 행장(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글)의 뜻.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3/5)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고성염불(高聲念佛) ; 크고 높은 소리로 외는 염불. 큰소리로 염불하면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그치게 하여 쉽게 삼매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 『아미타경통찬소(阿彌陀經通贊疏)』 중권(中卷) (규기찬窺基撰)
高聲念佛 有十種功德 一、能排睡眠 二、天魔驚怖 三、聲遍十方 四、三塗息苦 五、外聲不入 六、心不散亂 七、勇猛精進 八、諸佛歡喜 九、三昧現前 十、往生淨土

고성염불에 열 가지 공덕이 있다. ①능히 수면(睡眠)을 쫓는다. ②천마(天魔 : 魔王 波旬)가 두려워한다. ③염불소리가 시방(十方)에 두루한다. ④삼도(三塗 :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쉬게 한다. ⑤바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⑥마음에 산란함이 없어진다. ⑦용맹히 정진한다. ⑧모든 부처님께서 환희하신다. ⑨삼매가 나타난다. ⑩정토(淨土)에 왕생한다.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 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 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청매인오(靑梅印悟 1548~1623)의 「십무익송(十無益頌 : 무익한 것 열 가지를 노래한 게송)」
①심불반조 간경무익(心不返照 看經無益) 마음을 반조치 아니하면 경을 봐도 이익이 없고
②부달성공 좌선무익(不達性空 坐禪無益) 성품의 공함을 요달치 못하면 좌선을 해도 이익이 없고
③경인망과 구도무익(輕因望果 求道無益) 원인을 가벼이 하고 과보를 바라면 도를 구해도 이익이 없고
④불신정법 고행무익(不信正法 苦行無益) 정법을 믿지 않으면 고행을 해도 이익이 없고
⑤부절아만 학법무익(不折我慢 學法無益) 아만을 꺾지 않으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고
⑥내무실덕 외의무익(內無實德 外儀無益) 안으로 실다운 덕이 없으면 밖으로 위의를 세워도 이익이 없고
⑦흠인사덕 제중무익(欠人師德 濟衆無益) 스승으로서의 덕이 부족하면 중생을 제도해도 이익이 없고
⑧심비신실 교언무익(心非信實 巧言無益) 마음이 진실치 않으면 교묘한 말을 해도 이익이 없고
⑨일생괴각 처중무익(一生乖角 處衆無益) 일생을 괴각질을 하면 대중과 함께 해도 이익이 없고
⑩만복무식 교만무익(滿腹無識 憍慢無益) 뱃속에 무식만 가득하면 교만해도 이익이 없다.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찌클다 ; ‘뿌리다(곳곳에 흩어지도록 던지거나 떨어지게 하다)’의 사투리.
*망념(妄念) ; 망상(妄想).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셋바닥 ; ‘혓바닥(‘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 ;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하다.
*이사무사지묘(以思無思之妙) ; 생각으로써 생각 없는 묘(妙)
[참고] 『전등록(傳燈錄)』 제11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703~704 참고.
師問 如何是眞佛住處 祐曰 以思無思之妙 返思靈焰之無窮 思盡還源 性相常住 事理不二 眞佛如如」 師於言下頓悟

대사(앙산)가 물었다. “어떤 것이 참 부처가 사는 곳입니까?”
영우 선사가 말하기를 “생각하면서도 생각 없는 묘함으로써 신령한 불꽃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되,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性]과 모습[相]이 항상 머무르고 일[事]과 이치[理]가 둘이 아니라서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대사가 이 말끝에 단박에 깨달았다.
*나가상정(那伽常定) ; 행주좌와(行住坐臥)의 4위의(四威儀) 어느 때에도 항상(恒常) 삼매[定]에 들어 있는 부처님의 경지를 말함. 나가(那伽)는 용 또는 코끼리。 물에서는 용이 제일 힘이 세고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제일 힘이 세기 때문에 부처와 아라한을 나가(那伽)라 한다.
*구경처(究竟處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곳·때·지위 처) ; 최후의 도달처. 주로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제팔 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 ; 제팔 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근본식(根本識) ; 본식(本識), 근식(根識) 등이라고도 한다. 근본식은 유식학파에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사용한다.
*근본무명(根本無明) ; 모든 번뇌(煩惱)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깨닫지 못하고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리킨다. 곧 진여(眞如)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한 생각으로 가장 미세하게 움직이는 마음이며, 생사윤회의 근본이 된다.
지말무명(枝末無明)의 상대어. 무시무명(無始無明), 근본혹(根本惑), 근본불각(根本不覺), 근본번뇌(根本煩惱), 원품무명(元品無明) 등과 같은 뜻이다.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육정(六情) ; 육근(六根).
*중생견(衆生見) ; 중생의 번뇌에 얽매여 전도몽상(顚倒夢想 :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한 잘못된 견해.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상근(上根 위 상/뿌리 근)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매우 뛰어난 사람.
*간혜(乾慧) : 비록 깨쳐서 지혜가 났더라도, 정(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마른 지혜라고 한다。마른 지혜는 죽고 나는 이치를 알더라도, 나고 죽는 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乾 = 하늘 건, 마를 간)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역수탱주(逆水撑舟 거스를 역/물 수/배를 젓다 탱/배 주) ;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다’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전면의지(纏綿意地 얽을 전/얽힐 면/뜻 의/땅 지) ; 마음의 밭에 얽히고설켜.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보조국사(普照國師)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無始習熟  愛欲恚痴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一切時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  痛自遮護  豈可閒謾  遊談無根  虛喪天日  欲冀心宗而求出路哉.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 익혀 온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에 얽히고설켜서, 잠깐 조복 되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마치 하루 걸러 앓는 학질병과 같으니라.
어느 때에나 모름지기 바로 수행을 더하는 방편과 지혜의 힘을 써서, 간절히 스스로 막아 지켜야 하거늘, 어찌 한가하게 근거 없는 잡된 이야기를 하여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마음의 근본을 깨닫기를 바래며 생사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자 하겠는가?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용맹심(勇猛心) ; 두려움 없이 용감하며 기운차고 씩씩한 맹렬한 마음.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여차(如此)하다 ; (일의 상태나 속성이)이와 같다.


 

 


----------------(4/5)

* ; ‘턱(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의 사투리.
*절리다 ; ‘결리다(남에게 억눌려 기를 펴지 못하다)’의 사투리.
*벼락 ; ①공중에 있는 전기와 땅 위의 물체에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서 방전(放電)으로 일어나는 현상. ②몹시 호되게 나무라거나 꾸짖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어떤 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일관도천(一串都穿 한 일/꼬챙이 관/모두 도/꿰뚫을 천) ;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탕탕호연(蕩蕩浩然) ; 탕탕(蕩蕩)의 뜻은 ①넓고 큰 모양. ②평탄한 모양. 호연(浩然)의 뜻은 ‘넓고 큰 꼴’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p262.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현구(玄句) ;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 · 공안을 말함).
*『위앙록(潙仰錄)』 (장경각) P19~20. P39~40.
師問仰山 卽今事且置 古來事作麼生 仰山叉手近前 師云 猶是卽今事 古來事作麼生 仰山退後立 師云 汝屈我 我屈汝 仰山便禮拜

스님께서 앙산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금의 일은 우선 그만두고, 옛날의 일은 어떠한가?”
앙산 스님이 차수를 하고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것은 지금의 일이네. 옛날의 일은 어떠한가?”
앙산 스님이 뒤로 물러가 서자 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이겼느냐, 내가 너를 이겼느냐?”
그러자 앙산 스님은 절을 올렸다.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공송(空送) ; 허송(虛送 하는 일 없이 시간을 헛되이 보냄).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색심(色心) ; 색욕(色慾 : 성적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욕구)이 일어나는 마음.
*켕이 ; ‘커녕’의 사투리.
*커녕 ; ①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②체언의 뒤에 붙어,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法身非相分‘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5/5)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답살(踏殺 밟을 답/죽일 살) ; 짓밟아 죽임.
*천하납자(天下衲子)를 사재갈등과굴리(死在葛藤窠窟裡)입니다 ; ‘천하 납자(衲子 수행승)들을 갈등(葛藤)의 구덩이[窠窟] 속에서 죽게 하다’
*갈등(葛藤) ; 칡과 등나무 넝쿨 같이 다른 풀 또는 나무에 뒤얽혀 사는 것.
①언어와 문자가 사물의 본질이나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도리어 속박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 전도(顚倒)된 언어. ②공안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 또는 문답공부. ③깨달음을 방해하는 것, 또는 번뇌를 뜻한다.
*갈등과(葛藤窠 칡 갈/등나무 등/둥지·방·오목한 곳 과) ; 갈등과리(葛藤窠裏)와 같으며, 갈등굴(葛藤窟)이라고도 한다. 갈등의 둥우리. 전도(顚倒)된 언어나 문자.
언어를 매개로 복잡한 관념으로 생각하나 깨달음에는 미치지 못하여 결국 언어와 관념의 속박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퇴실(退室 물러날 퇴/방·거처 실) ; 조실(祖室) 자리를 내 놓고 물러남.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어름 ; ‘어림(대강 짐작으로 헤아림)’의 사투리.
*호리(毫釐 털·붓 끝·척도 또는 분량의 단위 호/아주 작은 수·척도 또는 무게의 단위 리) ; ①자 또는 저울 눈금의 호(毫)와 이(釐)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더할 수 없는 정도로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하날 ; ‘하늘’의 사투리.
*전강 스님이 만공선사로부터 받은 전법게(傳法偈) ;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2. 11. 16:3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6호) 안수정등, 한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13)—전강선사 일대기 제6호(경술1970년 12월 9일 음)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17분.


(1/3)----------------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소식기시문(消息幾時聞)고
나무~아미타불~
명일(明日)은 추운격(秋雲隔)이다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 별(別)‘자를 딱 붙여져 가지고 있어.
우리가 다생 겁 중에 얼마나 정법에 인연을 심어 놨길래, 같은 세계에 같은 이 몸뚱이를 얻어 가지고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서로 도반(道伴)이 되아 가지고 같이 도를 닦는 이러헌 지중헌 인연이 있는가.

허지마는 이렇게 모아진 것은 원인이 갈릴 원인이니라. 어쩔수 없이 갈려.
서로 상별(相別)이 앞에 있어서,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이여. 인연은 취산(聚散)이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취해졌다가 흩어지는 것이여.

비단 우리 이렇게 모인 우리 정법문중 도반만 두고 헌 말이 아니여.
속가의 가정도 부부가 서로 만나고, 부자가 서로 만나고, 손자 그저 고손자 그저 며느리 그저 모도가 서로 만난 인연이라는 것은 취산헐 장본(張本)이여. 흩어지고 갈려 버릴 장본인데.

사별(死別)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요녀러 것 죽어 버린 뒤에 갈린 것이란 것은 몸뚱이 보고 서로 부부지간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며느리니 몸뚱아리, 콧빼기, 눈깔, 고것 보고 알았제. 고놈 와서 받아가지고 내버린 뒤에는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무엇으로 그놈 증거해서 알 것이냐?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主人公) 그 자체는 서로 서로 보지 못헌 것이다.
그 본래면목(本來面目) 낯반대기는 저도 제 낯반대기를 모르고, 제 면목을 모르는디 어찌 하물며 아버지, 어머니, 부부지간이 알리요? 몰라!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도대체 알 길이 없는 것을 추운격이락 햐.

허니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히 볼 수 없어.
시방 이렇게 된 것이니, 그 무상허고 허망헌 몸뚱이 요까짓 것으로써서 서로 모여 있다가 서로 갈리게 된 것이 도대체 참 인생의 허망이다.

그러면 용성 스님한테 가서 이렇게 여러 그 법문 모도 답 물어서 내가 답헌 것도 있고, 또 내가 모도 다 해 논 법문을 듣고 묻는 것도 있고 헌 가운데,
지금 요리 늘 헌 법문, 저 고승집(高僧集)이고 늘 헐 때 모도 헌 법문, 그 법문 원인을 또 아침에 얘기...

그 용성 스님께 물어서 내가 또 답헌 것이 있으니깐, 그거 늘 그 전부 몇 번 들은 거지마는 오늘 아침에 인자 이놈을 이 불가불 이번 이 일대기(一代記)에는—뭐 일대기인가, 원 내 역사기인가, 거다가 넣어 달락 하니 이놈을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원인부텀 얘기를 허는 것이여. 원인도 천 번 들어도 또 듣는 것이여.

이게 우리 불가(佛家)에도 있는 법문이지마는 유가에도 있고, 저 천주교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다 있어, 이 비유가. 우리 불가에만 있는 것이면 허지만, 전부 다 있어. 공자 공문(孔門)에도 있고.

그러니 뭐, 허지만 오늘 아침에 또 이놈을 또 처음부텀 우리 불가에 갖다 맨들아 논 원인부텀 말을 허게 되니 잘 들어야겄어.


사미과(沙彌科)에, 우리 중 되면은 인자 사미과에 있는 건디, 『치문(緇門)』에.
부업계수신(夫業繫受身)은, 업으로써 이 몸을 받는 것이다. 지은 대로.
금생에 지으면 지은 놈 가지고 내생에 받아 나온다. 금생에 받은 몸뚱이는 전생에 지어서 받아 온 것이다.

여자 될 몸을 지었으니, 여자 될 업(業)을 지었으니 여자 되아 온 것이고, 남자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남자 몸 받아 온 것이고, 축생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축생 몸 받아 오고, 아귀 될 업을 지었으니 아귀 몸이 되아 오고, 지옥 업을 지었으니 지옥죄 몸을 받아 오고, 전부가 이것은 원인이 업계수신(業繫受身)이다. 업으로써 받아 온 우리 몸뚱이니라.

그러니 업이 다 똑같이 짓지를 못허고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명이면 만 명, 다 달러. 똑같이는 못 짓거든. 그러니 똑같이 못 나와.
업으로 대체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명(命)도 질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짜룹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하루 있다 죽는 사람도 있고, 한 시간에 죽는 놈도 있고, 뱃속에서 내 버리는 놈, 맨 그 업이니라.
왜 그러헌 그 차별이 있는 업을 모도 지었길래 업으로써 이 몸뚱이를 받았느니라.

미면형루(未免形累)니라. 업으로 또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업도 다 달라서 명한(命限)도 다 그렇게 고르지 못허지마는 얼굴조차 모도 생김 생김이 전체가 다 달라. 구랭이 된 놈이 있고, 그저 소 된 놈이...
똑같은 자리인디. 그 주인공 영(靈) 자리는 똑같은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똑같은 것인데, 아! 이렇게 그 짓는 업보(業報) 그놈이 달라.

그래서 얼굴이 진 놈도 있고 짜룬 놈도 있고, 큰 놈도 있고 적은 놈도 있고, 모도 못쓰게 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고, 몸뚱이라도, 사람 몸뚱이라도 그저 그만 문둥이 출추신(出醜身)도 있고, 그걸 형루(形累)락 햐.
형루를 면치 못허느니라. 똑같이 좋은 몸을 가지고 오들 못혀, 업 따문에.

품부모지유체(稟父母之遺體)로구나. 부모의, 허나 못허나 그런 몸뚱이라도 또 부모한테 가서 그 유체(遺體)를 받아.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그러헌 몸뚱이를 받아 온다 그말이여.

가중연이공성(假衆緣而共成)이로구나. 여러 인연이 또 가자(假藉)해 된다.
이 몸 하나 얻을 때 인연(因緣)이, 몇 인연이 들어? 아버지 인연이 있어, 어머니 인연이 있어, 내 혼백 그놈이 마침 적당헌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어떻게 의탁(依託)혀야 되아.

아! 이놈 그 인연이라는 것이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여.
또 그런 때 인연이 있어. 꼭 적당헌 때에 이 몸을 가서 어떻게 얻어야 되는디, 그놈이 그 인연이라는 게, 여러 가지 인연이 들어 간다. 중연(衆緣)이 아니면 이 몸을 받들 못혀. 그래서 받아 왔는데.
솔찬히 그 어려와. 이 몸뚱아리, 그 추헌 몸뚱이 이나따나 받아 오기가 쉽지 못혀. 균일치 못혀. 어렵단 말이여.

수내사대부지(雖乃四大扶持)로구나. 그러나 저러나 그 가운데에 그 몸뚱이, 한량없는 몸뚱이 가운데에 사람 몸뚱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받아 온 것이 무척 또 다행하다. 보통 문제 아니다.

받아오기는 왔다마는 상상위배(常相違背)다. 어긴다.
이놈 몸뚱이가 사대(四大) 가운데 물이 많아도—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된 몸뚱이인디 물, 또 그 화(火) 기운, 또 바람 기운, 그 땅 기운, 그 네 가지로 되았는데,
이 몸뚱이에 물, 수대(水大)만 물이 너무 많아도 습기가 많아 못쓰고, 화기가 너무 많아도 홧병 따문에 못쓰고, 그놈 그 토(土)성만 너무 많아도 비대해서 아주 그만 숭악해 메주 단지처럼 못쓰고, 바람 많아도 풍(風)이 막 들입대 풍증이 있어서 못쓰고. 아! 이놈이 모두 이런 어기는 것이 있다.

그래 가지고는 그놈의 몸뚱이는 무상(無常)헌 병이 그만 들어오기 시작할 것 같으면은 몸뚱이는 어떻게 어떻게 이리저리 받아 왔다마는, 그놈 여러 가지가 서로 어겨서 병이 모도 이놈이 몸뚱이 모도 얽히게 된다 그말이여.

조존석망(朝存夕亡)이로구나.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기도 허고, 밤에 있다가 새벽에 죽기도 허고, 이놈의 몸뚱이 생사라는 것은 누가 알 수가 있나. 참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찰나이세(刹那異世)니라. 잠깐 동안에 이 세상이 그만 죽어버린 뒷세상이 된다. 후세(後世)가 와 버려.
이 몸 가지고 있을 때에는 금생이더니 이놈 턱 내버리면 후생(後生)이 된다. 아! 이런 꼴이 있나.

변시내생(便是來生)이여, 찰나이세다. 찰나, 잠깐 동안 이 몸뚱이 그만 이별해 버리고는 내생이 오는데, 그때 가서는 인자 몸뚱이는 내던져 버렸으니 혼만, 영혼만 내생 떠억 되아 가지고 나타난다.

비여춘상효로(譬如春霜曉露)로구나. 비유컨댄 봄에 서리가 와 가지고 볕 나면 녹아 버리는 것이나 같구나. 새벽 이슬 끝에 맺혀 있는 풀 끝에 달려 있는 이슬같구나. 이 몸을 얻어 와 가지고 이 몸을 내 버린 그 무상한 것이 여차(如此)허다.
숙홀즉무(倏忽卽無)로구나. 금방 이 몸을 받아 왔다마는 금방 그만 내버리게 되는구나.
그만 그거 이것 참, 이놈을 믿다니. 요거 요까짓 것을 믿다니. 숙홀즉무다.

안수정등기능장구(岸樹井藤豈能長久)냐? 새암(샘) 언덕에 칡이 어찌 오랠 수가 있나?
‘새암 언덕에 등칠기(등나무) 줄이 하나 있는디, 그 등칠기 줄이 얼마나 오래 되겠나?’헌, 그 등칠기 줄을 가지고 인자 요거 얘기인디.

웬 사람이 탄탄대로(坦坦大路) 길을 가는데—요거 자세히 이렇게 알어야 되아—뒤에서 뭐가 쫓아온다.
돌아보니까 엄청나게 큰—지금 서울에 그 쾨코리란 놈 키우제 왜, 동물원에—그런 큰 놈이 입을 떡 벌리고 오는디, 입을 떡 벌리고 그 진(긴) 코를 가지고 쫓아오는디, 아 그놈이 그 엄청나게 큰 놈이 그 힘센 놈이 쫓아오는디, 사람이 그놈한테 안 잡혀 먹을 수가 있나.

헐 수 없이 잡혀 먹게 되아서, 잡히게 되아서 급허기는 허고 도저히 전주헐 달아날 근력도 없고,
그때 마침 보니 짚은(깊은) 못이 하나, 샘이 하나가 있는데, 몇백 질 가량 되는 샘이 있는디, 아 새암가에서 등칠기 하나가 써억 거그서 뻗어 새암으로 들어갔다.

그 새암으로 들어간 칠기를 딱! 잡고는 딱 달어 매여 있다. 달려 있다.
아! 이놈 쾨코리란 놈이, 그 미련헌 놈이 칠기를 이렇게 코로 잡아댕겨도 그까짓, 콧심이 약간 세니까 사람 하나 달려 올릴만 하지마는, 그런 꾀가 없어. 허니까,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허니, 사람이 거그 일시에 위급헌 지경을 피해서 있지마는 오래 어떻게 달려 있을 수가 있나?
팔이 그만 달려 있는 팔 힘이 차츰차츰 그만 그 적어져, 힘이 빠져 그 등칠기 줄을 오래 못 잡고 있게 될만 하다. 그 몸뚱이 달려 있으니까.

그러나 못 밑으로 보니 백 질이나 되는 놈의 못 밑에는 독사가 있고, 독룡이 있고, 그 악어가 있고. 사람 꼭 잡아먹는 것, 무서운 그런 모도 물건들이 있다 그말이여.
그놈들도 그저 사람이 달려 있으니깐 이놈들이 어서 떨어지면 먹을라고, 서로 다 따먹을라고 야단들이지.

독룡, 악어, 다 독헌 놈들이 아! 서로 잡어먹을라고 뛰고 있는데, 그 밑에 들어갈 수는 없지.
올라올라니 쾨코리란 놈이 입을 벌리고 있제, 먹을라고. 하! 이거 사람 죽는다.

그때에 마침 못가에 냉기 하나가 나 가지고 그 천년 고목이 있는데, 고목 냉기에다가서 속 빈 고목 냉기에다가 꿀을 잔뜩 실어 놨는디, 벌이란 놈이 꿀을 실어 놨는디, 꿀이 뭉텅뭉텅 떨어진다.
꿀이 떨어지되 그 방울 수가 다섯 방울이 떨어진다. 오적(五滴)이!

한 방울 먹어. 또 한 방울 먹어. 다섯 방울을 받아 먹고 나니 그 배가 불러서 기운이 새삼스럽게 나고, 그래 그만 등칠기를 더욱 붙잡을 만헌 힘도 있고. 족(足)허제.

그러나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는 나와서 그 칠기를 썰고 있어. 톱으로 썰데끼 아! 이놈을 툭툭 입으로 막 쪼사 떼고 있으니 잠시인들 있을 수가 있나.
그놈만 안 끊으면 좀 어느 지경까장 있겠는데 그놈을 썰고 있으니까 도리 없다.

“그 지경 되아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요렇게 물었어.

그것이 무엇인고?
갓없는 너른 들에 시방 사람이 가다 그랬거든.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生死曠野)에다가 비유했고, 사람이 났다가 죽었다가 하는 생사광야에다가 비유했어.

우리가 어디 그 생사가 어디 한 번인가? 한 번 나왔다 한 번 살다 죽으면 그만인가?
몇 몇억만 번을 했을까? 고걸 좀 생각해봐.

잠, 눈을 좀 뚝 뜨고 들어! 눈 지긋이 감고 자올지 말고!(처음~21분35초)

 



(2/3)----------------

도문(道門)에서 도학자(道學者)라고 해 가지고, 뭘 할라고 법문 들어!
법석(法席)에서 눈 지긋이 감고 꾸뿌덕 꾸뿌덕 허면서 자올고 있어.
어느 지경에 있는 걸 좀 알어야지. 사형 무대에서 칼로 탁! 쳐가는 지경이여 이것이.

요까짓 몸뚱이 요걸 믿고 앉어서. 그렇게 업이 중해 가지고, 무거워 가지고 무슨 도를 닦고 있으며, 법문 들어 뭣 혀.
원! 해도 너무허지. 내가 다 보고, 가만히 여그서 다 보이니까 깜박헌 거 다 안다 그말이여.

‘또 본심을 탁 뜨고 그 내 법문 듣고 고대로 똑 닦아야겄구나’하고는, 법문 딱! 듣고는 잘 이대로 똑 예불(禮佛) 젓수고, 이대로 똑 닦아 나가야사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에 가 피난했다가 내려오는 것이여. 지금 당초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다시 났다가는 큰일나니까.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다. 죽었다가 살았다가 이 중생(衆生)이, 우리 미(迷)헌 이 깨달지 못허고 이 미헌 우리가... 우리, 시방 우리여. 우리를 비유헌 거여.

전생에 어디서 또 살다 또 죽어서 금생에 왔다. 무변광야(無邊曠野)는 생사광야에 비유했고, 쾨코리는 우리를 잡으러 오는 무상살귀(無常殺鬼) 귀신에다 비유했어. 우리 뒤에 시방 이렇게 잡으러 쫓아와.
그 새암이는 삼악도 지옥이여. 지옥에 들어가면은 지옥고(地獄苦) 받는 형상이여. 나찰(羅刹) 귀신이 모도 칼로 찔러다가서 불에 집어넣고, 쇳물에 집어넣고 태우고 찔르고 헌 거다가 비유했어.
독룡 · 독사는 나찰 귀신, 지옥 귀졸(鬼卒)들한테 비유했어. 거그 빠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새암(샘) 언덕에서 등칠기(등나무)가 나서 그 지옥으로 뻗어 들어간 놈은 그건 우리 생명이여. 우리 명(命)줄.
우리가 지금 며칠이나 살란지 몇 해나 살런지, 고 등칠기 줄이 우리 명줄에 비유헌 것이여.

그 냉기(나무)에서 꿀 다섯 방울 떨어진 것이 오욕(五慾)이여. 부부지간, 아들, 돈, 명예, 여그다 비유했어.

얼마나 묘허게 비유해 놨어.
우리 인생의 우리 사는 이 고해(苦海)에 지금 살고 있는 오탁악세(五濁惡世), 악헌 이 세상에서 이렇게 험악헌 데 지금 걸려 있는 것을 그것 비유헌 것이여.
우리가 그런 악몽을 꾸고 그런 악경(惡境)에 처해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해 놓은 것인데.

딴말 아니여, 이것이! 다! 시방 이렇게 되아 있어. 누구나 막론허고 이렇게 되아 있어.

그러면 그 오욕, 다섯 가지 그 좋은... 꿀이 오직 단가! 부부지간이 좀 좋은가! 아들, 손자, 며느리, 돈, 쌀, 명예가 좀 좋은가!
요놈에 딱 얽혀져서 애착되아 가지고 도(道) 한번 닦지 못헌, 도 못 닦고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이렇게 있다 뚝 떨어져 버리고마는 우리 인생을 비유해서 헌 말이여.
얼마나, 누구 뭐 따로 헌 줄 알어, 이것이?

그러면 그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오욕에 꽉 애착된 그 경계를 한번 떼 버리고, 한번 부수어 버리고 애착이 없이 툭! 뛰어 나서 처자고 자식이고 무엇이고 그 불고(不顧)해 버리고.
정반왕궁(淨飯王宮) 모후(母后)니, 뭐, 정반왕궁 아버지니, 정반왕궁 노비 권속이니, 재산, 무슨 싹 한번 내버리고 성(城)을 넘어 설산(雪山)에 들어간 것이, 그것이 모도 애착 애욕을 때려 부수어 버리고 도 닦으러 들어간 장면.

참선(參禪) 하나 척! 해서 대도(大道)를 통해야사만 면(免)허는 것 아닌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만 생사를 면허는 것인데.
성을 넘어 가거나 말거나, 왕궁을 떠나거나 말거나 이것은 거기에는 관계없어.

그 꼭, 꿀 먹고 있을 적에 그렇게 위태로운, 매달려 있는 그 사람이 곧 우리인데.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해탈허겄느냐?”

그것이 공안(公案), 그 공안 하나 탁! 깨달라 버리면은, 생사 없는 지경을 툭! 깨버리면은 툭 뛰어 나는 경계 아닌가. 그러니 거기에 붙어 있는 공안이여, 그것이.

꽉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물으니깐.
응? 그, 공안 아니여?

그 공안에서 그래, “말키 참선허는 선객(禪客)들은 한마디씩 일러라” 용성 스님이 전국에다 그 공안을 펴 놨어.

그 등칠기 줄에 매달려 있을 적에 올라가도 쾨코리란 놈이 잡아먹고, 가만히 있어도 흰 쥐 검은 쥐가 그놈 끊고.
흰 쥐, 검은 쥐는 일월(日月)이여. 밤 가면 낮 오고, 낮 가면 밤 가고. 그 그렇게 몇 해 가다 인자 뚝 떨어지면 죽는 것 아닌가.

말키 이렇게 비유해 놨는디, 그보담도 더 위험헌 지경(地境)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얼마나 위험헌 지경인가! 이 지경이. 거그서 뭣을 헐 것인가, 생사를 두고!
이러헌 무서운 생사, 죽음을 앞두고 뭘 헐 것이냐 그말이여.

잠깐, 살인 강도가 그만 죄는 지었다 그만 붙잽혀 가지고 사형 무대로 죽으러 가는 길이 우리도 똑같어!
더 무서운 우리 사형선고(死刑宣告)여, 이것은 기한(期限)도 없다.
그건 어느 때 죽는다는 기한이나 있지마는 우리의 사형선고 기한이란, 기한도 없다.

참으로 때없이... 아주 오늘 내일이 있고, 금년 내년이... 아주 그 세월을 다 살 줄 아는구나!

딱! 달려 매여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공안이 거그 있지 않는가. 그 공안 아닌가.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는 공안이 거그 들어 있어.

그런데 아! 거그서 대체 모도 큰스님네가 다 답 안 했어?

만공 큰스님은 “꿈이니라”
그 다 이(理)와 사(事)가 딱딱 들어맞어야 되니까, 답이라는 게.

“꿈이니라. 꿈에 그런 지경이 있제, 생사야 어디 있느냐” 그 평상화(平常話)제. 이렇게 답해.
좀 잘허셨제. 답이야 아, 그 이상 더 어떻게 해. “꿈이니라. 작야몽사(昨夜夢事)니라”

또 보월 큰스님께서는 “하시(何時)에 입정(入井)가? 언제 누가 새암에 들어갔나?”
새암에 아직 안 들어간, 본래 생사 없는 경계를 답헌 것이여.

다 잘허셨제, 못했어?

고봉 스님은 거그 달려서 그대로 받는 것이다 그말이여.
“아야, 아야!”
그놈 뭔, 뚝 떨어지면 지옥 귀신이 집어 먹는 경계를 그대로 써 버렸다 그말이여.

그거 무슨,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헌 도리가 그대로 법인디,
중생의 “아이고! 대고!” “아야! 아야!” 생노병사, 중생 환화(幻化)가 개시묘체(皆是妙體)인디, 개시해탈법(皆是解脫法)인디, 뭐 어디가 걸리고 안 걸릴 것이 있나?

달인분상(達人分上)에, 깬 분상에는, 깨달은 분상에는 소도 역득(亦得)이고 개도 역득이고,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면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인디, 뭔 걸림 있어?
“아야! 아야!” 해탈경계 그대로 써버렸제. 좀 잘 일렀어!


이 법문을 들었다고, ‘밤낮 들은 법문이니깐 또 들어?’ 그런 소리 말어! 그러헌 그 푸딱진 용이심(容易心) 붙이지 말어!
그런게 모도 들은 것 또 헌다 싶어서 용이심이 나고 푸딱진 마음이 나니까, ‘그까짓 것’허는 마음이 나니까 그만 자올고 그러지.
업이 꽉 차 가지고 그놈의 업에 무량겁을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와 가지고 법석에서도 졸고 앉었지.

그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만행(萬幸)한가. 척! 집을 여의고 들어와서 이러헌 참, 떠억 그 법보선원에 들어와서 도 닦고 있는 이 지경이 얼마나 다행하고 만행헌 것이여!


자, 그 다음에 왼통 뭐 뭐 한국 혜봉 큰스님으로 훌륭헌 큰스님인데, 그 큰스님은 답을 허시되 “불불능갱작불(佛不能更作佛)이다”

아! 불(佛)이 무슨 다시 부처 되나? 본래 부처가 어떻게 부처가 또 되아? 뭔, 부처가 부처가 되아?
부처도, 본래 부처라 해도 그 패궐(敗闕)이 불소(不少)인디, 거다 또 부처 되아? 그 뭐, 거다 뭘 이를 게 있어?
본래 부처가 어디 무슨, 생사가 무슨 하관(何關)고? 뭐, 어찌 살아 나가는 도리가 무슨 소용이여.
떡! 본분불(本分佛)로 딱 대답을, 본각불(本覺佛)로 딱 대답해. 다,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용성 큰스님은 그냥 격외(格外), 격외. “표화(瓢花)가 천리출(穿籬出) 와재마전상(臥在麻田上)이니라”
바가지 그 박꽃을, 박씨를 울타리 밑에 심어 놨는디, “그 박이 나 가지고 울타리로 뀌고 울타리 밖에 나가서, 저 밖에 나가 삼밭에 박이 열어 가지고 누웠느니라”
그랬은게 그건 그대로 격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도리로 격외 딱 한마디 일러 버려.

다 초월생사여. 생사도 없어! 거그 뭐 죽고 사는 그—안 맞는다는 게 아니여! 다 잘 일르셨어.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허지마는 나는, 그 쬐끄만헌 내가, 이 용잔허고 조잔헌 그 그때 어린, 아! 내가 말이여,
“큰스님네가 다 이른 법문이 거 용 대가리를 베 버리고 배암 대가리를 이어 붙였고, 용 꼬랑댕이를 모도 베고서는 거다가 모도 딴 꼬랭이를 모도 붙였고, 발을 모도 오리발을 베 버리고 닭발을 이었고,
암만 천하없이 공안이라는 것은 딱딱 그대로 붙어 있는 공안을 그대로 찾어다가 딱 일러야 하는 것이지, 엉뚱헌 놈 갖다가 척척 일러 놔 봤던들 그것이, 아무래도 그것이 큰스님네가 다 암만 잘 일르셨지마는 아닙니다!”
이랬네 내가. 내까짓 것이 이랬단 말이여.

그때 그 법문, 시대 법문해 논 거를 내가 딱 다 했기 따문에 여그 올라와 이런 법문을 허는 거제, 없는 법을 내가 지어서 이렇게 말헐 수가 있나. 생각해 보지. 그건 절대로 못허는 법이여!
그 얼마나 내가 해 논 것이 역사적으로 전통해 왔는디, 내가 여그서 무슨 뭐 변명을 헐 것인가, 뭣헐 것인가. 그때 헌 놈인데.

“그러면 어디 영신(永信) 신수좌는 어떻게 헐텐가?” 내가 그때 영신이니깐.

그래 글쎄, 그렇게 미쳐 가지고 글쎄 옳은 견성인가 그른 견성인가, 글쎄 곡성 동리재 넘어가다가 그 호랭이가 사람 잡아먹은 그놈의 재를 내가—재는 별로 높으지 않는디, 아! 그놈의 재를 바라보고 물 건너 노디를 뛰어 가다가 그만,
“담 너머에 외 따 오니라”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는냐?”
그만 그놈이 느닷없이, 내 화두 간 곳 없이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툭! 그만 무슨 그 견성 경계가 나오는데, 참말로 그 지경을 설향수(說向誰)오. 누구한테다 말헐 꺼여.

그래 가지고는 “이때에 조주의(趙州意)를 묻거드면은...” 무자(無字)를 돌아보니까... 무자에 걸음을 노디를 뛰는디,
“이때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어떠헌 사람이 나한테 이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각하(脚下)에 녹수(綠水)는 암전거(岩前去)로구나. 내 다리 발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가는구나”

아, 이놈을 하나 해 놓고는 그날 그 재를 넘어가서 호랭이, 사람 처녀 먹은 재를 내가 넘어가서 동리산 가서, 태안사 들어가서 그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고 내가 그렇지 않아 저번 다 얘기했지. 저번에 다 헌 놈이제.


“다 아무리 큰스님네가 이렇게 일렀지마는, 거기에 옳은 공안을 이르들 못했습니다”

얼마나 내가 그 견성(見性)을 내가 그때 했다고 했으니, 옳은 견성인지 그른 견성인지 내가 견성했다고 그랬지, 언제 뭐 내 견성(見性)이 진짜로 했다는 거 아니여!

그래 가지고 혜봉 스님한테 찾아가서 탁마(琢磨)했고, 여지없이 인가 받았고.
인가를 받았는디, 그 끝에 가서 그것 참!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인데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조차 없구나”
세상에! 여기서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불사타(不似他)입니다” 아! 이러니 인가해 준다 그말이여. 인가해 주어!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인가를 해.

아니여! 절대 아니라 그말이여! 아, 그런 밝은 어른이 나를 왜 인가해 주었든고 몰라. 그것!
내가 그 뒤에사 아닌 줄을 발견했거든. 아니란 말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어졌구나. 여래선(如來禪)이라고 여래선밖에는 못되니, 여래선 경계밖에는 안되니, 어떤 게 조사선(祖師禪)이냐?” 아! 묻는디,
내가 그래, “능각(菱角)이 첨첨(尖尖)허지마는 타(他)와 같지는 않습니다”
아! 옳다고, 내가 여지없이 인가를 받았네!

그것 아니라. 거, 아닌 도리인디 ‘거기에서 시방 바로 한마디 일러라’
이것은 내가 이를 수가 없어.

학자(學者)를 위해서 안 일른 공안이 내가 무척 있어.
초당파(燒堂婆 소당파) 법문 내가 죽어도 안 이르고, 이것도 내가 안 일러 주고, 원상(圓相) 법문에 답을 했으되 그 안 일러 주고. 못 혀.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을 내가 중히 여기지 않고,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 설파치 맙소사. 이러헌 법이여. 설파(說破)해 버리면 법이 아니여.

이것도 지금 큰스님네 답헌 게 다 나왔기 따문에 헐 수 없어 내가 일렀제, 이거 안 일르는 공안이여. 나, 이른 놈은 다 기히 듣고 다 아는 거.
다 용 대가리를 떼 버리고, 왜 배암 대가리를 이어 놔? 왜 용 꼬랑댕이를 떼고, 무슨 뭔 닭 꼬랑댕이같은 걸 붙여 놔? 오리발을 베고 닭발을 붙여 놓고. 그렇게 공안이란 된 법이 아니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깨달라 보아! 그거 어떤 공안이 나왔는가 보라. 그 꼭 조사의(祖師意)에 들어맞는 게 딴 디는 안되아. 조사서래의에 꼭 들어맞어.

조사가 누구인가? 그래 거그 송(頌)에 뭐라고 나왔냐 허면, ‘구세소림자허엄(九歲少林自虛淹), 아홉 해 소림에서 허엄했다’
그 아홉 해 소림은 누가 했어? 그 다 가르쳐 논 말이여. 기여니 딴 놈 갖다가 해 논 법 없어.


나는, 자! 큰스님네가 다 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녀. ‘잘못했다’ 이 말은 “그 공안을 그대로 찾아 거다 일러야제, 된 법 없습니다”

“어떻게 허겄는가?”
“달다!”

그 뭔 말이여? ‘달다’
“달다!” 아! 꿀 먹어, 꿀 빨아 먹은게 달제. 꿀.
“달다!” 오욕에 꽉 취헌 사람이, 오욕락(五慾樂)에 꽉 취헌 사람이, 꿀 빨아 먹는 놈이 그 “달다!” 

‘달다’ 무슨 도리인가? 응? 공안이 그 어떻게 된 도리인가?(21분35초~43분12초)

 

 




(3/3)----------------

그놈 뚝 떨어지자, 제방(諸方) 벌써 선지식(善知識) 스님네가 다 벌써 이렇게 쫙 돔서—아, 수좌(首座) 집안에 잠깐이면 전 주소에 빽 돌아 버리는데—“정영신이가 ‘달다’고 일렀다”
인가 나왔네. 누가 거기에 큰스님네 누가 ‘잘못 일렀다’는 소리 없어.

“옳다!” 한목 인가여. 육대 선지식이고 그때 당시의 수백 명 도 닦는 학자들도 들으면 몰라?
“달다!”헌 데 가서 한목 인가여! 그 통해 버린 것이여.

금봉 스님은 돌아가시드락까장 “그 참말로!”
그때는 인자 ‘전강(田岡)’ 때인게, “전강, 그 ‘달다’는 법문 참, 기가 맥혀!”
아, 늘 평생에 그 “내가 합천 해인사 가서 조실로 가는 것은 똑 전강, 조실 내가 시킬라고 간다!” 이 말 다 했고. 평생 그랬지.

그 공안, 내가 용성 스님이 물어서 용성 스님 묻는 공안을 내가 답했으니까, 여다가 이놈을 넣어 놓아야 허거든, 또.
기위 이거 뭐 내 뭘러도 넣어서, 뭔 책을 하나 만든다니까 여다가 다 넣을 밖에 없어.
아직 멀었나? 어떤 거여? (한 10분, 한 15분 남았읍니다)

그놈 내가 그 답해서, 그 뭐 턱! 그만 육대 선지식한테 한목 인가 다 받아 버렸으니 다시 무슨 내가 어디 뭐 조금이라도 무슨 내가 어디 딴 디 가서, 어디 가서 다시 무슨 법 탁마허고, 뭐 인가 탁마허고 헐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인자는 나는 참말로 확철, 내 견성이 진짜 견성이요 옳은 견성이로구나!’ 딱, 그러지마는 그랬다 해서 법 탁마 안 허는 법이 없어.
또 다시 내가 안 본 선지식이 있으니깐, ‘한암 스님 한테를 갈 밖에 없구나’ 한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한암 스님으로 말허면은 한국에 참 유명한 선지식인데, 그래도 법은 그 투철치 못허다고 다 이런 평판을 듣고 있는 어른이지마는, 참 계행이 청정하고 동자삭발(童子削髮)로 들어오셔서 강(講) 한번 해서 강사가 되아 가지고 이력(履歷) 다 마치시고,
그런 출가해 가지고는 은사 스님이 석담 스님인디, 석담 스님 앞에 상좌가 되아 가지고 이력 한 벌 다 마치고서는 그러고 평안도로 들어가서, 묘향산 들어가서 희천, 그 무슨 쪼끄만헌 암자에 똑 혼자 사실 데가 들어가서, 바우 틈새기 같은 디서 좁쌀 그저 쬐금씩 뭐 이런 것 생기면 잡숫고,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을 허고 참, 기가 맥히게 토굴 살림을 허되, 그렇게 거룩허게 청정허게 헌 이가 없어.

당시에 한암 스님 유명헌 선지식이여. 그래도 그 법은 학자 가르치는 법이 훌륭허다고는 못 들었어.
그러고, 오도송을 보면은 법량(法量)을 아는디, 그 어른 오도송이 그려. 저번에 내 말씀했지마는.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종차고로(從此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내가 정지에 들어가서, 토굴에 사시니까 밥을 해 잡술라고 부섴에서 불을 부르르르 불다가 눈이 확연히 밝았다. 견성을 했다 그말이여.
종차(從此)로 고로(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이렇게 했어. 고 밑에,

약인(若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허면  암하천명불습성(岩下泉鳴不濕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을 부엌에서 때서 밥해 먹을라고 불을 불다가 눈이 활연히 밝았는데, 종차(從此)로 고로수연청(古路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생사가 없다 그말이제. 생사가 통 생사에 관계없다 이말이여.

이때에 만약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불법대의(佛法大意), 서래의를 묻거드면은 암하천명(岩下泉鳴)인디 불습성(不濕聲)이라. 바우(바위) 아래 샘이가 울었는디, 바우 아래 샘이가 젖지 않는 소리로 운다. 요렇게 새기드구만.

당최 그 견성구(見性句)가 아니여! 영, 아니여!

그래도 그래도, 그런 도인이기 따문에 참, 이름이 그렇게 나셨제.
나셨는데, 인자 거그 계시다가는 금강산으로 나와서 금강산 지장암에 계신다 해서 우리가 모도 쫓아 가서, 학자가 많이 쫓아가서 한 40명 학자가 모여 지내는디, 내가 쫓아 들어갔다. 절을 척 허고는,

“어디서 온 수좌인고? 이름이 누구인고?”
“예! 그저 소승 이름이 정영신입니다”

“허! 정영신이여. 하! 거, 많이 들었는디”
아! 듣고 말고, 그건 뭐 말할 것 없어. 한암 스님도 우리도 기맥히 듣지마는 아, 남방에 그 야단치고 돌아댕기는 정영신을 모를 리가 없거든.

처억 그 나한테 공안을 묻는데—정영신이 발써 그 육대 선지식이 한목 인가 법문 다 나왔고, 마곡 혜봉 스님한테 그 조사선, ‘어떤 게 조사선이냐?’는 거 다 대답했고, 혜월 스님한테 가 공적영지(空寂靈知) 다 대답했고,
지금 쏴악 다 들어가서, 다 벌쎄 다 소식이 그만 다 알고 계시니까, 정영신이라고 헌께 “허, 그렇겄다” 고 허더니 법을 묻는디,

어디 보통 그러헌 그 『염송(拈頌)』 같은 디 물으면은 내가 다, 그 어디서 다 언제 내가 염송을 봤어? 염송이 그 대교(大敎)인디 새파란 젊은 스물세 살 먹어서 경신년에 갔는데, 그때 경신년이 네 살인가?
아,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 무슨 답이 어떻게 알 것인가 그것을? 기중 어디 『속전등(續傳燈)』인가 어디 있다는 법문을 묻는데, 그 처음 들었지, 누가 알았나?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한디 바리때를 전헐 수가 없으니 대중은 어떻게 했으면 바리때를 받겠느냐?’ 바리때, 그 바리때가 인가니까 그때는. ‘어떻게 일렀으면 인가를 받겠느냐?’ 이런 법문이 있어.
그래, 그런 공안이 있으니 “그 영신(永信)이 신수좌(信首座), 그놈 한마디 이르게”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고 헌 디도 바리때는 전헐 수가 없닥 했고, 어떻게 그러면 일러야 바리때를 받겄느냐? 이렇게 물은 공안이 있으니 거, 답하소”
문제가 있나! 어, 그런 데가 무슨 문제가 있냔 말이여!

아! 그런 데가 걸리면은 뭔 놈의 그 ‘달다!’ ‘달다!’ 답헌...
그 꿀 딱! 먹고 있을 때 ‘달다!’ 그 답 나왔지. 그 이 답이 그렇게 공문에도 있고, 석문(釋門) 우리 부처님 석문에도 우리 불가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천주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장자교에도 있고, 다 있대야!
다 있어 답이 나왔는디, 천 답 만 답이 나왔어도 ‘달다!’ 답은 없어. 그러면은 ‘달다같이 그대로 그만 그 나온 답이란 건 없다’ 그때 당시에 내가 답해 논 뒤에 그런 논평이 다 있었어.

아, 그런 답, 거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 한 디는 인가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답을 해사 인가를 받겠느냐?’ 그 답이 당시에 칠백 명이 그렇게 수천 답을 했어도 인가 안 했어. 인가 못 받았어. 그러니 그 공안이 기가 맥힌 공안이여.

그러면 거가서 하나가 인가 받은 공안이 있는디, 인가 받은 공안 답이 딱 붙어 있어.
그러니 딱! 당신이 알고 묻는데 응, 어쩔 것이여?

당장 묻자, 대답을 처커덕 헌게—오히려 더 밝게 했네, 거그 문답보담. 똑, 문답이 더 밝아!
그놈 또 내가 안 일러 주제. 어떻게 했다는 것 못 혀. 내가 답해서 인가 받았단 말만 하지, 뭔 어떻게 답헌 건 내가 안 혀.

물팍을 탁! 치면서 “참! 듣든 말과 같구나! 남방에 정영신이라고, 듣든 것과 같구나!” 그만 그대로 쾌허를 혀.
인자 그래 놨으니 다시 무슨 일이 있나? 일 없어.

그리 허고 그해 여름 그만 거그서 한암 스님 모시고 그해 여름을 떠억 지나고 인자 가을에는—자! 다 보았으니 선지식 스님은 내가 다 인자 한암 스님까장 다 찾아뵙고 내가 탁마 다 했고, 인가 다 받았으니 이제는 만공 큰스님을 찾아갈 밖에 없구나. 인자 만공 큰스님을 찾아 나오는 판이여.

그동안에 한암 스님한테 지낸 것도 다 아시고—내가 인자 만공 큰스님께 처음에 그 도 닦아서 거그서 인자 도 닦고, 두 철만에 닦고는 그러고는 인자 하직허고 나갔었는디 그 안에는 한번도 온 예가 없거든.

만공 큰스님은 정영신이가 발써 거그서 두 철만에 나가더니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로, 혜월 스님한테로, 제산 스님한테로, 서울 용성 스님한테로, 한암 스님한테로 다 발써 지내서 인가 다 받고 내려온다 소문을 다 듣고 앉어 계셔.

허어! 그래 척 들어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가서 절을 척—그전에 늘 모시고 있던 큰스님인께 가서 척 앞에 가서는 대번에 그래 절을 척 허니,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인고?”
그래 다시 턱 일어나 절을 처억 했지. 좀 잘했나! 참, 기가 맥히지!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헌게, “심마물이 임마래냐?” 절을 했는데, 또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떡 했다 그말이여.

허니까, 또 세 번 “심마물 임마래냐?”
절헌 것은 본체만체허고, 세 번을 묻는다 그말이여.

세 번만에는 주먹을 그냥 꽉! 들어 댔단 말이여, 이렇게. 아!
“허어! 실패로고! 갱유야행인(更有夜行人)이냐, 누가 다시 밤 사람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

아! 그러시더니 영, 그만.
“허! 그동안에 네가 왜 그렇게 분다히 돌아댕기고 야단치고 댕기느냐? 뭣 따문에?” 방맹이를 처내리는디, ‘공연히 나를 꺾을라고 그러신다’ 이 곧이 하나 안 듣켜.
그 망하는 것이여. 큰스님이 옳게 봐 가지고 학자를 다루는데 거그서 믿지 않고 제대로 뿌지러 나가면 그놈 아주 뒈진 것이여. 창자도 못쓴 것이여.

거그서 그만 세 번째.
절 한번 떡 했지. 또 “심마물이냐?” 절 다시 했지. 거까장은 더 헐 수 없는 것이여.

또 “심마물고?” 세 번 묻는디, 주먹을 척!—이것이 죽었다 그말이여.
응, 이것이 말 배때기 바로 들어가고, 나귀 배때기 바로 들어간 것이여!

눈 밝은 학자, 바로 들어! 내 공부헌 학자들은 바로 들으란 말이여!
그놈의 짓을 왜 했냔 말이여, 이거 왜? 저 죽는 놈의 응, 제 모가지 친 거여 그게.

다 했제? 녹음 넣기 위해서... 그렇지마는 이 법문을 들어야 허는 것입니다.

대중 다 법문 듣니라고 애썼소마는, 꼭 들어야 헐 것 아닌가!
꼭 들을 것이 무엇인고? 꼭 듣고 믿어서 헐 것이 무엇인가? 이 법 밖에 또 있어? 부탁합니다.(43분13초~60분28초) (일대기 6호 끝)

 

 



----------------(1/3)

*(게송) ‘금조상별후~’ ; 『청허당집(淸虛堂集)』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참고.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장본(張本 어떤 일을 벌이다 장/근본·뿌리 본) ; ①어떤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되는 근원(根源). ②장본인(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낯반대기 ; 낯바대기('낯—눈·코·입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낯판대기.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명한(命限) ; 목숨의 한도.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질다 ; ‘길다’의 사투리.
*짜룹다 ; ‘짧다’의 사투리.
*형루(形累 형상·모양·몸 형/묶다·괴롭히다·근심 루) ; 형(形)은 중생의 형태, 루(累)는 거기에 따르는 고달픈 삶을 말한다. 중생의 몸이 전생의 업에 묶여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므로 ‘형루(形累)’라고 한다.
*유체(遺體 남길 유/몸 체) ; ①’부모가 남겨 놓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이르는 말이다. ②‘시체(屍體)’를 달리 이르는 말.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몸뚱이 이나따나 ; 몸뚱이 이것이나마.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뒷세상 ; 내세(來世).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
*후생(後生) ; 내생(內生).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새암 ; ‘샘, 우물’의 사투리.
*등칠기 ; 등칡(등藤나무). ‘칠기’는 ‘칡’의 사투리.
*탄탄대로(坦坦大路 평탄할·평평할 탄/큰 대/길 로) ; ①험하거나 가파른 곳이 없이 넓고 평평하게[坦坦] 큰길[大路]. ②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순탄한 장래를 이르는 말.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족하다(足-- 충족하다·가득 참 족)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갓없다 ; ‘가없다(끝이 없다)’의 옛말.
*생사광야(生死曠野) ; 생사의 넓은 들판.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를 광야(曠野)에 비유한 말.

 

 



----------------(2/3)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무변광야(無邊曠野) ; 끝없이 넓은 들판.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귀졸(鬼卒) ; 염라국(閻羅國 저승)에 살면서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아 죄인을 다루는 옥졸. 염라졸(閻羅卒), 염마졸(閻魔卒), 염라인(閻羅人)이라고도 한다.
*명줄(命-) ; ‘목숨의 길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佛道)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지경(地境 땅·장소·처해 있는 형편 지/지경·경계·경우·상태·장소·처지 경) ; ‘어떠한 처지’나 ‘형편(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 ‘정도(程度)’의 뜻을 나타내는 말.
*사형선고(死刑宣告 죽을 사/형벌 형/밝힐 선/알릴 고) ; 공판(公判)을 행하는 법정(法廷)에서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 내용을 알리는 일.
*기한(期限 때·기간·기한 기/한정 한) ; 미리 일정한 한도(限度)로 정해 놓은 시기(時期).
*때없이 ; 정해진 시간이 없이 아무때나.
*이(理) ; ① 본체. 본성. 원리. ②진리.
*사(事) ; ①현상. 차별 현상. 사물. 대상. 사태. ②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파악된 대상. 직관으로 파악된 대상.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이다.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이다.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묘체(妙體) ; 묘한 진리의 체(體).
*해탈법(解脫法) ; 해탈의 법. 해탈에 이르는 방법. 번뇌에 묶이는 것에서 해방시켜, 미혹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함.
*달인(達人) ; 진리나 이치에 통달(通達)한 사람[人]. 불법의 도리에 통달한 사람. 깨달은 사람. 달자(達者)와 같은 뜻.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 ; ‘그 흐름을 따라서 성품(性品)을 인득(認得)을 하면, 성품을 봐 버리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을 것이다’
『직지(直指)』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節) (白雲和尙 抄錄 |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참고] 송담스님(No 165) - 82년 3월 첫째 일요법회(82.03.07)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마음이 경계에 따라 굴르는데, 마음이 모든 밖에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따라서 일어나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마음 굴르는 곳에 다 능히 그윽하다. 깊숙하다. 유수(幽邃)하다.
마음은 분명히 경계 따라서 일어납니다. 마음 자체에 성인이 아니라 경계에 따라서 일어나는데, 그 경계에 따라서 굴르는 곳마다 다 능히 유현(幽玄)하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그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인득(認得)하면, 우리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고 경계에 그 흐름 따라가서 같이 그 경계와 같이 휩쓸려서 넘어가는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참선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 경계에 따라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 생각에 따라가지 말고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턱 들어나가면 아무리 경계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경계가 나를 끌어갈 수가 없어.
바로 그 경계로 인해서 나는 나의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여.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는 해탈경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55분35초~60분6초)
*용이심(容易心 담다·받아들이다·쉽다 용/쉬울 이/마음 심) ; 어렵지 않고 매우 쉽다고 생각함. 경솔한 마음. 등한한 마음.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하관(何關) ; 무슨 관계.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용잔하다(庸孱-- 보통·어리석다 용/나약할 잔) ; 못생기고 연약하다.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
*노디(노지)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초당파 법문 ; 소당파(燒堂婆) 법문.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45~47.
만공 스님 당시 각 회상(會上)에서 논란된 바 있는 ‘소당파(燒堂婆)’라고 하는 공안이 있는데, 어떤 암주(庵主)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 노파 한 분이 그 스님을 20년간 양식을 정성껏 대어드렸다.
20년이 다된 어느 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시험해 보려고 자기의 예쁜 딸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네가 가서 그 스님을 꼭 껴안고, <스님!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아라” 하였다.

딸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하였더니 그 암주가 답하기를, “고목이 찬바위에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枯木倚寒岩 三冬無暖氣)”라고 하였다.
딸은 그대로 어머니께 전했다.  노파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암주의 패궐(敗闕)을 알아차리고 토굴로 가서 “내가 저런 속한(俗漢)이한테 20년간 양식을 대었구나!” 하고는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태워버렸다.

어째서 그 노파는 그렇게 청정하게 지내온 암주를 속한이라고 했을까?  암주는 어째서 속한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겠는가, 이 무슨 연고인가?  이것이 공안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그 당시 큰스님들께서 모두 한마디씩 하셨지만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고 몇 개만 적어보면,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직접 경계를 쓰겠다.” “배필이 되어 살겠다.” “할을 하겠다.” “방을 쓰겠다.” 등의 답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안에는 ‘할’도 ‘방’도 소용없는 것이다. ‘방’ 내릴 때 벌써 속인이 되어버린 것이고, ‘할(喝)’ 할 때 계행은 파한 것이다.  위에 적은 어떤 답도 속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대승계는 부처님께서도 범하지 않고서는 설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공안이 대승계를 판단하는 공안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답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며 찾다가는 벌써 파계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함부로 여기에 대해서 입을 열 수가 있을까?  이러한 공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서야 어찌 중생에게 대승계를 함부로 설하겠는가?

큰스님네께서 이르신 답이 많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아닙니다.” 라고만 하여 왔다.  여러 번 답을 이르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답할 것이 따로 있지, 이와 같은 공안에 함부로 답을 할 것인가.  미래 학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끝내 답을 이르지 않았다.
금봉 스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 일러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일러 드리지 않았다.  지금은 금봉 스님마저 돌아가셨으니 누구에게 일러 볼 것인가, 죽어 황천에 가서 염라대왕에게나 일러볼까?
공부하는 학자들이여!  확연(廓然)한 뒤에 한 번 찾아오면 그때는 산승이 더불어 탁마하리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3/3)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동자삭발(童子削髮) ; 어릴 때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 동진출가(童眞出家)와 같은 뜻.
*이력(履歷 밟을·행할·겪을 이/지낼 력) ; ①지금까지 거쳐[履]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來歷). ②어떤 일을 오랫동안 또는 여러 번 겪으면서 몸에 배게 된 태도나 버릇. ③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 ; ‘가는 풀로 옷을 하고 나무 열매로 음식을 삼다’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게송)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 ; 한암 스님 오도송.
*정지 ; ‘부엌’의 사투리.
*부섴 ; ①’아궁이’의 사투리. ②’부엌’의 사투리.
*염송(拈頌) ;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36권. 명(明)의 원극 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 혜능(慧能) 문하 10세부터 20세까지, 불법(佛法)을 계속 이어온 선승(禪僧)들의 계보와 행적, 법어(法語), 문답 등을 정리한 저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물팍 ; 무르팍. ‘무릎’의 사투리.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 ;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7. 08:27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5호) 어묵동정, 경허스님 오도송 점검.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1/2) 약 21분.

 

(2/2) 약 12분.

 

(1/2)----------------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나무~아미타불~
낙화승선정(落花僧禪靜)이다  문자시조박(文字是糟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중이 되아 가지고 경(經)을 한 40년 동안 읽었다. 그 경, 부처님 그 49년 설법해 논 그 경을 한 40년 동안을 참 쉴 새 없이, 눈코 한번 뜰 새 없이 경만 읽었다.
읽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 글만 밤낮 읽고 보니 경서(經書)만 읽고 보니, 내가 해야 헐 것인디—도 닦으란 말이고, 저 깨달으란 말인디, 어찌 저는 깨닫지 못허고 도는 깨달지 못허고 그 부처님 일생에 그 도 닦는 문서만 가지고 밤낮 읽고 있으니, 거 참 어리석다’
 
여간 그 어리석은 일이 아니거든. 어찌 40년 동안을 글만 읽고 있단 말이냐. 경만 읽고 있단 말인가.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로구나. 한 베개를 베고 그 잠 곤(困)허게 올 때에 객몽(客夢)이여.
객(客)으로 돌아댕기다가 어디 베개 베고 잘 때가 있나. 다행히 그 객이 어디 잠자리 하나 좋은 자리 얻어 만나서 그 곤헌 객몽을 꾸는디, 그 객이라는 것이 그 인자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라는 것은 한 베개[一枕] 객(客)의 잔몽(殘夢)이다.
 
객의 쇠잔(衰殘)헌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방 다 일침객잔몽이여. 한 베개 베고, 객의 잔몽을 꾸고 있어.
우리가 객 아닌가. 어디가, 우리가 우리 고향을 가 봤는가? 우리가 본고향(本故鄕) 한번 가 봤어?
 
고향은 아득허니 미(迷)해 버리고 지금 이렇게 삼악도(三惡途)에 도니, 삼악도에 돌고 있다가 지금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와서, 요까짓 놈의 사대(四大)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것이 내 보배라고.
요게 내 보배고, 요게 참말로 내 몸뚱이여? 내 본래 몸뚱이여?
 
어림도 없다. 내 본집에, 내 본고향에, 내 본래 몸뚱이라는 건 꿈에도 아니다. 속지 말어라!
요까짓 놈의 이 더러운 사대추신(四大醜身)을 가지고 내 몸이라고 허느냐? 객잔몽이다. 객의 잔몽(殘夢) 꾸고 있는 것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공중에 한번 날라간 새와 같으느니라. 우리가 지금 날라간 새여. 비조(飛鳥)여. 어디 쉬도 못헌 새여.
 
다행히도 화락승선정(花落僧禪靜)이로구나. 어찌 다행히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척 만났다. 정법 만난 것이 천하에 다행허다! 만고(萬古)에 경행(慶幸)허니라.
 
어디가 정법이 있느냐? 참 정법 만나기 어렵다.
까딱허면 사견(邪見)에 꺼꾸러져서, 내가 사견종자(邪見種子)가 되아 가지고는 사견종자를 안 심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사견에 꺼꾸러지고 사도(邪道)에 엎어질 것 같으면은 나만 엎어지고 나만 꺼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체 사람을 다 끌고 들어감서 누겁(累劫)을 그놈의 인연을 지어 주는 것이니, 왜 그러한 허망헌 농사를 지어 주며, 왜 그런 헛된 사도를 이루어 줄 것이냐. 그 삿된 도를 자꾸 전통해 줄 것이냐.
우리 중생을 점점 점점 더 악몽을 꾸게 맨들고, 악견(惡見)으로 들어가게 맨들고, 삼악도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냐!
 
어쨌든지 그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찾고. 그와 같은 그 정법으로 사종(邪宗)을 버려 버리고 내 믿었던 그 과거 잘못 찾았던 사종을 턱 버려 버리고 귀정(歸正)허는 것, 정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무여시사(無如是事)다. 이와 같은 사종에 엎어지지 말고, 사종에 꺼꾸러지지 말고, 사종에 인연 맺어 두지 말아라!
 
만약 거다가 인연을 두고 그 사종(邪宗) 인연을 떼지 못헐 때, 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허도록 내가 똑 그리 돌아오고, 그 사연(邪緣)이 자꾸 끌고 돌아오는 법이니,
정법이 있는 다음에는 꼭 사법(邪法)이 있어 가지고는 정법을 사법이 자꾸 치는 법이다. 고것이 마장(魔障)이다. 정법을 때려 치는 마업(魔業)이니라.
 
학자(學者)는 불가불신(不可不愼)이냐. 학자는 어찌 가히 삼가치 않을까보냐.
여까지 올라온 송구(頌句), 오늘 아침에 밝히고.
 
 
오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우리 부처님이 도(道) 깨달은 납월팔일인디, 납월팔일 아침에 우리 부처님 도 깨달은 역사를 말씀을 해야 옳을턴디.
오늘은 납월팔일이기 따문에 참, 성도재(成道齋)여. 성도재인디, 오늘 오후 오늘 아마도 12시에 시작하면 한 2시경까지 또 법문이 있겠으니 그때에 성도 법문은 헐 요량하고.
 
저번에 뭐 일대기에 가서, 저 용성 스님 회상(會上)에 가서 용성 스님께 제일귀(第一句) 문답해서 제일귀 문답 마치고, 그 다음에 말후구(末後句) 문답 마치고. 거기에 또 문답이 있거든.
저번에 그걸 내가 안 했구만. ‘한암 스님한테 간다’는 이렇게까장만 하고는 그 용성 스님께 마지막 문답(問答) 안 했어.
 
고 문답을 마자 해야지. 그 내 기이(旣已) 과거에 공부헌 역사기 따문에 조꼬만헌 것이라도 빼놓을 수가 없고. 쪼옥 역사라는 것이 꼭 그것은 그대로 똑 해놓아야 허는 게 역사니까.
조끔이라도 거기에 위조가 있다면은 그 미래 학자한테 거짓말로 속여 놓은 거 아닌가? 그 죄를 어떻게 헐 텐가. 죄보담도 정법문중에서 어찌 그렇게 꾸며대는 말이 어디 있을 건가?
 
 
내가 거기에는, 인자 용성 큰스님께 묻는 말이여. 내가 들은 법문이거든. 과거에!
용성 큰스님께서—만공 스님이 서울을 올라오셨는디.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오셔서 계시는데,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그랬거든.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것입니까’ 어묵동정(語默動靜), 말씀 어(語)자, 어묵 묵(默)이라는 건 말 없는 경계를 묵(默)이라 하지 않소.
 
“어(語)와 묵(默)과 동(動)허고 정(靜)허는 거 여의고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 어묵동정을 여의고 그 이르라고 했네.
그러니깐 만공 큰스님께서 아무 말이 없어. 그 말 없는 경계를 양구(良久)락 햐. 가만히 있었다 그말씀이여. 일체 말도 않고, 동도 않고, 정도 않고, 가만히 말만 없이 계셨다.
 
용성 큰스님께서 “양구(良久)시오?” 그랬다. “양구십니까?”
아무 말이 없는 도리가 양구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달락 하니까 아무 말씀이 없이 계시니 “그 양구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다.
만공 스님, 또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이 없으셨어. 아, 그러고 말았네.
 
 
내가 그때에 그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그걸 내가 전신구(轉身句) 답헌 뒤에 그걸 물었어.
 
용성 큰스님이 만공 큰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아무 말씀이 없으니까 “양구십니까?”—오! 또 아무 말 없는 게 아니라, 또 “양구십니까?” 그러니께,
“아니요” 이랬다. 고렇게 했어, 인자 끝에. 그러고 말았어.
 
“세상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두 분이, 두 어른네가 법문을 해놓으신 이 법이, ‘어묵동정 여의고 이르십시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양구요?’
‘아니요!’ 이래 놓았으니, 학자의 눈을 멀려 놓고 만 짓이제, 이렇게까장 허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어른네가 멱사리을 잡고 같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거 학자 죽인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이랬다. 이 조잔헌 것이. 허, 이거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 이랬다 그말이여.
 
황송허기야 짝이 없고 감히 어디가서 그런 큰스님네 앞에 그렇게 법을...
두 큰스님네가 멱사리을 붙잡고 한 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지, 어디 학자의 눈을 띄울 수가 있읍니까?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을 뿌리고 물에 들어갔읍니다. 물속으로 빠진 거여.
 
허지마는 내가 아무리 조잔하고 내가 아무리 학자지마는 학자가 어른 앞에 어디 감히 그렇게 함부로 입을 열어서 경망헌 행동을 허리요마는, 법체(法體)에 들어가서는 헐 수 없어. 시비헐 건 시비해야 하는 것이지, 안 헐 수가 있어?
 
아, 비단 그뿐 아니라 어떻게 아구지가 세고 쬐끄만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막 들어서제. 막 덤벼. 아, 이런 꼴이 있는가?
나도 그런 줄 알지마는 별 도리 없어! 이 참선 도리야 어쩔 수가 있는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역사에 없는 우리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신데, 갬히 그 앞에 몇백 년 뒤일지언정 손자 중, 손자도 아니고 아무 저 밑에 천삼백 년 후에 나온 운문승(雲門僧)이 우리 부처님한테 그만 그 법문 좀 봐.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여구자긱(與狗子喫)이다. 한 방맹이로 타살(打殺)해 죽여서 개를 준다”
어찌 그 말을 헐 것이냐!
 
이건 헐 수가 없어. 요런 도리를 썼다.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요렇게 썼닥 해서 아무라도 그렇게 써? 그 운문 눈이래야 바로 보고 쓰지!
운문선사는 그대로 써 놓은 말인디, 그건 부처님의 그 무슨 체면과 무슨 우리 부처님의 무슨 천상천하에 거룩헌 명예에 무슨 떨어져서, 그것 소용 없어. 그건 막 보고 쓴 법문인데.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말이여.
 
그런 바른 눈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 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 허고, 또 허들 못 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같지마는,
눈이 있으면은 그 말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영신이는 어떻게 이를테냐? 우리 둘이는 만공 큰스님과 용성 스님은 한 흙탕 속에 그대로 빠졌다면, 자네가 하나 일르소. 자네는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테냐?”
 
나는 거그서 반문(反問)을 했어. 반문.
좀 여러 여그 모이신 우리 대중이 자서히 들어보라 그말이여! 벌로 듣지를 말고.
건방진가 안 건방진가 좀 봐. 참인가 아닌가도 좀 보고! 간택을 허라 그말이여! 거그서.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
양구(良久), 그 말 묻는데 내가 떨어지지 않고 어(語)니, 묵(默)이니, 동(動)이니, 정(靜)이니, 그러헌 데 다 떨어지지 않고,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입니까?”
 
그 문(問)이, 한번 묻는 것이 그 무슨 문(問)이여? 응, 그 무슨 문이냔 말여?
아무리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가루가 그렇게 좋다마는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되는 법이다.
 
거그서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거그서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일러? 거그서 본분(本分)을 추켜 들어 일러?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처(道亦假名處)를 일러?
천하 없는 것을 이를라고 이치를 잡아 찾으면은 저 죽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이냐. 한번 보라 그말이여!
‘찾다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여.(처음~21분7초)
 
 
 
(2/2)----------------
 
“자네는 어떻게 이를텐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공경히 허니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거그서.
 
다시 그대로, 그대로 거그서, 뭐 그대로 그만 말 없는 곳에서 그대로 인가여! 뭐, 두말헐 것 없어.
그 전국에 다, 내 그 다 해놓은 거 전국에 다 있는 것이여. 고놈 마쳤다 그말이여.
건방지게 어디 했지. 건방진 걸 봐, 거그서. 참말로 내가 못된 것인가? 여지없지.
 
거그서 문답 한번 해봐. 답 한번 해봐!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한 그곳에 나아가서, 얼마나 큰스님이 그 무거운 방맹이를 짊어졌는지 거두(擧頭) 못 혀.
바로 거그서 바로 살피지 못허면은, 바로 거그서 그 활살 피허지 못허면은 안 되아.
 
내가 모도 그 다 법문허는디 다 설해 놓았지마는 이 법문을 잘 들어두라 그말이여.
녹음 잘될 것이고 뭐 기위 이 내의 무슨 그 역사를 말해 달락하니 요 법문헌 것이여.
 
내가, 이것은 뒤에 또 나오는 법문이지마는 여다가 한마디 넣을 것은 글씨 또 내가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때에 그 인자 그 어른 제자라도 보월 스님, 돌아가신 고봉 스님, 금봉 스님 쏵 그 호서(湖西) 대중이 다 모인 그 대덕(大德) 가운데에서, 그 큰 용상(龍象) 큰스님네 밑에서—아, 또 보소! 또 내가. 경허 큰스님 오도송이 있어! 오도송(悟道頌).
 
그런 경허 큰스님 같은 오도송이 아, 얼마나 참말로 거룩헌 큰스님의 오도송인디, 거다가 갬히 내가 또 쎗바닥을 대아? 허지마는 댈 건 대야제, 어쩔 것인가.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허고,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요렇게 해놓으셨는디, 내가 거그다가 인자 오도송에다 갖다가 허물을 떡 끄집어낸다.
 
“소 콧구녁 없단 말씀을 듣고,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다.
‘콧구녁 없다’는 도리나, ‘삼천세계가 다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는 각견(覺見)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라’ 그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응! 천하에 큰스님의 아무리 큰스님의 법문일지언정, 뭐 어디 큰스님 법문이라고 어떻게 때꼽재기를 파내고 씻거야지, 어찌 그대로 둘 수가 있겄습니까? 이것이 다 탁마(琢磨)인디.
“무비공(無鼻孔) 도리와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고 깨달은 각견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 천하에 경허 스님 송(頌), 오도송 잘 되았지’ 아, 이래 싸서 내가 거다 입을 벌렸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 무비공 도리와 각견과 무사태평견을, 그놈을 자네는 여의고 한마디 어디 말해 보소. 어떻게 해야만 그놈을 여의고 말을 허겠는가?”
 
“예. 그러면 무비공 도리, 각견 도리, 거 다 큰스님 허신 대로 그대로 두고, ‘홀문인어무비공허고 돈각삼천시오가라.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만 그대로 그만 큰스님 법문 오도송대로 두고, 고 끝에 한 귀(句)만 제가 참으로 황송헙니다마는 한마디 일러보겠습니다”
 
“응, 일르게” 만공 스님이 “일르게”
그 선지식과 50명 학자가 꽉 찬 디서 내가 조실방 앞에서 헌 것입니다. 우리 보살님네도 잘 들으란 말이여. 이놈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라.
유월 달에 그 연암산 밑에 모 심구는 그때여, 때가.
유월연암산하로에, 유월 연암산 밑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란 건,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 한다는 것은 모 심구는 모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여. 그걸 보고 이르는 건디.
 
불법(佛法)이란 것이, 우리 부처님의 법이라 하는 것이 어디 무슨 무사태평(無事太平)이니, 무슨 본래각(本來覺)이니, 무슨 뭐 소 콧구녁 없는 도리니, 그러헌 그 거가서는 말후(末後), 부처님의 그 우리 선법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확철대오헌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지 않는 거여. 확철대오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고 처백히면은 못쓴 것이여.
 
각(覺)이니, 무비공(無鼻孔)이니,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 인자 그 제삼구(第三句)로, 그 도인이 오도송에 그 쓸 수 있는 말이제. 쓰는 법이제, 안 쓰는 것 아니여.
‘허공(虛空)이다. 역무허공지량(亦無虛空之量)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니라’ 이렇게 또 들어가야 되지, 그걸 안 허고는 안되는 법이여.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인데, 그것을 여의고 헐 수가 또 있나.
허지마는 티를 뜯고 학자가 한번 눈을 파는데는 헐 수 없어!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내 거그 글 한 귀(句) 딱 떼고 해놓은 송(頌)이 뭐냐 허면 이겁니다.
 
유월연암산하로에서 들사람이 모 심구는디, 모 심구는 내가 그 경계여.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 두고는, 거다가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곡을 붙여서) 이놈을 내가 하나 불렀드라.
응, 유월연암산하로에 그 모 심구는 곡조다. 다른 게 아니여, 그게. 농군들 노래여!
 
이놈 하나 딱 부르니까 만공 스님이 척 계시다가 “그 여여로 상사뒤여 의지(意旨)가 여하(如何)오?”
내가 그때는 또 춤을 또 추었네 인자, 또 더군다나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적자(嫡子)가 농손(弄孫)이로구나! 적자가 손자를 희롱허는구나!” 그게 점검이여.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일지언정 어디어디 거가서 그대로 뭐 보이는 때꼽재끼를 놔두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 보월 스님도 그때에사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이 삼구에서 허셨제. 제삼구(第三句)로 허셨제” 이랬고.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그말이여.
 
나 역시 아무리 두 어른네가 해 놓았기로이 보이는 것을 안 헐 수가 있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손만 내밀고, 할(喝)만 허고, 방(棒)만 허면 제일인가?
법문이라는 것은 항상 그 참,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은 다 깨달라 다 없다마는 성해(聖解)에 가서, 성해에 가 주(住)허지 말아라. 성해에 떨어지면 또 되는 겐가?
그러니 그 각견(覺見)같은 것을, 불견(佛見)같은 것을, 법견(法見)같은 것을 척척 잡아내서 이게 탁마여.
 
여그서 그놈 척! 허고서는 내가 그다음에 가서 또 인자, 또 그건 아침에 날이 치워서(추워서) 거까장 맺어줄 수가 없어.
 
요것은 뭐냐하면 늘 듣는 법문이고 요새 헌 법문이지마는, 그 꿀 딱! 먹을 때, 꿀 딱 받아먹을 때, 어저께도 그 안 일렀나.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고거 있지.
요놈이 있지마는 전편이 좀 해야, 소소허게 전편을 다시 해가지고 내가 일러야겄어.
 
고놈을 한마디 일러놓고 내가 전국 육대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한목 인가(印可) 받은 것이여. 한목.
하나도, 그런 놈이 나와야 되제. 배 벌로 ‘내가 인가 받았다. 내가 견성했다’ 그러고 나와. 그거 안되는 말이여. 딱딱 그 증거가 나와야 하제.
 
오늘 아침에 치워 여까장 허고 내려가겄어. 오늘은 12시에 법문이 있겄오.(21분9초~33분3초) (일대기 5호 끝)
 
 
 
----------------(1/2)
 
*(게송) ‘일침객잔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송암도인(松巖道人)‘ p83 참고.
*곤하다(困-- 곤하다·가난하다·기운이 빠지다 곤) ; ①기운이 없어 나른하다. ②(사람이) 잠든 상태가 매우 깊고 편안하다.
*객몽(客夢 손·손님·나그네·여행·객지 객/꿈 몽) ; 나그네가 객지(客地)에서 꾸는 꿈.
*잔몽(殘夢 남을 잔/꿈 몽) ; ①잠이 깰 무렵에 꾸는 꿈. ②잠이 깬 후에도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꿈.
*쇠잔하다(衰殘-- 쇠하다·약하다 쇠/남을 잔) ; (힘이나 세력이) 차차 줄어서 매우 약해지다.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사대추신(四大醜身) ;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 더러운[醜] 몸[身]’ 사대색신(四大色身)과 같은 말.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누겁(累劫 묶을·포갤·쌓을 누/겁·오랜 세월 겁) ; 여러 겁이 쌓여서 이루어진 기간. 곧 한없이 길고 오랜 시간.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법(佛法)에 위배되는 견해. 선견(善見 : 있는 그대로, 진실 그대로 보는 것. 정견正見)에 장애가 되는 견해.
*사종(邪宗) ; 외도(外道). 외도가 주장하는 삿된 종지(宗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사연(邪緣) ; 삿된 인연. 올바르지 않고 좋지 않은 조건을 뜻하는 말로서 정연(正緣)의 대칭어이다.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마업(魔業 마구니 마/업·일·선악의 소행所行 업) ; 마구니[魔]의 행위[業]. 마구니의 직접적인 행위 뿐만 아니라, 번뇌, 게으름, 미혹 등을 포함해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마업이라고 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대종사 법어』 (용화선원刊) p19~20 참고.
〇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마자 ; ‘마저(남김없이 죄다. 또는 마지막까지 다)’의 사투리.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어묵동정(語默動靜) ; 말하고[語] 침묵하고[默] 움직이고[動] 쉬는[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행(言行)을 총괄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하나의 짝으로 쓰이기도 한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〇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용상대덕(龍象大德) ;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덕행을 구족한 걸출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속이 좁다)’라는 뜻의 사투리.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아구지가 세다 ; 하는 말이 세다(강하다). *아구지 ; ‘아가리(‘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천상천하(天上天下) ;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2/2)
 
*거두(擧頭 들 거/머리 두) ; ①머리를 듦. ②머리를 숙이는 일 없이 떳떳하게 남을 대함. ③중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머리를 들 정도가 됨.
*호서(湖西) ; ‘호수의 서쪽’으로 오늘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용상(龍象) ; 용과 코끼리. 또는 용이나 코끼리 하나를 가리키는 말.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부처님만 가리키거나 보살의 용맹한 능력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걸출한 인물이나 뛰어난 수행자를 가리킨다.
*만공 스님,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쎗바닥 ; ‘혓바닥(①혀의 윗면. ②‘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심구다 ; ‘심다’의 사투리.
*말후(末後) ; ①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궁극(窮極), 최후의 뜻. ②생명이 끝날 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구(三句)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上堂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 처음 한마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문(問), “무엇이 제2구(第二句, 다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문(問), “무엇이 제3구(第三句, 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참고.
*농군(農軍 농사 농/군사 군) ; ①농민(農民).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②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〇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아주, 매우’의 옛말.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2. 06:27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4호) 제산스님 행장, 용성스님과 법거량.

 

(1/4) 약 21분.

(2/4) 약 21분.

(3/4) 약 21분.

(4/4) 약 17분.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1/4)----------------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이요  문자시조강(文字是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오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선(商量禪)이라는 게 못써.
공연히 앉어서 공부헌닥 하면서 참으로 의심을 허지 않고, 상량선을 하고 앉었거든.

요리 한번 생각해 보고 조리 한번 생각해서, 그 상량이 붙도록 화두를 든다 그말이여. 상량선!
자꾸 그 무슨 이치를 찾고, 거다가 이상스럽게 모도 무슨 별별 도리를 끄집어다가 붙여서.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알 수 없는 의심만 딱 들고서는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걸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것이 조주(趙州)의 뜻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뜻이란 말이여.
그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거가서 무엇이 있을 것이여. 상량(商量)해서, 사량(思量)해서 붙여 봤던들 되냔 말이여.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이란 건 귀신굴이여.
귀신(鬼神)이라는 게, 이 몸뚱이 내버리면 귀신인디.
또 귀신이 뭐, 따로 있나? 이 사람이 사람 몸 가지고 있다가 사람 몸 버리면 귀신이지.

귀신이라는 것은 그거 또 더 이상스럽게 사람 몸뚱이 가져 있을 때보담도 사람 몸뚱이 내버린 뒤에는 귀신의 상량이라는 것은 말로 못 혀.
이놈이, 귀신 상량이라는 것은 당초에 그건 뭐 어따가 비유헐 수 없이,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뿐이여.

숭악헌 근원도 없이 퍼일어난 놈이, 내 근본 정신도 없이 그만 일어나는 놈이 그 귀신 생각인디, 그걸 귀신 상량이라, 귀굴리(鬼窟裏)라 그려. 그래서 상량선이라는 것은 귀굴리선(鬼窟裏禪)이라 그런다 그말이여.

그러니 제일 주의헐 것이 상량선이여.
안 헌닥허지마는 상량선을 허기 따문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오들 않고, 화두일념(話頭一念) 지경이 오들 않고, 고 상량 따문에 망가(亡家)헌다. 집을 잊어버리고 실업(失業)한다. 업(業)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상량이 아닐 것 같으면은 화두(話頭)라는 것이 그대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올 것이며, 어디 그 헛된 선(禪)인가? 참, 옳은 선(禪)이지.

공연히 따진다. 어서 깨달을라는 마음을 다 붙이기도 허고, 그놈이 그 무슨 이치를 찾아 붙인다. 아, 이런 놈의 꼴 봐라.
아무리 해봐도 이치는 아니여. 천하 없는 이치를 다 붙여봐. 그 이치가 무슨 이치가 참선인가. 아니거든.

‘깨달랐다’ 허니까, 뭐 깨달을 것 같으면 무엇이 뭐, 물건이 무엇이 하나가 있는 줄 알고.
어쩠던지 상량선은 안 해야 옳아. 그거 귀신 참선인디, 귀신 참선은 참선이 아니여.
그 까달(까닭) 따문에 타성일편 지경이 의심 하나가 그저 의단독로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 덩어리가 뭉쳐져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뭉쳐져 가지고는 독로(獨露)가 되지를 못혀.

문자(文字)는 시조박(是糟粕)이다. 문자라는 것이 조박(糟粕)이여.
일체 문자선, 문자 참선도 그 못써. 그 무슨 글귀를 집어대고 들어대고 해서 그 모도 문자 인증을 헌다 그말이여.
문자 중 인증이 모도 그것이 조박—고인이 술 짜, 옛사람들이 술 짜 먹어 버린 술 찌꺼리인데, 그 찌꺼리 그것을 자꾸 내가 먹을라고, 술 찌꺼리를 먹어 보니 그 무엇이여. 아무 소용없지.

문자도 소용없는 법이여. 참선에는 문자도 소용이 없어. 그러헌즉 참선학자라는 것은 그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다. 문자에 얽히들 안 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배운 그 교(敎)를, 문자를 버려버리고 선(禪)에 들어온 것이다.
참선 허는데 무슨 문자여? 무슨 교(敎)란 말이여 거가서. 소용없다.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딱 참, 귀재의정(貴在疑情)이다. 귀헌 것이 의심이다.
화두 해 나가는 법! 내가 언제든지 올라와 화두 해 나가는 법을 이렇게 말해 주지 않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노? 아,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알 수가 없구나’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고것이 조주 뜻이여. 뭐 다른, 따로 조주 스님 뜻을 가 찾아?

‘해보니까 조주 스님 뜻이 다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의지가 다르고 아, 두 가지로 자꾸 생각이 나간다’고 요러고 앉었어. 그 무슨 그런 참선을 허고 앉었어.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가 없으니, 그 그놈 찾는 것 아닌가.

아, 그러면 그런 거 찾기는 찾되 의심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 달러.

인자 불 꺼버려라. 여그 올라오면 후끈혀서 그만...

참, 이 이상 더, 천상천하에 어디 무슨 뭐 별별 세계에 다 없는 참선법(參禪法)이 우리 사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세계에 있단 말여. 남섬세계에 가서 남부세계에 가서 있거든.

세상에 이 세계는, 그저 인생이 나면 죄만 퍼짓고, 그저 인생이 나오면은 살래야 살 수 없고, 그저 나오다가 죽기도 허고, 이것 좀 살다가 죽기도 허고, 맨 놈의 남섬부주 죄짓는 세상인디, 아! 이 세계에 와서 있다. 이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

그 세상에 다 있제. ‘나’는 다 있고. 누가 주인공이 없어?
‘나’는 다 있고. 주인공은 다 있지마는 어째 남섬부주에 꼭 난 사람이래야 꼭 주인공,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있어. 그것 묘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여의고는 없거든. 그러허니 불불(佛佛)이 성불(成佛)을 해가지고는 이 사바세계를 오신단 말이여.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헐려고 내려오신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이 대도(大道)를 이루어 가지고는, 불과(佛果)를 증(證)해 가지고는 오실 디가, 출세(出世)헐 디가 여그밖에 없어.

부처가 되아 가지고 불과를 증해 가지고는 가만히 중생교화도 않고 있을 수가 있나. 제일 큰 일이 중생교화(衆生敎化)인디.
중생을 교화 안 헐 것 같으면은 어찌 될 것이냐, 뭐가 될 것인가? 이 중생은 전부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있게.
부처님도 석일(昔日)에 우리와 같은 동아(同我), 똑같은 범부(凡夫)인데 그렇게 생사고를 같이 받아 오시다가 먼첨 성불을 했으니 어서 속히 중생을 위해야 헐 것 아닌가.

중생 때, 불과(佛果) 증허기 전 중생 때,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생사고를 받았으며, 모도 미(迷)헌 우리 중생, 사바세계에서 같이 부모형제가 되았으며,
그 인연 깊은 인연을 천만 겁 중에 같이 해 나왔는데 모도가 부모형제인데, 그 사바세계에서 생사고를 받고 있는 그 중생을 제도(濟度) 안 허고 무엇을 헐 것인가?

부처님이 불과를 이룰 것 같으면은 곧 당장에 그만 사바세계에 인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중생교화를 허는 것이여.

참선법!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는디, 무엇을 헐 것이여!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냐?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느냐?
음, 세상에 상량(商量)도 귀신굴이요, 문자(文字)도 고인조박(古人糟粕)밖에는 안되아. 짜먹어버리고 내버린 찌꺼리밖에 안된다.
약문허노니 내가 돌이켜 묻노니 하시(何是) 시(是)냐? 어떤 것이 그러면 참선법, 옳은 선법이냐?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다. 방맹이를 때리되, 방맹이로 막 치되 방맹이가 하나가 아니라 우적(雨滴)이니라. 빗방울이니라 했다.
그러니 어디 어떤 것이 참선이라고, 어떤 게 옳은 것이냐고 참선 도리를 묻거드면은 방맹이로 빗방울처럼 막 뚜드려 팬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디 어디 그 뭔 이치를 가르켜 놓았어? 참선이 요런 것이다 가르켜 놓았어?

‘참선 이치가 요런 것이다’ 딱! 가르켜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은 선이 아니여.
무엇이라고 딱 손가락처럼 착 나오면은 그거 참선법도 아니고 상견(相見)도 아니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허들 못혀.

게송(偈頌)으로 여까지.


내 과거 공부헐 때, 여그저그 댕기면서 선지식(善知識) 친견허는 그때 그 행각(行脚)헐 때 그 실기(實記)를 좀 말해 달락 해서 시방 설허는 도중에,
혜월 스님을 모시고 와서 김천 직지사에다가 조실 스님을 모시고 크게 선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다가, 모시고 와 놓으니 또 직지사에는 제산(霽山) 큰스님이 계시고,
그 제산 큰스님이 계셨지마는, 제산 큰스님은 그 계행(戒行)이 참 청정허시고—한국에 계행으로 제일 청정헌 어른이 누구냐? 김제산 스님이여.

여기에 인자 제산 스님 역사 잠깐 좀 말씀을 해야 허겄구만.

제산 스님도 발심(發心)허시기 전에는 사판(事判)중으로서, 그때 사판중이 있거든. 사판중으로써서 술도 자시고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그저 마음대로 자시고. 사판중 노릇은 그때 누룩이나 디뎌서 팔고, 그것이 사판중들이여.
참선법은 영 모르고.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래 계시다가 사판중 노릇허는 법밖에는 모르제.

합천 해인사 현당에서 사판중 노릇을 허고 있는데 그때에 나이, 제산 스님 나이 한 30살 잡솼는데, 뜻밖에 ‘경허(鏡虛) 스님이 오셨다’ 소문을 들었거든. ‘경허 스님은 아주 참, 한국 도인(道人)으로는 다시 없다’ 소문이 났는데.

‘그러면 경허 큰스님을 좀 가 뵈야 허겄다’고, 현당에 사판중으로 그래 있다가는 그 마음 난 것도 이상하지. 그런 도인 한번 뵈야겄다고 척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머리는 숭났어 그 어른 머리가. 내 방에 그 경허 스님 사진 있제. 머리도 숭나고, 얼굴은 여가 덥텁헌 양반이 조실에 척 와 앉았어.
처억 보니까 눈이 다른 이보담도 더 쭉 째지고 아주 그런 어른이 앉었는디, 탁자(卓子)의 부처님보담도 훨씬 더 숭배심이 나.

탁자의 부처님은 의호(宜乎)이 아침 저녁에 예불(禮佛)하고, 이렇게 그저 중이 왔으면은 그저 등상(等像)께 예불한갑다 뿐인디.
아, 이 경허 스님은 척 보니 산 부처님이시다. 어떻게 숭배심이 나는지, 굉장혀 그 마음이 믿어지기를.
이렇게 마음이 믿어져야사 도는 닦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만 그 경허 스님을 보고는 얼마나 믿어졌던지—뭐, 경허 스님도 똥싸고 오좀 싸고 밥 먹고, 오히려 저 나쁜 행은 보통 사람보담 더 많이 가져 계시네.
그런디 그것이 도모지 눈앞에 하나 안 보이고, 어떻게 믿어지는지 한량없이 믿어져.

앞에 가서 참, 망구(忘軀) 배(拜)를 허고. 여지(餘地)없이 가서 절을 허고.
내가 중 되기 전에는 물론 아무것도 몰랐지마는, 중이 되아 가지고도 사판중이 되아 가지고 삼십이 넘도록까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모르고, 내가 나 찾는 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망칙허게 망허게 살아 나왔단 말이냐. 날마당 술이나 퍼먹고, 날마당 그저 누룩 장사나 중이 허고, 이따구 짓만 허고 지내고 있단 말이냐.

‘탁! 믿어 가지고 경허 큰스님께 도 배워 가지고 도를 닦아야겄다’ 결심을 딱! 하고 나가서 여지없는 위법(爲法),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갖다 바쳤다 그말이여.(처음~21분5초)


 

 


(2/4)----------------

절을 척 허니깐, “하구래(何求來)냐. 네가 무엇을 구해서 왔느냐?” 물으신다 그말이여.
“큰스님께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무슨 법을 배우러 왔단 말이냐?”
“참선, 참선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 그래야. 좋은 말이다. 참선법을 배울라면은, 참선법 배울 학자가 첫번에 인자 법을 배울라면은 이물표신(以物標信)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건으로써 신(信)을 표해야 하는디. 내 좋아허는 걸 네가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다른 걸 좋아허는 것 아니다. 첫째,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헌다. 평생에 술을 내가 좋아해서 술을 끊지 못허고, 또 술먹을 때는 주효(酒肴)라니,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안주허고 술허고 네가 사오너라. 내가 술을 한잔 먹고 네가 사온 안주를 내가 먹고, 술 한잔 먹고 나서 너한테 참선 화두를 일러주마.
화두 타는 법이 그렇게 쉬워서는 못쓰느니라. 네가 값이 있이 타야 허는 법이니, 네가 네 신심(信心)으로써 술허고 그 닭 한 마리, 내가 닭고기를 좋아허니 닭 한 마리 삶어서 가지고 오너라”

아, 그 퇴설당(堆雪堂) 그 조실에 앉어 계셔서 바로 거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그 퇴설당인디, 그 퇴설당에 조실에 앉어 계셔서 그런다.

내가 지금 녹음해 넣는 법문인디, 녹음해 넣는 법문을 위조로 혀? 그거 아녀. 똑 사실이여. 제산 스님 실기(實記)여.

한 말씀 듣고는 그대로 나왔어.
‘도인이라고 허는 이가, 경허 스님 도인이라고 나는 도인인 줄만 알았더니 조실(祖室)에 앉어서 술 사오고, 살생—닭은 살생을 해야 하니, 닭 모가지 삐틀쳐 죽여서 내가 그놈을 삶아가지고 가지고 와?’
그러헌 마음이 나기가 처꺽 쉬울 것인디, 없어! 그런 마음이 어디가 있어.

응, 조꼼도 그런 마음이 없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그만 그대로 바로 내려가서, 각사 십 리(十里)나 내려가서—당신이 뭐 어떻게 손수 닭이야 잡을 수가 있나?
그러고 그때 또 사판중으로 계시니까, 그런 것 뭐 닭 모가지 짤르고 이런 거 뭐 죄이니 뭣이니도 없지마는 내려가서, 각사라는 데 내려가서 그 어디 아는 집에, 다 절에 그 십 리 동구(洞口)에 있으니깐 아는 집이 있제. 내려가서.

“나 닭 한 마리 잡아서 수증기로 잘 삶아서 줄 수 없겠느냐?”
“왜 못 해 드려요. 해 드리지요” 의호이 해 주지. 뭐, 안 해주어? 돈 받고 하는디.

그놈을 삶고, 홍류동 찹쌀막걸리 그 밥튀가 동동 뜬 놈 잘해서 그 청주로 떠놓은 홍류동 찹쌀막걸리, 옌장 술 잘 먹는 이는 비우 동(動)허겄네, 술 먹고 싶어서. 나도 동허는구만, 그 말을 헌께.

허! 아, 나도 글쎄 대구서 그 칠곡 넘어가는 그 잿말랑에 올라가다가 목은 컬컬헌데 아, 나이 또 그때 나도 스물 몇 살 먹었을 때니 술도 잘 먹을 때고 헌디,
아, 그 노인이 찹쌀술을 해놨다고 “한잔 잡수고 가시오” 그려. “아, 그래요!” 그것 잘 먹겄당.

오목식기로 하나 뚝 떠 주데. 아, 이놈의 술을 먹어 보니 입이 짝짝 들어붙으면서 참, 맛이라는 건 그 위에 더헐 수 없네. 찹쌀막걸리 그놈 잘되아 놓으면 맛 좋거든, 옛날 누룩으로. 지금은 그런 것 없구만. 암만 정종 그 같은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구만.
한 독식기를 먹었네. 처 철렁, 기분이 좋고 하나도 취기는 없고. 또 한 접시를 한 오목식기를 먹었네. 둘 먹었제. 아, 그런게 또 인자 참 더 먹고 싶네. 셋을 먹었네, 큰 놈! 그 자리에 앉어서 다섯을 먹었어, 오목식기로.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섯을 척 먹고서는 그 재를 넘어서 도더기재를 올라가는디, 그 재 밑에 까장은 알았어. 온 줄 알았어.
재 밑에 와서는 어떻게 된지를 몰라. 그 뒤에라도 잉!
아, 그랬는데 그도 어떻게 찾아갔든지 넘의 묏등을 찾아갔어. 묏등! 나는 평생에 안 잊히는구만. 묏등에 올라...

참, 별놈의 역사를 내가 내 입으로 다 말허네.
이래야사 그게 내가 지은 죄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 되제. 이런 청정 대중에 못 떨어 내놓고 어따 떨어 내놓을 것인가.

감추면 그 죄가 되고, 탁! 떨어 내버리면은 오히려 죄가, 좀 지은 죄를 받기야 받지마는 발로참회(發露懺悔)가 되아.
내가 그래서 이렇게 그 문둥이 지랄 같은 짓헌 걸 내가 다 까바쳐 놓는구만. 대중에 다 내가 다 까바쳐.

남의 묏등에 들어가서는, 묏등 밑에 가서 잤단 말이여. 그냥 꺼꾸러져 몰라 버렸어.
자다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나고 그 산은 어떻게 험악헌 그 대구 칠곡, 그 산 모도 산천 험악헌 디는 그 도덕산 그 다 알지. 정공, 다 환히 알지, 몰라?

그 산은 뒷산은 칙칙헌디, 호랭이란 놈이 거그 살다가 밤낮 마을에 내려와서 개를 가져가고 헌 그런 놈의 디여. 아, 그런 놈의 디인디 거가서 자도 호랭이란 놈은 안 왔더구만.
거 실컷 자고 나서 총총헌디 아, 밤이 얼마나 되았는지 시계도 나 그때 없었고.
아, 헐 수 할 수 없어, 추워서 살 수가 없어. 술이 인자 깨든 거여.

그래 그 마을을 찾아 들어가니까 깜깜 모도 불 다 꺼번지고, 전기도 없는 딘데 아, 문에 가서 뭐 누구를 찾으니 누가 나오나?
그 밤이 그렇게 한 한두 시나 세 시나 되았는가 어쨌는가. 그래 그만 ‘동네 사람, 사람 좀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아, 누가 듣고 ‘웬 사람이냐?’고 나와서,
‘아 여보시오. 내가 술을 먹고 그만 어디 가다 취해서 자고 아, 인자사 내가 일어나니 추워 죽겠어서 인가를 찾아온디 날 좀 구해 주시오. 추워 죽겄오’
‘아, 그러냐’고, 문을 열고 뜨거운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들어가서 자고 아침 거그서 얻어먹고 그 참 나온 일이 있었어.

그놈의 찹쌉술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홍류동 술맛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여까지 했구만. 고놈은 또 인자 거그서 그만두고.


아, 그래 제산 큰스님도 홍류동을 떡 올라오셔서 그 찹쌀막걸리를 잘 그냥 뜬 놈을 사르르 받쳐 가지고는 병에다 넣어 가지고 수증기로 삶은 닭 한 마리하고... 그 알겠제, 들어서 알겠제 잉. 아까 있는 디를 알아야제.

그래 가지고 올라와서 정성껏 바쳤다. 누구한테 바쳐? 경허 큰스님한테 바쳤다 그말이여.
퇴설당 옆에 있는 조실방에 갖다 바치고는 참으로 절을 기가 맥히게 헌 뒤에 “잡솨 주십소사”허고는, 그러제.

척 큰 대접에 하나 쭈욱 잡숫더니, 닭 그놈 그 자리에서 떡 그 뼉다구 추켜들고 쭉쭉 “거, 잘 삶았구나. 맛이 있다” 그러시고는.
아, 그저 젊을 때시고 뭐 뼉다구 그놈 막 들고는 그저 막 그저 깨문 놈도 있고 뼉다구 뱉은 놈도 있고. 척 추려서 척 잡수고는 손수건 입 썩 닦으시고. 그까짓 닭 한 마리 그냥 얼른 잡솨 버린다 말이여.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 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것,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


그래 술허고 닭고기허고 잡순 후에 그래 설법을 해 주셔. 그 참, 그 조실에서 그렇게 막 아무 거침없이 잡순다. 잡수고는 그 자리에서 ‘오냐!’
그 벌써 거까장 가 술 사오고 닭까장 가서 맨들어 올 때에는 그 사람의 신심이 여간 아니여. 그 신심이. 발써 그 신심을 봤거든. 그만헌 신심 가운데에서 일러주는 것이여.

그래야사 도 배우는—똑 그래 내가 뭔 술 사오고 뭐 닭 삶아 오라고 요런 소리 헌 것 같여? 내가 그렇게 삶아 오고 술 받아 오라는 게 아니라, 그랬다 그 말씀인데,
또 갖다가 나를 갖다 손그락질 허면서 ‘술 사오고 닭 잡아 오라고 저러는구만’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렇게 거다가 찢어서 해필 왈 갖다 내 허물을 둘러씌우지 말란 말씀이여.

잡숫고는 화두 설법을 해 주시는데, 화두를 타 가지고 나오는디, 아무 흔적 없는 것이요 말 한마디언만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일러주셨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으니, ‘뜰 앞에 잣냉기, 어째서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는고?’ 이놈을 해라”해서,
그 화두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떻게 걸음을 걸어서 나온지를 몰라. 어떻게 기가 맥히고 좋던지! ‘이런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를 탔다’

화두 타 가지고 그날부텀 정전백수자 화두를 허는데, 뒷방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림살이 허는 중인데, 살림살이고 무엇이고 하나 허다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인자 그때부텀은 ‘이 몸은 죽는구나. 내 이 몸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주 기한 딱 정해놓은 몸뚱이다. 죽을 사형 무대밖에는 없는 이 몸뚱이! 이놈 사형선고는 받았다마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시간이나 좀 알았으면 쓰겄는디, 이놈의 사형선고 기간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서른 한 살 먹어 갈라는가 원, 사형을 집행해 갈라는가, 스물 둘에 갈라는가, 이건 원 당최 알 수가 있나.
허니 참, 시각이 급허고, 참말로 내가 이 참선을 해서 생사 없는 대도를 깨달라 얻지 못허고 내가 이 목숨을 내버리고 가다니. 이 목숨 있을 적에 해야겄구나!’

그만 그대로 발심(發心)이 척 되는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뭣이 보이여?

그렇게 그 참, 사판중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돈도 많이 벌라고 남 모도 이자도 놓기도 허고, 사판중은 그렇거든. 누룩 디뎌서 모도 팔아 가지고는 사방 모도 논 살라고 계획해 놓았던 그런 것 저런 것 받을 것이 꽉 찼고.
허지마는 하나도—또 그 모도 집안이 부자 집안에 중이 되았으니까—하나도 정리고 무엇이고, 뭐 요리조리 모도 써 놓았던 계약서 받을 거 이거 불 탁! 질러 쏵 질러버리고는.

상좌 하나 들여서, 들인 것도 뭣도 없지마는 어른이 그렇게 참 노래(老來)에 또 시봉허다 나오니까 어디로 이리저리 의탁해 번지고 그러고는 선방에 척 나왔습니다.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 하나 타 가지고 다만 화두만 묶어 짊어지고는 나왔지. 아무것도 없고.

그대로 선방에 앉어서 지독허게 공부를 허셨습니다.
제산 큰스님께서 공부 한번 험서 그날부텀 그렇게 술도 자시고 헌 것 쏵 끊어 번지고는, 계행이 청정허기를 그렇게 청정헌 어른이 없고, 수행이 당최 참선해서 한번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화두를 다루어 나간 어른은 그 어른밖에 없어. 기차제.

그러지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그 인가(印可)를 얻은 데가 없어.
인가를 누구한테 얻었어야제. 인자 제산 스님은 그저 그렇게 도만 잘 닦아 오셨제, 인가 얻은 데는 없었으니까 학자(學者)는 제접(提接)을 못 혀.
아, 보통 참선허는 학자야 왜 제접 못 헐까마는 계행이 청정허고 하도 거룩허시니까 인자 보통 학자들은 가 많이 지내야. 뭐 보통 지내는 게 아니지마는, 대도를 통헌 분은 제접을 못 혀.

누가 “하암” 그랬어? 내 그런 ‘하암’은 참, 법상(法床)에서 듣기 싫다.
헤헤, 이거 세상에 “하암” 그려? 그 어디서 나와?

내 법문도 “하암”허면서 한번 허까?
그런 시원찮은 행동은 그만 좀 톡톡히 해버리지, 왜 그렇게 시지부지 헐까?(21분5초~42분22초)


 

 


(3/4)----------------

그래도 그런 ‘하암’ 한번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여러분이 그 ‘하암’ 한번 헌 바람에 내가 이렇게 허니까 그 ‘하암’헌 이는 부끄러울 것이지마는 한번 해 논 바람에 내가 그놈을 가지고 그냥 그만 한번 광고를 헌 바람에 여러 모인 대중들이 듣고는 정신채리거든.
옆에서 ‘하암’을 헐 이도 안 허거든. ‘하암’헐 이도 안 혀. 그러니 그 이익을 많이 준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허시지 마시오.

법상에서 조실 스님이 법문허다가 그런 걸 한번 알려 주는 바람에 그게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여. 반다시 인자 이담에는 그러지 안 헐 것이고. 그러니 그런 좋은, 그 좋은 설법이제.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 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말이여. 그때는 또 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

그때 마침 학자가 한 30여명 있는데, 그때 주지(住持)는 누구든고 하니 이회광(李晦光) 스님이여. 이회광 스님이라고 굉장헌 이가 있었소.
시방 그저 ‘이회광 스님’이면 그이 얼굴을 본 이가 있는가 없는가는 몰라 그러허되, 이회광 스님이 주지인디.

이회광 스님이 첫 주지로 인자 되아 가지고, 합천 해인사 큰 법당에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주지된 후에 진산식(晉山式)에 대중이 인자 그 삼백 명 대중이 주지 스님으로 모셔 가지고는 그 법상에 올라오셔서 설법을 척 헌다.

아주 그때는 처음 와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설법상(說法床)에 올라가서 설법을 척 허는데, 그때 제산 큰스님 회상에 수좌(首座) 하나가 누가 있는고 하니 보택(寶澤)이, 택수좌가 있어.
보택이, 택수좌라는 스님은 누군고 허니 석두(石頭) 스님이여, 임석두 스님인디. 임석두 스님은 누군고 허니 돌아가신 종정스님, 효봉(曉峰) 스님의 은사스님이여.

그 스님 이름이 보택이, 택수좌인디. 보택이 택수좌로 그때 그 제산 스님 회상에 참선을 허고 있다가, 이회광 스님 주지가 되아가지고 진산식 설법허는디 그 법회에 참례해서 법을 듣는데, 그 회광 스님도 수좌로 공부를 허고 댕기다가 해인사에 들어와서 주지가 되았거든.
인자 진산식 설법에 회광 스님이 법문을 허시는데, 그 법문을 들어 보란 말이여.

인유(因由)를 다 말해야 되는 것이여.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것이여.
부처님 법문에도 인유분(因由分)이 있거든, 인유분. 그 주욱 얘기를 해 가지고는 인자 딱 헌다, 이런 인유가 있어. 무조건 툭 허고만 나오면 되아?

그래 해인사 큰 법당에 이회광 스님 인자 진산식 설법허러 올라가서 진산식으로 법상에 올라가 설법헐 땐디. 얼마나 그 법보종찰(法寶宗刹)에 참, 주지가 되아 가지고는 산중이 다 모였는데 삼백 명 대중이 모았어.
그리고 또 서울서 그 소문이 난 이회광 스님이기 따문에, 서울 상궁(尙宮)들이 다 믿은 스님이기 때문에 천상궁 이하에 그 상궁들이 수백 명이 내려왔어. 상궁이 꽉 차고 산중 스님네가 한 삼백 명이 차고 뜰까장 꽉 찼는데.

그 큰 법당에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허는데—지금 설법을 지금 헐 판이지, 올라갔지.
턱 앉었는데, 회광 스님 참 인물이 잘났거든. 그 이상 더 잘날 수 없지. 틀이 잘 생겨가지고 올라가 법문허는디, 주장자를 추켜들고. 이게 법문이여!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금일대중(今日大衆)이 산승(山僧)의 입으로 나왔느니라” 그랬네.

아, 그래 놓으니깐 불가불 물을 수밖에 없지.
효봉 스님 은사스님 보택이 택수좌, 그 스님이 척! 나와서 앞에 와서 척 공경허게 절을 한 자리 딱—그 묻는 법이 그려. 다 그래야지.

절을 딱 허고는 합장하고 척 서서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금일대중은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회광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화상(和尙)은 종하처출(從何處出)고? 화상은 어느 곳으로써 나왔습니까?” 물었네.

그 대답헐 자신(自信) 있는가? 자신 있는가?
바로 보여야 하지, 못허는 것이여! 거, 어름해 가지고는 못 헌다니까 그래.
요리조리 생각허다가는 허들 못 하고 더군다나 말헐 것 없지마는, 바닥이 툭 드러나지 않고는 못 혀.

고놈 한마디 해 놓으면은 그 밖에 더 무서운 답이 나오네. 문답이 그 밖에가 더 있어.
그 하나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제. 어디 여그 우리, 또 우리 저 모도 먼 디서 모도 온 보살님네도 한마디 대답해 보고.

많이 선방에 댕김서 공부허신 어른들이 여기 시방 모도 계신디, 원 체면만 채려도 못써.
툭! 견성해 가지고는 또 애끼기만 허는구만. 애껴 놓으면 뭣 혀. 푹 나와야지.

한마디씩 모도 허면은 나도 한마디 헐 터이지마는, 정말 법문을 들을라면은 한마디씩 해 볼 것이지마는, 밑천이 짤러 가지고는 못 햐. 고놈 한마디 겨우 답해 놓고 나면 어쩌라고. 큰일나제.

다 제 방맹이에 죽느니라. 제 방맹이에 저 죽고마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만 그 보택이 택수좌님이 아, 거그서 그만 들나지 않게 은근하게 한마디 잘 이르고 나오면은 그 좋을 것이다 그말이여.
세상에 그... 헌디 아, 옷을 벗어서 장삼(長衫)을 척 벗어서 어깨에다가 척 걸쳐 메고는 “분허다!” 쳐다보고, 법상에 앉었는디 “분허구만! 속한(俗漢)이 놈한테 내가 절헌 것이 분혀!”
아, 이러고는 그냥 장삼을 메고는 불수변거(拂袖便去)를 해버렸네.

그러니 그 위신(威信)이 그 무엇이여.
그렇게 큰 대중이 다 모이고 서울서 상궁 대중이 다 모이고, 비구니 대중이 다 모이고 그런디 그렇게 헐 수가 있어?

허, 이거 참, 어쩔 것이여 그거, 회광 스님으로서 어쩔 것이여. 참 기가 차제!
법문을 헐래야 헐 수가 있소? ‘속한이 놈한테 절했다고 분허다’고 나가 놓으니.

아, 그랬다더니. 아, 이번에 내가 또 들었구만. 나 인자 이번에 들었구만.
수련대회 학생이 송광사로 갔드랴. 간디, 그 대회에 따라온 이가 누군고 하니, 요새 그 왜 처사님이 견성했다고 헌 이가 있는데. 백봉처사라고 허나? 그 처사가 요새 그랬다는데.

여그 이 자혜 수좌가 잘 알고 와서 얘기해서 들었구만.
아, 거그에 창영 수좌가 있다 하나? 창영 수좌인가 누가 있었는디, 가서 그만 법문을 가만히 듣다가는 무슨 법문에 그 졸가리가 나왔드만, 나 그건 모르겄구만. 나 인자 들어.

탁! 채고 물으니께 그만 어름어름 말대답을 못 하니까, “요까짓 것들이 다 어느 곳에서 와서 견성했다고 입을 벌려? 당장 여가 어디인디, 16국사 도량인디 여그 와서”
아, 그래 가지고 거그서 헐 수 없어 그만, 그 냅대 그만 법방(法棒)을 냅대 내리는 바람에 도망갔대아. 도망가지. 도망가 버렸대 그냥. 마누라까장 데리고 왔다가.

아, 그랬다고, 여그 조그만헌 자혜 수좌가 그 소리를 해서 내가 그저껜가 들었구만.
그 그런 것이란께. 아, 그 어떤 처사인지 모르지마는 그 참, 그 우세 그 큰 우세여. 함부로 입 벌릴 수 없는 것이여.

아, 그렇게 점잖은 이가 그래도 거그서 그만 바싹 절단나 버려. 살림살이 푹 베져 버리고. 못 하네, 그거.
자, 그만 그래 그만 법문헐 수가 있는가? 법문을 해야 헐턴디 법문을 못 혀, 그 정도면.

그만 그길로 법문 못 허고 내려와서는 가만히 그만 주지실에  있다가, ‘이놈의 주지를 내가 공연히 왔구나, 이러헌 산중에 이러헌 놈의 우세가 어디 있노’ 우세 안 헐 수밖에 없제.

위신이 암만 점잖하고 암만 학식이 넉넉헌들 이 법은, 이 일착자(一着子) 도리는 헐 수 없어.

대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정여무정과 금일대중까장이라도 내 입에 나왔느니라’ 자기가 해 놓았으니, 자기는 어디서 나온 걸 바로 일러야 할 것 아닌가? 저 나온 걸 일러야 헐 것 아니여?
이런 도무지 아, 그놈을 못 일러 놓았으니, 대갈빡이만 있고 몸뚱이 없는 것이제, 뭣이여?

법문 못 혀. 내려와서는 그날 밤 잠 한숨 못 자고는 주지실에 띄우고는 그 이튿날부텀은 달리 어떻게 헐 수 없으니까, ‘합천 해인사 그 퇴설당을 못 파라, 못을 파라’ 그 이유는? 왜 못을 파라느냐?
‘못 파라’는 것은 장경각(藏經閣)에 불을 꺼야 허겄으니깐 못을 파라 이거여.

인자 쫓아내는 것이지. ‘수좌, 쏵 가거라’
주지니까, 주지 직권이니깐, 헐 수 있어? ‘못을 팔 터이니 나가거라’

헐 수 없어서 그때 쫓겨나는데, 보택이 택수좌님 따문에 온 대중이 다 쫓겨나는데, 헤 기차제!
그때만 해도 주지 권리가 참 무섭다.

불통령 재를 넘어서... 목통령(木通嶺) 재가 불통령(不通嶺)일세. 이 정공은 잘 알거네.
목통령이 거 불통령이여. 왜 불(목)통령인고 허니 ‘아니 불(不)’자 대각빡이 올라간께 목(木)자가 됐어. 갖다가 불통령을 목(木)자로 목통령(木通嶺)으로 된 거여. 그래 목통령인디.

목통령 재를 넘어서 김천 직지사를 오셨네, 제산 스님이.
그래 가지고 그 김천 직지사에 가서 그 어른이 와 계시면서 또 선객(禪客)이 한 사오십 명 모아서 살기 따문에 직지사가 그 참, 한국에 제일가는 선방이 되았었구만.

여까지, 내가 이 말허니라고 여까지 헌 것이여. 그 인유를 얘기허니라고 여까장 헌 것이다 그말이여.

그전에는 볼 것 없는 군막사찰(軍幕寺刹)인디.
또 옛날에는 선산 도리사가 초창, 옛날에는 금릉군인디 금릉 직지사가 이창, 상당한 절인디 이창인데, 천불(千佛)을 모도 모시고 다 그랬거든.
그 큰 대찰인데 중간에 가서는 숭악한 폐사(廢寺) 되아 가지고는 모도 그저 그만 장사하는 그런 (조금 더 키우제 불을) 그러헌 직지사입니다.

그런 직지사인디 그런 직지사에다가 제산 큰스님도 참 계덕(戒德)이 훌륭허고 청정허시고 그런 어른이지마는,
좀 일구(一句)를 막 다루아서 견성 도인을 막 투드러 나게 맨드는 혜월 큰스님을 좀 모셔다가 놓고 한국에 제일가는 사자 도인 그냥 이런 그만 그 대선원을 만들아 볼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 어른을 모시고 참 올라와서 선방을 헐라 한디, 통도사에서 그만 기어니 뭐 모셔가는디 어떻게 혀.

안산 내원까장 막 들여놓고 왼통 그만 그때 신도가 돈을 만 원을, 그때 돈 만 원이면 큰 돈이여.
만 원을 모도 거두어서 아, 그 큰스님 모도 수좌 양식(糧食) 허라고 그만 갖다가 돈방석을 만들아 깔아 드리는디 어떻게 뭐 내가 거그서 어떻게 헐 도리가 있어야제.

나는 그때 그만 벌써 그만 수좌로서 조고만헌 것이 글쎄 참 견성인지, 그릇 견성인지 ‘견성했다’고 내 딴에 그만—머냐 다 얘기했지—막 오도송(悟道頌)을 짓고,
그래가지고 더군다나 그 혜봉 스님한테 가서 척 인가를 아, 여지없이 혜봉 스님이 나를 인가해 주어. 두 말 헐 것도 인가를 해주니 그 어떻게 헐 거여, 내가.

그 인가해 준디 말이여, 저번에 내가 얘기했지마는, 지금 절대 내가 ‘그건 아니다’ 그말이여.
아닌데! 아, 그 어른 아니라도 그것 터꺽! 다 그대로 알게 됐제! 되아 버렸어. 공안이 그놈이 그 이상혀.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참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송곳도 없다고 했는디, 거기에 점검을 고인이 허기를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허니 어떻게 일렀으면, 송곳까장 없어졌다 했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되니 어떻게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헌디,

내가 답허기를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여. 능각은 첨첨헌디 타와 같지 않다’ 아 이렇게 일러놨네. 그게 그렇게 일러 꼭 될... 인가허지, 허지마는 나는 지금 그렇게 않겄다, 도저히.
그거 내가 답헌 소리인디 능각첨첨... 그때 답 안 혀. 인자 못 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답을 헐 것이냐?
내 답이 시방 여그 탁! 있어. 탁 있지마는 이 답을 내가 어따가 써 놓들 못 혀.
내가 확철대오헌 선객이 있다면은 답 딱! 허지. 거그밖에는 해 줄 도리가 없어.

저번에 허든 놈 내가 끝을 여그다 또 요렇게 좀 맞추니라고 요렇게 해놓고. 저번에도 그렇게 했든가 몰라?(42분25초~63분31초)

 

 



(4/4)----------------

혜월 스님을 모셔다가 직지사에다가 어떻게 헐라고 헌 것도 내가 수좌, 납자(衲子)로 댕긴 사람이 무슨 능술(能術)이 있어서 그려.
허지마는 발써 그만 혜봉 스님한테로 와서 거그서 인가 탁! 받고 척 넘어왔다는 것, 다 벌써 말이 머냐 들어와 직지사 제산 스님 귀에까지 다 들어왔으니 제산 큰스님께서도 아주 그만 뭐, 그 뭐 여지없이 그만 참, 그만 그 어른은 그대로 그만 종(從)해 버려. 그대로 그만.

그 내가 와서 그 현구(玄句)를, 조사관(祖師關)을 물으니까 대답은 못 허시고 “내가 탁마(琢磨)를 못 해봐서 이러네” 그려.
그때 내가 첫 철 거그 지내고 갔은게 다 오직, 그 어른 시봉도 내가 허고 했은게, 오직 다 무간(無間)혀.
“나는 탁마를 못 해서 그러네”

그러고는 날 갖다가서 첫 철에 들어올 때에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봐라” 가르켜 준 스님인디 그 뭐, 말헐 게 있어?
아, 그래 가지고 돌아와서 아, 그만 그 어른의 ‘일념미생전을 보라’한 거기에 그만, 뭐 그대로 그 어른의 얼굴이 그만 참 말헐 수가 없제.

내가 그걸 자꾸 “큰스님, 그거 일념미생전을 보면은 벌써 일념미생전을 보는 놈이 한 놈이 일어나 가지고는, 그 일어나기 전을 보고 앉었으니 거, 어떻게 헐 것입니까?”하고 무척 말을 했제.
내가 뭐 말 못 헐 게 뭐 있나? 탁마상성(琢磨相成)인디.
당신도 내 입을 막지 못허실 줄 알고 “내가 탁마를 못 했어” 이렇게 말문이 맥혀 버렸어.

제산 큰스님은 우리 은사스님이란 말이여. 내가 은사(恩師)를 그리 해서 은사스님이거든.
은사스님이라고 해서 법(法) 모르는 걸 알았다 허고 제일이라 햐? 그건 못 혀.
내 아버지라도 못 허는 것이고, 헌 법이 없어. 그래야 헐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그 회상에서 혜월 큰스님을 모시고 선방—그저 그때 그 다 말허니께 퇴운 스님도 좋아 하시고 또 그 제산 큰스님도 조끔도 당신이 조실이라고 해서 그런 큰스님이 오는 것을 반대헐 어른이 아니거든.
‘내 자리인디, 어찌 그 어른이 와?’ 없어!

“좋다”고. 그 뜻을 얻어 가지고는 갖다가 모시자고 했는디 뭐 내가 자발로 헌 건 아니지마는, 발써 그만큼 그만 내 말이 그만 그렇게 권리가 있어. 말 한마디 허면 모두 세워 주고.

또 법을 ‘정영신(鄭永信)이 벌써 혜봉 스님이 다 인가했다’ 아, 이거 소문이 나니 어쩔 꺼여. 또 ‘혜월 스님한테 그 안에 가서 다 벌써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 다 일렀다’ 소문나 놓으니께 뭐 어쩌.
그만 퇴운 스님도 말로 헐 수 없이 좋아하고, 제산 큰스님도 그만 내 말을 여지없이 참 신용하고.
아, 그래서 직지사에 모실라고 딱 했는데, 당최 그만 통도사에서 막 모셔 갈라고 하는디, 허는 수가 없어서 기어이 못하고는.

‘아이고, 헐 수 있나. 어라, 나는 내 목적이나 달성헐 수밖에 없다. 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또 내가 한번 또 인가도 받고. 물으면 내가 답(答)도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을 해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으로 올라갔다 그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턱 ‘발써 정영신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 머녀(먼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도 다,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다 듣고 있고.
또 ‘왔다’ 소문이, 그래 ‘정영신이가 왔다’헌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아,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 “정영신이가 여그 왔다는디” 그래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오!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응, 너 글안해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자, 그려 척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을 한번 해 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그때 한참 제방(諸方)에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에서 시작되아. 동화사 금당(金堂)에서 시작이 되았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디,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디 제일 옳게 답을 했닥 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그 무렴 스님 답헌 제일귀 답을 듣고, “흥,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 그래버린 거여.

그러면 그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허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요렇게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그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등.

“아니니라” 해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귀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귀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묻길래, 내 답을 좀 보란 말이여, 응.

또 저번에 다 해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그 이걸 내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야(얘)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저 일러 주는 것 다 봤지만 어저께 그 청암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을 혀. ‘그 참 잘했다’고.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뭐 얼매를 일렀는데 참 좋다’고.

아,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맨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내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그 사투리에 뭣에 잉, 듣기 싫어! 내가 해 놓고도.

그런디 인자 야(얘)는 그대로 써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아, 그런 게 없드구만.
아, 그런데 그 나는 잘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잘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안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 “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예?”(높은 음성으로)
그 왜 대답이 그려? ‘예’허든지 그러지, “예?” 그려. “예?” 「”예?”는 왜 여가 “예?” 그려」
그것 좀 잘...
「왜 “예?” 그려」 참,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다. 세상에...

“예?” 그런게, ‘여하시제일구여?’ 또 묻거든. “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응. 그 어른 답 가운데 좀 불싸스럽지마는 헐 수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척 허고서는 “큰스님 일러 줍소사, 큰스님 일러 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때는 “예”지. “예”
“예?” 그것 아니여 잉. “예” 그런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내가 또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말이여.

세상에 법전에,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그 대중이 그때 오십 명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를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을 못 했느니라. 전신을 못 했구나” 전신(轉身)—‘구를 전(轉)’자, ‘몸 신(身)자.

“전신을 못 했느니라” 몸뚱이를 전(轉)허지, 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말이여. 구르지 못 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를 물어 줍소사”

용성 : “응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허기를... 어?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허기를,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그 끝에 그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方丈)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뭐 인가(印可)야, ‘옳다’야,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말이여.

그러면 뭐 ‘옳다, 그르다’헌 것을, 내가 무슨 뭐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印可)해 주기를 뭐, ‘옳다, 그르다’헌 걸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딱 해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이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든 날이여. 그 뒤 사흘 되든 날이여.
3일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했어.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은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또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 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아, 영신이가 그 뭘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고 하십니까?” 하동산 스님은 그랬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은 “아, 영신이가 뭐 어째서 그래 속았다고 그런 말씀허십니까?”
그 어른 말이 “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말이여.

나는 못 들었는디, 대중에 그랬다고. 그때 그 대중에는 누가 있었느냐 허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저 죽은—다 죽었구만, 둘 다 다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그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그 말을 했어.

“아,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 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말이여.

나 떠나 버린 뒤에 인가헌 것이여! 그게 다,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지 무엇이여!
어디, 꼭 옳다는 게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줄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줄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안 했으면은 그 안 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척 당신이 속은 줄 알어. 학자한테는 속지 않나? 허, 이거.
거그서 내가 그 문답을 턱 마쳤어.

그러면 저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 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고 뒤에 그러고 갔는디 거그 확 그 말이 팍 퍼져 버렸제. 뭐 다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 내가 이렇게 ‘견성했다’하고 돌아댕기면서지만, 선지식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 스님까장밖에 시방 안 했다 그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안 봤거든. 안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다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말이여.

여그서는 어디로 가냐 허면은 인자 금강산으로 가. 금강산 한암 스님 한테로 가.

얼매나 시간이 걸리나? 한 시간 했제? 한 시간 5분, 한 시간 됐어. 5분 되아. 20분 되아? 테이프 그놈 맞나? (63분34초~1시간20분15초) (일대기 4호 끝)

 

 



----------------(1/4)

*(게송) ‘상량시귀굴~’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참고.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조박(糟粕 술지게미 조/지게미 박) ; 고인조박(古人糟粕).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귀굴리(鬼窟裏) ; 귀신 굴 속.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찌꺼리 ; ‘찌꺼기’의 사투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과(佛果) ; 불인(佛因 :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苦].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석일(昔日 옛날 석/날 일) ; 옛적(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인조박(古人糟粕 예 고/사람 인/술지게미 조/술지게미 박)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실기(實記 열매·내용·행적 실/기록할 기) ;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記錄).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은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는 술과 담배.
*누룩 ;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밀이나 찐 콩 따위를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 띄워서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경허(鏡虛)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의호(宜乎 마땅할 의/오조사 호) ; 마땅하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등상(等像) ;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오좀 ; ‘오줌’의 옛말.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2/4)

*주효(酒肴 술 주/안주 효) ; 술과 안주(按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각사 ; 해인사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찹쌀막걸리 ; 찹쌀로 빚어서 담근 막걸리.
*옌장 ;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말.
*비우 ; ‘비위(脾胃)’의 사투리.
*비위(脾胃) ; ①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마음. ②음식을 잘 삭여 내는 능력. ③이니꼽고 탐탁지 않은 일이나 싫은 것을 견디어 내는 성미. ④지라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잿말랑(잿말랭이) ; ‘잿마루(재의 맨 꼭대기)’의 사투리. *재 ;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영(嶺).
*찹쌀술 ; 찹쌀로 빚어서 담근 술.
*오목식기(--食器) ; ‘오목주발(--周鉢 : 놋쇠로 둘러[周] 만든 속이 오목한 밥그릇[鉢])’의 비표준어.
*묏등 ; 무덤의 윗부분.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발로참회(發露懺悔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뉘우칠 참/뉘우칠 회) ; 죄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 발로백불(發露白佛), 발로참제(發露懺除)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〇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까바치다 ; (어떤 사람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속속들이 들추어내어 일러바치다.
*총총 ; 총총히(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톡톡히 ; ①구실이나 역할 따위에 충실히. ②비판이나 대가의 정도가 심하게.
*시지부지 ; ‘흐지부지(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거나 넘기는 모양)’의 사투리.

 

 



----------------(3/4)

*정절(程節) : ①길목. 길가는 데 종요로운 어귀. ②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비.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으나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진산식(晉山式 나아갈 진/뫼 산/법 식) ; 절의 주지가 새로 취임하여 거행하는 의식.
*설법상(說法床)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인유(因由 인하다·인연·유래 인/말미암을·까닭 유) ; 일의 내력(來歷)이나 까닭.
*법보종찰(法寶宗刹) ; 불 · 법 · 승(佛法僧) 삼보(三寶)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놓은 팔만대장경판인 법보(法寶)를 봉안하고 있는 절. 우리나라에서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다.
*상궁(尙宮) ; 조선 시대에, 내명부(內命婦 궁중에서 여러 벼슬자리에 대하여 매기던 등급인 품계品階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하나인 여관(女官)의 정오품 벼슬.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불수변거(拂袖便去) ; 소매를 떨치고 문득 가버리다.
*위신(威信) ; 지위나 신분에 따른 위엄(威嚴 위세가 있어 의젓하고 엄숙한 태도나 기세)과 신망(信望 믿고 기대함. 또는 그런 믿음과 덕망).
*졸가리 ; ①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②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일착자(一着子) ; 일착(一着). ①(바둑에서) 한 수 두다. 일수(一手)와 같음. 선승이 불교의 교리나 수행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 ②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마음자리를 뜻한다.
*장경각(藏經閣) ; 장경각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고려대장경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을 말한다. 남쪽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북쪽의 법보전(法寶殿)이 있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보 제52호로 정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퇴설당은 장경각 옆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군막사찰(軍幕寺刹) ; 스님들로 조직된 군대의 승장(僧將), 또는 의승대장(義僧大將)이 승병(僧兵)을 양성하며 머무르던 절.
*폐사(廢寺) ; 폐(廢)하여져 스님이 없는 절.
*계덕(戒德) ; 계율을 엄격하게 지킨 공덕(功德).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4/4)

*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능술(能術 능력·재능 능/재주·방법 술) ; 재능(才能)과 기술(技術).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무간하다(無間--) ; 서로 허물없이 가깝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글안해도 ; ‘그렇지 않아도. 그렇지 아니해도’의 사투리.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공찬(公讚 공평할·드러낼 공/기리다·칭찬함 찬) ; 드러내어 칭찬함.
*불싸스럽다(불쌀시롭다) ; ‘불손하다(不遜-- : 말이나 행동 따위가 버릇없거나 겸손하지 못하다)’의 사투리.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가부여하(可否如何) ; 옳고 그름[可否]이 어떠한가(어떻다)[如何].
*까달 ; ‘까닭(어떤 일이나 현상의 원인 또는 조건)’의 사투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미영씨 ; ‘무명씨(목화木花의 씨)’의 사투리. ‘명씨’라고도 한다.
*눈 하나, 미영씨 박히다 ; 미영씨는 목화의 씨를 말하는데, ‘미영씨 박히다’는 말은 눈병 때문에 눈동자에 하얀 점이 생겨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10. 18:5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3호) 혜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1/3) 약 42분.

 

(2/3) 약 43분

 

(3/3) 약 20분.


(1/3)————————----------

모산촉공우(暮山促笻雨)요  기립원강풍(欹笠遠江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모산(暮山)에 촉공우(促笻雨)다. 저문 날에 작대기가 급허고 그 걸음이 바쁘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모산(暮山)에, 날은 저물었는데 발도 바쁘고 작대기도 급허고 비는 오는구나.

거, 우리가 이렇게 참 온 곳이 하도 무량겁(無量劫)이요, 하도 과거요, 하도 구원겁(久遠劫)이요. 말로 할 수 없다. 저물었다 그말이여. 이렇게 이렇게 저물도록 왔구나.
뭘 했느냐? 여때까지 뭘 했어, 대관절.

오늘이 경술년 동짓달 보름 지나고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半山林)이로구나. 발써 금년 삼동(三冬)도 반산림이 되았다. 여태까지 오면서 오늘 섣달, 음력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까지 왔구나.
그게 모산(暮山)이요, 저문 산이요. 작대기가 급허고 발자취가 급허다. 비는 오는구나.
비가 와, 비가 와. 이렇게 저문 산에 그 바쁜 가운데 비는 온다.

우중(雨中) 속에 비 가운데 있는, 비가 오니 비 온 속에 들었으니, 우중에 있으니 깜깜한 우중에 있어. 여태까장 깨달지 못했구나. 여태까장 날 밝은 비 안 오는 하날(하늘)을 보지 못했구나.
비 안 온 하날을 봐야 할턴디. 이 비 가운데서 이렇게도 발자취도 급하고, 작대기도 급허고, 산은 저물었구나.

기입원강풍(欹笠遠江風)이냐. 또 거다가 비는 오니까 삿갓을 뒤집어썼는데 그놈의 그 산풍이 냅대 불어 제끼니 작대기가(삿갓이) 벗거지면 왼 몸뚱이에 비를 맞게 되었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중생의 버르정머리가 여차(如此)허구나.
원, 강풍에 삿갓은 벗어지제, 비는 냅대 오제, 저 발자취는 급허제, 산은 저물었제, 이 지경이로구나. 아, 이렇게 지경이 됐으니 어쩔 꺼나.

처억 한번 거 비바람 없는 곳, 한번 쾌청헌 날빛. 아, 그 툭! 한번 터져보지 못헐 꺼나?

한번 툭 깨달라버린 지경이 있을 텐디, 반다시 비 갠 하날이 있을 텐디, 구름 안개가 다 벗겨지고 환헌 화창헌 천일(天日)이 있을 텐디. 없을까?


장천척안몰(長天尺雁沒)이요  추공한영락(秋空寒影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長天)에는 척안몰(尺雁沒)이요, 긴 하날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졌고,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로구나, 가을 하날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건 무슨 말인고?

장천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진다.
아, 이놈 저 창공 장천(長天)에 구름이 벗겨지고 만리청천(萬里靑天)에 확! 거 구름 한 점 일점무운(一點無雲)헌데, 외기러기란 놈은 재질을 해서 간다. 훌훌 날아가는 게 시방 재질 헌 거 아닌가. 허공 재질을 혀.
처억 그저 그러다가 빠진다. 빠진 것은 멀리 가버리니 빠졌지. 없지. 허공 속에 풍 빠져 버리드라.

추공(秋空)에 한영락(寒影落)이다. 거 뭐가 있나?
가을 하날에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 바로 갖춘 놈 아닌가. 바로 조사관(祖師關) 바로 갖춘 놈 아닌가. 그놈 봐버리면 아! 그만 그 문제 해결이지.

장천(長天)에 척안몰(尺雁沒)이요, 진(긴) 하날에는 재질해 가는 기러기가 빠졌어.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다. 가을 허공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졌느니라. 아, 그 그...


오늘은 경술년 동안거 반산림이다. ‘내가 견성(見性)을 했다’
허, 인자 또, 또 인자 또 천하에 못된 자찬(自讚), 제 자랑은 천하에 못된 것이라는구만.

마누래 자랑 반 미친 이고, 온 미친 이라 하드나? 온 미친 이고. 자식 자랑 그 반 미친 이고.
자찬(自讚), 제 자랑은 그건 못 쓴다는구만, 그녀러 건. 암작에도 못 쓴대야.

반만 미쳤으니 그래도 그 뭐 좀 쓸모가 있고. 다 미쳤드래도 그래도 그 미친놈이라도 그래도 그 등거리는 남아 있고. 자찬은 못 써, 그녀러 거. 버려버려.
허지마는 독찬, 자찬이란 것도 그것도 어디 꼭 못 쓸데만 갖다 붙일 것 뭐 있나. 그것 쓸디다가 붙여 보지.

바로만 견성을 했고, 바로만 일 마쳤으면 그대로 참, 이상 더 있어?
견성을 잘 못했으면 영 못쓴 것이고, 옳게 했다면 영 쓰는 것이고, 남 찬(讚)을 바랠 것도 없고 자찬도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지.

내가 견성을 해 가지고—몰라 인자 참 했는지, 그릇했는지 내가 견성을 내가 했다 이게니깐.
다 인자 그, 인자 참, 선지식(善知識)들이 다 시험을 해 보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이 되아야 하는 것이지, 제 자랑, 제 찬, 제 견성은 소용없다 그말이여.

나는 내 견성을 했드라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선 그 오도송(悟道頌)을 척 그날 저녁에, 뭐 그대로 나와.
참 견성인지, 거짓 견성인지 그건 분간할 것 없고, 그대로 나와.

산 넘어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에 턱 거닌디 그날 밤의 달은 환허다.
나온 것이 견성—내가 언제 글 지어 봤나. 뭐, 글을 한바탕 해 봤나. 아, 그런 그 경계가 척 들어오면서 나온다 그말이여.

그때 진 것은, 요새는 내가 그걸 조금 그냥 거다가서 떼어 버렸지만 그때 진 놈은 그대로여.
거그 좀 가닥을 추켜들어서 머냐(먼저) 헌 놈을 다시 해야사 분단이 있으니까 그래서 헌 거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다. 어젯밤 삼경 달도 누(樓)에 가득찼다.
작야(昨夜)를 넣었어. 오늘밤인데, 오늘밤 밝은 다락 누(樓) 앞에서 지은 글이 작야(昨夜)를 넣었다 그말이여. 어젯밤 삼경 달, 다락에 그득 찼다.

고가창외(古家窓外)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그때 가을이제. 뭐 다른 말 썼나? 아무 다른 말 없어.
달빛에 보니 거 턱 태안사 그 밑에, 그 모두 그 인자 경계,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불조(佛祖)도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부처님과 조사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을 했는데, 상신실명은 거다가 붙일 것 없어.
상신(喪身)과 실명(失命) 왜 둘을 놓았는고? 상신도 몸 죽은 것이고, 실명도 명 잃었는데.

암하(岩下)에 유수(流水)는 과교래(過橋來)로구나.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이놈을 했지.
그 경계가 어떻게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그 경계를 말을 헐 것인고.

그러고 나서 아침에, 저번에 했지마는 아침에 그만 아무데나 갔다 오줌을 싸버리니까 그 원주(院主)란 놈이 나오더니—그 경계를 알 수가 있나.
그 오줌도 못 가렸으니 나는 거그서 쫓겨나야 옳고, 아침도 못 얻어먹어야 옳지. 그 옳은 일이여. 허지마는 저 원주, 저는 그 경계를 모른다 그말이여.

나는 미친 행동을 했으며 쫓겨난 짓을 했거니와 그 감원 원주는 제가 선방 원주를 허지마는 그 도리(道理)를 알 수가 있나. 아무데나 오줌 퍼싼 것을 저는 보들 못혀.

허지만 또 거다가 “어디가 이놈 오줌 눌 곳이냐. 진대지(盡大地)가 부처의 전신(全身)인디 어따가 눌 것이냐?” 한바탕 또 물었다. 그것 뭐 물어 보니 쌩댕이가 뭐 뭔 말이 있나.
아침에 밥도 안 주고 쫓겨났네. 그래 가지고 마곡사를 갔다 그말이여.

마곡사 혜봉 스님이 계시니까, 혜봉 스님한테를 가서 다짜고짜 뭐 절 한 자리 턱 해부치고는—패철(佩鐵) 차고 댕겨. 도인(道人)이 풍수(風水), 산에 묏자리 잡는 패철 차고 댕겨.

머리도 안 깎아서 이렇게 흘러내려와 가지고는 그냥 영감탱이로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 있고,
마누라는 그 혜봉 스님 부인은 천하에는 그렇게 못난 분은 어디 시집갈 데 없을 거여. 어디로 시집갈 수가 있나, 그렇게 못난 이가.
눈도 홱 비틀어지고 볼 아래 뽈따구는 하나도 없고 그 이상해. 다 얘기 헐 수가 없어. 그렇게 생긴 인데, 아마도 그분은 어디 시집갈 데가 없겄드구만. 아무디 시집갈 데 없을 꺼여.

허니, 혜봉 큰스님 그 도인 스님이라 누가 하나 거둬 둘 이가 없을 것 같으니까 마누라를 했든가 부여. 그러니까 그런 못난 부인을 살제. 초가집에서.
아들은 참 잘 나놨어. 그렇게 얼굴이 못난 이라도 아들은 잘났단 말이여. 둘이 다, 다 잘났제.

지금도 혜봉 스님 아들이 큰아들이 다 있고, 어머니 잘 못났단 말 들으면은 섭섭할 터이지마는 또 거다가서 ‘아들 잘 낳았다’하니 들으면 좋아할 터이지. 그거 그저 그 내 사실대로만 허니까.

그래 가지고는 뭔 인자 머리는 기다큼헌 참 촌노인처럼 된 이가 나이는 그때 한 50살, 거지반 50살 되었는데 패철을 딱 찼어. 묏자리 잡는 동서남북 가르키는 패철 차고 그러고 계셔.(20분18초)


가서 절 한 자리 턱 하고. 수좌(首座) 옷 입었으니까 그 뭐 수좌인 줄은 알 터이고.
절을 척 허니까, 나를 척 쳐다봐.

나도 한번 쳐다보고서 합장을 허고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그저 간단허게, 뿐이지.
“무자 반만 일러주십시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만 요구합니다. 일러주십시오”
“무(無)”

“그거 반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이르게. 어떤 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 반인가?”

내가 합장을 허고 “무” 이렇게 했지.

“고인이 이르되, 고인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여. 송곳 꽂을 땅이 없어.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이 참으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했으니 수좌는 어떻게 이를 텐고?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게” 저번에 여까장 했겄다.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화두를 혀.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혀. 본참화두를 딱! 헌 가운데에서 법문도 안 들어와. 그 지경 좋지.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디, 내 참선은 내 화두 허느라고 법문도 안 들어온디, 거 뭐 뭐 다시 그 경계 외에 뭣을 구헐 것이여. 뭣을 바랠 것이여. 법문은 들어서 뭣 헐 것이여.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 했는데.

그러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가운데에서 이 법문도 안 듣킨가? 법문도 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 의단독로만 나오는가?

법문,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할 수 있는 것이여.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참선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 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 헌 것이여.

저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 조인(稠人)이라는 것은 모지라질 조자인디, 사람이 수천 명이 꽉 콩나물처럼 섰는 디가 조인이여.
우묵허니 조인광중중에 여러 조인(稠人)들이, 여러 사람들이 그저 떠들고 대고 잡화(雜話)하고 뭐 와각 와각 그런 것은 소용없어.

의단독로에 뭐가 들어와? 뭔 말, 그 같은 게 들어올 게 뭐 있어?
아무리 시끄럽게 아니라, 아무리 무슨 천지를 뒤집는다 하드래도 화두학자한테는 안 들어와.

허지마는 이런 공안 법문이 화두 역력허면서 그 법문은 그대로 낙구(落臼)가 척척 되아.
낙구(落臼)라는 것은 뭐냐? 문을 척 열면 제대로 가서 탁 맞는 것을 낙구라 하고, 방아 찧으면은 올려 놔두면 제대로 툭 떨어진 게 낙구여. ‘구(臼)에 떨어진다[落]’ 그말이여.

뭐 들을라고 해서 들어지나. 화두 헌 학자가 그래도 법문이 그만 그 제일구(第一句) 법문 턱턱 들어온 거지.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에 대오다. 말 아래 크게 깨달는다.

‘공부, 참선 화두, 화두 허니라고 언제 법문 들을 겨를이 있느냐?’ 이런 말도 들었지마는,
그렇게까장 공부를 헐 것 같으면은, 화두 허니라고 법문도 안 듣키면은 그 지경—그 화두가 그것이 그 법문도 안 듣킨다 허는 그 지경이 반 쪼가리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화두를 들고 역력헌 가운데에 이러헌 공안(公案) 법문을 들을라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낙구가 된다 그말이여, 내 말은.

이런 말을 잘 들어! 부처님 설법을 족 설법헐 때에는 그 뭐락 했어? 뭐라고.
‘허공이 되아가지고 들을지니라. 다 비워라! 다 비워 놓아 버려라. 안 마음, 바깥 경계 툭 놓아 버려라’
뭐 놓을 것이 뭣이 있나? 처컥 귀 들고 들으면은 그 놓고, 안 놓은 게 어디 있는가? 여여독문(如如獨聞) 이지.


‘거년 가난은 참으로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다’ 그 뭔 말이여?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도 없다’ 뭐 그런 말을 못 알아들을 이치가 있으며, 거가서 낙안성예(落眼成翳)가 될 것이 뭣이 있나.
밝은 눈이면 다 볼 수 있지. 왜 그 밝은 눈에 가시가 될 것이 뭣이 있어. 그 밝은 눈깔에 티끌 될 것이 뭐냔 말이여.

‘거년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구나’
그 어떻게 했으면은—거그서 고인(古人)이 점검하되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네가 몰랐느니라 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사선을 옳게 이르겄는가?” 무섭게 잡드린 말이제.

혜봉 스님, 패철을 타고(차고) 묏자리나 잡고 지나셨지마는 참 도인이여. 참으로 도인은 툭! 깨달라 버리니 그것 뭐 어디 가서 무슨 뭐 인연도세(因緣度世)를 헐 것이제. 인연(因緣) 따라서 도세(度世) 헐 것이제. 별것 뭐 있나.

그때 어디 가서 조실(祖室) 스님이 되아 가지고 학자를 제접(提接)했으면은 대단히 좋으련만, 또 그 혜봉 스님의 그때 사정이 형편이 그렇게 못 되아서 그랬을런지 모르제.
허지마는 속가에 가서 패철을 차고 천하에 못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턱 나 놓고 요요자재(了了自在)하게 자재요요하게 그렇게 지내드란 말이여.

거그서 말이여, 그것 참.
내가 답을 허되, 대답을 했단 말이여. “능각(菱角)은 첨첨불사타(尖尖不似他)입니다. 능각은 첨첨해서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아, 이랬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어른이 그때 ‘아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내 거그 안 떠나. 세상없어도 안 떠나!
내가 그 어른 밑에서 불을 때주고 내가 심바람 해주고 마당을 쓸어주고 패철을 내가 가지고 대니면서, 산에 대니면서 내가 시봉(侍奉)을 헐지언정 안 떠나.

옳단 말도 없고! 거 학자를 그렇게 잡드리해서는 안 되겄드구만.

‘옳다’고 헌 말도 없고, ‘그르다’고 헌 말도 없고, 그만 그대로 그 뒤가 그만 아무 말씀도 없고, 그 말씀 없는 태도도 그렇게 부인(否認), ‘아니다’ 소리 아니여.
그래서 ‘아니다, 기다’할 것도 없고 맞으니께 그런가 보다.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그런 말이 없이 태연허니 그래서, 옳다! 인가(印可)를 허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았다 그말이여. 여그는 그래 두거든 내가.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가 절대 아니여,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그말이여. 아,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그 뒤에 내가 아닌 걸 발견했거든. 내가 스스로 발견을 다 한 거여.

그만 거그서 뚝 떠나 가지고는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위에 동방장(東方丈)이라고 있어. 아, 학자들이 다 봤을 터이제.

동방장에 그때 누가 있었드냐 하면 허태오라는 스님이 있어. 허태오.
허태오인디 이름은 태오인디, 그 다음에는 당호 누구한테... 그 당호(堂號)를 허운송이여. 운송(雲松), 구름 운자, 솔 송자, 허운송 스님이여.

운송 스님이 그때는 허태오라고 했제, 운송 스님이라고 안 했는디.
동방장에 계시는데, 동방장 조실(祖室)로 있는 것도 아니고—언제 그분이 나와서 조실 살림 헌 일도 없고 동방장 뒷방에 가만히 이래 앉어 공부헌 분인데.
누데기는 누데기는 한국에서 그런 누데기는 없어. 참 진짜 누데기인데. 무풍 스님보담 더 혀.

왜, 옛날에 만공 큰스님 다 계시고 헐 때 무풍 스님이 있었거든. 무풍 스님은 누데기로 누데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 허태오 스님은 그 무풍 스님 계통도 아닌데, 그렇게 누데기를 입었어.
굉장하니 전부 실이제, 바늘로 꾸맨 실뿐이제, 베 자체라는 건 하나도 없어. 고렇게 집어서 입고.

음식은 잡숫되, 솔잎을 따다가서 빻아서 그 가리를 바리때에다 넣어가지고는 물에다 타서 자시고. 그밖에는 없제. 아무것도 먹는 게 없어. 거 무슨 콩가리 조금씩 먹는다 하드구만.

세상에는, 그러헌 누데기에다가 송엽 빻아서 가리, 콩가루에다 묻혀서 그 물에 좀 타서 자시고 그러고 앉었는 걸 보니 참, 세상에 도인의 아무리 참 탈속(脫俗)헌 도인의 생활이라고 헌다 헐지라도 그 이상은 더없어. 참 고상허고 깨끗허고 기맥히게 해가지고는 딱 지내는데.

마침 그 스님 책상 위에다가서 법문을 하나 써 붙여 놨는디. 그 또 책도 그 뭔 책을 많이 그 법문을 해서 모도 지어 놓고 책상에다가 걸어 놨는디.

그 법문이 월조(月照) 스님 찬(讚)이여. 달 월자, 비출 조자, 월조선사찬(月照禪師讚)이여. 영찬(影讚).
‘월야할(月也喝)이요, 월에도 할이고. 조야할(照也喝)이요, 조에도 할이요. 월조니까. 월도 할, 조도 할. 비월비조(非月非照)라도 역할(亦喝)이니라. 월도 아니고 조도 아니드래도 또한 할이다’
요렇게 딱 해 놨어. 월조 스님 영찬에다가.

내가 묻기를, 거가서 인자 보고 절 한 자리 하고는 앉었다가 내가 묻되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라도 역할이라 했으니”
그 할도 빈할(賓喝)도 있고, 주할(主喝)도 있고—빈은 ‘손 빈(賓)’자, 손에 대해서 할도 있고, 주인에 대해서 할도 있고, 빈할도 있고 주할도 있으며 타할(他喝)도 있고 자할(自喝)도 있을 터이제. 다른 이한테 할도 있고 나, 내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지마는 이건 내가 헌 소리고.

‘빈할 주할 타할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니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도 할이다 하는 것이 그렇게 다 할 수가 있겠다’ 내가 짐작을 딱 하고서는,
“그래 그러면 월(月) 조(照) 비월비조(非月非照) 다 할(喝)을 했다면은 그 할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불가불 할로 들어갈 밖에 없제. 빈할 주할 타할 자할 다 툭 떼 번지고 인자 불가불 바로 들어갈 수 밖에 있나. “할(喝)은 어따가 허는 것입니까?” 고런디 가서...

잔 사람은 나가! 눈깔 감고 잔 사람은 나가!
고런 놈의 심리를 가지고 선방에 들어와서 밥 도둑질 말어! 공연히 씨잘데 없이 밥 도둑질이나 해 먹고 앉아서 그렇게 지낼라고 말아!
시주것 함부로 없앨 수 없고. 제 죄 퍼짓고. 고래 가지고 무슨 되나 말이여.

그런디 그 바로 보이면은 답 하나 해야 혀. 그 바로 보이지 않고는 답 못혀. 왜 못 허냐?
왜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어쩔라고? 응, 더듬허니 의심이 나 가지고는 그...
자기를, 내 경계를 내가 살펴 봐. 그래 가지고 해 되야? 바로 보이거든 해 봐.

아, 그래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서로 탁마(琢磨)인디. 탁마상성(琢磨相成) 해야 하는디.
그 묻는 것 그런 거, 벌써 척 헌 데 가서 처컥 보면 왜 못혀.

허태오 스님이, 그때 허태오 스님이어. 그 말 대답을 나한테 통쾌하게 한마디를 못 일러 주었겄다.
다 알면서도, 나한테 그랬던지 어쨌든지 법을 애꼈든지 안 해 주었어.
나 안 해 준 줄만 알지, ‘몰랐다, 못 봤다, 못 깨달랐다’ 그런 말 안 해아. 나 고때 그 지경만 얘기했지.

또 그런 것을 그렇게 탈속하게 참 도를 닦고 계신 분한테 내가 함부로 거다가서 뭐 방맹이—요새 꺼떡 허면 무슨 방맹이 준다고. 제가 무슨 뭐 방맹이, 무슨 갖춘 방맹이나 있나?
쫓아 들어가서 선지식 방맹이부터 줄라고? 고렇게 평생 고런 것이 있어. 거, 천하 그런 것 천하 참 때려잡기 천하 쉽네.

그놈이 참말로 눈깔 가진 놈이야 아! 그것 무슨 뭐 편영이행(鞭影而行)이제. 말헐 것이 있나.
발써 남 방맹이 줄라고 고런 것 엿보고 댕기는 것은 가짜인 것이여. 틀렸어.(처음~41분33초)





(2/3)————————-----

내가 뭐 들으니 어저께 여그 무슨 자혜 수좌 한테 들었나?
자혜가 통 묵언허고 들입대 공부를 해제끼는디 하! 가당(可當)토 안 혀. 지금 이 대중에서 응, 압도(壓倒)구만. 압도적이여.
그 밖에 나가서도 그만 그 공부를 허는 것 보면 냅대 버티고 허며 아! 한바탕 그래야제. 저 담 밖에 댕긴 걸 봐도 화두를 꽉 붙잡고 그 들입대 참 용맹 참 정진이여.

그런디 저 먼첨은 원청 여그가 그려. 원 돌아설 디도 없어. 방이 좀 넉넉한 방이 아! 여그저그 좀 있어야 헐턴디.
저 저짝 방, 선객 스님네 지금 지내는, 우리 대중 지내는 선방 쬐끄만헌 디서 밥을 먹고 거그 잠자고, 거그서 서서 왔다갔다 하고, 원 이것 당최 원청 복잡햐.
고런 것이 그만헌 방이라도 어디 서너 개나 있어야 헐 텐디, 원 없어. 개복실(改服室)도 있어야 하고 좀 허리 펴는 디도 있어야 헐 것인디.

아! 뒷방은 쬐깐헌 것 메주를 거다가 시방 띄우느라고 두고. 거, 부인 손님 오시면은 그 방에서 밥을 잡숫게 하고, 원 당최 꼼짝헐 수가 없어.

어디 뒷방이라도 넉넉한 방이 있으면은 같이 큰방에서 정진허고 나와서, 그 뒷방에 와서 용맹정진을 헐 생각이 꽉 차고.
거 그런 숭악헌 방에라도 들어가면 그만 정진을 허고 있고. 아, 어떻게 했으면 참 쓰련만 당최 뭐 용납헐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는 당최 마음대로 제 양대로 한바탕 도를 닦아 봐야 하겠는디, 그 양대로 못해 봅니다. 자연 모도 걸리게 되고.

그래 내가 말을 허되, “자, 천 경계 만 경계가 내게 있으니 그 좀 복잡허고, 그 좀 처소가 방연(尨然)치 못허드래도 어쨌든 그런 데서 한번 참, 인행(忍行)을 허소. 참는 행을 허고. 약무인행(若無忍行)이면 만행(萬行)은 불성(不成)이여. 참는 행이 없으면 만행을 이루지 못혀.
집도 절도 없어 바위 틈새기 가서도 도를 닦고, 거 다 고인(古人)네가 다 옛날 고인네가 토굴터, 산중에 들어가서 토굴터 잡아 가지고 방을 맨들되 둘도 못 앉게 맨들어 가지고 눕도 못허고 다맛 앉어서 다리도 못 펴고 꼼짝없이 들어앉아서 공부헌 도인도 있어.

역부러 그렇게 방을 지어. 발 뻗고 허면은 눕고 싶기도 허고, 그런게 이리 앉어도 당최 뭐 몸뚱이 돌이킬 곳이 없이 혼자 몸뚱이 꽉 찌어 앉게 요렇게 해 가지고 도(道)도 닦았으매, 한 철 넉넉헌 방이 없고 그러드래도 불끈 참고 산림(山林) 중에 휘딱 달아나고 그러지를 말고.
다 똑 도 닦는 스님네니까, 도 닦는 스님네가 모여서 서로서로 찡겨서 그 용납할 길이 없다 하드래도 다 도 닦는 스님네니 그러헌 디서 넉넉헌 마음을 품고 화두(話頭)를 잘 잡드리허고 좀 지내고 잘 지내소.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분다헌 것이라든지, 시(是)와 비(非)라든지, 일체 추헌 경계와 만경(萬境)이 내 자심소현(自心所現)이니,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마음을 단속하고 어쩠든지 도를 한번 참아, 그 참아 가면서 닦아 보소”

그래서 내가 가서 인자 대중 큰방에서 묵언도 허고 좀 잘 좀 닦아 달라고 부탁하고, 그래서 그동안에 공부를 알뜰이 잘 허더니 또 엊저녁에 또 다시 와서 묵언(默言)을 트고—나한테 와 또 틀 밖에 없지.

묵언을 트고 말을 허되 “스님네는 참 그렇게 공부를 알뜰히 잘 허십니다. 허신 가운데 저도 좀 그 가운데 들어서 참아 가면서 잘 닦았으면 좋겠는디, 늘 그 가운데 공부는 허느라고 딴에는 애를 씁니다.
허지마는 양껏 못 해서, 양대로 좀 못 해서, 아! 우리 스님한테 ‘그 용(茸)을 좀 보내 달라’했더니 용을 보내 주어서 그놈을 달여서 먹고는 기운도 나고 앉어서 정진허기도 좋고 아, 그래서 양대로 좀 해 보고 싶은디 뒷방이 하나가 있으면은 한바탕 거그서 했으면 좋겠는데.

아, 모도 공부허시는 방에 나 혼자 부셔대고 나 혼자 잠을 안 자고, 다 주무시는디 혼자 부스럭 대고 거그서 잠 오면 또 일어나기도 허고, 또 잠 안 오면 앉기도 허고, 일어났다 앉었다 허는 가운데도 제 좀 그 양대로 한바탕 해 볼 마음이 납니다.
그러헌디 아, 뒷방 하나가 없고 허니까 양껏 못 해서 이것 큰일나고, 반산림은 다 되아 가고 또 금년 삼동에 일을 마추지 못헐 것을 생각하니 참 근심이 됩니다” 아, 이려!

아, 거 인자 나이도, 뭐 나이가 있을까마는 5세에 견성도인도 있는 것인데, 나이 18세니 뭐 넉넉허지마는 그때를 여의고 언제 있겄는고 말이여. 아! 그 참 기특허다 그말이여.

“오냐, 정 그렇다면은 내가 네 허는 짓을 보니 그래 애쓰는 것이 보인다. 그거 참 퍽 기특하다. 나는 아무것도 없고 그것밖에는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 와서 그저 내 이 처소도 아닌디 토굴도 아닌디, 이런 데 오셔서 모도 고생허고 계신 그것은 내가 미안키도 허고, 허지마는 그 가운데에 참말로 그렇게 용맹정진 헌 것이 보인다면은 자기 일이고 당신네 일이... 자기네 일이기 따문에 내가 고마운 것이여. 누가 나 해달락 하나? 무척 고마운디.

오냐, 그렇다면 방 하나를 들여 만들아 줄 수가 있나. 어디 여그서 방 하나를 치워 줄 수도 없고. 그러헌즉 용주사로 가거라.
용주사도 내가 조실로 있고 내가 거그 중앙선원(中央禪院)이라고 허고 있으니 거그는 방이 많다마는 원청 경제 곤란으로 큰방만 불 딱! 너 놓고는 ‘큰방에 모여서 삼직(三職)이고 누구고 아무도 거그는 도 닦을 사람이면 다 들어오니라’해 가지고는 사미(沙彌), 지금 저 사미가 아니라 행자(行者)라도 다 내려와서 도를 닦고 있어. 거그 들어가서 한번 해봐라.

방이 원청 넓찍허니 큰디 그 방이 훈훈허니 좋다. 저 한쪽에 앉아서 제 마음대로 해도 누가 시비 헐 사람도 없지마는 눈에 어디 뭐 원청 큰게 아무 걸림 없다.
그러고 또 다른 방은 모두 안 때아. 다 그 꼭다리만 열어 놓으면은 곧 훈훈허지마는 기름 관계로써 기름을 한 달에 10만원 어치나 가량 때아.

그러니 그렇게 경제가 없기 따문에 큰방 하나만 때면은 불과해야 돈 몇만 원만 가지면 때니까, 그런 데 가서—그래 뒷방 하나 불 때 달라고 해서 하나를 떡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나, 지대방도 또 있으니깐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한번 해 봐라”했더니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 그래 보겄습니다” 여까장 했어.

내가 오늘 법상(法床)에서 법문 겸해서 그런 어린 사람이 발심(發心)해서 도 닦는 것이 참 찬탄헐만하고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한 것이니 대중은 그렇게 알고, 오늘 반산림이니까 반산림 법문 듣고 그렇게 그리 가도록, 내나 해야 한 산림, 한 산림, 한 중앙선원이니까 그렇게 대중이 다 알아주어.


그래 또 연속해서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이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다. 송곳도 없도다’
그래 우리 도인은 참선법(參禪法)은, 참선 도리는 그 가난헌 법이여. 이렇게 가난혀.
돈과 쌀과 뭐 그런 것이 없어서 가난이 아니라 우리 참말로 가난헌 도리가 있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것이 없으니 발써 가난하제. 사는 것도 없다. 죽는 것도 없다. 생사가 우선 없으니 퍽 무척 가난하지 않는가.

흉중무물(胸中無物)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다. 고인도 ‘흉중무물이니라,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무슨 물건이 있어? 아무것도 없제.

그 의리(義理)로 거, 저 수수께끼처럼 그 ‘흉중무물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느니라. 아주 가난해서 생사가 없느니라’
그러면 흉중무물 가운데에 참말로 그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다’한디,
그런데 가서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이 없느니라, 물건이 없느니라. 또 생사가 없느니라’ 고런 것은 비유해서 말허자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밖에는 안 되거든.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다. 그밖에는 안 되아.

반기이파(飯器已破)가 있어. 밥그릇은 이미 깨졌느니라. 고 어디가 들어맞는 말일까?
이것 이렇게 무척 가깝고, 내가 자꾸 바탕을 울려준디 이렇게도 모도 멍청헌가.
멍청허단 말 들어야제. 멍청이 소리 들어야제. 어째 할 수 없제.

어째 반기이파(飯器已破)일까? 응, 모두가 공안이라는 것도 경계요, 비유인디.

아! 뭐 공안이 뭣인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다. 바로 경계 아니여. 그놈 갖다 막 잡아 썼지, 뭐여.
그놈을 바로 봤다면은 다른 공안이 왜 맥혀. 천칠백(공안)이 왜 맥혀. 맥힐 거가 뭐여. 하나면 똑 같은디.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그런 데가 인자 조사관(祖師關)이 딱딱 백혀야 되아.
생사가 없느니라. 생사가 없는 데 거가 조사관이 꽉꽉 들어가서 탁! 탁! 장엄을 해버려야 되아.
반기이파가 그놈이 있어야 되거든.

격외(格外)로 볼 게 따로 있제.
서식묘아반 반기이파는 격외로 봐도 안 되거든. 거 격외로 보면 되아? 큰일나지. 안 되아.
모도 그만 격외로만 보면 될꺼여? 평상화(平常話)로만 보면 될 꺼여? 되지 않아.


허태오 스님한테 가서 그 법문을 딱 내가 인자 물었어. 답이 없었고.
여까장 허다가 지금 모도 별상(別相)에 가서 여태까지 있었어.

내가 하룻밤 자고 떠나올 적에 또 물었다. 이것 천천히 해야 되는 법문이여.
한참 내가 견성했다고 미쳐 가지고 지금 인자—왜 미쳐 미치기야 행각(行脚), 활발헌 행각이지.
아침 하룻밤 자고, 나는 그래도 밥을 얻어먹었어. 공양주가 밥—다른 사람 다 밥을 먹으니까. 허태오 스님만 뒷방에서 그렇게 지내지.

아침에 떠나올 적에 물었어. 고봉 스님 사구게(四句偈).

해저이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허고  암전석호포아면(岩前石虎抱兒眠)이라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는디 바위 앞에 돌 호랭이는 아이를 안고 조는구나.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여. 쇠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가는디,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여. 곤륜산이 쾨코리(코끼리)를 타니 해오라비란 놈이 말 마부가 되어 가지고 이끈다.

사구내(四句內)에, 이 네 글귀 가운데 유일구(有一句)한디, 한 글구가 있는디, 능살(能殺)이요 능히 죽이고. 능활(能活)이여 능히 살리고. 능종(能縱)이요 능히 주고. 능탈(能奪)이요 능히 뺏고.
그러헌 글구가 있으니 고놈만 가려내면 네가 견성했다고, 일 마쳤다고 허락해 주마.

“그런 공안, 그런 글귀가 있으니 그 글귀 하나를 일러 줍소사” 공경히 묻제.

‘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하라’ 뭐 어쩌고 그려? 건방진 녀러(놈의) 녀석들. 제가 견성해 가지고 요렇게 일구래(一句來)라 하는가?

공경히, 참 그 이상 더 공경(恭敬)이 어디 있어. 공경히 묻제.
허니까, “해저이우함월주에, 혜월 스님이 해저이우...” 그이는 평생에, 허태오 스님은 혜월 스님을 제일 믿어. 그때 알았어, 또 믿은 것도.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드라”고. 이려. 대답이 아니라 혜월 스님한테 핑계를 대서 그렇게 말을 햐.
“아, 거 혜월 스님께서는,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그렇게 일렀다 하시드라도 아, 스님 바로 일러 주신 말 한마디 요구헙니다. 한마디 일러 줍소사” 그러니, 그 말 한마디뿐이고는 어름혀.

내가 그때에 가서 허태오 스님의 그 살림살이를 그대로 다 봐 버렸제. 틀림없어.
뭣 헐라고 바로 봤으면은 바로 한마디를 일러 주든지, 못허면 못허든지, ‘혜월 스님은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고. 될 수가 있나.

그러고, 해저이우함월주가 될 리가 있는가? 생각해 봐.
살림살이 다—그만 그저 “예”허고는 나는 물러났지. 더 말헐 필요가 없어.

살림살이 보기가 그렇게도 쉽고, 벼락이여.
억지로는 도인 노릇 못허는 것이고, 억지로는 천하 없이 해도 그렇게 겉으로 참 없어. 도인인 체허고 암만 채리고 앉었어야 소용없는 거여.

도만 있다면 척! 세상에 초부아동(樵夫兒童)이 되드래도, 나무 베는 아이가 되고 별 천하에 걸객(乞客), 비는 걸인이 된다 하드래도 천하에 그건 거그 있지.
누구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헐 것이냐 이말이여. 허지마는 아무리 채려야 소영없어. 묘허제.

내가 거그서 떠나와서 그 다음부터는 그 허태오 스님이 나와서 용성 큰스님 밑에 와서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제2세 교주다’ 나오드구만.
‘2세 교주(敎主)다’ 나와 가지고는 대구를 들어와서 대구에서 참선을 가르킨다고 있어.

허지만 나는 다 알아 버렸은게 소용없지. 나와 태오 스님과는 거리가 참 퍽 멀어져 버렸지.
방장(方丈)에서 떡 하룻밤 자고 허태오 스님과 그와 같이 문답을 헌 후에는.(63분9초)


거그는 외산(外山)이제, 쌍계사는. 그래 그 그때 참 내가 옳게도 지내왔구만.
거기서 쌍계사에서 안산(安山)으로 넘어왔다. 그 쌍계사에서 넘어오제? 그 재를 뭐 벽소령(碧宵嶺)을 넘어오나? 하도 오래되서, 아마 벽소령 재를 넘어와야제? 거 아는 사람 다 있제? 없는가 보다.

그 벽소령 재를 넘어서 영원사(靈源寺)를 들려 와 가지고는 영원사에서 상무주(上無住)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상무주를 올라가니께 그때 하혜일(慧日) 스님이여. 하혜일 스님이 누군지 모르제? 하혜일이여. 하동산이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
하동산 스님이 그 상무주 계셔. 그래서 하동산 스님은 그때 의학전문학교 댕기시다가 졸업은 못 허고 들어오셨나, 졸업은 했나? 그건 내 잘 몰라.

들어와 도를 닦고 계시는디 아주 청정하게 참, 도를 닦고 계셔. 그럴 때 당신이 뭐 견성했느니, 안 했느니 그런 말은 전혀 없을 때고. 또 뭐 견성했다, 안 했다 그러고 지내시도 안 허고, 탈속(脫俗)허니 깨끗허니 그래 가지고 거그서 지내셔.
그래 또 거그서 하룻밤 자고. 별 도담(道談) 해 본 일은 없고, 할 재료도 없고 서로 뭐 문답(問答)도 없었고.
그 성질이 또 그 어른은 원청 청정하고 까끄라와서 뭔 말 함부로 해 봤던들 뭐 별 용맹도 없고, 잠깐 거그 다녀서 김천 직지사, 내 첫 철 지낸 직지사를 척 왔지.

제산 큰스님이 떡 계셔. 거기에서 나를 처음에 가르킬 때에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봐라. 일념미생전을 보라고 허는 그 화두를 내가 안 허고 조주 무자(趙州無字)를 그때 헐 땐디, 무자 허다가 그만 병이 그렇게 나 가지고는 피를 흘리고 피덤뱅이가 되어 가지고 그만 있다가,
해제를 헌 뒤에 꼭 죽게 된 몸뚱이 그저 어쩔 수 없지, 뭐 죽게 된 몸뚱이가 석장(錫杖)을 날렸제. 내가 뭐 거그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석장하춘풍(錫杖下春風)으로 그만 그때 나섰제 뭐.

그랬는디 다시 휙 둘러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를 해 가지고는 인자 척 거그를 들어가서 아주 그만 인자 내가 견성헌 체를 허고 굉장했다. 뭐 뭐 거 가서 그만 뭐 내 요요한 경계를 턱 야단이제.

그러나 그 어른은 뭐 조실방 벽안당에 딱 앉아서 도 닦으면 도 닦고 계시제. 조끔도 뭐 그런 거 견성했다 어쨌다 해야 그런 것은 뭐 알은 체도 안 허고, 네가 견성했냐 말았냐 그럴 것도 없고, 가서 자꾸 인자 그 큰스님께...
그 어른이 참, 만화 스님한테 계를 받았고 만화 스님이 거다 전계(傳戒), 제산 스님한테 전계를 해서 한국에 그 전계 율사(律師)로 유명헌 이로구만. 그 어른한테서 다 계가...

그런 그 어른이 계를 받아가지고는 학자를 제접하고 있는데, 견성은 아마도 그 어른이 견성했다고는 모도 안 해 주어.
그 참, 행(行)은 그렇게 고상하고 또 조실방에 앉어서 공부를 허되 늘 일념미생전을 보고 앉어 계시는가. 그냥 참, 정진은 눈 한번 깜짝거릴 사이도 없이 해아. 그렇게 장하게 해 나가지마는 제방(諸方)에서 그렇게 알아주지는 안 해아.

그런게 거그서 오래오래 있을 것도 없고 얼매 또 있다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어.
혼자 견성했다는 생각이 막 나가지고는 그저 그만 선지식(善知識)만 있으면 어디—목구녕에 피는 늘 토험서도 그러고 그랬어. 그래 그런 데 가서 구애(拘礙)도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그만 혜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니까,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데 소를 두 마리를 길러 키워. 큰 황소를 키움서 밤낮 소꼴 베다가서 소 주고, 소 요리저리 모두 옮겨 매고 그러고 계시어.
학자(學者)는 뭐 몇 안되고. 학자 그저 그 스님, 그 어른 믿고 있는 학자 불과해야 한 2-3인 될까 시봉 겸해서, 뭐 그 어른이 시봉도 안 시키고 그저...

그런데 소를 멕이는 것은 그 통도사 그 극락 평전(平田) 그 밑에 모도 산비탈 극락평전을 논을 쳐서 농사지어가지고 수좌 멕인다고 그 소를 사논 거여.
아! 그 산비탈을 언제 땅을 파서 어디 물을 잡아 넘겨서 그 헐 것이여. 편편하기는 허니까.

아! 그래 가지고는 그저 그만 앉으면 법문, 서면 법문, 가면 법문허기 때문에 그 어른을 모시고 따라 댕기면서 법문을 들어.
들은데, 오늘 들으나 내일 들으나 열흘을 들으나 똑같은 법문이여. 헌 놈 또 했지, 딴 놈이 없어.

평생 그 가운데 무슨 법문을 허냐 하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다” 이말이 처음 나와. 당신 자랑이란 건 말헐 수가 없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인가했다” 꼭 그려.

언제든 눈꼽재기 여가 여 둘이 달렸어. 허연 놈이 달려 가지고. 말만 허면 입에서 침이 튀튀튀튀튀 튀어 나와, 이렇게.
그래가지고 앉어서 여 앉어서 이렇게. 하도 들을 수가 없어, 오래 들으면 듣기 오죽헌게 살며시 밖으로 나가면—하도 오래 있어 나가야제. 나가면 혼자 그러고 앉었어, 혼자.
아주 한참 (법문)허다가 “어디 갔나? 응, 갔어? 갔구나” 이런 어른이라.

다시 뭔 세상에 무슨 인사(人事), 뭐 그런 것 없어.
“아, 저 스님, 군수가 큰스님 뵐라고 왔읍니다. 인사헐락 합니다”
“군수가 왔어? 응. 군수가 어디 있나? 내가 보제” 아따 가만히 계시라니 “그 내가 봐야지, 오라고 혀”

아, 이래가지고 “군수 응, 군수 군수여? 어디 군수여? 응” 그 어른은 평생에 반말이제, 온말 헐 줄 몰라.

“밥 채려! 밥해! 군수 밥해” 밥을 시켜 놓고는 “찬 놨나?” 찬 논디 가서 요것도 좀 집어서 잡숫고, 요것도 집어서 잡숫고 “짜냐, 싱겁냐?” 짜고 싱거운지도 몰라.
참 도인이제. 참 도인이여. 꾸며 대고 억지 없제.

아, 그러고 댕기니께 군수겉은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그런게 가리와. 중이 있다가 가리와. 스님 못 보게 가린다.
또 거그 못 오게 허면 “왜 그래?” 아, 원 홰를 내고 야단인게 못혀. 참 세상에는.

그러고 조끔 있다보면 없어. 아! 조실 스님 어디 가셨는고 허면, 그 앞에 가서 저 솔방울 따네.
망태 하나 요만한 것, 망태 쬐끄만한 것 하나 턱 짊어지고 올라가서 솔방울 따네. 불 땔라고 솔방울 따.

천하에 도인이란 행은, 도행(道行)은 81행이 있닥 하지마는 그런 행이 없어. 그 천진행(天眞行) 영아행(嬰兒行), 그 영아행을 제일 쳤거든.

도인행이 광행(狂行)이나 미친 행, 광행. 광행이나.
또 그렇다 해서 도인행(道人行)이 광행(狂行)이고, 모도 그러헌 천진행이고, 그러헌 영아행 어린아 행이니까 도인행 헌다고 해 봐. 그녀러 건 참 못 본다.

그 위조로 나와서 해 봐. 견성도 못헌 것이, 도인도 아닌 것이 해 봐.
그런 똥을 콧구녁에다 붙여 가지고 대니지, 고놈의 더러운 냄새는 못 맡네. 보도 못허고.

천진행과 영아행이라는 것은 꾸며서 된 법이 없어. 억지로 된 법이 없어. 조태가 나타나기 따문에 안되야.
혜월 스님은 그게 안 나타나. 아무리 볼래야 소용없어. 꾸미도 않고 뭣도 소용없어. 뭐 그대론게 소용 없어.

그래 가지고는 법문을 해 주시되, 내가 그래 중방내까지 따라갔구만. 법문 들을라고. 그런 법문이라도 들을라고 거그 따라갔어.
경허 큰스님이 천하 도인이니까 ‘다시는 도인밖에 없다’고 그 믿음이 내 모가지까장 차올랐으니.

뭐 소용 있나? 소용없어.
뭐 눈에 눈꼽재기가 드글드글허거나 말거나, 뭐 허는 행은 당최 어따 비유헐 수 없는 아, 글쎄 어린아 행이라니까.
어린아가 그 뭐 서너살 먹은 놈이 애비상이 있고, 할아버지상이 있고 뭐, 뭐이고 소용 있어? 밥상에 올라가 똥을 싸고 그러지 뭐, 소용 있어?

그 영아행이라는 것은 미친놈도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지마는, 영아(嬰兒)라는 건 말귀도 못 알아들어. 그 영아행을 제일 쳤어.
바로 옳은 도인 같으면은 옳은 영아행을 헌디 그건 위조가 없어, 위조 못햐.
참, 진짜지. 우리나라에서 혜월 스님같이 진짜 영아행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턱 법문을 헐땐 처음, 처음 시작헐라면 그게여.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지. ‘북으로 관세음보살이 향(向)헌 의지(意旨)가 여하(如何)냐?’ 우리 큰스님이 물어 내가 대답했지. 아, 우리 큰스님이 인가했제!” 평생 그려.

틀림없거든, 뭐 틀림없어. 그 뭣 헐라고 감춰. 감추면 뭣혀.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오면은 인자 법문부터 물어. 그 자주 묻는 것도 좋은 것이여.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이르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등지(等持), 같을 등자, 가질 지자, 고놈을 일러야사 인가를 혀. 그건 참, 참! 기가 맥힌 공안이제.

당신이 이렇게 맨들아 묻는 것인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 고놈 묻고, 공적영지를 묻고, 영지에 공적영지를 묻고,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해야사 인가를 혀.
그것! 참, 내가 대답했지. 나도 역시 혜월 스님 타겠구만. 내가 대답했어.

공적영지 물어 딱! 대답헌게,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 착, 고 둘만 대답하면 그 밑 등지는 바로 있는 것 아닌가.
“등지를 일러라” 그놈 척 일러 논게, “아따야! 이 우리 한국에, 우리 한국에 참 이 큰 도인 났다. 이런 도인이 나!” 아! 이러고는 대찬(大讚)을 허는디,
“누가 공적영지 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느냐?” 아, 이래 가지고는 대찬을 했네.


그래 놓고는 일러 놓고는 ‘자, 내가 큰스님을 좀 좋은 디다 모셔야겄구나’ 그런 마음이 난다.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스님 밑에서 모도 나야겄구나’ 이 마음이 나 가지고는 거그서 하직허고 직지사(直指寺)를 또 올라왔네. 또 올라와 가지고는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허고.

직지사로 말하면 산중이 크고 한국에 제이창이여. 규모는 이창이고, 선방도 천불전(千佛殿)은 조그만 허지마는 도량은 크고 그 어른이 오셨으면은, 그 국내(局內)가 널직허고 그때에 토지도 많고 거다가 모셨으면 좋을 듯 해서 아! 내가 그때 그 운동을 했네.

그러면 제산 큰스님은 벽안당에 조실로 계시는디, 가만히 조실로만 앉어 계시제 학자 눈을 띄울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일구(一句) 법문을 해 준 법도 없고.
아,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혜월 큰스님이 여그 와 계셔야만 도량이 참말로 불일증휘(佛日增輝)가 되고 법륜상전(法輪常轉)이 되겄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여그서 한번 크게 휘황찬란허게 될 듯 허고 이래서 “혜월 큰스님을 직지사 조실로 한번 모셨으면은 어떻겠습니까?”하고는 내가 인자, 그때쯤 벌써 인자 소문이 나 가지고는 ‘정영신(鄭永信)이...’ 해가지고 이름이 났어.
내 말 한마디—공부헐 때 원청간 다잽이를 기가 맥히게 했기 때문에 그 애를 써 가지고는 견성했다 해 노니까 소문이 다 나 버렸거든 인자.

아, 다 날 것 아닌가. 그만 벌써 혜봉 스님한테로 해서, 허태오 스님한테로 해서, 하혜일 스님한테로 해서, 그 다음에는 인자 공부 잘헌다는 스님네는 다 찾아댕긴다 인자. 방방곡곡이고 어디고 다 가지.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서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 딱! 했다고 소문이, 뭐뭐 소문이 앞을 서.
소문이 나 가지고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허고, 제산 스님한테 가 그런 말씀을 허니 ‘아! 선방에서 다 도 닦는 공부허는 스님네가 아, 그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조실로 계시면은 좀 좋겄나’

다 그런 마음 뿐이지. 그때 모도 인자 선방에 그 스님네 이름 다 잘 모르겄구마는.
아, 그래 공포를 헌게 좋다고, 아주 좋다고.

그래 내가 또 들어갔어. 가서 “큰스님, 김천 직지사에서 아주 큰스님을 청해서 거가 큰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이렇게 모두 대중이 기다리고 있고 헌게 가셔야 겄습니다”
“그리야, 갈꺼나” 뭐 두 말도 헐 것도 없고 “가 볼꺼나” 아, 그래 나섰어요.

그래 모시고서는, 내가 그만 모시고서는 올라오다가 너무 밤에 갈 수가 없고 해서 김천에 내려서, 그때 그 김천에 경상북도 김천 역전(驛前)에 대화여관이라고 있어.
대화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모시고 자고서는 아침에 올라갈라고 자시는디, 요런 놈도 거다 집어넣어야 되겄구만.

여관 주인이 그 아침 진지를 해 드렸는데 “아! 당최 고기도 안 잡숫고 허니까, 청정허게 마늘겉은 거 넣지 말고 깨끗하게 그래 좀 해 주십시오”
아, 그랬더니 여관에서 어디 무슨 뭐, 저 따로 된장을 찌질 수가 있나. 된장을 그놈을 잘 지졌는디 모두 손님상에 놀라고 지졌는디 거다가는 파 마늘도 넣고, 소고기를 다져서 소고기 좋은 놈을 잘 다져서 그 무슨 그놈이 그 된장도 아니고 찌개처럼 맨들은 거여. 찌개로 맨든 것이여.

잘 지져서 요런 냄비, 쪼그만 냄비에다가 찌개를 딱 놨네. 아, 이놈을 떠억 잡순디, 한참 잡솨. 아주 잘 잡솨.
한참 잡숫더니 고기 덤벵이가 그놈이 좀 씹히든 것이여. 하나도 없이 잘 쫒다가 씹히든 것이여.
근게, “이거 뭐냐?” 맛있은 게 씹힌게, “이거 뭐냐, 괴기냐?”
“된장이요”

“된장 아니다. 괴기다. 맛있다, 맛있어” 괴기로 발견허고는 안 잡솨. 그래 놓고는.
아! 그 잡솨 버리지 잡솨지, 그녀러 것을 뭐 해필 또 그럴게 뭐 있냔 말씀이여, 그러지만 또 그래도 안 잡솨. 그거 잡술리야 없지마는 아, 그것들이 그렇게 나와서 잡솼다.

잡숫고는 그날 그만 모시고 올라와서 대중 공포를 허고, 큰스님께서 여그 와서 조실로 계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허시도록 이렇게 대중 결의를 했지.(41분34초~1시간23분52초)





(3/3)————————------

아, 통도사에서 또 안 된다고, 또 저 중방내 토지 뭐 그런 것 저런 것을 전부 인자 여그 조실 스님이 모두 농사짓고 어쩌고 해서 선객(禪客) 기룬다고 허면서, 거그서 초청이 다시 뭐...
아, 이래 가지고 여그 모실라 거그 모실라 야단스럽게 헌디. 그때에도 벌써 동부산(東釜山) 신도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큰스님, 저 무슨 계? 그 어른 모신다는 계(契)를 모두 조직했네.

계를 조직해 가지고 그때쯤 수도든가, 계(契)를 떡! 조직해 가지고는 그 계금(契金) 만 원을 갖다 가서 그 어른을 드렸네. 내나 그 어른 위허는 계니까, 그 어른 갖다 드리면은 알아서 범연히 잘 허리야고는 돈 만 원을 올려 놓고.
이렇게 부산서 왼통 신도들이 야단친디, 모시고 올라니 될 수 있나? 뭐, 뭐 어떻게 헐 수가 있어야지.

돈 만 원, 그래 그 계를 모아가지고 계금이니까 큰스님께 맽긴다고 갖다가 맽긴 모냥이지.
돈을 한푼이나 헛돈 써 뭣혀. 조실 스님 갖다 드리면은 당신이 무슨 뭐 어따 쓸 것이여. 학자 위해 쓸 것이지.

그래 그만 갖다 드렸든가. 이놈을 가지고는 논을 친닥 하면서 논 나락 한 다발이나 두 다발, 그걸 가을에 가면은 한 다발 두 다발도 안 나오는 놈의 논을 그놈을 쳐 가지고.
가을에 한 거다가 몇십 원을, 그때 몇십 원인가? 몇십 원을 들여서 고까짓 놈의 논, 고것 쳤자 뭐 그 일 원어치도 안되는 놈의 것을 몇십 원을 주고 모도 쳐 가지고는,
가을에 나락 한 다발 나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냐? 이거 봐라” 든 밑천은 하나도 안 생각하고.
그런 양반이라 무슨 그 획량이 있어? 그런 그 무슨 계획량이 어디 있어? 요것만 보시제. 돈 많이 들어간 것은 못 봐.

그래 가지고서는 아, 이 만 원 돈을 막 집어써 버리네. 이놈도 달라면은 ‘그래’ 저놈이 달라면은 ‘그래’ 아! 이렇게 써 버린다 그 말씀이여. 아! 그러니 그 못 쓰게도 못하고 이것 참 큰일났제.
그래 가지고 되야 있는 형편, 만 원을 모두 모아 드린 그런 것이 모두 있제, 저런 것이 있제, 어디 가 있을 도리가 있어야제. 당신 못 있어. 본래 또 그저, 여까장 해 놓고.


본래 그 저 견성해 가지고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턱! 허니까—그 본래 견성헌 공안은 그건 아니여. 견성헌 후에 고놈 물어 대답했지.

이것이 나와야 되겄는디 나올란가 모르겄네. 역사 법문인게 내 이런 걸 다 집어넣어야겄다 그말이여.
‘단지불회면...’ 저 혈맥론에 가서, 혈맥론(血脈論)에 있나?
그 무슨 그 위에는 다 내가 다 외울 수 없고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다’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 언하대오(言下大悟)여, 그 뭐.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니라.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만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그만, 그 또 그 어른이 글쎄 어린아같은 양반이 거 뭐 앞뒤 무슨 뭐 조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뭐 있나. 나온대로 막 해버리는디.
아, 그러니깐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인가를 어떻게 한고 하니, 이거 다 중요하거든. 나 밖에 몰라. 아무도 모르는 거여.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이거 꼭 여그 시방 혜월 스님한테다 인가한 것이여. 그런 인가가 있어야 하는 거여, 꼭.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잡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등등(燈燈)이 상속헐 것이니라. 네 깨달은 도리를 또 상속해라. 인가한 것이여.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정혜사에서 견성헌 후에는 그만 뭔 산하석벽(山河石壁)이 불응장애(不應障碍)요, 산하석벽이 어디가 장애가 있으며. 녹수(綠水)가 하구여청산(何拘與靑山)가, 녹수가 어찌 청산에 걸릴까보냐.
그만 그길로 나가서 아무 참, 무애(無礙)라. 무애여. ‘걸림이 없다’ 그말이여.

그 무애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그말이지, 무애에 가서 술 먹고 고기 먹고 마음대로 헌 무애 그것인가, 어디? 잘못 알면 큰일나, 그런 것 다. 소용없어.
술 먹을디 술 안 먹는 것이 그것이 걸림이 없는 도리고. 잡행(雜行), 못된 행실 안 헐 것을 않는 것이 그것이 무애지.

막 무애 잡행(雜行), 막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防般若)고, 막 떨어져 거꾸러지고 그것이 무애가 아니여. 잘못 알면 못써, 학자들이.
술 안 먹을 걸 꼭 안 먹어야 하고, 계행(戒行) 지킬 걸 꼭 지켜야 그것이 곧 자체가 무애지.

술 그까짓 것 막 먹고, 그저 괴기도 막 먹고, 그저 질도 막하고, 질도 여러 가지여. 도둑질도 있고 음행질도 있고, 무슨 뭐 질도 막하고 그것이 무애 아닌 것이여. 그것 고약한 짓이제.
왜 처음에 내가 그 동리(桐裏山)에서 왜 견성했다 해 가지고 마당 앞에다 갖다 뜰에다 오줌을 싸고는 그게 옳다고 그려? 고런 것이 그 못쓴 것이다 그말이여. 어디가 있을 것이여.

탁자에 부처님을 모셔 논 것을 ‘저걸 뭐 부처냐?’고 가서 쿡 밀어 버리고, 그게 무애여? 그게 거 도통(道通)헌 짓이여?
숭악한 그거는 무애가 아니라 못된 사마외도행(邪魔外道行)이다 그말이여. 이걸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그만 그대로 무애여. 아무 거침없다. 어디가서 뭘 허든지 거침없다. 도행이다.
길가에, 홍성 나가다 길가에 숭악한 집이 있는디, 그 숭악한 집 그것 다 떨어져 엎어진 그런 집이 인자 누가 내던져 버려서 살 사람도 없고 헌 것을 꼬쟁이로 겨우 괴우고, 작대기로 괴우고 거그를 쓸고서는 뭔 짚다발 갖다가 우게다(위에다) 이어 놓고서는 신을 삼아.

그 어른이 어릴 때, 뭐 어릴 때 교육이 저 속가 저 마을 촌가에서 교육을 받았어.
혜월 스님도 역시 어릴 때에 무슨 거 부모 밑에서 따뜻허게 교육 받고 커나지 않은 어른이거든. 그래 아주 무식해. 무식헌 어른인디, 또 육조 스님 뭐 무식허데끼 다 그렇지 뭐.

그 천박허게 마을에서 날처럼 커나든 안 했지만, 나같이 무슨 서모 밑에 커나든 안 했겠지마는 그 어른도 역시 글 하나 못 배우고 커났으니까 알아볼 지경이지 뭐. 그래 가지고 국문(國文)도 잘 모르시는 어른이니까.

당신이 평생에 아는 것이 신 삼는 것이여. 신 그걸 삼아서 알아.
‘신을 삼아서 벌어먹고 살아야겄다. 견성을 했으니까 보림(保任)을 해야 허겄다’
보림을 헌 지경인디 거그서 그런 찌그러진 집 하나를 어떻게 가다가 줏어 가지고는 거그 들어앉아서 신을 삼고 있는디, 그때 나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고 헌게 마누라를 하나 얻었다 그말이여. 마누라를 얻어야지, 혼자는 있을 수가 있나. 고독해서.

그러니 그 마누라도 무슨 뭐 부귀헌 그런 마누라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이도 역시 가난헌 그런 마누라를 하나 얻어 가지고서는 내외간에, 그 큰스님은 신을 삼는다.
그러면 그 여자는 신 수장을 혀. 요렇게 뀌어서 옛날에 짚세기같은 거 뀌어서 모도 그 수장을 해서 신도록 만드는 거여. 골 치고.

아, 이렇게 해서 하루 다섯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네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밤까장 삼으면 다섯 커리씩 삼고 요렇게 해서 그 이튿날은 홍성장에 가서 팔아 와.
팔면은 그 몇 냥 받으면은 쌀팔고 해가지고 먹고, 두 분이 혜월 큰스님은 신 삼고 그 부인은 신 삼으면은 수장 다 해가지고 갖다 팔아서 양식 사다가서 참, 생애가 족혀.

그래 먹고 살았는데 ‘혜월 스님 견성해서 경허 큰스님이 인가했다’는 말씀은 확 났고.
그때에는 한국의 수좌가 몇 못 되아. 얼매 없어. 전부 다 보탰자 수좌라고 공부헌 이가 몇 안되아.
그러지마는 견성한 이는 썩 귀헐 때거든.

경허 스님 마침 계셔 가지고 인자 경허 스님 밑에 제일 수제자 하나 났는데, 그 다음에 만공 스님이지마는.
그래 그만 그대로 떡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마을에 저 나가다 어디 길가에서 떨어진 집, 무너진 집 하나 얻어 가지고 신 삼아 팔고 사는데.

없어, 선객이. 인자 이렇게 많이 모두 선(禪)이 자꾸 발전되제. 앞으로 인자 참선 참 크게 발전되는구만.
저 범어사도 미국 사람이 시방 와서 여그서 배워 가지고 나가 즈그 나라에 선(禪) 편다고 있다구만.
아! 여그 이 녀석은 나가더니 그 어디 붙잽혔다는구만, 인자 들은게. 아주 붙잽혀서 아(兒)들 가르키기 겨를이 없다는구만. 영어 가리키고 막 반하제, 모두 배울라고.

아, ‘혜월 큰스님이 홍성 노변(路邊)에서 그렇게 신 장사허고 계신다’ 그말 듣고는, 그때 인자 차츰 그때도 선이 좀 발전되든 때인디,
아, 젊은 선객이 한 몇 있다가는 ‘아! 그럴 수가 있겠냐’고 ‘모시러 가야겄다’고. 그래 사방 찾아서 인자 큰스님을 모시고.

아! 와 보니까 홍성 노변에서 이리저리 참 찾다 보니 거기에서 신 장사를 허고 계시는디 참, 형편없네.
그렇게 바쁘니까 언제 무슨 뭐 그릇 치울 겨를도 없고, 밥 먹으면 밥그릇 숟구락 치우도 않고 고대로 놔두고, 또 된장도 떠먹다가 씻도 안 허고 고대로 놔두고, 고러고는 앉어서 두 내외가 신 삼으면 수장허느라고 정신없어. 그러 안혀. 반찬이고 뭐 아무것도 없고 깨진 솥.

아, 그래 가서 “큰스님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와야? 어디서 왔냐?”

“저 통도사에서 왔습니다”
“그려? 나 봐라. 신 삼고 나 우리 마누라허고 산디 내가 어찌 가야?”

“아따, 가셔야 합니다. 마나님이랑 가시지요. 가셔야 합니다”
“못 간다. 안 된다”

“아, 가셔야 된다”고, 아! 그만 대들어서, 서넛이 가서 대들어서 뒤에서 밀고 그만 앞에서 스님을 업고, 업고 밀고 아! 이러고는 가자고 헌게.
업힘서 말여 “아이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라고 이러냐”

“아따 가셔요, 마누라...”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란 말이냐, 아아아!” 아, 이럼서 그만 업혀 가네.

그때 참 기가 맥혀. 돌아보고 울고 돌아보고, 기어니 업혀가 간게. 남에 업힌게 떠방치는 못허고 가시기는 가시면서도 돌아보면서 울어. ‘불쌍하다’고. 허허.
마누라도 문턱에서 문가에서 울고. 그래 거그서 아! 이렇게 작별을 시켰오.

자, 도인은 여차(如此)하거늘, 이와 같이 참, 노변에 신 삼고 그러고 계시는 그런 큰스님을 그렇게 모시러 가는데.
세상에, 시방은 도인이라고 허면 숭부텀 볼락 하네. 어디 도인, 도인이면 무슨 도인은 구름 속에서나 사는 줄 알고, 어디 저 무슨 탁자에 부처님보담 더 높은 줄 알고. 이런 꼴 좀 봐.

그렇게 믿겄오, 누가? 누가 믿어?

그것 저것을 불구허고 도 배울 욕심으로 학자들은 가서 업고 그만 나와 가지고는 그 어른을 모셔다가 놨오 그려.
모셔다 놓고는 절을 턱 허고는, 산중이 모도 큰스님 모셔 왔다고 절을 헌게, 응 절 딱 받고는 또 그냥 마누래 생각은 꿈도 없네. 거, 뭐 마누래 그까짓 녀러 것, 뭐 또 그때뿐이제. 아무 소용없어.

“아 큰스님, 거 거그 그 모도 집안 생각 안 납니까?”
“뭔 집이야? 아따 뵈기도 싫다, 인자. 그 뵈기도 싫다” 그러고는 인자 논 친다고 그러고 계셨다 그 말씀이여.
그러니 도인이 그런 영아행같은 그런 도인을 그래 인자 참 믿을 줄 알아야 하고, 모실 줄 알아야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를 헐 줄 알아야 혀. 그래야제.

넨장칠 것! 정전강 조실 스님이요, 정전강이 큰스님 스님이라고 턱 해 가지고 여그서 6년 동안이나 앉어서 도(道) 가르키고 요러고 앉었는디, 밤낮 내가 요렇게 6년 동안 설법허되 꼭 참선법밖에는 설해 드리들 않고 아! 이러고 있는디.

밤낮 그 내 모두 숭만 봐내지, 뭐 누가 한 번이나 참말로 법을 배울 줄 알어?
내 참말로 가만히 앉어서 내 혼자 우는구만. 나 혼자 울어.

세상에 내게도 이러헌 법이 있건만, 혜월 큰스님도 나한테 인가를 했고, 이게 자랑이여. 별수없어.
없는 걸 내가 있다고—내게 답이 다 있어. 그놈 답 다 해놔야 되지만 학자한테 해로워. 그래 내가 안 혀.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등지를 일러라. 공적영지 등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그놈을 내가 여그서 턱 해 놓으면 좋지. 하지마는 학자한테 해로워서 그래 내가 안 혀.

그래도 죽백천추(竹千秋)에, 인자 여 오늘 설법이 지금 기재(記載)를 헌다니까 여그 다 들어 가가지고 이 다음엔 결집(結集)을 해 놓으면은 거그 다 나올 터이니, 학자가 모도 그런 걸 봐 가지고서는 대단히 해로워. 그래서 내가 그건 않고 인가를 받았단 말만 해 놔.

고 가다가 그 제일귀 답 같은 것도 있어. 용성 스님한테. 그런 것은 답을 바로 해 놔. 바로 그놈이 해서 그놈 공포된 놈이니께 그리 해 논다 말이여.

이것도 혜월 큰스님한테 헌 것도 그때 당시에 다 알아. 다 알지마는 그거는 너머 갖다 그만 드러나 버려서, 그런게 인자 저놈 모도 헌 놈은 내가 다 해 놓지마는 요것은 헐 수가 없어.
내가 먼첨 헐 때는 그걸 갖다 해 놨어. 그놈을 가서 어디 해 논 것을 들어보고 찾아보고 그러지 말어. 알 필요가 없어.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이 중헌 게 아니여.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서 설파치 말어라. 이것이 참으로 진면목(眞面目)이요, 참말로 도가(道家)에 가서는 여차(如此)헌 법이다 그말이여.
그 해석을 기달치 말고, 그러헌 데 법문을 알라고 말어. 학자한테 해로워.

그렇게 혜월 큰스님 어른을 갖다 모셔 놓고는 그 당시에 동래 범어사와 그때 당시에 학자가 혜월 큰스님을 어떻게 모셨냐 그말이여.
인자 선지식 모시는 법을 여까장 말씀했지마는 여그서 이어서 또 인제 더 헐 것이여. 많이 헐 것이여.

오늘 법문 아침에 마쳤어. 반산림 법문을 여까장 마쳤어.
왼통 못 견디는구만. 모도 법문 듣느라고 되아서. 응, 세 시에서 네 시, 다섯 시 삼십 분인데.

올 삼동에 법문 무척 헌다 인자.
이 법문을 옳게 들어서 양을 채와야 하는 거여. 법량(法量)을 채와야 혀. 법밖에 없는 거여.

들을 때는 싫으면 되아? 귀찮으면 되아? 듣기 싫어서 왼통 야단이다. 궁딩이를 드리 받치고 무릎도 꿇고. 에이고, 나 참말로.(1시간23분54초~1시간43분58초) (일대기 3호 끝)





————————(1/3)

*(게송) ‘모산촉공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송원선자지관동(送願禪子之關東) - 원선자(願禪子)를 관동(關東)으로 보내며’ 참고.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반산림(半山林) ; 안거 기간의 중간.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제끼다 ; 제치다(동사의 연결어미 ‘-어’ 뒤에 쓰여, 어떤 동작이 신나고 거침없음을 나타내는 말).
*버르정머리 ; ‘버르장머리(‘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날빛 ; 햇빛.
*반다시 ; ‘반드시(틀림없이 꼭)’의 사투리.
*천일(天日) ; ①하늘과 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늘에 떠 있는 해. 또는 그 햇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암작 ; ‘아무짝(‘아무 데’를 비하하여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머냐 ; ‘먼저’의 사투리.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조인광중(稠人廣衆) ;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조인(稠人 빽빽할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낙구(落臼 떨어질 락/절구·곡식을 찧는 기구·찧다 구) ; ‘절구[臼]에 떨어진다[落]’는 말로 ‘백발백중(百發百中)‘, ’틀림없는 결과’의 뜻을 나타낸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화상 | 조계종출판사) ‘7. 示衆‘ p65 주석에서.
추문낙구(推門落臼) : 문을 여닫을 적에 문이 암돌짝[臼 : 절구처럼 구멍이 패인 곳]을 벗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상태로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말과 같다.[臼是門開閉之處也 開門之時 亦發於臼 閉門之時 亦落於臼 猶言百發百中].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도세(度世 건널 도/인간 세상 세) ;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또는 중생을 구제하여 해탈하게 하는 것.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세상없어도(世上---) ;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집다 ;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씨잘데 없이 ; ‘쓸데없이. 소용없이(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이)’의 사투리.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편영이행(鞭影而行) ; ‘여세양마(如世良馬) 견편영이행(見鞭影而行),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2/3)

*들입다 ; 세차게 마구.
*가당하다(可當-- 옳을·정도·가히 가/마땅·필적하다 당) ; ①대체로 이치에 맞다. ②능력이나 수준 따위가 비슷하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개복실(改服室) ; 옷을 갈아입는 방.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방연하다(尨然-- 삽살개·높고 크다 방/그럴·~이다 연) ; 두툼하고 크다.
*약무인행(若無忍行) 만행불성(萬行不成) ;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7~108.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산림(山林) ; 안거(安居).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한마음 ; 일심(一心). 궁극적 근저(根底 사물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사물이 생기는 본바탕)로서의 마음. 만유(萬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용(茸) ; 녹용(鹿茸 :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 녹용은 양기(陽氣)를 보하며 심장, 근골(筋骨)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보약으로 쓰인다.
*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들어맞다 ; 정확히 맞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 반기이파(飯器已破) ;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4) - 기미년 동안거결제 법문(79.10.17)에서.(4분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67분13초~71분33초)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해오라비[鷺鷥 노사] ; ‘해오라기(왜가릿과의 새)’의 사투리.

*백로(白鷺) ;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 ; ‘속히 일러 보시오’
*녀러(-녀러) ; ‘~놈의’를 뜻하는 단어.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초부(樵夫 나무할 초/지아비·사내 부) ; 나무꾼(땔나무를 하는 사내).

*외산(外山) ; 바깥쪽에 멀리 있는 산.
*안산(安山) ; 주산(主山 : 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쪽에 있는 산).
*도담(道談) ; 도(道)에 관한 이야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탈속(脫俗 벗을·벗어날·나올 탈/풍속·관습 속) ; ①부나 명예와 같은 세속적(世俗的)인 관심사로부터 벗어남. ②스님이나 수도자가 되어 속세(俗世, 일반 사회)를 떠남.
*석장(錫杖) ; 스님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 비구스님이 거처를 떠나서 돌아다닐 때 휴대하는 도구(道具)이다. 성장(聲杖), 지장(智杖), 덕장(德杖), 금석(金錫)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석장 윗부분에 큰 고리가 있고, 그 고리에 작은 고리를 여러 개 달아 움직이면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나게 하여, 원래는 독사나 해충을 쫓아내거나 걸식할 때 석장을 울려서 멀리서도 들리게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니고 다녔지만, 후세에 법기(法器, 수도修道를 돕는 기구) 중 하나로 바뀌었다.
*전계(傳戒) ; 보살계(菩薩戒 : 대승계大乘戒)를 전수(傳授 전하여 줌), 또는 전해 받는 것.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소꼴 ; 소에게 먹이는 풀.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평전(平田 평평할 평/ 밭 전) ; ①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②평야에 있는 좋은 밭.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조태 ; 자태(姿態). ①어떤 모습이나 모양. ②몸가짐과 맵시(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영아(嬰兒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 ; 젖먹이.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
*타기다 ; ‘닮다’의 사투리.
*대찬(大讚 큰 대/기릴·찬양할 찬) ; 크게 칭찬함. 또는 큰 칭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국내(局內 판·마을·방·구획 국/안 내) ; ①묘지나 절의 구역 안. ②관청이나 회사에서 부서(部署)의 하나인 국(局)의 안.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더욱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항상 구르다(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원청간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역전(驛前 역·역참·정거장 역/앞 전) ; 역의 앞쪽. ‘역 앞’. 정거장 앞.

 

 

 

 

 

---------------------(3/3)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계(契)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상부상조의 민간 협동 조직.
*계금(契金) ; 곗돈(契-). ①계에 들어서 내는 돈. ②계를 부어 찾는 목돈. ③계에서 가지고 있는 돈.
*집어쓰다 ; 돈 따위를 닥치는 대로 쓰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무애(無礙,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의 한역어(漢譯語). 무애(無閡), 무장애(無障礙), 무가애(無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장애를 주지 않는 것.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잡행(雜行 섞이다·천하다 잡/다닐·행할 행) ; ①잡스러운(순수하지 아니하고 천하고 교양이 없는) 행실. ②스님이 계율을 범하는 행위.
*음주식육(飮酒食肉) 무방반야(無防般若) ;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반야에 방해되지 않는다’라는 삿된 소견.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국문(國文 나라 국/글월 문) ; 나라 고유의 글자. 또는 그 글자로 쓴 글.
*삼다 ; 짚신이나 미투리 따위를 결어서(겯다 : 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다) 만들다.
*짚신 ; 볏짚으로 삼아 만든 신.
*미투리 ; 삼[麻]이나 노(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골 치다 ; 골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다. * :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일정한 모양을 잡거나, 잘못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는 데 쓰는 틀.
*커리 ; ‘켤레(신발, 버선, 방망이 따위의 두 짝을 한 벌로 하여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의 사투리.
*다섯 커리썩 ; ‘다섯 켤레씩’ *-썩 : ‘-씩’의 사투리.
*쌀팔다 ; 쌀을 돈주고 사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넨장칠 ; 네 난장(亂杖)을 칠 만하다는 뜻으로, 못마땅할 때 욕으로 하는 말.
*난장(亂杖) ; ①고려 · 조선 시대에,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마구 매로 치던 고문. ②몰매(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 08:14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2호) 곡성 동리산 대오, 혜봉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5)—전강선사 일대기 제2호(경술1970년 11월 21일.음)

(1/4) 약 20분.

 

(2/4) 약 17분.

 

(3/4) 약 16분.

 

(4/4) 약 14분.


(1/4)----------------

나를 좀 모두 쳐다 봐.

왜 우리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서, 시성정각(始成正覺) 허셔 가지고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 오셔서 설법하실 적에 왜 이랬어? 첫번이야. 처음, 왜 이래.

이게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面目)이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본 생명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명근(命根)이고, 금일 대중의 생명, 전 생명, 근본 몸뚱이, 본래 몸뚱아리여.

그러기에 이놈이, 이 주장자(拄杖子)가 뭐 주장자만 되나?
천하에 다 붙여봐. 천하에 명상(名相) 있는 대로 다 붙여봐. 그대로요. 다 붙지.

허공도 여가(여기에) 붙고, 대지도 여가 붙고, 삼라만상도 붙고, 제불열반처(諸佛涅槃處)도 붙고,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도 붙고, 최초구(最初句)도 붙고, 말후구(末後句)도 붙고.
뭣이 제일구(第一句)도, 제이구(第二句)도, 제삼구(第三句)도 여가 갖춰져 있고. 그렇지 않아?

그런데, 여의고 보라 그말이여. 여의여 봐.
주장자도 이놈 한번 여의여 보고, 다 붙어 있는 허공대지도 여의여 보고, 일체 삼세제불 역대조사도 여의여 보고, 다 한번 여의여 봐라. 거가 뭣이 붙어 있나?

그러면 한번 그놈 여의고 일러 보라 그말이여. 일러 볼 수가 있지.
못 일러? 언하(言下)에 이를지언, 언하에 이를지언정 못 일러?

불 좀 꺼, 인자. 열이 딱 찼으니까.

기본축말(棄本逐末)을 말고 한번 일러 봐. 이렇게 해도 못 일러?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하고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무슨 말인고 허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다. 높이 누워서, 높이 누웠다. ‘높이 누웠다’는 것은 한량없이 고귀헌 지위, 높고 저 높은 부귀영화. 거, 임금님이던지 호걸 부귀 모도 그 고와(高臥), 높이 누워서 잠자는 것이 오직 좋은가. 편안허니 잠잔다. 한단침(邯鄲枕) 베고, 좋은 단침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아주 한량없이 즐거운 낙 받고 부부지간의 좋은 단침, 한단침을 베고 푸근허니 잠자고 좋은 아들 낳고, 그 옥식금의(玉食錦衣) 속에서 이렇게 산다.

한번 그렇게 산다마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니라. 사방 성(城)은 한량도 없이 높이 싸여 있는 그런 놈의 철위산(鐵圍山) 속에, 악도 지옥 속에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성 속으로 들어가서 만년 죄고(罪苦)를 받니라.
그 한단침 베고 그 속에서 좀 잠깐 좀 살다 보니 맨 시은(施恩)과 악업(惡業)만 짓고 죄업만 지었느니라.

가는 곳이 어디냐? 그놈의 만년 성 속에 떨어져 들어가서—그 만년이지, 이름이 만년(萬年)이지, 만년인가?
만년 지내면 또 만년이 오고, 또 만년 지내면 또 뒷 만년이 있는데. 만년만 지내고 나오면사 좋게.

잠깐 한평생, 이놈의 평생, 인생 평생이라는 게 거그서 잠깐 동안 한단침 베고 내외, 그 자식 낳고 고것이 악연이여, 숭악한 악연(惡緣)이여.

그 진로(塵勞) 속에서 그 형탈(逈脫)치 못한 이 숭악한 사대색신(四大色身) 사대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인디. 사대 몸뚱이 고놈이 사사(四蛇)여. 독사 네 마리여.
눈으로 보고 모두 색별(色別)을 내서 욕심 · 탐심을 눈으로 보고 턱 모도 거두어들이고 죄업 짓고, 그놈의 뱀이 독사란 놈이 보면 잡아, 팔딱만 뛰어도 잡아먹을라는 마음뿐이다.

이 몸뚱이도 역시 그러허다. 눈으로는 봐서 도둑해 오고, 이놈 몸뚱이로는 가서 몸뚱이로 집어 오고, 욕심 내고 아! 이거, 이뿐이야.

이렇게 잠깐 나와서 악업 속에서 죄업만 지어서 저 만년 성 속에 들어가서 이런 죄고 받는 것만 중생이란 것은 있느니라. 생각해 보아라.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허라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하라. 참으로 출가한 학자들이여. 향당(鄕黨)도 여의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의고, 장가들지 않고 척! 한번 끊어 버리고 과연 단신으로 이렇게 척 나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 학자들이여.
학자들아, 한번 꼭 이 꿈을 깨라. 이 인생몽(人生夢)을 한번 깨라. 왜 이렇게 깨지 못하느냐?

한번 깨버리면은 본각명(本覺明)이리라. 네 본래면목 해탈광(解脫光)이 그대로 밝아 버리리라.
거가서 뭣이 있겠나. 무슨 생사가 있으며 무슨 만년성이 왜 네 몸뚱이를 얽어 집어넣겠느냐. 왜 염라대왕이 너를 처박어 넣겠느냐. 무슨 죄업이 너한테 있느냐.

깨달라라.
이만큼 홀몸이 되고, 단신(單身) 몸이 되고 그렇게 깨끗한 몸이 되아 가지고 도를 닦으러 들어와서 한바탕 못 닦는다는 말이냐?


금강산에 계시는 추천원 스님이, 추천원 스님이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여름 산림을 허고는 해제 후에 곡성 그 태안사(泰安寺) 뒷산을 넘어오는데 산말랭이를 척 넘어오니까, 그 산말랭이가 별로 높지도 않거든. 넘어오니깐 큰 대호(大虎)란 놈이—비린내가 산에 올라오니 왈칵 난다 그말이여.

또 오늘 아침 법문도 또 그저 이렇게 상하(上下)도 없고 아무때나 또 나온 대로 헌다 그말이여.
뭣을 생각해 놨자 법문이 생각헌 대로 안 나와. 늙은 연고인지 웬 연고인지 이렇게 잘 나오들 않으니깐 나온 대로 허는 거여.

재를 넘어오니깐 비린내가 왈칵 나.
아이고, 웬 냄새가 이렇게 나는고 싶어서 아! 이래 사방을 살펴보니까 호랭이란 놈이 큰 황소만헌 놈이 누워서 자빠져 자.
아, 저런 큰 놈이 어째 저렇게 누워 자빠져 자는고 싶어서 그 옆에를 가만히 보니까 사람을 하나 잡아 다가서 다 먹어 버리고 머리빡하고, 손허고 다리허고 사족(四足)만 남겨 놓고는, 머리허고 그것만 냉겨 놓고는 다 먹어 버리고는 똥창사 냉겨 놓고는 그 잔다 그말이여.

그래 가만히 그걸 보니 참 무서운 것도 없고—추천원 스님이라고 도를 여간 닦은 이고 몸이 그렇게 큰 어른이고, 대단히 보통 담대허도 않고.
설사 도를 닦아서 어떠헌 무외(無畏), 무포외(無怖畏)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포외(怖畏) 없는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그런 걸 보면은 포외심이 나고 안되는 것이제.

허지마는 그 어른은 무슨 뭐 대오 확철대오 해서 무외를 증하도 못한 이지마는 그만큼 담대하고, 그까짓 그런 것을 보기를 뭐 그저 보통으로 보고 이런 인데.

아! 가서 그걸 보니 그 시체가 처녀여. 하도 얼굴은 깨끗하게 예쁜 처녀인디 머리채를 가조런히 딴 머리채 그대로 있고, 손도 깨끗허니 해가지고 발도 깨끗허니 딱 두고는 이놈이 먹었다 그말이여.
아, 그것을 보니 어떻게 그만 괘씸허고, 그놈을 그냥 그 당장에서 뭣이라도 있으면 때려 모가지를 찔러 패서 죽여 버리고 싶다 그말이여. 저런 악한 놈이 저런 짓을 했으니.

그러지마는 뭐 손에 쥔 것도 없지마는, 그런 큰 대호 무지한 놈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그놈한테 상헐 것이고.
멀찌맥이 나와서 서서, 높은 데 서서—호랭이는 저 높은 디를 무서워 혀. 저보다 높은 걸 무서워 하기 따문에 의심이 많은 놈이기 따문에 골짜구로 안 댕기고, 언제든지 봉대기로 이렇게 산봉대기로 댕기는 것인디.

역부러 그놈 벌써 호랭이 그 심리를 미리 아신 어른이고,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작대기 이런 놈을 하나 짚고는 서서 “너 이놈! 고약한 놈 같은 이놈! 요놈 저런 놈을 산신님이 그냥 둔단 말이냐고 저놈을 당장 죽여 달라”고 아, 고함을 냅다 친게.
아, 이놈이 대가리를 툭 털고 들고 보더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착 보고 가더니 쳐다보고는 ‘아함!’ 그러고 입을 딱 벌림서 고함을 지름서 ‘아함!’ 그러거든.

“저놈이 어디서 저런 놈을 저놈을 당장” 고함을 지른게, 눈을 이리 슬므시 감더니 그냥 고개는 들고는 산으로 올라간단 말이여. 이래 돌아보면서 눈을 조끔도 다른 데 팔지 않고 이리 돌아보며 쓱 올라가거든.
아, 그만 기를 안 애끼고 서서 “저놈이 어디로 갈까보냐”고 호령을 헌게 아, 그놈이 산으로 올라 얼마 올라가더니 산봉대기에서 휘딱 자취를 감춰. 간데없어.

그래 거그서 얼마 내려와서 마을집에 가서—응, 거그서 그 당신의 속옷을 이리저리 모두 벗어서 웃옷을 벗어서 그 머리를 두골을 싸고, 수족을 이래 다 손은 손대로 인자 위에다 가운데 놓고, 발은 제일 밑에다 놓고. 그리고 창자는 그만 그 자리에 다 어떻게 해서 끌어 묻고는.

거두어 가지고는, 잘 싸가지고 흔적없이 싸가지고는 한참 그 재를 내려와서 재 밑에 와서 그 조그만한 토굴에, 저 촌사람 그 집, 산촌 산가(山家)에 들어가서 “내가 잠깐 쓸 일이 있으니 그 괭이 좀 빌려 주시겄오” 그런게,
“뭣 하실라고 그리 가시다가 노장님이 그걸 괭이를 달락 하느냐”
“예 나 잠깐 쓸 일이 있으니 좀 빌려 주십시오. 내가 몰리 가져 가지 않을 것이고, 내 보퉁이 여기 좀 두고 좀 봐 주십시오. 내가 산에 뭣 좀 캘 일이 있어서 약(藥) 하나 캘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빌려 주어서 한참 올라가서 파기 좋은 데를 파서, 한 자쯤 두어 자쯤 파고는 그대로 잘 묻어서 꽉꽉 밟아서 그래 묻어 주고는 혼백을 청혼(請魂)을 불러서, “아무쪼록 그저 이고득락(離苦得樂)하라”고 “그 못된 놈한테 과보 당한 줄 알라”고 그러고서는 내려왔다고,
금강산 지장암서 우리가 여름에 지내는디 거기 와서 같이 지낼 때 그런 얘기를 해서 들었습니다.

그 천원 스님이라고 허는 분은 거짓말도 헐 줄 모르고 뭐 그대로...
그 거짓말이나 잘헌 사람 같으면은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겄오마는 그대로 참된 이이기 따문에 대중이 다 옳게 들었제.(처음~19분55초)

 

 




(2/4)----------------

내가 그 재를 넘어가는 산밑에서, 고 재를 지금 넘어가는 산 밑에 노지(징검다리)가 이렇게 있어. 그 다리를 이렇게 건네. 내가 여까장 했제, 엊저녁에.

내가 두 철을 그렇게 공부를 허고.
두 철 공부라는 거, 세상에 제 공부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그거 누가 인격적으로 들을 것인가. 발써 그 인격부텀 박멸헐 터이지마는 허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말한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옳게 들으면 옳게 듣고, 자기 자랑헌다고 안 들으면 안 들을 터이제. 내가 거기에 무서워서 무슨 뭐 못혀.
내가 어제 아침 법문할 때 뭐라고 했냐 그말이여. 내 어릴 때부텀 벌써 서모 밑에서 배운 기술이 도둑질이라고 안 했어. 도둑질을 잘했으니 ‘했다’ 하제, 어떡헐 거냐 이말이여.

일곱 살 먹어서 서모 밑에 있어서 그 도둑질, 는 것이 도둑질.
그 도둑질이 무슨 내가 그렇게 넘의 쌀궤 가서 내오고 돈 내온 거 아니라, 서모 밑에서 아! 어찌 살다가 보니 그대로 그 주는 음식만 먹어도 될 턴디 어짠지 그 음식같은 것을 어따 두면은 그만 기어이 돌라먹어, 요런 거.
쌀같은 것도 다 내먹어, 요런 짓. 콩같은 것도 내가 다 구워 먹어, 요런 짓. 그래 놓고는 뒤지게 뚜드려 맞아. 안 먹을락 해도 버릇이 그리 된다 그말이여, 그 이상해야. 그런 짓 했다 그말이제.

아, 뭐 그렇게 천하게 커 나왔다는 거, 그것 무슨 뭐 그 무슨 감출 것이 또 뭐 있나?
그러헌 것도 내가 다 그대로 말을 했는데, 내 잘난 것을 말 안 해? 잘난 것은 더 말하고, 잘한 것은 내가 더 말하지. 안 할 게 뭐 있냐.

척 나와서 첫 철 공부를 그렇게... 내가 말했지.
그 다음에, 첫 철 공부에 그렇게 했는데 왜 그러헌 못된 병, 뱃속에서 막 그러헌 뭐 있는 대로 피가 다 넘어오게 공부를 했냐 그말이여.

왜 내가 그때에 좀 지혜가 있었으면 그러리요마는 대번 처음 나와서 그저 그만 화두(話頭)를 허되 힘써서 허면 된 줄만 알았거든.
그만 억지로 그만 창자가 기어오르게 막 ‘어째서 무(無)‘라고 들입대 해놓으니 육단심(肉團心)이 안 동(動)할 수가 있어야지, 생전 안 허든 놈의 공부를 갖다가 그렇게 해 놓으니까.

하나도 힘 안 들고 요만큼도 육단이 동치 않게, 피같은 것 뭐 이런 것 넘어오지 않게 그 참 잘헐 수 있는 그러헌 도 닦는 데 그러헌 묘방(妙方)이 있고, 그것을 몰랐드라 그말이여.

아, 그 큰스님을 그때 믿고, 그 큰스님 시킨 대로만 했으면은 다시 일이 없을 터인디, 그 큰스님 제산 큰스님이 그 시킨 대로 내가 안 했다 그말이여. 왜 그때 그 20살, 한 20살 먹은 것이 나와서 왜 그 조실 스님을 안 믿었든고.

믿을 수가 없어. 왜 믿을 수가 없나?
들어보면 알아. 암만 처음 나온 사람이라도 가르킨 것 들어보면 안다 그말이여. 그것을 몰라?
발써 그 경중(經中) 가운데, 그 모두 그 몽산 스님의 가르키는 화두법 가운데, 간화결의(看話決疑) 같은 것 가운데, 그런 것 내 그때 다 보지 않았지마는 다 듣고도 알 수 있었는디.

그러면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니라. 크게 의심(疑心)헌 데서 깨달으니라. 불의언구(不疑言句)가 시위대병(是爲大病)이니라. 언구 의심 않는 것이 큰 병이니라.
그저 참선은 큰 대의지하에 큰 대오가 있다. 의심을 허라고 했지. 의심밖에는 다 못 쓰느니라.

의심 밖에 거 무슨 무중무(無中無)를 본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본다든지, 허무유견(虛無有見)을 본다든지, 그건 다 아무리 광명장(光明藏)을 들여다 보고 아무리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을 들여다 봐도 그것은 다 묵조사선(默照邪禪)이니라. 죽은 참선이니라. 묵조(默照), 묵묵히 비추는 죽은 참선이니라. 다 모도 말 안 해 놨어?

그런디 큰스님께서 화두를 가르키시되 “천지미분전을 보아라” 벌써 틀렸거든. 그 화두를 믿을 수가 있나.
허니,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큰 의심 아래 깨달느니라’했으니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키다 보니, 척 이놈 일으키기만 일으키제,
거기에 참, 묘법(妙法)이 있는 줄을 화두에 묘관(妙觀)이 있는 줄을 몰랐다 그말이여. 첫 철에 나와서.

그러면 그 스님 말씀은 믿지 않고 들입대 ‘어째 무라고 했노’ 이놈만 어떻게 힘을 써 했든지 그냥 기운이 막 드리 올라와 가지고는 그 코로 입으로 피를 그리 쏟았던 것이여.
그래도 그 철에 그렇게 애를 쓰되 뭐 보통 내가 다 어제 아침 말을 다 했으니 더헐 것 없지.

새로 오신 법안성 보살님이 계시니 어제 아침에 했던 것을 다시 했으면 허련만 여기 다 갖춰져 있고, 본래 또 내가 말을 다 들어 알 수 없고.
법안성 어저께 말씀이 “내가 여러 간디 그 교(敎)에도 모도 들어가 봤고, 또 중간에 내가 그 어느 또 불교라도 들어가 봤고, 그런 데가 다 가르킨 디 가서 내가 들어서 다 알았습니다. 대번에 보니 모도 가르키는디 벌써 말 한마디 한마디 들어보면은 어떤 것이 사(邪)다 정(正)이다 하는 것이 분간이 나드라”고.
그러기 따문에 그렇게 분간헐 줄 알기 따문에 정법문중(正法門中)으로 바로 들어온 것이란 말씀이 틀림없거든.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용하다 그 말씀이여. 그것이 아니면 들어온 법 없제. 그게 참말로 정견(正見) 학자거든.

그 정견 학자가 이 다음에 그 참, 혹 또 세상에 입태(入胎)에 가서 매(昧)하지 않지마는, 주태(住胎)에 가 매해 가지고 또 출태(出胎)에 가서 매하는 수가 있어. 매(昧)해, 출태에 정법학자가.
출태에 가 매하드래도 더 후래(後來)에 몸을 받아 척 나와서 대번에 벌써 아무리 제견 외도(外道)에, 사견(邪見) 외도에 가서 외도법을 가서 어떻게 배워 보고 다 알고 다시 정견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여.

우리 부처님 역시 사바세계 시현(示現)으로 나오셨지마는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그 외도를 만나 가지고 벌써 들어보니 알았거든. 틀림없지. 그걸 정견 학자라고 해.

아! 또 다시 말이여. 또 다시 왜 이런 말을 안 해. 왜 이런 말을 안 헐까 보냔 말이여. 왜 감출 것이냔 말이여.

부처님 그 경전 가운데 들어와 ‘어떤 그렇게 상(相)을 내지 말어라. 보시상을 내지 말어라. 네가 보시를 했닥 하드래도 보시상이 있으면은 보시가 아니니라’ 왼갖 말씀 금강경에 다 해 놨지마는 또 보시상을 나툰 디는 또 굉장하네.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왜 그런 소리를 혀.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논을 드리고 밭을 드린 건 복이 한량이 없느니라’ 얼마나 말씀을 했어.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왼통 이렇게 다 나투어 놓고 또 그런 말씀을 했지.

보살님이 이번에 참—이것 뭐 당최, 나 일절 내가 무슨 뭐 ‘얼마 했느니 말았느니 뭘 했느니’ 내 안 했어. 헌 법 없었어, 내 입으로. 허다가 어쩌다가 은근히 그저 알았지만.

이 참 이 처음 시작할 때, 이 집이 이거 시작헐 때 기가 맥힌 집입니다.
내가 여기에 평생에 이렇게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으로, 내 돈 한푼 없이 입을 달고 돌아댕기는 나로써서 아, 여기에 와서 어떻게 어떻게 허다가서 아, 여기 무슨 잠깐 잠연이 있어서 있다가 어쩌다가 이 법당 하나를 지을라고 할 때. 아! 이 어떻게 짓냔 말여.

보살님한테 말을 했더니 대번에 그 어떻게 해 주어서 그만 그놈을 가지고 시작해 가지고 이 집을 지었는데, 지어 놓고 나니 이 산꼭대기에 물이 있나. 또 물을 말했드니 모두 수도를 이렇게 어떻게 척 나오게 해 주셨어. 그 인연이 적지 않지.
그 다음에는 이놈 땅이 남의 땅이니 이걸 어찌해야 할까 보냐고 떡 했드니 또 그 땅 사게 되았제. 이런 시은(施恩)이 깊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는 이거 이래 놨겄당 어떻게 어떻게 허든지 이것을 재단법인(財團法人)을 좀 만들었으면 쓰겄는디, 원 재원(財源)이 그 모지라서 이걸 가지고 이사(理事)를 꾸밀 수가 없어.

어쩌고 어쩌고 했더니 아, 그 보살님께서 그 뭣이 있나? 아무것도 별 것 없지마는 아, 그 무슨 토지를 좀 근근히 좀 장만해 놓은 것을 여가 작고 많은 건 불고허고 그 재단법인에다 붙여서 재단이 되도록 해 가지고,
“적어도 이 말세일수록에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유통되어야 할 터이니 내의 이 몸뚱이는 잠깐 그저 머물다 갈 몸뚱이뿐이여. 어쩠튼지 그런 한 몸뚱이 재원이라도 뭘 재단을 만들어서 정법을 유통허도록 허는 것이 참 좋겠습니다’고,
아, 이렇게 저렇게 원력(願力)을 발해 가지고서는 아! 그 인자 뭐 재단법인이 되도록 이렇게 떡 해놨겄다.

그런디 허나 못 허나 여기 댕김서 불명(佛名)도 받고, 불명도 지었다는 신도가 말허기를 “왜 그런 허망한 짓을 헐까 보냐”고. “왜 그렇게 애써 헌 그런 토지를 부자도 아니고 왜 거그다가 그리 다 드릴까 보냐”고. 아, 내가 그랬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어.

그러헌 디 속지 않고, 그러헌 말에 넘어가시지 않고 더욱 더 “아직 그 불법을 모르는구나. 정법을 못 믿는구나” 오히려 개탄(慨歎)을 했다고, 그런 사람의 그 정신을 개탄을 했다고.
아,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참 느꼈소.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거요.

그 얼마나 호사(好事)에 다마(多魔)요. 내 할 일을 내가 했느냔 말이다. 그 내 할 일이 어떠헌 일이여?

죽백천추(竹帛千秋)에, 그래도 자 이만큼 그래도 시작해 주셨는디 여가 똑 선방이 되아서 다맛 그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20명이고 30명이고—대본산, 큰 재원이 뭉텅 있는 데도 학자 몇 데리고 지내도 못하고 빚이 있느니 뭣 허니 야단치지마는,
자 여기에 그저 몇십 명씩 와서 턱 이래 공부를 허고 계시고, 또 보살님도 이렇게 와서 떡 와서 이래 다 공부허시고, 보살님네 당신네 양식 잡순다 하지마는 아, 그 당신네 양식을 잡수드래도 이런 처소가 없으면 되야?

이렇게 불학(佛學)을 배우는, 생사해탈법을 배우는 이 정법 이 법보선원 그 어떻게 죽백천추에 이러헌 선원을 참 창건허리요. 창건해서 유통허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그 보통 누가 날 것인가마는 말이제.

참으로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다. 좋다, 이때를 향해서 너를 깨달라라’ 이런 말씀도 있지마는.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작복(明作福)하라’ 이러헌 때를 당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러헌 무루(無漏) 해탈복을 지을 수가 없다.

이거 그것 저것 조금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안 해 준다면은 이걸 꾸며낼 수가 없고 이걸 전통 헐 수가 없고, 못하거든.

여까장 어쩌다 보니 말이 나오게 되았습니다. 왔다갔다 아무때나 한다니까. 내 법문이 그렇다 그 말씀이여. 시(始)도 없고 종(終)도 없고 무시무종(無始無終).

우리 부처님은 그렇게 안 설했나? 우리 부처님의 화엄경이 그렇게 설한 경이여.
그런데 그 경이, 화엄경이 우리 부처님 경은 그만 그대로여. 무시(無始)요, 무종(無終)이요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거든.
‘가는[微] 티끌[塵] 수(數) 품’ 그대로 한 품도 설하지 않고 품수(品數) 그대로 딱 되겄다.

화엄경에다가 내가 내 법문을 대해서, 또 좀, 그 좀, 대단히 좀, 그 미안하요. 인격상 좀 불안하요.
허지마는 그대로 내가 설헐 수 밖에 없제.(20분2초~36분38초)

 

 




(3/4)----------------

내가 첫 철을 그렇게 한바탕 공부를 하고, 그 다음 두 철에 와서 죽게 된 몸뚱이 불구허고 떡 공부를 허다가,
인자 거그 와서는 다시 인자 큰스님한테 의심난 고 화두허는 법, 의심을 다루어 나가는, 의심을 거각(擧却)해 나가는 화두를 잘 간택해 가지고 큰스님을 믿고 공부를 턱 해나가는데.

죽거나 살거나 불구허고 그렇게 해나가다가, 중간의 ‘견성했다’고 한번 들어가서 하! 해놓고는 그렇게 대방(大棒)을 맞고 해제를 마치고 떠나 가지고는. 산철이제, 인자 두 철 만에 산철.
죽게 되았거나 걸음도 못 걷고 그만 그 뭐 파리가 날라가도 자빠지게 됐지마는 원청 강한 신심이 백혀 있으니깐 그것 상관 없드구만.

호서를 내려가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서 저녁밥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아침 얻어먹고 그러고 척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허고 척 나가다가,
아까 그 곡성 동리, 곡성 태안사 너머로 호랭이 사람 잡아먹은 산밑에를, 그 재를 넘어갈라고 산밑에를 가는디 물 건너는 노지(징검다리)가 있다.

그 노지를 척 아! 건너 한 발 뛰고 두 번 건너뛸라고 허는데.

자지 마시오, 자지 말어, 응. 법문 들을 때 왜 자요. 법문 들을 때 자러 왔어? 법문 들으러 왔지.

한 발대죽 뛰고 또 발대를 건너뛸라고 헐 때인디, 화두는 내 화두는 허면서도—가면서 왜 화두를 안 혀.
앉었을 때만 화두를 허고 누울 때는 화두 못허고 그러는가? 밥 먹을 때는 화두 내버리고 먹고, 왜 똥 눌 때 화두를 내버리고 똥 누어?
이거 무슨 소리여. 화두 좀 해보란 말이여.

화두 허다, 좌선 허다가 척 누워서 화두를 추켜들고 누워 봐. 그대로 화두가 온당허게 자리가 잽혀 가지고는 그거 뭐 알 수 없는 놈만 딱! 나온다. 바로 누우나 옆으로 누우나 화두는 고대로.
잠을 딱 자고 뚝! 깨봐. 잠은 자기는 잤는데 화두는 고대로 나온다.

이것 무슨 소리들이여.
화두를 그 허다 말다가, 조끔 허다가 말다가, 조끔 있다가 없고 말허다가도 없고 쫓아댕기다 없고, 똥 쌀 때는 그대로 싸고 이래 가지고는 10년 20년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해 봐라. 틀림이 있는가. 소용없는 거여.

두 발대죽을 턱 내딛으면서 처꺽 그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겠느냐?’
‘구름 벗어지면 소 찾지’ 대방(大棒)을 내루아 버리고는 그 학자한테 나한테 물어라.

‘운무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 소 찾겄읍니까?’
‘담 너머에 가서 외 따 오니라’

아, 그 법문이 그만 화두를 해 나가다가 훅 들어오면서 툭!
내가 그래서 법문에 언하대오(言下大悟)라고 논 것이 그거여. 그 언하(言下)에 그만 대오(大悟)를 했네. 내가 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주제 넘게 헌말이여 이것이.
참말로 대오인지 아닌지 알 택이 있냐 그말이여. 나는 대오 했으니께.

척! ‘차시(此時)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이때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은 녹수(綠水)는 각하(脚下)에 암전거(岩前去)로구나. 흐르는 물은 내 다리 밑에, 내 발 아래에 흐르는 물은 다리 앞으로 가는구나’
이 말 한마디 턱 일러 놓고는 곡성 그 재를 넘어갔네.

어떻게 넘어간지 모르고, 호랭이가 물어 간 재인지 뭔 이건 모르는 소리고, 내가 그 재를 지금 넘어갔기 따문에 고 이야기를 하나 해놓은 것이여.
뭐 소설도 그렇게 다 현대소설 「해왕성」 같은 거 보란 말이여. 다 그렇게 안 나왔는가.

그 재를 넘어서 태안사를 척 들어갔다. 그때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놨는디 내 오도송 좀 들어봐.
오도송, 밤낮 해 논 놈, 저 내 방에 써 걸어 놨으니 다 알지, 뭐 모를 건 없으되 그놈을 내가 좀 고쳐서 지금은 해 놨지.

자칭 내가 지금 내 오도송이라 한다. 어째 오도송, 나는 도통(道通)을 했으니 오도송이지. 남이야 비웃거나 말거나 나 혼자만 견성했지, 인자 잉. 그렇게 들어 두란 말이여. 그때 처음이니까.
그래도 내가 아직 오도송, 그때 고친 놈 그 글자만 몇 떼 버렸지 그대로여.

그날 밤이여. 그 재를 넘어가서 그날 밤에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 앞에 떡 그 앞에 누(樓)가 있고, 뜰 앞에 거닐면서 이놈을 진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무슨 놈의 글을 질 줄 아나. 내가 뭔 글을 얼마나 배우다가 나왔는디, 무슨 놈의 글.

일곱 살 먹어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울 아버지 계실 때에는 나도 참 참말로 그런 귀동자가 없었대. 우리 어머니가 나 첫아들 낳아 가지고, 늦게 낳는데 얼마나 그만 사랑하고 예삐 키웠든지 소문이 들썩 나버렸어.
허지마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서모 하나 들어오신 바람에 우리 서모 밑에서 그런 천둥이는 당최 만고(萬古) 천둥이는 없었다 그말이여.

그래 그 어릴 때 그때, 그 뭐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르 황, 뭐 배운 것은 그때 배웠지마는 서모 들어오면서부터는 다시 글 한 자 뭐 배워 보지도 못했고는 서모 밑에서 어떻게 나는—서모가 그 뭐 참 괜찮다고 하지마는 그렇게 못되어지데, 사람이.

그러고 나와서는 또 뭐, 그 내가 아까 그러지 않어? 글도 얼마든지 절에 들어와 배울 턴디, 그 같은 친구 동무, 아이 하나 미쳐 죽어서 화장해 버린 뒤에 그것 다 태워가지고 연기는 빙 돌아 떠버리고, 그 응해 스님 글 하나 한 귀(句)에 그만 발심(發心)이 되아버렸어.

수행(修行)은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뭐 참선을 헐라매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가 소년 무덤이다.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며,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으면 어느 때 돌아오며,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지옥 때가 기니 어찌 등한히 노느냐. 지옥 한번 들어가면 때가 길다. 못 나온다. 어찌 등한히 노느냐. 하는 송구(頌句)에 그만 발심이 되아 가지고는 어릴 때, 통 글이란 건 읽을 수가 없어. 그까짓 놈의 글 배우다 죽어 버리면 뭣이냐.

또 사람이 수명 수한(壽限)이, 죽는 한(限)이 그놈이 때가 정해져 있으면은 어느 때까장 글 배우고 그 다음에는 참선 허겄다마는, 20년을 산다 하면 10년 글 배우고 10년은 공부하겄다마는 조석(朝夕)에 생명을 잃어 버릴 수가 있고,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에 잃어 버릴 수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그 글을 읽고 있어.

허송(虛送), 그놈의 글 읽는다고 허송을 헐 수가 있어?
망후를 혀. 내일 헌다, 모래 헌다 후(後)를 기달라. 어찌 후기(後期)를 내가 만들아.

당체 못 하겠어. 그래 버렸는디 뭐 소용이 있나. 뭔 놈의 그래 글 하나 못 배와 못 읽었어.
쪼금 그 읽는다고 읽었자 뭐 그것 무슨 뭐, 그때 나올 때 놀이 글자 좀 알고, 한 글자 새길 수도 없어. 몰라. 그런 것이 무슨 놈의 글을 질 것인가 말이여.

허지마는 척! 가서 글이 한 수(首)가 나오는디 그 멋지게 나온다 그말이여.
글이라는 것은 염(簾)도 보고 운(韻)도 맞추고 다 이렇게 지은 것이지마는, 염(簾)이야 운(韻)이야 그런 걸 내가 해 보지 않았는데 그건 상당한 글이 있어야 하지, 어떻게 알 것인가.

허지마는 이 글이 염도 좀 맞았네, 염도. 들어 봐.
글이 원청 될 것 같으면 염도 운도 맞는데야. 12염에는 다 안 맞는다는구만. 12번 그 염 보는 데는.

그날 다리를 건너뛰다가 인자 그 견성 했다고 그날 밤에 태안사 청중에 거닐다가 떠억 허니 하나 지은 것이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허고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다. 어젯밤 삼경(三更) 달은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내나 그 앞에 어젯밤 삼경 달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고가창외(古家窓外)에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저 밑에 저 옛 고가(古家)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갈대꽃이 모도 피어서 일렁일렁해. 대(對)도 맞았네. 명월과 갈대꽃 대도 맞았어.

벌로 듣지 말어. 무식한 내가 글 진 걸 봐! 견성 했는가, 안 했는가 보라 그말이여.
고렇게 첫 귀는 빠졌다.

어젯밤 삼경 달은 다락에 가득했는데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니라.
이것은 최초구(最初句)니, 말후구(末後句)니 붙이들 말고 봐라. 거다가 최초구니 말후구니 여하약하(如何若何)오. 강사들 모도 있은게 강사 지견(知見)을 붙여보라 말이여.

고 밑의 구(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다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후구(後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니라. 부처님도 불조도 여기에 이르러서 상신실명(喪身失命) 했느니라.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그게 이제 뭣이여.
거기다 오도송을 거다가 붙이는 것이 방(棒) 짊어지고 했지마는, 삼세제불이 누가 방 짊어지지 않고 어디 법담(法談) 허는 수가 있나?

그렇게 척 나 혼자 했다.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말을 할 것인고.
누구, 산이나 더불어 말할까? 뭐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대해서 말할까? 할 사람 누가 있나.
독보건곤(獨步乾坤)이제. 수반아(誰伴我)오. 홀로 나 혼자 한번 한 것이지, 누가 그 곁에 뭔 사람이 있나.(36분40초~52분16초)

 

 




(4/4)----------------

척 들어와서 그날 밤을 거그서 어떻게 좋은가 어쩐가, 당최 그 경계는 말할 것 없다. 절을 해도 그 경계. 그 경계는 뭐라고 내가 말해 놓지 못하고 혀.
밥을 먹어도 그 경계, 산을 봐도 그 경계, 어디 절을 해도 그 경계. 절을 해도 절헐 것도 없네. 아, 이것 봐.

날이 겨우 샜는데 아, 이놈의 대중은 인자 겨우 감원(監院)이 일어나서 일찍 일어나서 인자 뭐 갔다왔다 정중(庭中)에 허는데, 그까짓 감원이 있든지 말든지 지랄하든지 아, 그냥 뜰 앞에,
그 정중에 그만 뜰 앞에 오줌간도 아니고, 거다가 오줌을 그냥 철철철철 누어 버린다. 내가. 아! 이런 꼴 좀 봐라.

“아, 저런 세상에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와서 저런 법당 뜰에다 갖다 오줌을 싸. 저런 놈이 있어?”
내가 그만 “야, 이놈의 중아. 거 오줌 눌 데를 하나 가르켜 내라.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요. 전체가 모도 불체(佛體)인디, 모도 부처님 몸뚱이 불체인디 어느 곳에다 오줌을 누란 말이냐? 말해!”

아, 이러고 대든게, “아, 이놈의 중, 수좌놈들이라니 이런 건방진 저놈들 보소. 아따 저런 것이 중놈으로서 저게 주인인가. 에이 녀석”
아, 그 싸워 노니까 밥도 못 얻어먹었네. 밥이나 얻어먹을 걸. 아, 이런 꼴 좀 보소. 밥을 못 얻어먹어.

인자 그때부터 나는 미쳐 버렸지. 내가 미친 사람이지, 산 사람 아니여.

그런 놈의 그런 경계가 있으니, 사람이 왜 좋게 하고 그 오줌단지 가서 오줌 누고, 상하(上下) 다 알아서 처리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분명하고 그려야 할 턴디,
왜 그러면 어째서, 해필 왈 갖다가서 진대지(盡大地) 땅은 땅으로 본 것이 옳을 턴디 왜 땅을 갖다 부처로 보고, 왜 갖다가 그만 아무데나 오줌을 싸고. 그거 되아? 그 미친 놈이지, 뭣이여.
그 미친놈 아니여? 허지마는 그놈의 경계가 참 당해 놓으면 별 도리 없네.

아! 아침밥도—밥을 주어야지. 아침밥도 얻어먹지 못허고 그냥, 밥을 안 준게 어째.
“허 그놈들, 호래아들놈들. 도인을 몰라보고 밥도 안 주는구나, 이 호래아들놈들. 네 이놈들 좀 겪어 봐라 이놈들” 한바탕 냅대 고함을 지른게 나는 미친놈 되아 버렸네.

그래서 그대로 그만 밥도 못... 오히려 쫓겨나다시피 쫓겨났네.
쫓겨나와 가지고는 배도 고프지마는, 배 고픈지 뭔지 그건 소용 없드구만. 그 미친 사람이 달리 어떻게 생리적으로 미쳐도 배고픈 줄 모르는가 보드구만.
참말로 나는 그 생리적으로 멀쩡하고 법으로만 미친 것이여. 법광(法狂)이 되었어.

아, 그 송(頌) 진 것 좀 봐. 그 송을 오늘날까지 큰스님네가 다 찬(讚)헌 송이여. 뭐 두말 할 것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척 ‘어라, 나는 이길로 갈 데가 어디냐? 불가불 여그서 제일 가까운 곳이 마곡사다. 동리산서 마곡사밖에 가까운 데가 없다. 마곡사를 갈 밖에 없구나. 마곡사에 큰스님이 계시니까 거그를 갈 수밖에 없다’

혜봉 스님, 마곡사에 혜봉 스님이 지혜는 제일 밝다고 소문난 이고, 견성(見性) 헌 후에 마을에 가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낳고 산닥 하지마는. 그래 가지고 또 패철(佩鐵)을 차고 산에 올라 댕기면서 묏자리나 찾고 이러고 살아.

견성 도인이라도, 견성 척! 헌 후에 아무 한바탕 뭐 견성헌 속에서 보니 아, 중생(衆生)의 환화(幻化)가 개시묘법(皆是妙法)이니, 견성헌 분상에는 마누래 얻어 가지고 아들 낳고 사는 것이 무슨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녹수가 청산에 걸릴 법이 어디 있으냐.

그래서 그만 마을로 가서 그대로 사는 수가 있어. 학자나 제접(提接)허고 가만히 청산(靑山) 한림(寒林) 속에서 아, 이렇게 또 계신 이도 있고.

그것 내가 관계헐 것이 뭣이 있느냐. 마누라 얻어서 아들 낳고 사는 것이 그것이 무슨 내게 무슨 걸릴 것이냐 그말이여.
법당 앞에 저 뜰 앞에다가 오줌도 철철 싸버렸는디, 그것 뭐 마누라 데리고 산다고 거기에 내가 걸려?
거 마누래 얻었다고 도인(道人)이 아니고, 마누래 없다고 도인이여? 고렇게 내가 상견(相見) 학자인가? 일없어.

척! 그만 하나도 무슨 뭐 그건 추호도 없고, 대번에 그만 혜봉 스님을 찾아갔지.
얼마를 걸어서, 그때는 뭐 어디 무슨 탈 것도 없고 내가 또 뭐 돈이 있나, 뭣이 있나. 누더기 하나 입고 가는데.

아, 그 등정(登程)을 해서 얼마를 걸어서, 운수(雲水) 등정을 해서 구공리를 척 당도해서 “혜봉 큰스님이 어느 집에 계시냐?” “저 감나무 집에 계시다”고.
아침에 척 들어—어떻게 좋든지 그 큰스님이 계신다 허니까 척 들어서니까 밑에 실에, 밑에 당신 계신 방 하나 맨들아 놓고 초가에 계시드구만.

척 들어서 가지고서는 혜봉 큰스님이 턱 나오길래 절을 한 자리 척... 어따가 절 할 것인가. 그런 큰스님네한테 절 했지.
내가 절 하다니. 아만(我慢)이 생겨 그런 건 아니지마는 참말로 그렇지.

잠 와? 잠 오면 나도 그만 잠이 와, 눈이. 그만 설(說)헐까?
잠 와요, 모도. 그만 설헐까? 여까지만 둬?
왜 암말도 없어. 자꾸 졸고 남의 법문 신심을 타락시켜. 나는 여그 다 보이거든.

여하약하(如何若何) 말이 없는 걸 보니까 조끔 더 설하라는 말이로구나.
듣기 싫어서 그만 설했으면 싶어서 암말도 안 헌게, 암말도 안 허니까 미워서 좀 더 설한다 그말이여. 밉상맞어서.

게을러 가지고 듣기 싫어서, 어서 가 좀 더 가만히 앉아서 좀 졸고 그랬으면 싶어서.
소용 없어. 소용 없어. 내가 그런 디는 더 설(說)혀, 미워서.


여기에는 참말로 들어야 한다 그말이여. 이게 정말 법문(法門)이니까.
들을 줄 모른 사람은 잠은 더 오고, 마구니 있는 사람은 그놈 마구니가 싫어서 듣기 싫어서 죽어. 그건 마구니 따문에 그려.

척 들어서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 법담을 허되, “제가 스님께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물으러 왔습니다”
“거 그럼, 물어 보시오”
이것 나는 그 사미중이지마는 처음에는 큰스님도 “물어 보시오” 그러더군.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를 반(半)만 일러 주십시오”
반만 일러 달라는 것도 벌써 거 그런 말이 없어. “다는 요구허지 않습니다. 반만 일러 주십시오” 허니까,

나를 척 한번 이래 바로 이렇게 눈을 떡! 떠 보더니 “무(無)” 그런다 그말이여.
그래서 “반이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 나는 반을 못 일렀어. 돌려 묻노니, 수좌(首座)한테 돌려 묻노니 수좌가 무자 반만 한번 일러 보오” 똑 말이 그러시드구만.
나이 그 어른은 한 오십 글썽글썽 허고, 나는 인자 한 스물한 살인가, 두 살인가, 나는 연조도 잘 모르는구만. 지내간 연조 하나도 몰라.

“스님이 물어 주십시오” 또 다시 두 번 그래. “무자 반만 일러 주오”
“무(無)” 내가 이랬다 그말이여.

턱, 참 엄연헌 태도로 나한테 다시 한마디를 묻기를,
“고인의 법문에—고인, 옛 고인 스님, 큰스님의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지나간 거년 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無立錐地)니라. 송곳 꽂을 땅이 없었느니라. 금년 가난은 시(是) 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 가난이다.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까장 없구나’허니,
점검을 허되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그랬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된다’했으니 수좌는 거기에 어떻게 일러사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이놈을 묻는다 그말이여.

무서운 말이여. 선지식(善知識)이 학자 잡드리허는 걸 좀 보아! 무서운 말이여.
여간 견성해서 뭐 오도송 짓고, 뭐 대지가 산하대지(山河大地) 전체 보이는 것이 견성이라도 그런 데 가서 그 공안에 가서 눈이 멀어 버려.

응, 이- 허면 죽는다. 발써 찾으면 죽는다. 무슨 이치냐 죽는다.
고렇게 물을 때 어떻게 답허겄느냐?
어디 살림살이 있으면 하나 내놔 보쇼. 응, 보살님네도 다 살림살이 내놔 봐.
좀 내놔 보란 말이여. 어디 좀 내놔 봐.

아침에 여까장.

내가 이것, 내 인자 사방 돌아 법담 딱! 딱! 해 가지고, 인가(印可) 딱! 딱! 맞은 놈을 내가 탁탁 해놀턴게 보란 말이여.
어디서 아무때나 저 혼자 도 좀 닦다가 나와서 뭐 학자를 속이고 저 죽어? 멋대로 나와서 혀? 우리 부처님 정법이 그러고 말어? 안되아.(52분17초~66분24초)(일대기 2호 끝)

 

 



----------------(1/4)

*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육백이십삼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오백사십사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명근(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다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 이름만 들으면 그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 · 질량(質量)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成) 진행하고(住) 쇠퇴하고(壤) 파멸하는(空) 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 · 소리(音響) · 빛(色) · 냄새(香) · 맛(味)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빈 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출신처(出身處) ; 큰 깨달음을 얻어, 그 깨달음의 편집(偏執 편견을 고집함)이 끊어진 자유의 경지.
*최초구(最初句) ; 최초의 한마디 말. 본래부터 타고난 본성(本性)의 진여(眞如) 나타낸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기본축말(棄本逐末 버릴 기/근본 본/쫓다·구하다 축/끝·지엽 말) ; 근본은 버리고 지엽의 끄트머리를 구하다.
*(게송)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한단침(邯鄲枕) ;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지몽(邯鄲之夢). 여옹침(呂翁枕). 여공침(呂公枕).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당(中唐, 七六六~八三五) 대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 : 베개 속 이야기, 심기제作)’에 나오는 이야기로, 과거시험에 낙방한 노생(盧生)이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도사(道士) 여옹(呂翁)을 만나 자기의 곤궁한 신세를 한탄하였더니 여옹이 청자로 만든 베개를 그에게 건네주어,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이때 여관 주인은 노란 기장을 솥에 삶고 있었다.
노생은 그 베개를 베고는 곧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미인에게 장가들고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대작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다 그의 나이 80에 병들어 죽게 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보니 그 모든 것은 꿈이었고, 여관 주인이 삶던 노란 기장은 아직 익지 않고 있었다.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노생은 여옹에게 감사드린다.
*옥식금의(玉食錦衣 구슬·훌륭하다 옥/밥·음식 식/비단 금/옷 의) ; 금의옥식(錦衣王食). 흰쌀밥(맛있는 음식)과 비단옷이라는 뜻으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악연(惡緣) ; ①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인연. 또는 맺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연.  ②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하는 주위의 환경.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형탈(逈脫 멀다·아주 형/벗다·벗어나다 탈) ; 멀리[逈] 벗어나다[脫].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별(色別 빛 색/나누다·구별 별) ; ①각각의 색 하나하나. 색을 구별함. ②종류에 따라 구별함.
*(게송)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향당(鄕黨 시골·마을·고향 향/마을·향리鄕里 당) ; 자기가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시골의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산말랭이 ; ‘산마루(산의 등줄기의 가장 높은 곳)’의 사투리.
*무외(無畏 없을 무/두려워할 외) ; ①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음.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 ②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두려움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 무소외(無所畏)라고도 한다.
*포외(怖畏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외) ; 두렵고 무서움. 화엄경에서는 ①생활의 두려움. ②명예를 잃을 두려움. ③악도(惡道)에 떨어질 두려움. ④죽음의 두려움. ⑤대중 앞에 나섬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른다.
*봉대기 ; ’봉우리(산봉우리)’의 사투리.
*청혼(請魂) ; 설법할 때에,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를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같은 말)거량(擧揚).

 

 



----------------(2/4)

*노지(노디)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세간 :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어짠지 ; ‘어쩐지(어찌 된 까닭인지)’의 사투리.
*어따 ; 어디에다. 어디에.
*돌라먹다 ; 훔쳐먹다(몰래 가져다 먹다). ‘속여먹다(속여 이익을 얻다)’의 사투리.
*뒤지다 ; ‘뒈지다(‘죽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심을 풀어주는 글’. 고려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 지음. 화두(공안)에 대한 하나의 큰 의심을 깨트려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의 뛰어남을 밝힌 저술.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묘한 관(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정견(正見) ; ①팔정도(八正道)의 하나. 바른 견해. 연기(緣起)와 사제(四諦)에 대한 지혜. ②있는 그대로 봄. ③바르게 자신의 참모습을 앎.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팔성도(八聖道)를 이른다.
*정견 학자(正見學者)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는 이.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주태(住胎) ; 모태(母胎)에 머물러 있는 것.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시현(示現 보일 시/나타날 현) ; 그때마다 적절하게 몸을 나타내[現] 보이는[示] 불보살의 작용. 현시(顯示), 현현(顯現)과 같은 뜻이다.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의 수만큼 많은 갖가지 몸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시현의 대표적인 예는 부처님의 32상 80종호나 관세음보살의 33신 등이 있다.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 유기(鍮器) 철물(鐵物)을 올린 시주(施主), 몸이 견고하여지이다.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 불전(佛前)의 공양 위해 논이나 밭을 올린 시주, 복이 무량하여지이다.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 창호하고 도배한 시주, 팔난(八難)을 면해지이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 • 숙원력(宿願力) • 대원업력(大願業力) • 서원(誓願) • 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개탄(慨歎, 慨嘆 슬퍼할 개/탄식할 탄) ;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분하게 여기어 한탄함.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팔천팔백 게송 천이백 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참고] 전강선사(No.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에서.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 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

 

 



----------------(3/4)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운무중(雲霧中 구름 운/안개 무/가운데 중) ; 구름[雲]과 안개[霧]의 속[中].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천둥이(賤둥이) ; ①‘천더기(賤-- : 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의 사투리. ②’천한 둥이’의 준말. 조실부모한 고아나 남의 손에 길러진 아이를 일컫는다.
*만고(萬古 일만·클 만/옛날·예 고) ; ①매우 먼 옛날. ②아주 오랜 세월 동안. ③세상에 비길 데가 없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宏智禪師示衆(굉지 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수한(壽限 목숨 수/한정 한) ; 타고난 수명(壽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의 한도(限度). 타고난 목숨의 한도.
*후기(後期 뒤 후/기약하다·약속하다·기간 기) ; ①어떤 기간을 둘, 또는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맨 나중의 시기. ②뒷날의 기약.
*염(簾) ; 한시(漢詩)를 지을 때, 글자의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방법. 형식이 여러 가지인데, 가새염이 가장 보편화되었다.
*운(韻) ; ①소리와 음조가 비슷한 시행(詩行)의 끝부분. ②한시(漢詩)에 운(韻)으로 다는 글자.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상신실명(喪身失命) ; ‘몸 죽고 목숨 잃다’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독보건곤(獨步乾坤) ;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걸어가는 것. 도리(道理)를 증득하여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나타내는 말.
[참고①] 『무문관(無門關)』 ‘무문혜개(無門慧開) 스님의 서문’에서.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대도에 문이 없다. 천 갈래 길은 있으니 이 관문을 꿰뚫으면 천지에서 홀로 걸으리.

[참고②]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8. 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巍巍落落兮赤洒洒 密密恢恢兮淨裸裸 春風爛漫水悠悠 獨步乾坤誰伴我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높고 높음이여 아무것도 없고, 넓고 깊음이여 있는 그대로네. 봄바람은 난만하고 물은 흘러가는데, 건곤에 우뚝하여 누가 나를 짝하랴.
만일 산중에서 종자기(種子期)를 만났던들, 어찌 누른 잎 갖고 산을 내려왔으랴.


 

 


----------------(4/4)

*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 전신(全身)은 '본질 그대로' '여래진신(如來眞身)'의 뜻으로 ‘비로자나 전신체’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조실스님 법문 275번 참고)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하필(何必 :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호래아들 ; 호래자식(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송(頌) ; 게송(偈頌).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찬(讚)하다 ; (...을) 칭찬하거나 찬양하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한림(寒林) ; ①겨울의 낙엽이 진 숲. ②시다림(尸陀林 : 인도 라자그라하의 북쪽에 있던 시체를 버려두는 숲).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없다 ; ①필요가 없다. ②걱정하거나 꺼릴 것이 없다.
*등정(登程 오를 등/노정 정) ; 노정(路程)에 오름[登]. 길을 떠남. 등도(登途).
*운수(雲水) ; ①구름과 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같이 정처(定處 : 정한 곳. 또는 일정한 장소) 없음. ③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④탁발승(托鉢僧 : 탁발하는 스님)을 멋스럽게 이르는 말.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밉상맞다 ; 밉상(-相)은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리는 데가 있는 미운 모습’을 이르는 말이고, ‘-맞다’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 일부 명사나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거나 그러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