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6.07.04 § (6)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역력이빈주~, 가귀천연물~)
  2. 2015.06.06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2/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3. 2015.05.31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1/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4. 2015.05.10 §(119) 내 공부는 아무도 내 대신해 줄 수 없다 /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참선법을 만났을 때 철두철미 정진해서 생사해탈 해야.
  5. 2015.04.27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6. 2015.04.02 §(280) (게송)약인투득상두관~/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법문 / 용화선원의 가풍 / 선재동자의 진실함 / (게송)역력이빈주~ / 대의지하 필유대오.
  7. 2015.03.03 §(세등10) 인생 무상, 이미 사형(死刑) 언도(言渡)가 내려져 있는 신세 / 몽산 화상 출가 동기 / 생사가 무서운 포구발심(怖懼發心)과 철저한 일념 단속.
  8. 2014.06.14 §(401) (게송)기래끽반냉첨의~ / 발심한 사람에게는 모두가 불보살의 화현신이다 / 화두는 가장 무서운 무기 / 내가 곧 세계 / (게송)생사차무승여속~ / 일념단속.
  9. 2014.06.13 §(401)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10. 2014.06.04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천도재 법문2016.07.04 14:36

§ (6)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역력이빈주~, 가귀천연물~)


약 17분.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하고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전근기취(目前勤記取)하라  산립백운중(山立白雲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하고, 역력(歷歷). 또렷또렷해서 () () 떠났고,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다. 고요하고 고요해서 () () 끊었더라. 색과 공이 끊어졌더라.


목전근기취(目前勤記取)하라. 목전에 부지런히 분명하게 살펴라.

산립백운중(山立白雲中)이니라. 산이 백운(白雲) 가운데 우뚝 있느니라.



산천초목이 , 여름에는 그렇게 모다 다투어 푸르르고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서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리면은 시들어 떨어져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세속에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 그런 것들은 잠시 전생에 지은 복과 금생에 자기가 지은 노력과 그때의 모든 인연에 따라서 그런 부귀영화 누릴 있으나 그것을 서리가 내리면은 시들어 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내고, 세월이 지내면은 전부 몸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도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잠시 인연으로 이루어진 몸뚱이여. 부모로부터 받아났지마는 백년 미만에 버리게 됩니다.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결국은 천하 없는 사람도 한번 태어난 사람은 몸뚱이를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몸을 받았다 버리고, 받았다 버리고, 자기가 지은 과보에 따라서 천상에 태나기도 하고,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고, 지옥·축생·아수라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 따라서 그런 몸뚱이는 받아나되,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主人公) 더헐 것도 없고 덜헐 것도 없고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닌 것이여.



가귀천연물(可貴天然物)이여  독일무반려(獨一無伴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멱타불가견(覓他不可見)하고  출입무문호(出入無門戶)로구나

나무~아마타불~


가귀천연물(可貴天然物)이여  독일무반려(獨一無伴侶)로구나.

세상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생겨났다가 결국은 없어져. 사람이고 짐승이고, 해고 달이고, 지구덩이고 산천초목 두두물물이 생겨날 때가 있고, 그것이 차츰차츰 변화해 가지고 결국은 없어져 버리는데.

그런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한 주인공은 언제 만들어진 때도 없고, 언제 없어진 때가 없어. 그것을 천연물(天然物), 천연물이라 하는 것인데.


오직 홀로 물건 짝이 없어. () () 있고, () () 있고, () () 있고, () () 있고, 빈부귀천이 상대가 있는데, 소소영령한 이놈은 상대가 없어.

다그쳐 조이면은 우리의 방촌(方寸) 가운데 있지마는, 터억 펴놓으면은 우주법계 일체처에 편만(遍滿) 있는 거여.


물건은 눈으로 볼래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생각으로 아무리 알라고 해도 수도 없어.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생각을 마음을 통해서 일체를 분별하고, 하되 찾아보면 수가 없어.


깜박할 사이에 하늘도 올라가고, 지옥도 가고, 미국도 가고, 소련도 가고, 생각 돌리면은 천사가 되기도 하고, 생각 잘못하면은 찰나(刹那) 간에 악마가 되는 거여.

그러한 천연물을 사람마다 지니고 있건만, 바로 천연물은 부처님이나 공자님이나 우리 범부(凡夫) 축생이나 미물의 벌레에 이르기까지 차등이 없어. 다맛 인연 따라서 오고가되, 오고간 바가 없단 말이여.


그것을 찾는 것이 불법(佛法)이고, 그것을 찾는 최고의 방법이 참선법(參禪法)이다.


바른 법을 알아서 항상 그놈을 찾으면은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이여. ‘이뭣고?’

도리를 깨달으면은 생사 속에서 생사를 초월하는 해탈(解脫)하는 것이고, 도리를 깨닫지 못하면은 천자가 되고 왕이 되고, 장관이 되고 장군이 되어서 천하를 호령한다 해도 이것이 꿈속에서 잠시 그러한 역할을 하는 뿐이여.


꿈속에 금은보화 칠보(七寶) 엄청난 칠보가 있는 창고를 발견해서 자기 소유를 만들어. 그리고서 청난(靑鸞)새라고 하는 봉황새보다도 훨씬 크고 훌륭한 새가 있는데, 청난새를 떠억 타고서 천상 옥경(玉京) 올라갔다 말이여. 거기서 주야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천상의 낙을 누렸어.


실컷 누리다가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이거여. 엄청난 보배와 좋은 , 청난새를 타고 천상에 올라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깨고 나니 곳이 없어.

천상도 곳이 없고, 청난새도 어디로 날아갔는지 없고, 엄청난 금은보화 황금보장(黃金寶藏) 곳이 없어. 호화찬란하게 입었던 칠보로 장엄한 옷도 곳이 없고 그냥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요, 집이요, 자기더라 그거거든.


세상의 어리석은 범부는 세상에 오욕락(五欲樂) 인생이 전부인 알고 그것을 탐착(貪着)하고, 명예와 권리와 지위, 재산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알고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당(牌黨) 지어서 서로 싸우고 헐뜯고 쇠고랑을 차고, 그게 꿈속의 황금보장이요, 꿈속의 청난새요, 꿈속의 천당이여.

그런 확실히 믿고 깨달라서 똥주머니, , 가죽푸대 속에 들어있는 영원히 쓰고 써도 끝이 없는 참나를 깨닫는 외에는 목숨 바칠 것이 없느니라.



영가(靈駕) 세상을 하직했으나 반드시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실 것이고, 다시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연이 있으면 금방 몸을 바꾸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 하실 것입니다.


유족들께서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시고 슬픔이 극에 도달하셨을 생각합니다마는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잠시 인연 따라서 헌옷 벗어버리고 입듯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까, 죽음을 보고서정말 인생이라 하는 것은 무상(無常) 것이로구나무상을 철저히 깨닫고 너무 재산이니, 지위니, 부귀니, 공명이니, 권리니 그런 것에 탐착하지 말고, 정말 발심(發心) 해서 몸속에 있는 참나, 진여자성(眞如自性) 찾는 데에 발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리에 참석한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도 정말 영가의 명복을 간곡히 빌으신다면 어쨌든지 무상한 속에서 영원한 참나를 찾는 노력을 하신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촉지재방촌(促之在方寸)이요  연지일체처(延之一切處)니라

나무~아미타불~

여약불신수(汝若不信受)하면  상봉불상우(相逢不相遇)니라

나무~아미타불~


보고, 듣고, 부르면 대답하고, 성낼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하는 그럴 아는 놈이참나.

바로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 어디서 번뇌 망상이 일어나냐? 뿌리를 찾아야 하거든.


이뭣고?’ 도리를 믿지 아니하면 영원한 참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나지를 못하는 거고, 항상이뭣고?’ 하면 거기에서 자기를 찾을 있는 계기가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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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역력이빈주~’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도능선자(道能禪子)에게참고.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가릴 )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 ; ()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 말한다. 그리고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3가지 () ··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 결국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②악심(惡心)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 과보를 받는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

*(게송) 가귀천연물~’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방촌(方寸 ·방위 /마디·마음·조금 ) ; 사방(四方) [] 넓이라는 뜻으로 좁은 땅을 이르는 . ②사람의 마음은 가슴속의 사방의 넓이에 깃들어 있다는 뜻으로마음 달리 이르는 .

*편만하다(遍滿-- 두루 / ) ; 두루[] 가득차다[滿].

*찰나(刹那 ·짧은시간 /어찌 )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동자(同字).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해탈(解脫) : [] Vimoksa ; Vimukta ; mukti  []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또는 열반(涅槃) 이름으로도 쓰인다。열반은 불교 구경(究竟)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해탈이라고도 있다.

*칠보(七寶) : []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 (),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 난새 []) ; 난새. 난조(鸞鳥).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모양은 닭과 비슷하나 깃은 붉은빛에 다섯 가지 색채가 섞여 있으며소리는 오음(五音) 같다고 한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무색계의 여러 () 통틀어 일컬음. ()들이 사는 . () 세계.

*옥경(玉京)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산다고 하는 가상적인 서울.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패당(牌黨 ··명찰 /무리 ) ; (). 서로 어울려 다니는 사람의 무리.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게송) 촉지재방촌~’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 .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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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2/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6)—몽산 01-2. 몽산시 고원상인(2) (임자72.06.11.새벽)


(1)------------------

무심운수출(無心雲峀出)허니  유의조지환(有意鳥知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노화월백처(蘆花月白處)에  초택창랑사(楚澤滄浪詞)니라
나무~아미타불~

화두가—의단독로(疑團獨露)한 화두, 활구 화두, 활구참선, 그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필경에 그만 일체처에 독로해서, 뭐 사이가 있나?
무슨 조끔도 빈틈이 없이 화두 의단이 독로되어 그때는 필경 깨달은 수밖에 없으니, 그대로 있들 않거든.

필경 그건 깨달라. 불과해야 일언지하(一言之下)인데 뭐.
더군다나 그저 일언지하에, 그저 사흘만에, 7일만에 확 깨달라 버리는 거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여.

뭣을 알아서, 봐서, 생각해서 뭐 그렇게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 의심(疑心)을 갖춰라.


무심(無心)중에 그만 산을 보다가도 툭, 뭘 보다가도 툭, 새란 놈이 돌아와 지저거려도 깨달네, 새소리에도.


월백노화처(月白蘆花處)에, 달 떠올라와 노화처(蘆花處)에, 그 달 모도 갈대꽃 사이에 달 비친 데에 툭 깨달라.

그래 초택창랑사(楚澤滄浪詞)라. 일 마쳐 버린다 그말이여.



이렇게 어제 아침에는 주작(做作) 때문에 안된 것을 억지로,

발심도 안되고, 신심도 갖추지 못하고, 분심도 없고, 그저 사람이면 ‘그저 사람인가 보다, 살다 죽는가 보다’


죽는 거 누가 아나? 당장에 그만 곧 숨 떨어질 지경이 앞에 있지마는 그런 것조차 생각할, 그런 것까지도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이고, ‘이렇게 그저 인생이 몸 받아 나와서 이렇게 사는 것이로구나’


‘그 참선이나 좀 어디 선방(禪房)이나 좀 들어가 볼까?’

삼동(三冬)에 선방에 들어와서 그날그날 그저 하루하루 그저 이틀, 남 따라서 그저 그럭저럭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는 것, 그것은 발심(發心)을 못한 관계여.


참으로 발심을 해서 꼭 할 것이 참선(參禪)뿐이다. 미룰 수도 없고.

언제 시간을 미뤄? 언제 내일 해? 오늘은 이것 해 놓고 내일 해? 금년만 이것 해 놓고 명년부터 해? 그런 식으로는 틀린 거여.


직하(直下)에 발심을 해서—한번 그 시간에 발심했거든, 마음을 발했거든, 그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여.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할 것이 참선 밖에는 없어. 그렇지 않어?


깨달지 못하면은 그 깨달지 못한 곳에서 그놈의 중생고(衆生苦)를 어떻게 할거여?

우리가 지금 깨달지 못하고 이 몸 뒤집어쓰고 있지만은 그것 편안한 거 아니여.

그 조끔 편안하고 밥 먹고 배부르니까,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뭐 그도 어쩌고 어쩌고 이래 있으니까,

뭐 그것이 인생만족, 이만 했으면 족해? 소용없어. 그런 것을 믿고 앉어서, 참선은 않고 그럭저럭 소용없어.


발심이 안됐기 때문에 혼침(昏沈) 도거(掉擧)가 개입작득(皆入作得)을 해.

잠 아니면 망상, 그놈의 것 밖에는 없어.


어디 참선을 발심을 했어야지. 발심 발심 하니까 어떻게 발심인가?

발심을 못했으니 도거와 혼침뿐이여. 그놈 안 들어오면 할 것이 없어.

앉었으나 섰으나 뭐 그밖에는 들어온 것이 없어. 그래서 그날그날, 그날그날, 그날도 그날, 이렇게 해서 일생 보내 버리는 것이여.


발심을 척! 해 가지고는 공부를 한바탕 하고 앉었어 보아라.

그 망상 시간, 혼침 잠자는 시간, 그놈이—이것 참 얼마나 원통하고 그까짓 짓을 하고 앉었는가?

그까짓 짓을 할라면 뭣 할라고 선방에 앉었어? 맹렬하게 다루어라.


그 ‘이뭣고?’ 하나, 세상에 ‘이뭣고?’가 ‘나’인데, 내가 나를 그렇게도 몰라. ‘이뭣고?’를 그렇게도 몰라.

부처님이 출세하셔서 그렇게까지 다 말씀을 해 줘도 몰라.


그 숭악한 못된 애착, 세상에 모도 그 인연 애착, 그까짓 것이 도대체 뭣이냐 그말이여.

애착 다 끊어버리고 이렇게 들어와서 선방에 와 앉았음에 한바탕 참선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선을 하는 데는 발심이 그놈이 되어야 하지. 발심도 되지 않고 앉었으니 되어?

발심이 없기 때문에 분심(憤心)도 없고, 분한 마음—나를 내가 알지를 못하고 산다는 것이 뭣이여? 분한 마음뿐이지. 그놈 분한 마음.

그 분한 마음이 없으니 뭐 신심(信心)인들 있어? 콱 믿는 마음인들 어디 있어?


첫째, 발심을 해서 화두를 들고 ‘이뭣고?’를 들고, 그 하는 시간을 꼭 일념(一念)을 다루어라.

화두 일념 ‘이뭣고?’ 고놈 하나, 고놈을 다스려 ‘이뭣고?’를 자꾸 계속 해.


‘이뭣고?’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도망가기 전에, 그 뒤에 ‘이뭣고?’를 거다가 딱 때려 붙여. 또 때려 붙이고 또 때려 붙이고. 그놈이 일념이 계속해서, 일념이 연속해서 끊어지지 않게 해 나가는 것이여.


‘하루를 그날 하루를 공부를 잘해라. 하루 동안을 그놈을 잘해라. 또 내일 하루를 또 다시 더 잘해라’

그럴 것 없어. 하루 동안, 하루 동안 그거 너무 늘어져서 못써.


일념 일념을 단속해라.

‘이뭣고?’ 하나 했거든 그 뒷 ‘이뭣고?’가 더 분명하게 때려 붙여야 한다.

‘이뭣고? 대체 이뭣고?’ 아! 이뭣고 그놈이 게을지 않게 틈이 없이 거다 붙여 다루어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그게 곧 의단독로(疑團獨露) 아닌가? 그 타성일편(打成一片) 아닌가?


그놈이 계속해 나갈 것 같으면은 하루가 뭣이여, 이틀이 뭣이며, 일년도 그만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놈 하나를 단속 못하고, 그만 한번 하다가는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는, 그만 망상심 그 못된 번뇌 거기 쳐박혀 가지고는 그만 몇 시간씩 지내간다. 화두 하는 학자가 이리하여 되어?


맨 그래서 혼침(昏沈) 도거(掉擧) 그놈이 개입작득(皆入作得)해 버려. 고놈 생활해 버려.

종일 가야 살림살이가 그놈의 것 뿐이여. 잠 아니면 망상, 망상 아니면 별놈의 생각 다 짓고 앉었다 그말이여.


갱요좌득단정(更要坐得端正)해라.

공부할 때에도 아무 때나 앉지 말고—그냥 픽 들어와 앉어서 다리 쭉 뻗고 앉었던지, 허리를 굽히고 그냥 앉던지, 고개를 그만 숙이고 앉던지, 그것 벌써 참선하는 사람 아니여. 좌선(坐禪)하는 사람 아니여.


좌선하는 사람은 좌(坐)부터 단정(端正)해라. 단정하게 깨끗이 앉어라.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금강권(金剛拳)을 쥐고 하는 법식에 그런 건 너무 필요 없어.

금강권 쥐고, 무슨 다리 가부좌하고 드리(마구) 앉었다고 다리만 점점 그만 끊어질 것 같지, 그거 그만두고.


단정히 앉을 수가 있지 않는가?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허드래도 단정히 앉을 수가 있는 것이고.

딱! 앉어서 어쨌든지 수기척량(竪起脊梁)해라. 척량(脊梁)은 펴라.


이거 순전히 참선해 나가는 거 얘기해 주는 거여. 뭐 다른 법문 아니여. 선객(禪客)들이 참선하는데 참선 법문해 주는 거지. 무슨 다른 법문이 있어?


좌득단정(坐得端正)해라. 좌를 단정히 하고, 척량(脊梁)은 세워. 등줄기가 굽으면 안되니까, 이걸 세워.


딱! 세우고는 앉어서 첫째 ‘이뭣고?’를 해.

화두(話頭)—‘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이뭣고?’면 ‘이뭣고?’ 화두를 탁! 챙긴다 그말이여. 그게 첫 조건이여. 그럴 거 아닌가?


좌(坐)만 단정히 앉었다고 뭔 소용이 있나? 허리만 굽히지 않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좌득단정도 소용없고, 허리를 척량을 세운다고 소용없어.


수기척량(竪起脊梁)을 하고, 척량을 세우고 좌(坐)를 단정히 앉는 것은 ‘이뭣고?’하나 하자는 것이여. 목적이 ‘이뭣고?’여. 참선 화두여.

화두 하나를 역력(歷歷)하게 거각(擧却)을 해라. 그놈을 추켜들어 거각을 해라.


그러면은 수마(睡魔)가 어디서 와? ‘이뭣고?’가 그렇게 분명한데 어디서 와? 잠 그놈이 어디서 오냐 그말이여.

발심도 없고, 신심도 없고, 분심도 없고, 공연히 들어와서 남의 시비나 하고, 그러고 왔으니까 그렇지. 그리 해 온 사람이니 그밖에는 올 것 없지.


앉으면 잠이나 오고, 망상이나 들어오고, 남은 참선하지마는 어디가 참선한 체 하고 앉아서 망상 번뇌 모도 고런 것만 분석 따지고 앉었지.

이까짓 놈의 경계, 이까짓 놈의 짓을 할라고 들어왔나? 선방에 잠이나 졸고 번뇌 망상이나 할라고 들어왔나?


거기서 망상이 들어오던지, 혼침이 들어오던지, 무엇이 오던지, 통(전혀) 고까짓 것을 걱정 근심도 하지 말어라. ‘이뭣고?’만 챙겨라. 오직 ‘이뭣고?‘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 그저 ‘이뭣고?’만.


그저 무엇이 올라오든지 말든지 그까짓 것 통 불고(顧)해 버리고,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무슨 망상 일어나는 놈을 두려워하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니라—그저 이건 ‘이뭣고?’ 깨달으라는 것이여.


‘이뭣고?’ 아니면은 ‘판치생모’ 다 배운 대로.

이놈 쪼끔 하다가 또 안된다고 또 저놈 또 쪼끔 하고, 또 저놈 하다가 안된다고 이놈 쪼끔 하고. 그건 화두 아니여. 되들 안 해. 그런 법 없어.


똑같은 거니까. 하나 딱! 들거들랑 고놈 하나, 그 화두 일념 일심, 그 화두 하나, 그 참 소중한 거여.


한 생각씩 꼭 한 생각씩, 그 첫 생각 그놈이 끊어지기 전에 연속(續)을 해. 뒤 연속을 해. 뒷 생각을 척! 거다 때려 붙이고 때려 붙이고.

‘이뭣고?’ 그놈이 분명할 때 더욱 ‘이뭣고?’. ‘이뭣고?’가 더욱 더 ‘이뭣고?’.


그것 해서 그 틈 없이, 사이 없이 그만 해 나갈 것 같으면, 한 시간이 두 시간 되고, 하루 되고 이틀 되고 기맥힌 것이여. 화두정락이라니! 화두가 들어와서 그 정락! 참 좋다.


세상에, 견성(見性)하기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하나 의단독로(疑團獨露)를 목적해라.(처음~20분4초)



(2)------------------


꺼떡허면 건방지게 들어와서 ‘법담(法談)한다’고 ‘대답한다’고.

당장 쫓아내 버린다 내가. 했어야지! 그걸 옳게 했으면은 왜?

(견성)한 건 벌써 알어. 두말 할 것도 없어. 답할 것도 없고 벌써 알어.


그것 못쓴 거여. 그 거짓 견성. 그 뭐할라고, 벌써 자기는 알면서도 그따구 짓 하거든. 천하에 건방지고 못쓸 것이 그거여.

벼락이지. 이번에 그 쫓겨난 아이, 가서 기맥힌 또 편지를 했구만. ‘다시는 그런 버릇없이, 큰스님을 여의고 어디가 하겠습니까’하고 ‘다시 용서해 달라’고.

용서가 무엇이 용서여? 용서할 것이 따로 있지. 용서가 뭣이 용서여.


똑 그놈의 데서 올라온 것들은 다 그 모양이여! 웬일이냐 그말이여. 불교가 이렇게 되다가는 큰일나 버리겠어.

“양말 한 짝입니다” 이따구 소리나 하고, 아 이런 놈의 응..


견성 벌써 알어. 말할 것 없어.


재각안피중(纔覺眼皮重)이다.

이렇게 다루어 갈 것 같으면은—그 ‘이뭣고?’를 하던지, ‘판치생모’를 하던지, 화두를 이렇게만 똑 다루어서 해 나갈 것 같으면은, 화두뿐이여. 아무리 해도 화두뿐이여.


그러다가 없을 수가 없어. 점점 그 무기(無記)가 들어와서 잠이 들어오던지, 산란이 일어나든지 하면 조끔 일어나. 그때는 좀 일어나. 좌(坐)에만 착(着)하고 앉었지를 말고 일어나.

한번 척 일어나서 밖에 와서 바람도 쐬고 하되, 화두를 추켜들고 밖에 나온 사람은 그저 벌써 보면 알아.


어디를 가고 오던지 전체가 화두가 그대로 딱 벌써—화두가 그 방에서 애써 하든 그 화두 경계가 도망가지 않고 고대로 있어 가지고 나와서, 걸음을 걷고 가고오는 것이 환해.

아무 데나 왔다갔다 왔다갔다 쓰잘 데 없이 이러지를 말고, 어디 가서 한쪽에 조용히 걸음을 걷고 조용히 경행(經行)을 해가면서 잠을 깨 가지고 그 경계(境界)를 깨끗하게 맨들어 가지고 다시 얼른 들어와.


너무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 놔두면 되아? 항상 그 자리가 참 중(重)하다. 나 앉어 공부한 자리가 그렇게 중하다.

꼭 비유를 하자면은 암탉이란 놈이 알 나 가지고는 알 품고 있듯 해야 해. 그 닭 짐승인들, 고놈의 것이 그 제 새끼를 만들기 위해서 알 그놈, 그 껍데기 속에 든 것, 그거 품고 있는 것 좀 봐.


한 이십 여일, 스무 닷새나, 닭 그거 그 방정맞은 것이 한시도—그저 뭐 주워먹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그저 헤비고 모도—그 일순간도 참지 못하고 그런 것이,

알만 낳아 놓으면은 고놈을 품고 이십 여일 동안, 스무 닷새 동안, 근 한달 동안을 가만히 앉었네. 닭 같은 것도 보란 말이여. 그래 가지고 거그서 새끼를 만든다 그말이여. 


소위 중생이 성불(成佛)하는 법이, 나를 내가 깨치는 법이, 그렇게 쉽고 언하대오(言下大悟)도 있고 하지마는,

그렇게 언하대오도 그 대오가 얼마나 참말로 그 정성스러운 언하대오며, 사흘을 한다 하드래도 사흘이 얼마나 참 기가 맥힌 사흘인가?


뻘로 그렇게 될 줄 알어? 아무 때나 될 줄 알어?

그 모도 못된 망념(妄念)이 섞여 가지고는 화두는 그 가운데 한번 쬐끔 있다가 어디로 간 곳도 없고, 번뇌 망념만 꽉 들이차 가지고 앉어서 그 될 것인가 그게?


닭이란 놈이 고놈 딱 꼬누고 있을 때, 인자 다 되어가면은 알속에서 그 무슨 동정이 있대야.

따르르.. 딸그르르 소리가 나던지, 뭣이 하나 나면 고놈을 듣고 앉었다가 고걸 톡 쪼사 주어야 입이 톡 터져. 그래 가지고 알을 새끼를 깐다 그말이여.


벌레란 놈이, 굼벵이 같은 것이 거름 속 같은 데 가서, 땅속 같은 데 묻혀 있어도,

그놈이 굼벵이 되어 가지고 고거 인자 제 몸뚱이를 둘러싸 가지고 가만 두어야, 가만히 그놈 누가 건들도 안하고—그 건들어 놓으면 못써. 안되어버려.

가만 두어야, 그 딱 몇 달 차면은 아! 고놈이 그 속에서 되어 가지고는 나비가 되어 나온다 그말이여.


우리 참선 학자가 참선 화두하는 법이 무엇이 섞여? 무슨 그 잡것이 섞여?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해 가지고는 모도 번뇌 망상으로 되아?

생각해 봐! 지극히 화두 한번 해 봐야지.


내가 돌아가신 큰스님네 말씀도 많이 듣고, 돌아가신 금오 스님도 그 선지식, 우리 나라에 유명한 이인데,

금오 스님도 당신 몸뚱이에 그와 같은 중풍 같은 거—어떻게 해 그 몸뚱이로 난 거야, 색상(色相)으로 난 병이야, 어떻게 해 도인(道人)인들.


‘도인이 저런 중풍 나고 그래?’ 고런 놈의 소리를 하지, 고런 멍청하고 미련한 게 다 있어.

몸뚱이라 하는 것은 별 수가 없어. 밥 먹고 옷 입고 사는 것 똑같으고 병난 것 똑같은 건데,

부처님은 왜 병이 나 돌아가셨나? 색신(色身)을 받어 나면 별 수 없는 것이지.


금오 스님 같은 이도 그 병이 들어 가지고 앓고 있다가 그 병중에 하는 말이 “세상에 내가 화두 한번 원 없이—견성 보다도 화두 한번 원 없이, 정진 한번 원 없이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恨)이다”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이 몸뚱이 건강할 때, 이만 할 때, 이만큼 그래도 이 몸뚱이 가지고 이만 했으면 살지.

거기서 화두 한번 잘해!



화두에 그만 의심이 뭉쳐서 한덩어리 되어서—무엇이 뭉칠 것인가? 어째 화두가 뭉친다 하노?


일체 중생의 번뇌렴이, 중생의 번뇌가 한정이 없으니까. 뭐 구백생멸(九百生滅)이라고 하지만 구백생멸뿐인가? 한정이 없어. 별놈의 것이 다 일어나.


고런 놈의 그 먼지 같은, 가루 같은 그 번뇌 망념 그놈이 ‘이뭣고?’만 추켜들면은 전부 한덩어리 돼.

고놈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거 어디 있나? 그거 어디가 있어 그것이?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그 의심이라 해. 의단독로.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딱 하나.

알 수 없는 것이—없는 것 본래 없어 버리면 그만인데—알 수 없는 놈 하나가 있거든.


그 천하에 보물을, 그 내 보물 고놈 하나 없으면 나는 그만 죽는 건데 그 보물을 내가 잊었으니,

그놈을 도둑놈한테 잊은 게 아니고, 어디다가 두었다가 내가 둔 줄을 몰라 잊었으니, 어디다가 두었노? 그놈 어디다가 두었노? ‘어디다가 둔 곳을 찾는 거’와 ‘이뭣고?’가 마찬가지니까.


이뭣고 이놈이 내 몸뚱이 속에 있어서,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이 몸을 마음대로 끌고 댕기고, 이 몸을 마음대로 부리고 댕기고, 앞세우고 댕기고, 온통 고놈이 들어서 하지, 뭐 이 몸뚱이가 하나?


그놈을 모른다 이말이여, 그놈을. 그놈의 낯반대기도 모르고, 코빼기도 모르고, 눈깔도 모르고,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이 뭐냐 말이여? 도대체 ‘이’한 놈, 이놈이 뭐냔 말이여?

의단이, 의단독로가 안돼? ‘오래오래 해서 3년이나 10년이나 해서 그런 의단이 오리라’ 그것 소용없어. 직하에 의단독로가 되는 거여.


어쩌, 화두해 나가는 법을 그렇게 일러주어도 안돼? 안될 이치가 있냐 이말이여.


세상에 이놈 하나 안해 놓고는 제가 낯반대기 들고 사람이라고, 사람 뭐 지랄 사람,

사람이면 뭐해? 금생에 코빼기 사람됐다고 그까짓 것, 그 낯반대기 바꿀 때는 벼락인데 뭐.


이렇게 의심을 잡드리를 해 나가거라.

그래서 밖에 수십 보 거닐다가 그 청정하고 깨끗할 때가—인자 완전히 다 망상도 그런 것도 없이 화두만 또 더, 앉아서 하던 화두가 거닐 때 더 와서,

따악 그놈이 항상 있는 데 가서, 내 제하일촌(臍下一寸)에, 배꼽 단전 밑에 1촌(寸)에 가서 의심이 탁 박혀서 있거들랑.


그렇게 잘 안되어서 하고, 만약 그래도 그놈 잠이 들입다 와서 게을받아서, 그런 사람이 있어.

그놈의 잠이 자꾸 오고, 몸이 게을고, 그만 하기 싫고, 발심이 안되고 이러면 안돼. 그건 천성(天性)이 그 지경 되어서는 틀려.


이렇게 정신을 차려서 그놈이 물러간다.

물러가거들랑 화두를 인자 그때 들어와서는 전제(全提)로 한번 해라. 단제(單提)로 말고, 전제로 한번 해라.


『세상에, 일체처에 도무지 요놈이 일체처에 도무지 밥 먹고 옷 입고, 가고 오고 그저 무슨 뭐,

아! 이런 놈이 이 소소(昭昭)한 요놈이 분명히 이놈인데 ‘이놈이 뭣꼬?’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

전제로 한번, 전제로 그놈을 주욱 끄집어 가지고 한번 해.


한번 해 가지고는 인자 의심이 다시 일어나거들랑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만 해. 또 늘 전제를 말고.


그러면 수마(睡魔) 그 같은 놈의 것이 안 물러갈 까닭이 있나? 수마(睡魔) 그까짓 놈의 것은 그건 마구니인데,


여지기량(汝之技倆)은 유진(有盡)이여. 네 힘은 다함이 있어. 마구니 네 까짓 것 밖에서 들어온 것은 네 다함이 있어. 네가 못 들어올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고, 내게 못 와!

내가 아지불채무궁(我之不采無窮)인데, 내가 네 까짓 것 간섭 안 하는데, 잠 네 까짓 걸 내가 환영 않는데, 네 까짓 거 어디로 들어와?


의심 ‘이뭣고?’가 있는데, ‘이뭣고?’가 분명한데 어디가 그놈이 들어서냐 그말이여. 


가여상좌(可如常坐)하야, 그렇게 턱 물리쳐 버리고는 항상 가(可)하게 상좌(常坐)를 해라.

똑 그대로 여법(如法)히 그저 법다이 또. 삐딱하게 앉지 말고 아까 마냥으로 좌(坐)를 단정히 또 앉어라.


그렇게 한바탕 해서도 또 안되거들랑, 그래도 또 금방 앉으면 또 잠이 들어와서 또 마찬가지로 되거들랑,

약불퇴(若不退)면, 물러가지 않고 그놈의 경계가 잠이 오든지, 망상이 들어오든지, 그만 어디 놀러가고 싶던지 이런 망상이 퍼일어나거들랑,


불가불 어쩔 수 없다. 하지(下地)해서, 저런 어디 따로 딱 나와서 이런 본 데라도 나와서 거닐되, 왔다갔다 왔다갔다 여 갔다 저 갔다 그렇게 거닐지를 말고, 왔다갔다한 장소를 지정을 딱 해 놓고 거 좀 걸어라.

좀 시간이 있게 걸어. 한 10분이든지 20분이든지 걸어라.


오직 고인(古人)도 안되어서 이렇게 말씀을 해 놓았어. 몽산(蒙山) 스님이 고원상인(古原上人)한테다가 이렇게 해 주었어.

몽산 스님도 그렇게 불교를 반대하다가 들어와서 견성(見性)해 가지고는 허! 보니 이뿐이거든. 세상에 이뿐이니 이렇게 자세히 해 놨어. 글도 잘하고 하니까.


(수마가) 점점 물러가지 않거든 달리 하지 말고 가만히 나와서 땅을 정해 놓고 갔다왔다 왔다갔다 이렇게 수십 보(數十歩)를 이렇게 행해라.

그래 수십 보를 해라고 했어! 한 수십 보를, 그 화두를 추켜들고 자꾸 수십 보를 하면 고놈이 인자 물러가.


그러거들랑 또 거좌(去坐)해라. 또 와서 또 자리에 앉어. 그 자리를 너무 비우지 말고 앉어야 해.

그 자리가 아깝다 그말이여. 내가 공부하는 그 자리가 오래 비어 있으면 아까와.

그 앉어서 공부하는 자리인데 비어져 있으면 쓰는가? 나 있는 그 자리, 닭 알 품고 앉아있는 그 자리인데.


좌선(坐禪)이니깐, 좌선하는 사람이니 나 앉는 그 자리를 또 비우지 말고 와서 앉어.

잠깐 수십 보 하지, 오래 너무 비워놓지 말아라. 


안두(眼頭)가 깨끗하고 청명(淸明)해도 돌아댕기면 또 못쓴다 그말이여. 그러거들랑 얼른 들어와서 또 앉어라. 또 거좌(去坐)를 해라.

천만조고화두(千萬照顧話頭)해라. 그래 가지고는 천 번이나 만 번이나 염(念)을 계속해서, 똑 계속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계속해서 해라.


견성뿐이다, 그것이 견성뿐이여.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뿐이여.

이것이 정법(正法)이여, 이게 참선법(參禪法)이고.


날마다 와서 도 닦는 사람, 저 법문 들은 사람들, 밤에는 복잡해서 잘 수가 없으니까 밤에 제일 잘 수 없어서 (낮에) 오라고 하는데, 밤에 와 자고,

낮에는 뭐 아무 데라도 공부할 수 있고, 누워 자는 사람이 기다란하게 누워 자면 자리가 많이 없어지지마는, 앉었는 데는 자리가 많이 생기니까 앉어서는 할 수 있고 한데, 밤에는 복잡할 때 자고, 낮에 오고 뭔 짓을 해.


밥 먹는 것을 그 뭐 다 자기네가 싸고 댕기는 것이지, 도 닦는데 뭐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인데.

밥 먹는 것이 없어서 나 (이런 말) 한 것 아니여. 여기 대강 지내도—뭐 식량 떨어지면은 탁발(托鉢) 갈라고 작정 딱 해놔도 탁발 한번도 안 하고—먹고 살아가는데.


그 뭐 식량으론 여그 못 있겠다는 거 아니고,

밤에 잘 때에 그 너룹게 방 하나 차지하고 다 활발하게 자든 그 어진 보살님네가 오셨다가 도실(道室)이라고 방이 복잡해서 누워 잘래야 잘 수도 없고, 하! 당초에 너무 그만 복잡하니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어 좁다고 내가 그런 거지.


그렇게 날마다 저녁에 왔다 자고 아침 때 가고 그럴라면은 너무 길은 멀고 여비는 많이 들고 그럴 것 없으니까,

그만 에지간만 하면은, 정 그래도 여그 요새 늘 와서는 자니까, 그 잘만 하면은 갔다왔다 할 것 없이 해제도 얼마 안 남고 했으니, 여그 앉어서 공부해. 뭣할라고 갔다왔다 할 것 없어. 그렇게 해. 여기까장.


천만 번 화두를 조고(照顧)해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화두를 연속해 나가거라.

이렇게 않고는 된 법 없어! 절대 된 법이 없어.


이 화두는, 이 활구참선, 활구화두라는 것은, 하다가 말다가—참나무로 바로 그 줄로 나무를 뭐 비빈다?

활 비비듯이 이렇게 해 가지고 드리 비벼대. 막 드리 비벼대면 거그서 불이 나듯이 그래야 되는 법이지,


하다 말다, 좀 비비다 말다, 불이 나?

된 법이 없어.


이 말을 깊이 깊이 잘 듣고, 들은 대로 여설수행(如說修行)하면 되는 것이지. 꼭 그대로 듣고 그대로 법문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안되아? 안되는 것을 지금 이리 고인이 말을 해 놨어?(20분5초~41분1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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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無心雲峀出  有意鳥知還’ ; [청허당집(淸虛堂集)] ‘次李秀才韻(이수재의 운을 차함), 無心雲出峀  有意鳥知還  儒佛雖云一  一忙而一閑’ 참고.

*(게송) ‘蘆花月白處  楚澤滄浪詞’ ; [청허당집(淸虛堂集)] ‘漁翁(어옹), 月白蘆花處  風淸竹葉時  扣舷歌一曲  楚澤滄浪詞’ 참고.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일언지하(一言之下) ; 한마디 말 끝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도거(掉舉)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단정하다(端正-- 바를 단/바를 정)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금강권(金剛拳) ;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감싸 쥔 주먹 모양.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수기척량(竪起脊梁) ;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다.
*척량(脊梁 등마루 척/대들보 량) ; 등마루의 거죽 부분. *등마루 ; 등골뼈가 있어서 울룩불룩하게 줄진 등의 가운데 부분.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불고(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에서.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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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경행(經行) ; 산스크리트 cankramana, 팔리어 cankamana의 의역.
대개는 식사를 마친 뒤나 피곤할 때, 혹은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경우에 자리에서 일어나 경행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선방에서는 대개 50분 좌선을 한 뒤 10분 정도 경행을 하는데, 수행자들은 선원 안을 천천히 걸으면서 좌선으로 굳어진 몸을 푼다.
이때에도 계속하여 화두를 참구하기 때문에 좌선에 대비,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경행은 참선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산책과 같은 것으로서 〈사분율 四分律〉에 의하면 평상시에 경행을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이로움이 있다.
첫째, 먼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둘째, 생각을 가라앉힐 수 있다. 셋째, 병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음식을 소화시켜줄 수 있다. 다섯째, 오랫동안 선정에 머무를 수 있다.
〈대비구삼천위의경 大比丘三千威儀經〉에는 경행을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다음의 다섯 곳을 들고 있다. 첫째, 인적이 드문 곳, 둘째, 집 앞, 셋째, 강당의 앞, 넷째 탑 아래, 다섯째 건물 아래 등이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하야 상호혜명(傷乎慧命)이라’ ;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구백생멸(九百生滅)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剎那爲一念 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벼락 ; ①공중 있는 전기  위의 물체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서 방전()으로 일어나는현상.
몹시 호되게 나무라거나 꾸짖음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어떤 일이 매우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비유적으로 이르는 .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촌(寸)길이 단위 나타내는 ()  분의  3.33센티미터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게을받다 ; ‘게으르다’의 사투리.
*천성(天性)어떤 사람이나 사물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품성.
*전제(全提) ; 전부분이 들고 일어남(全分提起)의 뜻. 본래 그대로 나타냄. 전부를 그대로 나타내 보임. 전체를 모조리 그대로 들고 나오는 것.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전제는 ‘조주 스님은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단제는 그냥 ‘무~’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만 들여다 보는 것. 분류 ‘전제, 단제’ 참고.
*단제(單提) ; 선가에서 어떤 수단 방편을 쓰지 않고 곧장 가리키는 본분의 참뜻.
*소소(昭昭)하다 ; 사리가 밝고 또렷하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다’ ;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영원이다.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에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우리는 걱정을 할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해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 ‘이뭣고?’를 들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 ‘이뭣고?’를 든다면 마침내 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한테 끌려들어가지 안해.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영원이다 그말이여. 니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 할래면 해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보고, 니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네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조고(照顧) ; 반조(返照)와 같은 말. 생각을 돌이켜 참구(參究)한다는 뜻.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 ; 진심으로 도를 닦는 수행인에게는 천상에서 의식(衣食)을 준다, 제석천왕이 의식을 준다.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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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1/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5)—몽산 01-1. 몽산시 고원상인(1) (임자72.06.10)


(1)------------------

일신진여행(一身眞旅行)이다  만사개무생(萬事皆無生)이다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재(今朝相別在)다  사군역불견(思君亦不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 이 몸뚱이 하나 얻은 거, 몸뚱이 하나 얻어가지고 가지고 있는 거, 이거 참 허잘 것 없고 생각할 것 없고 믿을 것 없고, 뭐라고 도무지 이걸 가지고.

일신(一身) 그놈, 몸뚱이 그것—그 생겨난 조직체 전체를 한번 생각해 보면은,


숨 한번, 바람 한번 들어왔다 나가면 그만인 것이고.

그 모도 조직된 몸뚱이, 그 무슨 줄 같은 거 하나 뚝 떨어져 버리면 그만이고,

구녁 하나 어디 뚫어진 거 맥혀 버리면 그만이고.


세상에 허망한 몸뚱이가 이것이 또 나그네 생활을 해. 여행 생활을 해.

내 집, 따뜻한 내 방이라고 뭐 어디 있나? 그냥 이 몸뚱이가 이것이 그대로가 여행 나그네여.


내 고향을 내가—영원한 고향, 참된 고향, 이별이 없는 고향, 그 고향을 도무지 내가 찾들 못하고, 어디 나그네로 이렇게 있다 그말이여. 


만사(萬事)가 개부운(皆浮雲)이다. 생각해 보건댄 이 몸뚱이 이것 가지고 별별 짓을 다해 봤던들 뜬구름 있다가 휙 달아난 것이여. 구름 한 점 저 태허공에 띄어 있다가 휙 날라가 버린 거와 같해. 이렇게 무상한 이 몸뚱이여.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이라는 게 언제 있느냐? 오늘 아침에 있다.

설사 100년을 산다한들 100년을 믿는 것이 그 어리석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여?

내일까장 살겠다고 믿어?

금조여 금조(今朝)! 그만 당장 언하(言下)여. 그저 있다 그만 이것 떠나버려. 구름같이 가버려. 


사군역불견(思君亦不見)이다. 아무리 그놈, 가지고 있든 나의 몸뚱이 내 낯반대기 그 내 것이라고, 모도 그저 내 권속. 별것이 다 내게 있다한들 그것이 다시는 못 만나고 다시는 못 봐.

내 낯반대기도, 요 몸뚱이 육신 몸뚱이 요거 얻은 거, 금생 몸뚱이 이거 얻은 거, 다시는 못 봐.


이건 또 고대로 생겨 나오나? 뭐가 되어 나올런지, 뭐 대갈빡에 뿔을 쓰고 나올런지, 똥구녁에다가 꼬리를 달고 나올런지, 무슨 뭣을 가지고 나올런지 알 수가 있어야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여.

그러니 항상 무상(無常)을—무상한 마음, 허망한 마음 이것을—이 마음을 가져야 된다.


무상하고 허망하고, 이것이 참 진짜 발심(發心)이여.

허망한 줄을 모르고 무상한 줄을 모르고 그만 이것 아주 항상 있는 줄 알고, 아주 내가 제일이고, 아상(我相)만 퍼 가지고 있고, 그 뭐여? 그래 될 것인가?



화두상(話頭上)에, 화두한 위에 유의부단(有疑不斷)이 시명진의(是名眞疑)다.

화두에는 의단(疑團) 하나 있는 것 밖에는 없다. 의심 하나,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그 꼭 알아야 하겠는데 웬일로 이렇게 알 수 없나? 그저 밥 먹으나 옷 입으나 일체처에 ‘화두 한 생각’ 하나뿐이지, 그 이외에 뭣이 있겠나?


화두 위에 또 유의(有疑)가 있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한 위에 또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의심 하나뿐인가?


시명(是名)이 진의(眞疑)다. 화두 위에, 화두가 있어 가지고 끊어지지 않고 항상 거기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놈이 그놈이 이름이 진의(眞疑)다. 참의심이다.



저 홍콩서 온 선사(禪師)가 이걸 알아들어야 할텐데, 당초에 저렇게 와서 한 일주일 있으면서 꼭 설법을 배우고 법을 듣고 가겠다고 왔는데,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한문도 서로 쓴 것이 달러. 문법이 달러. 그대로 의미는 통하나 문법이 달라서 못하지만은, 나는 필법으로는 해본 예가 없어서 천하없는 외빈(賓)이 와도 필답(答)으로는 못해.


늘 묵언수좌(默言首座)가 있어서 해 주고, 그저 누가 있어서 해 주고 이래서 내 말 듣고는 고대로 써서 해 주고 이랬지.

내가 직접 편지 한 장을 써서—편지 한 장을 옳게 못 쓰니까, 평생 그저 자(묵언수좌)가 내가 불러주면 쓰지.


한국을 척 나와서 몇 군데 큰절을 가니까 ‘전강 스님을 찾아가 봐야 한다’고 이렇게 왔으니, 당초에 무슨 설법을 어떻게 해줄 수가 있어야 하지.



이건 들었으면 좋지만은 이 화두 해 나가는 방법.

바로 달마 스님이 동토(東土)로 건너와서 달마 스님 후손, 이 몽산 스님이 몽산법어(蒙山法語) 해 놓은 거, 말세에는 적절하거든. 말세 불법은 이 법 아니면 못해.


이것 내놓고는 하지를 못해. 관(觀)이 되야 하지? 관선(觀禪)인데, 그전 달마 스님 때는 그 관심일법(觀心一法)이라 했거든.

관선인데, 관선이 내나 하야 관(觀)이 의단(疑團)이지. 모르면 의심이니까. 알 수 없으면 의심이고.


바로 봐 버리면, 뭐 의심이 그 뭐 있나? 무슨 의심이 거기에 있어?


화두 해 나가는 법 하나, 이것 만들어 놓은 것이 선문촬요(禪門撮要)인데, 선문촬요 한 권이면 그만이지 뭐 다시 뭐 더할 것이 어디 있나?


의단독로(疑團獨露)해서, 화두 위에 의심이 있어 가지고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 이것이 참 진짜 화두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화두란 자체가 알 수 없는 것 뿐이여.


그 알 수 없는 그것이 왜 ‘안된다’고 할까? ‘안된다’고 하는 원인이 어디 있나? 그 안되는 것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걸 생각해 봐.


무상(無常)한 마음이 없어서 발심(發心)을 못해. 이 몸이라는 것이 금조(今朝)여, 금조(今朝)에 이별이여.



이렇게도 이 몸뚱아리 생긴 조직체가 피로, 물로, 살덩이로, 이리저리 얽허져 있는 것이 그 모두 그 핏줄이—그나저나 병원에 가보면 그 (신체 모형) 한쪽만 만들어 놓은 것 속에 모든 핏줄 좀 봐.

그 가는 핏줄, 실오리줄 고것 하나만 어디가 똑 떨어져도 그만이여.


이까짓 놈의 몸뚱이를 글쎄 뭣을 믿을 것이 있는가 말이여.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는 몸뚱이인데.


‘그 몸뚱이가 그렇게도 허망하고 믿을 것이 없는 것’을 바로 믿어 버리고, 바로 이렇게 무상을 깨달라 버리면은 화두 밖에 할 것이 더 있나? 화두가 의심이 안 날 수 있나?


깨달랐는가 어디? 깨달라야 될텐데.

화두는 아는 것이 아니여. 요렇게 ‘옳지!’ 이거 아는 건, 그건 화두가 아니여. 아는 것은 참선도 아니고.


탁! 그만 대오(大悟)가 있어. 반드시 깨달음이 있다 그말이여.



약의일상소시(若疑一上少時)하고, 만약 처음에 화두를 들어서, 공부를 척 거각(擧却)해 들면은 소시(少時)하고, 잠깐 있고.

(화두를 들고) 있을 때 ‘이뭣고?’,  잠깐 ‘이뭣고?’가 있다가는 금방 없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판때기 이빨에 털 나? 어찌 판치생모? 금방 (화두가) 없어. 금방 하나 해 놓고는 금방 없어.


또 우무의자(又無疑者)여. 이놈을 그만 없애 버린 뒤에는 찾을라고 또 화두를 다시 거각할라고 해도 안돼.

그 망상이 그만 쩔려서, 그 모든 놈의 망상이 그만 심지(心地)에 가서 전면의지(纏綿意地)해서, 뜻에 가서 모도 얽혀서 안돼.


화두를 찾을라고만 하면 점점 더 망념이 더 일어난다 그말이여. 이런 놈의 꼴이 있나?

비진심발의(非眞心發疑)다. 그것 진심발의(眞心發疑), 진심으로 발심한 것이 아니어서 그리어.


참으로 발심을 해 놓고 봐라. 뭣을 할 것이냐? 할 것이 무엇인가?

친척 여의고, 고향 여의고, 다 떼버리고 단신 몸으로 척 나와서 글쎄 이거 어째? 놀래야 놀 수 있어? 안 할래야 안 할 수 있어?


어떻게 조끔만 화두 그만 안 해도 불안해서 못 살아. 화두가 없어도 불안해서 못 살아.

항상 화두 그놈이 자리가 잡혀서 항상 거기에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다.


화두가 자리가 잡혀야지? 쪼끔 하다 말고, 금방 하다 말고, 또 앉다가 그만 금방 하다가 그냥 뿡 일어나고, 조끔만 모도 백지(白地) 일어나고, 그저 그만 금방 조끔 하다 갔다왔다,


똥구녁이 좀 썩도록.... 7개 포단(七個團)을 뚫었을까? 좌선객(坐禪客)이 되었으니 기위(爲) 좌선을 하러 나왔으니 좌선이 목적 아닌가?

쪼끔 더웁다고 그만 휙 일어나고, 조끔 밖에 그만 뭐 생각이 나서 쫓아 나가고, 이것 그 학자들 흉 본 것 같지마는 참 아무 것도 아니여. 


진심발의(眞心發疑)가 되어 그렇다. 참마음을 발(發)해 보아라. 이 무상한 것을 바로 발해 보아라.


이 더러운 송장 요것을 몸뚱이인줄 알고는 뒤집어쓰고, 아주 그 살았다고 대갈빡 내두르고, 뭔 겨를이 있어 그저 꺼떡하면 그만 어디 놀러나 가고, 또 돌아댕기면서는 경계나 팔리고.

아무 것도 아니다. 발심(發心)을 못해서 그런 것이다.


속주작(屬做作)이다. 요것이 주작선(做作禪)이다. 억지로 한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를 참으로 진심으로 한번 해 보지를 못하고는 속주작이여. 주작을 해. 괜히 껍딱으로만 해본다 그말이여.


한철 그녀러 것이 그만 휘딱 달아나 버리지.

모아서 몇 철 지낸다고 지내봤던들—그 석 달에 견성(見性)도 능히 할 것이언만, 석 달 휘딱 달아나 버리지. 해 봐. 마찬가지지.

결제한 날이나 해제한 그날이나 다를 게 뭐 있나? 똑같애.


시고(是故)로 요렇게 공부를 하기 땀세, 요렇게 진발(眞發)을 못하고 거짓 그만 주작(做作)을 하기 때문에,

이런고로 혼침도거(昏沈掉擧)가 혼침(昏沈)과 잠. 첫째 앉으면 그만 잠,

앉으면 그만 이러고 자네 이렇게. 앉으면 이러고 자고 앉었어. 단 1분도 안 하고 이러고 자.


이것 되겠는가? 무슨 마음으로 출가해서 왜 여기 들어와서 공연히 그 공송세월(送歲月)을 해 나가면서 갖다 준 밥만, 해다 준 옷만 입고, 이렇게 그만 시은(恩)을 짓냐 그말이여.

시주(施主) 은혜가 어떤데? 시주 은혜를 갚을라고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아닌가.


아! 그놈 먹을 때 좋으니깐 퍼먹어 놓고는 갚을 때는 생각도 안 해.

아무리 시은을 할애(愛)해서, 그 많이 감해 버리고 할해 가지고 계산을 하드래도 일미(一米)가 칠근(七斤)이다. 쌀 한 냍끼가 그놈이 그 근수(數)가 일곱 근이나 된다.


그놈 그대로 도(道)도 닦지 않고는 퍼먹어 놓고는 갚을 때는,

가서 인자 갚아 보지? 그놈 갚을 때는 어쩔 것인고? 돈으로 갚나? 뭐 쌀로 갚나? 이건 몸뚱이 죄고(罪苦)로 갚지.


“너 이놈, 그러한 그 시주것을—그 농부가 애쓰고, 소가 땀 흘리고, 일체 짐승이 모도 그 농사질 때에 쌀 한 낱개 될 때에 한량없는 목숨 죽고 그 피 흘리는 살생이 기가 맥혀—그놈 퍼먹고는,

이놈 가만히 앉어서 잠만 자고 망상(妄想)만 부리고, 못된 망상 속에서 별별 거족동념(擧足動念) 죄만 짓고 이놈 갚아야 할 것 아니냐?”


“받아라 이놈아. 달게 받아”하고는 그저 그만 쇠 철환(丸)이나 쇳물이나 갖다가 들이붓고 어쩌? 안 그래? 그놈으로 받지 무슨 돈, 쌀로 받나?


말만 이러면 듣지, 그만 잊어버리네. 법문으로 알아버리고 들어버리고 말아 버려.

실지가 이런 것을 바로 알아야지.(처음~20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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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앉으면 혼침(昏沈) 밖에는 들어온 것이 없고, 또 혼침 그놈 조금 나가면은 또 도거(掉擧)란 놈이 들어와서—도거라는 것은 생각이라도 '못된 망상', 그게 도거여. 그 쓸데없는 망상심 모도 고것이 들어온다.


개입작득(皆入作得)이여. 한 시간 앉었으면 한 시간 내 그뿐이여. 한 시간에 참선(參禪)은 뭐 어디 1분도 2분도 안돼.

가짜로 하니까 되아? 주작으로 하니까 되아? 그러니 모도 그만 개입작득을 해.


들어와서 모도 작득(作得)해 가지고는 아! 이놈이 가만히 앉었으니까는,

그 갔다왔다 하면서 뭐 일이라도 하고 어디 무슨 이러면— 도거가 와서 뭐 거까장 생각할 것도 없고, 그저 금방 생각난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지마는,


가만히 앉어서, 참선한다고 앉어도 참선은 간 곳 없고 화두는 없고, 도거(掉擧)란 놈이 들어와서 작득주(作得主)를 해 가지고는 별 생각을 다 한다.



이 서호당 보지. 서호당 역사 내가 어릴 때 내가 다 알고, 지금 내가 화장(葬)까지 다 하고 그랬는데 뭐 말할 거 있어?


변산 내소사 절 주지(住持)로 40년 하면서 삼백석지기를 모았네. 거 무척 모았지.

그 내소사 절이 부찰(富刹)이니까는 산에서 생긴 수입이 있고, 불공 수입이 있고, 토지 수입이 있고, 밭에 수입이 있고, 모도 불공 시주 수입이, 재(齋) 들고, 이런 수입을 모아서 삼백석지기를 자기 논 딱! 사 놓고.


주지가 떨어졌네. 삼백석지기 그놈 아낄라고—자기가 벌어 놨으니까 그놈 먹고 지내도 넉넉할 테지만은 그놈은 하나도 손도 대지 않고는 자기 앞으로 소유 내 놓고는 백양사 선방(禪房)에 척 들어가서 참선하는데,

참선 하고 앉었으면 뭐 방선(放禪)할 때까지 잠 한숨 안 졸지. 가만히 앉어서 참선을 그렇게 잘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속에 참선이 그놈이 참말로 화두가 독로(獨露)해서 그렇게 1시간이라도 잠을 안 자고 했으면 하는데,

‘논 삼백석지기 내년에는 지상 수입 그놈, 땅 내면 돈 얼마면 순창 뜰 그 좋은 놈 상토(上土), 그놈 몇 마지기 아무개 것 그놈 내가 사야겠다’


요런 놈의 계산하다 보니 1시간이 휙 달아나네, 휙 가고. 언제 뭐 잠잘 겨를 있나?

그 모도 도거(掉擧)란 말이여. 도거! 참선방 앉아 놓으니까 인자 고런 놈이 생각나. 요렇게 한 철을 했다.


한 철을 하다가 병이 났다. 병이 나서 죽을 병이 나서 자기 본산(本山)으로 갔네. 본산이 어딘고 하니 순창 구암사인데, 구암사를 가 가지고 병을 앓는다. 천신만고를 앓다가 죽었네.

염라국을 갔다. 가니까 주욱 평생에 그 독(獨)살림 하던 것과 그 모도 돈벌이 하던 것 전체가 저 극장에 필림 돌아간 것 같애. 환하니 찍혀서—염라국이라드니, 저울대라든지 거기에 뭐 일생 지낸 필림같이 조옥 다 있어.


그 재산을 가지고 마지(旨) 한 불기(器) 부처님한테 온당 올린 것 없고, 그만 들어오면 그만 이리저리 모도 해서 제 돈만 만들고 한 것이 환히 나타난다.


그래 가지고는 “네가 저렇게 죄를 많이 지었으니 네 지옥고가 솔찬히 무겁게 되었다. 10년은 받어야겠다”

그 지옥 10년이면 인간의 몇백만 년이여. 그 10년이 인간 10년이 아니여. 한 10년 그 뭐 징역살고 나오면 마찬가지게? 그거 아니여.


“10년을 살테로되 네가 이 선방에를 들어왔다. 참선하는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을 한다고 한 것이 참선은 않고, 네 돈 계산만 하다가 시간을 마치고 다 이랬다마는 그래도 그 선방에 좀 들어온 공덕이 있어.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한다는 공덕이 있어. 그 참선 공덕으로써 3년을 감해 준다. 3년은 감해 주고 7년을 네가 지옥고를 받아라” 염라대왕의 언도가 턱 내렸다.


인자 감옥 7년 지옥고 받으러 옥(獄)으로 인자 들어갈 판인데,


“네가 그래도 부처님 앞에서 중노릇을 한다고 그렇게 40년 동안 그 부처님 돈 갖다 네 돈 만들어 놓고 모도 그랬지마는, 그래도 네가 그저 중질한 공덕이 있으니까, 네 이 길로 나가서 지금이라도 발심(發心)을 해라.

그 탐심, 탐착 그 마음을 네가 버리고 발심을 해서 파재간탐(破財慳貪)을 해라. 파재간탐은 네 여태까장 모아서 논 사놓고 밭 사논 놈을 쏵 가서 파재(破財)를 해라.


파재간탐을 해서 가난한 사람 이리저리 주기도 하고, 불전헌답(佛前獻畓)도 하고, 부처님한테 모도 헌답해 버리고, 쏵 없이 해 버리고, 그래 그 다음에 들어오니라. 그 다음에 들어오면은 7년 지옥도 감해 줄 수가 있다. 잘 가서 해라”

아! 그런 부탁을 염라국(羅國)에서 역력(歷歷)히 했다. 염라대왕이 바로 해 주고.


“그럼 이 길로 가거라”하고 내보냈는데 옥문(獄門) 밖에 나와서 깼어.

깨 가지고 보니까 꿈이지. 그 죽었지만은 꿈이여. 죽어서 열반종(鐘)까장 쳤는데 꿈이여. 대중은 다 '죽었다'고 열반종까장 쳤는데 꿈이라 그말이여.


그러면 그 꿈이 아니고 죽었다 살아났으니깐 참 그대로가 실제인데, 그놈 다 팔아서 어떻게 좀 이리저리 방매(賣)할 것 방매해서 보시도 좀 하고, 불전헌답 모도 해서 선방도 좀 맨들고, 아 이렇게 했으면 쓸 것 아닌가?


‘아! 이렇게 이번에 내가 이런 꿈을 꾸었는데, 이게 옳은가, 그른가? 이게 참인가, 거짓인가?

또 살아나면은 먹고 살아야 하고 부자가 되야 할텐데, 이거 없애버리면 어떻게 해?’


아 그 마음이 들어 가지고 영 그것 꿈으로 알아 돌려보내 버리고는 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뭐 살기는 뭣을 살아? 그 뒤에 불과해야 며칠만에 돌아가셨어. 죽었어. 그 여지없이 지옥 갔지. 틀림없지.


이러한 간탐심(慳貪心), 중노릇을 해도 발심(發心)을 못하고 헛되이,

틀림없거든. 응 틀림없어. 이것 다시 두말 할 거 뭐 있나? 이까짓 놈의 몸뚱이가 금조(今朝)에 잊어버릴는지를 모르니, 당장에 그만 갈 것이니 그 같은 걸 생각할 게 있나?


다맛 진심발의(眞心發疑)를 해서, 참마음을 발해서 진심으로 도만 닦아 봐. 천하에 무슨 그까짓 놈의 삼백석이 뭣이여? 어디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인데.

이렇게 어리석다. 그 중생의 어리석은 거, 발심을 못하니 어리석어.


주작(做作) 그러니 주작심(做作心) 밖에 없어서 진짜가 아니기 따문에 가짜로 하기 따문에 화두가 들어오들 안 해. 왔다가도 곧 가버려.

도거(掉擧)가 들어오고 혼침(昏沈)이 들어와서 주재를 해 가지고 이 모냥으로, 이것 뭐 한 철 해도 그 모냥, 두 철 해도 그 모냥, 백 철을 하면 뭣 해. 일생을 하면 뭣 할 것이냐.


앉는 자리에 좀—얼른 나갔다가도 ‘아이고, 어서 가서 내 자리에 앉어야겠다’—가서 그저 등줄기 땀이 나든지, 똥구녁에 땀이 나든지 그까짓 것도 불구하고 척 앉어서, 안벽관심(眼壁觀心)하고 수기척량(竪起脊梁)하고 정신차리고 앉었다.


또 혼미(迷)하면은 일어나서 잠깐 둘러 또 들어와서 앉어서 또 찾고. 이것 좀 자리가 잡혀야지.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화두가 좀 잡히고, 조직체가 좀 화두 하는 모냥다리가 좀 되야지? 이것 뭐, 다시 뭐 참선이여 뭣이여? 좌선객(坐禪客)이여 뭣이여?


좌선객 아닌 사람—세상에서 그저 부모 모시고 살면서, 자식 낳고 살면서 한 사람들이야 그 말할 거 뭐 있어? 그런 사람들 하는 것이야.

그렇게 요중선(中禪)하는 사람들이야 그 말할 것 없지 뭐. 근기(根機)도 그런 근기가 없고, 그러면서 대도(大道)를 통한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없지.


우리 출가한 승려 분상(分上)에, 우리 선객 분상에야 그럴 수가 있냐 그말이여.

그 경허 큰스님도 칼을 받쳐 놓고는 3년을—이러고 앉어서 3년을.

태고보우(太古 普愚) 선사는 어쨌으며, 우리나라 첫 건너 온 보우 선사는 어쨌냔 말이여. 백일씩을 정해 놓고는 백일만에 또 회향하고 또 하고, 백일 또 그 정진.


다 그래서 석가모니불 부처님은 얼마나 용맹스럽게 닦았으며, 고인(古人)의 자취를 좀 봐야 할 것 아닌가.

요새 참선한다고 참선객? 내가 이런 시비를 안 할 수 있어?


모도 혼침 도거란 놈이 들어와서 작득주(作得主)를 해 가지고 요 모냥 되어가지고 앉었으니 되는가 말이여. 안된다.

미륵하생(勒下生)까장 해 봐라? 미륵하생이 육억 칠천만년이래야 미륵하생이 오는데 육억 칠천만년을 해보란 말이여. 되는가?


앞으로써 한 7천 년만 오면은 삼재(三災) 들어와 버리는데, 삼재 그 속에 빠져 버리면은 다시는 나올 기약도 없다. 언제 나와?

그놈 삼재 속에 들어가서, 뭐 몸뚱이가 있어야 받아 나오지. 인신(人身)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세계가 물 끓고, 불이 끓고 막 그만 뒤집어져 가지고는 뭐 몸뚱이 받아날 수 있나?


그 가운데에 몸뚱이만 못 받아 났지, 우리는 없나? 낱낱이 더 있지. 더 있어.

그놈의 몸뚱이 요까짓 육신(肉身)만 없지, 업신(業身)이 있어 가지고 그 업신으로써 몸뚱이 받을 때 없이 돌아다니면서 그 고통받을 것을 생각해 봐.


언제 어디가 태어날 것인가? 또 그놈의 삼재 지나간 뒤에는 육억 칠천만년이 닥쳐와서 미륵회상(彌勒會上)이 된다한들 미륵회상에 참례(禮)해? 뭣을 참례해?


참례할 공덕을, 참선을 해서 무슨 득력(得力)을 했나? 견성(見性)을 해서 사사무애(碍)도 증(證)했나? 그때 날만한 무슨 공과가 있나?


공부를 할라면은 참공부인이 한번 되아버려야 한다.

네가 한번 그저께 읽든 것 읽어라.(21분8초~36분5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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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一身眞旅行  萬事皆無生’ ;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送英庵主出山(산을 나가는 영암주를 보내며),  一身眞逆旅  萬事皆浮雲  如見鴟爭鼠  高飛愼不群’ 참고.

*(게송) ‘今朝相別在  思君亦不見’ ;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今朝相別後  消息幾時聞 明日秋雲隔  思君不見君’ 참고.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외빈(賓)외부 외국에서 찾아오는 귀한 손님.

*필답( 글씨 필/대답 답) ; 글로 써서 대답함.

*묵언수좌(默言首座) ; 송담(松潭) 스님의 별명. 10년간 묵언을 하며 수행을 해서 '묵언수좌'라는 별명이 생김.

*달마 스님,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선문촬요(禪門撮要) ; 한국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선사가 선(禪)을 공부할 때 지침으로 삼을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상하 2권.

상권에는 달마대사의 『혈맥론(血脈論)』 『관심론(觀心論)』 『이입사행론(二八四行論)』,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의 『완릉록(宛陵錄)』 『전심법요(傳心法要)』,
그리고 몽산덕이(蒙山德異) 스님의 『몽산법어(蒙山法語)』, 박산무이(博山無異) 선사의 『선경어(禪警語)』,
하권에는 고려 보조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고려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 스님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 서산휴정(西山休靜) 스님의 『선교석(禪敎釋)』이 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전면의지(纏綿意地 얽을 전/얽힐 면/뜻 의/땅 지) ; 마음의 밭에 얽히고설켜.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보조국사(普照國師)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無始習熟  愛欲恚痴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一切時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  痛自遮護  豈可閒謾  遊談無根  虛喪天日  欲冀心宗而求出路哉.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 익혀 온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에 얽히고설켜서, 잠깐 조복 되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마치 하루 걸러 앓는 학질병과 같으니라.
어느 때에나 모름지기 바로 수행을 더하는 방편과 지혜의 힘을 써서, 간절히 스스로 막아 지켜야 하거늘,
어찌 한가하게 근거 없는 잡된 이야기를 하여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마음의 근본을 깨닫기를 바래며 생사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자 하겠는가?
*백지(白地) ; 아무 턱(마땅히 그리하여야  까닭이나 이치)도 없이.
*7개 포단(七個團)을 뚫었을까?’ ; ‘7개의 방석을 뚫었을까?’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시중(示衆) (其二十)—20. 대중에게 보임’에서.
嗟乎  末法  去聖時遙  多有一等泛泛之流  竟不信有悟門、
但只向者邊穿鑿  那邊計較  直饒計較得成  穿鑿得就 眼光落地時  還用得着也無、
若用得着  世尊  雪山六年  達摩  少林九載  長慶  坐破七箇蒲團  香林  四十年  方成一片  趙州  三十年  不雜用心  何須討許多生受喫、
更有一等漢子  成十年二十年  用工  不曾有箇入處者  只爲他宿無靈骨、
志不堅固  半信半疑  或起或倒  弄來弄去  世情  轉轉純熟  道念  漸漸生疎  十二時中  難有一箇時辰  把捉得定  打成一片、
似者般底  直饒弄到彌勒下生  也有甚麼交渉。

아! 슬프다. 말법에 성현과의 시대가 멀어져서 한결같이 꼼꼼하지 않고 조심성 없는 무리들이 많이 있어 깨달음의 문이 있는 것을 끝내 믿지 않는구나.
단지 여기에서 천착(穿鑿)하고 저기에서 계교(計較)하니, 설령 계교하여 이루게 되고 천착하여 성취되었더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죽을 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소용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하시고,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면벽하시고, 장경 스님이 앉아서 방석이 7개나 헤지도록 좌선하시고, 향림 스님이 40년만에 비로서 일념(一念)을 이루시고, 조주 스님이 30년 동안 잡되게 마음을 쓰지 않으시면서, 허다한 고생을 하였겠는가!

또 어떤 무리들은 10년, 20년이 되도록 공부를 하였으되 깨달은 것이 없는 것은, 그가 전생에 선근이 없기 때문이다.
뜻이 견고하지 않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이럭저럭 세월을 보내니, 세상의 정(情)은 더욱 익어지고, 도(道)에 대한 생각은 점점 생소해져서 24시간 중에 한 시간도 선정에 들어 일념을 이루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놈들이 미륵불이 하생함에 이르도록 제멋대로 공부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위(爲) ; 이미. 벌써.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없는 사실 꾸며 만듦’의 뜻으로,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껍딱 ; ‘껍질, 껍데기’의 사투리.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도거(掉舉)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공송세월(空送歲月)하는  없이 세월 헛되이 보냄또는  세월.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할애(愛)하다(사람이나 조직 소중한  다른 사람에게나 )떼어 주다.

*일미칠근(一米七斤) ;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거족동념(擧足動念) ; ‘발을 들고(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움직임’이라는 말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모든 일상 활동을 뜻한다.

*철환( 쇠 철/알 환) ; 쇠붙이로 잔 탄알같이 만든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쇳물높은  녹아 액체 상태  .



------------------(2)


* ; ①‘들(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 논이나 밭으로 되어 있는 넓은 땅)’의 사투리. ②전북 김제 지역에서 하천이 실어온 토사가 쌓인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

*상토(上土)농사짓기에  좋은 조건 갖추고 있는 .

*본산(本山) ; 그 종파에 딸린 여러 절을 총괄하는 한 종(宗)의 근본 도장.

*독(獨)살림 ; ①부모 형제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따로 벌인 살림. ②암자나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 따로 사는 살림살이. ③대중 공유물인 절 재산을 개인 재산처럼 쓰는 살림살이.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기(佛器)부처님에게 올리는  담는 그릇.

*솔찬히 ; ‘상당히’ ‘제법’ 혹은 ‘아주 많이’를 뜻하는 사투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파재간탐(破財慳貪) ; 간탐(慳貪 물건을 아끼고 남에게 주지 않으며, 탐내어 구하면서 만족할 줄을 모르는 마음)으로 모은 재물(財物)을 깨뜨리는(破) 것. 그리고 그 재물을 널리 보시하는 것.

*불전헌답(佛前獻畓) ; ‘불전(佛前)에 전답(田畓)을 바침’으로 사찰에 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논밭을 보시하는 것.

*염라국(羅國) ; 염라대왕() 다스리는  저승 뜻한다.

*역력히(歷歷-)자취 낌새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하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열반종(鐘) ; 스님이 입적(寂 스님이 돌아가심)  치는 종.

*방매(賣) ; 물건 따위 내놓아 .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 ; 진심으로 도를 닦는 수행인에게는 천상에서 의식(衣食)을 준다, 제석천왕이 의식을 준다.

*안벽관심(眼壁觀心) ; 눈은 벽을 보고, 마음은 화두를 관한다.

*수기척량(竪起脊梁) ;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다.

*모양다리 ;  모양새(-)’ 속되게 이르는 .

*좌선객(坐禪客 앉을 좌/참선 선/손님•사람 객) ; 좌선(坐禪),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요중선(鬧中禪)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삼재(三災) :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참례(參禮) ; 예식, 제사, 전쟁 따위에 참가하여 관여함.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사사무애(碍) ; 현상계의 제사상(諸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即無碍)인 것을 말함.
*증(證) ; ①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adhisajbodha).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②증(證)은, 《대승의장》 제 10권에 따르면,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증득·계합·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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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발심,자신(自信)2015.05.10 14:13

§(119) 내 공부는 아무도 내 대신해 줄 수 없다 /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참선법을 만났을 때 철두철미 정진해서 생사해탈 해야.

어떠한 불보살과 성현과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내가 공부해 나가는 방법은 일러주실 수 있지만, 내 대신 공부는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효성스런 제자나 상좌나 아들과 딸이라 하더라도 내 대신 이 공부를 해 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 대신 죽어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만났으되 목숨을 바쳐서 철저히 수행을 하지 아니 한다면 마치 보배가 많이 있는 산속에 들어가서 보배를 찾아서 얻지를 아니하고 빙글빙글 서성대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약 12분.


경신년(庚申年)을 맞이해서 처음으로 관음재(觀音齋) 법요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지나간 신해년(辛亥年 1971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0월 15일 결제날 설하신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갑인년(甲寅年 1974년)에 열반을 하셨습니다마는 우리는 10년 전에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생생한 육성으로 생존해 계실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 법문을 감격스럽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은 전국 방방곡곡에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들이 녹음 카세트(cassette)를 통해서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또 들을수록에 조실 스님 생존하셨을 때 왜 직접 친견을 못했던가? 또 친견하신 일이 있는 분도 한번이라도 더 친견을 못했던가? 또 생존하셨을 때 좀 더 열심히 정진을 해서 왜 그때 힘을 얻지 못했던가?
이렇게 해서 한탄을 하고 후회를 하신 분들이 수없이 많이 계신 것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부모 살아 계실 때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등한히 하고 불효를 하고, 그러다가 부모 돌아가신 뒤에사 살아 계실 때 효도 못한 것을 한탄을 하고 후회를 하는 사람이 유사 이래(有史以來)로 그러한 말이 전해 내려옵니다.

조실 스님 살아 계실 때에 그때 철저히 정진을 못하고 득력(得力)을 못했다고 한탄하는 분이 지금 적지 않지만, 앞으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마저도 듣기 어려운 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녹음기에 녹음되어 있는 것은 앞으로 몇 해를 더 음성이 변하지 않고 존재할런지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마저도 듣지 못할 때, 그때는 참으로 무슨 법문을 듣고 우리가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憤心)을 내서 활구참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아직까장은 다행히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이럭저럭, 내일 이럭저럭, 금년 봄을 이럭저럭, 금년 여름을 그렁저렁 지내다가 한 해 두 해가 가다보면 우리는 차츰 늙어가고 조실 스님 법문마저도 녹음을 통해서나마 듣지 못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누구를 붙잡고 한탄을 할 것인가?

세월은 흐르는 화살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하루하루 기력이 떨어져 가며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 공부는 내 자신 외에는 아무도 내 대신(代身)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어떠한 불보살과 성현과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내가 공부해 나가는 방법은 일러주실 수 있지만, 내 대신 공부는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효성스런 제자나 상좌나 아들과 딸이라 하더라도 내 대신 이 공부를 해 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 대신 죽어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立脚)해서 보면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원래로 없다’고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몸을 받아난 이상 마침내 죽음이라고 하는 엄연한 사실을 도피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이 몸을 잃으면 다시 어느 생에 사람의 몸을 다시 받을 것인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사바세계보다는 저 하늘나라는 훨씬 편안하고 즐겁고 아무런 괴로움도 없다고는 하되 거기에서는 도(道)를 닦을 수가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즐겁고 편안해서 도를 닦을 필요도 없고 도를 닦을 마음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천당(天堂)에 한번 올라가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또 그것도 괜찮지만,
천당에서 복을 받을 만큼, 자기가 지어 놓은 만큼 다 받으면 다시 인간 세상이나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고만 말기 때문에 천당에 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안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축생이나 지옥이나 귀도(鬼道)에 떨어지면 너무 괴로워서, 지옥에는 너무 지옥고(地獄苦)가 괴로워서 도를 닦을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고, 축생이 되면 어리석어서 법문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지금 부처님 열반하신 뒤 3천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내서 말세(末世)라고는 하지만,
과거에 무슨 복을 지었고, 무슨 수승한 인연을 지었기에 금생에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 법문인 참선법(參禪法), 이 정법(正法)을 만나게 되었겠습니까.

정법을 만났으되 목숨을 바쳐서 철저히 수행을 하지 아니 한다면 마치 보배가 많이 있는 산속에 들어가서 보배를 찾아서 얻지를 아니하고 빙글빙글 서성대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쌀을 구해서 솥에 밥을 지어서 맛있게 지어놨지만 그 밥을 그릇에 퍼서 상에 놓아야 하고, 상에 차려놨지만 숟갈로 떠야 하고, 숟갈로 떴지만 입에다 떠 넣어야지, 입에다 떠 넣으되 그것을 잘 씹어서 삼켜야만 배가 부를 것입니다.

입에다 넣었다고 해서 도로 토해 내버린다면 배가 부를 까닭이 없고 그것을 잘 저작(咀嚼)을 해서 삼켜서 흡수를 해야만 비로소 피가 되고 살이 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나서 활구참선을 배우고 듣고 했다하되,
정말 온갖 정성과 힘을 기울여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소홀히 지내 보내지 아니하고 철두철미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깨달음을 얻으며 어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기(期)하겠습니까.(처음~11분48초)


---------------------

*관음재일(觀音齋日) ;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카세트(cassette) ; ①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를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할 수있도록 만든 녹음기. 원어—카세트 테이프 리코더(cassette tape recorder).
②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1963년 네덜란드의 필립스사가 개발하였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법문에서)
*대신(代身 대신할 대,몸 신) ; 어떤 대상과 역할이나 책임을 바꾸거나 그것을 떠맡아 함. 또는 그렇게 된 새로운 대상.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천당(天堂) ; 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귀도(鬼道) ; 아귀(餓鬼), 야차(夜叉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힌다는, 모습이 추악하고 잔인한 귀신), 나찰(羅刹) 등의 세계를 말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기(期)하다 ; 이루어지도록 기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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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의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다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을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 하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또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엇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어.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그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생(生)이요, ‘일어났던 그 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때 그것이 생(生)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사(死)’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몸뚱이를 표준 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몸뚱이를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의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딱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더 잘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이 시간에는 불가불 좀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5분17초~23분16초)


(2)------------------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것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이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것도 영원불멸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못 가서 10분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을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또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해 내려왔습니다.

이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할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그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딸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잘 있나?」 「애기가 잘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할 때에—「아! 내가 쓸 데 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생각이 났을 때 ‘이뭣고?’

무엇이 금방 그 딸 생각을 했나? 이거여. 이 딸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나 가지고 속에서 화가 탁! 치밀어 오를 때, 바로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그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한 법문이요, 경책(警策)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일 기도를 한다든지 7일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나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일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일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향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간절히 향 하나 올리고, 물 한 그릇 올리고 소원을 할 때 그 마음,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절 한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꼭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도,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고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원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이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원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 가는 원수요 도적놈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23분17초~4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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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부고(訃告 부고 고,알릴 고)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념,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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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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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5.04.02 16:18
§(280) (게송)약인투득상두관~/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법문 / 용화선원의 가풍 / 선재동자의 진실함 / (게송)역력이빈주~ / 대의지하 필유대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몽산 스님께서는 ‘오직 이 한 생각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용화선원 가풍—「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선재동자가 그러한 무량공덕을 성취한 것은 오직 한 생각 진실한 그것 때문에 그러한 대도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의심이 독로해서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없으면 아주 깨달을 수가 없다”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280)—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85.11.26)


(1)------------------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데는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투득(透得)해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음을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댄, 인간의 분별 경계(分別境界)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 같으면,

녹수와 청산에 어찌 구애(礙)를 받을 것인가.(何拘綠水與靑山)


중생은 자기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이 넓고 넓은 산하대지,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두두물물(頭頭物物) 육도법계(六道法界)가 온통 다 자기의 집이요 한 마당이건만,

자기 본 마당, 본 마음자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자기의 분별 경계에 떨어져 가지고 거기에 취사(取捨)와 집착(執着)이 있어서 발 디딜 곳이 없어. 어디를 가나 편안치를 못하고, 어디를 가나 걸리고 몸 둘 곳이 없어.


한바탕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연히 깨달아버리면 천당과 지옥도 걸릴 것이 없고, 인간의 부귀와 영화와 시시비비(是是非非)에도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금년 을축년 시월 십오일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청풍납자(清風衲子)가 사방에서 모여서 한철을 한 지붕 밑에서, 한 도량에서 정진을 하게 되었고 또 보살선원에도 경향 각지에서 백 명이 방부를 들이고 고락(苦樂)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실답게 발심(發心)을 해서 실다웁게 정진을 해 가면 공기가 탁하고, 공장과 자동차에 모든 소음이 이렇게 심하고, 수용이 박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할지라도 ‘한 생각’ 철저해 버리면 그런 것이 도무지 걸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돈독(敦篤)하고 철저하지 못하면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사사건건 걸리게 되고 내가 거기에 끌려 나가고, 사소한 일에도 성질을 내게 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마음이 동요가 될 것입니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떴으되 달 자체가 ‘내가 달이다’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고, 하물며 ‘나는 밝다. 밝지 못하다’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 그러한 생각은 더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달 자체는 때에 따라서 둥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캄캄하게 안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전혀 그런 상(相)이 없습니다.


사람이 들어서, 내가 들어서 온갖 분별심을 일으켜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대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백 명 대중이 한 방에 모여서 석 달 동안을 지낼 때에 한 생각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철저히 단속하지 못한다면 그 백 명 대중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 누군가는 마음이 동요가 되고, 한 사람 동요됨으로 해서 그 방에 여러 사람이 속이 불편해 질 것이고 이리해서 바람 잘 날이 없어.


그래서 몽산(蒙山) 스님께서 결제 법문에 말씀을 하시기를,

‘만약 이 도량에 와 가지고 함께 이 고요함을 함께 하고자 할진댄, 참선정진을 하고자 할진대는,

세상에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집착과 거꾸러진 그런 생각을 다 제거해 버리고,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생사대사만을 위해서 선원에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인사(人事)로 왕래하는 거, 인사로 왕래하는 그 인사를 끊어버리고, 모든 수용은 인연 따라서 해.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반찬이 좋으면 좋은 대로, 짜면 짠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되,

아홉시부터서 세시까지, 삼경(三更) 동안을 제외하고는 수면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문밖에 거리에 나가지를 말 것이며, 밖에서 어떤 신도가 공양을 청(請)한다하더라도 나가지 말 것이며,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전에는 경(經)도 보지 말 것이며, 대중적인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경도 보지를 말아라.

이와 같이 여법(如法)하게 3년을 정진을 하되 견성(見性)을 하지 못하면 산승이 여러 대중을 대신해서 지옥을 가겠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3년, 10년 내지 30년을 정진을 하되 확철대오를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여법하게 정말 생사대사를 위해서 잠깐 동안도 한눈 팔 겨를이 없고, 잠깐 동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직 이 한 생각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너희들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한 말씀이 얼마나 목숨을 걸고 보증하신 그러한 표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용화선원(龍華禪院), 물론 어느 선원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용화선원의 특이한 노선(線)이라고 할까?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용화선원에서 바라는 용화선원의 특성을 구태여 말을 하자면,

‘불조(佛祖)와 같이, 불조가 깨달으신 바와 같이 그러한 철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설사 조그마한 견처(見處)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것을 인정을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하는 소견(所見),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 한철 두 철 하다보면 어떤 지견(知見)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불조(佛祖)의 친증처(親證處)에 바로 이르르지 못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불조와 같이 불조 친증처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중현(體中玄) 도리, 여래선(如來禪) 도리, 공견(空見)을 봤다 하더라도,

그러한 ‘보았다’고 하는 소견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러한 지견을 속에 지니고 있으면 공부는 아무리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백지(紙) 상태—10년, 20년을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완전히 초학자(初學者)의 마음, 순수한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처음~17분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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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그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라서 남쪽으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향해 가면서 차례차례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친견했습니다.


한 선지식 친견하고 거기서 법문을 듣고 그리고 또 거기서 마음에 얻은 바가 있어.

그 다음에 그 선지식이 또 그 다음 선지식을 소개를 하면 또 그 선지식을 찾아가서 그 선지식 밑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승사(承嗣)를 해서 그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거기서 또 얻은 바가 있어.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 53선지식을 친견해 나가는 데 그 53선지식 가운데에는 비구 스님도 있고, 신(神)들도 있고, 외도도 있고, 창녀도 있고, 보살도 있고, 동자도 있고, 온갖 종류의 선지식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의심 없이 위법망구적으로 친견하고 승사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53선지식한테 깨달은 법문을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가슴에 간직을 하고 마지막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륵보살을 친견해서 미륵보살이 손 한번 탁! 튕기는 바람에 53선지식한테 들은 모든 법문을 일시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문수보살을 친견을 해라. 맨 처음에 친견했던 문수보살을 다시 친견해라”한 말씀을 듣고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리라’하고 마음을 먹자마자,

문수보살이 저 먼 일백십성이나 멀리 떨어진 그 문수보살이 오른손을 터억 뻗쳐 가지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만져주셨습니다.


만지시면서 “선재선재(善哉善哉)라, 착하고 착하구나! 네가 철저한 신근(信根)이 없었다면, 53선지식을 그렇게 아무 딴 퇴타심(退墮心)이 없이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친견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그렇지 못했으면 조금 얻은 것으로 해서 만족을 삼아 가지고 중단을 했을 것이며, 조금 얻은 것으로서 거기에 집착을 했을 것이며, 오늘날과 같이 해탈과 선지식의 섭호(護)한 바가 되지를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선재동자는 확철대오를 해서 문수보살과 같이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이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삼독(三毒)이 삼취정계(三聚淨戒)로 변했으며, 육식(六識)이 육신통(六神通)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 선재동자가 그러한 무량공덕을 성취한 것은 오직 한 생각 진실한 그것 때문에 그러한 대도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하고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목전분명취(目前分明取)하라  산입백운중(山立白雲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 역력(歷歷), 또록또록하고 분명하다 그말이여.

역력해서 빈주(賓主)를 여의었어. ‘주관 객관, 너다 내다’하는 그러한 마음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여. 적적요요(寂寂寥寥)해서, 고요하고 고요해서 모든 ‘색상(色相)이다, 이것은 진공(眞空)이다’ 그런 색공의 견해도 다 끊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목전(目前)에 분명취(分明取)하라. 우리 눈앞에 형단(形段)이 없으되—볼라야 볼 수도 없고, 만질라야 만질 수도 없고, 알라야 알 수 없는—이놈이 분명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이 알라야 알 수 없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해.


“의심이 독로해서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없으면 아주 깨달을 수가 없다”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그 의심이 간절하고 크고 깊어서, 나의 마음과 밖과 온 허공계가 온통 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으로 꽉 찰 때,

우주 법계를 다 삼키고 남을 만한—눈으로 온 세계를 다 삼키고, 온 세계를 콧구멍으로 들어마셨다 뱉을 수 있는 그러한 큰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산입백운중(山立白雲中)이다. 산은 우뚝 백운(白雲) 가운데 섰느니라.(17분48초~27분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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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투득하다(透得-- 통할 투,얻을 득) ; (사람 무엇)막힘 없이 환하게 깨닫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돈독(敦篤)하다(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신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몽산(蒙山)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인사(人事)사람 사이 지켜야  예의 간주되는 또는 그러 예의 키기 위한 행동.

*삼경(三更) : 二경~四경 (밤 9시~새벽 3시)으로 불가(佛家)의 지정된 취침시간.

*공양(供養)을 청(請)하다 ;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경(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문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노선(線)개인이나 조직단체 따위 일정한 목표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따르는 활동 방침.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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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그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을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미륵보살(彌勒菩薩)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신근(信根) ; 신(信, 진리에 대한 확신)의 뿌리. 신념(信念,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기초. 신근의 근(根)은, 나무뿌리와 같이 능히 유지시키는 것과 생기게 하는 것을 뜻함.

[참고] 신(信) : ①진리에 대한 확신。 ②신은 마음을 맑게 하고 해태를 막는 정신작용이다。 마치 수정주(水精珠)가 능히 탁한 물을 맑게 하듯이 마음에 신(信)이 있으면 마음으로 하여금 맑게 하는 것이다.

보살본업경(菩薩本業經)에 「만약 일체중생이 처음에 삼보의 바다에 들어오매 신(信)으로써 근본을 삼고 불가에 머무르거든 계(戒)로써 근본을 삼으라」하시고,

지도론(智度論)에 「불법대해(佛法大海)에는 신(信)으로 능입(能入)을 삼고 지(智)로 능도(能度)를 삼는다」하시며, 화엄경에 「신(信)은 도(道)의 으뜸이 되고 공덕의 어머니가 된다(信爲道元 功德母)」하신 것이다.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섭호하다(護-- 도울 섭,보호할 호) ; (부처님이 중생을) 받아들여 보살피다.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취정계(三聚淨戒) ; 대승불교 보살(菩薩)이 지녀야 할 계법(戒法, 부처님이 정한 계율의 법)에 대한 총칭. 삼취청정계, 삼취계라고도 한다. 섭률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로 나뉜다.


①섭률의계는 5계·10계·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儀) 등을 지켜 일체의 허물과 악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지악문(止惡門)이라고도 한다.

②섭선법계는 적극적으로 일체의 선을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선문(修善門)이라고도 한다.

③섭중생계는 자비심으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는 일체의 이타행위를 말한다. 권선문(勸善門)이라고도 한다.


①섭률의계 ②섭선법계는 자리(自利)이며, ③섭중생계는 이타(利他)행위이다. 모든 계법은 그 어느 것이라도 이 3가지에 포함되는데, 청정하기 때문에 정계(淨戒)라고 한다. 취(聚)는 집적(集積)의 뜻.


원효대사는 삼취정계 가운데 ①섭률의계는 단()의 덕목(德目)이고, ②섭선법계는 지()의 덕목이며, ③섭중생계는 은()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의 과()를 얻으면 그것이 곧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삼취정계를 간직함에 따라 중생과 자기의 내심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여래장(如來藏)·본각(本覺)·불과(佛果)를 볼 수 있게 됨을 강조하였다.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게송) ‘역력이빈주~’ ; 『청허집(淸虛集)』 ‘贈道能禪子’ 참고.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빈주(賓主 손님 빈,주인 주) ; ①손님과 주인. 객관(客觀)과 주관(主觀). 현상세계와 절대의 진여(眞如). ②수행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음. 제자(賓)와 스승(主).

*형단(形段 모양 형,구분 단) ; ①형태. 형태로 나타나서 보이는 것. ②모양. 외양.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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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무상(無常)2015.03.03 14:33

§(세등10) 인생 무상,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가 내려져 있는 신세 / 몽산 화상 출가 동기 / 생사가 무서운 포구발심(怖懼發心)과 철저한 일념 단속.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약 11분.



오늘 삼동 구순 안거(九旬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고(故)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전강 대종사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잘 들으신 바와 같이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출가 동기와 중국의 고봉 선사(高峰禪師)께서 3년을 기한을 하고 ‘3년 동안 열심히 도를 닦아 가지고 견성(見性)을 못하면 내가 죽어 버리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고,


3년 동안 밥 먹고 옷 입고, 일체 생활을 다못 화두(話頭) 하나 들고 정진하는 것으로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건마는 조그만큼도 공부가 진행이 없어서, 3년 기한은 머지않았는데 도는 성취를 못해서,


‘이제 나는 죽는 수 밖에는 없구나’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그러던 차에 꿈에 화두를 얻어 가지고 일주일 만에 대도를 성취한 고봉 스님의 도를 통하신 설화를 말씀을 해 주시고,

그러는 가운데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러한 화두 드는 법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조실 스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 마다 참선 이야기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느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머지않아서 우리는 죽음의 마당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니 됩니다.

단명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죽어서 나오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10년 또는 30년 많이 살아 봤자 육칠십세 혹은 칠팔십세까지 살다가 죽는 이도 있지마는,

한번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아니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코앞에 ‘죽을 사(死)’자를 딱 써서 붙여 놓은 이 마당에 사소한 일로 시비, 인간으로 태어나서 크고 작은 어떠한 일이라도 ‘죽을 사(死)’자 앞에는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도(道)를 닦을라면은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깨닫지 아니하고서는 그 사람은 도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맨 처음에 말씀하신 몽산 화상도 애당초에는 유교 사상(想)에 철저히 젖어 있는 선비였습니다.


‘불교’ ‘스님’하면은 진절머리를 내고, 절 근처에는 지나가다가도 보지도 아니하고, 목탁 소리가 나면 귀를 막을 정도로, 중을 보면은 어제 먹은 밥이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비위가 상하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반대하던 그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선영(塋)에 성묘(省墓)를 갔다가 오는 길에 비가 쏟아져서 잠깐 절 일주문(一柱門)에서 비를 피하다가, 거기서 절에서 화엄경을 설하는 법문을 한마디 듣고 그리고 집에를 와서 낮잠이 들었다가,


꿈에 어떤 노인이 와 가지고 흰 옷을 입힐라다, 검은 옷을 입힐라다 이러는 가운데에 그런 싱갱이를 하고 있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 노인을 꾸짖으면서 ‘금방 오늘 절에서 화엄경 법문을 들었는데 그 사람에게 어찌 그런 옷을 입힐 수가 있느냐’고 꾸짖어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깨서 보니까, 그 꿈에 본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강아지 새끼가—개가 새끼를 나았는데 흰 새끼가 죽어 있었다.


이러헌 광경을 보고서 ‘아하, 내가 틀림없이 이 흰 강아지로 태어날 것을 오늘 절 일주문에 비를 피하다가 화엄경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그 공덕으로 강아지 보(報)를 받을 것을 면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절에 가서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를 만나 가지고 참선법(參禪法)을 배워 그래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고 하는 그러한 법문이 계셨습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출가(出家)한 스님만 할 수 있는 것이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속가(俗家)에 있어도 정말 생사가 두려운 줄 깊이 느끼고, 생활 속에서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만을 올바르게 단속 할 줄만 안다면 어디서나 바로 그 자리가 참선하는 도량(道場)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하더라도 무상을 철저히 느끼지 못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한량없는 무명(無明), 업식(業識), 번뇌(煩惱), 망상(妄想) 일어나는 놈을 단속할 줄을 모르고,

일어나는 한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을 훨훨 피우며 오욕락(五欲樂)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하면은,


아무리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고 가사(袈裟)를 몸에 걸쳤을망정 견성성불은 막연하고 요원한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처음~10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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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라 하는데, 하안거(夏安居,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의 한 안거 기간이 90일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라 한다.

*전강 선사, 몽산 화상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봉 선사(高峰禪師)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