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군(魔軍)'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15.01.25 §(227) (게송)일견명성몽변회~ / 석가모니 수행기 / 轉識成智 /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랐을까? 깨닫고 나면 그 경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 불법(佛法)의 위대성.
  2. 2014.09.24 §(013) 신심, 분심, 의심 / 참선은 마군이와의 전쟁 /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
  3. 2014.06.23 §(306) 화두 / ‘이뭣고?’-효과와 공덕 / 법(法)의 양식(糧食), 심농(心農) / 노정기(路程記) / 법의 기쁨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4. 2014.06.19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5. 2014.06.13 §(401)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6. 2014.06.05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7. 2014.06.04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8. 2014.04.30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
  9. 2014.03.26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10. 2014.03.17 §(184) 우리는 어떻게 바른 스승을 만날 수가 있을까? 무엇을 보고 바른 스승을 분별을 헐 수가 있을 것인가? / ‘한 생각’ 돌이키면 ‘한 생각’ 성불(成佛)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법회(성도재)2015.01.25 18:01

§(227) (게송)일견명성몽변회~ / 석가모니 수행기 / 轉識成智 /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랐을까? 깨닫고 나면 그 경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 불법(佛法)의 위대성.


부처님께서 어떻게 해서 수행을 하셨으며, 무엇을 깨달으셨으며, 깨달으신 결과 우리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셨느냐?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불법을 믿고, 어떻게 닦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사실 무엇을 깨달으며, 깨달은 경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깨달아 보지 않고서는 그 경계는 알 수가 없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생로병사요, 성주괴공이요, 무상하고 의지할 것 없는 꿈이요, 그것을 따라서 몸부림치고 헤매는 중생은 바로 그것들이 생사윤회(生死輪廻)의 현장이지만,

자성(自性)을 깨닫고 보면, 진리를 깨닫고 보면 1초 전의 생사요, 지옥이요, 고해(苦海)가 바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極樂世界)요, 부처님의 끝없는 진리의 세계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27)—83년(계해년) 성도재 법회(82.12.08.음)


(1) 약 20분.  (2) 약 19분.


(1)------------------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한데  천년도핵장청매(千年桃核長靑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하니, 한 번 밝은 별을 보고 꿈이 문득 돌아오니,

천년도핵(千年桃核)이 장청매(長靑梅)로구나. 천 년 묵은 복숭아씨에서 푸른 매화가 자랐구나.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비록 이 매화가 국의 맛을 고르지는 못하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일찍이 장군(將軍)에게 주어서 목마름을 그치게 했느니라.



오늘은 계해년 섣달 초여드레, 납월팔일(臘月八日),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를 통하셔서 성도(成道)를 하신 날입니다. 불교의 사대명절(四大名節) 가운데에 제일 의(義) 깊은 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사월 초파일(日), 그리고 부처님께서 왕궁을 버리시고 출가하신 2월 17일,

그리고 부처님께서 도통(道通)하신 견성성불(見性成佛)하신 오늘 섣달 초여드레, 그리고 부처님께서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신 2월 15일, 이렇게 해서 사대명절이라 하는데,


사월 초파일은 남녀노소와 승속과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사월 초파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정작 부처님께서 도를 통해 가지고 성불을 하신 납월팔일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또 출가를 하셨다 하더라도 납월팔일 이 성불을 하시지 못했다면, 성불하신 날이 없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불을 하셨기에 부처님의 탄생이 참으로 뜻이 있는 것이며, 출가하신 것도 뜻이 있는 것이며, 열반하신 것도 또한 뜻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탄생을 하셔 가지고 ‘19세에 출가를 하셨다’ 어떤 경전에는 그렇게 되어있는 데도 있고, 또 경전에 따라서는 ‘29세에 출가하셨다’ 이렇게 되어있는 데도 있습니다.


‘19세에 출가하셔 가지고 12년 동안을 고행(苦行) 정진을 하신 끝에 30세에 성도(成道)를 하셔서 80세에 열반하셨다’ 『반니원경(般泥洹經)』 이런 경전에는 그렇게 되어있고,

『팔리어 열반경(涅槃經)』이나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나 『유부잡사(有部雜事)』 같은 경전에는 ‘29세에 출가하셔서 6년 동안을 고행하시다가 35세에 성도하셔 가지고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북전(北傳)으로 전해 내려오는 계통에서는 ‘19세에 출가하셔서 12년 고행하셔 가지고 30세에 성도하셨다’고 이렇게 옛날 우리나라 옛날 스님네는 죽 그렇게 믿고 내려왔는데,


근세에 와서 많은 불교학자들이 여러 경전을 분석하고 종합하고 이렇게 해서 연구한 결과,

‘29세에 출가해 가지고 6년 동안 고행을 하셔서, 35세에 성도하셔 가지고 80세에 열반했다’고 하는 그 경전의 말씀이 여러 가지 경전과 여러 가지 점으로 비추어 볼 때에 더 타당성이 있다고 그렇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19세에 출가하셔서 12년을 고행을 하셨건, 29세에 출가하셔 가지고 6년을 고행하셨건, 35세에 성도를 하셨느냐 30세에 성도하셨느냐, 그것은 경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꼭 어느 것이 옳다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논란을 하고 시비를 할 것이 못됩니다.


이것은 불교학자나 사학가들이 연구할 문제고, 우리 불법을 믿고 수행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그 35세 설(說)이나 30세 설에 너무 지나치게 시비를 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부처님께서 어떻게 해서 수행을 하셨으며, 무엇을 깨달으셨으며, 깨달으신 결과 우리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셨느냐?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불법을 믿고, 어떻게 닦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점이 우리에게는 보다 더 소중한 일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출가하셔 가지고 그때 당시 널리 알려진 선인(仙人)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말이면 큰 도사(道士)를 찾아갔는데,


'알라말라'라고 하는 도인을 찾아가서, 그 도인 밑에 제자가 되어 가지고 그 알라말라 도사의 지시에 따라서 정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수행을 해서 그 도인이 이르른 무소유(無所有)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도인은 쾌히 인가를 하고 길이 자기의 제자가 되어주기를 바랬지만 부처님께서는 그 스승보다도 더한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마음에 만족을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스승을 버리고 또 다른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 스승은 '우타카'라고 하는 도사인데 그이를 찾아가니까 그 도인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하는 최고의 목표를 향해서 수행을 쌓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 우타카 도사 밑에서 위법망구적으로 도를 닦아서 그 스승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서 스승은 매우 훌륭한 제자를 만났다고 흡족하게 생각했고, 또 자기 밑에 머물러 있기를 바랬지만 부처님은 거기에서도 당신의 마음에 흡족함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어째서 그 두 선인(仙人), 두 스승이 당신의 궁극의 목적이 아니냐’하고 판단을 내렸냐 하면,

그 두 신선이 참으로 종교적 진리, 다시 바꾸어서 말하면 ‘구경(究竟)의 깨달음을 체득치 못했다’고 부처님께서는 판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무소유'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입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내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무심(無心)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게고,

'비상비비상처'라고 하는 것은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가 가지고, 그것도 역시 자기의 모든 생각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이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는 의식을 완전히 초월해 버리는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무심한 경계에 들어가서 그러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간 그것 자체만으로서는 이것을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판정이 되셨기 때문에 또 그 우타카라고 하는 두 번째 스승도 버릴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의 붓다가야 근처에 니련선하(尼連禪河) 가까이에 있는 숲속에 들어가서 가장 도 닦기에 알맞는 장소를 선택해 가지고 한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서 동쪽을 향해서 자리를 잡고서,


『내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결정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고 도를 닦기 시작하는데 마왕(魔王) 파순(波旬)이, 악마의 무리들이 갖은 방법을 써가지고 부처님의 도 닦는 것을 방해를 쳤습니다.


처음에는 무력으로써 그것을 방해를 치고, 차크라라고 하는 그 뿔이 돋친 쇠뭉텅이 그런 것을 던져가지고 그놈에 맞으면 박살이 나는 그러한 것을 모다 부처님한테 던지기도 하고,

큰 바위산을 무너뜨려가지고는 그냥 바위산을 부처님한테로 미틀어 버리기도 하고, 온갖 미친 코끼리를 몰아가지고는 부처님을 갖다가 막 해꼬자할려고 하기도 하고 별별 짓을 다했지만,


차크라는 부처님 머리위에 와서는 꽃송이가 되어 가지고, 꽃송이로 얽어진 일산(傘)대가 되어 가지고 부처님을 받들어 드리게 되고,

큰 바위산을 갖다가 미틀어서 부처님한테 미틀은 것이 그것이 또 꽃이 되어 가지고 아름다운 꽃이 되어서 떨어지고, 도저히 완력(力)으로서는 어찌 해 볼 수가 없게 되자,


그 자기의 아름다운 딸 셋을 갖다가 이쁘게 단장을 해 가지고 미인계(美人計)를 써서 부처님을 현혹(惑)할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 부처님을 갖다가 방해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세 딸이 가서 갖은 아양을 떨고 유혹을 했지만, 그러한 짓은 마침내 연꽃 줄기로 산을 부술려고 한 거와 같았으며, 손톱으로 바위산을 파내려고 하는 거와 같았으며, 이빨로 쇠를 씹어서 가루를 만들려고 한 거와 같아서,

자기의 힘만 소모가 되었을 뿐 조금도 부처님을 해롭게 하고 방해를 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마왕 파순이의 무력과 완력으로 당신을 온갖 방법으로 해롭게 해 왔지만,

내가 이러한 마군(魔軍)이와의 싸움에서 져 가지고 사는 것 보단 차라리 이 마군이와 싸워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러한 무력의 침범과 그러한 미녀들의 유혹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아니하고 그러한 것을 다 이겨내셨습니다.


실로 수도(修道)의 마음을, 도를 닦을려고 마음을 내면 누구나 여러 가지 형태의 악마(惡魔)와 투쟁을 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비단 삼천 년 전의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 출가해서 도를 닦으려는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속가에서 도를 닦으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날부터 직접 간접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여러 가지 각도에서 나의 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는 악마와 투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 사람이 도를 닦아서 도를 이루게 되면, 마구니의 무리가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구니의 궁전이 들썩들썩해서 넘어질려고 하기 때문에—마왕들은 자기의 영토가 무너지고, 자기의 궁전이 무너지고,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들까지 설 땅이 없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도 이루는 것을 방해 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15초)



(2)------------------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은 그 마구니와 싸워서—그 마구니는 무력으로 오는 마구니와 그 미인이 되어 가지고,

미인이라고 하는 표현은 순경계(順境界), 부드러운 그러한 방법으로 나를 갖다가 현혹해 오는 그러한 마구니,


실지는 무력으로 닥쳐오는 마구니보다도 이러한 부드러운 방법을 써서 나를 가장 위하고, 나를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다가오는 마구니는 참으로 이겨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무력의 마구니나 부드러운 마구니와 싸워서 지면 그대로 그 마구니의 노예가 되는 것이며, 그 마구니와 끝끝내 싸워가지고 내가 이기면 출세간(出世間)의 새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마구니가 도리어 귀화해 가지고 나의 수호신이 되는 것이며, 나를 방해치던 모든 마구니의 권속들은 나를 도와주고 아껴주는 나의 동포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나를 방해치고 못살게 굴고 잠시도 나의 마음 편안해질 기회를 주지 않던 그런 8만4천의 번뇌(煩惱)의 마구니는 일전(一轉)해 가지고 나의 보리(菩提)로 깨달음으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유식(唯識)에서는, 범부(凡夫)에 있어서의 식(識)은 전5식(前五識)—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전5식이나, 의식(意識)—제6식(第六識)이나, 7식(七識)이나, 제8아뢰야식(第八識),

이 식(識)이, 깨달라버리면 그 식(識)이 변해서 지(智)로 변한다」 이것입니다.


평등성지(平等性智)나 묘관찰지(妙觀察智)나 대원경지(大圓鏡智), 성소작지(成所作智)와 같은 이런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닫기 전의 마구니들이, 깨달으면 그것이 나의 수호신이 되며, 나의 권속이 되며, 나의 위없는 깨달음으로 변한다는 말과 같은 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깨달으면 대관절 무엇을 깨닫느냐?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라 가지고 도를 깨달으신 날인데, 대관절 무엇을 깨달랐을까? 대단히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을 합니다.


대관절 무엇을 깨달랐을까? 깨닫고 나면 그 경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사해탈한다. 생사 속에서 생사가 없는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들어간다’ 막연하게 이렇게들 말을 하고 그런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무엇을 깨달으며, 깨달은 경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깨달아 보지 않고서는 그 경계는 알 수가 없다」고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치(理致)와 지혜(智慧), 이지(理智)가 둘이 아닌 세계다. 또는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 생각할 뿐이다.

또는 자수용(自受用)하는 스스로 당신만이 맛볼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법락(法樂)이다. 또는 해인삼매(海印三昧)다, 여여실실(如如實實)이다.」 그 깨달음의 경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마는,


「무진평등(無盡平等)한 그 진리가 자기 육신에 가득차 가지고 가없는 다함이 없는 적멸(寂滅)의 선(禪)의 낙(樂)이 넘쳐흐른다.

그 적멸한 채로 그냥 일체가 다 그 적멸한 경계 속에 다 돌아가는 것이며, 그 침묵한 채 더할 나위 없는 그 훌륭한 정법이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입을 벌려서 법을 설한 것이 아니라 그 적멸의 법락 속에 있는 바로 그 침묵의 그 상태에서 최고의 법이 여지없이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적적(寂寂)한 침묵 속에서 대웅변이며, 대설법이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그러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하신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최고의 진리, 영원한 진리, 영원히 생사 없는 이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일러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사유(思惟)를 하실 때에 마왕(魔王)들이 나와서 『당신이 혼자 깨달랐으면 그만이지,

그것은 누구에게 말해봤자 아무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공연히 입을 벌려서 그 법을 설해봤자 입만 아프고 피로할 뿐이지 아무 성과를 거둘 수가 없을 것이니 법을 설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마구니들이 부처님을 갖다가 행여나 법을 설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달은 사람이 나올까봐 그렇게 방해를 쳤습니다.


그때 천상에서 또 부처님께 여쭙기를,

『이 많은 중생 가운데에는 정법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부처님께서 방편(方便) 따라서 법을 설하시면 차츰 근기(根機)가 수승해지면 반드시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중생의 근기 따라서 방편을 설하셔서,

차츰차츰 근기 따라서 소승법으로부터 중승법, 대승법, 그래 가지고 최상승법에 이르기까지 법을 차츰차츰 근기 따라서 설해 가지고 마침내는 위없는 법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도 방편문을 열어주십시오.』


이렇게 간청을 해 가지고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깨달으신 뒤 그 침묵한 가운데에 21일간에 걸쳐서 화엄경(經)을 설하셨습니다.


화엄경은 입을 열어서 설하신 경전이 아니고 최초에 부처님이 성불하시자마자 침묵한 가운데에 설해진 경전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들으라고 설하시기 보다는—중생의 근기 맞춰서 설해진 경전이 아니고, 오직 자내증(自內證)의 경전, 당신이 깨달은 바를 고대로 침묵 속에서 설해졌을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함경 12년과 방등경 8년과 21년간에 걸쳐서 반야경을 설하시고, 마지막 8년간은 법화경을 설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 12부경전(十二部經典)을 설하셔 가지고 80세를 일기로 해서 열반에 드셨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법은 근기 따라서 그렇게 많은 법을 설하셨으되,

실지에 있어서는 부처님께서 그 적멸하신 채 그 침묵 속에서 설하신 그 법의 극일부분(極一部分)에 지나지 못한 것을 근기 따라서, 장소와 때와 근기 따라서 조금 열어 보여주신 것뿐인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참으로 설하시고자 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자내증의 최고의 법문은 입을 통해서는 다 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전에 나타난 것은 그 일부 밖에는 아니된 것이고, 부처님께서 설하시고자 한 그 위대한 법은 온 법계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달·별들이 반짝거리는 것이며, 봄에는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에는 무성했다가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열매를 맺고, 겨울이 돌아오면 다시 뿌리로 다 돌아가는 이러한 자연현상과,

물이 흐르고 새가 날으고 구름이 모았다가 흩어지는 모든 현상, 또 이 사람과 동물들이 났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 이런 현상 모든 것이,


모든 이 천상계가 이루어졌다 잠시 머물렀다가 또 변질이 되어가지고 무너져버리는 모든 현상이, 있는 고대로 이것이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생로병사요, 성주괴공이요, 무상하고 의지할 것 없는 꿈이요, 그것을 따라서 몸부림치고 헤매는 중생은 바로 그것들이 생사윤회(生死輪廻)의 현장이지만,

자성(自性)을 깨닫고 보면, 진리를 깨닫고 보면 1초 전의 생사요, 지옥이요, 고해(苦海)가 바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極樂世界)요, 부처님의 끝없는 진리의 세계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법(佛法)의 위대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얼마나 복을 많이 지었기에, 깊은 숙연을 맺었기에 이 무상(無常)한 오탁악세(五濁惡世)요, 생사의 윤회의 바다 속에서 최고의 위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깨닫지 못한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이 세계는 사방에서 불이 훨훨 타고 있고, 지금 타 들어오고 있고, 우리도 그 불에 의해서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러한 위경(境)에 놓여 있지만,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수행을 한 사람에게는 훨훨 타는 불은 나로 하여금 해태(怠)를 부릴 수 없게 해주는 스승의 불보살의 채찍이요,

인간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핍박해 오는 모든 괴로운 조건들은 나로 하여금 잠시도 해태를 부릴 수 없고 한 눈을 팔 수 없게 하는 그러한 불보살의 거룩한 채찍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설사 우리가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발심(發心)을 한 사람과 발심을 못한 사람에 따라서는 모든 것들이—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 몸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그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하물며 깨달음을 얻은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에게는 찰나간(剎那間)에 어제의 마구니는 정법을 수호하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변하고,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던 원수는 나의 도반(道伴)이요, 나의 스승이요, 나의 영원한 선지식(善知識)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한 말로 말해서 팔만사천의 번뇌의 마구니가 일전해서 무상대각(無上大覺)으로 변함에 있어서이겠습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견성성불하신, 불교 4대명절 가운데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맞이해서 재발심(再發心)하고 새로운 각오로써 자기의 오늘날까지의 모든 것을 재검토하고, 자기의 신앙과 자기의 신심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해서 진정한 신심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할 줄 생각을 합니다.(20분16초~39분19초)



------------------(1)


*(게송) 일견명성몽변회~’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권 3칙 '오도(悟道)' 취암종(翠嵓宗) 게송 참고.

[참고]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내용으로,

조조(曺操)가 장수(張繡)를 정벌할 때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고통이 아주 심했는데, 이때 조조가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저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잠시만 참고 힘을 내자.”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잊게 되었다 한다.


육조 시대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지은《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있는 내용으로,

진(晉)을 세운 사마 염(司馬炎)이 오(吳)나라를 공격할 때 길을 잘못 들어 헤매어 식수가 바닥이 났고,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어 병사들은 갈증이 심하여 더 이상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때 사마염은 문득 꾀를 내어 말하기를 “여러분 조금만 참고 가면 저 언덕 너머에 매화 숲이 있소. 그 곳에 가면 매실이 가지가 휠 정도로 매달려 있소.”

매실이란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갈증을 잊었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이르는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반니원경(般泥洹經) ; 2권. 역자 미상.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과 같은 것으로 다른 번역본.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은 서진의 백법조(白法祖) 번역으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일을 기록한 것. 『장아함유행경(長阿含遊行經)』과 같다.

*설(說)견해 주의학설 따위 이르는 .

*선인(仙人) ; 도를 닦는 사람.

*도사(道士) 많이 닦아 어느 정도 경지 이른 사람.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선정(禪定) : 6바라밀의 하나로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붓다가야(buddhagayā) ;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네란자라(nerañjarā) 강변에 있는,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미틀다 ; ‘밀뜨리다(어떤 사람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갑자기 차고 힘있게 밀어 버리다)’의 사투리.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현혹(眩惑 아찔할·어두울 현,미혹할·어두워질 혹) ; 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 또는 그렇게 되게 함.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2)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출세간(出世間) ; 세속의 번뇌를 떠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름.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시킨 깨달음의 심리 상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일전(一轉)마음이나 사태 아주 달라지거나 바뀜.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유식(唯識) ; 모든 차별 현상은 오직 인식하는 마음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일체는 오직 마음 작용에 의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지(智)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것. 팔리어 paññā  지혜. 혜(慧).
*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제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함.
*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에 해당하는 오염된 제7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제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법(法)의 실상을 묘하게 잘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함.
*성소작지(成所作智) ; 눈·귀·코·혀·피부 등의 5관(五官)으로 느끼는, 오염된 전5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함.

*자수용(自受用)깨달음의 경지를 되새기면서 스스로 즐김.

*법락(法樂) ; ①석존이 깨달은 뒤 1주간, 자신이 깨달은 법을 회상하며 즐거워한 것. ②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이 낳는 즐거움. 법의 기쁨. 가르침을 믿는 기쁨.

*해인삼매(海印三昧) ;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도장 찍히듯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인다는 뜻으로 모든 번뇌가 사라진 부처님의 마음 속에는 과거와 현재·미래의 모든 업이 똑똑하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참고]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자내증(自內證) ; 자신의 마음을 깨달음. 자신이 직접 체득한 깨달음. 스스로 체득한 내면의 깨달음. 자내소증(自內所證), 자심내증(自心內證).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십이부경(十二部經)은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그 경문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住] 정토(淨土).

상적광토는 이상(理想)과 현실(現實), 정(靜:寂)과 동(動:光)의 본래(本來:常) 일체(一體)인 세계로 그것은 여기와 저기,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넘어 체득되는 참된 절대계(絕對界)이고, 상주(常住)의 정토(淨土)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위경(境)위태로운 처지 지경.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신심(삼요)2014.09.24 07:22

§(013) 신심, 분심, 의심 / 참선은 마군이와의 전쟁 /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올바르게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은 다 이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참선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대문으로 쳐들어오는 팔만사천 마군이를 물리침으로서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해탈(解脫)하는 것이고, 당장 현세에 그러한 도적놈에게 시달리지 않고 대자유·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최고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차라리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써, 초학자로써 숨을 거두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서는 '알았다'는 생각을 갖지 맙시다.
**송담스님(No.13)(참선법E) - 76년 1월 관음재일 법문(76.01.24.음)


(1) 약 9분.  (2) 약 13분.


(1)------------------

참으로 참선(參禪)을 철저히 할라면은 인자 ‘생각을 바르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갖느냐? 처음에 몸을 바르게 하는 법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마음, 생각하는 것을 바르게 하는 법을 알아야 됩니다.

이 생각을 바르게 할라면은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부처님과 같이 또는 달마(達摩) 스님이나 서산대사나 사명당이나 그러한 과거의 도인(道人)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올바르게만 이 공부를 하면은 나도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이것을 믿지 않고서는 참선은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뭣한 사람들은 “말세는 참선했자 소용없고 아미타불 불러야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그런 말씀은 그 말씀에 해당하는 그 사람에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부처님의 정법에 입각해서 말씀드린다면은 “올바른 신심으로 올바르게 지도를 받아서 올바르게만 하면은 아무리 말세라 할지라도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말세도 상관이 없고, 여자도 상관이 없고, 노인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다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올바르게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은 다 이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인제사 불교에 왔기 때문에 도저히 견성성불은 가망 없고 그저 인연이나 맺었다가 내생에나 하자.’ 이런 생각은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결단코 금생에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또 금생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해야 이 공부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지, 그 믿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전쟁도 아무리 적군이 많고, 아군이 수효가 적고 무력이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죽음으로써 이길 각오를 하고, 만약에 이기지 못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대들면은 10대 1 밖에는 안 되는, 100대 1 밖에 안 되는 적은 군사력을 가지고도 능히 전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참선도 전쟁입니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눈으로 코로.. 아까 조실스님께서 여섯 가지 도둑놈(六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는, 팔만사천의 도둑놈이 여섯 문(六門)으로 틈만 있으면 침범해 들어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왕에다 비교합니다. 심왕(心王).
심왕성(心王城)인데, 이 몸뚱이는 심왕의 성(城)인데, 그 성에 여섯 문(六門)이 있습니다.
눈, 코, 귀, 입, 몸뚱이, 의(意) 여섯 가지 문이 있는데, 그 여섯 문을 통해서 팔만사천의 마군이의 군사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들어와 가지고 이 심왕을 공격해 들어오는 이러한 무서운 전쟁입니다.

그래서 국가와 국가의 전쟁은 군인들이 싸우고, 국민은 그 마음이 단합해 가지고 뒷받침만 하면은 직접 총칼은 안 들어도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마음의 왕을 공격해 들어오는 팔만사천의 마군이 군사는 우리가 직접 싸워야 됩니다. 직접 싸우지 않고 남이 우리의 싸움을 막아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놈을 못 막고 그 팔만사천의 마구니 군사에 진 사람은 결국은 지옥에 가는 것이고, 그놈을 싸워서 끝까지 내가 물러서지 않고 싸워서 이겨낸 사람은 극락에도 가고 견성성불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다가 조금 착한 일 하면 천당에 갔다가,
악한 일 하면 짐승이 되기도 하고, 성을 많이 내면 독사나 구렁이가 되기도 하고, 또 더 사람을 죽이고 못된 죄를 퍼 지으면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참선법은 이 팔만사천 마군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대문으로 쳐들어오는 팔만사천 마군이를 물리침으로서 무량겁으로 윤회하는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해탈(解脫)하는 것이고,
당장 현세에 그러한 도적놈에게 시달리지 않고 대자유·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최고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첫째, ‘하면 된다’고 믿어야 됩니다.

둘째에 가서는 무엇 때문에 과거의 부처님과 보살님과 도인들은 이 문제를 진즉 해결을 해서 그런 성현이 되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해탈하시고 대해탈도를 증득을 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무엇 하느라고 이렇게 육도윤회를 하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행복을 얻지 못하고, 앞으로 눈 한번 감으면은 지옥에 떨어질런지 축생이 될런지 모르는 이러한 환경에 놓여져 있는가?

생각해 보면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배불리 먹고 호강하고 살면은 그것이 전부가 될는지 모르지마는,
이 인과의 법칙—이 문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육도에 윤회할 그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그 이치를 우리가 알고 믿고 느끼는 사람이라면은,
나는 왜 오늘날까지 이렇게 해탈을 하지 못하고 윤회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속에서 분통이 나지 아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분심(憤心)이 나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다행히 내가 금생에 이 사람 몸 받아 가지고 이 정법(正法)을 만났다. 늦게 만났지마는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다행한 마음과 아울러서, 그러니 알고서 안 할 수가 있느냐? 나도 해야겠다’고 하는 용맹심이 속에서 북받쳐 올라야 되는 것입니다.

게을러 빠져가지고, 하거나 말거나 육도윤회를 하거나 말거나, 남이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면은 그러한 사람은 이 공부를 해 봤자 별 수가 없습니다.

용맹심(勇猛心), 분심(憤心), 아까 처음에 신심(信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심과 용맹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것이 있어야 그 다음에 이 ‘이뭣고?’ 화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의심(疑心)입니다. 의심!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의심하는 거여.(23분30초~31분43초)


(2)------------------

이것은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추리고 간추려서 골수만 뽑아서 만들어 놓은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믿고 고대로 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한다고 하면은 무엇 때문에 조실스님께서 팔십 고령(高齡)에 이르도록 가만히 당신 공부하시고 조용히 지내시면은 편하실 텐데,
팔십 고령에 혈압은 그렇게 200이 넘나드시면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 피를 토하는 그러한 간곡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한 그런 법문을 마지막 열반하신 날까지 그렇게 해주실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이 법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렇게 여러분들의 생사해탈하는 데에 유일한 묘방(妙方)이기 때문에 마지막 이 사바세계를 하직하신 그날까지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큰스님의 법은(法恩)을 갚는 길은 오직 여러분 자신들이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길 (법문 끊김) ...묘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질 것, 둘째 바른 호흡을 할 것, 셋째에 가서 바르게 생각을 가다듬는데,

생각을 바로잡을려면은 첫째 나도 성불할 수 있다고 믿고, 나도 하면은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성현(聖賢)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 다음에, 무엇 때문에 나는 오늘날까지 이러한 좋은 방법을 몰랐던가? 알고서도 왜 그렇게 철저히 공부를 못했던가? 이것에 대해서 분심과 용맹심을 내시고,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을 가지셔야 됩니다. 의심이 간절할수록에 의심이 크고 의심이 클수록에 크게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법은 100번을 말씀드리고 1000번을 말씀드리더라도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아주 뼛속에 이것을 새겨야 됩니다.
가슴속 깊이 새겨서 언제, 어디서, 누가 묻더라도 이 참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으셔야 됩니다.

애매하게 갈팡질팡 이러면 된 것인가? 저러면 된 것인가?
저기 가서 들으면 이렇게 말하고, 여기 와서 말하면 저렇게 말하고 해서,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어느 방법이 옳은가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여기 용화사 전강 조실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 방법이 가장 옳은 방법이고 그렇게 하면 틀림없다고 믿고,
어디 가서 다른 절이나 다른 스님네 법문을 듣더라도 다 좋은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정성스런 마음으로 들을지언정,

이 참선해 나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기 와서 듣고 그렇게 조금 해보다가, 또 저기 가면 그대로 해보다가 갈팡질팡 하면 공부가 못쓰게 되는 것이니깐,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기 조실스님께서 지도하신 대로 아주 딱! 고정을 해서 그렇게만 해 가시고,
다른 법문을 듣거나, 다른 경책(經冊)을 보거나 하는 것은 전부 내 공부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정성스럽게만 받아들일 뿐이지,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갈팡질팡 하시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공부해 들어가다가 아주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그러한 신기하고도 묘한 그러한 싱그러운 경지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절대로—그리고서 그 나타난 것을 보고서 ‘아! 이것이로구나!’ ‘참! 좋구나!’ ‘바로 이것이 도통이구나’—이런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이 나타나건, 또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건, 또는 꿈속에 비몽사몽간에 별별 신기스런 경지가 나타나도 그것은 ‘헛것’이 보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나타나서 뭐라고 설법을 하셔도 그것은 ‘헛것’입니다.

‘환(幻)’—꼭두각시, 환(幻)으로 나타난 것이지 그것이 실상(實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나타나더라도 눈 하나 까딱하지 말고 더욱 정신 차려서 화두를 들고 나가셔야 됩니다.

만일에 그러헌 신기한 경지가 나타났다고 해서 거기에서 기쁜 마음을 내 가지고 그놈을 따라가다 보면은 여러분은 영영 헤어나지 못할 마군이의 소굴로 흘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떨어졌다 하면은 그 다음에는 부처님이 출현하셔도 그 사람 병은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시다가 다 한 철 내지 두 철, 세 철 열심히 하다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견처(見處)가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어떠헌 화두·공안을 보아도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지고, 어떠한 공안을 보아도 하나도 의심이 안 나고,
다 자기 나름대로 공안에 대한 낙처(落處)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믿어지는 때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천하 없이도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지는 공부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요, 중생심으로 중생의 사리(邪理)·상량(商量)으로 알아지는 것은 천하 없는 묘한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는 생각이 있으면은 언제라도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점검을 받어야 됩니다.

옛날에는 선지식이 “너 아니다. 그거 옳게 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은 거기에서 분심을 내 가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기어코 바로 깨달을려고 노력을 했건만,
지금 세상은 선지식이 아니라고 하면은 그때부터서 그 선지식을 돌아서서 비방하고 자기가 아는 척하고 그러한 폐단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차라리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써, 초학자로써 숨을 거두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서는 '알았다'는 생각을 갖지 맙시다.

설사 한 공안, 두 공안 보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자기 힘을 생각해 보면 압니다.
이러한 소견 가지고 과연 부처님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역대 조사와 같은 법력(法力)에 있어서 도력(道力)에 있어서 덕행에 있어서 부처님과 역대 조사에 비교해서 손색이 없겠는가를 언제라도 자문자답을 해 보십시오.

해 봐서 이래 가지고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없고, 부처님과 같다고 할 수 없을 때에는 언제라도 자기의 견처(見處), 자기의 얻은 바를 깨끗이 버리고서 초학자(初學者)의 입장에서 간절히 공부해 나가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足)함을 삼으면은 그 공부는 거기에서 중단이 되는 것이고, 얼마 안 가면은 퇴타(退墮)하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결단코 이 사상(思想)은,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사상 하나는 철저해야 될 줄 압니다. 하물며 설사 바른 소견(所見)이라 하더라고 그렇습니다.
그렇거든 바른 소견이 아닌 공부 중에 환(幻)으로 나타난 그런 걸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에 차질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그 이상 슬프고 통탄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부디, 이 공부는 조급한 마음 갖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늘어져 쳐져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거문고 줄 고르듯이, 기타 줄 고르듯이, 너무 강하게 졸라매도 떨어지면 못 쓰는 것이고, 너무 줄이 늘어지면은 소리가 제 소리가 안 나는 것이고, 가장 적당하게 줄을 골라야만 제 음량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공부도 몸과 호흡과 마음을 가장 이상적이고 지혜스럽게 고르게 하고, 단속함으로써 우리의 공부는 나날이 진취하고 급기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이 공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의심이 나거든 다른 큰스님을 찾아가도 좋고, 또 여기에 오시면은 문의를 하시면은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정성스럽게 말씀을 해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여기 법회 때마다 참 이렇게 많이 오시는데, 오셔서 이 법당에 들어오시면은 오시는 대로 앞에서부터 차츰차츰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오시는 대로 차츰차츰 차츰 뒤로 가시게 되면은 좀 늦게 오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 법회장이 소란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먼저 오셔서 뒤에 가서 떠억 앉아 계시면은 나중에 오신 분들은 그 사이로 오셔서 앞으로 오시기를 꺼려하시고, 대단히 법회 중에 소란하게 되면은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법문 듣는데 장애가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오시는 족족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차곡 이렇게 앉으시면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 좀 해주시고.

그리고 이 관음재 법회는 언제라도 10시 반에 딱 시작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은 조금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시면은 제 시간에 참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시겠지마는, 늦게라도 참석하신 것은 안 참석하신 것보다는 낫지마는 기왕 참석하실 바에는 제 시간에 참석을 하셔서 앞자리부터서 차곡차곡 이렇게 앉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것으로 끝맺겠습니다. 다음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에 영단(靈壇)에 간단한 천도식이 있겠습니다.(42분33초~54분58초)(끝)


------------------(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달마 스님, 서산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 팔만이라 하기도 한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말.
*육문(六門) ; 육근(六根,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을 말한다.
육식(六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는 경우, 그 입구가 되므로 문(門) 또는 뿌리(根)라 하는 것이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용맹심(勇猛心) ; 용감하고 사나운 마음.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2)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묘방(妙方) ; 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306) 화두 / ‘이뭣고?’-효과와 공덕 / 법(法)의 양식(糧食), 심농(心農) / 노정기(路程記) / 법의 기쁨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뭣고?’는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어(86.08.03)에서.


(1) 약 14분.  (2) 약 15분.


(1)------------------

지금부터서 그 오계(五戒)를 지키면서 부처님 제자로써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기 위해서 닦아가는 화두(話頭) 법문을 설하겠습니다.
불명을 이제 타신 분이나, 화두를 타신 분이나, 오계를 받고자 하신 분도 다같이 들으시면 좋습니다.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을 하는 그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퍼르르 성을 내는데 그 성낼 줄 아는 놈. 칭찬하면 기뻐하는데 그 기뻐할 줄 아는 놈. 다치면은 아픈데 그 아플 줄 아는 놈. 배가 고프면 배고픈 밥먹을 줄 아는 놈.

한 생각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독사와 같은 마음이 나는데-나찰귀(羅刹鬼)와 같고 독사와 같이 되는데, 또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며 또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찰나(刹那) 간에 독사도 되기도 하고, 찰나 간에 천사도 되기도 하는, 그러한 그 신기하고도 묘하고 소소영령한 놈이 우리 모두 가슴속에 있어.

그놈을 성이 날 때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중생들은 뭐 하나가 기분이 나쁘면 이 생각 저 생각, 점점 더 생각에 생각을 더 펴 가지고 점점 속이 상해 나가고, 또 누가 미우면 조금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과거에 몇해 전에 있었던 일까지 이 생각 저 생각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점점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러는 법이고,
도(道)를 닦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은 언짢은 일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다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냉큼 ‘이뭣고?’ 이래 버리거든.

누가 미운 짓을 해도 냉큼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구태여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욕을 하고 때리고 속상하는 소리를 해 가지고 그 사람과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도를 안 닦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해서 점점 죄를 짓게 되고 웬수를 맨들고 시끄럽게 맨들고 남과 웬수를 맺게 되는 거고, 집안을 결국은 수라장(修羅場)으로 맨드는 거고,

이 도를 닦는 사람은 여간해서 그런 환경에 휩쓸리지를 아니하고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어.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언제나 마음속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또 귀빈을 맞이해서 사는 그런 마음, 항상 천상(天上)이나 극락(極樂)에서 사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를 젓고 갈 때, 노젓는 사람이 노젓기에 따라서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는 거와 마찬가지여.

도 닦는 사람은 자기의 한 생각을 잘 조정 함으로써 자꾸 자꾸 승화되어 가고 도가 깊어지는 것이고,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눈을 보면 봄으로 해서 죄를 짓고, 뭣을 들으면 들음으로 해서 점점 번뇌(煩惱)의 불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은 최상승법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한마디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만대장경-해인사에 그 팔만대장경 판이 있는데 그놈을 목판에다 찍어보면 수천 권이 되는데 그놈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읽어도 다 해석도 못하죠.
그러나 ‘이뭣고~?’ 한마디를 하면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거와 똑같애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는 공덕이 다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만,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 할라면 백일 동안을 계속 불러야 하는데 ‘이뭣고?’ 한번 하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그만큼 ‘이뭣고?’는 공덕이 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는 ‘이뭣고?’할 때에 당장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바로 실천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여.

노정기(路程記), ‘여기서 어느 목적지에 갈라면은 어디행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 가지고,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얼마를 북쪽으로 가다가 뭐이 나오면 한다.’
그렇게 적혀있는 노정기만 자꾸 읽고 있는 사람과 직접 그런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당장 한걸음 출발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밤낮 농사짓는 법을 책으로 연구하고 해 봤자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장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서 밥을 지어 가지고 밥을 바로 입에다 떠 넣는 것이여, ‘이뭣고?’는.
당장 밥을 떠서 입에다 넣어서 깨물어 먹으면은 배가 부르지만, 밤낮 책만 펴 가지고 농사짓는 법만 연구해 가지고 언제 그것이 배가 부르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농사짓는 법을 잘 연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농사짓는 법도 있지만,
이미 농사 잘 짓는 법 아는 사람과 같이 그 사람과 같이 농사를 짓고, 이미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지어논 놈을 갖다가 밥을 해서 딱 놔주면 입에다 떠 넣어준 것입니다.

‘이뭣고?’하라고 가르쳐 준 것은 밥을 여러분 입에다 떠 넣어준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입에다 이렇게 떠 넣어 주어도 뱉어 버리고 씹지도 않고 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힘으로도 어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해 보세요. ‘이뭣고?’.  ‘이뭣고?’ 한번 할 때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는 거와 같애.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법(法)의 양식(糧食)’입니다. 법의 양이여, 도(道)의 양식이거든.

그래서 이 법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고 잘 씹어서 삼키면 여러분은 도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 심(心)’자, ‘농사 농(農)’자, 심농(心農)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수행하실 때에 들녘을 지나는데,
어느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바라문(婆羅門)이 부처님이 탁발(托鉢)을 하시니까, ‘밥을 못주겠다.’ ‘왜 못주느냐.’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이렇게 먹지만, 당신네들은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밤낮 서늘한 그늘속에 앉아서 있다가 때만 되면 거저 밥을 얻어 먹으러 오니 우리는 공밥 먹는 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가 없다. 이 피땀 흘려서 농사지은 것을 어찌 당신들한테 줄 수가 있겠느냐.’

부처님 말씀이 ‘당신만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나도 농사를 지었소. 당신보다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소.’ (바라문) ‘어찌 도를 닦는 사문(沙門)이 거짓말을 허요.’

‘아하, 거짓말이 아니요. 당신네들은 몸뚱이를 가지고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을 가꾸는 농사를 짓지마는, 우리는 영혼을 해탈케하는 도를 이루게 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다.
당신이 짓는 농사 양식(糧食)으로는 먹어봤자 하루 밖에는 참을 수가 없지만, 우리 마음의 농사는 금생 뿐만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배부르는 그런 농사를 짓는 것이고,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농사는 ‘마음의 농사’야.

농사는 짓는 때가 있고 그 때를 타서 열심히 해야지, 씨만 심어놓고 가꾸지를 안하면 그 농사는 폐농(廢農)을 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때 맞춰서 땅을 갈고, 모자리를 해서 그놈을 때 맞춰서 심고, 그래 가지고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고 그래 가지고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걸 등한히 해 보십시오.
벌레가 다 먹어버리고 물을 맞춰서 주지 않으면 말라죽거나 물에 너무 오랫동안 잠기면은 병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수확을 거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농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농사짓는 모자리의 씨를 심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꾸어서 때 맞춰서 잘 가꾸어 나가야지, 일시라도 등한히 해 버리면 벌레가 와서 침식을 하게 되고 말라죽거나 떠 죽거나 그렇게 해서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32분48초~46분11초)


(2)-------------------

우리의 도(道)도 잠시도 등한히 하면 그렇게 안이비설신의-육근(六根)을 통해서 팔만사천마군(八萬四千魔軍)이가 도를 이루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왜 우리 도 닦는 것을 방해를 치냐’하면 도인(道人)이 생겨나면 자기네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군이의 궁전이 흔들리게 되고 마군이가 소탕이 되어서 마군이 살곳이 없기 때문에, 마군이가 자기 설 땅을 지키고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도 닦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를 항상 우리는 잘 대항해서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심왕(心王) 국토를 잘 지켜나가야만 우리는 도를 성취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귀를 통해서 들어오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오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올라고 하는 그 찰나에-이미 들어와 버리면 쫓아내기가 어려워, 들어올라고 할 때 딱! 그놈을 문을 닫아 걸어야 되거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 무엇이 눈을 통해서 들어올 때, 어떠한 사물이 귀를 통해서 들릴 때,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올 때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이렇게 한다면, 마군이가 우리의 국토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달·두 달·석달·1년·이태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날의 자기가 아닌 딴 사람으로 성장 또 향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도를 향해서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세속의 다 직업이 있지만, 이 ‘이뭣고?’ 내가 나를 닦는-나의 영혼을 갖다가 해탈케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우리의 본업(本業)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몸뚱이를 살찌게 하고 또 의식주를 위해서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위하는 직업에다 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이나 사회·국가에 있어서 정말 충실하고자 하면 이 ‘이뭣고?’사업을 잘해야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 봤자 별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 한번 앉아 보세요.
가부좌를 할 때는 몸을 단정히 하되 너무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어깨에다 힘을 주거나 목에 힘을 주어서는 아니됩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은 다 빼야 하는 것입니다.

어금니는 지긋이 물고 또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에다 꼬부려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되 자기 자리에서 약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는 것입니다.
'눈을 떨군다'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한 점을 응시(凝視)하거나 주시(注視)하는 것이 아니고, 본다면 그 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평상으로 뜨되 뜨고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은 좌우나 전후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두 어깨위에 두 귀가 수직으로 놓이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한 다음에,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단전-배꼽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하고, 숨을 내쉴 때는 그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 지도록,
들어마신 호흡이 그까지 가도록 몰아부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숨은 코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생각은 배가 볼록하게만 맨들면 되어요. 그냥 배를 요렇게 내밀면 되어.
들어마실땐 내밀고 또 숨을 내쉴 때는 배를 홀쪽하게 잡아댕기면 되는 것입니다.

들어마셔 보세요. 배를 볼록하니 내밀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하나·둘·셋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를 등쪽으로 홀쪽하게 맨드는 것입니다.

또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그래서 들어마시는 시간은 약 3초 동안에 걸쳐서 들어마시고, 들어마셨다가 딱 정지하는데 정지하는 시간은 약 3초, 또 정지했다가 내쉬는 시간이 약 3,4초 조금 긴 듯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들어마실 때 너무 배가 가뜩 이렇게 들어마시면 안 되어요. 8부 정도만 들어마시고.
또 딱 정지하는 것도 약 3초 정도만 해야지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그것도 안되고,
또 내쉴 때에도 약 8부 정도만 내쉬어야지, 뱃속에 하나도 없을 때까지 완전히 뱃가죽이 등어리가 닿을 때까지 다 내쉴려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들고 무리가 가니까 그래도 안 되고,

그래서 들어마신 호흡도 8부 정도 들어마시고, 내쉬는 호흡도 약 8부 정도 들어마셔서 호흡을 하는데 조금도 무리가 안 가도록,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마셨다가 3초 정지했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할 때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숨을 또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주욱 하셔 나가면 나중에는 한달, 두달, 석달 이렇게 하다보면 ‘이뭣고?’를 숨 내쉴 때마다 안해도 괜찮게 되어요.
숨은 서너번 할 때에 ‘이뭣고?’ 한번 해 놓고서, 숨은 서너번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해도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참으로 익숙해지면 아침에 ‘이뭣고?’ 한번 하고 점심 때까지 ‘이뭣고?’는 들지 안해도 항상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심만 있으면 그만 그것이 화두를 이미 들어...(녹음 불량)
‘이뭣고?’ 딱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챙겨 가지고 또 금방 또 망상에 들면 그때 또 ‘이뭣고?’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이뭣고?’한 알 수 없는 의심이 고대로 딱 있으면, 뭐 구태여 ‘이뭣고?’ ‘이뭣고?’ 자꾸 되풀이해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미타불·관세음보살은 하루에 십만 독(讀), 이십만 독해서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염주(念珠)를 부지런히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데 ‘이뭣고?’는 그게 아니어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부른 것이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공덕에 해당된다고 그러니까, 이놈을 하루에 오만 독을 하면은 육백만에다 오만을 곱하면 얼마냐? 진짜 이렇게만 하면은 며칠 안가서 툭 터질거다.

절대로 ‘이뭣고?’는 횟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 간절(懇切)한 간절한 그 의심, 의심(疑心)이 나중에는 의단(疑團)이 되어.

한번 화두를 들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 뭉탱이'가 고대로 있어 가지고 무엇을 봐도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무엇을 들어도 흔들림이 없이,
알 수 없는 의단이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차를 타거나, 누가 옆에서 나한테 욕을 하거나 억울한 소리를 해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화두만이 떠억 드러나게 된다면 그게 공부가 자리가 잡혀가는 거여. 익숙해지는 거여.

그렇게 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잠을 자면 꿈에서도 그 의단이 없어지지 않고, 새벽에 눈을 떠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있게 된다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는 건데,
공부가 익숙하게 되어서 그렇게 되어야 머지 않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알뜰히 열심히 해야 그런 타성일편 지경이 오는 것인데,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허다 말다가 그저 그래 놓고서,
‘아이고, 참선해봤자 되지도 않고 우리는 근기(根機)가 얕아서 염불이나 해야지, 참선은 좋은 줄은 알지마는 죄 많은 중생이라 못한다’고, 이런 자포자기를 하신 분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해서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가지고 의심(疑心)을 내서, 대신심과 대분심,
‘어째서 과거에 불보살과 선지식은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해탈도를 증득했는데 나는 왜 같은 사람으로서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했는가.’
속에서 분한 생각이 나고 그래 가지고 도를 아니 닦을라야 아니 닦을 수 없는 그런 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의단, 대의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하는 그 간절한 의심.
이 3가지 요소가 동시에 일어날 때에 우리는 화두를 들랴고 안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계를 지킬랴고 안해도 저절로 계가 지켜지는 것이고,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는 그 가운데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오계를 받고 또 화두를 타고 또 불명(佛名)을 받게 되겠습니다. 앞으로 스님네가 부르는대로 차례차례 나오셔서 이 불명을 받아 타셔서,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잘 아셔야 합니다.
속에 이와 똑같이 생긴 계문(戒文)이 들어있고 거기에 여러분의 불명이 씌여 있습니다. 한문으로 씌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봉투에는 한글로 씌여 있으니까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시고,
가정에서도 내외 간에 서로 불명을 부르시면 더욱 좋고, 형제자매 간에도 불명을 부르고 ‘아무개 엄마, 아무개 엄마’하지 말고 ‘아무개 보살’ 이렇게 해서 불명을 서로 부르면 불명을 부른 사람도 공덕이 되고 부름을 받는 사람도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피차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불명 한번 부를 때마다 ‘이뭣고?’를 하는 데에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되는 것이니만큼,
불명을 잘 스스로 잊지말고 남의 불명도 잘 알아서 서로 서로 불러주게 된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또 부처님의 아들로서 도반으로서 좋은 인연이 깊어지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32분48초~60분35초)(끝)


-------------------(1)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바라문(婆羅門) ; ‘브라만(Brahman)(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사제 계급)’의 음역어.
*탁발(托鉢 밀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2)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부업(副業) ; 본업 이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계문(戒文) ; 불자(佛子)가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을 조목별로 적은 글.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송담스님(No.246) - 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약 22분.


일심으로, 무엇이고 일심(一心)으로 허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는 온갖 마장(魔障)이 거기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색음(色陰)이 스러져서 없어지면, 색(色)이라 하는 것은 육체(肉體)를 말하는 것인데,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그 육체(肉體)의 모든 기관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조용해지고, 조용허면 맑아지는 것인데, 그 색음이 맑아지면은 여러 가지 신기한 경계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수(受)·상(想)·행(行)·식(識).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 작용인데 그 정신 작용이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맑아지면은 그러헌 마장(魔障)이 일어나냐’허면, 이 우주법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한 능력을 갖춘 마귀(魔鬼)가 있습니다.
그런 마귀는 다 전생에 도를 닦다가 공부가 잘못되어 가지고, 공부는 지극정성으로 해서 거의 깨달음에 가까울 지경에 이르도록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도를 닦다가,
'한 생각' 잘못한 탓으로 삿된 경계에 떨어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러한 중생, 그런 것이 귀신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갖 신통이, 오신통(五神通)이 다 나 가지고, 참 그러한 귀신이 많이 있는데,
누구라도 도를 닦은 사람이 있으면 그 귀신이 시기가 나 가지고 그것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 방해를 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누가 도만 열심히 닦을랴고만 허믄, 그것을 시기·질투가 나 가지고 그걸 방해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방해를 치기 위해서 항시 주변을 맴돌고 있어.
육근문두(六根門頭)에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마군(魔軍)이는 무장 더 성해진다’하는 말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헌 까닭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 닦은 사람은 '한 생각' 단속하기를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이, 진정계(眞淨界) 가운데에 겨우 이 '한 생각'이,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다. 염부(閻浮)에 있어서는 벌써 팔천 세(八千歲)가 된다 그말이여.

정진을 해서 오음(五陰)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눈 한번 깜박하는 그 찰나 간의 '한 생각'이 이런 무서운 마귀를 자기 마음속에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삐끗한 그 '한 생각' 단속을, 마치 화약고를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이 불조심 허듯이,
잠깐 실수로 담뱃불 하나 실수하면 그 어마어마한 화약이 터져서 그 많은 화약을 다 손실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동시에 자기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성이 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근심 걱정이 있을 때, 기쁠 때, 좋을 때,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숙세(宿世)에 이 정법(正法)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가 이런 최상승법을 만나서 듣고 이것을 실천을 허게 된 것까지는 매우 다행한 일이나,

그 의지력이 견고허지 못해 가지고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해서 조금 해 보다가 말다가, 조금 이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헐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 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이렇게 허는 둥 마는 둥, 허다가 말다가, 이 핑계 저 핑계 이렇게 해 가면 도(道)의 마음은 점점 생소해지고, 세속적인 그런 생각은 날이 갈수록 얽히고설켜서 그럭저럭 안 헌 것도 아니요, 헌 것도 아니요,

이렇게 해 가면,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헐 때까지 공부를 해도 도를 이룰 기약은 막연헐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산철 결제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다짐을 허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말을 허고 있는 이 동안에도 계속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1초 1초가 이렇게 지내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수명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헌다면, 우리는 한 생각 단속하는 일 이외의 다른 일에는 단 1분 1초도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송곳을 턱 밑에다가 받쳐 놓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잠을 잘 때에는 둥글둥글하게 목침을 깎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퉁! 머리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래서 일어나서 정진을 하고,
또 말을 허다 보면 한마디가 두 마디 되고, 두 마디가 열 마디 되아서 그렇게 말허다 보면 생각을 놓치고 화두를 놓칠까, 그래서 말을 아니 허면서 정진을 하고,
또 밥을 많이 먹다 보면은 또 식곤증(食困症)이 나서 졸음이 올까봐, 그래 밥을 한 끼씩만 먹고 허기도 하고.
이렇게 모든 방법을 다 써 가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스님네께 ‘밥을 한 끼만 먹어라’, ‘말을 허지 말고 묵언(默言)을 하라’, 또 ‘송곳을 깎아서 턱 밑에다 괴아라’ 이런 것을 내가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의지력과 각오를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말을 일부러 묵언을 허지 아니해도 저절로 하루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이틀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하면, 일부러 묵언을 안 해도 저절로 묵언이 되아져야 그 묵언이 진짜 묵언이 될 것이고,

하루에 세 때를 먹더라도 한 알갱이도 씹은 바가 없다면 하루 세 그릇 먹는다고 해서 무엇이 방해로울 것이 있는가.
다만 과식만 허지 않도록 잘 저작(咀嚼)을 해서 소화만 잘 시킨다면, 세 그릇 먹어도 한 알갱이도 씹지 않는 도리가 그 속에 있으니, 무엇을 걱정헐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6시간인데, 그 동안에 한 시간쯤 더 안 자고 5시간만 자고 정진을 헐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시간을 자되 잘 때에 든 화두가 꿈 속에서도 화두가 들린다면, 6시간을 잔다고 해서 무엇이 또 방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산철 동안 춥지도 덥지도 않고 그러니 그 기간을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다른 사람의 타율적인 그런 견제로 인해서 규칙을 지킬려고 헐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정진을 허다 보니 저절로 모든 것이 법도에 맞고 규칙에 맞아서 한 달이 하루와 같이, 두 달이 하루와 같이 이렇게 정진을 해 가신다면 반드시 이 산철 동안에 공안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실 것이 의심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출가수도배(出家修道輩)여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하고  독거요방심(獨居要防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출가수도(出家修道)한 선객(禪客)들이여, 재색(財色)이 최선금(最先禁)이니라.
재물과 색이 가장 먼저 금(禁)할 것이니라.

출가 수도인(出家修道人)이라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집을 나와서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스님네를 말하는 바지마는, 출가(出家)라고 허는 뜻이 넓게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 출가를 해석을 헌다면,
몸뚱이에 기준을 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다 기준을 두어야 더 옳다고 생각을 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안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안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도심을 발(發)하면, 도 닦을 마음을 내면 머리가 있고 속복을 입어도 그게 출가인(出家人)이고,
설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다 해도 도심(道心)이 없이 속심(俗心)이 가득 차 있다면 그건 출가인이라고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출가인도 있고, 몸도 마음도 속가에 있는 사람도 있고, 몸은 속가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 사람도 있고, 이 네 가지로 출가·재가를 이렇게 설명을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재물(財物)은 모든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재산에 해당이 되고, 색(色)이라 하는 것은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체 색상(色相)을 통해서 마음에 욕심을 내면 그것이 다 색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도 닦는데 그것을 금(禁)해야 한다 그랬는데, 그것을 멀리허고 금(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통해서 익히고 익힌 바라, 유심·무심을 통해서 항시 그것이 본의 아니게 우리의 눈에도 그것이 걸리고, 귀에도 걸리고, 코에도 걸리고, 입에도 걸리고, 몸에도 걸리고, 생각에도 그것이 걸려든다 그말이여.
걸려드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을 버릴랴고 허지 말고, 그 생각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헌다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사람의 수행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이요, 여럿이 살 때에는 입을 조심을 해라.

혼자는 말을 못허는 것이고, 두 사람 세 사람 이상 열 사람, 스무 사람, 그게 인자 군거(群居)인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은 자연히 입이 벌어져서 말이 나오는데, 입을 벌려서 말을 허다 보면은 좋은 말보다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허고, 쓸데없는 말을 허면은 시비가 일어나서 내 속상하고 남의 속상하고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그래 가지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그래서 입을 조심을 해라.

그 다음에는 혼자 있을 때에는 방심(放心)을 조심을 해라[獨居要防心]. 방심(放心)은 마음을 놓아 버리는 거여. 마음을 단속하는 것을 조심을 해라.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그러다 보면은 1시간 2시간이 속절없이 지내가고 하루 이틀이 속절없이 지내가니 혼자 있을 때에는,
이 ‘혼자’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자기 혼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모르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그것을 여기서 ‘홀로 독(獨)’자 ‘혼자’라, 이렇게 보면은 이 참선하는 사람은 그것이 더 해당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생각이 얼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면은 이것이 인자 모든 사람이 보게 되니까 모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고,
아직 그 생각이 말이나 얼굴이나 행동으로 표현이 되기 이전에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그 겨우 가는 생각이 탁! 일어날 그 순간, 이것을 ‘혼자 있는 때’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혼자 있는 바로 그때를 탁! 돌이켜서 그 생각이 얼굴로 표현이 되기 전에, 말로 나타나기 전에,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때의 생각을 잘 단속을 해 버려.
그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해 가시기를 거듭 당부를 하고 스스로 다짐허면서 반산림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43분12초~64분25초)(끝)


---------------------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색음(色陰) ; 색온(色蘊)의 구역(舊譯). 오음(五陰)의 하나.
*색온(色蘊) ; 오온(五蘊)의 하나. '물질'이라는 집합. 색(色)은 스스로 생멸변화하고, 또 다른 것을 장애한다. 온(蘊)은 모여서 뭉친 것으로 화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게송)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 ; 중국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 스님(872-961)이 마음의 현묘한 이치를 10가지 대목으로 말씀한 게송 [십현담(十玄談)]의 5번째 '연교(演敎)'의 끝 구절.
*진정계(眞淨界) ; 참되고 깨끗한 세계.
*염부(閻浮)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수·상·행·식)을 합쳐 부르는 말.
①색온(色蘊):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파수병(把守兵) ; 주변을 경계하여 지키는 병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반신반의(半信半疑) ;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워함.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게송) ‘출가수도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45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彥和)의 여러 문도(門徒)에게’ 게송 참고.
*도심(道心) ; 불도(佛道)를 행하고 믿는 마음.
*속심(俗心) ;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속된 마음.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4.06.13 14:15

§(401)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 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을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퍽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이 '마음 소'를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앞과 뒷이 콱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해 나가는 그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꽉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가야 그래야 그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오직 그 화두 한 마디, 한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해.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해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 될수록에 그렇게만 해 나가야 돼.
**송담스님(No.401) - 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65분)에서.


(1) 약 13분.  (2) 약 17분.


(1)------------------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십우송(十牛頌)-10가지의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그 심우송(尋牛頌)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그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 가지고 고인(古人)들이 게송(偈頌)을 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리심(菩提心)을 발해 가지고,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노나서 게송으로 읊은 것인데 그 게송에 따라서 고인들은 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많이 여러 가지 종류의 게송도 나오고, 여러 가지 종류의 그것에 의한 그림도 나오고, 요새는 달력 캘린더에도 그런 그림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마는,

첫째, 제일의 심우(尋牛)-'찾을 심(尋)'자, '소 우(牛)'자-‘소를 찾는다. 심우(尋牛)’ 그 단계는 보리심을 발하는 위치여.
우리는 언제 생겨날 때가 없는, ‘언제 그 마음자리가 생겨났다’하고 헤아려 볼 수 없을 만큼 우주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그 '마음 소'인데,
그 '마음 소'를 부처님도 가지고 계시고, 모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그 '마음 소'를 다 가지고 계시고, 우리의 중생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개·소·돼지·미물에 짐승·벌레까지라도 그 자리를 다 가지고 있다 그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잊어 버렸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해 모르고 살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의 법, 조사의 법문에 의지해서 잃어버렸던 그 '마음 소'를 찾는다 그말이여.
그 마음, 진여불성 자리를 찾는 것을 그 ‘소를 찾는다’고 해서 심우(尋牛)라 그러는데, 보리심을 발(發)해야 그때부터서 '마음 소'를 찾기 시작한 거다 그말이여.

그래 아까 조실 스님께서 첫 번째 읊으신 게송이 바로 그 '마음 소' 찾는 데에다가 두고 읊으신 게송인데, 그 게송이 중국의 그 곽암(廓庵) 선사라고 하는 도인(道人)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 다음에 가서 견적(見跡)이거든. 자취를 봐. 소를 찾아서 인자 집을 떠나 가지고 그 소를 찾으러,
그 산이 험하고 물이 넓고 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그 소를 찾으러 방방곡곡이 다니는데 그 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이 막심을 하다 그말이여.
근데 그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발자취를 발견을 했어. 발자취를 발견한 것을 두 번째 견적이라 그러는데,

그리고 세 번째가 견우(見牛)고-소를 보고,
또 소를 본 다음에는 득우(得牛)-소를 붙잡는 거여.
그리고 다섯 번째 가서 목우(牧牛)여. 소를 먹이는 거여. 길들여서 먹여.

그러니 처음에 소를 찾을랴고 하는 그 보리심을 발한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 50억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정말 그 '마음 소' 찾으려는 마음을 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1600년 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서 또 고려, 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1600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태어난 사람은 참 이 불교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참 여기에 까지 왔으나 그러한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런 불교와 인연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소를 열심히 찾다 보면은 그 자취를 발견하게 되고 그 자취를 따라서 나아가다 보면은 결국은 소가 거기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 소를 본 다음에는 그놈을 붙잡을라고 하면 도망치거든.

그놈을 잘 어떻게 해서 지혜와 인내와 방편으로써, 그놈을 잘해서 접근을 해 가지고 그놈을 재치있게 붙들어야지. 소를 저 먼 밑으로 소 봤다고 해서 막 지혜없이 쫓아가서 어거지로 잡을라고 하면 그 소가 도망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도 역시 그 바른 선각자의 바른 지도하에 여법하게 정진을 해야 되지,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붙인다고 해서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를 본 다음에는 그것을 잘 붙들고, 붙든 다음에도 그놈을 참 지혜롭게 요령있게 소를 잘 먹여야지, 붙들어만 놨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놔두면 다시 또 도망쳐 버릴 것이고.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이 소를 잘 다스려 나가는가? 그것을 참 정성을 다해서 잘 그 소를 먹이고 거두어 나가야 그 소가 토실토실 살이 찌고 번질번질하니 기름져서, 그 소가 농사도 짓고 병도 안 나고 그 소를 인자 맘대로 참 잘 길러 가지고,

여섯 번째 가서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외양간에다 딱 묶어 놓고 잘 먹이는데, 얼마동안 잘 먹이다 보면,
일곱 번째 가서 망우존인(忘牛存人)이거든.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어.
인자 딱 잘 먹여서 외양간에다 해 놓으니까 소가 길이 들어서 도망가질 않으니까, 소에 대한 인자 관심을 놔 버리고 딱 주인만 있는 거지.
'소에 대한 생각'은 인자 아주 길이 잘 들여있고, 편안하게 외양간에 길들여져서 있으니까, 이것도 다 공부해 나가는 절차를 거기에다 그렇게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쉬웁게 말하자면은 이 길을 들이는 과정에서는,
화두를 열심히 열심히 애를 써서 열심히 들다 보면은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제대로 의단(疑團)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리는 과정, 그놈을 거쳐서 나중에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하거든.
확철대오를 하면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깨달음의 경지가 낭연독존하며-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경지에 이르르거든. 무수이수(無修而修)거든. 닦음이 없이 닦는 거거든.

그리고 여덟 번째 가서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거든. 사람과 소를 완전히 다 잊어버리거든.
그래서 '집에 돌아와 가지고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것[忘牛存人]'은 잊어버리고 그 다음에 사람과 소를 둘 다 잊어버린 것은 보리(菩提)를 이룬 위치다.

또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것[忘牛存人]'은 소승(小乘)에서는 아공(我空)의 경계를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러고, 그 다음에 인우구망(人牛俱忘)의 자리는 대승의 경지에서 말하는 보리를 이룬 경지에다가 비유해서 그렇게 했다고 고인은 그렇게 해설을 합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와서 이 반본환원(返本還源) 이것은 열반(涅槃)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것은 대승이나 소승이 다 같이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열 번 째 가서 수수입전(垂手入廛) 손을 드리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런 10가지 단계로 보리심을 발(發)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그러한 단계를 10가지로 이렇게 구분한 것인데,
참 대단히 그 '마음 소'를 찾는 경계를 그 '소' 찾는 경계에다가 비유해서 이렇게 게송을 읊고 또 그림을 이렇게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를 닦아가는 데에 퍽 이해하기 쉽고 재미스럽게 표현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께서는 첫 번째 제일 심우(尋牛) 단계와 두 번째 자취를 보는 견적(見跡)의 단계만을 게송으로 읊으시고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9분43초~22분30초)


(2)------------------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을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퍽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이 '마음 소'를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앞과 뒷이 콱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해 나가는 그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산승이 읊은 그 게송에 ‘불법(佛法)이다. 전등(傳燈)을 계승한다’ 그러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다못 자기의 공안-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위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공부를 지어 가는데,

공부를 지어 가는데 있어서 고인(古人) 공안 상에 복탁(卜度)하고 망령되이 해석을 가하지 말아라. 비록 낱낱이 해석을 해 가지고 그럴싸한 해답을 얻었다 할지라도 '참나'를 깨닫는 일과는 아무 교섭(交涉)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공안을 갖다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이것은 무슨 최초구다, 이것은 말후구(末後句)다, 이것은 제삼구(第三句)다, 이것은 제2구다, 이것은 체(體)다 용(用)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다, 이런 식으로.. 이것은 본분이다 신훈이다.
옛날에 강사나 또는 의리선(義理禪)을 하는 사람들은 공안을 낱낱이 그렇게 분석하고 따져 가지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그 공안을 다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여겼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니여. 그러한 식으로 백 천 공안을 다 따져서 결론을 내려 봤자 그것은 생사해탈도 아니고 견성성불도 아니여.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렇거늘, 하물며 그 불 속에 어떻게 앉거나 누울 수가 있겠는가?
공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그래 가지고 어떤 분별심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마치 불덩어리에 훨훨 타는 무서운 불길 가까이 가 가지고 그것을 만져 볼랴고 그러고 또 그 속에 들어갈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거거든.

그 공안 속에, 크게 나누고 작게 나누고 논상논하(論上論下) 이러쿵 저러쿵 체(體)다, 용(用)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다, 신훈이다, 본분이다, 일구·이구·삼구다, 이렇게 따진 것이 다 분대분소(分大分小)하고 논상논하 한 것이거든.
이러면 그것이 상신실명(喪身失命)-벌써 수행자로써 공안을 갖다가 의리(義理)로 따지고 사량분별로 이렇게 따지는 짓을 하는 것은 벌써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여.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사량분별로 따진 것을 극히 엄격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까닭이 바로 공안은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하면은 수행자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려.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서 무슨 공안을 대하든지, 법문을 듣던지, 어록을 보던지,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이러쿵이러쿵 따져서 결론을 내려.

조실 스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기를 사견종자(邪見種子)라 그랬습니다.
사견(邪見) 삿된 종자, 삿된 견해를 가진 씨알머리다 그거거든. 사견종자는 암만 해봤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러주면 『예 알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금방 다음에 또 사견을 내거든.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꽉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가야 그래야 그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그리고 또 하나, 공부하는 사람이 주의할 것은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여. 글을 찾고 글귀를 쫓는 거여.
그것이 공부하다가 답답하고 암만해도 안 되고 하면은 뭐 전등(傳燈)·염송(拈頌) 기타 조사어록 모다 이런 것을 뜨적뜨적 하며 행여나 거기서 무슨 좋은 해결이 나올까?

워낙 해도 해도 안 되고 가슴은 못 견디게 그렇게 답답하니까 혹 그런 것을 보면 좀 후련하고 시원해지는 맛이 있어서 그런 것을 다 볼라고 그러고,
또 그런 어록 속에 기언묘구(奇言妙句)-'기특한 말과 묘한 글귀'가 있으면 그런 것을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이런 것은 다맛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큰 장애가 된다.
진실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짓을 하지 말아라.

그 공부가 안 되고, 암만해도 공부가 진취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앉아서도 답답하고 서서도 답답하고 추호도 어떤 그 공부가 잘된다고 하는 그런 시원한 대목이 없으니까,
대단히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마는, 그 답답하고 꽉 맥히고 이 단계가 이러한 경지가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좋은 경계라 그랬습니다.

대혜 스님도 그러한 경지야말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계니까, 거기에서 번뇌심(煩惱心)을 내지 말아라. 번뇌심을 내지 말고 거기에서-그 답답하고 답답한 그런 경지에서,
선용기심(善用其心)-잘 그 마음을 잡드리를 해 가지고, 화두를 놓치지 말고 참구를 잘 해가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고인이 한결같이 당부하신 말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은 이 비량(比量)-이것과 저것을 비교허고 공안을 이 공안과 저 공안을 비교허는 거야.
그래 가지고 마음을 가져서-이 공안 저 공안에 대해서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서 주박(湊泊)을 혀.
그걸 따지고 그놈을 가지고 속으로 속 살림을 해 나가는 거여.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이것은 그렇게 하면은 도(道) 하고는 점점 더 멀어지는 거야. 공안을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고, 이놈과 저놈을 비교허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복탁(卜度)하고 이런 것은 미륵불(彌勒佛)-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출생허실 때까지 이르러도 그 사람은 참 깨달음과는 아무 교섭(交涉)이 없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 속에 갇혀 있는 거와 같애서,
‘다못 어떻게 허면 이 사방이 은산철벽으로 둘러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허면 여기서 빠져나갈까?’ 오직 그 활로(活路)를 찾는 그 한가지 일만이 문제가 되야 해.

그래서 그 활로를 찾는 방법이 「이 뭣고?」거든.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 화두를 말씀허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무자 화두를 허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허신 분은 「이 뭣고?」

오직 그 화두 한 마디, 한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해.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해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 될수록에 그렇게만 해 나가야 돼.

또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머리가 개운하면서 화두를 들랴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리면서 그렇게 깨끗하고 조용하고 잘 들릴 때가 오되, 그럴 때라 하더라도 ‘아! 됐다. 이제 공부가 잘된다’ 그런 기쁜 마음을 내서는 안 돼. 그런 기쁜 마음을 내면 금방 또 경계가 확 변한 거거든.

그래서 설사 공부가 좀 수월허게 화두가 잘 들리고 의심이 의단이 잘 순일허게 된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안 돼.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항상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권속이 육근문두에 와서 지키고 있거든. 그래 가지고 잠깐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육근을 통해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내란을 일으킬라고 작정을 허는거여.

마치 한 국가도 이웃나라가 그 나라를 침범을 할라며는 항상 간첩을 보내 가지고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감시허다가, 감시허면서 계속 서로 이간(離間)을 붙이는 거여.
정부와 백성을 이간을 붙이고, 백성과 백성을 이간을 시키고, 신하와 임금을 이간을 시켜 가지고, 이간을 시켜서 싸움만 일어나면은, 그것이 바로 침범해서 그 나라를 갔다가 빼앗기가 가장 좋기 때문에,
그래서 그 나라가 이웃나라로부터서 침범을 안 받고 멸망을 안 할랴며는 어쨌든지 그 나라 백성이 서로 화합을 해야 하거든.
그 나라 백성이 화합이 돼 가지고 모두가 서로 믿고 자기의 맡은바 소임을 열심히 허고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가장 나라를 위하고 국가 민족을 위하는 것이 되어서 외부에서 침범해봤자 도저히 성공을 못 허는 것이여.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도 눈과 코와 입, 귀-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서로 눈은 자기의 역할이 따로 있고, 입은 입의 역할이 따로 있고, 또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러니 우리의 발심한 그 마음으로 주재(主宰)가 되아야, 육근(六根)이 심왕(心王)의 명령에 모두가 다 복종을 하고 합심해서 한 대사(大事)를 향해서 합심이 될 때에 도(道)도 이룰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놈이 흩어져 가지고 오욕락(五欲樂)에 빠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의 종이 된다면 도업(道業)은 성취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마군(魔軍)이의 함정에 빠지고 그 홀랑게에 걸려서 도업 이루기 커녕은 마군이의 종자(種子)가 되고 마는 것이여.
그 마군이의 종자가 안 되고 법왕 권속이 되는 길은 마군이의 올개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면은 그 올개미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올개미가 바로 사량분별이거든.

우리 공부하는 분상에는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가장 중요헌 것이야.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렇게 나가면은 마군이가 거기에는 발붙이지를 못하는거여.
꽉 맥히지 않고 알아 들어가고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 갈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마군이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이여.(9분43초~39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
[참고]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2)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〇방금 산승이 읊은 그 게송

http://emokko.tistory.com/entry/§-게송-흉중하애부하증-자괴인전백불능-제차현성공안외-차무불법계전등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이간(離間) ;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헐뜯어 관계가 멀어지게 만듦. 또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각각 제삼자를 헐뜯고 일러바치고 하여 사이의 정을 떨어뜨림.
*주재(主宰) ;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또는 그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홀랑게 ; '매듭'의 사투리.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약 15분.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헌대  천하인정몰양반(天下人情沒兩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지즉노(逆之則怒)요 순지환(順之歡)이다. 자기의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내고, 자기 마음에 순(順)하면 기뻐하는데 이것은 세속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서도 그렇고,
일체처에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들면 다 사람들은 기뻐하고,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다 성을 내는 것입니다.

천하인정(天下人情)이 몰양반(沒兩般)이여. 천하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성내지 아니하면 기뻐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면 성내고.
왜 그러냐? 모든 것이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거든.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순경계가 다하면 다시 역경계가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긍정하면 그것을 믿으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여. 바로 모든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모든 인연법(因緣法)에 눈을 뜨게 되어. 눈을 뜨게 되어가지고 스스로 속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모든 생노병사가 전부 역경계, 순경계로 이렇게 새끼 꼬아지듯이 꼬아지면서, 그렇게 해서 성립이 되었다가 그놈이 또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또...
오른손에 쥐었던 새끼와 왼손에 쥐었던 새끼가 번갈아가면서 서로 바뀌면서 이렇게 새끼가 꼬아지는데,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지내온 것이 그렇게 꼬아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서 순경계·역경계, 생(生)과 사(死),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면서 무량겁을 또 그렇게 갈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기쁨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나 슬픔만 있으라는 것이 없고, 언제까지 부자가 되어라 하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란 법이 없어요.

가난해졌다 부자되고, 부자가 되었다 가난해지고, 친해졌다가 친한 사람이 웬수가 되고, 웬수가 다시 풀어지면 또 친해지고, 그러한 변화무쌍한 참 믿을 수가 없는거, 허망한 거,

그러한 것에 우리가 말려 들어갈 것이 없고 그런데에 속지를 말고 그런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바로 거기서 ‘참나’로 돌아와야, 그 속에 살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 속지 말아야, 우리가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내고 기뻐하는거, 그래서 뭔 사업이 좀 잘되어도 너무 좋아서 못 견디지 말고. 그렇게 좋아서 훌훌 뛰고 야단을 칠 것이 못되어. 그러다 보면 금방 언짢은 일이 툭 생기거든.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해서 그렇게 의기소침(意氣銷沈)이 되고 비관하고 아주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럴수록에 오히려 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 믿는 마음으로 ‘이뭣고?’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최대한으로 잘 살려서 노력을 하다보면 반드시 밝은 길이 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잘되었다고 뭔 일이 성공을 했다고 지나치게 좋아서 훌훌 뛰고 하면 그것이 또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아할 것도 없고 지나치게 비관할 것도 없어요.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그런 환희마(歡喜魔)나 번뇌마(煩惱魔)를 갖다가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번뇌마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환희마도 못쓰는 것이여. 환희마가 들어오면 벌써 그게 바르게 공부가 되어간 것이 아니거든. 마군이가 딱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공부는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나, 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한 분이나,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방부를 안 들인 사람도 세 때 밥을 먹고, 방부를 들인 분도 세 때 밥을 먹고, 똥 누고, 걸어가고, 씻고 그게 바로 인간 생활인데 그 생활을 여의고 따로 얻은 공부해야 할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눈으로 모든 색상(色相)을 보되 그것이 그 색상이 관계치 않어.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소리가 아니여.
참선 공부를 아니한 사람은 무엇을 보면  붉다, 노랗다, 저것은 푸르다, 저것은 산이다, 저것은 자동차다. 떡 보는 순간부터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이 계속해서 연달아서 막 가지가 번져 나가는 거여.

또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새소리가 들리면 새에 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이,
새소리를 들으면 ‘아유, 봄이 왔구나. 봄이 오면 얼마 안 있으면 또 꽃이 피겠지. 그러면 밭에 또 채소 씨를 심어야겠다.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작년에는 농사가 시원찮았으니까 금년에는 잘 지어야겠지’
한 생각이 두 생각, 두 생각에서 세 생각으로 막 번져나가.

참선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관계를 하지 않고 바로 ‘이뭣고?’거든. 바로 자기로 돌아와 버려. ‘이뭣고?’ ‘이뭣고?’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리 따라가지 말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는 겨를도 없이 ‘이뭣고?’ 이렇게 돌아와버리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그말이여.

눈으로 보는 색상, 귀로 듣는 소리 거기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것이 바로 법왕이 계신 곳에 도달하는 길이다(親到法王城). 법왕(法王), 진리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눈을 뜨면 무엇인가 보게 되어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무슨 소린가 듣게 되어 있어.
눈으로 볼 때마다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뭣고?’
우리 생각에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인가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어.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요,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요, 모든 잡념이 잡념이 아니야.
전부가 다 ‘함이 없는 진리’로 돌아가는 길목이요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은 경묘년 3월 첫째 일요법회입니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봄철 산철 결제(結制)날이었습니다.
오늘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다시 새로 결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일초일초를 한생각 한생각을 빈틈없이 단속을 하셔서 어린 소년이 발심을 해가지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가지고 그어린 나이에 확철대오하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못 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만 한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41분23초~56분7초)(끝)


---------------------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환희(歡喜) ; ①기쁨. 종교적으로 만족했을 때 일어나는 신심(身心)을 모두 바친 기쁨을 말함. 또, 기뻐하는 것. ②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경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 ③정토종(淨土宗)에서 사후(死後)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미리 기뻐하는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〇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〇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발심,자신(自信)2014.06.04 16:33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1) 약 15분.  (2) 약 18분.


(1)------------------

우리가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께서 그 어려서 아주 소년시절에 출가를 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지,
법당 뒤에다가 멍석을 깔고 거기에 방석 하나를 떠억 갖다 놓고서, 가서 공양시간에 공양만 드시고는 바로 나오셔서 그 법당 뒤에 자리에 와 가지고 앉아서 정진하시고,
그러다가 조금만 졸음이 오는 성 싶으면 일어나서 법당 뒤에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시다가, 또 잠이 깨지면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서 정진하고, 한 철을 그렇게 한결같이 정진을 하셨습니다.

입선(入禪)·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그저 밥만 한 숟갈 자시면은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시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린 것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거 아주 공부한 척 한다고, 지가 저 며칠을 갈까 보냐고?’ 모다 수근덕거리고 모다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랬었지만,
하루를 그렇게 하시고, 이틀을 그렇게 하시고 사흘, 나흘, 1달, 2달, 계속 한결같이 그렇게 하시거든.

어떻게 참 철저하게-그것이 일부러 지어서 헐랴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그냥 한목 돈발(頓發)을 하신 것이여.
지어서 한 것 같으면 며칠 하다가 배시시하고 식어버릴 텐데 그것이 아니거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참 신심과 분심이 한목 났는가?
어릴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병이 나가지고 그래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정든 친구,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거기에서 결국은 발심(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죽은 뒤에 꿈을 꾸셨는데, 지옥 구경을 하시는 꿈을 꾸었어.
사람을 갖다가 톱으로 썰어서 죽이는 거 또 큰 맷돌에다가 사람을 콩나물처럼 여러 명씩을 집어넣으면서 맷돌을 들들들들 돌리니까 사람이 거기서 뼈와 살과 창자가 짓이겨져서 핏물이 꿀꿀꿀 쏟아지는 그런 광경하며.
그 지옥 구경을 하시고서 놀래서 꿈을 깨셨는데, 꿈을 깨가지고도 그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콧전에서 사라지지 아니하셨다 이거거든.
그런 꿈을 꾸시고서 대발심(大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그런 발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無常)을 느낀다든지,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흥망성쇠와 생사고뇌 속에서 가정에서나 또는 이웃친구나 그러한 인간의 영욕득실 경계에서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계기를 만나가지고 발심을 해야,
그래야 참 분심이 솟구쳐 오르고 공부를 해도 억지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 경을 배우시다가 그만 두어버리고 선방으로 나오셔서, 그때 선방에 나오신 수좌(首座) 가운데에 제일 나이가 어리셨다고 하니까,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 가지고 무섭게 정진을 해서 결국은 코에서 피가 쿨쿨 선지피가 넘어오고 그래도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때 앉는 자세라든지 또는 호흡하는 법이라든지, 화두를 드는 법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상하게 지도하신 스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가 넘어오지 않고도 이 공부를 잘 하실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한 분을 만나지를 못해가지고 그 신심과 분심이 복받쳐 오르는 바로 그것으로 화두를 맹렬히 들고 막 부셔나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기(氣)가 상충(上衝)해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렇게 피가 목구멍으로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해 가지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은 턱밑에 가슴에 피가 아주 그냥 흘러내려 가지고 멍어리가 지고, 눈알은 벌게 가지고 충혈(充血)이 되고,

그래도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전라남도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는 도중에 개천을 건너면서, 그 돌로 이렇게 징검다리를 놓은 거기를 건너시다가 거기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하신 것입니다.

『운무(雲霧) 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하면 소를 찾겠는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나시면서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외’라고 한 것은 ‘오이’를 말한 것입니다.
‘담을 넘어가서 오이를 따오너라.’ 그 생각이 떠억 떠오르면서 그 심안(心眼)을 뜨셨는데, 그길로 태안사에 들어가 가지고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고,

이 법당 앞에서 오줌을 출출출출 누니까, 주지 스님이 나와 가지고 법당 앞에다 오줌 싼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님 앞에서 오줌을 눈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 없는 곳을 일러라!』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 대들었습니다.
『요새 수좌 놈들이 건방진 놈의 자식들. 당장 가라!』해 가지고 아침도 못 얻어 잡숫고 쫓겨났다고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그렇게 발심이 되어야 하고, 발심이 되어서 헐 때에 정말 그때 참 잘 단속을 하고 공부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또 생각을 아무리 가다듬고 할라고 해도 억지로는 힘만 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러한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경계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역경계(逆境界)인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는 육체상으로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사회 무슨 사업관계로나 도처에 우리가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기를 거기서 놓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 나간다면, 우리는 조실 스님과 같이 정말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고 발심이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발심이 안 되고 ‘참선이 좋다 하니까 나도 좀 해볼까’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은 그것은 흉내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흉내도 또 안 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마는,

옛날에 원숭이가 산중에서 이리 뛰놀고 저리 뛰놀고 하다가 그 산중에 숲속에서 참선하시는 스님을 보고서 그 원숭이도 그렇게 그 스님의 흉내을 내서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지가 무슨 참선이 무엇인줄 알겠습니까? 원숭이란 놈은 원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 스님이 참선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와같이 흉내를 내고 앉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출가해서 참선을 해가지고 도과(道果)를 이룬 것이 그게 바로 독성(獨聖)님이라 그런 것입니다.

잠시 흉내만 내는 인연으로도 그렇게 도과를 이루거든,
사람으로써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좀 아침·저녁으로 해 보기도 하고, 또 토요일에 철야정진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아! 그것도 쉬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냥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러한 어떠한 경계를 만나서 신심과 분심이 돈발한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할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을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을 하고, 방부를 들여서 노력을 하고, 또 이 선학원이라든지 그밖에 일요선방이라든지 그런데 가서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가정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2시간씩 하고 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분발(奮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공명,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해여.
산더미 같은 재산을 모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차지할 만큼 큰 부자라도 한 푼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하늘을 뻗지른다 하더라도 10년 20년을 넘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은 하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23분36초)


(2)------------------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하되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니라
나무~아미타불~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헌디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니라
나무~아미타불~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로구나. 가난하고 빈궁(貧窮)하면 천(賤)하게 되고 부자가 되면 교만(憍慢)이 생겨.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고 가난해지면 스스로 아주 천둥이가 된다 그말이여. 기를 피지 못하고 기운이 없고 살맛이 없고 어디 친구도 만나기가 싫고.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돈푼 벌고 좋은 집을 살고 여유가 생기면 교만이 생겨. 남을 업신여기고 아주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고. 그런데,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여. 가난해서 천하게 느껴지거나, 부자가 되어 가지고 교만심이 나거나, 다 같이 무명(無明)의 불로써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이여. 그러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부자라고 했다고 해서 더 알아주지도 않고, 가난했다고 해서 동정을 받지도 못해.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여. 염라대왕 앞에 턱 끌려가고서야 비로소, 하! 가난하고 부자고 그래봤자 그거 한 점(點)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사없는 도리, 무위·무위법(無爲法)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할수록에 이것을 해야 천둥이가 안 되는 거고,
명예와 권리가 있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만심을 낼 것이 아니라 이 무위법-참선(參禪)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설사 가난해졌다 하더라도 천둥이가 되지를 않고, 사업이 잘되어서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부자고 한 것이 잠깐 꿈속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꿈속에서 부자가 된 것뿐인대,
꿈속에서 가난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해질 까닭도 없고, 꿈속에서 무슨 대갑부(大甲富)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교만을 낼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이라는 하는 것은 이 무위법-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빈부귀천과 이 생노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고 교만하고 천할 것도 없고 하는-이 참선법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니 해 놓으면 천상 천둥이가 되었다가 교만을 부렸다가 허면서 꿈속에서 결국은 지옥 갈 채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데, 아무 소용도 없다면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괜찮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지옥 갈 준비를 한 것 밖에는 안 돼.

그래서 부자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병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죽을 고비에 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겪고 다 겪을 대로 겪어놔야 겨우 그때사 조금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겪는 것을 보고도 내가 그것을 깨달아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남하는 것은 예사로 보고, 자기가 겪고 겪을 대로 겪고 난 뒤에사 겨우 조금 ‘아하, 그렇구나’하고 느끼는데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하고 금방 또 다시 경계(境界)에 끌려가고 경계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제는’하고 자꾸 바래고, ‘이번만 지내고 이 다음부터서 해야겠다’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가 있지만 이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와 지식의 유무와 빈부귀천 그걸 가리지 말고 금생에 이 사람 몸뚱이 받았을 때 철저하게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법당에 앉아계실 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법당에서 나갈 때는 나갈 바로 그때,
앉았을 때는 앉았을 때 하고, 일어섰을 때는 일어섰을 때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갈 때 하고, 언제나 지금이거든.

사실은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이라고 할 때 시계바늘은 벌써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는 붙잡을 수가 없고, 다맛 ‘이뭣고?’ 뿐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1초 1초 생각 생각이 ‘이뭣고?’거든.

공부가 처음에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또 화두드는 법을 배워서 해보면 처음에는 곧잘 잘 된 것 같애.

그런데 한달 두달 석달 해가다 보면 영판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해 갖고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회의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면은 모다 참선한다고 하지마는, 참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見性)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된가.
‘에이 해봤자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낸들 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포자기를 하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할수록에 뭔 일이 자꾸 사건이 생겨.
집안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자손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신상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무슨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기도하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어간다 싶으면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거든.

이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도를 이루게 되면 제일 그것을 싫어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마군(魔軍)거든. 마군이는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멸망을 하게 되거든.
도인(道人)이 하나 태어남으로 해서 마군이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마치 대한민국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면은 제일 싫어한 것이 이북의 공산당이거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치거든.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잘되고 세계적으로 훌륭해지면 자기네 설자리가 없어지거든.
결국은 전 이북(以北) 동포들이 이남(以南)이 행복하고 잘 살고 한줄 알면 전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모두다 38선을 넘어오게 될것이고 전부 자유통일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
그 공산정권은 아무리 무섭게 탄압을 한다해도 결국은 전 백성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전 백성이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면 이북 공산당 무너진 것은 그건 참 봄이 돌아와서 얼음 녹듯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다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무서운 탄압을 해서 그렇게 모다 서로 감시를 시키고 꼼짝을 못하게 하고 여행도 못하게 해도 전 백성이 자유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면은 그 정권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바래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불자(佛子)도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마군이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갖다가 현혹을 시키고 유혹을 하고 방해를 놓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군이의 현혹에 우리가 흔들리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육근(六根) 문 뒤에서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딴 생각 먹고 한눈을 팔면 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마군이는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1분 1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딴 생각(別念)’이라 하는 것은 명예에 대한 딴 생각, 권리나 부귀영화나 오욕락이나 그런것도 물론이지만,
가장 우리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 있어서는 ‘빨리 깨달으리라’하는 그런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는 생각, ‘이렇게 해 갖고 이 공부가 깨달을 것인가?’ 그러한 생각,
또 공부해서 조금 득력(得力)을 해서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아! 좋다’고 하는 생각, 조금 얻은걸 가지고 만족하는 생각,
이런 것들도 오히려 세속의 그런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생각이 바로 이러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않고 좋은 도반(道伴)을 여의지 아니하고 같이 정진을 하면 자연히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킬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41분22초)


------------------(1)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상충(上衝) ; 위로 치밀어 오름.
*멍어리 ; ‘멍울(우유나 풀 따위 속에 작고 둥글게 엉겨 굳은 덩이)’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3.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가부좌(跏趺坐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도과(道果 길·불교 도,결과 과) ;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結果). 깨달음. 열반.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필·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2)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致(치)이루다. 이르다. 도달함. *賤(천)천하다. 신분이 낮다. *驕(교)교만하다. 자만함. *燒(소)타다. 사르다. *焂(=倏)(숙)갑자기. *忽(홀)문득. 갑자기. *饒(요)넉넉하다. 너그럽다. 풍요. 여유. *點(점)점. 작은 흔적. 작은 조각.
*빈궁(貧窮)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교만(憍慢) ;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함을 교(憍),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일으키는 거만함을 만(慢)이라 함.
*천둥이 ; ‘천더기(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런 물건)’의 사투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일대사는 수행의 목적으로 말하면 ‘깨닫는 것’이고, 실천으로 말하면 ‘참선(參禪)’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행여나 ; [주로 부정문이나 반어 의문문에 쓰여]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幸-)’를 좀더 분명하게 이르는 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고]딴 생각(別念 별념)’에 관한 [몽산법어] (용화선원刊)에 있는 글.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몽산법어]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4.04.30 12:57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신고
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4.03.26 11:23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활구참선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을 하느냐, 용맹정진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약 11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냐?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 지옥도 없는 것이고,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 마땅히 그래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까닭도 없고,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사람은.


 거둘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사자(使者)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것처럼 착각을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  스님이 뭣을 훤히  아는 스님이다’ ‘ 스님은 도통했다’ ‘ 스님은 도인이다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점쳐 주고  가지고 그거 어디다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군(魔軍)이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팔만사천 마군이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나가면 팔만사천 마군이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생각 삐끗  생각[別念]을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 솥을 씻어 가지고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톨에 시주(施主)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쌀을 이렇게 함부로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 나타나 가지고 여러  동안을 내가  도량(道場)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스님은 평소에 항상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스님을 볼라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생각 화를 내니까  좀을 타서 도량신이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47~5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지조(志操 /절개 ) :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

*요지부동(搖之不動) ;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자극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사자(使者 사신 / )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지(見地)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오온(五蘊)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가르침. 또는  신봉자.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 : 시간적으로 짧은 동안에.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