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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28 §(161) 생사해탈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 / 참선을 하면 내 자신이 환경을 다스리는 주인공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2. 2024.03.27 §(161) (게송)철수화개별시춘~ / 본래성불 / 바른 법을 실천하면 업장소멸, 소원성취 / 입춘법회 의의 / 참마음 깨닫는 가르침이 정법 최상승법 / 함경도 사람의 좁쌀공양 / 어려울수록 더 발심해..
  3. 2024.03.24 §(164) (게송)신재해중휴멱수~ / 진각국사 좌우명 / 고봉선사의 수행담 / 고봉스님, 전강 조실스님처럼 간절한 분심, 신심이어야 대의단이 일어난다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망회타귀굴~. 1
  4. 2024.03.18 §(340) (게송)화소산전설천기~ / 참선법은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 / 잃어버렸던 그 소[牛]가 ‘코밑에서 뱅뱅 돈다’ / 임제 선사, 무위진인(無位眞人) / (게송)삼가촌리형형례~.
  5. 2024.03.16 §(195) 참선 자세, 준비호흡, 본호흡 / (게송)조유남악모천태~ /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한 놈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그걸 깨달으려면은 공안을 타파해야 한다.
  6. 2024.03.14 §(195) (게송)원앙수출종군간(鴛鴦繡出從君看)~ / '한 물건' 깨닫는 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 밖에서 구하지 말라 / 도인행세, 아는 소리 하지 말라 / 바른 스승 만나서 바른 방법으로 수행해야. 4
  7. 2024.03.12 §(229)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 말 조심 / 기도를 하여 내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이 되면 소원을 성취한다 / 제일 먼저 내 자신이 바르고, 내 자신이 어질고 착해야 / (게송)송백천년취~. 2
  8. 2024.03.11 §(229) 중병(重病)을 앓는 장로 비구의 과거 인연 『법구비유경』 /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 말 조심 / 방편으로 바른 법을 표현 / 자기 허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성현(聖賢). 1
  9. 2024.03.10 §(229) 변화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것 / 최상승법에 깊은 인연을 심은 우리나라 / 자작자수(自作自受) / 지구 사람들이 진리에 의해서 참나를 찾고, 진정으로 잘살 수 있는 원(願)의 기도를 하셔야.
  10. 2024.03.07 §(229) 사바세계보다도 천당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천당에 간 것이 영원한 것이 못되고 복이 다하면 떨어진다 / 사바세계는 무상해서 발심하기 좋다 / 변화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것. 2
활구참선 최상승법2024. 3. 28. 11:45

§(161)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 / 참선을 하면 내 자신이 환경을 다스리는 주인공(主人公)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 안이비설신의 이 성문(城門)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써 지켜지는 것 / (게송)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

팔만사천 마구니는 바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근문두(六根門頭)를 통해서 우리에게 침범해 들어오지, 절대로 다른 데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일어나는 한 생각만을 잘 단속하면 팔만사천 마구니는 들어올 곳이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가 들어오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철통같은 것입니다. 절대로 재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허수히 함으로써 그 구멍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의 이 성문(城門)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써 지켜지는 것이지, 빨간 글씨로 쓴 부작(符作)을 몸에 지녔다고 해서 그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지켜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도 얼마든지 그까짓 부작을 몇만 장이라도 찍어서 노나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거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해 봤자 재앙이 막아지들을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니 드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1)—1982년 입춘 법회(82.02.04) (용161)

 

약 18분.


사람으로 태어나서 오직 할 일은 이 한 일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일도 많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고 '일 다하고 죽은 무덤이 없다'고 한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그 많은 일이 이 나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에다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한 일, 이것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입니다.

이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피해서는 안 될 내가 해야만 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살자고 하는 일이지 목숨을 바쳐서 할 일은 못됩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목숨 바쳐서 할 일이 못됩니다.
돈이 없으면 안되어서 돈을 벌어야 하지만 목숨 바쳐서 돈을 벌 필요는 없는 것이고, 명예와 권리가 그것이 인간 세상에 필요하다 하지만 명예 얻기 위해서, 권리 얻기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박사와 예술이다, 무슨 학문이 소중하고 무슨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목숨을 바쳐서 그것을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이 참선(參禪)만은, 이 도(道)만은 목숨을 천만번이라도 바쳐야 하고, 목숨 바쳐서 해야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아이고! 용화사(龍華寺)를 가면 병(病)이 낫는다 그러고, 무슨 소원을 성취한다 그러고, 그렇다고 해서 용화사를 갔더니 목숨을 바치라고 한다'
겁먹으실 것은 없습니다. 당장 무슨 목숨을 바치라는 게 아니라, 목숨을 바칠 만큼 그런 간절(懇切)한 마음, 정성(精誠)스런 마음으로 닦아야만 하루라도 빨리 도(道)를 증득(證得)할 수가 있다 이런 말씀입니다.

"출가(出家)한 스님네도 견성성불한 이가 드문데, 어떻게 세속(世俗)에 오욕락(五慾樂)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도를 이룰 것인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옴마니반메훔'을 부른 것이 낫다" 자꾸 이러한 말로써 유혹을 받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參禪)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 궁극에 목적이기는 하지만, 견성성불했다고 해서 두 눈썹 사이에 백호(白毫)가 나온 것도 아니고, 또는 이마 위에 무슨 육계상(肉髻相)이 솟아오른 것도 아니고, 밤에도 이 몸에서 광명(光明)이 나는 것도 아니고, 내나 밥 먹고 똥 누고, 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무엇이 다르냐 하면, 도를 닦은 사람은 환경에...(녹음 끊김) ... 특수한 것입니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데, 도를 닦은 사람은 자기가 환경을 지배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차이점을 말할 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라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우주(宇宙)에 주인공(主人公)이 되어 가지고 우주를 다스려야지, 내가 이 우주에 다스림을 받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중생(衆生)과 성현(聖賢)과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설사 아직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서 성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철저히 믿고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서 참선을 해 나가면, 그때그때 환경에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내 자신이 환경을 다스리는 주인공(主人公)이 되는 것입니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그 감정(感情)에 노예(奴隷)가 되어 가지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만, 참선을 한 사람은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척! 돌이켜 가지고 참나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에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리고 내가 환경을 다스리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한 사람은 팔만사천 마구니가 침범을 못한다 이것입니다.
마구니가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리고 있는데, 어떻게 노리느냐 하면, 눈 ‧ 코 ‧ 입 ‧ 귀 ‧ 몸뚱이 ‧ 생각,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여섯 구멍을 통해서 그리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오는데,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볼 때에 보는 데에 홀려 들어가면, 무엇을 보다가 자기(自己)를 놓쳐버리면 그 눈을 통해서, 그 허점(虛點)을 통해서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다.
무엇을 듣는데, 누구 말을 듣던지 어떠한 소리를 들으면서 그 들음으로 인해서 자기의 이성(理性)을 잊어버리면, 들음으로 인해서 감정에 노예가 되어 버리면, 감정에 끄달려 버리면 그 귀를 통해서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온다 그 말이여.

한 나라를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지키는 병사들이 한눈을 팔고 어디 가서 술을 먹고 낮잠을 잔다던지, 자기가 지켜야 할 성문(城門)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딴 데로 가서 그 성문을 지키지 아니하면, 바로 그 곳을 통해서 적병(敵兵)이 침범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는 바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근문두(六根門頭)를 통해서 우리에게 침범해 들어오지, 절대로 다른 데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일어나는 한 생각만을 잘 단속하면 팔만사천 마구니는 들어올 곳이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가 들어오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철통같은 것입니다. 절대로 재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허수히 함으로써 그 구멍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의 이 성문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써 지켜지는 것이지, 빨간 글씨로 쓴 부작(符作)을 몸에 지녔다고 해서 그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지켜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도 얼마든지 그까짓 부작을 몇만 장이라도 찍어서 노나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거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해 봤자 재앙이 막아지들을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니 드리는 것입니다.

삿된 길을 가까이하면은 반드시 나의 마음도 삿되어지고 나의 믿음도 삿되어져서, 삿된 길에 한번 발을 디디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입춘법회 때마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간곡히 말씀드려서 여러분이 이 정법(正法)에 확고부동(確固不動)하게 뿌리를 박고 발을 디디고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여러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악도(惡道)에 떨어지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벗을 가까이하면 나도 몰래 나쁜 버릇을 익히게 되는 것이, 마치 검은 것을 가까이하면은 내 몸이 검어지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연탄 공장에 들어가서 돌아댕기면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내 의복과 몸뚱이가 더러워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행여나 삿된 길에 발을 디디지 말고, 걱정이 있어도 정법(正法)으로 다스리고, 슬픔이 있어도 정법으로 다스리고, 괴로움이 있어도 정법으로 다스리고, 외로움이 있어도 정법으로 다스려 나가도록 그렇게 훈련을 쌓아 나가면, 과연 이 정법, 이 최상승법이야말로 영겁(永劫)을 두고 의지하고 믿고 내 몸과 마음을 맡길 수가 있는 그러한 '반야(般若)의 용선(龍船)이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하야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여. 사자(獅子)가 살고 있는 사자 굴(窟)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어. 사자 굴속에 무슨 다른 짐승이 그 속에 감히 들어갈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사자 굴속에는 오직 사자만이 살 수가 있다.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로구나. 코끼리 왕, 코끼리 왕이 행(行)하는 곳에는 여우의 발자취가 끊어졌다.
코끼리가 턱- 걸어가는 앞에 감히 간특(奸慝)한 요사(妖邪)한 여우같은 것이 어찌 얼씬거릴 수가 있을 수가 있느냐.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그러한 최상승(最上乘) 불자(佛子) 앞에는 어떠한 삿된 마구니도, 어떠한 재앙도 그 앞에는 얼씬거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佛子)로서의 긍지와 보람, 희망을 가지고 한 해를 떳떳하고 의젓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 다시 한 가지 구멍 없는 젓대를 잡고,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라. 멋들어지게 만년환(萬年歡),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생사 없는 최고 무상(無上)의 깨달음의 곡조(曲調)를 불어 나갑시다.

화두(話頭)를 들고, 알 수 없는 화두를 들고 살아가는 것이 구멍 없는 젓대를 가지고 무상정각(無上正覺)에 곡조(曲調)를 불어 나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41분37초~58분59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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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서 오직 할 일은 이 한 일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일도 많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고 '일 다하고 죽은 무덤이 없다'고 한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그 많은 일이 이 나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에다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한 일, 이것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입니다’ ; 일대사(一大事).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정성(精誠) ;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백호상(白毫相) ; 부처님의 32상(相) 중 하나. 부처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 오른쪽으로 말려 있고 여기에서 광명을 발한다고 한다.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 백모상(白毛相)이라고도 하며, 부처님 뿐만 아니라 보살상에도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의 길상(吉相) 중에서 가장 공덕이 크며, 어떠한 상(相)의 공덕도 이 백호상이 지닌 공덕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육계상(肉髻相 살 육/상투 계/모양 상) ; 부처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솟아오른 모양. 불정(佛頂) · 무견정상(無見頂相) · 정계(頂髻)라고도 한다. 부처님 32길상(三十二吉相)의 하나로 지혜를 상징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산스크리트어]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호시탐탐(虎視眈眈 범 호/볼 시/노려볼 탐) ; 범(호랑이)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게송)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 ; 『전등록(傳燈錄)』 권16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참고.
*(게송)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 ; 『증집속전등록(增集續傳燈錄)』 제4권 ‘천의업해요청(天衣業海了淸) 선사’ 참고.
*간특하다(奸慝-- 간사奸邪하다·간악奸惡하다 간/사특邪慝하다·간사하다·악하다 특) ; 간사(奸邪)하고 악독(惡毒)하다.
*요사하다(妖邪-- 요사하다·요염妖艶하다·괴이怪異하다 요/간사奸邪하다·사악邪惡하다 사) ; (사람이나 그 언행이) 요망(妖妄)하고 간사(奸邪)하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구멍 없는 젓대’ ; 무공적(無孔笛).
*무공적(無孔笛 없을 무/구멍 공/피리 적) ; 구멍 없는 피리.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만년환(萬年歡) ; 만년(萬年 아주 오랜 세월)의 즐거움, 기쁨.
*무상(無上) ; ①해탈. ②부처님의 지혜. ③이 이상인 것이 없는 최고의 지고(至高). 최고.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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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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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입춘기도)2024. 3. 27. 17:27

§(161) (게송)철수화개별시춘~ / 진묵겁전(塵墨劫前)에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 / 진실하고 참된 마음을 가져야 업장(業障)이 소멸 / 입춘법회의 의의 / 탐진치, 오욕락을 비우고 자기의 참마음을 깨닫도록 지도하는 가르침이 정법이고 최상승법.

바른 법을 참되게 믿고 올바르게 실천하면 자연히 업장소멸이 되어 소원성취를 이룬다 / 함경도 사람의 좁쌀 공양(供養) / '사바세계' 뜻은 '참는 세계' / 어려운 고통, 난관에 부딪칠수록에 거기에서 더 발심해야 / 끝까지 쉬지 않고 공부하면 결국은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야만 마는 것.

**송담스님(No.161)—1982년 입춘 법회(82.02.04) (용161)

 

(1) 약 21분.

 

(2) 약 21분.


(1)------------------

철수화개별시춘(鐵樹花開別時春)이요  사해향풍종차기(四海香風從此起)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래성불비타득(本來成佛非他得)이요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철수화개별시춘(鐵樹花開別時春)이요, 쇠나무, 쇠로 된 나무에, 고목(枯木)나무에 꽃이 피니 별단(別段) 이 봄이요, 차디찬 쇠로 된 고목나무에 꽃이 피니 이 특별한 이 봄이다.
사해향풍(四海香風)이 종차기(從此起)로구나. 동해, 동서남북 사해(四海)에 향기로운 바람이 이로부터서 일어나는구나.

오늘은 임술년(壬戌年) 입춘일(立春日), 날입니다. 벌써 임술년 정월 초하루가 지내간 지 열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춘은 오늘 오시(午時)에 입춘(立春)이 들었습니다. 오늘 오시부터 정식으로 임술년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지나간 열흘 동안은 신유년(辛酉年)의 절후(節候)가 먹은 것이고 오늘부터서 정식으로 임술년이 된 것입니다.

지난 삼동(三冬)에 소한(小寒) 대한(大寒)에 그 강추위가 오늘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날입니다.
천하 없이 추운 겨울이라 하더라도 입춘부터서는 맥을 추리지를 못하고, 하루하루 조끔 추웠다 더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보름이 지나가면, 15일간이 지나가면 또 우수(雨水)가 돌아와서 따듯한 봄날이 되고 여기저기서 꽃이 피게 됩니다.

본래성불(本來成佛)이 비타득(非他得)이여.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고향(故鄕)을 떠나서 타관(他官)살이를 했는데, 그 타관살이 하는 것이 마치 자기 따뜻한 자기 고향에 자기집을 여의고, 춥고 배고픈 세월을 보낸 것이 그동안에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지낸 거와 같애.
그런데 육도윤회(六道輪廻) 속에서 고향을 잃고 방황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자기 고향을 한 걸음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진묵겁전(塵墨劫前)에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마치 평생 동안 먹고 쓰고 남을 보물을 몸뚱이 안에, 옷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춥고 배고픈 그러한 거지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잊어버리고 망각(忘却)하고 오늘날까지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본래성불한 도리를 어떻게 하면은 깨달을 수가 있느냐?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다. 마음 하나 참되면 이것이 바로 도(道)와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조석지변(朝夕之變)이여. 아침 먹었던 마음 다르고 벌써 낮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고.
'이제는 내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철저하게 이 참선(參禪)을 하리라'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그렇게 결심(決心)을 하고, 해 놓고서도 법문이 끝나고 문밖에 나가면 벌써 딴생각이 들어오고.
법문 들을 때에는 '다시는 내가 딴생각을 먹지 아니하고 오직 이 정법(正法)만을 믿고 정법에 의지해서 살아가리라' 그렇게 굳게굳게 결심을 하고서도 집에 가면 누가 뭐라고 뭐라 하고, '어디를 가면 좋은 아주 기가 맥히게 잘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 가서 부작(符作) 하나만 가지면은 백사(百事) 소원(所願)을 성취한다' 그 말 한마디만 들으면 금방 귀가 솔깃해 가지고 당장 따라나서.

만약에 부작 한 장을 어디 가서 얻어 가지고 그 부작 하나로 해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소원이 성취된다면 무엇을 이 세상에 걱정할 것이 있겠느냐 이 말씀이여.
부작으로써 업장을 소멸하고, 부작으로써 소원을 성취하고, 부작으로써 남편의 바람피우는 것을 막고, 아들 대학을 합격을 하고, 부작 한 장으로써 그러한 무서운 위력(威力)을 낼 수가 있다면, 만신이나 무당이나 점쟁이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하고 앉었겠느냐 그 말이여.
먼저 자기부터 팔자를 고쳐서 자기 자식이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만석꾼이도 되고 하지, 자기는 왜 그 짓 해서 먹고살면서 남에게 써준 것은 그렇게 되고, 자기는 그렇게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 일이냐 그 말이여.

마음이 참되지를 못하고 요망(妖妄)하고 삿되고 경박(輕薄)해서, 참된 말, 진리(眞理)의 말, 최상승법을 일러주면은 그 말이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를 못하고, 간사(奸詐)한 말을 들으면은 그 말이 그렇게 고소하고 쏙쏙 마음에 들어가요.

오늘은 입춘날이라 인 · 오 · 술(寅午戌), 범해에 난 사람, 말해에 난 사람, 또 개해에... 개띠, 이 세 가지 띠를 가진 사람은 오늘이 삼재(三災)가 나가는, 금년(今年)이 나가는 해입니다. 그 '날삼재'라 해서, 그러께는 '들삼재', 작년에는 '앉은삼재', 금년이 인자 '날삼재'인데,
'날삼재가 진짜 조심을 해야 한다. 날삼재 일 년간을 잘 넘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 신령스러운 부작을 꼭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유혹을 하는데, 들삼재 · 앉은삼재 · 날삼재, 그런 삼재에 안 들은 사람도 뜻밖에 재난(災難)을 만날 수도 있고, 삼재가 든 사람도 그런 부작을 지니지 아니해도 별 탈 없이 지낸 사람도 있고 그러한 것이지,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무슨 좋지 않는 일이 있고, 그 부적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꼭 면(免)한 것이 아니거든.

어디 교통사고가 나서 여러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의 호주머니 속에서 그 여러 가지 부적(符籍)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 것이 연전(年前)에 내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데, 부작(符作)에다가 의지를 하지 말고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자기 마음을 진실(眞實)하게 갖고 참되게 마음을 가져 나감으로써 마음속에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해야 모든 재난(災難)을 면할 수가 있고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고요할 때에 생각해 보면 누구나 납득이 갈 수 있는 얘깁니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입춘 법요식(法要式)을 갖고 법문(法門)을 하고 또 공양(供養)을 올리고 축원(祝願)을 하고 이럽니다마는, 왜 입춘에 삼재(三災)풀이를 하고 또 입춘에 이 법요식을 갖느냐 하면, 입춘 날부터 새해의 절후(節候)가 정식으로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날짜로는 정월 초하루가 그 해의 시작하는 첫날이지만,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하(立夏) 소만(小滿)... 일 년을 스물네 가지 절후(節候)로 나눌 때,
절후로 따질 때에는 입춘일(立春日)이 그 해의 첫날이 되기 때문에, 첫날에 지나간 한 해를 반성(反省)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일 년간을 장애 없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뜻있는 한 해가 되도록 각오를 하고 마음을 다지는 그러한 날로 기념하기 위해서 절절이 입춘에 법요식(法要式)을 갖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고, 집을 하나를 지을 때에도 기공식(起工式)이라 하는 게 있고, 그 집을 다 짓게 되면 낙성식(落成式)을 하듯이, 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처음 탄생할 때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해마다 그 생일을 축하하고, 또 마지막 일평생을 살다가 하직한 날을 갖다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서 돌아가신 날을 추모(追慕)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일 년이 시작하는 날과 일 년이 끝나는 날은 언제나 마음을 가다듬고 반성을 하고 참회(懺悔)하고 새로이 뜻을 다져 나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서 여행을 떠날 때에도 처음 한 발 내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북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출발을 남쪽을 향해서 출발을 하면 천리만리 엉뚱한 데로 가게 되고.
'천 리 길도 한 걸음으로부터' 라고 하는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그 한 걸음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를 믿을 때에도 맨 처음에 어느 종교 어느 종파(宗派)에 발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평생의 종교와 신앙이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부처님을 모시면 다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어느 절이나 한 부처님이다' 만신 집에 가도 부처님은 모셔져 있고, 무당집에 가도 부처님은 모셔 있고, 유사 종교(類似宗敎) 단체에도 가면 부처님이 다 모셔져 있어서, 부처님은 다 한 부처님인 줄 알고 지성(至誠)으로 다니지만,
다, 물론 말로는 한 부처님이고 같은 부처님이지만, 그 같은 부처님을 '어떻게 받들어 모시고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는 절마다 다르고, 무당 다르고, 만신 다르고, 점쟁이 다르고, 다 다른 것입니다. 이름은 다 불교라 하지마는 그 종파에 따라서 그 '부처님의 법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용화사(龍華寺)는 참선법(參禪法)을 선양(宣揚)하고 최상승법이여. 용화사가 제일이고 다른 절은 못쓴다'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 그 정법(正法)이고 또는 방편 사법(邪法)이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각자가 보고 들어보면 스스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사법(邪法)이고, 정법(正法)이냐?

그것은 그 종교를 믿음으로 해서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과 오욕락(五欲樂)을 조장(助長)을 시키는 그러한 종교는 바른 법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종교를 믿음으로 해서 삼독심을 버리고, 오욕락을 버리고, 버린다기보다는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을 추구하는 마음을 돌이켜서 그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해서 마음을 비우는, 비움으로 해서 자기의 참마음을 깨닫도록 지도하고, 그 신앙을 가짐으로 해서 마음이 그렇게 되는 그러한 가르침은 그것을 정법(正法)이라 하는 것이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종교를 믿으면 병이 낫는다. 그 종교를 믿으면은 부자가 된다. 그 종교를 믿으면 아들을 난다. 그 종교를 믿으면 중생의 어떠한 욕구를 충족을 시켜준다' 이러한 식으로 선전을 하고 그러한 달콤한 낚숫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종파는 물어볼 것도 없이 삿된 종파다. 삿된 종교라고 결정을 해도, 판단을 해도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48초)




(2)------------------

'그러면 다른 종교 다른 종파에 가면 부자도 되고, 아들도 되고, 모든 소원을 성취된다 하고, 용화사는 가 봤자 그러면 그런 것은 소용이 없고 이뭣고? 만 하지, 그러면 부자도 안 되고, 만날 해 봤자 소원도 이루지 않단 말이냐?' 혹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러한 것을 그 신앙의 목적을 삼고, 자기가 그 종교를 실천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다면 벌써 믿는 그 사람 자체가 훌륭하지를 못한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 올바른 실천으로 여법(如法)하게 도(道)를 닦아가면, 자연히 마음속에 업장이 소멸이 되고 마음이 청정해져서 불보살(佛菩薩)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무슨 소원을 성취를 못할 것이냐 이 말씀이여.
큰 목적을 설정을 해서 지혜(智慧)와 용기와 인내와 신심으로 여법하게 도를 닦아 나가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재산이건 권리건 명예건 건강이건 제절로 이루어진다면 그 이상 바랠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명색이 종교를 믿는다면서 미신(迷信)으로 종교를 믿는다면, 어디다가 내놓고 '나는 종교를 믿는다'고. '나는 무슨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가 있겠느냐 이 말씀이여.
무당집이나 다니고, 만신집이나 다니고, 점이나 치러 다니고, 그래 가지고 어디 가서 '나는 만신을 믿고 산다. 나는 무당을 믿고 산다. 그랬더니 이렇게 부자가 되았다' 떳떳하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이나 딸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친구 앞에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보살(佛菩薩)의 바른 법을 참되게 믿고 올바르게 실천을 해야만 자기도 떳떳하고 남편 앞에도 떳떳하고—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 몰래 만신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하고, 만신한테 비밀리 왕래를 하고 그러지, 떳떳하다면 왜 말을 할 수가 없습니까?
얼마든지 남편과 같이 와서 법문을 듣고, 같이 와서 참선을 하고, 같이 참선을 도반(道伴)으로서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입춘에 좋은 부작 한 장 주지 아니하고, 할 말 없으니까 공연히 마음 닦으면 죄가 소멸이 되고 소원을 이룬다' 이렇게 생각하실 분은 한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저 옛날에 함경도 사람이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서 서울로 향해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머나먼 길을 걸어서 가자니 그것도 중간에 도적을 만날까 걱정이 되고, 또 그 머나먼 길을 가 가지고 또 과거에 합격이 안 되면 안 되겠다 해서 좁쌀을 한 되를 싸 가지고 그 부처님 모셔져 있는 절을 찾아갔습니다.

부처님 앞에 좁쌀을 떠억 올려놓고서, 담뱃대를 손에 든 담뱃대를 들고 부처님 앞에 꺼떡꺼떡하면서, "부텨!" 그 함경도 사람은 부처를 '부텨'라고.
"부텨! 내 말 좀 잘 듣게. 내가 오늘 과거를 보러 가는데, 이번에 꼭 과거에 붙게만 해 주면 이다음에 이밥도 내가 갖다—그 쌀밥을 '이밥'이라 그러거든—이밥도 내가 갖다가 또 올릴 테니까 이번에 내가 꼭 과거에 붙게만 해 주게"

몇 번을 그 담뱃대를 흔들면서 간곡히 부탁을 하고 그리고서 과거를 보러 올라갔다가, 물어볼 것도 없이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과거에 떨어졌는데, 떨어지자마자 인자 고향으로 내려와 가지고 다시 그 절에 찾아가서,
"내가 그 귀한 좁쌀을 갖다가 올려놓고 그렇게 내가 간곡히 부탁을 했는데, 내 좁쌀만 똑! 따먹고 얼굴만 노래져 갖고 앉어서, 내 말대로 과거만 합격해 주었으면 내가 쌀밥을 갖다가 올렸을 텐데 다 틀렸다"고, "'부텨, 부텨' 해서 영험(靈驗)이 있는 줄 알았더니 영판 점쟁이만 못하다"고.
"점쟁이는 다 과거에 붙고 떨어질 것도 알고, 잘하면 푸닥거리만 해도 병도 낫고 그러는데,  꺼먹꺼먹 우둑허니 앉어서 좁쌀만 똑 따먹고, 무당만 영판 못하다”고 아주 큰 기침을 하고 나갔다고 그럽니다.


오늘 입춘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동참(同參)을 하셨는데, '입춘에 동참을 하고, 모처럼 이제 금년부터서는 무당이나 만신집이 부적 사러 가지 아니하고 한번 시험을 한번 해 보자'
그러다가 무슨 조그만 뭣이 뜻대로 안되면, 함경도 사람처럼 '그 입춘에 동참해 봤자 별 수 없고, 그 내년부터서는 그래도 무당한테 가서 부작을 꼭 사야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신다면 함경도 사람만 조끔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부작을 사거나 입춘에 동참을 하거나 또는 참선을 하거나, 쇠털 같은 많은 날에 혹 뜻대로 안 되는 수도 있고 또 뜻대로 되는 수도 있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는 데는—이 사바(娑婆)란 말이 인도 말인데, '인내(忍耐)', '감인(堪忍)', 인내, '참는다'는 말이거든. '사바세계' 하면은 '참는 세계'라.

여덟 가지 고(苦)—생(生) · 로(老) · 병(病) · 사(死)의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은 이별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또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또 구(求)하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한 구부득고(求不得苦),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성고(五陰盛苦), 이 여덟 가지 고(苦)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중생(衆生)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러한 고해(苦海)에 왜 우리가 태어났느냐? 과거에 우리가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다 이 말씀이여.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으면서도 이만큼 살게 된 것, 이만큼 잘 사는 것도 이것도 다 참 천만다행(千萬多幸)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믿고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러기 때문에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살면서 이만큼 산다고 감사하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무엇이 뜻대로 안되면 거기에서 오히려 더 발심(發心)을 하고, '무엇인가 내게에 참회해야 할 일이 있구나' 이리 생각하고 자기의 내면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해서 자기의 잘못을 참회를 하고, 다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신심을 내서 화두(話頭)를 들고 염불(念佛)을 하고 이렇게 다져 나가야만 불법을 믿는 사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요 바른 생활이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렸지만, 한 나라가 발전해 나가려면 견디기 어려운 난관(難關)을 만나서 그것을 극복해야만 그 나라도 발전을 하는 것이지, 너무 편안하고 일없으면 그 편안하고 살기 좋은 데에 도취가 되어 가지고 자연히 해태(懈怠)해지고,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국력이 쇠퇴해서 모든 국민이 게을러빠지고 사치에만 흘러서, 그러는 동안에 이웃나라가 반드시 그러한 틈을 타서 침범을 해 들어오고 마는 것입니다. 백제가 망할 때에도 역시 그랬었고, 신라가, 그 꽃피었던 그 신라가 망할 때에도 너무너무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월이 몇십 년, 몇백 년 지나다 보면 결국은 그 나라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맹자(孟子)』에도 '하늘이 장차 훌륭한 인재(人材)를 낼 때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갖은 고통과 시험을 주어서 그 사람을 단련(鍛鍊)을 시킴으로써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잘 다스리도록 한다' 그런 말이 있고.
'나라에도 계속 그 충고하는, 나라의 정치와 통치자의 잘못을 힐난하게 비판하고 그 상소(上疏) 올리고 그러한 입바른 그러한 선비가 있어야 하고, 또 이웃나라에서 호시탐탐 그 나라를 침범하려고 하는 적성 국가(敵性國家)가 있어야만 그 나라는 계속 튼튼하고 나라를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다' 이러한 내용에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역사를 통해서 역력히 볼 수가 있는 바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정(大疑情)으로 도(道)를 닦아서 도업(道業)을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데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 난관에 부딪혀서 거기에서 대분심과 대신심이 불타올라야만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 조그마한 사업(事業)을 하나 하더라도 물심양면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갖은 고통을 극복해야만 하나의 사업을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실패하면 또 일어서고 두 번 실패하면 또 일어서고, 곧 기업체가 쓰러지고 '내가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한, 그러한 참 참기 어려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수없이 겪으면서 그러면서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버텨 나가야만 사업을 마침내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요, 대안락(大安樂), 큰 안락의 법문(法門)이라 하지만, 이 참선을 시작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첫째, 육체적으로도 팔 다리 허리가 쑤시고 아프고 저리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 골치가 아픈 사람, 정신적으로도 온갖 번뇌(煩惱)와 망상(妄想)과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퍼일어나 가지고, 조끔 공부하려면은 '가정에 뭔 일이 있다' 그래 가지고 잠시도 편할 날이 없이 이 일 저 일 구름 일어나듯이 일어납니다마는,
그러한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착실히 다져 나감으로써 그렇게 백방(百方)으로 공부를 방해치는 그러한 사건들이 하나씩 둘씩 차츰차츰 고개를 숙이고, 나중에는 그러한 일들이 내 공부해 나가는 데에 박차를 가해 줄지언정 그것이 나를 공부 못하게 하는 마침내 하지 못하게 될 날이 오는 것입니다.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익힌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과 오욕락(五欲樂)으로 익혀 왔고,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다 되어져. 마치 잡초는 그렇게 뽑아 내버리고 약을 치고 해서 그것을 못 자라게 해도 잡초는 저절로 그렇게 잘 자라고. 곡식은 거름을 주고 그렇게 잘 가꾸려고 해도 영 잘 안 자라는 거와 같애서,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있어 번뇌망상 사량분별심은 그렇게 안 하려고 그러고, 쫓아내려고 그러고, 못 일어나게 하려고 해도 그렇게 잘 퍼일어나고, 화두(話頭)는 그렇게 생각 생각이 추켜들고 하려고 해도 그것은 잘 잊어버리고 안 되지요.

그러나 사불범정(邪不犯正)이여. 또 마침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제아무리 무성했다 하더라도 끈질기게 노력을 하면 그 잡초를 제거하고 마침내 우리가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끝까지 주저앉지 않고 쉬지 않고 공부를 다져 나가면 번뇌망상,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를 항복받아서 결국은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시고, 역대조사(歷代祖師)요, 팔만사천 보살(菩薩)님네들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여실(如實)히 보여주신 것입니다.(20분49초~41분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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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본래성불비타득(本來成佛非他得)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제29권 ‘寄同參十首’ 참고.
*별단(別段 다르다·따로 달리 별/층계·구분 단) ; ①보통과 다름. ②보통의 것과 특별히 다르게.
*임술년(壬戌年) ; 1982년.
*신유년(辛酉年) ; 1981년.
*절후(節候 철 절/철·절기·기후 후) ;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 15일 내지 16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타관(他官)살이 ; 자기 고향이 아닌 다른 고장에서 삶.
*타관(他官 다르다·다른 곳 타/마을 관)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진묵겁(塵墨劫)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우리가 마치 평생 동안 먹고 쓰고 남을 보물을 몸뚱이 안에, 옷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춥고 배고픈 그러한 거지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 의주유(衣珠喩).
*의주유(衣珠喩) ; 『법화경(法華經)』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 나오는 비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다’는 비유로 계주유(繫珠喩), 또는 의리계주(衣裏繫珠)의 비유라고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갔다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데, 친구가 급한 볼일이 있어 그의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고 밖으로 나가니,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는 술이 깨자 그 집을 나와 방황하면서 음식을 구하느라 갖은 고생을 하는데, 훗날 우연히 만난 친구는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던 사실을 말한다는 내용. 여기서 가난한 자는 중생을 상징하고, 친구는 부처님을, 보배 구슬은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누구나 이처럼 귀중한 보배[佛性]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하고 있으며, 선종(禪宗)에서 자가보장(自家寶藏)이라는 용어로 널리 활용된다.
*자가보장(自家寶藏) ; '자기집[自家] 보배 창고[寶藏]' 중생이 각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리킴.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만석꾼(萬石꾼) ; 곡식 만 섬을 거두어들일 정도의 논밭을 가진 큰부자.
*만석(萬石 일 만·매우 많은 만/섬·10말 석) ; ①아주 많은 곡식. ②곡식 일만 섬(10말).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 ]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6분7초)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고 한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큰 재난이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의 그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또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화재로 일어난 그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나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이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또 조용합니다. 또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해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건 온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또 상처를 또 아물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유(類)가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처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이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또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간(刹那間)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 소리, 향기, 맛, 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낚숫밥 ; ‘낚싯밥’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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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회광반조(廻光返照 방향을 바꾸다·돌리다 회/빛 광/돌이키다 반/비칠 조)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자신의 본성을 조견(照見)하는 것. 언어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자기 본래의 면목(面目)을 보는 것.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19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 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2. (가로판) p117.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입바르다 ; (주로 ‘입바른’ 꼴로 쓰여) 바른말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사도(四道) ;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 ①가행도(加行道).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 ②무간도(無間道). 간격이나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③해탈도(解脫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④승진도(勝進道). 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무량겁래(無量劫來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이래·그 이후로 래(내))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 이래(以來).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사불범정(邪不犯正 간사할 사/아닐 불/범할 범/바를 정) ; 바르지 못한 것, 삿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함.
*사필귀정(事必歸正)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감.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산스크리트어]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여실(如實)히 ; 사실과 꼭 같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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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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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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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4. 3. 24. 13:36

§(164) (게송)신재해중휴멱수~ / 산철결제 / 진각국사(眞覺國師) 좌우명(座右銘) / 중국 고봉선사의 수행담 /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 / 고봉스님 3년 공부가 진취가 없었던 까닭은? 화두만을 자꾸 거각(擧却)했을 뿐이지, 그 간절한 '의정(疑情)'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고봉스님, 전강 조실스님처럼 속에서부터 불타오르는 그러한 그 간절한 분심(憤心), 신심(信心)이 아니면 대의단(大疑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망회타귀굴~, 수임방원기~ /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과연 어떻게 일용(日用)을 수용(受用)을 해 갈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4)—1982(임술년) 춘계산철 결제 법어(82.02.24) (용164)

 

(1) 약 19분.

 

(2) 약 16분.


(1)------------------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하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가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하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몸이 바다 가운데에 있으니 물 찾기를 쉬어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니 산을 찾지 말아라.
바닷속에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있으면서 '물이 어디가 있는가?' 하고 물을 찾지 말고,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면서 '산이 어디가 있는가?' 하고 산을 찾지 말아라.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백 년이면, 일 년이 삼백육십 일이니까 백년이면 삼만육천 일인데,
백년(百年) 삼만육천조(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니라. 백 년 삼만육천 일 반복하는 놈이—엎쳤다 뒤쳤다, 앉았다 일어났다, 오고가고, 그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더라.


오늘은 임술년(壬戌年) 2월 초하루, 반살림 결제(結制)날입니다.
그전에는 전강 조실(祖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쭈욱 해제(解制) 동안에도 스님네가 해제했다고 해서 이렇다 할 꼭 갈 곳도 없으면서 모다 걸망을 지고 불불이 나가서 여기저기 동서남북으로 그럭저럭 다니면서 다음 철 결제까지 기다리느라고 정처(定處)없이 모다 행각(行脚)도 하고, 모다 이리 가서 쉬기도 하고 약(藥)도 먹고 모다 그랬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이 도량(道場)에서 결제 때와 똑같이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이리 생각을 해서, 산철에도 가시지 말고 여기서 공부를 하시기를 바래서, 그렇게 해서 스님네가 이 산철에도 정진을 쭈욱 해 내려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금년(今年)부터서는—옛날에 그렇게 산철에 정진을 했지만, 뭐 '산철결제'라 하고 무슨 결제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그러지는 안 했습니다.
금년에는 이렇게 새로 선방(禪房)도 짓고 이렇게 법당(法堂)도 짓고 그랬으니, 기왕 산철에 결제를, 안거(安居)를 하기로 한다면 간략히 결제 법요식을 갖는 것이 우리의 신심(信心)을 굳건히 하고 여러 가지 분위기를 엄숙히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이리해서 여러 스님네의 뜻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간략히 법요식을 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다 신도님한테는 '산철 결제 법요식에 참석하시라'는 구체적인 발표는 하지 안 했는데, 이렇게 특별히 신심(信心)이 있는, 또 인연(因緣)이 있는 몇 분의 신도님네들이 참석을 해 주셔서 이것도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因緣)의 소치(所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각국사(眞覺國師)에 좌우명(座右銘)」이 있는데, 그 좌우명을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우리 정진(精進)을 해 나가는 출가(出家) 납승(衲僧)으로서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자(菩薩子) 보살자(菩薩子)여. 상자마두심유이(常自摩頭深有以)니라.
보살이여, 보살의 자식이여, 보살이여. 우리가 모다 보살의 자식이요, 새끼보살이라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자마두심유이(常自摩頭深有以)여. 항상 스스로 자기 머리를 어루만져 보라 그 말이여. 깊은 씀[有]이 있으리라, 깊은 의의(意義)가 있으리라.

마두인득심사량(摩頭因得審思量)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냐.
머리를, 자기 머리를 자기가 떠억 어루만지면서 깊은 사량(思量)을, 생각한 바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여. '부처님이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자기가 자기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생각을 하는 것이여.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냐, 출가(出家)한 본뜻이, 목적이 무슨 일을 목적으로 해서 출가를 했느냐?

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이요, 모냥은 분명히 중에 모냥을 하고 있는데, 그 마음은 속인(俗人)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참으로 여법(如法)한 출가인(出家人)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다 갖추었느냐.
가불참천이괴지(可不慚天而愧地)니라. 가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고, 땅을 내려다보고 부끄럽지 않느냐.

추행광언임여위(麤行狂言任汝爲)요  확탕노탄하회피(鑊湯爐炭何回避)리요.
머트러운 행동과 미치광이 같은 말을 니 멋대로 행하고, 니 멋대로 지껄이다가 확탕노탄(鑊湯爐炭)을 하회피(何回避)냐, 확탕(鑊湯)지옥과 노탄(爐炭)지옥을 어떻게 회피할 수가 있겠느냐.

이건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항시 자기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던 글입니다. 이 글은 바로 출가 납승으로서는 누구나 이러한 좌우명으로써 자기(自己)의 좌우명(座右銘)을 삼는다 해도 조끔도 손색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기가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이 좌우명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 가운데에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있는 법문을 해 주셨는데,
네 가지의 은혜(恩惠)가 중(重)한 것을 잊지 않았느냐?
사대(四大) 오온(五蘊)이 생각 생각이 일 초 일 초 늙어가고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안 했느냐?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 했느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와 조사(祖師)를 만났느냐?
이러한 등(等)의 여러 가지 그 법문을 해 주셨는데, 그러한 말씀도 우리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그런 중대(重大)한 법문(法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출가한 선객(禪客)이 무엇이 제일 고민(苦悶)이냐?
옷이 없는 것도 고민이 아니요, 먹을 것이 없는 것도 고민이 아니요, 건강이 좋고 나쁜 것도 그것도 큰 고민이 아니고, 오직 큰 고민은 '정진(精進)이 순일(純一)하게 되냐, 안 되느냐?' 오직 이 하나의 고민이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중국에 고봉선사(高峰禪師), 『선요(禪要)』 법문을 하신 그 고봉선사께서도 처음에 출가해서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화두(話頭)를 타서 참선(參禪)을 하는데, 어떻게 잠이 퍼오던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포단(蒲團) 위에 앉어 있을 수가 없었어. 부득이 밥을 먹을 때에만 방석에 앉어서 밥을 먹고는 그밖에는 방석에 앉어 있을 수가 없어. 앉었기만 하면 혼침(昏沈)이 와서 졸음이 오기 때문에 앉지를 못하고.

금방 앉으려고 하면은 잠이 퍼와 가지고는 꾸뻑 (졸면) 일어나 가지고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는데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까지 그래 가지고 왔다갔다하면서 잠을 깨 가지고, 잠이 깨져서 막 좀 가서 방석에 가서 앉으려고 하면은 또 잠이 오고.
잠이 깨면은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망상이 좀 가라앉을만 하면 잠이 오고 이랬는데, 처음에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결심을 하기를 '3년 동안 정진을 해 가지고 3년이 되어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면 죽어 버릴 각오'를 하고 공부를 시작을 했는데, 3년이 거의 다 되도록 조끔도 공부가 진취(進趣)가 없었어. 죽을 날은 얼마 안 남았는데, 기한은 얼마 안 남었는데 공부가 전혀 진취가 없어.

이 세상에 무엇이고 3년 동안 적공(積功)을 들이면 숙달이 되어서 많이 진취가 있는 것인데, 어찌된 셈인지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아무리 고단해도 자리에 눕지를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는데 3년이 되도록 조끔도 진취가 없어. 혼침과 산란, 두 가지로 완전히 24시간이 점철(點綴)이 되어. 혼침 아니면 산란, 산란 아니면 혼침.
아무리 곤(困)해도 자리에 눕지를 않고, 낮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밤새도록 잠을 안 자려고 도량에 나가서 왔다갔다. 밥 한 그릇 먹는 그 잠깐 동안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를 아니했어.

그리다가 마지막에 가서 달마(達摩) 스님 기일(忌日)에, 달마 스님 모셔진 영각(影閣)에 올라가서 그 제사를 지내는데, 그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 진영(眞影)에 쓰여 있는 글에,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라' 그 영찬(影讚)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는데.(처음~19분)




(2)------------------

그 확철대오 하기 전 일주일 전에 꿈에 단교화상(斷橋和尙)이 보이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話頭)를 꿈에 받고서 꿈을 깼는데, 그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밥을 먹어도 의심이요 똥을 누어도 의심이요, 산을 봐도 의심이요 물을 봐도 의심이요, 대중 가운데 있어도 대중은 한 사람도 보이지도 않고 오직 의단만이 독로해서 밥도 건성으로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일부러 딴생각을 좀 하려고 해도 딴생각이 나지를 않고 오직 화두만이 독로를 했다.

그 전에는 화두를 아무리 들려고 해도 들을 때뿐이지, 금방 산란심(散亂心)이 들어와 버리고 그랬었는데, 꿈에 단교화상 '만법귀일' 화두를 받은 이후로는 제절로 그렇게 되었더라.
그래 가지고 이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가 일주일을 고대로 가는데, 마침내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 이란 영찬(影讚)을 보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는데.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해서 3년 동안을 그렇게 애를 썼어도 공부가 일호(一毫) 진취(進趣)가 없었느냐?’
그 원인을 캐 보니까, 다른 데에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정상(疑情上)에서 공부를 짓지 아니한 데 있더라. 화두만을 자꾸 거각했을 뿐이지, 그 간절한 '의정(疑情)'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공부가 잘 안 된다', '의심이 잘 안 든다' 많은 수행승(修行僧)들이 이 년, 삼 년 내지 십 년을 선방으로 다니면서 공부를 해도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못하는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가끔 "어떻게 하면 의정이 돈발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다정한 도반(道伴)이 무상(無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 도반이 죽어서 사십구재(四十九齋)날 김응애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어린 나이에 선방(禪房)에 들어오셔서 그 용맹정진을 해 가지고 마침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하셨습니다마는.
그러한 특별한 발심(發心) 기연(機緣)이 있거나, 스스로 그렇지 못하면 이 고봉 스님의 경우와 같이 되고 안 되고 할 것도 따지지 말고, 아주 죽기로 맹서(盟誓)를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1년 2년 3년, 이렇게 피나는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공부가 되고 한 것도 따지지 말고 모기가 마치 쇠로 된 소에 입부리를 박듯이—모기가, 그 약하디 약한 모기가 어떻게 쇠로 지어 붓어진 소 몸에다가 그 입부리를 박은들 들어갈... 상식적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들어갈 것이다, 안 들어갈 거다'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몸뚱이 채 쇠로 된 소 몸에다 뚫고 들어가는 것이여. 입부리와 자기 몸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거나 말거나,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한 것을 전혀 따지지 아니하고 몸뚱이 채 아주 육탄(肉彈)으로 소를 향해서 몸을 던진다 이 말인데.

이러한 대용맹심, 조실 스님께서도 도반의 죽음으로 해서 무상함을 깨달라서 발심을 하셔 가지고 대중의 사분정진에 구애(拘礙) 받지 아니하고, 법당 뒤에다가 꺼적을 하나 깔아 놓고 거기서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졸으면 또 포행(布行)을 하고 또 졸음이 나가면 정진을 하고 무섭게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속에서부터 불타오르는 그러한 그 간절(懇切)한 분심(憤心), 신심(信心)이 아니면 대의단(大疑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이 모여서 방(榜)을 짜서 정진을 하게 되니까 대중(大衆)의 규칙에 순응(順應)을 해야 되겠지만, 대중의 규칙에 어긋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철저한 자기 규칙,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고봉 스님처럼 전강 조실 스님처럼 그러한 철저한 가행정진을 해서 기어코 이번 철에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망회타귀굴(忘懷墮鬼窟)이요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하면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망회(忘懷)에 타귀굴(墮鬼窟)이요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라.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하고, 생각을 자꾸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하면, 망회(忘懷)를 잊어버리면, 회포(懷抱)를 생각을 잊어버리면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에 떨어지고,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다. 뜻을 착(着)하면, 생각을 일으키면,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이 되었건, 벌써 뜻을 착(着)하면 잔나비의 뜻에 놀아난 것이다.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하면, 생각을 잊으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뜻을 부딪치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이 두 가지 병[二病]을 없애려고 뉘기 짜면,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이다. 야호에 정, 야호정(野狐精), 야호(野狐)는 여우, 여우에 정(精)을 면틀 못할 것이다.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허고  경수호한형(鏡隨胡漢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직요이마거(直饒伊麽去)라도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각을 잊어버리면 귀신굴(鬼神窟)에 떨어지고, 뜻을 부딪히면, 착(着)하면 원숭이의 정(情)에 놀아나고, 이 두 가지 병(病)을 없애려고 하면 야호(野狐)의 정(精)을 면틀 못한다. 

그렇다면 물이 둥글고 모난 그릇에 따르듯이,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도 둥그렇게 담아지고,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 물도 모나게 담아지고,
경수호환형(鏡隨胡漢形)이다. 거울은 검은 것이 거울 앞에 나타나면 검은 것이 거울 속에 비추고, 흰 것이 나타나면 흰 영상(影像)이 거울 속에 드러나듯이.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가져가면 어떻겠느냐.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마치 귀먹은 벙어리와 눈이 먼 장님에다가 비유할 수밖에는 없느니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아 가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과연 어떻게 일용(日用)을 써 가겠는가, 수용(受用)을 해 갈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19분1초~35분2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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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게송)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 ; ‘백 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왔다갔다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의 진영(眞影) 찬(讚) 끝에 있는 두 글귀.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p168~169. p173~174 참고.
忽於次月十六夜夢中에  忽憶斷橋和尙이  室中所擧萬法歸一一歸何處話하니  自此疑情頓發하야  打成一片하야  直得東西不辨하며  寢食俱忘이라

어느덧 다음 달 16일 밤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홀연히 단교화상이 방장실(方丈室)에서 일러 주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화두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로부터 의심이 단박 생겨 일념을 이루어서 동과 서를 잊었으며,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至第六日하야  辰巳間에  在廊下行이라가  見衆僧堂內出하고  不覺에  輥於隊中하야  至三塔閣上하야  諷經이라가  擡頭忽睹五祖演和尙의  眞讚末後兩句에 云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這漢하고  日前被老和尙의  所問拖死屍句子를  驀然打破하니  直得魂飛膽喪하야  絶後再甦이라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리잇고  乃是辛酉三月廿二少林忌日也러이다  其年이  恰廿四歲요

그러한지 6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진시(辰時)에서 사시(巳時) 사이에 행랑(行廊) 아래서 거닐다가 대중 스님들이 승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대열에 섞여 삼탑각에 올라갔습니다. 경을 외우면서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법연 화상의 진찬(眞讚)의 끝 두 글귀에 “백년 3만 6천 일을 반복(返覆)하는 것이 원래 이놈이다” 한 것을 보자, 전에 스님께서 다그쳐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백이십 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
그때가 바로 신유(辛酉)년 3월 22일 달마 대사 기일(忌日)이었고 제 나이 24세가 되었습니다.
*임술년(壬戌年) ; 1982년.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불불이 ; 부랴부랴(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소치(所致 것·바 소/이르다·도달하다 치) ; (주로 '~의 소치'의 구성으로 쓰여) 어떠한 까닭으로 일어난[致] 바[所]. 어떤 까닭으로 생긴 일.
*진각국사(眞覺國師) 좌우명(座右銘) ;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353.
菩薩子 菩薩子 常自摩頭深有以 摩頭因得審思量 出家本意圖何事

보살님이여, 보살님이여. 항상 머리를 만지는 것 깊은 까닭이 있네. 머리를 만지며 깊이 생각하나니 '출가한 본의가 무엇이었던가?'

僧其相貌俗其心 可不慚天而愧地 麤行狂言任汝爲 鑊湯爐炭何廻避

겉모양은 승려로서 그 마음은 속심(俗心)이라면,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느냐. 거친 행동과 미친 소리를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과 숯불에 달구어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느냐.

*좌우명(座右銘 자리 좌/오른쪽 우/새길 명) ; 늘 자리[座] 옆[右]에 새겨[銘]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출가(出家) : [산스크리트어] pravrajyā 또는 pravrajita '집[家]에서 나온다[出]'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2~133. (가로판 p139)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납승(衲僧 옷을 꿰맴 납/중 승) ; 납자(衲子).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속인(俗人 속인·평범하다·대중적이다 속/사람 인) ; ①세속(世俗)의 사람[人]. ②불가(佛家)에서 스님이 아닌 일반 사람을 이르는 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탕노탄(鑊湯爐炭) 지옥 ; 확탕(鑊湯)과 노탄(爐炭).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과 숯불에 달구어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손색(遜色 못하다·뒤지다·뒤떨어지다 손/모양·상태 색) ; (주로 ‘없다’와  함께 쓰여) 다른 것과 비교해 보아서 못한 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선가귀감(禪家龜鑑) ;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선가귀감’이 있다.
*‘네 가지의 은혜(恩惠)가 중(重)한 것을 잊지 않았느냐? 사대(四大) 오온(五蘊)이 생각 생각이 일 초 일 초 늙어가고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안 했느냐?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 했느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와 조사(祖師)를 만났느냐?’ ; 일용점검(日用點檢), 참선 수행인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할 도리.
*일용점검(日用點檢) ; 참선 수행인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할 도리.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8~72 참고.
大抵參禪者(대저참선자)는 還知四恩(환지사은)이 深厚麼(심후마)아, 대저 참선하는 이는 네 가지의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還知*四大醜身(환지사대추신)이 念念衰朽麼(염염쇠후마)아,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 몸[四大醜身]이 찰나 찰나 썩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還知人命(환지인명)이 在呼吸麼(재호흡마)아,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生來値遇佛祖麼(생래치우불조마)아, 살아오매 부처님이나 조사를 만나 뵈었는가?
及聞無上法(급문무상법)하고 生希有心麼(생희유심마)아, 위없는 법문을 듣고 희유한 마음을 냈는가?

不離僧堂(불리승당)하고 守節麼(수절마)아, 승당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不與隣單(불여인단)으로 雜話麼(잡화마)아, 곁에 있는 사람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切忌鼓扇是非麼(절기고선시비마)아, 분주하게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는가?

話頭(화두)가 *十二時中(십이시중)에 明明不昧麼(명명불매마)아, 화두가 십이시(十二時) 중 어느 때나 또렷또렷 매(昧)하지 않는가?
對人接話時(대안접화시)에 無間斷麼(무간단마)아,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見聞覺知時(견문각지시)에 打成一片麼(타성일편마)아, 보고 듣고 느끼고 알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打成一片] 있는가?

返觀自己(반관자기)하야 捉敗佛祖麼(착패불조마)아, 자기의 본래면목을 보아서 불조의 허물을 잡아냈는가?
今生(금생)에 決定續佛慧命麼(결정속불혜명마)아,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겠는가?

起坐便宜時(기좌편의시)에 還思地獄苦麼(환사지옥고마)아, 앉고 눕고 편안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此一報身(차일보신)이 定脫輪㢠麼(정탈윤회마)아, 이 육신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當*八風境(당팔풍경)하야 心不動麼(심부동마)아, 여덟 가지 바람[八風]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此是參禪人(차시참선인)의 日用中點檢底道理(일용중점검저도리)니 古人云(고인운), 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하면 更待何生度此身(갱대하생도차신)고 하시니라,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언제 건질 것인가!’ 하시니라.

〇주해(註解)와 평(評)
四恩者(사은자)는 父母君師施主恩也(부모군사시주은야)요 四大醜身者(사대추신자)는 父之精一滴(부지정일적)과 母之血一滴者(모지혈일적자)니 水大之濕也(수대지습야)요 精爲骨(정위골)이요 血爲皮者(혈위피자)는 地大之堅也(지대지견야)요 精血一塊不腐不爛者(정혈일괴불부불란자)는 火大之暖也(화대지난야)요 鼻孔先成(비공선성)하야 通出入息者(통출입식자)는 風大之動也(풍대지동야)라 阿難曰(아난왈), 欲氣麁濁(욕기추탁)하야 腥臊交遘(성조교구)라 하시니 此所以醜身也(차소이추신야)라

네 가지 은혜란 부모, 임금, 스승, 시주의 은혜요,  네 가지로 된 더러운 몸[四大醜身]이란 아버지의 정수[精]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血] 한 방울이니, 물의 젖은 기운[水大之濕]이요, 정수는 뼈[骨]가 되고 피가 가죽[皮]이 된 것은 땅의 단단한 기운[地大之堅]이며, 정기[精]와 피[血]의 한 덩이가 썩지 않고 녹아버리지도 않는 것은 불의 더운 기운[火大之暖]이요,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바람의 움직임[風大之動]이다. 아난존자가 말하기를 ‘정욕이 거칠고 흐려서 더럽고 비린 것이 어울려 뭉쳐진다’ 하시니 더러운 몸[醜身]이라 부른 것이다.

念念衰朽者(염염쇠후자)는 頭上光陰(두상광음)이 剎那不停(찰라부정)하니 面自皺而髪自白(면자추이발자백)이라 如云(여운), 今旣不如昔(금기불여석)이요 後當不如今(후당불여금)이니 此無常之體也(차무상지체야)라 然(연)이나 無常之鬼(무상지귀)가 以殺爲戱(이살위희)하니 實念念可畏也(실념념가외야)라 呼者(호자)는 出息之火也(출식지화야)요 吸者(흡자)는 入息之風也(입식지풍야)라 人命寄托(인명기탁)이 只在出入息也(지재출입식야)라

‘생각 생각 썩어 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도 저절로 희어가니, 옛말에 「지금 이미 옛 모습 아니네, 뒷날에 어찌 지금 같을까」 한 바와 같이 과연 덧없는 몸이 아닌가! 덧없는 귀신[無常之鬼]이란 죽이는 것으로 놀이를 삼으므로, 참으로 생각 생각이 무서울 뿐이다. 날숨[呼]은 불 기운이요 들숨[吸]은 바람 기운이라,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쉬고 내쉬는 한숨에 달린 것이다.

八風者(팔풍자)는 順逆二境也(순역이경야)요 地獄苦者(지옥고자)는 人間六十*劫(인간육십겁)이 *泥犂一晝夜(니려일주야)니 鑊湯爐炭(확탕노탄)과 釼樹刀山之苦(검수도산지고)를 口不可形言也(구불가형언야)라 人身難得(인신난득)이 甚於海中之鍼故(심어해중지침고)로 於此(어차)에 愍而警之(민이경지)하노라

여덟 가지 바람(八風)이란 대체로 마음에 맞는[順] 것과 거슬리는[逆] 두 가지 경계요, 지옥의 고통이란 인간의 60겁(劫)이 지옥의 하루가 되는데,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칼산과 창숲에 끌려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어 일깨우노라.

評曰
上來法語(상래법어)는 如人飮水(여인음수)에 冷暖自知(냉난자지)라 聰明(총명)이 不能敵業(불능적업)이요 *乾慧(간혜)가 未免苦輪(미면고륜)이니 各須察念(각수찰념)하야 勿以自謾(물이자만)이어다

평해 가로되(評曰),
위에 말한 법문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운 것은 제 스스로 알 뿐이므로, 총명(聰明)이 능히 업(業)의 힘을 막지 못하고, 마른 지혜[乾慧]가 고(苦)의 윤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각자 살피고 생각하여 스스로 속지 말지어다.

〇譯註(역주)
①사대색신(四大色身) : 중국에서 금(金) • 목(木) • 수(水) • 화(火) • 토 (土)의 오행(五行)을 말하듯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땅(地) • 물(水) • 불(火) • 바람(風)의 사대(四大)로써 자연계(自然界)의 온갖 것에 대한 구성요소(構成要素)로 말하였다。
②십이시(十二時) : 하루 24시간을 말함。지금 쓰고 있는 이십사시(二十四時)를 예전에는 십이시(十二時)로 썼다。
③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④겁(劫) : [범]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세한 숫자는 여러 글에 일정하게 쓰이지 않았으나, 한 세계가 생겼다가 아주 없어지는 동안을 대겁(大劫)이라 하며, 그 사이가 팔십 소겁(小劫)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⑤니려(泥犂•泥黎•泥梨) : 범어로써 지옥을 말함。그 뜻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기쁘고 즐거운 것이 도무지 없다는 뜻。십계(十界) 중 가장 하열한 곳。무간 아비지옥。
⑥간혜(乾慧) : 비록 깨쳐서 지혜가 났더라도, 정(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마른 지혜라고 한다。마른 지혜는 죽고 나는 이치를 알더라도, 나고 죽는 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乾 = 하늘 건, 마를 간)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 • 모임 • 집합 • 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 • 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 • 충동 • 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 했느냐?’ ;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옛날에 중국에 고봉선사(高峰禪師), 『선요(禪要)』 법문을 하신 그 고봉선사께서도 처음에 출가해서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화두(話頭)를 타서 참선(參禪)을 하는데’ ; 
[참고] 고봉 스님께서 자신의 수행에 대해 하신 법문.
① 『선요禪要』 28. 通仰山老和尙疑嗣書, 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② 『선요禪要』 2. 시중(示衆).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고봉(高峰) ; (1238~1295) 송대 말기 원대 초기의 임제종 스님. 법명은 원묘(原妙), 법호는 고봉(高峰), 속성은 서(徐)씨. 강소성(江蘇省) 오강(吳江) 출신. 15세에 부모에게 출가할 것을 간청하여 가화(嘉禾) 밀인사(密印寺)의 법주(法住) 스님에게 귀의하여 은사로 삼고 16세에 삭발하여 17세에 구족계를 받아 18세에는 천태교학을 익히다가 20세에 선문(禪門)으로 공부를 바꾸어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단교묘륜(斷橋妙倫 1201~1261)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22세에 3년 사한(死限)을 정하고 참선에 들어가 단교묘륜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약정했던 3년의 기한이 다가왔을 때 태주(台州)의 정(淨) 사형의 권유로 설암조흠(雪巖祖欽 1215~1287) 선사께 가르침을 청해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다. 1271년 임안(臨安 : 浙江省 杭州) 용수사(龍鬚寺)에서 어느날 잠에서 깨어 화두를 의심하던 차에 함께 잠자던 도반이 목침을 밀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설암 선사의 법을 이었다.

1274년 무강(武康 : 浙江省 湖州) 쌍계봉(雙髻峰)에 주석하였다. 1279년 항주(杭州) 천목산(天目山)으로 가서 서봉(西峰)의 위쪽에 있는 사자암에서 지내다가, 사자암 서편 바위 동굴에다가 작은 토굴을 지어 사관(死關)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입적할 때까지 15년 동안 지냈다.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으며, 수계자는 수만에 이르렀다. 1295년 세수 58, 법랍 43세로 입적하였다.
『고봉대사어록』 상하 2권과 고봉대사어록 上下권 중 법어 · 서신을 수록한 상권에서 발췌한 『선요(禪要)』가 전한다.

*선요(禪要) ; 『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및 스님 자신의 수행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포단(蒲團 부들 포/둥글 단) ; ①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方席). ②부들풀로 만든 둥근 방석. 근래에는 이 포단 대신 '좌복(坐服)'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진취(進趣 나아가다·오르다 진/달리다·향하다·재촉하다 취) ; (정진해) 나아가다.
*적공(積功 쌓다·많다 적/공로·일·업적 공) ; ①공(功)을 쌓음[積]. ②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씀.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점철(點綴 점 점/엮다·잇다·연결하다·꿰매다 철) ; ①흐트러진 여러 점이 서로 이어짐. 또는 그것들을 서로 이음. ②관련이 있는 상황이나 사실 따위가 서로 이어짐. 또는 그것들을 서로 이음.
*달마대사(達摩大師) : [산스크리트어]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기일(忌日 꺼리다·기일忌日 기/날 일) ; ①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 ②불길(不吉)하다 하여 꺼리는 날.
*영각(影閣 그림자·초상肖像 영/집 각) ; 고승(高僧)의 초상(肖像)을 모신 전각(殿閣).
*오조 법연(五祖法演) : (? – 1104) 속성은 등(鄧)씨. 사천성 면주부(綿州府) 파서(巴西)에서 났다. 35세에 출가하여, 처음엔 강당에서 <백법(百法)> <유식론(唯識論)> 같은 것을 공부하였다.

뒤에 백운 수단(白雲守端)선사의 회상에 가서 있을 때,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 화상의 「마니주 화두」에 대하여 묻는데, 백운선사가 크게 꾸짖는 것을 듣고 곧 깨치어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아래와 같은 게송을 지어 바쳤다.

 

『저 산 밑에 한뙈기 묵은 밭, 왜 즐기노 노인에게 물었더니, 몇 번 팔고 또 산건, 대숲과 소나무에 맑은 바람 온다고(山前一片閑田地 叉手叮嚀問祖翁 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 이에 백운선사의 인가를 받고, 그의 법을 이어서 서주(舒州) 사면산(四面山)에서 출세하였다.

다시 백운산, 그 다음에는 태평산(太平山), 마지막으로 기주(蘄州) 오조산 동선사(五祖山東禪寺)에서 크게 교화하여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불안 청원(佛眼清遠) • 태평 혜근(太平慧懃) • 원오 극근(圜悟克勤)은 오조 문하의 세 부처라고 하였다.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에 80여 세로써 입적하였다.

 

마니주(摩尼珠) 화두란, 사조(師祖)라 하는 이가 영가(永嘉)의 <증도가(證道歌)>에 있는 「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裡親收得」의 귀절을 끌어다가 남전에게 묻기를 『마니주를 세상에서 모르는데, 여래장 속에서 찾아 냈구나 하였으니, 어떤 것이 여래장이오니까?』 남전이 대답하기를 『내가 너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은?』

『그도 또한 그것이지』

 

『마니주는 어떤 것이오니까?』

『가거라! 네가 내 말을 모른다』 하는 데서 사조가 깨쳤다.


*진영(眞影) ; 주로 얼굴을 그린 초상화(肖像畫) 또는 얼굴을 찍은 사진.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라' ; ‘백 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왔다갔다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의 진영(眞影) 찬(讚) 끝에 있는 두 글귀.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p168~169. p173~174 참고.

忽於次月十六夜夢中에  忽憶斷橋和尙이  室中所擧萬法歸一一歸何處話하니  自此疑情頓發하야  打成一片하야  直得東西不辨하며  寢食俱忘이라

 

어느덧 다음 달 16일 밤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홀연히 단교화상이 방장실(方丈室)에서 일러 주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화두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로부터 의심이 단박 생겨 일념을 이루어서 동과 서를 잊었으며,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至第六日하야  辰巳間에  在廊下行이라가  見衆僧堂內出하고  不覺에  輥於隊中하야  至三塔閣上하야  諷經이라가  擡頭忽睹五祖演和尙의  眞讚末後兩句에 云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這漢하고  日前被老和尙의  所問拖死屍句子를  驀然打破하니  直得魂飛膽喪하야  絶後再甦이라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리잇고  乃是辛酉三月廿二少林忌日也러이다  其年이  恰廿四歲요

 

그러한지 6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진시(辰時)에서 사시(巳時) 사이에 행랑(行廊) 아래서 거닐다가 대중 스님들이 승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대열에 섞여 삼탑각에 올라갔습니다. 경을 외우면서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법연 화상의 진찬(眞讚)의 끝 두 글귀에 “백년 3만 6천 일을 반복(返覆)하는 것이 원래 이놈이다” 한 것을 보자, 전에 스님께서 다그쳐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백이십 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

그때가 바로 신유(辛酉)년 3월 22일 달마 대사 기일(忌日)이었고 제 나이 24세가 되었습니다.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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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 萬法歸一一歸何所 師云 老僧在靑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일호(一毫) ; '한 가닥의 털'이라는 뜻으로 극히 작은 정도를 이르는 말.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다정한 도반(道伴)이 무상(無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 도반이 죽어서 사십구재(四十九齋)날 김응애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어린 나이에 선방(禪房)에 들어오셔서 그 용맹정진을 해 가지고 마침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하셨습니다마는’ ; 

 


[참고] 전강선사(No.002)—전강선사 일대기 제1호(경술1970년 11월 20일.음)(19분10초)
내가 참 처음에 참선문에 들어와서, 합천 해인사 들어가서 중이 되아 가지고서는 한 1년 동안, 그저 한 1년 동안 있었지. 사미(沙彌)로 한 1년 동안 있는데. 나허고, 김봉윤이허고, 이삼릉이허고, 행자(行者)가 서인디. 봉윤이란 아이가 참, 사람이―사미가 서이 들어와서 공부, 어른 시봉질을 허고 있으되―제일 착허고 얌전허고 글도 제일 잘허고, 속가에서 글허다 들어온 사람인디, 우등이여. 그 원청 학식이 있으니깐, 우등이여.

아, 그런 사람인데, 똑똑허고 잘난 사람은 아마 그런 말, 그 무슨 듣건댄 ‘염라국(閻羅國)에서도 쓸 사람을 데려간다’ 그런 말이 있드구만. 아이가 원청 잘나고, 글도 잘하고. 아, 그런 사람인데 같이 있다가, 같이 한 서너 달 살다가 뜻밖의 병이 들어 죽대, 이상스러운 병이 들어 죽었다 그 말이여.

나이 그때에 가가 무슨 뭐 그렇게 많지도 못허고, 나보담 그저 한 두어 살 더 먹었고. 나는 그때에 열여섯 살 먹어서 들어왔는데, 열여덟 살이나 먹었을 것이여. 아, 인자 그때쯤 18세면은, 한 17세, 18세, 20세 이내에 다 장가를 들어야지, 20세 이내에 장가를 들지 못허면은 노총각이락 햐. 열아홉 살만 먹고 스무 살만 먹어서 장가들어도 노총각이락 햐.

법문(法門)이, 오늘 아침 법문이 이상스럽게 나온 법문이라, 그렇게 들으셔야지. 영가(靈駕) 법문인데, 영가 법문이라도 이런 법문이래야 되지. 지장경 법문이나 그런 무슨 교(敎) 법문이 아니여. 선(禪) 법문을 꼭 들으셔야 하지.

김군수. 반야행. 대법성. 대법성, 내가 진 이름이여, 인자 떡 보니까. 아, 이런 참. 이런 인연이 닥쳐온 것을 내가 참 오늘 아침에 무척 감상이 깊구만. 여기에 정각행 보살님도 내가 서울 와서 불명(佛名)을 드렸어. 인연 때문에 그런 거여. 그러더니 여기에 기가 맥힌 신도, 말로 헐 수 없는 지금 여그 중대한 참 인연이 있는 신도님이시여. 내가 뒤에 간단히 좀 말할 요량하고.

아, 그래 그 이상스런 병이 나. 인자 한 18세쯤 되았으니깐 그때 한참 장가들 때인디, 와서 중이 되아 가지고 있는데.
대구서 서도간이라고 허는… 시대, ‘현대 여성’, 그때 ‘현대 여성’이면은 그 참 드물어. 머리를 저 가르매를 타되 옆 가르매를 타고, 한복판으로 안 타고는―지금은 뭐 옆 가르매니, 뭔 가르매니 그거 뭐 동서남북으로 막 타도 상관없드구마는―옆 가르매를 터억 타 가지고는 머리를 탁 쪽지고. 그때는 뾰쪽구두가 참 드물 때여. 그 불란서 식으로 뾰쪽구두를 턱 해서 신고, 흰 치마를 입고, 그러고 척 들어오면은 이상스럽게 모도 볼 때거든. “아따! 여자가 저 히사시가미(챙머리)” 라고 이러고. 모도 손가락질허고, 뒤로 보고 앞으로 보고 이럴 때인디.

아, 서도간이라고 허는 여자가 척 들어와서 여름에 수양(修養)을 허는디. 아, 그 수양허는 그 신여성(新女性), 서도간이라는 여성이 대구서 와 가지고는 서로 피차간 그 몇 번 이렇게 대하고, 사람이 잘나고 똑똑허니깐, 장가들만 해서 열칠팔 살 되아 놓으니깐, 서로 인자 어떻게 그 장경각 구경도 시켜 주고, 큰 법당 구경도 시켜 주고, 어떻게 이렇게 어떻게 지내다가는 즈그끼리 그 연애가 걸렸든가, 원 그 속으로 어쨌든가는 몰라도.
서도간이가 그러면 그 그렇게 인자 합천 해인사 들어와서 수양헐 동안에 그 어디 이리저리 구경도 시켜 주고 어쩌고 서로 상대허고 몇 번 이러다가는, 좀 말이든지 무엇이든지 정들게 했고 어떻게 했든지 그건 알 수가 없지마는.

아, 이 봉윤이라고 허는 사미, 그 사람이 서도간이 자는 방에 가만히 몰리 저녁에 들어가서 그 서도간이 자는 방, 이불을 딱 덮고 누워 잔다. 서도간이는 밤에 놀러 어디 간 사이에. 아, 서도간이가 잘 때 밤에 이렇게 척 들어오니깐 이불 속에 무엇이 있거든.
아! 깜짝 놀라서 그만 “아이고메!” 허고 고함을 질러 버렸단 말이여. 아, 그러니께 그만 사중(寺中)에서 모도 그만 놀래 가지고 이거 웬 일인가 싶어 가지고 들어와 보니께, 그 봉윤이라는 사미승이 그 속에 따악 누워서 있거든.
아, 그래서사 인자 그 서도간이도 그저 ‘그 사람인갑다. 봉윤이, 아는 사람이로구나’ 그렇게 알아 번지고서는. 그러나저러나 무슨 그러헌 무슨 아무 일도 없는데 아, 그런 사람이 와서 그렇게 누웠으니깐 그저 가슴만 두근거리고 그저 그러다 저러다 말았는데.

아, 그 뒤에 그만 봉윤이라는 아이가 병이 들었다 그 말이여. 병이 들었는데, 무슨 병이 들었냐 하면은 미친병이 들었네!
그래 가지고는 헌다 소리가 “둔다, 둔다, 둔다, 둔다, 둔다, 둔다” 그런 소리여. 그러면서 그만 “솔잎상투, 솔잎상투” 그놈의 솔잎상투는 왜 그렇게 부르는고 “솔잎상투, 솔잎상투” 하면서, 아 그만 미쳐 가지고는 나중에는 헐수할수없어, 미쳐서 뛰어싸서. 그릇, 장꼬방(장독)도 때려 부수고, 뭣을 막 드리 뚜드러 부수게 되아서 그래서 갖다가 그만 묶어서, 뒤로 딱 묶어서 손질을 못허게 해 가지고는 그래 놓았다 그 말이여. 뭐, 가만 일시라도 놔둘 수가 있어야지.

아, 그 지경 되았는디, 서도간이란 여자 따문에 미쳤다고 해서 서도간이한테다 그런 말을 해 봤던들 아! 서도간이는 신여성이라도 그때 당시의 신여성, 유명헌 신여성인데, 아 어디 그 여성이 그렇게 쉽게 무슨 뭐 산중의 중, 사미중허고 몸을 섞어서 내외간(內外間) 될 리도 만무허고, 그런 사이에 뭔 말을 했자, 발써 그 미쳐 버렸는디 어떻게 헐 재간도 없고.

그래 가지고 서도간이는 대구로 나가 버린 뒤에 이 아이는 그만, 그렇게 그만 미쳐 가지고는 훌훌 뛰면서 그 야단을 쳐서, 꽉 묶어 놓고는 그만 뭐 치료를 해봐도 안되고 침을 놓아 봐도 안되고, 별별 짓을 다 해봐도 안되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었제. 별 수가 없제. 안 죽을래야 안 죽을 수도 없제. 놓아 내놓을 수도 없고, 끌러 놓을 수도 없고. 그건 죽기로 마련이라.

지둥(기둥) 나무에다 매 놓으면은 지둥 나무는 뭐, 큰 지둥 나무니 어쩔 수 없으니까, 찬바람에 매 놓으면은 어떻게 그 손발을 매 놨으니 뗄 수도 끊을 수도 없고는, 고함만 지르고! 나중에는 죽을 때 얼굴을 본즉 그 얼굴이 기가 맥히지! 세상에, 볼 수가 없어! 아, 유혈(流血)도 모도 그대로 맺혀져 나와서 모도 밖으로 핑겨서 기가 맥혀! 같이 그 참, 사미로 있다가 그렇게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죽어서, 갖다가 그 합천 해인사에는 허덕이 평전(平田)을 거쳐 건너 들어가서 말정이라고 올라가는 그 산꼴짜구니에다가서 화장(火葬)을 허는디, 화장터가 거긴디, 화장을 다 해 가지고는 태와 버린 연기가, 화장터 그 송장 타는 연기가 빙빙 돌아. 그 뭉테기로 돌아 가지고 공중에 가서 흩어지들 않고 아, 이놈이 그만 얼마 동안을 배회를 혀.
그렇게 화장해 버린 뒤에는 그 인자 그런 불쌍허게 어린아이가 죽었으니까 초재(初齋)를 지낸다고, 선왕(善往)인가 무슨 재(齋)인가 재를 지내는디, 하여간 즈그 부모한테 기별했더니 부모가 와서 그 통곡을 허고 우는 거…

그래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을 허시는데, 그때 어떤 어른이 법문을 허셨든고 하니 김응해 스님께서 법문을 허신다. 법문을 허시는데, 게송이여.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면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도를 닦을라매, 수행은 도(道)거든. 도를 닦을라매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머리 벌써 희기 시작허면 늙는 거 아닌가.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어라. 하나씩 둘씩 흰다 그 말이여.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는 소년 무덤을 했느니라. 쑥대 우북헌 데 가 봐라. 거, 어린것 죽은 거 모도 묻은 애장이다.

인신일실(人身一失)인디 기시환(幾時還)고?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어버리면―받기는 얻어 나왔지. 이 몸 얻어 나왔으니까 쉬운 것 같지.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 받은 몸뚱이 잃어버리면 언제 돌아올 것이냐? 언제 다시 받을 것이냐?
지옥시장(地獄時長)이다 기등한(豈等閑)고? 인생이라 하는 것은 이 목숨 내번지면은 가는 곳이 삼악도(三惡途)니라. 삼악도는 어디를 삼악도라고 하나? 지옥이요, 아귀요, 축생이다. 지옥 악도에 가는 법이니라.

이놈 몸뚱이 얻어 가지고는 복 짓는 것이 그렇게 없어. 그렇게도 복 짓기가 어려와. 전부 죄밖에는 짓는 것이 없드란 말이여. 다행히도 어떻게 이 몸뚱이 얻어 가지고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학자(道學者)가 되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쌀에 뉘니라. 뉘! 기가 맥히다!

그런 가운데에도 이렇게 불전(佛前)에다가, 부처님 정법문중에다가 인연을 턱 걸어 이렇게 영가(靈駕)를 모셔 놓고 이렇게 등촉(燈燭) 장엄 속에서 이렇게 도 닦는, 도만 닦는 도학자의 회상(會上)에, 다시 말허면은 그 참, 선지식(善知識) 회상에, 거다가서 부모라도 형제라도 이렇게 어떤 분이라 헐지라도 그 천도(薦度)를 모셔 드려. 세상에 이러헌 공덕, 이러헌 대복, 해탈복은 천하에 없는 법이여.
헌디, 어디 그렇게 되나? 그만 그대로 소년 몸뚱이 잃어버리면은 가는 길이 악도(惡道)니라. 악도만 갔지―누가 거다가서 불법이 무엇인지, 복이 무엇인지―죄만 짓고 죄만 가지고 뿐이제, 뭐가 있어.

아, 이 삼일 선왕재 법문에 응해 스님이 이 법문을 척 허시는디, 내 법문은 뭐 아무것도 아니여. 그 어른은 지식이 훌륭헌 어른인데, 올라가서 참 그 어른도 그때 나이가 칠십은 다 못 되았어도 그래도 근 칠십 된 어른이 설법을 떠억 그 봉윤이 어린아 목숨 잃어버린 데 대해서 이 게송을 해 주는데 발심(發心)이 되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그서 발심을 했어. 그 게송 하나 읊어 주는데 발심을 했어.

해 놓고는 그 대문, 그다음 한참 내려오다가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까지, 일찍이 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그 진리 법문을 척! 해 주시는데, 내가 법문을 듣고 ‘대체 남[生]도 없고 멸(滅)함도 없다면 역사가 없는 낸디, 역사가 없는 내가 나를 그렇게도 유래(留來)로 깨달지 못허고 와? 깨달지 못허고 이때까장 와? 금생까장 왔어? 내가 금생에 똑! 찾지 못허고 깨달지 못허고 그대로 내가 목숨을 잃어버려?’(5분27초~24분37초)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 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모기가 마치 쇠로 된 소에 입부리를 박듯이’ 화신투입(和身透入).
[참고 ❶]  『고봉화상 선요 어록』 (고봉 1238~1295 |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시중(示衆 其十四)’ p110~112 참고.
若論參禪之要 不可執蒲團爲工夫 墮於昏沈散亂中 落在輕安寂靜裏 總皆不覺不知 非唯虛喪光陰 難消施主供養 一朝眼光落地之時 畢竟將何所靠

만약 참선의 요점을 논하자면 방석에 앉는 것을 집착하여 공부를 삼아 혼침과 산란 가운데 떨어지거나, 편안하고 고요한 속에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모두 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리니 오직 세월을 허송할 뿐 아니라 시주들의 공양을 소화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루 아침에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필경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山僧昔年在衆 除二時粥飯 不曾上蒲團 只是從朝至暮 東行西行 步步不離 心心無間 如是經及三載 曾無一念懈怠心 一日驀然踏著自家底 元來寸步不曾移

산승이 옛날 대중에 있을 때 죽과 밥 먹는 두 때를 제외하고 방석 위에 올라앉지 않고 다만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걸음걸음에 여의지 않고 마음 마음이 간격이 없었다. 이와같이 3년을 지내도록 일찌기 한 생각도 게으른 마음이 없다가 하루는 문득 나의 고향[自家]을 밟고 나니 원래 한 걸음도 옮긴 것이 아니었더라.

昏沈掉擧 喜怒哀樂 卽是眞如佛性 智慧解脫 只緣不遇斯人 醍醐上味 飜成毒藥 靈利漢 假饒直下知非 全身擔荷 正好朝打三千 暮打八百 何故 豈不見道 知之一字 衆禍之門

혼침과 도거, 희로애락이 그대로 진여불성이고 지혜해탈이건만 다만 인연이 이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제호상미가 도리어 독약이 되었다. 영리한 사람이 가령 당장에 그른 줄 알아 온 몸으로 짊어지더라도 바로 아침에 삼천 번을 때리고 저녁에 팔백 번을 때릴 것이니 무엇 때문인가? 어찌 '지(知)라는 한 글자가 모든 재앙의 문이다'라는 말을 알지 못하는가?

若論此事 如蚊子上鐵牛相似 更不問如何若何 便向下觜不得處 拌命一鑽 和身透入 正恁麼時 如處百千萬億香水海中 取之無盡 用之無竭 設使志不堅心不一 悠悠漾漾 東飛西飛 饒你飛到非想非非想天 依舊只是箇餓蚊子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이러쿵 저러쿵 묻지 않고 당장에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번 뚫어서 몸으로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런 때 마치 백천만억 향수해(香水海)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아서 취(取)해도 다함이 없고 써도 고갈됨이 없지만, 설사 뜻이 견고하지 않고 마음이 한결같지 않아 아득히 출렁대며 동으로 날고 서로 날다가 설사 네가 날아서 비비상천에 이른다하더라도 여전히 다만 한 마리 굶주린 모기일 뿐이더라.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0~61 (가로판 p62~63)
此事는  如蚊子가  上鐵牛하야  更不問如何若何하고  下嘴不得處에  棄命一攅하야  和身透入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들듯이, 다시 여하약하를 묻지 말고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때가 있으리라.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용상(龍象)은 발심해서 불도(佛道)를 닦는 훌륭한 수행자를 용(龍)과 코끼리[象]에 비유하여 말함. 방(榜, 牓)은 대중에게 알리는 게시판.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 없이 지켜 나감을 이르는 말.
*(게송) ‘망회타귀굴(忘懷墮鬼窟)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 경수호한형(鏡隨胡漢形) 직요이마거(直饒伊麽去)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하권 (한국불교전서) 「담령상인구육잠(湛靈上人求六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서 '의(意)' 게송.
[참고]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담령상인(湛靈上人)이 육잠(六箴)을 구하다」 에서 '뜻' p334.

*회포(懷抱 품을 회/안을 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 ; '시커먼 산아래[黑山下] 귀신(鬼神)이 사는 굴속[窟裏]'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8~170. (가로판 p161~162)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可避喧向寂(불가피훤향적)하야 瞑目合眼(명목합안)하고 坐在鬼窟裏作活計(좌재귀굴리작활계)니 古所謂(고소위) *黑山下坐死水浸(흑산하좌사수침)이라하니 齊得甚麼邊事(재득심마변사)리요 只要在境緣上做得去(지요재경연상주득거)하야사 始是得力處(시시득력처)니라

공부를 짓되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향하야 눈을 감고 귀신 굴 속에 앉아 살림살이를 하지 말지니, 고인이 말하기를 「흑산 밑에 앉아 썩은 물에 잠겼다」 하니 무슨 일을 이루리오? 다만 경계와 반연 위에서 공부를 지어 가야 비로소 이것이 힘을 얻는 곳이니라.

一句話頭(일구화두)를 頓起在眉睫上(돈기재미첩상)하야 行裏坐裏(행리좌리)와 着衣吃飯裏(착의흘반리)와 迎賓送客裏(영빈송객리)에 只要明這一句話頭落處(지요명자일구화두낙처)니 一朝洗面時(일조세면시)에 摸着鼻孔(모착비공)하야 原來太近(원래태근)이니라

한 귀절 화두를 몰록 일으켜 눈썹 위에 두고서 다닐 때와 앉을 때와 옷 입고 밥 먹을 때와 손님을 맞고 손님을 보내는 속에 다만 이 일구(一句) 화두의 낙처(落處)를 밝힐지니, 하루아침에 세수하다가 콧구멍을 만지듯 원래로 너무 가까왔느니라.

*흑산(黑山) : 인도의 전설에 대철위산(大鐵圍山)과 소철위산 사이에 음양(陰陽)이 이르지 못하는 암흑처가 있으니 이곳을 흑산이라고 하며 이곳은 악귀(惡鬼)가 서식한다고 한다.
*착의(着意 붙다·나타나다 착/뜻·생각 의) ; ①어떤 일에 마음을 붙임. 또는 그 마음. ②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오름. ③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둠.
*정(精 정기精氣·정신·정령·도깨비 정) ; 정령(精靈). 애니미즘에서, 인간 이외의 생물과 무생물에 머무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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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4. 3. 18. 09:19

§(340) (게송)화소산전설천기~ / 참선법은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 /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잃어버렸던 그 소[牛]가 ‘코밑에서 뱅뱅 돈다’ / 임제 선사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우리의 면문(面門)으로 출입(出入)을 한다' / (게송)삼가촌리형형례~.

**송담(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 (용340)

 

(1) 약 14분.

 

(2) 약 5분.


(1)------------------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하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여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요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꽃이 산전(山前)에 웃으니, 꽃이 산 앞에 피니 천기(天機)를 누설(漏洩)함이요.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다. 새가 숲 밖에서 노래하니 무생(無生)을 말함이로다.

봄이 오면 울긋불긋 꽃이 피고, 또 가을에 오면 가을꽃들이 산에 모다 피는데, 그 울긋불긋 그 피는 꽃은 바로 천기를 누설한 것이다.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한없는 그 진리(眞理)를 바로 누설(漏洩)한 것이다.
새가 숲속, 숲 밖에서 그 갖은 목소리로 모다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은 바로 무생(無生)의 이치를, 남[生]이 없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를, 낱낱이—꽃이 피는 것, 온갖 색깔의 꽃이 피는 그 낱낱이 그 그것이, 크고 작고 노랗고 빨간 온갖 새들이 부르는 노래, 그것들이 낱낱이 스스로 무궁(無窮)한 깊은 뜻을 가지고 있어.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다. 무엇을 잡아 오건—꽃을 한 송이의 꽃을 들거나, 한 곡조(曲調)의 새의 노래를 붙잡거나 무엇을 얻어 오더라도 다 그 근본진리(根本眞理) 아닌 것이 없더라.


오늘 정묘년(丁卯年) 10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심우송(尋牛頌) 법문(法門)을 경청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앞부분만을 들었습니다마는, 바닷물을, 그 넓고 끝없는 그 바닷물을 다 마시지 않고 바닷가에서 조끔만 손고락으로 찍어서 맛보더라도 ‘바닷물이 짜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부분만을 한 30분간에 걸쳐서 들었지마는, 그 30분 동안에 설(說)하신 조실 스님의 법문 속에 ‘우리가 참나를 어떻게 닦으며, 어디에서 찾으며, 왜 그것을 찾어야 한가’에 대해서 정말 감동적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법(參禪法)은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인데 참나, 나의 불성(佛性), 그 ‘참나’ 그것을—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그놈은 생겨난 때가 없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윤회(輪廻)하면서 항상 그와 더불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는데, 그와 더불어 같이 윤회를 하고, 같이 살고, 같이 고통을 받고, 같이 낙(樂)을 받으면서도 그놈을 자각(自覺)을 하지 못하고 전혀 그것을 잃어버린 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렸냐?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놈을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려 봤자 코밑에서, 콧속에서 뱅뱅 돈다’ 이러한 표현을 쓰셨는데, 아주 알기 쉽고 평범한 표현을 하셨지만, 그보다도 더 정확하게 말씀을 하실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코밑에서 뱅뱅 돌아’

임제 선사(臨濟禪師)는 ‘우리의 면문(面門)으로 출입(出入)을 한다. 우리의 얼굴, 우리의 낯, 얼굴을 통해서 낯바닥 면문을 통해서 출입을 한다’ 그랬습니다.
눈 · 코 ‧ 입 ‧ 귀 모다 이런 것들이 붙어 있는 부분이 얼굴인데, 그 가운데도 가장 그 중심이 코지요? 그 면문(面門)을 통해서 무위진인(無位眞人), 위(位) 없는 참사람이 면문을 통해서 출입을 한다. 이렇게 임제 스님은 말씀하셨는데, 전강 조실 스님은 우리가 무량겁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오면서 잃어버렸던 그 소[牛]가 ‘코밑에서 뱅뱅 돈다’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증거로써 가장 뚜렷한 것은 ‘숨쉬는 것’입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알아볼려면 콧속에 콧김이 들랑날랑한가 안 한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콧속에 숨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 아직 죽은 것이 아니고, 완전히 숨이 딱 끊어지면 벌써 그것은 죽었다고 볼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콧속에 코밑에 뱅뱅 도는 그 들랑거리는, ‘그렇게 말하면 그러면 콧속에 콧구녁으로 들랑날랑하는 그 공기가 그러면은 참나냐?’ 이렇게 이해를 한다면 참, 말도 안되지만.

하여간 눈을 통해서 모든 색깔을 판단하고, 귀를 통해서 온갖 소리를 알아보고, 코를 통해서 온갖 냄새를 알아보고, 혀를 통해서 온갖 맛을 분별하고, 몸뚱이를 통해서 춥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라운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 선악(善惡) 시비(是非)를 분별(分別)하고, 그러한 놈.
그러한 놈인데, 설사 눈으로는 아주 의식(意識)을 잃어서 빛깔을 판단하지를 못하고, 귀를 통해서도 누구 말인지 뭣인지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생각이 몽롱할 지경에 이르렀어도, 그래도 콧구멍으로 쪼끔이라도 가는 숨이 드나들면 아직 죽은 것이 아니여.

그래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 한 물건을 소[牛]에다가 비유하고, ‘그 잃어버린 소가 콧속에, 코밑에 뱅뱅 돈다’고 하는 그 표현을, 우리가 그 표현을 통해서 나의 존재하는 곳을 확인을 하고 그곳에 즉(卽)해서 항상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도처(到處)가—방에 앉었건 뜨락을 거닐건, 차를 타건, 똥을 누건,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참나 찾는 선불장(選佛場)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코밑에 들랑거리는 그 숨이 있는 곳에 언제나 자기(自己)를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처음~13분18초)





(2)------------------

삼가촌리형형례(三街村裏兄兄禮)하고  요시점두부부지(鬧市店頭父父知)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일념회기즉재자(一念回機卽在玆)로되  호리유차유천리(毫釐有差謬千里)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삼가촌리형형례(三街村裏兄兄禮)요, 저 삼거리 마을 속에 서로 ‘형님, 형님’ 하고 서로 인사를 하고,
요시점두부부지(鬧市店頭父父知)다. 저 시끄러운 장바닥에 그 가게 앞에서 그 ‘아자씨, 아자씨’, ‘아부지, 아부지’ 하고 서로 알고 인사하는데.

일념회기즉재자(一念回機卽在玆)다. 한 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곧 여기에 있더라.
아무, 불법(佛法)이 뭣인지, 참선(參禪)이 뭣인지, 뭐 깨달음이 뭣인지 그런 것도 모르는 저 거리에 사람들. ‘형님, 형님’ ‘아우, 아우’ 하고는 아주 평범한 그 무식한 그런 사람들 서로 인사할 줄 아는 그놈, 또 시끄러운 장바닥에 모다 가게 앞에서 모다 서로 주고받고 서로 그러한 사람들도 서로 다 안다 그 말이여.
근데 그놈이 무엇인가는 모르지마는 다 그 사람들이 낱낱이 다 가지고 있고, 날로 그놈을 쓰고 있고 그놈과 더불어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런데 그놈이 무엇인가는 꿈에도 아지를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것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다.

일념회기즉재자(一念回機卽在玆)야, 한 생각 탁! 돌이키면 곧바로 여기에 있어.
그러나 호리유차(毫釐有差)에 유천리(謬千里)니라. '바로 이 코밑에서 뱅뱅 돌고 바로 이 여기에 있다'고 하지만, 털끝만큼이라도 호리(毫釐)가, 차(差)가 있으면 천리(千里)가 어긋나버린다.

‘아 이놈이로구나. 바로 이렇게 말하는 이놈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면, ‘이 말할 때 말하는 이놈, 또 그 말을 듣고 아는 놈, 또 코로 이렇게 숨쉬는 놈, 바로 이놈을 내놓고 바로 이 참나가 어디가 있느냐? 바로 이놈이다’ 이렇게 만약에 이해를 했다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그 말이여. 천리나 비뜰어져버린다.
이것은 도둑놈이 들어왔는데 자기 자식인 줄 착각(錯覺)을 하는 거와 같고, 똥을 보고서 이것이 된장인 줄 알고 상추쌈 싸 먹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여.

그 바로 이놈을 여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이놈'이라고 하면 벌써 천리(千里)나 틀어져 버린다 그 말이여. (1시간6분17초~1시간11분1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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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누설(漏泄·漏洩 샐 루/샐 설) ; ①비밀이 남에게 은밀히 알려짐. ②기체나 액체 따위가 밖으로 새어 나감.
*무생(無生) ; ①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②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의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무궁(無窮 없을 무/다할·끝날 궁) ; 끝이 없음.
*심우송(尋牛頌) ; 십우송(十牛頌). 우리의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서, 소를 찾아서 길들이는 과정을, 수행자가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데까지 10단계로 구분하여 게송으로 읊은 것.

또 그림으로 그린 것을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 목우도(牧牛圖)라 한다. 이 심우도(십우도)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보명(普明) 선사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廓庵) 선사의 십우도이고, 송(宋) 나라 때의 청거(淸居) 선사의 십이목우도(十二牧牛圖), 불국유백(佛國惟白) 선사의 팔목우도(八牧牛圖)가 있다. 곽암 선사의 십우도는 청거 선사의 십이목우도를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위진인(無位眞人) ; '무위(無位)'란 상하 · 귀천 · 범성 · 미오 등 어떤 지위나 차별도 없다는 말. 또는 지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오간다는 뜻. 곧 '무위진인'이란 궁극적인 경지를 깨달아 모든 지위에 얽매이지 않게 된 참사람(절대자유인)을 가리킨다.


[참고] 송담스님(No.321)—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6분9초)
임제 스님은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체계화한 대도사이십니다. 달마 스님으로부터 육조 스님, 육조 스님으로부터 이 임제 스님에 이르러서 이 화두(話頭)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이 활구참선을 체계화한 대도인인데.

임제 스님께서 대중에서 법을 설하시기를, "유일무위진인(有一無位眞人)하니, 한 위가 없는—지위(地位)! 지위가 없는, 계급이 없는—지위가 없는 참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상종여등제인(常從汝等諸人) 면문출입(面門出入)하되, 항상 너희들 여러 사람의 면문(面門)으로조차 출입을 해" 들랑거린다 그말이여.
면문(面門)이라 하는 게, 너희들 눈 ・ 코 ・ 입 ・ 귀 이게 면문(面門)이거든. 너희들 얼굴 면문으로부터 그 무위진인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을 확실히 증거(證據)치 못한 자는,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간간(看看)하라. 잘 살펴볼지니라. 어떠한 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인가 잘 살펴보란 말이야.
여러 대중 낱낱이 무위진인이 있는데, 그 무위진인이 어디로 드나드냐 하면은 각자의 얼굴 문으로부터 면문(面門)으로부터 드나든다 이거거든.

그렇게 설법을 하시니까, 그때 한 승(僧)이 나와서 묻기를 "여하시무위진인(如何是無位眞人)잇꼬?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하고 그 (임제) 스님한테 터억 질문을 했습니다.
임제 스님께서 법상에서 터억 내려와 가지고, 그 질문한 스님의 멱사리를 턱! 거머쥐고서 "도도(道道)하라. 일러라" 그러니까. 그 스님이 뭐라고 이를려고 머뭇머뭇 그러니까, 냅다 갖다가 멱사리를 놓으면서 미트러 처내버리면서 이르기를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시심마(是甚麽)오? 무위진인이 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물으시고서 "간시궐(乾屎橛)이니라.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 마른 똥막대기, 이것도 하나의 공안입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나, 무자(無字)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과 마찬가지로, 이 마른 똥막대기니라.
"어떤 것이 무위진인인고?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셨습니다.

그 게송에 대해서 고인(古人)이 게송을 읊으시기를,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이요, 면문으로 출입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면문으로 출입하는데 면문으로 출입한 그 무위진인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말이여.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지척간(咫尺間)이니라. 그렇게 볼라야 볼 수 없지마는 그 무위진인이 지척간(咫尺間)이여. 바로 거기에 있다 그말이여.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말이여.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이요, 가는 길에는 한 몸뚱이가 이파리처럼 가벼운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다. 그 높은 이름은 천고(千古)에 무겁기가 산과 같도다.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이 바로 이 게송입니다.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이 간시궐(乾屎橛)이다’ 이것은 무서운 공안으로써 오늘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천착(穿鑿)을 하고 분별심으로 따지라는 것이 아니고, 이 공안에 콱 맥혀서 알 수가 없거든 이 공안은 그냥 놔두고.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그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서 간절히 거각(擧却)을 하고 의심을 해서 공부에 박차를 가해 간다면, 어느 때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될 때 이 공안도 의심 없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50분27초~56분35초)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 (9분10초)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과거시험(科擧試驗 예전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관리 채용 시험 제도로서 보는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유추된 말이다.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선당(禪堂) · 승당(僧堂) · 선방(禪房) 등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 선방에서 좌선하여 도를 깨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참고 ❶]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4권 「단하천연전(丹霞天然傳)」
鄧州 丹霞天然禪師不知何許人也 初習儒學 將入長安應擧 方宿於逆旅 忽夢白光滿室 占者曰 解空之祥也 偶一禪客 問曰 仁者何往 曰 選官去 禪客曰 選官何如選佛 曰 選佛當往何所 禪客曰 今江西馬大師出世 是選佛之場 仁者可往 遂直造江西

등주 단하천연선사는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 유교를 배워서 장안으로 과거에 응시하러 가던 길에 여관에서 자다가 홀연히 밝은 빛이 방에 가득차는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자가 '공을 터득할[解空]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풀었다.
우연히 어떤 선객(禪客)이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 '관리 뽑는 시험을 보러 갑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선객이 '관리 뽑는 시험이 어찌 부처 뽑는 시험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단하가 '부처 뽑는 시험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선객이 '지금 강서(江西)에서 마조대사가 출세 했습니다. 그곳이 부처를 뽑는 시험장[選佛之場]이니 그곳에 가보도록 하십시오'라고 한 말을 듣고 그길로 강서로 갔다.

[참고 ❷]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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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가촌리형형례(三街村裏兄兄禮)~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贈松源宗長老僧(송원종 장로에게 주다)’ 게송 참고.
*호리(毫釐 털·붓 끝·척도 또는 분량의 단위 호/아주 작은 수·척도 또는 무게의 단위 리) ; ①자 또는 저울 눈금의 호(毫)와 이(釐)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더할 수 없는 정도로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호리유차(毫釐有差)에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진다’
[참고] 『신심명(信心銘)』 -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毫釐有差  天地懸隔  欲得現前  莫存順逆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오직 간택함을 혐의(嫌疑)하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없으면 툭 트이어 명백하리라.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지니 도(道)가 현전하기를 바라거든 따름[順]과 거슬림[逆]을 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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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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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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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4. 3. 16. 09:00

§(195) 참선 자세, 준비호흡, 본호흡 / (게송)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 /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그걸 깨달으려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야 한다.

그 한 물건, 그놈이 항상 육근(六根)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왕래(往來)를 하는데, 그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놈을 찾으면 자최가 없어. 그것을 깨달으는 법이 이 공안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5)—1983년 3월 첫째일요법회(용195)

 

약 10분.


오늘은 일요 법회(法會)입니다.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자세(姿勢)를 바르게 허리를 쭈욱 펴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고, 흔들다가 한 가운데에다 딱 중심(中心)을 잡으세요.
아금니는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대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되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를 마십시오. 몸은 단정하게 갖되 어깨나 목이나 눈에다가 힘을 주지 말고 편안하게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게 가지세요.

처음에 준비호흡을 세 번을 하는데,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이 벅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코로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한참 참었다가 입으로 '후-' 하고 내뿜으세요. 가슴을 아주 짜면서 다 내뿜었으면 또 한번 들어마시세요.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3초고 5초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머물렀다가 또 입을 조끔 벌리고 '후-' 하고 내뿜으세요.
다 내뿜었으면 또 한번 들어마시고, 정지했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또 '후-' 하고 다 내뿜으세요. 이것이 준비호흡이어요.

그다음에 인자 본호흡(本呼吸)으로 들어가는데, 이제는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숨은 코로 들어마시되 배꼽 밑에 단전, 단전(丹田)이라 하면 불두던 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두던 위가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셔요.
물론 코로 들어마시지만 '코로 들어마신다'는 생각을 갖지 말고 '저 뒤에 궁뎅이로 들어마신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심에 따라서 하복부(下腹部)가 앞으로 볼록하게 나오도록 그러한 느낌으로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약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셔요. 팔부쯤 들어마셨으면 그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딱! 정지(停止)를 해요. 3초 동안 정지를 했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아까 준비호흡 할 때는 입으로 내쉬었지만 지금은 코로 내쉬는데, '코로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 궁뎅이를 통해서 저 뒤로 내보낸다'는 기분으로 내보내요. 그러면서 아랫배는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그렇게 맨드세요. 그렇게 느끼시면서 숨을 내쉬세요.

계속해서 그렇게 호흡을 하는 겁니다.
준비호흡은 처음에 3번만 딱 하고, 네 번째부터서는 본호흡으로 하는데,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속으로 하면서 숨을 조용하게 내쉬는 거예요.

죽비(竹篦)를 쳐. (죽비 세 번)


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헌데  추이불급홀연래(追而不及忽然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독행독좌무구계(獨行獨坐無拘繫)허고  득관회처차관회(得寬懷處且寬懷)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하고, 아침에는 저 남악(南嶽)이라고 하는 산에서 놀더니, 모천태(暮天台)라, 해 저물게는 벌써 천태산에 가 있어.
추이불급홀연래(追而不及忽然來)로구나, 아무리 쫓아가서 따라잡으려고 해도 따라잡지를 못했는데, 홀연히 앞에 와 있다 그 말이여.

남악(南嶽)과 천태산(天台山)은 수천 리 수백 리 길인데, 아침에 벌써 남악에서 놀더니 번떡 한 사이에 벌써 천태산에 가서 있어. 몇백 리 밖에 천태산에 가서 있어. 아무리 그것을, 그 사람을, 그이를 따라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했는데, 저절로 앞에 와서 딱 있더라 그 말이여.

독행독좌무구계(獨行獨坐無拘繫)헌데, 홀로 행하고 홀로 앉었고, 자기가 앉고 싶으면 앉고, 가고 싶으면 가고,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 말이여.
득관회처차관회(得寬懷處且寬懷)로구나. 관회(寬懷)를 얻은 곳에 또한 관회롭다.

'관회(寬懷)'라는 것은 '너그러울 관(寬)' 자, '생각 회(懷)' 자. 조끔도 옹색함이 없이 그 회포(懷抱)가 너그럽다 그 말이여.
천태산이고 남악이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고, 눈 한번 번쩍하면 천태 가 있다, 눈 한번 번쩍하면 남악에 가 있다. 하나도 걸릴 것이 없다 그 말이여.

아까 '누진통(漏盡通)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그걸 깨달으려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야 한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한 물건을—찾으면 자최가 없지마는, 그놈이 항상 육근(六根)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왕래(往來)를 하는데, 그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놈을 찾으면 자최가 없어. 그것을 깨달으는 법이 이 공안을 타파하는 것입니다.(45분43초~55분3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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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法會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모이다·모임·만나다 회) ; 불교 의식의 하나.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등의 행사 모임을 가리킨다. 본래 부처님께서 불법을 설하시거나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모임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불두던 ; 불두덩(남녀의 바깥 생식기 주위에 볼록하게 솟은 부분)의 사투리.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게송) ‘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회포(懷抱 품을 회/안을 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迷惑)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미혹(迷惑 미혹하다·헷갈리다 미/미혹하다·번뇌 혹) ;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미(迷), 미망(迷妄), 미집(迷執)이라고도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3.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주해)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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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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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95) (게송)원앙수출종군간(鴛鴦繡出從君看)~ / 오신통(五神通)과 육신통(六神通) / 소소영령한 '한 물건'을 깨닫는 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 활구참선법으로 공안을 타파함으로써 이 '한 물건'을 사무쳐 볼 수가 있는 것 / 달마혈맥론에, 불급심사(不急尋師) 공과일생(空過一生).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 만중희유(萬中希有).

쇠로 된 못을 박을 때에 맨 처음에 정확히 박아야 하는 것처럼, 참선도 처음에 할 때에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옳게 해 가야 / 선지식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함께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실수가 없다 / 이 공부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을 자기가 찾는 공부.

아무리 맑고 깨끗한 경계라도 화두를 놓치고 그 경계에 취해 빠지게 되면, 결단코 깨달음에는 이르지를 못한다 / 도인(道人) 행세, 아는 소리를 하지 말라 / 참선은 최고의 수행방법이지만, 바르게 하지 못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에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야.

**송담스님(No.195)—1983년 3월 첫째일요법회(용195)

 

(1/3) 약 16분.

 

(2/3) 약 19분.

 

(3/3) 약 12분.


(1/3)----------------

원앙수출(鴛鴦繡出)은 종군간(從君看)이어니와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계해년(癸亥年), 지난 임술(壬戌) 동안거 해제(解制)를 지낸 뒤에 처음으로 갖게 되는 법회(法會) 날입니다.

제방(諸方)에서 모다 해제를 하고 그리고 여러 납자(衲子) 스님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얼굴을 서로 상면(相面)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수행인이 제일 반가운 것은 한 철 두 철 같이 지내던 도반(道伴)이 또 다른 선방(禪房)에 가서 공부를 하고 해제를 하면 또 다시 만나게 되는 기쁨입니다.
그동안 알뜰히 정진(精進)을 해서 마음에 증처(證處)가 있으면 더욱 다행하고 더욱 반가운 일이거니와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 만큼 그러한 증처가 없다 하더라도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집을 떠나서 출가(出家) 생활을 하는 납자들에게는 고향에 친지(親知)를 만난 것보다도 훨씬 더 반가울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방금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출가한 사람이, 출가(出家)해서 도를 닦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재물과 색(色)을 멀리 여의고, 명예와 권리를 멀리하고, 그 마음과 행동을 청정히 해서 목숨 바쳐서 도(道)를 닦아서 지혜(智慧)의 달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서 지혜의 달이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다고 할 것인가?
염불(念佛)이나 또는 주력(呪力)이나, 기도(祈禱)나 또는 참선(參禪)을 해서 신통력(神通力)을 얻은 것을, 그것을 가리켜서 지혜의 달이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다고 할 것인가?

신통(神通)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신선도(神仙道)에도 다섯 가지가 있고 오신통(五神通)이 있고, 우리 불법(佛法)에는 육신통(六神通)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오신통이란 게 무엇 무엇 해서 다섯 가지 신통이냐?

첫째, 천안통(天眼通). '하늘 천(天)' 자, '눈 안(眼)' 자, 천안통.
원근(遠近)에 관계없이—산이 맥혔거나, 집이 맥혔거나, 수 천리만리(千里萬里) 밖에 일이라도 어떠한 상태를 내가 보고자 한 마음을 내면 이 자리에서 당장 걸림이 없이 볼 수 있는 신통력(神通力)입니다.
여기서 청와대든지, 서울역이든지 또는 경복궁이든지, 부산이든지, 일본이든지, 미국이든지, 볼려면은 여그 앉아서 찰나간(刹那間)에 그 보고자 한 장면을 걸림이 없이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천안통.

그다음에 천이통(天耳通). '하늘 천(天)' 자, '귀 이(耳)' 자 천이통은, 여기서 과학적인 어떤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무선기(無線機) 같은 그런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수천 리 수만 리 밖에 어떠한 소리를 듣고자 할 때에는 즉시(卽時)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이통이고.

그다음에 신족통(神足通). 비행기나 로케트나 그러한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여기서 몇백 리고, 몇천 리고 가고자 한 생각을 내면, 그 생각을 갖자마자 그 가고자 한 목적지에 몸이 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족통, 또는 신경통(神境通)이라 하는 것이여.
요새 축지법(縮地法)이라 그런 말도 있습니다마는, 이 신족통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전혀 시간이 걸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족통이여.

그다음에 타심통(他心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환히 알아 버리는 것이여. 이것이 타심통이여.

그다음에는 숙명통(宿命通). 과거 · 현재 · 미래, 삼세(三世)에 모든 일을, 모든 사람에 인과(因果), 모든 사물에 생성 과정과 장래에 사태에 대해서 환히 다 보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숙명통입니다.
어떠한 사람을 보면 과거에 저 사람이 무엇을 하다가 금생(今生)에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금생에는 저렇게 살지만 내생(來生)에는 무엇이 될 것이다. 이렇게 그 사람의 숙명(宿命)을 꿰뚫어 보는 초능력(超能力)입니다. 이걸 숙명통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이상 천안통 ‧ 천이통 ‧ 신족통 ‧ 타심통 또 숙명통, 이 다섯 가지를 오신통(五神通)이라 하는데, 이 다섯 가지는 불교(佛敎)가 아닌 저 신선도, 도교(道敎) 신선도(神仙道)에서도 이 다섯 가지 신통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불교에서는 이 다섯 가지 신통 밖에 또 한 통(通)이 있으니 이것이 무엇이냐?

누진통(漏盡通)이라 하는 신통. '샐 루(漏)' 자, '다할 진(盡)' 자, 누진통(漏盡通)이라 하는 통(通)은 어떠한 능력이냐 하면,
내게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항상 몸을 움직이고 정신을 쓰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그놈을 동용(動用) 중(中)에 찾어보면 얻을 수가 없어. 눈으로 보려 해도 보이지 아니하고,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도 아니하고, 생각으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는, 분명 소소영령한데 찾어보면 자최가 없는 그러한 '한 물건'이 있는데 그것을 보아 버리는 거여. 그것을 깨달으는 것을 누진통이라 하는 것이여.

어떻게 하면 이것을 볼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하면 이것을 깨달을 수가 있느냐?
'메아리 없는 골짜기'와 '뿌리 없는 나무'와 '밑 없는 배'와 '구멍 없는 젓대'를 고인(古人)들은 바로 이 '한 물건[一物]'에다가 비유를 하셨습니다.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 공안)를 간택(揀擇)을 받아서 그 간택 받은 공안(公案)을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을 쓰지 아니하고 이 공안을 참구(參究)를 해서 이 공안을 타파(打破)를 하면, 이 공안을 타파함으로써 이 '한 물건'을 사무쳐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5분26초)





(2/3)----------------

매월 첫째 일요일마다—'어떻게 이 공안(화두)을 참구(參究)하는가?' 참구할 때에 마음가짐과 몸가짐과 호흡하는 법, 그러한 기본적인 것을 말씀을 드렸고, 이 공부를 해 나갈 때에 어떠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그 경계에 집착(執着)을 하지 말고, 끄달리지 말고 다못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해서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참구해 나갈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 공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지식(善知識)의 직접적인 지도(指導) 없이는 백에 하나, 만에 하나도 올바르게 공부를 지어 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올바르게 공부를 지어 가지 아니할 때에 목적지에 바로 도달하기란 바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걸어가는 길도 처음 가는 길은 가다가 두 갈래 길, 세 갈래 길, 네 갈래 다섯 갈래 길이 나올 때에 길 아는 사람의 안내를 받거나, 길 아는 사람에게 묻지 않고서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바로 가기가 어렵거든,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 닦아 가는 길,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공부의 길은 두 갈래 · 세 갈래 · 다섯 갈래 정도의 길이 아니라, 수천 수억만 개의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 많은 길을 어떻게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 없이 바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것이라' 하시고,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다,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만 명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승을 만났다고 해서 스승한테 무엇이 얻을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바로 지어가기 위해서는 스승의 지도와 간택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20분16초)


여러분이 쇠로 된 못을 벽이나, 어떠한 나무나, 그런 데에 박을 때에 맨 처음에 박을 때에 정확한 자리에다가 옳게 박아서 제자리에 들어가야지, 처음에 박을 때에 조끔 비켜서 어문 구녁에다가 박아 놓으면 그놈을 빼서 다시 정확하게 박을려고 해도 아까 잘못 들어갔던 구녁으로 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까 박았던 데로는 안 박고 그 옆에다가 정확하게 박으려고 망치질을 해도 몇 번 박다 보면은 아까 그 뚫어진 잘못된 구녁으로 못이 잘못 들어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 참선(參禪)도 처음에 할 때에 바른 지식(知識)의 지도를 받아서 옳게 해 가야지, 바른 지도 없이 잘못하면 잘못된 경계가 나타났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잘못된 경계에 빠지게 되고, 그 잘못된 경계를 스스로 아닌 줄 알면서도 그 경계가 항시 나타나게 되고, 그 경계에 자기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있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흔히 처음 발심(發心)한 사람이 공부를 보다 더 알뜰하게, 보다 더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저 산중(山中)에 토굴(土窟)이나, 한적하고 사람 오지 아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밤잠을 안 자고 먹을 것을 굶어가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을 하면서 피나는 고행(苦行)을 해 보았으면, 죽든지 살든지 내가 한바탕 해 봤으면' 이러한 간절한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대단히 갸륵한 생각이고 기특한 생각이지만.
고인(古人)네들이 말씀하시기를,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인가(印可)를 맡은 다음에 다시 보림(保任)을 하기 위해서 그러한 깊은 산중에 토굴로 들어가서 수행을 할 것을 허락을 하셨습니다.

깊은 산중이나, 그렇지 않으면 다리 밑에나, 그렇지 않으면 시장(市場) 바닥이나, 자기의 근기(根機) 따라서 얼마든지 혼자 가서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지 못하고 견성(見性)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선지식의 바로 밑에서 많은 좋은 도반(道伴)들과 함께 회중(會中)에서,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실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화두를 선지식한테 타거나, 책을 통해서 자기가 적당히 하나를 골라잡거나 별것이 없습니다.
별것이 없으나 차츰차츰 세월이 가면서 어떠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공안(公案) 참구(參究)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경계(境界)가 나타나거나, 소견(所見)이 생겼을 때에 자기가 철저하게 믿는 선지식(善知識) 없이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할 때에 그러한 경계에 대해서 문의할 데가 없고, 그것을 갖다가 간택 받을 데가 없고 그러기 때문에, 잘못 되어 가도 옳게 되어 간 줄 착각하기가 쉽고, 옳게 되어가도 이것이 잘되어 가는지 못되어 가는지 스스로 의심이 나고, 그래서 중대한 고비에서 공부가 중단되거나 후퇴하거나 갈팡질팡해서 불안하고 초조한 그러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 뒤에 어디 어느 분한테 가서 이것을 간택을 받을까 하고 이리저리 찾아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다 각각 다른 말을 하고—때로는 '옳다'고 그러고, 어떤 분은 '그르다' 그러고, 어떤 분은 '큰일났다' 그러고, 어떤 분은 '공부가 잘 되어 간다' 그러고, 도대체 점점 여기저기 물어볼수록에 점점 중심(中心)을 잡지 못하고 어찌 해볼 수가 없는 그러한 심경(心境)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먼저 스승을 찾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공부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을 자기가 찾는 공부여.
무엇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여. 너무 쉬웁고 너무 간단하고 너무 가까워서, 그래서 그것이 도리어 '어렵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승이 없이, 바른 스승의 지도 없이 혼자 하면 제일 먼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 함정이 무엇이냐 하면,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한 철 두 철을 못 가서 맨 처음에 맛보게 된 경계가, 망상(妄想)이, 그렇게 퍼일어나던 망상이 일어나지 아니하면서 화두(話頭)에 대한 간절한 의심(疑心)이 북받쳐 오르면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려지면서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여. 그래 가지고 그렇게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녹음 끊김)....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도 느끼지를 못하고,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내갔는지 두 시간이 지내갔는지 세 시간이 지내갔는지 시간이 지내가는 것조차도 전혀 느끼지를 못하게 되는 것이여.
캄캄한 밤에 있어도 어두운 줄을 모르고, 혼자 있어도 심심한 줄을 모르고, 하늘을 보나 산을 보나 땅을 보나 모든 것이 자기 눈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으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다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할 뿐입니다.
이러한 경계에서 그 경계가 너무 깨끗하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편안해서 그 싱그럽고 묘(妙)한 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편안을 하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고, '좋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고, '기쁘다' 해도 맞지 아니하고,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그러한 경계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화두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너무 싱그럽고 너무 맑고 깨끗하니까, 자칫하면 그 맑고 깨끗한 경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화두(話頭)를 놓치는 순간이 공부가 잘못 비끄러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 묘한 경계에 들어가서 너무너무—그것을 법희(法喜)라고 할까? 법열(法悅)이라고 할까? 선열(禪悅)이라고 할까?—맑고 깨끗하다 못해서 너무 싱그럽고 묘해서 그 경계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린다면, 더군다나 화두를 놓쳐 버리고 그 경계에 취해 가지고 맛들여서 그 경계에 빠지게 되면, 그건 결단코 깨달음에는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15분30초~34분17초)





(3/3)----------------

자기의 육신(肉身)이 이 세상에 있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그 자리에서는 선악(善惡)도 없고, 밝고 어두운 것도 없고, 크고 작은 것도 없고, 지옥(地獄)과 천당(天堂)도 없고, 부처와 중생(衆生)도 없는 그러한 경계에서, '하! 바로 이것이로구나! 바로 이것이 진공의 경계로구나! 바로 이것이 진공(眞空)이요 묘유(妙有)로구나!'
고조사(古祖師)가 설하신 어록(語錄)도 뒤져 봐도 하나도 맥힐 것이 없이 환한 것 같고, 어떠한 경전(經典)을 떠들어 봐도 모두가 이러한 경계를 두고 말씀하신 것 같고, 어떠한 경계, 공안(公案)을 봐도 공안이 하나도 의심이 안 나고, '하!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것이로구나' 아! 이래 가지고 자기도 알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경계에 취해서 그러한 경계를 계속해서 그 경계를 지켜 나간다?

지켜 나가면, 무엇이 알아지기도 하고, 캄캄한 밤에도 환하게 뭣이 다 바늘 떨어진 것도 다 보이기도 하고, 벽 문을 닫어 놓고 방안에 앉아서도 벽 밖에 것이 환히 보이기도 하고, '내일은 누가 찾아오겠다' 그런 것도 알아지기도 하고.
'아! 그 이것이 바로 신통(神通)이로구나! 내가 견성(見性)만 한 것이 아니라 신통까지 났구나!' 이러한 경계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 누구에게 이것을 얘기하며 누구에게 이 소식을 말할 수가 있을까?

모든 사람을 봐도 모두가 다 불쌍하게 보이고, 도 닦고 있는 모든 수행(修行)하는 사람들을 봐도 어문 다리를 긁으며 헛고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을 가지고 그것을 누리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을 보면 철이 안 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고,
이렇게 해서 자기는 '스승 없이 깨달랐다' 경(經)을 봐도 맥힘이 없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봐도 걸림이 없고, 어떠한 공안(公案)을 봐도 맥힘이 없다 이거여.

그러니 신통까지 났겠다, 다른 사람에게 법문(法門)을 하면, 다른 사람은 역시 모르니까 그이가 인물도 좋고 말도 잘하고, 더군다나 유식해서 경(經)도 잘 설(說)하고, 이럴 경우는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그이를 만나게 되면은 다 훌륭한 선지식이요, 도인이라고 믿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본인도 도인이요 '신통이 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볼 때도 틀림없는 도인으로 보여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차츰차츰 자연히 도인(道人) 행세를 하게 되고, 아는 소리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만(自慢)이 생기면 계행(戒行)도 해이(解弛)해지게 되고, 수행(修行)도 해이해지게 되어서 차츰차츰 옛날에 그 계율을 지키면서 산중에서 그렇게 목숨 바쳐서 정진(精進)할 때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해이해지고 따라서 탁(濁)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탁한 생활이 시작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에 그렇게 깨끗하고 조용하고 맑고 그랬던 경계는 간 곳이 없고, 따라서 과거에 무엇을 훤히 알고 어떠한 신통력을 행하고 했던 것이 둔해지고 무디어져서 뭘 봐도 벽 밖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고, '오늘 누가 올 거다' 한 것도 잘 몰라지고 그렇게 된다 그 말이여.

그렇게 되지만 자기를 추종(追從)하는 제자와 신도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줄 알고 계속 따라오고 있고, 자기는 속으로는 다 그런 신통력이 없어져 버렸다 그 말이여.
없어져 버렸지만 모두가 다 자기를 훤히 알고 있는 걸로 알고 추종을 하는데 모른다고 하면 챙피하고, 그러니까 계속 아는 척은 해야겄고, 이러다가 결국은 모든 것이 백일하(白日下)에 다 폭로(暴露)가 되고.
막행막식을 하고, 말을 함부러 하되 법도(法度)에 맞지 아니하고, 이렇게 될 때에 자기를 과거에 항상 따르고 보호해 주던 선신(善神)은 자기로부터 떠나고 악신(惡神)과 마귀(魔鬼)가 자기를 침범하게 되는 것입니다.(41분45초)

계행(戒行)을 청정하게 지키고 그 열심히 도를 닦으면 반드시 선신(善神)이 자기를, 그이를 옹호(擁護)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행을 지키지 아니하고 마음에 삿된 소견을 가지고 삿된 생각과 삿된 행동을 하면, 선신은 자기로부터 떠나고 삿된 귀신과 악한 신이 자기를 침범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도 망신을 하고 자기를 추종하던 사람도 망신을 하게 되고. 만일의 경우 법에 저촉이 되는 행동을 했다면 영락없이 국가의 법에서도 그이를 구속(拘束)해서 가두기도 하고 또는 사형(死刑)을 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능엄경(楞嚴經)』 속에, 오십삼변마장(五十辨魔障)에 소상하게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경에만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러한 예를 가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이 참선(參禪) 공부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고(最高)에 수행(修行) 방법이지만, 바르게 하지 못하면 이러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정신병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가 자기의 생식기를 잘라 버리기도 하고, 자기가 자기의 목숨을 끊기도 하고,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머리빡을 바위나 벼람박에다 부딪혀서 유혈(流血)이 낭자하다가 피를 흘리고 죽게 되기도 하고, 그 마(魔)에 섭(攝)해 가지고 일어나는 현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에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야 할 것이라 이것입니다. 물이 한번 엎질어 버린 다음에는 다시 쓸어 담기가 어렵듯이, 이 공부도 한 번 잘못되면 여간해서는 바로 잡기가 어려운 것이여. 그러니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지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이 참선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이 참선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에 참선은 반드시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해야 한다고 하는 것. 바른 방법을 알아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34분18초~45분4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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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원앙수출종교간(鴛鴦繡出從敎看)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度與人) ; ‘원앙새 수(繡)놓은 것은 보여주거니와 금침(金針)은 그대에게 건네줄 수가 없다’
[참고 ❶]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
아까 시작할 때에 읊은 “원앙수출(鴛鴦繡出)은 종교간(從敎看)이어니와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度與人)이라. 원앙새 수놓은 것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지마는 원앙새 수놓은 그 바늘은 여러분에게 줄 수는 없다”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에게 얘기해 드릴 수 있지마는 그 깨달음 그 자체는 여러분에게 줄 수가 없다. 그 깨달음은 여러분 자신이 깨달을 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깨달음은 부처님으로서도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것을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1시간27분36초~1시간28분49초)

[참고 ❷]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2칙 ‘주행(周行)’ p27. p40~41.
世尊初生下時 周行七步 目顧四方 一手指天 一手指地云 天上天下唯我獨尊[雲門偃拈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大平]

세존께서 처음 탄생하실 때, 두루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시며 한 손으론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론 땅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셨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서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圓通璣 上堂擧此話云 可謂欺視三界 傍若無人 最好是雲門 出來道 至天下大平 然 此二古聖 於建化門中 善則善矣 美則美矣 若於本分事中 檢點將來 猶欠一着在 敢問大衆 作麽生是本分事 良久云 鴛鴦繡出從敎看 莫把金針度與人

원통기(圓通璣)가 상당하여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가히 삼계(三界)를 속이는 방약무인(傍若無人)한 짓이구나. 가장 좋은 것은 운문(雲門)이 나와서 말하기를 ‘천하의 태평이나 도모했을 것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이 건화문(建化門)에서 볼 때엔 좋기는 좋고 아름답기는 아름다우나 만약 본분(本分)에서 장래를 점검해 보면 그래도 하나가 모자란다. 삼가 대중에게 묻노니, 무엇으로 본분의 일이라 하는가?”
그리고는 양구했다가 말하였다. “원앙새 수(繡)놓은 것은 보여주거니와 금침(金針)은 그대에게 건네줄 수가 없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의 내용을 말함.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칙 '주행(周行)‘ 참고.
[참고]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大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계해년(癸亥年) ; 1983년.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2. (가로판) p117.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 · 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 · 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通]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 (용화선원 刊) p94-95 (가로판 p99-100) 참조.

*숙명(宿命 미리·본디 숙/운수 명) ;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3.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주해)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동용(動用) ;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씀[用]. 움직이고 작용함. 활동. 동용(動容)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06) - 19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회(86.08.03)에서.

 

화두 게문

 


이 자(字)는 ‘보일 시(示)’ 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 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33분18초~35분)
*무저선(無底船 없을 무/밑·바닥 저/배·선박 선) : 밑바닥이 없는 배.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간택(揀擇 가릴 간/가릴 택) ; 사물이나 사람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따위와 그 정체를 구별하거나 가려서 알아 선택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공안(公案, 話頭)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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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마대사(達摩大師) : [산스크리트어]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혈맥론(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不急尋師 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 萬中希有 若自己 以緣會合 得聖人意 卽不用參善知識 此卽是生而知之勝學也 若未悟解 須勤苦參學 因敎方得悟 若自明了 不學亦得 不同迷人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약 자기가 인연을 만나 성인의 뜻을 얻었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而知之] 정말 뛰어난 학인이다.
그러나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부지런히 애써 선지식을 찾아가 배우라.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만일 스스로 분명히 알았다면 배우지 않아도 얻을 수 있으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다르다.
*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회중(會中) ; 설법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 수행자의 집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소견(所見 도리道理·사리事理 소/생각·견해 견)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이 공부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을 자기가 찾는 공부여. 무엇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여. 너무 쉬웁고 너무 간단하고 너무 가까워서, 그래서 그것이 도리어 '어렵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
*밖에서 찾지 말라 ;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참선 정진해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든 자라,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구덕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예”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송담스님 No.577—19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❶] 『전등록(傳燈錄)』 제6권. 마조(馬祖)의 법손(法孫), 월주(越州) 대주사(大珠寺) 혜해(慧海) 선사.
越州大珠慧海禪師者建州人也 姓朱氏 依越州大雲寺道智和尙受業 初至江西參馬祖 祖問曰 從何處來 曰越州大雲寺來 祖曰 來此擬須何事 曰來求佛法 祖曰 自家寶藏不顧 拋家散走作什麼 我遮裏一物也無 求什麼佛法

그는 건주(建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인데,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 도지(道智) 화상에게 업을 받았다. 처음에 강서(江西)로 가서 마조(馬祖)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自家寶藏]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린 채 사방을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찌 불법을 구하겠는가?"

師遂禮拜問曰 阿那箇是慧海自家寶藏 祖曰 卽今問我者 是汝寶藏 一切具足更無欠少 使用自在 何假向外求覓 師於言下自識本心不由知覺 踊躍禮謝 師事六載

대사가 드디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慧海)의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具足)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니,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대사가 그 말끝에 근본 마음[本心]은 지각(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바로 알아채고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6년 동안 시봉하였다.

[참고 ❷]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지눌 스님)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 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의 마음만 알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아니 하여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으며, 또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幻化, 幻과 같은 變化)가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圓覺妙心]에서부터 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오직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마음을 닦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행할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간절히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님이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법열(法悅 부처님의 가르침 법/기쁠 열) ; ①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거나 배우고 따르는 기쁨[悅]. ②진리[法]를 깨달음으로써 얻는 기쁨[悅]. 법희(法喜), 법락(法樂) 등과 같은 뜻이다.
*선열(禪悅) ; ①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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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묘유(眞空妙有) ; 일체를 공(空)이라 하여 부정했을 때, 갖가지 사물은 그대로 긍정되어 묘유(妙有)라고 하는 것. 또 진리 내지는 진여(眞如)가 일체의 망상을 떠나 증가하지도 줄지도 않는, 집착을 떠난 모습을 진공(眞空)이라 칭하며, 상주불변(常住不變)하고 더욱이 현실을 성립시키는 진실의 유(有)인 점을 묘유(妙有)라 함. 본래, 진실의 공은 묘한 현실의 생성, 전개가 되는 것임을 말한 것.
*진공(眞空) ; ①아트만(산스크리트어 ātman)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②소승불교에서 설하는 열반을 가리켜 말함. 허위가 아니므로 진(眞)이라 하며, 일체의 상(相 : 특성)을 떠나 있는 까닭에 공(空)이라 함. ③유가 아닌 유인 묘유(妙有)에 대하여 공이 아닌 공을 말함. 이것이 대승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임. 진실의 공.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법도(法度 법 법/법도 도) ; 법칙(法則)과 제도(制度). 법규(法規)라고도 한다.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례를 가리키는 말이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옹호(擁護 안을·지킬 옹/보호할 호)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킴.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마(魔)에 섭(攝)해 가지고’ ; 마섭(魔攝).
*마섭(魔攝) ; 마(魔)에 포섭(包攝)되다. 마에게 끌려들어 그의 편이 되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몽매지간(夢寐之間) ;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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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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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24. 3. 12. 14:02

§(229)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 말 조심 / 기도를 하여 내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이 되면 소원을 성취한다 / 제일 먼저 내 자신이 바르고, 내 자신이 어질고 착해야 / (게송)송백천년취~.

내 자신을 먼저 바로잡고, 내 자신이 바르고, 내 자신이 어질고 착하고, 그렇게 되도록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그렇게 하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들에게, 이렇게 해서 그것이 차츰차츰 멀리 멀리 뻗쳐 나가면 이웃과 모든 이 우리의 동포와 인류에게까지 그 성스러운 마음씨가 번져 나가도록.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멸망을 평화(平和)로 향하게 하고 이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만드는 그러한 위대한 불사(佛事)가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29)—1984년(갑자년) 신수기도 입재(84.02.04) (용229)

 

(1) 약 8분.

 

(2) 약 11분.


(1)------------------

신수(身數)기도, 일주일간 인자 신수기도를 열심히 하셔야지요. 정성(精誠)껏 일주일 동안을 기도를 하셔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만 정성껏 기도하고, 그리고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마음속이 그뜩해 가지고 생각마다 고약한 생각, 말마다 고약한 소리, 행동을 고약한 행동을 하면, 일주일 기도를 아무리 정성껏 했기로서니 어떻게 그 사람에게 한량없는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냐 그 말이여.

해마다 정월(正月)에는 그 해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좋다' 하는, 어떠한 해는 「마음보를 고치자」 그러한 말씀도 내가 했고, 작년에는 「썽을 내지 말자」 이런 말씀을 했는데, 금년에도 「썽을 내지 말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내게 하지 말자」
다른 사람 속을 이리저리 속상하게 만들어 놓고 "너 금년에는 썽을 안 내는 해여" 이래 해 가지고 약을 올리고, 「자기도 썽을 안 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게 하자」 금년에는 이렇게 나는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기 썽 안 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복(福)을 짓는 것은 남에게 모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베푸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남의 마음을 어떠한 내가 충격을 가해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게 하는 거, 속상하게 하는 거—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그것이 복을 짓는 데에 보다 더 중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 열 가지 한 것 보단 남 못할 일 한 가지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하는 그러한 옛날의 말씀도 있습니다. 참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남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하면서 가끔 말을 갖다가 박(薄)하게 해 가지고 남의 오장(五臟)을 활딱 뒤집어놓는 성미(性味)가 있단 말이여.
하는 일마다 본받을 일이 많고 아흔아홉 가지를 다 잘하는데, 가끔 그 말 한마디를 잘못해 가지고 남을 갖다가 오장을 쑤시는 그러한 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것 참 아흔아홉 가지 공을 공(功)들여서 탑을 99층 탑을 쌓아 가지고, 한마디 그 독(毒)한 말로써 그 99층 탑을 때려부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외로운 그러한 분들을 잘 보살펴드리고 또 그러한 스님네를 잘 공양을 하는 것 대단히 좋고 그건 반드시 실천을 하되, 돈 안 들고 힘 안 들이고 공덕(功德)을 쌓을 수 있는 길.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같은 말이라도 남의 마음을 편안케 해 줘.
그래서 부처님은 '망어(妄語)나 기어(綺語)나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지 아니할뿐만 아니라, 따듯한 말, 부드러운 말, 자비(慈悲)스러운 말, 사랑하는 말로써 모든 어른과 친구와 아랫사람 이웃 사람에게 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참 큰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말 한마디 비끗 잘못해 가지고 내가 죽을 고비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행동의 중간에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이것이 삼업(三業)인데, 마음에 뭔 생각[意]이 나면 결국은 말[口]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身]으로써 그것이 실천이 되는데.
마음에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난 것은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밖으로 표현이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것이 구체화(具體化)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에 떠오르기만 하고 밖으로 표현이 안 되면 자기의 문제로서 끝나지만, 말로써 이미 표현이 되어 버리면 긁어 담지를 못합니다. 더군다나 행동으로 실천을 해 버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말, 불쑥 말이 나오기가 쉬운데, 한번 나가 버리면 그때 입을 탁! 막아 봤자 이미 소용이 없어요. 돈 안 들이고, 힘 안 들이고 사람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그러한 좋은 길.

그 말 한마디,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야만 사람이 다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불쑥 잘못해 가지고 참 집안에 모든 시비(是非)도 일어나고, 친구 간에 의(義)도 상하게 되고, 그 대중(大衆)도 소란하게 맨들고,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제일조(第一條)에 그 '말을 적게 하라'고 하는 그러한 말씀이 전해온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35분52초~43분23초)





(2)------------------

기도 입재(入齋)를 맞이해서 앞으로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하시되, '참 기도(祈禱)'는 내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이 되어.
성현(聖賢)의 마음은 언제나 허공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계시기 때문에 내 마음이 성현의 마음과 하나가 되려면 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면 바로 성현(聖賢)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여.
3일 기도나 일주일 기도 또는 백일 기도를 그렇게 그 열심히 하는 거, 오대산(五臺山)이나 강화(江華) 보문이나 저 홍련암이나 남해 보리암,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그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는 것은 '내 마음을 허공(虛空)과 같이 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 거다' 그 말이여. 허공과 같이 하면은 바로 내 마음이 성현의 마음이 되기 때문에, 성현의 마음이 된다면 무슨 소원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냐 그 말이여.

그저 속으로는 이 고약한 마음을 가뜩 품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가뜩차 가지고 잘되게만 해 달라고 막 빌어 대는데, 빌어 대다 보면은 천번 만번 백만번 천만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나 또는 그런 성현의 명호(名號)를 부르는데, 부르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마음이 깨끗해져 가지고 성현의 마음과 같이 되니까 거기에서 원을 성취하게 되는 거여.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설사 성현의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그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잠깐 한마디 원(願)을, 크고 작은 원을 세워도 바로 그 원이 성취가 잘되는 도리(道理)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기도가 끝난 뒤에 항시 '이뭣고?' 참선을 열심히 하실 것, 평상시(平常時)에 열심히 하실 것이며, 아까 말한 늙고 병들고 약하고 외로운 노인, 저 백리 밖에 사는 남의 노인도 그런 노인이 있으면 잘 돌봐주어야 할 텐데,
하물며 자기 집안에 계신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무리 말이 많고 성질이 괴팍하고 며느리를 별로 이뻐하지 않는 그러한 시어머니 시아버지라 할지라도, 정말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참다운 마음으로 부처님 받들듯이 잘 받들어 모시면 그러한 아주 고약한 성미를 가지신 어른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그 감동이 되어 가지고,
'정말 내 며느리가 이 세상에서는 제일 착하고 이쁘고 좋은 며느리로구나. 아, 내가 저런 좋은 며느리를 너무 내가 볶아 대고 고약하게 굴었구나' 눈물을 흘리면서 반성을 하고, 자기 마음을 그 며느리로 인해서 마음보를 고치고, 그래 가지고 정말 착하고 고운 마음씨가 된 그러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여생(餘生)을 마치게 되고, 그래야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성미가 괴팍하고 아주 인정머리 없고, 일평생 동안 며느리를 이뻐하지 아니하고 볶아 댔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저 늙은이가 빨리 죽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저 늙은이를 어디로 내보내 버릴 것인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미워하고 원망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점점 더 미워하게 되고 나중에는 노망하게 되면 며느리가 잘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저년이 내 집구석 망해 먹을라고 들어온 년이다' 그래 가지고 이를 갈아붙이고 '이년, 이년' 하고 계속 저주를 하다가 눈을 감게 되면, 그 노인은 죽어서도 좋은 곳으로 못하고 계속 그 집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며느리와 그 며느리 뱃속에서 나온 아들딸들을, 이놈에가 붙었다 저놈에 가 붙었다 하면서 계속 못살게 굴어 가지고 결국은 그 집안은 재앙(災殃)이 끊일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데부터서 잘해야 혀.
그러면 누가 제일 가까우냐? 내가, 나 자신이 제일 가깝거든.

그래서 내 자신을 먼저 바로잡고, 내 자신이 바르고, 내 자신이 어질고 착하고, 그렇게 되도록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그렇게 하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들에게, 이렇게 해서 그것이 차츰차츰 멀리 멀리 뻗쳐 나가면 이웃과 모든 이 우리의 동포와 인류에게까지 그 성스러운 마음씨가 번져 나가도록.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멸망을 평화(平和)로 향하게 하고 이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만드는 그러한 위대한 불사(佛事)가 될 것입니다.


송백천년취(松栢千年翠)하고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모란일일홍(牧丹一日紅)허되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백(松栢)은 천년취(千年翠)허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라.
소나무와 잣나무는 천년 동안을 푸르르되 세상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를 안 해요. 그냥 ‘소나무 푸르거니’ 하고 별로 소나무를 그렇게 이뻐할 줄을 모른다 그 말이여.

그런데 목단(牧丹)은 하룻동안 빨갛게 이쁘게 피었다가 져 버리는데, 모든 사람들은 그 목단 아름답다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한 생각 단속(團束)해서 무량(無量)의 복락(福樂)을 얻고,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이 활구참선(活句參禪) 정법은 세상 사람들이 시드르르 하게 생각하고,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은 내 뜻대로 되어 봤자 잠깐 쌈빡하다 말아버린 것이고, 그 뒤끝은 천하 허망(虛妄)하고 한 것인데, 온 세상 사람들은 재산과 색과 명예와 권리에는 모두가 거기에는 빠져 가지고 헤어날 줄을 모르는구나.(58분28초~68분46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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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박하다(薄-- 엷다·얇다·적다·야박하다 박) ; ①(마음 씀씀이나 태도가) 너그럽거나 푼푼하지 못하여 야멸치고 쌀쌀하다. ②(이익이나 소득이) 많지 않아 보잘것없다. ③(무엇이) 두께가 얇다. ④(물건의 품질이) 변변하지 못하다.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말.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자비(慈悲) : [산스크리트어]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이 삼업이다.





------------------(2)

*입재(入齋) ; 재(齋)를 시작하는 일. 또는 그 의식.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성현(聖賢)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지극정성(至極精誠 이를·매우·궁극·극진히 할·깊을 지/극·다할·막다른 지경·매우 극/깨끗하다·정성스럽다 정/정성·진실 성)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 · 관세음(觀世音) · 관세자재(觀世自在) ·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나반존자(那畔尊者) ; 나반존자는 우리나라에서 말세의 복밭이라고 신앙하는 나한(羅漢).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獨] 수행(修行)한 성자(聖者)의 뜻으로 독성(獨聖) · 독수성(獨修聖)이라고도 한다.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명호(名號) ; 명자(名字), 명(名)이라고도 함. 이름. 주로 부처님과 보살의 이름이기에 존호(尊號), 가호(嘉號) 등이라고도 한다. 이 명호(名號)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것에 커다란 작용이 있다고 여기고, 여기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등의 행(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이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게송) ‘송백천년취(松栢千年翠)~’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묘지곽(妙智廓) 게송 참고.
*목단(牧丹 치다·기르다 목/붉다·모란 단(란)) ; 모란(牡丹).
*모란(牡丹 수컷·양성 모/붉다·모란 단(란)) ; ① 작약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미터 정도이고 가지는 굵고 털이 없으며, 잎은 크다. 늦봄에 붉고 큰 꽃이 피는데 꽃빛은 보통 붉으나 개량 품종에 따라 흰색, 붉은 보라색, 검은 자주색, 누런색, 복숭앗빛을 띤 흰색 따위의 여러가지가 있다. ② ‘①’의 꽃.
‘丹’의 경우 본음은 ‘단’이나 ‘牡丹’의 경우, 속음인 ‘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여 ‘모란’으로 적는다.
*‘한 생각 단속(團束)해서’ ; 일념단속(一念團束).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량(無量 없을 무/헤아릴 량) ; ①헤아릴[量] 수 없이[無] 많음. ②[불교]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화엄경》에 나오는 백이십 수(數) 중 한 수의 이름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쌈빡하다 ; ‘산뜻하다’의 사투리.
*산뜻하다 ; 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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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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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24. 3. 11. 12:27

§(229) 중병(重病)을 앓는 장로 비구의 과거 인연(因緣)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18. 도장품(刀仗品) /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 말 조심 /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방편(方便)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 인과 방편설로써 자기의 마음가짐 · 말씨 · 인간성 · 행동거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어야 /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聖賢)이라 하는 것.

말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말 한마디 비끗 잘못해 가지고 내가 죽을 고비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행동의 중간에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이것이 삼업(三業)인데, 마음에 뭔 생각[意]이 나면 결국은 말[口]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身]으로써 그것이 실천이 되는데.
마음에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난 것은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밖으로 표현이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것이 구체화(具體化)되는 것입니다.

'성현(聖賢)도 자기 허물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범부(凡夫)는 평생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 허물을 못 보는 것이고, 성현(聖賢)이라야 남의 허물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거여.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허물을 보게 되고, 남의 허물이 바로 자기 허물인 줄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29)—1984년(갑자년) 신수기도 입재(84.02.04) (용229)

 

(1) 약 13분.

 

(2) 약 15분.


(1)------------------

부처님 당시에 현제국(賢提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 아주 그 노스님, 아주 장로(長老) 비구(比丘)인데, 연세는 많고 그런 스님 한 분이 있었는데 대단히 중병(重病)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러 달을 씻지도 않고 옷도 빨아 입지도 않고 그래 가지고는 이 노스님이 앓고 있는 그 방에는 그 근처에도 사람이 지내갈 수가 없습니다. 똥 냄새에다, 오줌 냄새에다가, 피고름이 썩어 문드러진 냄새에다, 땀에다 모다 섞어져 가지고 도대체 그 근처만 가도 창자가 거꾸로 뒤집어질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나서 아무도 그 간호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부처님께서 떠억 정중(定中)에 관(觀)을 해 보시고 그 늙으신 비구가 그런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아시고서 제자들을 거느리고서 그 현제국에 있는 그 노비구(老比丘) 있는 곳을 가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자들에게 명(命)해서 차례차례로 그 간병(看病)을 하도록 명을 했습니다.
근데 이 부처님께서 명을 하시니까 마지못해서 간호를 한 척하고, 뭐 왔다갔다하고 어쩌고 그러지만, 그 가기만 가면 비위가 상하고 창자가 뒤집어질라 그러고, 한번만 갔다 오면은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형식적으로 거짓으로 그저 간호를 한 척하고 그랬는데, 부처님이 왜 그것을 모르시겠느냐 그 말이여.

부처님이 그것을 아시고서 당신이 손수 더운물을 데워 가지고 가서 그 환자를 옷을 다 벗겨서 다 빨고 몸을 다 깨끗이 씻겨서 씻고, 그 방에 깔아져 있는 마른 풀은—돼지 그 우리 안에 돼지 똥과 오줌이 범벅이 쳐진 것 같이 그 풀이 썩어서 마치 퇴비처럼 되어 있는 것을 쏵 다 손수 다 그것을 걷어내고서 풀을 비어다가 말려서 마른 풀을 깨끗이 다 깔아 놓고, 옷을 빨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이렇게 해서 딱 해 놓으니까 그 다른 제자들이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 제자들을 향해서 법(法)을 설하시기를, "여래(如來)가 이 땅에 온 것은 병(病)들고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고 한 외롭고 약한 노인(老人)이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구제(救濟)하기 위해서 여래는 이 땅에 왔느니라.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든지 이러한 외롭고 병들고 가난한 노인이나 또는 수행자, 수행하시는 스님들을 잘 약(藥)을 공양(供養)을 하고 의복을 공양을 하고 이 병든 스님을 잘 공양을 올려서 간호를 해드리고 하면은, 그 복은 여래(如來)를 공양하는 복(福)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느니라. 그래서 그 복이 무량(無量)해서 자기 원하는 바를 성취치 못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신수기도, 일주일간 인자 신수기도를 열심히 하셔야지요. 정성(精誠)껏 일주일 동안을 기도를 하셔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만 정성껏 기도하고, 그리고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마음속이 그뜩해 가지고 생각마다 고약한 생각, 말마다 고약한 소리, 행동을 고약한 행동을 하면, 일주일 기도를 아무리 정성껏 했기로서니 어떻게 그 사람에게 한량없는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냐 그 말이여.

해마다 정월(正月)에는 그 해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좋다' 하는, 어떠한 해는 「마음보를 고치자」 그러한 말씀도 내가 했고, 작년에는 「썽을 내지 말자」 이런 말씀을 했는데, 금년에도 「썽을 내지 말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내게 하지 말자」
다른 사람 속을 이리저리 속상하게 만들어 놓고 "너 금년에는 썽을 안 내는 해여" 이래 해 가지고 약을 올리고, 「자기도 썽을 안 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게 하자」 금년에는 이렇게 나는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기 썽 안 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복을 짓는 것은 남에게 모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베푸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남의 마음을 어떠한 내가 충격을 가해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게 하는 거, 속상하게 하는 거—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그것이 복을 짓는 데에 보다 더 중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 열 가지 한 것 보단 남 못할 일 한 가지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하는 그러한 옛날의 말씀도 있습니다. 참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남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하면서 가끔 말을 갖다가 박(薄)하게 해 가지고 남의 오장(五臟)을 활딱 뒤집어놓는 성미(性味)가 있단 말이여.
하는 일마다 본받을 일이 많고 아흔아홉 가지를 다 잘하는데, 가끔 그 말 한마디를 잘못해 가지고 남을 갖다가 오장을 쑤시는 그러한 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것 참 아흔아홉 가지 공을 공(功)들여서 탑을 99층 탑을 쌓아 가지고, 한마디 그 독(毒)한 말로써 그 99층 탑을 때려부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외로운 그러한 분들을 잘 보살펴드리고 또 그러한 스님네를 잘 공양을 하는 것 대단히 좋고 그건 반드시 실천을 하되, 돈 안 들고 힘 안 들이고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길.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같은 말이라도 남의 마음을 편안케 해 줘.
그래서 부처님은 '망어(妄語)나 기어(綺語)나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지 아니할뿐만 아니라, 따듯한 말, 부드러운 말, 자비(慈悲)스러운 말, 사랑하는 말로써 모든 어른과 친구와 아랫사람 이웃 사람에게 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참 큰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말 한마디 비끗 잘못해 가지고 내가 죽을 고비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행동의 중간에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이것이 삼업(三業)인데, 마음에 뭔 생각[意]이 나면 결국은 말[口]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身]으로써 그것이 실천이 되는데.
마음에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난 것은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밖으로 표현이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것이 구체화(具體化)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에 떠오르기만 하고 밖으로 표현이 안 되면 자기의 문제로서 끝나지만, 말로써 이미 표현이 되어 버리면 긁어 담지를 못합니다. 더군다나 행동으로 실천을 해 버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말, 불쑥 말이 나오기가 쉬운데, 한번 나가 버리면 그때 입을 탁! 막아 봤자 이미 소용이 없어요. 돈 안 들이고, 힘 안 들이고 사람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그러한 좋은 길.

그 말 한마디,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야만 사람이 다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불쑥 잘못해 가지고 참 집안에 모든 시비(是非)도 일어나고, 친구 간에 의(義)도 상하게 되고, 그 대중(大衆)도 소란하게 맨들고,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제일조(第一條)에 그 '말을 적게 하라'고 하는 그러한 말씀이 전해온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31분2초~43분24초)





(2)------------------

그때 그 부처님께서 그 대중을 향해서 병(病)든 그 비구, 병들고 늙고 약하고 한 그러한 노인을 갖다가 간호를 잘하면 그 복이 한량이 없고, 무슨 원(願)이고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데,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인도(印度)에 있는 다섯 개의 큰 강(江)이 흘르고 흘러서 다 바다에 들어가듯이, 모든 복(福)은 그 사람한테로 다 모여든다' 이것이거든. 그래 가지고 '그 공덕(功德)이 점점점점 원만(圓滿)해 가지고 마침내는 성불(成佛)까지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는데.

그때 그 현생국에 왕(王)이 "부처님, 저 노비구는 과거에 무슨 인연(因緣)으로 금생에 저렇게 병고(病苦)에 시달리되 아무도 간병(看病)하는 사람이 없다가, 세상에 부처님 세존(世尊)께서 손수 더운물을 데워서 목욕을 해 주시고 빨래를 해서 갈아입히시고 풀을 뜯어다가 말려서 자리를 깔아 주시고, 어떻게 해서 저 노비구는 어찌 보면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박복(薄福)한 사람 같았는데, 오늘 보니까 이 세상에서는 제일 복을 많이 지은 사람 같습니다. 과거(過去)에 무슨 업(業)으로 그렇습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어봤습니다.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악행왕(惡行王)이라 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 임금은 어떻게 포악(暴惡)하고, 우리나라에 연산군(燕山君)이나 모다 그러한 고약한 왕보다도 더 고약했던지 말로 할 수가 없어. 어떻게 법(法)을 갖다가 일 년이면 몇 번씩 뜯어고쳐 가지고 ‘어떻게 하면 백성을 갖다가 피를 빨아먹으며 어떻게 하면 백성을 괴롭힐까?’ 오직 자나깨나 그것만 연구하는 임금이여.

그래 가지고 법을 어떻게 자주 뜯어고쳐 가지고 백성을 못살게 굴고 그러니 백성이 아무리 그 법을 따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자꾸 법을 고쳐 가지고는 도저히 실천할라야 할 수 없도록 그렇게 고약한 짓만 하면서, 또 그 천하에 장사(壯士)는 전부 뽑아다가 놓고, 임금에 명(命)에 조끔이라도 어겼다 하면은 쇠심줄로 맨든 그 채찍을 가지고 무섭게 매질을 하고 때리는데, 그 매질하는 장사도 아주 물리가 나 가지고 자기한테 은근히 뇌물을 갖다 바치면 아프게 때린 척하면서 안 아프게 때리고, 자기한테 뇌물을 바치지 아니하면 아주 살이 쭉쭉 째져서 피가 쏟아지도록 그렇게 무섭게 후려치고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아주 백성들이 살라야 살 수가 없게 되었는데,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 되면 무고(誣告)로 모략중상(謀略中傷)을 하는 풍조가 천하에 아주 유행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법(法)은 차츰차츰 간단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 성현이 나라를 다스리면 약법삼장이라 해 가지고 법을 간략히 해 가지고 삼장(三章)으로 된다 그 말이여. 법이 아주 간단해. 그래 가지고는 그렇게 법을 미세하게 엄하게 맨들 필요가 없다 그 말이여.

백성들이 모다 자연히 봄이 돌아오면은 날이 따뜻해지면은 얼음이 다 녹고, 땅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산천초목에서는 새싹이 돋으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기저기에 모든 산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면서 졸졸 흘러내리고, 강산(江山)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사람들은 그 겨울에는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를 나오지를 못하다가 봄이 오면은 문을 다 열어제끼고 모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논으로 모다 나와서 활동을 하게 되는 거와 같애.
성현이 이 나라를 다스리면은 자연히 인심(人心)이 순화(純化)가 되어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모략하고 무고로 하고 그러한 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이 남을 조끔 수만 틀렸다면 터무니없는 이 모략(謀略)을 해 가지고는 사람을 갖다가 잡혀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도록 맨들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아주 그 정법(正法)을 믿는 그러한 아주 선량(善良)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갖다가 오해를 해 가지고 모략을 무고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참 죽도록 뚜르러 맞을 판인데, 그 사람이 그 장사(壯士)한테 빌기를 "참, 나는 참 정법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절대로 그러한 악한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어떤 사람이 오해를 해 가지고 이렇게 이 무고로 이렇게 한 것이니 나를 용서를 해 달라"고, "나를 용서를 해 주고 조사를 해 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아주 정법을 믿는 선량한 사람이 간곡히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 포악한 장사도 한 점 눈물이 있었던지, 그 '정법을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에 아프게 때리지를 않고, 그 채찍이 그 사람 몸에 닿지 않도록 엄포만 놓고서 안 아프게 때려 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다행히 죽지를 않고, 혹독하게 매를 맞지 않고 잘 풀려났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 매질을 혹독히 한 그 장사(壯士)가 죽어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습니다. 지옥에 들어가서 그 무서운 고(苦)를 다 받고, 몇백 생(生)을 받았는지 몇 겁(劫)을 받았는지 받고서 겨우 풀려났는데, 뭣이 되었냐 하면은 축생(畜生)이 되었습니다.
축생이 되어 가지고 참 수없이 육백 생(生) 동안을 축생이 되어 가지고 매를 맞았습니다. 이 소 쟁기질을 못한다고 밤낮 후려치고, 또는 말이 되어 가지고 빨리 안 달린다고 뚜드러 패고, 그래 가지고 수없는 참 육백 생 동안을 축생이 되어 가지고 그 혹독한 매질을 당하다가, 겨우 그 자기가 매질한 만큼 몇백 배를 이자까지 쳐서 그 보(報)를 다 받고 난 다음에사 겨우 사람이 되었는데, 평생 동안을 병고(病苦)를 앓게 되었다.

"그때 그 전생에 그 매질을 한 장사(壯士)가 금생(今生)에 태어나 가지고 저 늙은 비구(比丘)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때 선량(善良)한 백성이, 무고로 잡혀 들어가 가지고 그때 그 장사한테 풀려난 사람이 바로 오늘 나다.
그때 그 장사가 내가 '정법(正法)을 믿는다'고 애원(哀願)을 한 그 한마디로 어떻게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 나를 매질을 아니하고 잘 풀어준 그 공덕(功德)으로, 그 인연으로 오늘날 내가 손수 저 늙은, 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저 늙은 비구를 내가 오늘 손수 더운물을 데어서 간호를 하고 이 빨래를 해 주고 하게 되었느니라. 한번 지은 죄(罪)는 생을 바꾸더라도 면(免)하지를 못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대중을 위해서 전생(前生)의 인과(因果)를 설하셨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을 하고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천칠백 공안(公案), 공안 법문이나 필요하지 인과설(因果說)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거 뭐 인과설, 잔소리만 많이 하고 무슨 그런 소리가 필요하냐?'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하니,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한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의지(意旨)를 일러봐라!'

'이러한 등등(等等)의 법문, 간단한 법문(法門) 한마디면 족하지, 무슨 그런 너저분한 인과설(因果說)을 하느냐?'

이렇게 이 공격을 하고 나를 갖다가 비난을 하는, 나에게 충고(忠告)를 하는 그러한 분이 계셔서, 내 마음으로 "참 옳은 말씀이요. 나한테 직접 그런 말을 해 주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서, "참 그 좋은 말씀을 내가 깊이 참작(參酌)을 하겠습니다" 했는데, 하고서도 나는 또 오늘 올라와서 또 이런 인과설을 말하게 됩니다.
나한테 충고를 해 준 그분한테는 내가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방편(方便)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울을 보지 아니하면 내가 내 눈은 볼 수가 없는 것이여. 내 눈은 청황적백(靑黃赤白) 온갖 것을 다 보지만, 눈 자체(自體)는 눈이 자기가 자기 눈을 볼 수가 없어. 거울이나 거울의 대용품을 가자(假藉)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눈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심(發心)을 해서 수행을 하고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모습을 보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 부처님 경전(經典)에 나오는 팔만사천(八萬四千) 가지의 그 방편설(方便說)을 가끔 하나씩을 들어서 그것을 살펴봄으로써 자기의 마음가짐과 자기의 말씨와 자기의 행동과 자기의 인간성과 자기의 행동거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機會)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집 며느리는 이웃집, 담 너머 이웃집 며느리 하는 것을 보고 거기서 자기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經典)에 있는 이런 방편설을 하나씩을 보면은 참, 자기를 반성(反省)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현(聖賢)도 자기 허물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범부(凡夫)는 평생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 허물을 못 보는 것이고, 성현(聖賢)이라야 남의 허물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거여.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허물을 보게 되고, 남의 허물이 바로 자기 허물인 줄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43분28초~58분2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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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長老) ; ①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②(불교)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스님을 높여 이르는 말.
*비구(比丘) :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의 음사. 걸사(乞士) · 파번뇌(破煩惱) · 파악(破惡) · 포마(怖魔)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 남자가 출가하여 중이 되어, 이십 세 이상 된 때에 250계 되는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①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 ②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 ③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 ④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 ⑤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것 등이다. 여승(女僧)은 비구니(比丘尼 bhikkuni)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남승과 같고, 오직 348계 되는 비구니계를 지켜야 한다.
*정(定) :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산스크리트어]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산스크리트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박하다(薄-- 엷다·얇다·적다·야박하다 박) ; ①(마음 씀씀이나 태도가) 너그럽거나 푼푼하지 못하여 야멸치고 쌀쌀하다. ②(이익이나 소득이) 많지 않아 보잘것없다. ③(무엇이) 두께가 얇다. ④(물건의 품질이) 변변하지 못하다.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말.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이 삼업이다.





------------------(2)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❶]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대정장29, p.525c21)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 ❷]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대정장11, p.346c3)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간병(看病) ; 환자를 간호(看護)하는 것.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세존(世尊) : [산스크리트어]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 로가나타(路迦那他) ·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박복(薄福 엷을·적을 박/복 복) ; 복이 별로 없음. 또는 팔자(八字,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가 사나움.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 : 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포악(暴惡 사나울 포/악할 악) ; 사납고 악독함.
*장사(壯士 장壯하다·굳세다·씩씩하다 장/선비·사내·남자 사) ; 기개와 힘이 아주 굳센[壯] 사람[士].
*쇠심줄 ; 소의 힘줄.
*무고(誣告 속이다·왜곡하다 무/고하다·알리다 고) ;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
*모략중상(謀略中傷 꾀·계략 모/꾀·경영하다 략/마음·심중 중/해치다·상하다 상) ;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謀略)과 남을 헐뜯어 명예를 손상(損傷)함. 또는 그런 일.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겁(劫) ; (산스크리트어)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 • 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애원(哀願 슬프게·애처로이 애/원하다·빌다 원) ; 소원이니 요구 따위를 들어 달라고 애처롭게[哀] 사정하여 간절히 바람[願].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藉’는 ‘借(차, 적)’의 본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성현(聖賢)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佛)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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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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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원(願) 발원2024. 3. 10. 13:12

§(229) 변화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것 / 불법(佛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에 깊은 인연을 심은 우리나라 / 자작자수(自作自受) / 지구 사람들이 진리에 의해서 참나를 찾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애끼며 진정으로 잘살 수 있는 그러한 원(願)을 가지고 기도를 하셔야 한다.

**송담스님(No.229)—1984년(갑자년) 신수기도 입재(84.02.04) (용229)

 

약 14분.

 

 

'변화(變化)'라고 하는 것은 참 무상(無常)한 것이요 대단히 안 좋은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변화야말로 참으로 그 소중한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중생(衆生)은 영원히 중생이지 성불(成佛)할 기약(期約)이 없는 것입니다.
밤이 되었다 낮이 되었다, 또 낮이 밤이 되고 또 밤이 낮이 되고,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또 그 지난 겨울 동안 대단히 강추위를 했지만, 내일이면 또 입춘이 되어서 다시 또 새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좋고, 이 사바세계 가운데에도 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이야말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사시(四時)가 분명해서 이 세계에서는 제일 좋은 나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서도 제일 좋은 사바세계에 태어났고, 사바세계에서도 제일 좋은 이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을 퍽 다행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도 일 년 내 겨울만 있는 데도 있고, 일 년 내 여름만 되는 데도 있고, 또 밤이 대단히 긴 곳이 있는가 하면은 계속 밤이 없고 낮만 있는 데도 있고, 참 그 변화가 없어서 그런 데는 박복중생(薄福衆生)들이 떨어져서 사는 곳입니다.
이 대한민국은 봄은 봄대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은 삼복(三伏)더위가 있어서 그렇게 뜨겁고 하나, 그 가운데에 봄에 심어 놨던 모든 곡식이 그 뜨거운 계절을 만나서 무성하게 자라 가지고, 가을이 되면 서늘바람이 부는데 그 서늘바람 속에서 그 여름에 자랐던 모든 곡식이 누렇게 결실을 해서 익게 됩니다. 겨울이 되면은 눈이 내려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얼음이 어는데, 그때 모든 산천초목은 낙엽이 져서 엉성하게 나무가지가 되지만 그 나무의 모든 기운은 열매를 맺어서 씨로 갈무리고 또 뿌리로 기운을 보내서 월동(越冬)을 하게 됩니다. 그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용해서 모든 이 더러운 것이 다 살균(殺菌)이 되고, 그래 가지고 입춘(立春)이 돌아오면 다시 새싹이 나게 됩니다.

이러한 나라에 태어난 우리는 참 숙세(宿世)의 많은 복(福)을 심고 닦았기 때문에 이러한 좋은 나라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單一民族)으로 참 5천년의 역사를, 문화와 역사를 가진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민족입니다.
워낙 나라가 좀 좁고, 워낙 민심(民心)이 모다 선량(善良)하고, 또 그러지만 모든 풍토(風土)가 너무 좋다 보니 이웃나라에 욕심 많은 사람들이 항시 우리를 욕심을 내고 짓밟고 노략질을 하고 그러한 못된 나라들이 있어서 5천년을 두고 많은 괴로움과 시련을 받아왔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련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민족성(民族性)을 잃지 아니하고 결국은 오늘날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좋은 나라가 아니면 6 ‧ 25 동란(動亂)과 같은 그러한 무서운 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세계에 16개국의 나라 병정(兵丁)들이 와 가지고 그 우리나라의 난리를 평정(平定)을 시키고 우리를 다시 이렇게 잘살 수 있겄게 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나라와 우리 민족은 정말 이 불법(佛法)에, 불법 가운데에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깊은 인연을 심은 그러한 나라요 민족이기 때문에 참, 불보살(佛菩薩)과 제석천왕(帝釋天王)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항시 가호(加護)를 해 주셔서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말세(末世)가 차츰차츰 깊어지면, 동해(東海)는 차츰차츰 물에 잠기고 이 서해 쪽으로는 육지가 차츰차츰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되고, 또 앞으로 이 세계의 예언가들이나 점성가들이나 역술가들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2천년 초에 가면 세계 인류의 70프로가 다 이 몰살을 당할런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현재 모든 이 사람들이 세계에 모든 나라들이 하는 꼴을 보면 그러한 재난을 당할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모든 재난(災難)과 업(業)은 다 자작자수(自作自受)인 것입니다. 자기가 지어 가지고 자기가 받는 것이여. 인류의 멸망도 인류 자신들이 망할 짓을 해 가지고 그러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어길 수 없는 이것은 천리(天理)인 것입니다.
스스로 복을 받을 짓을 하면 복을 받게 되고, 재앙을 받을 짓을 하면 재앙을 받는 것은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서로 제 나라 욕심만 챙겨 가지고 이웃나라를 침공(侵攻)을 하고, 다른 사람은 다 죽게 되더라도 자기만 살려고 그러고, 다른 업체는 다 망해도 자기 업체만 살려고 그러고, 나라는 망해도 자기는 자기만 살려고 그러고, 모든 다른 사람들은 다 망해도 자기 한 사람만 잘살려고 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은 다 망하고 자기만 살기커녕은 자기까지 합해서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 일 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의 사이도 그렇고, 온 이 세계가 다 마찬가지고, 이 지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우주에는 태양계(太陽系)와 같은 그러한 세계가 동서남북 시방세계(十方世界)로 무한대(無限大)로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지구와 같은, 지구보다도 더 발달된 세계가 이 하늘 우주세계에는 몇천만 개가 있을런지도 알 수가 없고, 지구와 비슷한 세계, 지구보단 못한 덜 발달된 세계, 모두 다 해서 백억만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많이 발달이 되어서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하신 말씀이 과연 틀림이 없다고 인증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우주에 지구와 같은 많은 세계들이 있을 때에, 각기 그 세계는 그 세계대로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세계도 역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끔 우주과학이 발달이 되어서 계속 달나라도 갔다 오고, 다른 별나라를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우주 정거장을 맨들어 가지고 우주여행을 머지않아서 모다 인류가 하게 되는데, 지구상에 살면서 지구에 사람들이 서로 이 진리(眞理)에 귀의(歸依)해서, 진리에 의해서 참나를 찾고 진리에 의지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애끼고, 그렇게 해서 서로 화합(和合)하고 그렇게 해야만 이 지구는 멸망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물도 함께 다 멸망하게 되고, 동물만 멸망한 게 아니라 모든 식물도 다 타 죽고, 그런 이 방사 낙진(放射性 落塵)으로 인해서 다 병(病)들어서 오랫동안 이 땅에서는 식물과 모든 동물, 생물이 서식하기가 어려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수기도를 하되 자기의 욕심(欲心)만을 충족(充足)하기 위한 그러한 원(願)을 가질 것이 아니라, 불같은 욕심으로 부자만 될려고 그러고 자기의 이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충족하기 위한 그러한 졸렬(拙劣)한 원을 세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잘살 수 있는 그러한 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참 진정한 행복(幸福)을 얻을 수가 있고 그러한 원을 세워야 원을 성취를 하게 되고 그래야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17분43초~30분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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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박복(薄福 엷을·적을 박/복 복) ; 복이 별로 없음. 또는 팔자(八字,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가 사나움.
*삼복(三伏)더위 ; 삼복(三伏 : 초복初伏 · 중복中伏 ·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무렵의 몹시 심한 더위.
伏자는 '엎드리다'나 '굴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렇게 人(사람 인)자와 犬(개 견)자가 결합한 伏자는 개가 사람 옆에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 伏날은 엎어질 듯이 매우 더운 날이라는 뜻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 혹독할 엄/겨울 동/눈 설/찰 한) ; 혹독하게[嚴] 추운 겨울[冬]에 눈[雪] 내린 뒤의 추위[寒].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천지신명(天地神明) ; 하늘과 땅의 조화를 주재하는 온갖 신령.
*가호(加護 더할·베풀 가/돕다·지키다·보호하다 호) ; 가피(加被).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자작자수(自作自受) ; 자기(自己)가 지어서[作] 자기가 받음[受].
과거, 전생의 선악(善惡)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뜻도 들어 있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업자박(自業自縛)도 같은 뜻이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방사성 낙진(放射性 落塵) ; 핵폭발에 의하여 생겨나 주변의 땅 위에 떨어지는 방사성 물질. 생물이나 생태계를 파멸시키거나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므로 흔히 ‘죽음의 재’라 부른다.
*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졸렬하다(拙劣-- 옹졸할 졸/어느 정도에 미치지 않는다·낮다·적다 렬(열)) ; (사람이나 그 언행이) 옹졸하고 보잘것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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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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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24. 3. 7. 08:42

§(229) 사바세계보다도 천당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천당에 간 것이 영원한 것이 못되고 복(福)이 다하면 떨어진다[福盡墮落] / 사바세계는 무상(無常)해서 발심하기 좋다 / 변화(變化)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것.

천당에 가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즐겁고 다 내 뜻대로 되니까 참 좋을 것 같지만, 거기서는 참나를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길이 없습니다. 너무 편안하고 좋고 내 맘대로만 되니까 그 편안한 것을 즐기느라 나 자신을 깨달을 필요도 없고 깨달라야 할 생각도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천당에서 살아 버리면 구태어 생사해탈(生死解脫)할 것도 없겠지만, 자기가 지은 복(福), 자기가 지은 복을 받을 만큼 다 받어 버리면 다시 축생에도 떨어지고 또 인간 세상에도 떨어지고 또 과거에 지어 놓은 죄가 많으면 지옥에도 떨어진다.

'변화(變化)'라고 하는 것은 참 무상(無常)한 것이요 대단히 안 좋은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변화야말로 참으로 그 소중한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중생(衆生)은 영원히 중생이지 성불(成佛)할 기약(期約)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29)—1984년(갑자년) 신수기도 입재(84.02.04) (용229) (무상)

 

약 11분.


이 신수(身數)기도는 정초(正初)에 3일이나 또는 일주일, 이렇게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기도를 올림으로 해서 금년 일 년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礙)하고 모든 소원을 뜻과 같이 이루기를 비는 그러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저 천당(天堂)과도 다르고 지옥(地獄)이나 축생계(畜生界)와도 달라서, 천당은 뭣이던지 내가 생각만 먹었다 하면은 생각 먹은 찰나(刹那)에 이미 내 원하는 바가 눈앞에 현실적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밥이 먹고 싶다' 하면 금방 배가 불러지고, '뭘 보고 싶다' 하면 보고 싶은 그것이 찰나간(刹那間)에 눈앞에 나타나 있고, 내가 '어디를 가고 싶다' 하면 가고 싶다는 생각을 먹자마자 내 몸뚱이가 그 목적지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도 괴로운 것이 없어. 내 뜻에 어긋난 일이 없고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고 원(願)대로 되고 그래서 하나에서 백까지 기쁘고 편안하고 좋은 일만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축생계(畜生界)나 저 지옥(地獄)은 백만사(百萬事)가 내 뜻대로 안 되아. 배고파서 물을 먹으면, 물이나 음식을 먹으면 목구멍에서 불이 되어 가지고 불이 훨훨 타고, 도대체가 내 뜻대로 된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다 그 말이여.

그런데 이 사바세계는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이 섞여 있고,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 그 말이여.
어떠한 사람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많은 사람도 더러는 있고, 내 뜻대로, 사사건건(事事件件)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사람도 있고 그러는데, 얼마 동안은 내 뜻대로 안 되다가 또 세월이 지내가면 또 내 뜻대로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내 뜻대로 무엇이던지 잘되다가 중간에 가서 내 뜻대로 안 되기도 하고, 일생 동안 모든 일이 내 뜻대로만 잘되는 사람도 몇백만 명 속에는 혹 한 사람이나 있을란가, 거의 내 뜻대로 백만사(百萬事)가 다 된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일반 사람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은 40프로나 3-40프로, 그리고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이 6-70프로,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보면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바세계보다도 저 천당(天堂)에 가면, 하늘나라에 가면 참 좋겠다' 다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이 불법(佛法)에서는 천당을 그렇게 좋게 생각을 아니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당에 가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즐겁고 다 내 뜻대로 되니까 참 좋을 것 같지만, 거기서는 참나를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길이 없습니다. 너무 편안하고 좋고 내 맘대로만 되니까 그 편안한 것을 즐기느라 나 자신을 깨달을 필요도 없고 깨달라야 할 생각도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천당에서 살아 버리면 구태어 생사해탈(生死解脫)할 것도 없겠지만, 자기가 지은 복(福), 자기가 지은 복을 받을 만큼 다 받어 버리면 다시 축생에도 떨어지고 또 인간 세상에도 떨어지고 또 과거에 지어 놓은 죄가 많으면 지옥에도 떨어진다 그 말이여.
은행에다 예금을 아무리 많이 해 놔도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곶감 빼 먹듯이 자꾸 빼 먹으면, 그 쓰기에 따라서는 일 년 동안에 통장이 다 바닥이 날 수도 있고, 아무리 많아도 한 10여 년간 계속 내다 쓰다보면 결국은 바닥이 나는 것처럼, 과거에 복(福)을 많이 짓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다행히 천당에 올라갔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어 버리면 다시 또 떨어지기 때문에 천당에 간 것이 그렇게 영원한 것이 못되고, 올라가 봤자 복 받느라고 이 나를 깨달라서 견성성불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이 불법을 믿는, 특히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들은 천당을 그렇게 좋게 안 생각하고, 제일 좋은 세계가 바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苦)와 낙(樂)이 섞여 있어서 모든 것이 무상(無常)해서 거기에서 우리는 발심(發心)을 할 좋은 동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 잘살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그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기울어지면 거기에서도 발심을 할 수가 있고, 또 가난에 쪼들려서 너무너무 고통이 심해도 그 고통 속에서 자기를 반성하고 거기서 용기와 지혜(智慧)를 얻어서 향상(向上)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變化)'라고 하는 것은 참 무상(無常)한 것이요 대단히 안 좋은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변화야말로 참으로 그 소중한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중생(衆生)은 영원히 중생이지 성불(成佛)할 기약(期約)이 없는 것입니다.
밤이 되었다 낮이 되었다, 또 낮이 밤이 되고 또 밤이 낮이 되고,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또 그 지난 겨울 동안 대단히 강추위를 했지만, 내일이면 또 입춘이 되어서 다시 또 새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좋고, 이 사바세계 가운데에도 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이야말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사시(四時)가 분명해서 이 세계에서는 제일 좋은 나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서도 제일 좋은 사바세계에 태어났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도 제일 좋은 이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을 퍽 다행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도 일 년 내 겨울만 있는 데도 있고, 일 년 내 여름만 되는 데도 있고, 또 밤이 대단히 긴 곳이 있는가 하면은 계속 밤이 없고 낮만 있는 데도 있고, 참 그 변화가 없어서 그런 데는 박복중생(薄福衆生)들이 떨어져서 사는 곳입니다.

이 대한민국은 봄은 봄대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은 삼복(三伏)더위가 있어서 그렇게 뜨겁고 하나, 그 가운데에 봄에 심어 놨던 모든 곡식이 그 뜨거운 계절을 만나서 무성하게 자라 가지고, 가을이 되면 서늘바람이 부는데 그 서늘바람 속에서 그 여름에 자랐던 모든 곡식이 누렇게 결실(結實)을 해서 익게 됩니다.

겨울이 되면은 눈이 내려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얼음이 어는데, 그때 모든 산천초목은 낙엽이 져서 엉성하게 나무가지가 되지만 그 나무의 모든 기운은 열매를 맺어서 씨로 갈무리고 또 뿌리로 기운을 보내서 월동(越冬)을 하게 됩니다. 그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용해서 모든 이 더러운 것이 다 살균(殺菌)이 되고, 그래 가지고 입춘(立春)이 돌아오면 다시 새싹이 나게 됩니다.(10분23초~21분2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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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정초(正初 정월 정/처음 초) ; 정월(正月 음력으로 일 년 중의 첫째 달)의 초승(初生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한 해의 처음.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 · 방해가 없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축생계(畜生界 짐승 축/나다·살다·삶 생/세계 계) ; 십계(十界)의 하나.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畜]으로 태어나[生] 괴로움을 받는 세계(世界).
*십계(十界) ; 십법계(十法界 열 가지 법계)라고도 한다. 십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불(佛) 10가지로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분류한 것. 중생의 심리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십법계 중 앞의 6계는 삼악도(三惡道 : 지옥, 아귀, 축생)와 삼선도(三善道 : 수라, 인간, 천상)로 모두 미혹의 세계인 범부(凡夫)의 세계이다. 뒤의 4계(성문, 연각, 보살, 불)는 깨달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깨달음의 세계인 성인(聖人)의 세계이다. 양쪽을 합하여 '6범4성'(六凡四聖)이라 한다.
이를 4취(四趣) · 인천(人天) · 2승(二乘) · 보살 · 불(佛)로 분류하거나, 3악도(三惡道) · 3선도 · 2승 · 보살 · 불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앞의 6계는 고통으로 가득차 업에 의해 윤회전생하는 세계이므로 보통 '육도윤회(六道輪廻)'라 한다.

[참고] 『마하지관(摩訶止觀)』 (隋天台智者大師說 | 門人灌頂記) 제5권(上)
夫一心具十法界 一法界又具十法界百法界 一界具三十種世間 百法界卽具三千種世間 此三千 在一念心 若無心而已 介爾有心卽具三千

일심이 십법계를 갖추고, 하나의 법계에는 또한 십법계를 갖추어 백법계가 되며, 백법계 중 하나의 법계가 각각 30종류의 세간(五陰 · 衆生 · 國土 등 3세간에 각각 十如是가 갖추어져 있어 30세간이 된다)을 갖추므로 백법계는 3천종의 세간(世間)을 갖춘다. 이 삼천세간이 한 생각하는 찰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삼천세계를 갖춘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백만사(百萬事) ; 모든 일.
*‘배고파서 물을 먹으면, 물이나 음식을 먹으면 목구멍에서 불이 되어 가지고 불이 훨훨 타고’ ; 아귀(餓鬼).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박복(薄福 엷을·적을 박/복 복) ; 복이 별로 없음. 또는 팔자(八字,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가 사나움.
*삼복(三伏)더위 ; 삼복(三伏 : 초복初伏 · 중복中伏 ·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무렵의 몹시 심한 더위.
伏자는 '엎드리다'나 '굴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렇게 人(사람 인)자와 犬(개 견)자가 결합한 伏자는 개가 사람 옆에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 伏날은 엎어질 듯이 매우 더운 날이라는 뜻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 혹독할 엄/겨울 동/눈 설/찰 한) ; 혹독하게[嚴] 추운 겨울[冬]에 눈[雪] 내린 뒤의 추위[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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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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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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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