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5.10.08 §(454) (게송)석화광음주~ / 어떠한 경계에도 탐착하지 말고, 다맛 바르게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만을 챙겨 나가야.
  2. 2014.11.08 §(466)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3. 2014.10.05 §(335) ‘토끼고기’로 인한 왕자비의 노여움 / 부부싸움 법규 /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4. 2014.09.11 §(551) (게송)권군심심참묘화~ / 올바른 정진을 해야 / 황벽스님 법문 / 하루씩 결제, '한 생각'씩 결제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 ‘묘(妙)한 관(觀)’으로 의심.
  5. 2014.07.28 §(337) (게송)적수성동신유지~, 심수만경전~, 청군앙면간허공~ / 중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바로 그곳이 선불장(選佛場) / 자기 소임을 하면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6. 2014.06.05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7. 2014.05.30 §(198)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8. 2014.05.28 §(198)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일상생활이 바로 정진(精進)-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 /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소신통과 대신통.
  9. 2014.04.30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
  10. 2014.04.07 §(524)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나건,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정신을 챙겨 화두를 들고나가야 돼. / 무기공(無記空).

§(454) (게송)석화광음주~ / 어떠한 경계에도 탐착하지 말고, 다맛 바르게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만을 챙겨 나가야.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단(疑團)만을 !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를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야 언젠간 !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되고,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 찾아가야 하는 거야.
**송담스님(No.454)—91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약 12분.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세월은 ! 돌과 돌을 부딪치면 불이 번쩍 하듯이 그렇게  세월은 빠른 것이고,

홍안(紅顔) 진백두(盡白頭). 엊그제 빨간 소년이 금방 흰머리가  노인이 되고 말아.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생각해 보면 새파란 소년 소녀일 때가 엊그제 같을 것입니다.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 인간의 백년 세월이라는 것이 꿈같은 것입니다. 일생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 잘살  못살 , 잘낫  못낫 , 지내 놓고 보라 그말이여.

백년이라는  무엇이여? 그것이 꿈에 지내지 못하고, 하루살이 신세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많은 도반들이 운집을 하셨고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 통해서 법문은 더할 것이 없으나 기왕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셨으니까,


앞으로 해제 동안에 더운 여름도  갔고, 서늘한  해제 동안에 산철 결제를 들어가던지 또는 그냥 행각(行脚) 하든지 간에 어쨌든지 정진을  하시되,

흔히 성성(惺惺)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성성하고 깨끗하고 담담(淡淡) 그런 경계(境界)만을 자꾸 그런 경계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도 그것도 정념(正念) 잃어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잠깐 동안도 바른 생각, 정념을 잃어서는  되는데,  정념을 잃어버리면은 벌써 이단(異端) 떨어지는 거여.

 생각 삐끗하면은 돌이키기가 어려워. 얼마 동안을, 까딱하면 영원히 잘못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망상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징징담담(澄澄湛湛), 성성적적(惺惺寂寂) ,  그렇게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시간,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 죽비만  치면은 4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고,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을 그러한 경지가오는데,

그러한 순청절점(純淸絶點),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지에 따악 빠져서 그놈을 지키고 앉았는 , 그것  좋은  같지만 그것이 정념을 잃어버리는 가장 무서운 경계다 그거거든.


 그것이 무서운 경지냐?

능히 ()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고 그러한 것을,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냐.

말할 때는 말하는 ,  먹을 때는  먹은 , 무슨 연설할 때는 연설하는 , 일할 때는 일하고,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지, 그것 밖에 부처가 어디가 있으며 그것 밖에 나의 주인공이 어디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다  가지고 바른 정진을  나가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자기가 한소식  것처럼 그것이 바로 바른 경지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망식(妄識)이여. 그게 망식, 망령(妄靈) 식신(識神)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는 맑고 깨끗한, 성성한 그것이 바로 자기의  경계  것은 맑고 깨끗하다라고 하는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거거든.

 어떤 사람은 망심(妄心)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경계를 삼아. 그것이 바로 정념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거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 망상이 일어나면  눌러 버리고  무슨 망상이 일어나면 눌러 버리고,

그리고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계로써 정념을 삼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경지가 지속이 되면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말할 수가 없지. 그러나 그것은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거와 같애.


그래서 돌만 떠들면은 다시  나오고, 오랫동안 눌러놔도  어느 틈인가 뚫고 다시 (풀이) 노라니 있다 뚫고 나온 거라, 그것도 바른 경지가 아니고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자기의 몸을  몸뚱이는 허공(虛空) 같은 것이다  가지고,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래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 .

아무 생각을  일으키고 허공과 같은 경지에서   경지를 벼람빡과 같이, 장벽(牆壁) 같이 그렇게 따악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바른 공부다 이리 생각하고 그러는 경지로 지켜 나가는 .

이런 것은 공망(空亡),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기공(無記空) 떨어진다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고요한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 봤자 그것은 무기공에 떨어지는 것이여.

앞에 말한 것이 전부가   그것이 바른 경지(境地) 아니냐? 바른 공부가 아니냐?’하면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망상이 일어나도 그것을 누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화두만을 의심만을 ! ‘이뭣고?’

어째서 ()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단(疑團)만을 !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를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야 언젠간 !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 찾아가야 하는 거야.(5313~644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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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 떠나서 ()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담담하다(淡淡-- 묽을·담담할 ) ; 동요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생각(叅究一念).

*징징담담(澄澄湛湛 맑을 /즐길·가라앉을 ) ; 맑고 깨끗한 .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순청절점(純淸絶點) ; 순수하고 맑고 티끌[] 끊어진 .

*망식(妄識) ; ()으로서의 (). 망령된 사유분(思惟分) 근거한 진실되지 않은 ().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경지(境地 지경·경계 / )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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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보살선방 법문2014.11.08 15:12

§(466)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금생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지 아니하면—편안한 것만 취하고, 맛있는 것만 취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은 사람만이 세세생생에 영원토록 참다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혼은 참 '처옥자쇄(妻獄子鎖)'라고, 장가를 가면은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지어서 받는 업(業)으로 얽혀진 것이니—전생에 지은 빚으로 만난 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지어논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되는 거고. 그놈을 갚으면서도 참선을 해야지, 참선 안 하고 그냥 거기에 빠지면 업으로 인해서 생사해탈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정진하면서도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해야 하죠.
**송담스님(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


(1) 약 20분.  (2) 약 22분.


(1)------------------

큰 추위는 없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겨울은 좀 춥고 여름은 덥고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좋다고 모다 그렇게 생각되어 왔는데,
여기는 해변가가 되어서 해마다 겨울에는 강한 추운 바람이 불고 그래서 새벽에 모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예불 젓숫고 하는데 노보살님들이 감기에도 많이 걸리시고 모다 그랬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은 것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어피차 편안하고 자유롭고 따뜻한 가정을 떠나서 이렇게 선원에 오셔서 정진하시게 되면,
아무리 고단하고 춥고 힘이 들어도 새벽에는 일어나야 하고 또 잠자리가 편틀 못하고, 눕고 싶을 때 눕지 못하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여러 가지 참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이렇게 와서 서로 다투어서 방부(房付)를 드리고 또 심지어는 인원이 차서 방부를 못 드리고 또 울고 돌아가신 분도 많이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행을 무릅쓰고 그렇게 정진하라고 하신 여러 신도님네들 또 거사님 보살님, 참 갸륵하고 그 고마움을 원장으로서는 참 가슴깊이 느끼는 바입니다.

금생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지 아니하면—편안한 것만 취하고, 맛있는 것만 취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은 사람만이 세세생생에 영원토록 참다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진을 해 나가는데 처음부터 흡족하게 그렇게 수월하게 정진이 되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는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자기가 지어놓은 업(業)이 있기 때문에,
그 업이 천차만별이어서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정진을 해도 육체적으로 오는 것, 정신적으로 오는 거, 그 나타나는 경계라고 할까 그런 것이 다 다른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보면 자기가 지은 업과 현재 정진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생각들 그런 차이로 해서 여러 가지 경계(境界)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입승(立繩) 스님이 적어 온 걸로 보면 사람 따라서 나타나는 경계가 여러 가지로 있는데,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안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그런 경계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했지만은 그런 경계는 집착(執着)을 하면은—환한 경계가 나타난다던지, 껌껌한 이불 속에서도 환히 머리카락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하다든지, 머리가 시원하고 개운함을 느낀다든지,
미래 일이 나타난다든지, 꿈속에 뭘 느꼈다든지, 꿈속에 어떤 분이 나와서 뭐라고 일러줬다든지, 사람 몸을 보면 환히 오장육부가 다 보이고 어디가 병이 들었는지 그것도 다 알 수가 있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이 어떻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든지, 자기 몸이 풍선처럼 가벼움을 느꼈다든지,

어떠헌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것에 집착하면 공부가 삐뚤어져 나가는 거고, 그런 것에 전혀 생각을 두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좋다 나쁘다’ 생각을 갖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둔 채 자꾸 바른 자세로 화두(話頭)를 들고, 화두를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도리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런 경계가 나타났으니 내가 이거 깨달음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것에 대해서 밤낮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을 자랑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가 지금 공부가 상당한 지경에 이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남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자랑을 하고 이런 것은 진실한 수행자에게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보통 이러헌 철저한 신심과 법문을 들은 사람이 아니면,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스스로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하도 신기하니까.

그러나 그런 법문(法門)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에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고 묘하고 그러니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그런 법문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에 혼탁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그런 것에 집착하면 벌써 사견(邪見)에 떨어진 것이고 공부가 삿된 대로 빠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점쟁이 같은 거, 이상한 모다 신기(神氣)가 있는 그러헌 존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탁! 놔 버려야 하거든.


그리고 정진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몸을 단정히 갖되 몸의 어느 부분에도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허리를 쭈욱 펴고 단정히 앉되 손을 이렇게 수계(手契)를 하는데,
여기도 너무 엄지손에 힘을 준다든지, 또는 엄지손과 엄지손이 떨어진다든지 비뚤어진다든지,
엄지손을 이렇게 손장난을 한다든지 그래서는 안 되고, (양 엄지손을) 대되 전혀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

어떤 분은 힘을 꼭 줘야 화두가 잘된 것 같이 느껴진다는 그런 분도 있는데 그러더라도 (힘을) 꽉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요.
(힘을) 꽉 주면은 나중에는 몸 전체가 힘이 그리 주어지기 때문에 공부해 나가는데 지장이 있을 수가 있으니까, 우선 힘을 주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기만 하고.

또 눈에다가 힘을 주고—간절히 의심을 할라고 하면은 미간(眉間)에 ‘내 천(川)자’가 쓰여질라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거기다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힘을 주지 말고, 단정하면서도 어깨에도 힘을 주지 말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또 미간에도 힘을 주지 말고, 힘을 어디다가 주었다 하면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요소가 거기서 생길 수가 있다 그거거든.

그러면 단전(丹田)에다 힘을 준 것은 어떠냐?
단전은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차츰차츰 홀쭉하게 하니까 거기에는 약간 힘이 들어가질 수가 있는데 그것도 너무 힘을 많이 주어서는 안돼.
기분 상으로만 가볍게 그렇게 하는 것이지 너무 힘을 주어서는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걸 말씀을 드리고.


그 화두를—이 화두를 하니까 잘 안 되어서 저 화두를 하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했다가 ‘무자(無字)’로 했다가 또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를 했다 이러는데,
안 된다고 해서 화두를 자꾸 바꿔 싸면, 새로 바꾸면은 된 것 같다가 나중에 얼마 지내면은 옛날 것이 또 생각이 나 가지고 그것을 들어보면 또 잘되고,

그래서 화두는 아무리 안 되어도 한 화두를 가지고 자꾸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해 나가면 나중에 언젠가는 된 때가 오는 것이지,
안 된다고 해서 또 바꾸고, 또 해 봐서 안 된다고 또 바꾸고, 자꾸 바꿔 버릇하면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니까 ‘여러분들 절대로 화두를 안 된다고 해서 바꾸지를 말아라’ 그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고.

이미 바꿔 가지고 현재 잘 되어간다면 그분은 그냥 그것으로 해 나가십시오.
그 동안에 자꾸 바꾼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만 이미 바꾼 지가 오래되어 가지고 그대로 쭉 잘 되어가면 그분은 고대로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면 정진하다가, 쭉 해 나가다가 중요한 고비가 닥쳤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여.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것을 조심을 하시고.


공부를 하다보면 확 트인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고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일시적인 경계니까 ‘이것이 좋으네 나쁘네’ 그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요.
좋다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확 트인 것처럼 느끼거나 뭐 성성하거나 적적하거나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데에 좋냐 나쁘냐? 자꾸 그걸 가지고 실갱이를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둬.

좋으면 좋은 대로, 시원하면 시원한 대로, 환하면 환한 대로, 껌껌하면 껌껌한 대로 그냥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아! 사람 건강도 소화가 잘 되다 안 되다, 뱃속이 거북하다 설사하다가 그렇지만, 그때 그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할 거냐 말이여.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고 놔두고 살아가는 거지.

그것이 무슨 큰 괴변(怪變)이나 일어난 것처럼 무슨 큰 일로 취급을 하지 말고, 하다보면 그런 것도 있으려니 하고 그냥 고대로 놔두고 여법하게 정진만 주욱 해나가면 상관이 없는 것이니까.

가끔 말씀을 드렸지만은 어떠한 뭐 밥을 먹다가 한다든지, 차를 마시다가 한다든지, 목욕을 하다가 한다든지, 무슨 소리를 들은 찰나에 그냥 막힘이 확 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슨 시(詩)가 나오기도 하고, 다른 공안에 대해서 그냥 의심이 하나도 막히지를 않고 그런 것을 느끼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 해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그런데 정말 바로 깨달았는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냐, 안 얻었냐’하는 것은 자기 혼자로서는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선지식이 필요한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지 혼자로서는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고.

또 아무한테나 물어보아 가지고 옳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그것도 참 정말 바른 지혜를 갖춘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아야지, 아무한테라도 가서 받아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데 공부하다가 그런 소견이 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인데, 구경의 경지에 이르러지지 않았다면 그러한 소견도 그러한 경계도 깨끗이 놔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거듭 말씀을 드린 것은 누구나 정진하다 보면 텅 빈 경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안에 대해서 아무 의심도 다 없어져 버리고 너무너무 머리가 개운하고 그런 경계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구경각(究竟覺), 확철대오해서 조사(祖師)와 같은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스스로 ‘이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다’한 것을 스스로 그것을 버려버리고, 부정해 버리고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합니다.(처음~18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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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떤 분은 항상 자기에 영가(靈駕)가 붙어갖고 있는데,
절 문안으로만 들어오면 영가는 거기서 떨어져서 절에서는 떨어져 버리고 또 절에서 일 다 보고 나가면은 딱 또 들어붙고 그런다는 분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마는, 영가가 그렇게 붙고 떨어지고 하는 거.

또 항상 영가가 눈에 보여. 남 49재 하는 데도 가서 보면 그 49재 하는 그 영가가 눈에 다 보인다 그말이여.
생전시 무슨 옷을 입고 얼굴이 어떻게 생긴 것을 환히 다 알고, 그래가지고 재자(齋者) 보고 ‘지금 오늘 49재 지낸 분이 얼굴이 이렇게 생겼고 무슨 옷을 입고 그랬냐’하면, ‘그렇다’고.

그런 것이 보인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것은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특수한 사람에게는 영가가 보일 수도 있고 또 영가가 붙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道)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여.

영가란 것은 내나 우리는 ‘몸뚱이가 있는 영가(靈駕)’고, 영가는 ‘몸이 없는 사람’이니까,
혹 지금 이 방에도 영가가 있을 수가 있고, 법당에도 법문할 때는 우주법계의 영가를 다 초청을 하니까 다 영가가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우리 이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 일반 사람에게는 그런 영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이죠. 보인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그런데 영가는 사람이 죽어서 49재에 딴 데로 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떠날 수도 있고, 100일에 떠날 수도 있고, 소상(小祥)에 떠날 수도 있고, 대상(大祥)을 지내고 떠날 수도 있고,
소상·대상 다 지내고도 떠나지 않고 자기집에서 그냥 또 그렇게 영가가 머물러 있는 수도 있고, 50년 내지 100년간도 안 떠나고 그 집에서 머물러 있는 수도 있다고 그럼니다마는.

이 영가는 내 눈으로는 아직 영가를 보지 못했고, ‘몸뚱이 있는 영가’는 많이 보지마는 ‘몸뚱이 없는 영가’는 내 눈에는 잘 안 보여요.

그래도 본인이 영가가 자기에게 보이고 자기 몸에 항상 붙어있고 꿈에도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모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니,
그런 분은 내 생각에는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서 또 금생에 와서 지은 업에 따라서 특수한 그런 체질이라고 할까, 특수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가가 보이고 나타나고 또 몸에 항상 따라다니고 하면은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관이 없는 거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그냥 그런 분은 항상 계행을 잘 지켜야 하고 심성을 착하게 곱게 써야 하고 또 백중이라든지 법보재라든지 모다 그런 때는 항상 그런 영가들을 위해서 천도(薦度)를 잘 해 줘야 하고 그렇죠.

대부분 그런 분에게 또 그런 영가가 많이 따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 법계에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런 참 외로운 영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도를 잘 해 주고 또 그분한테 가까이 가야만 천도를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될 경우 그런 분한테 인연 있는 영가가 따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배고픈 사람 밥을 잘 준다’고 소문이 나면은 팔도의 모다 걸인들이 그 집을 찾아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옛날부터.

그와 마찬가지로 영가 천도를 잘 해 주고 자꾸 그런 분에게는 그런 영가들이 꿈에 와서 현몽을 대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천도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까 힘닿는 대로 잘 천도를 해 주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밥 없는 사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 옷을 주고, 직장이 없는 사람 직장을 알선을 해주고, 병든 사람을 병을 치료해 주고 그러면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와서 잘 봐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또 영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영가 천도를 그런 인연이 닿으면 또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또 어떤 분은 염라대왕이 자기를 끌고 갈라고 하는 그런 것을 느낀다고 그러는데,
염라대왕이 일부러 와서 자기를 끌고 간가 어쩐가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면, 끌려가기 싫어서 안 끌려간다면 그건 잘된 일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가게 될 테니까 너무 그것을 미리서부터 걱정하실 것은 없고.

염라대왕이 끌고 갈라고 하거나 염라대왕이 보낸 사자(使者)가 와서 끌고 갈라고 하거나, 참선한 사람은 그럴 때 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를 딱 챙기시면 비명(非命)에 끌려가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꼭 가게 될 인연이 되면은 조금도 두려운 생각하지 말고 ‘이뭣고?’를 하면서 갈 때 되면 가는 것이지 뭐,
이 세상에 한번 왔다가 안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 가게 될 때는 가더라도 ‘이뭣고?’하는 마음으로 가면 그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그리고 한 가지 가끔 내가 듣는 소린데,
본인은 아직 시집을 안 가고 나이가 30을 넘고 그래도 그냥 처녀로 부처님 불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본인이 꼭 안 갈라 한 것은 아닐런지도 모르고 또 좋은 인연이 있으면 갈라고 하는 생각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냥 이대로 보살로써 정진하다가 시절이 돌아오면 출가해서 스님이 될려고 하는 생각도 있는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생각으로 여기 선방에 와서 방부를 드리고 정진을 하고 그러는데,
자꾸 좌우에서 “시집을 안가고 죽으면 몽달귀신이 되니까 시집을 가라”고 자꾸 권고를 하신 분이 있다 이것입니다.

시집을 가라고 권고한 것은 절대로 나쁜 마음으로 그러신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시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것이 뭐 당연한 것이고, 시집가서 남편과 해로하고 자녀도 낳고 그래야 나중에 늙으면 외롭지 않고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그것도 때가 있으니까 좋은 인연있을 때 가라고 권고한 것은 좋은 마음에서 하신 것이지 절대로 뭐 해코자 해서 그러신 것은 아닐 테지마는.

억지로 팔자에 시집 갈 팔자를 타고났는데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갈라고 하는 생각은 있어도 적당한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사주팔자가 되었건, 전생에 지은 인연이 되었건 간에 그런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안 가게 되고,
또 불법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불자로서 참선을 하고, 별로 그렇게 큰 고통이나 불편이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데 자꾸 몽달귀신으로 협박을 하면서 자꾸 가라고 그러실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노처녀로 있다가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서 도를 잘 닦는다면 그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여러분들 다 시집가서 결혼해 가지고 이렇게 50년, 60년, 70년 이렇게 살아보셔서 ‘정말 나는 결혼을 해서 참 행복했다’고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이 가운데는 계시겠지만,
겪어보시면 결혼 생활이라 하는 것이 아마 출가해서 도 닦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스님이 되라’고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본인이 결혼 안 하고 출가할 수 있는 사람을 몽달귀신 얘기를 해 갖고 공포심을 느껴서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가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오신 이 마당에는 공부에 관한 공부 생각만 해야지 다른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좋고 그러니까,

절대로 자꾸 시집가라, 시집가라—막 좀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 좀 할라고 하면—자꾸 시집가라고 그래 싸면 마음이 헷갈리거든. 내가 시집을 가야 옳은가? 안 가야 옳은가?
그 소리가 듣기 싫으니까 한철 나왔다가 안 나와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말이여.

혹 집안에 홀아비가 있어서 저 여자하고 짝을 맞춰줬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자꾸 그러실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은데,
결혼은 참 '처옥자쇄'라고, 인자 장가를 가면은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그래서 '처옥자쇄(妻獄子鎖)'라 그러는데.

참, 결혼생활은 여러분도 다 겪어보셨지만 어쩔 수 없이 다 결혼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하긴 했지만 결혼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습니까.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힘든,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대보살(大菩薩)이 아니고서는 많은 지장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지어서 받는 업(業)으로 얽혀진 것이니—전생에 지은 빚으로 만난 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고.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 하면서 참선을 해야 하니까 굉장히 힘이 드시겠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지어논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되는 거고.
그놈을 갚으면서도 참선을 해야지, 참선 안 하고 그냥 거기에 빠지면 업으로 인해서 생사해탈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정진하면서도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 보살님네들은 참 너무너무 갸륵하고 훌륭하고, 참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끝으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보름 남았는데, 또 이틀 후에 정월 초하루가 돌아와서 또 차례(茶禮) 행사도 있고 어수선하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놓치지 알고 정진하시도록 당부를 드리고, 남은 보름 동안을 정말 알뜰하게 잘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또 제가 말씀을 안 드린 그런 내용에 어떤 당신 나름대로 느낀 바도 있을 것이고, 물어보고자 한 그런 점을 속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낱낱이 여기서 다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어떠한 경계, 어떠한 느낌, 어떠한 소견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각(究竟覺)이 아닌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사(祖師)의 경지가 아니면 그냥 스스로 탁! 치워버리면 그만이여.
없었던 걸로 탁! 놔 버리고 깨끗한 초학자의 마음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조금 어디 아프다고 해서 낱낱이 병원에 쫓아다니면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것은 자기가 스스로 낫어야 하거든.

마을에서는 병원에 자주 간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 병원이라 한 것은 물론 호미로 막아야 할 때 병원에 안 갔다가 가래로 막게 되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는 스스로 집착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딱 놔 버리고 화두만 들면 낱낱이 병원에 안 가도 돼어.
그것이 기다(그렇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면 거기서부터 병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 요점만을 내가 말씀을 드리면 요점만을 잊지 않고 고대로 해 나가시면 어떠한 병도 스스로 고칠 수가 있는 것이여.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자기가 집착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여.

심지어는 확철대오 해 가지고도 ‘나는 깨달았다’하는 생각을 가져도 벌써 그것이 잘못인데, 깨닫지도 못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거든. 그걸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뭐 사람 몸뚱이가 환히 보이거나, 내일이나 모레가 어떻게 되고, 사람을 척 보면 전생에 무엇이다 하는 것도 안다 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그런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어, 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을 속으로 딱 간직하고, 그걸 자꾸 써먹고, 남에게 자랑하고, 자기가 무슨 도통이나 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런데에서 병이 되고 결국은 사도(邪道)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안 떨어지려면 집착하지 않고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뭣고?’만 해 가면 그건 괜찮다 그말이죠.
되었습니다.(18분29초~40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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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房付)를 드리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도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수계(手契) ; 수인(手印)·인(印)·인계(印契)·밀인(密印)·인상(印相)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 mudrā
불보살(佛菩薩)의 내증(內證 깨달은 진리)·본서(本誓 근본서원) 등의 덕(德)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 모양.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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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소상(小祥 작을 소,제사 상) ;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
*대상(大祥 큰 대, 제사 상) ; 사람이 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사자(使者 사신 사,놈 자)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처옥자쇄(妻獄子鎖 아내 처,감옥 옥,자식 자,자물쇠 쇄) ;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라는 말로 결혼생활의 구속을 비유한 말.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
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無眀)이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구경각(究竟覺)은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를 가리킨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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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인과, 인연2014.10.05 08:33

§(335) ‘토끼고기’로 인한 왕자비의 노여움 / 부부싸움 법규 /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부에 있어서는 승속(僧俗)도, 남녀도, 빈부와 노소와 귀천도 없는 것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의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지금, 앉았을 때는 바로 앉은 그 시각, 섰을 때는 서 있는 그 시각,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그 시각, 속이 상할 때는 속이 상한 바로 그 시각을 여의고 따로 내가 도를 닦아서 깨달을 시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언제 어느 시각에 터질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해 나갈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경계(境界)에 휩싸여서 있다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서 보다가 터지고, 듣다가 터지고, 앉다가 터지고, 넘어지다 터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5)-87년 7월 첫째일요법회(87.07.05)에서.


(1) 약 20분.  (2) 약 21분.


(1)------------------

옛날에 대단히 성미가 급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자기 비위에 조금만 틀린 소리만 해도 당장 엄벌을 내리고 귀양을 보내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고 추방도 하고 그랬습니다.
신하나 백성이나 그 앞에만 가면은 벌벌벌 떠느라고 말을 못했습니다. 무슨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은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되고.

하루는 그 왕자가 있었는데, 왕자가 무슨 왕의 비위를 건드려 가지고 사소한 일에 불같은 호령을 내리고 당장 그 왕자 내외를 국외로 추방을 했습니다.
잡아 죽여 버릴려고 하는 것을 대신들이 말려 가지고 간청을 해서 간신히 국외로 추방을 했습니다.

국외로 추방된 왕자 내외는—추방하면서 그 왕비가 금은 보물을 얼마 정도 그 임금님 몰래 좀 싸 주어 가지고 그놈을 가지고 저 국외로 추방을 당해 갔는데, 처음에는 가지고 간 그 금패물을 조금씩 팔아 가지고 먹고살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상 살 수가 없어서, 인가가 없는 산중에 들어가서 거기 그렇게 숨어서 아주 검박하게 겨우겨우—그래 추방된 왕자가 사치스럽게 살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 인자 검박하게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렇게 살다 보니 1달·2달이 가고 1년·이태가 가서, 가지고 간 것도 한도가 있어서 다 양식도 떨어져 버리고 금패물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사냥을 해 가지고 토끼도 잡고, 노루도 잡고, 새도 잡고 그저 그렇게 먹고사는데,
하루는 간신히 토끼 한 마리밖에는 잡히지를 않아서 그래서 토끼를 갖다가 가죽을 벗겨 가지고 솥에다 넣어서 끓이는데, 어떻게 물은 조금 붓고 불을 너무 과열로 땠던지 물은 다 달아져 버렸는데 탄내가 나서 소댕을 열어보니까 고기는 반도 안 익었다 그말이여.

반도 안 익고 물은 떨어져 버려서 그래서 그 왕자비(王子妃) 보고 ‘저 개천에 가서 물을 좀 떠오라’고.
그래서 물을 뜨러 갔는데 암만 기달려도 안 와. 안 오니까 배는 고프고 그러니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반도 안 익은 고기를 먹어버렸습니다.
조금 다 익었나, 안 익었나 맛본다는 것이 한 점 띠어먹고 두 번 띠어먹고 하다 본 것이 차츰차츰 배는 고프고 하니까는 피는 조금 덜 익었지만은 그냥 다 먹어버렸어.

그래서 아내가 그 물을 떠 가지고 와서 소댕을 열고 물을 부을려고 하니까 고기가 없어졌습니다.
‘아이! 고기가 어떻게 되었냐? 고기가 없다!’고 그러니까,
‘아! 고기가 그놈이 내가 열어 보니까 훌떡 솥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막 뛰어 가지고 저 산으로 도망가 버렸다’고. ‘잡을려고 쫓아갔지만은 어떻게 이놈이 빨리 도망가던지 놓쳐 버렸다’고 그러니까,

‘가죽을 벗겨서 불을 때 가지고 반쯤 익은 놈의 고기가 어떻게 도망가야?’
‘참! 나도 알 수가 없다’고 왕자가 시치미를 뚝 뗐습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논다'고.

그래 아내가 그 왕자를 떠억 보니까 이상하다 그말이여.
사람이 시치미를 아무리 뗀다 해도 거짓말을 어지간히 해야지, 당치도 않는 거짓말을 하면 약간 눈가시라든지 코가 약간 벌심거린다든지 그 눈치를 보면 알 수가 있거든.

그래서 그때부터서 그 왕자비가 매우 괘씸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쫓겨나 가지고, 자기 때문에 상감한테 미움을 사 가지고 나까지 이렇게 산중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토끼고기를 잡아서 삶았으면 익거나 안 익거나 같이 먹을 일이지, 물 떠오라고 보내 놓고 저만 혼자 먹어.

괘씸하게 생각을 하니까 그 동안에 지내온 모든 일들이 새록새록 괘씸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그때부터서 ‘이런 작자를 내가 믿고 살 수가 없구나.’
그래 가지고는 그때부터서 웃지도 아니하고, 여간해서 말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버리고 일반 사람처럼 백성들처럼 싫다고 도망가 가지고 개가(改嫁)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같이는 살되 아무 재미가 없어.

그 동안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살다 보면 그 임금이 언젠가는 노여움을 풀면은 다시 자기네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이리라’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러한 괘씸한 인간이라!’하고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멸시를 하니까 도저히 사람이 사람같지 않고,

‘저런 것이 나중에 임금이 되어봤자 무슨 나라를 바로 다스릴 것인가?’ ‘이러한 인간을 믿고 어떻게 내가 그 밑에서 왕비 노릇을 하며, 어떻게 정사(政事)를 할 것인가?’
이것저것 생각하니까 생각할수록 왕의 자격이 없어 보이고, 저런 것 사람답지 않게 보이니까 도저히 얘기할 재미도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살맛이 전혀 없어졌다.

속에 확! 괘씸한 생각이 뭉쳐 가지고 도저히 풀 길이 없어. 그러한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낸 것이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니까 고생도 막심한데다가, 의식주 문제가 전부가 막심한데다가, 마음까지 그렇게 괘씸한 생각으로 꽉 뭉쳐가지고 그 남편이라고 하는 것이 천하에 몹쓸 놈으로 보이니까 도저히 희망이 없어.
그래도 하루하루 지낸 것이 한 해·두 해가 가고 5년·10년이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왕이 승하(昇遐)하자 대신들이 용케 찾아 가지고 그 왕자를 모셔 갔습니다.
가 가지고 새 왕으로 모셨는데, 그래 가지고 이 왕자가 새 왕이 되어 가지고, 좋은 옷에다가 머리에 목에 팔에 그 칠보로 장엄을 해서 왕비를 위해서 다 해 주었습니다.

10여 년간을 산중에서 자기의 잘못으로 해서 고생한 그 죄과(罪過)를 보상하는 뜻으로,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사치와 호강과 영화를 갖다가 다 시켜 줄라고 마음을 먹고 물심양면으로 다해 주는데, 왕비는 조금도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산중에서 그렇게 한 그 노여움이 왕비가 되어 가지고서도 풀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왕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그러요? 어디가 아픈 데가 있소? 무슨 근심있소?’
‘아니요. 아무 아픈 데가 없어요’
‘무슨 걱정이 있소?’
‘아무 걱정이 없어요’

’그러면 어째서 그러요. 나는 나의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다해서 당신을 잘해 주고 싶고, 호강을 시켜주고 싶고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이렇게 성의를 다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그럴 수가 있소’하니까,
‘당신은 저 산중의 움막에서 우리가 고생하고 살 때에, 그때 내가 개천으로 물을 뜨러 갔을 때에 그 반쯤 익은 토끼가 솥 밖으로 뛰어나와 가지고 도망쳐 버린 일을 잊어 버렸습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왕이 깜짝 놀랬습니다. 입이 딱 붙어 버렸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변명 할 수도 없고, 그것에 대해서 벌써 20년이 되었는데 오늘날에 와서 그것을 사과할 수도 없고,
자기는 그때 잠깐 장난끼로 그런 것뿐인데 그 한 사실을 20년간이나 마음속에 간직을 하고 그 노여움을 풀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왜 산승(山僧)이 오늘 이러한 동화같은 설화를 말씀을 드리냐 하면, ‘여자의 그 원한심은 오뉴월에 서리가 친다’ 그러한 속담도 있습니다.

사소한 한 생각으로 해서 그 왕비의 부귀영화도 기쁘지를 않고, 왕을 갖다가 인격적으로 멸시하고, 자기의 왕비로서의 모든 영화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국모로써의 모든 것도 아무 이 부귀영화가 마음에 와서 닿지를 않아.
생각 생각이 토끼가 산으로 도망한 것만을 염두에다 두고 일평생을 남편을 원망하면서 미워하면서 그렇게 살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든지,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원한을 산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고,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한마디 한 것이 상대방에서는 대단히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 간에는 500생 내지 1000생의 과거에 숙세의 인연으로 부부 간이 되고 그러는데 그래서 만났는데, 순 남남끼리 만나가지고 일심동체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한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고 그렇게 해서 가정을 이뤄 나가고 그 가정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그 가정이 모여서 국가가 되고, 그 가정이 모여서 또 세계가 됩니다.

그런데 촌수(寸數)가 부모 자식 간에도 1촌 간(間)인데, 부부 간에는 무촌(無寸)입니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한 생각 어긋나면 완전히 원수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다정할수록에 자주 다투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고 잠시도 떨어져서는 못 살만큼 그렇게 애정이 두터워서 결혼을 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참 많이 싸우는 수가 있습니다.

부부 간에 한번도 싸우지도 않했다면 그것은 아마 사람 탈을 타고났으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천상에서 잠시 인간 세상에 유희(遊戱)를 하러 나왔거나, 그렇지 않으면 참 그건 상상이 미치지 못할 그러헌 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부 간에 크고 작고 간에 참 싸우지 않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싸우면서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살림도 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또 참선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싸우면서도 참선을 잘하고, 싸우면서도 가정의 화목을 유지해 나가고, 일생동안 같이 살면서도 질리지 아니하고 또 항상 새롭고, 잘 살 수가 있느냐?
싸움을 하되 속전속결(速戰速決), 병아리 싸움하듯이 후닥닥 싸우고 금방 화해를 해 버리는 그런 속전속결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싸움을 하되 과거 일을 들춰내지 말아라.
싸움을 하면은 지나간 일을 들춰내 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면 상대방이 오장(五臟)이 뒤집어질까?’ 그것을 용케도 연구를 해 두었다가 싸울 때면 그놈을 끄집어 내 가지고 박박 긁어대거든. 그래서 과거를 들춰내지 말아라.

또 상대방의 약점을 갖다가 들춰내지 말아라.
친정 문제라든지 또는 과거의 문제라든지 그 사람의 약점을 용케 찾아내 가지고는 일침을 가해 가지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만든다 그말이여. 이러한 일은 대단히 졸렬하고 비열한 전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싸움을 하되 그러한 과거를 들춰내고 또 상대방의 약점을 갖다가 쑤셔서 그래 가지고 헌 싸움은 이것은 신사도에 어긋나는 것이여. 페어 플레이(fair play)가 되지를 못합니다.
싸움하고 나서도 자기 자신이 부끄러운 일이고 인격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존경받지를 못합니다.

배가 고파서, 아내가 물을 뜨러 간 사이에 토끼고기를 먹은 것은 그 애교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 익지도 않은 것을 자셨구료’ ‘아, 조금만 참았다가 잘 끓여서 자시면 할텐데 그 익지도 않은 것을 그걸 잡숫느라고 애썼구료’하면서 웃어 버렸으면 그것으로 말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속에다가 콱! 넣어 두고서 상대방을 갖다가 괘씸하게 생각하고, 고생을 하면서 그 괘씸한 생각으로 여러 해를 지낼 때 얼마나 마음속으로 괴로웠겠느냐? 그말이여.

또 귀양이 풀려서 다시 왕이 되고 왕비가 되어 가지고서도 그 노여움을 풀지를 못했다니 세상에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그 토끼고기 한 마리 먹어 버렸다고 해서도 10년, 20년을 원한을 품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노여움을 풀지 안허거든,
하물며 상대방의 약점 또는 과거를 들춰내 가지고 아무리 부애가 난다고 그러한 식으로 싸움을 해서는 참 그것은 용서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14분3초~34분4초)


(2)------------------

남자가 아내에 대해서 해도 그렇고, 아내가 남자의 과거를 들춰내고 허물을 들춰낸다 하더라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속이 상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한번 싸워 보는 것이 그것 참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계속 공격을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갖고 한바탕 신나게 싸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싸울려고 마음을 먹은다면, 아무리 주먹을 쥐고 이를 갈아붙인다 해도 싸움이 안 되지 아니 할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는 싸움을 하지 말아라.
부부싸움이라는 게 둘이 싸워야 그것이 재미가 있는 것이지, 이웃 사람이 그 싸움 구경을 해도 창피한 일이고,
아무리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 하더라도 자식 앞에서 싸우는 것은 차라리 이웃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싸우는 것보다도 더 챙피하지 않을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람은 싸움 구경을 하고 가서 모두 흉을 보고, 안 보는데 가서 싸움하는 얘기를 하면서 웃고 그러고 말겠지만, 자식이 부모 싸우는 것을 보고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는 싸움을 하지를 말아라.

또 애가 아직 돌이 안 지나갔건, 돌이 지나서 1살·2살·서너 살이 되었건, 그렇더라도 잠이 들었을 때라도 그 애기 있는 데서는 싸우지를 말아라.
잠은 들어서 의식은 잠을 자고 있지만, 잠재의식(潛在意識)은 고대로 다 싸우는 것을 다 듣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면 귀로 통해서 듣고 눈을 통해서 의식을 하겠지만,
잠이 들었을 때에는 눈도 감고 귀로는 잘 못 알아듣지만, 잠재의식은 우리의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은 고대로 다 듣고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고 잠재의식 속에 다 녹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존경하지 않게 되고, 그 입은 마음의 상처가 일생동안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는 눈을 뜨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거나 싸우지를 말고,

이러한 몇 가지의 규칙을 ‘부부싸움 법규’라 제목을 딱 써 놓고 방금 말씀드린 조항을 적어 놓고서, 싸움을 할 때에는 둘이 서로 그 조항을 한번 낭독을 하고 그리고서 한바탕 싸우도록 한다면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남편의 한 말, 아내가 한 말 한마디를 그렇게 깊이 새겨 가지고 두고두고 일생동안 괘씸하게 생각하고 일생동안을 울거 먹는 그러한 무서운 그 결심과 기억력을 참선하는 데에 이용을 한다면 참선은 그 길 성공을 하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대분심(大憤心), 대신심(大信心), 대의단(大疑團).

대신심(大信心), ‘내가 부처다.’
나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원래 부처라고 하는 깊은 믿음, 본래 내가 부처이기 때문에 새로 부처를 이룰 것이 없어.
다맛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疑團)만 타파(打破)해 버리면 자기의 불성(佛性)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여.
바로 자기가 부처고, 말하고·옷 입고·밥 먹고·울고·웃고·성내고·근심·걱정하는 바로 이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는 도리를 믿어야 하고.

왜 과거에 모든 불보살과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이렇게 캄캄해 가지고 있는가? 도저히 그 분심이 속에서 부터서 끓어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무서운 그 집념, 훨씬 여성이 남성보다도 더 독하고 모질다고 하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남자들은 도저히 그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고생을 이기지 못할 그런 처지에서도 여성들은 다 그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낸 것입니다.
'남자는 뭐 사흘만 굶어도 죽고 여자는 석달을 굶어도 안 죽는다'는 말도 있습니다만은 그건 왜 그러냐?

자식을 위하는 생각, 남편을 위하는 생각, 그런 무서운 집념이 콱 쩔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나 부모나 남편이나 재산에 대한 애착도 훨씬 여성이 더 강합니다.

그러한 무서운—쇠심줄보다도 더 강인한—그러한 결심을 가지고 참선하는데 동원을 한다면, 남자보다도 훨씬 더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래 남성·여성의 그 성품 자리에 있어서는, 불성(佛性) 자리에 있어서는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남녀의 구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래부터 남성이 따로 있고 여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업(業)에 따라서 여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여자고 또 다음 생에 남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남자이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장부(丈夫)의 마음을 가지고 장부의 성격을 쓰고 장부의 행실을 하면은 내생에 장부가 되는 것이고, 여자의 성격을 쓰고 여자의 행위를 하면은 여자의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금생에는 남자가 되어 버렸고 여자가 되어 버렸으니 껍데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나,
그 남녀가 구별이 없는 그 본성(本性) 자리에 있어서는, 자기가 여자라고 해서 뒷걸음질 칠 필요도 없고 자포자기 할 필요도 없고, 다 같이 부처님의 제자로써 정법(正法)을 믿는 최상승 학자로써 당당하게 선의(善意)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공부에 있어서는 승속(僧俗)도, 남녀도, 빈부와 노소와 귀천도 없는 것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의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 남한도 언젠가는 선의의 경쟁을 해 가지고 모든 면에 있어서 우위를 가진 사람이 결국은 그이 쪽으로 통일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또 경제적으로도 모든 문화·예술·교육 일체 면에서 앞장서서 나아가면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자분도 그러한 남성보다도 더 크고 무서운 그러한 집념(執念)을 갖다가 발심(發心)하고 도 닦는 데에 돌이킨다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용화사에는 거사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선원이 아직 마련되지 안해서 와서 정진하시는 분들이 없습니다마는 그런 선원이 열리게 된다면 거사님네 선방도 잘 되지 않을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물론 직장을 가지고 계신 분은 와서 석달 동안을 정진을 하시기에는 어렵겠습니다만은,
이 보살님네들은 금년에도 7~80명, 해마다 100여 명을 넘어서 방부를 들이고 모두 정진을 하시고 그러는데, 다 가정의 일이 바쁘시고 모두 그런데도,

‘어떻게 하면은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났을 때 다만 조금이라도, 어쨌든지 이 몸뚱이 받았을 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야겠다’하는 그 신심이 돈독(敦篤)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보살님네들이 와서 정진을 하시게 된다고 그렇게 믿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거사님네보단 보살님네들이 이 법을 믿고 공부하시는 면에서 앞장서 가고 계시지 않는가 이리 생각을 합니다.
내생에 몸을 바꿔서 남자로 태어나시면 그러한 보살님네들은 금방 출가해서 큰스님이 되어 가지고 불법을 갖다가 재흥(再興)하는 그러한 역군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하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하고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이여, 그대와 더불어 함께 걷고 함께 행하며,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함께 일어나고 함께 앉고 같이 이렇게 지내오기를 세월이 길었다.
몇십 년, 몇백 년, 몇 억겁다생(億劫多生)을 그렇게 같이 걷고, 같이 행하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자고, 같이 이렇게 살아왔다 그말이여.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항상 같이 해 왔다.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모름지기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생각하지를 말어라.

바로 여읠래야 여읠 수 없고, 앉았을 때는 같이 앉았고, 누울 때도 같이 눕고, 섰을 때도 같이 서고, 걸어갈 때도 같이 걸어가고, 일 할 때 같이 일하고, 1분 1초도 여읠래야 여읠 수 없는 그대를,
어디를 머리를 돌이켜서 생각을 해? 머리를 돌이켜서 찾으면 어디가 있을 거여?

오늘 정묘년 7월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전강 조실스님의 그 감동적인 법문, ‘어묵동정(語黙動靜)을 여의고 일러라’한 공안(公案)과,
경허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라 한 구절에 대해서 그 전강 조실스님 소년시절에—20여세 된 그 아주 새파란 청년 시대에,
그 만공 대선사와 보월 선사와 그 기라성 같은 여러 구참납자(久參衲子)들 앞에서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을 그렇게, 참 멋들어지다고 할까? 상쾌하다고 할까? 참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영원히 우리가 도업을 성취할 때까지 잊지 못할 그런 감동적인 법문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위가 본격적으로 닥쳐올 것입니다. 여러 선방에 계신 스님네 또 가정에서 정진하시고 또 직장에 나가시는 여러 청신사·청신녀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이때,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지금, 앉았을 때는 바로 앉은 그 시각, 섰을 때는 서 있는 그 시각,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그 시각, 속이 상할 때는 속이 상한 바로 그 시각을 여의고 따로 내가 도를 닦아서 깨달을 시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인(古人)은 장터에서 이 자식, 저 자식하고 싸우는 그 소리를 들은 그 찰나에 확철대오를 한 분도 있고,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바로 그것을 보고 깨달은 분도 있고,
빗자루로 뜰을 쓸다가 거기서 튀긴 돌멩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물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여름에 발을 갖다가 이렇게 걷어올리다가 깨달은 분도 있고,
자다가 뚝! 목침(木枕)에서 머리빡이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에 확철대오하신 분도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느 시각에 터질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해 나갈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경계(境界)에 휩싸여서 있다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서 보다가 터지고, 듣다가 터지고, 앉다가 터지고, 넘어지다 터지는 것입니다.

더웁다고 한 생각 늦추지 마시고, 더위를 정진으로 이겨 나가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4분3초~55분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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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댕 : 솥앵. 솥뚜껑.
*승하(昇遐 오를·죽음 승,멀 하)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는 말.
*촌수(寸數) ; 친족(親族) 사이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수.
*유희(遊戱 놀 유,놀 희) ; 즐겁게 놀며 장난함.
*속전속결(速戰速決) ; ①싸움을 오래 끌지 않고 되도록 빨리 끝장을 냄. ②어떤 일을 빨리 진행하여 빨리 끝냄.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부애 ; 부아(분하고 노여운 마음).


------------------(2)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의단(疑團)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쇠심줄 ; 소의 힘줄. 주로 드센 성질이나 고집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장부(丈夫) ; 다 자란 씩씩한 남자.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집념(執念) ;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마음을 쏟음. 또는 그 마음이나 생각.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돈독(敦篤)하다(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신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재흥(再興) ; 쇠(衰)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다시 일으킴.
*(게송) ‘여군동보우동행~’ ; [금강경오가해]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어묵동정(語黙動靜)을 여의고 일러라’한 공안(公案) ;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선사 법어집(용화선원刊) p7~8.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 스님과 용성 스님 두 선지식이 서로 법담을 하시게 되었다.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시오.” 하시니 만공 스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계셨다.
 그러자 용성 스님은 만공스님에게 “양구(良久)를 하시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 만공 스님의 대답이 “아니오.” 라고 하셨다.

 그 후 이 법거량(法擧揚)의 내용을 들은 나는 용성 스님을 뵙고 “두 큰스님께서는 서로 멱살을 쥐고 흙탕에 들어간 격입니다.”하니 용성 스님께서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스님께서 한번 물어 주십시오.”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하셨다. 내가 대답하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하니 용성 스님은 “옳다, 옳다.” 하시었다.
불법이란 것은 이렇게 한번 방망이를 업고 들어가서 뒤집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경허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라 한 구절에 대해서~ ;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선사 법어집(용화선원刊) p8~11.
근세 한국불교에서 선의 중흥조이신 경허 대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을 한번 말하여 보겠다.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하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로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로다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세계가 나의 집인 줄 깨달았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허물이 있으면 한번 방(棒)을 쓰고 들어가는 법이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후, 일곱 걸음을 걸으신 뒤 사방을 돌아보시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하셨는데,
그 후 운문선사(雲門禪師)가 나와서 말하기를 “내가 당시에 만약 보았더라면 한 방망이로 타살하여 개에게 주어 씹혀서 천하를 태평케했으리라.”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운문긱구자(雲門喫拘子)’라고 하는 선문중(禪門中)의 ‘척사현정(斥邪顯正)’ 공안이다.

그런데 나도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에 대하여 일방(一棒)을 쓰고 한마디 하였다.
우리 선가(禪家)에는 참선해서 견성(見性)하는 법을 소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 있는데,
만약 중이 시주의 은혜만 지고 도를 닦아 해탈하지 못하면 필경 죽어서 소밖에 될 것이 없다는 말을 어떤 처사가 듣고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만 되어라.”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경허 큰스님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였던 것이다.

유마경의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문수보살은 말로써 이를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거사는 묵묵히 말이 없음으로써 이르니 유마거사야말로 불이법문을 가장 잘 설했다고 찬탄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도는 승속에 관계없는 것이다.
단 한마디 ‘소 콧구멍 없다’는 언하(言下)에 대오하였던 것이다. 견성하여 생사해탈법을 얻어 삼천세계가 그대로 나의 집인 줄 깨달았으니 무슨 일이 있으리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야인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한 오도송이라고 여러 큰스님들이 모여서 찬탄하시기에 나는 경허 큰스님의 제자이신 만공 스님과 만공 스님의 제자 보월 스님이 계신 앞에서 직접 말하였다.

“무비공(無鼻孔)에는 없다(無)는 허물이 있고, 돈각시아가(頓覺是我家)에는 깨달았다는 각견(覺見)의 허물이 있으며,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에도 역시 허물이 있으니, 이런 것이 붙어서 생사묘법(生死妙法)을 못 보고 또 제구 백정식(白淨識)을 못 건너가게 딱 가로막고 있어서 학자가 그 곳에서 넘어지게 되는 것이니 학자를 바로 지시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니 보월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 참 공연히 말을 제멋대로 하네.”하셨다.

그때 만공 스님께서 “그러면 자네가 한번 일러보소.”하셨다.
“예. 참, 저보고 일러 보라고 하시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천하에 없는 해탈 보배를 바로 주신들 그 위에 더 반갑겠습니까. 그러면 큰스님께서 한번 청하여 주십시오.”하니,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기를 “그러면 경허 큰스님의 ‘무비공 도리’나, ‘각견 도리’ 나 ‘무사태평가 도리’ 를 어디 한번 제쳐 버리고 일러 보소.”하시었다.

내가 말하기를 “ ‘유월연암산하로’까지는 경허 큰스님이 송(頌)하신대로 두고, 제가 외람되지만 큰스님 송의 끝구절 ‘야인무사태평가 도리’ 만 이르겠습니다.”하고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내가 농부가를 부르듯이 이렇게 일렀다.
그랬더니 만공 스님이 있다가 “아, 이 사람아 노래를 부르는가? '여여로 상사뒤여'가 노래가 아닌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 무슨 일인가.”하시었다.
그래서 나는 “스님이 재청하시면 다시 한번 이르지요.” 그러고는 보기 좋게 춤을 추면서 곡조를 부쳐서 다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하니 “적자농손(嫡子弄孫)일세.”라고 만공 스님은 점검하셨다.
*경허선사, 만공선사, 보월선사,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구참납자(久參衲子)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목침(木枕 나무 목,베개 침) ;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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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4.09.11 08:10


§(551) (게송)권군심심참묘화~ / 올바른 정진을 해야 / 황벽스님 법문 / 하루씩 결제, '한 생각'씩 결제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 ‘묘(妙)한 관(觀)’으로 의심.

묵언을 한다든지, 장좌불와를 한다든지, 일종이나 3년 결사, 백일 가행정진, 칠일 용맹, 다 좋지마는 그렇게 해서 육체만을 못살게 굴고 들볶는 그것이 진정 훌륭한 정진이 아니여.
그러한 형식 속에 들어있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화두를 잘 들고 나갔느냐’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화두(話頭)만 정말 여법(如法)하게 거각(擧却)할 줄만 알면 그 참선이란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전강 조실스님 법문을 어쨌든지 자주 듣고, 듣고 또 듣고 해서 그 화두를 ‘묘한 관’으로 그 의단(疑團)을 거각하고 잡드리 해 나가는 그 길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송담스님(No.551)-95년(을해년) 하안거결제 법어(95.04.15.음)


(1) 약 22분.  (2) 약 22분.


(1)------------------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하니  난득양신가허과(難得良辰可虛過)리요
나무~아미타불~
무량겁래무차일(無量劫來無此日)하니  장부심지지임마(丈夫心志只恁麽)니라
나무~아미타불~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하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깊은 마음으로 묘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할지니.
난득양신가허과(難得良辰可虛過)리요. 얻기 어려운 이 좋은 세월을 가히 헛되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

무량겁래무차일(無量劫來無此日)하니,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면서 이와 같은 좋은 세월이 없으니,
장부심지지임마(丈夫心志只恁麽)다. 장부(丈夫)의 그 마음과 지조를 다맛 이와 같이 잡드리해 갈진저.

방금 을해년 4월 15일 삼하(三夏)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이 조실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결제일에 활구참선(活句參禪) 학자가 들어야 할 고구정녕(苦口叮嚀)하고,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구구절절이 간곡하고도 간절한 그런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우리는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서 생겨난 때가 없이 우리는 있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몇 억만 생을 거쳐서 여기서 나 가지고 저기 가서 죽고, 저기서 나 가지고 여기 와 죽고, 수없는 몸을 바꿔 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꼭 사람으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고 육도(六道)를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어.

다행히 좋은 몸뚱이를 받아 나 가지고 그 좋은 몸 받아 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인데, 이만큼 좋은 몸을 받아 가지고, 좋은 몸을 받았으되 불법(佛法)을 만나기가 어렵고, 불법을 만났으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인데,

그러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 가운데 최상승법을 만났으니, 이러한 좋은 세월을 어찌 가히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느냐.
그러한 항상 만나기 어려운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법을 만났다고 하는 그러한 다행한 마음, 경행한 마음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수행자들은 그 생각이 너무 간절(懇切)해서 ‘어떻게 하면 이 한 철을 목숨을 바쳐서 철저하게 공부할까?’ 그러한 생각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로서 어떤 사람은 묵언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종(一種)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백일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칠일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년 결사(結社)를 하고, 이리하면서 있는 모든 힘을 몸과 목숨을 다 바쳐서 정진을 할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한 결과로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조사들도 다 그러한 고행(苦行), 난행(難行) 정진을 거쳐서 다 도업(道業)을 성취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산승이 그러한 도반들에게 한 말씀 은밀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 그러한 공부할려고 애쓰는, 몸과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난행고행(難行苦行) 반드시 해야 하고,
정말 발심(發心)하고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을 일으킨 수행자라면 다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거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를 못살게 굴고, 용을 쓰고, 갖은 고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도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을 만드는데 그 그릇이 겉으로 보기에 멋있고 튼튼하고 아름답고 한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 그릇 속에 공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그릇의 그 껍데기가 왜 필요하냐’하면은 그 그릇 안에 있는 비어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겉으로 보기에 참 아름답고 멋지게 지은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마는 그 집안에 공간이 어떻게 편리하고 편안하고, 그 안 공간이 사람에게 어떻게 잘 되어 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죠.
겉으로 봐서 그 집이 아주 문화 주택으로 되었고, 사치스럽게 되었고, 멋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 집이 좋은 것이 아닌 것이여.

아까 말한 묵언을 한다든지, 장좌불와를 한다든지, 일종이나 3년 결사, 백일 가행정진, 칠일 용맹, 다 좋지마는 그렇게 해서 육체만을 못살게 굴고 들볶는 그것이 진정 훌륭한 정진이 아니여.

그것도 대단히 하기가 어려운 일이고, 그것도 끝까지 잘 장애없이 마치기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형식 속에 들어있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화두를 잘 들고 나갔느냐’하는 문제가 더욱 소중한 것이여.

흔히 발심한 도반들이 모여서 3년 결사 하는데, 중간에 그것이 깨져 버리기도 하고, 중간에 병이 나가지고 병원으로 떠메가기도 하고, 중도에서 그만두기도 하고, 하고 나서 평생동안 도는 이루지 못하고 병만을 얻기도 하고 그런 수도 많습니다.

그 3년 결사를 처음에 시작해 가지고 그것을 끝까지 채우기 위해서 온갖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3년을 채우기 그거 어렵지만은 그것이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3년 동안을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내용으로 정진을 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여.

그래서 부득이 해서 대중이 이렇게 석 달을 지내기 위해서는 결제(結制)라고 하는 법요식을 갖고, 또 법문을 듣고, 그래 가지고 신심과 분심과 그런 것을 잘 가다듬고서 시작하는 날이 바로 이 결제날인데,

앞으로 금년 여름에 얼마만큼 작년 여름보다 더 더울런지, 덜 더울런지 그건 지내봐야 알겠지만,
그 무더운 더위 속에 서늘한 데 앉아서 선풍기 틀고, 부채질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기도 어려운데, 그 더운 날에 죽비를 치고 2시간씩, 3시간씩 정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신 분은 다 아시고, 오금쟁이, 사타구니가 땀띠로 더덩캥이가 져 가지고 쓰리고 가렵고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여름 결제를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석 달을 지낸다’하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 ‘하루! 오늘 하루 정진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 오늘 하루를 정말 알뜰하게, 여법하게, 실속 있게 그렇게 정진을 하시면 됩니다.

하루를 하되, 『하루를 24시간을 지낸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1초씩 또는 1분씩, ‘한 생각’씩을 결제를 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앉았을 때나, 걸어갈 때나, 공양을 할 때나, 이를 닦을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갔을 때나, 언제 어디서 행주좌와 간에 항상 화두를 거각(擧却)을 해서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것만 잡드리 하시면 되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1시간이다, 2시간이다’하는 생각도 없는 거고, ‘하루다, 이틀이다’하는 그런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하루씩 결제를 하되 해제는 없어. 해제는 없고 하루씩 딱 결제하고, 마지막에 그날 방선(放禪)을 하고 자리에 눕되 그게 해제한 것이 아니거든.
누웠을 때는 누워서 떠억 화두를 들고 누워있는 거여. 억지로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안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취침시간이 되면은 다 같이 눕되 누워서도 화두를 거각하면서, 언제 잠이 들은 줄 모르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그말이여.

아침에 3시가 되어서 일어나면서, 어제 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딱! 눈 뜨면서 들어져 있는가 그걸 점검을 해야 하거든.
화두가 안 들려져 있으면 탁! 화두를 거각을 하고, 거각을 한 채 일어나서 화장실도 가고, 세수도 하고, 이도 닦고, 예불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하루의 결제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간다면 90일 동안의 하안거가 하루씩 결제한 것이 모인 90일간이 어느새 어떻게 간 줄 모르게 석 달이 지내가도록.
마지막 해제날은 불가불 90일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한번 해제날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벽(黃檗) 선사는 『종일 밥을 먹되 한 알톨의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종일 걷되 한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고, 이렇게 정진을 해 가면 그 사람에게는 인상(人相)도, 아상(我相)도 거기에는 있을 수가 없어.』

종일 무엇인가—아침에 일어나면은 이 닦고, 세수하고, 예불하고, 입선하고, 방선하고, 또 아침공양하고, 공양하고 나서 양치질하고, 입선시간 되면 또 입선하고, 하루 종일 새벽에 일어나서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무엇인가 하고 있는데, 그 일체사(一切事)를 여의지를 안 해.

그냥 다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주어진 일이고, 하루를 살다보면은 무엇인가 해야 하거든.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움직이거나, 또 앉았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또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무엇인가 하는데, 정진한답시고 그걸 다 관두고, 다 여의어 버리고 살 수 없는 것이여.

무엇인가 하는데 ‘하되, 그 경계(境界)에 집착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말아라.

무엇인가 하되 집착하지 않고 현혹되지 아니하려면, 하면서 화두가 독로하도록—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단이 항상 현전(現前)하도록 거기다가 초점을 맞추는 거여.(처음~21분2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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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럴려고 아무리 해도 금방 경계에 속고, 속아서 집착하고, 집착하다 보면 퍼뜩 깨우쳐서 다시 또 화두를 들고 그러기 마련인데,
중단하지 않고 신심과 분심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할려고 안 해도 그렇게 되어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생각생각이 일체상(一切相)을 보지를 말아라. 다른 사람이 웃거나 울거나, 앉았거나 섰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 다른 사람 시비(是非)를 가리지 말라 이거거든. 가릴 시간이 없어.
시간도 지나간 시간 지나간 일을 따질 것 없고,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시간도 따질 것이 없고,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에 대해서 그걸 붙잡고 늘어지지 말라 이거여.

여름에 더울 때는 벌써 반살림 지내면은 ‘어서 빨리 해제를 했으면! 해제를 하면 어디로 갈까?’ 그런 생각들, 겨울에는 납월 팔일(臘月八日) 용맹정진이 끝나면은 벌써 해제 다 한 거와 같이 걸망 챙기고, 벌써 해제하면 어디 갈거 생각하고, 그렇게 되는 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지나간 시간,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한 생각 한 생각을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가되 항상 안연단좌(安然端坐)여.
태산(泰山)과 같은 묵직한 그런 마음으로 터억 앉아서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지 말고, 거기에 끄달리지 말고 다못 의단만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라.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을 해 가야지!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 만인(萬人)이 다 참선한다고 하지만 겨우 서너 사람, 너댓 사람 밖에는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사람이 그렇게 드물다』 이거여. 그렇게 황벽 스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의단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철대오한다고 하는 이 일대사 문제를 자기의 온 목숨을 거기다 걸고서, 정말 철저하게 해 나가지 아니하면 정말 천인 만인 가운데 세 사람, 네 사람 나오기가 어렵다고 한 황벽 스님의 말씀이 맞아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면 그거 너도나도 참선한다고 할 것이 없지 않냐.
차라리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한만큼 무엇인가 얻어지는 그러한 이행교(易行敎), 행하기가 쉬운 그런 공부를 차라리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선 뿐만이 아니라 염불이나 주력(呪力)이나 또는 경(經)공부도 어렵기로 말하면 똑같은 것입니다.

염불(念佛)은 그저 되나깨나 손으로 염주를 돌리면서 입으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만 부르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만 끊임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르기만 하면 다 목적을 이루고, 성불하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그것도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해야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어렵기로 말하면 똑같이 어려운 것입니다.

차라리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아까 어려운 쪽으로 얘기해서 그렇지, 정말 활구참선이야말로 천하에 간단하고, 간결하고, 묘하고도 쉬운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니까! 밥 먹을 때, 옷 입을 때, 눈으로 볼 때,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 앉았을 때, 섰을 때, 일체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그것이 1초 동안도 나를 떠나서 그런 것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여.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 어느 때 어느 장소라도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여의고 존재하지는 못하고 그것을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언제나 따라 다녀. 그림자처럼, 그림자 보다 더 가깝게 따라 다녀.
차라리 그림자는 해가 없고, 불빛이 없으면 그림자는 없어진 때가 있지만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은 눈을 떴을 때나 감을 때나, 심지어 잠을 자고 꿈을 꿀 때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일체처에 일체시에 언제나 같이 있는 놈이거든.

그러기 때문에 찾는 방법만 옳게 알고, 화두(話頭)만 정말 여법(如法)하게 거각(擧却)할 줄만 알면 그 참선이란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초학자(初學者)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규제도 엄격하고, 선원마다 다 청규(淸規)가 있어서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통제를 하고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그건 여러 사람이 모여서 다 같이 공부하는데 그만한 규칙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규칙을 만들기는 했으되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그것을 잘 지켜나가면 되는 것이여.

하나씩 하나씩 따지면 별것도 아니고, 다만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하다 보면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그런 것들이죠.
세속의 무슨 법률도 자발적으로 자기가 자진해서 잘 지키면 그거 별로 그렇게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경찰이나 형사나 형무소 있다고 해도 그까짓 것 하나도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선방에 청규나 규칙도 발심해서 여법하게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다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 정진만 올바르게 하면 신경을 쓰지 안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여.
정진을 안 하고 딴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방일(放逸)하고, 해태(懈怠)하는 가운데에서 그런 규칙에 어긋나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고, 선원의 규칙을 어지럽히고, 다른 사람 공부에 방해를 끼치고 자기도 도를 제대로 닦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하야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여. 사자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들어가서 살 수가 없어. 사자굴 가운데에는 크나 작으나 사자들이 살 수 밖에는 없는 거여.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다. 코끼리들이 가는 곳에는 여우 같은 그런 짐승의 발자취가 끊어진 것이다.

사자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 없고, 코끼리가 가는 곳에는 코끼리가 따르는 것이지, 여우 새끼 같은 것이 그런 속에는 있을 수가 없다.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하야, 다시 한 가지 ‘구멍 없는 젓대(無孔笛)’를 가지고,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다. 등한히 만년환(萬年歡)에 무상곡(無上曲)을 부릅시다 이거거든.

이 자리에 모이신 선배·후배 도반 여러분, 남녀노소 도반 여러분. 우리는 금생에 한 시대에 한 나라에 태어난 깊은 인연을 가진 인연입니다.
더군다나 다 같이 불법을 만났고 최상승 문중에서 우리는 도반의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자굴(獅子窟) 속에서 만난 우리들은 사자의 종자(種子)들이고, 코끼리의 행처(行處)에서 만나는 코끼리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방에는 결제날 용상방(龍象榜)에다 우리들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하늘을 날으는 짐승 가운데에는 용이 최고고, 육지에서 사는 짐승 가운데는 코끼리가 최고이기 때문에 발심해서 도를 닦는 수행자들을 용상대덕(龍象大德)이라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황벽 스님의 법문처럼 그렇게 정진을 해 나가면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되고, 대해탈자(大解脫者)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5월이 되고, 6월이 돌아오면 또 삼복성염(三伏盛炎)을 맞게 됩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덥지 아니하니 열심히 정진들 하시고, 그렇게 더운 여름이 돌아오더라도 지혜롭게 건강관리를 하시고,
육체를 들볶기보다는 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용을 쓰지 아니하면서도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거각하는 묘(妙)한 관(觀)을 스스로 터득을 하셔야 합니다.

초학자는 발심을 해 가지고 정진을 좀 정말 알뜰히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 하면은 용을 쓰기 시작해. 그러고 육체를 들볶어.
육체를 들볶고, 정신적으로 용을 쓰는 것은 까딱하면 상기병(上氣病)이나 그 밖에 정진에 장애되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우려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월하게 그럭저럭 지내라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 법문을 어쨌든지 자주 듣고, 듣고 또 듣고 해서 그 화두를 ‘묘한 관’으로 그 의단(疑團)을 거각하고 잡드리 해 나가는 그 길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단정히 앉아서 올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을 해 나가면,
상기병도 안 생기고, 소화불량 같은 그런 병도 생기지 않고, 큰 부작용 일으키지 아니하면서도 알뜰하게 정진하는 길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상한 공부해 나가는 법은 아까 조실스님 법문을 통해서 우리가 다 같이 들었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간단히 이것으로써 여러 도반들에게 대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보살선방에 방부를 들인 분, 또 시민선방에 방부를 들인 분들도 열심히 정진하시고,
출퇴근하는 그런 신도님네들도 집안 일이 바쁜데 어렵게 시간을 쪼개서, 그 더웁고 송곳 꽂을 틈도 없는 전철을 타고 여기 와서 불과 한두 시간, 서너 시간 그렇게 정진하다 가고,
대단히 참 어려운데도 이렇게 방부를 들이고 정진하러 다니신 그 뜻이 대단히 갸륵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와서 선방에 앉은 시간만이 정진이 아니고, 집에서 일하면서, 또 전철까지 오는 시간, 전철을 타고 오는 시간, 전철에서 내려서 오는 시간도 그것도 역시 입선(入禪) 시간이라 생각하고 오며 가며 열심히 하면,
수마(睡魔)에 시달리지 아니해서 오히려 석 달 동안을 줄곧 선방에만 앉아 계신 분보다도 더 짬진 정진을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하고, 가정에서 계신 분들도 형편상 선방에 나오시지는 못하더라도 가정에서 일하면서, 거기서 조실스님 법문 틀어놓고 들으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하면서도 생각생각이 잡드리해서 정진하신다면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시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오셔서 또 정진하시면 되는 것이니까 모두가 비구 스님네나, 비구니 스님네나, 청신사나, 청신녀나, 다 각자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가 다 같이 이 자리에서 결제를 했으니,
비록 용주사나 위봉사나 세등선원이나 회룡사나 또는 어디서 석 달 동안을 지내시더라도 우리가 함께 이 자리에서 결제를 했기 때문에 한 회중(會中)입니다.
한 회중에 같은 대중이기 때문에 그러면서 우리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처음~42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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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권군심심참묘화~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下) ‘送寧宏二禪師歸山-산으로 돌아가는 영(寧)·굉(宏) 두 선사를 보내며’ 참고.
[참고] [태고집(太古集)] (설서雪栖 編,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19.
'送寧宏二禪師歸山'
君不見  悉達多之碧山行  警汝呼吸棄人生
勸君深心叅妙話  難得良晨可虛過  無量劫來無此日  丈夫心志只恁麽

'산으로 돌아가는 영(寧)·굉(宏) 두 선사를 보내며'
그대들은 실달다(悉達多)가 푸른 산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잠깐인 인생을 버리라고 그대들을 일깨우신 것이다
그대들에게 권하나니, 깊은 마음으로 묘한 화두 참구하라
얻기 어려운 좋은 때를 어찌 허송하겠는가
한량없는 세월에 이 날이 또 없나니
대장부의 마음은 그저 이러해야 하네.
*화두(話頭)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함.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장부(丈夫) ; 참선하는 수행자.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삼하(三夏) ; 여름의 석 달.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난행고행(難行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 단번에 내는 센 힘.
*더덩캥이 ; 더뎅이(부스럼 딱지나 때 따위가 거듭 붙어서 된 조각).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황벽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황벽(黃檗) 선사의 법문 ; [참고] 황벽 스님의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但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
與麼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努力努力.
此門中千人萬人, 祇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어떻게 하여야 수행의 등급(階級)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다맛 하루 종일 밥을 먹되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고, 하루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한 때에 아상(我相)·인상(人相)등의 견해(相)는 없고, 하루 종일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않아야 비로소 ‘자재한 사람(自在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는 때마다 생각 생각에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말고, 앞뒤의 삼제(三際 과거·현재·미래)를 인정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 주어진 상황에 되는 대로 맡겨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解脫)’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고 노력하라.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만인(萬人)이 있지만 겨우 서너, 너댓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는다.
만약 이 도 닦는 일을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오랜 세월(累劫) 남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현혹(眩惑 아찔할·어두울 현,미혹할·어두워질 혹) ; 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 또는 그렇게 되게 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2)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께서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게송) ‘獅子窟中無異獸 象王行處絶狐蹤’ ; [전등록] 권16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참고.
*(게송) ‘更把一枝無孔笛 等閑吹出萬年歡’ ; [증집속전등록(增集續傳燈錄)] 제4권 ‘천의업해요청(天衣業海了淸) 선사’ 참고.
*구멍 없는 젓대 ; 무공적(無孔笛). ①무저선(無底船)·몰저선(沒底船)·무영수(無影樹)·몰현금(沒絃琴)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만년환(萬年歡) ; 만년(萬年)의 즐거움.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회중(會中) ; 설법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 수행자의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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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337) (게송)적수성동신유지~, 심수만경전~, 청군앙면간허공~ / 중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바로 그곳이 선불장(選佛場) / 자기 소임을 하면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은 분명 그것이 중생의 생각이지만, 그 중생심을 버리지 아니한 채 바로 화두(話頭)로 돌이켜 버리면, 그것이 바로-거기서 생사심(生死心)이 끊어져 버리고 깨달음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된다.
번뇌나 망상을 없앨려고 허면은 더욱 일어나는데, 없앨려고 허지 말고 끊을려고 허지 말고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나아가면, 끊을려고 허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번뇌가 끊어져.
**송담스님(No.337) - 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1) 약 14분.  (2) 약 13분.


(1)------------------


적수성동신유지(滴水成凍信有之)하고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여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적수성동신유지(滴水成凍信有之)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다.
방울 물이 얼음을 이룬다 그말이여. 엄동설한에 물방울이 똑 떨어지면은 떨어지자마자 탁 얼어버리고 또 물방울이 떨어지면 떨어짐과 동시에 얼어버리고. 그러헌 진리가 진실로 있어. 사실 그런 것이로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여. 푸른 버드나무와 향그러운 꽃이 그 색이 아름답고 아련하다.

엄동설한에는 그렇게 꽁꽁 얼어붙어 가지고 물방울마다 얼어가지고, 결국은 흐르는 강물도 온통 전체가 얼어붙어서 흘러가는 물을 볼 수가 없으나,
어느덧 소한·대한이 지내고 입춘·우수가 돌아오면 그 꽁꽁 얼어붙었던 강물과 온 천지가 녹아가지고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온 것이다 그말이여.

강물이 얼어붙고 온 산천이 꽁꽁 얼어붙을 때에는 풀 한포기 이파리 하나 푸른 빛깔을 볼 수가 없지만 봄이 돌아오면은 푸릇푸릇 새싹이 돌아오고 누른 꽃도 피고 빨간 꽃도 피게 된다 그말이여.

이 진리 체(體)에 입각해서 본다면 입으로 가히 설할 법이 없고 귀로 가히 들을 수 있는 법이 아니지만, 그러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한 걸음을 내려디디면 거기에는 무수방편(無數方便)이 다 이 한 일을 위해서 설해지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녹야원(鹿野苑)에서 법(法)을 설하시기 시작해 가지고, 발제하(跋提河)에서 열반에 들으실 때까지 팔만사천 법을 설하시고도 마지막에 가서는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팔만사천 법을 설하시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셨으니, 그러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이 있느냐?’할 때에 ‘설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고, ‘설한 바가 없다’고 한다면 경을 비방하는 것이여. 법을 비방한 것이다 그말이여.

설하시고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시고,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시면서도 팔만사천 법을 설하셨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이 세월이 지나가면 다시 새싹이 나서 잎이 피고 꽃이 피는 도리.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 가을에는 휘황창 달이 밝고 봄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이 피는 거기에 한없는 뜻이 있다 그말이여. 한없는 그러한 현상 속에 무한한 뜻이 그 속에 들어있어.

그러기 때문에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여. 한가히 자고새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이 방해롭지 않다. 봄이 돌아와서 잎이 피고 꽃이 피면은 그 꽃이 향기로운 속에는 자고새란 새가 그 노래를 하는데, 그 자고새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 방해롭지를 않더라.

오늘 정묘년 칠석날을 맞이해서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그 어느 해 칠석날에 설하신 녹음 법문을 사부대중은 경청을 했습니다.
구구절절이 그 감동에 넘치는 그 간곡한 법문을 듣고 바로 12년 전에 열반허셨던 전강 선사(田岡禪師)께서 바로 이 법상에서 육성으로 실지로 설하신 거와 같이 그렇게 낭랑(朗朗)하게 그렇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칠석날이라 허면은 모든 신남신녀들이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조촐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와서 모두 복을 빌고 명을 빌고 소원을 빌어왔습니다.
저 신라·백제 때부터 다 칠성단(七星壇)에 기도를 허고, 칠성단에 공양을 올리면은 업장이 소멸이 되고 수명장수허고 복덕이 구족허고, 아들이 없는 사람은 아들을 낳고, 돈이 없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모든 소박한 우리 인간의 모든 소원을 빌어오는 그러헌 유서(由緖) 깊은 날입니다.

그날에 조실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고 어떻게 복을 빌고 하면 부자가 되고 수명장수 하고 복덕이 구족하느냐? 그런 말씀은 한 말씀도 허시지 아니허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최상승 법문을 설해 주셨는데,

그 법문 가운데에 “중생의 모든 중생심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衆生)의 마음 - 희로애락과 탐진치 삼독(三毒) 그러헌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그 마음을 버리고 그래 가지고 청정한 어떠헌 부처님 마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일체 경계를 따라서 마음이 이렇게 굴러 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그 굴르는 곳마다 다 능히 유심(幽深)하다, 깊숙하다.

중생은 경계를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그러면은 그 경계에 따라서, 그 색상 따라서, 거기에 상응해서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슬픈 일을 보면은 슬퍼허고, 기쁜 일을 보면은 기뻐허고, 희로애락에 따라서 경계 따라서 온갖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 경계 따라서 일어나는 그 마음이 그 경계를 여의고 깨달음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경계에 즉해서 자기 본성품을 봐 버리면(隨流認得性) 기뻐헐 것도 없고 근심헐 것이 없다(無喜亦無憂).
우리가 모다 공부를 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헌 요점인 것입니다.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온갖 마음이 일어나되, 일어나는 그 마음으로 인해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 넷째 생각 해서 점점점점 그 생각이 변해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한없는 업(業)을 짓게 됩니다.
그 생각이 얼굴에 표현이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조그마한 '한 생각'이 동함으로 해서 그 생각이 결국은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업을 짓게 돼.

그러허기를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해왔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최상승법,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그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물론 참선헌 사람이라 하드라도 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아, 저것은 붉다·누리다·빨갛다, 저것은 사람이다·개다, 그런 것을 느끼지 아니헌 것은 아니여. 느끼되, 그 느낌이 다음 생각으로 발전하기 전에 ‘이뭣고?’하고 화두를 턱! 들어 버린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일어나는 그 한 첫 생각은 분명 그것이 중생의 생각이지만, 그 중생심을 버리지 아니한 채 바로 화두(話頭)로 돌이켜 버리면, 그것이 바로 - 거기서 생사심(生死心)이 끊어져 버리고 깨달음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것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 공부를 한 사람과 이 최상승법을 믿지 아니허고 그냥 마구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처음~14분17초)



(2)------------------


청군앙면간허공(請君仰面看虛空)하라  확락무변불견종(廓落無邊不見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해전신사자력(若解轉身些子力)하면  두두물물총상봉(頭頭物物總相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청군앙면간허공(請君仰面看虛空)이라. 청컨댄 그대는 머리를 들고 저 허공을 보아라.
확락무변불견종(廓落無邊不見蹤)이다. 확 트여서, 갓이 없이 트여가지고 그 자취를 볼 수가 없느니라.

약해전신사자력(若解轉身些子力)허면, 만약 거기에서 몸을 뒤치면, 몸을 돌리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총상봉(總相逢)이다. 일체 두두물물이 모두가 다 '그'더라. 모두를 거기에서 다 만날 수가 있더라. 모든 이치를 거기에서 다 볼 수가 있더라.

화두를 들어서, 들고 또 들고 해서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2년, 3년, 4년, 해 갈수록 답답허고 알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지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을 향해서 화두를 관조(觀照)해 나갈 따름이거든. 거기에서 망상을 끊을려고 허지 않아도 망상이 끊어지고, 번뇌를 끊을려고 허지 않아도 거기서 번뇌가 끊어져.

번뇌나 망상을 없앨려고 허면은 더욱 일어나는데, 없앨려고 허지 말고 끊을려고 허지 말고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나아가면, 끊을려고 허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번뇌가 끊어져. 오직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허다 그말이여.

순일무잡해서, 그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그 경계는,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허고 순수무잡한 그 경계는 말로써 표현헐 수가 없어.
거기서 한 생각 더디 의심하면, 한 생각 의심을 놓치면 - 좋다느니, 편안하다느니, 맑다느니 - 딴 생각을 거기서 먹게 되면 찰나(剎那)간에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는 것이여.

깨달음을 기다리지도 말고, 누가 깨닫게 해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영원히 그런 상태로 계속 되었으면 허는 그런 생각도 헐 필요가 없어. 알 수 없는 화두만을 끝없이 관조해 나가.

행주좌와 어목동정 간에 걸어갈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워서나, 차를 탈 때나, 일을 할 때나, 가정에서 살림을 헐 때, 살림을 허게 되면 살림, 설거지를 허게 될 때나, 장사를 허거나, 무슨 밥을 짓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똥을 누거나, 옷을 입거나, 빨래를 허거나, 무엇을 허거나 상관이 없어.

가정에서 생활을 하고 직장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속상하는 일도 있고 걱정스런 일도 있겠죠.
바로 그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기쁜 일을 당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허면 슬픈 일을 당한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오늘같이 칠석날을 당허면은 칠석날을 당해서 목욕재계허고 와서 동참을 허고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허면 바로 거기에서.


그렇게 살아가면 중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바로 그곳이 선불장(選佛場)이고.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기복(祈福)불교는 안 믿는다. 그까짓 무슨 복을 빌고, 무슨 소원을 빌고. 인간의 흥망성쇠 재산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또는 음식이나 명예나 세속의 모든 안락이 그까짓 것이 하루아침 꿈에 지나지 못헌데 얻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까짓 것 빌어서 뭐해? 자식도 다 꿈속에서 만난 한 꿈속의 인연이요, 부귀영화도 그까짓 것 한평생 잠깐 왔다 가버리는 그까짓 것을 얻으면 무엇허고 잃으면 무엇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복도 빌지도 않고 칠석에도 동참(同參)도 허지도 않고, ‘나는 오나가나 참선 뿐이다. 「이뭣고?」면 그만이지. 그밖에 무엇을 구헐 것이 있어?
구해 봤자 무슨 얻어져 봤자 그거 몇 조금 가냐? 인생 칠십이 하루아침인데 죽어 갈 때 가지고 갈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오직 나는 「이뭣고?」뿐이 없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런 사람이 만약에 있다면 그건 참 대발심(大發心)을 허고 인간을 완전히 체달(體達)해 버린 사람이지.

슬퍼도 「이뭣고?」 기뻐도 「이뭣고?」 뭐 집안이 흥해도 「이뭣고?」 망해도 「이뭣고?」 뭐 누가 죽어도 「이뭣고?」 태어나도 「이뭣고?」 좋아헐 것도 슬퍼헐 것도 말 것도 없다.


그렇게 전체가 오직 「이뭣고?」 하나로 딱 되어 가지고 산을 봐도 산일 줄 모르고, 물을 봐도 물인 줄 모르고, 남편을 봐도 남편인 중도 모르고, 자식을 봐도 자식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되어 버렸다면, 그리고 오직 자나깨나 「이뭣고?」 하나 밖에 안 되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언어가 끊어져 버려, 시비가 끊어져 버려.
그렇게 되아버렸다면 불일성지(不日成之)여. 그 사람은 며칠 안 가서 언제 툭 터질런지를 몰라, 그런 사람은.

그렇게 실지로 된 사람이 있다면. 승속을 막론허고 그렇게 되어 버렸다면은 그건 누가 그 사람 보고 이래라저래라 시비헐 것이 없어요.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은 그런 사람이야말로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이 삼요(三要)가 일시에 폭발헌 사람이라.

그렇게 되지 못해서 한(恨)이여. 출가해서 10년 20년 공부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거든.

그렇게 되는 것 밖에 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선방에서는 선방의 법도(法度)가 있고, 가정에서는 가정의 법도가 있어.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법도가 있는 법이여.
그래서 그 법도에 따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 속에서 항상 일부러 마음을 일으켜서라도 「이뭣고?」를 해야 되는 것이여.


그렇게 애를 쓰고 또 애를 쓰고 허다 보면은 아까와 같은 그러헌 타성일편지경(打成一片之境)이 오는 것입니다.

타성일편지경에 오지도 않으면서 ‘나는 참선을 허니까 운력도 나는 안 한다. 나는 참선을 허니까 예불도 안 한다. 나는 참선 허니까 법당에 갈 것도 없다.’
또 ‘참선을 허니까 나는 그까짓 거 기복불교 허지 아니허고 참선만 헌다. 난 절에도 갈 필요도 없다. 참선 밖에 더 있냐.’ 이렇게 헌다면 그것은 조금 옳은 것 같은데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참의심(眞疑)'이라 하는 것은 '주작(做作)이 끊어진 자리'인 것입니다.
주작(做作)이라 하는 것은 '지을 주(做)자, 지을 작(作)자' 지어서 하는 것, ‘지어서 한다’는 것은 속은 그렇지 못허면서 겉으로 그렇게 헌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놓여진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이 있습니다. 방부를 들이고 방(榜)을 짜면 각기 소임을 맡듯이 이 가정에서도 소임이 있어.
엄마로서의 해야 할 소임, 아내로서 해야 할 소임, 또는 아들로서 해야 헐 소임, 딸로서 해야 헐 소임, 시어머니로서 해야 헐 소임, 며느리로서 해야 헐 소임, 학생으로서 해야 헐 소임, 회사나 관공서의 직원으로서 해야 헐 소임이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최소한 허면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를 해야 허는 것입니다.

분심(憤心)과 의심(疑心)과 신심(信心)이 한목 폭발한 상태도 아니면서, 소임도 아니하면서 소임을 포기하고 ‘불법을 믿네, 참선을 헙네’하고 그럭저럭 그렇게 나가면 그것은 꼴불견인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사람은 참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최상승법을 옳게 실천해 나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까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도 역시 그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36분28초~49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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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수성동신유지~’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 백, 자 척, 장대 간, 머리 두) ; ①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②모든 상대적 차별을 없앤 절대의 경지.
*무수방편(無數方便)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방편.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발제하(跋提河) ; 석가모니가 열반한 쿠시나가라 옆에 흐르는 강의 이름.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유서(由緖) ;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까닭과 내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유심(幽深)하다 ; 깊숙하고 그윽하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善業)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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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청군앙면간허공~’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참고] 위의 야부도천 게송을 함허 스님이 설의(說誼)한  ‘정체종래절성색~’에 대한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체달(體達) ; 사물의 진상을 통달함.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 ; 오늘도 그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를 아울러 이르는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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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약 15분.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헌대  천하인정몰양반(天下人情沒兩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지즉노(逆之則怒)요 순지환(順之歡)이다. 자기의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내고, 자기 마음에 순(順)하면 기뻐하는데 이것은 세속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서도 그렇고,
일체처에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들면 다 사람들은 기뻐하고,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다 성을 내는 것입니다.

천하인정(天下人情)이 몰양반(沒兩般)이여. 천하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성내지 아니하면 기뻐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면 성내고.
왜 그러냐? 모든 것이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거든.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순경계가 다하면 다시 역경계가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긍정하면 그것을 믿으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여. 바로 모든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모든 인연법(因緣法)에 눈을 뜨게 되어. 눈을 뜨게 되어가지고 스스로 속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모든 생노병사가 전부 역경계, 순경계로 이렇게 새끼 꼬아지듯이 꼬아지면서, 그렇게 해서 성립이 되었다가 그놈이 또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또...
오른손에 쥐었던 새끼와 왼손에 쥐었던 새끼가 번갈아가면서 서로 바뀌면서 이렇게 새끼가 꼬아지는데,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지내온 것이 그렇게 꼬아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서 순경계·역경계, 생(生)과 사(死),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면서 무량겁을 또 그렇게 갈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기쁨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나 슬픔만 있으라는 것이 없고, 언제까지 부자가 되어라 하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란 법이 없어요.

가난해졌다 부자되고, 부자가 되었다 가난해지고, 친해졌다가 친한 사람이 웬수가 되고, 웬수가 다시 풀어지면 또 친해지고, 그러한 변화무쌍한 참 믿을 수가 없는거, 허망한 거,

그러한 것에 우리가 말려 들어갈 것이 없고 그런데에 속지를 말고 그런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바로 거기서 ‘참나’로 돌아와야, 그 속에 살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 속지 말아야, 우리가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내고 기뻐하는거, 그래서 뭔 사업이 좀 잘되어도 너무 좋아서 못 견디지 말고. 그렇게 좋아서 훌훌 뛰고 야단을 칠 것이 못되어. 그러다 보면 금방 언짢은 일이 툭 생기거든.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해서 그렇게 의기소침(意氣銷沈)이 되고 비관하고 아주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럴수록에 오히려 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 믿는 마음으로 ‘이뭣고?’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최대한으로 잘 살려서 노력을 하다보면 반드시 밝은 길이 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잘되었다고 뭔 일이 성공을 했다고 지나치게 좋아서 훌훌 뛰고 하면 그것이 또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아할 것도 없고 지나치게 비관할 것도 없어요.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그런 환희마(歡喜魔)나 번뇌마(煩惱魔)를 갖다가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번뇌마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환희마도 못쓰는 것이여. 환희마가 들어오면 벌써 그게 바르게 공부가 되어간 것이 아니거든. 마군이가 딱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공부는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나, 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한 분이나,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방부를 안 들인 사람도 세 때 밥을 먹고, 방부를 들인 분도 세 때 밥을 먹고, 똥 누고, 걸어가고, 씻고 그게 바로 인간 생활인데 그 생활을 여의고 따로 얻은 공부해야 할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눈으로 모든 색상(色相)을 보되 그것이 그 색상이 관계치 않어.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소리가 아니여.
참선 공부를 아니한 사람은 무엇을 보면  붉다, 노랗다, 저것은 푸르다, 저것은 산이다, 저것은 자동차다. 떡 보는 순간부터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이 계속해서 연달아서 막 가지가 번져 나가는 거여.

또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새소리가 들리면 새에 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이,
새소리를 들으면 ‘아유, 봄이 왔구나. 봄이 오면 얼마 안 있으면 또 꽃이 피겠지. 그러면 밭에 또 채소 씨를 심어야겠다.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작년에는 농사가 시원찮았으니까 금년에는 잘 지어야겠지’
한 생각이 두 생각, 두 생각에서 세 생각으로 막 번져나가.

참선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관계를 하지 않고 바로 ‘이뭣고?’거든. 바로 자기로 돌아와 버려. ‘이뭣고?’ ‘이뭣고?’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리 따라가지 말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는 겨를도 없이 ‘이뭣고?’ 이렇게 돌아와버리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그말이여.

눈으로 보는 색상, 귀로 듣는 소리 거기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것이 바로 법왕이 계신 곳에 도달하는 길이다(親到法王城). 법왕(法王), 진리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눈을 뜨면 무엇인가 보게 되어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무슨 소린가 듣게 되어 있어.
눈으로 볼 때마다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뭣고?’
우리 생각에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인가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어.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요,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요, 모든 잡념이 잡념이 아니야.
전부가 다 ‘함이 없는 진리’로 돌아가는 길목이요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은 경묘년 3월 첫째 일요법회입니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봄철 산철 결제(結制)날이었습니다.
오늘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다시 새로 결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일초일초를 한생각 한생각을 빈틈없이 단속을 하셔서 어린 소년이 발심을 해가지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가지고 그어린 나이에 확철대오하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못 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만 한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41분23초~56분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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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환희(歡喜) ; ①기쁨. 종교적으로 만족했을 때 일어나는 신심(身心)을 모두 바친 기쁨을 말함. 또, 기뻐하는 것. ②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경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 ③정토종(淨土宗)에서 사후(死後)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미리 기뻐하는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〇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〇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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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1분 1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1분 1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8)-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에서.


약 16분.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한디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요, 나무를 얻어서 그 가지를 붙들고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것은 족히 기특한 것이 되지를 못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그 낭떠러지에 그 붙잡고 있던 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지고 안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던 그 손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탁 놓아 버릴 때 바로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 나무가지를 붙잡고 그 안간힘을 쓴다’하는 것은 무엇을 표하는 말이냐 하면, 한 마음-일심을 얻어가지고 그 일심을 놓치지 아니하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 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여.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거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러한 주력을 하거나 그 어떠한 자기 나름대로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한 어떤 한 경계를 맛보아 가지고,
그 경계를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데, 쪼끔 시끄러우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그걸 피하려고 하는 이유가 한 마음 경계를 얻어가지고...

그 시끄럽고 고요한 것, 복잡하고 편안한 것, 그러한 경계에 그러한 것에 집착을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용감하게 그놈을 놓아버려. 그 한 곳마저도 놓아 버릴 때에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이여. 물은 차고, 밤은 냉랭(冷冷)해서 고기를 찾기가 어려워. 고기란 놈이 저 깊은 물 밑 속에 가서 가만히 숨어 버렸기 때문에 고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빈 배에는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을 해도 못쓴다. 또 경계를 버리려고 하지도 말아라.’
‘어떠한 경계를 다달았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법회 때마다 그렇게 강조를 하고 주장을 하고 설교를 해왔는데, 한 마음마저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러면 화두를 들지 말고 놔 버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려지면, 어찌 화두에 집착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안 되고 공부를 바른길을 찾지 못하니까,
자꾸 일체 경계에 다다러서 ‘그 경계를 즉해서 화두를 들어라.’ ‘화두를 놓치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할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게 되면,

마침내는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현전(現前)을 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경계가 시끄럽거나 편안하거나, 조용하거나, 복잡하거나, 전혀 그러한 것에 상관이 없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무엇을 집착을 하며, 무엇을 피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될 때 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서, 법문도 열심히 듣고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擧却)을 해서 의심을 관조(觀照)하도록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피나는 노력 없이 어떻게 그러한 경계가 올 것이냐 이말이여.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1분 1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1분 1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십시오. 오른다리를 밑으로 잡어댕기고 그 위에다가 왼다리를 올려놓고,
그리고 그 발 위에 배꼽 앞에다가 오른손 손바닥을 위에로 해서 놓고 그리고 왼손바닥을 그 위에다가 포개놓고 엄지손을 이렇게 배를 맞대셔.
그러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뜰썩뜰썩 이렇게 흔들어서 한 가운데에다가 딱 안정을 시키고,
몸을 단정하게 청량골을 세우되 어깨나 목의 힘을 다 빼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혀 끄트리를 갖다 대고,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하는데,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여.
단전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3번 ‘준비 호흡’을 하는데, 준비 호흡은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이 그득하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숨을 딱 정지를 해가지고 한참동안 참는 거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데까지 참았다가 입을 조끔 벌리고 입으로 ‘후~’하고 숨을 다 내쉬는 겁니다. 내쉬세요. 가슴속에 한 점도 없이 다 내쉬어.(1번)

다 내쉬었으면 다시 한 번 또 코로 들이마셔. 어깨를 좀 드는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십니다.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딱 정지를 해,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쉬는 거여.(2번)
다 내쉬었으면 또 한 번 코로 가뜩 들어마셔. 정지. 입으로 또 ‘후~’하고 다 내쉬어요.(3번)
이것이 준비 호흡이 끝났습니다.

다 내쉬었어-완전히 다 내쉰 다음에,
조용하게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코로 들어 마시되, 불룩하기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면서 아랫배를 불록하게 만들면 되는 거여 의식적으로.

아까 (준비 호흡때) 가슴으로 들어마실 때는 가뜩 들어마셨지만, 이제는 준비호흡이 아니고 정식으로 단전호흡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가뜩 들어마시는 게 아니에요. 8부(八部) 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약 8부 쯤만 들어마셔. 아랫배가 1~2cm 쯤 약간 볼록해진 듯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여. 들어마셨으면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니 내쉬는데, 입으로 내뿜는 게 아니라 입은 다문 채 코로 내쉬어요.
코로 내쉬면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 차츰 홀쭉해지도록 그렇게 하면서 내쉬는 거여.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 코로 들어마시면서 아랫배가 또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하면서 마시는 거여.  8부쯤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게 또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4초나 5초쯤 들어마신 시간보다 쪼금 더 길게 내쉬는 거여.

내쉴 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화두를 생각하면서, 화두를 들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숨을 내쉴 때에 배는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단전호흡과 화두를 함께하는 가장 묘(妙)한 방법입니다.

죽비를 치세요.
(입선 入禪...)

같이 입선을 한 이 공덕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모두가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되기를 축원(祝願)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하셨습니다.
또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하셨습니다.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보배 곳, 영원히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소중한 보배. 영원한 보물. 그 보배 곳,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하셨습니다.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쳐라.(27분21초~43분2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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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〇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일불승(一佛乘) ; 산스크리트어 eka-buddha-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함.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님의 유일한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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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일상생활이 바로 정진(精進)-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 /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소신통과 대신통.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1분, 1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8) - 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에서.


(1) 약 22분.  (2) 약 6분.


(1)------------------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한데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4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이것을 마음에 얻어. 이것을 얻되, 마음에 있어서 이것을 얻는다.
그리고 응재수(應在手)라. 응하는 데에는 손으로 응(應)을 한다.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눈달, 겨울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쏟아지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그 봄바람 속에 꽃이 피어.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눈 내리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동풍이 부는데 그 동풍이 부는 속에 꽃이 피어난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졌을 때 그게 마음에 얻는다.
마음에 그러한 육진이 비추어지면 그것을 상대하게 될 때에는 손으로-글씨를 쓰게 될 때는 글씨를 쓰고,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일을 하고, 그것이 응할 때에는 손으로 그것을 응하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일신상(一身上)에는 그러려니와 우주 법계에 자연계에 있어서는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가을에는 휘황창 달이 밝고, 봄이 오면 동풍이 불고 꽃이 피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몇억만 겁(劫)을 그렇게 해 내려왔다 그말이여.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는데, 새벽이 돌아오면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이 되면 울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봄이 돌아오면 곳곳마다 산이나 들이나 집이나 골짜구니마다 울긋불긋 꽃이 피더라.

방금 조실 스님께서 녹음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을 하는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나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신 부처님이나,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역대 조사(祖師)나,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인데,
부처님이라고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고 해서 모자랄 것도 없는데, 왜 부처님은 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셨고, 우리 중생은 왜 깜깜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헤매고 있느냐?

우리가 부처님보단 우리의 본성(本性)·자성(自性) 자리에 있어서 모자라거나, 부처님이 우리 중생보다 더 나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뜻을, 내가 나를 깨닫지를 못해서 오직 그 하나 때문에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달이 법회를 열고 무슨 말을 할 말이 있느냐? 무슨 기특하고 재미있는 이 얘기 거리가 있는 것이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법상에 올라오며, 무엇을 듣기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이렇게 법보전(法寶殿)에 이렇게 모이시는 것이냐 그말이여.

왜 과거의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성현들은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동서 사방으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천 번 만 번 법문을 듣고 서울로 지방으로 법회를 법문을 들으러 다녀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냥 마찬가지여.
법문을 들을 때에는 가슴이 좀 후련하고 무엇인가 얻은 바가 있는 것 같다가, 한 시간 두 시간 지내고 하루 이틀이 지내면 도로 답답하고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공부해 나가는 그 근본 뜻을 바로 알아버리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진(精進)이요. 수도(修道)요. 공부를 해가는 것인데,
그 공부해 나가는 그 요점을 바로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행여나 무슨 좋은 말씀을 들을까?’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법문을 들을까?’ 밤낮 들어봐도 들을 때 뿐이고 공부는 조금도 나아가는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일용 생활, 우리 일상생활(日常生活)-앉고, 서고, 눕고, 밥 먹고, 옷 입고, 세수하고, 오줌 누고, 똥 누고, 걸어 다니고, 차 타고, 하는 이러한 일상생활,
일상생활을 여의고 따로 특별한 수행을 찾는다면 이것은 영원히 찾아도 깨달음에 이르기가 어려운 것이여.

여의고 그놈을 떠나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잡고,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놈을 버리고,
그놈을 떠나서 나의 자성(自性) 자리가 있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그놈을 버리고 찾겠지만, 그놈을 떠나서는 세상없이도 없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놈을 버리고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항시 마음만 급하고 마음만 바뻐.
‘내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 어떻게 하나!’
‘오늘도 이렇게 그럭저럭 하루가 지냈구나!’
‘이러한 모다 그 이러한 복잡한 일 때문에 내가 공부를 못한다.’
남편 때문에 못하고, 자식 때문에 못하고, 살림살이 때문에 못하고, 병 때문에 못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마음만 조급하다 그말이여.

마음이 조급하니까 짜증만 내고 신경질만 내고 일체 생활에 안정을 잃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평과 불만이 가뜩 차있어. 그러니 무슨 일을 한들 그 일이 제대로 되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그말이여.
기회,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기회와 경계상에 그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턱 잡어서 써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번갯불 번쩍할 때 바로 그때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바늘에다 실을 폭 뀌듯이, 그 찰나를 잘 잡아 쓸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공부하는 바른 길을 터득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선방에 3년,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그러한 기회와 경계를 여의고 따로 공부를 지어 나가려고 그러고, 그놈을 여의고 공부를 할려고 헌 사람은 아무리 애써봤자 공부에 진취가 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쪼끔 시끄러우면 파르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도망할 궁리를 하고, 경계와 기회를 피하고 도피해 가지고 따로 공부를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맞는 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장소, 모든 일이 내 마음과 내 마음에 순(順)하는, 내 마음대로 되는, 쪼끔도 내 마음을 거슬리지 아니한 그러한 곳은 저 천상에 하늘나라 천당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천당에 가면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고, 모든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기는 하지만, 거기서는 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성현들이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신 것입니다.

천당(天堂)은 좋고 기쁘고 편안한 일만 있어서 그러한 상태에서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없어.
축생(畜生)이나 지옥(地獄)은 모든 일이 괴로움만 있어서 괴로움이 지나치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우리의 근기(根機)로 그것을 이겨 나갈 수가 없어.

오직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성현들은 일부러 무상(無上)의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 대도를 성취해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사바세계에도 오셨는데,
우리는 과거의 무슨 수승한 인연이 있어서 다행히 금생에 이 사바세계에 왔습니다.

이 사바세계가 좋다고 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가 좋다는 것이여.

그런데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피하고 슬픈 일은 피하고 기쁜 일만을 찾고, 괴로운 일을 피하고 즐거운 일만을 찾고, 시끄러운 것을 피해서 조용한 것만을 찾고,
벌써 시끄러운 것을 버릴려고 할 때에 그르쳐 버렸고, 다시 편안하고 즐거운 곳을 찾을 때에 두 번째 어긋나 버리는 것입니다. 계속 어긋나고 그르치기만 해 가지고 언제 바른 길을 한 걸음이라도 갈수가 있느냐 이말이여.

공부하는-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1분, 1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21분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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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지어간다면 우리가 있는 장소는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건, 그 시간이 어느 시간이 되었건, 어떠한 일을 만나건, 어떠한 사람을 상대하건,
우리는 곳곳마다 최상의 선방(禪房)이요, 바로 부처님 회상(會上)이요, 닥치는 일마다 부처님이요, 불보살을 친견한 것이요, 선지식을 친견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모든 소리는 나를 칭찬하는 소리나,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나, 닭이 우는 소리나, 개가 짓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모든 소리는 바로 부처님의 소리요, 부처님의 법문(法門)이 될 것이며,

내가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은 저 해와 달은 말할 것도 없고 흘러가는 구름과 물, 겨울에 내리는 눈이나, 봄에 피는 꽃이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몸이 불신(佛身)이 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접촉하는 상대하게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되고, 바로 그것이 최상의 육신통(六神通)으로 되는 것입니다.

소신통(小神通)은 내일 일을 알고, 여기서 서울 일을 알고, 앞으로 다가올 10년 20년 뒷일을 알고, 여기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서울도 왔다갔다 축지법을 하고, 이러한 것은 소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조그마한 신통이라 하는 것이고,
참으로 최상의 대신통(大神通)이라 하는 것은, 부르면 대답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대간하면 한숨 자고, 이것이 바로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삿된 사람은 소신통이 대신통인 줄 착각을 하는 거고,
참으로 불법(佛法)을 이 최상승법을 옳게 인식한 사람은 바로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바로 이것이 신통 중에 최고로 크고 높은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대신통을 착각을 해 가지고 소신통을 추구한 사람은 공부해 나가다가 사견(邪見)에 빠지기가 쉽고 마군(魔軍)이의 권속으로 끌려가서 미치거나 삿된 경계에 빠지는 것이고,

소신통에 집착을 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대신통의 위대함에 눈뜬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항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고 항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겠습니까.(처음~27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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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오경(五更) ; ①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룻밤을 다섯 시기로 나누었을 때의 다섯째 부분.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이다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본성(本性), 자성(自性) ; 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원천리(不遠千里) ; 천리(千里)를 멀다고 여기지 않음.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기회(機會) ; ①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나 경우. ②겨를이나 짬.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천당(天堂) ; ①극락세계(極樂世界)인 정토(淨土). ②하늘 위에 있는 궁전.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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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인 법회. ②설법하는 모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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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4.04.30 12:57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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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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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보살선방 법문2014.04.07 11:17

§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나건,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정신을 챙겨 화두를 들고나가야 돼. / 무기공(無記空).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바른 정(定)’이라 하는 것은 밥 먹을 때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음이 없고, 종일 말하되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어야, 그래야 그것이 진짜 삼매고 바른 정이야.
‘양반 못된 것이 장터에 가서 큰소리 치고, 개 못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고 남을 멸시하고 마구잡이 막 행동을 하고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어.
**송담스님(No.524) - 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약 16분.


그리고 주력(呪力)을 하거나 기도를 하다보면 의술(醫術)을 배우지 안 했는데 침도 놓고 또 손으로 요렇게 만져서 지압 같은 것도 하고 또 무슨 약처방 같은 것도 이렇게 일러주는 그런 능력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전생(前生)에 의술을 공부를 했거나 또는 ‘내생(來生)에는 내가 의술을 통달해 가지고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리라’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세웠거나 그런 경우에 금생(今生)에 그렇게 주력을 하다보면, 기도를 하다보면 그런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걸 꼭 나쁘다고 할 것은 없으나 이 선방(禪房)에 들어와서는 자기 공부 할라고 들어왔지 여기 와서 사람들 병 고쳐 줄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만약에 그런 능력이 있어서 이사람 저사람 하다보면 많이 모여 들어가지고 이 선방이 완전히 병 치료하는 병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제(結制) 중에는 선방 내에서는 그걸 좀 삼가하시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좋고, 선방을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 그런 좋은 능력이 있으면 해제(解制)하고 적당한 자리에서 만나서 병을 치료해 주시는 것은 뭐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참선을 하는데 자꾸 이상스런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난다 하면 그 경계가 좋은 경계가 되었건, 무슨 신비한 경계가 되었건 거기에 집착(執着)을 하면 안 돼.
그것은 그대로 놔둬 버리고 정신을 딱 챙겨 가지고 화두를 계속해서 화두를 들어나가야 돼.

천하 없는 신비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따라가고 거기에 집착하면 그건 공부가 아냐.
그냥 고대로 물리치려고 하지도 말고 그대로 놔둔 채 똑바른 정신으로 화두만 떠억 들고 나가면 계속 그러면 결국은 그 경계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여.

공부하는 가운데 환상이 나타나거나, 부처님이 나타나거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거나 별별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참 경계가 아니야.

그리고 참선하고 있으면 집에서 뭔 일 일어나는 것이 나타나서 미리 알게 되고,
‘집에 누가 죽었다’하면 가서 보면 죽어갔고 있고, ‘누가 올 거다’하면-참선 중에 그것이 그냥 자연히 알아져서-가서 보면 누가 와 있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식(識)이 맑아지니까, 그 맑아진 식의 능력으로 그것이 알아지는 수도 있고 또 어떠한 잡신(雜神)이 이런 것을 와서 일러 주기도 하고 그런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식(識)이 맑아져서 알아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道)를 통한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그것은.
그게 환히 알아지니까 ‘내가 도통(道通)을 했구나!’ 그렇게 착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식(識)이 맑아지면 그런 것이 알아지는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도(道), 내가 나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成成佛)하는 것과는 영판 길이 다릅니다 그게.
그것은 공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거기에 집착하면 정말 사도(邪道)로 빠지게 되는 것이니까 집착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그걸 사용하려고 하지도 말고, 좋다는 생각도 하지도 말고-그냥 없었던 걸로 놔 버려야 합니다.
놔 버리고 자꾸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꾸준히 들고 나가면 그런 것이 있다고 해서 해로울 것도 없습니다.

화두를 놔 버리고 그런 데에 집착(執着)을 하고 그런 데에 빠져 가지고, 그런 거 아는 소리를 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정도(正道)하고는 멀어져 버리는 것이고, 잘 되어 봤자 점쟁이 같은 것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니까,
모처럼 이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러한, 말해서 초능력이라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뭣한 사람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 무척 노력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마는-그건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또 예불(禮佛)을 하러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는 밤에 정진할 때, 환히 아주 백촉짜리 불을 켜논 것처럼 환히 모든 것이 비쳐,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자기 눈에는 환히 그렇게 광명(光明)이 보이는 수가 있어.
그런 것도 역시 그런 거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머지 않아서 내가 도통하려고 이런가 보다’고 그러한 생각도 하지마. 집착(執着)하지 아니하면 아무 상관이 없어.

그것이 꼭 나쁜 것이다 좋은 것이다 말할 것도 아니고, 문제는 거기에 집착(執着)하면 그것이 나쁜 것으로 변하는 거고,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 나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여. 그렇게 아시기 바라고.

그리고 ‘정진하다 보면 코로 향내가 난다’ 그럴 수가 있습니다. 향내가 날 수도 있고.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것이 없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향내가 정상적으로 나는 향내라면 다른 사람 코에도 다 그 향내가 나야 할 텐데 자기만 느끼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그 동안에 어떻게 어떠한 공부를 해 왔느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해 왔느냐? 과거에 어떠한 업을 지었느냐? 그런 것에 따라서 그렇게 향내가 날 수도 있고, 캄캄한 밤에도 환히 모든 것이 다 보일 수도 있고, 여기서 수백 리 떨어진 데에서 하는 소리를 여기서 들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50가지의 그런 여러 가지 경계에 대해서 소상(昭詳)하게 말씀을 해 놓으신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도(道)와는 별개의 것이여.
그런 경계가 나타났을 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우리 정법을 수행해 나가는 사람의 주의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그런 신기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경계가 일어나면-그것에 집착을 했다 하면, 거기서부터 정도(正道)에서는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시기를 바라고.

삼매(三昧)와 선정(禪定)은 다른 것이냐 틀린 것이냐? 같은 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삼매(三昧)는 인도 말이고, 중국 말로는 정(定)이라 그런 것인데 같은 말이죠.

그런데 무엇이고 한 가지-책을 읽는데 거기에 열중하고 골몰해 가지고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밖에서 떠드는 소리도 안 들리고 한다면 그것은 ‘독서 삼매’가 될 것이고,
글씨를 쓰는데 열심히 글씨를 쓰다보면 자기가 글씨를 쓴다는 생각도 없고, 잘 쓸라는 생각도 없고, 밖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글씨 쓰는 데만 정신이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글씨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도 마찬가지여. 일에도 열중하다보면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거기에 집중을 하게 되면은 그것은 ‘일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참선도 ‘이뭣고’가 되었건 또는 ‘옴 마니 반메 훔’이 되었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되었건, 일심(一心)으로 하다보면 그것도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도 정에 들어가는 것인데,
정(定)에는 사(邪)의 정, 삿된 정과 바른 정이 있어. 삿된 정에 빠지면 삿된 결과가 오는 것이고 바른 정에 들어가야 바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바른 정신으로 바른 신심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해 나가야 더이상 의심이 커질라야 커질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라야 간절할 수 없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해.
그래 가지고  순일무잡해 가지고 나가면은 결국에는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직 그 길이다.

그리고 참선하다 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몰라 가지고, 그런데 그러한 상태에서도 화두에 대한 바른 의심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따악 유지가 되어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무기공(無記空)에 빠지면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여.
설사 모든 세상을 훤히 알고 신통술이 나와도 그것은 정법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무기공에 떨어진 것을 삼매에 들었다고 좋아하고 착각을 하고 남에게 자랑을 하고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정진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중이 모여서 선방에 와서 정진을 할 때에는 대중의 법도(法度)에 순응하면서 그 가운데 정진을 잘 잡도리를 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몇 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을 수가 있다. 나야말로 이 가운데서 제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가지고 있고,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별 사람들이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 아니다’하고 낮잡아보고 멸시하고 그런 것은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여.
24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았다 하더라도 생각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여.

40년 동안을 꼼짝 안 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 스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한국에서 제일 정진을 잘한 도인이라고 착각에 빠져갖고 있었어. 마곡사에 그런 스님이 있었는데, 그게 40년이 아니라 억겁 동안을 앉아서 꼼짝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법이 아니여.

‘바른 정(定)’이라 하는 것은 밥 먹을 때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음이 없고, 종일 말하되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어야, 그래야 그것이 진짜 삼매고 바른 정이야.

여러분은 일단 이 용화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였으면 용화선원의 법도에 순응하면서 여법하게 정진하되, 다른 사람에게 이만큼도 방해를 주지 아니해야 해.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공부를 안으로 착실하게 해 나가야 한다.
자기 공부 잘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법도(法度)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벌써 바른 마음가짐이 되어 있질 않거든.

그 점에 대해서 어느 선방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여. 그 선방에 가면 그 선방의 법도를 지키면서 다른 분에게는 조금도 방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공부를 내부적으로 착실하게 다져 나갈 줄 알아야 해.

그러다 보면 말이 필요가 없는 거여. 말을 많이 하고 큰소리를 치고-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났다고 큰소리 치고, 자기 이외에 누가 나만큼 공부한 사람이 없냐고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게 될 거냐 그말이여.

‘양반 못된 것이 장터에 가서 큰소리 치고, 개 못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고 남을 멸시하고 마구잡이 막 행동을 하고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어.
그 점에 대해서 각별히 명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38분54초~54분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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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식(識) ; ①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②구체적으로 인식된 내용.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소상(昭詳 분명할 소,자세할 상) ; 분명하고 자세함.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삼매(三昧) ; 정(定). [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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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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