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12.11 16:32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6호) 안수정등, 한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13)—전강선사 일대기 제6호(경술1970년 12월 9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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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소식기시문(消息幾時聞)고
나무~아미타불~
명일(明日)은 추운격(秋雲隔)이다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 별(別)‘자를 딱 붙여져 가지고 있어.
우리가 다생 겁 중에 얼마나 정법에 인연을 심어 놨길래, 같은 세계에 같은 이 몸뚱이를 얻어 가지고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서로 도반(道伴)이 되아 가지고 같이 도를 닦는 이러헌 지중헌 인연이 있는가.

허지마는 이렇게 모아진 것은 원인이 갈릴 원인이니라. 어쩔수 없이 갈려.
서로 상별(相別)이 앞에 있어서,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이여. 인연은 취산(聚散)이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취해졌다가 흩어지는 것이여.

비단 우리 이렇게 모인 우리 정법문중 도반만 두고 헌 말이 아니여.
속가의 가정도 부부가 서로 만나고, 부자가 서로 만나고, 손자 그저 고손자 그저 며느리 그저 모도가 서로 만난 인연이라는 것은 취산헐 장본(張本)이여. 흩어지고 갈려 버릴 장본인데.

사별(死別)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요녀러 것 죽어 버린 뒤에 갈린 것이란 것은 몸뚱이 보고 서로 부부지간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며느리니 몸뚱아리, 콧빼기, 눈깔, 고것 보고 알았제. 고놈 와서 받아가지고 내버린 뒤에는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무엇으로 그놈 증거해서 알 것이냐?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主人公) 그 자체는 서로 서로 보지 못헌 것이다.
그 본래면목(本來面目) 낯반대기는 저도 제 낯반대기를 모르고, 제 면목을 모르는디 어찌 하물며 아버지, 어머니, 부부지간이 알리요? 몰라!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도대체 알 길이 없는 것을 추운격이락 햐.

허니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히 볼 수 없어.
시방 이렇게 된 것이니, 그 무상허고 허망헌 몸뚱이 요까짓 것으로써서 서로 모여 있다가 서로 갈리게 된 것이 도대체 참 인생의 허망이다.

그러면 용성 스님한테 가서 이렇게 여러 그 법문 모도 답 물어서 내가 답헌 것도 있고, 또 내가 모도 다 해 논 법문을 듣고 묻는 것도 있고 헌 가운데,
지금 요리 늘 헌 법문, 저 고승집(高僧集)이고 늘 헐 때 모도 헌 법문, 그 법문 원인을 또 아침에 얘기...

그 용성 스님께 물어서 내가 또 답헌 것이 있으니깐, 그거 늘 그 전부 몇 번 들은 거지마는 오늘 아침에 인자 이놈을 이 불가불 이번 이 일대기(一代記)에는—뭐 일대기인가, 원 내 역사기인가, 거다가 넣어 달락 하니 이놈을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원인부텀 얘기를 허는 것이여. 원인도 천 번 들어도 또 듣는 것이여.

이게 우리 불가(佛家)에도 있는 법문이지마는 유가에도 있고, 저 천주교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다 있어, 이 비유가. 우리 불가에만 있는 것이면 허지만, 전부 다 있어. 공자 공문(孔門)에도 있고.

그러니 뭐, 허지만 오늘 아침에 또 이놈을 또 처음부텀 우리 불가에 갖다 맨들아 논 원인부텀 말을 허게 되니 잘 들어야겄어.


사미과(沙彌科)에, 우리 중 되면은 인자 사미과에 있는 건디, 『치문(緇門)』에.
부업계수신(夫業繫受身)은, 업으로써 이 몸을 받는 것이다. 지은 대로.
금생에 지으면 지은 놈 가지고 내생에 받아 나온다. 금생에 받은 몸뚱이는 전생에 지어서 받아 온 것이다.

여자 될 몸을 지었으니, 여자 될 업(業)을 지었으니 여자 되아 온 것이고, 남자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남자 몸 받아 온 것이고, 축생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축생 몸 받아 오고, 아귀 될 업을 지었으니 아귀 몸이 되아 오고, 지옥 업을 지었으니 지옥죄 몸을 받아 오고, 전부가 이것은 원인이 업계수신(業繫受身)이다. 업으로써 받아 온 우리 몸뚱이니라.

그러니 업이 다 똑같이 짓지를 못허고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명이면 만 명, 다 달러. 똑같이는 못 짓거든. 그러니 똑같이 못 나와.
업으로 대체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명(命)도 질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짜룹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하루 있다 죽는 사람도 있고, 한 시간에 죽는 놈도 있고, 뱃속에서 내 버리는 놈, 맨 그 업이니라.
왜 그러헌 그 차별이 있는 업을 모도 지었길래 업으로써 이 몸뚱이를 받았느니라.

미면형루(未免形累)니라. 업으로 또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업도 다 달라서 명한(命限)도 다 그렇게 고르지 못허지마는 얼굴조차 모도 생김 생김이 전체가 다 달라. 구랭이 된 놈이 있고, 그저 소 된 놈이...
똑같은 자리인디. 그 주인공 영(靈) 자리는 똑같은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똑같은 것인데, 아! 이렇게 그 짓는 업보(業報) 그놈이 달라.

그래서 얼굴이 진 놈도 있고 짜룬 놈도 있고, 큰 놈도 있고 적은 놈도 있고, 모도 못쓰게 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고, 몸뚱이라도, 사람 몸뚱이라도 그저 그만 문둥이 출추신(出醜身)도 있고, 그걸 형루(形累)락 햐.
형루를 면치 못허느니라. 똑같이 좋은 몸을 가지고 오들 못혀, 업 따문에.

품부모지유체(稟父母之遺體)로구나. 부모의, 허나 못허나 그런 몸뚱이라도 또 부모한테 가서 그 유체(遺體)를 받아.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그러헌 몸뚱이를 받아 온다 그말이여.

가중연이공성(假衆緣而共成)이로구나. 여러 인연이 또 가자(假藉)해 된다.
이 몸 하나 얻을 때 인연(因緣)이, 몇 인연이 들어? 아버지 인연이 있어, 어머니 인연이 있어, 내 혼백 그놈이 마침 적당헌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어떻게 의탁(依託)혀야 되아.

아! 이놈 그 인연이라는 것이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여.
또 그런 때 인연이 있어. 꼭 적당헌 때에 이 몸을 가서 어떻게 얻어야 되는디, 그놈이 그 인연이라는 게, 여러 가지 인연이 들어 간다. 중연(衆緣)이 아니면 이 몸을 받들 못혀. 그래서 받아 왔는데.
솔찬히 그 어려와. 이 몸뚱아리, 그 추헌 몸뚱이 이나따나 받아 오기가 쉽지 못혀. 균일치 못혀. 어렵단 말이여.

수내사대부지(雖乃四大扶持)로구나. 그러나 저러나 그 가운데에 그 몸뚱이, 한량없는 몸뚱이 가운데에 사람 몸뚱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받아 온 것이 무척 또 다행하다. 보통 문제 아니다.

받아오기는 왔다마는 상상위배(常相違背)다. 어긴다.
이놈 몸뚱이가 사대(四大) 가운데 물이 많아도—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된 몸뚱이인디 물, 또 그 화(火) 기운, 또 바람 기운, 그 땅 기운, 그 네 가지로 되았는데,
이 몸뚱이에 물, 수대(水大)만 물이 너무 많아도 습기가 많아 못쓰고, 화기가 너무 많아도 홧병 따문에 못쓰고, 그놈 그 토(土)성만 너무 많아도 비대해서 아주 그만 숭악해 메주 단지처럼 못쓰고, 바람 많아도 풍(風)이 막 들입대 풍증이 있어서 못쓰고. 아! 이놈이 모두 이런 어기는 것이 있다.

그래 가지고는 그놈의 몸뚱이는 무상(無常)헌 병이 그만 들어오기 시작할 것 같으면은 몸뚱이는 어떻게 어떻게 이리저리 받아 왔다마는, 그놈 여러 가지가 서로 어겨서 병이 모도 이놈이 몸뚱이 모도 얽히게 된다 그말이여.

조존석망(朝存夕亡)이로구나.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기도 허고, 밤에 있다가 새벽에 죽기도 허고, 이놈의 몸뚱이 생사라는 것은 누가 알 수가 있나. 참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찰나이세(刹那異世)니라. 잠깐 동안에 이 세상이 그만 죽어버린 뒷세상이 된다. 후세(後世)가 와 버려.
이 몸 가지고 있을 때에는 금생이더니 이놈 턱 내버리면 후생(後生)이 된다. 아! 이런 꼴이 있나.

변시내생(便是來生)이여, 찰나이세다. 찰나, 잠깐 동안 이 몸뚱이 그만 이별해 버리고는 내생이 오는데, 그때 가서는 인자 몸뚱이는 내던져 버렸으니 혼만, 영혼만 내생 떠억 되아 가지고 나타난다.

비여춘상효로(譬如春霜曉露)로구나. 비유컨댄 봄에 서리가 와 가지고 볕 나면 녹아 버리는 것이나 같구나. 새벽 이슬 끝에 맺혀 있는 풀 끝에 달려 있는 이슬같구나. 이 몸을 얻어 와 가지고 이 몸을 내 버린 그 무상한 것이 여차(如此)허다.
숙홀즉무(倏忽卽無)로구나. 금방 이 몸을 받아 왔다마는 금방 그만 내버리게 되는구나.
그만 그거 이것 참, 이놈을 믿다니. 요거 요까짓 것을 믿다니. 숙홀즉무다.

안수정등기능장구(岸樹井藤豈能長久)냐? 새암(샘) 언덕에 칡이 어찌 오랠 수가 있나?
‘새암 언덕에 등칠기(등나무) 줄이 하나 있는디, 그 등칠기 줄이 얼마나 오래 되겠나?’헌, 그 등칠기 줄을 가지고 인자 요거 얘기인디.

웬 사람이 탄탄대로(坦坦大路) 길을 가는데—요거 자세히 이렇게 알어야 되아—뒤에서 뭐가 쫓아온다.
돌아보니까 엄청나게 큰—지금 서울에 그 쾨코리란 놈 키우제 왜, 동물원에—그런 큰 놈이 입을 떡 벌리고 오는디, 입을 떡 벌리고 그 진(긴) 코를 가지고 쫓아오는디, 아 그놈이 그 엄청나게 큰 놈이 그 힘센 놈이 쫓아오는디, 사람이 그놈한테 안 잡혀 먹을 수가 있나.

헐 수 없이 잡혀 먹게 되아서, 잡히게 되아서 급허기는 허고 도저히 전주헐 달아날 근력도 없고,
그때 마침 보니 짚은(깊은) 못이 하나, 샘이 하나가 있는데, 몇백 질 가량 되는 샘이 있는디, 아 새암가에서 등칠기 하나가 써억 거그서 뻗어 새암으로 들어갔다.

그 새암으로 들어간 칠기를 딱! 잡고는 딱 달어 매여 있다. 달려 있다.
아! 이놈 쾨코리란 놈이, 그 미련헌 놈이 칠기를 이렇게 코로 잡아댕겨도 그까짓, 콧심이 약간 세니까 사람 하나 달려 올릴만 하지마는, 그런 꾀가 없어. 허니까,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허니, 사람이 거그 일시에 위급헌 지경을 피해서 있지마는 오래 어떻게 달려 있을 수가 있나?
팔이 그만 달려 있는 팔 힘이 차츰차츰 그만 그 적어져, 힘이 빠져 그 등칠기 줄을 오래 못 잡고 있게 될만 하다. 그 몸뚱이 달려 있으니까.

그러나 못 밑으로 보니 백 질이나 되는 놈의 못 밑에는 독사가 있고, 독룡이 있고, 그 악어가 있고. 사람 꼭 잡아먹는 것, 무서운 그런 모도 물건들이 있다 그말이여.
그놈들도 그저 사람이 달려 있으니깐 이놈들이 어서 떨어지면 먹을라고, 서로 다 따먹을라고 야단들이지.

독룡, 악어, 다 독헌 놈들이 아! 서로 잡어먹을라고 뛰고 있는데, 그 밑에 들어갈 수는 없지.
올라올라니 쾨코리란 놈이 입을 벌리고 있제, 먹을라고. 하! 이거 사람 죽는다.

그때에 마침 못가에 냉기 하나가 나 가지고 그 천년 고목이 있는데, 고목 냉기에다가서 속 빈 고목 냉기에다가 꿀을 잔뜩 실어 놨는디, 벌이란 놈이 꿀을 실어 놨는디, 꿀이 뭉텅뭉텅 떨어진다.
꿀이 떨어지되 그 방울 수가 다섯 방울이 떨어진다. 오적(五滴)이!

한 방울 먹어. 또 한 방울 먹어. 다섯 방울을 받아 먹고 나니 그 배가 불러서 기운이 새삼스럽게 나고, 그래 그만 등칠기를 더욱 붙잡을 만헌 힘도 있고. 족(足)허제.

그러나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는 나와서 그 칠기를 썰고 있어. 톱으로 썰데끼 아! 이놈을 툭툭 입으로 막 쪼사 떼고 있으니 잠시인들 있을 수가 있나.
그놈만 안 끊으면 좀 어느 지경까장 있겠는데 그놈을 썰고 있으니까 도리 없다.

“그 지경 되아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요렇게 물었어.

그것이 무엇인고?
갓없는 너른 들에 시방 사람이 가다 그랬거든.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生死曠野)에다가 비유했고, 사람이 났다가 죽었다가 하는 생사광야에다가 비유했어.

우리가 어디 그 생사가 어디 한 번인가? 한 번 나왔다 한 번 살다 죽으면 그만인가?
몇 몇억만 번을 했을까? 고걸 좀 생각해봐.

잠, 눈을 좀 뚝 뜨고 들어! 눈 지긋이 감고 자올지 말고!(처음~21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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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道門)에서 도학자(道學者)라고 해 가지고, 뭘 할라고 법문 들어!
법석(法席)에서 눈 지긋이 감고 꾸뿌덕 꾸뿌덕 허면서 자올고 있어.
어느 지경에 있는 걸 좀 알어야지. 사형 무대에서 칼로 탁! 쳐가는 지경이여 이것이.

요까짓 몸뚱이 요걸 믿고 앉어서. 그렇게 업이 중해 가지고, 무거워 가지고 무슨 도를 닦고 있으며, 법문 들어 뭣 혀.
원! 해도 너무허지. 내가 다 보고, 가만히 여그서 다 보이니까 깜박헌 거 다 안다 그말이여.

‘또 본심을 탁 뜨고 그 내 법문 듣고 고대로 똑 닦아야겄구나’하고는, 법문 딱! 듣고는 잘 이대로 똑 예불(禮佛) 젓수고, 이대로 똑 닦아 나가야사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에 가 피난했다가 내려오는 것이여. 지금 당초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다시 났다가는 큰일나니까.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다. 죽었다가 살았다가 이 중생(衆生)이, 우리 미(迷)헌 이 깨달지 못허고 이 미헌 우리가... 우리, 시방 우리여. 우리를 비유헌 거여.

전생에 어디서 또 살다 또 죽어서 금생에 왔다. 무변광야(無邊曠野)는 생사광야에 비유했고, 쾨코리는 우리를 잡으러 오는 무상살귀(無常殺鬼) 귀신에다 비유했어. 우리 뒤에 시방 이렇게 잡으러 쫓아와.
그 새암이는 삼악도 지옥이여. 지옥에 들어가면은 지옥고(地獄苦) 받는 형상이여. 나찰(羅刹) 귀신이 모도 칼로 찔러다가서 불에 집어넣고, 쇳물에 집어넣고 태우고 찔르고 헌 거다가 비유했어.
독룡 · 독사는 나찰 귀신, 지옥 귀졸(鬼卒)들한테 비유했어. 거그 빠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새암(샘) 언덕에서 등칠기(등나무)가 나서 그 지옥으로 뻗어 들어간 놈은 그건 우리 생명이여. 우리 명(命)줄.
우리가 지금 며칠이나 살란지 몇 해나 살런지, 고 등칠기 줄이 우리 명줄에 비유헌 것이여.

그 냉기(나무)에서 꿀 다섯 방울 떨어진 것이 오욕(五慾)이여. 부부지간, 아들, 돈, 명예, 여그다 비유했어.

얼마나 묘허게 비유해 놨어.
우리 인생의 우리 사는 이 고해(苦海)에 지금 살고 있는 오탁악세(五濁惡世), 악헌 이 세상에서 이렇게 험악헌 데 지금 걸려 있는 것을 그것 비유헌 것이여.
우리가 그런 악몽을 꾸고 그런 악경(惡境)에 처해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해 놓은 것인데.

딴말 아니여, 이것이! 다! 시방 이렇게 되아 있어. 누구나 막론허고 이렇게 되아 있어.

그러면 그 오욕, 다섯 가지 그 좋은... 꿀이 오직 단가! 부부지간이 좀 좋은가! 아들, 손자, 며느리, 돈, 쌀, 명예가 좀 좋은가!
요놈에 딱 얽혀져서 애착되아 가지고 도(道) 한번 닦지 못헌, 도 못 닦고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이렇게 있다 뚝 떨어져 버리고마는 우리 인생을 비유해서 헌 말이여.
얼마나, 누구 뭐 따로 헌 줄 알어, 이것이?

그러면 그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오욕에 꽉 애착된 그 경계를 한번 떼 버리고, 한번 부수어 버리고 애착이 없이 툭! 뛰어 나서 처자고 자식이고 무엇이고 그 불고(不顧)해 버리고.
정반왕궁(淨飯王宮) 모후(母后)니, 뭐, 정반왕궁 아버지니, 정반왕궁 노비 권속이니, 재산, 무슨 싹 한번 내버리고 성(城)을 넘어 설산(雪山)에 들어간 것이, 그것이 모도 애착 애욕을 때려 부수어 버리고 도 닦으러 들어간 장면.

참선(參禪) 하나 척! 해서 대도(大道)를 통해야사만 면(免)허는 것 아닌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만 생사를 면허는 것인데.
성을 넘어 가거나 말거나, 왕궁을 떠나거나 말거나 이것은 거기에는 관계없어.

그 꼭, 꿀 먹고 있을 적에 그렇게 위태로운, 매달려 있는 그 사람이 곧 우리인데.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해탈허겄느냐?”

그것이 공안(公案), 그 공안 하나 탁! 깨달라 버리면은, 생사 없는 지경을 툭! 깨버리면은 툭 뛰어 나는 경계 아닌가. 그러니 거기에 붙어 있는 공안이여, 그것이.

꽉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물으니깐.
응? 그, 공안 아니여?

그 공안에서 그래, “말키 참선허는 선객(禪客)들은 한마디씩 일러라” 용성 스님이 전국에다 그 공안을 펴 놨어.

그 등칠기 줄에 매달려 있을 적에 올라가도 쾨코리란 놈이 잡아먹고, 가만히 있어도 흰 쥐 검은 쥐가 그놈 끊고.
흰 쥐, 검은 쥐는 일월(日月)이여. 밤 가면 낮 오고, 낮 가면 밤 가고. 그 그렇게 몇 해 가다 인자 뚝 떨어지면 죽는 것 아닌가.

말키 이렇게 비유해 놨는디, 그보담도 더 위험헌 지경(地境)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얼마나 위험헌 지경인가! 이 지경이. 거그서 뭣을 헐 것인가, 생사를 두고!
이러헌 무서운 생사, 죽음을 앞두고 뭘 헐 것이냐 그말이여.

잠깐, 살인 강도가 그만 죄는 지었다 그만 붙잽혀 가지고 사형 무대로 죽으러 가는 길이 우리도 똑같어!
더 무서운 우리 사형선고(死刑宣告)여, 이것은 기한(期限)도 없다.
그건 어느 때 죽는다는 기한이나 있지마는 우리의 사형선고 기한이란, 기한도 없다.

참으로 때없이... 아주 오늘 내일이 있고, 금년 내년이... 아주 그 세월을 다 살 줄 아는구나!

딱! 달려 매여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공안이 거그 있지 않는가. 그 공안 아닌가.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는 공안이 거그 들어 있어.

그런데 아! 거그서 대체 모도 큰스님네가 다 답 안 했어?

만공 큰스님은 “꿈이니라”
그 다 이(理)와 사(事)가 딱딱 들어맞어야 되니까, 답이라는 게.

“꿈이니라. 꿈에 그런 지경이 있제, 생사야 어디 있느냐” 그 평상화(平常話)제. 이렇게 답해.
좀 잘허셨제. 답이야 아, 그 이상 더 어떻게 해. “꿈이니라. 작야몽사(昨夜夢事)니라”

또 보월 큰스님께서는 “하시(何時)에 입정(入井)가? 언제 누가 새암에 들어갔나?”
새암에 아직 안 들어간, 본래 생사 없는 경계를 답헌 것이여.

다 잘허셨제, 못했어?

고봉 스님은 거그 달려서 그대로 받는 것이다 그말이여.
“아야, 아야!”
그놈 뭔, 뚝 떨어지면 지옥 귀신이 집어 먹는 경계를 그대로 써 버렸다 그말이여.

그거 무슨,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헌 도리가 그대로 법인디,
중생의 “아이고! 대고!” “아야! 아야!” 생노병사, 중생 환화(幻化)가 개시묘체(皆是妙體)인디, 개시해탈법(皆是解脫法)인디, 뭐 어디가 걸리고 안 걸릴 것이 있나?

달인분상(達人分上)에, 깬 분상에는, 깨달은 분상에는 소도 역득(亦得)이고 개도 역득이고,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면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인디, 뭔 걸림 있어?
“아야! 아야!” 해탈경계 그대로 써버렸제. 좀 잘 일렀어!


이 법문을 들었다고, ‘밤낮 들은 법문이니깐 또 들어?’ 그런 소리 말어! 그러헌 그 푸딱진 용이심(容易心) 붙이지 말어!
그런게 모도 들은 것 또 헌다 싶어서 용이심이 나고 푸딱진 마음이 나니까, ‘그까짓 것’허는 마음이 나니까 그만 자올고 그러지.
업이 꽉 차 가지고 그놈의 업에 무량겁을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와 가지고 법석에서도 졸고 앉었지.

그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만행(萬幸)한가. 척! 집을 여의고 들어와서 이러헌 참, 떠억 그 법보선원에 들어와서 도 닦고 있는 이 지경이 얼마나 다행하고 만행헌 것이여!


자, 그 다음에 왼통 뭐 뭐 한국 혜봉 큰스님으로 훌륭헌 큰스님인데, 그 큰스님은 답을 허시되 “불불능갱작불(佛不能更作佛)이다”

아! 불(佛)이 무슨 다시 부처 되나? 본래 부처가 어떻게 부처가 또 되아? 뭔, 부처가 부처가 되아?
부처도, 본래 부처라 해도 그 패궐(敗闕)이 불소(不少)인디, 거다 또 부처 되아? 그 뭐, 거다 뭘 이를 게 있어?
본래 부처가 어디 무슨, 생사가 무슨 하관(何關)고? 뭐, 어찌 살아 나가는 도리가 무슨 소용이여.
떡! 본분불(本分佛)로 딱 대답을, 본각불(本覺佛)로 딱 대답해. 다,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용성 큰스님은 그냥 격외(格外), 격외. “표화(瓢花)가 천리출(穿籬出) 와재마전상(臥在麻田上)이니라”
바가지 그 박꽃을, 박씨를 울타리 밑에 심어 놨는디, “그 박이 나 가지고 울타리로 뀌고 울타리 밖에 나가서, 저 밖에 나가 삼밭에 박이 열어 가지고 누웠느니라”
그랬은게 그건 그대로 격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도리로 격외 딱 한마디 일러 버려.

다 초월생사여. 생사도 없어! 거그 뭐 죽고 사는 그—안 맞는다는 게 아니여! 다 잘 일르셨어.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허지마는 나는, 그 쬐끄만헌 내가, 이 용잔허고 조잔헌 그 그때 어린, 아! 내가 말이여,
“큰스님네가 다 이른 법문이 거 용 대가리를 베 버리고 배암 대가리를 이어 붙였고, 용 꼬랑댕이를 모도 베고서는 거다가 모도 딴 꼬랭이를 모도 붙였고, 발을 모도 오리발을 베 버리고 닭발을 이었고,
암만 천하없이 공안이라는 것은 딱딱 그대로 붙어 있는 공안을 그대로 찾어다가 딱 일러야 하는 것이지, 엉뚱헌 놈 갖다가 척척 일러 놔 봤던들 그것이, 아무래도 그것이 큰스님네가 다 암만 잘 일르셨지마는 아닙니다!”
이랬네 내가. 내까짓 것이 이랬단 말이여.

그때 그 법문, 시대 법문해 논 거를 내가 딱 다 했기 따문에 여그 올라와 이런 법문을 허는 거제, 없는 법을 내가 지어서 이렇게 말헐 수가 있나. 생각해 보지. 그건 절대로 못허는 법이여!
그 얼마나 내가 해 논 것이 역사적으로 전통해 왔는디, 내가 여그서 무슨 뭐 변명을 헐 것인가, 뭣헐 것인가. 그때 헌 놈인데.

“그러면 어디 영신(永信) 신수좌는 어떻게 헐텐가?” 내가 그때 영신이니깐.

그래 글쎄, 그렇게 미쳐 가지고 글쎄 옳은 견성인가 그른 견성인가, 글쎄 곡성 동리재 넘어가다가 그 호랭이가 사람 잡아먹은 그놈의 재를 내가—재는 별로 높으지 않는디, 아! 그놈의 재를 바라보고 물 건너 노디를 뛰어 가다가 그만,
“담 너머에 외 따 오니라”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는냐?”
그만 그놈이 느닷없이, 내 화두 간 곳 없이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툭! 그만 무슨 그 견성 경계가 나오는데, 참말로 그 지경을 설향수(說向誰)오. 누구한테다 말헐 꺼여.

그래 가지고는 “이때에 조주의(趙州意)를 묻거드면은...” 무자(無字)를 돌아보니까... 무자에 걸음을 노디를 뛰는디,
“이때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어떠헌 사람이 나한테 이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각하(脚下)에 녹수(綠水)는 암전거(岩前去)로구나. 내 다리 발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가는구나”

아, 이놈을 하나 해 놓고는 그날 그 재를 넘어가서 호랭이, 사람 처녀 먹은 재를 내가 넘어가서 동리산 가서, 태안사 들어가서 그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고 내가 그렇지 않아 저번 다 얘기했지. 저번에 다 헌 놈이제.


“다 아무리 큰스님네가 이렇게 일렀지마는, 거기에 옳은 공안을 이르들 못했습니다”

얼마나 내가 그 견성(見性)을 내가 그때 했다고 했으니, 옳은 견성인지 그른 견성인지 내가 견성했다고 그랬지, 언제 뭐 내 견성(見性)이 진짜로 했다는 거 아니여!

그래 가지고 혜봉 스님한테 찾아가서 탁마(琢磨)했고, 여지없이 인가 받았고.
인가를 받았는디, 그 끝에 가서 그것 참!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인데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조차 없구나”
세상에! 여기서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불사타(不似他)입니다” 아! 이러니 인가해 준다 그말이여. 인가해 주어!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인가를 해.

아니여! 절대 아니라 그말이여! 아, 그런 밝은 어른이 나를 왜 인가해 주었든고 몰라. 그것!
내가 그 뒤에사 아닌 줄을 발견했거든. 아니란 말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어졌구나. 여래선(如來禪)이라고 여래선밖에는 못되니, 여래선 경계밖에는 안되니, 어떤 게 조사선(祖師禪)이냐?” 아! 묻는디,
내가 그래, “능각(菱角)이 첨첨(尖尖)허지마는 타(他)와 같지는 않습니다”
아! 옳다고, 내가 여지없이 인가를 받았네!

그것 아니라. 거, 아닌 도리인디 ‘거기에서 시방 바로 한마디 일러라’
이것은 내가 이를 수가 없어.

학자(學者)를 위해서 안 일른 공안이 내가 무척 있어.
초당파(燒堂婆 소당파) 법문 내가 죽어도 안 이르고, 이것도 내가 안 일러 주고, 원상(圓相) 법문에 답을 했으되 그 안 일러 주고. 못 혀.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을 내가 중히 여기지 않고,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 설파치 맙소사. 이러헌 법이여. 설파(說破)해 버리면 법이 아니여.

이것도 지금 큰스님네 답헌 게 다 나왔기 따문에 헐 수 없어 내가 일렀제, 이거 안 일르는 공안이여. 나, 이른 놈은 다 기히 듣고 다 아는 거.
다 용 대가리를 떼 버리고, 왜 배암 대가리를 이어 놔? 왜 용 꼬랑댕이를 떼고, 무슨 뭔 닭 꼬랑댕이같은 걸 붙여 놔? 오리발을 베고 닭발을 붙여 놓고. 그렇게 공안이란 된 법이 아니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깨달라 보아! 그거 어떤 공안이 나왔는가 보라. 그 꼭 조사의(祖師意)에 들어맞는 게 딴 디는 안되아. 조사서래의에 꼭 들어맞어.

조사가 누구인가? 그래 거그 송(頌)에 뭐라고 나왔냐 허면, ‘구세소림자허엄(九歲少林自虛淹), 아홉 해 소림에서 허엄했다’
그 아홉 해 소림은 누가 했어? 그 다 가르쳐 논 말이여. 기여니 딴 놈 갖다가 해 논 법 없어.


나는, 자! 큰스님네가 다 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녀. ‘잘못했다’ 이 말은 “그 공안을 그대로 찾아 거다 일러야제, 된 법 없습니다”

“어떻게 허겄는가?”
“달다!”

그 뭔 말이여? ‘달다’
“달다!” 아! 꿀 먹어, 꿀 빨아 먹은게 달제. 꿀.
“달다!” 오욕에 꽉 취헌 사람이, 오욕락(五慾樂)에 꽉 취헌 사람이, 꿀 빨아 먹는 놈이 그 “달다!” 

‘달다’ 무슨 도리인가? 응? 공안이 그 어떻게 된 도리인가?(21분35초~43분12초)



(3/3)----------------

그놈 뚝 떨어지자, 제방(諸方) 벌써 선지식(善知識) 스님네가 다 벌써 이렇게 쫙 돔서—아, 수좌(首座) 집안에 잠깐이면 전 주소에 빽 돌아 버리는데—“정영신이가 ‘달다’고 일렀다”
인가 나왔네. 누가 거기에 큰스님네 누가 ‘잘못 일렀다’는 소리 없어.

“옳다!” 한목 인가여. 육대 선지식이고 그때 당시의 수백 명 도 닦는 학자들도 들으면 몰라?
“달다!”헌 데 가서 한목 인가여! 그 통해 버린 것이여.

금봉 스님은 돌아가시드락까장 “그 참말로!”
그때는 인자 ‘전강(田岡)’ 때인게, “전강, 그 ‘달다’는 법문 참, 기가 맥혀!”
아, 늘 평생에 그 “내가 합천 해인사 가서 조실로 가는 것은 똑 전강, 조실 내가 시킬라고 간다!” 이 말 다 했고. 평생 그랬지.

그 공안, 내가 용성 스님이 물어서 용성 스님 묻는 공안을 내가 답했으니까, 여다가 이놈을 넣어 놓아야 허거든, 또.
기위 이거 뭐 내 뭘러도 넣어서, 뭔 책을 하나 만든다니까 여다가 다 넣을 밖에 없어.
아직 멀었나? 어떤 거여? (한 10분, 한 15분 남았읍니다)

그놈 내가 그 답해서, 그 뭐 턱! 그만 육대 선지식한테 한목 인가 다 받아 버렸으니 다시 무슨 내가 어디 뭐 조금이라도 무슨 내가 어디 딴 디 가서, 어디 가서 다시 무슨 법 탁마허고, 뭐 인가 탁마허고 헐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인자는 나는 참말로 확철, 내 견성이 진짜 견성이요 옳은 견성이로구나!’ 딱, 그러지마는 그랬다 해서 법 탁마 안 허는 법이 없어.
또 다시 내가 안 본 선지식이 있으니깐, ‘한암 스님 한테를 갈 밖에 없구나’ 한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한암 스님으로 말허면은 한국에 참 유명한 선지식인데, 그래도 법은 그 투철치 못허다고 다 이런 평판을 듣고 있는 어른이지마는, 참 계행이 청정하고 동자삭발(童子削髮)로 들어오셔서 강(講) 한번 해서 강사가 되아 가지고 이력(履歷) 다 마치시고,
그런 출가해 가지고는 은사 스님이 석담 스님인디, 석담 스님 앞에 상좌가 되아 가지고 이력 한 벌 다 마치고서는 그러고 평안도로 들어가서, 묘향산 들어가서 희천, 그 무슨 쪼끄만헌 암자에 똑 혼자 사실 데가 들어가서, 바우 틈새기 같은 디서 좁쌀 그저 쬐금씩 뭐 이런 것 생기면 잡숫고,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을 허고 참, 기가 맥히게 토굴 살림을 허되, 그렇게 거룩허게 청정허게 헌 이가 없어.

당시에 한암 스님 유명헌 선지식이여. 그래도 그 법은 학자 가르치는 법이 훌륭허다고는 못 들었어.
그러고, 오도송을 보면은 법량(法量)을 아는디, 그 어른 오도송이 그려. 저번에 내 말씀했지마는.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종차고로(從此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내가 정지에 들어가서, 토굴에 사시니까 밥을 해 잡술라고 부섴에서 불을 부르르르 불다가 눈이 확연히 밝았다. 견성을 했다 그말이여.
종차(從此)로 고로(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이렇게 했어. 고 밑에,

약인(若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허면  암하천명불습성(岩下泉鳴不濕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을 부엌에서 때서 밥해 먹을라고 불을 불다가 눈이 활연히 밝았는데, 종차(從此)로 고로수연청(古路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생사가 없다 그말이제. 생사가 통 생사에 관계없다 이말이여.

이때에 만약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불법대의(佛法大意), 서래의를 묻거드면은 암하천명(岩下泉鳴)인디 불습성(不濕聲)이라. 바우(바위) 아래 샘이가 울었는디, 바우 아래 샘이가 젖지 않는 소리로 운다. 요렇게 새기드구만.

당최 그 견성구(見性句)가 아니여! 영, 아니여!

그래도 그래도, 그런 도인이기 따문에 참, 이름이 그렇게 나셨제.
나셨는데, 인자 거그 계시다가는 금강산으로 나와서 금강산 지장암에 계신다 해서 우리가 모도 쫓아 가서, 학자가 많이 쫓아가서 한 40명 학자가 모여 지내는디, 내가 쫓아 들어갔다. 절을 척 허고는,

“어디서 온 수좌인고? 이름이 누구인고?”
“예! 그저 소승 이름이 정영신입니다”

“허! 정영신이여. 하! 거, 많이 들었는디”
아! 듣고 말고, 그건 뭐 말할 것 없어. 한암 스님도 우리도 기맥히 듣지마는 아, 남방에 그 야단치고 돌아댕기는 정영신을 모를 리가 없거든.

처억 그 나한테 공안을 묻는데—정영신이 발써 그 육대 선지식이 한목 인가 법문 다 나왔고, 마곡 혜봉 스님한테 그 조사선, ‘어떤 게 조사선이냐?’는 거 다 대답했고, 혜월 스님한테 가 공적영지(空寂靈知) 다 대답했고,
지금 쏴악 다 들어가서, 다 벌쎄 다 소식이 그만 다 알고 계시니까, 정영신이라고 헌께 “허, 그렇겄다” 고 허더니 법을 묻는디,

어디 보통 그러헌 그 『염송(拈頌)』 같은 디 물으면은 내가 다, 그 어디서 다 언제 내가 염송을 봤어? 염송이 그 대교(大敎)인디 새파란 젊은 스물세 살 먹어서 경신년에 갔는데, 그때 경신년이 네 살인가?
아,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 무슨 답이 어떻게 알 것인가 그것을? 기중 어디 『속전등(續傳燈)』인가 어디 있다는 법문을 묻는데, 그 처음 들었지, 누가 알았나?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한디 바리때를 전헐 수가 없으니 대중은 어떻게 했으면 바리때를 받겠느냐?’ 바리때, 그 바리때가 인가니까 그때는. ‘어떻게 일렀으면 인가를 받겠느냐?’ 이런 법문이 있어.
그래, 그런 공안이 있으니 “그 영신(永信)이 신수좌(信首座), 그놈 한마디 이르게”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고 헌 디도 바리때는 전헐 수가 없닥 했고, 어떻게 그러면 일러야 바리때를 받겄느냐? 이렇게 물은 공안이 있으니 거, 답하소”
문제가 있나! 어, 그런 데가 무슨 문제가 있냔 말이여!

아! 그런 데가 걸리면은 뭔 놈의 그 ‘달다!’ ‘달다!’ 답헌...
그 꿀 딱! 먹고 있을 때 ‘달다!’ 그 답 나왔지. 그 이 답이 그렇게 공문에도 있고, 석문(釋門) 우리 부처님 석문에도 우리 불가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천주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장자교에도 있고, 다 있대야!
다 있어 답이 나왔는디, 천 답 만 답이 나왔어도 ‘달다!’ 답은 없어. 그러면은 ‘달다같이 그대로 그만 그 나온 답이란 건 없다’ 그때 당시에 내가 답해 논 뒤에 그런 논평이 다 있었어.

아, 그런 답, 거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 한 디는 인가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답을 해사 인가를 받겠느냐?’ 그 답이 당시에 칠백 명이 그렇게 수천 답을 했어도 인가 안 했어. 인가 못 받았어. 그러니 그 공안이 기가 맥힌 공안이여.

그러면 거가서 하나가 인가 받은 공안이 있는디, 인가 받은 공안 답이 딱 붙어 있어.
그러니 딱! 당신이 알고 묻는데 응, 어쩔 것이여?

당장 묻자, 대답을 처커덕 헌게—오히려 더 밝게 했네, 거그 문답보담. 똑, 문답이 더 밝아!
그놈 또 내가 안 일러 주제. 어떻게 했다는 것 못 혀. 내가 답해서 인가 받았단 말만 하지, 뭔 어떻게 답헌 건 내가 안 혀.

물팍을 탁! 치면서 “참! 듣든 말과 같구나! 남방에 정영신이라고, 듣든 것과 같구나!” 그만 그대로 쾌허를 혀.
인자 그래 놨으니 다시 무슨 일이 있나? 일 없어.

그리 허고 그해 여름 그만 거그서 한암 스님 모시고 그해 여름을 떠억 지나고 인자 가을에는—자! 다 보았으니 선지식 스님은 내가 다 인자 한암 스님까장 다 찾아뵙고 내가 탁마 다 했고, 인가 다 받았으니 이제는 만공 큰스님을 찾아갈 밖에 없구나. 인자 만공 큰스님을 찾아 나오는 판이여.

그동안에 한암 스님한테 지낸 것도 다 아시고—내가 인자 만공 큰스님께 처음에 그 도 닦아서 거그서 인자 도 닦고, 두 철만에 닦고는 그러고는 인자 하직허고 나갔었는디 그 안에는 한번도 온 예가 없거든.

만공 큰스님은 정영신이가 발써 거그서 두 철만에 나가더니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로, 혜월 스님한테로, 제산 스님한테로, 서울 용성 스님한테로, 한암 스님한테로 다 발써 지내서 인가 다 받고 내려온다 소문을 다 듣고 앉어 계셔.

허어! 그래 척 들어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가서 절을 척—그전에 늘 모시고 있던 큰스님인께 가서 척 앞에 가서는 대번에 그래 절을 척 허니,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인고?”
그래 다시 턱 일어나 절을 처억 했지. 좀 잘했나! 참, 기가 맥히지!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헌게, “심마물이 임마래냐?” 절을 했는데, 또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떡 했다 그말이여.

허니까, 또 세 번 “심마물 임마래냐?”
절헌 것은 본체만체허고, 세 번을 묻는다 그말이여.

세 번만에는 주먹을 그냥 꽉! 들어 댔단 말이여, 이렇게. 아!
“허어! 실패로고! 갱유야행인(更有夜行人)이냐, 누가 다시 밤 사람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

아! 그러시더니 영, 그만.
“허! 그동안에 네가 왜 그렇게 분다히 돌아댕기고 야단치고 댕기느냐? 뭣 따문에?” 방맹이를 처내리는디, ‘공연히 나를 꺾을라고 그러신다’ 이 곧이 하나 안 듣켜.
그 망하는 것이여. 큰스님이 옳게 봐 가지고 학자를 다루는데 거그서 믿지 않고 제대로 뿌지러 나가면 그놈 아주 뒈진 것이여. 창자도 못쓴 것이여.

거그서 그만 세 번째.
절 한번 떡 했지. 또 “심마물이냐?” 절 다시 했지. 거까장은 더 헐 수 없는 것이여.

또 “심마물고?” 세 번 묻는디, 주먹을 척!—이것이 죽었다 그말이여.
응, 이것이 말 배때기 바로 들어가고, 나귀 배때기 바로 들어간 것이여!

눈 밝은 학자, 바로 들어! 내 공부헌 학자들은 바로 들으란 말이여!
그놈의 짓을 왜 했냔 말이여, 이거 왜? 저 죽는 놈의 응, 제 모가지 친 거여 그게.

다 했제? 녹음 넣기 위해서... 그렇지마는 이 법문을 들어야 허는 것입니다.

대중 다 법문 듣니라고 애썼소마는, 꼭 들어야 헐 것 아닌가!
꼭 들을 것이 무엇인고? 꼭 듣고 믿어서 헐 것이 무엇인가? 이 법 밖에 또 있어? 부탁합니다.(43분13초~60분28초) (일대기 6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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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조상별후~’ ; 『청허당집(淸虛堂集)』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참고.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장본(張本 어떤 일을 벌이다 장/근본·뿌리 본) ; ①어떤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되는 근원(根源). ②장본인(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낯반대기 ; 낯바대기('낯—눈·코·입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낯판대기.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명한(命限) ; 목숨의 한도.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질다 ; ‘길다’의 사투리.
*짜룹다 ; ‘짧다’의 사투리.
*형루(形累 형상·모양·몸 형/묶다·괴롭히다·근심 루) ; 형(形)은 중생의 형태, 루(累)는 거기에 따르는 고달픈 삶을 말한다. 중생의 몸이 전생의 업에 묶여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므로 ‘형루(形累)’라고 한다.
*유체(遺體 남길 유/몸 체) ; ①’부모가 남겨 놓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이르는 말이다. ②‘시체(屍體)’를 달리 이르는 말.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몸뚱이 이나따나 ; 몸뚱이 이것이나마.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뒷세상 ; 내세(來世).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
*후생(後生) ; 내생(內生).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새암 ; ‘샘, 우물’의 사투리.
*등칠기 ; 등칡(등藤나무). ‘칠기’는 ‘칡’의 사투리.
*탄탄대로(坦坦大路 평탄할·평평할 탄/큰 대/길 로) ; ①험하거나 가파른 곳이 없이 넓고 평평하게[坦坦] 큰길[大路]. ②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순탄한 장래를 이르는 말.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족하다(足-- 충족하다·가득 참 족)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갓없다 ; ‘가없다(끝이 없다)’의 옛말.
*생사광야(生死曠野) ; 생사의 넓은 들판.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를 광야(曠野)에 비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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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무변광야(無邊曠野) ; 끝없이 넓은 들판.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귀졸(鬼卒) ; 염라국(閻羅國 저승)에 살면서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아 죄인을 다루는 옥졸. 염라졸(閻羅卒), 염마졸(閻魔卒), 염라인(閻羅人)이라고도 한다.
*명줄(命-) ; ‘목숨의 길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佛道)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지경(地境 땅·장소·처해 있는 형편 지/지경·경계·경우·상태·장소·처지 경) ; ‘어떠한 처지’나 ‘형편(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 ‘정도(程度)’의 뜻을 나타내는 말.
*사형선고(死刑宣告 죽을 사/형벌 형/밝힐 선/알릴 고) ; 공판(公判)을 행하는 법정(法廷)에서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 내용을 알리는 일.
*기한(期限 때·기간·기한 기/한정 한) ; 미리 일정한 한도(限度)로 정해 놓은 시기(時期).
*때없이 ; 정해진 시간이 없이 아무때나.
*이(理) ; ① 본체. 본성. 원리. ②진리.
*사(事) ; ①현상. 차별 현상. 사물. 대상. 사태. ②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파악된 대상. 직관으로 파악된 대상.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이다.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이다.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묘체(妙體) ; 묘한 진리의 체(體).
*해탈법(解脫法) ; 해탈의 법. 해탈에 이르는 방법. 번뇌에 묶이는 것에서 해방시켜, 미혹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함.
*달인(達人) ; 진리나 이치에 통달(通達)한 사람[人]. 불법의 도리에 통달한 사람. 깨달은 사람. 달자(達者)와 같은 뜻.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 ; ‘ 흐름을 따라서 성품(性品) 인득(認得) 하면, 성품을  버리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을 것이다
『직지(直指)』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節) (白雲和尙 抄錄 |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참고] 송담스님(No 165) - 82 3 첫째 일요법회(82.03.07)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
마음이 경계에 따라 굴르는데, 마음이 모든 밖에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따라서 일어나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 마음 굴르는 곳에  능히 그윽하다. 깊숙하다. 유수(幽邃)하다.
마음은 분명히 경계 따라서 일어납니다. 마음 자체에 성인이 아니라 경계에 따라서 일어나는데,  경계에 따라서 굴르는 곳마다  능히 유현(幽玄)하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인득(認得)하면, 우리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고 경계에  흐름 따라가서 같이  경계와 같이 휩쓸려서 넘어가는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참선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경계에 따라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난다 하드라도,  생각에 따라가지 말고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나가면 아무리 경계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경계가 나를 끌어갈 수가 없어.
바로  경계로 인해서 나는 나의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는 해탈경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5535~606)
*용이심(容易心 담다·받아들이다·쉽다 용/쉬울 이/마음 심) ; 어렵지 않고 매우 쉽다고 생각함. 경솔한 마음. 등한한 마음.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하관(何關) ; 무슨 관계.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용잔하다(庸孱-- 보통·어리석다 용/나약할 잔) ; 못생기고 연약하다.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
*노디(노지)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초당파 법문 ; 소당파(燒堂婆) 법문.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45~47.
만공 스님 당시 각 회상(會上)에서 논란된 바 있는 ‘소당파(燒堂婆)’라고 하는 공안이 있는데, 어떤 암주(庵主)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 노파 한 분이 그 스님을 20년간 양식을 정성껏 대어드렸다.
20년이 다된 어느 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시험해 보려고 자기의 예쁜 딸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네가 가서 그 스님을 꼭 껴안고, <스님!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아라” 하였다.

딸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하였더니 그 암주가 답하기를, “고목이 찬바위에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枯木倚寒岩 三冬無暖氣)”라고 하였다.
딸은 그대로 어머니께 전했다.  노파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암주의 패궐(敗闕)을 알아차리고 토굴로 가서 “내가 저런 속한(俗漢)이한테 20년간 양식을 대었구나!” 하고는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태워버렸다.

어째서 그 노파는 그렇게 청정하게 지내온 암주를 속한이라고 했을까?  암주는 어째서 속한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겠는가, 이 무슨 연고인가?  이것이 공안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그 당시 큰스님들께서 모두 한마디씩 하셨지만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고 몇 개만 적어보면,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직접 경계를 쓰겠다.” “배필이 되어 살겠다.” “할을 하겠다.” “방을 쓰겠다.” 등의 답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안에는 ‘할’도 ‘방’도 소용없는 것이다. ‘방’ 내릴 때 벌써 속인이 되어버린 것이고, ‘할(喝)’ 할 때 계행은 파한 것이다.  위에 적은 어떤 답도 속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대승계는 부처님께서도 범하지 않고서는 설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공안이 대승계를 판단하는 공안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답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며 찾다가는 벌써 파계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함부로 여기에 대해서 입을 열 수가 있을까?  이러한 공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서야 어찌 중생에게 대승계를 함부로 설하겠는가?

큰스님네께서 이르신 답이 많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아닙니다.” 라고만 하여 왔다.  여러 번 답을 이르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답할 것이 따로 있지, 이와 같은 공안에 함부로 답을 할 것인가.  미래 학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끝내 답을 이르지 않았다.
금봉 스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 일러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일러 드리지 않았다.  지금은 금봉 스님마저 돌아가셨으니 누구에게 일러 볼 것인가, 죽어 황천에 가서 염라대왕에게나 일러볼까?
공부하는 학자들이여!  확연(廓然)한 뒤에 한 번 찾아오면 그때는 산승이 더불어 탁마하리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3/3)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동자삭발(童子削髮) ; 어릴 때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 동진출가(童眞出家)와 같은 뜻.
*이력(履歷 밟을·행할·겪을 이/지낼 력) ; ①지금까지 거쳐[履]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來歷). ②어떤 일을 오랫동안 또는 여러 번 겪으면서 몸에 배게 된 태도나 버릇. ③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 ; ‘가는 풀로 옷을 하고 나무 열매로 음식을 삼다’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게송)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 ; 한암 스님 오도송.
*정지 ; ‘부엌’의 사투리.
*부섴 ; ①’아궁이’의 사투리. ②’부엌’의 사투리.
*염송(拈頌) ;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36권. 명(明)의 원극 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 혜능(慧能) 문하 10세부터 20세까지, 불법(佛法)을 계속 이어온 선승(禪僧)들의 계보와 행적, 법어(法語), 문답 등을 정리한 저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물팍 ; 무르팍. ‘무릎’의 사투리.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 ;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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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7.12.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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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참선을 하면 생로병사, 흥망성쇠가 두려울 것이 없고, 그것들이 전부 내가 참나를 깨닫게 한 좋은 수도장, 법문, 선지식이다 / (게송)백계천방지위신~.

이 세상에 몸을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살면 팔구십, 혹 백살 넘은 사람도 있으나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이 돌아온다 해도 겁날 것이 없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다고 해봤자 겁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 다행이고, 설사 확철대오를 못했다 하더라도 ‘이뭣고?’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떠억 ‘이뭣고?’ 이 한마디를 열심히 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두려울 것도 없고,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온 세계가 전쟁이 일어나서 불바다가 된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어.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이 몸뚱이를 가진 사람은 결국은 죽음을 면할 수 없으나,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생로병사, 성주괴공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이 전부 내가 참나를 깨닫게 한 좋은 수도장이요, 법문이요, 선지식(善知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787)—2017년 동안거 결제 및 용화선원 중창불사 낙성식(17.12.2)

(1) 약 21분. (2) 약 9분.

(1)------------------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요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요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다.
인생이 오래 살아봤자 백년인데, 그 백년이라고 한 것이 금방 지나가버리고 잠깐 동안에 지나가 버린다 그말이여.
막파광음(莫把光陰)을 당등한(當等閒)이다. 그러니 시간을 절대로 그럭저럭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 것이다.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만약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서 절절매면서 고문을 받지 않을라거든,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다. 바로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철저히 참(參)하야 뚫을지니다.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백년 살기가 어려운데 그래봤자 그 백년이라는 세월이 잠깐, 뭐 하는 것 없이 지나가 버린 것이여.

그러니 특히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의지해서 참나를 깨닫는 수행하는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정말 시간이 1분 1초, 하루 이틀, 시간 지내가는 것을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철저하게 한 생각, 두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입으로 맛을 보거나, 육체를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그때 그때 바로 거기에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무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사람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1분 1초를, 한 생각 한 생각을 놓치지 말고, 거기에 즉(卽)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 가는 사람이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활구참선을 철저하게 해서 결정코 이 몸 이렇게 살아 있을 때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돌이킴으로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한 달 두 달을 그렇게 살고, 앞으로 석 달 동안 삼동(三冬) 결제를 하는데, 석 달 동안 어찌 보면 긴 시간이지만 금방 내년 정월 보름날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안에 석 달 동안을 어떻게 지내느냐? 어떻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본참공안을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느냐?

각자 그것을 철저히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제대로 발심(發心)한 사람이요, 제대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요.
1분 1초를 그럭저럭 지내면 하루 이틀이 그럭저럭 지내가게 되고, 하루 이틀이 그럭저럭 지내가는 사람은 한 달, 두 달도 금방 지내가고,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면 백년을 산다고 해봤자 금방 죽음의 문에 도달하고마는 것이여.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문초(問招)를 받고 고문을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몸을 받아 났을 때, 정법(正法)을 만났을 때 철저하게 한 생각을 단속할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염라대왕 앞에서 겁날 것이 없을 것이여.
우리는 언젠가는 금방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마는 하루하루를, 1분 1초를,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만 하면 염라대왕 앞에 가서 겁날 것이 없을 것이여.

이 몸뚱이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살아봤자 백년 이쪽저쪽에 다 몸을 버리고 죽어 가는데, 죽음을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는 없는데, 죽음을 맞이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끌려가서 그때 가서 후회하고 한탄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 호흡할 때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살면 죽음이 돌아와도 마지막 숨 끊어질 때까지 ‘이뭣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더라도 그 앞에서도 ‘이뭣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네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느냐?” 반드시 질문을 하고 고문을 할텐데,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뭣 했느냐?” 물어 보면, 어떤 스님은 “놀고먹지는 안 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한다고 그럽니다.

“놀고먹지 않으면 무엇을 했느냐?”
“‘이뭣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뭣고?’가 되느냐?”
“지금도 ‘이뭣고?’ 하고 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끌려가봤자 겁이 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몸을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살면 팔구십, 혹 백살 넘은 사람도 있으나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이 돌아온다 해도 겁날 것이 없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다고 해봤자 겁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 다행이고, 설사 확철대오를 못했다 하더라도 ‘이뭣고?’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떠억 ‘이뭣고?’
이 한마디를 열심히 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두려울 것도 없고,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온 세계가 전쟁이 일어나서 불바다가 된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어.

마지막 숨 끊어질 때까지도 ‘이뭣고?’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가 있는데,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열심히 한 사람은 성주괴공이 바로 있는 온 세계가 우리의 도 닦을 수도장(修道場)이고, 이 몸뚱이가 별로 결국 생로병사를 면할 수 없으나 생로병사 그 1초 1초가 참나를 찾는 수행장이요,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코로 냄새 맡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끼는 이 모든 것이 그 찰라찰라가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이 되고마는 것이여.

그러니 어피차 온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이 몸뚱이를 받아난 사람은 생로병사를 면할 수는 없으나, 성주괴공이 있는 온 세계는 우리가 도 닦을 도장이고, 생로병사가 있는 이 육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도(修道)해서 참나를 깨닫는 이 중요한 몸뚱이여.

이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이 몸뚱이를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고 그래봤자 결국은 늙으면은 병나고, 병나면 죽게 되는데, 염라대왕 앞에서 “니가 살아 있을 때 뭣했냐?”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돈을 벌어놨다고 부자라고 해서 염라대왕이 알아주지도 않고, 높은 벼슬을 했다고 해도 염라대왕 앞에 내놔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겁없이 떳떳하게 내놓을 것은 ‘이뭣고?’뿐입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니가 살아 생전에 뭣했느냐?”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할 수가 없고, 이 몸뚱이를 타고난 사람은 생로병사를 면할 도리는 없습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몸뚱이를 가진 이상은 경우에 따라서 병이 날 수도 있고, 병이 나면 괴로울 수도 있으나 그 찰나찰나가 내가 ‘이뭣고?’해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발판이요, 좋은 기회요, 좋은 수도장이요, 법문(法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여러 도반들께 내가 구십 세가 되도록 믿고 의지하고 살아 온 그 요긴한 대목을 여러분께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이 몸뚱이를 가진 사람은 결국은 죽음을 면할 수 없으나,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생로병사, 성주괴공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이 전부 내가 참나를 깨닫게 한 좋은 수도장이요, 법문이요, 선지식(善知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읊은, 인생이 오래 살아봤자 백년 사는데, 잠깐 지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머지않아서 곧 백년 한(限)이 차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소중히 알아야 하는 것이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말고, 잊어버렸다고 해도 금방 돌이켜서 ‘이뭣고?’

이것이 염라대왕 앞에 가서 떳떳하게—“니가 살아 있을 때 뭣을 했느냐?” 염라대왕은 돈 많이 번 사람, 권리가 높은 사람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염라대왕 앞에 떳떳하게 내놓을 것은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를 항상 챙기고 또 챙기고, 속이 상할 때도 그 속상한 것을 생각하면 점점 속이 상하는 거고, 괴로울 때도 괴로운 것만 생각하면 점점 괴로운 일 면할 길이 없는 것이여.
‘이뭣고?’ 천하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한마디는 이것이 주문(呪文)도 아니고, 간단한 한마디 의심(疑心)이지마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는 요긴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판치생모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자기가 받은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챙기고 또 챙겨서 나중엔 챙기지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천지가 무너진들 걱정할 것도 없고, 설사 일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겁이 날 것이 없습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는 여러 도반들은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을 할 것을 부탁을 하면서 오늘 정유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니 내가 금년 겨울을 넘길런지, 사주 본 사람은 금년엔 내가 죽으리라고 그러는데, 죽고 사는 것은 내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여러 도반들에게 이런 간곡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나는 대단히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열심히 정진을 하겠다고 마음으로 결심한 분을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처음~20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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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기(佛紀) 2561년 정유년 음력 10월 보름날 결제날인데, 동안거 결제날입니다.
결제날을 의해서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 말씀을 이대로 끝나고, 오늘이 용화사 중창불사(重創佛事) 낙성식(落成式)을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능파 스님—능파 스님은 전강 조실 스님 상좌(上佐)고, 나와 사형(師兄) 사제지간(師弟之間)인데 일생 동안을 잘 수행을 하고 살아오다가 오늘이 사후 5재날입니다. 능파 스님을 위해서 오늘 5재 법요식을 하니 여러분들도 간곡한 마음으로 5재의 법요식에 경건한 마음으로 5재를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용화사 중창불사 낙성식이 있으니, 앞으로 사진을 찍게 되니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사진 다 함께 찍어주시길 부탁을 합니다.


백계천방지위신(百計千方只爲身)이요 부지신시진중진(不知身是塵中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하라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계천방지위신(百計千方只爲身)이요. 백 가지 계획과 천 가지 방법이 인생이 살아가면서 다못 이 몸뚱이를 위해서 먹고 입고, 돈도 벌고 일도 하고 그런데, 이 몸뚱이를 엄격히 돌이켜보면은 티끌 가운데 티끌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티끌이 모여가지고 이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는데, 분석을 해보면 머리끝에로부터서 발톱 끄터리까지 티끌이 모여가지고 거기에 다맛 혈관이 통해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나 분석을 해보면 티끌이 모인 뭉텅이에 지내지 못해.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여. 머리에는 오십 세, 육십 세가 되면은 흰머리가 나는데, 그 흰머리 아무 말이 없지마는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여, 염라대왕이 ‘얼마 안 있으면은 너를 데리러 갈테니 그리 알아라’고 하는 염라대왕이 보내온 소식이다 그말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향엄 선사가 남겨 놓으신 게송(偈頌)인데,
이 몸뚱이를 받아 나서 온갖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하고 사업도 하고 일을 하는데, 그래봤자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 네 가지의 그 여러 가지 재료가 모여가지고 이 몸뚱이를 형성하고 있으나,

오십 살, 육십 세 되다보면 귀 위로 뒤로 흰머리가 하나씩 둘씩 나는데,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고 염라대왕 황천에서 ‘너를 언젠가는 데리러 갈테니 정신을 차려라’하는 황천에서 보내온 소식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흰머리가 나기 전부터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도록 단속을 잘해 놓으면 흰머리가 나와서 그때 가서 걱정하고 겁낼 필요가 없는 거여.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이 독로해서 항상 참나를 찾는 이 공부를 등한히 아니한 사람은 흰머리가 나도 걱정할 것 없고, 설사 죽음을 맞이해서 숨이 가빠진다 하더라도 그때도 의단이 독로하도록 화두를 들면 숨이 끊어진들 걱정할 것이 없어.

염라대왕 앞에 가서 끌려가 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 물어봤을 때 겁날 것이 없어.
“‘이뭣고?’하다 왔습니다”

“이뭣고가 무엇이냐?”
“이 몸뚱이 끌고다니고 오늘 여기 대왕 앞에 왔으나 나는 ‘이뭣고?’를 하니 겁날 것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나를 알아서 천당에를 보내던지, 지옥에를 보내던지, 축생으로 보내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하도록 보내던지 염라대왕이 알아서 하십시요”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겁이 안 나도록 하려면 이렇게 살아 있을 때 단전호흡 하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시고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입으로 다하지 못한 말씀을 이 주장자(拄杖子)에게 맡기고 내려가겠습니다.(20분30초~29분18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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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년지시잠시간~’ ; [한가로운 도인의 길—나옹화상법어집](김달진 역주,세계사) p185에 있는 ‘경세(警世 : 세상을 경계함)’ 참고.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절절매다 ; ①어찌할 줄 몰라서 정신을 못 차리다. ②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눌리어 기를 펴지 못하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참(參)하다 ; 참구(參究)하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版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문초(問招 물을 문/부를·결박할 초) ; 물어보기[問] 위하여 불러옴[招]. 죄나 잘못을 따져 묻거나 심문(審問 자세히 따져 물음)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어피차 ; 어차피(於此彼).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귀결(歸結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그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되는 바.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귀결되는 바.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수행(修行 닦을 수/행할 행) ; ①궁극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것. 행하는 것. ②오로지 한 생각에만 집중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수도(修道) ;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함.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주문(呪文) ; ①어떤 바람이나 원망을 실현시킨다고 믿으며 외는 글귀. ②다라니(陀羅尼)의 글.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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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佛紀) ; 불가(佛家)에서 쓰는 연기(年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다.
*중창(重創 거듭할 중/만들 창)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낙성식(落成式 준공할 낙/이룰 성/의식 식) ; 건축물이 완성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법형(法兄)이라고도 한다.
*사제(師弟) ; ①한 스승의 제자로서 자기보다 나중에 계(戒)를 받은 스님을 일컫는 말. 법제(法弟), 제제자(弟弟子)라고도 한다. ②스승과 제자. 사자(師資)와 같은 말이다.
*(게송) ‘백계천방지위신~’ ; 『곤산잡영(崑山雜詠)』에 있는 충막(沖邈) 스님의 ‘취미산거시(翠微山居詩)‘ 25수(二十五首) 중에서 열 번째 게송 참고.
〇百計千般只爲身 不知身是冢中塵 莫欺白髮無言語 此是黃泉寄信人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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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11.27 08:27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5호) 어묵동정, 경허스님 오도송 점검.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1/2)----------------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나무~아미타불~
낙화승선정(落花僧禪靜)이다  문자시조박(文字是糟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중이 되아 가지고 경(經)을 한 40년 동안 읽었다. 그 경, 부처님 그 49년 설법해 논 그 경을 한 40년 동안을 참 쉴 새 없이, 눈코 한번 뜰 새 없이 경만 읽었다.
읽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 글만 밤낮 읽고 보니 경서(經書)만 읽고 보니, 내가 해야 헐 것인디—도 닦으란 말이고, 저 깨달으란 말인디, 어찌 저는 깨닫지 못허고 도는 깨달지 못허고 그 부처님 일생에 그 도 닦는 문서만 가지고 밤낮 읽고 있으니, 거 참 어리석다’

여간 그 어리석은 일이 아니거든. 어찌 40년 동안을 글만 읽고 있단 말이냐. 경만 읽고 있단 말인가.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로구나. 한 베개를 베고 그 잠 곤(困)허게 올 때에 객몽(客夢)이여.
객(客)으로 돌아댕기다가 어디 베개 베고 잘 때가 있나. 다행히 그 객이 어디 잠자리 하나 좋은 자리 얻어 만나서 그 곤헌 객몽을 꾸는디, 그 객이라는 것이 그 인자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라는 것은 한 베개[一枕] 객(客)의 잔몽(殘夢)이다.

객의 쇠잔(衰殘)헌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방 다 일침객잔몽이여. 한 베개 베고, 객의 잔몽을 꾸고 있어.
우리가 객 아닌가. 어디가, 우리가 우리 고향을 가 봤는가? 우리가 본고향(本故鄕) 한번 가 봤어?

고향은 아득허니 미(迷)해 버리고 지금 이렇게 삼악도(三惡途)에 도니, 삼악도에 돌고 있다가 지금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와서, 요까짓 놈의 사대(四大)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것이 내 보배라고.
요게 내 보배고, 요게 참말로 내 몸뚱이여? 내 본래 몸뚱이여?

어림도 없다. 내 본집에, 내 본고향에, 내 본래 몸뚱이라는 건 꿈에도 아니다. 속지 말어라!
요까짓 놈의 이 더러운 사대추신(四大醜身)을 가지고 내 몸이라고 허느냐? 객잔몽이다. 객의 잔몽(殘夢) 꾸고 있는 것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공중에 한번 날라간 새와 같으느니라. 우리가 지금 날라간 새여. 비조(飛鳥)여. 어디 쉬도 못헌 새여.

다행히도 화락승선정(花落僧禪靜)이로구나. 어찌 다행히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척 만났다. 정법 만난 것이 천하에 다행허다! 만고(萬古)에 경행(慶幸)허니라.

어디가 정법이 있느냐? 참 정법 만나기 어렵다.
까딱허면 사견(邪見)에 꺼꾸러져서, 내가 사견종자(邪見種子)가 되아 가지고는 사견종자를 안 심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사견에 꺼꾸러지고 사도(邪道)에 엎어질 것 같으면은 나만 엎어지고 나만 꺼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체 사람을 다 끌고 들어감서 누겁(累劫)을 그놈의 인연을 지어 주는 것이니, 왜 그러한 허망헌 농사를 지어 주며, 왜 그런 헛된 사도를 이루어 줄 것이냐. 그 삿된 도를 자꾸 전통해 줄 것이냐.
우리 중생을 점점 점점 더 악몽을 꾸게 맨들고, 악견(惡見)으로 들어가게 맨들고, 삼악도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냐!

어쨌든지 그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찾고. 그와 같은 그 정법으로 사종(邪宗)을 버려 버리고 내 믿었던 그 과거 잘못 찾았던 사종을 턱 버려 버리고 귀정(歸正)허는 것, 정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무여시사(無如是事)다. 이와 같은 사종에 엎어지지 말고, 사종에 꺼꾸러지지 말고, 사종에 인연 맺어 두지 말아라!

만약 거다가 인연을 두고 그 사종(邪宗) 인연을 떼지 못헐 때, 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허도록 내가 똑 그리 돌아오고, 그 사연(邪緣)이 자꾸 끌고 돌아오는 법이니,
정법이 있는 다음에는 꼭 사법(邪法)이 있어 가지고는 정법을 사법이 자꾸 치는 법이다. 고것이 마장(魔障)이다. 정법을 때려 치는 마업(魔業)이니라.

학자(學者)는 불가불신(不可不愼)이냐. 학자는 어찌 가히 삼가치 않을까보냐.
여까지 올라온 송구(頌句), 오늘 아침에 밝히고.


오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우리 부처님이 도(道) 깨달은 납월팔일인디, 납월팔일 아침에 우리 부처님 도 깨달은 역사를 말씀을 해야 옳을턴디.
오늘은 납월팔일이기 따문에 참, 성도재(成道齋)여. 성도재인디, 오늘 오후 오늘 아마도 12시에 시작하면 한 2시경까지 또 법문이 있겠으니 그때에 성도 법문은 헐 요량하고.

저번에 뭐 일대기에 가서, 저 용성 스님 회상(會上)에 가서 용성 스님께 제일귀(第一句) 문답해서 제일귀 문답 마치고, 그 다음에 말후구(末後句) 문답 마치고. 거기에 또 문답이 있거든.
저번에 그걸 내가 안 했구만. ‘한암 스님한테 간다’는 이렇게까장만 하고는 그 용성 스님께 마지막 문답(問答) 안 했어.

고 문답을 마자 해야지. 그 내 기이(旣已) 과거에 공부헌 역사기 따문에 조꼬만헌 것이라도 빼놓을 수가 없고. 쪼옥 역사라는 것이 꼭 그것은 그대로 똑 해놓아야 허는 게 역사니까.
조끔이라도 거기에 위조가 있다면은 그 미래 학자한테 거짓말로 속여 놓은 거 아닌가? 그 죄를 어떻게 헐 텐가. 죄보담도 정법문중에서 어찌 그렇게 꾸며대는 말이 어디 있을 건가?


내가 거기에는, 인자 용성 큰스님께 묻는 말이여. 내가 들은 법문이거든. 과거에!
용성 큰스님께서—만공 스님이 서울을 올라오셨는디.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오셔서 계시는데,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그랬거든.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것입니까’ 어묵동정(語默動靜), 말씀 어(語)자, 어묵 묵(默)이라는 건 말 없는 경계를 묵(默)이라 하지 않소.

“어(語)와 묵(默)과 동(動)허고 정(靜)허는 거 여의고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 어묵동정을 여의고 그 이르라고 했네.
그러니깐 만공 큰스님께서 아무 말이 없어. 그 말 없는 경계를 양구(良久)락 햐. 가만히 있었다 그말씀이여. 일체 말도 않고, 동도 않고, 정도 않고, 가만히 말만 없이 계셨다.

용성 큰스님께서 “양구(良久)시오?” 그랬다. “양구십니까?”
아무 말이 없는 도리가 양구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달락 하니까 아무 말씀이 없이 계시니 “그 양구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다.
만공 스님, 또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이 없으셨어. 아, 그러고 말았네.


내가 그때에 그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그걸 내가 전신구(轉身句) 답헌 뒤에 그걸 물었어.

용성 큰스님이 만공 큰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아무 말씀이 없으니까 “양구십니까?”—오! 또 아무 말 없는 게 아니라, 또 “양구십니까?” 그러니께,
“아니요” 이랬다. 고렇게 했어, 인자 끝에. 그러고 말았어.

“세상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두 분이, 두 어른네가 법문을 해놓으신 이 법이, ‘어묵동정 여의고 이르십시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양구요?’
‘아니요!’ 이래 놓았으니, 학자의 눈을 멀려 놓고 만 짓이제, 이렇게까장 허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어른네가 멱사리을 잡고 같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거 학자 죽인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이랬다. 이 조잔헌 것이. 허, 이거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 이랬다 그말이여.

황송허기야 짝이 없고 감히 어디가서 그런 큰스님네 앞에 그렇게 법을...
두 큰스님네가 멱사리을 붙잡고 한 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지, 어디 학자의 눈을 띄울 수가 있읍니까?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을 뿌리고 물에 들어갔읍니다. 물속으로 빠진 거여.

허지마는 내가 아무리 조잔하고 내가 아무리 학자지마는 학자가 어른 앞에 어디 감히 그렇게 함부로 입을 열어서 경망헌 행동을 허리요마는, 법체(法體)에 들어가서는 헐 수 없어. 시비헐 건 시비해야 하는 것이지, 안 헐 수가 있어?

아, 비단 그뿐 아니라 어떻게 아구지가 세고 쬐끄만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막 들어서제. 막 덤벼. 아, 이런 꼴이 있는가?
나도 그런 줄 알지마는 별 도리 없어! 이 참선 도리야 어쩔 수가 있는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역사에 없는 우리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신데, 갬히 그 앞에 몇백 년 뒤일지언정 손자 중, 손자도 아니고 아무 저 밑에 천삼백 년 후에 나온 운문승(雲門僧)이 우리 부처님한테 그만 그 법문 좀 봐.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여구자긱(與狗子喫)이다. 한 방맹이로 타살(打殺)해 죽여서 개를 준다”
어찌 그 말을 헐 것이냐!

이건 헐 수가 없어. 요런 도리를 썼다.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요렇게 썼닥 해서 아무라도 그렇게 써? 그 운문 눈이래야 바로 보고 쓰지!
운문선사는 그대로 써 놓은 말인디, 그건 부처님의 그 무슨 체면과 무슨 우리 부처님의 무슨 천상천하에 거룩헌 명예에 무슨 떨어져서, 그것 소용 없어. 그건 막 보고 쓴 법문인데.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말이여.

그런 바른 눈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 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 허고, 또 허들 못 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같지마는,
눈이 있으면은 그 말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영신이는 어떻게 이를테냐? 우리 둘이는 만공 큰스님과 용성 스님은 한 흙탕 속에 그대로 빠졌다면, 자네가 하나 일르소. 자네는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테냐?”

나는 거그서 반문(反問)을 했어. 반문.
좀 여러 여그 모이신 우리 대중이 자서히 들어보라 그말이여! 벌로 듣지를 말고.
건방진가 안 건방진가 좀 봐. 참인가 아닌가도 좀 보고! 간택을 허라 그말이여! 거그서.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
양구(良久), 그 말 묻는데 내가 떨어지지 않고 어(語)니, 묵(默)이니, 동(動)이니, 정(靜)이니, 그러헌 데 다 떨어지지 않고,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입니까?”

그 문(問)이, 한번 묻는 것이 그 무슨 문(問)이여? 응, 그 무슨 문이냔 말여?
아무리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가루가 그렇게 좋다마는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되는 법이다.

거그서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거그서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일러? 거그서 본분(本分)을 추켜 들어 일러?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처(道亦假名處)를 일러?
천하 없는 것을 이를라고 이치를 잡아 찾으면은 저 죽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이냐. 한번 보라 그말이여!
‘찾다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여.(처음~21분7초)



(2/2)----------------

“자네는 어떻게 이를텐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공경히 허니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거그서.

다시 그대로, 그대로 거그서, 뭐 그대로 그만 말 없는 곳에서 그대로 인가여! 뭐, 두말헐 것 없어.
그 전국에 다, 내 그 다 해놓은 거 전국에 다 있는 것이여. 고놈 마쳤다 그말이여.
건방지게 어디 했지. 건방진 걸 봐, 거그서. 참말로 내가 못된 것인가? 여지없지.

거그서 문답 한번 해봐. 답 한번 해봐!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한 그곳에 나아가서, 얼마나 큰스님이 그 무거운 방맹이를 짊어졌는지 거두(擧頭) 못 혀.
바로 거그서 바로 살피지 못허면은, 바로 거그서 그 활살 피허지 못허면은 안 되아.

내가 모도 그 다 법문허는디 다 설해 놓았지마는 이 법문을 잘 들어두라 그말이여.
녹음 잘될 것이고 뭐 기위 이 내의 무슨 그 역사를 말해 달락하니 요 법문헌 것이여.

내가, 이것은 뒤에 또 나오는 법문이지마는 여다가 한마디 넣을 것은 글씨 또 내가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때에 그 인자 그 어른 제자라도 보월 스님, 돌아가신 고봉 스님, 금봉 스님 쏵 그 호서(湖西) 대중이 다 모인 그 대덕(大德) 가운데에서, 그 큰 용상(龍象) 큰스님네 밑에서—아, 또 보소! 또 내가. 경허 큰스님 오도송이 있어! 오도송(悟道頌).

그런 경허 큰스님 같은 오도송이 아, 얼마나 참말로 거룩헌 큰스님의 오도송인디, 거다가 갬히 내가 또 쎗바닥을 대아? 허지마는 댈 건 대야제, 어쩔 것인가.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허고,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요렇게 해놓으셨는디, 내가 거그다가 인자 오도송에다 갖다가 허물을 떡 끄집어낸다.

“소 콧구녁 없단 말씀을 듣고,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다.
‘콧구녁 없다’는 도리나, ‘삼천세계가 다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는 각격(覺見)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라’ 그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응! 천하에 큰스님의 아무리 큰스님의 법문일지언정, 뭐 어디 큰스님 법문이라고 어떻게 때꼽재기를 파내고 씻거야지, 어찌 그대로 둘 수가 있겄습니까? 이것이 다 탁마(琢磨)인디.
“무비공(無鼻孔) 도리와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고 깨달은 각견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 천하에 경허 스님 송(頌), 오도송 잘 되았지’ 아, 이래 싸서 내가 거다 입을 벌렸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 무비공 도리와 각견과 무사태평견을, 그놈을 자네는 여의고 한마디 어디 말해 보소. 어떻게 해야만 그놈을 여의고 말을 허겠는가?”

“예. 그러면 무비공 도리, 각견 도리, 거 다 큰스님 허신 대로 그대로 두고, ‘홀문인어무비공허고 돈각삼천시오가라.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만 그대로 그만 큰스님 법문 오도송대로 두고, 고 끝에 한 귀(句)만 제가 참으로 황송헙니다마는 한마디 일러보겠습니다”

“응, 일르게” 만공 스님이 “일르게”
그 선지식과 50명 학자가 꽉 찬 디서 내가 조실방 앞에서 헌 것입니다. 우리 보살님네도 잘 들으란 말이여. 이놈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라.
유월 달에 그 연암산 밑에 모 심구는 그때여, 때가.
유월연암산하로에, 유월 연암산 밑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란 건,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 한다는 것은 모 심구는 모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여. 그걸 보고 이르는 건디.

불법(佛法)이란 것이, 우리 부처님의 법이라 하는 것이 어디 무슨 무사태평(無事太平)이니, 무슨 본래각(本來覺)이니, 무슨 뭐 소 콧구녁 없는 도리니, 그러헌 그 거가서는 말후(末後), 부처님의 그 우리 선법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확철대오헌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지 않는 거여. 확철대오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고 처백히면은 못쓴 것이여.

각(覺)이니, 무비공(無鼻孔)이니,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 인자 그 제삼구(第三句)로, 그 도인이 오도송에 그 쓸 수 있는 말이제. 쓰는 법이제, 안 쓰는 것 아니여.
‘허공(虛空)이다. 역무허공지량(亦無虛空之量)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니라’ 이렇게 또 들어가야 되지, 그걸 안 허고는 안되는 법이여.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인데, 그것을 여의고 헐 수가 또 있나.
허지마는 티를 뜯고 학자가 한번 눈을 파는데는 헐 수 없어!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내 거그 글 한 귀(句) 딱 떼고 해놓은 송(頌)이 뭐냐 허면 이겁니다.

유월연암산하로에서 들사람이 모 심구는디, 모 심구는 내가 그 경계여.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 두고는, 거다가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곡을 붙여서) 이놈을 내가 하나 불렀드라.
응, 유월연암산하로에 그 모 심구는 곡조다. 다른 게 아니여, 그게. 농군들 노래여!

이놈 하나 딱 부르니까 만공 스님이 척 계시다가 “그 여여로 상사뒤여 의지(意旨)가 여하(如何)오?”
내가 그때는 또 춤을 또 추었네 인자, 또 더군다나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적자(嫡子)가 농손(弄孫)이로구나! 적자가 손자를 희롱허는구나!” 그게 점검이여.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일지언정 어디어디 거가서 그대로 뭐 보이는 때꼽재끼를 놔두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 보월 스님도 그때에사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이 삼구에서 허셨제. 제삼구(第三句)로 허셨제” 이랬고.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그말이여.

나 역시 아무리 두 어른네가 해 놓았기로이 보이는 것을 안 헐 수가 있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손만 내밀고, 할(喝)만 허고, 방(棒)만 허면 제일인가?
법문이라는 것은 항상 그 참,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은 다 깨달라 다 없다마는 성해(聖解)에 가서, 성해에 가 주(住)허지 말아라. 성해에 떨어지면 또 되는 겐가?
그러니 그 각견(覺見)같은 것을, 불견(佛見)같은 것을, 법견(法見)같은 것을 척척 잡아내서 이게 탁마여.

여그서 그놈 척! 허고서는 내가 그다음에 가서 또 인자, 또 그건 아침에 날이 치워서(추워서) 거까장 맺어줄 수가 없어.

요것은 뭐냐하면 늘 듣는 법문이고 요새 헌 법문이지마는, 그 꿀 딱! 먹을 때, 꿀 딱 받아먹을 때, 어저께도 그 안 일렀나.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고거 있지.
요놈이 있지마는 전편이 좀 해야, 소소허게 전편을 다시 해가지고 내가 일러야겄어.

고놈을 한마디 일러놓고 내가 전국 육대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한목 인가(印可) 받은 것이여. 한목.
하나도, 그런 놈이 나와야 되제. 배 벌로 ‘내가 인가 받았다. 내가 견성했다’ 그러고 나와. 그거 안되는 말이여. 딱딱 그 증거가 나와야 하제.

오늘 아침에 치워 여까장 허고 내려가겄어. 오늘은 12시에 법문이 있겄오.(21분9초~33분3초) (일대기 5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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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침객잔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송암도인(松巖道人)‘ p83 참고.
*곤하다(困-- 곤하다·가난하다·기운이 빠지다 곤) ; ①기운이 없어 나른하다. ②(사람이) 잠든 상태가 매우 깊고 편안하다.
*객몽(客夢 손·손님·나그네·여행·객지 객/꿈 몽) ; 나그네가 객지(客地)에서 꾸는 꿈.
*잔몽(殘夢 남을 잔/꿈 몽) ; ①잠이 깰 무렵에 꾸는 꿈. ②잠이 깬 후에도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꿈.
*쇠잔하다(衰殘-- 쇠하다·약하다 쇠/남을 잔) ; (힘이나 세력이) 차차 줄어서 매우 약해지다.
*본고향(本古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사대추신(四大醜身) ;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 더러운[醜] 몸[身]’ 사대색신(四大色身)과 같은 말.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누겁(累劫 묶을·포갤·쌓을 누/겁·오랜 세월 겁) ; 여러 겁이 쌓여서 이루어진 기간. 곧 한없이 길고 오랜 시간.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법(佛法)에 위배되는 견해. 선견(善見 : 있는 그대로, 진실 그대로 보는 것. 정견正見)에 장애가 되는 견해.
*사종(邪宗) ; 외도(外道). 외도가 주장하는 삿된 종지(宗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사연(邪緣) ; 삿된 인연. 올바르지 않고 좋지 않은 조건을 뜻하는 말로서 정연(正緣)의 대칭어이다.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마업(魔業 마구니 마/업·일·선악의 소행所行 업) ; 마구니[魔]의 행위[業]. 마구니의 직접적인 행위 뿐만 아니라, 번뇌, 게으름, 미혹 등을 포함해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마업이라고 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대종사 법어』 (용화선원刊) p19~20 참고.
〇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마자 ; ‘마저(남김없이 죄다. 또는 마지막까지 다)’의 사투리.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어묵동정(語默動靜) ; 말하고[語] 침묵하고[默] 움직이고[動] 쉬는[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행(言行)을 총괄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하나의 짝으로 쓰이기도 한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〇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용상대덕(龍象大德) ;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덕행을 구족한 걸출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속이 좁다)’라는 뜻의 사투리.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아구지가 세다 ; 하는 말이 세다(강하다). *아구지 ; ‘아가리(‘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천상천하(天上天下) ;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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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擧頭 들 거/머리 두) ; ①머리를 듦. ②머리를 숙이는 일 없이 떳떳하게 남을 대함. ③중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머리를 들 정도가 됨.
*호서(湖西) ; ‘호수의 서쪽’으로 오늘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용상(龍象) ; 용과 코끼리. 또는 용이나 코끼리 하나를 가리키는 말.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부처님만 가리키거나 보살의 용맹한 능력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걸출한 인물이나 뛰어난 수행자를 가리킨다.
*만공 스님,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쎗바닥 ; ‘혓바닥(①혀의 윗면. ②‘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심구다 ; ‘심다’의 사투리.
*말후(末後) ; ①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궁극(窮極), 최후의 뜻. ②생명이 끝날 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구(三句)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上堂。僧問。如何是第一句。師云。三要印開朱點側。未容擬議主賓分。問如何是第二句。師云。妙解豈容無著問。漚和爭負截流機。問如是第三句。師云。看取棚頭弄傀儡。抽牽都來裏有人。師又云。一句語須具三玄門。一玄門須具三要。有權有用。汝等諸人。作麼生會。下座。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처음 한마디 말[第一句]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세 가지 요점[三要印]으로 해설하여 그 옆에 빨간 점을 찍어 놓았으니,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전에 주(主)와 객(客)이 나누어졌다”
문(問), “어떤 것이 둘째 구(다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절묘한 해석에 어찌 잘 맞지도 않는 질문을 들어주겠냐마는 방편이 어찌 잡념망상을 끊는 근기를 마다하겠는가?”
문(問), “어떤 것이 셋째 구(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무대에서 노는 꼭두각시는 줄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참고.
*농군(農軍 농사 농/군사 군) ; ①농민(農民).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②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〇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아주, 매우’의 옛말.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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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