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24. 4. 3. 14:02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발송 안내.

 

안녕하세요. 

신도분들과 참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수행 정진에 보탬이 되고자 『전강선사일대기』 약간 분량을 준비하여 원하시는 분들께 보내 드리고자 합니다.

 

원하시는 분은 <받으실 분 이름, 주소, 전화번호, 크기>를 아래 메일로 신청하시면 착불 택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강선사일대기』는 2가지의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크기 비교 사진 첨부). 원하는 크기 하나를 선택하여 신청하십시오. ①일반판.(18.5cm x 24.5cm)  ②큰글자판.(23cm x 30cm)

 

 

메일 주소 ; sonaduim@gmail.com

 

 

*<전강선사 일대기 가이드>도 같이 보내 드립니다. <전강선사 일대기 가이드>는 일대기 법문을 자세히 소제목으로 정리해서 『전강선사일대기』 법문을 더 쉽게 찾아보고, 또 유튜브 영상도 QR코드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수집된 개인 정보는 이번 발송을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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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는 전강 선사(1898~1974)께서 제자들의 청법(請法)에 인천 용화사에서 1970년 11월 20일(음)부터 설하신 18편의 법문(法門) 녹음(錄音)한 것을 고대로 활자화한 법문집입니다.

 

전강 선사께서 어린 시절과 17세에 해인사에 출가하셔서 20세에 강원을 수료하시고, 직지사 선원에서 용맹정진하신 것, 23세에 곡성 태안사 동리산 너머 산밑에 징검다리를 건너시다가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신 내용.

그리고 혜봉 스님, 혜월 스님, 한암 스님, 용성 스님, 보월 스님, 만공 스님, 당시 여섯 분의 대선지식(大善知識)과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두르면서 맞부딪치는 법거량을 해서 인가(印可)를 받은, 오늘날까지 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의 등불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온 한 장면이 전강 선사의 「일대기(一代記)」 법문 속에 낱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위의 역사적인 내용과 더불어 전강 선사께서 평생 선양하신 참선법(參禪法),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의 구체적인 수행 방법의 내용—포구발심(怖懼發心) · 화두(話頭) · 수참활구(須參活句) 막참사구(莫參死句) ·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삼요(三要, 신심 분심 의심) · 묘관(妙觀) · 의단독로(疑團獨露) · 화두타파(話頭打破) · 확철대오(廓徹大悟) · 용무생사(用無生死) 현중현(玄中玄) · 고봉 선요 법문 · 법문 듣는 법 · 경책(警策) 등등 전강 선사께서 후학을 위하여 일대사(一大事),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을 제시하는 간절하신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허 스님과 제산 스님의 만남, 해인사 이회광 스님 진산식 때 일화, 오대산을 넘으며 겪으신 일화, 경봉 스님과 탁마, 홍도여관에서의 무애행, 무주 안국사 시절, 상기병(上氣病) 자연치료와 추천원 스님의 호랑이 이야기와 차력하는 김익수, 가야금을 타는 박홍록과의 만남, 1920~30년대 신여성(新如性), 다꾸시(택시)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전강선사 일대기> 동영상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전강선사 일대기'에도 자세한 용어풀이와 함께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24. 4. 1. 10:20

§(185) (게송)심경확연망피차~ / 참선을 하면 마침내는 참나를 깨달라서, 속에 피와 오줌과 똥이 들어 있는 이 몸뚱이 그대로 부처님이 되는 것 /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낸 사람은 언제나 행각(行脚)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할 때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그 공부밖에는 일분일초도 딴생각할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송담스님(No.185)—1982년 11월 첫째일요법회(용185)

 

약 11분.


심경확연망피차(心境廓然忘彼此)하면  대천사계총포함(大千沙界總包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하고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심경(心境)이 확연(廓然)하야 망피차(忘彼此)하면, 마음 경계가 확연(廓然)해서 피차(彼此)를 잊어버리면, '내다 남이다', '주관이다 객관이다', '좋다 나쁘다' 이러한 피차를 잊어버리면,
대천사계총포함(大千沙界總包含)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일월성진(日月星辰)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그 속에 다 포함되어 버린 거다 그 말이여.

마음속에 아상(我相) 인상(人相), '내다 남이다', '이건 좋다 나쁘다' 이러한 차별심이, 차별(差別) 분별심(分別心)이 일어나면 육도(六道)가 분명히 있고, 중생과 부처님이 따로따로 있고, 온갖 재앙이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마음 경계가 확연(廓然)해서 인아상(人我相)이 뚝 떨어져 버리면 삼천대천세계가 그냥 고대로, 현실(現實) 있는 고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되는 것이요, 부처님의 세계요 진리의 세계인 적광토(寂光土)가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요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이다.
곳곳에 푸른 버들에는 다 말을 맬 수가 있어. 사람이 옛날에는 다 말을 타고 다니다가 그 말에서 내리면 그 말을 그 나무에다가 고삐를 매는데, 어느 곳에 있는 아무 버드나무에도 그 말을 마음놓고 붙들어 맬 수가 있는 것이고,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이여. 집집마다 길이 있으면 그 길이 바로 장안(長安), 서울로 통하는 길이더라 그 말이여. 어느 집이고 그 문 앞에 있는 길로 나가기만 하면 거기서 바로 서울과 직통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참선(參禪)을 해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슬픈 생각이 일어나거나, 기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인아(人我) 피차상(彼此相)에 떨어지지 않는 가장 요긴(要緊)한 길이고,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단속(團束)해 나가면 마침내는 참나를 깨달라서 바로 이 몸뚱이가 이대로, 속에 피와 오줌과 똥이 들어 있는 이 몸뚱이 그대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에, 중국(中國)에 동산숭장로(東山崇藏老)라고 하는 선지식이 그 제자를, 참선하러 나가는, 행각(行脚)으로 나가는 제자에게 설(說)한 그 법문(法門)을 해 주셨는데, 설사 머리를 깎지 않고 속가(俗家)에서 가정을 가지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하는 그러한 생활을 하신 분, 또는 출가(出家)를 해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서 일평생을 도(道)를 닦는 그런 스님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언제나 행각(行脚)을 지금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道)를,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지 아니하고 그렁저렁 살아가는 사람은 말고, 참으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낸 사람은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더라도 행각에 나서고 있다고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행각에 나선 사람은 자기의 고향과 부모를 다 여의고 떠나왔으며, 또 자기의 은사(恩師) 스님이 계시는 그 절도 이미 하직(下直)을 하고 선지식(善知識)과 도반(道伴)을 찾어서 이미 길을 떠나 있거든.
고향과 부모를 떠났고 거기에서 다시 은사와 자기가 살던 절도 버리고 걸망 하나를 짊어지고 행각에 나선 사람이,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이 있으며 무슨 딴 일을 할 틈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여. 앉으나 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소지(掃地)를 할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할 때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그 공부밖에는 일분일초도 딴생각할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다.(처음~10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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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경확연망피차(心境廓然忘彼此) 대천사계총포함(大千沙界總包含)’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예장종경 게송 참고.
*(게송)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 ; 불교 장의(葬儀) 의식 「시다림(尸陀林) : 죽은 이를 위해 설법하는 의식」 ‘발인(發靷)’ 기감(起龕) 참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 • 중천 • 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육조구결(六祖口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 p135~136) (『육조 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 p98~99) 참고.
 衆生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迷 卽佛是衆生 悟 卽衆生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사상(四相)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미(迷)하면 불(佛)이 곧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불(佛)입니다.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歸己 惡事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나 학문 또는 출신[族姓]이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을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신을 행할 줄 안다’ 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고,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분별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凡夫)의 사상(四相)이라 합니다.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故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勤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수행인도 또한 사상(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자신은 계를 지킨다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인상이라 합니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요, 오래 살고자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면서도 온갖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단속(團束)해 나가면’ ; 일념단속(一念團束).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에, 중국(中國)에 동산숭장로(東山崇藏老)라고 하는 선지식이 그 제자를, 참선하러 나가는, 행각(行脚)으로 나가는 제자에게 설(說)한 그 법문(法門)을 해 주셨는데’ ;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동산 숭장주가 행각을 떠나는 제자에게 하신 법어)」 (가로판) p119~131.

 

① (전강 선사께서 하신 법문)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② (송담 스님께서 하신 법문)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속가(俗家) ; ①스님이 되기 전에 속했던 가정(집). ②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집.
*출가(出家) : [산스크리트어] pravrajyā 또는 pravrajita '집[家]에서 나온다[出]'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2~133. (가로판 p139)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 • 선우(善友) • 친우(親友) • 선친우(善親友) • 승우(勝友)라고도 함.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일분일초(一分一秒) ; '1분과 1초'로 아주 짧은 시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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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4. 3. 28. 11:45

§(161)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 / 참선을 하면 내 자신이 환경을 다스리는 주인공(主人公)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 안이비설신의 이 성문(城門)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써 지켜지는 것 / (게송)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

팔만사천 마구니는 바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근문두(六根門頭)를 통해서 우리에게 침범해 들어오지, 절대로 다른 데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일어나는 한 생각만을 잘 단속하면 팔만사천 마구니는 들어올 곳이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가 들어오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철통같은 것입니다. 절대로 재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허수히 함으로써 그 구멍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의 이 성문(城門)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써 지켜지는 것이지, 빨간 글씨로 쓴 부작(符作)을 몸에 지녔다고 해서 그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지켜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도 얼마든지 그까짓 부작을 몇만 장이라도 찍어서 노나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거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해 봤자 재앙이 막아지들을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니 드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1)—1982년 입춘 법회(82.02.04) (용161)

 

약 18분.


사람으로 태어나서 오직 할 일은 이 한 일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일도 많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고 '일 다하고 죽은 무덤이 없다'고 한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그 많은 일이 이 나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에다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한 일, 이것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입니다.

이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피해서는 안 될 내가 해야만 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살자고 하는 일이지 목숨을 바쳐서 할 일은 못됩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목숨 바쳐서 할 일이 못됩니다.
돈이 없으면 안되어서 돈을 벌어야 하지만 목숨 바쳐서 돈을 벌 필요는 없는 것이고, 명예와 권리가 그것이 인간 세상에 필요하다 하지만 명예 얻기 위해서, 권리 얻기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박사와 예술이다, 무슨 학문이 소중하고 무슨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목숨을 바쳐서 그것을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이 참선(參禪)만은, 이 도(道)만은 목숨을 천만번이라도 바쳐야 하고, 목숨 바쳐서 해야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아이고! 용화사(龍華寺)를 가면 병(病)이 낫는다 그러고, 무슨 소원을 성취한다 그러고, 그렇다고 해서 용화사를 갔더니 목숨을 바치라고 한다'
겁먹으실 것은 없습니다. 당장 무슨 목숨을 바치라는 게 아니라, 목숨을 바칠 만큼 그런 간절(懇切)한 마음, 정성(精誠)스런 마음으로 닦아야만 하루라도 빨리 도(道)를 증득(證得)할 수가 있다 이런 말씀입니다.

"출가(出家)한 스님네도 견성성불한 이가 드문데, 어떻게 세속(世俗)에 오욕락(五慾樂)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도를 이룰 것인가?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옴마니반메훔'을 부른 것이 낫다" 자꾸 이러한 말로써 유혹을 받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參禪)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 궁극에 목적이기는 하지만, 견성성불했다고 해서 두 눈썹 사이에 백호(白毫)가 나온 것도 아니고, 또는 이마 위에 무슨 육계상(肉髻相)이 솟아오른 것도 아니고, 밤에도 이 몸에서 광명(光明)이 나는 것도 아니고, 내나 밥 먹고 똥 누고, 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무엇이 다르냐 하면, 도를 닦은 사람은 환경에...(녹음 끊김) ... 특수한 것입니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데, 도를 닦은 사람은 자기가 환경을 지배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차이점을 말할 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라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우주(宇宙)에 주인공(主人公)이 되어 가지고 우주를 다스려야지, 내가 이 우주에 다스림을 받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중생(衆生)과 성현(聖賢)과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설사 아직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해서 성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철저히 믿고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서 참선을 해 나가면, 그때그때 환경에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내 자신이 환경을 다스리는 주인공(主人公)이 되는 것입니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그 감정(感情)에 노예(奴隷)가 되어 가지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만, 참선을 한 사람은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척! 돌이켜 가지고 참나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에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리고 내가 환경을 다스리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한 사람은 팔만사천 마구니가 침범을 못한다 이것입니다.
마구니가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리고 있는데, 어떻게 노리느냐 하면, 눈 ‧ 코 ‧ 입 ‧ 귀 ‧ 몸뚱이 ‧ 생각,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여섯 구멍을 통해서 그리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오는데,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볼 때에 보는 데에 홀려 들어가면, 무엇을 보다가 자기(自己)를 놓쳐버리면 그 눈을 통해서, 그 허점(虛點)을 통해서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다.
무엇을 듣는데, 누구 말을 듣던지 어떠한 소리를 들으면서 그 들음으로 인해서 자기의 이성(理性)을 잊어버리면, 들음으로 인해서 감정에 노예가 되어 버리면, 감정에 끄달려 버리면 그 귀를 통해서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온다 그 말이여.

한 나라를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지키는 병사들이 한눈을 팔고 어디 가서 술을 먹고 낮잠을 잔다던지, 자기가 지켜야 할 성문(城門)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딴 데로 가서 그 성문을 지키지 아니하면, 바로 그 곳을 통해서 적병(敵兵)이 침범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는 바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근문두(六根門頭)를 통해서 우리에게 침범해 들어오지, 절대로 다른 데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일어나는 한 생각만을 잘 단속하면 팔만사천 마구니는 들어올 곳이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가 들어오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철통같은 것입니다. 절대로 재앙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허수히 함으로써 그 구멍으로 들어온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의 이 성문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듦으로써 지켜지는 것이지, 빨간 글씨로 쓴 부작(符作)을 몸에 지녔다고 해서 그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지켜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도 얼마든지 그까짓 부작을 몇만 장이라도 찍어서 노나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거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해 봤자 재앙이 막아지들을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니 드리는 것입니다.

삿된 길을 가까이하면은 반드시 나의 마음도 삿되어지고 나의 믿음도 삿되어져서, 삿된 길에 한번 발을 디디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입춘법회 때마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간곡히 말씀드려서 여러분이 이 정법(正法)에 확고부동(確固不動)하게 뿌리를 박고 발을 디디고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여러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악도(惡道)에 떨어지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벗을 가까이하면 나도 몰래 나쁜 버릇을 익히게 되는 것이, 마치 검은 것을 가까이하면은 내 몸이 검어지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연탄 공장에 들어가서 돌아댕기면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내 의복과 몸뚱이가 더러워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행여나 삿된 길에 발을 디디지 말고, 걱정이 있어도 정법(正法)으로 다스리고, 슬픔이 있어도 정법으로 다스리고, 괴로움이 있어도 정법으로 다스리고, 외로움이 있어도 정법으로 다스려 나가도록 그렇게 훈련을 쌓아 나가면, 과연 이 정법, 이 최상승법이야말로 영겁(永劫)을 두고 의지하고 믿고 내 몸과 마음을 맡길 수가 있는 그러한 '반야(般若)의 용선(龍船)이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하야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여. 사자(獅子)가 살고 있는 사자 굴(窟)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어. 사자 굴속에 무슨 다른 짐승이 그 속에 감히 들어갈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사자 굴속에는 오직 사자만이 살 수가 있다.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로구나. 코끼리 왕, 코끼리 왕이 행(行)하는 곳에는 여우의 발자취가 끊어졌다.
코끼리가 턱- 걸어가는 앞에 감히 간특(奸慝)한 요사(妖邪)한 여우같은 것이 어찌 얼씬거릴 수가 있을 수가 있느냐.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그러한 최상승(最上乘) 불자(佛子) 앞에는 어떠한 삿된 마구니도, 어떠한 재앙도 그 앞에는 얼씬거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佛子)로서의 긍지와 보람, 희망을 가지고 한 해를 떳떳하고 의젓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 다시 한 가지 구멍 없는 젓대를 잡고,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라. 멋들어지게 만년환(萬年歡),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생사 없는 최고 무상(無上)의 깨달음의 곡조(曲調)를 불어 나갑시다.

화두(話頭)를 들고, 알 수 없는 화두를 들고 살아가는 것이 구멍 없는 젓대를 가지고 무상정각(無上正覺)에 곡조(曲調)를 불어 나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41분37초~58분59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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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서 오직 할 일은 이 한 일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일도 많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고 '일 다하고 죽은 무덤이 없다'고 한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그 많은 일이 이 나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참나를 깨닫는 이 일에다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한 일, 이것만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할 일입니다’ ; 일대사(一大事).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정성(精誠) ;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백호상(白毫相) ; 부처님의 32상(相) 중 하나. 부처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 오른쪽으로 말려 있고 여기에서 광명을 발한다고 한다.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 백모상(白毛相)이라고도 하며, 부처님 뿐만 아니라 보살상에도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의 길상(吉相) 중에서 가장 공덕이 크며, 어떠한 상(相)의 공덕도 이 백호상이 지닌 공덕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육계상(肉髻相 살 육/상투 계/모양 상) ; 부처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솟아오른 모양. 불정(佛頂) · 무견정상(無見頂相) · 정계(頂髻)라고도 한다. 부처님 32길상(三十二吉相)의 하나로 지혜를 상징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산스크리트어]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호시탐탐(虎視眈眈 범 호/볼 시/노려볼 탐) ; 범(호랑이)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게송)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 ; 『전등록(傳燈錄)』 권16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참고.
*(게송)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 ; 『증집속전등록(增集續傳燈錄)』 제4권 ‘천의업해요청(天衣業海了淸) 선사’ 참고.
*간특하다(奸慝-- 간사奸邪하다·간악奸惡하다 간/사특邪慝하다·간사하다·악하다 특) ; 간사(奸邪)하고 악독(惡毒)하다.
*요사하다(妖邪-- 요사하다·요염妖艶하다·괴이怪異하다 요/간사奸邪하다·사악邪惡하다 사) ; (사람이나 그 언행이) 요망(妖妄)하고 간사(奸邪)하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구멍 없는 젓대’ ; 무공적(無孔笛).
*무공적(無孔笛 없을 무/구멍 공/피리 적) ; 구멍 없는 피리.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만년환(萬年歡) ; 만년(萬年 아주 오랜 세월)의 즐거움, 기쁨.
*무상(無上) ; ①해탈. ②부처님의 지혜. ③이 이상인 것이 없는 최고의 지고(至高). 최고.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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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