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목적)2025. 1. 22. 18:32

•§•(108) (게송)부운부귀비유의~ / 무위법이란, 내 마음에 있느니라. 심득(心得)을, 내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 내 마음을 깨닫는 참선법 / ‘이뭣고?’가 화두 중에는 제일 근본 / ‘이뭣고?’ 하나 깨달아 버리면 그게 무위법, 영원한 법이다. 생사가 영원히 없다.


무위법이라 하는 것은 ‘함이 없는 법’인데 ‘한정이 없는 법’인데, 한정이 없는 법이라 하는 것은 어디 가서 있냐?
유위법은 내 마음 밖에 있다마는—모도 하늘이나 비비상천 같은 데나, 내 마음 저 밖에 가서 있느니라마는. 무위법이란, 함이 없는 법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느니라. 내 마음! 마음을 얻어야, 심득(心得)을 해야 한다. 내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마음을 깨닫는 법은 뭐고?
밥 먹고 옷 입고, 가고 오고 일체처에 그 뭣이 하는가? 응? 그 순전히 내가 하지 않는가! 내 몸뚱이 요까짓 것이 하는가? 몸뚱이 요놈이 내가 시켜서—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 내가 시켜서 하지, 그놈이 그걸 하는가? 그러니 내가 나를 깨달아 얻는 것이여.
 
‘이뭣고?’ 하나 떡! 깨달아 버리면 그게 무위법이여. 한정이 없는 법이여. 영원한 법이다. 생사가 영원히 없고 인생이라는 문제도 없다.

**전강선사(No.108)—이뭣고 화두법, 월봉외도, 선요, 자경(임자72.01.09.새벽) (전108)(참선목적)

 

약 14분.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허고  와각공명기염정(蝸角功名豈染情)고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이다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고
나무~아미타불~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다. 부귀(富貴)라 하는 것이 좋기는 좋다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와서 그 부자 되고 부자가 될 것 같으면 거기에는 귀(貴)가 따른다. 부자 되고 귀하게 처억 그 참, 대과(大科) 큰 벼슬을 해 가지고는 그저 천만인이 앙시(仰視)하고 좋기는 좋다마는 거기에 그만 그 한번 떨어지면은 도문(道門)과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호귀(豪貴) 부귀(富貴)에는 득도난(得道難)이다. 도 닦기가 어려워. 그 부귀 복 받느라고 도저히 못혀. 그런데 우리 부처님 같은 참 용맹, 그 큰 대(大) 그러헌 부귀를 가지시고도 그걸 썩 내번지고 나오셔서 도를 닦았다.
 
와각공명기염정(蝸角功名豈染情)이냐. 또 그 부귀라는 것이 그게 잠깐 있다가 마는 건데, 인생 일생이라도 그녀러 것 얼마 된가? 잠깐 그저 부귀라고 붙어 있지마는 그 와각(蝸角)이다. 달팽이 뿔때기 같은 것이다.
달팽이란 놈이 뿔때기 뿌욱 나오면 두 뿔때기가 아주 뭐 이놈을 들입대 내둘르고 야단치지마는, 건들면 쏙 들어가 버리고 없거든. 그렇게 허망하다 그말이지.
 
공명(功名)도 그런 것이다. 아무리 천하 공명을 다 한다 한들 다한 때가 있으니, 없어지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유위법(有爲法)이라 햐. 잠깐 있다 없어지는 것을 유의법이라 햐.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법을 무위법(無爲法)이라 하고. ‘한정(限定)이 없는 법’이라 한다 그말이여.
 
그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부귀나 공명이나 그 다음에 이 세상에 별별 색상을 얻어서 상(相)으로 모도 얻고, 모양으로 모도 얻고 아무리 좋은 걸 다 얻어도 그 법은 유위법이다 그말이여.
함이 있는[有爲], 한정이 있는 법이니라. 한정(限定)이 있는 법이기 때문에 그것 다해 버리면 그놈 한정 다 지나 버리면 도로 마찬가지. 처음이나 끝이나 마찬가지.
 
무위법이라 하는 것은 ‘함이 없는 법’인데 ‘한정이 없는 법’인데, 한정이 없는 법이라 하는 것은 어디 가서 있냐?
유위법은 내 마음 밖에 있다마는—모도 하늘이나 비비상천 같은 데나, 내 마음 저 밖에 가서 있느니라마는. 무위법이란, 함이 없는 법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느니라. 내 마음! 마음을 얻어야, 심득(心得)을 해야 한다. 내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마음을 깨닫는 법은 뭐고?
밥 먹고 옷 입고, 가고 오고 일체처에 그 뭣이 하는가? 응? 그 순전히 내가 하지 않는가!
내 몸뚱이 요까짓 것이 하는가? 몸뚱이 요놈이 내가 시켜서—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 내가 시켜서 하지, 그놈이 그걸 하는가? 그러니 내가 나를 깨달아 얻는 것이여.
 
『아무개야.』 『예.』 그놈을 깨달아 얻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걸 참선법(參禪法)이라 햐. 세상에 이 참선법, 뭐 내가 모든 것을 내가 하는데, 내가 하는 놈을 찾는다 그말이여. 그게 안되아?
고봉 스님 말씀이나 우리 부처님, 저 모두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이 ‘콩인지 팥인지 알면은 한다’고 했어. 숙맥(菽麥)도 모르면은 그 화두들 줄, 화두를 할 줄 모르니까 안되지마는. 
 
『이?』 『이?』해 봐. 『이?』
『이?』해 놓고는 『이? 한 놈이 뭐냐?』 그말이여. 『이뭣고?』
 
『이?』  아! 『이? 한 놈이 뭐여?』 곧 의심을 짊어지고 들어가네. 『이?』 그 찾는 놈을 짊어지고 들어가. 『이?』 하고 『뭣고?』  『이?』 아! 또 『이? 한 놈이 뭣고?』
잠에 거꾸러지지 말고 망상에... 응, 그놈 『이? 뭣고?』 아! 이것 못혀 세상에. 아무리 똥멍청이리라도 이건 할 거다 그말이여. 『이? 뭣고?』
 
아! 세상에 ‘이뭣고?’를 ‘알 수 없고 답답하다 모른다’ 알 수 없고 답답하고 모른다는 생각을 붙일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뭣고?’만, 다만 ‘이뭣고?’만 하면은 ‘이뭣고?’가 ‘알 수 없는 놈’이 의심(疑心)인데. 아! 그놈만 할찌니 그놈이 옳은 놈인데 왜 ‘답답하다 모른다’ 그려. 무엇을 알라고 ‘답답하다 모른다’ 그려.
모르는 그놈이 툭! 터지면은 견성(見性)인데. 인제 그놈이 터질 때가 있는데. 그놈이 아무때나 아무때나 터지나? 또 허고 또 허고, 또 허고 또 헌다. 무엇을 할 바냐?
 
우리가 세상에 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나와서 이 몸뚱이 끌고 댕기는 주인공 찾는데. 아! 내가 나 찾는데. 뭐가 거가 도무지 무슨 뭐 멀고 가깝고, 무슨 뭐 답답하고, 무슨 모르고 알고 할 게 있는가?
 
『이뭣고?』하면 알 수 없는 놈 하나 푹 나온다. 『이뭣고?』 또 『이뭣고?』하면 또 알 수 없는 놈 하나뿐.
알 수 없는 그놈 때문에 다른 망념이 길어나는 곳도 없지마는, 망념이 풀 길어나데끼 길어난 게 없어. 자꾸 『이뭣고?』를 해야사—다른 일체 망념이 본래 없는 것이지마는 그놈이 퍼 일어나 싼다 그말이여—자취 없이 일어나는 못된 번뇌 망상이 거가서 붙들 못혀. 『이뭣고?』, 『이뭣고?』다.
 
‘이뭣고?’가 이것이 제일 화두(話頭) 중에는 근본인 것이여.
‘만법(萬法)이 귀일(歸一)인데,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갔는데 일귀하처(一歸何處)오? 하나는 어느 곳으로 갔는고?’ 그것이 내나 ‘이뭣고?’뿐이여. 그것도 ‘이뭣고?’가 주장이여.
‘만법귀일 일귀하처’를 뭘라고 기드란허니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갔는데 하나는 어디로 갔는고?’ 야단스럽게 찾을 게 있는가? 『이뭣고?』 참 단순하고 간단하고 ‘이뭣고?’뿐이다.
 
‘이뭣고?’ 하나 떡! 깨달아 버리면 그게 무위법이여. 한정이 없는 법이여. 영원한 법이다. 생사가 영원히 없고 인생이라는 문제도 없다 거가. 무슨 놈의 인생이냐? 거가서.
 
세상에 이런 일을, 내가 세상에 나와서 이러한 기가 막힌 중대한 참선법 이러한 일을, 내 일을 두고 응, 어따가 뜻을 헐까 보냐. 이 송(頌)이 시방 그것이여.
부운부귀(浮雲富貴)도 뜻한 법이 없어. 부운부귀 그까짓 것 해 봤던들 유위법 칠팔십 년 그저 허다 말 거, 공명(功名)도 달팽이 뿔따귀 같은 고까진 것 거다가서 뜻을 모두 적시냐? 내 뜻을 갖다 모두 물들리냐? 허연 비단 옷감에다가서 시커먼 물들이데끼 물을 들이고 있느냐.
 
『내』 찾아야 하겠다. 『내』 하나 찾을 때 그 무위법, 『나』 하나 터억 찾아 들어갈 때, 먹고살 것이 없나? 더 먹고살 거 더 있는 법이여. 제석천왕(帝釋天王)도 그 도 닦는 사람만 모두 보호해 줄라고 천하 보물을 다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도학자(道學者)가 참 되었구나. 그렇게 믿기 어렵고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이다마는.
그렇게 가깝고도 곧 그만 그저 내 눈동자 속에 들어 있고, 내 코구녁 속에 들어 있고, 내 혈근 속에 들어 있고, 아! 이놈 뭐 여가(여기) 있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구나. 그렇게 믿기 어렵고.
이놈을 믿지 못하면은 유위법, 상견(相見)법에 처백혀 가지고는 죄만 퍼짓지, 도리 없다. 이 법이여.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이다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 이것 하나 깨달아 버리면, 나 하나 내가 찾아 번지면 뭔 일이 있냔 말이여? 다시, 응.
부귀면 뭣 하며 공명은 뭣 할 것이냐? 부귀 같은 것은 인자 마음대로 내가 천 번이라도 할 수 있고 만 번이라도 할 수 있고—천하에 저 밖에 있는 보물, 천하에 보물 그것이 아니라, 내 속에 터억 그 내 보물을 내가 찾아 놨으니 부귀만 해? 공명은 뭣이여? 전체가 공명이고 전체가 부귀지.
 
춘일쾌청(春日快晴)헌디 춘수족(春睡足)이다. 춘일은 봄날은 쾌청한데, 봄날 쾌청이란 것은 지금 내 자리, 본분(本分) 내가 나 깨달은 경계에다 비유한 것이거든.
춘일은 쾌청헌디 춘수(春睡)가 족(足)하구나. 봄 잠이 족하다. 잠이나 잘라면 잘까, 뭐 할 일이 있나 말이여? 터억 깨달아 버렸어.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누워서 산새 백 가지 우는 소리나 아! 그놈이 듣는디 그놈이 모도 무비(無比) 시(是)로구나. 다 그놈도 새소리까장이라도 어디 도망을 갈 곳이 없다. 전부 내 자가용이요. 내가 마음대로 그 묘코 막 쓸 것이다.(처음~13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부운부귀비유의~’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上舍草堂’ 게송 참고.
*대과(大科) ; 예전에, 과거(科擧)의 문과(文科)와 무과(武科)를 소과(小科)에 상대하여 이르던 말.
*천만인(千萬人) ; 셀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은 사람.
*앙시(仰視)하다 ; 존경하여 우러러보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 ; 호걸스럽고 귀하면 도(道)를 얻기 어렵다.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12장.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ㆍ법란(法蘭) 공역]
佛言 天下有五難 貧窮布施難 豪貴學道難 制命不死難 得睹佛經難 生値佛世難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가난하고 궁핍하면 보시(布施)하기 어렵고, 호걸스럽고 귀하면 도(道)를 배우기 어렵고, 수명을 맘대로 하고 싶지만 죽지 않기 어렵고, 부처님 경전을 보게 되기 어렵고, 살아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렵다”
*호귀(豪貴 호걸·귀인 호/귀할 귀) ; 권세가 있고 귀함.
*내번지다 ; ‘내버리다’의 사투리.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들입대 ; 들입다. 세차게 마구.
*유위법(有爲法) ; 위(爲)란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고, 유위(有爲)란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을 가지는 것.
①여러 인연(因緣)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또는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및 존재(사물). 인연에 의해 생멸하는 현상계의 일체의 사물. 인과 관계 위에 있는 존재.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유위법(有爲法)은 인연에 의하여 화합생성된 것이므로 생(生)도 있고 멸(滅)도 있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하고, 무위법(無爲法)은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숙맥(菽麥 콩 숙/보리 맥) ; ①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의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온 말로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 ②콩과 보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 萬法歸一一歸何所 師云 老僧在靑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송(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물들이데끼 ; 물들이듯이.
*-데끼 ;  ‘ -듯이’의 사투리.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번지다 ; 보조 동사 ‘버리다(앞 동사의 동작이 이미 끝났음을 나타내는 말)’의 사투리.
*‘천하에 보물 그것이 아니라, 내 속에 터억 그 내 보물을 내가 찾아 놨으니 부귀만 해? 공명은 뭣이여? 전체가 공명이고 전체가 부귀지’ ; 밖에서 찾지 말라.
*밖에서 찾지 말라 ;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참선 정진해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든 자라,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구덕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예”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송담스님 No.577—19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❶]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참고 ❷] 『전등록(傳燈錄)』 제6권. 마조(馬祖)의 법손(法孫), 월주(越州) 대주사(大珠寺) 혜해(慧海) 선사.
越州大珠慧海禪師者建州人也 姓朱氏 依越州大雲寺道智和尙受業 初至江西參馬祖 祖問曰 從何處來 曰越州大雲寺來 祖曰 來此擬須何事 曰來求佛法 祖曰 自家寶藏不顧 拋家散走作什麼 我遮裏一物也無 求什麼佛法

그는 건주(建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인데,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 도지(道智) 화상에게 업을 받았다. 처음에 강서(江西)로 가서 마조(馬祖)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自家寶藏]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린 채 사방을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찌 불법을 구하겠는가?"

師遂禮拜問曰 阿那箇是慧海自家寶藏 祖曰 卽今問我者 是汝寶藏 一切具足更無欠少 使用自在 何假向外求覓 師於言下自識本心不由知覺 踊躍禮謝 師事六載

대사가 드디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慧海)의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具足)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니,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대사가 그 말끝에 근본 마음[本心]은 지각(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바로 알아채고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6년 동안 시봉하였다.

[참고 ❸]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지눌 스님)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 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의 마음만 알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아니 하여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으며, 또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幻化, 幻과 같은 變化)가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圓覺妙心]에서부터 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오직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마음을 닦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행할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간절히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님이다.

 


[참고 ❹] 송담스님(No.577)—19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96.11.03)(13분10초)
홍엽난봉추색리(紅葉亂峰秋色裏)에  석양소우단교변(夕陽疎雨斷橋邊)이로구나
나무~아마타불~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오
나무~아미타불~

홍엽난봉추색리(紅葉亂峰秋色裏)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지러운 봉다리, 높고 낮은 봉다리와 계곡에 가을색이 깊었다 그 말이여. 요새 한창 오대산이나 설악산, 내장산이나 또는 백양산, 도처 방방곡곡에 산과 들이 모다 단풍이 져서 한참 아름다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석양소우단교변(夕陽疎雨斷橋邊)이다, 석양에 성근 비는 끊어진 다리 가로구나.

우리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에 가을 경치의 한 장면을 읊은 것이지만, 우리는 무량겁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면서 지금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몇천만 년을 그렇게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의 많고 적은 것을 물을 것도 없이, 우리는 저 역사가 없는 과거에, 그 때를 따질 수가 없는 무량겁 전으로부터 오늘까지 왔으니, 우리는 어지러운 봉다리에 단풍이 진 가을철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 말이여.

가을철은 나무와 풀들이 모다 단풍이 들어서 잠간동안 울긋불긋 아름답다고는 하지마는 며칠 안 지나가면 이 단풍이 시들어서 볼쌍사납게 다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파리는 단풍이 졌지만 모든 나무나 풀, 곡식들은 다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단풍이 지는 것입니다.
봄에는 그 잎이 푸릇푸릇하고, 여름에는 사뭇 녹음(綠陰)이 그렇게 깊은 것도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 태양으로부터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런 푸른 빛깔이 필요해서인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수분과 태양에서 받아들인 기운을 그 이파리가 그놈을 배합을 해서 그 열매를 맺는데 온 힘을 다 거기다 쏟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게 한 다음에는 그 이파리는 시들어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육도법계(六道法界)를 돌고 돌면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습니까? 우리는 무슨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 무량 다겁생래(多劫生來)를 오늘날까지 걸어왔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금생에 불법을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서, 권리를 위해서, 재산을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거기다 바치면서 그런 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다 얻어지기도 어렵고, 설사 얻었다 해도 영원히 자기 것이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위가 온통 그러한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는 불법을 믿고, 참나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것만하더라도 우리는 참 다행스런 일이고,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생각할수록 복된 그러한 처지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다행스럽고 복된 처지이기는 하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럭저럭 지낼 수는 없습니다. 기왕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을진대는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서 기어코 이 몸으로, 이 육신으로, 이 육신 받았을 금생에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남이 내 열매를 맺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의 열매를 자기가 해야 합니다. 나무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뭇가지의 열매는 그 나뭇가지에서 되도록 해야지, 다른 나뭇가지가 와서 자기를 잘 맺게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해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든 자라,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구덕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예”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

‘이 무슨 물건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을 하면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우리는 경계(境界)를 당하면 깜박깜박 잊어버리거든. 잊어버린 줄 알면 또 챙기면 그만이여.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이거든.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일체처 일체시에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거기에 있는 것을 바로 거기서 챙기는 것이니까 이것은 사실 어렵다고 생각할 것도 없고, 하나도 복잡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어.

‘이뭣고?’ ‘이뭣고?’
잠깐 놓쳤다고 해서 어디 가는 것이 아닌 거여. 거기에 있는 것이지.

귀가 먹지 않았으니까 소리도 들릴  것이고, 눈이 멀지 않았으니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보일 것이여. 보여도 그냥 고대로 놔두고 자기는 ‘이뭣고?’거든. 그저 수저로 밥을 떠 넣고 저분으로 반찬을 집어서 입에 넣어서 저작(咀嚼)을 하면서 생각은 ‘이뭣고?’거든.
그래서 옛날 사람은 시끄럽고 복잡한 장바닥에 가 가지고, 일부로 거기 가서 정진을 한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 그 말이여. 그러한 속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방해가 되지 않는가? 그 속에서 공부가 되는가 안 되는가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거든.(15분26초~28분32초)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 다운로드.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25. 1. 16. 18:26

•§•(319) (게송)오가유보물(吾家有寶物)~ / 내 면목(面目)을 깨닫는 것이 보물, 나 깨달은 방법이 무엇이냐? ‘이뭣고’여 / 모양, 상(相)에서 구하거나, 내 마음 밖에서 도(道)를 구하면 그거 도 아니다 / 딴 데서 구하거나 전할 것이 아니다.


요새 우주인이 모도 달세계를 올라가고, 그 무엇이여? 그까짓 놈의 거. 그것 뭐 진공(眞空) 가운데 좀 올라가서 달세계 갔다 왔다고 뭐 그리 야단칠 것이 있나?
벌거지도 배때기에다가 불 달고 온 공중을 휘휘 날라댕기고, 저 무슨 가재 속에도 진주(珍珠)가 모두 들어 있고, 아! 전복 속에도 모도 그러헌 무슨 사리(舍利)가 들어 있는 것인디, 사람 송장 속에서 태우면 무슨 구슬이 나온다고 기특할 것이 뭐냐? 그것이. 무슨 기특혀, 그까짓 것이?

**전강선사(No.319) - 이뭣고 화두법(계축1973.7.26)(전319)

(1)+(2) 약 8분.



(1)------------------

오가유보물(吾家有寶物)이다  가소서래의(可笑西來意)니라
나무~아미타불~~
하시황매사(何是黃梅事)오  방할여우적(棒喝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오가(吾家)에 유보물(有寶物)이다. 내게 큰 보물이 있다. 천하에 보물은 내가 보물이지, 내게 있지, 내게 있다는 것보담도 내가 보물이다.
천상천하에 우주 만물 가운데 ‘나’ 내놓고 뭐가 있나? 오직 ‘나’다.
하늘이다. 땅이다. 하늘 땅을 뒤집어 싸고 있는 큰 허공이다. 허공 가운데 두두물물 화화촉촉 뭐가 나보덤 나은 것이 있나? 내 밖에 뭐가 있나?

그 내 보물, 내가 ‘나’ 하나 찾아 놓으면, 내가 나를 깨달라 놓으면 천하에 보물이다.
그거 무슨 생(生)이 있나? 사(死)가 있나? 있다 없다 한 것이 있나? 나보다 보물이 뭐가 있겠나?

나를 내가 알지 못허고 나를 내가 깨닫지 못허고는 무슨 놈의 그 사람이니, 무슨 뭐 인생이니, 천상천하에 무슨 인유최귀(人唯最貴)니, 뭐가 있어 그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여.

이까짓 놈의 송장 덤벵이가 ‘나’인가? 그 눈깔이 있다고 좀 본다고 잠깐 보다 마는 놈의 거, 그 눈깔이 내 눈깔이며, 입이 좀 뚫어져 가지고 말 좀 헌다고 그것이 내 입이며, 내 콧구녁이며, 내 몸뚱아리며, 그 내 임시의 모도 망상(妄想)으로써 원증회고(怨憎會苦)를 가려내는 그 무슨 번뇌(煩惱)가 ‘나’인가?

그 참 ‘참 내’ 내가 내 면목(面目) 그놈을 기어이 찾아서 깨달라 아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이 그것이 보물이여. 이것이 참선법(參禪法)이고.

그 밖에는, 요새 우주인이 모도 달세계를 올라가고, 그 무엇이여? 그까짓 놈의 거. 그것 뭐 진공(眞空) 가운데 좀 올라가서 달세계 갔다 왔다고 뭐 그리 야단칠 것이 있나?
벌거지도 배때기에다가 불 달고 온 공중을 휘휘 날라댕기고, 저 무슨 가재 속에도 진주(珍珠)가 모두 들어 있고, 아! 전복 속에도 모도 그러헌 무슨 사리(舍利)가 들어 있는 것인디, 사람 송장 속에서 태우면 무슨 구슬이 나온다고 기특할 것이 뭐냐? 그것이. 무슨 기특혀, 그까짓 것이?

모냥으로 상(相)으로 모도 나타나는 그까짓 것이 그것이 도(道)인가? 모냥에, 상(相)에, 빛깔에 고러헌 데서 도를 찾는다든지, 내 마음 밖에서 도를 무슨 구해 온다든지, 그거 도(道) 아니여. 내 마음 밖에서 천하 없는 도를 다 발견한다 해도 그건 외도(外道)라. 내 마음 밖이니.

내 마음이, 아! 그놈이 보물. 내가 보물.
아! 이놈 하나 미왈중생(迷曰衆生)이다. 그놈을 깨닫지 못허고 내가 보지 못했으니 그것을 중생이라 한다. 내가 나 하나 깨달라 버리고, 나 하나 봐 버리면은 그만 성(聖)이다. 성현(聖賢)이여.

그 ‘나 깨달은 방법이 무엇이냐’하면, ‘이뭣고’여. ‘이뭣고~?’ (처음~6분12초)





(2)------------------

오가(吾家)에 유보물(有寶物)인데, 내 보물이 이렇게, 이러헌 보물이 있는데,
가소서래의(可笑西來意)다. 가히 우습다 서쪽 이치여.

누가 뭐 서쪽에 따로 이치가 있나? 서쪽에서 가지고 와서 나한테 그런 보물을 주었나?

네가 너 깨달라라. 내가 낱낱이 내 보물이 있다.

하시황매사(何是黃梅事)냐? 오조(五祖) 스님이 황매산에서 육조(六祖) 스님한테 전했다는 것이 무엇이여? 육조 스님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 그대로 깨달랐지. 전할 게 뭐 있나?

방할(棒喝)이 여우적(如雨滴)이니라. 만약에 딴 데로 구헐 것 같으면은, 내 보물 내던지고 딴 데서 찾을 것 같으면은 방맹이[棒]로 때려 조지고 할(喝)로 때려 조질 것이다. 방할이 여우적이여.

어디 가서 왜 너를 네가 바로 깨달라서 네게 구족(具足)한 보물, 네게 갖춰져 있는 보물, 아! 너 하나 깨달라 버리면은 생사(生死)가 시심마(是甚麽)냐? 죽고 사는 게 무엇이며, 불법(佛法)이 무슨 뭐 따로 불법이 어디 있나? 서천(西天)에서 온 불법이 무슨 소용이 있나?

방맹이와 할(喝)로 조져 댄다 이 말이여. 그런 게송(偈頌)을 인자 다 했습니다.(34분23초~35분44초)





------------------(1)

*(게송) ‘오가유보물(吾家有寶物)~’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1 ‘덕의선자(德義禪子)에게’ 게송 참고.
*두두물물(頭頭物物) ; ‘두(頭)‘는 사물이나 사람의 단위. ‘각각의 존재[頭頭]와 모든 사물[物物]’이라는 말. 곧 모든 것을 가리킨다.
*송장 ; 죽은 사람의 몸을 속되게 이르는 말.
*덤벵이 ; ‘덤벙이’의 사투리.
*덤벙이 ; 묽은 액체 따위가 뭉쳐진 덩이.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원증회고(怨憎會苦 원망할 원/미울 증/만날 회/쓰다·괴롭다 고) ; 팔고(八苦)의 하나. 원한이 있거나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서 생기는 괴로움이나 싫은 환경에 살거나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괴로움. 비애회고(非愛會苦) · 원증오고(怨憎惡苦)라고도 한다.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八]의 괴로움[苦].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벌거지 ; ‘벌레’의 사투리.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리(舍利) ; sarira의 음사(音寫). 신골(身骨) • 유신(遺身)이라 번역. 시체나 유골을 뜻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물질을 가리킴.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모냥에, 상(相)에, 빛깔에 고러헌 데서 도를 찾는다든지, 내 마음 밖에서 도를 무슨 구해 온다든지, 그거 도(道) 아니여’ ;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
*밖에서 찾지 말라 ; 나이가 많건 적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열심히만 참선 정진해 가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니까,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찾으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루 속에 든 자라, 자기가 아무리 종일토록 버르적거려도 구덕 속에 들어있는 자라는 거기에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개야!” “예” 바로 거기에 있거든. 그놈을 내놓고 찾는 것이 아니거든.(송담스님 No.577—19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❶]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참고 ❷] 『전등록(傳燈錄)』 제6권. 마조(馬祖)의 법손(法孫), 월주(越州) 대주사(大珠寺) 혜해(慧海) 선사.
越州大珠慧海禪師者建州人也 姓朱氏 依越州大雲寺道智和尙受業 初至江西參馬祖 祖問曰 從何處來 曰越州大雲寺來 祖曰 來此擬須何事 曰來求佛法 祖曰 自家寶藏不顧 拋家散走作什麼 我遮裏一物也無 求什麼佛法

그는 건주(建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인데,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 도지(道智) 화상에게 업을 받았다. 처음에 강서(江西)로 가서 마조(馬祖)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自家寶藏]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린 채 사방을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찌 불법을 구하겠는가?"

師遂禮拜問曰 阿那箇是慧海自家寶藏 祖曰 卽今問我者 是汝寶藏 一切具足更無欠少 使用自在 何假向外求覓 師於言下自識本心不由知覺 踊躍禮謝 師事六載

대사가 드디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慧海)의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具足)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니,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대사가 그 말끝에 근본 마음[本心]은 지각(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바로 알아채고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6년 동안 시봉하였다.

[참고 ❸]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지눌 스님)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 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의 마음만 알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아니 하여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으며, 또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幻化, 幻과 같은 變化)가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묘한 마음[圓覺妙心]에서부터 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오직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또한 마음을 닦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행할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은 간절히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切莫外求].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부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님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성현(聖賢)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2)

*서쪽 이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말함.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조(五祖) : (602 – 675) 당(唐)의 스님.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 580~651)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육조(六祖) : (638 ~ 713) 당(唐)의 스님.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 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 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 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5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다. 5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18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76세로써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 ; 일물(一物).
*일물 • 일상(一物 • 一相) : 한 물건[一物] • 한 모양[一相]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2.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는가?」 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 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 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할(喝) ; 선종(禪宗)에서 진리를 문답하는데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토하는 큰 소리.
큰 소리로 『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임이니, 이것을 처음 쓰기는 마조(馬祖)가 한 번 할했는데 백장(百丈)이 사흘이나 귀먹고 눈이 캄캄하였다는 것이 첫 기록이다. 그 뒤로부터 흔히 쓰는데, 임제(臨濟)가 가장 많이 썼다. 보통 속음(俗音)의 「갈」로는 발음하지 않는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시심마(是甚麽) ; 이것[生死]이 무엇인가?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서천(西天) ; ①서쪽 하늘. ②서천 서역국(西天西域國 : 인도(印度)의 옛 이름).
*‘조져 댄다’ ; ‘조지다 + 대다’
*조지다 ; {비속한 말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호되게 때리다.
*대다 ; [보조동사] (동사 뒤에서 ‘-어 대다’ 구성으로 쓰여)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그 행동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말.(예 : 음식을 먹어 대다. 아이들이 깔깔 웃어 댄다. 진우는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겨 댔다. 학생들이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 다운로드.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4. 12. 13. 17:51

§(366) (게송)삼불형의총부진~ /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을 내 집안에 있는 보배에다 비유 / 중생의 육식(六識)이 발동하는 바로 그 당처(當處)를 깨달아야 한다.

**송담스님(No.366)—19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약 9분.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제조산화일양춘(啼鳥山花一樣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불형의(三佛形儀)가 총부진(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흙으로 뭉쳐서 만든 부처님, 또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 쇠를 녹여서 조성한 부처님, 이 세 가지 종류의 부처님의 그 형체가 총부진(總不眞)이여. 모두가 다 참다운 부처님이 아니여. 왜 그러냐?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鎔鑛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러한 부처님의 불상(佛像)을 갖다가 참다운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눈 속에, 동자(瞳子) 속에 나타나 있는 그것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더라 그 말이여.
사람마다 눈동자 속에 보면은 그 사람 모습이 있는데, 그 눈동자 속에 있는 모습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여.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동자 있는 데에서 찾아봐야 그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비추어져 있다 그거거든.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만약 능히 내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내 집안에 있는 보배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보물의 구슬이 있었는데, 그 보주(寶珠)를 그 아들한테 전해 주어야겠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 가지고 그 보물을 전할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의 옷 속에다가 그 보물을 딱 넣어놓고 그래 가지고 꽁꽁 꿰메서 잘 두었다 그 말이여.
혹은 또 그 집안에 어디다가 깊이 딱 간직을 해 놨는데 아들한테는 일러줄 수가 없으니까, 자기의 친구한테 그것을 일러주었어. ‘내 자식이 철이 들거든 거기 그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켜 줘라’ 일러주고서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혈혈단신(孑孑單身)이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랑걸식(流浪乞食)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 말이여.
 자기한테 그런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평생 쓰고 먹고 남을 보배가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참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지 신세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어.
그래 가지고 ‘바로 너의 그 옷 속에 보배가 있다’ 또는 ‘너의 집 어디에 가면은 그 보배가 있다’ 그래 가지고 그 보배를 발견을 해 가지고 평생토록 참 유족(裕足)하게 살았다 하는 그 경전에 있는 말씀인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 그것을 갖다가 집안의 보배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신 거여.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리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아는 바로 그놈.
 
성내고 울고불고하는 그러한 작용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 말이여. 탐심도 낼 줄도 알고, 고약한 그 마음을 내는데, 그 마음 낼 줄 아는 놈, 그러한 작용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그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그 당처(當處), 그것은 우리는 볼 수가 없어. 중생심으로는 그놈은 볼 수가 없고, 중생견(衆生見)으로는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육안으로는 보일 수도 없어.
 
그런데 그놈으로부터서 온갖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거기서 발동을 한다 그 말이여.
그 발동하는 그놈을, 발동하는 그 근본, 그 당처를 진실로 얻어버리면, 그놈을 깨달라 버리면, 제조산화(啼鳥山花)가 일양춘(一樣春)이다. 저 우는 새와 그 산에 울긋불긋 피는 꽃이 한결같은 봄이더라.
 
'그 우는 새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요, 그 산에 울긋불긋 피어있는 꽃이 바로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이렇게 해석을 붙이면 이 경전은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바로 봄이 돌아오니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한다 이거거든. 거기에다기 무슨 변명을 붙이고, 변명을 붙이면은 그것은 깨달음의 소식이 아니라 중생의 망견(妄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동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렸으니 그리고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렸으니 여러분은 유루(有漏), 무루(無漏)의 복(福)을 영생토록 쓰고 남을 복록을 받게 되셨으며,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여러분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영원히 이 고해(苦海)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해탈을 해서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세계에서 삼세제불과 더불어 무생곡(無生曲)을 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55분21초~64분2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音寫語)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鎔鑛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참고 ❶]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 '조주의 세 마디 말' 선종의 화두[벽암록 96칙].
조주선사(778~897)가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후에 벽암(碧巖 : 圜悟克勤 1065~1135)이 평창(評唱)하기를 「저 옛사람이 독특한 안목으로 사람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이 말(삼전어)을 빌려서 이 소식(깨달은 경계)에 통하게 한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중략)...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게 되면 풀어지고,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가게 되면 녹아 버리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가게 되면 타 버리고 만다」

삼전어(三轉語)란 깨달음의 결정적 전기가 되는 세 가지 어구. 전어(轉語)는 미혹을 깨달음으로 반전시키는 어구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삼전어는 철벽(鐵壁)과 같은 궁지(窮地 매우 곤란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처지)를 마주치고 나서 그것을 뒤집어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는 화두의 기능을 지닌다.

[참고 ❷]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제14권)』 (卍續藏 제68책) '趙州眞際禪師語錄之餘'
師上堂 示衆云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조주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금으로 만든 부처님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참부처님[眞佛]은 안에 앉아 있다. 보리 · 열반 · 진여 · 불성은 모두 몸에 걸친 의복과 같으니, 이 또한 번뇌라고 이름한다"

[참고 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28권 「諸方廣語 - 十二人見錄(제방 선사들의 긴 법어 - 12인 기록 있음)」 '조주 종심 화상(趙州從諗和尙)‘
上堂云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지어붓다 ; (사람이 쇠를) 녹여서 붓다.
*용광로(鎔鑛爐 녹일 용/쇳돌 광/화로 로) ;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 철, 구리, 납 따위의 쇠붙이를 뽑아내는 가마.
*혈혈단신(孑孑單身 외로울 혈/홑 단/몸 신) ;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
*유랑걸식(流浪乞食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빌 걸/밥 식)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주인 주/사람 인/존칭·‘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당처(當處) ; ①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②그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곳에서.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중생견(衆生見) ; 중생의 번뇌에 얽매여 전도몽상(顚倒夢想 :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한 잘못된 견해.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유루(有漏) ; ①샘[漏]이 있는[有].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는. ②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③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유루복(有漏福 있을 유/새다·번뇌 루/복 복)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漏]이 있는, 번뇌[漏]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53초)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 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15분50초~20분41초)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①샘[漏]이 없는[無]. 한도(限度)가 없어 영원한. ②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 산스크리트어 āsrava)는 번뇌(煩惱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동의어로 누주(漏注) ·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 · 누실(漏失) 등으로도 한역한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과실(過失 결점. 과오. 허물)과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무루복(無漏福 없을 무/새다·번뇌 루/복 복) ; 번뇌[漏]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音寫). 멸(滅) · 멸도(滅度) · 적멸(寂滅) · 적정(寂靜) · 적(寂) · 안온(安穩) · 원적(圓寂) · 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무생곡(無生曲) ; 무생의 노래. 생멸(生滅)을 벗어난 진리의 노래. ‘무생’이란 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곡(曲)’이란 곡조(曲調)로 종지(宗旨 가르침의 요지)를 가리킨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 다운로드.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