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승법'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6.05.15 §(780) (게송)천상천하무여불~ / 찬불게(讚佛偈) /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사람은 위대한 수행자이고, 정말 불자(佛子).
  2. 2015.11.04 §(세등59) (게송)노종평처험~ / 자신을 조복(調伏) / (게송)잉풍기랑낭생구~ / 이 도(道)는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 / 첫째 아상(我相)을 없애라.
  3. 2015.08.05 §(560)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바른 스승의 지도 / 관법(觀法), 간화선(看話禪).
  4. 2015.07.22 §(210) (게송)적수성빙신유지~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 /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최상승법으로 수행해 나가야 / 비우는 것이 올바른 공부.
  5. 2015.05.07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6. 2015.04.27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7. 2014.12.30 §(330) (게송)동풍취락행화지~ / 참선법은 비약적인 것 / 참선은 바른 법문에 의지해서 올바르게 해야 /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도(道)에는 승속이 없고 남녀가 없다.
  8. 2014.12.15 §(770)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게송)활구참선객~ / 염라대왕의 합장 배례 / 대승십선계 / (게송)삼계진화택~ / (게송)온포사아귀~.
  9. 2014.12.13 §(160)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 (게송)월수벽산전~.
  10. 2014.11.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최근 법문2016. 5. 15. 13:38

 

§(780) (게송)천상천하무여불~ / 찬불게(讚佛偈) / 최상승법(最上乘法) 의해서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사람은 위대한 수행자이고, 정말 불자(佛子).

 

부처님의 법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똑같은 불성(佛性) 가지고 있으면서도 업보(業報) 중생으로서 육도윤회를 것을, 부처님께서 태어나셔서 각자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너희들도 부처가 되라이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는 찰나에 보는 상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는 그놈을 돌려서 찾는 것입니다. 귀로 무엇을 들어도 듣는 데로 쫓아가지 않고이뭣고?’

 

희로애락과 빈부귀천이 전생에 지은 인연과 업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르지만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자성(自性), 자기 마음의 부처는 그것은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를 나가면 먹고, 입고, 변소에 가고 것은 똑같지마는 인생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이뭣고?’ 열심히 하시면 육도법계(六道法界) 극락정토로 변한다고 하는 최상승법을 여러분은 확실히 믿으실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기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거나, 속상한 일을 당하거나, 앉아서나 서서나 항상이뭣고?’ 그렇게 살아가면 말세가 말세가 아니고, 오탁 세계가 오탁 세계가 아니고, 지구 덩어리 뿐만이 아니라 우주 법계가 온통 비로자나 법신불의 세계인 것을 확실히 우리는 깨닫게 되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80)—2016(병신년) 부처님오신날(2016.05.14.) (용780)

 

약 14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게송은 부처님을 찬양하는 찬불게(讚佛偈)입니다.

 

하늘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으신 분이 계시고, 시방세계(十方世界) 어디를 둘러봐도 견줄만한 분이 계시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간(世間)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봤지마는 부처님과 같으신 분은 계시더라. 부처님을 찬양하는 찬불게입니다.

 

오늘은 불기(佛紀) 2560 4 8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알고자 하면은 많은 부처님에 관한 서적이 나와 있으니 그걸 보시면 되고.

부처님은 , 무엇을 위해서 사바세계(娑婆世界) 출현을 하셨는가? 점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은 왕궁에 태어나셨으면서도 지위, 부귀영화를 버리시고 출가(出家)하셔서 수행을 하셔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가지고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만약 부처님이 그렇게 해주셨다면 우리도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동물 중에 사람이라고 하는 동물로 일생을 희로애락과 빈부귀천 속에서 () 지으면서 무량겁래를 가면서도 중생으로서 그렇게 윤회를 하면서 육도(六途) 윤회(輪廻)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전생에부터서 인연을 지어 가지고 금생에 부처님의 () 만나게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몸을 통해서 모든 것을 느끼고, 마음을 통해서 희로애락을 하면서 그렇게 업을 지으면서 육도윤회를 텐데.

 

우리는 불법 가운데에서도 소승(小乘), 대승(大乘), 최상승(最上乘). 최상승은 중생의 몸으로 희로애락을 하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하는 가운데에서 바로 찰나찰나에참나 찾는 공부인 것입니다.

 

우리는 얼굴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지마는 각자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주인공은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우리나 불성 자리는 똑같은 것입니다.

똑같은 불성(佛性) 가지고 있으면서도 업보(業報) 중생으로서 육도윤회를 것을, 부처님께서 태어나셔서 각자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너희들도 부처가 되라이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는 찰나에 보는 상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는 그놈을 돌려서 찾는 것입니다. 귀로 무엇을 들어도 듣는 데로 쫓아가지 않고이뭣고?’

그러니 인생이, 세계 오십육 억의 인간이 있지마는 인간 일상생활 속이 바로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 대한민국에 사시는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희로애락과 빈부귀천이 전생에 지은 인연과 업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르지만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자성(自性), 자기 마음의 부처는 그것은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를 나가면 먹고, 입고, 변소에 가고 것은 똑같지마는 인생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 사바세계에 태어났으면서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계시는 세계에 우리는 살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은 평범한 사람이지마는,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 의해서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사람은 위대한 수행자이고, 정말 불자(佛子)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병신년 불기 2560 4 8일을 맞이해서 법당에서 산승과 마주치고 내가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 하게 것을 나는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다행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신 것을 지금 눈으로 확실히 확인을 했습니다.

 

사바세계요, 말세라 해도 이렇게 불법을 믿고, 이렇게이뭣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부처님이 살아계신 세계에, 시대에 태어난 거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니까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자야 하지마는 속에서 참나의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수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최상승 수행자이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부처님 세계에서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병신년 사월 초파일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이러한 말씀을 하게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가지고 있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만나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식(六識) 발동이 되고 그러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내고 그러면서 그럭저럭 살면 그것이 무량겁 윤회가 그렇게 해서 생사의 윤회가 계속되는데,

 

눈으로 때에 그리 쫓아가지 말고이뭣고?’ 귀로 좋은 소리를 들으나 나쁜 소리를 듣더라고 그리 쫓아가지 말고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이뭣고?’ 살아가면 사바세계가 오탁악세가 아니라도 바로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極樂淨土) 되는 것입니다. 사바세계를 극락정토로 만들고 살아가느냐, 육도윤회의 그러한 세계로 만드느냐 것은 여러분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이뭣고?’ 열심히 하시면 육도법계(六道法界) 극락정토로 변한다고 하는 최상승법을 여러분은 확실히 믿으실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믿는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고맙습니다.

 

사람! 오십육 억의 인간으로 태어나서 말세라고 하지마는 바로 부처님 세계, 극락정토로 만들고 극락정토에서 있는 길을 우리는 알았으니 기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거나 속상한 일을 당하거나 앉아서나 서서나 항상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살아가면 말세가 말세가 아니고, 오탁 세계가 오탁 세계가 아니고, 지구 덩어리 뿐만 아니라 우주 법계가 온통 비로자나 법신불의 세계인 것을 확실히 우리는 깨닫게 되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병신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그러한 기쁜 마음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앞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말세를 부처님 세계로 만드는 길이 거기서 열리게 되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처음~143)()

 

 

 

 

 

---------------------

 

*찬불게(讚佛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거룩한 모습에 어찌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 낮과 7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아니네.

 

게송을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해서 찬불게(讚佛偈) 하는데, 7 7 동안 세존(世尊)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九劫) 뛰어넘어 91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출가(出家) : []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그러나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삼독(三毒) 불이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 하여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 [] dharma []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 왔다. 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 그른 (), 참된 (), 거짓된 () 모두 달마 들어 있다. 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부파 불교(部派佛敎)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육식(六識) ; (((((() 육근(六根)으로 각각 (((((() 육경(六境)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5. 11. 4. 13:15

 

 

§(세등59) (게송)노종평처험~ / 자신을 조복(調伏) / (게송)잉풍기랑낭생구~ / 이 도(道)는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 / 첫째 아상(我相)을 없애라.

 

조용한 데를 만나면 조용한 대로 좋고, 시끄러운 데를 만나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변화무쌍한 그러한 복잡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성성(惺惺)하고, 이렇게 공부가 되어 가도록 우리는 공부를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헌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 문제가 없는 것이여.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세등59)

 

(1) 약 20분.

(2) 약 12분.

 

(1)------------------

 

노종평처험(路從平處險)하고   인향정중망(人向靜中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멱화화란득(覓火和爛得)하고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노종평처험(路從平處險)하고  인향정중망(人向靜中忙)이다.

길은 평평한 곳으로부터 험악해지고, 사람은 고요한 곳을 향해서 바빠지더라. 평평한, 평탄한 곳이 있기 때문에 험악한 험난한 길이 있지, 본래 평탄한 길이 없었다면 험악한 길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나차운 데가 있으니까 높은 데가 있고, 높은 데가 있으니까  나차운 데가 있는 것이지, 본래부터서 전부가 높다면 구태여 험(險)하다고  것이 없어.

 

평탄한 평지가 있기 때문에  평지를 걸어 가다가 길이 험악해지니까 !  길이 험악해졌구나하고 느끼는 것이지, 평탄할 것도 없고 본래  높은 고지에서만 있다면은 어디가 험악하다는 소리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에 있다가, 고요한 데에 집착해 가지고 고요한 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바빠지고 시끄럽고 그런 것이지, 본래 고요한 데에 있지 아니하고, 고요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 구태여 시끄럽고 바쁘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 처음부터서 고생을 하고  사람은 구태여 고생이다, 고생스럽다’한 것을 느끼지 않지만, 처음에 호강을 하고 살던 사람이 조금 형세가 어려워지면  곤란한 것을 배(倍)나 느끼고  곤란한 것을 견디기가 심히어려운 법이고,

 

공부도 처음부터서 시끄러운 속에서 공부를 익히고, 생활하는 속에서 공부를 익힌 사람은  주변이 시끄럽고 일을 하고 복잡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공부가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것을 느끼지를 않는 것입니다.

 

밤낮 고요한 데에만 집착해 가지고 고요한 데에서만 공부를 익힌 사람은 조금 누가 발걸음 소리만 나고,  열었다 닫었다 하는 소리만 나고, 옆에서 무슨 말하는 소리 또는  지내가는 소리, 비행기 다니는 소리, 이런 소리만  나도 화두가 달아나 버리고 신경질이 나면서 공부가 안된다고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평지라고 평탄한 것만을 좋아하고, 고요한 것만을 좋아해서 그런 데에서만 생활을 하고, 그런 속에서만 공부를 익힌 사람은 그것이 참으로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가 어려운 거여.

 

화초도 밤낮 온실에서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광선만을 쬐면서 자란 화초는 밖에다 내다 놓면 조금 햇빛이 따가우면은 시들어버리고, 조금 바람이 세고 그러면은 견디지를 못하고 얼어죽고 이러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이  고요한 데서만 하라는 것이 아니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간에 어떠한 경계 속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아니하고,

희로애락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러한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그러한 경계에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조용한 데를 만나면 조용한 대로 좋고, 시끄러운 데를 만나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변화무쌍한 그러한 복잡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성성(惺惺)하고, 이렇게 공부가 되어 가도록 우리는 공부를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멱화화란득(覓火和爛得)이요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

불을 찾음에 데기를 쉽고, 불을 찾아서 불을 가까이 하면은 옷을 태우거나 살을 데거나, 불을 가까이 하면  경우가 많고,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 물을, 샘을 짊어지면 달을 띠고 돌아가. 물을 떠 가지고 가면은 달이  물에 비추니까 달도 따라온다 그말이여.

 

제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불을 가까이 하고 항상  속에서 불을 가까이 하게 되면은 옷을 태우거나 살을 데거나 까딱하면 타죽기도 하고 그런 것이고,

물을 가까이 하면은 항상  있는 곳에는 달이 비치기 마련이니까  가까이 있으면은 달도 거기에 따라 있는 것이다.

 

불이라는  무엇인가?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오욕락(五欲樂) 이런 것들이 모다 불과 같은 것이어서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구렁텅이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고,

 

물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윤택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씻어서 깨끗이 하는 것이니까 선지식(善知識), 좋은 도반, 그리고 법문(法門),

그리고 항상 염불을 하던지 참선을 하던지, 우리 참선하는 대중은 항상 선지식과 도반을 가까이 하고, 청정도량을 여의지 아니하고, 대중처(大衆處)를 여의지 아니하고, 그리고 항상 화두를 들고 수행을 하면 달이 거기에 따라온다’는 것은 깨달음이 내게 돌아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승단(僧團) 제도를 맨들어서 발심한 사람이 출가해 가지고 좋은 도반들과 함께 도를 닦도록 하신 그런 제도를 만드신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은 병인년 4 17 세등선원 하안거 결제 법요식을 맞이했습니다. 방금 사부대중이 전강(田岡) 대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었습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화두를 들고 참선해 나가는 데 요긴한 법문을 들었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그리고 화두를 거각(擧却)하되 사량분별을 쓰지 말고, 다맛   없는 의심,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져, 일체 사량분별이 끊어져, 끊어진 상태에서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화두를 단속해 나가는  활구참선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동안 대중이 방(榜)을 짜고 이렇게 인자 왕래를 ()하고,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되는데,

선방(禪房)마다  선방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고 가풍이 있어서, 경상도에 있는 선방에는 거기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고,  여기에 오면 여기의 규범이 있어.

 

그러나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모두가  공통하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말이여. 전부가  똑같다면 그게 별로 좋을  같지마는 재미가 없는 것이여.

 

밤낮 똑같은옷도 똑같은 옷만 입는다든지, 음식도 밤낮 똑같은 것만 먹는다든지, 그러면은 그게 재미가 없는 것이고,

계절도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서 변화가 있어야지, 밤낮 여름만 있다든지 밤낮 겨울만 있다든지 한다면 그건 세계에는 그런 곳도 있기는 하지마는 그게  좋은 것이 아니여.

 

계절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기상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해가 뜨기도 허고, 비가 오기도 허고, 구름이 끼기도 허고, 바람이 불기도 허고 해야지,

밤낮 햇빛만 쨍쨍 난다든지, 밤낮 비만 온다든지, 밤낮 눈만 온다든지 허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여. 농사도  되지도 아니하고, 건강도 좋지 못하고, 인간성도 좋지를 못하는 것이여.

 

그래서  선방도 여러 선방들이 있는데, 선방 나름대로 규범이 다르고 법도가 다르고 가풍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른 것은 그것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 대단히 좋은 것이지, 그것이 하나도 나쁠 것이 없는 것이여. 여기는 여기대로의 독특한 가풍(家風)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

 

그런데 혹자는 다른  선방에는  그런데 여기는 이런다’고, 그래 가지고 그것을 삭이지를 못해 가지고 불평불만을 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이 벌써 수행인으로서의 바탕이 덜된 사람이여.

 

여기에 오면은 여기의 법도에 따르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다른 선방에 가면 거기 선방의 규범에 따라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기의 뜻에   맞더라도 그놈을  인욕(忍辱)을 하면서  그놈을 소화를 시키면서 순응허면서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공부가 잘되도록.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법이고, 자기를 갖다가 조복(調伏) 받는 것이거든.

 

눈이 오는 겨울이 오면은  겨울에도  적응을 하고,  여름에 삼복더위가 오더라도  더위도 이겨낼  있어야  사람의 건강이 정상적인 것이지, 여름은  견디는데 겨울만 돌아오면은 견디지를 못한다면  사람의 건강이온당한 사람이 아니거든.

 

특히   닦는 데 있어서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로애락, 일체처 일체시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걸림이 없어야, 그래야  사람이 정진하는 데 힘을 얻은 사람이고,

앞으로 그러한 자세로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이라야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육도법계 중생을 제도할 만한 그러한 도인이 되고 성현이  수가 있는 것이지,

 

밤낮 조용한 것만 좋아하고 손발 까딱 안 하고 앉아서만 하기만을 좋아하고, 이렇게 처음부터서 공부를 익혀 나간 사람은 벌써  그릇 되기는 틀려 버린 사람이거든.

 사람이 어쩌다가 설사  소식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보나마나   볼일 없는 사람이거든.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그런 속담이 있지마는, 우리는 최상승법을 닦는 도학자여.

 

그래서 불법(佛法)에는 소승법도 있고 중승법, 대승법도 있는데, 우리 활구참선 하는 우리 선객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여.

 최상승법이라 하냐 하면은 최상승법에서는 소승, 중승, 대승도 전부  안에  녹여서  속에  포함되어 버린 거여. 그렇기 때문에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최고의 불법이거든.

 

조용한 것만 좋아하고, 조금 시끄러우면  견디는 것은 그런 것은 소승(小乘)의 경지여. 소승에 의지해서 닦아 가는 그런 사람이거든.

그건 부처님 말씀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지언정 소승심을 발하지 말아라 그러셨거든.

 

소승심! 소승심이라는  사상 자체가 그것은 못쓰는 거여. 소승심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설사 소승법의 구경(究竟)에 도달을  봤자 그것은 못쓰는 것이다 그말이여.

 

마음가짐이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짐으로써 사상이 그렇게 되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잘못되면 사상이 비틀어지기 때문에 사상이 비틀어져 버리면 그것이 온갖 행동이 거기에 따라서 비틀어지는 것이고, 행동이 비틀어지면은  도(道) 수행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은 삿된 데에 굴러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여.

 

정든 고향을 버리고,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사람으로서 태어나서 온갖 것을  버리고 출가한 우리들이 기왕이면은 바른 사상으로 바른 목표를 향해서 수행을  가지고 바른 도를 깨달라야지,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출가해 가지고서 기껏 한다는 것이 삿된 데에 떨어지고,  볼일 없는 곳을 향해서 일생을 닦아간다면  아니 안타깝고 가련할 수가 있겠느냐  말씀이여.(처음~1951)

 

 

 

 

(2)------------------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한대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허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거품)이 일어났더라.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  맑고 평평한 바다 위에  버큼이 떠있는 것이 부끄럽구나.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이 일어나 가지고,  더러운 버큼이  맑고 평평한 깨끗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니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러울 일이냐 그말이여.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하니, 오늘 홀연히  바람과 물결이 쉬어 버리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 맑고 밝은 원래 그대로의  강(江)의 가을이더라.

가을이 돌아와  하늘은 맑고 공기도 맑은데, 바람과 물결이 잔잔히 가라앉어 버리니까,  맑고 밝은 강이 본래 그대로더라 그거죠.

 

출가해서 10, 20 내지 평생을 참선을 한다고 했건마는 확철대오를 못하고,

어제도 이럭저럭 오늘도 이럭저럭 이렇게 늙어간다면, 그것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거나, 바른 선지식을 만났으되 용기가 부족했거나, 용기를 가지고 했으되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이 틀렸거나,

 

또는 금생에는 자기 나름대로 선지식을 만났고  용기도 가졌고  바른 방법으로 했건마는, 전생에 워낙 닦아 놓은 것이 없거나,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서  도업(道業) 성취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헌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말하자면은 어떠한 좋은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은  그릇에 담겨있는 모든 것을 비워버려야 되거든.

 

 안에 들어있는 무슨 음식이 되었건, 음식 찌꺼기가 되었건, 기름기가 묻었건,  반찬 냄새가 묻었건, 일단 깨끗한 물을 담을랴면  안에 어떠한 맛있는 물건이라도  버려 버리고 깨끗이  다음에라야  맑은 물을 담을 수가있는 것이지,

거기에 본래 어떠한 것이 담어져 있는 상태에다가 아무리 맑은 물을 부어 봤자  물은 구정물이 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 그러한 음식과도  달라서, 음식은 다른 것이 담아 있어도  옆에다  곁들여서 담어서  가지  가지도 담을  있지만, () 영판  .

 

천하 없는 경전에 있는 말씀이라도 속에 담어져 있으면 그것은  되는 거여.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외우고,  풀이를   알아도,  생각이 속에 들어있으면은 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천하 없이 십계, 십중대계, 48경계와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를 낱낱이  실천을 해서 청정하기가 말로   없다 하드라도,  청정한 데에 맥혀 갖고 있으면 도는 이루지를 못하는 것이여.

 

심지어  보다 더한 것이 속에 있다 하드라도 얻은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러한 것이 () 갖고 있으면은 도는 통할 수가 없는 것이여.

아라한과를 증득했으되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하는 생각을 가지면 벌써 아라한이 아니고, 보살도를 증득했으되 내가 보살도를 증득했다하면은 벌써 그것이 보살이 아니여.

 

깨달았으되 깨달았다’는 생각에 () 있으면은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이여.

 

그렇거든 이제 공부하려는 사람이 선지식을 구할 때에 내로라는 생각을 속에 가지고 있어 가지고  선지식이 믿어지냐 하면 믿어지지도 않는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법문을 들어봤자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것이여.

 

그래서  ()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 문제가 없는 것이여.

 

 아상(我相), ‘내’라고 하는 이놈 하나 때문에 결국은 무량겁 생사윤회도 거기에서 원인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도 거기에 원인이 되는 것이고, 육도법계(六道法界)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온갖  태란습화(胎卵濕化) 그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웬수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탐진치(貪瞋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대중생활 하는 데에도 내’라 하는 생각 있는 데에서 온갖 불평이 일어나고, 온갖 서로 다툼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장애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203~3122)

 

 

 

 

------------------(1)

 

*(게송) '路從平處險  人向靜中忙’ ; 卍新纂續藏經 제 71책 《요당유일선사어록(了堂惟一禪師語錄)》 권2 참고. 大正藏 《철옹화상어록(徹翁和尙語錄)》 상권 참고.

*(게송) ‘覓火和爛得  擔泉帶月歸’ ; 大正藏 제 47책 《허당화상어록(虛堂和尙語錄)》 1권 참고.

*나찹다 ; ‘낮다’의 사투리.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조복(調伏) ; ①산스크리트어 nigraha 몸과 마음을 조절하여 온갖 악행을 다스림. ②산스크리트어 vinaya출가자가 지켜야 하는 규정.  () 말함. ③온갖 장애를 굴복시킴.

* 그릇 ; 큰일을  만한 뛰어난 인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버큼 ; ‘거품 사투리.

 

 

 

 

------------------(2)

 

*(게송) 잉풍기랑낭생구~’ ; 《허응당집(虛應堂集) (허응당 보우) ‘시부상인(示膚上人)’ 참고.

*내로라하다 ; (주로 내로라하는 꼴로 쓰여)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지거나 대표할 만하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사상(四相) ;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가지 분별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태란습화(胎卵濕化) ; 사생(四生).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짬지다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560)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바른 스승의 지도 / 관법(觀法), 간화선(看話禪).

달마 스님께서 이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 공부는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또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해.
화두를 타 가지고 한 번 탔으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한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해.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것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용560)

 

(1) 약 15분.

(2) 약 12분.


(1)------------------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마타불~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여.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별다른 것이 없다 그말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스스로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달마 스님께서 이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수행자들이 그 도를 배우기 위해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산 높고 길이 먼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옛날에는 요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를 못해가지고 100리, 200리, 중국 같은 데는 수천 리라도 걸어서 걸어서 선지식(善知識)을 걸망을 지고 찾아갔다 그말이여.

그 고생을 무릅쓰고 스승을 찾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특별히 무슨 다른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물이 귀해 가지고—도반(道伴)과 같이 부처님 회상(會上)을,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셨다’는 말을 듣고 수천 리를 걸어서 걸어서 가는데, 물이 귀해 가지고 목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우선 물을 먹어야겠는데, 간신히 물 웅덩이를 만났어. 만나서 물을 먹으려고 보니까 그 속에 자잘한 벌레가 우글우글우글 그러니 저것을 목마르다고 마시게 되면 살생을 하게 되고, 안 마시면 목이 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한 사람은 우선 벌레를 먹어서 살생을 하더라도 ‘우선 이 목숨을 살아야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생사해탈을 할 거여’하고 ‘나는 먹어야겠다’
한 사람은 ‘어찌 내 목숨 살자고 저 수없는 벌레를 내가 죽일 수가 있느냐. 내가 도를 닦는 것도 내 한 몸도 생사해탈을 하지마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그런 보살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내가 부처님도 찾아가는 데, 나 살자고 벌레를 죽이다니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 한 사람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목이 말라서 부처님 회상에 오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져서 죽었고,  한 사람은 그 벌레 섞인 물을 마시면서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가지고 부처님 회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둘이 오다가 혼자만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하니까, 그 저 살기 위해서 벌레를 죽인 사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 다 꾸짖을 수도 없고, 두 사람 다 칭찬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각자 ‘안 먹고 죽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 먹고 죽는 것이고,
‘아니야, 내가 설사 저런 살생을 하고 벌레를 죽이고라도 이 물을 먹고 부처님을 친견해야겠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라도 부처님을 친견해서, 그 대신 정말 목숨을 바쳐서 도를 닦아가지고,
‘자기로 인해서 그 죽은 벌레까지라도 기어코 내가 제도를 해야겠다’하는 그러한 백 배, 천 배의 신심과 분심으로 정진을 한다면 그것 또한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가는 곳마다 산도 좋고,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물이 산마다 모다 있고 마을마다 있지마는,
지금은 인간의 무지하고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그 좋은 계곡물, 좋은 샘물이 오염이 되어서 마음놓고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이대로 각성(覺醒)을 못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만 할 그러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연을 그렇게 오염을 시키고 망가뜨리면 사람도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짐승보다도 더 어리석은—짐승도 돼지나 개가 자기 잠자리에다가 대소변을 보지 아니하고 저 멀리 가서 대소변을 보고 오고,
돼지도 가둬 놓았으니까 울 밖으로 마음대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저쪽 한쪽 구석에다가 자리를 딱 봐놓고 꼭 거기다가 대소변을 보고, 자기가 누울 자리는 보송보송하게 그렇게 유지를 해 나가는 것을 나는 농촌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는 데 그 고생을 하면서 목숨까지 바치면서 스승을 찾아가는 그러한 신심.
바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도 그러한 신심으로 이 추위를 무릅쓰고 저 충청도에서, 전라도에서, 경기도에서 모다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습니다.

비록 조실 스님은 열반하셔서 직접 친견하지는 못하지만 녹음을 통해서나마 그때 설하시던 그 법문을 귀로 듣고, 다음으로는 같은 뜻과 목적을 가진 도반들과 한 법당에서, 한 자리에서 법문을 들으면서 결제(結制)를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모이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승(山僧)은 무슨 ‘덕숭문인(德崇門人)이다, 범어문중(梵魚門中)이다’ 무슨 그런 문중에 대한 생각이 별로 그렇게 없습니다.
누구든지 정법을 믿고, 이 조실 스님의 법문을 믿고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그런 신심을 가지고 수행한 사람이면 바로 그분이 사형(師兄)·사제(師弟)고, 그분이 바로 한 문중이고, 좋은 도반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이러한 승속, 남녀노소의 도반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모여서 결제 법회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마을에서는 형제간이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모두 다 모여서 잔치를 하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결제, 해제 때 이런 좋은 도반들이 이렇게 모인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것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스승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 뜻이 무엇이냐?

이 공부는 책을 봐가지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스스로 혼자 연구해 가지고도—몇백만 명 가운데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가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있을란가 몰라도, 만중(萬中)에 희유(希有)다. 만 명 가운데에도 희유하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스승을 찾아서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을 낼수록에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가령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정진하는 사람을 교통수단에다가 비유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에다가 비유하고,
그럭저럭 천천히 가는 수행을 하는 사람을 걸어간 사람에다가 비유한다면, 차라리 그럭저럭 간 사람은 며칠을 간다 하더라도, 설사 잘못 간다 하더라도 몇십 리나 몇백 리 밖에는 틀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빠른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잠깐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몇천만 리를 엉뚱한 데로 날아가 버리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발심해서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공부를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 바르게 해야 한다.

가보지 아니한 처음 가는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보면 두 갈래 길도 나오고, 세 갈래 길도 나오는데 거기서 어느 길이 옳은지를 알 것이냐 그말이여.
먼저 가봐서 그 길을 아는 사람의 안내가 없이는 자기 혼자 가다가 딱! 갈라지면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 공부는 두 갈래, 세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능활보(能闊步)하야사, 백척간두에, 백 척이나 되는 저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를 해야만,
항사제불(恒沙諸佛)이 안전화(眼前花)니라. 항하사수(恒河沙數)와 같은 모든 부처님이 눈앞에 공화(空花)가 되는 것이다.(처음~15분21초)




(2)------------------

아까 조실 스님께서 신해년에 설하신 녹음 법문을 우리는 경청했습니다마는 화두(話頭)! 선지식으로부터 딱 지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렇게나 천칠백 공안(公案)이나 있으니까 이리저리 책을 『염송(拈頌)』이나 그런데 뒤적거리다가,
요새는 『염송(拈頌)』도 번역이 되어 나온 것이 있고 그래서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이리 보고 ‘에잇! 나는 이 공안으로 한번 해보자’ 조금 해 보다 잘 안되면 ‘에이! 이것으로 한번 해보자’ 한 철마다 화두를 이리저리 바꾸고.

또 어떤 선지식한테 가서 화두를 타서 한 철, 두 철 해 봤지만 암만해도 바닥이 안 나고 잘 안되니까 또 저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서 화두를 타가지고 이리저리 해봐도 안된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곧잘 된 것 같아서 ‘이제는 이것이 내 본참공안으로서 좋다’ 이리 생각하고 해 보면 나중에 또 영 안돼. 안되고는 먼저 했던 공안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것을 해보니까 이제 좀 된 것같다 그말이여.

그래서 말도 이놈도 타 보고, 저놈도 타 보고 그래서 그 말 타는 사람은 말을 가끔 바꿔보는 재미도 있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화두를 만약에 자꾸 이놈으로 해보다 저놈으로 해보다, 그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우물을 파는데 이놈 조금 파 보다가 안되면 저쪽에 가서 또 파 보고, 그놈 파서 안되면 이쪽에 파보고 해서 몇 군데를 우물을 파 간신히 물이 나왔는데, 가무니까 물이 차츰차츰 줄어들어. 장마철에는 물이 출출출 넘고, 이러한 샘물은 그게 건수(乾水)라 해서 먹을 수가 없는 거여.

화두도 처음에 조금 요리 해 보고 되니까 ‘된다’고 그러다가, 안되니까 또 이리저리 바꾼 사람은 우물 파는 사람과 같애.
그 사람은 뭔 소견이 나 봤자 그것은 의리선(義理禪) 따위이지 정말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철대오한 것이 아니어.

그래서 이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또 믿을 수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해.
화두를 타 가지고 한 번 탔으면 확철대오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한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해.

이 참선 공부라 하는 것이 처음에는 곧잘 잘된다고 느껴져. ‘참 좋다. 이 공부가 잘 되는구나’하고.
뚝! 변해 가지고 또 안돼.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에 주먹 같은 것이 치밀러 올라와가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숨도 잘 안 쉬어지고 고약하다 그말이여.

이거 상기병(上氣病)이 걸렸나? 호흡을 잘못해서 그랬나? 화두를 잘못 들어서 그러나? 심지어는 이  화두가 나한테 맞지 않아서 그런가?
이래 가지고 이리저리 번민을 하고 고민을 하고, 화두를 바꾸려고 했다가 또 선지식이 내 근기를 잘 몰라가지고 나한테 공부하는 법을 잘못 일러줘서 그랬나?

천 가지 만 가지 번뇌심이 일어나고, 차라리 이거 참선을 하지 말고 경(經) 공부를 할까?
이 공부를 하지 말고 무슨 주력(呪力)을 할까? 내가 업장(業障)이 두터우니까 기도를 해가지고 업장을 소멸한 다음에 참선을 할까?

이러다가 요새 비파사나(vipassanā)라고—‘사념주관(四念住觀)’

이라고 관법(觀法)이 있는데, 부처님 때부터 관법이 있어서 동남아에서는 그러한 관법이 지금까지도 전해 와서 그런 관법 수행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한국 스님이 동남아에 가 가지고 그 법을 배워가지고 와서 널리 권장을 하고, 포교를 하는 그런 분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그런 관법이 차츰차츰 중국으로 건너와서 중국에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임제종(臨濟宗)의 화두로서 공부를 하는 그러한 참선으로까지 발전을 해서 한국에까지 지금 전해 와서 우리가 그런 간화선(看話禪)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 따라서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方便)을 설하셨습니다.
어느 하나도 나쁘다 할 것은 없고 다 그 나름대로 중생의 근기에 맞으면—마치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약이 약국에서 팔려지고 있지만, 어느 약이 좋다 나쁘다 하기가 어렵고, 약마다 그 체질과 병에 맞으면 그 병을 나을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아직도 계속 약이라든지 의술이 발전 과정에 있어서 그 증상에는 잠시 효과가 있지마는 나중에 부작용이 남아서 좋지 않은 약을 장기간 복용을 하면은 작은 병은 나았지마는 큰 병을 얻는 수가 허다 해서 약을 너무 함부로 남용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것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문을 외워서 주력을 하는 거라든지, 어떤 관법(觀法)을 닦아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일수록에 바른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방법은 이것은 용화사에서는 ‘최상승법(最上乘)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고, 산승도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마는,
이것은 천 년을 두고 많은 선지식들이 이 간화선을 통해서 수행을 해 오셨고, 그래서 이것은 바르게 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바르게 정진을 해 가면 거의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 간화선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안 한다든지, 호흡을 바르게 안 한다든지,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의심하되, 잘못되게 화두를 의심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효험을 봤다고 해서 체질도 다르고 또 약 먹는 방법을 잘못 먹고, 지나치게 과격하게 먹는다든지, 잘못 먹으면 그 약을 먹고 해(害)를 입을 수도 있는 거와 같아서, 이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을 해라. 간절히 이 화두를 의심해라’ 그러니까 간절히 한답시고 너무 용을 써 가지고 미간(眉間)에다가 ‘적을 소(小)’자를 쓰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가지고 너무 힘을 쓰다 보면, 용을 쓰면, 기(氣)가 위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눈이 벌게지고, 골이 뽀개지도록 아프고 이러한 병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아주 젊은 소년 시대에 발심을 해가지고 너무 그렇게 용을 쓰고 정진을 하다가 상기병(上氣病)을 얻어서 머리가 터지고, 코로 입으로 피가 넘어오고 하는 그러한 경험을 가진 분의 한 분인 것입니다.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처절한 그 광경을 들으셔서 많이 다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 도반들은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15분22초~26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게송 참고.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금/수놓을 수/강 강/뫼 산) ; 비단(緋緞)에 수(繡)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각성(覺醒 깨달을 각/깰·잠에서 깰 성) ; ①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 앎. ②깨어나 정신을 차림. ③정신을 차리고 주의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문중(門中) ; 한 스승 아래 대대로 형성된 스님들의 계통.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사제(師弟) ; ①한 스승의 제자로서 자기보다 나중에 계(戒)를 받은 스님을 일컫는 말. ②스승과 제자.

*위음왕불(威音王佛) : [범]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이름. 한량없는 과거의 부처님으로, 이 부처님 이전에는 부처님이 없었다고 하여 ‘지극히 오랜 옛적’을 뜻한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 백, 자 척, 장대 간, 머리 두) ; ①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②모든 상대적 차별을 없앤 절대의 경지.
*항하사수(恒河沙數) ; 인도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와 같은 수(數)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2)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건수(乾水 마를 건, 물 수) ;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곧잘 ; 제법 잘.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 기운 기, 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사념주관(四念住觀) ;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처관(四念處觀)과 같음.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의 네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觀]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것.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신·수·심·법(身·受·心·法) 네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부정(不淨)하며, 고(苦)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 한다.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 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관법(觀法) ;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분별적인 사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諸法]의 인상이나 겉모습에 떠돌지 않고, 대상을 꿰뚫어서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는 수행. 이로써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涅槃-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을 깨닫게 한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7. 22. 10:06

§(210) (게송)적수성빙신유지~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 /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최상승법으로 수행해 나가야 / 비우는 것이 올바른 공부.

‘정각(正覺)이다, 대각(大覺)이다, 본각(本覺)이다’—‘깨닫는다’고 하는 것을 이 선문(禪門)에서는 ‘견성(見性)’이라 그러거든. ‘성품(性品)을 본다’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어디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탁! 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으면서, 정말 불법의 근본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해서 최상승법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 높은 벼슬을 하고, 재수대통 하고,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한 일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저절로 이루어지냐 하면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업(業)이 소멸(消滅)이 되기 때문에—업이 소멸이 되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한 생각 원하면 인간 세상에 제일 큰 원이 천자(天子)가 되는 원이라면 천자도 가능하거든, 그밖에 조그마한 원이야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서 속에다 따 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불법을 올바르게 닦아가는 것이다.


**송담스님(No.210)—83년 칠석법회(83.08.15) (용210)

 

(1) 약 20분.

(2) 약 7분.

 

(1)------------------


적수성빙신유지(滴水成氷信有之)로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여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적수성빙신유지(滴水成氷信有之)나, 되게 강추위 할 때는 물 한 방울 톡 떨어지면 그 물 한 방울이 눈 한번 깜빡 할 사이에 얼음이 딱 되어버립니다. 물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들어 앵깁니다.
수도꼭지에서 계속해서 물이 똑똑 떨어져도 떨어진 쪽쪽 땅바닥에서는 계속 얼음산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말로써 그 진리를 표현할 수가 없고, 귀로써 들어서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설할 것도 없이 이미 사람마다 다 진묵겁(塵墨劫) 전에 완전무결하게 성불(成佛)해 마쳐져 갖고 있는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지금 인류가 45억을 추산하고 있습니다마는, 45억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소나 돼지나 말이나 벌레나 모기나, 꿈적꿈적한 것은 전부가 다 이미 다 있어. 원만하게 다 성불을 해 가지고 마쳐 가지고 있는 것이고,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나무나 산이나 바윗돌이나, 길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모래알,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성불해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몸뚱이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대중 가운데에는, ‘그렇다면 왜 나도 부처라면 왜 내가 지금 범부(凡夫)로써 깜깜한 상태에서 이렇게 중생으로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가?’ 모두가 다 의심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마는,
틀림없이 부처님은 부처님이나, 부처님이 잠시 졸고 있다가—졸고 있는 상태에서는 분명히 졸고 있다고 해서 죽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이 꼬박 들어서 잠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다고 해서 죽은 것도 아니요,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닌 것입니다. 분명히 살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지만,
잠깐 잠이 들어가지고 꿈을 꾸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꿈만 깨 버리면 생시(生時)가 된 것처럼,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아서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參禪)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각(正覺)이다, 대각(大覺)이다, 본각(本覺)이다’ ‘깨달을 각(覺)’자를—‘깨닫는다’고 하는 것을 이 선문(禪門)에서는 ‘견성(見性)’이라 그러거든. ‘성품(性品)을 본다’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어디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탁! 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녹양방초(綠楊芳草)가 색의의(色依依)여. 녹양(綠楊), 푸른 버드나무 취영청 늘어지고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달은 가을달대로 운치가 있고, 봄의 꽃은 꽃대로 아름다워서, 가을꽃도 깨달음의 경지요, 봄꽃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한없는 깊은 뜻을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입니다.(秋月春花無限意)
그러기 때문에 깨달은 눈으로 보면 가을꽃도 설법(說法)이요, 가을달도 부처님의 얼굴이요, 봄에 핀 꽃도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고새가 우는 소리를 한가히 듣는 것도 또한 방해롭지 않다(不妨閑聽鷓鴣啼)’한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낱낱이 그것들이 다 ‘참나’로 돌아오는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고,

파란 것이나 붉은 것, 풀에서는 풀 냄새, 아카시아꽃에서는 아카시아꽃 냄새, 장미꽃에서는 장미꽃 냄새, 그 꽃마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가 다 다르지만,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낱낱이 다 나로 하여금 지혜의 눈을 뜨게 해주는 좋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여러분은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집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고, 우리 남편이 승진하기를 바라고, 우리 아들과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혼기를 맞이한 우리 딸이 좋은 신랑감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금 간절하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러한 소원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 조그마한 너무너무 작은 일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세상이, 사람이 사람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그것도 또한 중대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한 원(願)을 성취하려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콩을 많이 수확한 사람이 바늘에다 그 콩을 꿰어가지고 등잔불에 구워 먹고,
계란을 많이 구해가지고 계란 알맹이는 쏟아버리고 그 계란 속에다가 쌀 한 숟갈을 씻어서 넣고, 그래가지고 그 계란을 젖은 종이로 싸가지고 부엌 불속에다 넣어서 계란밥을 해 먹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여러분은 어릴 적을 추억을 하실 것입니다마는,

농사지어 가지고 바늘에다 콩을 구워 먹고, 양계(養鷄)를 해 가지고 알맹이는 쏟아버리고 거기다 계란밥을 해 먹기 위해서, 그래 양계를 하고 콩 농사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불법을 믿으면서, 정말 불법의 근본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해서 최상승법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 높은 벼슬을 하고, 재수대통 하고,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한 일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저절로 이루어지냐 하면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업(業)이 소멸(消滅)이 되기 때문에—업이 소멸이 되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한 생각 원하면 인간 세상에 제일 큰 원이 천자(天子)가 되는 원이라면 천자도 가능하거든, 그밖에 조그마한 원이야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칠성불공을 하고 산신기도를 하고, 좋다는 데는 강화 보문으로, 양양 낙산사로, 남해 보리암으로 발이 닳아지도록 쫓아다녀도 여간 소원이 잘 성취가 안되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과거에 지은 업이 꽉 쩔어 가지고 그놈이 장애가 되어가지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여.

그 원을 성취하려면 그러한 성지(聖地)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나,

그보다도 더 빠르고 더 요긴한 방법은 강화까지 안 가고 자기 있는 가정에서 일하면서, 밥 지으면서, 빨래하면서, 차를 타면서, 절에 오면서, 절에 가면서,
법회날은 절에 오면서, 절에 와서 또 법문을 다 듣고 가면서,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돌이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도 ‘이뭣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속상하면서 ‘이뭣고?’
슬퍼하면서 ‘이뭣고?’
기뻐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법신불(法身佛)이 계신 법당(法堂)이요, 강화 보문이요, 양양 낙산사요, 오대산 적멸궁이요, 남해 보리암이다 이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만약에 오대산 적멸궁에만 계시고, 양양 낙산사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남해 보리암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불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성지를 마련한 것은 거기에 정성스럽게 감으로써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신심을 내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절이 필요한 것이지,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일어날 때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무슨 파란 나무나 빨간 꽃 한 송이를 볼 때 거기에서 바로 법신불을 친견할 줄을 알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화사는 여러분에게 그러한 부처님을 깨닫게 하는 길을 가르쳐 드리는 도량(道場)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러한 최상승법을 듣고 한 생각도 옮기지 아니하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불법을 깨닫고 부처님을 친견할 길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될 것을 나는 자신 있게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대도(大道)도 틀림없이 성취하시고,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소원도 반드시 성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보증을 하는 바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서 속에다 따 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불법을 올바르게 닦아가는 것이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속으로 그것을 따 담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소리를 속에다 따 담고 해가지고, 속에는 일생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한 것들이—선(善)·악(惡)·무기(無記),
좋은 일, 악한 일, 좋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는 그러한 무기(無記)의 일들, 수수(數數) 백억만 가지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차곡차곡 쟁여져 갖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은혜스러운 일과 원망(怨望)한 웬수스러운 일들이 비빔밥이 되어가지고 얽히고설켜서,
그것들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 거기서 다 싹이 나가지고 또다시 새로운 은혜를 맺고, 또다시 새로운 웬수를 맺으면서 무량겁을 두고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렵고 지겹기 한이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일들이 되풀이 되어서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할 것을 생각해보면 몸서리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난 이 기회를 결단코 놓치지 말고 철저하게 최상승법을 믿어서 열심히 닦아간다면 반드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39분45초~59분22초)

 

 

 



(2)------------------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말씀드리는 바를 명심을 하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내생에 한(恨)이 만단이나 될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음력 7월 보름날 백종날이 돌아옵니다. 그날은 백일기도 회향날이며, 여름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그날을 기해서 지옥문이 열려가지고 우리의 다생(多生)에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우리와 인연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이 하루 동안 특별휴가를 맡아가지고 오시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우리 법보전에서도 선망부모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이 거행이 됩니다.

그날은 여러분께서도 잘아신 바와 같이 목련(目連) 존자가 그 죄를 짓고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날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어머니를 천도했느냐 하면,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들 스님네께 만 가지 온갖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과일 공양(供養)을 올려서,
그 석 달 동안 청정한 마음으로 도를 닦으신 스님네께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청제부인—목련 존자의 어머니를 천상(天上)에 태어나시게 한 그러한 날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또 가족이라든지 친척이라든지 이웃 친구들 모다 권고해서 오셔서 동참을 하시고,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만년위패에 모시지 아니한 분도 임시 위패라도 모셔서 선망부모를 천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날 모다 지옥문이 열려서 오셨다가 내 아들, 내 며느리, 내 딸이 안 왔나하고, 두루 찾아보아도 다른 사람은 다 왔는데 자기의 아들딸들이 안 왔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서운하게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영가의 세계나, 이 살아 있는 우리 인간 세계나 그 정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 그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번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영가고 뭐 그런 게 소용 있느냐?’
이러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영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이 세계나 쪼끔도 다름이 없고 오히려 더 정확하고 더 영특하고 그런 것입니다.

오늘은 칠석날에 한 생각 일으키고, 말 한마디 하는 그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화를 말씀을 드리고,
그러기 때문에 그 한 생각, 한마디를 조심할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해 나가면 생사해탈(生死解脫)도 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법문을 해드렸습니다.

이어서 칠석의 법요식이 진행이 되겠습니다.(59분23초~65분33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적수성빙신유지~’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성불(成佛 이룰 성, 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생시(生時) ; ①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②태어난 시간. ③살아 있는 동안.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설법(說法) ; 불교의 이치나 가르침[法]을 풀어 밝힘[說].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양계(養鷄) ; 닭을 먹여 기름. 또는 그 닭.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천자(天子) ;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제국의 군주를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이라고 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수수(數數) ; 아주 여러.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2)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목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단전 호흡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21분.

(2) 약 6분.


(1)------------------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야심경이 좋다니까 반야심경을 읽고, 천수경이 좋다니까 천수경을 냅다 틀어재끼고, 관세음보살이 좋다면 아들을 위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죽은 영감을 위해서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그러다 참선이 좋다니까 앉아서 참선 흉내 좀 내고, 입춘이 되면은 또 무당집에 가서 5만원 10만원짜리 또 부작을 사고, 좋다는 데는 다 쫓아다니고, 그러다가 결국은 눈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입니다.

이리저리 좋다는 것은 다 인연을 맺고 공덕을 지었으니까 악도(惡途)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나도 바래고, 원(願)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실 것을 나는 다같이 바래기는 하지마는 과연 그분이 극락세계에 꼭 갈 것인가? 나는 보증을 못합니다.

복을 짓고 착한 일을 한 만큼 내생에 천당에도 가고 또 사람이 되더라도 부자도 되고 인물도 잘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나도 믿습니다마는,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다른 사람에게 이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을 수 있도록 이것이야말로 샘이 없는 복[無漏福]이요, 함이 없는 법[無爲法]이라. 이 복이야말로 영원한 것입니다.
남 보고 하라고만 하고 자기는 안한 사람이 있거든. 자기만 하고 남 보고는 별로 권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법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새에 두 날개가 있는 거와 같고, 수레에 두 수레바퀴가 있는 거와 같아서, 새가 날개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하나만 가지고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리이타, 이 세등선원을 짓는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요,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여러 신남신녀가 시주(施主)를 하고 화주(化主)를 하는 것도 이것 또한 자리이타를 하는 것이여.

부처님 출현하신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있어서야 원래 생사 없는 본각(本覺)자리에 계시는데 무엇이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렇지마는 중생을 위해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것이다.

한 글자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다.
한 글귀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역대 조사(祖師)가 많은 어록(語錄)을 남기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한 자비심에서 나오신 소식이다.

오늘 산승이 나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내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수행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 시간도 바쁘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올라와서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중언부언 두서없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

부처님께서 다겁(多劫)을 두고 스스로 생사 속에서 윤회하신 그런 뼈아픈 경험이 계셨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나오셨어.

저 자신도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 정진을 해봤기 때문에 선지식한테 들은 말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바를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림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정진을 잘할 수 있는, 발심하실 수 있는 채찍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하는 그러한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진즉부터서 공부를 해서 이런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도 잘 정진을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처음으로 공부를 하러 오셔서 이러한 말씀이 꼭 필요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다 잘 알고 공부를 잘하고 계신 분은 증명을 하시면 되는 게고, 처음 와서 들으신 분은 뼈에 사무쳐서 명심해서 듣고 발심을 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선배 후배 도반들의 그 돈독한 정의가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언제든지 좌선을 해서, 참선 시작할 때에는 준비 호흡으로 숨을 가득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쉬어 버리고 나서, 그렇게 2번을 하고서,
3번째는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를 말고 가슴과 윗배는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불어나도록, 볼록해지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숨을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윗배와 가슴은 약간은 움직이겠지만 거의 가만히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진다.

들어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하니 아주 수월하게 들어마시는 거여.

너무 오랜 시간을 걸려서 들어마실라고 하지를 말고,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으면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를 말고, 아까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인자 본(本) 호흡, 단전 호흡에 들어가서는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면 안된다 그말이여.

8부쯤만 들어마셔. 더 들어마실수 있지마는 8부쯤만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약 3초 동안을 머물러.
딱 정지한 상태에서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그 홀쪽해지기 시작할 때 그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이것은 아주 초보자를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이러한 방법을 써서 하면 단전 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단전 호흡도 잘되고, ‘단전 호흡했다’하면 화두도 거기에 붙여서 함께 잘되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익숙해진 사람은 숨을 들어마시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그까짓것도 구애 없이 항시 화두의 의단(疑團)이 항시 목전(目前)에 상주해서, 눈앞에 항시 나타나서 일여(一如)하겠지만, 처음 한 사람은 ‘이뭣고?’해도, 금방 ‘이뭣고?’한 사이에 생각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어렸을 때로 날아갔다, 집으로 날아갔다, 야단이거든. 그러다 보면 화두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다시 또 챙길라면은 힘이 들거든. 그러다 억지로 ‘이뭣고?’ ‘이뭣고?’하다 보면은 모가지만 뻣뻣해 가지고 골만 빠개질라고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고, 아! 이러니 할려고 마음은 내는데, 할려고 하면은 잘 안되니 그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여러 가지로 다 경험을 해 보고 연구를 한 결과 이 단전 호흡을 겸해서 하도록 이렇게 모다 지도를 해 오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 오늘 유독 결제날이기 때문에 단전 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넘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만 했으면’ 이러시겠지만 굶어서 돌아가시지를 않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야 말이 들어가지 잔뜩 먹고 쌕쌕거리게 되면은 졸음만 오지, 법문이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장한 다음에 잡숴야 밥이 맛이 있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서 내쉬는데, 숨을 들어마실 때 어떻게 들어마시냐 하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이렇게 하지를 말고, 물론 코로는 들어가겠지만, 우리의 기분으로는 저 궁둥이 뒤에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이렇게 볼록해지도록 그런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머물렀다 내쉴 때는 코로 내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쉴 때도 저리 뒤로 해서—궁둥이 뒤로 해서 저 뒤로 쑤욱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내쉬어 보시라 그말이여.
저 뒤에서 쑤욱 들어마셨다, 들어마신 호흡을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저 뒤로 쑤욱 배꼽을 뒤로 잡어당기면서 뒤로 내쉬는 거여.

그런데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를 말어. 너무 억지로 해 가지고는 그냥 한 두어 번만 하면 숨이 가쁘게 이렇게 하시다가 ‘아이고! 그거 되서 못하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예요.

아주 수월하게—들어마시는데 3초 걸리고,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한 4~5초 걸리게 조용하게 내쉬고, 이렇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단을 거기다가—배꼽밑에 배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관심을 두고서 화두를 거각(擧却)해 보시라 그말이여.

백 명이면 백 명, 몸도 차츰 건강해지고 가벼워지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병이 낫거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있는 사람도 그게 낫고, 집안에서 무슨 일로 속이 상해서 가슴앓이 속병이 있는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 병이 낫는다 그말이여.

이것을 하면서 화두까지 거기다 겸해서 하면은 결정코 깨달음까지 이르른다 이말이여. 화두는 아니하고 밤낮 고것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병을 고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 갖고는 그건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여.

거기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렇게 해 나가면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지 아니하고 가정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고 낮에도 시간 있는 대로 그렇게 하시고,

이 공부는 꼭 앉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말하면서, 걸어가면서, 차 타면서, 행주좌와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오늘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모두가 다 이 세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못 장소가 형편상 이 세등선원일 수도 있고, 또 보문사일 수도 있고, 군산일 수도 있고, 또 시내일 수도 있고, 조치원일 수도 있고, 청주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나는 그자리에서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 업장(業障)이 거기에서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져. 업장이 녹아지면은 소원성취는 거기에 있거든.(60분26초~80분55초)





(2)------------------

내가 그전에는 얼굴이 아주 시커먼 사람인데, 아! 30년을 참선을 하니까, 내 얼굴보고 검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이여.
성질이 아주 불같아 가지고 신경질을 잘내기로 아주 유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데, 아! 참선을 했더니 나 보고 마음보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여러분 가운데도 얼굴이 검어서 고민인 사람,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나서 고민인 사람, 또 신경질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다고 욕을 먹고 그러한 평판이 있는 분, 오장육부에 병이 많은—내가 또 병주머니여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한 달 내지 두 달은 꼭 결석을 했다.

그런데 출가해 가지고 참선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그런는데, 내가 별로 약도 많이 먹지도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어한 사람이어서 병원에 잘 안 가고 그러는데, 참선을 해서 이렇게 몸도 건강해 진 것 같어.

여러분들도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제가 금방 이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식주 문제라든지, 일상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하는 이러한 법을 명심을 해서 실천에 옮기신다면 얼굴도 예뻐질 것이고 오장육부의 병도 다 나아질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 평판이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스승, 상좌 할 것 없이 다 불보살과 같이—나는 워낙 고약한 사람이라 그렇지, 보통 된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금생에 불보살과 같이 될 것을 나는 맹세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나도 역시 몽산 스님과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여러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꼈고,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법문을 여지없이 믿기 때문에 추호(秋毫)도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결제일을 기해서 여기에 모이신 출가한 스님네나 마을에 계신 신도 여러분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 주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름 일어나듯이, 산에 구름 일어나듯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이렇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여러분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이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80분56초~86분1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4분 51초)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과 무루복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체중현(337:2분48초).mp3
1.29MB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체중현(282:2분19초).mp3
1.07MB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체중현(466:2분26초).mp3
1.12MB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체중현(112:2분36초).mp3
1.19MB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2)

*병주머니 ; 갖가지 병이 많은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의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다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을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 하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또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엇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어.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그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생(生)이요, ‘일어났던 그 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때 그것이 생(生)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사(死)’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몸뚱이를 표준 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몸뚱이를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의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딱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더 잘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이 시간에는 불가불 좀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5분17초~23분16초)




(2)------------------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것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이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것도 영원불멸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못 가서 10분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을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또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해 내려왔습니다.

이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할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그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딸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잘 있나?」 「애기가 잘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할 때에—「아! 내가 쓸 데 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생각이 났을 때 ‘이뭣고?’

무엇이 금방 그 딸 생각을 했나? 이거여. 이 딸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나 가지고 속에서 화가 탁! 치밀어 오를 때, 바로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그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한 법문이요, 경책(警策)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일 기도를 한다든지 7일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나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일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일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향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간절히 향 하나 올리고, 물 한 그릇 올리고 소원을 할 때 그 마음,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절 한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꼭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도,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고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원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이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원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 가는 원수요 도적놈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23분17초~44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부고(訃告 부고 고,알릴 고)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념,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2)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4. 12. 30. 17:12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7분 34초부터 시작됩니다>

 

 

 

§(330) (게송)동풍취락행화지~ / 참선법은 비약적인 것 / 참선은 바른 법문에 의지해서 올바르게 해야 /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도(道)에는 승속이 없고 남녀가 없다.

 

참선법은 이것은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여. 한번 뛰어가지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어서 점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정말 투철한 신심과 투철한 용맹으로 바르게 공부만 한다면 우리도 언하(言下)에 진리의 눈을 뜰 수도 있고, 3일이나 7일이나 석 달에도 확철대오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참선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참 좋은 것이지만, 이건 선지식의 바른 법문에 의지해서 올바르게 해 가야지, 잘못하면은 참 이거 하다가 병 걸리기도 쉽고, 사견에 떨어지기도 쉽고, 까딱하면 미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법에 귀의해서 도를 닦으면 꼭 머리를 깎고 스님이 안 되어도 세속에 살아도 바로 그것이 산중에서 도를 닦은 거와 마찬가지고, 그냥 세속에서 살아도 솔바람 부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시냇물 가에서 약초를 캐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그것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0)—87년 5월 첫째일요법회(87.05.03) (용330)

 

(1) 약 20분.

 

(2) 약 19분.

 

(1)------------------

 

동풍취락행화지(東風吹落杏花枝)한데  천리홍향재하처(千里紅香在何處)인고

나무~아미타불~

태양문하무성월(太陽門下無星月)이요  천자전리무빈아(天子殿裏無貧兒)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동풍취락행화지(東風吹落杏花枝)하니, 동풍, 봄바람을 동풍이라고 그러지요. 동풍이 불어서 은행나무 은행꽃을 다 떨어트렸다 그말이여.

천리홍향(千里紅香)이 재하처(在何處)냐? 천리에 붉은 꽃향기가 어디에 있겠느냐?

 

동풍이 잘 불었을 때는 그 백화가 피고 모다 향기를 풍기고 그러다가 아주 심한 강한 동풍이 냅다 불어대니까 행화(杏花)도 복숭아꽃도 떨어져 버리고 온갖 울긋불긋한 좋은 꽃도 다 떨어져버렸다 그말이여.

 

태양문하(太陽門下)에 무성월(無星月)이요. 태양이 없을 때 밤에는 별도 반짝거리고 달도 밝고 그랬었는데, 동천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니까 번쩍거리던 별도 간 곳이 없고, 그렇게 휘황찬 달빛도 무색해져 버렸다 그말이여.

 

천자전리(天子殿裏)에 무빈아(無貧兒)로구나. 천자(天子)의 궁전 속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더라. 거지가 없더라.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여. 그 얼굴 생긴 것이 천 명이 모이면 천 명이 다 다르고, 만 명이 모이면 만 명이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어.

그만큼 중생의 근기도 또 차이가 있어서 성격도 다르고, 근기도 다르고, 지혜 있고 어리석은 것도 다르고, 복이 있고 없는 것도 다르고 그렇게 다른데.

 

그래서 우리가 지은 업(業)도 천차만별이여. 그래서 소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그래서 각기 자기 나름대로 잘난 맛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잘난 맛이 없고, 「나는 참 못났다.」 「나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이다.」 이렇게 비관을 하기 시작하면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리고, 뭐 그냥 자살할 생각밖에 안날 것입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래도 자기 잘난 맛으로 그 재미로 그래도 이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 있어서는 중생이 그리고 이 생활 의욕을 가지고 또 이렇게 자기에 맞는 직업을 가지고 모다 그 살아볼라고 애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참 다행한 일이지요.

 

쓰레기를 줍건, 똥을 푸건, 짐을 나르건, 무슨 직업을 가지건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을 충실히 하면서, 그 직업이 힘만 들고 돈은 많이 못 벌지라도 그래도 그 자기의 직업을 참 소중히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서 충실히 하고 그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밤하늘에 온 창공에 수천 수백만의 별들이 반짝거리는 것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지요.

그 별 나름대로 다 속삭임이 있고, 별 나름대로의 그거 자체를 유지해 나가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 밤하늘에 그렇게 크고 작은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이 한번 터억 동천(東天)에 홰를 치고 떠오르는 날에는 그 별들이 간 곳이 없어.

 

이것은 각기 자기의 업에 따라서, 자기의 전생에 지은 분복(分福)에 따라서 그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한 일이나 거기에서 정법(正法)을 믿는, 그 정법이 한번 그 자기의 마음속에 탁 파고들어 가면 큰 별이나 작은 별이나 무슨 별을 막론하고, 또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정법을 한번 탁! 접해 가지고 딱 믿게 되면 마치 온 허공에 태양이 뜬 것과 같다 이거거든.

 

가난한 사람도 이 정법을 철저히 믿고 난 때부터서는 가난한 것이 아니요. 악한 짓을 많이 한 죄인도 정법을 듣고 믿고 실천하게 된 바로 그 시간부터서는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정법은 이 태양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자의 궁궐 안에는, 거지가 어떻게 천자의 궁궐 안에 거지가 가난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와 같아서 정법을 한번 믿어버리면, 믿고 그것을 실천한 바로 그 시간부터서 그 사람은 바로 천자의 궁궐 속에서 살고 있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법문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 가지의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그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법(方便法)인데, 부득이해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부득이해서 그런 방편설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마디 한마디가 다 주옥(珠玉)같은 말씀이고 주옥같은 법이기는 하지만 그 방편은 궁극에 가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알아듣게 하기 위한, 최상승법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는 그 방편으로 인해서 불법을 믿게 되었고, 불법에 인연을 걸게 되었으나, 일단 불법에 인연을 걸었으면은 하루빨리 그 방편법에서 그 방편법을 발판으로 해서 최상승법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최상승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인 것입니다.

 

참선법은 이것은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여. 한번 뛰어가지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어서 점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세속의 모든 학문은 차례차례 해 가지고 오랜 세월을 공부하고 연구함으로써 차츰차츰 깊은 데에까지 들어가는 것인데, 이 최상승법은 그런 점진적인 것이 아니고 비약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신(信)이 투철하고 그 용맹이 투철하면 3일, 일언지하(一言之下)에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가 있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영랑신선은 3일만에 견성(見性)을 했어. 역대 조사들 가운데에도 그렇게 언하(言下)에 확철대오한 분이 수없이 많습니다.

 

물론 저 긴 눈으로 보면 언하에 대오한 분은 숙세에 그만큼 닦았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렇게 3일에도 깨닫고 7일에도 깨닫고 뭐 언하에도 깨닫게도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과거 전생 일을 모르니 전생에 우리가 얼마만큼 닦았는가 확실한 것은 모르지요? 모르나, 금생에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고, 그래 가지고 이렇게 최상승법문을 듣게 된 걸로 보면,

천하 없이도 우리는 저 전생 저 전생부터서 이 정법에 깊은 인연을 맺고 씨를 심어놨던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정말 투철한 신심과 투철한 용맹으로 바르게 공부만 한다면 우리도 언하에 진리의 눈을 뜰 수도 있고, 3일이나 7일이나 석 달에도 확철대오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선을 시작한 지 3년이 넘고, 10년이 넘고, 20년, 30년이 되어도 별 뾰족한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은 반드시 그 신심(信心)이 약하거나 분심(憤心)이 약하거나 또는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 되었거나, 방법은 틀리지 않았어도 신심과 분심이 약해 가지고 그렇다면 그러니 끝장이 안 나겠지요?

 

솥에다가 무슨 아주 그 뭐 질기고 굳은 어떤 음식을 넣어놓고 불을 때는데, 그 장작을 갖다가 잘 지펴서 뜨끈뜨끈하게 지펴야 그놈이 인자 솥에 물이 끓고 속에 음식이 무를 텐데, 계속 앉아서 성냥개비 같은 것을 놓고 볼볼볼볼 태운다든지 솔 이파리를 갖다가 하나씩 하나씩 태우고 앉았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솔 이파리나 성냥개비도 그것이 목질(木質)이니까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고, 누가 보든지 그 불 땐다고 하지 불 안 땐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그 솔 이파리 하나씩 하나씩 때 가지고 그것이 솥에 것이 끓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참선을 하면서도 분명이 이렇게 앉아서, 떠억 버티고 앉아서 ‘이뭣고?’하고, 그거 남 보면 분명히 참선이지 그거 참선 아니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내용이 그 신심이 간절하고 그 용맹심(勇猛心)이 투철하고 그러지 아니하면 그냥 ‘이뭣고?’

‘이뭣고?’ 한 번만 해도 아미타불 육백만 번 부른 것보다 낫다니까, ‘이뭣고?’(하면서) 생각할 것 다 생각하고, 먹을 것 다 먹고, 시비할 것 다 시비하고, 욕심 챙길 것 다 욕심 챙기고, 할 것은 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가끔 한 번씩 ‘이뭣고?’ 그래갖고 『나 참선을 30년이나 했는데 별 소식이 없다』고, 그거 솔 이파리 하나씩 둘씩 꼬실라 갖고 솥에 것이 안 무른다는 사람과 그것이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어쨌든지 기왕 불법을 만났고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신다면, 그 솔잎도 그냥 한아름씩 갖다가 막 계속해서 요령 있게 부지깽이로 잘 하면서 불을 지피면 상당히 화력(火力)이 나고, 모다 성냥개비 같은 것도 그냥 짐으로 갖다가 막 싸지른다면 그것도 화력이 날 것입니다.

 

 

인자 이 말을 듣고 혹 어떤 분은 『그래 아주 참 투철(透徹)한 신심과 아주 투철한 용맹심을 가져야 참선을 빨리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해볼 일이다』해 가지고,

이를 악물고 막 그냥 눈을 까뒤집고서, 꽉 눈썹을 갖다 찡그리면서 ‘이뭣고?’ 그래 가지고 막 허리를 펴고 어깨에다 힘을 주고서, 목에다가 그냥 힘을 주고 오기를 내 가지고 막 해 제끼는...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면은 며칠 못 가서 골이 뽀개질라고 아플 것이고, 눈이 생꼬막 까놓은 것처럼 벌게지면서 큰일나는 것입니다.

 

이게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참 좋은 것이지만, 이건 선지식의 바른 법문에 의지해서 올바르게 해 가야지. 잘못하면은 참 이거 하다가 병 걸리기도 쉽고, 사견에 떨어지기도 쉽고, 까딱하면 미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삼 녹용이 참 비싸고 좋다니까 막 삶아먹고 혈압이 터져서 중풍 걸리고.

 

대부분 부자가 그 참! 바둑 문자에 『부자 몸조심 한다』 그러는데,

부자는 인자 돈도 많겠다. 첫째는 몸이 건강해야 되겠다 그말이여. 그래야 그 피땀 흘려서 번 재산 참 마음껏 즐기고 그래야겠는데, 이 몸을 만들려고 이거 보약을 막 먹다가 병을 걸린 사람이 많습니다.

 

첫째 몸을 건강히 할라면은 정력을 갖다가 왕성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문의를 하니까 무슨 해구신(海狗腎)이니 뭣이니 해 가지고 무슨 아주 돈을 갖다가 몇백만 원씩 줘 가지고 그 환약을 만들어 가지고 먹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소식이 있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그냥 막 아퍼가지고는 그 후유증이 막 생기고 해 가지고 막 혈압이 오르고,

 

그리고 또 이거 녹용이 좋다니까 저 외국에서 모다 밀수해 놓은 놈을 갖다가 막 갖다 잔뜩 집어넣고 고아먹고 그래 가지고는 그냥 혈압이 뻣질러 올라가지고 대번에 그냥 중풍이 걸려 가지고 대소변을.. 그게 다 어리석은 것이거든.

 

보약이라 하는 것도 다 자기의 체질을 분류를 해 가지고 자기 체질에 맞는 약을 또 그 연령과 모든 오장육부를 잘 알아가지고 적절히 써야 그것이 좋은 것이지, 덮어놓고 비싼 약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거든.

 

 

참선도 사람이 상기(上氣)가 잘되고—위에로 상기가 잘 오를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있고, 항상 기운이 밑으로 잘 내려가서 여간해서 기운이 오르지 아니한 체질이 있습니다.

 

특히 조금 뭐 한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누가 말 한마디만 해도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이러한 사람, 조금 뭐 충격을 받거나, 뭘 조금 연구를 하거나 하면은 금방 골이 아파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이러한 사람은 상기(上氣)의 증상이 일어날 우려성이 있는 사람이거든.

 

그런 사람은 특별히 이 단전호흡부터서 기초부터서 착실히 다져가지고 본격적으로 참선에 들어가는 것이 대단히 필요한 것입니다.(37분14초~56분57초)

 

 

 

 

 

 

(2)------------------

 

여간 뭔 소리 들어봤자 뭐 상기도 되지도 않고, 뭐 며칠씩 잠을 안 자도 조금도 머리가 아프거나 그러지도 않고 그러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단전호흡이고 뭣도 상관없이 마구잽이 처음부터서 화두를 들고 막 며칠씩 잠을 안 자고 해 제껴도 까딱도 않는 그러한 체질을 타고 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뭐 단전호흡이고 뭣이고 소용이 없습니다. 막 해 제껴도 괜찮은 그런 사람은 아주 몸을 잘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런 그 본(本)을 보고서 그러한 훌륭한 체질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도 그 본보고 막 하다가는 큰일나는 거지요.

단식 같은 것도 좋다 하니까 뭣한 사람은 한 열흘씩 굶다가도 맛있는 찰밥이나 인절미를 보고 그냥 한 사발씩 막 집어먹어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을 보고서 『그까짓 거 나도 한번 해 본다』고, 며칠 굶고서 식욕이 당기니까 그냥 인절미 시루떡을 갖다가 그냥 막 침도 안 바르고, 그냥 잔뜩 먹고는 속이 쓰리고 생트림이 올라오면서 위가 늘어져 가지고는 그래 가지고는 아주 종신(身) 병신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단식도 잘하면은 위장병도 낫고 여러 가지 병에 참 좋은 것이지만 어리석게 하면 그거 못쓰는 거고,

참선도 생사문제를 해결할 최상승법이지만 이것도 참 잘못하면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위험하고 까딱하면 사견(邪見)에 떨어지고, 그 말만 듣고서 『아이구! 그거 참선 함부로 할 거 아니다. 좋게 그저 관세음보살이나 슬슬 부르다가 말지. 그것 잘못하다가 미치면 그거 어떻게 해』

 

그런 사람은 계란 짐 짊어지고 성 밑에 못 가고, 그런 사람은 배 뒤집어질까봐 평생 배 한 번 못 타보고, 비행기 떨어질까 봐서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하고, 외국 한 번도 못 가고, 자동차 위험하다고 자동차 안 타고, 그렇다면 그것이 되겠습니까?

 

아무리 비행기가 가끔 심심찮게 여기서 저기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타야할 때는 타야 하는 거고, 그러면 비행기 안 타고 집안에 가만히 엎졌으면 그 사람이 천세 만세 살겠습니까?

평지낙상(傷)도 있고, 밥 먹고 체해서 죽기도 하고, 저녁밥 잘 먹고 자다가 죽기도 하고 그런데 뭐.

 

어쨌든지 세상이 이렇게 국내적으로나 또는 국제적으로나 자꾸 이렇게 과학문명은 발달을 하고, 또 사람 살기는 참 편리하게 되었습니다.

편리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편리하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행복하게 되었냐 하면은 참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 문명이 발달되기 이전에다가 비교해서 그렇게 행복해졌다고는 좀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 뒤숭숭하고, 어찌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스러운 그러한 감이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이 정법에 귀의해서 정법으로써 무장을 해야겠습니다.

 

정법으로써 탁! 정신무장을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개인적인 일신상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이 나고, 가정문제도 해결이 나고, 국가 사회문제도 해결이 나고, 궁극에 가서는 온 세계의 문제도 최상승법에 귀의해서 그것을 실천함으로써만이 궁극적인 해결이 되리라고 나는 그렇게 굳게 믿습니다.

 

이것은 어디에 가서라도 장담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그런 틀림이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다져서 뒤로 미루지 말고, 앉았을 때, 섰을 때, 일할 때, 빨래할 때, 밥 지을 때, 차 탈 때, 속상할 때, 괴로울 때, 슬플 때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이 한마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팔만사천 지옥을 때려 부수는 일이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당적(當敵)해서 이겨내는 일이고, 바로 이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기본인 것입니다.

 

행여나 그 호랭이가 무섭다고 똥항에 들어가서 똥 뭍혀 갖고 나올 생각을 마시고,

정법으로 무장을 하시면 호랭이 아니라 염라대왕, 무슨 마왕(魔王) 파순(波旬)이도 이 ‘이뭣고?’ 화두 한마디로써 다 항복받을 수가 있고, 다 그러한 항복이라기 보다는 전부 나한테 돌아와서 합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모레는 부처님오신날입니다. 4월 초파일.

이 법당에도 등(燈)이 가득 달려있고, 법당 밖에도 달려있고, 부처님오신날이 국경일로 이렇게 지정이 된 뒤로는 도회지나 산간이나 방방곡곡에 이 초파일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등(燈)이 모다 매달리고, 사람 사람의 가슴에 부처님의 진리로써 마음을 가다듬고 업장(業障)을 소멸을 해서 새로운 진리의 부처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파일에 어쨌든지 모두모두 식구들이 다 손을 잡고 나오시고, 또 일가친척 가족들 또 모두모두 권고해서 다 부처님 앞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법문도 듣고, 부처님의 탄생을 축복하는 그 자체가 자기의 업장을 소멸하고 자기의 앞길을 축복받는 일이 되고, 그럼으로써 진리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인도 가비라 왕궁에 태자로 탄생을 하셨는데 바로 그날이 내일 모레 다가오는데, 그날 막연하게 등불만을 켜고, 복을 빌고 그것도 참 소박한 의미에서 참 소박한 한 신앙으로 참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 자신도 내일 모레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그날을 맞이하는 것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부처님이나 다름없는 구원겁(久遠劫) 전에 다 성불(成佛)한 그런 법신(法身)인 것입니다만은 까닭없이 우리 자신이 알 수 없는 어떠한 원인으로 해서 그냥 무명(無明)으로 덮여가지고 그냥 이렇게 까막눈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참 범부(凡夫)로써 이렇게 노릇을 하고 있는데, 내일 모레를 기해서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그날 하루 다시 태어날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부처님오신날을 욕불일(浴佛日)이라 그럽니다. 목욕, 목욕탕 이래서 '목욕 욕(浴)자' '부처 불(佛)자'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날이다. 그래서 욕불일이라 그러는데,

‘부처님이 탄생을 하셔서 그날 그 아홉 용(龍)이 입으로 물을 이렇게 청정한 물을 토해 가지고 목욕을 시켰다’ 그렇게 설화적으로 전해 내려옵니다만은,

 

‘부처님이 태어나 가지고 목욕하신 날이다’해서 철불(鐵佛)을—쇠로 조성한 불상(像)을 갖다가 안치해 놓고, 전 대중이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바가지로 물을 퍼 가지고 부처님께 물을 퍼 붓는 그런 행사도 옛날에는 거행했고, 지금도 또 거행하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 용화사에서는 그런 행사를 안 갖습니다만은 그 부처님께 물을 요렇게 부어서 목욕을 시켜드리는 그 행사가 부처님이 태어난 그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확실히 이렇게 새겨서,

 

그 부처님이 바로 자기와 동일시를 해서 자기의 몸에 자기가 그날, 부처님 탄생한 날 자기도 새로 태어나서 그 부처님 목욕시킨 그 물로 자기의 몸에 물을 부어서 목욕을 함으로써,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무량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부처가 될 것을 마음에 다지는 그러한 뜻이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철불에다가 물을 붓는 행사는 안 갖지만은 조실스님 법문과 또 산승의 말을 들음으로 해서 눈에 보이는 물로 목욕을 한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법수(法水)로서 목욕을 해 가지고,

업장을 소멸하고 청정한 몸과 청정한 마음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기약을 하는 그러한 의미로 초파일에 모두 등(燈)도 모다 잘 다시고 또 법문도 들으시고 그래서 초파일에 꼭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고  산중채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고

나무~아미타불~

심심송뢰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 세속의 공명, 부귀공명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산을 원해서,

산중(山中)에 채약기년간(採藥幾年間)고, 그 산중에서 약을 캐기 그 몇 년이나 되었던가?

 

심심송뢰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깊고 깊은 그 솔바람 부는 안개가 자욱한 그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한 곡 지초(芝草) 캐는 이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롭구나.

 

이건 산중에 들어가서 처사(處士)가 되어 가지고 그 온갖 약초를 캐면서 그 약초를 캐서 달여 먹고, 약초를 캐 가지고 연명(延命)해 나가는 이런 약초를 캐면서 지초 캐는 노래를 갖다가 부르면서 그 한가한 거동을 읊은 시입니다. 

 

세속이 이렇게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흥망성쇠와 빈부귀천 모다 이런 것을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 대세가 전부 그 원인을 따져보면 탐진치, 탐진치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싸움이고 전쟁이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데에서 턱 벗어나 가지고 정법에 귀의(歸依)해서 도를 닦는 것, 그것을 갖다가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는 데에다가 비유를 해서 읊은 게송입니다.

 

정법에 귀의해서 도를 닦으면 비록 세속(世俗)에서 살아도 그 세속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또 형제 간에 우애하고, 이웃간에 화목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그러고 모든 사람을 상대할 때 사랑으로써 상대하고,

정법에 귀의해서 도를 닦아가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생활로 고의적으로 그렇게 할라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꼭 머리를 깎고 스님이 안 되어도 세속에 살아도 바로 그것이 산중에서 도를 닦은 거와 마찬가지고, 그냥 세속에서 살아도 그 솔바람 부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시냇물 가에서 약초를 캐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그것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원래 도에는 승속(僧俗)이 없고 남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입니다.(56분58초~75분33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東風吹落杏花枝  千里紅香在何處’ ; 『선원몽구요림(禪苑蒙求瑤林)』 설당간공(雪堂諫公) 게송 참고.

*(게송) ‘太陽門下無星月  天子殿裏無貧兒’ ; 『전등록』 권16 ‘홍주건창봉서산(洪州建昌鳳棲山) 동안(同安) 화상’ 참고.

*냅다몹시 빠르고 세찬 모양.

*천자(天子)하늘 아들이라는 으로제국 군주 이르는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이라고 하였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천차만별(千差萬別) ; 여러 가지 사물이 모두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음.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각각 모습ㆍ모양이 다름을 이르는 말. ‘온갖 차별이 있는 모양·경계’의 뜻. 모든 경계.

*분복(分福 운명 분,복 복) ; 선천적으로 타고난 .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부득이(不得已)하다 ; 마지못하여 할 수 없다.

*주옥(珠玉) ; ①구슬과 옥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아름답고 귀한  비유적으로 이르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언하(言下)[주로 ‘언하에  쓰여] 떨어진 바로 또는 말을 하는  즉시.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용맹심(勇猛心) ; 두려움 없이 용감하며 기운차고 씩씩한 맹렬한 마음.

*꼬실르다 ; 그슬다. (사람  물건) 조금 타게 하다.

*부지깽이아궁이 따위     헤치거나 거두어 거나 끌어내는  쓰이는 가느다란 막대기.

*화력(火力)불의 또는 에서 얻은 열의 .

*투철하다(透徹--) ; ①(정신이나 자세)매우 철저하다. ②(주장이나 판단)사리  정확하다.

*부자 몸조심 한다 ; 바둑에서 쓰는 용어로 바둑을 두면서 형세판단을 해 보니 내가 유리하여 상대방의 싸움을 피하면서 소극적으로 물러나면서 조심하다가 결국에는 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형편이 좋은 것을 유지할려는 것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해구신(海狗腎)수컷 물개 생식기강정제로 쓰인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2)

 

*본보다(本--)(사람 대상)모범으로  그대로 따라 하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심심찮다(흔히 ‘심심찮게’ 로 쓰여드물지 않고  .

*평지낙상(傷) ; '평지에서 넘어져 다친다'는 으로 뜻밖에 불행한  겪음 비유적으로 이르는 .

*당적(當敵) ; 대적(對敵)해 능히 감당(堪當)함.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수(法水) ; 중생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 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물에 비유한 말.

*(게송) ‘불원공명단원산~’ ; [경허집(鏡虛集)] ‘次採藥商趙氏韻(채약상 조씨 차운)’ 참고.

*처사(處士)①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② 속인(俗人)으로서 임시로 절에 머무는 남자.

*연명(延命)하다(사람)목숨 근근이 이어 가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 ; 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 ; 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4. 12. 15. 14:5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70)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게송)활구참선객~ / 염라대왕의 합장 배례 / 대승십선계 / (게송)삼계진화택~ / (게송)온포사아귀~.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송담스님(No.770) - 2014(갑오)년 동안거결제 및 화두 불명 수계식 (용770)

 

(1) 약 19분.

(2) 약 22분.


(1)------------------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인(若人)이 정좌일수유(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정좌를 하면,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것보다도 그 공덕이 수승(殊勝)하다.

왜냐하면 보탑(寶塔)은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一念精進)은 성정각(成正覺)이다.
보탑을 칠보로 해서 잘 조성을 해서 모셨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가면 지진이 일어나고 그래 가지고 언젠가는 탑이 부서져서 먼지가 될 때가 있고 말지만은 ‘한 생각’ 정진을 하면 그 정진하는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정각(正覺), 바른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이 성불한 것이다 그말이지.


오늘 갑오년 시월 동안거 결제날을 기해서 이 자리에는 오늘 화두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또 오계(五戒)를 받는 그런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9명, 인제 용화선원 16명, 광주 용화선원 12명, 용주사 중앙선원 18명, 망월사 천중선원 24명, 약사암 12명, 위봉사 선원 24명, 승련사 선원 13명, 원효사 송라선원 15명, 회룡사 선원 11명, 세등선원 14명, 복전암 15명, 도덕사 6명의 스님들이 동안거 결제에 참석을 했고,

용화유아학교, 학생회, 광주용화선원, 동화사 90명, 마하정사 8명, 묘적암 23명, 보천사 14명, 복전선원 109명, 위봉사 11명, 심우정사 13명, 연화사 4명, 영산선원 76명, 원효사 12명, 위봉사 11명, 부산시 정수사 150명, 진불선원 23명, 태유선원 8명, 화운암 11명,

이렇게 해서 1,798명의 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화두 불명 십선계를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특히 유아, 어린이들 7~8, 4~5살 먹은 어린이까지도 이 자리에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연세가 많으나, 애기처럼 나이가 아직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린 애기거나, 남녀노소를 막론(莫論)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육도윤회(六途輪廻)로부터서 해탈을 해 가지고 정각을 이룰 수 있는 확실한 종자(種子)를 심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일반 종교와 무엇이 다르냐?’하면은 (일반) 종교는 교주를 신봉하고 기도를 하고 해서 천상이나 모다 그런데 가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많이 신앙을 하고 있으나,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수 있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 아는 우리의 심성(心性)이 있는데, 그 심성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일생 동안을 살고,
일생을 살다가 다시 또 몸을 바꿔 나서 업에 따라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으로도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축생도 되고 지옥도 가지만은 그 근본의 마음자리는 어디를 가나 그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쓰고 있고, 그것에 의해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프거나 기쁠 때도 ‘이뭣고?’
그 화두 하나를 챙김으로 해서 육도법계를 윤회 속에 있으면서 해탈하는 길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전혀 그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철저한 신심(信心)으로 ‘이뭣고?’
이 한마디는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보배를 건져서 냉수에다 씻으면 거기서 빛이 나듯이, 그 동안에는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해왔지만은 오늘 이 인연과 이 기회를 발판으로 해서 철저히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오늘부터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슬프거나 기쁘거나 속이 상하거나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바로 윤회로부터서 해탈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을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귀항(閻王自歸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이 시간 이후로 열심히 ‘이뭣고?’를 하는 활구참선객은,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누가 그 사람과 나란히 어깨를 할 수가 있겠는가?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세상에 인연이 다해서 살 만큼 살다가 결국 몸을 바꾸게 되는데,
어디로 가냐하면은 — 일반적으로 말할 때 저승에 간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자기가 지은 인연 따라서, 업에 따라서 육도(六道) 어느 곳엔가는 태어나는데.

이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살아서 천자(天子)를 했거나, 대통령을 했거나, 만석꾼 부자였거나, 장군이거나 누구라도 염라대왕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은 어떠한 사람, 어떤 무서운 권리가 있는 사람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큰소리를 치고, 지은 업(業)을 심판을 하는데,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그 사람이 잘살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상관이 없이 활구참선을 한 사람이 오면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 배례(拜禮)를 합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승의 이 말을 ‘설사 그럴 수가 있을까?’ 그렇게 혹 의심을 하고, 확실히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나 이것은 무엇 때문에 내가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이 게송(偈頌)은 과거에 확철대오한 도인(道人)이 읊어 논 게송인 것입니다. 확철대오를 한 도인의 이 게송은 진리에 계합하는 게송이기 때문에 산승도 이 게송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여러분께 읊어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분석한 것도 아니고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 속상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에도 슬픈 데로 쫓아가지 않고 ‘이 슬퍼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 보는 데로 쫓아가고, 귀로 무슨 말을 들으면 듣는 그리 쫓아가는데,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그리 가지 않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귀로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그런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기 때문에,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노애락(喜怒哀樂),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서 그것이 바로 자기로 돌아오는 수도장(修道場)이요,
우리 상대하는 모든 것들은 수도장이고, 모든 소리는 법문(法門)이고, 만나는 사람은 나로 하여금 자성불(自性佛)로 돌아오게 하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더라도 이 사바세계가 육도윤회 생사 속에의 그런 불구덩이가 아니라 성불로 돌아가는 발판이요, 수도장이요, 부처님이 살아계시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믿고 열심히 앞으로 참선을 해 나갈 사람은 절차상(節次上)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9분4초)

 

 



(2)------------------

십선계의 첫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니,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앉아 있는 분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십시오.

(무릎을 꿇으시고 상체를 세워서 합장을 하십시오. 엉덩이는 발뒷꿈치에서 떼어서 상체를 세워주세요)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不偸盜)
셋째는 사음을 하지 말라.(不邪淫)
넷째는 망어, 거짓말을 하지 마라.(不妄語)
다섯째는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不綺語)
여섯째는 두 가지 말을 하지 마라.(不兩舌)
일곱째는 악한 욕을 하지 마라.(不惡口)
여덟째는 탐욕심을 내지 말라.(不貪慾)
아홉째는 성을 내지 마라.(不瞋恚)
열번째는 사견을 내지 말라.(不邪見)

어째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이겁니다. 산 목숨을 죽이면, 나의 자비(慈悲)의 종자(種子)가 있는데 자비 종자를 손상하지 때문에 살생을 하지 말라.

두번째, 왜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복덕(福德)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복덕이 있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잘살 수가 있는데 복덕 종자를 상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지 말라.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닌 사람과 관계를 하지 말라. 사음(邪淫)을 하면은 집안의 평화가 깨지게 되고, 자기 몸을 더럽히게 되고 그러니 사음을 하지 마라.

네번째, 거짓말을 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면은 진실(眞實)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해 버릇하면은 남이 자기를 인격적으로 믿지를 않고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마라.

다섯째,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마라.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되면은 그것도 수행자로서의 인격을 손상하고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사람 말을 믿지를 않는 게야.

이간(離間)하는 말을 하지 마라. 이간질을 하면은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 가서 저 말하고, 두 가지 말로 이랬다저랬다 하면은 그것도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곱째는 욕(辱)을 하지 마라. ‘저런 죽일 놈’ 입에 못 담을 욕을 부애가 나면 욕을 하는데, 욕을 하면은 그 욕이 상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욕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가 자기한테 욕을 하는 거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부애가 나면은 바로 부애 난 그 마음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해야지, 욕을 해서 — 입으로 욕을 하면 자기 입을 더럽히게 되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여덟번째, 탐욕심을 내지 마라. 남의 것을 욕심을 내고 탐욕을 내 가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착취를 하면은 그 탐욕심으로 인해서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고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탐욕심을 내지 마라.

아홉번째, 진심(瞋心)을 내지 마라. 우리 마음에 조금 안 맞으면 성을 내는데, 성을 낸다고 해서 아무도 그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일이라, 성을 내면은 맨 처음 자기가 해로운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열번째, 사견(邪見)을 내지 마라.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가지면, 그 첫번째가 무엇이냐 하면은 인과(因果)를 안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법에 의해서 운영이 되어 가는데, 사견을 낸 사람은 인과를 안 믿기 때문에 어리석은 말, 어리석은 생각, 어리석은 행동을 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해롭게 하고, 자기 인격을 손상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열 가지 계(戒)는 불도(佛道)를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자기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10가지 계를 지켜야 하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예!’

이 열 가지 계는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할 바니 잘 지키겠는가? (예!)

이상 설한 10가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는 부처님을 믿고, 도를 닦고, 성불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십선계를 지켜야 하니 잘 지키겠는가? (예!)

연비(燃臂)해 주세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사부대중과 같이)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잠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십악 참회(十惡懺悔)를 하고 또 연비(燃臂)를 하고,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연비를 해서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지어온 모든 죄는 다 봄눈처럼 다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청정한 몸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앞으로 우리는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이뭣고?’로써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아가면 자기가 어떠한 처지에 있거나 간에 바로 그때,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선방이 되는 것이고, 바로 부처님 세계로 가는 길이니, 우리는 오늘부터 정말 참되게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자기로 돌아오는 수행의 길을 알았고, 그것을 과거에 지은 것은 참회하고 앞으로 잘 이것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연비를 받았으니, 우리는 비록 이 몸뚱이는 이만큼 늙었지만은 우리의 마음은 갓난애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 깨끗한 마음으로 앞으로 열심히 ‘이뭣고?’만 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산승은 여러분의 그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심히 최상승법에 의해서 잘 ‘이뭣고?’를 하겠다고 맹세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하고 여러분의 그런 진실한 마음을 봄으로 해서 비록 내가 늙었지만은 저도 오늘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여러분...(박수)


마지막으로 게송을 하나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이요  사대성고취(四大誠苦聚)로다
나~무~아~미~타~불~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하니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는 정말 진화택(眞火宅)이여,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이다 그말이여.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으니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당체(當體)다 그말이여.

그러니 여아(汝我)로 구출몰(俱出沒)이여, 나나 모든 다른 사람이나 다 그 삼계 진화택 속에서 사대(四大)의 고취(苦聚) 괴로움이 뭉쳐진 이 몸뚱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렇게 살다가 또 결국은 가는데, 어디로 가냐 하면은 자기가 지은 업(業)대로 가는데,

이 자리에 오늘 참석하신 여러 도반, 신도 여러분은 이 활구참선법을 배우고 그것을 잘하겠다고 서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어떻게 살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참회를 해서 깨끗해졌고 앞으로 열심히 최상승법을 실천해 나가면 우리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다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걸음 앞서가고, 한 걸음 뒤서 가지만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미륵부처님 회상에 가서 우리는 다 같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고  염기근즉각(念起勤卽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어서 그럴 때에는 거기에 빠지지 말고 아귀도(餓鬼道)에 빠지는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나도 이 더운 것에 빠지고 배불리 맛있게 먹는 데에만 재미를 붙이고 살다 보면은 아귀도에 틀림없이 가게 될 것이다.

몸이 편안할 때에는 그 편안한 데에 빠져서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지옥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지옥 중생이 어떻게 해서 지옥에 갔냐 하면은 배부르고 뜨시고 몸이 편안한 데에만 빠져 가지고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야, 내가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것에 대해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간에 부지런히 ‘이뭣고?’를 하라.

마지막으로 이런 고조사(古祖師)의 게송을 읊고서 자리에서 내려가고자 하는데, 여러분을 만남 김에 두서없이 여러가지 말을 했으나 앞으로 더 많은 말씀을 하고 싶으나 시간 관계로 입을 닫고, 미처 못한 간절한 뜻은 이 주장자를 한번 내림으로써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19분7초~40분37초)(끝)

 

 



------------------(1)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2)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오랜 세월(百劫) 쌓인 죄업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한 생각에 문득 사라지니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불(火)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모두 멸하여 남김없이 사라지리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참회진언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란 스스로 성품이 없어 마음을 좇아 일어나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이 멸하면 죄도 또한 사라지니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죄와 마음 멸하여 모두가 공해지면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이것을 참된 참회라 이름하리라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즉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의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뜻)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계·정·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게송) ‘삼계진화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게송) ‘온포사아귀~’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2. 13. 14:22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35분 22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160)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 (게송)월수벽산전~.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 해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죄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벼슬을 허건 아니허건, 돈이 많건 적건,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지식이 있고 없건, 나이가 많고 적건, 무슨 직업을 가졌건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최상승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0)—82년 신수기도회향 법문(82.2.2) (용160)


약 17분.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헌디  석양재오서(夕陽在吾西)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하니, 산으로 들로 가시밭길로 물로 동서사방으로 타향 객지(客地)로 돌아치다가 집으로 돌아와 텅 빈방에 앉았으니,
석양(夕陽)은 재오서(在吾西)로구나. 석양은, 저 서산 너머로 해는 여울여울 넘어가고 있구나.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이 바로 고향을 떠나서 타관(他官) 객지로 갖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돌아다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겨우 금생에 불법을 만나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돌아왔는데 해는 서쪽에 서산에 걸쳐 있구나.

벌써 나이 들고 몸은 늙어서 기운이 없고, 생각뿐이요 공부를 할려고 하면 자꾸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몸이 말을 안 듣고 자꾸 졸리고 온갖 망상은 퍼일어나고,

그러나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여.
물은 흘러서 흘러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아무리 그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달이 떨어져 비추되 원래 그 달은 하늘을 여의고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 해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조그마한 물줄기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흘르고 흘르면 차츰 강물에 도달하고 작은 강에서 큰 강으로, 큰 강에서 마침내는 바다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여.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 하늘에 비친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비춘다 해서 그 하늘의 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작아지는 것도 아니요, 광명이 줄어든 것도 아니여. 언제나 하늘에 있는 달은 고대로 있는 것이여.

달이 설사 떨어져 안 보인다 하더라도 하늘에서 떨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눈에서 보이지 아니할 따름인 것처럼,
중생의 육도윤회—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번뇌망상 속에서도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여.

우리는 그 도리를 보고 깨달아 증득하기 위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허수히 보내지 말고, 허수히 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이다.
1분 동안 화두를 단속(團束)해서 화두를 들면 1분 동안에 성불(成佛)이다.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기도 회향날입니다.
기도 회향날이기 때문에 아까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스님의 순수한 최상승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가 없고, 최상승법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가장 빨리 소원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할 것도 못되고, 그걸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마음 상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호랑이나 코끼리를 잡으러 가는 포수(砲手)가 토끼 한 마리, 무슨 여우 한 마리 그러헌 것에 신경을 쓰지 아니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벼슬을 허건 아니허건, 돈이 많건 적건,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지식이 있고 없건, 나이가 많고 적건, 무슨 직업을 가졌건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최상승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조금도 우리는 비관할 것이 없습니다. 세속적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해서 조금도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야코죽을 것도 없습니다.

든든한 마음, 의젓한 마음, 느긋한 마음으로 긍지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도 화두를 놓치지 말고, 모든 문제를 화두로서 해결할려고 노력을 해야만 훌륭한 혈통을 가진 사람답다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월수벽산전(月隨碧山轉)헌대  수합청천류(水合靑天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화난자취(風花亂紫翠)헌대  운외유연림(雲外有煙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수벽산전(月隨碧山轉)이요  수합청천류(水合靑天流)로구나.
달은 푸른 산을 따라서 돌아가고, 저 푸른 산 너머로 돌아 넘어가고,

수합청천류(水合靑天流)로구나. 물은 저 흐르는 물은 푸른 하늘과 딱 합해져서 흐르는구나.
여러분이 큰 강물이나 큰 바닷물을 보면 저 끝이 하늘과 딱 닿아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풍화난자취(風花亂紫翠)헌대, 바람에 하늘거리는 봄바람에 피는 꽃은 붉고 푸르게 울긋불긋 피어 있는데,
운외(雲外)에 유연림(有煙林)이로구나. 저 구름 밖에는 안개 낀 숲이 있구나.


일 년을 살아가시되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걱정스러운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을 것입니다.
기쁜 일을 만나도 ‘이뭣고?’를 생각하고, 슬픈 일을 만나도 ‘이뭣고?’를 생각하십시오.

‘이뭣고?’가 퍼뜩 돌아오지 아니하면 용화사 법보전에서 들은 법문을 생각내고, 용화사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 모습을 생각하시고 또 이 송담이 이렇게 간절하게 말씀드리고 있는 그 모습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이 그 슬픔과 괴로움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반드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35분10초~51분4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歸來坐虛室  夕陽在吾西’ ; 중국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의 시 '

柳閎展如蘇子瞻甥也其才德甚美有意於學故以桃李不言下自成蹊八字作詩贈之' 참고.
*(게송) ‘水流元入海  月落不離天’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尙廣錄」 제1권(下) '시중(示衆)—師子正宗禪寺示衆' 참고.
*객지(客地) ; 자기집을 떠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땅.
*타관(他官)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허수히 ; 태도나 태세가 치밀하게 짜이지 않아서 튼튼하지 못하고 느슨하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포수(砲手) ; 총을 쏘아 짐승을 잡는 사냥꾼.
*야코 ; ‘콧대(우쭐하고 거만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야코죽다 ; (사람이나 동물이)기세가 꺾여 약해지다.
*(게송) ‘月隨碧山轉  水合靑天流’ ; 이백(李白)의 시 '月夜江行寄崔員外宗之(월야강행기최원외종지)' 참고.
*(게송) ‘風花亂紫翠  雲外有煙林’ ; 소동파(蘇東坡)의 시 '적영석병(狄詠石屏)' 참고.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11. 1. 17: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만은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生死)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1)—84년 12월 첫째일요법회(84.12.02) (용251)

 

(1) 약 20분.

(2) 약 18분.


(1)------------------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다.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이 참선(參禪)은 그만큼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做工親切處)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탐진치 삼독에 빠져 가지고, 오직 익히느니 그것만을 익혀 왔는데—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만 익혀 왔는데,
금생에 그 속에서 그러한 집착과 애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나’를 찾을려고 하니, 탐진치 삼독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이 오욕락은 무량겁을 익혀 왔기 때문에 안 할려고 해도 그것은 저절로 되어져 버리고,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은 할려고 해도, 화두를 아무리 들어도, 들으면서도 금방 딴 생각이 동시에 침범을 해 들어오고 들을 때 뿐이지 금방 없어져 버리고, 한두 번 해본 것도 금방 습관이 드는데 하물며 무량겁을 해온 그 습성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것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글씨를 쓰면, 벼루를 오른쪽에다 놓고 글씨를 쓰다가 한 서너 번 먹을 찍어다 쓰고서 그쪽이 불편하니까 그 벼루를 왼쪽에다 갖다 놓고는 인자 쓰기 시작하면은 글씨 쓰다가 먹을 찍으러 가는데, 자기 손으로 오른쪽에 놨던 벼루를 왼쪽에다 놨는데 금방 먹을 찍으러 가기를 오른쪽으로 가게 됩니다.
아까 몇 번 오른쪽에서 찍어다 썼기 때문에 벌써 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지고, 분명 자기 손으로 왼쪽에다 옮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오른쪽으로 먹을 찍으러 간다 그말이어.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그렇고.

평상시에 자기집을 다니던 사람은 이사를 해서 동쪽에 살다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무의식 중에 간다는 것이 이사 간 줄을 깜박 잊어 버리고 동쪽으로 얼마 동안 가다가 ‘아! 내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어먼 데로 가는구나’ 그런 예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가 있고.

술을 잔뜩 먹어서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는데도 그 취중에도 자기집을 찾아 오는 것입니다. 자기집인 줄 알고 남의 집의 침실에 들어가서 실수를 하는 예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무의식 중에도 평소에 익혀 놓으면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똑같은 일을 거듭해서, ‘거듭한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그것이 습관이 체질화가 되고, 체질화가 되면은 무의식 중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업도 익히면 그것이 몸에 젖어서 체질화가 되고, 좋은 것도 자꾸 되풀이 해서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話頭)도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동 잠이 안 오고 초롱초롱 하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려고 하면 혼침(昏沈)이 오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괜찮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라면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그러거든.

참선을 해본 분이면 누구나 다 경험한 바시겠지마는 이 번뇌와 망상 그리고 혼침, 이것이 참선하는데 있어서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인데,
이 잠이 오는 것과 망상이 일어나는 것만 없으면은, 그냥 화두를 한번 떠억 들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다면은 공부하기가 하나도 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처음에는 잘된 듯 하다가 얼마 지나면은 뚝 변해 가지고 영 안 되고, 또 안 되지마는 계속하다 보면 또 잘되고, 잘되었다 안 되었다, 잘되었다 안 되었다 그러면서 수없는 고비를 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망상을 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수해 가지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거나, 옆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거나 말거나, 고대로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이 괴로운 줄도 모르고, 밤새 정진을 해도 괴롭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그렇다 그말이어.

그래도 ‘아! 인제 되었다. 참 좋다! 이러다가 빨리 툭 터졌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오히려 공부를 갖다가 지지리 아홉 질 탑을 쌓는데, 여덟 질까지 쌓아 놓고 마지막 한 자 남겨 놓고 스스로 자기가 허물어뜨리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진이 잘되어도 ‘잘된다’는 생각, ‘좋다’는 생각, ‘빨리 깨달았으면’하는 그러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에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정진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게고.

또 공부가 영 잘 안 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이 퍼 일어나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5분이 1시간보다 더 지루하게 지내간다 하드라도 짜증내는 마음을 내지 말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마는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그러면 망상이 퍼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망상을 물리치거나 억지로 누를라고 허거나 쫒아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고대로 놔둔 채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의 화두만을 탁! 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을 쫓아 버릴려고 그러고, 억지로 누를려고 하면은 화두가 잘 들리기커녕은 ‘누를라고 하는 그 망상’이 하나 더 일어나게 되는 게고,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없앨려고 손으로 누르거나 손으로 갖다가 없앨려고 하면은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간단하고도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하고.

혼침(昏沈)이 올 때는 어떻게 하냐?
눈을 힘을 주어서 눈을 부릅떠도 눈텡이가, 눈 위에 껍데기가 천 근이나 되게 무겁게 덮어 누르고, 아무리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 뜯어도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집어 뜯어도 소용이 없다 그말이어.

옛날 도인(道人)들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 같은 이, 경허(鏡虛) 선사 같은 그런 도인들도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밤잠을 안 자면서 정진을 하는 말씀도 전해 내려오고 있읍니다마는,

그러한 송곳으로 찌르면서 졸음을 쫓을 만한 그러한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서 낱낱이 다 송곳부터 사러 가시지 말고, 졸음이 올 때에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세수도 하시고 그러면서,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왔다갔다 포행을 일직선으로 정해 놓고 왔다갔다 한 5분 하면, 졸음이 나가면 또 자리에 와서 또 앉고 이렇게 하면서 혼침을 이기도록. 그래도 안 들으면 송곳으로 한번 찔러서라도 한번 해봄즉 한 일이지요. 그러다 잘못하면 또 피가 많이 나면 안 되니까 조심을 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서 모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또 직업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각기 다 자기의 소질 따라서 능력 따라서 서로 남녀 간에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다 이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서로 만나서 부부간이 되고, 부모 자식 간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고, 친구 간이 되고, 형제간이 되어서 이렇게 만나서 사는데, 이건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업으로 만나졌기 때문에 인연(因緣)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됩니다. 생이별(生離別)도 하고 사이별(死離別)도 해서 헤어지는데, 지내 놓고 보면 이것은 분명히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꿈꾸고 있는 동안에는 호랑이를 보면 진짜 무섭고, 뱀이 달라들면 진짜 무섭고, 어디서 좋은 보물을 얻으면 진짜 기쁘고, 깨어 놓고 보면 허망하기가 그지할 수가 없고, 하나도 무서울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지만, 실지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와 같이 인생살이도 깨닫기 전에는 분명히 현실입니다. 또 버릴 수도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충실히 최선을 또 다해야 합니다.
‘꿈이니까, 에이! 그까짓 것 소용없다. 가정도 버려 버리고, 재산도 버려 버리고, 직장도 버려 버리고, 사업도 다 팽개쳐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사람에 한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오직 이 한 일만을 할 각오가 선 사람은 그걸 버리고 출가하실 수가 있지만,
일반 청신사 청신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관리로서 농사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하면서 그 가운데에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해라’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애나면 ‘절로 가서 중이나 되어 버릴까’ 몇 번을 생각하다가, 또 부애가 풀어지면 언제 절 생각은 잊어 버리고 ‘여보, 어쩌고...’

 

도(道)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속가에 있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속가에 있으면 있는 대로 할 길이 있고, 출가한 스님은 출가한 스님대로의 수행해 나가는 법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있는 자리, 제일 이 도 닦아 나가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刹那)인 것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하고, 앞으로 3년 더 있다 어떻게 하고, 내일 어떻게 하고, 한 시간 뒤에 어떻게 하고, 오늘 저녁부터 어떻게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가 이 참선에 있어서는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뭣고?~’

 

한 시간도 멀고, 일 분도 멀어요. '지금' 이 찰나,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는 우리가 시간으로 딱 찍을 수가 없습니다. 탁! 찍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 것입니다.
번갯불을 갖다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번갯불은 지나가 버리고 없는 것처럼, ‘지금’이라고 하는 이 시간도 우리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잡을 수 없는 그 찰나에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일어서면서 하고, 걸어가면서 하고, 일하면서 하고, 밥 먹으면서 하고, 차 타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고, 세수하면서 하고, 발 씻으면서 하고, 옷 갈아 입으면서 하고 이런 것이지, 언제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은 안되는 거여.

이 한 생각 한 생각, 그 찰나 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때 그때, 그 찰나 찰나를 단속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휴! 너무너무 바빠서 못한다.’  ‘아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못한다’  ‘대학만 들어가 놓으면 인제 조금씩 해볼라고 그럽니다’  ‘딸 시집보내 놓고 할랍니다’ 그것 다 틀어져 버리고,  ‘김장이나 해 놓고 할랍니다’ 그것도 틀어져 버리는 거여. 다 틀어져 버리는 거여.

이건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生死)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두면 그놈이 차츰차츰 커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음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는데,
‘한 생각’ 딱!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그때 탁!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살생도 안 하고 끝나고, 도둑질도 안 하고 끝나고, 사음도 안 하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 천당을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미연(未然)에 부셔 버리는 것입니다.(40분43초~60분29초)

 

 

 



(2)------------------

그래서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도 보시면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다’
이 법성게는 그 80권 화엄경을 갖다가 간단한 몇 줄의 글로써 의상대사께서 지어 놓으신 것인데, 그 법성게의 뜻만 알면 화엄경의 진리가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은 ‘한 생각’이여, 한 생각.

이 한 생각, 이 찰나 속에 십세(十世) 고금(古今)과 시방(十方) 모든 세계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六道輪廻)도 그 속에 들어있고, 천당·지옥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말이어.

그러니 ‘이뭣고?’ 한마디,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시고.

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이 화두법 이것은 용궁(龍宮)에 있는 대장경 속에도 안 들어있다.

이 사바세계에 있는 경전은 많이 불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일부만이 전해 내려오지, 전부가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설사 결집(結集)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외도들에 의해서 많이 소각을 당해 버리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극 일부에 지내지 못하는데, 용궁에는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문이 다 거기에는 수장(收藏)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궁에 있는 장경(藏經) 속에도 ‘정전백수자’ ‘판치생모(版齒生毛)’ 이런 화두법, 최상승법인 화두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최상승법, 이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교(敎) 밖에 특별히 전하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전하신 특별한 최고의 법이여.

그래서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는 염불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주력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기도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서 독송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불사 회향에 동참하시고 또 일요법회에 참석하신 공덕으로 이러헌 최상승법을 이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 동참했고, 그 얻기 어려운 쪼가리도 가사불사할 때 틈틈이 훔쳐 담고 또 그런데다 오늘 또 이렇게 얻었으니까, ‘나는 이거 딸 줄 것도 있고, 아들 줄 것도 있고, 며느리 줄 것도 있으니까, 인제 아무 걱정이 없다’고 아주 흐믓해 하시겠지만,
정말 ‘이뭣고?’ 한마디 한 것에다 댄다면, 가사불사 해 가지고 쪼가리 가지고 있는 것에다 대겠습니까?

물론 그 쪼가리 가진 공덕도 대단한 것이어서 말로써 다 할 수가 없읍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를 하시면 천(千) 쪼가리 만(萬) 쪼가리를 몸에다가 열 거듭 백 거듭을 감은 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한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이 한 몸뚱이, 인간, 이 세상이라는 것은 정말 이 한 나그네 손님이다 그말이어. 잠시 이 사바세계에 나그네로 왔어.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여. 만사(萬事)는 다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한 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그말이어.

나그네는 오늘은 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또 그 이튿날 떠나면 또 어느 다른 지방에서 한잠을 자고 해서, 평생 동안을 나그네로 사는 거와 같애.

정말 여자의 몸을 받은 사람은 성년(成年)할 때까지는 그 어머니, 아버지 품안에서 그렇게 자라서 공부하고 그래 가지고 시집가면은 딴 타성바지 집에 들어가서 아내 노릇을 하고 며느리 노릇을 하고 그러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도 또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들도 또 장성을 해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하는데.

일평생 동안 그러고 사는 거처도 충청도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오기도 하고, 서울 살다가 저 부산으로 이사 가기도 하고, 우리나라 살다가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 금생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김 아무개, 박 아무개로 태어난 것 자체가 또 그것도 나그네인 것입니다.
전생에 사바세계에 살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 사람도 있겠고, 전생에는 천당에서 살다가 금생에 인도환생을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전생에 개나 돼지나 소로 있다가 금생에 그 탈을 벗어 버리고 사람이 되는 수도 있고, 그러니 이것이 분명히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러면 금생에 왔으면 천년만년(千年萬年) 사느냐 하면, 많이 살아 봤자 백 년이요, 그렇지 않으면 팔십·칠십·육십·오십·사십·삼십, 10살에도 죽고 5살에도 죽고, 낳다가도 죽고, 배안에서 생기다 만 것이 죽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도 나그네가 분명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비 맞기도 하고 눈을 맞기도 하고, 차 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고, 차가 뒤집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배 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참! '인생살이라는 것이 나그네'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만사는 뜬구름과 같다’한 말도 참 적절합니다.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해지기도 하고, 엊그제 장관을 하다가 그만두고 평민이 되기도 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그러한 권리를 가지던 사람이 참 하룻밤 새 죽기도 하고 또 감옥에 가기도 하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그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하룻밤 여관에 방이 좀 춥기도 하고 더웁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골낼 것도 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집에서는 편안하게 살다가 여행을 떠나면 고생이 되는데, 그 고생하는 재미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바세계의 인생살이를 나그네라고 생각한다면, 고생도 능히 재미로 참을 수가 있고 또 좀 잘 먹고 편안히 잔다고 해서 자기가 금방 뭐 크게 팔자가 핀 것도 아니거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자로 살고 높은 벼슬을 하고 뭣 좀 권리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으시대고 꺼떡거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재미스럽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온 세계도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집안에도 그런 마음으로 온 식구가 산다면, 집안은 온통 화기(和氣)가 애애(靄靄)하고 모든 일이 참 재미있고 흐뭇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근본은 ‘한 생각 단속하는 일’이 자기의 일생을 행복하게 하고, 자기의 온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온 사회·국가를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그래 가지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살 수 있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佛法)은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불법을 위해서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세세생생에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중생을 이 진리의 세계로 이끌으시는 데에 여념이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이 도를 이루신 다음에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앉은 자리 더울 겨를이 없이 일평생 동안을 인도 오천축(五天竺)을 갖다가 유행(游行)을 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신 것도 바로 이 도리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濟度)하신다’ 그러는데, 뭐 물에 빠진 걸 갖다가 건져내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도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다.’

‘부처니 중생이니, 선이니 악이니’하는, 중생은 그러헌 생각의 쇠사슬에 얽혀 가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생과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고, 깨달음과 미(迷)한 것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그 도리를 깨우쳐 준다면, 거기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그러헌 소견을 씻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거 씻어준 것이 바로 그것이 중생 교화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
책도 펴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 있는 것입니다. 입을 벌리기 전에 이미 염불이 그 속에 되어져 있는 것이고, 경을 읽고 있는 것이며,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또 자기 자신도 불법을 설하는 도리가 바로 이 최상승법이라.
이상으로써 일요 법회와 또 가사불사 회향 법어를 마칩니다.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인고  청산백운다(靑山白雲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중(山中)에 하사기(何事奇)인고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청산에 무슨 일이 기특한고? 무슨 일이 볼 만한 것이 있느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무엇이냐?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푸른 산에 흰구름이 많느니라.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다.
젓대를 불고 소를 타고 가는 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여.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고, 동서에 자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왔다갔다 하더라.(40분43초~77분4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색사(色事)·음식(飮食)·명예(名譽)·수면(睡眠).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어먼 : ‘애먼’의 사투리. 애먼:(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억울하게 느껴지는, 엉뚱하게 느껴지는.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 ; '길(길이의 단위.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또는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의 사투리.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자명 초원(慈明楚圓) : (987 – 104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
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 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이뭣고(是甚麼) : 「이 무엇고,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2)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십세(十世) ; 화엄종의 교학에 있어서 시간 구분. 과거 현재 미래의 3세(三世)의 각각에 그 위에 과거·현재·미래가 있다고 하고, 이러한 9세(九世)를 포용하는 1세(1념)를 더하여 10세(十世)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집(結集) ;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어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수장(收藏) ; 거두어서 깊이 간직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가섭존자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가사불사(袈裟佛事) ; 절에서 가사를 짓는 일.
*(게송) ‘일신진역려~’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6 ‘산을 나가는 영암주(英庵主)를 보내며’, p115 ‘지사(芝師)를 보내며’ 게송 참고.
*역려(逆旅 맞이할 역,나그네 려) ;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여관(旅館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을 이르는 말.
*타성바지(他姓바지) ; 자기와 성(姓)이 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화목할 화,기운 기,아지랭이 애) ; (분위기가)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오천축(五天竺) ; 고대 인도에 있던 다섯 개의 정치적 구획.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천축을 이른다.
*유행(遊行)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게송) ‘산중하사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66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음’, ‘목암(牧庵)’ 게송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