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22.03.07 §(308)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일장춘몽(一場春夢) / 부처님의 감응(感應) / (게송)대지산하시아가~ / 법을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2. 2021.08.29 §((128)) (게송)작일지두개란만~ / 토속신앙을 정법으로 인도하는 원융무애한 방편 / 최상승법은 벼릿줄 / 화두를 들면 그것이 비로자나불께 올리는 불공.
  3. 2021.02.24 §((084)) 용화사 모든 법회의 목적은 업장소멸하고, 참나를 깨달라 영원한 생사해탈 / (게송)전빙시수수성빙~ /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
  4. 2016.07.18 §(478)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동사섭 / 유루복은 삼생의 원수 / 내가 나를 깨닫는 ‘이뭣고?’가 불법을 전해 나가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좋은 법.
  5. 2015.08.19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 공화(空花) / 믿음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자기 안에 있는 보배.
  6. 2015.08.16 §(308)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일장춘몽(一場春夢) / 부처님의 감응(感應) / (게송)대지산하시아가~ / 법을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7. 2015.07.22 §(210) (게송)적수성빙신유지~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 /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최상승법으로 수행해 나가야 / 비우는 것이 올바른 공부.
  8. 2015.07.20 §(210) (게송)가련억만인천중~ / 칠성(七星) 신앙 / 인간의 8가지 고통(八苦) / 부처님의 ‘큰 나무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한 생각’ 잘 단속해야.
  9. 2014.07.31 §(337) (게송)원간산색단축장~ / 부자될라면 먼저 보시를 해서 복(福)을 심어야 / 자비심 / 좋은 원(願)을 세우고 남이 잘되기를 바래야 복을 받는다.
  10. 2014.07.26 §(243)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게송)욕초호조다종수~ /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동체대비(同體大悲).
법회(칠석)2022. 3. 7. 09:52

 

 

§(308)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일장춘몽(一場春夢) / 부처님의 감응(感應) / (게송)대지산하시아가~ / 법을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부처님의 자비가 온 법계에 두루 다 미치고, 비추고 있지마는 내 자신이 청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에 부처님의 감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가없는 우주 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8)—86년 칠석법회(86.08.12) (용308)(법회칠석)

(1) 약 16분.

 

(2) 약 18분.



(1)------------------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한데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이라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이라, 인간 생애가 꿈과 같고 또한 뜬구름과 같다.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여. 살아가는 계책(計策), 활계(活計)가 도무지 없고 육친(六親)이 다 끊어져 버렸어.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이라,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쌍의 푸르고 흰 눈 뿐이여.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라. 한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웃고 볼 뿐이더라.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부모를 의탁해서 이 몸을 받아 나고, 부모의 그늘에서 음덕(蔭德)으로 자라 가지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이렇게 해서 돈을 벌고 세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고, 모든 과거에 지은 인연으로 해서 일촌 ·이촌 · 삼촌 · 사촌 · 오촌 이렇게 해서 원근(遠近) 친척과 가문과 이웃이 모다 얼크러져 가지고 이렇게 사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 생애(生涯)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꿈과 같은 것이고 뜬구름과 같아.

좋을 때는 형제간이다 친구간이다 모다 그렇지만 내가 높은 벼슬자리에서도 떨어지고, 재산도 없어지고 병들어 비참하게 되면 그전에 그렇게 드나들고 형님 동생하던 처지(處地)도 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다 인연(因緣)이 멀어져 버린 것이여.
그리고 부귀(富貴)와 영화(榮華), 공명(功名)이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 없이 다 흩어지게 되고, 일생 동안 또는 영원히 그렇게 잘살으란 법도 없어.

그러니 그것이 모두 지내놓고 보면 한바탕 춘몽(春夢)에 지내지 못하고, 저 여름 하늘에 흰구름 뭉텅이와 같아서 그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 보면은 호랑이 같기도 하고, 사자 같은 놈도 있고, 코끼리 같은 놈도 있고 또 누각 같은 것도 있고, 사람같이 생긴 것도 있고, 별별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모양이 있지마는, 잠시 지나면은 그 구름이 이리저리 변형이 되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흩어져서 간 곳이 없어져 버린다 그 말이여.

인생의 부귀영화라고 하는 것이, 빈부귀천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인생살이가 그러한 구름덩어리와 같다. 꿈속에 아무리 천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재상이 되는 꿈을 꾸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그런 꿈을 꿨다 해도 잠을 깨 버리면 자취가 없어져 버려.
그러니 인생살이를 꿈에다가 비유하고 또 구름에다가 비유한 것은 우리는 너무나 타당(妥當) 있는 그러한 비유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계도무절육진(活計都無絶六親)이여.
그러한 인생살이가 허망한 줄 알고 의지하고 믿을 것이 못 된 줄 알면, 그러한 세속 그 뜬구름과 같은 인연을 한칼로 다 비어버리고 출가해서 도를 닦으니 모든 직업도 다 놔 버리고, 인생의 빈부귀천도 다 내버리고, 오직 일대사(一大事) 문제만을 위해서 남은 목숨을 거기다 바치니 활계(活計)가 무엇이여?
생활해 나가는 대책을 무엇으로 세울 것이냐 그 말이여. 아무 계책(計策)이 없어. 그리고 세속의 육친, 일가친척 부모형제 그런 육친의 인연이 다 끊어져 버렸어.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과 빈부귀천과 부귀영화 모든 것을 갖다가, 그런 것을 실다운 것으로 믿고 그런 것을 가지고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러한 속에서 얽매어 가지고 끌려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을, 부귀와 영화에 얽매어 가지고 모다 그러한 것들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제 잘난 맛으로 살고 있는 그러한 인간들을 비긋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청백안(靑白眼)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병인년 칠월 칠석(七夕)날입니다.
저 옛날부터서 칠석날에는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모다 그러한 영가(靈駕)들을 위해서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해(苦海)를 벗어나서 업장(業障)을 소멸해 가지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기를 축원을 하고, 또 살아 있는 부모형제 자손들의 수명장수하고, 복덕이 구족하고, 자손이 창성하도록 그리고 나라와 민족, 국가 민족이 모두가 다 우순풍조(雨順風調)해서 모든 사람이 모다 화합해서 잘살기를 빌고 하는, 이러한 부처님께 칠성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축원을 하는 그러한 성스러운 날로 여겨왔던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칠석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대소 사찰에서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구름처럼 모여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고 축원을 하는 그러한 의식과 풍속이 지금도 변함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용화선원의 법보전(法寶殿)에도 많은 신남신녀들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마는, 선망부모, 현존 사친을 위해서 이 칠석날을 기해서 그러한 소박한 신앙심으로 이렇게 오신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참 좋은 풍속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새 과학 문명(科學文明)이 발달하고 모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을 해서 ‘뭐 그까짓 것 미신이다. 그까짓 것 다 기복불교(祈福佛敎)고, 다 미신에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여겨버리고 그러한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냥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천여 년을 두고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소박한 신앙을 고대로 전통을 해오고 그러면서도 최상승 불법(佛法)을 믿는 신심은 오히려 더 돈독해지고, 이런 것은 어떠한 면에서 생각해 보면 대단히 참 아름다운 한 신앙의 면이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속담에도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부처님께 발원하고, 참회하고, 기도하고, 축원하고, 이러한 정성스런 신심은, 그러한 공덕은 결단코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내가 그만한 간절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을 들이고 축원을 하면 반드시 거기에 감응(感應)이 있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에다가 맑은 물을 떠 놓고 그 그릇을 고요하게 유지를 하면 반드시 그 그릇에는 하늘에 떠있는 달이 거기에 비추는 것입니다. 하늘에 뜬 달이야, 물그릇에 떠 놓거나 말거나 언제나 모든 곳에 한결같이 비추고 있는 것이지만, 물이 없는 데에는 그 하늘에 뜬 달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한 것은 아니되, 물을 떠 놨을 때 비로소 그 하늘의 달이 자기 눈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법계(法界)에 두루 다 미치고 비추고 있지마는, 내 자신이 정성스러운 마음, 청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에 부처님의 감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가 아무리 밝게 비추고 있어도 자기 스스로 캄캄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앉았다든지 또는 껌껌한 지하실이나 굴속에 들어가서 앉았다면 아무리 저 허공에 태양이 그렇게 밝게 비추고 있은들 자기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커튼을 걷고, 문을 활짝 열어제낄 때 방안에 광명이 비출 것이며, 지하실에서 용감히 뛰쳐나와서 태양이 비추고 있는 넓은 광장으로 나올 때에 온통 그 햇빛을 다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청정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쌀과 꽃과 과일과 여러 가지 폐백(幣帛)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와서 올리고 경건하게 향을 사르고, 절하고 또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광명을 그리고 모든 공덕을 우리는 흠뻑 가슴에 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16분5초)





(2)------------------

대지산하시아가(大地山河是我家)인대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나무~아미타불~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대지산하(大地山河)가 이 나의 집이여.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다시 어느 곳에서 내 고향집을 찾을 것인가.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눈앞에 나타난 그 산을 보다가 자기의 길을 잃어버리는 그런 길 잃은 손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종일토록 가고 또 가도 집에는 이르지를 못하는구나.

대지산하(大地山河),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대지산하가 온통 이것이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고향인데, 그것이 자기 고향인 줄을 모르고 자기 고향을 평생토록 찾으러 다녀.
왜 자기 고향에 발을 디디고 자기 고향에서 살면서 왜 고향을 찾고 있느냐? 눈에 보이는 산을, 기웃기웃 산을 보다가 자기의 갈 곳을 잊어버려, 길을 잊어버린다 그 말이여.

현실에 자기 발 디디고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자기의 고향이요, 자기가 설 곳이요, 자기의 바로 살아 갈 곳인데, 그 자리를 놔두고 저 눈에 보이는 저 먼산을 갖다가 행여나 ‘저기에 내 고향이 있는가? 저 산너머에 내 고향이 있는가?’ 하고 멀리 찾다가 자기의 진짜 고향을 잊어버리더라 그 말이여.

우리 도 닦는 사람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기 위해서 온갖 고행을 극복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데,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이러한 현실 경계를 내놓고 따로 도(道)의 경지를 찾고, 따로 견성할 것을 구하고, 따로 성불할 어떠한 특수한 경지를 구하는 한은 참다운 견성은 이르러 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닥치고 있는 그 일이 자기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좋건 나쁘건, 기쁘건 슬프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여. 그놈을 여의고 찾지도 말 것이며, 그놈에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 것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다그쳐가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의 땅[如來地]에 이르는 소식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법회 때마다 “불법(佛法)을 먼 데에서 구하지 말아라. 불법은 너의 마음속에 있고 지금 이 자리, 이때를 버리고 찾지 말아라”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방편(方便)이 아니라 그 말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너무 적절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바르게 도를 닦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이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는데 그것이 지금 목판으로 새겨져서 해인사 장경각에 봉안이 되어 있는데, 그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법문은 그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문 가운데에 천만분의 일, 백만분의 일도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정말 살아 있는 법문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시기 전 또는 부처님이 80세 동안 이 세상에 머무르시다가 열반(涅槃)하신 뒤,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무량겁으로부터 영원한 미래가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법문이 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가없는 우주 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삼라만상 그런 현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뚱이, 언필칭(言必稱) 우리는 중생(衆生)이라 그러는데, 남녀노소 우리 자신들도 물론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일체가 다 전부 다 부처님의 화현신(化現身)이요, 바로 우리 몸뚱이 속에 삼세제불이 다 머물러 계셔서 지금도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문을 듣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냐? 법문을 설하면서 동시에 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설하는 것과 법문을 듣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승(山僧)도 역시 설(說)하고 듣고 있고, 여러분도 들으면서 동시에 또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승이 설한 것이 아니요, 여러 사부대중이 설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이 설하시고 부처님이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묘(妙)하다고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시에 설하고 듣고 있는 이것을 어찌 중생의 생각으로 이것을 구할 수 있으며, 어찌 범부(凡夫)의 알음알이로 이것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이 돌아가신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친척의 영가(靈駕)를 명복을 빌고, 천도(薦度)해 드리고 또 살아계신 부모 형제자매와 자녀들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빌고, 복덕구족(福德具足)을 빌고,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 자리에 모다 운집을 하시고 아울러서 칠석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은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설할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바른 법문이 아니요. 들은 바가 있다면, 들을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법(法)을 설하고 이렇게 법을 들을 때에, 그 법은 우주 법계에 가득차신 법신불(法身佛)과 우주 법계에 가득찬 일체 중생이 동시에 설하고 동시에 듣게 되므로 온 세계는 불보살(佛菩薩)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불보살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온 세계에 퍼졌다 해도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꽃대로 붉게 피어서 아름답고, 풀은 풀대로 파랗게 너울거리고, 김 서방 · 이 서방은 각각 아들딸 낳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그렇게 사는 것들, 부자는 부자 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관공리는 관공리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승려는 승려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분상(分上)에 맞추어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책무를 완수할 때에 전부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한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 흙과 종이와 철근과 기왓장,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합해져서 하나의 훌륭한 집을 짓듯이, 우리 김가 · 이가 · 박가 · 고가, 성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지만 각각 다른대로 저 나름대로 생애가 있고, 저 나름대로 취미가 있고, 저 나름대로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마는.
바른 불법,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다고 하는 점에서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닦는 것을 우리 모두의 본업(本業)으로 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때, 절에 오면은 훌륭한 신도요 법보제자요, 가정에 돌아가면 훌륭한 아내요, 어머니요, 아들이요, 딸이요, 아버지요, 형이요, 동생이요, 자식이 될 것입니다.(16분13초~33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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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애여몽약부운~’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뜬구름 ; ①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②덧없는 세상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육친(六親) ;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음덕(蔭德 덕택 음/덕 덕) ; ①조상의 덕. ②부모나 다른 사람이 돌보아 주는 보호나 혜택.
*생애(生涯 날 생/끝 애) ; 살아 있는 한평생의 기간.
*처지(處地) ; ①서로 사귀어 지내는 관계. ②지위나 신분.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부귀(富貴 재물이 넉넉할 부/귀할 귀) ;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
*영화(榮華 영화·영달 영/빛날 화) ;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고 빛남.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공명(功名 공로 공/이름 명) ; 공을 세워 이름이 세상에 떨쳐짐. 또는 그 이름.
*'모두 지내놓고 보면 한바탕 춘몽(春夢)에 지내지 못하고' ;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타당(妥當 평온할 타/마땅할 당) ; 일의 이치로 보아 옳음.
*한칼 ; 한 번 휘둘러서 베는 칼질.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활계(活計) ; 살아갈 계책(計策). 또는 살릴 계책.
*계책(計策 헤아릴·꾀할 계/꾀 책)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꾀나 방법을 생각해 냄. 또는 그 꾀나 방법.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청백안(靑白眼) ; 지혜의 눈. 잘 능히 상대방의 근기(根機)의 천심(淺深)을 분별하는 안목(眼目).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우순풍조(雨順風調) ; 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붊. 주로 농사짓기에 알맞게 기후가 순조롭고 좋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과학 문명(科學文明) ;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명.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폐백(幣帛 예물 폐/비단 백) ; ①일반적인 모든 예물(禮物). ②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③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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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대지산하시아가~’ ; 『소요당집(逍遙堂集)』 「추록(追錄)」 '무제(無題, 18수)'에 있는 게송.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것.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은 티끌. 찰(刹)은 산스크리트어 kṣetra의 음사. 토(土), 국(國), 처(處)라고 번역. 국토. 세계. 땅. 장소. 영역.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화현신(化現身)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此性縱汝迷時亦不失 悟時亦不得 天眞自性 本無迷悟 盡十方虛空界 元來是我一心體 縱汝動用造作 豈離虛空 虛空本來無大無小 無漏無爲 無迷無悟 了了見 無一物 亦無人 亦無佛

이 본성은 비록 네가 미혹해 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또 깨달았을 때라도 역시 얻는 것이 아니다. 천진스런 이 자성(自性)은 본래 미혹함도 깨달음도 없다.
온 시방의 허공계가 원래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다. 비록 그대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할지라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허공은 본래 크지도 않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도 없고 유위도 없으며, 미혹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아 한 물건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다.

絶纖毫的量 是無依倚無粘綴一道淸流 是自性無生法忍 何有擬議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珍重

거기에는 털끝만큼도 계량(計量)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의지하여 기댈만한 것도 없고 달라붙을 것도 없는 한 줄기의 맑은 흐름인 것이며, 이것이 곧 자성(自性)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인 것이다. 어찌 무슨 의론의 여지가 있겠는가?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자신을 소중히 하여라.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21. 8. 29. 14:44

§((128)) (게송)작일지두개란만~ / 토속 신앙을 포섭해서 정법으로 인도하는 자비스러운 또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방편 / 용화사에서는 오직 비로자나 부처님 한 분만을 모시고 오직 최상승법만을 선양을 해 내려오고 있다 / 최상승법은 그물에 있어서 벼릿줄과 같은 것.

칠석날 참선법문을 해 드린 것은 여러분의 소원을 성취해 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 / 자작자수(自作自受) / 모든 업(業)의 근원인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최상승법 / 절만이 마음을 닦는 곳이 아니라 참으로 살아 있는 적극적인 참선방이 바로 가정 · 직장 · 사회이다 / 마정수기(摩頂受記) / 한 생각 화두를 들면 그것이 바로 비로자나불께 올리는 불공이요, 공양.

**송담스님(No.128)—1980(경신)년 칠석법회 법문(80.08.17) (용128) (칠석)

 

 

(1) 약 15분.

 

 

(2) 약 15분.

 


(1)------------------

작일지두개란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이리요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어제는 가지 끝에 그렇게 아름답게 꽃이 피어 있더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오늘은 땅 위에 그 꽃송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구나.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니, 그 어제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찬란하게 피어 있던 나뭇가지에 피어 있던 그 꽃이 하룻밤 사이에 떨어져서 땅 위에 깔려 있는 그것을 보고 과연 사람으로 하여금 그 떨어진 꽃이 애석하기도 하고, 그 애석하고 아까운 생각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운 생각을 내게 한다. 무슨 부끄러운 생각을 내게 하느냐?
세상의 영화(榮華)와 공명(功名), 그러한 것에 대해서 무심(無心)하덜 못한 내 자신이 그 꽃을 보고서 한없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더라.

그 꽃은 어제까지 그렇게 찬란하게 피어 있다가 하룻밤 사이에 떨어졌건만 꽃 자신은 조금도 아름다울 때라고 해서 뽐내는 법도 없고, 하룻밤 사이에 땅에 시들어 떨어졌다고 해서 무슨 거기에 실망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지를 않은데,
사람은 너와 같들 못해서 명예와 권리를 누릴 때에는 이 세상에 오직 자기만이 잘나고 똑똑하고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다가 하룻밤 새에 그러한 영화와 권리와 명예가 자기로부터 떠나게 되면 기운이 없고 살아갈 맛을 잃고 그러한 것에 대해서 무심(無心)하기가 그러한 꽃보다 못하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그 꽃 떨어진 것을 보고 스스로 꽃을 부러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느낌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칠월 칠일, 칠석(七夕)날입니다.
전설로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오작교(烏鵲橋), 가마구 떼와 까치 떼가 모여서 다리를 놔 주면 견우와 직녀가 오늘 저녁에 일 년에 한번 상봉하는 날이다. 이러한 전설이 있고 또 절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그 칠석날에 불공(佛供)을 올리고 소원을 빌면 모든 소원을 성취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칠석날에는 돈과 쌀과 과일을 이고 지고 그래 가지고 절로 절로 가서 공양(供養)을 올리는 그러한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칠성(七星)님, 칠성님이라 하면 북두칠성(北斗七星), 또 삼태육성(三台六星) · 이십팔수(二十八宿),  또 일월, 일광보살(日光菩薩) · 월광보살(月光菩薩), 해와 달, 그리고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 이러한 우주에 있는 이 하늘에 있는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을  하나의 성현(聖賢)으로 이렇게 받들어 모셔 가지고 거기다가 신앙을 가지고 공양을 올리는 그러한 오래된 토속 신앙인 것입니다.
원래 이 신앙이 도교(道敎)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또 도교 이전에 자연을 하나의 신(神)으로 신격화해서 자연의 위력을 신앙하는 그런 원시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불교가 중국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일본에 이렇게 차츰 뻗어오면서 그 나라에 새로 들어갈 때마다 그 고장에 있는 토속 신앙을 다 흡수를 해 가지고 그 불교 안에 포섭을 한 다음 차츰 근기(根機) 따라서 정법(正法)을 설해서 바른 신앙을 갖도록 하는 그러한 방편(方便)을 옛날부터서 써 왔던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자기 종교 이외의 종교는 다 외도다 또는 사탄이다' 이리 해 가지고 일단 그것을 배격을 하고 그리고 자기의 종교를 갖다가 선양하는 그러한 종교도 있습니다마는, 우리 불교는 신라 · 고구려 · 백제 쭉 내려오면서 일단 그 나라에 새로 종교가 불교가 들어가면 거기에 있었던 그런 토속 신앙을 다 포섭해서 그래 가지고는 포섭해서 다 들어온 다음에는 그대로 그것을 융화해서 완전히 소화를 시켜 가지고 그 사람 그러한 근기 맞춰서 법을 설해서 그래 가지고 마침내는 정법으로 인도하는 그러한 아주 자비스러운 또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그러한 방편을 써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 내에도 칠성각(七星閣)을 모시고 칠성님을 모시고, 지금 어느 사찰에 가나 다 큰 절, 작은 절 할 거 없이 대체적으로 칠성단(七星壇) · 산신단(山神壇) · 독성(獨聖) 등, 이러한 삼성각(三聖閣)이 모셔져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 용화사에서는 오직 부처님 한 분,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 한 분만을 모시고 그리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팔만사천 방편을 하나로 녹여 뭉쳐서 오직 최상승법(最上乘法)만을 선양을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최상승법은 오직 관심일법(觀心一法), 내가 내 마음, 한 마음을 관하는 이 법으로써 일체법(一切法)을 다 포섭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이 고기를 잡는 그물을 보면 그 벼리가 있습니다. 벼리는 그물의 그 손잡이입니다. 그것을 벼릿줄이라 그러는데 그 그물에 벼릿줄을 팍! 잡고 끌어 잡아당기든지 추켜들면 수십만의 그물코가 전부 다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벼릿줄만 탁! 추켜들면 그물이 아무리 크고 코가 많은 눈이 많은 그물이라 하더라도 한 번에 가지런히 탁! 들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최상승법은 그 그물에 있어서 벼릿줄과 같은 것입니다. 벼릿줄 하나만 들면 그 큰 그물이 대번에 가지런하게 탁! 추려지는 것입니다. 벼릿줄과 연결되지 아니한 그물은 없습니다. 모든 그물의 코는 전부가 벼릿줄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 하나만을 선양을 하고 여러분들도 이 최상승법을 철저히 믿고 실천해 옮기면 팔만사천 방편, 팔만사천 법문이 바로 그 속에 다 포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벼리를 버리고서 낱낱이 그 수십만이나 있는 그 그물의 코를 낱낱이 들려고 하면 그 그물은 흔틀어져서 어찌해 볼 수 없게 되어질 것입니다.
옷을 들 때에도 옷깃을 들면 소매와 옷소매라든지 도련이라든지 모든 옷이 가지런하니 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소매 끝을 잡고 옷을 든다든지 또는 옷에 섶의 끝을 들고 추켜든다든지 하면 그 옷은 꺼꾸러져서 도대체가 옷인지 걸레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믿어도 이 최상승법을 믿어야 전체의 불법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믿는 그날부터 정말 올바르게 불법을 믿고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고 저 팔만사천 방편 가운데에 저 어느 하나를 아무리 열심히 믿고 따른다 하더라도 마치 그물을 들 때 있어서 저 그물의 어느 구석지 한 코를 추켜든 거와 같아서 아무리 이리 뒤적거리고 저리 뒤적거리고 이리 뒤집어 놓고 저리 뒤집어 놓고 해도 도대체 이 그물이 어떻게 생긴가를 모르고 뒤적거릴수록 점점 혼란해지고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지금 이 칠석날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신 분은 정말 선택된 불자(佛子)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처음~14분46초)





(2)------------------

오늘 칠석날, 여러분은 각기 크고 작은 소원들을 가슴에 품고 오셨을 줄 생각합니다. 다른 절에서는 오늘 칠석날 새벽부터 불공을 하고—독불공(獨佛供)을 하고, 동참 불공(同參佛供)을 하고 계속 하루 종일 목탁을 치면서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또 축원을 하고 모다 그럴 것입니다. 그런 절에도 많이 가보셨을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그 쏟아지는 빗속에 이 주안 용화사를 여러분들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빨리 불공을 했으면, 빨리 우리 아들 축원을 해 주었으면'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도 계실는지 모르지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용화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선양을 하는 도량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어오시자마자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한 시간에 걸쳐서 들었습니다. 법문 내용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상승법, '어떻게 하면 참선을 바르게 하며 바로 깨닫을 수가 있느냐?' 이러한 아주 고준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왜 우리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하지 아니하고 하필 오늘 칠석날 이러한 참선 법문을 해 드리느냐? 이것이야말로 정말 여러분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낱낱이 축원을 안 해도 여러분이 접수만 해 놓으셔도 부처님께서는 환히 다 알고 계십니다. 낱낱이 이름을 불러야 알고, 부르지 아니하면 모른다면 그러한 부처님께 뭐 갖다가 올릴 것이 또 뭣이 있습니까? 벌써 여러분이 한 생각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오셨을 때 부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또 이 법문(法門)이 끝난 다음에 또 간략하지만 정성스럽게 예경(禮敬)을 올리고 또 축원(祝願)을 해 드립니다. 축원은 낱낱이 여러분의 식구의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칠석법회 동참발원재자(同參發願齋者)' 이러면 여러분은 다 그 안에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 이름을 1학년부터서 다 부르지 안 해도 '서울대학교 학생 일동' 그러면 그 학교에 학적이 있는 학생은 다 그 속에 다 포함이 된 것입니다. 낱낱이 이름을 부르다가 빠지면 그것은 큰 손해를 보겠지만 '서울대학교 학생 일동' 그러면 자기 이름을 특별히 불러 주지 안 해도 자기도 그 속에 여지없이 틀림없이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동참발원재자(同參發願齋者)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 하나도 빠짐없이 부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합니다. 왜 소원을 성취하느냐?
불교의 최고의 법인 최상승 법문을 들었거든. 그리고 그 최상승 법문을 듣고 거기서 신심을 내고 그것을 실천을 할려고 결심을 다지시고 또 현재 실천을 하고 계시고 그러니 여러분들이 만약에 학생이라면 가장 최고의 점수를 가진 우등생과 마찬가지다 그 말이여. 무엇이 걱정이 되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 최고의 근본법이요, 최고로 높은 이 법을 듣고 그것을 실천을 하기 때문에 복을 빌고 소원을 빌고 한 것은 자연히 그 가운데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이라든지 재앙이라든지 이것이 하느님이 맥없이 우리한테 복을 주고 까닭 없이 우리한테 벌을 주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또는 재앙을 받을 수 있는 그 원인이 전부 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을 만한 원인을 지었으면 내게 복이 돌아오는 것이고, 내가 재앙을 받을 수밖에는 없는 그러한 원인을 지었으면 내게 재앙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공연히 나를 미워서 나에게 벌을 주고, 신장님이 아무 까닭도 없이 내가 미워서 나에게 급살(急煞)을 내리고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작자수(自作自受)인 것입니다.

무엇으로 짓느냐?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마음으로 짓습니다. 이것이 신(身) · 구(口) · 의(意), 삼업(三業)입니다. 삼업(三業)인데 근본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입을 통해서 표현이 되고 몸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업(業)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근원을 잘 다스리면.... (녹음 끊김) 파 뒤집으면 또는 독한 약을 뿌리에다가 치면 그 많은 가지와 잎은 저절로 시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큰 아름드리나무도 뿌리에다가 적당한 비료와 적당한 수분을 공급을 하면 그 수십만 수백만 개의 가지와 이파리는 저절로 싱싱하게 자랄 것입니다. 그 나무를 죽일 수 있는 것도 뿌리에 달려 있고, 그 나무를 살리는 데에도 뿌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악(善惡), 일체 재앙과 일체 복록이 그 근원인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복돋우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게도 할 수가 있고, 재앙이 돌아오게 할 수도 있고 재앙이 돌아오지 않게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근원을 다스리는 방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 부처님은 어떠한 불교를 믿는 불자(佛子)가 와서 공을 들이고 기도를 하고 주력을 하고 염불을 하고 할 때 부처님은 환히 다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절에 와서 하건, 자기집에서 하건, 직장에 가서 하건, 어디 기차간을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하건, 어디서 · 언제 ·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부처님은, 우주의 가득차 계신 부처님께서는 환히 다 보고 계시고 불법를 옹호하는 제석천왕도 환히 다 보고 계시고, 복을 받을 사람, 복을 받지 못할 사람, 있는 복도 떠날 수밖에는 없을 사람, 지금은 가난하지마는 하는 싹수가 머지않아서 부자가 될 사람, 환히 다 보고 계시거든.

어떤 분은 절에 왔을 때만 목욕재계하고 아주 마음도 경건한 마음으로 오지만, 일단 집에 가면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마구 함부로 해서 아들과 손자, 며느리로부터 '불법(佛法)을 믿는 분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러한 공격을 받는 분이 적잖이 계시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만이 마음을 닦는 곳이 아니라 참으로 가정에서 살아 있는 수도원, 살아 있는 적극적인 참선방이 바로 가정이요, 직장이요, 사회인 것입니다.

자기가 불교 신자라고 하는 것이 알려지지 아니한 타관에서건,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가건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 부처님을 믿는 불제자는 항시 부처님이 자기 안에 계신 줄 믿고 항시 자기 머리 위에서 자기를 보고 계신 줄 믿고 한 생각, 한마디 말,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이르도록 언제 어디서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거룩한 어진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상대하고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복을 받을 사람이요, 부처님으로부터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항시 마정수기(摩頂受記), 마정수기는 우리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시면서 우리의 장래에 대해서 약속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이나 손자가 착하고 귀여울 때에는 이마를 만져 주면서 칭찬해 주듯이, 우리는 언제나 우주에 꽉 차 있는 부처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으면 일체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는 짓은 죄 받을 짓만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불공만 들이면 소원을 성취하리라고 생각한 것은 조금 어리석은 생각인 줄 압니다.

불공(佛供)은 꼭 이 법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꽉 차 있는 부처님, 동서남북이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 있는 부처님, 그 부처님 그 법신불(法身佛)께 공양을 올리는 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몸을 숙이지 아니해도 한 생각 화두(話頭)를 들면—경건한 마음으로, 엄숙한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를 한 번 들면 그것이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께 올리는 불공이요, 공양인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절에 못 간다' '법회에 나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못 간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분을 가끔 뵙니다마는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말이 입에서 나와서는 아니됩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또는 불사(佛事)에 바치는 시주금 이러한 것은 자기의 형편에 따라서 많고 적고건 간에 정성이 다 꽉 차 있으면 그것으로써 족한 것입니다. 백 원이면 백 원, 만 원이면 만 원, 십만 원이면 십만 원, 백만 원이면 백만 원, 자기 형편껏 성의껏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단돈 백 원도 없으면 경건한 마음으로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려도 족한 것입니다. 물이 없으면 한 생각 경건한 마음으로 '이뭣고?' 화두 한 번 들면 되는 것입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못낸 것을 부처님은 미워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하시지를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그 사람에 정성스러운 마음, 경건한 마음, 청정한 마음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39분10초~54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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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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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21. 2. 24. 15:35

§((084)) 칠석날 의의, 모든 소원성취 / 용화사 모든 법회의 목적은 업장소멸하고, 참나의 주인공을 깨달라 영원한 생사해탈 / 참선을 함으로 해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끊어야 / 법(法)을 들었걸랑 일분일초를 아껴서 열심히 수행해야 / 죄의 종자(種子)가 따로 있어서 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

(게송)전빙시수수성빙~ /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 /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 / 점철성금(點鐵成金).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참나 찾는 '이뭣고?'를 해야 /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다.
지옥(地獄)에 있는 모든 중생이 바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입니다. 7월 15일 백중날은 지옥에 문이 잠시 동안 열렸다가 닫히는 날 /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 들기를 머리에 불붙었을 때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여구두연(如救頭燃).

**송담스님(No.084)—1978(무오)년 칠석 법회(78.08.10) (법회칠석)

 

(1/3) 약 15분.

 

(2/3) 약 18분.

 

(3/3) 약 11분.


(1/3)----------------

오늘은 무오년(戊午年) 7월 7일, 칠석(七夕)날입니다. 고래(古來)로 칠석날에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서로 만나는 날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한테 묻기를, "칠석 행사는 불교와 관계가 없는 날이 아닙니까?" 그렇게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서 절에서 칠석(七夕)날에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칠석에 모다 불공(佛供)을 드리고 그래 왔는가? 그것은 확실히 알 수가 없지마는, 오래전부터서 우리 불교(佛敎)에서 절에다가 칠성(七星)님,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 칠성님 모시고, 특히 일반 그 신앙이 칠성님께 공(功)을 들이면은 수명장수(壽命長壽)하고 모다 그렇다고 해서 참 칠성(七星)에 대한 신앙이 돈독(敦篤)했습니다.

그 칠성에 대한 신심(信心)이 바로 이 칠월 칠석날, 유독 칠성불공(七星佛供)을 많이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그 살아 있는 사람의 수명장수를 위해서 지금 칠성법회(七星法會)를 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칠석(七夕)날은 어떠한 의의(意義)가 있느냐?
정월(正月)에 그 한 해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礙)해서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정월에 신수기도를 열고, 그리고 난 다음에 2월 3월 4월 5월 6월까지 6개월이 지나고, 그리고서 7월부터서 섣달까지 앞으로 또 6개월이 남았습니다.
반년(半年)이 지내갔으니까 다시 남은 반년을 무장무애(無障無礙)하게 우리가 마음먹은 멀고 가까운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렇게 칠석날 각 사원(寺院)에서 모여서 법회(法會)를 열고 동참공양(同參供養)을 올리고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에 천도(薦度)를 올리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절에서는 어떠한 의미에서 했건 간에, 우리 법보선원에서는 그러한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의미를 부정하지 아니하면서 우리 법보선원 나름대로 깊은 의의(意義)를 거기에다 부여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나간 모든 우리의 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고 앞으로 새로 악업(惡業)을 짓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정월(正月)이나 또는 초파일(初八日)이나 칠석(七夕)이나 백중이나 어떠한 날짜에 열리는 행사건 간에 그 날짜의 명목은 다를망정 그 법회(法會)의 목적은 언제나 한 가지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내간 그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나아가서 앞날에 있어서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한 가운데 나 자성(自性), 참나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달라서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 있는가. 오직 그 목적 하나가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앞으로도 몇억만 겁을 육도(六道)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통(生死苦痛) 속에서 흘러갈 것인가.
그 문제를 해결 짓기 위해서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조사선(祖師禪) 활구법문(活句法門)을 자주자주 들어야 하고, 그런 법회를 열기 위해서는 법당(法堂)을 넓혀야겠고, 법당을 넓히는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에 전라북도 남원 대복사(大福寺) 중창(重創)에 대한 유래(由來)에 설화를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과거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우리가 지은 그 업(業)의 원인으로 인해서 이렇게 여기서 죽어서 저가 태어나고, 저기서 죽어서 여기 태어나기를 몇천만 번을 거듭하면서 천당(天堂)에 올라갔다, 사람이 되었다, 지옥(地獄)으로 떨어졌다, 축생(畜生)이 되었다, 귀신(鬼神)이 되었다, 수라(修羅)가 되었다, 이렇게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금생(今生)에 다행히 인도(人道)에 태어나 가지고 법보선원 이 법당(法堂)에 모여서 오늘 이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인 그 원인이 아무 까닭 없이 우연히 이렇게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꼭 이 자리에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원인을 우리 스스로가 심어 놓아 가지고 그 종자(種子)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 일분일초 동안도 아무 생각 없이 고냥 고대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생각이던지 일어나면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또 그 생각이 꺼지면 꺼지자마자 또 딴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이 일어났다 또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없어지고, 없어지면 또 생겨나고, 이래서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행동으로 인해서 업(業)을 짓고, 업을 지음으로 해서 또 다음 업을 또 맞이하게 되게,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참선법(參禪法)을 통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 해서 그 생사심(生死心),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지 아니한 이상은 우리는 그러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앞으로 한량없는 세월 동안 또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원 읍내 대복이와 같이, 관리(官吏)로서 그러한 착취(搾取)를 하고, 대복이의 증조, 대복이의 부친, 대대(代代)로 내려가면서 못된 짓을 하게 되면 구렁이 되기 십상팔구(十常八九)입니다. 구랭이가 안 되면은 지옥(地獄)에 갈 것이고, 지옥에 안 가면은 소나 말이 되어 가지고 그 빚을 갚아야 되는 것이여.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罪)를 갚으려고 든다면 과거로부터 금생에까지 온 세월, 몇백만 배의 세월을 거쳐도 갚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아무리 갚는다 해도 갚으면서 또 업을 짓게 되기 때문에 생사윤회는 끊일 날이 없는 것이여.

다행히 우리는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12년간의 고행(苦行) 끝에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부처님의 은혜로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생사윤회로부터 해탈(解脫)할 수 있는 위없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활구참선법에 의해서만이 그 무량겁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하면서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윤회(生死輪廻)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그러한 법(法)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도량(道場)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그러한 도량에 발을 들여놓았건만, 바른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용화선원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아니하고 여기서 먹고 자고 똥을 싸면서 죽을 때까지 있어 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바른 약(藥)을 알고, 바른 약을 얻었으면 그 약을 여법(如法)히 잘 복용(服用)을 함으로써 병(病)을 낫을 수가 있는 것이지, 약을 알았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그 약을 구해서 호주머니에 넣어 놓고 있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이 아닌 것처럼, 법문(法門)을 들었다고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화사에서 기거를 하고 있다고 해서 또 공부가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法)을 들었걸랑 한시 일분일초를 아껴서 잠시도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생각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날 그 찰나(刹那)를 바로 되잡아 돌려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회광반조(回光返照)를 할 때에 우리의 한량없는 업장(業障)은 봄눈 녹듯이 그 자리에서 녹아지는 것입니다.

원래 죄(罪)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죄의 종자(種子)가 따로 있어서 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이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 그것만을 올바르게 찾아서 깨달을 때에, 올바르게 찾고 있을 때, 죄는 이미 우리로부터 녹아지는 것이고 새로운 죄도 우리에게는 발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5분2초)




(2/3)----------------

전빙시수수성빙(全氷是水水成氷)이요  고경불마원유광(古鏡不磨原有光)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풍자동혜진자기(風自動兮塵自起)라  본래면목노당당(本來面目露堂堂)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얼음이 온전히 이 물이여. 그리고 물이 곧 얼음이 된 것이다(全氷是水水成氷).
얼음을 내놓고 물을 찾아서는 아니 됩니다. 얼음이 바로 그것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에게는 생사(生死)가 있습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공덕으로 태어나 가지고, 얼마 동안 자라다가, 자라는 것이 바로 늙어가는 과정이죠.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늙어서, 그래가지고 병들어 가지고 죽어갑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世界)에는, 우리 몸밖에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무슨 물건이던지 이루어졌다가, 얼마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해 가다가, 그 모냥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마침내는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허망한 것이다.
일체(一切)의 유위법(有爲法)은 꿈[夢]과 같고, 꼭두각시[幻]와 같고, 물거품[泡]과 같고, 그림자[影]와 같고, 풀끝에 이슬[露]과 같고, 또 번갯불[電]과 같다.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허망하지 아니하고 참되고 영원(永遠)한 것이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를 우리는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허망한 모든 것들을 여의고, 그밖에 참된 것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영원히 참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煩惱妄想心)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보리열반(菩提涅槃)을 찾아야 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삼라만상 그 허망한 것들 속에서, 그 놈을 버리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참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 뭣고?'입니다. '이 뭣고?'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볼 줄 아는 놈, 귀를 가지고 들을 줄 아는 놈, 코로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놈, 입으로 말하고 혀로 맛볼 줄 아는, '아! 이것은 쓰다 달다', '더웁다 차다' 느낄 줄 아는 이 몸뚱이.
여기에 앉아서도 서울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하고, 10년 20년 전 옛날 어릴 적에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대관절 무엇이냐?'
아무리 그놈을 볼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건만, 분명히 들을 줄 알고, 분명히 볼 줄 알고, 성내고 울고 웃을 줄 아는 이놈!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칠석 법요식(法要式)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되겠습니다.

얼음이 곧 이것이 물이여. 번뇌(煩惱) 망상(妄想)—성내고 슬퍼하고 웃고, 오고 가고 이것이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번뇌 망상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모습이요,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겠지마는, 그놈을 여의고 '생사 없는 도리'가 없는 것이올시다. 그 속에서 바로 '이뭣고?'
성낼 때 그 성내는 놈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썽이 폭! 한 생각이 속에서 뒤집어질 때, 뒤집어지려고 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이 속 뒤집어지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썽내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바로 점철성금(點鐵成金)입니다.

무쇠 덩어리를 딱! 갖다가 '금(金)이다!' 하고 탁! 점(點)을 치면 무쇠 덩어리가 찰나간에 황금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점철성금(點鐵成金)!
번뇌 망상 '한 생각' 폭! 일어나는 그 진심(瞋心)이 참선(參禪)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금방 독사(毒蛇)의 몸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원인이지마는, 참선을 하는 사람은 폭! 썽이 날 때 바로 '이 뭣고?' 이것이 바로 독사의 몸을 받기 전에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서는 도리(道理)올시다.

불법(佛法)은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칠석날에 공(功)을 들이고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축원(祝願)을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축원을 해 봤자—물론 그러한 유루(有漏)의, 유상(有相)의 공양(供養)도 복(福)이 아닌 것은 아니나—상(相)이 있는 공양, 유루복(有漏福)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을, 아무리 힘센 사람이 화살을 공중에다 대서 쏘아 올렸다 하더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가 힘이 떨어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듯이, 우리가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머무른 바 있는 마음으로 지은 복은 언젠가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공덕(功德)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상(相)이 있는 것을 여의고 무상(無相)을 찾지 못한다'고 한 말씀이 생사심(生死心)을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몸이 있는 동안에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하고,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인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거기에만 꽉 착(着)해 가지고 그것이 다 인 줄 알지 말고, 정말 그 가운데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그러한 모냥 있는 것들도 바로 참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한다고 해서 복(福) 짓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더욱 상(相)이 없는 깨끗한,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복을 지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선을 열심히 해야—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남편이 수명장수하고, 사업이 잘되기를 바래고, 아들과 딸이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짝을 만나서 행복(幸福)하게 살기를 바래고,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 돌아가신 어른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그러한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상당수 계실 줄 생각합니다. 다 좋은 생각이고 참 훌륭한 생각입니다.

참으로 돌아가신 선망부모, 돌아가신 남편, 비명(非命)에 간 아들과 딸의 명복(冥福)을 빌고, 살아계신 부모와 아들과 딸, 남편, 온 가족이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물질적인 공양에만 머무르시지 말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내가 나를 찾는 참선법(參禪法)을 잘 귀담아들으시고 마음에 명심(銘心)을 하셔서 댁에 가시는 걸음걸음이, 차 속에서, 댁에 가셔서 살림을 하면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신경질이 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이 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참나를 찾는 데에 돌리면서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정말 눈앞에서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성취되실 것을 나는 보장합니다.

모든 업(業)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업을 소멸(消滅)하는 것은 그 업의 근원(根源)인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흘러간 물을 깨끗이 하려면 그 위에 가서 꾸정커리지를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밑에 아래에 물을 맑게 할려고 애를 써봤자 저 상류(上流)에서 흙탕물을 계속 일구고 있다면 아래에 물이 맑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랫물을 맑게 하기를 바랜다면 저 위에서, 근원에서 흙탕물 일구는 일을 그만두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하면,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우리의 업(業)을 소멸(消滅)해야 하고,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할진댄 바로 그 업(業)의 근원(根源)인 나의 마음, 나의 마음자리로 부터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흙탕물을 바로 되돌려서 참나 찾는 최상법 '이뭣고?'로 돌릴 때에 구정물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간 물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옛 거울은 닦지 아니해도 원래로 빛이 있는 것이여(古鏡不磨原有光).
우리의 마음자리는 언제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는 그 본래(本來)의 우리 마음자리는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기에 먼지가 끼여서 그 빛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빛이 나고 영롱하고 밝고 깨끗한 거울 위에 끼여 있는 띠끌만 닦아 버린다면은 새로 빛을 내게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빛이 날 것입니다.

바람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띠끌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여(風自動兮塵自起).
그렇게 해서 거울 위에 있는 때[塵]만 '이 뭣고?'를 통해서 닦고 또 닦아 가고 열심히 닦는다면, 우리의 자성(自性), 우리의 참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이 날 것입니다(本來面目露堂堂). (15분3초~32분55초)




(3/3)----------------

오늘 날씨가 삼복중(三伏中)에 있습니다. 엊그제 입추(立秋)가 지내가서 아침저녁으로는 조끔 산들바람이 불고 있고, 또 오늘은 다행히 제법 가을 날씨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고 있어서 대단히 우리 법회 열리고 있는 이 법당에서 이렇게 참 다행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여름 석 달 안거(安居)에 해제(解制)를 맞이하게 되고, 백일 동안 거행하던 백일기도도 7월 15일 날, 7월 15일에 그 백일기도 회향(回向)이 동시에 열리게 되고.

또 7월 15일 그날은 백종(百種)이라 해서 우리의 무량겁 과거에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이 불행하게도 지옥에 계신 분—지옥(地獄)에 계신 모든 분들이 우리의 선망부모 아닌 분이 없는 것입니다.
무량겁을 두고 여기서 나서 저기에 죽고, 저기서 나서 여기서 죽는 동안에 수없는 생사를 되풀이하는 동안에 소 뱃속에도 들어가고, 말 뱃속에도 들어가고, 뱀 뱃속에도 들어가고, 개 뱃속에도 들어가고, 사람 뱃속에도 들어가고, 천상(天上) · 인간(人間) ·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 수라(修羅), 육도(六道)를 돌아치면서 어느 것 하나라도 그 뱃속에 들어가 보지 아니한 그러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地獄)에 있는 모든 중생(衆生)이 바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입니다.

7월 15일 백중날은 지옥에 문이 잠시 동안 열렸다가 닫히는 날입니다. 그날 지옥문(地獄門)이 열리자마자 그 지옥 속에서, 화탕지옥 · 빙설지옥 · 차압지옥...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는 그 참혹한 지옥 속에서 고(苦)를 받던 우리의 선망부모가, 지옥문이 열리자마자 팔당 댐에 수문(水門)을 열어 놓았을 때 그 무서운 폭류(暴流)가 쏟아져 나오듯이 지옥에 선망부모들이 앞을 다투어 나올 것입니다.

그 선망부모가 나와서 어디로 가냐?
방방곡곡(坊坊曲曲)에 부처님 모신 도량(道場)에서 백종날은 선망부모에 천도재(薦度齋)를 올립니다. 인도에서, 중국에서, 우리나라에서, 일본에서.
특히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는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수천 위(位)의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를 모셔놨습니다.
여기서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說)하고, 법회(法會)가 열릴 때마다 천도(薦度)를 올리고, 특히 백중날은 융숭하게 천도재(薦度齋)를 올린 만큼 아마 지옥문이 열리자마자 용화사 법보선원을 어떻게 알던지 알아 가지고 거의 그 많은 선망부모가 우리 용화사에 다 몰려오실 런지도 모릅니다.

왔다가 거기 법문(法門)도 잘 들으실 것이고, 또 재단(齋壇)에 올린 음식도 잘 공양(供養)을 하시겠지마는 첫째, 내 딸이 안 왔나, 내 아내가 안 왔나, 내 손녀가 안 왔나, 그것부텀 찾아보실 것입니다.
왔다가, 와야 할 딸을 못 만나고 가시거나, 아들이나 손녀나 며느리를 만나지 못하고 가실 때에 얼마나 허통하실 것을 생각하신다면은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백중날에는 정성스럽게 선망부모를 위해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목욕재계(沐浴齋戒)하시고 그날 법회에 빠짐없이 참여(參與)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구명소일모공성(求名少日慕孔聖)타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로다
나무~아미타불~

명예를 구하고, '좀 더 잘살아 보겠다'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 그러한 명예와 권리와 재산, 그러한 것을 구하던 젊은 때에는 공자님을 숭배하다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라,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는,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혀서 얼마 안 가서 죽게 된 이 늙으막에사 겨우 부처님을 알게 되었다.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하니  절심거화구두연(切心擧話救頭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젊었을 때에는 돈 벌고 재산 모이고, 명예와 권리와 좀 더 잘살아보겠다고 허둥대다가 늙으막에사 겨우 부처님 법을 알고 말았는데, 머리 위에 광음(光陰)은, 세월은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 말이여.
퍼뜩허면 하루해가 저물고,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하루해가 저물고, 이럭저럭 그럭저럭하다가 하루해가 저물고, 썽 한 번 냈다 웃었다 하다가 하루해가 저물고.

그러니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話頭)를 들고 또 들고 하기를 수염에, 불붙은 수염에 불 끄듯 해라. 수염이 없는 보살님네들은 머리털에 불이 붙었을 때에 무슨 아들 걱정, 남편 걱정, 무슨 다른 것 곗돈 걱정, 무슨 가게 걱정할 겨를이 있어요?
머리에 불붙었을 때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그저 손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화두(話頭)를 들고 들고 또 들고 해서, 흘러가는 세월 무상(無常)한 것을 한탄(恨歎)하지 말고, 흘러가는 그 세월 그 세월 마디마디가 나 찾는 공부가 되도록 그렇게 지혜스럽게 시간을 관리를 한다면, 지혜스럽게 나의 생각을 잘 돌려서 관리를 한다면, 시간 흘러간 것을 두려워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리고 또 축원(祝願)을 하고, 그리고 선망부모의 영가에 천도재(薦度齋)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장성불궁 보살의 친정아버지, 장양석 영가에 사십구재(四十九齋)도 아울러서 봉행(奉行)을 하게 되겄습니다.
우리 모두 여러 법보제자는 돌아가신 장양석 거사가 장성불궁 한 사람에 아버지에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바로 무량겁 윤회(輪廻)하는 동안에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이 우리의 선망부모라고 한다면, 살아계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모든 사람도 우리의 선망부모 아닌 사람이 없는 것이고, 오늘 사십구재(四十九齋)를 맞이한 장양석 영가도 우리와 결단코 멀지 아니한 지극히 가까운 인연(因緣)에 의해서 맺어졌기 때문에 우리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그 사십구재 우리가 같이 참석을 해서 명복(冥福)을 빌게 되는 것입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2분59초~44분2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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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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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6. 7. 18. 19:08

§(478)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동사섭 / 유루복은 삼생의 원수 / 내가 나를 깨닫는이뭣고?’ 불법을 전해 나가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좋은 .

 

오늘 칠석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이고, 그러한 유루복(有漏福) 소원을 성취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문에 의지해서 반드시 대도(大道) 성취하게 것입니다. 물론정법에 의지해서, 나도 옳은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 있다 하는 철저한 신심에 의지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것입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삼생(三生) 원수다전생(前生) 원수요, 금생(今生) 원수요, 내생(來生) 원수. 그놈을 모을 죄를 짓게 되고, 모아 가지고 유지하면서 짓게 되고, 그놈이 몸으로부터 떠나서 내가 망할 나를 괴롭히고 가니 그래서 이렇게 삼생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달아 나가는 길이여. 사람이라도 자꾸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법의 () 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이뭣고?’ 대한 말씀이 있었지마는 간단하게이뭣고?’ 뿐이거든. 이외에 불법을 전해 나가는 이상 빠르고 간단한 좋은 법은 없어.

 

**송담스님(No.478)—1992(임신) 칠석 법회(92.08.05) (용478)

 

(1) 약 18분.

(2) 약 8분.

 

(1)------------------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한데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이여. 춘하추동 사시(四時) 계절이 돌고 돌아서, 봄이 오면 따뜻하고 얼마 가면 여름이 되어 더웁고, 얼마 가면 가을이 되어 서늘하고, 얼마 가면 눈이 내려서 춥다.

그런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여. 원숭이는 육화촌(六華村) 꽃이 피고 열매가 열고, 맛있는 과일들이 여는 항상 그것을 그리워하더라.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슨 빛깔을 보면 육화촌(六華村) 흐드러지게 여는 맛있는 과일들 생각에 어떻게 생각이 간절하던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라. 그러는 가운데 생각 생각이 지내가서 죽음에 이르는 것을 아지 못하더라.

 

() 원숭이에다가 빗대서 원숭이가 여름, 가을에 맛있는 과일을 그리워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줄을 모르는 데다 빗대서 말을 했지마는,

우리 중생들의 삶이 마냥 오욕락(五欲樂)—재산에 대한 욕심 색에 대한 욕심, 명예와 권리에 대한 욕심 오래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욕심 이런 오욕락을 잠시도 잊지 않고어떻게 하면 좀더 잘살까? 어떻게 하면 좀더 권리를 하고 명예를 얻을까? 어떻게 하면 좀더 재산을 모일까? 어떻게 하면 좀더 남부럽지 않게 좋은 집에, 좋은 차에 그렇게 잘살까?’ 자나깨나 생각이거든.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생각이요,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생각이여. 그렇게 해서 좀더 그것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 사이에 해가 가서 주름살이 잡히고 흰머리가 나고 그래서 한을 풀지를 못하고 뜻을 충분히 이루지 못한 잔뜩 () 퍼짓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는데.

그것이 ()에서 그렇게 해서 끝나고 말면 좋은데, 지은 ()으로 인해서 생각을 스스로 돌려서 발심(發心) 하지 못한 탓으로 해서 내생(來生) 그와 같은, 금생(今生) 보다도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날 수도 있고 그래 가지고 무량겁(無量劫)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임신년 칠월 칠석(七夕)날인데, 칠석날은 토속신앙, 민속신앙으로 수천 전부터서 중국으로 우리나라로 이렇게그날은 수명장수(壽命長壽) 빌고, 부귀영화를 빌고, 부모와 가족들의 안녕을 빌고, 소원을 비는 그러한 뜻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칠성단(七星壇) 기도를 하는 그러한 날입니다.

 

우리 용화사는 전강 조실 스님께서 방금 녹음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주안(朱安)—지금은 염전(鹽田) 없어졌고 이렇게 모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서 흔적이 없지마는 전만 해도 여기에 염전이 있었습니다. 호수도 있었고 그런데하필 여기에다가 용화선원을 짓고 살았느냐?’ 인자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이 불보살이나 선지식이나 그런 도인들이 불법(佛法), 정법(正法) 없는 곳에 일부러 가셔서 동사섭(同事攝) 하신 겁니다. 모든 중생들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근기(根機) 맞춰서 방편(方便) 법을 가지고 차츰차츰 정법에 인도하는 그러한 방편으로.

 

염전 가에 조그마한 불당이 하나 있었는데, 불당에 의지해서 이렇게 신도가 처음에는 , , , 스무 해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법보선원을 이렇게 지어서 많은 신남신녀와 형제자매, 여러 법보제자 이렇게 운집을 해서 법회를 열고.

여름 겨울로 결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정법 도량(道場)으로 발전하게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조실 스님의 법력이요, 원력으로 이렇게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 12 초이튿날 열반에 드셨지만, 조실 스님의 낭연독존(朗然獨存) 원각대지(圓覺大智) 법신(法身) 항상 도량에 머물러 계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그러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면 항상 우리 도량에 조실 스님이 계셔서 우리를 돌봐 주시고, 눈여겨보시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몸으로 그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칠석날 여기에 모이신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과연 조실 스님 생존 시에 직접 친견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고, 생존 시에는 친견하지 못한 분들도 많이 계실 압니다.

그러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육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로 생각을 합니다. 녹음 법문이지만 열심히 경건한 마음으로 듣고, 법문 내용에 의지해서 우리가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 우리도 반드시 대도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 복을 빌고, 수명장수를 빌고, 부귀영화를 비는 그리고 가정이 편안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모든 그런 크고 작은 소원을 비는 그런 소박한 신심으로도 여기에 참석하신 분도 여기에 계실 겁니다.

어찌 그것을 나쁘다고 있겠습니까. 그것도 대단히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소박한 신심이 그것이 계기가 되고, 동기가 되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까지 나아갈 있도록 그것이 바로 과거에 모든 도인(道人)들이 놓으신 방편이요, 동사섭(同事攝)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칠석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이고, 그러한 유루복(有漏福) 소원을 성취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문에 의지해서 반드시 대도(大道) 성취하게 것입니다.

물론정법에 의지해서, 나도 옳은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 있다 하는 철저한 신심에 의지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것입니다.

 

복을 빌고 수명을 빌어서 유루복을 뜻대로 성취한들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겠습니까? 유루복(有漏福)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에삼생(三生) 원수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루복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한량없는 죄를 짓게 되고, 그러니 그것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죄를 짓게 하니 원수고, 빈다고 해서 성취가 되기도 어려우려니와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루어진 뒤에 그것을 누리고 유지해 나가는 데에도 본의 아니게 많은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번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번째는 그렇게 이루었던 복이 언젠가는 나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그놈이 떠날 그냥 조용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갈기갈기 마음, , 가정을 뒤찢고 흔들어 놓고 그리고서 떠나게 되니 번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삼생(三生) 원수다전생(前生) 원수요, 금생(今生) 원수요, 내생(來生) 원수. 그놈을 모을 죄를 짓게 되고, 모아 가지고 유지하면서 짓게 되고, 그놈이 몸으로부터 떠나서 내가 망할 나를 괴롭히고 가니 그래서 이렇게 삼생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없이 유루복을 얻는 것이 이것이 인생에 가장 소원이고, 그것이 인생의 목표고, 그래야만 잘사는 것으로 그렇게 대부분 생각을 합니다마는 삼생에 원수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그러면은복을 것도 없고 재산을 모일 것도 없는가?’

인생을 살아는 데에는 필요합니다. 필요하나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허망한 것이요, 자칫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죄를 짓고 악도(惡道) 떨어질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알고서 한다면 열심히 돈을 벌되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고, 재산을 많이 모였으되 그것을 바르게 쓰고 뜻있게 써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되게 사용한다면 원수라고 수가 없을 것이며,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해서 내가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집안 형편이 어렵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거 인연(因緣) 돌아와서 나로부터 떠나는구나그렇게 생각하고참으로 이런 유루복이 허망한 것이라더니 ! 부처님 말씀이 옳구나

그러니 떠나면 떠나는 대로, 형편이 어려워지면 어려운 대로 정말 무상(無常) 깨닫고내가 의지할 것은 이러한 유루복이 아니라 정말 불법(佛法)이요! 불법에 의지해서 내가 참나를 깨달아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 이것이 바로 길이로구나!’

오히려 재산이 망함으로써 참된 발심을 하고 참된 불자(佛子) 된다면 재산이 없어진 것도 그렇게 원통하고 슬플 것이 아닐 것입니다.(처음~1738)

 

 

 

 

(2)------------------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이며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흉중(胸中)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며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가슴 가운데에 무엇을 사랑하며, 다시 무엇을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인생을 살아가는데 빈부귀천과 흥망성쇠가 덧없이 닥쳐오고 지내가고,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데 어리석은 중생은 그것이 전부 탓을, 원인을 남에게 돌려.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 첫째,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한다. 누구 때문에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되었으며, 누구 때문에 사업이 망했으며, 누구 때문에 손해를 봤다

 

밤낮누구 때문에~’하고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려 가지고 미워하고, 누가 잘해 주면! 그이 덕분에 우리가 이번에 사업이 이렇게 잘되었다 그이를 고마워하다가, 쪼끔 잘못하면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망했다 원망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이러는데.

 

사실은 전부가 자기 때문이고, 자기가 지은 때문이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여.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근본이 자기가 과거에 그렇게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고.

가정 내에도 그렇고, 회사 내에도 그렇고, 직장 내에서도 그렇고. 일체사(一切事) 일체물(一切物) 자기가 지은 인연 이외에 만나질 수가 없어. 우연히 만난 같아도 지은 인연으로 만난 것이여.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여. 스스로 사람 앞에 자기 능력 없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여. 자기가 지은 인연으로 이렇게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남을 원망한 마음이 없어지면 전부 원인이 자기 탓이거든.

내가 복을 많이 짓지 못했고, 내가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고, 내가 금생에 능력이 부족했고, 내가 모든 것이 부족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다하고 이렇게 결국은 돌아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사업이 잘되어도 잘된다고 우쭐댈 것도 없고, 뭣이 실패를 해도 실패했다고 그렇게 실망(失望) 하고 낙망(落望) 것도 없어.

잘되거나 못되거나 우리가 ! 정신 차리고 발에 힘을 주고 ! 버티어 자리는이뭣고?’ 밖에는 없어. 그래야 잘되어 가운데에도 더욱 잘되어 것이고, 뭣이 잘못된 가운데에서도 살아날 길이 거기서 트이는 것이다.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공안을 현성(現成)하는, 현성공안(現成公案)하는 밖에는,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여. 불법의 법등(法燈) 계속해서 전해 나가는 길이 밖에는 없는 것이다.

 

불법(佛法) 무엇이냐? 내가 나를 깨달아 나가는 길이여. 사람이라도 자꾸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깨닫는 그것이 바로 불법의 () 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란가사(襴袈裟) 발우, 그것이 육조(六祖) 스님 때까지만 전해 내려오고 육조 스님 이후로는 그것으로 인해서 시비가 일어나니까 그것을 전하지 않게 되었지마는.

그것을 전하고 전하지 않는 육조 스님도 금란가사와 발우대 그것을 5 스님으로부터 은밀히 전해 받아 가지고 결국은 도명(道明) 장군한테 맞아 죽을 봤고, 그리고도 생명이 위험하니까 포수들이 사는 산중에 들어가서 십칠 년인가를 숨어서 지내셨다 그말이여.

 

그러한 형식적인 가사다, 발우대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가지고 참나를 깨닫는 , 거기에 벌써 부처님의 금란가사와 발우대는 전해 받은 거다 그말입니다.

 

이뭣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어렵고 한량이 없지마는 그것을 읽어야만 불법을 아는 것이 아니여.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고?’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이뭣고?’ 대한 말씀이 있었지마는 간단하게이뭣고?’ 뿐이거든. 이외에 불법을 전해 나가는 이상 빠르고 간단한 좋은 법은 없어.(1741~255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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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30 ‘警世二十二首게송 참고.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 ; ()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 하고, 다시 줄여서 ()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시간단위. 지극히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 무한히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반석(盤石)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번씩 쓸어 반석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칠석(七夕) ; 매년 음력 77 칠석날이 되면 칠성의 주존불이자 북극성을 뜻하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七星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에게 공양을 올리고 가족의 수명장수와 복덕구족을 위해 칠석기도를 올리며 법회를 거행한다.

용화사는 최상승법을 믿고 닦아가는 도량으로써 오직 비로자나 법신불 분만을 모셨다. 부처님 속에 치성광여래도 계시고, 칠성여래도 계시고, 일월광보살도 계시고, 부처님 속에 팔만대장경도 속에 들어 계신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四攝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하나.

불보살(佛菩薩)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몸을 나타내되, 그들과 사업·이익을 같이하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 같이하고 화복(禍福) 함께 함으로써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낭연독존(朗然獨存 밝을 /그럴 /홀로 /있을 ) ;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원만(圓滿) 신령스러운 각성(覺性)’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일체의 생명에는 본래부터 깨달음[本覺] 있고 진심(眞心) 있어서()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일심(一心)이라 하고인과(因果) ()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하고인과(因果) ()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법신(法身) : []  dharma - kaya  ‘ 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 51초)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 () 아울러 이르는 .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2)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중봉명본 스님의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29 ‘山居十首게송 참고.

* ; ①주로 잘못된 일이나 부정적 현상이 생겨난 원인이나 까닭. ②무엇을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나무라거나 원망함.

*낙망(落望) ; 희망을 잃음.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현성공안(現成公案) ;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진리 자체이므로 그것을 참선하는 수행자에게 제시된 과제로 .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금란가사(襴袈裟) ; 금실을 넣고 베로 만든 가사.

*금란가사(襴袈裟) 발우 ;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사와 발우를 마하가섭에게 전하고 계속 이어져 중국 육조 혜능 대사까지 전해 내려온 부처님의 법통을 표시하고 전등의 신표로 삼았다.

*육조(六祖)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8. 19. 17:27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 공화(空花) / 믿음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자기 안에 있는 보배.

 

‘무상한 이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2분.

 

(1/3)----------------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오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夜)를 불철(撤)하고 십 년이고 백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다.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그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저 동쪽에 뜬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에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도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이 한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여. 내 소유라고 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냐. 그렇거든 이 몸 밖에 다른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이 세월, 무상한 이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잘 간수하고 한 이 몸뚱이도 ‘내 몸뚱이다, 내 것이다’하고 할 수가 없어.

 

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할 텐데, 내가 내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잘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

이 몸뚱이도 내 몸뚱이라고 할 수가 없는데, 이 몸뚱이 밖에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잘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갈 때는 한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한 이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이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졌고, 또 이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이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잘 먹고 잘 입고, 명예와 권리 이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다 나타나고 또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그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그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업(業)을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그 보는 그 상대 객체(客體)에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듣는 그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그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인식을 하는데, 그 인식하는 그 찰나에 그 객체(客體)로 끌려가느냐? 그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를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를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다.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곳’이라는 게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또 인간이 되기도 하는 그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이 찰나에 일념에다가 그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를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상대하는 바로 그 찰나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볼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그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볼 때에 바로 그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그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그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이 중생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로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할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그 화두가 매(昧)하지 않도록.

 

처음에 잘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줄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안 해.

‘산이 높다, 푸르다, 저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되어. 그래서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해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그 의단이 툭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통 밑구녁이 빠져서 그 통에 담아논 것이 확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해 가지고 다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그 생각’이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그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그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은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그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또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그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해.

 

심지어는 ‘낳다 죽었다’ 그 생사가 싫으니까, 그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그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안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안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안 들어가냐? 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를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그 생사심 때문에 태(胎)에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그 생사(生死)에 안 들어갈라면은 태(胎)에 안 들어가야 하고, 태에 안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그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아!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향 냄새가 난다, 아!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분35초)

 

 

 

 

 

(2/3)----------------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해.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해 가지고 어린애들 갖다 울면은 그 못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몇 번 하면은 나중에는 ‘애비 나온다’ 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그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막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 그러니까, 아! '곶감 있다'고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둔 곶감을 한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딱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문 밖에서 가만히 그 종초지말(從初至末)을 다 들어보니까 아! 호랑이,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뭐 '귀신이 왔다'고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아! '곶감 있다' 그러니까 울음을 딱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그 상황은 알 수가 없으나, ‘도대체 그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더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그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 다시는 그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안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그 호랑이란 놈은 이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그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고는 다시는 그 집에 안 가듯이,

우리가 탁! 믿을 수만 있으면, 탁! 믿어버리기만 하면 참 무서운 그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그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그 점쟁이의 한마디, 그 무당의 한마디를 참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다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그 몇백만 원, 몇십만 원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그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아! 그렇게 잘 믿어.

 

아!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참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그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잘 안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잘 안 믿는 것 같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할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할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줄 그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잘 안 믿는다 그말이여.

 

그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이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될 텐데 아! 그것을 속속들이 안 믿는다.

 

우리가 정말 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가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를 요달(了達)한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딱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이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그 죽음이 있는데 이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매(昧)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또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한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전5식(前五識)과 6식(六識, 意識)과 7식(말나식), 8식(아뢰야식), 이런 식(識)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식(識)으로 해서 업을 짓고, 식(識)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이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그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툭!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게 되는데,

 

그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그 깨닫기 전의 중생의 그 육근, 육경, 육식 그 식(識)이 부처님의 지(智)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智)가 딴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이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지(智)로 변하는 것이여.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를 잘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그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河沙)요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다.

광명이 적적(寂寂)이 비추니, 온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그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이 공아가(共我家)다.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다 나의 집이더라. 바로 그 참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한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이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여.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한 생각이 움직이면은 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이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의 대광명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한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동(動)하면 벌써 그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그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그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그 병통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더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다. 진여(眞如)를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그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안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여. 세간(世間)에 수순(隨順)을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바로 그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그 당하는 일을 ‘좋다’고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고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해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해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해 나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出現)을 하실 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契合)이 되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21분36초~43분11초)

 

 

 

 

 

(3/3)----------------

 

오늘 무진년 칠석날입니다. 칠석(七夕)이라는 게 대관절 무엇이냐?

전설로는 저 하늘나라 은하계에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있는데 그 서로 남녀의 두 별이 그렇게 사랑하건마는 그 은하에 가로 막혀서 가지를 못하다가 칠석날에 까막까치가 다리를 놔 주면은 그 다리를 건너가서 그 오작교(烏鵲橋)인데, 그 오작교를 건너가 가지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그래서 이 칠석날 이후에 까막까치 그 대가리를 보면, 견우 직녀가 그 대가리를 밟고 지내갔기 때문에 대가리 껍데기가 벗어져 있다. 오늘 여러분들은 혹 까막까치를 보거든 정말 그 대가리가 벗어졌는가 유심히 한 번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째서 그러한 전설로 내려오는 칠석날이 그렇게 우리 한국민에 있어서 그렇게 참 하나의 신앙으로써 그렇게 저 신라 때부터서 수천 년을 두고 이렇게 칠석날이 우리의 명절로써 쇠어지고 내려오는가?

‘칠석날은 절에 가면은 그 칠성(七星)님께 공을 들이고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면은 모두 부모형제 아들딸들이 모두 수명장수하고 복덕구족한다’ 이것은 우리의 토속 신앙(仰)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래 이 북극성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숭배하고, 북두칠성은 이 칠성여래(七星如來)로 숭배를 하고, 해와 달은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로 하고,

하늘나라의 저 무수한 별들은 그 치성광여래와 좌보처 일광보살, 우보처 월광보살 하는 이 부처님의 그 여러 ‘삼태육성(三台六星) 이십팔수(二十八宿) 주천열요(周天列曜) 제성군중(諸星君衆)’이라 해서 전부 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대중이다 그말이여.

 

석가모니 부처님께는 십대제자(十大弟子)와 십육 대아라한(大阿羅漢) 그리고 천이백오십 인의 제자가 상수제자(上首弟子)로 항상 계셨지마는 이 치성광여래는 좌보처(左補處) 우보처(右補處) 일광 월광 양대 보살이 계시고, 하늘나라에 가득찬 모든 별들이 치성광여래의 다 거느리시는 대중이시다.

 

어떻게 해서 저 별을 부처님으로 이렇게 승격을 시켜서 숭배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아마도 중국에서 그 도교에서 그렇게 숭배하던 그 종교가 불교에 이렇게 받아들여져 가지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서 이렇게 해서 불교 사찰 안에 칠성단(七星壇)을 모시고 이렇게 해 내려왔는데, 절절이 다 큰 절 작은 절에 가면 칠성님 모시고 산신단도 다 모시고 이래서 하는데,

우리 용화사는 오직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딱 모시고, 각단 탱화라든지 그런 것을 조실 스님께서는 모시지를 안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칠석날에는 계속 이렇게 법회를 거행해 오신 것입니다. 

 

큰 눈으로 보면은 이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 - 저 북극성 또 북두칠성, 견우 직녀 그 은하계에 몇 수억만의 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양과 달 그리고 지상의 산천초목과 이 기와쪽, 돌맹이 하나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이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이 다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요,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바람 부는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흘러가는 소리,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저 밖의 어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지금 옆에 모두 숨쉬는 소리, 일체 모든 소리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설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모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듣는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은 칠석날 칠성님을 숭배하고, 북극성을 치성광여래로 숭배하고, 해를 일광보살로 받들고, 달을 월광보살로 숭배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등(等)의 그것을 미신이라고 배척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용화사에서는 법신불(法身佛) 한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오직 화두 하나로써 팔만대장경을 요달(了達)하고, 삼세제불의 면목(面目)을 철견(徹見)을 하고, 이러한 최상승법을 믿고 닦아가는 도량이기 때문에 법신불 한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얼마나 간결하고 참 얼마나 좋으냐 그말이여.

이 부처님 한 분 속에 치성광여래도 계시고, 칠성여래도 계시고, 일월광보살도 계시고, 이 한 부처님 속에 팔만대장경도 그 속에 다 들어 계시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우리가 이 한 생각 단속함으로써 팔만사천 번뇌를 거기서 다 항복을 받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거기서 다 항복을 받고, 그래 가지고 이 일념무생(一念無生)의 도리를 요달함으로써 삼명육통(三明六通)을 거기서 다 요달한 것이다 그말이여.

 

최상승법, 여러분은 무슨 경(經), 무슨 경을 그렇게 많이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이 열어 봐도 종이와 먹으로 된 경이 아니고, 떠들어 봐도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어. 이 한마디 화두, 이 의단(疑團), 이놈 하나를 단속을 해 나갈 뿐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할 때나,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절에 오셔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할 때나, 후원에서 소임을 맡아서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또 비를 들고 쓸고 걸레로 닦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오직 이 한 생각만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해 나간다면 거기에는 일체의 모든 복덕과 지혜가 거기에서 다 갖추어질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저 무당 만신 그런 데에 가서 칠성단에 공을 들이고 우리 남편 우리 자식들을 어쨌든지 그 몸 건강하고 목숨 길게 해달라고 손을 싹싹 비비고, 참기름에다가 불을 켜 놓고 그렇게 빌고, 그리 쫓아가시지를 않고.

여기 와서 참 맛없는 ‘한 생각 단속해서 화두를 들어라’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 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해 버리면 거기에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과 바로 나의 참 면목을 볼 수가 있다’ 만날 듣고 만날 이 귀에 따깽이가 들도록, 그런데 하필 이 칠석날 또 그 얘기를 하냐?

 

여러분 가운데는 빨리 이 법회가 끝나 가지고, 그거 참 우리 아들 그 만신 집에다 공들여 가지고 그 아들 낳았는데 거기를 안 가면은 그 만신이 노해 가지고 골을 내면은 행여나 우리 아들한테 해로울까, 그래 가지고 빨리 거기를 쫓아가야겠는데, 빨리 법문 그만 좀 했으면 혹 그러실 분이 계실란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러분은 이미 모다 동참(同參)을 하셨고, 부처님께 모두 이 정성스런 폐백을 올렸고, 이렇게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만신 집에 쫓아가지 안 해도 여러분의 칠석날 공은 잘 들여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 염려를 하시지 말고, 앞으로 정말 영원히 그 무서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끊어버리고, 영원히 생사 없는 그 열반(涅槃)의 세계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실라면은 금생에 이 몸뚱이 있을 때 어쨌든지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제조산화일양춘(啼鳥山花一樣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불형의(三佛形儀)가 총부진(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흙으로 뭉쳐서 만든 부처님, 또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 쇠를 녹여서 조성한 부처님, 이 세 가지 종류의 부처님의 그 형체가 총부진(總不眞)이여. 모두가 다 참다운 부처님이 아니여. 왜 그러냐?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러한 부처님의 불상(像)을 갖다가 참다운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눈 속에, 동자(子) 속에 나타나 있는 그것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더라 그말이여.

사람마다 눈동자 속에 보면은 그 사람 모습이 있는데, 그 눈동자 속에 있는 모습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여.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동자 있는 데에서 찾아봐야 그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비추어져 있다 그거거든.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만약 능히 내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내 집안에 있는 보배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보물의 구슬이 있었는데, 그 보주(珠)를 그 아들한테 전해 주어야겠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가지고 그 보물을 전할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의 옷 속에다가 그 보물을 딱 넣어놓고 그래 가지고 꽁꽁 꿰메서 잘 두었다 그말이여.

혹은 또 그 집안에 어디다가 깊이 딱 간직을 해 놨는데 아들한테는 일러줄 수가 없으니까, 자기의 친구한테 그것을 일러주었어. ‘내 자식이 철이 들거든 거기 그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켜 줘라’ 일러주고서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혈혈단신(身)이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랑걸식(流浪乞食)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말이여.

 

자기한테 그런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평생 쓰고 먹고 남을 보배가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참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지 신세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어.

그래 가지고 ‘바로 너의 그 옷 속에 보배가 있다’ 또는 ‘너의 집 어디에 가면은 그 보배가 있다’

그래 가지고 그 보배를 발견을 해 가지고 평생토록 참 유족(裕足)하게 살았다 하는 그 경전에 있는 말씀인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하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 그것을 갖다가 집안의 보배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신 거여.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리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아는 바로 그놈.

 

성내고 울고불고하는 그러한 작용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말이여. 탐심도 낼 줄도 알고, 고약한 그 마음을 내는데, 그 마음 낼 줄 아는 놈, 그러한 작용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그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그 당처(當處), 그것은 우리는 볼 수가 없어. 중생심으로는 그놈은 볼 수가 없고, 중생견으로는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육안으로는 보일 수도 없어.

 

그런데 그놈으로부터서 온갖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거기서 발동을 한다 그말이여.

그 발동하는 그놈을, 발동하는 그 근본, 그 당처를 진실로 얻어버리면, 그놈을 깨달라 버리면, 제조산화(啼鳥山花)가 일양춘(一樣春)이다. 저 우는 새와 그 산에 울긋불긋 피는 꽃이 한결같은 봄이더라.

 

'그 우는 새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요, 그 산에 울긋불긋 피어있는 꽃이 바로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이렇게 해석을 붙이면 이 경전은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바로 봄이 돌아오니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한다 이거거든. 거기에다기 무슨 변명을 붙이고, 변명을 붙이면은 그것은 깨달음의 소식이 아니라 중생의 망견(妄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동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니 그리고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렸으니 여러분은 유루(有漏), 무루(無漏)의 복(福)을 영생토록 쓰고 남을 복록을 받게 되셨으며,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여러분은 생사해탈을 해서, 영원히 이 고해(苦海)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해탈을 해서 생사 없는 열반의 세계에서 삼세제불과 더불어 무생곡(無生曲)을 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43분12초~64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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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쪽.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 인식 실천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매(昧)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소승(小乘) : [범]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수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와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의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을 깨치면 아라한(阿羅漢)이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치면 연각(綠覺)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두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 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대승(大乘)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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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고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고 상태 고대로.

*그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 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식(識)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제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의 하나.
①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즉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意)라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진(眞)과 망(妄)이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지(智)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것.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혜(慧).

*‘식(識)이 지(智)로 변하는 것이지, 식(識)이 없어지고 지(智)가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식(識)이 지(智)로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의 뜻은 ‘소의(依, basis) 즉 발동근거를 바꾼다(轉)’로 성도(聖道) 즉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智)로 변형시키는 것, 즉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전(轉)은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득(得)은 획득(獲得)과 성취(成就)를 말한다. 즉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의 마음인 ‘8식’(八識-전오식,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뢰야식)을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는 다음과 같다.
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에 오염된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제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의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에 해당하는 오염된 제7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제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법(法)의 실상을 묘하게 잘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눈·귀·코·혀·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전5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의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면목(面目 낯 면, 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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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하등(等)주로 ‘하등  부정어 함께 쓰여, ‘아무런  나타내는 .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게송) ‘삼불형의총부진~’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용광로( 녹일 용/쇳돌 광/화로 로) ; 높은 온도 광석 녹여 구리 따위 쇠붙이를 뽑아내는 가마.

*혈혈단신( 외로울 혈/홑 단/몸 신) ;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

*유랑걸식(流浪乞食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빌 걸/밥 식)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8. 16. 13:36

 

 

§(308)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일장춘몽(一場春夢) / 부처님의 감응(感應) / (게송)대지산하시아가~ / 법을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부처님의 자비가 온 법계에 두루 다 미치고, 비추고 있지마는 내 자신이 청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에 부처님의 감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가없는 우주 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8)—86년 칠석법회(86.08.12) (용308)

 

(1) 약 16분.

(2) 약 18분.

 

(1)------------------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한데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이라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이라, 인간 생애가 꿈과 같고 또한 뜬구름과 같다.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여. 살아가는 계책(策), 활계(活計)가 도무지 없고, 육친(六親)이 다 끊어져 버렸어.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이라,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쌍의 푸르고 흰 눈 뿐이여.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라. 한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웃고 볼 뿐이더라.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부모를 의탁해서 이 몸을 받아 나고, 부모의 그늘에서 음덕(德)으로 자라가지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이렇게 해서 돈을 벌고, 세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고,

모든 과거에 지은 인연으로 해서 일촌, 이촌, 삼촌, 사촌, 오촌 이렇게 해서 원근(近) 친척과 가문과 이웃이 모다 얼크러져 가지고 이렇게 사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 생애(生涯)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꿈과 같은 것이고, 뜬구름과 같아.

좋을 때는 형제간이다 친구간이다 모다 그렇지만 내가 높은 벼슬자리에서도 떨어지고, 재산도 없어지고, 병들어 비참하게 되면 그전에 그렇게 드나들고 형님 동생하던 처지(地)도 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다 인연(因緣)이 멀어져 버린 것이여.

 

그리고 부귀(富貴)와 영화(榮華), 공명(功名)이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 없이 다 흩어지게 되고, 일생 동안 또는 영원히 그렇게 잘살으란 법도 없어.

 

그러니 그것이 모두 지내놓고 보면 한바탕 춘몽(春夢)에 지내지 못하고,

저 여름 하늘에 흰구름 뭉텅이와 같아서 그 구름이 뭉개 뭉개 피어오를 때 보면은 호랑이 같기도 하고, 사자 같은 놈도 있고, 코끼리 같은 놈도 있고 또 누각 같은 것도 있고, 사람같이 생긴 것도 있고, 별별 기기묘묘(妙)한 모양이 있지마는,

잠시 지나면은 그 구름이 이리저리 변형이 되어 가지고 그래가지고 흩어져서 간 곳이 없어져 버린다 그말이여.

 

인생의 부귀영화라고 하는 것이, 빈부귀천 형형색색(色)의 인생살이가 그러한 구름덩어리와 같다.

꿈속에 아무리 천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재상이 되는 꿈을 꾸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그런 꿈을 꿨다 해도 잠을 깨 버리면 자취가 없어져 버려.

그러니 인생살이를 꿈에다가 비유하고 또 구름에다가 비유한 것은 우리는 너무나 타당(妥當) 있는 그러한 비유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계도무절육진(活計都無絶六親)이여.

그러한 인생살이가 허망한 줄 알고 의지하고 믿을 것이 못 된 줄 알면, 그러한 세속 그 뜬구름과 같은 인연을 한칼로 다 비어버리고 출가해서 도를 닦으니 모든 직업도 다 놔 버리고, 인생의 빈부귀천도 다 내버리고,

오직 일대사(一大事) 문제만을 위해서 남은 목숨을 거기다 바치니 활계(活計)가 무엇이여?

 

생활해 나가는 대책을 무엇으로 세울 것이냐 그말이여. 아무 계책(計策)이 없어.

그리고 세속의 육친, 일가친척 부모형제 그런 육친의 인연이 다 끊어져 버렸어.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과 빈부귀천과 부귀영화 모든 것을 갖다가, 그런 것을 실다운 것으로 믿고 그런 것을 가지고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러한 속에서 얽매어 가지고 끌려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을,

부귀와 영화에 얽매어 가지고 모다 그러한 것들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제 잘난 맛으로 살고 있는 그러한 인간들을 비긋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청백안(靑白眼)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병인년 칠월 칠석(七夕)날입니다.

저 옛날부터서 칠석날에는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모다 그러한 영가들을 위해서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해(苦海)를 벗어나서 업장(業障)을 소멸해가지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기를 축원을 하고,

 

또 살아 있는 부모, 형제, 자손들의 수명장수하고, 복덕이 구족하고, 자손이 창성하도록 그리고 나라와 민족, 국가 민족이 모두가 다 우순풍조(調)해서 모든 사람이 모다 화합해서 잘살기를 빌고 하는,

이러한 부처님께 칠성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축원을 하는 그러한 성스러운 날로 여겨왔던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칠석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대소 사찰에서 많은 신남신녀들이 구름처럼 모여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고 축원을 하는 그러한 의식과 풍속이 지금도 변함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용화선원의 법보전(法寶殿)에도 많은 신남신녀들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마는, 선망부모, 현존 사친을 위해서 이 칠석날을 기해서 그러한 소박한 신앙심으로 이렇게 오신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참 좋은 풍속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새 과학 문명(明)이 발달하고 모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을 해서 ‘뭐 그까짓 것 미신이다. 그까짓 것 다 기복불교(祈福佛敎)고, 다 미신에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여겨버리고 그러한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냥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천여 년을 두고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소박한 신앙을 고대로 전통을 해오고 그러면서도 최상승 불법을 믿는 신심은 오히려 더 돈독해지고,

이런 것은 어떠한 면에서 생각해 보면 대단히 참 아름다운 한 신앙의 면이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속담에도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부처님께 발원하고, 참회하고, 기도하고, 축원하고, 이러한 정성스런 신심은, 그러한 공덕은 결단코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내가 그만한 간절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을 들이고 축원을 하면 반드시 거기에 감응(感應)이 있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에다가 맑은 물을 떠 놓고 그 그릇을 고요하게 유지를 하면 반드시 그 그릇에는 하늘에 떠있는 달이 거기에 비추는 것입니다.

하늘에 뜬 달이야, 물그릇에 떠 놓거나 말거나 언제나 모든 곳에 한결같이 비추고 있는 것이지만, 물이 없는 데에는 그 하늘에 뜬 달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한 것은 아니되, 물을 떠 놨을 때 비로소 그 하늘의 달이 자기 눈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법계에 두루 다 미치고, 비추고 있지마는 내 자신이 정성스러운 마음, 청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에 부처님의 감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가 아무리 밝게 비추고 있어도 자기 스스로 캄캄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앉았다든지 또는 껌껌한 지하실이나 굴속에 들어가서 앉았다면 아무리 저 허공에 태양이 그렇게 밝게 비추고 있은들 자기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커튼을 걷고, 문을 활짝 열어제낄 때 방안에 광명이 비출 것이며, 지하실에서 용감히 뛰쳐나와서 태양이 비추고 있는 넓은 광장으로 나올 때에 온통 그 햇빛을 다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청정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쌀과 꽃과 과일과 여러 가지 폐백(幣帛)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와서 올리고 경건하게 향을 사르고, 절하고 또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광명을 그리고 모든 공덕을 우리는 흠뻑 가슴에 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6분5초)

 

 

 

 

 

(2)------------------

 

대지산하시아가(大地山河是我家)인대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나무~아미타불~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대지산하(大地山河)가 이 나의 집이여.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다시 어느 곳에서 내 고향집을 찾을 것인가.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눈앞에 나타난 그 산을 보다가 자기의 길을 잃어버리는 그런 길 잃은 손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종일토록 가고 또 가도 집에는 이르지를 못하는구나.

 

대지산하(大地山河),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대지산하가 온통 이것이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고향인데, 그것이 자기 고향인줄을 모르고 자기 고향을 평생토록 찾으러 다녀.

왜 자기 고향에 발을 디디고 자기 고향에서 살면서 왜 고향을 찾고 있느냐? 눈에 보이는 산을, 기웃기웃 산을 보다가 자기의 갈 곳을 잊어버려, 길을 잊어버린다 그말이여.

 

현실에 자기 발 디디고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자기의 고향이요, 자기가 설 곳이요, 자기의 바로 살아 갈 곳인데,

그 자리를 놔두고 저 눈에 보이는 저 먼산을 갖다가 행여나 ‘저기에 내 고향이 있는가? 저 산너머에 내 고향이 있는가?’하고 멀리 찾다가 자기의 진짜 고향을 잊어버리더라 그말이여.

 

우리 도 닦는 사람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기 위해서 온갖 고행을 극복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데,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이러한 현실 경계를 내놓고 따로 도(道)의 경지를 찾고, 따로 견성할 것을 구하고, 따로 성불할 어떠한 특수한 경지를 구하는 한은 참다운 견성은 이르러 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닥치고 있는 그 일이 자기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좋건 나쁘건, 기쁘건 슬프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여. 그놈을 여의고 찾지도 말 것이며, 그놈에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 것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다그쳐가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의 땅[如來地]에 이르는 소식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법회 때마다 “불법(佛法)을 먼 데에서 구하지 말아라. 불법은 너의 마음속에 있고 지금 이 자리, 이때를 버리고 찾지 말아라”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방편(方便)이 아니라 그 말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너무 적절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바르게 도를 닦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이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는데 그것이 지금 목판으로 새겨져서 해인사 장경각에 봉안이 되어있는데,

그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법문은 그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문 가운데에 천만분의 일, 백만분의 일도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법문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시기 전 또는 부처님이 80세 동안 이 세상에 머무르시다가 열반하신 뒤,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무량겁으로부터 영원한 미래가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부처님의 살아있는 법문이 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가없는 우주 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삼라만상 그런 현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뚱이, 언필칭(言必稱) 우리는 중생(衆生)이라 그러는데, 남녀노소 우리 자신들도 물론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일체가 다 전부 다 부처님의 화현신(化現身)이요, 바로 우리 몸뚱이 속에 삼세제불이 다 머물러 계셔서 지금도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문을 듣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냐? 법문을 설하면서 동시에 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설하는 것과 법문을 듣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승(山僧)도 역시 설(說)하고 듣고 있고, 여러분도 들으면서 동시에 또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승이 설한 것이 아니요, 여러 사부대중이 설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이 설하시고, 부처님이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묘하다고 아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시에 설하고 듣고 있는 이것을 어찌 중생의 생각으로 이것을 구할 수 있으며, 어찌 범부(凡夫)의 알음알이로 이것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이 돌아가신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친척의 영가(靈駕)를 명복을 빌고, 천도(薦度)해 드리고 또 살아계신 부모 형제자매와 자녀들의 수명장수를 빌고, 복덕구족을 빌고,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 자리에 모다 운집을 하시고 아울러서 칠석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이 대총상법문은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설할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바른 법문이 아니요. 들은 바가 있다면, 들을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법(法)을 설하고 이렇게 법을 들을 때에, 그 법은 우주 법계에 가득차신 법신불(法身佛)과 우주 법계에 가득찬 일체 중생이 동시에 설하고 동시에 듣게 되므로 온 세계는 불보살(佛菩薩)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불보살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온 세계에 퍼졌다 해도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꽃대로 붉게 피어서 아름답고, 풀은 풀대로 파랗게 너울거리고,

김 서방, 이 서방은 각각 아들딸 낳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그렇게 사는 것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관공리는 관공리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승려는 승려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분상(分上)에 맞추어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책무를 완수할 때에 전부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한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 흙과 종이와 철근과 기왓장,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합해져서 하나의 훌륭한 집을 짓듯이,

우리 김가, 이가, 박가, 고가, 성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지만 각각 다른대로 저 나름대로 생애가 있고, 저 나름대로 취미가 있고, 저 나름대로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마는,

 

바른 불법,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다고 하는 점에서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닦는 것을 우리 모두의 본업(本業)으로 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때,

절에 오면은 훌륭한 신도요 법보제자요, 가정에 돌아가면 훌륭한 아내요, 어머니요, 아들이요, 딸이요, 아버지요, 형이요, 동생이요, 자식이 될 것입니다.(16분13초~33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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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애여몽약부운~’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뜬구름 ; ①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②덧없는 세상일 비유적으로 이르는 .

*육친(六親)부모(), 형제(), 처자() 통틀어 이르는 .

*음덕( 덕택 음/ 덕 덕) ; ①조상의 덕. ②부모나 다른 사람이 돌보아 주는 보호나 혜택.

*생애(生涯 날 생/ 끝 애) ; 살아 있는 한평생의 기간.

*처지(地) ; ①서로 사귀어 지내는 관계. ②지위나 신분.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부귀(富貴 재물이 넉넉할 부/귀할 귀) ;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

*영화(榮華 영화·영달 영/빛날 화) ;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고 빛남.

*공명(功名 공로 공/이름 명) ; 공을 세워 이름이 세상에 떨쳐짐. 또는 그 이름.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타당(妥當 평온할 타/마땅할 당) ; 일의 이치로 보아 옳음.

*한칼 ; 한 번 휘둘러서 베는 칼질.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활계(活計) ; 살아갈 계책(計策). 또는 살릴 계책.

*계책(計策 헤아릴·꾀할 계/꾀 책)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꾀나 방법을 생각해 냄. 또는 그 꾀나 방법.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청백안(靑白眼) ; 지혜의 눈.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우순풍조(調)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 고르게  농사짓기에 알맞게 기후 순조롭고 좋다는 으로 르는 이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운집(雲集 구름 운, 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과학 문명(明)과학 기술 발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명.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폐백(幣帛 예물 폐, 비단 백) ; ①일반적인 모든 예물(禮物). ②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③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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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대지산하시아가~’[소요당집(逍遙堂集)] 게송 참고.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것.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은 티끌. 찰(刹)은 산스크리트어 kṣetra의 음사. 토(土), 국(國), 처(處)라고 번역. 국토. 세계. 땅. 장소. 영역.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다.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화현신(化現身)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此性縱汝迷時亦不失, 悟時亦不得. 天眞自性, 本無迷悟. 盡十方虛空界, 元來是我一心體. 縱汝動用造作, 豈離虛空. 虛空本來無大無小, 無漏無爲, 無迷無悟. 了了見, 無一物, 亦無人, 亦無佛, 絶纖毫的量, 是無依倚無粘綴一道淸流, 是自性無生法忍. 何有擬議.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珍重.
이 본성은 비록 네가 미혹해 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또 깨달았을 때라도 역시 얻는 것이 아니다. 천진스런 이 자성(自性)은 본래 미혹함도 깨달음도 없다.
온 시방의 허공계가 원래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다. 비록 그대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할지라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허공은 본래 크지도 않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도 없고 유위도 없으며, 미혹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아 한 물건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다.
거기에는 털끝만큼도 계량(計量)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의지하여 기댈만한 것도 없고 달라붙을 것도 없는 한 줄기의 맑은 흐름인 것이며, 이것이 곧 자성(自性)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인 것이다. 어찌 무슨 의론의 여지가 있겠는가?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자신을 소중히 하여라.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7. 22. 10:06

§(210) (게송)적수성빙신유지~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 /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최상승법으로 수행해 나가야 / 비우는 것이 올바른 공부.

‘정각(正覺)이다, 대각(大覺)이다, 본각(本覺)이다’—‘깨닫는다’고 하는 것을 이 선문(禪門)에서는 ‘견성(見性)’이라 그러거든. ‘성품(性品)을 본다’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어디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탁! 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으면서, 정말 불법의 근본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해서 최상승법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 높은 벼슬을 하고, 재수대통 하고,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한 일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저절로 이루어지냐 하면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업(業)이 소멸(消滅)이 되기 때문에—업이 소멸이 되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한 생각 원하면 인간 세상에 제일 큰 원이 천자(天子)가 되는 원이라면 천자도 가능하거든, 그밖에 조그마한 원이야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서 속에다 따 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불법을 올바르게 닦아가는 것이다.


**송담스님(No.210)—83년 칠석법회(83.08.15) (용210)

 

(1) 약 20분.

(2) 약 7분.

 

(1)------------------


적수성빙신유지(滴水成氷信有之)로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여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적수성빙신유지(滴水成氷信有之)나, 되게 강추위 할 때는 물 한 방울 톡 떨어지면 그 물 한 방울이 눈 한번 깜빡 할 사이에 얼음이 딱 되어버립니다. 물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들어 앵깁니다.
수도꼭지에서 계속해서 물이 똑똑 떨어져도 떨어진 쪽쪽 땅바닥에서는 계속 얼음산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말로써 그 진리를 표현할 수가 없고, 귀로써 들어서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설할 것도 없이 이미 사람마다 다 진묵겁(塵墨劫) 전에 완전무결하게 성불(成佛)해 마쳐져 갖고 있는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지금 인류가 45억을 추산하고 있습니다마는, 45억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소나 돼지나 말이나 벌레나 모기나, 꿈적꿈적한 것은 전부가 다 이미 다 있어. 원만하게 다 성불을 해 가지고 마쳐 가지고 있는 것이고,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나무나 산이나 바윗돌이나, 길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모래알,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성불해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몸뚱이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대중 가운데에는, ‘그렇다면 왜 나도 부처라면 왜 내가 지금 범부(凡夫)로써 깜깜한 상태에서 이렇게 중생으로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가?’ 모두가 다 의심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마는,
틀림없이 부처님은 부처님이나, 부처님이 잠시 졸고 있다가—졸고 있는 상태에서는 분명히 졸고 있다고 해서 죽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이 꼬박 들어서 잠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다고 해서 죽은 것도 아니요,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닌 것입니다. 분명히 살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지만,
잠깐 잠이 들어가지고 꿈을 꾸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꿈만 깨 버리면 생시(生時)가 된 것처럼,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아서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參禪)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각(正覺)이다, 대각(大覺)이다, 본각(本覺)이다’ ‘깨달을 각(覺)’자를—‘깨닫는다’고 하는 것을 이 선문(禪門)에서는 ‘견성(見性)’이라 그러거든. ‘성품(性品)을 본다’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어디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탁! 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녹양방초(綠楊芳草)가 색의의(色依依)여. 녹양(綠楊), 푸른 버드나무 취영청 늘어지고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달은 가을달대로 운치가 있고, 봄의 꽃은 꽃대로 아름다워서, 가을꽃도 깨달음의 경지요, 봄꽃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한없는 깊은 뜻을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입니다.(秋月春花無限意)
그러기 때문에 깨달은 눈으로 보면 가을꽃도 설법(說法)이요, 가을달도 부처님의 얼굴이요, 봄에 핀 꽃도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고새가 우는 소리를 한가히 듣는 것도 또한 방해롭지 않다(不妨閑聽鷓鴣啼)’한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낱낱이 그것들이 다 ‘참나’로 돌아오는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고,

파란 것이나 붉은 것, 풀에서는 풀 냄새, 아카시아꽃에서는 아카시아꽃 냄새, 장미꽃에서는 장미꽃 냄새, 그 꽃마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가 다 다르지만,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낱낱이 다 나로 하여금 지혜의 눈을 뜨게 해주는 좋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여러분은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집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고, 우리 남편이 승진하기를 바라고, 우리 아들과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혼기를 맞이한 우리 딸이 좋은 신랑감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금 간절하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러한 소원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 조그마한 너무너무 작은 일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세상이, 사람이 사람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그것도 또한 중대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한 원(願)을 성취하려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콩을 많이 수확한 사람이 바늘에다 그 콩을 꿰어가지고 등잔불에 구워 먹고,
계란을 많이 구해가지고 계란 알맹이는 쏟아버리고 그 계란 속에다가 쌀 한 숟갈을 씻어서 넣고, 그래가지고 그 계란을 젖은 종이로 싸가지고 부엌 불속에다 넣어서 계란밥을 해 먹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여러분은 어릴 적을 추억을 하실 것입니다마는,

농사지어 가지고 바늘에다 콩을 구워 먹고, 양계(養鷄)를 해 가지고 알맹이는 쏟아버리고 거기다 계란밥을 해 먹기 위해서, 그래 양계를 하고 콩 농사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불법을 믿으면서, 정말 불법의 근본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해서 최상승법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 높은 벼슬을 하고, 재수대통 하고,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한 일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저절로 이루어지냐 하면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업(業)이 소멸(消滅)이 되기 때문에—업이 소멸이 되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한 생각 원하면 인간 세상에 제일 큰 원이 천자(天子)가 되는 원이라면 천자도 가능하거든, 그밖에 조그마한 원이야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칠성불공을 하고 산신기도를 하고, 좋다는 데는 강화 보문으로, 양양 낙산사로, 남해 보리암으로 발이 닳아지도록 쫓아다녀도 여간 소원이 잘 성취가 안되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과거에 지은 업이 꽉 쩔어 가지고 그놈이 장애가 되어가지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여.

그 원을 성취하려면 그러한 성지(聖地)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나,

그보다도 더 빠르고 더 요긴한 방법은 강화까지 안 가고 자기 있는 가정에서 일하면서, 밥 지으면서, 빨래하면서, 차를 타면서, 절에 오면서, 절에 가면서,
법회날은 절에 오면서, 절에 와서 또 법문을 다 듣고 가면서,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돌이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도 ‘이뭣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속상하면서 ‘이뭣고?’
슬퍼하면서 ‘이뭣고?’
기뻐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법신불(法身佛)이 계신 법당(法堂)이요, 강화 보문이요, 양양 낙산사요, 오대산 적멸궁이요, 남해 보리암이다 이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만약에 오대산 적멸궁에만 계시고, 양양 낙산사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남해 보리암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불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성지를 마련한 것은 거기에 정성스럽게 감으로써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신심을 내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절이 필요한 것이지,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일어날 때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무슨 파란 나무나 빨간 꽃 한 송이를 볼 때 거기에서 바로 법신불을 친견할 줄을 알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화사는 여러분에게 그러한 부처님을 깨닫게 하는 길을 가르쳐 드리는 도량(道場)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러한 최상승법을 듣고 한 생각도 옮기지 아니하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불법을 깨닫고 부처님을 친견할 길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될 것을 나는 자신 있게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대도(大道)도 틀림없이 성취하시고,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소원도 반드시 성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보증을 하는 바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서 속에다 따 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불법을 올바르게 닦아가는 것이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속으로 그것을 따 담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소리를 속에다 따 담고 해가지고, 속에는 일생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한 것들이—선(善)·악(惡)·무기(無記),
좋은 일, 악한 일, 좋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는 그러한 무기(無記)의 일들, 수수(數數) 백억만 가지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차곡차곡 쟁여져 갖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은혜스러운 일과 원망(怨望)한 웬수스러운 일들이 비빔밥이 되어가지고 얽히고설켜서,
그것들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 거기서 다 싹이 나가지고 또다시 새로운 은혜를 맺고, 또다시 새로운 웬수를 맺으면서 무량겁을 두고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렵고 지겹기 한이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일들이 되풀이 되어서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할 것을 생각해보면 몸서리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난 이 기회를 결단코 놓치지 말고 철저하게 최상승법을 믿어서 열심히 닦아간다면 반드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39분45초~59분22초)

 

 

 



(2)------------------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말씀드리는 바를 명심을 하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내생에 한(恨)이 만단이나 될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음력 7월 보름날 백종날이 돌아옵니다. 그날은 백일기도 회향날이며, 여름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그날을 기해서 지옥문이 열려가지고 우리의 다생(多生)에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우리와 인연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이 하루 동안 특별휴가를 맡아가지고 오시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우리 법보전에서도 선망부모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이 거행이 됩니다.

그날은 여러분께서도 잘아신 바와 같이 목련(目連) 존자가 그 죄를 짓고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날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어머니를 천도했느냐 하면,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들 스님네께 만 가지 온갖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과일 공양(供養)을 올려서,
그 석 달 동안 청정한 마음으로 도를 닦으신 스님네께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청제부인—목련 존자의 어머니를 천상(天上)에 태어나시게 한 그러한 날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또 가족이라든지 친척이라든지 이웃 친구들 모다 권고해서 오셔서 동참을 하시고,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만년위패에 모시지 아니한 분도 임시 위패라도 모셔서 선망부모를 천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날 모다 지옥문이 열려서 오셨다가 내 아들, 내 며느리, 내 딸이 안 왔나하고, 두루 찾아보아도 다른 사람은 다 왔는데 자기의 아들딸들이 안 왔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서운하게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영가의 세계나, 이 살아 있는 우리 인간 세계나 그 정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 그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번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영가고 뭐 그런 게 소용 있느냐?’
이러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영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이 세계나 쪼끔도 다름이 없고 오히려 더 정확하고 더 영특하고 그런 것입니다.

오늘은 칠석날에 한 생각 일으키고, 말 한마디 하는 그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화를 말씀을 드리고,
그러기 때문에 그 한 생각, 한마디를 조심할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해 나가면 생사해탈(生死解脫)도 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법문을 해드렸습니다.

이어서 칠석의 법요식이 진행이 되겠습니다.(59분23초~65분33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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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수성빙신유지~’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성불(成佛 이룰 성, 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생시(生時) ; ①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②태어난 시간. ③살아 있는 동안.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설법(說法) ; 불교의 이치나 가르침[法]을 풀어 밝힘[說].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양계(養鷄) ; 닭을 먹여 기름. 또는 그 닭.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천자(天子) ;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제국의 군주를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이라고 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수수(數數) ; 아주 여러.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2)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목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5. 7. 20. 13:54

 

 

§(210) (게송)가련억만인천중~ / 칠성(七星) 신앙 / 인간의 8가지 고통(八苦) / 부처님의 ‘큰 나무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한 생각’ 잘 단속해야.

불교는 너무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교법(敎法)이 넓고 크고 깊어서, 마치 바다와 같아서 동서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는 어떠한 종류의 강물이라도 일단 바다에 들어오고 보면 전부 짠맛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떠한 종교도 불교가 들어가면 다 흡수해 버려. 불교 내에는 어떠한 종교의 교리도 원래 그 안에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불교는 어떠한 종교라도 다 흡수해서 녹여서 ‘한맛’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과거 한량없는 생(生) 동안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이렇게 모다 한자리에 모이셨습니다마는, 앞으로 다시는 퇴전(退轉)하지 아니하고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려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뼈아프게 단속해 나가서 다시는 일어나는 한 생각을 섣불리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눈으로 한 가지 일을 보거나, 귀로 어떤 한 소리를 듣거나,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하고,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물샐틈없이 단속을 해가지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0)—83년 칠석법회(83.08.15) (용210)

 

(1) 약 21분.

(2) 약 19분.


(1)------------------

가련억만인천중(可憐億萬人天衆)이여  부지황엽경비전(不知黃葉竟非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사인천지본심(若使人天知本心)하면  하용애애측이청(何用獃獃側耳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가련억만인천중(可憐億萬人天衆)이여  부지황엽경비전(不知黃葉竟非錢)이로구나.
가련(可憐)하다, 인천(人天)의 억만 대중이여. 하늘나라나 이 인간 세상에 백만억 대중이여, 가련하구나! 노란 이파리가 마침내 돈이 아닌 줄을 아지 못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탄생하셔 가지고, 출가하셔서 설산에서 고행을 하시다가 대도를 깨치시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49년간을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는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사천 법문이 어린아이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노란 단풍잎을 어린아이에게 쥐어주면서 “이것이 돈이다. 여기 있다 돈, 여기 돈 많이 있다” 이러면서 어린아이에게 준 것이다 그말이여.

약사인천(若使人天)으로 지본심(知本心)하면, 인천(人天), 하늘나라나 인간 세상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의 마음, 근본 본성(本性)을 깨닫게 해 버린다면,
하용애애측이청(何用獃獃側耳聽)이냐. 어찌 바보같이 귀를 기울이고 듣게 할 필요가 있느냐.
자기 본성만 탁! 깨달아 버린다면 구태여 어린아이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준 노란 이파리 같은 것에 왜 속을까보냐 그말이여.


오늘은 계해년 칠월 칠석날입니다. 칠석(七夕)이라 하는 것은 원래 칠성(七星)을 숭배하는 토속 신앙인데,

원래 도교(道敎)에서 칠성을 섬기고 또 칠성님께 치성을 드리면 수명을 연장하고, 인간의 오복을 모다 성취하고 그런다 해서, 삼국지에도 보면 제갈공명이 그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칠성단(七星壇)을 모아 놓고 기도를 하다가 잘못해 가지고 기도를 성취 못하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마는,

그러한 토속 신앙이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고 우리나라로 오면서 도교에서 들어온 그런 토속 신앙을 불교에서 흡수를 해서 사찰 내에서도 큰 절, 작은 절에 가면 모두 칠성각, 산신각이 다 있고 그럽니다마는,

불교는 너무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교법(敎法)이 넓고 크고 깊어서, 마치 바다와 같아서 동서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는 어떠한 종류의 강물이라도 일단 바다에 들어오고 보면 전부 짠맛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떠한 종교도 불교가 들어가면 다 흡수해 버려.

불교 내에는 어떠한 종교의 교리도 원래 그 안에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불교는 어떠한 종교라도 다 흡수해서 녹여서 ‘한맛’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종교가 좁고, 교리가 옅고, 그러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싸우고 비방을 하고 피를 흘리고 그러는데,
불교는 너무 높고 넓고 깊고 커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어떠한 종교를 만나더라도 싸울 것이 없어요. 다 받아들여 가지고 그냥 다 소화를 시켜 버려.
그래 이 칠성을 믿는 사상도 그렇게 해서 흡수를 하게 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원래 원시 종교는 태양이라든지, 달이라든지, 별이라든지, 바다라든지, 이런 우주 천체와 대자연을 두려워하고, 두려운 나머지 공경하고 이래가지고 하나의 원시 종교의 발상이 자연을 숭배하는 데부터서 시작한 것입니다.

저 북두칠성(北斗七星), 북극성(北極星)은 그래서 다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다. 칠원성군(七元星君)이다’ 모다 이렇게 해서 해는 일광보살(日光菩薩)이라 그러고, 달은 월광보살(月光菩薩)이라 해서,
불보살의 명호(名號)를 붙여가지고 그래서 숭배하게 되고 오늘날까지도 칠성을 숭배하는 사상은 거의 모든 불자들 속에 깊이 뿌리가 박혀서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산신단(山神壇)이나 칠성단(七星壇)은 비불교적이다’ 해 가지고 절에서 그러한 신앙은 없애고 철저하게 이 정법만을 믿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어가고 있습니다마는,
넓은 눈으로 보면 해도, 달도, 별도, 우주세계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표현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신불을 대일여래(大日如來)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 毘盧遮那佛)을 대일여래라고도 부릅니다마는 대일여래가 바로 태양이다.
태양과 같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 태양으로 인해서 모든 동물과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삼라만상이 태양의 힘을 가자하지 않고서는 생성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과거에 도인들이 그러한 칠성을 믿는 신앙을 불교에 받아들였냐 하면 바로 그러한 이치로 해서 칠성 신앙을 받아들여가지고 완전히 불교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칠성을 믿는 신앙을 통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차츰차츰 정법을 믿는 그러한 불자로 승화시켜온 것입니다.

민간에서는 오늘 칠석날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은하수(銀河水)를 통해서 1년에 오늘 저녁 한번 만난다고 그러한 설화가 있습니다.
1년 동안 서로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이 떨어져서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하루 까막까치가 놓아준 오작교(烏鵲橋)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고 하는 설화는 대단히 재미있는 설화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 세상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는 고통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과는 자주 만나게 되는 고통이 있고, 구하고 원하는 것은 얻어지지 않는 그래서 그러한 고통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생로병사—나아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런 고통이 있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러한 작용이 지나치게 성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것이 다시 자기에게 괴로움을 갖다 주는 오음성고(五陰盛苦),

이리해서 인간에게는 ‘여덟 가지의 고통[八苦]’이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여덟 가지의 고통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고 밤낮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가,
단 한번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아준 오작교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어떠한 숙세의 인연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자기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또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 자신들은 그동안 이루지 못한 뜻을 오늘 법문을 듣고 마음속에 괴로움이 사라지고,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구했던 소원을 이루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러한 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를 데리고 무능적국(無能敵國)에 들어가셔서 항하(恒河) 강변을 지나고 계실 때에, 마치 한 수행승이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법문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수행승에게 무슨 법문을 해주셨냐 하면은 마치 그때에 갠지스 강 가운데에 큰 나무 기둥 하나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기둥을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면서,
“저 기둥을 봐라! 저 나무 기둥이 이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또 강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며, 또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도 들어가서 뱅뱅 맴돌지 아니 하면, 결국은 저 나무 기둥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는 저 바다로 도달하고 말 것이니라”

그러면 ‘이쪽 언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뚱이로 감각하고, 생각으로 알고 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걸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게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한다’는 말은 안이비설신의의 상대가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깥 경계에도 집착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중간에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어떠한 색(色)을 보면 속에 안식(眼識)이라 하는 것이 생기고, 귀로 바깥 경계 소리를 들으면 속에 이식(耳識)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식(六識)이 생기기 때문에 그 육식에도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소용돌이 속에 걸리지 아니한다’하는 것은 학문이나 경전이나 그러한 것을 보다가 알음알이에 집착을 한다고 하는 데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

요새 불자 가운데에 지성인 측에서 교리적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는데,
무슨 경전이나 다 부처님의 소중한 진리가 담겨있는 법문이기는 사실이나, 그러한 경을 올바르게 보지를 못하고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데에 맛을 붙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그 나무토막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뱅뱅 뱅뱅 도는 그 소용돌이 속에 한번 들어가면 밤낮 그 자리에서 돌기만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다에는 도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이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에도 머꾸지를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법문을 그 수행승에게 해주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고 떠났습니다.(처음~20분52초)

 

 



(2)------------------

그 법문을 설하실 때에 그 곁에서 소를 치는 목동이 어떻게 열심히 그 법문을 들었던지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가지고 목동을 그만두고, 당장 그 자리에서 출가할 결심을 하고 부처님께 허락을 해주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네가 지금 목동의 책임을 맡아가지고 남의 소를 기르고 있으니 그 소를 갖다가 주인한테 갖다가 인계를 하고 주인한테 인사를 하고 그리고서 오너라”
목동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소들은 전부 송아지들이기 때문에 소 어미는 주인한테 있으므로 그냥 놔두어도 송아지들은 제 어미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럴 필요도 없이 당장 이 자리에서 계를 설해주십시오”

“아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저 송아지를 주인한테 정식으로 인계를 하고, 너도 네 몸도 그 주인한테 고용이 되어있으므로 정식으로 하직(下直) 인사를 하고 와야지 그럴 수가 있느냐”

그래서 그 목동은 그 송아지 떼를 몰고 그 주인한테로 달려갔습니다.
송아지는 자기의 목동이 달려가니까 덩달아서 달려가는데, 목동은 달려가면서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하면서 계속 달려갔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목동들도 무엇이 무서우냐고 하면서 달려갔습니다.

‘무엇이 무서우냐? 하면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무섭고, 늙은 것이 무섭고, 병든 것이 무섭고, 죽는 것이 무섭다’
이런 뜻으로써 계속 “무섭다. 무섭다”하면서 주인한테 쫓아가 가지고 송아지를 인계하고 그리고 하직 인사를 하고 되돌아오면서 계속 “무섭다”고 또 오니까,
5백 명의 다른 목동들도 그 목동을 따라서 같이 부처님 처소로 와 가지고, 그 목동과 다른 5백 명의 목동이 일시에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동이 법문을 들을 때에 가지고 있던 지팽이가 있었는데, 그 지팽이 끝에 꽂혀서 죽은 두꺼비가 한 마리 있었던 것입니다.
목동은 부처님 법문 듣는 데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자기 작대기가 두꺼비의 등허리에 놓아져 있는 것도 모르고 계속 열심히 듣다보니까 힘을 계속 그 작대기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작대기가 두꺼비 등허리를 뚫고 창자를 꿰뚫어서 맞창이 났던 것입니다.

그 두꺼비는 작대기가 자기 등허리에 닿았을 때에 비명을 질렀으면 그 목동이 깜짝 놀라서 그 작대기를 치웠을 텐데,
그 두꺼비라는 놈은 ‘자기가 만약에 빽빽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 목동이 깜짝 놀라가지고 부처님 법문 듣는 데에 방해가 될까봐 차라리 내가 이대로 죽을지언정 어찌 부처님 법문 듣는 그것을 방해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가지고 그 두꺼비도 보통 두꺼비가 아니라 이상한 두꺼비가 되어가지고 두꺼비 저도 법문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서 목동의 작대기에 찔려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두꺼비는 죽어서 바로 사천왕(四天王)에 태어나가지고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천자가 되어가지고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너무 부처님 은혜가 지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천자의 옷차림을 하고서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을 뵈옵고 전생에는 두꺼비의 몸으로 법문을 들었지만, 금생에는 내가 천자의 옷을 입고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리라. 그리고 감사한 예배를 올리리라’

이래가지고 달밤에, 달은 휘황창 밝은데 하늘나라에서 꽃비를 내리면서 찬란한 모습으로 천상에서 부처님 처소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께 무수배례(無數拜禮)를 올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다시 확철대오를 해가지고 천상에를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꽃비가 내리고 장엄한 하늘나라의 음악이 울린 것만 보았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내려온 것은 보지를 못해서 그 이튿날 부처님께 “어젯밤에 부처님께 무슨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까?”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그 목동이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이렇게 자기뿐만이 아니라 5백 명의 목동을 데리고 이렇게 와서 출가해 가지고 부처님 법문에 의지해서 이렇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 여쭈니까 부처님께서 그 목동의 전생과 두꺼비의 전생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전생에 가섭파여래(迦攝波如來)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에 목동이 그 부처님을 뵈옵고 발심을 해가지고 출가한 사실이 있었는데, 그 목동이 수행을 하다가 어느 절에서 경(經) 공부를 하는 다른 스님과 같이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동으로 있다 출가를 한 그 수행인은 참선이 좋아서 계속 참선만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함께 그 절에서 머무른 여러 스님들은 모두 경 공부를 해서 밤새도록 경을 큰 소리로 읽고 외우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해서 마음을 고요히 집중을 해가지고 정(定)에 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너무너무 경 읽는 소리가 크고 시끄러워서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이튿날 너무너무 부애가 나니까, 욕을 하기를 “밤새 두꺼비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참선을 못했다”고 이렇게 욕설을 한 그 인연으로 해서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몸을 받으면서 내려오다가,
금생에 이렇게 자기 몸뚱이에 그 작대기가 꽂혀서 죽게 됨에도 불구하고 법(法)을 존중하고 아끼는 그러한 신심과 보살심을 냄으로 해서 두꺼비의 몸을 벗고 천상에 태어나서 사왕천궁의 천자가 되었다고 하는 원인을 말씀을 하시고,


또 목동이 이렇게 도를 얻은 인연은 전생에 한 수행인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수행을 잘하고 덕(德)이 있어서 대중 가운데에 누가 싸움을 하기만 하면 이 스님이 말을 몇 마디 하면 금방 싸움이 가라앉고 화해를 잘 시켰던 것입니다.

마치 그 가섭파여래 회상에서 있을 때인데, 두 사람이 싸움을 해가지고 며칠째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냈습니다.

지금 이 보살선방에도 가끔 옛날에는 사소한 일에 타시락거리면 며칠씩 속으로 꽁해 가지고 말도 안 하고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요새는 그런 일이 거의 없고 모두가 다 화합하고 합심해서 석 달 동안을 하루같이 그렇게 엄숙하고 거룩하게 그렇게 정진들을 잘해 오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그렇게 싸움을 해가지고 말을 안 하는데, 그 스님한테 화해를 시켜달라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당장 그 자리에서 화해를 붙여 주지 아니하고,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까 다른 스님한테 요청을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안 되거든 나한테 오너라’ 이렇게 미뤘습니다.

그렇게 미룬 것은 ‘다른 사람한테 가서 해도 안 되어가지고, 그때 자기한테 와 가지고 화해가 되어야 자기의 권위가 설 것이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외출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벌써 다른 스님한테 말을 해가지고 화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화해가 되었느냐?”고 내막을 물으니까 “약허이 약허이 해서 화해가 되었다. 그 스님이 이러 이러한 말씀을 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양치기 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식으로 화해를 붙이지, 어찌 수행승이 그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욕설을 했습니다.

그 ‘양치기 같은 짓을 했다’하는 그러한 속으로 신경질을 내면서 그러한 퉁명스런 말 한마디를 뱉은 그 인연으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아까 두꺼비는 경 읽는 소리를 갖다가 “두꺼비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시끄러워서 참선을 못했다’고 한마디 욕을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과보를 받았고,
이번에는 “양치기 같은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식으로 화해를 붙이지 어찌 수행승이 그럴 수가 있느냐” 그렇게 신경질을 내면서 욕설을 한 그 과보로 오백생 동안을 양치기를 했다 이것입니다.

‘한 생각’ 불쑥 신경질을 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도 하고, 또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노릇을 하게 된 그 인과를 우리가 살펴본다면 한 생각,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통해서 부모자식 간에 또는 친구 간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한 마디씩 툭툭 내뱉은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마는,
우리는 오늘 이 부처님의 설화를 통해서 한 생각 움직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나 살기 위해서 남을 상처내고 남을 죽인다고 할 때에 그 과보는 비단 오백 생이 문제가 아니라, 무량 아승지겁(阿僧祇劫)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고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이렇게 많이 정성스러운 공양구(供養具)를 가지고 불전(佛前)에 이렇게 동참(同參)을 하셨습니다.
과거 한량없는 생(生) 동안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이렇게 모다 한자리에 모이셨습니다마는,

앞으로 다시는 퇴전(退轉)하지 아니하고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려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뼈아프게 단속해 나가서 다시는 일어나는 한 생각을 섣불리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눈으로 한 가지 일을 보거나, 귀로 어떤 한 소리를 듣거나,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하고,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물샐틈없이 단속을 해가지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20분53초~39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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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가련억만인천중~’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가련하다(可憐-- 가히 가/불쌍히여길 련) ; 가엾고 불쌍하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교법(敎法) ; ①가르치는 방법. ②부처님이 설법한 가르침.
*한맛 ; 부처님의 설법은 근기(根機, 가르침을 받는 이의 자질)에 따라 다르지만, 그 본뜻은 꼭 같다는 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칠원성군(七元星君) ; 북두(北斗)의 일곱 성군(星君). 북두칠성을 말한다.
*명호(名號) ; 명자(名字), 명(名)이라고도 함. 이름. 주로 부처님과 보살의 이름이기에 존호(尊號), 가호(嘉號) 등이라고도 한다. 이 명호(名號)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것에 커다란 작용이 있다고 여기고, 여기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등의 행(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 毘盧遮那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은하수(銀河水) ; ‘은하(銀河 천구상에 남북으로 길게 보이는 수억 개의 항성 무리)’를 강물에 비유하여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오작교(烏鵲橋 까마귀 오/까치 작/다리 교) ; 음력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를 서로 만나게 하기 위하여,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을 잇대어 만든다는 다리.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의 괴로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제24책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제11 참고.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머꾸다 ; ‘멈추다’ ‘막히다’의 사투리.

 

 



------------------(2)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하직(下直) ; ①먼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룀. ②'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지팽이 ; ‘지팡이’의 사투리.
*맞창 ; [주로 ‘나다’, ‘뚫다’ 따위의 말과 함께 쓰여] 마주 뚫린 구멍.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유숙(留宿 머무를 류/묵을 숙) ; (사람이 어디에)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을 풀고 묵음.
*정(定) : ①계(戒)•정(定)•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아승지겁(阿僧祇劫) ; 아승지(阿僧祇)는 산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장 큰 수 중의 하나이고, 겁(劫)은 연•월•일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말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 7. 31. 12:45

§(337) (게송)원간산색단축장~ / 부자될라면 먼저 보시를 해서 복(福)을 심어야 / 자비심 / 좋은 원(願)을 세우고 남이 잘되기를 바래야 복을 받는다.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용337)


약 22분.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하사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니라
나무~아미타불~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 저 먼산의 산 경치를 보고자 허거든 내집 담장을 짧게 치고,
좋은 새들을 초대허고 싶거든 정원에 나무를 많이 심어라(欲招好鳥多種樹).

조실 스님께서 참 즐겨 읊으신 게송입니다.
아주 평범헌, 평범헌 게송이지만 평범헌 가운데에 많은 깊은 뜻을 내포허고 있습니다.

사람치고 다 오복(五福)을 다 갖추기를 바랍니다. 또 불법을 믿는 또 최상승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은 다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를 원합니다.
세속의 오복을 갖추기를 원한다 하드라도 어떻게 허면은 그 오복을 갖출 수가 있는가? 또 이 불법에 있어서 견성성불을 하고자 한 사람은 어떻게 허면은 견성성불을 헐 수가 있는가?

반드시 그 바른 길이 있습니다.
저 먼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자 허면서 담을 높이 쌓고, 다른 사람이 자기집을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그렇게 담을 높이 쳐 버리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한 데에는 유익헐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이 저 먼 아름다운 경치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여.

새소리 아름다운 새를 초대하고자 허면서, 그 나무가 있으니 모다 우중충허다고 나무를 다 때려 비어버리면 오던 새는 다 날아가버리고 오지 아니헐 것입니다.
참으로 새가 자기집에 오기를 바라면은 참 좋은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해. 그러면은 새를 오라고 허지 않아도 온갖 새가 모다 모여들 것이고, 경치를 보고 싶으면 높은 담을 허물어서 얕게 치면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인간의 복도 욕심만 내 가지고 막 되나깨나 움켜쥐고 닥치는 대로 제 것을 맨들라고 헌다고 해서 절대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져서는 안 될 재산을 막 회사 돈이나 관청 돈이나 일가친척 돈도 닥치는 대로 긁어 잡아댕겨서 제 것을 맨들라고 허면 당장 쇠고랑 차고 잽혀 가고, 되겠습니까? 그게.

반드시 부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자님 말씀은 『버는 돈보다 쓰기를 적게 쓰면 부자가 되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저축을 허는 간단헌 한 면을 말씀허신 것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마는, 버는 돈보다 적게 쓴다면 한 달에 돈 10만원 벌어 가지고, 한 9만원만 쓰고 만원만 남긴다고 해서 그거 만 원씩 모아 가지고 언제 부자가 되겠습니까?

만 원씩 다달이 모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모여 봤다 몇십 만원 그것 가지고 부자라 허겠습니까?
물론 적게 쓰면 저축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또 아무리 많이 벌어도 억만금을 벌어도 쓰기를 번 돈보다 더 쓴다면 진짜 부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말 부자가 되는 묘법(妙法)이라 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허면 많이 벌 수가 있느냐? 일단은 많이 벌어가지고 버는 돈보다 적게 써야지,
벌 수는 없고 밤낮 적게 쓰는 것만 노력을 해 봤자 그것은 인색하기 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색허다고 해서 부자는 안 됩니다.

부자될라면 복(福)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을 심어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욕심만 내 가지고 자꾸 거머쥔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잠깐 거머쥘 수는 있을란가 몰라도, 그러헌 재산은 금방 나가게 되고 써보기도 전에 감옥에 먼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옥에 먼저 가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와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불같은 욕심을 내 가지고 닥치는 대로 긁어들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느냐?
복을 심어야, '복을 심는다'허는 것은 첫째 보시(布施)를 해야 되거든. 베풀어야 돼.
물질로도 베풀고 말로도 베풀고 마음으로도 베풀어. 보통 ‘보시를 해라’허면은 돈이나 어떤 물건만을 생각허지만, 물론 그것도 중요허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서 더 중요헌 것은 마음이거든.

마음을 항상 자비심(慈悲心)—자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 몸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허고 남을 위허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 항상 이 자비심으로 베풀면,

자비심을 가지면 자비심을 가진 사람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런 말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허는 행동도 항상 자비스런 행동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어떤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저절로 남에게 보시를 허게 마련인 것입니다.

마음이 인색하고 마음이 탐심이 꽉 차있고 마음이 자비심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럽지 못헐 것이고, 남을 해롭게 허는 말, 남의 오장을 참 상하게 허는 그런 말이 튀겨져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의 행동이 또한 무자비한 행동이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은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헌 사람은 우선 재산이 좀 있다 허드라도 그 재산이 오래가지를 못헙니다. 오래가지를 못허고 아무리 거머쥐고 꽉 오그려 쥔다 허드라도 반드시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돈이 나갈 수 밖에는 없는 그런 상항이 일어나고,
그런 상황은 자기가 어떤 사업을 허다가 못된 수도 있고, 어떤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없어질 수도 있고, 자식을 잘못 두어 가지고 자식이 그 재산을 탕진허는 예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첫째 보시바라밀을 설했거든.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원이 다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 헌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고 허는 장애물이 콱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자기헌테 오지를 못 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원(願)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나쁜 원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하여간 마음으로 간절히 원허기만 허면 누구라도 이루어지는데, 빨리 이루어진 사람과 더디 이루어진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 원(願)을 세우면 빨리 이루어진 사람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빨리 이루어진 것이고,
잘 안 이루어진 사람은 그 장애가 있기 때문에—과거에 지은 업 또 현재의 지은 업, 그런 업(業)의 장애(障碍)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린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간절히 원(願)을 세우면 이루어지는데, 어떠헌 원을 세우느냐? 그것이 우리 불자(佛子)로서는 대단히 중요헙니다. 기왕 원을 세울라면 좋은 원을 세워.

미웁다고 해서 그 사람 망하는 그러헌 원을 세운 것-그것을 저주(詛呪)라 그러는데, 남을 저주허면은 그 저주하는 원도 이루어집니다.
간절히 그 미운 사람이 망하기를 원허면 그것도 이루어지는데, 그런 나쁜 원을 세우고 저주를 허면 먼저 자기가 먼저 해롭습니다. 그래서 그런 좋지 못헌 원을 세운 것은 대단히 옳지 못헌 것입니다.

빈대 잡기 위해서 자기집에다 불을 질러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라리 빈대는 잡지 못헐지언정,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다 불을 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빈대를 잡을라면은 그 빈대가 없어지는 지혜로운 방법을 강구해서 그 빈대가 자연히 자기집에서 떠나도록 헐지언정 빈대가 미웁다고 해서 당장 불부터 질르면은 자기 재산 다 없어지고, 자기집 다 없어지고, 까닥허면 자기 몸, 자기 식구도 타 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절대로 아무리 미워도 다른 사람 망하기를, 다른 사람이 해롭게 되기를 바래서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주를 허지 말아라. 웬수를 갖지 말아라. 보복을 함으로써 싸움은 끝나지 아니헌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중생은 평소에는 괜찮은데 너무 억울허고 분허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까딱 잘못허면 남을 저주허게 되는데, 우리 불자는 그 한 생각 일어날 때,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상대방을 용서허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가지고 또 생각해 보고,

그래서 내가 먼저 이해를 하고 미움을 풀어주고 화해를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업이 소멸이 되고 원결(怨結)이 풀어지게 되어야,
앞으로 두고두고 내가 원허는 좋은 원이 성취가 되고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복을 받게 되고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허고 저주하고 해서, 설사 그렇게 해서 보복을 허게 되면 머지않아서 또 보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서로 죽이고 서로 웬수를 갚고 또 웬수를 되받고 이래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허면서 무량겁을 가봤자,
저도 고통 밖에는 없고 남도 고통 밖에는 없는 오늘날 이와 같은 말세(末世)의 현상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멀리 세계를 보십시오. 도처가 싸움이고 도처가 사람을 죽이는 그런 전쟁이고, 우리나라도 여당이다 야당이다 재야세력이다 노사분규다 해 가지고 끊임없는 이러헌 분규와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나라꼴도 안 되고 회사도 안 되고 그래 가지고 개인의 부귀와 행복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회사가 망허고 그 직원들이 잘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화해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 여당은 야당을 생각허고, 야당은 여당을 생각허고, 그래서 합해서 국가를 생각허고 민족을 생각헐 때 나라 일이 제대로 되고 민주화가 될 것입니다.
또 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서 가능한 헐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의를 봐 가지고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해야만 회사가 잘되고 국가가 잘 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세상없이도 지상의 낙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도 되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새를 초대허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야 허고, 먼산 좋은 경치를 보고 싶으면 담을 짧게 쳐야 허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가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쓰고, 그렇게 생활을 영위(營爲)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불(千佛)이 출세를 허시고 천성(千聖)이 하강을 허신다 허드라도 이 도리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어떠헌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우리 불자는 그렇게 마음을 쓸 수 있고 그렇게 생활헐 수 있는 가장 묘한 한 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그것이 가능헐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지옥(地獄)에 빠질뻔한 사람이 천당(天堂)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알고서도 어찌 아니 허겠습니까?

오늘 이것으로서 칠석의 법어를 마치고자 헙니다. 이 법문을 듣고 당장 이 자리에 부터서 실천을 허십시오.
가정에 돌아가셔서 모든 섭섭한 생각을 다 풀어 버리시고 화해를 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하십시오. 그날부터 지옥과 같은 가정이 극락으로 변헐 것이고, 웬수가 다 사랑허는 은인으로 바꿔질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허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린 말씀을 실천허지 아니허면, 후생에 저 지옥에 떨어져서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49분56초~71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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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이르는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되나깨나 ;  '도나캐나(하찮은 아무 사람이나. 또는 아무것이나)'의 사투리.
*묘법(妙法) ; 절묘한 방법.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업(業)의 장애(障碍)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 무엇고(是甚麼, 이뭣고)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 7. 26. 15:49

§(243)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게송)욕초호조다종수~ /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동체대비(同體大悲).

**송담스님(No.243) -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84.07.07.음)  (용243)

 

약 13분.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허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어다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어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발라 있는데, 칼날에 발려 있는 그 꿀을 핥아먹지 말어라. 칼날에 묻은 꿀을 핥아먹다가 그 칼날에 혀를 상하기 때문에 그 칼날의 꿀을 아무리 달다해서 빨아먹지를 말어라.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니라. 그 고독지가(蠱毒之家)라는 집에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에는 독약이 있어.
독약이 있는 그 우물의 물을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독이 들어있는 그 우물의 물을 떠마시지를 말어라. 목이 마르다고 해서 독이 들어있는 그 우물의 물을 퍼마시게 되면은 죽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재산·색·명예·권리·맛있는 음식 그리고 안락한 것, 이 다섯가지 욕망을 얻기 위해서 온갖 행동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피땀을 흘리면서 몸부림을 치고 애를 씁니다.
심지어는 국법을 어기면서 애를 쓰고, 심지어는 본의 아니게 남을 해롭게 하면서, 심지어 남의 목숨을 해치면서까지 그 다섯가지 욕망을 취합니다.

그러나 그러헌 욕망들은 칼날에 묻은 꿀물과 같고 독약이 들어있는 우물물과 같아서, 그 달콤한 맛에 취해서 자칫 잘못하다가 혀를 짤리고 그 한 모금 물을 잘못 마시면은 그 독이 몸에 번져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아무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재산도 필요하고, 색도 필요하고, 명예와 권리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안락도 필요하지만, 칼날에 묻어 있느냐, 독약이 타 있는 우물인가를 분간을 해서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게 잘못하면 꿀 먹다 혀를 짤리고, 물 한 모금 먹다가 독이 몸에 번져서 생명을 잃게 되느니...

여러분이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많이 오셨는데 다 소원(所願)이 있으실 것입니다.
재산에 대한 소원, 남편과 자녀에 대한 소원, 명예와 권리에 대한 소원, 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보다 더 편하게 즐겁게 살겠다고 하는 그러헌 소원, 다 소중하고 꼭 이루어져야만 할 소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무작정하고 그것만을 바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에게 이르러 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하고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牆)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것이 내게 이르르게 하는 방법,
아름답고 좋은 새를 초대하고자 하거든 나무를 자기 뜰에 많이 심을 것이고, 나무를 많이 심어서 숲이 우거지면 오라고 아니해도 팔방에서 울긋불긋 그 아름답게 우는 좋은 새들이 떼로 몰려올 것입니다.

저 먼산, 아름다운 산 경치를 보고자 허거든, 너희 집 담장을 나즈막하게 쌓으라 이것입니다.
담장을 높이 쌓아 놓으면, 요새 자꾸 담장이 높아져서 도둑놈이 못 들어오게 담장을 높이 쌓는데, 담장을 높이 쌓으면 저 앞산이 보이지를 않거든. 앞산 먼산 경치를 보고자 하면은 너희 집 담장을 낮게 쌓아라.

복과 지혜가 굴러들어오게 헐랴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서 너의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가져라. 정법을 믿고 마음을 청정하게 가지면 지혜의 눈을 뜰 것이니, 니가 지혜의 눈을 뜬다면은 제석천왕(帝釋天王)과 모든 성현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너희 집에 머무르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은 무슨 소원을 이루지를 못할 것인가.

정법을 믿고 마음을 청정허게 갖고 어떠헌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속상하는 일을 당하거나, 슬프고 괴롭고 외로운 일을 당할지라도,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이뭣고?’ ‘이뭣고?’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든다면,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하지 안해도 마음은 저절로 안정이 되고, 마음을 맑게 하고자 아니해도 저절로 마음이 맑고 청정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복과 지혜가 저절로 떼를 지어서 모여들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앞으로 법요식이 진행이 되겠습니다마는 이 법문을 듣고 ‘과연 그렇구나!’ 정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 정진(精進)을 헌 것이 나의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나의 모든 업(業)을 소멸을 하고,
그러므로써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해서 벌써 마음의 부자가 되고 마음의 행복을 얻는다면, 실질적인 물질적인 외면적인 그러헌 것도 저절로 다 갖추어질 것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모든 사부대중 여러분께서는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반드시 그 소원이 원만하게 성취되실 것을 저는 믿고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은 백종날을 앞두고 「부모에게 효도를 허는 것이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는 가장 첩경(捷徑)」이라고 허는 법문을 해 드렸습니다.

오늘 전 고경월 보살이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하는 소원으로 천도재(薦度齋)를 올리고 또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한 마음 자비스러우면 모든 사람에게 다 자비로와지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팔만사천 번뇌가 바로 팔만사천 지혜로 변하는 것입니다.(53분50초~67분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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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利刃有蜜不須舐  蠱毒之家水莫嘗’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대혜고(大慧杲) 게송 참고.
*(게송) ‘是非海裏橫身入  豹虎群中自在行’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청정(清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동체대비(同體大悲) : 불(佛)·보살(菩薩)이, 중생과 자신이 같은 몸(同體)이라고 알고 있는데서 일어나는 큰 자비심(慈悲心).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
[참고] 1985년(을축년) 동안거결제 법회(No.280) 법문에서.(2분23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다. 시비(是非)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그러한 온갖 시비의 바다 속에, 전체가 중생 사는 데는 시비 아닌 것이 없고 전체가 다 시비요 차별이기 때문에 바다라 하는 거여.
그 시비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사람이 많이 꽉 들어찰 때에는 이렇게 정면으로 갈 수가 없으니까 몸을 이렇게 비끼고, 이렇게 삐지고 들어가듯이 시비의 바다 속에 몸을 비껴 삐지고 들어가며,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여. 표범과 범이 떼를 이루고 있는 그 가운데를 자재하게 나아간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네가 잘하고 내가 못한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이것은 좋다 저것은 나쁘다, 이곳은 밝고 저곳은 어둡다, 이것은 짜고 저것은 싱겁다,
전부가 다 중생의 인아(人我)로 인한-인아(人我) 너와 나라고 하는 그런 시비의 바다 속에, 그 시비가 바로 그것이 호랑이요 표범인 것입니다.
그 속에 그것을 피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몸을 삐지고 막 적극적으로 그 속을 향해서 간다 그말이여.

시비를 잡아서 나에게 와서 가리지를 말아라(莫把是非來辨我). 나한테는 그까짓 시비를 이러쿵저러쿵 나한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말이여.
나는 그까짓 시비를 평생 천착을 하지 않노라(平生穿鑿不相關). 그건 내가 따지지 않는다 그말이여.

시비 속에 마구 들어가서 시비를 막 잡아서 내가 막 요리를 해 버리고, 시비를 여의지 않고 시비 속에서 바로 화두(話頭)의 의단을 가지고 막 삐지고 들어가는데 시비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