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신수기도)'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22.06.18 §((259)) (게송)가가문전통장안~ / 기도를 '일심으로 정성으로 한다’는 것은 사심 없이 하는 것 / 참선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 / (게송)일체유위법~.
  2. 2022.03.24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3. 2021.06.14 §((117)) 왕의 노모 병환 / 기도는 정성, 청정한 마음으로 / 보석사 주지스님 중풍 치료 / 우리 목적은 깨달음을 얻는 것 / 참나를 깨달은 것만이 오직 영원한 것.
  4. 2021.02.18 §((066)) 기도 · 염불 · 독경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으로 가는 좋은 방편 / 강을 건넜으면 배[방편]는 버려라 / '한 생각' 단속이 참선.
  5. 2021.02.15 §((229)) (게송)만리장공우제시~ / 모든 법요식은 일대사를 위한 방편 / 사바세계가 도닦기 제일좋다 / 병든 노비구의 인연 『법구비유경』 / (게송)송백천년취~.
  6. 2021.02.13 §((379)) 불자 궁극의 목적은 속히 견성성불해 일체중생을 제도 / 부처님의 자비 방편, 기도! / 감응(感應). 불가사의한 현상 / 일심불란하게 기도해야. 1
  7. 2020.12.20 §((137)) 무루복 · 유루복 / 철부지 어린 소녀의 소원 / 마음이 깨끗해져 소원을 성취 / 용화선원에서 신수기도를 봉행하는 뜻 / 복혜쌍수 / 보시는 희사(喜捨).
  8. 2015.02.27 §(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9. 2015.02.22 §(351) 심지법문(心地法門) / 산적과 한 여자의 지혜 일화 / 심기일전(心機一轉)하는 지혜의 힘은 참선 공부에서 온다.
  10. 2015.02.20 §(320) 설산동자의 설화 / 기도는 청정하고 간절하고 일여한 신심으로 소원성취를 하고, 거기에 그치지 말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데 목적을 두고서 해야 한다.
법회(신수기도)2022. 6. 18. 21:35

 

 

§((259)) (게송)가가문전통장안~ / 기도는 첫째, 정성(精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한결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으로 해야 해. 정성으로, 일심으로 해서 이루지 못할 원(願)이 없습니다 / 어떠한 곳, 어떠한 경우라도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일심으로만 하면 바로 그것이 기도(祈禱)가 되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해야 한다.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하는 것은 사욕(私慾)이 없는 것, 사심이 없이 하는 것을 말한다 / 탐심(貪心)과 사심(私心)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일심(一心)으로 기도를 함으로 해서, 그 마음이 빈 곳에는 최고의 공덕(功德)이 담기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 / 기도를 해서 얻어진 바는 성현(聖賢)의 가피(加被)로 자기에게 관리권(管理權)을 제수(除授)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유용하게 잘 써나가야.
(게송)일체유위법~ / 생겨났다 없어지고 하는 그것이 모두가 다 '유위법(有爲法)', 우리의 몸뚱이, 우리의 생각도 유위법, 온 세계에 모든 것이 다 유위법.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꿈, 꼭두각시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은 것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심 정력(定力)으로 하면 반드시 자기의 원(願)하는 만큼 성취를 하는 것 / 오씨(吳氏) 부인의 낙산사 기도 가피(加被) 설화(說話).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행동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행주좌와 어묵동정,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그 일들 자체가 낱낱이 다 기도가 되는 것 /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하다 / 기도를 열심히 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 자기 마음 다스려야 / (게송)문일귀원최적담~.

**송담스님(No.259)—1985년 신수기도 회향 (1985.01.09.음) (용259) (신수기도)

 

(1/3) 약 35분.

(2/3) 약 37분.

(3/3) 약 19분.


(1/3)----------------

가가문전통장안(家家門前通長安)허고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인유월방지정(水因有月方知淨)허고  천위무운시견고(天爲無雲始見高)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가문전(家家門前)에 통장안(通長安)하고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다.
집집마다 문 앞에로부터, 문 앞에 있는 그 길로부터 서울 장안(長安)으로 통하고, 곳곳마다 푸른 버드나무에는 말을 맬 만하더라.
아무리 산간벽지, 시골, 해변, 도시, 어디 어느 집이라도 문밖에 나가면 그 길로부터 서울 장안으로 길이 연결이 되어 있더라 그 말이여. 그리고 곳곳에 어디에 있는 버드나무, 푸른 버드나무든지 다 타고 가던 말을 갖다가 매 둘 수가 있더라 그 말이여.

수인유월방지정(水因有月方知淨)이요, 물은 달이 비추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바야흐로 알 수가 있고.
천위무운시견고(天爲無雲始見高)여.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야 비로소 그 하늘 높은 것을 볼 수가 있더라 그 말인데.


오늘은 을축년 정월(正月) 초아흐레, 정초(正初) 신수기도(身數祈禱) 회향(廻向)날입니다.
그동안 초사흘에 시작해서 오늘까지 칠 일간 여러분께서는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신수기도에 참례를 하셨습니다. 저 지방이나 서울이나 먼 데서 일부러 오셔서 기도하신 분도 계시고, 또 근처에 계신 분은 매일 출퇴근을 하시면서 새벽 · 오전 · 오후 그리고 밤에까지 그렇게 열심히 정진하셨습니다.

기도는 첫째, 정성(精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한결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으로 해야 해. 정성으로, 일심으로 해서 이루지 못할 원(願)이 없습니다.

기도는 이러한 신수기도나 그밖에 어떤 기도, 법당에 오셔서 기도, 절에 오셔서 기도하는 것도 기도지만, 또 저 양양 낙산사(洛山寺)라든지, 남해 보리암(菩提庵)이나 강화 보문사(普門寺)나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런 성지(聖地)에 가셔서 3일 내지 일주일, 백일 그렇게 일심으로 기도하실 수도 있고. 또 세검정(洗劍亭) 해수관음(海水觀音) 같은 그런 데에 가서 또 백일을 다니면서, 또는 천일(千日) 만일(萬日)을 다니면서 일심으로 소원을 비는 그런 기도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등상불(等像佛)을 모셔 놓은 곳에 가서야만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할 수가 있고 직장에서도 할 수가 있고, 또 절에 오셔서도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 ·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 · 지장보살(地藏菩薩) 그런 성현의 명호(名號)만을 일심으로 부른 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법당 소지를 계속해서 한다든지, 탁자 소지를 한다든지, 부처님께 꽃을 꽂아서 올린다든지, 향로 · 촛대를 항상 깨끗이 닦아 올린다든지, 또는 후원에서, 후원(後院)에 들어가서 채공(菜供) 일을 돕는다든지, 설거지를 돕는다든지, 또는 사중(寺中)에 이불이나 방석 같은 그러한 빨래를 한다든지, 또는 대중 스님네 무엇인가 의식주(衣食住)나 기타 약(藥)에 관한 그러한 공양을 올린다든지.
비단 부처님과 스님네와 사찰뿐만이 아니라 아들딸이 없이 외로운 그런 노인네의, 자기와 일가친척이 아니라도 그런 불쌍한 노인네를 잘 보살펴 드린다든지, 부모 없는 외로운 고아들을 잘 보살펴 준다든지, 어떠한 경우라도 지극정성으로 하면 바로 그것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또 훌륭한 것이 아니라, 미꾸라지나 붕어나 자래, 자라 새끼 같은 그러한 짐승이나 또는 이 물웅뎅이에 여름에 가물어서 그 물이 말라 가지고 죽게 되는 송사리떼 같은 것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 사심이 없는, 사심(私心)이 없이 행(行)한, 사심이 없이 죽어 가는 목숨을 살릴 때에는 크고 작은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일심으로 해야 한다',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욕(私慾)이 없는 거, 사심이 없이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함경도서 어떤 사람이 참 글을 읽어 가지고 서울로 과거(科擧)를 보러 가는데, 아주 가난해서 좁쌀—'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소원을 빌고 과거를 떠나면은 소원을 성취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 산중(山中)에는 좁쌀이나 수수 그런 것밖에는 곡식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좁쌀 한 되를 싸 가지고 절에 가서 마지(摩旨)를 지어서 딱 올리고서는,
"부처, 내 말 좀 듣게! 내가 이번에 과거를 떠나는데 이 귀한 좁쌀 한 되로 밥을 지어서 올리니, 이번에 잘 이것을 들고 내 과거만 합격만 시켜준다면 내가 원님이 되던지, 대신이 되던지 할 때는 그때는 하얀 쌀밥을 갖다가 실컷 대접을 할 모냥이니 내 말을 깊이 명심을 하고 어쨌든지 내가 이 과거에 합격만 해 주구려"

떠억, 아주 부처님 앞에 담뱃대를 꺼떡거리면서 단단히 당부를 하고서 큰 기침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과거를 봤는데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가만히, 떨어져 가지고 오다가 생각하니 부해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공연히 그 귀한 좁쌀 한 되만 갖다가 손해를 봤다' 생각하고, 부지런히 고향으로 돌아와서 오던 꼴로 절로 쫓아가서, "놀놀하니 앉아서 내 좁쌀만 똑 따먹고 과거도 시켜주지 안 했다"고 이러한 우스개 말이 전해옵니다마는.

여러분께서 혹시 기도를 하시되, 자기가 기도를 하는 그 정성은 그렇게 썩 정성스럽지 못하면서, 그렇게 일심(一心)으로 하지 못하면서 너무나 엄청난 공덕(功德)이 돌아오기를 바래는 그러한 분은 혹 안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백일 동안을 내가 아침마다 다니면서 부처님께 예배(禮拜)를 했다' 또는 '백일 동안을 부처님 앞에 매일 108배씩을 절을 했다' 그러한 절하는 횟수라든지, 절에 아침마다 다니는 날수라든지 또 자기가 무엇을 갖다가 얼마씩을 매일 보시를 했다든지.
그러한 형식적으로 나타나는 물질적인 것, 모다 그러한 것으로써 자기의 정성을 갖다가 수판(數板)을 놓아 가지고, 좁쌀 한 되를 바친 거와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고서 자기 남편이 벼슬을 올라가기를 바래고, 자기 아들이 명문대학에 합격되기를 바래고, 자기 아들이나 딸이 몹쓸 병에 걸린 것을 낫기를 바래고.
이래가지고 얼마 동안 해 봐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성취를 못하면 '에잇 그것,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자 마치 다른 종교에서 '자기가 믿는 데로 오면 그까짓 거 문제없이 병도 낫고 소원도 성취하고 부자도 된다' 하니까, 처음에는 반 타의(他意), 반 자의(自意)로 끌려가 가지고 말을 들어보니까 귀에 쏙 들어오고 '이것, 곧 뭣이 될 것 같으다!' 그래서 거기 가서 얼마 동안 댕기다가 또 뭐 마음먹은 만큼 성취가 안 되면은 또 저 어디 다른 데로 또 가보고 이리해서 갈팡질팡 이러한 분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댕기다가 팔이 부러진다던지, 발이 부러져 가지고 다시 찾아와 가지고 참회(懺悔)를 하는 그러한 분도 몇 사람을 봤습니다마는.

기도라 하는 것은 첫째, 사심(私心)이 없어야 돼.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집을 팔아서 갖다 바치라' 그런 말이 아니고, 마음을, 정성스러운 그 마음을 바란 바 없이 완전히 비워 버려야 한다.

'부처님이나 스님네께 보시를 하고, 가난한 노인이나 고아에게 보시를 하라, 물질적인 보시를 하라'고 가리키는 것은, 그런 물질적인 형식에 나타나는 보시를 허겄게 함으로 해서 자기의 탐심(貪心)과 사심(私心)을 버리는 도리(道理)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러한 방편(方便)을 써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그만한 물질적인 베품과 형식적인 어떤 행동을 얼마 정도 하고서 '나는 이러이러했다' 하는 상(相)을 가지고 있으면, 그리고서 자기의 중생으로서의 오욕락(五欲樂)에 소속한 욕심을 충족하려고 한다면, 그 보시와 그 기도는 정말 함경도 좁쌀 노인과 조끔도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칠일 동안 이 신수기도에 동참(同參)하신 분은 한 분도 그러한 분이 계시지 아니할 것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정말 그 일주일 동안 사심 없이,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빈 마음으로 일심(一心)으로 기도를 하셨으므로 마음이 빈 곳에는 최고에 공덕(功德)이 담기는 것입니다.
'웅덩이를 파 놓으면 너구리가 뛰어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평지에 웅덩이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뭣 물건이 꽉 차 있다면은 아무것도 더 담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흙을 파내서 빈 곳을 만들음으로 해서 거기에는 무엇이고 담길 수가 있듯이, 우리 마음을 비워 놓으면 우리 원(願)하는 것이 거기에 담기게 될 것입니다.

3일기도 · 7일기도 · 백일기도는 일심으로 그리고 정성스럽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비워져서 맑아지는 과정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하고,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평소에는 이 생각 저 생각, 번뇌와 망상,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가뜩차 가지고 있어서, 불공(佛供)을 드려도 그 가뜩차 있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도, 그런 가뜩차 있는 쓰레기통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불공 기도를 드리고 좋은 일을 한다 해도 역시 그렇고, 보시를 한다 해도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 그것도 되풀이해서 끊임없이 중단하지 아니하고 실천을 해 나가고 또 법문(法門)을 듣고 또 실천을 하고. 이렇게 해 가는 동안에 중단하지 않고 일심으로 한결같이 해 나가다보면 마침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음이 비워지고 청정한 그러한 경계(境界)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그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청정히 하고, 우리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마음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비워서 청정히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절로 이르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시 말씀하듯이 참선(參禪) 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화두를 타서 일심으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처음에는 번뇌와 망상이 더 많고 화두 드는 시간은 적지만, 번뇌 망상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꾸 화두를 들고 간절히 참구를 하고 의심(疑心)을 해 나가면, 차츰차츰 번뇌 망상은 줄어지고 화두를 드는 시간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망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망상 일어나지마는 또 화두를 들면 망상이 다시 또 꺼지기도 하고.

망상이 심(甚)히 일어나서 도저히 공부가 잘 안돼. 그러한 경지를 만난다 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결국은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어서 마침내는 그 의단을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하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도도 그러한 마음,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참구하고 정진해 나가는 사람은 그 참선 정진하는 가운데에 기도에 공덕(功德)이 다 자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소에 참선을 열심히 하시다가 이렇게 정월, 매년 정초(正初)에 신수기도와 같은 특별한 그러한 기회에는 일주일 동안 그 정진하는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을 일심(一心)으로 기도를 한번 하시는 것도 참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虛妄)하기 그지없고, 내 마음대로 원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기도 어렵지만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래가지를 못하고, 또 이 세상에 제일가는 부귀(富貴)를 누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평생토록 누려지기가 어렵고 중간에 그것이 나로부터 떠나버리게 되고, 죽을 때까지 안 떠난다 하더라도 죽어갈 때는 하나도 가지고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망한 것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또 부귀공명(富貴功名) 그런 것이 또 없어서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필요한 만큼 재산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권리(權利)도 필요하게 되고.
오욕락이 우리를 육도윤회(六道輪廻)로 이끌어가는 쇠사슬이라고 하지만 인간 세상에 오욕락을 떠나서 또 살 수가 없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을 부당(不當)한 방법으로 얻을라고 그러고 지나치게 그것을 남용(濫用)을 함으로써 우리에게 재앙(災殃)을 가져다주는 것이지, 올바른 방법으로 그것을 얻고 그것을 쓰되 도리(道理)에 맞도록 잘 써 나간다면 그것 또한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불이라 하는 것이 사람이 잘못 취급하면 화상을 입히고, 화재가 일어나면은 사람이 데어서 죽기도 하고, 집이 타서 재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온 산을 다 태워 버리기도 하고, 온 도시를 다 태우기도 하고, 공장과 가게를 다 태우기도 하고 해서 무서운 재난(災難)을, 재앙이 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적당히 잘 사용을 하면 인간 생활로부터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공장에서 만약에 어떠한 형태든지 불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에 오욕락(五欲樂)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올바르게 사용을 하고 올바르게 얻어서 나간다면 그것은 나를 이롭게 하고 또한 남에게도 큰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일심으로 하면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데, 성취할 때까지는 정말 일심으로 합니다, 누구라도. 그 일심으로 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는데, 그것이 일단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면 그때부터서는 사람이 달라지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서 얻어진 바는 자기의 복(福)으로 그것이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현(聖賢)의 가피(加被)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착각(錯覺)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현의 가피로 자기에게 관리권(管理權)을 제수(除授) 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유용하게 잘 써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기 것인 줄 알고 딱! 오그려 쥐고 그렇게 살아가면 '너는 훌륭한 관리인이 못되는구나. 일심으로 정성을 드리고 해서 니가 쓸만한 사람인 줄 알고 너에게 관리권을 좀 주어봤더니 니가 영판 그 관리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로구나' 이렇게 인증을 받게 되면 그 관리권은 박탈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던지, 주력(呪力)을 하던지 해 가지고, 부자가 되었거나 권리를 얻은 사람은 각별히 이 점에 대해서 명심을 해 가지고—그렇다고 해서 자기는 쓰지를 말고 전부 다 흩어서 없애라는 것은 아닙니다. 삼등분(三等分) 내지 사분(四分)을 해 가지고 일부는 자기가 쓰고, 일부는 장차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일부는 부처님이나 종교 계통에 아는 그런 사회 복지 사업 내지 교화 사업에 쓰도록 하고, 일부는 직접 불쌍한 사람이나 그런 사람에게 보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적절히 써 나가면 '과연 이 사람이야말로 얼마든지 더 큰 재산을 관리할 만하다' 하는 그런 인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더 큰 재산을 갖게 되고, 더 오래오래 그러한 관리의 직책을 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잘 관리를 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고 '저 사람이야말로 참 오래오래 부자가 되고 오래오래 저 좋은 그런 권리를 가져줘야 되겠다' 그렇게 갖게 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다 바래게 되고 그렇게 되도록 모다 음(陰)으로 양(陽)으로 협조를 하게 되는 것이고.
관리를 잘 못해서 그 권리를 남용하고, 재산 관리를 잘못해서 탐심(貪心)만 강해 가지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면 모두 사람들이 그 사람을 시기를 하고 모다 저주를 하고. '지가 얼마나 오래 잘산가 보자' 이래 가지고 모두 그 사람 잘사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고 빨리 망해주기를 모다 바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오래오래 부자가 되고 오래오래 그런 권리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권리(權利)라 하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은 자기를 죽이고 자기 집안을 망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사회국가를 멸망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재산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도를 정성껏 그리고 일심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한 것도 대단히 어렵고 또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한 소원을 크고 작고 간에 성취를 했거든 그 성취한 뒤에 어떻게 그것을 관리해 나가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것은 참으로 더 중요한 것이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관리를 잘 못하고 잘 사용을 못하면, 별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러주지도 아니하면서 나갈 때에는 사람을 다 상(傷)해 놓고 떠나게 되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서 없었더라면 그러한 대로, 가난하지만 그러한 대로 살아갈 터인데, 갑자기 큰 부자가 되고 큰 권리를 누려 놓으니, 그것을 관리를 잘 못하고 남용을 하고 그래 가지고 오히려 그전에 잘살기 전에 만큼도 못 살고, 그때 있었던 것까지 쏵 긁어서 다 빠져나가고.
그러한 재산과 권리만 나간 게 아니라 나를 갖다가 무서운 병을 얻게 만들고, 잘못하면 쇠고랑을 차게 해 놓고서 그러한 재산과 권리를 나로부터서 빠져나가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권리 싫단 사람이 없고 재산이 싫다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좋은 점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무서운 나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 불자(佛子)들은 깊이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처음~34분32초)




(2/3)----------------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모든 함이 있는 법은, '함이 있는 법',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무위법(無爲法)의 반대가 되는 말인데—유위법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생겨났다가 그 조건이 흩어지면 그것이 또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하는 그것이 모두가 다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함[爲]이 있다[有].

생겨날 때는 생겨난 원인이 있고 또 없어질 때는 없어질 또 원인이 있어서, 그러면 이 몸뚱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 우리의 몸뚱이도 이것이 유위법의 범주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또 이 세계,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이것도 영원성이 없는 것이여.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서 결합이 되었다가 그 결합이 될 만한 원인이 무너지면 다 다시 흩어져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덩이도 영원히 있을 것 같지만, 다 언젠가는 이것이 없어질 때가 오고 저 태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뚱이도 유위법이요, 온 세계에 모든 것이 다 유위법이요.
우리의 생각, 생주이멸(生住異滅),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어느 발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또 사그라져 없어지는데.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끊임없는 그 생주이멸의 되풀이를 하면서 쉴 사이가 없습니다. 이것도 또한 유위법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은 것이며, 꼭두각시 환상과 같은 것이며, 물거품 같은 것이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이 꿈! 꿈이라 하는 것도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꼭 실지(實地)처럼 느껴지지만 깨 놓고 보면 간 곳이 없고, 환상도 그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실지, 실상(實相)처럼 보이지만 정신을 차려 놓고 보거나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은 그것은 실지로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물거품, 물에 어떠한 충격을 가하면 거기에 물거품이 생기는데, 물거품이라는 것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냐 말이여. 물이 있는 곳에 잠시 물거품이 생겼다가 금방 다시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물거품 자체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참, 유위법에 지나지 못하고.

그림자라 하는 것도 어떤 물체가 있는데, 그 물체에 광선(光線)이 비추면 그 광선의 반대쪽에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그림자라 하는 것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영원한 것이 아니라 물체와 광선이 만났을 때에 그 그림자라고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그림자는 본래 있는 것도 아니요, 영원성이 있는 것도 아니여.
그래서 역시 꿈과 같은 것이요, 환상과 같은 것이요, 물거품과 같은 것이요, 또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다 허망무실(虛妄無實)한 것이다.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이슬,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다.
이슬이 풀끝에 맺혀 있을 때 햇볕에 비치면은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지만 그것이 어찌 실다운 것이겠느냐 그 말이여. 바람이 불어서 풀잎이 움직이게 되면은 찰나간(刹那間)에 그렇게 찬란하게 빛났던 보석 같은 이슬 덩어리가 떨어져 없어져 버리고 말어.
응당 이와 같이 관(觀)을 지을지니다[應作如是觀].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할 것이다.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그밖에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내 마음대로 얻어지면 기가 맥히게 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부러워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한동안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즐길 때에는 이 세상이 온통 나를 위해서 존재한 것처럼 느껴지고,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싶으지만.
그런 것들이 잠시 반짝거리는 풀끝에 이슬과 같은 것이요, 번쩍하다 말아버리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요,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그리고 꿈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칠 만한 상대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몸뚱이도 또한 그렇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미워하고 이뻐하는 그러한 모든 감정들이 또한 그렇고, 명예와 권리와 모든 재산도 또한 그렇고,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원망하는 그러한 인간 관계도 또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허망(虛妄)하고 무상(無常)한 속에 우리는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나 가지고 그 무상한 속에서 무상한 것과 더불어 싸우며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끊임없이 굴러가고 또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상한 것을 마음대로, 마음먹은 만큼 얻어지기도 어려운 것이면서 얻어져봤자 끝내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가슴 아픔만 한아름 안겨 주고서 매정하게 떠나 버릴 그러한 것들, 계속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지내왔고, 현재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한량(限量)없는 겁(劫)을 향해서 계속 몽둥이질을 당하면서 가슴을 할큄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또 그놈을 따라가야만 할 그러한 어리석고 가련한 중생(衆生)들.

다행히 우리는 그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만났습니다. 만났기에 우리가 그것들에 속지를 아니하고 정신 차려서 정법(正法)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숙세(宿世)에 너무 깊고 깊은 인연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벌레가 여름밤에 촛불을 보고 그것이 좋은 줄 알고 모여들어서 그 불을 맴돌고 이리저리 날다가 결국은 그 불꽃에 나래(날개)와 다리가 타서 무수히 떨어져 죽는 것처럼,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을 향해서 그칠 줄 모르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따라가다가 결국은 그것들로 인해서 일어서지 못할 만큼 무서운 뭇매를 맞고 꺼꾸러지고, 그것들로 인해서 얽혀 가지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갈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났고, 정법(正法)을 만났기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면서도 다른 어리석은 중생들이 그러한 것을 추구한 것과 같지를 않고, 그러한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원(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온전히 빠지지를 아니하고, 거기에서도 항시 정법을 믿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배반하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공부를 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 청정한 마음으로 잠깐 관(觀)만 해도, 잠깐 원(願)을 해도 그 원은 너무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참으로 꼭 성취를 할 마음이 있으신 분은 어쨌든지 참선을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리 신심(信心)이 있고 참선을 열심히 하신다 해도 또 가정에는 필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들 없는 분은 아들을 구하게 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재산을 구하게 되고,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없고서는 당장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 만큼 있으면서도 욕심에 욕심이 붙어 가지고 끝없이 탐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터무니없는 탐욕으로서가 아니라, 우선 가정이 살아가야 하고 애들 교육도 해야 하고 또 사람으로서 생활을 해 나갈 만큼의 재산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지나친 탐욕을 부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구하고 적당하게 사용을 해 나가면 절대로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고 다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잘살고, 한결같이 또 못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때는 잘살다가 또 한때는 못살다가 이렇게 됩니다. 그것은 과거(過去)에 우리가 짓기를 한결같이 좋은 일만 한 사람도 없고, 한결같이 나쁜 짓만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로는 나쁜 짓도 하고, 때로는 좋은 짓도 하고 이러한 생을 수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우리가 금생(今生)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한 5년 내지 10년, 길면은 한 20년 이리 잘살다가 또 그 중간에 한 5년이나 한 10년 뭔 사업이 잘 안되고 재앙이 잇따라 일어나고, 또 그러다가 또 몇 해가 지내면은 또 서서히 또 뭔 일이 또 뜻대로 되다가, 이리 파장(波長)을 이루면서 부귀와 모든 공명이 나로부터 떨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초년(初年)에 참 부모 밑에 호강하다가 중년(中年) 이후로는 아주 형편없이 가난한 재난(災難)을 만난 사람, 초년에는 참 피나는 고생을 하다가 중년 이후에는 잘사는 사람, 또 초년 중년은 몹시 어려운 속에서 살았지만 말년(末年)에 가서 잘사는 사람, 사람들이 모두 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인 것입니다.
이것은 음양가(陰陽家)들은 사주팔자(四柱八字)가 그렇다 하지만, 사주팔자는 무엇이냐? 전생(前生)에 내가 지은 바에 의해서 해필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時)에 태어난 것입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달통한 사람들은 그러한 원리(原理)를 수학적으로 풀어 가지고 운명(運命)을 점(占)치고 있습니다마는, 음양오행이라 하는 것은 우주에 질서를 수학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무시할 것도 못되나, 전적으로 그것에 얽매어 가지고 운명론자(運命論者), 숙명론자(宿命論者)와 같은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설사 사주(四柱)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실망할 것도 없고 생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죽 먹을 사람이 밥을 먹게 되고, 밥 먹을 사람이 좀더 풍족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지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사람에게나 어떠한 일에나 대단히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정신을 가다듬고 참선을 열심히 하면서 노력을 한다면, 아무리 비색(否塞)한 운(運)을 만난다 하더라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에 물은 달이 있음으로 해서 달빛이 비추어 주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알 수가 있듯이,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봐야 자기의 사람됨을 스스로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자기의 그릇이 얼마만큼 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당해봐야, 부자가 되어봐야 그 사람이 인간성이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그 사람의 끈기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달이 비추지 아니하고 껌껌하면 그 물이 썩 맑은지 탁한지를 알 수가 없다가, 밝은 달빛이 환히 비추어 줌으로 해서 물의 청탁(淸濁)을 가려낼 수가 있고, 하늘에 구름이 꽉 차 있으면 그 하늘이 얼마만큼 넓은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이 쏵 없어져야 그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산을 많이 부자가 된 뒤에 그 사람을 봐야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가 있고, 그러다가 그 재산이 쏵 없어져봐야 그 사람의 참다운 인격(人格)을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道)를 닦아 가는데 있어서도 밤낮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여건하에서—아주 방사(坊舍)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의복이라든지, 모든 여건이 좋은 데에서만 정진(精進)을 하면 참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금방 큰 도를 깨달을 거 같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좋은 환경에서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衣食住)가 부족하기도 하고, 주변이 시끄럽기도 하고, 어떠한 어려운 일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려운 상태에 놓여서 봐야 자기의 수행력(修行力)이 얼마나 된가를 가늠할 수가 있고, 그런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한번 정진을 해봐야 거기에서 참으로 힘 있는 정진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고, 좋은 부모 밑에서 부모덕(父母德)으로 호강만 하고 자란 사람은 커서 별 볼 일이 없습니다. 조끔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감내(堪耐)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피나는 참 고생도 해 보고, 고통도 해 보고 그래야 어려운 사람의 사정도 알고, 그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많은 사람의 사정을 알아서 널리 덕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고행(苦行)을 쌓으시고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서 수없는 고통을 다 견디어내셨고, '손바닥만한 땅도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몸을 버리지 아니한 땅이 없다' 할 만큼 무수(無數)한 목숨을 중생을 위해서 보시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한량없는 보시와 공덕을 쌓으셨기에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실 수가 있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두루 갖추어서 모든 성현(聖賢) 가운데에 최고의 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을 스승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그러한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데에서 신수기도, 뭐 기도? 신수기도를 왜 해? 참선만 잘하면 그만이지, 기도는 그까짓 거 기복 불교(祈福佛敎)가 아니냐? 산신기도 · 칠성기도 · 신중기도, 기도라 하는 게 다 복(福)을 빌고 한다니 그것은 기복 불교지 그것이 최상승 불교(最上乘佛敎)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기도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신 분 가끔 만납니다마는.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심 정력(定力)으로 하면 반드시 자기의 원(願)하는 만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선조 대왕(宣祖大王) 때에 이응(李應)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해 가지고 그 당쟁(黨爭), 그 사색정당(四色政黨)에 싸움이 치열해 가지고 훌륭한 사람,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하려고 하는 바른 사람들이 그 반대당에 의해서 모함을 받아 가지고 죽기도 하고, 귀양을 가기도 하고, 또 워낙 덕(德)이 있고 그런 사람은 저 제주도나 진도나 완도나, 지방 수령(守令)으로 좌천(左遷)이 되어 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이응이란 사람도 그 반대당의 모략으로 진도(珍島) 군수(郡守)로 좌천이 되어 갔는데—진도 군수로 있을 때 그 폭풍이 일어나 가지고 일본 사람이, 장사하는 일본 사람이 폭풍을 만나 가지고 진도, 그 섬 해변에 간신히 표류를 했습니다.

백성들의 보고를 받고 아전(衙前)들이 나가 가지고 그 사람들을 다짜고짜로 묶어서 감옥에다 때려넣고 그 배에 실은 보물을 전부 다 뺏을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이응이라고 하는 그 군수가 알고서 아전들을 갖다가 크게 꾸짖고, 그 감옥에서 그 사람들 다 포박(捕縛)을 지은 것을 풀어주고, 또 관아(官衙)에 방을 따뜻하게 불을 때서 방으로 하고, 옷도 다 갈아입히고 해 가지고 한 열흘 동안을 잘 먹이고, 그래 가지고 부서진 배도 다 수리를 하고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짐승도 내 집에 들어오면 잡아서 죽이는 법이 아닌데, 아무리 일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풍랑(風浪)을 만나서 표류(漂流)해 온 사람을 그 잘해서 돌려보내야지, 그것을 갖다가 죄 없이 포박을 지어 가지고 뚜드러패고, 싣고 온 보물을 갖다가 뺏을라고 한다면 어찌 그것이 참 훌륭한 처사(處事)라고 하겠느냐?" 그래 가지고 아전들을 꾸짖고 돌려보냈는데.

그 이응이라고 하는 사람에 손자가 이름이 '푸를 창(蒼)' 자, '바다 해(海)' 자 창해(蒼海)인데, 이창해(李蒼海)란 사람이 나중에 그 제주도 목사(牧使)가 되어 가지고 20여 명의 관속을 데리고 배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폭풍을 만나 가지고 배가 뒤집어진 바람에 다 죽고, 그 창해란 사람과 또 다른 세 사람이 간신히 뱃조각 판때기를 붙잡고는 며칠을 표류를 해 가지고 도착을 했는데, 일본에 지마도(志摩島)란 섬에 도착을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일본 사람들이, 그 섬사람들이 와! 나와 가지고, 이창해를 비롯한 세 사람을 갖다가 무슨 간첩이나 무슨 그러한 걸로 취급을 해 가지고는 묶어서 때려 가뒀습니다.
"대관절 뭣 하는 놈들인데 이렇게 남의 땅에 이렇게 침입해 들어왔느냐?" 한게, "제주도로 그 목사로 가다가 폭풍으로 인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잘 곧이를 안 듣고 "바른대로 대라"고 막 고문을 하고 뚜드러패는데.

그 창해(蒼海)란 사람이 워낙 인품이 좋고 점잖해서 사실대로 다 말을 하니까, "음, 니가 그렇다면 혹 그 진도 그 군수로 있던 이응(李應)이란 사람을 혹 아느냐?" 하고 물어보는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요" 그러니까, 그 자세히 이리저리 물어보니까 틀림이 없다 그 말이여.
그때부터서는 포박을 다 풀어주고, 그래 가지고 옷도 갈아입히고 음식도 잘 먹이고, 모다 상처도 다 하고 그런데.

그래 가지고 여러 날을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인자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야 겠는데 이 관속(官屬)들이 다 죽어버리고 자기네들만 가봤자 별로...
그렇지 않아도 반대당의 거시기로 제주도로 이렇게 귀양 가나 다름없이 이렇게 좌천되어 가는 판인데, 한국으로 돌아가봤자 반대당으로부터 참 좋은 소리도 못 듣고, 그러니 갈 수도 없고. 또 갈라고 해봤자 배가 없으니 갈 수가 없고. 천상 그 지마도(志摩島) 도주(島主)가 배를 만들어서 태와다 주기 전에는 갈 수가 없는데, 몇 날이 되어도 보내줄 생각을 안 하고.

찬찬히 그 겪어보니까 사람이 괜찮하고, 또 도주(島主)에는 그때 참 그 당혼(當婚)한 규수가 하나, 무남독녀(無男獨女)가 있었는데, 이창해한테 '내 딸이 있으니 내 사위가 되어 달라. 내 아들이 없으니까 데릴사위를 해 가지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물려줄 터이니 내 사위가 되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참 생각해 보니, '내가 이 폭풍을 만나 가지고 간신히 죽지 않고 살아났기는 하나, 해필 왜놈에 데릴사위가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랬으나 이리저리 생각해봤자 도저히 뾰족한 수는 없고, 그래서 승낙을 했습니다. 날을 받아서 융숭하게 결혼식을 했는데, 그 규수가 자기보다 한 7~8세 아래가 되는데 꽃같이 이쁜 미인(美人)이었습니다.

이 창해란 사람은 한국에 있을 때 여섯 살 때 결혼을 했는데, 자기보다 훨씬 십여 세 많은 여자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늙은 처녀하고 결혼을 해 가지고 별로 재미도 없이 살다가 이렇게 폭풍을 만나서 와 가지고 자기보다 7~8세 아래 되는, 설사 왜놈에 딸이지만 그 꽃같은 계집하고 결혼을 하게 되니, '참 인생이라는 게, 참 운명이라는 게 묘(妙)하다' 그래 생각했습니다.
속담에 '마누라가 죽으면 변소에 가서 씨익 웃는다'고 그러는데, 이 사람 참 고향을 떠나서 이렇게 참 폭풍으로 이렇게 해서 왜놈 섬에 와 가지고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별로 싫지는 않고, 운우(雲雨) 정몽(情夢)을 이루어서 애기를 한 30~40년 간에 아들딸을 열두 명이나 낳았습니다.

열두 명이나 자녀를 두어 가지고 있는데, 그 장인이 인자 늙어서 그 사위한테 그 도주(島主)에—거기는 도(島)가 일본 땅이라 하지마는, 그 사백여 년 전이니까 그렇게 교통수단이 좋지 못하고 해서 이것은 바로 그 도주가 그 섬에 왕 노릇을 했습니다.
일본 본토(本土)에 별 지배도 받지 않고 자기네끼리 그렇게 사는데, 그 섬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서로 섬끼리 싸워 가지고 그러다가, 이 창해가 그 장인으로부터 그 도주(島主)에 직책을 이어받아 가지고는 군사훈련을 시키고 해 가지고는, 그 주변 섬을 전부 정복(征服)해서 자기 영토를 만들어 가지고 아주 참 썩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향땅에 어머니는 어떻게 계시며 동생은 어떻게 사는가?' 이 달 밝은 밤이면은 저 한국 쪽을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시름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 세월을 지내다가 또 그 사람이 아들을, 열둘 가운데에 큰 아들이 썩 또 인물이 좋고 기운이 세고 해서 그 사람에게 또 그 자기의 직책을 다 물려주었습니다.
그때에 이창해의 나이는 칠십 고개를 넘어서 인자는 은퇴를 해 가지고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낚시질이나 하고 그렇게 참 소일(消日)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나 가지고는 쏜살같이 그 배가 달리고 달려가지고는 도착을 해서 잘 살펴보니까 한국에 강원도 고성(高城), 그 총석정(叢石亭) 있는 데에 도착을 했다 그 말이여.

그이가 본래 고성 사람이라, 그 강원도 뭐 십이경(十二景)인가 해 가지고 그 명승지(名勝地)를 다 두루 돌라봤기 때문에, 그러고 고향 지방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가 총석정이라 한 것을 알고서 그 인자 이...
근데 옷만 좀 젖었지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이 어떻게 그렇게 참, 이 요새 참 비행기처럼 빠른 그런 배가 달리듯이 그렇게 무사하게 동해(東海)를 건너서 총석정에 도달했다 그 말이여.(34분33초~1시간11분5초)




(3/3)----------------

그래서 기어올라 가 가지고는 '요가 내 거시기인데 여까지 왔으니...'
옛날에 자기 어머니 따라서 낙산사(洛山寺) 기도를 다니던 그 생각을 하고 '낙산사나 한번 가 보리라' 그래 가지고는 낙산사 쪽으로 인자 서서히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오는데, 와서 요리 보더니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보아 하니 당신은 일본 사람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서 일본 사람이 여기를 왔소?" 하고, 창해 보고 물어보니까, "내 입은 옷은 일본 옷이나, 사람인즉슨은 조선(朝鮮) 사람이오"

"조선 사람이 어떻게 일본 옷을 입고 요렇게 여그를 서성거리고 있소?" 한게, 자기 얘기를 주욱 했습니다. 하니까 그 사람이, "형님!" 하면서 달라들면서 그러니께,
"여 왠 사람이 멀쩡히 남보고 형이라 그러요?" 하니까, 자기가 남양(南陽)이라고 하는, "남양입니다. 내가 남양입니다" 한게, "하! 니가 남양이냐?"

그 창해(蒼海)에게는 남양(南陽)이라고 하는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남양이 왜 거기를 왔었냐 하면, 그 창해의 어머니가 오씨(吳氏)인데, 오씨는 평소에 불교의 신심(信心)이 돈독(敦篤)해서 항시 소원이 있으면은 그 낙산사에 와서 기도를 하고 집에서도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더욱이 그 창해가 제주도 목사로 떠난 날부터서는 더 열심히 기도를 하고, 또 그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전몰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서는, 그날 그 폭풍 일어나서 배가 파손이 된 그날을 기(期)해서 꼭 낙산사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또 천도를, 제사를 지내고 그렇게 하다가, 그 오씨는 연만(年晩)해서 작고(作故)하고, 그 둘째 아들인 남양에게 유언(遺言)을 해서 "니가 꼭 그날에는 낙산사에 가서 꼭 기도를 하고, 니 형의 제사를 지내라. 그리고서 살아 있으면 반드시 돌아오고, 죽었다면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도록 부처님께 기도를 해라. 그리고 고기를 사서 방생(放生)을 해라"

이렇게 유언을 해 가지고 그 남양이 그 어머님의 유언을 받아가지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데, 해필 그날이 그 창해가 제주도 목사로 부임하러 떠나다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던 바로 그날이다 그 말이여. 그날 총석정에 도착해 가지고 동생과 상봉(相逢)을 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여러분, 관세음보살을 평소에 지극히 염(念)한다든지, 고왕경(高王經)을 독송(讀誦)을 한다든지, 또는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기도를 한다든지,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신수기도(身數祈禱)를 정성껏 한다든지,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한결같은 마음, 정성(精誠)스러운 마음,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공(功)을 들이고 치성을 하고 기도를 하면 이와 같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성현의 가피(加被)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 이와 같은, 이보다도 훨씬 더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은 예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셔서 기도하신 여러분들도 '칠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또 그럭저럭 지내자' 이러시지를 말고,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행동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그 일들 자체가 낱낱이 다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남편을 잘 뜻을 받들어서 내조(內助)를 잘하고, 또 남편은 아내의 그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와 정든 집을 떠나서 자기 하나를 믿고 내 집에 온 사람이니, 내 집에 와서 참 이 고생 저 고생 다하면서 아들딸 낳아서 내 집에 대(代)를 이어주는 사람이니 참, 마음으로 항시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고생을 하면 그 따뜻한 마음 말 한마디로—미안한 말이지만 여자는 말 한마디로써 그 가슴 아픈 것을 어루만질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써 독사(毒蛇)를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 되는 사람은 좋은 선물을 사다준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평상시에 그 아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괴로울 때, 따뜻한 눈매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써 씻은 듯이 그 괴로움을 씻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전(經典)에 보니까 부처님께서도 '아내에게는 선물을 가끔 해라' 하셨습니다. 물론 반지라든지, 목걸이라든지, 의복이라든지, 손가방이라든지, 신발이라든지, 그 종류는 각양각색(各樣各色) 다양할 것입니다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따뜻한 말 한마디는 돈 한푼 들이지 아니하지만 효과는 백배인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왜 그렇게 소중하냐 하면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 있는 곳에 따뜻한 말이 있고 또 따뜻한 마음 있는 곳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선물도 거기에서 다 나와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설사 썩 이쁘지 아니하고, 썩 훌륭하지 못한 아내라 할지라도 남편이 대장부(大丈夫)의 풍도(風度)를 가지고 잘 다스리고 잘 이끌어나간다면 훌륭한 아내가 되어서 내 아들딸을 잘 낳아서 잘 길러줄 것이요, 내 살림을 잘 보살피고 잘 일궈줄 것이며, 내 가문(家門)을 빛내주는 훌륭한 반려자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맨 부인보고만 잘하라고 말을 하고, 남편 잘하란 말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맨 여자만 갖다가 막 짓밟고, 무조건하고 남편을 잘 섬기라고 그런 거 아니냐?' 나한테 와서 따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마는, 가만히 보니까 항시 '저 소리를, 남편 잘하란 말도 가끔 해야 남편이 나한테 잘 할 텐데, 죄 없는 고생하는 여자만 갖다가 자꾸 잘하라고... 불공평하다' 그러한 생각을 속으로 듣고 나를 쳐다보고 계신 것 같애서, 내가 오늘은 남자 분한테도 내가 부인한테 잘하라고 한 말을 부처님의 말을 빌려서 내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돈도 중요하고 권리도 중요하고 모든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 부부간에 화목을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고기를 못 먹고 소채(蔬菜)에 밥을 먹고, 밥도 못 먹고 죽을 쒀 먹더라도 내외간(內外間)에 화목을 하고 부지런히 산다면 머지않아서 또 재산도 생기고 또 복이 돌아올 것입니다.
명예도 있고 권리도 있고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부부간에 밤낮 싸우고 입으로 싸우고 나중에는 살림을 때려 붓고, 다음에는 발길로 차고 몽둥이로 패고 해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다면 머지않아서 그 집은 재앙이 닥쳐오고, 소유하고 있는 재산도 복도 다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한 나라도 서로 상하(上下)가 합심이 되어서 나라를 위한,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 국민이 단합을 한다면 아무리 작은 나라도 이웃나라에서 침범을 못하고 그 나라는 결국은 발전을 해서 참 좋은 나라가 되는데, 한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 화목으로써 단합을 해야 복이 돌아온 것이지, 싸우고 부시고 때리고 해 가지고 무엇이 되며, 아들딸들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기도를 열심히 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그 때를 잘 봐야 하고, 장소를 잘 알아차려야 하고 그렇게 해서 지혜롭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소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금년 일 년 동안 또 이렇게 이 신수기도를 시초(始初)로 해 가지고 일 년을 단단히 실속 있게 알차게 보람 있게 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복을 부르느냐, 재앙을 부르느냐'는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도 관계가 있습니다마는, 금생(今生)에 내가 어떻게 노력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는 그것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를 하고, 기도의 입재(入齋)와 회향(廻向) 때 법(法)을 설하는 것은 그러한 까닭인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대로만 받고만 만다면 우리는 아무런 기도도 할 것이 없고, 노력도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장래는 전생에 지은 바와 금생에 노력 여하가 합해져 갖고 우리의 앞에 모든 것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미 전생에 지은 것은 부처님께 참회를 하려니와, 앞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 한 문제에 대해서는 온통 우리 자신들에게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일 년 동안을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음을 가다듬고, 시시때때로 그림자 없는 채찍으로 스스로를 경책(警策)하면서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한 걸음도 퇴전(退轉)함이 없이 노력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문일귀원최적담(問一歸源最的談)이여  작가친대칠근삼(作家親對七斤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헌디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기를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닜고?,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여쭈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내가 청주 땅에서 베적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참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되어서, 우리는 왜 '모든 법이 다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하고 묻는데 대해서 엉뚱하게 '내가 청주 땅에서 적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다'
도저히 우리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써는 종잡을 수가 없고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사량분별로 따질라고 하면은 이것은 얼토당토않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최상승학자(最上乘學者)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여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이나, 소금을 물에다 넣으면 그 물에 녹아버린 소금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다. 맛을 보면 바야흐로 짭짤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소금을 아무리 많이 타도 눈으로 봐 가지고는 도저히 맹물인지 소금물인지, 짠지 싱거운지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월에 간장을 모다 담으시게 되겠지만, 짜고 안 짠 것은 눈으로 봐 가지고는 알 수가 없으나, 맛을 보아야 비로소 얼마만큼 짜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못다 한 말을 주장자(柱杖子)에 부탁을 하고 내려가겠습니다.(1시간11분6초~1시간29분35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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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22. 3. 24. 06:58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을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그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이 말씀을 하셨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도(道)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병(病)과 시비(是非)가 바로 이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용258)

(1) 약 21분.

(2) 약 21분.

(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는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오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길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는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오.
봄바람 한(限)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일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이 엄동설한(嚴冬雪寒)과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그 아름다운 향내가 온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만을 하지, 왜 신수기도를 할까?’ 혹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른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 따라서 소승법·중승법·대승법·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그 진리와 계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도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이 법당에, 부처님 계신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산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또 기도 문(門)을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에 돌아와서 또 정법 문중에서 도를 닦을 수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년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업(業)—주로 악업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년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밥 한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와 백체(百體)가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와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한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무를 가꾸려 할 때에 그 뿌리를 잘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그 나무는 잘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채, 아무리 그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그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일—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안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업(業)을 짓지 않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그 마음의 발로(發露)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 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때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그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해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그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 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그 바로 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조실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설(說)해 오신 이 활구참선법.

이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을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그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이 말씀을 하셨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가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이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이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한 집안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왜 사유축(巳酉丑) 생이 그렇게 되고 그 다음에는 또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謹愼)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또 출근을 해야겠고, 또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분40초)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그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잘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또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잘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은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 ‘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면 ‘저것은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


이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일 년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게 됩니다마는, 될 수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될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를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이 7일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이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이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저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그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할 것입니다. 일행이 두 사람 내지 열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도량(道場)에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을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그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그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될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그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는 말은 ‘말을 함부로 해 가지고 그 말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을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가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의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잘 지키기를 병마개 꽉 틀어막듯이 할 것이다. 꽉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그 음식을 한 끼니쯤 안 먹는 것이 낫고, 말을 해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할 때와 안 먹어야 할 것,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아니 해야 할 때를 잘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말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가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이 말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 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병(病)과 시비(是非)가 바로 이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역사(歷史)가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또 복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잘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될 것이고,
꼭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간에, 해야 할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그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20분40초~41분23초)

 

 

 



(3/3)----------------

이 삼재(三災)는 아까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그 구녕은 바로 코 밑에 있는 그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문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잘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이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될 것이며, 나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을 잘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눈에 어떤 형상이 딱!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그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 올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그 한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 저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 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아!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그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 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또 비약을 해 가지고, 또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또 그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또 그 가지에 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런 식으로 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때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그렇게 해서,
선(善)·악(惡)·무기(無記)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이 거기서 이리저리 솜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 설켜 가지고 그것이 또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더 무서운 업(業)을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또 그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가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탁! 귀에 거슬리는 바로 그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몸이 아파도 ‘이뭣고?’ 속이 상해도 ‘이뭣고?’ 배가 고파도 ‘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할 때 맨 처음에 ‘이-’ 소리부터 하는데 『‘이-’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이’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 나간다면, 그 한 생각 한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그 근원에서 딱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그 근본(根本)을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가 있어야 해.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이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해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잘 안되고, 영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정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해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그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이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딴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해 나가면,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더 지혜롭게 더 알뜰하게 화두를 잘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해 나가면,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 삼재(三災)를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범심불식성하구(凡心不息聖何求)리요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甌)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리오
나무~아미타불~

범심(凡心)을 불식(不息)하면 성하구(聖何求)리오.
무릇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범부(凡夫)의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어찌 성과(聖果)를, 성현(聖賢)을 구하리오. 어찌 깨닫기를 바랄 수가 있으리오.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甌)로구나. 공양이 끝나고 산다(山茶), 차 한 잔을 마심이로다.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꽃이 지고 꽃이 피고 한 것을 시절(時節)에다 맡겨 버려. 꽃이 피면 핀 대로, 꽃이 지면 진 대로, 세상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영욕득실(榮辱得失)에 그냥 거기에 맡긴다 그말이여.

거기에 맡겨 두고 나는 내 마음 닦아가는 나의 근본 문제를 충실히 해 나가면,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냐. 어찌 세상에 몇 번이나 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하는 것을 알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의 근본사(根本事)를 방치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고, 꽃 피면 핀다고 거기에 굴림을 받고, 꽃이 지면 진다고 거기에 휘둘림을 받고, 무엇이 흥하면 흥한 데에 휩쓸리고, 무엇이 망하면 망한 데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어찌 참다운 인생이라 할 수 있으리오.

흥망성쇠와 꽃이 피고 지는 데에 일임(一任)해 버리고, 나의 본분사(本分事)에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고 했거늘, 오늘 신수기도 입재를 향해서 본의 아니게 재앙의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41분25초~61분46초)(끝)

 

 

 



----------------(1/3)

*(게송) ‘불불산향만로비~’ ;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 ‘유산(遊山)’ 공안에 대한 삽계익(霅溪益)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1 참고.
鸝(려,여)꾀꼬리,(리,이)꾀꼬리, 鵹와 동자(同字).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 ‘갈마(羯磨)’이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지엽적(枝葉的) ; 사물이나 사건 따위에서 본질적이 아니라 부차적인 부분에 속하거나 관계된 것.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에게 닥치는 3가지 재해(災害). 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이 있으며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든다.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것. 달과 해, 겨울과 여름, 북과 남,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오행(五行) ;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를 이른다.
*술가(術家) ; 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가로판 p117)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송(讀誦) ; 소리를 내어 경(經)을 읽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2/3)

*육적(六賊)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여섯 도적들과 같다’는 뜻이다. (=육진六塵=육경六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6 참고.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래신(本來身) ; 진여불성(眞如佛性).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되풀이되다 ; (같은 말이나 일이)반복되어 행해지다.
*그릇 ; ①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게. ②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게. ③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동서고금(東西古今) ;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를 아울러 이르는 말.
*구녕, 구녁 ; ‘구멍’의 사투리.

 

 

 



----------------(3/3)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재삼(再三) ; 두세 번. 또는 몇 번씩. ‘거듭’, ‘여러 번’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오매(寤寐 잠이 깰 오/잠잘 매)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게송) ‘범심불식성하구~’ ; 법진일(法眞一)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1](동국역경원刊) p253 참고.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때.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영욕(榮辱 영화 영/욕될 욕)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과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득실(得失 얻을 득/잃을 실)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근본사(根本事) ; 참선법을 통해 내가 나를 깨달아 생사해탈을 하는 일.
*일임(一任) ; 모두 다 맡김.
*본분사(本分事) ; ①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일.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거센 물결.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21. 6. 14. 06:16

§((117)) 부처님 당시에 왕의 노모 병환 치유 이야기 / 소원성취하려면 우선 죄업을 참회하고, 나아가서 십선(十善)을 닦아야 / 기도는 정성(精誠)으로,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해야 / 충남 금산 보석사 주지스님 중풍 치료 이야기.
「병은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병자구입(病自口入)하고 화자구출(禍自口出)이라」 / 우리의 목적은 깨달음을 얻는 것 / 나의 안에서, 내가 나를 찾는 거, 참선을 통해서 참나를 깨달은 것 그것만이 오직 영원한 것 / 인과(因果)의 법칙.

**송담스님(No.117)—1980(경신)년 신수기도 회향(80.02.24) (용117) (신수기도)

7분.

 

 

(1) 약 21분.

 

(2) 약 17분.

 


(1)------------------

오늘은 7일 기도에 회향일로써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각기 어떠한 큰 소원과 또 작은 소원, 먼 소원과 가까운 소원들이 각기 있었을 줄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아주 효심이 지극해서, 그 노모(老母)가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노모가 병환이 났습니다. 그 노모 병환을 낫우기 위해서 천하에 명의를 다 모아 가지고 치료를 했고, 좋다는 약은 아무리 비싼 약도 불구하고 만금(萬金)을 주어서 약을 구해 가지고 썼지만, 백약(百藥)이 무효였습니다.
그래서 바라문(婆羅門) 학자들을 수백 명을 초청을 해서 공양을 올리고, 그 바라문 학자들에게 자기 어머니의 병을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문의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리를 깨달은 대학자들이니까 반드시 우리 어머니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실 테니 그걸 좀 일러주십시요"

그러니까 그 바라문 가운데에 한 사람이 우멍하게 눈을 감었다 떴다 하더니, "지끔 하늘에 별들이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혼잡을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 음양의 질서가 흐트러져 가지고 그것 때문에 국왕에 모친이 병환이 난 것이니, 하늘에 태양과 달과 별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되 동물, 코끼리와 소와 말과 양 돼지 등 백 마리를 잡어서 희생으로 바치고, 거기에다가 아주 잘생긴 몸에 흠 하나 없는 소년을 갖다가 생(生)으로 그 희생(犧牲)으로 바쳐서 하늘나라에 제사(祭祀)를 지내면 병환이 낫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를 지내되 성 밖에 넓은 터에다가 제단을 차리고 직접 왕이 그 왕에 어머니를, 대비마마를 모시고 나와서 꿇고 앉아서 제사를 올리십시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믿고서 그러는 준비를 다 했습니다. 해 가지고 제사를 지낼려고 할 때에 부처님께서 가만히 관(觀)을 해 보시니까, 그냥 뒀다가는 백 마리의 그 산짐승과 아까운 소년 하나가 불에 타서 죽을 것을 염려하시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제(祭)를 지낼려고 하는 현장에 나아가셨습니다. 가셔서 법문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무릇 곡식을 얻으려면은 땅을 갈고 씨를 심어서 잘 가꿔야만 곡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고, 장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하려면 마음을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항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죽은 목숨을 살려 주고, 다른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약을 사 주고, 이렇게 해서 자비심을 갖는 것이 자기의 수명을 연장(延長)시키는 최선의 길이니라. 그리고 부귀를 얻으려면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布施)를 하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희사(喜捨)를 해야만 부귀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를 얻으려면은 학문을 열심히 닦아야 지혜가 얻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지혜는 세속적인 지혜도 들어가고, 참으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벗어나서 진리의 지혜를 얻으려면 물론 마음을 비워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되겠습니다마는,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곡식과 장수와 부귀와 지혜를 얻는 방법을 말하셨습니다.

세상에 부자로 사는 부귀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음식과 옷을 주어도 먹지를 않고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부자로 고귀하게 사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그러한 음식을 주어도 잘 먹지를 않는 법이거늘, 하물며 하늘나라에 천신(天神)들은 그 집은 칠보(七寶)로 장엄이 된 궁전에서 살고, 입는 옷은 무겁지도 않고 아주 가볍고 따뜻하고 서늘하고 한 그러한 옷을 입으며, 음식은 감로(甘露)의 음식으로써 얼마든지 먹고만 싶으면 이미 배가 불러져 있을 만큼 그렇게 제절로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인간 세상에 소나 돼지나 말 염소 그러한 추악한 추한 그런 고기를 먹으며 또 사람을 갖다가 바친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그 신들이 그런 것을 먹기 위해서 이 제단에 올 수가 있겠느냐.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 왕도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懺悔)를 하고 또 거기에 모였던 바라문들, 수백 명의 바라문들도 자기들이 그러한 진리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을 국왕에게 일러 가지고 큰 죄를 지을뻔한 것에 대해서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 국왕의 어머니는 그 법문을 듣고 거기에서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마음에 기쁨을 얻음과 동시에 백약이 무효했던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자기의 업, 죄업(罪業)을 참회를 우선해서 해야 한다고 한 것을 이 기도 입재일(入齋日)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참회를 하고 그리고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십선(十善)을 닦는 것이 소원을 성취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기도(祈禱)라 하는 것은 어떠한 절대자에게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나아가서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기구(祈求)를 하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마는, 기도는 마치 산에서 산골짜기에서 고함을 치면 큰 고함을 치면 큰 메아리가 울려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 거와 같이 그 사람의 정성(精誠)이 얼마만큼 철저했느냐, 기도하는 방법이 얼마만큼 바르냐, 얼마만큼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원의 성취 여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충청남도 금산, 옛날에는 전라북도고 지금은 충청남도가 되었습니다마는 금산에 가면 보석사라고 하는 오래된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6 · 25 동란이 나서, 그분은 부인을 데리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마는 6 · 25 동란을 맞아 가지고 부산으로 피난(避難)을 갔습니다. 부산에 금수사라고 하는 절이 있는데 그 절로 피난을 가서 방 한 칸을 얻어 가지고 그 할머니하고 같이 거기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탓으로, 객지에 가서 날씨는 춥고 먹는 것은 센찬코, 도저히 그 고생이 형언(形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로왔던지 중풍병(中風病)이 일어나 가지고 반신(半身)을 쓰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방에서 대소변을 받아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백방으로 서둘러서 좋은 약은 다 구해다가 봉양을 하고, 좋은 의원이 있다고 하면 모셔다가 침(鍼)도 놓고 뜸도 뜨고 약도 쓰고 했지마는 전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석사 그 주지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나을까?' 하고 희망을 가지고 침도 맞고 약도 쓰고 백방으로 다 해 봤지만, 아무리 해 봤자 터럭끝만큼도 효험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병 나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가 하루 더 살면 하루 남을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고 나만 더 괴롭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밥도 굶고, 죽도 안 먹고 그래 가지고 아주 죽기로 결심을 하고서 계속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열흘, 이렇게 해서—누울라야 몸이 아퍼서 누울 수도 없고 그래서 이불을 말아 가지고 벽에다 세워 놓고 그 이불에다 등을 대고 다리를 뻗고 앉어서, 그래 가지고 아주 한시라도 빨리 죽기를 원(願)을 세우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2주일 이렇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루는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었는데 30년 전에 돌아가신 은사 스님이 떠억 찾어와서 "내가 지나다가 니가 여기서 고생을 하고 있다길래 잠깐 들렸다. 니 입은 옷이 센찬쿠나. 이 옷을 입어라" 하면서 조그만한 보따리를 주어서 그걸 끌러서 보니까 아주 얄팍한 얇은 그런 내복이었습니다.

"스님! 지금 아직 날씨가 추운데 이렇게 얇은 것을 입고 어떻게 지낼 수가 있습니까?"
"그래 괜찮다. 보기와는 달라서 이걸 입으면 가볍고 뜨시고 좋다. 그리고 니가 아프다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어디 진맥을 좀 해 보자" 그러면서 팔목도 만져 보고 왼쪽 팔, 왼쪽 다리, 아픈 데를 고로고로 문지르고 주무르고 고로고로 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잘 있거라. 그리고 병 치료 잘해라"
그리고서 그렇게 그 다리 속이 뼛속이 아프고 절리고 했던 것이 그 스님이 이렇게 만지는데 어찌 기분이 시원한 것 같애서 자기도 그 아픈 다리를 주물르면서 요렇게 다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이렇게 드니까 깜박할 사이에 스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있어서 '참 이상하다' 그 스님한테 받은 옷은 간 곳이 없고 스님도 갔고, 그러고 만지고 하면서 있는데, 자기 그 할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나가서 들어오면서 어디서 돌팔이같이 생긴 의원 영감님을 한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분이 중풍병 고치는데 아주 공이 있으신 의원이라"고, "아주 어렵게 찾아서 이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러니 좀 침(鍼)을 좀 맞읍시다" 헌께,
"나는 침 안 맞는다"고, "침 안 맞을 테니까 아주 그분을 보내라"고.

"그래도 여까지 왔으니까 한 번만 맞아 보라"고 하도 사정을 해서 '인자는 내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스님이 와서 흰옷을 주고 간 것이 아무래도 나가 인자 오늘 죽거나 오래 살아도 수삼 일 이내에 내가 죽을 것이로구나. 내가 죽을 꿈을 그렇게 꾸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기왕 죽는 몸에, 죽는 김에 저렇게 그 마누라가 저렇게 서리가 부옇게 내린 새벽길에 나가서 의원을 저렇게 모시고 온 그것이 참 고마와서 그 사람 가슴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소원으로 이거 침을 맞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그러면 침을 놓으시라"고, 그래서 그 의원이 여기저기 몸에다가 수십 대 침을 놓았습니다.

놓고서 "어디 팔을 한번 들어 보라"고.
"그렇게 침을 맞고 약을 먹고 해도 낫지 않는 팔이 들어지겠습니까? 안 들어집니다"

"아니, 그래도 한번 들어 보라"고 하면서 의사가 그 노장님 팔을 쑥 들어올렸습니다. 뜻밖에도 팔이 들어올려지고, "다리도 한번 들어 보라"고. 다리도 딱 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원이 "그것 보라"고. "내 침이 보통 침이 아닌데, 아! 그렇게 그 팔이 움직여지고 다리가 움직여지는데 왜 안 들어진다고 하냐"고 아주 그 의원이 자기의 그 침이 그렇게 영험이 있다고 하는 것을 자랑삼아서 기고만장(氣高萬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장님은 '니가 침 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까 꿈에 그 스님이 와서 주물러 주어서 그래서 나은 것이지, 니가 가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그 자기 침 때문에 나은 줄 알고 야단이다'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인사로 "참 고맙다"고. "덕분에 이렇게 몸이 많이 효과가 있다"고 그렇게 인사를 하고 그분을 보냈습니다. 그 뒤로 그 노장님 병이 완쾌하게 나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산에 피난살이를 어느 정도 끝내고서 서울에 삼각산에 그 금선암이라고 하는 절을 짓고 10여 년간을 아주 건강하게 잘 사시면서 '이미 내 몸은 10여 년 전에 6 · 25 때 이미 죽은 몸인데,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내가 다시 살아났으니 이 몸뚱이는 내 몸이 아니라 오직 이 불법(佛法)을 펴기 위해서 일생을 마쳐야 할 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지막 80여 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신도 교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화로써 어째서 그러면 중풍, 세상에 중풍을 염불(念佛)해 갖고 중풍이라고 하는 그런 병이 나았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조끔 안 믿어지실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마는 염불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정말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그러한 중풍병 뿐만 아니라, 문둥병과 같은 그러한 병도 나은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보석사 주지 스님은 어째서 어떻게 했가데 병석에 앉아서 그렇게 했는데, 그런 무서운 중풍병이 나았느냐?

첫째는 '살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죽을려고 마음을 냈다' 죽되 왜 죽을라고 하느냐?
자기 몸이 괴로와서만이 아니라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해 줘야 하거늘 내가 육십 평생을 중노릇을 한 사람이 나로 인해서 저 나이 많은 마나님을 갖다가 저렇게 고생을 시키고, 이 피난살이에 그냥 와서 한쪽에 있는 것도 큰 폐가 되는데, 이러한 반신불수(半身不隨)의 병이 되어 가지고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똥오줌을 싸고 냄새를 피우니 이 부처님께나 이 절 주지 스님에게도 그러한 죄가 될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겠다' 이러한 마음을 가졌고.

또 하나는 단식(斷食)을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병이 나면 어쨌던지 먹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먹고, 정신을 차리고 원기를 보충을 해야만 병이 빨리 낫는다고 생각합니다마는 단식(斷食)을 한다고 하는 거, 단식을 하는 것이 어떠한 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18분42초~39분11초)




(2)------------------

짐승들은 병이 나면, 소나 말이나 돼지나 병이 났다 하면은 단식을 합니다. 입을 딱! 다물고 아무것도 먹지를 않습니다. 먹지 아니함으로써 한 사흘쯤 굶으면 어지간한 병은 다 낫습니다. 병이 나은 다음에사 비로소 돼지나 개나 소나 말이나 음식을 먹습니다.

짐승은 병이 나면 단식해 가지고 스스로 자기 병을 낫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리석게 영리해 가지고 병만 났다 하면 그렇게 먹기 싫고 귀미[口味]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먹어 가지고, 병(病)을 밥상 밑으로 내쫓는다 해 가지고 억지로 먹어 가지고 끌끌거리고 소화가 안 되고, 맛이 없으면 소화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은 영양이 흡수가 되지를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지로 대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그 기력 없는 기력을 더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으면 활발하게 소화 작용이 벌어지고 또 흡수를 해 가지고 노폐물은 배설을 하고 영양은 섭취를 해 가지고 전신으로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병이 나면 그러한 일들이 병나는 데로 모든 피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동원되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고 배설할 수 있는 그러한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음식이 들어와도 소화도 못 시키고 흡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는 자동신호가 바로 '귀미(구미)가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귀미가 떨어지면, '아하, 이거 먹지 말라 라고 하는 몸안에서의 소식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어디가 아퍼서 귀미가 떨어지던지 또는 속이 되게 상해 가지고 입맛이 뚝 떨어지던지, 무슨 근심 걱정이 있어 가지고 밥이 먹기 싫던지, 이럴 때에는 밥을 굶으십시요. 그리고서 냉수를 한 컵 마시세요. 이렇게 하면 병이 났다 하더라도 빨리 치유가 되고 또 체하는 법도 없고.
속이 되게 상할 때 밥을 억지로 먹어 놓으면 담방 체해 가지고 끌끌거리고 소화도 안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여러 날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요새 귀여운 아들과 딸을 가지신 분들은 애들이 아침에 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이걸 어떻게 달래고 타일르고 해 가지고는 억지로 먹여서 보낼라고 야단입니다. 이건 우리도 어렸을 때 겪어봐서 압니다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먹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안 먹으려고 하는 애들은 잘 달래서 물이나 한 컵 먹여서 보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유도 좋지를 않고 계란도 좋지 않고, 더군다나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여서 보내 놓으면 좋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될 수 있으면은 혹 귀미(구미)가 있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은 모르지만, 먹기 싫거든 언제든지 먹지 마십시요.

우리가 일생 동안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열 가마니나 또는 스무 가마니 딱! 지정이 되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먹는 양을 많이 먹으면 그 지정된 자기의 식량이 빨리 없어질 것이고, 조끔씩 먹고 또 먹기 싫을 때 안 먹고, 병이 났을 때 안 먹고 또 아침에 안 먹고 무슨 핑계를 대서든지 그거 식량을 아껴서 먹으면 그것이 바로 육십 세까지 다 먹을 것을 그렇게 해서 평소에 조끔씩 먹고, 귀미 없을 때 안 먹고 또 아침에 안 먹고, 기분이 나쁠 때 안 먹고, 슬플 때 안 먹고 해서 자꾸 핑계를 대서 적게 먹으면 육십 세밖에 못 살 사람이 칠십 세도 살 수 있고 또 팔십 세도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돈을 아껴서 쓰면 오래 쓰고 막 함부로 쓰면은 빨리 바닥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우스게 말로 들으실는지 모르지만, 적게 먹되 그것을 잘 소화를 시키고 완전히 흡수를 하면은 그것이 좋은 것이고, 많이 먹되 소화도 잘 못 시키고, 흡수도 잘 못하고 잔뜩 대변만 많이 누면 이것은 몸만 괴롭게 하고, 아까운 곡석[穀食]과 음식물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며, 나아가서는 건강도 나빠지고 수명도 단축하는 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병자구입(病自口入)하고 화자구출(禍自口出)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이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 하는 말은 음식물을 통해서 많은 병이 생긴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재앙이 왜 입에서 나오느냐? 말조심을 하지 아니하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모든 재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에 말 잘못해 가지고 죽는 예가 많고, 부부간에 얼마나 많은 싸움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일어나고 농짝을 때려 붓는 예가 많은 것입니다.
말이라 하는 것은 형제간에도 말 때문에, 일가 간에도 말 때문에, 친구 간에도 말 때문에 새이가 벙그러지고 웬수가 되는 예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은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 하는 말씀이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아주 내 몸을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참선을 할 때에 무아(無我), 무아의 경지를 겪어야만 깨달음에 도달한다. 또 기독교에서는 '나의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에게 다 바치고. 나는 죄 많은 중생이요, 아무 힘도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 전체를 다 바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려고 마음먹을 때에 그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구제를 받는다' 하는 교리와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칠 일 동안 가정에서 또는 이 법보선원에 나오셔서 각기 열심히 기도를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도를 아까 이 보석사 주지 스님처럼 완전히 부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다 맽기고, 나의 모든 죄를 참회(懺悔)를 하고 그렇게 간절히 하셨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신 크고 작은 소원은 반드시 성취가 될 것을 저는 보증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목적, 부처님 제자로서의 목적은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은 아무리 내 뜻대로 얻어졌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밖에서 구해서 얻은 것은 반드시 밖으로 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안에서 나의 안에서 찾아야만 그것은 영원한 것인 것입니다.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무엇이고 밖에서 얻은 것은 언젠가 밖으로, 남이 훔쳐 가거나 빼앗아 가거나 제절로 나로부터 떠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안에서 찾는 거 '이뭣고?' 내가 나를 찾는 거, 참선 공부, 참선을 통해서 참나를 깨달은 것 그것만이 오직 영원한 것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 참선을 할 때 그것을 열심히 하면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그런 것은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은 제절로 다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를 등한히 하고 그리고서 밖으로만 명예와 권리와 재산을 구하는 사람은 설사 일시적으로 얻어졌다 하더라도 정말 나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맨들어 놓고 떠날 때가 꼭 있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필요한 만큼은 얻어지고, 설사 얻어졌다가 그것이 나로부터 떠난다 하더라도 그 떠난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내가 불행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행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썩 행복해질 것도 없고, 그것이 이르러 오면 이르러 온 것에 따라서 적절히 나를 위해서 쓰고, 자손을 위해서 쓰고, 가정을 위해서 쓰고, 또 남을 위해서도 쓰고, 사회 국가를 위해서도 쓰는 것입니다.
쓴 만큼 쓰다가 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해서 그것이 또 나로부터서 떠나면 떠난 대로 검소하게 살며, 많이 생기면 많이 생긴 대로 적절히 쓰고 또 적게 생기면 적게 생긴 대로 적절히 쓸 따름이지,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우쭐대고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 외에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으시대고 행세를 하다가 그것이 떠나면 하루아침에 불행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풀이 죽어 가지고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돈은 억지로 욕심을 부리면서 남을 해롭게 하면서 억지로 벌려고 한다고 해서 벌어지지를 않습니다. 자기의 분복(分福)이 있어서 부자로 살 사람은 오백 석 할 사람은 오백 석 하고, 천 석 할 사람은 천 석 하는 것이지, 오백 석밖에 못 할 복밖에는 없는 사람이 눈에다 불을 쓰고 칼을 두르고 휘두른다고 해서 그것이 천 석이 절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이뭣고?만 하고 돈벌이도 하지 말고 장사도 하지 말고, 그러면 눈만 감고 밤낮 앉았으면 내외간에 그래도 되냐?'
그것이 아닙니다. 세속에 사는 사람은 자기의 기술과 형편에 따라서 적절한 직장을 가지고 충실하게 성실히 일을 해야 합니다. 농사를 짓건, 장사를 하건, 관공서에 나가건, 회사에 나가건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이행을 하면서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얻어지는 재산을 또 유용하게 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항시 마음으로는 '이뭣고?' 화두를 해서 마음에 양식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얻어지는 것으로는 육체를 육체와 가정을 돌보지만, 참선을 통해서 자기의 영원한 마음을 잘 닦고 가꿈으로 해서 앞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육칠십 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돌아오고 맙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물질적인 육체에 지내지 못하고, 육체가 고장이 나면 그 육체를 버리고 다시 또 새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천상의 옷을 갈아입든지, 인간의 옷을 갈아입든지, 짐승의 털 난 가죽옷을 입든지, 뱀과 같은 파충류의 옷을 입든지, 귀신의 몸을 받든지, 지옥의 신세가 되든지, 모든 것은 자기가 어떻게 짓고 닦고 살았느냐 한 것에 따라서 그러한 옷이 자기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인과(因果)의 법칙은 추호도 어김이 없는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그러한 지극히 과학적 사실에 지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과의 법칙을 우리의 눈앞에서 현실적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인과의 법칙을 미루어서 생각하면 전생(前生) 일도 또한 내생(來生) 일도 환히 다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어서의 일 초 일 초가 모여서 결국은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서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미래가 약속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을 바르게 그리고 충실하게 사는 사람만이 자기가 금생 동안에 죽을 때까지의 자기의 운명도 결정되려니와 이 몸을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내생에 저 내생, 무량겁을 두고의 자기의 운명도 오직 현생(現生)의 한 생각 한 생각이 중대한 원인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39분11초~55분5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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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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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21. 2. 18. 14:33

§((066)) 기도 · 염불 · 독경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方便) / 강을 건넜으면 배[방편]는 버려라. 사교입선(捨敎入禪) / '한 생각' 단속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 / ‘참을 인(忍)’ 한 생각.

'한 생각' 단속해 나가는 법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 /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 그 지혜를 바탕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참선은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지식 유무(有無),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이—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 / 무슨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공부에 몸과 목숨을 다 바칠 만큼 절실해야 한다.

삼요(三要), 신념, 분심, 의심 /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라 /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 빨리 버리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
「이뭣고?」 이 한마디가 팔만사천 마구니, 팔만사천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만든다 / 언제 어디서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심산유곡이요, 선방(禪房)이 되는 것.

**송담스님(No.066)—1978년(무오년) 신수기도 회향(78.01.09.음) (용066) (신수기도)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6분.


(1/3)----------------

무오년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사대부중(四部大衆), 법보제자 여러분들께서 더욱 몸 건강하시고, 모든 크고 작은 소원 차례로 성취하시고,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신심견고(信心堅固)하셔서 참선 공부 잘해 가지고 결정코 이 몸으로 견성해탈(見性解脫)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러한 뜻으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초삼일부터 초아흐레 날까지 7일 동안을 전강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연례행사로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해 내려왔습니다. 금년도 역시 날씨가 그렇게 강추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께서 이 7일 기도에 참여하셔서 정말 성심성의껏 기도를 봉행했습니다. 이 공덕으로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을 저는 간절히 바라고 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도라든지, 염불이라든지 또는 경을 읽는다든지, 주력을 한다든지 이러한 것이 전부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方便)의 하나입니다. 염불 · 독경 · 기도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반드시 정법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고, 마침내는 정법에 들어가서 나를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가지나 되는 많은 법(法)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중생이 각기 자기의 근기(根機) 따라서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지 걸려들기만 하면은 드디어 정법 문안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차례차례 층계를 놔 놓으셨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그 문에 들어오셔 가지고 들어오시자마자 금방 정법에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듣고 참선을 하실 수 있는 그러한 선택된 부처님 제자가 되신 것을 나는 진심으로 환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법을 만나지 못하고 계속 그 방편문에만 걸려 가지고 3년, 5년, 10년 내지 일생을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그 방편의 단계에서 머물러서 계속 눈앞에 조그마한 복(福), 오욕(五慾)을 충족시키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충족시키는 그러한 데에 머물러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러한 가엾은 그러한 신도들이 아직도 한량없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설한 이 법은 강을 건널 때 사용하는 떼배와 같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떼배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는 데 꼭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소중한 기구입니다. 그 배가 없으면은 그 넓은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배는 필요한 것이지마는 일단 그 강을 건너고서는 그 배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고 나서도 그 배를 계속 버리지를 못하고, '그 배로 인해서 내가 이 강물을 건넜으니까 얼마나 고마웁고 소중한 것이냐, 그러니 나는...' 이 배를 버리지를 못하고 계속 육지를 다니면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육지를 돌아댕기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은 우습고도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계신 어느 불자(佛子)라도 전부 오늘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는 그러한 작은 배, 조끔 더 큰 배, 한량없이 여러 개의 배를 타고 또 물을 건너고 또 타고 물을 건너고 해서, 오늘 이 자리에 까지 오셨습니다. 이 자리는 배를 짊어지고 걸어 다니는 그러한 장소가 아니라, 그 많은 배들을 깨끗이 그 강가에다가 버리고서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이 맨몸으로 이 자리에 나오셔야 됩니다.

그릇 속에 물건을 담을 때, 그 그릇 속에 어떠한 물건이라도 그릇 속에 채워져 있으면 그 그릇은 다른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릇은 담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필요할 때 담고 또 그것을 바로 비워 놓아야 그다음에 더 좋은 것을 또 담을 수가 있는 거와 같습니다.

참선은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 모든 살림살이 모든 얻은 바를 깨끗이 버림으로써 바른 참선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수십 권, 수백 권의 경(經)을 다 읽어서 능히 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힘을, 그러한 능력을 속에다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은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육두 백판으로 다 외우고 다 능히 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심(衆生心)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나의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금가루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 금가루를 눈에다 집어넣었을 때에는 그 눈은 병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밥이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있을 자리 가 있어야지, 밥이 기도(氣道)로 콧구먹으로 들어간다든지 눈 속에다 집어넣어 가지고서는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한 말씀 한 말씀 다 참된 말씀이고 소중한 말씀이지마는, 그것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잠깐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하고 바로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古人)이 말씀하신 사교입선(捨敎入禪)입니다. '교(敎)를 버리고서 선(禪)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아까 순치황제가 중국에 천자(天子)로 19년 동안이라고 하는 세월을 참 훌륭하게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한 천자가 하루아침에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 순치황제의 출가하셔가지고 읊으신 시(詩)를 전강 조실 스님께서 그 일부를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그 순치황제는 전생에 인도(印度)에서 도를 닦던 한 참선하는 스님이 어쩌다가 '한 생각' 잘못 먹어가지고 중국에 천자로 태어났습니다.

도를 닦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한 생각 자칫 잘못 먹어가지고 일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한 생각 잘 먹어가지고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우습게 알고 그럭저럭한 한 생각을 우습게 알고 그럭저럭 그렇게 해서 일생을 지내가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중생의 생애이지마는 제일 소중하고 무서운 것은 이 '한 생각'인 것입니다.

금은보화,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심결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을 어떻게 잘 단속을 해 나가느냐? 하는 그 문제야말로 우리의 무량겁을 두고 윤회(輪廻)해 내려오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가깝게 봐서 일생 동안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불행하게 살 수도 있는 그러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외출을 했다가 여러 날 만에 집에를 돌아왔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등잔불이 어슴프레 켜진 가운데에 자기 아내가 어떤 스님하고 한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대번에 분이 나가지고 부엌에 쫓아가서 식칼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두 사람을 칼로 요절을 내려고 하다가 잠깐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생각을 했습니다.

오다가 길가에서 어떤 사람이 보따리를 피어 놓고 떠억 사주(四柱) 관상(觀相)을 보고 있는데, 자꾸 그 사람이 “여보시오, 여 사주 하나 보고 가시오”
“아, 나, 사주 그런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한 번만 보고 가시오”
“에! 안 본다”고.

“거저 봐줄 테니 한 번만 보고 가시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러면 좀 봐주시오”

"당신..."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별말 안 하고 ‘참을 인(忍)’ 자, 하나를 손바닥에다가 떠억 먹으로 써줬습니다. “이것을 절대로 물로 씻지 말고 닦이지 않도록 가서, 어떠한 큰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이 손바닥을 반드시 펴 보시오"

아, 그런 일이 문득 생각이 나가지고 ‘우선 칼로 목을 먼저 찌를 것이 아니라, 대관절 어떠한 사연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한번 알아보고 죽여야지, 자고 있는 놈을 다짜고짜로 목을 찌를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칼을 한 손에다 쥐고서 이불을 걷어 제끼니까, 깜짝 놀래 가지고 두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바른대로 말해라, 너는 이놈 어떤 놈이냐?”
그러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이 사람은 남자 스님이 아니라, 친정 사촌동생이 과부가 되어가지고 출가를 해서 중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여기를 지내다가 내 집에 들려서 이야기하다 오늘 하루저녁 자게 되었다”고.

아! 그래서 그 손에다가 써진 ‘참을 인(忍)’ 자를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보고, 평생토록 그 ‘참을 인(忍)’ 자를 손바닥에 써진 그 ‘참을 인(忍)’ 자를 마음속에다 새기고, 다시는 그러한 경솔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해 가지고 그렇게 신경질을 잘 내고 그렇게 경거망동을 하던 그 사람이 일생 동안을 참 신중하고 아량이 있는 그러한 인격자가 되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 생각 잘못 먹으면은 아내 죽이고, 그 스님을 죽이고, 자기도 사형을 당해가지고 그 집안이 쑥대밭이 될 그러한 중대한 문제, 그것이 바로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아! 그 사주는 보아야 하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그것은 생각을 잘못 생각하신 것이고.

신수기도를 일주일 동안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습니다마는 이 신수기도를 우리 절에서 안 하면은 이 가운데에 계신 대부분 보살님네들은 모다 무당절, 또 가서 법문도 듣지도 못할 그러한 절에 가서 별별 이상스런 그 부작(符作) 같은 것을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하고,
그리고 겁나는 협박적인 그러한 말을 한마디씩 듣고서 돈은 빼앗기면서 일 년 동안을 전전긍긍 불안에 떨면서 살지 아니하면 안 될 그러한 구렁텅이에 빠질까 두려워서, 신수기도를 우리 법보선원에서도 봉행을 하고 그리고서 입재(入齋) 때와 회향(廻向) 때에 정말 부처님의 정법을 여러분들에게 설(說)해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러한 삿된 구렁텅이에 빠질 것을 미리 방비하고, 나아가서 일 년 동안을 정말 바른 신심으로 안심하고, 장애 없이 잘 사시는 길을 여러분들에게 열어드리기 위해서 신수기도를 봉행한 것입니다.(처음~18분30초)




(2/3)----------------

'선방에서 무슨 기도를 한가? 기도는 참선하면은 그만이지 무슨 기도를 한가?'
여러분 가운데는 오래전부터서 참선을 하셔서 어떤 것은 방편(方便)이고, 어떠한 것은 정법(正法)인가를 잘 아시는 분들은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어떠한 방편이라도 바른 법을 가지신 분이 쓰면은 그 방편이 바로 정법이 되는 것이고, 아무리 부처님이 설하신 법이라 하더라도 삿된 사람이 쓰면은 사법(邪法)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정의를 가진 사람이 들면은 사람을 살리고, 국가와 민족을 살리고 할 수 있지마는, 도적이 삿된 도적이 그 칼을 가지면은 선한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큰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법(法)도 또한 그러해서 바르게 쓰면은 좋은 법이 되지만, 악한 사람이 잘못 쓰면은 많은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7일 동안 정성스럽게 잘 마쳐서 과거에 여러분들께 조그마한 허물이라도 또는 많은 허물이라도 있으신 분은 이 기도를 통해서 깨끗하게 소멸(消滅)이 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고, 그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서 기도를 하시고 다시 일 년 동안을 정법에 의해서 수행을 잘하실 것을 다짐하셨기 때문에 새로 죄를 짓지 않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도하는 동안 십악참회(十惡懺悔)도 아울러서 계속해서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저 가을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랗게 트인 가을 하늘처럼 그렇게 숭고하고, 청정하고 깨끗한 그러한 마음자리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자리가 앞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단속만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단속해 나가는 법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인 것입니다.

달마스님 『혈맥론(血脈論)』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섭(攝)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 하는 것은 바로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선만 하면은 일체 행(行)이 그 가운데 다 제절로 갖추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대승(大乘)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 것이 대승보살의 과제입니다마는 그 육바라밀이 첫째, 보시(布施)를 할 것, 둘째, 계율(戒律)을 지킬 것, 셋째에 인욕(忍辱)을 할 것, 넷째에 정진(精進)을 할 것, 다섯째에 선정(禪定), 마음을 고요히 할 것, 여섯째, 지혜(智慧)를 닦을 것. 이렇게 육바라밀, 여섯 가지 저 언덕에 건너가는 좋은 법입니다.
그 여섯 가지 중에 무엇이 제일 소중하냐? 전부가 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맨 끝에 있는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입니다.

지혜는 어디로부터 나왔느냐? 참선(參禪)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보시라야 그 보시는 옳은 보시가 되는 것이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계율이라야 그 계율은 참으로 옳은 계율이 되는 것이여.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인욕이라야 그 인욕이 참 바른 인욕이며,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진이라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선정이라야 다 옳은 법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를 했댔자 그것은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못한 것이고, 계율을 지켜도 지혜가 없이 지킨 계율은 천상에는 태어날 수 있지마는 금방 복(福) 다 받으면 다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욕도 지혜 있는 인욕이라야지, 어리석게 억지로 참기만 위주로 해서 한다면 단박 가슴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골치가 아프고, 가슴앓이 속병이 생겨가지고 결국은 병만 쳐주고, 그 억지로 참은 것이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일생 동안을 억지로 참다 보면 나중에 여러 번 참다가 그놈이 축적이 되어가지고 터질 때는 무서운 위력을 내가지고 자기 신세 망치고, 집안을 쑥대밭을 맨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환자가 되어가지고 늙발에 한숨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우리에게 급(急)한 것은 그 지혜가 제일 급한 것입니다.
그 지혜를 얻는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 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지식의 유무(有無)도 상관이 없고,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습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면은 '꼭 절에 와서 그래가지고 조용하니 죽비(竹篦)를 치고 앉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일이 많아서 참선은 못 합니다' 이렇게 노상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참선은 일이 많고 적고 그것도 상관이 없고, 차 속이나 또는 시장 바닥이나 가정이나 또는 절이나 어디서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참선은 앉고 눕고 또는 서서 걸어 다니고 그러한 위의(威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누웠어도 생각은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앉었을 때에도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이 번갈아 드나들고, 걸어 갈 때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만큼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악한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무슨 슬픈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무슨 생각 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일어나는 생각 그놈을,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괴로운 생각, 억울한 생각, 슬픈 생각 그러한 생각이 속에 꽉 차 가지고 그 생각을 없애야만 참선이 될 텐데,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못한다' 이리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아직 참선하는 법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슬픈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무엇이 들어서 그 슬픈 생각을 하는가? 「이뭣고?」
몸이 아파도—'몸이 아파서 공부를 못합니다'—몸이 아픈 줄 아는 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여. 무엇이 그렇게 아픈 줄을 아는가? 그 아픈 줄 아는 생각만 있으면은 그 사람은 참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외롭고 괴롭고 슬프고 노여움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참선을 잘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을 합니다.
슬픈 생각도 없고, 괴로운 생각도 없고, 억울하고 분한 생각도 없는 목석(木石)처럼 그러한 사람은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가지고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이나 갖다 놓을까, 아무 쓸데가 없죠?

그러나 욕하면 썽낼 줄 알고, 신경질도 잘 내고, 슬픔에 가슴이 꽉 차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행복이 무엇인 중을 모르고, 육체적으로 온갖 병이 들어 있고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아가지고 정말 정신과 육체가 한목 병들어서 죽을 길밖에는 없다고 이렇게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일수록에 이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서 바른 스승을 만나가지고 죽을 셈 치고 대들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사람이 훨씬 더 도(道)를 깨닫기가 쉬웁고 좋은 것입니다.
그만한 인생을 전부를 아주 포기할 그러한 막바지에 도달한 그 사람은 한번 이 문에 들어와서 정법을 만났다 하면 다시는 다른 데에 정신을 빼앗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누구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면 될 수 있는 것이고, 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마는 정말 이 몸과 목숨을 다 바치고 다시는 딴 데 한눈을 팔지 아니할 만큼 그만큼 절실한 사람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 점이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할려면은 첫째, 나도 하면, 나도 옳은 법을 배워 가지고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금생에 결정코 깨달을 수가 있다. 내가 지금 울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눈으로 볼 줄도 알고, 괴로워할 줄도 아는 바로 이놈이 나의 불성(佛性)이요, 나의 마음자리다. 이것은 모든 불보살(佛菩薩)의 마음과 조끔도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까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것은 그 법을 바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더라도 열심히 도를 닦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생사(生死)에 윤회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다행히 이 법을 알았으니 이제 어디에 이 몸과 목숨을 바칠 곳이 있는가? 오직 나는 이 한 법을 위해서 이 목숨과 이 몸을 다 바칠 수가 있다. 나는 금생에 결정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굳센 신념(信念)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도 그 신념이 투철하지 못한 분은 이 자리를 기해서 철석(鐵石)같이 그 신념을 가지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그러한 신념을 가지시기를 저는 간곡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 신념이 있은 위에라야 우리의 공부는 바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서 둘째로 필요한 것은 분심(憤心)입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 과거에 부처님과 많은 성현들은 진즉 이 법에 의지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하셔가지고 중생 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찌 그러한 불보살과 성현들과 똑같은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맴돌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분심을 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도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은 분이 나서 집에 와가지고 울면서 숙제를 하고 그래가지고 밤잠을 안 자면서 공부를 해가지고 그다음에 시험 볼 때는 더 잘할려고 발버둥을 치거든, 벌써 아들과 딸을 둘씩, 셋씩, 다섯씩, 여섯씩 나서 키워 가지고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내가 내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만나가지고 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돈, 이웃집은 돈을 잘 벌고 자기는 잘 못 버는 그런 것을 보고는 입을 삐쭉빼쭉하고 시기를 낼 줄 알면서 내가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이 참선에 대해서 그러한 분심을 느낄 줄 모른다면 이것은 가엾기 그지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 참선은 언제나 저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보살님네들, 한 분이 잠을 조끔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려고 애를 쓴 분이 있으면 자기도 따라서 공부를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데에서 반드시 공부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여러분들도 자기의 친구, 이웃, 아는 분들이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을 쪼개서 정진하려고 애쓰는 분이 있으면 그이를 헐고 뜯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샘을 좀 내서 '나도 그 사람에게 지지 않고 더 공부를 잘하리라' 하는 이러한 선의의 경쟁심을 내고, 서로 충고하면서 보다 더 공부에 유익하도록 충고하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18분31초~35분40초)




(3/3)----------------

첫째, 신념. 둘째, 분심. 그리고 셋째에 가서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화두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간절하고 철저한 의심 덩이[疑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선에는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두 가지로 노나서 가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보고, 설교를 많이 듣고 하는 또 다른 또 학식이 있고 그런 사람은 노상 어떠한 문제를 당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따져서 결론을 내려야만 결론을 얻어야만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활구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참선을 다른, 사회의 어떤 수수께끼나 어떠한 문제들과 같이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지을려고 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참선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은 활구참선이 아니라 사구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아무리 따져서 훌륭한 해답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衆生)의 알음알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생의 알음알이는 아무리 좋은 그럴싸한 알음알이라 하더라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 원인이 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참선은 쉬웁게 말해서 무엇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서 많이 속에다가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심지어 불교의 교리까지 다 경전에 있는 말씀까지도 깨끗이 내쏟아 버려야 됩니다. 내쏟아 버려야만 그 마음이 정말 청정(淸淨)해지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으로 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금가루도 눈에 집어넣으면 안질(眼疾) 병이 생기는 것뿐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속에다 넣고 이리저리 중생심으로 그것을 따둑거리고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있는 동안에는 중생의 경지, 중생심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를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러한 사람은 두고두고 육도윤회를 할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해탈(解脫)하고자 하시는 분은 이론적으로 따지는 버릇을 놔야 합니다.

다못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다못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슬픈 그 마음도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이고, 썽내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갈 때 불같이 일어났던 그 썽내는 그 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해탈도로 들어가는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서 그 사람은 차츰차츰 마음이 착해지고 마음이 비워져서, 바로 속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이 가뜩 들어있는 채, 불보살의 경지에 가까와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꾸 버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을 보통 내게 있는 돈과 물질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보시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참보시'가 아닙니다. 참보시에 들어가는 껍데기 보시, 초보적인 보시에 지내지 않은 것입니다.
참보시는 물질적인 것보다도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잘 말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편안함을 얻게 하고,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라도 아는 대로 일러주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발심(發心)할 수 있는 동기가 되도록 해주는 그런 것도 역시 보시가 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보시는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좋은 생각, 나쁜 생각, 일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버릴려고 하는 그 생각 또한 중생의 마음이기 때문에—호수에 물결이 일어나는 물결을 고요하게 만들려면 그 일어나는 물결을 없애려고 손을 대서는 아니 됩니다. 손대면은 다시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모든 물결을 빨리 없애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성현들이 부처님의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에 의지해서 닦고 닦아서 오늘에 전해진 가장 훌륭한 법인 것입니다.
이 법(法), 한 법에 충실히 철저히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을 해 간다면 육바라밀도 그 속에 갖추어 있는 것이고, 팔만대장경을 독파한 읽고 또 읽고 한 그 공덕도 그 속에 바로 갖추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나가지고서도 믿지 아니하고 계속 여러 가지 방편, 크고 작은 낡아빠진 배들을 짊어지고 팔도를 돌아다니고 60, 70년 동안을 그 썩어 낡아진 배를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분이 계시다면은 당장 이 자리에서 그 배를,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놓으십시오. 벗어 놓고 간단한 「이뭣고?」 하나를 터억 마음에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 보십시오.
이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가지의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의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맨들아서 우리는 이 육신으로 대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부처님과 많은 성현과 전강 조실스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단호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7일이라고 하는 기간은 대단히 짧은 기간이지마는 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7일이라고 하는 기간은 대단히 긴 기간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기다릴 때 30분 내지 10분이라고 하는 세월이 얼마나 지루한가를 느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일 년, 이태라고 하는 세월이 얼마나 빠른 것인가를 또 느끼게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고 있는 마음에 따라서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는 것입니다.

7일 동안을 하루같이 성심으로 기도를 잘해서 마쳤습니다. 기도 법사스님께서도 정말 일심으로 기도를 봉행을 하셨고 여기에 동참하신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정말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기도를 잘 봉행을 해서 오늘 회향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소원을 마음속에 간직을 하시고 기도를 하셨건 간에 그 일들이 가장 긴박한 것부터서 차례차례 다 성취되실 것을 저는 다시 한번 빌고 또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이 초아흐레니까 앞으로 6일 후에는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그날도 사시(巳時)에 법회가 열리게 되겠습니다마는, 그날은 작년 10월 15일부터서 시작한 겨울철 결제가 그날 정월 보름날, 90일 마지막 해제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작년 10월 15일에 시작한 백일기도가 또 정월 15일에 또 회향을 하는 날입니다.
또 정월 대보름날은 우리나라 저 신라 때부터서 대보름날에는 그 찰밥, 오곡밥을 해서 천지신명과 조상과 모다 선영들에 다례를 올리는 날이고, 일체 재앙을 그래서 일체 재앙을 소멸을 하고, 소원을 또 성취하기 위한 발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서로 권고해서 법회에 참여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밝은 달이 비친 그러한 골에 들어가서 영원히 생사 없는 대해탈도를 증득하는 참선을 하고자 하노라. 이러한 내용에 게송(偈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게송을 들으시고 '아하! 참선을 하려면은 저 심산유곡(深山幽谷)에 그런 데에 들어가야만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신다면은 이 게송의 뜻을 정말 똑바로 아신 것이 되지 못합니다.
시장바닥에서라도, 아들과 손자가 울고 똥을 싸서 뭉게는 그 속에서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심산유곡이 되는 것입니다.

심산유곡이라야만 된다면 산중에서 사는 화전민(火田民)들은 다 도인(道人)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살아도 신념이 없고, 분심이 없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백 년을 두고 산중에서 산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시장바닥에서, 사회 가정에서, 자기 있는 일터에서, 어데서 언제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심산유곡이요, 선방(禪房)이 되는 것입니다.(35분43초~51분56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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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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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21. 2. 15. 06:27

§((229)) (게송)만리장공우제시~ / 용화사에서 신수기도를 하는 이유?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이다 / 일체 법요식은 일대사를 위한 중요한 방편 / 사바세계가 모든 것이 무상해서 도 닦기에 제일 좋은 세계.
'변화(變化)' 참으로 소중한 것 / 자작자수(自作自受) / 신수기도를 진정으로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그러한 원으로 기도해야 / 병을 앓는 장로비구의 과거 인연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말 조심 /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 방편(方便)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 기도는 내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이 되어 성현(聖賢)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
기도가 끝난 뒤에 항시 '이뭣고?' 참선을 열심히 하실 것 / 집안 어른을 부처님 받들듯이 잘 받들어 모셔라 / 내 자신을 먼저 바로잡아라 / (게송)송백천년취~. 송백과 목단.

 

(1/4) 약 18분.

 

(2/4) 약 18분.

 

(3/4) 약 19분.

 

(4/4) 약 14분.


**송담스님(No.229)—1984년(갑자년) 신수기도 입재(84.02.04) (용229)

(1/4)----------------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일륜명월영청휘(一輪明月映淸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운엄단천인목(浮雲掩斷千人目)하야  득견항아면자희(得見姮娥面者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만리나 되는 넓고 넓은 허공(虛空)에 비가 갰는데, 계속 작달비가 쏟아지다가 그 비가 활짝 갰어. 개니,
일륜명월(一輪明月)이 영청휘(映淸輝)로구나. 한 바퀴 밝은 달이 밝고 맑게 온 천지(天地)를 환히 비추는구나.

부운엄단천인목(浮雲掩斷千人目)하야, 그런데 뜬구름 한 점이 그 달을 가리워 가지고 천 사람의 눈을 그 달을 보지 못하게 했더라 말이여. 한 점에 뜬구름이 천 사람의 눈을 가리워 버려.
득견항아면자희(得見姮娥面者稀)로구나. 항아(姮娥)의 얼굴을 본 자가 드물구나.

이 '항아(姮娥)'는 옛날에 중국에 그 '예(羿)'라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예'라고 한 사람이 서왕모(西王母)한테 빌어 가지고 불사약(不死藥)을 얻었는데, 불사약은 그 약을 먹으면 죽지 않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그러한 약을 얻었다 말이여.
그런데 그 예(羿)라고 한 사람에 부인, 항아라고 하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이 그 불사약을 훔쳐 가지고 저 달 속으로 도망을 쳐 버렸어. 그래서 그 달을 갖다가 '항아(姮娥)'라고 한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아무리 새카만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다 하더라도 그 구름 위로 올라가서 보면 달은 휘황창 밝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구름이 꽉 하늘에 끼어 있으면은 전혀 달도 보지 못하고 달빛도 보지 못하는데, 그 구름이 활짝 개 버리면, 비가 개고 구름이 벗거지면 그 밝은 달이 온 세계를 낮과 같이 그렇게 환히 그렇게 비추는데.
구름 한 점이 떠와 가지고 딱 중간을 가로막아 버리면 모든 사람이 그 달을 볼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그 구름 한 점 때문에 사람들이 그 달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하는 게송(偈頌)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平生)을 두고, 또는 일평생 동안 잘 먹고 잘 입고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재산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데 한 덩어리 구름으로 인해서 달을 보지 못하듯이, 한 생각 잘못 먹어 가지고, 한 생각을 미(迷)해 가지고 평생 동안, 아니 영원토록 쓰고도 쓰고 남아서 남을 주고 또 주어도 무진장(無盡藏)으로 풍족한 그런 재산을 가지고서도 일생 동안을 가난뱅이 신세를 면(免)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건 불법(佛法)을 비유해서 보아도 맞는 말이고, 세속(世俗)에 빈부귀천(貧富貴賤)과 흥망성쇠(興亡盛衰)에다가 비유를 하더라도 맞는 말인 것입니다.


오늘은 갑자년(甲子年) 신수기도(身數祈禱) 입재(入齋) 날인데, 해마다 연례행사로 정월 초삼일에 입재(入齋)를 해 가지고 초아흐렛날 회향(廻向)을 합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이 용화사(龍華寺) 법보도량(法寶道場)에서 무슨 신수기도를 하는가?'
신심(信心)이 철저한, 정법(正法)을 철저히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철저히 믿는 입장에서 보면, '신수기도를 한다. 뭐 입춘기도를 한다’ 하는 것이 다 우습게 보여지는 그러한 분도 있겠습니다마는,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인 것을 감안하셔서 정월에는 이렇게 일주일간 신수기도를 봉행하도록 하셨습니다.

백천방편(百千方便)이 개위차야(皆爲此也)여. 천 가지 만 가지 방편(方便)이 다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한 것이다 그거거든.

정초(正初)에 신수기도를 한 것이나, 입춘에 입춘기도를 하는 것이나, 칠석에 칠석기도를 하고, 백중에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하고, 동지에 팥죽차례를 올리고, 일체 법요식(法要式)이 이름은 각각 다르지만 그 근본(根本)을 살펴볼 것 같으면은 모두가 다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방편(方便)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삼계(三界)에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육신통(六神通)을 다 자유자재로 통달하신 그러한 세존(世尊)께서도 방편(方便)을 쓰지 않고서는 중생을 교화(敎化)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신수기도는 정초(正初)에 3일이나 또는 일주일, 이렇게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기도를 올림으로 해서 금년 일 년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礙)하고 모든 소원을 뜻과 같이 이루기를 비는 그러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저 천당(天堂)과도 다르고 지옥(地獄)이나 축생계(畜生界)와도 달라서, 천당은 뭣이던지 내가 생각만 먹었다 하면은 생각 먹은 찰나(刹那)에 이미 내 원하는 바가 눈앞에 현실적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밥이 먹고 싶다' 하면 금방 배가 불러지고, '뭘 보고 싶다' 하면 보고 싶은 그것이 찰나간(刹那間)에 눈앞에 나타나 있고, 내가 '어디를 가고 싶다' 하면 가고 싶다는 생각을 먹자마자 내 몸뚱이가 그 목적지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도 괴로운 것이 없어. 내 뜻에 어긋난 일이 없고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고 원(願)대로 되고 그래서 하나에서 백까지 기쁘고 편안하고 좋은 일만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축생계(畜生界)나 저 지옥(地獄)은 백만사(百萬事)가 내 뜻대로 안 되아. 배고파서 물을 먹으면, 물이나 음식을 먹으면 목구멍에서 불이 되어 가지고 불이 훨훨 타고, 도대체가 내 뜻대로 된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다 그 말이여.

그런데 이 사바세계는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이 섞여 있고,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 그 말이여.
어떠한 사람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많은 사람도 더러는 있고, 내 뜻대로, 사사건건(事事件件)이 내 뜻대로 안되는 사람도 있고 그러는데, 얼마 동안은 내 뜻대로 안되다가 또 세월이 지내가면 또 내 뜻대로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내 뜻대로 무엇이던지 잘되다가 중간에 가서 내 뜻대로 안되기도 하고, 일생 동안 모든 일이 내 뜻대로만 잘되는 사람도 몇백만 명 속에는 혹 한 사람이나 있을란가, 거의 내 뜻대로 백만사(百萬事)가 다 된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일반 사람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은 40프로나 3-40프로, 그리고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이 6-70프로,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보면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바세계보다도 저 천당(天堂)에 가면, 하늘나라에 가면 참 좋겠다' 다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이 불법(佛法)에서는 천당을 그렇게 좋게 생각을 아니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당에 가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즐겁고 다 내 뜻대로 되니까 참 좋을 것 같지만, 거기서는 참나를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길이 없습니다. 너무 편안하고 좋고 내 맘대로만 되니까 그 편안한 것을 즐기느라 나 자신을 깨달을 필요도 없고 깨달라야 할 생각도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천당에서 살아 버리면 구태어 생사해탈(生死解脫)할 것도 없겠지만, 자기가 지은 복(福), 자기가 지은 복을 받을 만큼 다 받어 버리면 다시 축생에도 떨어지고 또 인간 세상에도 떨어지고 또 과거에 지어 놓은 죄가 많으면 지옥에도 떨어진다 그 말이여.
은행에다 예금을 아무리 많이 해 놔도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곶감 빼 먹듯이 자꾸 빼 먹으면, 그 쓰기에 따라서는 일 년 동안에 통장이 다 바닥이 날 수도 있고, 아무리 많아도 한 10여 년간 계속 내다 쓰다보면 결국은 바닥이 나는 것처럼, 과거에 복(福)을 많이 짓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다행히 천당에 올라갔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어 버리면 다시 또 떨어지기 때문에 천당에 간 것이 그렇게 영원한 것이 못되고, 올라가 봤자 복 받느라고 이 나를 깨달라서 견성성불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이 불법을 믿는, 특히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들은 천당을 그렇게 좋게 안 생각하고, 제일 좋은 세계가 바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苦)와 낙(樂)이 섞여 있어서 모든 것이 무상(無常)해서 거기에서 우리는 발심(發心)을 할 좋은 동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 잘살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그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기울어지면 거기에서도 발심을 할 수가 있고, 또 가난에 쪼들려서 너무너무 고통이 심해도 그 고통 속에서 자기를 반성하고 거기서 용기와 지혜(智慧)를 얻어서 향상(向上)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7분42초)




(2/4)----------------

'변화(變化)'라고 하는 것은 참 무상(無常)한 것이요 대단히 안 좋은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변화야말로 참으로 그 소중한 것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중생(衆生)은 영원히 중생이지 성불(成佛)할 기약(期約)이 없는 것입니다.
밤이 되었다 낮이 되었다, 또 낮이 밤이 되고 또 밤이 낮이 되고,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또 그 지난 겨울 동안 대단히 강추위를 했지만, 내일이면 또 입춘이 되어서 다시 또 새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좋고, 이 사바세계 가운데에도 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이야말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사시(四時)가 분명해서 이 세계에서는 제일 좋은 나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서도 제일 좋은 사바세계에 태어났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도 제일 좋은 이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을 퍽 다행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도 일 년 내 겨울만 있는 데도 있고, 일 년 내 여름만 되는 데도 있고, 또 밤이 대단히 긴 곳이 있는가 하면은 계속 밤이 없고 낮만 있는 데도 있고, 참 그 변화가 없어서 그런 데는 박복중생(薄福衆生)들이 떨어져서 사는 곳입니다.
이 대한민국은 봄은 봄대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은 삼복(三伏)더위가 있어서 그렇게 뜨겁고 하나, 그 가운데에 봄에 심어 놨던 모든 곡식이 그 뜨거운 계절을 만나서 무성(茂盛)하게 자라 가지고, 가을이 되면 서늘바람이 부는데 그 서늘바람 속에서 그 여름에 자랐던 모든 곡식이 누렇게 결실(結實)을 해서 익게 됩니다. 겨울이 되면은 눈이 내려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얼음이 어는데, 그때 모든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낙엽이 져서 엉성하게 나무가지가 되지만 그 나무의 모든 기운은 열매를 맺어서 씨로 갈무리고 또 뿌리로 기운을 보내서 월동(越冬)을 하게 됩니다. 그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용해서 모든 이 더러운 것이 다 살균(殺菌)이 되고, 그래 가지고 입춘(立春)이 돌아오면 다시 새싹이 나게 됩니다.

이러한 나라에 태어난 우리는 참 숙세(宿世)의 많은 복(福)을 심고 닦았기 때문에 이러한 좋은 나라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單一民族)으로 참 5천년의 역사를, 문화(文化)와 역사(歷史)를 가진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민족입니다.
워낙 나라가 좀 좁고, 워낙 민심(民心)이 모다 선량(善良)하고, 또 그러지만 모든 풍토(風土)가 너무 좋다 보니 이웃나라에 욕심 많은 사람들이 항시 우리를 욕심을 내고 짓밟고 노략질을 하고 그러한 못된 나라들이 있어서 5천년을 두고 많은 괴로움과 시련을 받아왔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련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민족성(民族性)을 잃지 아니하고 결국은 오늘날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좋은 나라가 아니면 6 ‧ 25 동란(動亂)과 같은 그러한 무서운 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세계에 16개국의 나라 병정(兵丁)들이 와 가지고 그 우리나라의 난리(亂離)를 평정(平定)을 시키고 우리를 다시 이렇게 잘살 수 있겄게 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나라와 우리 민족은 정말 이 불법(佛法)에, 불법 가운데에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깊은 인연을 심은 그러한 나라요 민족이기 때문에 참, 불보살(佛菩薩)과 제석천왕(帝釋天王)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항시 가호(加護)를 해 주셔서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말세(末世)가 차츰차츰 깊어지면, 동해(東海)는 차츰차츰 물에 잠기고 이 서해 쪽으로는 육지가 차츰차츰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되고, 또 앞으로 이 세계의 예언가들이나 점성가들이나 역술가들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2천년 초에 가면 세계 인류의 70프로가 다 이 몰살을 당할런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현재 모든 이 사람들이 세계에 모든 나라들이 하는 꼴을 보면 그러한 재난을 당할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모든 재난(災難)과 업(業)은 다 자작자수(自作自受)인 것입니다. 자기가 지어 가지고 자기가 받는 것이여. 인류의 멸망(滅亡)도 인류 자신들이 망할 짓을 해 가지고 그러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어길 수 없는 이것은 천리(天理)인 것입니다.
스스로 복을 받을 짓을 하면 복을 받게 되고, 재앙을 받을 짓을 하면 재앙을 받는 것은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서로 제 나라 욕심만 챙겨 가지고 이웃나라를 침공(侵攻)을 하고, 다른 사람은 다 죽게 되더라도 자기만 살려고 그러고, 다른 업체는 다 망해도 자기 업체만 살려고 그러고, 나라는 망해도 자기는 자기만 살려고 그러고, 모든 다른 사람들은 다 망해도 자기 한 사람만 잘 살려고 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은 다 망하고 자기만 살기커녕은 자기까지 합해서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 일 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의 사이도 그렇고, 온 이 세계가 다 마찬가지고, 이 지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우주(宇宙)에는 태양계(太陽系)와 같은 그러한 세계가 동서남북 시방세계(十方世界)로 무한대(無限大)로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지구와 같은, 지구보다도 더 발달된 세계가 이 하늘 우주세계에는 몇천만 개가 있을런지도 알 수가 없고, 지구와 비슷한 세계, 지구보단 못한 덜 발달된 세계, 모두 다 해서 백억만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많이 발달이 되어서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하신 말씀이 과연 틀림이 없다고 인증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우주에 지구와 같은 많은 세계들이 있을 때에, 각기 그 세계는 그 세계대로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세계도 역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끔 우주과학이 발달이 되어서 계속 달나라도 갔다 오고, 다른 별나라를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우주 정거장을 맨들어 가지고 우주여행을 머지않아서 모다 인류가 하게 되는데,
지구상에 살면서 지구에 사람들이 서로 이 진리(眞理)에 귀의(歸依)해서, 진리에 의해서 참나를 찾고 진리에 의지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애끼고, 그렇게 해서 서로 화합(和合)하고 그렇게 해야만 이 지구는 멸망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물도 함께 다 멸망하게 되고, 동물만 멸망한 게 아니라 모든 식물도 다 타 죽고, 그런 이 방사낙진(放射落塵)으로 인해서 다 병(病)들어서 오랫동안 이 땅에서는 식물과 모든 동물, 생물이 서식하기가 어려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수기도를 하되 자기의 욕심(欲心)만을 충족(充足)하기 위한 그러한 원(願)을 가질 것이 아니라, 불같은 욕심으로 부자만 될려고 그러고 자기의 이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충족하기 위한 그러한 졸렬(拙劣)한 원을 세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잘살 수 있는 그러한 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참 진정한 행복(幸福)을 얻을 수가 있고 그러한 원을 세워야 원을 성취를 하게 되고 그래야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현제국(賢提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 아주 그 노스님, 아주 장로(長老) 비구(比丘)인데, 연세는 많고 그런 스님 한 분이 있었는데 대단히 중병(重病)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러 달을 씻지도 않고 옷도 빨아 입지도 않고 그래 가지고는 이 노스님이 앓고 있는 그 방에는 그 근처에도 사람이 지내갈 수가 없습니다. 똥 냄새에다, 오줌 냄새에다가, 피고름이 썩어 문드러진 냄새에다, 땀에다 모다 섞어져 가지고 도대체 그 근처만 가도 창자가 거꾸로 뒤집어질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나서 아무도 그 간호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부처님께서 떠억 정중(定中)에 관(觀)을 해 보시고 그 늙으신 비구가 그런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아시고서 제자(弟子)들을 거느리고서 그 현제국에 있는 그 노비구(老比丘) 있는 곳을 가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자들에게 명(命)해서 차례차례로 그 간병(看病)을 하도록 명을 했습니다.
근데 이 부처님께서 명을 하시니까 마지못해서 간호를 한 척하고, 뭐 왔다갔다하고 어쩌고 그러지만, 그 가기만 가면 비위가 상하고 창자가 뒤집어질라 그러고, 한번만 갔다 오면은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형식적으로 거짓으로 그저 간호를 한 척하고 그랬는데, 부처님이 왜 그것을 모르시겠느냐 그 말이여.

부처님이 그것을 아시고서 당신이 손수 더운물을 데워 가지고 가서 그 환자를 옷을 다 벗겨서 다 빨고 몸을 다 깨끗이 씻겨서 씻고, 그 방에 깔아져 있는 마른 풀은—돼지 그 우리 안에 돼지 똥과 오줌이 범벅이 쳐진 것 같이 그 풀이 썩어서 마치 퇴비처럼 되어 있는 것을 쏵 다 손수 다 그것을 걷어내고서 풀을 비어다가 말려서 마른 풀을 깨끗이 다 깔아 놓고, 옷을 빨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이렇게 해서 딱 해 놓으니까 그 다른 제자들이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 제자들을 향해서 법(法)을 설하시기를, "여래(如來)가 이 땅에 온 것은 병(病)들고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고 한 외롭고 약한 노인(老人)이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구제(救濟)하기 위해서 여래는 이 땅에 왔느니라.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든지 이러한 외롭고 병들고 가난한 노인이나 또는 수행자, 수행하시는 스님들을 잘 약(藥)을 공양(供養)을 하고 의복을 공양을 하고 이 병든 스님을 잘 공양을 올려서 간호를 해드리고 하면은, 그 복은 여래(如來)를 공양하는 복(福)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느니라. 그래서 그 복이 무량(無量)해서 자기 원하는 바를 성취치 못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법문을 설하셨습니다.(17분43초~35분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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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기도, 일주일간 인자 신수기도를 열심히 하셔야지요. 정성(精誠)껏 일주일 동안을 기도를 하셔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만 정성껏 기도하고, 그리고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마음속이 그뜩해 가지고 생각마다 고약한 생각, 말마다 고약한 소리, 행동을 고약한 행동을 하면, 일주일 기도를 아무리 정성껏 했기로서니 어떻게 그 사람에게 한량없는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냐 그 말이여.

해마다 정월(正月)에는 그 해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좋다' 하는, 어떠한 해는 「마음보를 고치자」 그러한 말씀도 내가 했고, 작년에는 「썽을 내지 말자」 이런 말씀을 했는데, 금년에도 「썽을 내지 말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내게 하지 말자」
다른 사람 속을 이리저리 속상하게 만들어 놓고 "너 금년에는 썽을 안 내는 해여" 이래 해 가지고 약을 올리고, 「자기도 썽을 안 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게 하자」 금년에는 이렇게 나는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기 썽 안 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복을 짓는 것은 남에게 모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베푸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남의 마음을 어떠한 내가 충격을 가해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게 하는 거, 속상하게 하는 거—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그것이 복을 짓는 데에 보다 더 중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 열 가지 한 것 보단 남 못할 일 한 가지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하는 그러한 옛날의 말씀도 있습니다. 참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남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하면서 가끔 말을 갖다가 박(薄)하게 해 가지고 남의 오장(五臟)을 활딱 뒤집어놓는 성미(性味)가 있단 말이여.
하는 일마다 본받을 일이 많고 아흔아홉 가지를 다 잘하는데, 가끔 그 말 한마디를 잘못해 가지고 남을 갖다가 오장을 쑤시는 그러한 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것 참 아흔아홉 가지 공을 공(功)들여서 탑을 99층 탑을 쌓아 가지고, 한마디 그 독(毒)한 말로써 그 99층 탑을 때려부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외로운 그러한 분들을 잘 보살펴드리고 또 그러한 스님네를 잘 공양을 하는 것 대단히 좋고 그건 반드시 실천을 하되, 돈 안 들고 힘 안 들이고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길.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같은 말이라도 남의 마음을 편안케 해 줘.
그래서 부처님은 '망어(妄語)나 기어(綺語)나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지 아니할뿐만 아니라, 따듯한 말, 부드러운 말, 자비(慈悲)스러운 말, 사랑하는 말로써 모든 어른과 친구와 아랫사람 이웃 사람에게 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참 큰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말 한마디 비끗 잘못해 가지고 내가 죽을 고비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행동의 중간에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이것이 삼업(三業)인데, 마음에 뭔 생각[意]이 나면 결국은 말[口]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身]으로써 그것이 실천이 되는데.
마음에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난 것은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밖으로 표현이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것이 구체화(具體化)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에 떠오르기만 하고 밖으로 표현이 안 되면 자기의 문제로서 끝나지만, 말로써 이미 표현이 되어 버리면 긁어 담지를 못합니다. 더군다나 행동으로 실천을 해 버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말, 불쑥 말이 나오기가 쉬운데, 한번 나가 버리면 그때 입을 탁! 막아 봤자 이미 소용이 없어요. 돈 안 들이고, 힘 안 들이고 사람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그러한 좋은 길.

그 말 한마디,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야만 사람이 다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불쑥 잘못해 가지고 참 집안에 모든 시비(是非)도 일어나고, 친구 간에 의(義)도 상하게 되고, 그 대중(大衆)도 소란하게 맨들고,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제일조(第一條)에 그 '말을 적게 하라'고 하는 그러한 말씀이 전해온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 부처님께서 그 대중을 향해서 병(病)든 그 비구, 병들고 늙고 약하고 한 그러한 노인을 갖다가 간호를 잘하면 그 복이 한량이 없고, 무슨 원(願)이고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데,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인도(印度)에 있는 다섯 개의 큰 강(江)이 흘르고 흘러서 다 바다에 들어가듯이, 모든 복(福)은 그 사람한테로 다 모여든다' 이것이거든. 그래 가지고 '그 공덕(功德)이 점점점점 원만(圓滿)해 가지고 마침내는 성불(成佛)까지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는데.

그때 그 현생국에 왕(王)이 "부처님, 저 노비구는 과거에 무슨 인연(因緣)으로 금생에 저렇게 병고(病苦)에 시달리되 아무도 간병(看病)하는 사람이 없다가, 세상에 부처님 세존(世尊)께서 손수 더운물을 데워서 목욕을 해 주시고 빨래를 해서 갈아입히시고 풀을 뜯어다가 말려서 자리를 깔아 주시고, 어떻게 해서 저 노비구는 어찌 보면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박복(薄福)한 사람 같았는데, 오늘 보니까 이 세상에서는 제일 복을 많이 지은 사람 같습니다. 과거(過去)에 무슨 업(業)으로 그렇습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어봤습니다.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연(因緣)을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악행왕(惡行王)이라 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 임금은 어떻게 포악(暴惡)하고, 우리나라에 연산군(燕山君)이나 모다 그러한 고약한 왕보다도 더 고약했던지 말로 할 수가 없어. 어떻게 법(法)을 갖다가 일 년이면 몇 번씩 뜯어고쳐 가지고 어떻게 하면 백성을 갖다가 피를 빨아먹으며 어떻게 하면 백성을 괴롭힐까? 오직 자나깨나 그것만 연구하는 임금이여.
그래 가지고 법을 어떻게 자주 뜯어고쳐 가지고 백성을 못살게 굴고 그러니 백성이 아무리 그 법을 따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자꾸 법을 고쳐 가지고는 도저히 실천할라야 할 수 없도록 그렇게 고약한 짓만 하면서,
또 그 천하에 장사(壯士)는 전부 뽑아다가 놓고, 임금에 명(命)에 조끔이라도 어겼다 하면은 쇠심줄로 맨든 그 채찍을 가지고 무섭게 매질을 하고 때리는데, 그 매질하는 장사도 아주 물리가 나 가지고 자기한테 은근히 뇌물을 갖다 바치면 아프게 때린 척하면서 안 아프게 때리고, 자기한테 뇌물을 바치지 아니하면 아주 살이 쭉쭉 째져서 피가 쏟아지도록 그렇게 무섭게 후려치고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아주 백성들이 살라야 살 수가 없게 되었는데,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 되면 무고(誣告)로 모략중상(謀略中傷)을 하는 풍조가 천하에 아주 유행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법(法)은 차츰차츰 간단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 성현이 나라를 다스리면 약법삼장이라 해 가지고 법을 간략히 해 가지고 삼장(三章)으로 된다 그 말이여. 법이 아주 간단해. 그래 가지고는 그렇게 법을 미세하게 엄하게 맨들 필요가 없다 그 말이여.

백성들이 모다 자연히 봄이 돌아오면은 날이 따뜻해지면은 얼음이 다 녹고, 땅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산천초목(山川草木)에서는 새싹이 돋으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기저기에 모든 산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시냇물은 하- 노래를 부르면서 졸졸 흘러내리고, 강산(江山)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사람들은 그 겨울에는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를 나오지를 못하다가 봄이 오면은 문을 다 열어제끼고 모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논으로 모다 나와서 활동을 하게 되는 거와 같애.
성현이 이 나라를 다스리면은 자연히 인심(人心)이 순화(純化)가 되어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모략하고 무고로 하고 그러한 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이 남을 조끔 수만 틀렸다면 터무니없는 이 모략(謀略)을 해 가지고는 사람을 갖다가 잡혀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도록 맨들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아주 그 정법(正法)을 믿는 그러한 아주 선량(善良)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갖다가 오해를 해 가지고 모략을 무고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참 죽도록 뚜르러 맞을 판인데, 그 사람이 그 장사(壯士)한테 빌기를 "참, 나는 참 정법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절대로 그러한 악한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어떤 사람이 오해를 해 가지고 이렇게 이 무고로 이렇게 한 것이니 나를 용서를 해 달라"고, "나를 용서를 해 주고 조사를 해 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아주 정법을 믿는 선량한 사람이 간곡히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 포악한 장사도 한 점 눈물이 있었던지, 그 '정법을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에 아프게 때리지를 않고, 그 채찍이 그 사람 몸에 닿지 않도록 엄포만 놓고서 안 아프게 때려 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다행히 죽지를 않고, 혹독하게 매를 맞지 않고 잘 풀려났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 매질을 혹독히 한 그 장사(壯士)가 죽어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습니다. 지옥(地獄)에 들어가서 그 무서운 고(苦)를 다 받고, 몇백 생(生)을 받았는지 몇 겁(劫)을 받았는지 받고서 겨우 풀려났는데, 뭣이 되었냐 하면은 축생(畜生)이 되었습니다.
축생이 되어 가지고 참 수없이 육백 생(生) 동안을 축생이 되어 가지고 매를 맞았습니다. 이 소 쟁기질을 못한다고 밤낮 후려치고, 또는 말이 되어 가지고 빨리 안 달린다고 뚜드러 패고, 그래 가지고 수없는 참 육백 생 동안을 축생이 되어 가지고 그 혹독한 매질을 당하다가, 겨우 그 자기가 매질한 만큼 몇백 배를 이자까지 쳐서 그 보(報)를 다 받고 난 다음에사 겨우 사람이 되었는데, 평생 동안을 병고(病苦)를 앓게 되었다.

"그때 그 전생에 그 매질을 한 장사(壯士)가 금생(今生)에 태어나 가지고 저 늙은 비구(比丘)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때 선량(善良)한 백성이, 무고로 잡혀 들어가 가지고 그때 그 장사(壯士)한테 풀려난 사람이 바로 오늘 나다. 그때 그 장사가 내가 '정법(正法)을 믿는다'고 애원(哀願)을 한 그 한마디로 어떻게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 나를 매질을 아니하고 잘 풀어준 그 공덕(功德)으로, 그 인연(因緣)으로 오늘날 내가 손수 저 늙은, 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저 늙은 비구를 내가 오늘 손수 더운물을 데어서 간호(看護)를 하고 이 빨래를 해 주고 하게 되었느니라. 한번 지은 죄(罪)는 생을 바꾸더라도 면(免)하지를 못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대중을 위해서 전생(前生)의 인과(因果)를 설하셨습니다.(35분52초~54분20초)




(4/4)----------------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을 하고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천칠백 공안(公案), 공안 법문이나 필요하지 인과설(因果說)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거 뭐 인과설, 잔소리만 많이 하고 무슨 그런 소리가 필요하냐?'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하니,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한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의지(意旨)를 일러봐라!'

'이러한 등등(等等)의 법문, 간단한 법문(法門) 한마디면 족하지, 무슨 그런 너저분한 인과설(因果說)을 하느냐?'

이렇게 이 공격을 하고 나를 갖다가 비난을 하는, 나에게 충고(忠告)를 하는 그러한 분이 계셔서, 내 마음으로 "참 옳은 말씀이요. 나한테 직접 그런 말을 해 주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서, "참 그 좋은 말씀을 내가 깊이 참작(參酌)을 하겠습니다" 했는데, 하고서도 나는 또 오늘 올라와서 또 이런 인과설을 말하게 됩니다.
나한테 충고를 해 준 그분한테는 내가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방편(方便)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울을 보지 아니하면 내가 내 눈은 볼 수가 없는 것이여. 내 눈은 청황적백(靑黃赤白) 온갖 것을 다 보지만, 눈 자체(自體)는 눈이 자기가 자기 눈을 볼 수가 없어. 거울이나 거울의 대용품을 가자(假藉)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눈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심(發心)을 해서 수행을 하고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모습을 보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 부처님 경전(經典)에 나오는 팔만사천(八萬四千) 가지의 그 방편설(方便說)을 가끔 하나씩을 들어서 그것을 살펴봄으로써 자기의 마음가짐과 자기의 말씨와 자기의 행동과 자기의 인간성과 자기의 행동거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機會)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집 며느리는 이웃집, 담 너머 이웃집 며느리 하는 것을 보고 거기서 자기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經典)에 있는 이런 방편설을 하나씩을 보면은 참, 자기를 반성(反省)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현도 자기 허물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聖賢)이라 하는 것입니다.
범부(凡夫)는 평생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 허물을 못 보는 것이고, 성현(聖賢)이라야 남의 허물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거여.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허물을 보게 되고, 남의 허물이 바로 자기 허물인 줄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입재(入齋)를 맞이해서 앞으로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하시되, '참 기도(祈禱)'는 내 마음이 허공(虛空)과 같이 되어. 성현의 마음은 언제나 허공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계시기 때문에 내 마음이 성현의 마음과 하나가 되려면 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면 바로 성현(聖賢)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여.
3일 기도나 일주일 기도 또는 백일 기도를 그렇게 그 열심히 하는 거, 오대산(五臺山)이나 강화(江華) 보문이나 저 홍련암이나 남해 보리암,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그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는 것은 '내 마음을 허공(虛空)과 같이 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 거다' 그 말이여. 허공과 같이 하면은 바로 내 마음이 성현의 마음이 되기 때문에, 성현의 마음이 된다면 무슨 소원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냐 그 말이여.

그저 속으로는 이 고약한 마음을 가뜩 품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가뜩차 가지고 잘되게만 해 달라고 막 빌어 대는데, 빌어 대다 보면은 천번 만번 백만번 천만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나 또는 그런 성현의 명호(名號)를 부르는데, 부르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마음이 깨끗해져 가지고 성현의 마음과 같이 되니까 거기에서 원을 성취하게 되는 거여.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설사 성현의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그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잠깐 한마디 원(願)을, 크고 작은 원을 세워도 바로 그 원이 성취가 잘되는 도리(道理)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기도가 끝난 뒤에 항시 '이뭣고?' 참선을 열심히 하실 것, 평상시(平常時)에 열심히 하실 것이며, 아까 말한 늙고 병들고 약하고 외로운 노인, 저 백리 밖에 사는 남의 노인도 그런 노인이 있으면 잘 돌봐주어야 할 텐데,
하물며 자기 집안에 계신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무리 말이 많고 성질이 괴팍하고 며느리를 별로 이뻐하지 않는 그러한 시어머니 시아버지라 할지라도, 정말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참다운 마음으로 부처님 받들듯이 잘 받들어 모시면 그러한 아주 고약한 성미를 가지신 어른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그 감동이 되어 가지고,
'정말 내 며느리가 이 세상에서는 제일 착하고 이쁘고 좋은 며느리로구나. 아, 내가 저런 좋은 며느리를 너무 내가 볶아 대고 고약하게 굴었구나' 눈물을 흘리면서 반성을 하고, 자기 마음을 그 며느리로 인해서 마음보를 고치고, 그래 가지고 정말 착하고 고운 마음씨가 된 그러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여생(餘生)을 마치게 되고, 그래야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성미가 괴팍하고 아주 인정머리 없고, 일평생 동안 며느리를 이뻐하지 아니하고 볶아 댔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저 늙은이가 빨리 죽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저 늙은이를 어디로 내보내 버릴 것인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미워하고 원망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점점 더 미워하게 되고 나중에는 노망하게 되면 며느리가 잘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저년이 내 집구석 망해 먹을라고 들어온 년이다' 그래 가지고 이를 갈아붙이고 '이년, 이년' 하고 계속 저주를 하다가 눈을 감게 되면, 그 노인은 죽어서도 좋은 곳으로 못하고 계속 그 집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며느리와 그 며느리 뱃속에서 나온 아들딸들을, 이놈에가 붙었다 저놈에 가 붙었다 하면서 계속 못살게 굴어 가지고 결국은 그 집안은 재앙(災殃)이 끊일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데부터서 잘해야 혀.
그러면 누가 제일 가까우냐? 내가, 나 자신이 제일 가깝거든.

그래서 내 자신을 먼저 바로잡고, 내 자신이 바르고, 내 자신이 어질고 착하고, 그렇게 되도록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그렇게 하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들에게, 이렇게 해서 그것이 차츰차츰 멀리 멀리 뻗쳐 나가면 이웃과 모든 이 우리의 동포와 인류에게까지 그 성스러운 마음씨가 번져 나가도록.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멸망을 평화(平和)로 향하게 하고 이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만드는 그러한 위대한 불사(佛事)가 될 것입니다.


송백천년취(松栢千年翠)하고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모란일일홍(牧丹一日紅)허되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백(松栢)은 천년취(千年翠)허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라.
소나무와 잣나무는 천년 동안을 푸르르되 세상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를 안 해요. 그냥 소나무 푸르거니 하고 별로 소나무를 그렇게 이뻐할 줄을 모른다 그 말이여.

그런데 목단(牧丹)은 하룻동안 빨갛게 이쁘게 피었다가 져 버리는데, 모든 사람들은 그 목단 아름답다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한 생각 단속(團束)해서 무량(無量)의 복락(福樂)을 얻고,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이 활구참선(活句參禪) 정법은 세상 사람들이 시드르르 하게 생각하고,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은 내 뜻대로 되어 봤자 잠깐 쌈빡하다 말아버린 것이고, 그 뒤끝은 천하 허망(虛妄)하고 한 것인데, 온 세상 사람들은 재산과 색과 명예와 권리에는 모두가 거기에는 빠져 가지고 헤어날 줄을 모르는구나.(54분25초~68분46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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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21. 2. 13. 13:34

§((379)) 불자(佛子)의 궁극의 목적은 어서 속히 견성성불(見性成佛)해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부처님의 자비의 방편문, 기도!
감응(感應).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하는 것이 감(感)이고, 부처님께서 그 감(感)에 응해서 부처님의 힘이 우리한테 미쳐 오는 것을 ‘응(應)’이라 한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기도해야 / 세속 일은 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지만, 또 끊을라야 끊을 수 없는 인연(因緣)이 얽혀 있습니다.

 

약 15분.


**송담스님(No.379)—1989년(기사년) 신수기도 입재(89.02.08) (용379)

기사년(己巳年)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身數祈禱) 입재일(入齋日)을 맞이했습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우리 불자(佛子)의 궁극(窮極)의 목적(目的)은 어서 속히 내 자성(自性)을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 가지고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가 어떻게 해서 금생(今生)에 이렇게 태어났는가? 금생에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또 가정을 갖고, 또 아들과 딸을 낳고, 또 그 밑에 손자와 손녀를 낳고 외손자 외손녀를 낳고, 이러한 원인을 생각해 보면, 저 무량겁(無量劫) 이전으로부터 수많은 생(生)을 받아 오면서 얽히고설킨 인연(因緣)이 콤퓨타(computer)로도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 왔습니다.

그래서 항상 법문을 들으면,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한 것이요, 온 세계(世界)도 허망한 인연(因緣)들이 이루어진 것이요, 가정도 다 숙세(宿世)의 업연(業緣)으로 뭉쳐서 얽혀서 이루어졌지, 하나도 믿을 것이 못된다.

우리 몸뚱이 생로병사(生老病死),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져 가는 우리 생각의 생주이멸(生住異滅), 온 우주 법계의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면(免)틀 못한 그런 허망(虛妄)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너무너무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무리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런 것을 버리려고 그러고, 생각을 안 쓰려고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아주 끊어서 버리지를 못한 형편입니다.

발심(發心)을 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선방(禪房)에 들어와서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정진을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죽비(竹篦)를 치고 떠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화두(話頭)를 들고 있으면 어느새 집안 생각이 나고, 아들 생각이 나고, 손자 생각이 나고, 생각을 안 하면 안 하려고 할수록 점점 더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이 부처님께서는,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중생들의 어찌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을 잘 아시기 때문에, 자비(慈悲)의 방편문(方便門)을 열어서 이렇게 기도! 기도(祈禱)를 함으로 해서 그 기도하는 그 정성스러운 신심(信心)이, 신통(神通)이 자재(自在)하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부처님의 힘에 미쳐 가지고 그래서 부처님의 자비의 힘으로서 중생(衆生)의 그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도록 하는 그러한 특별한 은전(恩典)을 우리는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감응(感應).

'기도를 하면은 부처님의 감응(感應)을 받아서, 그 가피(加被)를 입어서 소원을 성취한다'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대관절 그 감응(感應)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불보살(佛菩薩)과 기도하는 사람과의 마음이 서로 교류(交流)해 가지고 하나가 되는 그 현상을 감응(感應)이라 그럽니다.
중생(衆生)의 신심(信心), 선근(善根)이 불보살(佛菩薩)에 통(通)해 가지고 그 힘이 나타나는 현상.

감응(感應), 감응의 '감(感)' 자는 우리 기도하는 중생(衆生) 쪽에서 하는 것을 '감(感)'이라고 그러고, '응(應)'이라고 하는 말은 불보살(佛菩薩) 쪽에서 보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는 것이 감(感)이고, 부처님께서 그 감(感)에 응해서 부처님의 힘이 우리한테 이렇게 미쳐 오는 것을 ‘응(應)’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를 보면, 중생(衆生)에 기연(機緣)이 있으면 부처님의 힘이 자연히 이에 응(應)하여 중생의 감(感)과 부처님의 응(應)이 서로 교융(交融)하는 거여.
그래 응(應)해 가지고 왼손과 오른손을 치면은 소리가 나고, 산중(山中)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골짜구니를 향해서 고함을 지르면은 그 산꼴짜구에 그 소리가 울려 가지고 메아리가 되어서 우리한테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감응(感應)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감응(感應)의 현상(現象)은, 모르는 사람은 '그 다 미신(迷信)이다', 뭐 '기복불교(祈福佛敎)다' 해 가지고 이것을 아주 무시하거나 이것을 하차잖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절대로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고 헛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해 본 분이면 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이 현상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불보살의 자비(慈悲)의 힘이, 대자대비(大慈大悲)한 힘이 중생에게 가(加)해져서, 또 중생의 그 신심(信心)에 부처님이 응(應)해 가지고 서로 그 신심과 부처님의 자비의 그 힘이 서로 이렇게 교류(交流)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나타난 그 현상은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입니다.
중국(中國)이나 한국(韓國) 일본(日本), 그밖에 동남아(東南亞), 다 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해 가지고, 그 기도 성취를 해 가지고 중생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러한 기도 성취를 한 그런 예는, 참 그 영험(靈驗) 기록은 한량없이 많습니다.

주력(呪力), 천수(千手) 주력이라던지,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이러한 염불(念佛)이라던지 또는 다라니(陀羅尼)를 외어 가지고 하는 주력(呪力)이나, 성지(聖地)에 가서 기도를 한다던지, 가정생활 속에서 아침에 눈뜰 때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염불(念佛)하거나 경(經)을 외우거나 하는 그러한 정성(精誠)으로 해서, 꼭 죽어갈 목숨이 살아나기도 하고 여지없이 법에 끌려 들어가서 감옥살이를 하고 큰 벌을 받을 만한 그런 경우에도 지극정성으로 기도해 가지고 참 기적적으로 일이 잘 풀려서 면(免)하는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처님의 '참 법신(法身)'은 허공(虛空)과 같이 넓고도 툭 트여서 한량없이 청정(淸淨)합니다마는, 모든 사물에 응(應)해서 형상(形象)이 나타납니다.
허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지마는, 마치 허공에 달이 뜨면 고요한 호수에 그 달빛 그림자가 비추고, 새가 날아가면은 새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고, 구름이 날아가면은 구름의 모습이 그 호수에 비치듯이, 참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허공(虛空)과 같지마는, 중생들의 지극정성한 그 신심(信心)으로 신심으로 기도를 하면 그 허공과 같은 불보살의 마음에 그 신심의 그 힘이, 정성(精誠)이 부처님께 이렇게 전달이 되어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 그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 자비의 부사의력(不思議力)이 중생에게 다시 이렇게 미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는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새벽에, 또 예불 끝나고 하고, 또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 또 저녁에 2시간 이렇게 해서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게 됩니다마는, 염불을 하거나 경을 독송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주력을 하거나 지극정성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하면은 삼매경(三昧境)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법성삼매(法性三昧)에 들어가면 무일법가혐(無一法可嫌)이여, 한 법도 싫어할 것이 없고,무변(無邊)의 이 선정(禪定), 정문(定門)에 들어가면은, 정문(定門)을 증득(證得)하면은 무일법가기(無一法可棄)여, 한 법도 버릴 것이 없어. [入法性三昧 無一法可嫌 證無邊定門 無一法可棄]

세속 일이 아무리 부자가 되고, 아무리 높은 명예와 권리를 누리고, 자손이 아무리 많고 잘되고 인간의 오복(五福)을 다 갖추었다 해도, 엄격히 보자면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않습니다.
일장춘몽에 지내지 않고 잠깐이면 다 꿈결같이 다 지나가 버릴 허망(虛妄)한 일들이지만, 우리가 과거에 끊을라야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해서 이루어진 가정이고, 이루어진 남편이요 아들이요 딸이요 손자들인 것입니다. 분명히 따지고 보면 허망한 것이지마는, 허망한 가운데에도 또 어쩔 수가 없는 인연(因緣)이 얽혀 있습니다.

이 몸뚱이, 자기 몸뚱이도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虛妄)한 것이지만, 그렇지마는 이것을 어떻게 합니까? 먹여줘야 하고 입혀줘야 하고 병나면 고쳐줘야 하고,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하는 가운데에도 자식 생각이 나고 집안 생각이 날 수밖에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일 년 내내 가족 생각만 하고 참선을 등한(等閑)히 철저히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특별히 이 새해 초사흘부터 9일까지 7일 간을 신수기도(身數祈禱) 기간으로 정해 가지고, 이 7일 동안 만큼은 정말 철저하게 정성(精誠)스럽게 칠일기도를 봉행(奉行)을 하도록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7일 동안은 정말 열심히 기도를 해서 아주 법성삼매(法性三昧)에 들어서 나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서 소원한 바가,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다 성취가 되도록 그렇게 기도를 잘해 주시길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이어서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되겠습니다.(처음~15분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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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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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20. 12. 20. 19:00

§((137)) 무루복 · 유루복 / 우리는 비로자나불 / 어느 철부지 소녀의 간절한 소원 / '이뭣고?'로 마음이 깨끗해져서 소원을 성취 / 용화선원에서 신수기도를 봉행하는 뜻 / 복혜쌍수(福慧雙修) / 보시는 바로 희사(喜捨) / 소원성취를 하려면 마음보를 고쳐야.

 

다행히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한 유루복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르지 아니하고 '참나'를 깨달라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있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입니다. 일단 최상승법에 눈을 뜨고 그것을 믿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무루복은 그 가운데 갖추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히 소원을 할 수가 있으며,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는가?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항시 '한 생각'은 일어나 있기 마련인데,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 무엇고?’로 돌아옴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은 깨끗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간탐심(慳貪心), 원망(怨望)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도 다 버려 버리는 이것도 또한 희사이고,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을 남에게 희사(喜捨)하는 것도 보시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온갖 것을 다 깨끗이 버려 버리는 것도 하나의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주어 가지고 정법(正法)을 믿게 하는 거, 이것도 보시요 희사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37)—1981년(신유년) 신수기도 입재(81.02.07) (용137)

 

(1) 약 20분.

 

(2) 약 13분.

 

(1)------------------

 

오늘 신유년(辛酉年)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身數祈禱) 입재일(入齋日)을 당해서 사부대중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은 이 신수기도 입재에 동참(同參)함으로써 마음속에 크고 작은 간절한 소원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동참을 하셨을 것입니다.

 

과거에 한량없는 겁(劫)을 통해서 우리가 지어온 업(業)으로 인해서, 또는 원력(願力)으로 인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났습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서 무엇인가 소원(所願)이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소원이 없다고 하면 그 인간은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거나 희망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람 있게 살고자 하고 소망이... 의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소원이 부자가 되는 소원이건, 좋은 배필을 만나는 소원이건, 명예와 권리를 구하는 소원이건, 일생 동안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기를 바래는 소원이건 또는 그러한 유루(有漏)에, 인간 오욕락(五欲樂)에 관계되는 소원을 벗어난 넘어선 무루지혜(無漏智慧)를 얻고자 하는 인간에 지극히 높은 고상한 소원이건 간에, 인간으로서 반드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려면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두 가지 중 어느 하나건 또는 두 가지 다 소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조끔도 잘못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반드시 그것이 갖추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법(佛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무루복(無漏福),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대지혜(大智慧)를 얻는 그러한 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인간에 오욕락(五欲樂)이—재산이나 이성이나 명예 권리나 편안하게 사는 거, 오직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을 바래고 그것만을 얻기 위해서 일생 동안을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그 원을 다 성취하지도 못한 채 한(恨)을 품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행히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한 무루복(유루복)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르지 아니하고 '참나'를 깨달라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있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입니다. 일단 최상승법에 눈을 뜨고 그것을 믿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무루복은 그 가운데 갖추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어서 전강 조실스님께서는 매년 정월 초삼일부터 아흐레까지 7일 동안을 특별히 신수기도를 봉행(奉行)하도록 준례를 만드셨습니다.

일 년 동안을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관재구설(官災口舌)과 삼재팔난(三災八難)이 다 소멸(消滅)이 되고, 동서사방에 출입왕래(出入往來)하는데 항상 길(吉)한 일만을 만나고, 흉한 일은 멀리해서 우리가 하고자 한 모든 일이 뜻대로 되도록 간절한 소망으로 기도(祈禱)를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기도를 원만히 성취할 것인가?

그 기도를 원만히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원하는 대로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흉한 일을 원하면 흉한 일이 다가오고, 슬픈 일을 원하면 슬픈 일이 다가오고, 기쁘고 길한 일을 원하면 반드시 기쁘고 길한 일이 자기에게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죄 많은 중생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그러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바로 비로자나,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일부분(一部分)인 것입니다. 우리 몸도 법신불(法身佛)이요, 보신불(報身佛)이요, 화신불(化身佛)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이 몸 이대로 청정한 비로자나 법신불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면 여러분 가운데에는, ‘우리는 죄(罪) 많은 업(業)에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어찌 우리 몸이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이겠는가?’

이해가 안 되실는지 모르지만,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청정법신불, 비로자나(毘盧遮那)부처님인 것입니다.

 

푸른 산, 흐르는 물, 우는 새, 날으는 구름, 하늘에 태양과 달과 별, 지상에 길가에 굴르는 조그만한 잡석(雜石)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몸뚱이 아닌 것이 없거늘, 하물며 만물(萬物)에 영장(靈長)인 우리의 몸이 부처님 몸이 아닐 까닭이 없습니다.

 

다맛 우리의 믿음이 바르고 철저하지를 못하고 참나에 눈을 뜨지 못해서 우리가 스스로 인식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분명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고대로 다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우리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말은 부처님의 설법(說法)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일은 반드시 성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일 년에, 신년(新年) 초(初)에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고 간절히 소망하는데 있어서 목적을 소원을 달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주 비근한 한 예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여학교 학생들이 몇 사람이 친구를 삼았습니다. 일곱 명이, 아주 다정한 일곱 명이 회원을 맨들아 가지고 아주 다정하게 놀고, 같이 공부도 하고, 같이 어디 등산도 가고, 특히 생일날에는 서로 그 친구의 생일 집에 모여서 파티를 열고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아주 집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 어머니는 바느질 품삯을 팔아서 그 자기 딸에게 의복이며 소지품이며 학용품이며 모든 것을 어떠한 부잣집 딸 못지않게 아주 잘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그 애가 굉장히 부잣집 딸인 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본인도 친구들에게 자기집이 대단히 큰 부자인 것처럼 그렇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어느 날 그 아이의 생일날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집에서 친구들을 초청을 해가지고 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날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생일날이 돌아오기 일주일 전부터서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고민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생일날에 그 다른 여섯 명의 친구들이 자기집에 오면 자기집 가난한 것이 폭로가 될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전부터서 고민을 하다가 무슨 생각을 먹었느냐 하면 '우리집이 생일날 전날 불이 나서 다 타버렸으면' 이렇게 원을 세웠습니다. ‘불이 나서 없어져 버리면 친구들이 와서 볼 수가 없고, 우리집 가난한 것이 애들에게 폭로가 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집이 불이 나서 홀딱 타 버렸으면’ 이러한 생각을 밤낮으로 간절하게 간절하게 축원을 했습니다.

마치 생일 전날 애들은, '내일이 너의 생일이다. 너희 집에 갈 테니 맛있는 것 장만해서 우리를 기쁘게 먹고 놀게 해 달라'고 모다 참새처럼 모다 뛰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일날 전날 저녁에 불이 나가지고—그 어머니는 떡을 찌고 모다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불을 피우고 하다가 그 불이 번져서 그 집이 불이 났습니다. 타 가지고 오두막집이 홀랑 타 버렸습니다. 그 어머니는 펄펄 뛰고 울었지만 그 딸은 속으로 너무너무 흡족해 했습니다.

 

이러한 어린 소녀에, 철부지 어린 소녀에 간절한 생각, 터무니없는 생각도 간절하게 바래는 데에서 그 원하는 대로 된 것을 보면, 정말 우리가 바른 원(願)을 세우고 간절히 원할 때에 소원을 성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칠 일 동안 여러분들 가장 중요한 원을 하나씩 세우고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하시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히 소원을 할 수가 있으며,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겠는가?

 

간절(懇切)하다고 하는 내용, 간절히 하는 방법,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체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이 오직 청정(淸淨)한 마음, 간절한 마음.

마음을 비워야만 마음이 청정하고, 마음이 청정한 그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이 무엇고?’

 

우리는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쓸데없는 생각, 쓸데 있는 생각,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부질없는 생각, 무슨 생각이 되었건 항시 '한 생각'은 일어나 있기 마련인데,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 무엇고?'

‘이 무엇고?’로 돌아옴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은 청정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아 놓은 사람이라야 이러한 기도 때에 정말 간절히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고, 설사 이런 신수기도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평상시에 그렇게 마음을 닦아 놓은 사람은 생활 속에 무엇인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즉각 즉각 그 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러한 일을 즉접 경험하고 확실히 그렇다고 하는 것을 여지없이 믿고 알고 계신분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우리의 원(願), 우리의 소원은 그 사람의 얼마만큼 간절하며, 얼마만큼 그 마음이 청정한가에 따라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원이 있어도 간절하지 못하고, 설사 간절하다 하더라도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그 원이 이루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 그것은 오직 간절(懇切)하는 것이고 그 마음이 청정(淸淨)해야만 되는 것이여.(6분15초~26분14초)

 

 

 

 

(2)------------------

 

용화선원은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선양(宣揚)하는 정법도량(正法道場)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월 초에 일주일간 신수기도를 봉행하게 법을 만드신 조실스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복(福)과 혜(慧), 두 가지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복만 있고 혜가 없어도 안 되고, 혜만 있고 복이 없어도 아니된 것입니다.

혜(慧)가 밝아서 도인(道人)이 되어도 복이 없으면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떠한 조실스님이 대도를 성취해서 큰 도인(道人)이지만, 전생부터서 너무너무 복을 닦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 도인을 믿고 그 도인에게 법(法)을 배우러 제방(諸方)에서 많은 제자들, 선객(禪客)들이 모였지만 식량이 없고 그 선원(禪院)을 운영해 나갈 만한 재정이 없어서 많은 선객들을 수용을 못했던 것입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그 선원을 운영해 나갈 만한 재정이 없어서 왔다가는 다 가고 왔다가는 다 가고, 단 열 사람도 지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福)을 닦지 아니하고 혜(慧)만을 닦으면은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세속(世俗)에서 사는 사람 가운데에도 전생에 지혜(智慧)를 닦아서 머리는 천재이지만, 그렇게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지만 복(福)을 전생에 닦아 놓지 않기 때문에 너무너무 가난에 쪼들러서 자기의 그 유능한 두뇌와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평생을 가난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러한 사람들을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에 여러분 이웃에서 그러한 사람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福)을 닦아 놓지 아니하고 오직 지식 지혜만 닦은 까닭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혜(智慧)는 닦지 아니하고 복(福)만을 닦아 놓은 사람은 머리는 바보이면서,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어떻게 된 셈인지 돈은 많아 가지고 재산은 아주 불꽃 일어나듯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산은 많지마는 머리는 돌대가리여, 바보여.

부모덕에 돈은 많고 좋은 옷은 입고 그렇지만 머리가 나빠서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한 그러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福)만을 닦아서 갖추었지 지혜를 닦지 아니한 결과인 것입니다.

 

복도 필요하고 지혜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도 닦으면서도 복을 닦아야만 복과 지혜를 다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우주법계(宇宙法界)에서 최고에 지혜(智慧)를 성취하시고, 최고에 복(福)을 성취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복과 지혜를 갖추신, 두 가지를 원만(圓滿)히 구족(具足)하신 성현(聖賢)이다. 그래서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이다. 양족, '두 양(兩)'자, '족할 족(足)'자. 두 가지를 원만히 족하게 구족하신 성현이신 부처님이라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신 대성현이신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제자이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 지혜와 부처님의 그 복을 본받아서 우리도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아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복혜쌍수(福慧雙修).

 

그동안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듣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대지혜(大智慧)를 성취하고, 또 대복(大福)을 성취하기 위해서 또 이렇게 신수기도를 봉행하고, 보시를...

그 복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는 보시(布施)를 닦아야 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보시가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보시는 바로 희사(喜捨)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보시, 정신적인 보시, 법보시(法布施),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간탐심(慳貪心), 원망(怨望)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도 다 버려 버리는 이것도 또한 희사이고,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을 남에게 희사(喜捨)하는 것도 보시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온갖 것을 다 깨끗이 버려 버리는 것도 하나의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주어 가지고 정법(正法)을 믿게 하는 거, 이것도 보시요 희사인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를 열심히 수행을 해서 금년 일 년 동안 여러분의 모든 재앙이 다 소멸(消滅)이 되고,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소원(所願)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반드시 소원이 성취되실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비록 천만산 구름처럼 구름 일어나듯 그렇게 많은 말을 한다 하더라도, 해천명월(海天明月)은 본무언(本無言)이니라, 저 한없는 바다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는 법이다.

 

새해 신유년(辛酉年)은 여러분의 소원성취(所願成就)하는 해입니다.

그 소원이 틀림없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한마디로 말해서 여러분 각기 마음보를 고쳐야 합니다.

 

'내가 왜 마음이 어때서 나보고 마음보를 고치라고 하느냐?'

그 마음보만 하나 탁! 고쳐 버리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무엇이 나뻐서 그래?' 내 마음이 좋다고 하는 고 마음보가 꼭 고쳐야 할 마음보인 것입니다.

 

조용히 가슴에다 손을 대고 정말 자기의 마음을 반성(反省)을 하고 참회(懺悔)를 하십시오.

남편과의 관계, 시부모와의 관계, 자식 며느리와의 관계, 형제간과의 관계, 일가친척 이웃과의 관계, 상관과 부하의 관계, 모든 관계에 있어서 '나는 잘하고 저 사람은 못하고, 나는 잘못이 없는데 저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다' 그 생각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이 마음보가 좋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을 바다와 같이 넓게 깊게, 허공과 같이 높고 넓게 크게 그리고 맑게 가진다면, 내가 옳고 저 사람이 그르고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벌써 자기 마음이 깨끗지 못한 증거인 것입니다.

'새해에는 마음보 고치는 해다. 마음보 고침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하는 해다' 이 한마디를 명심(銘心)을 하시고 ‘이 무엇고?’ ‘이 무엇고?’를 열심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26분25초~39분21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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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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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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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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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명예·권리·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법(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송담스님(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 (용353)
 
(1/3) 약22분.
 
(2/3) 약 20분.
 
(3/3)약 12분.
 
(1/3)----------------
 
오늘 무진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廻向)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순치황제(順治皇帝) 출가 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순치황제가 19년 동안 중국의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무상(無常)을 느끼고 중국 천하와 천자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마치 우리 부처님께서 가비라(迦毗羅) 왕국의 태자(子)의 고귀한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또 역대 조사들이 정든 부모와 가정과 청춘을 버리고 출가한 인연, 이 모두가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왕사성(城)에 계실 때 아주 부자 집안이 있었는데, 아들을 하나 밖에는 기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주 신심이 돈독해서 항상 부처님께 나아가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너무 부처님 법문에 감동을 받아가지고,
‘내가 세속에 이렇게 묻혀서 있을 것이 아니라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정말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런 마음을 먹고서, 아주 마음의 결정을 하고 부모님께 출가할 의사(思)를 표시를 했습니다.
 
그 부모는 ‘우리 늙은이 앞에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 밖에 없는데, 네가 출가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도저히 안 된다’ 이렇게 허락을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도저히 출가할 뜻을 굽힐 수가 없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래가지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돈을 갖다가 부모님께 드리면서 “부모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나 내가 출가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고자 하는 이 깊고도 큰 뜻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동안 번 이 재산을 옴막 드릴테니 이것을 마음껏 잡숫고 싶은 대로 잡숫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그리고서 남은 돈은 보시를 하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고서 적당한 날이 돌아오면은 출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워낙 간탐심(慳貪心)이 많아가지고 그 많은 재산을,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한푼도 쓰지 않고 땅속 깊이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었습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못하고서 땅속에다 묻어 놓은 채, 행여나 누가 그걸 손댈까봐 밤낮으로 그걸 지키면서 벌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부모가 돌아갔습니다.
 
돈 한푼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어머니 장례를 잘 지내고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되기는 안되었지만 ‘드디어 내가 출가할 수 있는 기회는 왔구나’ 이리하고서 가산을 버려 버리고서,
 
부처님께 나아가서 출가를 해가지고 어떻게 폐침망찬(餐)하고—밥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대도를 성취를 했습니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어.
 
아라한과를 증득을 해가지고서 갠지스 강(Ganges江)—항하(河) 가에다가 암자(子)를 짓고서 거기서 보림(保任)을 하고 있는데, 밤이 으스름해지면 어디서 참 이상한 슬피 우는 그 귀신 소리가 나.
 
그 참 이상하다? 그 소리 난 데를 살살 걸어가서 보니까,
머리를 갖다가 산발을 하고서 그리고서 얼굴은 어떻게 험상궂게 생긴 데다가 손가락 발가락은 앙상해가지고, 마치 불에다가 끄슬러 놓은 것 같이 그렇게 생겨 가지고는 그 통곡을 하면서 운다 그말이여.
 
“대관절 네가 누구길래 내 공부하는 데 가까이 와 가지고 그렇게 밤만 되면 통곡을 하는고?” 물어보니까,
“예,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자(者)의 어미입니다. 내가, 어미가 죽어가지고 이러한 아귀(鬼)의 꼴이 되었습니다. 성자가 되셨으니 자비로서 이 어미를 갖다가 제도를 해주시오”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성자는 너무 참 기가 막혀.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으니 생사에 초월을 하고 무슨 거기에 인간의 얽매임이 있으리오마는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세상에 저러한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어.
 
그 아귀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아귀가 되어 가지고 목이 말라서 물을 먹기 위해서 강변으로 쫓아가면 강은 순식간에 말라 버리고, 배가 고파서 저 먼 데 과일 밭이 보여서 과일을 실컷 먹기 위해서 쫓아가면 순식간에 과일 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려.
이렇게 해서 여태까지 내가 물 한 모금 못 먹고, 과일 한 개를 먹지 못하고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몸뚱이는 장구통만큼, 이렇게 큰 절구통 같이 배는 크고, 목구멍은 실낱 끝 모가지여. 그래서 아귀의 모습은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끝 모가지’라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데.
 
그 성자가 말하기를 “어머니께 전생에 보시를 하라고 그렇게 내가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그것을 탐심이 과해 가지고 쓰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안 하고 그러시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셨구려” 그러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귀가 부탁하기를 “내가 그때 그 많은 재산을 아까워서 못 쓰고 울타리 밑에다가 묻어놨는데 그것을 파다가 스님네와 부처님, 그리고 여러 대중에게 고루고루 베풀고, 가난한 사람한테도 베풀고 해서 보시를 좀 해주시고,
그리고 부처님께 설법을 좀 해서 내 이름을 좀 불러주면서 나를 좀 천도(薦度)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래서 그 성자는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와 가지고 울타리 밑에를 그럴만한 데를 여기저기 파보니까,
과연 그 항아리 속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들어있어서 그걸 갖다가 널리 보시를 하고 큰 대시회(大施會)를 열어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잘 공양을 하셨는데, 그 아귀가 그 공양 석상(上) 저 갓에 가서 벌벌벌벌 떨면서 울면서, 그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거기 서있었는데,
 
그 공양이 다 끝나자 그 아귀가 엎드려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면서,
“석가 세존(世尊)이시여! 이 불쌍한 죄 많은 중생을 위해서 참회를 받으시고 설법을 해서 제도해 주시옵소서” 아주 간곡히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드님이신 성자도 또 같이 엎드려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조그마한 공양하는 공덕으로 참회를 받으시고 이 불쌍한 아귀 중생에게 빨리 해탈을 얻도록 해 주시옵소”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셔서 방편력(方便力)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거기에 운집(雲集)한 모든 대중과 이 우주 법계에 가득한 유주무주(有主無住)의 고혼(孤魂)들까지라도 모두 해탈을 하고, 그 아귀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워낙 죄를 많이 짓고 간탐이 심해서 해탈도는 증득을 못하고 겨우 아귀의 몸을 간신히 벗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그 성자가 참선을 하면서 선정(禪定) 중에 ‘지금쯤은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 태어나셨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하고 가만히 작관(作觀)을 해보니까,
아직도 귀신의 몸을 벗지를 못하고서 고통은 받지는 않는데, 아주 재산이 많은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살아있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지만 귀신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잘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경전에 아주 부자의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또 지키고 있다 그말이여. 
 
사람이 탐심이 많으면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그 자기의 재산을—자기가 모아놓고 평생에 쓰지 못한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항상 지키면서 그 애착 때문에 떠나지를 못하는 수도 있고,
 
또 구렁이 같은 것이 되어가지고 그 집안의 용마루 밑에나, 어디 창고 벽 사이나 그런데 가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그것을 지키면서 있는 것입니다. 그걸 '업'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그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성자가 거기를 가 가지고서 “옛날에 어머니가 그렇게 간탐심이 심해가지고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한 것을 벌써 잊었습니까?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그렇게 고통을 잠시 벗었으면 아주 벗어 버릴 일이지, 어찌 다시 이런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또 지금도 간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눈물로서 호소를 했으나 “나는 이 재산 없으면 못살어, 내가 이 재산 지키는 재미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못 버린다”고 아주 그냥 탁 잡아뗀다 그말이여.
 
그래도 아주 여러 시간을 두고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하고 해가지고 간신히 무엇을 얻어냈느냐 하면, 백목(白木) 두 필을 겨우 얻어냈습니다.
 
얻어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지고 스님네께 보시 공양을 하리라’하고, 아직은 그 어떤 스님한테 임시로 그것을 맡겨 놨는데 얼마 있다가 그걸 찾아다가 팔려고 가니까 그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이상하다’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자기 어머니가 다시 훔쳐갔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어머니한테 가서 보니까 과연 그 백목 두 필이 그 어머니한테 가서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또 설득을 해가지고 또 찾아다가 다시 맡겨놨는데 또 찾아가고, 세 번을 그렇게 찾아왔다가 또 도둑을 맞고, 찾아왔다가 도둑을 맞고, 그러니까 그 맡았던 스님이 진심(瞋心)을 내는 거여, ‘나 앞으로 이거 못 맡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팔아서 대중에게 나눠드릴 게 아니라,
아주 이 자리에서 조금씩 잘라서 나눠드릴 수 밖에 없다 해가지고 그 자리에서 그것을 끊어 가지고 스님네한테 전부 다 나눠드려가지고 그 자리에서 모두 옷을 해서 그래가지고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 그 옷이 또 자고 나면 없어져 버려.
 
그래서 그런 탐심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탐심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 탐심 때문에 그 무서운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받고도 정을 못 떼시고,
또 귀신이 재물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간신히 보시한 것이 그것이 또 아까워 가지고 세 번을 훔쳐오더니, 네 번째는 옷을 만들어서 입고 있는 것도 잠깐 벗어 놓은 차에 그것도 또 훔쳐 가버린다 그말이여.(처음~21분37초)
 
 

 

 

 

(2/3)-----------------
 
부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대중이 그렇게 옷을 도둑맞았다'고 하는 그러한 사실을 부처님께서 들으시고서 대중하게 설법을 하시기를,
“탐욕의 불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간탐하는 욕심의 불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길이길이 악도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탐욕의 무서운 독이로구나!
너희들은 어서 속히 중생들의 그 탐욕을 때를 빨리 벗어 버릴지니라.”
 
그래서 그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보시라 하는 것은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다 보시라고 생각하고,
재산이라든지, 재산 가운데에는 돈도 있고 금은보화 또는 먹을 거 또는 입는 거 이런 물질 보시를 대충 다 보시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절에다 시주를 한다든지, 스님네께 공양을 한다든지 또는 양로원이나 고아원 또는 형무소,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그러한 물질을 보시한 것이 바로 보시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도 보시가 아닌 것은 아니야.
 
그 밖에도 몸뚱이, 신체의 보시가 있어. 몸뚱이를 배고픈 호랑이한테 보시를 한 것.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행(因行) 때에 배고픈 호랑이에게 그 몸뚱이를 보시하는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거라든지,
또 스님네가 돌아가실 때에 산중에서 돌아가시면은 산중에 사는 모든 산짐승에게 보시를 하고 또 물에서 돌아가시면은 수중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고, 이러한 몸뚱이를 보시하는 것이여.
 
또 이 몸뚱이의 살과 뼈만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노력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노력을 보시하는 것도 또한 한 보시의 종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시’가 있어. 마음의 보시는 수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보시고,
또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것도 하나의—당신이 누려야 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그것도 보시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치황제 출가하신 것도 또한 보시여.
 
수행을 해서 아(我)가 공(空)하고, 법(法)이 공하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구공(俱空)하는 것이 그것도 또한 엄격히 말하면 그것도 하나의 마음의 보시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리고 법보시(法布施)가 있는데 경전을 인쇄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 것, 이것 법보시고,
또 자기가 수행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던지, 경전을 봐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법을 믿도록 인도하는 것 이것도 또한 법보시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까 마음의 삼독심을 버리고 아공과 법공 구공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의 보시’라 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마음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남의 잘못을 용서(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존심만을 내세우고 남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나의 주장을 양보하고 그 사람의 뜻을 따라주는 것, 부부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자기의 뜻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의 의견만을 내세우면 이것은 마음의 보시가 아닌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것에서 일체 중생을 수순(順)하고,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蜜) 속에 제일 첫번째 있는 단바라밀(蜜), 보시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 보시하고, 몸뚱이로 보시하고 또는 법으로 보시하고, 이 보시를 자꾸 부처님께서 권장하시는 뜻은 보시를 그렇게 함으로서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의 보시의 참뜻을 터득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를 못하고, 남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해대고,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보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견을 국집(局執)하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고 항아리에다 담아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지키다가 아귀가 되고 구렁이가 된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자기의 아만(我慢)과 아애(我愛), 아치(我癡)를 자기의 마음의 재산으로 삼아서 그것에 국집해 가지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에게 양보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싸우고, 남편과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 싸우고, 친구 간에 싸우고, 모든 이웃과 싸운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어떻게 그 사회가 복을 받게 되며, 행복한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가 이룩되겠습니까.
 
 
이번 무진년 새해를 맞이해서 신수기도를 일주일간 참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새벽부터 법당에 가득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기도에 많은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이 참석을 하셔서 기도하신 것은 대단히 기특하고, 감사하고 참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그 기도를 통해서 보시의 참뜻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보시, 신체의 보시, 마음의 보시, 법보시 이러한 여러 가지 보시를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서, 상황이 따라서, 자유자재로 보시를 할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보시를 하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며 소원을 성취를 하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런 재산이라든지, 몸뚱이라든지 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존심이라 하는 것이 전부가 업(業) 소생(所生)인 것입니다. 업으로 뭉쳐진 것이여요.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그 탐욕의 소산(産)으로 결국은 그런 재산이 뭉쳐졌고, 이 몸뚱이도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나게 된 것이고,
자기의 자존심도 아무리 학식이 높고 이 세상에 제일가는 명예와 권리를 가졌다 하더라고 그 마음속에 자기의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런 것들도 전부 탐진치 삼독의 소산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탐진치 삼독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그 비근한 예를 들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꿈을 꾸면 구렁이나 그런 뱀 꿈을 꾸거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 해가지고 그 이튿날 당장 나가서 복권을 삽니다.
 
어째서 구렁이 꿈이나 돼지꿈을 꾸면, 물론 용도 구렁이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용꿈이나 구렁이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해 가지고 그 이튿날 복권을 사면은 1억짜리가 당선된다고 믿고 다투어 그 꿈을 서로 살려고 그러고 그런데, 그 돼지도 완전히 탐욕의 권화신(權化身)인 것입니다.
 
돼지는 욕심이 많아가지고 먹을 것을 보면 제 새끼도 소용없고, 옆에 누가 올까봐서 오면 막 물어뜯어 버리면서 배아지가 터지도록 막 먹어 대는 것입니다.
사람이 식탐이 많은 사람은 먹을 것을 보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고, 잔뜩 먹고 옆구리가 빵빵해져야 “어째서 빨리들 안 먹어?” 자기가 배가 부르기 전에는 옆에 사람 배고픈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다 가만히 그 사람 한참 먹고 있을 때 눈을 보면 영락없이 돼지 눈입니다. 돼지라든지 구렁이라는 것이 전부 전생(前生)에 탐심이 많아가지고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탐심 많은 그 탐착심, 자기가 모아 놓은 재산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갔다하면은 백발백중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헌 집, 묵은 집을 뜯으면 귀 달린 구렁이가 나온다고 그럽니다.
이게 다 그 집안에 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아가지고 그 재산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물려주고서 그놈 아까워서 어디로 뚝 떠나지를 못하고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다 ‘업’이라고 그러죠. 그러한 구렁이.
 
그리고 꿈에 똥항에 빠졌다든지, 똥을 옷에다가 쌌다든지, 무슨 똥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똥이라든지 구렁이라든지 용이나 또 돼지 이런 것들은 바로 그것이 재물, 재산과 동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그런 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들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어디를 지나가시는데, 부처님께서 제일 앞에 서서 바리때를 들고 이렇게 가시는데 요리 골짜기를 보시고서 “어이쿠 구렁이 봐라. 독사(蛇) 봐라!” 그리고 부처님 지나가시니까,
그 뒤에 따라가던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차츰차츰 제자들도 이리 보면서 “어이쿠 독사 봐라!” 가면서 그러니까, 그러면서 제자들이 쑤욱 다 지나갔는데,
 
저만큼서 풀을 뜯던 사람이 ‘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저기 독사가 있다고 깜짝 깜짝 놀라면서 지나가시는데 대관절 무슨 무서운 독사가 있기에 그런고’하고 살금살금 가서 조심스럽게 골짜기를 들여다보니까,
 
아따! 금은보화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데 ‘참 이상하다, 어째서 저것을 독사라고 지나갔을까! 내 눈에는 저것이 헛보이나 보다’해 가지고,
무서워서 돌멩이를 거기다가 던져보니까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는데, 저것이 독사 같으면 꿈틀거리고 물러 쫓아올텐데 오히려 그 번쩍번쩍하면서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고, 몇 번을 던져 봐도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 가지고는 작대기로 이리저리 쑤석거려 봐도 독사 커녕은 분명히 칠보(七寶)가 분명하다 말이여.
 
그놈을 갖다가 속적삼을 벗어서 탁 쌓아 가지고는 누가 쳐다보나 어쩌나 두리번거리면서 마침 아무도 안 보고 있으니까 그놈을 갖다가 집으로 가지고 와 가지고는 그냥 벌벌 벌벌 떨면서 마당 저 뒤에다가 구덩이를 파고서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어놓고는.
 
아! 그놈을 해놓고는 너무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네. 그래가지고는 밤중에면 가만히 가서 뚜껑을 열고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고 넣고, 이렇게 좋은 것을 그냥 묻어만 놔서는 안되겠고,
조금씩 뜯어다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또 집도 고치고, 논도 사고 해서 차츰차츰 인자 심심하면 한덩어리씩 내다팔고 팔고 그랬는데,
 
며칠 있더니 관가에서 지금 같으면 형사대들이 와 가지고는 집을 둘러싸고는 “이놈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서 그래가지고는 무슨 일인고 하고 나갔더니,
“너 이놈” 다짜고짜로 때려 묶어서 끌고가 가지고는 아주 그냥 뒈지게 뚜드려 패서 몰골이 났다 그말이여.
 
“너 이놈 바른대로 대라. 나라의 보물이 잃어버린 지가 여러 날이 되어도 간 곳이 없는데 이놈, 네놈이 훔쳐다 팔아먹어?” “아닙니다, 제가 팔아먹지를 않았습니다”
“이놈, 네가 갔다가 아무데 금방에다가 몇 번을 이러이런 것을 팔아먹지 않았냐?”
“훔치지는 절대 안 했고 골짜기에서 주워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쁜 놈의 자식, 주워 와? 골짜기에 왜 나라의 창고에 든 놈이 거기에 있어? 이 나쁜 놈, 요놈이 맛을 봐야 해” 어떻게 뚜드려 맞았던지 볼기가 아주 그냥 개떡처럼 뚜드려 맞았어.
그래가지고는 기절을 했다가 찬물을 찌그려서 또 뚜드려 패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뚜드려 맞고,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서 아주 그냥 궁뎅이가 말로 할 수가 없어.
 
꿍꿍 앓으면서 “아휴, 그때 부처님이 독사라고 그러더니 정말 이놈이 독사로구나!” 아, 그냥 그 말을 푹 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말을 옥졸이 듣고 가서 보고를 했어. “그놈 잡아오너라”
 
“부처님이 어떻고 어때?” 그러니까,
“예, 사실은 부처님이 지나가시면서 독사라고 그랬는데 내가 아무리 봐도 독사가 아니기에 주워 왔습니다”
 
급히 사람을 부처님께 보내 가지고 “정말 그 골짜기에서 독사를 보신 일이 있었습니까?”
“응, 그걸 봤지”
 
사실이 확인이 되니까, “너 이놈! 아무리 그걸 주웠기로서니 그 많은 보물을 주웠으면 당연히 나라에다 바쳐야 하는 것인데, 네가 숨겨놓고 살살 그놈을 팔아먹은 죄가 마땅히 널 사형을 시킬 일이로되, 부처님과 관련이 되어졌어. 그러니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봐서 너를 살려준다”해 가지고는 풀어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은 그런 재물을 분명히 그것을 독사로 보셨기 때문에 깜짝 깜짝 ‘이크! 이크!’하면서 지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이야 그까짓 것이 뭐 금이나 자갈이나 그것가지고 탐내실 분은 아니로되,
만약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좀 아직 확실히 도를 이루지 못한,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서, 만약에 그놈을 살며시 훔쳐다가 놓고 팔아먹었다 하면 진짜 그 스님도 독사에 물렸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확실히 그것이 독사인 줄 아셨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지나가셨으므로 그런 국법에 저촉을 받으시지를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나무꾼이 그것을 독사라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현혹이 되어가지고 그놈을 훔쳐다 놓고 팔아먹다가 그 못 당할 그런 곤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21분38초~41분17초)
 
 
 
 
 
 
 
(3/3)----------------
 
그래서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독사요, 똥보다도 더 더럽고 독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여.
그러나 세속에 살면서는 그것이 나중에 독사가 되었건, 똥이 되었건 우선 그것이 없으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고, 집도 재산인데 그것이 없으면 이 몸뚱이를 갖다가 거처를 할 수가 없고, 자녀들도 가르킬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안되어 버려.
 
출가한 스님네는 그저 도(道)만 열심히 닦으면은—도 닦다가 굶어 죽은 일이 없기 때문에 나가서 돈벌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하지만, 세속에 사시면서는 천상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어.
어디 나가서 자기 동기 간한테 가서 손 벌려도 잘 주지도 않고, 친구 간한테도—좀 가난해서 돈이 없다고 돈 달라고 하면 당장 그 이튿날부터선 친구도 별로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돈 있으되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잘 벌고, 열심히 벌고, 벌어서 요긴하게 쓰고 그리고 또 적당하게 보시도 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은 하되,
그것이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땅에다 묻어놓고 벌벌 떨다가 아귀가 된다든지, 구렁이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탓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졌고 업장이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회향날 또 이러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이런 말씀을 듣고서 ‘참! 과연 옳은 말이다. 내가 그동안에 아까 와서 아낄 줄만 알았지 정말 보시의 참뜻을 내가 몰랐구나!’
이리 생각을 하고 앞으로는 그 재산을 옳게 관리하고, 옳게 쓰고, 옳게 베푼다면—그거 써 버리면 아주 없어질 줄 알고, 늙으면은 간탐심이 굳어져 갖고 보시를 잘 못합니다.
 
젊어서는 또 생기거니 하고, 생길 수도 있고 벌 수도 있으니까 더러 쓰다가, 나이가 한 오십 육십 되면 인자 내가 벌 수도 없고, 누가 잘 갖다주지도 않으니까 ‘이것 떨어져 버리면 내가 인자 꼼짝을 못하겠다’해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꽁꽁 싸가지고는 깊은 데다 넣어 놓고 있다가 결국은 죽어버리면 참 그것 못쓰는 것입니다.
 
이 회향날을 맞이해서 보시(布施)가 마음의 업장을 소멸하고, 나아가서는 「참 보시」는 물질적 보시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그 보시야말로 보시의 참뜻이라 하는 거,
 
그리고 남에게 보시 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상(相)이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그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아닌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라야 그 공덕이 무량무변(邊)한 것이지, 유주상(有住相)으로 하면 그 보시가 아주 그 조그마한 한계가 있는 그러한 보시 밖에는 안되고, 그 보시 공덕으로 얻어봤자 유루(有漏)의 복 밖에는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무루복(無漏福)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가에 날아갔는데, 기러기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남아있고,
인거황천(人去黃)에 명재가(名在家)로구나. 사람은 저 황천(黃泉)으로 떠났는데 그 이름만 자기 살던 집에 남아 있구나.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벌이 일백 가지 꽃에서 꿀을 따다가 놨는데,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이다. 그 벌이 백 리, 이백 리 밖에까지 나가서 온갖 풀과 꽃,
그리고 심지어는 시궁창, 변소, 간장독 또 뱀 썩은 거, 모든 짐승이 썩은 거, 쇠똥, 천 가지, 만 가지 물건에서 꿀이 될만한 요소를 빨아다가 그래서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며 그 벌의 세계에 있어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해가지고 그 법도가 엄한 것이며, 놀고먹는 벌은 다 물어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 가지, 만 가지 고통을 사양하지 않고 모아 놓은 꿀, 자기네들도 함부로 먹지 않고 꿀통에다가 그렇게 일 년 내에 모아 놓은 꿀을, 벌의 그 고통은 아랑곳없는 사람이 그놈을 딱 도려서 따다가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젊어서부터 공부하고 피땀 흘려서 노력을 하고, 밤잠 안 자고 공부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 검사가 되고, 도지사 장관이 되고 그러한 하늘을 찌르는 높은 명예와 권리를 얻었다 해도,
 
마치 기러기 하늘 끝에 날아간 뒤에 발자취만 모래밭에 남듯이, 황천에 한번 떠나 버리면 아무 할 일없이 이름만 얼마동안 세상에 남아 있다가 오래되면 그것마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놨던 재산, 가는 길에 한푼 가져가지 못하고 그 재산은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백년을 다 못다 사는 이 무상한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났으되 무엇을 위해서 그러면은 이 몸뚱이와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명예도 헛것이요, 권리도 헛것이요, 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처님의 법, 정법(正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
그래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영원히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금년에 삼재가 드신 분들은 지난 입춘에 기도를 열심히 하셨을 것이고 또 이번에 신수기도에도 참 열심히 새벽같이 나와서 열심히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많이 업장이 소멸이 되고 삼재를 면하셨을 것입니다마는 아주 정말 깨끗이 뿌리째 그 삼독의 악귀를 갖다가 내버리려면,
이웃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보시하시고 또 절에 불사(佛事)가 있으면 보시하시고 또 병든 스님네가 있으면 보시를 해서 아주 마지막 그 끝마무리를 잘하십시오.
 
이번 한번 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에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서 그러한 무주상 보시를 하시는 것은,
세세생생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면하고, 무량무변의 무루복을 증득해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具足)한 그러한 인격완성을 성취하실 것입니다.(41분18초~53분12초)(끝)
 
 
 
 
 
----------------(1/3)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년에 태어나 1643년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청나라 제 3대 황제. 재위 기간은 1643년~1661년.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재가(在家) ; ①세속 떠나지 않고 에서 스님처럼  닦음또는 그런 사람. ②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염의( 물들일 염,옷 의) ; 출가자의 옷. 출가하여 속세의 옷을 벗고 법의(法衣)를 입는 것도 염의라 하고,
출가할 때에 머리나 수염을 깎고 염의를 입음으로써 스님이 되는 것을 낙발염의(落髮染衣), 체발염의(剃髮染衣)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옴막 ; '전부(全部)'의 사투리.
*간탐심(慳貪心 아낄 간,탐할 탐,마음 심)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 마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 가로질러 벵골 ()으로 흘러들 가는 인도 최대 길이 2,510킬로미터).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성자(聖者)모든 번뇌 버리고 진리 깨달은 사람.
*아귀(餓鬼) ;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늘 굶주린다고 한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시회(施會) ; 베푸는 모임.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석상(上)[주로 일부 명사  쓰여]여러 사람 모인 자리.
* ; ‘가(바깥쪽 경계 되는 가장자리 부분이나  부근)의 사투리.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방편력(方便力) ; 뛰어난 교화방법. 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지혜의 힘. 방편의 작용.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세상에 펼치는 지혜의 작용.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선정(禪定) ; 산스크리트의 디야나(dhyāna), 팔리어 자나(jhāna)의 음역(音譯)인 선(禪)과 그 의역(意譯)인 정(定)이 합하여 생긴 말. 선(禪)은 정(定)·정려(靜慮)·기악(棄惡)·사유수(思惟修) 등으로 의역한다.
6바라밀의 하나. 마음 고요한 내관(內觀). 마음의 번뇌를 가라 앉히는 것. 정신 집중의 수련. 좌선에 의해 몸과 마음이 깊게 통일 된 상태.
*백목(白木)무명실  천.
 
 
 
 
 
-----------------(2/3)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수순(順) ; 남의 뜻에 따르거나 순순히 따름.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단바라밀(檀波羅蜜)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단()은 산스크리트어 dāna의 음사(音寫)로 보시, 보시(布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바라밀(波羅蜜)은 도()•도피안(到彼岸)이란 뜻임.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수행의 법을 말함.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과 같음.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①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애(我愛) ; 자아에 대한 애착심.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자아(自我)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똥항(똥缸 항아리 항) : 재래식 화장실(칙간)의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이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권화신(權化身) ;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속적삼저고리  껴입는 적삼저고리 모양 윗도리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입는 홑옷이다.
*다짜고짜로어떤 일의 내용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바로.
*몰골 ; 볼품없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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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록(祿 복 복,복 록)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 녹봉(祿俸 예전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 대한 보수 주던 곡식이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에서복되 영화로운  비유적으로 이르는 .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재액(災厄)재앙으로 입게 되는 불운.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무량무변(邊)한없이 크고 넓음또는 헤아릴  없이 많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게송) ‘採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甘’[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아랑곳없다 ;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22. 16:4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351) 심지법문(心地法門) / 산적과 한 여자의 지혜 일화 / 심기일전(轉)하는 지혜의 힘은 참선 공부에서 온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조그마한 원이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중생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했으면 이 생사윤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영원히 행복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까닭으로 해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설해 주신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딱 안정을 해가지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 줄 아는 그러한 여유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거기에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참된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하시면 기도와 참선이 둘이 아닙니다.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화두를 거각(擧却)하듯이,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정근(精勤)을 정성껏 하시면, 삼재도 녹아 없어질 것이고, 여러분의 유루복이 되었건, 무루복이 되었건, 복과 지혜를 쌍으로 성취하시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351)—신수기도 입재(88.02.20) (용351)

 

(1) 약 21분.

(2) 약 4분.

 

 

(1)------------------

 

오늘 무진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입재일을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잘 들었습니다. 

 

‘신수기도’라 하면 그 해 1년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碍)해서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비는 그러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내용은 기도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해야 기도를 성취한다고 하는 기도에 관한 구체적인 법문이 아니고, 순전히 내가 나를 깨닫는 그러한 심지(心地)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법문을 잘 듣고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정말 신수기도 기도 성취를 위해서는 이보다 더 간곡한 법문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한량없는 생사의 업(業)을 짓고 또 그 업에 의해서 생사의 윤회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는데 그 생사업(生死業)이 무엇이냐? 탐심(貪心)이요, 진심(瞋心)이요, 치심(癡心)입니다.

 

탐내는 마음, 무엇이고 탐을 내! 욕심을 내고 탐을 내가지고 그 욕심내는 대로 뜻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성을 냅니다.

또 이어서 욕심을 내고 그것이 이루지 못하면 성을 내고 또 욕심내고 그러기를 날이면 날마다 무량겁을 그렇게 계속해서 해 내려오는데,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아하! 욕심을 낸다고 해서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이리 생각하고 분(分)을 알아야 하고 족(足)한 줄을 알면 쓸데없는 허욕(慾)을 내지를 아니할 것이고, 허욕을 내지 아니하면 성낼 것도 없고 그러면 그것이 지혜 있는 사람인데,

 

욕심을 내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성을 내고 하기를 끝없이 계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리석다’하는 것이고, 그 어리석음 때문에 무량겁 생사윤회를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께서는 혹 집안 식구 가운데에 삼재(三災)가 들었거나,

또는 어떠한 가정상 또는 어떤 회사나 직장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거나 또 중대한 그런 문제가 있어서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잘 극복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어려움을 풀고서 뜻대로 소원을 성취할 것인가?

그런 나름대로 중대한 원(願)이 있어서 지금 모두 이렇게 모이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서 초아흐렛날까지 7일 동안 엄숙하게 경건하게 기도를 봉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도의 목적을 정말 잘 세워야 합니다.

 

첫째, 목적을 잘 세운 다음에는 그 기도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정말 올바르게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 성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어떻게 세우냐? 우선 당면(面)에 당장 급한 문제를 성취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목표 삼아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 그것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금방 그 문제 다음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또 나타날 것입니다. 또 그 문제를 위해서 열심히 원을 세워서 기도를 합니다.

설사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꼬리를 이어서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먹은 만큼 낱낱이 다 성취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인생살이인 것입니다.

성취가 안되어도 고통이요 근심 걱정이요, 성취가 되어도 끝없는 걱정이 끝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그러한 조그마한 원을 위해서, 조그마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중생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사윤회를 해왔는가?’ 그 근원을 밝게 판단을 해가지고,

‘어떻게 했으면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영원히 행복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까닭으로 해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설해 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그 무렵에 산중에 아주 궁술(術) 활을 잘 쏘는 무사가 있었습니다. 그 활 잘 쏘는 무사는 활만 잘 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무예(藝)에 대해서 통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가 있었습니다. 아주 예쁘고 아리따운 딸 하나만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사윗감을 하나 골라서 딸을 결혼을 시켜야겠는데,

기왕이면 그 사위도 자기 못지않은 그러한 무술에 달통한 그러한 사위를 두어서 그 사위로 하여금 자기의 무예를 전수받게 했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항상 원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청년이 그 산중에 훌륭한 무사(士)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와서 그 선생님을 찾아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매일 무술을 배우는데 그 선생님한테 아리따운 딸이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다 서로 그 아름다운 처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둘이 그 처녀 하나를 놓고 서로 사랑하고 또 서로 ‘선생님의 눈에 들고 무술에 있어서 합격이 되어 사위가 되어가지고 그 처녀와 결혼을 해서 선생님의 무예를 갖다가 이어받으리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정말 몸과 목숨을 바치다시피 해가지고 무술을 공부하는데,

 

한 사람은 천부적인 무술에 소질이 있어서 다 같이 배우는데 그렇게 잘 숙달이 되어서 궁술 뿐만 아니라 검술로 그밖에 뭐 태권도로, 있는 무술은 그저 뭐 하늘에 솟구쳐서 십팔 변화를 일으켜서 떨어지고 하는 무술을 다 익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겨우 한 가지밖에는, 칼 쓰는 한 가지밖에는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두 사람을 무술 시합을 붙여가지고 결국은 한 사람이 이겨서 그 한 사람한테 딸을 여의었습니다.

 

한 가지 무술밖에 익히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그 스승 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술이 부족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너한테 뺏겼지만 내가 언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복수를 하리라.

자기가 무술이 모자라가지고 뜻을 이루지 못해 가지고서, 무슨 허물을 갖다가 스승한테 돌리고 허물을 갖다가 친구한테 돌려가지고 원한심을 품고 떠났다 그말이여.

 

어디를 갔느냐? 하면 저 다른 산중으로 가 가지고 산적 있는 데로 들어갔어. 그래가지고 산적 밑에서 자기 나름대로 무술을 더 익히고 그래가지고 산적의 두목이 되었어.

 

산적 두목이 되어가지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 길목을 지켜서 보물과 재산을 빼앗아가지고 그렇게 산적 두목이 되어서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언젠가는 그 친구를 갖다가 죽이고 그 처녀를 뺏어서 자기 마누라를 삼으리라’ 이렇게 하루도 그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이 아내와 더불어 수레를 타고 그 산적이 있는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거기를 지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요로(路)를 지나가는데 앞서가던 많은 장사꾼들이 수레를 멈추고 나아가지를 않아.

 

그래서 “왜 안 가고 거기 멈추어 있느냐?” 그러니까 “요 앞에 가면 산적들이 있어가지고 가다가는 재산을 다 뺏기고 목숨까지 잃게 되기 때문에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적 같은 것이 무서워서 못 가겠느냐, 내가 간다” 그래가지고는 수레를 몰고 거기를 갔습니다.

 

지나가니까, 졸개들이 보고서 바로 자기 두목한테 보고를 했어.

다섯 놈의 칼 잘 쓰는 놈을 보내가지고 ‘두 놈들을 다, 년 놈들을 잡아오너라’ 다섯 놈이 달려드는데 당해 낼 수가 없어. 다섯 놈이 다 거꾸러졌습니다.

또 다시 열 놈을 보냈는데, 열 놈이 삽시간에 모가지가 다 떨어져 버렸어.

 

할 수 없이 인자 산적 자신이 칼을 들고 나와 가지고 “오늘날에사 내 비로서 내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리 들어오너라”해 가지고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멀찌감치 서서 아주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사람은 오백 개의 활을 그 산적한테 대해서 활을 쐈습니다. 오백개중에 499개를 쐈는데 쏘는 쪽 쪽 그 산적의 칼에 맞아서 화살이 두 동강이가 나서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화살 하나 남아서 그것을 활에다가 딱 끼워 가지고, 산적을 향해서 화살을 갖다가 끼어가지고 있는데 활을 쏘지를 안 해. 그러니까 저쪽에서도 칼을 빼들고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노려보고 있고.

 

그런데 활 잘 쏘는 사람 부인이 “왜 마지막 화살을 쏴서 저놈을 죽이지 아니하고 왜 그렇게 노려보고만 있느냐?” 그러니까.

“이것 하나 쏴서 이것마저 실패하면 당신도 죽고 나도 죽게 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과연 그 여자가 생각할 때 틀림없이 쏴봤자 또 저 칼에 맞아서 부러질 것이 빤하고, 그렇다면은 두 사람이 죽거나 자기는 도둑놈의 계집이 되거나, 이렇게 되었다 그말이여.

여자가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까 영락(落)없이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퍼뜩 그 지혜가 떠올랐어. 무슨 지혜가 떠 올랐느냐?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리따운 몸매로 그 잘생긴 얼굴로 요염(艶)을 부리면서 나비같이 춤을 추고 하는데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산적이 그 모습을 보고 몽매지간(間)에도 잊지 아니한, 사랑과 원한이 사무치는 그 여자가 눈앞에서 그렇게 요염하게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거기에 아주 황홀경(境)에 빠져있다 그말이여.

그때에 바로 화살을 숨통에다가 쏴대 가지고 산적이 그 자리에 쓰러진 것입니다.

 

쓰러지면서 산적이 뭐라고 말을 했느냐?

“네가 활을 잘 쏴서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내가 칼 쓰는 솜씨가 부족해서 내가 죽은 것이 아니다. 오직 한 여자의 지혜 때문에 내가 졌노라” 이렇게 말을 하고서 푹 쓰러져 죽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살아갈 때에 또는 어떤 회사나, 어떤 기업체를 운영할 때에 또는 국가와 국가 간에 어떤 무역이나 외교를 할 때 또 수행을 하는 사람이 팔만사천 마군(魔軍)이와 대적을 해서 싸워나갈 때,

최후의 그 극진처(極盡處)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생각을 내면 실패를 하는 것이고, 한 생각 돌이켜서 심기일전(轉)해서 지혜의 힘을 발휘하면 영락없이 죽게 될 때, 영락없이 실패해서 망하게 될 때,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탐심을 내지 말고, 진심을 내지 말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지 말고 생각을 터억 돌이켜서 마음을 안정을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어떤 불화가 있건, 자기가 경영하는 회사에 어떤 어려운 사건이 있건, 대인관계나,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딱 안정을 해가지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 줄 아는 그러한 여유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거기에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당황을 해가지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불같은 욕심내고 그런다고 해서 일이 해결이 되지 않고 점점 앞이 캄캄하고 어둡고 일은 점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이 났다든지, 어떤 도둑이 들어왔다든지, 갑자기 어떠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평소에 참선(參禪)을 한 사람은 그럴 때 가서 탁! 마음을 돌이켜서 심기일전할 수 있는 지혜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평소에 참선을 아니 한 사람은 보통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곧잘 참 훌륭하고 침착하고 일을 잘 처리하지만, 어려운 일이 갑자기 일어나게 되면 당황하고 불안하고 초조해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처음~22분9초)

 

 

 

 

 

 

(2)------------------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꼭 30분 이상 참선을 하시고 그리고 기도를 하시고, 또 기도를 하고 가시는 걸음걸음도 또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저녁에 자리에 누우시기 전에 꼭 최소한도 한 시간 내지 30분은 참선을 하시고 그러면서 일주일 동안을 기도를 하시면 기도 성취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기도는 첫째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진실치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청정하지 못한 마음으로 아무리 불같은 욕심을 가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봤자 그런 기도는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참된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를 하시면 기도와 참선이 둘이 아닙니다.

 

일념 진실함으로서 진실한 마음으로 화두를 거각(擧却)하듯이,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정근(精勤)을 정성껏 하시면, 삼재도 거기에는 녹아 없어질 것이고,

여러분의 크고 작은 유루(有漏)의 복이 되었건, 무루(無漏)의 복이 되었건, 복과 지혜를 쌍으로 성취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마치 손톱 밑에 조그만한 가시가 들어서 그것을 빼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까,

그 병원 의사가 손톱 밑에 비집던 것은 별로 문제시(視)를 하지 아니 하고 그 사람의 심장에 큰 병이 든 것을 발견을 해서 그 중대한 심장병을 고쳐준 거와 같은 경우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삼재라든지 여러분의 가정이나 가족의 조그마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도에 참석하셨는데,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그런 심지(心地) 법문과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보물을 구할려다가 평생 동안 또는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그런 보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7일간이 하루처럼 그렇게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실 것입니다.(22분10초~25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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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심지(心地) ; 마음이 일체 만법을 내는 것이 마치 땅에서 풀·나무 등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함.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법문.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허욕(虛慾)분수 넘는 헛된 욕심.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락(落)없이 ; ①조금 다르지 않고  같게. ②예상이나 기대 조금 틀리지 않고  들어맞게.

*요염( 아리따울 요,고울 염) ; 사람 홀릴 만큼 매우 아리따움.

*몽매지간(夢寐之間) ;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동안.

*황홀경(境)놀랍거나 감격스럽거나 하여 정신 어지러울 정도 마음 뜨는 경지 지경.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극진처(極盡處) ; 힘이나 마음을 다하는 곳.

*심기일전(轉)어떤 계기 의하여  까지의 마음 완전히 뒤집듯이 바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〇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시(視)논의하고 해결해야  대상으로 삼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20. 16:10

 

 

§(320) 설산동자의 설화 / 기도는 청정하고 간절하고 일여한 신심으로 소원성취를 하고, 거기에 그치지 말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데 목적을 두고서 해야 한다.

 

기도를 오늘부터서 시작을 하는데 ‘기도하는데 무엇이 가장 으뜸이 되느냐?’하면 신심(信心)입니다. 간절한 신심, 철저한 신심, 깨끗한 신심, 한결같은 신심, 이것이 합해져야 그것을 정성(精誠)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7일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되 기도도 성취하고, 그 기도 성취하는데 그치지 말고 내 자성(自性)을 깨달아서 생사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데 목적을 두고서 이러한 기도 법회도 여는 것이고 이 기도 법회에 동참한 사람은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송담스님(No.320)—87년 정묘년 신수기도 입재(87.01.31) (용320)

 

약 11분.

 

 

정묘년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정말 감동 깊은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법문 가운데에 설산동자(雪山童子), 부처님께서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 들어가서 수행하시면서 그 나찰(羅刹) 귀신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신 그 설산동자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설산동자가 고행(苦行) 정진을 하고 있을 때에 어디서 게송(偈頌)이 들려오는데,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고 이것은 나왔다 죽었다 하는 생멸법(生滅法)이다” 이러한 뜻의 게송이 들려왔습니다.

 

그 게송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고 엄숙해서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러한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만한 그러한 상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만치 살펴보니 뿔이 돋치고 어금니가 튀겨져 나온 사람을 생으로 막 잡아먹는 무서운 나찰 귀신이 보였습니다.

 

설마 저 나찰 귀신의 입에서 저런 소리는 나올 리가 없겠지만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나찰 귀신에게, “방금 그 게송을 그대가 읊었느냐? 그대가 읊었다면 그 다음 구절이 있어야 할 것이니 그 다음 구절을 일러다오” 이렇게 간절히 청했습니다.

 

나찰 귀신은 시치미를 뚝 따면서 “행자(行者)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겠습니다” 전혀 대꾸를 아니 합니다.

“그래, 배가 고프면 내 몸뚱이를 너에게 줄 테니 그 나머지기 게송을 나에게 들려다오”

 

“나는 배가 고파서 우선 먹고 봐야지 배가 고파서 일러줄 수가 없다”

“그러면 내 몸뚱이를 네 입에다 넣고 귀만 남겨놓고 일러다오”

 

그러니까 나찰 귀신이 그 나머지기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생멸이 다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적멸이 최고의 낙이 되느니라” 이 게송을 일러주었습니다.

 

그 게송의 한마디를 듣고서 설산동자는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그 게송을 자기만 알고 깨닫고서 나찰 귀신에게 먹혀 버리면 다시는 다른 중생들이 어떻게 그 게송을 들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나무에다가, 바위에다가 닥치는 대로 그것을 긁어서 그 게송을 써 놓고서 나무에서 나찰 귀신을 향해서 몸을 날렸습니다.

 

삽시간에 온 허공에서 아름다운 하늘나라의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나찰 귀신은 순간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몸으로 변해 가지고 공경스럽게 그 설산동자를 받들어 모셨습니다.

 

이것이 간략한 설산동자의 설화인데, 위법망구(爲法忘軀)—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바친 가장 대표적인 한 예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오늘부터서 시작을 하는데 ‘기도하는데 무엇이 가장 으뜸이 되느냐?’하면 신심(信心)입니다.

간절한 신심, 철저한 신심, 깨끗한 신심, 한결같은 신심, 이것이 합해져야 그것을 정성(精誠)이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정성을 드린다’ ‘치성(誠)을 드린다’ ‘공(功)을 드린다’ 이렇게 말들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몸과 마음의 청정, 그리고 간절(懇切)한,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여(始終一如)한, 최선을 다한, 여지없이 믿어버리는 의심없는 그러한 마음가짐, 이것이 법을 위해서 내 몸과 목숨을 바치는 신심이라 할 것입니다.

 

이 철저한 신심이 아니고서는 기도는 성취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청정하고 간절하고 일여한 그러한 신심으로 기도를 봉행할 때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간절한 신심은 인간의 조그마한 소원—부자가 되는 원이라든지, 아들을 낳기 바라는 원이라든지 또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원이라든지, 좋은 사위나 좋은 며느리를 얻으려는 원이던지,

무슨 가정에 환자가 병을 낳기를 바라는 원이라든지 여러 가지 종류의 각각 다른 그런 원이 있을 수가 있으나 그러한 원은 말할 것도 없이 성취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러한 원을 이루는, 인간의 오욕락(五欲樂)을 성취하는 그러한 데에 그쳐서야 되겠느냐.

 

우리는 7일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되 기도도 성취하고, 그까짓 일 성취하는데 그치지 말고 내 자성(自性)을 깨달아서 생사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데 목적을 두고서 이러한 기도 법회도 여는 것이고 이 기도 법회에 동참한 사람은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 요지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기도 성취는 몸을 깨끗이 하고 또 마음을 깨끗이 하고 또 간절한 마음, 최선을 다하는 마음 그리고 시종이 일관된 일여한 마음.

‘일여(一如)하다’는 말은 내가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3일 기도, 7일 기도, 백일기도 여러 날을 두고 간절히 기도를 하다보면,

자기의 마음이 깨끗해져서 그래가지고 부처님의 깨끗한 마음과 하나가 될 때에 자기의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의심 없는 일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쨌든지 7일 동안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기도에 임해 주시기를 바라고, 여러분이 소원한 바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되시기를 바라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0분4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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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설산동자(雪山童子) ; 석가모니(釋迦牟尼)가 과거세에 설산(雪山)에서 도(道)를 닦을 때를 가리켜 부르는 명칭.
《열반경(涅槃經)》 제14권에 기록된 석가모니의 전생담에 나오는 말로, 석가모니는 설산동자로써 도를 닦으면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의 두 글귀를 듣고, 나머지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두 글귀의 가르침을 얻으려고 나찰(羅刹)에게 자신의 몸을 희생하였음.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시치미를 떼다[따다] ;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시치미'는 매의 주인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나머지기 ; 나머지.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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