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신수기도)'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5.02.17 §(324) (게송)조화무사부사력~ / 기도는 정성이 제일 / (게송)송백천년취~ / 참선, 기도가 둘이 아니다 / 의심관(疑心觀) / ‘관세음보살’하는 자기 음성을 자기가 관(觀)해.
  2. 2015.02.16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3. 2015.02.13 §(438)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 / 정법 법문(正法法門) 들은 것이 기도성취 / 십악참회(十惡懺悔) / 송담스님 축원.
  4. 2015.02.10 §(408) 선원에서 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이 가장 좋은 정진.
  5. 2014.12.13 §(160)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 (게송)월수벽산전~.
  6. 2014.12.12 §(160) (게송)천강동일월~ /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는 것.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성취 / 참선은 죄를 짓지 않는 가장 묘한 방법 / 안수정등(岸樹井藤) / 발심.
  7. 2014.08.31 §(410) 심원사—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 / 함경도 좁쌀양반 / 기도 정성·신심 / (게송)일중산진우일중~.
  8. 2014.02.08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9. 2014.01.31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법회(신수기도)2015. 2. 17. 10:52

§(324) (게송)조화무사부사력~ / 기도는 정성이 제일 / (게송)송백천년취~ / 참선, 기도가 둘이 아니다 / 의심관(疑心觀) / ‘관세음보살’하는 자기 음성을 자기가 관(觀)해.

 

몸과 마음이 한결같고 청정하고 정성스러우면 기도 시작할 때 이미 목적은 달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기도(祈禱)하는 그 경건하고, 엄숙하고 간절한 그 마음을, 앞으로 살아가시는 1년 내내 하루도 퇴타함이 없이 방심함이 없이 그렇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그리고 청정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 속에서 참선(參禪)하는 참선 기도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화두가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그것을 관조(觀照)를 할 줄 알아야 돼. 의심관(疑心觀).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져서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하고 또 챙기는 거여. 없어지면 챙기고 또 끊어지면 챙기고, 이리 되어야 하거든.

 

‘관세음보살’ 부를 때에는 음성을 고르게 하되, 자기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자기의 그 음성을 자기가 관(觀)하면서 해야 돼.

 

**송담스님(No.324)—87년 신수기도 회향(87.02.06) (용324)

 

 

(1) 약21분.

 

(2) 약 21분.

 

 

(1)------------------

 

조화무사부사력(造化無私不思力)이요  일일청청세한색(一一靑靑歲寒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장단대소재목전(長短大小在目前)한데  가소시인회부득(可笑時人會不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화무사부사력(造化無私不思力)이요. 자연의 조화, 천지의 조화가 사사로움이 없어. 사사로움이 없는 그 부사의력(不思議力)이다 그말이여.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알 수 없는 그런 위대한 힘이, 일일청청세한색(一一靑靑歲寒色)이다.  낱낱이 푸르고 푸르러서 세한(歲寒)의 빛이여. 누가 사람의 인조(人造)로 인력(人力)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아무도 인공(人工)으로 손을 대지 아니하는데, 자연의 이법(法)에 의해서, 불가사의한 그 힘에 의해서 소나무는 푸르고, 대나무도 푸르고, 산천에 초목이 각자 그 종류에 따라서 여러 가지 빛깔을 나투는데,

 

장단대소(長短大小)가 재목전(在目前)하건만,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아서 형형색색으로 우리의 눈앞에 조금도 숨김없이 펼쳐져 있건마는,

가소시인회부득(可笑時人會不得)이다. 우습다, 모든 사람들이 그 숨김없는 적나라(裸)한 그 도리를 알지를 못하는구나.

 

 

오늘은 정묘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에 여러분께서는 7일 동안을 정말 정성껏 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직접 기도에 참석을 하셔서 정성을 다해서 목이 쉬도록 정근(精勤)을 하셨습니다. 

 

기도 입재 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도는 정성(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이러 이렇다’ 이렇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첫째,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그리고 한결같아야 하고, 그리고 참된 그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미 몸과 마음이 한결같고 청정하고 정성스러우면 시작할 때 이미 목적은 달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3일이라든지 7일이라든지 또는 백일이라든지 천일기도, 만일기도 그렇게 기도 날짜를 많이 잡은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억지로라도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그 어느 땐가는 청정하고 일여하고 참된 생각에 부합(合)이, 계합이 되는 것입니다.  

 

자고(自古)로 기도를 정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간절히 해서 성취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어려운 일을 당해서, 중대한 일을 당해서 많은 분들이 기도를 여기서 저기서 모다 하시지만 기도했다고 해서 자기가 바라는 만큼 그때에 바로 성취 되냐 하면은 혹 된 사람도 있고, 안된 사람도 있고 혹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고,

그 사람과 그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과 모다 그런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한결같이 다 되지를 않는 것을 우리는 보고 또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는데 기도가 성취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느냐?

첫째는 자기의 정성이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냐, 그렇게 볼 수도 있고 또 정성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것이 성취되는 것이 차라리 안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루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기도를 자기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오히려 안된 것보다 더 해로울 때에는 그 기도 성취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또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목적을 이루기커녕은 생각지도 않는 견디기 어려운 여러 가지 고통이 한목 몰아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금생, 내생, 저 내생까지 계속해서 그 좋지 못한 과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말하자면 전생에 그러한 업(業)으로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되어있는 삼생(三生)에 걸쳐서 받을 죄를,

금생에 신심껏 기도를 하고 그 공덕으로, 기도를 한 공덕으로 삼생에 걸쳐서 받을 것을 금생 일생 동안에 다 몰아서 다 받아 버리고 그리고서 이 다음 생에는 정말 큰 원을 성취하도록 그렇게 될 경우에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코앞에 조그만한 원(願)을 세워서 목이 쉬도록 기도를 했다가 그것이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을 하고 ‘그 기도해 봤자 소용이 없다. 나도 기도해 봤지만 그거 이루지도 못하더라’ 이러한 반감심(感心)을 갖고 불신을 하고 퇴타심(退墮心)을 낸다면 그 사람이 기도할 때 정성스러운 그 정도가 과연 어느 정도였었다고 하는 것을 짐작할 만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원했다가 큰 것을 바라지도 안 했는데 성취되는 수도 있고, 큰 것을 원했는데 조그만한 것이 우선 코앞에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코앞에 전혀 이루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니 별로 소원을 이룬 것 같지도 않은데, 살아가면서 점점 신심이 돈독하고 모든 일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 풀려나가고 그러한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서,

 

그래서 이 기도라 하는 것은 청정한 몸과 마음 그리고 한결같은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되 기도가 회향(廻向)을 했다고 해서 인자 빨리 자기 목적한 것이 돌아오기만을 급급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가 끝난 뒤에도 그 기도 때와 같은 그 정성스러운 행동,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뭣고?’ 참선을 하면서 계속 정성스러운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다져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 성취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그 자세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송백천년취(松栢千年翠)로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모란일일홍(牡丹一日紅)한대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백(松栢)은 천년취(千年翠)하되, 소나무와 잣나무는 천년 동안을 푸르르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요, 세상 사람들의 뜻에는 들지를 안 해. 별로 그렇게 소나무, 잣나무 그렇게 '좋다'고 '아름답다'고 별로 안 그런다 그말이여.

 

목단(牧丹), 모란(牡丹)은 하루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하루 동안 밖에는 붉지를 않는데,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요. 모든 사람들은 그 목단이 꽃 가운데 왕이라고 그렇게 모다 좋아하고 칭찬을 하고 거기에 모다 반하더라 그말이지.

 

송백은 무루법(無漏法), 무루복(無漏福), 영원한 복에다가 비유한 것이고, 모란은 유루복(有漏福)에다가 비유한 게송(偈頌)입니다.

 

영원한 우리 생사해탈법은 한번 깊이 믿고 실천을 하면 당장 금생에부터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참 좋은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지를 안 해.

 

물론 특수한 신심이 있는 사람은 모르되, 대부분의 사람은 별로 그것에 관심이 없고,

유루복(有漏福)—당장 부자가 된다든지, 높은 벼슬자리 벼슬을 한다든지, 부귀영화 모다 이런 해봤자 별 수 없고 또 뜻대로 얻어진다고 해도 영원성이 없는 그런 재산이나 명예, 권리 모다 그런 것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못 얻어서 야단이고 그것을 얻으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날 줄을 모르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과연 무루(無漏)의 복(福)을 원하셨는가? 또는 영원성이 없는 유루복만을 목적에다 두고 기도를 하셨는가?

또 저 궁극적 목표는 무루복에다 두되, 우선 당장 급해서 그래서 유루복에 원도 세우시고 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것은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재산이요, 명예요, 권리요, 가족의 행복이요, 아들딸의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요, 아무리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선을 한다 해도 당장 코앞에 그 문제가 절박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을 절대로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1년에 한 번 있는 신수기도에 동참을 해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하는 것도 참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는 참선 밖에는 모르고 자식들이 대학에 가고 못한 것은 관심이 없다’ 이러한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되고, 또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의 학교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고, 우선 나중에야 어떻게 될망정 우선 대학에는 들어가 놓고 봐야 하는 것이고, 그놈이 대학엘 못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를 일주일 동안 목이 쇠도록 그렇게—그 날씨가 상당히 강추위 했는데 그 눈을 뒤집어쓰면서 새벽기도부터서 모다 참석을 하시고, 대단히 참 감동을 했습니다.

 

그러한 이 신수기도 때와 같은 그러한 간절한 마음, 열렬한 마음, 그 추위도 무서워하지 않고, 편안히 자고 싶은 잠을 깨고 새벽에 날마다 이렇게 참석하신 그럴 수 있는 그런 정성이면 내가 나를 찾는 참선 공부에도 응당 그렇게 할 수 있는 저력(底力)이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처음~21분13초)

 

 

 

 

 

 

(2)------------------

 

부디 일주일 동안 기도(祈禱)하는 그 경건하고, 엄숙하고 간절한 그 마음을 앞으로 살아가시는 1년 내내 하루도 퇴타함이 없이 방심함이 없이 그렇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그리고 청정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 속에서 참선(參禪)하는 참선 기도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 동안에 일주일 간은 기도 참선을 하셨는데 앞으로 일 년간은 참선 기도—참선하면서 바로 그 참선이 기도가 되도록, 그 동안에는 ‘기도의 참선’을 했는데 ‘참선의 기도’를 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참선과 기도가 둘이 아니거든. 절대로 참선과 기도가 둘일 수가 없습니다.

참선을 하는 데에도 청정한 몸과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한결같은 마음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선도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정성껏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선도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있고 또 평소에 참선을 열심히 하신 분은 기도 때가 되면 기도도 또한 그렇게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담에 ‘국수할 줄 아는 사람이 수제비 못 끓여 먹겠느냐’ 그런 말이 있듯이 참선하나 제대로 할 줄 알면 기도고, 주력(呪力)이고, 경을 읽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참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일륜명월영청휘(一輪明月映淸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운엄단천인목(浮雲掩斷千人目)한데  득견항아면자희(得見姮娥面者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저 만 리나 된 넓고도 긴 저 하늘에 비가 갰어.

일륜명월(一輪明月)이 영청휘(映淸輝)다. 한 바퀴 밝은 달이 밝고 맑게 빛나는데, 비가 오고 운무가 끼었을 때에는 그 달이 떠도 보이지를 않고 컴컴하니 그러다가 비가 쫙 개 가지고 그 새파란 하늘에 밝은 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말이여.

 

부운엄단천리목(浮雲掩斷千人目)이여. 뜬구름이 한덩어리가 날아와 가지고 달을 가리워 버리니까, 모든 사람의 눈에 그 밝고 맑은 달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 구름이 가리워 버리니까 그 달을 보기가 어렵더라.

 

사실은 우리의 그 본성(本性) 마음자리는 부처님의 마음자리와 둘이 아니고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둘이 아니어. 우주의 진리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마음에 원하면 그것은 반드시 이르러 와서 얻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하고 원해도 잘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은 일념(一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의 참된 마음과 그 어두운 부정적인 생각에 가로막혀서 장애를 받아가지고 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가로막는 것만 없으면 바로 원하는 대로 바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 장벽만 없다면 몇백 미터고 저 앞을 다 볼 수 있지만 앞에 종이 한 장만 가로막혀 있어도 밖이 보이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기도와 참선 공부가 내나 서로 상통한 것이고 둘이 아니라’하는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정말 기도를 목이 쇠도록 큰 소리로 정근만 하면 그것이 정성을 다한 것이냐?

참, 기도가 쉬운 거 같아도 정말 이 기도가 참선과 똑같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청을 돋아서 한 시간, 두 시간 내지 네 시간을 불러대면 되냐?

 

어떻게 해야 기도를 참 정말 훌륭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냐?

 

‘관세음보살’ 부르면서도,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부르고 목이 터지도록 부르면서, 그렇게 부르는 속에도 우리의 생각은 계속 집안일도 생각하고, 과거 일도 생각하고, 어릴 적 일도 생각하고, 이일 저일 할 것은 다 합니다.

그 ‘관세음보살’ 부를 때는 오직 관세음보살만을 불러야 되겠는데,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외치면서 속으로는 온갖 잡념 망상이 조금도 거침없이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거든. 기도를 해 보면서 가만히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관조해 보면 알 수가 있고, 그것을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도를 하면서 탁자 위에 촛불이라든지, 향이라든지 또는 청수 그릇이라든지 또는 탁자 위에 모신 부처님 눈, 코, 입이라든지 이런걸 보면서, 입으로는 외치면서도 그 눈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에 계속 우리의 생각이 그런 데로 다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촛불이 크게도 보였다, 작게도 보였다, 자기 앞으로 가까이도 보였다, 멀리도 보였다, 부처님 얼굴도 이렇게 우러러 보면서 정근을 하면 부처님 얼굴이 이리 변했다, 저리 변했다,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 야단이거든. 단 1분 1초도 정말 망상이 없이, 번뇌가 없이 깨끗하게 정진이 되어 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눈으로 보이는 부처님 얼굴에다가 집중을 하는 것이 좋으냐? 훨훨훨 타고 있는 촛불에다가 눈을 대고 하는 것이 옳으냐? 무엇을 어디다가 우리의 눈을 고정하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단히 이것도 참선할 때에 덮어놓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을 그 참선을 잘한다고 할 것이냐?

‘참선을 어떻게 해 나가야 올바르게 하느냐?’한 것과 똑같이, ‘기도도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하는 것이냐?’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참선은 그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아주 그 관세음보살 부르듯이 ‘이뭣고?’를 계속 끊임없이 찾고 또 찾고, 찾고 또 찾고, 물론 처음에 시작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밖에는 없고 그렇다고 하되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을 가면서는 그렇게 화두를 염불하듯이 그렇게 자꾸 들먹이는 것이 아니에요.

 

‘이뭣고?’한 그 알 수 없는,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이 있을 때에는 그 의심을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그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거기다 대고 이미 화두가 없어지지 않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는데도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래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어린애, 애기 잠재울 때 잠 막 잘라고 한 놈을 더 잘 자라고 가슴을 턱! 턱! 때리는 거와 마찬가지거든 그게.

 

그러니 화두가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그것을 관조(觀照)를 할 줄 알아야 돼. 의심관(疑心觀).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져서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하고 또 챙기는 거여. 없어지면 챙기고 또 끊어지면 챙기고, 이리 되어야 하거든. 그래서 그 관(觀)이, 의심관(疑心觀)이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여. 

 

이 관세음보살도 목이 터지도록 막 부를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음성으로,

물론 여기서 목탁을 치면서 여러 사람이 정근할 때에는 자기도 소리를 내어서 같이 그 음성과 음성이, 내 음성과 다른 사람 음성이 혼연일치(致)가 되어서 전체 동참 대중이 한마음이 되어야 하거든.

자기 혼자 어디 가서 한 것 보단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정성도 하나요, 그 정근하는 음성도 그 목탁에 맞춰서 하나가 되어야 하거든.

 

어떤 사람은 (음을 아주 낮게)‘관세음보살’하는데, 어떤 사람은 (음을 고음으로)‘관세음보살’ 이래 가지고 한 사람은 크게 하고 작게 하고, 한 사람은 더디게 하는데, 한 사람은 늘어져 쳐지게 하고 도저히 그래서는 안되거든.

목탁을 치면은 그 목탁 소리에 저 법당에 가득한 그 동참제자가 한마음 한뜻이 되고, 음성도 같이 이렇게 나가야 되거든.

 

우리가 남북통일을 바라는데 한 사람이 바란 것 보다는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을 위해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혼연일치가 될 때에 우리의 생활도 달라지고 나라에 대한 충성도 달라지고 모든 면에서 다 나날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침내 통일 성업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칠일 동안의 기도도 모든 점에 있어서 전 동참재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마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재 법요식도 하고 또 시간도 맞추고 또 병법(秉法) 스님이 나서서 목탁도 치면서 같이 하고, 이것이 바로 전 동참제자로 하여금 한결같은 마음, 한덩어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구태여 추운 새벽같이 오시지 않고 집에서 해도 기도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근에서 그 바쁘고, 춥고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오신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이 마음을 합해서 하는 데에서 몇백 배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 부를 때에는 음성을 고르게 하되, 자기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자기의 그 음성을 자기가 관(觀)하면서 해야 돼.

생각은 딴 데 가 있고, 눈은 눈 앞으로 보는 데에 제멋대로 요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목소리만 크게 불렀지 조금도 그것이 경건성이 없이 부른 것은 그 목만 쉬었지 정말 기도의 참된 경계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목소리를 참 경건하고 엄숙한 저 뱃속에서 부터서 울려 나오는 그 정성스러운 음성 소리로 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자기의 목소리를 자기가 관(觀) 해.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들을 것이 아니고 ‘아이고, 저 사람 목소리도 되게 크다’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지 말고, 자기의 음성을 들어야 되요.

자기의 음성을 들으면서 ‘관세음보살’하면 눈을 떴으되 딴 것이 보이지를 않고, 귀가 열렸으되 다른 소리가 들리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한결같이 한다면 가장 여법(如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탁은 너무 늘어지게 쳐도 힘이 들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빨리 쳐도 숨이 가빠서 따라갈 수가 없고, 그런데 처음에는 느릿느릿 쳐도 점점 10분, 20분, 30분 이렇게 해 가다보면 열기가 올라가지고 약간은 빨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빨리 하는 것은 너무 숨이 가쁘고 그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 대체적으로 한결같은 것이 좋은데, 하다보면 좀 빨라져요.

 

그렇게 해서 하여간 일주일 동안을 내가 법당에 올라와서 참석은 안 했지만 계속해서 나도 그 기도에 참석을 했고, 기도 정근하는 소리와 목탁 소리를 계속 나도 거기에 마음을 합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 기도가 얼마만큼 정성스럽게 잘 진행이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반드시 크고, 작은 여러분 각자의 소원이 성취가 되실 것이고, 또 그런 유루의 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서 무루의 대원(大願)까지 연결이 되어서 기도 성취는 정말 원만히 성취가 되시리라고 나는 확신(信)을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확신을 하십시오. 그 원이 빨리 이루어지고 더디 이루어지고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확신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목적이 달성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또 정월 대보름이 한 오륙일 남았습니다. 대보름에 해제 법요식과 백일기도 회향 법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분은 기도를 하시고 또 참선기도 하시는 분은 참선을 열심히 하셔서 백일기도 회향 때 또 해제 법회도 참석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1분15초~42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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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조화무사부사력~’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진정문(眞淨文) 게송 참고.

*부사의(不思議) ; 불가사의(不可思議). 불보살의 해탈, 지혜, 신통력이 헤아릴 수 없다는 말.

*불가사의(不可思議)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을 뜻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세한(歲寒) ;  전후  추위라는 으로 심한 한겨울 추위 이르는 .

*적나라(裸)하다(실상이나 감정)있는 그대로  드러나 더이상 숨김 없다.

*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자고(自古)로로부터 내려오면서.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게송) ‘송백천년취~’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묘지곽(妙智廓) 게송 참고.

*모란(牡丹)작약과의 낙엽 활엽 관목높이는 2미터 정도이고 가지는 굵고 이 없으며은 크다.

늦봄에 붉고  이 피는데 꽃빛은 보통 붉으나 개량 품종에 따라 흰색붉은 보라색검은 자주색누런복숭앗빛을  흰색 따위의 여러가지가 있다.

*목단(牧丹) ; 모란(牡丹).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도인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저력(底力)으로 간직하고 있는 밑바탕 든든한 .

 

 

 

 

 

 

 

------------------(2)

 

*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게송) ‘만리장공우제시~’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불감근(佛鑑勤) 게송 참고.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일념(一念) ;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혼연일치(致)완전히 하나 일치함.

*병법(秉法 잡을 병,법 법)사찰에서 의식의 진행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신( 굳을 확,믿을 신) ;  믿음또는 그러 신념.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16. 15:42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처음 기도 시작하기 전에는 뚜렷이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한 뒤에는 그러한 ‘내가 무엇을 바랜다’하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정근(精勤)만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작은 소원, 큰 소원 또는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을 따질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나에게 이르러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열심히 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도를 하는 내」나 「내가 바라는 부처님」이나 「내가 바랜 바 어떠한 목적」이 셋이 다 공(空)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삼륜이 공적인데,

삼륜이 공적을 한 가운데에 한결같이 정진을—한 생각도 딴 생각[別念]을 내지 아니하고 순일하게 정진을 지어가면 결국은 ‘참나’를 깨닫는 데에까지 연결이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90)—86년 신수기도 입재(86.01.03) (용290)

 

약 13분.

 

 

병인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입재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71년도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법문을 조실 스님 녹음법문을 통해서 잘 들었기 때문에 ‘기도를 어떻게 하면은 기도의 성취를 할 수가 있는가?’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 기도를 하실 때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성취해야 할 소원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막연하게 아무 소원도 없이 기도를 하시기 보다는 뚜렷한 소원·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려는 그러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시작하기 전에는 뚜렷이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한 뒤에는 그러한 ‘내가 무엇을 바랜다’하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정근(精勤)만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말로 말해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냐?’하면 정성(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기도를 하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그 기도는 성취하기가 어려울 것 입니다.

 

 

대관절 그 정성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정성이라고 하느냐?’

첫째는, 안과 밖이 청정(淸淨)해야 해. ‘안’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청정해야 하고 ‘밖’은 우리의 몸과 우리의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

 

이 기도를 하면서 입으로는 온갖 잡(雜)된 소리를 하고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고,

또 몸으로는 잡된 행동과 추한 행을 하고, 마음으로는 온갖 탐욕스럽고 삿되고 몹쓸 생각을 하고 이러면 정성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드릴려면 첫째, 마음도 깨끗하고, 몸도 깨끗하고, 입도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숙(肅)해야 한다. 고요하고 엄숙해야 한다.

기도를 드리면서 시끄럽고 소란하고, 질서가 없고 들쑥날쑥하고 이러면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 시간도 엄수해야 하고 기도할 때에 어쨌든지 고요하고 엄숙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아주 엄숙하고 경건하게 시작해 가지고, 중간에 가면서 흐지부지하니 해이(弛)해져 가지고 끝을 야무지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김이 다 빠진 것처럼 이렇게 되어서는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번 시작을 했으면은 중간이나 끝까지 쪼옥 한결같이 해야 하는 것이여.

 

이렇게 기도를 해 나가면, 일심으로 정말 간절하게 이렇게 해 나가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과거에 자기가 지은 모든 죄업(罪業)이 참회(懺悔)가 될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자기도 모르는 하염없는 눈물이 넘쳐 흐른다든지,

그 기도를 하고 나서 과거에 자기가 원망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 야속하게 생각했던 거,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거, 모든 그러헌 생각들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기도는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작은 소원, 큰 소원 또는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을 따질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나에게 이르러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오래 살기를 바래서 기도를 하는데 과연 80년 내지 100세를 산다 하더라도 결국은 죽게 되고,

부자가 되기를 바래서 기도를 해서 기도성취를 해 가지고 큰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재산이 내게로부터 떠날 때가 있을 것이여.

 

그래서 이러한 유루복(有漏福)—밖에서 부터서 구하는 샘[漏]이 있는 그러한 유루복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성취가 되었다 해도 마침내는 내게로부터 떠나고 또 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 아들을 낳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 수명장수(壽)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높은 벼슬자리 올라가기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하지만, 이 정법(正法) 도량에 와서 기도를 하면 그런 조그마한 인간적인 소원으로 기도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무루복(無漏福)—샘[漏]이 없는 영원한 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최상승법, 참선법(參禪法)을 선양하는 이 도량에서 매년 초삼일부터서 아흐레까지 칠일 동안 신수기도를 봉행(奉行)하는 근본 뜻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참선을 바라고 정법을 원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의 몸을 가졌고, 가정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영원한 무루복도 필요하지만 우선 당장 유루복도 없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를 올바르게 정말 참되게 기도를 하면 저절로 이 무루법(無漏法)에까지 이르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비록 신수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정말 올바르게 기도를 하시면 작은 소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참나’를 깨달은 데에까지 이르르는 디딜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쨌던지, 오늘부터 7일간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셔서 시종일관(貫)해서 기도를 해 가지고,

 

그 기도가 바로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열심히 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도를 하는 내」나 「내가 바라는 부처님」이나 「내가 바랜 바 어떠한 목적」이 셋이 다 공(空)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삼륜이 공적인데,

 

삼륜이 공적을 한 가운데에 한결같이 정진을—한 생각도 딴 생각[別念]을 내지 아니하고 순일하게 정진을 지어가면 결국은 ‘참나’를 깨닫는 데에까지 연결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금년 특히 가족 가운데에 삼재(三災)가 든 분은 더욱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해주시고,

삼재가 안 드신 분도 이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이 법당에 들어와서 기도할 그 시간 뿐만이 아니라,

 

기도가 끝나고 나가서 공양을 잡순다든지, 차를 타고 댁으로 돌아가신다든지, 또 댁에 돌아가셔서 또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도,

이 법당에서 기도하는 그러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일주일간을 쪼옥 한결같이 그렇게 하신다면 틀림없이 소원을 성취하시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소원 성취하시길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2분3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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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정성(精誠)온갖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청정(淸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잡(雜)되다 ; (사람이나  언행)조촐하지 못하며 막되고 상스럽다. *조촐하다 : 단정하고 품위가 있다.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말.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정숙하다(肅-- 고요할 정,엄숙할 숙) ; (장소 분위기)아무 소리 없이 조용하고 엄숙하다.

*흐지부지하다(사람 어떤 )분명히 끝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 넘기다.

*해이하다(解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가)긴장이 풀어져서 느슨한 상태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봉행(奉行) ; ①뜻을 받들어 행함. ②제사나 의식 따위를 치름.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디딜목발로 디디기 위하여 놓은 널판(넓고 판판하게  뭇조각)디딜널. 디딜판. 디딤널. 디딤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시종일관(貫)처음부터 까지 한결같이.
*삼륜공적(三輪空寂) ; 타인에게 물건을 줄때, 실체가 공(空)한 것을 관(觀)하여 보시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시자(施者 베푸는 사람) · 수자(受者 받는 사람) · 시물(施物 보시한 물건)의 3륜(輪)이 모두 본래 공(空)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 삼륜체공(三輪體空),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도 함.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13. 15:07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438)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 / 정법 법문(正法法門) 들은 것이 기도성취 / 십악참회(十惡懺悔) / 송담스님 축원.

 

기도는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 마음과 같이, 허공과 같이 청정하게 되어야 부처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정근(精勤)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참회(懺悔)를 하고 발원(發願)을 함으로써 그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그 청정해짐으로 해서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될 때에 기도성취의 선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한번 한번 부를 때에 「관세음보살 부르는 자기」와 「관세음보살 부르는 소리」와 「관세음보살」이 하나가 되도록,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참회도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미 법문 들을 때 다 결판(決判)이 난 것이고 또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함으로써 그 자체가 기도성취다.

 

**송담스님(No.438)—91년 신수기도 입재(91.02.17) (용438)

 

(1) 약 13분.

(2) 약 21분.

 

 

(1)------------------

 

(원장 스님께 삼배 올리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오늘 칠일기도, 칠일 신수기도 입재 법문을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잘 들었습니다.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기도는 정법 법문(正法法門) 들은 것으로써 기도는 다 된 것이다’ 이런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도는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 마음과 같이, 허공과 같이 청정하게 되어야 부처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의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정성껏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이 허공과 같이 깨끗해졌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요, 기도 성취인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서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무슨 소원을 성취를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 들을 때 그때 잠깐이고, 돌아서면 또 우리의 마음은 끝없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으로 어지럽혀지기 마련입니다. 또 법문 듣는 동안에도 온갖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그래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정근(精勤)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참회(懺悔)를 하고 발원(發願)을 함으로써 그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그 청정해짐으로 해서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될 때에 기도성취의 선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에게는 알게 지은 죄, 모르게 지은 죄, 무량겁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오면서 그 죄가 한량이 없습니다.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죄가 산과 같고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으로 지은 죄, 입으로 지은 죄, 몸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참회를 하는데 기도할 때는 언제든지 옛날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합니다.

 

목욕재계(沐浴齋戒)가 무엇입니까? 이 몸뚱이에 묻은 더러운 때를 깨끗이 씻으므로 해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데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허기 위해서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하는 것이 그것이 결국은 궁극에 가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대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몸만 깨끗이 씻고 옷만 새로 갈아입고서, 마음에 지은 죄가 가득차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 이게 바로 참회인 것입니다.

 

많은 중생들은 과거에 지은 죄는 다 몸뚱이를 바꿀 때 다 잊어 버렸습니다. 잊어 버렸어도 우리의 제팔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속에는 과거에 지은 죄의 그림자가 종자(種子)로써 다 쟁여져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생에 지은 죄는 아직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지은 죄의식 때문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밀리에 숨기고 있어도 그럴수록에 자기 양심으로는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양심적 가책(責)을 받으면서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하는 법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아침에 예불(禮佛)하고 예불 끝에 그 지은 (죄를 참회하는)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있습니다.

 

결제(結制)에 방부(房付)를 들이신 분은 날마다 그 참회 의식을 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예불에 참례(禮)를 안해 보신 분은 한번 와서 주무시면서 아침에 예불에 참례하시는 것도 참 좋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참회를 통해서 지은 죄를 씻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참회법이 없으면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금생 일생동안 남몰래 피가 녹고 오간장이 썩어 문드러질 것입니다.

그 죄의식(罪意識) 때문에 독한 약을 먹고 몸이 병들어 가듯이,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시기 전에 여러분은 부처님께 참회하는 마음을 갖고 그리고서 정근을 하면서도 그 정근의 일념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름으로 해서, 그 관세음보살 한번 한번 부를 때에 「관세음보살 부르는 자기」와 「관세음보살 부르는 소리」와 「관세음보살」이 하나가 되도록, 이렇게 하면은 그 동안에 망상도 일어날 겨를이 없고,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참회도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이번 겨울에 모두 대학입시 문제로 많은 분들이 마음을 조이고 또 전기, 후기 모두 합격하신 분도 있고, 떨어진 분도 있고 또 다시 재수, 삼수를 하시는 분도 있겠는데, 그러한 문제로 해서 모두가 다 기도를 하시고,

 

그런데 그 기도라고 하는 것은 기도함으로서 소원을 이루기도 하고 또 기도를 그렇게 정성껏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마음먹은 대로 안되는 수도 있습니다.

 

학교 입학 문제라든지, 취직·승진 문제라든지 또는 사업발전 문제 또 남녀 모다 결혼 문제, 관재구설(舌)이라든지, 병고에 관한 것 또 생남불공(生男佛供) 기도라든지,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크고 작은 많은 소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과 또 삼재(三災)가 들면 그 삼재에 혹 좋지 않는 일이 있을까 해서 그런 것을 또 소멸하기 위해서라도 참 지극정성으로 모다 기도를 하시는데 우리가 소원한 대로 꼭 그것이 달성하느냐?

 

가시적으로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좋아하고, 마음먹은 대로 그것이 안되면 마음이 언짢고, 기도라는 게 내 정성이 부족했는가? 그걸 모두 다 회의를 품게 됩니다마는, 기도는 어쨌든지 최선을 다하고 간절(懇切)하게 할 뿐인 것입니다.

 

만일에 기도를 그렇게 간곡(懇曲)히 정성을 다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먹은 대로 안되었다고 해서 낙심(落心)을 하거나 실망을 하거나 원망을 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이 안됨으로 해서 저 나중에 결과적으로 더 좋을 수도 있고, 그것이 됨으로 해서 더 안 좋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환히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얼마만큼 정성껏 하느냐? 그것도 아시고,

저 사람이 이번 취직이 되거나 합격이 되는 것이 더 좋은가, 차라리 이번에는 안되는 편이 더 좋은가? 그것도 더 잘 아시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합격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합격이 안되는 수도 있어.

 

안되는 것이 차라리 그 사람에게는 더 좋을 수 있을 때에는 지극정성으로 기도했어도 안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기도는 이미 법문 들을 때 다 결판(決判)이 난 것이고 또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함으로써 그 자체가 기도성취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결과가 나고, 안 나는 것은 다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성취가 안되어도 더 감사하게 생각하고, 성취가 되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정말 큰, 엄청나게 큰 항공모함과 같은 배에 탄 기분으로 일주일 동안을 한결같이 기도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처음~12분59초)

 

 

 

 

 

 

(2)------------------

 

〇헌공(獻供)—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예식.

 

〇정근(精勤)—‘석가모니불’ 정근.

 

〇축원(祝願)—송담 스님.

 

〇반야심경(般若心經) 봉독(讀).  (13분17초~33분38초)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헌공  축원이 있겠습니다.

 

욕건만나라 선송 정법계진언   (7)

欲建曼那羅 先誦 淨法界眞言

 

원차향위 해탈지견 원차등위 반야지광

願此香爲 解脫知見 願此燈爲 般若智光

원차수위 감로제호 원차식위 법희선열

願此水爲 甘露醍 願此食爲 法喜禪悅

 

즉세제지장엄 성묘법공양 원만시방법계해 봉헌무진삼보전 감찰법보제자 건간심

卽世諦之莊嚴 成妙法供養 圓滿十方法界海 奉獻無盡三寶前 鑑察法寶弟子 虔懇心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3)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至心頂禮供養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至心頂禮供養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摩耶衆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至心頂禮供養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僧伽耶衆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차공양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此供養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나무삼계대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南無三界大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정근 精勤)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축원

 

앙고 삼계대사 사생자부 본사 석가모니불 불사자비 허수낭감

仰告 三界大師 四生慈父 本師 釋迦牟尼佛 不捨慈悲 許垂朗鑑

 

지심봉축 유아조국 남북통일 자주독립 속성완수 세계평화 만민함락 불일증휘 법륜상전 국계항안어만세

至心奉祝 唯我祖國 南北統一 自主獨立 速成完遂 世界平和 萬民咸樂 佛日增輝 法輪常轉 國界恒安於萬歲

 

법보제자 정법문중 신심견고 영불퇴전 화두순숙 의단독로 확철대오 광도중생지발원

法寶弟子 正法門中 信心堅固 永不退轉 話頭純熟 疑團獨露 廓徹大悟 廣度衆生之發願

 

원아금차 인천시 주안동 용화사 법보선원 수월도량 신미년 정초 신수기도 동참발원재자 시회합원 노소남녀 법보제자 가내일문 동남동녀 청신사 청신녀 각각등보체

願我今此 仁川市 朱安洞 龍華寺 法寶禪院 水月道場 辛未年 正初 身數祈禱 同參發願齋者 時會合院 老少男女 法寶弟子 家內一門 童男童女 淸信士 淸信女 各各等保體

 

앙몽 제불보살 가피지원력 사대강건 육근청정 수명장원 복혜구족 자손창성 염불자 삼매현전 간경자 혜안통투 참선자 의단독로 우선지식 일언지하 확철대오

仰蒙 諸佛菩薩 加被之願力 四大康健 六根淸淨 壽命長遠 福慧俱足 子孫昌盛 念佛者 三昧現前 看經者 慧眼通透 參禪者 疑團獨露 遇善知識 一言之下 廓徹大悟

사업자 재수대통 병고자 속득쾌차 학업자 학업성취 각종시험자 여의원만합격 동서사방 출입왕환 상봉길경 불봉재앙 관재구설 삼재팔난 사백사병 영위소멸

事業者 財數大通 病苦者 速得快差 學業者 學業成就 各種試驗者 如意圓滿合格 東西四方 出入往還 常逢吉慶 不逢災殃 官災口舌 三災八難 四百四病 永爲消滅

각기심중 소구소원 일일여의원만 성취지대원

各其心中 所求所願 一一如意圓滿 成就之大願

 

금차 칠일 신수기도 동참재자 노소남녀 각각등보체 법보제자 각각등복위 광겁부모 각열위영가 법보전 만년위패 법보 각열위영가

今此 七日 身數祈禱 同參齋者 老少男女 各各等保體 法寶弟子 各各等伏爲 曠劫父母 各列位靈駕 法寶殿 萬年位牌 法寶 各列位靈駕

차사최초 창건이래 중건중수 대소시주화주 도감별좌 각열위영가

此寺最初 創建以來 重建重修 大小施主化主 都監別座 各列位靈駕

차도량내 도량외 유주무주 애혼제불자 각열위영가 내지 오무간지옥 일일일야 만사만생 만반고통 수고함령 제불자각열위영가

此道場內 道場外 有主無主 哀魂諸佛者 各列位靈駕 乃至 五無間地獄 一日一夜 萬死萬生 萬般苦痛 受苦含靈 諸佛者各列位靈駕

겸급법계 사생칠취 삼도팔난 사은삼유 일체유식함령등 각열위영가

兼及法界 四生七趣 三途八難 四恩三有 一切有識含靈等 各列位靈駕

무량겁래 소작지죄업 실개소멸 왕생도솔천 내원궁 친견미륵존 속성정각 하강용화 광도중생지발원

無量劫來 所作之罪業 悉皆消滅 往生兜率天 內院宮 親見彌勒尊 速成正覺 下降龍華 廣度衆生之發願

 

일당청중혜원명 사해징청공일가

一堂淸衆慧圓明 四海澄淸共一家

법계중생발보리 구경원성살반야

法界衆生發菩提 究竟圓成薩般若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3)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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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번뇌(煩惱) ; 번뇌(煩惱, kleśa)란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괴롭히고 어지럽혀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런 고통의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끊어 벗어나고[心解脫], 어리석음[無明]을 밝은 지혜의 깨달음[菩提]으로 깨뜨림[慧解脫]으로서 안온한 해탈 열반[涅槃]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정근(精勤)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제팔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쟁이다차곡차곡 포개어 쌓아 두다.

*가책( 꾸짖을 가,꾸짖을 책) ; 자신 잘못 후회되어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죄의식(罪意識) ; 저지른 죄과(罪過   만한 과실이나 허물)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죄로 느끼는 의식.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생남불공(生男佛供) ; 아들을 낳기 위하여 올리는 불공(佛供).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낙심(落心)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맥(脈 기운이나 힘) 풀리고 마음 상(傷).

*결판(決判)승부 또는 옳고 그름 가려 판정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10. 14:2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408) 선원에서 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이 가장 좋은 정진.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이 하면 참선문(參禪門)과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이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部)가 '나'요 '내'가 전부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8)—90년 신수기도 입재(90.01.29) (용408)

 

(1) 약 22분.

(2) 약 8분.

 

 

(1)------------------

 

오늘 경오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7일 기도의 입재(入齋)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기도 입재에 대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오늘 여러분께서 잘 들으셔서 아시겠습니다마는,

기도는, 어떻게 해서 그 기도를 성취를 하느냐?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는 정법(正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함으로 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러한 요지(要旨)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에게 거기에는 어떠한 마장(魔障)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합니다.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정법을 믿는 사람은 25신장(神將)이, 선신(善神)이 항상 전후좌우로 옹호를 하기 때문에 삼재(三災)와 일체 마장이 거기에는 붙지를 못해.

 

그러니 삼재를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데에는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 최고다. 

 

금년은 해·묘·미(亥·卯·未), 돼지띠와 토끼띠와 또 염소띠, 해·묘·미생이 금년에는 '앉은삼재'여. 작년에는 '들삼재'고 올해는 '앉은삼재'고, 내년에는 '날삼재'인데,

 

이 삼재가 들면 이상하게 여러 가지 일이 자꾸 꼬이고, 뜻밖에 일이 사고가 일어나고 자꾸 무엇을 하면은 장애가 붙고 한다고,

옛날부터서 삼재가 닥쳐온 사람은 3년 동안을 매사에 있어서 조심을 하고 항상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근신(愼)을 하고 그러한 것이 일반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서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사찰에서는 이 정초(正初)에는 꼭 신수기도를 합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 쭈욱 정초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는데, ‘어찌 선원(禪院)에서 기도를 하느냐?’ 이러한 정법을 철저히 믿는 그러한 분들은 혹 그러한 질문을 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기복불교(祈福佛敎)에 속한 것이지, 어찌 그것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이 하면 참선문(參禪門)과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이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비록 이 기도도, 삿된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사법(邪法)이 되고, 정법을 믿고 정법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 기도도 정법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지만 그 칼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외적(敵)에게 휘두르면 그 칼은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정의(義)의 칼이 되는 것이고,

바로 그 좋은 칼이지만, 정의의 칼이지만, 도적이나 악인이 휘두르면 그 칼은 흉기로 변해 버리고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설사 그동안에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신 분들도 오늘부터서 7일간, 초아흐레까지 7일간 이 기도 중에는 열심히 기도를 하시되,

첫째, 청정(清淨)한 마음으로 또 바른 마음으로 또 정성스런 마음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서 7일간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시면 그 기도는 지혜의 눈을 뜨고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경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왜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하면 지혜로운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이 우러나냐?’하면, 지극정성으로 하다보면 내 마음이 ‘내다’ ‘부처님이다’ ‘남이다’하는 그러한 인아상(人我相)이 뚝 떨어져 버려.

 

그리고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수가 있어. 왜 나오냐?

자기가 그동안에 지은 죄에 대한 마음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참회의 눈물일 수도 있고, 그동안에 남편을 원망하고 또 시부모를 원망하고 또 다른 친척이나 친구,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한 생각이,

 

기도를 함으로 해서 ‘다 그 원인이 자기가 전생으로부터 지은 업(業)으로 인해서 이렇게 된 것이지 어찌 상대방에게 그 모든 허물을 갖다가 전가(轉嫁)시킬 수가 있느냐? 정말 내가 지은 업이 그렇게 깊어서 그랬다’고 하는,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나온다 그말이여. 그러고 난 뒤는 그렇게도 원망스럽고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져.

 

그러한 기도는 바로 참회(懺悔)로 이어지고,

그 참회로 인해서 내 마음이 정말 청정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면 거기서 나오는 모든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밖에는 나올 것이 없고, 거기서 나오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일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번쯤은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께서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참선을 해서 여러 해 해가지고, 화두 한번 터억 거각(擧却)을 함으로써 일체 죄업이 거기에 붙지를 못하고 바로 불보살의 청정한 마음과 찰나간에 계합(契合)이 될 정도로 정진이 잘된 사람에게는,

구태여 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무슨 기도를 할 것이 없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정진이 그러한 순숙한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일 년에 한번쯤은 정성스럽게 기도를 한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또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그런데 우연히 넘어져 가지고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치료를 받아가지고 팔이 나으니까 이제는 해소병(病)이 생겨 가지고 까닭 없이 기침이 나오고 해가지고 여러 달을 고생하다가 또 그걸 간신히 나았습니다.

그놈을 겨우 나으니까 이제는 몸이 염증이 생기고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백약(百藥)이 무효여.

 

그래서 ‘어느 절 훌륭한 스님이 계시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갔더니, “그대는 전생의 업이 많아서 업으로 인해서 그렇다. 그러니 지장경을 많이 읽고 지장보살을 많이 불러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동안에 ‘지장경을 좀 열심히 읽고 그래도 병이 안 낫는다’고 어제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서 “대관절 어떻게 하면 이 병을 나을 수 있으며, 업이 있다니 어떻게 무슨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가지고 하필 내가 이런 죄를 받게 됩니까?”

 

“그리고 그 스님 말씀하시기를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러니 무슨 좋은 일을 해야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와서—아주 청년이 얼굴이 부성 부성하니 부어가지고, 온 몸뚱이가 투두룩투두룩 하니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와서—물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 전생에 업 짓지 않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선업(善業)도 업이요, 악업(惡業)도 업인데, 선과 악은 종이 한 장의 안팎과 같아서 ‘선(善) 한다’고 한 것이 때와 장소가 바뀌면 악(惡)이 될 수도 있고,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악(惡)인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또 그 일을 깊이 검토해 보면 또 그것이 선(善)으로 개념이 바뀌어지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이나 악업이나, 아상(我相), 유위(有爲)의 상(相)을 가지고 지으면 그것이 바로 장차 새로운 과보(果報)를 받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럼으로써 빨리 그 병이 나을 것이다”(하니까) 그런데,

“무엇이 좋은 일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좋은 일은—물론 방생(放生)을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약을 준다던지, 모다 그런 좋은 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누구나 알 수 있고 행하기 쉬운 좋은 일이라 하는 것은,

첫째,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말어라.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어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정진(精進), 정진하는데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

정진도 역시 ‘불방일(不放逸)—방일하지 아니한 것’이 가장 좋은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을 좀 열심히 하려면 밤잠을 덜자고, 밥을 적게 먹고, 그래가지고 몸뚱이를 갖다가 구속을 하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해서 이렇게 하는 것으로써 가행정진이라고 생각하고 또 용맹정진이라고 대부분 생각합니다마는,

「가장 좋은 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여.

 

한 생각, 한 동작,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방일하지 않는—방일(放逸)이란 말은 화두(話頭)를 놓치고 경계(境界)에 팔려 나가고 그래가지고 게으른 생각이 나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을 보통 방일이라고 하는데,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서 선(善)도 남을 해치지 아니하면 그것이 제일가는 선이요,

거기서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가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쓰는 것인데, 몸뚱이로 나의 기력을 써서, 실력을 써서 남을 도와 줄 수도 있고,

말 한마디라도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남을 위안을 해주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말을 자비스럽고 지혜로운 방편으로 말 한마디라도 해주는 것, 그것도 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여.

 

또 마음으로라도 항상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마음으로 그이를 위해서 축원 기도를 해주고 잘되기를 빌어주고 또 남이 잘한 일이 있으면 마음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축복을 해 주는 것,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또 물질적으로 돈과 쌀이라든지 그밖에 그런 것을 베풀고 그런 것도 또한 착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으나,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모두가 다, 지옥고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도 전부 나의 부모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나의 가족이요, 전부 동시에 그것이 바로 내 몸뚱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部)가 '나'요 '내'가 전부다 그말이여.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천초목 모다 그런 자연까지도 전부가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가족이요, 나의 몸뚱이, 이러한 심경(境)이 그렇게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한 사람은 또 기도를 한 사람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내 몸같이 자비로써 모두를 다 돌봐주고 섭수(受)하게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심지어 들이나 산에를 가도 그 들국화가 같은 거, 산에 진달래 같은 거,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어도 자기집에 있는 꽃병에 꽃꽂이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꺾어 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 생존시에 조실 스님과 같이 수행하던 용담 스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은 양양 군수의 아들로, 출가해 가지고 조실 스님이 젊은 나이로 견성(見性)허신 그것을 보고서 굉장히 도반이면서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참 존경하고 신(信)하고 그런데,

 

그분은 해방(解放)이 되자마자 선학원(禪學院)에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해서 간행한 그러한 공로가 있는 분인데,

‘이북(以北)으로 넘어가서 내가 공산당들을 전부 정법으로 제도를 한다’고 월북(北)을 해서 지금 소식을 못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분과 같이 산에를 놀러가셨습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은 젊어서 퍽 부잡(雜)하신 그런 성격도 가지셔서 산에 가면, 친구하고 같이 가면 그저 돌팔매질도 하고 돌도 떠둥글치고 이렇게 하면서 인자 즐겁게 노시는데,

 

하루는 이렇게 돌을 요렇게 뚝 떠둥글치니까, 그 용담 스님이란 분이,

“허어, 자네 견성을 한 도인(道人)이 어찌 그런 돌을 있는 고대로 놓고 보고 자연을 고대로 놓고 요렇게 봐야지, 그놈을 뚝 떠둥글치면 자연이 손상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바위에 의지해서 개미도 살고, 벌레도 살고, 눈에 안 보이는 모든 짐승도 살고 있는데 그것을 떠둥글치게 되면은 그 벌레들이 집을 잃을 것이고 그 바위가 굴러가다가 또 많은 생명도 죽게 되지 않겠는가.

도인이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할 그런 숭고한 사상과 마음을 가지신 도인이 어찌 그러는가.”

 

아! 친구가 그 말을 한 것을 듣고서 ‘어떻게 마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도 참 착하고 좋은 도반이였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나를 신(信)하고 그 정법을 신하고 나를 아껴주던 친구가 이북으로 갔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처음~21분32초)

 

 

 

 

 

 

 

(2)------------------

 

우리 도 닦는 사람들은 혹 산에를 가시더라도 행여나 꽃 같은 것을 꺾지 마시고, 무슨 바위 같은 그런 것을 떠둥글치거나 그러지 마시고 자연을 손상하는 그런 일이 없으셔야겠고,

또 가지고 가서 맛있게 잡숫고 휴지조각 같은 거, 깡통 같은 거, 병 같은 거, 더러운 것을 갖다가 거기다 골짜구니에다 함부로 버리거나 쑤셔넣지 말고, 반드시 오실 때는 그것을 싸가지고 오시도록.

 

그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러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나아가서는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겨레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숭고한 생각과 바로 그것이 직결(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천년 역사를 가진 참 위대한 국민이지마는 그동안에 외침을 당하고 남의 속국 노릇을 많이 하고 식민지 생활하면서 그러한 좋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런지 고쳐야 할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성들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88년도에 올림픽을 우리가 치러내서 세계 각국에 다 찬사를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일 년도 못가서 그것이 다 깨져 버리고 무너지고 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좋은 것은 계속해서 실천을 해나가고 옳지 못한 것은 즉각 그 자리에서 참회하고 소멸해버리는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머지않아서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고 다시 혼돈과 빈궁의 그런 국가로 전락하게 될는지, 그런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나라를 구제하는 길은 바로 온 국민이 내 가족이요, 심지어 지옥고 받고 있는—그 지옥속에 고통받는, 모든 죄짓고 지옥고 받고 있는 중생들이 전부 나의 부모라고 그런 마음이 든다면 자기가 몸담아 있는 그 회사와 공장은 바로 그것이 자기 회사고,

 

또 그 사장의 입장에서는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그 많은 직원들 노동자들이 바로 내 아들이요 내 딸이요 내 조카요 내 가족이고 바로 또 내 몸뚱이라고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노사분규는 바로 오늘 하루 동안에 전부가 다 끝나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노사분규는 해결이 되지 아니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90년대에 세계에 일등 가는 국가가 되느냐? 이대로 아주 미개국으로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품느냐 안 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분께서는  당장 이 시간부터서 내 식구, 내 몸뚱이, 내 가족 그런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그런 인아상(人我相)에 떨어지지 말고,

가슴을 활짝 열고 ‘온 국민이 다 내 가족이요, 온 세계가 다 내 몸뚱이요, 지옥 세계도 다 나의 선망부모(先亡父母)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시게 될 것을 부탁을 드립니다.

 

 

7일간 기도를 하고 초 9일날 기도회향이 있습니다마는 그때는 바로 입춘날입니다. 그리고 또 일요법회 날입니다. 일요법회는 오후 2시에 거행을 하는 것이 예입니다마는, 이번 일요법회는 11시에 일요법회와 기도 회향과 입춘법회까지 아울러서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나 뜻 깊고 또 그런 날이기 때문에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보왕삼매론이라고 여러번 번역되어서 널리 모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알려진 글을 제가 한문으로 된 원문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해 가지고,

 

원문에 입각해서 잘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번역을 잘해 가지고 글씨는 잘 쓰지는 못하지만, 손수 써서 그래가지고 그것을 복사를 해가지고 그날 새해의 선물로 나눠드리고,

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 한 것도 또 써서 복사를 해가지고 보시를 해드릴까 합니다.

 

그것을 갖다가 다 표구를 해서 보왕삼매론을 걸어 놓고,

이 보왕삼매론의 취지는 모든 역경(逆境)에서—내 마음에 맞지 않고, 나의 뜻에 맞지 않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거기에서 지혜와 자비로서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그런 아주 적극적인 수행 방법이요, 해탈(解脫)로 나아가는 묘한 법문(法門)입니다.

 

이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회향 때, 회향 법회에 참석하신 분께는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그날을 그렇게 기다리시고 일주일 동안을 어쨌든지 열심히 기도를 해서 기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21분33초~29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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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재(入齋) ; 재(齋)를 시작하는 일. 또는 그 의식.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 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요지(要旨)이나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 채소가 익지 않는 근(), 과일이 익지 않는 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정초(正初 정월 정,처음 초) ; 정월(正月 음력으로   중의 첫째 달) 초승(初生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해의 처음.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청정(清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分) : ①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해소병 ; 해수병(病 기침 심하게 하는 ).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잡도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심경(境) ; 마음의 상태.

*섭수(受) ; ①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여서 보살핌. ②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해방(解放)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서 벗어난 .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이북(以北)한반도 북위 38  위쪽또는 휴전선 북쪽.  북한() 가리킨다.

*부잡(雜)하다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간섭을 잘 하고 엉뚱한 사고를 치고 거칠다.

*떠둥그치다 ; 떠둥그뜨리다(떠둥그트리다, 물체의  부분을 들고 밀어 엎어지게 하거나 기울여 쓰러뜨리다).

 

 

 

 

 

 

------------------(2)

 

*직결(結)직접적으로 연결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묘협 스님께서 지으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총 22편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礙行: 10가지 큰 장애가 되는 행)’에서 여러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다.

우리 중생이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10가지의 큰 장애가 되는 행동을 정리하고, 중생이 그 '장애 없기'를 구하지 말고 장애 속에 먼저 거처하게 하여, 그 10가지의 장애들이 실제로는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일체 중생의 수행·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시키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진실하게 돕는 복전(福田)임을 알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장애로 인하여 퇴전하지 않고, 장애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묘협 스님께서 경전에 의지하여 지으신 글.

*역경(逆境)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계(逆境界),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2. 13. 14:22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35분 22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160)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 (게송)월수벽산전~.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 해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죄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벼슬을 허건 아니허건, 돈이 많건 적건,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지식이 있고 없건, 나이가 많고 적건, 무슨 직업을 가졌건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최상승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0)—82년 신수기도회향 법문(82.2.2) (용160)


약 17분.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헌디  석양재오서(夕陽在吾西)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하니, 산으로 들로 가시밭길로 물로 동서사방으로 타향 객지(客地)로 돌아치다가 집으로 돌아와 텅 빈방에 앉았으니,
석양(夕陽)은 재오서(在吾西)로구나. 석양은, 저 서산 너머로 해는 여울여울 넘어가고 있구나.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이 바로 고향을 떠나서 타관(他官) 객지로 갖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돌아다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겨우 금생에 불법을 만나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돌아왔는데 해는 서쪽에 서산에 걸쳐 있구나.

벌써 나이 들고 몸은 늙어서 기운이 없고, 생각뿐이요 공부를 할려고 하면 자꾸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몸이 말을 안 듣고 자꾸 졸리고 온갖 망상은 퍼일어나고,

그러나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여.
물은 흘러서 흘러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아무리 그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달이 떨어져 비추되 원래 그 달은 하늘을 여의고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 해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조그마한 물줄기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흘르고 흘르면 차츰 강물에 도달하고 작은 강에서 큰 강으로, 큰 강에서 마침내는 바다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여.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 하늘에 비친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비춘다 해서 그 하늘의 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작아지는 것도 아니요, 광명이 줄어든 것도 아니여. 언제나 하늘에 있는 달은 고대로 있는 것이여.

달이 설사 떨어져 안 보인다 하더라도 하늘에서 떨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눈에서 보이지 아니할 따름인 것처럼,
중생의 육도윤회—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번뇌망상 속에서도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여.

우리는 그 도리를 보고 깨달아 증득하기 위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허수히 보내지 말고, 허수히 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이다.
1분 동안 화두를 단속(團束)해서 화두를 들면 1분 동안에 성불(成佛)이다.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기도 회향날입니다.
기도 회향날이기 때문에 아까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스님의 순수한 최상승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가 없고, 최상승법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가장 빨리 소원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할 것도 못되고, 그걸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마음 상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호랑이나 코끼리를 잡으러 가는 포수(砲手)가 토끼 한 마리, 무슨 여우 한 마리 그러헌 것에 신경을 쓰지 아니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벼슬을 허건 아니허건, 돈이 많건 적건,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지식이 있고 없건, 나이가 많고 적건, 무슨 직업을 가졌건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최상승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조금도 우리는 비관할 것이 없습니다. 세속적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해서 조금도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야코죽을 것도 없습니다.

든든한 마음, 의젓한 마음, 느긋한 마음으로 긍지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도 화두를 놓치지 말고, 모든 문제를 화두로서 해결할려고 노력을 해야만 훌륭한 혈통을 가진 사람답다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월수벽산전(月隨碧山轉)헌대  수합청천류(水合靑天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화난자취(風花亂紫翠)헌대  운외유연림(雲外有煙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수벽산전(月隨碧山轉)이요  수합청천류(水合靑天流)로구나.
달은 푸른 산을 따라서 돌아가고, 저 푸른 산 너머로 돌아 넘어가고,

수합청천류(水合靑天流)로구나. 물은 저 흐르는 물은 푸른 하늘과 딱 합해져서 흐르는구나.
여러분이 큰 강물이나 큰 바닷물을 보면 저 끝이 하늘과 딱 닿아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풍화난자취(風花亂紫翠)헌대, 바람에 하늘거리는 봄바람에 피는 꽃은 붉고 푸르게 울긋불긋 피어 있는데,
운외(雲外)에 유연림(有煙林)이로구나. 저 구름 밖에는 안개 낀 숲이 있구나.


일 년을 살아가시되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걱정스러운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을 것입니다.
기쁜 일을 만나도 ‘이뭣고?’를 생각하고, 슬픈 일을 만나도 ‘이뭣고?’를 생각하십시오.

‘이뭣고?’가 퍼뜩 돌아오지 아니하면 용화사 법보전에서 들은 법문을 생각내고, 용화사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 모습을 생각하시고 또 이 송담이 이렇게 간절하게 말씀드리고 있는 그 모습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이 그 슬픔과 괴로움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반드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35분10초~51분4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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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歸來坐虛室  夕陽在吾西’ ; 중국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의 시 '

柳閎展如蘇子瞻甥也其才德甚美有意於學故以桃李不言下自成蹊八字作詩贈之' 참고.
*(게송) ‘水流元入海  月落不離天’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尙廣錄」 제1권(下) '시중(示衆)—師子正宗禪寺示衆' 참고.
*객지(客地) ; 자기집을 떠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땅.
*타관(他官)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허수히 ; 태도나 태세가 치밀하게 짜이지 않아서 튼튼하지 못하고 느슨하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포수(砲手) ; 총을 쏘아 짐승을 잡는 사냥꾼.
*야코 ; ‘콧대(우쭐하고 거만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야코죽다 ; (사람이나 동물이)기세가 꺾여 약해지다.
*(게송) ‘月隨碧山轉  水合靑天流’ ; 이백(李白)의 시 '月夜江行寄崔員外宗之(월야강행기최원외종지)' 참고.
*(게송) ‘風花亂紫翠  雲外有煙林’ ; 소동파(蘇東坡)의 시 '적영석병(狄詠石屏)' 참고.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2. 12. 09:10

 

 

§(160) (게송)천강동일월~ /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는 것.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성취 / 참선은 죄를 짓지 않는 가장 묘한 방법 / 안수정등(岸樹井藤) / 발심.

온 우주법계는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의 몸이요, 따라서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들도 고대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이 고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가 바로 법신이요. 우리의 마음자리가 법신이요. 우리의 행동이 고대로 보신입니다.


기도는 첫째 청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큰 목적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지혜의 눈을 떠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큰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을 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0)—82년 신수기도회향 법문(82.2.2) (용160)

 

 

(1) 약 21분.

 

(2) 약 15분.


(1)------------------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하야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라.
하늘에 한 달이 중천에 뜨면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일천 강에 그 한 가지 달이 비치더라.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종일토록 홍진(紅塵) 세계,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오욕락(五欲樂)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음박질치다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자기집 보배를 잃어버리고 마는구나.

온 우주법계는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의 몸이요, 따라서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들도 고대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이 고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가 바로 법신이요. 우리의 마음자리가 법신이요. 우리의 행동이 고대로 보신입니다.

마치 하늘에 둥근달이 하나 떠 있으면 일천 강물에 달그림자가 비추듯이,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중생 두두물물(頭頭物物)에 이르기까지 그 달이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권리와 명예가 있는 집이나, 미천한 집이나 어느 집을 막론하고 봄이 돌아오면 다 따뜻한 봄기운을 봄바람을 받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진치와 오욕락을 구하기 위해서 동서남북으로 바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냥 가난하고 천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가지고 동분서주하다가,
원래 자기집에 평생 먹고 쓰고 남을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하고, 자기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이리저리 설치는 동안에 자기집에 있는 보물은 도둑을 맞아 버리게 된다.


오늘은 임술년 정초에 신수기도 회향일입니다. 초삼일(初三日)부터 시작해서 오늘 9일날 회향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기도에 모다 동참을 하셔서 하루 4분정진(四分精進)을 해왔습니다.
모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이 기도에 오셔서 직접 정근(精勤)을 하신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바뻐서 또 못 나오신 분은 댁에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일주일간을 기도를 하셨을 줄 생각을 합니다.

기도는 첫째 청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한결같이 청정하고 정직하고 지성(至誠)스러운 마음으로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는 첫째, 업장 소멸(業障消滅)하는 것입니다.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이루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는 바로 부처님의 마음인데,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무량공덕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모든 지혜와 모든 복덕을 성취허셨기 때문에 마음 한 생각 내시면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없이 다 성취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러헌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량겁 업장(業障)이, 업이 있어서 그 업의 장애를 받아 가지고 우리의 소원이 바로바로 성취가 아니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러헌 업장이 소멸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이나 또는 일주일이나 또는 삼칠일 또는 백일 이렇게 날짜를 정해 놓고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그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허면은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취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두고 봐야 알겠다. 이번에 기도를 했으니까 그것이 성취가 될는지 안 될는지 두고 봐야 알겠다.’ 혹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는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기도는 ‘기도를 지금 해 가지고 앞으로 성취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이미 성취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근본에 있어서는 성취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서류를 관청에다가 신청서를 내서 관청에서는 이미 다 결재(決裁)가 떨어졌으되 본인에게 그 통지가 오는 것은 시일이 걸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미 내용적으로는 결재가 다 나서 성취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통지문이 도달할 때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여러분이 기도한 것은 이미 다 결재가 떨어져서 성취가 되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랬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할 일이 계속해서 있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큰 목적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지혜의 눈을 떠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큰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을 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간 기도를 해서 업을 소멸을 하고 청정한 마음이 됨으로 해서 조그마한 소원을 이룰 수가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에게는 큰 소원과 작은 소원들이 끊임없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소원들,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로 우리의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게 할려면 새로운 업을 짓지 아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업(業)을 짓지 않게 되느냐?

‘업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행동으로 살생을 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사음을 범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보통 다 이러헌 그 나타나는—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그러헌 것을 ‘죄를 짓는다, 업을 짓는다’ 이리 생각을 하지만,
물론 그런 행동으로 짓는 업이 업 짓는 것 아닌 것은 아니지만, 업은 마음으로 짓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어떠헌 행동도 먼저 마음에서 일어나 가지고 그것이 얼굴로 나타나고, 언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진즉 지어놓은 것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거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화재가 날 때, 불은 몇 분 전에 불이 붙어 가지고 벌벌 타들어 가면 차츰차츰 그 불이 번져서 저 먼 데에서도 불꽃이 보이고 연기가 보일라면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연기와 불꽃이 보이기 전에 이미 불은 붙어서 타들어 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동으로 죄를 짓는 것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학자는 연기와 불꽃이 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한 생각' 딱! 일어날려고 할 때 거기에서 처리를 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이 번져서 훨훨 타고 있을 때에는 소방대 차가 동원이 되어 가지고서도 끄기가 어렵고 이미 그때는 많은 가산(家産)을 다 태우고 집을 태우고 사람을 태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에사 끌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불이 맨 처음에 조그마한 성냥불이나 담뱃불로 부터서 불이 붙자마자 그때에는 손바닥으로 꺼도 꺼지는 것입니다. 발로 살짝 밟아 버리기만 해도 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모든 종류의 죄도 한 생각 일어날려고 하는 그 찰나에 딱! 조치를 해 버리면 간단하게 죄짓는 것을 미연에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법은 최상선법(最上乘法) 참선법이 아니고서는 이것은 아니 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찰나에 그 일어난 그 생각이 커지기 전에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돌이켜 관조(觀照)하면 자취 없이 소멸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이 화두로서 모든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소멸시켜 버리는 이 법은 그 동안에 참선을 해보신 분이면 너무너무 요긴하고 고맙고 미묘하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실 줄 생각을 합니다.

이 참선은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죄를 짓지 아니하는데 가장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많은 죄를 지어서 그 죄가 자기 몸을 망치고 집안을 망치고 남을 망치고 사회 국가를 망치고 그렇게 된 뒤에사 그것을 소멸을 하기 위해서 용맹정근을 하고 기도를 하고—물론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우리 최상승법 학자는 지나간 업을 기도를 통해서 하려니와 앞으로 새로 짓지 않는 방법으로는 참선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법이라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0분16초)

 

 

 

 



(2)------------------

세속에 살려면 아들딸들이 잘 자라고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해야 되겠고, 사업도 잘되어서 돈도 잘 벌어야 되겠고, 직장에 직책도 자꾸 위로 승진을 해야만 되겠고, 아들딸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줘야 되겠고 이러헌 등등 수많은 크고 작은 원들이 있습니다.
그러헌 원을 성취해야만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렇게 열이면 열 다 성취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과 모든 성현께 간절히 소원을 해서 그런 성현의 가피(加被)를 입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겠습니다.

‘잘되면 제 공덕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만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핑계를 꼭 외부에다 대고 다른 사람한테 그 원인을 책임을 전가(轉嫁)합니다만은,
모든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고 모든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잘 이해를 한다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책망(責望)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요 욕심입니다만은,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또는 모든 성현들은 꼭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 것만이 좋다고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중생들은 호강하고 부귀하게 잘살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고 이럴 때에는 즐거움에 빠져서 게을러지고 오만해지고 거만해지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고 성현을 존경하지 않게 되고 진리를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종교에 대한 신앙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렇게 부자로 사는 줄 알지만 원인을 알고 보면 전생에 조금 복 지어 놓은 것이 있어서 전생에 복을 지어서 예금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놈 빼먹느라고 좀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것이지 그거 곶감 빼먹듯이 다 빼먹고 나면 별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남부럽지 않게 좀 잘살고 호강하고 산다고 해서 조금도 남을 업신여기고 뽐내고 으시댈만한 거리가 되지를 못한 것입니다. 잘살아 봤자 잠깐동안 꿈꾼 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높은 벼슬과 권리를 가지고 큰소리를 쳐봤자 잠깐 그러다 마는 것입니다. 불과 10년 20년이요, 몇 해 안가면 다 그런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허망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돈이 없고 가난하고 사업을 해도 잘 안되고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지 않아서 너무너무 속을 상하고 근심걱정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그렇게 걱정할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헌 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 가면서 참고 견디다 보면 차츰 일이 풀려나가면서 또 돈을 벌게도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 날이 또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삼동(三冬) 대단히 추웠습니다. 그렇게 추워서 너무너무 추워서 이렇게 계속해서 추우면 얼어죽을 것 같지만 벌써 새해를 맞이해서 모레면 임술년 입춘(入春)을 또 맞이하게 됩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그럽니다만은,
언제 어떻게 풀린 줄 모르게 동풍(東風)이 불어오고 화신(花信)이 전해오면 여기저기 또 진달래가 피고 산에 산에는 개나리가 벌겋게 피게 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착실하게 보람있게 살아가노라면 금방 봄소식과 함께 우리 가정에도 하나씩 둘씩 우리의 소원대로 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생은 어피차 꿈과 같은 것이라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살아도 꿈이요 못살아도 꿈이요, 허망한 꿈이지만 정법을 믿는 사람은 그 허망한 속에서 허망하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속에서 진실한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허망한 일생 동안을 영원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불법(佛法)이요 최상승법입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피와 오줌과 고름 이런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추(醜)한 것들로 구성이 되었지만 이 몸뚱이를 주재(主宰)하는 마음자리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그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같이 깊고, 산과 같이 동(動)함이 없는 그러헌 굳은 신심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굳은 신심을 갖는다면 우리의 큰 소원은 의심 없이 이룰 수가 있는 것이며 세속에 있어서의 조그마한 소원들도 어김없이 성취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이라, 호강하고 귀한 데에서는 도를 얻기가 어렵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배부르고 등 뜨시고 호강하고 귀하니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구태여 신심도... (녹음 끊김) ...성불이니 하나도 필요로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벌집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그 꿀방울을 빨아먹는 동안에는 꿀의 단맛에 취해 가지고,
시시각각으로 자기가 매달려 있는 그 칡덩쿨이 흰 쥐, 검은 쥐에 의해서 계속 끊겨 들어가고 있다고하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 줄이 끊어지면 천길만길 우물 바닥에 떨어지면 그 우물 속에서는 독룡과 독사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망각한 채 꿀물만을 빨아먹고 있는 그러한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오히려 도 닦을 마음을 발(發)하는 수가 많다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뭔 일이 잘될 때 보다는 우리의 마음대로 잘되지 아니하고 정신적인 육체적인 물심양면으로 장애에 부딪치고 내 뜻과 같이 아니 될 때,
그때 발심(發心)해서 정법을 굳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삼는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최상승법에 깊은 큰 인연을 심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모든 부귀와 호강을 갖추면서도 그러헌 데에 빠지지 아니하고 겸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한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좋은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나쁜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모든 곳에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도 있고 천당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습니다.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곳에 바로 육도(六道)의 윤회(輪廻)가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 최상승법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20분17초~35분0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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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3, 용광인(龍光諲)선사 참고.
*(게송) ‘終日走紅塵  失却自家珍’ ; [인천안목(人天眼目)] 1권—빈주문답(賓主問答)에서 분양(汾陽)선사 참고.
*홍진(紅塵 붉을 홍,티끌 진) ;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으로 물든 번거롭고 어지러운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홍진세계(紅塵世界).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법성신(法性身)·진여불(眞如佛)·법계성(

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한물건」이라고도 말한다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거듭 수행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신(化身) ;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여 때와 장소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나타나 그들을 구제하는 부처님.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불과 미륵불이 여기에 해당함. 응화신(應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정근(精勤) ;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지성(至誠 궁극 지,정성 성) ; 지극(至極)한 정성(精誠).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산(家産) ; 한집안의 재산.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속담으로 아무리 추운 날씨도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누그러진다는 말.
*동풍(東風) ; ①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②봄철에 부는 따뜻한 바람. ③골짜기로부터 산으로 부는 바람.
*화신(花信 꽃 화,소식·편지 신) ; 꽃이 핀 것을 알리는 소식.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안수정등(岸樹井藤) ; 어떤 사람이 벌판을 걷다가 성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크게 놀라 달아나다가 다행이 우물을 발견하고, 우물 안으로 뻗어 내려간 칡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네 마리의 뱀들이 사방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고, 또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노려보고 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는 칡넝쿨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칡넝쿨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였다.  코앞의 칡넝쿨에 벌집이 있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떨어져 입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모든 위험을 잊고 그 꿀을 맛있게 핥아 먹었다.

여기서 사람은 범부를,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우물은 사람의 몸을, 칡넝쿨은 생명줄을, 뱀은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四大) 요소(地水火風)를,
흰 쥐는 낮, 검은 쥐는 밤, 즉 흘러가는 세월을 뜻하고,독사는 악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고통의 세계를, 꿀은 사람을 현혹하는 욕망을 뜻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8. 31. 16:39

 

§(410) 심원사—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 / 함경도 좁쌀양반 / 기도 정성·신심 / (게송)일중산진우일중~.

우리가 시주할 길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精誠)이거든, 신심(信心)이거든. 신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향 하나를 올리거나,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거나 그냥 맨손으로 와서 절만 지극정성으로 하고 가도 업장도 소멸할 수 있고, 소원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잘 되어야 하고 소원이 많은데, 어떻게 ‘이뭣고?’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시겠지만, ‘이뭣고?’ 하나만 열심히 하면 그 속에 기도도 다 포함되어 있고, 염불도 포함되어 있고, 일체 선(善)·공덕(功德)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하십시오. 금생(今生)에 모든 소원도 성취하실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410) - 19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 법문에서. (용410)

 

(1) 약 21분.

 

(2) 약 20분.


(1)------------------

기도를 했으니, 기도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으니까 반드시 당장 그 소원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성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마는,
기도는 그 소원이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또 훨씬 좀 시간이 지난 뒤에 성취되기도 하고 또 내생에 성취되기도 하고, 몇 생(生) 있다가 성취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우리가 지어놓은 업(業)이 쌓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도를 한 뒤에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고약한 과보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심원사라는 절에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어느 신도가 아주 외롭게 혼자 사는 할머니 보살님이 한 분 있었는데, 자식도 없고 영감도 죽고 참 너무너무 외로워. 그런데 재산은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그 절에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한다고 시주(施主)를 좀 하시라고, 그러면 말년에 몸도 건강하시고 마음도 편안하고 그래서 좋은 곳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그래서 그 절에 개금불사를 하는데 논을 한 마지기를 팔아 가지고 시주를 해서 개금불사를 잘했는데, 아! 그 보살님이 눈이 딱 멀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스님이 얼마나 미안하겠냐 그말이여.

‘아! 몸이 건강해지고 참 좋다’고 시주를 하라고 그랬는데, 아! 두 눈이 멀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가서 뭐라고 위안을 참 하기도 안 되었고, 그래도 눈이 멀었다는 말을 듣고 안 가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 가서 ‘용기를 가지시라고, 이거 눈이 멀었다고 해서 신심이 물러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개금불사는 했는데 기와가 다 깨져 가지고 비가 새니, 깨끗이 개금불사 했는데 비가 새면 또 얼룩덜룩 하니까 또 좀 기와 번와(翻瓦)를 좀 하시면은 눈이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시라’고 하니까,

그 보살님이 워낙 신심이 있고 참 그런 분이라, 그냥 또 논을 팔아서 시주를 해 가지고 기와 번와를 잘했습니다.
아, 했는데, 아! 멀쩡한 다리가 딱 오그라져 가지고 앉은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 기가 막혀서.
보통 사람 같으면은 그놈 중놈, 멀쩡한 사기꾼이라고 입에 못 담을 욕을 할 텐데.

그래도 또 이 주지 스님이 얼굴은 좀 껍데기가 두터웠던지 그냥 또 그 말을 듣고, 가서 위로를 하고,
그 혈액순환이 잘되고 좀 심줄이 나긋나긋 해지는 좋은 단방약(單方藥)도 여기저기서 구해 가지고 가서 요것을 좀 잡사보라고—한 솥 고아 가지고 큰 오가리에다 담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잡수라고 갖다 드리니까,

그 분이 또 보통 분이 아니었던지, 그냥 스님이 그렇게 약을 고아 온 것이 고마워서 그걸 데려서 먹고 인자 좀 눈이 밝아질라나, 약을 먹으니까 다리 심줄도 좀 펴지고 좀 괜찮은 것도 같고 그래도 아직 낫지도 않은데,

그러면서 이제 또 거기다 대고 무슨 불사(佛事)하니 논 팔아 대라고 할 수는 없고, 어쨌든지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부르라고.
아무리 낯이 좀 두껍기로서니 눈멀고 앉은뱅이가 된 데다 또 시주를 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자는 염불을 열심히 하라고. 고왕경(高王經)을 좀 열심히 하면 좋은 수가 있을 거라고.
부처님이 절대로 우리 중생을 속이시는 일이 없으니까 고왕경을 하루에 아주 100번씩 하고,
인자 앉은뱅이라 어디 나가도 못하고 눈도 보이지 않으니 나갈 수 없으니까, 앉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고왕경을 하시라고.

‘고왕경을 눈도 못 보니 어떻게 합니까?’
‘내가 날마다 와서 한 구절씩 가르켜 드릴 테니까 구전심수(口傳心授)로 그렇게 외우라’해 가지고,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불국유연 불법상인 상락아정 유연불법 나무....’ 그래가지고는 한 구절씩 한 구절씩 며칠 걸려가지고는 그놈을 외어가지고는 한 구절도 틀리지 않도록 강(講)을 딱 받고 난 다음에 그것을 외우는데,

처음에는 더듬더듬 몇십 독(讀) 하다가 그 다음에는 차츰차츰 익숙해져서 50독, 100독, 200독, 300독까지 했다 그말이여.
이거 빨리 빨리하면 1분에 한 번, 1시간에 60번, 2시간이면 120번 이래가지고 하루에—뭐 노인이 잠도 없고 앞도 캄캄하고 속이 터져 죽게 생겼으니까,

그냥 염불이나 해서 마지막 ‘인자 나는 뭐 하루 빨리 죽어야지, 이런 상태로 살아봤자 별 수도 없고, 기왕 죽을 바에 염불이나 해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해 가지고는 300독 이상씩 하는데,
처음에는 입에 허여니 백태가 끼었어. 혓바닥이 꺼끌꺼끌 해가지고 그래가지고는 죽도록 불렀는데.

아! 하루 저녁에는 호랑이가 와 가지고 탈싹 물어 가버렸다 그말이여.
그 스님이 호랑이가 물어 갔다는 말을 듣고 가보니까 문짝이 때려 부서져 있고, 피가 줄줄줄 흘러가지고 끌려갔는데 어디로 가서 찾을 수가 있어야지.

에라, 이 빌어먹을 놈의 것!
나는 부처님만 믿고 개금불사를 하면은 소원을 성취하고, 기와불사를 하면 소원 성취를 하고, 고왕경을 읽으면 모든 병도 다 낫고 문둥병도 다 낫는다고 나는 믿고 그랬는데, 호랭이를 물어가, 나 이런 불법 안 믿는다.

곳간에 가서 도끼를 가지고 와 가지고는, 법당문을 열어제끼고는 부처님 가슴팍에다가,
여지없이 그냥 있는 힘을 다해서 도끼로 가슴팍을 탁! 찍어 놓고는 그길로 가사·장삼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는 ‘걸망이나 짊어지고 산천 구경이나 하다가 얻어먹고 다니다가, 죽던지 말든지 하리라’하고는 그렇게 돌아다녀.

1년, 이태 돌아다니면서 그저 밥도 얻어먹고, 사랑방에 잠도 자고, 그러면서 근 20년을 그렇게 돌아댕겼어.
돌아댕기다가, 그래도 내가 살던 그 절은 지금 누가 다른 주지 스님이 와서 사는지, 그때 내가 도끼로 찍어 논 부처님 가슴에 있는 도끼는 누가 뺐는지, 아직도 박혀 있는지, 거 궁금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살살 지팡이를 그리 돌려서 그 절을 찾아가니까 저 동구(洞口) 밖에서 부터 사람이 인해인산(人海人山)을 이뤘는데, 몇백 명이 아주 꾸역꾸역꾸역 그 절로 들어간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니 뭔 큰 굿허요?’
‘아, 지금 원님이 새로 와 가지고 절을 지금 초도순시(初度巡視)를 한다고 왔는데 지금 저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고’

‘근데 지금 그 절이 어떻게 되었소?’하고 물어보니까,
‘그 절은 한 20년 전에 살던 중이 도끼로 갔다가 부처님 가슴팍에다 도끼로 찍고 어디로 도망가 버렸는데,
그 뒤로는 그 절 신도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 절은 주지도 안 오고, 그 절은 아주 쑥대밭.. 아주 풀이 우거지고 지붕도 아주 풀이 자욱하고 완전히 절이 폐사(廢寺)가 되어가지고 귀신 나오게 생겼어요.’
‘그러냐고, 참 그럴 것이라고’ 그래가지고 거기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따라서 올라가니까 원님 행차가 되어 가지고 육방 관속(六房官屬)이 호위를 해가지고 원님이 거기를 왔는데,
그 원님이 말하기를,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시오. 내가 꼭 알아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 있으면 나오라고’

그러니까 그 절의 역사 아는 사람은 마을 사람도 대충은 알긴 알지마는, 제일 잘 아는 사람이야 그 스님 밖에 더 있느냐 그말이여.
뭐 누더기 감발하고 거지로 돌아다니다 왔으니 몰골이 참 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웬 미친놈인가? 달친 놈인가?

‘당신이 잘 압니까?‘  ‘네, 잘 압니다.’
‘어떻게 해서 이 절 역사를 그렇게 잘 아냐?’고 하니까, ‘예, 내가 20년 전에 이 절 주지였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얘기를 죽~ 얘기를 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동안에 어째서 그 주지가 없냐 하면은, 주지 스님이 그 뒤로 왔는데 가슴에 찍힌 도끼를 암만 뺄라고 해도 안 빼져.
안 빼지니까 도끼 박아진 부처님한테다 대고 절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가버려서 그 절이 폐사가 되었는데.

그 둘이 가서, 원님하고 거지 스님하고 법당문을 열어제끼니까 먼지가 자욱하고 쥐똥이 아주 그냥 한 자는 쌓였어.
도대체가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게 됐어. 거미줄은 이리저리 치고, 아주 그냥 박쥐 똥이 부처님 몸뚱이고 무릎이고 그냥 수북허니 쌓이고 냄새나고, 도대체가 그렇게 생겼는데,

원님하고 그 주지 스님하고 탁자 위에 올라가 가지고는 그놈을 빼니까 빠듯하니 빼지는데, 거기 가서 글자가 딱 써졌는데 ‘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이라’ 이렇게 써졌다 그말이여.

화주(化主)는 화주승(化主僧)이거든. 스님네는 가서 신도 보고 ‘불사(佛事)가 있으니 시주하십시오’하고 시주 책(施主冊)을 가지고 댕기면서 신도들한테 모두 시주를 받는 그 스님을 '화주승'이라고 그래.
그러면 시주(施主)는 ‘시주한 사람’이다 그말이여. 시주한 신도여.

그래서 ‘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서로 만난다’ 그렇게 써졌거든. 아 이게 무슨 소리냐?

그 원님이 도량(道場)에 수백 명이 가득찬 데서 일장 설화(一場說話)를 하는데,
자기가 어젯밤에 꿈을 꾸니까 부처님이 떠억 나타나서, ‘네가 와서 내 가슴에 도끼를 빼다오.
나는 너 때문에 20년 전에 내 가슴에 도끼를 맞은 뒤로 내가 이렇게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도 공양을 받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있으니, 네가 와서 내 도끼를 빼줘야 할 것이 아니냐?
나는 아무데, 아무데 사는 심원사 법당에 있는 부처님이다’ 그런 꿈을 꾸었는데,

어째서 부처님이 자기한테 그런 현몽(現夢)을 됐는가? 전혀 알 수가 없고, ‘그런 절이 있느냐?’고 이방한데 물어보니까 그런 절이 있다고 그래서 오늘 이렇게 왔다 이거거든.

그 원님이 누구냐 하면은, 말을 안 해도 여러분은 벌써 ‘오호, 그 호랑이 물어 간 사람이로구나!’ 아시겠는데,
그 개금불사에 시주하고, 기와불사에 시주하고, 그 고왕경을 날이면 날마다 300독 이상씩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했는데 눈멀고, 앉은뱅이 되고, 마지막에는 호랭이에 물려간 그 신도 보살님이었다 이거거든.

그 신도 보살님이 과거에 지은 업장(業障)으로 한 생(生)은 눈이 멀어서 고생을 하고, 그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앉은뱅이로서 일평생을 고생을 했어야 했고,
그 다음 생에는 또 사람 몸을 받되 마지막에는 호랭이 물어 가. 호랭이 물려 간 다음에, 그 다음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아야 할 그러한 삼생(三生) 업보(業報)를,

그 스님 말을 듣고 개금불사에 설판재자(說辦齋者)가 되고, 한번 눈이 멀었으면은 누가 다시 그 스님의 말을 믿겠냐 그말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이곧대로 믿고 다시 기와불사에 시주를 했다.
기와불사 시주해 가지고 앉은뱅이가 되었으면은 누가 고왕경 하라고 하면 ‘고왕경, 당신이나 하시요.’ 100이면 99명은 그럴 것인데, 그 스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그 고왕경을 혀가 닳아지도록 했다 그말이여.

삼생 받을 과보를 그렇게 해서 일생 동안에 다 받아버리고, 훌륭한 남자의 몸을 받아서 20살에 장원급제를 해 가지고 원님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그 절에 와 가지고 부처님 가슴에 꽂힌 도끼를 뽑아드리고,
지금 원님이라 하면은 군수나 도지사 옛날에 그런 건데, 지금은 군수도 행정관으로서의 군수고, 도지사도 행정관으로서 도지사인데, 옛날에 군수나 도지사는, 관찰사는 삼권(三權)을 한 몸에 다 갖추었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그러니까 도지사와 검찰청장과 또 법원장 이 삼권을 한 몸에 권리를 행사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그러한 삼권을 가진 힘으로 그 절을 복원 불사를 하는데, 다 쓸어버리고 새로 하는데 가슴에 꽂힌 부처님은 안 바꿨어. 그거 바꾸겠습니까, 그런 인연 깊은 부처님을.
거기를 다시 다 보개(寶蓋)를 해서 개금불사를 깨끗이 잘 하고, 법당도 새로 지어서 단청을 하고, 요사채·객실채·선방·칠성각·산신각 다 해가지고 도량 축대로부터 일신(一新)를 했다.

여러분도 시주를 하시고 또 기도를 하시더라도 이만한 마음이 깊어야 하고,
조금 시주 하고서 금방 무슨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래가지고 그것이 안 되면 ‘에이! 빌어먹을 것 예수나 믿어버리자’ 조금 안 되면 ‘어디 가서 점이나 쳐볼까?’ 어떻게 그러한 얄팍한 생각 가지고.

저 함경도 사람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오면서, 좁쌀 한 되를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마지(摩旨)를 지어서 올려놓고는 ‘이번에 나 과거만 합격하게 해 주면 이런 일이 종종 있게, 배는 골지 않게 해 줄 테니까 꼭 부탁해요 잉.’
양반은 옛날에 스님네한테 다 하게하고, 절에 와도 절도 여간 잘 안했습니다. 이조 때.
한 되 가지고 와서 굉장히 무슨 장한 것이나 올린 것처럼 ‘이런 일이 종종 있을 테니까 꼭 좀 부탁해요 잉.’

과거를 봤는데 붙겠습니까?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뚝 떨어져.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안 가고 절로 먼저 기어 올라가 가지고 담뱃대를 들고 탁탁 때리면서 ‘내 좁쌀만 똑 따먹고 놀놀히 앉아서 과거에도 합격도 안 시켜주고 인자는 좁쌀 밥 못 얻어먹어.’(31분57초~52분15초)

 

 

 

 


(2)------------------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데, 여러분 가운데는 설마 그럴 분은...
설사 함경도에서 내려오신 분이 혹 있을란가 모르지만 그럴리는 없겠지만은 불공 좀 하고, 뭐 시주 좀 하고 그리고 뭐 기도 좀 하고서 꼭 아들이 이번에 합격했으면, 꼭 딸이 합격했으면 하다가 거 잘 안되거든.

에이, 저 다른데 영한 데가 있다니까 거기나 가서 한번 해볼까.
이리저리 몇 군데 해 봐도 안 되면, 재수해도 안 되고 삼수해도 안 되고 에이 예수나 믿어버려야지 안 되겠다. 예수 믿으면 무엇이든지 병도 낫고 부자도 된다고 하니까 거기나 가볼까.

정말 시주를 하되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정성껏 했으면 금방 그렇게 돌아오기를 바라지 말고,
시주를 하고 눈이 멀고 또 시주를 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그래도 마음이 변할만 해야 삼생 업도 녹여 내는 것이지,
어떻게 그 낚싯밥 밥티 하나로 큰 잉어 낚으려고 하는 것처럼, 좁쌀 한 되 가지고 장원 급제 할라는 것처럼, 그런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해가지고서야 어떻게 큰 소원을 성취할 것이냐.

이렇게 말하니까 소원을 성취 할라면은 계속 시주를 하라고 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 시주고 기도고 염불이고 무엇이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시주할 길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精誠)이거든, 신심(信心)이거든.

신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향 하나를 올리거나,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거나 그냥 맨손으로 와서 절만 지극정성으로 하고 가도 업장도 소멸할 수 있고, 소원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큰 몇백 만 원, 몇천 만 원을 부처님께 바쳐도 ‘요거 올렸으니까 꼭 해 주십시오. 해 주십시오.’ 아주 간절히 그렇게 하다가, 안 되면 딴 데로 싸짊어지면 그거 안 되거든.
열 번, 스무 번 한결같이 한 데에서 거기서 소원을 성취한 것이여.

참선을 하면 좋다니까 모처럼 아들 며느리한테 용돈을 타가지고 안 쓰고 모이고, 모이고 해가지고 방부(房付)를 들였다.
모다 보니까 꾸벅꾸벅 앉아서 졸고, ‘아! 저런 것이 참선이구나.’ 자기는 암만 좀 잘라고 해도 잠이 안와. 제법 갸우뚱 해 가지고 콜콜 코를 골면서 조는데 그렇게 맛있게 자거든.

어떤 스님께 ‘참선을 어떻게 해야 잘할 수가 있을까요?’ 여쭈어보니까, ‘많이 졸아.. 앉아서 많이 졸으라고’ 그러시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이제 ‘조는 것이 확실히 공부인가 보다.’ 가만히 보니까 구참일수록에 더 잘 졸거든. 자기도  좀 앉아서 졸라고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몇 해 공력을 들여 가지고 이제 조는 법을 좀 익혔어.
인자 이만하면 되겠다. 해가지고는 어디든지 가서 방부를 들이면 맨 처음에 아주 딱 앉을 채비를 하고는 허리를 조금 꼬부린 듯 해가지고 앉으면 그렇게 잠이 맛있게 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어디가든지 떳떳허지.
졸지 않고 맨송맨송 있는 사람 보면 ‘망상 끓이느라고 저렇게 잠을 못 자고 저렇게 앉았구나.’하고는, 실컷 자고나면 그때는 인자 이사람 저사람 자는가, 안 자는가, 구경도 하고 1시간 때우기가 문제가 하나도 없어.

그러다가 어떤 훌륭한 스님을 만나가지고 ‘저는 선방에 나온 지가 벌써 한 10년 되는데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십니까?’하니까,

‘별로 아무것도 알아진 것은 없고 죽비 치면 3분 안에 잘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니 3분 안에 잘 정도가 되다니?’
‘처음에는 한 30분 걸려야 겨우 잠을 잤는데, 이제는 3분 안에 자니까 그만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어떻게 참선하는데 조는 것으로써 공부를 등급을 매길 수 있습니까?’

‘아무개 스님—그 스님 한국에서 다 큰스님이라고 하는데, 많이 졸으라고 그래서 그거 익히느라고 10년 적공(積功)을 들였습니다.’하니까
‘그 조는 것이 아니라, 참선(參禪)을 할라면은 성성적적(惺惺寂寂)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지, 어떻게 3분 안에... 말도 안 된 소리를 한다’고 하니까, 아! 깜짝 놀랐다 그말이여.

‘아! 그랬다’고 저한테 화두(話頭)를 타러 왔어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10년 동안 제가 어느 큰스님 말 한마디를 잘못 알아듣고, 이렇게 해서 적공을 들인 것이 이것이 허사(虛事)라고 그러니 앞이 캄캄합니다. 인자 환갑·진갑 다 지나고 70세가 되었는데, 이제 다시 새판잽이로 공부를 헐라니 참 앞이 캄캄하다’고 그렇게 울면서...
그때 여기는 비구니 스님은 방부를 안 받는데, 와서 울면서 사정을 해서 제도를 깨고는 그 비구니 스님의 방부를 받았습니다.

아마 이 가운데는 그 비구니 스님과 같이 정진하셨던 분도 계실란가 모르는데, 지금 아직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고 지금 근 팔십 훨씬 넘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역시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이 참선도—참 그렇게 조실스님 법문을 많이 듣고, 녹음 법문을 많이 듣고, 저도 올라올 때마다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러면서 화두를 들으라고 일러 드려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신가를 물어보면은 참 이상하게 하신 분이 있어.

어떤 할머니는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겠는데, 여기서 법문을 듣고 가더니 밤중에 ‘전강스님, 전강스님’하고 전강스님을 불러.
그래서 며느리랑 아들이랑 손자손녀들이 ‘아니 밤중에 오밤중에 어쩌자고 전강스님을 그렇게 불러 쌌습니까?’ 그러니까 ‘송담스님이 법문을 하는데 어쨌든지 전강스님을 많이 부르라고 그래서 그런다고.’

아 그럴 리가 있느냐고, 그렇지 않은데 할머니가 잘못 들으셨을 거라고,
아니 내가 내 귀로—아직 내가 눈은 침침해도 귀는 안 어두워야. 귀는 멀쩡한데 확실히 내가 들었다고 해서 그래서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1소대(小隊)가 몰려 왔습니다.

근데 와서 면회를 청해서 인사를 받고, ‘웬일로 이렇게 오셨습니까?’하니까,
‘할머니가 송담스님이 밤중에 전강스님을 자꾸 부르라고 하셨다고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참 얼토당토않고,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할머니가 섭섭하다고 생겼고, ‘그랬다’고 하자니 또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인자 잘 말을 해서 올바르게 하시도록 일러드린 일도 있고 그랬는데.

법문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법문을 들어도 각기 듣는 사람의 입장과 수준과 근기(根機) 따라서 다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여.
그래서 들었던 법문도 자꾸 들어야! 그래야 처음에 잘못 들었던 법문을 나중에 가서 ‘아, 그렇구나!’하고 나중에 바르게 알아듣게 됩니다.

그래서 밤낮 와 봤자 뭐 ‘한 생각 단속하라’ 그러고, ‘이뭣고?’하라고 그런 소리 들으나마나 집구석에 자빠져 있지 뭐, 가봤자 앉을 자리도 없고 그래서 안 온 분들이 있다고 그래요.
그분은 틀림없이 자다가 전강스님을 부르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는데, 법문(法門)이라 하는 것은 사실 설할 것이 없거든.

화두 하나만 제대로 딱 들을 줄 알면—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따악 ‘한 생각’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긴(緊)하게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매가리 없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고, 적적하면서도 성성한 가운데에 몸은 단정하면서도 어깨에 힘도 다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눈은 평상으로 딱 뜨고서 호흡은 자기의 체질에 맞춰서 적당하니 조용하게 호흡을 쉬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깨끗하게 들어가거든.

잘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기가 말로서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면서, 한번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 까지, 점심때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 까지,
저녁에 잘 때 떠억 들었던 화두가 아침에 눈 딱 떠도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도록, 이러한 지경이 오도록 끊임없이 정진을 해가야 하거든. 반드시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되는 거여.

앉았을 때만 되고 서서 안 되고, 뭐 지지리 되었는데 밥 먹다가 잊어버리고, 누가 부르면 ‘예’하다 대답할 때 없어져 버리고, 그게 아니야. 옆에서 바스락만 하면 없어져 버리고, 그런 것이 아니어.

정말 화두가 독로해서 순일무잡하게 되어도 그래도 환희심(歡喜心)을 내서는 아니된 거여.
또 그렇게 되면은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편안하니까 화두드는 것조차 싫어져버려. 화두가 들기 싫고 그냥 그 고요하고 맑은 경계를 고대로 그놈을 들이다 지키고 앉았거든, 그것도 못쓰는 거여.
그러한 가운데에도 의단이 떠억 독로하도록 화두를 들어야 하는 거여.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지에 이르러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막 그러는 게 아니어.
혀도 딸싹거리지 않고, 고대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요렇게 거각(擧却)하는 것이지, 고요한 데다 대고 너무 힘을 들여 가지고는 ‘이뭣고’ ‘이뭣고’하면 그 고요한 것이 깨지거든.

그 고요한 것이 깨지지 아니하면서도 의단이 독로하고, 의단이 성성(惺惺)하고 순일(純一)하도록 잡드리 해가는 것은 그렇게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세월 동안을 법문을 들으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하는 데에서 그런 지경에 이르는 거여.

그런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서 빨리 툭 깨쳤으면’하고 바래는 것이 아니고, ‘이럴 때 누가 탁 떠지도록 좀 해줬으면’ 그런 생각도 하는 것이 아니여. 그런 생각을 내면은 깨져버리거든.

그래서 ‘내가 나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기도할 때 그러헌 정성으로, 일심(一心)으로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나가면 반드시 되고만 마는 것이거든.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하고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하야  유화유월유루대(有花有月有樓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이요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다.
한 거듭 산(山)이 다하매 또 한 거듭 산(山)이로구나. 산 밖에 산이 있고—이 산 넘으면 인자 산이 없을까 하면 또 산, 그 산 넘으면 또 산, 가도 가도 거듭거듭 첩첩(疊疊) 산이로구나.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다. 말을 한 시간 이상했는데 그 말이 한도 끝도 없어.
산에 산에 산 넘어 구름이 쌓이듯이, 바다에 한없는 달빛이 부서지듯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도 한이 없습니다.

왜 한마디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말이 많을까요?
여러분과 저와는 숙세(宿世)로부터서 뗄 라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또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이렇게 말을 하게 된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여.
한 물건도 없어. ‘이뭣고?’하는 가운데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마디 ‘이뭣고?’ 속에는 재산도 명예도 권리도 인정도 탐심도 진심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할 것입니다.

한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그 속에는 아름다운 찬란한 꽃도 있고, 휘영청 밝은 달도 있고, 또 올라가서 먼 데도 바라보고 시(詩)도 읊을 수 있는 맑은 바람이 스쳐가는 찬란한 누각(樓閣)도 있듯이,(有花有月有樓臺)
한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만히 다 갖추게 될 것입니다.(無一物中無盡藏)

어떻게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잘 되어야 하고 소원이 많은데, 어떻게 ‘이뭣고?’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시겠지만,

‘이뭣고?’ 하나만 열심히 하면 그 속에 기도도 다 포함되어 있고, 염불도 포함되어 있고, 일체 선(善)·공덕(功德)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하십시오.

금생(今生)에 모든 소원도 성취하실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31분57초~72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개금불사(改金佛事)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과 그때 행하는 의식.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마지기 ; 논밭 넓이의 단위. 한 마지기는 볍씨 한 말의 모 또는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로, 지방마다 다르나 논은 약 150~300평, 밭은 약 100평 정도이다.
*번와(翻瓦 엮을 번,기와 와) ; 기와를 덮는 일.
*단방약(單方藥) ; 한 가지 약재만으로 조제되어 병을 고치는 약.
*오가리 ; '항아리'의 사투리.
*고왕경(高王經) ;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내용으로 구성된 경전.
또는 《관세음보살구생경(觀世音菩薩救生經)》,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고 소원을 성취케 하기 위하여 설하신 경으로, 누구나 일심으로 독송하면 이루지 못할 원이 없다는 영험 많은 경전이다.
*구전심수(口傳心授) ;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초도순시(初度巡視) ; 한 조직의 관리자나 책임자 등이 부임한 후 처음으로 그 관할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이나 일의 형편을 살펴보는 일.
*폐사(廢寺) ; 폐하여져 스님이 없는 절.
*누더기 감발 ; 누덕누덕 기운 헌 옷에다가 버선·양말 대신 발에 무명천을 감싼 거지 같은 차림새.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일장 설화(一場說話) ; 한바탕의 이야기.
*현몽(現夢) ;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 꿈.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설판재자(說辦齋者) ; 법회나 불사(佛事)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스님 또는 신도를 말한다. 설(說)은 '법회, 불사'  판(辦)은 '힘들이다, 주관하다'의 뜻.
*곧이곧대로 ; 조금도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바로 그대로.
*보개(寶蓋) ; 불상이나 보살상의 머리 위를 가리는 일산(日傘)이나, 법당 불상 위에 장식으로 만들어 다는 집 모양의 닫집. 천개(天蓋)•화개(花蓋)•원개(圓蓋)•산개(傘蓋)•현개(懸蓋)라고도 함.
≪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하며, 도솔천(兜率天)의 내원궁(內院宮)을 묘사함. 불상을 장엄하며 또한 이슬, 먼지 따위를 막는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2)

*방부(房付 방·거처 방,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적공(積功) ; 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씀.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새판잡이 ; 새로 일을 벌여 다시 하는 일.
*얼토당토않다 ; (일이나 말 따위가)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門).
*지지리 ; ‘기껏’의 사투리.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게송)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 ; [벽암록(碧巖錄)] 제53칙 설두(雪竇)스님 송(頌) 참고.
*(게송) ‘無一物中無盡藏  有花有月有樓臺’ ; 소동파 시 '백지찬(白紙贊)' 참고.
*첩첩(疊疊 겹쳐질 첩) ;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이 중생을 위해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2. 8. 09:53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약 18분.


어떻게 허면 그러헌 부작용이 없이 곱게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이 뭣고~?’

‘이 뭣고?’를 해서 자기의 마음이 순화가 되고, 순화가 되었다는 것은 안정이 되고 맑아진 것을 순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꾸 심호흡·단전호흡을 허면서 ‘이 뭣고~?’, 이렇게 1초1초 1분1분을 알뜰허게 정진을 다져 나가면 반드시 안정이 됩니다. 안정이 되고 동시에 또 맑아집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무엇이 필요하다’허면 그것이 묘(妙)하게 자기에게 이르러 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정진하시고 열심히 수행을 허신 분은 다 그런 것을 경험을 해 보셨을 줄 생각합니다.

예수교 성경에도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완전히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친다든지 부처님께 완전히 바쳐 버리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고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잠깐 마음에 일으켰다하면 그것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하고 바래고 그것을 얻을랴고 얼마를 몸부림을 쳤던 것이, 그래도 얻어지지 못했던 것이,
참선을 해서 마음을 맑게 하고, 마음이 맑아진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의 그림자를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업장(業障)의 씨앗이기 때문에, 업(業)의 씨앗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원을 막는 장애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가,

참선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그러헌 업의 씨앗이 변해 가지고 보리종자(菩提種子)로 변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부처님 마음과 같이 맑아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이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거울을 깨끗이 닦아 놓으면 누가 보아도 그 모습이 조금도 속임없이 제대로 나타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어떠헌 흙탕물이라도 그릇에다 떠다가 가만히 놔두면은 더러운 것은 밑으로 가라앉고 말간 물만,
그 뻘건 흙탕물도 마찬가집니다. 오랫동안 가만 놔두면 반드시 그 찌끄래기는 밑으로 가라앉고 말간 물만 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참선은 마음을 고요히 해가지고 안정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본래 맑고 더러운 것이 없다’고 믿어야 됩니다.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다못 ‘이뭣고?’를 헐뿐입니다마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닦아 가노라면,
아무리 정신이 혼탁하고 성질이 괴팍하고 선량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맑아지고 안정이 되고 어질어진다고 하는 것을 저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 뿐인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내 마음이 깨끗했을 때 우리의 모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를 따르고 나를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내 마음속에 악(惡)의 씨앗이 깃들고 있을 때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고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나를 헐뜯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원리요, 상식이요, 보편적인 이론입니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왕왕 등한(等閒)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범한 속에 위대한 진리는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로 넘어가고, 봄이 되면 잎이 피고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져서 잎이 지는 이 평범(平凡)한 사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진리보다 더 수승한 진리라고 허는 사실을 우리는 열심히 참선(參禪)함으로써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깨닫는 길이요, 깨닫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이 인도말입니다. 인도에 ‘붓다’라 한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했습니다. 인도말 ‘붓다’란 말은 뜻으로 번역을 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은 사람 또는 깨달은 길’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자고, 부르면 대답하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이러헌 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깊디깊고 높디높은 어떠한 이상한 그러한 무슨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두가 예사로 생각하고 노상 방치허고 있는 그러헌 사실들 그 속에, 이 세상에 이 법계에 위대한 진리는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화두(話頭)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는 홀연히 눈을 뜨게 될런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많은 천 사량(千思量), 만 사상(萬思想), 번뇌 망상 그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찰나 찰나가 바로 ‘참나’에 눈뜰 그 찰나입니다. 그것 내놓고 나를 볼 기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났을 때 바로 그때 ‘이뭣고?’를 들을랴고 노력을 해보십시오. 근심·걱정 있을때 그때를 놓치지 말고 ‘이뭣고?’를 들어 보십시오.

슬플 때, 저는 작년에 사람으로서 인생으로서 느낄 수 있는 큰 슬픔 가운데 한 슬픔을 만났습니다마는, 옆의 사람들이 모다 슬피 울었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눈물이 나왔을 때 나도 몰래 화두를 떠억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하염없이 속에서 우러나왔던 슬픔이 가라앉았습니다. 간장이 미어질 것 같은 슬픔이 화두를 들므로써 슬픔인지 가슴 아픈 것이 없어졌습니다.
화두를 놓치자마자 또 슬픔은 계속 우러나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이렇게 자신있게 여러분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과 뼈아픈 그러헌 상황 속에서 거기에서 휘말려 들어가지 아니하고 살아나갈 길은 오직 ‘이뭣고?’ 밖에는 없다고 허는 것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많은 슬픔과 많은 억울함과 많은 괴로움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헌 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뒤에, 면헐려고 해봤자 이미 늦습니다.
그때사 당황해 가지고 부처님 앞에 와서 면하게 해 달라, 기도를 해 달라, 이미 딱 다가와져 가지고 어떻게 허는 것입니까? 다가오기 전에, 이 사바세계 사는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사바(娑婆)’라는 말은 인도말로서 우리말로 번역허면 ‘감인(堪忍)의 세계’, ‘인내(忍耐)의 세계’, ‘참는 세계’라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 많기 때문에 ‘참아야만 할 세상’이라 이런 말입니다.

억지로 참을라고 헐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내 마음을 닦아서 마음속에 그러한 재앙의 원인을 제거해 놓는다면 그러헌 일은 미연(未然)에 막을 수가 있고,
닥쳐오드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꺼꾸러지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헌 일들로 해서 내가 한 걸음 올라 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으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집안에 비린내나는 더러운 것을 놔두면 인근에 많이 파리들이 모여듭니다. 시골에서 사신 분은 그 파리 구경을 참 많이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밥상이나 어디나 할 것 없이 수없는 새카만 파리 떼가 모여듭니다.
모여든 파리를 그것을 때려서 잡는다든지 약을 쳐서 잡는다든지, 잡아서 죽여 봤자 그 다음에는 그보다 더 많은 파리들이 모여듭니다.
나중에는 아주 면역이 되아서, 밥상에 새카맣게 들어 앵겨도 조금씩만 이리 내키고 밥을 떠먹고 또 와서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모이는 파리를 죽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집안에 더러운 것을 없애고, 변소를 깨끗이 하고 변소의 뚜껑을 잘 덮고 또는 약을 쳐서 집집마다 변소 관리를 잘하고, 집을 깨끗이 하고 더러운 것을 태우거나 묻어 없앤다고 하면은 집집마다 더러운 파리가 모여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파리는 그 발에 많은 병균을 갖다가 전염병을 옮기고 그러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재앙을 맞이할 만한 요인을 제거해야지, 그것을 둠으로 해서 재앙을 부르게 됩니다.
재앙은 하나만 오는 게 아니라 한 재앙이 일어나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한 재앙이 일어나면 두 가지 재앙, 세 가지 재앙이 연거푸 다가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생은 몹시 고달프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시달림을 받는 분-인간관계라 함은 부부문제, 부모자식 간의 문제,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문제, 형제간의 문제, 이런 것들이 모다 인간관계입니다마는,인간의 괴로움 속에서 가장 괴로운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 밖의 재산문제라든지 또는 직장문제라든지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헌 괴로움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헌 상항 속에 놓여있습니다. 크게는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탕(火湯)-불이 펄펄 끓는 용광로와 같은-그런 지옥(地獄)이 있다고 합니다마는, 그 지옥이 바로 이 사바세계에도 있습니다. 이 사바세계에 몸담아 있는 우리 자신의 가슴속에도 그 지옥이 있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있는 그 지옥, 그놈을 극락(極樂)으로 만드는 법이 ‘이뭣고?’ 입니다.

‘이뭣고?’ 열심히 함으로써 가슴속의 지옥을 극락으로 만들고, 그럴 때에 이 사바세계에 있는 지옥도 변해서 극락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진짜 십팔(十八) 지옥이니 팔만사천(八萬四千) 지옥이 다 소멸이 되어 가지고 불세계(佛世界)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그 무서운 팔만사천의 지옥이 극락세계로 된다고 하는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신비스러운 것이고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거꾸로 서서 죽는 거, 비행기를 타고 달나라에 가는 거, 이거 별로 그렇게 신통할 것이 못됩니다.

어떻게 해서, 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한 생각’ 단속을 해 가지고 이 법계를 극락세계를 만들며, 일체 웬수를 불보살로 변하는 이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멀고 먼 길 같지만은 언제나 한 걸음에 있습니다. 한 생각에 있습니다.
무량겁을 두고 닦아도 성취되기 어려울 것 같이 생각이 되지만 ‘한 생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이건 성현이 벌써 다 갈파(喝破)를 허신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도 아니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 해 신수기도 회향일을 맞이해서 저는-이미 기도를 하셔서 크고 작은 재앙은 다 소멸이 되셨을 것이고, 동시에 크고 작은 소원을 여러분은 기필코 성취를 허실 줄 믿습니다.(58분35초~76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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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말갛다 ; ①(무엇이) 산뜻하게 맑고 깨끗하다. ②(눈이) 맑고 생기가 있다. ③(액체가)진하지 않고 매우 묽다.
*등한(等閒,等閒視)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김.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미어지다 ;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이나 슬픔을 느끼다.
*미연(未然) ; [주로 ‘미연에’의 꼴로 쓰여]어떤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
*내키다 ; 「…을」 공간을 넓히려고 바깥쪽으로 물리어 내다.
*화불단행(禍不單行) ; 화(禍)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잇달아 옴을 이르는 말. 불행한 일이 겹치는 경우.
*화탕지옥(火湯地獄) ; 쇳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지옥 옥졸의 장대에 꿰어져 들어가, 몸이 삶아 녹아서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났다가, 또 반복하여 끓는 쇳물에 들어가 몸이 삶아 녹아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생각 찰나요,찰나의 한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갈파(喝破 꾸짖을•고함칠 갈,깨뜨릴 파) ; 본질을 꿰뚫어 보고 분명하게 말함.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 31. 20:04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 생각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8)—1985(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1) 약 21분.  (2) 약 21분.  (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봄바람 ()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 엄동설한(嚴冬雪寒)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향내가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만을 하지, 신수기도를 할까?’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른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 따라서 소승법·중승법·대승법·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진리와 계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법당에, 부처님 계신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기도 ()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 돌아와서 정법 문중에서 도를 닦을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주로 악업에 해당이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 짓게 되는 것입니다. 모금을 마시고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 백체(百體)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꾸려 때에 뿌리를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나무는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 아무리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 짓지 않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마음의 발로(發露)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바로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조실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 오신 활구참선법.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이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집안에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삼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사유축(巳酉丑) 생이 그렇게 되고 다음에는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삼재가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항시 3 동안 근신(謹愼)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출근을 해야겠고, 생활은 여전히 가되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40)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 것이고,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군이를 생각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생각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고 있는 것도 역시 생각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생각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면저것은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 작용이라 것입니다.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 생사본(生死本)이여. 비롯함이 없는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바로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알고, 귀로 들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 것입니다.


생각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같지마는 천지(天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있으나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것이! 이것이로구나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 떨어져서 한량없는 ()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 출세하셔도 구제할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것이다.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게 됩니다마는,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7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것입니다. 일행이 사람 내지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도량(道場)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나간다면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 말은말을 함부로 가지고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지키기를 병마개 틀어막듯이 것이다.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음식을 끼니쯤 먹는 것이 낫고, 말을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때와 먹어야 , 말을 해야 때와 말을 아니 해야 때를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 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역사(歷史)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복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것이고,

해야 말을 해야 시간에, 해야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것입니다.(2040~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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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三災) 아까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구녕은 바로 밑에 있는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 되어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것이며, 나의 제자가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눈에 어떤 형상이 !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만큼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비약을 가지고,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가지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런 식으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 그렇게 해서,

((무기(無記)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거기서 이리저리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 설켜 가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무서운 ()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것입니다.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 귀에 거슬리는 바로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이뭣고?’

몸이 아파도이뭣고?’ 속이 상해도이뭣고?’ 배가 고파도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처음에-’ 소리부터 하는데 -’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나간다면, 생각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 무너뜨릴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근원에서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근본(根本)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 있어야 .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 있어서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안되고,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나가면, 할려고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뭐라고 표현할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지혜롭게 알뜰하게 화두를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나가면, 오매(寤寐)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 요달(了達)하게 것입니다.


오늘은 삼재(三災)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범심불식성하구(凡心不息聖何求)리요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리오

나무~아미타불~


범심(凡心) 불식(不息)하면 성하구(聖何求)리오.

무릇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범부(凡夫)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어찌 성과(聖果), 성현(聖賢) 구하리오. 어찌 깨닫기를 바랄 수가 있으리오.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로구나. 공양이 끝나고 산다(山茶), 잔을 마심이로다.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꽃이 지고 꽃이 피고 것을 시절(時節)에다 맡겨 버려. 꽃이 피면 대로, 꽃이 지면 대로, 세상 흥망성쇠(興亡盛衰) 영욕득실(榮辱得失) 그냥 거기에 맡긴다 그말이여.


거기에 맡겨 두고 나는 마음 닦아가는 나의 근본 문제를 충실히 나가면,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 어찌 세상에 번이나 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하는 것을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의 근본사(根本事) 방치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고, 피면 핀다고 거기에 굴림을 받고, 꽃이 지면 진다고 거기에 휘둘림을 받고, 무엇이 흥하면 흥한 데에 휩쓸리고, 무엇이 망하면 망한 데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어찌 참다운 인생이라 있으리오.


흥망성쇠와 꽃이 피고 지는 데에 일임(一任) 버리고, 나의 본분사(本分事)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했거늘, 오늘 신수기도 입재를 향해서 본의 아니게 재앙의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4125~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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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불불산향만로비~’ ;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유산(遊山)’ 공안에 대한 삽계익(霅溪益)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1 참고.

(,)꾀꼬리,(,)꾀꼬리, 동자(同字).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부파 불교(部派佛敎)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 하는데,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 모시는 나무패.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바람 /옷을 꿰맴 /자식 )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 () 비유하여 이르는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갈마(羯磨)’이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지엽적(枝葉的) ; 사물이나 사건 따위에서 본질적이 아니라 부차적인 부분에 속하거나 관계된 .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 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삼재(三災 /재앙 ) ; 사람에게 닥치는 3가지 재해(災害). 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 있으며 십이지(十二支) 따라 든다.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오행(五行) ;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 (), (), (), () 이른다.

*술가(術家) ; 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

*근신(謹愼 삼갈 /삼갈 )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나무관세음보살이나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송(讀誦) ; 소리를 내어 () 읽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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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六賊) ; (), (), (), (), (), () 육경(六境) 비유적으로 이르는 .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여섯 도적들과 같다 뜻이다. (=육진六塵=육경六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 뜻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6 참고.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본래신(本來身) ; 진여불성(眞如佛性).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 성자(聖者) 지혜]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되풀이되다 ; (같은 말이나 일이)반복되어 행해지다.

*그릇 ; ①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게. ②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게. ③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동서고금(東西古今) ;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를 아울러 이르는 .

*구녕, 구녁 ; ‘구멍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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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불법(佛法)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일반상(一般相)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 구별이 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재삼(再三) ; 두세 . 또는 번씩. ‘거듭’, ‘여러

* 무엇고(이뭣고 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 무엇고?'(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 중심으로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 산을 말한다.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행위. 온갖 ()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근성.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그대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게송) 범심불식성하구~’ ; 법진일(法眞一)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1](동국역경원刊) p253 참고.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聖果) ; 성자(聖者) 지위. 성인(聖人) 도달경지[].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 성인의 ,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영욕(榮辱 영화 /욕될 )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 아울러 이르는 .

*득실(得失 얻을 /잃을 )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근본사(根本事) ; 참선법을 통해 내가 나를 깨달아 생사해탈을 하는 .

*일임(一任) ; 모두 맡김.

*본분사(本分事) ; ①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거센 물결.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