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자신(自信)2016. 7. 2. 09:04

•§•(108) 『자경문(自警文) 법문 / 출가라는건 바로 화두 얻는 / 천상천하 제일 가는 은혜는 부처님 은혜 / 어서 확철대오 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라.

 

마리를 살리는 공덕 보담도 마리 살리는 공덕이 장하다.

 

말세에 얻었다고 『에이! 우리 말세 인생이 닦아 되나? 이러한 포기를 두지 말고 이런 자기를 두지 말고 믿어라. ‘말세에 나왔다 말세 탄식하지 말고 한바탕 믿어라.

 

출가해라. 출가라는건 바로 화두 얻는 것이여. 「이뭣고? ! 타는 것이여.

 

부처님 은혜는 제일 크냐? 까마득 몰라 () 우리를 바로 가르켜 주셔서 어서이뭣고?’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너도 확철대오 가지고 생사해탈 했거니와 오직 좋으냐.

확철대오 놓으면 일이 뭐냐? 일체 중생 처박혀 있는, () 있는 육취중생(六趣衆生) 제도해야 아니냐? 육취중생이 누구냐? 과거에 모두 우리 다생부모(多生父母) 아니냐! 우리 다생부모가 한목 이렇게 ()해서, 한목 모도 지금 육취에 모두 얽혀져 가지고는 서로서로 뜯어먹고 서로서로 죄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봐라. 어서 확철대오 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라.

 

**전강선사(No.108)—이뭣고 화두법, 월봉외도, 선요, 자경(임자72.01.09.새벽) (전108)

 

약 18분.

 

어디가 인자, 어디가 육적(六賊) 있냐?

몸에 육적이 따른다[身隨六賊故]. 육적고(六賊故) 혹타악취즉(或墮惡趣則), 몸에 육적이 따라 가지고 그놈 육적 그놈이 들어서 죄를 퍼짓게 만들거든.

 

눈이나, 귀나, 코나, 입이나, 몸뚱이나, 뜻이나 어디 육신코빼기 고까짓 것이 무슨 , 눈이 무슨 그것 눈만 가지고 소용 있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쎄로 맛보고, 몸뚱이로 만져보고, 뜻으로 생각하고, ! 요래서 모도 짓는 죄업이 여섯 가지 , 요놈의 여섯 가지 죄가 그렇게 짓게 되느냐 그말이여. 이놈의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그래 가지고는 죄를 지었으니 불가불 악취(惡趣) 떨어질 아니여? 죄를 받을라니까.

죄만 지으면은 받음사 하지마는 받게 되거든. 그러니 그놈 죄를 지어 놨으니 받을 이치가 있는가? 받는 것이여.

 

그놈 나는 죽였지마는 받을 때에는 몇천 번을 내가 받을는지 몰라.

조그만한 ()인들 그걸 참말로 무서워해야지. 함부로 그까짓 놈의 ? ‘같은 것도 배를 ! 죽이는 , ! 소리 좋고, ! 나온 좋고중생심이 이렇지.

남의 배때기를 놓고도 그놈 아픈 생각지 않고, 내가 죽이니 좋단 생각만 난다. 그놈의 , 조그만한 죄라도 보태서 크고 굉장혀. ! 이놈 몸뚱이 여섯 도적놈이 이런 죄를 퍼짓는다.

 

우리 (), 우리 참선 학자들이야, 참선 학자가 어디 무슨 같은 것도 잡으면은 살며시 잡아서 척투무죄(擲投無罪). 갖다가 어디 적당하게 내버리면 죄가 된다 했어. 죽였으니까.

 

! 죽인 것보담도 내던지면내던질 저도 저대로 죽지, 그놈이 없는 물건이다마는,

어따 그만 역부러 죽일 심리로 ! 때려죽인 것보담도, 몸뚱이라도 다행히 어디 가서 살아라하고 거다가서 저놈 살리우는 마음을 두어서 버리는 거와, 죽이지 않을 마음이 거기 붙어서 버린 거와! 때려죽여. ! 때려죽여그런 거와는 죄가 다르다 그말이여.

 

자비심 가운데 마음 가운데에서, 어진 마음 가운데에서 복이 한량없어. 그놈을 잡아 가지고라도 가만히 갖다가 어디 볕에나 양지쪽에나, 어디 솜에나 묻혀서 갖다 놔두면 제대로 굶어 죽지 살든 못하드래도 내가 살릴 마음을 두었으니 복이 장하다 그말이여.

 

이런 비유가 있어. ‘ 마리 죽인 공덕과 마리 죽인 공덕이 어떠허냐? ‘ 마리 살리는 공덕과 마리 살리는 공덕이 어떠하냐?’

마리를 살리는 공덕 보담도 마리 살리는 공덕이 장하다어째 그러냐?

 

놈은 그놈이 사람 피를 빨아먹고 사람 모두 고약한 괴로움을 주는 못된 벌거지인데,

그런 사람 빨아먹은, 빨아먹은 못된 악충까장도 죽일라고 그놈을살아가거라하고 복수(復讐)주의가 없고, 죽일 마음도 없이 살려주는 마음이 어질기 때문에 그런 어진 사람이 같은 것이야 죽일 마음이나 두겄느냐? 그런 짐승 같은. 그러니 자비심이 거룩해서 공덕이 이렇게 장한 법이다. 이런 비유가 있거든. 살생 같은 , 도둑질 같은 , 그렇지.

 

요놈의 죄만 몸뚱이에,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가운데 요런 놈의 육적(六賊) 따라 가지고 죄만 짓는 것이 우리 중생이다.

 

그런데 우리 중생으로써서 발심(發心) 처억, 부처님 제자가 떠억 되아서 이런 대가(大家) 들어와서 닦는 문에 들어와서 화두(話頭) 하나 가지고는, 큰스님네한테 화두를 하나 가지고 화두를 나가는 학자여. 도학자여.

무슨 살생하고, 무슨 죽이고 살리고 계상(戒相)이고 뭣이 있나? 아무 것도 없이 도만 닦아 나가니 그래 그만 대승학자여. 아주 그만 참말로 () 그대로 가진 학자여.

 

이놈의 몸뚱이에 () 육적이 있어 가지고 죄를 퍼지어서 악도(惡道) 들어간즉 극히 쓰고 극히 괴롭다.[身隨六賊故 或墮惡趣則極辛極苦] 천하에 그놈의 지옥에 들어가 () 받는 기맥히다.

 

심배일승고(心背一乘故), 마음에 일승을 등진 전차로 혹생인도즉(或生人道則) 마음에 일승을! 내가 심배일승이란 생전 모르네. 인자 우리 강사스님네가 모두 왔으니 물어 봐야겄구만.

등질 ()’자여. ‘마음에 일승(一乘) 등진 전차로그거 어떻게 말이여, 그게? 배각합진(背覺合塵) () 배척 등져 버리고 티끌에 합했다. 고건 그렇게 보고.

 

요놈의심배일승고(心背一乘故) 혹생인도즉(或生人道則)’이라는 뭣이여? 어쨌든지 그만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무슨 한참 정법문중에 복이 있고 인연이 있었던지, 인도(人道) 나왔다 그말이여.

인도에 나와서 보니 불전불후(佛前佛後). 부처님 한번 나오지 못하고 어찌 부처님 돌아가신 , 부처님 말세(未世) 나왔느냐? 이와 같은 말세...

! 조끔 일찍이 몇백 몇천 전에만, 2천년 전에만 나왔어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 우리 부처님 그대로 세상 생존해 계실 ! 부처님 듣고 그만 인생 문제를 해결해 버릴텐데 그때 났느냐?

 

금역행득인신(今亦幸得人身)이로구나. 이제 또한 다행히 사람 몸뚱이 얻었구나. 이제라도, 말세라도 우리가 이렇게 사람 몸뚱이 얻은 것이 웬일이냐?

정시불후말세(正是佛後末世)로구나. 사람 몸뚱이를 얻었다마는 말세에 나왔구나. 요렇게 부처님이 돌아가신 3천년 후에 이렇게 늦게 나왔구나.

오호통재(嗚呼痛哉). 슬프고 슬프고통재, 오호통재(嗚呼痛哉)! 슬픈 거지. 기가 맥힌 탄식이여. 슬프다.

 

시수과여(是誰過歟)? 이것이 허물이냐?

이렇게 늦게 나왔노? 우리 인생 몸뚱이를 어디 조끔 일찍이 나왔으면은 부처님 당시에 나와서 부처님 정법 배워 가지고 생사해탈 해버렸을텐데, 이렇게 늦게 나왔노?

참말로 이걸 생각컨댄 슬프고 아린다. 보통 슬픈 아니라 아려. 시수과여(是誰過歟)? 이것이 허물이냐? 어째서 이렇게 늦게 나왔느냐? 말세에.

 

그렇기는 그렇다마는, 말세에 나오기는 나왔다마는 네가 능히 살펴라.[雖然 汝能反省]

말세에 얻었다고 『에이! 우리 말세 인생이 닦아 되나? 이러한 포기를 두지 말고 이런 자기를 두지 말고 믿어라. ‘말세에 나왔다 말세 탄식하지 말고 한바탕 믿어라.

 

그래서 능히 네가 도로 살펴라. 살펴 가지고는 할애출가(割愛出家)해라. 애착(愛着) 버리고 출가해라.

 

애착이 뭣이냐? 그놈의 부부 애착, 자식 애착, 애착, 고따구 놈의 권리 애착.

얼마나 테여? 가지고 테냐? 묶어 가지고 짊어지고 터냐? 돌아설 소용 하나도 없다. 몸뚱이까장 내버린다. 그걸 한바탕 생각해 봐라.

 

불가불 애착 때문에 나오니 애착을 한번 버리고 나와야 아니냐? ‘나온다 것은 발써 () 닦는 것을나온다 거여. 닦으면 나왔자 뭣혀.

도도 닦지 않고 나와서 절에 와서 시주것만 공으로 얻어먹고 있어? 양가득죄(兩家得罪)하게? 부모, 선영(先塋) 배척해 버리고 나와서 절에 와서 도둑놈 노릇을 ? 시줏밥을 헛되이 먹고? 좋은 천일(天日) 모도 허송 허비해 버리고.

 

출가해라. 출가라는건 바로 화두 얻는 것이여. 「이뭣고? ! 타는 것이여.

 

() 버리고그까짓 애착 그녀러 , 억만 과거에 나온 , 이놈의 구랭이가 되어도 애착뿐이네. 새끼 밖에 모르고, 에미 밖에 모르고. 축생취(畜生趣) 나와도 새끼나 새끼도 에미 밖에 모르고, 자식 밖에 모르네.

이놈의 애착이 삼도고본(三途苦本)이다. 지옥, 아귀, 축생에 들어가는 () 근본이니라. 알겠지?

 

() 버리고 한바탕 출가해서 어서 속히 너를 찾아라. 집에 떠날라 하는, 떠난 . 집에서라도 출가여.

그저 것은 참선법(參禪法)이니, 그저 하면서도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이뭣고?’ 터억 생각한다 그말이여. 출가심을 둬라 그말이지, 어디 나오라고 것인가?

 

우리 중은 여기 맞는 것이지. 수지응기(受持應器)해야, 응기를 받아 가져라. 응기(應器) 것은 옷과 발우를 터억 하나 얻어. 스님 의탁해 가지고는 옷과 발우 하나 얻어. 하나, 장삼(長衫) 하나, 발우대 하나 그놈 얻으면 그만이다.

착대법복(着大法服)해라. 이러한 법복을 입어라. 닦는 학자가 되어라 그말이여. 행장을 갖춰라.

 

이출진지경로(履出塵之逕路)허니, 티끌에 뛰어나는 지름길을 밟으며, 학무루지묘법(學無漏之妙法)허니 샘이 없는 묘한 법을 배우니, 샘이 없는 것이라는 것은 영원을 두고 배운다 그말이여. 없어지고 모지라지고 그런 아니여. 영원히 있는 법을 배운다. 해탈법.

 

이러한 법을 세상에 배우고 있으니 어떠하냐? 생각해 보아라.

여룡득수(如龍得水). 마침 용이 얻은 같구나. 사호고산(似虎靠山)이다. 호랭이란 놈이 수풀에 의지한 같구나. 천하에 호랭이란 놈이 수풀에 의지해야지, 그놈이 잘못하면 큰일나니까.

 

이런 법도 들어야지. 이런 법을 듣고 차츰차츰 모도 발심해야 하는 것이여. 틈새기가 없이 발심해야지.

 

! 이거 『자경(自警) 법문 한번 듣기를 원한 이가 모도 여러분도 들으라고 발기 보살(發起菩薩)이란 말이여. 그려 내가 허고 앉었고만. 이거 생전 허도 않다가... 처음에 들어오니 수가 있나?

 

기수묘지리(其殊妙之理), 수묘(殊妙) 이치를, 말로 없는 이 이치를참선법, 깨달은 , 이런 이치를 불가승언(不可勝言)이다. 가히 말로 이길 수가 없다.

말로 어떻게 수가 있나? 날마당 즐거워서 죽을 지경이고, 내가 나를 찾는 지경이 세상에 감상스럽게 만나서 경쾌헌 경행(慶幸)스러운 마음이 가슴속에서 괴운다. 터져 올라온다.

 

내가 법을 만났더라면은, 인생 몸뚱이 얻어 가지고 법을 만났더라면은 이까짓 몸뚱이 얻어 가지고 잠깐 찰나에 그만 몸뚱이 바꿀 도로 가서 구랭이 대갈빡이나 쓰고 나오면 뭣하며, 아비지옥(阿鼻地獄)에나 들어가서아이고! 아이고!’하고 앉었으면 뭣할 것이냔 말이여.

몸을 받아 가지고 법을 배웠기 땀세, 인자 무루지묘법(無漏之妙法) 배우기 땀세 이렇게 좋구나. 이렇게 만행(萬幸)하구나.

 

 

인유고금(人有古今)이다. 사람은 () () 있다마는, 우리가 말세에 났다마는 사람은 이제가 있다마는 법무하이(法無遐邇)니라, ()이란 멀고 가까운 것이 없다.

항상 법이 법이지. 부처님 때라고 법이 있고, 지금 말세라고 법이 없나?

 

인유우지(人有愚智).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가, () () 있을 것이다마는 도무성쇠(道無盛衰)니라. 도라는 () () 없다.

어디가 도가 성쇠(盛衰) 있나? 크고 적고, ()허고 있어지고 없어지고 있어? 도가? 항상 고대로 있는 것이다. 못햐?

 

수재불시(雖在佛時), 비록 부처님 있으나, 불순불교즉(不順佛敎則) 부처님의 가르킨 () 믿지 아니한즉 하익(何益)이며 무슨 이익이 있으며,

종치말세(縱値末世), 말세를 만났으나 봉행불교즉(奉行佛敎則) 불교를 봉행, 부처님의 법을 가르킨 대로 내가 고대로 참선을 이렇게 행해 한즉 하상(何傷)이냐? 뭐냔 말이여? 뭣이 되아? 똑같지 . 말세에 한탄헐 뭐여?

 

그러니 우리 세존(世尊)께서도 이르시기를,

아여양의(我如良醫). 나는 어진 의원 같아서 지병설약(知病設藥)한다. 병을 알아서 약을 설해 준다. 느그 생사병, 죽고 사는 생사병 낫으라고 내가 이렇게 설법을 준다.

복여불복(服與不服) 비의구야(非醫咎也). 네가 설법을 듣고 참선해서 견성(見性)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라 설법을 듣고 허고 허는 것은, 좋은 약을 내가 주었는디 먹고 먹는 것은 느그 허물이지 허물 아니다.

어쩠든지 느그는 내가 이와 같은 좋은 생사해탈 설법을 모르는 느그니까 알았으니, 듣고 알았으니 해라! 일은 뿐이니라

 

천상천하에 제일가는 은혜가 있는데, 무슨 은혜가 제일 크냐? 제일 은혜가 뭐냐?

부모보담도, 그다음 국왕보담도, 시주(施主) 단월(檀越)보담도 제일 은혜는 부처님 은혜다.

부처님 은혜는 제일 크냐? 까마득 몰라 () 우리를 바로 가르켜 주셔서 어서이뭣고?’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너도 확철대오 가지고 생사해탈 했거니와 오직 좋으냐.

 

확철대오 놓으면 일이 뭐냐? 일체 중생 처박혀 있는, () 있는 육취중생(六趣衆生) 제도해야 아니냐? 육취중생이 누구냐? 과거에 모두 우리 다생부모(多生父母) 아니냐!

우리 다생부모가 한목 이렇게 ()해서, 한목 모도 지금 육취에 모두 얽혀져 가지고는 서로서로 뜯어먹고 서로서로 죄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봐라. 어서 확철대오 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라.(3212~494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 (), (), (), (), () 육근(六根) 도둑에 비유한 .

*육신코빼기 ; ‘육신(肉身 )’ 낮잡아 이르는 .

* ; ‘ 사투리.

*악취(惡趣) ; ①악도(惡道). 삼악도(三惡道). 악업을 지어서 죽은 뒤에 태어나는 고통을 받는 악한 세계.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②육도(六道) 악취라고 하기도 한다.

*벌거지 ; ‘벌레 사투리.

*사대색신(四大色身) : 중국에서 () • () • () • () • () 오행(五行) 말하듯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 • () • () • 바람() 사대(四大)로써 자연계(自然界) 온갖 것에 대한 구성요소(構成要素) 말하였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인도(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리다 ; (상처나 살갗이)찌르는 듯이 아프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발써 ; ‘벌써(어느새, 이미 전에, 예상보다 빠르게)’ 사투리.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 ; 공짜(힘이나 돈을 들이지 않고 거저 얻은 물건).

*선영(先塋 조상 /무덤 ) ; 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

*시줏밥 ; 신도들이 스님에게 또는 절에 베푸는 .

*천일(天日) ; ①하늘과 해를 아울러 이르는 . ②하늘에 있는 . 또는 햇볕.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발우대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 한다. 발우(鉢盂)ㆍ바리때ㆍ바릿대 · 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발기 보살(發起菩薩) ; 법문을 설하도록 인연이 보살(菩薩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모두 구제하려는 마음을 일으킨 대승의 수행자).

*수묘하다(殊妙-- 다를·뛰어날·특히 /묘할 ) ; 절묘하다(絶妙-- 비할 데가 없을 만큼 아주 묘하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 .

*대갈빡 ; ‘머리 속되게 이르는 .

*아비지옥(阿鼻地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땀세 ; ‘~땜에(~때문에)’ 사투리.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 가리킴. ⑤본성. ⑥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세존(世尊) : []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느그 ; ‘너희 사투리.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까마득 ; ‘까마득하다 어근(語根).

*까마득하다 ; ①거리가 매우 멀어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이 희미하다. 시간이 아주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다. ②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전혀 알지 못하거나 기억이 막막하다.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육취중생(六趣衆生) ; 육취(六趣) 생사 윤회하는 중생.

*육취(六趣) ; 육도(六途, 六道) 동일. 중생이 선악(善惡)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축생취(畜生趣), 아수라취(阿修羅趣), 인간취(人間趣), 천상취(天上趣) 있다.

*다생부모(多生父母) ; 다생에 걸쳐서 몸을 받아 태어날 때마다 길러주신 모든 부모.

*광도중생(廣度衆生) ; 광도제중생(廣度諸衆生). 모든 중생(衆生) 널리[] 제도(濟度)하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6. 1. 1. 13:46

 

 

§(157)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

 

시대가 말세가 되어서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고, 바른 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정법을 바래고 원한다면 선지식과 불보살을 육도법계(六途法界)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송담스님(No.157)—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81.12.02.)(15) (용157)

 

약 15분.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시고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 스님을 비롯해서 만공 대선사님의 법맥(法脈) 이으셨습니다.

 

33세에 양산 통도사의 보광선원 조실(祖室) 추대를 받으셨고, 이후로 법주사 복천선원 경북에 수도선원, 해남 대흥사, 망월사, 대구 동화사, 경남 범어사,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여러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시고,

수원 용주사에는 중앙선원을 개설하시고, 그렇게 조실로서 활구참선법,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선양을 하시다가,

 

여기 주안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61년도에 창설을 가지고, 1975 양력으로 1 13일에 열반에 드실 때까지 용화선원에서 정법을 선양을 하시다가 77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열반에 드신 이후 오늘까지 8년간 조실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조실 스님의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항시 조실 스님께서 도량에 살아서 머물러 계신 똑같이, 믿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사부대중이 도량에서 법문을 듣고 정진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원래 모든 불보살(佛菩薩) 역대조사(歷代祖師) 마찬가지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증득하셨으므로 당신 분상에는 생사가 없는 것이지만, 인연에 따라서 열반상(涅槃相) 보이신 것뿐입니다.

 

육조(六祖) 스님께서 열반하실 제자의 사람이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여쭈니까, “낙엽귀근(落葉歸根)이요 내시무구(來時無口)니라. 나무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고, 오는 때에는 말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은 비단 육조 스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불보살과 조사께서는 말씀이 해당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께서내가 뒤라도 용화선원이 영원히 선원(禪院)으로서 운영이 되어가도록 하라 당부를 하시고,

이렇게 도량(道場) 가꾸어서 인연 따라서 자기도 공부하고 다른 사람도 공부할 있도록 나가면 나도 다시 와서 여기서 일대사(一大事) 밝힐 것이고, 너도 갔다가 다시 오고 해서 서로서로 도량을 중심해서 무량겁을 두고 공부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간다면 그밖에 일이 무엇이겠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조실 스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내가 아무개다하고 몸에다가 글씨를 가지고 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아무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고 때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오실는지 그것은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조실 스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캄캄한 밤을 비추는 휘황한 달빛이 조실 스님의 법문일 수도 있고, 흐르는 , 노래하는 새의 소리가 조실 스님의 모습이요 법문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신심과 정성을 가진 사람이면, 언제 어디서라도 조실 스님의 모습을 친견할 있을 것이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을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단 조실 스님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모습과 법문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대가 말세가 되어서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고, 바른 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정법을 바래고 원한다면 선지식과 불보살을 육도법계(六途法界)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 화엄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들 가운데에 역력(歷歷)하게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이러한 분이 선지식(善知識) 것이다. 이러한 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 것이다자기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리면서 그러한 불보살과 선지식이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불보살은내가 불보살 화현이다” “내가 선지식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시지를 않습니다.

 

고정된 모습 없이 나타나시고, 우리 중생의 눈으로, 이분이 바로 불보살이다, 이분이 바로 선지식이다알아차리도록 그렇게 오시지를 않기 때문에 그러한 뚝눈으로는 불보살은 바로 자기 곁에 계시고, 자기 집안에 계시고, 일생을 같이 살면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과 역대 선지식들은 () 없이 오시고, 상이 없이 가시며, 상이 없이 사시기 때문에 상을 통해서는 친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 화현은 여러분 가정에서 남편이 화현으로 와서 자기와 같이 살고 계실는지도 모르고, 불보살 화현이 오셔서 시부모님으로 계실는지도 수가 없고 또는 아들이나 딸이나 며느리가 불보살 화현으로 자기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살고 있는 줄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발심(發心) 눈과 마음으로는 도처(到處)에서 항시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에게는 일생동안 산으로, 들로, 절로, 속세로 찾고 헤매어도 불보살은 마침내 친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 법문하시기를언하(言下) 대오(大悟), 아래 크게 깨달으라하셨습니다.

말은,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소리, 우는 소리,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 신심(信心)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의 7주기를 맞이해서 이러한 최상승법(最上乘法) 우리의 마음을 다지고, 조실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실천함으로써 추모재를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상으로서 인사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413)()

 

 

 

 

 

 

---------------------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 보아() 진리()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육조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낙엽귀근(落葉歸根)이요 내시무구(來時無口)니라 ; [육조단경(六祖壇經)] 부축품(付囑品) 참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역력(歷歷) ;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도처(到處 이를 , ) ; 여러 .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5. 12. 27. 17:06

•§•(277) 인정(人情) 따르지 말라 / 전강 조실스님 출가 인연 / 빈한(貧寒) 발도심(發道心)이다 / 자성미타(自性彌陀) / 달마사행론中 제법부동적정문.

 

도인 말씀에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이니라. 호걸스럽고 부자된 나면은 도를 배우지 못하니라, 받니라고. 빈한(貧寒) 발도심(發道心)이다. 가난하고 차운 데서 도심(道心) 발한다 그렇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공부하는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다. 언제 하늘을 겨를이 없다 이거여. 하늘 쳐다볼 겨를이 없어. 불견지(不見地). 땅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다. 이뭣고?’ 하나 들여다보고, 머리를 들어도이뭣고?’ 머리를 숙여도이뭣고?’. 가도이뭣고?’ 와도이뭣고?’. 그저이뭣고?’ . ‘이뭣고?’ 그저 그저 나는 대로 .

 

**전강선사(No.277)—달마사행론 제법부동적정문, 조실스님 출가인연(임자 72.11.04.새벽) (전277)

 

(1) 약 18분.

 

(2) 약 18분.

 

 

(1)------------------

 

공부하는 사람은무슨 공부여? 참선 공부하는 사람은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해라. 중정경정(中正勁挺) 그놈을 요긴하게 지녀라. 말하자면, 아주 요긴하게 가져라.

중정(中正)이란 거는가운데 ()’  ‘굳셀 ()’자인디, 가운데 중정(中正), 중정 마음이 ()해야 되거든.

 

중정이 약하면 못혀. 퇴타(退墮) 번지고(버리고), 할라다가도 그만 금방 없어져 번지고, 마음 났다가도 그만 하기 싫고, 암만 할라고 해도 못혀. 중정(中正) ! 실해 가지고는 그걸...

사람 중심이 ()하다. 사람 중심이 시원찮은 사람이다중정이 약하면 .

 

중정(中正) 아주 굳어야 된다. 철석같이 굳어. 생사를 ()할라고 하는 도학자가 중정이 약해서는 못혀. 중정 하나를 가져라.

 

불근인정(不近人情)이니라. 인정을 가까이 것이니라. , 인정 가까이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이여.

부모 형제가 그렇게 인연이 가깝지마는부모 형제가 어쨌든지 자식을 낳아서 길러서 장가들여서 좋은 손자 보고 어쨌든지 잘사는 , 그것 볼라고 자식을 낳을라고 애쓰는 것이여.

자식 낳아서 길러서 며느리 얻어서 살림 ... 부자로 모두 인계해 주면은 그게 부모 노릇 잘한 것이고 인계를 받아서 부모 향화(香火) 받드는 것이 자식이란 말이여. 그걸 제일 치는디.

 

우리 도문(道門) 중에서는 그것 같이 원수가 없다. 대원수다. 고것 땀세(때문에) 도를 닦는구나.

서로 어머니, 아이고! 우리 어머니, 우리 , 우리 자식, 우리 마누래, 손자, , , 망할 놈의 때문에 거기에 잡혀 가지고는 그놈의 종노릇 허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생사(生死) () 받는구나.

 

그러기 때문에 고향 여의고, 부모 여의고, 친척 여의고, 그러고 나오는 것이여. 그래서 출가(出家) 그려. 집에 버린다 그말이여. 이렇게 나와야 되아.

 

 

그걸 나올 인연이 없으면 나도 일곱 먹어서 어머니 돌아가신 , 계모가 들어와서 밑에 살면서 고생을 무척 했는데, 그런 고생이 아니었었으면 숭악한 놈의 산중에서 퇴깽이(토끼)하고나 사는 놈의 데서 내가 살았는데, 어떻게 나오냐 그말이여.

퇴깽이란 놈이 바위 구녁에서 나오면 그만 어떤 놈한테 잡혀 멕힐까 싶어서 두려운 마음밖에 없는 것인데, 산골짝에서 살다가 나온 것이 기적이여.

 

(어머니는) 일곱 먹어 돌아가시고, 우리 아버지가 열여섯 먹어 돌아가시고,

! 혼자 동생 하나 데리고 오촌(五寸)한테 붙어 있는데, 우리 오촌댁이가 다섯 번째 그리 시집 왔데야.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딸은 이름이 푸잽이고 남자 아이는 이름이 뭉치여. 푸잽이, 뭉치 그려.

헌데, 푸잽이, 뭉치 놈을 항상 그저아이고, 자식아, 자식아!’ 이러고 주고, 우리는 나하고 동생하고는 붙여서 있은게, 오촌댁한테 붙여 있은게 잘해도 주어.

 

주니깐 ! 이놈의 평생 도둑질 밖에 못허네. 그놈의 도둑질을 하는데 도둑질이야 하겠는가마는, 집안에 같은 이런 있으면촌간(村間)이라, 그놈 몰래 내다 구워 먹지. 그런 놈의 짓거리나 하고 나고,

 

우리 둘은 동생하고 나하고는 동생은 다섯 먹고, 나는 여나무 넘었는데, , 이놈의 방이 헛방인데 말이여. 그놈의 헛방에 쥐가 사는 데여.

쥐가 그냥 사는 데인데, 거가 자네. 참말로 그것을, 얘기라고 하고 앉았구만은 그렇다 그말이여.

 

출가한 인연을 얘기하는 것이여. 어느 때도 얘기 했지마는 이렇게 자세하게는 했지.

 

이놈의 데가 쥐란 놈이 벼룩을 얼매나 싸놔... 벼룩하고 쥐하고 살아!

거기 조금 잘라고 하면 올라와서 온몸이 나도 근지러워 죽겠는데, 다섯 먹은 동생 그것이원명이, 동생이 그거여.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죽겠다. “! 나도 그렇다. 나도 그래

서로 이놈 피워봤자 소용없고, 봤자 소용없고, 앉었자 소용없고, 그놈의 데서 (밤을) 새우네 그려.

이거 , 요만큼이라도 내가 보태서도 허고, 거다가 내가 소설적으로도 하고, 틀림없어!

 

그런 놈의 데서 가지고서는, 오촌댁 밑에서 가지고는 가서 종일 가서 일을 뭐라도 하고, 해야지 허면 죽네. 그러 하면 밥도 얻어먹고 쫓겨나네.

그런 놈의 쫓겨난 놈의 데서, ‘인자 오늘은 죽었다 못해 가지고 가면. 솔찬이 가지고 가야지.

 

그러고 들어가서, 오촌댁이란 이는 키가 6척이나 된다고 하는데 7척이나 되아.

길이가 그리 인디, 아침에 입이 벌어지면은 때까지 입이 오므라져. 그런 말을 해싸. 우리 () 쌌고, 못쓰겠다고 쌌고.

 

그런 놈의 데서 번은 하도 못살게 굴고,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나갈라고 생각을 내놓고서는, 어디로 어떻게 갈라고 작정허고서는 저리가면 인자 따라가면 벼칠채정으로 올라가거라. 벼칠채정으로 올라가면 내가 뒤따라갈게 걱정 말고 가거라. 내가 가마

 

그러고는에끼, 빌어먹을 !” 욕을 했네 인자 그때는에끼, 빌어먹을 , 망할 년아! 이년아, 오장이 썩을 년아! 이년아. 빌어먹을 년아! 이년아하고 욕을 그냥 어떻게 퍼댔네.

더럽게 썩은 놈의 인간이 들어와서 다섯 번이나 여섯 번이나 시집온 것이 들어와서 지랄 문둥이 같은 것이 들어와서...” 어떻게 퍼대놨던지. , 그냥 듣기 고약한가 보등만.

 

훌훌 뛰더니, 우리 오촌이라고 이가 쫓아와. 잡을라고 쫓아와.

그까짓 년을 계집년이라고 데리고 살고 쫓아오냐? 쫓아올려면 쫓아오라고, 쫓아와 쫓아와서 죽일테냐?” 그러고는 욕을 냅대빌어먹을 , 망할 , 저년 뵈기 싫은 , 저년갈란게 부치고 , 그러고 떠났네.

 

그러고 떠나 가지고는 종일 점심도 있나 있나? 점심도 먹어 가지고 하루재를 넘어가서 산에 들어가서 보리수냉기(나무) 붙은 빨강 있나? 고런 것을 따서 둘이 연명을 했네. 사람이 있어야 여그 듣고는 재미가 나는디 없으면... 알아. 환히 알아.

 

그걸 먹고서는 그길로는 이모 집이라고인자 우리 서모 이모 집이여, 우리 친이모 집은 아니고. 가는 즈그 진짜 (이모).

거기를 둘이 찾아가니 아따, 계모 이모란 이가저런 것들이 어디를 찾아오냐 욕을 퍼붓는데 욕도 솔찬혀. 욕이 아니여. 욕이 욕이여.

 

아따, 그놈. 에이, 빌어먹을 . 이놈의 데도 있지 못하겠다. 조금도 못쓰겄다.

, 굴비를 널어 놨길래 굴비를 거그서 하나 돌랐네. 굴비 구운 있나? 그놈을 몰리 장꼬방(장독대) 둘러 가지고가지고 가자

가지고 가서 그놈의 어디 남서재 넘어가는 재말랑에 가서 모다 이렇게 나무를 줏어다가 놓고는 그놈을 구었네. “구어서 먹자

둘이 그놈을 찢어 먹어 놓으니 짜와서, 짜온 놈을 먹어 논게 배가 우르르르 끓고, 아따 그놈 빈속에 먹어 놓으니 죽겄데.

 

그렇게 떠나와 가지고서는 어쩠지? 그저 동생은 우리 계모 어디로 가버린 거따 갖다가 주어 번지고서는 그래 내가 나섰다 그말이여.

 

나서 가지고는 몸뚱이에는 올랐어, 내가 . 옴이 어시 달걀 같은 놈이 전신에 불거졌네. 그래 가지고 피가 질질나, 전신에.

이런 놈을 끌고 어디 얻어먹고 나갈라니 나갈 데도 없고, 동네 들어가서 어디 잘라니 동네방에 재이나? 시월 초하룻날 나갔는데.

 

그래 가지고 불무를, 그릇 맨든 불무를 불었어. 불무를 불면서 이놈 만들라고 하는 침서(치면서) 붐서(불면서), 엎져서 침서 붐서 몸뚱이는 달걀 같은 놈은 나와 죽겠지. 고생을 했네.

 

그러헌 촌간에 나서 그러헌 고생 인연이 없었으면 내가 출가를 못했을 것이다 그말이여. 조금만만한 틈만 있어서 내가 살길이 있었으면은 내가 출가를 못했을 것이여.

 

그러헌 인연으로써 출가를 내가 했단 말이여. ! 유기(鍮器) 장사 하다가 돌아댕기다가 스님을 하나 만났네. 스님을 만난 것이 괴상스러운 분을 만났지.

땡땡이는 그런 땡땡이가 없네. 아주 장편월이라고 유명한 땡땡이 얘기 다할 없지 그건.

 

에라, 여기 있다가는 요런 놈의 중노릇 했다가는 ! 지랄도 아니다.

쌀을 몰리(몰래) 퍼내서 50전을 맨들었네. 50전을 맨들었어, 내가. 몰리 통에서.

50전을 맨들어 가지고 50전을 그놈 가지고 나서서까먹고 나설라면은 먹고 것이고, 쌀을 그놈을 팔았네.

팔아 가지고는 단지를 가지고는 짊어지고는 단지 밥을 먹으면서 합천 해인사를 들어왔어.

 

어릴 내가 합천 해인사를 그때 열여섯 먹어서 그래 들어왔구만. 그러헌 인연이 아니었었으면은, 천하고 고약스러운 인연이 아니었었으면은 불문(佛門) 들어올 도리가 없어.

 

, 그걸 가만히 생각하면은 우리 부처님도 이랬지마는, 도인 말씀에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이니라. 호걸스럽고 부자된 가서 나면은 도를 배우지 못하니라, 받니라고. 빈한(貧寒) 발도심(發道心)이다. 가난하고 차운 데서 도심(道心) 발한다 그렇다 그말이여.

 

그렇게 들어와 가지고서는 중이 되아 놓으니! 인자 , 스님을 ()하니 스님께서 나를 글을 가르킬라고 인자 책을 주지, 스님도 그러고 그저 절에 들어와 부처님 덕으로 좋은 쌀밥 얻어먹지, 가만히 앉아 공부하라고 주지,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나?

 

그런 기맥힌 땅을 만나 놓으니까, 인자 그때 고생 고런 것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잊어번지고는 받는 그런 밖에 모른다 그말이여. 편안한 밖에는 모르고. 인자 그저 조금만 일이 있으면 그건 싫고.

 

일이라고 합천 해인사 백련암은 유명(有名)짜한 데지. 일이야 바로 말이지 이상 수는 없지. 제사가 년에 천여 되는데, 제사마다 나물 볶아서 올리는 제사가 있는데 그놈 우리가 씻거 볶았지.

 

하지마는 그런 그때 고생에다 대면은 그건 고생도 아무 것도 아니고 이렇지마는, 조금 인자 중이 되어 놓으면은 그만 놀라고만 . 조금만한 것도 하기 싫거든. 그래 가지고는 틀려.

그래 가지고 허기 싫어. 여내 인자 어디 가면 중대한 소임 같은 하기 싫고. 그래 가지고는 천하에 못쓸 것이 되는 것이여.

 

놀고나 싶고, 그저 괴각(乖角)질이나 하고 일도 하고, 그만 조끔만 허면 허기 싫고, 그저 가고 싶고, 그저 가면 거가 있으면 가고, 홍팔도 진주 마냥으로, 그것 큰일 나지.

신세 망하고 절에가 있으면 절에 아이들 망하고, 안되아! 그것 절대 안되는 게로구만.(1519~3234)

 

 

 

 

 

(2)------------------

 

중정(中正), 중으로 , 중정인디, 중정 그놈이 경정(勁挺) 해야 되아. 굳셀 (), 굳셀 (), 아주 마음이 굳어서 불근인정(不近人情)이니라. 요런 인정에 따르지 말어라. 인정 소용없다. 부모 인정 그거 하나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 출가인은 부모, 부모부텀 떠나야 하는 것이여. 집안 가정부텀 떠나야 하는 것이여.

 

구순정응대즉(苟循情應對則) 부모 은혜 주고, 모도 부모 무슨 인연 이리저리 모도 부모 인연 떨어지기 싫어서 항상 그만 모도 그런 갔다왔다...

공부만 못할 것이 아니라 공부만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거 자꾸 자주 결심하다가 그냥 버리는 것이여. 그만 끄집어 버려.

여기 정로 보지, 가까운 데서 중노릇한다고 자꾸 즈그 집에서 끄집어 간게 그냥 버려. 성가시니께 버려.

 

유속아사(流俗阿師)니라. 그냥 그래서 중노릇을 못하게 되니, 참으로 중노릇 사람은 중정(中正) 요구해서 마음이 철석(鐵石)같애서 조금도 인연에, 그런 무슨 반연 경계(攀緣境界) 끌리들 말아라. 요런 부탁이 하나 나왔어.

 

 

공부인은, 공부하는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다. 언제 하늘을 겨를이 없다 이거여. 하늘 쳐다볼 겨를이 없어. 불견지(不見地). 땅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다.

이뭣고?’ 하나 들여다보고 머리를 들어도이뭣고?’ 머리를 숙여도이뭣고?’. 가도이뭣고?’ 와도이뭣고?’. 그저이뭣고?’ . ‘이뭣고?’ 그저 그저 나는 대로 .

 

세상에이뭣고?’ 내가 나를 찾는이뭣고?’ 찾는 놈을 찾는이뭣고?’인디, 그건멀다하고 그건 배를 만들어서 타고 가는 것이고, ‘아미타불 넘이 맨들어 타고 간다는구만.

그러니극락세계(極樂世界) 발원(發願)허고 아미타불을 해야지, 참선하면 못쓴다. 참선해서는 견성 못한다

 

! 그놈의 멍청이들 보소. 아미타불 경을 부득이 어쩔 없어 부처님께서 설해 놨는데 아미타불 가운데 일이 내지 7일을 일심불란(一心不亂)해야 아미타 극락세계를 가느니라.

일심불란지경(一心不亂地境) 어느 지경인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경계가 어느 지경이냔 말이여?

 

거다가 아미타불(阿彌陀佛) 재하방(在何方)? 어디 있는고? 마음을, 심두를 잡아서 연구를 보아라(着得心頭切莫忘).

생각이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러야사(念到念窮無念處) 육문(六門)에서 자금광(紫金光) 놓느니라(六門常放紫金光). ! 바로 이렇게 일러 줬단 말이여.

 

자성미타(自性彌陀)니라. 자성(自性) 미타(彌陀)니라. ! 이렇게 씌였다 말이여. ! 이렇게 놨는데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그러냐?

 

십만 오백십육 국토를 지내가서 세계가 있는데 극락세계를 간다. , 이렇게 믿고 있네. 되는 겐가?

지환즉리(知幻卽離). 환인 알면 여읜다.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니라. 방편을 짓지 말어라. 바로 놨지. ‘이뭣고?’허는 학자들은 그러헌 끌리지 말어.

 

요새 서울에다가 지끔 미타회상을 만들어 놓고 굉장하다구만.

아미타불 불러야 가지, 말세에는 참선해야 소용 하나 없다 율사가 와서 인자 그래 놓고는 부처님 네팔까장 보니까 거기는 괴기는 먹는대. 괴기는 먹어.

그래 괴기는 인자 먹은 그까짓 괴기는 먹을 없고 먹는다든가 어쩐다든가 헌디, ‘괴기는 먹어라, 먹지 말아라 없지마는.

 

참선법은 없어. 참선해서는 견성 못해. 견성. 아미타불 불러야 간다 이렇게 모도 야단을 치고 서울에 국내에 지금 들어와서 중국서 인가 받아 가지고 왔다고 들어온 법사 하나가 있다는구만. 중국 누구한테 받아 왔는고 모르지.

 

속지 말고 속지 마라. 속지만 허면 그만이여.

 

중정경정(中正勁挺)이래야 속지 않는 거여. 중정이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이래야 속지 않는 거여. ‘가운데 ()’, ‘굳셀 ()’, 밑에는 경정, ‘굳셀 ()’, ‘굳셀 ()’.

여지없이 금강 철석보담도 굳어야 되아. ! 그런 굳은 마음을 가지고는 화두 하나를 ! 믿어 가지고는 그저 나가.

 

그건 방편이 없어. 부작방편(不作方便)이여. 방편이 없어.

달마 스님은 방편을 말하지 않았어. 어디든지 그대로 말했어. 듣든지 말든지 달마 스님이. 이거 달마스님 말인데 이런 말이 있어.

 

그렇게 굳센 마음 한번 가지고는 듣는다고 이리 옳다고 자빠지고, 말이 옳다고 저리가 자빠지고, 말세라고 된게 참선이 되니께 아미타불 불러야 옳겄다고 자빠지고, 그래 것인가?—, 우리 용화사 학자들은 이걸 결택을 해야 한다 그말이여.

 

 

35 제법부동적정문(諸法不動寂靜門)인데, 35 가서 제법(諸法) 부동(不動) 적정문(寂靜門) 있는데, 적정문(寂靜門) 가운데에 ()이라.

() 물어 이르되, 누가 이르되, 이건 물어 이른 혜가 스님이 물었지. 그랬지 ?

 

물어 가로되, “어떤 것이 여래혜일(如來慧日)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니꼬어떤 것이 여래혜일(如來慧日)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입니까?”

여래혜일(如來慧日)여래혜일(如來慧日) 부처님 혜일(慧日), 우리도 견성하면 혜일(慧日), 우리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우리 본분납승(本分衲僧), 우리도 본래 본래각(本來覺) 있거든. ()해서 그렇지 본래 있거든.

 

본래 있는 생사 없는 지금 우리 혜일(慧日) 찾을라고 아니여? 참선해서 지금 찾을라는 아니여?

 

찾을라고 하는 혜일(慧日),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이렇게 ()했습니까?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입니까?

유지(有地) 가서 ()했읍니까? 유취(有趣) 가서 모두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생사취(生死趣) 가서 ()했습니까? 그말이여.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여.

   

제법부동적정문(諸法不動寂靜門)이라고 . 글로 보란 말이여. 내가 새겨 줄께 ?

어째서 우리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이렇게 유지(有地) 잠복(潛伏)되어 가지고 생사를 받습니까?” 그말이여.

답왈(答曰), 비유견유(非有見有) 때문에 혜일(慧日) 몰어유지(沒於有地)니라.

 

() 아닌데 어디 ()? () 아닌데, 혜일(慧日)에는 () 아니여.

무슨 있는 유상(有相) 무상(無相) 비무상(非無相) 비유상(非有相) 일체가 도무지 붙여 봤던들 아니여.

혜일(慧日)에는 그런 것이 없어. (),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본래 아무것도 붙어 있는 없어.

 

그런 것이 없는데 ! 유상(有相)으로 집착을 한다.

몸뚱이도 유상(有相) 집착하고, 코빼기도 유상(有相) 집착하고, , , , 몸뚱이, , 다리, 이놈의 , 아상(我相) 아소심(我所心) 아집(我執) 이놈을 집착해 가지고 있다.

한시도! 내가 이놈이 알고 한시도 집착이 떨어진 법이 없어. 유취(有趣) 집착되어 가지고 있어.

 

그놈의 때문에, 어디 인자 몸뚱이 불태워 버리면 본래나기 전이나 불태워 버린 뒤에 봐라, 있나?—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유취(有趣)에가 () 가지고 있냔 말이여?

 

요것 때문에 비유견유(非有見有), () 아닌데 () 보기 때문에그만 그거 혜일(慧日) 절대 무슨 유취(有趣) 비취(非趣) 비무취(非無趣) 일물(一物) 뭣이 거기서 때꼽재기가 없는데! 이래 가지고 받는구나. 고렇게 알아 주면 주면 알아듣겠지? ?

 

무상견상(無相見相) 또한 그러니라. 본래 일체 () (), 이러 저녀러 () 보냐? ()으로 보지마는 어디 ()이냐?

그까짓 무슨 () 그녀러 () 그놈이 본래 () 아니고, () 떼놓고 보면 무상(無相)이고, 무상(無相) 무상(無相) 아니고,

유상(有相) 무상(無相) 아니고, 유무무상(有無無相) 떼고 여읠 것도 없고, 본래 거가 무슨 뭣이 붙어 있고 떨어진 것이 없다.

 

() 없는데, 본래 모냥이 없는데 그만 () () 것도 그런 것이다. 모두 이렇게 이놈의 중생이 그만 모두 얽혀지는구나. () 떨어지고 집착에 떨어지고.

 

 

운하명부동상(云何名不動相)입니까? 어떤 것이 () 않은 ()입니까?”

답왈(答曰), 대답을 부득어유유유(不得於有有有), 부득어유유유(不得於有有有), () 자여. 시러금 () () 아니다. 본래 근본 당처(當處) 들어가서 () () 아니다. 이름은 ()라고 하지마는 그게 () 아니여.

 

어떤 () 하냐? 어떤 유상(有相)이라 하고?

어디 ()? ()라고 하지만 () 아니고, () () 아니다. 본래 () 아니여.

 

, 그러니 무유가동(無有可動)이며 가히 () 것이 있음이 없으며,

() 것이냐? () () 아닌데, 무슨 () 여기가 () 있냐?

생사 () 있으며, 생사 빠질 있으며, 무간지옥에 빠질 것이 어디 있으며, 무슨 () 있냐?

 

부득어무무무무(不得於無無無無), 이건 자네!

() 시러금 () (), () () 아니다. () () 아니다.

()라고 해놨지마는 이것 () 아니여. 무슨 () () 있냐? 무상(無相) 가서 ()하냐?

() () 아니여. 하니 () 가히 () 것이 있음이 없다.

 

() () 것이 있나? ()에가 ()?

()에도 () 본래 없고, ()에도 () 없고, () () 아니니 () () () 것이 있음이 없다. 부동상(不動相)이란 그런 거다.

 

즉심무심(卽心無心)이라, 그러니 마음이 마음이 없어.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게 마음이냐? 입으로 마음이라 했지? 무슨 마음이냐?

마음? 마음이 어떤 마음이여? 입으로 마음이라고 놨지, 무슨 마음이여?

 

심무유가동(心無有可動)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히 () 것이 있음이 없다.

 

즉상(卽相) 무상(無相)이여. () () 없어. () () 아니여.

() 아니여! () 도무지 () ()이라 해야 () 아니여.

 

그러니 상무유가동(相無有可動)이여. () 가히 () 것이 없어. () () 것이 있음이 없어. () 명부동상(名不動相)이니라. 부동상(不動相) 그런 것이니라.

 

약작여시증자(若作如是證者) 만약 요렇게 () 자는, 요렇게 아는 자는 시명자광혹(是名自誑惑)이다. 이게 제가 제대로 속는 것이다. 자광혹(誑惑) 거다.

 

상래(上來) 미해(未解), 상래(上來) 알들 못했으니, 해시(解時)에는 무법가해(無法可解)니라. 때에는 법을 가히 앎이 없느니라.

 

부동상(不動相) 내가 새겨 놨어. 글을 . 가만히 . 그대로!

달마 스님은 당시에 관법이고 화두법이 없어서 놨어. 하지만 이렇게 밝게 놓을 도리가 없다 그말이여. 오늘 아침에 부동상(不動相) 새겨서 대중에 들렸어.(3235~502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번지다 ; ‘버리다(앞말이 나타내는 행동이 이미 끝났음을 나타내는 )’ 사투리.

*()하다 ; ①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게 되다. (화나 곤란한 상황을)맞지 않게 되거나 피하다. (어떤 상태나 처지를)벗어난 상태로 되다.

*아무짝 ; [주로 '아무짝에도' 꼴로 쓰여 부정 표현과 함께]임의의 용도. ‘아무 비하하여 쓰는 .

*향화(香火) ; ①향불. 향을 태우는 . ②향을 피운다는 뜻으로, ‘제사(祭祀)’ 이르는 .

*땀세 ; 땜에(‘때문에 준말).

*출가(出家) : []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삼독(三毒) 불이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32~133.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숭악하다 ; ‘흉악하다(凶惡--)’ 사투리.

*퇴깽이 ; ‘토끼 사투리.

*구녁 ; ‘구멍 사투리.

*오촌(五寸) ; 부모의 사촌 형제. 또는 사촌 형제의 자식.

*촌간(村間) ; ①시골 마을의 사회. ②마을과 마을 사이.

*여나무 ; ‘여남은(''보다 조금 되는 )’ 사투리.

*헛방 ;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허드레 세간(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넣어 두는 .

*새우다 ;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지내다.

*솔찬하다 ; 솔찮다. ‘①꽤 많다. ②수월하지 않다 사투리.

*돌르다 ; ‘훔치다 사투리.

*몰리 ; ‘몰래(남이 모르게 살짝)’ 사투리.

*장꼬방 ; ‘장독대 사투리.

*재말랑 ; ‘잿마루(재의 꼭대기)’ 사투리.

* ; 옴진드기가 기생하여 일으키는 전염 피부병.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사이, 겨드랑이 따위의 연한 살에서부터 짓무르기 시작하여 온몸으로 퍼진다. 몹시 가렵고 헐기도 한다.

*불무 ; ‘풀무(불을 피울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사투리.

*살길 ; 살아갈 방도(方道 어떠한 일이나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방식이나 수단) 방책(方策).

*유기(鍮器) ; 놋쇠로 만든 그릇.

*땡땡이 ; 땡땡이중(꽹과리를 치면서 동냥이나 다니는 스님을 낮춰 부르는 ).

*단지 ;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

*유명(有名)짜하다 ; 널리 알려져 있다.

*괴각(乖角) ; 어긋나고 틀어지다. 언행(言行) 대중의 질서를 따르지 못하고, 유달리 어긋나는 짓을 말하며, 또는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

 

 

 

 

 

------------------(2)

 

*철석(鐵石)같다 ; (마음이나 의지, 약속 따위가)아주 굳고 단단하다.

*반연(攀緣 매달릴·의지할 /인연 ) ; ①대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 대상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혼란. ②인식함. ③인식 대상. ④얽매임. 집착함. ⑤인연에 끌림.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 원을 세움.

*일심불란(一心不亂) ; 가지 일에 집중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오직 가지 일에만 마음을 .

*(게송) 아미타불재하방~’ ; [한가로운 도인의 -나옹화상법어집] (김달진역주, 세계사刊).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보임(示諸念佛人/8) 게송 참고. p166.

*육문(六門) ; 육근(六根,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 말한다. 육식(六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인식하는 경우, 입구가 되므로 () 또는 뿌리() 하는 것이다.

*자금광(紫金光) ; 자마금(紫磨金 : 황금 중의 최고인 자색을 ) () 띄고 있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

*자성미타유심정토(自性彌陀唯心淨土) ; 자기 마음 가운데 본래 갖추어 있는 성품[自性] 부처[彌陀] 다르지 않아서, 어리석으면 범부가 되고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으로, 아미타불이나 극락정토도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마음 가운데 있다는 말이다.

만법 유심의 이치에 의하여 자기 마음을 닦아 불성을 깨달으려 하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본분납승(本分衲僧) ; 본색납자(本色衲子), 본분산승(本分山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또는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스님.

*본래각(本來覺) ; 본각(本覺).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 말함。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 ; () 산스크리트어 bhava(바바) 한역으로 마음을 갖는 생물로서의 생존을 말함.

생존의 장소. 미혹의 (). 선악의 원인에 의해 미혹의 세계에서 고락의 과보를 느끼고, 생사윤회가 계속되어 인과가 다하지 않는 . 미혹하는 것의 존재의 세계. 이것에는 종류(三有) 있다.

욕유(欲有 : 욕계의 생존), 색유(色有 : 색계의 생존), 무색유(無色有 : 무색계의 생존) 말한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소심(我所心) ; 내게 소속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아집(我執) ; ( : 아트만)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얽매임. 아견(我見) 같다. ②자기의 견해에 얽매어 떠나지 않는 .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얽매임. 자기의 의견에 집착하는 .

*한시(한時) ; ①같은 시각. ②잠깐 동안.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시러금 ; 마땅히(①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로 보아 당연하게. ②조건이나 정도에 어울리도록 알맞게). 능히(能히, 막히거나 서투른 데가 없이).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그곳. 또는 이곳.

 

 

Posted by 닥공닥정

 

 

•§•(277) (게송)취적기우자~ / 갈수록에 없는 것이 그게 진미(眞味).

 

이뭣고?’ 그저 그전에는 들리다가 인자 하도 오래오래하니까 일구월심(日久月深)하니까 화두가 인자이뭣고?’ 자꾸 들리기는 허지. 들리기는 허지마는 들어갈수록에 모른다. ! 일체 번뇌 망념이 거기 와서는 붙도 못하지. 아는 것도 붙지. 일체 번뇌 망념이 어디 가서 붙어?

아니 모를 수밖에 없는데, ‘ 들어갈수록에 모른다한다 그말이여. 말은 옳지. 들어갈수록 모르지.

 

없으면 없는 가지고—‘이뭣고?’하면이뭣고?’ 없으니까 그놈 가지고, 그저 찾고 찾고, ‘찾으면 죽는다하지마는 그와 그와 달러. 벌써 무엇을 물으면은 할라고 찾는 것과 없어서나의 진면목이, 내가 나를 참으로 몰랐으니 진면목 찾는 거와 달러. 없이이뭣고?’ 찾는다.

 

**전강선사(No.277)—달마사행론 제법부동적정문, 조실스님 출가인연(임자 72.11.04.새벽) (전277)

 

약 15분.

 

올라왔소. 용맹정진한 것을 보니 ! 내가 발심이 되었어. 발심이 수가 없어. 발심이 되어서 그래 법문할 마음이 나서 올라왔소마는 그저 그렇소. , 당초에 .. 

 

취적기우자(吹笛騎牛者)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

나무~아미타불~

 

소를 타고 젓대를 불면서 동서(東西) 자재(自在)하는구나.

! 그놈 보배 소를 찾아 가지고는 , 굴레 끼워서 고삐 달아서 길들여서 탔으니, 이놈이 가자 오자 해도 임자재(任自在). 마음대로 동서에 이렇게 임자재 하는구나.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에서, 청원(靑原) 푸른 언덕 연기 안개 속에서,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 얼마나 옷을 찢기며, 가시에 몸을 찔리며, 틈새기를 헤매 댕기며 무진 고생을 얼마나 했느냐?

 

비유인데, 우리 선객(禪客)들이 지금 화두 하는 법이 그려.

처음에 들어와서 화두를 하니, 그놈의 화두가 이뭣고?’하니 대체 뭐냔 말이여? ‘이뭣고?’

, ‘이뭣고?’ 분명히이뭣고?’라고 하지마는 뭐여? 깜깜하니 도무지 , 깜깜해도 분수가 있지.

 

이뭣고?’ 뭐여? 당최.

, 봐도 그렇고, 봐도 그렇고, ‘ 들어갈수록 모른다하지.

들어갈수록 모르지, 그러면 무엇을 것인가?

 

들어갈수록 아는 것이 나오면은 외도(外道)? 외도 참선이고, 무슨 점쟁이 참선이고, 무슨 사주쟁이처럼 아는 참선이고, 타심통 외도 참선이고, 그런 것이게? ! 분명히 그런 법문이 있지 않어?

 

그런데 아는 것을 바래 가지고 소리인가? 알어?

들어가 봐도 들어갈수록에 점점점점 이뭣고?’. ‘이뭣고?’ 점점 자주 찾아지고, 그저 하는 것이이뭣고?’뿐이기 때문에 홑으로 홑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첩첩(疊疊)으로 이놈이 되지.

 

이뭣고?’ 그저 그전에는 들리다가 인자 하도 오래오래하니까 일구월심(日久月深)하니까 화두가 인자이뭣고?’ 자꾸 들리기는 허지. 들리기는 허지마는 들어갈수록에 모른다.

 

! 일체 번뇌 망념이 거기 와서는 붙도 못하지. 아는 것도 붙지. 일체 번뇌 망념이 어디 가서 붙어?

아니 모를 수밖에 없는데, ‘ 들어갈수록에 모른다한다 그말이여.

말은 옳지. 들어갈수록 모르지. 들어갈수록 수가 없으니깐 재미가 없어 무덤덤혀. ‘재미없어 아이고! 못하겠다, ‘ 되아 못하겠다.

에이! 참선 해봤던들 되도 하고 하니까, ‘퇴타(退墮) 수밖에 없다, 퇴타를 한다 그말이여.

 

불쌍한 인간이지.

세상에도, 갈수록에 없는 것이 그게 진미(眞味), ! 도무지 일점 티끌만큼도 거기에 무엇이 붙지 못한 것이 보배인지를 모르고, 이런 놈의 소리를 하고 앉았구나.

 

무엇이 붙어? 들어갈수록에 지해(知解) 상량(商量) 도무지 붙지 못혀.

그러기 때문에 고인들이 법을 물을 , “, 주장자를 여의고 일러라그런다 그말이여. 이거 아니여. 선지식 스님네가 법상에 올라가면 하는 말이지.

 

주장자(拄杖子) 명상(名相) 여의고 일러라, 이름과 () 여의고 일르는 것이 그것이 참선법인데, 이름 버리고, 이놈 모냥 여의어 버리고, 어떻게 이를까?

 

그것 () 붙이지 말고, 이름 명상(名相) 붙이지 말고 일러 보아라

뭐라고 이를까? 입만 벌리면 이름이고, ()이고 나오는데?

 

아무것도, 이름도 성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그래도, 죽은 ()이라 못써. “이름도 없는 것이다그래도 못쓴다 그말이여.

이름이니 ()이니 모냥이니 일체를 여의고 한번 일러 봐라그래 묻거든?

 

이치는 걸림이 없는 것이다 말이여. 이치가 걸린 법이 없어. () 걸린 법이 어디 있나?

무슨 모냥이 있어야 걸리고, 무슨 얼거리가 뭐가 있나? 무엇이 있어서 걸려?

! 그런 , 대답하기라는 것이 천하 쉬운 것이다 그말이여.

 

! 주장자가 본래 모냥이 없거니 무엇을 이르란 말이요?” 물어 봐도 것이고, 그렇지 않아?

주장자를 여의고 무슨 도리를 이르란 말이요?” 그래도 것이고. 별소리 있지 않어? 이치 막힐 것이 무엇이 있는가?

 

물으면 걸리지. 찾느라고 죽어.

뭐라고 일러야 할까?’ 무슨 뭐라고 이를라고 찾느냐 말이여, ?

 

없으면 없는 가지고—‘이뭣고?’하면이뭣고?’ 없으니까 그놈 가지고, 그저 찾고 찾고. ‘찾으면 죽는다하지마는 그와 그와 달러.

 

벌써 무엇을 물으면은 할라고 찾는 것과 없어서나의 진면목이, 내가 나를 참으로 몰랐으니 진면목 찾는 거와 달러. 없이이뭣고?’ 찾는다.

 

세상에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목적이 무엇인가? 살아서 무엇 것인가? 그거. 하루 살면 하며, 살면 무엇 것인가?

! 살아보지, 무엇 것이냐?’ 싱겁기는 짝도 없지. 그날 살아봐도 그날 그것, 내나 맛이여. 살아 뭣해?

 

오직이뭣고?’ 하나를 하기 위해서 살아야겠다 그말이여. 결코 살아야 하겠다 말이여. ‘이뭣고?’

오직이뭣고?’ 학자가이뭣고?’ 찾아서 망상 속에서이뭣고?’ 어떻게 놨던지 숭칙한 망상(妄想) 제대로 뿌리가 뽑혀 버리고 아무것도 없구나. 아무것도 없어. ‘이뭣고?’ 하나뿐이지!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만큼 되다 보니 얼마나 청산 연우리(煙雨裏)에서 청산, 비오고 가시밭 어그러진 놈의 산속에서 그놈의 보배를, 소를 찾느라고 고행(苦行) 어쨌는가?

우리 학자들 지금 닦는 고행이 여차(如此)하다 그말이여.

 

이놈을 그래, 그러나 저러나 이놈을 하세월(何歲月)이지. 어디 무슨 하세월이지, 아무 때라도 바로 찾아 깨달을 때까장은 내가 언제 마음 놓을 있나? 일순간(一瞬間)인들 마음을 ?

 

그래 가지고서는 기운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쓰고 댕기는 삿갓도 찢기고, 옷도 찢기고, 그저 몸뚱이도 긁히고, 그저 가지고는 기필(期必) 찾아서, 이놈을 길을 들여 찾아놨구나. 보배지보배여.

 

무슨 놈의 생사(生死) 있나? 중생이라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중생이여.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이여. 죄만 받는 중생이여.

죄도 무슨 죄냐? 생사죄(生死罪) 받는데, 나만 나와 가지고 죄지어 가지고 죽어 가지고 죄받고 밤낮 생사죄 짓는 , 죄지어 죄받는 중생이여. 이건 중생이란 역사도 없이 그대로 있는 놈이 중생이네.

 

, 이놈을 ! 깨달라 장부(丈夫) 되는 아닌가? 보우(寶牛) 깨달라서 탔으니 임자재(任自在). 자재하는 행이다.

 

항상 듣는 법문이지마는 법문이 어디 내놓고 있나? 듣는 법문이 어디 있어?

듣는 법문, 금강경, 밤낮 금강경, 밤낮 화엄경, 그저 법화경, 그저 원각경, 그저 무슨 , 경이지, 누가 들은 어디 있나?

 

올라왔으니깐 조금 여기 인자 , 하나 일러 있고. 그러고는 다시 시작할 테여.(처음~1519)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취적기우자~’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제목암(題牧庵)’ 참고.

*젓대 ;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 일상적으로 이를는 . ().

* ; 뜻밖의 일을 당하여 놀라거나 기분이 언짢을 내는 . () ①원, 세상에 ②원, 싱겁긴 ③이거 , 남이 알면 안되는데.

*선객(禪客 참선 /손님·사람 )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없이 아주). .

*첩첩(疊疊) ; ①겹겹(여러 ). ②여러 겹으로 겹쳐 있는 모양.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진미(眞味) ; 어떤 대상에서 느껴지는 참된 가치나 재미.

*지해(知解) ; 상량(商量). 알음알이.

*주장자(拄杖子 버틸 /지팡이 /접미사 )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 때나 설법(說法) 때에 지니는 지팡이.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름만 들으면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질량(質量)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 진행하고() 쇠퇴하고() 파멸하는()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소리(音響(냄새(() 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름이나 형상은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이름이며,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 ; ①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듣는 이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하는 .(), 조용히 합시다. ②남에게 어떤 행동을 권하거나 재촉할 하는 . (), 어서 뛰자. ③안타깝거나 의아한 일을 당했을 내는 . (), 이제 어쩌지?

*숭칙하다 ; ‘흉칙하다(흉하다. 보기에 민망하다)’ 사투리. *흉칙(凶칙) : 흉측(凶測, 兇測)—흉악망측(凶惡罔測 몹시 흉악함).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여차(如此)하다 ; (일의 상태나 속성이)이와 같다.

*하세월(何歲月) ; 매우 오랜 세월.

*일순간(一瞬間 /눈깜박일 /사이 ) ; 지극히 짧은 순간.

*기필(期必 만날·약속할·결심함 /반드시·기필할 ) ; 어떤 일을 이룰 것을 때를 정하여 약속함.

*장부(丈夫)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불성(佛性) 이치를 깨달은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4/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14)—몽산24-4. 휴휴암주좌선문(4)() (갑인 74.06.08)

 

약 10분.

 

의상(倚床) 오수족(午睡足)이요  창외하일지(窓外夏日遲)니라

나무~아미타불~

소조(小鳥)는 첨단제(簷端啼)  풍송노수지(風送老樹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의상(倚床) 오수족(午睡足)이다. () 의지해서 오수(午睡) ()했다. 낮잠이 족했어.

창외(窓外)에는 하일지(夏日遲). 창밖에는 여름날이 더디구나.


소조(小鳥) 첨단제(簷端啼)헌데, 적은 새는 처마 끝에서 울고.

풍과노수지(風過老樹枝)로구나. 바람은 늙은 가지에 지내는구나.

 


여까장 ()이다. ()이라는  이렇다.

합이언지(合而言之)컨대는 ()해서 말을 헐진대는 치연작용(熾然作用)하되,

치연작용(熾然作用)이라는 것은 세상에 그저 뭣을 하든지, 아무리 역경 속에서 별짓을  하드래도  치연(熾然) 가운데에서 불타는  속이라도 정체(正體) 여여(如如)하다.  정체는 여여하다.


어디 정체(正體)가 없어질 리가 있나?  근본 당처(當處), 생사 없는  당처,  몸뚱이 끌고댕기는 주인공은 여여허다.

 

종횡득묘(縱橫得妙). 종횡(縱橫)아무리 무슨 역경 속에서 풍랑 풍파 속에서 무슨 짓을 허든지 말든지 () 얻었어. 생사 없는  해탈대각(解脫大覺) 묘를 얻었다 그말이여.

사사무애(事事無碍)를—그래서 일일이 걸림이 없는 것을, 무슨 일을 당하든지 거가 무애(無碍) . 어디가 걸림이 있나?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 청산(靑山) 어찌 녹수(綠水) 걸릴까 보냔 말이여.


감기가 들어서 당최  목이  잼겨서 말이 나와야지? 거다 이빨까장  놨으니 말이 당최 안 나와서 못허겄네. 


일일이 걸림이 없는 것을 이르되 좌선(坐禪)이라고 한다. 좌선, 참선허는 좌선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정체가정당한  , 본래면목,  대각처(大覺處)가, 깨달은 각처가여여해서 종횡(縱橫)에도 () 얻고일체 일일이 걸림이 없고, 그걸 갖다가서 좌선이라고 한다.


약언(略言)컨댄, 간략히 말을 헐진댄 여시(如是)어니와, 이와 같거니와,

상거(詳擧)하면, 자세히   같으면 비지묵(非紙墨)으로 능궁(能窮)이다. 종이와 먹으로써 능히 다할  없다. 그저 간략히말허자면 이렇다.

 


 다음에 나가대정(那伽大定)이라는 것은 ‘어찌 ()’  ()’  ()’ ‘정할 ()’.

나가대정(那伽大定),   알기 어려와. 무정무동(無靜無動)이며, 나가대정을 해석한 거여.


나가대정이라는 것은 () 없으며 () 없다. 고요한 것도 없으며 () 것도 없다.

진여묘체(眞如妙體) 진여의 묘체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

 

시지불견(視之不見)이며 봐도  수가 없으며, 청지불문(聽之不聞)이요 들어도 들을 수가 없으며,

공이불공(空而不空)이요 비었어도  것이 없으며, 유이비유(有而非有)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며,

대포무외(大包無外)하야, 크게  허공을 뒤집어  만한  대포(大包)라도 밖이 없다.

세입무내(細入無內). 아무리 가는 티끌, 터럭끝 만헌데 들어가더래도 안이 없다.


신통지혜(神通智慧), 신통과 지혜와 광명수량(光明壽量) 대기대용(大機大用) 그놈이 무진무궁(無盡無窮)하다.

인자  지경 가서는 (어디 ) 신통이 없으며, 어디 죽음이 거가  있으며, (어디 ) 광명 지혜가 없으며, 대기(大機) 대용(大用) 그놈이 무진무궁하다.


유지지사(有志之士)뜻이 있는 참선객들아! 의선참구(宜善參究)해라,  마땅히  참구(參究) 해라. 네가 너를 깨닫는법이 이렇다. 이놈을  하면  된다.

 

급착정채(急着精彩)하야급히 정신을 부딪쳐서,

니가  곳도 아지 못하고 죽어  길도 아지 못하면서, 세상에 나와서 하는 짓이라고는  밖에는 지을  모르고,  지은  몸뚱이 가지고는 그만 한번 거꾸러지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이나 삼악도(三惡途)에  거꾸러지고 마니 이걸 생각해 봐라. 어떻게 그렇게 급하게   수가 있겠느냐?


이대오(以大悟) 위입문(爲入門)이니라. 크게 깨달음으로써서 () 들어올 것이니라.

 

환지일성(㘞地一聲 화지일성) 후에는숨바꼼질 땅에 한 소리를 냅대  후에는,

환지일성이라는 것은 어린애들이 서로 숨바꼼질할 , “내가 어디  숨을 테니까  찾아라” 오냐!  숨어라,  찾으마 그래 찾다가서는 찾아 놓면은 하하!” 웃는 것을 환지라 .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내가 나를 이렇게 몰랐으니 내가 한번 이렇게 찾다가, 한번 옳게 내가 나를, 내 모양을,  얼굴을, 내가 바로 찾아 놓으면, 그만 허허!” 어린애들이 숨바꼼질을 허다가 서로 찾아서 웃드끼, 그렇다 그말이여.


환지일성 연후에 허다영묘(許多靈妙) 개자구족(皆自具足)하리니.

한번 그렇게  낯반대기를 내가 ! 찾아서 나를 깨달라  뒤에야사 허다영묘(許多靈妙), 허다한 신령스러운 () 것이  구족(具足)헌다 거기서. 깨달라 가지고는 거기서 인자 구족(具足).. 그럴 거란 말이여.


한번 깨달라 가지고는 대번에 그렇게  것이 아니라, 깨달은 후에 인자 거기에서 영묘(靈妙) 갖춰사 그렇게 된다고  했어? 이렇게 .

그런데 어찌 대번 한번 깨달라 가지고는 다시 거기에 무슨 후수지묘(後修之妙) 없다고  모도 그런 소리를 허면서, 인가가  뭐냐고 그러면서  나와서 그렇게  수가 있냐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전수(傳受) 해서 사자상속(師資相續)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  이렇게  가지고는 차츰 인가(印可)해서, ()해서 이렇게 전통(傳統) 나오는 것이 이것이 좌선법(坐禪法)이다.

좌선법은 오늘 아침에... ? 감기가 들어서 설법을 못허겠구만.(처음~1015)()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1~94

 

合而言之(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치연작용)호대  正體如如(정체여여)하야  縱橫得妙(종횡득묘)하야  事事無礙(사사무애)  謂之坐禪(위지좌선)이니라  略言如是(약언여시)커니와  舉(상거)홀진댄  非紙墨能窮(비지묵능궁)이니라

 

합해서 이를진댄 치연(熾然) 작용하되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종횡에 묘를 얻어서 일일에 걸림이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니라。 간략히 이르건댄 이렇거니와, 자세히 이를진댄 종이와 먹으로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那伽大定(나가대정)은  無靜無動(무정무동)하며  眞如妙體(진여묘체)는  不滅不生(불멸불생)하야  視之不見(시지불견)  聽之不聞(청지불문)하며  空而不空(공이불공)이며  有而非有(유이비유)라

大包無外(대포무외)하고  細入無內(세입무내)하니  神通智慧(신통지혜)와  光明壽量(광명수량)과  大機大用(대기대용)이  無盡無窮(무진무궁)하니

 

나가대정(那伽大定) () 없고 () 없으며 진여묘체(眞如妙體) () 없고 () 없어, 보되 보지 못하며듣되 듣지 못하며, ()하되 공이 아니며, ()로되 유도 아니라

크기로는 [] 없이 둘러싸고 가늚[] 들어서는 [] 없으니, 신통과 지혜와 광명과 수량과 대기(大機) 대용(大用) 무궁무진하니

 

有志之士(유지지사)는  宜善叅究(의선참구)하야 急着精彩(급착정채)하야 以大悟(이대오)로 爲入門(위입문)이니라

㘞地一聲後(화지일성후)  許多靈妙(허다영묘)가  皆自具足(개자구족)하리라  豈同邪魔外道(기동사마외도)의  以傳受(이전수)로  爲師資(위사자)하며  以有所得(이유소득)으로  爲究竟者哉(위구경자재)리오

 

 있는 사람은 마땅히  참구하야 급히 정신을 차려서 크게 깨달음으로 문에 들어옴을 삼을지니라.

‘아!’하는  소리 후에 허다한 영묘(靈妙)  자연히 구족하리라。 어찌 사마외도(邪魔外道) 서로 전수(傳受)함으로써 스승 제자를 삼으며, 소득이 있는 것으로써 구경(究竟) 삼는 자와 같으리오?

 

 

 

 

---------------------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 성하다(--,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 ()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정체(正體) ; 바른 진리의 (). 본체. 본질. 본래면목. 주인공.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그곳. 또는 이곳.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없이 아주). .

*나가대정(那伽大定) : 나가는  또는 코끼리。 물에서는 용이 제일 힘이 세고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제일 힘이 세기 때문에부처와 아라한을 나가(那伽) 한다.

나가대정은 대용왕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으로 대용왕이 깊은 못에서 장수를 안보(安保)하여 미륵불이 출세함을 만날 원력으로 정에 들어 있는 것。 여기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관계 없이 깊은 정에 들어 있는 것을 나가대정이라 한다.

*무진무궁(無盡無窮) ; 끝도 없고 다함도 없음. 무궁무진(無窮無盡).

*참구(參究 헤아릴 ,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 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 힘쓰는 소리 화) : 배를 끄는 소리。 힘을  때에 크게 내는 소리。 물건을 잃었다가 갑자기 찾았을 때에 얼결에 내는소리。 저절로 나오는 소리。 화지일성(㘞地一聲)•화지일하(㘞地一下)등이 그것.

*숨바꼼질 ; ‘숨바꼭질(아이들 놀이의 하나. 여럿 가운데서  아이가 술래가 되어 숨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인데, 술래에게 들킨 아이가 다음 술래가 된다)’ 사투리.

*웃드끼 ; 웃듯이. ‘~드끼 ‘~듯이 뜻을 가진 사투리.

*낯반대기 ; 낯바대기('··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 속되게 이르는 ). 낯판대기.

*사자(師資) ; ①학문이나 덕행을 닦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스승. ②스승과 제자. 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3/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13)—몽산24-3. 휴휴암주좌선문(3) (갑인74.06.07)

 

약 17분.

 

산승무외물(山僧無外物)이요  유유천년심(惟有千年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일성안(長天一聲雁)이요  서산낙일몰(西山落日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분산승(本分山僧)은 무외물(無外物)이다. 외물이 없어.

외물(外物) 무엇이 있어? 무슨 물건이 있어? 흉중무물(胸中無物)인디 가슴에 () 없는데 뭐가 있어?

 

세상 무슨 공명, 권리, 지위  그까짓 것은 산승(山僧)은 물론  아니지마는 가슴 가운데에도 뭐가 있어?  마음 가슴 가운데에도 무슨 ?

 모도  지견(知見) 상량(商量) 그런 일체 이치 번뇌까장도  거가서 붙들 못한 것인디, 내외(內外)  외물(外物) 없는  아니라 내무일물(內無一物)이지. 밖에도 아무 물건이 없고 안에도 아무 물건이 없다. 뭐가 있나? 생사가 없는데!

 

세상에 이러헌 정법, !  , 유유천년심(惟有千年心)이다. 오직 천년심뿐이다.

천년 마음, 천년심(千年心)이면은 천년뿐인가? 백억 천년도 거기  들어 있지.

 

오직 천년심이다.  무너짐이 없는 마음, 지위 권리가 없는 마음.

 부귀영화(富貴榮華)거그는 부귀영화도 없는 마음인디, 천하에 부귀영화다. 생사가 없으니  생사 없는 상락아정(常樂我淨) 백정낙(白淨樂)이 들어있다 그말이여.

 

 

중생, 중생 모도  나를 알지 못한  중생들은 죄만 짓기 마련이다. 나면 죄를  지어 ()이다. 그저 눈만 뜨면 죄업만 짓는 것이다.

 탐심·진심·치심 탐진치(貪瞋痴) 있어 가지고는 그저 죄업만 퍼짓는 것이 중생이다. 과거 그렇게 지어 나온 업(業)도 말로  수가 없는데 금생에  그렇게 자꾸 지어 모은다.

 

그런데 우리 본분산승들은 발심 출가를  가지고는 도를 닦아 나가는데 과거 죄업을 숙업(宿業)을 자꾸 참회(懺悔)한다.

무량 다생겁래에 지은 죄를 아침마다 이렇게 참회한다 그말이여. 예불(禮佛)이  예경참(禮敬懺)이거든. 예참(禮懺)이거든. 그게 참법(懺法)인데 예참법, 우리 지금 이렇게  나가는 예참법 이외에  있어?

 

다생겁래(多生劫來) 지은 죄업을 원멸(願滅) 사생육도법계(四生六途法界) 유정다겁(有情多劫)...’ 유정다겁생래(有情多劫生來)에  지은 죄업을  참회하지 않나 그말이여.

 

 금생에  어디 이렇게 도를 닦으니까 어디 짓는가? 우리가 무슨 살생, 도둑질, 사음질 무슨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등이 있는가? 탐심, 진심, 치심 그것이 어디 있어?  짓제.

! 이렇게 닦아 나가는 우리 본분학자(本分學者)여.  만행(萬幸)하고도 경행(慶幸)하도다. () 이상 (以上) 있을 수가 있나.


장천(長天)에는 일성안(一聲雁)이다.   하늘에는  소리 기러기다. 꾸울꿀~ 날라가는 기러기. ! 그놈의 기러기  소리여.

 기러기  소리가 말후일구(末後一句) 그말이여. 말후일구를 그걸 말을 한들  수가 있나?

말후일구는 알지를 못하지. 암만 해논다 한들 깨달라서 내가 ()하기 전에는.

그놈을 갖다 써놨어. 기러기 우는  갖다 그대로  놨어. 말후구(末後句)..


서산(西山)에는 낙일몰(落日沒)이다. 서산에는 ? 낙일몰이다,  떨어진 것이다.

거가 무슨  천만 도리, 천만 이치,  무슨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그런  등등 붙일 것이 없어.

 

 

어유차별경(於有差別境) 입무차별정(入無差別定) 위지좌(謂之坐).

좌선에 나가서,  모든 차별경에, 그저 세상 일체 차별(差別)의 경(境)에서  차별정(差別定) 드는 것을, 일체 차별 경계에서 차별정에 든다.    알아들을  있을까?


크면 큰놈, 적으면 적은 , 희면 희고, 검은  그저 내지 두두물물 화화촉촉 일체 경계  차별 가운데에서 차별 없는데 들어가는 ().  차별 중에서 차별이 없지. 차별 그놈을 여의고 떼고 차별 없는  아니여.

 놈은  놈대로 그대로가 본래 ?  () () 아니니,  () () 아니니 () 가히 () 있음이 없으며,  () () 아니니 () 가히 () 있음이 없으며.

 

! () () 아니지. 그러니  () 있는 유경(有境) 유경(有境) 아니니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을 리가 있나?  무경계(無境界) 무경계(無境界) 아니니 거기에  무슨 () () 아니니 () 무슨 ? 뭣이 붙어 있나. 일체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차별경계(差別境界)에서 차별경계 없는  들어가는 것을 그것을 () 한다. 참선 하는 ().

어무차별지(於無差別智) 시유차별지(示有差別智) 위지선(謂之禪)이다.

 일체 차별이 없는 데서 차별지(差別智) 보이는 것이 그것이 ()이다.

 


! 그러면은 가는 놈도 없고, 오는 놈도 없고,  일체 경계가  없어만 버릴  같으면은  () 가지고는 뭐가 있어? 생사(生死)가 없으면, 생사 없는 그것만 가지고는 뭐여?

거기서  인자 있다. 생사가 없다마는 그대로 생사가   있지. 일체 생사 경계에서 생사 경계가 그만 그대로 붙지 못혀.

 

 우리 참선 정법이라는 것은 『이건   있다,  없다, 역유(亦有) 역무(亦無). 또한 있지마는 또한 없다. 역무(亦無)지만 역유(亦有). 또한 없다마는  있다』 이렇게  경계다 그말이여.

 

합이언지(合而言之)   같으면은모도 합해서 말할  같으면은 치연작용(熾然作用)이다.


거기에 분별상 망념상, 일체  업상 번뇌상이 () 곳에서 있다.  깨닫지 못한 미한 곳에서 이놈 중생 작업 작용이  업(業)만 짓는 작업 작용뿐이다. 생사 업장(業障)뿐이여. 합해서 말할  같으면.

 

그놈이 본래 없고, 없는 () 없지마는 유상(有相)까지도, 있는 놈까장도 없다.

하지마는 그대로가 두두물물(頭頭物物) 총가옹(總家翁)이요, 두두물물이  그저 생사 없는  도리가 바로 비유(非有) 비법상(非法相)  도리다. () 아니요 () 아니요 법상(法相) 아닌  도리여.

오직 깨달라서 () 버리면은  도리가 그대로가 그만 우리 본분학자의 근본도리여. 


어디 여의고 있나, 어디 떼고 있나, 우리 부처님께서 그렇게 다겁을 닦아서 신통 변화가 낭연무진(朗然無盡)해서 낭발무애(朗發無碍)해서 말로  수가 없지마는 평생에  신통변화  일이 없어. 변화  일이 없어.


허다가     없어 중생교화  때에는  한번  병을 앞에 놓고 끌어 보아라.” 그런 짓은 부처님이  놓고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짓이라는 것이여.

그까짓 짓이 무슨 짓이여?  하나 그거 손가락만한  하나 앞에 놓고,  군중이 몇억 군중이  들어와서 쇠줄을 걸어놓고 댕겨도 꼼짝 요동  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대로 누진통(漏盡通) () 번질  같으면은 그만 부동 경계에 앉어서는 티끌 하나도 () 않는 도리가 있다 그말이여.

그놈을  무슨 신통에다가 붙일 것이 아니라 그만 무애지경(無碍之境)에다가 붙여 보란 말이여. 걸림 없는  증처(證處)에다 붙여 놓을  같으면  들어맞어.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깨달라 정한 곳이 여여(如如)해서. 여여라는 것은 그건  말을 쎄(혀)를 내룰  없어.

정체(正體)가 여여(如如)해서 종횡득묘(縱橫得妙). 종횡득묘를 . ()으로나 무슨  ()로나, 울로나 아래로나  () 얻어 버렸어. 생사죄가 그대로 없어. 어디가 있나?

 

이러헌 우리 참선법. 종횡묘득을 해서 사사무애(事事無碍), 일일이 걸림이 없다. 이것이 (). 참말로 ().


 앉은 것이 좌착(坐着)? 가만히만 앉었으면 되아?  앉었는   무엇이여?

참으로 ()라는 것은, 좌선 뜻이 이렇다. 이게 좌선이니라. 앉어서 ()하는 것이 이렇다 그말이여.

 

약언여시(略言如是)커니와간략히 말할  같으면은 이와 같거니와, 상거(詳擧), 자세히 말을 들어서 하자면은 비지묵(非紙墨)으로 능궁(能窮)이니라. 종이와 먹으로써 다할 수가 없다. 아무리 써서 별걸  해도 다할 수가 없어.

 


우리는 이러헌 좌선을 해야지. 능묘좌선(能妙坐禪), 능증좌선(能證坐禪) 능히 () 얻고, 능히 ()허는  좌선을 해서 생사해탈을 어서 그대로 ()해야지.

()허지 못허고 견성만  가지고도그거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保任) 못해 놓면, () 못해 놓면 도로 잃어버려. 보배를 얻었다가 잃어버리면은 다시 찾지 못혀.


그건 어떻게  본래 얻지 못헌 보배는 어쩌다가  이렇게 가다오다 뜻밖에 얻을 수는 있지만, 얻은 놈의 보배를 한번 잃어버린 뒤에는 다시  찾는다.

견성을 아무리 했다 하지만 () 못할  같으면은, 도로 그만 오후재미(悟後再迷) 되어 버리면은오후(悟後) () 버릴  같으면은  후회다.  후회고.


이러헌 법이 있는 줄을 바로 알아 가지고 믿기만  놔도 거기는  무진(無盡) 보배 마니주(摩尼珠) 묻혀 있는 줄을  알고 판다. 파면은 틀림없이 거기에서 무진 보배 마니보주(摩尼寶珠) 나온다.


우리가 인자 이러한 법을 알았으니, 『내가  찾는 법』을 알았으니, 알고야   수가 있나?    없다 이말이여.

 다행하고 만행하다. 어쩌다가  법을 우리는 발견해서, 부처님께서 알려 주어서 우리는 이만큼 믿어 행해 나가니,  알뜰히 알뜰히 인자 조심조심 인자 물러가지 말아야 한다. 퇴전(退轉)하지 말아라.

 

내일 아침 법문에는 인자  나가대정(那伽大定) 법문을 하겠어.(처음~1645)()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1~92

於有差別境(어유차별경)에  入無差別定(입무차별정)이  謂之坐(위지좌)요  於無差別法(어무차별법)에  示有差別智(시유차별지)가  謂之禪(위지선)이라

 

차별(差別)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이 좌(坐)요。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보이는 것이 선(禪)이라.

 

合而言之(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치연작용)호대  正體如如(정체여여)하야  縱橫得妙(종횡득묘)하야  事事無礙(사사무애)  謂之坐禪(위지좌선)이니라  略言如是(약언여시)커니와  舉(상거)홀진댄  非紙墨能窮(비지묵능궁)이니라

 

합해서 이를진댄 치연(熾然) 작용하되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종횡에 묘를 얻어서 일일에 걸림이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니라。 간략히 이르건댄 이렇거니와, 자세히 이를진댄 종이와 먹으로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

 

*(게송) 山僧無外物  惟有千年心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寄蓬萊子()’ 게송 참고.

*(게송) 長天一聲雁  西山落日沒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秋江別友 게송 참고.

*본분산승(本分山僧) ; 본색납자(本色衲子), 본분납승(本分衲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또는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스님.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상량(商量 헤아릴 , 헤아릴 ) ; 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 서로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 변하여  헤아려 생각함.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즐거울 / /청정할 )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 네 가지 ().

열반경(涅槃經)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 안락하므로 ()이고, 망집(妄執) () 여의고 대자재(大自在)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이고, 번뇌의 더러움을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이다.

*백정낙(白淨樂) ; 영원하고 한결같은 진여(眞如) (). 열반(깨달음) ().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참회(懺悔 뉘우칠 ,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차례에 걸쳐 ·보살(·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예참(禮懺) ; 예경참(禮敬懺).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예배하고 죄를 참회함.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 .

*본분학자(本分學者)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학자.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 ()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 .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끝의 . ③임종의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 청량국사(淸涼國師) 징관(澄觀)이 저술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서문(왕복서 往復序)에 나오는 구절.

[참고] 故我世尊이  十身初滿에  正覺始成하야  乘願行以彌綸하시고  渾虛空爲體性하시니  富有萬德이요  蕩無纖塵이로다

그러므로 우리 세존(世尊)께서 십신(十身)이 만족해지자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서원(誓願)과 수행(修行)에 의지하여 법계를 두루 감싸며, 허공과 합하여 체성(體性)을 삼으시니, 부유함에는 만덕(萬德, 無盡之德)을 가지셨고, 텅 비어서 가는 티끌(일체 번뇌, 사량분별)도 없도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가옹(家翁) ; 집안의 주인(主人). 주인공. 진리.

*()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오후보림(悟後保任),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무진(無盡) ; 다함이 없을 만큼 매우.

*마니주(摩尼珠) ; 마니(摩尼)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ṇi 의 음사(音寫). 주(珠), 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밑으로 전락(轉落).

*나가대정(那伽大定) : 나가는  또는 코끼리。 물에서는 용이 제일 힘이 세고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제일 힘이 세기 때문에 부처와 아라한을 나가(那伽) 한다.

나가대정은 대용왕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으로 대용왕이 깊은 못에서 장수를 안보(安保)하여 미륵불이 출세함을 만날 원력으로 정에 들어 있는 것。 여기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관계 없이 깊은 정에 들어 있는 것을 나가대정이라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2/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09)—몽산 24-2. 휴휴암주좌선문(2) (갑인74.06.02)

 

(1) 약 16분.

 

(2) 약 7분.

 

(1)------------------

 

고목별춘색(枯木別春色)이요  영양괘벽상(羚羊掛壁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산유역진(靑山遊歷盡)이요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고목(枯木), 마른 냉기가 봄빛을 이별했고, 더군다나 나무는 말랐는데 봄빛을 이별했으니 봄빛이 없어. 
영양괘벽상(羚羊掛壁上)이라. 영양(羚羊)이라는 짐승은 뿔따구를  석상(石上) 돌머리에다가 걸어버리는데, 영양은 걸어. 그러니 그놈이 자취도 없고 매달려 가지고 따악 벽상(壁上) 걸어버린다 그말이여.

 

공부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마른 냉기가 춘색(春色) 이별했고, 영양(羚羊)이란 놈이 댕기다가 뿔을 벽상에 걸어버리면은 발자취도 없다. 어디 자취가 있나? 아무 것도 없지.

 

별것이 있는 줄을 안다 그말이여.

별것이 있고, 도를 통하면은 별것을 알고,  이치를  보고, 그런  안다 그말이여. 그것 !


그렇게 ‘이치(理致) 아니다. () () 아니다. 색상 , 모양 ,  아니라고’

범부의 뜻도 아니요. 중생의 , 중생의 알음알이 그런 것도 아니요. 성해(聖解) 아니요. 성해 나는 것도 아니요. 그런 것까장  떼 버리고 여의어 버렸는데,  거냔 말이여? 뭣이냐 그말이여?


그렇지마는  없어.  없어. 하나도 있는 것이 없어.

 없다마는   있다. 없는 것이 없어.

, 이런 놈의   . 그런 일이 어디 있어?  없고  있다?


여기는 고목(枯木) 춘색(春色) 이별했고, 영양(羚羊)이란 놈이 뿔을 벽상(壁上) 걸어버렸다.


청산유역진(靑山遊歷盡)인데, 청산(靑山) 전부 댕기면서 유역(遊歷)해서 어느 산골짜기고 어디를 막론하고  역진(歷盡) 했다.  찾아댕기면서 모두 지내 다했다.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이다. 장부(丈夫) 능히 일을 마쳤다.


오늘 아침 게송(偈頌) 아무 것도 없는 ,  일체 색상 경계  여의고  버리고, 일물(一物)도 없는 경계,

거기 나가서   있는 거지, 하나도 없는 것이 뭐가 있나? 없다가 보니 있다. 그런 게송(偈頌)이여.

 

 

회광반조(廻光返照)하야, () 돌이켜서()이라는 것은  심광(心光), 마음 광명을 돌이켜서,

무슨 마음이 퍼뜩   같으면은, 그놈이 그저 일체 망념이  외경(外境), 바깥 경계에 모도 가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무엇이다 그저 온갖  분별 경계, 그놈을 거두라 그말이여.


 () 돌이켜라. 그놈도 모두  () 나가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무슨 천하 만삼라(萬森羅)를  그놈이 말을 하고, 그놈이  일체 경계에 범하고.

그놈을 돌이켜. 척! () 돌이켜서 반조(返照)해라. 도로  화두(話頭)를 비추어.  화두를 거각(擧却) .

‘이뭣고?’ ! ‘이뭣고?’한 놈을 ! 추켜들면은 그만 제대로 반조가 되어버리지.


무슨 망념이 어디가 붙어? 망념이 제대로 그만 밖의 경계에 아무 것도 없어, 외식제연(外息諸緣) 그대로 되어버리고, 내조(內照) 안으로  화두 하나가 그대로 나오지. ‘이뭣고?’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조주(趙州) 판치생모라는 것만 찾는 거지,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어찌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런  가서 분단 내지 말란 말이여.  분단이 무슨 분단이 있나?


‘판치생모’라고 했는데, 『조주는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나? 뿐이지.

거가서 공연히 요놈 찍어 붙이고 저놈 찍어 붙이고, 요것이 옳은가 저게 옳은가, 그거 아니라 그말이여.


 탁근(托根)하에서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의근(意根)  뿌럭대기(뿌리)에서 이치를 붙여 자꾸 그래싸면 아무짝에도 못쓰는 화두여.

판치생모라고 했으면 그대로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뿐이지. 『판치생모라니? 『어찌 판치생모여?  뿐이지.


거가서, 판치생모에 가서 무슨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나?’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나?’  그런 분별 짓지 말라 말이여.

그거 화두상에  의근하(意根下) 탁근(托根)이여. 뿌럭대기에서 모도 망상 짓는 것이여. 거기서 얼마가 화두가 손해난 거여.


『판치생모? 뿐이지, 조주  찾는 것이지.

일체 공안(公案)   본분납승(本分衲僧) 수리(手裏) 떨어져 있거늘, 저번에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내가 그렇게  했어?

유일등인(有一等人) 갱향타무자상(更向他無字上)하야 토자미(討滋味)하나니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치(鈍置) 놈들이 아니냐.


무자(無字) 의지(意旨), 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 의지, 판치생모 뜻이 조주(趙州) 이여. 조주에게 있는데, 따로 찾지 말라 그말이여.

그런께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래야 하거든. 그러면 판치생모라는 뜻이 바로 조주 이거든. 그놈이 무슨 다른  아니여.


 수가 없으니까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가자(假字)해서 조주  찾는 것인데, ‘판치생모 따로  내던져 버리고 조주  찾는  아니거든.

 

『이뭣고?』하면 『이뭣고? 그놈』이 바로  뭣고?’ 뜻인데, 따로 찾을  있냐 그말이여. 똑같은  아닌가.


『‘이~?’』한  자리, ~’ 뭣고? 거가서 주각(註脚) 내지 말란 말이여.

 주각을 무엇이라고 하나? 분별이라고도   있고, 그놈을 따져서 모두 해석이라고  수도 있고, 이것이다 저것이다 논상논하(論上論下)라고  수도 있는 것이고.

 


() 돌이켜서 비춰라.  () 돌이켜 비추라고 하니까, 무슨 이상스런 () 돌이킬라고 말어.

 마음이 어수선해서 사방 모도 흐트러져서 참선을 한다고 앉았지마는 마음은 모도 나가서  분별 경계에 떨어져. 사방 모도 안 간  없이  마음  마음이 그저 이리 일어났다가 저리 일어났다가, 그저 어디 가서 한번 돈벌이를  봤다가  별짓을  해본다 그말이여.


그거 중생심이란 그뿐이지, 다른  없어. 앉었으나 누웠으나 가나오나 행주좌와에  일어나는 마음은 그뿐이여.

그저 잘산 , 못산 , 그저 과거에 잘한 , 못한 , 그저 시시비비, 그저 일체 망상 분별심 밖에는 없어.


그놈 밖에 없으니그놈 가만 두어. 그걸 없앨라고도 말고, 거둘라고도 말고, 그놈 돌이킬라고도 말고, 대체 무슨  심마()? 이것 뭣꼬? 이뭣고?’ 이놈이 뭐냔』 말이다.


도대체 한번 전제(全提)로, 이뭣고?’ 놈이 뭣고? 한번 그렇게도  .

그래가지고는 그만  다음에는  뭣고? 『이~?』한 놈이  화두 거각 아닌가.

 뭣고? ‘이~? 놈’이   없는 이라 그말이여.

~?’ 놈을 이뭣고? 요렇게 돌이키라 그말이여. 『이뭣고?


조주 스님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물으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으니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찌 판자 이빨에  났다고 했는고? 단(單)! 그뿐이여. 그러면 그놈이 그만 그대로 회광반조(廻光返照).

일체 망념은 거기에 도무지 따라 오도 않고, 없고, 어디 그놈이 본래 일어나는 곳이 따로 있나?

그러니께 화두만 그대로 『이뭣고?.   기맥히지.    이상  어떻게 ?


그렇게 하고  하고, 그렇게 하고  하고,  먹고  입으면은 먹을 사이인들 틈이 있나? 옷을 입는다고 한들 틈이 있나? 틈이 어디가 있어! 그렇게 회광반조(廻光返照) 해라.

화두 하나   없는  나오고, 판치생모 하나 의단독로(疑團獨露) 하면 그게 반조(返照), 반조 모양이여, 그것이.


철법근원(徹法根源)해라. 법의 근원을 사무쳐라.

 법의 근원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붙지 못한 곳이요, 중생, 제불(諸佛),  마음이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마음·부처·중생이 차별 없는 , 무슨 거기에 차별이 있어?

아무 것도 () 없는 , 법의 근원을 사무쳐라. 그걸 ()이라 한다.


() 그게 선이지, 다른  () 아니다.

 알고 앉았거나, 비추고 앉았거나, 제가 무슨 천하 세계에 없는 이치를 장만해 가지고 앉았거나, 그거 외도선(外道禪)이여. 외도선 그거   것만 못한 것이여, 외도선이라는 것은.

가만히 앉어서 세계를 능단(能斷)해도세계를 능히 끊고 세계를 뒤집어 놨자, 그런 것은 () 아니여. 고런  하는 것은 외도여.

 

(선이라는 것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 증득하는 것이지! (처음~1531)

 

 

 

 

 

(2)------------------


불위역순뇌(不爲逆順惱)하며역순(逆順) ()하지 말며.

누가 거스른다고 거기에 그만 골이 나서  견뎌서 그놈을 그만 원수를 갚을라 하고, 무슨 거다가서 별별 계획을  갖다 야단을 치며,

 순경계(順境界) 나를 좋게 만드는 데,  마음이 좋아서  견뎌서 그만 엎어지고, 그러한 역순경계(逆順境界)에도 뇌롭지 말아라. 거가서 수고롭지 말아라.


고런 ()이나, ()이나  상관이 있나? 그까짓 .

나를 () 거슬르거나, 나를 () 좋게 만들어 주거나, 그까짓  도인이, 공부인이 놀아나지 말어라 말이여. 그런  불리지 말란 말이여.

도인이거든, 공부인이거든 고렇게 행을 해라. 역경계 순경계 거기 한번 초월해라.


불위성색전(不爲聲色轉)하라. 성색(聲色) ()하지 말아라.

소리와 색에 좋은 음성이라든지 소리와  좋은 모양이라든지, 그런 기가 맥힌 절묘한 예쁜 사람이라든지, 미인이라든지, 무슨 소리 좋은 가무 명창이라든지, 고러헌   ()하지 말아라.


그런  마음을 갖다가서 거기다 붙여서  하따! 좋다 엎어지고 그것 그래  것이냐? 공부인이라는 것은 성색전(聲色轉)  되야 된다.

그까짓  일체 경계가 좋거나 말거나 그러한  내가 무슨 () 것이 있나? 그걸 위지좌(謂之坐) 한다.


좌선(坐禪)이여. 시방 좌선 얘기한 것이여. 참선 좌선이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낱낱이 간택해  것이여.

 


촉유즉명유일월(燭幽則明愈日月)이요. 화두가 밝게 되면은 화두가 역역고명(歷歷孤明)해서—‘외로울 ()’, ‘밝을 ()’, 고명(孤明)이라는  홀로 밝는 것이다 그말이여. 제일 밝아. 적이 없어.

화두가 고명(孤明)해서  다른 마음이 조금도,  터럭끝 만큼도 섞이지 않고 화두가 온전히 된다. 명유일월(明愈日月)이다. 일월(日月)보다도  밝는 것이다. 일월이 거기 비유할 수가 없다.


촉유즉명유일월(燭幽則明愈日月)하고, 밝은 즉은 일월(日月)보담도  하고,

화물즉(化物則) 물건을 화한즉, 역승건곤(力勝乾坤)이라.  힘이 건곤(乾坤) 이긴다. 물건을 ()  역승건곤 한번 어디 응대한  건곤을 이긴다. 하늘과 땅이 거그 붙들 못혀. 그런데 무슨 망념이 거기 붙을까 보냐?


이건 화두를  자꾸  하고  하고, 그저 하면은 망상으로 싸우다가, 망상 경계가 한번 제대로 물러가 버리고물러갈 것도 없이 그대로 잦아져 버리지.  자리에서 잦아져 버리지, 어디 일어난 곳이 있나? 그런 때가 이제 오지.


그래 자꾸 처음 초학자들이 화두를 그렇게  잡드리를 해야지, 하다 말다가 그만  하다가 퇴타(退墮)하고,  하다가 말고,

퇴타가 무슨 물러가 퇴타한 것이 아니라, 공부할 때에도 밤낮 퇴타를 하거든, 공부 지어 나갈 때도.


이렇게  때가일체 망념이 붙지 못하고 역승건곤(力勝乾坤) 때가 있어. 건곤이 도무지 와서 어쩌지 못혀. 그걸 ()이라 한다. 좌선(坐禪)이라는  이런 지경이 있다.

 


어유차별경계(於有差別境界) 일체 차별 번뇌 망상 경계에,

입무차별정(入無差別定)일체 차별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을,

일체 차별 경계에서경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차별 경계 속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별짓을 한바탕   본들, 거기에 화두가 () 들어서, 도무지  요동이 없는 것을 그것을  이르되 ()이라 한다.

인제 그런 경계가 오거든. 그걸 () 한다. 그런 경계를 () 한다.


 어무차별지(於無差別智) 일체 차별지 없는데, 시유차별지(示有差別智) 위지선(謂之禪)이라 한다.


차별지(差別智)가, 도무지 아무 것도 차별지가 없는데 천만사 하나도 무슨 지혜(智慧) 없어.

헌데 거기가서 일체 차별지가 있거든. 하나도 없어진 법이 없고 그대로 차별지가 있다 그말이여.

없는데 있다 그말이여. 어디 없으면 아주 없나? 그것을 ()이라 한다.


좌선법은 여까장 말을 했어.  밑에 가서 인자 합론(合論)이 있는데, 합론은  내일 아침에 말해.. 기운이 없어서 많이 설허덜 못해.(1537~2234)()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0~91

撼不動(외감부동)하며  中寂不搖(중적불요)가  謂之坐(위지좌)요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徹法根源(철법근원)을  謂之禪(위지선)이라

 

밖에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속으로 고요하야 흔들리지 아니할  좌(坐)이요。 광(光)을 돌이켜 반조(返照)하야 법의 근원을 사무치는 것을 일컫되 선(禪)이라.

 

不爲逆順惱(불위역순뇌)하며  不爲聲色轉(불위성색전)을  謂之坐(위지좌)요  燭幽則明愈日月(촉유즉명유일월)하고  化物則力勝乾坤(화물즉역승건곤)을  謂之禪(위지선)이요

於有差別境(어유차별경)에  入無差別定(입무차별정)이  謂之坐(위지좌)요  於無差別法(어무차별법)에  示有差別智(시유차별지)가  謂之禪(위지선)이라

 

() 경계와 () 경계에 뇌란(惱亂) 아니하며, 성색(聲色) 굴림이 되지 아니함을 ()요。 어두운  비취면 밝음이 일월(日月)보다 더하고, 만물(萬物) 교화(教化)할지면 힘이 건곤(乾坤) 능가함을 ()이요.

차별(差別)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이 좌(坐)요。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보이는 것이 선(禪)이라.

 

 

 

 

------------------(1)

 

*(게송) 고목별춘색~’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心禪子行脚()’ 게송 참고.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 성자(聖者) 지혜]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만삼라(萬森羅)  ;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일체 공안(公案)   본분납승(本分衲僧) ~ 둔치(鈍置) 놈들이 아니냐’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p77~78 참고.

觀其道箇無字하건댄  性命이  落在*本色衲子手裏어늘  有一等人이  更向他無字上하야  討滋味하나니  豈不鈍置平生이리요.

 무자(無字) 이른 곳을 보건댄 성명(性命) 본색납자의  안에 떨어져 있거늘,  무리 사람이 다시  무자(無字) 향하야 자미(滋味)를 찾나니, 어찌 평생을 어리석게 보냄이 아니리오?

*본색납자(本色衲子) : 본분납승(本分衲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가자(假字) ; 글자를 빌다(빌리다).

*전제(全提) ; 전부분이 들고 일어남(全分提起) . 본래 그대로 나타냄. 전부를 그대로 나타내 보임. 전체를 모조리 그대로 들고 나오는 .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전제는 조주 스님은 어째서 ()라고 했는고?’ 단제(單提)는 그냥 ~’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 들여다 보는 .

*() ; 오직 그것뿐임을 나타내는 .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2)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 번뇌할·괴로워할·괴롭힐·화낼 뇌) ; 뇌란(惱亂). 괴로워서 마음이 어지러움. 또는 남의 마음을 괴롭고 어지럽게 만듦.

*수고롭다 ; 어떤 일을 하기에 괴롭고 고되다.

*불리다 ; ‘불다(바람이 일어나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다)’ 피동사(被動詞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하여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1/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08)—몽산 24-1. 휴휴암주좌선문(1) (74.06.01새벽) (전508)

 

(1) 약 17분.

(2) 약 7분.

 

 

(1)------------------

 

구주한남객(久住漢南客)  관서행승유(關西幸勝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안초염일(楓岸初染日)이요  소우과강추(疎雨過江秋)니라

나무~아미타불~

 

구주한남객(久住漢南客)이다. 오랫동안 한량없는 겁(劫)을 이렇게도 정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나를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질만   객으로만 고향 소식을 모르고 객지로만 돌아댕기는 우리 인생이다.

관서행승유(關西幸勝遊). 어쩌다가 다행이 금생에는  좋은 도량(道場), 정법도량, 나를 찾을  해탈 도량을 왔냐 말이여. 이런 불법도량(佛法道場) 왔는가 말이여.


풍안초염일(楓岸初染日)이다. 그만  일생이라는 , 이게 잠깐  만나기는 만났다마는  단풍 시절이  닥쳐온다. 그만 ,  무슨 기한  없다. 그저  그만 낙엽 시절이 돌아와. 뚝뚝 떨어지는 낙엽 시절이 앞에 닥쳐와.

소우과강추(疎雨過江秋)니라. 성근 비는 강추(江秋) 지낸다.   지내듯, 그만 바람에  지내듯 해버릴 거여. 잠깐 가버릴 것이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얻었다’고, 정법문에 들어왔다’고 해서 이걸 가지고 ()하게 족을 삼지 말아라.

어느덧 번갯불 같이 가버리는 우리 일생이 계산할 것이 있나? 아무 계산도 없다.

 

 

부좌선자(夫坐禪者)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다

. 휴휴(休休)라는 스승이 있어. 휴휴(休休)라는 큰스님이 있다 그말이여. 큰스님이 있었어.

‘쉴 ()자’가  자여. 휴휴암주(休休庵主).

암주(庵主)라는   닦는 항상  처소를 ()이라고 . 암주(庵主)라고.


 암자(庵子), 조그만한 그런  닦는 암주로 있어서 닦는 이가  그런 조그만헌 바위 틈새기  조그만한 암(庵) 그런  있었지, 무슨 야단스러운  대찰 주지나 무슨  권리나, 무슨 어디 그런  했나?


서산 스님도 일평생을 그래 했고, 원효 스님 같은 이도 일평생을 () 짓고 들어앉어 계셨고, 나옹 스님도 그랬고.

보조 스님도 당시에 그랬지보조 스님이 인자 송광사 처음 초창(初創)  놓으니까 커졌지, 처음에야 어디 무슨 적굴인데 .


그러한 () 계시는 휴휴 큰스님이여. 휴휴(休休), ‘ ()’자가  자여.

휴휴 큰스님이신데,  스님이 공부하시는 좌선문(坐禪文) 지어놨다.

 

 

대저 참선이라는  좌선(坐禪)() 하는  좌선은, 참선은수달호지선(須達乎至善)이다. 모름지기 지선(至善) 달호(達乎)한다.

지극히 선(善)한()자 라는  착할 ()’자 인데, 착할 선자 라는 것은 아무 것도 그름이 없는 것이다.   () 잘할 ()’자다. 착한 것뿐 아니라 잘한다 ()자여.


잘한다.  잘해라. 조금도  틈이 없이 화두  지극히  나가는  (), ‘잘할 ()’자여. 지극히 잘해야 한다. 보통 해서는  되는 것이다.

말만 참선한다 앉아서, 참선  되나? 지극히 지선(至善) 달호(達乎)해라.

 

당자성성(當自惺惺)해라. 마땅히 스스로 깨끗 깨끗이 해라. 흐리터분하니 그렇게 지내지 말어라.

시시때때로  생각을 깨끗이 해라. 일념(一念)을 깨끗이 단속하면은 차츰 일념,  일념  일념이지.


 처음 앉어서  일념이 깨끗하면은  일념,  일념, 밤낮 일념,  찾고  찾고 화두를  연속하고 연속해서.   재미난 것은 그뿐이여.

일체 망념이 없는  , 일체 망념이 없고   없는 놈만 자꾸 들어 붙이면은 거그 같이 도무지 수행이 없고, 그렇게 깨끗하고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어.

 

  !  생각을 잘하면,   생각이 일어나면  그놈 ‘이뭣고?’ ‘이뭣고? ‘'뭣고?' 이놈이  뭣고?’ 아! 이놈  들어가는  무슨  놈이 거기 붙으면은 고약스럽지.  못된 것이 붙어 놓으면 아무짝에도 못쓴다 그말이여.

 

  없는 , ! 그놈   뿐이지,  놈이  있어? 단속할 것이 그뿐이지. 그게 ()이여. 잘한 놈이여.


마땅히 스스로 깨끗 깨끗이 해라.  당념(當念) 깨끗해야지,

뒤에 그만    망념(妄念) 들어와 가지고 고놈이  망념이 붙고,  망념에 망념이 붙고, 자꾸 그거 사량분별이 붙고, 별것이  때려 붙으면은 그만 시끄럽고.


 혼자 있어도 공연히 시끄러워.  혼자 공연히 장난이 일어나고.

고것 모두가 내게서 일어나는 것이지, 어디 경계에 있나? 


절단사상(截斷思想)해라.  사상(思想) 붙이지를 말아라.

무슨 생각을 붙이나?  사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라.

 

어디 ‘이뭣고?’한다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한다든지, 어디 가서    놈이 붙을  있나?  놈이 일어날  있나? 그놈 때문에, ‘이뭣고?’ 때문에, 그거 당념(當念)이여.

‘이뭣고?’  당념. 그놈이 그만 일체 번뇌 망념을  그놈 절단 내버리는 거여.


당념 그놈이 모든 임금과 같아서 거기에 무슨 ...어디서 생겨 나올 것이여 그놈이?  어디서 붙어 나올 것이여 그놈이?

절단사상(截斷思想)해라. 사상을 도무지 끊어라. 끊을  아니여, 없어 그대로.

 


불락혼침(不落昏沈)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

그만 앉으면 '참선한다' 그만 눈을 감고 잔다 그말이여. 그만 ~’하고 자면 무한정이지. 그거 참선이여, 그것이? 고거 참선이여, 고런 것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량계교(思量計)를 붙여서, 그저  생각,  생각 그저 이리... 그게 참선이여, 앉어서?

그까짓 것이 어디가 붙어?


천하에 참선같이 쉬운 것은 없다 그말이여.  . 지극히 절대 당념(當念)만 단속해 보란 말이여.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 . 거기서 무슨 미치거나, 무슨 잡념이 있어서무슨 잡념을  가지고 미치거든. 잡것이  붙어 가지고 미치고. 고약하지.

   없는 ‘이뭣고?’만  나가는 , 미치다니 무엇이 미쳐?


 힘들 것이 무엇이 있어? 하나도 힘들 것이 없지. 안 되니께 그놈 안 되어 억지로 그만 할라고 하니까 힘이 쓰이고, 육단(肉團) ()하고 그러지.


그런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되, 그걸 () 한다. 가만히 앉어서  나가는 (). 

 

재욕무욕(在欲無欲)! () 있지마는 () 없다.

()이라는 것은 하고자  ()’, ‘욕심 ()’.  () 있어. 세상 경계(世上境界), 반연 경계(攀緣境界) 있어. 반연을 떼고 욕심을 여의고 일체 물질 경계를 여의고 뭐가 있나?


그 내 몸뚱이도 없어야 할까?

 몸뚱이 가지고 몸뚱이가 없어야지. () 있어서 () 없어야지.

() 중에모두 이런 경계, 모든 세상 경계, () 중에있드래도 () 없다. 그저 분다(紛多) 경계에 있드래도 분다한 경계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야지! 그런 분다한 경계를 없앨라고 하면 되아?  경계 중에 있어야지.

하지마는  경계가 들어오지를 못혀. 


거진무진(居塵無塵)티끌 반연 경계, 티끌 세계에 있지마는 티끌이 없어.

이것이 재욕무욕(在欲無欲)이요욕심에 있어도 () 없고,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는 경계가   세상에서 내가  모든 세상 경계를   나가면서도 없는 것이여.

그걸 여의고 떼고 없으면은 그런 경계가 어디 있나?

 

바로 세상에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처자를 데리고 자식을 그저 포자농손(抱子弄孫) 하면서 인구를  나가는 것이, 그러면서  ‘이뭣고?’를 하나 다뤄 나가는 것이 그것이  참선이여.

그런 것이 없이 경계를 여의고 떼고 혼자 틈새기로만 어디 찡겨 바위 틈새기로 들어갈라고 하는 , 그것 소승(小乘)이여.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걸 갖다가 ()이라 한다.

() 있어도 () 없으며,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으며 욕심에 있어도 욕심이 없으며, 티끌 세계에 있어도 티끌이 없는  사람이 어디 혼자 조용한 곳에 들어와서 공부를   같으면은 얼마나  철저할 것인가. 정중(靜中).


요중(鬧中) 있어서도 !  () 없는데시끄러운 것이 없고 욕심이 없는데, 고요한 곳에 들어와서 고요한  공부하면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중(靜中)!

그러니 세상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를  그렇게  나갈  같으면은 정처(靜處)—조용한 , 정처에 와서는  잘할  사실 아닌가.


요처(鬧處), 정처(靜處) 무슨 관계할 것이 있나. 항상 ‘이뭣고?’ 하나 뿐이다.

당념(當念) 지선(至善)이다.  당념이 항상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나가는‘이뭣고?’ 하나  나가는 그놈이 항상 그저 떠날 틈이 없다. 여읠 틈이 없고 버릴 틈이 없다. 그걸  ()이라 한다.


재욕무욕(在欲無欲) 거진이진(居塵離塵)욕심에 있어도 욕심이 없고,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고,  경계가  ()이다.(처음~1638)

 

 

 

 

 

(2)------------------

 

 외불방입(外不放入)하고밖으로 () 들어오지 않고,

아무리  밖의 경계에 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망념 경계가 있든지, 소용없어. 화두 하나 밖에는 그놈 밖에는 없어. 세상 그런 밖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드래도 항상 이놈 뿐이다.

 잘하는 것이, 달호지선(達乎至善) 이거여.  달호지선 하는 법이여.


내불방출(內不放出) 위지좌(謂之坐) 한다.  안으로 방출(放出) 없어.

암만 안으로 생각  할라 해도, ‘이뭣고?’를  할라 해도,  할라고  놈이 그놈이 ‘이뭣고?’여.

방출(放出)  ‘이뭣고?’여. 내던져 버릴라고 해도 ‘이뭣고?’여.


! 내버릴라 해도 항상 ‘판치생모’는   없으니내가 나를 몰랐으니,  내가! 그놈이,   없는 놈이 항상 방출을 해도 ‘이뭣고?’다. 그것  묘한 경계지. 화두를 해볼  같으면은 이런 경계가 와야 .


억지로 이놈을 하니까 그만 잠이 퍼와서 그만 졸고 앉었다가  깨면은잠잔 사람은 깨어날  같으면은, 물론 그것은 그만 잡념이네. 그렇게 잠잔 사람은 깨어나도 잡념이여. 깨어나면 그만 망상 잡념밖에 없는 것이여.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래야 그놈이 오매(寤寐) 성성(惺惺)하지.  때나,  때나 성성하지.


 방출이 안으로는 방출이 없어. 암만 내버릴래야 화두가 어디 나가는 법도 없고, 그걸 () 한다. 

 


무착무의(無着無依)하야어디 가서 () 없고, 의탁(依託) 없다.   마음이 어디 의탁처가 있나? 어디 () 곳이 있나?

 마음 난 대로, 그저 마음이란 이놈이 어디 마음두면  대로, 어디 그렇게 그저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놈이니, 그놈이 어디 () 있고 () 있나?

어디 () 있어? 붙은 데가 어디 있어?  의지한 데가 어디 있어? 항상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러니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무착무의(無着無依)해서 일어나고 멸하는 데도 없이 항상   없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의단독로(疑團獨露) ! 그놈이 상광현전(常光現前)하다.

항상 광명이 무슨 훤허니 불처럼 밝아서 광명이 아니라, 항상  영령(靈靈) 그걸 ()이라 .


‘어디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왔다갔다 이놈이 없이 화두 일념(一念) 항상 현전(現前)하는 것이 그것이 ()이다. 참선하는 법이 이것이 ()이여.

 


외감부동(不動)하고밖으로는 부동(不動) . 밖으로 외감() 아무리 흔들려대도 ()  .

아무리 밖의 경계가  별별 일이  있어도 화두 하나 현전 독로(獨露)하면은  독로가 깨진 법이 없어. 흩어진 법이 없어. 그까짓 바깥 경계가 아무리 요동을 친들, 속에 화두 마음이 어디 이리저리 흩어지고 그런 법이 없어.


그놈을 깰래야  수가 없어!  같은 ,  같은     있고,  불에 집어넣으면 녹을  있고 하지마는,    없는 의단독로내가 지금 나를 몰랐으니까  그걸  깨달라 알아야   아닌가!

그러면  당념(當念) 지선(至善)하면, 그대로 의단이 독로하면은 그건   없어. 누가 깨뜨릴 수가 없어. 암만  갈래야 가져가지를 못혀.


그래서 밖으로 아무리 흔들거려도 () 아니하며 중적불요(中寂不搖). 중적(中寂)해서 흔들거리는 법이 없다. 중적(中寂)이란  중적(中寂)—‘가운데 ()’, ‘고요 ()’,

중적(中寂) 내나 해야 아무리 ‘이뭣고?’를 누가 가져 갈래야  가져가고, 아무리 그놈을 깰래야   없고, 내버릴래야 내버릴  없는 경계, 그건 천하가  하늘과 땅이 흔들거려도 소용없어.


그걸 중적(中寂)이라 . ‘가운데 ()’, 적적(寂寂)   없는 경계를 ()이라 .

  없는 의단(疑團) 밖에 () 없어! 그놈이 적적해서 온당하게 화두가 드러나서 흔들거려지지 않는 것을 그걸 () 한다. 좌선(坐禪) 여까장 말해 주었어.(1639~2310)()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89~90

夫坐禪者(부좌선자)는  須達乎至善(수달호지선)하야  當自惺惺(당자성성)이니  截斷思想(절단사상)하고  不落昏沈(불락혼침)을  謂之坐(위지좌)요  在欲無欲(재욕무욕)하며  居塵離塵(거진이진)을  謂之禪(위지선)이요

 

대저 좌선(坐禪)이라 함은 모름지기 지극한 () 통달하야 반드시 성성(惺惺) 할지니, 사상(思想) 절단해 버리고 혼침에 떨어지니 아니함을 일컫되 ()이요。 () 처해 있으되 욕이 없으며, () 있으되 진을 여의는 것을 일컫되 ()이요.

 

外不放入(외불방입)하며 內不放出(내불방출)을  謂之坐(위지좌)요  無着無依(무착무의)하야  常光現前(상광현전)이  謂之禪(위지선)이요

撼不動(외감부동)하며  中寂不搖(중적불요)가  謂之坐(위지좌)요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徹法根源(철법근원)을  謂之禪(위지선)이라

 

밖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안에서도 놓아 내지 아니하는 것을 일컬어 ()이요, 주착(住着)함도 없고 의지함이 없어 언제나 광명이 앞에 나타남이 ()이요

밖에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속으로 고요하야 흔들리지 아니할  좌(坐)이요。 광(光)을 돌이켜 반조(返照)하야 법의 근원을 사무치는 것을 일컫되 선(禪)이라.

 

 

 

 

------------------(1)

 

*(게송) 구주한남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贈敏禪子 게송 참고.

*휴휴암주(休休庵主) : 몽산화상을 말함。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초창(初創 처음 초/비롯할·만들 창) ; 절을 처음 세움.

*사량계교(思量計較)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분별(思量分別)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당념(當念) ; 바로  생각.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육단(肉團) ; 육단심(肉團心)—[]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 의탁한 .

*반연(攀緣 매달릴·의지할 /인연 ) ; ①대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 대상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혼란. ②인식함. ③인식 대상. ④얽매임. 집착함. ⑤인연에 끌림.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분다(紛多 어지러울·많은 분/많을 다) ; 많이 어지러움. 엉클어짐이 심함.

*포자농손(抱子弄孫) ; 아들을 품고 손자와 놀다.

 

 

 

 

------------------(2)

 

*오매(寤寐 잠이  ,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5. 8. 7. 17:13

§(560) 간화선(看話禪) / 단정한 자세, 올바른 단전호흡, 다맛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나가야 / 義理禪으로는 생사를 못 면함 / 전강 선사의 용맹정진과 단전호흡의 필요성.

몸을 단정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뺄 것. 그리고 호흡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되 조금도 무리가 없이 하라.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하는 글자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있거든. 그 의심을 이마에다가 두고 ‘이뭣고?’하지 말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단전(丹田)에다 두고 하라 그말이여.
이거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이마에다 두었다 또는 단전에다 두었다’ 할 수가 어떻게 있느냐 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아하, 단전에다 두라는 뜻이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자꾸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걸 터득하게 됩니다.

 

제일 못쓸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공안을 분석하고 따지는 거여. 이건 일본에서 나오는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의 활구참선(活句參禪)에서는 대단히 꺼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데에 있는 것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데 있는 것이지,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그거 공안을 분석해서 따져가지고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죽을 때까지 확철대오를 못해도 상관이 없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알 수 없는 화두를 ‘이뭣고?’ 그러다가 숨이 딱 끊어진다면 그 사람은 진짜 수행자의 바른 열반이여 그게.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용560)

약 21분.



이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스님께서 설하신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방법은 이것은 용화사에서는 ‘최상승법(最上乘)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고, 산승(山僧)도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마는,
이것은 천 년을 두고 많은 선지식들이 이 간화선(看話禪)을 통해서 수행을 해 오셨고, 그래서 이것은 바르게 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바르게 정진을 해 가면 거의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 간화선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안 한다든지, 호흡을 바르게 안 한다든지,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의심하되, 잘못되게 화두를 의심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효험을 봤다고 해서 체질도 다르고 또 약 먹는 방법을 잘못 지나치게 과격하게 먹는다든지 잘못 먹으면 그 약을 먹고 해(害)를 입을 수도 있는 거와 같아서, 이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을 해라. 간절히 이 화두를 의심해라’ 그러니까 간절히 한답시고 너무 용을 써 가지고 미간(眉間)에다가 ‘적을 소(小)’자를 쓰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가지고 너무 힘을 쓰다 보면, 용을 쓰면 기(氣)가 위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눈이 벌게지고, 골이 뽀개지도록 아프고 이러한 병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아주 젊은 소년 시대에 발심을 해가지고 너무 그렇게 용을 쓰고 정진을 하다가 상기병(上氣病)을 얻어서 머리가 터지고, 코로 입으로 피가 넘어오고 하는 그러한 경험을 가진 분의 한 분인 것입니다.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그러한 처절한 그 광경을 들으셔서 많이 다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 도반들은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알 수 없는 의심을 간절히 들되, 단전호흡을 하면서, 단전호흡은 우리의 의식을—숨을 들어마시면 배꼽 밑에 단전(丹田)이 차츰차츰 차츰차츰 약간씩 이렇게 볼록해짐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들어마셨으면 잠깐 정지했다가 또 조용히 숨을 코로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들어마실 때도 너무 가득 들어마시려고 하지 말고 7부(七部)나 8부쯤 들어마셔.
또 머무르는 시간도 너무 얼굴이 벌게지도록 너무 오랫동안 참지 말고, 3초 동안 잠시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되 뱃속이 완전히 등에 딱 붙도록까지 너무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자연스럽게 호흡을 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해 가지고 한 서너 번, 네댓 번만 해도 숨이 가빠가지고 헛숨을 쉬어야 하고, 그런 무리하게 하니까 그래서 이 단전호흡 하다가 또 생병(生病)이 나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리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도 단정(端正)하게 앉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 해가지고 허리에다가, 등에다가, 어깨에다, 목에다, 힘을 주고 뒤로 이렇게 뻣뻣하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
단정하되 허리의 힘도 빼고,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눈도 평상으로 뜨되 눈에다 너무 독을 들여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그말이여.

몸을 그렇게 단정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뺄 것. 호흡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되 조금도 무리가 없이 하라 그말이여.

 

처음에는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화두를 하는 분은 ‘이뭣고?’ 무(無)자 화두를 하는 분은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하는 글자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있거든. 그 의심을 이마에다가 두고 ‘이뭣고?’하지 말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단전(丹田)에다 두고 하라 그말이여.

이거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이마에다 두었다 또는 단전에다 두었다’ 할 수가 어떻게 있느냐 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아하, 단전에다 두라는 뜻이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자꾸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걸 터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성(惺惺)하고 그럴 때는 단전에다 두고 하고, 너무 혼침(昏沈)이 오고 기(氣)가 가라지고 할 때는 미간(眉間)에다가 화두를 딱 두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졸음도 달아나고 또 무기력한 기운이 없어지고 다시 또 성성해지면 다시 그 화두를 단전에다 딱 두고 하고. 이게 문무지법(文武之法)이여.
그때의 자기의 기(氣)가 올라가면 밑에다 두고, 너무 침체하면 위에다 두고 하는 것은 그것도 나중에 정진을 해서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러한 요령이라고 할까, 그러한 방편을 써도 좋은 것입니다.


제일 못쓸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공안을 분석하고 따지는 거여. 이건 일본에서 나오는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의 활구참선(活句參禪)에서는 대단히 꺼리는 것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다 분석을 해 놨습니다. 그렇게 분석해서 그 의리선(義理禪)으로 따져서 공안마다 그럴싸한 해답을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어떻게 그것이 생사를 면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데에 있는 것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데 있는 것이지,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그거 공안을 분석해서 따져가지고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그것은 밥벌이도 되지도 않는 거고, 자기 생사도 못 면하는 거고, 결국은 저도 죽고, 그러한 식으로 남을 가리키면 남까지 그르치고 정법을 멸망하는 결과 밖에는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설하신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도 그러한 무자(無字)를 참구(參究)해 나가는 데 그런 10가지의 잘못 공부해 나가는 법과 바르게 해 나가는 법을 가려놓으신 것인데,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만 해 가면 무자십절목이고 백절목이고 따질 것이 없어.

우리는 그 무자십절목 새기기도 어렵고, 바로 설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법문이지만,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궁금하니까 ‘무자십절목을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가지고 그런 병에 걸리지 말아야겠다’ 혹 그러한 생각을 내실는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알 수 없는 의심,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다맛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면 돼.

‘이것이로구나’하고 생각하면 그게 아니어. 그런 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고,
오늘도 다맛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꽉 맥힌 의심으로만 나가야 그 공부는 바르게 해 나가는 거고, ‘아하,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면 그건 바른 공부가 아니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은 바른 깨달음으로 연결이 되지 아니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활구참선이 아니어. 죽은 참선이요, 사구선(死句禪)이여.
그래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를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 알아 들어가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여.

그래서 죽을 때까지 확철대오를 못해도 상관이 없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알 수 없는 화두를 ‘이뭣고?’ 그러다가 숨이 딱 끊어진다면 그 사람은 진짜 수행자의 바른 열반이여 그게.확철대오를 못했더라도 하나도 후회할 것이 없어. 금방 그 사람은 몸 바꿔 나서 다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몸을 받아날 것이다 그말이여.

조실 스님께서 열일곱, 여덟 어린 나이로 출가해서 결국은 23살의 새파란 청년시절에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열반하신 조실 스님의 어릴 적 도반이신 고암 대종사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자네 스님은 전생 공부여”
금생에 물론 머리가 터지도록 용맹정진을 하셔서 그렇게 깨달으시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깨닫는다면 누가 안 하겠냐 그말이여.

물론 과거에 많은 조사(祖師)와 선지식들도 목숨 바쳐서 다 그렇게 정진을 해서 다 깨달으신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 도반들이 ‘나도 조실 스님처럼 그렇게 해야겠다’ 밤잠을 안 자고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 그러한 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이걸 강요하기가 어렵고, 자발적으로 속에서 신심과 분심이 섞여 나와 가지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져야 하지, 억지로 권할 수도 없고, 억지로 한다 해도 며칠 안 가면 또 떡심이 풀어져서 잘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속에 불이 붙어서 한다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바른 방법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가지고 하라’고 조실 스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이 그런 것, 저런 것도 따지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하셨다 그말이여.
오기로,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해 가지고 결국은 병을 얻으셔. 병을 얻어 가지고도 공부를 그만두지 않고 죽을 폭을 내고 밀고 나가가지고 결국은 깨달으셨어.

그래서 혹 여러분 가운데에 그렇게 가행정진, 용맹정진 하다가 병이 났다고 해서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지 단전호흡을 하면서라도 기어코 밀고나가야 합니다.

밀고나가서 기왕 병든 김에 ‘공부하다 죽으면 내가 상관있느냐. 도업을 이루지 못하고 백년을 살면 뭣 할 것이냐. 차라리 이 공부를 하다가 죽어서 몸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중도에 폐지할 수가 없다’고 하는 그러한 각오와 그러한 신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꼭 병이 나야만 확철대오 하는 것은 아니고, 조실 스님께서는 당신의 그런 너무너무 참 가슴 아픈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에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기초로 잘해 가지고 하면은 아무리 용맹정진을 해도 그런 무서운 상기병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자신을 가지신 것입니다.

‘임제종(臨濟宗) 계통의 모다 어록을 보면 뭐 단전호흡 소리는 있지도 않는데 무슨 단전호흡을 하느냐?’ 그렇게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로 이 단전호흡을 주장하는 종파는 조동종(曹洞宗)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임제종 계통의 선지식은 중국에서나 이 한국에서도 전강 조실스님을 제외하고는 별로 이 단전호흡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많이 안 하십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수식관(數息觀)이라든지 그런 것을 방편으로 권장을 하신 것을 보면,
꼭 조동종 이전에는 이 호흡에 관한 것이 없느냐 하면 부처님 때부터서 있어 왔고, 그러니까 ‘이것은 외도(外道)들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속단할 일이 아니고.

신선도에서 주로 이 단전호흡을 해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도모하는 것은 사실이나,
부처님 때부터서 이 수식관법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조동종에도—조동종도 외도가 아닙니다. 조동종도 분명히 육조(六祖) 스님 이하에서 벌어지는 오종가풍(五宗家風)의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를 종주로 해서 발달한 당당한 선종(禪宗)의 종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애당초에 며칠만큼씩 정기 법회를 여는 것은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라문(婆羅門) 계통 그런 외도들이 1주일에 한번이라든지, 열흘에 한번이라든지, 보름 만에 한번이라든지, 정기 법회를 열어가지고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한다고 하니, 우리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러면 그렇게 하자’해 가지고, 부처님께서도 보름마다 이렇게 정기 법회를 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도가 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우리 불법문중(佛法門中)에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면 그것을 개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을 꼭 그 외도들의 하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잘 이용을 해서 몸도 건강하고, 공부하다가 상기병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한다면은,
다 같이 병들지 않고 구경(究竟)의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활보(闊步)를 한다면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눈앞에 공화(空花)에 지내지 못하다.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서 불조의 득인증처(得人憎處), 패궐처(敗闕處)를 바로 봐 버린다면은 삼세제불이 눈앞에 공화(空花)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말이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똥 닦아 내버린 종이’라고 하신 조사(祖師)의 말씀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결제 법문은 그새 다 들어 마쳤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올라와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마는, 이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각처에서 모이시고, 다 같이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되었으니 선배의 입장에서 새로 발심(發心)한 신참(新參) 도반들을 위해서 장애 없이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바심절(老婆心切)로 이런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23분17초~44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 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 기운 기, 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7부(七部)나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80% 정도 만큼.
*헛숨 ; 아무 까닭 없이 내쉬는 숨.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단정하다(端正-- 바를 단/바를 정)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참구(參究 헤아릴 참, 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막론하다(莫論--) ; 이것저것 따지고 가려 말하지 아니하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나아간다는 뜻.
①이미 연구를 쌓을 만큼 쌓은 위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더 연구를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말.
②백척간두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서, 막다른 매우 위험한 지경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죽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말.
③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더욱 그 깨달음을 넘어서 절대의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백 척이나 되는 저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闊步)를 한다면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눈앞에 공화(空花)에 지내지 못하다.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서 불조의 득인증처(得人憎處), 패궐처(敗闕處)를 바로 봐 버린다면은 삼세제불이 눈앞에 공화(空花)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말이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똥 닦아 내버린 종이’라고 하신 조사(祖師)의 말씀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세등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니라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바로 그 본체(本體)는 본래로부터 소리와 빛이 끊어졌다. 그 자리는 소리도 없고 색상이 없기 때문에,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요. 찾은즉 알거라, 그대는 그 자취를 보지 못할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만 귀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고, 색상(色相)이 있어야—빛깔이나 무슨 모양이 있다면 그 자취를 볼 수가 있건마는, 본래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라고 하거나, 귀로 들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다 그말이여.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은 수미산(須彌山)이란 말인데, 최고의 높은 산이여.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만큼 올라간 수미산 꼭대기 정상에서 한번 몸을 굴리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여. 백척(百尺)이나 되는 장대 위에서 한 걸음을 내디디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라. 시방세계(十方世界)에 그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더라.
백척간두에서 행여나 떨어질세라 그놈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그를 만날 수가 없지만, 거기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에, 온통 눈으로 보이는 것은 전부 바로 그놈이요.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가 그것이 아닌 것이 없어.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떡심 ; 기운이나 힘.
*오기(傲氣 오만할 오, 기운 기) ;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떤 일에 끝까지 덤비는 경향.
*우격다짐 ; 억지로 우겨 내몰거나 강요함.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이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은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동이겠지만, 「조」는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이 그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의 「조」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를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 면목으로써 종지(宗旨)를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이 1223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년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외도(外道 바깥 외, 길 도) ; 불교 이외의(外) 다른 교(道).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육조(六祖) 스님,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종가풍(五宗家風)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제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및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의 가풍(家風, 전통적인 독자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을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제2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은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3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5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7세 나한계심(羅漢桂琛)의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01~206 참고.
[ 臨 濟 家 風 ]  赤手單刀로  殺佛殺祖로다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劒하야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야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麼아  青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三玄)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로 알아 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 曹 洞 家 風 ]  權開五位하야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야  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야  截萬機穿鑿이로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壺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麼아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조동가풍 : 권도(權道)로 오위(五位)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견의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 묘하게도 맞추어서 모든 기틀의 천착(穿鑿)을 끊음이로다
위음왕불 나시기 전 눈에 가득한 풍경이요, 공겁 이전 별(別) 세계 경치로다。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정편(正偏)이 유무(有無) 기틀에 떨어지지 않음이로다。

[ 雲 門 家 風 ]  劒鋒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掀翻露布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하니  迅電은  不及思量이요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麼아  柱杖子跋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説法이로다

운문가풍 : 칼날에는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온 천하의 갈등을 둘러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 버리니, 번쩍 하는 번갯불은 사량으로 미칠 수 없거니,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요。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도다。

[ 潙 仰 家 風 ]  師資唱和하며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崢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一搥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潙仰宗麼아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眠少室이로다

위앙가풍 :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뾰족하구나。방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를 한 망치로 부수었네。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러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 法 眼 家 風 ]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髑髏는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觸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黄花는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麼아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법안가풍 : 말 가운데 메아리가 있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 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꽃은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달 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의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에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종(宗)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곳.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곳.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송담 스님 법문 (No.521, No.636) 참고.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신참(新參 새·처음 신/참구할·참여할 참)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5/5)(끝)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9)—몽산 02-3. 몽산시 고원상인(5) (임자72.07.14)
 
(1) 약 22분.
 
(2) 약 5분.
 
(1)------------------
 
송탑명산우(松榻鳴山雨)허고  방인영낙매(傍人詠落梅)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장춘몽파(一場春夢罷)허고  시자점다래(侍者點茶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탑(松榻)에서 산우(山雨)는 우는데, 솔밭 꽉 찬 데서 비가 주루루루 떨어지니, 솔냉기가 모도 그 빗소리에 운다 말이여.
방인(傍人)은 영락매(詠落梅)로구나. 곁에 사람은 매화시(梅花詩)를 지어서 읊으는구나.
 
일장춘몽파(一場春夢罷)하니, 꿈을 한번 척 깨고, 꿈에 꿈에 그랬든 것이여.
한번 공부하다가 잠깐 조는 동안에 산비는 와서 솔냉기는 빗소리에 모도 야단들인데, 옆에 사람은 매화시를 짓고 있어.
 
꿈을 한번 턱! 깨고 나니까 시자(侍者)가 차를 가져왔구나.
‘다(茶) 한잔 잡수십시오’ 갖다 드린 바람에 대오(大悟)를 해 버렸다. 그대로가 말후구(末後句)여.
 
공부를 이렇게 해 들어가다가 경계를 당해서, 그저 밥 먹다가도 툭 깨고, 반찬 집어서 입에 넣다가도 툭 깨고, 가다오다 가도 툭 깨버리고, 이런 거여.
활구선(活句禪)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여. 안 깨고는 안되아. 깨는 법이지. 
 
안 깨고는 아무리 공안(公案)을 천 공안, 만 공안을 다 알아도, 거 알았지 깬 것이 아니여.
알아만 놓았지, 알아 놓은 그것이 글 배워서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아무 소용이 없어.
생사(生死)에 필요가 있어야지. 어디 조금도 무슨 효과가 없다 그말이여.
 
그러니 ‘지지일자(知之一字)가 중화지문(衆禍之門)이니라’ 아는 것으로는 중화(衆禍)의 문(門)이여.
모도 생사 끝, 생사고(生死苦) 밖에는 안 되아. 생사거리 밖에는 된 거 아니여. 망상 번뇌나 생사 그거 밖에는 된 것이 아니여.
 
그러허니 화두를 몹시 기가 맥히게 다뤄서, 안되고 또 안되더라도 안된 놈을 추켜들고 또 허고 또 허고, 그저 그놈만 들입다 파 뒤집어 연속해서 해 나가면은,
거기에서 모도 그만 그 자취 없이 일어나던 망념이 다 죽어. 망념이 다 거그서 제대로 다 죽어부러, 없어. 화두 하나만 달랑 남아.
 
필경 그래 가지고는 화두 그놈은 의심이 파(破)하지, 안 파할 이치가 없거든. 그러니까 화두를 등한(等閒)히 말아라.
 
어떻게 해야 하냐?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에는 화두가 제대로 현전할 때에는,
제대로 현전해. 그걸 할라고 해서 현전도 아니요, 억지로 무슨 쌩화두를 들라고 해도 현전이 아니요, 현전을 만들라고 해도 현전이 아니여.
 
화두가 저절로 현전시절(現前時節)이 오느니라.
애만 써 봐라. 그저 화두를 들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잘 다루어 거각(擧却)해 나가면은 망념이 붙지 못한 곳에서 제대로 현전한 때가 와. 

 

여시지시(如是之時)에, 이와 같이 화두가 될 때에 공부를 득력(得力)이라 한다. 그걸 득력이라 해.

억지로 무슨 맨들라고, 억지로 그놈을 추켜들어 가지고는 의심을 따로 맨들라고?

알 수 없는 것뿐인데, 뭘 만들어 만들기는.

 

아! ‘이뭣고?’가 그대로 모르지, 어디 아는가?

‘이뭣고?’해 보지! 그만 모르는 놈뿐이지. 어디 아는 게, 뭐 어디서 생겨나?

무슨 거기에 소집(所執)이 있을 것이여.

 

알 수 없는 놈 하나 나와 가지고는, 그 처음이니까 알 수 없는 놈 하나 했다가는 금방 없어지고 딴 놈이 들어와서, 또 그놈 꺼져 버리고 또 멸해 버리고 또 딴 놈이 들어오고,

밤낮 그놈 망념(妄念)이 갈아들고, 그저 이놈 나오고 저놈 나오고 그저 별 생각이 다 나오고.

 

그놈을 그저 그것 나오거나 말거나, 뭔 망념이 어디서 제가 뭐... 내비두어 버려. 그 같은 건 나오건 말건.

그러니 ‘이뭣고?’만 챙겨. 꼭 ‘이뭣고?’가 그만...

 

판치생모(板齒生毛)만 찾어. 필경 '판치생모'는 조주(趙州) 뜻이니까.

일체 공안이 다, 그 공안이 큰스님네 뜻이여. 딱 맨들어 놨으니, 낙처(落處)는 천 공안이나 만 공안이나 깨달라 놓고 보면 똑같어.

 

그 낙처에 가서는 다른 법이 없어.

생사 없는 법 하나밖에 없지마는 경계에 따라 말이 다 다르거든. 다르나 그냥 확철대오 해버리면 암만 달리 해 놨어도—아무리 중생이 모두 중생견(衆生見)으로는 찾아볼래야 도저히 볼 수 없어.

툭! 깨서 중생견이 툭 절단(斷)나 버린 뒤에사 그놈이 보이는 것이여.

 

뻘로 그 좀 ‘깨달랐다’고, ‘알았다’고, 요러고 대들어.

그 ‘알았다’했으니, ‘아니라’고 하면은 아닌 줄 알아야지. 빡빡 우기고 대들어?

고런 걸 뭣 할 것이여 그거. 아니니깐 아니다 하는 것인데, 벌써 세우고 대들고. 그것 참!

 

이렇게 현전(現前)된 것을 공부(工夫) 득력(得力)이라고 한다.

 

공부 득력 되었을 때, 화두(話頭)가 순일(純一)해서 그대로 참 제대로 화두가 그만 불거자거(不擧自擧)가 되었을 때 각요호지차개염두(卻要護持此箇念頭)해라. 문득 이 낱 염두(念頭)를 호지(護持)해라.

 

그 말은 저절로 화두가 자꾸 되어서 의심이 똑 불무더기 같이 일어날 때, 다른 마음 조금도 없이 화두만 온전히 일어날 때,

그럴 때에 그 염두(念頭)를—화두 그렇게 잘 일어나는 그 지경을, 화두를—보호를 해서 가져라. 잘 가져라.

 

자꾸 속념(續念)을 해, 염(念)을 일으켜서.

거그 조금만 잘된다고만 방념(放念)하면 못쓴다. 화두를 잘 가져라. 

 

상상상속(常常相續)해라. 항상 항상 서로—이게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 말 같지마는 참 무섭게 화두 간택해 준 말이여.

상상상속(常常相續)해라. 항상 항상 화두를 상속(相續)을 해라. 알 수 없는 놈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게.

조금만 떨어져도 그 못쓴다. 그럴 때에는 아주 그 번뇌 망념이 더욱 들어오기 쉬워.

 

나는 막 모기가 물어서 여그 다리를 막 그냥 찝어 뜯고, 손을 막 쿡 찌르고 해도 기어이 참고 법문을 허요.

그걸 참고 법문 하는데, 아! 법문들을 때 고것 쫌 문다고 찰탁 때리지 마시오. 그 좀 그놈도 먹고 살아야지. 못된 놈이지마는 그걸 갖다 그래 기어이...  좀 잘 들으십시오. 참 잘 들어야 합니다. 

 

항상 항상 상속을 해라. 참 거 좋은 말이지.

어좌중(於坐中)에 갱가정력(更加定力)이니라. 앉어서 공부하는데, 좀 앉었는데서 더 정력(定力)이 오느니라.

 

앉어서 그래도 해야 화두가 잡히고 자리가 잡히고 정력(定力)이 오지.

안 앉고 돌아댕기고, 조금만 해도 홱 일어나고, 그저 더웁다고 홱 일어나고, 그저 그렇게 경(輕)해서는, 공부해 나가는데 그 경(輕)해서는 안되느니라.

 

어저께 내가 “그 날을 좀 봐라. 그 오늘은 몇 도나 된가 봐라”했드니, 가보고 나서 “37도 입니다”

37도면 금년에 두 번이여. 나중에 또 보니까 38도여. 7도가 좀 넘었어. 8도는 다 못 됐는가 몰라도 조끔.

 

그때가 1시 인데, 에이 이놈! 이렇게 더울 때는 돌아댕겨도 더 더웁고, 자리를 옮겨도 옮길 때마다 더 더웁고,

에이 이놈, 또 내가 밤 정진할 때 앉었든 버릇으로 그만 걸상에 앉어서 역부러 1시부터 2시, 3시, 4시, 5시, 6시까지 앉었었어 내가.

 

6시까지, 뭐 찾아와서 날 볼라고 해도 내가 뭔 눈 뜨고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앉었었어.

그까짓 것 뭐, 즈그(저희) 할 말 있으면 즈그 하지 뭐, 내 소용없다 하고는 딱 그만하고.

여그(여기) 누가 들어오면 눈을 떴다가도 감고, 부채로 그만 얼굴을 가려 버리고, 그러고 앉어 봤다 그말이여.

 

다섯 시간을 결정하고 앉어서 그 더위를 더운 줄 몰랐어. 참말로 더위를 몰랐어. 내가 이거 실지여!

 

더웁다고 밤낮 그저 그만 쪼끔 났다 쪼끔 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거 훨씬 더 더웁고, 화두는 도망가고 없고, 화두 살림살이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어.

 

조금 더웁드래도 참고, 아무리 땀이 흐르드래도 좀 참고 닦아 가면서라도, 자리에 좀 앉어서 갱가정력(更加定力)할 것이다.

내가 어저께 지켜봤다 그만 한번 해 봤구만, 나도 더위를 못 견디다가.

 

어좌중(於坐中)에 갱가정력(更加定力)이다. 앉는 가운데에서 화두라는 것은 정력(定力)이 온다. 자리가 잡혀.

정력이 다른 게 아니라, 자리가 잡힌 것은 화두가 자꾸 연속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진다 그말이여. 화두의심이 난다 그말이여.

 

정력이 다른 게 아니여. 화두 없이 정력이 어디 있어?

화두가 의심이 그저 일어나면서 도망가지 않는 것을 정력이라 해야.

 

상자(相資)니라. 정력(定力)이 그놈이 자루가 되어, 딱 붙어가 되어, 딱 있어야 된다.

날라댕기는 짐승도, 굼벵이가 되어 가지고는 굼벵이가 몇 달 가만히 그놈이 들어가서 먹도 않고, 그 갑(匣) 속에 들어앉어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그놈이 거기서 툭 트고 나비가 되어 나오고, 날개를 그놈이 훌훌 나는 그러한 그 신통구(神通具)를 이 몸뚱이서 갖춰 가지고 나온다 그말이여.

 

우리 참선도 역시 ‘중생이 부처 되는 지경’인데, 거기서 한번 정력이 있어 가지고 한번 바로 깨지 못하고 되아?

아무 때나 좀 공부하다가 될 것 같으면 세상에 그 뭐..

 

상자(相資)니라. 그렇게 서로 상자가 되어야—정력이 되어 가지고 딱! 그 정력이 요동이 없어야사 위묘(爲妙)니라. 도(道)에 묘(妙)가 된다. 그게 참 도묘(道妙)다. 

 

홀연축착합착(忽然築着磕着)이니라. 홀연히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할 것이다.

맷돌이라는 것이 하나 가지고 되나? 밑에 돌, 윗돌 그놈 갖다 딱 합하면은 고놈이 한데 딱 합해져야 거다 뭘 넣고 갈지. 고렇게 딱 맞아지고.

 

대쪽 맞듯 할 것이니라. 대쪽을 쪼개 놓았는데 쪼갠 놈 갖다 그대로 맞춰야 딱 맞지, 딴 쪽은 안 맞지? 제대로 쪼개 논 놈 제대로 갖다 딱 맞추면은 딱 맞지.

 

공안(公案)이 요렇게 탁 탁 깨달라지면은 저절로 맞아져 부러. 요럴 때가 오느니라. 

 

심로(心路)가 일단(一斷)하면은 그때에사 심로가 끊어진다. 중생로(衆生路)가 끊어져. 중생 그 번뇌 망념길이 끊어져.

그놈의 번뇌 망념길이, 우리 중생의 번뇌 망념길이 끊어질 때가 있어? 끊어질 때가 있어?

 

졸고 앉아서 듣는 것 좀 봐라. 졸면 법문이 들어가나?

옆을 쳐다보지 마라. 즈그가 졸고 앉어서 옆 쳐다보니라고.

졸고 앉아서 법문이 들어가냐 그말이여. 눈을 뚝 뜨고 듣지 눈을 감고 듣지 말어.

 

화두 법문이여. 화두 법문! 화두 법문을 들어야 해.

누가 화두 법문을 할 거여? 화두 법문 할라면 내놔 봐, 할 사람 있는가?

 

화두 법문. 참선에는 화두 법문이 그만이여.

낱낱이 화두 법문 와서 대문대문(大文大文) 하라고 해 봐. 뭐 뭐 내 떨어놓고 말해.

한국에 누가 와서 할 사람이 있는가 해 보란 말이여.

 

내 이 자리에서 보면은 인자 “엣따, 자기만 그런 소리 하는가 보다”고 그럴 사람도 있어. 누가 못해? 아무 때나 할라면 다 하지.

 

심로(心路)가 일단(一斷)이다. 심로가 한번 턱! 끊어진 곳에 중생의 버르정머리 절단 나버리는 것이여.

중생의 버르정머리는 심로여, 마음길이여, 번뇌 망상길 밖에 없어.

 

잠자면 꿈꾸고—어쩌다 꿈 없을 때 있지마는, 잠자면서 꿈꾼 것이 생전에 그 모도 하던 버르정머리 그게 꿈에 나타나는 것이지. 만날 꿈뿐이여.

어쩌다 꿈 없는 지경이 있지. 꿈 없는 지경은 그 뭐이냐 하면 제8식장(第八識藏), 근본무명 식장이여 그것이.

 

심로(心路)가 제대로 끊어진다. 처꺽 한번 뒤집어 버린다.

변유대오(便有大悟)다. 그때 가서 대오가 있다.

바로 깨달은 대오가 거기에 바로 그대로 갖춰져 있어. 뭐 딴 데 있는 거 아니다. 대오니라.

 

오료(悟了)에, 깨달아 마친 뒤에는 갱문사건(更問事件)이 있어. 다시 무슨 사건이 있어.

갱문사건은 뭣이냐? 다시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물어야 한다. 다시 오후(悟後)에 인자 그때 가서 정말 스님을 찾아야 한다.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옳은 스승을 바로 찾아야 해.

 

이런 것 좀 일러줘. 이런 여그 바로 써 놓은 것 좀 일러줘. 저 홍콩 대사한테 좀 일러줘.

왜 그런 것 좀 잘 가르켜 주라고 하는데 안 가르켜줘? 이거 잘 써서 한문으로 얘기해 줘.

법문이 기가 맥히게 해 놓은 소리 아닌가. 딴소리 말고 요런 것 또 잘해서 해석해 주면 알 거여, 한문으로.

 

다시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물어라. 오후사건이란 게 참 무섭다.

제가 깨달라 가지고는 설사 옳게 깨달랐다 하드래도 깨달라 가지고는 공안에 탁마(琢磨)가 없으면 안돼.(처음~21분33초)

 

 

 

 

 

(2)------------------

 

탁마라는 것이 거기에 중대한 것이여. 조끔만 잘못되어도 그 안돼.

그러니 오후(悟後)에 탁마가 있으니, 오후에 그 탁마(琢磨) 다시 그 사건을 물어서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처꺽 다 떼어 주면, 그때 가서는 바로 보았으니깐 하나도 걸림이 없거든.

 

그런 것 탁마 못하고, 자기 혼자 무슨 하나 깨달랐다고 그까짓 것 가지고 학자 앉아서 가르킨다고 했자 모도 잘못 가르키는 수가 있거든.

그래 조주 스님 같은 이도 여태 마복(馬腹)을 세 번 면치 못했다고. 바로 보지 못하고 남을 일러줬다 그말이여.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탁마가 없이 남을 바로 일러줘 놓고는 큰일이거든.

 

그 전백장(前百丈)도 말 한마디 일러주어 놓고는, 뭐 잘못 일러주었나? 바로 일러주었지.

“대수행인(大修行人)이 불락인과야무(不落因果也無)이까? 큰 수행인이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불락인과(不落因果)니라. 인과(因果)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그 인과에 떨어지지 않지, 뭐 인과에 떨어질게 뭐 있나? 무슨 인과에 떨어져. 소가 되고 말이 된다 한들.

 

 

위산(潙山) 스님은 “내가 죽은 뒤에는, 시주것을 많이 먹고 내가 여태까지 살았으니 시주 은혜를 갚을라니 할 수 없어 내가 시주 집에 가서 농우(農牛)가 되어, 시주 집에 가서 큰 농사 짓는 소가 되어 가지고,

협하서자(脇下書字)에, 갈빗대 밑으로는 ‘위산승(潙山僧)’이라 쓰고, 대갈빡에는 뿔을 이고 나올 것이니라” 그랬다 그말이여.

 

위산 스님 같은 그러한 큰스님이,

“내가 죽은 뒤에는 산하(山下)에 그 시주 집에 가서 내가 시주것을 많이 먹었으니 시주 집에 가서 큰 농우가 농사짓는 소가 되어가지고 오되, 이마빡에는 뿔따구를 뒤집어쓰고 갈빗대 밑에는 ‘위산승’이라 써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래 안 했어?

 

낱낱 갚지, 안 갚아? 시주 은혜를 안 갚은 줄 알어?

도만 닦으면 안 갚은 줄 알어? 도 닦아 가지고 견성해 가지고는 더 갚는 법이여. 낱낱이 갚는 법이여.

 

“위산승(潙山僧)이라고 할 것 같으면은 소가 아니고, 소라고 할 것 같으면 위산승이 아니니, 너희가 한마디씩 일러 봐라” 그 기가 맥힌 공안 아니냐 그말이여.

 

갱문오후사건(更問悟後事件)을 해라. 

 

여기를 와서 일주일 동안이나, 얼마 동안이나 있을라고 하는 것은 그 법문 한마디라도 배워 가지고 갈라고 있는데, 한마디 일어준 법이 없지. 그렇게 부자비(不慈悲)해 가지고 뭣 되아.

 

요러한 데 가서 고런 말 하나 잘 일러주어. 일러주어서 알도록 해 가지고 한국의 그 활구참선 하는 법을 알려줘.

내게만 미뤄, 나만 하면 어떻게 할 거여 내가? 내가 어떻게 그런 말 저런 말 내가 다 갖다 보여?

 

아이고! 아침에 법문 이렇게 한마디 하고 나면 그만 종일 머리가 아파. 뭐 보통 괴롭지 않어. 하지마는 대중을 위해서 내가 하는 것이고.

아! 그 다음에 고런 것 하나 못 일러 줘? 쬐끄만한 요만한 걸 싫어해 가지고는 살살 도피하네. 그래 가지고 무슨 놈의 도학자(道學者)라고 해.(21분34초~25분49초)(끝)

 

 

 

 

 

------------------(1)

 

*(게송) ‘송탑명산우(松榻鳴山雨)~’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西山休靜, 박경훈 역 |동국대학교역경원) p77 ‘우음(偶吟)’ 게송 참고.

*시자(侍者) ; ①시중(從)을 드는 사람. ②스승, 장로를 따라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승(高僧)의 가까이서 시중을 들고 명령에 따르며, 항상 용무를 다하는 제자를 말한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가다오다지나는  우연히어쩌다가 가끔.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거리 ; 생사(生死)의 내용이 될 만한 재료.
*들입다 ; 세차게 마구.
*‘화두 그놈은 의심이 파(破)하지’ ;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쌩화두 ; 생화두(生話頭). ‘생(生)-’은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억지스러운’ ‘낯선’ ‘서투른’의 뜻을 더하는 말.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소집(所執) ; ①이해되어야 할, 감지(感知)되어야 할, 지각(知覺)되어야 할, 주장되어야 할, 간파되어야 할 등의 뜻이 있다. ②인식의 대상.
*망념(妄念) ; 망상(妄想).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갈아들다이미 있던  대신하여 새로 들어오다.
*낙처(落處) ; 안정된 곳. 결국의 장소. 귀착점(點 최종적으로  맺을  있는 결론). 요지(要旨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불거자거(不擧自擧) ;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지는 것.
*경(輕)하다(이나 행동)진중하지 못하고 경솔하다.
*밤 정진 ; 보통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잠자는 시간인데, 이때 잠자지 않고 하는 정진.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자루 물건 담을  있게 헝겊 따위 주머니처럼 크고 길쭉하게 만든 물건.
*갑(匣, 작은 상자 갑) ;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
*대문대문(大文大文)  도막이나 단락마다.
*버르정머리 ; ‘버르장머리('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식장(識藏) ; 아뢰야식(識). 진여(眞如)인 여래장(如來藏)이 무명(無明)과 화합하여 아뢰야식(識)이 되고 일체의 사상(事象)을 나타내기 때문에 식장(識藏)이라 함.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2)

 

*위산수고(潙山水牯) ;

老僧百年後。向山下作一頭水牯牛。左脅下書五字。曰。山僧某甲。當恁麼時。喚作山僧又是水牯牛。
喚作水牯牛又是
山僧。畢竟喚作甚麼即得。仰山出禮拜而退。

— 卍新纂續藏經 제80책 No. 1565 <오등회원(五燈會元)> (제9권)
*위산(潙山) : (771 – 853) 법명은 영우(靈祐), 속성은 조(趙)씨。당나라(唐) 대종(代宗) 때에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장계(長鷄)에서 났다。열 다섯 살에 출가하고, 스물 셋에 백장선사(百丈禪師)의 법회에 가서 공부하였다.
추운 겨울에 밤늦도록 방장실(方丈室)에 올라가서 문법(問法)하는데, 백장 화상이 『화로에 불이 있느냐?』고 묻기에, 대강 뒤져보다가 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화상은 친히 화로 속을 깊게 뒤져서 작은 불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하는 데서 크게 깨쳤다.
그 뒤에 호남성(湖南省) 담주(潭州) 장사부(長沙府)에 있는 위산에 새로 절을 짓게 되자, 그곳에 가서 사십여 년 교화하여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회중이 항상 일천 오백 명을 넘었고, 입실(入室)하여 법을 이은 제자가 사십 일 명이었다.
당나라 선종(宣宗) 7년에 입적하니 나이 83세, 법랍이 64세。그의 제자 중에서 앙산(仰山) • 향엄(香嚴) • 영운(靈雲) 등이 뛰어났다。저술로는 <위산경책(潙山警策)> 그 밖에 <어록(語錄)>등이 많다.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부자비(不慈悲)하다 ; 무자비(無慈悲)하다. (사람이나  태도)냉혹하고 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