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 (게송)직하본래무일사~ / 싸움 속에서 싸움 없는 삶을 산다 /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 화두지, 없는 내놓고 의심이 따로 있는 아님.

 

오탁악세에 나와 가지고도 정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오탁악세가 발심(發心)하기에 더욱 좋고, 공부하는 데에 더욱 유익한 유리한 그러한 조건이 되어 것입니다.

 

화두에 대한 의심이라 하는 것은이뭣고?’했을 앞과 뒤가 거기에서 끊어지거든. 없는 생각 이외의 다른 생각은 거기서 끊어져야 화두를 옳게 드는 것이여.

 

화두를 가지고 일심으로공부가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된다고 생각 되건, 안된다고 생각이 되건, 때로는 혼침이 일건, 때로는 산란심이 일건 그것도 묻지를 말고, 산란심이 일어도이뭣고?’, 혼침이 와도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앞뒤가 끊어진 의심 하나로만 계속 잡드리를 나갈 뿐이다.

 

**송담스님(No.480)—92 9 첫째일요법회(92.09.06) (용480)

 

약 15분.

 

직하본래무일사(直下本來無一事)한데  위언무사조상기(謂言無事早相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죽견인천성적적(筧引泉聲滴滴)한데  송창래월영지지(松窓來月影遲遲)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직하본래무일사(直下本來無一事)한데  위언무사조상기(謂言無事早相欺)로다.

바로 본래 일도 없어. 화두(話頭)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의심(疑心) 클라야 수가 없고, 간절할래야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고. 그래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고, 자기의 불성(佛性) 보게 된다 그말이여.

대장부(大丈夫), 일대사(一大事) 마친 도인(道人) 경계는 더이상 배울 것이 없고 더이상 것이 없다.

 

일도 없다[無一事]’ 그래도 벌써 일도 없다하는 놈이 있기 때문에 벌써 스스로 속는 것이다 그거거든.(謂言無事早相欺) 참으로 일이 없으면일이 없다 생각도 없어야지,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면 일이 벌써 하나가 있는 것이다.

 

죽견인천성적적(筧引泉聲滴滴)한데, 대를 쪼개 가지고 홈대를 만들어서 샘에서 물을 받아내는데산중 절에 가면 대나무로 홈대를 만들어서 샘물을 끌어다가 먹는데, 대나무 홈대로 물을 받아서 그놈이 졸졸졸 흘러 내려오는 소리가 새벽부터 하루종일, 밤중에 고요할 때면은 물소리가 들린다 그말이여.

송창래월영지지(松窓來月影遲遲). 창에 달빛이 비추는데 그늘이 더디고 더뎌. 이건 산중에, 산사(山寺) 적적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 생활하는 도인의 산사 생활을 읊은 게송입니다.

 

 

오늘은 임신년 9 6 첫째 일요법회날인데 온통 세상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몹시 복잡하고 어려운 때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보제자,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그런 복잡하고 어려운 속에도 이렇게 날씨는 아직 내일이 백로(白露)라고는 해도 잔서(殘暑) 삼복(三伏) 못지않게 이렇게 따갑고 더운 데도 불구하고 일요법회에 이렇게 많이 참석을 하셨어.

세상이 어렵고 복잡할수록에 우리 불자들은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서 신심을 돈독히 해서 법문도 열심히 듣고, 법문(法門) 의지해서 착실하게 정진을 다가가야 한다는 그러한 뜻으로 도인의 산사 생활을 읊은 게송을 읊어 드렸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께서는 신해년(辛亥年), 열반하시기 4 갑인년(甲寅年) 열반하셨으니까 신해년은 4 전인데, 4 전에 설하신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법문의 요지는 여러분이 들으신 바와 같이 우리 오탁악세(五濁惡世)!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년은 정법시대(正法時代) 그러고, 다음 년은 상법시대(像法時代) 그러고, 다음 이후를계법(戒法) 말년이라 이렇게 일컫는데, 우리는 말법시대(末法時代) 지금 태어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 무슨 정법·상법·말법을 말할 것은 없지마는 그래도 일반적으로 말법시대는 투쟁견고(鬪諍堅固) 시대다. 싸움을 일삼는 그런 시대다. 과연 세계가 정치적으로 싸우고, 사상으로 싸우고, 경제적으로 싸우고 온갖 가지가지 종류의 싸움판이 되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지면 나라는 망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야에서 싸워 가지고 지지 않도록 노력을 밖에 없는 그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佛子)들은 그러한 싸움 속에서싸움 없는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것입니다.

어떻게 싸움 속에서 나도 같이 싸워야지, ‘싸움 속에서 싸움 없는 삶을 산다 말이 무슨 말이냐?

 

싸움을 버리고 포기하고, 사업이고 무엇이고 팽개치고 산중으로 들어오라는 것이 아니고, 속에서 자기가 맡은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도 정말 마음속으로는 정법(正法) 믿고참나 찾는 공부에 몰두하면싸움 속에서 싸움 없는 영위하는 길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탁악세에 나와 가지고도 정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오탁악세가 발심(發心)하기에 더욱 좋고, 공부하는 데에 더욱 유익한 유리한 그러한 조건이 되어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법문 가운데 가장 중점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는 , 화두에 대한 의심, 의심이라는 없는 바로 그것이 의심(疑心)이다.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이놈이 무엇인가?’ 없는 생각,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 화두지, 없는 내놓고 의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심이라 하는 것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라 하는 것은이뭣고?’했을 앞과 뒤가 거기에서 끊어지거든. 없는 생각 이외의 다른 생각은 거기서 끊어져야 화두를 옳게 드는 것이여.

 

흔히 문헌상에 나타난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것을 사량분별(思量分別) 의리로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공안을 타파한다 가지고 그러한 식의 공부는 그것을 의리선(義理禪)이라 가지고 죽은 참선이여, 사구선(死句禪)인데.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주장하신 공부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이거든. 화두를 여러 개를 하나씩 하나씩 분석하고, 따지고, 비교하고 해서 그렇게 참구를 나간 것이 아니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하나의 화두를 다맛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가지도 말고, 다못 앞뒤가 끊어져 없는 의심으로 () 가는 것인데.

 

화두를 들므로써 어떤 이치가 차츰차츰 나타나고, 무엇이 알아지고 드러나고, 이러면은 가는 맛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천칠백 공안을 그런 식으로 날마다 따지고 날마다 분석해서 가봤자 점점 사량분별만 늘어가고 깨달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화두를 가지고 일심으로공부가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된다고 생각 되건, 안된다고 생각이 되건, 때로는 혼침이 일건, 때로는 산란심이 일건 그것도 묻지를 말고,

산란심이 일어도이뭣고?’, 혼침이 와도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앞뒤가 끊어진 의심 하나로만 계속 잡드리를 나갈 뿐이다.

 

그렇게 나가다가 보면은 화두를 들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처음~145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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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직하본래무일사~’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送禪者歸鄕二首' 게송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대장부(大丈夫 ·훌륭할 /어른·존칭 /사내·일꾼 )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 이치를 깨달은 사람.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홈대 ; 홈통(홈桶, 물이 흐르거나 타고 내리도록 하는 쓰는 . 오목하게 골이 있거나 대롱을 만들어 쓴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계법(戒法) ; 부처님이 정한 계율(戒律) . 오계(五戒), 팔계, 십계, 구족계(具足戒), 삼취정계(三聚淨戒), 십중계(十重戒) 등의 율법을 모두 계법이라고 한다.

*말법(末法) : 부처님의 교법이 세상에 전하여 가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대하여 부처님께서 예언한 바가 있다。처음 오백 동안은 정법(正法) 시기가 되어,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 얻게 되지마는, 다음 동안은 상법(像法) 정법에 비슷한 시기가 되어,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다음 동안은 말법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이 남아 있는 시기가 되어, 수행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고 하였다。그러나 이것은 인도만을 표준한 말인 듯하다。인도의 불교사는 과연 그대로 되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여 예언하기를, 불교가 중인도에서는 차츰 쇠미하게 되겠으나, 변지(邊地) 외국에 널리 전파되어 점점 융성하게 되리라고 하였다。과연 불교의 중심이 중인도로부터 북부인도와 세일론으로 옮기었고, 다시 중앙아세아로, 북부아세아로 옮겨가게 되었다.

중국한국일본에 불교가 왕성하고 많은 도인(道人) 것도 부처님이 열반한  천오백  이후의 일이었다。다시 말하면, 말법이라는 시기가 시작된 뒤의 일이다。그러므로 세계적으로 불교 교단 전체를 통하여 때에는 말법시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파리어(巴利語)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 • () • () • () 사염주(四念住)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소멸하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説修行) 반드시 견성 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학(邪學) 외도(外道) 번성한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