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추모재2022. 11. 8. 18:59

 

 

§(618) 전강선사 24주기 추모재 /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 틀림이 없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24년이 지냈다 하더라도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錄音)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그 육성(肉聲)을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으므로 그 법에 의지해서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정진한다면 그 사람이 있는 도량(道場)에는 바로 조실 스님이 생존해 계신 것이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한다면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송담스님(No.618)—전강선사 24주기 추모재(1998.12.02.음) (용618)

 

약 12분.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의 24주기(周忌)를 맞이해서 방금 우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재자(法寶弟子) 여러분 다 같이 전강 조실 스님의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신 인연에 대해서 조실 스님의 녹음을 통해서 감격스럽게 경청을 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지금부터서 100년 전 무술년(戊戌年 1898년) 11월 16일에 탄생을 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16세에 출가하셔서 23세에 견성오도를 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25세에 수덕사 덕숭산의 만공 선사(滿空禪師)로부터서 인가(印可)를 받고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受法弟子)가 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33세의 젊은 연세로 통도사(通度寺) 보광선원에 조실(祖室)로 추대를 되시고, 그 뒤로 전국 여러 큰 선원에 조실로 계시면서 학자를 제접(提接)하시다가, 63세에 이곳에 용화선원을 개설을 하시고.
그때만 해도 이 용화사가 대단히 형편이 어렵고, 절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한 그러한 선원(禪院)이었습니다마는, 전국에서 이렇다 한 구참 신참의 납자(衲子)들이 모여서 사부대중이 그 조그마한 좁은 방에서 정진을 했습니다.

72세에 수원 용주사에 중앙선원을 개설을 하시고 77세에, 세수 77세고 법납(法臘)은 61세로 열반상을 보이셨습니다.
견성오도하신 이후로 열반하실 때까지 활구참선(活句參禪) 언하대오(言下大悟)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최상승법을 선양을 하셨습니다. 지금부터서 25년 전, 금년이 24주기니까, 갑인년(甲寅年)에 12월 초이튿날(음)에 열반하셨으니까 지금부터서 25년이고 주기로 하면 24주기를 맞이했습니다.

열반하신 뒤로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전강 조실 스님을 추모하고, 조실 스님의 법(法)을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납자와 신남신녀가 나날이 불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조실 스님께서 그 확철대오하신 그 깨달음이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름이 없는 투철한 깨달음 때문이시고, 둘째는 77세의 마지막 열반하실 그날까지도 우리 후래(後來) 학자를 위해서 뜨거운 자비로 설법을 해 주시고 제접(提接)을 해 주신 그러한 결과로 생각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우금(于今) 삼천년이지만, 삼천년이 되어서 시간적으로는 모두 말세(末世)라고 모다 그럽니다. 말세라고 하지마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법을 정말 철저히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신앙과 수행을 철저히 한 사람은 항상 그 사람의 눈앞에, 그 사람의 가슴속에는 부처님이 살아계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아계신 그때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법(法)을 믿지 않고 부처님을 존경하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24년이 지냈다 하더라도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錄音)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그 육성(肉聲)을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으므로 그 법에 의지해서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정진한다면 그 사람이 있는 도량(道場)에는 바로 조실 스님이 생존해 계신 것이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한다면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그 인품이 너그러우실 때는 한량없이 자비스러우시지만, 공부하다가 사견(邪見)을 일으키는 학자에 대해서는 추상(秋霜)같은 호령을 하시고 사정없이 주장자로 패서 내쫓으셨습니다.
오늘도 각 선원에서 공부하다가 나름대로 무슨 소견(所見)이 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조실 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어서 '과연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신심으로, 어떠한 자세로 하는가'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공부하다가 무슨 소견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바로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또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믿는 사람은 조실 스님이 비록 열반하셨다 하더라도 항상 그 도량에 살아계신 줄 그렇게 믿고 「조실 스님」으로 용상방(龍象榜)에도 떠억 올리고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세상이 어렵고 종단에 분규가 있다 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우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재자 여러분은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며, 화두(話頭)를 어떻게 거각(擧却)하면서 실다웁게 정진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항상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성(自省)을 하면서 열심히 정진할 때가 바로 오늘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올바르게 정진을 하게 되고,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께서 다 그런 마음으로 정진을 하고 계시리라고 믿지만, 조실 스님의 24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여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정진하기로 마음을 다지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날씨도 춥고 그런데 원근 각지(各地)에서 추모재에 참여해 주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께 심심(甚深)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간략히 점심 공양이 마련이 되었으니 장소가 협착하고 여러 가지가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양해하시고 맛있게 공양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12분10초) (끝)




전강영신 대종사 행장 약록 (田岡永信 大宗師 行狀 略錄)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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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周忌) ; 사람이 돌아가신 뒤 그 날짜가 해마다 돌아오는 횟수를 나타내는 말.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19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신참(新參 새·처음 신/참구할·참여할 참)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법랍(법납)(法臘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스님의 나이·승납 랍·납) ;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 비구니가 되고 부터의 햇수를 말한다. 법세(法歲), 계랍(戒臘), 하랍(夏臘), 승납(승랍 僧臘)이라고도 한다.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법랍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를 정하였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언하대오(言下大悟) ; 말 아래에 크게 깨닫는다. 말(법문) 듣다 깨닫는다. '직하흔번(直下掀飜 바로 뒤집다)'도 같은 뜻의 말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 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참고] 송담스님(No.157)—전강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1981.12.02.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에 법문하시기를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말 아래 크게 깨달으라” 하셨습니다.
말은, 꼭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차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갑인년(甲寅年)에 12월 초이튿날 ; 1974년 12월 2일(음력). 1975년 1월 13일(월)(양력).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우금(于今 어조사(~에서, ~부터, ~까지, ~에게) 우/지금·오늘 금) ;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추상(秋霜 가을·추상秋霜같다 추/서리·엄한 법法의 비유 상) ; ①가을의 찬 서리. ②꾸중 따위가 기세등등하고 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용상(龍象)은 발심해서 불도(佛道)를 닦는 훌륭한 수행자를 용(龍)과 코끼리[象]에 비유하여 말함. 방(榜, 牓)은 대중에게 알리는 게시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19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실다웁게 정진' ; 실참(實參 참됨·참으로·진실로 실/헤아릴·살필 참). 실참실수(實參實修).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실참(實參), 실답게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을 말한다.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관념에 그치거나 들어서 아는 지식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실천하는 선수행을 말한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성(自省 스스로 자/살필 성) ; 자기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反省)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심심하다(甚深-- 심甚하다·깊고 두텁다·심히·매우·몹시·참으로 심/깊다·심甚하다·두텁다·매우 심) ;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22. 11. 6. 15:20

 

 

§(725) 전강선사 34주기 추모재 / 전강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면서 철저히 정진한다면 누구라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 우리는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사는 수행자.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추모재를 여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과 같이 추모재에 참여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다 같이 들은 이 감동을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활구참선을 열심히 한다면 남녀노소와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그분이 바로 전강 조실 스님의 수법제자(受法弟子)가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25)—전강선사 34주기 추모재(2008.12.28) (용725)

 

약 14분.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 지 2552년이 되었습니다. 2552년이 된 오늘날에도 우리는 열반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현재 살아계신 부처님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사찰(寺刹)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계신 부처님으로 존경하고, 예불(禮佛)하고 그러면서 수행을 하고, 부처님의 그 법이 오늘날까지도 온 우주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장경(八萬藏經)은 해인사에 경판(經板)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고. 그러나 부처님의 육성(肉聲)은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진리를 깨달은 분은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위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衆生)은 살아계신 부처님의 육성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열반하신 지 34회가 된 전강 조실 스님의 추모재(追慕齋)를 맞이해서 우리는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육성(肉聲)을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살아계신 조실 스님의 법문처럼 경청을 했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들은 바와 같이 법문 내용이 견성(見性)하셔서 견성하신 확철대오하신 그 경계에서 읊으신 오도송(悟道頌)과 선지식(善知識)과 법문답하는 그런 것을 생시(生時)에 설하신 육성으로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祖室)로 모시고 정진하는 많은 선방에서는 열반하셨지마는 전강대종사를 조실로 모시고 녹음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 100년, 몇백 년이 가더라도 조실 스님의 법문은 육성으로 우리는 들을 수가 있어서 경전으로 된 글로 보는 것과 귀를 통해서 육성으로 바로 들은 것과는 우리가 받는 감동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은 어느 날 만공(滿空) 스님과 용성(龍城) 스님, 두 선지식이 한자리에서 용성 스님께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일르시오” 이렇게 용성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만공 스님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니 용성 스님께서 “양구(良久)십니까?” 그런게, 만공 스님께서 “아니오”

그렇게 두 큰스님네가 문답을 할 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옆에 계시다가 “두 큰스님네가 서로 멱사리를 잡고 진흙구덩이로 들어가고 있으니 법담(法談)이라고 하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용성 스님이 “수좌(首座)가 일러보소”
조실 스님께서 “물으십시오” 그런게, (용성 스님이)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르게”
조실 스님께서 답하시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이요” 이러한 내용이 녹음법문에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녹음법문을 통해서 그 장면의 법문답(法問答)하시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당시에 만공 스님, 용성 스님, 혜월 스님, 혜봉 스님, 보월 스님, 한암 스님, 제산 스님 등 당대에 대선지식으로부터 다 법거량(法擧量)을 해 가지고 그 선지식들이 조실 스님한테 속된 표현으로 '꼼짝을 못하셨습니다'
"일러라, 옳다" 이렇게 인가(印可)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선지식과 법거량을 해 가지고 선지식이 꼼짝을 못하면 바로 그것이 정말 살아있는 인가가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은 (젊은 시절 자연치료 만행 때) 통도사(通度寺)에 떠억 들어가셨는데 그 선방에 수좌 스님네들이 “아 신수좌(信首座), 참 잘왔소. 지금 경봉 스님이 미쳐 갖고 저러고 있으니 마치 잘왔다”고 헌게 “미친 것을 내가 가면 어떻게 해?” “아이 그래도 여그까지 왔으니 경봉 스님을 만나고 가라”고. 그래 가지고 대중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옆에서 부축해 가지고 경봉 스님 앞에까지 갔습니다.

그때 경봉 스님은 요샛말로 한 소식을 해 가지고 눈이 벌게 가지고, 점잖은 신도분이 오면 “너, 니 서방하고 끌어안고 자는 것이 무엇인줄 아느냐? 그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니라” 이렇게 해서 무방반야(無妨般若)로 뭐 점잔이고 뭣이고 걸림이 없이 마구잽이 걸림이 없이 그러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조실 스님이 수좌들한테 끌려서 떠억 경봉 스님 앞에 가 가지고 원상(圓相)을 떡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하니까, 경봉 스님이 원상을 이렇게 뭉개버렸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송장 끄집어내라!” 고함을 지르니까 경봉 스님이 눈이 휘둥그레 해 가지고 한참 동안 있다가 탁! 무릎을 치면서 "옳다,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되었습니다. 기상이.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여기서부터서는 단둘이 얘기를 해야 하겠으니 대중은 따라오지 마시오” 그래 가지고 경봉 스님을 끌고 그 골짜구니로 들어가서 터억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公案)을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이 일렀습니다. 그래 가지고 경봉 스님은 그 미친기가 가라앉고. (뒤에 1931년) 서른세 살밖에 안 되는 청년, 수좌—그때는 전강(田岡)이 아니고 영신(永信) 수좌인데, 영신 스님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 조실로 모셨습니다. 그 뒤로 전강 조실 스님은 전국 주요 선원에 조실을 역임을 하신 것을 방금 여러분들은 조실 스님 약력(略歷) 소개에서 잘 들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한 것은 전강 조실 스님은 이 말세(末世)에 태어나신 정말 대선지식(大善知識) 중의 대선지식이고, 걸림이 없는 그런 살아계신 그런 도인(道人)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여러분과 같이 들은 법문을 통해서 우리는 감동적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는 세상은 비록 말세가 되어서 온 세계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정치니, 사상이니, 주의니 해 가지고 명예와 권리와 이끗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서로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싸우고 있는 이러한 말세지만, 우리가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의지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면서 정말 철저히 정진한다면 누구라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조실 스님의 추모재를 여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과 같이 추모재에 참여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다 같이 들은 이 감동을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활구참선을 열심히 한다면 남녀노소와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그분이 바로 전강 조실 스님의 수법제자(受法弟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몸이 오늘 이렇게 숨쉬고 있지마는 일 분 뒤, 한 시간 뒤, 하루 뒤 우리의 생명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찰나찰나를 항시 화두를 들고 알뜰히 철저허게 정진을 하신다면 우리는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사는 수행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정성을 다해서 점심 공양(供養)을 준비했으니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맛있게 공양을 드시기 바랍니다. 다음 또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처음~14분15초) (끝)




전강영신 대종사 행장 약록 (田岡永信 大宗師 行狀 略錄)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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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禮拜)하는 의식.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팔만장경(八萬藏經)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偈頌), 또는 노래.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전강선사 오도송(悟道頌) ; 원래는 7언이었으나 후에 5언으로 만드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
어젯밤 삼경에 누각에 달빛이 가득히 비추었는데,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이 허옇게 핀 가을이로구나.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
부처와 조사가 여기에 이르러서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바위 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나오는구나.

昨夜月滿樓(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용성진종(龍城震鍾) ; (1864~1940) 법명은 진종(震鍾), 법호는 용성(龍城),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1864년 5월 8일 전라도 남원군(현재 장수군) 하번암면 죽림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남현(南賢)이며, 어머니는 손씨(孫氏)이다. 1879년 16세 때 가야산 해인사의 극락암(極樂庵)으로 출가하여 화월(華月)을 은사로, 혜조(慧造)를 수계사(授戒師)로 삼아 계를 받았다. 그해 의성 고운사(孤雲寺)의 수월영민(水月永旻)의 지도로 대비주(大悲呪)를 수행하고, 양주 보광사(普光寺)의 도솔암(兜率庵)에서 정진하였다.
1886년 23세에 신라불교 초전법륜지인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동 아도모례원 모례샘 근처에서 용맹정진 끝에 오도(悟道)하였다.

1911년 48세에 서울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 개조하여 대각사(大覺寺)를 건립하였다. 1919년 56세 때, 3·1운동 당시에는 한용운(韓龍雲)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의 대표자로 참가하였다. 3년 동안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뤘다. 그 뒤 서울 가회동에서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들어 한문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1921년 58세에 서울 대각사에 대각교(大覺敎)를 창립하여 새로운 불교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1924년 61세에 불교 포교의 일환으로 박한영(朴漢永)과 함께 불교잡지인 『불일(佛日)』을 간행하였다. 1925년 62세에 선을 보급하기 위하여 도봉산 망월사에 ‘만일참선결사회(萬日參禪結社會)’를 조직하였다.
1940년 2월 24일 대각사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참고]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총본산 대각사' 사이트 참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문답(法問答).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전강 조실 스님, 경봉 스님과 탁마 ; 「전강선사일대기」 제13호에 자세한 내용 있음. ①>>>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법문 브로그) ②유튜브에서 보기(47분 37초부터~)

*소식(消息 줄어들다·사라지다·없애다 소/불어나다·살다·번식하다·호흡하다 식) ; ① 산스크리트어 vārttā. 소장(消長) · 증감(增減) · 성쇠(盛衰) 등의 변화. 때에 따라 만물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증가하는 측면만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참고]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제20권. 당(唐) 청량산(淸涼山) 대화엄사(大華嚴寺) 사문(沙門) 징관(澄觀) 술(述).
言傳授之者 善消息之者 易豐卦云 天地盈虛 與時消息 釋云 消者盡也 息者生也 謂可加則加 可減則減 可出則出 可沒則沒 故言消息

전수(傳授)란 증감의 변화를 잘 하는 것이다. 『역(易)』 「풍괘(豐卦)」에 '천지의 만물이 차고 비며 반복하는 현상도 때와 더불어 일어나는 증감의 변화이다'라고 하였다. 다음과 같이 푼다. '소(消)란 다하여 사라짐이고, 식(息)이란 발생하는 것이다. 증가할 만하면 증가하고 감소할 만하면 감소하며, 나타날 만하면 나타나고 사라질 만하면 사라지므로 소식(消息)이라 한다.
②일상의 기거(起居). 안부. 살아가는 내용.
③원기를 회복시키는 것. 살아나게 만드는 것.
[참고] 『불설아난사사경(佛說阿難四事經)』
人民富有盈穀 孤獨鰥寡 衣食不充 疾病困篤 無以自濟 當給醫藥 糜粥消息 令其得愈 命不橫盡

제왕이나 인민은 부유하여 가득한 곡식을 고아나 외로운 늙은이나 홀아비나 과부나 의식이 충분하지 못한 이나 병이 매우 심하여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는 이에게 약을 주고 미음과 죽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병이 낫고 횡액에 죽지 않게 하여야 하니라.
④깨달음의 결정적인 단서. 깨달음으로 이끄는 갖가지 실마리. 또는 깨달은 경계 자체.
[참고]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26. 「시중(示衆)」에서
若論實參實悟 正如八十翁翁 向逆風逆水裏 牽一隻無底鐵船相似 不問上與不上 徹與不徹 直須心心無間 念念無虧 一步一步 盡平生伎倆睚將去 睚到著脚 不得處 筋斷骨折時 驀然水轉風回 卽是到家消息 卽今莫有到家底麼 (卓柱杖一下 云) 十萬八千

만일 실답게 정진을 하고 실답게 깨닫는 것을 말하자면 마치 80세의 늙은이가 바람을 거스르고 물살을 거슬러서 한 척의 밑 없는 쇠배를 끄는 것과 같으니, 올라가고 올라가지 못함과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함을 묻지 말고, 곧 마음 마음이 끊임없이, 생각 생각이 이지러짐이 없이 한 걸음 한 걸음에 평생의 힘을 다하여 끝까지 밀고 나아가야 한다.
밀어서 다리를 붙일 수 없는(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곳과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질 때 이르르면 별안간 물살과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집에 이르른 소식(消息)이다.
지금 집에 이르른 이가 있느냐? (주장자로 한 번 치고 말하기를) 십만(十萬) 팔천리(八千里)로다.
⑤조짐. 단서. 기미. 분별할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경계를 단소식(斷消息) · 무소식(無消息) 등이라 한다.

*무방반야(無妨般若) ; ‘반야에 방해(妨害)되지 않는다’
*점잔 ; 점잖은(언행이나 몸가짐이 의젓하고 예의 바른) 태도.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1986.01.05)에서. (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 · 수(受) · 심(心) · 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6. 10. 14. 11:1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689) 전강선사 30주기 추모재 / 광주 경양 방죽가 하꼬방 장사 시절의 수행.

 

전강 조실 스님은 열반하셨어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듣고 싶은 대로 법문을 들을  있고, 언제라도 조실 스님 법문 듣고 싶을 들을  있는 그러한 조실 스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열반하신지 30년이 되어도 우리는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송담스님(No.689)—전강선사 30주기 추모재(05.01.11) (용689)

 

약 15분.

 

갑신년 섣달 초이튿날 오늘 전강영신(田岡永信) 대종사 조실 스님의 30주기 추모재를 맞이했습니다.

 가운데는,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을 직접 시봉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조실 스님을 친견하고  밑에서 정진하신 도반도 계실 것이고  청신사 청신녀 가운데에는 직접 조실 스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그리고 참선을 하신 그러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직접 뵙지는 못하고 조실 스님은 영탱(影幀) 통해서만 친견하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수없이 법문을 듣고서  조실 스님의 모습을 상상하시면서 정진하고 계신 그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되기  학생 때부터 조실 스님을 가끔 찾아가 뵈옵고 그리고  학생으로서 조실 스님 계신 절에서 참선도 했습니다.

광주 정토사, 계림사, 나주 다보사  무등산의 자운사, 조실 스님이 계시던 남평의 조그마한 봉암사. 그리고 중이  가지고는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그런   주지를 하고 계실 때도  밑에서 모시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머리속에 남아 있는 조실 스님이 추모가 되는 시절은 광주 계림동에 있는 경양 방죽가에서 하꼬방 장사를   시절이 항상 마음속에 추모가 됩니다.

조실 스님과 저는 양복, 작업복 그런 것을 입고 하꼬방 장사를 했었습니다마는 낮에는 장사도 하고  광주천  공원, 경양 방죽가를 모시고 거닐면서  주시던 법문. 그리고 밤에는  조그마한  평도 못 되는 방에서 모시고 정진을 하고.

 

조실 스님께서는 초저녁에 잠깐 목침(木枕)을 턱에다 괴시고 잠깐 눈을 붙이시고는 11 못 되서 그때부터는 새벽 3시까지 이렇게 앉아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밤중 정진은 조실 스님께서 평생토록 밤새 정진을 하신 것이 그것이 아주 습관이 되셔서 그렇게 일생을 정진을 하셨습니다.

 

저는 낮에 심부름하고 그러고 밤에 고단해서 자면 잠깐 놔두었다가 무슨 놈의 잠이 그렇게 많으냐 꾸지람을 하시고,  일어나서 정진을  것이 그저 꾸벅꾸벅 졸면 밤낮 꾸중을 듣고 하던,

그래도 해남 대흥사 주지 하실 때나 구례 화엄사 주지를 하실 때나 그밖에 수없이 여러 군데 자자끔한 절을 맡으시기도 하고  내놓기도 하셨는데.

그래도  하꼬방에 지낼 때가, 차라리   주지도  하시고 일생 동안을 하꼬방에서 모시고 살았으면 제가  정진을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 이런 말씀도 여쭸습니다.

하도 절을 맡었다가  자리잡을만 하면은 의논 한마디도  하시고 사표  버리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면  뒤치닥거리만 하고서  조실 스님한테 가면은  벌써 절을  하나 맡으셨습니다. “인자 여기는 정진 실컷   있을 것이다 그러셔 놓고는 그럭저럭 자리잡을만 하면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 이런 불효한 말씀을 여쭸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절에 주지로 계시면 저는 거기는 조실 스님을 따라가지 않겠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다가 선방을  놓고 조실로 계시면 저는 거기를 모시고 가서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말씀을 드렸고,  어쩐 때는 앞으로 조실 스님께서 주지를 하시면 저는 퇴속(退俗) 하겠습니다 이런 불효한 말씀을  적도 있었습니다.

 

30주기를 맞이하니까 그래도 이것이 추모재지, 무슨 다른 천도재도 아니고 추모재이기 때문에 지나간 그런 생각을 추모를 하게 되니까 이렇게 두서없이 이런 말씀을 하게 됩니다.

 

조실 스님은 엄격하실 때는 추상(秋霜) 같이 그렇게 무섭고, 따뜻할 때는 봄날과 같이 그렇게 따뜻한 그러고 자비스러운 그러헌 스님이셨고, 매사는 너무 급하시고 두서가 없으신 그런 면도 있으셨습니다.

어쩐 때는  엄격한 법왕과 같으신가 하면은 어떤 때는 어린애와 같으시기도 하고 그러한 어르신인데, 선가구감(禪家龜鑑)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오호라, 기위인야(其爲人也). !  사람됨이여. 본래(本來) 무연(無緣)이요 본래무사(本來無事). 본래 인연이 없으며 본래 일이 없어. 기래즉식(飢來卽食)이요 곤래즉면(困來卽眠)이다. 배고픔이 오면  먹고 졸음이 오면  한숨 잔다.

녹수청산(綠水靑山) 임의소요(任意逍遙)하고 어촌주사(魚村酒肆) 자재안한(自在安閑)이다. 연대갑자총부지(年代甲子總不知)한데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마는 바로  시구를 보면 조실 스님이야말로 정말 이와 같이 평생을 사신 그런 분이다. 서산대사의 선가구감에  글이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음미를  보시고 조실 스님의 행장에 대해서 추모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강영신 대종사, 우리 법보선원에 조실(祖室) 계시고,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십니다.

열반(涅槃)하셨는데  열반하신 분을 조실로 모시느냐?’ 그런 것에 대해서 물어온 분이 가끔 있습니다.

 

조실 스님은 열반하셨어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듣고 싶은 대로 법문을 들을  있고, 언제라도 조실 스님 법문 듣고 싶을  들을 있는 그러한 조실 스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열반하신지 30년이 되어도 우리는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고 대원력과 대자비를 가지신 그런 분을  만나면 열반하셨어도 전강 대종사를 조실로 모신 것이 무엇이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정말 여기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서도 비록 열반하셨지만 살아 계신 조실 스님으로, 살아 계신 대선지식으로 그렇게 모시고 항상 마음속에 모시고 항상 우리의 곁에서 계신, 살아 계신 줄로 그렇게 믿고 정진하신다면 조실 스님은 언제나 우리가 있는 곳에 엄격하고도  자비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조실 스님은 정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이시고 영원한 우리의 스승으로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삽니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 여러 형제자매 여러분들도 그런 신심과 분심으로 오늘 30주기 추모재를 기해서 마음에 다짐하시면서  같이 목적지를 향해서 정진을 하시기를 다짐합시다.

 

오늘 법요식이 끝난 다음에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준비를 했으니 바쁘신 일이 있으시드라도  분도 빠지시지 말고 공양을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소한, 대한 추위에 갑자기 요새 이렇게 강추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원근에서  추모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처음~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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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 16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어젯밤 달빛은 ()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 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78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송(江松) 백운(白雲)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甲寅) 음력 12 2,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700 시간 분량의 육성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영탱(影幀 그림자 /그림 족자 ,그림 족자 ) ;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으로 진영(眞影), 영정(影幀), 정상(頂相), 조사도(祖師圖)라고도 불리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 箱房. (상자)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 결합된 .

*목침(木枕 나무 /베개 ) ;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 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퇴속(退俗 물러날·돌아갈 /세상 ) ; 승려가 도로 세속(世俗)으로 돌아감[退].

*선가귀감의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37~38.

吾有一言(오유일언)하니  絶慮忘緣(절려망연)하고  兀然無事坐(올연무사좌)하니  春來草自靑(춘래초자청)이로다

 

내가 한마디 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註解) 絶慮忘緣者(절려망연자)는  得之於心也(득지어심야)니  所謂閑道人也(소위한도인야)라

於戱(어희)라  其爲人也(기위인야)가  本來無緣(본래무연)하며  本來無事(본래무사)하야  飢來卽食(기래즉식)하고  困來卽眠(곤래즉면)하며  綠水青山(녹수청산)에  任意逍遙(임의소요)하고 漁村酒肆(어촌주사)에  自在安閑(자재안한)하야  年代甲子(연대갑자)를  總不知(총부지)하되  春來依舊草自青(춘래의구초자청)이로다  此(차)는  別歎一念㢠光者(별탄일념 회광자)니라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없는 도인이다.

!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세월이 가나 오나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 풀이 절로 푸르구나。이것은 특별히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6. 1. 7. 10:03

 

 

§(661) 전강선사 27주기 추모재.

 

**송담스님(No.661)—전강선사 27주기 추모재(02.01.14)(20) (용661)

 

약  20분.

 

지금으로부터 104 , 무술년 11 16일에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셔 가지고, 같이 공부하던 도반이 비명(非命) 죽은 것을 보고 무상을 뼈아프게 느끼시고서 직지사 선방으로 어린 나이로 가셨습니다.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 하셨던지 23세에 견성(見性) 하시고, 전국 6대선지식을 찾아가서 인가를 맡으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25세에 만공 대선사로부터 인가(印可) 받으셨습니다.

 

뒤로 60세가 되도록 전국 유명한 선원에 조실(祖室) 추대를 받아 가지고 학자 제접(提接) 하셨습니다. 63세에 여기 인천 주안 용화사조그만한 토굴인데여기에법보선원이라고 하는 선원을 개설을 하시고 학자 제접을 하셨습니다. 72세에 용주사 중앙선원을 개설하시고 학자 제접을 하셨습니다.

 

뒤로 인연 따라서 찾아오는 선객(禪客)들을 제접하시고, 77세에 갑인년 12 초이튿날 열반하실 때까지 한결같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제창을 하시고 열반을 하셨습니다.

열반하신 그날도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하시고 점심 공양을 드시고서 열반(涅槃) 드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부터서 출가하시고, 출가하셔 가지고 평생 동안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선원을 개설해서 학자 제접을 하시면서도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지어서 가난하게 사실라고 것이 아니라 그때에 경제 사정이 어려웠었고 전국에 수좌(首座) 스님네들도 모두가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속에서 정진을 했었습니다.

 

정화(淨化) 후로 수좌 스님네들이 모다 여기저기 절도 맡고 그래서 많이 스님네의 생활이 옛날에 비해서는 윤택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원래 부처님께서 출가할 이는 바리때 하나와 소가사, 중가사, 대가사가사(袈裟) 벌로 일생 동안을 나무 밑이나 바위 위에서 지내고, 걸식(乞食) 하면서 하루에 한끼씩만 먹고 수행을 하되, 병이 나면은 황룡탕(黃龍湯)자기 오줌을 도반의 오줌을 받아서 먹으면서 그것으로써 병을 고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를 의지해서 수행하는 것을 바로 성인이 종자라 해서성종(聖種)’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것이 바로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는 법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하는비구 말은 인도 말로얻어먹는 사람이다, 걸사(乞士)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얻어서 먹고, () 선지식(善知識)한테 법을 듣고 법을 빌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철저하게 무소유로 일생을 살도록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가르키셨습니다.

우리가 현재 걸식을 하면서 있는 사회가 아니라 그렇게는 못하나마 부처님의 그러한 무소유의 가난한 생활을 정신적으로는 항상 잊지 않는 가운데에 수행을 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本分)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정말 실천하신 분이 바로 전강 대종사이셨습니다. 열반을 하셨을 성한 것이 없었고, 학자를 제접을 하시면서도 그렇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식량도 넉넉허지 못하고 김장할 때도 김장할 거리가 없었고, 장을 담을 때에도 메주를 콩도 없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여기저기서 법문을 청하면 멀고 가깝고, 크고 작은 절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청하는 대로 가셔서 법문을 하시고 거기서 여비(旅費) 봉하면은 그걸 가지고 와서 살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우리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우리가 마음놓고 공부할 있고 수행할 있고,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갈 있는 그러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열반하실 때까지 십년 계속해서 조실 스님의 일대기(一代記)—일생 동안 수행하신 것과 선지식과 법담(法談) 해서 인가를 받은 것과 모든 그런 일대기 법문, 그리고 인연 따라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 새벽마다 어떤 신도가 녹음기를 기증을 해서 그것을 녹음을 놓으셨습니다.

 

녹음해 놓으신 테이프(reel tape) 지금은 시디(CD) 해서 잡음도 나고 들을 있게 되았습니다마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테이프를 가지고 녹음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열반하신지 27년이 되었지마는 녹음 법문(錄音法門) 의해서우리는 어떻게 공부를 가야 바르게 하는 것인가?’ ‘수행인은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것인가?’ 구구절절이 간곡한 법문을 남겨주신 것이 비록 열반을 허셨어도 우리는 우리의 가슴속에 그리고 우리의 도량에 조실 스님이 살아 계신 걸로 알고 수행을 있게 주신 것입니다.

 

그때 여기 용화선원은 주안 염전 가에 조그마한, 한국에 그렇게 작은 절은 지금은 찾기가 되려 어려울 것입니다. 조그마한 절에서 용화선원을 개설해 가지고 학자 제접을 시작을 하셔 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정진하고 법문 들을 있는 이러한 도량이 되도록 놓으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조실 스님의 그런 유지를 받들어서 법문에 의지해서 이렇게 이런 도량이 것뿐이고,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 의해서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법보전(法寶殿) 안에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창설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을 지어서 스님네와 신도님네들이 공부할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시고, 만년위패 제도를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제도할 있는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 가서 왕생(往生)하실 때까지 편안한 영가(靈駕) 안주처를 맨들어 주시고.

여기에 만년위패를 모시면은 영가들이 여기에서 행해지는 모든 법요식에 직접 참석을 하시고 법문에 의지해서 영가의 몸으로서 마음을 닦아 가다가 그러다가 인연이 도래(到來)하면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왕생하시도록 그러한 제도를 여기에 마련해 주셨습니다.

 

선망부모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드리려는 여러 신도님네들의 정성에 의해서 그래서 용화선원은 오늘도 이렇게 부족함이 없이 이렇게 선원을 운영해 나가고 정법(正法) 선양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께서는 일생 동안을어떠헌 법을 가지고 제창(提唱) 하셨느냐?’하면은 거두절미하고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한결같이 제창을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동안은 많은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시고 테이프를 소장하고 계신 분이 많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어느 법문을 들으나 요점은활구참선입니다

 

요새 참선법이 많이 전국적으로 또는 세계적으로 선양이 되고 있습니다마는 진정한 의미의 활구참선법은 듣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근자에 비파사나다 3 수행법이다 가지고 동남아 모다 그런 데에서 그런 수행법이 흘러들어 가지고 많은 신도들 그리고 스님네 가운데에도 그런 데에 눈을 팔고 있는 분이 있단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여러분이 금강경을 보신 분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연등불 앞에서 얻은 바가 있어서 내가 석가모니불로 출세하리라고 하는 수기(授記) 받았느냐?” 수보리에게 그렇게 물으신 것이 여러분은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연등불소(燃燈佛所)에서 얻은 바가 있었다면 석가모니불로 출세할 있다고 수기를 주시지 했다 것입니다.

 

요새 비파사나니 무슨 제삼 수행법이니 것은 자꾸 가다 보면 보이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진취해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수 있어서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활구참선법은 처음부터 구경(究竟) 깨달음을 깨달을 때까지 보이는 것이 있을 수가 없고, 나타난 것이 있을 수가 없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을 수가 없고, 얻어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얻을 것이 있고, 보일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도(邪道)라고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엄격한 규정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떠한 3 수행법이니, 4 수행법이니 가지고, 보이는 것이 있고, 나타난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정법(正法) 아니라는 것을 저는 삼세제불(三世諸佛) 증명으로 모시고 강력하게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까닭은 그렇게 해서 설사 무엇이 얻어지고 알아지고 보이는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조실 스님의 추모재를 맞이해서 이런 말을 언급하게 것은 심지어 선방에도 그러한 풍조가 직접 간접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바로 정법을 망가트리고, 정법을 좀먹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강경하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실 스님께서 일생 동안 선양하신 활구참선과 직접 관련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추모재를 기해서 이런 말씀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23세의 어린 나이로 확철대오를 하시고 33세의 어린 청년의 몸으로 양산 통도사 선원에 조실로 추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한 선지식인데도 일생 동안을 몸이 불편하시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저녁 공양을 드신 뒤에로는 잠깐 쉬었다가 11 경이 되면은 그때부터서 예불(禮佛) 때까지 계속 정진 하셨습니다.

가운데는 조실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봉하신 분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조실 스님 열반하신지 27년의 세월이 지냈고 앞으로 세월이 하루하루 가다 보면 오십 년이 되고 년이 되고 오백 년이 돌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무슨 정진하다가 무슨 소견이 나거나, 보인 바가 있거나, 얻어진 바가 있거나 그러한 것은 바로 삿된 소견이요 잘못된 일시적인 경계일뿐,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라고 것을 우리는 알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가야 것입니다.

 

바로 법요식이 거행이 되고 분향이 끝나고 나면 점심 공양이 간략히 마련이 되어 있으니 조금 바쁘시더라도 전부 점심 공양을 드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숙세의 깊은 인연이 있어서 법보 가족(法寶家族) 되었습니다. 법보 가족은 정법을 믿고 오직 정법에 의지해서 살고, 정법을 실천하고 정법에 의해서 바른 수행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94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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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非命) ; 목숨대로 살지 못함.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 말인데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만공 대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응대할·가까이할 )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정화(淨化) ; 한국불교 정화운동. 1910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 일제는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불교 정화운동.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가사(袈裟) : [] kasaya  범어를 음대로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가지(三衣) 있어서, 다섯 폭으로 (五條)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七條) 보통 때에 입고, 아홉 (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福田)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 입고,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본분(本分 근본 /분수·신분··마음가짐· ) ; ①본래의 직분에 따른 책임이나 의무. ②사람이 저마다 가진 본래의 신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시디(CD) ; 콤팩트디스크(compact disk). 광신호(光信號) 기록된 소리나 영상 따위의 정보를 재생하는 재생 기기.

*되려 ; ‘도리어(예상이나 기대 또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되거나 다르게)’ 사투리.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 . ②가르침의 . 불법의 공덕. 보살의 위신력(威神力)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 전당이라는 .
그래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모셨고,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왕생(往生)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도래(到來 이를 / )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제창(提唱 이끌 /부를 ) ; 대의(大義) 요점을 드러냄.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분리해서vi  보는 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 무상(無常)하고 ()이고 무아(無我)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마음부수[心所물질[]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무아를 통찰하는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수기(授記) ; 부처가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교설(敎說).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좀먹다 ; ①눈에 뜨이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자꾸 () 입히다. ②좀이 슬어 여기저기 구멍이 나다. '' 옷이나 나무, 곡식, 종이 따위를 못쓰게 만드는 조그마한 벌레.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차례에 걸쳐 ·보살(·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 정진 ; 보통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잠자는 시간인데, 이때 잠을 자지 않고 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6. 1. 1. 13:46

 

 

§(157)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

 

시대가 말세가 되어서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고, 바른 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정법을 바래고 원한다면 선지식과 불보살을 육도법계(六途法界)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송담스님(No.157)—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81.12.02.)(15) (용157)

 

약 15분.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시고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 스님을 비롯해서 만공 대선사님의 법맥(法脈) 이으셨습니다.

 

33세에 양산 통도사의 보광선원 조실(祖室) 추대를 받으셨고, 이후로 법주사 복천선원 경북에 수도선원, 해남 대흥사, 망월사, 대구 동화사, 경남 범어사,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여러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시고,

수원 용주사에는 중앙선원을 개설하시고, 그렇게 조실로서 활구참선법,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선양을 하시다가,

 

여기 주안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61년도에 창설을 가지고, 1975 양력으로 1 13일에 열반에 드실 때까지 용화선원에서 정법을 선양을 하시다가 77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열반에 드신 이후 오늘까지 8년간 조실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조실 스님의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항시 조실 스님께서 도량에 살아서 머물러 계신 똑같이, 믿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사부대중이 도량에서 법문을 듣고 정진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원래 모든 불보살(佛菩薩) 역대조사(歷代祖師) 마찬가지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증득하셨으므로 당신 분상에는 생사가 없는 것이지만, 인연에 따라서 열반상(涅槃相) 보이신 것뿐입니다.

 

육조(六祖) 스님께서 열반하실 제자의 사람이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여쭈니까, “낙엽귀근(落葉歸根)이요 내시무구(來時無口)니라. 나무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고, 오는 때에는 말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은 비단 육조 스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불보살과 조사께서는 말씀이 해당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께서내가 뒤라도 용화선원이 영원히 선원(禪院)으로서 운영이 되어가도록 하라 당부를 하시고,

이렇게 도량(道場) 가꾸어서 인연 따라서 자기도 공부하고 다른 사람도 공부할 있도록 나가면 나도 다시 와서 여기서 일대사(一大事) 밝힐 것이고, 너도 갔다가 다시 오고 해서 서로서로 도량을 중심해서 무량겁을 두고 공부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간다면 그밖에 일이 무엇이겠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조실 스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내가 아무개다하고 몸에다가 글씨를 가지고 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아무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고 때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오실는지 그것은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조실 스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캄캄한 밤을 비추는 휘황한 달빛이 조실 스님의 법문일 수도 있고, 흐르는 , 노래하는 새의 소리가 조실 스님의 모습이요 법문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신심과 정성을 가진 사람이면, 언제 어디서라도 조실 스님의 모습을 친견할 있을 것이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을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단 조실 스님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모습과 법문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대가 말세가 되어서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고, 바른 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정법을 바래고 원한다면 선지식과 불보살을 육도법계(六途法界)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 화엄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들 가운데에 역력(歷歷)하게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이러한 분이 선지식(善知識) 것이다. 이러한 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 것이다자기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리면서 그러한 불보살과 선지식이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불보살은내가 불보살 화현이다” “내가 선지식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시지를 않습니다.

 

고정된 모습 없이 나타나시고, 우리 중생의 눈으로, 이분이 바로 불보살이다, 이분이 바로 선지식이다알아차리도록 그렇게 오시지를 않기 때문에 그러한 뚝눈으로는 불보살은 바로 자기 곁에 계시고, 자기 집안에 계시고, 일생을 같이 살면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과 역대 선지식들은 () 없이 오시고, 상이 없이 가시며, 상이 없이 사시기 때문에 상을 통해서는 친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 화현은 여러분 가정에서 남편이 화현으로 와서 자기와 같이 살고 계실는지도 모르고, 불보살 화현이 오셔서 시부모님으로 계실는지도 수가 없고 또는 아들이나 딸이나 며느리가 불보살 화현으로 자기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살고 있는 줄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발심(發心) 눈과 마음으로는 도처(到處)에서 항시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에게는 일생동안 산으로, 들로, 절로, 속세로 찾고 헤매어도 불보살은 마침내 친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 법문하시기를언하(言下) 대오(大悟), 아래 크게 깨달으라하셨습니다.

말은,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소리, 우는 소리,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 신심(信心)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의 7주기를 맞이해서 이러한 최상승법(最上乘法) 우리의 마음을 다지고, 조실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실천함으로써 추모재를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상으로서 인사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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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 보아() 진리()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육조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낙엽귀근(落葉歸根)이요 내시무구(來時無口)니라 ; [육조단경(六祖壇經)] 부축품(付囑品) 참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역력(歷歷) ;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도처(到處 이를 , ) ; 여러 .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5. 12. 30. 14:05

 

 

§(134) 전강선사 6주기 추모재 / 법신(法身) 불멸(不滅) / 조실 스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금생에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받아야.

 

**송담스님(No.134)—조실스님 6주기 추모재(81.01.07) (13) (용134)

 

약 13분.

 

 

무술년 11 16일에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셔서, 17세에 해인사로 출가를 하셔 가지고 제산(霽山) 스님을 은사(恩師) () 받으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셔 가지고 만공(滿空) 큰스님 법맥(法脈) 이으셨습니다.

 

33세의 젊으신 나이로 불보종찰(佛寶宗刹) 양산 통도사 보광선원에 조실(祖室) 취임을 하셨습니다. 이후 77세를 일기로 열반(涅槃) 드실 때까지 44년간을 밑바닥 없는 배를 타시고 팔도강산에 걸림이 없이 다니시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선양을 하셨습니다.

 

여기 용화사에 십여 간을 주석(駐錫) 하시면서 정법(正法) 씨앗을 뿌려 주셨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신 바와 같이 여기는 주안 염전 갯벌 가에 너무 땅이 토박(土薄)해서 어떠한 곡식도 심어서 잘되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정법의 씨앗을, 가꾸기 어려운 정법의 씨앗을 이곳에 뿌리신 나날이 청신사 청신녀가 모여서 씨앗의 결과가 열반하신 이렇게 나날이 영글어 가고 있는 것을 새삼 큰스님의 법력(法力) 도력(道力) 위대함을 가슴 뿌듯이 느끼는 바입니다.

 

큰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내가 여기서 이렇게 목이 아프도록 법을 설하고, 늙은 몸을 이끌고 법상에 오르내리고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냐? 이것이 네가 일을 내가 생각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네가 애쓰는 일은 누구를 위함이겠느냐? 이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내가 네가 자리를 다듬고 마련을 해서너만 공부하는 것이 불법(佛法) 아니라, 너도 공부하면서 다른 사람도 공부할 있도록 주는 것이 그것이 바로 공부 잘하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그러고 있노라면 내가 돌아오면 내가 공부할 자리가 아니겠느냐! 서로서로 교대하면서 자기도 공부하고 다른 사람도 공부할 있도록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지, 자꾸 산중으로 숨을려고 그러고 저만 공부할려고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니라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은 법력에 있어서나, 도력에 있어서나, 덕행에 있어서나 종통(宗通) 설통(說通) 구비하시고 심지어는 건강까지도 그렇게도 타고 나오신 거룩한 스승이시고 선지식이셨습니다.

 

송담이 조실 스님 열반하신 유지(遺旨) 받들어서 원장(院長) 책임을 맡아 가지고 여러분과 더불어 용화사 법보선원을 건립하게 것은 온전히 큰스님의 유지를 차마 어길 수가 없어서 이러한 중책을 띠고 오늘날까지 도량을 떠나지 않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다행이 여러 청신사 청신녀 사부대중 여러분들은 조실 스님의 그러한 뜻을 이해하시고, 부족한 송담을 음으로 양으로 물심양면으로 협조해 주신 덕으로 이러한 도량(道場)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 계실 이러한 도량이 진즉 마련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러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조실 스님의 법문에 의해서 열심히 도를 닦고 참선을 한다면 불보살의 가피(加被) 머지않은 장래에 조실 스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시 출세(出世)하실 것으로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법신(法身) 불멸(不滅)입니다.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80세를 일기로 열반상(涅槃相) 보이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법계(法界) 몸으로 삼고, 끊임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으신 조실 스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선원은 조실 스님께서 열반을 하셨지만 계속해서 조실 스님으로 추대해 모시고 우리는 정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삼천 전에 열반하셨지만 우리는 부처님을 항시 교주로 받들어 모시고, 신행해 나가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다행히 과학이 발달해서 조실 스님의 육성(肉聲) 녹음 테이프(tape) 통해서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삼천 동안 많은 선지식, 조사 스님네가 계셨지만, 이렇게 육성으로 법문을 들을 있도록 남겨 주신 유일한 선지식이라고 생각할 ,

오래오래 사시지 못한 아쉬움을 우리는 녹음을 통해서 달랠 있고, 오히려 녹음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신심을 돈독히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녹음 법문을 남겨주신 조실 스님의 고구정녕(苦口叮嚀) 뜻을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실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정법에 더욱 신심을 돈독히 해서 금생에 결정코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받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엄동설한에 경향 각지에서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신 대해서 문도(門徒) 사람으로서 심심(深甚)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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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스승.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 보아() 진리()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만공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불보종찰(佛寶宗刹) ;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 중요한 요소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하여삼보(三寶)’ 하는데,

한국에서는 보통 부처님의 법신(法身)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통도사를 불보종찰(佛寶宗刹, 또는 佛寶寺刹),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모두 모아 놓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해인사를 법보종찰(法寶宗刹, 또는 法寶寺刹), 그리고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국사(國師) 배출한 송광사를 승보종찰(僧寶宗刹, 또는 僧寶寺刹)이라 한다. 사찰을 삼보사찰(三寶寺刹), 또는 삼대사찰이라고 부른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밑바닥 없는 ; 무저선(無底船). ①몰저선(沒底船), 무영수(無影樹), 몰현금(沒絃琴), 무공적(無孔笛) 같은 말로 진여(眞如)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 경지.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주석(駐錫 머무를 /석장 ) ; ①스님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석장(錫杖)이라 하는데, ‘석장(錫杖) 머무르게 한다()’ 뜻으로, 스님이 곳에 머무름을 일컫는 . ②스님이 한때 어떤 지역에 포교(布敎) 하기 위하여 머무는 .

*토박하다(土薄-- /엷을·메마를 ) ;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마르다.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 . ②가르침의 . 불법의 공덕. 보살의 위신력(威神力)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
*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

*종통(宗通) ; 교리나 종지(宗旨, 근본이 되는 중요한 ) 알아서 통함.

*설통(說通) ; 대중 앞에서 막힘이 없이 유창하고 당당하게 설법을 잘함.

*유지(遺旨 남길 /·의의·내용 ) ;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가졌던 생각.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법신(法身) : []  dharma - kaya ‘ 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다. 진리 자체.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말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심심하다(深甚--, 깊을·심히·크게 /심할·진실로·두터울·깊을 | 甚深--) ; (주로심심한꼴로 쓰여)마음의 표현이 매우 깊고 간절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5. 1. 20. 13:31

§(461) 전강선사 17주기 추모재.

 

**송담스님(No.461) - 전강조실스님 17주기 추모재(92.01.06)

 

약 13분.

 

전강 대종사 17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직접 간접으로 조실 스님의 법은(法恩)을 입으신 사부대중 형제자매 여러분,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시고 원근 각지에서 이렇게 추모재에 참석해 주셔서 원장(院長)으로써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조실 스님은 16세에 해인사에 출가하셔 가지고 20세까지 경을 배우시고 23세에 확철대오를 해서, 당시 혜월 큰스님, 혜봉 큰스님, 한암 큰스님, 용성 큰스님, 보월 큰스님, 마지막에 만공 큰스님께 인가(印可)를 받으셨습니다.

 

‘인가를 받으셨다’하면 보통 법문을 물어 가지고 『옳다! 네가 옳게 깨달았다.』 이렇게 인증을 받은 것을 ‘인가를 받았다’고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전강 조실스님께서 그때 6대 선지식으로부터 받은 인가는 그러한 인가가 아니었습니다.

 

새파란 23세에 소년, 채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새파란 소년이 당당하게도 조사공안(祖師公案)을 거량(擧揚)을 해 가지고 그 선지식들이 꼼짝을 못하신 것입니다. ‘옳게 깨달았다’하고 인가가 아니라 꼼짝을 못함으로 해서 저절로 인가가 되어져 버린 것입니다.

 

6대 선지식뿐만이 아니라 태백산 8대 도인이니, 지리산 뭐 전국 방방곡곡에 많은 조실 스님이 계셨고, 이렇다 한 선지식들이 계신 곳마다 낱낱이 찾아가서 법담(法談)을 해 가지고 시원찮은 선지식들은 다 조실 자리를 내놓고 물러설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선사(禪師)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강사(講師)들까지도 다 낱낱이 가서, 강사들도 그 새파란 소년 앞에 꼼짝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의 가장 가까운 도반이고 죽마고우였던 종정을 지내신 윤 고암 큰스님께서는 『자네 스님은 전생에 깨달으신 분이여』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조실 스님의 법 사형(法師兄)이신 박 고봉 큰스님, 박 금봉 큰스님, 두 큰스님이 다 만공 큰스님의 다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시지만—조실 스님의 다 선배 사형이시죠—『영신(永信)이 앞에 노장(老長)님도 꼼짝을 못했느니..』 노장님은 바로 만공 큰스님을 지칭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을 직접 친견한 스님네들도 계실 것이고 또 신도님네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조실 스님의 그 투철한 법력(法力)과 그 사자후(獅子吼)는 오늘 금방 들은 녹음법문을 통해서도 충분히 마음에 와서 닿고 느끼신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 ‘부처님은 오신 바가 없고 가신 바가 없다’고 하셨고, ‘법을 설하되 설한 바가 없다’고 하셨고, ‘법신불(法身佛)로써 영원무궁토록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상주설법을 하실까?

21세기를 앞에 둔 현대인에게는 과연 이 녹음기라고 하는 기계를 통해서 17년 전에 열반하신 고 전강 대종사의 대사자후를 생생하게 우리는 들을 수 있게 된 문화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 자서전과 같은 「일대기(一代記) 법문」을 녹음을 해 놓은 것이 지금 있고, 그밖에 많은 설법이 녹음이 되어 있어서 전국 방방곡곡에 생존시에 듣지 못한 사부대중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모두 다 열심히 정진들 하고 계십니다.

 

정말 조실 스님은 우리 용화선원의 영원한 살아계신 조실(祖室)로 우리는 추앙(仰)을 하고자 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선원에서도 조실 스님의 이 대사자후를 생존해 계신 거와 같은 그런 마음으로 법문을 듣고 정진을 하시고 있는 데가 많습니다.

 

정말 비록 우리의 눈으로 조실 스님의 육신은 17년 이전에 부터서 친견을 못하지만, 조실 스님의 그 법문은 살아계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언제라도 듣고 싶을 때 들을 수가 있으므로 항상 우리 곁에 살아계신 것처럼 그렇게 그러한 신심으로 정진을 해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추모식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법보전 앞에 조실 스님의 사리탑(舍利塔) 제막식(式)이 거행이 되겠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내가 죽거든 권속(屬)들한테도 부고(告)를 내지 말고, 죽은 그 절에 있는 대중끼리 조용하게 화장을 하고, 사리가 나오더라도 그런 걸 수습을 하지 말고 인천 앞바다에다 다 갖다 뿌려라』 그 말씀은 바로 사리탑 같은 것을 세우고 야단을 떨지 말아라는 그런 말씀이셨고,

조실스님은 항상 척사현정(斥邪顯正) 도리를 선양을 하셨으므로 사리탑이라든지 모다 그런 상(相)을 지어서 자취를 남긴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실스님의 법은(法恩)을 입은 문도들이나 또 청신사 청신녀 형제자매들은 부처님 이후로 역대 조사가 다 사리탑을 봉안하고 그리고 추앙을 하면서 신심을 앙양(揚)을 하고 그래 왔는데,

 

설사 조실 스님 자신께서는 사리탑을 세우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의 도리로써는 그래도 사리탑을 모시는 것이 우리의 신심을 일깨우고, 정법을 길이 유통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상도 필요하다고 이러한 간절한 요청이 있어서 산승도 그러한 요청이 너무나도 간절하고 뜻이 있는 말씀이라고 여겨서 조용한 가운데 조실 스님의 사리탑을 모셨습니다. 

 

조실 스님께는 제가 꾸지람을 들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이것이 제 개인의 독단적인 일이 아니고 여러 형제자매들의 간절한 그 뜻을 모아 가지고 그래가지고 한 것이니 만큼 꾸지람 끝에는 또 용서해 주시리라고 그렇게 위안을 하는 바입니다. 

 

사리탑 제막식이 있은 다음에 조촐한 점심을 준비를 했으니 한 분도 빠지심이 없이 점심공양을 들어 주시기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처음~12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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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法恩) ; ①삼보(三寶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모임')의 은혜. ②선지식의 가르침의 은혜.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거량(擧揚 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법 사형(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영신(永信) ; 전강 선사의 법명(法名). 전강(田岡)은 법호(號).

*노장(老長) ;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스님을 일컫는 말.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삼세(三世) : 과거와 현재와 미래. 또는 전세(前世)와 현세(現世)와 내세(來世).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일대기(一代記) 법문 ; 전강 선사의 자서전과 같은, 어릴 때부터 일생 출가 수행한 것을 전강 선사께서 직접 법문하신 것을 녹음해 놓은 법문.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추앙( 받들 추,우러를 앙) ; 높이 받들어 우러러 .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사리탑(舍利塔) ; 스님의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안치(安置)한 탑형(塔形)의 석조건축물(石造建築物). 묘탑(墓塔), 부도(浮屠), 부두(浮頭), 포도(蒲圖), 불도(佛圖) 등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을 의미했지만 뒤에는 고승(高僧)들의 사리를 담는 석조탑(石造塔)을 가리키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후한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며, 우리나라에서 부도라는 용어로 스님의 사리탑을 가리키는 실례는 신라 하대부터 보이고 있다.

*제막식()동상이나 기념비 따위를  만든  완공 공포하 의식. 보통 동상이나 기념비  헝겊으로 씌워 었다가 연고 있는 사람 걷어 낸다.

*권속( 친족 권,무리 속) ; 집안(혈연관계 있는 같은 집안)에서 거느리고  식구.

*부고(訃告)어떤 사람 죽음 연고자에게 알림또는 그러 .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앙양( 오를 앙,오를 양) ; 어떤 정신이나 사기  드높이고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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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추모재2015. 1. 19. 12:24

§(374) 전강선사 14주기 추모재.


**송담스님(No.374)—조실스님 14주기 추모재(89.01.09) (용374)
 

약 13분.

 

갑인년 12월 초2일 사시. 김 성원 영가의 49재 천도 법문을 마치시고 점심 공양을 드신 뒤,

오후 2시경에 대중을 모아놓고 『여하시 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할(喝)!』 하시고 『구구(九九)는 번성(飜成) 팔십일(八十一)이니라』하시고서 세수 77세 이시고, 법랍은 66세로 고요히 열반에 드신 전강 대선사의 14주기 추모재 법요식을 맞이했습니다. 

 

갑인년 겨울은 그렇게도 모질게 춥고 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쳤었습니다.

그러한 강추위 속에서 이 도량에서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다비(毘)를 봉행했습니다. 산초 송이처럼 송이송이 맺힌 오색이 영롱한 무수한 사리(利)는 선사(先師)의 유언에 따라서 인천 앞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당시 선사의 법하(法下)에서 수행하던 많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은 ‘아직도 저희들이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생사대사를 요달치 못했는데 저희를 어찌하라고 버려두고 가시나이까.’

소리 없는 소리로 가슴에 메어지는 슬픔은 억누르며 오일장(葬)이 치루어졌었습니다. 

 

선사(先師)께서는 17세에 해인사에 출가하셔서 20세에 강원을 수료하시고, 그길로 직지사 선원에 나가셨습니다. 2년간 피맺힌 무서운 용맹정진 끝에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셨습니다.

 

혜월 스님, 혜봉 스님, 한암 스님, 용성 스님, 보월 스님, 만공 큰스님, 여러 당시 6대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으셨습니다. 그 큰스님들과 법거량(法擧揚)하신 내용이 조실 스님의 「일대기(一代記) 법문」 속에 낱낱이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25세에 만공 대선사의 선종(禪宗) 77대 법맥(法脈)을 이으시고, 33세에 법보종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되셨습니다. 36세에 법주사 복천선원 조실을 지내시고, 38세에 경북 수도선원 조실을 역임하셨습니다.

 

그 후 20년간 전남 남평 봉암사, 아주 조그마한 초막(幕) 절입니다.

그 봉암사에 거처를 두시고 광주·나주 지방에서 회두토면(灰頭土面) 화광동진(塵)으로 유시에는 숲 사이와 호숫가를 소요하시며, 유시에는 저자와 촌가에서 유연중생(有緣衆生)을 교화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 정화불사(淨化佛事)가 일어나서 58세에 해남 대흥사 주지를 역임하시고, 61세에 구례 화엄사 주지와 전남 종무원장을 지내셨습니다.

62세에 망월사 조실을 지내시고 63세에 용화사 법보선원을 개설하셨습니다. 그때에 오늘 법문을 해주신 불국사 조실로 계시는 월산 큰스님께서 용화선원 선원장을 맡아 주셨습니다.

 

64세에 월산 큰스님께서 대구 동화사 주지를 하고 계실 때, 전강 조실스님을 동화사 선원 조실로 추대를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8. 15해방 직후에 인천 도원동 보각선원에 조실로 추대할 때에 월산 큰스님께서 저 전남 남평 토굴까지 찾아가셨습니다.

‘인천 보각선원 종주로 추대하옵고 청요(邀)하오니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해 주십시오.’하는 청첩장을 들고서 손수 그 남평 산골짜기를 찾아가서 조실 스님을 모시고 올라와서 보각선원에서 지내셨던 것입니다. 

 

월산 스님은 참 오랫적 조실 스님을 신(信)하시고, 조실 스님께서도 월산 스님의 법기(法器)를 보시고서 그렇게 참 사랑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14주기를 맞이해서 이렇게 오셔서 그 조실 스님의 영전에서 우리 사부대중을 위해서 간곡한 법어를 해주시게 된 인연을 생각하면, 우리의 숙명통(宿命通)이 열리지 아니한 우매한 중생으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는 것입니다.

 

68세에 경남 범어사 선원 조실을 지내시고, 69세에 천축사 무문관 조실을 지내셨습니다.

72세에 수원 용주사에 중앙 선원을 개설하시고 조실로 취임하셨습니다.

76세에 지리산 정각사 조실을 지내시고 77세에 입적(入寂)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33세에 새파란 청년으로 통도사 조실을 지내신 뒤, 77세에 열반하실 때까지 40여 년간을 설하신 법문이 실로 허공계에 가뜩차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열반하시기전 5, 6년 동안 설하신 법문이 녹음(錄音)되어서 큰 릴(reel)로 100개, 작은 릴로 50개가 현재 보존되고 있습니다.

 

열반하신 뒤에 선사의 법문은 녹음 카세트를 통해서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고 있어, 입적하신 뒤 어언 14주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선사께서 생존시 뿌려 놓으신 정법의 씨앗이 남겨 놓으신 감로법어(法語)에 의해서 나날이 자라나고 있기에 장래에 수많은 깨달음의 과일이 국내는 물론 온 세계의 도처에 주렁주렁 열어서 무르익게 될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날 물질문명은 날로 발달하고 있으나 온 세계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길이 훨훨 타고 있습니다.

이 불을 끄고 지상에 정토(淨土)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정법을 선양(揚)하여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만(覺滿)의 대원(大願)을 성취하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신심을 돈독히 하여 선사의 남기신 법에 의지해서 용맹, 가용맹정진 한다면, 갑인년 12월 2일에 선사의 그림자인 육신은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선사의 진신(眞身)인 법신(法身)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돌아오실 것입니다. 

 

오늘 겨울에 바쁘신데도 불구하시고 원근의 경향(鄕) 각지(各地)에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

그리고 특별히 추모재에 참석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법어를 내려주신 월산 큰스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인사의 말씀을 가름하고자 합니다.(처음~12분5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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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茶毘)팔리어 jhāpeti의 음사(音寫). 소연(燒然)·분소(焚燒)라고 번역. 시체를 불살라 장사 지내는 일.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오던 장법(葬法)이다.

석가모니도 열반 후에 그 육체를 화장(火葬)하였는데, 그 이래 다비는 불교도(佛敎徒) 사이에 널리 행해졌으며 불교가 전래됨에 따라 이 장법도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육체는 지ㆍ수ㆍ화ㆍ풍 사대(四大)의 가합(假合)이라고 하여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육체는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므로 시신에 집착하지 않고 화장하는 것이다.

*사리(舍利) ; sarira의 음사(音寫). 신골(身骨)•유신(遺身)이라 번역. 시체나 유골을 뜻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물질을 가리킴.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거량(法擧揚)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일대기(一代記) 법문 ; 전강 선사의 자서전과 같은, 어릴 때부터 일생 출가 수행한 것을 전강 선사께서 직접 법문하신 것을 녹음해 놓은 법문.

*만공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을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온,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의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초막(幕)짚이나  따위 지붕 만들어 조그맣게 지은 막집(임시로 간단하게 지은 집).

*회두토면(灰頭土面) ;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얼굴에 흙을 칠한다는 뜻으로, 속인(俗人)과 같이 어울려 그 처지에서 말하며 같이 고뇌를 나눈다는 중생 교화를 위한 거리낌 없는 노력의 의미.

*화광동진(塵) ; ①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덕(智德)을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이다.

②불보살이 중생을 깨우치기 위하여 속인들 사이에 태어나 중생과 인연을 맺어 중생을 불법으로 인도함.

*유연중생(有緣衆生) : ①과거에 부처님이나 보살과 깊은 인연(緣)을 맺은 일이 있는(有) 중생. ②불도(佛道)에 연(緣)이 있어서(有) 부처님을 믿는 중생.

*정화(淨化) ; 한국불교 정화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년 일제는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불교 정화운동.

*청요( 청할 청,맞을 요) ; 남을 초청하여 맞음.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법기(法器)불도 수행할  있는 소질 있는 사람.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감로법(甘露法)부처님 가르침 한번 믿으면 끝없는 공덕 이익 얻는다는 에서  가르침 다디 이슬 비유하여 이르는 .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진신(眞身)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뜻함. 법신(法身).

*법신(法身) ;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함.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빛깔이나 형상이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5. 1. 17. 11:08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송담스님(No.113)—조실스님 제 5주기 추모재(80.01.19) (용113)

 

(1) 약 21분.

(2) 약 13분.

 

(1)------------------

 

오늘은 전강 대종사 제 5주기 추모 법요식일입니다. 날씨는 매우 혹독한데 원근에서 이렇게 참석을 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무술년 11월 16일 날 전남 곡성에서 탄생하셔 가지고, 17세에 출가하셔서 갑인년 12월 초이튿날 용화선원에서 77세를 일기(期)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동안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셔 가지고 33세에 양산 통도사에 첫 조실로 취임하셔서 학자를 제접(提接) 하신 이래로 50여 년간을 전국 유명 선원에서 많은 선객(禪客)들을 제접을 하시고,

말년에 15년간을 여기 용화선원 염전(田) 가에 조그마한 토굴에 계시면서 승속(僧俗)에 정법(正法)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께서는 직접 대부분이 조실 스님을 친견하시고, 법의 은혜를 입으신 분이 많으실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시면서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전국의 좋은 절을 많이 놔두고 하필 이 갯벌 가에서 고생을 하시면서, 여기서 우리들을 교화해 주셨던가.

생각해 보면 숙세의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면서 법을 설해 주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맨 처음에 여기 용화사는 저 밑에 보살선원 조그마한 불당(佛堂)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서 조실 스님이 여기 왕래하시다가 그 옆에 선원을 지으시고, 그리고서 신도가 차츰 불어나니까 앞에 법보선원이라고 여기 조실 스님 계시던 벽돌집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현재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법보전(法寶殿), 법당을 옛날 신사당(社堂) 터에다가 20평 가량 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법당(法堂)이 좁아서 다시 또 10여 평을 늘여 가지고 현재의 이 법당이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法)은 살아계실 때에도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그러한 생사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지만,

열반에 드신 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의 사부대중들은 조실 스님의 그 위없는 법에 더욱 감동되고, 신심을 돈발(頓發)해서 조실 스님의 법을 추모하는 사부대중이 나날이 불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어느 선원이나 어느 신도나 심지어는 저 구라파(巴)나 미국에까지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은 갓 없이 멀고 가까운 곳이 없이 번지고 번져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용화선원도 법당이 협착(窄)해서 법회 때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법당에 다 수용을 못하고, 밖에서 추운 겨울이나 더운 뙤약빛 속에서도 밖에서 법회에 참석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실 스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가, 법문을 듣고 또 듣고 여러 번 들으면 들을수록 그 법문이 우리의 ‘참마음’을 두들겨 주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법당이 없어서 법을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법당이 없어서 법을 설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법문을 들을려면은 들을 장소가 필요하고, 법을 설할려면 또한 법을 설할 만한 설할 수 있는 그러한 도량(道場)이 필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佛法)은 꼭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 불법 아닌 것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법을 듣고 설하려면은 법당이 필요하고, 닦을려면 또한 선원(禪院)이 필요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법당을 늘구실 때에 저는 “법당이 좁은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신도가 많이 오시면 뜰에서도 듣고, 저 잔디밭에서 들어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도 드린 일이 있습니다마는,

얼마 안 가서 이 법당이 좁아지고, 정말 이 법당을 늘리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그러한 상태에까지 왔습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에, 중국 하북성에 진주 관음원(觀音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가지고, 120세에 열반을 하신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존경을 받는 그러한 큰스님이십니다. 그 스님은 어려서 견성(見性)을 하셔 가지고 널리 알려져 있는 큰스님입니다.

 

근데 하루는 어느 큰 선방에서 이 조주 스님을 조실(祖室)로 청했습니다.

 

(조주 스님이) 맨 처음에 그 공양주(供養主)에게 명하기를 “개를 한 마리 구해다가 잡아서 마지(摩旨) 솥에다 삶아라.”

그래 공양주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니까, 개를 잡어가지고 마지 솥에다 삶아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에 개고기 국을 퍼서 들여왔습니다.

 

대중이 공양을 할라고 보니까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누린내가 나는 개고기 국이었습니다.

대중은 일제히 바리때를 도로 싸고 ‘이런 외도(外道)한테 우리가 법을 배우다니!’ 분개해 가지고 걸망을 싸 짊어지고 모다 도망갔습니다. 그 때 공양주와 채공(菜供)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조주 스님은 “무쟁삼매법(無諍三昧法)으로 외도 놈들을 다 내쫓았구나.” 이렇게 선언을 하시고서 그해 여름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거기서 지내셨습니다.

공양주와 채공은 철저한 신심, 목숨 바쳐서 도를 닦은 까닭으로 해서 그해 여름에 확철대오를 했던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모양을 보고 믿는다든지, 음성을 듣고 추종을 할 경우 열이면 열 다 물러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색은 모양입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춘 그러한 거룩한 어른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나는 저 부처님을 '참 성현'으로 믿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든지.

 

‘부처님은 원음(圓音)이시라. 그 음성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고, 한 말씀으로 설하되 육도의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들을 수가 있는 이러한 원음이시기 때문에 석가여래(釋迦如來)야말로 성현(聖賢) 가운데에 성현이다’ 이렇게 믿고 추종을 한다든지.

 

이리해서 ‘모양으로 나를 본다든지,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 이 사람은 마침내 참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개정국으로써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을 내쫓고, 법(法)에 의지할지언정 사람에 의지하지 아니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견과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참된 학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그해 여름을 지내심으로써 두 견성(見性) 불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조주 스님은 평생에 많은 학자를 거느리고 선방에 지내시기보다는 평생 동안을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정도 철저한 사람을 데리고 지내셨습니다.

지내신 그 절이 기와가 깨지고, 지붕에 풀이 우거지고, 비가 줄줄 새도, 기와 한 장을 고치지 아니하고 풀 한 포기를 뽑지를 아니하시고, 이쪽 구석에 비가 새면 저쪽 구석으로 피해 앉고 이러시면서 일생을 지내셨습니다.

 

옛 부처님의 화현으로 태어나신 그러한 대도인으로서도 절을 짓는다든지, 큰 절을 가지고 지내신다든지, 많은 대중을 모여서 살려고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중생을 교화를 하시고, 많은 공안을 조사공안(祖師公案)을 남기신 대도인이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역시 잠깐 잠깐 큰 선원의 조실을 부득이해서 안 맡으신 것은 아니지만 잠깐 지내시다가 내버리고 토굴(土窟)로 들어가시고,

또 토굴에 가 계시면 또 어느 큰 선방에서 조실로 모시면 마지못해서 또 따라가셨다가 한 철, 많아야 두어 철 지내시다 금방 또 토굴로 와 버리시고 이러시다가 제일 많이 지내신 곳이 바로 이 용화사 선원입니다.

 

부득이해서 이런 법당을 이렇게 지으시기는 했지만은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는 꼭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이 송담(松潭)은 그 법에 있어서나 도력에 있어서나, 조주 스님이나 조실 스님의 그런 행을 따를 수가 없지만,

그렇게 지내신 것을 항시 마음에 흠모(慕)하고 ‘내가 장차 그런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을 갖춘다 하더라도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일생을 지내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용화사가 법회 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이시지만 법당이 이렇게 비좁아도 법당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새로 법당을 더 지을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웃채와 아래채 중간에 선방과 창고를 뜯어내고 20미터의 노폭을 가진 큰 길을 내년 봄부터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 선방, 부인선방, 후원(後院)은 전부 다 뜯기게 되고, 이 웃채에서만 살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선방도 없어지고, 부인선방도 없어지고, 후원채도 없어집니다.

 

그리해서 부득이 내년 봄에는 선방도 지어야 하고, 후원·요사(舍)채도 지어야 하고, 그럴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선원을 운영해 나가면서 남은 돈을 한 푼 두 푼 모여서 선방을 지을 수 있을 때 지으리라 이리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요.

 

갑자기 이렇게 환율이 인상이 되고 물가가 상승이 되어서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그 준비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사(佛事)를 완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방이나 법당을 안 지을 수도 없고, 짓자니 여러 가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우리의 몸에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러한 대원력(大願力)을 갖고서 마음을 합한다면 어떠한 불사라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하는 신념은 가지고 있습니다.(처음~20분29초)

 

 

 

 

 

(2)------------------

 

조실 스님께서 15년간 여기에 터를 잡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한사코 토굴로만 도망갈라고 하는 저를 보시고, ‘사람이 오십이 넘으면 옛날 고인들도 다 죽을 자리를 보는 것인데 밤낮 토굴로만 가서 숨을라고만 하고 그런다’고 노상 걱정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까지도 저를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생존에 조실 스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한 송구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열반하신 뒤에,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열반하실 때,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낙엽이 귀근(歸根)이라. 떨어진 이파리는 뿌리로 돌아가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내시무구(來時無口)니. 올 때는 말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조실 스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생사를 해탈한 부처님이나 도인은 원래 생사가 없는 것이어서 다만 우리 범부의 눈에 열반상을 보이실 뿐이지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우리의 눈으로 갑인년 12월 2일 이후로는 우리의 눈으로는 조실 스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존시나 다름없이 그 우렁찬 법문은 들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정성을 모여서 법당을 세우고, 조실 스님의 육성법문을 들으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함으로써,

조실 스님의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앞길을 위해서 우리의 도업(道業)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언제 어디서라도 계시는 것이며, 다못 철저한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나투신 걸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마음을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우리는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감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 제 5주기를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손상좌(孫上佐), 손주 상좌 다섯 사람이 새로 계를 받아서 출가를 하게 되겠습니다. 

 

계(戒)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대승계는 계를 파(破)하지 않고서는 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계’를 지킬라면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해서 바로 깨닫기 전에는 ‘참 계’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의 제 5주기 열반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간략히 그러나 가장 알찬 계를 설할까 합니다.

 

임행자. 불명(佛名)은 성월, 은사(恩師) 스님은 운거 스님.

서행자. 불명은 성화, 은사 스님은 용문사 주지 스님, 우담정환 스님.

황행자. 불명은 성훈, 은사 스님은 도산정몽스님.

문행자. 불명은 성천, 은사 스님은 용주사 총무 정낙 스님.

불명은 성품 ‘성’자 항상 ‘상’자, 성상, 은사 스님은 정명 스님,

 

그리고 완월, 원래는 조실 스님의... 아시는 바와 같이, 오 정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진즉 돌아가시고 그래서 조실 스님과 인연이 깊고 그래서 준례에 따라서 조실 스님, 노스님 위로 올려붙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정목 스님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월이 아니라. 구경‘완‘자 완월. 

 

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저절로 계가 잘 지켜지도록... 

 

계를 설하는데 대단히 복잡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드린 바와 같이 최상승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계, 파하고 지키고 할 것이 없는 계, 이 계야말로 최상승계인 것입니다.

 

최상승계를 명실공(共)히 잘 지키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철저하게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계승함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으로써 계를 설해 마쳤습니다.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어서 조실 스님 추모재를 거행 하겠습니다.(20분30초~33분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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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신사(神社) ; 일본에서 왕실 조상이나 고유 신앙 대상 신(神) 또는 국가 공로  사람 신(神)으로 모신 사당.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구라파(巴)유럽(Europe)’ 음역어이.

*협착하다(窄--  좁을 협,좁을 착) ; ①차지하고 있는 자리 매우 좁다. ②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 매우 어렵다.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늘구다 ; ‘늘이다(수효, 부피, 무게 등을 더 많거나 크게 하다)’의 사투리.

*조주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불화현(古佛化現) ;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摩旨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무쟁삼매(無諍三昧) ; ①진리에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툼이 없는 선정(禪定)을 말한다.
②타인과 다툼이 없는 경지. 다툼이 없는 것은 마음 속에 갈등이 없는 것. 나아가서는 ‘미혹이 없는 것’이다. 쟁(諍)은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니, 무쟁(無諍)은 곧 무번뇌(無煩惱)이니,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개정국 ; '보신탕(湯, 개장국(--) 완곡하게 이르는 )'의 사투리. 개장국(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채소와 함께 고아  옛날부터 삼복(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흠모( 공경할 흠,그리워할 모) ; 마음 그리고 우러러 따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후원(後院) ;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
*요사채(舍- 집 료,집 사) ; 사찰 에서 전각이나 산문  스님 생활 관련 건물 통틀어 이르는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2)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손상좌(孫上佐) ; 제자의 제자를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명실공히(名實共-)알려진 내용 실제 내용 똑같게.
*지혜목숨혜명(慧命).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4. 11. 30. 12:26
§(756) 전강선사 38주기 추모재.
 
**송담스님(No.756)—2013년 전강선사 38주기 추모재(13.1.13) (용756)
 

약 5분.

 

전강 조실스님께서 열반하신지 38주기 추모재 날입니다.
 
부처님으로부터 가섭존자, 아란존자, 상나화수로 해서 달마대사까지 28대 조사(祖師)고, 달마스님으로부터 5대(代), 육조 스님까지.
육조 스님부터서 경허, 만공, 전강 조실스님까지 누대에 조사가 계셨지만은 그 법문이 팔만대장경으로부터 역대 조사의 법문이 법어집(法語集)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전강 대종사의 법문은 녹음 법문을 통해서 육성(肉聲)으로 법문을 우리는 살아계신 조실스님한테 듣듯이 법문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각 선방마다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육성으로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열반하신지 38년이 되었더라도 우리는 현재까지 살아 계신 조실스님으로 믿고 그렇게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물론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는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으셔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신 분이십니다만은,
조실스님은 그 육성을 통해서 우리는 법문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비록 조실스님의 육체는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으나 그 법문은 현재 살아 계신 조실스님으로,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녹음을 통해서 조실스님의 육성을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큰 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하고 또 정진을 하는 것만이 우리가 부처님과 역대 조사와 조실스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사부대중과 여러 선배 후배 도반 여러분과 청신사 청신녀가 이렇게 오늘 참석해 주신 그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 문중(正法門中)에서 또 만나서 또 정법에 의해서 수행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바쁘시더라도 이 추모재가 끝난 다음에 전부 점심공양을 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생사(生死)는 무상(無常)한 것이라 지금 이만큼 건강할 때에 열심히 정진(精進)을 하고 또 정진을 하는 것 밖에는 우리가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사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처음~4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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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존자, 아란존자, 달마대사, 육조스님, 경허스님, 만공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창외노화추)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我亦無所得(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차일추색모)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峰(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 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700여 시간 분량의 육성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