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자기의 인연, 자기의 업(業) / ‘이뭣고?’ 참선만이 모든 일의 근본적인 해결책 / (게송)약인투득상두관~ / 감사하는 마음.
〇이 삼계진로와 흥망성쇠가 어디서부터서 온 것이냐? 누구 때문에 온 것이냐? 다 자기의 마음, 심념(心念)에서 다 나온 것이다 그거거든.
〇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짓느냐? 짓는 데에는 한 생각이 동(動)하고 심념(心念)이 동하기 때문에 그 심념이 나 가지고 그 심념이 행동화됨으로 해서 업을 지어가지고 그 업으로 인해서 태어나고 업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〇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한 생각 나지 아니하면은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자꾸 밖에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탓하고 해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냐.
〇그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에 ‘이뭣고?’ 참나를 찾는 이 공부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여. 전부가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서 찾아야만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원인을 파악을 하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어려운 일이란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〇참나를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고 넓어. 어디를 간들 다 그것이 내 집이요, 부처님 나라요, 극락세계요, 적광토다 이거거든.
**송담스님(No.465)—92년 2월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
약 18분.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하고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閙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니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三界塵勞)가 여해활(如海闊)이다.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三界). 삼계의 진로(塵勞), 진로 망상(妄想), 생사 변화, 희로애락, 흥망성쇠 이런 것이 전부 다 삼계진로(三界塵勞)인데, 그 삼계진로의 모양이 마치 저 바다처럼 넓고 넓어. 끝없다. 끝이 없고 한이 없다 그말이여.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閙聒聒)이여. 옛도 없고 이제도 없어. 옛이나 이제나 마냥 복잡하고 시끄럽고 그렇다 그말이여.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해 간다 그말이여.
그러면 이 삼계진로와 흥망성쇠가 어디서부터서 온 것이냐? 누구 때문에 온 것이냐?
다 사람들은 옛날에는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못해서 그렇다. 지금은 대통령이 잘못해서 그렇다. 무슨 정부가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 전부 다른 사람한테 그 원인을 돌리고 세상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여. 다 자기의 마음, 심념(心念)에서 다 나온 것이다 그거거든.
‘왜 나는 뭐 잘못할 게 없는데 왜 나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겠느냐?’
물론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무슨 야당이나 당수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겠지만, 우리 일반 서민들은 자기야 뭐 국가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월급 타 먹고 살고, 농사꾼은 농사지어 먹고 사는데 자기가 뭘 잘못해서 나라가 시끄러워?
도대체 납득(納得)이 안 가고 곧이가 안 들리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세상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업(業)을 그렇게 지어서 만난 것이여.
자기가 업을 잘 지어 가지고 저 천상(天上)에 갈 복(福)을 지었다면은 천상에 가서 나지, 뭐하러 이 사바세계(娑婆世界) 복잡한 데에 태어났냐 그말이여.
어떤 사람은 그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왜 나를 낳냐?’고, ‘나를 낳아가지고 이렇게 잘 먹이고 입히지도 못하고 대학도 보내지도 못하고 유학도 보낼 자신도 없으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고 부모한테 따지는 학생이 요새 있다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찌 보면은 부모가 대답할 말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건 그 학생이 전혀 모르는 말이거든.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러한 부모 속에 자기가 태어났냐 그말이여.
자기가 영혼이—그걸 보통 숙주(宿主)라고 그러는데, 여인숙(旅人宿)이라서 ‘숙(宿)’자와 ‘주인 주(主)’자 숙주라고 그러는데,
숙주는 이제 어떠한 태중(胎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 영혼이 인자 요렇게 숙주를 찾는데, 자기가 태어나기에 적당한 데에 인연(因緣)이 있는 데에 결국은 태어나기 마련인데.
자기가 그런 인연을 지었고 거기에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인연을 스스로 지었기 때문에 거기에 태어난 것이거든.
부모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해도 자기가 고학(苦學)을 하고 열심히 해가지고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고, 뭐 사회적으로 참 훌륭한 사람이 된 사람도 얼마든지 있어요. 부잣집에 좋은 집에 태어났어도 별 볼일 없이 또 헌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짓느냐? 짓는 데에는 한 생각이 동(動)하고 심념(心念)이 동하기 때문에 그 심념이 나 가지고 그 심념이 행동화됨으로 해서 업을 지어가지고 그 업으로 인해서 태어나고 업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한 생각 나지 아니하면은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비록 이 사바세계 복잡하고도 다난(多難)한 세상에 시대에 이렇게 태어나서 살고 있지만 터억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話頭)를 들고 터억 정진(精進)을 해 나가면 세상 시끄럽거나 말거나, 망하거나 흥하거나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렇게 해 나가므로 해서 우선 자기가 그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타 죽지 않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다 일념불생(一念不生) 참선(參禪)을 해 나가므로 해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이 차츰차츰 다 적광토(寂光土)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자꾸 밖에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탓하고 해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한 회사가 노사 분규(勞使粉糾)가 일어났을 때 노동자는 기업주를 원망하고 탓하고, 기업주는 노동자를 탓하고 해가지고 계속 싸워봤자 누가 이익을 볼 것이냐?
노동자는 그 공장이 ‘자기 공장이다’ 생각하고 ‘자기 회사다’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워진 일을 착실히 열심히 하고, 기업주는 저 노동자들이 바로 ‘자기 가족이다’ 생각하고 다 자기 친자식처럼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원하기 바라기 전에 데모하기 전에 잘해 주고 이렇게 될 때에 만이 그 회사가 잘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는 회사도 잘될 길이 없는 것이고, 사회도 잘될 길이 없는 것이고, 나라도 잘되어 갈 길이 없고, 세계도 잘되어 갈 길이 없어.
그걸 거꾸로 생각하고 모든 책임과 원인은 다른 사람 밖에서다가 돌리고, 자기는 다 옳고 자기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향상도 없고 가정에 화목도 없고, 회사나 기업체도 잘되어 갈 수가 없고 결국은 너도나도 다 망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여.
그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에 ‘이뭣고?’ 참나를 찾는 이 공부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여.
‘그 뭐 이뭣고?만 하고 밤낮 앉아서 눈만 감고 앉아 있으면 무엇이 될까?’ 신심(信心)이 없는 사람,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또 그렇게도 생각할 것입니다.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를 가나 차를 타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그렇게 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 향상이 있을 것이며 가정이 화평할 것이며 회사가 잘되어 갈 것이며 국가가 잘되어 갈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마는 우리나라 앞으로 경제 문제, 통일을 앞두고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그 경제 문제도 이렇게 노사간(勞使間)에 이렇게 해가지 않고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고 정치도 역시 마찬가지고 학원 교육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부가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서 찾아야만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도 정치하고는 관계가 없을 분도 많이 계실 것이고 지금 말한 여러 가지 문제에 직접 관여는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안 하신 분도 계실 것이나, 어떠한 분이라도 원인을 분명히 알면 해결책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원인을 파악을 하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어려운 일이란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약인(若人)이 투득상두관(透得上頭關)하면,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뚫어버리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비로소 산하대지가 넓은 것을 깨달으리라.
상두관(上頭關)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것을 말하는 거여. 참선을 해서 참나를 깨닫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아를 깨닫는 것이 상두관을 투득(透得)한 것인데.
참나, 참나를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고 넓어. 어디를 간들 다 그것이 내 집이요, 부처님 나라요, 극락세계요, 적광토다 이거거든.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인간의 시비, 인간의 온갖 시비, 흥망성쇠, 선악, 빈부귀천 이런 것이 전부 인간의 분별계(分別界)인데 그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 해.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흥하면 흥한 대로, 망하면 망한 대로 일체처 일체시에 그 시비에 빠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냐. 푸른 물이나 청산이나 무엇에 걸릴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춘하추동 계절에도 걸릴 것이 없고 녹수청산에도 걸릴 것이 없고 흥망성쇠와 빈부귀천에도 걸릴 것이 없어. 모든 것은 인연대로 닥치는 대로.
떠억 깨달으면 깨달은 경계에서, ‘이뭣고?’를 한 사람은 ‘이뭣고?’를 하는 그 경계에서 인연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고 혼잡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다 희망이 있어.
새해에는 ‘이뭣고?’로써, 그리고 이 공부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원망이 많고 불평이 많은데, 이 공부를 하고 이렇게 이런 신심으로 살아가면 원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멀고 가까운 자기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이,
심지어는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고, 자기를 그렇게 시비를 걸고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까지라도 자기에게 잘 해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고통을 준 사람까지라도 다 고마운 사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어떠한 일이나, 어떠한 경계나, 어떠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기를 우리 다 같이 다짐합시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감사에는 화목이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48분23초~65분40초)(끝) (용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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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27권(上)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납득(納得 받아들임 납/얻을·만족할 득) ; 다른 사람의 말이나 형편 따위를 잘 이해하고 긍정함.
*곧이 ; 바로 그대로.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 · 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숙주(宿主 묵을 숙/주인 주) ; ①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 ②전적으로 기대어 이익을 취하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조직편(組織片)이나 기관(器官)의 이식(移植)에서 그 이식체를 받는 쪽의 개체.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고학(苦學) ; 학비(學費)를 자기의 힘으로 벌어 고생하며 배움.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다난(多難)하다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〇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〇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참고] 송담스님(No.410)—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칠 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염(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분27초)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속수무책(束手無策 묶을·잡아맬 속/손 수/없을 무/꾀 책) ; 손이 묶인 것처럼 어찌할 도리나 방책(方策 일을 하는 방법과 꾀)이 없어 꼼짝 못 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 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되는 것.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
[참고]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〇인간의 분별계(分別界)란 게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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