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 화두2021. 9. 8. 09:58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육조 스님과 남악회양 선사, 하택신회 선사 / 활구참선. 은산철벽(銀山鐵壁) / 참선은 쉽다(세수하다가 코 만지기), 어렵다(깨 한 말을, 깨 한 알씩을 큰 나무 뿌리에서 굴려서 나무 꼭대기까지 굴려 올릴 만큼)

옛날부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겠다고 출발을 했지만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중도에서 쉬어버리거나 또는 딴 길로 빠지거나 이러기가 십상(十常) 쉽고, 끝까지 나아가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중간에 어떠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해태심(懈怠心)을 내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한결같이 쉬지 않고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法門)을 들어야 하고, 또 좋은 도반들과 항시 같이 수행을 해 나가야, 내가 혹시 해태심이 나거나 딴생각을 내더라도 도반(道伴)으로부터 경책(警策)을 받고 선지식으로부터 법문을 들어서 그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2)—1983년 9월 첫째 일요법회(83.09.04) (용212) (이뭣고화두)

 

 

 

약 19분.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허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백운(白雲)이라고 하는 자식이 만리의 바람에 나부끼는데, 원래 백운은 청산에 의지해서 뭉쳐서 있다가 바람이 부니까 그 바람에 실려서 저 만리 하늘에 나부껴 날아갔다 그 말이여.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여. 그렇게 바람에 불려서 만리 하늘을 떠내려갔지만 그 백운은 항시 그 마음속에는 자기가 본래 놀며 의지하며 살고 있던 그 푸른 산을 마음속에는 잊지를 않고 있더라 그 말이지.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인데, 어째서 무슨 일로 이 백운은 청산으로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길이길이 자기 본래 살던 그 청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으로 저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이리저리 바람 따라서 물결 따라서 떠돌이 신세가 되어 있구나.

우리는 본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본래는 똑같은 본각(本覺)의 경지에 있었습니다. 새로 닦지 아니하고, 닦을 것도 없이 본래 깨달아져 있는 그러한 본각성(本覺性)이었건마는 한 생각 잘못 일어나는 것이 동기가 되어서 풍파에 나부껴 가지고 무량겁을 동서사방 육도(六途)를 돌고 돌면서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래 그 부처님과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한 집에서 한 자리에서 기거를 같이 하고 생활을 같이 했건마는 그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렇게 그 본 자리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이렇게 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바람이 그칠런지, 바람이 부는 한에 있어서는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날아가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고,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몰려가고, 남풍이 불면 북쪽으로 나부껴서 동서사방 정처가 없습니다.
조끔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축생도 되었다 인간도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나되 좀 잘살기도 하고 못살기도 하고,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마치 우리의 이 존재가 청산을 떠난 흰구름과 같이 그렇게 비유를 해서 읊은 게송입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태자로 태어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에 들어가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시고, 그래 가지고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현재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그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면면(綿綿)히 전해오고 있습니다마는,
삼천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 동안에 부처님께서 전하신 그 정법(正法)은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썩은 사내끼에 매달려 있는 바윗돌과 같이 언제 그 썩은 새끼가 뚝 끊어져 가지고 그 바윗돌이 땅에 뚝 떨어질런지 모른 그러한 위급한 상황 속에 불법이라고 하는 그 맥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그 불교가 동양에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고 그 경전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또 번역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지마는, 참으로 그 불법에 등등상속해서 내려오는 그 법맥(法脈)이라고 하는 것은 실오라기만큼 그러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육조(六祖)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육조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물으시기를,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떠받고 아래로는 땅을 기둥하며,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가 없다. 항상 이 동용(動用)하는 가운데에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에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는 “제불지근원(諸佛之根源)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고 이 하택 저 자신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제불의 근원이니, 하택의 불성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네가 앞으로 커서 공부를 열심히 해 가지고 설사 네가 큰 스님이 된다 하더라도 너는 마침내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못 되것다”

지해종사(知解宗師)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법을 공부하는 학자나 강사 그러한 알음알이로 불법을 해석하고 강론하고 그러한 지해종사 밖에는 못 되것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육조 스님 앞에 와서 절을 했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고 물으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꽉 맥혀 가지고 뭐라고 대답을 할 수도 없고 완전히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가지고 물러 나와서 8년 간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가?’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가슴속에 북받치는데 콱 맥혀서 ‘대관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무슨 물건인가?’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되아 8년 만에사 탁! 깨쳤는데, 육조 스님 앞에를 갔습니다. “제가 깨달랐습니다”

“깨달랐으면 어디 일러봐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할 것이 있느냐?”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할 것은 없지 아니하나 더럽히고 물들인 것은 없습니다. 오렴은 곧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러니라’ 이렇게 해서 쾌히 인가(印可)를 하시고 법(法)을 남악회양 선사에 전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제불의 근원’이니, 무슨 ‘나의 불성’이니 그렇게 이론으로 따지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고,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음알이요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떠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콱 맥혀서 답답해 알 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은산철벽(銀山鐵壁)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길만길 절벽이라,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고 다못 꽉 맥혀서 알 수 없어.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이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악회양 선사 같은 도인(道人)은 다 숙세에 선근종자(善根種子)로 다 전생에부터서 많이 닦으신 그러한 도인이 태어나셨겠지만 그래도 8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근기(根機)가 박약(薄弱)한 우리 말세(末世) 중생들은 8년 아니라 80년이라도 지루한 생각을 갖지 말고 목숨을 바쳐서 한 화두(話頭)에 대해서 참구(參究)를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만한 공력과 그만한 끈기와 그만한 노력이 없이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어떻게 기약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해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진 것보다도 더 쉽다’ 이렇게도 쉬웁기로 말하면 그렇게 쉬웁다고 표현을 하셨지만,
어렵기로 말하면은 깨 한 말을 갖다가—깨 한 알씩을 큰 나무 뿌럭지 있는 데서부터서 굴려서 저 열 길이나 되는 나무 꼭대기까지 굴려서, 그 나무의 몸뚱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을 굴려서 나무 꼭대기에다 올려다 놓고, 다시 또 내려와서 깨 한 알을 갖다가 뿌리에서부터서 굴려서 올려 가지고 저 꼭대기에 갖다 놓다가, 중간에 잘못해서 뚝 떨어지면 다시 뿌리에서부터서 굴려 올리고 그래서 깨 한 말을 굴려 올릴 만큼.

그것이 얼마나 공력을 드려야—그 하나를 평면으로 굴려 올린다면 모르지만, 서 있는 나무에 굴려서 올린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라 그 말이여. 그만큼 공력과 끈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겠다고 출발을 했지만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중도에서 쉬어버리거나 또는 딴 길로 빠지거나 이러기가 십상(十常) 쉽고, 끝까지 나아가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중간에 어떠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해태심(懈怠心)을 내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한결같이 쉬지 않고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法門)을 들어야 하고, 또 좋은 도반들과 항시 같이 수행을 해 나가야, 내가 혹시 해태심이 나거나 딴생각을 내더라도 도반(道伴)으로부터 경책(警策)을 받고 선지식으로부터 법문을 들어서 그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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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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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