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 화두2021. 1. 27. 21:07

§((084)) (게송)전빙시수수성빙~ /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 /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 / 점철성금(點鐵成金).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참나 찾는 '이뭣고?'를 해야 /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다.

 

**송담스님(No.084)—1978(무오)년 칠석 법회(78.08.10) (용084)

 

 

약 18분.

전빙시수수성빙(全氷是水水成氷)이요  고경불마원유광(古鏡不磨原有光)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풍자동혜진자기(風自動兮塵自起)라  본래면목노당당(本來面目露堂堂)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얼음이 온전히 이 물이여. 그리고 물이 곧 얼음이 된 것이다(全氷是水水成氷).

얼음을 내놓고 물을 찾아서는 아니 됩니다. 얼음이 바로 그것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에게는 생사(生死)가 있습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공덕으로 태어나 가지고, 얼마 동안 자라다가, 자라는 것이 바로 늙어가는 과정이죠.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늙어서, 그래가지고 병들어 가지고 죽어갑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世界)에는, 우리 몸밖에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무슨 물건이던지 이루어졌다가, 얼마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해 가다가, 그 모냥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마침내는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허망한 것이다.

일체(一切)의 유위법(有爲法)은 꿈[夢]과 같고, 꼭두각시[幻]와 같고, 물거품[泡]과 같고, 그림자[影]와 같고, 풀끝에 이슬[露]과 같고, 또 번갯불[電]과 같다.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허망하지 아니하고 참되고 영원(永遠)한 것이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를 우리는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허망한 모든 것들을 여의고, 그밖에 참된 것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영원히 참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煩惱妄想心)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보리열반(菩提涅槃)을 찾아야 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삼라만상 그 허망한 것들 속에서, 그 놈을 버리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참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 뭣고?'입니다. '이 뭣고?'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볼 줄 아는 놈, 귀를 가지고 들을 줄 아는 놈, 코로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놈, 입으로 말하고 혀로 맛볼 줄 아는, '아! 이것은 쓰다 달다', '더웁다 차다' 느낄 줄 아는 이 몸뚱이.

여기에 앉아서도 서울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하고, 10년 20년 전 옛날 어릴 적에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대관절 무엇이냐?'

아무리 그놈을 볼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건만, 분명히 들을 줄 알고, 분명히 볼 줄 알고, 성내고 울고 웃을 줄 아는 이놈!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칠석 법요식(法要式)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되겠습니다.

 

얼음이 곧 이것이 물이여. 번뇌(煩惱) 망상(妄想)—성내고 슬퍼하고 웃고, 오고 가고 이것이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번뇌 망상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모습이요,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겠지마는, 그놈을 여의고 '생사 없는 도리'가 없는 것이올시다. 그 속에서 바로 '이뭣고?'

성낼 때 그 성내는 놈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썽이 폭! 한 생각이 속에서 뒤집어질 때, 뒤집어지려고 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이 속 뒤집어지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썽내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바로 점철성금(點鐵成金)입니다.

 

무쇠 덩어리를 딱! 갖다가 '금(金)이다!' 하고 탁! 점(點)을 치면 무쇠 덩어리가 찰나간에 황금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점철성금(點鐵成金)!

번뇌 망상 '한 생각' 폭! 일어나는 그 진심(瞋心)이 참선(參禪)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금방 독사(毒蛇)의 몸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원인이지마는, 참선을 하는 사람은 폭! 썽이 날 때 바로 '이 뭣고?' 이것이 바로 독사의 몸을 받기 전에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서는 도리(道理)올시다.

 

불법(佛法)은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칠석날에 공(功)을 들이고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축원(祝願)을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축원을 해 봤자—물론 그러한 유루(有漏)의, 유상(有相)의 공양(供養)도 복(福)이 아닌 것은 아니나—상(相)이 있는 공양, 유루복(有漏福)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을, 아무리 힘센 사람이 화살을 공중에다 대서 쏘아 올렸다 하더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가 힘이 떨어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듯이, 우리가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머무른 바 있는 마음으로 지은 복은 언젠가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공덕(功德)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상(相)이 있는 것을 여의고 무상(無相)을 찾지 못한다'고 한 말씀이 생사심(生死心)을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몸이 있는 동안에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하고,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인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거기에만 꽉 착(着)해 가지고 그것이 다 인 줄 알지 말고, 정말 그 가운데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그러한 모냥 있는 것들도 바로 참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한다고 해서 복(福) 짓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더욱 상(相)이 없는 깨끗한,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복을 지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선을 열심히 해야—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남편이 수명장수하고, 사업이 잘되기를 바래고, 아들과 딸이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짝을 만나서 행복(幸福)하게 살기를 바래고,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 돌아가신 어른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그러한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상당수 계실 줄 생각합니다. 다 좋은 생각이고 참 훌륭한 생각입니다.

 

참으로 돌아가신 선망부모, 돌아가신 남편, 비명(非命)에 간 아들과 딸의 명복(冥福)을 빌고, 살아계신 부모와 아들과 딸, 남편, 온 가족이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물질적인 공양에만 머무르시지 말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내가 나를 찾는 참선법(參禪法)을 잘 귀담아들으시고 마음에 명심(銘心)을 하셔서 댁에 가시는 걸음걸음이, 차 속에서, 댁에 가셔서 살림을 하면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신경질이 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이 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참나를 찾는 데에 돌리면서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정말 눈앞에서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성취되실 것을 나는 보장합니다.

 

모든 업(業)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업을 소멸(消滅)하는 것은 그 업의 근원(根源)인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흘러간 물을 깨끗이 하려면 그 위에 가서 꾸정커리지를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밑에 아래에 물을 맑게 할려고 애를 써봤자 저 상류(上流)에서 흙탕물을 계속 일구고 있다면 아래에 물이 맑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랫물을 맑게 하기를 바랜다면 저 위에서, 근원에서 흙탕물 일구는 일을 그만두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하면,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우리의 업(業)을 소멸(消滅)해야 하고,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할진댄 바로 그 업(業)의 근원(根源)인 나의 마음, 나의 마음자리로 부터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흙탕물을 바로 되돌려서 참나 찾는 최상법 '이뭣고?'로 돌릴 때에 구정물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간 물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옛 거울은 닦지 아니해도 원래로 빛이 있는 것이여(古鏡不磨原有光).

우리의 마음자리는 언제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는 그 본래(本來)의 우리 마음자리는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기에 먼지가 끼여서 그 빛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빛이 나고 영롱하고 밝고 깨끗한 거울 위에 끼여 있는 띠끌만 닦아 버린다면은 새로 빛을 내게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빛이 날 것입니다.

 

바람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띠끌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여(風自動兮塵自起).

그렇게 해서 거울 위에 있는 때[塵]만 '이 뭣고?'를 통해서 닦고 또 닦아 가고 열심히 닦는다면, 우리의 자성(自性), 우리의 참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이 날 것입니다(本來面目露堂堂). (15분3초~32분5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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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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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