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24. 3. 24. 13:36

§(164) (게송)신재해중휴멱수~ / 산철결제 / 진각국사(眞覺國師) 좌우명(座右銘) / 중국 고봉선사의 수행담 /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 / 고봉스님 3년 공부가 진취가 없었던 까닭은? 화두만을 자꾸 거각(擧却)했을 뿐이지, 그 간절한 '의정(疑情)'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고봉스님, 전강 조실스님처럼 속에서부터 불타오르는 그러한 그 간절한 분심(憤心), 신심(信心)이 아니면 대의단(大疑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망회타귀굴~, 수임방원기~ /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과연 어떻게 일용(日用)을 수용(受用)을 해 갈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4)—1982(임술년) 춘계산철 결제 법어(82.02.24) (용164)

 

(1) 약 19분.

 

(2) 약 16분.


(1)------------------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하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가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하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몸이 바다 가운데에 있으니 물 찾기를 쉬어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니 산을 찾지 말아라.
바닷속에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있으면서 '물이 어디가 있는가?' 하고 물을 찾지 말고,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면서 '산이 어디가 있는가?' 하고 산을 찾지 말아라.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백 년이면, 일 년이 삼백육십 일이니까 백년이면 삼만육천 일인데,
백년(百年) 삼만육천조(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니라. 백 년 삼만육천 일 반복하는 놈이—엎쳤다 뒤쳤다, 앉았다 일어났다, 오고가고, 그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더라.


오늘은 임술년(壬戌年) 2월 초하루, 반살림 결제(結制)날입니다.
그전에는 전강 조실(祖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쭈욱 해제(解制) 동안에도 스님네가 해제했다고 해서 이렇다 할 꼭 갈 곳도 없으면서 모다 걸망을 지고 불불이 나가서 여기저기 동서남북으로 그럭저럭 다니면서 다음 철 결제까지 기다리느라고 정처(定處)없이 모다 행각(行脚)도 하고, 모다 이리 가서 쉬기도 하고 약(藥)도 먹고 모다 그랬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이 도량(道場)에서 결제 때와 똑같이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이리 생각을 해서, 산철에도 가시지 말고 여기서 공부를 하시기를 바래서, 그렇게 해서 스님네가 이 산철에도 정진을 쭈욱 해 내려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금년(今年)부터서는—옛날에 그렇게 산철에 정진을 했지만, 뭐 '산철결제'라 하고 무슨 결제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그러지는 안 했습니다.
금년에는 이렇게 새로 선방(禪房)도 짓고 이렇게 법당(法堂)도 짓고 그랬으니, 기왕 산철에 결제를, 안거(安居)를 하기로 한다면 간략히 결제 법요식을 갖는 것이 우리의 신심(信心)을 굳건히 하고 여러 가지 분위기를 엄숙히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이리해서 여러 스님네의 뜻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간략히 법요식을 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다 신도님한테는 '산철 결제 법요식에 참석하시라'는 구체적인 발표는 하지 안 했는데, 이렇게 특별히 신심(信心)이 있는, 또 인연(因緣)이 있는 몇 분의 신도님네들이 참석을 해 주셔서 이것도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因緣)의 소치(所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각국사(眞覺國師)에 좌우명(座右銘)」이 있는데, 그 좌우명을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우리 정진(精進)을 해 나가는 출가(出家) 납승(衲僧)으로서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자(菩薩子) 보살자(菩薩子)여. 상자마두심유이(常自摩頭深有以)니라.
보살이여, 보살의 자식이여, 보살이여. 우리가 모다 보살의 자식이요, 새끼보살이라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자마두심유이(常自摩頭深有以)여. 항상 스스로 자기 머리를 어루만져 보라 그 말이여. 깊은 씀[有]이 있으리라, 깊은 의의(意義)가 있으리라.

마두인득심사량(摩頭因得審思量)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냐.
머리를, 자기 머리를 자기가 떠억 어루만지면서 깊은 사량(思量)을, 생각한 바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여. '부처님이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자기가 자기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생각을 하는 것이여.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냐, 출가(出家)한 본뜻이, 목적이 무슨 일을 목적으로 해서 출가를 했느냐?

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이요, 모냥은 분명히 중에 모냥을 하고 있는데, 그 마음은 속인(俗人)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참으로 여법(如法)한 출가인(出家人)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다 갖추었느냐.
가불참천이괴지(可不慚天而愧地)니라. 가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고, 땅을 내려다보고 부끄럽지 않느냐.

추행광언임여위(麤行狂言任汝爲)요  확탕노탄하회피(鑊湯爐炭何回避)리요.
머트러운 행동과 미치광이 같은 말을 니 멋대로 행하고, 니 멋대로 지껄이다가 확탕노탄(鑊湯爐炭)을 하회피(何回避)냐, 확탕(鑊湯)지옥과 노탄(爐炭)지옥을 어떻게 회피할 수가 있겠느냐.

이건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항시 자기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던 글입니다. 이 글은 바로 출가 납승으로서는 누구나 이러한 좌우명으로써 자기(自己)의 좌우명(座右銘)을 삼는다 해도 조끔도 손색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기가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이 좌우명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 가운데에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있는 법문을 해 주셨는데,
네 가지의 은혜(恩惠)가 중(重)한 것을 잊지 않았느냐?
사대(四大) 오온(五蘊)이 생각 생각이 일 초 일 초 늙어가고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안 했느냐?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 했느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와 조사(祖師)를 만났느냐?
이러한 등(等)의 여러 가지 그 법문을 해 주셨는데, 그러한 말씀도 우리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그런 중대(重大)한 법문(法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출가한 선객(禪客)이 무엇이 제일 고민(苦悶)이냐?
옷이 없는 것도 고민이 아니요, 먹을 것이 없는 것도 고민이 아니요, 건강이 좋고 나쁜 것도 그것도 큰 고민이 아니고, 오직 큰 고민은 '정진(精進)이 순일(純一)하게 되냐, 안 되느냐?' 오직 이 하나의 고민이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중국에 고봉선사(高峰禪師), 『선요(禪要)』 법문을 하신 그 고봉선사께서도 처음에 출가해서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화두(話頭)를 타서 참선(參禪)을 하는데, 어떻게 잠이 퍼오던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포단(蒲團) 위에 앉어 있을 수가 없었어. 부득이 밥을 먹을 때에만 방석에 앉어서 밥을 먹고는 그밖에는 방석에 앉어 있을 수가 없어. 앉었기만 하면 혼침(昏沈)이 와서 졸음이 오기 때문에 앉지를 못하고.

금방 앉으려고 하면은 잠이 퍼와 가지고는 꾸뻑 (졸면) 일어나 가지고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는데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까지 그래 가지고 왔다갔다하면서 잠을 깨 가지고, 잠이 깨져서 막 좀 가서 방석에 가서 앉으려고 하면은 또 잠이 오고.
잠이 깨면은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망상이 좀 가라앉을만 하면 잠이 오고 이랬는데, 처음에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결심을 하기를 '3년 동안 정진을 해 가지고 3년이 되어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면 죽어 버릴 각오'를 하고 공부를 시작을 했는데, 3년이 거의 다 되도록 조끔도 공부가 진취(進趣)가 없었어. 죽을 날은 얼마 안 남았는데, 기한은 얼마 안 남었는데 공부가 전혀 진취가 없어.

이 세상에 무엇이고 3년 동안 적공(積功)을 들이면 숙달이 되어서 많이 진취가 있는 것인데, 어찌된 셈인지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아무리 고단해도 자리에 눕지를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는데 3년이 되도록 조끔도 진취가 없어. 혼침과 산란, 두 가지로 완전히 24시간이 점철(點綴)이 되어. 혼침 아니면 산란, 산란 아니면 혼침.
아무리 곤(困)해도 자리에 눕지를 않고, 낮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밤새도록 잠을 안 자려고 도량에 나가서 왔다갔다. 밥 한 그릇 먹는 그 잠깐 동안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를 아니했어.

그리다가 마지막에 가서 달마(達摩) 스님 기일(忌日)에, 달마 스님 모셔진 영각(影閣)에 올라가서 그 제사를 지내는데, 그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 진영(眞影)에 쓰여 있는 글에,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라' 그 영찬(影讚)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는데.(처음~19분)




(2)------------------

그 확철대오 하기 전 일주일 전에 꿈에 단교화상(斷橋和尙)이 보이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話頭)를 꿈에 받고서 꿈을 깼는데, 그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밥을 먹어도 의심이요 똥을 누어도 의심이요, 산을 봐도 의심이요 물을 봐도 의심이요, 대중 가운데 있어도 대중은 한 사람도 보이지도 않고 오직 의단만이 독로해서 밥도 건성으로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일부러 딴생각을 좀 하려고 해도 딴생각이 나지를 않고 오직 화두만이 독로를 했다.

그 전에는 화두를 아무리 들려고 해도 들을 때뿐이지, 금방 산란심(散亂心)이 들어와 버리고 그랬었는데, 꿈에 단교화상 '만법귀일' 화두를 받은 이후로는 제절로 그렇게 되었더라.
그래 가지고 이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가 일주일을 고대로 가는데, 마침내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 이란 영찬(影讚)을 보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는데.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해서 3년 동안을 그렇게 애를 썼어도 공부가 일호(一毫) 진취(進趣)가 없었느냐?’
그 원인을 캐 보니까, 다른 데에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정상(疑情上)에서 공부를 짓지 아니한 데 있더라. 화두만을 자꾸 거각했을 뿐이지, 그 간절한 '의정(疑情)'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공부가 잘 안 된다', '의심이 잘 안 든다' 많은 수행승(修行僧)들이 이 년, 삼 년 내지 십 년을 선방으로 다니면서 공부를 해도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못하는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가끔 "어떻게 하면 의정이 돈발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다정한 도반(道伴)이 무상(無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 도반이 죽어서 사십구재(四十九齋)날 김응애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어린 나이에 선방(禪房)에 들어오셔서 그 용맹정진을 해 가지고 마침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하셨습니다마는.
그러한 특별한 발심(發心) 기연(機緣)이 있거나, 스스로 그렇지 못하면 이 고봉 스님의 경우와 같이 되고 안 되고 할 것도 따지지 말고, 아주 죽기로 맹서(盟誓)를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1년 2년 3년, 이렇게 피나는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공부가 되고 한 것도 따지지 말고 모기가 마치 쇠로 된 소에 입부리를 박듯이—모기가, 그 약하디 약한 모기가 어떻게 쇠로 지어 붓어진 소 몸에다가 그 입부리를 박은들 들어갈... 상식적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들어갈 것이다, 안 들어갈 거다'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몸뚱이 채 쇠로 된 소 몸에다 뚫고 들어가는 것이여. 입부리와 자기 몸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거나 말거나,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한 것을 전혀 따지지 아니하고 몸뚱이 채 아주 육탄(肉彈)으로 소를 향해서 몸을 던진다 이 말인데.

이러한 대용맹심, 조실 스님께서도 도반의 죽음으로 해서 무상함을 깨달라서 발심을 하셔 가지고 대중의 사분정진에 구애(拘礙) 받지 아니하고, 법당 뒤에다가 꺼적을 하나 깔아 놓고 거기서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졸으면 또 포행(布行)을 하고 또 졸음이 나가면 정진을 하고 무섭게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속에서부터 불타오르는 그러한 그 간절(懇切)한 분심(憤心), 신심(信心)이 아니면 대의단(大疑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이 모여서 방(榜)을 짜서 정진을 하게 되니까 대중(大衆)의 규칙에 순응(順應)을 해야 되겠지만, 대중의 규칙에 어긋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철저한 자기 규칙,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고봉 스님처럼 전강 조실 스님처럼 그러한 철저한 가행정진을 해서 기어코 이번 철에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망회타귀굴(忘懷墮鬼窟)이요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하면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망회(忘懷)에 타귀굴(墮鬼窟)이요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라.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하고, 생각을 자꾸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하면, 망회(忘懷)를 잊어버리면, 회포(懷抱)를 생각을 잊어버리면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에 떨어지고,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다. 뜻을 착(着)하면, 생각을 일으키면,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이 되었건, 벌써 뜻을 착(着)하면 잔나비의 뜻에 놀아난 것이다.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하면, 생각을 잊으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뜻을 부딪치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이 두 가지 병[二病]을 없애려고 뉘기 짜면,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이다. 야호에 정, 야호정(野狐精), 야호(野狐)는 여우, 여우에 정(精)을 면틀 못할 것이다.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허고  경수호한형(鏡隨胡漢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직요이마거(直饒伊麽去)라도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각을 잊어버리면 귀신굴(鬼神窟)에 떨어지고, 뜻을 부딪히면, 착(着)하면 원숭이의 정(情)에 놀아나고, 이 두 가지 병(病)을 없애려고 하면 야호(野狐)의 정(精)을 면틀 못한다. 

그렇다면 물이 둥글고 모난 그릇에 따르듯이,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도 둥그렇게 담아지고,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 물도 모나게 담아지고,
경수호환형(鏡隨胡漢形)이다. 거울은 검은 것이 거울 앞에 나타나면 검은 것이 거울 속에 비추고, 흰 것이 나타나면 흰 영상(影像)이 거울 속에 드러나듯이.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가져가면 어떻겠느냐.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마치 귀먹은 벙어리와 눈이 먼 장님에다가 비유할 수밖에는 없느니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아 가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과연 어떻게 일용(日用)을 써 가겠는가, 수용(受用)을 해 갈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19분1초~35분2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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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게송)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 ; ‘백 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왔다갔다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의 진영(眞影) 찬(讚) 끝에 있는 두 글귀.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p168~169. p173~174 참고.
忽於次月十六夜夢中에  忽憶斷橋和尙이  室中所擧萬法歸一一歸何處話하니  自此疑情頓發하야  打成一片하야  直得東西不辨하며  寢食俱忘이라

어느덧 다음 달 16일 밤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홀연히 단교화상이 방장실(方丈室)에서 일러 주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화두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로부터 의심이 단박 생겨 일념을 이루어서 동과 서를 잊었으며,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至第六日하야  辰巳間에  在廊下行이라가  見衆僧堂內出하고  不覺에  輥於隊中하야  至三塔閣上하야  諷經이라가  擡頭忽睹五祖演和尙의  眞讚末後兩句에 云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這漢하고  日前被老和尙의  所問拖死屍句子를  驀然打破하니  直得魂飛膽喪하야  絶後再甦이라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리잇고  乃是辛酉三月廿二少林忌日也러이다  其年이  恰廿四歲요

그러한지 6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진시(辰時)에서 사시(巳時) 사이에 행랑(行廊) 아래서 거닐다가 대중 스님들이 승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대열에 섞여 삼탑각에 올라갔습니다. 경을 외우면서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법연 화상의 진찬(眞讚)의 끝 두 글귀에 “백년 3만 6천 일을 반복(返覆)하는 것이 원래 이놈이다” 한 것을 보자, 전에 스님께서 다그쳐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백이십 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
그때가 바로 신유(辛酉)년 3월 22일 달마 대사 기일(忌日)이었고 제 나이 24세가 되었습니다.
*임술년(壬戌年) ; 1982년.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불불이 ; 부랴부랴(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소치(所致 것·바 소/이르다·도달하다 치) ; (주로 '~의 소치'의 구성으로 쓰여) 어떠한 까닭으로 일어난[致] 바[所]. 어떤 까닭으로 생긴 일.
*진각국사(眞覺國師) 좌우명(座右銘) ;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353.
菩薩子 菩薩子 常自摩頭深有以 摩頭因得審思量 出家本意圖何事

보살님이여, 보살님이여. 항상 머리를 만지는 것 깊은 까닭이 있네. 머리를 만지며 깊이 생각하나니 '출가한 본의가 무엇이었던가?'

僧其相貌俗其心 可不慚天而愧地 麤行狂言任汝爲 鑊湯爐炭何廻避

겉모양은 승려로서 그 마음은 속심(俗心)이라면,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느냐. 거친 행동과 미친 소리를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과 숯불에 달구어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느냐.

*좌우명(座右銘 자리 좌/오른쪽 우/새길 명) ; 늘 자리[座] 옆[右]에 새겨[銘]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출가(出家) : [산스크리트어] pravrajyā 또는 pravrajita '집[家]에서 나온다[出]'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2~133. (가로판 p139)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납승(衲僧 옷을 꿰맴 납/중 승) ; 납자(衲子).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속인(俗人 속인·평범하다·대중적이다 속/사람 인) ; ①세속(世俗)의 사람[人]. ②불가(佛家)에서 스님이 아닌 일반 사람을 이르는 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탕노탄(鑊湯爐炭) 지옥 ; 확탕(鑊湯)과 노탄(爐炭).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과 숯불에 달구어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
*손색(遜色 못하다·뒤지다·뒤떨어지다 손/모양·상태 색) ; (주로 ‘없다’와  함께 쓰여) 다른 것과 비교해 보아서 못한 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선가귀감(禪家龜鑑) ;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선가귀감’이 있다.
*‘네 가지의 은혜(恩惠)가 중(重)한 것을 잊지 않았느냐? 사대(四大) 오온(五蘊)이 생각 생각이 일 초 일 초 늙어가고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안 했느냐?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 했느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와 조사(祖師)를 만났느냐?’ ; 일용점검(日用點檢), 참선 수행인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할 도리.
*일용점검(日用點檢) ; 참선 수행인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할 도리.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8~72 참고.
大抵參禪者(대저참선자)는 還知四恩(환지사은)이 深厚麼(심후마)아, 대저 참선하는 이는 네 가지의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還知*四大醜身(환지사대추신)이 念念衰朽麼(염염쇠후마)아,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 몸[四大醜身]이 찰나 찰나 썩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還知人命(환지인명)이 在呼吸麼(재호흡마)아,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生來値遇佛祖麼(생래치우불조마)아, 살아오매 부처님이나 조사를 만나 뵈었는가?
及聞無上法(급문무상법)하고 生希有心麼(생희유심마)아, 위없는 법문을 듣고 희유한 마음을 냈는가?

不離僧堂(불리승당)하고 守節麼(수절마)아, 승당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不與隣單(불여인단)으로 雜話麼(잡화마)아, 곁에 있는 사람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切忌鼓扇是非麼(절기고선시비마)아, 분주하게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는가?

話頭(화두)가 *十二時中(십이시중)에 明明不昧麼(명명불매마)아, 화두가 십이시(十二時) 중 어느 때나 또렷또렷 매(昧)하지 않는가?
對人接話時(대안접화시)에 無間斷麼(무간단마)아,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見聞覺知時(견문각지시)에 打成一片麼(타성일편마)아, 보고 듣고 느끼고 알 때에도 한 조각을 이루고[打成一片] 있는가?

返觀自己(반관자기)하야 捉敗佛祖麼(착패불조마)아, 자기의 본래면목을 보아서 불조의 허물을 잡아냈는가?
今生(금생)에 決定續佛慧命麼(결정속불혜명마)아,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겠는가?

起坐便宜時(기좌편의시)에 還思地獄苦麼(환사지옥고마)아, 앉고 눕고 편안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此一報身(차일보신)이 定脫輪㢠麼(정탈윤회마)아, 이 육신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當*八風境(당팔풍경)하야 心不動麼(심부동마)아, 여덟 가지 바람[八風]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此是參禪人(차시참선인)의 日用中點檢底道理(일용중점검저도리)니 古人云(고인운), 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하면 更待何生度此身(갱대하생도차신)고 하시니라,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언제 건질 것인가!’ 하시니라.

〇주해(註解)와 평(評)
四恩者(사은자)는 父母君師施主恩也(부모군사시주은야)요 四大醜身者(사대추신자)는 父之精一滴(부지정일적)과 母之血一滴者(모지혈일적자)니 水大之濕也(수대지습야)요 精爲骨(정위골)이요 血爲皮者(혈위피자)는 地大之堅也(지대지견야)요 精血一塊不腐不爛者(정혈일괴불부불란자)는 火大之暖也(화대지난야)요 鼻孔先成(비공선성)하야 通出入息者(통출입식자)는 風大之動也(풍대지동야)라 阿難曰(아난왈), 欲氣麁濁(욕기추탁)하야 腥臊交遘(성조교구)라 하시니 此所以醜身也(차소이추신야)라

네 가지 은혜란 부모, 임금, 스승, 시주의 은혜요,  네 가지로 된 더러운 몸[四大醜身]이란 아버지의 정수[精]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血] 한 방울이니, 물의 젖은 기운[水大之濕]이요, 정수는 뼈[骨]가 되고 피가 가죽[皮]이 된 것은 땅의 단단한 기운[地大之堅]이며, 정기[精]와 피[血]의 한 덩이가 썩지 않고 녹아버리지도 않는 것은 불의 더운 기운[火大之暖]이요,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바람의 움직임[風大之動]이다. 아난존자가 말하기를 ‘정욕이 거칠고 흐려서 더럽고 비린 것이 어울려 뭉쳐진다’ 하시니 더러운 몸[醜身]이라 부른 것이다.

念念衰朽者(염염쇠후자)는 頭上光陰(두상광음)이 剎那不停(찰라부정)하니 面自皺而髪自白(면자추이발자백)이라 如云(여운), 今旣不如昔(금기불여석)이요 後當不如今(후당불여금)이니 此無常之體也(차무상지체야)라 然(연)이나 無常之鬼(무상지귀)가 以殺爲戱(이살위희)하니 實念念可畏也(실념념가외야)라 呼者(호자)는 出息之火也(출식지화야)요 吸者(흡자)는 入息之風也(입식지풍야)라 人命寄托(인명기탁)이 只在出入息也(지재출입식야)라

‘생각 생각 썩어 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도 저절로 희어가니, 옛말에 「지금 이미 옛 모습 아니네, 뒷날에 어찌 지금 같을까」 한 바와 같이 과연 덧없는 몸이 아닌가! 덧없는 귀신[無常之鬼]이란 죽이는 것으로 놀이를 삼으므로, 참으로 생각 생각이 무서울 뿐이다. 날숨[呼]은 불 기운이요 들숨[吸]은 바람 기운이라,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쉬고 내쉬는 한숨에 달린 것이다.

八風者(팔풍자)는 順逆二境也(순역이경야)요 地獄苦者(지옥고자)는 人間六十*劫(인간육십겁)이 *泥犂一晝夜(니려일주야)니 鑊湯爐炭(확탕노탄)과 釼樹刀山之苦(검수도산지고)를 口不可形言也(구불가형언야)라 人身難得(인신난득)이 甚於海中之鍼故(심어해중지침고)로 於此(어차)에 愍而警之(민이경지)하노라

여덟 가지 바람(八風)이란 대체로 마음에 맞는[順] 것과 거슬리는[逆] 두 가지 경계요, 지옥의 고통이란 인간의 60겁(劫)이 지옥의 하루가 되는데,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칼산과 창숲에 끌려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어 일깨우노라.

評曰
上來法語(상래법어)는 如人飮水(여인음수)에 冷暖自知(냉난자지)라 聰明(총명)이 不能敵業(불능적업)이요 *乾慧(간혜)가 未免苦輪(미면고륜)이니 各須察念(각수찰념)하야 勿以自謾(물이자만)이어다

평해 가로되(評曰),
위에 말한 법문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운 것은 제 스스로 알 뿐이므로, 총명(聰明)이 능히 업(業)의 힘을 막지 못하고, 마른 지혜[乾慧]가 고(苦)의 윤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각자 살피고 생각하여 스스로 속지 말지어다.

〇譯註(역주)
①사대색신(四大色身) : 중국에서 금(金) • 목(木) • 수(水) • 화(火) • 토 (土)의 오행(五行)을 말하듯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땅(地) • 물(水) • 불(火) • 바람(風)의 사대(四大)로써 자연계(自然界)의 온갖 것에 대한 구성요소(構成要素)로 말하였다。
②십이시(十二時) : 하루 24시간을 말함。지금 쓰고 있는 이십사시(二十四時)를 예전에는 십이시(十二時)로 썼다。
③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④겁(劫) : [범]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세한 숫자는 여러 글에 일정하게 쓰이지 않았으나, 한 세계가 생겼다가 아주 없어지는 동안을 대겁(大劫)이라 하며, 그 사이가 팔십 소겁(小劫)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⑤니려(泥犂•泥黎•泥梨) : 범어로써 지옥을 말함。그 뜻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기쁘고 즐거운 것이 도무지 없다는 뜻。십계(十界) 중 가장 하열한 곳。무간 아비지옥。
⑥간혜(乾慧) : 비록 깨쳐서 지혜가 났더라도, 정(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마른 지혜라고 한다。마른 지혜는 죽고 나는 이치를 알더라도, 나고 죽는 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乾 = 하늘 건, 마를 간)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 • 모임 • 집합 • 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 • 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 • 충동 • 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 했느냐?’ ;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옛날에 중국에 고봉선사(高峰禪師), 『선요(禪要)』 법문을 하신 그 고봉선사께서도 처음에 출가해서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화두(話頭)를 타서 참선(參禪)을 하는데’ ; 
[참고] 고봉 스님께서 자신의 수행에 대해 하신 법문.
① 『선요禪要』 28. 通仰山老和尙疑嗣書, 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② 『선요禪要』 2. 시중(示衆).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고봉(高峰) ; (1238~1295) 송대 말기 원대 초기의 임제종 스님. 법명은 원묘(原妙), 법호는 고봉(高峰), 속성은 서(徐)씨. 강소성(江蘇省) 오강(吳江) 출신. 15세에 부모에게 출가할 것을 간청하여 가화(嘉禾) 밀인사(密印寺)의 법주(法住) 스님에게 귀의하여 은사로 삼고 16세에 삭발하여 17세에 구족계를 받아 18세에는 천태교학을 익히다가 20세에 선문(禪門)으로 공부를 바꾸어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단교묘륜(斷橋妙倫 1201~1261)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22세에 3년 사한(死限)을 정하고 참선에 들어가 단교묘륜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약정했던 3년의 기한이 다가왔을 때 태주(台州)의 정(淨) 사형의 권유로 설암조흠(雪巖祖欽 1215~1287) 선사께 가르침을 청해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다. 1271년 임안(臨安 : 浙江省 杭州) 용수사(龍鬚寺)에서 어느날 잠에서 깨어 화두를 의심하던 차에 함께 잠자던 도반이 목침을 밀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설암 선사의 법을 이었다.

1274년 무강(武康 : 浙江省 湖州) 쌍계봉(雙髻峰)에 주석하였다. 1279년 항주(杭州) 천목산(天目山)으로 가서 서봉(西峰)의 위쪽에 있는 사자암에서 지내다가, 사자암 서편 바위 동굴에다가 작은 토굴을 지어 사관(死關)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입적할 때까지 15년 동안 지냈다.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으며, 수계자는 수만에 이르렀다. 1295년 세수 58, 법랍 43세로 입적하였다.
『고봉대사어록』 상하 2권과 고봉대사어록 上下권 중 법어 · 서신을 수록한 상권에서 발췌한 『선요(禪要)』가 전한다.

*선요(禪要) ; 『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및 스님 자신의 수행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포단(蒲團 부들 포/둥글 단) ; ①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方席). ②부들풀로 만든 둥근 방석. 근래에는 이 포단 대신 '좌복(坐服)'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진취(進趣 나아가다·오르다 진/달리다·향하다·재촉하다 취) ; (정진해) 나아가다.
*적공(積功 쌓다·많다 적/공로·일·업적 공) ; ①공(功)을 쌓음[積]. ②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씀.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점철(點綴 점 점/엮다·잇다·연결하다·꿰매다 철) ; ①흐트러진 여러 점이 서로 이어짐. 또는 그것들을 서로 이음. ②관련이 있는 상황이나 사실 따위가 서로 이어짐. 또는 그것들을 서로 이음.
*달마대사(達摩大師) : [산스크리트어]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기일(忌日 꺼리다·기일忌日 기/날 일) ; ①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 ②불길(不吉)하다 하여 꺼리는 날.
*영각(影閣 그림자·초상肖像 영/집 각) ; 고승(高僧)의 초상(肖像)을 모신 전각(殿閣).
*오조 법연(五祖法演) : (? – 1104) 속성은 등(鄧)씨. 사천성 면주부(綿州府) 파서(巴西)에서 났다. 35세에 출가하여, 처음엔 강당에서 <백법(百法)> <유식론(唯識論)> 같은 것을 공부하였다.

뒤에 백운 수단(白雲守端)선사의 회상에 가서 있을 때,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 화상의 「마니주 화두」에 대하여 묻는데, 백운선사가 크게 꾸짖는 것을 듣고 곧 깨치어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아래와 같은 게송을 지어 바쳤다.

 

『저 산 밑에 한뙈기 묵은 밭, 왜 즐기노 노인에게 물었더니, 몇 번 팔고 또 산건, 대숲과 소나무에 맑은 바람 온다고(山前一片閑田地 叉手叮嚀問祖翁 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 이에 백운선사의 인가를 받고, 그의 법을 이어서 서주(舒州) 사면산(四面山)에서 출세하였다.

다시 백운산, 그 다음에는 태평산(太平山), 마지막으로 기주(蘄州) 오조산 동선사(五祖山東禪寺)에서 크게 교화하여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불안 청원(佛眼清遠) • 태평 혜근(太平慧懃) • 원오 극근(圜悟克勤)은 오조 문하의 세 부처라고 하였다.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에 80여 세로써 입적하였다.

 

마니주(摩尼珠) 화두란, 사조(師祖)라 하는 이가 영가(永嘉)의 <증도가(證道歌)>에 있는 「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裡親收得」의 귀절을 끌어다가 남전에게 묻기를 『마니주를 세상에서 모르는데, 여래장 속에서 찾아 냈구나 하였으니, 어떤 것이 여래장이오니까?』 남전이 대답하기를 『내가 너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은?』

『그도 또한 그것이지』

 

『마니주는 어떤 것이오니까?』

『가거라! 네가 내 말을 모른다』 하는 데서 사조가 깨쳤다.


*진영(眞影) ; 주로 얼굴을 그린 초상화(肖像畫) 또는 얼굴을 찍은 사진.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라' ; ‘백 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왔다갔다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의 진영(眞影) 찬(讚) 끝에 있는 두 글귀.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앙산 노화상께 사법(嗣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 p168~169. p173~174 참고.

忽於次月十六夜夢中에  忽憶斷橋和尙이  室中所擧萬法歸一一歸何處話하니  自此疑情頓發하야  打成一片하야  直得東西不辨하며  寢食俱忘이라

 

어느덧 다음 달 16일 밤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홀연히 단교화상이 방장실(方丈室)에서 일러 주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는 화두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로부터 의심이 단박 생겨 일념을 이루어서 동과 서를 잊었으며,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至第六日하야  辰巳間에  在廊下行이라가  見衆僧堂內出하고  不覺에  輥於隊中하야  至三塔閣上하야  諷經이라가  擡頭忽睹五祖演和尙의  眞讚末後兩句에 云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這漢하고  日前被老和尙의  所問拖死屍句子를  驀然打破하니  直得魂飛膽喪하야  絶後再甦이라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리잇고  乃是辛酉三月廿二少林忌日也러이다  其年이  恰廿四歲요

 

그러한지 6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진시(辰時)에서 사시(巳時) 사이에 행랑(行廊) 아래서 거닐다가 대중 스님들이 승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대열에 섞여 삼탑각에 올라갔습니다. 경을 외우면서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법연 화상의 진찬(眞讚)의 끝 두 글귀에 “백년 3만 6천 일을 반복(返覆)하는 것이 원래 이놈이다” 한 것을 보자, 전에 스님께서 다그쳐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백이십 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

그때가 바로 신유(辛酉)년 3월 22일 달마 대사 기일(忌日)이었고 제 나이 24세가 되었습니다.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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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 萬法歸一一歸何所 師云 老僧在靑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일호(一毫) ; '한 가닥의 털'이라는 뜻으로 극히 작은 정도를 이르는 말.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다정한 도반(道伴)이 무상(無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 도반이 죽어서 사십구재(四十九齋)날 김응애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어린 나이에 선방(禪房)에 들어오셔서 그 용맹정진을 해 가지고 마침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하셨습니다마는’ ; 

 


[참고] 전강선사(No.002)—전강선사 일대기 제1호(경술1970년 11월 20일.음)(19분10초)
내가 참 처음에 참선문에 들어와서, 합천 해인사 들어가서 중이 되아 가지고서는 한 1년 동안, 그저 한 1년 동안 있었지. 사미(沙彌)로 한 1년 동안 있는데. 나허고, 김봉윤이허고, 이삼릉이허고, 행자(行者)가 서인디. 봉윤이란 아이가 참, 사람이―사미가 서이 들어와서 공부, 어른 시봉질을 허고 있으되―제일 착허고 얌전허고 글도 제일 잘허고, 속가에서 글허다 들어온 사람인디, 우등이여. 그 원청 학식이 있으니깐, 우등이여.

아, 그런 사람인데, 똑똑허고 잘난 사람은 아마 그런 말, 그 무슨 듣건댄 ‘염라국(閻羅國)에서도 쓸 사람을 데려간다’ 그런 말이 있드구만. 아이가 원청 잘나고, 글도 잘하고. 아, 그런 사람인데 같이 있다가, 같이 한 서너 달 살다가 뜻밖의 병이 들어 죽대, 이상스러운 병이 들어 죽었다 그 말이여.

나이 그때에 가가 무슨 뭐 그렇게 많지도 못허고, 나보담 그저 한 두어 살 더 먹었고. 나는 그때에 열여섯 살 먹어서 들어왔는데, 열여덟 살이나 먹었을 것이여. 아, 인자 그때쯤 18세면은, 한 17세, 18세, 20세 이내에 다 장가를 들어야지, 20세 이내에 장가를 들지 못허면은 노총각이락 햐. 열아홉 살만 먹고 스무 살만 먹어서 장가들어도 노총각이락 햐.

법문(法門)이, 오늘 아침 법문이 이상스럽게 나온 법문이라, 그렇게 들으셔야지. 영가(靈駕) 법문인데, 영가 법문이라도 이런 법문이래야 되지. 지장경 법문이나 그런 무슨 교(敎) 법문이 아니여. 선(禪) 법문을 꼭 들으셔야 하지.

김군수. 반야행. 대법성. 대법성, 내가 진 이름이여, 인자 떡 보니까. 아, 이런 참. 이런 인연이 닥쳐온 것을 내가 참 오늘 아침에 무척 감상이 깊구만. 여기에 정각행 보살님도 내가 서울 와서 불명(佛名)을 드렸어. 인연 때문에 그런 거여. 그러더니 여기에 기가 맥힌 신도, 말로 헐 수 없는 지금 여그 중대한 참 인연이 있는 신도님이시여. 내가 뒤에 간단히 좀 말할 요량하고.

아, 그래 그 이상스런 병이 나. 인자 한 18세쯤 되았으니깐 그때 한참 장가들 때인디, 와서 중이 되아 가지고 있는데.
대구서 서도간이라고 허는… 시대, ‘현대 여성’, 그때 ‘현대 여성’이면은 그 참 드물어. 머리를 저 가르매를 타되 옆 가르매를 타고, 한복판으로 안 타고는―지금은 뭐 옆 가르매니, 뭔 가르매니 그거 뭐 동서남북으로 막 타도 상관없드구마는―옆 가르매를 터억 타 가지고는 머리를 탁 쪽지고. 그때는 뾰쪽구두가 참 드물 때여. 그 불란서 식으로 뾰쪽구두를 턱 해서 신고, 흰 치마를 입고, 그러고 척 들어오면은 이상스럽게 모도 볼 때거든. “아따! 여자가 저 히사시가미(챙머리)” 라고 이러고. 모도 손가락질허고, 뒤로 보고 앞으로 보고 이럴 때인디.

아, 서도간이라고 허는 여자가 척 들어와서 여름에 수양(修養)을 허는디. 아, 그 수양허는 그 신여성(新女性), 서도간이라는 여성이 대구서 와 가지고는 서로 피차간 그 몇 번 이렇게 대하고, 사람이 잘나고 똑똑허니깐, 장가들만 해서 열칠팔 살 되아 놓으니깐, 서로 인자 어떻게 그 장경각 구경도 시켜 주고, 큰 법당 구경도 시켜 주고, 어떻게 이렇게 어떻게 지내다가는 즈그끼리 그 연애가 걸렸든가, 원 그 속으로 어쨌든가는 몰라도.
서도간이가 그러면 그 그렇게 인자 합천 해인사 들어와서 수양헐 동안에 그 어디 이리저리 구경도 시켜 주고 어쩌고 서로 상대허고 몇 번 이러다가는, 좀 말이든지 무엇이든지 정들게 했고 어떻게 했든지 그건 알 수가 없지마는.

아, 이 봉윤이라고 허는 사미, 그 사람이 서도간이 자는 방에 가만히 몰리 저녁에 들어가서 그 서도간이 자는 방, 이불을 딱 덮고 누워 잔다. 서도간이는 밤에 놀러 어디 간 사이에. 아, 서도간이가 잘 때 밤에 이렇게 척 들어오니깐 이불 속에 무엇이 있거든.
아! 깜짝 놀라서 그만 “아이고메!” 허고 고함을 질러 버렸단 말이여. 아, 그러니께 그만 사중(寺中)에서 모도 그만 놀래 가지고 이거 웬 일인가 싶어 가지고 들어와 보니께, 그 봉윤이라는 사미승이 그 속에 따악 누워서 있거든.
아, 그래서사 인자 그 서도간이도 그저 ‘그 사람인갑다. 봉윤이, 아는 사람이로구나’ 그렇게 알아 번지고서는. 그러나저러나 무슨 그러헌 무슨 아무 일도 없는데 아, 그런 사람이 와서 그렇게 누웠으니깐 그저 가슴만 두근거리고 그저 그러다 저러다 말았는데.

아, 그 뒤에 그만 봉윤이라는 아이가 병이 들었다 그 말이여. 병이 들었는데, 무슨 병이 들었냐 하면은 미친병이 들었네!
그래 가지고는 헌다 소리가 “둔다, 둔다, 둔다, 둔다, 둔다, 둔다” 그런 소리여. 그러면서 그만 “솔잎상투, 솔잎상투” 그놈의 솔잎상투는 왜 그렇게 부르는고 “솔잎상투, 솔잎상투” 하면서, 아 그만 미쳐 가지고는 나중에는 헐수할수없어, 미쳐서 뛰어싸서. 그릇, 장꼬방(장독)도 때려 부수고, 뭣을 막 드리 뚜드러 부수게 되아서 그래서 갖다가 그만 묶어서, 뒤로 딱 묶어서 손질을 못허게 해 가지고는 그래 놓았다 그 말이여. 뭐, 가만 일시라도 놔둘 수가 있어야지.

아, 그 지경 되았는디, 서도간이란 여자 따문에 미쳤다고 해서 서도간이한테다 그런 말을 해 봤던들 아! 서도간이는 신여성이라도 그때 당시의 신여성, 유명헌 신여성인데, 아 어디 그 여성이 그렇게 쉽게 무슨 뭐 산중의 중, 사미중허고 몸을 섞어서 내외간(內外間) 될 리도 만무허고, 그런 사이에 뭔 말을 했자, 발써 그 미쳐 버렸는디 어떻게 헐 재간도 없고.

그래 가지고 서도간이는 대구로 나가 버린 뒤에 이 아이는 그만, 그렇게 그만 미쳐 가지고는 훌훌 뛰면서 그 야단을 쳐서, 꽉 묶어 놓고는 그만 뭐 치료를 해봐도 안되고 침을 놓아 봐도 안되고, 별별 짓을 다 해봐도 안되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었제. 별 수가 없제. 안 죽을래야 안 죽을 수도 없제. 놓아 내놓을 수도 없고, 끌러 놓을 수도 없고. 그건 죽기로 마련이라.

지둥(기둥) 나무에다 매 놓으면은 지둥 나무는 뭐, 큰 지둥 나무니 어쩔 수 없으니까, 찬바람에 매 놓으면은 어떻게 그 손발을 매 놨으니 뗄 수도 끊을 수도 없고는, 고함만 지르고! 나중에는 죽을 때 얼굴을 본즉 그 얼굴이 기가 맥히지! 세상에, 볼 수가 없어! 아, 유혈(流血)도 모도 그대로 맺혀져 나와서 모도 밖으로 핑겨서 기가 맥혀! 같이 그 참, 사미로 있다가 그렇게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죽어서, 갖다가 그 합천 해인사에는 허덕이 평전(平田)을 거쳐 건너 들어가서 말정이라고 올라가는 그 산꼴짜구니에다가서 화장(火葬)을 허는디, 화장터가 거긴디, 화장을 다 해 가지고는 태와 버린 연기가, 화장터 그 송장 타는 연기가 빙빙 돌아. 그 뭉테기로 돌아 가지고 공중에 가서 흩어지들 않고 아, 이놈이 그만 얼마 동안을 배회를 혀.
그렇게 화장해 버린 뒤에는 그 인자 그런 불쌍허게 어린아이가 죽었으니까 초재(初齋)를 지낸다고, 선왕(善往)인가 무슨 재(齋)인가 재를 지내는디, 하여간 즈그 부모한테 기별했더니 부모가 와서 그 통곡을 허고 우는 거…

그래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을 허시는데, 그때 어떤 어른이 법문을 허셨든고 하니 김응해 스님께서 법문을 허신다. 법문을 허시는데, 게송이여.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면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도를 닦을라매, 수행은 도(道)거든. 도를 닦을라매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머리 벌써 희기 시작허면 늙는 거 아닌가.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어라. 하나씩 둘씩 흰다 그 말이여.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는 소년 무덤을 했느니라. 쑥대 우북헌 데 가 봐라. 거, 어린것 죽은 거 모도 묻은 애장이다.

인신일실(人身一失)인디 기시환(幾時還)고?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어버리면―받기는 얻어 나왔지. 이 몸 얻어 나왔으니까 쉬운 것 같지.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 받은 몸뚱이 잃어버리면 언제 돌아올 것이냐? 언제 다시 받을 것이냐?
지옥시장(地獄時長)이다 기등한(豈等閑)고? 인생이라 하는 것은 이 목숨 내번지면은 가는 곳이 삼악도(三惡途)니라. 삼악도는 어디를 삼악도라고 하나? 지옥이요, 아귀요, 축생이다. 지옥 악도에 가는 법이니라.

이놈 몸뚱이 얻어 가지고는 복 짓는 것이 그렇게 없어. 그렇게도 복 짓기가 어려와. 전부 죄밖에는 짓는 것이 없드란 말이여. 다행히도 어떻게 이 몸뚱이 얻어 가지고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학자(道學者)가 되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쌀에 뉘니라. 뉘! 기가 맥히다!

그런 가운데에도 이렇게 불전(佛前)에다가, 부처님 정법문중에다가 인연을 턱 걸어 이렇게 영가(靈駕)를 모셔 놓고 이렇게 등촉(燈燭) 장엄 속에서 이렇게 도 닦는, 도만 닦는 도학자의 회상(會上)에, 다시 말허면은 그 참, 선지식(善知識) 회상에, 거다가서 부모라도 형제라도 이렇게 어떤 분이라 헐지라도 그 천도(薦度)를 모셔 드려. 세상에 이러헌 공덕, 이러헌 대복, 해탈복은 천하에 없는 법이여.
헌디, 어디 그렇게 되나? 그만 그대로 소년 몸뚱이 잃어버리면은 가는 길이 악도(惡道)니라. 악도만 갔지―누가 거다가서 불법이 무엇인지, 복이 무엇인지―죄만 짓고 죄만 가지고 뿐이제, 뭐가 있어.

아, 이 삼일 선왕재 법문에 응해 스님이 이 법문을 척 허시는디, 내 법문은 뭐 아무것도 아니여. 그 어른은 지식이 훌륭헌 어른인데, 올라가서 참 그 어른도 그때 나이가 칠십은 다 못 되았어도 그래도 근 칠십 된 어른이 설법을 떠억 그 봉윤이 어린아 목숨 잃어버린 데 대해서 이 게송을 해 주는데 발심(發心)이 되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그서 발심을 했어. 그 게송 하나 읊어 주는데 발심을 했어.

해 놓고는 그 대문, 그다음 한참 내려오다가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까지, 일찍이 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그 진리 법문을 척! 해 주시는데, 내가 법문을 듣고 ‘대체 남[生]도 없고 멸(滅)함도 없다면 역사가 없는 낸디, 역사가 없는 내가 나를 그렇게도 유래(留來)로 깨달지 못허고 와? 깨달지 못허고 이때까장 와? 금생까장 왔어? 내가 금생에 똑! 찾지 못허고 깨달지 못허고 그대로 내가 목숨을 잃어버려?’(5분27초~24분37초)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 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모기가 마치 쇠로 된 소에 입부리를 박듯이’ 화신투입(和身透入).
[참고 ❶]  『고봉화상 선요 어록』 (고봉 1238~1295 |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시중(示衆 其十四)’ p110~112 참고.
若論參禪之要 不可執蒲團爲工夫 墮於昏沈散亂中 落在輕安寂靜裏 總皆不覺不知 非唯虛喪光陰 難消施主供養 一朝眼光落地之時 畢竟將何所靠

만약 참선의 요점을 논하자면 방석에 앉는 것을 집착하여 공부를 삼아 혼침과 산란 가운데 떨어지거나, 편안하고 고요한 속에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모두 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리니 오직 세월을 허송할 뿐 아니라 시주들의 공양을 소화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루 아침에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필경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山僧昔年在衆 除二時粥飯 不曾上蒲團 只是從朝至暮 東行西行 步步不離 心心無間 如是經及三載 曾無一念懈怠心 一日驀然踏著自家底 元來寸步不曾移

산승이 옛날 대중에 있을 때 죽과 밥 먹는 두 때를 제외하고 방석 위에 올라앉지 않고 다만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걸음걸음에 여의지 않고 마음 마음이 간격이 없었다. 이와같이 3년을 지내도록 일찌기 한 생각도 게으른 마음이 없다가 하루는 문득 나의 고향[自家]을 밟고 나니 원래 한 걸음도 옮긴 것이 아니었더라.

昏沈掉擧 喜怒哀樂 卽是眞如佛性 智慧解脫 只緣不遇斯人 醍醐上味 飜成毒藥 靈利漢 假饒直下知非 全身擔荷 正好朝打三千 暮打八百 何故 豈不見道 知之一字 衆禍之門

혼침과 도거, 희로애락이 그대로 진여불성이고 지혜해탈이건만 다만 인연이 이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제호상미가 도리어 독약이 되었다. 영리한 사람이 가령 당장에 그른 줄 알아 온 몸으로 짊어지더라도 바로 아침에 삼천 번을 때리고 저녁에 팔백 번을 때릴 것이니 무엇 때문인가? 어찌 '지(知)라는 한 글자가 모든 재앙의 문이다'라는 말을 알지 못하는가?

若論此事 如蚊子上鐵牛相似 更不問如何若何 便向下觜不得處 拌命一鑽 和身透入 正恁麼時 如處百千萬億香水海中 取之無盡 用之無竭 設使志不堅心不一 悠悠漾漾 東飛西飛 饒你飛到非想非非想天 依舊只是箇餓蚊子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모기가 쇠로 된 소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이러쿵 저러쿵 묻지 않고 당장에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버리고 한 번 뚫어서 몸으로까지 뚫고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런 때 마치 백천만억 향수해(香水海)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아서 취(取)해도 다함이 없고 써도 고갈됨이 없지만, 설사 뜻이 견고하지 않고 마음이 한결같지 않아 아득히 출렁대며 동으로 날고 서로 날다가 설사 네가 날아서 비비상천에 이른다하더라도 여전히 다만 한 마리 굶주린 모기일 뿐이더라.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0~61 (가로판 p62~63)
此事는  如蚊子가  上鐵牛하야  更不問如何若何하고  下嘴不得處에  棄命一攅하야  和身透入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들듯이, 다시 여하약하를 묻지 말고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때가 있으리라.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용상(龍象)은 발심해서 불도(佛道)를 닦는 훌륭한 수행자를 용(龍)과 코끼리[象]에 비유하여 말함. 방(榜, 牓)은 대중에게 알리는 게시판.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 없이 지켜 나감을 이르는 말.
*(게송) ‘망회타귀굴(忘懷墮鬼窟)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 경수호한형(鏡隨胡漢形) 직요이마거(直饒伊麽去)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하권 (한국불교전서) 「담령상인구육잠(湛靈上人求六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서 '의(意)' 게송.
[참고]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김달진 역주 | 세계사) 「담령상인(湛靈上人)이 육잠(六箴)을 구하다」 에서 '뜻' p334.

*회포(懷抱 품을 회/안을 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 ; '시커먼 산아래[黑山下] 귀신(鬼神)이 사는 굴속[窟裏]'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8~170. (가로판 p161~162)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可避喧向寂(불가피훤향적)하야 瞑目合眼(명목합안)하고 坐在鬼窟裏作活計(좌재귀굴리작활계)니 古所謂(고소위) *黑山下坐死水浸(흑산하좌사수침)이라하니 齊得甚麼邊事(재득심마변사)리요 只要在境緣上做得去(지요재경연상주득거)하야사 始是得力處(시시득력처)니라

공부를 짓되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향하야 눈을 감고 귀신 굴 속에 앉아 살림살이를 하지 말지니, 고인이 말하기를 「흑산 밑에 앉아 썩은 물에 잠겼다」 하니 무슨 일을 이루리오? 다만 경계와 반연 위에서 공부를 지어 가야 비로소 이것이 힘을 얻는 곳이니라.

一句話頭(일구화두)를 頓起在眉睫上(돈기재미첩상)하야 行裏坐裏(행리좌리)와 着衣吃飯裏(착의흘반리)와 迎賓送客裏(영빈송객리)에 只要明這一句話頭落處(지요명자일구화두낙처)니 一朝洗面時(일조세면시)에 摸着鼻孔(모착비공)하야 原來太近(원래태근)이니라

한 귀절 화두를 몰록 일으켜 눈썹 위에 두고서 다닐 때와 앉을 때와 옷 입고 밥 먹을 때와 손님을 맞고 손님을 보내는 속에 다만 이 일구(一句) 화두의 낙처(落處)를 밝힐지니, 하루아침에 세수하다가 콧구멍을 만지듯 원래로 너무 가까왔느니라.

*흑산(黑山) : 인도의 전설에 대철위산(大鐵圍山)과 소철위산 사이에 음양(陰陽)이 이르지 못하는 암흑처가 있으니 이곳을 흑산이라고 하며 이곳은 악귀(惡鬼)가 서식한다고 한다.
*착의(着意 붙다·나타나다 착/뜻·생각 의) ; ①어떤 일에 마음을 붙임. 또는 그 마음. ②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오름. ③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둠.
*정(精 정기精氣·정신·정령·도깨비 정) ; 정령(精靈). 애니미즘에서, 인간 이외의 생물과 무생물에 머무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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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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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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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