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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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5호) 어묵동정, 경허스님 오도송 점검.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1/2) 약 21분.

 

(2/2) 약 12분.

 

(1/2)----------------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나무~아미타불~
낙화승선정(落花僧禪靜)이다  문자시조박(文字是糟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중이 되아 가지고 경(經)을 한 40년 동안 읽었다. 그 경, 부처님 그 49년 설법해 논 그 경을 한 40년 동안을 참 쉴 새 없이, 눈코 한번 뜰 새 없이 경만 읽었다.
읽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 글만 밤낮 읽고 보니 경서(經書)만 읽고 보니, 내가 해야 헐 것인디—도 닦으란 말이고, 저 깨달으란 말인디, 어찌 저는 깨닫지 못허고 도는 깨달지 못허고 그 부처님 일생에 그 도 닦는 문서만 가지고 밤낮 읽고 있으니, 거 참 어리석다’
 
여간 그 어리석은 일이 아니거든. 어찌 40년 동안을 글만 읽고 있단 말이냐. 경만 읽고 있단 말인가.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로구나. 한 베개를 베고 그 잠 곤(困)허게 올 때에 객몽(客夢)이여.
객(客)으로 돌아댕기다가 어디 베개 베고 잘 때가 있나. 다행히 그 객이 어디 잠자리 하나 좋은 자리 얻어 만나서 그 곤헌 객몽을 꾸는디, 그 객이라는 것이 그 인자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라는 것은 한 베개[一枕] 객(客)의 잔몽(殘夢)이다.
 
객의 쇠잔(衰殘)헌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방 다 일침객잔몽이여. 한 베개 베고, 객의 잔몽을 꾸고 있어.
우리가 객 아닌가. 어디가, 우리가 우리 고향을 가 봤는가? 우리가 본고향(本故鄕) 한번 가 봤어?
 
고향은 아득허니 미(迷)해 버리고 지금 이렇게 삼악도(三惡途)에 도니, 삼악도에 돌고 있다가 지금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와서, 요까짓 놈의 사대(四大)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것이 내 보배라고.
요게 내 보배고, 요게 참말로 내 몸뚱이여? 내 본래 몸뚱이여?
 
어림도 없다. 내 본집에, 내 본고향에, 내 본래 몸뚱이라는 건 꿈에도 아니다. 속지 말어라!
요까짓 놈의 이 더러운 사대추신(四大醜身)을 가지고 내 몸이라고 허느냐? 객잔몽이다. 객의 잔몽(殘夢) 꾸고 있는 것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공중에 한번 날라간 새와 같으느니라. 우리가 지금 날라간 새여. 비조(飛鳥)여. 어디 쉬도 못헌 새여.
 
다행히도 화락승선정(花落僧禪靜)이로구나. 어찌 다행히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척 만났다. 정법 만난 것이 천하에 다행허다! 만고(萬古)에 경행(慶幸)허니라.
 
어디가 정법이 있느냐? 참 정법 만나기 어렵다.
까딱허면 사견(邪見)에 꺼꾸러져서, 내가 사견종자(邪見種子)가 되아 가지고는 사견종자를 안 심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사견에 꺼꾸러지고 사도(邪道)에 엎어질 것 같으면은 나만 엎어지고 나만 꺼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체 사람을 다 끌고 들어감서 누겁(累劫)을 그놈의 인연을 지어 주는 것이니, 왜 그러한 허망헌 농사를 지어 주며, 왜 그런 헛된 사도를 이루어 줄 것이냐. 그 삿된 도를 자꾸 전통해 줄 것이냐.
우리 중생을 점점 점점 더 악몽을 꾸게 맨들고, 악견(惡見)으로 들어가게 맨들고, 삼악도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냐!
 
어쨌든지 그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찾고. 그와 같은 그 정법으로 사종(邪宗)을 버려 버리고 내 믿었던 그 과거 잘못 찾았던 사종을 턱 버려 버리고 귀정(歸正)허는 것, 정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무여시사(無如是事)다. 이와 같은 사종에 엎어지지 말고, 사종에 꺼꾸러지지 말고, 사종에 인연 맺어 두지 말아라!
 
만약 거다가 인연을 두고 그 사종(邪宗) 인연을 떼지 못헐 때, 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허도록 내가 똑 그리 돌아오고, 그 사연(邪緣)이 자꾸 끌고 돌아오는 법이니,
정법이 있는 다음에는 꼭 사법(邪法)이 있어 가지고는 정법을 사법이 자꾸 치는 법이다. 고것이 마장(魔障)이다. 정법을 때려 치는 마업(魔業)이니라.
 
학자(學者)는 불가불신(不可不愼)이냐. 학자는 어찌 가히 삼가치 않을까보냐.
여까지 올라온 송구(頌句), 오늘 아침에 밝히고.
 
 
오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우리 부처님이 도(道) 깨달은 납월팔일인디, 납월팔일 아침에 우리 부처님 도 깨달은 역사를 말씀을 해야 옳을턴디.
오늘은 납월팔일이기 따문에 참, 성도재(成道齋)여. 성도재인디, 오늘 오후 오늘 아마도 12시에 시작하면 한 2시경까지 또 법문이 있겠으니 그때에 성도 법문은 헐 요량하고.
 
저번에 뭐 일대기에 가서, 저 용성 스님 회상(會上)에 가서 용성 스님께 제일귀(第一句) 문답해서 제일귀 문답 마치고, 그 다음에 말후구(末後句) 문답 마치고. 거기에 또 문답이 있거든.
저번에 그걸 내가 안 했구만. ‘한암 스님한테 간다’는 이렇게까장만 하고는 그 용성 스님께 마지막 문답(問答) 안 했어.
 
고 문답을 마자 해야지. 그 내 기이(旣已) 과거에 공부헌 역사기 따문에 조꼬만헌 것이라도 빼놓을 수가 없고. 쪼옥 역사라는 것이 꼭 그것은 그대로 똑 해놓아야 허는 게 역사니까.
조끔이라도 거기에 위조가 있다면은 그 미래 학자한테 거짓말로 속여 놓은 거 아닌가? 그 죄를 어떻게 헐 텐가. 죄보담도 정법문중에서 어찌 그렇게 꾸며대는 말이 어디 있을 건가?
 
 
내가 거기에는, 인자 용성 큰스님께 묻는 말이여. 내가 들은 법문이거든. 과거에!
용성 큰스님께서—만공 스님이 서울을 올라오셨는디.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오셔서 계시는데,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그랬거든.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것입니까’ 어묵동정(語默動靜), 말씀 어(語)자, 어묵 묵(默)이라는 건 말 없는 경계를 묵(默)이라 하지 않소.
 
“어(語)와 묵(默)과 동(動)허고 정(靜)허는 거 여의고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 어묵동정을 여의고 그 이르라고 했네.
그러니깐 만공 큰스님께서 아무 말이 없어. 그 말 없는 경계를 양구(良久)락 햐. 가만히 있었다 그말씀이여. 일체 말도 않고, 동도 않고, 정도 않고, 가만히 말만 없이 계셨다.
 
용성 큰스님께서 “양구(良久)시오?” 그랬다. “양구십니까?”
아무 말이 없는 도리가 양구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달락 하니까 아무 말씀이 없이 계시니 “그 양구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다.
만공 스님, 또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이 없으셨어. 아, 그러고 말았네.
 
 
내가 그때에 그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그걸 내가 전신구(轉身句) 답헌 뒤에 그걸 물었어.
 
용성 큰스님이 만공 큰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아무 말씀이 없으니까 “양구십니까?”—오! 또 아무 말 없는 게 아니라, 또 “양구십니까?” 그러니께,
“아니요” 이랬다. 고렇게 했어, 인자 끝에. 그러고 말았어.
 
“세상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두 분이, 두 어른네가 법문을 해놓으신 이 법이, ‘어묵동정 여의고 이르십시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양구요?’
‘아니요!’ 이래 놓았으니, 학자의 눈을 멀려 놓고 만 짓이제, 이렇게까장 허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어른네가 멱사리을 잡고 같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거 학자 죽인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이랬다. 이 조잔헌 것이. 허, 이거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 이랬다 그말이여.
 
황송허기야 짝이 없고 감히 어디가서 그런 큰스님네 앞에 그렇게 법을...
두 큰스님네가 멱사리을 붙잡고 한 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지, 어디 학자의 눈을 띄울 수가 있읍니까?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을 뿌리고 물에 들어갔읍니다. 물속으로 빠진 거여.
 
허지마는 내가 아무리 조잔하고 내가 아무리 학자지마는 학자가 어른 앞에 어디 감히 그렇게 함부로 입을 열어서 경망헌 행동을 허리요마는, 법체(法體)에 들어가서는 헐 수 없어. 시비헐 건 시비해야 하는 것이지, 안 헐 수가 있어?
 
아, 비단 그뿐 아니라 어떻게 아구지가 세고 쬐끄만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막 들어서제. 막 덤벼. 아, 이런 꼴이 있는가?
나도 그런 줄 알지마는 별 도리 없어! 이 참선 도리야 어쩔 수가 있는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역사에 없는 우리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신데, 갬히 그 앞에 몇백 년 뒤일지언정 손자 중, 손자도 아니고 아무 저 밑에 천삼백 년 후에 나온 운문승(雲門僧)이 우리 부처님한테 그만 그 법문 좀 봐.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여구자긱(與狗子喫)이다. 한 방맹이로 타살(打殺)해 죽여서 개를 준다”
어찌 그 말을 헐 것이냐!
 
이건 헐 수가 없어. 요런 도리를 썼다.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요렇게 썼닥 해서 아무라도 그렇게 써? 그 운문 눈이래야 바로 보고 쓰지!
운문선사는 그대로 써 놓은 말인디, 그건 부처님의 그 무슨 체면과 무슨 우리 부처님의 무슨 천상천하에 거룩헌 명예에 무슨 떨어져서, 그것 소용 없어. 그건 막 보고 쓴 법문인데.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말이여.
 
그런 바른 눈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 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 허고, 또 허들 못 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같지마는,
눈이 있으면은 그 말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영신이는 어떻게 이를테냐? 우리 둘이는 만공 큰스님과 용성 스님은 한 흙탕 속에 그대로 빠졌다면, 자네가 하나 일르소. 자네는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테냐?”
 
나는 거그서 반문(反問)을 했어. 반문.
좀 여러 여그 모이신 우리 대중이 자서히 들어보라 그말이여! 벌로 듣지를 말고.
건방진가 안 건방진가 좀 봐. 참인가 아닌가도 좀 보고! 간택을 허라 그말이여! 거그서.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
양구(良久), 그 말 묻는데 내가 떨어지지 않고 어(語)니, 묵(默)이니, 동(動)이니, 정(靜)이니, 그러헌 데 다 떨어지지 않고,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입니까?”
 
그 문(問)이, 한번 묻는 것이 그 무슨 문(問)이여? 응, 그 무슨 문이냔 말여?
아무리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가루가 그렇게 좋다마는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되는 법이다.
 
거그서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거그서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일러? 거그서 본분(本分)을 추켜 들어 일러?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처(道亦假名處)를 일러?
천하 없는 것을 이를라고 이치를 잡아 찾으면은 저 죽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이냐. 한번 보라 그말이여!
‘찾다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여.(처음~21분7초)
 
 
 
(2/2)----------------
 
“자네는 어떻게 이를텐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공경히 허니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거그서.
 
다시 그대로, 그대로 거그서, 뭐 그대로 그만 말 없는 곳에서 그대로 인가여! 뭐, 두말헐 것 없어.
그 전국에 다, 내 그 다 해놓은 거 전국에 다 있는 것이여. 고놈 마쳤다 그말이여.
건방지게 어디 했지. 건방진 걸 봐, 거그서. 참말로 내가 못된 것인가? 여지없지.
 
거그서 문답 한번 해봐. 답 한번 해봐!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한 그곳에 나아가서, 얼마나 큰스님이 그 무거운 방맹이를 짊어졌는지 거두(擧頭) 못 혀.
바로 거그서 바로 살피지 못허면은, 바로 거그서 그 활살 피허지 못허면은 안 되아.
 
내가 모도 그 다 법문허는디 다 설해 놓았지마는 이 법문을 잘 들어두라 그말이여.
녹음 잘될 것이고 뭐 기위 이 내의 무슨 그 역사를 말해 달락하니 요 법문헌 것이여.
 
내가, 이것은 뒤에 또 나오는 법문이지마는 여다가 한마디 넣을 것은 글씨 또 내가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때에 그 인자 그 어른 제자라도 보월 스님, 돌아가신 고봉 스님, 금봉 스님 쏵 그 호서(湖西) 대중이 다 모인 그 대덕(大德) 가운데에서, 그 큰 용상(龍象) 큰스님네 밑에서—아, 또 보소! 또 내가. 경허 큰스님 오도송이 있어! 오도송(悟道頌).
 
그런 경허 큰스님 같은 오도송이 아, 얼마나 참말로 거룩헌 큰스님의 오도송인디, 거다가 갬히 내가 또 쎗바닥을 대아? 허지마는 댈 건 대야제, 어쩔 것인가.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허고,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요렇게 해놓으셨는디, 내가 거그다가 인자 오도송에다 갖다가 허물을 떡 끄집어낸다.
 
“소 콧구녁 없단 말씀을 듣고,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다.
‘콧구녁 없다’는 도리나, ‘삼천세계가 다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는 각견(覺見)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라’ 그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응! 천하에 큰스님의 아무리 큰스님의 법문일지언정, 뭐 어디 큰스님 법문이라고 어떻게 때꼽재기를 파내고 씻거야지, 어찌 그대로 둘 수가 있겄습니까? 이것이 다 탁마(琢磨)인디.
“무비공(無鼻孔) 도리와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고 깨달은 각견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 천하에 경허 스님 송(頌), 오도송 잘 되았지’ 아, 이래 싸서 내가 거다 입을 벌렸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 무비공 도리와 각견과 무사태평견을, 그놈을 자네는 여의고 한마디 어디 말해 보소. 어떻게 해야만 그놈을 여의고 말을 허겠는가?”
 
“예. 그러면 무비공 도리, 각견 도리, 거 다 큰스님 허신 대로 그대로 두고, ‘홀문인어무비공허고 돈각삼천시오가라.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만 그대로 그만 큰스님 법문 오도송대로 두고, 고 끝에 한 귀(句)만 제가 참으로 황송헙니다마는 한마디 일러보겠습니다”
 
“응, 일르게” 만공 스님이 “일르게”
그 선지식과 50명 학자가 꽉 찬 디서 내가 조실방 앞에서 헌 것입니다. 우리 보살님네도 잘 들으란 말이여. 이놈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라.
유월 달에 그 연암산 밑에 모 심구는 그때여, 때가.
유월연암산하로에, 유월 연암산 밑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란 건,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 한다는 것은 모 심구는 모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여. 그걸 보고 이르는 건디.
 
불법(佛法)이란 것이, 우리 부처님의 법이라 하는 것이 어디 무슨 무사태평(無事太平)이니, 무슨 본래각(本來覺)이니, 무슨 뭐 소 콧구녁 없는 도리니, 그러헌 그 거가서는 말후(末後), 부처님의 그 우리 선법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확철대오헌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지 않는 거여. 확철대오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고 처백히면은 못쓴 것이여.
 
각(覺)이니, 무비공(無鼻孔)이니,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 인자 그 제삼구(第三句)로, 그 도인이 오도송에 그 쓸 수 있는 말이제. 쓰는 법이제, 안 쓰는 것 아니여.
‘허공(虛空)이다. 역무허공지량(亦無虛空之量)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니라’ 이렇게 또 들어가야 되지, 그걸 안 허고는 안되는 법이여.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인데, 그것을 여의고 헐 수가 또 있나.
허지마는 티를 뜯고 학자가 한번 눈을 파는데는 헐 수 없어!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내 거그 글 한 귀(句) 딱 떼고 해놓은 송(頌)이 뭐냐 허면 이겁니다.
 
유월연암산하로에서 들사람이 모 심구는디, 모 심구는 내가 그 경계여.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 두고는, 거다가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곡을 붙여서) 이놈을 내가 하나 불렀드라.
응, 유월연암산하로에 그 모 심구는 곡조다. 다른 게 아니여, 그게. 농군들 노래여!
 
이놈 하나 딱 부르니까 만공 스님이 척 계시다가 “그 여여로 상사뒤여 의지(意旨)가 여하(如何)오?”
내가 그때는 또 춤을 또 추었네 인자, 또 더군다나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적자(嫡子)가 농손(弄孫)이로구나! 적자가 손자를 희롱허는구나!” 그게 점검이여.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일지언정 어디어디 거가서 그대로 뭐 보이는 때꼽재끼를 놔두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 보월 스님도 그때에사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이 삼구에서 허셨제. 제삼구(第三句)로 허셨제” 이랬고.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그말이여.
 
나 역시 아무리 두 어른네가 해 놓았기로이 보이는 것을 안 헐 수가 있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손만 내밀고, 할(喝)만 허고, 방(棒)만 허면 제일인가?
법문이라는 것은 항상 그 참,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은 다 깨달라 다 없다마는 성해(聖解)에 가서, 성해에 가 주(住)허지 말아라. 성해에 떨어지면 또 되는 겐가?
그러니 그 각견(覺見)같은 것을, 불견(佛見)같은 것을, 법견(法見)같은 것을 척척 잡아내서 이게 탁마여.
 
여그서 그놈 척! 허고서는 내가 그다음에 가서 또 인자, 또 그건 아침에 날이 치워서(추워서) 거까장 맺어줄 수가 없어.
 
요것은 뭐냐하면 늘 듣는 법문이고 요새 헌 법문이지마는, 그 꿀 딱! 먹을 때, 꿀 딱 받아먹을 때, 어저께도 그 안 일렀나.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고거 있지.
요놈이 있지마는 전편이 좀 해야, 소소허게 전편을 다시 해가지고 내가 일러야겄어.
 
고놈을 한마디 일러놓고 내가 전국 육대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한목 인가(印可) 받은 것이여. 한목.
하나도, 그런 놈이 나와야 되제. 배 벌로 ‘내가 인가 받았다. 내가 견성했다’ 그러고 나와. 그거 안되는 말이여. 딱딱 그 증거가 나와야 하제.
 
오늘 아침에 치워 여까장 허고 내려가겄어. 오늘은 12시에 법문이 있겄오.(21분9초~33분3초) (일대기 5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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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침객잔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송암도인(松巖道人)‘ p83 참고.
*곤하다(困-- 곤하다·가난하다·기운이 빠지다 곤) ; ①기운이 없어 나른하다. ②(사람이) 잠든 상태가 매우 깊고 편안하다.
*객몽(客夢 손·손님·나그네·여행·객지 객/꿈 몽) ; 나그네가 객지(客地)에서 꾸는 꿈.
*잔몽(殘夢 남을 잔/꿈 몽) ; ①잠이 깰 무렵에 꾸는 꿈. ②잠이 깬 후에도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꿈.
*쇠잔하다(衰殘-- 쇠하다·약하다 쇠/남을 잔) ; (힘이나 세력이) 차차 줄어서 매우 약해지다.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사대추신(四大醜身) ;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 더러운[醜] 몸[身]’ 사대색신(四大色身)과 같은 말.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누겁(累劫 묶을·포갤·쌓을 누/겁·오랜 세월 겁) ; 여러 겁이 쌓여서 이루어진 기간. 곧 한없이 길고 오랜 시간.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법(佛法)에 위배되는 견해. 선견(善見 : 있는 그대로, 진실 그대로 보는 것. 정견正見)에 장애가 되는 견해.
*사종(邪宗) ; 외도(外道). 외도가 주장하는 삿된 종지(宗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사연(邪緣) ; 삿된 인연. 올바르지 않고 좋지 않은 조건을 뜻하는 말로서 정연(正緣)의 대칭어이다.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마업(魔業 마구니 마/업·일·선악의 소행所行 업) ; 마구니[魔]의 행위[業]. 마구니의 직접적인 행위 뿐만 아니라, 번뇌, 게으름, 미혹 등을 포함해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마업이라고 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대종사 법어』 (용화선원刊) p19~20 참고.
〇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마자 ; ‘마저(남김없이 죄다. 또는 마지막까지 다)’의 사투리.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어묵동정(語默動靜) ; 말하고[語] 침묵하고[默] 움직이고[動] 쉬는[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행(言行)을 총괄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하나의 짝으로 쓰이기도 한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〇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용상대덕(龍象大德) ;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덕행을 구족한 걸출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속이 좁다)’라는 뜻의 사투리.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아구지가 세다 ; 하는 말이 세다(강하다). *아구지 ; ‘아가리(‘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천상천하(天上天下) ;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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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擧頭 들 거/머리 두) ; ①머리를 듦. ②머리를 숙이는 일 없이 떳떳하게 남을 대함. ③중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머리를 들 정도가 됨.
*호서(湖西) ; ‘호수의 서쪽’으로 오늘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용상(龍象) ; 용과 코끼리. 또는 용이나 코끼리 하나를 가리키는 말.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부처님만 가리키거나 보살의 용맹한 능력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걸출한 인물이나 뛰어난 수행자를 가리킨다.
*만공 스님,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쎗바닥 ; ‘혓바닥(①혀의 윗면. ②‘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심구다 ; ‘심다’의 사투리.
*말후(末後) ; ①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궁극(窮極), 최후의 뜻. ②생명이 끝날 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구(三句)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上堂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 처음 한마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문(問), “무엇이 제2구(第二句, 다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문(問), “무엇이 제3구(第三句, 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참고.
*농군(農軍 농사 농/군사 군) ; ①농민(農民).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②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〇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아주, 매우’의 옛말.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