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20. 1. 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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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9-1호) 오대산을 넘으며.

 

**전강선사(No.020)—전강선사 일대기 제9호(경술1970년 12월 17일 새벽. 음) (1971년 1월 13일 새벽)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11분.

 

(1/3)----------------

 

죽장천리객(竹杖千里客)이  송하만년등(松下萬年燈)일세

나무~아미타불~

몽혼상별리(夢魂相別離)에  초월삼계루(超越三界樓)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죽장천리객(竹杖千里客)이다. 우리가 이와 같이 그만 항상 나그네 손이 되았어. 객(客)이 되았어.

항상 고향은 한번 가보지 못허고, 천리의 이렇게 손 노릇만 허고 지내오다가, 어쩌다가 참, 인자 금생에사 수도산승(修道山僧)이 되아 가지고,

 

송하(松下)에 만년등(萬年燈)이로구나. 이렇게 고향 다 내버리고 부모처자 다 이별해 버리고 수도승이 되아 가지고, 도 닦는 우리 도학자(道學者)가 되아 가지고, 만년등을 얻어. 큰 해탈등만 얻어 버려. 인자 확철대오(廓徹大悟)만 해 버리자 그말이여.

 

수업을 상별리(相別離)다. 그 과거 다생겁 중에, 그 업(業)으로만 싸와 오고 죄만 짓다가 그저 지옥 가고, 화택중(火宅中)으로 놀아나다가, 초월삼계루(超越三界樓)로구나.

 

아! 이렇게 우리가 인자 이번에 이 척에 잠깐 이 몸 얻어서, 이 몸 그저 금생에 그만, 과거는 뚝 떼어버리고—과거는 죄만 받아왔고, 금생에는 인자 참 어쩌다 확철대오를 해서 미래에는 삼계화택(三界火宅), 무슨 놈의 삼계화택인가? 삼계에 뛰어나 버리자.

모든 인자 그 참 생사 과업(課業)을 다 상별 이별해 버리고 삼계 한번 뛰어나 버렸다. 인자 미래 만년루라.

 

 

내가 그동안에 인자 참, 혜봉 스님한테 가서 법을 묻고, 거그서 떠나서 김천 직지사로 해... 응! 저, 지리산 동방장 허태오 스님한테로 또 다녀 거가서 문법(問法)허고, 그다음에 또 지리산 마천면 금선대 올라가서 하동산 스님 또 만나서 문답하고.

 

그다음 인자 도로 김천 직지사 나와 가지고 제산 스님 회상(會上)을 댕겨서 혜월 스님 한테로 갔다가 인자 혜월 스님한테—다 먼첨 말했지마는—댕겨서 인자 고운사를 올라가서 고운사에서 그 편지, 김천 직지사 제산 스님한테 물어서 답을 보고, 그러고서는 그 답을 사방 했어, 내가.

그때 한국에 유명허신 스님네 그저 어디어디를 막론허고 다 하나씩을 물었단 말이여.

 

“증재직지하(曾在直指下)타가 금도고운루(今到孤雲樓)허니 주앵야두우(晝鶯夜杜于)라. 낮 꾀꼬리요, 밤 두견이로구나. 직지착지오(直指錯指耶)이까? 이것이 바로 가르킨 것입니까? 그릇 가르킨 것입니까?” 이렇게 해서 전부 다 물었지.

다, 답이야 참! 다 잘허셨지마는, 많이 왔드구만 답이. 다 잘했지마는, 나 묻는 뜻은 아니거든.

 

공안이 왜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인가? 공안이면 공안 하나가 될 것이지, 왜 천칠백이 될 것인가?

그러면 삼세제불(三世諸佛)로 역대조사(歷代祖師)로 내려오면서 모도 문답이 있거든. 묻는 법문이 왜...

 

이 확철대오, 이 생사해탈법이 그 공안이면 공안이 하나 되면 그만이제, 왜 천칠백 공안인가?

천칠백이란 공안이 까닭이 있다 그말이여.

 

임제 스님 공안이 있고, 임제가풍이면. 조사가풍이라도 임제가풍(臨濟家風)이면 임제가풍 도리가 있고. 조동종, 조동가풍(曹洞家風) 도리가 있고. 위앙종, 위앙가풍(潙仰家風) 도리가 있고. 운문종, 운문가풍(雲門家風)이 있고, 모도 그렇다 그말이여.

 

임제 스님은 할(喝)이요. 임제 스님은 할이 임제가풍이거든.

운문은, 운문선사는 '떡 먹어라' 떡이 가풍이거든, 떡. '떡 먹고 가거라'

조주 스님은 '다(茶) 한 잔 먹고 가거라' 모도 그런 가풍이 있어.

 

가풍 가운데에 또 조사, 모도 관(關)이 있는디, 공안법이 있는디, '천칠백 공안이니라'했단 말이여.

법(法)이란 건 묻는 뜻이 있어. 공안이 똑같이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하면은 정전백수자 하나만 딱 가지고 해 논 것이 아니라, 거기에 천칠백 공안이 있어.

 

그러면 천칠백 공안에 그 근본 공안 대의(大意)가 다른 것이 아니여.

다를 것인가? 똑같제. 생사 없는 법이 같제, 어디 뭐 다를 것이 있어?

같지마는 그 공안에 자물쇠통이 달러! 쐬통 끄르는 법이 달러! 고것을 딱! 봐야 하거든.

 

그러면 그때, 가령 어떠헌 법문이 나와서 어디어디 가서 어느어느 무슨 응, 공이면 공, 색이면 색, 무슨 일체 백천만 가지의 그 무슨 경계가 있다 하드래도 그 경계에서 조사관(祖師關)을 하나 만들아 턱 물거드면은 일체 경계가, 일체 모냥이 다 달지(다르지). 색상이 다 달지. 어디 색상이 다 같는가?

그러면 일체 색상을 여의고 공안이 있는가?

 

공안이라 하는 것이... 그저 늘 헌 말이지.

왜 왜 그렇게 공안이 그러면 왜 다 여의고 떼고, 그러고 인자 어디 무슨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 불불이 서로 보지 못헌 도리, 석가도 오히려 아지 못헌 도리, 삼세제불도 이르지 못헌 도리, 그렇게만 어디가 공안 도리가 백혀 있다면은 그놈만 잡아 내지,

왜 또 공공색색(空空色色)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백천경연상(百千境緣上)에 가서 다 있냐 그말이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라 해놨냔 말이여.

 

백초두(百草頭)에 왜, 일백 가지 꽃머리에 가서 다 조사의(祖師意)가 있느니라 했으니, 꽃이 어디 무슨 한 모냥다리, 한 빛깔, 꽃 한 가지만 있나? 천만 가지 꽃이 다 있지.

그러니 공안이란 그 대의가 그것이, 그 어떻게 생긴 것을.... 거다가 어떻게 혀? 다 있이... 전부 다 있는 것이 조사관이요, 조사 뜻이지.

 

그러니 천 명 조사가, 천 명 조사가 낱낱이 다 일렀다면은 천 인 조사의 공안 아닌가?

천칠백 공안이란, 왜 천칠백인가? 천칠백만 될 것인가?

 

그러니 불법대의(佛法大意)라는 것은 딱 정(定)이 없어. 요렇다고 딱 지정되아 있는 것이 없어. 그것 참!

딱 지정되아 있을 것 같으면은 딱 가르켜 줘 버리고 말지, 왜 모도 그렇게...

 

그러니, 보란 말이여.

견성을 턱! 했다. 그만 견성했다 해 가지고는, 거 참 그렇게도! 뭐, 이것...

 

저 고봉 스님, 옛날에 고봉 스님 경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렇게 3년이나 도를 닦아도 도무지 일향간(一餉間)도, 일향간이란 항상 말했지만 '한 밥 먹을 사이'를 일향간이라 햐. 일향간도 성력성편(省力成片)을 얻지 못했어.

 

성력(省力)이란 것은 힘 덜리는 곳, 애써 허다가 고 힘이 조끔 덜려져. 수월헌 지경이 온다 그말이여.

성력, 성편(成片), 또 편을 이루었다. 그 편을 이루어. 여러 쪼가리, 여러 분가루 같은 망념(妄念)이 모도 그만 제대로 놀아나다가 한덩어리, 쪼각이라도 편편이 되아. 조끔 그 경계가 수월헌 경계여.

 

3년 동안에 글씨(글쎄) 일향간도 성력과 성편을 얻어 본 일이 없어. 얼마나 안 되던지.

 

그렇게 안 되는 원인이 뭐냐? 왜 그렇게 안 될 건가? 내가 나 찾는데 왜 그렇게도 안 되아?

허! 그것 참, 참! 설찬히 어려운 곳이었다.

글쎄, 중생이 부처 지경(地境) 가는 것이, 중생이 부처 되는 지경이 설찬히 땀난 곳이여.

 

아닌 게 아니다. 부처가 다른 것임사 허지마는 중생이 부처요, 찾는 놈이 부처인디 뭐가뭐가 그렇게 설찬히 어려울 것인가?

참말로 무척 쉽제! 그렇게 쉽다마는, 또 그렇게도 설찬히 어렵다 그말이여.

 

그 지경이 원! 걸음자도 하나 고침이 없고, 거기에 한 걸음도 붙일 것도 없고 내딛을 것도 없다.

하! 이러허지마는 오해(悟解), 오해를 못허고야 될 수가 있나?

꼭 깨달라서 그놈을 봐야 헌다 그말이여. 그 보는 것이 제 눈깔 제가 보는 것인데, 어째도 그렇게 멀고 왜 그렇게도 안 보이는고?

 

조사관! 천칠백 조사관.

 

허! 낱낱이 천칠백 도사가 있으면 천칠백 도사가 낱낱이 하나씩 물어 놓으면은 그게 천칠백 공안 도리가 되는데, 그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지마는 천칠백 공안 도리를 다 봐야 헌다 그말이여.

하나만 보고 하나만 보지 못하면은 오(悟)가 아니여!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야 헌다. 천칠백 공안을 한 뀌엄지에 다 뀌어 버려야 허느니라. 바로 봤으면은 어찌 못 뀔 것인가?

 

고봉 스님, 3년 동안을 해도 성편성력이 그렇게도 안 되아.

허다가, 꿈에 얻은 화두에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보니, 하! 모도 요요(了了)네! 다 깨달라 버렸네.

 

반야묘용(般若妙用)이 신불무의(信不誣矣)다. 견성하는 법이 속임이 없는 줄 믿어 버렸구나. 하도 안 되아서 꼭 속인 줄만 알았더니 속임이 없구나. 믿었네, 그때에사.

 

3년을 해도 그렇게 성력성편(省力成片)이 못 되아서 그렇게 애를 쓰고 나부대고 죽을라 하고 허다가, 아따 그때에사 꿈에 화두 얻어 가지고 툭 깨놓고 보니, 허! 신불무의(信不誣矣)다.

 

참말로 고불 고조사 이와 같이 깨달라서 등등상전(燈燈相傳)해 준 이 참선법(參禪法) 왈, 참! 참으로 대도 해탈법 참! 장허고 중허다.

내가 모를 때에 믿고만, 똑 해탈 정법을 믿고만 있을 때보담도 내가 한번 착득 당득을 해 놓고 보니 과연 이렇구나.

 

그래 가지고는 떡! 공안을, 천칠백 공안을 나 아는 놈은 다 알제.

백장야호(百丈野狐),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마삼근(麻三斤),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 금사탄두마랑부(金沙灘頭馬郞婦),

무슨 공안 여하약하 뭔 어떤 공안이든지 다 저 일거험지(一擧驗之)허니, 한바탕 들어서 증험을 해 보니 무불요요(無不了了)다. 뭐, 어디가서 요요(了了)치 아니험이 있나. 안 보인 거 어디 있으며 뭐 있냐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너무 갖다 그만 자재요요(自在了了)를 했네. 너무 그만 야단을 치니, 그 선지식 스님이 한번—그 너무 그래 야단친 그 도인이 하도 나와서 하도 그만 참 요요를 너무 남용을 허니까—물었지.

 

“네가 그렇게 밥 먹을 때도 그러허냐?”

“밥 먹을 때도 그럽니다”

옷 입을 때, 일체처, 행주좌와처(行住坐臥處), 뭔 어디 가서 요요치 아니험이 있어. 항상 요요해서 하나 생사가 없고, 무여시사(無如是事)여. 무슨 이러헌 일이 있어?(처음~20분53초)

 

 

 

 

 

(2/3)----------------

 

"그러면 네가 밥 먹을 때도, 옷 입을 때도, 갈 때도, 올 때도 일체처에 그렇게 요요허니, 정수착시(正睡着時)에, 정히 잠이 꼭 들어서 잠자는 상도 없을 적에 그 잠잔 상도 없지마는 꿈도 없을 적에 주재심마처(主在甚麽處)하야, 어디가 있어서 안신입명(安身立命)허는고? 네가 어디 가서 안신입명을 허는고? 잠이 꼭 들어서 잠잔 상도 없고, 꿈도 없을 때에는 어디 가서 안신입명을 허는고?"

 

"너, 그렇게 지금 깨달라 가지고 안신입명허는 주인공이, 그 생사없는 주인공이 잠 꼭 들어서 잠잔 상, 꿈도 없을 때에는 어디가 있어서 안신입명을 허는고?" 무언가대(無言可對)다. 말 꽉 맥혔다. 못혀.

 

그거 그거 어째 그래? 어째 그래.

무몽무상시(無夢無想時)는 그 뭔디, 거그 들어가서는 그 요요 명랑한 놈도 그때 가서는 없었을까? 그거, 꿈 딱! 들고 잠잔 상도 꿈도 없을 때에는 없을까, 안신입명이?

 

거그 거짓말 되아. 대답만 잘못하면 그만 거짓, 대망어죄(大妄語罪) 범(犯)해 버려! 무섭다. 그런 공안.

앞에 요요자재(了了自在)헌 고놈이 어긋나지 않게 탁! 답이 되야 돼. 공안도 다 그런 것이여.

 

응, 꺼떡허면 공안이여.

그 공안 답을 해야지, 아무것도 없는 놈까장 다 여의고 허공 · 비허공(虛空非虛空)까장 다 여의고, 법 · 불견 뚝 떼어 던져 버리고 깊으드란헌 디 들어가서 장만해 가지고 앉었는 놈이 도둑놈이고, 그놈이 천하 대병신이고, 남 속이는 것이여!

 

공안이라는 건 어떤 것인지 알어?

 

생사 없는 놈까장 다 집어생켜 놓고는 들어가서... 그 묵조사선(默照邪禪)이요 지랄 선이여. 알기나 알고 참선을 허야 헌다 그말이여.

조사관은 딱 내던져 버리고는, 상량선(商量禪)으로 집어 던져 가지고 고따구 버릇이나 해 가지고...

 

사람 속이는, 천하에 사람을 속이는... 어떤 마구니가 속이는 줄 아는가?

견성, 엉뚱헌 견성헌 놈이 나와 '견성했다'고 남 죽이는게 속이는 놈이지, 그 이외에는 없네.

 

내가 선지식을, 한국 선지식을 다 지내서 낱낱이 문법(法), 법담(法談)을 안 했으면 내가 여그 올라와서 요따구 소리를 해서 내가 대중을 속이여? 없다면 내가 그렇게 혀?

다 내가 해 왔기 따문에, 내가 여기에서 이만큼 내가 쾌활스럽게 학자한테 말허는 것이지.

 

내가 그러고 의성 고운사에서 그 문답을 척 해 놓고서는 '아무리 해도 내가 이 병은 낫워야겄다'

 

인자 이 우수운 것들, 내가 만난 것을 얘기헐라고 그런 거여. 오늘 아침 이 얘기 좀 헌 거여. 참, 별...

까딱 허면... 여, 내가 어디 그런 것을 무슨 뭐 글처럼 써 놨나, 뭐 내가 그때 무슨 뭣을 뭐 날짜를 적어 놨나? 막연헌 것을 얘기헐라 하니 그 말밖에는 못하제.

그때 인자 뭐 언제, 내가 그런 것 무슨 적발... 내가 어디 무슨 수첩이나 있어서 그걸 적어 놨나, 뭣 했노?

 

하! 의성 고운사에 가서 인자 그만 들어 앉어서 참! 고인처럼 나도, 선지식 스님네 내가 다 가서 문답, 답 다 내가 올리고, 그저 또 큰스님네께 다 꼭 그저 일러주신 말씀 다 내가 그저 받들어서, 그런 말씀을 다 얻어 들어서, 인자 내 인자 참말로 도를 닦아.

도라는 것은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인디, 미(迷)해 가지고 도 닦는다는 건 무명(無明)만 기루는 것이여. 화두, 공안 하나 타파(打破)한 뒤래야 도를 닦는 것이여.

 

그러니 의성 고운사 금당에 들어가서 인자 참말로 도를 한번 닦아 보리라.

내가 선지식(善知識)께 그만헌 탁마(琢磨)를 해서, 내가 인자 그만큼 내 공부가 내 공부 내가 인자 닦아 갈만 하고, 내가 인자 도 한번 솜씨있게 닦아 봐야겄다고 아, 그래 들어갔느니란 말이여.

 

들어가니 금당에는 참, 선객(禪客)이 많지는 못해도 한 십여 명 있는 선객들이—그때 시대 선객들은 그 참, 또 그저 이상스럽지. 뭐 거그도 다 말헐 것 없지마는.

그 천지평 노장, 천지평 이라고 허는 분이 옛날에 지평(持平) 벼슬을 허고 들어와서 거그서 있고, 그다음에 강사 모도 인자 허응선 강사라고 유명헌 이가 거그 있고, 그다음에 그 모두 몇 분 몇 분이 있는데.

 

거그는 시식(施食), 그 옳게 된 것이거든.

거그는 시식단(施食壇)을 딱 이렇게 해 놨으되, 시식단에 무슨 뭐 금강경도 없제. 아! 무슨 시식단에 금강경이 무엇이여.

 

아! 우리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종(禪宗)인디, 교 밖의 별전 선종인디, 무슨 선종으로써서 영가(靈駕)를 갖다가 무슨 극락세계로 뭐, 뭐... 그런 놈의 짓이 어디 있어?

그건 염불종들이나, 정토종(淨土宗) 발원 정토종이 헐 것이제. 꽉 미(迷)해 가지고 저도 알덜 못헌 사람이... 정토종, 저 무슨 저 참말로 실극락을 구허는 정토종들이나 할 것이고 허지, 뭐 이걸 헐 거냐! 없어.

 

딱 모여, 그저 그 위패단은 있기는 있으되, 위패단에가 작법, 참선 작법 딱! 그 참 옳게 된 것이드구만. 그때 내가 거 가보고 참 그 다 절실히 느꼈구만.

스님네가 딱! 착복 가사(着服袈娑) 딱 허고는 나와 죽비 딱 치고는 작법(作法) 참선을 탁! 헌다 그말이여. 딱 허고서는 밥 내려다 먹지.

 

아, 세상에 그 교외별전 선종, 우리 부처님이 방편 설허기 전, 바로 깨달라 가지고서는 확철대오해 가지고. 그만 그 우리 그 선종.

 

딱! 깨달라 가지고는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내가 깨달라 가지고 일체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 지혜덕상이 딱 갖촤 있구나'

아, 그래 가지고는 그 본분(本分) 본각도리(本覺道理), 아! 거그에 앉어서 그저 중생교화해 나가는 선종.

 

그래 깨달라 가지고 그만 가지고 그거만 딱 가지면 꽉 미헌 중생을 제도헐 수가 있는가? 할 수가 없제. 그놈을 막 설할라고 허니 어떻게 어떻게 혀?

 

아, 그런디 부처님도 그때에 깨달라 가지고 돌아가실란 게 원인이 무엇이여? 왜?

아, 제 참, 아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를 다 갖추았는데 왜 그걸 모르시고는 돌아가실라고 했어?

 

공중(空中)에서 방편(方便)을 설(說)허시라고 헌께, 그때사 깨달라 가지고 방편을 설했어.

천 방편, 만 가지 방편이 그것이 인자 미헌 중생한테 포교허는 방법이, 교화허는 방법이 헐 수가 없어. 그뿐이여.

 

허지마는, 아! 방편을 다 알아 버린 다음에는, 방편인줄 알아 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러니 원각경(圓覺經)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어? 뭔 말인고? 잊어 버렸다. 이것 당초에 잊어 버려서 말이 나와야제?

 

이환! 인자 또 나온다. 이(지)환즉리(知幻卽離)라, 환(幻)인 줄 알면 그거 쓸 것 없다.

환인 줄 알아 버린디 그걸 왜 써. 이환즉리다. 환인줄 알면 그거 여의어 버렸다. 환이면 소용없어.

 

부작방편(不作方便)이여. 환인줄 알은 사람을 방편 지어 뭣 혀. 왜 방편 써. 이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돼.

 

전부가 가설방편(假說方便)이여. 49년 설법, 비로소 아함경 설헐 때 가설방편이여.

그저 비유, 그저 뭔 말 '~해라, 닦아라, 어쩌라' 가설방편(假說方便)이여.

 

이환(知幻)이면 즉리(卽離)니라. 환인 줄 알면 여읜다.

그러니 뭐 환인 줄 아는데 뭣 혀. 그까짓 쓸 것 뭐여. 아무것도 소용없지.

이환즉리라, 부작방편이다. 방편 지을 게 없다.

 

다 49년 동안을 그 애를 써서 그 비유해서 그 말씀해 놓고는 "내가 시종녹야원(始從鹿野苑)으로 종지발제하(終至跋提河)의, 녹야원으로부터서 발제하까장 설법을 했으되" 설법했제 49년 동안.

"어시이중간(於是二中間)에 부증설일자(不曾說一字)다. 내가 그 중간에 한 글자도 설헌 게 없다" 인자 거가서 이렇게 말씀했네.

 

그랬으니, 세상에 부처님, 우리 부처님, 당장에 그만 확 견명성오도(見明星悟道) 탁! 해 가지고는 그게 그 별... 선종이여. 별전 선종!

교도 그건 소용없고, 방편도 소용없고, 거그는 무슨 뭐 아무것도 소용없고, 선종! 그대로 '그저 내가 나 탁! 깨달은 도리에는 방편도 아무것도 없니라'헌 이 종(宗)이여.

 

이러헌 천하에 우리 참선법, 우리 해탈법, 우리 정법.

탁마(琢磨)해서, 이만큼 탁마해서 방편인 줄 알고, 인자는 참말로 도 닦는 법도 알아가지고 그 탁마라 해.

알아 가지고는 도를 닦을라고 내가 인자는, 그래 가지고 도 안 닦어? 또 닦는 것이여. 참으로 그때 닦는 것이여.

 

 

오후수증(悟後修證)이라. 남악회양 선사가 8년만에 척 깨달라 가지고 왔지, 이 도리를.

방편도 없고 수증도 없어. 무슨 수증이 있어? 닦아 증헐 게 뭐여?

 

수증도 없고, 이런 도리는 바로 봐 가지고 왔어. 왔지마는, 수증이 없다 하니까 또 무수증(無修證)이여. 그럼 수증이 없다 해야지, 있다 햐? 닦아 증허는 게 있으면 도로 중생 경계라고.

조끔도 없지. 무슨 놈의 닦아 증험이 있어? 무엇을 닦아 증헐 것인고?

 

“깨달라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에 큰스님께서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대답 못했지. 그길로 가서 8년을 해 가지고는 확철대오 해 가지고 와서 “제가 깨달라 왔습니다”

 

“일러 봐라”

“일물(一物)이라도 부중(不中)입니다” '심마물이라도 부중입니다' 그말이여.

 

“설사 일물(設使一物)이라도 부중(不中)입니다. 맞지 않습니다”

거, 일물(一物)에 때꼽째기를 턱! 누를 잡아냈지. 벌써 일물(一物)이라고 헌 때꼽째기를 턱 찾아냈지!

 

별것 무엇이여?

그러니 설사 일물도 부중인디, 거가서 무엇을 붙일 것이냐 그말이여.

 

허공이니 비허공이니 그런 것 붙여 되아?

여래선(如來禪)이니, 조사선(祖師禪)이니 무슨 뭐, 뭔 선이니, 그런 것도 다 붙여 쓰겄어?

 

다 이른 곳이지마는,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웬 일이여? 거다 수증(修證)을 왜 붙여?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가히 닦아 증하겄느냐?”

“수증(修證)은 역불무(亦不無)입니다마는, 수증은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오렴(汚染)은 부득(不得)입니다”

 

오렴은 무엇이여? 오렴(汚染)! '더러울 오(汚)'자, '더러울 렴(染)'자.

“오렴(汚染)은 부득(不得)입니다”

 

요렇게 듣고 또 거다가서 그 무슨 소견을 또 떡 내는구만.

야! 이놈아, 뒈져. 고따구 지견 냈다가는 뒈지란 말이여!

 

그거 무슨 소린지 알어? 오렴부득을?

 

거가서 공안이여. 거가서 공안이여.

그 못된 병든 학자가 거가서 공안이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가 무엇이여? 판대기 그것이 어디 있어? 판대기도 없는디, 거가서 또 무슨 털까장 나? 털이 그것이 무엇이여?

법도 아니요 비법도 아니요, 불견 법견도 없는 것인디, 그 무슨 판대기가 있고, 거다가서 무슨 털이 있어?

 

구모토각(龜毛兎角)이요, 거북털이요 토깽이 뿔다구. 목녀(木女), 목녀가 돌자식을 낳았다.

모도 이런 고까지로 만약에 소견 붙여 고러헌 것으로 견성했다고 나와 봐.

 

거가서는 공안이래야 되아. 공안이 아니고는 학자를 제접(提接)헌 법이 없어. 학자가 눈뜬 법이 없고.

그러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여.

 

그렇게 알아 가지고, 그런 놈의 것을 고렇게 해서 해상(解相)을 지어 가지고 해 봐.

아무것도 모르는 놈만도 못허고, 그런 범부(凡夫)로서 그대로 자빠진 놈만 못하지. 무슨 도 닦는다고 그러고 자빠졌어.

도학자의 상량(商量)이라는 게 그런 데가 빠져 가지고 그런 데가 속아서 다 때려 망치고 죽이는 것인께, 고것만은 알라 그말이여.

 

판치생모가, 분명히 판치생모라는 것에 탁! 조사관(祖師關)이 붙어 있어. 딱! 들어 있어.

그놈을 잡아 내기 전에는 안 되는 법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고렇게 딱딱 되아 있어. 낱낱이.

 

그래 가지고는 참말로 도학자가, 도를 닦는 도학자가 이밖에 없으니, 공안법 밖에 없으니 화두를 잘 허라는 것이 그것이여.

 

왜 그러면 해 들어가다가 아무것도 없는 데가 고런 소견 해 가지고 견성허고 말아 버리지,

왜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대오다" 그랬고, 그다음에는 또 “너 이놈, 너 이놈 견성했다면 다 알았다. 너 아는 것 가지고는 헐 수 없으니, 너 이놈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증험해 봐라” 그건 뭐여?

 

제, 그렇게 그 알아가지고 고것 가지고서는, 제가 제 지경을 생각해 봐.

말키 공안을 갖다 인자 고렇게 없는 놈 들어대서 다 고렇게 갖다 모도 맨들아 버리고 있어.(20분56초~40분29초)

 

 

 

 

 

(3/3)----------------

 

내가 고운사에서 한번 들어앉어서 참 멋지게 해 보리라.

왜 발심(發心)헌 학자가 얼마나 이 몸 얻은 게 소중허고, 참말로 도학자의 지경이라는 게 이렇게도 백천만 겁에 만나기 어렵고. 그 가지고 있으면서 모른다.

 

지옥고를 받고 있건마는, 지옥고를 받고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는데 아, 거가서 그대로 정법안장(正法眼藏)이 갖춰 있고, 생사해탈 묘법(妙法)이 그대로 있건마는 왜 그 고를 받고 있는가?

이런 꼴 좀 봐라. 그놈 한번 보지 못했기 따문에 그런 거다.

 

그러니 그렇게 내가 딱 인자 참, 공안을 다 서로 피차간 그 고인(古人) 큰스님네께...

아! 그 큰스님도 아무것도 아니라 하면 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괜히 그렇다 하지마는. 자, 그래도 역사적으로 전통해 내려오면서 낱낱이 해 나온 것이 있거든.

 

경허(鏡虛) 큰스님 같은 이가—응, '뭔, 경허 스님은 인가(印可)가 있나'혀? 경허 큰스님 같은 어른의 법문을 좀 봐.

과거 제불(諸佛)도 또 없다고 해도 또 어찌 있냐 그말이여. 과거 제불은 어디서 나왔으며, 위음왕불(威音王佛)은 어디서 나왔는가?

'(위음왕불 이전에는, 이전에는) 위음왕불 이후에는 없다. 위음왕불 이전에 있을런지 모른다' 어째 위음왕불로 똑 본다면은 똑 경허 큰스님 같은 이는 위음왕불로 보면 어뗘?

 

고렇게 갖다 또 요새 것들이 그래?

나는 경허 스님이 인가 없다고 허면 “경허 스님 인가 없는 걸 네가, 경허 스님 큰스님이 나와서 중흥조가 되아 가지고 우리를 가르쳤으니, 과거 제불 생기기 전은 위음왕불 이전에는 어쨌어? 그 그 부처님은 뭐 경허 스님 같이 보면 어째?”

난 이래 버려. 고것 또 고건 용케 찾는구나. 분명히 다 대 나왔지마는, 내 그래 버려.

 

법문을 봐. 경허 큰스님 평생 법문을 좀 보란 말이여.

 

요새 것들, 그런 것들 소용없어! 제가 무슨 뭐 동서철학, 동서 별집 문집을 다 일렀다 하드래도 틀려 버려! 법문 들어보면 고름 냄새가 고름 주머니 터진 것보담 더해.

고인 법을 갖다 툭탁 또 해놓지. 어쩌고 '이와 이잔다' 그저 어떻게 갖다 말만 갖다 이용허지, 그놈 주루루 한번 이 얘기허면 못혀! 입도 벌려 죽어.

 

우리가 경허 큰스님 밑에서, 다 이 큰스님네가 다 나와서 아, 그래 그동안에 이렇게 지끔 도를 모도 닦아 나오면서 요새 나온 것들이, 제가 저도 참선했다고 허는 것들이 '경허 스님은 인가 있냐' 그려?

그런 외도(外道), 그런 것이 더러 있다 하드구만. 훤히 귀에 들린다 그말이여.

 

그래 못혀.

 

중흥조(中興祖), 참 중흥조제! 달마 스님이 우리 초조(初祖)고, 동토(東土)에 나와서 초조고.

우리는 달마 참선을 그대로 봉행해 나온 참선 학자 아닌가. 우리는 격외(格外) 학자란 말이여.

격외선(格外禪)이란 우리 한국참선, 지금 학자밖에는 없으니까. 우리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종이여!

 

‘자! 내가 이만큼 서로 문법(問法) 탁마를 해서 큰스님네가 나한테 인가를 다 해 주셨으니, 나 인자 도 닦아야 겄다. 참말로 가치 있는 도학자가 되야겄구나’ 맹서를 했네.

 

'무슨 죽으면 죽었제, 내가 몸에 이렇게 병 얻은 걸 가지고 걱정헐 게 뭐냐? 여태까장 이놈 내가 병 중에서 공부를 해 나왔는데'

나, 똑! 병 중에서 해 나왔구만. 고 병 여의고 헌 것이 아니라, 첫 철에 병을 얻어 가지고 피 풍풍 쏟아 가면서 거그서 타락 풍! 떨어져 버리지 않고 내가 그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했어. 병으로써 스승을 탁! 삼아.

 

죽으면 그뿐이지. 어떻게 헐 꺼여?

'죽는다고 안 헐 수가 있나? 죽는다고 이 몸뚱이를 위해서 안 해 버리고 말 것인가?' 이놈이 드니까 소용없어.

 

막 자고 일어나면 여가 막 피가 훡 터져. '아이고, 이 병 때문에 나가야겄다. 어디가 병 낫워야겄다' 그 마음 없어.

 

내 시방 질팡갈팡 법문허지마는, 질팡갈팡 법문헌 게 아니여.

그때 고대로 해 나간 걸 허다 보니까, 말이 이렇게 법문 길이 주루루 있는 게 아니라 질팡갈팡 혀.

 

그렇게... 뭐 이건 엉뚱하게 시방 첫 철 공부헐 피 나올때 고놈 또 갖다 얘기허거든.

 

그래 쏟아 가지고 내가 자고 일어나면 내, 땅에 피 닦니라고... 피가 벌거니 사방 묻어서 이놈 갖다 뭉쳐 가지고. 가서 수통(水桶)에 가서 앉었어도 또 줄줄줄줄 나오네.

이런 놈의, 처음에는 코에 나오던 놈이 나중에는 목구녁에 나와 가지고, 목구녁 코구녁이 다 한 구녁이 다 터져 버렸어.

허니 코구녁 막으니 입으로 나오지, 입 막으니 코구녁으로 나와 소용있나? 입에 부터 차 버리지.

 

그렇게 나오든 피가 나중에는 안 나왔어. 하도 토해 버리니까.

그러고 인자 여가 몽쳐. 이 몽친 놈은 언제까지 있어.

자고 일어나면 몽쳐. 콱 뱉으면 푹 나오고 푹 나오고. 두부모, 간뎅이 두부모 같은 것이 나와.

 

나중에는 인자 하다하다 오래오래 된 게, 저그가 알아서 지침을 콱 허면 폭 나오면 비린내가 풍풍 나.

난 뭐. 틀림없어.

 

내가 인자 도를 닦아 보니, 어느 지경 가 놓으니—산산수수(山山水水)가 개묘체(皆妙體)지. 산이면 산 물이면 물, 어떤 놈 여의고 피허고 있나. 그저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두두촉촉이 모도 가풍(家風)인디, 뭐 있냐? 아무것 뭐, 괴기를 먹으면 무슨 걸리며, 술을 먹으면 거그 무슨 걸리며, 어디 가서 무슨 뭐 내가 마누라 얻어 가지고 살림을 살면은 거가서 무슨 하등 관계여, 도가? 도체가 거기에 무슨 상실될 게 있어?—이따구 생각이란 건 꿈에도 없다 그말이여! 그런 법이 없어!

 

참말로, 알수록에 그 경계에 맥힘이 없고, 하구녹수(何拘綠水)가 여청산(與靑山)고? 녹수가 청산에 걸리까 보냐?

하나도 맥힘이 없고 걸림이 없을수록에 더, 다 보이는 것이고 더 잘해야 하는 것이고, 설 데 서야 하고 앉을 데 앉어야 하는 것이지.

 

그까짓 설 데도 앉고, 앉을 데도 앉고 아무데나 오줌 싸고 또... 미친놈이라니까, 거. 그런 미친놈이 없다니까. 그건 미친놈이라는 게여.

도 아니라 더 헌 걸 봐 가지고 깨달라 가지고 더 그러면 더 더럽게 미친놈이여.

 

그래 가지고는 내가 무슨 뭐, 헌 것이 아니여.

잘 한번 닦아 보기 위해서 의성 고운사를 가 가지고는 탁 들어앉어 공부헐라고 허니, 아! 이놈의 당최 피가 이렇게 동(動)해 싸니, 그 할 수가—그런 경계는 나와서 한번 헐 때는 야단치지마는, 목구녁에 그놈이 나오고 원청 몸뚱이가 그놈이 들어서 그만 나를 갖다 너무 고롭게 허니 헐 수가 없어!

 

'똑! 자연치료를 헌다'해서, 자연치료는 어떻게 허느냐?

첫대는 얻어 먹을 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여. '먹을 건 먹어야 한다' 뭘 먹어야 하냐?

바닷가에 가서 해삼 · 문어 · 전복 그놈을 그저 많이 먹고 인자 그 피를 좀 맨들어아 헌다는 게여, 몸뚱이. 맨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여, 식이요법으로.

 

아! 그 병원에 가도 그러제, 모도 그러제.

몸뚱이가 인자 죽게는 되아 버렸으니, 그건 다 '저 사람은 죽제 살들 못헐 사람이다'는 건 다 인증 받고 있었어.

 

그 머리는 터져서 못 깎거든. 머리는 여가 뒷꼭지 다 터져서...

내 머리 이것 왜 쓰고 댕긴고 알어? 뒤꼭지가 하도 터져서 그만 그때 써 버릇해 가지고, 감토 쓰는 버릇이 버릇이 되아, 밤낮 쓰제. 인자는 벗어도 괜찮지마는.

 

전부가 터져서, 뭐 뒤가 터져 가지고 그 피가 덩어리가 나오고 인자 그렇게 되아 버렸으니 뭐 어떻게 해?

그래서 머리를 기루었지. 내가 이까짓 걸 뭐 전부 버리지, 뭐 운치로 기루었나, 뭐 그 모냥으로 기루었나?

 

내비 두었더니 사이사이에 부스럼 난 놈은 그대로 진물이 흘르고 부스럼 나고 허는디, 이놈을 이렇게 휘둘러 가지고 떡 그러고는 인자... 그래 가지고 앉어서 뭐 공부를 헐 수가 있어야지, 피 넘어오면 비린내가 나제.

 

아! 이녀러 것, 당최 사람 살 수가 없다.

조끔 있으면 그만 이놈이 병에 도력이 이기들 못혀. 내 그 경계가 병에 그만 항상...

 

에라! 암만 생각해도 안 돼.

나 혼자—그때에 그 운봉 스님도, 그때는 운봉 스님이 아니라 초암 스님인데, 나 하고 참 도벗인데, 그분도 거그 있고 헌디, 나 혼자 누데기를 장만했제.

 

한 벌을 입게 맨들고 한 벌은 짊어지게 맨들어 가지고—혼자서 뒷방에 가서 공연히 좋은 옷을 이리저리 찢어서 그만 맨들았다 그말이여.

좋은 놈을 입고는 안 되겄길래, 이리저리 모도 찢어서 대서 그저, 그래도 그 뭐 울긋불긋 헌건 안 대고, 걸레 누데기로만 이리저리 누벼서 동애줄처럼 이래 실 두벌 해서 누벼서, 한 벌 입고 한 벌은 짊어 질 요랑하고.

 

바리때는 구녁을 뀌어서—역부러 좋은 바리때, 어싯대를 갖다 그냥 구녁을 뚫어서 끈을 이래 달아 가지고, 나무 숟가락이라도 나무 숟가락 이만헌 놈 하나 해 가지고는 그놈 달아 놓고 그냥, 가만히 나가 버렸제, 대중에 있다가.(40분32초~51분22초)

 

 

 

 

 

----------------(1/3)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또는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임제스님, 운문선사, 조주스님 ;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종가풍(五宗家風)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제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및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의 가풍(家風, 전통적인 독자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을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제2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은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3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5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7세 나한계심(羅漢桂琛)의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201~206 참고. (가로판 p208~213)

[ 臨 濟 家 風 ]  赤手單刀로  殺佛殺祖로다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劒하야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야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麼아  靑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三玄)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로 알아 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 曹 洞 家 風 ]  權開五位하야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야  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야  截萬機穿鑿이로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壺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麼아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조동가풍 : 권도(權道)로 오위(五位)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견의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 묘하게도 맞추어서 모든 기틀의 천착(穿鑿)을 끊음이로다

위음왕불 나시기 전 눈에 가득한 풍경이요, 공겁 이전 별(別) 세계 경치로다。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그 전, 정편(正偏)이 유무(有無) 기틀에 떨어지지 않음이로다。

 

[ 雲 門 家 風 ]  劒鋒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掀翻露布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하니  迅電은  不及思量이요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麼아  柱杖子跋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說法이로다

 

운문가풍 : 칼날에는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온 천하의 갈등을 둘러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내 버리니, 번쩍 하는 번갯불은 사량으로 미칠 수 없거니,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요。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잔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도다。

 

[ 潙 仰 家 風 ]  師資唱和하며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崢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一搥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潙仰宗麼아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眠少室이로다

 

위앙가풍 :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뾰족하구나。방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를 한 망치로 부수었네。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옛 길에 쓰러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 法 眼 家 風 ]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髑髏는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觸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黃花는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麼아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법안가풍 : 말 가운데 메아리가 있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는 참 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꽃은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달 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할(喝) ; 선종(禪宗)에서 진리를 문답하는데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토하는 큰 소리.

큰 소리로 『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임이니, 이것을 처음 쓰기는 마조(馬祖)가 한 번 할했는데 백장(百丈)이 사흘이나 귀먹고 눈이 캄캄하였다는 것이 첫 기록이다. 그 뒤로부터 흔히 쓰는데, 임제(臨濟)가 가장 많이 썼다. 보통 속음(俗音)의 「갈」로는 발음하지 않는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공안)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3분 57초)

[참고]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고봉 스님의 수행[通仰山老和尙疑嗣書(其二八)] ; >>> 고봉스님의 수행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 경험담 ; >>> 고봉스님의 수행 경험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오해(悟解) ; 산스크리트어 ava-bodha. ①깨달아 앎. 뜻으로 깨달음. ②일정한 지식으로 분별하는 이해. 이치에 대한 지적 분별.

*일관도천(一串都穿 한 일/꼬챙이 관/모두 도/꿰뚫을 천) ;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p137~138. (가로판 p133~134)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허공발염해저생연(虛空發焰海底生煙) :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직전에 정신혁명이 일어나는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

*합착(磕着) :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등등상전(燈燈相傳)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전해지는 것을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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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입명(安身立命) ; 몸을 편안히 하고 명(命)을 세우다. 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존하다.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 생사를 벗어나 심신(心身)이 편안해졌음을 표현한 말이다.

*대망어(大妄語) ;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는데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을 일컫는다.

일반적인 망어(小妄語 거짓말)를 하면 비교적 가벼운 제재를 받는데 비해, 대망어를 하면 승단으로부터 축출되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2. (가로판 p86)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화두],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시식(施食) ; ①죽은 이의 명복을 빌거나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베풀고 기원이나 독경 등을 하는의식. ②불사(佛事)나 법회 때 음식을 공양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가로판 p29, p35)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선종(禪宗) ;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딱! 깨달라 가지고는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내가 깨달라 가지고 일체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 지혜덕상이 딱 갖촤 있구나' ;

[참고 ❶]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 지유선사 역)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 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 마음만 알면 항하(恒河)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법문(法門)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않더라도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환(幻)과 같은 변화가 모두 여래의 원각(圓覺)의 묘심(妙心)에서 났다’고 하시니, 이러므로 알라 이 마음을 여의고는 부처를 이룰 수 없도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도 다만 마음을 밝히신 분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도 역시 마음을 닦으신 분이며, 미래에 닦는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에 의지하는 것이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밖으로 구하지 말지어다. 심성(心性)은 물들은 데가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허망(虛妄)한 인연(因緣)에 생각이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인 것이다.

 

[참고 ❷]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八十華嚴)』 (실차난타 역 實叉難陀 譯 | 이운허 번역) 第51卷 ‘37. 여래출현품 ②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二’

如來以無障碍淸淨智眼 普觀法界一切衆生而作是言 奇哉 奇哉 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慧 愚痴迷惑 不知不見 我當敎以聖道 令其永離妄想執著 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 卽敎彼衆生修習聖道 令離妄想 離妄想已 證得如來無量智慧 利益安樂一切衆生

 

여래께서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 눈으로 법계의 모든 중생을 두루 관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다.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그리고 곧 저 중생들로 하여금 성인의 도를 닦아서 허망한 생각을 여의게 하며, 허망한 생각을 여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하여 안락케 합니다.

 

[참고 ❸]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六十華嚴)』 (불타발타라 역 佛馱跋陀羅 譯 | 이운허 번역) 第35卷 ‘32. 보왕여래성기품 ③ 寶王如來性起品 第三十二之三’

如來以無障碍淸淨天眼觀察一切衆生 觀已 作如是言 奇哉 奇哉 云何如來具足智慧在於身中而不知見 我當敎彼衆生覺悟聖道 悉令永離妄想顚倒垢縛 具見如來智慧在其身內 與佛無異 如來卽時敎彼衆生修八聖道 捨離虛妄顚倒 離顚倒已 具如來智 與如來等 饒益衆生

 

여래께서는 걸림없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일체 중생을 관찰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구나. 여래의 원만한 지혜가 그 몸속에 구족해 있는데 그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나는 저 중생들로 하여금 거룩한 도를 깨달아 망상과 착각의 속박을 아주 떠나고, 그 몸속에 있는 여래 지혜가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완전히 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여래께서는 곧 중생들을 가르쳐 팔성도(八聖道)를 닦아 허망한 착각을 아주 버리게 하고는 여래와 평등한 여래의 지혜를 갖추게 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합니다.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일체지(一切智) ; ①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부처님. 완전한 지혜를 갖고 있는 이. 전지자. ②부처님의 지혜. 일체를 아는 지혜. ③일체는 공(空)이라고 아는 지혜. ④삼지(三智)의 하나. 내외의 일체의 것에 통달한 지혜를 말한다. 천태에서는 2승소득(二乘所得)의 지혜라 하고, 구사(俱舍)에서는 불지(佛智)라고 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7~88. (가로판 p91~92)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부동지(不動地) : 마음 바탕(心地)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쳐서, 한없이 밝고 두렷이 고요한 곳에 머물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고, 온갖 주체와 대상이 끊어진 경지를 말함이다.

*가설(假說) ; ①임시로 설명하는 것. 언어적 관습. 비유적 표현. 제2의적(第二義的). ②허언(虛言, 거짓말. 실다움이 없는 언어).

*시종녹야원(始從鹿野苑) 종지발제하(終至跋提河) 어시이중간(於是二中間) 미증설일자(未曾說一字) ; '처음 녹야원에서부터 마지막 발제하까지, 이 두 기간 사이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미증(未曾), 부증(不曾) : 일찍이 ~한 적이 없다.

[참고] 『선교석(禪敎釋)』 (서산대사)

世偈云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此固敎外別傳之謂也.<智度論>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처음 녹야원에서부터 마지막 발제하까지, 이 두 기간 사이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교외별전의 취지를 가리킨다.<『지도론』>

*견명성(見明星) ; 부처님이 12월 8일 새벽별[明星]을 보시고 성도(成道)하였다는 고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저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 ; 『육조단경(六祖壇經)』 참청기연품(參請機緣品)에서.

懷讓禪師  金州杜氏子也  初謁嵩山安國師  安發之曹溪參扣  讓至禮拜 師曰 甚處來  曰 嵩山  師曰 什麼物 恁麼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회양 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 숭산의 혜안 국사를 뵈니 혜안 국사는 조계로 보내 공부하도록 하였다. 회양 스님이 찾아뵙고 예배하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어디에서 왔느냐?[甚處來]”  (회양) “숭산에서 왔습니다[嵩山]”

 

(육조)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什麼物 恁麼來]”  (회양)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說似一物卽不中]”

 

(육조) “도리어 닦아 증득할 수 있느냐?[還可修證否]”  (회양) “닦아 증득함은 없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없습니다[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 讖汝足下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讓豁然契會 遂執侍左右一十五載 日臻玄奥 後往南嶽 大闡禪宗 敕諡大慧禪師

 

(육조) “다만 오염되지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라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서천의 반야다라 존자가 너의 발 아래 한 망아지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예언을 하셨으니 네 마음속에 두고 모름지기 함부로 말하지 말라.

회양이 훤칠하게 깨우치고는 육조 스님을 15년 동안 모시면서 날이 갈수록 공부가 깊어졌다. 뒷날 남악으로 가서 선종(禪宗)을 크게 떨쳤다. 왕이 대혜선사라 호를 내렸다.

*일물(一物) ; 일상(一相). 한 물건 •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구모토각(龜毛兎角) ; '거북이 털, 토끼의 뿔'

허공의 꽃[空華]이나, 석녀(石女)의 아들 등과 같이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또 본래 모든 법에는 실체(實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유(實有)의 견해에 빠져 집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참고] 『무문관(無門關)』 (무문 혜개 스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1. 가로판(p63) *絶=絕(끊을 절).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해상(解相) ; 짐작하여 생각하는 모습의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가로판 p53)

當於本參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參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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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수(無數) ; 헤아릴 수 없음.

*정법안장(正法眼藏) ;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라는 뜻.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뜻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위음왕불(威音王佛) : [범]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실려 있다。공겁(空劫) 때에 맨 처음 성불한 부처님이다。그러므로 「무한히 먼 때」 또는 「맨 처음」이란 뜻으로 쓰고, 따라서 종문(宗門)에서는 본분(本分)•향상(向上)•실제(實際)•이지(理地)의 뜻을 표시하는 말로 쓴다。그리하여 향하(向下)•사상(事相)은 위음왕불 이후라고 하는 것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수통(水桶) ; 수각(水閣). 입수(入水 들어오는 물)와 출수(出水 나가는 물)가 적절히 이루어져 언제나 음용 또는 세척 등을 위한 깨끗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도록, 흐르는 물을 잠깐 가둘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물통.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