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8. 1. 18.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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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8호) 직지사에서 첫 설법.

**전강선사(No.018)—전강선사 일대기 제8호(경술1970년 12월 13일 음)

 

(1/4) 약 21분.

(2/4) 약 22분.

(3/4) 약 21분.

(4/4) 약 21분.

 

 

(1/4)----------------

천리장성목저만(千里長城牧笛晩)이요  운납암상낙화홍(雲衲岩上落花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송하(松下)에 월명정다소(月明情多少)오  산계연심추색만(山溪煙深秋色滿)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참선(參禪)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겉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데.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妄想) 따문에 못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허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話頭)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또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허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헐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금도 뭐 여읠 것도 없고. 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 그놈이 조그만헌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혀 중생 때에는 전부 망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華嚴)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覺)인디... 낱낱이 각이여.


내가 만공 스님께... 만공 스님 문집(文集)이 여기 인자 이번에 누가 하나 보내 주어서 여기 있구만. 만공 스님 문집을 좀 잘 보시란 말씀이여.

거, 학자(學者)들 모도 뭐 누구누구 모도 다 ‘입실(入室)을 했다’
입실은 견성(見性)허기 전에도 입실을 해 주어. 입실이라고 다 게송(偈頌) 붙여서 그 다 해 주지.
아, 사판(事判)에도 다 그렇게 해 주는 건데. 입실을 헐 것 같으면 당호(堂號) 지어서, 게송 다 지어서 그래 해 주는 법이다 그말이여. 처음에 은사(恩師)로 정해 가지고 그 다음에 법사(法師)를 정헐 것 같으면 그렇게 다 해주어.

그와 달라! 떠억 척! 깨달은 공안(公案)을 척! 가지고서는, 거다가서 게송을 척! 해주거든.
뭐 내가, 내가 허기는 이것 참! 인격답지 못허구마는 거, 안 했어 거?
보란 말이여, 가서 봐. 그만 딱딱 있제!

여태까지 저 각 선지식(善知識) 찾아서 내, 그 모도 그 법담(法談)해 논 거, 다 주욱 다 해 왔제.
그 없는 것을 내가 그렇게 위조로 해 놔? 위조로 헐 수가 있나? 못하는 법이여.

마지막 만공 스님한테,
“어떤 것이 자네 견성헌 오도별인가?”
터억 이거! (전강 스님이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했다) 이것 한번 알아 봐. 이거, 그 무슨 짓일까? 뻘로 그 짓을 헐까?

“선재선재(善哉善哉)로구나!”허고는 그 송(頌) 딱 붙여 놓았지.
나, 그때 그 입실송 아니여, 그건 오도송(悟道頌)이지. 정전강 오도송이지 거, 입실송 아니다 그말이여.

법 배우는 우리 학자들께 내가 무엇 따문에 그걸 감추아 놓으며, 무엇 때문에 겸양 “헤헤 그렇지 않다“ 인자 그런 것 할거 뭐 있나? 그 뭣 헐라고 그려?
화반탁출(和盤托出)이지. 척 까 내놓을 일이지, 뭣 헐라고 감추며 거다가 뭐 그런 겸양이 뭐 그것이 있을 거 뭐 있어?

거그, 학자 그렇게 많이 있어. 뭔 법담 뭐 해 놨자, 고렇게 된 것 없어.
나는 그 몇 말... 나 없을 적에 그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거, 만공 스님 문집을 모도 꾸며 놨드구만.
십대문답(十大問答)도 못쓰게 답을 해 놨어. 즈그가 집험서, 결집(結集)험서 알 수가 있나? 무슨 놈의...

“지장도량내 유업경대(地藏道場內有業鏡臺)허니 업다소마(業多少麼)?”
“차문 이전에 합긱 삼십방(此問以前合喫三十棒)이니라”
그때 그렇게 허셨제, ‘차문 뭐, 뒷문 뭐 후에 어쩌고...’
알아야제. 허, 그것!

내가 그랬구만. “십대문답을 함부로 써놔?” 즈그 집(集)헌 사람 보고 내가 그랬어.
“나한테라도 찾아와 좀 묻제. 즈그까지 그래 놨어?” 내가 그랬구만.

내가 그놈. 그 답, 십대문답 탁! 대답하고는 인자 뭐 다 답했으니, 뭐 내가 인자 목적 달성했으니, 여지없이 인가(印可) 척 받곤 뭐 떠나야지, 뭣 헐 것이여?

나는 그때 입실도 요구 안 했고, 다맛 그저 묻는 도리만 내가 답허고는 척 돌아서서 나올라고 하니까,
그 문답을 물어서,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해서 땅을 터억 내가 이렇게 허니까,
“선재선재라! 잘 이르고 잘 일렀느니라!” 거, 송(頌) 거 해 놓았제.

자! 일 마친 분상에는 아무 일이 없다.
생사 일 밖에 더 있는가? 생사를 두고 그 그밖에 무슨 일이 있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천리나 된 진 성(城) 가운데에서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거 무슨 말인고 하니, 천리장성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모도 인자 이 모도 사바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이러헌 세상에 와서, 어째 이렇게 참,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턱 깨달라 가지고는 내 깨달은 마음을 어디로 도망가지 않게 잘 멕인다 그말이여.

자꾸 이놈 깨달라는 놨지마는, 아! 이놈—이즉돈오(理卽頓悟)다마는, 이치는 몰록 다 깨놨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그 과거에 익혀 내려온 습기(習氣)라는 게 있어서, 자꾸 이놈이 도망간다.
자꾸 그저 풍진(風塵) 경계로 나가니까, 이놈을 못 나가게 자꾸 거두어서 멕여. 그걸 멕이는 젓대가 늦었느니라.

그놈 멕이니라고 연대갑자(年代甲子)를 총부지(總不知)허고, 날이 간 지 온 지도 모르고 멕이다 보니 늦었다. 그놈 멕인다 그말이여.
나를 깨달라 가지고 내가 내 주인공(主人公)을 바로! 인자 이놈을 길들인단 말이여!

밤낮 깨달지 못허고, 이 중생이라는 것은 그저 조금도 잠정(暫停)이 없이 그저 도망간다. 깨달아 놨어도 이놈이 또 그저 업비적시 그러네.
깨달라 놓으면은 안 그럴 줄 알지마는, 오후(悟後)도 그런다 그말이여, 이것이!

그러니,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그랬어.

처꺽 깨달으면—코빼기 만지기보담 쉬우니, 낯 씻다가 코빼기 만질, 그렇게 그 찰나간에 처꺽 깨달라 버리면은 그만 그만인가?
그만인 상근대지(上根大智), 그저 언하(言下)에 척 대오(大悟)허자, 다 증(證)해 버리면은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다시 무슨 후각(後覺) 뭐 그거 소용없지.

허지마는, 그 상근대지라야 그렇게 되아. 없는 것은 아니여.
허지마는 중근이나 하근부텀은 그렇게 된 법이 없어. 깨달라 가지고는 보림(保任)을 해야 되아.

잘 참, 깨달기는 밥 먹을 사이에 깨달을 수가 있고, 언하에 대오헐 수가 있고.
허지마는 보림은, 깨달라 가지고 보림은 삼십 년도 허고, 사십 년도 허고, 일생도 허고 일생 다 해도 다할 수가 없어.

또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 밖에 할 것 더 있어?
아! 그놈 잘, 그저 보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슨 뭐 힘든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경계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니까. 척 깨달라 가지고는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토록 항상 반조(返照)를 해 나가는 것이여.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싸래기가 그렇게 좋다마는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된다.
허니, 피운차각(被雲遮却)을 구름이 밝은 달을 가리우데끼 거, 무슨 중생견이 깨달라 버린 뒤에 무슨 망상이 있으리요마는, 그래도 고놈이 그 매(昧)할 수가 있거든. 매해여.
매허니까, 그놈을 매허지 않고 항상 해 나가는것이 그것이 보림인데. 견성헌 후에도 그렇게 보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그게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목저만(牧笛晩)이다, 멕이는 젓대가 늦었다’
그 말은 항상 깨달라 가지고는 고 소[牛] 멕이데끼, 내 마음을 자꾸 어디로 도망가지 못허게 깨달은 그 각(覺)을 항상 보호해 나간다 그말이여. 그래 놨제.

그런데 그 지경이 운납(雲衲)은 암상(岩上)에서 낙화홍(落花紅)이로구나.
그 구름같은 납승(衲僧)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놓고 보니, 암상에서 그저 낙화 경계여. 꽃 떨어진 경계다 그말이여.
그 무슨 뭐, 그 무슨 별 경계인가? 처억 깨달라 놓고 보니 암상낙화홍(岩上落花紅)이니라.

송하(松下)에 월명(月明)인디, 정다소(情多少)냐? 솔 아래에 달은 환허니 밝았는디, 그 정이 얼마나 되느냐?
솔 밑에 달 밝았는데 거그서 무슨 그런 인간 정(情), 시시비비(是是非非) 정, 무엇이 있겄느냐 그말이여. 무슨 정다소냐?

산계연심(山溪煙深)헌데 추색만(秋色滿)이로구나. 그게, 그게 해탈 경계, 보림 경계라 그말이여.
산 시내 연기는 깊었는데 추색은 찼구나. 가을빛은 찼다. 그게 그 모도 그저 보림허는 경계여.
보림허는 경계, 송(頌) 하나 갖다가 내가 여기서 말을 했어.


만공 스님, 마지막 거그서 떡 떠나 가지고서는 김천 직지사를 내가 왔어. 또 인자 그전에 있든 디니까.
직지사를 와 가지고는—거, 몸은 형편없지마는, 그 좀 나는 견성했다고 그때 그 지경이 좀 어떻게 되아 영 뭐 그런 병 뭐 여하약하한 것은 잔뜩 그 목구녁에서 피는 차 올라와서 간뎅이같은 건 밭지마는, 그런 데 구애없어.

이병위사(以病爲師)를 해가지고는 그 무슨 경계에 취해서, 응...
그만 직지사를 척 오니까, 직지사 대중이 한 30명 모아 있다가, 참! 반가허드구만. 소식이 어떻게 앞을 질러서 다 알고 있제. 참! 반가혀.
“아따! 이 신(信) 수좌님이 여기에 돌아왔다”고 야단들이여. 그러더니 법문을 청헌다.

이런 것은 안 넣었으면은 좋겄구마는 그것도 좀 넣으라고 싸니깐, 넣는데.

당최 배가 고파서 영 못허겄구만, 법문을.
엊저녁에 쌀가리 똑 반 숟갈 타 먹었네. 한 숟갈도 못 타 먹고.
그랬더니 당최는 이건 이렇게 안 돼. 되나 안 되나 어찌 올라왔으니깐 또 좀 허고.(처음~21분19초)



(2/4)----------------

나를 법문을 청했어. 그래서 올라갔제. 그 인자 처음이여. 내 생전 처음이여 법상에는, 인자 잉!
아, 거 새파란 사람이 인자 그때가 스물세 살이여. 허! 스물세 살에 무슨 놈의 법상(法床)에 올라갈 것이여?
두 철 만에 나와서, 두 철 만에 지내고 산철이니까, 어디 뭐 얼매 시일이 되았어?

법상에 올라가서 첫 설법이여!
첫 설법이니 한번 대중이 잘 들어요. 잘 듣고 거그 좀 잘, 답도 있어.

이 주장자(拄杖子)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살림 밑천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모도 이것 요놈 가지고 살림해 왔어.
나도 직지사 와서, 주장자 이놈을 처억 들어서 내가 이렇게 보였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이렇게 물었어.
거그, 한마디 다 모도 해. 내가 첫 법문이니깐, 고놈 한마디씩 대답해 보아.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입 열기 전에 그르쳐도 제이구인디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입 열면 그르쳤다”
입 열기 전에 그르친 게 아니여. 이 일은 “차사는 개구즉착이니라.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친다”했제, 입 열기 전에 그르친다 안 했어!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라.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 두어라. 어떤 것이 차사(此事)냐?”
간단혀! 천하에 간단혀.

우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이치부텀 봐야사 도를 닦는 것이여. 이치 보지 않고 어떻게 닦아?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깨달지 못허고 닦는다는 것은 무명(無明)만 기루어. 허니 어서 화두를 타파(打破)해야 하지.

화두 타파한 것이라는 것은 글쎄, 일향간(一餉間)에 있어. 밥 한번 먹을 때에도 깨달을 수 있고, 젓가락 집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잠깐 깨달라 가지고는 그다음 일이 설찬히 크다 그말이여.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쳐? 그르치고, 안 그르치고 그만두라 그말이여.
내가 그르친 걸 뭐 말헌 것 아니여. 그건 그만두어 버리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인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 우리가 밤낮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일로써 그 이렇게 밤낮 쥐어뜯고 있으니 아, 이거 하나 턱 일러 보아.

거그에 그 하나 이르련마는 모도 이렇게 환해도 안 이르고 있는가? 환히 보여도 못 이른가?
의심나면 못 이르제. 더듬으면 못 일러! 찾다가 죽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것 그만두고 어떤 것이 차사오?”
아! 세상에 이렇게, 답을 거다가서 그만 가르켜 놓고 들어가는데.

청송 선생님 하나 일러! 벌써 며칠 했어?
청송 선생 하나 턱 일러! 며칠 동안이여 벌써? 삼 일 동안에도 확철대오하는 것인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직 못 일러? 아주 유명하신 그 뭐 거그서 굉장헌 선생이시란디.
어디, 광명 선생도 한번 일러 보고. 그놈 선생도 못 허겄다 인자, 선생은 무슨 놈의 선생이여?
조실 스님한테 선생 소리 들어 되아? 한 번 일러 봐, 며칠이나 공부했어?

아따, 우리 대중같이 이거 참말로 그것 참, 그렇다 그려.
방(棒) 주는 게 아니여. 벌써 그거 능히 이르고 별짓 다헐터이지마는, 그렇게 참다와. 그런 거여. 그렇게 참다와야 혀.

어름해 가지고 어떻게 이르며. 또 확철히 보이드래도 또 역득(亦得)이여!
그렇게 아무 말이 없이 양구(良久)허고 있는 경계 좋아.

그때 당시에 직지사에서 30명 대중이 있었는데 답을 하나 허되, 그때 초를 요렇게 써 놓았으니 “촉(燭)불이 밝습니다”
그건 누가 그렇게 이른고 하니 병률이가 그렇게 일렀어. 병률이라고 우리 동갑쯤 된 사람인디, 일찍 들어왔다가 일찍 퇴타해 버렸어.
그이가 한번 나와서 답헌디, “촉화명(燭火明)입니다” 그려. “촉불이 밝습니다” 해.

“내가,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 차사(此事)를 내가 이르라 했지, 촉불 밝은 것을 내가 이르라 했나? 뭔 촉불 밝은 걸 왜 거다가 들어대아?” 아! 그래 놓으니 또 꼼짝달싹 암말도 못허제.
“그 역시 무공저(無孔笛)로구나. 그것도 역시 소리 없는 젓대로구나” 내가 그래 놓고.

또 어떤 분이 나오더니 또 이르기를 “도리(桃李)가 환다사(還多事)하니, 도화꽃과 오얏꽃이 오히려 일이 많으니, 도화꽃 복숭아꽃 없어지면은 이르겄습니다” 이래서,
“그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이르라 한디, 그르친 도리를 일렀나? 그르치지 않는 도리를 일렀나?” 그 아무 말이 없어.

그것도 그저 그대로 둘 일이제, 거 다시 무슨 야행인(夜行人)을 끄어 일받을 것 없고, 밤사람 행헌 것을 다시 얘기헐 것 없고.
그 몇이 그러고는, 법문은 인자 그다음 뭐라고 인자 헌 것 다 내가 지금 알 수 있어야제. 고것만 내가 헌 것 지금 기억허제, 그밖에 여러 소리 뭣헌 건 알 수 없고.

마치고 내려와서, ‘내가 처음 법문헌 것이니까, 만공 큰스님헌테 이 법문을 보내야겄다’해 가지고는 만공 큰스님한테다가,
「영신(永信)이가, 첫 법문을 직지사에서 청해서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시중(示衆)허고, 들어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라. 착불착(錯不錯)은 차치(且置)허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오?’ 이렇게 물었으니 큰스님 수시일구(垂示一句)하야 주시옵소서. 큰스님 여기에 대해서 일구를 드리워 보여 줍소사」

그래 편지를 올렸더니, 며칠 내가 거기 오래 있든 않고 있는데, 편지가 왔는데 고 편지에다가, 답장에다가 까꾸라 한 걸 이래 그려 보냈어.
요 까꾸라 요렇게 된 걸 그려 보냈어. 응, 요렇게 생긴 것을. 요렇게 된 걸 그려 보냈어.

그것! 그것 다 모르겠제? 알다니? 모르제.
삼매(三昧)로 다 써 논 것이니깐 모르제. 그 첫 법문을 했기 따문에 그래 올렸더니 그렇게 해 보냈드구만.


직지사에서 며칠 쉬고서는, 동래온천이나 가서 온천을 좀 허고—이렇게 피는 올라와서, 여가서 뭉쳐 있으니깐 ‘온천이 좋다’고.
간뎅이같은 것이 푹푹 올라오면 비린내가 나쌌고 살 수가 있나. 그래 인자 동래 온천을 내려갔지.

가서, 금정사를 들어갔더니 기인벽이가—그 사람이 유담인데, 유담이 반가와, 아주 반가와험서 오! 참 반가와 혀.

사방서 선지식 스님 찾아, 큰스님 찾아다니면서 인가 다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까장 다 돌아서 왔다는 것 다 알고. 뭐 그러니깐 뭐, 대접헐 건 사실이지 뭐.
오히려 그 조실 큰스님네 오신 것보담도 더 반갑지.
새로 그렇게 인자 참, 학자로써서 아! 그렇게 모도 인가 맞고, 아! 그랬다고 인자 사방 가면 그 대접허는 것이 너무 과했제.

그런디 이번에 금정사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나쳤지.
척 들어가니까 유담이 그때 감원(監院)을 허고 있는데, 그 만찬을 해 가지고는 적을 굽고 다시마를 잘 모도 굽고 그래 잘해서, 부꾸미 떡도 부치고 뭐 혀 가지고는 좋은 술을, 참! 좋은 술 일등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아! 신수좌님, 참 내 뜻대로 내가 한번 이런 걸 차렸으니 잘 잡솨 주십시오. 내 어떻게 했으면 더 잘 좀 대접헐까 싶고, 얼마나 내가 좀더 잘 만족스럽게 헐까 싶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좀 많이 잡수아 주십시오” 아! 출출헌 판에 참, 좋드구만.

뭐, 그때쯤 인자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무약가요(無藥可療)여!
“약으로 낫을 수 없으니 자연치료를 해라” 자연치료를 허라고 떡 허니 의사가 그래 주어.

“그 어떻게 헌 것이 자연치료입니까?”
“뭐든지 그저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고, 그저 어디가서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고. 내 마음을 활발스럽게 펴놓고, 그저 임산임수(臨山臨水)에—물을 대하나 산을 대하나 어떠헌 그 노는 경계를 대허나 구김살이 없이 활발스럽게 아주 이렇게 놀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활발발(活潑潑)허면은 병이 나을 수 있으니”
아! 그러고는 ‘약으로는 못 낫우겄다’고 나를 갖다가 턱 퇴병을 혀.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인자 대체 그렇게 되었어.
공부허다가 나온 놈의 피가 그것이 어디 그쳐져야제. 인자는 하도 나오다 나올 것이 없으니까 목구녁 가슴속에 가서 간뎅이처럼, 묵 어리데끼 어렸어.
그려가지고 콱 뱉으면은 뎅이 하나씩 나와. 인자 줄줄 흘리든 않고. 그러면은 그만 비린내가 들입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제.

그래 그만 인자는 뭐, 인자 이렇게 좀 돌아댕기는데, 여그도 갔다 저그 돌아댕기는데 속마음으로는 인자 자연생활을 헐 판이여. 자연치료를 헐 판이여.

인자는 욕을 먹던지 누가 찬성을 허던지 그런데 얽힐 것 없고, 중옷을 입고 돌아댕김서 막행막식헐 수 없고.
첫째, 고기를 얻어먹어야 허겄으니, 고기도 맘대로 먹고, 술도 맘대로 그저 먹고, 춤출 디 있으면 내 멋대로 춤도 좀 춰 보고 이렇게 활발스럽게 인자 지낼 판인디, 속으로는 딱 작정해 놨지마는,
그동안에 선방에 댕김서 지낸 숙습(熟習)이 있어서, 그렇게 어떻게 당장에 태도를 행동을 고칠 수는 없고. 그래도 인자 어디 가면 대접헌다고, 날 대접헌다고 허면은 받아 먹지, 뭐 어쩌?
아직 그때는 안 헐 때인디, 아! 안 헐 때고 잘 그저 옷 입고 그러고 거그를 들어갔는데, 인벽 수좌가—요런 놈 다 넣어야제. 거 넣어서 허제, 별수 있나?—대접헌다고 그래 내놨네.

뭘 빼고 좋은 것만 넣으면 쓸 수가 있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넣어야지.
술도 먹었다고 허면은 거, 술 먹은 중이라고 허면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계를 파(破)헌 중이라고 하지마는 안 넣을 수가 있나? 넣을 건 넣어 버려야지.

술을 따라 주는데, 안주 좀 먹고 술을 한잔 척 받아서 막 부을라 하니까, 병에 붓떼끼 때려 부을라 하니까—경명 스님이 일대 강사(講師)여! 강사라도 이만저만헌 강사여.
그만 저 안에 선방에 계시다가, 어째 누가 일렀는가 어쨌는가, 이짝 방에서—저짝 방은 선방이고, 내가 선방에 들어가서는 안 먹고 이짝 방에서, 주지실에서 먹는디.

누가 일렀든고 일러, “저 수좌가 와서, 정영신이가 와서 막 술을 먹는디, 잔뜩 뭐 채려놓고 술 먹는디 거, 스님께서 좀 혼을 내시요” 인자, 수좌가 어째 그랬던가 부여.
그러니 쫓아 나왔어. 와서는 착 들어오더니 “여그가 어디라고 술을 먹어! 에이! 술이 뭐여? 에이!”
아, 이러면서 그만 노장이 입이 그냥 덜덜 떨면서 고함을 지르고 들어와.

그것 참! 나보담 나이 많으시고—나이 그 어른은 근 오십되고, 나는 인자 뭐 스물 서너 살 인자 되았는데. 아! 이거 참, 죄송도 허고, 일대 강사고.
아, 그것 참 ‘이놈의 술잔을 내던지고 그냥 나올까, 달아나 버릴까? 그냥 빌어먹을 것, 먹어 버릴까?’ 쳐다 보고는. 그러다가는 ‘에이 이놈의 것...’

“내가 기이 든 술잔입니다. 좀 가라앉히시고, 심로허시고 들어보십시오” 술잔 들고.
“화엄경이, 상본(上本) 화엄경이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니” 상본, 중본, 하본, 약본(略本) 그렇거든, 화엄경이.

“화엄경이, 상본 화엄이 일사천하(一四天下)에 미진수품(微塵數品)이라고 했으니, 이 술잔 이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이거 법, 무서운 법이여. 보살님들 다 알란 말이여. 여 술값 내는 것이여.

“이거, 화엄경 몇째 품입니까? 이거 좀,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고함을 내, 더 크게 질러 버렸어. “화엄 몇째 품입니까?”
아! 일사천하미진수품이니, 뭔 안 든 것 있나? 중생(衆生) 환화(幻化)가 다 들었지. 추어망담(醜語妄談)도 다 들었지.

아! 그러니깐 경봉 스님도 물 대다가, 논에 물 대다가 막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그만, 막 들입대 그만 이러고 앉어서 그만—거그 그 인자 참, 한번 봐 노니까 아마 그러든 것이지. 그만 이래 가지고는.

양산서, 언양서, 여자가 모도 올라왔다 그말이여.
경봉 스님 견성했다고 헌게 모도 와서 친견을 허고 절을 허니께, 이러고 앉어서 “네, 이년들! 응!” 아! 욕을 냅대 퍼붓고. “이게 화엄 도리지! 이게 화엄경이지!”(21분23초~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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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해도 이만저만헌 욕을 해 놨어. 내, 그 욕은 안 혀!
뭐 욕이, 그 욕이 화엄 도리라고 헌 것이여, 그게. 일대 강사인디 또 견성을 해 가지고 보니깐 틀림없거든!

추어망담(醜語妄談)이, 추헌 말과 거짓말이 어디 무슨 하나나 무슨 뭐, 어디 어김이 있나? 십삼천대천세계(十三千大千世界)에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이 다 딱딱 들어맞는 거여, 법에.

그러나 그 법은 그건 체중현(體中玄) 법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조사 공안은 안되아.
공안이라는 것은 그런 법 없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그건 안될 말이고.

그래 그만 들입대 욕을 막 드리 퍼붓고는 “이게 화엄경이야, 화엄경이여!” 아! 이러고 있었어.
그러니 뭐, 무엇이 도무지 무슨 뭐 일사천하미진수품 속에 안 들어갔어?

“이 술은 화엄경 몇째 품이냐?” 고함을 지르며 “몇째 품입니까?” 묻는디, 입이 딱 붙어 버렸네, 입이. 응!
아, 그렇게 고함을 질러 “술을 먹느냐?”고 허더니 입이 그냥... 어림도 없네.
내가 참, 기운이 나데! 아, 이런 놈의 것!

그래 가지고 대듬서, 막 대듬서 멱살이나 쥐고 “나가라 이놈!”허면 큰일날텐디.

그냥 거기 쩔려 가지고. 강사는 강사인디, 화엄경 바로 분명히 있거든! 그런게 뭐 꼭 물을 말이지, 뭐.
‘몇째 품이냐?’고 묻는데, 딸싹 못했네. 허! 그것 참. 아무리 글을 잘해도 글 가지고는 못혀.

그만 암말도 않고 이리 쳐다보고 있는디, 술을 들고는 쭈욱 마셨어. 쭉 들어마시고서는, 안주 턱 한 점 먹고 입을 싹 닦고는,

니우(泥牛)는 입해성룡거(入海成龍去)헌디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니라
나무~아미타불~

니우(泥牛)는 입해(入海)하야 성룡거(成龍去)헌디,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 용이 되아 갔는데,
파별의전입망라(破鼈依前入網羅)로구나. 다리 뿌러진 자라는 앞을 의지해서 그물에 들어갔구나.
아, 이렇게 점검을 탕! 해 버렸제. 딸싹 혀?

술 잘 먹고, 그 잘 채려 논 놈 배 그거 잘 먹고, 나 그러고 오래 안 있었구만.
또 그러고 그냥 나오제 뭐 그렇게, 처억 한번 나온 일이 있고..... .


그래 가지고는 인자 그만 갔다왔다 하네, 인자는.
뭐 공연히 아무 일없이 가되 어떤 데를 가는고 하니, 그 만공 큰스님한테 있으면서 모도 공부 잘했다고, 한 소식 얻었다는 사람들만 찾아다니네. 찾아다녀.

그래 부안(扶安), 청련암 금봉 스님한테를 갔다.
금봉 스님한테 가서—금봉 스님은 어떻게 성질이 급헌지, 입에서 말허면은 입속에 침이 툭투투투 튀어나오제. 투투투투투투 그러니까 그 뭔 말 함부로 못혀. 당신 말만 하제, 남은 말 못혀.

그러니깐, 차근차근 “조주(趙州)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내가 당신 밑에 와서—당신네 한참 공부 잘헐 때 나는 들어와서 공부했으니 후학으로, 당신 밑에 저 후학으로 납짝허니 보고.
거그 앉어서도 들었어, 듣기는. ‘그 영신이가 돌아댕김서 뭐, 사방 뭐 선지식의 인가 맞고 만공 큰스님한테 둘러오고’ 그런 다 듣고 앉었으면서도 눌러.
‘요까짓 게, 뭐 저놈 저게 뭐’ 이렇게 눌러 버려.

나는 환혀!
어떤 공안에 어떻고, 어떤 공안에 어떻고 착착 보고 앉었는디, 어쩔거냐 이 말이여! 틀림없거든 다시.

“조주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일러 주십시오”
안 이를 수 있나? 뭐라고 일러.

“아이고! 그거 안됩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입니다”
“네가 뭘 알아서 응? 응? 네, 뭐 응?” 아따, 이러고 일어나서.
아, 그 좀 홰 안 내고 그냥 허면 어째서—그래도 뭐 주먹질허거나 그러지는 안 혀. 성질이 급해서 툭툭 허제.

그러면 또 내가 사르르 눅어져 버려. 암말도 안 허고 “아! 그만 그만 두시오” 그래 놓고는 또 한참 있다가 “조주 신짝 이고 간 의지를 한마디 일러 주시오”
“아! 저놈이 또 그래 또 응? 또”

아, “또” 할 것이 아니라, 헐 수 없어.
아, 그래 놓으면은 그만 훌떡훌떡 뛰는구만. 한참 뛸 때에는 말 못혀.
와서 쿡 한볼테기 때리면 큰일나겄다 그말이여. 그래 때리든 않지마는 허들 못혀.

그러면 내가 도로 숙어져 암말도 않다가 또 다, 또 개면 또 와서 “아! 조주 신짝 이고 간 의지 한마디만 일러 주시오”
“야! 가 이놈아 가! 가 이놈아 가! 어디서 이놈아 가!”

“아! 가고 안가는 것이야 그거 무슨 별 문제요, 그 내 가는 것은 별거 아니지마는.
스님, 그 나를 가르켜 나오지 안 했소, 여태까지. 나 초학으로 어릴 때부텀 나를 잘 가르켜 나오고 그랬은께 아, 내가 스님 밑에서 배워 여지없이 해 가지고 나가야지, 자꾸 가라 하요” 그래 놓고는.

몇 번을 애를 멕였든지. 달포를 그랬어, 달포를. 그냥 두고 있을 수가 없어, 달포를 그랬어!
나도 에지간하지. 가라고 허면 안 가네. 내가 이래 뵈도 체면도 무척 있고 그런 사람이지마는, 체면 없을 때는 이렇구만. 뭐 무가내하(無可奈何)제.

아! 그래 놓으니 그만, 그 조주 굉이 법문이 무서운 법문이거든, 신짝 이고 나간 법문이.

또 묻고 또 묻고, 그러나저러나 내가 한 달을 기댔소 거그서. 한 달 동안을 있었어. 그런데,
“자, 그러시지를 말고 나를 그렇게 업신여기지 마십시요. 내가 큰스님네한테 전부 나오면서 인가 다 받았소. 인가 다 받고 내가 인가 다, 그래 가지고는 내가 인가 받은 공안 쏵 다 털어 내놓을텐게 들어 보실라우?
나를 왜 그렇게 해요? 내가 잘 몰랐으면 스님께 다시 내가 인가를 얻어야 헐꺼고, 스님이 잘 몰랐으면은, 못 봤으면 나한테 인가를 얻어야 헐 것이고 그런 것이제, 어디 선참 후참이 있소?
또 그러고 그래 어째 그렇게 그만 그냥, 그렇게 그만 고함을 지르고 홰를 내시고 그냥 바쁘고 그려요? 왜 그러시요, 글쎄?” 아, 그래 따져 놓고는.

“저 조주 굉이 법문을 스님도 격외(格外)로 그렇게 뭐든지 일르고 나도 격외로 일르고.
스님만 내가 이르시라 하고 나는 내가 감추고 안 이르고 되겄습니까? 스님도 일러 놓고 나도 일러 놓고 둘이 앉어서 탁마(琢磨)헙시다. 우리 그놈을 막 의리(義理)로도 막 합시다” 그러고 대들었다 그말이여.
허니 “그러자 그려! 해 보자!”

그래 둘이 앉아서, “거 스님 머녀 이르시오”
“네가 머녀 일러라!”

“예! 내가 이릅니다” 내가 척 일렀다. 헌게 당신도 일렀다.

일러 놓고,
“자! 그러면 인자 큰스님 이른 것, 인자 저 금봉 스님 이른 것 허고, 내 이른 것 허고 우리 이놈을 가지고 우리 탁마합시다. 저 의리로 우리 분석헙시다. 뭐, 의리로 못헐 것 뭐 있소. 우리 의리 분석 한번 합시다”
내한테 꼼짝 못했네! 꼼짝 못해. 응? 의리로 막 물으니까 덜덜덜덜 험서 더 못허네.

“자! 이것이 이런 것입니다”허고는... 고것도 했구나, 참! 고거.
남전 스님이 계시다가—그때 처음 고걸 먼저 해놨고.

남전 스님이 조실에 계시다가 조주가 밖에서 척 들어오니까, 척! 남전 스님께서 일어나시면서,
“작야삼경(昨夜三更)에 문수보현(文殊普賢)을 이십방 축출(二十棒逐出)이다. 어제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을 이십방 주어 쫓아냈다”
조주 스님이 있다가 “화상봉(和尙棒)은 교수긱(敎誰喫)고? 화상 방맹이는 누구로 하여금 씹히리까?” 요렇게 된 말이여. 그것 새기도 못허는 것이여, 한문에.

그러면 또 알아듣게 내가 말허자면,
“큰스님께서는 어젯밤 삼경에 문수와 보현을 이십방을 주어 쫓아냈지마는, 큰스님은 조실 스님은 뉘 방맹이를 씹으실랍니까?” 그말이여.
응, 고래야 그 법문이 되는 것 아닌가?

“왕노사(王老師)는 과재심마처(過在甚麽處)냐? 이 왕 늙은이는 허물이 어디 있느냐?
조주가 예배를 썩 허고 출거(出去)했거든.

그놈을 내놓고서는, “의리로 분석합시다. 그 조주 예배는 무슨 예배며...”
영! 뭐 뭐! 침, 튀튀튀튀 허니라고 못혀! 자서히 못혀. 하등 그 성격이 그려.
탁마도 그러기에 그렇게 몽그라지게 좀 몽글몽글허니 다 해야 허는 것인디, 그냥 뭐, 그러고 되아?

그놈을 내가 해석을 주욱... 어쩔 수 없어. 안 헐 수 없어. 해석은 죽어도 않는 것이지마는, 헐 수 할 수 없어.
한번 해 놓으니까, 그래도 공부를 많이 허신 이기 따문에 서로 해석 답도 헐만 하거든.
아무것도 초대야 어떻게 헐 것인가? 초대는 해석해 주니 뭐 아나? 소용없제. 지금 이런 말허니 누가 알겠어.

“옳다! 옳다! 옳다! 옳다! 옳다!” 허고는 한번 고함지르더니 그 다음부텀은 뭐 뭐 여지없이 나를 믿어! 말로 헐 수 없이 믿어!
공안 공안 얘기허면 “참! 네가 옳게 알어. 옳다! 옳다!”
그 다음부텀은 공안을 드리 놓고 해야, 뭐 그저 묻기만 허면 놀래네.

그만 해야 되아. 암만 자기가 암만 뭣이 좀 있다 헌들, 고까짓 것을 갖다가 내놔?
그래가지고서는 금봉 스님 평생에 말씀이 있지. 여그 다 들은 학자 있지? 있을 거여!

그래서, 가서 한 달 동안에 금봉 스님을 턱 내가 탁마를 참 한바탕 멋지게 허고.
그러고는 인자 사방 댕김서 뭐 헌 것이 있는디, 그런 것을 다 내가 어떻게 얘기를 다 헐 것이여?
조금 조금씩 허다가 말고, 인자 차츰 법문을 해야제. 응.


조금 화두 허는 경계나 내가 한마디 얘기허고 내려갈까? 여까장 해두고 잉.
기운 없어 못허겄구만. 법문이 고함지르기 시작허먼 법문 못해야. 뱃속에서 안 나오니깐 고함을 지르거든.

약론차사(若論此事)인댄, 이 일을 의논할진대. 이 일은 무엇인고? 참선법, 화두법이여.
여대화취(如大火聚)다. 큰 불무더기 같다. 불무더기가 조그만헌 불무더기가 아니라 큰 불무더기다.

어째 큰 불무더기냐? 집채라도 큰 집채에 불이 타면 클 것이고, 적은 집에 불타면 적은 불무더기일 것이다.
불무더기라 하는 것은 나무가 많이 쟁여져 있어야, 거그 불이 붙어야 큰불이다. 나무 없으면은 불이 붙을 수가 있나? 나무가 가뜩 쟁여져 가지고 그 불붙어야사 큰 불무더기니라.

그런 참선법도 여차(如此)하다.
망상이 잔뜩 있는 사람, 습기(習氣)도 많고 망상도 많고 그렇게 그만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뜩 괴어 차 있는 사람일수록에 그 사람이 공부를 허는 것이여.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안 되지마는, 그 사람이 공부를 해야사 공부가 인자 된다 그말이여.

그렇게 많이 구원겁(久遠劫) 중으로 오면서 그 많이 탐진치를 익혀 왔고, 그 망상—망상이 무엇인가, 모도 그 습기 망상이지. 살생 · 도둑질 · 거짓말 그저 모도 이런 망상, 그거 모도 그런 것으로써 습기 지어서 그 망상이지.

그러니 그런 망상이 많이 있는 사람이래야 화두가 떠억 되는 것이여.
큰 불무더기가 냉기가 많이 있으면은 불이 잘 타데끼—불은 화두인디, 나무는 그놈이 번뇌 망념인디, 나무 그놈을 막 들입대 큰불이 태워 버린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마침 화두를 배워 놓으니, ‘판치생모(版齒生毛),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을 배워 놓으니, 잔뜩 불 땐 굴뚝에 연기 뻥뻥 나오는데 들여다보는 것 같지.
그 들여다볼 수 있나? 막 연기가 눈으로 푹 대들고, 코로 입으로 막 대든디 들여다볼 수 있어? 그와 같여.

그와 같기도 허고. 문자상철우상사(蚊子上鐵牛相似)여. 모구란 놈이 쐬소, 쐬로된 소 뚫는 것 같여.
그 모구 부드러운 주뎅이, 고것으로 쐬소를 뚫으니 되아? 그렇게, 안 들어가. 되도 안혀. 그렇다 그말이여.

그러지마는, 화두라 하는 것은 그러헌 사람이 해야 혀.
젠장! 영리해서 말, 법문 잘 알아듣고 이치를 딱딱 분석해서 알고, 그 사람 못혀. 고 영리한(靈利漢)은, 날카로운 영리헌 사람은 이치길을 자꾸 만들아, 이치를 모두 뭘 만들아서 그래서 못혀.

망상이 꽉 찬 사람이 척 들어와서 화두를 배워 보면 깜깜 칠통(漆桶)이여. 무슨 어떻게 헌 지도 몰라.
그래도 그만 그대로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렇게 그만 무식허게 대들어야 혀. 영리허게 요리조리 주박성(湊泊性)으로 대들면 못써. 상량선(商量禪)으로 대들면 아무짝에도 못써.

확 대들어서 알 수 없는 놈을 하나 추켜들고는 자꾸 이놈을 챙긴다. ‘어째서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그놈 없어지기 전에 어서 또 끄집어 일받고 일받고 허면은 그놈의 망상이 어디 틈, 비집을 틈을 어디 얻어서 나올 수가 없어. 못 나와.
그까짓 거 나오거나 말거나 판대기 이빨에 털만 자꾸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아! 요놈만 자꾸 거각(擧却)하는데, 어디 망상이 어디서 불거져?

그까짓 염(念), 일어나는 망상 두려워허지 말어라. 자꾸 화두만 이놈 이렇게 자꾸 챙겨라.
그러면 맹렬헌 불이 낭기 태우데끼, 일체 망상이 판치생모 생각하는디 당최 어리대도 못헌다. 그와 같여.

그러헌 더운 불꽃[烈焰]이 큰 불무더기가 긍천(亘天)이다. 하늘까장 뻐질렀다. 원청 큰 불무더기기 따문에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그 불무더기가 원청 냉기가 하도 많이 쟁여져 있으니까, 그 큰 불무더기가 타도 ‘일찌기 조금도 사이가 없다’ 어떻게 많이 드리 타는지.(43분1초~1시간4분22초)



(4/4)----------------

그러니 망상 번뇌가 많이 있는 그 사람은 화두 그놈이 점점점점 불무더기 타데끼 자꾸 커지제. 망상이 있을수록에 화두가 점점 커져!
소유지물(所有之物)을—비단 냉기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일체 도모지 모냥 있는 물건은 다 태운다. 옥석(玉石)도 태우고 쐬도 녹아 버리고 무슨 물건이든지 다 태와 버린다.

실개투지(悉皆投至)면은, 거다가 집어넣어 봐라. 뭣이 안 타는가? 유여편설(猶如片雪)이다.
그 큰 불무더기가 불이 많이 크게 탈수록에 더 열이 많고 굉장한 강해서 여간 천하없는 무슨 못 태울 물건이라도 거그 들어가면은 봄눈같이 녹아져 버린다.

이 비유인디, 화두를 이와 같이 다루어라.
화두만 자꾸 챙기면은, 알 수 없는 의심만 턱 챙기면은 의심 그놈이 불인디 뭐가 안 녹아지겄나? 무슨 망상이 거 와 붙겠나?
자꾸 화두 의심만 길러라! 알 수 없는 놈만 키워 길러 나가거라.

세상에! 이 법같이 쉬운 참선법이 없는데, 더군다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인데 어째서 안된다고 하냐 그말이여.
그저 바람 쐬다가도 또 한번썩 생각하고, 들어가 또 좌(座)에 앉어서 생각허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을 그놈을 자꾸 생각해야제.
고것 의심 없이 지해(知解) 상량(商量)으로 들어가 봐. 요리 알고 저리 알고, 무슨 이치고, 뭐 요따구 놈의 선(禪) 해봐, 무엇이여?
그런 선은 그건, 무슨 그러니 그러기 따문에 뭐 신선도도 못 되제. 그것이 무엇이여?

점착변소(點着便消)다. 그 불무더기에는 그저 집어넣기 전에 다 탄다. 어디 뭐, 거그 부닥쳐서 타나? 들어오도 못혀.

화두가 일념이 이렇게 의심이 성대(盛大)헐 것 같으면은 큰 불무더기와 같애서 참!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만(萬)이 참선허는데 하나도 잃은 법이 없어. 하나도 안된 법이 없어.

쟁용호말(爭容毫末)이냐? 호말(毫末)같은 것, 터럭겉은 걸 집어넣어 봐라. 거가 어디 어리댈 수나 있나?
화두 의심이 돈발(頓發)되면은 그깥은 무슨 세상, 무슨 번뇌 망상이 무슨 소용이 있어? 번뇌 망상 그까짓 걱정헐 게 뭐여?
또 잠이 그것이 어디서 와? 잠! 잠이 그것이 뭐 근본이 있는 것인가, 그것이? 근본도 없는 것이 공연히 들어와서 심월(心月)을 어둡게 만들지?

약능임마제지(若能恁麼提持)를 해 봐라. 활구참선 허는 사람이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화두를 제지(提持)해 봐라. 똑 날로 날로 다루어 해 봐라.
다맛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요놈에서, 알 수 없는 요놈 거각한 디서, 망념이 무엇이 생겨날 디가 없어!

아, 해 보면 알제.
헐똥말똥 좀 허다 말다 “아이고, 이놈의 것! 안 되니 그만 말아 버릴까 어쩔까” 요렇게 헌 놈의 참선이래야 안 되지.
기인용허고, 목숨을 한번 그까짓 것 죽고 사는 걸 불고(不顧)해 버리고 한번 해보아라, 안 되는가?
죽도 않느니라, 그래도.

안 허고 어떻게 헐 꺼여? 이렇게 한바탕해서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봐야제, 그 요따구로 살다 말아? 요따구로 살다 죽고 말아?
어디 가 처백힐 것이며, 그놈의 곳 참! 궁금혀. 어디가 처백힐 것인가?

참, 이놈 안 갈 수 없다. 가는 길이로구나. 돌아오지 못헐 놈의 길을 간다.
다시는 못 와. 요까짓 몸뚱이 가지고 어떻게 오나? 요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를 와?
한번, 부모 처자 권속이라도 작별허고 이별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시는 그건 못 만나는 것이여.

그까짓 영(靈), 그것 뭐 이 몸뚱이 안에 있든 거, 누가 보기나 알기나 허간디? 그놈의 처백힐 곳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말세(末世)다. 지금 가장 말세인데, 이번에는 만약에 한번 처백혀 버리면은 참말로 못 나온다.
그놈의 처백힌 곳이 무간지옥인가, 아비지옥인가, 소 배때기인가, 말 배때기인가, 귀신 배때기인가 알 수는 없다마는, 한번 처백히면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요몸이나따나, 인신(人身) 몸뚱이 얻기 과연 어렵다.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쉽지 못하다.

누가 저번에 질문허기를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이 생겨 나오는디 참, 사람 때문에 주체 못허겄는디, 그렇게 사람 몸뚱이가 나기 어렵다고 그래 놨답니까? 그 가뜩 사람 땜에 못 살겠는디” 이러드구만.
“야, 그것도 설찬히 질문도 헐만한 말이다마는, 그게 어리석느니라” 내가 그랬어.

“그놈이 모도 그 이 몸뚱이 있는 물건, 몸뚱이로 모도 생명 붙어 있는—사람 몸뚱이 말고—짐승 몸뚱이, 벌거지 몸뚱이, 날라댕기는 연비(蜎飛) 몸뚱이, 바다 가운데 있는 몸뚱이, 큰 놈 작은 놈 다 모도 한량도 없는 놈 다 그놈 숫자를 좀 쳐 보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개구락지니 꺼갱이니, 뭐 또 저 물속에서 모도 그 해치깡에서 생겨난 그런 충이니, 박테리아 충이니, 공중 드리 전부 수륙공해(水陸空海) 전부를 다 쳐서, 사람 인명허고 그놈 비교 좀 해 보자.

부처님 말씀에 영(靈)은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돼지 영이나, 소 영이나, 사람 영이나, 개 영이나 똑같다 했으니 또 뭐 벌레 몸뚱이는 달라?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요, 다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은 똑같은 거 아닌가.

부처되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그놈이, 대구 같은 놈 저런 놈이, 그 큰 놈이 알 낳아 놓으면은 처음에 나올 때는 찌끄만 눈만 생겨 가지고, 허다가 그놈이 차츰차츰 이물성대(以物盛大), 뭘 많이 먹고 크면 이만큼 커지고. 그렇제, 어디 본래 그놈이 무슨 뭐 불성(佛性)이 적고 큰가?

허니, 그렇게 한번 따져 보아라. 짐승취에 들어가거나, 공계에 일체 중음신(中陰身 ), 귀신 배때기에 들어가던지 이렇게 허제, 이 사람 몸뚱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겄나? 허니 그 어리석은 말이다”
내가 그랬어.

이 몸뚱이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턱 가서 얼른 장만해 오면 거 괜찮허제. 허지마는, 그렇게 못 되아. 과약(果若) 참, 어렵다 그말이여!
그래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사람 몸뚱이 다시 장만허기가 그렇게 어려우니라.
그거, 허니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생각해 봐라. 몸뚱이 다시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라. 지어서 금생에 미루지를 말고 결정코 화두 성불을 해라.

지금이 말세다. 지금 이 말세가 어떤 말세인고?
우리 석가모니불 나오신 이 사바세계 출세(出世)—백세에 출세허셨는데, 인자 백 년 지나가면 1년씩 감해져서 천 년 지나가면 10년 감해져서 육천 년만 지나갈 것 같으면 10세 정명(定命)이 온다.

10세 정명 올 것 같으면은 인자 거기에서 도병겁(刀兵劫) 일어나, 무슨 질병겁은 뭐, 도병겁, 도창겁이 막 일어나 가지고는 다 거그서 몸뚱이 생긴 것들 다 뿌어져 버리고 다 모가지 잃어 버리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되는디,
중음신으로 삼재(三災) 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속에서 이 육신 몸뚱이는 없지마는, 중음신 몸뚱이라는 것이 꿈에 있는 몸뚱이같은 것, 몽혼신(夢魂身)도 아니제, 이것은 아주 꿈도 없제. 업신(業身)이지.

업신이 그 중에 들어서 무수(無數) 대고(大苦)를 받네! 그놈의 고(苦)라는 것은, 중음신의 고라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여.
그렇게 얼마를 고를 받고 있을 터이니, 거그 한번 빠져 놓으면 6억(56억) 7천만년 후에도 미륵회상(彌勒會上)을 못 참예혀. 언제 그것들이 나와서 미륵존불 회상에 참여헐 것이여?

지금 잘 닦아야, 잘 닦아서 견성을 했다고 하드래도 견성해 가지고 입태(入胎) 태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주태(住胎) 태에 들어가서도 안 매하고, 출태(出胎) 태어날 때도 안 매할 정도가 되어야사 허느니라. 미륵회상에 참여하니라.
우리가 그때 어디 가 있을 거여? 다시 사바세계 나오드래도 그래 깨달라 가지고 나와야사 환허제.

이렇게 이렇게 미해 가지고 이렇게 멍청해 가지고 오늘 이 목숨 잊어버리면은 향하처거(向何處去)오?
요 지경, 요 따위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이 숭악한 말세, 이 삼재(三災)에 들어가버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그서 이렇게 해 놓은 거 무언 줄 아시요? 뭔 줄 알아?

여다가 딱! 예불(禮佛)은 고대로 하고, 예불은 각 사찰에서 허는 대로 고대로 예불 내가 딱 해 놓고는, 거다가서 우리 참선 학자들, 우리 선학자들 부처님께 축원(祝願) 하나,
‘그저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퇴타(退墮) 않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나도 깨달라서 일체 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그러면은 거그에 수명 부귀 장수가 거그 다 들었고. 수명 부귀 장수가 무엇이여, 정법문에 물러가지 않고 확철대오 허면은 천하에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축원 딱 해 번지고는, 고 밑에 가서는 떡! 십악참(十惡懺)을 허거든.
십악참이라 하는 것이 그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 범망경(梵網經)에서 나온 것이여.
십중대계를 딱, 그 심지법문(心地法門)이거든. 견성(見性)해야사, 견성헌 이야 법(法)을 설혀. 견성해야 대승계(大乘戒)를 설혀.

멋대가리도 없이! 그깟...
비구계! 내가 그걸 비방하는 게 아니여! 비구계(比丘戒) 이백오십 계, 비구니계(比丘尼戒) 오백 계, 받아 놓았자 그 당장에 잊어버리는 거, 계상(戒相)도 모르는 거. 내가 설허는 것 안 됐다고 혀?

십중대계는 그대로 환해서, 참선화두 학자면 그대로 가지게 되아. 다 십중대계 딸렸거든.
그러면 계행(戒行)도—살생도 않는디, 또 살생도 않지만 파(破)할 것이 어디 있어?
가지고 범허는 것이 없으니 계상(戒相)까장 다 없어, 화두를 해 나가니까.

화두 학자가 십선(十善)을 봉행(奉行)해야 되아. 십악(十惡)을 이렇게 참회(懺悔)하고 십선봉행을 해야사 대번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간다 했거든.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중봉행만 하면은, 십선봉행만 하면은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간다 그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갈 것 같으면 불과(佛果) 증해 가지고 내려오지, 그냥 범부(凡夫)로 내려오는 법은 없어.

허니까, 똑 이렇게 예불허고, 아침에는 십중대계 그 참회를 딱, 십악참회를 허면은—십악을 안 하면은, 내가 십악 죄를 안 지으면은 십선봉행이여. 지악위선(止惡爲善)이니까.
꼭 십선봉행을 해야사, 십선봉행허고 화두를 참선 화두를 해야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느니라.

인자는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우리가 피난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성불(成佛)해 가지고 내려와야지, 사바세계 어름어름허다가는 안 되아.
응! 그 말 잘 듣겠소? 그걸 잘 알아, 잘 알아 들어야 되아.

그러니 여그서 이렇게 예불 똑 하고, 그 십악참 허는 거 고것 알고, 화두 딱 배운 보살님네 고렇게 해서 아침이라도 일어나시거들랑 방에서 딱 고렇게 예불 젓수고.

일어나서—모도 잠자고 그런디, 모도 뿌시럭 뿌시럭 일어나서 잠 못자게 그러지 말고, 가만히 혼자 일어나서 심배(心拜)라도, 마음으로라도 딱 이렇게 앉어서 도솔천 내원궁을 향해서 저! 제오천 도솔천인게.
극락세계(極樂世界) 가버리면은, 극락세계 가서 넨장! 몇천만 겁을 나오도 않고 말 것이여 고대로?
속히 또 나와서 사바세계 우리 모도 인연(因緣) 중생을 제도(濟度)해야지.

고렇게 똑 해 주십시오.
내가 여다가 이렇게 해 놓고—다른 데야 허든 말든, 내 여그서 딱 작정을 해 놨습니다. 작정해 가지고는 고대로 꼭 해 나가니까.

그래 가지고 나, 또 용주사도 중앙선원이라 해서 거그도 “그렇게 해라!” 거그도 그렇게 합니다.
나! 다른 디야, 내가 관계없는 디야 내가 뭣 헐라고 내 말 비방허고 안 들을턴디 뭣 헐라고 그렇게 헐 것이여. 안 혀.

여, 장삼(長衫)도 이렇게 맨들아서, 예복 장삼 간단허게 맨들아서 이렇게 떡 입고.
여그서만 내 입지, 다른 데 나가서 입으라고 안 허거든. 여그 딱 대중이 걸어 놨다가 요렇게 똑 허고 그럽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안 가르켜 논 짓을 내가 혀? 거, 외도(外道)라고?
부처님 꼭 고대로 해논 대로 내가 딱 해 논 것입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하생경(下生經) 보시란 말씀이여. 거기에 어떻게 해 놨는가.
십선봉행을 허면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는 것과 도솔천 내원궁에서 불과(佛果) 증(證)해 가지고 미륵회상에 오는 것과. 환혀!

그런디 요새 모도 사교(邪敎)라는 것은 ‘곧 미륵님이 나온신다. 명년에 나오신다, 우명년(又明年)에 나오신다’ 요렇게 잡아 꾀이여. 어디 그건가?

이거 이대로, 부처님께서 미래불(未來佛) 그대로 다 설해서 수기(受記) 주어서 해 놓은 미륵회상을 내가, 다 미륵상생 하생경을 보고 내가 이렇게 딱 했지, 벌로 내가 이렇게 해 논 줄 아십니까?

꼭 우리 화두 학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 사상사(事象事) 그까짓 소용있나? 참선허면 그만이제”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화두, 화두... 여까장 내가 그랬는데.
되아서 그만 허고 내려가야써.

이렇게만 화두를 잡드리헐 것 같으면 극일지공(剋日之功)이, 날로 허는 공(功)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다. 조금도 실(失)이 없다. 잃어진 법이 없어.

꼭! 화두 의심만 찾어라.
의심이 아니면은 그 모든 중생의 번뇌 망상을 태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일체 번뇌 망상을 화두가 태워 버리는 법이고.

일체 티끌 우주 삼라만상, 초목 총림 다 태우는 건 불이 태우는 것인데, 불 그놈이 일체 냉기 초목 총림 산하대지를 막 다 태워 버린 뒤에는 불도 없네. 불 자체도 없어.
그놈으로 인해서 불이 있다가 냉기 다 타 버리면 불도 없네. 그걸 연소화멸(煙消火滅)이라 그려. 연소(煙消), 연기도 없어지고 불도 멸해 버리고 냉기 다 타 버리고 없어.

우리 화두도 화두 고놈이 일체 번뇌 망상을 다 태와 버려. 모도 집어생켜 버려! 찌깽이도 없이 다 먹어 버려! 판치생모(版齒生毛), 알 수 없는 의심이!
다 씹어 쌔그라 돌려 없애 버린 뒤에는 화두도 없어. 화두 없어. 번뇌 망상 꽉 맥힌 놈이 화두인디, 화두도 없어.

아! 화두도 없고 번뇌 망상도 없네! 그 지경을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이라 햐.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경계도 없어진 곳이여. 거그서 그대로 근쳐 버리면은 될 것인가?

확철대오허는 공안이, 그걸 깨닫는 공안이 거그 있어! 그래야사 인자 거그에 생사 없는 곳까장 다 봐 버리지.(1시간4분22초~1시간25분13초) (일대기 8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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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입실(入室) : ①선문(禪門)에 있어서 수행자가 깨달은 바를 점검받기 위해서 조실에 들어가 직접 가르침과 지도를 받는 것。 ②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는 것.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사판(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함. 또는 그 일을 하는 스님.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풍진(風塵 바람·풍속 풍/티끌·더럽히다 진) ; ①세상의 속된 일 또는 속세. ②바람에 날리는 티끌. ③병진(兵塵 :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티끌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인한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일이나 분위기를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연대갑자(年代甲子) 총부지(總不知) ; ‘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오전(悟前)도 여상부모(如喪父母)요, 오후(悟後)도 여상부모(如喪父母)니라 ; ‘오전도, 깨달기 전에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해야 헐 것이고, 오후도 부모 죽은 것 같이 헐 것이니라’
[참고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55칙 ‘대사(大事)’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妣]”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妣]”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고 하였다.

“고비(考妣)”라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고(考)라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비(妣)라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先妣)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상(喪)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는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②]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1206칙 ‘대사(大事)’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염송설화(拈頌說話)>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고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증(證)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것.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납승(衲僧 옷을 꿰맴 납/중 승) ; 납자(衲子).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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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上堂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 처음 한마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문(問), “무엇이 제2구(第二句, 다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문(問), “무엇이 제3구(第三句, 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2.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화두(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일향간(一餉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촉불(燭- 촛불 촉) ; ‘초에 켜 놓은 불’ 촛불, 촉화(燭火)도 같은 말.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활발발(活潑潑)하다 ; 더없이 활발하다(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스럽다).
*숙습(熟習) ; 익숙하여 몸에 밴 습관.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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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두(頭)‘는 사물이나 사람의 단위. ‘각각의 존재[頭頭]와 모든 사물[物物]’이라는 말. 곧 모든 것을 가리킨다. 온갖 사물과 현상.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조주(趙州) 신짝 이고 나간 도리를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제7권) 207칙 ‘참묘(斬猫)’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南泉이 一日에 因東西堂이 爭猫兒하여 師遂提起云하되 大衆아 道得則救取요 道不得하면 卽斬却也하리라하니  衆이 無對어늘 師斬爲兩段하다 復擧前話하여 問趙州한대 州便脫草鞋하여 於頭上戴出이어늘 師云하되 子若在런들 恰救得猫兒로다하다

남전(南泉)이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서 고양이 때문에 싸우자, 고양이를 번쩍 쳐들고는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말하면 살릴 것이요, 말하지 못하면 베리라.”
그러자 대중에서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에 선사가 두 동강 내었다. 나중에 이 일을 들어 조주(趙州)에게 물으니, 조주가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니, 선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 도저히 될 가망이 없이 사리(事理)에 맞지 아니함.
*무가내하(無可奈何) ; 막무가내(莫無可奈 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의리(義理)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머녀 ; ‘먼저’의 사투리.
*남전문수(南泉文殊)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제7권) 215칙 ‘문수(文殊)‘ (헤심, 각운 지음)
南泉 有時云 文殊普賢 昨夜三更 每人 與二十棒 趂出院也 [別本 云 貶向二鐵圍山] 趙州云 和尙棒 敎誰喫 師云 且道 王老師過在什麽處 州禮拜而出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초대(初-) ; 어떤 일에 경험이 없이 처음 나선 사람. 또는 그 일.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영리한(靈利漢) ; 명석한 이해력을 지닌, 두뇌가 민첩한. 또는 그러한 사람. 영리(靈利). 영리(伶利)라고도 한다. 분별에 치우쳐 불도(佛道)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주박(湊泊 모일·항구 주/머무르다·배를 대다 박) ; ‘배가 정박한다’는 뜻. 머뭇거리다. 머무르다.
*상량선(商量禪 헤아릴 상/헤아릴 량/좌선 선) ;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상량(商量 : 알음알이, 知解)이다.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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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해(知解) ; 상량(商量). 알음알이.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심월(心月) ; 마음의 달. 밤의 어둠을 비추는 달처럼 밝고 깨끗하게 닦인 마음으로 실상을 밝게 아는 ‘지혜’를 비유한다. 대상을 비추어보는 마음 자체를 나타내보이기도 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연비(蜎飛 장구벌레 연/날 비) ;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
*꺼갱이 ; ‘지렁이’의 사투리.
*해치깡 ; ‘수채, 시궁창, 늪, 진흙, 해감’의 사투리. 해초, 해초깡, 해치 등도 같은 뜻의 사투리이다.
*수륙공해(水陸空海) ; 물[水]과 육지(陸地)와 바다와 같은 하늘[空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과약(果若) ;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알고 보니 정말로.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난조지상(難遭之想 어려울 난/만날 조/갈 지/생각 상) ;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도병겁(刀兵劫) ; 중겁(中劫)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도병겁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만 여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도병재(刀兵災) · 도재(刀災) · 도병중간겁(刀兵中間劫)이라고도 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혼(夢魂) ; 꿈속의 넋.
*업신(業身) ; 업(業)의 몸[身]. 육식(六識)—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이 무량겁으로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한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편찬 | 수덕사 능인선원)
사람에게 세 가지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업신(業身)이요, 셋째는 육신(肉身)이로다. 법신은 불신(佛身)이요, 업신은 곧 귀신(鬼身)이요, 육신은 곧 사람의 색신(色身)이로다.
색신 가운데 업신과 법신이 구족(具足)하여 서로 여의지 않건마는 중생의 업보(業報)가 중하여 다못 업신이 구원겁을 드나들며 사생(四生) 육취(六趣)의 육신(肉身)으로 인하여 모든 악업을 짓도다.(p231)

사람에게 법신(法身) · 업신(業身) · 육신(肉身), 세 가지 몸이 있다 하니 어떠한 것이 육신인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다. 지(地)는 살이요, 수(水)는 눈물 · 콧물 · 대소변이요, 화(火)는 따뜻한 기운이요, 풍(風)은 콧김 · 입김 · 동정(動靜)이니 이 네 가지를 부모에게서 얻어 육신을 지었다가 명(命)이 다하여 임종을 하매 지(地)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물로 돌아가고, 화(火)는 불로 돌아가고, 풍(風)은 바람으로 돌아가 사대가 흩어지니 허황(虛荒)하기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장마에 두엄 버섯이니라.

어떠한 것이 업신(業身)인고?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이 여섯 가지 식심(識心)이로다.
눈으로 일체 만물을 보아 탐하여 모든 업을 지으며, 귀로 일체 소리를 들어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코로 모든 냄새를 맡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혀로 모든 음식을 맛보아 좋고 언짢은 소견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몸으로 춥고 더운 분별망상을 내어 모든 업을 지으며, 뜻으로 밉고 어여쁘고 좋고 나쁜 일체 망상(妄想)을 내어 모든 업을 지어, 이 여섯 놈이 무량겁(無量劫)으로 드나들며 모든 업을 능히 짓기도 하며, 모든 업을 능히 받기도 하니, 이러므로 이름을 업신(業身)이라 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법신(法身)인고?
일찌기 발심하여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다생죄업(多生罪業)을 참회하고, 옛 성현의 친절언구(親切言句) 천칠백 화두(話頭) 가운데 자기에게 합당한 화두를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중에 모든 망상(妄想)이 적적(寂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여, 들지 아니하되 화두가 스스로 들림이 샘물 흘러가듯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에 이르러,
홀연히 망상 구름이 흩어지고 마음달이 홀로 드러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어 그 밝은 빛이 하늘과 땅이 궤멸(潰滅)하여도 이 광명(光明)이 길이 멸하지 아니하며, 이것을 이름하되 불생불멸지도(不生不滅之道)라 하나니라.

이같은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 이름하며, 혹 도사(導師)라 이름하며, 혹 보살(菩薩)이라 이름하며, 혹 부처라 이름하나니, 천당(天堂) · 불찰(佛刹)에 임의 자재하여 천상(天上)에 가서 나매 천상 사람을 제도하며, 인간에 나매 인간을 제도함에 이르므로 인천(人天)에 스승이 되며, 사생(四生)에 자비로운 부모가 되는 고로 이 사람의 이름이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佛) · 세존(世尊)이로다.(p233~236)

누구든지 육신(肉身) · 업신(業身) · 법신(法身)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p247)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 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p257)

인생은 자기 업신(自己業身)의 반영(反映)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實相)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異性)으로 감응(感應)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으니라.(p266)

우리가 느끼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육식(六識)은 장소에 따라 변하고, 때에 따라 흩어지나니,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천류(遷流)하는 육식으로 어찌 인생이 근본 정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p270)
*일구난설(一口難說 한 일/입 구/어려울 난/말씀 설) ; 내용이 복잡하거나 길어서 한[一] 입[口]으로는 다 설명(說明)하기 어려움[難].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⑩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범망경(梵網經) : 이 경은 범어나 파리어(巴利語 pali)로 된 것이 남아 있지 않다。그러나 기록대로 본다면 본래 61품, 백이십 권 되는 원문을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그 중 열째 권인 「노사나불이 말씀하신 보살의 심지 계품(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만을 번역하여 상•하 두 권으로 만들었다。상권에는 심지 법문(心地法門)을 말하였고, 하권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 경구죄(輕垢罪)를 말하였는데, 경구죄란 것은 중대한 죄악은 아니나 깨끗하지 못한 허물이 된다는 뜻이다.
보살계는 심지 법문을 주장하는 대승계이며 성계(性戒)이다。그러므로 이 경은 율부(律部)에 속하지 않고 <화엄경>과 같은 부류에 들게 된다.
이 경을 해석한 글이 많지마는 신라의 대현(大賢)이 지은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과 원효(元曉)의 <사기(私記)> 2권과 의적(義寂)의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상•하권 같은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 법문.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계(戒)의 상(相). 계율에 대한 생각. 그 계상(戒相)의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권10 제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어름어름하다 ; ①말이나 행동을 똑똑하게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자꾸 우물쭈물하다. ②일을 대충하고 눈을 속여 넘기다.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미래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함.
*사교(邪敎 간사할 사/가르칠 교) ; ①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②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종교.
*미래불(未來佛) ; ①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彌勒佛)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 후 세 번의 법회에서 설법하여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예정되어 있다.
②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가능성을 가진 중생을 일컫는 말.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애, 여러 가지 수행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중생을 미래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기(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사상(事象 일 사/모양 상) ; 관찰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과 현상(現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찌깽이 ; ‘찌꺼기’의 사투리.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 ;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 사료간(四料揀)의 하나.
*사료간(四料揀) : 임제(臨濟)가 세운 네 가지의 학자 제접법。인(人)은 주체로서의 자기(自己)。경(境)은 객관(客觀)。탈(奪)은 부정하는 것.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p208. 212.
〇四料揀(사료간)
奪人不奪境(탈인불탈경)은  待下根(대하근)이요  奪境不奪人(탈경불탈인)은  待中根(대중근)이요  人境兩俱奪(인경양구탈)은  待上根(대상근)이요 人境俱不奪(인경구불탈)은  待出格人(대출격인)이라.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은 하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고,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은 중등 근기들을 다루는 법이며,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은 상등 근기를 다루는 법이고,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않는 것은 ‘격 밖의 사람[出格人]’을 다루는 법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