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20. 5. 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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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4호) 마음은 누가 지었습니까

 

**전강선사(No.027)—전강선사 일대기 제14호(경술1970년 12월 23일.음) (1971년 1월 19일) (38분)

 

(1/2) 약 20분.

 

(2/2) 약 18분.

 

(1)------------------

 

납자평생사(衲子平生事)여  팽다헌조주(烹茶獻趙州)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이요  조제산갱유(鳥啼山更幽)니라

나무~아미타불~

 

납자(衲子)의 평생사(平生事)가, 우리 도 닦는 도학자(道學者)의 평생 일이 세상에 거 뭣이라고 해야 옳을까?

조주 스님 겉은 고불(古佛), 조주 스님 겉은 그런 평생 참, 도학자.

천하에 고불(古佛)이라고 했으니까. 또 그 일생 평생, 학자 가르치는 그 도학자.

 

조주 스님께서, 도를 가서 물으면은 "다(茶) 한잔 먹고 가거라!"

그 세상에, 원! 도가 어찌 그럴까?

 

"다 한잔, 차 한잔 먹고 가거라!" 이거 원, 당최 이건, 그뿐이여.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이다. 바람 그놈이 냅대 불다가 바람 딱! 근치고 고요헌디, 다맛 그 바람 분 뒤에는 그 꽃 피었다가 꽃 뚝뚝 떨어져 버렸다. 꽃 떨어진 소식이다.

바람은 정(定)했는디, 근쳤는디 낙화는 턱 모두 떨어졌구나.

 

조제산갱유(鳥啼山更幽)니라. 꽃 속에 돌아댕기면서 노는 새는 거, 한참 풍정(風定) 속에서 꽃 떨어진 속에서 울다가 소리는 근쳤는디, 새소리는 근쳤는디 산골짜기는 더욱 유유(幽幽)허다. 깊숙하구나.

 

도학자의 경계를 그대로 말해 논 것이여.

 

 

합천 해인사에 들어가서 인자 그렇게...

어쩔 수가 있나? 뭐 이 몸은 병이 들면 나수어야 하제, 병이 들어도 그만 그저 '병들면 죽제 별수 있나'하고는 아, 그만 죽어버리면 될 건가?

아무리 병이 들었드래도 그 병을 나수아서 도를 닦어야 허는 것이제.

 

대체 우리가 이 몸뚱이만 하나 얻어 가지고는 도 닦지 않고 아무리 잘 멕여 살리고, 아무리 별짓을 다 헌들 그 무슨 소용이 있어야지. 뭣 헐 건가?

그건 '돼지'매니로 살만 잔뜩 쪄 가지고는 시은(施恩)만 잔뜩 졌기 따문에 "옜시오" 허고 받치는 것 뿐이제, 뭐 그놈이 잔뜩 준 대로, 갖다주는 대로 양껏 퍼먹고 살은 그뜩 쪘다마는 목숨으로 갚는다.

 

우리가 이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 나와서 아무리 복이 있다 하지마는, 복이 있어서 부자가 된다 하지마는, 그것이 다 생각해 보면은 시은(施恩)이여.

남의 은혜를 막중허게 짓고, 남의 것 갖다가 모도 쌓아 놓고 그래 부자가 된 것이제.

 

돼지란 놈, 잔뜩 갖다 거두어다가 몽땅 모도 그만 갖다가 멕여 살리고 헌 것이 부귀, 그 위에 더 부귀가 있겄는가?

설찬히 참, 부귀다마는, 그놈 살 찌워 가지고는 빚 갚는다. 똥똥 쪄서 그 모가지가 그만 지둥만큼 해 가지고는 살 퍼쪄 가지고는 "옜시오" 허고 갖다 갚는 것이니.

 

우리는 무슨 복이 있다 하지마는, 우리의 복으로써서 갖다주는 대로 처모아 놓고 먹지도 다 쓰지도 못허고 그 빚을 갚는데, 돼지 몸뚱이로 갚는 것보담도 백배 천배다. 안 갚아?

 

허니, 아무리 살 찌워서 복을 받아 아무리 잘살고 이것이 인생의 이 몸뚱이 받은 목적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그거 참, 거 아무것도 아니제, 뭐여 그녀러 것!

돼지 일생이요, 잠충지일생(蠶蟲之一生)이다. 누에란 놈이 뽕 그놈 자꾸, 그놈 뽕나무 길러 키워서 그 잎새기 따다 가서 그놈 밥 자꾸자꾸 주면은 잔뜩 놀고 퍼먹어 똥똥 살찌면은 그 은혜, 뱃속 창자 빼서 아, 그놈 모도 그놈으로 갚는다.

 

그놈 다 갚기 마련이고, 그 몸뚱이는 오그라져—속에 창자를 다 빼내놨으니, 먹은 대로 다 기어 내놨으니 오그라지제 별수 있나?

비틀어져 죽게 척 되면은 그놈 또 갖다 가서 푹푹 화탕(火湯)에다 삶아서 고기까장 먹는구나.

 

우리 인생의 일생은 누에와 다를 것이 뭣이 있어?

가만히 앉어서 우리가 이렇게 먹게 되고, 갖다주니까 좋고 퍼먹고 그럭저럭 일생을 보내는 거! 참으로 무섭구나.

 

돼지에다가 비유허고 누에에다가 비유허니 그 비유가 좀 천박헌듯 하지마는, 틀림없지!

사람은 거그에서 더 나을 게 뭔가?

 

도(道) 없이, 도를 닦지 않고, 도 없이 주는 대로 퍼먹고, 해 준 대로 퍼입고, 그럭저럭 그럭저럭 이 일생을 지내는 우리 인생의 일생사, 거 참, 대단하다. 보통 일이 아니니라.

 

이까짓 몸뚱이, 눈 한번 턱 쳐다보다가 내려다보다가 죽는 것인디, 그렇게도 허망하고 무상한 것인데, 거그서 이렇게도 그만 한만(閑漫)허게 천생 만겁을 살 줄 알고, 애착하고, 놀고, 허송세월(虛送歲月), 허생낭사(虛生浪死), 세월은몰(歲月隱沒) 될까 보냐.

 

그저 어쨌튼지 그놈을 먹드래도 입드래도, 갖다주는 대로 시주것을 먹드래도 참말로 값있이 먹고, 이 몸뚱이 안 멕여 주면 죽을 터이니까, 안 입혀 주면은 헐 수가 없으니, 진독(進毒)을 여살[如箭]이다마는.

그 갖다주는 밥, 해 주는 옷, 그놈 먹고 하루하루 살아 나간다는 것이 여진독(如進毒)이로구나. 독(毒)에 나가는 것이다.

독(毒)이라 하는 것은 독약(毒藥)을 먹고 죽는 데 나간다 그말이여. 여진독(如進毒)이다. 죽으러 나가는 길.

 

그 무수(無數) 은혜가 거기에 그뜩 차가지고는 독에 나가, 독약을 먹고 죽은 후에는 일이 없나?

그 독이라는 것은 한량이 없다. 이 몸도 죽지마는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나 들어가서 그놈의 독을 받을 때 그 지옥고를 받을 때, 아귀취(餓鬼趣)에 가서 그 또 아귀고를 받을 때, 축생취(畜生趣)에 들어가서 축생죄를 받을 때, 어떠허냐?

 

몇천 생(生), 만 생의 미래의 그놈의 고(苦)가 이 몸뚱이 하나로서 지어 가지고는 다 받들 못허느니라.

 

허니, 이렇게 앉어서, 이렇게 한가헌 디 앉어서 농부의 피땀을 그대로 마시고, 직녀(織女)의 고(苦)를, 베 짜는 여인네의 모도 그 시은(施恩)을 그대로 덮어 모도 몸뚱이 두루고 있는 것은 목적이 있다.

그놈을 받아 먹고 그놈을 받아 입고 어쩠턴지 도업(道業)을 이뤄야 한다. 위성도업(爲成道業)한다.

꼭 내가 나를 깨달기를 그것을 한번 원력(願力) 세우고 용맹 신심(信心)을 가지고는 정진을 해야 허느니라.

 

 

그 내가 '이뭣고?'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는고?' 요놈 한번 들 때, 한번 한번 들 때,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 한번만 거각(擧却)하고, 한번만 들 때라도, 백억 천만 겁(劫) 중의 지은 죄업(罪業)이라도 거그 와서는 다 녹는다.

 

불, 불한테는 일체 냉기와 일체 초목이 안 탈 수 없고, 이 화두(話頭)에 와서는 중생의 일체 죄업이 안 없어질 수가 없다.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요놈 하나 꼭! 거각해라. 다시는 없다!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그 의심이 꽉, 알 수가 없는 놈이 하나가 거기에 꽉 맥힌 것이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중생 죄업 따문에 그게 맥힌 것이다.

 

그 중생 죄업이란 놈이 그놈이 그 안 맥힐 수가 없어.

중생 죄업이 없다면은 그게 왜 (안) 맥혀? 왜 그것이 안 보일 이치가 있고, 왜 (안) 맥혀?

 

그놈이 단지 무엇이냐?

내 눈깔을 내가—내 눈깔, 내 본래 눈깔,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내가 보지 못했기 따문에, 내가 나를 알지 못했기 따문에, 그 아지 못헌 관(關)이여.

 

그놈이 왜 맥히느냐?

 

착! 신심(信心)만 한번 일으켜라. 용맹심(勇猛心)을 한번 내라! 용맹심 없이는 된 법이 없다!

 

불문치소(不問緇素)허고—중이고, 무슨 뭐 속인(俗人)이고, 무슨 뭐 그 늙은 사람이고, 젊은 사람이고 무슨... 소용없어. 글 잘헌 사람이고, 글 못헌 사람이고 그것도 소용없어.

 

단지, 요개일개신자(要箇一個信字)니라. 다맛 신심 하나 가질 것이니라. 꽉 믿는 마음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이 정법문중에서 첫째에 들어오는 법이 신(信)이다. 믿는 법.

 

'신(信)'자, 믿는 법이 아니면은 소용없어. 안 믿고야 어떻게 헐 것인가?

꼭 신심, 믿는 마음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꽉! 믿어 가지고는 거기에는 보면은, 믿어 가지고 보면은 분심(憤心)이 안 날 수가 있나?

 

원 세상에 말이여!

어째 제가 저를 모르다니? 어째 내가 나를 모르다니?

그것이 응, 그 무슨 혹이냔 말이여.

 

왜 몰라?

아조 모르는 법 같으면 말헐 이치가 있는가? 무슨 참선법을 말해 놨겠어?

 

결단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허는 법이 있고. 내가 내 낯반대기,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는 법이 있기 따문에 부처님으로부터서 이렇게 주욱 전통해 내려왔는데, 어째 없을 것인가. 꼭! 있지.

 

왜 그런데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이며, 못허는 원인이 무엇이며, 왜 이렇게 깨달지 못허고 미(迷)해서 오는 원인이 무엇인가?

믿지 못헌 연고니라.

 

어찌 내가 나 찾는 법을 믿지 않어? 왜 또 믿지 못해?

좀 생각해 봐, 여그 대해서.

 

나를 턱! 깨달는 법을 믿었느니, 거기에 '왜 나는 여태까지 못 깨달랐나?' 이러헌 분심이 턱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으니, 어째서 그런 분헌 마음이 나는데, 화두가 의심(疑心)이 안 날 이치가 있는가?

 

'의심 안 난다. 화두가 안 된다'

무슨 짓이여? 그 무슨 말이여?

 

안 된 법이 있어?

 

거 멀쩡헌 소리여. '의심이 안 난다, 안 된다'

왜 안 될까? 의심이 뭔디?

 

의심이 알 수 없는 것인데, 왜 의심이 안 되냔 말이여? 어째?

 

신심 처억! 그런 신심이 한번 믿어져 가지고는, 그만 분심이 한번 일어나 가지고는 화두가 독로(獨露)허면은, 알 수 없는 의심이 턱 독로해 버리면은 그 학자는 선학자(禪學者)인디, 그 선학자는 무슨 죄업이 있나? 죄업이 설사 있다헌들 거그 와서 무슨 보(報)를 받을 것인가.

 

일체죄업(一切罪業)이 구타부득(拘他不得)이니라. 일체 죄업이 거그는 떨어질 수가 없고, 거그는 와서 붙을 수가 없느니라.

 

그 다 거짓 말씀이여? 고인(古人)들이 거짓 말씀이여?

 

다른, 다른 윤회법에 가서는 인과법에, 윤회법에 가서는 죄복(罪福)이 순환이니깐 지은 대로 받고 과보가 돌고 자꾸자꾸 내게 엉켰다가 떨어지기도 허고, 복 많이 지으면 복 받고, 다 받아 버리면 타락허고 이것이 분명히 있다마는, 제천(諸天) 윤회도 허고 임금도 천자도 되고 별짓 다 헌다마는,

당장 내가 내, 내를 내가 툭! 깨달라 내가 나를 믿어 버린 거기에 가서는 죄복이 붙들 못혀. 윤회가 거그는 붙들 못혀.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은, 대오를 않드래도 발써 화두를 턱 추켜 들고 경절문(徑截門)으로 바로 들어가는디, 일체 방편문(方便門)에 떨어지지 않는데...(처음~19분44초)

 

 

 

 

(2)------------------

 

부처님이 뭐라고 말씀했나? 뭐라고 했어?

아, 진리는 영존(永存)헌디—진리는 영원히 그대로 갖춰져 있는디, 부작방편(不作方便)이여. 거그는 방편이 없어. 왜 방편에 떨어져 가지고...

 

부처님께서 바로 척! 깨달라 가지고서는,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널리 일체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의 지혜의 덕상이 그대로 갖춰져있다.

아, 나만 생사 없는 해탈대도를 깨달은 줄 알았더니 아, 느그 중생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로구나. 똑같이 여래의 지혜덕상이, 나와 같은 생사 없는 해탈대도가 아! 그대로 있구나.

 

나는 선각자(先覺者)다. 먼첨 깨달은 각자(覺者)로구나. 아 느그는 깨달으면 내 뒤에 깨달은 사람이로구나.

유차제(有次第)로구나. 차제가 있구나. 나는 먼첨 깨달랐고, 느그는 뒤에 깨달을 것이로구나. 하! 이렇게.

 

그래 가지고는 부작방편(不作方便)이요 이(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인 줄 아는 것은—환화(幻花), 환인 줄 아는 것은, 그만 거기에는 떨어져 버렸어. 붙들 못혀.

 

환(幻)이라는 것이 모도 중생 생로병사(生老病死)니, 생로병사 그 그놈을 가지고는 그만 생사고(生死苦)를 받는 것이 그것이 본래 환(幻)인데, 눈병 난 놈이 공중을 쳐다볼 것 같으면 공중에 꽃이여. 거가 버글버글 피어서 야단이다. 햇빛 광선에 보면은.

 

눈뜬, 눈병 없는 사람이 보면은 무슨 그런 꽃이 있나? 눈꽃[空眼花]이 어디 있어?

같애서 우리 중생의 생로병사라든지, 이와 같이 모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든지, 십악(十惡) · 오역죄(五逆罪)라든지, 그 퍼짓는 전체가 오인분상(悟人分上)에는 없어. 날 깨달라 버리면 없어.

 

해 툭! 떠올라 올 것 같으면, 고일(杲日)이 장공(長空)에 무소부지(無所不至)여.

햇빛이 저 공(空)에 척! 나와서 어디 가서 뭔, 뭐 어둠살이 어디 끼여 있으며 컴컴헌 게 어디 있나. 환헌 무소부조(無所不照), 무소불요(無所不耀)인디.

 

아, 이렇게 깨달라 버리는 것, 일체 죄업이 그렇게도 자최도 없고 본래 덩어리가 없는데.

아, 이녀러 중생이라는 게 환(幻) 해서, 환이 그대로가 중생 살림이다. 허퍼 놓은 망상(妄想) 그놈이 그대로 일어나서 죄업이다.

 

그 진리는 영존헌 놈, 그놈, 내가 나 본래 갖촤아져 있는—제불(諸佛)이나 내나, 부처님이나 내나 똑같은 그 각을, 그 본각(本覺)을 그대로 떠억 봐 버려. 그대로 찾아 버려.

 

어디, 그 어디 숨어 있나, 찾게?

어디 숨었어야제. 하나도 숨지 안 했는데.

 

거기에 무슨 치소(緇素)가, 속인이면 속인은 못허고 중은 허며, 뭐 그럴 꺼여?

남녀도 없고, 노소도 없고, 그대로 깨달라 버릴 뿐이여.

 

허어! 내가 이렇게 기운이 모자라서 당최 설법허자면은 힘이 그렇게 들고...

오늘은 여까지만 좀 해 두고 쉬어야겄구만.

 

 

저 '내 법은 정(正)이고, 거기에서 듣는 건 사(邪)다' 내 그런 말이 아니여.

자신이, 그 본인이 들어보면 그대로 판단 나는 것이여.

 

그러고 또 거기에서 판단도 나지마는, 지인(智人)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여.

그 판단력, 판단력이, 판단허는 것이 그 상근대지(上根大智)요, 지인(智人)이거든.

 

안 헐 수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알고야 어찌 안 헐 수가 있는 건가?

알고 어찌 사굴(邪窟)에 빠지며, 알고 어찌 환주장엄(幻住莊嚴) 속에서 중생견(衆生見)을 버리지 못허고 역겁다생(歷劫多生)을 죄업을 받을 것인가?

 

그 일초지간에,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일향지간(一餉之間)에 나 하나 척! 깨달라 잡아, 나 하나 깨달라 증득해 버릴 것 같으면은 무엇이여 거기에 무슨 뭐,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인디.

한번 뛰어서 여래지(如來地)에 올라가 버리며, 아! 그만 중생성불(衆生成佛)이 찰나간(刹那間)인데, 어디 가서... 그 지혜인 아니고 무엇이여.

 

 

내가 해인사 들어와서, 그 숭악헌 병고(病苦)를 여의기 위해서 한바탕 그렇게 변장을 허고, 머리를 길루어 버리고 그만 그렇게 얻어먹고 댕기다가 들어와서,

다른 데 가서 얻어먹고, 다른 데 가서 그렇게 했으면은 무슨 그런 말 저런 말이 안 났을 터인데, 뭐 나 내가 이 병 낫우어서...

 

다 그만 헐라고 해 놓고 또 연속허는구만. 또 그것도 뭐 헐 수가 없는 거제.

 

그러헌 병이 들어가지고 그 같은 놈의 거, 내가 병들어 죽게 되았으니 그거 뭐, 병 낫을라고 헐 것이 무엇이 있느냐.

목구녁에서 피는 간 겉은 놈이 넘어오고 비린내가 나서 당최 견딜 수가 없고, 속이 미슥거려 나중에는 살 수가 없고.

 

'야, 내가 이 병이라도, 이런 병이라도 나수어 가지고 도를 닦아야제, 내가 이런 병들었으니 그까짓 할 수 없다고 그대로 죽음을 기달라? 그대로 죽어 버려?'

 

무수(無數) 그 방편을 한번 내가 부려서, 무수방편(無數方便)이 개위차야(皆爲此也)로구나. 갓없는 한없는 방편이 <도 닦기 위해서 이 몸뚱이 나수는 것이 방편이로구나!> 해 가지고는 한바탕 자연치료를 해야 한다. 백용남이가 그래 해 주어. 큰 병원 의사인디.

 

자연치료는 어떤 게 자연치료냐?

마음대로 해라. 춤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웃고 싶으면 웃고, 앉었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일어 났다 앉고 싶으면 앉고, 네 마음대로 해라.

 

헌디, 강산임수(江山臨水), 강산에 임수를 마음대로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그게 자연치료니, 허고 싶은대로만 허라는 것이여. 내 마음에 맞는 대로만 허라는 것이여.

 

술도 먹고 싶으면 먹고, 그러나 그 가운데에 또 영양을 취해야 하니, 영양 섭취를 해야 하니 고기 같은 걸 좀 많이 먹으라고, 고기를 먹되 육물(肉物)은 재미없고.

시방 원청 신체가 저렇게 되았으니 바닷가에나 이런 데 가서 그 해어(海魚)를 많이 먹고, 문어 전복을 많이 먹으면은 피를 많이 얻게 되고, 그래 좋다고 이런 말이 있고.

 

누가, 그러나 내가 어디 무슨 뭐 바닷가에 가서 어떻게 그놈 얻어먹는다고, 어디가 그 적당치 못헌 곳에 어척헐 수 있나? 닥치는 대로 헐 수 밖에 없제.

 

그렇게 빌어먹고 댕기기를 약, 그저 세월심(歲月深)으로 허다가 해인사, 하필 내 중 된 해인사 들어와서 스님도 있고, 아, 모도 이런 석덕대덕(碩德大德)이, 나 가르킨 스님도 있고 헌 거그를 들어와서,

또 친고(親故) 집에, 친고가 홍도여관을 허는데, 이동수라고 허는데, 아, 거그 들어와서 그냥 그만 들입대 생긴대로 먹고, 그저 술도 생기면 먹고, 그저 손님네가 올 것 같으면 심부름 해 주고, 괴기 남으면 그놈 얼른 그놈 막 때려 처먹고, 더럽게 입 발라 냉겨 놓은 놈 그런 것은 먹기가 안되아 씻거가지고 내가 다시 거다 양념 붓어서 끓여 가지고 먹었구만. 그놈 먹고.

 

그만 '무행(無行)한다' 그 무행이라는 건 세상에, 아 막 헌게 어쩔 것이여? 아무데라도 가야 얻어먹지.

 

거 모도 인자 젊은 친고, 같이 중된 사람들이 아, 그 중노릇 잘헌 사람들, 스님 밑에서 돈도 많고 그런 사람들이 모도 자최바위 거리에 가서, 그 해인사로 말허면 십리동천(十里洞川)이 한국에 제일입니다.

어떻게 그 밀림도 훌륭허고, 그 몇백 년 역사를 가진 냉기가 이리저리 척 고목이 되아 가지고 모도 그 사이에는 송간(松間) 사이에는 길도 좋고.

 

사이사이, 거! 거 젊은—옛날 샛조개라고 그려. 그걸 샛조개라고.

젊은 여자 한 20여 살, 스물 대여섯 살, 그러헌 여자가 술단지 다 끌어안고 앉었네! 좋은 찹쌀막걸리를 빚어 놓고, 그 좋은 안주를 모도 장만해 놓고는 사이사이에 앉었단 말이여.

 

하, 이것! 거기에 모도 그 젊은 청년들, 내 어릴 때 같이 중 된 사람들이 모도 사는 사람 내려가서 저녁때 쯤 되면 한잔씩 먹고는 춤도 추고 놀면은 아, 그런 데 뛰어들어가야 얻어먹제, 아무것도 없는 내가 얻어먹을 수가 있어야제. 그런게 불가불 그런 데 가서 놀고.

 

'아, 정영신(鄭永信)이 견성했다는 사람이 들어와서는 홍도여관에서 뽀이질을 허고. 그 친고 여관이지마는 거기서 뽀이질을 헌다'고.

뭐, 내가 능히 허제. 내가 뽀이질 허고 얻어먹었제, 내가 즈그 뭐 친고(親故)니까 해 준 대로 폭폭 먹고 안 했어!

 

절대 내가 뽀이질 막 허니깐, 풀빵도 갖다 주고, 이것도 갖다 주고, 그저 심부름도 해주고, 다 했거든. 뭐, 내가 안 헐 이치 없어.

몸뚱이가 죽게 되면 몰라 그러허되, 아직까장 몸뚱이 붙어 있으니까, 주욱 다 해 주니까 즈그들도 좋았제, 뭐 어쩌?

암만 친고(親故)기로이 내가 그렇게 해 주니까—그럼 제가 가만히 앉어 내가 들어와서 무슨 뭐 견성했다고 와서 얻어먹으면 될 것이여?

 

다 그렇게 해 주고 그러고 있는데, 마침... 또 나온다! 또 나와.

 

아, 마침 최남선 씨허고 박한영 스님허고 둘이 왔네. 그 최남선 씨, 박한영 스님은 어떤 이인고?

최남선이는 한국 팔대문장에, 팔대문사(文士)에 최고거든. 역사에 최남선이요, 그때 당시의 철학에는 오상순이요, 다 문사가 달라. 한학에 정인보요, 소설에 이광수요, 다 그렇지 않어? 소설 이광수.

그 다음에 시에는 백기만이, 이상화, 유엽이, 시방 유엽이는 대전에 있소. 그 내 유엽이도 내가 끌고 들어와 내가 중 맨들았구만.

 

문장(文章)도, 문사도 여러 가지지마는 최남선이로 말허면은 독보(獨步)여, 그 가운데에도.

또 우리 절 집안에 강사로는 한용운(박한영) 이상 없어. 그 두 분이 척 왔네.

 

두 분한테 심바람을, 내가 '옳다! 최남선이허고, 박한영이허고 둘이 왔구나'

에라, 이놈, 내가 한바탕 방도 닦아 주고, 머리를 길찍헌 놈을 이리 척 걷어 넹기고 그저 수건을 턱 자루고는, 아주 뽀이처럼 착 나투고는 그 술방도 갖다 주고, 척척척척 심부름 다 해 주고 속 쓸어 주고는, 물 떠오라고 허면 물 떠다 주고, 다 해 놓고는 앞에 척 나가서, "하! 참, 말씀은 우뢰같이 듣고 여그서 뵙습니다"

 

"아이고, 웬 사람?"

"나는 홍도여관에 뽀이입니다"

 

"그러면 어찌 뭔 말을 그렇게 너무 그리 들었는가?"

"예, 들어서 참, 많이 모셨습니다" 말도 참, 한마디 한마디가 퍽 존대스럽게 허제.

 

"그 어디.....?" 내 주소는 어디?

"네, 야로에 있습니다"

그, 요 밑에 야로란 말여. 고 밑에 야로, 동네에 있다 그말여. 머리를 기뤘은게 모르제.

 

"야로에 있는데, 여기 와서 그저 이렇게 뽀이질을 허고 있습니다"

"그러냐"고.

 

해 가지고 그만 그러고는 말도 반거지로 삐닥허니, 어린 나이도 젊기도 허지마는 반거지로 허제, 그 뭐 뽀이를 누가 이해해주리라고? 나도 그렇게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제가 여그 이 뽀이로 많이 있으니까, 합천 해인사에 들어온 문장도 많이 계시고 허지마는, 다 듣기도 허고 큰스님네 법당에서 대웅전에서 설법허면은 내가 설법도 많이 듣고, 여그에 큰 강사 스님이 이만저만 많이 있어서 법문을 많이 들었습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제일가신 한용운(박한영) 큰스님이 오셨고, 또 우리나라에 제일 크신, 제일 거룩헌 문장 최남선 선생님이 오셨으니, 아, 내가 여기에서 의심난 바를 하나 물어야겄습니다"

"응! 물으라고"

 

"화엄경에..." 법문 또 묻는구만.

저번에 안 했제? 그 헐라면 다 헐라면 한정이 없으니깐 다는 못허고.

 

"화엄경에, <약인(若人)이 욕료지(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인댄, 만약 사람이 삼세일체불을 알고저 할진댄,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뻑뻑이 법계성을 보아라.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니라. 일체가 다 마음으로 지었느니라> 이랬으니, 천하에 도무지, 산하대지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이며, 세상에는 다 마음이 짓는다고 했습니다.

하날도 마음이 짓고, 땅도 마음이 짓고, 우주만물,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개시(皆是) 마음으로 지었다 했으니, 마음이 그렇게 다 창조 주인공인데 그 마음은 그건 누가 지었습니까?

그 의심이 나서, 마음은 낱낱이 다 우리 우주인류가 다 가지고 있는 마음인데, 그 마음으로써 모도 지었다 했으니, 마음은 필경 누가 지었습니까? 그 마음 지은 주인공을 좀... 마음은 일체를 다 지었거니와, 마음은 누가 지어 주셨습니까? 그 하나 일러 주십시요"

 

대답헐 수가 있나? 응. 참, 쉽지 못하제.

대답을 못혀.

 

대답 못허는 곳을 향해서 내가 점검을 했네. 응.

 

"여기에 대답을 못허신다면은 내가 불가불 점검을 하나 해야겄습니다"

"점검을 하나 허라"고.

 

여그서 끊쳐. 그만 끊쳐. (19분46초~37분35초) (일대기 14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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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납자평생사(衲子平生事) 팽다헌조주(烹茶獻趙州)'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도운선자(道雲禪子)' 참고.

*(게송)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 조제산갱유(鳥啼山更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고의(古意)' 참고.

*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끽다(喫茶) ;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411칙. '끽다(喫茶)' (혜심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73~174.

趙州問僧 曾到此閒否 僧雲曾到 師云喫茶去 又問僧 曾到此閒否 僧雲不曾到 師云喫茶去 院主問 爲什麼 曾到也敎伊喫茶去 不曾到也敎伊喫茶去 師召院主 主應喏 師云喫茶去

 

조주(趙州)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왔던 일이 있는가?"

스님이 말하였다. "왔었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마셔라"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일찍이 이곳에 왔던 일이 있는가?"

스님이 말하였다. "왔던 일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마셔라"

 

이에 원주(院主)가 물었다. "어찌하여 일찍이 왔었다고 한 이에게도 차를 마시라 하고, 온 적이 없다고 하는 이에게도 차를 마시라 하십니까?"

 

선사가 불렀다. "원주야"

원주가 대답하거늘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마셔라"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유유하다(幽幽-- 그윽하다·깊다·고요하다 유) ; 깊고 그윽하다.

*매니로(맨치로, 맹키로, 멩키로, 맨키로, 맹이로) ; '처럼', '같이'의 사투리.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옜시오(옜소, 옛소) ;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면서 하는 말. 하오할 자리에 쓴다.

*하오하다 ; 하오체(--體)의 말씨를 쓰다.

*하오체(--體) ; 상대 높임법의 하나. 상대편을 보통으로 높이는 종결형의 말체로, 현대 국어의 구어(口語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먼저 가오' '빨리 인도로 나오시오', '왜 꾸물거리시오?' 따위이다.

*설찬히(솔찬이, 솔찬히) ;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잠충지일생(蠶蟲之一生)이다. 누에란 놈이 뽕 그놈 자꾸, 그놈 뽕나무 길러 키워서 그 잎새기 따다 가서 그놈 밥 자꾸자꾸 주면은 잔뜩 놀고 퍼먹어 똥똥 살찌면은 그 은혜, 뱃속 창자 빼서 아, 그놈 모도 그놈으로 갚는다.

그놈 다 갚기 마련이고, 그 몸뚱이는 오그라져—속에 창자를 다 빼내놨으니, 먹은 대로 다 기어 내놨으니 오그라지제 별수 있나? 비틀어져 죽게 척 되면은 그놈 또 갖다 가서 푹푹 화탕(火湯)에다 삶아서 고기까장 먹는구나' ; 아래 유튜브 영상에는 누에가 뽕잎을 먹고 번데기로 변할 때 실을 토하여 제 몸 바깥둘레를 둘러싸 만든 일종의 집인 타원형의 고치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누에고치로 실을 뽑고 명주(비단)를 짜기까지의 직녀(織女)의 고된 노동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한만하다(閑漫-- 한가할 한/가득차다·넘치다 만) ; 한가함[閑]이 가득하다[漫]. 매우 한가하고 느긋하다.

*허송세월(虛送歲月 공허할 허/보낼 송/해·1년 세/달 월) ; 하는 일 없이 세월(歲月)을 헛되이[虛] 보냄[送]. 또는 그 세월.

*허생낭사(虛生浪死 헛될 허/삶 생/유랑할 낭/죽음 사) ; 삶을 헛되이 하여 죽음에 유랑(流浪)하다.

*은몰(隱沒) ; 자취를 감춤. 또는 흩어져 없어짐.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 ;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한역어로는 '무간'이다. 그러므로 '무간아비'는 동어반복 형태의 용어이고, 보통 무간지옥, 아비지옥이라고 한다.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아귀취(餓鬼趣) ; 아귀도(餓鬼道).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용맹심(勇猛心) ; 두려움 없이 용감하며 기운차고 씩씩한 맹렬한 마음.

*속인(俗人 속인·평범하다·대중적이다 속/사람 인) ; ①세속(世俗)의 사람[人]. ②불가(佛家)에서 스님이 아닌 일반 사람을 이르는 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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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 ;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

[참고 ❶]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 지유선사 역)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 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離此心外 無佛可成

 

다만 자기 마음만 알면 항하(恒河)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법문(法門)과 한량없는 묘한 뜻을 구하지 않더라도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널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환(幻)과 같은 변화가 모두 여래의 원각(圓覺)의 묘심(妙心)에서 났다’고 하시니, 이러므로 알라 이 마음을 여의고는 부처를 이룰 수 없도다.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도 다만 마음을 밝히신 분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도 역시 마음을 닦으신 분이며, 미래에 닦는 사람도 마땅히 이러한 법에 의지하는 것이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밖으로 구하지 말지어다. 심성(心性)은 물들은 데가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있는 것이니, 다만 허망(虛妄)한 인연(因緣)에 생각이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인 것이다.

 

[참고 ❷]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八十華嚴)』 (실차난타 역 實叉難陀 譯 | 이운허 번역) 第51卷 ‘37. 여래출현품 ②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二’

 

如來以無障碍淸淨智眼 普觀法界一切衆生而作是言 奇哉 奇哉 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慧 愚痴迷惑 不知不見 我當敎以聖道 令其永離妄想執著 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與佛無異 卽敎彼衆生修習聖道 令離妄想 離妄想已 證得如來無量智慧 利益安樂一切衆生

 

여래께서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 눈으로 법계의 모든 중생을 두루 관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다.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그리고 곧 저 중생들로 하여금 성인의 도를 닦아서 허망한 생각을 여의게 하며, 허망한 생각을 여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하여 안락케 합니다.

 

[참고 ❸]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六十華嚴)』 (불타발타라 역 佛馱跋陀羅 譯 | 이운허 번역) 第35卷 ‘32. 보왕여래성기품 ③ 寶王如來性起品 第三十二之三’

 

如來以無障碍淸淨天眼觀察一切衆生 觀已 作如是言 奇哉 奇哉 云何如來具足智慧在於身中而不知見 我當敎彼衆生覺悟聖道 悉令永離妄想顚倒垢縛 具見如來智慧在其身內 與佛無異 如來卽時敎彼衆生修八聖道 捨離虛妄顚倒 離顚倒已 具如來智 與如來等 饒益衆生

 

여래께서는 걸림없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일체 중생을 관찰하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이상하구나. 여래의 원만한 지혜가 그 몸속에 구족해 있는데 그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나는 저 중생들로 하여금 거룩한 도를 깨달아 망상과 착각의 속박을 아주 떠나고, 그 몸속에 있는 여래 지혜가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완전히 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여래께서는 곧 중생들을 가르쳐 팔성도(八聖道)를 닦아 허망한 착각을 아주 버리게 하고는 여래와 평등한 여래의 지혜를 갖추게 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합니다.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7~88. (가로판 p91~92)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幻城]이라. 세계는 환의 옷[幻衣]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幻食]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覺心]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瘡病)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부동지(不動地) : 마음 바탕(心地)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쳐서, 한없이 밝고 두렷이 고요한 곳에 머물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고, 온갖 주체와 대상이 끊어진 경지를 말함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 생각)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 생각)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무소부지(無所不至 없을 무/곳 소/아닐 부/이를 지) ; 이르지[至] 않는[不] 데[所]가 없음[無].

*어둠살 ; 어두운 기미. 어두운 기운.

*무소부조(無所不照) ; 비추지[照] 않는[不] 곳[所]이 없음[無].

*허프다 ; '헤프다(말이나 행동 따위가 삼가거나 아끼는 데가 없이 마구 하는 듯하다)'의 사투리.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치소(緇素 검다·검게 물들다·검은빛·검은 옷·스님·승복僧服 치/희다·질박하다 소) ; ①검은 옷과 흰옷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스님과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환주장엄(幻住莊嚴) ; 실제가 아닌 방편의 장엄.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중생견(衆生見) ; 중생의 번뇌에 얽매여 전도몽상(顚倒夢想 :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한 잘못된 견해.

*일향지간(一餉之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가다·이를 지/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무행(無行 없다·~하지 않다 무/행하다·계행·행실 행) ; 계행(戒行)이 없다[無]. 계를 지키지 않는 것. 또는 수행(修行)을 하지 않다[無].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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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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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