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20. 10. 15. 13:41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18-1호) 선지식들과 법거량. 만공스님 전법게. 안국사 시절.

 

**전강선사(No.306)—전강선사 일대기 제18호(계축1973년 7월 2일 새벽. 음) (1973년 7월 31일)

 

(1/3) 약 19분.

 

(2/3) 약 21분.

 

(3/3) 약 16분.

 

(1/3)----------------

 

악의(惡衣)는 감수절(甘守節)이요  암곡호장신(岩谷好藏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청산(靑山)은 고금동(古今同)이요  녹수임자재(綠水任自在)니라

나무~아미타불~

 

악의(惡衣)는 감수절(甘守節)이다. 이 떨어진 옷, 이 험악헌 옷, 옷도 아닌 것 너절헌 것을 입고, 밥 겉은 것도 그 아무 무슨 양분 없는 거, 그저 풋나물 그 한 가지 놓고 이렇게 먹고, 이것이 분(分)에 족(足)허다.

차외(此外)에 뭣이 꾸며 대고 지분단장(脂粉丹粧) 바르고, 뭣 허니라고 그려. 뭣 헐 것이여?

얼굴을, 얼굴을 모시 모도 이쁘게 그리고 모도 만들고, 뭐 눈썹을 갖다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거 그런 짓이 거 무슨 짓이것냐 그말이여.

 

터억 이 떨어진 옷, 내던져 버려도 안 가져가는 옷. 도적놈이 안 가져가.

여기 와 도둑질을 해감서, 일곱 번 강도가 들었어. 여 지방에 아무 집도 없고, 공장도 그때는 허다 말다 허고. 일곱 번 강도가 들어왔는데, 내가 여그서 강도를 겪은 건 아니지마는...

 

 

그 즈그 오빠를 내가 중을 만들아 주었더니 그 인연으로, 동생된 분이 점쟁이인디 작두를... 작두란 건 풀 써는 작두가 있어. 발로 디디고 써는 풀...

그러헌 그 작두를 날카롭게 그 칼날을 세워 가지고는 고 작두를 발을 밟고 걸어가. 점쟁이가 사빡사빡 그 딛고 걸어간데야. 그런 걸 보면은 왼통 모도 반하고.

"네 이년들! 또 저년 저년, 오늘 뭐 무슨 죄짓고 왔구만. 네 이년들!" 아 이렇게 막을 해도 그저 "아이고!" 그 이렇게 모도 바치고 거 말헐 것 없어. 그런 짓이나 허면 기특허게 알제.

 

새파러니 작두에다 가서 작두를 그 등이 땅으로 가게 그렇게 놓고 아, 그 우에 발을 딛어? 그 어떻게 그 디디겄냔 말이여? 참, 거 위험헌 짓이여.

작두를 발을 딛고 올라서고 막 댕기고 이러니까 그 모도 사람들이 왼통 그만, 그러헌 도인이 없고 그러헌 신통이 없다고 야단났어.

 

아, 그런 분이 내가 인천 보각선원에 있는디 찾아와서 "아이고, 우리 동생을 제자해 주었으니 내가 스님한테 귀의(歸依)허겄습니다"허고 대들어.

아, 이건 내가 그런 것을 뭐 작두 아니라 무슨 번갯불 칼에, 번개칼에 걸어간다 헌들 그까짓 것을 보고 내가 그까짓 녀러 것을 보고 눈이나 깜짝하며, 고런 짓을 내가 봤어?

 

그렇지마는 내가 만공(滿空) 스님한테 큰 기대를 가지고, 세상에는 한국에 만공 큰스님밖에 없다 하고, 찾아가서 내가 절을 떡 허고 보니까, 좋은 외씨버선을 신고, 버선 위에다가—우리 중은 버선목을 옷으로 그 빼서 이렇게 신는 것인데—안으로 딱 겹쳐서 댓님을, 비단 댓님을 딱 매고.

거 옷도! 어떻게 모냥 있게 그때 시대의 옥양목으로 딱 감고, 젓대 하나 앞에 놓고, 앞에는 금선대 헌(軒) 안에 매화꽃이 모도 거 피어서, 꽃 핀 놈 있고 꽃 열매 맺은 놈 있고, 향내가 온통 앞뒤로 풍기는 놈이 있고, 헌 안에 굉장허다 그말이여.

 

아, 그걸 봐도 또 나는 그래도 '한국에 제일가는 도인이다' 이것만 믿고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 내가 이름도 잊었구만. 성(姓)은 권가인디 아, 그 사람이 들어와서 몇 철 모시고 지냈는데, 그 어른의 허물을 낱낱이 들이대는데, 한 번 들어 두 번 들어 몇 번 들으니까, 천연스러운 내 마음이 조끔도 사(邪)가 없고 그런 것 볼 줄도 모르고.

 

외씨버선에다가 비단 댓님에다가 왼통 그래 감고 있고 아, 또 하나는 옷 맨들아 주는 복수좌라고 참, 돌아가신지 얼마, 거년(去年)인가 돌아가셨구마는 그 젊을 때인디, 인물이 그렇게 예쁜 인물은 아니라도 볼수록에 귀태가 주르르 흐르고, 얼굴이 그 그렇게 무슨 미인이라고 잘났다고는 헐 수 없지마는 볼수록에 얼굴이 구성구성허니, 눈이 큼직허니 지금은 보면 현대 미인이라 할 것이여.

그때는 여자가 눈이 크면 미인으로 보지 않고 눈이 간조즈럼허니 예쁘게 생겨야 미인이라 하는데, 지금 현대 미인들은 눈이 크고 키가 훨씬 크고, 그 보는 법이 따로 있드구만.

 

그러헌 여자가 상궁(尙宮)으로 있다가 내려와서 그 일등 솜씨에 옷을 해서 올리고, 또 모시고 있는 시봉(侍奉)이 둘이 있는데, 거 내가 뭐 법사(法師) 스님이라 해서 그 어른의 좋은 행동만 내가 들내고 나쁜 행동은 감촤 줄 것인가?

뭣이여, 나 그대로 말허는 것이제, 감추고 무슨 뭐 나투어 내고 헐 것이 있는가? 그대로 시방 말허는 것이제. 그때 학자는 다 보았는디, 나만 보았나?

 

아, 그래 가지고는 하나는 반찬 장만허는 채공(菜供)을 허고, 하나는 공양 지어 올리는 공양주(供養主)가 되고. 똑같은, 나이도 아마 동갑 될 것이여. 그 두 분이 그렇게 시봉을 허고 있고.

그 허는 법식이 참 그렇게 짬 될 수가 없고, 반찬 겉은 것 장만해 놓은 거 보면 천상(天上) 하날의 무슨 공양 겉제. 그렇게 잡수고 있으니 거다가서...

 

아, 오직해야 삼십본산(三十本山), 본산 그 거(巨) 주지들이, 큰 주지들이 모아가지고는,

"송만공 스님 체탈도첩(褫奪度牒)해야 겄다.우리 불가에 송만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허는 짓이 세상 무슨 큰 부귀 장자(富貴長者)보담도 이상간 그러헌 호화로운 생활에 그런 장쾌한 생활에다가 원 당최 이거 될 수가 있나? 중으로서. 우리 칠천 명 승려가.....” 그때는 칠천 명이든 것이여.

 

"우리 칠천명 승려가 낯을 들고 나설 수가 없다. 그 만공 스님이, 제일이라고 허는 분이 그렇게 행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칠천 명 승려한테 낱낱이 다 미친다. 중놈들이 그렇게 헌다는 놈들부텀 들어갈 것이고, 이거 이래 두어서는 안되겄다"

삼십본산 주지가 회의를 해 가지고는 체탈도첩을 헐라고 했다 그말이여.

 

그 말씀을 만공 스님이 듣고 "흥! 체탈도첩을 헐라면 체탈도첩을 허고, 나를 산문출송(山門出送)을 시킬라면 산문출송을 시키고, 느 마음대로 해라"허고 그 앉어 계시는 엄연(儼然)헌 거동이 도인이여!

별별 악평을 다하고, 지금도 만공 스님 말허면은 '만공 스님, 모도 팔선녀를 거느렸다. 뭐 처녀를 데리고 시봉질을 했다. 뭐 퉁수를 불고 뭐 요릿집에 갔다' 별별 말씀이 다 있제.

 

당신은 그런 말씀을 듣고는 회과자책(悔過自責)을 허는 것이 아니라, 뭐 회과허고 뭐 자책지신(自責之身)을 해서, 내 몸뚱이를 살펴서 그런 거 안 헐라고 헌 것이 아니라 그대로제.

그대로 계시면서 그 엄연헌 거동, 행동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이 헐 수 없어!

천하 없는 사람이 별 허물을 다 헌다 헌들 왼눈 하나 깜작도 없지마는, 동작이 그렇게 엄연헐 수가 없제. 그 왈(曰) 참, 도인(道人)의 인격이시제.

 

"응, 체탈도첩을 나를 시킬라고 언제 허는가? 아무 말이 없나?" 그러시곤,

"산문출송을 시킬라면 어느 날 헌단 말이나 있으면은 내가 좀 그걸 미리 알고 무슨 방침을, 내가 퇴속을 헌다던지 내가 헐 것인데, 아무 말이 없구나" 그러고 계셨단 말씀이여.

 

도인을 찾아갈 때 무슨 모냥이여?

똥을 싸서 옷에다 바르고 계신다 헌들 '저것이 도인 아니다' 요래?

요까짓 상견(相見)을 가지고 들어와서 상 없는, 상견 없는 도를 깨달고 도를 배와? 어림도 없제.

 

도인은 시험허는 법이 학자한테 비방 듣고 배척 당하고, '아이고 저래, 저게 도인이여?'

이러헌 행동을 갖추는 것이 그 도학자에 시험허는 것이여. '네가 참으로 믿어 왔느냐?' 도학자 시험이라는 게 그것이여.

 

부처, 당래교주(當來敎主), 용화교주는 포대화상이 되았다가, 쌍용 부대사가 되았다가—포대화상(布袋和尙)이 되아 가지고, 글쎄 늘 말했지마는 포대(布袋)를 짊어지고, 그놈의 포대 속에 뭐가 들었냐 그말이여.

다맛 포대 속에는 포대, '자리 포(布)'자, '자리 대(袋)'자, 포대라는 것은 이놈을 얼마나 짊어지고 얼마나 끌고 돌아댕겼던지 지름 보재기도 그럴 수 없고, 맨놈의 코만 발라지니까 겉으로는 코가 칠처럼 되아 가지고 발라져 있는 그러헌 포대여. 그놈의 포대 속에는 옆에 가도 못혀, 추물 냄새가 나서.

 

그 속에는 또 천하에 개란 놈이 그놈이 더러워서 그런 것인지 모도 추육(醜肉)이라고 헌디, 개란 놈 그 잡아서 모도 내버린 뼉다구를 걷어 짊어지고 댕김서 "뼉다구, 개 뼉다구 사시요" 그러고 외고 댕긴다 그말이여.

다 증(證)해 버렸으니, 깨달라 증했으니 그 무슨 중생견(衆生見) 중생고(衆生苦) 그 뭣이 있을 것이여?

 

중생이라 하는 것은 고(苦)밖에 없다. 괴로운 것밖에 없어.

이 몸뚱이 하나, 어머니한테 받아 가지고는 이 몸뚱이 어머니가 길러 줄 시대에도 배 아프제, 어린것이 뱃속에 탈나도 알 수 없고 울기만 울제, 젖꼭대기를 물어도 그 울기만 울제.

그 다 아파서 그런 것이고, 몸뚱이 사방 모도 어릴 때 통증이 많이 있고, 감기 잘 걸리고 굉장한 것이여. 아프다 소리도 못혀.

 

그때 어머니 뱃속에서 이 몸 하나 얻어 나와 가지고 온 그때부터서 시작해서 이 몸뚱이 고통이 얼마냐 그말이여.

 

자신이 아지도 못허고, 그때는 뭘 보는 것이 옳게 보지 못허고, 육근(六根)으로 듣는 것이 옳지 못허고, 그저 부정류... 염염... 그 무슨... 이렇게 보제, 무슨 알고 보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해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지마는 맨 고통 뿐인디 차츰차츰 인자 커나면서 철 알면서 그 고통이 어떠헌가?

천만 고통이라는 것이 그 인자 그때부텀 고통도 알고 괴로운 것도 알고 신내재본(身乃災本)이라는 것도, 몸뚱이라는 건 재앙의 근본이란 것도 알고 다 알제. 알지마는 그 괴로움이 얼만가?

 

얻지 못헌 괴로운 것이 있고, 그 내 마음대로 못허는 고러헌 괴로운 것이 있고, 이놈의 몸뚱이 부자유가 어떠헌가?

차츰 건강헌 시대는 가버리고 노년 시기가 오니 늙는 고통—늙어 가지고는 호흡도 저축대고, 장갱이 뼈는 톱날 같이 되고, 음식 맛없고, 왼갖 마음 다 일어나제. 그런 놈의 몸뚱이가 오니 병들어 죽제.

 

요놈의 이 몸뚱이 얻어, 일생 고(苦)도 우리가 이렇게 받고 있는데, 전생 과거에는 얼마나 삼악도(三惡途)를 들어갔으며, 세 가지 악헌 지옥을 들어갔으며, 감옥을 들어갔으며, 죄수가 되았으며.

한량도 없는 무량 과거, 왜 무량(無量) 과거냐?

 

내가 어디, 때가 난 때가 있고 없어지는 때가 있어야제.

항상 나는 그대로 있는디, 왜 엉뚱헌 몸뚱이, 이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색상 몸뚱이 애착을 해가지고—상견(相見)에 애착허고 사견(邪見)에 애착만 해 가지고는,

 

상견(相見)이라 하는 것은 내 몸뚱이, 항상 가지고 있는 이 눈 · 코 · 귀때기 모두 있는 요놈을 착(着)해서, 형상 있는 것을 착해서 그것이 내 몸뚱이인만 아는 것이 그것이 상견이고.

빛깔이—내 몸뚱이, 얼굴 잘나고 뭐 색상이 그 색이 좋고, 빛깔 좋고 허는 것을 애착허는 것이 상견이여. 다른 게 아니여.

 

그거, 이 몸뚱이를 애착해 가지고 상견에 집착해 가지고는 색상에, 그 상(相) 모도 빛깔에 '얼굴 잘생겼다, 예쁘다, 색이 좋다' 모도 이런 데 착(着)해 가지고는, 죄만 퍼짓는 것을 중생이라 햐.

중생이라 하는 것은 모도 상견 · 사견에만 집착한 것을 중생이라 햐.

사견도 여러 가지가 다 들어 있고, 상견도 여러 가지가 다 들어 있지 않는가? 낱낱이 말헐 것 뭐 있나? 이렇게만 해주면은 알제?(처음~19분27초)

 

 

 

 

(2/3)----------------

 

「나」는 몸뚱이, 이 상견 몸뚱이 · 사견 몸뚱이를 끌고 댕기는 주인공, 이 마음 자리는 부단불멸(不斷不滅)이여. '끊어짐도 없다'는 것은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아니여. 나왔다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온, 어머니 뱃속에 들어와 몸뚱이 얻은 그놈이나, 몸뚱이 얻기 전이나 과거 천만 겁 중 역사가 없는 그놈이나 불변부단(不變不斷)이여. 변함도 없고, 없다 있다 헌 법도 없어. 단상견(斷常見)이 없다 그말이여.

 

그놈이 들어서, 그놈이 그놈이! 들어서 죄를 짓는 법이제. 그 제육상이 있고 제육근이 있고 제칠식(第七識)이 있고 제팔식(第八識)이 있고 제구 백정식(第九白淨識)이 있는데, 제구 백정식은 부처님이래야 백정식을 갖추아져 가진 것이고, 중생은 아주 근본무명(根本無明) 딱! 미(迷)해서 잠을 자나 꿈을 꾸나 알 수 없이 잠자고 들어앉었는 거, 그것이 무몽무상(無夢無想) 경계, 그것이 제팔식이여.

 

제팔식장 거그에 종식(種識)이 하나 있어서 깜깜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식(識)을 칠식이 들어서 가서 인자 가지고 나와. 그러면 팔식장이 깨나도 분별이 없는데, 거그서 분별을 칠식(七識)이란 놈이 인자 만들아 가지고는 육식(六識)으로 전해 주어.

눈으로 전해 주고 보게 만들고, 귀로 전해 주어 듣게 만들고, 코로 냄새 맡게 만들고, 입으로 쎗바닥 놀려서 '달다, 시다' 고런 분별 만들고, 뜻으로 생각해서 원증회고(怨憎會苦)를 만드는 것이여. '원수다, 저 사람은 나허고 은인이다' 고러헌 모도 분별을 만들아.

 

그다음에는 의식(意識), 뜻으로써, 그 인자 내 뜻으로써 왼갖 천만사를 다 그놈이 분별허게 만들고, 요 칠식이란 놈이 그리 전해 주어. 육식(六識)이 있어야사 전허제, 육식이 없으면 못 전혀.

눈이 있은게 눈으로 전해 주고, 귀로 전해 주고, 코로 전해 주고, 입으로 전해 주고, 몸뚱이로 전해 주고, 뜻으로 전해 주어. 아 요놈이, 칠식 요놈 농간이 굉장하제.

그래서 육식이 들어서 인자 죄업을 퍼짓는 거, 중생상(衆生相)에 처백히고 색상(色相)에 처백히게 만드는 거.

 

아, 그러니 제팔식도 영 당치않고 칠식, 육식에 당치않고, 제팔식장 근본무명(根本無明)이여. 꽉 미해 버린 그 팔식장을 때려 부수는 것이 공안법이여.

공안(公案)이 아니면 제팔식 부동상(不動相)을 쳐부술 수가 없어. 백정식으로 척 깬, 툭! 깬다 그말이여. 탁! 깨닫는다 그말이여. 의식으로는 소용없어. 제팔식장 부동식에 들어가서는...

 

자! 신선이 장자(莊子)는 현빈(玄牝)이다. '감을 현(玄)'자, '암소 빈(牝)'자여. 그건 내나 바로 듣게 말허자면 공(空)밖에는 안되아.

그 공도, 그놈 내가 공이라고 허니까 공이제, 공이 아니여. 중생이 색상 따문에 공을 바로 볼 수가 없는 것이여. 말을 들으면 '옳다! 저, 텅 비어 없는 것을 공이라 하는구나' 그거 아니여.

 

깨달라 가지고도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볼 줄 알어야 하는데, 진공묘유를 볼 수가 있나?

공을, 몇 공을 갖다 때려붙여, 삼공(三空) 정관(定觀), 관공(觀空)을 때려붙여, 별 공(空)을 다 떼고 여의여 붙여도 중생의 그 육식장(六識藏)에 떨어져서 헌 것이제, 그 묘용 진공(妙用眞空)은 꿈에도 못 봐.

 

'뭐, 뭐, 조사관(祖師關)은 공 아니나? 말허자면 공이제. 공도 안 붙어?'

허지마는 조사관을 공으로 갖다가 봐 가지고는 저 죽고 남 죽이는 것이여.

 

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는 평상화(平常話)로 '뜰 앞에 잣냉기니라' 보통 평상화로 이렇게 했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는 모르는가?

경계부텀 머냐 알아야 되거든. 조사관에 경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여. 그건 깨달랐자 똥 없는 똥을 갖다가서 낯반대기에다 바르고 나온 것이여.

 

깨달라? 무엇을... 기가 맥히제. 사람이, 왜 그러면 저만 깨달았단 그 말인가?

자기만 깨달랐으면 자기 깨달은 도리로 바로 말해 주는디는 어째, 또.

일체 누진(漏盡)이 다해 가지고 턱 바로 봐 가지고 말허는 데는 어째, 그 겸양이 있을 것인가? 겸양도 없제.

 

 

아, 글쎄 내가 지금, 돌아가시고 없으니까 참...

아! 내가 왜 그분한테 기맥히게 인가 받고 그 와서 참! 수기(授記)를 해 줄턴디, 마정수기(摩頂授記)까장 해... "참 착하다, 선재(善哉)로구나!"하고.

 

아! 만공 큰스님한테 십이 문답을 그날 밤에 탁! 가려내고, 뭐 마조원상, 보월 스님 실수헌 것을... 실수인가? 학자한테 탐간(探竿)허는 것이제.

아, 바로 본 공안을 가지고는 학자한테, '저 학자가 눈이 바로 갖춰져 있나 없나?' 해서 엉뚱헌 놈을 한마디 턱 일러주는 것이제.

 

그러면 학자 거그, "예!..."

"야, 이 저석아, 뭣이 예여?" 절단나는 것이여.

 

거그서 학자 눈을 턱 가리울 때, 그 포장을 턱 걷고 착! 들어서서...

어쩌? 학자를 속였지마는 방(棒)은 면치 못허제. 바로 못 일러주었으니 방은 면치 못허제.

 

학자 눈을 속일라고 한바탕 턱 했지마는 학자가 속아야제.

원앙수출(鴛鴦繡出)에 속은 법이 없어. 금침(金針) 있는 곳을 안다 그말이여.

 

속지 않고 건네와서 "큰스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방장(方丈)에 누워 계시다가 "무슨 말씀이 있는고?"

 

"보월 큰스님이 그...!"

나는 소문(所聞)만, 옳게 못해 주었다는 것만 가지고 말허제, 뭐 탐간을 했느니, 나를 무슨 뭐 시험을 했느니, 그런 말헐 것이 무엇이 있나. 없어!

 

"아, 그만 마조원상을,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헌디, 한마디 일러 줍소사'허고 말씀을 허니까, 원상(圓相)을 뭉켑디다. 그러니 학자를 갖다가 속여서 진흙 밭에 파묻는 것 아닙니까?"

 

진흙 밭에란 건, 진흙 소(沼)라는 것은 집어넣으면 건질라고 헐수록 더 들어가거든. 밑에 뭐, 뭐 받침이 있어야제. 사뭇 들어간다 그말이여. 수천 질 되는 진흙이 그대로 껍데기도 물컹물컹 허지마는 속에 딴딴한 흙도 없으니 막 그저 파묻힌 곳이여.

 

"학자를 갖다 가서 타니대수(拖泥帶水)를—진흙을 한 짐 짊어지고 물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 타니대수를 허지 않았습니까? 원상을 뭉케다니 될 수 있습니까?"

"자네는 어떻게 헐라나?"

 

그 김초안(金初眼)이라고. 참 장헌 사람이 있었는데,

"그러면 자네가 나한테는 못 이른다면 저 용담(龍潭)한테 이르소. 그래 용담이 저 주장자를 가지고 원상을 하나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 한번 물어보소"

 

허! 용담이 시킨대로 헐 수밖에 없제. 주장자를 들고 원상을...

벌써 '그러면 용담한테 묻소', 주장자를 내 주면서 '원상을 그리고 묻소'헐 때 만공 큰스님의 답이다 그말이여.

기맥히제, 그 법로(法路) 밟는 법이 뭐 보통 아니시제. 보통이 아니시지마는 법을 쓰는디 묘(妙)해. 같은 법이라도 그 쓰는디 기가 맥혀!

 

아! 금당 고운루에 올라가서, "금도고운루(今到孤雲樓)허니 주앵야두우(晝鶯夜杜宇)로구나, 오늘 고운루에 이르니 낮에는 꾀꼬리 울더니 밤에는 두견새가 우는구나. 직지착지냐(直指錯指耶)? 이게 바로 가르킨 도리냐, 그릇 가르킨 도리냐? 이렇게 묻는데,

답이 하나 나오기를 "구구 팔십일(九九八十一)이니라" 잘 나온 답이거든, 그 답이.

 

그놈을 갖다가 바로 쓰지 않은 것이다 그말이여.

 

그놈을 바로 쓰자면 "금도고운루(今到孤雲樓)허니, 이제 고운루(孤雲樓)에 이르니, 주앵야두우(晝鶯夜杜宇)다. 낮 꾀꼬리요 밤 두견이로구나. 이게 직지(直指)냐 착지(錯指)냐? 바로 가르킨 것이냐, 그릇 가르킨 것이냐?"

그러면은 그놈을 갖다 턱 이르되, "주앵야두우(晝鶯夜杜宇)니라" 이렇게 일러주어사 바로 일른 것이다 그말이여. 법이란 게 그러헌 길이 있어. 법로가.

 

왜 내가 이런 말을 해 주어?

『염송(拈頌)』에는 없는가? 바로 다 일러주는 공안이 있지. 『속전등록(續傳燈錄)』에 가서 또 있어. 속전등이라는 게 있는디, 그 전등에도 96전어(轉語)에 답이 다 있어.

나는 답도 모르는, 속전등커니는 겉전등도 안 봤는데 어떻게 내가 알 것인가? 그때 처음.

 

뭐 그다음에, 아, 저 저 수공, 수공! 그때는 어릴 때 일공이 때구만. 그때 뭐, 그 뒤엔께 우리는 그 전이니깐, 그건 모를런지 모르지마는 현당에서 그 뒤에사 인자 내가 경 본다고 보았제.

뭐 경이나 아니나 뭐 얼매 뭐 보기나 했나마는. 보니 의견이 틀려서 볼 수가 있어야제.

 

아, 강사라고 이력을... 문강(講)을 허는데, 대번 들어가서 보는데, '노로조계전제수, 우도본래무일물이라. 고금다소천하인을 불석미모행방할이라' 아, 이놈 가지고 문강이 되았는디 그...

 

아따, 이 파리 한 마리가 왜 그리 이 대들어 쌓는고? 그놈이 법문 들을라고 그러나? 법문 듣는디 마구니 노릇을 허니라고 그러나.

 

끝에 가서 '우도본래무일물, 고금다소천하인을 불석미모행방할이라' 그놈이 있는데.

 

 

노로조계전제수(曹溪傳諸受)허고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을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분(本分)에서 볼진대는 아무리 육조 스님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했지마는 방맹이거리다 그말이여. 그러니 육조 스님이 전수(傳受)가 없는데 오조 스님한테 법을 받아?

발써, 오조 스님한테 법 받을 때, 무슨 전수가 있나? 거기에 가서 뭔 전수가 있어? 전허고 받을 것이 뭐가 있어?

 

또, 전제수(傳諸受)도 없지마는, 받으고 전헐 것도 없지마는, 육조 스님은 본래무일물이라고 허셨으니,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도 막도무사이호(莫道無事而好)타' 보태 '한 물건도 없다'해도 벌써 누()는 짊어진 것이다.

그러니 입만 벌려서 무슨 법을 일러 놓던지, 법누(法)를 막 들어서 다소천하인(多少天下人)을 방(棒)으로 때려 잡으리라, 그렇게 일른... 불석미모(不惜眉毛), 미모(眉毛)를 애끼지 않고,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맹이를 행하리라. 이러헌 법문이 있어.

 

그러면 눈썹 터럭 애끼지 않는 도리는 무슨 도리냐 그말이여?

 

낱낱이 법이라는 것은 법로(法路), 길이 있어. 이치 길이 분명히 있어.

이치 길이 어디가 있을까마는, 말허자면! 공안이라는 것이 그래서...

 

그러면 낙처(落處)는 공안에, 천칠백 공안에 낙처는 다 진공(眞空)으로만 보자. 진공으로만 때려 보면은 주장자 든 경계나, 주장자 놓는 경계나, 할이나 방이나, 이놈 저놈,

"네 이놈, 똥 쌌냐?"

"예, 쌌습니다"

 

모두가 그것이 진공이제, 아님이 어디 있어? 똑같제.

그 공안 하나를 진공으로만 때려 봐, 공(空)으로만 봐버렸으면은 천칠백 공안에 뭐 또 맥힐 것이 무엇이 있어?

 

바로 보지를 못했기 따문에 천칠백 공안에 그 선사(禪師)의 도리는 그 이르는—공안 만들아 논 스님의 도(道) 이치는 꿈에도 보지 못허고 제 공(空)만 가지고 보거든.

 

제 공(空)만 가지고 보니까, 그 중생 공만 가지고 보니까, 빈 걸로만 보니까, 작대기도 내가 들어 작대기라 했제, 이 작대기가 어디 본래 '내가 작대기다' '내가 무슨 뭔 가무태냉기다' '질다 짜룹다' 있는가?

이, 이 이름은 제가 가졌지마는 제가 가진, 제 의견이... 뭐 제 의견을 붙일 것이 무엇이 있나? 이놈은 이놈대로 공이제. 일체 공이 이놈이 뭐 공도 허락지 않제. 그러니 공견(空見)도 여의였제, 이놈이.

 

이놈 뿐인가? 이놈도 그러허제, 책도 그러허제, 아, 이런 뭐 녹음기도 그러허제.

어디가 있나? 맨 우리가 중생들이 붙여서 '가무태다' '질다 짜룹다' '무슨 빛깔이 어떻구나' '붉구나 곱구나' 별 놈의 도리를 다 붙이제.

 

제 이놈, 들어가서 보아. 가무태냉기 자체(自體)에 들어가 보란 말이여. '내가 가무태냉기다' 부텀 없제. 일체제상(一切諸相)이 다 여의여졌제.

 

하! 이런 제기, 이놈은 제상(諸相)이 다해 졌으니 이놈을 명상공(名相空)이라 햐.

그러면은 진진찰찰(塵塵刹刹)이 모도 다 있어. 일체 티끌 티끌이 다 그러헌 자체 공(空)한, 자체공(自體空)이 있어. 그 모도 명상공이 있어.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가 있어. 백초두(百草頭) 가운데 다 조사의(祖師意)가 있고 다 진공이 있어.

 

공안을 바로 깨달지 못허면은 바로 진공(眞空)을 보는 법이 없어!

공안이 아니면, 공안을 의심해서 깨달지 못하면은 그 공안은, 제팔식 뢰야식장(賴耶識藏)은 뿌술 수가 없어.

그러니 거다가서 그 인자 공안법을 다 일러 놨는데, 아무리 일러준들 파설(破說)을 해 준들, 알어?

 

아 그러면은 "꿀 먹을 때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달다!"

 

그 공안이 나왔는디,

"'달다', 옳제! 그놈이 인자 참, 꿀 먹었으니까 꿀 먹은 놈은 달제. 그 꿀 먹은 놈은 '달다'헌 그놈이 바로 공안이요, 바로 가까운 놈이요, 꿀 먹는 놈 밖에 격외(格外)를 갖다 쓰면은 뭐요, 꿀 먹은 놈 그놈이 대체 '달다' 그놈이 그 가까운 공안이요, 거그 붙어 있는 공안이요"

요러헌 해석 가지고는 백만년을 했자 견성(見性)도 못허고, 미륵하생(彌勒下生)에 이르렀자 거, 불쌍헌 물건이여.

 

따지는 법 아니여! 공안을 요리조리 해석 따지는 법 아니다 그말이여.

강사처럼! 맨 강사가 그 격외선(格外禪) 다 따지제.(19분29초~40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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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이라, 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했다' 눈썹 털을 애끼지 않은 게 무슨 도리냐 그말이여?

 

'나는 눈썹 터럭을 애끼지 않고 방할을 행허겄다'

세상에! 그게 참, 어려운 법문이다 그말이여.

 

거다가 좀 때짝거려 놓으면 또 모도 해석을 붙이고 해석 내고, 넘의 것 도둑질해다가 제 살림 만들아 가지고 거짓 도인노릇 헐라는 것들에는 그것이 방해여.

 

허지마는 진실헌 이는 그럴수록에 더 진실을 갖추고 내가 아무때라도 내가 깨달라서 내 생사해탈을 해야 내가 그때 가서 입을 벌리고, 뭔 법도 '그르치면 그르쳤다, 옳으면 옳다' 탁마(琢磨)해 내가 마음대로 헐지언정,

내가 지금에 앉어서, 깨달도 못허고 앉어서, 내가 깨달랐다고 남의 것 갖다가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이면서, 저는 돈 한푼 없으면서 남의 돈만 갖다 세서 주고 제 못 쓸 것 무슨 소용이 있어?

 

아, 이놈을 뜩 내가 허는디, 그 그이는 또 해석해 놓은 것이니까 내가 해석을 해주어.

그 강사인디, 강사로는 일등인디, "아, 그게 불석미모(不惜眉毛)라는 것은 방(棒)으로 때리니까 전신(全身)을 때린 거 아닌가? 눈썹같은 조그만헌 털도 다 때려 부순다 그말 아닌가?"

 

세상에! 강사의 지견(知見)이라는 게 그렇네. 해석을 헌다는 지견, 글 안다는 지견이 그뿐이네. 사람 죽제.

 

아, 그러니 거가서 무슨 놈의 경(經)을 펴? 거가서 경 펼 것이 무엇이 있어?

무엇을 들을라고 봐. 글귀 글귀 다 속는디. 저도 속아 가지고 남 속이는디. 저도 속아 가지고 헌 것이여.

 

대체 방(棒)이라 하는 것은—눈썹 터럭이 조그만헌 털... 왜 조그만헌 털이면 눈썹 터럭만 조그만헌가, 장갱이에 털 하나 난 것, 그런 것이 드문드문 났지마는 그 드물제.

그런 것 아니여. 그렇게 엉뚱허게 따지고 있으니 그게 뭐냐 그말이여.

 

불석미모(不惜眉毛)허고 행방할(行棒喝)이다. 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방할(棒喝)을 행허겄다.

그놈을 가지고 싸우다가 경 덮어 버렸어. 내가 뭐, 뭐 그까짓...

나는 이력(履歷) 한 벌 마친 것보덤 더 훌륭하고 더 낫다 그말이여. 자찬(自讚) 하나 거다 붙여 놔!

 

일체 경을 확... 나는 그런 그 조사관만 나오면 그만 입이 절로 열리는디. 아, 이런 엉뚱헌 소리를 해 놓으니, 그러면 "아니요!" 그 내가 해석해 줄 것이여? 그래 못혀.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않고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면은 그 설파(說破)가 내가 그 '달다'만 일러 놨제, '달다'는 놈을 설파했는가? 내가 또 그 '달다'는 놈...

 

그 보월 스님 그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에 내가, 탐간(探竿)으로 턱 해 준 것 속지 않고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 속을, 학자를 진흙 속에다 몰아, 진흙 흙탕에다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조실 방문을 닫쳐도 보통 닫친 것이 아니라 탁! 그냥 역부러 그만 탁! 한번, 그 기운이 있으니까, 탁! 치고는 탁마헐 곳이 있으니까, 만공 큰스님이 있으니까 얼마나 미더워지고, 참, 얼마나 가는 걸음이 쾌활스럴 것인가?

 

그때 처음 지견이 나 가지고는 팍! 보이는 것이 마조원상(馬祖圓相) 입야불입야에 가서 하나도 걸림이 없이 다 보았는데.

그러면 마조원상 법문만 보아 가지고는—그때 학자가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하니, 원상 안에 쑥 들어갔거든. 마조 스님은 탁! 쳤다 그말이여. 허니까,

"모갑(某甲)을 치지 못했습니다"헌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거든. 양구(良久)도 아니고 휴거여. '쉴 휴(休)'자, '갈 거(去)'자여. 휴거(休去)여. 기가 맥혀! 그런 것을 못 보는 것이여.

 

처음에 하나 답허면 그놈 답했다고 '옳다' 그래 주어? 그것 되아?

인가(印可)가 그려? 그러면 그 썩은 놈의 인가여.

 

그때 가서, 그 법로(法路)가 끊어지고 이로(理路)가 끊어지고, 거 이치 길, 법로 없는 곳을 바로 봐야 혀.

각견(覺見) · 지견(知見)에 떨어져서 이로(理路)에 떨어져서 어로(語路)에 처백히면 그것 되아?

 

가서 만공 스님한테 가서 말씀허니까, 주장자를 척 내주어. 그게 결론이여!

"입야타불입야타, 해라!" 입야타불입... 그리고 그리고 "입야타불입야타!"허제.

 

거그서! 뭐... '이-'가 무엇이여? '이-'혀?

'그런것인가'허고 일러? '이러면 옳다'허고 일러?

 

거 뭔, 뭐 이른 줄도 몰라. 옆에 앉었어도 모르는 법이여.

 

벌써 만공 큰스님은 주장자 내밀면서 "자네가 묻게"헐 때, 초안이를 보고 묻게 헐 때 발써 점검 다 해 버린 것이여. 그래 무섭다는 것이여.

그 그렇게 척 해 놓으니, 그렇게 해 놓았지마는 그 공안에서 그렇게 끝났고, 십이 문답에 가서 내가 척! —주욱 한암 스님, 만공 스님 그 다 한 그 문답을 십이 문답이라 햐.

 

답허고 또 답허고, 답허고 또 답허고, 번복을 이렇게 허다가 끝에 가서 백지(白紙), 네모진 백지 저 한쪽 귀텡이에다가 원상(圓相)을 그려 놨어.

백지, 네모진 놈에다가 한쪽 귀텡이에다가 원상을 그려 논 것을 그걸 원상으로, 마조(馬祖)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허는 그 원상으로 보아서는 틀려! 같은 원상이라도 천지 차(天地差)가 있어.

 

십이 문답을 가려낸 뒤에사, 인가허거나 말거나 나는 쾌활스럽게 답허고 어디 맥힘이 없이 답했으니까.

내 학자들인디 나를 믿고 다 온 내 학자들한테 숨기고 내가 나투어 낼 것이 무엇이 있나?

답했으면 '했다'하고, 내가 그때 옳게 견성을 했든지 그르게 공안을 보았든지, 본 건 '보았다'하고 헌 건 '했다'하제, 내가 '안 했다'햐? 원 거가서 거짓말이 있으리오.

 

 

아, 경봉 스님이 그렇게, 그때 경봉 스님 견성해 가지고는 경계가 뒤집어져서 법광(法狂)이 났단 말은 다 알고 있는데, 그 내가 거짓말 그것도 했어?

 

내가 빌어먹고 금당에 들어가 얻어먹고 들어가다가 짚부채 놓고 앉었는디, 거그 추산 스님, 이름은 내가, 추산 스님인가? 하여간 추산 스님 겉은디, 입승(立繩)으로 있는 노장이 나를 두 번이나 와서, 세 번이나 와서 하도 간청을 해서 키껴 들어가니까,

보광선원에서 이렇게 앉어서 눈이 벌게 가지고 앉어서 법광(法狂)이 나 가지고 식광(識狂)이 나가지고 계실 때인디, 내가 척 들어가서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허니까, 원상을 뭉케서 아, 내가 "그 자리에 쓸어 묻으라"고 고함을 질르고는.

 

아, 그래 한참 앉었다 "옳다! 내가 알았다!" 그래서, 대중은 물러가라 하고는 딱 그 어른을 내가 서로 같이 그 물 흐르는 디를 가서, 아, 답을 해서 아, 그 답을 처억 해서 “허허! 어떠 허시요?”

점두(點頭)허고 내려오신 뒤에는 그만 그 경계 싹 가라앉고 그때부텀은 일체 없고, 똑! 선원에 가만히 앉어서 정진만 일생을 해 나와서, 그 경계를 찬(讚)에는 더 못 찬허고.

 

그다음에 내가, 그 나는 인자 오장치 벗어 버리고 짚부채 놓아 버리고 빌어먹든 그 경계 치워 번지고, 아, 내가 대구 교당에 와서 포교사로 있으니까,

아, 당신이 그 최설암 스님 밑에 감원(監院)을 보다가 청첩장(請牒狀)을 가지고 와서 내가 들어가서 보광전 조실(祖室)에 있다가 아, 조실에 한철 산림을 못허고는—그 젊은 때인디, 나이 그때 신미년이여. 서른세 살 먹었을 때인디, 아, 서른세 살 먹어 조실(祖室)헌 사람이 누가 있냐 그말이여?

 

아, 그런데 그때에 최상근이가 대월이여. 대월이 내 밑에 있었고, 아, 그때 인자, 요새는 참, 별로 없구마는, 그 모두 지낸 사람들이 여그저그 있었는데.

그놈 이름이 무엇인고? 그때 지낸 놈이 시방 살아 있는데.

 

아, 내가 그렇게 했는데, 법문... 해제 대중법문 헐 때 했더니, 그 법문을 보시고는 영 거부를, 부인을 해버리고 거짓말 했다고 그러길래, 또 하나 냈제. 허거나 말거나 또 하나 냈제.

극존극대(極尊極待)를 내서 나는 해 놨더니, '내가 언제 그때에 원상을 뭉케야?'고, '내가 부채로 밀었다'고 해야, 뭐라고 허디야.

그래 놓고는 아, 나를 거짓말헌다고. 제방(諸方)에서 그래도 조실 종사(宗師)로 있으면서 그런 말을 거짓말허냐고.

 

나는 그 거짓말이라고, 거짓말했다 안 했다 변명 발명도 없고, 또 헐 법문 그대로 내놨제.

그랬더니 그 반박 신문을 냈드구만. '나는 그러헌 일이 없었는디 그런 일이 있다'고. '이 모도 거짓말을 해서 위조해서 했다'고 이렇게 했드구만.

 

내가 거짓말했자 위조했자 뭐 내가 뭐 뭐 무슨 거짓말 위조를 했냐 그말이여.

또 거짓말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내가 또 그 변명헐 것이 있어야제. 뭔 변명을 혀? 내비두어 버렸제.

 

원, 세상에 그때 그렇게 헌 법문이래야 조리도 있고, 내가 나이 어릴 때고 당신은 나이 나보담 한 칠팔 년 존장(尊長)이니까 그렇다 하지마는, 그 어디 나이가 있는가? 나이란 게 어디 있어?

 

오조 스님 회상에는 구봉이 나이 그 어릴 때지마는, 입승을 막 갖다가서는 어쨌냔 말이여?

"스님! 선사(先師)의 도리는 보지 못했소. 스님이 석상(石霜) 스님 대(代)를 못 잇습니다" 그 나서서 헌 것 보란 말이여. 법문 서로 탁마허는 디 가서 무슨 노소(老少)가 있냔 말이다.

요까짓 놈의 몸뚱이는 응, 한 살 두 살 무슨 연조가 무엇이 있지마는, 법에 가서야 무슨 연조가 있나? 한 살 먹어 깨달랐으면은 뭔 그 무슨 한 살 먹었으니까 법을 안 배와? 그런 법이 있어?

 

아, 기껏 나는 탁마허고 나와서, "우리나라에는 경봉 스님 밖에는 지금 학자라도 데리고 가리킬 이가 없으시다"하고는 여그서 내가 그렇게 내가 통 대중께 말을 했고,

그때 그렇게 해서 내가 가서—당신이 청첩장 가지고 와서, 조실(祖室)에 있을 때에....

 

아, 당최 고기가 먹고 싶어서 당최, 고기도 얻어먹고 댕기다가 교당에 있다가, 교당에 있닥 하니까 약으로는 허락했으니—몸이 그렇게 수척했으니, 그 무슨 고기 제일 그래도 약보담도 식보(食補)를 해야 헌다고 허면서...

 

그 지금 고불심은 살아 있구만. 그 고불심(古佛心)이 대구 있을 때에 내가 가서 그 포교사가 되아 있고, 고불심도 나허고 동갑(同甲)인디, 시방 김천 직지사 있다 그말이여.

아, 그렇게 있을 땐디—갖다 조실에 앉혀 놓으니, 그 견성했다고 알았다고 왼통 동서남북을 그렇게 이 집 저 집 댕기면서 가거(假居)를 허고 이렇게 지내다가 잠깐 들어와서 옷 벗고 가만 어쩌다가 그저 그...

 

그것도, 그거 그놈만 따서 그 뭔 얘기해 놓은 거 있지마는, 순서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여. 지금 순서가 어떻게 된지도 모르지마는,

오장치를 막 벗어 번지고는 뽀이질로 들어갔다 그말이여. 뽀이질로 들어가서... 합천 해인사에서 그래 설해 놓은 거 다 있제.

뽀이질을 허는데, 한용운(박한영) 스님, 최남선씨 둘이 한국 문장이니까... 거그를 구경 왔어.

 

머리는 안 깎았은게 이만큼 길으니, 요새 현대의 모도 학생들도 요까장 길러 가지고 댕기드구만.

나는 여지없이 길러 가지고 여까장 내려온 놈, 감투나 아니거나 이렇게 쓰고 머리가 앞으로 나와싼게 써서 끈을 달아 여다 짬매고, 짚으로 부채 맨들아서 들고, 오장치 지고 이러고 댕겼으니깐 말헐 것이 있나 그말이여.

 

그러다가 그놈을 벗어번지고는 홍도여관에 들어가서 그 머리 그대로 두고는 탯머리 하나 쨈매고, 그러고는 옷을 뭐 아무 때나 인자 그때 가서는 그 양복이니, 떨어진 옷이니, 누데기니 그런 것도 입지 않고... 그러고 있는데, 아! 최남선 씨, 뜻밖에 박한영 스님이 왔다 그말이여.(40분47초~56분17초)

 

*전강선사 일대기 제 18-2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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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惡衣甘守節 岩谷好藏身'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일선자(一禪子)' 참고.

*분(分 직분·신분·분수 분)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限度 일정한 정도. 또는 한정된 정도). 분수(分數).

*족하다(足-- 충족하다·가득 참 족)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지분단장(脂粉丹粧 입술 연지 지/가루·안료 분/붉을 단/단장할 장) ; ①연지(臙脂 입술이나 뺨에 바르거나 찍는 붉은 빛깔의 염료)와 백분(白粉)으로 곱게 꾸밈[丹粧]. ②연지(臙脂)와 분대(粉黛 분과 눈썹먹)로 단장하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외씨버선 ; 오이씨처럼 볼이 조금 가늘고 긴 듯하여 맵시가 있는 버선(천으로 발 모양처럼 만들어 양말처럼 맨발에 신는 것).

*옥양목(玉洋木) ;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솜을 자아 만든 실인 무명실로 짠 천). 빛이 희고 얇다.

*생목(-木) ; 당목(唐木). 서양목. 두가닥 이상의 가는 실을 되게 한 가닥으로 꼰 무명실로 나비가 넓고 발이 곱게 짠 천. 광목(廣木 : 무명실로 서양목처럼 너비가 넓게 짠 베)보다 실이 가늘고 하얗다.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헌(軒 집·추녀·처마·창 헌) ; 집.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법맥(法脈)을 전해 준 스승. ②불법(佛法)을 정통(精通 깊고 자세하게 앎)하고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불법을 강설하는 이.

*30본산(三十本山) ;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병합 조약) 직후에 시작된 조선총독부는 1911년 6월 3일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공포하고 시행하여 그동안 독립적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조선의 불교 사찰을 30개의 본산, 중심 사찰을 선정해 한 지역의 다른 사찰을 관할하게 한 제도.

30본산의 주지는 조선총독이, 말사(末寺)의 주지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서 임명하도록 하였다. 1924년 11월에 화엄사가 본산으로 되어 31본산(三十一本山)이 되었다.

*체탈도첩(褫奪度牒 빼앗다·옷을 벗기다 체/빼앗을 탈/승려가 되다 도/명부·증서 첩) ; 스님의 자격을 박탈하고 교단으로부터 축출하는 것. 산문출송(山門黜送).

*산문출송(山門黜送 뫼 산/문 문/내칠 출/보내다·쫓아버리다 송) ; 스님네로서 큰 죄를 지은 이에게 승권(僧權)을 빼앗고, 절에서 내쫓는 제도. 일정(日政)시대의 사법(寺法)에는 '체탈도첩(褫奪度牒)'이라 하고, 속어에는 '명색(名色)을 뗀다'고 한다.

그 방법은 대중회의를 열고, 승단에서 쫓아내기로 결정되면 의발(衣鉢)을 빼앗고, 도첩을 거두고, 속복(俗服)을 입혀서 산문 밖으로 쫓아낸다. 혹은 대중회의 대신에 사승(師僧)의 권한으로 실행하기도 함.

*엄연하다(儼然-- 의젓하고 점잖다근엄하다 엄/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 연) ; (사람이나 그 언행이) 엄숙하고 점잖다.

*회과자책(悔過自責 뉘우칠 회/허물·잘못 과/스스로 자/꾸짖을 책) ; 허물을 뉘우쳐[悔過] 스스로[自] 책망(責望 잘못을 나무라거나 꾸짖으며 못마땅하게 여김)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당래교주(當來敎主) ; 장래의 교주(敎主),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용화교주(龍華敎主) ; 당래용화교주(當來龍華敎主),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에서 중생을 제도할 교주,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 자기가 자칭하는 이름은 계차(契此)였다. 체구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불룩하고, 말이 일정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에 베자루 하나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다 넣었다. 저자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혹 사람들에게 무엇을 달라 했다가 돈을 주면 돌려 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

미륵 부처님, 참 미륵 부처님이 분신(分身)해서 천백억 부처님이 되었다.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되,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아지를 못하는구나.

 

게송을 마치고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그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포대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참고] 『전등록 3』(제27권) (동국역경원 | 김월운 옮김) p459-463 참고.

*부대사(傅大士) ; (497 - 569) 남조(南朝) 양(梁)나라 스님. 동양(東陽 : 浙江省) 오상(烏傷 : 義烏) 출신. 이름은 흡(翕). 자는 현풍(玄風). 호는 선혜(善慧). 선혜대사 · 쌍림대사(雙林大士) · 어행대사(魚行大士) · 동양대사(東陽大士) · 오상거사(烏傷居士) 등 많은 호를 가지고 있다.

 

16세에 유묘광(劉妙光)과 결혼하여 보건(普建) · 보성(普成), 두 아들을 낳았다. 24세에 기수(沂水)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인도의 숭두타(嵩頭陀 : 達摩)를 만나 마침내 어구(魚具)를 버리고 오상현(烏傷縣) 송산(松山)의 쌍도수(雙檮樹) 밑에서 암자를 짓고 스스로 '쌍림수하당래해탈선혜대사(雙林樹下當來解脫善慧大士 : 쌍림수 밑에서 장차 해탈할 선혜대사)'라는 호를 붙이고 자신이 도솔천(兜率天)의 미륵궁전으로부터 와서 설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암자로 돌아와 좌선을 하며 7년을 고행한 끝에 스스로 수능엄정(首楞嚴定)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가와 도가의 전적에도 능통하여 점차로 배우고자 몰려드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들 모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진하였다.

 

534년(양 대통6) 제자 부담(傅暀)을 시켜서 양무제(梁武帝)에게 상중하(上中下) 3선(善)의 정책에 관한 내용의 서신을 올렸다. 그해 윤 12월에 무제의 초청으로 궁궐에 들어가 중운전(重雲殿)에서 경전을 강의하였다.

539년(대동5) 종산(鍾山)으로 가서 3월 16일 수광전(壽光殿)에서 무제와 더불어 진제(眞諦)에 관하여 문답을 주고받은 다음 게송을 바쳤다. 540년(대동6) 송산의 쌍도수 사이에 불전(佛殿) · 구층전탑(九重塼塔)을 짓고 그곳에서 경 · 율 천여 권을 서사(書寫)했으니 이것이 곧 쌍림사(雙林寺)이다.

544년(대동10) 집과 전답을 희사하여 대시회(大施會)를 베풀었다. 548년(태청2) 자신의 몸을 불살라 삼보를 공양하고자 했으나 제자들이 간곡히 만류하면서 19명의 제자가 대신 분신하겠다고 하자 그만두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전쟁에서 패하여 양나라는 멸망했다.

 

대장경 독송을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윤장대(輪藏臺)를 건립함으로써 대중들이 그것을 돌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후세에 만들어진 윤장대에는 모두 부자(父子) 3인의 형상을 안치했음.

569년(진나라 태건1) 4월 24일에 대중을 불러 놓고 "이 몸은 극히 더러운 것이니 뭇 고통이 모인 바이니, 모름지기 3업을 삼가고 6바라밀을 부지런히 닦아라. 만일 지옥에 떨어지면 끝내 벗어날 수 없으니 항상 참회하라" "나는 넷째 하늘(도솔천)에서 왔는데, 그대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석가의 다음 보처(補處)가 되었다" 등의 말을 마치고, 결가부좌한 채 세수 73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쌍림산 정상에 묻고 미륵하생(彌勒下生)이라는 호를 붙였다. [참고] 『전등록(傳燈錄)』 제27권 '선혜대사(善慧大士)'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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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제칠식(第七識) ; 말나식(末那識).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意)라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백정식(白淨識) ; 9식설(九識說)에서 제8아뢰야식을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보아 수행을 통하여 모든 번뇌가 사라져 아뢰야식을 부수어 버리면 나타나는 영원하고 한결같고 그릇됨이 없는 진여의 경지. 제9 아마라식(阿摩羅識), 무구식(無垢識)이라고도 한다.

*근본무명(根本無明) ; 모든 번뇌(煩惱)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깨닫지 못하고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리킨다. 곧 진여(眞如)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한 생각으로 가장 미세하게 움직이는 마음이며, 생사윤회의 근본이 된다.

지말무명(枝末無明)의 상대어. 무시무명(無始無明), 근본혹(根本惑), 근본불각(根本不覺), 근본번뇌(根本煩惱), 원품무명(元品無明) 등과 같은 뜻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원증회고(怨憎會苦 원망할 원/미울 증/만날 회/쓰다·괴롭다 고) ; 팔고(八苦)의 하나. 원한이 있거나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서 생기는 괴로움. 비애회고(非愛會苦) · 원증오고(怨憎惡苦)라고도 한다.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八]의 괴로움[苦].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 일체를 공(空)이라 하여 부정했을 때, 갖가지 사물은 그대로 긍정되어 묘유(妙有)라고 하는 것. 또 진리 내지는 진여(眞如)가 일체의 망상을 떠나 증가하지도 줄지도 않는, 집착을 떠난 모습을 진공(眞空)이라 칭하며, 상주불변(常住不變)하고 더욱이 현실을 성립시키는 진실의 유(有)인 점을 묘유(妙有)라 함. 본래, 진실의 공은 묘한 현실의 생성, 전개가 되는 것임을 말한 것.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누진(漏盡) ; 번뇌[漏]가 다하다[盡]. 누진이란 모든 번뇌가 영구히 다한 것이다. 무루(無漏) · 진루(盡漏)라고도 한다.

누(漏 : 산스크리트어 āsrava)는 번뇌(煩惱 :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동의어로 누주(漏注) · 누설(漏泄) · 누실(漏失) 등으로도 한역한다. 일반적으로 번뇌로 말미암아 중생의 6근으로부터 항상 과실(過失 결점. 과오. 허물)이 흘러 나온다는 뜻에서 번뇌를 누(漏)라고 한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大智度共摩訶比丘僧釋論第六’

三界中 三種漏 已盡無餘 故言漏盡也

 

삼계 안에서 세 가지 번뇌[三種漏]가 이미 다 없어져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으므로 누진이라 한다.

*삼종루(三種漏) ; 삼계(三界,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번뇌를 세 가지로 나눈 것. 욕루(欲漏 : 無明을 제외한 欲界의 모든 번뇌) · 유루(有漏 : 無明을 제외한 色界와 無色界의 일체 번뇌) · 무명루(無明漏 : 三界의 無明) 등 세 가지 유루법을 말한다.

*수기(授記) ;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만공 큰스님한테 십이 문답을 그날 밤에 탁! 가려내고~' ; 만공 · 한암 스님 서신문답[십대문답].

만공 :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이로구나.(漢岩到金剛雪上加霜) 지장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업이 얼마나 되느냐?(地藏道場內有業鏡臺業多少麽)

한암 : 묻기 전에 삼십방을 놨느니라.(故問此問以前合喫三十棒)

 

만공 : 방맹이를 씹힌 뒤에는 어떻게 할테냐?(喫後如何)

한암 : 잣서리 때가 좋으니 잣서리허러 올라오십시오.(此時好時節速來)

 

만공 : 암두(巖頭) 잣서리 때는 원하지마는 덕산(德山) 잣서리 때는 원치 않는다.

한암 : 암두와 덕산 이름은 알았다마는 성(姓)이 무어냐?

 

만공 : 도둑놈이 삼천리 밖에 지나갔는디(賊過後三千里), 문전행인(門前行人)의 성 물어 뭣할테냐?

한암 : 금선대에 보배관이여, 금과 옥으로 가히 비유할 수가 없구나.(金仙臺裏寶花冠金玉難可比)

 

만공 스님께서 백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가지고 네 귀퉁이 중 한 귀퉁이에 원상 하나 그려 보냈습니다.

*만공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 아래 금선대에 계시고, 한암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계실 때의 서신문답.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탐간 영초(探竿影草) : 어부가 고기를 잡을 때에는, 먼저 물이 깊고 얕음을 알아보기 위하여 막대기를 사용하는 것이고,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가려 할 때에, 먼저 불 꺼진 방 안에 주인이 잠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풀묶음을 달빛에 흔들어서 그 창문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도인들도 법을 문답할 때에 상대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써 시험하게 된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원앙수출(鴛鴦繡出)에 속은 법이 없어. 금침(金針) 있는 곳을 안다' ; 원앙수출종교간(鴛鴦繡出從敎看) 원앙새 수놓은 것은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거니와, 불파금침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 수놓은 그 금바늘은 그대에게 건네줄 수가 없노라.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진리의 차원에서는 말이 있을 수 없지만, 자신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감수하고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명(明)의 원극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36권 및 목록 3권. 1635년(숭정8)~1636년(숭정9) 간행.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서 6조 혜능(慧能) 문하 제10세 수산성념(首山省念)의 제자 분양선소(汾陽善昭)부터 제20세 영은숭악(靈隱崇嶽)의 제자에 이르는 법계를 수록하였다. 모두 1,203인에 대하여 기어(機語)를 중심으로 수록하였고 사적(事蹟)은 상대적으로 비중을 줄였다. 법명만 수록된 이들까지 포함하면 모두 3,110인에 대한 기록이다.

편집 · 수정되는 과정에서 『오등회원(五燈會元)』 · 『불조혜명(佛祖慧命)』 ·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 · 『선문종파도(禪門宗派圖)』를 비롯하여 여러 조사들의 어록 등에서 자료를 채록하였다.

*문강(問講) ; 조선 중기 이후 불교전문강원에서 행해진 간경(看經) 제도와 관련된 용어. 학인(學人)들이 논강(論講)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강주 스님 앞에 가서 묻는 것을 문강이라 하는데, 추첨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행할 사람으로 뽑힌 자를 또한 문강이라고 한다.

*(게송) '노로조계전제수(盧曹溪傳諸受)~'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백운암가(白雲巖歌)'(32구) 중에서. [원문] 傳至曹溪盧老手 又道本來無一物 可笑古今天下人 不惜眉毛行棒喝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 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 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누(累 괴롭힐·근심 루) ; 재난. 속박. 번뇌.

*낙처(落處) ; 안정된 곳. 결국의 장소. 귀착점(歸着點 최종적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결론). 요지(要旨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1,701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진공(眞空) ; ①아트만(산스크리트어 ātman)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②소승불교에서 설하는 열반을 가리켜 말함. 허위가 아니므로 진(眞)이라 하며, 일체의 상(相 : 특성)을 떠나 있는 까닭에 공(空)이라 함. ③유가 아닌 유인 묘유(妙有)에 대하여 공이 아닌 공을 말함. 이것이 대승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임. 진실의 공.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참고]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 (3분 57초)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파설(破說) ; 설파(說破).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달다 ;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의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달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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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 석취미모(惜取眉毛).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면 미모(眉毛, 눈썹)가 빠진다는 뜻으로 요설(饒舌)을 경계한 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 ; ‘온종일 남의 보배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다’

[참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강설』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 무비 스님 강설 | 담앤북스)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p220~230 참고.

爾時 文殊師利菩薩 問法首菩薩言 佛子 如佛所說 若有衆生 受持正法 悉能除斷一切煩惱 何故 復有受持正法 而不斷者 隨貪瞋癡 隨慢 隨覆 隨忿 隨恨 隨嫉 隨慳 隨誑 隨諂 勢力所轉 無有離心 能受持法 何故 復於心行之內 起諸煩惱

 

그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법수보살에게 물었습니다.

“불자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중생이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면 다 능히 일체 번뇌를 끊어 제거한다 하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도 끊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고, 아만을 따르고, 감춤을 따르고, 분심(忿心)을 따르고, 한(恨)을 따르고, 질투를 따르고, 인색함을 따르고, 속임을 따르고, 아첨을 따르는 세력의 구르는 바가 되어 떠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능히 바른 법을 받아 지닐진댄 무슨 까닭으로 다시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모든 번뇌를 일으킵니까?”

 

時 法首菩薩 以頌答曰 佛子善諦聽 所問如實義 非但以多聞 能入如來法

그때에 법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습니다. 불자여, 잘 들으소서. 물은 것이 사실과 같으니 다만 많이 듣는 것으로는 능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如人水所漂 懼溺而渴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면서 빠질까 두려워 목말라 죽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設美饍 自餓而不食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좋은 음식을 늘어놓고도 스스로 주리면서 먹지 않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善方藥 自疾不能救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약방문을 잘 알면서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하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有生王宮 而受餒與寒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왕궁에 태어난 사람이 배고프고 추위에 떨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聾奏音樂 悅彼不自聞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귀머거리가 음악을 연주하되 남은 기쁘게 하나 자신은 못 듣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盲繢衆像 示彼不自見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눈먼 이가 온갖 형상을 수놓되 남에게는 보이면서 자신은 못 보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譬如海船師 而於海中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비유하건대 바다의 뱃사공이 바다에서 죽는 것과 같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如在四衢道 廣說衆好事 內自無實德 不行亦如是

마치 네거리 길에서 온갖 좋은 일을 널리 말하되 자신에게는 실다운 덕이 없듯이, 행하지 아니하면 또한 이와 같도다.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력(履歷 밟을·행할·겪을 이/지낼 력) ; ①지금까지 거쳐[履]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來歷). ②어떤 일을 오랫동안 또는 여러 번 겪으면서 몸에 배게 된 태도나 버릇. ③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참고 ⑤] 전등록(傳燈錄)』 제11권.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p718~720.

鄧州香嚴智閑禪師靑州人也 厭俗辭親觀方慕道 依潙山禪會 祐和尙知其法器 欲激發智光 一日謂之曰 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 本分事試道一句來 吾要記汝

 

등주 향엄지한 선사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潙山)의 선회(禪會)에 의지했다. 영우(靈祐) 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一句]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

 

師懵然無對 沈吟久之 進數語陳其所解 祐皆不許 師曰 却請和尙爲說 祐曰 吾說得是吾之見解 於汝眼目何有益乎 師遂歸堂 遍檢所集諸方語句無一言可將酬對 乃自歡曰 畵餠不可充飢 於是盡焚之曰 此生不學佛法也 且作箇長行粥飯僧兔役心神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沈吟)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諸方)의 어구(語句)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心神)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遂泣辭潙山而去 抵南陽覩忠國師遺迹遂憩止焉 一日因山中芟除草木 以瓦礫擊竹作聲 俄失笑間廓然惺悟 遽歸沐浴焚香遙禮潙山 賛云 和尙大悲恩逾父母 當時若爲我說却 何有今日事也 仍述一偈云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이르러 혜충국사(慧忠國師)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지었다.

 

한 번 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조해 하는 근기에 떨어지지 않네.

곳곳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통달한 자들이 모두 상상기(上上機)라 말하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80-181) (가로판 p171~172)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참고 ⑦]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에서.

학자(學者)에게, 참선(參禪)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일어나기가 틀린 것입니다.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57분59초~59분25초)

 

*각견(覺見) ; 깨달음[覺]에 집착하는 견해.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깨달음[覺]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청첩장(請牒狀)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존장(尊長) ; 일가친척이 아닌 사람으로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음. 또는 그런 사람.

*'구봉이 나이 그 어릴 때지마는, 입승을 막 갖다가서는 어쨌냔 말이여? "스님! 선사(先師)의 도리는 보지 못했소. 스님이 석상(石霜) 스님 대(代)를 못 잇습니다" 그 나서서 헌 것 보란 말이여' ; 구봉불긍(九峰不肯) 또는 구봉시자(九峰侍者). 석상경저(石霜慶諸 807~888)의 입적 후에 대중이 큰방의 수좌(首座)를 주지 자리에 잇게 하려는 것에 대해, 이것을 승낙하지 않았던 구봉도건(九峯道虔 ?~921)의 기용(機用)을 보인 공안.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2권 제932칙 '휴거(休去)' (혜심·각운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61~62. 『종용록(從容錄)』 제96칙 '구봉불긍(九峰不肯)‘ (천동정각 송고頌古, 만송행수 평창評唱 | 석지현 역주·해설 | 민족사) p359~360.

筠州九峯道虔禪師 在石霜爲侍者 霜遷化後 衆欲請堂中首座 接續住持 師不肯乃云 待某甲問過 若會先師意 如先師侍奉

 

균주 구봉도건(九峯道虔) 선사가 석상경저(石霜慶諸)의 시자로 있었다. 석상이 입적하자 대중들은 큰방의 수좌(首座)를 청해서 주지 자리를 잇게 하려고 하였다. 구봉[師]은 수긍하지 않고 말하였다. "제가 물어 보기까지 기다리십시오. 만일 선사(先師, 석상)의 뜻을 알면 선사(先師)께 했던 대로 시봉할 것입니다"

 

遂問 先師道 休去歇去 一念萬年去 寒灰枯木去 一條白練去 且道 明什麼邊事 座云 明一色邊事 師云 恁麼則未會先師意在

 

그리고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쉬어라 푹 쉬어라[休去歇去]. 한 생각이 만년 가게 하라[一念萬年去]. 식은 재와 마른나무 같게 하라[寒灰枯木去]. 한 필 흰 옷감 같게 하라[一條白練去]' 하셨는데, 일러 보십시오. 무슨 변(邊)의 일(도리)을 밝힌 것입니까?"

수좌가 말하였다. "일색변사(一色邊事)를 밝힌 것이다"

구봉[師]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사(先師)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座云 你不肯我耶 裝香來 座乃焚香云 我若不會先師意 香煙起處脫去不得 及至香煙 才起便坐脫 師乃撫其背云 坐脫立亡則不無 先師意未夢見在

 

수좌가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가? 향을 준비하라"

수좌가 향을 사루면서 말하였다. "내가 만일 선사(先師)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일어나는 곳에서 몸을 벗지 못할 것이다" 향 연기가 일어나자 이내 앉은 채로 몸을 벗어 버렸다.

구봉[師]이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은 없지 않으나, 선사(先師)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변(邊) ; 유 · 공(有空), 고 · 락(苦樂), 단 · 상(斷常) 등의 이변(二邊). 이변 중 어느 한 변 또는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색변(一色邊) ; 일색(一色)은 곧 순일절대(純一絶對)의 뜻이니, 차별 상대의 모습을 뛰어넘은 평등절대의 경지, 순일한 청정의 경지를 말한다. 중생과 부처가 일체인 곳.

그러나 선(禪)에서는 이 절대청정 향상의 일색변(一色邊)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식보(食補 밥·음식·먹다 식/돕다·개선하다·보태다·채우다 보) ; 좋은 음식(飮食)을 먹어 원기를 보충(補充)함.

*가거(假居) ; 임시로 거처함. 또는 그런 곳.

*뽀이(boy) ;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남자.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