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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5 §(264)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 -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허라, 좌선 시간.
  2. 2013.11.24 §(264) 참선의 공덕(功德), 참선의 효과, ‘참선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3. 2013.11.23 §(264) (게송) ‘만산홍록개묘체~’ / 참선의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것’
  4. 2013.11.22 §(024)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 /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은?
  5. 2013.11.20 §(140)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의 오종선(五種禪).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6. 2013.11.20 육조혜능(六祖慧能), 남악회양(南嶽懷讓), 하택신회(荷澤神會), 임제의현(臨濟義玄), 규봉종밀(圭峰宗密)
  7. 2013.11.19 §(140) (게송)야래풍우객문선~ / 불법(佛法)은 나의 문제 / 생활속에서 한 생각 단속이 득력 / 한 생각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본참화두를 들어야.
  8. 2013.11.18 §(099) 상(相)에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상(相)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안 떨어져.
  9. 2013.11.15 §(099) (게송) 인생행락처 소비광음최 춘풍유가석 취락만정화
  10. 2013.11.07 §(458) (게송) 세로다위험 산문진적요~ / 학인무타술 직사대사인~ / 참선학자는, 만공스님 말씀에 ‘썩은 나무둥치가 되라’
참선(자세 호흡)2013. 11. 25. 11:42

§(264)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 -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좌선 시간.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에서.

약 20분.

 

법회 때마다 오셔서 ‘참선은 좋다. 이뭣고?를 해라’ 이런 말씀을 수없이 귀에 들었지만, 실상 이 가운데에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고 계신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되시며,

참선이라고 헌 것에 대해서 얼마만큼 확실하게 이해를 하시고, 또 ‘이뭣고?’를 어떻게 해야 하며, 단전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하시고 실천하고 계신 분은 정말 그렇게 많지 못하시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자세>

참선(參禪)은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는 것은 이것이 참선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또는 시간이 있는 대로 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항상 익혀서 습관을 들이도록. 처음에는 발목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그렇지만 그러한 고비를 참고 견디면서 꾸준히 하면 나중에는 한 시간을 까닥하지 않고 앉았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두 시간 내지 서너 시간씩을 앉았어도 다리가 저린 법이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오랫동안 앉었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앉었거나 섰거나 상관없이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 덩어리가 우리의 단전(丹田)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잘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부좌나 반가부좌는 참선의 기본자세인 만큼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서서도 헐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헐 수 있고,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차를 타거나 일을 하면서도 헐 수가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어데서, 언제, 무엇을 허고 있을 때라도 이 공부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을 때처럼 똑같이 잘되도록 우리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은 그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이 순서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기본자세는 바로 이 가부좌, 반가부좌인 것입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다 올려놓고, 또 왼발을 오른쪽 무릎에다 올려서 이렇게... 다리를 이렇게 해서 딱 앉고.

그리고 손은 오른손 위에다가 왼손을 포개 놓고,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딱 맞대서,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배꼽 앞에 아랫배 있는 데다 갖다가 딱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따악 이렇게 중심이 잡히도록 해 놓고서,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이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갖다 딱 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선하는데의 기본자세입니다.

눈을 너무 뚝 부릅뜨면 산란(散亂)하고, 눈을 너무 감으면은 혼침(昏沈)에 떨어지기 쉽고, 또 눈을 감고 하면은 처음에는 좀 밖의 경계가 보이질 아니하니까 잠잠하고 조용하고 공부가 더 잘된 것 같이 느껴지지만.

눈을 감고 참선을 해 버릇하면 나중에 이상한 헛것, 환상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이 망상(妄想)이 가라앉아서 심경(心境)이 고요해지면 그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에 떨어지기가 쉽기 때문에 참선허는데 있어서 눈을 감고 익히지를 말고 눈을 항상 평상으로 떠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2미터나 3미터 정도에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凝視)허거나 주시(注視)를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2미터나 3미터 지점에다가 콩 같은 것을 하나 갖다 놓고 그것을 갖다가 응시하는,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 해서, 서양 사람이 참선을 소개하는 책을 보니까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써진 것을 내가 본 일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유치원 학생들에게는 혹 그 콩을 놓고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지 말고, 그 콩을 한 30분 꼼짝 말고 들여다보고 있어라’ 이렇게 해서 유치원 학생에게 참선을 시킬 때는 혹 그런 방법을 써볼 수도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른들은 그렇게 허시지 말고 그냥 눈을 평상(平常)으로 뜨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하지는 말고, 다맛 눈을 2미터 지점에다가 떨구기만 허되 의식적으로 어떤 점을 응시(凝視)를 허지 말아라.

 

 

<준비 호흡>

그렇게 하고서 숨을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들어마시되, 가슴에 가뜩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해 보세요.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서 입으로 '후~'허고 다 내뿜어 보세요. 그러면 가슴이 미어질 듯 (숨이) 가득했던 가슴이 인제 더이상 바람이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다 토해 내는 것입니다.

다 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르 허니 또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또 가슴을 약간 들은 듯 허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다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입으로 후~ 허고 내뿜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허고 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저 가슴속에 구석구석 있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고, 새 공기가 가슴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에 들어가는, 단전호흡에 들어가는 ‘준비 호흡’이라 하는 것입니다.

 

 

<본 호흡>

 ①방법 -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렇게 준비 호흡이 3번이 끝났으면 그다음에는 인자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본 호흡은 아까처럼 빨리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잔뜩 들어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스르르르르르 허니 코로 들어마셔요.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이 볼록해지도록 허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이 들어마신 공기가 가슴을 통하고 윗배를 통해서 아랫배까지 이렇게 해서 밀어넣는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왜 큰일이 나느냐? 아무리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보낼라고 해도, 이 가슴까지 밖에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왜 그러냐?

허파가 가슴에만 있고 허파 밑에는 횡경막 가로막이 있어 가지고, 그 가로막 밑에까지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는데, 그놈을 억지고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넣을라고 하니까 이 가슴에 콱 맥혀 가지고. 처음에 한두 번은 괜찮은데 10번, 20번, 하루, 이틀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 오목가슴 눌러보면 아프고 답답하고 뻐근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이 좋다 좋다해서 단전호흡 허다가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답답한 병이 생겨서 고민을 허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그렇게 허기를 3번을 허되,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들어마신 호흡이 이리해서 아랫배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생각을 아니하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 아랫배가 앞으로 이렇게 나오도록 그렇게 생각을, 의식을 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뿜을 때도 이리해서 코로 이리 내보낸다’ 이렇게 생각허지 말고,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호흡을 허는 것입니다.

 

숨을 들어마실 때는 가슴은 그냥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허게 맨들면 되아요, 의식적으로.

또 숨을 내쉴 때는 물론 코로 나가지만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허지 말고,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져 등어리가 붙으면서 ‘호흡은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리 생각을 하고 호흡을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렇게 헌다면 가슴이 답답할 것도 없고, 오목가슴이 아플 것도 없고, 소화가 안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미 올바르게 호흡을 해서 단전호흡을 잘하고 계신 분도 계시겠습니다마는, 호흡법을 아직 확실히 통달허지 못한 분, 그런 분은 오늘 제가 말씀드린 방법에 의해서 단전호흡을 서서히 익혀가도록.

 

 

②호흡의 양 - ‘8부쯤만’

주의할 것은 숨을 들어마실 때에,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지만 그렇게 허는 것은 3번만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숨을 들어마시며 배가 앞으로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는데, 그때도 ‘배가 터지도록 맹꽁이처럼 잔뜩 들어마셔야 허냐’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8부쯤만 들어마셔. 앞으로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십분(十分) 다 들어마시지 말고, 100% 다 가득 터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8부쯤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부담이 없지요.

또 내쉴 때에도 완전히 다 내뿜는 게 아니여.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을 약간 조인 듯 허면서 완전히 다 내뿜지만,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내뿜을 때에도 너무 완전히 다 내뿜을라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드니까 8부쯤만 내뿜는 거여.

 

들어마실 때에도 8부쯤만 들어마시고, 내쉴 때에도 8부쯤만 내쉬어서, 부담없이 무리없이 편안하게 들어마시고 편안하게 내쉰다면, 30분을 계속해서 단전호흡을 한다 해도 하나도 힘들지를 않고 편안한 것입니다.

 

 

③호흡 시간 - ‘무리가 없이 하라’

이 단전호흡을 잘못해 가지고—너무 100% 들어마셔 가지고 또 될 수 있으면 오래 참을수록 좋다 하니까, 꽉 참아서 얼굴이 뻘게지도록 10초 20초 30초씩 억지로 참았다가 또 내쉬니까, 10번도 못해서 헐근헐근하고, 중간에 한번씩 쉬었다가 호흡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피가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고, 그렇게 해서 오래오래 허면 백 살 이백 살도 산다 하니까, 그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기 위해서 이 단전호흡을 허다가 사십도 못 가고 피를 막 토하면서 그렇게 죽은 사람도 중국에나 한국에나 일본에나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좋다해도 잘 알아서 여법(如法)허게 해야지, 좋다고 한다고 마구잽이 막하면 반드시 해(害)를 보는 것입니다.

 

인삼, 녹용이 좋다 하니까 동이로 그놈을 삶아서 막 먹고 혈압이 올라서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요새 몸과 팔다리를 막 흔드는 에어라빅인가 그것 좋다고, 그러면 살이 빠지고 좋다니까, 그 몸이 비대하고 혈압 높은 분이 가서 막 흔들어 대다가 혈압이 막 오르고 해서 허리 아픈 생병(生病)을 얻은 그런 예도 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이 참선법도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러헌 좋은 것이지만, 이것도 방법을 잘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 잘못 허다가는 이것도 또한 얼마든지 병이, 생병이 날 수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이 호흡법도 잘 알아서 하되, 제일 중요헌 것은 ‘무리가 없이 허라’ 이거거든.

 

숨 한번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8부쯤 들어마셨으면은 일단 딱 정지해 가지고 약 3초 동안을 딱 정지를 했다가 또 조용허게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3~4초 내지 4~5초 조금 길게 시간을 잡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분은, 숨 들어마셨다 잠시 정지했다가 내쉬는 거 합해서 10초 내지 십이삼 초 이런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도 걸어다니다가 왔거나, 달음박질한 뒤끝에는 그렇게 안 됩니다. 그때는 숨이 급허면 급헌 대로, 숨이 짧으면 짧은 대로 하다가 차츰차츰 무리 없이 익혀 나가야지,

그래서 석 달이나 1년, 3년 나가면 이 숨도 차츰차츰 길어져서, 숨 한번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한 20초도 걸리기도 하고 30초도 걸리기도 허는데, 그것도 체질 따라서 숨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체질에 맞추어서—꼭 길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니까, 억지로 길게 늘릴려다가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하시기를 바라고.

이 자세를 바르게 허고, 또 단전호흡을 허는 것은, 참선을 올바르게 해 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기초가 되는 것인 만큼 앉는 자세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좌선 시간>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그렇지만, 이것도 10분 20분씩 차츰차츰 늘려가고 30분씩 늘려가고 또 나중에 1시간이 되면 더이상은 계속해서 앉을려고 말고, 1시간이 되면은 일어서서 포행(布行)을 헌다든지 다리를 뻗고 다리를 오그리고 또 발목을 돌리는 그러헌 운동을 해서 몸을 좀 풀고 그래 가지고 한 10분간 그렇게 쉬었다가. 그래 가지고 다시 또 앉아서 1시간, 이렇게 해서 2시간을 하신다면 중간에 1시간 (앉은 후)에 쉬는 시간을 갖고.

또 1시간을 헌다면, 중간에 한 30분쯤 해서 한 5분쯤 잠깐 포행을 하고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해서 중간에 그런 포행 시간을 갖고 이렇게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간다면 아무 부작용은 없이 공부는 나날이 익숙해질 것입니다.(33분34초~5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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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횡격막(橫膈膜) ; 포유류의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막. 수축과 이완에 따라 위아래로운동을 하여 폐의 호흡 작용을 돕는다.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의 효과2013. 11. 24. 09:18

§(264) 참선의 공덕(功德), 참선의 효과, ‘참선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용264)

 

약11분.


사실은 이 참선은,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 참선의 목적(目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어떠헌 공덕(功德)이 있느냐?
‘무슨 공덕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은 마경(魔境)이 일어나는 것이라 하니, 그거 참 너무 막연하지 않느냐?’하는데, 사실은 그러헌 큰 목표를 설정을 하고 열심히 참선을 허다 보면, 우리의 육체적인•정신적인 병(病)도 차츰 나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생명력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모든 병이 회복되어 가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이렇게 자꾸 복잡해지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변화가 이렇게 극심해 가니까 모두가 다 노이로제 현상이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냉정하게 살펴보면, 어떠헌 각도에서 그 노이로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쪼들리는 분이라든지, 고등학교나 대학의 입시를 위해서 너무 지나치게 시달림을 받는 학생이라든지, 또 가정의 어떠헌 문제로 해서 주야로 고민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든지, 다 노이로제적인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날마다 여법(如法)하게 노력을 해가다 보면 모든 신경기능이 조정이 되고, 따라서 신경증이 차츰 정상화되는 예는 또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자타(自他)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조그만한 일에 신경질을 불쑥불쑥 내고 성을 잘 내는 그러헌 단기(短氣)한 사람, 마음이 느긋하고 여유있고 원만하지를 못하고, 신경질을 잘 내고 참지 못하는 그러헌 성미(性味)를 가진 사람이,
차츰차츰 신경질을 내지 아니하고, 어지간한 일이면 상대방을 잘 이해하게 되고, 또 잠시 기분 나쁠 듯 하다가도 금방 생각을 돌이켜서 빨리 풀어져 버리고, 이러헌 기질 변화는 제일 먼저 나타나는 한 공덕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참선공부를 항시 하면 의지(意志)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무엇이든지 할랴고 마음을 먹어도 3일을 못 가서 비그르르 풀어져 버리고, 무엇을 헐라고 허면은 자신(自信)이 생기지를 않고 항시 스스로 불안하고 그런 의지가 박약(薄弱)한 사람이 참선을 해서, 떠억 정신이 안정이 되고 집중력이 생기고 스스로 자기의 중심(中心)이 잡히니까, 뭐든 일을 당했을 때 의지력이 강해진다 이것입니다.(27분)

 그 다음에는 건강도 좋아지고, 노이로제 같은 그러헌 증상도 정상화되고, 또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의지력이 강해지고 허니까, 자기가 허고자 하는 어떠헌 일 - 사업가나 또는 공부를 하는 학자나 학생이나, 능률이 오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흩어지고 산란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내고, 몸에 건강도 좋지 못하고, 정신도 정상적이 못되고 허면, 무슨 일을 헌들 그것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 참선을 허면 능률이 오르게 된다고 하는 것을 또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 집중력이 생기고, 또 창조력이 생기고, 지적 기능이 개발이 되니까, ‘머리도 좋아진다’ 그런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앞에 말한 그런 여러 가지 점이 차츰차츰 좋아지니까 인격(人格)이 조정이 된다.

앞에 몸이 건강하지를 못하고, 정신이 정상적이지를 못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내쌋고, 의지가 박약하고, 모든 일에 능력이 오르지 아니하고 그리고 정신집중력이 없어서 항상 불안하고, 이러헌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이 어찌 인격자(人格者)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와 반대로 그러헌 것들이 모두가 정상화되고 잘 중심이 잡혀 나가니까, 스스로도 편안하고 의젓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볼 때나 일가친척이 볼 때에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아! 그분은 옛날과 영판 달라졌다. 어째서 그분이 옛날에는 그러지를 못했는데 저렇게 참 훌륭해졌을까?’
그래서 그분을 인격자로 모두 존경하게 되고, 그분을 받들게 되고, 그분을 따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헌 것들은 모두가 참선을 꾸준히 해 나감으로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차츰 향상되어 가고 개선되어 가는 이 참선의 공덕이겠습니다마는, 참선은 비단 이러헌 것만을 위해서, 이러헌 조그마한 목적을 위해서 참선을 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큰 목적, ‘내가 나 자신을 깨달라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그러헌 원대한 목표를 향해서 공부를 하다보면, 앞에 말한 바와 같은 그러헌 여러 가지의 좋은 공덕을 우리는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헌 마음을 가지고, ‘참! 참선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까 말한 여러 가지 좋은 것들 중에 한 가지만 얻어진다 해도 충분히 해 볼 만한 가치가 있거든,
하물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이뭣고?’하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을 항시 돌이켜 찾는 이러헌 간단한 방법만으로, 그와 같이 여러 가지 것이 좋아지고, 여러 가지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형식적으로 조금씩 허다 말 것이 아니라 아주 본격적으로 한번 해 볼 만한 일이 아니겠느냐?

부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좀 더 이부자리 속에 같이 누워있지 않고, 일찍 뽀르르 일어나서 참선한다고 앉았으니, 항상 남편보다도 절을 더 좋아하고 참선을 더 좋아하고 허니 불만을 품었었는데, 이제부터서는 그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일어나서 참선을 한번 해 봐야겠다. 어찌 남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러헌 인격을 완성하는 수행에 있어서 여자에 뒤질 수가 있느냐?
이래 가지고 거사(居士)가 먼저 앞장을 서고 이것을 해 나간다면, 그 가정이야말로 정말 행복하고 모범적인 가정이 되어서, 그 가정은 바로 항시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이,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거룩한 불보살(佛菩薩)님이 그 가정에 머물러 계시게 될 것입니다.

절에 모셔있는 이 등상불(等像佛) 부처님한테 가서 절만 해도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소원을 성취하거든, 직접 자기 가정에 살아계신 불보살(佛菩薩)이 왕림(枉臨)해 계신다면, 그 가정에 행복의 꽃이 피고 소원성취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22분27초~33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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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功德) ; 착한 일을 많이 한 공(功)과 불도(佛道)를 닦은 덕(德).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단기(短氣) ;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고 조급함.
*성미(性味) ;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품이나 비위.
*박약(薄弱) ; 의지나 체력 따위가 굳세지 못하고(弱) 여림(薄).
*중심(中心) ; 확고한 주관이나 줏대.
*인격자(人格者) ; 인격이 훌륭한 사람.
*영판 ; 아주.
*거사(居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따위로 만든 사람 형상의 부처님.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왕림(枉臨) ; 남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3. 11. 23. 17:01

 

 

§(264) (게송) ‘만산홍록개묘체~’ / 참선의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것’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용264)

 

(1) 약 6분.

(2) 약 17분.

 

(1)------------------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하고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디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만산홍록(滿山紅綠)이 개묘체(皆妙體)여. 가득한 산에 붉고 푸른 것, 붉게 피는 꽃과 푸른 이파리가 모두가 다 진리의 체(體)더라.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다.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또한 전부 부처님의 설법이더라.

'부처님'하면, 삼천년 전에 정반왕궁(淨飯王宮)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상(聯想)을 하고, 또 서방 극락세계에 아미타불을 연상하고, 또 법당에 모셔져 있는 황금으로 개금(改金)을 저순 법당의 등상불(等像佛)을 생각을 합니다마는,

참부처님은 법당에만 계신 것도 아니요, 삼천년 전에 네팔국에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셔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신 그 부처님만이 부처님이 아니고, 온 산에 가득한 붉은 꽃과 푸른 이파리가 낱낱이 다 부처님의 모습이더라 그말이여.


부처님의 설법, '법문'하면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연상을 하고, 법화경이나 금강경 또는 화엄경 반야심경과 같은 이런 문자로 된 경전만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설법은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부처님의 살아있는 설법(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데, 봄날이 돌아와서 날씨가 화창한데 봄 졸음이 족해. 엄동설한이 지나가고 해동(解凍)이 되어서 날씨가 화창한데, 마루에 앉았으면은 졸음이 오는데,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졸음이 와서 떠억 비껴 누워서 산새들이 노래하는 그 노래 소리를, 가지가지 산새가 파랑새•노랑 새•큰 새•작은 새가 마치 교향악이 울린 것처럼 그렇게 백 가지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떠억 누워서 그 노래 소리를 듣더라 그말이여.

이것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한 깨달은 도인의 한 장면을 게송(偈頌)으로 읊은 것입니다.(5분53초)



 

 

(2)------------------

 

오늘은 을축년 4월 7일 첫째 일요법회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삼동이 지나고 어느덧 4월을 맞이했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이 사시절(四時節)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고,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시고 미륵불이 또 출세하신 모습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쉴 사이 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 모습이지만은,
나를 깨닫지 못한 중생의 경지에서는 이 일초 일초와 이 세월의 춘하추동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그러한 상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서 깨달은 분상에는 이것이 모다 설법이요, 부처님이요, 바로 이것이 극락세계요 적광토(寂光土)인데,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루가 지내가면 죽을 날짜가 하루 다가와지고, 해가 한번 떴다가 지면 사형(死刑) 언도(言渡)를 집행하는 날이 하루 다가서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부처님이나,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이나 똑같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달은 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극락세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를 갖다가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는데,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을 마치 사형 언도 집행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더군다나 오탁악세(五濁惡世) 이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우리의 앞길은 암담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주 진절머리가 나고 아무 희망도 없고 그럴 텐데,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났기에, 말세에 태어났으면서 이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면서,

온통 온 세계가 도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하루에면 몇십 명씩, 몇백 명씩 죽어가기를 파리 목숨보다도 더 참 허망하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이러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이 허망한 몸뚱이를 이 세상에 이 시기에 받어난 것을 너무 다행하고 경행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와 하나가 되는 것’이여.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법인 것입니다.

산에 봄이 오면 붉고 누런 꽃이 피고 파란 잎이 피고 헌 것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면은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출현하신 모습이요, 흐르는 물,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화엄경(華嚴經)이요, 법화경(法華經)이요, 금강경(金剛經)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불법을 만난 김에 기어코 깨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나의 모든 것을 이 한길에다 바쳐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 자기 자신,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번갈아 가면서 출세를 하신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제도(濟度)가 무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듯이 그렇게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우리 중생들이 낱낱이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 그것을 스스로 계발(啓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가,‘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를 확인시켜서, 그것을 잘 갈고 닦도록 하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진 의원과 같고 또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아서, 약을 일러주면 환자 자신이 그 약을 잘 먹으면 병을 낫을 것이요. 길을 일러주면 그 일러주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진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 대신해서 그 약을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리 안내를 잘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걸어가야지, 본인이 걸어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주안 용화사 이 자리에 오셔서 이십 성상(星霜)을 한결같이 대자비(大慈悲)의 문을 열어서 정법(正法)을 선양(宣揚)을 하시고 또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10년을 걸쳐서 이 송담이 여기서 법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마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말을 했지만은 언제나 그 핵심은 하나이고 그 돌아갈 곳은 한 가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말을 듣고 계십니다마는, 그 듣고 있는 바로 그놈을 스스로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총력(聰力)이 좋고 머리가 좋아서 화엄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법화경을 다 외우고, 금강경을 다 외운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외우는 데만 그쳐 가지고서는 그것은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화엄경과 법화경,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좋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를 해서, 참으로 옳게 이해를 한다면 거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법(參禪法)은 경(經)을 가르키지 아니하고, 경을 외우게 하지 아니하고, 경을 해설을 해 드리지 아니하면서 언제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 말할 줄 알고, 생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놈을 돌이켜 찾으라 이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삼천 겁(三千劫)을 계율을 지키고 팔만 세(八萬歲) 동안을 경(經)을 외우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계율을 삼천 겁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운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 찾지 아니하면, 그 계율을 지키고 경을 외우는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외우되, 바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경을 읽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 계율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고 경을 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경을 잘못 외우는 것이고 계율을 잘못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계율이라든지 경은 온전히 자기 자성(自性)을 깨닫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方便)이요 길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불법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뭣고?’는 너무 맛이 없는 소리고,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해 봐도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안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만날 해 봤자 죽 떠먹은 자리와 같아서 무엇이 효과가 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할 효과도 나타나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나는 이 참선을 해서 이만큼 무엇이 얻어졌다’하고 내보일 것이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1년, 이태, 3년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한다고 해 봤지만 사실은 뭐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글씨를 배운다든지 또는 사군자를 배운다든지 무슨 음악을 배운다든지 하면 한 달만 배워도 제법 내놓을 것이 있고, 두 달만 배워도 ‘이만한 것을 나는 하게 되었다’하고 긍지를 가질 수가 있는데,
이 참선은 정말 3년, 10년을 했어도 ‘이러한 것을 나는 얻었다’ 이렇게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 내놓을 만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은 공부를 옳게 해 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을 해가지고 밤에는 환히 불이 켜지고, 또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내일은 누가 나를 찾아오겠다’ 이걸 알고, ‘이 다음에 손자를 낳겠다’ 또는 ‘딸을 낳겠다’ 뭐 그런 것이 알아지고, 이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참선을 잘못한 것입니다.

정말 올바르게 참선을 하면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알아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다가 그러한 알아지고 보이고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은 하나의 마경(魔境)이 잠시 스쳐가는 것이어서 그것은 신경을 쓰지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면 1년, 이태, 3년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진 것도 없고, 보인 것도 없고, 나타난 것도 없고, 그러면 무슨 재미로 그것을 하며, 그렇게 하다가 부처님처럼 다행히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한다면 좋지만,

만날 해도 별로 얻어진 것도 없고 꾸벅꾸벅 졸음만 오고, 그러다가 죽어버린다면은 그거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그러한 막연한 공부를 갖다가 사람들에게 권고를 하고 자꾸 ‘이뭣고?를 하면 좋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실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참선은,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 참선의 목적(目的)입니다.(처음~22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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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71 ‘상추(賞秋)’ ‘박상사(朴上舍)의 초당(草堂)’ 게송 참고.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등상(等像) ; 나무, 돌, 흙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상주설법(常住說法) ;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유유자적(悠悠自適)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진절머리 ; ‘진저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진저리 ; 몹시 귀찮거나 싫증이 나서 끔찍할 때 몸을 떠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총력(聰力) ;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십바라밀(十波羅蜜)의 하나. 보살(菩薩)이 중생을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을 말한다.
*만날 ; 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13. 11. 22. 09:39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14분 16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024)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 / 일상 모든 생활 속에 화두 의심이 한덩어리가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

 

어쨌든지 듣던 말 또 듣고, 듣던 말 또 듣더라도 자주 자주 법회에 참석해서 본참화두가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선지식의 법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약 6분.

**송담스님(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용024)


우리는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입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항시 그 반대쪽 상대되는 말을 연상(聯想)을 하는 것이 우리 중생의 버릇입니다.

부처님 설법, 큰스님네의 설법을 들어도 그 설법을 듣는 가운데에 바로 자기에 본참화두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에 의해서 그다음 생각, 그다음 생각으로 차츰 추리해 들어가는 그러한 법문을 듣는 태도는 영리한 사람이긴 하지마는, 법문을 참으로 옳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을 듣자마자, 들음과 동시에 자기가 들고 있는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분명해질 때, 소소영령(昭昭靈靈)해질 때 그 법문은 참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바르게 법문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꼭 법당에만 들어와서 어떠한 법사님의 법문을 들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문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을 보고도 산을 보고도 물을 보고도, 개 짖는 소리를 듣고도, 소와 말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이놈 저놈’하고 욕지거리 하는 소리를 듣고도, 누가 나한테 어리석은 억울한 욕을 퍼붓고 달라드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목에 칼을 댈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찰나 찰나에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까지는 우리는 이러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자주자주 들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서 그 시간에 들은 법문을 졸졸졸졸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르르 옮기는 그러한 영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법문을 듣는 동안 잠깐도 귀를 팔지 아니하고, 한눈을 팔지 않고서 열심히 들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돌아서서 한마디도 옮길 수 없지마는 들을 때나, 법문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이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화두가 분명히 들려서 알 수 없는 의심이 골똘해진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비교할 때에 뒤에 사람이 앞에 사람의 몇천 배, 몇만 배 법문을 잘 제대로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해 드린 말씀을 통해서 '법문(法門)은 어떻게 듣는 것이 옳다'

또 법문은 법당 안에서만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 돌아가서 사회에 나가서 어디서 무엇을 보던지 듣던지, 무엇을 느끼던지, 어떠한 사건을 당하던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언제라도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깊은 신심(信心)으로, 불같은 의심(疑心)으로, 분심(憤心)을 일으켜서 자기의 본참(本參)을 들고 또 들고 해서, 우리의 일상 모든 생활 속에 화두에 대한 의심이 한덩어리가 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에 법문을 한 번 듣고서 하루, 한 달, 석 달, 일 년,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면 구태여 법문을 자주 들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이면 법회 때에 빠져서는 아니되겠습니다.어쨌든지 듣던 말 또 듣고, 듣던 말 또 듣더라도 자주 자주 법회에 참석해서 본참화두가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선지식의 법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14분10초~19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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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연상(聯想 뒤를 이을 련/생각 상) ;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기차'로 '여행'을 떠올리는 따위의 현상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귀를 팔다 ; 귀를 딴 데로 돌리어 잘 듣지 않다.
*한눈 ;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는 눈.
*한눈을 팔다 ;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을 딴 데로 돌리다.
*걸음걸음이 ; 걸음을 걸을 적마다.
*골똘해진--->골똘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온 정신을 쏟아 딴생각이 없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불같은—> 불같다 ; 정열이나 신념, 감정 따위가 뜨겁고 강렬하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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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3. 11. 20. 14:05

§(140)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의 오종선(五種禪).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49분) (용140)

 

약 13분.


참선이라 하는 것은, 과거에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는 이 선(禪)에 다섯 가지가 있다.
외도선(外道禪)이 있고, 범부선(凡夫禪)이 있고, 소승선(小乘禪)이 있고, 대승선(大乘禪)이 있고, 그리고 최상승선(最上乘禪)이 있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를 해서 이 선(禪)을 설명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항시 선양(宣揚)하고 있는 선(禪)은 그 다섯 가지 선 가운데 최상승선(最上乘禪)을 선양을 하고 있습니다.

<외도선(外道禪)>
떠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참선을 하면 배꼽 밑에 환히 불이 켜져 가지고, 불 켜진 그 배꼽 밑에를 관(觀)을 해 나가면 천상 세계도 환히 보고 싶으면 볼 수가 있고, 저 지옥 세계도 보고 싶으면 환히 그 배꼽 밑에서 다 지옥 세계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일 누가 오겠다. 오늘은 누가 오겠다. 언제 비가 오겠다.’ 이런 것도 환히 알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계속해서 이 배꼽 밑에 불 켜진 것을 관(觀)해 나가는, 그것도 하나의 외도선의 일종이고,

<범부선(凡夫禪)>
이 참선을 하면 혈압이 내려간다. 참선을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또는 정신통일이 된다. 이 참선을 하면 불같이 일어난 성격도 다 가라앉은다. 참선의 목적을 이러한 데에다가 두고 참선을 하면 이것은 범부선(凡夫禪)이 될 것입니다.

<소승선(小乘禪)>
우리의 육도윤회(六途輪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짐으로써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은 육도윤회를 한다. 그러니 이 생각을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 그래 가지고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들어가서 완전히 공(空)한 상태에 내 마음을 유지해 나가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없애고, 생각을 한 군데에 머물르려고 노력을 해 나간다면 이러한 참선은 소승선(小乘禪)이 될 것입니다.

<대승선(大乘禪)>
‘한 생각’이라 하는 것은 생사(生死)의 근원인데, ‘한 생각’이라는 것은 본래 일어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생(生)이라 하는 것이, 원래 남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멸(滅)할 것도 없다. 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없앨 것이 있느냐.

일념(一念)은 무생(無生)이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당체(當體)가 몰록 고요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유루법이요 유위법인데,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그 원인으로 해서 무엇이 생겨났는데, 원인으로 인해서 어떠한 것이 생겨나고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다. 그런 원인이 있어서 구성이 된 것은 그것은 유위법이다. 그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없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요, 믿을 것이 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지만,

모든 것은 원래 생겨난 것이 없는 것이다. 생겨난 것이 없는데 어찌 없어질 것이 있는가.
이미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없이 할려고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가 되겠지만, ‘원래 생사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참나’의 표현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전신체(全身體)다. 그러니 무엇을 없애고 적멸(寂滅)을 따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것이 비로자나불 체다. 이러한 생각은 대승적인 견해로써,

<최상승선(最上乘禪)>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대승적인 견해에도 집착함이 없이,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화두를 간택을 해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맛 그 대신(大信) 과 대분심(大憤心)으로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을 관조해 나갈 때, 버려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어떠한 색상을 보거나, 귀로 어떠한 소리를 듣거나, 코로 어떠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어떠한 감촉을 받거나, 생각으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화두에 대한 의심만을 거각해 나갈 때, 앞에 말한 외도선•범부선•소승선•대승선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선(禪)에도 집착함이 없으면서,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참선, 이것이 바로 최상승선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물론 우리의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게 되기도 하고, 혈액순환도 잘될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해질 수도 있고, 정신통일도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진심(瞋心)을 잘 내는 사람, 항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 안정성이 없고 경솔한 사람, 항시 밖으로만 치닫는 사람, 번뇌와 망상 속에 사로잡혀서 잠시도 마음이 편안치 못한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

어떠한, 그러한 인간으로써 버려야 할 또는 고쳐야 할, 개선해야 할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대인관계건, 활구참선을 여실히 여법(如法)하게 해 나감으로 해서, 다 그런 것들이 개선될 수 있고 보완될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정신적인 혁명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할 때,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의 목표로서는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표는 분명히 바르게 세워놓고 올바르게 수행을 하면, 그러한 부산물로써 아까 말한 여러 가지 효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목표를 설정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르게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바른 스승을 만나서 철저하게 믿고 그 지도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이 바른 참선처럼 어려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이 동토(東土)로 오신 의지(意旨)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대해서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믿고 이렇게만 해 나간다면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복잡할 것인가.

그런데 1년을 하고, 이태를 하고, 3년씩 내지 10년씩 참선을 하면서도 이렇게 간단한 이렇게 쉬운 것을 잘못 행해 가고 있는 사람을 왕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호흡이 잘 안된다는 둥, 의심이 잘 안된다는 둥, 어떻게 의심을 들며 어떻게 화두를 하며, 화두를 들면 호흡과 하나가 안된다는 둥, 가슴이 아프다는 둥, 뒤통수로 무엇이 근질근질 올라간다는 둥, 옆구리가 쑤신다는 둥,

천번 만번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도 이 화두가 잘 안 잡혀서 고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갈팡질팡, 마냥 참선을 하면서도 스스로 그 ‘참선(參禪)에 대한 신념(信念)’이 딱 서지를 못하고 초조해 하는 그러한 분들을 왕왕히 볼 때에,

‘이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이렇게 또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10분8초~22분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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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종밀(圭峰宗密, 780 - 841)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조.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무념무상(無念無想) ; 선정 수행에서 그릇된 분별이나 집착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
*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런 생각.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몰록 ; 단박(에). 그 자리에서 바로 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열반(涅槃) ;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왕왕히 ; 시간적으로 사이를 두고 가끔.

Posted by 닥공닥정
역대 스님 약력2013. 11. 20. 13:59

육조혜능(六祖慧能), 남악회양(南嶽懷讓), 하택신회(荷澤神會), 임제의현(臨濟義玄), 규봉종밀(圭峰宗密)

*육조(六祖) : (638 ~ 713) 육조혜능(六祖慧能).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24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18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40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76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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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선사(懷讓禪師) : (677 ~ 744) 남악회양(南嶽懷讓).
섬서성(陝西省) 흥안부(興安府) 두(杜)씨 집에서 났다.
15살에 출가하여 육조의 법회에 가서 8년 만에야 견성하여 그 법을 받고, 전후 15년 동안 모시고 지내다가 남악(南嶽) 반야사 관음대(般若寺觀音臺)에서 교화하니, 그 법을 받은 제자가 아홉 분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신라의 본여선사(本如禪師)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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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회선사(神會禪師) : (686 ~ 760) 하택신회(荷澤神會) 또는 하택선사(荷澤禪師)라고도 한다.
호북성(湖北省) 양양부(襄陽府) 고(高)씨의 집에서 났다。어려서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의 글에 정통하였는데 <후한서(後漢書)>를 보다가 불교의 묘한 이치를 알고 출가하여 경을 많이 숭상하였다.

처음엔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에 가서 삼 년 동안이나 신수(神秀)대사를 모시고 있다가, 그가 칙천 황후(則天皇后)의 청을 받고 서울로 가게 되자 그의 지시로 육조의 법회로 갔다。그 때의 나이가 열 세 살이라기도 하고 마흔 넷이었다고도한다.

육조의 법을 받은 뒤에 남양(南陽)의 용흥사(龍興寺)와 낙양(洛陽)의 하택사에 있으면서, 육조의 종지를 크게 드날려서 신수의 종지가 쓰러지게 되었다.

어사(御史) 노혁(盧奕)의 무고(誣告)로 여러 해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고 「안록산(安祿山)의 난」에는 군비와 군수품을 많이 모집하여 나라에 바쳤다.

저술로는 <현종기(顯宗記)> 1권, <신회어록(神會語錄)> 3권, <하택미결(荷澤微決)> 1권이 있다.

그의 문하에 유능한 이가 많아서 한동안(150년 가량) 하택종이 큰 세력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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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臨濟) : ( ? – 867) 임제의현(臨濟義玄).
속성은 형(荊)씨이고 이름은 의현(義玄)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강당에서 경을 연구하다가 황벽(黃檗) 희운선사(希運禪師)의 법회에 가서 3년 동안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 말도 묻지 못하고 지냈는데, 제일좌(第一座)의 지도를 받아 『어떤 것이 불법의 똑바른 참뜻입니까?』하고 물었더니, 황벽은 다짜고짜로 몽둥이로 한바탕 때려 주었다。제일좌의 권에 따라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한 가지 말을 물어서 똑같이 매만 실컷 맞았다。그러나 그 맞은 까닭을 아지 못할 뿐 아니라, 그곳에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그곳을 떠나려는데 황벽의 지시로 대우(大愚)화상의 회상으로 갔다.

『황벽이 요사이 무슨 법문이 있던가?』하고 대우가 물었다。세 번이나 얻어맞은 사연을 자세히 말하고, 무슨 허물이 있어서 그처럼 때리는지 모르겠더라고 말하였다。대우는 『허! 황벽이 그처럼 너 때문에 애썼는데 허물을 찾고 있단 말이냐?』하는 데서 크게 깨치고는 『황벽의 불법이 몇 푼어치 안 되는군』하였다。대우가 『아까는 허물을 찾던 놈이 지금 와서 무슨 큰소리 하느냐?』한즉, 주먹으로 대우의 옆구리를 세 번이나 쥐어 박았다.

그리고 황벽에게 되돌아와서 그 법통을 잇고, 고향인 하북성(河北省) 진주(鎭州)의 임제원(臨濟院)에서 주로 간화선으로써 크게 교화하였다。그의 법을 이은 제자가 스물 두 분이나 있었다。그리하여 그는 임제종의 종조(宗祖)가 되었다.
당나라 의종(毅宗) 함통(咸通) 8년에 입적하였다。저서로는 <임제혜조선사어록(臨濟慧照禪師語錄)>이 한 권 있다.

그의 법을 이은 제자 가운데는 신라의 지리산 화상도 있었다。그의 밑으로 십 구 세(世) 되는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고려의 나옹왕사(懶翁王師)가 받아 왔고, 또 같은 임제 십 구 세 석옥 청공(石屋清珙)의 법을 태고국사(太古國師)가 받아 와서, 이조 시대의 우리 나라 불교는 온전히 임제종의 법맥(法脈)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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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圭峰) : (780 – 841) 법명은 종밀(宗密), 규봉종밀(圭峰宗密), 속성은 하(何)씨
사천성(四川省) 순경부(順慶府) 서충현(西充縣)에서 났다.
젊어서 유교를 배웠고, 스물 여덟에 과거보러 가다가 수주(遂州) 도원선사(道圓禪師)를 만나 출가하여 참선하였다。어떤 날 신도의 재(齋)에 가서 <원각경(圓覺經)>을 읽다가 깨쳤다.

그 뒤 징관(澄觀)에게서 <화엄경>의 깊은 이치를 받아 가져 화엄종의 오조(五祖)가 되었으나, 항상 선(禪)과 교(敎)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섬서성(陝西省) 서안부(西安府) 종남산 규봉(終南山圭峰)에 많이 있었다.

그의 저술은 <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 3권과 그 <석의초(釋義抄)> 13권, <화엄경윤관(華嚴經綸貫)> 15권,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2권, <기신론소(起信論疏)> 4권, <원각도량수증의(圓覺道場修證儀)> 18권 등 모두 200여 권이 있다.

당나라 회창(會昌) 1년에 62세로써 입적하였다。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3. 11. 19. 21:13

§(140) (게송)야래풍우객문선~ / 불법(佛法) 나의 문제 / 생활속에서  생각 단속이 득력 /  생각 일어날  생각을 돌이켜서 본참화두를 들어야.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49분) (용140)

 

(1) 약 10분.

(2) 약 9분.

 

(1)------------------


야래풍우(夜來風雨)로 객문선(客聞先)한데  격령사가전묘연(隔嶺思家轉杳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십년세사경백변(十年世事驚百變)한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3월 1일 삼일절(三一節) 날입니다.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에 3•1 만세(三一萬歲) 사건이 일어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러한 뜻깊은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외국에게 빼앗겨서 국토도 잃고, 목숨도 살아있는 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이 짓밟히고 있을 때, 33인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의 겨레가 일어섰던 그날입니다.

이조 5백년 동안 당파(黨派) 싸움으로, 서로 자기의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파당을 지어 가지고 상대 당을 갖다가 쫓아내고 죽이고 모략중상(謀略中傷)해 가지고, 피차 그러는 동안에 나라는 망해 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그 치욕적인 그런 임진왜란을 당해 가지고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가 피바다가 되었고, 그리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쟁(黨爭)은 치열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경술년 한일 합방(韓日合邦)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해 준다는 명목을 뒤집어 씌워 가지고, 결국은 우리나라를 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수모를 당하게 된 것도 결국은 당파 싸움의 결과로써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들이 통치자를 중심으로 해서 온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가지고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을 위해서 합심이 되지 않는 한에는 그 나라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나라 백성이 자기의 나라를 모든 것을 우선해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민족을 항시 염두에 두고 서로 힘을 합해서 지켜나가지 않는 한은, 그 나라와 민족은 처음은 차츰 혼란해가다가 결국은 스스로 망하거나 외부에서 침략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한 회사나 단체도 역시 마찬가지고 모든 단체, 모든 것의 근본은 ‘나’ - 한 사람인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마을이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국가가 되고 그러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결국은 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나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내가 나의 인격을, 내가 나의 정신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내 몸도 역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 가장(家長)을 비롯한 온 가족이 질서가 있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웃어른을 존경하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그 집을 지켜나갈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하고 편안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 일신상(一身上)의 문제도 내가 내 몸, 내 마음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 몸뚱이 건강도 나빠질 것이고,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서 결국은 폐인(廢人)이 되고 말 것이고,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조차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참선(參禪), 금방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수행인의 마음가짐, 자세 그리고 참선해 나가는데 구체적인 법문이 계셨지만,
내가 나를 다스려 나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절에 몇십 년을 다니고, 아무리 출가해서 선방을 한 철도 빠짐없이 선방으로 선방으로 다니면서 수좌(首座)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마냥 아무런 진취가 없을 것입니다.(처음~10분8초)

 

 

 

 


(2)------------------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십시오.(10분간 정진)

10분간 입선을 했습니다.

처음 오늘 법회에 나오신 분은, 대관절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한동안 아무도 아무 말 없이 앉았는가? 앉아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앉아야 하며, 모다 그러한 것을 전혀 아시지 못하고 궁금한 가운데에 조용히 앉아서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다음 법회에도 빠지지 말고 계속해서 나오시면 차츰차츰 이 참선(參禪)은 목적이 무엇이며, 그 자세는 어떻게 갖고, 또 호흡은 어떻게 하고,
또 아까부터 화두(話頭)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화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되 어떻게 하며, 모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 차츰차츰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법회가 끝나서 일어서셔서 신발을 신을 때,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갈 때, 또 역(驛)으로 가시는 그 걸음 걸음, 또 역에 가서 전철을 타실 때, 타고 가시면서, 다 그 찰나 찰나간에 자기의 한 생각을 방일(放逸)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단속(團束)을 해 가지고,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무단히 방치해 두지 않고 그 놈을 단속할 줄 아는 거 이것이 바로 득력(得力)이라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앉아서나 서서나 그놈이 단속이 되고 공부가 되어 갈 때에 그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이지, 꼭 밤잠만 안 자고 며칠씩 버티고 앉아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러한 곳에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샘이 없는(無漏) 영원한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하노라.

‘솔바람 불고 칡넝쿨 우거진, 그러한 고요하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이 조사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영원히 하고 싶다.’

문맥상으로 형식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법 하지만, 활구참선은 꼭 저 심산유곡(深山幽谷)-솔바람이 불고 칡넝쿨 사이로 휘영청 달이 밝은 그러한 속에만 들어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벌써 최상승적인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시중(市中)이건, 들녘이건, 속세(俗世)건, 또는 사찰이건, 시냇가건, 또는 산봉우리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 외경(外境)에 내가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 쓸데없는 번뇌•망상심에 빠지지도 않고,

다못 한 생각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무조건 하고 그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할 때 그 사람에게는 (그곳이) 바로 솔바람이 부는 곳이요,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달빛이 비치는 심산유곡과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대자연 속에서 언제나 쉴 사이 없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설법(說法)이 계속되고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도 환경에 내가 집착을 하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번뇌와 망상이 퍼 일어난다면 어찌 그곳을 심산유곡이라 하겠습니까?

부처님 말씀과 조사의 어귀(語句)는 중생심(衆生心)으로 겉으로 읽어 가지고서는 한 글귀도 바로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40분11초~48분45초)(끝)

 

 

 

 


------------------(1)

 

*삼일절(三一節) ;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읽어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우리나라의 민족 독립운동, 삼일 운동(3•1 運動)을 기념하는 국경일.
*당파(黨派) ; 조선 시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붕당(朋黨) 내에서 다시 나뉜 파벌. *붕당(朋黨)=黨
*모략중상(謀略中傷) ;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과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중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 ;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땅을 이르는 말.
*한일 합방(韓日合邦) ; [역사] 대한 제국 융희 4년(경술년, 1910)에 일제가 강제적으로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은 일.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독립을 되찾았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게송) ‘야래풍우객문선(夜來風雨客聞先)~’ ; [매천집 제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제3권)-시(詩):신축고(辛丑稿)
〇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역)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 夜來風雨客聞先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 隔嶺思家轉杳然
첫 찻잎 딸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 已過頭番摘茶候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 將蕪一畝種蔘田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 老懷慣與同庚話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 詩訣勤從後輩傳
세상일은 십 년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 世事十年驚百變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 春山依舊草堂前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絕命詩) 4편을 남기고 9월10일 음독 자결하였다.

 

 

 

 

 

------------------(2)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아무 ; 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가리키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심산유곡(深山幽谷) ; 깊은 산속의 조용하고 외진 골짜기.
*휘영청 ; 달빛 따위가 몹시 환하게 밝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
*시중(市中) ; 사람들이 많이 오가며 일상적으로 생활하거나 활동하는 곳.
*속세(俗世) ; 불가(佛家)가 아닌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외경(外境) ; 자기 몸 밖의 모든 바깥 세계. 객관적 대상. 자연계. 외부환경(外界).
*거두절미(去頭截尾)하다 ; 어떤 일의 요점만 간단히 말하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Posted by 닥공닥정
상(相)없이2013. 11. 18. 10:10

§(099) ()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떨어져.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1) 약 8분.

(2) 약 17분.

 

(1)------------------


금방 조실스님께서는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허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조실스님이 아주 재미있게 해주신 법문이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

참선을 해서 생사(生死)없는 이치를 깨닫고 그리고 보림(保任)을 잘하면, 생사에 그렇게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하다’고 하는 것은, 앉아서 죽고 서서 죽고, 오늘 가고 싶으면 오늘 가고, 며칠 더 있다 갈라면 가고. 옛날 도인들은 떠억 편안히 앉아서 가신 분, 또 걸망을 떠억 지고 지팽이를 집고 어디 행각(行脚)을 떠나는 그런 행색(行色)을 해 가지고, 마당에 나가서 못가에 서서 선 채 딱 열반(涅槃)하신 그런 분도 계시고,

또 등(鄧隱) 조사 같은 이는 열반하실 때 옆에 시자(侍者)보고, “제방(諸方)에 앉아서 돌아가신 분이 계시냐?”

“그런 분은 많이 계십니다.”


“서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냐?”
“그런 분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까꾸로 서서 돌아가신 분도 있느냐?”
“그런 분은 아직 없습니다.”
당신은 까꾸로 서서, 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전등록에 보면 까꾸로 선 채 열반에 드셨는데 옷자락, 옷고름, 옷소매까지도 밑으로 처지지 아니하고, 몸 따라서 딱 붙은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옆에 대중들이 전부 그분을, 열반하신 뒤에 편안하게 뉘어 드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까딱을 안했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우뚝 선 것처럼 아무리 밀어도 넘어지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애를 먹고 있던 차에, 마치 등 조사의 누이동생이 여승(女僧)인데, 여승이 오빠이신 등 조사가 열반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와서는 “이 노장(老長)이 평생에 추한 짓을 하더니 죽을 때에도 이런 추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손가락으로 툭 밀뜨려 버리니까 툭 쓰러졌습니다.

과거 인도나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일본에-이 동양에 걸쳐서 많은 도인들이 이렇게 생사에 자유자재 허셨습니다. 그런 분이 참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분이 올바르게 깨닫고 못 깨닫고 허는 그 구분을, 돌아가실 때 서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앉아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누워서 돌아가셨느냐, 돌아가신 뒤에 방광(放光)을 했냐 안했느냐 이러헌 것으로써 그 분의 도(道)가 높고, 높지 아니한 것을 분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공 스님-조실스님의 법사(法師)스님이신 만공 스님에, 맨 처음에 법(法)을 전해 받으신 보월 스님께서 열반하셨을 때에 오색(五色)이 찬란한 방광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만공 스님께서 보월 스님의 열반에, 그 상서(祥瑞)에 대한 점검을 하시기를 “추한 이 더러운 놈이 죽을 때 추한 짓을 면하덜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씀을 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다, 아까 등 조사의 까꾸로 서서 움직이지 아니한 것에 누이동생이 와 가지고 그 점검을 하는 말씀이나, 만공 큰스님께서 당신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보월스님의 열반서상(涅槃瑞相)을 점검하신 말씀이, 다 척사현정(斥邪顯正)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행여나 중생들이 상(相)에 집착해서 바른 법을 보지를 못하고 삿된 소견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셔서 추상(秋霜)같은 점검을 내리신 것입니다.

근자(近者)에 스님네나 또는 보살님네들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火葬)을 한 결과 많은 사리(舍利)들이 여기서 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불교신문에 자주자주 보도가 됩니다마는, 물론 계행을 잘 지키고 수행을 착실히 하고 마음씨를 착하게 먹고 일생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다면 사리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는 나오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나온 것을 꼭 나쁘다고 헐 것도 없습니다마는, 사리 나온 것을 가지고 ‘사리가 나왔기 때문에 그 분이 도인(道人)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허는 것을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들께서는 잘 알고 계서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리가 나오고 방광을 헌 것에 대해서 그것을 착각을 해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참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법(正法)을 배우는 불제자(佛弟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5분58초~13분28초)

 

 

 

 

(2)------------------

 

재송도인(栽松道人)이 팔십 노인의 몸으로 인가(印可)를 받으러 갔다가 법담을 해서, 법담(法談)은 훌륭하게 해서 분명 견성(見性)헌 것을 인증을 받았지마는 늙은 탓으로 해서, 늙은 사람에게 법(法)을 전해봤자 법을 전하신 스승보다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그 다음에 누가 있어서 대(代)를 이을 것인가?
그래서 몸을 바꿔 오도록 말씀을 허셨던 것입니다.

몸을 바꾸는데, 처녀의 뱃속에 들어가, 그래가지고 몸을 새로 바꿔 나와서, 어려서 출가를 해 가지고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가하신 재송도인을 떠나보내고 그 어머니-처녀로 애기를 난, 그 재송도인의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찾고 찾아서, 늙발에 아들 있는 곳을 알아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얼마동안 별당에서 밥을 얻어 자시면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실 때에, 별당에다가 가둬서 계시게 하고 밥을 갖다 드리지 아니해서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그때 수백 명의 제자들이 ‘어째서 처녀의 몸으로 당신을 고생 끝에 낳아가지고 길러서 출가를 시켜준 그 어머니를 굶겨서 돌아가시게 헐 수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도인(道人)이라 헐 수가 없다. 이러한 불효한 사람이 도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한테 도를 배우느니 차라리 여기를 떠나자’ 이리 해 가지고 대중이 전부 걸망을 싸 짊어지고 그 절을 떠날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그 돌아가신, 재송도인의 어머니 말씀이 들렸습니다. “여러 대중 스님네, 제 말씀을 들으시오. 나는 아들 하나를 잘 둔 공덕으로 지금 나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오. 그러니 내 아들이야말로 불보살(佛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도인이고, 나에게 가장 효도를 해준 아들이니, 내 아들을 그릇 오해하지 말고 어서 걸망 짐을 풀어놓고 열심히 도를 배우시오.” 이렇게 소리가 울려나왔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대중 스님네들은 다시 걸망을 풀고 그전에 보다도 훨씬 더 목숨 바쳐 공부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시겠지마는, 이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인정(人情)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인정(人情)과 자비(慈悲)는 그 질(質)에 있어서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인정은 우선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지마는 결국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자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정과 너무나도 흡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정이라 하는 것은, 주는 것이 있고 또 받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주면서 또 받을 것을 또 기약을 헙니다.

그러나 불보살의 무연자비(無緣慈悲), 정말 참된 자비라고 하는 것은 주되 주는 바가 없고, 따라서 상(相)이 없는 것이며, 받을 것을 전혀 생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 보답을 받기를 바래면서 주는 것은 ‘참보시’가 아니고 ‘참자비’가 아니고, 은혜를 베풀어서 덕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원망과 웬수 빚으로 돌아오는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은혜로 보답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갖다 안겨준 그러헌 사례가 방방곡곡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언제라도 은혜를 베푸는 것에 덕(德)이 돌아오지를 못하고 그러헌 웬수 빚으로써 보답 받은 예는 너무나 흔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뭣이냐 하면,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그 사람을 다 나쁘다고 합니다마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되 상(相)이 없이 주라.’ 주되 보답을 바래지 말고 주어야지, 보답을 바래고 주면은 결과적으로는 좋지를 못한 것입니다.(20분29초)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가르키고,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결혼을 시켜서 자유롭게 해준 그 일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그 아들과 딸을 고생고생 하면서 포태(胞胎)를 해 가지고 낳아서 길러 가지고 맛있는 것은 아이의 입에 넣고, 따뜻하고 마른자리는 아이에게 주고 춥고 젖은 자리는 엄마가 눕고, 이러면서 키운 그 자식, 못 먹고 못 입으면서 키운 그 자식이 커서 장가가서 자식 낳고 살면은 부모의 은혜를 거의 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너무나도 지나친 불효자식(不孝子息)이 되고, 나중에는 지집 말만 듣고 부모를 웬수같이 생각하고 부모를 내쫓고 부모를 죽게까지 하는 예는 신문에 가끔 보도됩니다.

이건 특수한 예라고 생각허실런지 모르지마는, 자식은 과거의 업(業)으로 인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혹 은혜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그런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 대다수 자식이 웬수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고 하는 것을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수의 자식이 태어날수록에 부모는 더욱 그 자식이 사랑스럽고 불쌍하고 피라도 빼서 그 놈을 살릴라고 허고 잘 살게 헐려고 하지마는, 그 자식은 점점 부모의 속에다가 불을 묻고 송곳으로 찌르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그러헌 짓을 가려가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웬수가 태어나서 자식노릇을 하고 있는 경우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식은 태어나지 아니한만 못하건마는 자기가 지어 놓은 업이라 그것을 달게 받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에 42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인구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많은 수가 얼마만큼 그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에 효도를 허는 사람이 있는지, 우리 자신부터 우리들의 주변 사람 가까운데부터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웬수를 맺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웬수를 맺지 아니헐라면 남에게 악(惡)하게 하지 아니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 착하게 허되 보답을 바래지 아니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재산을 베풀고서, “내가 너를 살려주느니, 너는 일생동안 백골(白骨)이 되도록 잊지를 말아라. 그리고 목숨 바쳐서 그 은혜를 나한테 갚아야 하느니라.” 그러헌 말을 입으로도 할 필요도 없고, 그러헌 생각을 마음으로도 가져서는 아니 되것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받은 사람이 당장 부담을 느끼게 되고,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주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잘 들지를 못하고 항시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생각이 속에서 쌓이고 쌓여 가지고 준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꺼리게 되고, 언젠가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말어라’ ‘은혜 베풀어 가지고 좋은 꼴 보지 못한다’ 막말로 말하면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뼈저린 가슴 아픈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힘닿는 데까지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베풀어야 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됩니다. 단,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고 베풀고, 베풀되 상(相)이 없이 베풀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배은망덕한 꼴을 보고, ‘나는 다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나는 밥 한술 못 주겠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까 보따리까지 내놓으라’, 그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까봐서, 물에 빠져서 곧 죽게 되는데 그것을 건져줄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져주지 않는다고 허는 것은 이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몇 번을 배은망덕을 당한다 하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일, 착한 일을 내놓고는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보답을 바래지 아니허고, 어떻게 허면 상(相)이 없이 착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뭣고~?’ ‘이 뭣고?’하면서, ‘이 뭣고?‘허는 마음으로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뭣고?’를 놓치면 중생심(衆生心)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중생심으로 허는 일은 모두가 다 인연(因緣)의 인과(因果)의 올개미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는 본참화두(本參話頭)인 ‘이 뭣고?’, 본참화두를 놓치지 아니허고 행동을 허게 되면, 자연히 상(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착한 일을 할 수가 있고,
웬수가 나를 해코지 하러 오드라도 ‘이 무엇고?’로써 상대를 허게 되면은 웬수도 굴복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을 살아가다보면, 나에게 자비롭게 해 주고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마는, 까닭 없이 나에게 해롭게 하고 까닭 없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그런 일을 더러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규정을 내리고 미워하고, 그 놈을 언젠가는 혼을 내줄려고 이를 갈아붙입니다마는, 사실은 까닭 없이 나를 해롭게 하는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 준 것도, 그것도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잘해 준 일이 있어서 내게 잘해 주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해(害)를 끼치는 사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그 원인을 진즉(趁卽) 다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헌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바로 내 허물이다’, ‘내 허물이 저 사람에게 부딪쳐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13분30초~30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행색(行色) ; 길을 떠나기 위하여 차리고 나선 모양.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등은(鄧隱) 조사 ; ‘등은봉(鄧隱峰) 선사’를 말함. 복건(福建)의 소무(邵武) 사람. 성은 등(鄧)씨.
어릴 때에는 지혜롭지 못한 듯 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처음에는 마조(馬祖)의 문하에서 수행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는 석두희천(石頭希遷)에게로 갔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하다가, 끝내 마조의 가르침 아래서 계합(契合)하였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장(老長) ;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스님.
*방광(放光) ; 광명을 발하는 것.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상서(祥瑞) ;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사리(舍利) ; sarira의 음사(音寫). 신골(身骨)•유신(遺身)이라 번역. 시체나 유골을 뜻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물질을 가리킴.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2)


*늙발 ; 늙어 노인이 된 처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참-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올바르고 진실된’의 뜻을 더하는 말.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지집 ; ‘계집’의 사투리. *계집 ; ‘여자’나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
*웬수 ; ‘원수(怨讐)’의 사투리. *원수(怨讐) ; 자기나 자기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
*백골(白骨) ;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뼈.
*한술 ;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음식이나 그 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숟가락으로 하나의 양.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이 무엇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해코지 ;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혼을 내줄려고 —> 혼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매우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주다.
*갈아붙이다 ; 분함을 억제하지 못할 때나 결심을 굳게 할 때, 독한 마음으로 이를 바짝 갈다.
*진즉(趁卽 좇을 진,곧 즉)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3. 11. 15. 01:12

§(099) (게송) 인생행락처 소비광음최 춘풍유가석 취락만정화

**송담스님(No.099)-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약 6분.

 

인생행락처(人生行樂處)에  소비광음최(消費光陰催)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유가석(春風惟可惜)이라  취락만정화(吹落滿庭花)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행락처(人生行樂處)에  소비광음최(消費光陰催)라. 사람이 나서 행락하는 곳에-오욕락을 즐기면서 웃고 좋아하는 곳에,
소비광음최(消費光陰催)라, 아까운 광음(光陰)만 속절없이 흘러가는구나.

춘풍유가석(春風惟可惜)이라  취락만정화(吹落滿庭花)로다.
봄바람이 오직 아깝구나. 봄바람이 불면 산들산들 기분이 좋고 거기에 콧노래가 나오고, 춤이 나오고, 노래가 나오고 그러지만, 그 봄바람이 불어 결국은 뜰에 가득한 꽃이 지고 마는구나.

봄이 돌아오면은 가득한 뜰에 오색이 영롱한 아름다운 꽃이 만발해가지고, 그 아름다운 꽃이 그것이 사람이 보고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에 취해 있는 동안에, 세월은 흘러가고 어느덧 그 꽃은 지고 마는구나.

인생(人生) 일생(一生)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그럭저럭 하다 보면은 십여 세가 되고,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 공부하다 보면 그럭저럭 대학을 가게 되고, 그럭저럭 하다 보면은 결혼해서 아들 하나, 둘 낳다 보면은 벌써 주름살이 생기고,

인생 일생 칠십 많이 살아봐야 7~80인데, 그 일생이 지내놓고 보면 따뜻한 봄날에 잠깐 낮잠 한번 자고 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지금 이 자리에는 7~80 연세 많으신 노인으로부터 젊은 분이 계십니다마는, 연세가 많으신 분이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시면 잘 아실 줄 생각합니다. 엊그제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일이 금방 얼마 전 일로 생각이 되실 것입니다. 그동안 세월이 어떻게 무엇을 하는 가운데 지내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가 오십 고개를 넘었지마는 17~8, 20세 미만의 어릴 적 일이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이지마는 꼭 엊그제 같습니다. 30여 년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을 타고 차를 타고 잠깐 시내 한 바퀴 돌아온 그런 기분입니다.(처음~5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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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생행락처~’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 휴정 著, 朴敬勛역) p57 ‘탄서(歎逝)’ p58 ‘상춘(傷春)’ 게송 참고.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광음(光陰) ;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
만공선사2013. 11. 7. 10:14

§(458) (게송) 세로다위험 산문진적요~ / 학인무타술 직사대사인~ / 참선학자는, 만공스님 말씀에 ‘썩은 나무둥치가 되라’

 

**송담스님(No.458) - 1991년(신미년) 동안거결제법회(37분)에서.(용458)

 

약 8분.


세로다위험(世路多危嶮)한데  산문진적요(山門鎭寂寥)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애청산(從來愛清散)한데  황복치시요(況復値時澆)리요
나무~아미타불~

세로다위험(世路多危嶮)한데, 산문진적요(山門鎭寂寥)로구나. 세상이 이렇게 정말 살아가기가 어려워. 그런데 너무너무 위태롭고 험하고 그런데 산문(山門)은 진적요(鎭寂寥)요. 도문(道門)은 정말 참 조용하고 조용한 곳이로구나.

종래(從來)로 애청산(愛清散)하야,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저 전생에 숙세부터서 이 맑고 고요한 이 도문을 사랑해 왔기에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았고 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났는데,
황복치시요(況復値時澆)리요, 하물며 이렇게 세상이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이렇게 험악할 때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원래 오욕락(五欲樂)이 허망(虛妄)한 줄 알고 정말 도를 닦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겠다하는 그런 생각이 전생에부터서 있어 왔기에 이렇게 또 불법을 만났거든. 하물며 이렇게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렵고 말세가 되어서 온통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그러헌 탐진치 삼독(三毒)의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이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고려 대각국사의 게송(偈頌)입니다.


학인무타술(學人無他術)이여  직사대사인(直似大死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점기야무(一點氣也無)하여  방여나인합(方與那人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학인무타술(學人無他術)이여, 직사대사인(直死大死人)이다. 도학자가, 참선학자가 무슨 다른 방책이 없어. 다른 길이 없다 그말이여.

직사대사인(直死大死人)이여. 바로 대사인(大死人)과 같이 되라. 아주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려라 이거거든.

만공스님 말씀에 ‘썩은 나무둥치가 되라’ 이거거든. 칭찬해도 좋아할 줄 모르고, 잘못했다고 꾸짖어도 성낼 줄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않어. 완전히 바보 천치(天癡)가 되고 죽은 송장처럼 되어라 그거거든. 그 길 밖에는 도학자의 살아가는 방책이 없어.

일점기야무(一點氣也無)다. 한 점 아무리 코에다 귀를 대고 들어 봐도 숨소리조차 안 나. 어떻게 되게 죽어 버렸던지. 그렇게 되어버려야 바야흐로 불조(佛祖)의 스승이 될 수 있는 확철대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신미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렇게 사부대중, 여러 형제자매요, 여러 도반들이요, 또 동시에 산승(山僧)을 위해서는 도반(道伴)이면서 동시에 선지식(善知識)이십니다.
어쨌던지 올 삼동(三冬)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이 산승의 진리의 눈이 뚝 떠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28분38초~36분31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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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세로다위험~’ ; ‘宿伽耶山天城寺(가야산 천성사에 묵으며)’ [대각국사집’(동국대학교) p 446. ]
*산문(山門) ; 사원을 가리키는 호칭.
*도문(道門) ; 실천해야 할 도(道). 진실의 가르침. 반야진실(般若眞實)의 가르침.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가르침. 정도문(正道門)의 약어(略語).
*다생겁래(多生劫來) ; 수 없이 많은 겁이래로. 육도 윤회하면서 수 많은 생을 받은 것이 시간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
*요계(澆季)=교계(澆季) ;  교(澆)는 박(薄), 계(季)는 시대의 뜻. ①세상이 쇠하고 인정이 야박한 때를 말함. 보통 말법교계(末法澆季)라 함. 부처님 입멸 후 1천 5백년(혹은 천년 또는 2천년)을 지낸 뒤의 시대. ②정치나 도덕, 풍속 따위가 쇠퇴하여 어지러운 세상.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허망(虛妄 빌 허,망령될 망) ①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음 ②보람이 없고 허무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대각국사(大覺國師) ; 고려 중기의 스님. 우리나라 천태종의 개조 의천(義天, 1055~1101)의 시호. 속장경(續藏經)을 간행한 이. 문종의 넷째 아들로 선종의 동생.
* (게송) ‘학인무타술~’ ; [백운스님어록](무비 역주,민족사) p239에 ‘又作十二頌呈似(또 12송을 지어 올리다)’의 첫 게송.
*‘어떻게 되게 죽어 버렸던지’ ; ‘되게’—> 되다 ; (무엇이) 몹시 심하거나 모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