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과거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모든 복과 지혜를 누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정성스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여하신 그 공덕으로, 틀림없이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되어서 한량 없는 복을 누릴것은 의심치 않지마는, 우리는 그 복(福)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복이라 하는 것은 언젠가는 다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물질적인 복, 세속에서 말하는 명예, 권리, 재산 이러한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은 없어서도 안되지마는 영원한 것이 못되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에, 부처님과 조실스님과 역대 도인들이 말씀하시기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아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이라 하는 것은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루복만을 치중을 하시고 바쁘다 핑계하고, 아들딸 시집 보내고 다 키운 것을 핑계대고, 가정생활에 핑계대고, 사회에 핑계대 가지고 무루복 닦는, 내가 내 마음 닦는 이 공부를 사실상 너무나도 등한히 하고 계신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급한 것은 뒤로 미루고, 급하지 아니한 것은 집착해 가지고 그것만에 빠져서 앞길을 헤어날 줄 모르는 그러한 어리석은 하루하루를 지내지 않는가, 각자 냉철히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기해서, 부처님이 삼계(三界)에 모든 고해(苦海)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출현하신 탄생하신 그 부처님의 탄생일을 맞이해서,우리는 그 부처님이 남겨 놓으신 생사해탈법(生死解脫法)에 의지해서 ‘내가 나를 닦는 참선법’을 철저히 닦아서 결정코 금생에 생사해탈 할 것을 다같이 마음에 다짐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21분13초 ~ 24분36초)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고해(苦海) ;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 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갓 없는 우주법계가 텅 비고 밝은 거울인데, 그 거울이 무량겁 동안 거울에 쌓이고 쌓인 티끌로 그 밝은 빛이 나타나지를 못하는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인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역대조사와 모든 성현들은 그 티끌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터억 자아를 자각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했는데,
우리 중생들은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그 소리와 빛깔의 티끌 속에 파묻혀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고.
이러한 고인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경오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처음에 선방에 나오셔서 직지사(直指寺)에서 첫 철을 공부하시는 그 지경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살 열여덟 살 한참 그 어리신 나이에 같이 뛰어놀고, 같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친구가 병이 들어서 죽은 것을 보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을 받고 있는 차에 마치 밤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그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깨어나면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그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놓고 톱으로 머리로부터서 두 쪽으로 썰어 내리고, 또 사람을 수십 명씩 콩나물처럼 그렇게 잡어 가지고 큰 맷돌에다가 넣어서 맷돌로 갈아서 죽이는 모습, 또 그렇게 죽여 가지고 다시 또 살려 내 가지고 또 그와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를 하는 그러한 광경들, 그러한 꿈을 또 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어서 빨리 내가 선방에 나아가서 참선을 해야겠다’ 그러한 참 불같은 발심을 해 가지고 직지사로 나오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것,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포구발심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18~9세 어린 나이로 그런 친구의 죽음을 보시고, 지옥고의 꿈을 꾸시고서 포구발심을 하셨어.
그런데 우리는 정든 가족이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강도로 인해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그 사람들이 죽는 그런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보면서도 과연 생사에 대한 포구발심을 한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저 하늘나라에 낙(樂)을 받는 천국보다도 더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노상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참나'를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의 그 어린 나이로 첫 철에 직지사 선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를 하시는데 아침공양을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입선(入禪) 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큰방에서 대중 스님네와 같이 그렇게 하면 입선 시간이 있고, 방선하면 일어서야 하고, 대중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
그러기가 불편하니까 법당 뒤에다가 방석 하나를 갖다 놓고 거기서 공양시간에는 불가불 가서 공양을 드셔야 하니까 그때만 일어서시고 공양만 끝나면은 바로 그 자리에 와서 앉었어.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두 달, 석 달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첫 철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저런다고 며칠이나 갈까 보냐?’고 모다 수군덕거리고 그랬다고 아까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그걸 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어.
그러나 이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드는 바른 법을 알고서 하셔야 할 텐데, 누가 그걸 자세히 일러준 분도 없었고, 또 그렇게 자세히 해 놓은 책도 볼 수 없었고,
또 그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는 제산(霽山) 스님께서 조실로 계신 때인데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을 관하라’ 이렇게 화두를 일러 주셨으니,
그것이 도저히.. ‘일념미생전을 관한다’ 어떻게 관(觀)하며, 또 들은 법문에 의하면은 ‘화두는 의심을 관하는 것인데 의심도 없이 한 생각 이전의 상태를 관하라?’
도저히 바른 공부가 아닌 것 같아서 단독으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스스로 간택을 해 가지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파고 또 파고 해 가지고 어떻게 간절히 그리고 몹시 알날신심(遏捺身心)하면서 막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마침내는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그렇게 코로 입으로 많은 피를 토하셨다고 그럽니다.
결과적으로는 피를 토하셨거나 말았거나 그렇게 무섭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대도를 성취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애당초에 바른 자세법과 바른 호흡법과 바른 화두를 드는—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
그 화두를 드는 그런 가장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는 가장 그 묘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나가셨다면은 그렇게 피를 토하시지 않고도 도를 이루셨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이 들기도 하지마는.
하여간 그 어리신 나이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서운 신심과 무서운 분심으로 그렇게 밀고 나가 가지고, 병이 난 뒤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거기다 전부 다 바치고 결국은 정진을 중단하시지 않고서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친구나 정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철저히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라고 한 분도 지금도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그렇게 발심을 하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화두를 간택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신다면은 중간에 무서운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은 그 어려서 그렇게 피가 넘어오는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뒷머리가 툭툭 터져서 머리에 참 많은 흉터가 계셨고, 고생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시고 밤잠을 안 주무시고 공부를 하시고 그래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섭게 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평생 동안 후배들을 위해서 후학들을 위해서 참 감동적인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무량겁 동안을 수행을 하시는 가운데에 수없는 몸을 던지시고 참 무서운 고행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탄생하셔 가지고 그 팔만사천 무상법문을 그렇게 많이 남기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이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공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6분31초)
*虧 (이지러질 휴) 이지러지다. 손상됨. 그치다. 줄다. *裏 (속 리) 가운데, 뱃속, 다스려지다. 안에 받아들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〇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〇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요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다. 세월이, 이 시간이 돌과 돌이 부딪칠 때 반짝하듯이 그렇게 빠르다 그 말이거든.
벌건 소년 시절의 그 붉은 얼굴이, 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났어. 지금 이 자리에 젊으신 분도 많이 계시지만 머리가 허연 분들도 적지 않다. 어느새 이렇게 흰머리가 나고 늙었는가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열다섯 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어떻게 지나간줄 모르게 이렇게 늙었다 그말이거든.
현재 머리가 희고 연세가 많은 분 뿐만 아니라, 아직은 머리가 희지 않고 검고 주름살도 없고 젊은 분도 금방 희여진다 그말이거든.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여, 사람은 태어나서 빈부귀천과 흥망성쇠 속에서 좀더 잘살아 볼라고 정치로 나간 사람, 경제계로 나간 사람, 학계로 나간 사람, 예술계로 나간 사람, 별별 직업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과 소질 따라서, 참 피나는 노력을 하고 좀더 잘살아 볼려고 애쓰지만, 많이 살아봤자 백년 미만이요 지내놓고 보면 하룻밤 꿈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그리고 하루살이(蜉蝣) 신세에 지나지 못해. 돈 많다고 안 죽는 사람 못 봤고, 권리가 많다고 안 죽은 사람 못 봤어. 다 지내놓고 보면은 무엇이냐 그말이여.
꿈 한번 좋은 꿈을 꾸었거나 나쁜 꿈을 꾸었거나, 꿈 한번 꾸고 꿈 깨고 난 뒤끝에 지내지 못해.
그러나 그런 허망한 몸뚱이 허망한 인생이지만, 정법을 믿고 열심히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한 사람은, 전혀 인생을 헛산 사람이 아니여.
마지막 죽어갈 때에도, 내가 참 마음껏 정진을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있을지언정 인생을 헛살았다고 하는 그런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진을 열심히 해서 임종(臨終) 직전에 이르러서도, 떠억 몸은 괴롭겠지.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죽는다니까. 숨도 가쁘고 가슴도 답답하고, 나는 그렇게 죽어보지 못해서 확실히 얼마만큼 괴로운가는 잘 모르겠는데, 다 전생에 수백만 번 겪었지마는 전생사는 다 잊어버리거든.
그래 다른 사람 죽은 것을 보면 정말 마지막 숨 몰아 쉴때는 옆에서 보기가 대단히 안좋아. 푹푹하면서 가래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얼마나 답답하겠냐 그말이여. 일으키라고 했다 뉘이라고 했다 일으키라고 했다 뉘라고 했다...
참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죽을 때 편안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죽어간단 말도 들었고, 저녁밥 잘 먹고도 자는 듯이 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고, 특히 요료법(尿療法)을 한 사람은 죽을 때 아주 편안하게 죽는다니까 한번 먹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거기에다 요료법까지 해서, 죽을 때 편안하게 화두를 터억 들고서 눈을 감을수 있다면 참 다 조사열반(祖師涅槃)을 했다고 할 것이다 그말이거든.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똑딱똑딱똑딱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두를 터억 들고서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계실줄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법회가 끝나고도 항상 그 마음으로 일 초 일 초를 지내가고 댁으로 돌아가시는 걸음걸음을 그렇게 하시고 댁에 가셔서도 그렇게 화두를 단속(團束)하고 사신다면,
공부라는 게 사실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여. 몸뚱이를 들볶고 잠을 안 자고 먹을 것을 안 먹고 그렇게 막 들볶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만큼 먹고 잘 만큼 자되, 눈 떠있을 때 화두를 야무지게 단속을 해야 하거든. 그렇다면 완력으로 우격다짐으로 의단을 거각하는 것이 아니여.
항상 조실 스님 법문을 자주자주 듣고 화두 하나만을 여법하게 단속할줄 알면 누었거나 앉았거나 무슨 상관이 있냐 그말이여.
소지(掃地)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화두 하나만 여법하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뭐 시간이 간 것을 두려워할 것이 있으며, 늙어가는 것을 또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말이여
두려워한다고 안 늙겠습니까,
이제 가을도 다 가고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보름 남짓 지나가면 또 겨울 결제 겨울 안거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도 어느 선방에 가서 방부를 들이든지 항상 조실스님의 법문을 잊지 말고 여법하게 정진을 하시기를 당부를 합니다.(57분33초~1시간6분11초)
*(게송)‘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西山 休靜, 朴敬勛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86쪽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임종(臨終) ; 목숨이 끊어져 죽음에 이름. 또는 그때.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尿療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조사열반(祖師涅槃) ; 경허스님의 참선곡(參禪曲)에 다음 구절이 있다—‘참선 잘한 저 도인(道人)은 서서죽고 앉아죽고 앓도 않고 선세(蟬蛻-매미가 허물을 벗음)하며, 오래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自在)하며’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소지(掃地) ; 마당을 쓸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457) 금생에 해 놓은 공부는 설사 깨닫지 못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복과 혜를 겸하고 오후보림공부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용457)
약 7분.
설사 공안(公案) 하나를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공안 하나를 대답을 못해도 상관 없어.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 나가면 반드시 금생(今生)에 타파하게 되고,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해도 금생에 숨을 거둘 때에도 터억 화두를 들고 그 의단 하나로서 숨을 거두어 보라 그말이여.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거나, 설사 사람 몸을 받더라도 내생(來生)에 다시 몸을 바꾸어 가지고 또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을 만나서 내생에는 전강 조실스님처럼 어린 나이에 툭 터져버리거든.
물론 금생에 참 어린나이로 선방에 나오셔서 정말 생명을 바쳐서 정진을 하셨기도 했지만, 어떤 스님은 조실스님보고 ‘전생공부(前生工夫)라고, 전생에 그렇게 해놨기 때문에 금생에 그렇게 툭 터졌다고, 전생공부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듣기도 했지만,
하여간 금생에 여법하게 해 놓은 공부는, 금생에 설사 깨닫지 못했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내생에 일찍 툭 터지는 것이여.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공연히 속효심(速效心)을 가지고 빨리 깨닫기를 기달릴 일이 아니라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는 것 뿐이여.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기다릴 것도 없고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어.
게으른 사람이 항상 우선은 뒤로 미뤄. 지금은 내가 자식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만 죽으면 아주 선방(禪房)에 가리라. 또 뭐 딸만 여위어 버리면 선방에 가리라. 자식 저놈 대학에 들어가버리면 그때는 내가 공부하리라.
밤낮 뒤로 미루고 핑계를 대거든, 누구 때문에 내가 지금은 못한다. 그것이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이거든. 그것이 발심(發心)을 철저히 못한 것이고,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거여. 누구 탓할 거 없어.
그렇다고 해서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는 해야지, 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주부 노릇도 해야 하는데, 아직 시집 장가도 안 간 처지라면 이것 저것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 머리 깎고 출가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 저질렀으면 어쩔 수가 없어.
부처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들도 낳으셨고 얼마 안 가면은 왕이 될 그런 처지에서도 탁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끊어버리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고행(苦行)을 하시고 성불(成佛)을 하시는 그런 모범도 보이시기는 했으나,
내가 만약에 '다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라'하면은 당장 나한테 빗발치듯이 전화가 와 가지고 야단이 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권고는 안 합니다.
인연이 도래해서 본인이 발심해서 출가한 거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이 내가 하라고 한다해서 하겠습니까? 그러니 괜히 내가 그런 말은 안 하지마는, 뒤로 미루지 말라 이거거든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밥 지으면서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앉아서 '이뭣고?' 서서 '이뭣고?' 시장보러 가면서 '이뭣고?' 보아가지고 오면서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근심걱정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러한 생사(生死)의 바다속에서 생각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면 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생사를 이겨 낼 수 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것저것 다 끊고 조용한 데서 해 버릇하고 고요한 데서 익힌 공부는 조금 시끄러우면 잘 안되는데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익혀논 공부는, 좀 어렵지. 어렵기야 어렵지마는 그 속에서 해 놓은 공부는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되고 정말 힘 있는 공부를 하게 될뿐만 아니라 복(福)과 혜(慧)를 겸해서 닦게 되고 오후보림(悟後保任) 공부까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즉해서, 그 상황 속에서 턱턱 챙겨나가라.
그렇게 공부를 해 놓으면 금생에 출가를 하던지 또는 출가를 안하더라도 선방에 나오시면 문제가 없고 또 금생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정말 출가해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그러헌 좋은 여건하에 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51분~57분29초)
*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속효심(速效心) ; 빨리 효과 나기를 바라는 마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불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다.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불교]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일도양단(一刀兩斷) ; 칼로 무엇을 한 번에 쳐서 두 동강을 냄. 어떤 일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결정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임(保任)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보림이라고도 한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리선(義理禪) ; 선법(禪法)을 의리선, 여래선, 조사선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①의리선(義理禪)이란 것은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이름이니, 마치 인장으로써 진흙에 찍으면(印泥) 인발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다. ②여래선(如來禪)이란 것은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어서, 마치 인장을 물에 찍은(印水)것 같다. ③조사선(祖師禪)이란 것은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이치나 일에 다 걸림 없는 것이 마치 인장을 허공에 찍은(印空) 것과 같은 것이다. 무문채인(無文綵印),무문인(無文印) *사량분별(思量分別) ; 생각하여 헤아려서 종류에 따라 나누어 가름.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457) 세속적인 정(情)은 담박하게 하고 숙세의 인연은 받아들이되, 정법을 믿고 하심(下心)해야.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용457)
약 7분.
알게 되면 친하게 되고 친하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 한 생각 변하면 원수(怨讐)가 되는 것이여.
그래서 고조사(古祖師)도 원수를 만들고 싶지 아니하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말아라. 사람을 알고 지내면 정(情)이 들고 친하게 되면은 그것이 나중에 원수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 누구든지 웬수처럼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인간은 다 정으로 산다 그러지만, 이 정이라 하는 것이 부모 자식간의 정 또 부부간의 정, 그 정이라 하는 것이 참 사람으로서 정이 없을 수가 없지만, 정이라 하는 것이 참 이 고약한 거여.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면치를 못하고, 그런 정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신세를 망치고 큰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이라 하는 것은 너무 깊이 관여하다 보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는 거여. 얽매였다 하면은 헤어날 수가 없어.
그래서 자식이나 부부를 웬수처럼 볼 것까지는 없지만, 너무 정 가지고 죽고 못살고 그러지 말고, 반(半)만 덜어서 참선하는 데다가 정열을 쏟고, 그저 세속적인 정은 담박(澹泊)하게 사는 것이 좋다 그거거든.
어피차 인생은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있어. 생이별(生離別) 아니면 사이별(死離別) 하게 되어있는 것이거든. 그러니 너무 정을 붙일 것이 못되야.
그저 숙세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어쨌든지 정법(正法)을 믿고 정심(正心)으로 담박하게 살아갈지언정, 거기에 빠져가지고 헤어나지 못하면 도(道)도 못 닦고 결국은 그것이 육도윤회(六途輪廻)의 근본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그거거든.
그래서 전생(前生)의 업연(業緣)으로 만난 것이 자식이고 아내고 남편이고 그렇거든, 업연으로 만났기 때문에 좋은 일 보다는 근심 걱정 속상한 일이 더 많아 일생을 살다보면,
그러니 내가 지어서 만났고 내가 지은 업연으로 다 받게 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대번에 하루 아침에 탁! 끊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런 용기도 있을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끊는다고 한다면 가정이 파탄이 되고 큰일나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저 살되,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해 나가면 자연히 모든 일이 다 풀려가는 거여.
속상하는 일이 있어도 그 속상하는 마음을 밖으로 함부로 노출을 시키고, 함부로 표정을 짓고,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을 하면 하루도 가정이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니, 속상하고 언짢더라도 턱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스스로 그 마음을 안정을 해 나가도록 해 나가면, 자연히 다 해결되어 갈 것이다 그말이여.
억지로 참는 것, 우선 일단은 참아야겠지마는, 억지로 참고 또 참고 참는다고 하는 것이 능사(能事)가 아니여. 참고 참다가 나중에 그놈이 쌓이고 쌓여서 터질 때에는, 자기도 감내(堪耐)를 못하고 막 일을 저지르고 참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이니까.
참는다기 보다는 그 생각을 돌이켜. 숨을 터억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몇번만 그렇게 하면 그 치밀어 오르는 놈이 스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 내게 닥쳐오는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 자연히 거기에서 스스로 하심(下心)을 하게 되고, 스스로 하심을 하면은 만복(萬福)이 다 돌아오는거고,
하심을 못하고 그놈을 진심(瞋心)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할려고 하면은 백 가지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사바다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생사의 바다요 우리의 마음속도 생사심(生死心)의 그 바다속이여 바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대해(生死大海)인데, 그 생사대해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면 죽는 거여.(40분19초~46분51초)
*담박(澹泊)하다 ; (사람이)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생이별(生離別) ; 혈육이나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짐. *정심(正心) ; 마음을 곧고 바르게 가짐.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능사(能事) ; 잘하는 일. 또는 쉽게 잘 해낼 수 있는 일. *감내(堪耐) ; 어려움을 참고 견딤. *진심(瞋心,嗔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용457)
(1) 약 20분.
(2) 약 8분.
(1)------------------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홍화난만개(紅花爛漫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다.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불 속에다가 옮겨 심어서 재배를 했더라.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삼춘(三春)—봄, 삼춘의 비를 기다리지 안 해도 홍화(紅花)가 난만개(爛漫開)다. 붉은꽃이 난만히 피었더라.
나무는 다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여. 큰 나무나 작은 나무나 그림자가 다 있는 것인데, 이 한 그루의 나무는 그림자가 없는 나무여.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땅에다가 심는 것이 아니라 불구덩이 속에다가 심었더라.
그림자 있는 나무를 땅에다 심으면 반드시 비가 내려야 그 수분을 흡수해 가지고 다 자라게 되고 꽃도 피고 그럴텐데, 이 그림자 없는 나무는 땅에다 심지 않고 불구덩이에다 심었어. 그러기 때문에 봄비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봄비가 오지 안 해도,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그 붉은 꽃이 곱게 곱게도 피었더라 이거거든.
이 그림자 없는 나무, 이것은 그 나무 모양이 푸른 것도 아니요 노란 것도 아니요 빨간 것도 아니여. 일체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그 나무를 또 불구덩이 속에다 심느냐 그거거든.
볼래야 볼 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아무리 알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이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그놈을 나무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시(詩)다 그거거든.
그 나무를 왜 하필 불구덩이에다 심느냐 하면, 우리 중생의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몸뚱이요, 그 몸뚱이 속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항상 훨훨 타고 있거든. 그 불구덩이 속에, 탐진치삼독에 훨훨 타오르고 있는 그 불구덩이 속에다가 이 그림자 없는 나무를 한 그루를 심었더라.
이 우리의 몸뚱이는 항상 이 몸뚱이 자체는 똥과 피와 오줌 고름 모다 그런 것이 속에 가득차 있는데, 그것을 엷은가죽으로 싸아 가죽 주머니 속에다 그것을 담어놨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오느니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꾸역꾸역 기어나와, 매일 같이 아침 저녁으로 씻고 닦고 분을 바르고 향수를 발라봤자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더러운 것이 기어나오거든.
그리고 그 더러운 똥주머니속에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그 마음의 불—그 탐진치 삼독의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있거든 훨훨~훨훨훨 타올라.
혹 부처님 경전을 읽거나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는 잠시 그것이 꺼진 듯 했다가 금방 돌아서면 도로 타오르거든.
어떻게 하면 이 똥주머니를 좋게 가꾸며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관리를 하고, 그리고 또 예쁘게 옷을 입히고 단장을할까?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데,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불 그놈을 잡드리하는 데는, 물론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참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오시고 정진(精進)을 할라고 애쓰신 분들이지만 세계 50억 60억 인구가거개가 다 별로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가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봤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금방 무너져 버린거여. 십 분도못 가서 내장부터서 썩어 들어가는 것이야. 그렇게 저를 위해서 참 몇십 년간을 공력을 들여서 봉양(奉養)을 했건만 한 숨에 배신을 해 버려.
그놈 받들다가—속담에 ‘모진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고, 그놈 하나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단속하다가 결국은가는 것은 잔뜩 업(業)을 짓고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림자 없는 나무가 불구덩이 속에 심어져 있는데 그냥 그대로 놔 둬도, 삼춘(三春)의 비를 맞지 않아도 붉은 꽃이 난만(爛漫)하게 필 수가 있을까?
그 타오르는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잘 가꾸어서 거기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그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할라면 정말 나의 모든 것, 이 몸뚱이와 우리의 모든 정신을 거기에다 바쳐서 그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할려고노력을 해야 그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봄비는 필요가 없어. 봄비가 온다고 해서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가 꽃이 필 리는 없거든. 그래서 봄비는기다릴 것은 없으나,
정말 발심을 해서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모든 그런 오욕(五慾)이 정말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는 철저한 발심(發心),
그리고 ‘이 문제는 오직 내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결심,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있다’고 하는 신념,
그러한 바탕 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간택 받아 가지고 이 화두에 대한 의심, 아까 전강 조실스님의 임자년 녹음법문을 통해서 여러분은 아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염염상속(念念相續), 오직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만 있다면,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 누면서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가만히 있어도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몸뚱이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감각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생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성을 내고 때로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우리는 아무 그런 생각없이 완전 무념(無念)의 경지에는 단 1분 동안도 있어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생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육근(六根)을 통해서 무엇인가 알음알이가 움직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그 곳에서 화두를 드는 것 뿐이여.
망상(妄想)이 일어난다고 조금도 걱정할 것도 없어. 그 망상 일어나는 그 찰나에 떠억 고대로 놔둔 채, 일어나는 망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그대로 놔둔 채, ‘이뭣고?’ 화두만 거각하면 되는 것이여.
학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똑똑하고 안 똑똑한 것도 상관 없고, 남자니 여자도 따질 것도 없고, 출가 재가도 따질 것도 없어.
앉았을 때는 앉아서 ‘이뭣고?’
서 있을 때는 서서 ‘이뭣고?’
슬픈 생각 일어날 때는 슬픈 그 생각에 오래 잠겨 있지 말고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하는 생각에 왜 오래 거기에 머물러 있느냐 그말이여, 속상하는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터억 숨을 들어마셔. (그리고) 내쉬면서 ‘이뭣고?’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하고도 쉬운 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그 괴로움을 이기고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렇게 해서 자꾸 거각하고 또 거각하고.
‘화두가 잘 안 들린다, 망상 때문에 화두가 잘 안 들린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안된다’ 안된다고 걱정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안되면 다시 들면 그만이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것이 뭐 있느냐 그말이여, 일어난 줄 알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공안,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이는 무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는 분은 정전백수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만을 자꾸 거각해서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해 나가거든.
거기에 무슨 망상이 거기에 붙으며, 붙어봤자 그냥 놔둔 채 화두만 들면 망상은 저절로 자취가 없어져 버리는 건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거기에 의단을 타파(打破) 그래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도리(道理)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몸으로써 경험을 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에게 증명(證明)을 해 주신 것이여.
이 세상에 이것 밖에는 믿을 것이 없고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이거거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을 낳기를 원하고,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은 많은 재산을 갖기를 원하고, 명예나 권리가 없는 사람은 갖은 수단을 써서 그런 것을 구하지만,
그 마음먹은 대로 다 구해지지도 아니 할 뿐 아니라 설사 뜻대로 이루어졌다 해도 그건 영원성이 없고 잠시 그러다가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거여.
그런데 이 일대사 문제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면 아무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마는 그 속에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분심(憤心)이 나고 더욱 해 갈수록 더 발심이 되는 거여.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까? 내가 만약에 이 법을 안 만났으면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신심이 굳건해져 가고.
그렇다고 해서 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거든. 급한 생각을 낸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된 것이 아니여.
초심(初心), 초발심(初發心), 처음으로 발심을 해 가지고 참선을 시작한 사람은 그 초발심의 그 강렬한 신심으로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부칠라고 그러거든.
초발심자가 그만한 분심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열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다 보면 그런 만용적인 우격다짐 식의 그런 신심이 차츰 순화가 되고,
그래서 이 몸뚱이와 생각을 알날신심(遏捺身心)—막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몸뚱이를 들볶으고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막 몰아대고—하는 그런 것이 차츰차츰 순화가 되어서 정신을 올바르게 가다듬고 나가는 묘한 관(觀)을 스스로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는 정말 참 열심히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럭저럭 하다말다 해 가지고서는 안되는것입니다마는.(처음~19분51초)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몇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몇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 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과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그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 억만겁을 겪어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그 번뇌염을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수연의구차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로 객지로 떠돌아 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참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들이 몽매지간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한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것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그 왕이 그 본심왕을 갔다가 등져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또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나고 정법(正法)을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참 50억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것입니다.
이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話頭)를 잘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갈 곳도 없고, 가 봤자 별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잘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 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한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것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19분 50초~27분13초)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육도(六途) ; (=六道)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에 의하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육도윤회(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道)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삼수갑산(三水甲山) ;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각각 함경남도 북서쪽과 동북쪽에 있는 오지(奧地)의 지역명이다. 이 두 지역은 특히 날씨가 춥고 산세가 험하여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귀양지로 유명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삼수갑산(三水甲山)’은 ‘춥고 험한 지역’이나 ‘유배지’ 등과 같은 일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삼수갑산을 가다 ; ‘멀고 험한 곳으로 가다’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의 의미를 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