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 (게송)삼제구심심불견~ / 그 거울을 가자(假藉)해서 진짜 자기 눈을 딱! 인식을 할 수가 있는 거여 /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들을 때에는 소리를 듣거든 온전히 듣고, 모든 색상을 볼 때에는 보는 것밖에는 법(法)이 없느니라.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약 9분.
삼제구심심불견(三際求心心不見)호되 양안의전대양안(兩眼依前對兩眼)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수유검각주심(不須遺劍刻舟尋)하라 설월풍화상견면(雪月風花常見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제구심심불견(三際求心心不見)이여. 과거 · 현재 · 미래, 이게 삼제(三際)인데, 과거의 마음을 구(求)해도 구할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을 구해도 구할 수가 없고, 미래의 마음을 구해도 구할 수가 없어. '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가?' 한 번 찾어보시라 그 말이여. 어떻게 생겼나?
암만 찾어봐도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도 잡을 수가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도 아무리 어떻게 생겼는가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양안의전대양안(兩眼依前對兩眼)이여. 두 눈은 예나 다름없이 두 눈을 대하고 있더라.
거울을 떠억 보시라 그말이여. 거울을 따악 들여다보면 자기의 그 두 눈이 거울 속에 따악 들어 있거든.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그 두 눈이 바로 자기 두 눈에 영상(影像)이거든.
자기 두 눈을 아무리 보려고 해도, 하늘땅을 다 찾어봐도 그것은 찾을 수가 없는데, 거울을 딱 보면 그 속에 자기 두 눈이 딱! 들어 있거든.
그러면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그 눈이 진짜 자기 눈이냐 하면 아니여. 자기 눈에 그림자이지, 영상(影像)이지 진짜 자기 두 눈은 아니거든.
진짜 자기 두 눈은 아니지만, 자기 눈을 보려면은 거울을 보는 수밖에는 없어. 거울을 통(通)해서 자기 눈을 보는 거여.
거울을 딱! 보면은 자기 눈에 눈꼽이 끼인 것도 볼 수가 있고, 자기 눈이 빨갛게 충혈한 것도 볼 수가 있고, 그 거울을 가자(假藉)해서 진짜 자기 눈을 딱! 인식을 할 수가 있는 거여.
거울을 가자(假藉)하지 않고 아무리 눈을 찾어도, 땅을 파고 들어가도 그 속에는 없고, 하늘을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도 그건 없는 거다 그 말이여.
불수유검각주심(不須遺劍刻舟尋)이다.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뱃전을 찍지를 말아라.
배를 타고 가다가, 배에서 일을 하다가 칼을 잃어버렸어. '바로 여기에서 칼을 잃어버렸다' 해 가지고 그것을 표(標)하기 위해서 뱃전을 찍어서 표(標)를 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칼은 물에 빠졌는데, 그 물에 빠졌는데 뱃전에다가 표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거거든.
설월풍화상견면(雪月風花常見面)이여. 칼은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자기 손에 들고 있거든.
자기 손에 들고 있으면서 칼을 잃어버린 줄 알고 뱃전에다가 그 칼로 '탁탁' 흠집을 내서 칼 잃어버린 자리를 표(標)를 했다면 어떻게 된 것이냐.
겨울이면은 펑펑 쏟아지는 흰 눈, 가을이면 휘황창 밝은 달, 여름이면 시원하게 부는 바람, 봄이면은 청황적백(靑黃赤白)으로 피는 아름다운 꽃, 설월풍화(雪月風花)를 항상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되더라 그거거든.
겨울에 나리는 눈과 가을에 밝은 달과 여름에 부는 바람, 봄에 피는 울긋불긋한 꽃들을 볼 때에 무엇을 봐?
'아! 꽃이 아름답다'
여름에는 아! 시원한 바람이 불면 '아! 시원하다'
달이 밝으면, '아! 달도 밝다'
눈이 펑펑 쏟아지면, '아! 눈도 참 잘 쏟아진다'
그것을 화가(畵家)는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을 것이고, 시인(詩人)은 그것을 보고 시를 읊을 것이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그것들을 보고 무엇을 해? 춤을 출까?
들을 때에는 소리를 듣거든 온전히 듣고, 모든 색상을 볼 때에는 보는 것밖에는 법(法)이 없느니라.(1시간4분57초~1시간13분9초) (끝)
§(394) (게송)견색시증시~ /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 비추어서 내게 돌아온 것. 특히 상대방에 모든 허물이 나의 허물의 그림자 / 극락이나, 지옥이나 살아 있는 동안에 익힌 데로 태어난다.
〇일체 소리가 귀에 들릴 때에도, 귀를 통해서 일체 소리를 듣더라도 바로 그 듣는 그 찰나에 거기에 그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로 인해서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말고 그 소리가 귀에 이르자마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다그쳐 가면 생각 생각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곳이고, 걸음걸음이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하신 곳이다.
〇'정말 모든 것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 비추어서 내게 돌아온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 모든 허물이 나의 허물의 그림자다' 이렇게 볼 줄 알면 많은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고 풀라야 풀 수 없는 대단히 언짢은 관계도 아주 수월하게 풀어 버리고 해결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394)—89년 7월 첫째일요법회. (용394)
(1) 약 14분.
(2) 약 11분.
(1)------------------
견색시증시(見色時證時)요 문성시증처(聞聲時證處)니라
나무~아미타불~
염념석가출세시(念念釋迦出世時)요 보보미륵하생처(步步彌勒下生處)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시증시(見色時證時)요. 모든 색상을 보는 그때가 그것이 바로 생사 없는 참나를 증득하는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時證處)다.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듣는 그 찰나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을 곳이다.
그래서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볼 때 그 찰나가 바로 생사 없는 진리를 증득하는 때이기 때문에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참선(參禪) 안 한 사람은 그 무슨 색상을 보는 그 찰나가 벌써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에게 딱! 쇠고랑에 채여서 끌려가는 그 찰나고,
참선 공부를 하는 사람은 바로 무슨 색상이 눈에 띄자마자 ‘이뭣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바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바로 그 시간이다 그말이여.
일체 소리가 귀에 들릴 때에도, 귀를 통해서 일체 소리를 듣더라도 바로 그 듣는 그 찰나에 거기에 그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로 인해서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말고 그 소리가 귀에 이르자마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다그쳐 가면 생각 생각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곳이고, 걸음걸음이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하신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탄생하셨지만 이와 같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 생각 생각 그 찰나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고,
비록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출생하신다고 경전에는 쓰여 있지마는, 진짜 살아 있는 미륵 부처님은 우리가 걸음걸음이 ‘이뭣고?’ 딱! 챙기는 그 찰나에 바로 미륵불이 탄생하신 곳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실천해 나간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목전(目前)에 모든 경계 속에,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경계는 그것이 바로 자기의 얼굴인 것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쳐다볼 때에 자기의 얼굴이 보이죠. 거울 속에 나타나는 그 분명한 그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얼굴에 화장을 하면은 거울 속에 얼굴도 화장을 했고, 얼굴을 찌뿌리면은 거울 속에 얼굴도 찌뿌리고, 얼굴을 슬프게 우는 얼굴로 거울 앞에 서면 거울 속에 있는 얼굴도 슬피 울고 있을 것입니다. 웃는 얼굴로 거울 앞에 서면은 거울 속에 영상도 웃고 있을 것입니다.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허공계, 동서남북 사방 사유 상하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끝없이 펼쳐 있는 이 허공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인 것입니다. 이 거울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 거울인 것입니다.
그 거울 속에는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별도 있고 지구도 있고, 사람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가지가지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비춰져 있습니다.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돌도 있고 짐승도 있습니다.
그러한 모양들이 실지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지만 그것은 실(實)다운 상(相)이 아니고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비추어져 있는 허망한 영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영상을 실지로 있는 실(實)다운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거울을 하나 사다가 부인에게 선사를 했습니다. 그 부인이 좋은 것을 가지고 왔으니까, “정말 당신을 위해서 비싼 돈을 주고 아주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고 그러면서 주길래 그걸 쳐다봤더니 아! 그 속에서는 그 거울 속에 아주 예쁜 여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남편한테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더니 중국에 가서 무슨 여자를 하나 꿰차고 왔다”고 막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울고불고 야단이 났습니다.
시어머니가 하도 시끄러워서 “아니 왜 그러냐? 만리 타국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는데 왜 오자마자 싸움질을 하냐?” 며느리를 대단히 꾸짖었습니다.
그 며느리가 울면서 “아니에요, 어머니. 중국에 갔더니 어디서 계집년을 뀌어차고 왔지 않습니까?”
“기집이 어디가 있냐?”
“여기 있습니다” 거울을 주니까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아, '젊은 년을 뀌어찼다'고 하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구나”
시아버지가 “아니, 뭘 그렇게 시끄럽게 하는고?”
“아, 중국에 갔다 왔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시아버지한테 보이니까 “아! 뭔 늙은 년을 데리고 와. 늙은 영감탱이를 데리고 왔구만”
거울이란 것을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은 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얼굴이 비친 줄을 모르고,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왔다니, 늙은 망탕구를 데리고 왔다니, 또는 영감을 데리고 왔다니,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깨면 깨뜨릴 수 있는 그 거울만 거울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마는, 그까짓 거울은 별로고 진짜 우리가 눈 여겨서 잘 알아야 할 거울은 무변(無邊) 허공계(虛空界), 이 허공계가 하나의 큰 거울인 것입니다.
그 거울을 바로 볼 줄 알고, 바로 사용할 줄 알아야 정말 이 우주법계에 펼쳐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을 바로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고, 그 거울을 바로 볼 줄 알아야 자기의 참나, 참나의 참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게에서 사 오는 그런 거울은 우리 이 껍데기밖에는 보이질 안해.
그러나 이 허공계, 무변 허공계를 체(體)로 하는 그 거울을 바로 보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거울을 어떻게 보느냐?
참으로 옳게 보는 법은 가르켜 줄 수가 없지만 우선 여러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법을 가르켜 드릴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 큰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비춘 달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그 달도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허공 속에 비춰 있는 꽃도 하나의 식물로써 존재하는 꽃이 아니라 그 꽃도 자기의 모습이 그 거울 속에 비춰져 자기에게 반사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면 달이나 해나 별 저런 꽃 나무 그런 것만이 꼭 그 허공계에는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도 거기에는 비춰. 아내의 얼굴도 거기에 비추고, 남편의 얼굴도 거기에 비추고, 애인의 얼굴도 비추고, 미운 사람의 얼굴도 비추고, 친구의 얼굴도 비춰.
그런데 그 아내의 얼굴이나 남편의 얼굴이 남편의 얼굴이요 아내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얼굴이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아내의 얼굴로 이렇게 비추어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그 달 자체는 좋고 나쁜 것이 없어. 그 자체가 밝되 밝다는 생각도 없고, 그 달이 가리워지되 가리워져서 안 좋다고 하는 생각도 그 달 자체는 없는 거여.
그런데 그 달을 보는 내가 기쁜 마음으로 차 있을 때에는 그 달을 보면은 기쁘고 저절로 노래가 나와. 내 마음이 슬프면, 그 슬픈 눈으로 보면, 슬픈 마음으로 그 달을 보면 그 달이 그렇게도 하염없이 슬퍼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말이여.
그러니 기쁜 사람의 눈에는 그 달이 밝고 좋은 달로 비출 것이고, 슬픈 처지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 달을 보면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니 그 달이 어찌 나의 마음이 아니고 나의 모습이 아니겠느냐.(26분43초~40분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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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떤 내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도 내 집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오시는 손님 반갑고 그냥 잘 대접을 하고 싶은데, 내 집에 걱정스러운 일이 있거나 언짢은 일이 있어서 속이 상할 때에는 좀 반가운 손님이 와도 별로 반갑지 않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 손님에게 반갑고 반갑지 않는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볼 때에도 아내의 마음이 기쁘고 흐뭇할 때에는 남편을 보면은 그냥 반갑고 음식도 맛있게 해 드리고 싶다 그말이여.
그런데 속에 짜증이 나고 부화가 날 때에는 남편이 와도 반갑지도 않고 맛있는 음식도 잘 채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안 난다 그말이여.
그러면 남편은 아무 속도 모르고 하루종일 직장에서 종일토록 일하고 아주 피로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아무 까닭 없이 아내가 반가워하지도 않고 저녁도 그냥 그럭저럭 있는 반찬 갖다가, 먹거나 말거나 갖다가 놔두고 만다 그말이여. 남편은 까닭을 몰라.
그런데 지혜 있는 남편 같으면 ‘아하! 아내가 무슨 속상한 일이 있구나’ 이리 생각하고 우선 밥부터 먹고 그리고 아내에게 ‘무엇이 속상한 일이 있었소?’ 그렇게 묻고서 좀 잘 그 원인을 알아서 말을 듣고서 잘 위안을 하고, ‘아!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종일 일하고 온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대번에 또 그냥 막 욕을 퍼붓고 싸움을 걸면 그냥 큰 싸움이 될 거다 그말이여.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 남매간에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래.
요새는 집안 각 가정마다 아들딸들의 교육 문제, 공부 문제, 대학 고등학교 모다 입학 문제로 해서 모두 신경을 쓰고 걱정이 태산 같지만,
이러한 문제도 허공에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비춘 도리를 알고서 지혜롭게 처리하고 딸과도 터놓고 얘기를 하고, 아들과도 터놓고 대화를 해서 그 아들딸 마음속에 있는 문제점을 부모가 관심 깊게 파고들어서 그것을 정말 지혜롭게 처리를 해 나가면 문제아도 발생을 아니할 것이고,
또 아들딸 보고 '공부해라, 해라' 안 해도 차츰차츰 공부를 잘하게 될 거고, 나쁜 친구들하고 사귀지도 아니할 것이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찍 돌아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보살님네나 거사님네나 모다 이 참선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가정 문제가 복잡하고 걱정 근심이 많으면 아무래도 이 공부에 지장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모든 것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 비추어서 내게 돌아온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 모든 허물이 나의 허물의 그림자다' 이렇게 볼 줄 알면 많은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고 풀라야 풀 수 없는 대단히 언짢은 관계도 아주 수월하게 풀어 버리고 해결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믿는 사람은, 불법의 인과(因果)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그 사람의 허물로써 미워하고 원망하고 몰아대지 아니하고,
모든 다른 사람의 허물이 바로 그 허물이, '나의 허물이 그 아내를 통해서 나에게 되돌아온 영상이다. 나의 모습이다'고 하는 도리를 믿고 그렇게 해결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법만을 철저히 믿기만 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퍽 수월할 것입니다.
인과법만 철저히 믿으면 법률도 필요 없게 됩니다. 경찰 형사도 필요 없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이 인과의 법칙만을 믿게 되면 재판도 필요 없고 형무소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을 믿는 사람은 먼저 인과의 법칙 먼저 철저히 믿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게 되면 참 우리의 남을 원망할 일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일도 없고, 부모를 원망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바로 미워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상대방과 원결(怨結)을 맺게 되고 자기 자신을 점점 괴롭게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지옥, 다 사람들은 지옥을 꺼려 하지만 자기 마음이 편안칠 못하면 이 몸뚱이 살아 있으면서 이미 지옥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지옥을 없애야 앞으로 이 몸뚱이를 버리고 저승에 가더라도 지옥에 안 가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 자꾸 지옥에 들어가서 사는 연습을 많이 해 논 사람은 숨 떨어지자마자 익힌 데로 가거든. 우리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익힌 데로 가는 것입니다.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도, 정신없는 가운데에도 자기집은 어지간하면 다 찾아옵니다. 왜 그러냐?
날이면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도 집에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 지옥 연습을 많이 해 논 사람은 지옥에 가기가 아주 수월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천당이나 극락에 생활을 익힌 사람은 숨이 떨어지자마자 극락세계나 천국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인 것입니다.
앞으로 날씨가 삼복에 접어들면서 장마철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웁고 무덥고 불쾌지수가 높아가겠지만 그러한 불쾌지수로 인해서 언짢은 생활을 하시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더욱 ‘이뭣고?’를 열심히 하십시오.
몸을 단정하니 척추를 펴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속이 상하고 답답하고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이것을 더 열심히 박차를 가해서 더 하시라 그말이여.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이 공부를 하십시오. 그러면 그 어려운 일로 인해서 더 신심이 돈독해지고 더 불법을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는 훈련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과거에 모든 불보살과 모든 성현들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로 오셨던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宿世)에 이 불법에 인연을 심어서 이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 났습니다. 이 사바세계는 도(道)를 성취하기 좋은 곳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은 하나의 지혜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쇠가 불 속에 들어가고 물 속에 들어가서 쇠망치를 얻어맞지를 않으면 그 쇠는 훌륭한 쇠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원망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신심을 가다듬고 공부를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내세당연한만단(來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今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곡히 일러드린 말씀을 믿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내세(來世)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내생에 그 펄펄 끓는 지옥에 빠져서 ‘하! 내가 그때, 용화사에서 송담 스님 법문을 들을 때, 그때 왜 열심히 참선을 안 했던가?’ 그때 가서 후회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40분25초~51분38초)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허공계(虛空界) ; ①진여(眞如)를 말함. 무색무형이고 일체 만유를 포괄하는 것이 허공같기 때문. ②허공의 영역[界]이라는 의미.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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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152)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 / 거울법문 /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해야 / 참선•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〇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입니다.지식이 있건 없건 그것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헌 것도 상관이 없고, 죄를 많이 짓고 안 짓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안 허고 헌 것도 전혀 상관이 없어.
〇참선하는데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들어가는 거 - 경전에 있는 말씀, 어디서 들은 법문의 말씀, 그러헌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거,설사 무슨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알음알이지,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예요.
**송담스님(No.152) (참선법B) - 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1.10.04)에서. (용152)
약 21분.
내가 나를 찾는데 - ‘내’라는 게 뭣이냐 허면은, 눈으로 무엇을 보고서 ‘아! 저것이 주장자다. 저것이 마이크다. 저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아는 놈이 있거든.
‘저 산은 푸르다.’ 푸른 줄 아는 놈. 그것이 바로 나의 ‘나’여.또 소리를 듣고 ‘저게 어린애 목소리다’하고 아는 놈.그놈을 여의고 내가 없어. 대관절 거기에서 나를 찾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그때가 바로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 바로 그 찰나(刹那)가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나를 찾는 기회요. 나를 깨닫는 기회다 그말이야.
그놈을 여의고 내가 없고, 그놈을 여의고 부처도 없고 성품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눈으로 무엇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을 할 수가 있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줄 안 사람은 누구나 참선을 헐 수가 있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참선을 헐 수가 있는 것이어서,
참선(參禪)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이요 자격입니다.
지식이 있건 없건 그것도 상관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헌 것도 상관이 없고, 죄를 많이 짓고 안 짓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안 허고 헌 것도 전혀 상관이 없어.
눈앞에 모든 물건을 보는 것은 자기가 거울을 하나 놓고 그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 얼굴을 보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나쁘고 무식허다 하드라도 거울로 떠억 자기 얼굴을 보고서 『대관절 저 사람이 누군고?』 하고 의심헐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거울이라는 것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이 자기 남편이 중국에 갔다 오는 길에 거울을 하나 선사를 했는데, 그 거울을 그 부인이 보고서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면서 ‘중국에 가서 여러 달 있다 오더니 예쁜 각시를 하나 얻어 가지고 왔다’고 대성통곡을 헌다 그말이여.
그래 시어머니가 『아! 대관절 왜 그렇게 우냐? 좋으면 좋게 좋지. 아무리 좋다고 남편이 오랜만에 돌아와서 좋다고 그렇게 통곡까지 할 수가 있느냐?』 며느리가 『아니오, 어머니. 좋아서가 무엇입니까? 중국에 갔다 와서, 나는 잘 갔다 온 줄 알았더니 계집을 하나 뀌어 차고 왔다.』고 그러거든. 그래서 『무슨 계집이 어디가 있느냐?』 『여기 보세요.』 거울을 드리니까,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보더니 『아이구, 어디서 예쁜 각시 커녕은 늙은 년을 어디서 데리고 왔다.』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듯이, 하늘을 보아도-그 하늘에 뜬 구름을 보면서 그 구름을 통해서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하거든. 먼 산에 푸른 산을 보아도 그 푸른 산의 모습을 보고서 바로 자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로 돌아 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도 그 버스를 통해서 자기로 돌아와야 하고, 어떤 놀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도 자기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어머니 되신 분들은 어린애를 보고는 자기 어린애를 금방 생각할 줄 아실 것입니다.
그렇듯이 그 어린애를 보건, 푸른 산을 보건, 흰 구름을 보건, 버스를 보건 무엇을 보든지 간에 그 본 찰나에 자기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부처를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자성불(自性佛)을 깨닫기 위한 공부가 바로 화두(話頭)를 드는 것이여.
「이뭣고?」 무엇을 보던지 간에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마찬가지여.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아들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디서 어린애 우는 소리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듣는 찰나에 죽은 아들을 생각허겠죠.
그와 같이 어떠헌 소리를 들으면 퍼뜩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어렵다 하겠습니까?
눈을 뜨면 무엇이 보이고 잠에서 일어나면 항시 개방되어 있는 것이 귓구멍인데 들으라고 안 해도 언제나 소리는 들려오고 있고, 눈을 떴다하면 언제라도 노란 것 아니면 파란 것, 파란 것 아니면 검은 것, 사람 아니면 짐승, 물건, 집, 장님이 아닌 동안에는 언제나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후각이 이상이 생기지 아니한 사람은 언젠가 무슨 냄새가 들어오던지 들어올 것이고, 무슨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을 볼 것이고, 짜고 싱겁고 구수한 것을 알 것이고,
눈도 감고 귀도 막고 코도 막고 입을 막았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생각이 날 것입니다.
지나간 생각, 현재 닥치고 있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사람 생각 아니면 재산 생각 아니면 명예와 권리에 대한 생각, 무엇인가 생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이 두 번째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이뭣고?’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고, 찾는 그놈을 다시 되찾고.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뭣고?」 저 푸른 산을 볼 때에 「저 산을 보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그 다음에는 금방 「이 ‘이뭣고?’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공부를 허는 것입니다.
분별심(分別心), 사량심(思量心), 과거에 책을 보고 알았건, 귀로 들어서 알았건, 눈으로 봐서 알았건, 누구한테 배워서 알았건, 생각해서 알았건, 일체 지식이나 상식 다 이 공부허는 데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 보고 듣고 알고 헌 그러헌 것들을 여기에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놔두고 다못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 허는 것입니다.
이 참선하는데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들어가는 거-경전에 있는 말씀, 어디서 들은 법문의 말씀, 그러헌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거,
설사 무슨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알음알이지,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참선의 목적, 불법(佛法)의 목적은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참선하는 데에는 ‘무슨 경책(經冊)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하냐?’ 절대로 그렇지를 않고, ‘머리가 좋아야만 하는 것이냐?’ 절대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코가 없으면 똥을 된장으로 알고 집어먹을 만큼 미련헌 것이 오히려 이 참선을 허는 데에는 훨씬 빨리 깨달을 수 있는 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떤 조사는 『지옥에 염라대왕이 와서 끌어갈랴고 해도 하나도 무서워헐 줄도 모르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아미타불이 오셔서 극락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하나도 좋아헐 줄도 모르고 이러헌 바보가 있다면 당장 내가 인가(印可)를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도인(道人)도 계십니다.
소란 놈이 목이 마를 때 주인이 맑은 시냇가로 끌어다 대주면 소는 의심 없이 그 물을 꿀꺽꿀꺽 마시기만 허면 되는 것입니다.
‘이 물이 농약이 안 섞여 있을까? 누가 이 물에다가 독약이나 안탔을까? 이 물에는 균이 없을까? 이 물을 마시면 설사를 안 헐까?’ 이러헌 등등 머리가 영리하고 지식이 있는 척하고 이리저리 따지고 재고 그러기 보다는 주인을 믿고 주인이 끌어다가 대주면 여지없이 의심 없이 꿀꺽꿀꺽 마시는 그러헌 순한 소처럼,
『바른 자세로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2~3초 정지헌 뒤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해라』하면,
『아무 의심 없이 「이뭣고?」 그렇게만 허면, 무량겁 업이 다 녹아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도 거기에서 다 항복을 하고, 「이뭣고?」 한마디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읽은 공덕(功德)과 같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해 나가면 금생에 결정코 ‘참나’를 깨달라서 대도(大道) 견성(見性)을 헌다』 그렇게 말을 들으면,
여지없이 확- 믿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차를 탈 때나 일을 할 때나 한 생각 한 생각 그렇게 순진하게 착실하게 간절하게 공부를 지어간다면 결단코 견성을 허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영리헌 것, 참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세지총명(世智聰明), 세속적인 지혜가 영리하고 총명한 사람은 그 사람 도 닦기가 힘들다 그랬습니다. 세상에서는 영리허고 똑똑헌 것을 대단히 참 취하지만 도 닦는 데는 약삭빠르고 영리하고 똑똑한 거 그거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믄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도를 닦지 않고 바보·천치(天癡)들만 모여서 참선을 해야겠구나. 나는 바보·천치가 아니고 영리허니까 참선은 해봤자 적성에 안 맞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리해도 영리헌 데에 빠지지 아니하면 그것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경책을 많이 읽었어도 경책을 읽은 그것에 집착함이 없으면 아무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 아무리 좋은 것도 집착(執着)하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어가지고서도 그 깨달음에 집착을 허면 참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보살도(菩薩道)를 증득(證得)한 보살이 「나는 보살도를 증득했다」한 생각을 갖게 되면 이미 보살이 아니다. 나한과(羅漢果)를 증득한 성현이 「나는 나한과를 증득했다」고 허는 생각을 가지면 이미 나한(羅漢)이 아니다.』하는 말씀이 금강경(金剛經)에 있습니다.
그러헌 깨달음을 얻은 성현(聖賢)도 ‘내가 성현이 되았다’고 허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거든 그밖에 무엇에 우리가 집착을 헐 것이 있겠습니까?
얼굴이 조끔 남보다 이쁘게 생겼다고 그것을 집착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생긴 얼굴도 1mm에 십분의 일도 못 될 만큼 얇은 껍데기만 벗겨 놓으면 보기가 흉할 것입니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한 사람도 숨 한 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10분 못가서 내장이 버글버글 썩어 들어가고,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마찬가지여. 아무리 권리와 명예가 많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요.
우리는 아무것에도 그것을 내가 가졌다고 해서 으시대고 뽐내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참으로 이 불법을 올바르게 믿는 보살은 돈이 많을수록에 겸손(謙遜)하고, 지식이 많을수록에 겸손하고, 권리와 명예가 많을수록에 겸손하고, 힘이 셀수록에 겸손을 하는 법인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 하나를 가지면 자연히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가졌다, 권리가 있다, 명예가 있다, 지식이 있다’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뒤로 자지바지해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은 싫어허는 것입니다. 미워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잘못 되기를 고소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만 없으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힘이 세면 셀수록 좋고,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 뭐 하등(何等)의 나쁘다 할 것이 없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언제나 「이뭣고?」를 앞세우고 살아간다면 거기에서 업장(業障)은 소멸이 되고 복(福)과 지혜(智慧)가 증장이 될 것입니다.
이러헌 그렇게도 간단하고 그렇게도 쉬웁고, 누구도 할 수 있는 이 법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20분50초~41분17초)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대성통곡(大聲痛哭) ; 큰 소리로 몹시 슬프게 욺.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 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나한과(羅漢果) ; 아라한(阿羅漢)의 경지.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敵)•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어울리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敵),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현(聖賢) ;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으시대다 ;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다. *업신여기다 ; (사람이 대상을)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다. *겸손(謙遜 겸손할 겸,겸손할 손)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하등(何等) ; (주로 ‘하등의’ 꼴로 쓰여;뒤에 오는 ‘없다’, ‘않다’ 따위의 부정어와 호응하여) ‘아무런’, ‘아무’ 또는 ‘얼마만큼’의 뜻을 나타내는 말.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큰 거울이 있습니다. 이 허공은 동서남북에 한량(限量)이 없고, 모난 것도 아니요, 둥근 것도 아니요, 무한대로 멀고 먼 높고 높은 이것입니다마는, 그것을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큰 거울’ 야외음악당과 같이 생긴 둥그런 거울 속에 자기가 살고 있는데, 자기의 모습이 그 큰 허공에 거울에 비추어서 자기에게 되돌아온 것이,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모든 것이고,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이고,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모든 것이고, 눈으로 보고 귀에 들리고 입으로 들어오고 몸에 부딪치고, 우리의 생각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 바로 자기로부터 나가 가지고 큰 거울에 비추어서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부처님의 말씀에 추호(秋毫)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자기의 모습이 큰 거울에 비추어서 되돌아온 것을 보고, 그것을 보고 성을 내고 웬수를 갚을라고 한다면 이것은 정신이 나간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국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당나라에서 선물로 거울을 하나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갖다가 아내를 주었습니다. 아내를 주니까, 아내가 그 거울을 들여다보고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중국 갔다 오더니 어디서 이쁜 계집년을 하나 데리고 왔다’고 앙탈을 부리고 강짜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시어머니한테 쫓아가서 호소를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디 좀 데리고 와봐라.” 시어머니한테 거울을 갖다 주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거울을 갖다 보더니, “새파란 젊은 년을 데리고 왔다드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구나!” 그 거울을 또 영감을 보였습니다. 영감이 그걸 보더니, “늙은 년이 아니라 어디서 늙은 놈을 하나 데리고 왔다.” 이래 가지고 서이 각각 자기의 얼굴이 그 거울에 비추는 것을 알지를 못하고, 세 사람이 각각 달리 얘기헌 그러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까닭 없이, 또는 어떤 이유가 있건 없건, 자기의 기분을 상하게 할 때 또는 자기의 재산상 해를 끼쳤을 때 또는 자기의 아들을 남의 집 애기가 해롭게 했을 때, 많은 그런 피해를 입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즉각 그 사람한테 허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웬수를 갚을라고 헐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이 자기의 허물이, 자기가 과거에 저질렀던 또는 현재 자기의 마음속에 그러헌 요인이 될 만한 씨앗이 있었던 것이, 그것이 그 사람 밖에 있는 거울에 비추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틀림없이 그렇다고 허는 것을 인식을 하시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섭섭한 일을 당하드라도 어떠한 언짢은 일을 당하드라도 금방 마음을 돌려서 평온을 되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인과법(因果法), 이 도리(道理)를 인식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밤낮 웬수 속에 휩싸여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웬수가 되고, 부모도 웬수가 되고, 자식도 웬수가 되고, 친구도 웬수가 되고, 이웃도 웬수가 되고 해 가지고, 조그마한 일로 인해서 점점 웬수가 커져서 무량겁을 두고 서로 싸우고 찢고 찢기고 허면서 점점 죄를 더 퍼지어 가지고, 갈 곳은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 밖에는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道理) 하나, ‘저 사람의 허물이 바로 나의 허물이요. 나의 허물이-그림자가-거울에 비추어서, 저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에 비추어서 자기에게 되돌아온다’고 허는 이 간단한 인과(因果)의 원리를 잘 음미를 허시고 터득을 하시게 된다면, 그 사람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면서 완전히 이 사바세계에서 초월한 불보살(佛菩薩)과 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시게 됩니다.
그러헌 마음을 가졌을 때에 우리는 나날이 사람이 달라지게 됩니다. 엊그제까지 심술(心術) 사납고 고약한 사람으로 낙인(烙印)을 찍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루 동안에 또는 한 달 동안에 눈에 띄게 딴 사람으로 승화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7일 기도 회향 날에 왜 이런 말씀을 하느냐? 7일 기도를 정말 여러분들께서는 있는 정성을 다해서 정성껏 기도에 모다 동참을 하셨고, 직접 시간을 맞추어서, 날씨가 그동안 대단히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 속에 얼음 빙판 속에 새벽부터서 나오셔가지고 기도를 정말 성심껏 봉행을 했고, 또 기도 법사스님도 정말 열심히 기도를 봉행을 했습니다. 경건하고 환희 속에 7일 기도가 한 사흘도 이삼일도 못된 것처럼 휘딱 그렇게 지내갔습니다.
기도는 정성이 제일이고, 정성스럽게 한 기도는 반드시 성취되게 마련인 것입니다.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되실 줄 나는 믿는 것입니다.
기도 성취는 성현(聖賢)이 가피(加被)를 내려주셔서, 부처님과 성현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우리의 소원이 성취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렇게 믿어도 좋은 것이고 그렇게 표현을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하는 입장에서 관찰을 한다면, 그 성현이 자기 몸 밖에 계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와 함께 계신다고 허는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속에 한 생각 일어나면 밖으로 표현하기 전에 불보살은 먼저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 속에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기도를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여러분이 얼마만큼 열심히 하셨느냐에 따라서 그만큼 감응(感應)을 허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힘을 얼마만큼 들여서 고함을 질렀느냐하는 것은, 목구녕에 얼마만큼 강하게 흔들어 주었느냐, 이것에 달려 있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크게 지르면 그 소리는 멀리 갈 것이고 가만히 지르면은 자기 가까운데 한해서 들릴 것입니다.
정성과 바른 마음으로 경건하게 기도를 봉행할 때에 반드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산골짜구니에서 소리를 지름에 메아리가 울리고 물체가 있을 때에 그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신비한 것도 아니고 아주 평범한 과학적 사실에 지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통해서 지금 마음에 잡숫고 있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앞으로 1년 동안 또는 금생 일생동안, 나아가서는 무량겁을 두고 온갖 재앙을 소멸하고 그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도리가 금년 신수기도 7일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도록 저는 삼고자 해서, 지금 이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말면 조그만한 소원만 이루고 다시 또 재앙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우리가 원해야 할 조그마한 소원을 위해서 계속 또 신수기도를 해야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회향(廻向)일을 맞이해서 제가 말씀드린 ‘다른 사람의 허물이 바로 자기 허물의 그림자다, 자기 허물이 바로 되돌아온 것이다’고 하는 간단한 이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하시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신다면,
금년 1년 동안 어떠헌 재앙도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世世生生)을 두고 모든 웬수가 바로 나를 도와주는 그러한 불보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 가운데는 이러헌 도리를 깊이 이해하시고 철저히 수행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신 줄 나는 알고 또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에 있어서 수행에 있어서는 ‘이만하면 되었다’하는 한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선행(善行)이라도 해 갈수록 더 크게 더 깊게 더 멀리 넓게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데로부터서 먼 데까지, 작은 데로부터서 큰 데에까지, 우리의 행(行)이 그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30분2초~43분27초)
*추호(秋毫) ; 아주 적거나 조금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짐승들은 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털갈이를 하는데, 이 때 새로 나는 털은 너무 가늘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성 ; 노하거나 언짢아서 치밀어 오르는 울컥한 감정. *사신(使臣) ; 예전에, 나라의 명을 받고 외국에 파견되던 신하. *들여다보다 ; (사람이 사물을)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살피다. *계집년 ; ‘계집’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앙탈 ; ①말을 듣지 않고 생떼를 쓰며 고집을 부림. ②순순히 응하지 않고 사납게 거절함. *강짜 ; ‘강샘’을 속되게 이르는 말. *강샘 ; 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서이 ; ‘셋’의 사투리(충청,함경) *웬수 ; ‘원수(怨讐)’의 사투리. *원수(怨讐) ; 자기나 자기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심술(心術) ; ①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 ②온당하지 않게 고집을 부리는 마음. *고약한 —> ‘고약하다’ ; (성미나 언행이)괴팍하고 사납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현(聖賢) ;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에게 위신력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