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1/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60)—몽산03. 몽산시 각원상인(1) (임자72.07.15)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6분.


(1/3)----------------

운수기천리(雲樹幾千里)에  산천정묘연(山川政渺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봉각백수(相逢各白首)요  굴지계유년(屈指計流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찍이 출가해서 부모 고향 친척 다 여의고 들어와서 도(道)를 닦는다. 도학자(道學者)의 평생이라는 것이 참 운수천만리(雲樹千萬里)지.
집을 여의고 나왔으나, 뭐 집에 들어가서 뭐 어머니 아버지 무슨 고향 산천 그 어디 인연을 조금이라도 뭐 머물러 두고 나왔나? 다 여의고 떼고 나와서 그대로도 닦는 자체가 퍽 참 운수천만리(雲樹千萬里)에 그 멀기가 천만리여

다시, 허! 이렇게 도 닦다가서는 집에 들어가서 어디 살림 살 수가 있나? 아들 날 수가 있나? 뭣 해 줄 수가 있나? 부모 한 번 같이 모시고 살아볼 수가 있나?
중, 우리 도 닦는 도학자의 참 생애가 이렇게도 거리가 이렇게 친척 거리가 멀고, 고향 산천이 그렇게도 떨어지고. 이렇게 되아 버렸지.

참 생각할수록에 그 부모, 형제 인연 참 정묘연(政渺然)이다. 아주 묘연(渺然)뿐이여. 아득하니 묘연뿐이여.


아, 그 우리나라에 참 유명허신 서산(西山) 도사, 어릴 때 과거(科擧)보러 나왔다가 과거를 못허니까 그만 염세주의로 세상에 살 마음이 없어 돌아가실라고 결정하고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아! 산중에 제승(諸僧)들이, 모도 중들이 그 산속에서 공연히 친척 부모 고향 여의고 한평생 그렇게 그만 아무 인생 목적 없이 소원도 끊어버리고 독각 독승 독신주의로 그렇게만 지낸 줄 알았더니. 아, 들어와서 보니 정말 참 인생살이여. 인생의 사는 것이 참 이 사찰, 절이로구나.
그 자아를 자각해서 대도(大道)를 통(通)해서 자기도 깨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참 영생(永生), 영원히 죽지 않는 참다운 법이, 인생의 온당한 참 살림살이가 여기 있구나.

아! 그만 믿어 가지고, 한 번 믿으면 그뿐이니깐. 믿어져 버린디야 어쩔 수 있어? 누가 그 믿음을 못 믿게 만들며, 그 무슨 저해(沮害)를 할 것인가?
한 번 믿어졌으니 아! 믿음서부텀 그렇게 외동아들로 부모 밖에 모르든 사람이—부모를 모른 것은 아니지. 정말 부모를 참으로 옳게 대도를 통해서 우리 부모도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그야 참 어디 어따가 댈 수 있는가.

그것 한평생 자식 노릇한 거, 부모 모시고 돌아가시드락까지 시봉질 잘해 가면서, 무슨 거 부모 잘 육산포림(肉山脯林)에다가 무슨 용미진탕에다가 무슨 금의옥식(錦衣玉食)을 아무리 해 올린다 한들, 출가해서 대도를 증득해서 부모 천도(薦度) 제도한 것만 할 것인가?

거 뭣 헐 것인가? 그거, 잠깐동안 그거 뭐 인생살이 그녀러 것. 그러지마는 그 인생적으로 봐서는 그렇게도 그 자식 하나 낳아서 외동아들한테 의탁할 마음이 아! 그만 태산 같지마는 과거(科擧)를 갖다가 과거 못 허고는 그만 염세주의로 아! 그 뭐 종적을 감춰버렸으니 그 부모 마음은 오직 할 것인가?
허지마는 서산 도사의 마음은 그 설법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꽉 믿어 가지고는 부모 뭐, 일시의 뭐, 가서 뭐 부모 앞에 가서 뭐 자식노릇 백 번 천 번 별짓을 다한다 한들, 도 닦는 것만 할 것인가.

자취를 착 허적(虛寂)해 버리고 그믐해 버리고는, 거 앉아서 도 닦는 거, 십 년을 도를 닦았다 그말이여.
그 자취는 그렇게도 운수천만리(雲樹千萬理)에 그 과거 갔다가 내던져 번지고서는 그만 들어와서 부처님 제자 되어 가지고는 도 닦고 앉었으니 참 정묘연(政渺然) 아닌가? 적적(寂寂)한 묘연(渺然), 그 자리가 그렇게도 떨어져 부렀어. 부모 자식의 인연 도리가 그렇게도 떨어져 부렀네. 

상봉각백수(相逢各白首)다. 자, 도를 통해 가지고 부모를—그 도통할 동안 나를 깨달을 동안이 솔찬히 그렇게 쉽지 못하고 시간이 얼른 오들 못하고, 금방 얼른 얼른 그만 몇십 년, 수십 년 그만 지내 버린다 말이여. 그러니 백수(白首)로 늙은 말년에 백수로 부모를 만나러 갔다. 도(道) 다 깨달라서 얻어 증득(證得)을 해 가지고는 부모를 만나러 갔다.

굴지계유년(屈指計流年)이로구나. 손가락을 꼽아 가지고 세알라 보니 그 세월이 벌써 사오십 년 흘러서 휘익 지내갔다. 그 부모는 뭐 백수 노인이 되어 가지고는 뭐 자식 기억도 다 못하게 됐지마는 돌아가셔 버리고 없다. 촌(村)도 폐하고 촌도 다 없어져 번지고. 이렇다.
그 지경, 허니 도를 확철히 깨달라 가지고 목적을 달성해 가지고는 참 여지없이 갖추어 가지고는 부모한테 갔지마는 이놈의 무상한 세상에 모도 그 부모는 다 이렇게, 촌락까장 이렇게 되아 번졌다.
우리 도 닦는 도학자의 자취가 다 이려. 이러하니 참으로 부지런히 참으로 해태(懈怠) 없이, 퇴태(退墮) 없이 잘 닦아야 할 것 아닌가? 어서 닦아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살아 생존해 계신 부모가 바랜 그 보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이라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우리 참선법은 조사관(祖師關) 뚫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인데, 조사관은 내던지고 엉뚱한 짓 말아라. 왜 엉뚱한 짓을 하고 앉았나?
화두를 하나 얻었으면은 그 화두 하나 가지고는 그저, 그저 여태까장 아침마다 하든 거 뭣이여? 화두하나, 그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 하나 독로한 거, 단(單)으로 홑으로 독로한 거, 조금도 거기에 섞임이 없이 아무리 무슨 뭐 섞을라고 해 봤던들 섞일 것이 있나. 거가 뭐가 섞일 것인가?

거 그 번뇌니 망상이니 그 모두 그런 것 벌써 알면서, 번뇌 망상을 내가 모름사 하지마는 번뇌 망상과 그 잠 같은 거 못쓸 것인 줄 알면서 왜 그렇게 속냐 그말이여. 왜 그놈한테 그거 속아 지내는가?
그 천하에 나를 실업(失業)허게 맨들고 업을 잃어버리게 맨들고, 망가(忘家) 집을 모도 잊어버리게 맨들고, 고향을 가지 못하게 맨드는 마구니한테가 속아서 왜 일순간(一瞬間)인들 그만 잠 속에 들어버리고, 망상 속에 들어버리고, 그럭저럭 계산 속에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얼마나 거그서 용맹을 갖춰야 하겄는가? 얼마나 참 발심(發心)을 해야 하며 얼마나 날카로운 생각을 가져야겠는가? 좀 생각해 보소.


조사관을 뚫어야 하느니라. 조사관 뚫지 않으면 참선은 아니니까.
그 조사관이 얼마나 그렇게 맥혔기 때문에 그렇게 뚫기가 어려운가? 그 못된 곳이 모두 가려서 맥혀서 안 뚫어지지. 번뇌 망식 그 쓰잘 데 없는 계산, 그놈의 것 때문에 안 되지.
그놈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같은 놈이 뭐 구름같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취 없이 일어난 곳도 없이 퍼일어나는 놈의 것 그까짓 거, 그거 뭐 거기에 떨어지들 말고. 안 낼라고도 말고, 나는 놈을 미워헐라고도 말고, 그저 내 찾는 놈만 찾아라.

‘찾는 것도 죽는다’했지마는 ‘찾으면 죽느니라’했지마는, 참말로 찾을 것은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 공안(公案)을, 공안 대의를 찾어야 할 것 아닌가.
‘찾는다’하니까 무슨 뭐 공안 대의까장 찾지 말란 말인가? 미(迷)했으면은 깨달지 못했으면은 찾을 놈은 그뿐인데.

아! 그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뿐이지. 고놈 하나 딱 추켜들면 나오면, 아! 그놈은 조사공안이 근본적으로 그만 막 나오는디, 내가 딱! 타 가지고는 그놈 근본 뿌럭대기처럼 나오는디, 왜 그놈이 없어질 까닭이 있나. 없어질 수가 있나. 아지 못했으니 그놈 하나 진실해야겠다.

참, 그놈 하나 어떻게 허다가 얻었나? 생전 해야 믿지도 못하고 만년 가야 믿지도 못하고.
오직 해야사 불불(佛佛)이 출세해 가지고는 그 하나를 가르쳐 볼라니 안되니까 돌아가시기를 다 하고. 조석불(朝夕佛)이 있네.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돌아가신 부처가 있어.
가르쳐 볼라니 되어야지. 이건 자득(自得), 자기가 제가 자신(自信), 제가 믿어야지 제가 안 믿으면 못하니까. 부처님이 대표로 대신(代身)으로 믿어 주들 못하니까.

안 믿어 주면 인연 없는 중생인데, 미(迷)한 중생을 제도(濟度)치 못하니까. 어떻게 헐 것이여? 천상 이건 제가 저를 믿어서 저를 찾는 것임에 누가 ‘믿어라, 말라’ 누가 ‘해라, 말라’ 허라고 해서 허고, 말라고 해서 말 것인가?
아! 이렇게 결심 결정해 가지고는 콱 믿어 가지고는 쏴악 그만 출가해 번지고 일체 애연(愛緣) 애착(愛著)을 그 날카로운 칼로 쫙 베 번지고 들어온 우리 학자들이여.
누가 하라고 해? 부처가 하라고 한다고 혀? ‘믿으라’고 헌다고 믿고? 이렇게 믿어 가지고 결정해 들어왔으니 허는 법식이 그려.

참선이라 하는 것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다.
이것 또 누가 허신 말씀인고 하니 ‘몽산 스님이 각원상인을 보인다[蒙山和尙示覺圓上人]’ 각원상인이니께, 그 각원상인이 각원상인 같은 이는 상인(上人)이라고 해 놨으니 그때 당시에 큰 벼슬헌 분들이고, 글안허면 모두 군수나 모두 그런 사람들을 상인이라고 했다 그말이여.
몽산 스님 당시에도 불교를 무척 반대할 때니까, 벌써 그렇게 너무 그만 갖다 상인이라고 붙여 놓았어. 무슨 놈의 제자인데 상인은 무슨 상인인가? 하지마는그 상인한테 이렇게 말씀을 했다 그말이여.

참선이라는 것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일체 방편이 없다. 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幻)인줄 알면 여의여 버렸다. 환(幻)에는 방편(方便)이 없다. 환(幻)이지 뭣이여?
아무리 별별 것을 다 성취를 해 놓았자 타락이 있는 것이니까. 아무리 계행(戒行)이 좋다 하지마는, 누가 계행을 지키지 말란 말인가?
수도(修道) 학자라는 것은 계행이 갖춰져 있는데, 계행이 저절로 있는데. 벌써 참선 하면 참선 하는 학자한테는 계행이 그만 근본이 딱 되어 있는데. 심지품(心地品)이라니까! 아주 심지품, 부처님이 바로 설허신 십중대계(十重大戒)가 그게 바닥이여 바닥. 참선 바닥이여.

참선 화두를 척 들면 대계가 그대로 딱 갖춰져 있는 것이 대승계(大乘戒)여. 아! 그런 대승계인데, 내가 밤낮 헌 소리가 그 소리여. 만년 헌 소리가 그 소리여.(처음~19분4초)





(2/3)----------------

아! 그 딸 하나를 낳아서 길러 가지고는 그 도 닦는 스님한테 시험한 것이여. 시험 혀.
중생이라는 것은 도(道) 아니라 도 보담 더헌 것을 닦는다 하드래도 그놈 모도 색상(色相)으로 색신(色身)으로 몸뚱이를 받았기 때문에, 색심(色心)은 나기가 마련이여.
몸뚱이 가지고 있으면 그놈의 색심이라는 것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근본적으로 몸뚱이 받아 나온 원인이 색심(色心), 색신이여.

이 도는 닦는다 하지마는 그 스님이 참말로 도를 닦는 도학자시면은 참말로 진(眞) 계행을 참말로 본분 계행을, 그 대승계를 가진 스님이냐? 아니냐? 그걸 보기 위해서.
몸뚱이로는 안 범하지마는, 신계(身戒) 몸뚱이 계로는 안 범한다 하지마는, ‘마음 계’는 그놈의 마음 그놈, 자취도 모냥도 아무것도 없는 놈이 갔다왔다하는 발목댕이도 없지마는,
그놈이 거 뭐 항상 그 도무지 그 가슴속 흉중에 연기처럼, 불 때면 연기처럼 일어나는 놈의 것이 그놈의 것이여.

아! 그게 어떤 놈이 연애편지를 쓰기를 그 하도 그 연애를 해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게, 심중(心中)에 홀기무연화(忽起無煙火)하야, 마음 가운데 홀연히 연기 없는 불이 일어나서 칠보앵금을 반익회라. 칠보앵금을 반을 태웠다는 말이 있어.
그놈의 심계(心戒)라는 것이 그거 벌써 심계 일어나면 범하는 것이 심계여.

그러니까 예쁜 처녀를 갖다가 턱 보냄서, “네가 대번 가서 꽉 보듬고 그만 네 볼태기를 입에다 대고 가슴을 문대고 물어봐라”
환히 아는 처녀니께, 뭐 키운 처녀와 다름이 없은께, 양식 대준 스님이니까 뭐 무간(無間)하기가 짝도 없고, 그만큼 그 스님한테 가서 올라 앉혀도 뭐 문제가 없고.

나이는 또 근 20살, 옛날에는 뭐 20살이면 늙은 처녀라고 허지. 그런 처녀가 가서 아, 그만 “그 스님을 보고 싶어서 내가 왔습니다”고 하면서 아! 가서 그만 그냥 보듬고 드립대 그만 부부처럼 그만 뽈대기를 대고 그러니까. 아! 더군다나 그 참, 그 남자 여자요. 그것도 남자가 오히려 여자한테 대들턴디, 그 여자가 남자한테 그만 그래가지고는 척 대들어 어린양 비스름허니 그러니까.

참! 참 그 계행은 옳게 가진 사람 아닌가? 참! 그런 계행이 어디 있어. 손 한번 만져본 바 없고, 손 한번 무슨 끌어안아 본 바 없고, 그대로 두고.
“이런 때 어떻습니까?” 물으니까.


잘 들어! 항상 들었다고 ‘그 아는 거’ 그러지 말라 말이여. 그러면 법문 듣는 게 아니여.

척 끌어안고 “이런 때 어떻습니까?”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하니, 차운 냉기가 바위에 대하니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다. 겨울에 삼동(三冬) 날에 더운 기운이 없구나”

너는 마른 냉기요 나는 차운 바위여. 아! 마른 냉기가 차운 바위에 대했는디 거기에 뭔 뜻이 있을 것이냐? 아무 뜻도 없고 정도 없고 인생 정이 뭣이 있느냐?
네가 천하 미인이고 예쁘다고, 내가 천하 미인 예쁜 정이 너한테 건너가겠느냐? 너한테 내가 조금이라도 그 무슨 범할 마음이 있겠느냐? 아무 마음 없다.

그러니까 그대로 어머니 시킨 대로 어머니한테다 그대로 회전(回傳)을 하니까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하니 삼동에 더운 기운이 없다 합디다”
내가 지금 몇 번째 하는 법문이냐 이것이. 어째 그리 못 알아들을까?


“더운 기운이 없다 합디다”하니까,
“하! 이거 웬일이란 말이냐. 내가 여태까장 시험을 해보지 못했더니 과연 참 오늘은 시험을 해봤구나. 아! 이놈을 갖다가 이런 속한(俗漢)이 놈을 갖다가 내가 십 년까지 양식을 대주었다. 차라리 빌어먹는 거지나 그 좀 구제했으면은 아! 그래도 그 무슨 보시 공덕이나 있겠지마는, 아! 이런 놈, 이 속한이 놈, 거짓 속한이 놈, 도(道) 커니는 아무것도 아닌 놈을 십 년을 양식을 대주었으니 이러헌 도무지 헛된 일을 헐 수가 있겠나. 이놈 이놈 견뎌봐라 이놈. 대방맹이로 쫓아 버릴밖에 없다”고.

아, 그길로 올라가서 그 있든 집 불까장 딱 질러 번지고 “이놈아 나가거라. 이 더러운 속한이 놈아 나가. 네 이놈 네가 왜 십 년이나 내 양식을 먹었어? 당장 나가”
그만, 불질러 버렸으니 나가지 뭐, 뭐 별 수 있나? 십 년이나 시은(施恩)을 받았지마는 그렇게도 무정하게, 무정보담도 그렇게 그만 사람을 갖다가서 배척을 해서 그 괄세를 해서 쫓아낸다 그말이여. 안 쫓겨 나가겄어?

어떻게 했으면은 어떻게 일러야만 안 쫓겨 나가겄느냐? 이게 전국에 과거 6대 선지식 당시에 전국에 물었든 것이여.

아니 저놈의 자올고 있는 것 좀 보소. 이 법문헌디 자올고 있는 것 좀 봐. 응? 그동안에 꾸뻑 꾸뻑 그놈의 자올.. 밤새도록 잠 안 잤는가? 뭣 헌다고 내가 이렇게 여그 앉아서 내가 법문헌다고 앉았겠는가? 

이것은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텀 저 쬐그만한 어릴 때부텀 무슨 인과법으로 해서 차츰차츰 어떻게 가르켜서 그 뭐 처음 들어와서 사미과(沙彌科)로부터 사집과(四集科)로부터 사교과(四敎科)까장 대교과(大敎科)까장 다 가르켜 일러 놓았자, 그 사람이 참선허는 사람이 아니여. 참선을 못허는 법이여.
아무리 부처님이 경서(經書)를 그렇게 49년을 설법해 놓고, 조사 스님네가 그렇게 깨달은 도리를 다 설법해서 책에다가 다 해놓았지마는 그 책을 가지고 아무리 가르켜 놓았자 그 사람을 참선을 못 시키는 것이여.

어쩌다가 강사(講師)가 인자 발심해서 들어오기는 들어오지마는 강사 참선이라는 건 그건 벌써 틀린 것이여. 맨 해석만 배워놨기 때문에 참선만 하면 보통 망상과 달러서 그 도리회(道理會)에 망상이 나와. 제가 알았다는 망상이 나오고, 아는 망상이 나오고, 어떤 구절은 어떻다는 망상이 나오고, 들으면 다 제가 자해(自解)를 해부러. 그러기 땀세 공부를 못혀. 강사가 공부를 못혀. 아무리 그렇게 가르켜서 어릴 때 들어와서 삼사십 살 먹도록까장 강사를 만들어 놓아도 참선은 못혀.


여기에 여기 참선, 여기에 이 노장님이 다 배왔지 뭐. 화엄경 다 배워 넘기고 뭐 어째. 했지마는 늙은 말년 참선 하러 들어오셔서 화두 추켜들고 지금 화두를 한다 그말이여.
허지마는 과거에 배운 그 권중구(卷中句)가, 권 가운데 배운 그것이 무척 망상이 많이 날 것이여. 틀림없는디 뭐. 강사가 그렇게 참선한 줄 알어? 이렇게 해도 가르킬 수가 없는 참선법이여.

어쨌든지 그만 내 마음을 내가 발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내가 나 찾아야 하겠구나, 깨달라야 하겠구나’하고 툭! 듣고 발심이 턱 되아버려야, 발심을 해야 도를 닦는 거여. 천상 할 수가 없는 거여. 그래 그런 도학자(道學者)를 모아놓고 아침마당 설법(說法)을 해주는 것이여. 설법이라는 것이 인자 참선 배우는 것이여.
그러니 그 설법을 들을 때에 그렇게 그 좀 날카롭게 들으라고 내가 그렇게 내가 부탁을 하고, 그렇게 내가 귓구먹을 막 쑤셔서 송곳으로 쑤셔 가 뚫어 가지고 설법을 해주고 아! 이렇게 해도 꾸부덕 꾸부덕 자올고만 앉어 있냐 말이여. 그저 주장자로 대갈빡을 툭 한번 때리면 응, 피가 툭 터지게 했으면 시원하겠다. 마음에. 무엇이여? 거 당최 기가 맥혀.

조사관을 뚫는 참선법이다. ‘조사관을 뚫는다’고 해놨네, 여기. 응? 이것 보통 말 아니여.
‘조사관을 안다’는 말은 없어. 아는 건 외도(外道)인디 뭐. 조사관을 어디 아는 게 아니여. 조사관을 암사, 공부해 가지고 알아버리면 그만이지마는 아는 게 아니여. ‘뚫는다’ 했어. ‘뚫을 투(透)’자여.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다.

 

그게 참선 설법이란 거 이거—경(經) 새길 적에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저 때에 사위성중에 들어서 뭐 어쩌고 저..’ 거 소용없어. 설법은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여 그거. 법도 아니여. 뭣도 아니고.

아! 그렇게 청정하고 그렇게 깨끗하게 마른 냉기 같고, 차운 바위 같여. 아무리 대했자 무슨 뭐 색경(色境)켕이는 예쁜 마음켕이는 뭐 마누래, 처녀다 뭐 그런 생각도 하나도 없고,
‘깨끗한 차운 바위에 바짝 마른 냉기 비빈 것 같다’ 이랬는데 어찌 속한(俗漢)이라고 ‘이놈 속한이 놈을 갖다가서 10년 양식을 대주었구나’ 쫓아내는 원인이 어디 있냐 그말이여. 거 범정(凡情)으로는 도무지 그 어떻게 붙여서 해석할 수 없지.

아! 그런 계행사(戒行師)가 어디 있어? 그런 청정한 계행(戒行)이 어디 있어?
속한(俗漢)이, 참! 말로 헐 수 없는 속한이가 된 이치가 있단 말이여 거그. 그러니 온통 그때 모두 그 법문을 물어 놓으니깐 온통 한국에 답을 다했다 그말이여. 내가 없는 것을 말혀?


이번에 경봉당(鏡峰堂)한테 법 전허고 나와서 그걸 가지고 내가 설법 재료를 삼아 설법했는데,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날 시방 그래 놨네.
백천만 번 거다 해 놓았자 소용없어. 내가 해 놓은 것은 그대로가 법으로 딱 조직되었는데, ‘부채로 갖다가 땅을 뭉캤다’고 그러나? 부채로 뭉캐 놓으면 되간디? 아! 춘치자명(春雉自鳴)도 분수가 있지. 제 울음에 저 죽는 것도 분수가 있지, 말이 되냔 말이여 그것이. 그거 다시 되어야 되아. 큰일났다 그말이여.
그거 다 신문에다 내 놨네. 허! 나 웃고 있어 시방.

(경봉당이) 원상(圓相)을 뭉캐서, “아니니라. 거다 묻어라” 묻으라고 허니까, 다시 “하! 내가 알았다”고 고함쳐.
“그러냐”고 다시 끄집어다 물으니께 대답을 옳게 해서 “어떠냐?”하니 점두(點頭)를 척 해서, 그러고 나는 나왔는디. 그 뒤부텀 말을 들으니깐 한마디도 허담(虛談)이 없이 그대로 앉어서 보광전(普光殿)에서 뭐 당최 무슨 뭐 문답 (問答) 한마디 헌 바 없고, 확철히 그만....

(경봉당은) ‘그런 일이 없었다’
내가 그래 놓은 것이 나쁘단 말이여? 그게 거짓말이란 말이지? 그 거짓말이면 지금 뭣허고 앉었는고? 나, 하도 우스워서 말도 하지 않고 있어.

그래야 되지. 원상을 때려 뭉캐니... 왜 원상을 왜 뭉캐냔 말이여? 왜 원상을 뭉캐?
인제 봐. 깨달라 가지고 보란 말이여! 왜 원상 뭉캔게 뭐여? 원상 뭉켄게 그게 뭐 법이여?

오! 고불(古佛)도 미생전(未生前)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이니, 고불미생전에 응연일상원까장 확 없애버린게 옳다! 공(空)도 유(有)도 비(非)도 뭐 유(有)도 무(無)도 없이 홱 한번 쓸어버린게, 좋지!
응. 막도무사(莫道無事)이 호(好)타. 차라리 막도(莫道), 일 없다고 이르지 않는 것이 옳지. 한 방맹이를 내렸거들랑 방(棒) 준 처리를 해야지. 택도 없는 놈의 소리. 내가 거짓말했구만?

두고두고 보지. 역사에 올랐으니 두고두고 봐. 법문에 다 들어 있으니께. 눈 밝은 학자들이 다 볼 낀께.
꼴도 없는 놈의 소리. 말할 것이 뭣이여? 왜 제 울음에 저 죽냐 그말이여.

그때 당시에 원청 법광(法狂)이 되었으니까, 자기가 몰라 가지고 그때 당시에.
아, 그러다가서 나중에 턱 그래가지고는. ‘보광전 조실에 있었다’고 누가 그랬나, ‘조실 방 앞에서 그랬다’ 그말이지.

아! 그러고 보광전 막 뜰 앞에서, 가을인데 그때 뜰 앞에선데.
언제 내가 구산 스님을 그렇게 가서 구산 스님 찾아 들어가서...  구산 스님인가? 뭐여? 구하 스님인가? 구하(九河)스님! ‘구하 스님 방 앞에 가서 둘이 했다’고 했어.
누가 해? 내가 둘이 해? 내가 구하 앞에 내가 찾아가 둘이 내 그 법문을 했으면 구하가 알 것인가? 말도 아닌 놈의 소리 해놨다 그말이여.

내가 끌려갔지. 하도 오라고 해서 끌려 내가 들어갔지. 내가 혼자 자작으로 글쎄 가 했구만?
말이 당최 막... 난 입도 안 벌릴 것이여. 말할 것도 없어.

하도 내가 고마와서 ‘하! 그러시냐’
‘그렇다’고. 서로 그러나 그 말 하나 똑 해보고. 그러기에 참 탁마상성(琢磨相成)이지.(19분5초~35분49초)





(3/3)----------------

내가 이 공안은... 자, 이놈만 내가 일렀는가?
내가 ‘달다’는 놈을, 천하가 다 물어서 ‘달다’는 놈 이른 놈, 내가 도장원(都壯元) 안 했는가.

응, 별소리 다 일렀지.
매달려 있을 적에, 그 샘 언덕에 달려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꿀 받아먹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살아가겄냐?

별소리 다, “아야, 아야!” 언제 ‘아야 아야’ 할 겨를이 있어서 ‘아야 아야’ 혀? 꿀 받아먹는데.
응, 그 무슨 뭐 별 답이 다 있어. 별별 답이 다 있어.

아! 꿀 받아먹으며 어떻게 해야 살아가겄느냐?
“달다!” 내 한마디 일르는 놈이 그놈이 그 들어보면 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꿀 먹는 놈이 그 ‘달다’ 소리 한마디 한 거 뭔가?
허지마는 당시의 선지식(善知識)이 한목 인가(印可)여, 한목. 지금 뒤로 듣고라도 누가 시비(是非)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시비하면 어쩔 거여, 제가 제 죽지.

이놈 응, 어떻게 했으면, 어떻게 “이럴 때 어떻습니까?” 물을 때 뭐라고 답해야 혀?
뭐 처녀를 그만 그때 ‘처녀하고 한번 살겠다’는 사람이 다 있고, ‘처녀하고 내외가 된다’는 사람이 다 있고, 뽈대기 댄 사람이 다 있고, 뭐 별 답이 다 있어.

그건 안 되아. 촉이여. 여의고 답했자 안 되고, 즉해 가지고 답했자 안 되아. 밀어내도 안 되고 소용없는 거여. 어쩔 것이냐, 어떻게 헐 것이냐? 이 말이여.
이게 공안(公案)이여. 이런 공안이라는 것은 말로 아무리 이치를 때려 붙여서 해 봐, 된 법이 있는가?

공안은 수투(須透)다. 모르미 뚫는 것이다. 이걸 잘 들어.
천하 없이도 공안 하나를 뚫지 못하면 생사(生死)는 응, 면(免)켕이는, 생사를 면켕이는 생사를 짊어지네.

조사관 뚫기 전에는 타락 없는..  모두 환(幻)이여. 응, 모두 환이여. 지환즉리(知幻卽離)는 못 되아.
‘환(幻)인 줄 알면 여의어라.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방편이 없느니라’ 아! 부처님도 이래놨네. 오직 해야사 당신 깨달은 도리를 이렇게 말씀을 해놓았어.

그러고 허다 허다 못혀 가섭한테 뭐라고 뵈일 도리가 없고, 뭐라고 설헐 도리가 없으니, 일러라!
허! 가섭은 어찌 다행히 그 도리(道理)를 바로 봤던지 미소를 했네. 피익 씨익 웃었다 그말이여. 미소를 했네.

‘옳다! 가섭아. 참, 가섭아! 백만중(百萬衆)이 위요(圍繞)다마는 백만중이 위요를 했다마는, 승당자(承當者)가 너로구나. 깨달은 자가 너로구나’ 이래 주었네.
바로 말해야지 어쩔 것인가? 바로 말 안 해주고 어쩍 헐 겐가?

‘가섭아 옳게 알았다. 승당자가 네로구나’
요러헌 인가가 딱딱 없어 가지고 되아? 그놈이 도둑놈도 아니지. 제 눈깔 멀어 가지고 남 가르킨다고 앉어서 선지식 노릇허고 앉었어? 백천만 군인을 다 가지고, 천만 제자를 다 가지고 있으면 뭣혀? 더 점점 더, 더 갖다가 망해 놓지.

당시에 월봉이 뭣했어? 월봉이 뭣하는 거여, 당시에. 월봉 하나 그 내비두었다가는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라는 것은 거기서 매장이여.
월봉도(月峯道) 하나 되아버리고 말았지. 그런 유사교(類似敎)교. 월봉이 제가 부처 되아 버렸지.

지금에 이 말세에 사방서 모두 일어나 가지고 도인(道人) 일어나 가지고 도인 천지가 된께, 막 몇 종(宗)이 다 벌어지고 별짓 다 되니께, 아주 그만 교(敎)가 모두 번성되고 굉장한 것 같지. 정법(正法)에는 소용없어. 정법에는, 우리 정법학자라는 것은 여기에서 바로 믿고, 여기에서 바로 닦고, 정법 종자가 여기서 막 드리 출현해서 나와야 되지.

아무때나, 그저 그만 제가 어떻게 좀 잘 생기고, 좀 계행이나 똑똑하고 말도 좀 잘하고 경(經)깨나 아니까 뭐라고 입 벌리면은 ‘하이고! 스님’ 믿어 가지고 그만 ‘우리 큰스님이 제일이다’ 또 그다음 ‘큰스님이 제일이다’ 또 나와 ‘큰스님이 제일이다’ 요래 가지고 집단적으로 스승 맨들아서 제가 즈그들이 모두 맨들아서 인가도 없이 즈그들이 맨들아 가지고 받들고 있는 거, 뭣 혀? 그 뭣 헐 거여 그것이?

여시란 놈이 온 골짜기서 그만 제가 그만 모두 새끼 뒤집어 나가지고 온 골짜기에 여시 새끼가 꽉 들이찼으니 그 뭣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필경 그 뭐 사자나 호랑이 같은 거 하나 들어가면 다 그까짓녀러 거 어디로 도망 가, 다 밥 되아 버리고 말 것이지.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이렇게 이렇게 나오기를 몇 번이여. 몇 번 외도한테 들어가서 멕힐라다 도로 나오고 도로 나오고. 나왔지마는 우리 지금 이와 같은 정법이 어디가 머물러져 있나? 지금 우리 한국에 있다 그말이여.
장하지. 우리 한국에 시방 그 법이 있으니 참말로 장하지. 우리 수도(修道) 학자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도 닦아 나가는 참 이 수도 학자의 그 귀중허기가 지금 어떠헌고? 지금 약존약망(若存若亡)으로 그 씨갓이 종자가 지금 여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겄는고?

그 활구(活句) 참선(參禪)하는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조사관을 뚫어라.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니라. 묘오(妙悟)라는 것은 심로(心路) 끊어진 것을 묘오라 한다.
중생이 심로가 끊어져? 우리가 지금 심로가 끊어졌나? 어디 만날 그저 앉으면 그저 이 생각 요래 요래, 저래 저래 요래. 이 심로(心路)가 끊어졌어? 맨 놈의 심로.

그 부처님은 없나? 부처님은 깨달으면 그게 없어? 부처님은 심로가 아니라 각로(覺路)여. 그놈 어두운 놈이 광명 되아 버렸어. 중생은 밤중이 되어 가지고 있는디 부처님은 대낮 백주(白晝)가 되어 가지고 있어.
어두운 놈이 어디 간 곳, 온 곳 있나? 그대로가 광명체지. 어두운 놈이 광명이지. 광명 그놈이 또 어두워져 버리면 매(昧)해 버리면 어두워져 버리는 거.

활구(活句)가 있다마는, 사구(死句)라는 것은 참선에 그 붙도 못헌 것이여, 그녀러 것은. 뒈진 참선이니깐 소용없는 것이여. 그걸 가지고는 생사 하기는 간섭없다 그말이여.

아! 제대로 나와서 글 좀 잘해 가지고는 서사(書士) 되어 가지고 글 좀, 맨 놈의 써 논 놈의 글이 맨 공(空)이구만. 공 하나 알아 가지고 공(空)을 아는 게여. 알아 가지고 공을 보도 못했어. 알아 가지고는 전부 써 논 것이 맨 공이여. 뭣도 공이고, 뭣도 공이고, 뭐 공이다.
인자 술 먹어도 주색방광색부연(酒色放光色復然)이다. 술 먹고 고기 먹고 방광하고 막 지낸 게 그대로가 다 색(色)이고, 그대로가 다 공(空)이고. 요래 놓고 견성이라고 해 가지고는 야단쳐.

내가 누구라고 어떤 사람이 그런다고 내가 그런 말 하나? 그러헌 종자가 있으면은 불법 망하는 것이고, 그런 종자가 없는 게 아니라 있고. 그렇다 그말이여.
그렇지마는 내가 ‘아니다, 기다’ 뭐 쫓아다니며 시비해 놓을 것인가? 나는 부처님 정법대로 부처님 설법대로 나는 고대로만 딱딱 진묘(眞妙)만 거다 가려 내가 놓지. 어떤 것은 진(眞)이요, 어떤 것은 가(假)요, 어떤 것은 외도(外道)요, 어떤 것은... 이런 걸 내가 말해 놓는 것이지. 그거나 뭐 법문이 무엇인데?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하면—이 조사관, 그 「이뭣고?」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한 번 파(破)혀. 툭 깨버려. 조사관도 뭐 그대로 두나? 그놈을 파해 버려 그만. 툭 깨버려 그놈을 그만. 조사관을 불투하면, 뚫지 못할 것 같으면은 심로(心路)는 부절(不絶)이다. 심로(心路)라는 건 끊어지는 법이 없어.

중생의 심로가 어디 끊어지나? 또 중생의 심로가 끊어지면 토목(土木) 와석(瓦石)같이 돌같이 이럴 것인가? 그걸 끊어졌다 하나?
심로 끊어졌어도, 벌써 견성(見性)허면 심로 끊어졌어도 거기에는 막 설법이 나오고, 설법이 운기장공(雲起長空)처럼 막 나오는 것이지.
그대로. 그대로 그 중생 업이 중생 식업(識業)이 거기에 붙들 못허는 것이고, 그대로가 모두 조사(祖師)의 말후구(末後句)가 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의 법이란 그려.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허여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서 세간상(世間相)이 그대로 상주(常住)해 있지,
떼고 여의고, 어두운 놈은 컴컴헌 밤중 어두운 놈을 씻거 버리고, 어떻게 없애 버리고 밝은 놈이 있는 게 아니여. 그 어두운 놈 자체 그대로가 그대로가 밝은 놈이여.
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 있어서, 법(法)이 법위 항상 주(住)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니라.

 

부처님이 깨달라 놓을 것 같으면은 우리 중생보담도 백천만 배 더 중생 허물, 번뇌 망상 그 경계를 더 안단 말이여. 더 알고 더 말씀하고.
그놈이 낱낱이 수은(水銀) 한 덤벵이니라. 수은 한 덤벵이. 수은 한 덤벵이 그놈, 수은 덩어리 갖다가 내 부딪쳐 버리면은 천만 쪼가리가 된다 수은이. 쓸어 모으면 도로 한덩어리 되고, 암만 갈라진 미진(微塵) 티끌만큼 한 것도 그건 수은이지, 별것 아니여.

각(覺)이라는 게 그렇다 그말이여. 여의고 있나? 떼고 없애고 있나?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하면은, 조관을 뚫지 못하면은 심로(心路)는 없어진 법이 없으니 심로가 그대로 중생견(衆生見)이요, 중생견 그대로가 지옥고(地獄苦)다. 그놈이 지옥고여.
그놈이 곧 지옥이고, 그놈이 아귀고, 그놈이 축생이고, 그놈이 뱀이고, 구렝이고, 소고, 말이고 그런 거지, 뭐 그놈 여의고 있나?

중생 경계라는 것은 전체가 모두 응, 천만상 분별 전체가 그런 것이 중생. 아! 그놈 그만 그 누견(陋見), 그 숭악한 누견이 말하자면은 그 좋은 그 금은보석 속에는 그런 보배인데, 이놈 껍데기에 가서 무엇이 그리 찡겨서 찌어 있는지 때가 꽉 찌었다. 암만 해야 벗겨지지 않고 찡겨 있다.

아! 그놈을 그 화닥딱 벳기는 법이 있어. 벳겨 놓으면은 그만 속에 그 금광(金光), 그 참 금은보석이 아! 그놈이 그만 휘황찬란한 거와 마찬가지지. 뭐 그놈이 뭐 딴 놈인가? 광(光)만 나면 되는 것이지.

심로가 끊어지지 아니하면은 이게 중생인데, 중생이란 건 진시의초부목정령(盡是依草附木精靈)이다.
다 이 풀에 의지해서 모도 가서 귀신이 몸뚱이 없으면은 풀에 가서 붙어 가지고 살기도 허고, 저 돌에가 붙어 가지고서는 침 탁! 뱉으면 침이나 빨아먹고.
빨아먹기나 허나? 그놈의 게 제 업력으로써 그런 걸 추헌 걸 빨아먹지, 그거 무슨 입이 있어 빨아먹어? 고런 짓이나 하고. 그걸 부목정령(附木精靈)이락 햐.

불 때다가 내던져 버린 부지깽이 끝에 가서 붙어 가지고는 그놈이 인자 놀아나고. 조리 같은 것 이런 것 쓰다가서 내던져버리면은 진태미 밑에 있다가 썩어서 나자빠진 그런 데 가서 붙어 가지고 나돌아 댕기는 모두 그걸 갖다 의초부목정령(依草附木精靈)이락 햐.

우리가 이 몸뚱이 하나 이것 가지고 시방 덮어 뒤집어쓰고, 여기서 시방 눈깔 뭔 모두 이런 것 붙어 가지고는 별별 것을 다 알아내고, 별별 진심(瞋心) 썽, 중생견 다 내고 별짓 다하지마는,
그게, 고 몸뚱이 하나 독사 같은 것 가지고서는 그 독사 같은 망상이나 피우고, 풀에 붙어 있는 영혼이나 같은 것이여. 똑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여까장.(35분50초~51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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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수기천리~’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회우(會友)’ 참고.
*운수[雲樹] ; 구름과 나무. 운수지회(雲樹之懷).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생각할 때 흔히 쓰는 시적(詩的) 표현. 두보(杜甫)의 ‘봄날에 이백을 생각함[春日憶李白]’이라는 시에 “내가 있는 위수(渭水) 가엔 봄날의 나무, 그대 있는 강남 땅엔 저녁의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됨. (『杜少陵詩集』 권1 참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묘연하다(渺然-- 아득할·물이 끝없이 넓다 묘/그럴·듯하다 연) ; 넓고 멀어서 아득하다.
*육산포림(肉山脯林 고기 육/뫼 산/얇게 저미어 말린 고기 포/수풀 림) ; 고기가 산처럼 쌓이고 포가 숲처럼 많다는 뜻으로, 몹시 사치스러운 잔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허적하다(虛寂--) ; 텅 비어 적적하다.
*솔찬히 ; 솔찬이.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백수(白首) ; 백두(白頭). 허옇게 센 머리.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幻)인줄 알면 여의여 버렸다. 환(幻)에는 방편(方便)이 없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7~88.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심지(心地) ; ①마음의 본래 자리. 모든 인식과 실천의 근거가 되는 자리. 마음이 일체 만법을 내는 것이 마치 땅에서 풀 · 나무 등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②마음자리에 본래부터 갖추어진 자성의 계체(戒體). 심지계(心地戒)와 같다. 불성계(佛性戒), 무위계(無爲戒), 무상계(無相戒)라고도 한다.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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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심(色心) ; 색욕(色慾 성적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욕구)이 일어나는 마음.
*신계(身戒) ; 몸에 지니는 계행(戒行). 모든 살생 · 도둑질 · 음행에서 영원히 벗어나 범하지 않는 몸에 관한 계율.
*심계(心戒) ; 탐욕(貪欲) · 진에(瞋恚) · 사견(邪見) 등의 사악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제지하는 계.
*칠보앵금 ; 칠보(七寶)로 장엄한 거문고.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 ;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더운 기운이 없구나’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무간하다(無間--) ; 서로 체면을 차리거나 조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허물없이 친하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사집과(四集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를 배우고 나서 수학하는 과정이다. 곧 규봉 종밀 스님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都序』), 대혜 스님의 『대혜선사서장(大慧禪師書狀)』(『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節要』), 고봉원묘 스님의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禪要』)를 말한다.
*사교과(四敎科)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에 이어 배우는 과정이다.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도리회(道理會) ; 화두를 공부할 때 정신을 차려 본참공안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일정한 사유의 틀을 가진 도리(道理)에 근거하여 ‘도리가 그렇다’하며 분별하는 잘못된 알음알이. 회(會)는 이해함, 분별함, 알아맞춤 등의 뜻.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전강 스님과 경봉 스님의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법거량.

[참고]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경봉 스님께서, 지금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계신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처음에 깨달으셨을 때, 바로 마치 그때 거기에 당도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경봉 스님보다는 훨씬 연세가 아래였었지마는 바로 이 마조원상의 공안을 경봉 스님께 물어 가지고,
처음에는 경봉 스님께서 그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켔습니다. 거기에서 전강 스님은 “당장 이 송장을 끌어 묻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거기에서 한참 눈을 웅큼하게 해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 경봉 스님께서 “이제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해서 그때 보시니 아까의 경계와 판연히 달라서 경봉스님을 산골짜구니로 끌고가 가지고 이 공안을 다시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께서 일르셨다고 한 말씀을 금방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15분48초~17분19초)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  가섭기능전(迦葉豈能傳) ;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2.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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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원(都壯元) ; 장원(壯元). ①예전에, 과거(科擧)의 갑과(甲科)에서 일등으로 급제하는 일이나 그 사람을 이르던 말. ②글을 제일 잘 지어 성적이 첫째임. 또는 그런 사람.
*달다 ;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의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켕이 ; ‘커녕’의 사투리.
*커녕 ; ①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②체언의 뒤에 붙어,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백만중(百萬衆)이 위요(圍繞)를 했다마는, 승당자(承當者)가 너로구나. 깨달은 자가 너로구나’
[참고]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50, 57 참고.
〇三世諸佛  歷代祖師  留下一言半句  惟務衆生超越三界  斷生死流  故云  爲一大事因緣  出現於世  若論此一大事  如馬前相撲  又如電光影裏穿針相似  無儞思量解會處  無儞計較分別處  所以道  此法非思量分別之所能解  是故世尊  於靈山會上  臨末梢頭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毛竅  盡底掀飜  雖有百萬衆圍繞  承當者惟迦葉一人而已  信知此事決非草草

삼세(三世)의 부처님들과 역대의 조사들이 남기신 한마디 말씀이나 반 토막 글귀라도 그것은 오직 중생들이 삼계를 초월하여 생사의 흐름을 끊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했다”고 하셨다.
만일 이 일대사를 논하자면 마치 달리는 말 앞에서 씨름하려는 것과 같고 번개불빛에 바늘귀 꿰려는 것과 같으므로 그대들의 사량(思量)으로는 알 수 없으며 계교하여 분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맨 마지막에 이르러 삼백육십 골절(骨節)과 팔만사천 털구멍까지를 죄다 드러내 보이시니 백만 대중이 둘러싸 있었건만 아는 이는 오직 가섭(迦葉) 한 사람뿐이었다. 참으로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줄 알겠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약존약망(若存若亡) ;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함.
*씨갓 ; ‘씨앗’의 사투리.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참고] 『무문관(無門關)』 (무문 혜개 스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絶=絕(끊을 절).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게송)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누견(陋見 좁을·천할·조악할 루/볼·나타낼 견) ; 좁은 생각이나 소견. 하찮은 의견.
*부지깽이 ;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거두어 넣거나 끌어내는 데 쓰이는 가느다란 막대기.
*조리(笊籬) ; 쌀에 섞여 있는 돌과 뉘를 걸러내기 위해서 쌀을 이는 데 쓰는 도구. 가는 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결어서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손잡이가 기다랗게 달렸다.
*진태미 ; ‘①먼지, 묵은 때, 찌든 때. ②진눈깨비’를 뜻하는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715) 전강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문제점이 있는 것이 바로 잡아진다 /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의심(疑心)입니다 / (게송)군금욕식무위리~.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용715)

 

약 10분.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話頭)가 정말 참선(參禪)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잘되거나 못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初學者)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여러분이 무위(無爲) 이치를 깨닫고자 할진대는 천차만별 가운데를 여의지 말지어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하는 것은 육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리고 마음으로는 희로애락, 육체적인 정신적인 모든 상황이 천차만별인 것입니다.  천차만별 중을 여의지 말아라.

눈으로 무엇을 들어도 이뭣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어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바로 그놈을 여의고 찾을 것이 아니라, 무슨 소리가 들리면  소리에 즉(卽)해서 이뭣고?’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떠억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라. 다못 허공에 달이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여.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를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숭이는  속에 달이 비치니까  하늘에 있는 달이 떨어졌다고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달을 건질라고 하다가 빠져 죽은 설화가 있습니다. 달은 못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여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뇌나 망상이나 슬픔이나 기쁨이나  세계의 흥망성쇠나 생로병사가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니 경제니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마는 고구려나 고려 ・ 이조 ・ 신라 · 백제나 해방되어 가지고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적고 걱정스러운 일들은 끊임없이 옛날과 다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들이 꿈속에 일어나는 일이요,  중생(衆生)의 지은 업(業)으로 일어나서 일어나는 일이니, 설사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이라도 참으로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되면 우리로서는 화두를 단속하고 정진하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너무 말을 많이   같습니다.  철을 오늘 이러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지내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719~473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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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참고.

*무위(無爲)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 조작(造作: 만들다)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삼독(三毒) 소멸된 열반의 상태.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 ; 정중로월(井中撈月 우물 정/가운데·속 중/잡을·건질 로/달 월)  ‘우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진다’

 

[참고]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7 (東晉天竺三藏佛陀跋陀羅共法顯譯) ‘明僧殘戒之餘

佛告諸比丘  過去世時  有城名波羅奈  國名伽尸  於空閑處有五百獼猴  遊行林中  到一尼俱律樹  樹下有井  井中有月影現  獼猴主見是月影  語諸伴言  月今日死  落在井中  當共出之  莫令世間長夜闇冥  共作議言  云何能出  獼猴主言  我知出法  我捉樹枝  汝捉我尾  展轉相連  乃可出之  時諸獼猴卽如主語  展轉相捉  小未至水  獼猴重  樹弱枝折  一切獼猴墮井水中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세에 가시(伽尸)라는 나라에 파라나(波羅奈)라는 성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숲속을 유행 중에  니구율나무 밑에 이르렀을 , 나무 밑에 있는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이때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우물   그림자를 보고 무리들에게 말했다. “지금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꺼내줘야 하겠다 함께 의논했다. “어떻게 해야 꺼낼  있을까?”

우두머리가 말했다. “내가 꺼내는 방법을 안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꼬리를 잡고 그렇게 서로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있다 원숭이 무리가 우두머리의 말에 따라 서로의 꼬리를 잡고 늘어뜨렸는데 물에 이르기 전에 이어진 원숭이들이 너무 무거워 나뭇가지가 부려져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중생(衆生) :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정식(情識)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7. 6. 26. 09:44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하라.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용715)

 

약 17분.

 

화두(話頭)를 옳게 든다고 하는 것은조실 스님께서 아까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 화두를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화두를  것이고,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山僧)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의 근본 화두라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화두 공안을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뚱이 끌고 다니는 , 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 그러한 주인공이 우리 사람마다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수가 있고 사람이라  수가 있습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性品)이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불성이라 하는 것은 짐승이나 지옥중생이나 벌레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성현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안했고, 축생이 되지 않고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 몸을 금생에 받아났습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아난 것만 해도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며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니였으면  육체는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우리는 갚어야 합니다. 세속에서 효자로서 장가가고 아들딸 낳아서 살면서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길도 있겠습니다마는  자리에는  부모와 가정과 인생을 버리고 출가를  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보시 돈이 모이면 부모에게 갖다 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리고 그러한 효도는 우리는 허락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효도는 어쨌든지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서 철저하게 정진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조그만한 좁쌀만한 효도가  것이나, 우리가  생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으로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을 단속을 해서 수행해 나가는 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고, 그렇게 단속해 나간 것이 효도 중에서 최고의 효도가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옷이나 음식을 해 드린 것은 그것은 잠시 편안하게 해 드린 것뿐이나 우리가 일념 단속을 해서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최고의 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을  온갖 방법을 다해도  어머니를 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해제날 대중공양(大衆供養)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제날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하면은 아무때나 스님네에게 공양한 것도 좋으나,

 닦는 스님네께 공양하는 일체 욕심을  버리고, 온갖 생각을  버리고서 오직 일념 단속해서  일념 단속하는  수행자,   내내  공부를   수좌(首座)에게 대중공양을 해라

그래가지고 목련존자가 탁발을 해가지고 해제날 대중공양을 해가지고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靑提)부인을 지옥을 벗어날  있도록 해 드린 것입니다.

 

절에 법당을 짓도록 부처님을 모신다 하면 서로서로 시주금(施主金)을 많이 냅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절을 지어서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셔야 도 닦는 스님네가  거기서  수행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게  정성껏 시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나, 참선 수행하는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있으면 시은(施恩)을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을 갚을려면은 시주것만 잔뜩  먹고 입고  먹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은 그것을 갚어야 하니 그것을좁쌀 서너  때문에 버섯이 되어가지고  은혜를 갚고.

 

부처님 말씀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떼가 가는데  소가 무엇인줄 아느냐? 왕년에 중들이 저렇게 소가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이 경전에 있습니다.  소가 되냐 하면은 소가 되어야  은혜를 빨리 갚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소가 되어야 몸이 성할 때는 일을 해가지고 갚고, 살아서 똥을 누면은  똥을 비료로 갚고, 죽게 되면은 가죽은 벗겨서 옷이나 신발이나 그런 것을 만들고, 고기는 오장육부를 다 해서 사람들에게 먹여서 갚고.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가 도를 철저히  닦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소가 되어서,  생(生)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    빚을  갚을 때까지 수십 생, 수백 생을 소가 되어서 갚어.

 

그래서 중은 시주것을 독약보다도  무섭게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절대로 소가  그런 분은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라도 시주것을 참으로 무서운  안다면  먹거나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말고.

무엇이, 보리밥이 들어오거나 찰밥이 들어오거나 국수가 들어오거나 들어온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그것을 맛있게 공양하고,  공양을  때에는 그것을 시주한 신도님들에 대한 간단한 축원(祝願)을 하면서 공양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시면 소화도 잘될 것이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나 원주(院主) 도감(都監)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런 소임을 맡으신 스님네들은 수행하는 도반(道伴)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마련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지금 그런 소임을 맡고 있어도 자기도 참선을 하는 분이고  다음 철이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수행을  것이고, 금생에 안 하더라도 내생에  출가해서  참선하게  것이니.

우리는 서로서로 혼자만 밤낮 하기가 어려우니까 금생에는 내가 공양주 사마 다음 생에는 지금 수행을 하시는 분이 내생에  원주도 살고, 주지도 살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  나만 이렇게 어렵게 공양주를 살고, 어떤 사람은 큰방에 가만히 앉아서 잘만 먹고 편안히 한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이라고 하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네도 전부 선배나 후배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고, 머리는  깎고 청신사 청신녀 신도 여러분도 비록 멀리 가까이 살고 있어도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날을 기해서 법당 안이나 법당 밖에 많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가 정말 참선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되거나  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2441~411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참고.

 

(63)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불자여。그대의   옷과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 옛날 어떤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 하니라.

 

(64)故로   要識披毛戴角底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 이르기를  수도인이 다섯  좁쌀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66)故로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15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〇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정원 가운데 나무에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생겼다.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가나제바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집에 가셨다. 장자가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비구는 도안(道眼)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있을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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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감(都監) ;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독하는 소임.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용715)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