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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7/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6)—08-2. 몽산시 각원상인(7) (72.06.23.새벽)

(1/2) 약 19분. (2/2) 약 16분.

(1/2)----------------


낙안하장사(落雁下長沙)하고  누중인기무(樓中人起舞)니라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허고  기우과전산(騎牛過前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 도인들  처음 도통해 가지고 오도송(悟道頌) 짓는   .  하나 ,  모를 것이 무엇이 있나 그말이여.

 없는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파내서  것도 아니고, 하늘 속에서 뒤집어  가지고  것도 아니고, 세상에 있는 모도 그저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가지고 그대로 한마디씩  놓은 것이 도시(道詩).


낙안(落雁)은 하장사(下長沙)하고,  공중에서  날아서 떨어진 기러기는 어디 떨어지는  아니라 장사(長沙) 떨어져.  모래밭에 내려온다 그말이여.

그거 그대로지, 어디 다른   있나? 아무것도 없지.


누중인(樓中人) 기무(起舞) 하는구나. 누(樓) 가운데  노는 사람은,  다락 누에서 노는 사람은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논다 그말이여.

다락에 노는 사람은 춤추고 놀지, 그저 노는  아니라  누각에서   춤추고 노는 경계여.


목동(牧童) 일성적(一聲笛)허고, 소를 멕이는 동자는 젓대를 불면서 터억 전산(前山) 돌아온다. 앞산으로 젓대를 불면서 소를 멕이고 앞산으로 돌아와.

, 그게 도(道) 경계(境界), 도시(道詩) 말이여.


아, 부처님도 마지막 깨달라 가지고 마지막 지은 게송(偈頌)이여. 

 허니? 일편백운(一片白雲)은 강상래(江上來). 처음에가 뭐지? 일편백운은 강상래하고.

! 그렇지.  조각 흰구름은 강상으로 온다. 그건 말후구(末後句). , 이런 것인데.



! 이번에 경봉 스님 법문 내놨는디,  무슨 옛날  전에 견성해 가지고 지었다는 오도송(悟道頌) 나왔데?   . 대중이    .  ,  어떻게 지은 오도송이 그런 오도...


, 그때 경계에 그대로 알았다!”하고 고함질러서 다시 물으니까 답해서 그런 줄만 알았더니, 그렇게  것이 아니라고  번이나 신문에 해명을  놓고는 부채로 원상(圓相) 쓸어버렸다

부채로 원상 쓸어버린 도리의 게송인가 부여?     없군.


세상에 그러기에 공부라는 것은 깊이깊이 탁마(琢磨)   봐야 되야. 탁마 없이 서로 한마디 주고받고  봤던들 그것    없는 노릇이여.


내가  그때에 벌써 오십  전이니, 일흔 다섯 살이니깐, 육십 칠십 일흔 다섯, 오십  전이지?

오십  .

아, 그때 시대인디 내가 젊은 때인디, 어디 어디 한마디나 잊을 이치가 있는가? 요만큼이라도 내가 보태서  필요가 있냐  말이여. ! 이런   보소.


, 이 처음에 신문 들었으니까 그때 오도송 지어서  언하에 전에 몇십 년이라고 했드나?   전에  선지식한테 인가 맞았다는  글이, 인가 맞았다는 말이 있으니, 인가는 용성 스님..  내놨더군?

용성 스님, 혜월 스님, 한암 스님, 만공 큰스님   스님네께 인가를 받았다고 했는데, 인가는 어떻게 물어서 무슨 답에, 무슨 공안에 어떻게 답을 했는가가 분명히 나와야 되아.

그것, 다섯 스님네한테  나와야 되지. 하나라도  나와서는 안되지. 없는 인가를 그때  받았다 하면   거짓말은  거짓말이지.


세상에! , 오도송을   봤구만.  보고  봤구만.

   . 대중이  그런 것을 잘못 빠뜨릴 수가 있나?


여지없이 골라 놓아사, 우리나라에 선지식 스님네의 도(道)가 어디까장 있는 것을  가려 놔사,

우리 한국 불교가 인자  정법이 한번  말세에 아주 말세니까,  말세에 한번 크게 발전이 있어야   아닌가?


데데허게 어름허게 그저 아무때나 한마디 해놓고 견성(見性) 했다’ ‘인가(印可) 받았다 그러고 앉어서 조실(祖室) 노릇 허고 가르키고 그게 되아?

‘나변(那邊)에 있는가 모르겄다’고 그랬어. , 나변에 있는가 몰라. 큰일이지.



불용착력(不用着力) 위묘(爲妙). 공부할  착력(着力) 않는 것이 제일 ()허다.

이놈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은연중(隱然中) 힘이 거가  모이고, 자기도 아지 못허게 힘이 잔뜩 들어. 화두 거각(擧却)하는디 억지로  들어. 억지 힘이 있어. 그래 가지고 은연중 힘이 그리  모여 가지고는 착력이 되야.


착력(着力)이라는 것은, 여기 착력이라는 것은 극도의 모도 조그만한 힘이라도 그리  모여서 한목 힘 든 것이 착력이여. 보통 역(力)을 착력이라고   아니여.


‘이뭣고?’   . ‘이뭣고?’ ‘이뭣고?’

안되니까 ‘이뭣고?’하다가 그저 하도 안되면 진심(瞋心) 내고 ‘이뭣고?’, 억지로 찾아서 ‘이뭣고?’

그저 이렇게 허다 보면은 그것이 화두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주작(做作), 자꾸 힘이 거가 힘이 거기서 잔뜩 들어가지고는 그만 주작이 된다 그말이여.


주작이 자꾸 주작성이 되어 가지고는 힘이 차츰차츰 모여서, 모일 대로  모여서 착력이 되아.

착력이 되면은 못쓴다. ()허지 못혀.


공부 조끔 한철 허다가 아이고! 머리야 그냥 그만 머리 위에 모도 그만  뻘건 것이 솟고, 그런 모도 힘이 위로 모도 올라와서 눈이 뻘개지고 그만 그래지거든. 그게 그만 착력(着力) 해서 묘허지 못헌 것이여. 그런 것이 있다 그말이여.


그런 것이 있으니 내가 구절구절이 이렇게  말허고  따져서, 내가 이렇게 다구아서 이래 주는 것이여.

 묘허지 못허다. 착력치 말라.

 

약착력제시즉(若着力提撕則), 화두를 착력을 해서 억지로 끄집어서 억지로 안된 놈을 억지로 그만 골을 내면서, 부애를 내면, 번뇌를 내면, 그만 , 나는 어찌 안돼?” 모도  소리를 허거든. “여태까장 참선 해 봐도 , 깜깜 칠통(漆桶)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럼 깜깜 칠통 아니면  훤헌가? 훤헌 것이 나오는 건가?

훤헌  볼라면 동쪽에 달을, 동쪽에  떠올라 온  보지. 동쪽에  떠올라 올  보면 훤허드구만.   떠올라 온  한바탕 보지. 훤허게. 그런 겐가?


그저 밝고 어둡고 무슨 그까짓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없는 도리(道理)만 하나 챙기지. 가만히 챙겨.


용착력(用着力) 즉해산정경(則解散定境)이다. 정경(定境) 없어진다.

화두가 고요허니  의심이 일어난 놈도 있다가도 없어져.  있을커니는 없어져,  착력헌 바람에.

 알아듣겄지?  해보니 알겠지? 착력헌 바람에  경계조차 없어져. 해산정경(解散定境) 된다.


능선용심(能善用心)해라. , 화두를 가만히   없는 놈만 일으켜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났다 했노?’한 놈을 일으키다가,  할라니    없는 도리가 하나 생겨 나온다. 어째서  헐래야    없는 도리가 생겨 나오노?

 허면은 그만 중생으로 그대로 있을 터이니 중생 그대로 중생 과보를 어떻게  텐가?


우리가 중생 몸으로  과보  몸을 하나 받아 가지고 나왔으니 만족한가? 이것이 무던헌가?

좋지! 무던허고.


허지마는 요까짓 놈의 몸뚱아리, 요것 하나 받아 가지고 잠깐 가지고 있다마는 숙홀즉무(焂忽卽無)다, 곧 없어져 번지고. 늙어서 병들어서 죽어서 뼉따구 되어 버리고, 살은 물덤뱅이 모도  되아 귀화(歸火) 귀풍(歸風)으로  번지고.

 내가,  몸뚱이 가지고  지은 내가 지은 대로  받을 터이니 그걸 생각해 . 과거에 얼마나 받아 왔는지   내가 혜안통(慧眼通)이 없으니 보든 못허드래도 계산을   . 어쨌는가? 말로 할  없는 짓을  받아 왔다.


눈깔  놈을 보니, ‘저놈은 눈깔 멀었구나.  고생이 얼마냐?’  못헌 놈을 보니, ‘ 못헌  저것 봐라. 저것이 사람 되어 가지고 말도 못하는구나

저런 구렝이 같은 놈을 .   몸뚱이 큰 놈을 가지고 먹지 못허고 굴속에서 무서워 나오지도 못허고 있는 것도 . 모두가  몸뚱이다! 모두가 내가 받아  것이다!


 번만 받아 왔나? 몇백 번을 받아 온지 모른다. 몇천 번을 받아 온지 모른다.  그래야?

역사가 있어야지? 우리 생겨서 살아 나온  과거 역사가 있어야지?

하루 이틀 이렇게 가고 오는 , 그것 역사는 있지마는 우리의  영혼이 살아 나온 과거 역사는 세도 못허고, 한량도 없고, 어느  생겨난 때가 없어.  있으면사 하지마는, 없는 것이여.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렇게도 신령허고, 이렇게도 영영허고, 이렇게도 알든 것이  몸뚱이 하나 없어지면 어디로 갔는고? 그것이.

 개재묘용이 그렇게 자재묘용(自在妙用)이 어디로 갔어?  성내고 울고불고 별짓  하든  물건이 어디로 갔냐 말이여?


없나? 가기는 어디로 ? 항상 상주불멸(常住不滅)헌 것이  물건이여. 부증생(不曾生)이여. 부증멸(不曾滅)이여.

그놈을 ()라고 보니, 어디 무슨 놈의  티끌만큼이나 뭣이 있나? 아무것도 없지.

무(無)라고  놓고 보니 어디 없나? 모도 있지. 그놈이  알아내고 있지.


, 이렇게도 신령허고 묘허고, 이렇게도  일물이, 차물(此物)이 중생 껍데기만 둘러쓰고 중생의  망념만 가지고 어떻게  것이냐?

 허고 말아 가지고는 되겠느냐? 미래가 인자 어떠허냐?


지내기는  지내버린 과거는 먹고   버렸으니 그만이라 하자.

,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터이냐? 이놈의  미래가 다할 때가 있나? 미래가 다할  없지.


그러허니 이거 ‘이뭣고?’를 않고는 어떻게  텐가?  생각해 보지? 가만히  계산을  보지?  허고 쓰겠는가?(처음~18분59초)



(2/2)----------------


선용기심(善用其心)해라. 어쨌든지  선용기심해서  너무  마음을 착력(着力)허지 말고 화두를 ...

참, 내가 금생에   잃어버리면은 어느 때냐? 차생(此生) 실각(失却)하면, 이 이생에  몸뚱이 받아 가지고  몸뚱이를 실각하면, 깜짝 사이에 잃어버리면은 만겁(萬劫) 난우(難遇). 만겁에   몸뚱이는  받는다,  사람 몸뚱이는.


‘왜 사람 몸뚱이  받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나오는디,  꺼떡허면 드립대 나오는디. 산아 제한(産兒制限)을 지금  드립대 허고, 어디 많이 사람 새끼가 나와 쌌던지’


그거 많여, 그것이? 그게 많여? 세계 인구를   봤자  지금은,    억이나 되나? 십 억이나 되나? , 이십 억이나 되나?


그까짓 억(億) 수, 몇억 수 있지마는 짐승을 생각해 보아라.

그저 물에 사는 바다 괴기만 해도 그놈의 숫자 생각해 보고, 땅속에만  봐도  벌레뿐이고,  날라댕기는  준동도 ,  연비(蜎飛)도  보고, 준동(蠢動)도  생각해 . 꿈적꿈적헌 , 개미, 벌레.


왼통 몸뚱이, 그놈이 몸뚱이가 무슨  모냥만 달르지. 그놈이  꿈적꿈적허고 댕기고  즈그들도  보고 놀래고 무서워허고  죽을라고, 모기 같은 것도 달아나니라고 야단이여.  죽을라고.

‘준동함령(蠢動含靈) 그와 같은 함령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니라. 부처성 똑같이  있느니라했으니, !   틀림이 있어?


사람도 보지.  낳아 놓은 , 금방 뱃속에서 나온 , 핏댕이 낳아   보지.    사람 되겄는가?

 무엇이여? 그것 눈도  뜨고 꼼작꼼작헌 것이 차츰차츰 먹어서, 물질을 먹어서 몸이 차츰차츰 불어져  가지고는 사람노릇 허면, 그놈이 그렇게 야단스러워지고.

 핏덩어리로 나온 그때, 뭐여 그것이?


고래 새끼 같은 것도 처음에 나왔을  알로 나왔을   쬐끄만 하던 놈의 것이 그렇게 퍼먹고 그렇게 커지지 뭣이여? 몸이 커지면은 그놈이 운동도 크고 그놈이 굉장하게 놀아나기도 하고 그러지.


물건으로 이놈 있을 때는, 모도  물건으로써 몸뚱이가 되어 가지고 몸뚱이 그놈 큼서 따라서 그놈도 크게 ()하지. 쬐끄만 허면 쬐끔허게 동하고 그런 것이지.


‘소는 소가 되고, 사람은 사람이 되고, 말은 말이 되고, 그렇다 그런 외도설은 없어. 그런 법은 없어.

, 틀림없으니까.  되었다,  되었다,  되었다, 그저 구렝이 되었다,  그렇지.  그런  없어. 우리 부처님의 인과 말씀을  믿으면은  말을 믿을 것이여, 천하에.


그런  저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보지.

 몸뚱이 받아 가지고서는 정법,   하나를 내가 어쨌든지 찾아내야   아닌가? 어떻든지 해내야   아닌가?

이렇게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묘한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는 공과일생(空過一生) 허다니! 말이 되아?  것인가 말이여?


허니, 선용기심(善用其心) 꼭 해라. 화두할 때에 대번에 그만 선용기심 못허고는 어서 헌다’고 드립대 그만  착력을 해서  허다가는 한 철  ()  닦는다. 대번에 못허고 말아.  장애가 일어난다.

그러니 이러헌 참선(參禪)해 나가는디 묘헌 글귀를 이렇게 낱낱이 해석을  주어서 알게 만들아 주어야 하는 것이지.


말은 쉽지. 참선, “이뭣고?  뿐이지. 처음    그렇지, 뭐라고 해야? “이뭣고? 해라”


“이뭣고? 해라 해 놓지마는 이뭣고?’를 가서 혼자 하다가는 모도 이러헌 병이 .

 착력해 가지고는 육단심(肉團心)이 ()허고 마구니가 일어나서 못하고 천(千)이면 ,  못하고 마는 것이여. 만(萬)이면 ,  못하고 마는 것이여.


그러허니 불가불(不可不) 스승을 찾어야 한다. 옳은 스승을 찾아서 옳은 스승한테 낱낱이 선인(先人)한테, 먼첨  해나간 분들한테 이렇게  배워야   아닌가?


그래서 홀연입득정시(忽然入得定時), 홀연히  착력허지 않고 힘만 쓰지 않고 묘허게 화두가 들어와서 의심이  일어날 때에는  몸뚱이에 힘도 하나도  들고, 의심만 일어나는 신심만  나고, 분심만  나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진다.

착력치  해야 그렇게 되지, 착력(着力)해서는 그렇게  법이 없어.


 그렇게  좌선법이 그려. 앉아서 공부허는 법이 이렇다 그말이여.


‘아무때나 헌다’고. ‘ 먹음서도 허고,  입음서도 허고, 서서도 허고, 가면서도 허고, 일체처(一切處)에 헌다’

일체처에 허기는  일체처에 ? 일체처에, 말만 일체처에 허지?


참으로 일체처에 허는구만? 못될 소리여.

 그러면 우리 부처님 같은 천하에 제일가는 부처님도 역부러 고행을 했다 하지마는,  설산에 들어가   고행을 허셨으며, 달마는  때문에 소림(少林) 들어가서 9세를 그렇게 면벽관심(面壁觀心) 했을까? 가만히 앉어서 그렇게 했을까?


왔다갔다 왔다갔다, 요새 선객(禪客)들은 병이 무슨 병이 들었냐? 갔다왔다 하는 병이 들어버렸어. 그 거떡허면  나가고, 거떡허면 휘딱 가고.

그 자리 비어 놓고 있다가 인자 입선(入禪)헐 때는 가서 입선 죽비(竹篦) 듣는다’고 들어갔다 나오고. 틀려. 그것 틀려.


, 생각해 보지, 생각해 . 어짤 것인고 생각해 .

그렇게 부처님 말씀에 어렵다’는  말씀.  가지, 4난득(四難得)이다.  가지 난득이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장부난득(丈夫難得)이요, 출가난득(出家難得)이요, 견성허기 난득(難得)이다. 천하에 난득이여.


장부난득(丈夫難得)이란 , 우리가 이렇게 모도  집안 천만사가 있다 하드래도,

그것 천만사가  무엇이냐? 지금, 내가  닦을, 내가  찾을, 이러헌 무서운  급(急)헌 대사(大事)를 두고 내가 일시(一時)인들 내가 집안에서 무슨 놈의 머무르고 이렇게 있겄나?’ 한  나와서  닦는  장부(丈夫) .


남자 장부? 남자, 그까짓   남자라고 장부라    있나?  닦아야 장부지.


홀연히 화두가 들어와서  무상한 속에서무상한 마음뿐이지 뭣이 있어?

각불가탐정(卻不可貪定)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화두가    때에, 화두가 의심이 일어나서 의심이 독로 되아 있을 , 독로 되아서 화두가 온전히 고대로 가만히 있다고 화두를 거각하지 않고  조용허고 고요헌  떨어져 있지 말아라.


화두가   없는 놈이 고요해야지.   없는 의심이 가도 오도 않고 ! 정(定)이 되어서 말뚝 박아  것, 쇠말뚝 박아  것처럼 꼼짝도 않고   없는 놈이 ! 정해져야 그게 정력(定力)이지.

고놈 밖에, 화두 의심 밖에  것이 뭣이 고요헌 것이 붙어 있어?  큰일나지.


그건 뭣이라고 헐까? 망조라고 할까? 무슨 묵조라고 할까? 묵조(黙照)! 묵묵히 비추는 묵조라고 하지. 그거 ?

묵조라는  뭣이여? 묵조라는   만년 있어도 소용없는 것이 묵조여.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니! 죽은 참선이라니! 묵조,   것이여 그거 ?


불가탐정(不可貪定)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약망화두즉(若忘話頭則), 그때에   없는 화두는 없고,  고요해서 일체 망념도 없이 묵조가  하나 나타나면 편안하기는 한량없네.

번뇌 망상이 뒤끓으면은 제일 불편헌디, 번뇌 망상 그놈이 없어진 곳에 고요허니   없는 화두도 없이 앉어 있으면은  묵조라는 것은, 묵조가 그놈이 낙공(落空)이다. 허공이다. 허공 같은 밖에 없다. 허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낙공(落空)에, 공에 떨어져 버리면은 그만이여. 공에 떨어져 버리면 그만이여.


그러면  원상(圓相) 하나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원상은 뭣이냐?

‘고불(古佛) 미생전(未生前),  부처도 생기기 전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이다. 응연(凝然)  상(相)이 둥그렇다.

거가서 무슨 () 있으며, 거가서 무슨 () 있으며, 비유(非有) 비무(非無) 있으며, () 있으며, 중생(衆生) 있으며, 중생 제불도, 불도 뭣도 일체 이치가  공허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다. 그러면  ()까장  쓸어버린다 그래 모두 다 뭉캐는 거여.


고것이 되아? 고따우 것이 조사관(祖師關) 되아?

 지랄을 허고 고걸 쓸어놓고는, 인자 고것이라고 도로 그려? 그러면 그게 뭐여, 그것이?


그게 중생굴이요, 그것이 중생  송장굴인디, 고까짓 놈의  거기서 인자 참으로 화두가 있는 법인데, 판치생모(板齒生毛) 거기 있는 것인데, 그놈 깨달르는 법인데, 뭐가 있어?

그놈 깨달은 법이 없어. 그런 것은 낙공(落空)이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 그게 인자 참말로 공안이거든.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거기서 깨닫는 것이여.



그때  하나가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하니께 ! 들어갔지.

들어간  수단을 알아? 그걸 알아야 되아!

그러니 어째 들어갔는가를 알아야 되아. 법(法)  나가는  알아야지. 용무생사(用無生死), 생사 없는   쓰는 것이  쓰는 것이여.


 들어가, 딱! 쳐버렸다. 쳤어.

! “막타모갑부득(莫打某甲不得)입니다. 모갑(某甲)  쳤습니다헌게, 떠억 쉬어 버렸다. 휴거(休去)했다.

휴거 같은 것은 그건 법불견이니, 본래 없니, 본래 무니, 본래  비어, 고런  가지고는 소용없어.


마조(馬祖) 터억 휴거아무 말도  하니까, 마조가 ‘대답 못했다 하지?

그것을 알아야 . 그거 대답 못헌 것인가? 대답만  허면 제일인가? ! 이거.


이놈 입만 벌리면  대답이 제일인  알고 든지 가져다 대답하지. ‘양말  짝입니다 고따구 소리.   덕숭산서 나오는구만 그거. 모도 고런 행사를 허는구만 그거.

기가 맥혀서 내가 당최 뺨대기를 쳐서 내쫓아 버려야지 그런 것들. 뺨대기 뿐인가? 작대기로 우서내 버려야지.



약망화두즉(若忘話頭則),  화두를 잊어버리고 무슨 정(定)이라고 앉었은 (), 그것이 그만 무기공(無記空) 무기에  떨어져 버린다. 무기(無記) 떨어져 버리면 무유묘오(無有妙悟)다. 깨달은 법도 없고.


인자 그것으로써 견성했다고 나부대고. 나부대 가지고 발무인과(撥無因果)하고, 인자 인과도 없다’하고 돌아댕김서 제가 제일이라고 야단이고.

‘스승이  인자,  스승이 뭐냐? 어떤  스승이냐? 누구는  본래 부처는  인가가 있나?’ 요따구 소리나 하고. ! 일난다 말이여, 일나.


차라리  그대로 중생으로 있어서, 그저 그대로 있다 아무때라도 부처님 성불할  만나서 발심 출가를 하면 오히려 나을지언정, 천만 겁을 지낸 후라도 나을지언정,

 묵조사선(黙照邪禪) 무기선(無記禪) 떨어져 가지고 인자 제가 도인노릇  가지고  가르키고,  죽고  죽이고 모도  가지고, 불법(佛法) 영원히 종자도 없이 망쳐 버리는 것이여. 이것을 깊이깊이 학자들은 알아두란 말이여.


무유묘오(無有妙悟)니라. 묘오가 있지 못하니라.

묘오(妙悟), () 결코 화두를 () 해야지, 화두 활구(活句) 오도(悟道) 해야지, 오도(悟道)  해서는  되는  없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묘오(妙悟) 오도(悟道) 있는 법이니 이렇게 믿어라.


 대문 읽어보지. 어디 갔나?(19분1초~35분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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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落雁下長沙  樓中人起舞’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저물어 여강(驪江)에 머물다[驪江晩泊]’ p41 참고.

*(게송) ‘牧童一聲笛  騎牛過前山’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고향집을 지나며[過故宅]’ p44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偈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데데하다 ; 시시하고 변변치 못하여 보잘것없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나변(那邊 어찌·어느 나/가장자리·곁 변) ; 어느 곳 또는 어디.

*은연중(隱然中) ; 남이 모르는 가운데.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숙홀즉무(焂忽卽無 갑자기·문득 숙/갑자기·돌연히 홀/곧 즉/없을 무) ; 갑자기 곧 없어지다.

*‘늙어서 병들어서 죽어서 뼉따구 되어 버리고, 살은 물덤뱅이 모도  되아 귀화(歸火) 귀풍(歸風)으로  번지고’ ;

[참고] 「무상계(無常戒)」 (영가천도용靈駕薦度用 독송문)에서.

靈駕  劫火洞燃  大千俱壞  須彌巨海  磨滅無餘  何況此身  生老病死  憂悲苦惱  能與遠違  靈駕  髮毛爪齒  皮肉筋骨  髓腦垢色  皆歸於地  唾涕膿血  津液涎沫  痰淚精氣  大小便利  皆歸於水  煖氣歸火  動轉歸風  四大各離  今日亡身 當在何處  靈駕  四大虛假  非可愛惜


영가여, 겁화가 타오르면 대천세계가 온통 무너져서 수미산도 큰바다도 모두 없어지거늘 하물며 이 미약한 몸뚱이가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을 어떻게 면하랴.

영가여, 머리카락 터럭 손톱 발톱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뇌장 때 같은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침 눈물 콧물 피 고름 진액 담 정기 대소변 따위는 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렇게 사대(四大)가 따로 따로 흩어지면 오늘날 그대의 죽은 몸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가여, 사대는 헛것이니 아까울 게 없도다.

*상주불멸(常住不滅 항상 상/머무를 주/아닐 불/꺼질·없어질·멸할 멸) ; ‘항상 머물고 사라지지 않는다’

변함없는 본질을 유지하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를 나타낸다. 법신(法身) 또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한다. 열반(涅槃) 등의 무위법(無爲法)에만 해당하는 속성이며 어떤 유위법(有爲法)에도 이러한 본질은 없다.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 아니다·없다 부/일찍이·이전에 증/날 생//꺼질·없어질·멸할 멸) ; 일찍이 남[生]도 없고 멸함도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

〇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호대  從本以來(종본이래)로  昭昭靈靈(소소영령)하야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부증멸)이며  名不得狀不得(명부득상부득)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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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윤동지류(蜎飛蝡動之流 장구벌레 연/날 비/꿈틀거릴 윤/움직일 동/~의 지/갈래 류) ; 기거나 날거나 꿈틀대며 돌아다니는 것.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공과일생(空過一生 헛될 공/경과할 과/한 일/삶 생) ; 일생을 헛되이 보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대사(大事) ; 일대사(一大事).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92칙 ‘대사(大事)’

동산(洞山)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 옷 밑에서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洞山  門僧  世間  是甚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염송설화(拈頌說話)>

동산(洞山)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준 말씀이니 모름지기 이 대사(大事)를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발무인과(撥無因果) ;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것. 연기(緣起)의 근거를 부정하는 삿된 견해이며, 모든 것은 단멸하여 상속되지 않는다는 단견(斷見)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6/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5)—08-1. 몽산시 각원상인(6) (72.06.22)

(1/3) 약 20분. (2/3) 약 20분. (3/3) 약 11분.

(1/3)----------------


청천일안몰(靑天一雁沒)이요  벽해삼봉출(碧海三峯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공산풍우다(空山風雨多)허고  화락무인소(花落無人掃)니라

나무~아미타불~


기러기란 놈이  창공(蒼空)에 날아가다가 허공에 빠져 버린다. 허공, 원청 멀리 날아가니, 보면은 빠져 버리지, 허공 속에.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에는 망망창해(茫茫滄海)  산이  삼봉(三峰) 솟았구나.


공산(空山)에는 풍우(風雨) 많이 있는데, 꽃이 모도 떨어졌는데 쓰는 사람이 없구나.

도시(道詩).  ,  보고  () 바로 봤지.


 별다른 경계인가? 기러기 날라가다가 공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빠져 버리고. 바다에는 산이  솟았는디.

공산(空山)에는 바람은 많이 있는데, 꽃은 쓰는 사람이 없어. 모도 그저, 도시(道詩).



재송도인(栽松道人)이 오조(五祖) 스님이신데, 오조 스님께서 어머니를 굶겨 죽이다니!

어머니를 굶어 죽게 맨드니, 굶어 죽게 맨들어 가지고 대도(大道)를 통하게 맨들었으니  도무지   이상 없지마는, 세상 사람들은 어머니를 굶어 죽이다니...’


 도통한 거야 누가  수가 있나? 영원히 도를 통해서 아무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했다고 할지언정 어머니 굶어 죽였다는 것만 알지, 생사해탈 시킨 것은 모르지.


하지마는  애정, 자식의 애정, 애정 그놈 하나를 가지고는 여의지 못하고 떼지 못하고 거기 들어와서 보살 노릇을 헌들, 오조 스님 어머니 노릇을 오조 스님을 모시고 헌들, 어디 그렇게 성불(成佛)헐 수가 있어야지? 해탈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헌 무서운 동기,  굶어 죽은 동기, 아사(餓死)해서 단식해 가지고 죽은 동기,  동기 속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자식의 원망을 얼마나 했는지. 오조 스님이 도인이 아니라 부처라도 얼마나  , 원한이 있을 것이여.

어쩔  없지 .    원청 단식을  놓니깐  죽을  없지.  목숨  끊으면서  애착 ! 떨어지면서 그만 활연대오(豁然大悟) 했어.


활연대오를  가지고는  공중에 중천에 떠서, !  공청(空聽)을 했어.

내가   오조 스님의 덕택으로” 덕택이지! 인자  그런 굶어 죽었지마는, 원수지마는 원수가 아니고  덕택이지.

 단식을 허고 어쩔  없이  죽었는데, 내가 그만  목숨 끊어지면서 확철대오를 해서 나는 대중께 이러헌 공청을 허니 대중은  들어라. 조금도 그런 사견심(邪見心) 두지 말고 모도 배척심 두지 말고  믿어서  확철대오를 해라하고는, 공청을 했다 그말이여.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은 세상에서는 그런 원망이 없지마는 불가(佛家)에서는 무서운 동기여. 그거 후편인데,  책이 나와서 있지는 않지마는 지나(支那) 장경(藏經)에 있어.


지나(支那),  아주 깨낱같은 장경(藏經) 가서 그런 것이 있는데, 나는  책을 보지 못허고 말만 이렇게 들었지마는  책을 가지고 댕기면서  법문허는 수일이라고 그런 이가 있어서 내가 그걸 알고 여까장  것인데.

똑똑히 보지 못허고  것은 내가  의심도 나지마는, 구전(口傳)으로도 이렇게  설법이 있으니까 내가 가끔 여기까장 설법을  두지.



경봉 스님 사건은 세상에  , 그렇게도 역력하게 그렇게도 철저허게—아, 내가  마지막 인자  두타(頭陀) 마치고 통도(通度) 댕겨서 돌아나올 , ! 그렇게 역력스럽게 했건마는  보고 거짓말했다고 했어? .  냈구만 신문에.


그러나 저러나 거짓말이야 했건  아니라 하고, 거짓말이라고 하고.


원상(圓相)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했는데, 그때에 원상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  ,   먼 데서 부채를 가지고 원상을 쓸어버렸다

그러면  부채를 가지고 원상(圓相) 쓸거나, 손바닥을 가지고 원상을 쓸거나, 발길로 원상을 문태버리거나, 원상을 문태고 옳다 ? 그거 학자는,  있는 학자는 부딪쳐 볼지어다.


! 원상(圓相) 어떻게 뭉캤거나, 원상을 뭉캐 놓고 옳다 ?

그때는 나는 그렇게   했거든.


원상을 뭉캐서뭉캔 형용이지 무슨, 이렇게 내가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한게,  저쯤 앉아서  원상을 뭉캐는 형용이지. 그것이무슨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그만 “그 자리에 묻어라!” ! 사람이 보광전(普光殿)에  찼고.


‘경봉 스님이 법광(法狂) 나가지고, 법으로 미쳐서 법광이 나가지고 굉장하니   달라’고.

내가 오장치를 짊어지고 들어갔다가 금강당에서...  금강당인가?  공소방, 거기서 하룻밤 얻어먹고 자고 나올라 하니까, 추산 스님이 확실혀.

늙은 노인이 나와 같이 그전에 젊을   처음에 지냈던 노인인데, !  노인이     나와서  경봉 스님이 저렇게 법광(法狂) 났으니   달라”고.


! 하도 그래싸, “내가  봤자   것이여?  들어갔다가 법광 난 사람,  부처도 냅대  버리고  굉장한 것인디.   내가 가서 ,  지견도 아니고 벌써 언제부터 그래 가지고 산중이 요란하게 야단났다는디  내가  것이냐”고.


, 그래도 신(信) 수좌님이  와서  달라”고 ! 어떻게 그래쌌든지. 그래 내가 끌려가다시피 왔어.

가서  보광전  조실 말리(마루)에 거기에 앉었는디, 조실에 있었다는  아니라 앉었는디, 그만 들어서면서 당장에 들어오면서 거량(擧揚) 수밖에 없지.


원상(圓相)  하나 그려 놓고는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들어가도 치고 나가도 치니, 일러라!” 한마디 헌게, 원상(圓相)  뭉캐서, “그 자리에 묻어라!” 냅대 고함을 질렀다 그말이여.

그런게, 한참 앉았더니 “내가 알았다!” 고함을 질러서, 내가 그때는 아무 , 그때는 벌써 눈치가 달러. ‘알았다해도 분수가 있어.


! 들어가서 옷소매를 잡고는 둘이 “나오라”고, 여러이  말이 아니라고. ! 그러고는 옥련봉 밑으로 들어가서 서로 말을 한마디  물은게, 한마디 처꺽 일러.

“어떠냐?” 내가 “어떠냐?”허니, 고개를 끄덕끄덕 점두(點頭)해.  뒤부텀 보광전에 앉어서,  정진허고 앉어서 문밖에 나온 일도 없고,  추담망담(醜談妄談) 개시화엄경(皆是華嚴經)’이란 말 한 바도 없고, ! 그렇다고 말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 내가 그런  들었는데, !  뒤에 나는 오장치 벗어번지고 서봉암에 와서 대구 서봉암에 와서, 포교사로  있단 말이여. 포교사로 있는데 뜻밖에, 청첩장을 자기가 가지고 왔어.

그때  주지가 ... 이름도 알았는디 잊었구마는, 구하 스님 뒤에   주지인디. !  주지 임명장을 나를 아주 초대장을, 거기 청첩장을 가지고 왔단 말이여.


,  갈라고 헌게 손을 끌고 노인이,  경봉당이 와서. ! 그래 내가 가서 조실까장 했단 말이여,  인연으로.

그랬는데 전부  쓸어버리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어. ‘이 거짓말은 나변(那邊) 있냐?’ 이렇게 놨네.


그런디, 그만 그까짓   그만두어. 그까짓 놈의 거짓말을 했거나,  말을 했거나 공안만,

넨장, 부처님이 삼계대사(三界大師)인 부처님이  운문 방(棒)도 입었는디,

삼백년 후에 아유당시(我有當時)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구자끽(狗子喫)이라”고 까장도  드리   양구(良久) () () 한 방을  쓰는 것인디, 그까짓 거짓말 한마디 했다는 것이 무슨 별것이 아니라,


세상에 그때 하던 그대로만  주었으면 그대로가,

원상(圓相)을 보고, “아니다!” 조금 앉어 있더니 “옳다! 내가 알았다!”고 고함을 질러서, 소맷자락을 끌고 가서  물으니깐 대답을 처꺽 해서, “어떠냐?” 점두를 끄떡 끄떡, 그뿐이여.

다시  조끔도 무슨 다른 공안 하나   물어 보지도 않고, 그러고는 나왔다 그말이여.


! 했으면, 오히려   내가 자기보담 나이 떨어지기는  78 떨어졌다 하지마는 나이 상관이 뭣이 있나?

그까짓녀러   나이 ,  가섭은 부처님보담 나이  얼매가  했어도 부처님 제자고, 부처님이 인가하고  그랬는 것인디 .

내가  어디 인가,   법전 하나 그거 했지. 내가 인가라고도  일도 없고.


, 이런 놈의...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노? 나도 깜짝 놀랬다.


, 이런 놈의  보고 거짓말했다’고 허니, 자기는 그때에 법광(法狂) , 법으로 미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만 이러고 있을 때인디, 나는 멀쩡헌 사람인데, 나는 멀쩡해서  그때 젊을  일이라 하나도  잊어버린  없어. 소소(昭昭)허지.

무엇을 내가 어째서 거짓말했다고 이런 나변에 있는가?’  놨네. !  , 속으로.


그러고 그때 나한테 원상(圓相) 묻기를 물어서, 내가 조실 방에 있는  아니라 내가 구하(九河) 스님 어디 구하 스님 , 차사로 구하.. 그럼 구하당(九河堂)한테 내가  하러 갔을 거여?

구하당한테 어디서 내가 원상을 뭉캔게, 부채로 내가 원상을 뭉캤는디 .. ! 이래 놨네.


그래 부채로 원상(圓相) 뭉캤으면  옳은 도리인가?

인자 정말 참말로 가풍이 드러났네.  그럴 수가 있을까? 원상을 뭉캐 놓고 그러고는 마조공안(馬祖公案) 바로 봤을까?


그런디  전에   전에 만공 스님, 혜월 스님, 용성 스님,  선지식 스님한테 공안을 내가 인가  맡았다 그랬고.

선방에 나온 일이 있어야지. 합천 해인사 나와서  마치고 나와서 제산 스님 회상에서   지냈다는 말은 들었어. 내가  밖에는 들은  없어.


그러나 저러나 나는 경봉 스님을 그르다고 거짓말했다허고, 경봉스님은 나를 거짓말했다허고,  그럴 필요 없어. 그까짓 놈의  가지고는  말할 필요조차 없고, 아무  재료 없는 것이고.


원상을 부채로 쓸어버렸어? 원상(圓相) 부채로 뭉캐놓고는 견성했다고 ?

, 인제는 참말로 우습네. , 그래 어제 신문이  왔구만.


나는   헐라고  사실을 주욱 써서   놓는 것은,   경봉 스님과 나와 거량(擧揚) 역사 하나 갖다가  내서 우리 학자들한테다  밝혀 주는  명감(明鑑)이, 귀감(龜鑑)이 될까 해서  해놓은 것이여.


내가 거기에 무슨 ... 그러고  뭣을...

여까장 해두지.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그걸 가지고 인자  , 두말할 것도 없고.(처음~19분43초)



(2/3)----------------


화두(話頭)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 있어. 화두를 자꾸  들어갈  같으면은 화두가 자연현전시가 있어.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 있어도 잠깐 현전시(現前時) 있다가 즉무(卽無)허면, 그대로 없으면 그거 현전시가 아니여.


 그저 종일 공부를  나가다가 잠깐 그런 때가 있어.  먹기도 잊어버릴 때가 있기도 허고,  이상스럽게 무슨  말이 밖에서 아무리 듣겨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화두만 현전헐 때가 있어.


그거는 가다 어쩌다가서  현전할 때가 있지마는, 화두를  나가다가 화두가 자연현전(自然現前) 때가 옵니다.

현전할 때가  가지고는  먹기도폐침망찬(廢寢忘餐)이여, 잠자기도 잊어버리고 잠도 잊어버리고 망찬(忘餐)이여.  먹기도 잊어버려.


폐침망찬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행주좌와(行住坐臥) 잊어버려.

행(行)해도,  행한 것이 아니여. ()해도, 가도  줄을 몰라. (), (), ()해도 주한 줄을 몰라. 능히 주했지마는 가다가 주했지마는.


(), (), 말허고 묵묵허고 () ()에도, 허지마는 잃어버리지. 몰라.

 허는  아니라, 가만히 앉어서  허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을 허지마는 몰라. 틀림없어.


그래서  고인들도 역부러 공부를 시험허기 위해서 장(場)에를 갔어.

장(場),  모이는 장에를 가서,  가운데 가서  일용(日用)을 해보면은, 도(道) 공부를 해보면은 하나도 귀에  들어와. 귀에 별별 소리가  워걱워걱 들어오지마는  들어와. 들어와도  들어와.

 소리인지, 그까짓 소리인지  새소리 물소리,  소리, 그까짓 소리가  조금도 관계없어.


시끄럽니 ,  시끄러운 경계가 있고 화두를 자꾸  나간다면은 시끄러운 경계 따로 있고 화두가 있어서, 그놈의 화두에 모도 번뇌가 섞여 시끄러운  경계가 섞여서  화두(話頭) 현전(現前) 아니여. 모두 뒤섞였지. 아닌데.


 복잡한 번뇌 속에 들어가도 화두가 현전일념(現前一念)혀. 확실히 그려. 그러헌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러헌 때가 온다는 때가 언제인가? 그런 때가  때가 언젠가 말이여?

언제 올지  수가 있나?


헌디, 화두를 잡드리  가는디, 화두를 다루어 가는데 참! 절대 간절해서, 화두 하나에 간절해서  화두 일념이 행여나 행여나 어디로  버릴까, 화두 일념이 없어져버릴까, 의심이 없을까,

 무척  조심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고   없는 의심,  의심을 갖추어사,  대의심을 갖추어 나가사 그런 경계가 오지.


어쨌든지 그저, 그저  일순간이라도  먹을 사이라도,  일향간(一餉間) 동안이라도 화두가 틈이 없어야.


!  먹음서  못혀? 밥을 먹음서도 어디 말로 어디 화두를 허나?  씹는 것으로 화두를 허나?

밥이야 먹건만 입으로 씹지. 씹지마는  뜻은 완연히 그저 판치생모(板齒生毛)?   없는 도리, 조사공안(祖師公案) 하나   없는 도리, 의심 하나뿐이지.

이뭣고?’면 이뭣고?’ 하나뿐이지. 고놈 밖에 뭐가 있어? 뭐가 있을 까닭이 없어.


지극히 절대 발심(發心)헌 사람이야  시간인들 있다가도 없을 수야 있나? 있다가도 그만 돌아와. 그만 챙겨.

어디로  화두가  버리고 없고, 다른 망념이 들어와서 그놈이 있다가도 얼른 돌이켜. 그저 그것만 돌이켜. 돌이켜서 그저 항상 그놈만, 도로 도망가면  돌이켜서 그놈만.


처음에는 밤낮 도망가지. 밤낮 화두는 그만 없고, 망상만 그저 망상에만 밤낮  있지.

자꾸 돌이키지. 자꾸 돌이켜 그저 없어도.  돌이키고  돌이키고 그저 시시(時時) 돌이키고, 자다가도 깨어나 돌이키고,

그러기에 그때는 화두가 득력(得力)이 아니니까, 화두가 현전이 못되니까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지. 종일  봤던들 화두할 때는  불과   되도 않고 망상 일어나고, 그럴 때는  한량없지, 때가.


그때는 주작(做作) 공부니까, 주작으로 어쩔  없이 허는 공부니까.

어쩔  없어, 주작으로   돌이켜서 이뭣고?’를  놓으면 도망가 버리기는  시간 가버리고 오도 않고,  생각[別念]  들어오고.

이거 , 마음 심두(心頭)만 점점 어지럽고, 불안하기만 잔뜩 불안허고.  고약허지. 공부가 득력 못되었으니까.


공부는  해야 허겠는데. 공부를 않고 어찌 되겄나? 어쨌든지 그저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겠는데, 어짜꼬 말이여? 이렇게 안 되는고?

그놈의 걱정 속에서 망상 속에서 마음만 잔뜩 그만 시끄럽고 괴롭고.   야단났지.


그럴수록 자꾸 돌이키니까 주작(做作)이여.  억지로 , 억지로  주작이여. 주작 공부여.

지금  철을 했든지,  철을 했든지,  철을 했든지,  철만 해도 순일헌 경계가 오는 공부도 있고, 세 철을 했어도 주작 공부가 있고, 10년을 해도 기름 선, 기름 참선, 항상 그저   모냥이지. 화두가 도무지 독로(獨露)가 없지.


그것은 당인의, 지재당인(只在當人)의 지성스런 마음, 정성스런 마음, 철저헌 마음, 발심헌 마음 가운데에서 그렇게  철에 순일헐 때가 순일헌 공부도 있고.

주작으로 허다가 그거 안되면 그만이지 그것, 억지로 그리 해쌀 것도 없다 그래 가지고는 그만 그저 시대 풍경이나 따라 가지고 그럭저럭 허다말다 허다말다. 되도 않는 것이고, 그건 참선도 아니고, 그건  선이라고 할까?


공연히, 와서 공연히 그저 허송세월이나 하고, 시광(時光)이나 몰(淹沒)허고, 시은(施恩)이나 녹히고, 그렇게 한평생 그저 산중오입이나  것이지.


 절대 발심을 해야 하고, 절대 신심(信心)과 절대 분심(憤心)을 가져야 하는 것이여.


가져서, 그저 불가불 어쩔  없는 주작(做作) 그저  주작이지마는 주작이라도 자꾸 그저 돌이켜. 돌이키고,  돌이키고, 그저 돌이키고, 가나 오나 돌이키고, 그저 행주좌와 어묵동정 이라니까 그래. 이렇게 화두를 참으로  한바탕  봐야 되아.  보되,


부제자연현전(不提自然現前)이다. 나중에는 부제(不提)해도, 부제라는 것은 주작(做作)  해도 말이여. 억지로 헐라고  해도 자연현전(自然現前) 시절(時節) 도래(到來)한다.

 자연현전 시절은 있다 없다   아니고,  그거 주작할라고  것이 없어.

 .  지경이  오는가?


원수, 그놈의 원수를 갚을 마음도 부모를 때려죽인 원수가 있으면 그놈을 갚을 마음도, 한시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여.

 , 혈구 속에 들어가서, 알 마음속에 들어가서 없앨래야 없어지들  , 분헌 마음이. ‘어째야 어째야 그놈의 원수를 갚을꼬?’


 부부지간에 살다가, 천하에 인연 중하게 부부만 믿고 남편만 믿고 살다가  남편이  죽은 뒤에,  남편의 애착이 그만  눈동자 속에 들어와서 환허니 보이지. 남편 면목이, 보고 싶은 남편 면목이 눈앞에 환허지.

‘아이고! 언제나 우리 남편의 , 얼굴을 ? 어디가  때가 있을까?’ 그놈이 어디 끊어져? 끊어지지 않지.


비단 그뿐만 아니라 천하에 없는 보물을 잊어서는 안될 것인디 잊어버렸다. 어따가 놓은 지를 모른다.  도둑놈이 돌라간  아니라.

어따가 내가  보물을 놓았는고?’ 이놈이 끊어져? 그렇게 현전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話頭) 부제(不提)해도 자연현전시절(自然現前時節) 오느니라.


각부득환희(卻不得懽喜)해. 내가 어저께도  거지만 다시   재독(再讀)허는 것이여.

각부득환희(卻不得懽喜)해라. 그렇게 현전 온다고 , 좋다야! 화두가 이렇게  때가 있구나.  내가 이렇게 화두   몰랐구나. 인자  득력(得力)이로구나 좋아서 나부댄다.  마음도 두지 말란 말이여. 그거 안되아.


고것 조금 들어온 바람에 이상스런 놈이 따라 들어오네. 환희마(懽喜魔) 들어와.

 ()라는  이상하지. 환희마란 놈이 그놈이  쬐끔만 생기면 들어온다 그말이여.  환희마를 두지 말아라!


환희마 두니, 안 두니 말할 것도 없어. 그만  현전일념(現前一念), 그저  의단(疑團)만 현전 갖출 것이다.


농담(濃淡) 임타(任他)해라. 화두가 되느니,  되느니,  무슨 그런 농담(濃淡)  나온 것은 임타(任他) 버려라. 저한테 맽겨버려.

망상은 저한테다 맽겨버려. 나거나 말거나 제 게다 두어버려.  마음이 나드래도 그까짓  제 게다 놔둬버려. 간섭 말아라.

  알아듣겄죠? 나거나 말거나, 그까짓  내가 간섭할게 뭐여? 임타해 버려.


그저  경계가, 그저 직여노서(直如老鼠) 교관재(咬棺材)해라.

늙은   , 그놈   늙은 놈이 그놈이 쌀궤에 쌀   알고 쌀궤를 뚫는디, 다시  뚫는   뚫지, 이리저리 고치지 말어라.  뚫는 구녁만 자꾸 뚫어라 그저.


그거 다른 말이 아니여.   없는 의심만 현전해라  말이여. 의단(疑團), 의단만 그저 현전(現前)해라.

의단 갖춘 것이 그것이 노서교관재(老鼠咬棺材) 그말이여. 늙은 쥐란 놈이 쌀궤 뚫듯기  구녁만 뚫어라.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려. 활구참선법이 뿐이여. 대의단(大疑團) 뿐이여. 분심(憤心)으로 의단 뿐이여. 이걸 정법이라 해.

 밖에 무슨 정법이 있어? 별짓을, 천하 없는 짓을 다해 봤자 그거 정법이 아니여. 방편법이지.


방편(方便)이라는 것은 그건 어쩔  없어서 방편을 모도 천만 방편을 부려서,  가지  가지 방편을 부려서 화두로, 필경 화두 허게 만들려고  것이여.

가명(假名)으로 인도(引導)  것이 그것이 방편이여. 거짓 이름으로 인도헌 것이 방편이다  말이여.


가명인도(假名引導) () 권이미실(權而未實)이다. () 실답지 못허다. 추이미묘(麤而未妙). 추헌 것이 묘허지 못하다.

심상체신(心相體信)커사, 인자 네가 이만큼 참선을 헐라고 마음을 믿은 뒤에사 내시실상(乃示實相)이다. 이에 실상을 보인다. 이에 참으로 인자  정법을 보인다.


보소(寶所)가 재근(在近)허니, 보소가 가까이 있으니 어서 오너라. ? 어서 오너라.

그것 버리고 오너라 그말이여.  방편 버리고 오너라 그말이여.  가지 방편이고  가지 방편이고 버리고 와서, 어서 와서  찾아라. ‘이뭣고?’해라. ‘이뭣고?’를 해라.


그저 쥐란 놈이 쌀궤 물어뜯듯만 해라. 그저 현전일념만 해라. 그저 ‘이뭣고?’ , 그놈 한번 , 연속허고.   , 연속허고  보지.

그놈 이뭣고?’    , 뒤에 치를   생각해. ‘이뭣고?’를,  ‘이뭣고?’를,  ‘이뭣고?’를  줏어 대고, 자꾸 주어  .


고놈이 나중에 모으고  모으고,  해 지고  해 져 가지고, 일념이 되어 가지고 일념 그놈이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그만 되아 버리네.

그것 그렇게 되면, 의단이 독로되면  깨닫는 법이 없어. 그건  아무리  깰라고 해도   수가 없어.


  자다가 방맹이로 대갈빡을 냅대 한번 때리면 골이  터짐서  깨듯기 한번 깨져야.   수가 없어.(19분49초~39분25초)



(3/3)----------------


  화두라 하는 것은 첫째 좌중(坐中) 득력(得力) 제일 ()허다. 좌중(坐中) 가운데에서 득력이  묘하다.


내가  공부허다가  잠이 오거들랑  잠을 깨우기 위해서 30분만에  번씩이든지,  시간만에  번씩이든지, 일어났다가 살모시 들어와서 앉어서  해라 요렇게  내가 일러주지.

일러주었더니, 가만히 보니  앉으면 일어나 버려, 일어나. 억지로   일어날라고 그런가 어쩐가 몰라도, 이리 보면 일어나. 조금 있다 보면 일어나. 1분도 안되아. 파딱 파딱 파딱 파딱  무엇이여?


그런 사람은 알지. 고렇게  사람은 알지.  들으라고   알지. ‘ 들으라고 이런 말하는구나  아는 것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그게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그것 ! 조끔  시간이라도 앉었다가 이럴 때가 있다든지, 30분이라도 앉었다가  이럴 때가 있다든지 어찌 그래야지, 고만 앉음서 그만  일어나.  일어나.

 무엇이여?  닦는 사람의 자취여? 그것이 무슨 방정이여. , 방정도 분수가 있지. 고런 놈의 방정이 있어?


이런 , 그런   사람은 들으면은  귀에 거스를는지 모르지마는, 충언(忠言)이 역이(逆耳)나 이어행(利於行)이다. 충성스런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마는 행에는 좋은 것이여.

화두해 나가는 사람이 이러헌 결점을 봐주는데 싫어? 이게 어떠헌 말인디 싫어? 이거 어따 쓰는 건디 싫냐 그말이여.


제일, 좌중(坐中) 득력(得力) 제일 ()하다.

어좌중(於坐中) 득묘정력(得妙定力)이다. 좌중에서 정력 얻기가 제일 쉽다. 정력(定力) 화두일여(話頭一如).

화두 일념 중으로  쪼꼼도 어디 빈틈없이 일념 하나,   없는 일념 하나, 고놈이 고대로 있는 것이 그거 화두(話頭) 정력(定力)이여.


화두 르고 정력이  따로 있으면 써?

그게 무슨 놈의 ()이여? 그것이. 무슨 ()이여? 그녀러 정이.


  없는 놈이 틈도 없고, 도망도 안 가고 고대로 있는 것이 그것이 화두 정력이여!


정호제시(正好提)해라. 요러   정히  제시() 해라. 알뜰히 알뜰히 닭이란 놈이  품듯기 화두를 보호해라.  기가 맥히게 해라.


세상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뭐냐? 견성해서 성불허는 것이 뭣이냐?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중생성, 중생 죄업(罪業) 녹아지는 것이다. 중생견 없어지는 것이다.


 중생견이라는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 계교(計較)뿐인데,  사량분별 계교라는 것이 못된 마음, 쓸데없는 마음, 그저 모도 애착심, 애착심 가운데에서  모도 계교심(計較心),

계교심 알아? 계교심이라는  어떻게 어떻게 도둑질이라도 해야겄구나, 무슨 협잡질이라도 해야겠구나, 무슨 어떤 놈을 죽이기라도 해야겠구나’하 모도  계교심, 그런 중생심 떨어지는 것이여. 중생심.


그놈이  견성해 버리면은 계교심이 도리어 사람을 죽일 놈이라도 죽일 마음이 나도, 살리우는 마음이요 그거 해탈심인디 .

없나? 있어. 죽일  죽이지. 죽일  능히 죽이고, 살릴  능히 살리는 것이 해탈심이여.

허되 낱낱이 중생 번뇌 시대와 깨달라서 (覺) 시대(時代) 같나?


활연대오(豁然大悟) 해서 중생의 구백 생멸심(九百生滅心)에다가 견성을     같으면은 부처님의 그저  미진수(微塵數) 법문(法門) 한량없는 그만 해탈 법문이지. 모두 득묘법문(得妙法門)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여.


정호제시(正好提)해라. 참으로 한번 제시() 해라.


단불용착력(但不用着力)이니라. 거다가서 착력(着力)허지 말어라.

힘을 써서 억지로 , 억지로 허는 법이 있나? 화두가 저절로 제시현전(撕現前)인데, 제시현전 가운데 착력(着力) 있어?


 공연히 힘을 부딪칠 수가 있거든. 억지로 힘을 써서, 그만  그만 착력을, 힘을 .

가운데 간을 힘을 쓰든지, 속에 심장을 힘을 쓰든지, 무슨 육단심(肉團心)을 .

힘을   같으면은 미묘현전(微妙現前) 아니다. 묘한 화두(話頭) 현전(現前) 아니니라.


그저 조금씩  두지. 너무 많이 허니  머리 아프고.


화두  나가는 가운데 한마디씩 들어 두면 그날 화두가 잽혀. 그만 그럭저럭 지내다가도 아침에 화두를 들어 놓으면 그날 공부가 그날날마당   관청에도 조까이(ちょうかい, 朝會)..  옛날에는 조까이 시간(朝會時間)이라고, 왜놈들 시대 때는 조까이 시간이라고 그러지마는, 지금은 모도  시간이 있지 않는가?


허니,  조금씩 이리 들어서 여설(如說),  법문대로 행을   보라 그말이여. 법문대로 법문 듣고 고대로 조금씩  보라  말이여.

 헐라고 아침마다 내가 올라와서,   한마디라도 힘이 잔뜩 든디 이러고 있겄냐 그말이여.


  말세일수록에 어서 부지런히  깨달라 가지고 깨달은 사람이  있어야사  정법 간택을 . 혼자만 옳다고  놓으니 누가 믿어져야지?


우선 원상(圓相) 가지고 말하자 그말이여.  원상을  그려 놓고 여기 들어가도 죽고, 여기 나와도 죽는다

원상(圓相) 뭉캐버리면 되겄냐 그말이여. ‘부채로 원상 뭉캤다 고걸 옳다고 인자 허고 앉었어?


, 세상에! 춘치(春雉) 자명(自鳴)이지. ‘봄 꿩이  울음에 죽는다’고.

! 차라리 그대로 두었으면 쓰건만,  무슨 소리여?  , 의심 . 의심 나 죽겠네.


어쨌든지 하루하루 법문 듣거든, 그날그날 법문대로  ,   .

날이 더우면은  시원헌 데 앉어서도 허고. 화두 없다고  더웁나? 화두에 일념이 되아사 더위도 없어.


오히려 더우면 가만히 앉었구만. 화두만  들고 앉었으면 더위가 없어. 더위가 더운 줄도 몰라.

그런디 괜히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래 쓰냐 그말이여.


좌중(坐中) 득력(得力) ()허니,  앉어서  시간 동안에   일어나든지 그러고 도로 가서 자리에  앉고 앉고,  닭이란 놈이  품듯기, 괭이란 놈이  잡듯기   보란 말이여.

!  시킨 대로  해 봐.  철이고  철이고 애만  보란 말이여,  되는가, 되는가?


고인(古人)들 견성헌 스님네가  , 별로 지내가지 않었어. 득력시절(得力時節)  철이 별로  지내가.

 철만 지내가,   지내가면 선(禪)이 기름선이 되어서 못된 놈의 선(禪)이 되아 버려. 매끈매끈혀. 화두가  그만 암만 화두를 들어도 기름 발라  것처럼 미끄러서 도망가 버려.(39분27초~50분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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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靑天一雁沒  碧海三峯出’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초옥(草屋)’ p85 참고.

*(게송) ‘空山風雨多  花落無人掃’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방적객(訪謫客, 귀양을 사는 나그네를 찾아)’ p85 참고.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 4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 홍인대사(弘忍大師 602~675)이다.


[참고]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현음사) ‘32. 4 도신 대사 · 재송도자’ p202~206 참고. 『직지 강설() (무비 스님번역 | 불광출판사) ‘6 도신·홍인 대사’ p202~203 참고.

四祖  因栽松道者  來相見  語言相契  祖曰汝年已老  改形而來可也  道者  珍重  便行下山至濁港

4 도신 대사께서 재송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서로 계합하였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몸을 바꾸어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송도자가 아무  없이 문득 산을 내려가서 탁항에 이르렀다.


見一處女浣衣  遂云我欲借汝家一宿  女云有父母在  道者曰你肯麽  女云去問我父母宿  道者去不遠  於一樹下坐化去  其女  從此有孕  生一男子  被父母訶  及是非不能洗  便將兒子  抛於江水中去  復廻次日見兒  逆流而去  不忍復收養之

 처녀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집을 빌려서 하룻밤 자고자 하노라 처녀가 말하기를 부모님이 계십니다 도자(道者) 말하기를 그대는 허락하는가?” 처녀가 말하기를 집에 가서 저의 부모님께 묻고 주무시라고 하겠습니다

재송도자가 멀리 가지 아니하고  나무 밑에서 앉아서 입적하셨다.  처녀가 이로부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모의 꾸짖음과 옳고 그름을 씻을  없게 되어 문득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강물에다 던져 버리고 갔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날에 아이를 보니 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거두어 길렀다.


乞食度日  至七歲  携在黃梅  路上  見四祖  祖問曰童子何姓  子答曰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什麼姓  子曰佛性  祖曰雖有佛性  汝且不會  子曰非但我不會  三世諸佛亦不會  祖曰爲什麼不會  子曰性空故  祖默識其法器  卽便出家  乃傳衣付法

걸식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일곱 살이 되어서 이끌고 황매산에 갔다.  위에서 4 도신 대사를 만났다. 4조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동자는 성이 무엇인고?” 동자가 답해 말하기를 성이 있기는 하나  보통의 성은 아닙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성인고?” 동자가 말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불성은 있으나 너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동자가 말하기를 비단 저만 알지 못할  아니라 삼세제불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동자가 말하기를  본성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4 대사께서 그가 법기임을 아시고  문득 출가해서 이에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셨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문태다 ; ‘문지르다, 문대다’의 사투리.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말리 ; ‘마루(한옥에서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마루)’의 사투리.

*거량(擧揚 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나변(那邊 어찌·어느 나/가장자리·곁 변) ; 어느 곳 또는 어디.

*넨장 ;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욕으로 하는 말.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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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심두(心頭) ; 머릿속의 생각. 또는 생각하고 있는 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시광엄몰(時光淹沒) ; 시간[時光]이 흘러가고[淹沒]. 엄몰(淹沒)은 ‘빠지다. 침몰’의 뜻.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명인도고(假名引導故)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제1권)에 나오는 구절.

[참고] 〇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衆生垢重根器未純。先說三乘假名引導。故權而未實麄而未妙。及乎諸糞既除心相體信。乃示實相會歸一乘。則妙而無麄矣。諸佛能事終畢於是也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보물(寶物)이 있는 곳[所]이 가깝다[在近].

[참고]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 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3)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춘치자명(春雉自鳴 봄 춘/꿩 치/스스로 자/울 명) ;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남이 충동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허물을 드러내어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이르는 말. ‘봄 꿩이 제 울음에 죽는다(春山雉以鳴死)’에서 나온 말로, 꿩이 ‘나 여기 있소’라고 스스로 우는 바람에 사냥꾼에게 있는 위치를 알려 죽게 된다는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5/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재송도인 후편)

**전강선사(No.224)—몽산07. 몽산시 각원상인(5) (임자72.06.21) (재송도인 후편)

(1/3) 약 22분.

 

(2/3) 약 17분.

 

(3/3) 약 21분.


(1/3)----------------

양이유래(養爾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디  개롱불견이침침(開籠不見而沈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응지재추강상(想應只在秋江上)이나  명월노화하처심(明月蘆花何處尋)고
나무~아미타불~

양이유래(養爾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데, 너를 길러 온 지가, 너를 키워 온 지가 유래(留來)로 세월이 깊다.
그 네가 누구냔 말이여? 네가 누구여? 네가 나인데. 내가 나를 키워 온 지가 세월이 깊어.

내가 없어진 때가 있어야지. 어느 때든지 항상 있는 내인데. 밥 먹을 때 없나, 옷 입을 때 없나, 갈 때 없나, 올 때 없나, 잠잘 때 없나, 똥 누고 오줌 눌 때 없나, 항상 있는 ‘내’지.
‘내’지마는 찾아보면 나를 내가 찾아보면 알 수가 없어. 뭐가 들어서 이렇게 밥 먹자, 옷 입자, 가자 오자, 천 심바람(심부름), 만 가지를 다 시키는고?

내가 들어서 일체 천사만사(千事萬事)를 다 이름 붙이고, 모냥 맨들어내고 빛깔 붙여내고. 그놈이 들어 그러지, 그 허지. 무엇이 허는고?
내 하나, 개안즉견(開眼卽見)이다. 눈을 뜰 것 같으면 모도 보인다. 천 가지 만 가지 백만 가지 물건도 다 보인다, 눈만 뜨면. 눈감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뭣이 있어? 천하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없지.

세상에 이런 놈이 내게 있어서 이놈을 길러온 지가 세월이 오래다. 금생에는 또 와서 이 몸뚱이 하나 받아 가지고 이 몸뚱이를 끌고 댕긴다마는, 내생에는 또 뭐가 되어서 어떻게 살라는고? 뭣허고 댕길라는고?
응, 배때기를 깔고 꼬리 달려 가지고 기어댕길라는가? 뛰어 댕길라는가? 바다 속에서 헤엄질을 치면서 어족지류(魚族之類)가 되아 가지고 돌아댕길라는가? 뭐가 될 테냐 이 말이여? 그놈 생각해 볼수록 참 난사(難事)하지.

과연 유래(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디, 너를 이렇게 키워 온 지가 유래(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데.
항상 사람이나 허나 못 허나 되어 가지고 사람 노릇이나 하고, 늘 이 몸 또 내버리고 또 새 몸뚱이 받아 가지고 또 사람 노릇 허고 살다가 또 내버리고 또 되고 험사 차라리 거 무던하겠는데, 그렇게 되들 안 해. 된 법이 없고.

천억만 년에 한번 이 몸뚱이 얻어 가지고 사람 노릇 좀 허다가, 그만 사람의 짓을 잘 못해 놓으면은 별놈의 죄가 다 짓게 되고, 그래가지고 그놈의 죄 받느라고 들어가서 별놈의 몸뚱이를 다 받고, 별놈의 감옥생활을 다 하고, 별놈의 배고픈 귀신 생활을 다하고. 이놈의 짓, 이거 참 무슨 짓이냔 말이여?
인생의 문제다. 인생이란 이러헌 문제가 있구나.

상응지재추강상(想應只在秋江上)이다마는, 생각해 보건댄 추강상(秋江上)에 있을 듯 허다. 그 가을, 깨끗헌 가을에 그 강상에 어디 있지, 없어?
이 몸뚱이 속에, 그 강상(江上)인들 멀리 볼 것 뭐 있나? 깨끗한 곳을 말하니라고 강상이지. 그 강상에 있을 듯 헌디, 깨끗헌 그 깨끗한 일체 못된 마음 없이 일체 번뇌 망상 없는 곳에 그 깨끗한 데 있을 듯 헌디.


명월노화하처심(明月蘆花何處尋)이냐. 달도 밝고 갈대꽃도 흰디 어느 곳에 있느냐? 갈대꽃도 허옇고 달도 훤허니 깨끗헌데, 어디 있는데 어디가 있느냐?
허니, 그 깨끗한 곳 명월노화처(明月蘆花處)에, 일체 번뇌 망상도 없는 곳에, 일체 더러운 추헌 악심 없는 곳에, 아 거기에 있어.
그놈 하나, 그만 그 바로 봐 버리면은 그만 ‘내’일텐데, 내 낯반대기를 못 본다. 이것이 인생 문제니라.


사조(四祖) 도신대사, 오조(五祖) 홍인대사 재송도인(栽松道人)한테 법을 턱 전해버리시고서는, 오조 홍인대사는 법을 받아 가지고 오대산이 아니라 황매산에서 자리를 정하시고 중생 교화를 허고 계신다 그말이여.
일곱 살 먹어서 어머니 작별 딱! 해 버리고는 그만 그길로 들어와서 법(法) 받아 가지고는 얼마 좀 보림(保任)허시다가 차츰 조실이 되아 가지고는 인자, 황매산에서부텀 중생 교화를 허기 시작하시는데, 어머니가 찾아왔다 말이여.

자식을 그렇게 낳아서 그렇게 길러서 겨우 정(情)들자, 기가 맥힌 정이 들자 모자(母子) 상별(相別)을 해버렸으니 오직 헐 건가? 항상 자식 생각이 나서, 아들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아자(兒子)는 어디 가 있는고?’ 주소를 알 수가 있나? 처소(處所)를 가르켜 주었나? 그대로 가버렸으니 어디 가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 그저, 그러나 저러나 하여간 자식 있는 곳을 묻기도 허고 찾아보기도 허고 열심히 인자 자식 한번 만나 볼 마음뿐인데, 그러자 인자 세월이 십 년이 되았는지 원, 이십 년이 되았는지 그렇게 세월이 깊었는데.

그 어머니는 처녀로서 아무 연고 없이, 부부지간도 없이 아들 하나를 낳아 가지고 길렀는데, 간 곳도 온 곳도 없이 이리 되아 있으니, ‘내가 뭐 어디 다시 재혼헐 리도 만무허고, 그대로 얻어먹고 댕기지 뭐 별거 있나?’ 허다가는, 아들이 중이 되아서 황매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이거 요행히 들을 수가 있지, 모를 수가 있나? 어찌 공교(工巧)히 공교히 참 말을 들어 가지고는, 아들이 중이 되아서 조실 스님이 되어 가지고 중생을 교화한단 말을 듣고 찾아갔다.

이거 후편(後篇)인데, 후편을 내가 잘 안 하는데, 그 잘못 들으면 오해허면 재미없어. 그래 이제 그런 역경 속에, 그걸 잘 들어야 되거든.


어머니가 찾아 들어가니깐 그 아들이 본체만체 혀. 오조 스님, 천하에 오조(五祖) 스님인데, 오조 스님 같이 사사무애(事事無礙)를 다 깨달라서 환허니 도통을 했는데, 도통한 오조 스님이 어째서 어머니가 찾아갔는디 그 어머니를 그렇게도 박허게, 박정(薄情)하게 대하냐 그말이여. 본체만체 혀.
아! 그러더니, 본체만체만 해 버리면은 혹 모자지정(母子之情)을 잊어버리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마는 어머니를 갖다가 “방에다 가둬 버려라” 어머니를 거다 방에다 가두고서는 “밖으로 문을 채워버려라”
어머니를 세상에, 가두고 밖에다가 문 채워버린 법이 있겠어? 왜 그래? 참 그 해석허기 어렵지.

문을 채워번지고는 밥을 안 드리네. 때가 되어도 밥을 드린 법이 없어. 그러니까 공양주(供養主)나 그 채공(菜供) 허는 사람들이 몰리(몰래), 오조 큰스님 몰리 가만히 쇳대를 끌르고서는 밥을 드렸다. 그래 그 어머니는 갇혀 가지고는 그 밥을 잡순다. 그러니까 갇혀 가지고 얼마 좀 산 것이지.

나중에 오조 큰스님께서 그것을 알고서는 생벼락이 났다. “어째 문 잠가번지고 다시 그 문을 끄르지 못하게 해 놨는데, 열쇠를 가지고 문을 끄르고 밥을 갖다 드렸냐?”고, “어느 놈이 그렇게 했느냐?” 야단을 내고 산문출송(山門出送)을 시켜번지고.
그래 놓으니 뭔, 그 나중에는 누가 뭐 밥 줄 수가 있나? 통 뭐 가만히 안 줬어. 밥 준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뭐 갇혀 있어 가지고는 그렇게 오래 오래 두니깐 아사(餓死)하지 별 수 있어? 굶어 아사해서 돌아가셨다.

아! 세상에 어머니를 그렇게 굶어 죽일 수가 있나?
그 후편에 그런 것이 있으니, 그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잘 허도 않지. 허지마는 그걸 잘 들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게 참, 그게 참, 법이여. 역경(逆境) 설법이여.

아! 그만 대중들이, 오조 스님 대중이 참 많어. 칠백 명 대중이나 되니까. 오조 스님 대중이 그렇게 많은디, 대중들이 오조 스님 법을 믿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을 배우는데, 아! 생사해탈법을 배우는데. 생사해탈법을 배우는 큰스님한테 다시 그 무슨 뭐 얼마나 믿어 버렸어. 생명을 맽기고 법을 배우는데.
조금이나 신(信)이 불신(不信)을 혀? 불신허면 뭣할라고 그 밑에 가 있어? 무슨 놈의 법을 배우며?
믿음이 없는디 무슨 법을 배와? 믿어지지 않는디 무슨 소용이 있어? 아무 소용없는 것이여. 비방심만 나는디 무엇 허게? 점점 손해만 나지.

점점 믿고, 법을 배운 칠백 명 대중이 똑같이 한마음 한뜻으로써 오조(五祖) 큰스님만 믿고 법을 배우는데, 허는 짓이 어머니를 굶어 죽이다니! 허는 짓이 믿을 수가 없네.
'세상에, 어머니를 죽이다니! 굶어 죽이다니!' 배척심이 입승(立繩)으로부터서 모도 나가지고는 전 대중이 단결을 허고 결심허고 그만 배척을 해 버렸네. 반대를 해 버렸어.

‘그 세상에, 세상 악인도 그렇지 못헐 턴디, 도인(道人)이 대도를 통한 도인이, 부처님의 정맥(正脈)을 바로 이어 온 오조 스님이 이런 짓을 허니 우리가 그 법 믿어 뭣혀? 그까짓 법을 믿어 뭣하며, 거기서 무엇을 배울 것이냐? 부모를 굶어 죽이는 거기에 무슨 법을 배울 것이여’
전부 반대를 해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서는 그 반대해 가지고는 황매산에 그 오조 스님 밑에 있을 것이 없으니깐 그길로 그만 걸망짐 다 싸 짊어지고서 쏵 도망갈라고 작정을 딱 해 놨는데, 공중에서 공청(空請)이 있어.

 

공중에서 공청을 허는 것은 누가 공청을 허는고 하니, 어머니가 공청을 했어. 그 재송도인 어머니가 공청을 허기를,
“대중들이여. 오조 큰스님을 믿는 대중들이여. 너희가 그런 사견심(邪見心)을 가지고 도를 구할 수가 있겠느냐? 나를 굶어 죽이는 것은, 굶어서 죽게 만든 것은 단식을 시켜서 내가 죽게 만든 것이다.
내가 이번에 금번에 오조 스님 회상에 들어와서 에미라고 찾아 들어와서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아들!’허고 모자지인연(母子之因緣)을 계속을 헌다. 모자지인연을 계속해 가지고 내가 그 애정을 놓지 못하고 있으면은 나는 해탈(解脫)할 기회가 없다.
언제 내가 발심(發心)해서 해탈을 허겠느냐? 그 도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 모도 애착심, 그 애(愛) 그것 때문에 생사해탈을 못허는 법인디, 내가 애정 애착심 그놈을 놓아 버리고 끊어버리고 단식허고 그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애착 끊어버린 그 속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용맹정진을 했다” 그 용맹정진 허는 것은 그도 알았지, 모를 리가 있는가? 성모(聖母)인디.

“그래서 그 애착심 끊고 금생에 결정코 성불(成佛)을 허게 맨들어서, 나를 성불허게 맨드시느라고 나를 단식을 시켜서 나를 이렇게 굶겨 죽였다마는, 몸뚱이는 내가 내버렸다마는 내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다”(처음~21분32초)





(2/3)----------------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나는 인자 조금도 생사에 걸릴 것이 없고, 생사에 맥힐 것이 없이 확철대오를 해서 가니, 대중들이여 느그 그런 사견심(邪見心) 버리고, 그러헌 상견심(相見心) 다 놓아 번지고 다시 더 믿어서 대도를 믿어 깨달라라”

그러헌 공청이 있어서, 아! 대중들이 그만 깜짝 놀래서 ‘아하, 오조 큰스님께서 그러헌 방편(方便)으로 써서 어머니를 제도허니라고 그랬구나’ 그 어머니 제도 편이여. 어머니를 그렇게 제도허니라고 그렇게 헌 것이여.

아, 그러니 그 일시의 단식해 가지고는 그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허게 만드는 그러헌 방편이 있다면은 아! 그런 방편을 반드시 쓸 수 있지, 안 써? 누대(累代) 겁(劫)을 앞으로 또 무량겁을 밤낮 그저 그만 애욕에나 빠져 가지고 대도를 닦지 못하고 생사죄나 받게 만들어 놔?

그러헌 후편(後篇)이 있어.
그러니 무수 방편(無數方便)이 있어. 방편이라는 것이 한량이 없어. 그러헌 방편도 있고, 저러헌 방편도 있고, 도인의 방편이 천만 가지의 방편이 있다 그말이여. 오조 스님 후편이 그거, 그까장 했어.


화두를 해 나가는데, 본각(本覺)이 미명(未明)이면, 내 화두, 해 나가는 화두, 본각.
내 화두(話頭), 모도 화두 얻어서 지금 화두를 해 나가는데, 그 화두가 미명(未明)이면 일일유의(一一有疑)다. 어떤 화두든지 다 의심이 있어.
내가 공부헌 화두를, 내 배운 화두를 깨닫지 못해서 의심이 있는데, 다른 화두가 의심이 없을 것인가?

깨달은 화두, 그놈의 의심이 확철히 없어 버려야사 ‘어떤 게 조사서래의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아, 그 확철히 의심이 없어야사 다른 화두가 다 의심이 없지. 벌써 다른 화두에 의심이 있으면 본각(本覺)이 미명(未明)이여. 본각만 바로 깨달라 버리면은 다른 화두에 의심이 없는 법이여.

본각(本覺)이 미명(未明)이면, 본각을 깨닫지 못하면은 일일유의(一一有疑)여. 낱낱이 의심이 있어. 대의즉유대오(大疑則有大悟)니라.
그러니 다른 디, 이것 좀 허다가 저것 좀 허다가 그러지 마라. 공부헐 때 요것 쫌 해보다가 저것 좀 해보다 그러지 말어. 꼭 한 가지만 고대로 해.

‘이뭣고?’면 ‘이뭣고?’뿐이지?
‘이뭣고?~’ 그저 그 밥 먹는 놈이고, 옷 입는 놈이고, 가는 놈이고, 아시방요(屙屎放尿) 헌 놈이고, 아시방요는 똥 싸고 오줌 누는 걸 아시방요라고 헌게, 아시방요 허는 놈이고.
일체처에 가고 오고 그놈이여. 낱낱 가는 놈이 오는 놈이고, 오는 놈이 가는 놈이고, 밥 먹는 놈이 옷 입는 놈이고, 물 먹는 놈이 오줌 눈 놈이고. 아, 그놈이여. 다른 놈이 아니여.

그러면 ‘밥 먹는 놈이 뭣고?’ ‘옷 입는 놈이 뭣고?’ ‘가는 놈이 뭣고?’ 이렇게 하면 쓸 것이여?
그렇게 하지를 말기 위해서, 그건 여러 가지 그렇게 자꾸 명상(名相)을 때려 붙일 것 없고.

‘이뭣고?’ 그놈이 총상(總相)이여. ‘이-’ 허면 가는 놈이나, 오는 놈이나, 밥 먹는 놈이나, 일체처에 행동하는 놈이 고놈이 이놈이여.
그러니 이놈이 ‘이-’ 이래 놓으면, ‘이-’ 고때 그놈이 뭐냐? 그말이여.


‘이-’, 벌써 ‘이-’ 해놓고 보니 ‘이것, 이놈이 뭐여?’ 그말이여. ‘이게 뭐여?’ 그말이여.

‘이- 뭣고?’ ‘이뭣고?’ ‘아, 이- 뭣고?’ 또 ‘이- 헌 놈이 뭐냔 말이여?’
자꾸 일받아. ‘이-’ 헌 놈을 또 일받고, ‘이-?’ 는 그 의심이니까.

‘이-?’ 그 뭐냔 말이여? ‘뭣고?~’
‘이-’ 해 놓고는 알 수 없는 관(觀)이 딱 백혔다. ‘이- 뭣고?’ ‘'대체 이뭣고?'


아, 이뭣고 하나가 필경 나오지, 안 나와?
고 ‘이뭣고?’ 헌 놈이 그놈이, 고 그 자리서 ‘이뭣고?’ 하는데 그놈이 안 불거져? 바로 낯반대기가 나오지. 안 나와?

‘이뭣고?’ 아! 이렇게 의심을 할 것 같으면은 의즉대오(疑則大悟)다. 의심이 크게 일어나 가지고는 필경에 깨달을 때가 있어.

대번에 ‘이뭣고?’를 해 가지고 그만 하루나 이틀이나 ‘이뭣고?’ 해 그만 툭 깬 이는 과거에 전생에 많이많이 닦아 나와 가지고 금생에 왔기 때문에 그만 그렇게 쉽게 깨달은 것이지, 대번 금생에 처음 나와서 배워 가지고 그렇게 될 것인가?
화두라는 것이 과거에 많이 해 나왔기 때문에 금생에 와서 또 그 인자 그렇게 쉽게 깨달아 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는 것이고 그 상근대지(上根大智)가 되는 것이지, 대번 되는 게 아니여. 이렇게 공부를 똑 해서 크게 대오를 헐 것이니라.

각부득장심대오(卻不得將心待悟)하라. 이건 낱낱이 있어 이런 말이.
각부득장심대오 하라. 문득 시러금 대오를 기다리지 말아라. 대오를 기다리는 것은 어서 깨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어서 깨기를 기다리는 것이 망상 아니냐?

어서 깨기를 기다리는 데 망상이 나는데, 그 망상이 일어나면은 그 망상으로 인해서 별것이 다 일어난다. ‘깨달으면은 그만 그 깨달은 것이 어떤 것인고?’ ‘깨달으면 어떤 변화가 있는가?’ ‘깨달으면은 생사에 어떻게 초월허는가?’ 뭐 별별 생각이 다 나.
그러니 어서 깨달을 생각을 내지 마라. 어서 깨달을 생각만 내면 화두에 지장이 적지 않다. 대오지심(待悟之心)을 두지 말아라.

우부득이의구오(又不得以意求悟)허며, 또한 뜻으로써 깨기를 구해.. 똑같은 말이지마는. 늘 마음으로써, ‘어서 못 깨달라? 어서 깨달라야겠는디’ 그런 구오지심(求悟之心)도 두지 마라.
조금 달러. 깨달을 마음 두는 것과 구오지심을 또 두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말이여. 깨달음을 구하는 생각조차 두지 말아라.

또 인자 또 이치로 들어가서, ‘그래 아무리 찾아봐도 모냥이 없으니 모냥이 본래 없는 것인가? 모냥이 본래 없는 것인디, 없는 놈 까장도 다 그 공(空)해 버린 것인가?
그러면 없는 놈인디 없는 놈까지도 다 명상(名相)이 없으니, 그 아주 영원히 없는 그 진공(眞空), 참 공, 아주 공, 그놈이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보다’ 고러지 말란 말이여. 고런 것이 못써.

고건 그 이치로 해(害)를 짓는 것인디, 없는 놈인디 없는 놈까장 뚝 떼 놓고 보니, 참 진공이거든.
‘옳다! 그 진공이다. 그러면은 진공(眞空)이라고 아는 놈이 그놈이 묘유(妙有)다. 그럼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가르켜 논 게 그것인가 보다’ 요렇게 말란 말이여.

고렇게 선(禪)을 알았다가는 그건 참 영원히 그건 참 깨달도 못허고, 그런 이치 참선에 떨어져서 참선이 아니여. 그까짓 그럴 것 같으면 뭐 뭐 입으로 다 따져서 다 말해 버리고 말지 뭐, 소용이 있어?
그런 입으로 견성했다고 지금 고렇게 떠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꽉 찼어. 삼공이요, 정관이요, 뭣이요, 다 따지고 다 해석을 혀.

무(無)로만 봐 버려도 다 유상(有相)도 무(無)지 뭐여? 유상도.
한 가지 무슨 유(有)가 있다 하드래도 유(有)도 이름이지, 이름 하나 붙였지. 거기에 무슨 이름이 있냐 그말이여.

작대기도 이놈 작대기라고 이름을 하나 작대기라고 붙였다. ‘작대기 이놈이 빛이 붉다. 작대기 이놈이 길다’ 맨 내가 붙였지. 작대기 제 놈에 들어가서 작대기 제가 ‘내가 작대기다, 내가 길다, 내가 냉기다’ 뭐 그거 있나? 모도 이렇게 붙여 보면은 다 붙일 수 있어.

입을 열어 가지고는 왼통 요런 놈의 이치로 때려 붙여서 야단친 것이 그것이 잘못된 것이여. 거 잘못된 참선이여.
그래 가지고 지금 무슨 뭐 일체 공안을 다 갖다가서 인자 붙여 대서 이르지. 그 되지 않는 소리여.

요새 구두선(口頭禪)이라는 게, 입 선, 말로 선. 깨달든 못하고 구두선.
무슨 말을 못혀? 구변가(口辯家)가 뭔 말을 못혀? 다 할 수 있는 것이여.

그러헌 작유무회(作有無會)를 짓지 말아라. ‘뭐 있는 것이다, 있는 놈까장도 없는 것.. 있는 놈도 없고, 없는 놈도 없고, 유무(有無)가 다 구공(俱空)헌 것이다’ 요런 생각을 짓지 말아라. 이건 이편에 들어가서 한 소리여.

부득작허무회(不得作虛無會)하라. 허무회(虛無會)도 ‘허무, 본래 허무다. 본래 그러니 생사도 없지, 허무니. 허무니 생사도 없다’
허무 허무, 그 신선(神仙) 모도 그 진공이 허무여. 노자도(老子道)도 허무지, 뭣이여?
그런 것, 그 신선도나 그런 건 허무도 있고, 무슨 현빈(玄牝)도 있고 별별 뭣이 있지마는, 우리 참선법은 그런 것 없어. 허무회(虛無會) 짓지 마라.

어찌던지 이치 길이 제일 손해인 것이여, 공부에는. 보통 망상보담도 이로(理路)가 제일 못써. 이치 길이.
그 이치 길을 짓지 말아라. 모도 인자 이치 길을 지어 가지고는 뭔 이치가 나가지고 ‘허무회(虛無會)다’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견성했다 하거든. 그 견성이여? 그것이? 허회(虛會)를 짓지 말아라.

또 그뿐 아니다. 부득작철소추(不得作鐵掃箒)하라. 쇠빗자락이라고 마라.
쇠빗자락은 빗자락이 오직 견고헌가, 쇠빗자락이니. 그 쇠빗자락으로 쏵 쓸어버리면은 그 본 땅까장 모도 패이지. 얼마나 여지없이 쓸려지는가.
그러니 그 철소추(鐵掃箒)를 짓지 말아라. ‘일체 번뇌 망상을 다 쓸어버리는 쇠빗자락이다. 뭐 있나? 일체 망(妄)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요런 거 짓지 말아라.

이 활구선(活句禪)이여. 사선(死禪)에는, 고러헌 모도 고 사선이지마는 활구선에 가서는 이런 거 없어.

부득작계려궐용(不得作繫驢橛用)해라. 나귀 매는 말뚝, 나귀 매는 말뚝은—나귀라는 놈은 천하에 영리한 놈이기 따문에 둔한 놈보담 영리한 놈이 훨씬 더 이치가, 그놈이 이로(理路)가 많애. 이치가 많고. 미련헌 건 하나를 겨우 생각하면 영리헌 건 한 백 가지나 천 가지나 생각하는 거여.
나귀란 놈은 어떻게 영리헌지, 그놈이 짐승일지언정 말이라도 나귀는 굉장한 영리헌 놈이여.

나귀 매는 말뚝이라고 말아라.
나귀란 놈이 영리한 놈이여. 잘 달아난 놈이고, 그놈이 말뚝도 뺄 수 있고 그놈이 입으로 뭐 별짓 다할 수 있은게, 말뚝을 때려 딱 박아놓고, 말 딱 때려 매놓은 그 계려궐(繫驢橛)을 짓지 말아라. 나귀같이 영리허고 나귀같이 그 이로(理路)가 많은 놈을 꼼짝 못허게, 나귀란 놈 그런 이로(理路) 못 나게 꽉 때려 매놓은 고러헌 생각을 짓지 말아라.

참선 허는 사람들이여. 이렇게 그러헌 이로(理路)를 짓지 말아라. 이치 길, 요런 이치 길만 지으면은 그건 참선도 아니고, 그건 죽어 가는 혼(魂)이 망상만 더허고, 견성켕이는 그 뭣이여? 도깨비지.
이런 이로(理路)를 짓지 말아라.(21분33초~37분52초)





(3/3)----------------

종교의단(從敎疑團)이 일성(日盛)이다. 날이 맞도록 항상 의심이 일성(日盛)이다.
오늘보담도 내일은 의심이 더 일어나고, 또 명일은 또 더 일어나고, 자꾸 의심만 일어나는 것이 화두다.

천 망상, 만 망상이 안 나는 법 없다. 망상이 나드래도 나는 놈 그만 두어라. 그 나는 놈을 어떻게 할 테냐?
어린아 때, 젖 먹을 때, 어머니한테 커날 때, 고때 생각 같은 것 나는 것이라도, 그게 났지 안 나? 누가 안 나?
중생심이라는 것은 물에 파도와 같애서 항상 일어나는 것인데 안 일어날 수가 있나? 나거나 말거나 두어라.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 일어나는 염기를 두려워허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하라. 그 네 화두하나 챙기는 것만 그놈만 어쨌든지 단속해라. 그저 ‘이뭣고?’ 그저 ‘이뭣고?’
일어나면 언제 일어나면 그까짓 일어날까 뭐, 일어나는 것 무섭고 뭐 말고 ‘이뭣고?’ 이뭣고?만 챙겨.

그러드래도 그놈의 이뭣고? 챙기는 가운데 그 잡념이 하도 먼지같이 많어서 중생 잡념이 꽉 찼어. 그 꽉 찬 중생 잡념 속에서 이뭣고? 한 번 돌이켜 일으키는디 좀체로 잘 안 나와? ‘이뭣고?’가 잘 안 나와. 안 나올 때가 있어. 그때에 사마(邪魔)가 있다 했어, 사마.

화두를 일으킬라 하면은 나귀를 몰고 물에 들어갈라는 것 같은 때가 있고. 냉랭지계가 있고, 냉랭(冷冷)해서 화두가 안 나온 때가 있고. 열렬(熱烈)혀, 심두(心頭)가 더웁고 더워 열렬해서 또 안 나온 때가 있고. 그놈이 거 참 어려와. 과연 그러면 어려와.
거다가 잠 오지, 또. 조금만 또 조용허면 잠이 오지. 화두를 허면 그려. 또 잠 안 오면, 또 그놈이 일어나지. 그 이뭣고? 찾아보면 이뭣고?는 희미허니 나다가 말아 버리지. 고약혀. 참선허기가 그렇게 고약혀.

허지마는 참선이 아니면은 정법(正法)이 없어.
정법이라는 것은 생사를 해탈하지마는, 한 번만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깨달라서 보림(保任)만 한 번 해 버리면은 그 깨달은 곳을, 그 깨달은 내 본래 주인공을, 본래 확철대오 깨달은 그 일체 그 깨달은 곳에 가서는 중생념이 거 물들리지 않고 아무리 중생 속에 들어가도 소용없고 헌 그런 본각(本覺)이 있어.

우리 본각이 있어. 한량도 없는 본각이 있는데 그놈을 깨달라 놓아사 정법! 그 정법을 깨달라 놓아사 영원히 인생 문제를 해결이지.
그놈을 깨닫지 못하면은 복(福)? 암만 복을 뭐 천지 바다같이 지어놔도 그건 다할 때가 있어버려. 복 다 받으면 그만이여. 그놈 받아 버린 뒤에는 또 마찬가지여. 역사가 없으니까, 그놈의 역사가 없는 동안에 뭐 도로 또 미(迷)해서 받지 뭐, 허는 수가 있나?

허니, 아무리 안되고 안되드래도 참선을 안 헐 수가 없어.

허니까, 다 환(幻)이여. 다 환이여. 환(幻)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환, 환이여.
지환즉리(知幻卽離)니라. 환(幻)인 줄 알면 여의어라. 왜 환인 줄 아는데, 환에 꺼꾸러지냐?


무슨 주문이니 뭣이니, 그 주문을 많이 외우면은 병이 낫고, 그 주문을 많이 외우면은 부자가 되고, 그 주문을 많이 외우면은 소원성취를 다 한다. 아들딸 다 낳고.
그 짓, 글씨 그것은 글씨 안 되는 건 아니나 되기는 되지마는, 그 일생 가운데 그것 좀 해서 얻어 놔 봤던들, 고것 조금 잠깐 동안 누리다가 나 죽어버리면 그만이요. 그런 것들이 다 그만 인자 아무리 얻은 것이라도 필경 그것은 다 내가 내버리는 건 사실인디, 그것 가지고는 어떻게 허냐 이 말이여.

그것 가지고 어디, 그 환(幻)이지. 그 환이지. 내가 암만 잘살아 보지, 잘살아 본 그까진 동안에 그건 환(幻)이지 뭣이여?
환인 줄 알거든 여의어라. 지환즉리(知幻卽離)니라. 그러니 참선허라는 것 아닌가? 참선 정법 밖에 더 있는가?

중이 되아 가지고 중이 사무승 노릇이나 하고, 사무나 보고, 절이나 지키고 앉아서 독살림이나 해서 쌀 들어오면 고놈 밥해 먹고, 돈 들어오면 고놈 밥해 먹고 부처님한테 올린다 하고, 뭐 들어오면 먹고, 고러고 사는 것이 중인가?
그 중 그렇게 살아 뭣 헐 건가? 중이라는 것이 고렇게 살아 가지고 그 부처님한테 올린다 하고는 제 먹고 제 살고 제 옷 해 입고, 거 뭣이여? 성 팔아 가지고는 매불자생(賣佛資生)하는 것이 뭣이여?
그러니 절 맨들어 가지고 벌써 부처님 턱 맨들어 놓고 앉어서, 맨 들어온 것이 부처님한테 기도헌다 뭣 헌다 해 들어와 가지고는 고놈 가지고 인자 혼자 독살림, 독식, 독생활하는 것이지. 그게 뭣허는 것이여?

척 들어오면은, 한 푼이라도 들어오면은 들어온 놈 그놈을 가지고는 척 들어와 부처님한테 올리면 부처님이 등상(等像) 부처인디, 냉기로 깎아서 맨든 부처님이나, 쇠로 지어서 맨든 부처님이나, 흙으로 모도 뭉쳐서 맨든 부처님이나, 그런 부처님 등상인디, 등상한테 놓으면은 그 부처님이 그것을 무슨 잡순가? 그걸 뭔 어쩐가?

다맛 거다가 올려 놓으면은 그놈을 척 내려와서 대중이—그 고마운 쌀이나 고마운 돈이나 그 어려운 돈을 가지고 왔으니, 그놈 갖다가서는 밥 잘 지어서 대중이 그놈을 먹고는 아침저녁 공부를 허니, 항상 공부를 허니,
위성도업(爲成道業)을 허니,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해서 그 밥을 먹고 원융하게 앉어서 도 닦고, 아! 그래야사 고 시주(施主)가 복이 얼만고? 공부인(工夫人), 한 때 공양 올린 공덕으로 만 생을 부자가 된다고 했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보지. 도 닦는 스님네 옷 한 벌 해주고, 도 닦는 스님네 한 때 공양(供養) 올린 것이 삼세제불(三世諸佛) 공양 올린 것보담 낫다 했네.
삼세제불은 다 이미 일 마쳐 버려서 부처님 되어 버렸으니 뭐 뭐, 우리 중생은 지금 도를 닦아서 대도를 이룰 그러헌 도학자들을 밥 해 올리고 공양 올리면 복이 많다. 그래 공양 들어온 것이 그것이여.


화두를 이렇게 일일(日日) 일일 일성(日盛)이다. 날마당 날마당 화두만 챙겨서 그저 안되드래도 챙겨라. 안될 때 고때 챙기는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잘될 때야 그 무슨 뭐, 제대로 잘될 때야 화두 뭐 그렇게 힘 안 쓰고 잘되지마는, 되게 안될 때가 있는디, 되게 안될 때에 퇴타(退墮)허지를 말고 화두를 추켜들어라. 화두를 거각(擧却)해라.

고 안될 때 자꾸자꾸 해야사, 거 안될 때 막 망상이 녹아지고, 망상이 뿌럭지가 빠지고, 버릇이 잽히고 그런 것이지, 안된다고 그만 내버리고, 안된다고 그만 방심해 버리면은 항상 그 모냥이다.
좀 해보다가 안된다고, “에이! 때려치워 버려, 그녀러 것” 또 좀 해보다 안된다고 고만 내던져 버리고. 그것 안되아. 안될 때에 그때에 꼭! 정신을 챙겨라.

잘 알아들어. 이거 잘 알아듣는 말이여 이게.

내가 아침에 배가 고파 법문이 당최 안돼. 어제 저녁에 쌀가리 갈아 논 것 쬐끔 먹으니, 새벽에 좀 가라앉으면 먹으면 조금 나은디, 뭐 아침에 해 줘야지? 긍게 말이 나와야지?
이거 하기는 이것 꼭 헐 편(篇)인디. 아이고! 입만 해준다고? 내일 아침에 헌다고? 해 줘야지?

그런데, 날로 일성(日盛)을 해라. 날로 일성(日盛)이라는 건 조금씩 더 허라는 것이여. 오늘보담도 내일은 좀더 잡드리를 허고, 또 좀더 잡드리를 허고.

그 숭악한 번뇌 일어날 때, 그냥 아이고 그 안된게 그만 내던져 버리고 돌아댕기고.

내던져 버리고 그만 그거 안 허고 돌아댕기면 시원하거든. 그래도 아무 일도 없고.
그래서는 백만 년 해도 안되아.

날마당 더 더 애쓰고 더 그렇게 일성(日盛)을 해라. 일성 까닭이 있어.
이륙시중(二六時中)에 열두 때 가운데—하루가 열두 때여, 그 전에는. 지금은 24시간이지마는. 열두 때 가운데, 하루 열두 때 가운데 때마당 조금씩 더허고.
사위의내(四威儀內)에, 앉으나 서나 누우나 가나 그때에도, 그 누웠을 때 좀 곤해서 누울 때라도 그때라도 그 성의를 다해라. 정성을 다해라.

생사해탈 아니냐? 생사해탈인데, 죽고 사는 이 몸뚱이 생사를 면하는 법인데, 이 법을 그렇게 허다 말다가 안된다고 안 허고, 그럴 것이냐? 발심한 학자들이야. 참으로 정신채려라.

단단제개화두(單單提箇話頭)해라. 홑으로 홑으로 일체 그 먼지같은 망상 번뇌가 필경 하나도 붙지 못허게 단(單)으로 해라. 단(單)으로만 꼭 그저 ‘이뭣고?’만 해라.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화두를 그렇게만 똑 해 나가거라.
밀밀회광자간(密密廻光自看)이 될 때가 있다. 은밀히 은밀히 광(光)을 돌이켜 스스로 떡 보면은, 화두를 보면은 화두밖에는 없다. 알 수 없는 화두만 하나 딱 나오는구나.

거 굼벵이란 놈이 그 굼벵이 속에서 껍..(녹음 끊김)

와도 있고 가도 있지, 그놈이 없어진 법이 없어. 간(看)이 그놈이 알 수 없는 놈뿐이네.
알 수 없는 놈이—알 수 없는 놈을 생각해서 알 수 없는 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딱 백혀져 있어. 물 달처럼. 물에 달 떨어져 있는 놈처럼.

와도 간(看)이 있고, 가도 간(看)이 있어. 딱 붙어 백혀 있다.
그래 고놈이 인자 그 내나야 그 의단(疑團)이여. 의단이 그놈이 독로(獨露)헌 놈이 그대로 있어.

그래 가지고는 의단 하나 딱! 들어와서 의심이 있을 때는 자미(滋味)도 없어. 그 ‘공부가 글쎄 잘된다, 이만 했으면 잘된다, 자미가 있다’ 고것이 벌써 틀렸어. 그 간(看), ‘참 간(看)’이 아니여, 화두가.
‘의심이 잘된다, 공부가 이만 했으면 참 잘되는구나’ 고러헌 건 못써. 고놈이 필경 일체 또 잡념을, 못된 마음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여. 그런 마음도 통 그것 나드래도 그까짓 것 간섭 말아라. 똑! 화두만 간(看)해라.

또 그래서 ‘안된다’고 헌 마음이 또 떡 일어나 가지고는 번뇌가 난다, 거기서.
‘아, 또 어째 이놈이 또 이래 안되는고?’ 고 번뇌(煩惱) 한번 낼 때, 일체 번뇌란 놈이 다 따라 들어온다. 고때에 가서. 그 고약한 것이 쬐꼼만헌데 들어온다.

허니까, 그래서 의득중(疑得重)이다. 의(疑)가, 그 의심이 크게 중(重)할 때가 온다.
그러헌 화두가 자의(自疑)다. 인제 제대로 화두가 나와서 몸에 딱! 들어붙어서 추역불거허고, 내던져도 가지 않을 때가 있을 터이니. 해 봐라! 내가 거짓말 했는가? 해 보면 알 것 아니냐.

 

오늘 생일 불공(生日佛供) 오셔서 법문(法門)을 들으셔서 좋습니다. 하지마는 이 법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법문입니다.
이 법문은 똑 참선허는 공부인이 화두 헌 사람이 들어야 알지, 그 이외에는 아무리 들어봐도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 헌 사람만 알고, 화두 않는 사람은 아지 못하니까 법문이 아니고 뭐 시원찮고 뭐 어쩌고.. 화두 안 헌 이가 아지 못허고 들어도 그 공덕이라는 것은 말로 헐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방 들었은 게 깜깜허지? 그 참, 법문 듣는 그 인연, 그 법이 기가 맥힙니다. 오늘 아침 생일 불공에 제일가는 것이 법문입니다. 오늘 아침 생일에 오늘 이런 법문 들은 것을 대단히 참 큰 공덕으로 잘 알으시고.

앞으로써 항상 참선은 못혀. 참선은 아직 처음이라 못혀. 이치를 알어야지. 못허니까,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옴 마니 반메훔’을 늘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은 부귀에도 제일 좋습니다. 뭔 재수에도 제일 좋고. 거 얼른 몇 번 해서, 얼른 몇백 번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좀 많이 하는 것이지. 날마다 일과를 정해 놓고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항상 ‘옴 마니 반메훔’을 부르시란 말씀이여.

그러면은 요까짓 몸뚱이, 요 몸뚱이만 살다가 죽으면, 죽은 뒤야 뭐 아나?
허지마는, 요 몸뚱이 가지고도 자연 번뇌, 자연 집안에 마장(魔障)이 없어지고, 이 몸 돌아가실 때에 우선 참으로 참 장애 없이 잘 돌아가시고 돌아가신 뒤에 영혼이 좋은 데 가서 납니다.
한량도 없는 데 가서 나는 법이 있으니, 부디 생일 불공 와서 부처님한테 공양(供養)만 올리고 가는 그것이 생일 불공이 아니라, 이러헌 법문을 듣고 그래 그 좋은 이치를—‘옴 마니 반메훔’을 부르면은 한량(限量)없는 공덕이 있는 이치를 잘 듣고 알고 가서, 댁에 가서도 늘 ‘옴 마니 반메훔’ 많이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한량없는 보배입니다.

난중(亂中)이라도, 난리(亂離) 가운데라도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도병입최절(刀兵立摧折)이요, 칼 속에 들어가도 칼이 끊어지지 사람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랬어. 사자(死者)가 변성활(變成活)이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 했다 그말이여. 그러니깐 그렇게 알으시고 ‘옴 마니 반메훔’을 모르시거든 하나 써 가지고는 늘 부르시어.(37분53초~58분3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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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양이유래세월심~’ ; 『전당시(御定全唐詩)』 권 七七八-3 이귀당(李歸唐)의 시 ‘실로자(失鷺鶿)’, 「惜養來來歲月深 籠開不見意沈吟 也知只在秋江上 明月蘆花何處尋」 참고.
『사성진군영참(四聖眞君靈籤)』 ‘제18 中平 隨緣’  「養汝原來歲月深  開籠不見意沉沉  想應只在秋江上  明月蘆花何處尋」 참고. 沉은 沈(침)의 속자.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난사(難事 어려울 난/일 사) ; 처리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難] 일[事]이나 사건.


*험사 ; ‘한다면, 하면’의 뜻의 사투리.


*공교히(工巧- 장인·공교할 공/공교할·솜씨가 있을 교) ; ①솜씨나 꾀가 재치 있고 교묘하게. ②뜻밖의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매우 기이하게.


*사사무애(事事無礙) ; 현상계의 일체의 사상(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卽無碍)인 것을 말함.
단일한 하나의 현상이 다른 모든 모든 현상과 어김없이 하나가 되는 관계처럼, 모든 차별적 존재가 서로 걸림없이 다른 모든 존재를 포섭하고 포섭되며 자재하게 뒤섞여 있는 법계의 실상을 나타낸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몰리 ; ‘몰래(남이 모르게 살짝)’의 사투리.

*쇳대 ; ‘열쇠’의 사투리.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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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대의즉유대오(大疑則有大悟) ;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〇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이 무엇고(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총상(總相) ; ①모두에게 통하는 특질. 병상(別相)의 상대되는 말. ②그것만의 순수한 모습. ③보편. 공통성. ④전체. ⑤전체의 모습. ⑥화엄교학에 있어서 만유의 하나하나에 다른 일체의 것을 포함하는 것.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관(觀)한다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2분)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시러금 ; 문득. 도리어. 능히.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의리선(義理禪).
이런 구두선(口頭禪) ·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구변가(口辯家 입 구/말 잘할 변/사람 가) ; 입[口]으로 말을 잘하는[辯] 재주나 솜씨가 있는 사람[家].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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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에서.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사마(邪魔) ; 삿된 악마. ‘마’는 마라(魔羅 : 악한 귀신의 총칭)의 줄임말로 원래 욕계의 여섯 하늘 가운데 여섯 번째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머무는 천마(天魔)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만 점차 불도(佛道)의 성취를 방해하는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또한 불도(佛道)의 수행(修行)을 방해하는 망령된 견해, 번뇌 따위를 사악한 마귀에 비유하여 ‘사마’라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7~88.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매불자생(賣佛資生 팔 매/부처 불/재물·자본·밑천·장사할·의지할 자/살 생) ; 부처를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함.

*등상(等像)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 11장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백 명의 악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만 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만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만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일 억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십 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 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삼세제불 가운데, 한 분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 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내나야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자미(滋味 불을·증가할·맛있을 자/맛 미) ; ①좋은 맛[味]을 불어나게 함[滋]. ②맛. ③재미. ④기분. 심정. 감정.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 · 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 ; 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