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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8/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713)—몽09. 몽산시 각원상인(8) (기유69.07.11)

(1/5) 약 20분. (2/5) 약 21분. (3/5) 약 20분. (4/5) 약 20분. (5/5) 약 15분.

(1/5)----------------


계한상수(鷄寒上樹)허고  압한하수(鴨寒下水)니라

나무~아미타불~


계한상수(鷄寒上樹)요  압한하수(鴨寒下水)다. 닭은 차우면 냉기(나무)로 올라가는 법이고. 압한하수(鴨寒下水)다, 기러기란 놈은 차우면 물로 들어간다.

닭이란 놈은 추우면 냉기에 올라가고, 오리란 놈은 차우면 물로 들어가고. 배고프면 밥 먹는 법이고, 추우면 옷 입는 법이고. 밖에 무얼 찾냐 말이야.


망각화두즉(忘却話頭則) 화두를 잃어버린 즉(則)—아무리 별것이 다 나와서 천하없는 무슨 별것을 보고 앉았다. 뭣 별걸 볼 것이 무엇이여?

아무리 해 들어갈수록에 뭣이 나와서 거가서 어리댈 거냔 이 말이여. 뭣이 보이며?

아무리 정(定)이 무슨 그 정(定)이 나와도, 일체 망상이 다한 곳에 가서 정이 하나가 나와도 그건 안된다.


이망화두즉(而忘話頭則) 화두를 잃어버린 즉, 낙무기공(落無記空)이다. 그 정(定)이, 화두 없는 정(定)은 그놈이 곧 무기공(無記空)이여.

무기공(無記空)이라 하는 것은 무유묘오(無有妙悟)다. 오(悟)가 있음이 없어. 벌써 정(定)이라도 정 가지고는 견성헌 법이 없어. 정(定)에만 떨어지면.


그러니 「서장(書狀)」에 보면 대혜 선사가, 대혜 스님이 전부 말씀해 놓기를 묵조사선(默照邪禪)을 제일 말 많이 했거든.

묵조사선은 묵조(默照)는 묵묵히 비춘다. 묵묵히 비추니 그 비춘 곳에 나아가서 일체 망상이 있을 건가? 한 망상도 없지.

망상도 없는 그 오히려 정(定)이라고 하지마는, 정(定)도 거기에는 뭐라고 무슨 붙일 것이 무엇이 있나? 정(定)도 거 없지.


허공도 아니고, 비허공도 아니고, 하! 도무지 참,

구주노상낙매화(狗走路上落梅花)지. 개 달아나는 길 위에는 매화 떨어지지. 또 강남삼월낙매화(江南三月落梅花)한들, 삼월 달에 매화가 떨어진들 역부패궐(亦復敗闕)이지. 또한 패궐(敗闕) 아님이 아니여.


허니, 이망화두(而忘話頭)면 화두만 잃어버리면, 알 수 없는 놈이 없으면,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그게 화두(話頭)인디, 화두 하나 척 거각(擧却)하면 아무것도 거가 뭣이 붙어? 무슨 정(定)이 붙어? 정이 벌써 붙으면 못쓰니까.


화두 하나가 딱! 온당하게 거각되아 들라면은 그대로가 고놈이 정(定)이고, 그놈이 화두고, 그놈이 대의(大疑)고, 그 타성일편(打成一片)이고, 그렇게 공부해 들어가는 법뿐이지. 고것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지.

고놈 여의고 다른 것이 뭣이 붙어 있으면은 못쓴 법이고. 쓸 것인가?

화두만 하나 없으면 낙무기공(落無記空)이다. 어제 아침에 여까장.


무기공에 떨어지면 오(悟)는 없다. 그 묘오(妙悟)가 없어. 그건 모두 인자 그 외도(外道) 참선법이요,

우리 참 이 정법문중에는 오직 활구참선법, 알래야 알 수 없는 화두 의심,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허는 의심뿐이여.

아, 그것 내가 늘 간택해 주는 것뿐이지 뭐 있어? 왜 안되고, 뭣이 안되고 될 게 뭐가 있어?


기정시(起定時)에—화두를 그 정시(定時), 정(定)을 일으킬 때 그말이여. 그 정력(定力)을 잘 보호(保護)해라. 정력이 그것이 화두니까. 알 수 없는, 알래야 알 수 없는 그놈 하나를 보호를 혀.

요게 인자 이게 의단독로(疑團獨露), 이게 정(定)이다 그말이여. 자꾸 정을 따로 보면 안되거든?


아, 내가 같이 도 닦든 그 도우(道友)가 하나 있었는데, 가만히 앉어서 그 집착을 되게 헌 것 같애서, “아! 이 사람아, 화두를 맹렬히 해 나가는 데는 그렇게 그 집착법이 없는 법인데, 그 좌(坐)에 너무 집착해서 그렇게까지 집착을 해야 어떻게 허는가?”

그런게 “정(定)이 있어야 되지. 정이 있어야 되지, 정력(定力) 없으면 생사를 면치 못허네”


그래서 그러고는 “어떤 것이 정(定)인가?”하니까, 일체 생각 일어나기 전에, 무슨 일체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햐.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이나, 일체 생각 일어나기 전이나, 그 마찬가지 아닌가. 그것에 가서 가만히 비추고 앉았다” 하거든.


그 무엇일 건가? 그 생각해 봐.

일체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니까, 한 생각도 일어나기 전이지. 아무것도 없는 데다 가만히 비추고 앉았다는구만.

그게 정(定)이 아니여. 그 모두 정(定)이 아니거든!


‘일념 일어나기 전을 본다’거나, ‘일념 후를 본다’거나, 그 ‘일념을 본다’거나, 또 어떤 분은 ‘일념을 본다, 한 생각 일어나는 놈을 본다’

그 한 생각 일어난 놈이 늘 일정하게 있으면 허는데, 가령 무상이 하나가 일어나면 무상 그놈이 항상 있으면 무상 그놈만 항상 보면, 그 무슨 한 생각을 본다고 할 수 있지마는,


그놈의 일념이, 중생 일념이 수(數)도 없고, 그저 그 명두래(明頭來)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이 일어나고, 암두래(暗頭來) 어둔 놈은 어둔 놈이 일어나고, 색색 따라서 모든 그저 물건 빛깔 따라서 일어나는 놈의 것을 낱낱이 이놈 일어난 놈을 자꾸 보는가? 일념 일어나는 걸 보면.


‘그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본다’ 일념미생전을 보면, 항상 한 생각 일어나는 고놈만 들여다보면 옳는지 모르는데, 별놈의 생각이 다 일어나는데, 항상 그놈 일어나면 똥구녕을 찾아가 볼 것인가?

그것이 다 그게 선(禪)이 아니거든. 그 다 외도선(外道禪)이거든. 그 못쓸 선이여.


일어나기 전이니, 일어난 후니, 일어난 놈이니, 그런 것이 문제 아니여.


용케 말했지. 참, 고인(古人) 말씀이 그 이상 더헐 수가 없어.

항상 고인 말씀을 의지해서 닦아 나가야 하고, 그리 믿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화두 들어가는 그 법에는, 화두법에는 고인의 말씀 이상 더할 수 없어.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해라. 일어나는 생각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염기(念起)라는 것이 어디 쉴 때가 있나? 중생념이라는 것이, 번뇌 망념이라는 것이 쉴 사이가 있어야지. 한 번도 쉴 사이가 없는 것이여. 밤낮 일어나는 것이 중생념이다.


풍정(風停)하야도 파상용(波尙湧)이다. 바람은 잤지마는 물결은 늘 일어나고 있다. 큰 바다 물결이 아무리 바람이 없어도 물결은 늘 동(動)허는 것이여. 언제든지 동허고 있는 것이여.

중생 번뇌망상도 똑 바다 물결같다 그랬어. 허니, 안 일어날 때가 있어야지. 언제든지 일어나는 중생념이니까.


그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해라. 그렇게 쉴새없이 일어나는 그 망념을 두려워허지 말아라. 유공각지(唯恐覺遲)니라. 오직 각(覺) 더딘 걸 두려워해라.

각(覺)이라는 것은 때때로, 그 시간 시간이 때때로 알 수 없는 화두, 알 수 없는 놈만 항상 일으켜라.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版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내가 없는 화두를 가르켰으면사 내가 외도(外道)지. 내가 어찌 없는 화두를 가르켰을 것인가 말이여.

없는 화두를 가르켰다고 내가 이런 시비를 듣고 앉었어. 저 『염송(拈頌)』이 거짓 말씀인가? 그 가 보란 말이여.


단순허게 ‘여하시조사서래의인고? 판치생모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불가불 그놈을 새기자면 지나(支那) 말로는 음(音)으로 ‘판치생모(版齒生毛)’니까, 판때기 판(版)자, 이 치(齒)자, 판때기 이빨이라고 헐 수 있지?

생모(生毛)다. 날 생(生)자, 터럭 모(毛)자, ‘판치(版齒)에, 판때기 이에 털이 났다’ 그말이여. 간단하지 뭐.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는고?’ 그렇게 화두에 송(頌) · 염(拈)이 많이 있지마는, 이 조주 스님 판치생모는 똑! 송(頌) 하나 딱! 있다.

그 송(頌) 그놈을 부디 잘 봐. 부디 잘 보란 말이여. 그 어째 송(頌) 그렇게 하나 딱! 해 놨는고 좀 봐.



역요보호정력(亦要保護定力)이다. 여기다가 ‘또한 정력(定力) 보호허기를 요구해라’ 그랬거든?

그러니 화두가 다르고 정력(定力)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말이여. 무서운 것이여, 선문이라는 게.


역요보호정력(亦要保護定力)이다. 그것은 자꾸 화두가 이놈이 전념(前念)이, 알 수 없는 의심이 없어지기 전에 또 장만혀. 없어지기 전에—자꾸 이놈은 멸했다 꺼졌다 멸했다 꺼졌다 하니까, 알 수 없는 의심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또 염염(念念)을 상속(相續)해라. 생각 생각 상속해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 염(念)이 항상 거각해 줘야 혀. 항상 따라 일어나 줘야 혀.


그놈이 조금만 늘어지면, 생각이 그놈이 조금만 늘어져 있으면 고 사이에는 못된 것이 또 들어온다. 다른 염(念)이 뭣이 침범허거나, 산란(散亂)이 그놈이 들어오거나, 무기! 무기(無記) 중에 잠이 들어오거나, 요런 것이 침범허거든.

허니까, 곧 고놈이 거기에 들어올 겨를이 없이, 언제 뭔 틈을 비질 수가 없이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요렇게 자꾸 염(念)을 상속(相續)해야 한다 말씀이여.


어저께도 그렇게 또 불가불 ‘하도 화두 안된다’고 그래싸서 또 내가 이렇게 말씀해 드렸지마는, 천 번 해 드리고 만 번 해 드리지, 어쩔 것인가 말이여.

이외에 딴 말이 있어야지. 없는 걸 내가 다 뭐 따로 붙일 수 있나? 고인의 말씀 그대로 내가 해 드리지.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해라. 염(念) 일어나는 걸 두려워허지 마라. 그까짓 상관 하나 없다. 별별 망상(妄想)이 다 들어오거나 말거나.


평생 이 몸뚱이 가지고도 소문자(所聞者)가 있고, 소견자(所見者)가 있으니, 평생 듣고 보는 것이 있으니 고놈만 일어나드래도 한정이 없어. 헌디, 그놈이 그 듣는 놈과 보는 놈만 있나?

그저 맛본 놈도 있고, 그저 냄새 맡은 놈도 있고, 그 촉식도 있고, 그 의식이 모도 있어서, 그놈의 육식(六識)이 교차구전 해 가지고는 맨 망상 덤뱅이 뿐인데, 그 안 일어날 수가 있어야지. 밤낮 일어나 있는 것을.


그까짓 것을 왜 두려워 혀? 무서울 게 뭐여? 망상 나거나 말거나.

‘망상 때문에 공부 안되야, 그놈 때문에 안되야’ 이게 무슨 짓이냐 그말이여. 밤낮 그런 소리 하고 앉아 있지.


망상 그놈이 아니면 뭐 공부라고 할 수 있는가. 본래 망상이 없으면은 뭐 그 공부라고 헐 것도 말 것도 없지. 그놈 번뇌 망상 때문에 헐 수 없이 해 나가는 것이여.


열염(烈焰)이 긍천(亘天)해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큰 불무더기가 긍천(亘天)했다. 하늘까장 뻗질렀다. 어떻게 크던지.

그러헌 큰, 대(大)불무더기 속에 점착변소(點着便消)다. 그 뭘 집어넣은들 안 탈 것이냐 그말이여. 다 집어넣으면 다 타지. 안 타는 것이 뭐여?


세간소유지물(世間所有之物)을 실개투지(悉皆投至)해 봐라. 세간에 있는 바 모든 물건을 거그 다 집어넣어 봐라. 다 탄 뒤, 쟁용호말(爭容毫末)이냐? 거 다 호말(毫末) 같은 것이야 말할 것이 뭣이 있느냐.


허니, 화두 역시 그렇다. 화두라는 것은 큰 하늘에 뻗질른, 하늘까장 꽉 찬 그런 불무더기와 같다.

그런 불무더기, 무슨 세간소유지물이 거기에 무슨 뭐 다 타 용납 못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 내 화두도 역시 불무더기와 같애서 알 수 없는 한 의심뿐인데, 거가서 무슨 놈의 망상이 거가서 올 것이며, 붙을 것이며, 어디서 일어나리야.


그런 것은, 망상 나거나 말거나 그런 것은 내비둬 버려라. 제대로 임타(任他)해 버려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이놈뿐이다. 다시 뭐 똘똘 몰아 그뿐이다. 그놈 하나가 온당해서 그대로 턱 독로(獨露)헌 것이 그것이 정(定)이여.


알 수 없는 놈을 자꾸 전념(前念)이 없어지기 전에 또 다시 생각을 상속해서, 알 수 없는 놈을 상속해서 그놈 단속허는 것이 보호정력(保護定力)이여. 그 점을, 그놈을 갖춰야지.

대학자(大學者), 우리 참선학자를 대학자라고 햐. 대학자의 그 정(定)이 이것이지. 고것 내버리고 정(定)은 아무짝에도 못쓸 정이여.


보호정력해라. 자꾸 화두를 이와 같이 동중정중(動中靜中)에—분다(紛多)한 가운데나 어떠헌 동(動)헌 가운데에나, 정(靜) 가운데 고요헌 가운데, 일여(一如)허다.

일여(一如)라는 것이 그 한 일(一)자, 같을 여(如)자인디, 일여 속에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헌 걸 일여(一如)라고 햐.

의단 없이 일여는 못쓸 일여(一如)여. 의단 없이 일여라는 건 없어. 의단 없이 어디 일여(一如)가 오나?


일념도 일어나는 건 없어.

알 수 없는 놈이 그대로 들나야사 다른 놈이 범치 못혀. 어디 뭐가, 거 뭐가 붙어? 거가.


알 수 없다. 참 묘(妙)허다. 차개염두(此箇念頭)여.

이 이상 더 요긴헌 거 어디 있는가?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전편(全篇)도 다 이뿐이야.(처음~20분18초)



(2/5)----------------


혼침(昏沈) 도거(掉擧)가 실절(悉絶)이다. 혼침(昏沈)이라는 것은 무기(無記), 잠 오는 거 혼침이고, 혼혼(昏昏)허니 잠기는 거여. 혼침, 잠 오는 거여.

도거(掉擧)다. 도거라는 것은 이 생각 저 생각 그저 쓸데없는 번뇌 망념이 도거여.


그 혼침(昏沈)과 도거(掉擧)가 그대로 절(絶)이다. 의단이 독로허면, 알 수 없는 놈만 하나가 척 들나 있으면은 그대로 독로(獨露)헌 것이여.


공연히 화두헌 사람들이 ‘일 년 해 봐도 소용없고, 삼 년 해 봐도 소용없고, 몇 달 해 봐도 소용없고, 암만 해야 그 모냥이고. 원, 해 봐도 그 모냥이니, 이놈의 것...?’

그 무엇을 찾는고? 그 무엇을 바라는고? 그 무슨 상견(相見)을 찾고, 무슨 사견(邪見)을 발하는가 말이여?


그게 그 무엇이 나올 줄을 알거든?

배고프면 밥 먹고, 추우면 옷 입고, 닭이라는 놈은 차우면은 냉기 위에 올라가고, 오리라는 놈은 차우면 물에 들어가는 놈이 달른가?

환동범부(還同凡夫)라니! 도리어 범부(凡夫)지. 뭐가 그 이상스러움을 찾기 때문에 그게 그러헌 소리를 허거든.


화두 하나, 알 수 없는 놈 독로해 나오면 ‘알 수 없다’ 말이다.

알 수 없는 놈 따문에, 공안 그놈이 맥히기 따문에 내가 온 곳이 맥히고, 갈 곳도 맥히고, 성숙시위 전체가 통 맥혔다.


조사관(祖師關)이 맥혔기 따문에 내 온 곳 맥혀, 내 갈 곳도 맥혀.

아! 이놈 밤낮 가지고도 이놈을 알 수 없는 것이 모두 그 조사관 아닌가? 꽉 미(迷)헌 놈, 꽉 미(迷)해서 맥혀서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고놈 알 수 없는 놈, 알 수 없다.

대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했으니, 그놈이 내 코빼기 아닌가. 아! 고놈이 내 면목(面目) 아닌가.


아! 알 수 없으니, 지금 직접 미(迷)한 면목(面目)이여. 그놈 툭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응, 그 참 그게 무슨 일이 있겄는가?

알 수 없는 일이 하나뿐이어늘 화두 학자가 이것 하나뿐인데, 그 무엇이 나오기를 찾냐? 말이다. 나 참, 알 수가 없지.


그러면 저 인자 무슨 상견(相見)으로 찾기 따문에, 그러면 그 인자 무슨 하늘에나 기어 올라가고, 땅속에나 기어 들어가고, 뭐 무슨 신통변화나 놓고 모도 그런 것, 뭐 그런 것을 구헌건가?

모냥, 뭐 그건 사견 상견이라고 안 했는가?


방광(放光)이나 하고, 앉아서 떠억 해탈해 가지고 그만 가니까, 제가 제일이다는 말이여. ‘향불 피워놓고 향불 꺼지기 전에 연기 따라 스르르르 죽고, 참 생사해탈이다, 자유해탈이다’

고것을 법이라 햐? 뭐 그까짓 놈의, 그런 놈의 법을 내가 만날 허지 않아?


천동각선사(天童覺禪師)가 아니였었으면은 꼼짝없이 그런 사견(邪見)에 속지.

그것 사람 속이는 거 아닌가. 그런 것을 생사해탈이라고 하지 않어.


허니, 꼭! 화두 하나 잘 다루어 나가.


알 수 없는 놈 하나 잘해 나가다가 그놈 툭 깨면, 툭 깨는 곳에 가서는 뭐가 나올 것인가?

그 광명 덩어리가 나올 것인가? 일월 같은 무슨 그런 것이 나와? 그러면 무슨 또 광명, 그놈 밝은 놈 광명과 또 그 광명 허공과 그런 놈이 허공과 대지가 한목 나올 것인가?


허공 그대로 그놈을 왜 못 봐서? 일월(日月) 다 보고, 광명 다 보고, 천지허공 다 보는디, 그건 뭔가? 그밖에 또 뭐 나올 걸 바란가?


아무리 깨달라 놓고 보았자, 흥! 뭐가 있을 것인가?

없지마는, 없는 놈을 찾아서 거기 떨어지면 저 죽어.


그러니 그 부디 사견(邪見) 상견(相見) 그런 것 두지 말고.

어쨌든지 십 년을 해도 그 모냥이고, 이십 년 해도 그 지경(地境)이지, 뭐 다른 지경은 없으니까. 화두 하나 알 수 없는 지경, 독로지경 하나 얻어. 화두학자가 그거 목적이니까.


그저 고인도 모두 다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말씀 전체가 그뿐 아닌가.

화두,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큰 의심 아래에 필득대오(必得大悟)다. 반다시 큰 대오를 얻느니라.

오경(悟境)을 또 말해 놨는데 그 뭔 말을 해 놨는고? 깨달은 뒤에.


그러니 화두 하나를 잘 거각해서 의심 하나 지어 나가는 데는 실절(悉絶)이다. 다 거기는 붙도 못허고 오도 못혀. 무기(無記)니, 무슨 망상이니, 망념이니 오덜 못혀.


역막생환희심(亦莫生懽喜心)이니라. 일체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화두가 온전혀. 의심이 그대로 돈발(頓發)해서 낭연독존(朗然獨存) 허드래도, 의심이 그대로 독존 허드래도 환희심을 내지 말아라.

‘좋다! 이것 참, 이뿐이로구나!’ 좋아서, 인자는 그런 좋은 경계가 나온다고 좋아서... 그렇제.


그래 ‘요런 경계가 나는 안 나온다. 타성일편(打成一片) 경계가 안 오는구나’ 이래서 항상 이 모냥이라고 통탄헐는지 모르지마는, 이런 경계가 나와 봤던들 좋아서 또 환희심을 두지 말아라. 그건 또 뭐여? 그까짓.

그 경계는 좋아하는 것이, 이런 경계가 온다는 것이, 또 무슨 그 구(求)헌 것 아닌가? 공연히 거다가서 딴 망상 경계 아닌가, 그것이?


화두 하나만 잡드리해서 알 수 없는 그 경계만 점점점점 더 살찌울지언정 더 보호헐지언정, 뭐 거다가 ‘좋다!’ 왜 그래?

그저 그러헌 무슨 그 일체 망상 경계 그놈이 실절(悉絶)된 곳에서 그 의심이 독로했다고 좋아한 상(相)까장도 짓지 말고 거기서 더 화두를 거각해라.


알 수 없는 놈만, 참 좋다.

이렇게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홀연화지일성(忽然㘞地一聲)에, 홀연히 숨바꿈질 땅에—아이들이 숨바꿈질을 할 때, “너, 날 찾아라. 내가 숨을 터이니 너는 나를 찾아라”

“오냐. 그러면 나 눈 감을 터니까 가서 숨어라” 이놈이 눈을 딱 감고 있으면 어디 가서 숨네.


딱 숨어 있으면 요놈이 쫓아다니다가는 찾아 가지고, 옳게 찾아 가지고는 “허허! 이놈들, 내 찾았다!”한게, “하하!” 웃고 돌아선다 그말이야, 찾았다고. 그 숨바꿈질 땅에 한 소리.

그와 같이 꼭 견성이 있다, 거기에.


무슨 뭔 잡팅이가 보여서, 뭔 별것이 나와서 “하하!” 가가대소(呵呵大笑)허리요?

가가대소가 있지.


투과조주관이(透過趙州關已)다. 척! 깨달으면, 뭘 깨달랐느냐? 조주관(趙州關) 깨달았다.

‘어떤 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하는 조주관을 탁! 봐 버린다.


그 조주 판치생모만 깨달른 것 아니여. 조주 인자, 공안은 다 깨닫고.

조주 공안만 깨달을 것인가?


그 고봉 스님께서 하도 공부를 해도 안 된다. 3년을 사한(死限)허고—늘 헌 소리 아닌가!

‘3년 사한허고, 만약 3년만에 내가 대도를 깨닫지 못허면 죽으리라’ 딱 작정을 허고서는 3년을 해 보니 더 안 된다. 또 3년을 해 놓고 나니 처음에 시작할 때 보담도 아무 진취 없다. 아무것도 없어.


삼년이나 했으니 무슨 좀 진취가 있어야 할턴디, 이상스런 뭣도 있어야 할 것이고, 공부가 좀 무슨 증거가 뭣이 좀 있어야 할턴디, 점점 더 깜깜허고 점점 더 잠은 더 오고. 잠이 더 오네!


처음에 첫 철에 들어와서는 잠 별로 안 오는구만. 말똥말똥허니 앉아서 뭐 살림살이 요런 것 저런 것 해 나오던 그런 것 저런 것 여기 와서 앉아서도 환허니 보이네.

내가 장독 속에다가서 뭐 넣어 논 것까장 다 보이고, 정재(淨齋)에 무슨 뭐 주벅 엎어 논 것까장 다 보이고, 뭐 조리(笊籬) 뒤집어 놓은 것까지 다 보이지.


그러니 뭐, 잠 안 자, 첫 철에 들어오면. 그런 것 모도 그 망상 경계가 나와 가지고, 살림살이 모도 그런 것이 눈에 보여 가지고 잠이 안 와. 손자도 얼굴이 환허니 나오고.

아주 무슨 뭐, 그러니깐 첫 철에 들어와서 잠 안 자올고 앉아 있으니까 “아따! 그 공부 잘한다”고.


또 고런 것 생각하고 앉았으면은 앉았는 좌(坐)도 하나 뭐 괴롭지 않네. 잠도 안 오고. 고런 거 생각하고 앉았으니까.


그 백양사 서호 스님이 사십 년 독(獨)살림 헌 뒤에 주지(住持)가 떨어졌어.

사십 년 독살림 속에서 내소사 주지 허는디, 그 근 백 석(石) 받는 절이니까 해마다 곡식은 받아 가지고 그놈은 늘리우고, 불공(佛供) 들어오는 놈 가지고도 능히 살고, 또 불공 들어온 돈도 모으고.


또 도량에 감냉기가 한량이 없거든? 감나무가 같은 데서 나온 놈 그 기타 수입, 산(山) 수입, 모도 그놈 합산해서 일 년 유지허고도 훨씬 남으면 그놈 또 보태고, 지상 수입 그놈 허고 해서,

그 몇십 년 주지—젊을 때 그만 들어와 가지고는 나이 오십 되드락까장 주지만 했으니 수백 석, 삼백여 석지기를 논 샀단 말이여.


그러고는 주지가 떨어지니깐 그놈 안 먹을라고 백양사 선방에 들어왔거든? 우리 같이 지냈었구만.

들어와서는 가만히 참선을 허고 앉어. 그거 참선방에 들어와야 공식(空食)을 허니까, 자기 양식 먹지 않고 그 공식허니까.


참선 가만히 허고 앉었다가 밥 먹고 또 앉으면 참선허는데, 그 참선은 무슨 참선인고 하니 ‘논 참선’이여.

‘올해 삼백 석(石)지기 수(收) 받으면 삼백 석 그놈을 가지고 내서 아무 들 논, 그놈 몇 마지기 또 사야겠다’ 맨 요것만 딱 작정하고, ‘그놈 한 달에 이자가 얼마고?’ 요런 것 모도 허다 보면 언제 한 시간 간지 몰라.


앉었어도 고로운 줄도 모르고, 그놈 망상 참선이기 때문에, 논 살 참선이기 때문에, 앉어도 뭐 그렇게 고롭도 않고, 잠은 하나 오지도 않고 성성(惺惺)허네.


아! 그렇게 허다가 병이 나서 죽게 되았는데, 염라국(閻羅國)을 갔어.

가서, 아따! 그만 대왕(大王)이 묻는디 “너 이놈! 중이 되아가지고 평생에 상주재물(常住財物) 갖다가, 부처님 재산 갖다가 네 재산 만들어 놓고, 너 이놈! 네 죄가 여차(如此)하다. 저 지옥 봐라”고 지옥을 가리키는디 7년 지옥이여, 7년. 7년이라 나와.


왜 칠 년이냐? 지옥 칠 년이면 솔찬혀. 상당한 연조여. 말로 헐 수 없어.

지옥 일주야(一晝夜)가 인간 몇백 년이라고 안 했어? 거 그런 일이 있으니 그까장 다 말할 것도 없고.


첫 철은 도대체 잠도 오지 않어. 그게 아주 참선 잘해 잠 안 와?

망상 그놈, 모도 그  경계 때문에 안 오는 거여. 한 철 지내, 두 철 지내, 세 철만 지내 놓으면 잠이 오기 시작하는디 걷잡을 수 없어.


3년을, 고봉 스님의 3년 만에는 잠이 더 와. 아무리 안 잘라고 해도 더 와.

잠만 오지. 진취(進趣)는 아무것도 없지. 대체 뭔 좀 공부 진취가 좀 있을 줄 알고 3년 사한(死限) 허고 공부를 했지마는, 3년을 해놓고 보았자 아무것도 없고 잠만 더 오고.

잠 안 오면 또 망상은—벌써 무기(無記)가 들어올 땐 그렇게 잠이 자꾸 오고, 무기가 올 때에는 그 산란이 올 장본이여. 무기는 산란(散亂) 근본이여. 또 잠 깨면 산란심뿐이지.


오직 해야사 ‘부처님과 고조사들이 거짓말을 했구나. 중생을 속였구나. 무슨 놈의 견성성불법이 있어? 무슨 놈의 생사해탈법이 있어? 꼭 속였다. 없다! 그놈의 것’

‘없다’ 해버리고는 그만 그대로 참선이고 지랄이고 내던져 버리고 세상에 나가서 그저 세상 사람 사는 그대로 한 번 살아볼랴고 마음을 내 보면은 또 불안혀.


‘그럴 리가 있는가? 부처님으로부터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있고 또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있는데,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쭉 내려오면서 만약 속였을 것 같으면, 견성성불법을 속였을 것 같으면은 이렇게 전통헐 수가 있느냐?

한 사람한테도 못 전해오고, 두 사람한테도 오들 못헐 것이거늘, 이렇게 삼세불조가 있고 역대조사가 있고,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하고는 또 해보면은,


또 그렇게 안되면은 ‘암만 해도 이거 없지. 견성성불법이 없지. 있으면 이렇게 안될 수가 있나?’

자기 근기는 하나 자기가 참 증명허지 못허고는 그렇게 까지도 생각을 허다가.


아! 그 홀연히 참, 그렇게 안되고 애쓰다가 홀연히 그만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를,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디 일(一)은 귀하처(歸何處)냐?’

아, 이런 화두 하나를 꿈에 얻어 가지고는 차차로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해서 그때부텀 의심이 어떻게 나던지 참 이건 자기도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이렇게 안되다가 이러헌 경계가 어디 있을 것이냐?’ 하지마는 자기도 몰라. ‘이러헌 경계가 어디 있을 거이냐?’ 해도 몰라, 그때는. 얼마나 취했던지.

알 수 없는 의심 한 경계에, 의단독로에 그대로 그만 취해버렸다.


하! 그 지경에 떡 당도허니—바로 그 가 봐, 그 편(篇)을.

부지동서(不知東西)여. 동서도 알들 못허고. 무슨 동서를 알아?

산도 봐도 산이 아니고, 물을 봐도 물이 아니고. 행야부지행(行也不知行)이요, 행해도 행을 모르고, 좌야부지좌(坐也不知坐)요, 앉아도 앉은 줄 아지 못혀.

먹어도 몰라. 끽다부지다(喫茶不知茶)요, 다(茶)를 먹어도 다(茶) 먹은 줄 아들 못허고, 끽반부지반(喫飯不知飯)이요, 밥도 마찬가지제. 밥 먹어도 밥을 알지 못허고.


하! 이놈의 것 뭐, 무슨 놈의 동서(東西)니 무슨 뭐 서동(西東)이니, 그것 뭐 분다(紛多)할 게 뭐 있어?

다시 그 의단독로 경계는—이거 깨달은 후에 헌 말이지, 그 지경에는 못허는 것이여.


그 지경이 떡 오니깐—아, 그만 일주일도 그렇게 된 때가, 그렇게 의심이 돈발헌 때가 일주일도 없었더니, 아! 그만 그놈이 한 일주일 떡 허다가 보니 수중재삼탑(隨衆在三塔)해 가지고, 대중 따라가서 삼탑(三塔)에 가서 경 읽다가 머리 한번 휘딱 들어 가지고 저것 보다가,

아! 그만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툭 깨!  하! 툭 깨쳐부러. 깨달라!


화지일성(㘞地一聲)에 투과조주관이(透過趙州關已)란, 여기에 내가 한 말이여.


척! 깨달라 가지고는 백장야호(百丈野狐)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마삼근(麻三斤)과 천칠백 공안을 척 한번 밀거(密擧)해 보니 턱 들어보니—들어보니 들 것도 없다. 들 것도 없어.

그 무불요요(無不了了)다. 공안부텀 무불요요여. 하나도 무슨 맥힌 것이 없다. 어디가 맥혀? 맥히다니!


반야묘용(般若妙用)이 신불무의(信不誣矣)다. 세상에 확철대오법이, 견성해탈법이 삼세제불과 조금도 거짓 말씀 없는 것을 여기서 믿었다.(20분27초~41분2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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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래 깨달라 가지고 그 지경을 얻어 가지고는—자기 혼자 깨달랐지. 그렇게까장 깨달랐지마는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그때에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안되아. 그 소용없어.

그러헌 좋은, 참말로 깨달라서 얻었지마는 좋은 천하에 회생기사(回生起死)하는 보약을 만나 얻었지마는, 보약 그놈이 먹는 법도 알아야 하고, 그놈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


한 첩을 먹는지, 반 첩을 먹는지, 다려서 식혀 먹는지, 그놈을 어느 때 먹는지를 다 의사를 만나서 진찰해야 알아 가지고야 그 보약을 먹는 법이지,

알지 못허고 보약이라고 덮어놓고 그놈을 한 번에 대려서 열 첩을 한 번 먹는다든지, 지어 두 첩이라도 그만 한 번 먹는다든지, 때도 모르고 먹는다든지, 이놈 허면은 죽어.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니라.


오후(悟後)에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깨달은 뒤에 참말로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니라. 제호(醍醐) 같은 좋은 약이 사약(死藥)이 되느니라.


용하지. 혼자 공부허다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견성해 나와서, 이 사람 보다 “내가 견성했다”허고, 저 사람 보고 “내가 견성했다”하고, “내가 알았다”허고, 이러고 돌아다니네.

그 자기가 속아 가지고 인자 남을 속이는 것이거든. 세상에 죄 중에는 그 죄보덤 더 큰 죄는 없으니까.


글안했어? 방반야자(謗般若者)는,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는 거, 그거 반야 비방한 거거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이여. 얻지 못헌 걸 얻었다. 미증(未證)을 위증(謂證)이다. 증치 못헌 걸 증했다. 그것이 반야(般若)를 비방한 것이여.


깨닫지 못허고 ‘깨달랐다’하고, 증치 못허고 ‘증했다’고 해 가지고, “내가 인자 깨달라 증했으니 느그가 내 법문 들어라” 그것이 속인 거 아닌가? 그렇게 미득위득, 미증위증이 제일 큰 죄업(罪業)이여.

그 죄업 왜 그렇게 크냐? 아! 저도 깨닫지 못허고 그만 속아 가지고는 남까장—비유자오(非唯自誤)라. 저만 그르친 게 아니여. 겸역타오(兼亦他誤)라. 다른 사람을 그만 그르쳐 버리거든.


또 하나만 그르쳐 놓으면, 그것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또 번식을 허네. 또 전해 가.

그래서 갱생지반을 해 가지고는 모도 차암타무한지남녀다. 한정 없는 남녀를 모두 속여서. 영입마괴(入魔魁)요, 영()이 마구니의 굴에 들게 허고. 영타화택(墮火宅)이라, 영이 화택에 빠지게 허고, 삼악도에 모두 들어가게 맨든다. 그 죄같이 큰 죄는 없다.

 

살부살모자(殺父殺母者)는 아비를 죽이고 에미를 죽인 죄업은 부처님한테 참회해서 그 죄를 없애려니와, 방반야자(謗般若者)는 이 불법을 이렇게 아지 못하고 알았다는 요런 행사를 해서 죄를 짓는 것은 참회할 길이 없느니라. 이것 참 어쨌어? 무섭지.


그와 같이 깨달라 가지고도, 고봉 스님이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도 그만 그때 가서는 인자 참 무애(無礙) 횡설이다. 걸림 없는 횡설을 막 한다.

인자는 뭐 내가 이렇게 깨달랐으니, 대체 깨달라 놓고 보니 고인의 그 모도 그만 공안, 천칠백 공안이 명백간이(明白簡易)허니 하나도 걸림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때에 그 단교화상(斷橋和尙)? 무슨 그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들 어떻게 되았으리오? 안되지.


출가 취인이요. 모두 말하면, 저 혼자 깨달랐다고 말하는 놈한테 말하면 취언취담(醉言醉談)이여. 못쓴 것이여.

척 깨달라 가지고 옳게 공안 바로 봐 가지고 인가를 바로 척! 받은 도인이야, 그때 가서는 환동범부(還同凡夫)여. 범부와 똑같고.


세상에 그저 큰 놈은 ‘크다’고 했고, 적은 놈은 ‘적다’고 했지. 푸른 놈은 푸르고 누른 놈은 누르다고 했지.

푸른 놈을 누리다, 누른 놈을 푸르다, 큰 놈을 적다, 적은 놈을 크다, 고런 놈의 소리가 어디가 있는가?


발써 ‘없는 놈을 있다, 있는 놈을 없다, 없고 있는 놈도 없다’ 요러고 돌아댕긴 것이, 요러고 야단친 것이 발써 그것은 그거 아닌 것이여. 왜냐?

조사관(祖師關)이, 조사의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하나도 사(事)에 어긋난 법이 없어. 이사(理事)가 그대로 딱 딱 들어맞지.

그건 출처도 아니고, 없는 놈을 있다고 해 논 것도 아니고, 있는 놈을 없다는 것도 아니여. 그것이 그런 법이 없어, 조사관이라는 것은.


내가 늘 허는 말 아닌가? 나 뭐, 한 이삼십 년 동안 내가 그러고 밤낮 헌 소리가...

내가 무엇을 봐? 내가 어디 글 한 자를, 책을 한 자리 본 사람이여? 무슨 뭣을 보고 앉었어?

나, 그 헌 놈 또 허고 또 허고. 그 설법 아니면, 헌 놈 또 아니면 말이 있어야 하지.



그때에 그 (설암)화상을 만나 화상이 “네가 그렇게 깨달은 경계가 네 일체...” 뭔 여러 가지 그 안에 있는데, 거 좀 더 말해 볼까?

“밥 먹을 때도 네가 안신입명(安身立命)허냐?” 안신입명이여. 편안할 안(安)자, 몸 신(身)자, 설 입(立)자, 목숨 명(命)자, “몸이 편안하고 명(命)을 세우냐?”

“예! 밥 먹을 때도 안신입명헙니다”


“옷 입을 때도 안신입명?”

“예, 옷 입을 때도 안신입명헙니다”


“갈 때도 안신입명(安身立命)? 올 때도 안신입명?”

“밥 먹을 때나, 옷 입을 때나, 갈 때나, 올 때나, 다 일체처에 안신입명합니다”


안신입명이라는 것은 인자 무슨 뭐, 안신입명(安身立命)이니까 다 된 것 아닌가? ‘깨달은 경계를 매(昧)하지 않았습니다’ 그말이여.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헌 경계라도 하나도 매(昧)허지 않습니다. 밥 먹을 때, 옷 입을 때, 갈 때, 올 때, 일체처에 있습니다’


“너, 그러면은 정수착시(正睡着時)의, 잠이 꼭 들어서 잠잔 상(想)도 없고 꿈도 없을 때에는 네 일각주인공(一覺主人公)이, 너 툭 깨달은 네 생사 없는 해탈 주인공, 다 깨달라 버린 그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어 안신입명허느냐?”


이것 참! 기찰 공안(公案)이지. 꽉! 맥혀. 맥혀부러.

깨달라 가지고 각견(覺見)이 하나가 붙어 있어도 안되아. ‘깨달랐다’는 각견 속에만 주저앉아도 안되아.


“인자 그러면은 꿈도 없고 정수착시(正睡着時)의—잠이 꼭 들어서 잠도 없고 꿈도 없을 때에는, 네 주인공이 어디 있느냐?”

꽉! 꽉 맥혔어.


그러면 ‘그까짓 뭐, 본래 한 물건도 없고, 부처도 없고, 마음도 없고,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道亦假名)이다. 마음도 아니요, 도도 아니요, 마음도 또한 거짓 것이요, 그만 거가 무엇이 있어?

역무허공(亦無虛空)이요, 역무일물(亦無一物)이요, 역무허공지해(亦無虛空之解)요,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인디, 뭐가 붙어 있을 거여?’


거, 이까짓 놈의 소리로 갖다 붙여봐? 거다가?

고런 놈의 소리로 갖다가 주뎅이 벌렸다가는 주뎅이 없는 곳에서 저 화장 당해 버렸어. 소용없어.


공안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니여.


“정수착시(正睡着時), 잠이 푹 들어서 잠잔 상(想), 수착상(睡着想)이니 무슨 뭐 몽상(夢想)이니 그것 없을 때에는 고 경계에 들어가서 고거 고대로 한마디 일러봐라”

꽉 맥혀 부렀네. 다시 삼 년을 했단 말씀이야, 다시 삼 년.


다시 삼 년 해서—그때에 못 깨달은 건 아니여. 깨닫기는 깨달랐지마는, ‘반기이파(飯器已破)’ 가지고 삼 년 헌 거여.


“견성 했습니다”

“그럼, 견성헌 경계를 일러라!”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입니다.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아니다”

고건 깨닫지 않은 것은 아니여. 허지마는 그놈 방(棒) 맞아야 되고. “그럼 다시 일러라”


다시 척 이른다.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옳다”

반기이파(飯器已破)에 가서 깨달랐어. 그러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에 못 깨달은 건 아니여.


그러면은 ‘정수착시(正睡着時)를 일러라’고 하니깐, 맥혔어. 삼 년 했어, 삼 년 혀.

“정수착시(正睡着時)의 무몽무상(無夢無想)시에는 취득이 어디 있느냐?” 그 콱 맥혔어.

그때에 그 스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안되아.



투과조주관이(透過趙州關已)다. 한번 깨달을 것 같으면은 조주관을 뚫어 지내가버린다.

일일하어제당(一一下語諦當)이다. 낱낱이 하어(下語)에, 언하(言下)에—하어(下語)란 건 언하대오(言下大悟)란 말이여.

하어(下語)에 제당(諦當)한다. 언하에 대오다. 제당(諦當)이라는 건, 자성(自性)이 당(當)한다 그말이여. 확! 확!


그래서 전전주봉(箭箭拄鋒)이다. 활살 활살이 칼에 대질었다. 전전주봉이지. 활살 활살이 칼날에 대야.

공안 공안이, 천칠백 공안이 낱낱이 안 나온 놈이 없어, 안 보인 놈이 없어. 하나도 맥힘이 없어. 공안에 맥히면 오(悟)가 아니니까.


감파조주(勘破趙州)해라. 그때 가서는 조주도 한번 감파(勘破)한다.

일체 법문 공안답이, 그 답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그 패궐처(敗闕處), 패궐처를 감파한 것이여. 조주 스님도 감파해야 하거든. 득인증처(得人憎處).


또 감파조주(勘破趙州)허고 득인증처(得人憎處)하리라. 인증처(人憎處)라는 건, 부처님 미워허는 곳 얻은 걸 감파해라.

‘조주도 한 방맹이, 부처님도 한 방맹이다. 갱유일방(更有一棒)은 어떻게 헐 테냐?’ 이래 가는 거여.


그러면 여기서 인자, 불(佛)도 일방(一棒)이다. 조사(祖師)도 한 방맹이다.


자지 말고 들어. 꾸뻑꾸뻑 말어. 안 잘 때는 좀 안 자야 할 거 아닌가. 법문 속에서 ‘자지 말라’고 내가 부탁을 몇 번 헌가?

하지만 양쪽에서 모도 코 고는 소리가 나 싼께 나도 한번 골아 버릴 것이다. 나도 법문 허다 잠 오면 자야지 그러면?


견성을 툭, 화두를 턱 조주관(趙州關) 하나 깨달아 놓고 보니, 조주 방(棒)밖에는 없네.

‘조주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툭 깨놓고 보니, 조주부텀 한 방맹이 올리는 거여.


또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다. 불조인증처 얻음을 감파한다. 부처님도 그 방(棒)을 올려야 되아. 부처님한테 올려.

아, 그 방(棒)이 무슨 턱 때리는... 이런 미친 놈들 방(棒) 쓰는 것이 사람 죽지.


어제 아침에 했거니와, “종미명고미타(鐘未鳴鼓未打)하니, 종도 울지 않고 북도 치지 아니했거니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저두거(低頭去)야. 아! 제자가 묻는데, 머리를 이렇게 숙이고 간다.

그때, 덕산(德山)이 쳤으면 되아? 덕산은 가풍이 방(棒)이니께? 이걸 알아야 되아.


‘부처도 일방(一棒)이요, 조주도 방이요, 갱유일방이다. 거 일러라’ 어디서 부른 걸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방맹이를 짊어지고 물러나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이래 놓고 보니 조주부터 우선 방맹이, 선사로 올려드리고. 부처님한테도 올려 드려, 다시 일방(一棒). 흥! 좀 있다가...


법법(法法) 원통(圓通)이다. 법법이 원통혀.

법법이 못 통(通)헌 거냐? 아! 조사관을 통해 버렸는데 무엇을 못 통혀? 어디 맥힌 것이 있어? 맥힌 것도 없... 어디 맥힘이 있나? 또 맥힐 것이 있나? 어디 또 능(能)이 있고 소(所)가 있나?

거기 무슨 생사(生死)가 있나? 생과 사가 어디 있나? 늘 그러니, 그 어디 거가 무슨 상견이 있나, 무슨 사견이 있나?


뭐여? 도무지. 아! 이놈의 일 마친 곳이 이렇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터억 그 무슨 생사니, 무슨 사견이니, 무슨 비법이니, 무엇이 거가 붙어 있나?

아무것도 붙어 있을 거 없지마는, 밥 먹고, 그래도 옷 입고, 그래도 가고. 접화(接化)도 하고. 그것도 없어?

다 인자 그때는 그렇게 원통(圓通)해 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다 있고, 여주여역무(與住與亦無)다. 또 있고, 또 없고 또 있다.


거가서 무엇이 안 갖춰져 있나. 거가서는 참 구족동시(具足同時)요, 조용동시(照用同時)요, 살활동시(殺活同時)요, 법법동시(法法同時)요, 무엇이 무슨...



차별기연(差別機緣)을 일일명료(一一明了)다. 차별기연, 밥 먹고 옷 입고 똥 싸고 일체 기연(機緣)도 명료(明了)여. 낱낱이 그놈이 다, 그대로가 다, 뭐 여의고, 없고, 떼고 그런가? 명료(明了)여.

낱낱이,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뭐가 도무지 조사의... 이렇게도 붙여 볼 수 있지.

그런 거 전체가 시방 아닌가? 방맹이 무서워서 방을 못 쓸 것인가?


차별기연(差別機緣)이 일일명료(一一明了)다. 아! 이래 가지고 정요구오후생애(正要求悟後生涯)다. 이렇게 적혀 있구만.

정요구오후생애(正要求悟後生涯)다. 정(正)히 오후생애(悟後生涯)를, 깨달은 뒤의 생애를 또 구해라. 이럴 때 가서 또 선지식(善知識)을 찾으라 했네.

오전(悟前) 선지식이지마는, 오후(悟後) 선지식을 바로 찾아라. 아, 이래야 할 것 아닌가?


요새 말세 중생이 스님도 없이, 누가 인가(印可)한 사람도 없이 지가 깨달라 가지고 보살... 내, 참 사실 보살님들 잘 들으시오.

보살님네가 “아이고! 저 스님 도통해 견성했어. 아이고! 저 우리 스님이여. 저 큰스님이여” 이렇게 맨들지 마시오. 그 죄가 제일 큽니다.


아, 공연히 그만, 그저 조금 별다른 소리 입에서 나오면은 “아이고! 우리 큰스님 도인이네” 이래 맨들아 놓은 도인이 있어!

고것 가지고 맨들어 놔 봤던들 사람 죽이는 것이여. 참, 사람을 다 죽이는 것이여.


이걸 내가 여 없는 말을 혀? 큰일나!

모두 보살들, 시방 말 많이 듣습니다. 보살이 선지식을 많이 만들어 놨다고 야단입니다. “우리 스님, 우리 스님, 하이고! 그 스님이다”


전강(田岡)한테 이렇게 올 때에도 이렇게 보살님네가 각지서 많이 왔지마는 전강 보면 바로 알아봐야 할 것 아닌가? 여지없이 알아봐야 혀.

내가 전강이 설법상 올라와 “전강이니까, 날 믿어라” 고따구 놈의 외도(外道), 내가 설(說)을 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 가지고 와서 잘 배우십시오” 이뿐이여.


참말로 잘못 아는 것이여. 아! 그래가지고 모두 보살들이 선지식 만들어 인가해 놓네. 이런 놈의 선지식이 고금을 막론허고 있다 그말이여.


어디 스승 없이, 그 스승한테 인가 없이, 고금불조(古今佛祖)가 인가 없이 나온 이가 누가 있어? 그 인가 가닥 없으면은 절대 소용없어.(41분24초~61분20초)



(4/5)----------------


월봉(月峰) 외도가 그와 같이 득세를 했지마는, 어디 그 월봉 누가 인가했소? 그 누가 인가해서 나와서 제가 제일이라고 했어? 천하에 제가 제일이네.


성중에 와욕댄디 성에는 성중하에 크지마는 천하의 월봉대다, 천하의 월봉(月峰)이다. 아! 이래가지고 이것 참 뭐 그때,

그때에 만약 지안(志安) 도사가 없었으면 큰일났지. ‘너 이놈, 그렇게 안다고 하니 너 이놈, 한번 네 법을 들어보자’고 척 법석(法席)에 앉았는데. 똥을 싸버렸네.


어떻게, 법식자구의(法識者懼矣)다. 말 한마디 않고 앉었건마는 저 말석에 앉었는.. 아 그 눈을 한번 척 보고는 놀래 버렸네. 기겁해 버렸어. 법식자구의(法識者懼矣)여.

그 앞에 가서 법문을 설할라니 벌써 되진 입이 응, 모도 죽은 놈의 주둥이가 어찌 벌어졌는고?


“무변허공각소현발(無邊虛空覺所顯發), 갓 없는 허공에서 각(覺)이 현발(顯發)한 바다”

“에끼 이놈!”하는데 뚝 떨어져 죽어버렸어. 안 죽어? 뚝 떨어져 죽어버렸지.


그때 그렇게 안 죽었던들—그러면 왜 환성지안(喚醒志安) 도사 같은 그러헌 큰스님이 아! 그 어찌 그런 걸 한마디 발써 가서 “에끼 이놈!”헐 때 죽을 줄 알았음서 왜 글쎄...

그건 없애 버려야 하거든? 없애 버려야 혀. 그거 살생이 아니여. 천하 중생을 다 속여 죽일 테니까 헐 수 없어. 그렇게 참 그 정화(淨化)요. 그것이 참말로 정화여.


지금 이때에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인자 여기서 아주 끝이냐? 또 다시 조금 어디 있냐? 이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어떻게 되았는가를 봐. 차라리 정화(淨化) 말고 내비둘 것을, 왜 정화하다가 이 지경 되아 버렸냐 그말이여. 어디 지금, 사무만 본다고 앉았는 게 뭐여? 도대체가?


절절이 그 모도 그저 삼보 재물(三寶財物) 모아서 그 절 그 절 겨우 살아 나가는 놈, 거다가서 무슨 뭐 ‘종비(宗費)를 내라’ 무슨 그 모도 그 뭐 있잖아? ‘분담금(分擔金)을 내라’ 모두 이래서 그놈 갖다가 척 모아 주었자, 사업허느니, 뭣허느니.


사업은 첫째 무엇이 사업이냐?

적어도 선방을 맨들아서 모두 그저 발심 모두 공부해서 대도를 통하게 만들아, 사방 여기도 큰 선방을 만들려니와,

우리 부처님의 정법은 속(俗)을 여의고, 세상을 여의고 들어와서 부모가 다 허락해서 그래 들어와서 산중에 도 닦아.


도 닦는 데는 시주(施主)가 모두 양식을 올려서 그놈이 모두 사찰 재산이 되었으니, 그 재산을 온당하게 거두어서 도를 닦게 모두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여?

중앙에도 선방(禪房)을 잘 만들아 주고, 각처에 모두 선방을 다 만들아 주고, 그 다음에는 또 재산을 또 갖다가 정재(淨財)를 또 분할해서 모두 포교사업을 해야 하고, 포교를 해야 할 거 아닌가?


포교사업 해라. 부처님의 경서 가르키고, 그 교당 맨들어야 허고, 그 다음에는 강당 좀 만들어야 하고, 그 다음에 선방 만들아서 삼대 사업을 해 나가야 할 거, 그 이상 밖에 뭐가 있어?


아! 이놈의 무슨 일로 ‘그 사업은 소용없네. 선객들 그 뭐, 뭐 살림헐 줄 아나? 뭣 헐 줄 아나? 뭐 선객이 무슨 뭐 살림헐라고 들어왔나?’ 그 가운데 다 할 줄 알지, 몰라?

이래 가지고는 즈그들이 그만 돈만 가지고는 착취해 가지고는, 하! 이놈들 한 몇이 그만 갈라 먹고, ‘선방 뭣 혀? 수좌(首座)들 뭣 하는 거여? 그것이’ 아! 이것 참, 이 정화가 소용이 있소?


우리 큰스님네가 나와서 모두 그 배를 졸라 가면서 단식해 가면서, 아! 이거 우리 부처님의 정법은 그대로 정화해야겄다고 아, 애를 쓰다 몇 분 돌아가시니까, 인자는 지지리 아 인자, 참 어떻게 헐 것이여? 요렇게 되아 버렸네.

끝 말법(末法)에 설법도 여기서 영원히 아주 그만 매장되게 되아 버렸어. 


그래 내가 생각 다 못혀. 나는 오늘 죽을는지 저녁 때 죽을는지 내가 뭐 이건 알 수가 없어.

허지마는 나는 큰스님네가 다 그대로 다 보조(普照) 큰스님을 모시고, 다 종조(宗祖)를 모시고, 다 이렇게 원력 세우시고 정화해 놓고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 이력을 받들아서 나 혼자나마, 나 혼자나마 나는 보조 스님 종조를 모시고, 조계종 그대로 해 논 종조를 모시고, 나는 용화사에다가 여기서 내가 둘이면 둘, 아무도 없으면 나 혼자라도 이렇게 있다가,

나는 그 보조 스님 우리 종조(宗祖)로 모시고 이 일념 고치지 않고, 나는 그 속에서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또 가 바꿔 오드래도, 이 몸뚱이 다시 바꿔 와서라도, 또 이 용화사를 내가 다시 찾고 용화사에 와서 내가 또 다시 보조 종조(宗祖)를 모시고 난 또 이렇게 지내갈 생각이여. 작정이여 인자.


그래서 내가 이 무슨 보조 스님 이외에 그 무슨 지나(支那)에서 전해 내려오면서 5종(五宗)이나 전해 왔지마는 그건 가닥이.. 일구.. 바로 전법게(傳法偈)도 없어. 나 전법게까지 찾아본 일 없어.

그저 임제가풍은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다. 이런 것만 있지. 바로 육조 스님이 전허고 뭐 그런 것도 없어.


바로 회양선사(懷讓禪師)한테는 바로 그만 문답 그대로가, “설사일물즉부중(說似一物卽不中)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입니다마는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여시여시(如是如是)다. 적적(嫡嫡)다”해서 그 적종(嫡宗) 딱 이어온 보조 스님 그대로 나오셔서 사십 년 결사(結社)하시고 오십세 살 밖에 못 살기는 못 살았어. 오래는 못 살으셨어.


53세면 또 무던하지. 보조 스님 53세에 돌아가셨거든. 그 보조 스님 문집을 보란 말이여. 그대로 하니  나와서 똑 선(禪) 가지고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여.

헌디, 아! 중간에 그놈의 무슨 놈의 대처승(帶妻僧)들이 모두 전에 맨들아 논 놈의 그거 이리저리 모두 맨들아 가지고는 그 ‘환부역조(換父易祖)다’ 야단이지. 야단이여.


역사가들도, 황의돈이 허고 내가 같이 있었어, 망월사에서. 역사가 더 알지.

달마 스님은 언제 나오셨느냐? 대명 원년에 나왔거든. 대명 원년 이월 보름날 나오셨거든. 나 그런 것 역사가 어디서 알았나면 내가 황의돈한테 다 배운 것이여. 내가 어디서 알 것인가 말이여.

대명 원년이면 지금 일천이백 몇십 년 되지? 다 그런건 다 역사가들이기 때문에 사구에 아는 것이여.


절대 보조 종조(普照宗祖)가 옳다는 것이여. 헌디 태고보우선사(太古普愚禪師)...

아 우선 조계사도 그 조계사 아닌가? 그 조계사라는 거, 육조 스님 인자 이름이 조계사라는 거, 똑같다 이말이지.


나는, 죽으나 사나 나는 이 마음은 곧... 나 그런다고 해서 지금 무슨 뭐 탈종헐 것 또 뭐 있어?

난 이 자리에 여기서 응, 나는 여기서 그저 뭐라고 하던지 말던지 예식(禮式)도 여차(如此)하고—쌀 가져오면 가져온 것 다 올려. 쌀 뿐인가? 과자고, 신도가 뭘 가져오면은 그대로 이리 가져오라고 하면은 저리 가져가 건네 가서, 거기서 분식(分食)을 해버린다 그말이여. 여 얼른 가지고 오라고 해야지.


그런데 내가 무슨 하나라도 여기서 무슨 달리—적으면, 개수(個數)가 적어 무엇은 조금 두었다 나눠서 내가 이렇게 부여해 줄 그러헌 작정하고, 또 어디 무슨 대중공양 하라는 것도 여기서 내가 법상에서 이런 말 하는 것이 옳지 뭐, 별수 있어?


가져오면 그대로 갖다가, 그저 그대로 갖다 부처님께 올려. 이게 어디 식(式)이냐? 부처님 식이 다 그래.

나는 안 가봤지마는 그 돌아가신 큰스님네가 네팔까장 다 가서 보고, 거기 중까장 다 보고, 와서 일일이 말씀 다 해줘서 내가 다 알고. 자유중국 지나(支那)도 역시 그렇고. 세계가 다 그려. 그대로 갖다 올렸지.


손으로 무슨 쌀을 씻거서 이놈의 손이 안 간 데 없네. 어떤 건 손 안 간 거 아니리요마는, 채소 같은 거 과자 같은 거 다 손 갔지마는, 이놈을 갖다가 씻거서 야단쳐 가지고 갖다 올릴 필요, 그건 다 없어.

신라 때도 우선 없었고, 아조(我朝)에 내려와서 모두 이 용호 스님 당시 때 모두 퍼진 일이여. 그저 이놈을 씻가서, 이것 다 없어. 불국세계, 부처님 나신 세계에 하나도 없데야.


나 그래 그 말 딱 듣고 고쳐부렀지. 그대로 쌀 갖다 올리고.

어디서 쌀이 들어오든지 이리 다 들어와 여다 딱 놓고 올렸지. 그게 다 딱 맨들어 버렸어. 저 아래로 내려갈까 싶어서.


부처님한테 ‘이렇게 아무개가 가져왔습니다’

‘이거 누가 가져왔습니다’ 그 말은 뭐 보는게—갖다 놓으면 부처님이, 아! 천하에 부처님같이, 사사무애(事事無礙)를 증(證)해 버리셨는데 거다가 무슨 뭐 모르시고 무슨 알으시고, 무슨 뭐 어둡고 밝은 게 어디 있어?


갖다 올려 봐. 그러면 그것이 직접 기도고, 내가 절 한번 허고 절 이렇게 허면 그것이 축원(祝願)이고, 그것이 은밀 기도지.

넨장, 쌀 좀 갖다 놓으면 쌀 좀 갖다 놓았으니깐, 아무개 인자 고 대가로—쌀 좀 갖다 놓고 돈 좀 갖다 놓았으니, 그 대가로 명(命) 좀 주시오, 복(福) 좀 주시오, 병 낫게 해 주시오. 이런 야박스러운 놈의 축원이 어디 있어?


갖다 척 놓으면, 그대로가 그만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으로, 원컨대 내 절 한번 한 내 이 공덕으로써 내가 성불(成佛)헌 것보담도 개공(皆共), 다 성불허게 해 줍소사’ 이랬지. 우리 부처님 법이 그렇찮어?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이 공덕이 널리 일체에 미쳐서 다 성불을 허게 해 줍소사. 자타(自他)가 한목 다 성불허게 해 줍소사.

이러헌 대원융, 이러헌 대평등, 이러한 대무아(大無我)란 말이여. 우리 부처님도 이렇거늘.


예경(禮敬) 많이 하고. 나, 어쩔 수 없어 축원허란 그 얘기야.

인자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영불퇴전(永不退轉)허고, 영원히 이 법에 물러가서는 못 쓰겄어. 해탈대도에 물러가면 못써.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 이뿐이여. 속히 대각 이루어서 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이것이 무루(無漏) 축원이요. 이것이 자타(自他)가 원성(圓成) 축원이고. 이렇잖어?


넨장, ‘돈 가져왔으니 아들 하나 더 넣으시오, 딸 하나 더 넣으시오’ 돈 가지고 아들딸 이름을 더 주고 더해 주고 싸우네, 이놈의 것. 이 지랄허고 앉았네. 이 외도(外道) 축원허고 앉았어.


내가 축원은 다 써 놓지마는, 어쩔 수 없어 내 인자 그걸, “축원을 낱낱이 해 드리까요? 그냥 법계 축원으로 동참 축원 허리까요?”

아! 한둘이 많어... “자 일제히 손들어 보시오?” 일제히 손을 들지. 인자 일제히 다 손들어. 하나도 안 든 사람은 없어. 그래 해 두니까 아무 일 없어.


인자 축원 써 놓고도 ‘아무개 보체(保體), 수명장수(壽命長壽) 복덕구족(福德具足)’ 없습니다, 인자. 없어.

“그대로 갖다 올리고 기도해 보십시오” 했더니, 갖다 올리고 작년 기도를 헌 이가 와서 자기네 한 소리여. “아이고! 우리 아들 대학 입학되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어쨌습니다” 이것이 참 많이 들어오네.


허지마는 “여보시오, 당신 아들 ‘수명장수 복덕구족 대학입학’ 요러헌 기도를 해 줘 가지고 입학이 되았으면은 ‘아이고! 우리 아들 축원 잘해서 입학되었습니다’ 그럴 것 아니요? 그렇게 야박하게 믿지 마시오.

어쩌다가 대학에 들어갈 그 공부를 했으니까 들어갔지, 여기 뭐 불공했다고 기도했다고 똑 들어갔겠소 마는, 어떻게 들어갔던지 어떻게 했던지 ‘부처님 덕택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만 관(觀)을 가지십시오” 내 이래 버리지.


“꼭 부처님을 믿어서 축원해서 기도드려서 입학됐소!” 나 이렇게 해 간 법이 없어.

“아들이 그저 운이 있고 공부 잘해 들었겄지” 그랬지마는 “‘부처님 덕택으로 되았다’ 이렇게는 믿으십시오” 내 이뿐이여.


용화사는 마지(摩旨)도 이렇게 쌀로 올리고, 과자고 국수고 뭣이고 그냥 그대로 갖다 딱 올렸다가 내려다가 대중공양(大衆供養)하고. 인자 이렇게 아주 꽉 작정해 버렸고.

참회((懺悔) · 예경은 꼭 해야 하고. 부처님 전에 해 나온 것을 왜 우리는 안 혀?


여기다 불태우면 딱 가면, 그거 죄가 참말로 무슨 죄상(罪相)이 있어 다 타지고 녹아지나? 그따구 놈의 소리 허지 말어.

딸그닥 헌 것이 불불조조(佛佛祖祖)가 다 해 나온 것이여. 연비(燃臂)법이라고는 있어.


그놈을 잘못 악용해 가지고는 연비(燃臂)에 가서 몸뚱이 태워, 소신연비(燒身燃臂)라고 헌께 소신—몸에다 따끔 대도 따끔하면 거기서 허라는 것이지, 몸뚱이 없이는 성불을 못허고 몸뚱이를 얻어야만 성불헌다는 말씀.

몸뚱이란 허망하지마는 그 몸같이 귀엽게 잘 그놈을 지혜 있게 거두어서 그 몸뚱이 가지고 대도를 닦아라 했지. 몸뚱이 다 태와 버리고 뭐가 닦아? 뭣이, 영혼이 닦아?


아, 이놈 상견 중생이 이놈 팔 다 태우고, 손가락 다 태우고, 이거 다 태우고 나와서는 이러고 돌아대니네. ‘참회했다’고.

이 무슨 놈의 짓이여, 이것이?


태워놓고는 모두 후회헌다 그말이여. 허니, 그런 짓이 어디 있어.

해역 같은 그 좋은 아이도, 여까장 태우고 나서 그 당장 병이 들어 가지고 영양실조에 죽었구먼. 참 아까운 놈이지.

다 태우고 나서 죽게 될 때에사 잘못했다는 걸 한탄하고. 그 스승 잘못 만나서 사견에 거꾸러져 가지고 그 지경이거든.


그러니 ‘더러운 똥이니까, 똥자루, 똥 푸데기, 이 몸뚱이는 더러우니까 내던져 버려라’ 불에 태와 죽여버리고, 땅속에 제가 들어가서는 묻혀져 버리고, 제 화장(火葬) 제가 해버리고.

무엇이 해야? 사견, 상견으로써 모두 이렇게 갖다가 그만 차오(差誤)를 해버린 거여. 깜깜해 논께 깜깜혀.


일체 죄장(罪障)을 한번 입으로 엮어서 참회해 가지고는—살생 · 도(盜)를 십악중죄(十惡重罪) 십참회(十懺悔) 개(皆)참회 해서, 딱 한번 마음으로 해 버리고. (팔뚝에 잠깐 향불이 닿는) 따끔한 그 가운데에서 결심허는 것이여.

왜 이렇게 결심이 없어 가지고는 늦어졌다. 다생다겁에 몇 다생 몇 다겁이 부처님과 나와 뭐 별 불별(不別)이 없거늘, 부처님도 몇천만 겁을 그 어디에 생겨난 때가 없이, 몇천만 겁을 이렇게 왔다갔다 생사광야(生死曠野)에 이렇게 돌아, 억겁다생(億劫多生)에 돌아.


우리는 또 동일 범부(凡夫)지, 부처님도 동일 범부지, 별수 있나?

나도 역시 부처님같이 날 때가 없이 똑 같거늘, 우리도 같이 이렇게 무시겁래(無始劫來)로 오면서 여태까장 찾지 못허고, 여태까장 깨닫지 못허고, 이렇게 미(迷)해 있으니,

미(迷)해 있는 가운데에서는 악업만 퍼지었으니, 살생 · 도둑질 십악중죄만 퍼지었으니, 이 죄를 이렇게 어따가 뭉치를—죄상(罪相)이 있다고 하면은 어따가 상대할 데가 없네, 하도 커서.


“허공이 아무리 크다고 하지마는 허공보담도 더 큰 놈의 죄상이 죄를 퍼지었으니 이런 무거운 죄, 이러헌 너른 놈의 큰 죄를 퍼지었으니 다시는 짓지 않겄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는, 기(旣)히 지은 죄, 부처님께 그저 참회합니다. 멸(滅)헐 수 있으면 멸하게 해 주시고 앞으로는 절대로 맹세허고 짓지 않고 어서 속히 확철대각해서 중생교화 허겠습니다” 하고 결심 아닌가!


그 결심헌다고 화두 잊어버릴 것인가? 화두 하나 척 가지고서 '따끔' 그 맹서 결심허고는 도 닦아 나가는 것이 그게 옳지. 그런 결심이 없으면 어떻게 헐 것인가?


‘에잇! 그놈의 데 가니까 손에 불 받고, 손에 팔이나 지지고, 그놈의 데 안되었더라’ 시방 그런 패가 있다는구만. 그까짓 놈의 비방 패 무서워서 못할 것인가?

추허다 그말이여! 해란 말이여, 더 좋아! 그런 것은 차라리 그런 비방한 줄 알아야 여기 간택하지. 속으로는 비방하고 껍딱으로는 어떻게.. 그게 더 못써, 그것은. 이중물이라.(61분20초~80분40초)



(5/5)---------------


영(靈)은, 불가불 영은, 내가 갈 곳 올 곳도 모르는 이 중생이 세상에 왔다가 그만 부처님 정법도 믿지 못허고 그럭저럭 죽은 중생,

신도가 아버지나 어머니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천도(薦度)허겄다’고 해서 그 영혼 여기 모셔오면, 여다 이름 하나 붙여 놓고. 일 년에 한번씩 좋은날 받아서 이렇게 천도를 허되 그 대중, 다 참선하신 대중이 그대로 모아 앉아서 금강경 딱 읽어서 천도허고.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닌 다음에야 영혼이라는 것도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이여.

아무리 죄를 짓고 무간악도(無間惡途)에 떨어졌다 하더래도 부모나 자식이나 그 인연 있는, 그 참 그 영혼에 인연 있는 분들이 부처님 앞에다가 딱 영(靈)을 위해 놓고 천도를 해서—금강경, 그 부처님 경서(經書) 읽어서 천도헐 것 같으면은, 그 업이 다 자연 업(業)이 다 소멸되고 정취(正趣)에 가서 나고.


어디 꼭 그 혼백이 여그 온다고 해서 그런 건가? 수업감보(隨業感報) 윤회제취(輪廻諸趣)인디. 죄 지어 가지고 죄 받으러 다 가버렸는데 영(靈)이 밤낮 여기 와 있나?

지옥에 내려가서 지옥고를 받는 영(靈)이라도 이 자리에서 친척이나 다 그 인연 있는 가족이 그 영혼을 잘 위해 놓고, 그 부처님의 묘법(妙法)으로써 천도를 할 것 같으면은 그 업이 가벼워지고 차츰 나오고 차츰 정취가 나고. 이렇다고 했어.


그것도 안 해주고 저것도 안 해주고, 그런 것도 없고 저런 것도 없고, 부모가 아무리 천만 재산을 벌어 물려주었어도 그놈 받아 가지고 막 나 혼자 처먹음서, 어머니는 악도에가 떨어졌다, 아버지는 악도에가 쳐백혔다고 내비둬 버리면 아귀나 뭐 짐승 같은 것이지, 뭐냐 그말이여?


부처님 갖다 여그 위에 놓고 돈 만원 그 뭐 여다 올려서 위해 드리면은, 그때 가 보시란 말이여. 탱화라도 차려놓고 경 쭉 읽어서 해 드리는 것이 죽백천추(竹帛千秋)에 저 도솔천에 가 났다고 하드래도 이 세상에서 항상 여기서 축원해주면 어쩔 것이냔 말이여?


이렇게 해 주고는 그 들어오는 그 돈,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들어온 그 돈 만원 놓은 놈 고놈이 아! 그거이 차츰차츰 그 이자가 늘어가. 이 요새 현대 이자율이 있으니까. 내 꼭 고대로 작정해 나가거든.


여기에 내가 빈주먹 쥐고 척 들어와서 저 앞집 지어 이놈—여기가 이젠 4년째 나요. 앞집 지어, 저 집 지어, 저 밑에 또 한 채 요것까지, 요 뒤에 껀 내가 그때 갔다왔다함서 내가 이렇게 지으라고 해 지은 것이지마는, 이것도 내가 지은 것이여. 허지만 내가 들어와서 실지로 재작년부텀 지은 것이 그것이여.


저 밑에 시방 두 채, 저 모도 이 곳간, 그 다음에 이천백 평 절 땅 사놓은 거, 담 쌓아놓은 거, 전부다가 무슨 뭐 누가 ‘담 쌓으요, 시주 좀 해주시오. 내 땅 사요, 시주 좀 해주시오’ 나 돌아댕긴 일도 없고,

앉아서 ‘하이고, 이거 사야겄는디 돈이 없다, 어쩐다’고 허면 그 자리에서 조금 봐주고 조금 봐주고, 이래저래 해서 산 것이 다 샀지.


또 인제 종각(鐘閣) 짓지. 종(鐘) 해 놓았지.

나 종 시주허라고 책 하나 매 가지고 누구 주고, ‘가 종 시주해’ 없어.


아! 이래도 거기서 또한—내가 사실이여. 37명까장 지냈고, 올 여름에도 허나 못허나 처음에 있을 때는 근 삼십여명 이렇게 되고, 우리 또 대중 이렇게 모아 계시고.

이렇게 해서 60명, 70명 이렇게 지내도 내가 뭐 무슨 놈의 빚이, 누가 빚져? 내가 빚 갖다가 빚져? 외상은 모도 있지만 나도 외상까지는 그건 뭐 또...


이럭저럭 살아가면서도 이 대중을 거느리고 이렇게 아침마다 이렇게 참회기도 해가면서, 이렇게 상비기도 해나가면서, 상수기도 해나가면서 이렇게 살아간다 그 말씀이여. 


허! 총무단이라고 이렇게 되아 버렸네, 인자.

맨 두서너 놈이 앉아서, 몇 놈이 앉아서 그냥 사무 본다고 허다가 다 그만 그거 소비해 버리고는—그 근 억대 그 재(財)를 그대로 그만 부처님 재산 소비해 버리고 뭔 참선, 뭔 염불, 뭐 뭣은 하나 없네, 지금.

말만 꺼떡허면 ‘참선헌다’고 해놓고 ‘에이, 그것 소용없다’고 내쳐서 버린께, 와지직 해버려.


이게 말세(末世)입니다. 말세가 여차(如此)하니 여기에 모인 대중은 어쨌든지 굳은 결심 참다운 마음, 이럴수록에—이렇게 형편없고, 이렇게 말세가 되고, 이렇게 부처님 법이 마강법약(魔强法弱) 될수록에, 더욱 강하고 더욱 철저허고 더욱 믿고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적극적 주의라고 그려. 그거 다 임운주의(任運主義)라 해야. 적극적 임운주의로써 부처님을 봉행해 나가고 그럴수록에 나는 생사해탈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것이지, ‘에이! 다 이렇게되었으니, 에이 물러가고 나도 그만이다. 나도 어디 간다’ 그건 아니여.


나는 그게 아니여. 나는 보조종 모시고 나간다 이말이여. 또 잘못 들으면 안되아.

보조종(普照宗), 우리 큰스님네가 있다가 해 나온 보조종, 따로 내가 혼자라도 내가 모시고 나가는디, 여다가 여다 보조, 내가 여전히... 송광사 보조 스님이 가서 지나(支那)에 가서 조계종 가지고 나와서 송광사 적굴에가 앉아 계셔도 되었다 그말이여.


처음에 나와서 천장암 계셔 가지고—천자 아들 하나 데리고 나와서 천장암 가 아무것도 아닌 데 가서, 작대기 그놈 꽂아 가지고 나와서 꽂아 갖고, 거가 앉아서 조계종 만들아 가지고는 거기서 송광사가 승찰대본산(僧刹大本山)이요, 조계종 만들아 가지고 40년 결사하시고 거기서 모두 간화결의(看話決疑) 하시고,

그 불법을 모두 척사현정(斥邪顯正) 능히 밝혀서, 「수심결(修心訣)」에다가 착 갖다가 그 본분구만 딱 맨들아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딱 해놨거든. 반드시 견성해 보란 말이여.


응, ‘불설(佛說)이 아니니, 뭐 보조 스님도 견성 못했니’ 요렇게 갖다가서 되아?

모두 그런 스님네가 있다는구만 그려. 내 들어보면 어디서 그랬다고 그런 말이 더러 나오드구만.


누가 그런지는 나는 몰라. 내가 뭐 단독으로 내가 누가 그랬다고 내가 그런 말 내가 안다한들, 누가 그랬다는 말 할 필요도 내가 없어.

내가 뭐 사람을 비방한가? 나는 사람 비방한 법도 없고, 넘 내가 시비헌 법도 없고.


그 공안에 대해서만 말이여. 가 보란 말이여.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라 하는디, 우리나라에 클썩 들썩 큰 혜월 큰스님께서도 그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했구만, 거기서. 수심결 거 보다 ‘단지불회면 시즉견성’ 탁! 깨달라.


“너 그럼 깨달랐으면 관세음보살이 북향의지를 일러라. 관음북향의지(觀音北向意旨)를 일러라. 관음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헌게, 척 그때 이른 내 그런 말, 하도 장하게 이른 내 말 않는구만.

내가 알지. 안 혀. 파설(破說)과 거지반 같애서 안 혀. 말세 중생은 너무 그만 삐죽한 지혜가 많아서, 갈애가 많애서 안 헌다 그말이여. 둔다 그말이여.



오후생애(悟後生涯)라. 여까장 하다가 여까장 왔어.

또 오후생애를 구(求)해라. 약불연(若不然)이면, 만약 오후(悟後)에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도 오후에 만약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여하득성법기(如何得成法器)냐?


어떻게 탁마(琢磨)를 해가지고는 여지없이 인가(印可)해서 전해 주어야 되는 것이지. 저 혼자 나와서 이빨 벌리면서 “내가 견성했다” “내가 알았다”

“내가 견성했다, 내가 알았다”해도 인가 다 받아 가지고 나와서 혜월 스님같이 “누가 이거 이를 것이냐? 나 밖에는 못 이른다. 공적영지(空寂靈知), 영지공적영지(靈知空寂靈知), 등지(等持) 일러라”

그거 달라요. 그런 스님네 말과 달라요.


아! 그런 어른은 여지없이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인가 받아 나왔으니 누가 안 믿으리오. 허지마는 참말로 인가를 받았다 하면 ‘뭔 법문에 인가를 받았느냐?’ 그걸 물어봐. 벼락같이 나오니까.


‘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이요?’ 물으니까, 북의지(北意旨)가 여하(如何)오? 허니께, 대답 떡! 허니까 염득분명(拈得分明) 등상이니 해 논 것이 다 있어. 그렇게 다 했고.


부처님 가섭존자 바로 해놓은 것 다 있고. 전부 내려오면서 그 인가(印可) 전통법이 다 있고, 인가 가닥이 다 있는 것인데, 무조건 “인가 받았다” 말이 되아? 아무 말도 안 해도 “인가했다” 말이 되아?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원 거짓말도 분수가 있지,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을까?


어디다 가나 그래 가지고 처음 와서 이렇게 보이면서 뭘 뾰족헌 걸 그려놨어.

그래 내가 있다가, 원상에다가 이리이리 뭘 그려놓고는 뭐 뾰족허니 뭐라 이래 놨대. 그래 놓고는 “내가 견성 요렇게 했다”고 그래.


아 이놈의 것, 참나! 그 뭐라고 답할 수가 없어, “몽마하주사사종이냐? 남의 말도 네 뱀이 달리는 법이 있느냐?” 내가 그러고는 보도 않고 말아버렸더니, “인가했다!” 아 이런 놈의 꼴이 있는가?

그래 내 그 다음에는 대중을 모아놓고 “내가 어떤 스님한테 인가를 했다 하니 무슨 법문을 물어서, 무슨 공안을 물어서, 내가 그 공안답에 뭐라고 했는가 그걸 물어오너라”


“아, 뭔 말을 물어서 무슨 말에 답을 했소?” 그러니께, 그 말은 못혀. 무슨 공안에 어떻게 답했냐는 걸 대답을 못혀.

“무엇을 물어 어떻게 당신 답헌 걸 말하시오”헌게 못혀. 그거 판명 난 것이여. 그게 다 판명 나고 마는 것이여. 그럴 거 아닌가.


그거 소용없는 것이여. 혼자 그래 싸 봤던들 누가 신용헐 것인가?

그 오히려 자기 법기(法機)만 소모된 것이여. 자기 양만 절단나고, 자기 인격만 부서져 버리는 것이여. 그 알아야 되아.


의관선성(宜觀先聖)의 표격(標格)이니라. 척! 선성(先聖)의 표격(標格)이 되고, 인가를 척! 받아 가지고는 아무 스님한테 인가 받고.

그 참 오도송(悟道頌) 척! 해서 인가 척! 받고 탁마해 가지고 나와야사, 선성표격(先聖標格)이 되아.


참말로 인자 여러 대중들이 다 믿어주고.

“암! 인가가 있는 어른인디, 그 어른은 똥을 싸고 다니거나 오줌을 싸고 다니거나, 영아(嬰兒)허고 희롱을 하고 다니거나 말거나 우리 모양 볼 것도 없고. 아주 그 어른은 그 인가가 있는 어른이다”고 쫙 믿어주어 저절로.


보면, 그이 갖다가 저 허고 개인감정으로 맞지 않다고, 그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거 저 죽는 것이여. 소용없어. 안된 것이거든. 흐흥! 될 것인가 거?


의관선성(宜觀先聖)의 표격(標格)이다. 절기두찬(切忌杜撰)이다. 간절히 두찬을 꺼린다.

쓸데없이 그 모두 두찬(杜撰)해 가지고는 미득(未得)을 위득(謂得),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해 가지고는 고 거짓말을 해 가지고 공연히 사람 속이고 나 속지 말아라!


옳게 가서 바로 믿어라. 스승이면 바로 찾고, 스승이면 바로 믿어라.


여기 여러분들이 모두 오셨지마는 정전강(鄭田岡)은 어떠헌 사람이냐? 이것부텀 찾아보아라.

내가 찾을 만한 법이 없거들랑, 들어 봐. 이리저리 다 들어 봐도 또 아는 거여. 가닥이 다 있고, 다 그걸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여.


내가 법문할 때 마다 ‘내 오늘 법문이, 오늘 어떻게 법문이 잘 되았나? 잘됐어?’

그것 무엇인데? ‘네가 법을 어떻게 들었느냐?’ 이걸 묻는 것이여.

‘네가 신(信)가, 불신(不信)가?’ 그 어디 다 그랬지. ‘네가 신마불신마(信麽不信麽)?’ 이게여.


회마(會麽). 그쳐. 일로 끝마쳤습니다.


간절히 그 두찬(杜撰)말아라.

공연히—생사해탈법이요, 내가 깨달라서 내가 생사해탈하는 법이지—입으로만 까 가지고 구두선(口頭禪) 배와 가지고 두찬(杜撰)해 가지고, 뭣 할 것이냐?


차생실각(此生失却)이면  만겁추한(萬劫追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생(此生)에 실각(失却)이면, 금생(今生)에 실각(失却)해 버리면은 그만 그릇지네. 잊어버리면 만겁(萬劫)에 한(恨)밖에 없으리라.(80분43초~95분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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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鷄寒上樹  鴨寒下水’ ;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340 참고.

〇 제1221칙. 「계한(鷄寒)」

巴陵因僧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云鷄寒上樹  鴨寒下水

파릉(巴陵)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내려가느니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풍정(風停)하야도 파상용(波尙湧)이다’ ; ‘바람은 잤지마는 물결은 늘 일어나고 있다’

[참고]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80~182.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78~80참고.

凡夫  無始廣大劫來  至於今日  流轉五道  生來死去  堅執我相  妄想顚倒  無明種習  久與成性  雖到今生  頓悟自性  本來空寂  與佛無殊  而此舊習  卒難除斷  故逢逆順境  瞋喜是非  熾然起滅  客塵煩惱  與前無異  若不以般若  加功著力  焉能對治無明  得到大休大歇之地


범부는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 가지 세계(지옥·아귀·축생·인도·천상)에 유전(流轉)하여 나고 죽으면서 '나'라는 생각[我相]에 굳게 집착하여 망상으로 전도(顚倒)된 생각과 무명(無明)에 익힌 습기로 오랫동안 습성(習性)을 이루어왔다.

비록 금생에 이르러 단박 자기의 성품[自性]이 본래 공적하여 부처님과 다름이 없음을 깨치더라도 오랫동안 익혀온 옛 습성은 갑자기 없애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좋고 나쁜 경계를 만나서 즐거워하고 짜증내며, 옳고 그르다는 생각이 불처럼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여 번뇌가 그 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만약 지혜로써 더욱 공들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찌 능히 무명을 다스려 크게 쉬고 쉬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如云  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又杲禪師云  往往利根之輩  不費多力  打發此事  便生容易之心  更不修治  日久月深  依前流浪  未免輪廻  則豈可以一期所悟  便撥置後修耶


이것은 ‘단박 깨달은 것이 비록 부처님과 같지만 여러 생의 습기가 깊으니,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도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생각은 아직도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대혜 스님도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별 힘들이지 않고 이 이치를 깨치고는 쉽다는 생각을 내어 다시 닦지 아니하다가, 세월이 가면 깨치기 전처럼 유랑하며 윤회를 면치 못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어찌 한 때의 깨달은 바로써 뒤에 닦는 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故  悟後長須照察  妄念忽起  都不隨之  損之又損  以至無爲  方始究竟  天下善知識  悟後牧牛行  是也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도 항상 모름지기 비추고 살펴서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할 것이 없는 데[無爲]’에 이르러야 비로소 구경(究竟)이니 천하 모든 선지식의 깨달은 뒤에 소 먹이는 행[牧牛行]이 바로 이것이다.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송(頌) ; 송고(頌古). 선가(禪家)에서 고칙(古則, 고측) 즉 공안(公案)의 요점을 게송으로 선양하는 것. 고칙에 대해 운문(韻文 : 언어 문자 배열에 일정한 규칙이 가미되어 운율이 형성된 글)의 게송으로 그 취지를 발휘하는 것.

*염(拈) ; 염고(拈古). 염제(拈提). 어떠한 고칙(古則 : 공안)에 대해 산문체로 기술한 짤막한 해설이나 비평.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여대화취(如大火聚)] 열염(烈焰)이 긍천(亘天)해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시중(示衆) 其五’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을 만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임타하다(任他--) ; 남의 행동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다.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 · 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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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 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낭연독존(朗然獨存 밝을 랑/그럴 연/홀로 독/있을 존) ; 밝게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정재(淨齋 깨끗할 정/재계할·공경할·깨끗할·집·법회 때의 음식 재) ; 절에서 밥 짓는 부엌. 정재소(淨齋所).

*주벅 ; ‘밥주걱’의 사투리.

*조리(笊籬) ; 쌀에 섞여 있는 돌과 뉘를 걸러내기 위해서 쌀을 이는 데 쓰는 도구. 가는 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결어서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손잡이가 기다랗게 달렸다.

*독(獨)살림 ; 독산림(獨山林). ‘독살이’라고도 한다. 토굴 또는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 혼자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살림. 또는 사찰 운영을 독단으로 혼자서 처리하는 것. 이에 상대하여 여러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중의(衆意)를 모아 사찰 운영을 하는 것을 원융산림(圓融山林)이라고 한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지기 ; (곡식의 양을 나타내는 명사구 뒤에 붙어) ‘그 정도 양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논밭의 넓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공식(空食) ; ①노력하지 않고 재물을 얻거나 음식을 거저 얻어먹음. ②(불교) 무료로 손님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

*수(收 거둘 수) ; 도조(賭租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나 길미(다른 사람에게 논밭이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로 받는 돈) 따위의 받을 곡식이나 이자.

*염라국(閻羅國) ;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다스리는 나라. 곧 저승을 뜻한다.

*상주재물(常住財物) ; 상주하여 대중들이 공용하는 절에 늘 있는 재물.

[참고]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권상 제3 관중생업연품(觀衆生業緣品)에서.

若有衆生  偸竊常住財物穀米  飮食衣服  乃至一物不與取者  當墮無間地獄  千萬億劫  求出無期

만약 어떤 중생이 상주재물이나 곡물 · 음식 · 의복 등을 비롯하여 주지 않은 물건을 하나라도 훔쳤다면 장차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 동안 구출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참고]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 권제4. 제6 양서장(兩序章) ‘부사(副寺)'에서.

凡常住財物雖毫末  竝是十方衆僧有分  如非寺門外護官員檀越賓客迎送慶吊合行人事  竝不可假名支破侵漁

상주재물은 비록 털끝만한 것일지라도 모두 시방 대중들의 몫이다. 만약 절을 외호하는 관원(官員)이나 단월빈객(檀越賓客)의 영송(迎送) · 경조(慶吊) 등 마땅히 행해야 할 인사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가명을 발급하여 침탈해서는 안 된다.

*솔찬하다 ; 솔찮다. ‘①꽤 많다. ②수월하지 않다’의 사투리.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분다(紛多 어지러울·많은 분/많을 다) ; 많이 어지러움. 엉클어짐이 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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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제호(醍醐) : 옛날 인도에서 우유로써 만드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맛이 제일 좋고, 열병(熱病)에 귀중한 약품도 되는 것이 제호다。이것은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라는 풀만을 먹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理事) ; ①깨달음의 진리와 차별 현상. ②본체와 차별 현상.

*하어(下語) : 고칙공안(古則公案) 또는 송고(頌古)•수시(垂示)•상당(上堂)등의 법어에 대해서 자기의 견해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르는 말.

*체당(諦當) : 사물의 도리를 밝게 안다는 뜻.

*전전주봉(箭箭拄鋒) : 전봉상주(箭鋒相拄)라고도 하는데 화살과 화살이 서로 맞부딪치는 것과 같다는 말。 스승과 제자와의 의기(意氣)가 딱 맞아 조금도 틈이 없는 것。 또는 물음과 대답이 척척 들어맞는다는 말.

*감파(勘破 헤아릴·조사할 감/깨뜨릴·째다 파) ; 간파(看破) 또는 알아차림. 곧 상호 비교 · 시험 · 질문하는 수법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감정하는 것이다.

*패궐처(敗闕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곳 처) ; ①허물과 모자란 부분. 잘못된 부분. ②살아온 과정. 행장(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글)의 뜻.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참고]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3분57초)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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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정화(淨化) ; 한국불교 정화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년 일제는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불교 정화운동.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이다.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선원(禪院).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정재(淨財 깨끗할 정/재물 재) ; 신불(神佛)을 섬기거나 자선(慈善)을 위해 깨끗하게 쓰는 재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말법(末法 끝 말/부처님의 가르침 법)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보조국사(普照國師) ; (1158~1210) 고려의 스님.

스님의 휘(諱)는 지눌(知訥)이니 경서(京西)의 동주(洞州 : 황해도 서흥) 출신이다.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며, 속성은 정씨(鄭氏)이다.

의종(毅宗) 19년(1165) 8세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에 속하는 종휘(宗暉)에게 출가하였으나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오직 도덕이 높은 스님이면 곧 찾아가서 배웠다. 명종 12년(1182) 25살 때인 임인(壬寅)에 대선고시(大選考試)에 합격하였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전남 창평군 청원사(淸源寺)에 이르러 주석하던 중 하루는 육조 혜능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켜서 육근(六根)이 비록 견문각지(見聞覺知)하나 삼라만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진여(眞如)의 성(性)은 항상 자재(自在)하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스스로 얻은 바가 있었다.

명종 15년(1185 乙巳)에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서 대장경을 열람하다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가 지은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을 보다가 거듭 신심(信心)을 일으켜 화엄경의 오묘한 이치를 찾아내고 난해한 뜻을 드러내어 제가(諸家)의 설(說)과 비교하여 더욱 정통하였다.

1190년 팔공산 거조암(居祖庵)에서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지어 정혜쌍수(定慧雙修)할 것을 권하였다.


신종(神宗) 1년(1198 戊午) 몇 사람의 도반과 함께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은거하였다. 

스님께서 일찍이 말씀하되 “내가 보문사(普門寺)에서 지낸 이후 10여년이 경과하였다. 비록 뜻을 얻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허송한 적이 없으나 아직 정견(情見)이 사라지지 아니하여,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어 원수와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항상 꺼림직 하였다.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주석하면서 정진하는 여가에 대혜보각선사(大慧普覺禪師 1089-1163)의 어록(語錄)을 보다가,

‘…… 선(禪)은 고요한 곳[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분요한 곳[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에 정처(靜處)와 요처(閙處)와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와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를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참(參)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자기 집안의 일)입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뜻이 딱 들어맞아 마음에 깨달으니, 자연히 가슴이 후련하며, 원수와 멀리한 것 같아서 곧 마음이 편안하였다”고 하였다.


1200년(신종 3, 庚申)에 조계산 길상사(吉祥寺), 곧 지금의 송광사(松廣寺)로 옮겨 11년간 대중을 지도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

그리고 대중에게 송지(誦持)하기를 권함에는 항상 『금강경(金剛經)』으로써 법을 삼도록 하고, 교의(敎義)를 연설함에는 『육조단경』을 강설하며, 통현장자(通玄長者)의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으로써 주장을 펴고, 『대혜어록(大慧語錄)』으로써 함께 우익(羽翼)을 삼았다.

수행에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경절문(徑截門)을 세워 수행자들을 지도함.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역설하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상수(定慧雙修)를 권하고 간화선(看話禪)으로 증오(證悟)할 것을 주창하였다.

1210년(희종 6년) 3월 27일 53세의 나이로 입적(入寂).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그의 묘탑에도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다.


3월 27일 아침, 스님께서 세수와 양치질을 한 다음, “이 눈은 조사(祖師)의 눈이 아니고, 이 코도 조사의 코가 아니며, 이 입은 어머니가 낳아주신 입이 아니고, 이 혀도 어머니가 낳아준 혀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법고(法鼓)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여 설법을 하고 문답을 하신 다음, 마지막으로 어떤 스님이 묻기를 “옛날 유마거사가 비야리성(毘耶離城)에서 시질(示疾)한 것과, 오늘 조계산에서 목우자(牧牛子)가 작병(作病)한 것이 같은가? 다른가?” 하니, 스님께서 이르되 “너희들은 같은지 다른지를 배워라” 하고, 주장자(柱杖子)를 잡고 몇 번 내리치고 말하되 “천가지 만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하고, 주장자를 잡고 법상에 걸터앉아 고요히 입적하였다.


저서 :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수심결(修心訣)·진심직설(眞心直說)·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염불요문(念佛要門) 등.

*종조(宗祖  마루·근본 종/할아비·조상·개조開祖 조) ; 조사(祖師). 한 종파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펼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오종(五宗, 五家)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제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및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을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제2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은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3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5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7세 나한계심(羅漢桂琛)의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로다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1.

[ 臨濟家風(임제가풍) ]  赤手單刀(적수단도)로  殺佛殺祖(살불살조)로다  辨古今於玄要(변고금어현요)하고  驗龍蛇於主賓(험용사어주빈)이라  操金剛寶劒(조금강보검)하야  掃除竹木精靈(소제죽목정령)하며  奮獅子全威(분사자전위)하야  震裂狐狸心膽(진열호리심담)이로다  要識臨濟宗麼(요식임제종마)아  靑天轟霹靂(청천굉벽력)이요  平地起波濤(평지기파도)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 삼요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로 알아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적적(嫡嫡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 ; 적자(嫡子)에서 적자로 대를 이어받음. 정통의 혈통을 이른다.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적종(嫡宗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마루·근본 종) ; ①동족중(同族中)의 총본가(總本家). 종가(宗家). ②정계(正系). 정통(正統).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대처승(帶妻僧 띠·데리고 있다 대/아내 처/중 승) ; 살림을 차리고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승려.

*환부역조(換父易祖 바꿀 환/아비 부/바꿀 역/조상 조) ; ‘아비[父]를 바꾸고[換] 조상[祖上]을 바꾼다[易]’ 조상의 계보(系譜)를 바꾸는 것.

*분식(分食) ; ①나누어 먹음. ②나누어 가짐.

*사사무애(事事無礙) ; 현상계의 일체의 사상(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卽無碍)인 것을 말함.

단일한 하나의 현상이 다른 모든 모든 현상과 어김없이 하나가 되는 관계처럼, 모든 차별적 존재가 서로 걸림없이 다른 모든 존재를 포섭하고 포섭되며 자재하게 뒤섞여 있는 법계의 실상을 나타낸다.

*증(證) ; ①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adhisajbodha).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②증(證)은, 《대승의장》 제 10권에 따르면,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증득·계합·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모두 함께 불도(佛道)를 이루어지이다.

*예경(禮敬) ; 불보살님께 예배와 공경을 드리는 일. 경례(敬禮)라고도 한다. 몸으로는 법식(法式)에 따르고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 루) : 샘[漏]이 없는[無]. 한도(限度)가 없어 영원한.

*보체(保體 보전할·지킬 보/몸 체) ; 몸[體]을 보호(保護)한다는 뜻. 축원문에 적힌 살아 있는 사람의 성명 밑에 붙이는 축원(祝願)의 뜻이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연비(燃臂 불이 타다·불사르다·불을 붙이다 연/팔·팔뚝 비) ; ①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②팔[臂]을 태우는[燃] 고행. 고행의 한 방법으로 팔뚝을 향불로 지지는 일.

연비(然臂 · 煉臂)로도 쓴다. 발원(發願) · 입서(入誓) · 고행(苦行) · 희사(喜捨)의 등의 뜻으로 행한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6)—기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80.01.17)에서.(3분37초)

한철 동안을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한 대중 여러분!  그리고 제방(諸方)에서 해제를 마치고 여기에 참례(參禮)하신 수좌(首座) 여러분!

신심있는 단월(檀越)들이 바친 곡석과 의복, 자기의 공부도 뒤로 미루고 우리를 외호해 주신 이 본방...(녹음 끊김)...용맹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신라 때 욱면만큼의 고생에는 미치지 못했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의 신심, 우리의 용맹정진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신라 때 욱면 낭자처럼)전부 다 손바닥에다 구녁을 뚫으라는 말씀도 아니고, (혜가대사처럼)모두 다 칼로써 왼팔을 끊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분들이 한 그 목숨을 바칠만한 그 신심!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법을 위해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그 무서운 정진, 그 굳은 9년 동안을 하루같이 한 그 철썩 같은 뜻!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소신연비(燒身燃臂)를 하지 아니하면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치기 어렵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당장 손가락에다 불을 지르고, 몸을 갖다가 장작을 쌓아 놓고 몸을 태우고, 이렇게 경전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것을 참고 이길만한 그 참을성 있는—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는 그런 굳은 뜻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몸을 갖다가 태울만한, 몸을 헌신짝같이 버릴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한 정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손가락을 태우고,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태우고, 도끼를 가지고 손가락을 짜르고, 이러한 어리석은—물론 그 신심은 물론 찬양할만 하지만.


그 신심이 어떻게 신심을 내느냐? 지혜로운 신심,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 알맹이 신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45분12초~48분48초)

*차오(差誤 어긋나다·잘못·틀리다 차/잘못·잘못하다 오) ; 틀리거나 잘못됨.

*죄장(罪障 허물 죄/막을·장애 장) ; 죄악이 선한 과보(果報)를 얻는 데 장애가 됨을 이르는 말.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생사광야(生死曠野) ; 생사의 광야(曠野,廣野).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런 윤회의 세계를 광야(황폐한 벌판)에 비유한 말.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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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 ‘[극락으로] 가시는 길은 어디에든 있사오니’

[참고] 『불교의식각론(다비작법 하)』 (심상현 저) p312-313.

<행보게(行步偈)> (행보, 일정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감)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귀도정망도정방(歸道情忘到淨邦)  삼업투성삼보례(三業投誠三寶禮)  성범동회법왕궁(聖凡同會法王宮)

[극락으로] 가시는 길은 어디에든 있사오니, 도(道)에 돌아가 망정만 잊으시면 정방(淨邦, 정토淨土)에 이릅니다. 삼업으로 정성을 다해 삼보께 예(禮) 하시면 성현과 범부가 함께 법왕궁에 모이게 됩니다.

*정취(正趣 바를 정/뜻·달리다·빨리 달려가다·향하다·다다르다 취) ; ①올바른 해탈의 길. 올바른 해탈의 세계. ②발보리심(發菩提心)으로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것.

*수업감보(隨業感報) 윤회제취(輪廻諸趣) ; 업에 따르고 과보가 일어나 중생 세계[諸趣]에 윤회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임운(任運 맡길·마음대로 할 임/옮길·움직일·운수 운) ;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일어남. 아무런 조작이나 인위적인 힘을 첨가하지 않고, 법이(法爾), 여연(如然), 자연(自然), 으레히라는 뜻.

*마강법약(魔强法弱 마구니 마/강할 강/부처님의 가르침 법/약할 약) ; 마구니의 힘이 강해지고 불법은 쇠퇴해진다는 말. 말법시대에 악한 사람들이 진리와 배반되는 마구니와 같은 해독을 퍼트려 점점 불법의 힘은 약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간화결의(看話決疑)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혹(疑惑)을 풂.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수심결(修心訣) ; 고려 때 보조지눌(普照知訥 一一五八 ~ 一二一O) 스님의 저술. 1권.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 부처가 되기 위하여 마음 닦는, 수심(修心)의 요결(要訣)을 밝히는 내용으로 본문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홉 번의 문답으로 전개되는데, 불성(佛性) · 돈오점수(頓悟漸修) · 공적영지(空寂靈知) · 정혜등지(定慧等持) · 정혜체용(定慧體用) · 목우행(牧牛行) ·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등에 관한 내용이 있고 결론으로 간절히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 『보조국사수심결(普照國師修心訣)』 · 『보조선사수심결(普照禪師修心訣)』 이라고도 한다. 저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 주석 시기(一一九八 ~ 一二OO) 전후로 추정한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파설(破說) ; 설파(說破).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오후생애(悟後生涯)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법기(法機)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또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법기(法器)와 같다.

*두찬(杜撰) : 원래 두가(杜家)의 찬집(撰集)이라는 뜻으로 저술에 전거(典據)•출처(出處)가 확실치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아 그 내용이 실다웁지 못한 글을 이름.

*미득위득(未得謂得) 미증위증(未證謂證) ; 얻음[得]이 없는데 얻었다고 말하고, 증(證)한 것이 아닌데 증했다 말하는 것.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의리선(義理禪).

이런 구두선(口頭禪) ·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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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7/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6)—08-2. 몽산시 각원상인(7) (72.06.23.새벽)

(1/2) 약 19분. (2/2) 약 16분.

(1/2)----------------


낙안하장사(落雁下長沙)하고  누중인기무(樓中人起舞)니라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허고  기우과전산(騎牛過前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 도인들  처음 도통해 가지고 오도송(悟道頌) 짓는   .  하나 ,  모를 것이 무엇이 있나 그말이여.

 없는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파내서  것도 아니고, 하늘 속에서 뒤집어  가지고  것도 아니고, 세상에 있는 모도 그저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 가지고 그대로 한마디씩  놓은 것이 도시(道詩).


낙안(落雁)은 하장사(下長沙)하고,  공중에서  날아서 떨어진 기러기는 어디 떨어지는  아니라 장사(長沙) 떨어져.  모래밭에 내려온다 그말이여.

그거 그대로지, 어디 다른   있나? 아무것도 없지.


누중인(樓中人) 기무(起舞) 하는구나. 누(樓) 가운데  노는 사람은,  다락 누에서 노는 사람은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논다 그말이여.

다락에 노는 사람은 춤추고 놀지, 그저 노는  아니라  누각에서   춤추고 노는 경계여.


목동(牧童) 일성적(一聲笛)허고, 소를 멕이는 동자는 젓대를 불면서 터억 전산(前山) 돌아온다. 앞산으로 젓대를 불면서 소를 멕이고 앞산으로 돌아와.

, 그게 도(道) 경계(境界), 도시(道詩) 말이여.


아, 부처님도 마지막 깨달라 가지고 마지막 지은 게송(偈頌)이여. 

 허니? 일편백운(一片白雲)은 강상래(江上來). 처음에가 뭐지? 일편백운은 강상래하고.

! 그렇지.  조각 흰구름은 강상으로 온다. 그건 말후구(末後句). , 이런 것인데.



! 이번에 경봉 스님 법문 내놨는디,  무슨 옛날  전에 견성해 가지고 지었다는 오도송(悟道頌) 나왔데?   . 대중이    .  ,  어떻게 지은 오도송이 그런 오도...


, 그때 경계에 그대로 알았다!”하고 고함질러서 다시 물으니까 답해서 그런 줄만 알았더니, 그렇게  것이 아니라고  번이나 신문에 해명을  놓고는 부채로 원상(圓相) 쓸어버렸다

부채로 원상 쓸어버린 도리의 게송인가 부여?     없군.


세상에 그러기에 공부라는 것은 깊이깊이 탁마(琢磨)   봐야 되야. 탁마 없이 서로 한마디 주고받고  봤던들 그것    없는 노릇이여.


내가  그때에 벌써 오십  전이니, 일흔 다섯 살이니깐, 육십 칠십 일흔 다섯, 오십  전이지?

오십  .

아, 그때 시대인디 내가 젊은 때인디, 어디 어디 한마디나 잊을 이치가 있는가? 요만큼이라도 내가 보태서  필요가 있냐  말이여. ! 이런   보소.


, 이 처음에 신문 들었으니까 그때 오도송 지어서  언하에 전에 몇십 년이라고 했드나?   전에  선지식한테 인가 맞았다는  글이, 인가 맞았다는 말이 있으니, 인가는 용성 스님..  내놨더군?

용성 스님, 혜월 스님, 한암 스님, 만공 큰스님   스님네께 인가를 받았다고 했는데, 인가는 어떻게 물어서 무슨 답에, 무슨 공안에 어떻게 답을 했는가가 분명히 나와야 되아.

그것, 다섯 스님네한테  나와야 되지. 하나라도  나와서는 안되지. 없는 인가를 그때  받았다 하면   거짓말은  거짓말이지.


세상에! , 오도송을   봤구만.  보고  봤구만.

   . 대중이  그런 것을 잘못 빠뜨릴 수가 있나?


여지없이 골라 놓아사, 우리나라에 선지식 스님네의 도(道)가 어디까장 있는 것을  가려 놔사,

우리 한국 불교가 인자  정법이 한번  말세에 아주 말세니까,  말세에 한번 크게 발전이 있어야   아닌가?


데데허게 어름허게 그저 아무때나 한마디 해놓고 견성(見性) 했다’ ‘인가(印可) 받았다 그러고 앉어서 조실(祖室) 노릇 허고 가르키고 그게 되아?

‘나변(那邊)에 있는가 모르겄다’고 그랬어. , 나변에 있는가 몰라. 큰일이지.



불용착력(不用着力) 위묘(爲妙). 공부할  착력(着力) 않는 것이 제일 ()허다.

이놈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은연중(隱然中) 힘이 거가  모이고, 자기도 아지 못허게 힘이 잔뜩 들어. 화두 거각(擧却)하는디 억지로  들어. 억지 힘이 있어. 그래 가지고 은연중 힘이 그리  모여 가지고는 착력이 되야.


착력(着力)이라는 것은, 여기 착력이라는 것은 극도의 모도 조그만한 힘이라도 그리  모여서 한목 힘 든 것이 착력이여. 보통 역(力)을 착력이라고   아니여.


‘이뭣고?’   . ‘이뭣고?’ ‘이뭣고?’

안되니까 ‘이뭣고?’하다가 그저 하도 안되면 진심(瞋心) 내고 ‘이뭣고?’, 억지로 찾아서 ‘이뭣고?’

그저 이렇게 허다 보면은 그것이 화두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주작(做作), 자꾸 힘이 거가 힘이 거기서 잔뜩 들어가지고는 그만 주작이 된다 그말이여.


주작이 자꾸 주작성이 되어 가지고는 힘이 차츰차츰 모여서, 모일 대로  모여서 착력이 되아.

착력이 되면은 못쓴다. ()허지 못혀.


공부 조끔 한철 허다가 아이고! 머리야 그냥 그만 머리 위에 모도 그만  뻘건 것이 솟고, 그런 모도 힘이 위로 모도 올라와서 눈이 뻘개지고 그만 그래지거든. 그게 그만 착력(着力) 해서 묘허지 못헌 것이여. 그런 것이 있다 그말이여.


그런 것이 있으니 내가 구절구절이 이렇게  말허고  따져서, 내가 이렇게 다구아서 이래 주는 것이여.

 묘허지 못허다. 착력치 말라.

 

약착력제시즉(若着力提撕則), 화두를 착력을 해서 억지로 끄집어서 억지로 안된 놈을 억지로 그만 골을 내면서, 부애를 내면, 번뇌를 내면, 그만 , 나는 어찌 안돼?” 모도  소리를 허거든. “여태까장 참선 해 봐도 , 깜깜 칠통(漆桶)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럼 깜깜 칠통 아니면  훤헌가? 훤헌 것이 나오는 건가?

훤헌  볼라면 동쪽에 달을, 동쪽에  떠올라 온  보지. 동쪽에  떠올라 올  보면 훤허드구만.   떠올라 온  한바탕 보지. 훤허게. 그런 겐가?


그저 밝고 어둡고 무슨 그까짓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없는 도리(道理)만 하나 챙기지. 가만히 챙겨.


용착력(用着力) 즉해산정경(則解散定境)이다. 정경(定境) 없어진다.

화두가 고요허니  의심이 일어난 놈도 있다가도 없어져.  있을커니는 없어져,  착력헌 바람에.

 알아듣겄지?  해보니 알겠지? 착력헌 바람에  경계조차 없어져. 해산정경(解散定境) 된다.


능선용심(能善用心)해라. , 화두를 가만히   없는 놈만 일으켜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났다 했노?’한 놈을 일으키다가,  할라니    없는 도리가 하나 생겨 나온다. 어째서  헐래야    없는 도리가 생겨 나오노?

 허면은 그만 중생으로 그대로 있을 터이니 중생 그대로 중생 과보를 어떻게  텐가?


우리가 중생 몸으로  과보  몸을 하나 받아 가지고 나왔으니 만족한가? 이것이 무던헌가?

좋지! 무던허고.


허지마는 요까짓 놈의 몸뚱아리, 요것 하나 받아 가지고 잠깐 가지고 있다마는 숙홀즉무(焂忽卽無)다, 곧 없어져 번지고. 늙어서 병들어서 죽어서 뼉따구 되어 버리고, 살은 물덤뱅이 모도  되아 귀화(歸火) 귀풍(歸風)으로  번지고.

 내가,  몸뚱이 가지고  지은 내가 지은 대로  받을 터이니 그걸 생각해 . 과거에 얼마나 받아 왔는지   내가 혜안통(慧眼通)이 없으니 보든 못허드래도 계산을   . 어쨌는가? 말로 할  없는 짓을  받아 왔다.


눈깔  놈을 보니, ‘저놈은 눈깔 멀었구나.  고생이 얼마냐?’  못헌 놈을 보니, ‘ 못헌  저것 봐라. 저것이 사람 되어 가지고 말도 못하는구나

저런 구렝이 같은 놈을 .   몸뚱이 큰 놈을 가지고 먹지 못허고 굴속에서 무서워 나오지도 못허고 있는 것도 . 모두가  몸뚱이다! 모두가 내가 받아  것이다!


 번만 받아 왔나? 몇백 번을 받아 온지 모른다. 몇천 번을 받아 온지 모른다.  그래야?

역사가 있어야지? 우리 생겨서 살아 나온  과거 역사가 있어야지?

하루 이틀 이렇게 가고 오는 , 그것 역사는 있지마는 우리의  영혼이 살아 나온 과거 역사는 세도 못허고, 한량도 없고, 어느  생겨난 때가 없어.  있으면사 하지마는, 없는 것이여.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렇게도 신령허고, 이렇게도 영영허고, 이렇게도 알든 것이  몸뚱이 하나 없어지면 어디로 갔는고? 그것이.

 개재묘용이 그렇게 자재묘용(自在妙用)이 어디로 갔어?  성내고 울고불고 별짓  하든  물건이 어디로 갔냐 말이여?


없나? 가기는 어디로 ? 항상 상주불멸(常住不滅)헌 것이  물건이여. 부증생(不曾生)이여. 부증멸(不曾滅)이여.

그놈을 ()라고 보니, 어디 무슨 놈의  티끌만큼이나 뭣이 있나? 아무것도 없지.

무(無)라고  놓고 보니 어디 없나? 모도 있지. 그놈이  알아내고 있지.


, 이렇게도 신령허고 묘허고, 이렇게도  일물이, 차물(此物)이 중생 껍데기만 둘러쓰고 중생의  망념만 가지고 어떻게  것이냐?

 허고 말아 가지고는 되겠느냐? 미래가 인자 어떠허냐?


지내기는  지내버린 과거는 먹고   버렸으니 그만이라 하자.

,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터이냐? 이놈의  미래가 다할 때가 있나? 미래가 다할  없지.


그러허니 이거 ‘이뭣고?’를 않고는 어떻게  텐가?  생각해 보지? 가만히  계산을  보지?  허고 쓰겠는가?(처음~18분59초)



(2/2)----------------


선용기심(善用其心)해라. 어쨌든지  선용기심해서  너무  마음을 착력(着力)허지 말고 화두를 ...

참, 내가 금생에   잃어버리면은 어느 때냐? 차생(此生) 실각(失却)하면, 이 이생에  몸뚱이 받아 가지고  몸뚱이를 실각하면, 깜짝 사이에 잃어버리면은 만겁(萬劫) 난우(難遇). 만겁에   몸뚱이는  받는다,  사람 몸뚱이는.


‘왜 사람 몸뚱이  받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나오는디,  꺼떡허면 드립대 나오는디. 산아 제한(産兒制限)을 지금  드립대 허고, 어디 많이 사람 새끼가 나와 쌌던지’


그거 많여, 그것이? 그게 많여? 세계 인구를   봤자  지금은,    억이나 되나? 십 억이나 되나? , 이십 억이나 되나?


그까짓 억(億) 수, 몇억 수 있지마는 짐승을 생각해 보아라.

그저 물에 사는 바다 괴기만 해도 그놈의 숫자 생각해 보고, 땅속에만  봐도  벌레뿐이고,  날라댕기는  준동도 ,  연비(蜎飛)도  보고, 준동(蠢動)도  생각해 . 꿈적꿈적헌 , 개미, 벌레.


왼통 몸뚱이, 그놈이 몸뚱이가 무슨  모냥만 달르지. 그놈이  꿈적꿈적허고 댕기고  즈그들도  보고 놀래고 무서워허고  죽을라고, 모기 같은 것도 달아나니라고 야단이여.  죽을라고.

‘준동함령(蠢動含靈) 그와 같은 함령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니라. 부처성 똑같이  있느니라했으니, !   틀림이 있어?


사람도 보지.  낳아 놓은 , 금방 뱃속에서 나온 , 핏댕이 낳아   보지.    사람 되겄는가?

 무엇이여? 그것 눈도  뜨고 꼼작꼼작헌 것이 차츰차츰 먹어서, 물질을 먹어서 몸이 차츰차츰 불어져  가지고는 사람노릇 허면, 그놈이 그렇게 야단스러워지고.

 핏덩어리로 나온 그때, 뭐여 그것이?


고래 새끼 같은 것도 처음에 나왔을  알로 나왔을   쬐끄만 하던 놈의 것이 그렇게 퍼먹고 그렇게 커지지 뭣이여? 몸이 커지면은 그놈이 운동도 크고 그놈이 굉장하게 놀아나기도 하고 그러지.


물건으로 이놈 있을 때는, 모도  물건으로써 몸뚱이가 되어 가지고 몸뚱이 그놈 큼서 따라서 그놈도 크게 ()하지. 쬐끄만 허면 쬐끔허게 동하고 그런 것이지.


‘소는 소가 되고, 사람은 사람이 되고, 말은 말이 되고, 그렇다 그런 외도설은 없어. 그런 법은 없어.

, 틀림없으니까.  되었다,  되었다,  되었다, 그저 구렝이 되었다,  그렇지.  그런  없어. 우리 부처님의 인과 말씀을  믿으면은  말을 믿을 것이여, 천하에.


그런  저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보지.

 몸뚱이 받아 가지고서는 정법,   하나를 내가 어쨌든지 찾아내야   아닌가? 어떻든지 해내야   아닌가?

이렇게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묘한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는 공과일생(空過一生) 허다니! 말이 되아?  것인가 말이여?


허니, 선용기심(善用其心) 꼭 해라. 화두할 때에 대번에 그만 선용기심 못허고는 어서 헌다’고 드립대 그만  착력을 해서  허다가는 한 철  ()  닦는다. 대번에 못허고 말아.  장애가 일어난다.

그러니 이러헌 참선(參禪)해 나가는디 묘헌 글귀를 이렇게 낱낱이 해석을  주어서 알게 만들아 주어야 하는 것이지.


말은 쉽지. 참선, “이뭣고?  뿐이지. 처음    그렇지, 뭐라고 해야? “이뭣고? 해라”


“이뭣고? 해라 해 놓지마는 이뭣고?’를 가서 혼자 하다가는 모도 이러헌 병이 .

 착력해 가지고는 육단심(肉團心)이 ()허고 마구니가 일어나서 못하고 천(千)이면 ,  못하고 마는 것이여. 만(萬)이면 ,  못하고 마는 것이여.


그러허니 불가불(不可不) 스승을 찾어야 한다. 옳은 스승을 찾아서 옳은 스승한테 낱낱이 선인(先人)한테, 먼첨  해나간 분들한테 이렇게  배워야   아닌가?


그래서 홀연입득정시(忽然入得定時), 홀연히  착력허지 않고 힘만 쓰지 않고 묘허게 화두가 들어와서 의심이  일어날 때에는  몸뚱이에 힘도 하나도  들고, 의심만 일어나는 신심만  나고, 분심만  나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진다.

착력치  해야 그렇게 되지, 착력(着力)해서는 그렇게  법이 없어.


 그렇게  좌선법이 그려. 앉아서 공부허는 법이 이렇다 그말이여.


‘아무때나 헌다’고. ‘ 먹음서도 허고,  입음서도 허고, 서서도 허고, 가면서도 허고, 일체처(一切處)에 헌다’

일체처에 허기는  일체처에 ? 일체처에, 말만 일체처에 허지?


참으로 일체처에 허는구만? 못될 소리여.

 그러면 우리 부처님 같은 천하에 제일가는 부처님도 역부러 고행을 했다 하지마는,  설산에 들어가   고행을 허셨으며, 달마는  때문에 소림(少林) 들어가서 9세를 그렇게 면벽관심(面壁觀心) 했을까? 가만히 앉어서 그렇게 했을까?


왔다갔다 왔다갔다, 요새 선객(禪客)들은 병이 무슨 병이 들었냐? 갔다왔다 하는 병이 들어버렸어. 그 거떡허면  나가고, 거떡허면 휘딱 가고.

그 자리 비어 놓고 있다가 인자 입선(入禪)헐 때는 가서 입선 죽비(竹篦) 듣는다’고 들어갔다 나오고. 틀려. 그것 틀려.


, 생각해 보지, 생각해 . 어짤 것인고 생각해 .

그렇게 부처님 말씀에 어렵다’는  말씀.  가지, 4난득(四難得)이다.  가지 난득이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장부난득(丈夫難得)이요, 출가난득(出家難得)이요, 견성허기 난득(難得)이다. 천하에 난득이여.


장부난득(丈夫難得)이란 , 우리가 이렇게 모도  집안 천만사가 있다 하드래도,

그것 천만사가  무엇이냐? 지금, 내가  닦을, 내가  찾을, 이러헌 무서운  급(急)헌 대사(大事)를 두고 내가 일시(一時)인들 내가 집안에서 무슨 놈의 머무르고 이렇게 있겄나?’ 한  나와서  닦는  장부(丈夫) .


남자 장부? 남자, 그까짓   남자라고 장부라    있나?  닦아야 장부지.


홀연히 화두가 들어와서  무상한 속에서무상한 마음뿐이지 뭣이 있어?

각불가탐정(卻不可貪定)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화두가    때에, 화두가 의심이 일어나서 의심이 독로 되아 있을 , 독로 되아서 화두가 온전히 고대로 가만히 있다고 화두를 거각하지 않고  조용허고 고요헌  떨어져 있지 말아라.


화두가   없는 놈이 고요해야지.   없는 의심이 가도 오도 않고 ! 정(定)이 되어서 말뚝 박아  것, 쇠말뚝 박아  것처럼 꼼짝도 않고   없는 놈이 ! 정해져야 그게 정력(定力)이지.

고놈 밖에, 화두 의심 밖에  것이 뭣이 고요헌 것이 붙어 있어?  큰일나지.


그건 뭣이라고 헐까? 망조라고 할까? 무슨 묵조라고 할까? 묵조(黙照)! 묵묵히 비추는 묵조라고 하지. 그거 ?

묵조라는  뭣이여? 묵조라는   만년 있어도 소용없는 것이 묵조여.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니! 죽은 참선이라니! 묵조,   것이여 그거 ?


불가탐정(不可貪定)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약망화두즉(若忘話頭則), 그때에   없는 화두는 없고,  고요해서 일체 망념도 없이 묵조가  하나 나타나면 편안하기는 한량없네.

번뇌 망상이 뒤끓으면은 제일 불편헌디, 번뇌 망상 그놈이 없어진 곳에 고요허니   없는 화두도 없이 앉어 있으면은  묵조라는 것은, 묵조가 그놈이 낙공(落空)이다. 허공이다. 허공 같은 밖에 없다. 허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낙공(落空)에, 공에 떨어져 버리면은 그만이여. 공에 떨어져 버리면 그만이여.


그러면  원상(圓相) 하나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원상은 뭣이냐?

‘고불(古佛) 미생전(未生前),  부처도 생기기 전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이다. 응연(凝然)  상(相)이 둥그렇다.

거가서 무슨 () 있으며, 거가서 무슨 () 있으며, 비유(非有) 비무(非無) 있으며, () 있으며, 중생(衆生) 있으며, 중생 제불도, 불도 뭣도 일체 이치가  공허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다. 그러면  ()까장  쓸어버린다 그래 모두 다 뭉캐는 거여.


고것이 되아? 고따우 것이 조사관(祖師關) 되아?

 지랄을 허고 고걸 쓸어놓고는, 인자 고것이라고 도로 그려? 그러면 그게 뭐여, 그것이?


그게 중생굴이요, 그것이 중생  송장굴인디, 고까짓 놈의  거기서 인자 참으로 화두가 있는 법인데, 판치생모(板齒生毛) 거기 있는 것인데, 그놈 깨달르는 법인데, 뭐가 있어?

그놈 깨달은 법이 없어. 그런 것은 낙공(落空)이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 그게 인자 참말로 공안이거든.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거기서 깨닫는 것이여.



그때  하나가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하니께 ! 들어갔지.

들어간  수단을 알아? 그걸 알아야 되아!

그러니 어째 들어갔는가를 알아야 되아. 법(法)  나가는  알아야지. 용무생사(用無生死), 생사 없는   쓰는 것이  쓰는 것이여.


 들어가, 딱! 쳐버렸다. 쳤어.

! “막타모갑부득(莫打某甲不得)입니다. 모갑(某甲)  쳤습니다헌게, 떠억 쉬어 버렸다. 휴거(休去)했다.

휴거 같은 것은 그건 법불견이니, 본래 없니, 본래 무니, 본래  비어, 고런  가지고는 소용없어.


마조(馬祖) 터억 휴거아무 말도  하니까, 마조가 ‘대답 못했다 하지?

그것을 알아야 . 그거 대답 못헌 것인가? 대답만  허면 제일인가? ! 이거.


이놈 입만 벌리면  대답이 제일인  알고 든지 가져다 대답하지. ‘양말  짝입니다 고따구 소리.   덕숭산서 나오는구만 그거. 모도 고런 행사를 허는구만 그거.

기가 맥혀서 내가 당최 뺨대기를 쳐서 내쫓아 버려야지 그런 것들. 뺨대기 뿐인가? 작대기로 우서내 버려야지.



약망화두즉(若忘話頭則),  화두를 잊어버리고 무슨 정(定)이라고 앉었은 (), 그것이 그만 무기공(無記空) 무기에  떨어져 버린다. 무기(無記) 떨어져 버리면 무유묘오(無有妙悟)다. 깨달은 법도 없고.


인자 그것으로써 견성했다고 나부대고. 나부대 가지고 발무인과(撥無因果)하고, 인자 인과도 없다’하고 돌아댕김서 제가 제일이라고 야단이고.

‘스승이  인자,  스승이 뭐냐? 어떤  스승이냐? 누구는  본래 부처는  인가가 있나?’ 요따구 소리나 하고. ! 일난다 말이여, 일나.


차라리  그대로 중생으로 있어서, 그저 그대로 있다 아무때라도 부처님 성불할  만나서 발심 출가를 하면 오히려 나을지언정, 천만 겁을 지낸 후라도 나을지언정,

 묵조사선(黙照邪禪) 무기선(無記禪) 떨어져 가지고 인자 제가 도인노릇  가지고  가르키고,  죽고  죽이고 모도  가지고, 불법(佛法) 영원히 종자도 없이 망쳐 버리는 것이여. 이것을 깊이깊이 학자들은 알아두란 말이여.


무유묘오(無有妙悟)니라. 묘오가 있지 못하니라.

묘오(妙悟), () 결코 화두를 () 해야지, 화두 활구(活句) 오도(悟道) 해야지, 오도(悟道)  해서는  되는  없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묘오(妙悟) 오도(悟道) 있는 법이니 이렇게 믿어라.


 대문 읽어보지. 어디 갔나?(19분1초~35분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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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落雁下長沙  樓中人起舞’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저물어 여강(驪江)에 머물다[驪江晩泊]’ p41 참고.

*(게송) ‘牧童一聲笛  騎牛過前山’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고향집을 지나며[過故宅]’ p44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偈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데데하다 ; 시시하고 변변치 못하여 보잘것없다.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나변(那邊 어찌·어느 나/가장자리·곁 변) ; 어느 곳 또는 어디.

*은연중(隱然中) ; 남이 모르는 가운데.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숙홀즉무(焂忽卽無 갑자기·문득 숙/갑자기·돌연히 홀/곧 즉/없을 무) ; 갑자기 곧 없어지다.

*‘늙어서 병들어서 죽어서 뼉따구 되어 버리고, 살은 물덤뱅이 모도  되아 귀화(歸火) 귀풍(歸風)으로  번지고’ ;

[참고] 「무상계(無常戒)」 (영가천도용靈駕薦度用 독송문)에서.

靈駕  劫火洞燃  大千俱壞  須彌巨海  磨滅無餘  何況此身  生老病死  憂悲苦惱  能與遠違  靈駕  髮毛爪齒  皮肉筋骨  髓腦垢色  皆歸於地  唾涕膿血  津液涎沫  痰淚精氣  大小便利  皆歸於水  煖氣歸火  動轉歸風  四大各離  今日亡身 當在何處  靈駕  四大虛假  非可愛惜


영가여, 겁화가 타오르면 대천세계가 온통 무너져서 수미산도 큰바다도 모두 없어지거늘 하물며 이 미약한 몸뚱이가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을 어떻게 면하랴.

영가여, 머리카락 터럭 손톱 발톱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뇌장 때 같은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침 눈물 콧물 피 고름 진액 담 정기 대소변 따위는 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렇게 사대(四大)가 따로 따로 흩어지면 오늘날 그대의 죽은 몸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가여, 사대는 헛것이니 아까울 게 없도다.

*상주불멸(常住不滅 항상 상/머무를 주/아닐 불/꺼질·없어질·멸할 멸) ; ‘항상 머물고 사라지지 않는다’

변함없는 본질을 유지하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를 나타낸다. 법신(法身) 또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한다. 열반(涅槃) 등의 무위법(無爲法)에만 해당하는 속성이며 어떤 유위법(有爲法)에도 이러한 본질은 없다.

*부증생부증멸(不曾生不曾滅 아니다·없다 부/일찍이·이전에 증/날 생//꺼질·없어질·멸할 멸) ; 일찍이 남[生]도 없고 멸함도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

〇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호대  從本以來(종본이래)로  昭昭靈靈(소소영령)하야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부증멸)이며  名不得狀不得(명부득상부득)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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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윤동지류(蜎飛蝡動之流 장구벌레 연/날 비/꿈틀거릴 윤/움직일 동/~의 지/갈래 류) ; 기거나 날거나 꿈틀대며 돌아다니는 것.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공과일생(空過一生 헛될 공/경과할 과/한 일/삶 생) ; 일생을 헛되이 보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대사(大事) ; 일대사(一大事).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92칙 ‘대사(大事)’

동산(洞山)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 옷 밑에서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洞山  門僧  世間  是甚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염송설화(拈頌說話)>

동산(洞山)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준 말씀이니 모름지기 이 대사(大事)를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발무인과(撥無因果) ;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것. 연기(緣起)의 근거를 부정하는 삿된 견해이며, 모든 것은 단멸하여 상속되지 않는다는 단견(斷見)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6/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5)—08-1. 몽산시 각원상인(6) (72.06.22)

(1/3) 약 20분. (2/3) 약 20분. (3/3) 약 11분.

(1/3)----------------


청천일안몰(靑天一雁沒)이요  벽해삼봉출(碧海三峯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공산풍우다(空山風雨多)허고  화락무인소(花落無人掃)니라

나무~아미타불~


기러기란 놈이  창공(蒼空)에 날아가다가 허공에 빠져 버린다. 허공, 원청 멀리 날아가니, 보면은 빠져 버리지, 허공 속에.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에는 망망창해(茫茫滄海)  산이  삼봉(三峰) 솟았구나.


공산(空山)에는 풍우(風雨) 많이 있는데, 꽃이 모도 떨어졌는데 쓰는 사람이 없구나.

도시(道詩).  ,  보고  () 바로 봤지.


 별다른 경계인가? 기러기 날라가다가 공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빠져 버리고. 바다에는 산이  솟았는디.

공산(空山)에는 바람은 많이 있는데, 꽃은 쓰는 사람이 없어. 모도 그저, 도시(道詩).



재송도인(栽松道人)이 오조(五祖) 스님이신데, 오조 스님께서 어머니를 굶겨 죽이다니!

어머니를 굶어 죽게 맨드니, 굶어 죽게 맨들어 가지고 대도(大道)를 통하게 맨들었으니  도무지   이상 없지마는, 세상 사람들은 어머니를 굶어 죽이다니...’


 도통한 거야 누가  수가 있나? 영원히 도를 통해서 아무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했다고 할지언정 어머니 굶어 죽였다는 것만 알지, 생사해탈 시킨 것은 모르지.


하지마는  애정, 자식의 애정, 애정 그놈 하나를 가지고는 여의지 못하고 떼지 못하고 거기 들어와서 보살 노릇을 헌들, 오조 스님 어머니 노릇을 오조 스님을 모시고 헌들, 어디 그렇게 성불(成佛)헐 수가 있어야지? 해탈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헌 무서운 동기,  굶어 죽은 동기, 아사(餓死)해서 단식해 가지고 죽은 동기,  동기 속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자식의 원망을 얼마나 했는지. 오조 스님이 도인이 아니라 부처라도 얼마나  , 원한이 있을 것이여.

어쩔  없지 .    원청 단식을  놓니깐  죽을  없지.  목숨  끊으면서  애착 ! 떨어지면서 그만 활연대오(豁然大悟) 했어.


활연대오를  가지고는  공중에 중천에 떠서, !  공청(空聽)을 했어.

내가   오조 스님의 덕택으로” 덕택이지! 인자  그런 굶어 죽었지마는, 원수지마는 원수가 아니고  덕택이지.

 단식을 허고 어쩔  없이  죽었는데, 내가 그만  목숨 끊어지면서 확철대오를 해서 나는 대중께 이러헌 공청을 허니 대중은  들어라. 조금도 그런 사견심(邪見心) 두지 말고 모도 배척심 두지 말고  믿어서  확철대오를 해라하고는, 공청을 했다 그말이여.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은 세상에서는 그런 원망이 없지마는 불가(佛家)에서는 무서운 동기여. 그거 후편인데,  책이 나와서 있지는 않지마는 지나(支那) 장경(藏經)에 있어.


지나(支那),  아주 깨낱같은 장경(藏經) 가서 그런 것이 있는데, 나는  책을 보지 못허고 말만 이렇게 들었지마는  책을 가지고 댕기면서  법문허는 수일이라고 그런 이가 있어서 내가 그걸 알고 여까장  것인데.

똑똑히 보지 못허고  것은 내가  의심도 나지마는, 구전(口傳)으로도 이렇게  설법이 있으니까 내가 가끔 여기까장 설법을  두지.



경봉 스님 사건은 세상에  , 그렇게도 역력하게 그렇게도 철저허게—아, 내가  마지막 인자  두타(頭陀) 마치고 통도(通度) 댕겨서 돌아나올 , ! 그렇게 역력스럽게 했건마는  보고 거짓말했다고 했어? .  냈구만 신문에.


그러나 저러나 거짓말이야 했건  아니라 하고, 거짓말이라고 하고.


원상(圓相)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했는데, 그때에 원상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  ,   먼 데서 부채를 가지고 원상을 쓸어버렸다

그러면  부채를 가지고 원상(圓相) 쓸거나, 손바닥을 가지고 원상을 쓸거나, 발길로 원상을 문태버리거나, 원상을 문태고 옳다 ? 그거 학자는,  있는 학자는 부딪쳐 볼지어다.


! 원상(圓相) 어떻게 뭉캤거나, 원상을 뭉캐 놓고 옳다 ?

그때는 나는 그렇게   했거든.


원상을 뭉캐서뭉캔 형용이지 무슨, 이렇게 내가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한게,  저쯤 앉아서  원상을 뭉캐는 형용이지. 그것이무슨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그만 “그 자리에 묻어라!” ! 사람이 보광전(普光殿)에  찼고.


‘경봉 스님이 법광(法狂) 나가지고, 법으로 미쳐서 법광이 나가지고 굉장하니   달라’고.

내가 오장치를 짊어지고 들어갔다가 금강당에서...  금강당인가?  공소방, 거기서 하룻밤 얻어먹고 자고 나올라 하니까, 추산 스님이 확실혀.

늙은 노인이 나와 같이 그전에 젊을   처음에 지냈던 노인인데, !  노인이     나와서  경봉 스님이 저렇게 법광(法狂) 났으니   달라”고.


! 하도 그래싸, “내가  봤자   것이여?  들어갔다가 법광 난 사람,  부처도 냅대  버리고  굉장한 것인디.   내가 가서 ,  지견도 아니고 벌써 언제부터 그래 가지고 산중이 요란하게 야단났다는디  내가  것이냐”고.


, 그래도 신(信) 수좌님이  와서  달라”고 ! 어떻게 그래쌌든지. 그래 내가 끌려가다시피 왔어.

가서  보광전  조실 말리(마루)에 거기에 앉었는디, 조실에 있었다는  아니라 앉었는디, 그만 들어서면서 당장에 들어오면서 거량(擧揚) 수밖에 없지.


원상(圓相)  하나 그려 놓고는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들어가도 치고 나가도 치니, 일러라!” 한마디 헌게, 원상(圓相)  뭉캐서, “그 자리에 묻어라!” 냅대 고함을 질렀다 그말이여.

그런게, 한참 앉았더니 “내가 알았다!” 고함을 질러서, 내가 그때는 아무 , 그때는 벌써 눈치가 달러. ‘알았다해도 분수가 있어.


! 들어가서 옷소매를 잡고는 둘이 “나오라”고, 여러이  말이 아니라고. ! 그러고는 옥련봉 밑으로 들어가서 서로 말을 한마디  물은게, 한마디 처꺽 일러.

“어떠냐?” 내가 “어떠냐?”허니, 고개를 끄덕끄덕 점두(點頭)해.  뒤부텀 보광전에 앉어서,  정진허고 앉어서 문밖에 나온 일도 없고,  추담망담(醜談妄談) 개시화엄경(皆是華嚴經)’이란 말 한 바도 없고, ! 그렇다고 말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 내가 그런  들었는데, !  뒤에 나는 오장치 벗어번지고 서봉암에 와서 대구 서봉암에 와서, 포교사로  있단 말이여. 포교사로 있는데 뜻밖에, 청첩장을 자기가 가지고 왔어.

그때  주지가 ... 이름도 알았는디 잊었구마는, 구하 스님 뒤에   주지인디. !  주지 임명장을 나를 아주 초대장을, 거기 청첩장을 가지고 왔단 말이여.


,  갈라고 헌게 손을 끌고 노인이,  경봉당이 와서. ! 그래 내가 가서 조실까장 했단 말이여,  인연으로.

그랬는데 전부  쓸어버리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어. ‘이 거짓말은 나변(那邊) 있냐?’ 이렇게 놨네.


그런디, 그만 그까짓   그만두어. 그까짓 놈의 거짓말을 했거나,  말을 했거나 공안만,

넨장, 부처님이 삼계대사(三界大師)인 부처님이  운문 방(棒)도 입었는디,

삼백년 후에 아유당시(我有當時)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구자끽(狗子喫)이라”고 까장도  드리   양구(良久) () () 한 방을  쓰는 것인디, 그까짓 거짓말 한마디 했다는 것이 무슨 별것이 아니라,


세상에 그때 하던 그대로만  주었으면 그대로가,

원상(圓相)을 보고, “아니다!” 조금 앉어 있더니 “옳다! 내가 알았다!”고 고함을 질러서, 소맷자락을 끌고 가서  물으니깐 대답을 처꺽 해서, “어떠냐?” 점두를 끄떡 끄떡, 그뿐이여.

다시  조끔도 무슨 다른 공안 하나   물어 보지도 않고, 그러고는 나왔다 그말이여.


! 했으면, 오히려   내가 자기보담 나이 떨어지기는  78 떨어졌다 하지마는 나이 상관이 뭣이 있나?

그까짓녀러   나이 ,  가섭은 부처님보담 나이  얼매가  했어도 부처님 제자고, 부처님이 인가하고  그랬는 것인디 .

내가  어디 인가,   법전 하나 그거 했지. 내가 인가라고도  일도 없고.


, 이런 놈의...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노? 나도 깜짝 놀랬다.


, 이런 놈의  보고 거짓말했다’고 허니, 자기는 그때에 법광(法狂) , 법으로 미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만 이러고 있을 때인디, 나는 멀쩡헌 사람인데, 나는 멀쩡해서  그때 젊을  일이라 하나도  잊어버린  없어. 소소(昭昭)허지.

무엇을 내가 어째서 거짓말했다고 이런 나변에 있는가?’  놨네. !  , 속으로.


그러고 그때 나한테 원상(圓相) 묻기를 물어서, 내가 조실 방에 있는  아니라 내가 구하(九河) 스님 어디 구하 스님 , 차사로 구하.. 그럼 구하당(九河堂)한테 내가  하러 갔을 거여?

구하당한테 어디서 내가 원상을 뭉캔게, 부채로 내가 원상을 뭉캤는디 .. ! 이래 놨네.


그래 부채로 원상(圓相) 뭉캤으면  옳은 도리인가?

인자 정말 참말로 가풍이 드러났네.  그럴 수가 있을까? 원상을 뭉캐 놓고 그러고는 마조공안(馬祖公案) 바로 봤을까?


그런디  전에   전에 만공 스님, 혜월 스님, 용성 스님,  선지식 스님한테 공안을 내가 인가  맡았다 그랬고.

선방에 나온 일이 있어야지. 합천 해인사 나와서  마치고 나와서 제산 스님 회상에서   지냈다는 말은 들었어. 내가  밖에는 들은  없어.


그러나 저러나 나는 경봉 스님을 그르다고 거짓말했다허고, 경봉스님은 나를 거짓말했다허고,  그럴 필요 없어. 그까짓 놈의  가지고는  말할 필요조차 없고, 아무  재료 없는 것이고.


원상을 부채로 쓸어버렸어? 원상(圓相) 부채로 뭉캐놓고는 견성했다고 ?

, 인제는 참말로 우습네. , 그래 어제 신문이  왔구만.


나는   헐라고  사실을 주욱 써서   놓는 것은,   경봉 스님과 나와 거량(擧揚) 역사 하나 갖다가  내서 우리 학자들한테다  밝혀 주는  명감(明鑑)이, 귀감(龜鑑)이 될까 해서  해놓은 것이여.


내가 거기에 무슨 ... 그러고  뭣을...

여까장 해두지.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그걸 가지고 인자  , 두말할 것도 없고.(처음~19분43초)



(2/3)----------------


화두(話頭)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 있어. 화두를 자꾸  들어갈  같으면은 화두가 자연현전시가 있어.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 있어도 잠깐 현전시(現前時) 있다가 즉무(卽無)허면, 그대로 없으면 그거 현전시가 아니여.


 그저 종일 공부를  나가다가 잠깐 그런 때가 있어.  먹기도 잊어버릴 때가 있기도 허고,  이상스럽게 무슨  말이 밖에서 아무리 듣겨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화두만 현전헐 때가 있어.


그거는 가다 어쩌다가서  현전할 때가 있지마는, 화두를  나가다가 화두가 자연현전(自然現前) 때가 옵니다.

현전할 때가  가지고는  먹기도폐침망찬(廢寢忘餐)이여, 잠자기도 잊어버리고 잠도 잊어버리고 망찬(忘餐)이여.  먹기도 잊어버려.


폐침망찬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행주좌와(行住坐臥) 잊어버려.

행(行)해도,  행한 것이 아니여. ()해도, 가도  줄을 몰라. (), (), ()해도 주한 줄을 몰라. 능히 주했지마는 가다가 주했지마는.


(), (), 말허고 묵묵허고 () ()에도, 허지마는 잃어버리지. 몰라.

 허는  아니라, 가만히 앉어서  허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을 허지마는 몰라. 틀림없어.


그래서  고인들도 역부러 공부를 시험허기 위해서 장(場)에를 갔어.

장(場),  모이는 장에를 가서,  가운데 가서  일용(日用)을 해보면은, 도(道) 공부를 해보면은 하나도 귀에  들어와. 귀에 별별 소리가  워걱워걱 들어오지마는  들어와. 들어와도  들어와.

 소리인지, 그까짓 소리인지  새소리 물소리,  소리, 그까짓 소리가  조금도 관계없어.


시끄럽니 ,  시끄러운 경계가 있고 화두를 자꾸  나간다면은 시끄러운 경계 따로 있고 화두가 있어서, 그놈의 화두에 모도 번뇌가 섞여 시끄러운  경계가 섞여서  화두(話頭) 현전(現前) 아니여. 모두 뒤섞였지. 아닌데.


 복잡한 번뇌 속에 들어가도 화두가 현전일념(現前一念)혀. 확실히 그려. 그러헌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러헌 때가 온다는 때가 언제인가? 그런 때가  때가 언젠가 말이여?

언제 올지  수가 있나?


헌디, 화두를 잡드리  가는디, 화두를 다루어 가는데 참! 절대 간절해서, 화두 하나에 간절해서  화두 일념이 행여나 행여나 어디로  버릴까, 화두 일념이 없어져버릴까, 의심이 없을까,

 무척  조심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고   없는 의심,  의심을 갖추어사,  대의심을 갖추어 나가사 그런 경계가 오지.


어쨌든지 그저, 그저  일순간이라도  먹을 사이라도,  일향간(一餉間) 동안이라도 화두가 틈이 없어야.


!  먹음서  못혀? 밥을 먹음서도 어디 말로 어디 화두를 허나?  씹는 것으로 화두를 허나?

밥이야 먹건만 입으로 씹지. 씹지마는  뜻은 완연히 그저 판치생모(板齒生毛)?   없는 도리, 조사공안(祖師公案) 하나   없는 도리, 의심 하나뿐이지.

이뭣고?’면 이뭣고?’ 하나뿐이지. 고놈 밖에 뭐가 있어? 뭐가 있을 까닭이 없어.


지극히 절대 발심(發心)헌 사람이야  시간인들 있다가도 없을 수야 있나? 있다가도 그만 돌아와. 그만 챙겨.

어디로  화두가  버리고 없고, 다른 망념이 들어와서 그놈이 있다가도 얼른 돌이켜. 그저 그것만 돌이켜. 돌이켜서 그저 항상 그놈만, 도로 도망가면  돌이켜서 그놈만.


처음에는 밤낮 도망가지. 밤낮 화두는 그만 없고, 망상만 그저 망상에만 밤낮  있지.

자꾸 돌이키지. 자꾸 돌이켜 그저 없어도.  돌이키고  돌이키고 그저 시시(時時) 돌이키고, 자다가도 깨어나 돌이키고,

그러기에 그때는 화두가 득력(得力)이 아니니까, 화두가 현전이 못되니까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지. 종일  봤던들 화두할 때는  불과   되도 않고 망상 일어나고, 그럴 때는  한량없지, 때가.


그때는 주작(做作) 공부니까, 주작으로 어쩔  없이 허는 공부니까.

어쩔  없어, 주작으로   돌이켜서 이뭣고?’를  놓으면 도망가 버리기는  시간 가버리고 오도 않고,  생각[別念]  들어오고.

이거 , 마음 심두(心頭)만 점점 어지럽고, 불안하기만 잔뜩 불안허고.  고약허지. 공부가 득력 못되었으니까.


공부는  해야 허겠는데. 공부를 않고 어찌 되겄나? 어쨌든지 그저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겠는데, 어짜꼬 말이여? 이렇게 안 되는고?

그놈의 걱정 속에서 망상 속에서 마음만 잔뜩 그만 시끄럽고 괴롭고.   야단났지.


그럴수록 자꾸 돌이키니까 주작(做作)이여.  억지로 , 억지로  주작이여. 주작 공부여.

지금  철을 했든지,  철을 했든지,  철을 했든지,  철만 해도 순일헌 경계가 오는 공부도 있고, 세 철을 했어도 주작 공부가 있고, 10년을 해도 기름 선, 기름 참선, 항상 그저   모냥이지. 화두가 도무지 독로(獨露)가 없지.


그것은 당인의, 지재당인(只在當人)의 지성스런 마음, 정성스런 마음, 철저헌 마음, 발심헌 마음 가운데에서 그렇게  철에 순일헐 때가 순일헌 공부도 있고.

주작으로 허다가 그거 안되면 그만이지 그것, 억지로 그리 해쌀 것도 없다 그래 가지고는 그만 그저 시대 풍경이나 따라 가지고 그럭저럭 허다말다 허다말다. 되도 않는 것이고, 그건 참선도 아니고, 그건  선이라고 할까?


공연히, 와서 공연히 그저 허송세월이나 하고, 시광(時光)이나 몰(淹沒)허고, 시은(施恩)이나 녹히고, 그렇게 한평생 그저 산중오입이나  것이지.


 절대 발심을 해야 하고, 절대 신심(信心)과 절대 분심(憤心)을 가져야 하는 것이여.


가져서, 그저 불가불 어쩔  없는 주작(做作) 그저  주작이지마는 주작이라도 자꾸 그저 돌이켜. 돌이키고,  돌이키고, 그저 돌이키고, 가나 오나 돌이키고, 그저 행주좌와 어묵동정 이라니까 그래. 이렇게 화두를 참으로  한바탕  봐야 되아.  보되,


부제자연현전(不提自然現前)이다. 나중에는 부제(不提)해도, 부제라는 것은 주작(做作)  해도 말이여. 억지로 헐라고  해도 자연현전(自然現前) 시절(時節) 도래(到來)한다.

 자연현전 시절은 있다 없다   아니고,  그거 주작할라고  것이 없어.

 .  지경이  오는가?


원수, 그놈의 원수를 갚을 마음도 부모를 때려죽인 원수가 있으면 그놈을 갚을 마음도, 한시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여.

 , 혈구 속에 들어가서, 알 마음속에 들어가서 없앨래야 없어지들  , 분헌 마음이. ‘어째야 어째야 그놈의 원수를 갚을꼬?’


 부부지간에 살다가, 천하에 인연 중하게 부부만 믿고 남편만 믿고 살다가  남편이  죽은 뒤에,  남편의 애착이 그만  눈동자 속에 들어와서 환허니 보이지. 남편 면목이, 보고 싶은 남편 면목이 눈앞에 환허지.

‘아이고! 언제나 우리 남편의 , 얼굴을 ? 어디가  때가 있을까?’ 그놈이 어디 끊어져? 끊어지지 않지.


비단 그뿐만 아니라 천하에 없는 보물을 잊어서는 안될 것인디 잊어버렸다. 어따가 놓은 지를 모른다.  도둑놈이 돌라간  아니라.

어따가 내가  보물을 놓았는고?’ 이놈이 끊어져? 그렇게 현전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話頭) 부제(不提)해도 자연현전시절(自然現前時節) 오느니라.


각부득환희(卻不得懽喜)해. 내가 어저께도  거지만 다시   재독(再讀)허는 것이여.

각부득환희(卻不得懽喜)해라. 그렇게 현전 온다고 , 좋다야! 화두가 이렇게  때가 있구나.  내가 이렇게 화두   몰랐구나. 인자  득력(得力)이로구나 좋아서 나부댄다.  마음도 두지 말란 말이여. 그거 안되아.


고것 조금 들어온 바람에 이상스런 놈이 따라 들어오네. 환희마(懽喜魔) 들어와.

 ()라는  이상하지. 환희마란 놈이 그놈이  쬐끔만 생기면 들어온다 그말이여.  환희마를 두지 말아라!


환희마 두니, 안 두니 말할 것도 없어. 그만  현전일념(現前一念), 그저  의단(疑團)만 현전 갖출 것이다.


농담(濃淡) 임타(任他)해라. 화두가 되느니,  되느니,  무슨 그런 농담(濃淡)  나온 것은 임타(任他) 버려라. 저한테 맽겨버려.

망상은 저한테다 맽겨버려. 나거나 말거나 제 게다 두어버려.  마음이 나드래도 그까짓  제 게다 놔둬버려. 간섭 말아라.

  알아듣겄죠? 나거나 말거나, 그까짓  내가 간섭할게 뭐여? 임타해 버려.


그저  경계가, 그저 직여노서(直如老鼠) 교관재(咬棺材)해라.

늙은   , 그놈   늙은 놈이 그놈이 쌀궤에 쌀   알고 쌀궤를 뚫는디, 다시  뚫는   뚫지, 이리저리 고치지 말어라.  뚫는 구녁만 자꾸 뚫어라 그저.


그거 다른 말이 아니여.   없는 의심만 현전해라  말이여. 의단(疑團), 의단만 그저 현전(現前)해라.

의단 갖춘 것이 그것이 노서교관재(老鼠咬棺材) 그말이여. 늙은 쥐란 놈이 쌀궤 뚫듯기  구녁만 뚫어라.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려. 활구참선법이 뿐이여. 대의단(大疑團) 뿐이여. 분심(憤心)으로 의단 뿐이여. 이걸 정법이라 해.

 밖에 무슨 정법이 있어? 별짓을, 천하 없는 짓을 다해 봤자 그거 정법이 아니여. 방편법이지.


방편(方便)이라는 것은 그건 어쩔  없어서 방편을 모도 천만 방편을 부려서,  가지  가지 방편을 부려서 화두로, 필경 화두 허게 만들려고  것이여.

가명(假名)으로 인도(引導)  것이 그것이 방편이여. 거짓 이름으로 인도헌 것이 방편이다  말이여.


가명인도(假名引導) () 권이미실(權而未實)이다. () 실답지 못허다. 추이미묘(麤而未妙). 추헌 것이 묘허지 못하다.

심상체신(心相體信)커사, 인자 네가 이만큼 참선을 헐라고 마음을 믿은 뒤에사 내시실상(乃示實相)이다. 이에 실상을 보인다. 이에 참으로 인자  정법을 보인다.


보소(寶所)가 재근(在近)허니, 보소가 가까이 있으니 어서 오너라. ? 어서 오너라.

그것 버리고 오너라 그말이여.  방편 버리고 오너라 그말이여.  가지 방편이고  가지 방편이고 버리고 와서, 어서 와서  찾아라. ‘이뭣고?’해라. ‘이뭣고?’를 해라.


그저 쥐란 놈이 쌀궤 물어뜯듯만 해라. 그저 현전일념만 해라. 그저 ‘이뭣고?’ , 그놈 한번 , 연속허고.   , 연속허고  보지.

그놈 이뭣고?’    , 뒤에 치를   생각해. ‘이뭣고?’를,  ‘이뭣고?’를,  ‘이뭣고?’를  줏어 대고, 자꾸 주어  .


고놈이 나중에 모으고  모으고,  해 지고  해 져 가지고, 일념이 되어 가지고 일념 그놈이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그만 되아 버리네.

그것 그렇게 되면, 의단이 독로되면  깨닫는 법이 없어. 그건  아무리  깰라고 해도   수가 없어.


  자다가 방맹이로 대갈빡을 냅대 한번 때리면 골이  터짐서  깨듯기 한번 깨져야.   수가 없어.(19분49초~39분25초)



(3/3)----------------


  화두라 하는 것은 첫째 좌중(坐中) 득력(得力) 제일 ()허다. 좌중(坐中) 가운데에서 득력이  묘하다.


내가  공부허다가  잠이 오거들랑  잠을 깨우기 위해서 30분만에  번씩이든지,  시간만에  번씩이든지, 일어났다가 살모시 들어와서 앉어서  해라 요렇게  내가 일러주지.

일러주었더니, 가만히 보니  앉으면 일어나 버려, 일어나. 억지로   일어날라고 그런가 어쩐가 몰라도, 이리 보면 일어나. 조금 있다 보면 일어나. 1분도 안되아. 파딱 파딱 파딱 파딱  무엇이여?


그런 사람은 알지. 고렇게  사람은 알지.  들으라고   알지. ‘ 들으라고 이런 말하는구나  아는 것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그게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그것 ! 조끔  시간이라도 앉었다가 이럴 때가 있다든지, 30분이라도 앉었다가  이럴 때가 있다든지 어찌 그래야지, 고만 앉음서 그만  일어나.  일어나.

 무엇이여?  닦는 사람의 자취여? 그것이 무슨 방정이여. , 방정도 분수가 있지. 고런 놈의 방정이 있어?


이런 , 그런   사람은 들으면은  귀에 거스를는지 모르지마는, 충언(忠言)이 역이(逆耳)나 이어행(利於行)이다. 충성스런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마는 행에는 좋은 것이여.

화두해 나가는 사람이 이러헌 결점을 봐주는데 싫어? 이게 어떠헌 말인디 싫어? 이거 어따 쓰는 건디 싫냐 그말이여.


제일, 좌중(坐中) 득력(得力) 제일 ()하다.

어좌중(於坐中) 득묘정력(得妙定力)이다. 좌중에서 정력 얻기가 제일 쉽다. 정력(定力) 화두일여(話頭一如).

화두 일념 중으로  쪼꼼도 어디 빈틈없이 일념 하나,   없는 일념 하나, 고놈이 고대로 있는 것이 그거 화두(話頭) 정력(定力)이여.


화두 르고 정력이  따로 있으면 써?

그게 무슨 놈의 ()이여? 그것이. 무슨 ()이여? 그녀러 정이.


  없는 놈이 틈도 없고, 도망도 안 가고 고대로 있는 것이 그것이 화두 정력이여!


정호제시(正好提)해라. 요러   정히  제시() 해라. 알뜰히 알뜰히 닭이란 놈이  품듯기 화두를 보호해라.  기가 맥히게 해라.


세상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뭐냐? 견성해서 성불허는 것이 뭣이냐?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중생성, 중생 죄업(罪業) 녹아지는 것이다. 중생견 없어지는 것이다.


 중생견이라는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 계교(計較)뿐인데,  사량분별 계교라는 것이 못된 마음, 쓸데없는 마음, 그저 모도 애착심, 애착심 가운데에서  모도 계교심(計較心),

계교심 알아? 계교심이라는  어떻게 어떻게 도둑질이라도 해야겄구나, 무슨 협잡질이라도 해야겠구나, 무슨 어떤 놈을 죽이기라도 해야겠구나’하 모도  계교심, 그런 중생심 떨어지는 것이여. 중생심.


그놈이  견성해 버리면은 계교심이 도리어 사람을 죽일 놈이라도 죽일 마음이 나도, 살리우는 마음이요 그거 해탈심인디 .

없나? 있어. 죽일  죽이지. 죽일  능히 죽이고, 살릴  능히 살리는 것이 해탈심이여.

허되 낱낱이 중생 번뇌 시대와 깨달라서 (覺) 시대(時代) 같나?


활연대오(豁然大悟) 해서 중생의 구백 생멸심(九百生滅心)에다가 견성을     같으면은 부처님의 그저  미진수(微塵數) 법문(法門) 한량없는 그만 해탈 법문이지. 모두 득묘법문(得妙法門)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여.


정호제시(正好提)해라. 참으로 한번 제시() 해라.


단불용착력(但不用着力)이니라. 거다가서 착력(着力)허지 말어라.

힘을 써서 억지로 , 억지로 허는 법이 있나? 화두가 저절로 제시현전(撕現前)인데, 제시현전 가운데 착력(着力) 있어?


 공연히 힘을 부딪칠 수가 있거든. 억지로 힘을 써서, 그만  그만 착력을, 힘을 .

가운데 간을 힘을 쓰든지, 속에 심장을 힘을 쓰든지, 무슨 육단심(肉團心)을 .

힘을   같으면은 미묘현전(微妙現前) 아니다. 묘한 화두(話頭) 현전(現前) 아니니라.


그저 조금씩  두지. 너무 많이 허니  머리 아프고.


화두  나가는 가운데 한마디씩 들어 두면 그날 화두가 잽혀. 그만 그럭저럭 지내다가도 아침에 화두를 들어 놓으면 그날 공부가 그날날마당   관청에도 조까이(ちょうかい, 朝會)..  옛날에는 조까이 시간(朝會時間)이라고, 왜놈들 시대 때는 조까이 시간이라고 그러지마는, 지금은 모도  시간이 있지 않는가?


허니,  조금씩 이리 들어서 여설(如說),  법문대로 행을   보라 그말이여. 법문대로 법문 듣고 고대로 조금씩  보라  말이여.

 헐라고 아침마다 내가 올라와서,   한마디라도 힘이 잔뜩 든디 이러고 있겄냐 그말이여.


  말세일수록에 어서 부지런히  깨달라 가지고 깨달은 사람이  있어야사  정법 간택을 . 혼자만 옳다고  놓으니 누가 믿어져야지?


우선 원상(圓相) 가지고 말하자 그말이여.  원상을  그려 놓고 여기 들어가도 죽고, 여기 나와도 죽는다

원상(圓相) 뭉캐버리면 되겄냐 그말이여. ‘부채로 원상 뭉캤다 고걸 옳다고 인자 허고 앉었어?


, 세상에! 춘치(春雉) 자명(自鳴)이지. ‘봄 꿩이  울음에 죽는다’고.

! 차라리 그대로 두었으면 쓰건만,  무슨 소리여?  , 의심 . 의심 나 죽겠네.


어쨌든지 하루하루 법문 듣거든, 그날그날 법문대로  ,   .

날이 더우면은  시원헌 데 앉어서도 허고. 화두 없다고  더웁나? 화두에 일념이 되아사 더위도 없어.


오히려 더우면 가만히 앉었구만. 화두만  들고 앉었으면 더위가 없어. 더위가 더운 줄도 몰라.

그런디 괜히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래 쓰냐 그말이여.


좌중(坐中) 득력(得力) ()허니,  앉어서  시간 동안에   일어나든지 그러고 도로 가서 자리에  앉고 앉고,  닭이란 놈이  품듯기, 괭이란 놈이  잡듯기   보란 말이여.

!  시킨 대로  해 봐.  철이고  철이고 애만  보란 말이여,  되는가, 되는가?


고인(古人)들 견성헌 스님네가  , 별로 지내가지 않었어. 득력시절(得力時節)  철이 별로  지내가.

 철만 지내가,   지내가면 선(禪)이 기름선이 되어서 못된 놈의 선(禪)이 되아 버려. 매끈매끈혀. 화두가  그만 암만 화두를 들어도 기름 발라  것처럼 미끄러서 도망가 버려.(39분27초~50분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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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靑天一雁沒  碧海三峯出’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초옥(草屋)’ p85 참고.

*(게송) ‘空山風雨多  花落無人掃’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방적객(訪謫客, 귀양을 사는 나그네를 찾아)’ p85 참고.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 4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 홍인대사(弘忍大師 602~675)이다.


[참고]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현음사) ‘32. 4 도신 대사 · 재송도자’ p202~206 참고. 『직지 강설() (무비 스님번역 | 불광출판사) ‘6 도신·홍인 대사’ p202~203 참고.

四祖  因栽松道者  來相見  語言相契  祖曰汝年已老  改形而來可也  道者  珍重  便行下山至濁港

4 도신 대사께서 재송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서로 계합하였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몸을 바꾸어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송도자가 아무  없이 문득 산을 내려가서 탁항에 이르렀다.


見一處女浣衣  遂云我欲借汝家一宿  女云有父母在  道者曰你肯麽  女云去問我父母宿  道者去不遠  於一樹下坐化去  其女  從此有孕  生一男子  被父母訶  及是非不能洗  便將兒子  抛於江水中去  復廻次日見兒  逆流而去  不忍復收養之

 처녀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집을 빌려서 하룻밤 자고자 하노라 처녀가 말하기를 부모님이 계십니다 도자(道者) 말하기를 그대는 허락하는가?” 처녀가 말하기를 집에 가서 저의 부모님께 묻고 주무시라고 하겠습니다

재송도자가 멀리 가지 아니하고  나무 밑에서 앉아서 입적하셨다.  처녀가 이로부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모의 꾸짖음과 옳고 그름을 씻을  없게 되어 문득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강물에다 던져 버리고 갔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날에 아이를 보니 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거두어 길렀다.


乞食度日  至七歲  携在黃梅  路上  見四祖  祖問曰童子何姓  子答曰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什麼姓  子曰佛性  祖曰雖有佛性  汝且不會  子曰非但我不會  三世諸佛亦不會  祖曰爲什麼不會  子曰性空故  祖默識其法器  卽便出家  乃傳衣付法

걸식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일곱 살이 되어서 이끌고 황매산에 갔다.  위에서 4 도신 대사를 만났다. 4조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동자는 성이 무엇인고?” 동자가 답해 말하기를 성이 있기는 하나  보통의 성은 아닙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성인고?” 동자가 말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불성은 있으나 너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동자가 말하기를 비단 저만 알지 못할  아니라 삼세제불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동자가 말하기를  본성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4 대사께서 그가 법기임을 아시고  문득 출가해서 이에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셨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문태다 ; ‘문지르다, 문대다’의 사투리.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말리 ; ‘마루(한옥에서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마루)’의 사투리.

*거량(擧揚 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나변(那邊 어찌·어느 나/가장자리·곁 변) ; 어느 곳 또는 어디.

*넨장 ;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욕으로 하는 말.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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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심두(心頭) ; 머릿속의 생각. 또는 생각하고 있는 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시광엄몰(時光淹沒) ; 시간[時光]이 흘러가고[淹沒]. 엄몰(淹沒)은 ‘빠지다. 침몰’의 뜻.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명인도고(假名引導故)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제1권)에 나오는 구절.

[참고] 〇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衆生垢重根器未純。先說三乘假名引導。故權而未實麄而未妙。及乎諸糞既除心相體信。乃示實相會歸一乘。則妙而無麄矣。諸佛能事終畢於是也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보물(寶物)이 있는 곳[所]이 가깝다[在近].

[참고]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 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3)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춘치자명(春雉自鳴 봄 춘/꿩 치/스스로 자/울 명) ;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남이 충동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허물을 드러내어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이르는 말. ‘봄 꿩이 제 울음에 죽는다(春山雉以鳴死)’에서 나온 말로, 꿩이 ‘나 여기 있소’라고 스스로 우는 바람에 사냥꾼에게 있는 위치를 알려 죽게 된다는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5/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재송도인 후편)

**전강선사(No.224)—몽산07. 몽산시 각원상인(5) (임자72.06.21) (재송도인 후편)

(1/3) 약 22분.

 

(2/3) 약 17분.

 

(3/3) 약 21분.


(1/3)----------------

양이유래(養爾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디  개롱불견이침침(開籠不見而沈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응지재추강상(想應只在秋江上)이나  명월노화하처심(明月蘆花何處尋)고
나무~아미타불~

양이유래(養爾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데, 너를 길러 온 지가, 너를 키워 온 지가 유래(留來)로 세월이 깊다.
그 네가 누구냔 말이여? 네가 누구여? 네가 나인데. 내가 나를 키워 온 지가 세월이 깊어.

내가 없어진 때가 있어야지. 어느 때든지 항상 있는 내인데. 밥 먹을 때 없나, 옷 입을 때 없나, 갈 때 없나, 올 때 없나, 잠잘 때 없나, 똥 누고 오줌 눌 때 없나, 항상 있는 ‘내’지.
‘내’지마는 찾아보면 나를 내가 찾아보면 알 수가 없어. 뭐가 들어서 이렇게 밥 먹자, 옷 입자, 가자 오자, 천 심바람(심부름), 만 가지를 다 시키는고?

내가 들어서 일체 천사만사(千事萬事)를 다 이름 붙이고, 모냥 맨들어내고 빛깔 붙여내고. 그놈이 들어 그러지, 그 허지. 무엇이 허는고?
내 하나, 개안즉견(開眼卽見)이다. 눈을 뜰 것 같으면 모도 보인다. 천 가지 만 가지 백만 가지 물건도 다 보인다, 눈만 뜨면. 눈감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뭣이 있어? 천하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없지.

세상에 이런 놈이 내게 있어서 이놈을 길러온 지가 세월이 오래다. 금생에는 또 와서 이 몸뚱이 하나 받아 가지고 이 몸뚱이를 끌고 댕긴다마는, 내생에는 또 뭐가 되어서 어떻게 살라는고? 뭣허고 댕길라는고?
응, 배때기를 깔고 꼬리 달려 가지고 기어댕길라는가? 뛰어 댕길라는가? 바다 속에서 헤엄질을 치면서 어족지류(魚族之類)가 되아 가지고 돌아댕길라는가? 뭐가 될 테냐 이 말이여? 그놈 생각해 볼수록 참 난사(難事)하지.

과연 유래(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디, 너를 이렇게 키워 온 지가 유래(留來)로 세월심(歲月深)인데.
항상 사람이나 허나 못 허나 되어 가지고 사람 노릇이나 하고, 늘 이 몸 또 내버리고 또 새 몸뚱이 받아 가지고 또 사람 노릇 허고 살다가 또 내버리고 또 되고 험사 차라리 거 무던하겠는데, 그렇게 되들 안 해. 된 법이 없고.

천억만 년에 한번 이 몸뚱이 얻어 가지고 사람 노릇 좀 허다가, 그만 사람의 짓을 잘 못해 놓으면은 별놈의 죄가 다 짓게 되고, 그래가지고 그놈의 죄 받느라고 들어가서 별놈의 몸뚱이를 다 받고, 별놈의 감옥생활을 다 하고, 별놈의 배고픈 귀신 생활을 다하고. 이놈의 짓, 이거 참 무슨 짓이냔 말이여?
인생의 문제다. 인생이란 이러헌 문제가 있구나.

상응지재추강상(想應只在秋江上)이다마는, 생각해 보건댄 추강상(秋江上)에 있을 듯 허다. 그 가을, 깨끗헌 가을에 그 강상에 어디 있지, 없어?
이 몸뚱이 속에, 그 강상(江上)인들 멀리 볼 것 뭐 있나? 깨끗한 곳을 말하니라고 강상이지. 그 강상에 있을 듯 헌디, 깨끗헌 그 깨끗한 일체 못된 마음 없이 일체 번뇌 망상 없는 곳에 그 깨끗한 데 있을 듯 헌디.


명월노화하처심(明月蘆花何處尋)이냐. 달도 밝고 갈대꽃도 흰디 어느 곳에 있느냐? 갈대꽃도 허옇고 달도 훤허니 깨끗헌데, 어디 있는데 어디가 있느냐?
허니, 그 깨끗한 곳 명월노화처(明月蘆花處)에, 일체 번뇌 망상도 없는 곳에, 일체 더러운 추헌 악심 없는 곳에, 아 거기에 있어.
그놈 하나, 그만 그 바로 봐 버리면은 그만 ‘내’일텐데, 내 낯반대기를 못 본다. 이것이 인생 문제니라.


사조(四祖) 도신대사, 오조(五祖) 홍인대사 재송도인(栽松道人)한테 법을 턱 전해버리시고서는, 오조 홍인대사는 법을 받아 가지고 오대산이 아니라 황매산에서 자리를 정하시고 중생 교화를 허고 계신다 그말이여.
일곱 살 먹어서 어머니 작별 딱! 해 버리고는 그만 그길로 들어와서 법(法) 받아 가지고는 얼마 좀 보림(保任)허시다가 차츰 조실이 되아 가지고는 인자, 황매산에서부텀 중생 교화를 허기 시작하시는데, 어머니가 찾아왔다 말이여.

자식을 그렇게 낳아서 그렇게 길러서 겨우 정(情)들자, 기가 맥힌 정이 들자 모자(母子) 상별(相別)을 해버렸으니 오직 헐 건가? 항상 자식 생각이 나서, 아들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아자(兒子)는 어디 가 있는고?’ 주소를 알 수가 있나? 처소(處所)를 가르켜 주었나? 그대로 가버렸으니 어디 가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 그저, 그러나 저러나 하여간 자식 있는 곳을 묻기도 허고 찾아보기도 허고 열심히 인자 자식 한번 만나 볼 마음뿐인데, 그러자 인자 세월이 십 년이 되았는지 원, 이십 년이 되았는지 그렇게 세월이 깊었는데.

그 어머니는 처녀로서 아무 연고 없이, 부부지간도 없이 아들 하나를 낳아 가지고 길렀는데, 간 곳도 온 곳도 없이 이리 되아 있으니, ‘내가 뭐 어디 다시 재혼헐 리도 만무허고, 그대로 얻어먹고 댕기지 뭐 별거 있나?’ 허다가는, 아들이 중이 되아서 황매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이거 요행히 들을 수가 있지, 모를 수가 있나? 어찌 공교(工巧)히 공교히 참 말을 들어 가지고는, 아들이 중이 되아서 조실 스님이 되어 가지고 중생을 교화한단 말을 듣고 찾아갔다.

이거 후편(後篇)인데, 후편을 내가 잘 안 하는데, 그 잘못 들으면 오해허면 재미없어. 그래 이제 그런 역경 속에, 그걸 잘 들어야 되거든.


어머니가 찾아 들어가니깐 그 아들이 본체만체 혀. 오조 스님, 천하에 오조(五祖) 스님인데, 오조 스님 같이 사사무애(事事無礙)를 다 깨달라서 환허니 도통을 했는데, 도통한 오조 스님이 어째서 어머니가 찾아갔는디 그 어머니를 그렇게도 박허게, 박정(薄情)하게 대하냐 그말이여. 본체만체 혀.
아! 그러더니, 본체만체만 해 버리면은 혹 모자지정(母子之情)을 잊어버리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마는 어머니를 갖다가 “방에다 가둬 버려라” 어머니를 거다 방에다 가두고서는 “밖으로 문을 채워버려라”
어머니를 세상에, 가두고 밖에다가 문 채워버린 법이 있겠어? 왜 그래? 참 그 해석허기 어렵지.

문을 채워번지고는 밥을 안 드리네. 때가 되어도 밥을 드린 법이 없어. 그러니까 공양주(供養主)나 그 채공(菜供) 허는 사람들이 몰리(몰래), 오조 큰스님 몰리 가만히 쇳대를 끌르고서는 밥을 드렸다. 그래 그 어머니는 갇혀 가지고는 그 밥을 잡순다. 그러니까 갇혀 가지고 얼마 좀 산 것이지.

나중에 오조 큰스님께서 그것을 알고서는 생벼락이 났다. “어째 문 잠가번지고 다시 그 문을 끄르지 못하게 해 놨는데, 열쇠를 가지고 문을 끄르고 밥을 갖다 드렸냐?”고, “어느 놈이 그렇게 했느냐?” 야단을 내고 산문출송(山門出送)을 시켜번지고.
그래 놓으니 뭔, 그 나중에는 누가 뭐 밥 줄 수가 있나? 통 뭐 가만히 안 줬어. 밥 준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뭐 갇혀 있어 가지고는 그렇게 오래 오래 두니깐 아사(餓死)하지 별 수 있어? 굶어 아사해서 돌아가셨다.

아! 세상에 어머니를 그렇게 굶어 죽일 수가 있나?
그 후편에 그런 것이 있으니, 그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잘 허도 않지. 허지마는 그걸 잘 들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게 참, 그게 참, 법이여. 역경(逆境) 설법이여.

아! 그만 대중들이, 오조 스님 대중이 참 많어. 칠백 명 대중이나 되니까. 오조 스님 대중이 그렇게 많은디, 대중들이 오조 스님 법을 믿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을 배우는데, 아! 생사해탈법을 배우는데. 생사해탈법을 배우는 큰스님한테 다시 그 무슨 뭐 얼마나 믿어 버렸어. 생명을 맽기고 법을 배우는데.
조금이나 신(信)이 불신(不信)을 혀? 불신허면 뭣할라고 그 밑에 가 있어? 무슨 놈의 법을 배우며?
믿음이 없는디 무슨 법을 배와? 믿어지지 않는디 무슨 소용이 있어? 아무 소용없는 것이여. 비방심만 나는디 무엇 허게? 점점 손해만 나지.

점점 믿고, 법을 배운 칠백 명 대중이 똑같이 한마음 한뜻으로써 오조(五祖) 큰스님만 믿고 법을 배우는데, 허는 짓이 어머니를 굶어 죽이다니! 허는 짓이 믿을 수가 없네.
'세상에, 어머니를 죽이다니! 굶어 죽이다니!' 배척심이 입승(立繩)으로부터서 모도 나가지고는 전 대중이 단결을 허고 결심허고 그만 배척을 해 버렸네. 반대를 해 버렸어.

‘그 세상에, 세상 악인도 그렇지 못헐 턴디, 도인(道人)이 대도를 통한 도인이, 부처님의 정맥(正脈)을 바로 이어 온 오조 스님이 이런 짓을 허니 우리가 그 법 믿어 뭣혀? 그까짓 법을 믿어 뭣하며, 거기서 무엇을 배울 것이냐? 부모를 굶어 죽이는 거기에 무슨 법을 배울 것이여’
전부 반대를 해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서는 그 반대해 가지고는 황매산에 그 오조 스님 밑에 있을 것이 없으니깐 그길로 그만 걸망짐 다 싸 짊어지고서 쏵 도망갈라고 작정을 딱 해 놨는데, 공중에서 공청(空請)이 있어.

 

공중에서 공청을 허는 것은 누가 공청을 허는고 하니, 어머니가 공청을 했어. 그 재송도인 어머니가 공청을 허기를,
“대중들이여. 오조 큰스님을 믿는 대중들이여. 너희가 그런 사견심(邪見心)을 가지고 도를 구할 수가 있겠느냐? 나를 굶어 죽이는 것은, 굶어서 죽게 만든 것은 단식을 시켜서 내가 죽게 만든 것이다.
내가 이번에 금번에 오조 스님 회상에 들어와서 에미라고 찾아 들어와서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아들!’허고 모자지인연(母子之因緣)을 계속을 헌다. 모자지인연을 계속해 가지고 내가 그 애정을 놓지 못하고 있으면은 나는 해탈(解脫)할 기회가 없다.
언제 내가 발심(發心)해서 해탈을 허겠느냐? 그 도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 모도 애착심, 그 애(愛) 그것 때문에 생사해탈을 못허는 법인디, 내가 애정 애착심 그놈을 놓아 버리고 끊어버리고 단식허고 그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애착 끊어버린 그 속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용맹정진을 했다” 그 용맹정진 허는 것은 그도 알았지, 모를 리가 있는가? 성모(聖母)인디.

“그래서 그 애착심 끊고 금생에 결정코 성불(成佛)을 허게 맨들어서, 나를 성불허게 맨드시느라고 나를 단식을 시켜서 나를 이렇게 굶겨 죽였다마는, 몸뚱이는 내가 내버렸다마는 내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다”(처음~21분32초)





(2/3)----------------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나는 인자 조금도 생사에 걸릴 것이 없고, 생사에 맥힐 것이 없이 확철대오를 해서 가니, 대중들이여 느그 그런 사견심(邪見心) 버리고, 그러헌 상견심(相見心) 다 놓아 번지고 다시 더 믿어서 대도를 믿어 깨달라라”

그러헌 공청이 있어서, 아! 대중들이 그만 깜짝 놀래서 ‘아하, 오조 큰스님께서 그러헌 방편(方便)으로 써서 어머니를 제도허니라고 그랬구나’ 그 어머니 제도 편이여. 어머니를 그렇게 제도허니라고 그렇게 헌 것이여.

아, 그러니 그 일시의 단식해 가지고는 그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허게 만드는 그러헌 방편이 있다면은 아! 그런 방편을 반드시 쓸 수 있지, 안 써? 누대(累代) 겁(劫)을 앞으로 또 무량겁을 밤낮 그저 그만 애욕에나 빠져 가지고 대도를 닦지 못하고 생사죄나 받게 만들어 놔?

그러헌 후편(後篇)이 있어.
그러니 무수 방편(無數方便)이 있어. 방편이라는 것이 한량이 없어. 그러헌 방편도 있고, 저러헌 방편도 있고, 도인의 방편이 천만 가지의 방편이 있다 그말이여. 오조 스님 후편이 그거, 그까장 했어.


화두를 해 나가는데, 본각(本覺)이 미명(未明)이면, 내 화두, 해 나가는 화두, 본각.
내 화두(話頭), 모도 화두 얻어서 지금 화두를 해 나가는데, 그 화두가 미명(未明)이면 일일유의(一一有疑)다. 어떤 화두든지 다 의심이 있어.
내가 공부헌 화두를, 내 배운 화두를 깨닫지 못해서 의심이 있는데, 다른 화두가 의심이 없을 것인가?

깨달은 화두, 그놈의 의심이 확철히 없어 버려야사 ‘어떤 게 조사서래의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아, 그 확철히 의심이 없어야사 다른 화두가 다 의심이 없지. 벌써 다른 화두에 의심이 있으면 본각(本覺)이 미명(未明)이여. 본각만 바로 깨달라 버리면은 다른 화두에 의심이 없는 법이여.

본각(本覺)이 미명(未明)이면, 본각을 깨닫지 못하면은 일일유의(一一有疑)여. 낱낱이 의심이 있어. 대의즉유대오(大疑則有大悟)니라.
그러니 다른 디, 이것 좀 허다가 저것 좀 허다가 그러지 마라. 공부헐 때 요것 쫌 해보다가 저것 좀 해보다 그러지 말어. 꼭 한 가지만 고대로 해.

‘이뭣고?’면 ‘이뭣고?’뿐이지?
‘이뭣고?~’ 그저 그 밥 먹는 놈이고, 옷 입는 놈이고, 가는 놈이고, 아시방요(屙屎放尿) 헌 놈이고, 아시방요는 똥 싸고 오줌 누는 걸 아시방요라고 헌게, 아시방요 허는 놈이고.
일체처에 가고 오고 그놈이여. 낱낱 가는 놈이 오는 놈이고, 오는 놈이 가는 놈이고, 밥 먹는 놈이 옷 입는 놈이고, 물 먹는 놈이 오줌 눈 놈이고. 아, 그놈이여. 다른 놈이 아니여.

그러면 ‘밥 먹는 놈이 뭣고?’ ‘옷 입는 놈이 뭣고?’ ‘가는 놈이 뭣고?’ 이렇게 하면 쓸 것이여?
그렇게 하지를 말기 위해서, 그건 여러 가지 그렇게 자꾸 명상(名相)을 때려 붙일 것 없고.

‘이뭣고?’ 그놈이 총상(總相)이여. ‘이-’ 허면 가는 놈이나, 오는 놈이나, 밥 먹는 놈이나, 일체처에 행동하는 놈이 고놈이 이놈이여.
그러니 이놈이 ‘이-’ 이래 놓으면, ‘이-’ 고때 그놈이 뭐냐? 그말이여.


‘이-’, 벌써 ‘이-’ 해놓고 보니 ‘이것, 이놈이 뭐여?’ 그말이여. ‘이게 뭐여?’ 그말이여.

‘이- 뭣고?’ ‘이뭣고?’ ‘아, 이- 뭣고?’ 또 ‘이- 헌 놈이 뭐냔 말이여?’
자꾸 일받아. ‘이-’ 헌 놈을 또 일받고, ‘이-?’ 는 그 의심이니까.

‘이-?’ 그 뭐냔 말이여? ‘뭣고?~’
‘이-’ 해 놓고는 알 수 없는 관(觀)이 딱 백혔다. ‘이- 뭣고?’ ‘'대체 이뭣고?'


아, 이뭣고 하나가 필경 나오지, 안 나와?
고 ‘이뭣고?’ 헌 놈이 그놈이, 고 그 자리서 ‘이뭣고?’ 하는데 그놈이 안 불거져? 바로 낯반대기가 나오지. 안 나와?

‘이뭣고?’ 아! 이렇게 의심을 할 것 같으면은 의즉대오(疑則大悟)다. 의심이 크게 일어나 가지고는 필경에 깨달을 때가 있어.

대번에 ‘이뭣고?’를 해 가지고 그만 하루나 이틀이나 ‘이뭣고?’ 해 그만 툭 깬 이는 과거에 전생에 많이많이 닦아 나와 가지고 금생에 왔기 때문에 그만 그렇게 쉽게 깨달은 것이지, 대번 금생에 처음 나와서 배워 가지고 그렇게 될 것인가?
화두라는 것이 과거에 많이 해 나왔기 때문에 금생에 와서 또 그 인자 그렇게 쉽게 깨달아 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는 것이고 그 상근대지(上根大智)가 되는 것이지, 대번 되는 게 아니여. 이렇게 공부를 똑 해서 크게 대오를 헐 것이니라.

각부득장심대오(卻不得將心待悟)하라. 이건 낱낱이 있어 이런 말이.
각부득장심대오 하라. 문득 시러금 대오를 기다리지 말아라. 대오를 기다리는 것은 어서 깨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어서 깨기를 기다리는 것이 망상 아니냐?

어서 깨기를 기다리는 데 망상이 나는데, 그 망상이 일어나면은 그 망상으로 인해서 별것이 다 일어난다. ‘깨달으면은 그만 그 깨달은 것이 어떤 것인고?’ ‘깨달으면 어떤 변화가 있는가?’ ‘깨달으면은 생사에 어떻게 초월허는가?’ 뭐 별별 생각이 다 나.
그러니 어서 깨달을 생각을 내지 마라. 어서 깨달을 생각만 내면 화두에 지장이 적지 않다. 대오지심(待悟之心)을 두지 말아라.

우부득이의구오(又不得以意求悟)허며, 또한 뜻으로써 깨기를 구해.. 똑같은 말이지마는. 늘 마음으로써, ‘어서 못 깨달라? 어서 깨달라야겠는디’ 그런 구오지심(求悟之心)도 두지 마라.
조금 달러. 깨달을 마음 두는 것과 구오지심을 또 두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말이여. 깨달음을 구하는 생각조차 두지 말아라.

또 인자 또 이치로 들어가서, ‘그래 아무리 찾아봐도 모냥이 없으니 모냥이 본래 없는 것인가? 모냥이 본래 없는 것인디, 없는 놈 까장도 다 그 공(空)해 버린 것인가?
그러면 없는 놈인디 없는 놈까지도 다 명상(名相)이 없으니, 그 아주 영원히 없는 그 진공(眞空), 참 공, 아주 공, 그놈이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보다’ 고러지 말란 말이여. 고런 것이 못써.

고건 그 이치로 해(害)를 짓는 것인디, 없는 놈인디 없는 놈까장 뚝 떼 놓고 보니, 참 진공이거든.
‘옳다! 그 진공이다. 그러면은 진공(眞空)이라고 아는 놈이 그놈이 묘유(妙有)다. 그럼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가르켜 논 게 그것인가 보다’ 요렇게 말란 말이여.

고렇게 선(禪)을 알았다가는 그건 참 영원히 그건 참 깨달도 못허고, 그런 이치 참선에 떨어져서 참선이 아니여. 그까짓 그럴 것 같으면 뭐 뭐 입으로 다 따져서 다 말해 버리고 말지 뭐, 소용이 있어?
그런 입으로 견성했다고 지금 고렇게 떠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꽉 찼어. 삼공이요, 정관이요, 뭣이요, 다 따지고 다 해석을 혀.

무(無)로만 봐 버려도 다 유상(有相)도 무(無)지 뭐여? 유상도.
한 가지 무슨 유(有)가 있다 하드래도 유(有)도 이름이지, 이름 하나 붙였지. 거기에 무슨 이름이 있냐 그말이여.

작대기도 이놈 작대기라고 이름을 하나 작대기라고 붙였다. ‘작대기 이놈이 빛이 붉다. 작대기 이놈이 길다’ 맨 내가 붙였지. 작대기 제 놈에 들어가서 작대기 제가 ‘내가 작대기다, 내가 길다, 내가 냉기다’ 뭐 그거 있나? 모도 이렇게 붙여 보면은 다 붙일 수 있어.

입을 열어 가지고는 왼통 요런 놈의 이치로 때려 붙여서 야단친 것이 그것이 잘못된 것이여. 거 잘못된 참선이여.
그래 가지고 지금 무슨 뭐 일체 공안을 다 갖다가서 인자 붙여 대서 이르지. 그 되지 않는 소리여.

요새 구두선(口頭禪)이라는 게, 입 선, 말로 선. 깨달든 못하고 구두선.
무슨 말을 못혀? 구변가(口辯家)가 뭔 말을 못혀? 다 할 수 있는 것이여.

그러헌 작유무회(作有無會)를 짓지 말아라. ‘뭐 있는 것이다, 있는 놈까장도 없는 것.. 있는 놈도 없고, 없는 놈도 없고, 유무(有無)가 다 구공(俱空)헌 것이다’ 요런 생각을 짓지 말아라. 이건 이편에 들어가서 한 소리여.

부득작허무회(不得作虛無會)하라. 허무회(虛無會)도 ‘허무, 본래 허무다. 본래 그러니 생사도 없지, 허무니. 허무니 생사도 없다’
허무 허무, 그 신선(神仙) 모도 그 진공이 허무여. 노자도(老子道)도 허무지, 뭣이여?
그런 것, 그 신선도나 그런 건 허무도 있고, 무슨 현빈(玄牝)도 있고 별별 뭣이 있지마는, 우리 참선법은 그런 것 없어. 허무회(虛無會) 짓지 마라.

어찌던지 이치 길이 제일 손해인 것이여, 공부에는. 보통 망상보담도 이로(理路)가 제일 못써. 이치 길이.
그 이치 길을 짓지 말아라. 모도 인자 이치 길을 지어 가지고는 뭔 이치가 나가지고 ‘허무회(虛無會)다’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견성했다 하거든. 그 견성이여? 그것이? 허회(虛會)를 짓지 말아라.

또 그뿐 아니다. 부득작철소추(不得作鐵掃箒)하라. 쇠빗자락이라고 마라.
쇠빗자락은 빗자락이 오직 견고헌가, 쇠빗자락이니. 그 쇠빗자락으로 쏵 쓸어버리면은 그 본 땅까장 모도 패이지. 얼마나 여지없이 쓸려지는가.
그러니 그 철소추(鐵掃箒)를 짓지 말아라. ‘일체 번뇌 망상을 다 쓸어버리는 쇠빗자락이다. 뭐 있나? 일체 망(妄)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요런 거 짓지 말아라.

이 활구선(活句禪)이여. 사선(死禪)에는, 고러헌 모도 고 사선이지마는 활구선에 가서는 이런 거 없어.

부득작계려궐용(不得作繫驢橛用)해라. 나귀 매는 말뚝, 나귀 매는 말뚝은—나귀라는 놈은 천하에 영리한 놈이기 따문에 둔한 놈보담 영리한 놈이 훨씬 더 이치가, 그놈이 이로(理路)가 많애. 이치가 많고. 미련헌 건 하나를 겨우 생각하면 영리헌 건 한 백 가지나 천 가지나 생각하는 거여.
나귀란 놈은 어떻게 영리헌지, 그놈이 짐승일지언정 말이라도 나귀는 굉장한 영리헌 놈이여.

나귀 매는 말뚝이라고 말아라.
나귀란 놈이 영리한 놈이여. 잘 달아난 놈이고, 그놈이 말뚝도 뺄 수 있고 그놈이 입으로 뭐 별짓 다할 수 있은게, 말뚝을 때려 딱 박아놓고, 말 딱 때려 매놓은 그 계려궐(繫驢橛)을 짓지 말아라. 나귀같이 영리허고 나귀같이 그 이로(理路)가 많은 놈을 꼼짝 못허게, 나귀란 놈 그런 이로(理路) 못 나게 꽉 때려 매놓은 고러헌 생각을 짓지 말아라.

참선 허는 사람들이여. 이렇게 그러헌 이로(理路)를 짓지 말아라. 이치 길, 요런 이치 길만 지으면은 그건 참선도 아니고, 그건 죽어 가는 혼(魂)이 망상만 더허고, 견성켕이는 그 뭣이여? 도깨비지.
이런 이로(理路)를 짓지 말아라.(21분33초~37분52초)





(3/3)----------------

종교의단(從敎疑團)이 일성(日盛)이다. 날이 맞도록 항상 의심이 일성(日盛)이다.
오늘보담도 내일은 의심이 더 일어나고, 또 명일은 또 더 일어나고, 자꾸 의심만 일어나는 것이 화두다.

천 망상, 만 망상이 안 나는 법 없다. 망상이 나드래도 나는 놈 그만 두어라. 그 나는 놈을 어떻게 할 테냐?
어린아 때, 젖 먹을 때, 어머니한테 커날 때, 고때 생각 같은 것 나는 것이라도, 그게 났지 안 나? 누가 안 나?
중생심이라는 것은 물에 파도와 같애서 항상 일어나는 것인데 안 일어날 수가 있나? 나거나 말거나 두어라.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 일어나는 염기를 두려워허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하라. 그 네 화두하나 챙기는 것만 그놈만 어쨌든지 단속해라. 그저 ‘이뭣고?’ 그저 ‘이뭣고?’
일어나면 언제 일어나면 그까짓 일어날까 뭐, 일어나는 것 무섭고 뭐 말고 ‘이뭣고?’ 이뭣고?만 챙겨.

그러드래도 그놈의 이뭣고? 챙기는 가운데 그 잡념이 하도 먼지같이 많어서 중생 잡념이 꽉 찼어. 그 꽉 찬 중생 잡념 속에서 이뭣고? 한 번 돌이켜 일으키는디 좀체로 잘 안 나와? ‘이뭣고?’가 잘 안 나와. 안 나올 때가 있어. 그때에 사마(邪魔)가 있다 했어, 사마.

화두를 일으킬라 하면은 나귀를 몰고 물에 들어갈라는 것 같은 때가 있고. 냉랭지계가 있고, 냉랭(冷冷)해서 화두가 안 나온 때가 있고. 열렬(熱烈)혀, 심두(心頭)가 더웁고 더워 열렬해서 또 안 나온 때가 있고. 그놈이 거 참 어려와. 과연 그러면 어려와.
거다가 잠 오지, 또. 조금만 또 조용허면 잠이 오지. 화두를 허면 그려. 또 잠 안 오면, 또 그놈이 일어나지. 그 이뭣고? 찾아보면 이뭣고?는 희미허니 나다가 말아 버리지. 고약혀. 참선허기가 그렇게 고약혀.

허지마는 참선이 아니면은 정법(正法)이 없어.
정법이라는 것은 생사를 해탈하지마는, 한 번만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깨달라서 보림(保任)만 한 번 해 버리면은 그 깨달은 곳을, 그 깨달은 내 본래 주인공을, 본래 확철대오 깨달은 그 일체 그 깨달은 곳에 가서는 중생념이 거 물들리지 않고 아무리 중생 속에 들어가도 소용없고 헌 그런 본각(本覺)이 있어.

우리 본각이 있어. 한량도 없는 본각이 있는데 그놈을 깨달라 놓아사 정법! 그 정법을 깨달라 놓아사 영원히 인생 문제를 해결이지.
그놈을 깨닫지 못하면은 복(福)? 암만 복을 뭐 천지 바다같이 지어놔도 그건 다할 때가 있어버려. 복 다 받으면 그만이여. 그놈 받아 버린 뒤에는 또 마찬가지여. 역사가 없으니까, 그놈의 역사가 없는 동안에 뭐 도로 또 미(迷)해서 받지 뭐, 허는 수가 있나?

허니, 아무리 안되고 안되드래도 참선을 안 헐 수가 없어.

허니까, 다 환(幻)이여. 다 환이여. 환(幻)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환, 환이여.
지환즉리(知幻卽離)니라. 환(幻)인 줄 알면 여의어라. 왜 환인 줄 아는데, 환에 꺼꾸러지냐?


무슨 주문이니 뭣이니, 그 주문을 많이 외우면은 병이 낫고, 그 주문을 많이 외우면은 부자가 되고, 그 주문을 많이 외우면은 소원성취를 다 한다. 아들딸 다 낳고.
그 짓, 글씨 그것은 글씨 안 되는 건 아니나 되기는 되지마는, 그 일생 가운데 그것 좀 해서 얻어 놔 봤던들, 고것 조금 잠깐 동안 누리다가 나 죽어버리면 그만이요. 그런 것들이 다 그만 인자 아무리 얻은 것이라도 필경 그것은 다 내가 내버리는 건 사실인디, 그것 가지고는 어떻게 허냐 이 말이여.

그것 가지고 어디, 그 환(幻)이지. 그 환이지. 내가 암만 잘살아 보지, 잘살아 본 그까진 동안에 그건 환(幻)이지 뭣이여?
환인 줄 알거든 여의어라. 지환즉리(知幻卽離)니라. 그러니 참선허라는 것 아닌가? 참선 정법 밖에 더 있는가?

중이 되아 가지고 중이 사무승 노릇이나 하고, 사무나 보고, 절이나 지키고 앉아서 독살림이나 해서 쌀 들어오면 고놈 밥해 먹고, 돈 들어오면 고놈 밥해 먹고 부처님한테 올린다 하고, 뭐 들어오면 먹고, 고러고 사는 것이 중인가?
그 중 그렇게 살아 뭣 헐 건가? 중이라는 것이 고렇게 살아 가지고 그 부처님한테 올린다 하고는 제 먹고 제 살고 제 옷 해 입고, 거 뭣이여? 성 팔아 가지고는 매불자생(賣佛資生)하는 것이 뭣이여?
그러니 절 맨들어 가지고 벌써 부처님 턱 맨들어 놓고 앉어서, 맨 들어온 것이 부처님한테 기도헌다 뭣 헌다 해 들어와 가지고는 고놈 가지고 인자 혼자 독살림, 독식, 독생활하는 것이지. 그게 뭣허는 것이여?

척 들어오면은, 한 푼이라도 들어오면은 들어온 놈 그놈을 가지고는 척 들어와 부처님한테 올리면 부처님이 등상(等像) 부처인디, 냉기로 깎아서 맨든 부처님이나, 쇠로 지어서 맨든 부처님이나, 흙으로 모도 뭉쳐서 맨든 부처님이나, 그런 부처님 등상인디, 등상한테 놓으면은 그 부처님이 그것을 무슨 잡순가? 그걸 뭔 어쩐가?

다맛 거다가 올려 놓으면은 그놈을 척 내려와서 대중이—그 고마운 쌀이나 고마운 돈이나 그 어려운 돈을 가지고 왔으니, 그놈 갖다가서는 밥 잘 지어서 대중이 그놈을 먹고는 아침저녁 공부를 허니, 항상 공부를 허니,
위성도업(爲成道業)을 허니,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해서 그 밥을 먹고 원융하게 앉어서 도 닦고, 아! 그래야사 고 시주(施主)가 복이 얼만고? 공부인(工夫人), 한 때 공양 올린 공덕으로 만 생을 부자가 된다고 했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보지. 도 닦는 스님네 옷 한 벌 해주고, 도 닦는 스님네 한 때 공양(供養) 올린 것이 삼세제불(三世諸佛) 공양 올린 것보담 낫다 했네.
삼세제불은 다 이미 일 마쳐 버려서 부처님 되어 버렸으니 뭐 뭐, 우리 중생은 지금 도를 닦아서 대도를 이룰 그러헌 도학자들을 밥 해 올리고 공양 올리면 복이 많다. 그래 공양 들어온 것이 그것이여.


화두를 이렇게 일일(日日) 일일 일성(日盛)이다. 날마당 날마당 화두만 챙겨서 그저 안되드래도 챙겨라. 안될 때 고때 챙기는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잘될 때야 그 무슨 뭐, 제대로 잘될 때야 화두 뭐 그렇게 힘 안 쓰고 잘되지마는, 되게 안될 때가 있는디, 되게 안될 때에 퇴타(退墮)허지를 말고 화두를 추켜들어라. 화두를 거각(擧却)해라.

고 안될 때 자꾸자꾸 해야사, 거 안될 때 막 망상이 녹아지고, 망상이 뿌럭지가 빠지고, 버릇이 잽히고 그런 것이지, 안된다고 그만 내버리고, 안된다고 그만 방심해 버리면은 항상 그 모냥이다.
좀 해보다가 안된다고, “에이! 때려치워 버려, 그녀러 것” 또 좀 해보다 안된다고 고만 내던져 버리고. 그것 안되아. 안될 때에 그때에 꼭! 정신을 챙겨라.

잘 알아들어. 이거 잘 알아듣는 말이여 이게.

내가 아침에 배가 고파 법문이 당최 안돼. 어제 저녁에 쌀가리 갈아 논 것 쬐끔 먹으니, 새벽에 좀 가라앉으면 먹으면 조금 나은디, 뭐 아침에 해 줘야지? 긍게 말이 나와야지?
이거 하기는 이것 꼭 헐 편(篇)인디. 아이고! 입만 해준다고? 내일 아침에 헌다고? 해 줘야지?

그런데, 날로 일성(日盛)을 해라. 날로 일성(日盛)이라는 건 조금씩 더 허라는 것이여. 오늘보담도 내일은 좀더 잡드리를 허고, 또 좀더 잡드리를 허고.

그 숭악한 번뇌 일어날 때, 그냥 아이고 그 안된게 그만 내던져 버리고 돌아댕기고.

내던져 버리고 그만 그거 안 허고 돌아댕기면 시원하거든. 그래도 아무 일도 없고.
그래서는 백만 년 해도 안되아.

날마당 더 더 애쓰고 더 그렇게 일성(日盛)을 해라. 일성 까닭이 있어.
이륙시중(二六時中)에 열두 때 가운데—하루가 열두 때여, 그 전에는. 지금은 24시간이지마는. 열두 때 가운데, 하루 열두 때 가운데 때마당 조금씩 더허고.
사위의내(四威儀內)에, 앉으나 서나 누우나 가나 그때에도, 그 누웠을 때 좀 곤해서 누울 때라도 그때라도 그 성의를 다해라. 정성을 다해라.

생사해탈 아니냐? 생사해탈인데, 죽고 사는 이 몸뚱이 생사를 면하는 법인데, 이 법을 그렇게 허다 말다가 안된다고 안 허고, 그럴 것이냐? 발심한 학자들이야. 참으로 정신채려라.

단단제개화두(單單提箇話頭)해라. 홑으로 홑으로 일체 그 먼지같은 망상 번뇌가 필경 하나도 붙지 못허게 단(單)으로 해라. 단(單)으로만 꼭 그저 ‘이뭣고?’만 해라.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화두를 그렇게만 똑 해 나가거라.
밀밀회광자간(密密廻光自看)이 될 때가 있다. 은밀히 은밀히 광(光)을 돌이켜 스스로 떡 보면은, 화두를 보면은 화두밖에는 없다. 알 수 없는 화두만 하나 딱 나오는구나.

거 굼벵이란 놈이 그 굼벵이 속에서 껍..(녹음 끊김)

와도 있고 가도 있지, 그놈이 없어진 법이 없어. 간(看)이 그놈이 알 수 없는 놈뿐이네.
알 수 없는 놈이—알 수 없는 놈을 생각해서 알 수 없는 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딱 백혀져 있어. 물 달처럼. 물에 달 떨어져 있는 놈처럼.

와도 간(看)이 있고, 가도 간(看)이 있어. 딱 붙어 백혀 있다.
그래 고놈이 인자 그 내나야 그 의단(疑團)이여. 의단이 그놈이 독로(獨露)헌 놈이 그대로 있어.

그래 가지고는 의단 하나 딱! 들어와서 의심이 있을 때는 자미(滋味)도 없어. 그 ‘공부가 글쎄 잘된다, 이만 했으면 잘된다, 자미가 있다’ 고것이 벌써 틀렸어. 그 간(看), ‘참 간(看)’이 아니여, 화두가.
‘의심이 잘된다, 공부가 이만 했으면 참 잘되는구나’ 고러헌 건 못써. 고놈이 필경 일체 또 잡념을, 못된 마음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여. 그런 마음도 통 그것 나드래도 그까짓 것 간섭 말아라. 똑! 화두만 간(看)해라.

또 그래서 ‘안된다’고 헌 마음이 또 떡 일어나 가지고는 번뇌가 난다, 거기서.
‘아, 또 어째 이놈이 또 이래 안되는고?’ 고 번뇌(煩惱) 한번 낼 때, 일체 번뇌란 놈이 다 따라 들어온다. 고때에 가서. 그 고약한 것이 쬐꼼만헌데 들어온다.

허니까, 그래서 의득중(疑得重)이다. 의(疑)가, 그 의심이 크게 중(重)할 때가 온다.
그러헌 화두가 자의(自疑)다. 인제 제대로 화두가 나와서 몸에 딱! 들어붙어서 추역불거허고, 내던져도 가지 않을 때가 있을 터이니. 해 봐라! 내가 거짓말 했는가? 해 보면 알 것 아니냐.

 

오늘 생일 불공(生日佛供) 오셔서 법문(法門)을 들으셔서 좋습니다. 하지마는 이 법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법문입니다.
이 법문은 똑 참선허는 공부인이 화두 헌 사람이 들어야 알지, 그 이외에는 아무리 들어봐도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 헌 사람만 알고, 화두 않는 사람은 아지 못하니까 법문이 아니고 뭐 시원찮고 뭐 어쩌고.. 화두 안 헌 이가 아지 못허고 들어도 그 공덕이라는 것은 말로 헐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방 들었은 게 깜깜허지? 그 참, 법문 듣는 그 인연, 그 법이 기가 맥힙니다. 오늘 아침 생일 불공에 제일가는 것이 법문입니다. 오늘 아침 생일에 오늘 이런 법문 들은 것을 대단히 참 큰 공덕으로 잘 알으시고.

앞으로써 항상 참선은 못혀. 참선은 아직 처음이라 못혀. 이치를 알어야지. 못허니까,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옴 마니 반메훔’을 늘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은 부귀에도 제일 좋습니다. 뭔 재수에도 제일 좋고. 거 얼른 몇 번 해서, 얼른 몇백 번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좀 많이 하는 것이지. 날마다 일과를 정해 놓고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항상 ‘옴 마니 반메훔’을 부르시란 말씀이여.

그러면은 요까짓 몸뚱이, 요 몸뚱이만 살다가 죽으면, 죽은 뒤야 뭐 아나?
허지마는, 요 몸뚱이 가지고도 자연 번뇌, 자연 집안에 마장(魔障)이 없어지고, 이 몸 돌아가실 때에 우선 참으로 참 장애 없이 잘 돌아가시고 돌아가신 뒤에 영혼이 좋은 데 가서 납니다.
한량도 없는 데 가서 나는 법이 있으니, 부디 생일 불공 와서 부처님한테 공양(供養)만 올리고 가는 그것이 생일 불공이 아니라, 이러헌 법문을 듣고 그래 그 좋은 이치를—‘옴 마니 반메훔’을 부르면은 한량(限量)없는 공덕이 있는 이치를 잘 듣고 알고 가서, 댁에 가서도 늘 ‘옴 마니 반메훔’ 많이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한량없는 보배입니다.

난중(亂中)이라도, 난리(亂離) 가운데라도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도병입최절(刀兵立摧折)이요, 칼 속에 들어가도 칼이 끊어지지 사람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랬어. 사자(死者)가 변성활(變成活)이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 했다 그말이여. 그러니깐 그렇게 알으시고 ‘옴 마니 반메훔’을 모르시거든 하나 써 가지고는 늘 부르시어.(37분53초~58분3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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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양이유래세월심~’ ; 『전당시(御定全唐詩)』 권 七七八-3 이귀당(李歸唐)의 시 ‘실로자(失鷺鶿)’, 「惜養來來歲月深 籠開不見意沈吟 也知只在秋江上 明月蘆花何處尋」 참고.
『사성진군영참(四聖眞君靈籤)』 ‘제18 中平 隨緣’  「養汝原來歲月深  開籠不見意沉沉  想應只在秋江上  明月蘆花何處尋」 참고. 沉은 沈(침)의 속자.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난사(難事 어려울 난/일 사) ; 처리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難] 일[事]이나 사건.


*험사 ; ‘한다면, 하면’의 뜻의 사투리.


*공교히(工巧- 장인·공교할 공/공교할·솜씨가 있을 교) ; ①솜씨나 꾀가 재치 있고 교묘하게. ②뜻밖의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매우 기이하게.


*사사무애(事事無礙) ; 현상계의 일체의 사상(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卽無碍)인 것을 말함.
단일한 하나의 현상이 다른 모든 모든 현상과 어김없이 하나가 되는 관계처럼, 모든 차별적 존재가 서로 걸림없이 다른 모든 존재를 포섭하고 포섭되며 자재하게 뒤섞여 있는 법계의 실상을 나타낸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몰리 ; ‘몰래(남이 모르게 살짝)’의 사투리.

*쇳대 ; ‘열쇠’의 사투리.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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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대의즉유대오(大疑則有大悟) ;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〇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이 무엇고(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총상(總相) ; ①모두에게 통하는 특질. 병상(別相)의 상대되는 말. ②그것만의 순수한 모습. ③보편. 공통성. ④전체. ⑤전체의 모습. ⑥화엄교학에 있어서 만유의 하나하나에 다른 일체의 것을 포함하는 것.

*일받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관(觀)한다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2분)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시러금 ; 문득. 도리어. 능히.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의리선(義理禪).
이런 구두선(口頭禪) ·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구변가(口辯家 입 구/말 잘할 변/사람 가) ; 입[口]으로 말을 잘하는[辯] 재주나 솜씨가 있는 사람[家].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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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에서.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사마(邪魔) ; 삿된 악마. ‘마’는 마라(魔羅 : 악한 귀신의 총칭)의 줄임말로 원래 욕계의 여섯 하늘 가운데 여섯 번째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머무는 천마(天魔)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만 점차 불도(佛道)의 성취를 방해하는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또한 불도(佛道)의 수행(修行)을 방해하는 망령된 견해, 번뇌 따위를 사악한 마귀에 비유하여 ‘사마’라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지환즉리(知幻卽離) 부작방편(不作方便) ;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7~88.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매불자생(賣佛資生 팔 매/부처 불/재물·자본·밑천·장사할·의지할 자/살 생) ; 부처를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함.

*등상(等像)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 11장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백 명의 악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만 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만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만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일 억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십 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 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삼세제불 가운데, 한 분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 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내나야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자미(滋味 불을·증가할·맛있을 자/맛 미) ; ①좋은 맛[味]을 불어나게 함[滋]. ②맛. ③재미. ④기분. 심정. 감정.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 · 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 ; 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4/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2)—몽산06. 몽산시 각원상인(4) (72.06.20)

(1/3) 약 19분. (2/3) 약 15분. (3/3) 약 19분.

(1/3)----------------


통곡인생사(痛哭人生事)  백일천공침(白日天空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수삼척토(知誰三尺土)  매각아전신(埋却我全身)

나무~아미타불~


통곡인생사(痛哭人生事). 인생이라는 것은 통곡밖에 없구나. 마지막 통곡이여. 누가 통곡   사람이 없어.

아무리 별짓을  허고, 아무리  성공을  허고, 별별 금은보배를  만들아서 쌓아 놓고, 별짓 다 해  봤던들 아이고!”허고 통곡밖에는 없다.


이것을 미리부텀 알아야 하는 건데,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알들 못혀.

그것이 언제  줄을 모르고, 설사 그놈이  오래 있다가 몇백 년 후에 온다한들   똑같은 건데 뭐. 오늘이나 내일이나 백년 후나 똑같은 건데. 오는 것이라는 것은 앞에 부닥쳐 오는 것이라는 것은 그거밖에 없어.


천공백일침(天空白日沈)이다.  날마다 가는 광음(光陰) 사정없다. 용서 없어.

 오게  수도, 이렇게 그런 인생의 지경이 오지 못허게 만들아 주지고 못허고, 막아주지도 못허고, 소용없어. 사정없어.


지수삼척토(知誰三尺土),  삼척토! 석 자  가지고 갖다가 때려 묻어버릴 놈의 몸뚱이.  몸뚱이 갖다가서 땅이나  파고 묻던지, 불속에다가 집어넣어 버리던지, 이밖에 없는 거다.

 전신을 갖다가서,   몸뚱이를 갖다가서  불속에나 땅속에나 갖다 묻어 버린 것밖에는 없느니라.


허니, 이것을 첫째 깨달라야 한다. 이것을 미리서 딱 깨달라서 알아 가지고는 발심(發心)을 해서 도 닦는 것이 지혜 학자다.


이것이   알면서도 , 지지(知之)하면 고범(故犯)이여. 알고 직접 범허느냐?  알면서 () 있느냐?  알면서 안 허고 있느냐?

안 허고 있는 것과 해태를 부리는 것이  당장 조금이라도 에이, 조금 오늘은 조금 쉬어 가지고, 오늘은    보고, 이것   해놓고,  정리해 놓고 내일  해 보지?  모래쯤 해 보지 요렇게 미루고 있느냐? 이렇게 미루고 있을 수가 있느냐?



재송도인(栽松道人),  허다가  수도 없고,  후편이 있기 때문에  전편을  얘기하는데, 들어서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거든.

 오조(五祖) 홍인(弘忍) 스님의 역사인데. 오조 홍인 스님 역사, 부처님 대(代)로부터서 5(五祖) 스님까장 내려오는  역사는 불가불 알아야 하거든. 좋은 역사지. 무슨 꾸며대 놓은 소설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가끔 내가 허는데.


 어린아는 인자 일곱 살이나 낳아서 길렀지마는,  길러 거지반 일곱  먹었으면은 인자  7 먹으면 벌써 그건 보통 사람도 아니고 견성(見性)해서 , 견성도 유만부득(類萬不得)이지.


인자 그저 이치만 깨달라서, 이즉돈오(理卽頓悟)해서, 일초(一超)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해서 부처님과 같이 깨달랐다 하드래도 사변은 () 여의치 못헌 거여. 사상사(事象事)라는 것은   없는 건데 사무애(事無)까장 났다 그말이여.


사무애까장 났기 때문에 어머니,   그대로  혼자는 자기 혼자 실력으로는  들어가는 것인데, 혼자  가만 처녀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말이여.

그렇게 쉽게 그냥 들어가... 걸망  벗어놓고 작대기  짚고 앉어서 그만 가만히 입정(入定) 가지고는,  그만 들어가 버렸거든. 그러니 사무애까장  ()했는가?


일생을  어릴 때부텀 화두를 하도 공을 들여서, 화두를 하도 그렇게 망념(妄念) 홀기(忽起)면은 도불수지(都不隨之)허고  화두만 어떻게 잡드리를 했던지, 어떻게  화두를 온전히 다루았던지,

, 그만 화두 중에서 망상 그놈, 일어나는 곳이 없이 일어나는 놈이지마는 , 망상 그놈 모도 일어난 곳도 없고, 망상 그놈이 화두에 붙지 못혀.


일체 망상이  자리에서 잦아져 버리면 아무리 낼래야   없고, 망상이 찾을래야 찾을  없고 놈이     곳도 없어져 버리면은 그만 그건 신통이 거기서,  사사무애(事事無) 거기서 나는 것이여.

그만했기 때문에 대번에 그만 마음대로 그만 들어가는  아닌가. 그런 자유가 그거 나온다. 도의 힘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말이여.


그래 나와 가지고서는 일곱   먹어, 일곱 살 키워 길러 놓으니 , 그만 그런 시(詩)를 짓고 ...

 시가 좋아.  한번 오늘 아침에  한번 읊어서 말씀을 할테니  자세히 들어보시란 말이여. 뻘로 듣고  잊어 버렸지.


별면(別面) 불여화유소(不如花有笑).  문장 시여.

별면은 불여화유소여. 어머니와 나와 이별허는 것은 금생에   가지고 서로  얼굴 가지고 이별허는 , 내생에도  고렇게 인물 똑같이 가지고똑같이 어머니 얼굴, 아들 얼굴이 같이 생겨 가지고 나올 것인가?  달러. 똑같지를 못혀.


별면불여화유소(別面不如花有笑). 이별허는, 어머니와 나와 이별허는 장면이 한 번이지. 우리 이렇게 이별허는  한 번이지,   오덜 못혀.

꽃만도 못혀. 일체 꽃은  뿌리에서 다시 나와 가지고 다시  터억 피어 보이건마는, 우리 인생은 그렇지 못혀.   한번 모가지 끊어져 번지면은 그만 썩어 버리고 말지, 꽃만도 못한 것이여.


이정(離情) 난사죽무심(難似竹無心)이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별, 정(情) 여의는 것은 어머니와 하이고  자식! 세상에  자식밖에 없다  애착 애정이  자식이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밖에 없다. ! 우리 어머니  애정이라는 것이 그때뿐이지,

 몸뚱이 가지고 있을 때뿐이지,  몸뚱이 서로  이별해 버린 후는 그것 없어져번져. 잊어버려. 알도 못혀. 매(昧)해 버려.


그러니 대[竹]는 그놈이  몇백 년도   있고, 죽백천추(竹帛千秋)라니 대는 천추도   있고 헌디, 사람은 그거  아무리 오래 장수를  사람이라도 칠팔십 , 헌디 무슨 놈의 칠팔십   사람이 몇이여?

오늘 죽을는지 내일 죽을는지  몸뚱이 죽어 이별헌 후는,  정이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식 정이 그것이  그냥 매해 버려. 대[竹]만도 못혀.


인인설착조가녀(人人說着曹家女)허여  인득상사병전심(因得相思病轉深)이니다

나무~아미타불~


조가녀(曹家女) 천하에 그렇게 미인이여. 그렇게 어여쁘다. 해서  사람마당 연애병이 걸려 죽어. 하도 잘나 놓으니까.

그놈의 연애병이 그렇게 ,  어째 그놈의 것이 , 그놈 고약한 것이지.


 예쁘다고 그까짓  걸려서, 똥 비린내 나는 놈의 . 껍딱에는 얇게  무슨 비단결 같은 살결이 덮였지마는 속에는 피고름 똥오줌뿐인데.

부정관(不淨觀)을 해보면 똑같은 건데, 냄새나고 고린내 나고 썩은 냄새나는 놈의 몸뚱이.


, 고까짓 것에 가서  그렇게 미칠 것이 있어서, 조가녀는 보면 모도 미치네?  조가녀, 조가녀 말만 듣고도 모도 조가녀 한번 보기를 원하고 이 모냥이여.


상사병전심(相思病轉深)이여. 상사병(相思病) 전전히 깊어.

어머니가 자식  잊고, 자식이 어머니  잊고  애타서 보고 싶고, 그것이 조가녀 한 번 보고 모도 상사병 들고, 조가녀 한 번 보기를 원허고  그런 애갈(愛渴)이여. 애갈이지. 고갈(苦渴)이여, 고갈.


고까짓 놈의 애정,  연애 고것 하나를 참지 못하고, 고까짓  하나를.

고놈의 것을  때려 베고. 우리 비구 비구니가 그러헌 정신 하나가 없으면 무슨 놈의 참선이여. 벌써 고런 놈의 생각을 가지고 참선하는 것은 각분위향(刻糞爲香)이여.


 제일   받아 가지고는 고놈에  끌린 것이 모도 색경계(色境界)여. 색경계지마는 발심(發心)헌 사람이 고깥은 색경계 하나를 여참(如斬)에 일악사(一握絲) 해야지. 금강 같은 칼날로써 뿌럭지를 드려 드려  버려야지.

어디 가서 그런 행사(行使)를 허고, 도 닦으러 들어와서 고런 행사나 하고 도문(道門)에서 고런 놈의 짓을 했다가는  뭣이여 ? 그건 당장 갖다  자리에 파고 묻어 버려야지. 다시 말할  있나?


허니, 그것밖에는 그밖에는  되는 것인디, 어떻게 어머니하고 나하고 이별을   수가 있소? 나는 어서 가서   일이 크게 바쁜데, 나이 내가 일곱  먹었지마는 기가 맥히게 바뻐.

그런데 어머니를 어떻게 작별   수가 있소?  어머니 작별허는 인연이 이렇습니다. 작별 이유를 말했다 그말이여, 어머니한테.


‘어서 가서 어서 가서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속히 대각을 이루어서,  중생을 제도해야 않겠습니까? 일체 중생이 () 걸려서 아이고 대고 ()받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그게  몸뚱이여. 다른 몸뚱이 아니고  몸뚱이여.


무간지옥 아비지옥, 아귀 · 지옥 · 축생취에 들어가서  견디지 못헐 고(苦)를 받고 있는 것이 순전히 그  일이고,  (), 내가 가서 어서 가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는 중생 교화를 해야 허지 않겠습니까?

어머니 이별을 애끼시지 마시고 부디 이렇게 알아주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인사 한마디 허고  떠난다 그말이여.


그 아지랭이  봄날 그런..  가니.

 어머니 () ..  하나는 잊었어, 모르지마는.  글이   문장이여.


어머니도 자식이  가고, 보이지 아니혀. 빠딱빠딱 가다가  자취가 끊어지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니깐,   지은  . 글이  , 그렇지.

 , 어저께  알았더니 잊어버렸구만.   귀(句)도  안 나와. 금방 잊어버려. 그만 두지   그거,  잊어  허고   없고.(처음~1841)



(2/3)----------------


바로 쫓아 올라가서, 홍인대사, 그때  팔십 노인으로 걸망짐 짊어지고 갔을  인가(印可)해 달라고 하니까, “인가는 해준다마는 너한테 법을 전할  없다. 몸뚱이 바꿔 가지고 오너라”

그래서  말씀대로 가서 몸뚱이 바꿔 가지고  왔는가? 시방 거그  갔는가? , 그러니 사무애(事無)   증했는가?


 사무애밖에는 안 되아. 마음대로 허는 거여. 사상사(事象事)는 이치와 같이는 못헌 건데, 말로는   있지마는 사상(事象)으로는 못하는 건디,

마음대로 가서  처녀 뱃속에 들어가서 몸뚱이 하나 얼른 받아 가지고는 소년  되아 가지고 올라와서 몸뚱이 바꿔 가지고 왔습니다. 어서 인자 인가해 주십시오 그러니께.


! 이놈아.  다르다 그말이여? 팔십 노인 때와 7세 소동(小童), 일곱  먹은 놈이 와서 그러니, 어디 얼굴이 무슨  어디가 닮았나?

팔십 노인이  빽빽이 늙어서 모도 주름살 사방   그러던 얼굴이 깨끗헌 소년  받아 가지고  닦는 몸이라 얼마나 인물도 잘났고,   잘난 놈이 와서 큰스님 시킨 대로 몸뚱이 바꿔 가지고 왔으니 인자 전법을  주시옵소서


전법(傳法)이 없으면 안되아. 법을 전해 주어야 하고 인가해 주어야 하지.

인가 없고 전법 없는  가서, 제가 하늘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공중에 잠을 자고 내려와도, 고런 외도를 믿었다가는 외도법밖에는  되는 거여. 천하 없이도 안 되아. 인가 않고 허가..


 인가,  소용 있냐고? 고런 놈의 소리가 어디 있어. ?

인가 없고, 어디 가서 법을 전해 주지 않은데, 가서 학자를 가르킨다 말이여? 학자들이  알고 있으면 그만이여.


무조건 그만 도인이라고만 믿거나, 가서 믿어 가지고 아이고 큰스님!’  지랄을 허고 있구만.

말세라고 이러고 있어? 우리 활구참선법은 그런  없어. 그걸  알아야 되아.


죽어도 안되아. 모가지 끊어져도   없어.

모가지 끊어진다고 옳다!’ 인가해 주면 그놈이 그만 인가 받았다’고 가서 인자 도인 노릇해 가지고는, 벌써 인자 그날부텀 제가 거짓 도인이 되아 가지고 남을 속이니, 무엇을 가지고 인가할 것인가?


조사 공안이라 하는 것은 바로 견성해서 큰스님한테 인가 ! 받아 가지고 옳다

부처님부텀 벌써 진귀조사(眞歸祖師)한테, ‘진귀조사가 재설산(在雪山)하야, 진귀조사가 설산에 있어서, 총목방중(叢木房中)에서 대석가(待釋迦)다. 총목방중 수풀 속에서 석가 오기를 기다리고 앉었든 것이다.

전지조인임오세(傳持祖印壬午歲)니라.  임오세(壬午歲)에, 임오년에 그때가 임오년에 조인(祖印)을  전했느니라하는 그거 바로 그래 가지고 부처님도 딱딱 그랬는데.


어디 가서  말세에, 뭣이여? 뭣도 아닌 것이 나와서 즈그들이 백천만 명을 모아놓고 신도가 ~’ 끓으면   것이여. 눈깔  신도들만 모아놓고 차암타무한지남녀다. 한량없는 남녀를 속이고 앉았어? 그놈의 죄를 어쩔 것이여?


우리 정법학자들은 딱딱 들어 둬야 . ‘ 어느 공안에 견성 인가 받았소?’ 물으면 나와버려.  나올 수가 없어. 낱낱이  있으니깐.

부처님이 거념화(擧拈花), 염화   때에 가섭(迦葉)이 미소(微笑)해서 옳다!’해 준 놈이 있으니까. 그놈 없으면 안되아. 가섭 아니라,  가섭 보담도 더헌 무슨 신통 있는 분이라도 소용없어.


 아난(阿難)이 당시에 인가가 없기 때문에 외도(外道) 노릇  했어?

너는 외도니까 나가거라 쫓겨나 가지고 가서 견성해 가지고 와서 인가를 받았지. 어디 가서 그런 법이 있느냐 이말이여.

그래 이게 정법(正法)이여. 이것 정법이여,  정법이  동토(東土)로 나왔다 그말이여. 전국에   없어.


 정법을 우리 부처님이 말세에 하도 외도가 많이 끓어 나올 것이고, 인가 없는 것들이 나와서 모도 야단칠 터이니까 그때에  모도 인자 정법을 전통해 나갈라면은 무섭게 간택을  허라고 부탁을 했으며, 공안법을   자물쇠로 통해서 건네 놓았거든.


그러고  정법을 모도  제석천왕(帝釋天王)한테 모도 부탁을 해서 제석천왕이  부탁을 ! 받고 있는 것이여. 그래야  제석천주가 인자  공안법이 끊어지게  , 정법이 멸망되게  때에는  나와서 한번 정화(淨化)를   놓거든.


그럴 때에도 어떠헌, 인자  모도 임금님, 모도 신라 때로부터  임금님이   어디  금강신(金剛神)이 되아 가지고 나와서,  어디 가나?

은근히 ! 국왕들이 믿어 가지고 인자 정법을 모도 보호해 주고, 긍게 인자 바로 거다 부처님의 정법을 모도 전통해 나가는  아닌 건가?  그랬지.



일곱  먹어 가지고 도신 스님께  가지고는 인자 시킨 대로 제가 몸뚱이 바꿔 가지고 왔으니 인가를  주십소사 인가는 본래 했는데 뭐, 전법해 주시옵소서

,  어디  얼굴, 어린아를 보고 내가  수가 있나? 네가 견성 했는지  했는지  수가 있나?  ,  모르겠다


! 그때는 몸뚱이 바꿔 가지고 오면 해준다 하시더니 인자는 몸뚱이  바꿔 가지고 와도인자는 늙어서 전법 못해 주겄다고 허더니, 인자  어리니까 못해 준다고 그러십니까? ! 어째 저를 모르시고 그러십니까?”

, 그걸 어떻게 내가  수가 있나?” 시침  따고 인자 4(四祖) 도신 스님이  수가 없다. 그러니까 어디  증거를  보여라  증거가 있어야   아니여.


, 증거도   그때 심어놓고 내려갔으니  송대도 증거고. ,  쬐그만헌 것을 심었는데 벌써  7 동안 컸으니 솔이 제법  커나와.

 불전에 그렇게 보내는 것이 그런  같은 것도 심어놓고 그러니 참 좋은, 기가 맥힌 기념식수(記念植樹)여. 불전에다 모도 심은 것이여 그렇게.


우리 집이,   화초인지 이름도   수가 없는 화초, 어저께 보살님이 가져 오셨는데, 갖다 놓으니까 고것 모두 들여다보고 야단들이구만. ‘하따! 이것  50년이나 컸나? 하따! 이것  야단들이여.

누가   수가 있나? 50 큰지 . 딱까리 하나씩을 요거 하나, 요거 하나 이리  보기도 허고 야단이여.


그것  좋은 기념식수여. 부처님 앞에다 놓고   나는 . 모도 보살님네 식수(植樹) 하나씩 갖다, 여그 저렇게  광장 맨들아 놨으니 하나씩 모도 갖다 인자 심으시라고 헐라구만. 식수 좋은 것이여.


 재송도 내려갈 ,  기념식수 나무 하나 심을라고 송대 만들아 놓고 솔냉기 하나  심어놓고 갔는디,  그놈이    컸는디 좋게 커난다 말이여.

그런 것도 있으니 이것 제가 심었습니다 하지마는, “네가 심은지,  심은지 내가 어찌  것이냐? 어떻게 그걸 내가 알아? 그런 것도 믿을  없다


삼삼백발하청산(毿毿白髮下靑山)하여  팔십년래환구안(八十年來換舊顔)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제가 삼삼(毿毿)해서 백발 되아, 삼삼이라는 것은 머리가 , 어쩌다 검은머리 하나 있는 걸 삼삼이라 . 허연 백수(白首)에 꺼멍머리 하나 있는, 그래  팔십 되았어.

팔십년래환구안(八十年來換舊顔)입니다. 80년만에 이때 얼굴을 바꿨습니다.

팔십년래환구안이라.  무엇이지 끝에는? (인각소년송자로..)


인각소년송자로(人却少年松自老)  시지종차낙인간(始知從此落人間)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인각소년송자로(人却少年松自老)입니다. 저는 소년이 되아서 인각(人却), 사람은 문득 소년이 되아서 지금 일곱  먹어 왔습니다.

왔는디 솔은 스스로  늙어... 벌써 솔은 스스로 이만큼  컸습니까? 7 동안이나 컸으니. 저도 몸뚱이 바꿔 가지고 왔는데 솔도 이렇게 컸습니다.


시지종차낙인간(始知從此落人間)입니다. 일로써서 인간에 몸뚱이 바꿔  것을 증명헐  있습니다. 아!  분명하지 않습니까?


여시(如是). 그렇다 인가했지. 인가가 그렇다’고.

인가허고 전법해 줘서 전법게 떠억 주며, “오냐, 너는 5(五祖) 되아서” 4(四祖) 도신 스님이 인자 (재송도인이) 오조가 되아 가지고 거다가 전법했지?

바리때 전허고, 의발(衣鉢)  전했으면 되지. 그때 까장은 의발이 있으니까. 의발 따악 전해주어.


의발 받아 가지고는 오조(五祖) 홍인(弘忍) 스님이 되셔 가지고 황매산(黃梅山)에서 법주(法主)가 되어 가지고 법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법을 떠억 가르키고 있는 오조 스님, 오조 스님 역사입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되았을까 말이여. 어머니 편이 나와. 여까장.(1842~3334)



(3/3)----------------


묘각(妙覺) 원명(圓明)하니, 화두를 이렇게 잘해 나갈  같으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판치생모,   없는 의심 하나를  거각을 해서 이렇게 나갈  같으면은 ,  인자 직하(直下) 흔번(掀飜)이다. 필경에 인제 한번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런 때가  ? 그런 때가 있기 따문에 고인들이 이렇게 모도  낱낱 증명을   것이지, 그런 각(覺)이 깨달을 각이 없다면은 뭣할라고 중생을 속여 ? 직하에 흔번할 때가 있어.

그때 가서는 조주관(趙州關), 조주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관이 그대로  어디   것이나 뭣이 있나?  것도 없고, 무슨  맥힌 것도 없고 ,  터진 것도 없고 , 그만 바로  뵈여 버리지.


비단 조주관(趙州關) 공안만 뚫어질 것인가? 내지 5종가풍(五宗家風) 운문가풍(雲門家風)이니,

임제 스님 적수단도(赤手單刀)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붉은 [赤手] 홑 칼[單刀]로 () 죽이고 조사(祖師) 죽인다허는 그러헌 공안이며,

운문가풍에 단비(斷碑) 횡고로(橫古路)니라. 끊어진 빗돌은 고로(古路) 비꼈느니라허는 그러헌  운문가풍이며, ‘() 속에 제불(諸佛)이 설법헌다’는 그런 모도 제불이 설법한디, ‘삼세제불이  아래에 청법허느니라 법문이던지,


모도  어떤 가풍,  가풍 말할  있나? 천칠백 공안 가풍이 하나도 맥힘이 없지. 그걸 이즉돈오(理卽頓悟) 한다. 이치를 몰록  깨버리는 것이다. 뭣이 맥히고 뭣이 덮어버릴 것인가?


조주(趙州) 시하면목(是何面目)이여. 조주  공안  놓은   면목이여? 조주면목(趙州面目)까지 ! 깨버렸는디 조주가 무슨 면목이여?  말이 있어야지.


필경(畢竟) 자개공안(者箇公案), 필경에 그러니  공안은 여하시조사서래의냐? 판치생모니라. 판치에  났느니라’는  도리가 무삼(무슨) 도리인고? 무삼 도리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놨는고?


  () (), 비유(非有) 비무(非無), 무슨 도리회(道理會)다,  비도리회다 고런  때려 붙여야 되겄는가? ‘  무슨 도리다.   무슨 이치다 요래 가지고 되겄는가?


자마생(麽生),  무슨 도리냔 말이여 이것이? 자마생(麽生)이여? 무슨 도리여?

낙재심마처(落在甚麽處)?  판치생모’라고   이치는  어느 곳에 떨어졌느냐?  이치가 필경 무슨 도리인데 어디 떨어져 있느냐?


본각(本覺) 미명(未明)이면,  본래 화두허는  본각이 밝지 못하면은 일일유의(一一有疑). 낱낱이 의심이 있다.

 제가 알았다 해도 소용없다. 벌써 알았다고 나부대지마는 벌써 몰랐은게 알았다고  것이다. 알았다고 허는 사람이,  사람이 알았다. 알았다하는가 어디? 뭐가 알았다 알았다  것이 있어야지.


모도 잡아 공안인디, 모두가 공안인디,  모두가 전체가 법문인데,  알았다 몰랐다 무슨 그런 소리  것이 뭣이 있어? 눈만 한번  떠서  한마디 해도 아는 건데. 그대로 ! .


아침까장 깜깜하던 것이여, 아침에.

10년을 공부를 시켰는데, 10년을  따라댕기면서  발재죽 한번 여읠  없구만.  따라댕기지.


그때가 내가 한창  서른  넘어 가지고,   무애(無碍) 방랑한 것은  입으로도  못하는구만. 어떻게 지랄병을 떨어 놨던지, 내가  말하지 않어?


양복 좋은 ,      입고   입고는 춤을 어떻게 추고 10리를 버스 안에서, 어떤 놈이 뭐라고 허거나 말거나 소용이 있나, ?

멋들어지게 하니까, 멋이 있게 하니까 다 보기 좋아서 보지,  욕도 않혀. 그런 놈을 양복을 입고 글쎄 춤을 추고 양복이 뒤가  떨어져서 펄렁펄렁헌  그것도 모르고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내려갔네. 10리를 내려갔다 그말이여.


그런 짓을 허고 돌아댕긴 나를 그때 와서 학생  와서, 어쨌든지 하여간에 지랄 춤을 추거나,  놈의 춤을 추거나 말거나 나를 믿었든 것이여.


스님한테 중노릇 허겄습니다

어찌 네가 나한테 중노릇 헐라 하노? 나같이 이렇게  방랑 생활을 허고, 말할  없다. 어따가 비유할  없다. 내가  행동을   못한다.   못헌다. 좋은 스님 가려서 해라


. 제가  그런  보고, 스님 춤추고  방랑허고 노래부르고 야단치고  그런  보고 제가   아닙니다. 그저 저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   ,     것인가? 아마 열 번을 했어,  번을.

나중에는  해 준다고 헌게,   아래 앉어서  일어나도  허고, 가지도  허고, 고대로. 고집 무서운 사람이여.


네가 그러면 느그 부모 승낙서를 받아 오너라.  승낙서 받아오면  해 주마

죽었으면 죽었지 부모가 승낙은 않습니다. 승낙은  받아 옵니다. 그건 제가 알아 하겠습니다. 승낙 절대 있던지 없던지 그건  알아 할테니깐 조금도 염려 마시고 해 주십시오


그래라. 그러지마는 내가 여기서 너를  상좌라고 이름은 해주마마는, 나한테  수가 있나?  혼자 이렇게  방랑 생활을 하고  무애 생활, 무애행 생활을 허고 있으니  밑에 있으면 네가   거냐? 뭐가 되아 ? 그런  배와?”

스님 무슨 천만사를  한들 제가 그것 배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 제게는 상관없습니다


! 그러고 해 달라고 허네. , 그래   놓은 뒤에  달포나 되었나?  달포나 되었는데, 가도 않고 따라댕기지도 않고 이건,

! 자꾸 나만 따라댕겨 그래도. 어디 안 가. 원수여! 원수. 그것이 따라댕긴게  때는  논게 원수여.


그게 따라댕김서  암말도 않고 그저 그래도, 어디 섰다가 인자 데리고 갈라고 인자 섰다가 이건, 나중에 뵈기 싫어 죽겠어.

 저녀러 , 공연히 저것 중을 내가 승낙해 가지고  따라댕기고 가도  허고. 죽어도 안 가. 어디  세상 없는  가래도 안 가.


그러거나 저러거나 그러니 어쩔  없어. 남평 읍내를  나오는데, 나오다가 길가에서, “스님, 내가  달포나 스님께 내가 중노릇을 시방 허고 상좌라고 있는데, 내가 스님을 어떻게 허다 믿었는지  수가 없습니다 그려.  말이 무슨 말이여?

어쩌다 스님을 믿었는지  수가 없습니다 그려. 그거 얼른 해석허기 어려와.


‘스님같이 무애행을 허고 스님같이 , 스님이라고  이가 그렇게도  스님 노릇을 못허고  무애행을 허고 그런디, 어째 스님을 믿었는고?  모냥,  모냥을  그만두어 버리고 스님을 믿었는고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정법 소견이 들어가서  소리여. 견성해서  것이 아니라.


인자 법문을   들어보더니, 그렇게 굉장한 행동을 허지마는 설법상에 올라가서 설법하면 그때는 설법이  일관도천(一串都穿)이지. 쫘악 꿰어서 ~ .

 법을 듣고 인생이라는 것은  인생 문제, 내가 나를 깨달라야겠구나  발심이 되아 가지고는 그걸 묻은 것이여.


스님의 행만 보고 내가 스님을  믿었다가는 무엇이  뻔했느냐는 이거여. 고것이여, 고것이 내가 묻도 안 허고 내가 고걸   것이 고것이.


그런 거여. 그때 내가 그렇게 무애행 방랑을 헌다고 해서 무애행 방랑 고까짓 짓만 고것만 보고서는  정법을 믿지  했다가는 큰일나지! 내가 제일이라는  같지마는 법이 그려.

도행(道行)이 81행이 있는데 글쎄, 81 가운데 도행이라는 것이그럼 도인들은 다 그따구  허게.  잘못 들으면 큰일나지.


제가 참말로   , 그까장 한번 이르러 가지고 한번 그렇게 두타행 방랑행도 해 보기도  수가 있지마는,

 같은 값이 도인(道人)이면은, 그렇게 확철대오헌 도인일  같으면은 낱낱이 옳은 행을 그대로 가지고 보통 사람 보담도  배나 더이상   고행을, 좋은 행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  그따구 행을 가질 것이냐 그말이여.


그게 벌써 그것이  무애행, 무애 중에 무애에 체해서 걸려서, 체중현(體中玄) 어디 걸려서 모도 () 모도 고러헌 데서 고런 생각이  것이지 그런  없는 것이여, 바로 털어놓고 얘기하자면. 글안허면  습기(習氣)가 중(重)하면 그런 짓을 허는 것이지.


그럴 필요가  있나? 미륵보살 미륵불(彌勒佛) 같은 이는 옌장, 당래 인자 미륵교주 당래교주(當來敎主)로 아주 불불(佛佛)이 인가해서 당래교주가  것인디, 교주로서 권행(權行)으로 나와서 한바탕 했지.

 권행 한바탕  것은,  권행은  뭐냐 하면 착상 중생(着相衆生)을 제도허기 위해서 한바탕 하는 거여.  상(相)에만  착(着)하면은 착상 중생은 제도헐 수가 없는 거여.


뭣에  착(着), 집(執)했다 그말이여. 집착을 했어. 남편한테도  집착하던지, 자식한테 애집(愛執)을  했던지, 돈에도  집헌 사람은 설법했자 소용없네.

 설법을, 그까짓 설법은 소용없고, ‘돈이나 얻으러 왔는가 저런가 보다. 돈이나  달라고 저런가  안되아. 소용없어.


 애집 애착 집착 중생을 위해서 한바탕 허는 것이, 미륵보살도  그렇게 험악헌 거지가 되아 가지고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베자루 하나 맨들아 가지고 베자루 속에다가서 개 뼉따구를 넣어 가지고는 그놈의 개 뼉따구 장사를 허냐 그말이여.

 이상허지 않는가?  괴기 장사를 허면 해필  개 뼉따구 괴기 장사를 . 차라리 노루 뼉따구나 그런   고아 먹으면 좋다고 그런거 허면 몰라도 그러되,  뼉따구를 짊어져 가지고 개 뼉따구 사시오, 사시오' 이놈의 개 뼉따구 뭣허게 사냐 허고.


그러다가 돌아댕기면서 돌아댕기다가 그저 어디 가서   얻어다가서는 인자 먹을 만큼 얻어다 놓고는, 역부러 밥을 얻어다 놓고는 다른 거지들 모두  뺏아 먹으라고 그런 것이여.

“봐라,   많이 얻어 왔으니 봐라, 느그들  ?  대들어 뜯어 뺏어, “이놈들    뺏어다 먹는다 이놈들 우네, 뺏기고는. 역부러 그래 주어 놓고는 인자.


, 이러고 있다가도, 이러고 있다가도   한바탕 무애행하고 그러고 댕기다가, 법문을  한바탕 허면  이상하지?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니라  나무~아미타불~


, 그렇게 그렇게 포대화상 개 뼉다구 장사를 허고 돌아다니다가도  한바탕 와서 게송을 읊고 법문을 하면,  법문 .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밤마당 밤마당 부처를 내가 아듬고 자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 아침 아침마당 부처님을 내가 모시고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부처  곳을 알고저 할진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 어성시(語聲是). 말허는 이놈이니라.  ? , 그렇게  한바탕 했다 그말이여.


전강(田岡)이 그때 그렇게 무애행   포대화상처럼 되아서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건  그렇게 들어야지.

그런 짓을 했지마는 “그때에 어쩌다 스님을 믿었는고 모르겠습니다 소리가  법을 믿고 나서 보니까,  행동거지만 믿어 가지고는 안될 것이다 그말이여.


천상에 가서 천공(天供)이나 받아먹고, 내려오다가 중간 공중에서 잠자고 내려오고, 인간 음식은 먹도 않고, 아주 얼굴이 비범허고, 요런 것만 믿어 가지고는 사견(邪見) 학자라는 거여. 고것만 믿어 가지고   것이냐 이말이여.


제가 설법을 허기를 석점두(石點頭)인들, 천우사화(天雨四花) 석점두인들, 하늘에서 꽃비가 내려오고 돌이 옳다고 점두를 끄뻑끄뻑 헌들, 제가 뭣이여? 바로 견성 못하면은 주뎅이밖에는 소용없는 거여. 거 구두설법(口頭說法) 밖에는  되는 것이여.


그러니 법(法)이라는  그런 거지. 그만큼 정법이라는 것은  믿기도 어렵고, 한번 믿어 놓으면은 그런 사견에 거꾸러지는 법이 없어. 그것이 법이여.


, 여까장 두고.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났다고 했나 말이여.  불과해야   한마디 아닌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세상에  무슨 뜻이여, 뜻이? 판치생모라니? 무슨 뜻이여?


 먹으나  입으나 가나 오나 일체처에  하나,  하나 뿐이여. 이것 뿐이여.


허니, 이것 하나 하자고  끊고 정리해 번지고 들어와서 시방 좌선객이 되어 가지고 앉아서 여기서 허송을 ? 어떻게 허송을 .  허송을 ? 간들 온들  먹은들 일체처에  판치생모 고놈이 ! 백혀 있지?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 우리 어머니는 아주 가셨으니 언제 우리 어머니 얼굴 다시 볼꼬?’  돌아가셨을  어째? 그놈이  생각해서 나나? 그대로 일어나지.


 한번 일러라. 나만 자꾸 허고 너는  허면 쓰겄나?  너도 결집을  그대로... (3343~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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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통곡인생사~’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과하서묘(過河西墓 하서의 묘를 지나며)’ 참고. ‘痛哭辭金闕  天邊白日沈  誰知三尺土  埋却屈原心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고범(故犯 고의 고/범할 범) ; 고의범(故意犯). 죄를 범할 의사를 가지고 저지른 범죄. 또는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 4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별명을 가진 분이 5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참고]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현음사) ‘32. 4 도신 대사 · 재송도자’ p202~206 참고. 『직지 강설() (무비 스님 번역 | 불광출판사) ‘6 도신·홍인 대사’ p202~203 참고.

四祖  因栽松道者  來相見  語言相契  祖曰汝年已老  改形而來可也  道者  珍重  便行下山至濁港

4 도신 대사께서 재송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서로 계합하였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몸을 바꾸어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송도자가 아무  없이 문득 산을 내려가서 탁항에 이르렀다.


見一處女浣衣  遂云我欲借汝家一宿  女云有父母在  道者曰你肯麽  女云去問我父母宿  道者去不遠  於一樹下坐化去  其女  從此有孕  生一男子  被父母訶  及是非不能洗  便將兒子  抛於江水中去  復廻次日見兒  逆流而去  不忍復收養之

 처녀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집을 빌려서 하룻밤 자고자 하노라 처녀가 말하기를 부모님이 계십니다 도자(道者) 말하기를 그대는 허락하는가?” 처녀가 말하기를 집에 가서 저의 부모님께 묻고 주무시라고 하겠습니다

재송도자가 멀리 가지 아니하고  나무 밑에서 앉아서 입적하셨다.  처녀가 이로부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모의 꾸짖음과 옳고 그름을 씻을  없게 되어 문득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강물에다 던져 버리고 갔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날에 아이를 보니 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거두어 길렀다.


乞食度日  至七歲  携在黃梅  路上  見四祖  祖問曰童子何姓  子答曰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什麼姓  子曰佛性  祖曰雖有佛性  汝且不會  子曰非但我不會  三世諸佛亦不會  祖曰爲什麼不會  子曰性空故  祖默識其法器  卽便出家  乃傳衣付法

걸식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일곱 살이 되어서 이끌고 황매산에 갔다.  위에서 4 도신 대사를 만났다. 4조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동자는 성이 무엇인고?” 동자가 답해 말하기를 성이 있기는 하나  보통의 성은 아닙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성인고?” 동자가 말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불성은 있으나 너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동자가 말하기를 비단 저만 알지 못할  아니라 삼세제불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동자가 말하기를  본성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4 대사께서 그가 법기임을 아시고  문득 출가해서 이에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셨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유만부득(類萬不得 무리 류/일만 만/아닐 부/얻을 득) ; 여러 가지로 비슷한 것이[類] 많다[萬] 하여도 그것을 얻을[得] 수는 없음[不].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 몰록 ()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 점수(漸修)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 하셨다.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있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 같지 않다. ()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 실상문에,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사상(事象  /모양 ) ; 관찰할  있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물(事物) 현상(現象).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 경지.

*‘망념(妄念) 홀기(忽起)면은 도불수지(都不隨之)허고’ ; ‘망념이 홀연히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고’

*(게송) ‘별면불여화유소~’ ; 재송도인이 몸을 바꿔 태어나 7세에 어머니와 이별하면서 읊은 게송.

[참고] 『선문염송』 875 목사(木蛇)’ 대한 자수심(慈受深) 스님의 게송.

〇別面不如花有笑  離情難似竹無心  因人說着曹家女  引得相思病轉深.

*부정관(不淨觀) ; 몸이 청정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는 것. 초기불교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수행법으로, 특히 탐욕이라는 번뇌를 물리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탐욕을 없에게 한다. 부정상(不淨想)이라고도 한다.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다섯 가지 수행법[五停心觀] 중 하나로 첫 번째인 부정관은 탐욕, 두 번째인 자비관(慈悲觀)은 분노, 세 번째인 연기관(緣起觀)은 어리석음, 네 번째인 계분별관(界分別觀)은 아집(我執), 다섯 번째인 수식관(數息觀)은 산란한 마음을 대치하기 위해 닦는다. 또한 사념처(四念處) 중 신념처(身念處)의 여러 가지 수행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애갈(愛渴 사랑·탐욕 애/목마를 갈) ; 탐애(貪愛 탐내어 집착함. 욕심에 사로잡힘)의 기갈(飢渴 배고픔과 목마름). 갈애(渴愛). 탐애가 마치 갈증으로 물을 찾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고갈(苦渴) ; 몹시 목이 말라 고생함.

*각분위향(刻糞爲香) ; 똥으로 향을 만들다. 刻은 劃이나 治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여참일악사(如斬一握絲) ; 한줌의 실을 베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만일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 선도(禪道) 불법(佛法) 평생동안 눈으로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   베면 모두  끊어져서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법도 정식(情識)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차를 마셔도  마시는  모르고, 밥을 먹어도  먹는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모르고, 앉아도 앉는  몰라 정식(情識)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 이루는 것이다.


 일대사만을 밝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뿌린  쇄락하고, 씻어 말린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도인이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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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귀조사재설산~’ ; 

[참고]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권上 (해동사문 천책 지음) ‘선교대변문 25(禪敎對辨門 二十五則)’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 이철교  | 민족사) p383~384.

唐土第二祖惠可大師  問達磨  今付正法  卽不問  釋祖傳何人  得何處  慈悲曲說  後來成規  達磨曰  我卽五天竺諸祖傳說有篇  而今爲汝說示  頌曰  眞歸祖師在雪山  叢木房中待釋迦  傳持祖印壬午歲  心得同時祖宗旨  「達磨密錄」


중국의 2 혜가(慧可)대사가 달마에게 여쭈었다.

방금 부촉하신 정법(正法) 묻지 아니하겠습니다만, 석가모니께서는 누구에게서 전해 받으셨으며, 어느 곳에서 얻으셨는지 자비로 말씀해 주시어 후세 사람들이 잣대로 삼게 하소서

달마가 대답하였다. “내게 인도의 여러 조사들께서 법을 전하신 게송  편이 있으니, 이제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진귀조사(眞歸祖師)께서 설산(雪山) 있어서 총목방(叢木房)에서 석가를 기다리다가, 임오년(壬午年) 조사심인(祖師心印) 전하니  자리에서 불조(佛祖) 종지를 얻었다네. [달마밀록]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 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금강신(金剛神) ; 불법을 보호하는 .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있어서 집금강(執金剛) 또는 금강수(金剛手)라고 한역하며, 집금강신(執金剛神) · 집금강역사(執金剛力士) · 금강밀적천(金剛密迹天) · 지금강(持金剛) · 금강역사(金剛力士) · 밀적역사(密迹力士) · 밀적금강역사(密迹金剛力士) · 인왕(仁王) 등이라고도 한다.

이는 부처님의 모든 비밀 사적(事迹 불보살의 언행의 자취) 알고 5 야차신(夜叉神) 시켜 현겁(賢劫) 천불(千佛) 법을 수호한다는  () 말한다.


흔히 전신은 벗은  허리에만 옷을 걸치고 있고 용맹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는   신의 형상은 절의 입구  양쪽에 두어 왼쪽은 입을 벌리고 있는 개구형(開口形) 밀적금강(密跡金剛)이며, 오른쪽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폐구형(閉口形)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말한다.

*(게송) 삼삼백발하청산~’ ; 재송도인이 몸을 바꿔 태어나 7세에 어머니를 이별하고, 4조 도신대사를 찾아뵙고 읊은 게송.

[참고] 『卍新纂續藏經』 65 「선종잡독해(禪宗雜毒海) 1권」 '五祖' 있는 佛國白의 게송 垂垂白髮下靑山  七載歸來換舊顔  人却少年松却老  是非從此落人間


*의발(衣鉢) ; ①수행승들이 입는 삼의(三衣),  구조(九條칠조(七條오조(五條) 가사(袈裟) 수행승들의 식기인 발우(鉢盂). ②선종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수, 인가하는 것을 의발을 전한다 한다.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심재열 역주 | 불국선원刊) ‘오법전의 제일(悟法傳衣 第一  제일, 법을 깨닫고 가사를 전해 받다)’에서. p91~93

 復曰 昔達磨大師 初來此土 人未之信 故傳此衣 以爲信體 代代相承 法則以心傳心 皆令自悟自解 自古 佛佛 惟傳本體 師師 密付本心 衣爲爭端 止汝勿傳 若傳此衣 命如懸絲

오조(五祖)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옛날 달마대사께서 처음  땅에 오시매 사람들이 아직 믿지 않았으므로  가사를 전하여서 이로써 믿음의 바탕[] 삼아서 대대로 서로 이어오거니와,  법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여 누구나 스스로 깨치고 스스로 알게 함이니, 예로부터 부처님과 부처님이 오직  본체를 전하셨고 조사와 조사가 서로 은밀히 본심을 이으셨거늘, 이제 가사가 다툼의 실마리가 되었으니 너에게서 그치고  전하지 말라. 만일  옷을 전한다면 목숨이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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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무애(,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한역어(漢譯語). 무장애(無障), 무가애(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 장애를 주지 않는 .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일관도천(一串都穿  /꼬챙이 /모두 /꿰뚫을 ) ;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가운데 (體中玄) 삼세가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가운데 (句中玄) 지름길 말들이며,  가운데 (玄中玄) 양구와 방망이와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 진공(眞空)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 없다.

구중현(句中玄) 뜻길이 없는 말로써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권행(權行 잠시·임시로 권/행할 행) ; 수단인 방편(方便)을 권(權)이라 하는데, 형편에 따라 임시 방편으로 행하거나 대행(代行)함.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 자기가 자칭하는 이름은 계차(契此)였다. 체구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불룩하고, 말이 일정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에 베자루 하나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속에다 넣었다. 저자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달라 했다가 돈을 주면 돌려 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916 3월에 명주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

미륵 부처님,  미륵 부처님이 분신(分身)해서 천백억 부처님이 되었다.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되,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아지를 못하는구나.


게송을 마치고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포대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참고] [전등록 3] (27) (동국역경원 | 김월운 옮김) p459-463 참고.

*(게송) 야야포불면~’ ; 만신찬속장경(卍新纂續藏經) 88 <거사전(居士傳) 7> 부대사전(傅大士傳) 참고.

*구두설법(口頭說法) ; 말이나 문자뿐인 설법. 마음과 말이 일치하는 수행이 담긴 설법이 아니라 말뿐인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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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3/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1)—몽산05. 몽산시 각원상인(3) (임자72.06.19.새벽)

 

(1) 약 20분.

 

(2) 약 22분.

 

(1/2)----------------

 

대소입천지(大笑立天地)허니  창해묘주거(滄海渺舟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화읍조로(黃花泣朝露)허고  홍엽야명추(紅葉夜鳴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대소입천지(大笑立天地). 사람이 나와서 가만히 생각해 볼수록에 크게 한번 헛웃음을 .  진짜 무슨 좋아서 웃음이 아니라, “허허 한번  탄소(歎笑)여. 탄식 웃음밖에 없다 이 말이여. 세상에 나와서 헛웃음 한번  수밖에 없어.

 

모든 인생이란  나와서 이거  허는 거여 이거. ,  백년을 산다한들  뭐여? 죽을  밖에 없는데 그  아무리 별짓을   봤던들  마당에,   끊어진 마당에,  목숨 떨어진  그때 생각해보면  뭐여? 그거.

치뤘든 꿈이지. 백년 몽(夢)인들 뭣하며 십년 몽인들 마찬가지며, 하룻밤 꿈인들 똑같지. 뭐여? 그거.

 

!  가운데에    일이,  일이  차사(此事) 밖에  있는가? ‘  차사(此事). 어서 깨달라야겄다. 어서 찾아야겄다.

 

창파(滄波) 묘주거(渺舟去)로구나.  놈의 이놈의 몸뚱이에 환란(患亂)은 그렇게 많아서, 환란이 마침  위태로운 어려운 난(亂)이, 바람 되게 태풍 부는디  깊은 창파에 쬐그만헌 배 하나   같다.

그놈이 바람이  태풍이 냅대 불어제끼니 조그만한  고것이   엎어지고   있으며, 이리갔다 저리갔다 허다 그저 물결 속에 그저 엎어지고 마는 것이나 같으지, 다를  뭐냐? 인생사(人生事)가. 평생을 생각해 봐라.

 

황화(黃花) 읍조로(泣朝露). 누른 꽃도 꽃이 한참 피어서 벙얼벙얼 피어서, 누런 꽃도 그놈이  밤마다 운다.

하룻밤 가면 늙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니, 열흘도  가서 늙어 비틀어져 썩어서 시커머니 말라붙어 놓으면  뭔가? 인생 송장  것이나,  늙어서 비틀어져서 썩어져 붙어있는 것이나, 뭐냔 말이여?  같지.

 

홍엽(紅葉) 야명추(夜鳴秋)로구나. 가을이 돌아와 이파리가 붉기 시작하니 붉은 놈의 이파리가 밤마당 서리가 드립대 오면은 점점 서리에  붉어지고  늙어져서  떨어질 것이다.

! 오늘밤에 떨어질는지, 오늘 아침에 떨어질는지, 언제 이놈이 떨어질는지, 이렇게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니!  같느니라.

 

이것을 생각할  알아야, 참말로 무상(無常)을 그대로 저울질허고, 무상을 그대로 되풀이허고. 이러헌 무상한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없어.

그저 항상 젊을   뿐이고, 항상 좋을   뿐이고, 그저 먹어라 뚱땅거리고  뿐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요렇게 무상을  영득(領得)해라.

 

 

 그렇게 재송도인(栽松道人)은 그러헌 대도를 통해서 깨달라 가지고 입태(入胎)에도 ()하지 않고, 주태(住胎)에도 매하지 않고, 출태(出胎)에도 매하지 않고,

! 그만 젊을 때부텀 일찍이 중이 되아서 도를 닦아서 팔십까장 해도 대오(大悟)  허다가 팔십 년래에 팔십 당년(當年)에 ! 확철대오(廓徹大悟) 했네.

 

얼마나 화두를 얼마나 그렇게도  철두철미허게 했던지, 일생 팔십  동안  가지고는 대오를  놓으니 그대로 쌍수(雙修)가  되았지. 쌍수, 망상까장  녹혀 가면서 번뇌 망상이  잦아지면서 대오(大悟)  것이여.

얼른 대오를 깨달라번지면은 , 이놈이 () 했지마는 그 번뇌 습기가 번뇌 망상이 고놈이 고대로 있어서 그놈이 도리어 그만 암만 깨달랐지마는, 이즉돈오(理卽頓悟)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 (), 사상사(事象事)를 몰록 () 수가 없어서, 그놈 망상 번뇌가  견성한 후라도 너무 많이 침범을 허거든.

 

그러니 보림(保任) 허기가 어렵다는 것이여. 견성 해가지고는 정말 보림헐 때에는 바로 들어 앉어서 문을  안으로 잠그고 들어앉어서 도를 닦는 것이여.

 

헌디 !  재송(栽松) 노장은, 그전에는 재송도 아니지마는  재송 노장님은 4(四祖) 도신 스님한테 불명(佛名) 탔으니까, 호(號)를 받았으니까 재송이지?

 재송이지마는 지금 팔십 당년에 쓰는 재송 아니여. 후생(後生) 이름이지. 몸뚱이 바꿔 가지고  이름이란 말이여. 인제 허지마는 재송 노인이라고  수밖에 없지.

 

!  재송 노장은  해필 그렇게도  갖춘, 그렇게도 한목 쌍수해서 보림까지 다해서 출태(出胎)까장 ()하지 않을 만큼은 그런 도를 닦아가지고는  해필 처녀 속으로  들어가서,

 처녀  고생, 그 무남독녀로 귀동녀로 그렇게 태어난 집안에 기가 맥히게  부모한테 사랑 받고 있던 처녀가 애기가 뱃속에 들어 놓으니 ! 그만  큰일이지.

 

그때 시대는 없어. 그때 시대는 처녀가 애기  수가 없어. 처녀가 애기 배면은  그건,   집안 망하고, 동네 망하고, 쫓겨나고,  허물이여. 지금 시대가 그때 시대와   다르다 그말이여.

지금은 처녀  애기가 많이 밴갑등구만? 모도  들어 보면. , 여그도 애기  가지고  그려가지고 와서 결혼 허드구만, 가만히 보면. 그때야 어림도 없다.

 

  없이  , 죽으러 가는 길밖에는 없지.  목숨이 한목 죽을 것인데.

그런 성모(聖母)인데, 그런 도인을 뱃속에다가 지금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가 성모 자격이 있기 때문에 재송도인이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 성모 자격이 없다면 들어가?

 

벌써 그런 역경 속이지마는, 할  없지마는, 아!  불가불  어디 들어가야지, 들어가서 몸뚱이를 하나 받아 나와야, 색상(色相)을 받아 나와야, 색상 중생을 제도하지? 색상이 없고야 어떻게 영혼으로만 제도헐 수가 있나?

입도 없고 귀도 없는데, 아무 것도 없이 영혼만 떠댕기면은 현여헐 수가 있어야지?  어디 말할 수가 있나,  들을 수가 있나, 가르킬 수가 있나, 손이 있나, 발이 있나, 못하는 법이여. ()으로는  수가 없어.

 

확철대오한 영은 몸뚱이 받으나  받으나 자기 분상에는 영심소향개무애(令心所向皆無碍). 마음으로 하여금 걸릴 데가 없어. 소향처(所向處) 없어.

.. 아무 도무지  관계가 없지마는 중생 교화를 헐라면은 불가불 색상을 갖춰야 되거든. 해서   없이 들어간 것이지마는.

 

 고생이라니!  고생을 다해 가면서 죽지 않고 다행이 멀리 가서 얻어먹고 그러다가   낳았어?

애기를 그렇게 낳아서 기를  키울 , 낳아 가지고는 정말 인자 얻어먹고 댕기지마는  자식을 앞세우고 댕기는데, 도인이라! 확철대오헌 도인이기 따문에 기맥히지. 보호가 기가 맥혀.  보호라니!

 

‘네가  때문에  뱃속에 들어와서  신세를 망쳐 놨느냐? 이렇게 빌어먹고 댕기게 만들고 이렇게 험하게  놨느냐?’ 원망이 있을 텐데.

무슨 놈의 원망이 있어?  원망 하나 없고  자식을 길르는데 기가 맥히지.

 

 7세쯤 길러 놓으니 7살쯤 길러 놓으니, 확철대오헌 도인이기 땀세 모르는 것이 무엇이 있나? ! 그때부텀.

그렇지마는 뭐   아는 체를  리가 있어? 아무 것도 아는 체가 없지. 보통 사람보담도  아는 체가 없지. 뭣을 아는   것이여.

 

 아는 것이 ()인가?  세상사 아는 것이 도여? 그까짓 것은 도가 아니여. 귀신같은 것도 아는 것이고.

 

 영팔이, 영팔이라는 귀신이 있는데영팔이는 어디 있는 영팔이인고 하니, 대구에 살았어. 대구 서낭당 같은  사는 영팔이인데, 어떻게 영험이 있든지 파계사 도 닦는 파계사에 들어와서 파계사 성전암에 들어와서, “스님 제가 영팔이입니다 영팔이라고 소문이  나서, 중간에 신문까장  났거든. 아주 대구 영팔이라고. 이고경이 신문에  냈단 말이여.

 

스님 제가 영팔이입니다

영팔이 어찌 왔노?”

아이고! 뒤에  잡으러  놈이 있습니다

 

처녀귀신이여. 처녀귀신인데 처녀귀신이기 따문에 이놈 연애할 놈이  찼어. 총각 놈들이 보기만 하면 영팔이 미인이라고  찾아오고 쫓아오고 야단나.

귀신 역시 몸뚱이도 없는 귀신이지마는 고런 놈의 중음신(中陰身)이여. 죽은 뒤에  받는  중음신 과보라는 것도 보통이 아니야.

 

스님, 저를  감춰 주십시오

, 너를 어떻게 감춰야. 네가 얼굴도 없고 모냥도 없고 너를 어따 감출 것이냐?”

 

스님 제가 스님 좌복 밑으로 들어갈랍니다 신환옹 좌복 밑으로 들어간다고 아주 제가 가만히 계십시오. 내가 좌복 밑에 가만히  숨었을랍니다. 뒤에 시방 다뿍 잡으러  놈이 있습니다 이렇게  귀신이 있었어. 영팔이라고. 이름이 영팔이여.

그러고 아주 이상스럽게 스님, 제가  따왔습니다.  잡수십시요 휘익,  소리가  나기도 하고 이런 짓을  했다 그말이여.

 

그러헌 몸뚱이를, 아무리 대도를 통했지마는 갖추지 아니하면은 중생 교화를  수가 없기 때문에 몸을 갖춰야 하겠는데, 그러헌 성모 자격이 있는 데로 들어가야지. 아무데나 들어갈 수가 있나?

그래  벌써 4(四祖) 큰스님이 우교즉지(遇橋卽止)하라. 다리를 만나거들랑 그쳐라  다리 만나거든 그쳐라   가서 몸뚱이 바꾸어라 그말이여.  몸뚱이까장 바꿀   일러주었거든. 그래서 받은 것이여.

 

일곱 살까지 낳아서 그걸 길러 가지고는 일곱 살에 작별을 허네. 세상 작별,  작별.

“어머니를 불가불  자리에서 작별허게 되었습니다”

“작별 이유를 말해라. 형박제한(兄薄弟寒)허고, 내가  하나를 낳아서 이렇게 길러 가지고 타관 객창(他官客窓)에서 너를 의지허고 너를 앞세우고 사는데, 네가 나를 작별을 허다니 무슨 말이냐? 이유를  말해 봐라”

 

 이유여.

이유가 뭐꼬? 밤낮 허던 것도 이렇게 잊어버려서  나와서 이렇게 못혀.  들어 아는 사람 없나? (별면이 불여). ! (처음~1927)

 

 

 

 

 

(2/2)----------------

 

별면(別面) 불여화유소(不如花有笑)허고  이정난사죽무심(離情難似竹無心)이니다

나무~아미타불~

 

별면(別面) 불여화유소(不如花有笑)입니다. 어머니와 이별허는 것이  웃음만도 못합니다.

꽃이라는 놈은 그놈이 나와서 피어 가지고는 시들어진  내년에  그때에 틀림없이  나와서 피어  얼굴을 보이고, 해마다 꽃은   뿌럭대기에서 다시 나와 피어서 보입니다.  때도 어기지 않고 꽃이 피어 보이고 피어 보이고 항상 그럽니다.

 

하니, 인생이라 하는 것은  웃음만도 못합니다.   뽁시 나온 놈만도 못혀.

어머니 몸뚱이나   몸뚱이 금생에 서로 이별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다시는   얼굴과 어머니 얼굴, 그대로 만나 뵈일 수가 없습니다. 영별(永別)입니다. 없어.

 

이정난사죽무심(離情難似竹無心)입니다.  어머니,   여의는 것이 시방 아이고,  자식이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다허는  서로 (), 의탁헌 ,  깊은 , 그거  때 가버리면은 한번 가버리면은 그만입니다. 대[竹]만도 못합니다.

언제  정을 아이고, 아무개  자식 갈려버린 뒤에  일생이나 몰라도  얼마 가? 늙어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그만 하룻밤 잠자다가 잊어버리면 그만이지. 그게  있어?  대 ()만도, 죽무심(竹無心)만도 못혀.

 

 

인인설착조가녀(人人說着曹家女)허여  인득상사병전심(因得相思病轉深)이니다

나무~아미타불~

 

사람사람이 조가녀(曹家女) 말해서, 조가녀라는 것은 천하의 일색인데, 조가녀는 무슨 매란방이니 무슨 봉미니 무슨 양귀비니 서시니 문제 아니야. 어떻게 잘났던지 사람이 한번 보면은 미쳐 죽어. 상사병(相思病)  걸리는 수가 없어. 하도 잘나 놓으니까.

 

사람사람이 조가녀를 보고 상사병  죽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고 자식이 어머니를 사모하는 것이  조가녀, 천하미인 조가녀 모도 보고 상사병  것이나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잊어서 이렇게 이별을 허기 어려우시지마는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별은 허고 말아야지,   수가 없습니다. 저는 대도(大道)를, 어서 가서 대도를 인가(印可) 맡아 가지고 중생 교화를 헐랍니다.

 

어머니한테 하룻밤 자고 가자’고  ,  하룻밤 자고  것이나 마찬가지지.

일곱 살이나 먹었읍니다마는 어머니한테 하룻밤 자고 가는 것입니다. 어머니 그렇게 알으시고 존체 보존허소서.  자식은 떠납니다 그러고 돌아선다 그말이여. 기맥히지. 말로 수가 없지.

 

어떻게 막을래야 막아낼 도리도 없고,  어린아 성품 성격이 말겨야 소용없어. 말길 수도 없고. 한마디  !  놓으면 버릴 말이 당초에 없고. 뻘소리가 한마디도 없고.   없어.  기맥히지, 어머니가.

 

그때가 봄이든 것이여.  돌아가는  보고 뒤에서 뒷꼭지를 보고,  따라가도 못햐. “같이  길이 못되느냐?”

그게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같이 가다니 어디를  것입니까?” 여자를, 더군다나 젊은 여자인데, 젊은 여자를 데리고 암만 어린놈이지마는 어머니를 데리고  곳인가 ?

 

 

창연고목계남리(蒼烟枯木溪南里)  아자지향하처거(兒子只向何處去)

나무~아미타불~

 

 어머니가   무남독녀로서 글을 잘허던 것이여.

창연고목계남리(蒼烟枯木溪南里), 창연(蒼烟) 푸른 연기, 고목(枯木)  남쪽에  가는,  시방 가는 남쪽 앞길에. 아자(兒子), 지향하처거(只向何處去)?  자식아.

 

창연고목(蒼烟枯木) 앞에 가려 있으니깐 아물아물 하니 가니까  보이거든 인자.

 보이니깐, 연기  같고 안개  같고 그런 데로 가니까 아자(兒子), 지향하처거(只向何處去)?  자식아, 나를 버리고 너는 어느 곳으로 가느냐?”하고 앉어서 웁니다.  수가...    없지.

 

5조(五祖) 스님, 인자 그이가 5 스님  것인디, 5조 스님이 4조 스님한테 인자 가는 길이지.  길이. 여까장 두고 .

 

 

 공안법(公案法), 참선 공안법이 유심(有心) 투부득(透不得)이요, 유심으로도 그놈을 깨닫지 못하고. 유심(有心), 뭣이든지  마음 일어나는 .

마음이 모냥이 있나?  마음이 빛깔이 있나?   그런 것인데, 그것이 별놈의 마음을  내지. 별짓을,  마음을,  생각을  내지. 그놈같이  마음  내는 놈은 없지.

 

천하에   남의 시시비비(是是非非)는  하고, 자기의 시시비비는  많음서도 남의 시시비비는  하고, 별짓  하는 놈의 것이 마음인데.

 유심, 그거 갖다가서 망상이라고도 허고, 번뇌라고도 허고, 일어나는 염기(念起)라고도 허고, 별별 별념이라고도 하고,  유심(有心) 가지고는 깨닫덜 못혀.

 

깨달을 것이여? 더군다나 그런  망상심 번뇌심 가지고는?

 그놈이 없으면 무심(無心)이면, 고놈이 일체 번뇌 망념이 없으면은 고것은 8뢰야식(第八賴耶識)이다. 8뢰야식이니, 8뢰야식이라는 것은 종식장도 거기는 없어.

왔다갔다하는 종식(種識)이 7식(七識)인디,  7식도 없어.  7 고놈이 아무  일체가  없는 8식장 속에서 인자 하나씩 가져와 가지고는 눈으로 전해 주어서 보게 맨들고, 또 귀로 들어서 듣게 맨들고, 입으로 맛을 봐서 달다 쓰다 하게 맨들고, 고런  종식이 있어. 종식까장도  떨어져버린 곳이여.  8식이라는 것은.

 

8식에 들어 놓으면 생전  깨는, 그건 아주 그만  () 버린 것이여.

그러니 무심(無心)  깨닫고 유심(有心)  깨달라. 유심이니 무심이니 유심 무심, 그놈   없어진 양구공(兩俱空) 들어가서도 소용없어. 깨닫들 못혀.

 

허니 유심도 안 되고, 무심도 안 되니 어째야 되겠는가?

영리(靈利) 놈은, 참으로 영리한 사람은  직하(直下) 흔번(掀飜)이다.  이상  바로 일러  수가 없다. 바로 일러 준 말이여.

 

그뿐인가? 단진범정(但盡凡情)이요. 범정(凡情) 다했다. 범정이 다했으면 범정 다한 놈이 있어야 할텐데, 범정 다한 곳에 가서   성해가 있어? 별무성해(別無聖解)니라. 성해(聖解) 없느니라.

 

이렇게 모도 바로 의리로는 다해 주었어. 의리로는 그대로  일러준 말인데, 영리한 놈은 직하에 어찌  보냐? 직하에 바로 깨달라 버릴턴데 어째 그렇게도  깨달느냐? 공안이 다 마찬가지여.

 

영리(靈利) 놈은 직하(直下) 흔번(掀飜)해야, 직하에 바로 ! 깨달라  이치부텀 바로 봐라.

그러니 그곳에 가서 바로   무슨  모냥이 있어서 상견이여?   빛깔이 있어서 사견이여? 뭣이 있어? 뭐가 있겠냔 말이여? 거가서. 생사도 없는데.

 

알았다고? 뭣을 봐서 알았는고? 모냥다리가 어떻게 생긴  봐서 알았는고?

! 욕식불조무간업인댄, 불조(佛祖) 무간업(無間業) 부처님이 말씀해 주신 무간업을 짓고자 아니  진댄, 자개설이 없어야  것이다. 

 

한번 이렇게  깨달라 버릴  같으면은 착파조주(捉敗趙州). 조주를 착파한다.

조주가 이렇게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바로 일러주었지마는 조주도 착파할 것이다. 조주  방망이 놓는다.

 

, 조주착파라고 허니까, 아주 깨달랐다고 조주를 착파하지마는 거 함부로 못하는 법이여. 거기서  중(重)이 있어서 안되아.

 

환아화두래(還我話頭來)하라. 내가 너한테 공안을 일러주었는데  공안 네게 쓸데 없으니  바로 깨달라 버렸으니, 네가 공안 깨달라 버렸으니 쓸데 있느냐?

 

나는  공안이 쓸데가 있다. 일체 중생을  내가 주어야   아니냐? 깨닫지 못한 중생한테는 그밖에는 내가  것이 없으니 중생한테 바로  선물이 화두다.

판치생모 화두니, 화두를 내가 너한테 도로 받아야 않겠느냐? 너는 바로 깨달라 버렸으니 네게는 쓸데 없다. 내게로 보내라  말입니다. 

 

약유일호말(若有一毫末)이나, 만약 터럭끝만큼이나 터럭끝보담도  가는 무엇이 있다면은  먼지 같은  있다면, 때꼽째기 먼지 같은 것이나 고런 것이 의심이 붙어 있다면,

깨달랐어도 고런 호말(毫末) 이런가?’ 붙어 있다면 차거문외(且居門外). 어서 물러가거라. 문 밖에 있다. 어림도 없어.

 

 터럭끝[一毫末] 뭣이냐?

거가서 무슨 의심이 있을 것이냐? 처꺽  버렸는데. 의심이 뭣이 붙어 있을 것이냐?

 

각원상좌야! 각원상좌한테 일러준 말인데. 각원상좌야, 내 이렇게 너한테 설해  법문을 듣고 각야미(覺也未).  바로 깨달랐느냐?  깨달랐느냐? 이렇게 한번 묻는 말입니다. 여까지.

 

  

너는  자꾸 결집헌  없나? 여그 없나?

저 바위도 좋고, 산말랭이도 좋고, 어디가 앉어도 좋지마는,  함부로 둘이썩 서이썩 가서 수군거리고 수군대고 수군축대(隨群逐隊)해서 그렇게 그만 얘기나 하다가 들어오고, 그래 못해써.

 

여기도 부디 그러지를 말고 이렇게 사부중(四部衆)이 모여 있을수록에 엄중허거든.  사부중 대중이라는 것은  엄중혀.

거기서 조금이라도 도학자가  행동이 정당치 못허던지, 무슨  한마디라도 정당치 못헌 말을 헌다던지, 큰일나지.  당장에 쫓겨 나갈 것을 알라 그말이여. 그건 틀림없으니까.

 

견성치 못헌  견성했다는 , 그놈 멕여대서 주먹이라도 한번 때려서 보내고,  다음에는  부정헌 말을 허던지, 부정헌 행을 허던지, 그건 직하에 쫓겨나.

여그서 쫓겨나면   없다. 인자는    있어? 바로 내가 말허지.

 

벌써 나한테  부탁이 편지로   왔어.   내가  대종사(大宗師)라고 해달라고 했나?  내가 무슨  종사(宗師)라고 해달라 했나?

 앉아서  대종사니 뭣이니  가지고는  갖다 절에 붙여 놓고는, 인자 모도 그러헌 무슨 승규를, 중의 규칙을 대종사 스님네가 모도  책임지라는 것이여. 여지없어. 승적까장 제적 딱! 해서 쫓아내니깐 그것마는 깊이깊이 알라 그말이여.

 

비구나 비구니나 노인은 노인끼리 노인네끼리는   해당되지 않은 말이지마는 젊은 비구, 젊은 비구니 부디  언어 행동을  허고, 화두를  해서 금년 여름에 견성을 확철히 했음사  이상 더허리요마는  있으리요마는,

견성을  허드래도 법문(法門)을  들어서  법문에 질서,  법문이라는 것은 벌써 법문  들어 놓으면 사견(邪見)이 판단 나는 것이여.

 

사견에만 떨어지지 아니해도 퇴타(退墮)가 없는 것이여. 퇴타 없으면 그만이지. 성불이  늦을지언정    것이 뭣이여. 안될 일이 어디 있으며.  견성헌 법이고, 안될 이치도 만무(萬無)허고.

 

견성 허지 못허고 임종을 허드래도 임명종시(臨命終時),  어디 끌려가? 뭐가 나를 끌어가?

죄진 놈이래야 경찰서에서 벌써 잡으러  나와서 아무개 잡는다고 형사가 모도 때려 나오고, 사방 비상조회가 있어 가지고 모도 잡지.

 

참선 학자, 반야 대학자한테 무슨 일이 있느냐 그말이여. 견성은 못 허드래도 바로 재송도인 그렇게 어머니 가리드끼 가려 들어가서, 좋은  얻어 가지고 나와서 내생에는 두래(頭來)에 확철대오 허는 것이여.(1927~4059)(끝)

 

 

 

----------------(1/2)

 

*(게송) ‘대소입천지~’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蓬萊卽事(봉래에서)’ p77~78 참고.

 

 

 

 

----------------(2/2)

 

*(게송) ‘별면불여화유소~’ ; 어린 홍인대사가 어머니와 이별하면서 읊은 게송.

[참고] 『선문염송』 875 목사(木蛇)’ 대한 자수심(慈受深) 스님의 게송.

〇別面不如花有笑  離情難似竹無心  因人說着曹家女  引得相思病轉深.

*(게송) ‘창연고목계남리~’ ; 어머니가 떠나가는 어린 홍인대사를 보고 읊은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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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2/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61)—몽산04. 몽산시 각원상인(2) (임자72.07.17)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17분.

 

(1/3)----------------

 

비환일침몽(悲歡一枕夢)이요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언각회수(無言却廻首)요  산정백운생(山頂白雲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희(悲喜)가 일침몽(一枕夢)이다. 인생은 비희뿐인데. 슬픈 것이 아니면은 환희스러운 거.

그저 그만 모도 그저 마음에, 심중에 맞지 안 혀. 불안혀. 슬퍼. 슬프고 불안하고 모도 뜻에 맞지 않고. 고것이 아니면 또 즐거운 거, 그 좋지. 좋은 음식을 대해도 좋고, 부부지간에 대해도 좋고, 부자지간에 모자지간에 대해도 좋고. 또 모도 웃음뿐이고, 환희심뿐이고, 좋은 마음뿐이지.

 

고놈의 비희(悲喜)가 우리 인생의 일생 동안에 슬픈 것 가면 즐거운 것 오고, 즐거운 것 가면 슬픈 것 오고, 요놈의 두 가지가 요것이 일침몽(一枕夢)이여. 하룻밤에 부부가 부부지간에 베개 베고 하룻밤 잘 잠자는 것뿐이여. 그것 아닌가?

하룻밤 그 잠자 버리고 나니 뭣혀? 그까짓녀러 것, 자 버린 뒤는 도로 마찬가지지. 떨어지고 갈려지면 도로 마찬가지지.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니라. 취산(聚散)이, 서로 부부지간에 모이고 자식지간에 뱃속에 나와서 탄생해 모도 나와 가지고는 이렇게 모아 사는 것이 십년정(十年情)이 다 못 되아.

한 십년지간 잘사는 가정에 그 즐거운 가정 한 십년 사는 가정을 말한 거여. 그거 뭐 아침에 그 조금 집안에 무슨 편안한 일 있다가 저녁때 그만 흩어지고 뭐 그런 거, 그런 것 말고 말이여.

 

인생을 통털어 놓고 한 10년 동안 정(情)을 가지고 머물러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말이여.

한 십년 동안 지내가면 그만이여. 더 늙고 뭐 병들고 모도 그저 갈리게 되고 뭐, 가난뱅이 되기도 허고. 한 십년 인생이라는 게 행복스럽게 살면 다행한 행복이다 그말이여.

 

무언각회수(無言却廻首)니라. 그러다가 서로 돌아설 때는 말 한마디 못혀.

“너는 잘 살거라, 나는 간다” 그런 놈의 소리 한마디 없어. 그만 “아이고, 아이고”하다가 “너 잘살거라, 뭐 나 잘 간다” 소리 한마디 못혀.

 

그만 무언각회수다. 아무 말 한마디 없이 서로 그만 참 영별(永別)이다. 그놈의 작별이 언제 만날 작별인고? 고 몸뚱이, 고 얼굴, 고 코빼기 가지고는 다시는 못 만나니까.

뭔 놈의 코빼기를 달고 나올는지, 뭔 놈의 눈깔을 달고 나올는지, 뭔 뿔따구를 쓰고 나올는지, 꽁지를 달고 올란지, 알 수가 있나? 이놈의 사(事)를 좀 생각을 해볼 거 아닌가?

 

산정백운생(山頂白雲生)이니라. 저 산머리에 백운(白雲)이 푸르르르 올랐다가 그만 스르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좀 깊이깊이 해석적으로 좀 생각을 해 보아라. 눈앞에 보인 이런 것만 인생낙(人生樂)이라고 인생행락(人生行樂)이라고 그렇게 좋아하고 미치고 반하고 헐 것이 없다.

좀 거그서 좀 심각하게 좀 여겨 분석을 좀 해 보아라 인생 일생을. 어떠 허냐? 참, 무상(無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옳게 생각했지. 저 어쩌다가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알고는 척 들어와서 믿어 가지고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미리서 고행(苦行)을 하고. 괴로운 행을 혀.

도(道)를 닦자니 고행이 아닌가? 즐거울 것이 뭣이 있는가? 세상사에다가 비교해 보면 참 아무것도 아니지.

 

모도 한데 모여서 한데서 모도 잔다고 누워 자니 온당한가? 그 속에서 잘들 그저 나를 못 찾아서 애를 쓰고 그놈을 찾을라고 애를 쓰는 그 고행 정진, 어떠헌가?

먹는 것은 어떠허며, 그렇게 숭악한, 그 참 우리 선객(禪客)들 먹고 사는 거 일무(一無)도 조금도 뭐 영양 가치 없는 거 요런 것이나 먹고, 우리 하루하루 동안을 살아가는 걸 보소. 그와 같은 고행을 해나가는 가운데에서 도를 닦는 학자들이다.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이여. 호귀에는 닦들 못혀.

호귀스럽게 사는 가운데 잘 먹고 잘 입고 배창자 속에 기름기가 꽉 차고, 고기 덤벵이 속이 덤벵이 그놈 먹어 놓으면 맛이 좋지마는, 창자 속에 들어가서는 그놈이 그 삭아지니라고 혼나네. 그놈 다 삭아질 동안에는 “으, 아”하면서 그만, 뱃속이 불안하고 야단이다.

 

(절에)와선 이 영양 그런 그 숭악한 것 속에 기름기 낀 것 그런 거 홱 뽑아 번지고, 그 영양 없는 것 그것만 먹고 있으니깐 속에 모도 속병이 다 낫는 것이여.

 

우리 선객(禪客)들은 항상 그렇게 먹고사니까 운동 부족해서 체기(滯氣)가 더러 생긴다 하지마는, 마을에서 온, 마을에서 그저 항상 잘 잡숫고 계시든 그런 보살님네께서는 와서 좀 그런 걸 빼 번져야 혀. 그러고 그만 빼 번지면 몸이 경청(輕淸)해지고 그만 병이 낫아 버려.

뭐 생리적으로 말한다 하드래도 그것이 옳지, 무슨 뭐 부처님 신력(神力)으로 병이 낫는 것 보담도. 이렇게 고행 정진을 해 나가는 우리 학자들이다.

 

 

먼첨은 재송도인(栽松道人)이 넘의 처녀 뱃속에 들어가서, 뱃속에 가서 글쎄, 도인이 넘의...

그 사람의 그 무슨 환란(患亂)이라 할까? 넘의 좀 형편을 좀 잘 생각해야만 도인일턴데, 아 그렇게도 아무때나 그만 넘의 처녀 배때기 속으로 쑥 들어가 놓으니.

그때는 처녀가 애기만 배면은 그놈이 큰 중대한 사건이 되어 가지고는 쫓겨나던지, 죽여 버리든지 아주 단판이 나는 때라. 그대로 판단이 나는 때여.

 

처녀가 제멋대로 결혼해서, 아니 부부 만나서 자식 낳는 것이 거 뭔 그리 죄(罪)리요? 아, 그거 무슨 당연한 일인데.

지금으로 말하면은 모도 처녀들이 자기끼리 서로 보고 다 마땅해서 합당해서 연애결혼 해 가지고는 아들자식 나 가지고 잘만 살고. 살다가도 서로 결혼해서 육례(六禮) 갖추어 가지고 살고. 아 이렇등구마는, 거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여.

 

아, 그렇게 하는 것이 어뗘? 그 대자연이지.

그 둘이 부부지간에 맞어야만 서로 사는 것이어늘, 부모 명령하에서 눈이 하나가 없어도 부모가 해 준 것만 가지면 사네. 그러니 평생 소견은 맞지 않지. 시방은 그까짓 것 살다가도 살기 싫으면 이혼 딱! 해 번지고 아 그 멋대로 살고 다.

 

해필 그런 도인이 대도(大道)를 깨달라 가지고는 아! 입태(入胎)까장 매(昧)하지 않고, 출태(出胎) 중에서도 매(昧)하지 않고,

그만한 도를 팔십 노인이 늦게야 깨달랐지마는 그 젊을 시절에 하도 정진을 화두 정진을 몹시 했기 때문에 깨달으면서 그만 그 신력이 다 나서 입태(入胎)에도 마음대로. 가다가 그만, 아 그 몸뚱이 속에.

 

이 몸뚱이를 쓰고 있지마는 그 마음대로 벗을 수가 있나? 마음대로 이 몸을 뭐 옷 벗듯기 벗을 수 있어?

암만 이무애(理無礙)는 되었어도, 이치(理致)로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깨달랐지마는 사(事)는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여. 이치는 확 깨달랐지. 뭐 여불(與佛)로 무수(無殊)허지.

 

이즉돈오(理卽頓悟)나,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사(事)는 몰록 제(除)헐 수 없으니 몸뚱이 속에 든 불성(佛性)을, 그 마음을 마음대로 내던져 번지고 어떻게 옷 벗듯기 벗어 번지고 나와? 그 못하는 것이여. 어디 마음대로 할 수 있나?

 

허지마는 팔십 당년(當年)에 견성(見性)한 재송도인이 사조(四祖) 도신 스님한테 인가(印可)는 맞았지마는 ‘늙은 몸이라 중생 교화는 못 할테니 몸뚱아리 바꿔 오너라’하니깐, 그대로 척 내려가서 빨래 씻는 처녀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단 말이여.

 

승낙을 안 했으면? 승낙도 안 했는데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는가? 체면 없이.

못한다고만 거절만 했으면 안 들어갈 것이여. 아, 승낙을 해놓니깐 아 그만 가버렸지.

 

마음대로지. 그 뭐 발이 있나? 발이 있어 걸어 들어가나? 손이 있어 헤비고 들어가나?

뭐 마음대로지. 그건 그냥 그냥 그대로 가서, 가고 옴도 없어. 터럭끝만큼도 맥힘도 없어. 그대로 그만 처녀 그만 뱃속으로 그만 들어가 버렸지.

 

들어가니 그 속에 인자 뭐 껍데기는 인자 생길 거 아니여? 몸뚱아리 껍데기 뭐 그런 것, 눈 코 그런 것이 생길 거 아니냐 그말이여. 배가 떡 불러 가지고 있으니, 아 이놈의 환란을 어떻게 헐 거냔 말이여. 그때 당시에는 사형선고뿐인데.

 

어머니가 가만히 누워 자면서 무남독녀(無男獨女)인데, 딸 하나밖에 없는데, 무남독녀 그것 데리고 늘 자는데, 뭐 일 분도 따로 어디 갔다왔다한 자유가 없지. 어머니 똑 모시고 있고.

 

아, 그런데 뱃속은 아무래도 그 배가 불러오는데 어머니는 다 실감(實感)이 있는 이라, 경험이 있는 이라 알 것 아닌가. 숨 쉬는 것도 들으니 뱃속에 뭐 든 것이 분명하고, 애기가 아니면 자라라도 뭐 들었지 뭐. 안 든 것이 아니여.

 

그래가지고는 뱃속이 들썩들썩 한 대여섯 달 된게, 그 뭐 그런가 어쩐가 누가 아나? 그렇게 모두 성집에 나와 있으니깐 내가 한 말이지.

딸사닥 딸사닥 하고, 암만 해도 밥을 먹으면은 숨소리가 다르고, 아! 배가 완연히 뿔룩허니 다르고. 그러니 그 알 수밖에 없지, 자연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섯 달 일곱 달 자꾸 되아가니 분명 거 애기가 아니면 자라라도 뭐, 그 든 것이여. 그래도 의심이 자꾸 나. 원, 나 없는 틈에 어디 가서 무슨 부정한 행동을 해 가지고는 요런 일이 있는가 싶고, 별별 마음이 다 나.

그래도 딸한테 그런 말을 묻들 못하고. 아 어쩌! 그래 한 칠팔 개월 되니깐 완연히 들났는디 뭐 어떻게 헐 것이여. 환히 알겠는데 뭐.

 

그래 애기를 깨워 가지고, 잠꼬대를 해 싸면서 못 견디고 그러니깐 물었어. “네가 뱃속에 애기가 든 것 같다. 틀림없이 얼라가 들었다”

처녀는 얼라가 든지, 뭐 든지 알 수가 있나? 뭔 뱃속에서 그 야단스럽고 뜰먹뜰먹 해 쌌고 어쩌고 허지마는 아가 들어 그런지, 뭐가 들어 그런지 알어? 전연 처음 생전 모르지. 경험이 있어야지.

 

어머니가 “분명히 어린아가 들었다. 웬일이냐? 네 말을 좀 해라. 말을 에미한테 안 할 수가 있겠느냐? 에미한테 네가 말을 안 허면 어떻게 될 것이냐? 자, 나는 네 모(母)가 되고 너는 내 딸이 되었으니 기(忌)하지 말고 말 좀 해라. 웬일이냐?”

 

일을 물으니 뭔 일이 있어야지? 아무리 뭔 일이 있어야 뭔 말을 하지?

“뭔 일을 묻습니까? 내가 어떻단 말입니까?”

“네가 수상한 일이 아무래도 있지 않겠느냐?”

 

“무슨 수상한 일이 있겠습니까?” 아! 이건 뭐 당최 뭐 펄펄 잡아떼버리지.

뭐 있나? 없는디 뭐 그대로 말헌 거지. 뭐 떼버렸나?

 

아, 이거 아홉 달쯤 되니깐 뭐 틀림없지. 뭐 보면 다 부인들은 안다드구만. 애기 난 거.

아따, 그놈 모기란 놈이 팔을 오지게 물어뜯네. 아파라.

 

아! 이것 참, 딱! 떼버리니께 뭐 헐 수 할 수 없고. 묻도 못 허고, 더 헐 수도 없고, 뭐.

 

왜 그런 데 가서 태어나 가지고 그 처녀의 못 헐 일을 시키냐 그말이여. 그런 재송 같은 도인이 어디가 못해서, 몸뚱이나 하나 못 얻어서, 고런 데로 들어갔냐 그말이여.

남 부부지간에 사는 데, 부부지간에 그 좋은 부부지간에 사는 데, 그런 데 가서 그대로 몸뚱이를 얻을 일이지, 넘의 깨끗헌 처녀한테로 그만 가서 그냥 그런 짓을 해 놔? 그 도인도 역행(逆行) 도인이 있는가 부여. 그런 역행 짓을 혀?

 

여까지 되아 가지고는 그 자식을 그걸 순산(順產)도 못 하고 그 부모한테도 낳도 못 허고 결국 쫓겨나 가지고는 물에다 갖다 집어넣어서, 물속에다 죽일라고 ‘물에다 집어넣어라’헌 것인데, 다행히 물에 집어넣지 않고 그 살기는 살았으나, 그 처녀가 그 자식을 낳아 가지고 그 기를 때 어쨌것냔 말이여. 그런 역행을 했는데. 

 

요까장 두고. 그거 뭐 길게 얘기를... 그건 뭐 또 언제 나중에 또 잇지, 그걸 다 할 수 없어.

 

‘갖다 물에다 집어넣어라’해서 쫓겨나 가지고는 다행히 죽지 않고 그 자식을 뱃속에다 집어넣고 쫓겨나 그 고생이라는 건 참, 말로 할 수가 없어.

그런 입태(入胎) 출태(出胎)까장도 매(昧)하지 않은 도인이 왜 그러헌 역행을 헐 거냔 말이여. 그 역행 숭악하지.(처음~21분20초)

 

 

 

 

 

 

(2/3)----------------

 

인자 언제 요 편(篇)은 내가 여태까장 후편은 별로 안 했는데, 그 후편에 가서 인자 나와.

그렇게 그 어머니, 그 처녀 고생을 그렇게 시켜 가지고는 후편에 가서 제도헌 것이 나오는데, 그건 내가 이다음에 헐 요량허고, 또 허든 대문(大文)을 해 나가야겄구만.

 

깨달지 못하면은, 이렇게 깨달지 못하면은 이렇게 껌껌하다.

우리가 눈뜨고 보니까 훤허지. 일월 빛도 훤허고, 불빛도 훤허고, 대낮은 훤허고, 가고 오는 길도 훤허고, 다 훤하지. 일체 사람 얼굴도 다 알고, 그 위에 어찌 더 알아. 퍽 훤허지.

 

그거 훤헌 것이 훤헌 것 아니여. 그것이 ‘참 눈깔’이 아니여. ‘참 눈깔’로 뭐 참으로 본 것 아니여.

 

참으로 우리 눈은 멀었어. 우리는 참으로 눈이 껌껌혀. 내 낯빤대기를 바로 봐야 할 턴디, 내 낯빤대기를 보들 못했으니 뭐 그까짓 것 뭐 소용이 있나?

내 낯빤대기, 색상으로 되아 있는 낯빤대기, 콧구녁 눈깔 모냥다리 요따구로 생긴 거 고까짓 것 보는 거, 일체 사람 얼굴 본 것이나 똑같은 거 그것 말고 말이여. 그것이 눈깔 아니여.

 

참으로, 참으로 우리의 본면목(本面目)을 참 내 눈이 본 법이 있어. 그건 어디가 들었느냐 하면은 꼭 공안(公案)에 있어.

그 공안이라 하는 것이 기가 맥혀. 아무리 따져도 따진 걸로는 못 봐.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재주로는 못 봐. 그놈의 것 묘(妙)혀.

 

어쨌든 그놈의 번뇌 망상 망념 그놈이 도무지 없는 놈이지마는 그것 번뇌 망상 그것 없는 곳에 들어가서...

이 중생 호리심(狐狸心)이, 중생의 여시(여우)같은 마음, 요래 저래 요래 저래 고런 놈의 마음 가지고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말세 화두가 부득이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니라. 크게 의심한 데 가서 크게 깨니라’한 것은,

그 의심(疑心)이라 하는 것이 뭣 때문에 의심이냐 하면은 일체 망상이 붙지 못헌 것을 의심이라 해. 알 수 없는 한 놈이 떡! 나오면 다른 망념이 오들 못하고, 망념이 붙들 못혀.

 

불이 있는데—저 파리란 놈이 태말충(太末蟲)인데, 파리는 태말충인데 태말충 파리 같은 것은 다 붙어. 어디 안 붙는 데가 다 붙어. 붙지마는 불에는 못 붙네. 불 그놈 타니까 못 붙어.

그와 같애서 망상 그놈이 안 붙는 데가 없고, 자최도 없고, 자리도 없이 오는 놈이지마는, 다 안 붙는 데가 없이 붙는데, 의심에는 못 붙어.

 

알 수 없어. 조사관(祖師關)을 알 수 없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알 수 없거든.

 

얼른 따지면 뭐라고 요리 중생견(衆生見)을 붙이면 다 붙지. 판때기는 뭣이고, 거다가서 인자 ‘판때기 판(板)’자, 판때기 이빨에—판때기에 가서 이빨이가 있으니...

판때기가 뭔 놈 뭔 놈의 이빨이가 있어?

‘판때기 이빨이가 없으니 없는 것을 말하니라고 판때기 이빨이라고 했다’ 갖다 무견(無見)을 때려 붙이네.

 

조사관이란 게 그런 게 아니여. 조사관이라는 것은, 더구나 격외(格外) 조사관(祖師關)이라는 것은 고대로 딱! 되어 있어. 여지없이 판때기 이빨이 털 났다는 게 분명히 되어 있어.

 

출처(出處)?

앞이빨 이빨 열기 전에 그르쳤다는 놈을 하기 위해서 앞이빨 털이라고 해? 앞이빨 털이라고 해?

공자님이, 공자님 이빨이 성현(聖賢)네 이빨은 앞이빨이 통니라고 해서 이빨이라고 해?

 

고런 상량(商量)을 해서 붙여 가지고, 내가 ‘판때기 이빨에 털’이라고 하니까, ‘전강 스님은 무식해서 그 자전(字典) 같은 거, 일본 자전 같은 것도 모르고 한 소리다. 일본 자전에 가서 앞이빨 털이라 했다’ 요래 내놨네.

 

고놈 내놓고. 내 고 밑에 내가 그 설해 논 것 많이 있구만. 굉장허게 설해 놨구만!

전강이 무식하니깐? 유무식이 무슨 소용이 있어.

천하 없는 과거에 도인들이 ‘설화(說話)’를 내놨어도 ‘설화’라는 게 모도 공안 분석인데 불태와 버리라는 게여. 불태와 버려! 어디 가서 그런 법이 있어.

 

분명히 ‘판때기 판(板)’자니까 판치(板齒)라고 했지.

‘판때기 판자’라 하는 글자는 두 자로 났어. 판때기 판자라고 나기도 하고, 그 ‘널 판자널 판자, 판때기 판자로 나오고 그랬어. 그 두 가지로 났어. 바로 보면 판단이 딱! 나 버려.

 

옳다! 판때기 판자나, 그만 판때기 판(板)자는 똑같지. ‘널 판자나 ‘판때기 판자나, 널 넣는 판자나 판때기 판자나 같지, 다른 거 뭐 있나?

허지마는 분명히 까닭이 푹 나오지. ‘판때기 판(板)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고 바로 요만큼도 무슨 뭐 비밀로 해 논 거 아니여.

 

요새 모도 그 군(軍)에, 저 모도 군인들 군에 모도 뭐 암호(暗號)가 있지 않어? 암호가 있어. 뭐 조리니 주벽이니 뭣이니, 뭔 그런 암호.

암호도 아니여! 암호가 다 뭣이 암호여. 그대로 탁 해 놓은...

 

그 중생의 의심, 중생의 심리, 중생심으로는 중생의 그 호리(狐狸) 일어나는 마음, 여시같은 마음 고런 걸 가지고는 되들 안 해.

 

그러면 딱! 옳다. 깨달라 버려야지!

‘오, 그런 거’ 고런 거 다 따져 놓고. 그것 아니여. 그런 법이 있나?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허는 공안을 바로 탁 깨야사 바로 깨버려야사 이렇게 껌껌헌 중생, 부목정령(附木精靈)이 아니여. 풀에 붙어살고 돌에 붙어살고 요까짓 몸뚱이, 이 고기 몸뚱이 송장에 붙어살고 이게 아니여.

 

인자 바로 척 나와. 내가, 바로 내가 나와. 내가 나와 가지고 내가 살아야지. 이거 의초부목정령(依草附木精靈)으로 살아 쓰겄는가 말이여.

 

 

이 정법. 이 정법을 어따가 전하리까? 하니까 우리 부처님이 국왕한테 전했어. 국왕, 임금님한테 전했어. 임금님이래야 복을 짓고 나왔고, 참말로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복을 짓고 나와서 임금이 되는 수가 많이 있어.

그래서 정법문중에서 인연을 짓고 복을 짓고 나온 이는 그만 나옴서부텀 임금이 되아도 그 부처님을 그대로 존숭헌 거여. 궁궐에서 뭐 아나?

 

우선, 무슨 스님이지? 무슨 스님? 이름 잊어버렸네. 만날 허든 그 스님, 왜 망건 못 쓴 임금 있지 않나? 그 무슨 스님이지? 아 망건 못 쓴 스님 저번에도 내가 법문인가 말했는데 잊어버렸네.

 

아! 임금이여. 그 임금—그 스님이 계행이 청정허고 도를 잘 닦고 유명하다 하니까,

그 대신(大臣)이 그 스님한테.. 농산 스님! 이름이 농산이여. “농산 스님한테 기도를 드리면은 태자를 얻을까 합니다”하니까,

 

임금님이 나이 육십에 자식을 태자(太子)를 두어사 나라를 전통할 텐데. 그때는 뭔 어디 임금님이 기어니 아들을 낳아야사 그리 인자 참 왕위를 전하는 법인데, 아! 왕위를 전할 수가 있나, 아들이 없으니깐.

그러니 애가 타서 아들을 하나 낳을라고 그 별짓을 다했다 그말이여. 별 약을 다 써서 그 내전(內殿)께 별짓 다해도 그 아들이 되나?

 

그래 조정 대신이 “우리나라에 농산이, 도사(道士)라고 하는 농산이 있으니 농산 스님한테 기도를 드리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아 그래야! 그러면 기도를 며칠이나 해야 하나?”

“한 백일쯤 백일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백일기도를 그러지”

 

백일기도를 턱 작정하고는 “농산을 청해라” 농산을 청허니까 농산이 왔지. 청허는데 안 올 수가 있나? 저 양양 땅에서 농산이 와 가지고는 어전에 턱 들어오니까, 농산을 불러서 “농산이 나라를 위해서 한 백일동안 기도해서 태자를 하나 얻게 해 주면은 어떻겄느냐?”

임금님이 말하는데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는 것이고, 쾌허(快許)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길로 “거 폐백(幣帛)을 얼마나 바쳤으면 부처님께 폐백을 올렸으면 쓰겠느냐?”

“우선간 천 석만 주십시오. 벼 천 석만 주십시오”

 

천 석을 허락했지. 그 천 석뿐인가, 만 석도 좋지마는 천 석을 주니까, 천 석 그놈 가지고.

그때는 양양 어디가 양식이 없나? 임금이 뭣 하나 해주면 다 사방 양식인데, 그 뭐 가지고 갈 것도 말 것도 없고, 양양 땅에 가서 그대로 그만 그 나라에 모도 바칠 그런 양식이 그저 꽉 찼으니깐.

 

그놈 그저 천 석을 갖다가, 한정해 준 천 석 그놈 가지고는 막 때려 쓰는데, 부처님한테 마지(摩旨) 한 불기(佛器) 올리고, 불공(佛供) 한번 한 것 없지. 그대로 갖다가 천 석 갖다가는 마음대로 썼지.

기도법이 그만큼 해야 되는 법이지. ‘내가 천 석을 올렸으니 뭐 허나 안 허나?’ 그것이 뭣일 것인가?

 

임금님은 주어 번지고, 농산은 천 석 얻어다가 그저 불쌍한 사람만 준다. 배고픈 거지 주고, 불쌍한 사람 주고, 옷 해 입히고, 밥 먹이고, 아! 그런다 하니까 그만 그저 뭐 팔도(八道) 거지가 다 모이는데.

뭐 밥 주고, 그저 옷 주고, 쌀 없다고 허면 쌀 주고 그저, 돈 달라고 허는 놈은 돈으로 내 환산해 주고, 아! 이렇게 쓰니 그거 뭐 백일 동안에 그 천 석 다 그까짓녀러 것 며칠에 다 쓸 수도 있는데. 다 써 버리고 없어.

 

또 천 석을 내루라 하니까 또 천 석을 내루아 줘. 또 그놈 가지고 막 그래 쓰고.

 

나중에 조사를 ‘어떻게 기도를 모시는가?’ 나라에서 그 참간(參看)도 할 것도 없지마는, 한 번 믿었으니 성미(誠米) 올렸으면 그만이지 거다가서 무슨 조사를 허리요마는 대신을 보내서 조사를 해 본 즉,

부처님한테 기도헌 건 아무것도 없고, 맨 노상에다 거리거리 쌀 백미 갖다 막 쟁여 놓고, 백미 보시를 모도 불쌍한 사람은 그저 다 몇 말씩 주고, 밥해서 또 끊여 준 데가 있고 그저, 맨퍼서 쏵 그래 버리지.

 

그러고 또 나머지 돈은 이거 모도 시줏돈이라고, 그만 저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저 뭐 어보(魚布), 밥을 지어서 큰 깊은 강수(江水)에다가서 모두 밥을 띄워서 고기를 멕이고, 괴기를 모도 잡아 가지고 온 (괴기를) 잡아다가서 막 그만 강수에다 모도 넣고,

그 모도 보시(布施) 중 제일이니까, 어별(魚鼈) 같은 것 모도, 미꼬리 같은 것 모도, 괴기 같은 것 막 잡아 갖다 물에다 그만 집어 넣고.

 

그러면 이놈 저놈 모두 억지로 참말로 잡아올까 싶은 게 ‘잡아온 놈은 안 산다’ 그래 놓고는, 끓여 먹을라고 잡아간 놈은 갖다가서 탁 집어넣기도 하고. 이렇게 육바라밀 행을 보시에다가서, 그만 방생(放生)에다가서 막 드립대 헌다 그말이여.

 

아! 그만 기도헌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런 짓이나 하고 있네?

임금한테 사신이 주달(奏達)하니까, 임금이 ‘그 이상하다. 원, 기도를 부처님께 해서 부처님이 그 영험으로 태자를, 저 어떻게 이렇게 기도를 해서 태자 하나를 어떻게 점지해서 낳게 만들 것인데 아, 이런 놈의 짓만 하고 있으니 이상하다. 그러나 저러나 백일을 한(限)해 놨으니깐 백일 한한 날까장 백날까장 지내보자’

 

임금님이니깐, 적어도 점잖하시니까 뭐 그런 것 저런 것에 조금도 마음을 달리 먹지 않고는 백일기도를 딱—그날 밤에 백일인데, ‘오늘이 백일이로구나’하고 작정허고 있는데,

백일 날 밤에 꿈을 척 꾸니까, 아! 농산 스님이 쬐그만한 걸망 하나 짊어지고, 갓은 이만한 놈 하나 뒤집어쓰고 째깐한 노장(老長)이 먹장삼을 입고 걸어 들어오더니, 그 어전(御殿)에 와서 절을 척 허고 ‘소자는 내궁(內宮)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어전에 절 한 자리 허고는 나와서 내전(內殿)으로 쓱 들어간다 그말이여.

 

그 꿈이 하도 이상스러워. ‘그 꿈, 참 이상하다’ 그래 임금이 짐작이 밝은 임금이니 모를 이치가 없어. 그 내전으로 쓱 들어가서 그 부부지간에 정몽을 이룬 뒤에는 꿈 얘기를 했어.

‘아, 이러저러 혀. 아, 농산이 꿈에 이렇게 들어와서 절하고 내전으로 들어왔다’고 그런게, 아! 내전하께서 또 말씀하기를 ‘소비(小妃)의 꿈에도, 아! 중이 들어와서 품안에 안기면서 소자는 입태(入胎)코저 허니 사랑하라고, 이래서 꿈을 깨니..’ 꿈 얘기를 서로 했지.

 

그 뒤부텀 태기(胎氣)가 있어 아들 낳았네. 아들을 낳았는데 참 비범한 옥동자여. 잘 낳았지. 그 도를 많이 닦고 그랬으니 뭐.

그렇게 몸 받기 마음대로 받아. 마음대로 받는 거여. 뭐 못 받는 거 아니여. 마음대로 받기는 받되, 그 한 이천 석 갖다가서 보시를 해야 되아. 불쌍한 사람 모도 밥 해 주고 옷 해 주고 보시를 했어. 그 보시 그놈을 많이 한 그 공덕이 그것이 복 짓는 것이여. 한량없이 복을 지었어.

 

그 복을 지어사 임금 노릇을 허지. 임금이 되았지마는 복이 없으면은 뭐 어떻게 임금 노릇을 할 수가 있나? 백성들이 임금의 말을 복종을 해 줘야지. 모도 백성들이 농사지어서 모도 나라에 그 모도 바쳐야지.

그러헌 복을 짓니라고 그렇게 헌 것이여. 맘대로 그까짓 거 있으나 없으나 태어나지마는 그렇게 해 가지고 태어났다 그말이여.(21분21초~42분45초)

 

 

 

 

 

 

(3/3)----------------

 

태어난 뒤에는 망건(網巾)을 씌우면은 못 써. 인자 성년이 되아서 관례(冠禮)를 헐라고 망건을 딱 씌어 놓으면은 “아이고! 머리야”하고 확 벗겨 버려.

생전 안 써 버릇헌 게 못 써. 아, 중노릇할 때 망건을 어디 누가 썼나? 머리 쏵 깎아 번지고.

 

그놈만 씌워 놓으면 활딱 벗어 버려. 그 임금 태자로써서 일찍이 관례해서 그 망건 다 쓰고, 다 쥐꼬리 당줄에다가 무슨 뭐, 옥관자(王貫子)를 붙이고 뭐, 그러고 다 있어야 하는데, 임금 아들 임금 태자로써서 활딱 벳겨 버린게 그 쓰겠는가 말이여. 그러지마는 할 수 있나? 못 썼지.

 

그렇게 태어났네.

그러헌 도인도, 아 그런 도인도 다 그렇게 지어서—암만 도(道)는 많이 닦았지마는 도력은 있다하지마는 복(福)이 없으면 또 안 되네. 그러니 복도 닦아야 한다 그말이여. 복도 지어야 한다 그말이여.

 

내가 여다가 이런 말 저런 말 하면은 돈 말하느니, 쌀 말하느니, 뭔 말하느니 헌다하지마는.

아! 설법을 설법대로 들어야지. 거다가 돈, 쌀 얘기허니 내 허물부텀 알라고 한다 그말이여. 들을라고 한다. 그게 법문이여? 그게 법 듣는 사람이여?

 

법이란 게 한 번 들을 것 같으면은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모두가 법이래야 되고, ‘그 모도 나를 알라고 하는 법이니 그걸 알아야 되겄구나’

이렇게 해서 감청(敢請), 그 참 설법을 갖다가서는 정성으로 청(請)을 해서 들어서 설법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 무슨 그 ‘자기 자랑부텀 헌다. 자기 뭣부텀 헌다. 자기 저 신부텀...’ 그래서야 세상에 설법 듣는 학자라고 헐 수가 있는가?

 

내가 여기서 뭔 말을 하나 헐라 한고 하니,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아닌가? 여그는 법보선원(法寶禪院)이라고 이름을 짓고, 법보제자여.

여기 와서 등록허고 우리 법보제자가 되았으니 우리 법보제자가 이리 가져오던지 저리 가져오던지 시금(施金)이네. 땅을 사던지, 집을 짓던지, 스님네 공양을 시키던지, 뭣을 허던지 이 법보전(法寶殿)으로 성금을 바친 것이여.

 

성금을 가지고 이것도 허고 저것도 허고 모도 복을 지어, 모도 시주(施主)네 복을 다 지어드린 뒤에, 또 거다가도 또 좋은 복이 있으면은 인연복(因緣福)도 지어주고, 별별 복도 다 지어주고.

 

내가 그래서 마침 가다오다 보니 그놈의 어별, 자래, 붕어 뭐 저 가무치, 뭐 미꾸리 어떻게 많이 들어와. 여그는 강.. 뭔 도(島)라드라? 뭐 강화도(江華島)라디야? 강화도. 그놈의 데서 괴기가 산 괴기가 한량도 없이 나와. 아! 이놈의 걸 다 사 넣을라니 돈이 몇천 만원도 부족허겄어.

 

그러지마는 어떤 놈은 살리고 어떤 놈은 안 살릴 수가 있나? 붕어고 그저 무슨 뭣이고 그저, 누가 내가 잡아오라고 했나? 내가 그걸 살라고 갔나?

가다오다가 보니 그것이 앤겨서 한번은 내가 그냥 ‘에이, 그놈 본 김에 사다 넣는다’고. 나 혼자 그놈을 한 30관(貫) 가지고 와, 혼이 났지. 두 차에다가 싣고 와서, 30관이 뭣이여? 근 40관인가 되는데.

 

큰 뭐 까무친가 뭐 그런 것은 몇 마리 안 넣어도 당최 무거워서 못써. 아, 그놈을 사다가 넣었는데, 그놈의 것이 인연이 되아가지고 자꾸 그놈의 데가 뵈인다 그말이여.

아, 그래저래 내가 사다 넣은 것이, 돈이 있는데는 뭔 돈이든지 ‘빌어먹을 놈의 돈, 그건 불쌍한 놈 사다 집어넣으면 그놈이 제일이다’하고는 막 갖다가 내가 사 넣었어.

 

사 넣어서 그 다음에 혼자 못 댕기고 똑 야를 데리고 둘이 댕겼는데, 인자 사십 관을, 사백 관을 사 넣다 했나? 사백 관인가? “네”

사백, 인자 채워졌어 사백 관. 사백 관이면 얼마여? 그놈의 목숨의 수가.

 

야! 내가 우리 법보원 모도 시주들, 모도 여러분들이 모도 돈을 낸 것, 기도헌다고 돈 내고, 뭐 짓는다고 돈 내고, 뭐 산다고 돈 내고, 이 절에 와서 모도 어쩐다고 돈 내고, 양식 팔라고 돈 내고, 이리저리 돈 내.

맨 고놈이 하나도 안 팔아. 내가 미리 다 팔아 놨은게 팔 필요가 없지. 안 팔고 이놈을 두었다가 저런 땅은 사고, 계약금은 걸어놓고 다 내도 못하고, 나뭇값도 해 놓고 내도 못했지만 그까짓 놈의 것 내가 또 어떻게 허든지 말든지 사백 관을 내가 사 넣었어.

 

우리 법보제자들 모도 이러헌 복을 지어야 되겄다. 뭐 돈 낸 이가 복 짓지, 무슨 뭐 일허는 사람이.. 일허는 사람도 복 짓지.

임금은 뭐 가만히 앉어 임금노릇 허지 뭐. 임금 그 나라 쌀도 갖다가서 자기가 막 쓰고 복 안 받았는가? 그 써 준 사람도 복 받지 뭐.

 

내가 그래서 사백 관을 했소. 왜 대중에 털어 내놓지, 그걸 안 털어 내놓고 뭣 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것이 바라밀 가운데에 육바라밀 가운데 끝에인데, 제일계(第一戒)가 십중대계(十重大戒)의 제일계가 ‘살생 말라’했는데 생명 죽이지 않는 게 제일계인데, 생명을 안 죽인 대신에, 죽이지 않는 대신에 죽을 놈을 살려주는 복이 제일이다 그말이여. 살생 않고 목숨을 살리왔다 그말이여.

 

그러헌 복을 내가 우리 법보원 대중에 내가 지어서 우리 대중 다 장차 권속이 되고, 장차 모도 인연이 되고, 모도 다 인자 설법만 허면은 모도 설법을 듣고 믿고, 모도 확철대오 허고, 그 인연이 아닌가? 그 인연이 나쁘단 말인가?

 

그러헌 좋은 일을 허고, 그런 일을 했으면은 문자견자(聞者見者)가 다 말 한마디에 큰 대복(大福)이 되아. “잘 참 그런 일 잘했다. 그런 복을 지었다. 모도 우리가 이것 참 같은 인연이로구나”

이러면 그 말 한마디에 천하에 복이 되는 것인데, 그런 것을 비방하면은 비방죄가 거 설찬히 많어. 무슨 우리 대중이 비방할까마는 내가 미리서 이런 말 한마디 헌다 이 말이여.

 

그러면 일 찬(讚), 내가 이와 같이 헌 것은 내가 했드래도 내 찬(讚) 내가 해서 대중께 알려드려야 하는 것이지 어쩌. 여까장 해 두고.

 

이런 것은 아무리 많이 허고, 별짓을 별별 계행을 다 지키고 육바라밀을 다 지켜도 내 마음 깨닫는 데는 소무간섭(小無干涉)이다 그말이여.

요런 짓은 백만억 겁을 해 놔도 결국은 복 다 받으면 타락이고, 허지마는 그 복도 지어놔사 내가 확철대오 해서 중생 교화할 때는 복혜양족(福慧兩足)으로 써 나간다 그말이지.

 

말이지마는 생사 면(免)허는 데는 소용이 없어.

이러헌 복을 지어 가지고는 그 복으로써 내생에 임금, 내생에 전륜성왕, 이 몸 후에 제석천왕이 되아, 비비상천왕 다 되아도 그건 다할 때가 있어서, 멸(滅)헐 때가 있어서 타락하는 법이여.

 

의초부목지정령(依草附木之精靈)이다. 요까짓 몸뚱이에 붙어 있는—이 내가 나를 요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은 풀에 붙어사는, 돌에 침 뱉으면 돌 침 뱉은 것 빨아먹고 사는, 빗자리 꽁댕이 썩어진 빗자리 꽁댕이에 붙어사는 귀신 영혼이다 그말이여. 혼백(魂魄) 영혼이여.

 

고런 것도, 이놈의 혼백이라는 것이 귀신이 어디 붙어야 놀아나는 것이여. 그래 밤에 도깨비란 놈이 별 지랄 다혀. 불도 내고, 싸움도 허고, 막 사람을 잡아먹을라고 뺨도 치고, 씨름을 하면 도깨비한테 꼼짝 못하고 져.

어쩌다가 기운 장성(壯盛) 센 사람이, 기운 센 사람이 고놈을 그만 잡아서 꽉 때려 묶어서 어따 달아 놔 둬. 뒀다가 아침에 보면 빗자리 꽁댕이라. 귀신이 아니라 빗자리 꽁댕이, 다 썩어진 놈의 꽁댕이 고런 것이여. 요렇게 놀아난다 그말이여.

 

천 가지 만 가지, 복을 백만 가지를 다 지어봤던들 생사는 면치 못혀. 그러니 공안(公案)! 공안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여하시조사서래의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하는 그 공안을 바로 깨달라야 생사를 면한다 이 말이여.

 

그래서 중이 조주 스님께 묻되 “여하시조사서래의입니까?”  “판치생모니라. 판때기 이빨이에 털 났느니라”

 

이 자개(者箇) 화두는, 이 낱 화두는 요렇게 "판때기 이빨 털 났느니라"한 이 화두는 종문중일관(宗門中一關)이다. 이 화두문(話頭門) 가운데 제일이다.

조주(趙州) 무자(無字)가 제일이라 했는디, 나는 판치생모가 제일이라고 헌다 그말이여.

 

조주 무자는 한국 글인데, 한국 글을 지나(支那)에서는 ‘무(無)’허면 그냥 그대로가 없단 말인데, 우리 한국에는 그놈을 새겨야 되니까, 되새기면 “없다” 이 말이다.

허니 “없다” 한국말로 그대로 “없다” 이렇게 화두를 해야지, 무(無)! 그러면 지나음(支那音) 음으로만 무(無)허니 그 안 된다. 용성 스님은 이렇게 가르키는데.

 

경허 큰스님이나, 혜월 스님이나 만공 큰스님은 “무(無)” “무(無)” “무(無)” 이렇게 가르키거든. 음으로만 가르켜. 무(無)!

 

그 무자(無字)가 무슨 무자냐?

불시유무지무(不是有無之無)며, 있다 없다는 무도 아니며, 불시허무지무(不是虛無之無)며, 비어서 없다는 무도 아니며, 불시진무지무(不是眞無之無)니라. 참으로 없다는 무가 아니니라. 대혜 스님 같이 그 밝으신 종장(宗匠)이 이렇게 해 놨거든.

 

그러니 무자절목(無字節目)에 가서, 십절목(十節目)에 가서는 탁! ‘조주는 무(無)라고 헌, 어째 무라고 헌 무(無)만 찾아 나가야 하느니라’ 이래 놨다.

 

그러니 용성 스님도 큰스님, 다 큰스님네인데, ‘용성 스님, 무(無) 없다고 찾아야 하나?’ ‘무(無)라고 찾아야 하나?’ 양 갈래가 되어서 그 화두는 일제히 내가 안 가르켜부러. 안 가르켜부러.

탁! 그만 내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다 같은 조사서래의인데 ‘여하시조사서래의냐? 판치생모. 판때기에 털 났느니라’ 내가 이놈을 막 그만 가르켜 버린다 그말이여. 판치생모니라.

 

그 잘 들어야 되아.

 

유심(有心)으로 투부득(透不得)이다. 유심으로 얻지 못한다.

유심으로 얻지 못한다는 것은 판치생모라는 것은 그 사량분별(思量分別) 무슨 있는 뭔, 뭔 마음이든지 모냥이든지 거다가 무슨 견해든지 때려 붙이면은 유심이여.

또 아무것도 없는 무심(無心)으로도 얻지 못한다. 유심(有心) 무심(無心)으로는 통 투부득(透不得)이여.

 

성성(惺惺) 영리한(靈利漢)아, 참 깨끗허고 깨끗헌 영리한 애들아, 직하(直下)에 어찌 흔번(掀飜)치 못하냐? 이 말 아래에 어찌 깨닫지 못하냐?

‘판치생모다.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어찌 깨닫지를 못하냐? 이 영리자(靈利者)들은 한번 직하(直下)에 깨달을 것이니라.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허면 생사(生死) 난면(難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42분46초~59분5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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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비환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준선자(俊禪子)’ 참고.

*인생행락(人生行樂 사람 인/살다·삶 생/행할 핼/즐길 락) ; 사람[人]이 세상을 살아가며[生] 재미있게 놀고 즐겁게[樂] 지냄[行].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덤벵이 ; 덤벙이(묽은 액체 따위가 뭉쳐진 덩이).

*신력(神力 불가사의할 신/힘 력) ; 신통력(神通力). 신통(神通)한 힘.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일반적인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불보살의 신통력을 말한다. 특별히 부처님의 신통력을 불신력(佛神力)이라고 한다.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참고]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현음사) ‘32. 4조 도신 대사 · 재송도자’ p202~206 참고. 『직지 강설(上)』 (무비 스님 번역 | 불광출판사) ‘제6 도신·홍인 대사’ p202~203 참고.

四祖  因栽松道者  來相見  語言相契  祖曰汝年已老  改形而來可也  道者  珍重  便行下山至濁港

4조 도신 대사께서 재송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서로 계합하였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몸을 바꾸어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송도자가 아무 말 없이 문득 산을 내려가서 탁항에 이르렀다.

 

見一處女浣衣  遂云我欲借汝家一宿  女云有父母在  道者曰你肯麽  女云去問我父母宿  道者去不遠  於一樹下坐化去  其女  從此有孕  生一男子  被父母訶嘖  及是非不能洗  便將兒子  抛於江水中去  復廻次日見兒  逆流而去  不忍復收養之

한 처녀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집을 빌려서 하룻밤 자고자 하노라” 처녀가 말하기를 “부모님이 계십니다” 도자(道者)가 말하기를 “그대는 허락하는가?” 처녀가 말하기를 “집에 가서 저의 부모님께 묻고 주무시라고 하겠습니다”

재송도자가 멀리 가지 아니하고 한 나무 밑에서 앉아서 입적하셨다. 그 처녀가 이로부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모의 꾸짖음과 옳고 그름을 씻을 수 없게 되어 문득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강물에다 던져 버리고 갔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날에 아이를 보니 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거두어 길렀다.

 

乞食度日  至七歲  携在黃梅  路上  見四祖  祖問曰童子何姓  子答曰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什麼姓  子曰佛性  祖曰雖有佛性  汝且不會  子曰非但我不會  三世諸佛亦不會  祖曰爲什麼不會  子曰性空故  祖默識其法器  卽便出家  乃傳衣付法

걸식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일곱 살이 되어서 이끌고 황매산에 갔다. 길 위에서 4조 도신 대사를 만났다. 4조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동자는 성이 무엇인고?” 동자가 답해 말하기를 “성이 있기는 하나  보통의 성은 아닙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어떤 성인고?” 동자가 말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불성은 있으나 너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동자가 말하기를 “비단 저만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삼세제불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동자가 말하기를 “그 본성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4조 대사께서 그가 법기임을 아시고 곧 문득 출가해서 이에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셨다.

*육례(六禮) ; 구식(舊式) 혼인의 여섯 가지 의식.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여불무수(與佛無殊) ; ‘부처와 다르지 않다’

[참고] 보조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도신(道信) ; 五八O ~ 六五一.  중국 선종의 제4대 조사(祖師). 기주(蘄州) 광제(廣濟 : 지금의 湖北省 武穴) 출신. 속성은 사마(司馬)씨. 어려서부터 불교의 해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스님이 된 후 五九二년(개황12)에 서주(舒州) 완공산(皖公山)에 들어가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인 승찬(僧璨) 문하에서 공부하여 깨닫고 9년(일설에는 10년) 동안 시봉하였고, 달마대사 이래로 조사의 징표로 전해진 가사와 발우를 전수받아 4조(四祖)가 되었다.

六二四년(무덕7)부터 기주(蘄州) 황매(黃梅 : 지금의 湖北省 黃梅)의 파두산(破頭山)에서 30여 년간 주석하였는데, 이 기간에 홍인(弘忍)에게 법을 전했고, 제자 법융(法融)은 별도로 우두종(牛頭宗)을 세웠다. 또한 파두산은 뒤에 쌍봉산(雙峰山)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므로 사람들이 쌍봉도신이라고도 불렀다.

 

문하의 제자들이 오백여인이 되었는데, 선종사상 이와 같이 많은 수의 학인들이 한 명의 스승 아래서 수행했던 것은 도신에게서 시작된다. 六五一년(영휘2) 윤9월(일설에는 영휘1)에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세수 72세로 좌선한 채 입적하였다. 동산(東山)의 황매사(黃梅寺)에 탑을 세웠다.

도신이 입적한 후에 제자인 홍인은 쌍봉산((雙峰山)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빙무산(憑茂山)으로 법문(法門)을 옮겼는데, 사람들이 쌍봉산은 서산(西山), 빙무산은 동산(東山)이라 불렀기에 도신과 홍인의 선법을 병칭하여 동산법문(東山法門) 또는 동산정문(東山淨門)이라 한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기하다(忌-- 꺼릴 기) ; 마음에 꺼림칙하게 여겨 가리거나 피하다.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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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호리(狐狸 여우 호/살쾡이·너구리 리) ; ①여우와 살쾡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도량이 좁고 간사한 소인배(小人輩)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설화(說話) ; ①말하는 것. 또는 그 말. ②설법하는 것. 주로 상당법문에서 법좌에 올라 하는 말. ③『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의 줄인 이름. 설화는 옛 이야기가 아니고, 『선문염송』의 고인의 화두(話頭)를 선사의 안목에 의해 해석하고 설명(說明)한다는 뜻.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내전(內殿) ; ①중궁전(中宮殿 왕비가 거처하던 궁전). ②안전(안殿 궁궐 안에 임금이 거처하는 집).

*쾌허(快許 쾌할·시원할 쾌/허락할·들어줄 허) ; 남의 부탁이나 청(請)을 시원스럽게 들어줌.

*폐백(幣帛 비단·예물·돈·재물 폐/비단 백) ; ①일반적인 모든 예물(禮物). ②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③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④혼인 전에 신랑이 신부 집에 보내는 예물. ⑤윗사람이나 점잖은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가지고 가는 선물.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기(佛器) ; 부처님에게 올리는 밥을 담는 그릇.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내루다 ; ‘내리다’의 사투리.

*참간(參看) ; 참관(參觀). 어떤 자리에 직접 나아가서 봄.

*성미(誠米) ; 신불(神佛)에게 바치는 쌀.

*시줏돈(施主-) ; 스님이나 절에 바치는 돈.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어별(魚鼈 물고기 어/자라 별) ; ①물고기와 자라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바다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주달(奏達 아뢸 주/전달할 달) ; 임금에게 아뢰던 일.

 

 

 

 

 

 

----------------(3/3)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감청(敢請 감히 감/청할 청) ; 스스러움이나 어려움을 무릎쓰고 감히 청함.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인연복(因緣福) ; 인연작복(因緣作福). 좋은 인연을 짓는 복.

*관(貫) ; 무게의 단위. 한 관은 한 근의 열 배로 3.75kg에 해당한다.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문자견자(聞者見者) ; 듣는 자와 보는 자.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복혜양족(福慧兩足) ;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함께 온전히 갖추어 충족한다는 뜻.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종장(宗匠 근본·우두머리 종/장인·우두머리 장) ; 수행한 바가 다른 이의 사표(師表)가 될 만하여 법맥을 이어받은 고승(高僧).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영리(靈利) ; 명석한 이해력을 지닌, 두뇌가 민첩한. 또는 그러한 사람. 영리한(靈利漢). 영리(伶利)라고도 한다. 분별에 치우쳐 불도(佛道)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흔번(掀飜 번쩍 들다·치켜들다 흔/번역하다·뒤집다 번) ; 전복하다. 뒤집히다.

*조관불투(祖關不透)  생사난면(生死難免) ; ‘조사관(祖師關, 화두)을 뚫지 못하면 생사를 면치 못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1/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60)—몽산03. 몽산시 각원상인(1) (임자72.07.15)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6분.


(1/3)----------------

운수기천리(雲樹幾千里)에  산천정묘연(山川政渺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봉각백수(相逢各白首)요  굴지계유년(屈指計流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찍이 출가해서 부모 고향 친척 다 여의고 들어와서 도(道)를 닦는다. 도학자(道學者)의 평생이라는 것이 참 운수천만리(雲樹千萬里)지.
집을 여의고 나왔으나, 뭐 집에 들어가서 뭐 어머니 아버지 무슨 고향 산천 그 어디 인연을 조금이라도 뭐 머물러 두고 나왔나? 다 여의고 떼고 나와서 그대로도 닦는 자체가 퍽 참 운수천만리(雲樹千萬里)에 그 멀기가 천만리여

다시, 허! 이렇게 도 닦다가서는 집에 들어가서 어디 살림 살 수가 있나? 아들 날 수가 있나? 뭣 해 줄 수가 있나? 부모 한 번 같이 모시고 살아볼 수가 있나?
중, 우리 도 닦는 도학자의 참 생애가 이렇게도 거리가 이렇게 친척 거리가 멀고, 고향 산천이 그렇게도 떨어지고. 이렇게 되아 버렸지.

참 생각할수록에 그 부모, 형제 인연 참 정묘연(政渺然)이다. 아주 묘연(渺然)뿐이여. 아득하니 묘연뿐이여.


아, 그 우리나라에 참 유명허신 서산(西山) 도사, 어릴 때 과거(科擧)보러 나왔다가 과거를 못허니까 그만 염세주의로 세상에 살 마음이 없어 돌아가실라고 결정하고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아! 산중에 제승(諸僧)들이, 모도 중들이 그 산속에서 공연히 친척 부모 고향 여의고 한평생 그렇게 그만 아무 인생 목적 없이 소원도 끊어버리고 독각 독승 독신주의로 그렇게만 지낸 줄 알았더니. 아, 들어와서 보니 정말 참 인생살이여. 인생의 사는 것이 참 이 사찰, 절이로구나.
그 자아를 자각해서 대도(大道)를 통(通)해서 자기도 깨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참 영생(永生), 영원히 죽지 않는 참다운 법이, 인생의 온당한 참 살림살이가 여기 있구나.

아! 그만 믿어 가지고, 한 번 믿으면 그뿐이니깐. 믿어져 버린디야 어쩔 수 있어? 누가 그 믿음을 못 믿게 만들며, 그 무슨 저해(沮害)를 할 것인가?
한 번 믿어졌으니 아! 믿음서부텀 그렇게 외동아들로 부모 밖에 모르든 사람이—부모를 모른 것은 아니지. 정말 부모를 참으로 옳게 대도를 통해서 우리 부모도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그야 참 어디 어따가 댈 수 있는가.

그것 한평생 자식 노릇한 거, 부모 모시고 돌아가시드락까지 시봉질 잘해 가면서, 무슨 거 부모 잘 육산포림(肉山脯林)에다가 무슨 용미진탕에다가 무슨 금의옥식(錦衣玉食)을 아무리 해 올린다 한들, 출가해서 대도를 증득해서 부모 천도(薦度) 제도한 것만 할 것인가?

거 뭣 헐 것인가? 그거, 잠깐동안 그거 뭐 인생살이 그녀러 것. 그러지마는 그 인생적으로 봐서는 그렇게도 그 자식 하나 낳아서 외동아들한테 의탁할 마음이 아! 그만 태산 같지마는 과거(科擧)를 갖다가 과거 못 허고는 그만 염세주의로 아! 그 뭐 종적을 감춰버렸으니 그 부모 마음은 오직 할 것인가?
허지마는 서산 도사의 마음은 그 설법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꽉 믿어 가지고는 부모 뭐, 일시의 뭐, 가서 뭐 부모 앞에 가서 뭐 자식노릇 백 번 천 번 별짓을 다한다 한들, 도 닦는 것만 할 것인가.

자취를 착 허적(虛寂)해 버리고 그믐해 버리고는, 거 앉아서 도 닦는 거, 십 년을 도를 닦았다 그말이여.
그 자취는 그렇게도 운수천만리(雲樹千萬理)에 그 과거 갔다가 내던져 번지고서는 그만 들어와서 부처님 제자 되어 가지고는 도 닦고 앉었으니 참 정묘연(政渺然) 아닌가? 적적(寂寂)한 묘연(渺然), 그 자리가 그렇게도 떨어져 부렀어. 부모 자식의 인연 도리가 그렇게도 떨어져 부렀네. 

상봉각백수(相逢各白首)다. 자, 도를 통해 가지고 부모를—그 도통할 동안 나를 깨달을 동안이 솔찬히 그렇게 쉽지 못하고 시간이 얼른 오들 못하고, 금방 얼른 얼른 그만 몇십 년, 수십 년 그만 지내 버린다 말이여. 그러니 백수(白首)로 늙은 말년에 백수로 부모를 만나러 갔다. 도(道) 다 깨달라서 얻어 증득(證得)을 해 가지고는 부모를 만나러 갔다.

굴지계유년(屈指計流年)이로구나. 손가락을 꼽아 가지고 세알라 보니 그 세월이 벌써 사오십 년 흘러서 휘익 지내갔다. 그 부모는 뭐 백수 노인이 되어 가지고는 뭐 자식 기억도 다 못하게 됐지마는 돌아가셔 버리고 없다. 촌(村)도 폐하고 촌도 다 없어져 번지고. 이렇다.
그 지경, 허니 도를 확철히 깨달라 가지고 목적을 달성해 가지고는 참 여지없이 갖추어 가지고는 부모한테 갔지마는 이놈의 무상한 세상에 모도 그 부모는 다 이렇게, 촌락까장 이렇게 되아 번졌다.
우리 도 닦는 도학자의 자취가 다 이려. 이러하니 참으로 부지런히 참으로 해태(懈怠) 없이, 퇴태(退墮) 없이 잘 닦아야 할 것 아닌가? 어서 닦아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살아 생존해 계신 부모가 바랜 그 보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이라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우리 참선법은 조사관(祖師關) 뚫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인데, 조사관은 내던지고 엉뚱한 짓 말아라. 왜 엉뚱한 짓을 하고 앉았나?
화두를 하나 얻었으면은 그 화두 하나 가지고는 그저, 그저 여태까장 아침마다 하든 거 뭣이여? 화두하나, 그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 하나 독로한 거, 단(單)으로 홑으로 독로한 거, 조금도 거기에 섞임이 없이 아무리 무슨 뭐 섞을라고 해 봤던들 섞일 것이 있나. 거가 뭐가 섞일 것인가?

거 그 번뇌니 망상이니 그 모두 그런 것 벌써 알면서, 번뇌 망상을 내가 모름사 하지마는 번뇌 망상과 그 잠 같은 거 못쓸 것인 줄 알면서 왜 그렇게 속냐 그말이여. 왜 그놈한테 그거 속아 지내는가?
그 천하에 나를 실업(失業)허게 맨들고 업을 잃어버리게 맨들고, 망가(忘家) 집을 모도 잊어버리게 맨들고, 고향을 가지 못하게 맨드는 마구니한테가 속아서 왜 일순간(一瞬間)인들 그만 잠 속에 들어버리고, 망상 속에 들어버리고, 그럭저럭 계산 속에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얼마나 거그서 용맹을 갖춰야 하겄는가? 얼마나 참 발심(發心)을 해야 하며 얼마나 날카로운 생각을 가져야겠는가? 좀 생각해 보소.


조사관을 뚫어야 하느니라. 조사관 뚫지 않으면 참선은 아니니까.
그 조사관이 얼마나 그렇게 맥혔기 때문에 그렇게 뚫기가 어려운가? 그 못된 곳이 모두 가려서 맥혀서 안 뚫어지지. 번뇌 망식 그 쓰잘 데 없는 계산, 그놈의 것 때문에 안 되지.
그놈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같은 놈이 뭐 구름같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취 없이 일어난 곳도 없이 퍼일어나는 놈의 것 그까짓 거, 그거 뭐 거기에 떨어지들 말고. 안 낼라고도 말고, 나는 놈을 미워헐라고도 말고, 그저 내 찾는 놈만 찾아라.

‘찾는 것도 죽는다’했지마는 ‘찾으면 죽느니라’했지마는, 참말로 찾을 것은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 공안(公案)을, 공안 대의를 찾어야 할 것 아닌가.
‘찾는다’하니까 무슨 뭐 공안 대의까장 찾지 말란 말인가? 미(迷)했으면은 깨달지 못했으면은 찾을 놈은 그뿐인데.

아! 그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뿐이지. 고놈 하나 딱 추켜들면 나오면, 아! 그놈은 조사공안이 근본적으로 그만 막 나오는디, 내가 딱! 타 가지고는 그놈 근본 뿌럭대기처럼 나오는디, 왜 그놈이 없어질 까닭이 있나. 없어질 수가 있나. 아지 못했으니 그놈 하나 진실해야겠다.

참, 그놈 하나 어떻게 허다가 얻었나? 생전 해야 믿지도 못하고 만년 가야 믿지도 못하고.
오직 해야사 불불(佛佛)이 출세해 가지고는 그 하나를 가르쳐 볼라니 안되니까 돌아가시기를 다 하고. 조석불(朝夕佛)이 있네.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돌아가신 부처가 있어.
가르쳐 볼라니 되어야지. 이건 자득(自得), 자기가 제가 자신(自信), 제가 믿어야지 제가 안 믿으면 못하니까. 부처님이 대표로 대신(代身)으로 믿어 주들 못하니까.

안 믿어 주면 인연 없는 중생인데, 미(迷)한 중생을 제도(濟度)치 못하니까. 어떻게 헐 것이여? 천상 이건 제가 저를 믿어서 저를 찾는 것임에 누가 ‘믿어라, 말라’ 누가 ‘해라, 말라’ 허라고 해서 허고, 말라고 해서 말 것인가?
아! 이렇게 결심 결정해 가지고는 콱 믿어 가지고는 쏴악 그만 출가해 번지고 일체 애연(愛緣) 애착(愛著)을 그 날카로운 칼로 쫙 베 번지고 들어온 우리 학자들이여.
누가 하라고 해? 부처가 하라고 한다고 혀? ‘믿으라’고 헌다고 믿고? 이렇게 믿어 가지고 결정해 들어왔으니 허는 법식이 그려.

참선이라 하는 것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다.
이것 또 누가 허신 말씀인고 하니 ‘몽산 스님이 각원상인을 보인다[蒙山和尙示覺圓上人]’ 각원상인이니께, 그 각원상인이 각원상인 같은 이는 상인(上人)이라고 해 놨으니 그때 당시에 큰 벼슬헌 분들이고, 글안허면 모두 군수나 모두 그런 사람들을 상인이라고 했다 그말이여.
몽산 스님 당시에도 불교를 무척 반대할 때니까, 벌써 그렇게 너무 그만 갖다 상인이라고 붙여 놓았어. 무슨 놈의 제자인데 상인은 무슨 상인인가? 하지마는그 상인한테 이렇게 말씀을 했다 그말이여.

참선이라는 것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일체 방편이 없다. 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幻)인줄 알면 여의여 버렸다. 환(幻)에는 방편(方便)이 없다. 환(幻)이지 뭣이여?
아무리 별별 것을 다 성취를 해 놓았자 타락이 있는 것이니까. 아무리 계행(戒行)이 좋다 하지마는, 누가 계행을 지키지 말란 말인가?
수도(修道) 학자라는 것은 계행이 갖춰져 있는데, 계행이 저절로 있는데. 벌써 참선 하면 참선 하는 학자한테는 계행이 그만 근본이 딱 되어 있는데. 심지품(心地品)이라니까! 아주 심지품, 부처님이 바로 설허신 십중대계(十重大戒)가 그게 바닥이여 바닥. 참선 바닥이여.

참선 화두를 척 들면 대계가 그대로 딱 갖춰져 있는 것이 대승계(大乘戒)여. 아! 그런 대승계인데, 내가 밤낮 헌 소리가 그 소리여. 만년 헌 소리가 그 소리여.(처음~19분4초)





(2/3)----------------

아! 그 딸 하나를 낳아서 길러 가지고는 그 도 닦는 스님한테 시험한 것이여. 시험 혀.
중생이라는 것은 도(道) 아니라 도 보담 더헌 것을 닦는다 하드래도 그놈 모도 색상(色相)으로 색신(色身)으로 몸뚱이를 받았기 때문에, 색심(色心)은 나기가 마련이여.
몸뚱이 가지고 있으면 그놈의 색심이라는 것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근본적으로 몸뚱이 받아 나온 원인이 색심(色心), 색신이여.

이 도는 닦는다 하지마는 그 스님이 참말로 도를 닦는 도학자시면은 참말로 진(眞) 계행을 참말로 본분 계행을, 그 대승계를 가진 스님이냐? 아니냐? 그걸 보기 위해서.
몸뚱이로는 안 범하지마는, 신계(身戒) 몸뚱이 계로는 안 범한다 하지마는, ‘마음 계’는 그놈의 마음 그놈, 자취도 모냥도 아무것도 없는 놈이 갔다왔다하는 발목댕이도 없지마는,
그놈이 거 뭐 항상 그 도무지 그 가슴속 흉중에 연기처럼, 불 때면 연기처럼 일어나는 놈의 것이 그놈의 것이여.

아! 그게 어떤 놈이 연애편지를 쓰기를 그 하도 그 연애를 해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게, 심중(心中)에 홀기무연화(忽起無煙火)하야, 마음 가운데 홀연히 연기 없는 불이 일어나서 칠보앵금을 반익회라. 칠보앵금을 반을 태웠다는 말이 있어.
그놈의 심계(心戒)라는 것이 그거 벌써 심계 일어나면 범하는 것이 심계여.

그러니까 예쁜 처녀를 갖다가 턱 보냄서, “네가 대번 가서 꽉 보듬고 그만 네 볼태기를 입에다 대고 가슴을 문대고 물어봐라”
환히 아는 처녀니께, 뭐 키운 처녀와 다름이 없은께, 양식 대준 스님이니까 뭐 무간(無間)하기가 짝도 없고, 그만큼 그 스님한테 가서 올라 앉혀도 뭐 문제가 없고.

나이는 또 근 20살, 옛날에는 뭐 20살이면 늙은 처녀라고 허지. 그런 처녀가 가서 아, 그만 “그 스님을 보고 싶어서 내가 왔습니다”고 하면서 아! 가서 그만 그냥 보듬고 드립대 그만 부부처럼 그만 뽈대기를 대고 그러니까. 아! 더군다나 그 참, 그 남자 여자요. 그것도 남자가 오히려 여자한테 대들턴디, 그 여자가 남자한테 그만 그래가지고는 척 대들어 어린양 비스름허니 그러니까.

참! 참 그 계행은 옳게 가진 사람 아닌가? 참! 그런 계행이 어디 있어. 손 한번 만져본 바 없고, 손 한번 무슨 끌어안아 본 바 없고, 그대로 두고.
“이런 때 어떻습니까?” 물으니까.


잘 들어! 항상 들었다고 ‘그 아는 거’ 그러지 말라 말이여. 그러면 법문 듣는 게 아니여.

척 끌어안고 “이런 때 어떻습니까?”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하니, 차운 냉기가 바위에 대하니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다. 겨울에 삼동(三冬) 날에 더운 기운이 없구나”

너는 마른 냉기요 나는 차운 바위여. 아! 마른 냉기가 차운 바위에 대했는디 거기에 뭔 뜻이 있을 것이냐? 아무 뜻도 없고 정도 없고 인생 정이 뭣이 있느냐?
네가 천하 미인이고 예쁘다고, 내가 천하 미인 예쁜 정이 너한테 건너가겠느냐? 너한테 내가 조금이라도 그 무슨 범할 마음이 있겠느냐? 아무 마음 없다.

그러니까 그대로 어머니 시킨 대로 어머니한테다 그대로 회전(回傳)을 하니까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하니 삼동에 더운 기운이 없다 합디다”
내가 지금 몇 번째 하는 법문이냐 이것이. 어째 그리 못 알아들을까?


“더운 기운이 없다 합디다”하니까,
“하! 이거 웬일이란 말이냐. 내가 여태까장 시험을 해보지 못했더니 과연 참 오늘은 시험을 해봤구나. 아! 이놈을 갖다가 이런 속한(俗漢)이 놈을 갖다가 내가 십 년까지 양식을 대주었다. 차라리 빌어먹는 거지나 그 좀 구제했으면은 아! 그래도 그 무슨 보시 공덕이나 있겠지마는, 아! 이런 놈, 이 속한이 놈, 거짓 속한이 놈, 도(道) 커니는 아무것도 아닌 놈을 십 년을 양식을 대주었으니 이러헌 도무지 헛된 일을 헐 수가 있겠나. 이놈 이놈 견뎌봐라 이놈. 대방맹이로 쫓아 버릴밖에 없다”고.

아, 그길로 올라가서 그 있든 집 불까장 딱 질러 번지고 “이놈아 나가거라. 이 더러운 속한이 놈아 나가. 네 이놈 네가 왜 십 년이나 내 양식을 먹었어? 당장 나가”
그만, 불질러 버렸으니 나가지 뭐, 뭐 별 수 있나? 십 년이나 시은(施恩)을 받았지마는 그렇게도 무정하게, 무정보담도 그렇게 그만 사람을 갖다가서 배척을 해서 그 괄세를 해서 쫓아낸다 그말이여. 안 쫓겨 나가겄어?

어떻게 했으면은 어떻게 일러야만 안 쫓겨 나가겄느냐? 이게 전국에 과거 6대 선지식 당시에 전국에 물었든 것이여.

아니 저놈의 자올고 있는 것 좀 보소. 이 법문헌디 자올고 있는 것 좀 봐. 응? 그동안에 꾸뻑 꾸뻑 그놈의 자올.. 밤새도록 잠 안 잤는가? 뭣 헌다고 내가 이렇게 여그 앉아서 내가 법문헌다고 앉았겠는가? 

이것은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텀 저 쬐그만한 어릴 때부텀 무슨 인과법으로 해서 차츰차츰 어떻게 가르켜서 그 뭐 처음 들어와서 사미과(沙彌科)로부터 사집과(四集科)로부터 사교과(四敎科)까장 대교과(大敎科)까장 다 가르켜 일러 놓았자, 그 사람이 참선허는 사람이 아니여. 참선을 못허는 법이여.
아무리 부처님이 경서(經書)를 그렇게 49년을 설법해 놓고, 조사 스님네가 그렇게 깨달은 도리를 다 설법해서 책에다가 다 해놓았지마는 그 책을 가지고 아무리 가르켜 놓았자 그 사람을 참선을 못 시키는 것이여.

어쩌다가 강사(講師)가 인자 발심해서 들어오기는 들어오지마는 강사 참선이라는 건 그건 벌써 틀린 것이여. 맨 해석만 배워놨기 때문에 참선만 하면 보통 망상과 달러서 그 도리회(道理會)에 망상이 나와. 제가 알았다는 망상이 나오고, 아는 망상이 나오고, 어떤 구절은 어떻다는 망상이 나오고, 들으면 다 제가 자해(自解)를 해부러. 그러기 땀세 공부를 못혀. 강사가 공부를 못혀. 아무리 그렇게 가르켜서 어릴 때 들어와서 삼사십 살 먹도록까장 강사를 만들어 놓아도 참선은 못혀.


여기에 여기 참선, 여기에 이 노장님이 다 배왔지 뭐. 화엄경 다 배워 넘기고 뭐 어째. 했지마는 늙은 말년 참선 하러 들어오셔서 화두 추켜들고 지금 화두를 한다 그말이여.
허지마는 과거에 배운 그 권중구(卷中句)가, 권 가운데 배운 그것이 무척 망상이 많이 날 것이여. 틀림없는디 뭐. 강사가 그렇게 참선한 줄 알어? 이렇게 해도 가르킬 수가 없는 참선법이여.

어쨌든지 그만 내 마음을 내가 발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내가 나 찾아야 하겠구나, 깨달라야 하겠구나’하고 툭! 듣고 발심이 턱 되아버려야, 발심을 해야 도를 닦는 거여. 천상 할 수가 없는 거여. 그래 그런 도학자(道學者)를 모아놓고 아침마당 설법(說法)을 해주는 것이여. 설법이라는 것이 인자 참선 배우는 것이여.
그러니 그 설법을 들을 때에 그렇게 그 좀 날카롭게 들으라고 내가 그렇게 내가 부탁을 하고, 그렇게 내가 귓구먹을 막 쑤셔서 송곳으로 쑤셔 가 뚫어 가지고 설법을 해주고 아! 이렇게 해도 꾸부덕 꾸부덕 자올고만 앉어 있냐 말이여. 그저 주장자로 대갈빡을 툭 한번 때리면 응, 피가 툭 터지게 했으면 시원하겠다. 마음에. 무엇이여? 거 당최 기가 맥혀.

조사관을 뚫는 참선법이다. ‘조사관을 뚫는다’고 해놨네, 여기. 응? 이것 보통 말 아니여.
‘조사관을 안다’는 말은 없어. 아는 건 외도(外道)인디 뭐. 조사관을 어디 아는 게 아니여. 조사관을 암사, 공부해 가지고 알아버리면 그만이지마는 아는 게 아니여. ‘뚫는다’ 했어. ‘뚫을 투(透)’자여.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다.

 

그게 참선 설법이란 거 이거—경(經) 새길 적에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저 때에 사위성중에 들어서 뭐 어쩌고 저..’ 거 소용없어. 설법은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여 그거. 법도 아니여. 뭣도 아니고.

아! 그렇게 청정하고 그렇게 깨끗하게 마른 냉기 같고, 차운 바위 같여. 아무리 대했자 무슨 뭐 색경(色境)켕이는 예쁜 마음켕이는 뭐 마누래, 처녀다 뭐 그런 생각도 하나도 없고,
‘깨끗한 차운 바위에 바짝 마른 냉기 비빈 것 같다’ 이랬는데 어찌 속한(俗漢)이라고 ‘이놈 속한이 놈을 갖다가서 10년 양식을 대주었구나’ 쫓아내는 원인이 어디 있냐 그말이여. 거 범정(凡情)으로는 도무지 그 어떻게 붙여서 해석할 수 없지.

아! 그런 계행사(戒行師)가 어디 있어? 그런 청정한 계행(戒行)이 어디 있어?
속한(俗漢)이, 참! 말로 헐 수 없는 속한이가 된 이치가 있단 말이여 거그. 그러니 온통 그때 모두 그 법문을 물어 놓으니깐 온통 한국에 답을 다했다 그말이여. 내가 없는 것을 말혀?


이번에 경봉당(鏡峰堂)한테 법 전허고 나와서 그걸 가지고 내가 설법 재료를 삼아 설법했는데,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날 시방 그래 놨네.
백천만 번 거다 해 놓았자 소용없어. 내가 해 놓은 것은 그대로가 법으로 딱 조직되었는데, ‘부채로 갖다가 땅을 뭉캤다’고 그러나? 부채로 뭉캐 놓으면 되간디? 아! 춘치자명(春雉自鳴)도 분수가 있지. 제 울음에 저 죽는 것도 분수가 있지, 말이 되냔 말이여 그것이. 그거 다시 되어야 되아. 큰일났다 그말이여.
그거 다 신문에다 내 놨네. 허! 나 웃고 있어 시방.

(경봉당이) 원상(圓相)을 뭉캐서, “아니니라. 거다 묻어라” 묻으라고 허니까, 다시 “하! 내가 알았다”고 고함쳐.
“그러냐”고 다시 끄집어다 물으니께 대답을 옳게 해서 “어떠냐?”하니 점두(點頭)를 척 해서, 그러고 나는 나왔는디. 그 뒤부텀 말을 들으니깐 한마디도 허담(虛談)이 없이 그대로 앉어서 보광전(普光殿)에서 뭐 당최 무슨 뭐 문답 (問答) 한마디 헌 바 없고, 확철히 그만....

(경봉당은) ‘그런 일이 없었다’
내가 그래 놓은 것이 나쁘단 말이여? 그게 거짓말이란 말이지? 그 거짓말이면 지금 뭣허고 앉었는고? 나, 하도 우스워서 말도 하지 않고 있어.

그래야 되지. 원상을 때려 뭉캐니... 왜 원상을 왜 뭉캐냔 말이여? 왜 원상을 뭉캐?
인제 봐. 깨달라 가지고 보란 말이여! 왜 원상 뭉캔게 뭐여? 원상 뭉켄게 그게 뭐 법이여?

오! 고불(古佛)도 미생전(未生前)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이니, 고불미생전에 응연일상원까장 확 없애버린게 옳다! 공(空)도 유(有)도 비(非)도 뭐 유(有)도 무(無)도 없이 홱 한번 쓸어버린게, 좋지!
응. 막도무사(莫道無事)이 호(好)타. 차라리 막도(莫道), 일 없다고 이르지 않는 것이 옳지. 한 방맹이를 내렸거들랑 방(棒) 준 처리를 해야지. 택도 없는 놈의 소리. 내가 거짓말했구만?

두고두고 보지. 역사에 올랐으니 두고두고 봐. 법문에 다 들어 있으니께. 눈 밝은 학자들이 다 볼 낀께.
꼴도 없는 놈의 소리. 말할 것이 뭣이여? 왜 제 울음에 저 죽냐 그말이여.

그때 당시에 원청 법광(法狂)이 되었으니까, 자기가 몰라 가지고 그때 당시에.
아, 그러다가서 나중에 턱 그래가지고는. ‘보광전 조실에 있었다’고 누가 그랬나, ‘조실 방 앞에서 그랬다’ 그말이지.

아! 그러고 보광전 막 뜰 앞에서, 가을인데 그때 뜰 앞에선데.
언제 내가 구산 스님을 그렇게 가서 구산 스님 찾아 들어가서...  구산 스님인가? 뭐여? 구하 스님인가? 구하(九河)스님! ‘구하 스님 방 앞에 가서 둘이 했다’고 했어.
누가 해? 내가 둘이 해? 내가 구하 앞에 내가 찾아가 둘이 내 그 법문을 했으면 구하가 알 것인가? 말도 아닌 놈의 소리 해놨다 그말이여.

내가 끌려갔지. 하도 오라고 해서 끌려 내가 들어갔지. 내가 혼자 자작으로 글쎄 가 했구만?
말이 당최 막... 난 입도 안 벌릴 것이여. 말할 것도 없어.

하도 내가 고마와서 ‘하! 그러시냐’
‘그렇다’고. 서로 그러나 그 말 하나 똑 해보고. 그러기에 참 탁마상성(琢磨相成)이지.(19분5초~35분49초)





(3/3)----------------

내가 이 공안은... 자, 이놈만 내가 일렀는가?
내가 ‘달다’는 놈을, 천하가 다 물어서 ‘달다’는 놈 이른 놈, 내가 도장원(都壯元) 안 했는가.

응, 별소리 다 일렀지.
매달려 있을 적에, 그 샘 언덕에 달려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꿀 받아먹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살아가겄냐?

별소리 다, “아야, 아야!” 언제 ‘아야 아야’ 할 겨를이 있어서 ‘아야 아야’ 혀? 꿀 받아먹는데.
응, 그 무슨 뭐 별 답이 다 있어. 별별 답이 다 있어.

아! 꿀 받아먹으며 어떻게 해야 살아가겄느냐?
“달다!” 내 한마디 일르는 놈이 그놈이 그 들어보면 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꿀 먹는 놈이 그 ‘달다’ 소리 한마디 한 거 뭔가?
허지마는 당시의 선지식(善知識)이 한목 인가(印可)여, 한목. 지금 뒤로 듣고라도 누가 시비(是非)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시비하면 어쩔 거여, 제가 제 죽지.

이놈 응, 어떻게 했으면, 어떻게 “이럴 때 어떻습니까?” 물을 때 뭐라고 답해야 혀?
뭐 처녀를 그만 그때 ‘처녀하고 한번 살겠다’는 사람이 다 있고, ‘처녀하고 내외가 된다’는 사람이 다 있고, 뽈대기 댄 사람이 다 있고, 뭐 별 답이 다 있어.

그건 안 되아. 촉이여. 여의고 답했자 안 되고, 즉해 가지고 답했자 안 되아. 밀어내도 안 되고 소용없는 거여. 어쩔 것이냐, 어떻게 헐 것이냐? 이 말이여.
이게 공안(公案)이여. 이런 공안이라는 것은 말로 아무리 이치를 때려 붙여서 해 봐, 된 법이 있는가?

공안은 수투(須透)다. 모르미 뚫는 것이다. 이걸 잘 들어.
천하 없이도 공안 하나를 뚫지 못하면 생사(生死)는 응, 면(免)켕이는, 생사를 면켕이는 생사를 짊어지네.

조사관 뚫기 전에는 타락 없는..  모두 환(幻)이여. 응, 모두 환이여. 지환즉리(知幻卽離)는 못 되아.
‘환(幻)인 줄 알면 여의어라.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방편이 없느니라’ 아! 부처님도 이래놨네. 오직 해야사 당신 깨달은 도리를 이렇게 말씀을 해놓았어.

그러고 허다 허다 못혀 가섭한테 뭐라고 뵈일 도리가 없고, 뭐라고 설헐 도리가 없으니, 일러라!
허! 가섭은 어찌 다행히 그 도리(道理)를 바로 봤던지 미소를 했네. 피익 씨익 웃었다 그말이여. 미소를 했네.

‘옳다! 가섭아. 참, 가섭아! 백만중(百萬衆)이 위요(圍繞)다마는 백만중이 위요를 했다마는, 승당자(承當者)가 너로구나. 깨달은 자가 너로구나’ 이래 주었네.
바로 말해야지 어쩔 것인가? 바로 말 안 해주고 어쩍 헐 겐가?

‘가섭아 옳게 알았다. 승당자가 네로구나’
요러헌 인가가 딱딱 없어 가지고 되아? 그놈이 도둑놈도 아니지. 제 눈깔 멀어 가지고 남 가르킨다고 앉어서 선지식 노릇허고 앉었어? 백천만 군인을 다 가지고, 천만 제자를 다 가지고 있으면 뭣혀? 더 점점 더, 더 갖다가 망해 놓지.

당시에 월봉이 뭣했어? 월봉이 뭣하는 거여, 당시에. 월봉 하나 그 내비두었다가는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라는 것은 거기서 매장이여.
월봉도(月峯道) 하나 되아버리고 말았지. 그런 유사교(類似敎)교. 월봉이 제가 부처 되아 버렸지.

지금에 이 말세에 사방서 모두 일어나 가지고 도인(道人) 일어나 가지고 도인 천지가 된께, 막 몇 종(宗)이 다 벌어지고 별짓 다 되니께, 아주 그만 교(敎)가 모두 번성되고 굉장한 것 같지. 정법(正法)에는 소용없어. 정법에는, 우리 정법학자라는 것은 여기에서 바로 믿고, 여기에서 바로 닦고, 정법 종자가 여기서 막 드리 출현해서 나와야 되지.

아무때나, 그저 그만 제가 어떻게 좀 잘 생기고, 좀 계행이나 똑똑하고 말도 좀 잘하고 경(經)깨나 아니까 뭐라고 입 벌리면은 ‘하이고! 스님’ 믿어 가지고 그만 ‘우리 큰스님이 제일이다’ 또 그다음 ‘큰스님이 제일이다’ 또 나와 ‘큰스님이 제일이다’ 요래 가지고 집단적으로 스승 맨들아서 제가 즈그들이 모두 맨들아서 인가도 없이 즈그들이 맨들아 가지고 받들고 있는 거, 뭣 혀? 그 뭣 헐 거여 그것이?

여시란 놈이 온 골짜기서 그만 제가 그만 모두 새끼 뒤집어 나가지고 온 골짜기에 여시 새끼가 꽉 들이찼으니 그 뭣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필경 그 뭐 사자나 호랑이 같은 거 하나 들어가면 다 그까짓녀러 거 어디로 도망 가, 다 밥 되아 버리고 말 것이지.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이렇게 이렇게 나오기를 몇 번이여. 몇 번 외도한테 들어가서 멕힐라다 도로 나오고 도로 나오고. 나왔지마는 우리 지금 이와 같은 정법이 어디가 머물러져 있나? 지금 우리 한국에 있다 그말이여.
장하지. 우리 한국에 시방 그 법이 있으니 참말로 장하지. 우리 수도(修道) 학자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도 닦아 나가는 참 이 수도 학자의 그 귀중허기가 지금 어떠헌고? 지금 약존약망(若存若亡)으로 그 씨갓이 종자가 지금 여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겄는고?

그 활구(活句) 참선(參禪)하는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조사관을 뚫어라.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니라. 묘오(妙悟)라는 것은 심로(心路) 끊어진 것을 묘오라 한다.
중생이 심로가 끊어져? 우리가 지금 심로가 끊어졌나? 어디 만날 그저 앉으면 그저 이 생각 요래 요래, 저래 저래 요래. 이 심로(心路)가 끊어졌어? 맨 놈의 심로.

그 부처님은 없나? 부처님은 깨달으면 그게 없어? 부처님은 심로가 아니라 각로(覺路)여. 그놈 어두운 놈이 광명 되아 버렸어. 중생은 밤중이 되어 가지고 있는디 부처님은 대낮 백주(白晝)가 되어 가지고 있어.
어두운 놈이 어디 간 곳, 온 곳 있나? 그대로가 광명체지. 어두운 놈이 광명이지. 광명 그놈이 또 어두워져 버리면 매(昧)해 버리면 어두워져 버리는 거.

활구(活句)가 있다마는, 사구(死句)라는 것은 참선에 그 붙도 못헌 것이여, 그녀러 것은. 뒈진 참선이니깐 소용없는 것이여. 그걸 가지고는 생사 하기는 간섭없다 그말이여.

아! 제대로 나와서 글 좀 잘해 가지고는 서사(書士) 되어 가지고 글 좀, 맨 놈의 써 논 놈의 글이 맨 공(空)이구만. 공 하나 알아 가지고 공(空)을 아는 게여. 알아 가지고 공을 보도 못했어. 알아 가지고는 전부 써 논 것이 맨 공이여. 뭣도 공이고, 뭣도 공이고, 뭐 공이다.
인자 술 먹어도 주색방광색부연(酒色放光色復然)이다. 술 먹고 고기 먹고 방광하고 막 지낸 게 그대로가 다 색(色)이고, 그대로가 다 공(空)이고. 요래 놓고 견성이라고 해 가지고는 야단쳐.

내가 누구라고 어떤 사람이 그런다고 내가 그런 말 하나? 그러헌 종자가 있으면은 불법 망하는 것이고, 그런 종자가 없는 게 아니라 있고. 그렇다 그말이여.
그렇지마는 내가 ‘아니다, 기다’ 뭐 쫓아다니며 시비해 놓을 것인가? 나는 부처님 정법대로 부처님 설법대로 나는 고대로만 딱딱 진묘(眞妙)만 거다 가려 내가 놓지. 어떤 것은 진(眞)이요, 어떤 것은 가(假)요, 어떤 것은 외도(外道)요, 어떤 것은... 이런 걸 내가 말해 놓는 것이지. 그거나 뭐 법문이 무엇인데?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하면—이 조사관, 그 「이뭣고?」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한 번 파(破)혀. 툭 깨버려. 조사관도 뭐 그대로 두나? 그놈을 파해 버려 그만. 툭 깨버려 그놈을 그만. 조사관을 불투하면, 뚫지 못할 것 같으면은 심로(心路)는 부절(不絶)이다. 심로(心路)라는 건 끊어지는 법이 없어.

중생의 심로가 어디 끊어지나? 또 중생의 심로가 끊어지면 토목(土木) 와석(瓦石)같이 돌같이 이럴 것인가? 그걸 끊어졌다 하나?
심로 끊어졌어도, 벌써 견성(見性)허면 심로 끊어졌어도 거기에는 막 설법이 나오고, 설법이 운기장공(雲起長空)처럼 막 나오는 것이지.
그대로. 그대로 그 중생 업이 중생 식업(識業)이 거기에 붙들 못허는 것이고, 그대로가 모두 조사(祖師)의 말후구(末後句)가 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의 법이란 그려.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허여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서 세간상(世間相)이 그대로 상주(常住)해 있지,
떼고 여의고, 어두운 놈은 컴컴헌 밤중 어두운 놈을 씻거 버리고, 어떻게 없애 버리고 밝은 놈이 있는 게 아니여. 그 어두운 놈 자체 그대로가 그대로가 밝은 놈이여.
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 있어서, 법(法)이 법위 항상 주(住)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니라.

 

부처님이 깨달라 놓을 것 같으면은 우리 중생보담도 백천만 배 더 중생 허물, 번뇌 망상 그 경계를 더 안단 말이여. 더 알고 더 말씀하고.
그놈이 낱낱이 수은(水銀) 한 덤벵이니라. 수은 한 덤벵이. 수은 한 덤벵이 그놈, 수은 덩어리 갖다가 내 부딪쳐 버리면은 천만 쪼가리가 된다 수은이. 쓸어 모으면 도로 한덩어리 되고, 암만 갈라진 미진(微塵) 티끌만큼 한 것도 그건 수은이지, 별것 아니여.

각(覺)이라는 게 그렇다 그말이여. 여의고 있나? 떼고 없애고 있나?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하면은, 조관을 뚫지 못하면은 심로(心路)는 없어진 법이 없으니 심로가 그대로 중생견(衆生見)이요, 중생견 그대로가 지옥고(地獄苦)다. 그놈이 지옥고여.
그놈이 곧 지옥이고, 그놈이 아귀고, 그놈이 축생이고, 그놈이 뱀이고, 구렝이고, 소고, 말이고 그런 거지, 뭐 그놈 여의고 있나?

중생 경계라는 것은 전체가 모두 응, 천만상 분별 전체가 그런 것이 중생. 아! 그놈 그만 그 누견(陋見), 그 숭악한 누견이 말하자면은 그 좋은 그 금은보석 속에는 그런 보배인데, 이놈 껍데기에 가서 무엇이 그리 찡겨서 찌어 있는지 때가 꽉 찌었다. 암만 해야 벗겨지지 않고 찡겨 있다.

아! 그놈을 그 화닥딱 벳기는 법이 있어. 벳겨 놓으면은 그만 속에 그 금광(金光), 그 참 금은보석이 아! 그놈이 그만 휘황찬란한 거와 마찬가지지. 뭐 그놈이 뭐 딴 놈인가? 광(光)만 나면 되는 것이지.

심로가 끊어지지 아니하면은 이게 중생인데, 중생이란 건 진시의초부목정령(盡是依草附木精靈)이다.
다 이 풀에 의지해서 모도 가서 귀신이 몸뚱이 없으면은 풀에 가서 붙어 가지고 살기도 허고, 저 돌에가 붙어 가지고서는 침 탁! 뱉으면 침이나 빨아먹고.
빨아먹기나 허나? 그놈의 게 제 업력으로써 그런 걸 추헌 걸 빨아먹지, 그거 무슨 입이 있어 빨아먹어? 고런 짓이나 하고. 그걸 부목정령(附木精靈)이락 햐.

불 때다가 내던져 버린 부지깽이 끝에 가서 붙어 가지고는 그놈이 인자 놀아나고. 조리 같은 것 이런 것 쓰다가서 내던져버리면은 진태미 밑에 있다가 썩어서 나자빠진 그런 데 가서 붙어 가지고 나돌아 댕기는 모두 그걸 갖다 의초부목정령(依草附木精靈)이락 햐.

우리가 이 몸뚱이 하나 이것 가지고 시방 덮어 뒤집어쓰고, 여기서 시방 눈깔 뭔 모두 이런 것 붙어 가지고는 별별 것을 다 알아내고, 별별 진심(瞋心) 썽, 중생견 다 내고 별짓 다하지마는,
그게, 고 몸뚱이 하나 독사 같은 것 가지고서는 그 독사 같은 망상이나 피우고, 풀에 붙어 있는 영혼이나 같은 것이여. 똑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여까장.(35분50초~51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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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수기천리~’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회우(會友)’ 참고.
*운수[雲樹] ; 구름과 나무. 운수지회(雲樹之懷).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생각할 때 흔히 쓰는 시적(詩的) 표현. 두보(杜甫)의 ‘봄날에 이백을 생각함[春日憶李白]’이라는 시에 “내가 있는 위수(渭水) 가엔 봄날의 나무, 그대 있는 강남 땅엔 저녁의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됨. (『杜少陵詩集』 권1 참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묘연하다(渺然-- 아득할·물이 끝없이 넓다 묘/그럴·듯하다 연) ; 넓고 멀어서 아득하다.
*육산포림(肉山脯林 고기 육/뫼 산/얇게 저미어 말린 고기 포/수풀 림) ; 고기가 산처럼 쌓이고 포가 숲처럼 많다는 뜻으로, 몹시 사치스러운 잔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허적하다(虛寂--) ; 텅 비어 적적하다.
*솔찬히 ; 솔찬이.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백수(白首) ; 백두(白頭). 허옇게 센 머리.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幻)인줄 알면 여의여 버렸다. 환(幻)에는 방편(方便)이 없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7~88.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심지(心地) ; ①마음의 본래 자리. 모든 인식과 실천의 근거가 되는 자리. 마음이 일체 만법을 내는 것이 마치 땅에서 풀 · 나무 등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②마음자리에 본래부터 갖추어진 자성의 계체(戒體). 심지계(心地戒)와 같다. 불성계(佛性戒), 무위계(無爲戒), 무상계(無相戒)라고도 한다.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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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심(色心) ; 색욕(色慾 성적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욕구)이 일어나는 마음.
*신계(身戒) ; 몸에 지니는 계행(戒行). 모든 살생 · 도둑질 · 음행에서 영원히 벗어나 범하지 않는 몸에 관한 계율.
*심계(心戒) ; 탐욕(貪欲) · 진에(瞋恚) · 사견(邪見) 등의 사악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제지하는 계.
*칠보앵금 ; 칠보(七寶)로 장엄한 거문고.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 ;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더운 기운이 없구나’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무간하다(無間--) ; 서로 체면을 차리거나 조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허물없이 친하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사집과(四集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를 배우고 나서 수학하는 과정이다. 곧 규봉 종밀 스님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都序』), 대혜 스님의 『대혜선사서장(大慧禪師書狀)』(『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節要』), 고봉원묘 스님의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禪要』)를 말한다.
*사교과(四敎科)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에 이어 배우는 과정이다.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도리회(道理會) ; 화두를 공부할 때 정신을 차려 본참공안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일정한 사유의 틀을 가진 도리(道理)에 근거하여 ‘도리가 그렇다’하며 분별하는 잘못된 알음알이. 회(會)는 이해함, 분별함, 알아맞춤 등의 뜻.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전강 스님과 경봉 스님의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법거량.

[참고]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경봉 스님께서, 지금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계신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처음에 깨달으셨을 때, 바로 마치 그때 거기에 당도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경봉 스님보다는 훨씬 연세가 아래였었지마는 바로 이 마조원상의 공안을 경봉 스님께 물어 가지고,
처음에는 경봉 스님께서 그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켔습니다. 거기에서 전강 스님은 “당장 이 송장을 끌어 묻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거기에서 한참 눈을 웅큼하게 해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 경봉 스님께서 “이제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해서 그때 보시니 아까의 경계와 판연히 달라서 경봉스님을 산골짜구니로 끌고가 가지고 이 공안을 다시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께서 일르셨다고 한 말씀을 금방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15분48초~17분19초)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  가섭기능전(迦葉豈能傳) ;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2.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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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원(都壯元) ; 장원(壯元). ①예전에, 과거(科擧)의 갑과(甲科)에서 일등으로 급제하는 일이나 그 사람을 이르던 말. ②글을 제일 잘 지어 성적이 첫째임. 또는 그런 사람.
*달다 ;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의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켕이 ; ‘커녕’의 사투리.
*커녕 ; ①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②체언의 뒤에 붙어,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백만중(百萬衆)이 위요(圍繞)를 했다마는, 승당자(承當者)가 너로구나. 깨달은 자가 너로구나’
[참고]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50, 57 참고.
〇三世諸佛  歷代祖師  留下一言半句  惟務衆生超越三界  斷生死流  故云  爲一大事因緣  出現於世  若論此一大事  如馬前相撲  又如電光影裏穿針相似  無儞思量解會處  無儞計較分別處  所以道  此法非思量分別之所能解  是故世尊  於靈山會上  臨末梢頭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毛竅  盡底掀飜  雖有百萬衆圍繞  承當者惟迦葉一人而已  信知此事決非草草

삼세(三世)의 부처님들과 역대의 조사들이 남기신 한마디 말씀이나 반 토막 글귀라도 그것은 오직 중생들이 삼계를 초월하여 생사의 흐름을 끊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했다”고 하셨다.
만일 이 일대사를 논하자면 마치 달리는 말 앞에서 씨름하려는 것과 같고 번개불빛에 바늘귀 꿰려는 것과 같으므로 그대들의 사량(思量)으로는 알 수 없으며 계교하여 분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맨 마지막에 이르러 삼백육십 골절(骨節)과 팔만사천 털구멍까지를 죄다 드러내 보이시니 백만 대중이 둘러싸 있었건만 아는 이는 오직 가섭(迦葉) 한 사람뿐이었다. 참으로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줄 알겠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약존약망(若存若亡) ;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함.
*씨갓 ; ‘씨앗’의 사투리.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참고] 『무문관(無門關)』 (무문 혜개 스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絶=絕(끊을 절).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게송)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누견(陋見 좁을·천할·조악할 루/볼·나타낼 견) ; 좁은 생각이나 소견. 하찮은 의견.
*부지깽이 ;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거두어 넣거나 끌어내는 데 쓰이는 가느다란 막대기.
*조리(笊籬) ; 쌀에 섞여 있는 돌과 뉘를 걸러내기 위해서 쌀을 이는 데 쓰는 도구. 가는 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결어서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손잡이가 기다랗게 달렸다.
*진태미 ; ‘①먼지, 묵은 때, 찌든 때. ②진눈깨비’를 뜻하는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