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참선을 하려면 화두를 자기기 믿는, 믿어지는 스님으로부터 지정을 받는 것이 좋다 / 가장 최초에 생긴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이뭣고?' / 이미 자기가 지은 빚은 갚아야 해.

 

천칠백 화두가 있지마는 가장 최초에 생긴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설사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어떠한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해도 궁극에 가서 깨닫는 것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主人公)이여.

그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이기 때문에 그놈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시삼마(是甚麽)화두여. “시삼마”를 우리말로는 '이 · 뭣 · 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송담스님(No.513)—93년 9월 첫째일요법회(93.09.06) (용513)

 

약 14분.

 

화두를, 개별적으로 화두(話頭)를 신청하는 분이 있어서 시간 관계로 개별적으로 화두를 설해 주지 못하고 이 법상에 올라온 기회를 타서 간단하게 화두 드는 법을 일러드리겠습니다.

이미 화두를 타신 분은 화두를 들고서 떠억 들으시고, 화두를 안 타신 분은 이럴 때에 정식으로 화두 드는 법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화두는 참선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과제여. 과제라고 하면 좀 어폐(語弊)가 있지만.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 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그냥 처음에 화두를 타기 전에는 다만 그렇게만 주욱 해 나가지만 본격적으로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려면 화두를 자기기 믿는, 믿어지는 선배로부터 딱 지정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책에는 화두 드는 법이 얼마든지 있어서 책을 보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책을 보고 자기가 화두를 간택을 하면 문제가 무슨 문제가 일어나는고 하니 조금 하다 잘 안되면은 이거 화두가 자기한테 안 맞아서 그런가보다. 다른 화두를 또 가지고 하고. 이 화두 저 화두, 세 개, 네 개, 다섯 개, 몇 개를 자꾸 바꿔간다 그말이여.

 

그리고 공부가 잘 안될 때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화두를 잘못 드는지 스스로 자꾸 그런 것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서 공부를 순일하게 할 수가 없어.

그래서 화두는 자기가 스스로 간택하기보다는, 물론 스스로 간택해서도 잘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어요. 있을 수가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러기보다는 믿는 선배한테 탁! 지적을 받아서 해야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간에 그 화두를 자꾸 바꾸려고 하는 그런 가벼운 생각이 안 나는 거다 그말이여.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면 누구나 처음부터 잘된 사람은 없어.

처음에는 곧잘 잘된 것 같은데 한 며칠 지나가나 몇 달 지나면 뚝 변해 갔고 영 안되고, 한 일 년 지나면 또 되다가 안되다가 자꾸 그런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법문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써야 흔들림을 받지 않고 서로서로 울타리가 되어서 중단하거나 퇴태(退怠)하지 않게 되는 것이여.

 

 

천칠백 화두가 있지마는 가장 최초에 생긴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설사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어떠한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해도 궁극에 가서 깨닫는 것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主人公)이여.

그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이기 때문에 그놈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시삼마(是甚麽)화두여. “시삼마”

 

“시삼마”를 우리말로는 '이 · 뭣 · 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인데, 그것을 경상도 말로는 '이 뭣 고'거든.

'이 것 이 무 엇 인 고' 일곱 자인데,  '이 뭣 고'하면 석 자로 간단해서 옛날부터 화두를 들 때에는 '이것이 무엇인고?' 그래서 나쁠 것은 없으나 다 옛날부터 '이뭣고?' 선지식들이 다 그렇게 가르치셨어.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뭣고?' 그래도 괜찮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그래도 되고.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 몸뚱이고 저 몸뚱이 따질 것 없고 그냥 '이뭣고?' 그렇게만 해도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이놈이 뭣고?' 그 뜻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여. 그동안에 많이 했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하는, 나중에 가서 또 한 걸음 더 다그쳐 들어가려면 지금 '이뭣고?'해 놓고 '지금 이뭣고?하는 바로 이놈이 뭣고?' 이렇게도 다그쳐 들어가고.

 

'이뭣고?'할 때 「‘이’ 하는 이놈이 뭣고?」 그런 뜻으로 '이뭣고?~' 이렇게만 하는 거야.

 

처음에는 화두를 '이뭣고?'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을 동안에는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고.

'이뭣고?'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화두를 새로 안 들어도 되어요. 알 수 없는 의심을 따악 이렇게 관(觀)하거든.

 

그러다가 뭔 소리가 들리거나, 무엇이 눈에 띄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그 의심이 없어져 버리면 그때 다시 '이뭣고?~' 이렇게 챙기는 거여. 자꾸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하도 잊어버려 싸니까, 이놈이 안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이놈을 잠시 일초 동안도 틈을 안 주기 위해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런 게 아니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

 

따악 반가부좌를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허리를 펴라니까 너무 또 뒤에로 자지바지해서 이렇게 하면 못쓰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그리고서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

 

눈을 너무 잠이 오니까 눈을 뒤집어 까고 그래 못쓰는 거고. 또 눈을 뜨고 이것저것이 보여 싸니까 '아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편하겠다' 해 가지고 눈을 감고 하면 안 돼.

눈을 감으면 좀 조용한 것 같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눈을 감고 하면은 나중에 차츰차츰 생각이 조용해 지다 보면 혼침(昏沈)에 떨어지고, 혼침에 떨어진 줄 모르게 혼침에 빠져 갔고 자기 딴에는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데 삼매하고 혼침하고는 다른 거여.

 

그래서 눈은 평상으로 뜨고서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항상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이놈을 다루어 나가야 하는 거여.

 

참선을 하려면, '집에서 참선을 하려면 뭔 전화가 오고 애들이 뭐라고 하니까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얼마든지 전화 오면 전화도 받고, 애들이 와서 응석을 하면 투덕투덕 하면서 그러면서도 자기가 흔들리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는 거여.

 

봄에 시원할 때는 바람이 시원한 바람이 들어가면 아 바람 분다고 공부를 못하며, 산중에서 하다 보면 시냇물이 줄줄줄 흘러가는데 그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공부 못한다고 그건 말이 안 돼.

시냇물 소리는 시냇물 소리대로 그것이 다 법문(法門)이고, 새 우는 소리는 새 우는 소리 고대로 그냥 법문으로 들어. 그 소리 들으면서 터억 화두를 챙겨보라 말이여.

 

그렇게 하다가 자동차 소리는 또 뭐냐 그말이여. 자동차 소리가 붕붕 뻥~ 하니, 붕붕 뻥~ '이뭣고?' 딱 하면 그만인 거란 말이여. 그것 때문에 공부 못한다 소리는 그거 참선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거여.

 

이제부터서는 자동차 소리는 자동차 소리대로 놔 둬. 기차 소리는 기차 소리대로 놔 둬. 비행기는 비행기, 연전에 용주사에서 들었는데 입선 시간에 그 젯트기가 무엇이 어떻게 머리 위로 지나가면서 부르릉~ 정말 그건 안 좋드만 안 좋아.

안 좋아도 그 처음에는 대단히 귀에 거슬리고 안 좋더니 그러거나 말거나 졸다가 그 소리 나서 깨니까 아주 그 소리가 고맙더라 그말이여.

 

그래서 가정에서 살라면은 가정에도 여러 가지 식구끼리 모다 마찰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뭣고?'를 한 사람은 그런 소리를 무던히 그냥 적당히 받아들이고, '예, 예,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탁 '이뭣고?'

 

시천장 뭔 말하면 요리 돌아서 가지고 그러면 그건 골낸 것이 당장 드러나니 '저것이 배 째라고 저런다'고 그럴 거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지 말고 뭔 말하면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화평한 얼굴로 속으로는 따악 '이뭣고?'하면서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것을 왜 요리 둘러서고 모른 척하냐 그말이여.

 

'이뭣고?'라 하는 것은 참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보살의 육바라밀(六波羅蜜), 십바라밀, 팔만사천 묘방편(妙方便)이 다 '이뭣고?'하는데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다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뭣고?' 하나만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하고, 법회에 한 달에 한두 번 갖고 안되면은 전강 조실 스님 녹음 테이프를 구해 가지고 가서 항상 틀어놓고 들으면서 공부를 해라 말이여. 잠도 안 오고 공부하는데 좋은 채찍질이 될 것이다.

 

앞으로 석 달, 또 산철 결제가 있으니까 산철에 방부(房付) 들이고 공부하실 분은 하고 또 가정에서 계실 분은 가정에서, 가정에서 자기가 떠억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해 보시면 참 좋을 것이다 그말이여.

직장에서 한 분은 직장에서 죽비는 못 치고 마음의 죽비를 딱! 치고, 쉬는 시간에도 떠억 일하면서도 '이뭣고?' 이렇게 해서 산다면은 세상이 살기가 힘이 드는 세상도 그런대로 살 만하는 거고.

 

세상이 살기가 어렵더라도 어려운 대로—보살이 수행해 나가는 데에 많은 어려운 지경에 일부러 들어가서 그 어려운 것을 이겨내면서 공부하려고 들어가기도 하는데,

자동으로 세속에서 이 일 저 일이 일어난다면야 아 그런대로 그놈을 잘 적응을 해서 살아간다면 신심이 저절로 솟구치고 환희심이 일어나고, 자기를 와서 예쁘다고 해 준 사람이나, 자기를 와서 몽둥이로 때린 사람이나, 얼굴에다 더러운 것을 발라 주거나 향수를 쳐 주거나 다 똑같은 거여, 그게.

 

받아들이는 마음에 달려서는 좋게 해 줘도 진심(瞋心)을 낼 수도 있고, 자기를 해롭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나도 오히려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전부가 자기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거여.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정치를 원망하기보다는 그런 여러 가지 상황 속에 자기가 적응할 수 있도록 자기를 단련을 하고 그러한 경험에서 더 신심(信心)을 내고 분심(憤心)을 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

 

그러면서도 이미 자기가 지은 빚은 갚아야 해.

남편에 대한 빚, 아내에 대한 빚, 자식에 대한 빚, 부모에 대한 빚, 사회에 대한 빚, 국가에 대한 빚, 모든 중생에 대한 빚, 불보살에 대한 은혜는 다 갚으면서 한평생을 이 짧은—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리도.

인자 내일 모레 죽게 될는지 언젠지 모르지만 다 마찬가지입니다. 늙고 젊고가 없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이 서늘한 가을을 정말 알뜰하게 잘 지내시기를 다짐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겠습니다.(49분13초~63분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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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천칠백 화두.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대정장47, p.502a)에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으며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이름을 지은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지 않는다. 다름 아닌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이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爾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