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의심관(疑心觀) / 오계(五戒) / 소승계, 대승계, 최상승계 / (게송)유시독립묘고봉~ / ‘한 생각’ / 우리도 부처님 못지않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이뭣고...?’ 할 때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의심관을 잘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 자꾸 이 호흡과 맞춰서 해 나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의심관, 그 묘한 그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돼. 그 의심관을 터득을 해야 참선의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의심을 가진 사람은 결국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깨달아도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설한 이 『다섯 가지 계는 모든 계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오계는 천번 만번 받아도 좋고, 이 계를 받아서 실천을 하면 다른 계는 저절로 다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심으로 활구참선을 해가면 그 가운데 계(戒)는 지킬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는 소승계와 대승계와 최상승계가 한목 지켜지는 것입니다. 한목 설해지고, 한목 받고, 한목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비(燃臂)를 받은 뜻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또는 알고 지은 수많은 죄 그것을 전부다 일시에 참회를 하고 연비를 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허공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우리가 ‘한 생각’ 자비심을 내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고, 한 생각 악한 마음을 내면은 독사가 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 못지않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것입니다. 맘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1초 뒤의 내생사(來生事)가 결정이 되는 만큼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더울수록에 더 간절하게 화두를 들고,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될수록에 더욱 이 정진에 박차를 가하시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한 생각’을 간절히 단속을 해서 난국(難局)을 하나 헤치므로써 새로운 지혜가 증장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


(1)약 18분.  (2)약 8분.


(1)------------------

오늘 화두를 타신 분은 그전에는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별도로 그 화두와 불명과 오계를 설하는 법회를 가졌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 법회 시간에 화두를 바로 일러 드립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도 일러 주셨지만 다시 한번 화두를 일러 드립니다.

‘이뭣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화두를 한번 따라서 해 보십시오. ‘이뭣고?’ 해 보세요. (신도분들)‘이뭣고?’

실지로 여러분이 참선하실 때에는 그렇게 소리를 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숨을 내쉬면서 ‘이뭣고.... ?’
‘이뭣고?’를 길게, ‘이뭣고......?’ '고'를 길게 빼는 것입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이뭣고?’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르 숨을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할 때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하는 것은—관도 역시 하나의 생각인데,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 ‘관(觀)한다’고 하는 것.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데, 이건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실지로 자꾸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해보면 스스로 그 의심관(疑心觀)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의심관을 잘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 자꾸 이 호흡과 맞춰서 해 나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의심관, 그 묘한 그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돼.
그 의심관을 터득을 해야 참선의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그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야 망상을 끊으려고 안 해도 저절로 끊어지고, 망상을 일으키지 아니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서 의심이 끊어져.

속이 상하고 분심이 나고 할 때에도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꾸 몇 번 하면 치밀어 오른 놈이 스르르르 가라앉아 버리거든, 이거 해보신 분은 다 아는 것입니다.

큰 의심을 가진 사람은 결국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깨달아도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해 나간 사람은 오계(五戒)를 지켜야 합니다.

첫째 불상생(不殺生).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산목숨을 죽이면 자비심(慈悲心)을 손상(損傷)해.

우리가 도(道)를 닦는 것은 스스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데 궁극의 목적이 있는데, 어찌 도 닦는 사람이 산목숨을 죽일 수가 있으며,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산목숨을 죽일 수가 없어.
산목숨을 죽이지 아니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줘야 한다.

둘째는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면은 복덕종자(福德種子)를 손상을 해. 그래가지고 세세생생에 가난뱅이가 되는 거야.

우리가 불법을 믿고 도를 닦은 것은 스스로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자비심으로써 일체 중생에 모든 것을 보시를 해야 하는데, 재물 보시도 하고—밥 없는 데 밥을 주고, 목마른 데 물을 주고, 병든 데 약을 주고,
어리석은 중생에게 법보시(法布施)를 해서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고 이것이 전부 다 복덕이거든.
그런 복덕심을 길러야 하거든, 어찌 다른 사람의 물건을 승낙 없이 내가 소유할 수가 있을까 보냐.

셋째에는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도를 깨닫는 데에는 마음이 청정(淸淨)해야 되는데,
내 마음을 청정하게 해서 깨달음에 나아가고, 일체 중생에게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생사해탈을 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어찌 내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삿된 품행을 할까 보냐.

넷째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을 하면은 나의 진실종자(眞實種子)를 손상을 해. 내 마음의 진실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말이여.

도를 얻으려면 그 마음이 진실해야 도를 얻고, 도를 얻은 다음에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도를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스스로 마음의 진실성을 잃어 가지고 어떻게 중생의 마음을 진실되게 지도할 수가 있을 것이냐.
그래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실 종자를 상실하게 되니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에 가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라. 도를 닦는 것은 내 마음을 지혜(智慧)를 얻어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지혜심을 상실하게 된다 그말이여.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리석고,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 윤회를 하고 있는데,
금생에 밤낮 술만 마시면 결국은 머리가 지혜를 잃어버리고 결국은 알콜 중독에 걸리게 되면 머리가 돌대가리가 되고, 손발을 떨면서 결국은 폐인이 되는 것이고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하는데,
어찌 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지혜를 상실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술을 마시지 말아라.

금생에 이 다섯 가지 계를 잘 지키면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빨리 얻을 수가 있고, 금생에 이 오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은 금생에 도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무릎을 세우고 합장을 하십시오.

이상 오계에 대해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5계를 설명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이미 오계, 십계(十戒)와 비구계, 비구니계 또는 보살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그런 계를 다 받으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오늘 설한 이 『다섯 가지 계는 모든 계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근본 된 이 오계는 천번 만번 받아도 좋고, 이 계를 받아서 실천을 하면 다른 계는 저절로 다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오계에는—보통 ‘재가 오계(在家五戒)다’ 이렇게 말합니다마는 소승계(小乘戒), 대승계(大乘戒) 또는 최상승계(最上乘戒) 이러한 3가지 의미에 있어서 이 다섯 가지 계를 설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계가 몸으로만 지키는 소승계가 아니고, 마음으로 지키는 대승계, 몸과 마음을 한목 다 지키되, 지키는 계상(戒相)에 떨어지지 않는 그러한 최상승계를 지킬 수가 있겠는가?

철저하게—산승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태까지 설한—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심으로 활구참선을 해가면 그 가운데 계는 지킬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는 소승계와 대승계와 최상승계가 한목 지켜지는 것입니다. 한목 설해지고, 한목 받고, 한목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는 불자(佛子)로써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최상승 학자로써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는 부처님의 청정한 계니 불자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는 불자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청정한 계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여러분은 오계를 받고 이것을 잘 키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두를 탔습니다.
오늘 불명을 받드신 분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 받아 가시도록 하고.

계 오늘 받으실 분이 별도로 안 앉았나요? 가운데.
그러면 연비(燃臂)를 하십시오.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계를 받고, 부처님께 맹세를 하고, 그리고 연비를 받았습니다.
연비를 받은 뜻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또는 알고 지은 수많은 죄 그것을 전부다 일시에 참회를 하고 연비를 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허공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몸으로써 이제 오늘 이 찰나에 부처님 아들로, 부처님 딸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그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수재(水災)로 인해서 우리의 형제자매, 많은 동포들이 집을 잃고, 재산을 잃고, 생명을 잃고, 참담한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벌써 수재 의연금(義捐金)을 모다 내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아직도 형편상 안 내신 분이 계시면 동사무소나 방송국이나 신문사나 어디라도 좋으니 분(分) 따라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의연금을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내 몸뚱이요. 모두가 다 내 형제요. 우리 모두 다 한 가족인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수재가 일어나도 보내주거든 하물며 내 동포 내 겨레를 위해서 이런 일에 빠져서는 아니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52분26초~70분)


(2)------------------

유시독립묘고봉(有時獨立妙高峯)하고  각래단좌염라전(却來端坐閻羅殿)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하면  대비수안다방편(大悲手眼多方便)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시독립묘고봉(有時獨立妙高峯)타가, 어느 때는 저 묘고봉(妙高峯),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가,
각래단좌염라전(却來端坐閻羅殿)이로구나. 문득 염라궁에 와 가지고 단정히 앉았구나.

부처님께서는 유시(有時)에는 저 수미산 꼭대기에 우뚝 서 계시고, 유시에는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유시에는 사바세계에 오신다.

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같은 그런 보살님네는 중생을 위해서—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금 지옥에 가서 계시기도 하고,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염라대왕이 되어 계시기도 하고,
그렇게 천당, 지옥에 임의자재로 자유자재, 소요자재(逍遙自在) 하시는 것입니다.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하면, 인간을 다 보아 다하면 오직 점두(點頭)할 뿐이여.
비단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뿐이겠습니까. 이 법당 안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도 마찬가지입니다.

찰나(剎那)간에 천당에 가고, 찰나간에 지옥에 가고, 찰나간에 축생이 되고 한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부처님과 조금도 손색이 없이 육도(六途)를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하면, 인간을 바로 보아 다 해 가면은 다못 고개를 끄떡 끄떡 할 뿐이여.
대비수안다방편(大悲手眼多方便)이다. 대자대비한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관세음보살은 방편(方便)이 많아. 중생의 근기(根機)가 많은 만큼 팔만사천 가지의 중생에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을 자유자재로 쓰시더라.

여러분이 오늘날까지 무량겁을 살아오시면서 육도를 그렇게 돌고 돌다가 오늘 이 법당에까지 오셨습니다.
법당에서 최상승 법문을 듣고, 계를 받고, 화두를 타고 불명을 탔습니다마는,

여러분이 또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자비심을 내면, 여러분이 그 피땀 흘려서 번 그 아끼고 아낀 그런 금쪽같은 돈과 재산을 또 수재민을 위해서 얼마든지 또 보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우리의 고(苦) 받는 고해(苦海) 중생을 위해서 손을 건져 주신 뜻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한 생각’ 자비심을 내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고, 한 생각 악한 마음을 내면은 독사가 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 못지않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것입니다. 맘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삼복(三伏) 성염(盛炎)에 이렇게 법회에 참석을 해주시고 또 장시간 이 산승(山僧)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전생에 같이 도 닦던 인연으로 또 이렇게 만났기 때문에 산승은 또 이렇게 여러분을 위해서 간절한 말씀을 해 드리게 되는 것이고 여러분은 그 말을 뼛속 깊게 새겨들으시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시면,
다음 생(生)에는 여러분이 또 스님이 되고, 내가 또 제자가 되어서 또 그 법문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서 가며 끌어 잡아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면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대도(大道) 성취할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을 드립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1초 뒤의 내생사(來生事)가 결정이 되는 만큼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더울수록에 더 간절하게 화두를 들고,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될수록에 더욱 이 정진에 박차를 가하시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한 생각’을 간절히 단속을 해서 난국(難局)을 하나 헤치므로써 새로운 지혜가 증장이 되는 것입니다.

못 다한 말을 주장자에 위탁을 하고 법상에서 내리고자 합니다.(70분1초~77분36초)(끝)


------------------(1)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청정(清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십계(十戒) ; 십선계(十善戒).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 [불교] 범망경(梵網經)에 있는 대승계(大乘戒) 가운데 열 가지의 무거운 계에 대하여 비교적 가벼운 죄를 경계한 48가지의 계.
*소승계(小乘戒) ; 소승의 율장(律藏)에서 설하는 계율로, 「사분율」에 의하면 비구 250계, 비구니348계를 말함. 율의계(律儀戒)라고도 말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식이란 말이다。불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이어가고, 법의 집과 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의연금(義捐金 옳을 의/줄 연/금전 금) ; 자선이나 공익을 위하여 내는 돈.


------------------(2)

*(게송) ‘유시독립묘고봉~’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지장보살(地藏菩薩) ;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미륵보살(彌勒菩薩)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소요자재(逍遙自在) ; 아무 것에도 구애(拘礙 마음에 거리끼거나 얽매임)됨이 없는 것.
*점두(點頭)하다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 (사람이)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이다.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내생사(來生事)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하는, 다음 생(來生)의 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5.01.17 11:08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송담스님(No.113)—조실스님 제 5주기 추모재(80.01.19)


(1) 약 21분.  (2) 약 13분.


(1)------------------


오늘은 전강 대종사 제 5주기 추모 법요식일입니다. 날씨는 매우 혹독한데 원근에서 이렇게 참석을 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무술년 11월 16일 날 전남 곡성에서 탄생하셔 가지고, 17세에 출가하셔서 갑인년 12월 초이튿날 용화선원에서 77세를 일기(期)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동안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셔 가지고 33세에 양산 통도사에 첫 조실로 취임하셔서 학자를 제접(提接) 하신 이래로 50여 년간을 전국 유명 선원에서 많은 선객(禪客)들을 제접을 하시고,

말년에 15년간을 여기 용화선원 염전(田) 가에 조그마한 토굴에 계시면서 승속(僧俗)에 정법(正法)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께서는 직접 대부분이 조실 스님을 친견하시고, 법의 은혜를 입으신 분이 많으실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시면서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전국의 좋은 절을 많이 놔두고 하필 이 갯벌 가에서 고생을 하시면서, 여기서 우리들을 교화해 주셨던가.

생각해 보면 숙세의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면서 법을 설해 주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맨 처음에 여기 용화사는 저 밑에 보살선원 조그마한 불당(佛堂)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서 조실 스님이 여기 왕래하시다가 그 옆에 선원을 지으시고, 그리고서 신도가 차츰 불어나니까 앞에 법보선원이라고 여기 조실 스님 계시던 벽돌집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현재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법보전(法寶殿), 법당을 옛날 신사당(社堂) 터에다가 20평 가량 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법당(法堂)이 좁아서 다시 또 10여 평을 늘여 가지고 현재의 이 법당이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法)은 살아계실 때에도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그러한 생사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지만,

열반에 드신 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의 사부대중들은 조실 스님의 그 위없는 법에 더욱 감동되고, 신심을 돈발(頓發)해서 조실 스님의 법을 추모하는 사부대중이 나날이 불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어느 선원이나 어느 신도나 심지어는 저 구라파(巴)나 미국에까지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은 갓 없이 멀고 가까운 곳이 없이 번지고 번져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용화선원도 법당이 협착(窄)해서 법회 때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법당에 다 수용을 못하고, 밖에서 추운 겨울이나 더운 뙤약빛 속에서도 밖에서 법회에 참석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실 스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가, 법문을 듣고 또 듣고 여러 번 들으면 들을수록 그 법문이 우리의 ‘참마음’을 두들겨 주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법당이 없어서 법을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법당이 없어서 법을 설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법문을 들을려면은 들을 장소가 필요하고, 법을 설할려면 또한 법을 설할 만한 설할 수 있는 그러한 도량(道場)이 필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佛法)은 꼭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 불법 아닌 것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법을 듣고 설하려면은 법당이 필요하고, 닦을려면 또한 선원(禪院)이 필요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법당을 늘구실 때에 저는 “법당이 좁은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신도가 많이 오시면 뜰에서도 듣고, 저 잔디밭에서 들어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도 드린 일이 있습니다마는,

얼마 안 가서 이 법당이 좁아지고, 정말 이 법당을 늘리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그러한 상태에까지 왔습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에, 중국 하북성에 진주 관음원(觀音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가지고, 120세에 열반을 하신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존경을 받는 그러한 큰스님이십니다. 그 스님은 어려서 견성(見性)을 하셔 가지고 널리 알려져 있는 큰스님입니다.


근데 하루는 어느 큰 선방에서 이 조주 스님을 조실(祖室)로 청했습니다.


(조주 스님이) 맨 처음에 그 공양주(供養主)에게 명하기를 “개를 한 마리 구해다가 잡아서 마지(摩旨) 솥에다 삶아라.”

그래 공양주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니까, 개를 잡어가지고 마지 솥에다 삶아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에 개고기 국을 퍼서 들여왔습니다.


대중이 공양을 할라고 보니까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누린내가 나는 개고기 국이었습니다.

대중은 일제히 바리때를 도로 싸고 ‘이런 외도(外道)한테 우리가 법을 배우다니!’ 분개해 가지고 걸망을 싸 짊어지고 모다 도망갔습니다. 그 때 공양주와 채공(菜供)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조주 스님은 “무쟁삼매법(無諍三昧法)으로 외도 놈들을 다 내쫓았구나.” 이렇게 선언을 하시고서 그해 여름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거기서 지내셨습니다.

공양주와 채공은 철저한 신심, 목숨 바쳐서 도를 닦은 까닭으로 해서 그해 여름에 확철대오를 했던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모양을 보고 믿는다든지, 음성을 듣고 추종을 할 경우 열이면 열 다 물러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색은 모양입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춘 그러한 거룩한 어른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나는 저 부처님을 '참 성현'으로 믿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든지.


‘부처님은 원음(圓音)이시라. 그 음성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고, 한 말씀으로 설하되 육도의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들을 수가 있는 이러한 원음이시기 때문에 석가여래(釋迦如來)야말로 성현(聖賢) 가운데에 성현이다’ 이렇게 믿고 추종을 한다든지.


이리해서 ‘모양으로 나를 본다든지,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 이 사람은 마침내 참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개정국으로써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을 내쫓고, 법(法)에 의지할지언정 사람에 의지하지 아니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견과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참된 학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그해 여름을 지내심으로써 두 견성(見性) 불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조주 스님은 평생에 많은 학자를 거느리고 선방에 지내시기보다는 평생 동안을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정도 철저한 사람을 데리고 지내셨습니다.

지내신 그 절이 기와가 깨지고, 지붕에 풀이 우거지고, 비가 줄줄 새도, 기와 한 장을 고치지 아니하고 풀 한 포기를 뽑지를 아니하시고, 이쪽 구석에 비가 새면 저쪽 구석으로 피해 앉고 이러시면서 일생을 지내셨습니다.


옛 부처님의 화현으로 태어나신 그러한 대도인으로서도 절을 짓는다든지, 큰 절을 가지고 지내신다든지, 많은 대중을 모여서 살려고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중생을 교화를 하시고, 많은 공안을 조사공안(祖師公案)을 남기신 대도인이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역시 잠깐 잠깐 큰 선원의 조실을 부득이해서 안 맡으신 것은 아니지만 잠깐 지내시다가 내버리고 토굴(土窟)로 들어가시고,

또 토굴에 가 계시면 또 어느 큰 선방에서 조실로 모시면 마지못해서 또 따라가셨다가 한 철, 많아야 두어 철 지내시다 금방 또 토굴로 와 버리시고 이러시다가 제일 많이 지내신 곳이 바로 이 용화사 선원입니다.


부득이해서 이런 법당을 이렇게 지으시기는 했지만은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는 꼭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이 송담(松潭)은 그 법에 있어서나 도력에 있어서나, 조주 스님이나 조실 스님의 그런 행을 따를 수가 없지만,

그렇게 지내신 것을 항시 마음에 흠모(慕)하고 ‘내가 장차 그런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을 갖춘다 하더라도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일생을 지내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용화사가 법회 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이시지만 법당이 이렇게 비좁아도 법당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새로 법당을 더 지을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웃채와 아래채 중간에 선방과 창고를 뜯어내고 20미터의 노폭을 가진 큰 길을 내년 봄부터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 선방, 부인선방, 후원(後院)은 전부 다 뜯기게 되고, 이 웃채에서만 살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선방도 없어지고, 부인선방도 없어지고, 후원채도 없어집니다.


그리해서 부득이 내년 봄에는 선방도 지어야 하고, 후원·요사(舍)채도 지어야 하고, 그럴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선원을 운영해 나가면서 남은 돈을 한 푼 두 푼 모여서 선방을 지을 수 있을 때 지으리라 이리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요.


갑자기 이렇게 환율이 인상이 되고 물가가 상승이 되어서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그 준비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사(佛事)를 완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방이나 법당을 안 지을 수도 없고, 짓자니 여러 가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우리의 몸에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러한 대원력(大願力)을 갖고서 마음을 합한다면 어떠한 불사라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하는 신념은 가지고 있습니다.(처음~20분29초)



(2)------------------


조실 스님께서 15년간 여기에 터를 잡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한사코 토굴로만 도망갈라고 하는 저를 보시고, ‘사람이 오십이 넘으면 옛날 고인들도 다 죽을 자리를 보는 것인데 밤낮 토굴로만 가서 숨을라고만 하고 그런다’고 노상 걱정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까지도 저를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생존에 조실 스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한 송구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열반하신 뒤에,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열반하실 때,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낙엽이 귀근(歸根)이라. 떨어진 이파리는 뿌리로 돌아가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내시무구(來時無口)니. 올 때는 말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조실 스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생사를 해탈한 부처님이나 도인은 원래 생사가 없는 것이어서 다만 우리 범부의 눈에 열반상을 보이실 뿐이지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우리의 눈으로 갑인년 12월 2일 이후로는 우리의 눈으로는 조실 스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존시나 다름없이 그 우렁찬 법문은 들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정성을 모여서 법당을 세우고, 조실 스님의 육성법문을 들으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함으로써,

조실 스님의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앞길을 위해서 우리의 도업(道業)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언제 어디서라도 계시는 것이며, 다못 철저한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나투신 걸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마음을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우리는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감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 제 5주기를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손상좌(孫上佐), 손주 상좌 다섯 사람이 새로 계를 받아서 출가를 하게 되겠습니다. 


계(戒)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대승계는 계를 파(破)하지 않고서는 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계’를 지킬라면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해서 바로 깨닫기 전에는 ‘참 계’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의 제 5주기 열반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간략히 그러나 가장 알찬 계를 설할까 합니다.


임행자. 불명(佛名)은 성월, 은사(恩師) 스님은 운거 스님.

서행자. 불명은 성화, 은사 스님은 용문사 주지 스님, 우담정환 스님.

황행자. 불명은 성훈, 은사 스님은 도산정몽스님.

문행자. 불명은 성천, 은사 스님은 용주사 총무 정낙 스님.

불명은 성품 ‘성’자 항상 ‘상’자, 성상, 은사 스님은 정명 스님,


그리고 완월, 원래는 조실 스님의... 아시는 바와 같이, 오 정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진즉 돌아가시고 그래서 조실 스님과 인연이 깊고 그래서 준례에 따라서 조실 스님, 노스님 위로 올려붙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정목 스님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월이 아니라. 구경‘완‘자 완월. 


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저절로 계가 잘 지켜지도록... 


계를 설하는데 대단히 복잡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드린 바와 같이 최상승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계, 파하고 지키고 할 것이 없는 계, 이 계야말로 최상승계인 것입니다.


최상승계를 명실공(共)히 잘 지키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철저하게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계승함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으로써 계를 설해 마쳤습니다.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어서 조실 스님 추모재를 거행 하겠습니다.(20분30초~33분1초)(끝)



------------------(1)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신사(神社) ; 일본에서 왕실 조상이나 고유 신앙 대상 신(神) 또는 국가 공로  사람 신(神)으로 모신 사당.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구라파(巴)유럽(Europe)’ 음역어이.

*협착하다(窄--  좁을 협,좁을 착) ; ①차지하고 있는 자리 매우 좁다. ②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 매우 어렵다.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늘구다 ; ‘늘이다(수효, 부피, 무게 등을 더 많거나 크게 하다)’의 사투리.

*조주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불화현(古佛化現) ;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摩旨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무쟁삼매(無諍三昧) ; ①진리에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툼이 없는 선정(禪定)을 말한다.
②타인과 다툼이 없는 경지. 다툼이 없는 것은 마음 속에 갈등이 없는 것. 나아가서는 ‘미혹이 없는 것’이다. 쟁(諍)은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니, 무쟁(無諍)은 곧 무번뇌(無煩惱)이니,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개정국 ; '보신탕(湯, 개장국(--) 완곡하게 이르는 )'의 사투리. 개장국(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채소와 함께 고아  옛날부터 삼복(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흠모( 공경할 흠,그리워할 모) ; 마음 그리고 우러러 따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후원(後院) ;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
*요사채(舍- 집 료,집 사) ; 사찰 에서 전각이나 산문  스님 생활 관련 건물 통틀어 이르는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2)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손상좌(孫上佐) ; 제자의 제자를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명실공히(名實共-)알려진 내용 실제 내용 똑같게.
*지혜목숨혜명(慧命).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2014.10.20 11:48

§(219) 미묘 비구니 설화 / 고약한 맹세는 하는 것이 아님 /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의 계(戒) /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것이 요점.

‘저와 같은 이러헌 미천한 그런 여자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도를 닦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한다면 왜 못 닦겠느냐’
자기의 과거를 숙명통으로 비추어보니까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나서’ 털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한 사실을 분명하게 봤다.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9)—83년 11월 첫째일요법회(83.11.06)에서.


(1) 약 20분.  (2) 약 20분.


(1)------------------

〇미묘 비구니 설화.

부처님 당시에 미묘(微妙)라 하는 비구니(比丘尼)스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바라문(婆羅門)의 딸로 태어났어.
그 부친이 일국에 널리 이름이 날 만큼 인격이 높고 덕망이 있는 그러한 가정에 태어났는데, 그 미묘라 한 그 여성도 절세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래 멀지 않는 곳에 또 한 바라문이 있어서 그 미묘라고 하는 그 여성이 그렇게 좋은 집안이요, 또 그렇게 인물이 아름답고 행실이 얌전하고 그러니까 거기서 며느리로 맞아 갔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랑과 결혼을 해서 머지않아서 첫아들을 낳습니다. 첫아들을 나서 온 집안에 경사가 일어났는가 싶어서 그리 좋아했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시고 이어서 또 시아버지가 병들어서 돌아가셨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즐거운 뒤끝에는 흔히 그러한 또 슬픈 일이 뒤따르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 시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또 그러한 슬픈 뒤끝에 언제 생겼는지 또 두 번째 애기를 또 뱄습니다.
그때에 풍습으로 애기를 배면 친정(親庭)으로 돌아가서 해산(解産)을 하는—역시 지금 우리나라에도 해산할 때는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한다든지, 친정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돌봐 주신다든지 지금도 역시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하기 위해서 남편과 의논을 해가지고 첫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같이 친정으로 가는 길인데, 길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가는데 갑자기 가다가 해산이 임박했었던지 배가 아프고 진통이 일어나서 할 수 없이 근처에 나무 밑에다가 자리를 펴고 거기에 누었습니다.

누워서 얼마 동안을 기다리니까 배가 아프다 가라앉다, 아프다 더하다 그러다가,
인자 해가 저물어도 애기는 아직 해산을 못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서 남편은 저만큼 다른 나무 밑으로 가서 지쳐가지고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사 배가 몹시 아프더니 해산을 했습니다.

몸부림을 치면서 불러도 남편이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영 오지를 않고,
간신히 혼자 애를 낳아 놓고 그리고서 남편을 아무리 불러도 안 오니까, 금방 애를 낳아 놓고는 기어서 남편 있는 데로 가니까 남편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꼼짝도 안한다 그말이여.

막 흔들어 봐도 영 움직이지 않아서 맥을 짚어보니까 이미 죽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독사가 와서 물어가지고 그 독이 몸에 번져서 그래가지고 죽어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남편이 죽은 것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해산할 때에는 산모(産母)가 신경이 날카롭고 그런 것인데 남편이 죽은걸 보고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해가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새벽녘에 그 어린아이가, 그 장남이 막 우는 소리에 깨 보니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을 갖다가 숲 밑에다가 그럭저럭 긁어 묻어 놓고는 장남은 걸리고, 금방 난 애기는 보자기에다 싸서 품에 안고서 친정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얼마를 걸어가니까 큰 강물을 만났다 그말이여.

그 강을 건너야겠는데, 그 서이 같이 건너갈 수는 없고 그래서 장남은 그 강둑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일러놓고는,
갓난애기만 안고서 강을 건너가는데 굉장히 깊고도 넓어서 간신히 건너가 가지고, 애기를 그 강 건너 언덕에다가 가만히 뉘어놓고 다시 그 장남을 데리러 올라고 하니까,
장남이 그걸 참지를 못하고 엄마를 부르면서 저 혼자 강을 막 건너오다가 넘어져가지고 강물에 떠내려간다.

그래서 그 부인이 쫓아가니까 벌써 급류에 휩쓸려서 저 어디로 떠내려가서 찾지를 못하고 그래서 울면서 되돌아서 이쪽 건너 언덕 갓난애기 있는 데로 향하고 있는데,
그동안에 그 갓난애기, 그 핏덩어리 애기, 그 애기 냄새를 맡고 늑대란 놈이 와서 애기를 꿀떡 삼켜 버렸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걸 보고는 또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했다가 다시 눈을 떠서, 다시 또 슬픔과 산후(産後)의 그 무거운 몸을 끌고서 울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친정을 가다가 어떠한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자기 친정아버지의 친구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사연을 전부다 울면서 얘기를 하고서 친정 소식을 물으니,
아! 친정 부모와 동생들이 며칠 전에 자다가 화재가 일어나가지고 친정 부모도 타서 돌아가시고 동생들도 모다 타 죽었다 이말이여. 그 말을 듣고는 또 기절을 했어. 몇 번을 기절을 했어.

그래가지고는 눈을 떠 보니까—그 친정아버지의 친구가 업어다가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병구완을 해주어서, 눈을 떠보니까 그 댁에 누워있다 그말이여.

몇백 리를 걷고, 그 연거퍼 시부모 돌아가고, 남편 죽고, 큰아들 죽고, 금방 난 애기 죽고, 친정 부모·동생 다 죽고, 산후에 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받은 그 충격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면 아주 죽지 않고 살아난 것도 기적이라 할 수가 있지요.

그래 몇 달을 그렇게 친딸처럼 돌봐주어서 그래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데, 마치 이웃집에 바라문이 있어가지고, 어떻게 그 미모(美貌)로 생겼던지 청혼이 들어와서 그래서 그분하고 또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놓고 하루·이틀·사흘, 한 달, 두 달 있어보니까 흉악한 술주정뱅이여.
무슨 사업한다고 나가서는 잔뜩 술을 먹고 들어와서 그 주벽(酒癖)이 심해가지고 꺼떡하면 뚜드려 패고, 도저히 하루 이틀을 참다 참다, 한 달 두 달을 참다 못해서 거기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해서 저 멀리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을 쳐가지고 인도에 그 베나레스(Benares)라고 하는 그 성밖에 나무 밑에 앉아서 거기다가 의지를 하고—뭐 친정도 집이 다 없어져 버리고, 시집도 없어져 버리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래놓으니 인자 천상—그런 부잣집 딸로, 부잣집 며느리로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러한 부인이었었고 일세(一世)의 미인이었었지만, 그러한 연속적인 재난을 당하고 보니 갈 곳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밑에 의지해서 얻어먹으면서 지내고 있는데, 날마다 근처 무덤에 와 가지고 그 무덤 앞에 절을 하고 가고, 무덤 앞에 와서 울면서 절을 하고 가고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부잣집이요 좋은 사람인데, 상처(喪妻)를 해가지고 너무 아내가 그리우니까 날마다 그 아내의 무덤에 와 가지고 울고 가고 울고 가고 그랬는데,

그렇게 해서 몇 번 그 나무 밑에를 지나면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여인의 얼굴과 서로 마주치고 마주치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며칠이 지나자 서로 이야기가 되어가지고 또 청혼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도 남편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으로 인해서 마음 붙일 곳이 없고, 또 그 미묘라는 여인도 친정과 시집과 온 가족이 다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해가지고 의지할 곳이 없고 피차 외로운 처지에 우리가 서로 같이 사는게 어떠냐 해가지고, 그냥 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사랑을 하고 참 심덕(心德)이 좋고 얌전한 사람이었었는데, 아! 그 남편이 병이 들어가지고 시늠시늠하다가 백약이 무효로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남편이 죽으면 여자도 같이 무덤 속에 산 채로 들어가서 같이 죽는 그러한 인습이 있어서 이 미묘라는 여자는 그 남자와 같이 생매장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무덤 속에 들어가서 그 며칠간 먹을 양식과 음식과 그 촛불 같은 것을 켜서, 인자 그 불도 꺼지고 먹을 것도 떨어지고 하면 그 안에서 그냥 죽는 거죠.

그래서 인자 그 안에서 얼마를 울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 밤중에 텅텅 무덤을 누가 파 들어오는데, 아! 자기를 꺼내서 데리고 간 뒤에, 가서 보니까 흉악한 도둑놈들이여.
도둑놈이 ‘예쁜 여자가 생매장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 그 무덤을 파가지고 여자를 데려다 제 마누라를 삼았어.

도둑놈 계집이 되었으니 죽은 것보단 나을란가 모르겠으나, 그래도 죽지 못해서 도둑놈을 남편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아! 그 얼마 안 되어가지고 그 도둑놈이 무슨 죄 있는 것이 들통이 나가지고 체포가 되어서 살인강도질을 했든가 그 교수형에 처해가지고 세 번째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우리의 주변에 말로 다 못할 기구한 그러한 참 처참한 환경을 당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아무리 많다 해도 이 '미묘'라고 하는 이 사람만큼 그렇게 처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소설에도 그렇게 비참한 사람은 구경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〇미묘 비구니의 출가, 정진.

그래가지고 거기서 비탄에 빠져가지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러다 어디서 말을 들으니까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하는 곳에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성현이 계시는데 그분은 전생 일도 환히 알고, 내생 일도 훤히 알고 하는 그러한 성현이 계신다하는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자살할 수도 없고, 모진 것이 목숨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네 번째 남편을 또 얻을 수도 없는 것이고, 얻어봤자 또 팔자가 빤 할 것 같고,
그래서 그 석가모니라고 하는 부처님한테 가서 대관절 내 팔자나 한번 물어보고 죽어야겠다, 그래가지고는 거기를 갔어.

그 기원정사를 찾아가서 멀찌감치 서서 이래보니까,
막 춘삼월에 꽃이 활짝 핀 것처럼 환하고, 하늘에 그 많은 별 속에 둥근달이 떠있는 것처럼 그렇게 먼데서 봐도 그렇게 위엄스럽고 거룩하고 환한 그런 어른이 계신데, 바로 저 어른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러거든.

그러나 감히 자기와 같은 그런 비참한 여인이 찾아가서 뵈올 수는 없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니까,
그 부처님이 떠벅 떠벅 자기 가까이로 걸어오셔서 ‘어디서 왔느냐? 이리오라’해 가지고는, 그 지난 모든 사연을 두루 다 들으시고—그거 다 말씀을 여쭙고서,

‘저와 같은 이러헌 미천한 그런 여자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도를 닦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한다면 왜 못 닦겠느냐’

그래가지고 고타미 비구니를 시켜서 머리를 깎이고 계(戒)를 설해서 그래서 비구니가 되게 하셨습니다.(5분54초~25분18초)


(2)------------------


비구니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열심히 도를 닦았던지,
인자는 누가 잘했다 못했다 그런 말도,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그런 시비도 자기한테는 귀에 들리지도 않고, 누가 다른 사람이 잘하고 못하고 한 것도 그런 것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대중과 같이 탁발(托鉢)을 할 때는 따라가서 탁발을 하고, 밥을 먹을 때는 같이 먹고, 소지(掃地)할 때는 같이 소지를 하고, 그저 눈을 뜨나 감으나 앉으나 서나 부처님께서 지도하신 고대로 도를 닦아 가는데 세월가는 줄을 몰라.
비가 오는지, 해가 뜨는지 지는지, 도대체 그 여러 대중 속에 살아도 대중이 하나도 눈에 보이지를 안하는 거여.

지금도 누구를 막론하고 참선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 돼.

앞으로 음력 10월 보름이 되면 또 겨울 결제가 시작이 되지만,
보살님네가 5~60명 내지 70명 방부(房付)를 들여도 그렇게 철저히 도를 닦아야 무엇이 뚫리던지 뚫리지,

밥이 되니 지니, 반찬이 짜니 싱거우니, 네 떡이 크고 내 떡이 작으니, 왜 너만 먹고 나는 안 주느니, 방이 더웁다 차웁다, 너는 왜 저만큼 안 앉고 내 바짝 옆에 왔느냐, 너는 왜 저기 안 앉고 여기 왔느냐,
여기가 내 자리다 네 자리다, 사사건건이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참선을 할 것이냐.
남의 흉보느라고 언제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참선한다고 선방에 와 가지고 자기 집안 망신하고, 자기집에서는 절로 참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와 가지고 하는 짓이 똥싸고 뭉개는 그러한 참선을 해가지고 무슨 도를 통할 것이냐.

그렇게 무섭게 도를 닦아 가지고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는데, 겸해서 숙명통(宿命通)까지 툭 뚫어졌는데,
자기의 과거를 터억 숙명통으로 비추어보니까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참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나서’ 털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한 사실을 분명하게 봤다 그말이여.


〇미묘 비구니의 전생(前生).

전생(前生)에 어느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부인도 얌전하고 가정도 넉넉하고 한데 아들을 못 낳아서 할 수 없이 작은 마누라를 얻어가지고, 아들을 보기 위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작은 마누라는 별로 양갓집 규수가 아니고, 천한 집 딸을 작은 마누라로 데려 왔는데 얼굴은 참 기가 막히게 예뻤다 그말이여.
속담에 재취(再娶)나 작은 마누라한테 미치지 아니한 남자는 ‘배안에 병신’이라고 그런 말도 있는데,
아들 낳는 것이 목적이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건만, 얻어가지고 살아보니까 큰 마누라보다 훨씬 정이 그리 쏠린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머지않아서 포태를 해가지고 애를 낳는데, 마치 다행히 옥동자(玉童子)를 낳다 그말이여.
그렇지 않아도 예뻐서 죽겠는데 아들까지 낳았으니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니까 큰 마누라는 그저 든든하게 저만큼 놔두고 그저 점잖하게만 상대하고, 밤낮으로 작은 마누라한테 아주 퐁 빠졌어.

그러다가 아들까지 낳으니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야단이고, 이웃집에서도 모다 야단이고 그런데, 그 사람마다 다 잘했다고 그러는데, 한 사람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슬프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말이여.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게 큰 마누라여.

가만히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좋아한 척 하지마는 속으로는 기가 막히다.
이 재산도 저놈이 크면은 저놈 앞으로 다 갈 것이고, 저놈이 크면은 자기 생모(生母)만 알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남편도 작은 마누라와 자식만 좋아하지 나는 벌써 인자 저 무용지물로 취급을 하고,
지금도 그러거든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가서 생각해보면 빤하다 그말이여.

그러니 저것을 ‘어쨌던지 크기 전에 저것을 없애야겠다.’ 아! 이러한 못된 생각을 냈어.
그래가지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한 끝에 그 애기 정수리에다가 바늘을 갖다가 꽂아 넣었어.

그래놓으니 겉으로는 감쪽같은데 애가 울고 보채고, 젖도 안 먹고, 업어줘도 소용없고, 달래도 소용없고, 별짓을 해도 소용이 없어.
의사한테 별별 약을 갖다 먹여도 소용없고 열흘이 못되어서 그 애기는 결국은 죽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애기 엄마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그렇게 울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달덩어리 같은 어린아이가 왜 죽었을까? 생각해보니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마음이 짚이는 데가 있는데, ‘틀림없이 이것은 큰엄마가 이것을 죽였지 않는가?’하는 의심이 단통 고리 간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애기는 당신이 죽인 거 아니요?’하고 물어보니까,
펄쩍 뛰면서 ‘자네가 그 애기를 낳지마는 그것이 바로 내 자식인데 내가 왜 죽일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면 이 애기가 어째서 갑자기 그렇게 병이 나서 죽을 리가 있느냐?’
‘왜 내가 죽이냐? 내가 만약에 이 애기를 죽였다면, 내생(來生)에 내가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을 것이요,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이요, 친정 부모와 동생은 불에 타서 죽을 것이요. 나는 생매장을 당할 것이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내가 맹세를 해도 나를 못 믿겠느냐?’
어떻게 그런 입에도 못 담을 무서운 맹세를 하고 펄쩍 뛰던지, ‘과연 큰 마누라가 죽이지는 안 했는가 보다’하고 그냥 비통하기만 하고, 큰 마누라에 대한 의심은 그런대로 그냥 일단락이 되었는데,

바로 작은 마누라한테서 난 애기 머리에다 바늘을 꽂고 그 무서운 맹세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비구니였더라 그말이여.

그러니 그 비구니는 아무도 모르는 병을 혼자만 앓고 백방으로 약을 먹어도 안 낫는 병이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서 평생 동안 아라한과를 증득했어도 그 안 낫는 병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기가 아파! 여기가 득신득신 득신득신 정수리가 아파가지고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여, 일평생 동안을.

그게 전생에 그 애기 머리빡에다가 바늘을 꽂은 그 과보로 평생 동안을 머리 아픈 병을 면(免)치를 못했다 그거여.

소설에나 옛날 얘기에 가끔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와의 사이, 그 본마누라한테서 난 애기를 재취가 괄세하는 팥쥐 콩쥐 그런 얘기 참 많지만,
참 이러한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써 가만히 이 설화를 듣고 여러분도 생각해 보시면 인과(因果)의 법칙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 인과는—이 여자가 지은 죄는 바늘로 애기를 하나 죽인 것 뿐인데, 그리고서 맹세를 하기를 그렇게 고약한 맹세를 했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의 혐의를 갖다가 엄폐(掩蔽)하기 위해서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했어.
그 맹세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꺼떡하면 그 맹세를 잘하지요.
내가 뭐 모래에다 혀를 박고 죽어도 어쩌고 저쩌고 하고, 무슨 내가 당장 바가지를 차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네 돈은 안 쓰겠다는 둥—무슨 입에 못 담을 그런 독한 고약한 맹세를 하는데, 그거 하는 것 아닙니다.

설사 그러헌 죄가 없을 경우라도 그런 맹세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한번 그 입에 그런 고약한 말을 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고약한 맹세, 자기의 그 혐의(嫌疑)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고약한 맹세는 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 입으로 맹세한 그것이 고대로 다 받아졌다 그말이여.
죽였기 때문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안했다 하더라도 그런 맹세를 하면 그 맹세한 그 과보로 그것이 그와 비슷한 과보를 또 받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행동으로도 죄를 안 지어야 하고, 입으로도 그러한 고약한 말은 혀나 입에 건너지를 말아야 하고, 생각으로도 그런 고약한 생각은 해서는 아니 된 거다.

몸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은 다 마찬가지여.
마찬가지인데 제일 우리가 소홀히 취급한 것이 '마음으로 지은 죄'다 그말이여.

‘행동으로만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하지만 행동으로 안 해도 마음으로 이미 살생(殺生)을 할 생각을 먹으면 이미 살생죄를 범(犯)한 거여.
마음으로 ‘저것을 내가 훔쳐야겠다’하면 벌써 도둑질을 범한 것이고, 저 사람을 내가 한번 기어코 가까이 해야겠다하는 그런 음심(淫心)을 품으면 벌써 음행(淫行)을 범한 것이다 그말이여.

이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먼저—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가지고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중대하거든.
성냥불은 성냥개비 하나지만 그놈하나 탁! 쳐댐으로 해서 큰 집도 태울 수 있고, 큰 공장도 태울 수도 있고, 한 도시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마음으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바늘로 찌르게 되고, 바늘로 찌른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무서운 여러 가지 맹세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그 마음에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 가기 전에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이 탁! 일어나도 그 미워하는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 미워하는 생각이나, 또는 사랑하는 생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단속을 해서 화두(話頭)를 들도록 이렇게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뭣고?’해도 한번 속에서 부애가 나면은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해도 속에서 뽀글뽀글 화가 치밀어 오르지요.
그러지만 자꾸 하면은—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후우~하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2번 3번하면 그 치밀었던 화가 스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그렇게 해서 노여움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미운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억울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슬픈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기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면,
그것이 세월이 흘러가면, 탁! ‘이~’ 하면 벌써 터억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면서 자취 없이 그 미웁고 노여운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해서 힘을 얻은 사람은 성도 낼라면 내고 안 낼라면 안 내고, 통곡을 하고 슬퍼할라면 하고 또 슬퍼 안 할라면 안 하고, 맘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인 것입니다.(5분54초~44분56초)


------------------(1)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서이 ; ‘셋’의 사투리.
*병구완(病구완) ; 병을 앓는 사람을 돌보아 줌.
*주벽(酒癖 술 주,버릇 벽) ; 술 마신 뒤에 나타나는 버릇.
*야반도주(夜半逃走) ; 남의 눈을 피하여 밤사이에 도망함.
*베나레스(Benares) ;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다. 바라나시(Varanasi) 또는 카시(Kashi)라고도 한다.
이 바라나시의 북방 약 10km에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초전법륜 初轉法輪)을 한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이 있다.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 ; 주위에 의지할 만한 친척이나 사람이 전혀 없음.
*시늠시늠 ; 시름시름(병세가 더 나빠지지도 않고 좋아지지도 않으며 오래 계속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범] Sakyamuni 한문으로는 음대로 써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또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능유(能儒)라 한다.
Sakya는 종족(種族)의 이름이고, muni는 존칭이니, 곧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년(<중성점기衆聖點記>를 표준한 연대)에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나시었다。난 지 칠 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을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에게 자랐다.
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 Siddhartha)라 하였다。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17살에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하여 한 아들을 두었다.
그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그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네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늘 품고 있었다.
하루는 농부들이 밭 가는 것을 보고, 똑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큰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할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19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처음 6년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을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설흔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
그 뒤 49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살(기원전 486년)에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2)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재취(再娶) ; 아내를 여의었거나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하여 맞아들인 두 번째 아내.
*옥동자(玉童子) ; 옥(玉)같이 잘생긴 사내아이란 뜻으로 어린 사내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
*단통 ; 그 자리에서 대번에 곧장.
*엄폐(掩蔽 가릴 엄,가릴 폐) ; 보이지 않도록 가리어 숨김.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淫) 3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기어(綺語)·양설(兩舌)·악구(惡口) 4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진심(瞋心)·치심(痴心)의 3가지가 있다。이것이 삼업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08.12 14:49

§(178)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최상승계(最上乘戒)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이라 하는 글자 석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78) - 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법회.


(1) 약 16분.  (2) 약 14분.


(1)------------------

몽리명명유육추(夢裏明明有六趣)한데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리명명유육추(夢裏明明有六趣)러니,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육도(六道)가 있더니,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귀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분명히 그 꿈속에서는 그러한 육도가 있더니,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空空無大千)이로구나. 깬 뒤에는 비고 비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없어져 부렀다 그말이여.

꿈속에 돈 뭉탱이를 줏었다. 하! 이런 보배 뭉탱이를 줏었다. 이러헌 좋은 보배를 평생에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얻었던가.
그렇게 기쁘고 흐뭇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꿈을 딱! 깨고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고 만지작거렸던 그 보물이 간 곳이 없더라.

꿈속에 그 독사란 놈이 물려고 쫓아와서 그 진땀을 흘리고 두려운 공포에 떨었었는데 탁! 눈을 뜨고 보니까 그 혀를 널름거리고 달라들었던 독사가 간 곳이 없더라.
천당과 지옥도 중생의 환몽(幻夢)—환상(幻想)의, 환각(幻覺)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천당이 있었고 지옥이 있었고 축생이 있었지만, 중생의 그 환몽을 깨버린다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지옥도 간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의 그 피나는 고행을 하셔서, 마침내 납월 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 뜬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깨달으신 것이 무엇을 깨달렀냐?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설하신 것이 무엇을 설하셨냐 하면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여.

처음에는 바로 그 환몽(幻夢)을 깨는 법을 설하셨지만,
중생의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해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알아듣기 쉬운, 행하기 쉬운 방편(方便)을 설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깨는 법을 여지없이 설하셨다 그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거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다 용궁에는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경전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라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까와서 그래서 하기가 어렵고, 잘 되어도 잘 된 줄을 모르고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어... (녹음끊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바로 가르켜 줄 수 있는 스승을 자주 만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서 공부를 해 가지고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비를 잘 단속해 나갈 줄을 모르고,
공연히 거기서 스스로 분별심을 내 가지고 공연히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스스로 혐의심(嫌疑心)을 내 가지고 아까운 고비를 헛되이 지내버리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의 법문을 보면,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처지고, 나귀를 끌고 우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앞도 맥히고 뒤도 맥히고 좌우도 끊어져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그러헌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것이 이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크게 깨닫게 될 그 이전의 경계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을 때에 번뇌심을 내지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두려워서 ‘이것이 내가 이거 잘못 될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서지를 말고 그러한 고비에서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겨라.
‘절대로 물러서거나 공부를 놓아버리지 말고, 잘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쩌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이 오목가슴에 무슨 뭉텅이가 생겨 가지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고,

화두를 들어도 머리는 먹먹해 가지고 영 애를 먹을 때에, 그럴 때에는 앉아서 억지로 비울라고 하기 보다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적당한 장소에 일직선으로 딱 정해 놓고서,
한 4~50미터를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 놓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그러면은 그 답답하고 복잡하고 하는 것이 스르르르하니 그것이 없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말이여.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을 그렇게 포행을 하고서 시원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쭈욱 펴고 극히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화두가 들릴 것이다.

또 얼마동안 잘되어 가다가 다시 또 답답해지면 앉아서 단전호흡을 몇 번을 하면 또 시원해지면 고대로 시간을 끌고 나가고, 그렇게 해도 공부가 안 되면은 또 조용하게 나가서 포행을 하고,
허기는 여러 대중이 꽈악 짜고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들랑날랑하면 옆에 분들이 미안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지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앉아서 그 죽비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참 대단히 거북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 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허리가 아프던지, 정진이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라고 하면 조용하게 나가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 가지고 고비를 넘긴다면, 그러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에는 그러한 규칙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 않는 계절인 만큼,
지금 산승이 일러드린 말씀을 십분 참작해서 그 여름 더운 동안에 못다한 공부를 이 산철 동안에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그 봉을 빼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2분10초~38분7초)


(2)------------------

이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가행정진·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이라 하는 글자 석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다져간다면 무슨 파(破)해야 할 계율이 있으며, 다시 또 무슨 지켜야 할 계율이 어디가 있으며, 무슨 따져야 할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떡이면 떡, 국수면 국수 그때그때 공양 시간이 되면 공양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자고, 울력 시간이 되면 울력을 하고, 소지(掃地) 시간이 되면 소지를 하고, 또 빨래를 할 시간에는 빨래를 하고,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만을 알뜰하고 간절하게 단속해 나간다면,
비구 250계(戒), 비구니 348계, 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의식적으로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六祖)스님께서는 「법보단경(法寶壇經)」에 자심(自心),
그 마음 그름이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계(戒)요, 마음 어지러운 것·산란한 것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정(定)이요, 마음에 그름·허물이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 자성(自性)의 혜(慧)라, 이렇게 설파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일인데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은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를 드리고 정진하는 보살님과 그 근본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들었기 때문에—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이 용화선원이 잘 운영이 되았기 때문에 여러 스님네들이 정진을 잘 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 선원이 잘 운영되어 가는데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에 살았겠느냐 그말이여.
법회 때 나와서 법문(法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가셔서 이 참선을 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참선을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바로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이다 그말이여.
복을 지어서 선원을 잘 운영해 나갔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어느 분이 복(福)과 혜(慧)를 가장 원만히 구족하신 분이냐?’하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야말로 천상천하에서 복과 혜,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이다.

그래서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2가지가 족(兩足)한 최고의 높으신 어른께 귀의합니다.’ 이 2가지가 구족하다는 것은 바로 ‘복(福)과 혜(慧) 2가지가 구족하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에 의해서 닦아가는 불제자로서 그 2가지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한다면 우리의 정진은 결단코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일기도 회향이 바로 오늘입니다.

‘백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나는 뭐 닦아야 할 복도 없고, 닦아야 할 혜도 없다’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산철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고,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정진을 해 나가시면,
또 다시 음력 10월 15일이 들면 그때 또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가정형편이 허락이 되면 또 여기에 정식으로 방부를 들여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셔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그 공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었던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형탈. 티끌 수고로운 거, 생사진로, 생사해탈하는 것이 이 일이 조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하게 승두(繩頭)를 잡아서—화두를 놓치지 말고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이 추위가 뼛골 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거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것이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핀 매화라야 코를 치는 그러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 기온이 되아가지고 뜨뜻해서 강추위를 아니하면 그런 끝에 핀 매화는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화꽃이 그러듯이 우리가 정말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그러헌 간절하고도 알뜰한 정진을 하지 않고서 어찌 고불조(古佛祖)와 같은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을까보냐 이 말씀이여.

이 게송은 황벽 스님께서 우리 후래(後來) 불자를 위해서 일러주신 게송입니다.
수행 납자(衲子)가 하루 한때라도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좋은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22분10초~51분49초)(끝)


------------------(1)

*(게송) ‘夢裏明明有六趣  覺後空空無大千’ ; 「증도가(證道歌)」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죽 잇따라 있는.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참고] 송담스님(No.246)-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한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묻기를 ‘여하시(如何是)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어떤 것이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오신 뜻입니까?’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데 대해서 조주 스님이 대답허기를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달마스님이 왜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셨느냐?’하고 묻는 데에 대해서,
‘참선법을 설하기 위해서 오셨다’ ‘내가 내 마음을 깨달라서 견성성불을 허는 법을 가르키기 위해서 왔다’
우리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대답험즉 한데,

또 ‘달마 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가섭존자, 가섭존자로부터 아난존자, 아난존자로부터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달마 스님까지 28대를 법을 전해 왔는데, 그 28대 조사인 달마 대사가 그 부처님으로부터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내려오는 그 최상승법, 정법을 중국에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 이렇게 대답험즉 한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아! 이렇게 대답을 해.

‘대관절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을꼬~?’
이것이 바로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이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는, 그 동안에 자기가 배우고 알고 한 모든 지식이 여기에 동원되야서는 아니 되고, 모든 이론이 여기에 동원이 되어서는 아니 되어.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아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걸어가면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밥을 먹으면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억울한 소리를 듣고 울화통이 치밀어서 속이 상할 때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그렇게만 참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법당에 계신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 사부대중이 ‘이뭣고?’, 이 ‘시삼마(是甚麽)’ 화두를 하시는 분이 많으실 줄 생각을 합니다마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 화두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다못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무조건하고 그렇게만 참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위의 송담스님 ‘판치생모, 이뭣고?’화두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음성법문.
http://emokko.tistory.com/entry/§246-공안화두다못-알-수-없는-의심-신심·분심·용맹심-향림스님은-40년에사-타성일편-조주스님은-30년-부잡용심不雜用心의-끈기와-정성-세수하다-코-만지기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혐의(嫌疑) ; 꺼리어 싫어함.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바우다 ; 피하다 혹은 견디다, 이겨내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2)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법보단경(法寶壇經) ; 중국 선종의 제6조로서 남종선의 개조인 혜능(慧能:638~713)이 사오관[韶關]의 대범사(大梵寺)에서 행한 공개 설법의 기록을 중심으로 생애와 언행을 제자 법해(法海)가 모았다고 전해지는 책. 본래 명칭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이며 약칭하여 '단경'이라고도 한다. '단'은 계단 (戒壇)을 가리키고 '경'은 경전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여 붙인 말이다.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무루혜(無漏慧) ; 번뇌로 더럽혀지지 않은 진실의 지혜.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삼귀의(三歸依) ; 삼귀 또는 삼귀례(三歸禮)라고도 한다.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몸과 마음을 바쳐 믿고 의지함. 즉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르는 교단에 귀의함을 말한다.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을 말함.
이와 같은 삼귀의는 원시불교 이래 수계식(受戒式) 등 여러 의식에서 실행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남아시아의 불교에서는 팔리어(語)로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가르침에 귀의하나이다", "스님들께 귀의하나이다"를 세 번 합송(合誦)한다.
한문으로는 여러 형식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歸依佛兩足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歸依法離欲尊)",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歸依僧衆中尊)"의 삼귀의 계문(戒文)을 합송한다.  삼보에 귀의하는 취지는 일체의 고통에서 해탈하고자 함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황벽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좌우명(座右銘) ;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07.03 18:59

§(272) (게송)적하위망적하진~ / 비로자나 법신불, 참선법(參禪法) /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 / 참회(理懺,事懺)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 전부가 이 부처님 품안에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헌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와,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72) - 1985년(을축년) 칠석법회(65분)에서.


(1) 약 21분.  (2) 약 20분.


(1)------------------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무엇을 가리켜서 망령된 거짓 것이다 하고, 또 무엇을 가리켜서 참이라 할 것이냐.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다. 진(眞)이니 망(妄)이니 하는 것이 본래 다 그것이 참다운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참이오 저것은 거짓이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며, 이러한 시비심(是非心)이 일어나는진(眞)이라고 한 놈도 참이 아니오, 망(妄)이라 한 놈도 참이 아니여. 진이니 망이니 그것이 본래 '참'이 아니니라.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안개가 날으고 잎이 떨어지면 가을빛이 맑아진다. 안개가 날으고 서리가 쳐서 잎이 다 져버리면, 그때 추색(秋色)이 강산에 깨끗해지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여. 옛을 의지해서 떠억 본 푸른 청산(青山)의 면목(面目)만이 드러나더라.
울긋불긋 잎이 피고 꽃이 피고 할 때에는 그런 잎과 꽃에 가리어서 그 산의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서리 쳐서 잎이 다 떨어져 버리고 꽃도 다 져버리고 그러면, 그 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은 을축년 7월 7일, 칠석(七夕)날입니다.
칠석날이라 하면 우리나라 저 옛날 신라 때부터 또 그 이전에부터서 우리의 토속(土俗) 신앙으로,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온 자손에 이르기까지 몸 건강하고 수명장수(壽命長壽)를 빌고 그러기 위해서 절에 가고 또 칠성(七星)님께 모다 공(功)을 드리고 이러한 토속 신앙으로써,

이 칠석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속에 잊지 않고, 절에 잘 다니지 아니한 사람도 칠석날은 그러한 소원을 빌기 위해서 불공(佛供)을 드리러 가고 치성(致誠)을 드리러 가고, 그래 내려 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는 칠석날에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서로 만나지를 못하고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이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과 몸을 이어서 놔준 그 다리, 그것을 오작교라 그러는데 그 오작교(烏鵲橋)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이러헌 전설도 있고 그렀습니다.

'헌데 무슨 업으로써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만나지를 못하고 그렇게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 칠석날 만난다' 그 전설이지만...

우리 용화사는 부처님 한 분, 청정법신(清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이 법당에 모시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상도 모시지도 아니하고, 더군다나 신장(神將)님이라던지 칠성(七星)님이나 산신(山神) 모다 그러한 탱화(幀畵)도 모시지 아니하고, 다못 이 법신불(法身佛) 부처님 한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야.

여러분 가운데는 '오늘 칠석날이니까,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그러니 빨리 법회가 끝나면은 칠성님 모신 절로 가서 공을 드려야겠다'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째서 용화사는다른 절에는 오백 나한(羅漢)도 있고 천불님도 있고 칠성·산신·독성님 그런 여러 성현들도 다 모시고 하는데왜 부처님 한 분만 딱 모셔 가지고,

점쟁이는 ‘칠성단에 공을 드려라’ 그러고 또 ‘산신 기도를 해라’하는데,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산신님도 없고 참 거 안 갈 수도 없고 또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속으로 항시 불평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가 기회만 있으면 산신 모신 데로 갈 생각을 하고,

그런데 그건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이 우주 법계에서 최고의 높으신 부처님, 그리고 가장 근본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바로 이 법신불, 비로자나 법신불이시다 그말이여.

그 비로자나 법신불로부터서 모든 보신(報身)도 나오고, 천백억 화신(化身)도 나오는 것이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 법신불에서 다 나오신 거여.
칠성님이나 산신•독성 그 밖에 이 우주에 가득찬 모든 하늘나라의 천신이나 땅에 모든 산신, 지기(地祇)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이 법신불의 다 부하이시고 권속이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이 다 이 한 부처님 슬하에, 부처님 품안에 전부가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 부처님만 모시되 일체 제불보살과 선신이 다 계시기 때문에 구태여 여러 분을 눈에 보이게 모시지를 아니하고 이렇게 한 분만을 딱 모시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뜻을 잘 파악을 해서 실천허는 것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다 설하셨지만 교외별전(敎外別傳),
이 팔만대장경을 한데 뭉쳐서 그놈을, 무슨 100가지 약초를 모아 가지고 그놈을 한 솥에다 넣어서 몇날 며칠을 고아서, 찌끄레기는 다 건져 내버리고 그 물만을 계속해서 고우면,
마지막에는 조그만한 한 그릇의 진액(津液)으로 모여진 것처럼, 조그만 환약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이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한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없어. 그 주(主)로 삼는 경전이 없지마는, 한 경전도 이 참선법에 있어서는 세울 것이 없지만,
한 글자도 주장한 바가 없는 이 가운데에 팔만사천 묘법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고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여.

그래서 산신님도 칠성님도 그 밖에 모든 불보살의 상호(相好)도 모시지 아니했지만, 이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모시되 일체 성현이 여기에 다 모셔져 있는 거와 마찬가지고,
어떠한 경전도 여기서 내세우지 않지마는 일체 경(經)이 한마디 화두(話頭) 하나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견우와 직녀, 항시 만나고 싶고 그리웁고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오작교로 인해서 칠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법보제자 여러분은 이 칠석날 칠석 법요식을 통해서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함으로서,
그 정법의 다리를 통해서 부모 자식간에 또는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또는 도반끼리,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나 섭섭한 그런 거리가 있는 분은 오늘을 기해서 깨끗이 참회를 해 버리고,
그리고서 정법을 다리로 해서 화합을 하고 하나가 되어서 ‘참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상대방도 또 나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조그만한 원한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고, 조그마한 서운함이 나중에는 큰 원한 관계로까지 확대가 되는 것인 만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마음에 꼬부라진 것을 펴 버리고 내 마음 속에 언짢은 생각을 털어버리고서 상대방을 응어리 없이 활짝 개인 마음으로 상대를 하면 상대방도 따라서 가슴의 문을 열게 될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여덟가지 고통(八苦) 중에 여덟가지 고통을 다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반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한 두가지 고통만 있는 사람,
그 차등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그 고통을 다 벗어버린 사람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덟가지 고통(八苦)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게 되고,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고, 무엇을 구하고자 하되 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하고,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것이 고르지를 못해서,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오장육부와 사지백체(肢百體)의 기관이 고르지를 못해가지고 항상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생로병사-나는 것도 고통이요, 늙는 것도 고통이요, 병드는 것도 고통이요, 죽는 것도 고통이요, 이래서 이것이 중생의 여덟가지 고통인데,

이 고통은 ‘남의 염병(染病)이 내 감기만 못하다’고, 다른 사람은 염병이란 무서운 병을 걸리면 죽게 되는데 내가 감기 좀 들은거야 그까짓 병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남은 염병을 걸려서 죽게 되드라도 나는 조그만한 감기 좀 걸려도 내 감기가 더 고약한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그러한 여덟가지 고통 속에서 어떠헌 형태로든지 고통을 다 받고 있습니다. 다 자기만이 그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도 다 그 고통을 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조그만한 고통은 큰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큰 고통은 별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고통은 어떠헌 작은 고통이나 큰 고통이나 다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여, 같이 앓고 있는 처지에는 서로 돌봐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줌으로써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줄랴면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의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갖다가 등한히 생각하고 심지어는 남을 짓밟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되면,
우리 사는 집이 정말 지옥(地獄)으로 변헐 것이며, 우리가 사는 마을이 지옥으로 변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국가가 지옥·수라장(修羅場)이 되고 말것입니다.

세계가 온통 싸움·전쟁속에 있고 전쟁이 일어날려고 하는 그런 직전에 모다 놓여져 있는데,
이러한 싸움이 ‘과연 왜 그러한 싸움이 일어나냐?’하면 서로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남의 괴로움이 존재하는 한은 나도 편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6초)


(2)------------------

그래서 이 싸움을 없앨랴면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 올라면,
먼저 우리나라가 단합을 해야 하고, 나라가 잘 살려면 우리가 사는 고을이 잘 살게 되아야 하고, 우리 고을이 잘 살라면 우리 집안이 잘 살아야 하고, 우리 집안이 편안헐랴면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인생에 고통이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하면, 전부 중생들은 그 원인이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형을 잘못 만나서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또는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아내를 잘못 얻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사장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못 산다 생각하고,
전부 자기 불행의 원인을 자기 이외의 다른사람에게서 찾기 때문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 하면 ‘전부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불행과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맨 먼저 자기의 고통이 소멸이 되고 행복을 얻게 될 것이며, 각자 그렇게 나아갈 때 온 집안이 평화를 찾게 되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평화롭게 되고 이 세계가 바로 천국이 되고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먼저 모든 고통의 원인을 자기에게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참회(懺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회를 해야 자기의 죄(罪)를 소멸(消滅)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를 소멸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고통은 없어지지 아니해.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행복과 평화를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참회문(懺悔門)을 열어서 참회를 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속에 고통, 육체상의 고통, 가정의 불행, 사회의 고통을 해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2가지 형식이 있는데,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과 또 실질적인 사(事)로 참회는 그런 2가지가 있는데.

사참(事懺), 일반적으로 우리가 ‘참회한다’하면 다 이 사참을 일컫는 것입니다.
‘사참은 어떻게 하느냐?’하면 부처님께 삼보(三寶)께 몸으로 백팔참회(百八懺悔) 또는 삼천배(三千拜),
이렇게 계속해서 부처님 앞에 예배(禮拜)를 하면서 또 부처님의 경전이나, 주문(呪文)이나, 부처님의 법과 덕을 찬양하는 그러한 예경문(禮敬文)을 외우면서 계속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절을 하고, 입으로 삼보를 찬탄하고 또 경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그 부처님의 거룩한 상(像)을 염(念)하면서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계속 참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내가 지은 바 죄업, 모든 악업은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이여. 몸과 입과 마음으로부터 다 생긴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전부 탐진치(貪瞋癡)-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그것이 근본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마음으로 짓고 해서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걸 참회합니다.
이렇게 해서 무수배례(無數拜禮)를 하면서 이렇게 독송을 하면서 이렇게 참회를 하고.

이참(理懺)은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이여.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여. 죄라고 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자성(自性)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말이여.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여. 마음이 공(空)해 버리면, 마음이 비어 버리면 죄도 또한 없어진다.

이 도리를 철저히 믿고 참선을 하면 거기에서 죄가 소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참(理懺)은, 참선을 해서 그 힘을 얻은 사람은 찰나간(刹那間)에 무량겁 죄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참회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아직 참선을 통해서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헐랴고 해도 가슴속에 띠끄름한 생각이 깨끗이 떨어지지를 않고 계속 가슴속에 두려움과 원망하는 마음과 괴로운 생각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근기, 하근기는 부처님 앞에 향을 올리고 그리고서 매일같이 백팔참회를 하고 또 천배·천배·천배해서 삼천배, 또 삼천배를 수십번 해서 삼만배·삼십만배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그러면서 경을 외우고 참회진언을 외우고 그리고 또 자기의 죄를 갖다가 소멸하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남에게 베풀고 또 보시하고 시주를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의 지은 죄업을 갖다가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 하근기에게는 이러한 사참(事懺)이 매우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참을 많이 하면 결국에 가서는 자기의 마음속에 업(業)이 소멸이 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그러고 나면은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두려운 생각도 없어지고,
그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불고 하던 날씨가 쏴악 구름 흩어지고 샛파란 하늘이 보이면서 밝은 태양이 빛나듯이, 마음속이 그렇게 후련해지고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이 없고,

모든 그렇게 그 전에 미웁고 원망스럽던 사람이 전혀 그러헌 감정은 없어져 버리면서 고마운 생각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고맙고, 모든 일들이 다 고맙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고맙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회, 이것이 바로 사참(事懺)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찰에서 대중 스님네들이 모여서 수도를 해나간 데에도 이 참회법(懺悔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죄(重罪), 큰 죄를 지었을 때에는 네 사람 이상의 대중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을 하고 그리고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법참(衆法懺)이라 하는거고.
그 다음에 그렇게 무겁지 않지마는 비교적 중한 죄를 지을 때에는 자기가 존경하는 스님 한 분 앞에 가서 자기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수참(對首懺)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주 미미한 조끄마한 그런 죄를 지은 것은 자기혼자 법당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을 때에 부처님 앞에 와서 다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절을 하면서 스스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념참(心念懺)이라 해. ‘마음 심(心)자’ ‘생각 념(念)자’ 자기 마음속으로 참회를 한다 해서 이것을 심념참이라 하는데.

이 중법참이나, 대수참큰스님 앞에 가서 참회하는 것, 그리고 자기혼자 마음으로 참회하는거 이거 심념참인데 이러한 참회를 통해서,

항시 자기 마음속에 크고 작은 잘못을 반성을 하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소멸을 함으로써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참회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는 아침마다 예불할 때에 이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합니다.
향불로 팔을 따끔하게 지지면서 10가지의 죄를 참회를 하는 것인데, 도를 닦은 수행인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음행을 하며 거짓말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라고 하는 것이 꼭 몸으로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도둑질을 하거나, 또는 음행을 한 것만이 죄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 생각' 번쩍 일어났다가 사라져도남을 죽일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해롭게 할 마음을 낸다던지, 남의 물건을 욕심내는 마음을 낸다던지, 어떤 이성간에 색심을 일으킨다던지, 이리해도 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그것도 계를 파(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뜨고 살면 숨 한번 마시고, 물 한모금 먹고, 말 한마디 허고, 발 한발 움직이는 가운데에도 전자현미경과 같은 그런 업경대(業鏡臺)를 통해서 비추어져 볼 때에는 죄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석(朝夕)으로 예불하면서 참회하고, 참회하면서 새롭게 또 발원(發願)을 하면서 이렇게 수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을에 계시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비록 몸은 속세에 계신다 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발심출가(發心出家)한 부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특히 세속에서 생활을 해 나가고 사업을 해 나갈라면 크고 작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본의거나 타의거나 간에 이 죄업을 짓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찰나찰나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을 해나간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 여러분께서는 여러 가지 정성스러운 공양(供養)을 부처님 앞에 가지고 오셔서 모다 바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는 오늘 칠석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동참(同參)을 하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그래서 집안 식구의 아픈 사람 병낫기를 바래시고, 또 아들딸 모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발원하시고, 사업이 모다 재수대통 하고, 관재구설이 없어서, 다 뜻대로 성취하시기를 바래고, 그런 크고 작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시고 모다 오신 분이 많으실줄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특히 세속에 사신 분들은 그러한 소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시고 오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반드시 그 소원은 이루어지시리라고 생각하고 또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알고 보면 참 이 조그마한, 이루어져도 그것이 큰 행불행(幸不幸)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져 봤자 그때 잠깐 기쁘고 흐믓한 것뿐이요, 안 이루어져 봤자 그때 좀 안 좋았을 뿐이지,
지내놓고 보면 그 일이 되거나 안되거나 그렇게 나의 근본 행복을 위해서 또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별것도 아닌 일인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우선은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겠고 우선은 아주 긴박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조그마한 소원을 성취하게 위해서 오셨지만, 산승(山僧)은 여러분이 그러한 조그마한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래는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은 큰 자비(慈悲)로써 반드시 그 소원이 이루어지시도록 가피(加被)를 내려 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마는,

산승의 원(願)으로서는 그러한 조그만한 원은 여러분 잠깐 마음속에 간직만 하시고 여기에 오셨어도 부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내가 간절히 여러분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정말 영원한 행복을 얻을수 있는 그러한 소원을 이루시게 되길 바래고, 또 그러한 큰 소원 성취하는 방법을 일러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의 말씀을 드렸고,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업(業)의 뭉탱이'가 녹아져 없어져야 될 것이고 그리해야 참선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고 또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사실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41분11초)


-------------------(1)

*(게송) '적하위망적하진~'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與永明堂行佛靈途中(영명당과 함께 불령을 가는 도중)' p224 참고.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이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치성(致誠 이룰•이를 치,정성 성) ; ①하느님 이나 부처님 등 신적 대상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여 빎. ②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산신(山神) ; 산신령(山神靈). 산을 수호하는 신령(神靈).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보신(報身)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세운 서원(誓願)과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몸.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후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지기(地祇) ; 땅을 다스리는 신령. 지신(地神).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상호(相好) ;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의 괴로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범] panca-skandha 또는 오음(五陰) • 오취(五聚)라고도 한다。범어 panca는 다섯이란 말이고 skandha는 덮인다·쌓인다·뭉친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곧 인연으로 화합한 모임을 말한다.
①빛(色)은 물질인데, 우리의 육신과 우리를 싸고 있는 환경을 가리킨다.
②받음(受)은 우리가 환경에서 받는 촉감.
③생각(想)은 우리에게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분별하며 생각하는 것.
④움직임(行)은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지고 버리고 기뻐하고 골내는 것같이, 착하고 악한 것을 물론하고 마음의 활동을 말한다.
⑤알음알이(識)는 모든 일이나 물건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집행하게 하는 마음의 주체이므로 마음 임금(心王)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는 물질과 정신의 전체를 통괄하여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으로 실다운 것인 줄 착각한 것일 뿐이다。실지는 다 인연 따라 꿈같이 나타나는 빈 것이다.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염병(染病) ; ‘장티푸스(腸typhus)’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2)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백팔참회(百八懺悔)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108가지의 모든 번뇌에 대한, 번뇌·업장소멸과 참회의 뜻으로 108배의 절을 하는 것.
*예배(禮拜) ;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절을 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1 참고.
(五一)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身口意가  清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찰나(剎那) : [범]  ksana  시간의 제일 작은 단위로 말한 것이다。하루가 648만 찰나라 하였는데, 지금 시간으로는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306) 오계(五戒) / 계·정·혜(戒·定·慧)-삼학(三學) / 자각(自覺)·각타(覺他)·각만(覺滿) / 소승계(小乘戒)와 대승계(大乘戒) / 연비(燃臂)와 참회.

삼학은 계·정·혜(戒·定·慧) 이것을 삼학(三學)이라 그러고, 탐진치를 삼독(三毒)이라 그러는데, 삼독을 돌이켜서 바꾸어 가지고 삼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참선을 해야 하고, 바른 참선을 하고자 하면 계율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앞으로 올바른 부처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바른 지혜를 얻어서 영원한 깨달음과 행복을 얻고자 하거든, 맨 먼저 부처님의 계를 잘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로 지키는 계’는 소승계(小乘戒)고,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으로 지키는 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향불로써 여러분의 팔에 연비(燃臂)를 받게 됩니다. 연비를 받는 뜻은 우리가 이 시간 이전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범한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하고, 참회함으로써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뜻....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어(86.08.03)에서


(1) 약 18분.  (2) 약 11분.


(1)------------------

지금부터 여러분께서는 불명(佛名)과 오계(五戒)와 또 화두(話頭)를 타시게 되겠습니다.

첫째, 이 오계(五戒)를 먼저 설하게 되겠습니다. 아까 법상에서 잠깐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처님의 제자가 될 때에는 오계를 받고 또 불명을 타고 또 공부해 나가는 바른 법을 배워서 마음을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佛敎)를 한마디로 말해서 삼학(三學)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중생은 탐진치-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 탐진치(貪瞋痴) 3가지의 옳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 돌이켜서 삼학(三學)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삼학은 계·정·혜(戒·定·慧) 이것을 삼학이라. 석 삼(三)자, 배울 학(學)자, 삼학(三學)이라 그러고, 탐진치를 삼독(三毒)이라 그러는데, 삼독을 돌이켜서 바꾸어 가지고 삼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학(三學)의 첫째는 계(戒)입니다. 계(戒). 계율(戒律).
5계와 10계 또는 비구 250계 또는 보살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경계(四十八輕戒) 이런 계가 있는데, 이 계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이 계(戒)를 몸(身)과 말(口)과 마음(意)을 올바르게 가져나감으로 해서 계를 지키고,
그 다음에 정(定)은, 우리의 마음이 항상 그 탐진치 삼독으로 훨훨 불이 타 가지고 안정을 얻지 못하고 노상 둥둥 떠다니고, 노상 치닫고, 잠시도 고요히 안정되는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한곳에 안정을 시킴으로 해서 자기의 본성을 찾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정(定)을 닦음으로 해서 그래서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는데,
비유를 들어서 말하자면 계(戒)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定), 선정(禪定)은 그 물그릇에 물을 담는 거와 같고.
그래서 계기(戒器)요-계의 그릇이요, 정(定)의 수(水)요-선정(禪定)의 물이다 그말이죠. 그리고 혜월(慧月)이요. 지혜는 달과 같은 것입니다.

계의 그릇이-계를 잘 닦음으로서 그 그릇이 깨끗하고 바로 놓여져야, 거기에 맑은 참선의 물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맑은 물을 담음으로 해서 하늘에 떠있는 달이 그 그릇안에 물속에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달이 물속에 잘 나타나기를 바래거든, 그 물이 맑고 고요해야 하고, 물이 맑고 고요하게 잘 담기게 할라면은 그릇이 깨끗하고 그릇이 바로 놓여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戒)와 정(定)과 혜(慧)는 항상 셋이 같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계(戒)만 있고 정(定)이 없어서는 혜가 이룰 수가 없고, 혜(慧)만을 바라면서 선정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계와 정과 혜, 삼학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인 것입니다. 3가지가 한 체(一體)인 것입니다.
계 있는 곳에는 정과 혜가 있고, 정이 있는 곳에는 계와 혜가 있고, 혜가 있는 곳에는 정과 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3가지는 항상 동시요 한 뭉텅이인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참선을 해야 하고, 바른 참선을 하고자 하면 계율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앞으로 올바른 부처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바른 지혜를 얻어서 영원한 깨달음과 행복을 얻고자 하거든, 맨 먼저 부처님의 계를 잘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은 저 산에 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물속에서 사는 고기를 구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모래를 쪄 가지고 밥을 맨들라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모래를 솥에다 넣고 불을 지핀다 하더라도 그 모래는 밥이 되지 아니헌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좋은 집을 지을라면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나 질컥벌컥한 그 굳지 않는 땅에다가 아무리 설계를 잘해서 훌륭한 집을 지은다해도 그 집은 얼마가지 못해서 기둥이 가라앉고 벽이 갈라지고 집이 쓰러지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타시는 계율이 얼마만큼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가를 여러분은 잘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불살생(不殺生),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둘째, 불투도(不偸盜),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자기 물건 아닌 것을 취하지 말아라.

셋째,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자기의 아내나 자기의 남편이 아닌 사람과 방사(房事)를 하지 말아라.
자기 남편, 자기 아내 아닌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되면은 그것은 피차에 괴로움과 불행을 가져오고 가정을 파탄시키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그래서 마침내 자기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고 사회도 시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음을 하지 말아라.

넷째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하면은 진실성을 잊어버려서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직업을 갖건 진실하지 못하면 자기는 설 곳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말아라. 술을 마시게 되면은 차츰 과음을 하게 되고 술 취한 마음 상태에서 말을 하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되고 아무도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믿어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많이 먹게 되면 머리가 나빠지고 결국은 중독이 걸리게 되면은 폐인(廢人)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는 이상 말한,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사음을 하지 말아라, 망어(妄語)를 하지 말아라, 술을 먹지 말아라,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왜 죽이지 말아야 하냐. 산목숨을 죽이게 되면 자기 자비심(慈悲心)을 손상하게 되어.
아까 자각(自覺)·각타(覺他)·각만(覺滿), 스스로 자기가 깨닫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깨달은 사람으로 온 법계가 가득차게 하려는 이런 3가지의 큰 목적이 우리 불법의 목적인데,

그 목적을 달성할라면 첫째 자비심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살생을 하게 되면은 그 자비심이 없어져 버려.
그러니 도를 이룰 수도 없고, 도를 이룬다고 해도 무엇을 위한 도냐 이말이여. 그래서 불자(佛子)는 마땅히 살생을 하지 말고 자비심을 길러야 한다.

또 불자는 마땅히 도둑질 하지 말아라. 불자는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고, 각만(覺滿)이 되도록 하는 게 목적인데 남의 것을 훔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남의 것을 훔치는 이 도둑질을 하면은 복덕(福德)을 손상을 해.
복력(福力)이 있어야, 내 복덕이 있어야 나의 모든 좋은 영향력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서 배고픈 사람은 배부르게 해주고, 옷이 없는 사람은 옷을 주어서 따뜻하게 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약이 되어주고,

이 보살행(菩薩行)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까지도 다 바치면서 베풀면서, 그래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인데,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칠 것이냐.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것을 남에게 보시하는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음을 하지 말아라. 사음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내 몸과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가져야 자기도 도를 이룰 수가 있고 또 다른 사람도 제도를 할 수가 있지, 내 몸과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더러운 상태에서 어떻게 남을 청정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결국은 도(道)는 자비와 복덕과 이 청정한 마음이 모두가 도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고, 그것이 도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데 어찌 몸과 마음을 부정(不淨)하게 가질 수가 있느냐. 그래서 셋째에 가서는 사음을 하지 말아라 그것이여.

넷째에 가서 망어(妄語)를 왜 하지 말아야 하냐. 망어를 하면 진실(眞實)한 마음을 손상하게 되어.
도를 이룰라면 앞에 말한 3가지에다가 또 이 진실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서 도를 이루고 일체중생을 제도하게 되는데,
거짓말을 풀풀 해 가지고 스스로 진실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기도 도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실치 못한 사람의 말을 누가 믿어주며 어디 가서 중생을 제도를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진실한 행동과 진실한 말과 진실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에 가서 술을 먹지 말아라. 세속에서 살라면은 남녀간에 다 술을 마시게 되고 술을 권하게 되고 이러는데,
‘아! 이 5계를 받어서 '술을 먹지 말아라'하는 계를 받게 되면 이제 술은 입에다도 못 대겠다. 이거 참! 그 5계 중에 고놈 하나는 뺐으면 좋겠다’ 그러한 말을 하는 분도 있는데,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술을 먹지 말아라’한 계율을 다섯 가지의 계(戒) 속에 ‘술을 먹지 말라’고 하는 조목을 넣으신 데에는 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지혜(智慧)를 손상을 해.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다가, 또 나중에는 술이 술을 먹다가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거꾸로 먹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든지 다 제정신으로 술을 먹고 권하고 그러지만, 차츰 주기(酒氣)가 돌게 되면 자기도 막 먹고 남도 무리하게 권하고 해 가지고 술이 술을 먹게 되고, 나중에는 제정신을 완전히 잃게 되면 그 술이 사람을 먹어버리게 되어서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이 되면 나중에는 중독이 걸리고 술을 안 먹고는 배기지를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서 마시고, 그 술이 주기(酒氣)가 가시기 전에 또 마시고, 가실라 하면 또 목이 좀 마를라 하면 또 홀짝 마시고 홀짝 마시고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하루종일 아주 술이 취해 가지고,

혀는 꼬부라지고 두 다리는 헛발질을 하고, 하는 말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고, 그러한 사람이 장사를 하면 옳게 하겠습니까? 사업을 하면 옳게 하겠습니까? 무슨 정치를 하면 옳게 하겠습니까?

결국은 이 '술'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참 아주 끊기 어려우면서도, 이 술 때문에 눈이 나빠지고, 술 때문에 심장이 나빠지고, 제일 두려운 것이 술 때문에 간이 나빠지고, 술 때문에 사람이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리석은 우리 하근기(下根機) 중생들에게는 ‘술을 먹지 말아라’한 계율은 대단히 중요한 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지금 사람을 죽이며, 도둑질을 하며, 사음을 하며, 누가 거짓말을 쓸데없이 풀풀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헌 앞에 말한 4가지는 어지간한 사람이면 설사 계를 받지 안해도 산목숨을 죽이기를 다 싫어하고 또 이 도둑질하라고 해도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또 사음도 역시 마찬가지고 거짓말도 누가 쓸데없이 거짓말 풀풀 하고 다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술은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걸 먹은 것이 별로 죄가 안 되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도를 닦고자 하는 사람은 이 술을 참 삼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8분11초)


(2)------------------

그래서 이 계율은 형식적으로 지키는 몸뚱이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가 있고, 마음으로 지키는 계, 두 가지로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뚱이로 지키는 계’는 소승계(小乘戒)고,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으로 지키는 계’인 것입니다.
‘실지로 저 놈을 내가 죽이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었어도 실지로 죽이지만 아니하면 소승계는 범한 것이 안됩니다.
그러나 대승계는 이미 마음속에 ‘그를 죽이리라’하고 마음먹었다면 이미 대승계는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사음이나 그런 것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실지로 도둑질을 안 하고 속으로 마음으로 ‘저걸 내가 기어코 훔치고야만 말리라’하고 마음을 먹었어도,
기회가 안 닿던지 중간에 마음이 ‘에이, 내가 그래서는 안 되겠다’하고 안 했다면 그건 소승계는 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마는 대승계는 이미 한 생각 도둑질한 마음을 냈을 때 대승계는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승계는 차라리 지키기가 쉬웁습니다. 허나 대승계는 '한 생각' 탁 일어나면 이미 범한 것이 되기 때문에 대단히 지키기가 어렵고 또 차원이 높은 계인 것입니다.

우리 하근기, 중근기, 말법(末法)에 우리 초학자들에 있어서는 첫째 이 ‘소승계-몸뚱이로 지키는 계’부터서 철저히 지키고 나아가서는 ‘마음으로 지키는 대승계’까지도 잘 지킬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승계와 소승계를 우리는 아울러서 잘 지키는 그러한 최상승 정법학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 말한 다섯 가지 계율은 불자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그러한 소중한 것인데 이것을 파(破)하게 되면 이것을 범(犯)하게 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살생(殺生)을 범한 사람은 평생동안 병치레를 하거나 또 오래오래 살지를 못하고 단명(短命)을 하거나 이렇게 되고,
또 도둑질을 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평생동안 가난뱅이가 되고 남의 것을 훔친 그 죄로 항상 가난뱅이 보(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돈을 빌려 줘도 갚지를 않게 되고 무엇을 해도 재수가 없어서 사업도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사음(邪淫)을 한 사람은 사음을 한 죄로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부정(不淨)한 남편·부정한 아내와 짝지어지게 되어서 항상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고민을 하는 사람, 또 아내가 부정하다고 밤낮 가정에 불화(不和)가 일어나는 그러한 것은 과거 전생에 자기가 부정한 행실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바람 피는 남편 꼴을 보게 되고 부정한 아내를 맞아서 속을 썩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그렇게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렇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생에 혹 그러한 일을 당하고 있거나 당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전생에 자기가 지은 죄값으로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을 하고 그것을 상대를 용서하고,
자기를 앞으로 그러한 일이 없도록 스스로 청정한 행을 갖도록 노력을 한다면 복잡했던 가정 문제가 다 해결이 되고 다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많이 먹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옥에 가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면,
여간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렵게 어렵게 사람이 된다하더라도 돌대가리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지능지수가 50도 못되게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바보 천치로 태어나서 먹을 것 밖에는 모르고, 무엇이 좋고 하는 선악을 분별을 못하고, 본말(本末)을 가리지를 못하고, 사람은 분명히 사람인데 아주 바보로 그렇게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도 그렇게 폐인이 되지만 세세생생에 그런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속에 몸담아 살면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가 어려운데 이 5계를 받아가지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다 보면 꼼짝을 못하겠다. 정말 자유없는 그러한 참 구속된 부자유한 그런 생활을 살게 될 것이 아닌가. 차라리 받지를 말까.

이런 망설임을 가지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만큼 어렵지만,
그것을 부처님 법을 믿고 그것을 잘 지켜나감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자비심이 넘쳐 흐르고, 복덕이 풍족하고,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그리고 진실하고, 그리고 지혜가 넘친다면,

우리는 금생에 인격을 완성을 하고, 어디를 가나 모든 사람의 신망을 받고 존경을 받고,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한마디를 하고 뭣을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고 나를 따라 주고,
그렇게 해서 내가 모든 사회의 등불이 되어주고, 나침반이 되어주고, 소금이 되어서 사회를 가는 곳마다 다 정화를 할 수 있는 그러한 인격자가 된다면,
그것이 우리 불자가 부처님의 계율을 철저히 지키면서 참선을 열심히 해서 도를 닦은 보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율은 불자(佛子)로써 마땅히 자진해서 잘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그래.
‘능히 잘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이상 설한 다섯 가지 성스러운 계는 불자로써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이상 설한 다섯 가지 성스러운 계는 불자로써 자각(自覺)·각타(覺他)·각만(覺滿)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키겠다고 맹세를 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향불로써 여러분의 팔에 연비(燃臂)를 받게 됩니다.
연비를 받는 뜻은 우리가 이 시간 이전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범한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하고, 참회함으로써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뜻으로,
그리고 새로 태어난-새로 불자(佛子)로 태어나서 새사람이 되어서 살기를 맹세하는 뜻으로 연비를 받게 되겠습니다.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우리는 오계를 받고 연비를 하고 부처님께 서약(誓約)을 하고 참회를 함으로써 우리의 과거에 지은 모든 죄는 봄눈 녹듯이 다 녹아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허공과 같이 맑고 깨끗해졌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에 대해서는 여러분 이 시간을 기해서 다 깨끗해졌습니다.

그것을 다시는 생각해내지도 말고 그것을 돌아보지도 말고 오직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부처님 아들로 딸로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부처님 제자로서 희망과 보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처음~32분47초)


-------------------(1)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48경계(四十八輕戒) ; [불교] 범망경(梵網經)에 있는 대승계(大乘戒) 가운데 열 가지의 무거운 계에 대하여 비교적 가벼운 죄를 경계한 48가지의 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정(定) : ①계(戒)•정(定)•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혜(慧) ; 지혜(智慧).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방사(房事) ; 남녀가 성적(性的)으로 관계를 맺는 일.
*자비심(慈悲心)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2)

*말법(末法) ;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정법(正法)-오백 년 또는 천 년, 상법(像法)-천 년 다음에 오는 만년(萬年)의 시기이다. 곧 불법이 다하여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을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진언(眞言) ; [범] mantra  음대로 써서 만달라(漫怛羅)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진언(眞言) • 신주(神呪) • 비밀어(秘密語)라고도 한다。
'참되어서 허망하지 않은 말'이란 뜻도 되고, '진여(眞如)의 법을 가르치는 말씀'이란 뜻도 되며, 그 미묘한 뜻과 신비한 힘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생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 하여, 신주(神呪)라고도 하며 비밀주(秘密呪)라기도 하고,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 있다(總持)'하여 다라니(陀羅尼)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것은 번역하지 않고 범음(梵音) 그대로 외게 된다。여러 글자로 된 것도 있고, 한 자로 된 것도 있으며, 글자 없는 것도 있는데, 이치로 볼 때에는 물 소리나 바람 소리까지도 모두 다 진언 아님이 없다。
*참회진언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