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문'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9.12.27 §(801) 전강선사 45주기 추모재 / 생사호흡지간 /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하는 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 이만할 때 열심히 정진하라.
  2. 2019.11.18 §(800) 사미(沙彌) 수계식 / 사부대중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 자성의 부처를 깨닫는 뜻깊은 한 철이 되기를 바랍니다.
  3. 2019.08.15 §(799)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생사(生死)는 일호흡지간(一呼吸之間)에 있다 / 1초 1초, 한 호흡 할 때 바로 그때 그때가 나의 자성불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요, 계기.
  4. 2019.05.20 §(798)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이만큼 건강할 때 철저하게 발심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자성 부처님을 깨달아라 / 사람 몸 받기 어렵다 / (게송)인간부명전광중~.
  5. 2019.04.21 §(797)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성주괴공, 생로병사가 허망하나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으로 가는 발판 / (게송)안비천말적유사~ / 생사호흡지간 / 생사해탈 길은 ‘이뭣고?’뿐.
  6. 2019.03.22 §(796) (게송)서왕한래춘부추~ /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활구참선이다 /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여러분은 정말 최상승법을 믿는 자성 부처님을 찾는 최상승 불법 제자.
  7. 2019.03.19 §(794) 전강선사 44주기 추모재 / 사부대중 여러분! 열심히 전강 조실스님 육성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다 같이 견성성불 하시기를 바랍니다.
  8. 2019.03.15 §(793)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참선 / 참선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 / 염라대왕과의 대화 / 저(송담스님)와 여러분과는 저 전생부터서 도반.
  9. 2018.09.01 §(792) (게송)인생여환우여몽~ /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이것이 생사해탈의 길이요, 말세를 정법시대로 만드는 오직 유일한 길.
  10. 2018.08.30 §(791)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참선 /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도 두려울 것이 없다.
최근 법문2019. 12. 2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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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 전강선사 45주기 추모재 / 생사호흡지간 /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하는 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 이만할 때 열심히 정진하라.

 

생사는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면 바로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오늘 이만큼 건강하고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우리의 죽음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갈는지도 모르고, 내일 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에 무상(無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법(佛法)을 믿고 열심히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송담스님(No.801)—전강선사 45주기 추모재(2019.12.27) (용801)

 

약 13분.

 

오늘은 기해년 전강(田岡) 대선사 45주기 추모재 날입니다.

이 자리에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들이 추모재에 참례(參禮)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강 대선사께서는 16세에 출가하셔서 23세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그 뒤로 77세에 열반(涅槃)하실 때까지 칠백여 개의 녹음법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77세, 법납(法臘) 61세에 열반하실 때 『여하시 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구구(九九)는 번성(飜成) 팔십일(八十一)이니라』 마지막 임종법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비록 육신은 열반에 드셔서 우리는 뵐 수가 없지마는 남겨 놓으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우리는 오늘 금방 생시에 설하신 법문을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경건한 마음으로 경청을 했습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깨달음을 얻으시고 법을 설하셨지마는 다 인연이 돌아오면 열반에 드셨고,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도인이거나, 정치인이거나, 만석(萬石) 갑부거나 다 인연이 돌아오면 육신은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사부대중이 지금 법당에 계시지마는 살 만큼 살면 인연이 돌아오면 이 육신을 버리고 이승을 떠나게 됩니다. 만겁(萬劫)을 두고 태어난 사람 치고 안 죽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라 하는 것이 '날 때부터 너는 몇 살까지 살아라 하고 정해져 갖고 나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생사는 어떻게 살았느냐, 어떻게 살고 있느냐, 어떠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좀 오래 살 수도 있고, 빨리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생사는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면 바로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오늘 이만큼 건강하고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우리의 죽음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갈는지도 모르고, 내일 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에 무상(無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법(佛法)을 믿고 열심히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년을 살는지 백이십을 살는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지금 한 생각 한 생각, 눈을 감았다 떴다 할 이때가 바로 나의 자성부처님을 찾는 그 자리인 것입니다.

 

불법을 안 믿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살면서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눈이 어두워서 '어떻게 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갈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아들과 딸을 성공을 시킬까'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불법을 믿고, 특히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사는 사람은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현재, 지금 이 찰나찰나를 그럭저럭 지내지 않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 ‘이뭣고?’를 챙기면서 자기의 자성불을 닦는 수행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믿고 또 최상승법을 믿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그런 데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갈라면은 재산도 있어야 하고, 자손도 있어야 하고, 명예나 권리도 있어야 하지마는 그것이 인생에 목적이 될 수는 없고, 그것을 추구한 것이 인생을 참으로 옳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전강 대종사 45주기 추모재에 참례하신 여러 도반 여러분!

정말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셔서 후회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참삶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재산이 아무리 많고, 권리가 아무리 높고, 별 재주가 있어도 무상 속에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이 사람의 몸을 받아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서 꼭 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명예도 아니고 권리도 아니고 재산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억만금을 모아 놨다가 관속에다 넣어 가지고 가봤자 아무 소용도 없고, 황금보화를 관속에다 넣어 가지고 가봤자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받기 어려운 이 사람의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어.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 사미 · 행자 · 청신사 · 청신녀 여러분!

저의 나이 93세가 되어서 이 자리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할 말씀은 ‘정말, 인생이라 하는 것은 무상하다’고 하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상한 속에서 정법을 믿고 나의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정말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전강 조실 스님 45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이 노승이 여기에 와서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한 생각 한 생각 단속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이 자리를 내려가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처음~12분2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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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참례(參禮) ; 예식, 제사, 전쟁 따위에 참가하여 관여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법랍(法臘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스님의 나이·승납 랍) ; 출가하여 스님으로서의 나이.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 비구니가 되고 부터의 햇수를 말한다. 법세(法歲), 계랍(戒臘), 하랍(夏臘), 승납(승랍 僧臘)이라고도 한다.

스님은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절에서는 속세의 나이로 헤아리지 않고 법랍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장유(長幼)의 순서를 정하였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만석(萬石 일 만·매우 많은 만/섬·10말 석) ; ①아주 많은 곡식. ②곡식 일만 섬(10말).

*만겁(萬劫 일 만·대단히 만/가장 긴 시간 겁) ; 대단히[萬] 오랜 시간[劫]. 劫과 刧는 동자(同字).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자성부처님 ; 자성불(自性佛).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우리는 받기 어려운 이 사람의 몸을 받았고'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11. 1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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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사미(沙彌) 수계식 / 사부대중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 자성의 부처를 깨닫는 뜻깊은 한 철이 되기를 바랍니다.

 

**송담스님(No.800)—2019(기해)년 동안거 결제(2019.11.11) (용800)

 

(1) 약 15분.

 

(2) 약 12분.

 

(1)------------------

 

오늘 기해년 음력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에 대주 최용민 사미(沙彌)와 대원 김동현 사미의 수계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대주 행자와 대원 행자는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해라.

 

(수계자는 법상을 향하여 호궤합장 하십시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겸해 닦아야 하나니, 계(戒)의 그룻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첫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니,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불투도(不偸盜)니,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째 불사음(不邪淫)이니,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불망어(不妄語)니,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불기어(不綺語)니,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여섯째 불양구(不兩口)니,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일곱째 불악구(不惡口)니,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덟째 불탐욕(不貪慾)이니, 탐욕심을 내지 말라.

아홉째 불진에(不瞋恚)니, 진심을 내지 말라.

열째 불사견(不邪見)이니,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첫째 불살생(不殺生), '살생을 하지 말라'하는 말 가운데에는 궁극의 뜻이 자비 종자, 우리 마음에 자비의 종자를 잘 가꾸고 키우라고 그 말씀이여.

둘째 불투도(不偸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하는 것은 복덕 종자를 잘 가꾸고 키우라는 거고.

셋째 불사음(不邪淫)이니, '사음을 하지 말라'하는 것은 음행을 하지 말라.

 

넷째 불망어(不妄語)니, 헛되고 정도에 맞지 않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불기어(不綺語),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해 버릇하면 습관이 되어서 입만 벌리면 그런 잡탕스런 말을 하게 되니 수행자는 그래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여섯째 불양구(不兩口)니,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이간질을 해서 두 사람의 화합을 깨뜨리고, 자기는 장난삼아서 한 말이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니 이간질을 하지 말라.

 

일곱째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기서 악한 말이라 하는 말은 욕을 하는 거야. 욕도 해 버릇하면 습관이 되어서 농담으로 하는 것이 ‘죽일 놈, 살릴 놈, 때려 죽일 놈’ 이런 말도 해 버릇하면 예사로 장난삼아서 하는 것이 남의 기분을 상하게 되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탐욕심을 내지 말라. 세속인도 탐욕심을 내서 감옥에도 가고 나중에는 지옥에도 가고 그러는데 수행자는 불법에 의해서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 입과 마음과 몸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홉째 불진에(不瞋恚)니, 진심(瞋心)을 내지 말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나름대로 인연이 있고 그래서 계절에는 춘하추동이 있고, 우주법계에는 성주괴공이 있고, 사람에게도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이 있는데, 생각을 잘못 먹고 탐욕심을 내면 세상에서도 인격자로 존경을 받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가하는 사람이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 자성(自性)의 부처를 깨닫는 수행을 해야 할 텐데 어찌 탐욕심을 내고 진심을 낼 것인가.

 

진심을 내 버릇해서는 그것도 습관이 되어서 사소한 일에도 볼쏙볼쏙 성을 내고 욕을 하고 그래서 자기 마음도 상하고 남의 마음도 상하게 하는 것이니. 성내는 것도 습관이 되면은 크고 작고 간에 자기 마음에 조끔만 마음에 안 맞으면은 진심을 내니 그것은 인격자로서 특히 수행자로서 성을 내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자기 마음에 조금 안 든다고 해서 성을 내 가지고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하고 말이 거기에서 거칠게 나오면 어찌 수행자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열 번째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어리석고 삿된 견해라 하는 것은 인과(因果)를 철저히 믿지 아니하고 철저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므로 해서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항상 심호흡을 하면서 자기 수행을 열심히 하면 참선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찾는 ‘이뭣고?’ 한 수행을 열심히 한다면 어찌 진심이 나며, 어찌 다른 어리석고 삿된 생각이 나겠는가?

 

이상 설한 열 가지 계는 이름하여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라 하는데, 이 십선계를 잘 지킴으로써 수행자로서의 중심을 잡어가며 수행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깨달음을 얻는 데 장애가 없을 것이다.

이 십선계가 낱낱이 자세하게 말했지마는 이 십선계를 잘 지켜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은 ‘이뭣고?’이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이뭣고?’로써 자기의 번뇌와 망상,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그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설사 일어날 듯 할 때 ‘이뭣고?’를 얼른 챙기면은 바로 자기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니, 수행자는 일분일초도 딴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밥도 먹고 약도 먹고 물도 먹고 그런 것이 다 필요하지마는, 수행자가 자기 중심을 잡고 깨달음을 향해서 바로 가려면은 항시 자기 안에 있는 자성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이 유일한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이상 설한 대승십선계를 지금부터서 마지막 숨이 머꿀 때까지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기분이 나쁠 때 무슨 걱정이 있을 때 자기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로 챙김으로 해서 모든 재앙으로부터서 자기를 지키는 길이고 재앙 없이 깨달음에 향한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상 설한 열 가지 계를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열 가지 십선계를 잘 지키겠는가?”

“능지”

 

“이상 설한 열 가지 계는 수행자로서 일생 동안 잘 지켜야 할 덕목이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연비(燃臂)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처음~15분21초)

 

 

 

 

 

(2)------------------

 

대주, 대원 사미에게 가사(袈裟)를 입혀라.

 

대주와 대원은 사미십계를 받았으니 부처님께 삼배(三拜) 올려라.

 

전강 조실 스님께 삼배 올려라.

 

대중 스님께 삼배 올려라.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고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오늘 대주와 대원 두 사미가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의 입회 찬양하는 앞에서 사미십계를 받았습니다.

지금 두 사람이 진즉 육체는 태어났지마는 오늘 부처님의 아들로서 새로 태어난 것이다. 그동안에는 한 사람의 젊은 사람으로 살아왔지마는 오늘부터는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을 부처님의 그런 의무와 책임을 띠고 계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사람이 이세상에 태어나면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 늙고 흰머리가 나서 결국은 죽게 되는데, 천당으로 가느냐, 아수라가 되느냐, 인간으로 태어나냐, 축생으로 태어나느냐 또는 지옥이나 아귀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마음가짐과 어떠한 말과 어떠한 행동을 짓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 두 사미는 대중이 축복하고 지켜보는 가운데에 부처님의 제자로서 새로 태어났으니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을 받을 일이겠느냐.

오늘 이 감격과 감동을 평생 잊지 말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기어코 자성을 깨달아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나도 축복하고 대중도 다 한마음으로 축복을 하니,

평생, 슬픈 일을 당하거나 기쁜 일을 당하거나,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일을 당하거나 항상 자기 마음의 부처를 찾는 참선 수행인 ‘이뭣고?’를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대중 스님네는 축복하는 뜻으로 박수를 한번 쳐 주세요.

 

오늘 동안거, 기해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부처님의 두 아들이 태어났으니 나 자신도 감개가 무량하다.

너희 두 사람도 항상 오늘과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들으면서 열심히 수행을 해서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부모님의 은혜, 부처님의 은혜, 대중 스님네의 축복해 주는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어코 도업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여기에 모이신 대중 스님들도 두 사미가 계를 받은 것을 축복하는 그 자비와 지혜의 마음으로 수행을 잘 하셔서 이 두 새로 된 사미승의 귀감(龜鑑)이 되도록 지혜와 자비로써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오늘은 기해년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인데,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 사미 · 행자 · 청신사 · 청신녀도 앞으로 석 달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자성의 부처를 깨닫는 수행자로서 후회 없는 뜻깊은 한 철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결제, 기해년 동안거 결제 법요식과 두 사미의 수계식을 마치고자 합니다.(15분22초~27분18초)(끝)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8. 1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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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생사(生死)는 일호흡지간(一呼吸之間)에 있다 / 1초 1초, 한 호흡 할 때 바로 그때 그때가 나의 자성불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요, 계기.

「생사(生死)는 일호흡지간(一呼吸之間)에 있다」고 우리가 확실히 인식을 해서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아 있을 때 참나의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만이 우리가 마음속 깊이 명심하고, 철저히 그것을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언제 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마는 1초 1초 지나가는 것이 바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힘이 장사라 하더라도 1초 1초 가는 것은 면할 수가 없고 결국은 가게 되는데, 갈 때까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9)—2019(기해)년 하안거 해제 및 백종. (용799)

 

약 17분.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니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라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다.
백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긴 세월인 것 같지마는 잠깐 지나가고 마는 것이지. 그러니 시간을 정말 일분일초를 등한히 하지 말 것이다.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만약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고문을 받고 고초를 받고자 하지 않을진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다. 바로 조사관, ‘이뭣고?’ 자기가 자성 부처님을 찾는 참선 ‘이뭣고?’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이건 고조사(古祖師)의 게송입니다마는 언제 읊어봐도 일분일초도 마음에 등한히 할 수 없는 게송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말도 하고, 밥도 먹고 걸어다니고 이만큼 건강할 때, 어쨌든지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보는 데에 쫓아가지 말고 바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그 듣는 데에 신경을 쓰지 말고 바로 그 찰나에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이뭣고?’를 할 것이다.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마음에 무슨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속상한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 끄달려 가지고 신경을 쓰고 그러다 보면 언제 나를 찾는 ‘이뭣고?’를 할 것이냐 그말이여.
눈으로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슨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이나 들으면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나의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를 해야 할 것이다.

‘이뭣고?’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나의 자성불을 찾는 수행이니 부자가 되었거나, 학자가 되었거나, 스님이 되었거나, 신도가 되었거나 모든 사람이 밖의 일, 재색식명수(財色食名) 오욕락(五欲樂)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고, 바로 그 찰나 찰나를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우리가 신경쓸 일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말세(末世)가 되어서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차츰차츰 드물어지고, 온 세상은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모다 그런 것이 인생의 목적인양 그런 데에 신경을 쓰고 그런 일에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마는.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말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법을 믿고 나의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이 법회에 참석을 하신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갸륵하고 고맙고 신통한 분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오십 · 육십 · 칠십 · 팔십이 된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마는, 인생이라 하는 것은 한번 태어나면 결국은 죽을 때가 오는 것이니, 이것이 늙어서 오래오래 살다가 백 살도 살고 백이십 세도 사는 분도 더러 있지마는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일호흡지간(一呼吸之間)에 있다」고 우리가 확실히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아 있을 때 ‘이뭣고?’ 참나의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만이 우리가 마음속 깊이 명심하고, 철저히 그것을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가 꼭 백 살 넘어서 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금년에도 갈는지 모르고, 내일 갈는지도 모르고, 일호흡지간(一呼吸之間)에 생사(生死)가 있다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라야 정말 무상(無常)을 아는 사람이고, 정말 참나를 찾는 수행자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밥먹고 이렇게 현재까지 살고 있지마는 그것이 일 년을 갈는지, 삼 년이 갈는지 살아봐야 알지, 생사 문제는 미리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살아 있을 때, 이만큼 건강할 때 일분일초를 등한히 하지 말고, 나의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것밖에는 정말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명예가 높고,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살라고 놔주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은 돈도 무섭지 않고, 권리도 무섭지 않고, 언제 우리를 데려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염라대왕한테는 뇌물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은 언제 데려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분일초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될 것은 참나를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 ‘이뭣고?’ 귀로 들을 때 ‘이뭣고?’ 속이 상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이뭣고?’밖에는 우리가 할 것이 없는 것이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네가 세상에 있을 때 무엇을 했는냐?” “돈을 벌었습니다”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높은 벼슬을 해서 권리를 부렸습니다” 염라대왕은 그걸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거기 가서 염라대왕 앞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해서 참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했습니다” 이렇게 당당하니 말해야 염라대왕은 일어서서 합장을 한다고 그럽니다.

내가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은 안 만나봤지마는 염라대왕이 무서워하는 것은 ‘이뭣고?’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철저히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여러분께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고 권고하고 있고,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다 참나를 찾는 참선(參禪)을 하라고 자신있게 모든 법문 속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팔만대장경 경판(經板)이 해인사에 봉안이 되어 있지마는 그 많은 장경(藏經)을 다 읽고 깊이 이해를 하면은 결국은 「네가 네 자성 부처님을 찾아라」 그것이 바로 ‘이뭣고?’인 것입니다.
‘이뭣고?’를 한 것만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산승(山僧)이 93세가 되어서 언제 관 속으로 들어갈는지 그것은 확실히 알 수가 없으나 마지막 갈 때까지도 여러분께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부탁드릴 것은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고 이 말밖에는 없습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산승이 오늘 이 자리에 올라와서 정말 여러 청신사 · 청신녀 · 비구 · 비구니 도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걸어다닐 수 있을 때,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 기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거나 속을 상하거나, 모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밥 먹고 하는 그 찰나 찰나를 그것이 바로 일 초 일 초 지내간 것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언제 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마는 일 초 일 초 지나가는 것이 바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힘이 장사라 하더라도 일 초 일 초 가는 것은 면할 수가 없고 결국은 가게 되는데, 갈 때까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산승이 이 나이에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오직 일 초 일 초, 한 호흡 할 때 바로 그때 그때가 나의 자성불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요, 계기라고 하는 것, 이 말씀밖에는 여러분께 부탁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산승의 말을 마음속 깊이 명심하고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실 것을 산승은 믿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박수)

여러분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쳐 주신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처음~16분54초)(끝)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5. 20. 09:04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98)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이만큼 건강할 때 철저하게 발심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자성 부처님을 깨달아라 / 사람 몸 받기 어렵다 / (게송)인간부명전광중~.

사람마다 인간 세상이 무상(無常)한 줄은 다 알고, 도를 닦으면 좋다고 하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마는,
정말 이 무상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얼마만큼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정법에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량겁으로부터서 금생에까지 와서 불법을 믿고 정말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나의 자성, 불성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느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을 챙기면 생사를 벗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참나를 깨닫는 길이 거기서 열린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망각하지 않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서 이 세상 숨을 거둘 때까지 그것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할지언정 그것이 인생의 궁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8)—2019(기해)년 하안거 결제(19.05.19) (용798)

 

 

(1) 약 19분.

 

(2) 약 11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인간의 생사 진로(塵勞)를 벗어버리는 것은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야.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수가 있겠느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이라야 매화꽃 향기가 코를 찌르도록 진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매화꽃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게송이지마는, 우리가 정진을 하는데 그럭저럭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가 어렵다 그거거든.
사람마다 불법을 믿고, 또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도를 닦지마는 그럭저럭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무량겁으로 지어 온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조사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참나를 깨닫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말이지.

세계 60억 인구가 있지마는 그 가운데 몇 분의 일이나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나의 자성(自性), 불성(佛性)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사람마다 인간 세상이 무상(無常)한 줄은 다 알고, 도를 닦으면 좋다고 하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마는,
정말 이 무상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얼마만큼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정법에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량겁으로부터서 금생에까지 와서 불법을 믿고 정말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나의 자성, 불성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느냐.

다 불법을 믿고 참선을 하면 다 좋은 줄을 알지마는 얼마만큼 철저하게 발심을 하고, 얼마만큼 철저하게 이 세계가 무상하고, 이 육체가 무상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인 줄 알고는 있지마는.
얼마만큼 철저하게 알고, 믿고, 분발해서 수행을 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피차 이 육체는 사람마다 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잘 먹이고 입히고,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단속을 하고 있지마는 정말 그 가운데에서도 철저하게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올바른 방법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하게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해서,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건강을 유지할 때 정말 철저하게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이 자성불을, 자성 부처님을 깨달라야만 할 것입니다.

다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손과 발이 있고 육체가 있으니 누구든지 무상을 깨닫고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철저하게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고, 깨달을 수가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지금 동서남북에 수십 개 국가가 있고, 그 가운데도 수십 억 인구가 살고 있지마는 정말 그 가운데 몇 분의 일이나 나의 이 육체 속에 자기의 자성 부처님이 있는 것을 철저하게 믿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분심(憤心), 발심한 사람이 몇 분이나 될 것이냐.

천하없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좋은 약을 먹고 좋은 운동을 한다 해도 이 육체는 백년 못 넘어가서 대부분 다 육체를 버리고 저승에 가게 됩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법당에 많은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이 가뜩 계시지마는 정말 무상을 철저히 깨닫고 앉아서나 서서나 ‘이뭣고?’를 챙기고 또 챙기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더라고 그 듣는 데로 끌려가지 말고 나는 ‘이뭣고?’를 챙기고, 좋은 말을 듣거나 나쁜 말을 듣거나 앉아서나 서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천하 간단하고 쉬운 일이고 하나도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 없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예사로 그럭저럭 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그럭저럭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나고, 그렇게 해서 오래 살아봤자 백 살.
결국은 이 몸을 버리고 지은 업(業)에 따라서 선업을 지은 사람은 천당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업을 지어서 악업을 쌓은 사람은 축생이 되기도 하고 수라(修羅)가 되기도 하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도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량겁 이전부터서 영원한 미래가 가도록 윤회(輪廻)의 법칙은 아무도 거역할 수도 없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들도 아직까지는 이만큼 건강하지마는, 언젠가는 이 몸을 버리고 지은 업에 따라서 저승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은 부자도 못 면하고, 힘이 아무리 좋은 사람도 그것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운명이라고 할까, 업이라고 할까.
우리도 생로병사, 한번 태어난 사람은 하루하루 늙어 가고, 늙다가 보면은 병이 나고, 병이 나서 앓다가 보면은 지은 업에 따라서 또 저승에 가게 되는데.

그것은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일분일초도 잊지 않고 ‘이뭣고?’를 챙기고, 참나를 찾기 위한 수행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럭저럭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오늘도 그렇게 지나가고, 내일도 그렇게 지나고 그러다가 40세 50세가 되고, 60세 70세가 되고, 8~90이 되면은 병들어서 결국은 이승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아무도 피할 수도 없고 면할 수가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이 육체의 수명이라고 하는 것이 백 세 못 미쳐서 이 몸을 버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마는,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사람의 몸을 받아난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지은 업에 따라서 선업을 지으면은 천당에도 가고, 악업을 지으면은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큰 업을 지으면은 지옥에도 가는 사실은, 이것은 이 세상에 아무도 그 법도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내가 90이 넘은 늙은 나이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할 때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참나,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데 일분일초도 등한히 하시지 마십시오’ 하는 그 말씀밖에는 할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90이 넘어서 앞으로 얼마를 더 살랑가 그거는 모릅니다마는 결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이 몸을 버리게 될 것만은 사실인 것입니다.

정말 무상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은 시간을 그럭저럭 지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처음~18분27초)



(2)------------------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수족을 움적거리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또 저녁이 되면 잠을 자게 되는데. 그것이 인생살이고.
빈부귀천과 아무리 부자고 권리가 있어도 이 생로병사는 면할 길이 없는 것인데, 근데 그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을 하고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팔고,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그러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이라 하는 것은 아무도 면할 길이 없고, 결국은 누가 먼저 가느냐? 얼마만큼 살다가 가느냐?
그것은 모르지마는 결국 죽음은 면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산승(山僧)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앉아서도 ‘이뭣고?’ 일할 때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을 챙기면 생사를 벗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참나를 깨닫는 길이 거기서 열린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망각하지 않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서 이 세상 숨을 거둘 때까지 그것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할지언정 그것이 인생의 궁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 몸 받아 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전부 다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그 일보다 더 급하고 소중한 일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일분일초도 잊지 말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서 일 초 일 초를 지내고, 한 시간 한 시간,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야만이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후회를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은 이 말밖에는 더 여러분께 마음속 깊이 새겨 드리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산승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열심히 ‘이뭣고?’를 하겠다고... (박수)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박수로써 산승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는 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 나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이뭣고?’로써 인생을 살아가면 염라대왕 앞에 가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살 만큼 살면 결국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네가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 물어보면,
“돈 벌었습니다” 또는 “높은 좋은 자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허허, 애썼다, 잘했다” 염라대왕은 그걸 별로 칭찬을 안 할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벌떡 일어나서 “참 수고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오면 염라대왕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게 될 것이라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여러분도 산승의 말이 옳고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분은 박수를 치십시오. (박수)


인간부명전광중(人間浮命電光中)이요  도비정신주동북(徒費精神走東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퇴은임천빈역락(退隱林泉貧亦樂)이요  부지신곤시비풍(不知身困是非風)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인간부명(人間浮命)은 전광중(電光中)이요, 인간이 태어나서 이 한평생 사는 이 뜬 목숨은 얼마만큼 허망하고 빨리 가냐 하면은 번갯불 번쩍하는 것과 같다 그 말이지.
그런데 도비정신주북동(徒費精神走北東)이로구나. 헛되이 정신을 허비하고 동쪽으로 북쪽으로 헤매고 다니는구나.

퇴은임천빈역락(退隱林泉貧亦樂)이요  부지신곤시비풍(不知身困是非風)이다.
물러가 임천(林泉)에, 숲이 있고 샘이 있는 산중으로 가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또한 이것이 즐겁구나.
인간 세상에 살라면은 네가 옳고 내가 그르고, 나는 옳고 네가 그르다, 시비 속에서 싸우고 다투고 이래 가지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인생을 그렇게 시비 속에서 사는구나.

부휴 선사의 게송입니다.
이 자리에, 이 법당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께서는 이 부휴 선사의 게송을 깊이 마음속에 새기시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자기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하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8분28초~29분1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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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일분일초(一分一秒) ; '1분과 1초'로 아주 짧은 시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을 받아난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2)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게송) '인간부명전광중~' ; 『부휴당집(浮休堂集)』 '조사대부(嘲士大夫 사대부를 비웃다)'

*부휴(浮休) ; (1543-1615) 조선시대의 스님. 전북 남원 출신. 법명은 선수(善修). 호는 부휴(浮休). 20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신명(信明)에게 출가하고, 후에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음. 덕유산,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에 머물고,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입적함. 저서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4. 21. 21:27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97) (게송)약인정좌일수유~ / 성주괴공, 생로병사가 허망하나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으로 가는 발판 / (게송)안비천말적유사~ / 생사호흡지간 / 생사해탈 길은 ‘이뭣고?’뿐.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누구도 반드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성불(成佛)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그래 봤자 그것 때문에 참나를 깨닫지는 못합니다.

돈이 많거나 권리가 높거나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 되는 것입니다.

 

「생사는 호흡지간에 있다」고 철저히 믿고, 한 숨 내쉴 때 ‘이뭣고?’ 들어마실 때 ‘이뭣고?’ 앉아서 ‘이뭣고?’ 서서 ‘이뭣고?’ ‘이뭣고?’를 항상 챙기고 또 챙김으로 해서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나서 이 무상한 육체를 가지고 영원을 살아가는 길, 생사해탈 하는 길이 ‘이뭣고?’뿐인 것입니다.

산승이 지금은 90세가 넘었으나 언제 죽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만큼 살아 있을 때 이런 말씀드리는 것을 깊이 명심해 주시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실 것을 믿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송담스님(No.797)—2019(기해)년 법보재 법회. (용797)

 

(1) 약 15분.

 

(2) 약 18분.

 

(1)------------------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떠억 정좌(靜坐)를 하면 항하사(恒河沙)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해서 모신 것보다도 더 공덕이 장하다. 왜 그러냐?

 

보탑(寶塔)은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칠보탑을 쌓은 그 탑은 언젠가는 부서져서 티끌이 될 때가 있으나,

일념정진(一念精進)은 성정각(成正覺)이다. 한 생각 떠억 돌이켜서 ‘이뭣고?’ 정진을 하면 그것이 깨달음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인(古人)의 시(詩)입니다마는 우리가 한 생각, 한 생각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보는 것에 끄달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듣는 데에 끌려가는데.

무엇을 보는 그 찰나에 ‘이뭣고?’를 챙기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 좋은 말을 듣거나 나쁜 말을 듣거나, 좋아하거나 슬퍼하거나 속상하거나 그러지 말고, 바로 그 찰나에 ‘이뭣고?’를 떠억 챙기면 깨달음으로 가는 첩경(捷徑)이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 가지고 이렇게 오늘 이 자리에 모여서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은 그걸 듣고 계십니다마는.

이 조그만한 인연이 우리가 육도윤회(六途輪廻)로부터 벗어나서 참나를 깨닫는 그런 인연이 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만나서 이 법당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듣는 인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님 덕으로 이 육체를 받아나 가지고 이렇게 불법을 믿고, 이렇게 이 자리에 만나게 되었습니다마는.

이 사바세계는 모든 것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의 육체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감정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습니다마는,

성주괴공과 희로애락과 생로병사가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되나 우리가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 참선(參禪)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 허망하고 무상한 이 세계 그대로 깨달음으로 가는 발판이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60억 인구가 있지마는 이 정법을 믿는 사람, 참나를 깨닫는 참선을 하는 사람은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온통 빈부귀천과 그런 것에 얽매여서 서로 돈을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라고 모두 발버둥을 치고 있으나 그것 뜻대로 이루기도 어렵지마는 이루어 봤자 별것도 아닌 것입니다.

전부 그런 것들이 육도윤회의 근본밖에는 아닌데,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위해서 일생 동안을 발버둥을 치고 사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그 속에서 우리는 참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은 그것을 듣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법회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마음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이 법당이 참나를 깨닫는 법당이요,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참나를 깨닫기 위한 거룩한, 갸륵한 수행인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육도윤회를 하는 평범한 중생일 수도 있고,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60억 인구 가운데에 선택된 참나를 찾는 소중한 수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그래 봤자 많이 살아 봐야 백년 이쪽저쪽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백만장자가 되어도 그 재산을 저승에 가지고 갈 수도 없는 거고, 자손한테 물려줘 봤자 그 재산으로 인해서 꼭 행복하게 사느냐, 안 사느냐는 두고 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런 무상한 믿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 소중한 몸과 목숨을 거기다가 쏟아붓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정말 이 말씀을 뼛속 깊이 새겨듣고 일 초 일 초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참나를 찾아서 생사해탈하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만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뜻깊은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바로 거기에서 ‘저것이 뭐다. 꽃이다. 나무다. 이쁘다’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한 생각, 눈으로 볼 때 일어날 때 그 찰나가 참나를 찾는 길로 가는 수행인이 되느냐, 눈으로 보는 찰나에 그리 끄달려 가 가지고 '좋다, 나쁘다' 잡념으로 망상으로 끌려가느냐는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가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자가 될 수도 있고, 그 찰나 마음먹기에 따라서 육도윤회로 가는 불쌍한 범부(凡夫) 중생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육체에, 따지고 보면은 속에는 똥과 오줌과 그런 것이 육부(六腑)에, 창자 속에 가득차 있고, 일 초 일 초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신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정법을 믿고 참선법을 하는 사람은 이 육체가 그런 허망하고 보잘것없는 일개 불쌍한 중생이 아니라, 참나를 깨닫는 정말 소중하고도 소중한 부처님의 제자요, 수행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다 가정에서 일도 바쁘고 세상에서 할 일도 많고 그러겠으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다행히 불법을 믿고, 무상을 깨닫고, 참나를 깨닫는 소중한 수행자라고 산승(山僧)은 생각해서 여러분에게 감사한 마음과 이 무상한 세계에서 참나를 깨닫는 수행을 하는 소중한 도반(道伴)이요, 불제자(佛弟子)라고 생각해서 내가 백살이 가까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서 이런 말씀을 하게 됩니다.

 

이 인연으로... (박수)

이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불법문중(佛法門中)에서,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또 만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박수) (처음~14분21초)

 

 

 

 

 

(2)------------------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다.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 발자국만 모래에 남아 있으며, 사람은 죽어서 황천(黃泉)으로 갔는데 그 이름만 집에 남아 있구나.

 

벌들이 백 가지 꽃에서 꽃을 따다가 꿀을 쳤는데, 그 벌이 갖은 고생을 해서 꿀을 따다가 꿀통에다 딱 꿀을 채워 놨는데, 그 벌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꽃 저 꽃에서 똑 쪼금씩 쪼금씩 꿀을 따다가 벌통에다가 채워 놨는데, 그 벌이 죽음을 무릅쓰고 꿀을 따다가 놨는데 그 벌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꿀을 따먹고 있다 그 말입니다.

 

인생이 나와서 참 부모덕(父母德)에 이 몸을 받아났지마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당연히 돈도 벌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갖은 노력을 해서 재산도 이루고 명예도 이루고 모다 애를 써서 성공한 사람은 큰 부자가 되기도 하고 또 큰 학자가 되기도 하고, 자손을 가리켜서 성공을 시켜서 훌륭한 인생을 살도록 모든 부모들이 자손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써서 인생을 그렇게 사는데.

 

자손들은 부모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애를 썼는가를 그런 것은 아지 못하고, 부모가 모아 놓은 재산을 가지고 흥청망청 쓰고, 먹고 쓰고 심지어는 노름도 하고 나쁜 길로 빠진 아들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냥이 나름대로 인생을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자손을 위해서 모든 부모들은 애를 써서 재산도 모이고 좋은 집도 마련하고 해서 아들과 딸을 좋은 배필을 만나서 결혼을 시키고 애를 쓰지마는, 그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애를 써서 모은 재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덤부러 낭비를 하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부모가 아들과 딸을 났으니 애써서 돈을 벌고 해 가지고 자손을 잘 가리키고 잘 먹이고 잘 입혀서 잘살게 하도록 해 줄라고 하는 그 부모는 동서고금에 모든 부모님이 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런 부모의 애쓰시는 것을 이해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 몇분의 일이나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가 낳아서 키워서 가리켜서 해 놓으니까 자기도 건강하게 자라고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학자도 되고, 예술가도 되고.

그렇게 생각할 때에 부모님의 은혜는 평생 동안 잊어서는 안 되고,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성(孝誠)을 다해서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들어야 하고.

연세가 많아져서 병환이 나더라도 성의를 다해서 잘 보양을 해서 모든 정성을 다해서 부모를 잘 받들어 모셔야 하고.

 

부모의 육체와 음식이 중요하지마는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쁘게 해 드리냐?

 

첫째, 지혜롭게 건강 관리를 하고, 학교를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고, 학교를 나와서 자라게 되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부모치고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덕에 이 몸을 받아났고, 부모덕에 학교도 다니고, 부모덕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잠시도 잊지 않고 부모에게 효심을 가지고 부모를 잘 받들어 모시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생을 바르게 사느냐? 여러분이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첫째에 건강 관리를 지혜롭게 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열심히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서 사회에 존경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자기도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바르게 사느냐 하는 것은 사람 생각하기에 달려 있지마는.

 

여기서 산승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서 사회에 살 때는 돈을 벌어야 할 사람은 돈도 벌어야 하고, 직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 직장에 충실하고 그러는데, 그러면서도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산승이 이렇게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늙은 몸으로 여러분에게 정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직장에 가서나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십시요” 하는 이 말이 산승이 여러분께 간곡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산승이 말씀드리는 것을... (박수) 이 말씀을 정말 뼛속 깊이 새기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리라고 믿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많이 살아 봤자 백년 이쪽저쪽인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천당에도 가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이거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나 축생이 될 수도 있고, 아귀가 될 수도 있고,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은 지옥에 가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리라고 믿습니다마는,

어떻게 사느냐에—심성을 어떻게 쓰느냐, 말을 어떻게 하느냐—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천 가지 만 가지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마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나를 찾는 ‘이뭣고?’밖에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누구도 반드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성불(成佛)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그래 봤자 그것 때문에 참나를 깨닫지는 못합니다.

돈이 많거나 권리가 높거나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챙기는데 꼭 힘이 든 것도 아니고, 꼭 지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꼭 재산이 많아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이뭣고?'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그 기분 나쁜 일만 자꾸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 바로 ‘이뭣고?’를 챙기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께 백살이 가까워 온 이 늙은이가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말씀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제 말씀을 믿고 실천하겠다고 하신 분은 박수를..... (박수)

 

많이 살아 봤자 백살이고, 꼭 모든 사람이 다 백살을 산다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생사(生死)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한 제자는 “백년도 살 수도 있습니다” 또 한 제자는 “생사는 십년 안에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너희들은 도 닦기가 어렵게 되었구나”

 

한 제자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음, 너는 공부하겠구나”

 

이런 말씀이 경전에 나옵니다마는.

 

여러분도 생사가 백년, 십년, 하루, 그렇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호흡지간에 생사가 있다, 죽음이 있을 수가 있다'고 믿어야 그렇게 그 사람은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는 성주괴공이 있어서 믿을 것이 못되고, 이 육체도 오늘은 이렇게 밥 먹고, 이렇게 말하고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 믿을 것이 못됩니다.

 

「생사는 호흡지간에 있다」고 철저히 믿고, 한 숨 내쉴 때 ‘이뭣고?’ 들어마실 때 ‘이뭣고?’ 앉아서 ‘이뭣고?’ 서서 ‘이뭣고?’ ‘이뭣고?’를 항상 챙기고 또 챙김으로 해서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나서 이 무상한 육체를 가지고 영원을 살아가는 길, 생사해탈 하는 길이 ‘이뭣고?’뿐인 것입니다.

 

산승이 지금은 90세가 넘었으나 언제 죽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만큼 살아 있을 때 이런 말씀드리는 것을 깊이 명심해 주시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실 것을 믿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14분27초~32분1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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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沙]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첩경(捷徑 빠를 첩/지름길 경) ; 지름길. 가깝게 질러서 가는 빠른 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2)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泉名在家’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36(가로판 p142) 게송 참고.

*(게송) ‘採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甘’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36(가로판 p142)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부모덕(父母德) ; 부모의 은덕(恩德 은혜와 덕. 또는 은혜로운 덕).

*덤부다 ; '덤비다(마구 대들거나 달려들다)'의 사투리.

*효성(孝誠 효도 효/정성 성) ; 마음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정성.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人道]로 다시[還] 태어남[生].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노는 입에 염불한다' ; 가만히 있거나 노느니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말. 나옹화상의 「승원가」에는 몸으로 농사일을 하거나 직물을 짜면서도 입으로는 일념으로 염불하라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지 염불 수행할 것을 강조한 말.

 

한자의 음과 훈(訓 : 새김)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의 하나인 이두(吏讀)로 쓰인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승원가(僧元歌)」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참고] 『불교가사 원전연구』 (임기중 | 동국대학교출판부) p658. 『나옹록』 (선림고경총서 22 | 장경각) p358~359.

阿彌陀佛 念佛法隱 溫可事厓 碍臨業西 僧俗男女 勿論何古 有識無識 貴賤間厓 所業乙 弊治末古 農夫去加隱 農事何面 遊難口厓 阿彌陀佛 織女去加隱 績三何面 遊難口厓 阿彌陀佛 今生厓 利他何古 行住座臥 耳於何面 後生極樂 難乙可

 

아미타불 염불법은 온갖일애 걸림없어 승속남녀 물론하고 유식무식 귀천간애 소업을 폐치말고 농부거던 농사하며 노난입애 아미타불 직녀거던 길삼하며 노난입애 아미타불 금생애 이타하고 행주좌와 이어하면 후생극락 어려울까

 

多隱則 六字念佛 小隱則 四字念佛 行住坐臥 語默間厓 高聲以那 隱念以那 大小間 六字四字念佛乙 懃力大奴 念佛何刀 悲感去隱 阿彌陀佛 好隱耳刀 阿彌陀佛 遊難口厓 雜談末古 阿彌陀佛 言友三我 念念厓 阿彌陀佛 時時厓 阿彌陀佛 處處厓 阿彌陀佛 事事厓 阿彌陀佛 壹生厓 壹於何面 極樂去其 難奴溫可

 

많은즉 육자염불 적은즉 사자염불 행주좌와 어묵간애 고성이나 은념이나 대소간 육자사자염불을 근력대로 염불해도 슬픈것은 아미타불 좋은이도 아미타불 노난입애 잡담말고 아미타불 말벗삼아 염염애 아미타불 시시애 아미타불 처처애 아미타불 사사애 아미타불 일생애 이러하면 극락가기 어려온가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3. 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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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 (게송)서왕한래춘부추~ /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활구참선이다 /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여러분은 정말 최상승법을 믿는 자성 부처님을 찾는 최상승 불법 제자.
 
항상 나의 자성불을 찾는 최상승법에 의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계는 바로 그대로 선방(禪房)이 되는 것이고, 이 육체는 참나를 찾는, 자성 부처님을 찾는 부처님이 되어 가는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명심하고 잠시도 그럭저럭 지내서는 안 되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것, 그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6)—2019(기) 동안거 해제(19.2.19) (용796)

(1) 약 19분.

(2) 약 13분.

 

(1)------------------
 
서왕한래춘부추(暑往寒來春復秋)하고  석양서거수동류(夕陽西去水東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오
나무~아미타불~
 
서왕한래춘부추(暑往寒來春復秋)하고  석양서거수동류(夕陽西去水東流)로구나.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오니 봄이 다시 또 가을이 되는구나. 석양은 서쪽으로 가는데 물은 동쪽으로 흐르는구나.
 
망망 우주(茫茫宇宙)에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 이 도리를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
 
오늘은 을해년 정월 15일 해제날입니다.
이렇게 날씨는 춥고 눈비가 내리는데, 그 속에 신심과 원력으로 이 해제 법요식에 참례해 주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의 신심과 원력(願力)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서 수없는 사람이 태어났다가 늙어서 죽어가고, 또 태어났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고 하는 것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이 세계가 운영이 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그 무상(無常)한 속에서 무상함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그 무상한 우주법계의 흐름 속에서 끌려가지 아니하고 불법(佛法)을 믿고, 이렇게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깨닫는 정법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무상한 속에서 그 무상한 속에 끌려가고 만다고 하는 것은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 그것을 면할 수는 없는데, 그 속에 끄달려가지 아니하고 무상함을 철저히 느끼고 깨달아 가지고 불법을 믿고 또 정법을 믿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그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은 정말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진리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사람은 생로병사를 못 면하지마는 그 무상한 속에서 참나를 깨닫고자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 도반 여러분은 정말 선택된 그런 존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무상 속에서 무상 속에 끄달려 가지고 칠팔십, 팔구십 되면은 다 죽음을 면틀 못하고 관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무상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정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고자 모이신 여러분은 정말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그 자비와 광명을 우리는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참선(參禪)을 통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 경계(境界)에 끄달리지 말고 바로 그 경계를 발판으로 해서 참나를 깨닫는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신다면,
아무리 세계가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모든 인간이 생로병사를 못 면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참나를 깨닫는 ‘이뭣고?’를 한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갈 줄 아는 선택된 사람이고, 지혜 있는 사람이고,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를 입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런 대단히 고마운 존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눈이 펄펄 옴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보통 사람이면 '눈도 오고 그러니까 집안에 따뜻하니 그냥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눈을 맞으면서도 이렇게 이 법당에 가득 모이셨으니 여러분이야말로 정말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서 마땅하고, 무상 속에서 영원을 찾아가는 수행자로서 대단히 이 산승(山僧)으로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박수)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한 살 두 살 먹다가 보면 열 살, 스무 살, 오십 육십 칠십 되다 보면은 다 늙어가고, 늙으면 병이 나서 결국은 백 살을 넘기기가 어렵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을 열심히 하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육체는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 오십 육십 칠십 팔십이 되고 대부분 백 살을 넘기기가 어려우나,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비록 이 육체가 늙어서 죽는 것을 그렇게 크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뭣고?’만,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기분 나쁜 데로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이뭣고?’로써 나의 자성(自性) 부처님을 찾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이 먹어간다고 꼭 안타깝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항상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비록 얼굴에 주름살은 하나둘 불어간다 하더라도 하나도 원망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숨질 때까지도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활구참선을 하게 되면 거기에 늙음을 꼭 슬퍼할 것만도 아니고.
 
세상에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결국은 이 몸뚱이를 버리고 저승에 가게 되는데, ‘이뭣고?’을 항상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열심히 한 사람은 숨 꼴딱 넘어갈 때도 ‘이뭣고?’를 하면은 그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체의 죽음을 꼭 슬퍼할 것도 없고, 꼭 무서워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인 활구참선법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활구참선에 의해서 항상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이뭣고?’로써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거기에 생로병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으므로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늙어가는 것을 그렇게 꼭 슬퍼만 할 것도 없습니다.
 
어피차 우주법계는 성주괴공이 그것이 우주법계의 흐름이고, 모든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나 축생도 태어나면은 늙고, 늙으면 이 몸을 버리고 또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축생은 ‘이뭣고?’를 못합니다.
사람이라야 ‘이뭣고?’를 할 수가 있고, 정법을 믿는 사람이라야 ‘이뭣고?’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통해서 슬플 때도 ‘이뭣고?’로써 이겨 나가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한 일만 생각하면 점점 속이 상하는데 바로 그럴 때 ‘이뭣고?’를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로병사가 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마는,
생로병사 속에서 항상 ‘이뭣고?’ 정법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 생로병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을 믿는 사람은,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찾고 생로병사 속에서 참나를 찾는 바로 나의 자성불을 찾는 활구참선법을 하는 사람은 이 몸이 늙어가는 것을 꼭 안타깝고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난 사람은 결국 늙어가고, 늙어가면 병이 나고, 병이 나면 결국은 이 몸을 버리고 또 몸을 바꾸게 되는데 평생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그 사람은 설사 살 만큼 살고 이 몸을 버리게 되면은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게 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생로병사를 두려워할 것도 없고, 뭐 세계 성주괴공을 한탄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주법계에 현재 오십억 육십억 인구가 있다고 하지마는 그 많은 인구가 이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고, 몇분의 일이나 됩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법보제자(法寶弟子) 도반 여러분들은 오십억 육십억 인구 가운데에 선택된 여러분들이기 때문에 항상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어피차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생로병사를 면틀 못하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하고, 참나를 찾고,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사람은 비록 이 세계가 무상하고, 이 몸뚱이가 무상하다고 하지마는 열심히 최상승법을 믿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 나의 자성불을 찾는 수도장(修道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우주법계가 성주괴공이 있는 것을 근심할 것도 없고, 이 몸뚱이에 생로병사가 있는 것도 그렇게 두려워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그 속에서 항상 나의 자성불을 찾는 최상승법에 의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계는 바로 그대로 선방(禪房)이 되는 것이고, 이 육체는 참나를 찾는, 자성 부처님을 찾는 부처님이 되어 가는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명심하고 잠시도 그럭저럭 지내서는 안 되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것, 그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처음~19분13초)
 
 
 
 
 
(2)------------------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한데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堂堂大道)는 혁분명(赫分明)이요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한 대도(大道)는 밝고 밝아서 분명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십억 육십억 인구가 사는데 이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이 사람사람마다 부처님과 똑같은 자성 부처님을 우리가 이 몸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고 ‘이뭣고?’을 열심히 하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으므로 그러한 우리가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과 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정법을 철저히 믿지 않고 ‘이뭣고?’를 열심히 안 한 사람은 한 생각 단속을 하지 아니하므로 해서 무량겁을 두고 사람으로 태어났다, 축생으로 태어났다, 천당에도 갔다, 지옥에도 갔다 이렇게 하면서 만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비록 말세(末世)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 때문에 무상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비록 육체는 칠팔십, 팔구십 살면은 또 몸을 바꾸게 되나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활구참선을 열심히 하면 우리는 결정코 이 몸이 팔구십, 많이 산 사람은 백세 넘어서도 살지마는 반드시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서 미륵(彌勒)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심과 원력으로 열심히 하루하루를 ‘이뭣고?’를 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늙어가는 것을 원망하고 한탄할 것도 없습니다.
 
어피차 한번 태어난 사람은 결국은 늙고, 늙으면 이 몸뚱이는 바꾸게 되는데 활구참선을 하고 정법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법계에 성주괴공이 있고, 계절에는 춘하추동이 있듯이 비록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도 이 활구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이 늙어가는 것을 그렇게 슬퍼할 것도 없고.
설사 살 만큼 살다가 이 육체를 바꾼다 하더라도 몸을 바꿔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태어난다고 하는 신념만 철저히 한다면 죽음을 하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육체를 하라는 것은 아니고, 지혜롭게 건강 관리를 잘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이뭣고?’를 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에 대한 철저한 정진만 한다면, 거기에 밤낮 봄이 좋다고 해서 봄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가을이 좋다고 해서 밤낮 가을만 있기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주름살 생기고, 또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병이 나면은 결국 몸을 바꾸게 되는데, 불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살 만큼 살다가 몸을 바꾸어도 틀림없이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고, 또 그 사람의 원에 따라서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이 활구참선이요, 최상승법에 의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비록 이 세계가 무상하고 생로병사가 무상하다 하더라도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정법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을 하나도 무서워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이렇게 해서 나에 있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최상승법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으므로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이 바로 이 산승의 말이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이고 역대조사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산승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는 말을 철저히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내 말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실천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박수)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최상승법을 믿는 자성 부처님을 찾는 최상승 불법 제자인 것입니다.
 
오늘 을해년 정월 15일 해제일을 맞이했으나, 해제(解制)일이 뭔 날이냐 하면은 석 달 동안 결제(結制)했으므로 해제를 할 수밖에 없고,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공부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하루하루 다음 4월 15일 결제 때까지 해제라고 하는 기간을 통해서 우리는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정진을 게을리 아니하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산승의 이 말을 철저히 믿고 그렇게 실천해 주신다고 박수를 치신 걸로 믿고.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고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소  백년광음전두비(百年光陰轉頭飛)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고.
비록 말세라고 하더라도 이 육체를,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이 몸뚱이를 받았을 때, 이 활구참선을 만났을 때, 금생에 이때에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지 말고, 이 몸뚱이 이만큼 건강할 때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제도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만나서 이 몸뚱이를 제도할 것인가.
 
이 몸뚱이 이만큼 건강하고 이럴 때 정법을 만났을 때 열심히 자기 자성불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백년 세월이라고 하는 것이 금방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활구참선법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9분14초~31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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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서왕한래춘부추~’ ; 卍新纂續藏經 제65책 <禪宗頌古聯珠通集 36권> 설암조흠(雪巖祖欽) 스님 게송.
*망망하다(茫茫-- 아득할 망) ; 넓고 멀어 아득하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임.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참고 ❸] 송담스님(No.401)—1989 11 첫째일요법회. (4분 48초)
이제 가을도 가고 겨울철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음력 10 보름에 겨울철 안거(安居)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는 뒤로 미루지 말고  핑계  핑계 대다 보면 한량이 없습니다. !  마음을 내서결단심을 내서 방부(房付) 들이   한 철을 열심히 정진을 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새로 선방(禪房) 확장을 했으니 어찌던지 와서 정진을  시길 바라고,
부득이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나와서 공부를 못하신 보살님네, 거사님네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 속에서 항상 '바로 있는 디디고  있는  자리, 앉어 있는  자리,  자리가 바로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뭣고?」만  들면 벌써 용화사 선원에 와서 방부를 들이 죽비(竹篦) 치고 입선(入禪)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용화사에 방부를 들이, 와서 큰방에 앉어 계셔도 밤낮 여기 앉어서 집안 생각, 아들 생각,  생각 그러고 있으면은 그건 방부 들이나마나 하는 거고.
댁에 계시더라도 항상 「이뭣고?」를 들고  다가도 퍼뜩 챙기고, 앉어서 챙기고, 서서 챙기고,  먹으면서 챙기고,  누면서 챙기면은 바로 집이 용화사 선원이거든.
 
시간도 공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척지간(咫尺之間) 수천 , 수천 리가 지척이 되는 것입니다. 백년 천년 하면   같지마는  찰나간이고,  찰나간이 잠깐인  같지마는 이것이 바로 무량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 외우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거든. 이것은 진리에 입각해서  말씀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래.
 
둘이 나란히 한집에서  이불 속에서 자도 벌써 생각이 틀어져 버리면은 천리(千里)거든. 부부간도 천리 웬수여.  천리 밖에 떨어졌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있으면은 벌써 부부일신(夫婦一身)이거든.
 
시간과 공간을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야. 시간이고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거든.
공간 없는 시간이 없고 시간 없는 공간이 없어. 시간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공간이고 시간과 공간은 베의 날과 씨가 서로 이렇게 짜여져서 베를 짜듯이 시간과 공간도 역시 마찬가지여.
 
그래서 어느 , 어느 시간 무엇을  때라도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 하나만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저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자리에는 부처님이 계신 자리요,  자리는 모든 조사(祖師)가 계신 자리요,  자리에는 전강 조실 스님이 계신 자리요,  자리에는 입승(立繩) 스님이 ! 죽비를 들고 앉아 있는 자리다 그말이거든.
 
그러니 입승 스님이 죽비를 들고 앉아 있고, 조실 스님이 ! 지켜보고 계시고, 모든 조사 스님이  자리에 계시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자리에 계시는데 어느 곳이 선불장(選佛場) 아니겠습니까?(54분57초~5945)
 
 
 
 
 
------------------(2)
 
*(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당당하다(堂堂-- 집·당당할 당) ; ①(모습이나 태도가)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하다. ②(형세가) 위엄 있고 훌륭하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게송)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제1 제조법어절요(諸祖法語節要) '황룡사심신선사소참(黃龍死心新禪師小參)' 참고.
〇諸上座 人身難得 佛法難聞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참고] 『서장(書狀)』 '답탕승상(答湯丞相)' 참고.
〇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음전두비(百年光陰轉頭非)' ; ‘당장 이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61 (가로판 p169) 게송 참고.
〇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3. 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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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전강선사 44주기 추모재 / 사부대중 여러분! 열심히 전강 조실스님 육성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다 같이 견성성불 하시기를 바랍니다.

**송담스님(No.794)—전강선사 44주기 추모재(19.1.7) (용794)

 

9분 22초.

 

오늘은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44주기 추모재일입니다.

전강 대종사께서는 16세에 출가하셔서 23세에 견성(見性)하셨습니다. 당시 6대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인가(印可)를 받으셨고.

인가를 받으신 것은 당대 선지식으로부터 ‘옳다. 니가 바로 보았다’하고 이렇게 인가를 해서 받으신 것이 아니고, 천칠백 공안(公案) 문답을 거량(擧揚)함에 전강 조실스님의 그 번갯불처럼 빠르고 밝은 혜(慧)에 꼼짝 못해서 자동으로 인증 안 할 수 없어서 저절로 인가를 받은 것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33세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祖室)로 추대되셨는데, 당대 대선지식이신 경봉 스님께서 이 송담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자네 스님은 전생에 이미 깨달아서 몸만 바꾸어서 이생에 태어난 분이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7세 열반에 드시니, 후학을 위해 7백여 개의 녹음 육성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남기셨으니, 비록 육신은 열반하셨지마는 후학들은 그 낭랑한 전강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하면 사견(邪見)에 떨어지거나 득소위족(得少爲足)하지 않고 반드시 확철대오(廓徹大悟)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44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이렇게 신심과 정성으로 참례해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께 송담(松潭)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과거에 6대 선지식이 계셨고, 많은 도인들이 계셨지만 문자로 법어집이 나오신 분도 많지마는 과거에는 녹음 시설이 없어서 육성 법문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선사(先師) 전강 조실스님은 녹음 시설로 상법 수좌(首座)가 정성껏 녹음을 해 가지고 오늘 지금도 조실스님의 육성 법문을 들을 수가 있고, 그 법문에 의해서 사견(邪見)에 떨어지거나 쪼금 한 소식 했다고 해서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많은 선지식이 계셨지마는 과거에는 녹음 시설이 없어서 법문을 육성으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방금도 조실스님의 육성 법문을 낭랑하게 들었습니다마는 우리가 바르게 정진을 할라면은 선지식의 바른 법문에 의해서 정진해야 하고, 정진을 해서 소증처(所證處)가 있다 하더라도 바른 선지식의 인증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오늘 추모재에 참석해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
어쨌든지 녹음 법문이나마 조실스님의 육성 법문을 잘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셔서 기어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하시면 산승(山僧)이 보증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분과 이 자리에서, 이 추모재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그 점에 대해서 깊이 당부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한번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사람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정법(正法)을 믿고 열심히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한 호흡 한 호흡 할 때마다 열심히 ‘이뭣고?’ 화두를 들면서 정진을 하면 그것이 바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44주기 전강 대종사 추모재에 참례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열심히 조실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다 같이 견성성불(見性成佛)하시기를 바라면서 인사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처음~9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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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거량(擧揚 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3. 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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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참선 / 참선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 / 염라대왕과의 대화 / 저(송담스님)와 여러분과는 저 전생부터서 도반.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는 정말 영원한 세계가 아니고 무상한 세계지마는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사바세계야말로 정말 살맛 있는 좋은 수도장이요, 모든 사람은 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좋은 생사해탈하는 도반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2018. 11.22) (용793)

 

(1) 약 20분.

 

(2) 약 20분.

 

(1)------------------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堂堂)한 대도는 밝고 분명한데, 사람사람이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됨을 갖추고 있구나.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다못 한 생각 어긋짐으로 말미암아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다. 무량겁을 두고 만 가지 형태로 현출(現出), 나타나면서 윤회를 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왔구나.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선지식(善知識)들은 본래 당당하게 갖추고 있는 자기 자성 부처를 깨달아 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생사해탈을 하셨는데, 우리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영겁을 두고 돌고 돌아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왔구나.


평범하게 생각하면 부모로부터서 이 몸체를 받아나 가지고 한 살 두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이렇게 살다가 그 가운데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어. 사람 죽는 것도 보고, 나도 일념 일념, 일 초 일 초 숨을 쉬면서 죽음을 향해서 살고 있는데.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우주 법계도 이루어졌다가 차츰차츰 변해 가지고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지는데 사람인들 어떻게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안 죽고 살 수가 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고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우리는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수없이 많은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분들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셨다가 다 또 열반(涅槃)에 드셨고, 지금 우리 눈으로 그 과거의 모든 선지식들의 육체를 볼 수는 없지마는,
그 선지식과 도인들의 법문에 의지해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도리가 있음을 우리는 믿고, 오늘 이 자리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듣고, 자기 마음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가 있음을 깨닫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생사라 하는 것은 우주 법계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 몸에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생주이멸이라는 게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가 또 금방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꺼지면 꺼지자마자 또 무슨 생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생각이 일어나고, 일 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슨 생각인가 일어났다가 또 이리저리 변해 가지고 없어지고 그러기를 과거에도 그렇게 해서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구구히 설명한다고 될 것이 아니고,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전강 스님을 통해서 전수해 온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에 의지해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수행해 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간단한 법에 의해서 수행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고 호흡도 하고, 입을 통해서 밥도 먹고 말도 하고, 육체를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좋은 일을 보면 기뻐하고 언짢은 일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렇게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고 그렇게 살아가면 뭐 살아지는 것이나, 그렇게 산다면 그것이 축생이 사는 것과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축생도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축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고. 사람도 축생처럼 살면 뭐 살아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고, 특히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그 육체를 통해서 살아가면서 축생처럼 살라면은 얼마든지 살 수 있으나, 우리가 축생처럼 살다가 말아서는 너무나 허무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서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이렇게 보기만 지나가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나, 불법을 믿고 이 최상승법인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축생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을 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내가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하는 것」이 우리가 모든 축생과 다른 점이고 일반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슬플 때 슬픈 데에 빠져서 슬퍼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슬플 때 ‘이뭣고? 대관절 무엇이 내 몸에 있길래 이렇게 슬퍼할 줄 아는가?’
기쁠 때도 기뻐하고만 말 것이 아니라, 기쁠 때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기뻐하는, 그 기뻐할 줄 아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그러는데.
눈으로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이뭣고?’ 코로 냄새 맡을 때 ‘이뭣고?’ 혀로 음식을 먹을 때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가 내가 나를 찾는, 나의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道場)으로 살아가야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고, 인간이 인간다웁게 사는 값있는 삶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이 육체가 있어서 일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나, 이렇게 일반 사람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냐 하면은—우리는 평범한 중생으로서 인생을 마쳐 가지고 업(業)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만 만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나를 찾는 이 수행을 하는 사람은 이 무상한 속에서 살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별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거나 지식이 없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자기가 자기를 찾는 인생으로써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 있어도 믿지 않고 실천을 안 하면 우리도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이 사람의 몸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으레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람 몸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개가 되기도 하고, 소가 되기도 하고 업을 지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다행히 금생에 우리는 사람 몸으로 태어났고, 불법을 믿고 이렇게 생사 속에서 살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참선을 얘기하고 참선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한 생사 속에 살면서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 생각을 잘못 먹어 가지고 육도윤회를 할 수도 있고, 한 생각을 잘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면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처음~20분56초)

 

 




(2)------------------

우리는 세계에 지금 60억 인구가 있다고 하지마는 나름대로 다 종교가 있고 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주인공인 자기의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60억 가운데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여기에 있는 것을 믿고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대단히 희귀하고도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 참선법을 믿지 않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금방 10년 20년이 지나고, 언제 숨 한번 따깍 그치면은 내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한 속에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한 사람은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역대 부처님과 삼세제불(三世諸佛), 역대조사가 사바세계에 나오셔서 이 법을 설해 놓으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났고 또 다행히, 많은 종교가 있지마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우리가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다.
기왕 이 법을 듣고 믿을 바에는 올바르게 열심히 하면은 우리도 이 무상한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이 많아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꼭 남자라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야만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면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이 상하면 물건을 내패다치고 신경질을 내고 그렇게 살다 보면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생각 한 생각을 번뇌(煩惱)와 망상(妄想)과 희로애락 속에 노예가 되어 가지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금방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어서 언제 숨 한번 딸깍 멈추면 금생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세계에 우리는 태어났으나 우리는 불법을 만났고 최상승법을 우리는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챙기면 거기에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이라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꿈속에 한 알갱이 쌀에 탐착하다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금선대에 만겁 동안 먹고도 남을 양식을 잃어버리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시간은 잠시도 머꾸지 않고 똑딱똑딱 시계가 가는 쪽쪽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상 속에서 한 알갱이 쌀에 탐착(貪着)해.
명예와 지위와 부귀와 권리는 다 인생 살아가는데 다 그런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것 때문에 울고 웃고 재판도 하고 그러다가 한 생각이 뚝 그치면 벌써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무상하고 허망한 세상에 우리는 비록 태어났지마는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뭣고?’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이 중생의 몸으로써 부처님 되는 길이 거기에 있으니.

염라대왕 앞에 언젠가는 우리는 가게 되는데, “네가 뭣을 하다가 왔느냐?”
“‘이뭣고?’를 하다 왔습니다”

“‘이뭣고?’가 무엇이냐?”
“‘이뭣고?’는 이 육체 속에 영원한 부처님이 살아 계시는데, 그 자성 부처님을 찾는 공부가 바로 ‘이뭣고?’입니다”

“그래서 ‘이뭣고?’를 해서 네가 무엇을 얻었느냐?”
“얻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마는,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고 생사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너는 죽어서 내 앞에 왔지 않느냐?”
“내가 죄를 지었으면은 지옥에 보낼 것이고, 좋은 일을 했으면 천당에 보내주시던지 알아서 하십시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면서 “너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고 싶습니다”

“도솔천 내원궁은 왜 갈려고 그러냐?”
“거기에는 미륵(彌勒) 부처님이라고 하는 위대한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부처님 계신 세계로 가고 싶습니다”

“그래, 너는 지옥은 안 가겠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면서 “여봐라! 이 사람을 도솔천 내원궁으로 안내를 해라”

이것은 우스개 소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송담(松潭)이 여러분께 꼭 해 드리고 싶어서 이 말씀을 해 드린 것입니다.(박수)

왜 이 말씀을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냐 하면은 이것이 바로 불법이요, 최상승법이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누가 나를 험담을 하고 욕을 할 때에도 속상할 것이 아니라 ‘이뭣고?’
이렇게 살아가면 이 사바세계는 무상하고 허망하고 나쁜 곳이 아니라 참나를 찾는 좋은 수행 도량인 것입니다. 천당보다도 더 좋은 곳인 것입니다.

천당에는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다 되고 좋을 것 같지마는 거기에 별로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슬플 때 슬프기도 하고, 기쁠 때 기쁘기도 하고, 속상할 때 속을 상해도 그냥 그러고 말면 별로 뜻이 없으나, 그 속에서 ‘이뭣고?’해서 내가 부처님 되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내가 성불하는 수도장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불법을 믿고, 이 용화선원에 와서 생사 없는 활구참선법을 듣게 되었으니 저와 여러분과는 금생에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서, 저 전생부터서 이렇게 최상승법을 믿고 같이 수행해 온 도반(道伴)들이기 때문에 금생에 이렇게 만나서 내가 이렇게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말씀을 웃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 이 사바세계는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살맛이 있는 곳이고, 바로 여기가 내가 성불(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람은 이 생사 속에, 이 무상한 생사 속에서 사는 존재이기는 하나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참선을 믿고 참선을 열심히 하다 보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고.

비록 우리가 밥 먹고 똥 누고 울고 웃고 이렇게 살아가는 하찮은 중생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참나를 찾는 정말 귀한 수행자인 것입니다.
자기를 귀한 수행자로서 살아가느냐, 하찮은 중생으로서 탐진치 삼독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절대로 여러분의 권한인 것이고.

여러분이 활구참선을 믿고 수행하면 소중한 수행자가 되는 거고, 참선법을 믿지 않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생사윤회 속에서 울다 웃다가 내생에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염라대왕 앞에 가서 "사바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왔느냐?"
"별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 무엇인가 했지 않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재산을 모아나 봤자, 관 속에다가 돈을 가뜩 담아 가지고 가 봤자 염라대왕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가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마지막 숨 거둘 때도 ‘이뭣고?’하면서 숨을 거두고, 관 속에 들어가서도 ‘이뭣고?’를 하고. 염라대왕 앞에 가도 “저는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이뭣고?’만 하고 왔습니다”

“‘이뭣고?’를 해서 무엇을 얻었느냐?”
“얻은 것은 없으나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너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
“도솔천 내원궁이 좋다고 하지마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뭣고?’를 하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면서 “그러면 사람 몸으로 가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라” 염라대왕이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여러분께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이 믿으면 다행이고, 믿지 않으면 어찌해 볼 수가 없으나 내 생각에는 여러분은 반드시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실 각오를 하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박수)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은 이 세상에 원망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남을 미워할 사람도 없고,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를 찾는 내가 성불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이니 이런 좋은 법이 다시 또 어디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시계가 똑딱똑딱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인데 시간이 흘러가면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되면 또 겨울이 되고, 겨울이 되면 끝이 아니라 또 새봄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상하다고 하면 무상하나 얼마나 여름만 있고 가을이 없고, 가을만 있고 겨울이 없고, 겨울만 있고 봄이 없다면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웃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이 사바세계는 그런 것인데 그러한 속에서 최상승법인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그런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하면 이 사바세계야말로 정말 살맛 있는 좋은 세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까 손을 들고 전부 다 이 산승이 하는 말을 믿어 주신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바세계는 정말 영원한 세계가 아니고 무상한 세계지마는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사바세계야말로 정말 살맛 있는 좋은 수도장이요, 모든 사람은 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좋은 생사해탈하는 도반이 되는 것입니다.

말이 한이 없습니다. 더 말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마는 말을 너무하면은 귀가 입맛이 없다고 할 것 같아서 말을 줄이고자 합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말로다 다 할 수가 없고, 내가 말로써 할 수 없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이 주장자(拄杖子)로 하여금 주장자한테 맡기고 내려가고자 합니다.(20분57초~40분3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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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당당하다(堂堂-- 집·당당할 당) ; ①(모습이나 태도가)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하다. ②(형세가) 위엄 있고 훌륭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〇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 사람의 몸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으레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람 몸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으레히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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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회두(回頭)’ 게송 참고.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8. 9. 1. 14:14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92) (게송)인생여환우여몽~ /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이것이 생사해탈의 길이요, 말세를 정법시대로 만드는 오직 유일한 길.

 

어피차 인생이라 하는 것은 한번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서 죽기 마련인데, 그 생로병사 속에 살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나의 불성(佛性)을 찾는 ‘이뭣고?’인 것입니다.

 

비록 말세라 하더라도 참나를 찾는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나의 속에 있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바로 현대 말세가 생부처님[生佛]이 살아계신 시대와 같은 것입니다.

 

방법이 있고 길이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자기가 신심이 부족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신심을 내서 게으른 생각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이뭣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오히려 이 흥망성쇠가 있는 이 말세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기에 좋은 선불장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2) - 2018년 하안거 해제 (용792)

 

약 21분.

 

인생여환우여몽(人生如幻又如夢)이요  낙일종시고일장(樂日終時苦日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야심두무정혜(若也心頭無正慧)하면  사장하물답명왕(死將何物答冥王)고

나무~아미타불~

 

인생여환우여몽(人生如幻又如夢)이요  낙일종시고일장(樂日終時苦日長)이다. 인생은 환상과 같고 또 꿈과 같은 것이며, 즐거운 날이 끝나면 괴로운 날이 길도다.

 

만약 마음에 바른 지혜가 없으면,(若也心頭無正慧)

죽어서 무슨 물건으로 염라대왕 앞에 대답을 할 것인가.(死將何物答冥王)

 

이 게송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읊으신 게송(偈頌)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빈부귀천과 생로병사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가는데, 냉정히 살펴보면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못하고 꿈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지. 부자로 살거나 높은 벼슬을 하거나 권리를 행하거나 다 환상이요 꿈이다 그거거든.

즐거운 날이 있으면 잠시간이요, 금방 즐거움이 끝나면은 고통 오는 날이 돌아온다 그말이지.

 

만약에 마음에 바른 지혜가 없다면, 참선(參禪)을 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사장하물(死將何物)로 답명왕(答冥王)고, 죽어서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면 무엇을 가지고 대답을 할 것이냐.

 

이 게송은 정말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났으나 다행히 불법을 믿고,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은 이 법당에서 서산대사의 진리가 담긴 이 게송을 우리가 같이 듣게 됩니다.

 

세상은 비록 말세가 되어서 세계가 여기저기서 전쟁을 하고 조용할 날이 없지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믿고, 또 이 자리에 모여서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法門)을 다 같이 듣고 또 산승(山僧)의 간절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하고, 여러분이 듣게 된 인연을 생각하면 말세라고 한탄할 것도 없고.

비록 말세라 하더라도 우리가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바로 말세가 바로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7월 15일(음력), 하안거 해제날이고 백종날입니다.

온 세계가 서로 전쟁을 하고 헐고 뜯고 조용한 날이 없지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말세라고 조끔도 한탄할 것도 없고,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모다 그런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데에 관여할 것도 없고, 말세일수록 더욱 무상(無常)을 깨닫고 열심히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한다면 오히려 이 말세에 태어난 것이 대단히 다행하고 다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년 전에 태어났거나 삼천년 전에 부처님 때에 태어났거나 불법을 믿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삼천년 전이나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차등이 없을 것입니다.

어피차 인생이라 하는 것은 한번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서 죽기 마련인데, 그 생로병사 속에 살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나의 불성(佛性)을 찾는 ‘이뭣고?’인 것입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뭔 일이 마음대로 되어도 ‘이뭣고?’ 마음대로 안 되어도 ‘이뭣고?’를 찾아서 나의 몸속에 있는 나의 부처님을 찾는 참선을 한다면 말세라고 해서 조금도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다 흥망성쇠의 이야기고 생로병사의 사건들이지마는 그럴수록에 항상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오히려 온 세상이 무상하고 흥망성쇠가 있을수록에 우리는 무상을 깨닫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말세라고 해서 무엇이 부족할 것이 있겠습니까?

 

삼천년 전에 부처님 계실 때 태어났어도 불법을 믿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비록 말세에 태어났어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말세가 한탄할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모두가 흥망성쇠의 사건들이지마는 그 흥망성쇠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나의 자성(自性)의 부처님을 찾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성 부처님을 찾는 것이, 이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이요, 말세를 정법시대로 만드는 오직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오늘은 무술년 7월 15일(음력),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옛날 녹음기가 없을 때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조실 스님의 법문을 육성으로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행히 말세라 하더라도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은 과학의 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듣고, 그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열심히 ‘이뭣고?’를 하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행주좌와 간에 항상 한다면 말세일수록 더욱 다행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가 있지마는 흥망성쇠와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생사 속에서 생사해탈하는 길이 바로 나의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벼슬이 아무리 높고 하다 하더라도 나의 자성불을 찾는 공부를 안 하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권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비록 말세라 하더라도 참나를 찾는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나의 속에 있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바로 현대 말세가 생부처님[生佛]이 살아계신 시대와 같은 것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참나를 찾는 선불장(選佛場)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방법이 있고 길이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자기가 신심이 부족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신심을 내서 게으른 생각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이뭣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오히려 이 흥망성쇠가 있는 이 말세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기에 좋은 선불장이 되는 것입니다.

 

어피차 한번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은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힘이 세다 하더라도 그것은 면할 수가 없는데, 그 흥망성쇠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하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열심히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수행을 한다면,

이 말세야말로 부처님을 깨닫고 나의 몸속에 있는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열심히 최상승법을 실천을 해 나간다면 말세일수록에 우리로 하여금 무상을 깨닫고 참나를 깨닫는 가장 좋은, 부처님 찾는 선불장이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은 산승이 이렇게 구십이 넘은 늙은이로서 이렇게 간곡한 마음으로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게 된 보람을 산승은 느낍니다.

여러분은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이 받기 어려운 사람몸 받은 이 말세에 여러분은 나를 찾는 참선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리라고 산승은 굳게 믿습니다.

 

그렇게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대중 손 든 다음, 박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세에 비록 우리가 만났지마는 이렇게 최상승법을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이 그것을 듣고 열심히 실천을 하겠다고 손을 들어주셨으니 산승은 굳게 믿겠습니다.

(대중 박수)

 

권리가 아무리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고, 힘이 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는 생사(生死)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권리가 있거나 없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열심히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만 한다면 이 말세가 바로 부처님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박수를 치고 손을 들어주신 것을 정말 믿습니다.

 

이것을 열심히 해야 불법을 옳게 믿는 것이고, 이것을 열심히 해야 생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열심히 여러분에게 하는 이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아니하면 후생에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무엇을 가지고 대답을 할 것인가.

그때 가서 ‘아! 내가 그때 그 법문을 듣고 열심히 이뭣고?를 안 했구나’하고 그때 가서 후회하고 한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을 명심을 하고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결정코 자성불을 깨달아서 견성성불하실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처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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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생여환우여몽(人生如幻又如夢)~'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계쌍인소사(誡雙印小師, 쌍인소사에게 훈계함)'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지리산·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부처님[生佛] ; ‘현실로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는 의미로, 부처님과 같이 덕이 높은 사람을 존칭하여 부르는 말로 고승(高僧 행동이나 덕이 높은 스님)을 찬미하는 호칭이다.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〇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8. 8. 30. 10:10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91)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참선 /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도 두려울 것이 없다.

 

기왕 우리가 생사해탈하는 법을 알고 믿고 실천할 바에는 정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생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돈 많고, 권리 많고 잘 입고 잘 입은 그런 것에다 비교할 수 없는 정말 다행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 것입니다.

 

‘이뭣고?’을 열심히 함으로 해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생로병사는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갖고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해야만 생사해탈의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생사해탈의 묘법이기 때문에 산승은 부처님을 보증인으로 모시고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사부대중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예와 권리와 재산이 아니고 오직 참나를 찾는,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마지막 숨이 꼴딱 넘어갈 때까지 열심히 하고, 그것을 열심히 해야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극락세계에 가서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1) - 2018(무술)년 하안거 결제. (용791)

 

(1/3) 약 16분.

(2/3) 약 21분.

(3/3) 약 11분.

 

(1/3)----------------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진로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여. 진로(塵勞)라는 것은 생사 진로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로 인해서 이 육체를 받아났고. 그래 가지고 젖 먹고 밥먹고 배우고 그래 가지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살아오고 있는데 이것이 인생살이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서 생로병사, 이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이 몸뚱이를 버리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불법(佛法)을 모르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고 그러면 돈도 벌고 좋은 권리도 하고 그러면은 인생을 참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깊이 생각해 보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한 과정이요, 모양새에 뿐일 것입니다.

 

생로병사가 아무도 면할 수가 없는 그런 인생살이지마는 다행히 불법을 믿고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마음의 자성(自性), 마음의 주인공을 찾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믿고 그것을 위해서 정진해서 스스로 자기의 심성을 깨닫게 되면 무상(無常)한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고 그것으로써 끝난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기의 마음자리가 있는 것을 알고 믿고 그것을 깨닫는 참선(參禪) 공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그 몇 분의 일 밖에는 안 되는 것인데.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위해서 참선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살이는 정말 다행하고 다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왕 우리가 생사해탈하는 법을 알고 믿고 실천할 바에는 정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생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돈 많고, 권리 많고 잘 입고 잘 입은 그런 것에다 비교할 수 없는 정말 다행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 것입니다.

기왕 우리가 이러한 좋은 법(法)을 믿고 실천할 바에는 정말 알뜰히 열심히 이 수행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번 뒤쳐서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떻게 눈과 서리 속에서 매화꽃이 피어 가지고 코를 치는 향내를 풍길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인생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나를 깨닫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이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우리는 세계 60억 가운데 몇 프로 밖에 안 되는 그런 다행한 정말 값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서 늙어서 결국은 병들어 죽을 때까지 그 생로병사는 아무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면할 수가 없지마는 그 생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최상승법을 우리는 알고 믿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60억 가운데 불과 몇 프로 밖에 안 되는 그러한 희귀하고 다행한 우리는 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권리가 아무리 높고, 건강이 아무리 좋다 해도 결국은 죽음을 면틀 못하고 살 만큼 살다가 결국은 늙으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천당에 가서 태어날 수도 있고, 아수라(阿修羅)에 태어날 수도 있고, 또 다시 인생으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도 악업을 지은 사람은 축생이 될 수도 있고, 아귀(餓鬼)가 될 수도 있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도 없고 면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인데.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그 희귀한 만나기 어려운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났고

이렇게 최상승법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하고 여러분이 듣고, 여러분은 그것을 실천해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기왕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그리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할 바에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앉아서나 걸어갈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라도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

‘이뭣고?’을 열심히 함으로 해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은 이만큼 건강하지마는 죽음이라 하는 것은 숨 한번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일 초씩 일 초씩, 일 분 일 분씩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면할 길이 없으나,

그렇게 한 호흡 한 호흡 할 때마다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속에서 나의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을 열심히 한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최상승법을 만나서 그것을 할 바에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이뭣고?’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 속상하는 일만 생각하면 점점 부아가 나고 속이 상하는데 속이 상하는 말을 듣거나 그런 상황을 만나면은 금방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참선을 하신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권리가 아무리 높고, 설사 몸이 건강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영원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이뭣고?’를...

잊어버렸다 하면은 또 챙기고 또 챙기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에도 ‘이뭣고?’

 

내 마음에 안 닿는 기분 나쁜 일을 보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바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하도록 그렇게 습관이 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뭣고?’를 한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육도윤회(六途輪廻)가 생사윤회가 아니라 깨달음으로 향해서 부처님이 되어가는 정말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권리가 아무리 높고, 설사 건강이 대단히 좋다 하더라도 ‘이뭣고?’를 열심히 아니한 사람은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은 만나지 못합니다.

 

생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은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에도 ‘이뭣고?’

항상 자기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함으로 해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육도윤회 속에서 생사해탈로 가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남자나 여자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이 말 알아들을 정도만 되면 항상 ‘이뭣고?’를 놓치지 않도록 챙기고 또 챙기고.

내 마음에 좋은 일을 만나고도 ‘이뭣고?’ 내 마음에 속상하는 일을 만났어도 나는 그리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이렇게 삶으로 해서 생사윤회의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처음~16분17초)

 

 

 

 

 

(2/3)----------------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요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요, 인생이 오래 산다고 해도 백년 정도 사는데, 지내 놓고 보면 잠깐 동안인 것입니다. 백년이라고 해봤자 긴 것 같지마는 그럭저럭 살다 보면 팔구십 되고, 오래 살아야 백 살 정도 사는데 그것이 긴 시간이 아닙니다.

잠깐 동안에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생기고 귀가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게 되면 결국은 널을 짜야 하고 땅에다 묻거나 화장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이 먼 시간이 아닙니다.

 

잠깐 새에 일 년이 지나가고 잠깐 동안에 십 년이 지나가고 하다 보면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결국은 널을 짜야 하는데.

그럴 때까지 우리는 관상을 잘 보거나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은 ‘너는 몇 살까지 살겄다’ 이렇게 말하지만 정말 생사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가 있다」고 믿어야 그 사람은 생사를 옳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딴 데에 정신팔지 말고 ‘이뭣고?’를 열심해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최고의 수행법인데. 우리가 정말 정성을 들여서 할 것은 명예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음을 면틀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아무리 높아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별로 알아주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이 알아주는 것은 ‘이뭣고?’한 사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설사 형틀을 내놓고 고문을 한다 하더라도—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그런 고문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만에 하나라도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그 앞에서도 ‘이뭣고?’ 이렇게 하시면 염라대왕이 형틀을 치우고 ‘이뭣고?’한 사람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의 죄를 다스리는 그런 관리이지마는 그 사람은 명예가 있거나 권리가 있다고 해서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이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뭣고?’를 한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염라대왕을 만나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자신있게 말을 허냐?’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있을런지 모르나 ‘이뭣고?’ 조사선(祖師禪),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열심히 한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설사 그 무서운 형틀에다가 설사 고문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도 ‘이뭣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염라대왕이 감히 그 앞에 형틀을 틀어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우리에게 남겨 주신 최고의 최상승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한 말을 백 프로 믿는 분도 계시고, ‘그렇다면 참 좋겠다’ 이런 정도로 생각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이뭣고?’는 정말 역대조사와 삼세제불이 보증할 수 있는 최고의 생사해탈 묘법(妙法)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생로병사는 면할 길이 없으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결국은 죽어가나 그 생로병사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이것은 역대조사와 삼세제불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산승이 자신있게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믿고 열심히 하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 무엇이든지 이루어진 것은 잠시 머물렀다가 변해 가지고 무너져 가지고 없어지고.

인간이나 축생이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얼마 동안 생명을 유지하다가 결국은 병들고 결국은 죽어가게 되는데, 생로병사는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갖고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해야만 생사해탈의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생사해탈의 묘법이기 때문에 산승은 부처님을 보증인으로 모시고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셔도 됩니다.

다 여러분은 그걸 믿고... (박수)

 

여러분은 산승의 이 말씀을 깊이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을 박수로써 표현을 하신 걸로 압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불법이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인 참선법 ‘이뭣고?’입니다.

이것은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마음이 괴로울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앉아서나 서서나 언제나 ‘이뭣고?’

잊어버렸다 하면 챙기고, 챙기면 또 잠시 뭘 보고 느끼다 잊어버리면 또 ‘이뭣고?’를 챙기고 해서 ‘이뭣고?’를 챙기지 않아도 제절로 ‘이뭣고?’ 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되어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일이 되었건, 공부가 되었건, 무엇이건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할라고 안 해도 제절로 되어 가게 되는데, 특히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는 그 모든 일 가운데에도 제일 백 프로 열심히만 하면은 나의 마음 부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대조사와 삼세제불이 이것을 보증을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믿어도 좋습니다.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이요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니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는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요, 닭장 속에 있는 닭은 아침 저녁으로 먹이를 주어서 배불리 먹고 있지마는 언젠가는 전골냄비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닭을 다른 이유 없이 먹이를 주어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병아리를 키워서 큰 닭이 되면 결국은 잡아서 전골로 지져 먹기 위해서 닭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에 날아다니는 학은 아무도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동쪽으로 가서 날아가고 서쪽으로 날아가고, 이리 날아가고 저리 날아가고 해 가지고 그저 풀씨도 캐먹고 곡식알도 먹고 이리저리 해서 아무도 식량을 주지 않지마는 동서남북 어디라도 날아다니면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닭장 속에서 먹이를 주어서 먹고 살다가 결국은 전골냄비 속으로 들어가는 닭과 같은 그런 인생을 살 것이냐. 아무도 식량을 주는 사람이 없지마는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살아가는 들 학과 같은 그런 삶을 살 것이냐.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다 머리을 깎고 스님이 되어서 도를 닦아라' 그런 말로만 해석하시지 말고, 세속에서 아들딸 낳고 결혼해 가지고 살면서도 그 속에서도 ‘이뭣고?’를 하시면 들 학과 같은 수행하는 그런 인생을 살 길도 거기에 있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영양가 있는 좋은 약을 많이 먹고 좋은 주사를 맞고 편하게 산다 하더라고 결국은 칠팔십, 팔구십, 많이 살면 백, 백이십 살까지도 살 수도 있습니다마는.

언젠가는 자기가 지은 만큼 자기가 살 만큼 살면 우리는 이 몸을 버리고 지은 업에 따라서 혹은 도솔천 내원궁에 가기도 하고 또는 인생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죄업을 지은 사람은 축생이 될 수도 있고 지옥에도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마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은 최상승법을 듣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내생에는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시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여러분을 믿습니다.

(박수)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겨서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틀림없이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됩니다.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미륵존불(彌勒尊佛)을 친견하고 거기에서 영원을 살 수도 있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60억 가운데에 한 사람인데, 60억 인구가 종교가 다 다르고 빈부귀천이 다 다르고 그렇지만 최상승법을 믿고 참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한 사람은 몇 프로도 안 됩니다. 그 몇 프로도 안 되는 그 속에 여러분은 그 중에 한 사람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은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 때문에 인생을 살 만큼 살면 반드시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박수)

 

인생이 오래 살면 백 살 넘어서도 살지마는, 인생의 죽음이라 하는 것이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입고 한다고 꼭 백이십 세 사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이 몸뚱이를 버리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는데,

이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인연에다 맡겨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은 살 만큼 살면 이 육체를 버리고 이승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면할 길이 없으나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최상승법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 만큼 살다가 이승을 떠나게 되면 도솔처 내원궁에 우리는 가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16분18초~36분55초)

 

 

 

 

 

(3/3)----------------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직업에 따라서 일을 하고, 인생을 살아갈려면은 돈도 있어야 하고 먹이도 있어야 하고 그러니 직업도 있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하는데 그 속에서 ‘이뭣고?’를 안 하고 그냥 산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버냐,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느냐, 목적이 뚜렷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이뭣고?’를 한 사람은 각자 우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자성의 부처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생사해탈하는 최상승법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확실한 삶의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도 지혜롭게 관리를 해야 하고 직업에도 충실히 해야 하고 서로 부부간에도 쓸데없는 일에 싸우고 다툴 것이 아니라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사이좋게 살다가, 금생에 행복하게 살다가 내생에 다시 또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또 만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 맥없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인생을 삶의 가치가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살 만큼 살아서 죽게 되더라도 극락세계(極樂世界) 아니면 도솔천 내원궁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을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도 우리에게는 분명히 목표가 있고 살아가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 60억 인구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목적이 뚜렷한 그런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단히 이 건강을 지혜롭게 관리하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고.

그렇다고 해서 꼭 백이십 세, 삼백 세 사는 것은 아니지만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 있고,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고 오욕락(五欲樂)을 위해서 싸울 필요도 없고.

 

우리가 인생살이가 소중한 수행의 과정이기 때문에 오늘 산승은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사부대중 도반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말을 옳고 그렇게 실천을 하겠다고 하는 분은 박수를 치세요.

(박수)

 

여러분의 박수를 산승은 정말 가슴 깊이 믿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에도 불법을 믿고 다 ‘이뭣고?’를 해 오고 있는 여러분이라고 믿습니다마는 오늘부터서는 더욱 산승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이 헛되지 않도록 정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모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잠시도 놓치지 않도록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한 분도 빠짐없이 도솔천 내원궁에서 다 미륵부처님 회상에서 우리는 다시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박수)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이요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다.

인생이 한번 태어난 것은 우리에게는 대단히 소중하게도 느껴지기도 합니다마는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인생이 한번 태어난 것은 하늘에 뜬구름이 한 조각 생겨난 거와 같다.

또 한번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울고 슬퍼하고 죽음을 싫어하지마는 정말 깊이 관찰해 보면 죽음이라는 게 별거 아니고 하늘에 뜬구름이 한 조각 생겨났다가 바람 불면 흩어져 버리는 거와 똑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뜬구름 자체는 무엇이냐 하면은 수증기가 모인 수증기 뭉탱이가 구름인데 동서남북 바람에 따라서 이리 날아가고 저리 날아가다가 혹 비가 되어서 떨어지기도 하고 기후에 따라서 눈이 되어 가지고 눈이 내리기도 하는데, 그 뜬구름이라 하는 것은 영원성이 없어.

 

결국은 구름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결국 흩어져 버리고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으로 태어나서 한평생 살다가 죽어가는 것은 어떠냐?

우리가 잘 먹고 잘 입고, 그래서 영양가 있는 음식과 약을 먹어서 아무리 건강하게 살면 오래 살 수가 있느냐? 혹 백 살 넘어서 사는 사람도 있지마는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하루 동안에도 이승을 하직할 수도 있고, 한 호흡지간에도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이여!

 

정말 생사 문제는 아무도 자신 가질 수가 없는 것이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런지 모르는 그런 무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인 참선법을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은 정성껏 듣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산승은 믿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예와 권리와 재산이 아니고 오직 참나를 찾는, 나의 마음 부처를 찾는 ‘이뭣고?’야말로 마지막 숨이 꼴딱 넘어갈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은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고 그것을 지금 실천하고 계시고 앞으로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마지막 숨이 질 때까지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고 그것을 열심히 해야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극락세계에 가서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마음으로 결심하신 분은 박수를 한번 더 치세요.(박수)

(36분57초~47분4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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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아수라도(阿修羅道) ; 육도(六道, 六途)의 하나. 인간과 축생의 중간에 위치한 세계. 늘 싸움만을 일삼는 아수라들의 세계. 아수라취(阿修羅趣), 수라도(修羅道)라고도 한다.

*아수라(阿修羅) ; 싸움을 일삼는 귀신.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그 희귀한 만나기 어려운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났고~'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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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년지시잠시간~’ ;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 ‘경세오수(警世五首)’ 참고.

* ; 시체를 넣는 관(棺)이나 곽(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감(靈龕)이라고도 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게송)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 ; 지공 선사(志公禪師)의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참고. *鍋 ①한자사전 : 노구솥 (과). 노구솥은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작은 솥. 자유로이 옮겨가며 따로 걸고 쓸 수 있다. ②국어사전 : 南鍋(남와) : 냄비.

*(게송)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전골냄비 ; 전골을 끓이는 냄비.

*전골 ; 쇠고기, 돼지고기, 해물이나 내장 따위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한 뒤, 채소, 버섯 따위를 곁들여 전골틀이나 냄비, 벙거짓골(벙거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그릇) 따위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끓인 음식.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미륵존불(彌勒尊佛) ; 미륵불(彌勒佛).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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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게송) '생야일편부운기~' ; 『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목욕편(沐浴篇) '삭발(削髮)'참고.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참고]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 가운데 '위원경왕태후선가하어(爲元敬王太后仙駕下語, 원경왕 태후 영가를 위한 법문)'에 있는 게송.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철저공(浮雲自體澈底空)이요 환신생멸역여연(幻身生滅亦如然)」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