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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일체유심조 / 자성불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효도 /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불교를 옳게 믿는 사람,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〇불법(佛法)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우주법계를 정토(淨土)로 만드는 근본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닦고, 어떻게 깨달으고, 어떻게 써 나가느냐에 따라서 온 세계가 극락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세계도 될 수가 있다.
〇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서 '참나'를 깨달으면 바로 이 육체로써 성불(成佛)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다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을 깨달음으로 해서 부처님이 되셨고 역대조사가 되신 것입니다.
〇그런데 나의 참나, 주인공을 찾는 공부는 축생들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으로 태어나야 참나를 찾아서 이 중생이 성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〇눈을 통해서 보는 그 찰나,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는 그 찰나, 그 찰나 찰나를 그냥 범연히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에 즉(卽)해서 바로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자기의 주인공을 찾는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
〇우리는 이 말세에 태어났고 살지마는 이렇게 최상승법 법문을 말씀을 드리고 이 말씀을 듣는 사부대중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에 안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정법을 만나서 참나를 깨달아 가지고 성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0) - 2018(무술)년 법보재 (용790)
(1) 약 21분.
(2) 약 19분.
(1)------------------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인데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요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요,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다.
욕계, 색계 삼계(三界)의 육도법계(六途法界)가 바다보다도 더 넓고 넓다 그말이여.
그런데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다. 수억만 년 전부터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넓고 넓으며 시끄럽고 복잡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가 그렇게 바다와 같이 넓고 넓어서 수억만 년 전부터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생로병사와 성주괴공 그런 현상으로 그렇게 복잡하냐 그말이지.
그 근본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근본이 되어가지고 온 우주법계(宇宙法界)가 벌어진 것이다 그말인데.
우주법계가 그렇게 무한하고 끝이 없는데, 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그 세계가 벌어졌냐?
우리가 한 생각 일어나는 마음의 근본이 없다면은 우주가 있으나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며,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말이여.
우주법계의 흥망성쇠는, 그 근본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벌어진 것이요, 그 세계는 우리가 인증하므로 해서 흥망성쇠가 벌어지고 존재하는 것이지.
우주법계가 아무리 넓고 넓다 해도 그 근본은 우리의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닦아가고, 어떻게 깨닫느냐에 따라서 우주법계가 극락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세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불법(佛法)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우주법계를 정토(淨土)로 만드는 근본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닦고, 어떻게 깨달으고, 어떻게 써 나가느냐에 따라서 온 세계가 극락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세계도 될 수가 있다」
이렇게 인식을 해야 불법을 옳게 이해하는 것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이해를 해야 '우리가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쓰며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확실히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
'불교(佛敎)'하면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언뜻 생각하지마는, 팔만대장경이 소중한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모아 놓은 경전이나—팔만대장경이 해인사에 봉안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 대단히 소중한 문화재이지마는, 그 문화재가 참으로 빛이 나고 우리에게 정말 이익을 갖다 주게 할라면은 그 팔만대장경을 인쇄해서 많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도 하나의 공덕(功德)이 아니된 것은 아니나,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 맛을 보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아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主人公), 우리의 자성불(自性佛)을 깨달음으로 해서 진짜 팔만대장경이 빛이 나고, 팔만대장경이 참으로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어서 지금 온 세계가 이렇게 있지마는, 아무리 지구가 넓고 온갖 사람들이 살고 있고 온갖 나라가 있지마는 이것은 언젠가는 성주괴공의 도리에 의해서 지구도 먼지가 되어 가지고 없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육체가 부모로부터서 받아 태어나서 눈을 통해서 보고 귀을 통해서 듣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살지마는 '이 몸뚱이,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 우리의 자성 이것이 어떻게 중심을 잡아나가느냐?'
따라서 이 육체가 한낱 보잘 것 없는 중생이 될 수도 있고, 허망하게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릴 수도 있는데.
정법을 믿고 철저하게 올바르게 수행을 해 나가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체가 정말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 이 몸으로부터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정말 이 몸뚱이를 낳아 주신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부모에게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해 드리고 그런 것도 효도의 한 방법이지만 정말 부모에게 참다운 효도를 하는 방법은, 이 육체를 낳아 주신 그 부모님의 은혜를 참으로 갚는 방법은 참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자성 부처님을 깨닫는 그것이 최고의 효도인 것입니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성은 이 육체를 부모님이 낳아 주시지 않았다면은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었고, 이 세상에 낳아 주신 부모님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성 부처님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자성불, 그것은 아무리 해부를 해서 오장육부를 다 뒤져 봐도 그것은 현미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눈으로 아무리 볼라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알 수가 없으나 정말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 음식을 먹고 말을 하는 이 자기의 주인공.
이것은 정말 부모님이 이 육체를 낳아 주심으로 해서 이것을 우리는 가지고 이 세상에 왔지마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것은 정말 어떻게 해서 부모의 뱃속을 통해서 이 육체를 이 세상에 나게 함으로 해서 이 몸뚱이 주인공을 우리는 갖고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것을 정말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서 이 '참나'를 바로 깨달으면 바로 이 육체로써 성불(成佛)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다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을 깨달음으로 해서 부처님이 되셨고 역대조사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다 이 육체 속에 들어있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하는 우리 주인공.
정말 이것은 우리는 알 수가 없고 해부를 해도 볼 수도 없고 아무리 박사가 되어서 연구를 해도 이것은 현미경이나 아무리 그걸로 조사를 해봐도 이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
이 육체는 지수화풍 사대(四大) 기운으로 뭉쳐서 이루어졌지마는 이 육체는 대단히 소중하고 육체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 육체는 오래 살아봤자 백 년 이쪽 저쪽에 다 결국은 죽어서 화장을 하거나 땅에다 묻게 되는데, 이 육체를 가지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보약을 먹는다 해도 백 년, 이백 년 못 삽니다.
결국은 이 몸뚱이는 살 만큼 살면 늙어서 결국 병들어 죽게 되는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 나의 자성, 나의 심성 이것은 불에다 넣어도 타지도 않고, 죽는다 해도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한 물건, 이 자성 자리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이 허망한 육체가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조사가 될 수도 있고, 우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자성의 부처님을 닦고 깨달은 사람은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고, 부모의 혈육을 받아서 이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난 진짜 은혜를 갚는 길은 나의 주인공, 자성을 깨닫는 길이 최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가 지금 60억이니 모다 이렇게 인구가 많지마는 이 최상승법—내가 나의 주인공, 나의 자성을 깨닫는 공부, 이 길을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것을 닦지 않고 깨닫지 아니하면 우리가 소나 개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배고프면 밥먹고 변소에 가고, 기분 나쁘면 골내고 마음에 좋은 일이 있으면 웃고 이렇게 사는데 그것은 개도 그럴 수가 있고 소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참나, 주인공을 찾는 공부는 축생들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으로 태어나야 참나를 찾아서 이 중생이 성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앞으로 살아봤자 백 년 뒤에는 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정법(正法)이 있는 줄을 알고, 이 정법을 ‘이뭣고?’를 통해서 수행을 함으로써만이 무상(無常)을, 이 허망하고 무상한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계에 많은 종교가 있지마는 불교가 어째서 위대하고 소중하냐 하면은 ‘참나를 깨닫는 법’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면서 명색이 불교 신도라고 하면서 ‘참나를 찾는 공부’를 아니하면 불교를 옳게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나를 깨닫는 방법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우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눈을 통해서 보는 그 찰나,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는 그 찰나, 그 찰나 찰나를 그냥 범연히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에 즉(卽)해서 바로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자기의 주인공을 찾는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인데.
참선 공부는 정말 간단하고도 쉬운 것인데, 사람 사람이 그것을 철저하게 닦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습니다.
이 육체는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 있어서 태어난 사람은 하루하루 살다보면은 10년 2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이 지나면 결국 늙어서 죽게 되는데 그것은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피할 수가 없고, 아무리 권리가 많아도 못 피하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이것을 피할 수가 없는데, 바로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입니다.
그러면 ‘이뭣고?’를 하면은 2백 살 3백 살 사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육체는 결국은 늙어서 70세 80세 백 살 되면 거의가 다 죽어 가는데, ‘이뭣고?’하고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늙어서 죽게 되더라도 죽는 그 찰나까지도 ‘이뭣고?’하면서 죽는다면 죽음이 그렇게 무서울 것도 없고 죽음이 바로 해탈(解脫)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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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명예를 구하는 일, 재산을 구하는 일, 사업을 하고 모다 일생을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있는데 그 일도 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이고, 일신을 유지하고 가정을 유지하고 회사를 유지해 나가는데 다 성의껏 해야 하는데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아도 결국은 늙어서 허망하게 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 가는 것이 중생인데,
비록 그 무상 속에서 속이 상할 때도 그 속상하는 일에 빠져 가지고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면 점점 속이 상하는데,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도 바로 ‘이뭣고?’ 바로 자성의 마음 부처를 찾는 그러한 생활이 습관화가 되고 그것이 생활이 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한다고 해서 안 죽는 것은 아닌데,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해서 숨이 넘어갈 때도 자식 걱정, 재산 걱정, 집안 걱정,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속에서 바로 ‘이뭣고?’를 하면서 딱 숨을 거두면 그 사람은 죽음이 하나도 두려울 것도 없고, 죽음이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는 길이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가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60억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정법을 믿고 이 최상승 참선법을 믿고 마음의 부처, 자성을 찾는 그런 수행을 살면서 무상한 속에서도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청신사 청신녀, 신남신녀 여러분!
산승(山僧)도 이제 백 살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앞으로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할런지 그것은 알 수가 없으나 내가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은 오직 이 세상에서 정말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고 등한히 하지 않고 항상 열심히 해야 할 일은 ‘나의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박수)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깊이 명심하고 당장 이 자리로부터서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설사 목숨이 다하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참나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는 뜻으로 박수를 치신 것으로 산승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여러분은 이 산승의 간곡하게 부탁드린 말씀을 정말 마음속 깊이 명심하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겠다고 하는 뜻으로 박수를 열렬히 쳐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로형탈(塵勞逈脫), 생사해탈 문제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아니고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인데 눈으로 무엇을 보다가 깜박 잊어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다가 잊어버리고,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잊어버려서 못하지, 어렵고 복잡해서 못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쉬웁고도 간단한 문제이지마는 할려고 열심히만 하면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밥먹고 옷입고 잠자고 웃고 울고 살아가는 인생이 앞으로 백 년 못가서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다 이승을 떠나게 되지마는 그때가지, 지금 이 순간부터서 그때까지라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는—잊어버려서 못하고 깜박깜박 잊어버리지마는, 자꾸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상할 때도 ‘이뭣고?’ 하다가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이뭣고?’가 떠억 되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속상하는 것을 아무리 옆에서 달래고 '그러지 말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그러면—속상하는 것이 속만 상하고 말면 육체 건강에만 나쁘되 아무 돌아오는 것은 없는데, 속상할 때에도 ‘이뭣고?’를 하면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자성의 부처님을 깨닫는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하는 방법을 진짜 믿고 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이 무상한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마는 여기서 성불로 가는 길이 자기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손과 발을 가지신 사람이셨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셨으니까 부처님이 되신 것이지, 부처님도 내나 밥 잡숫고 잠자시고 다 똥누고 오줌누고 그렇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우리도 비록 사바세계에 말세에 태어났어도 ‘이뭣고?’만 열심히 하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해서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이 사바세계가 바로 부처님이 살아계신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를 생사윤회의 그런 길로만 생각하고 그 속에서 살다 죽으면 우리는 불교를 믿는 본의가 어디가 있습니까?
비록 말세에 태어났고 이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사람의 몸을 받았으나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하면 이 사바세계가 바로 비로자나 법신불이 딱 상주(常住)해 계신 불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왜 나 한 사람이 ‘이뭣고?’를 한다고 해서 사바세계가 왜 불법세계(佛法世界)가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있을런지 모르나, 이 우주법계가 있어도 내 한 사람이 없으면 우주법계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함으로 해서 이 사바세계가 바로 부처님이 살아계신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인식를 하고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해야만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육체를 받아난 본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사바세계가 언젠가는 무너질 때가 오겠지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이 무상한 사바세계가 불국 정토(佛國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불국 정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불국 정토가 제대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세에 태어났고 이렇게 살지마는 이렇게 최상승법 법문을 말씀을 드리고 이 말씀을 듣는 여러 사부대중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에 안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정법을 만나서 참나를 깨달아 가지고 성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요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요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욕계, 색계, 무색계 이 우주법계에 생사 진로(塵勞)가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이 그렇게 넓고 한이 없지마는 그리고 무량겁 수억만 년 전부터서 미래제(未來際)로 몇억만 년 뒤까지 생로병사와 성주괴공이 끝이 없겠으나,
그것은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다. 그것이 모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생각에 따라서 그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말이여.
우주법계가 존재해도 그 자체는 존재하는 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동쪽이다 서쪽이다 남쪽이다 북쪽이다 우리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춘하추동으로 인식을 함으로 해서 그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체처 일체시에 무심하고 일체 생각이 끊어지면 우주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법계가 있은들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흥망성쇠와 성주괴공은 그것이 한마디로 말해서 무상한 것인데 우리는 그 무상한 속에 살아 있으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보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어도 듣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그것을 듣고 속을 상하고 슬퍼하고 그럴 것이 아니라 바로 ‘이뭣고?’로 자기 자성의 부처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세계나, 인간 세계나, 아수라 세계나, 지옥이나, 아귀, 축생, 육도(六途)가 있는데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므로 해서 이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듣게 되고 그것을 닦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는 비록 말세에 태어났고 무상한 세계에 태어났지마는 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이뭣고?’를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챙기고 또 챙기고 해서 알 수 없는 ‘이뭣고?’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되면 우리는 반드시 화두를 의단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산승이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데 여러분은 정말 이것을 열심히 해주시리라고 산승은 믿고 이 자리를 내려가고자 합니다.(21분13초~40분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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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尙廣錄」 제27권(上)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정토(淨土) : 「깨끗한 세계」란 말인데, 성인(聖人)들만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모든 더럽고 흐리고 험하고 슬픈 것이 전혀 없고, 오직 깨끗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기만 한 세계를 가리킴이다。이런 곳도 하도 많지마는 서쪽에 있는 극락 세계가 으뜸이 된다.
이런 정토에 가서 태어나는 길에 대하여 <유마경>에는 여덟 가지 길이 있다고 하였다.
1. 중생을 도와 주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또한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생을 달게 받는 것。2. 모든 중생에게 대하여 평등하게 겸손한 것。3.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는 것。4. 모든 경전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5. 대승법을 믿는 것。6.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는 것。7. 제 허물만 살피고 남의 잘못을 생각지 않는 것。8. 늘 온갖 공덕을 애써 닦는 것들이라 하였다.
또한 정토의 종류가 17가지나 있다고 하여, 곧은 마음(眞心), 깊은 마음(深心), 여섯 가지 건너는 법(六波羅蜜),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네 가지 거두어 건져 가는 법(四攝法), 십선법(十善法) (십선법은 하나로 잡는다)을 들어서 정신상의 정토를 말하였다。그리하여 마음을 닦고 보면 우리의 사바세계가 곧 정토임을 가르쳤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해탈(解脫) ;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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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불국정토(佛國淨土) ; 부처님이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정토(淨土).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