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 참선자세 . 단전호흡 ( 준비호흡 , 본호흡 ) / 의심이 화두의 핵심 . 의심관(疑心觀) / 大疑之下 必有大悟 / 참의심[眞疑] / 우리의 본업(本業)은 이뭣고?
〇 단전호흡은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기 체질에 맞도록 한 시간 하고 두 시간을 해도 조금도 피로하거나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되 , 주의할 것은 공양을 하고 두 시간 이내에는 하지 말어라 .
식사를 하면은 위장 속에 음식물이 들어있는데 그놈을 호흡에 따라서 배를 내밀었다 홀쪽했다 하면은 위장에 무리가 가 가지고 위가 늘어나면 위하수(胃下垂) 같은 병이 걸리기가 쉬우니까 절대로 공양을 하고 2 시간 이내에는 단전호흡을 하지 말고 그냥 평상으로 숨을 쉬어 .
〇 호흡을 열 번 해도 고대로 알 수 없는 의심이 터억 있으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 ‘ 이뭣고?’하는 뒤끝에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잖아 . 의심을 터억 관하는 거여 . 그래서 그것이 의심관(疑心觀)이거든 . ‘이뭣고 ?’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그것이 화두의 핵심이여. 그래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 자꾸 입으로 ‘이뭣고 이뭣고 ’ 안 해도 상관이 없는 거여 .
〇 빨리 깨달을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 공부가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고 그러지도 말고 , ‘ 오직 내가 할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과 모든 성현들도 오직 이 법으로 생사해탈 ( 生死解脫 ) 을 했다 .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난들 왜 해서 안 될 리가 있느냐 .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될 수 있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해가라 .
** 송담스님 (No.539)—94 년(갑술년) 동안거결제 백일기도 입재(94.11.17) (용539)
약 17분.
오늘 갑술년 음력 10 월 15 일 삼동결제 ( 三冬結制 ) 날인데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충분히 우리는 결제 법문을 다 들었습니다 .
산승(山僧)이 기왕 여기에 올라왔으니 아직 화두(話頭)를 타지 않고 , 참선(參禪)을 하고자 방부 ( 房付)는 들였고 또 선방에는 가야겠는데 아직 화두를 안 타신 분을 위해서 간단히 화두 드는 법을 설 ( 說 ) 해 드리겠습니다 .
참선은 내가 나를 찾는 방법인데 첫째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 자세는 가부좌가 되면은 온가부좌(온跏趺坐)를 하고 온가부좌가 잘 안되면 반가부좌 ( 半跏趺坐)만 해도 됩니다 .
가부좌는 허리를 쭉 펴고 오른발을 왼발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 또 왼발은 오른발 위에다 올려놓고 하면은 이것이 온가부좌고 , 반가부좌는 한 다리만을 올려놓으면 됩니다 . 왼쪽 다리만 올려놓고 하거나 또 다리가 저리고 아프면은 또 다리를 바꿔도 상관이 없습니다 .
이렇게 해서 손은 그 발목 위에다가 오른손을 먼저 놓고 그 다음에 왼손을 위에다 이렇게 포개고 ,
그 다음에 양쪽 엄지손가락 배 끄터리를 이렇게 딱 마주치게 하되 너무 힘을 주어서 위로 올라가게 하지도 말고 요렇게 비끄러져서 이렇게 손장난을 해도 안 되고 , 단정하되 너무 힘을 주지도 말고 떨어지지도 않도록 . 이렇게 해서 발 위에다 놓되 아랫배 배꼽 앞으로 다가서 이렇게 하고 .
어깨는 몸은 앞으로 기울지도 말고 , 뒤에로 자지바지 하니 뒤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 좌우로 또 기울어지지 않도록 단정하니 이렇게 하되 , 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에 힘을 다 빼는 거여 . 그렇게 해서 고개는 두 어깨 위에 단정히 올려놓되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 .
눈을 너무 뚝 ! 부릅뜨지도 말고 감지도 말고 너무 가늘게 뜰라 하지도 말고 평상으로 뜨되 , 자기 앉은자리로부터서 약 2 미터나 3 미터 정도가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
그러되 이 2 미터나 3 미터 지점에다 특별한 무슨 콩을 갖다 놓던지 , 거기에 있는 어떤 뭐 특별한 것을 놓고 그거를 응시 ( 凝視)하라는 것이 아니고 , 볼라고 하면 거기가 보일 정도로 눈을 뜨되 실지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한다 .
본 바가 없어야 하는데 처음 하는 사람은 자꾸 거기에 무엇이 보여 싼다 말이여 . 장판이나 또는 벽에 있는 어떤 무늬나 그림이나 그 뭔 자죽 같은 것이 자꾸 눈에 얼씬거려 가지고 암만 안 볼라고 해도 자꾸 보여 .
그래 가지고 사람처럼 보였다가 개처럼 보였다가 고양이처럼 보였다가 그것이 점점 가까와 왔다가 멀리 갔다가 없어졌다 또 생겼다 , 그렇지만 일부러 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자꾸 이 화두를 드는데 .
화두를 들되 자세를 바르게 했으면 인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는데 .
단전호흡이 대단히 쉬운 것인데 처음에 하는 사람은 대단히 힘이 들고 어렵다고들 합니다 .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너무 무리하게 할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들고 어렵다 그말이여 .
조금도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되 ' 본 호흡'을 들어가기 전에 ' 준비 호흡'을 먼저 해야 하거든 .
준비 호흡은 속에 있는 가슴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완전히 다 내뿜어요 . 배를 홀쪽히 하고 가슴도 홀쪽히 하면서 완전히 다 내뿜고 , 내뿜은 다음에는 스르르르 허니 들어마시되 가슴이 아주 미어지도록 들어마셔 . 더이상 들어마실 수 없을 만큼 들어마신 상태에서 딱 참는 거여 .
얼굴이 좀 벌거질 때까지 참았다가 또 입을 조금 벌리고 ‘ 후 ~’ 하고 내뿜는데 가슴을 홀쪽히 하면서 조이면서 가슴속에 있는 것을 완전히 다 내뿜어 .
다 내뿜었으면 입은 다물고 코로 또 스르르르 허니 들어마셔 . 가슴을 약간 드는 듯 하면서 가뜩 들어마셔 . 들어마신 호흡을 다 들어마셨으면 참아 . 참았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 다 내뿜어 . 이러기를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로 하는 거여 .
이렇게는 뭐 열 번 이상 허도 못하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 2,3번 그렇게 함으로 해서 가슴속에 있는 가슴 허파 속에 구석구석에 있는 묵은 공기를 완전히 다 씻어 내는 방법이여 .
그리고 오장육부 사지에 모든 혈관과 모든 신경에 새로운 긴장을 주는 것도 되어서, 이래서 이 준비 호흡을 한 다음에는 정식으로 본 단전호흡에 들어가는데 ,
아까 준비 호흡은 코로 들어마셨다가 입으로 내뿜었지만 본 호흡은 코로 들어마셨다가 코로 내쉬되 가뜩 들어마신 게 아니라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
들어마시되 아까 준비 호흡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슴으로 쉬었지만 정식 단전호흡은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단전(丹田) , 배꼽 밑에 아랫배로 하는 거여 .
스르르르 하니 조용허니 들어마시면서 배꼽 밑에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되 가뜩 들어마신 게 아니라 7 부나 8 부 정도만 들어마셔 .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가뜩하지 말고 7 ~ 8 부 정도만 들어마셨다가 잠시 그 상태로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코로 내쉬는데 ,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 완전히 다 내뱉을라고 하지 말고 8 부쯤만 내보내 .
내보낸 상태에서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셔 .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 초 , 들어마셨다가 머무르는 시간이 약 3 초 , 내쉬는 시간이 한 4,5 초. 다 내쉰 다음에 또 스르르르 들어마셔 .
그래서 숨은 코로 들어가고 코로 나오되 , 몸안에 움직이는 것은 아랫배만 볼록해졌다가 잠시 고대로 있다가 또 차츰차츰 홀쪽해졌다 , 아랫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
그런데 약 3 초 , 3 초 , 4 ~ 5 초면은 한번 호흡을 하는데 10 초 정도 걸리는데 누구라도 그런 정도는 할 수가 있어 . 사람에 따라서는 3 초가 길면 2 초도 상관이 없지만 3 초 정도 하면 누구라도 할 수가 있고 .
이렇게 해서 한 달 , 두 달 , 석 달 , 일 년 이렇게 하다보면 나중엔 5 초에 들어마셔 가지고 , 5 초 머물렀다가, 5 초나 6 초에 내쉬고 호흡이 차츰차츰 길어지는 법이여 .
나중에 한 이태 삼년 하다 보면 들어마신 시간이 10 초 , 머무르는 시간이 10 초 , 내쉬는 시간이 10 초 해서 , 30 초에 숨을 한 번 호흡을 할 수가 있게 되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져야지 , 억지로 이렇게 늘릴라고 하면 무리가 가서 얼마 못해 가지고 ‘ 후 ~’ 또 이렇게 헛숨을 쉬게 되는데 , 무리하게 하면 부작용이 일어나요 .
그래서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기 체질에 맞도록 한 시간 하고 두 시간을 해도 조금도 피로하거나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되 , 주의할 것은 공양을 하고 두 시간 이내에는 하지 말어라 그말이여 .
식사를 하면은 위장 속에 음식물이 들어있는데 그놈을 호흡에 따라서 배를 내밀었다 홀쪽했다 하면은 위장에 무리가 가 가지고 위가 늘어나면 위하수(胃下垂) 같은 병이 걸리기가 쉬우니까 절대로 공양을 하고 2 시간 이내에는 단전호흡을 하지 말고 그냥 평상으로 숨을 쉬어 .
그러다 두 시간쯤 지난 뒤에는 정식으로 인자 준비 호흡을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은 조금도 무리가 없이 위장병도 낫게 되고 혈압도 내려가고 , 무리하게 하면 혈압이 올라갈 수가 있지만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는 거야 .
처음부터 한 시간씩 할려고 하지 말고 , 처음에는 한 10 분 20 분 30 분 차츰차츰 요것도 늘려나가야 하는 거다 그말이여 .
그런데 화두는 언제 드느냐 ? 초학자(初學者)는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쉴 때 ‘ 이뭣고~ ?’ 이렇게 . 다 나가면은 스르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내쉬면서 ‘이뭣고~ ?’
그래서 숨을 내쉴 때 ‘이뭣고?’를 허라 그말이여 . 나중에 차츰 익숙해지면 숨이야 몇 번을 쉬거나 ‘이뭣고 ?’ 한 뒤끝에 남은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계속해서 숨 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 안 해도 상관이 없어 .
호흡을 열 번 해도 고대로 알 수 없는 의심이 터억 있으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 ‘ 이뭣고?’하는 뒤끝에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잖아 . 그 의심을 터억 관하는 거여 . 그래서 그것이 의심관(疑心觀)이거든 .
‘이뭣고 ?’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그것이 화두의 핵심이여 . 그래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 자꾸 입으로 ‘이뭣고 이뭣고 ’ 안 해도 상관이 없는 거여 .
밥 먹을 때는 밥 먹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의심이 터억 있고 , 변소에 가서도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고대로 있지 ,
자꾸 ‘이뭣고, 이뭣고... ’—‘ 관세음보살 하루에 만 번 한다 , 또는 아미타불을 하루에 오만 번씩 한다 ’ 그렇게 결정을 해놓고 계속 염주를 돌리면서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타불 타불 타불 타불...’ 이렇게 하는데 , 오만 번 채운 것을 목표로 10 년 20 년 내지 평생을 하는 분도 내가 알고 있는데 , 그분은 그런 대로 염불 참선이여 그저.
염불 하니까 그분 나쁘다고 할 건 없고 , 우리가 본격적으로 참선을 할려면은 ‘이뭣고?’거든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거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 대의지하 ( 大疑之下 ) 에 필유대오 ( 必有大悟 ) 다 ’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는 거고 ,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 거여. 의심이 있어야 !
의심이 점점 , 처음에는 화두 들 때는 있다가 금방 의심이 없어지는데 자꾸 ‘이것밖에는 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하면 화두를 들지 않아도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있거든 . 그 의심을 항상 관(觀)해 나가 . ‘이뭣고 ?’
알 수 없는 의심이 차츰차츰 커지면은 의단(疑團)이 되는데 하늘을 봐도 ‘이뭣고?’요 , 땅을 봐도 ‘이뭣고?’요 ,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요 , 화장실에 가도 ‘이뭣고 ?’ 요 , 걸어갈 때나 앉았을 때나 항상 의심이 있는 거여 그냥 . 간단 ( 間斷 ) 이 없어 . 간단히 없으면 그것이 의단이고 ,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됩니다 .
애를 쓰면 쓴 만큼 , 그런데 내동 잘되어 가다 뚝 ! 변해갔고 영 화두가 안 들리는 경우도 있어 . ‘이뭣고?’해도 ‘이뭣고 ?’ 뿐이지 진짜 참의심[眞疑]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그거 번뇌심 ( 煩惱心 ) 을 낼 필요가 없어 . 서서히 단전호흡을 하면서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챙기고 .
가슴이 너무 미어질라고 하고 답답하고 숨도 잘 가슴이 꽉 차 가지고 호흡도 잘 안되고 그럴 때도 있거든 . 그런 때는 조용히 일어나서 법당 뒤나 한가한 데에 가서 30 미터나 50 미터 딱 정해놓고 왔다갔다 하면서 서서히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를 하면 가슴 답답한 것도 없어지고 혼침(昏沈)이 오는 것도 가라앉고 머리가 쾌청해지면 다시 와서 또 앉아서 떠억 해서 .
빨리 깨달을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 공부가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고 그러지도 말고 ,
‘ 오직 내가 할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과 모든 성현들도 오직 이 법으로 생사해탈 ( 生死解脫 ) 을 했다 .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난들 왜 해서 안 될 리가 있느냐 .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될 수 있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터억 해가라 그말이여 .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녀노소의 해야 할 다 직분이 있고 직업이 있으나 그것은 그것대로 허되 그 가운데 항상 ‘ 우리의 마음속에 직업 , 본업(本業)은 이뭣고?다 ’ 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것을 단속을 해 가시라 그말이여.(14분5초~31분1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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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동결제 ( 三冬結制 ) ; 삼동 ( 三冬 : 겨울철의 석 달 ) 에 하는 결제 , 동안거 ( 冬安居 : 음력 10 월 15 일 부터 다음해 1 월 15 일까지 ) 를 말한다 .
* 산승 ( 山僧 )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
* 화두 ( 話頭 ) : 또는 공안 ( 公案 ) • 고측 ( 古則 ) 이라고도 한다 . 선종 ( 禪宗 ) 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 ( 言句 ) 나 문답이나 동작 .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 참선 ( 參禪 ) ; ①선 ( 禪 ) 의 수행을 하는 것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
* 방부 ( 房付 ) 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 ( 結制 ) 에 참가하다 .
* 온가부좌 ( 온跏趺坐 책상다리할 가 / 책상다리할 부 / 앉을 좌 ) ; 결가부좌 ( 結跏趺坐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 가 ( 跏 ) 는 발바닥을 , 부 ( 趺 ) 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 ( 坐法 ). 가부 ( 跏趺 ) · 가좌 ( 跏坐 ) 라고도 한다 .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 왼발을 오른 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 ( 降魔坐 ) 와 ,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 오른발을 왼 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 여 앉는 길상좌 ( 吉祥坐 ) 가 있다 .
* 반가부좌 ( 半跏趺坐 ) ; 부처님의 좌법 ( 坐法 ) 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
* 자지바지 ; 좌선 ( 坐禪 ) 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 ( 端正 ) 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
* 평상 ( 平常 ) ; 평상시 ( 平常時 ,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
* 응시 ( 凝視 엉길 응 / 보일 시 )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
* 단전 호흡 ( 丹田呼吸 )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 [ 丹田 ] 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 정신이 안정이 된다 .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 기초 훈련이다 .
* 팔부 ( 八部 ) 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
* 단전 ( 丹田 ) ; 배꼽 아래로 한 치 ( 寸 ) 삼푼 되는 곳 (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아랫배에 해당 . ' 단 ' 은 약 ( 藥 ) 을 뜻하며 , ' 단전 ' 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 [ 田 ] 이라는 의미 .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
* 헛숨 ; 아무 까닭 없이 내쉬는 숨 .
* 위하수(胃下垂) ; ‘위 처짐(위가 정상 위치보다 처지는 증세)’ 위의 충만과 중압감, 구역질, 식욕 이상, 불면, 기억력 감퇴 따위의 증상을 보인다.
* 이뭣고 ( 是甚 麼 시심마 , 시삼마 ) : ‘ 이뭣고 ? 화두 ’ 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 육근 ( 六根 ) • 육식 ( 六識 ) 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 이뭣고 ?’ 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 ( 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 를 찾는 것이다 .
표준말로 하면은 ‘ 이것이 무엇인고 ?’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 이뭣고 ?( 이뭐꼬 )’.
‘ 이것이 무엇인고 ?’ 는 일곱 자 ( 字 ) 지만 ,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 , 뭣 , 고 ’ 석 자 ( 字 ) 이다 . ‘ 이뭣고 ?( 이뭐꼬 )' 는 ' 사투리 ' 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 참선 ( 參禪 ) 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
[ 참고 ] 이뭣고 ? 이것이 무엇인고 ?
“ 이 ··· 뭣고 ·····?”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 다못 “ 이 ··· 뭣고 ······?”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 아하 ! 이런 것이로구나 !”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
화두 ( 공안 ) 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 과거에 고인 ( 古人 ) 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 이 ‘ 이뭣고 ?’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 ( 一時 ) 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76 분 34 초 ~78 분 22 초 ) [ ‘ 참선법 A’ 에서 ]
* 의심관 ( 疑心觀 )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 ( 現前 ) 하면 ,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 ( 觀照 ) 를 하는 것 .
[ 참고 ] 송담스님 ( 세등선원 No.68)—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 (1988.01.17) (5분 59초)
〇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 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
한 철 , 두 철 ,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
그렇게 순일하게 ,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 ( 疑團 ) 이 독로 ( 獨露 ) 하걸랑 ,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 ( 惺惺 ) 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 ( 觀照 ) 를 하는 거여 . 알 수 없는 의심의 관 ( 觀 ) 이여 . 의심관 ( 疑心觀 ).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 ( 疑團 ) 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긴 ( 緊 ) 과 완 ( 緩 ) 긴완 ( 緊緩 ) 을 득기중 ( 得其中 ) 을 해야 혀 . 그것이 묘한 관 ( 觀 )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
관 ( 觀 )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 생각없는 생각을 관 ( 觀 ) 이라 하는 거여 .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 ( 觀 ) 으로 들어가는 거여 .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묘 ( 妙 ) 한 의심 ( 疑心 ) 의 관 ( 觀 )’ 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
1 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 나는 성성적적 ( 惺惺寂寂 ) 허게 그 의심의 관 ( 觀 ) 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 ( 僧俗 ) 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 ( 選佛場 ) 이요 , 그게 바로 선방 ( 禪房 ) 이요 , 공부처 ( 工夫處 ) 다 그말이여 .
[ 참고 ] 송담스님 (No256)—85 년 2 월 첫째 일요법회 (85.02.03) (5분 57초)
〇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 호흡을 바르게 하고 ,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 ( 話頭 ) 를 어떻게 의심 ( 疑心 ) 하느냐 ?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한 철 , 두 철 , 세 철 , 3 년 , 5 년 , 10 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 ( 參究 ) 하고 ,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 이것은 한 말로 ‘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 —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 ( 善知識 ) 도 필요 없고 ,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 ( 疑觀 ) 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 자기가 일구월심 ( 日久月深 ) 항시 면면밀밀 ( 綿綿密密 ) 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 그 의심관 , 관 ( 觀 )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 생각 없는 생각 ’ 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 ( 活句參禪 ) 은 ‘ 의심 ( 疑心 ) 의 관 ’ 이라야 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 서산에 지려고 할 때 ,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 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 —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 ( 觀 ) 하는 것입니다 .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 ( 觀 ) 인 것입니다 .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 그것을 갖다가 일관 ( 日觀 ) 이라 그러거든 .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 여러 가지 관법 ( 觀法 ) 이 있는데 , 이 참선도 하나의 ‘ 의심의 관법 ’ 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
성성 ( 惺惺 ) 하고 적적 ( 寂寂 ) 하면서도 ,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 ( 疑團 ) 이 독로 ( 獨露 ) 하도록 , 처음에는 ‘ 이뭣고 ?’ ‘ 이뭣고 ?’ 하지만 나중에는 ‘ 이뭣고 ?’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 — 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 ( 打成一片 ) 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 ( 打破 ) 하게 되고 ,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 ( 一串都穿 ) 을 해 . 자기의 본래면목 ( 本來面目 ) 과 역대조사 ( 歷代祖師 ) 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
* 의심 ( 疑心 ) : 자기의 본참화두 ( 本參話頭 ) 에 대해 ‘ 알 수 없는 생각 ’ 에 콱 막히는 것 .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 ‘ 이뭣고 ?’ ‘ 이놈 ’ 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 ‘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 또는 ‘ 어째서 무 ( 無 ) 라 했는고 ?’ 또는 ‘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 板齒生毛 ) 라 했는고 ?’
자기의 본참화두 ( 本參話頭 ) 에 대한 의심이 ,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 대의지하 ( 大疑之下 ) 필유대오 ( 必有大悟 )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
[ 참고 ] 『몽산법어』 ( 용화선원刊 ) ‘ 몽산화상시총상인 ( 蒙山和尙示聰上人 )’ p52-53.
〇 當於本叅公案上 ( 당어본참공안상 ) 에 有疑 ( 유의 ) 호리니 大疑之下 ( 대의지하 ) 에 必有大悟 ( 필유대오 ) 하리니 千疑萬疑 ( 천의만의 ) 를 倂作一疑 ( 병작일의 ) 하야 於本 叅上 ( 어본참상 ) 에 取辦 ( 취판 ) 호리라
若不疑言句 ( 약불의언구 ) 가 是爲大病 ( 시위대병 ) 이니라 仍要盡捨諸緣 ( 잉요진사제연 ) 하고 於四威儀內 ( 어사위의내 ) 와 二六時中 ( 이륙시중 ) 에 單單提箇話頭 ( 단단제개화두 ) 하야 廻光自看 ( 회광자간 ) 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 천의만의 ( 千疑萬疑 ) 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
만약 언구 ( 言句 , 화두 ) 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 ( 四威儀 ) 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
* 의단 ( 疑團 의심할 의 / 덩어리 단 )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 ( 疑心 ) 의 덩어리 ( 團 ).
* 독로 ( 獨露 홀로 · 오로지 독 / 드러날 로 ) ; 홀로 ( 獨 ) 드러나다 ( 露 ).
* 간단 ( 間斷 틈 · 사이 간 / 끊을 단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 間 ] 그치거나 끊어짐 [ 斷 ].
* 순일무잡 ( 純一無雜 순수할 순 / 하나 일 / 없을 무 / 섞일 잡 ) ; 대상 그 자체가 순일 ( 純一 ) 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 雜 ] 이 없음 [ 無 ].
* 내동 ; ‘ 일껏 ( 모처럼 애써서 )’ 의 사투리 .
* 영 ; ① ( 주로 ‘ 없다 ’, ‘ 않다 ’, ‘ 못하다 ’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 )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도무지 . ②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 또는 아주 심하게 .
* 진의 ( 眞疑 ) ; 화두에 의심이 끊어지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
[ 참고 ] 『몽산법어』 ( 용화선원刊 ) ‘ 몽산화상시고원상인 ( 蒙山和尙示古原上人 )’ 에서 .
〇話頭上(화두상)에 有疑不斷(유의부단)하면 是名眞疑(시명진의)니 若疑一上少時(약의일상소시)하고 又無疑者(우무의자)이면 非眞心發疑(비진심발의)라 屬 * 做作(속주작)하니라 是故(시고)로 * 昏沈 * 掉 舉( 혼침도거)가 皆入作得(개입작득)하리라
화두에 의심이 끊이지 아니하면 이 이름이 참의심[眞疑]이니 , 만약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 ( 眞心 ) 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주작 ( 做作 ) 에 속하느니라。이런 연고로 혼침과 잡념이 다 마음에 들게 되느니라。
* 주작 ( 做作 지을 주 / 지을 작 )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
화두를 들 때 무상 ( 無常 ) 을 느껴 발심 ( 發心 ) 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 ( 眞心 ) 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
* 혼침 ( 昏沈 어두울 혼 / 잠길 침 ) ; ①정신이 미혹 ( 迷惑 ) 하고 흐리멍덩함 .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 ( 無記空 ) 에 떨어진 상태 .
* 도거 ( 掉 舉 )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 ( 散亂 ) 이라고도 한다 .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
*번뇌심 ( 煩惱心 ) : 망념 ( 妄念 ) 이라고도 하는데 ,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
* 생사해탈 ( 生死解脫 ) ; 생사 ( 生死 ) 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
* 불성 ( 佛性 )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 ( 心性 ) 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 ( 自性 ) 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 ( 微物 ) 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
* 본업 ( 本業 ) ; ①주가 되는 직업 . ②주로 하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