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17. 1. 31. 09:20

 

 

§(539) (게송)차주비대역비소~ / 참선을 안 할래야   수가 없다 / 반야영주(般若靈珠) / 몽산화상시중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할라야   수가 없다. 의심을  할라야    없고, 참선을 안 할래야   수가 없고. ' 된다' 소리가 무슨 말이냐?” 너무나도 분명하게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본질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신통묘용(神通妙用) 자유자재(自由自在) 그러헌 놈을 우리가 낱낱이  가지고 있거든.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그놈이 어디로 깊이 깊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시간 공간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여.

 

아무리 달이 밝아도 먹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으면은 껌껌한데 구름만 치워버리면 환히 밝아지듯이, 우리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먹구름 속에서 살고 있는데  먹구름을 찰나(刹那) 간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다 이거여.

 

우리가 보통 생사(生死)  몸뚱이를 육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이라 그러고,  육체에 호흡이 끊어져서 써늘해지면 그것을 죽었다[死]’ 그러는데,  참선하는 수행인의 분상(分上)에서는  육체를 기준으로  것이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 생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이 ()이고,  생각이 꺼지는 것이 ()이여. 죽음이여. 그래서  생각,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송담스님(No.539)—94년(갑술년) 동안거결제 백일기도 입재(94.11.17) (용539)

 

(1) 약 14분.

 

(2) 약 10분.

 

(1)------------------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헌데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멱시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허되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  구슬, 반야(般若) 신령스러운 구슬이 묘(妙)해서 측량을  수가 없어. 그런데  반야의 영주(靈珠) 크다고  수도 없고, 작다고  수도 없어.

크기로 말하면은 대천세계(大千世界)  싸고도 남고, 작다고 하면은 바늘로 찌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을 수도 있는 것이여.

 

 구슬은 어디서 나왔냐? 법성해(法性海) 가운데에서 얻은 거여. 법성해는 시방세계(十方世界) 무한대로 끝이 없는 대법성의 바다에서 친히 얻은 것이다 그말이여.

금생에  반야영주를 부모로부터  몸뚱이를 받아날  같이  몸뚱이 속에  반야영주(般若靈珠) 따라왔어.

 

그러면 부모한테 태어나기 이전에는 없었느냐 하면은,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에도  반야영주는 우주법계에  차있는 거여.

무량억겁(無量億劫)  태어난 때가 없어. 생겨난 때가 없이  반야영주는  법성(法性) 바다 가운데 가득차서 빛나고 있는 것이거든. 그런데 당장  몸뚱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몸뚱이 속에  반야영주가 들어있다 그말이여.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 태양이 아무리 밝다 해도 낮에만 빛나고 밤에는 태양빛을  수가 없지마는  반야영주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항상 빛나고 있다 그말이여.

 

멱시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이다. 그런데  반야영주, 어떻게 신통이 자재하고 묘하던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어.

태양빛이 아무리 밝아도  땅속 깊이 들어가면은 태양빛이 거기는 미치지를 못하고 무엇이 가로막으면 거기에는 비추지를 못하는데,  반야영주는 시간과 공간에도 걸리지 않고 언제나 빛나고 있건마는 찾아보면  수도 없고  수도 없어.  자취도 없다 그말이여.

 

그런데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일어설 때나 앉을 때나 항상 따라댕겨. 그래가지고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다 그말이여.

부르면 대답할  알고, 무슨 소리가 나면 들을 줄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신통묘용(神通妙用)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그러헌 놈을 우리가 낱낱이  가지고 있거든.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은 조실 스님께서 73—77세에 열반하셨는데 4 전에, 열반하시기 4  73  설하신 법문인데,

 법문 가운데에  할라야   수가 없다. 의심을  할라야    없고, 참선을 안 할래야   수가 없고. ' 된다' 소리가 무슨 말이냐?” 너무나도 분명하게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본질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놈이 어디로 깊이 깊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공간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여.

 

우리가 눈으로  , 귀로 들을 , 코로 냄새 맡을 , 혀로 맛을  ,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 배고프고 아프고 육체적인 모든 감각. 정신적으로 근심 걱정,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 원망스러움, 두려운 생각, 미운 생각, 일체 정신 작용하는 것이 바로  신령스러운 구슬로부터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작용이 일어날  바로 거기에 ()해서 우리는 그놈을 찾어야 한다 그말이여.

 

우리가 고양이를 찾을라면 고양이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고, 더러운 오물을 치울라면은 더러운 냄새나는 곳을 찾아가면 거기에 우리가 치워야  것들이 쓰레기가 있다 그말이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바로 우리가 우리의 신령스러운 구슬, ‘참나’를 찾을  있는 곳이요, 바로  때다 그말이여.

 

잊어버리기가  어려워!  하기가  어렵다!

완전히 죽어서 의식이 없어진 상태라면 모르지만, 살아서 숨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방법만을 바로 안다면  공부는 안 할라야   수가 없는 거여. 하나도 어려웁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누워서도 하고, 앉아서도 하고, 속이 상할 때도 하고, 배고플 때도 하고, 아플 때도 하고, 근심 걱정 있을 때도 하라. ‘이뭣고?’ 하라 그말이여.

속이 상할  계속 속상하는 일만 이리 생각, 저리 생각 해봤자  속상하는 것이 점점 커질지언정 해결이  되거든. 속상할  바로 ‘이뭣고?’  보라 그말이여.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주먹탱이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다가도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근심 걱정을 없애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고, 슬픔과 외로움을 없애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고.

 

처음에는 별로 잘된  같지 않고  재미도 없지만, 자꾸 하다 보면 할랴고  해도 저절로 되어. ‘이뭣고?’  번에 시커먼 가슴속에 먹구름이 흩어지게 된다 그말이여.

아무리 달이 밝아도 먹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으면은 껌껌한데 구름만 치워버리면 환히 밝아지듯이, 우리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먹구름 속에서 살고 있는데  먹구름을 찰나(刹那) 간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다 이거여.

 

어떤 사람이 “참선이 좋은 줄은 법문을 듣고  알겠는데 변소에 가서도 ‘이뭣고?’를 해도 괜찮습니까?

“변소에 가서도 해야지요”

 

“아! 그거, 경전을 읽을 때는 양치질도 하고 손도 씻고 그리고 떠억 향불을 켜놓고 금강경도 읽고 그런데 !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보다도  좋고 그런 경을 읽은 공덕보다도 훨씬 몇백 배가  수승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부른 공덕보다도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공덕이 낫고 그렇다는데 그렇게 좋은 것을 어떻게 화장실에 앉아서 실례하고 있으면서 ‘이뭣고?’ 수가 차마 있습니까?”

 

그분이 정말  참선이 소중하고  좋다고  것을 너무나도 깊이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운데도 그런 분이 계실란가 모르지만 전혀 염려할  없습니다. 변소에 가서 끙끙거리면서도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희로애락, 생로병사, 빈부귀천, 일체 시비와 흥망성쇠 속에서도 오직  ‘이뭣고?’ 하나라, 이것으로써만이 거기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가고, 나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자비로써 모든  해결할  있는 능력은 오직  길밖에는 없는 것이여.

 

병을 앓고 있을 때도 끙끙 앓으면서도 ‘이뭣고?’ 사람이 코앞에서  죽어갈 때도,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도 ‘이뭣고?’ 이렇게  나가야. 그러한 굳은 신념이 있다면 공부가  된다, 의심(疑心)이  난다 그러한 걱정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따라다니거든. 우리의 주인공(主人公) 여의고는 우리는  1분 1초도  수가 없는 것이고.  살고있다고 하는 자체가  신령스러운   물건’의 뿌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처음~143)

 

 

 

 

 

(2)------------------

 

오늘은 결제일이기 때문에 불가불 우리 선방에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분에게 몽산법어(蒙山法語)의 한 편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약유내차(若有來此)하야 동감적요(同甘寂寥)인댄, 여기에 모두  가지고 같이 참선 정진을 하기 위해서 왔을진대는,

사차세연(捨此世緣)하며, 세속 인연을  버려 버려.   버려야 한다 그말이여.  도량에  가지고 다른 걱정, 나라 걱정, 정치 걱정, 경제 걱정, 집안 걱정  놔 버려야 하는 거야. 제거집착전도(除去執着顚倒)하야, 집착심과 잘못된 모든 생각을 쏴악  제거해 버리고.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하야, 정말로 생사대사(生死大事) 일대사(一大事) 위해서, 긍순암중규구(肯順菴中規矩)하야,  선원의 청규(淸規)를 자발적으로 솔선해서  순응해야 한다 그말이여.

 

절단인사(截斷人事)하고, 인사로 왔다갔다 하는 그것을 아주 끊어버려야 . 그래서 일체 편지 왕래도 하지  것이며 전화 왕래도 하지  것이며, 일단 선원에 방부를 들이면은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터억 해 가야  것이다 그말이여.

 

수연수용(隨緣受用)허되,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수용(受用)은 되는 대로 인연 따라서,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죽이 오면 죽을 먹고, 찰밥이 나오면 찰밥을 먹고, 국수가 나오면 국수를 먹고, 밥이 때로는  때도 있고  때도 있고반찬이 입에 맞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것이나, 되는 대로  끼니  끼니를,

 

이것은 수차수식(須此受食)이 단료형고(但療形枯) 위성도업(爲成道業)이 응수차식(應受此食)이라.  밥이  몸뚱이 마른 것을 막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라면 잘 씹으면서 이뭣고?’하는  의단(疑團)이 고대로 독로(獨露)한 상태에서 오십 ,   입안에서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으라 그말이여.

 

제삼경외(除三更外)에는 불허수면(不許睡眠)이여. 9시에 자서 3시에 일어나는데,  지정된 수면 시간 외에는 자지를 말고. 불허출가(不許出街)하며,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지 말며, 밖에서 공양 청장(請狀)이 오거나 그러더라도 그런 데에 나아가지 말라.

 

미유발명(未有發明)이어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까지는 경이나 어록이나 일체 보지를  것이며. 비공계청(非公界請)이어든, 공계(公界) 대중적으로 읽을  이외에는 경도 읽지를 말아라 이거거든.

 

이것은 용화선원의 청규가 바로 이것에 기본해 가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선원에 가서 공부하실 때에도 이러한 몽산 스님의 짤막한  법문을 명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신다면은 반드시 금생에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것이 의심이 없습니다.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普濟尊者) 각오선인(覺悟禪人)에게 보이신 법문에,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그것을 생사(生死)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생사(生死)  몸뚱이를 육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이라 그러고,  육체에 호흡이 끊어져서 써늘해지면 그것을 죽었다[死]’ 그러는데,

 참선하는 수행인의 분상(分上)에서는  육체를 기준으로  것이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 생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이 ()이고,  생각이 꺼지는 것이 ()이여. 죽음이여.

 

그래서  생각,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그말이여.

 

사실  생각 일어났다 꺼지는데,    들어마셨다 내쉬고,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來生)이거든. 사실도 그런 거여. 그래서 생사가 바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런데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의 즈음에 모름지기 힘을 다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라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純一)하면은 기멸(起滅) 없어지고, 기멸이 다하면은 그것을 ()이라 그래. 적(寂). 적멸(寂滅) ().

 

적(寂)한 적중(寂中) 화두가 없는 것을 무기(無記) 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망상이 없으되 화두가 없으면 그것이 무기(無記). 아무리 망상이  끊어져서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되 화두가 없는 상태에서 있으면 그것은 무기여.

 

무기(無記) 상태에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거여. 설사  무기의 상태에서  겁(劫)을 지낸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해.

그래서 적중(寂中)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의단이 독로해야지, 적적한 데에 빠져가지고 화두가 없으면 그것은 무기다 그말이여.

 

정진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번뇌와 망상이  없어지고 조용하고 깨끗해지면  깨끗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데에  잠겨 가지고 화두를 놓쳐, 화두를 들라고  해요.

화두를 들면  고요하고 깨끗한 것이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를     고요한 데에 빠져서 그놈을 맛보고 앉았거든.  아무짝에도 못 쓰는 참선이여. 아무리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아서 깨끗해져도  가운데 화두가 성성하도록 잡드리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가 ()하지 아니해야 그것을 ()이라 그러고,  공적(空寂) 가운데에 화두가 성성한 것을 그것을 영지(靈知)라고 그러는데, 공적영지(空寂靈知) 상태가 무너지지 아니하고 흐트러지지 아니해야, 그렇게 공부를 잡드리를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그렇게 잡드리를  나가면은 불일성지(不日成之). 머지않아서 공안을 타파하게  것이다.

 

이렇게 정진을  가지고 3 만에 깨닫지 못하면은, 이렇게 3 동안을 알뜰히 공부를 해가지고 깨닫지 못하면은 대중을 대신해서 내가 지옥에 가겠다 몽산 스님은 그렇게 대중한테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기왕 출가를 해서 선방에 나와서 마땅히 이렇게 잡드리를 해야  것입니다.(3114~40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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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차주비대역비소~’ ; [전등록(傳燈錄)] (제30권) 단하화상(丹霞和尙)의 ‘완주음(翫珠吟)’ 참고.

*반야(般若) : [] prajna  [] panna  파리어를 음대로  것인데, 지혜(智慧) 또는 밝은 것이란 말이다.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무량억겁(無量億劫) ; 헤아릴  없이  시간.

*법성(法性) ; ①있는 그대로의 본성, 상태. ②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변하지 않는 진실, 진리.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요요명명(了了明明) ; 요요(了了)하고 명명(明明)하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신통묘용(神通妙用) ; 신통(神通) 묘용(妙用).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①신기(神奇 : 신비롭고 기이하다) 정도로 ()하다. ②모든 것을 신기(神奇)롭게 통달(通達).

*묘용(妙用) ; 신묘(神妙 : 신통하고 기묘함) 작용(作用).

*자유자재(自由自在) ;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즉해서(卽--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주먹탱이 ; 주먹(다섯 손가락을 모두 오무려 쥔 손)같이 둥글고 단단하게 한데 뭉쳐진 어떤 것.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  -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찰나(刹那 ·짧은시간 /어찌 )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동자(同字).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 주인옹(主人翁).

*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 물건’ ‘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 11~13.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麼物  麼來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물건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소이이다.

 

 

 

 

 

------------------(2)

 

*불가불(不可不) ; 어찌할 수 없이. 부득불(不得不 : 하지 아니할 수 없어).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 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〇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 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3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

*끼니 ;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하루   일정한 시간에 먹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미음(米飮 쌀 미/마실 음) ; 쌀이나 좁쌀에 물을 많이 넣고 푹 끓여 체에 밭친 걸쭉한 음식.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장(請狀 청할 청/문서·편지 장) ; 청첩장(請牒狀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공안(화두 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공안(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공안(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〇念起念滅(염기염멸)  謂之生死(위지생사)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  寂中(적중)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  靈知(영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이르나니,  공적(空寂) 영지(靈知)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一三二〇 ~ 一三七六)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후기의 스님으로 중국 구법승. 호는 나옹(懶翁), 본래 이름은 원혜(元慧), 실호는 강월헌(江月軒), 성은 (). 영해부(寧海府 : 경북 영덕군 영일면)에서 태어났다.

一三三九년(충숙왕 복위 8) 20세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공덕산 묘적암(妙寂庵) 요연(了然) 선사에게 출가하였다. 여러 산을 돌아다니다가 一三四四년(충혜왕 4) 양주 회암사(檜巖寺)에서 밤낮으로 정진하여 4년째 되는 어느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一三四七년(충목왕 3) 동짓달에 원나라로 가서 다음해 3 13일에 연도(燕都) 법원사(法源寺)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指空)화상을 만났다. 스님은 지공화상의 문하에서 5년을 지내고 다시 정자사(淨慈寺) 가서 임제 18대손인 평산처림(平山處林)선사의 법을 얻고 법의(法衣) 불자(拂子) 받았다.   그는 명주(明州)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으로 나아가서 관음을 참례하고 육왕사(育王寺) 무주(婺州) 복룡산(伏龍山) 등에서 훌륭한 선승을 만났다.

一三五五년(공민왕 4)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北京의  이름)으로 돌아가 원나라 순제(順帝) 명으로 광제선사(廣濟禪寺) 주석하고, 이듬해 그곳에서 개당(開堂) 법회를 여니 황제가 금란가사를 황태자가 상아불자(象芽佛子) 주었다.

 

다시 법원사에 가서 지공화상의 부촉을 받고 一三五八년(공민왕 7) 귀국하였다. 요양·평양·동해 등으로 다니면서 설법하다가 一三六〇년 가을에 오대산 상두암(象頭庵) 계시었다.

一三六一년(공민왕 10) 왕의 청을 받고 상경하여 내전에서 왕을 위해 법을 설하였다. 一三七〇년 광명사에 머물면서 선교 양종의 납자를 시험하는 공부선(功夫選) 관장하였다. 이듬해 왕사가 되고 수선사(송광사) 주지로  있었다.

다시 회암사 주지가 되어 절을 중수하고 교화 활동을 펴자 사람들이 본업을 잊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 멀리 밀양 영원사(瑩源寺) 옮기게 했으므로, 스님은 가는 도중에 여주 신륵사에서 병으로 수일을 머물다가 一三七六년(우왕 2) 나이 57, 법랍 37년으로 입적하셨다. 문하에는 환암 혼수(幻庵 混修), 무학 자초(無學 自超)  1백여 인이 있었다.

저술로는 『나옹화상어록』 1권과 『나옹화상가송』 1권이 있으며,   몇몇 별행 사간본도 전해지고 있다.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호흡지간(呼吸之間) ;   내쉬고() 들이쉬고()  사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 ; ()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 하고, 다시 줄여서 ()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시간단위. 지극히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 무한히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반석(盤石)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번씩 쓸어 반석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7. 1. 21. 06:16
최근 법문2017. 1. 14. 18:0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85) 전강선사 42주기 추모재 / 전강선사의 녹음법문에 의지해서 정진 / 무상한 속에서도 영원을 사는 길이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

 

우리는 비록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과학의 힘으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육성으로 이렇게 경청을 하고철저하게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정진만 하면 언제라도 조실 스님을 모시고 정진하고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올바르게 정진을 하고 있냐올바르게  하고 있느냐를 항상 반성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밤잠  자고먹을 것도  먹고 용맹정진만 하면 올바르게 정진이 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먹을  먹고  자더라고 바른 선지식의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해야 자기가 옳게 정진을 하고있느냐잘못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도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철저히 시간을 아끼고 발심을 해서 행주좌와 간에 항상 선지식의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경책(警策)을 하면서 좋은 도반들과 같이 정진을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송담스님(No.785)—전강선사 42주기 추모재(16.12.30) (용785)

 

약 13분.

 

오늘은 병신년 전강 대종사의 42주기 추모재 날입니다.

날씨도 춥고 그런데 사부대중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방금 우리는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전강(田岡) 조실(祖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녹음법문으로 경청을 했습니다. 비록 조실 스님께서는 열반하셔서 육신은 우리가 친견을  수가 없으나 조실 스님께서 남겨놓으신 칠백여 개의 생생한 녹음법문을 우리는 경청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실 스님은 신심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우리가 가까이 모실  있고 법문(法門)을 들을 수가 있어서 비록 육신은 화장을 해서 다비(茶毘) 모셨으나 조실 스님의 법문은 우리는 경청을  수가 있기 때문에 조실 스님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돌아가신 그런 분이라고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심(信心)으로 녹음을 통해서 법문을 듣고 열심히 정진만 한다면은 전강대종사 조실 스님은 항상 우리와 같이 살아계신다고 산승(山僧)은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마음으로 정성껏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면 항상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있는 길이 우리 앞에는 열려 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전라도 곡성에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16세에 출가하셔서 도반(道伴)이 죽는 것을 보고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시고 그때부터서 대분발을  가지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23세에 확철대오를 해서 그때 당시 6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인가(印可)라고 말은 했습니다마는  선지식(善知識)들이 무슨 공안을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조실 스님께서 대답을   가지고 옳다 하고 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조실 스님께서 확철대오를  가지고 6 선지식을 낱낱이 찾아가서 들어가자마자 법담(法談) 거량(擧揚)을 하셨습니다. 무엇을 옳게 일러가지고 옳다 하고 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니고, 6대 선지식들이 법담을  가지고 조실 스님 앞에 어쩔 수 없이 인가를 아니할 수가 없어서 인가를 하신 것으로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23세에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6 선지식을 낱낱이 친견해 가지고 법담을  가지고 인가를 아니할 수가 없어서 자동으로 인가가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23세에 깨달으신 뒤로 전국 여섯   선방에 가서   조실 스님과 법담을 하시고 자연히  선방에서 전강 조실 스님을 조실로 모실  밖에는 없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남기신 법문은 녹음 테이프(tape) 칠백여 개가 됩니다. 옛날 같으면 녹음기(錄音器)가 없어서  법문을 수록(手錄)을  가지고 책으로 내기도 하고, 경판(經板)에다 새겨가지고 이렇게 배포를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다행히 조실 스님 계실 때에는 녹음기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육성을 녹음을  가지고 우리가  육성 법문을 이렇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과학의 힘으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육성으로 이렇게 경청을 하고, 철저하게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정진만 하면 언제라도 조실 스님을 모시고 정진하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올바르게 정진을 하고 있냐, 올바르게  하고 있느냐를 항상 반성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밤잠  자고, 먹을 것도  먹고 용맹정진만 하면 올바르게 정진이 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먹을  먹고,   자더라고 바른 선지식의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해야 자기가 옳게 정진을 하고 있느냐, 잘못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말세에 태어났어도 이런 선지식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자기 정진이 올바르게 하고 있냐,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우리 인생이라 하는 것은 무상한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어느 사이에 있느냐?” 선지식이 물으니까, “2, 3 안에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너는 정진하기 틀렸다

 

 다음 사람, “너는 생사가 어느 사이에 있는고?”  “2, 3 사이에도 있습니다

너도 정진하기 틀렸다

 

마지막에  사람이 와서 생사가 어느 사이에 있는고?”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습니다

오호, 너는 정진하겠구나  이러한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도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철저히 시간을 아끼고 발심을 해서 행주좌와 간에 항상 선지식의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경책(警策)을 하면서 좋은 도반들과 같이 정진을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전부가  그렇게 하실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게  각오가 있고, 그렇게 할려고 마음을 가지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고맙습니다.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살려면은 재산,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을 많이 마음껏 획득을 하고 누리면은 잘산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있습니다마는 오욕(五欲)이라고 하는 것은 믿을 것이  됩니다.

완전히 배제(排除)하고  수는 없으나 그것에 전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의지해서는 아니됩니다.

 

비록  세상은 무상(無常)하고 우리 인간도 무상하지마는 무상한 가운데 영원을 사는 길은 활구참선(活句參禪) 밖에 없습니다. 염불(念佛) 좋고, 주력(呪力)하는 것도 좋으나 기왕이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항상 정진을 하는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해야  무상한 인생을 끝마치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더라도 떳떳하고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무상한 속에서도 영원을 사는 길이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여러분은 오늘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말씀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시고, 무상한 속에서 영원한 인생을 살아가는 활구참선을 열심히 하면서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한량이 없으나 간단하게 이렇게 조실 스님 42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여러 청신사 ・ 청신녀 ・ 비구 ・ 비구니 여러 도반들께 간곡히 부탁 말씀을 드림으로써 추모재 인사 말씀을 갈음하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처음~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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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 16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 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78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송(江松) 백운(白雲)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甲寅) 음력 12 2,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다비(茶毘)팔리어 jhāpeti 음사(音寫). 소연(燒然분소(焚燒)라고 번역. 시체를 불살라 장사 지내는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오던 장법(葬法)이다.

석가모니도 열반 후에  육체를 화장(火葬)하였는데,  이래 다비는 불교도(佛敎徒) 사이에 널리 행해졌으며 불교가 전래됨에 따라  장법도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육체는 지ㆍ수ㆍ화ㆍ풍 사대(四大) 가합(假合)이라고 하여 사람이 죽게 되면  육체는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므로 시신에 집착하지 않고 화장하는 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

*거량(擧揚  /나타낼·밝힐 )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수록(手錄) ;수기(手記). 글이나 글씨를 자기 손으로 직접 씀.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내쉬고() 들이쉬고()  사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배제(排除 밀칠·물리칠 배/덜다·몰아냄 제) ;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쳐 제외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 효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 재판하는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갈음하다 ;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代身)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7. 1. 7. 06:43

§(465)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자기의 인연, 자기의 업(業) / ‘이뭣고?’ 참선만이 모든 일의 근본적인 해결책 / (게송)약인투득상두관~ / 감사하는 마음.

 

 삼계진로와 흥망성쇠가 어디서부터서  것이냐? 누구 때문에  것이냐?  자기의 마음, 심념(心念)에서  나온 것이다 그거거든.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짓느냐? 짓는 데에는  생각이 동(動)하고 심념(心念)이 동하기 때문에  심념이 나 가지고  심념이 행동화됨으로 해서 업을 지어가지고  업으로 인해서 태어나고 업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당하게  것이다.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생각 나지 아니하면은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자꾸 밖에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탓하고 해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냐.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에 이뭣고?’ 참나를 찾는  공부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여. 전부가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서 찾아야만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원인을 파악을 하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어려운 일이란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참나를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고 넓어. 어디를 간들  그것이  집이요, 부처님 나라요, 극락세계요, 적광토다 이거거든.

 

**송담스님(No.465)—92 2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

 

약 18분.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하고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閙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니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三界塵勞)가 여해활(如海闊)이다.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 삼계의 진로(塵勞), 진로 망상(妄想), 생사 변화, 희로애락, 흥망성쇠 이런 것이 전부 다 삼계진로(三界塵勞)인데,  삼계진로의 모양이 마치  바다처럼 넓고 넓어. 끝없다. 끝이 없고 한이 없다 그말이여.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閙聒聒)이여. 옛도 없고 이제도 없어. 옛이나 이제나 마냥 복잡하고 시끄럽고 그렇다 그말이여.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해 간다 그말이여.

 

그러면  삼계진로와 흥망성쇠가 어디서부터서  것이냐? 누구 때문에  것이냐?

 사람들은 옛날에는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못해서 그렇다. 지금은 대통령이 잘못해서 그렇다. 무슨 정부가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 전부 다른 사람한테  원인을 돌리고 세상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여.  자기의 마음, 심념(心念)에서  나온 것이다 그거거든.

 

‘왜 나는  잘못할 게 없는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겠느냐?’

물론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무슨 야당이나 당수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겠지만, 우리 일반 서민들은 자기야  국가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월급 타 먹고 살고, 농사꾼은 농사지어 먹고 사는데 자기가  잘못해서 나라가 시끄러워?

 

도대체 납득(納得) 안 가고 곧이가  들리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세상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업(業)을 그렇게 지어서 만난 것이여.

자기가 업을  지어 가지고  천상(天上)에  복(福)을 지었다면은 천상에 가서 나지, 뭐하러  사바세계(娑婆世界) 복잡한 데에 태어났냐 그말이여.

 

어떤 사람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낳냐?’고, ‘나를 낳아가지고 이렇게  먹이고 입히지도 못하고 대학도 보내지도 못하고 유학도 보낼 자신도 없으면서  나를 낳았느냐?’고 부모한테 따지는 학생이 요새 있다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찌 보면은 부모가 대답할 말이 없을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건  학생이 전혀 모르는 말이거든.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러한 부모 속에 자기가 태어났냐 그말이여.

 

자기가 영혼이그걸 보통 숙주(宿主)라고 그러는데, 여인숙(旅人宿)이라서 (宿)’자와 ‘주인 ()’ 숙주라고 그러는데,

숙주는 이제 어떠한 태중(胎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영혼이 인자 요렇게 숙주를 찾는데, 자기가 태어나기에 적당한 데에 인연(因緣) 있는 데에 결국은 태어나기 마련인데.

 

자기가 그런 인연을 지었고 거기에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인연을 스스로 지었기 때문에 거기에 태어난 것이거든.

부모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해도 자기가 고학(苦學)을 하고 열심히 해가지고 대통령이  사람도 있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사람도 얼마든지 있어요. 부잣집에 좋은 집에 태어났어도  볼일 없이 또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짓느냐? 짓는 데에는  생각이 동(動)하고 심념(心念)이 동하기 때문에  심념이 나 가지고  심념이 행동화됨으로 해서 업을 지어가지고  업으로 인해서 태어나고 업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당하게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생각 나지 아니하면은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비록  사바세계 복잡하고도 다난(多難)한 세상에 시대에 이렇게 태어나서 살고 있지만 터억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話頭)를 들고 터억 정진(精進)을  나가면 세상 시끄럽거나 말거나, 망하거나 흥하거나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렇게  나가므로 해서 우선 자기가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타 죽지 않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사람  사람이 모다 일념불생(一念不生) 참선(參禪)을 해 나가므로 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이 차츰차츰  적광토(寂光土)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자꾸 밖에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탓하고 해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회사가 노사 분규(勞使粉糾)가 일어났을  노동자는 기업주를 원망하고 탓하고, 기업주는 노동자를 탓하고 해가지고 계속 싸워봤자 누가 이익을  것이냐?

 

노동자는  공장이 자기 공장이다’ 생각하고 자기 회사다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워진 일을 착실히 열심히 하고, 기업주는  노동자들이 바로 자기 가족이다 생각하고  자기 친자식처럼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원하기 바라기 전에 데모하기 전에 잘해 주고 이렇게  때에 만이  회사가 잘되어 가는 것입니다.

 길밖에는 회사도 잘될 길이 없는 것이고, 사회도 잘될 길이 없는 것이고, 나라도 잘되어  길이 없고, 세계도 잘되어  길이 없어.

 

그걸 거꾸로 생각하고 모든 책임과 원인은 다른 사람 밖에서다가 돌리고, 자기는  옳고 자기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향상도 없고 가정에 화목도 없고, 회사나 기업체도 잘되어 갈 수가 없고 결국은 너도나도  망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여.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에 이뭣고?’ 참나를 찾는  공부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여.

‘그  이뭣고? 하고 밤낮 앉아서 눈만 감고 앉아 있으면 무엇이 될까?’ 신심(信心)이 없는 사람,  활구참선(活句參禪)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도 생각할 것입니다.

 

항상 이뭣고?’ 챙기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를 가나 차를 타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그렇게  사람에게는 하루하루 향상이 있을 것이며 가정이 화평할 것이며 회사가 잘되어  것이며 국가가 잘되어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도  아시겠지마는 우리나라 앞으로 경제 문제, 통일을 앞두고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경제 문제도 이렇게 노사간(勞使間)에 이렇게 해가지 않고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고 정치도 역시 마찬가지고 학원 교육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부가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서 찾아야만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도 정치하고는 관계가 없을 분도 많이 계실 것이고 지금 말한 여러 가지 문제에 직접 관여는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하신 분도 계실 것이나, 어떠한 분이라도 원인을 분명히 알면 해결책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원인을 파악을 하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어려운 일이란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약인(若人)이 투득상두관(透得上頭關)하면,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뚫어버리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비로소 산하대지가 넓은 것을 깨달으리라.

 

상두관(上頭關)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것을 말하는 거여. 참선을 해서 참나를 깨닫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아를 깨닫는 것이 상두관을 투득(透得)한 것인데.

참나, 참나를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고 넓어. 어디를 간들  그것이  집이요, 부처님 나라요, 극락세계요, 적광토다 이거거든.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인간의 시비, 인간의 온갖 시비, 흥망성쇠, 선악, 빈부귀천 이런 것이 전부 인간의 분별계(分別界)인데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 .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흥하면 흥한 대로, 망하면 망한 대로 일체처 일체시에  시비에 빠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냐. 푸른 물이나 청산이나 무엇에 걸릴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춘하추동 계절에도 걸릴 것이 없고 녹수청산에도 걸릴 것이 없고 흥망성쇠와 빈부귀천에도 걸릴 것이 없어. 모든 것은 인연대로 닥치는 대로.

떠억 깨달으면 깨달은 경계에서, 이뭣고?’  사람은 이뭣고?’ 하는  경계에서 인연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고 혼잡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속에  희망이 있어.

 

새해에는 이뭣고?’로써,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원망이 많고 불평이 많은데,  공부를 하고 이렇게 이런 신심으로 살아가면 원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멀고 가까운 자기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이,

심지어는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고, 자기를 그렇게 시비를 걸고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까지라도 자기에게  해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고통을  사람까지라도  고마운 사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할 수가 있게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어떠한 일이나, 어떠한 경계나, 어떠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할  있도록 그렇게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기를 우리  같이 다짐합시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감사에는 화목이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4823~6540)() (용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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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27()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하는 .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납득(納得 받아들임 /얻을·만족할 ) ; 다른 사람의 말이나 형편 따위를  이해하고 긍정함.

*곧이 ; 바로 그대로.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 · 무색계의 여러 () 통틀어 일컬음. ()들이 사는 . () 세계.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숙주(宿主 묵을 숙/주인 주) ; ①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 ②전적으로 기대어 이익을 취하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조직편(組織片)이나 기관(器官)의 이식(移植)에서 그 이식체를 받는 쪽의 개체.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 () 아울러 이르는 .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

*고학(苦學) ; 학비(學費)를 자기의 힘으로 벌어 고생하며 배움.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다난(多難)하다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 이름하고, ‘나지 않는 (不生)’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것이 아니니라.

 

[참고] 송담스님(No.410)—90 2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 등지고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 ···(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  몸뚱이,  마음이여. 그런데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 생각' ()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 같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 번뇌염(煩惱染)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 생각 남이 없는 도리'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27)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 변하지 않는[] 광명[] 세계[].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속수무책(束手無策 묶을·잡아맬 속/손 수/없을 무/꾀 책) ; 손이 묶인 것처럼 어찌할 도리나 방책(方策 일을 하는 방법과 꾀)이 없어 꼼짝 못 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65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13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되는 .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참고]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〇인간의 분별계(分別界)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인 것입니다.

 

용465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7. 1. 3. 07:09

§(465) 영훈선사와 귀종선사 / 깨달은 것과 아는 것 / (게송)시비해리횡신입~ / 선재동자 /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신심 / 立志發願.

 

네가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문제는 믿을 ()’, 신(信)이거든. 오직 참선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

염라대왕 앞에 가서 ! 자신 있게 내놓을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내가 내놓기 전에 이뭣고?’ 평생 열심히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먼저 알고 자리에 일어나서 합장을 한다 그랬어.

 

법문을 듣고서 들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듣되 듣고 나서는 하나도 속에 남은 것이 없고 오직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법문을  들은 분이거든.

 

 공부는 첫째,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르겠다’고 하는 철저한 입지발원(立志發願) 가져야 한다.

 

필경(畢竟)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의 생사(生死)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철저한 발심과 철저한 신심으로, 대의단(大疑團)으로  삼요소(三要素)로써 나아갈 결국은 우리는 허송세월을 아니 하게  것입니다.

 

**송담스님(No.465)—92 2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

 

(1) 약 22분.

 

(2) 약 11분.

 

(1)------------------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라고 하는  선지식이 옛날에 계셨는데,  선사가 최초에 귀종(歸宗) 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을 찾아가서 친견을 했습니다.

 

떠억 찾아가서  귀종 선사에게 묻기를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니잇고?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매우 엄숙하고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귀종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향해서 일러주되 네가 믿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말하기를 큰스님께서는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학자를 위해서 정말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감히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귀종 선사가 가로되 네가  부처니라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어떻게 보림(保任)을 해 가야 되겠습니까?”

귀종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空華)가 난타(亂墮)니라.  티끌이 눈에 있으면 공화가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영훈 선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해가지고 보림하는 길까지 눈을 떴습니다.

 

 장애가  티끌이 눈에 있으니, 공화(空華)라고 하는 것은 눈병든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슨 꽃이 피어서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서물서물 서물서물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거든.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일러주기는 어렵지 않지만 네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어찌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고 성실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하니까, “네가  부처니라 거기서 확철대오를 했거든.

 

부처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도 부처님, 부처가 무엇이냐?”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삼천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실달(悉達) 태자  그런 등등 나름대로  말씀하실  있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바로 진리를 깨달으신 진리와 하나가  성현이다 아마 그렇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네가  부처다. 영훈이 네가  부처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 바로 그놈이 부처다

이러한 이것은 이론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고 또 영훈 선사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수긍을 해서 아하, 바로 내가 부처구나하고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어.

 

네가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그래서 법문(法門)을 듣되  법문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상식 모다 그런 것을 통해서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만,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法寶弟子)는 무슨 법문을 듣던지 바로법문이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 그런 것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 말할  있고 들을  있고 평범한 이야기, 무슨 내용의 말이라도  말을  법문을 즉(卽)해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을 하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터억! 드러난 거기에서 모든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참으로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거든.

 

보통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은 귀가 번쩍해서 눈알이 초롱초롱하고 조끔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 꾸벅꾸벅  시간  졸다가  일어나 가지고 누가   것을 봤나  봤나 뚤래뚤래.

 

그런데  그래서 섣달그믐께 모다 신도님들은 모다 바쁘고 여러 가지로 새해를 맞기 위한 여러 가지 가정사, 회사 공장 모다 여러 가지로 모다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다 많이 참석을 하셨는데,

사실 바쁜 것은 생사(生死) 문제보다  바쁜 것이 없고, 우리가   일 초 죽음을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데 자기의 생사 문제보단 더 바쁜 것은 없거든.

 

집에서도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참선도   있지만 그래도 법회에 이렇게 한번 떠억 나와서 부처님께 예배도 올리고 축원도 하고 그러고 도반(道伴)들도 만나고 이렇게   아는 소리  하고  하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반들이 같이 모여서  이렇게 법회를 갖는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는 것이다.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辯我)하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에게는  가지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있는데, 도저히 어찌해   없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어.

 

(첫 번째) 항상 젊고자 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거여. 별별  미용원에 가서 다듬고  치르고 바르고 얼굴에다  마사지를 하고 해도 세월이 지내가면 어쩔  없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흰머리가 생기고.

심지어는 주름살이 생기면 갓을 칼로 자르고 땡겨서 해봤자 잠시는 괜찮은  같아도 별 수가 없어. 무엇을 먹으면 좋다 해가지고  늙고 젊고 힘이 좋다고 해가지고 살아있는  배를 째가지고 웅담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번째는 아무리 병이 없고자 약을 먹는다, 운동을 한다, 좋다고  것은  해도 언젠가는 병들기 마련이고.

(세 번째) 영원히 죽지 않고 몇백  살고 싶어도 결국은 죽을 때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장수(長壽)하고 싶어도 장수를 맘대로 못하고 저마다  오래 살고 싶지마는 누가 마음대로 되냐 그말이여. 건강하다고 해서  오래 살고  돈이 많다고  먹고 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어.

 

 번째는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어. 별별 좋은 주사를 들여다가 매일 맞아도 별수(別數)가 없어.

 

항상 젊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고, 항상 병이 없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도 그것도 마음대로  되고, 영원히  죽고 싶어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는 없는데, 금년 임신년에도 선거가  번인가 있다고 그러고 온통 모든 사업 경제난이다 뭣이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시험지를  도둑맞아 가지고 야단이고  구석  구석 날이면 날마다  없는 때가 없어. 그것이 직접 간접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고.

 

그런데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여.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옆으로 비껴서 들어간다 그말이여.

사람들이 길이  터진 데는 이렇게 번듯하니 이렇게 활발하게 걸어가지만 사람이 입추(立錐)의 여지(餘地)없이   있는 데는  사이를 뚫고 나갈라면은 옆으로 몸을 요렇게 비껴가지고 이렇게  뚫고 들어가야 하거든.

 

근데  세상은 온통 시비(是非)여. 옳은  아니면 그른 것이요, 그른  아니면 옳은 거여. 시비의 바다 속이여. 시비의 바다요, 시비의 숲속을 우리는 몸을 비껴서 들어가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호랑이와 범의  속에서 거기서 자재하게 행할  있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러면 표호군중(豹虎群中)이 무엇이냐?

시비해리(是非海裏)라 하는 것은 세상에 옳고 그른 모든 일들이  포함된 것이고, 표호군중은 모든 사람이요 모든 일이거든. 경쟁 경쟁을 통해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세상이다 그말이여.

 

옛날에는 누구하고 다툴 것도 없고 경쟁할 것도 없고 자기 논밭 갈아서 심어서 그저 먹고 살면 그만이고 나물 캐서 먹고 그저, 물론 그것도 알고 보면 농사를 지려면 땅이 있어야 하고 땅을 마련하려면은 남하고 경쟁해서 부(富)를 재력을 얻어야 땅을 사는 것이니까,

다맛 옛날과 지금과는  전쟁이 전쟁의  치열한 도가 달라졌을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렇게 경쟁하고 하는데, 경쟁하는 방법 방법이 나날이 잔혹해져 가고 있다.

 

잠시도, 어떠한 기업체를 운영하더라도 멍청하니 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망한지 망한  모르고 망한다 그말이여. 세계가  마찬가지여. 무서운 마치  호랑이와 범과 사자, , 늑대 이러한 무서운 짐승들이 우글대는 속을 여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어떻게 하면  무서운  표호군중 속에 무사히 지나갈 수가 있느냐?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辯我)하라. 시비(是非), 옳고 그른 것을 가지고 와서 나한테 와서 가릴려고 하지 말아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다. 평생에 그런  따지는 것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까짓  상관 않는다는 고인(古人)의 시(詩)인데.

 

그러면은 옳고 그른 것도 따지지도 않고, 흥망성쇠도 따지지도 않고 일체를  피해 버리고 자기 혼자  닫고 집안에 앉아 그렇게는  세상은 살 수가 없어.

무엇인가 자기가 해야  일거리를 찾아서 자기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그것이 사회에 이바지할  있는 무슨 일인가는 해야지 우두커니 앉아서 그렇게 살 수는 없어.

 

아주 병들어서 수족이 오그라져가지고 전혀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아서 해야 되거든. 꼼질꼼질이라도 해야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해야 .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수입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함으로써 살아가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몸도 건강이 유지가 되고 그런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도 시비에 말려들지 않고 표범이나 늑대에 잡혀 먹지도 않고 그러면서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길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일하면서 이뭣고?’ 무엇인가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항상 그놈을 앞세우고 그놈으로써 살아가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일을 당하면 좋은 . 궂은일을 당하면 궂은일,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 기쁜 일을 당하면 기쁜 ,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가정 일이나 회사 일이나 직장 일이나 국가 일이나 세계 문제나,

무슨 문제를 보거나 듣거나 또는 직면(直面) 하더라도 항상 이뭣고?' ! 그놈으로 기둥을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라. ! 그놈으로 자기의 핵심을 따악 잡은 거기에서 모든 일을 보고 듣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해보라 그거거든.

 

이건 대단히 말은 쉬워도 사실은 어려운 것이여. 어려운 것이 방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라면은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확실한 신심(信心)이 있어야 .

신심 하나만 철저하게  버리면  공부  할라야   수가 없고, 누가 못하게 해도 막무가내거든.

 

문제는 신(信)—‘믿을 ()’, 신(信)이거든.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고.

아까 말씀드린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 자신 있게 내놓을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내가 내놓기 전에 이뭣고?’ 평생 열심히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먼저 알고 터억 자리에 일어나서 합장을 한다 그랬어.(16분28초~37분51초)

 

 

 

 

 

(2)------------------

 

선재동자(善財童子) 발심(發心) 해가지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법문을 듣고 발심을 해가지고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라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면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찾아갔어.

 

 일백십성을 넘고 넘어서 가면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친견을 했는데,  선지식(善知識)마다—한 선지식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그다음에는  선지식이  아무데 성을 가면 아무 이러이러한 선지식이 계시니 거기를 가거라 그렇게 지시를 하면은 그 지시를 받고  그다음 선지식  그다음 선지식한테 법문을 듣고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서 그다음 선지식,

 

이렇게 해서 53선지식을 친견하면서  들었던 법문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고대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환희심을 가지고 그렇게 53선지식을 친견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을 했어.

 

 미륵보살의 법문을 듣고서 다시 문수보살을 가서 친견을 하라 그렇게 지시를 받고 인자 문수보살을 친견을 하려고 마음속으로  마음을 먹으니까 문수보살이 일백십성을, 오른손을  펴서 일백십성을 건너가지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떠억 이렇게 만져주신 거여. 그 찰나에 53선지식한테 들었던 모든 법문을 일시에  잊어버린 거여.

 

법문은, 듣고 환히 주렁주렁주렁  외우고  이야기를 하나도  잊어버리고  알고 있는 ,  기억력이 좋고 한눈을 전혀 팔지 않고 그래가지고 온전히 정성을 다해서 잡념 없이 졸음도 없이 법문을 들으면 또 영리한 사람은  환희  아실 것입니다.   일부를 알고 일부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서 들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듣되 듣고 나서는 하나도 속에 남은 것이 없고 오직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법문을  들은 분이거든.

 

 선재동자가 일백십성을 건너면서 53선지식을 친견할   선지식이보면 터억 생김새가 거룩하고 누가 보든지 ! 훌륭하고  그런  아니고,

 선지식 가운데에는 별별 종류의 선지식, 도대체가 신심이 아니고서는 먼저 선지식이 지시를 해주지 않았다면은 봐도 선지식인지 아닌지  수가 없고 저런 것이 도인(道人)인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그런 사람들이거든.

 

 가운데는 귀신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승려도 있고  창녀도 있고 별별 사람이  있거든. 신심으로 신심을 가졌기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선지식을 친견해가지고 결국은 확철대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신심이 철저해야.

가지가지 공부를 하다보면 온갖 장애를 만날 수가 있거든. 가정적으로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일신상에 건강상에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선방에 나와도 이리저리 걸리고 속상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보면은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가 있어. 혼침(昏沈)이라든지 망상(妄想)이라든지 몸에 병이라든지  능엄경(楞嚴經)에는 53가지의 여러 가지 마경(魔境) 일어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더라도 조끔도 정법(正法) 믿는 신심이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그럴수록에 더 철저한 신심으로 화두를 들고 정진을 꾸준히 알뜰히 해 나갈수 있어야 그래야만 비로소 도(道)를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는 첫째, 발원(發願)을 철저하게 해야 . 입지발원(立志發願).

입지발원이 철저해야 하는데 어떻게 입지발원을 해야 하냐?’하면은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고인(古人)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르겠다’고 하는 철저한 입지와 발원을 가져야 한다.

 

공부하다 쪼끔 ..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있는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또는 어떤 보통 말한 지견(知見)이 나면 그것이 자기 구경의 깨달음에 이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거기에서 주저앉고 그건 득소위족(得少爲足)이라.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만족을 삼는 거라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여.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은 이상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고 나름대로 어떤 지견이 나타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이 확철대오한 고조사의 구경각(究竟覺)이 아니면, 불조(佛祖)의 구경각이 아니면 언제라도 스스로 인증을  해야 . 누구 보고 물어볼 것도  것도 없이 스스로 부정을 해버려야 하거든.

 

그리고서 항상 초발심, 초발심자(初發心者)와 같은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 물들지 않는, 초발심(初發心)은 대체적으로  뜨겁고 깨끗하고 삿된 견해가  붙거든.

차츰차츰 하다보면  순수성을 잃고 나름대로 자기의 별로 내놓을 만한 것도 못된 그런 것을 살림을 삼고 그러한 것은 대단히 공부 도학자(道學者)에게는 무서운 것입니다.

 

필경(畢竟)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의 생사(生死)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철저한 발심과 철저한 신심으로 대의정(大疑情), 의단으로  삼요소(三要素)로써 나아갈  결국은 우리는 허송세월을 아니 하게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변화가 심하고 그렇지만 그러한 속에서 정말 우리는 발심할  있는 계기를 찾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발심할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375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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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천진함을 보전하고  자재함을 따른다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출가하기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법당(법보전) 모셨으니 우리가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 의지해서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면서   가족인 것입니다.

*즉해서(卽해서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게송)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 ; [선문염송] (혜심 지음) ‘1 1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별수(別數 나누다·구별·따로 달리 별/세다·방법·운수 수) ; ①별다른 방법. ②특별히 좋은 운수. ③갖은 방법.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다 ; ‘송곳[錐] 하나 세울[立] 만한 빈[餘] 데[地]도 없다’는 뜻으로, 발 들여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막무가내(莫無可奈) ; ①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②달리 어찌할 수 없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 재판하는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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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 (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 길상(吉祥 : 상서로움)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 손에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 이룸.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선지식.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미륵보살(彌勒菩薩)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 ()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원인과 종류를 밝힘.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있는, 오음(五陰 :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부처님 가르침.

*마경(魔境) ; () 경계(境界).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원(發願) ; 원(願)하는 마음을 . 원을 세움.

*()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또는 바라고 원하는 .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입지(立志) ; 뜻을 세움.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준말이다. 간화(看話)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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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없다. 구경각(究竟覺)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 가리킨다.

*초발심(初發心) ;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을 처음으로 일으킴.

*도학자(道學者) ; ()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필경(畢竟 마칠·끝낼 /마칠·마침내 ) ; 끝장에 이르러. 결국에는.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용465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