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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 (게송)삼일수심천재보~ / 참선을 만난 다행한 기회에 결정코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해야 /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찾는 법.
〇‘이뭣고?’ 찾는다면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은 우리의 구경(究竟)의 목적이고, 설사 그렇게까지 못된다하더라도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저승에 갈 때에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 않고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날 것이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더라도 좋은 사람의 몸을 받아나가지고 또 불법(佛法)을 만나서 ‘참나’를 깨닫는 참선(參禪)을 하게 될 것입니다.
〇이 법을 철저히 믿기만 하면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 속상한 일을 생각하면 점점 더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데,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믿는 사람은 속이 상하는 일을 듣거나 보거나 그럴 때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 지극히 쉬웁고 간단하고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거여.
〇‘이뭣고?’는 남이 대신 해줄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자식 대신에 부모가 ‘이뭣고?’를 해줄 수는 없습니다. ‘이뭣고?’는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요, 자기가 자기의 참나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이뭣고~?’하고 그렇게만 하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〇다른 것은 구해도 잘못 구하면 못 구할 수도 있고 구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으나 자기가 자기를 찾는 이 참선공부는 믿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〇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가난한 사람한테 노놔주는 것, 그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나 그것은 한계가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다 노놔줄 수도 없는 거고 줄 만큼 주면 다 떨어져서 없지마는, ‘이뭣고?’하는 ‘참나’를 찾는, 영원한 ‘참나’를 찾는 이 최상승법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일러주어도 없어지지 않고, 다 같은 ‘이뭣고?’를 하는 도반이 되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다 같이 하면 다 같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니 정말 세계평화는 전쟁을 해가지고 세계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송담스님(No.784)—2016년(병신년) 동안거 결제(2016.11.14) (용784)
약 22분.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편백운(一片白雲)은 횡곡구(橫谷口)한데 기다귀조진미소(幾多歸鳥盡迷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다.
사흘 동안 마음을 닦으면 그 공덕이 천 년 동안에 빛나는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을 탐심(貪心)을 가지고 물건을 모아봤자 하루아침에 티끌밖에 안된다.
일편백운횡곡구(一片白雲橫谷口)한데, 한 조각 흰구름이 골짜구니를 가로막으면,
기다귀조진미소(幾多歸鳥盡迷巢)로구나. 얼마나 많은 돌아오는 새가 그 길을 미(迷)해 가지고 자기집을 못 찾겠는가.
한 조각 구름이 골짜구니를 가로막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새가 자기집을 잘 못 찾는 거와 같이 사람이 백 년 동안을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재산을 모이고, 명예를 모이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모아봤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하나도 가져 가지도 못하고, 저승으로 갈 때는 그것 모이느라고 지은 죄업(罪業)만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차라리 백 년 동안을 명예와 지위와 부귀영화를 탐내 가지고 모이기보다는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나의 마음을 찾어.
‘이뭣고?’ 찾는다면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은 우리의 구경(究竟)의 목적이고, 설사 그렇게까지 못된다 하더라도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저승에 갈 때에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 않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서 태어날 것이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더라도 좋은 사람의 몸을 받아나가지고 또 불법(佛法)을 만나서 ‘참나’를 깨닫는 참선(參禪)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세계가 60억 인구라고 그러지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냐 그말이여.
재산을 모이느라고 일생을 헤매고, 명예과 권리를 누리느라고 평생을 몸부림을 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렇게 몸부림치고 그렇게 애쓰느라고 업(業)만 짓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면치를 못하니 불법을 믿지 않고 참선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냐 이 말씀이여.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은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나가지고 또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오늘 최상승(最上乘) 법문인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니 얼마나 다행하고 다행한 일입니까.
이러한 다행한 기회에 만났을 때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결정코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랍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 법어에 초의(草衣)로 차한(遮寒)하고 려식(糲食)으로 활명(活命)하며, 풀 옷으로 추위를 막고 잡곡밥으로 목숨을 이어가지마는,
올올여우(兀兀如愚) 여롱여아상사(如聾如啞相似)하야사 초유상응분(稍有相應分)이다. 오똑하고 오똑해서 바보 같고, 귀머거리 같고 그렇지만 ‘이뭣고?’를 한 사람은 그러한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를 벗어나는,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그러한 좋은 인연을 우리는 받아 태어났습니다.
만약 마음 가운데에 학문을 널리 배우고, 알음알이로 복(福)을 구(求)하고 지혜를 구해 봤자 다 이것이 생사(生死)의 근본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이치로 아무리 따져봤자 아무 이익도 없고, 알음알이로 따져서 나름대로 무슨 얻은 것이 있다고 해봤자 알음알이의 경계의 바람에 나부낌을 입어 가지고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길밖에는 갈 곳이 없다 그말이여.
알음알이로 따져서 지식을 쌓고, 열심히 일을 해서 재산을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누려봤자 결국에 가서는 생사윤회의 길로 가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계의 60억 인구가 그렇게 많지마는 정말 이러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자기 마음을 찾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스님네와 신도 여러분은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최상승법을 만났으니 이때 이러한 기회를 헛되이 지내지 말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앉아서나 서서나 ‘이뭣고?’ 걸어갈 때나 일을 할 때도 ‘이뭣고?’
인생을 앞으로 칠십 세까지 살런지, 많이 살면 구십 세도 살고 백 살 넘기는 사람도 참 드물게 있지마는 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을 때 또 만나기 어려운 이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을 만났을 때 정말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행한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생각해 볼수록 다행하고 다행한 일입니다.
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 보는 데에 쫓아가지 않고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이고, 귀로 무슨 말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이여.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이 세상은 성주괴공(成住壞空),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끌려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 속에서 ‘참나’를 찾는, 우주 진리의 근본인 나의 마음을 찾는 참선을 듣고 얘기하고 또 그것을 믿고‘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지옥・아귀 삼악도(三惡途)에 갈 까닭도 없고 반드시 ‘참나’를 깨달아서 생사해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 가운데도 소승・중승・대승 그리고 최상승(最上乘)의 법(法)이 바로 내가 나를 찾는 법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돈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었을 때 ‘이뭣고?’ 입으로 무엇을 먹을 때도 그 맛이 있다・없다・짜다・싱겁다 그리 생각을 쓰지 않고 바로 ‘이뭣고?’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밖에서 찾는 데에는 힘이 들고 때론 찾다가도 못 찾을 수도 있으나 자기가 자기를 찾는 것은 별로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법을 철저히 믿기만 하면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 속상한 일을 생각하면 점점 더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데,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믿는 사람은 속이 상하는 일을 듣거나 보거나 그럴 때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 지극히 쉬웁고 간단하고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거여.
대학을 나와도 대학을 안 나와도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에는 많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얼굴이 잘나고 머리가 좋고 그럼사 해로울 것은 없으나, 잘나지 못하고 못생겼어도 ‘이뭣고?’한 사람은 잘나고 그럭저럭 망상을 부리다가 삼악도에 가는 것보다는 좀 못났어도 항상 ‘이뭣고?’를 하면 60억 인구 가운데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남이 대신 해줄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자식 대신에 부모가 ‘이뭣고?’를 해줄 수는 없습니다.
‘이뭣고?’는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요, 자기가 자기의 참나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이뭣고~?’하고 그렇게만 하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구해도 잘못 구하면 못 구할 수도 있고 구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으나 자기가 자기를 찾는 이 참선공부는 믿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명예나 지위, 부귀영화는 구해봤자 영원성도 없고 언젠가는 그것으로 인해서 해(害)를 입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그것이 나로부터 떠나가고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되는데,
‘이뭣고?’는 힘도 안 들이고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죽을 때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무서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뭣고?’를 한 사람은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가게 되는데 염라대왕에게 끌려갈 까닭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열심히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혹, 속이 상하는 일을 당할 때에도 그리 쫓아가서 이모저모 따져서 번뇌 망상을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천하 쉬웁고도 간단한 것인데 이 법을 믿고 열심히만 하면 바로 그 ‘이뭣고?’할 때에 번뇌 망상을 이겨 나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60억이나 되는 인구가 있지마는 이 ‘참나’를 찾는 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불과 몇 프로 밖에 안되지만 이 법을 믿는 사람은 이 법을 안 믿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법으로 안내를 해서 다 같이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도록 한다면 그 공덕(功德)은 한량이 없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가난한 사람한테 노놔주는 것, 그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나 그것은 한계가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다 노놔줄 수도 없는 거고 줄 만큼 주면 다 떨어져서 없지마는,
‘이뭣고?’하는 ‘참나’를 찾는, 영원한 ‘참나’를 찾는 이 최상승법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일러주어도 없어지지 않고, 다 같은 ‘이뭣고?’를 하는 도반이 되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다 같이 하면 다 같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니 정말 세계평화는 전쟁을 해가지고 세계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뭣고?’을 함으로써 자기 마음에 행복을 누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뭣고?’를 해서 ‘참나’를 찾을 수 있는 길로 안내를 한다면 모든 사람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깨달음 길로 나가는 도반이 되고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해가 지도록 말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산승(山僧)의 이 말씀이 옳다고 믿어지면 전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좋습니다!
여러분이 손을 들고 박수를 쳐서 철저히 이것을 믿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의사 표시(意思表示)로 산승은 믿겠습니다.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을 때,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그 사람에게는 항상 제석천왕(帝釋天王)을 비롯한 일체 선신(善神)이 항상 옹호(擁護)를 해줄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으니 우리는 정말 정말!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이 비추는 곳에 들어가, 길이 샘이 없는 무루(無漏)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반드시 이 정법(正法) 제자로서 일생을 잘 수행을 해서 다 생사해탈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우리는 서약을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처음~21분5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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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게송) ‘一片白雲橫谷口 幾多歸鳥盡迷巢’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6 <낙포원안선사(洛浦元安禪師)> 참고.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 : 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의사 표시(意思表示) ; 어떤 일에 대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옹호(擁護 안을·지킬 옹/보호할 호)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킴.
*(게송)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