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1/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60)—몽산03. 몽산시 각원상인(1) (임자72.07.15)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6분.


(1/3)----------------

운수기천리(雲樹幾千里)에  산천정묘연(山川政渺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봉각백수(相逢各白首)요  굴지계유년(屈指計流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찍이 출가해서 부모 고향 친척 다 여의고 들어와서 도(道)를 닦는다. 도학자(道學者)의 평생이라는 것이 참 운수천만리(雲樹千萬里)지.
집을 여의고 나왔으나, 뭐 집에 들어가서 뭐 어머니 아버지 무슨 고향 산천 그 어디 인연을 조금이라도 뭐 머물러 두고 나왔나? 다 여의고 떼고 나와서 그대로도 닦는 자체가 퍽 참 운수천만리(雲樹千萬里)에 그 멀기가 천만리여

다시, 허! 이렇게 도 닦다가서는 집에 들어가서 어디 살림 살 수가 있나? 아들 날 수가 있나? 뭣 해 줄 수가 있나? 부모 한 번 같이 모시고 살아볼 수가 있나?
중, 우리 도 닦는 도학자의 참 생애가 이렇게도 거리가 이렇게 친척 거리가 멀고, 고향 산천이 그렇게도 떨어지고. 이렇게 되아 버렸지.

참 생각할수록에 그 부모, 형제 인연 참 정묘연(政渺然)이다. 아주 묘연(渺然)뿐이여. 아득하니 묘연뿐이여.


아, 그 우리나라에 참 유명허신 서산(西山) 도사, 어릴 때 과거(科擧)보러 나왔다가 과거를 못허니까 그만 염세주의로 세상에 살 마음이 없어 돌아가실라고 결정하고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아! 산중에 제승(諸僧)들이, 모도 중들이 그 산속에서 공연히 친척 부모 고향 여의고 한평생 그렇게 그만 아무 인생 목적 없이 소원도 끊어버리고 독각 독승 독신주의로 그렇게만 지낸 줄 알았더니. 아, 들어와서 보니 정말 참 인생살이여. 인생의 사는 것이 참 이 사찰, 절이로구나.
그 자아를 자각해서 대도(大道)를 통(通)해서 자기도 깨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참 영생(永生), 영원히 죽지 않는 참다운 법이, 인생의 온당한 참 살림살이가 여기 있구나.

아! 그만 믿어 가지고, 한 번 믿으면 그뿐이니깐. 믿어져 버린디야 어쩔 수 있어? 누가 그 믿음을 못 믿게 만들며, 그 무슨 저해(沮害)를 할 것인가?
한 번 믿어졌으니 아! 믿음서부텀 그렇게 외동아들로 부모 밖에 모르든 사람이—부모를 모른 것은 아니지. 정말 부모를 참으로 옳게 대도를 통해서 우리 부모도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그야 참 어디 어따가 댈 수 있는가.

그것 한평생 자식 노릇한 거, 부모 모시고 돌아가시드락까지 시봉질 잘해 가면서, 무슨 거 부모 잘 육산포림(肉山脯林)에다가 무슨 용미진탕에다가 무슨 금의옥식(錦衣玉食)을 아무리 해 올린다 한들, 출가해서 대도를 증득해서 부모 천도(薦度) 제도한 것만 할 것인가?

거 뭣 헐 것인가? 그거, 잠깐동안 그거 뭐 인생살이 그녀러 것. 그러지마는 그 인생적으로 봐서는 그렇게도 그 자식 하나 낳아서 외동아들한테 의탁할 마음이 아! 그만 태산 같지마는 과거(科擧)를 갖다가 과거 못 허고는 그만 염세주의로 아! 그 뭐 종적을 감춰버렸으니 그 부모 마음은 오직 할 것인가?
허지마는 서산 도사의 마음은 그 설법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꽉 믿어 가지고는 부모 뭐, 일시의 뭐, 가서 뭐 부모 앞에 가서 뭐 자식노릇 백 번 천 번 별짓을 다한다 한들, 도 닦는 것만 할 것인가.

자취를 착 허적(虛寂)해 버리고 그믐해 버리고는, 거 앉아서 도 닦는 거, 십 년을 도를 닦았다 그말이여.
그 자취는 그렇게도 운수천만리(雲樹千萬理)에 그 과거 갔다가 내던져 번지고서는 그만 들어와서 부처님 제자 되어 가지고는 도 닦고 앉었으니 참 정묘연(政渺然) 아닌가? 적적(寂寂)한 묘연(渺然), 그 자리가 그렇게도 떨어져 부렀어. 부모 자식의 인연 도리가 그렇게도 떨어져 부렀네. 

상봉각백수(相逢各白首)다. 자, 도를 통해 가지고 부모를—그 도통할 동안 나를 깨달을 동안이 솔찬히 그렇게 쉽지 못하고 시간이 얼른 오들 못하고, 금방 얼른 얼른 그만 몇십 년, 수십 년 그만 지내 버린다 말이여. 그러니 백수(白首)로 늙은 말년에 백수로 부모를 만나러 갔다. 도(道) 다 깨달라서 얻어 증득(證得)을 해 가지고는 부모를 만나러 갔다.

굴지계유년(屈指計流年)이로구나. 손가락을 꼽아 가지고 세알라 보니 그 세월이 벌써 사오십 년 흘러서 휘익 지내갔다. 그 부모는 뭐 백수 노인이 되어 가지고는 뭐 자식 기억도 다 못하게 됐지마는 돌아가셔 버리고 없다. 촌(村)도 폐하고 촌도 다 없어져 번지고. 이렇다.
그 지경, 허니 도를 확철히 깨달라 가지고 목적을 달성해 가지고는 참 여지없이 갖추어 가지고는 부모한테 갔지마는 이놈의 무상한 세상에 모도 그 부모는 다 이렇게, 촌락까장 이렇게 되아 번졌다.
우리 도 닦는 도학자의 자취가 다 이려. 이러하니 참으로 부지런히 참으로 해태(懈怠) 없이, 퇴태(退墮) 없이 잘 닦아야 할 것 아닌가? 어서 닦아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살아 생존해 계신 부모가 바랜 그 보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이라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우리 참선법은 조사관(祖師關) 뚫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인데, 조사관은 내던지고 엉뚱한 짓 말아라. 왜 엉뚱한 짓을 하고 앉았나?
화두를 하나 얻었으면은 그 화두 하나 가지고는 그저, 그저 여태까장 아침마다 하든 거 뭣이여? 화두하나, 그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 하나 독로한 거, 단(單)으로 홑으로 독로한 거, 조금도 거기에 섞임이 없이 아무리 무슨 뭐 섞을라고 해 봤던들 섞일 것이 있나. 거가 뭐가 섞일 것인가?

거 그 번뇌니 망상이니 그 모두 그런 것 벌써 알면서, 번뇌 망상을 내가 모름사 하지마는 번뇌 망상과 그 잠 같은 거 못쓸 것인 줄 알면서 왜 그렇게 속냐 그말이여. 왜 그놈한테 그거 속아 지내는가?
그 천하에 나를 실업(失業)허게 맨들고 업을 잃어버리게 맨들고, 망가(忘家) 집을 모도 잊어버리게 맨들고, 고향을 가지 못하게 맨드는 마구니한테가 속아서 왜 일순간(一瞬間)인들 그만 잠 속에 들어버리고, 망상 속에 들어버리고, 그럭저럭 계산 속에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얼마나 거그서 용맹을 갖춰야 하겄는가? 얼마나 참 발심(發心)을 해야 하며 얼마나 날카로운 생각을 가져야겠는가? 좀 생각해 보소.


조사관을 뚫어야 하느니라. 조사관 뚫지 않으면 참선은 아니니까.
그 조사관이 얼마나 그렇게 맥혔기 때문에 그렇게 뚫기가 어려운가? 그 못된 곳이 모두 가려서 맥혀서 안 뚫어지지. 번뇌 망식 그 쓰잘 데 없는 계산, 그놈의 것 때문에 안 되지.
그놈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같은 놈이 뭐 구름같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취 없이 일어난 곳도 없이 퍼일어나는 놈의 것 그까짓 거, 그거 뭐 거기에 떨어지들 말고. 안 낼라고도 말고, 나는 놈을 미워헐라고도 말고, 그저 내 찾는 놈만 찾아라.

‘찾는 것도 죽는다’했지마는 ‘찾으면 죽느니라’했지마는, 참말로 찾을 것은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 공안(公案)을, 공안 대의를 찾어야 할 것 아닌가.
‘찾는다’하니까 무슨 뭐 공안 대의까장 찾지 말란 말인가? 미(迷)했으면은 깨달지 못했으면은 찾을 놈은 그뿐인데.

아! 그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뿐이지. 고놈 하나 딱 추켜들면 나오면, 아! 그놈은 조사공안이 근본적으로 그만 막 나오는디, 내가 딱! 타 가지고는 그놈 근본 뿌럭대기처럼 나오는디, 왜 그놈이 없어질 까닭이 있나. 없어질 수가 있나. 아지 못했으니 그놈 하나 진실해야겠다.

참, 그놈 하나 어떻게 허다가 얻었나? 생전 해야 믿지도 못하고 만년 가야 믿지도 못하고.
오직 해야사 불불(佛佛)이 출세해 가지고는 그 하나를 가르쳐 볼라니 안되니까 돌아가시기를 다 하고. 조석불(朝夕佛)이 있네.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돌아가신 부처가 있어.
가르쳐 볼라니 되어야지. 이건 자득(自得), 자기가 제가 자신(自信), 제가 믿어야지 제가 안 믿으면 못하니까. 부처님이 대표로 대신(代身)으로 믿어 주들 못하니까.

안 믿어 주면 인연 없는 중생인데, 미(迷)한 중생을 제도(濟度)치 못하니까. 어떻게 헐 것이여? 천상 이건 제가 저를 믿어서 저를 찾는 것임에 누가 ‘믿어라, 말라’ 누가 ‘해라, 말라’ 허라고 해서 허고, 말라고 해서 말 것인가?
아! 이렇게 결심 결정해 가지고는 콱 믿어 가지고는 쏴악 그만 출가해 번지고 일체 애연(愛緣) 애착(愛著)을 그 날카로운 칼로 쫙 베 번지고 들어온 우리 학자들이여.
누가 하라고 해? 부처가 하라고 한다고 혀? ‘믿으라’고 헌다고 믿고? 이렇게 믿어 가지고 결정해 들어왔으니 허는 법식이 그려.

참선이라 하는 것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다.
이것 또 누가 허신 말씀인고 하니 ‘몽산 스님이 각원상인을 보인다[蒙山和尙示覺圓上人]’ 각원상인이니께, 그 각원상인이 각원상인 같은 이는 상인(上人)이라고 해 놨으니 그때 당시에 큰 벼슬헌 분들이고, 글안허면 모두 군수나 모두 그런 사람들을 상인이라고 했다 그말이여.
몽산 스님 당시에도 불교를 무척 반대할 때니까, 벌써 그렇게 너무 그만 갖다 상인이라고 붙여 놓았어. 무슨 놈의 제자인데 상인은 무슨 상인인가? 하지마는그 상인한테 이렇게 말씀을 했다 그말이여.

참선이라는 것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일체 방편이 없다. 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幻)인줄 알면 여의여 버렸다. 환(幻)에는 방편(方便)이 없다. 환(幻)이지 뭣이여?
아무리 별별 것을 다 성취를 해 놓았자 타락이 있는 것이니까. 아무리 계행(戒行)이 좋다 하지마는, 누가 계행을 지키지 말란 말인가?
수도(修道) 학자라는 것은 계행이 갖춰져 있는데, 계행이 저절로 있는데. 벌써 참선 하면 참선 하는 학자한테는 계행이 그만 근본이 딱 되어 있는데. 심지품(心地品)이라니까! 아주 심지품, 부처님이 바로 설허신 십중대계(十重大戒)가 그게 바닥이여 바닥. 참선 바닥이여.

참선 화두를 척 들면 대계가 그대로 딱 갖춰져 있는 것이 대승계(大乘戒)여. 아! 그런 대승계인데, 내가 밤낮 헌 소리가 그 소리여. 만년 헌 소리가 그 소리여.(처음~19분4초)





(2/3)----------------

아! 그 딸 하나를 낳아서 길러 가지고는 그 도 닦는 스님한테 시험한 것이여. 시험 혀.
중생이라는 것은 도(道) 아니라 도 보담 더헌 것을 닦는다 하드래도 그놈 모도 색상(色相)으로 색신(色身)으로 몸뚱이를 받았기 때문에, 색심(色心)은 나기가 마련이여.
몸뚱이 가지고 있으면 그놈의 색심이라는 것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근본적으로 몸뚱이 받아 나온 원인이 색심(色心), 색신이여.

이 도는 닦는다 하지마는 그 스님이 참말로 도를 닦는 도학자시면은 참말로 진(眞) 계행을 참말로 본분 계행을, 그 대승계를 가진 스님이냐? 아니냐? 그걸 보기 위해서.
몸뚱이로는 안 범하지마는, 신계(身戒) 몸뚱이 계로는 안 범한다 하지마는, ‘마음 계’는 그놈의 마음 그놈, 자취도 모냥도 아무것도 없는 놈이 갔다왔다하는 발목댕이도 없지마는,
그놈이 거 뭐 항상 그 도무지 그 가슴속 흉중에 연기처럼, 불 때면 연기처럼 일어나는 놈의 것이 그놈의 것이여.

아! 그게 어떤 놈이 연애편지를 쓰기를 그 하도 그 연애를 해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게, 심중(心中)에 홀기무연화(忽起無煙火)하야, 마음 가운데 홀연히 연기 없는 불이 일어나서 칠보앵금을 반익회라. 칠보앵금을 반을 태웠다는 말이 있어.
그놈의 심계(心戒)라는 것이 그거 벌써 심계 일어나면 범하는 것이 심계여.

그러니까 예쁜 처녀를 갖다가 턱 보냄서, “네가 대번 가서 꽉 보듬고 그만 네 볼태기를 입에다 대고 가슴을 문대고 물어봐라”
환히 아는 처녀니께, 뭐 키운 처녀와 다름이 없은께, 양식 대준 스님이니까 뭐 무간(無間)하기가 짝도 없고, 그만큼 그 스님한테 가서 올라 앉혀도 뭐 문제가 없고.

나이는 또 근 20살, 옛날에는 뭐 20살이면 늙은 처녀라고 허지. 그런 처녀가 가서 아, 그만 “그 스님을 보고 싶어서 내가 왔습니다”고 하면서 아! 가서 그만 그냥 보듬고 드립대 그만 부부처럼 그만 뽈대기를 대고 그러니까. 아! 더군다나 그 참, 그 남자 여자요. 그것도 남자가 오히려 여자한테 대들턴디, 그 여자가 남자한테 그만 그래가지고는 척 대들어 어린양 비스름허니 그러니까.

참! 참 그 계행은 옳게 가진 사람 아닌가? 참! 그런 계행이 어디 있어. 손 한번 만져본 바 없고, 손 한번 무슨 끌어안아 본 바 없고, 그대로 두고.
“이런 때 어떻습니까?” 물으니까.


잘 들어! 항상 들었다고 ‘그 아는 거’ 그러지 말라 말이여. 그러면 법문 듣는 게 아니여.

척 끌어안고 “이런 때 어떻습니까?”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하니, 차운 냉기가 바위에 대하니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다. 겨울에 삼동(三冬) 날에 더운 기운이 없구나”

너는 마른 냉기요 나는 차운 바위여. 아! 마른 냉기가 차운 바위에 대했는디 거기에 뭔 뜻이 있을 것이냐? 아무 뜻도 없고 정도 없고 인생 정이 뭣이 있느냐?
네가 천하 미인이고 예쁘다고, 내가 천하 미인 예쁜 정이 너한테 건너가겠느냐? 너한테 내가 조금이라도 그 무슨 범할 마음이 있겠느냐? 아무 마음 없다.

그러니까 그대로 어머니 시킨 대로 어머니한테다 그대로 회전(回傳)을 하니까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하니 삼동에 더운 기운이 없다 합디다”
내가 지금 몇 번째 하는 법문이냐 이것이. 어째 그리 못 알아들을까?


“더운 기운이 없다 합디다”하니까,
“하! 이거 웬일이란 말이냐. 내가 여태까장 시험을 해보지 못했더니 과연 참 오늘은 시험을 해봤구나. 아! 이놈을 갖다가 이런 속한(俗漢)이 놈을 갖다가 내가 십 년까지 양식을 대주었다. 차라리 빌어먹는 거지나 그 좀 구제했으면은 아! 그래도 그 무슨 보시 공덕이나 있겠지마는, 아! 이런 놈, 이 속한이 놈, 거짓 속한이 놈, 도(道) 커니는 아무것도 아닌 놈을 십 년을 양식을 대주었으니 이러헌 도무지 헛된 일을 헐 수가 있겠나. 이놈 이놈 견뎌봐라 이놈. 대방맹이로 쫓아 버릴밖에 없다”고.

아, 그길로 올라가서 그 있든 집 불까장 딱 질러 번지고 “이놈아 나가거라. 이 더러운 속한이 놈아 나가. 네 이놈 네가 왜 십 년이나 내 양식을 먹었어? 당장 나가”
그만, 불질러 버렸으니 나가지 뭐, 뭐 별 수 있나? 십 년이나 시은(施恩)을 받았지마는 그렇게도 무정하게, 무정보담도 그렇게 그만 사람을 갖다가서 배척을 해서 그 괄세를 해서 쫓아낸다 그말이여. 안 쫓겨 나가겄어?

어떻게 했으면은 어떻게 일러야만 안 쫓겨 나가겄느냐? 이게 전국에 과거 6대 선지식 당시에 전국에 물었든 것이여.

아니 저놈의 자올고 있는 것 좀 보소. 이 법문헌디 자올고 있는 것 좀 봐. 응? 그동안에 꾸뻑 꾸뻑 그놈의 자올.. 밤새도록 잠 안 잤는가? 뭣 헌다고 내가 이렇게 여그 앉아서 내가 법문헌다고 앉았겠는가? 

이것은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텀 저 쬐그만한 어릴 때부텀 무슨 인과법으로 해서 차츰차츰 어떻게 가르켜서 그 뭐 처음 들어와서 사미과(沙彌科)로부터 사집과(四集科)로부터 사교과(四敎科)까장 대교과(大敎科)까장 다 가르켜 일러 놓았자, 그 사람이 참선허는 사람이 아니여. 참선을 못허는 법이여.
아무리 부처님이 경서(經書)를 그렇게 49년을 설법해 놓고, 조사 스님네가 그렇게 깨달은 도리를 다 설법해서 책에다가 다 해놓았지마는 그 책을 가지고 아무리 가르켜 놓았자 그 사람을 참선을 못 시키는 것이여.

어쩌다가 강사(講師)가 인자 발심해서 들어오기는 들어오지마는 강사 참선이라는 건 그건 벌써 틀린 것이여. 맨 해석만 배워놨기 때문에 참선만 하면 보통 망상과 달러서 그 도리회(道理會)에 망상이 나와. 제가 알았다는 망상이 나오고, 아는 망상이 나오고, 어떤 구절은 어떻다는 망상이 나오고, 들으면 다 제가 자해(自解)를 해부러. 그러기 땀세 공부를 못혀. 강사가 공부를 못혀. 아무리 그렇게 가르켜서 어릴 때 들어와서 삼사십 살 먹도록까장 강사를 만들어 놓아도 참선은 못혀.


여기에 여기 참선, 여기에 이 노장님이 다 배왔지 뭐. 화엄경 다 배워 넘기고 뭐 어째. 했지마는 늙은 말년 참선 하러 들어오셔서 화두 추켜들고 지금 화두를 한다 그말이여.
허지마는 과거에 배운 그 권중구(卷中句)가, 권 가운데 배운 그것이 무척 망상이 많이 날 것이여. 틀림없는디 뭐. 강사가 그렇게 참선한 줄 알어? 이렇게 해도 가르킬 수가 없는 참선법이여.

어쨌든지 그만 내 마음을 내가 발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내가 나 찾아야 하겠구나, 깨달라야 하겠구나’하고 툭! 듣고 발심이 턱 되아버려야, 발심을 해야 도를 닦는 거여. 천상 할 수가 없는 거여. 그래 그런 도학자(道學者)를 모아놓고 아침마당 설법(說法)을 해주는 것이여. 설법이라는 것이 인자 참선 배우는 것이여.
그러니 그 설법을 들을 때에 그렇게 그 좀 날카롭게 들으라고 내가 그렇게 내가 부탁을 하고, 그렇게 내가 귓구먹을 막 쑤셔서 송곳으로 쑤셔 가 뚫어 가지고 설법을 해주고 아! 이렇게 해도 꾸부덕 꾸부덕 자올고만 앉어 있냐 말이여. 그저 주장자로 대갈빡을 툭 한번 때리면 응, 피가 툭 터지게 했으면 시원하겠다. 마음에. 무엇이여? 거 당최 기가 맥혀.

조사관을 뚫는 참선법이다. ‘조사관을 뚫는다’고 해놨네, 여기. 응? 이것 보통 말 아니여.
‘조사관을 안다’는 말은 없어. 아는 건 외도(外道)인디 뭐. 조사관을 어디 아는 게 아니여. 조사관을 암사, 공부해 가지고 알아버리면 그만이지마는 아는 게 아니여. ‘뚫는다’ 했어. ‘뚫을 투(透)’자여.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다.

 

그게 참선 설법이란 거 이거—경(經) 새길 적에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저 때에 사위성중에 들어서 뭐 어쩌고 저..’ 거 소용없어. 설법은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여 그거. 법도 아니여. 뭣도 아니고.

아! 그렇게 청정하고 그렇게 깨끗하게 마른 냉기 같고, 차운 바위 같여. 아무리 대했자 무슨 뭐 색경(色境)켕이는 예쁜 마음켕이는 뭐 마누래, 처녀다 뭐 그런 생각도 하나도 없고,
‘깨끗한 차운 바위에 바짝 마른 냉기 비빈 것 같다’ 이랬는데 어찌 속한(俗漢)이라고 ‘이놈 속한이 놈을 갖다가서 10년 양식을 대주었구나’ 쫓아내는 원인이 어디 있냐 그말이여. 거 범정(凡情)으로는 도무지 그 어떻게 붙여서 해석할 수 없지.

아! 그런 계행사(戒行師)가 어디 있어? 그런 청정한 계행(戒行)이 어디 있어?
속한(俗漢)이, 참! 말로 헐 수 없는 속한이가 된 이치가 있단 말이여 거그. 그러니 온통 그때 모두 그 법문을 물어 놓으니깐 온통 한국에 답을 다했다 그말이여. 내가 없는 것을 말혀?


이번에 경봉당(鏡峰堂)한테 법 전허고 나와서 그걸 가지고 내가 설법 재료를 삼아 설법했는데,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날 시방 그래 놨네.
백천만 번 거다 해 놓았자 소용없어. 내가 해 놓은 것은 그대로가 법으로 딱 조직되었는데, ‘부채로 갖다가 땅을 뭉캤다’고 그러나? 부채로 뭉캐 놓으면 되간디? 아! 춘치자명(春雉自鳴)도 분수가 있지. 제 울음에 저 죽는 것도 분수가 있지, 말이 되냔 말이여 그것이. 그거 다시 되어야 되아. 큰일났다 그말이여.
그거 다 신문에다 내 놨네. 허! 나 웃고 있어 시방.

(경봉당이) 원상(圓相)을 뭉캐서, “아니니라. 거다 묻어라” 묻으라고 허니까, 다시 “하! 내가 알았다”고 고함쳐.
“그러냐”고 다시 끄집어다 물으니께 대답을 옳게 해서 “어떠냐?”하니 점두(點頭)를 척 해서, 그러고 나는 나왔는디. 그 뒤부텀 말을 들으니깐 한마디도 허담(虛談)이 없이 그대로 앉어서 보광전(普光殿)에서 뭐 당최 무슨 뭐 문답 (問答) 한마디 헌 바 없고, 확철히 그만....

(경봉당은) ‘그런 일이 없었다’
내가 그래 놓은 것이 나쁘단 말이여? 그게 거짓말이란 말이지? 그 거짓말이면 지금 뭣허고 앉었는고? 나, 하도 우스워서 말도 하지 않고 있어.

그래야 되지. 원상을 때려 뭉캐니... 왜 원상을 왜 뭉캐냔 말이여? 왜 원상을 뭉캐?
인제 봐. 깨달라 가지고 보란 말이여! 왜 원상 뭉캔게 뭐여? 원상 뭉켄게 그게 뭐 법이여?

오! 고불(古佛)도 미생전(未生前)에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이니, 고불미생전에 응연일상원까장 확 없애버린게 옳다! 공(空)도 유(有)도 비(非)도 뭐 유(有)도 무(無)도 없이 홱 한번 쓸어버린게, 좋지!
응. 막도무사(莫道無事)이 호(好)타. 차라리 막도(莫道), 일 없다고 이르지 않는 것이 옳지. 한 방맹이를 내렸거들랑 방(棒) 준 처리를 해야지. 택도 없는 놈의 소리. 내가 거짓말했구만?

두고두고 보지. 역사에 올랐으니 두고두고 봐. 법문에 다 들어 있으니께. 눈 밝은 학자들이 다 볼 낀께.
꼴도 없는 놈의 소리. 말할 것이 뭣이여? 왜 제 울음에 저 죽냐 그말이여.

그때 당시에 원청 법광(法狂)이 되었으니까, 자기가 몰라 가지고 그때 당시에.
아, 그러다가서 나중에 턱 그래가지고는. ‘보광전 조실에 있었다’고 누가 그랬나, ‘조실 방 앞에서 그랬다’ 그말이지.

아! 그러고 보광전 막 뜰 앞에서, 가을인데 그때 뜰 앞에선데.
언제 내가 구산 스님을 그렇게 가서 구산 스님 찾아 들어가서...  구산 스님인가? 뭐여? 구하 스님인가? 구하(九河)스님! ‘구하 스님 방 앞에 가서 둘이 했다’고 했어.
누가 해? 내가 둘이 해? 내가 구하 앞에 내가 찾아가 둘이 내 그 법문을 했으면 구하가 알 것인가? 말도 아닌 놈의 소리 해놨다 그말이여.

내가 끌려갔지. 하도 오라고 해서 끌려 내가 들어갔지. 내가 혼자 자작으로 글쎄 가 했구만?
말이 당최 막... 난 입도 안 벌릴 것이여. 말할 것도 없어.

하도 내가 고마와서 ‘하! 그러시냐’
‘그렇다’고. 서로 그러나 그 말 하나 똑 해보고. 그러기에 참 탁마상성(琢磨相成)이지.(19분5초~35분49초)





(3/3)----------------

내가 이 공안은... 자, 이놈만 내가 일렀는가?
내가 ‘달다’는 놈을, 천하가 다 물어서 ‘달다’는 놈 이른 놈, 내가 도장원(都壯元) 안 했는가.

응, 별소리 다 일렀지.
매달려 있을 적에, 그 샘 언덕에 달려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꿀 받아먹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살아가겄냐?

별소리 다, “아야, 아야!” 언제 ‘아야 아야’ 할 겨를이 있어서 ‘아야 아야’ 혀? 꿀 받아먹는데.
응, 그 무슨 뭐 별 답이 다 있어. 별별 답이 다 있어.

아! 꿀 받아먹으며 어떻게 해야 살아가겄느냐?
“달다!” 내 한마디 일르는 놈이 그놈이 그 들어보면 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꿀 먹는 놈이 그 ‘달다’ 소리 한마디 한 거 뭔가?
허지마는 당시의 선지식(善知識)이 한목 인가(印可)여, 한목. 지금 뒤로 듣고라도 누가 시비(是非)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시비하면 어쩔 거여, 제가 제 죽지.

이놈 응, 어떻게 했으면, 어떻게 “이럴 때 어떻습니까?” 물을 때 뭐라고 답해야 혀?
뭐 처녀를 그만 그때 ‘처녀하고 한번 살겠다’는 사람이 다 있고, ‘처녀하고 내외가 된다’는 사람이 다 있고, 뽈대기 댄 사람이 다 있고, 뭐 별 답이 다 있어.

그건 안 되아. 촉이여. 여의고 답했자 안 되고, 즉해 가지고 답했자 안 되아. 밀어내도 안 되고 소용없는 거여. 어쩔 것이냐, 어떻게 헐 것이냐? 이 말이여.
이게 공안(公案)이여. 이런 공안이라는 것은 말로 아무리 이치를 때려 붙여서 해 봐, 된 법이 있는가?

공안은 수투(須透)다. 모르미 뚫는 것이다. 이걸 잘 들어.
천하 없이도 공안 하나를 뚫지 못하면 생사(生死)는 응, 면(免)켕이는, 생사를 면켕이는 생사를 짊어지네.

조사관 뚫기 전에는 타락 없는..  모두 환(幻)이여. 응, 모두 환이여. 지환즉리(知幻卽離)는 못 되아.
‘환(幻)인 줄 알면 여의어라.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방편이 없느니라’ 아! 부처님도 이래놨네. 오직 해야사 당신 깨달은 도리를 이렇게 말씀을 해놓았어.

그러고 허다 허다 못혀 가섭한테 뭐라고 뵈일 도리가 없고, 뭐라고 설헐 도리가 없으니, 일러라!
허! 가섭은 어찌 다행히 그 도리(道理)를 바로 봤던지 미소를 했네. 피익 씨익 웃었다 그말이여. 미소를 했네.

‘옳다! 가섭아. 참, 가섭아! 백만중(百萬衆)이 위요(圍繞)다마는 백만중이 위요를 했다마는, 승당자(承當者)가 너로구나. 깨달은 자가 너로구나’ 이래 주었네.
바로 말해야지 어쩔 것인가? 바로 말 안 해주고 어쩍 헐 겐가?

‘가섭아 옳게 알았다. 승당자가 네로구나’
요러헌 인가가 딱딱 없어 가지고 되아? 그놈이 도둑놈도 아니지. 제 눈깔 멀어 가지고 남 가르킨다고 앉어서 선지식 노릇허고 앉었어? 백천만 군인을 다 가지고, 천만 제자를 다 가지고 있으면 뭣혀? 더 점점 더, 더 갖다가 망해 놓지.

당시에 월봉이 뭣했어? 월봉이 뭣하는 거여, 당시에. 월봉 하나 그 내비두었다가는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라는 것은 거기서 매장이여.
월봉도(月峯道) 하나 되아버리고 말았지. 그런 유사교(類似敎)교. 월봉이 제가 부처 되아 버렸지.

지금에 이 말세에 사방서 모두 일어나 가지고 도인(道人) 일어나 가지고 도인 천지가 된께, 막 몇 종(宗)이 다 벌어지고 별짓 다 되니께, 아주 그만 교(敎)가 모두 번성되고 굉장한 것 같지. 정법(正法)에는 소용없어. 정법에는, 우리 정법학자라는 것은 여기에서 바로 믿고, 여기에서 바로 닦고, 정법 종자가 여기서 막 드리 출현해서 나와야 되지.

아무때나, 그저 그만 제가 어떻게 좀 잘 생기고, 좀 계행이나 똑똑하고 말도 좀 잘하고 경(經)깨나 아니까 뭐라고 입 벌리면은 ‘하이고! 스님’ 믿어 가지고 그만 ‘우리 큰스님이 제일이다’ 또 그다음 ‘큰스님이 제일이다’ 또 나와 ‘큰스님이 제일이다’ 요래 가지고 집단적으로 스승 맨들아서 제가 즈그들이 모두 맨들아서 인가도 없이 즈그들이 맨들아 가지고 받들고 있는 거, 뭣 혀? 그 뭣 헐 거여 그것이?

여시란 놈이 온 골짜기서 그만 제가 그만 모두 새끼 뒤집어 나가지고 온 골짜기에 여시 새끼가 꽉 들이찼으니 그 뭣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필경 그 뭐 사자나 호랑이 같은 거 하나 들어가면 다 그까짓녀러 거 어디로 도망 가, 다 밥 되아 버리고 말 것이지.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이렇게 이렇게 나오기를 몇 번이여. 몇 번 외도한테 들어가서 멕힐라다 도로 나오고 도로 나오고. 나왔지마는 우리 지금 이와 같은 정법이 어디가 머물러져 있나? 지금 우리 한국에 있다 그말이여.
장하지. 우리 한국에 시방 그 법이 있으니 참말로 장하지. 우리 수도(修道) 학자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도 닦아 나가는 참 이 수도 학자의 그 귀중허기가 지금 어떠헌고? 지금 약존약망(若存若亡)으로 그 씨갓이 종자가 지금 여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겄는고?

그 활구(活句) 참선(參禪)하는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조사관을 뚫어라.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니라. 묘오(妙悟)라는 것은 심로(心路) 끊어진 것을 묘오라 한다.
중생이 심로가 끊어져? 우리가 지금 심로가 끊어졌나? 어디 만날 그저 앉으면 그저 이 생각 요래 요래, 저래 저래 요래. 이 심로(心路)가 끊어졌어? 맨 놈의 심로.

그 부처님은 없나? 부처님은 깨달으면 그게 없어? 부처님은 심로가 아니라 각로(覺路)여. 그놈 어두운 놈이 광명 되아 버렸어. 중생은 밤중이 되어 가지고 있는디 부처님은 대낮 백주(白晝)가 되어 가지고 있어.
어두운 놈이 어디 간 곳, 온 곳 있나? 그대로가 광명체지. 어두운 놈이 광명이지. 광명 그놈이 또 어두워져 버리면 매(昧)해 버리면 어두워져 버리는 거.

활구(活句)가 있다마는, 사구(死句)라는 것은 참선에 그 붙도 못헌 것이여, 그녀러 것은. 뒈진 참선이니깐 소용없는 것이여. 그걸 가지고는 생사 하기는 간섭없다 그말이여.

아! 제대로 나와서 글 좀 잘해 가지고는 서사(書士) 되어 가지고 글 좀, 맨 놈의 써 논 놈의 글이 맨 공(空)이구만. 공 하나 알아 가지고 공(空)을 아는 게여. 알아 가지고 공을 보도 못했어. 알아 가지고는 전부 써 논 것이 맨 공이여. 뭣도 공이고, 뭣도 공이고, 뭐 공이다.
인자 술 먹어도 주색방광색부연(酒色放光色復然)이다. 술 먹고 고기 먹고 방광하고 막 지낸 게 그대로가 다 색(色)이고, 그대로가 다 공(空)이고. 요래 놓고 견성이라고 해 가지고는 야단쳐.

내가 누구라고 어떤 사람이 그런다고 내가 그런 말 하나? 그러헌 종자가 있으면은 불법 망하는 것이고, 그런 종자가 없는 게 아니라 있고. 그렇다 그말이여.
그렇지마는 내가 ‘아니다, 기다’ 뭐 쫓아다니며 시비해 놓을 것인가? 나는 부처님 정법대로 부처님 설법대로 나는 고대로만 딱딱 진묘(眞妙)만 거다 가려 내가 놓지. 어떤 것은 진(眞)이요, 어떤 것은 가(假)요, 어떤 것은 외도(外道)요, 어떤 것은... 이런 걸 내가 말해 놓는 것이지. 그거나 뭐 법문이 무엇인데?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하면—이 조사관, 그 「이뭣고?」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한 번 파(破)혀. 툭 깨버려. 조사관도 뭐 그대로 두나? 그놈을 파해 버려 그만. 툭 깨버려 그놈을 그만. 조사관을 불투하면, 뚫지 못할 것 같으면은 심로(心路)는 부절(不絶)이다. 심로(心路)라는 건 끊어지는 법이 없어.

중생의 심로가 어디 끊어지나? 또 중생의 심로가 끊어지면 토목(土木) 와석(瓦石)같이 돌같이 이럴 것인가? 그걸 끊어졌다 하나?
심로 끊어졌어도, 벌써 견성(見性)허면 심로 끊어졌어도 거기에는 막 설법이 나오고, 설법이 운기장공(雲起長空)처럼 막 나오는 것이지.
그대로. 그대로 그 중생 업이 중생 식업(識業)이 거기에 붙들 못허는 것이고, 그대로가 모두 조사(祖師)의 말후구(末後句)가 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의 법이란 그려.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허여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서 세간상(世間相)이 그대로 상주(常住)해 있지,
떼고 여의고, 어두운 놈은 컴컴헌 밤중 어두운 놈을 씻거 버리고, 어떻게 없애 버리고 밝은 놈이 있는 게 아니여. 그 어두운 놈 자체 그대로가 그대로가 밝은 놈이여.
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 있어서, 법(法)이 법위 항상 주(住)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니라.

 

부처님이 깨달라 놓을 것 같으면은 우리 중생보담도 백천만 배 더 중생 허물, 번뇌 망상 그 경계를 더 안단 말이여. 더 알고 더 말씀하고.
그놈이 낱낱이 수은(水銀) 한 덤벵이니라. 수은 한 덤벵이. 수은 한 덤벵이 그놈, 수은 덩어리 갖다가 내 부딪쳐 버리면은 천만 쪼가리가 된다 수은이. 쓸어 모으면 도로 한덩어리 되고, 암만 갈라진 미진(微塵) 티끌만큼 한 것도 그건 수은이지, 별것 아니여.

각(覺)이라는 게 그렇다 그말이여. 여의고 있나? 떼고 없애고 있나?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하면은, 조관을 뚫지 못하면은 심로(心路)는 없어진 법이 없으니 심로가 그대로 중생견(衆生見)이요, 중생견 그대로가 지옥고(地獄苦)다. 그놈이 지옥고여.
그놈이 곧 지옥이고, 그놈이 아귀고, 그놈이 축생이고, 그놈이 뱀이고, 구렝이고, 소고, 말이고 그런 거지, 뭐 그놈 여의고 있나?

중생 경계라는 것은 전체가 모두 응, 천만상 분별 전체가 그런 것이 중생. 아! 그놈 그만 그 누견(陋見), 그 숭악한 누견이 말하자면은 그 좋은 그 금은보석 속에는 그런 보배인데, 이놈 껍데기에 가서 무엇이 그리 찡겨서 찌어 있는지 때가 꽉 찌었다. 암만 해야 벗겨지지 않고 찡겨 있다.

아! 그놈을 그 화닥딱 벳기는 법이 있어. 벳겨 놓으면은 그만 속에 그 금광(金光), 그 참 금은보석이 아! 그놈이 그만 휘황찬란한 거와 마찬가지지. 뭐 그놈이 뭐 딴 놈인가? 광(光)만 나면 되는 것이지.

심로가 끊어지지 아니하면은 이게 중생인데, 중생이란 건 진시의초부목정령(盡是依草附木精靈)이다.
다 이 풀에 의지해서 모도 가서 귀신이 몸뚱이 없으면은 풀에 가서 붙어 가지고 살기도 허고, 저 돌에가 붙어 가지고서는 침 탁! 뱉으면 침이나 빨아먹고.
빨아먹기나 허나? 그놈의 게 제 업력으로써 그런 걸 추헌 걸 빨아먹지, 그거 무슨 입이 있어 빨아먹어? 고런 짓이나 하고. 그걸 부목정령(附木精靈)이락 햐.

불 때다가 내던져 버린 부지깽이 끝에 가서 붙어 가지고는 그놈이 인자 놀아나고. 조리 같은 것 이런 것 쓰다가서 내던져버리면은 진태미 밑에 있다가 썩어서 나자빠진 그런 데 가서 붙어 가지고 나돌아 댕기는 모두 그걸 갖다 의초부목정령(依草附木精靈)이락 햐.

우리가 이 몸뚱이 하나 이것 가지고 시방 덮어 뒤집어쓰고, 여기서 시방 눈깔 뭔 모두 이런 것 붙어 가지고는 별별 것을 다 알아내고, 별별 진심(瞋心) 썽, 중생견 다 내고 별짓 다하지마는,
그게, 고 몸뚱이 하나 독사 같은 것 가지고서는 그 독사 같은 망상이나 피우고, 풀에 붙어 있는 영혼이나 같은 것이여. 똑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여까장.(35분50초~51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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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수기천리~’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회우(會友)’ 참고.
*운수[雲樹] ; 구름과 나무. 운수지회(雲樹之懷).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생각할 때 흔히 쓰는 시적(詩的) 표현. 두보(杜甫)의 ‘봄날에 이백을 생각함[春日憶李白]’이라는 시에 “내가 있는 위수(渭水) 가엔 봄날의 나무, 그대 있는 강남 땅엔 저녁의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됨. (『杜少陵詩集』 권1 참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묘연하다(渺然-- 아득할·물이 끝없이 넓다 묘/그럴·듯하다 연) ; 넓고 멀어서 아득하다.
*육산포림(肉山脯林 고기 육/뫼 산/얇게 저미어 말린 고기 포/수풀 림) ; 고기가 산처럼 쌓이고 포가 숲처럼 많다는 뜻으로, 몹시 사치스러운 잔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허적하다(虛寂--) ; 텅 비어 적적하다.
*솔찬히 ; 솔찬이.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백수(白首) ; 백두(白頭). 허옇게 센 머리.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지환즉리(知幻卽離)다. 환(幻)인줄 알면 여의여 버렸다. 환(幻)에는 방편(方便)이 없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7~88.
知幻卽離라  不作方便이요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니라.

환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느니라.

(註解) 心爲幻師也요  身爲幻城也라  世界는  幻衣也요  名相은  幻食也니  至於起心動念과  言妄言眞이  無非幻也니라  又無始幻無明이  皆從覺心生이라.  幻幻이  如空花하니  幻滅하면  名不動이라  故로  夢瘡求醫者가  寤來에  無方便이라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마음은 환을 만드는 환사(幻師)요, 몸은 환의 성이라. 세계는 환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의 밥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내는 것이나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것이 다 환 아닌 것이 없다。그러므로 시작도 없는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지(不動地)이다. 마치 꿈에 창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인 줄을 알면 또한 이와 같으리라.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심지(心地) ; ①마음의 본래 자리. 모든 인식과 실천의 근거가 되는 자리. 마음이 일체 만법을 내는 것이 마치 땅에서 풀 · 나무 등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②마음자리에 본래부터 갖추어진 자성의 계체(戒體). 심지계(心地戒)와 같다. 불성계(佛性戒), 무위계(無爲戒), 무상계(無相戒)라고도 한다.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 ·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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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심(色心) ; 색욕(色慾 성적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욕구)이 일어나는 마음.
*신계(身戒) ; 몸에 지니는 계행(戒行). 모든 살생 · 도둑질 · 음행에서 영원히 벗어나 범하지 않는 몸에 관한 계율.
*심계(心戒) ; 탐욕(貪欲) · 진에(瞋恚) · 사견(邪見) 등의 사악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제지하는 계.
*칠보앵금 ; 칠보(七寶)로 장엄한 거문고.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 ;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더운 기운이 없구나’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무간하다(無間--) ; 서로 체면을 차리거나 조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허물없이 친하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사집과(四集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를 배우고 나서 수학하는 과정이다. 곧 규봉 종밀 스님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都序』), 대혜 스님의 『대혜선사서장(大慧禪師書狀)』(『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節要』), 고봉원묘 스님의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禪要』)를 말한다.
*사교과(四敎科)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에 이어 배우는 과정이다.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도리회(道理會) ; 화두를 공부할 때 정신을 차려 본참공안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일정한 사유의 틀을 가진 도리(道理)에 근거하여 ‘도리가 그렇다’하며 분별하는 잘못된 알음알이. 회(會)는 이해함, 분별함, 알아맞춤 등의 뜻.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전강 스님과 경봉 스님의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법거량.

[참고]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경봉 스님께서, 지금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계신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처음에 깨달으셨을 때, 바로 마치 그때 거기에 당도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경봉 스님보다는 훨씬 연세가 아래였었지마는 바로 이 마조원상의 공안을 경봉 스님께 물어 가지고,
처음에는 경봉 스님께서 그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켔습니다. 거기에서 전강 스님은 “당장 이 송장을 끌어 묻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거기에서 한참 눈을 웅큼하게 해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 경봉 스님께서 “이제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해서 그때 보시니 아까의 경계와 판연히 달라서 경봉스님을 산골짜구니로 끌고가 가지고 이 공안을 다시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께서 일르셨다고 한 말씀을 금방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15분48초~17분19초)
*점두(點頭 고개를 끄덕일 점/머리 두)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  가섭기능전(迦葉豈能傳) ;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2.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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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원(都壯元) ; 장원(壯元). ①예전에, 과거(科擧)의 갑과(甲科)에서 일등으로 급제하는 일이나 그 사람을 이르던 말. ②글을 제일 잘 지어 성적이 첫째임. 또는 그런 사람.
*달다 ;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의 물음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켕이 ; ‘커녕’의 사투리.
*커녕 ; ①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②체언의 뒤에 붙어,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백만중(百萬衆)이 위요(圍繞)를 했다마는, 승당자(承當者)가 너로구나. 깨달은 자가 너로구나’
[참고]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50, 57 참고.
〇三世諸佛  歷代祖師  留下一言半句  惟務衆生超越三界  斷生死流  故云  爲一大事因緣  出現於世  若論此一大事  如馬前相撲  又如電光影裏穿針相似  無儞思量解會處  無儞計較分別處  所以道  此法非思量分別之所能解  是故世尊  於靈山會上  臨末梢頭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毛竅  盡底掀飜  雖有百萬衆圍繞  承當者惟迦葉一人而已  信知此事決非草草

삼세(三世)의 부처님들과 역대의 조사들이 남기신 한마디 말씀이나 반 토막 글귀라도 그것은 오직 중생들이 삼계를 초월하여 생사의 흐름을 끊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했다”고 하셨다.
만일 이 일대사를 논하자면 마치 달리는 말 앞에서 씨름하려는 것과 같고 번개불빛에 바늘귀 꿰려는 것과 같으므로 그대들의 사량(思量)으로는 알 수 없으며 계교하여 분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맨 마지막에 이르러 삼백육십 골절(骨節)과 팔만사천 털구멍까지를 죄다 드러내 보이시니 백만 대중이 둘러싸 있었건만 아는 이는 오직 가섭(迦葉) 한 사람뿐이었다. 참으로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줄 알겠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약존약망(若存若亡) ;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함.
*씨갓 ; ‘씨앗’의 사투리.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참고] 『무문관(無門關)』 (무문 혜개 스님)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絶=絕(끊을 절).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게송)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누견(陋見 좁을·천할·조악할 루/볼·나타낼 견) ; 좁은 생각이나 소견. 하찮은 의견.
*부지깽이 ;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거두어 넣거나 끌어내는 데 쓰이는 가느다란 막대기.
*조리(笊籬) ; 쌀에 섞여 있는 돌과 뉘를 걸러내기 위해서 쌀을 이는 데 쓰는 도구. 가는 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결어서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손잡이가 기다랗게 달렸다.
*진태미 ; ‘①먼지, 묵은 때, 찌든 때. ②진눈깨비’를 뜻하는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402)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No.402)—1989(기사년)동안거 결제 법어(89.10.15.) (용402)

 

약 16분.

 

염기염멸(念起念滅)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인자 생사심(生死心)이고, 생사심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게 되는 것인데,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만 잡드리 가지고 화두(話頭) 들고 나가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거든.

 

그래서 방부를 들이고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네와 보살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거나, 자리에 참석을 하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생활하시면서도 항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생사심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잡드리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그게 바로 입선(入禪)이고, 그것이 바로 방부(房付) 들이고 정진하는 것이여.

 

설사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해도,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을 잡드리하지 아니하고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잡담이나 하고 번뇌 망상 속에서 그럭저럭 지낸다면 방부들인 본의가 하나도 없는 것이여.

문제는 공부를 얼마만큼 잘하냐 하는 것은 앉어서 많이 버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요, 잠을 자고 장좌불와(長坐不臥)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고 벙어리 흉내만 내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여.

 

일체처 일체시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잡드리해 나가느냐. 바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의 즈음해서 화두를 잡드리를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가, 바로 정진을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 하는 판가름이 나는 곳이여.

그래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순일무잡해지면 생사심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기멸심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여. 기멸심(起滅心)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적적(寂寂)하다 그러거든.

 

적적한 가운데에 화두가 없으면그것이 아무리 적적(寂寂)해서 망상이 끊어졌어도 화두가 없으면, 없는 의단(疑團) 독로(獨露)하지 아니하면 그건 무기(無記) 떨어진 것이거든. 무기에 떨어져 가지고는 몇억 겁을 지내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기멸심(起滅心) 끊어져서 적적(寂寂) 가운데에도 의단(疑團) 떠억!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하거든.

 

의단이 어떻게 독로하냐?

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눈을 박어야 하되, 힘을 쓰고 용을 가지고, 이마에다가 ()’자를 가지고 그냥 머리에다 힘을 가지고 나가는....

초학자(初學者) 대부분 간절(懇切) 의심을 하라고 하니까간절히 한다 하는 것이 이마에다 힘을 주고 하거든. ‘이뭣고!’ 그러는 것이 아니여.

 

떠억! 몸은 단정하니 하되, 어깨와 목에 힘을 빼고, 눈의 힘도 빼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고서 없는이뭣고?’

화두를 단전(丹田), 배꼽 밑의 단전에다가 화두를 거기다가 두고서,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볼록했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그래서 호흡에 따라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느껴야 .

 

느끼되, 화두는 언제 드느냐 하면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배는 차츰차츰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은 스르르르 조용하니 코로 나가는데 나갈 때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숨이 나가면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되, 들어마실 너무 빵빵 하니 들어마시지 말고 칠부(七部)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셔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뭣고 의심이 단전에 가서 있어야 된다 말이여. 이마에 가서 있어서는 . 이마에다가 화두를 두고, 용을 쓰고 했다 하면은 나중에는 골이 아파지거든. 그래 가지고 상기병(上氣病) 일어나는 수도 있고 해서 큰일나는 것이니까.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 하고, 화두를 드는 가지를 처음에 그것을 알아 가지고, 그걸 지혜롭게 올바르게 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적적(寂寂) 가운데에도 화두(話頭) 불매(不昧)해여. 화두가 ()하지 않도록 나가면 그것이 바로 영지(靈知)거든.

적적(寂寂) 것은 공적(空寂) 것이고, 신령(神靈)스러운 것은 영지(靈知)거든. 신령스러웁게 알아. 적적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일무잡한 가운데에도 적적해야 하거든.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하고 하는성성한 가운데에도 적적해야 하고, 적적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순일해서 성성하도록 잡드리하는 . 이것이 바로 공부를 올바르게 지어 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이것이 유지가 되어 가면 공부가 불일성지(不日成之). 머지않아서 화두를 타파(打破)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

 

간략한 보제존자(普濟尊者) 법문(法門) !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대단히 요긴한 대목이여.

수행자가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잡드리해 나가면, 아까 몽산(蒙山) 스님께서 설하신 그러한 법규를 지켜나가면서 보제존자(普濟尊者)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나가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명이면 도업(道業) 성취하고만 것이여.

 

오늘 기사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일곱 사람이 계를 받고, 많은 대중이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결제를 하게 되니, 앞으로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진 철이 되도록 간절히 당부 말씀을 드리면서 게송 하나를 읊고 안거 설법을 마칩니다.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니   시비양자막수인(是非兩字莫隨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이라. 수행해 나가는 데에는 모름지기 마음 씀을 진실하게 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다. 마음만 만약 진실하면 도는 친하기 쉬운 것이다. 마음 하나가 진실하고 간절하면 바로 도는 친하기가 쉬워. 바로 도는 거기에서 일취월장(日就月將) 거여.

마음 하나가, 용심(用心) 하나가 참되지 못하면 아무리 걸망을 지고 선방으로 돌아댕겨 봤자, 10 20 30년을 댕겨 봤자, 도업에 성취는 어려운 것이여.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가지 단서는 오직자신에게 있어.

시비양자막수인(是非兩字莫隨人)이여. ‘네가 옳다 내가 옳다시비(是非) 글자는 다른 사람을 따르지를 말어라. 시비(是非) 미오(迷悟) 원인은 순전히 자신한테 있어.

 

대중이 모여서 이렇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날 수가 있어. ! 보살님네가 금년 겨울에 백칠십이 명이 모였으니, 동서남북 미국에서까지 모다 오시고 팔도에서 이렇게 모였으니, 연세는 칠십구 세로부터 삼십 칠십 , 육십 먹은 노보살님들이 대부분 많으시고, 젊은 분도 모다 삼십·사십·오십 모다 계시고 한데.

 

얼마나 자칫 잘못하면은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날 수가 있으나, 시비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어.

자기 자신만아까 내가 몽산 스님의 법문과 보제존자의 법문 법문을 설해 드렸는데, 그것만을 듣고 자기 단속만 잘하면 시비가 일어날 까닭이 없거든. 시비만 일어날 뿐만 아니라 공부가 잘되고,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을 것이다.

 

지금 공사가 끝마무리 단계라 집안 집밖 동서남북 사방이 온통 복잡하게 어지러졌습니다. 그래서 디딜 틈이 없어. 그리고 층계도 많고 모다 도량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고 복잡하니, 모다 보살님네들 새벽부터 저녁에까지 왕래하실 걸음 걸음을 정말 조심스럽게 옮기시고 걸음 걸음 옮기실 때마다 화두를 들고 옮기셔야 .

떠억! 화두를 들고 발부리를 살피면서 옮기셔야지, 건성으로 화두를 놓쳐 버리고 망상 잡념을 하면서 한눈팔면서 걸음 걸음을 옮겼다가는 까딱하면은 다치시고 넘어지고 그럴 것입니다. 그럴 것이니 정말 조심스럽게 걸음 걸음을 옮기시고,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잡드리를 하셔.

 

속에 무슨 생각만 가지고 진심(瞋心) 낸다든지, 원망심을 낸다든지, 불평을 한다든지, 번뇌와 망상으로 화두를 놓치는 상태에서 층계를 오르고 층계를 내렸다 하면 까딱하면 헛디디고 다치실 우려가 있어. 누구든지 넘어졌다 하면은 화두를 놓친 증거가 것입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조심을 하시기를 부탁하고, 지금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불편하더라도 그런 대로 이해를 하시고, 그럴수록에 정진을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5750~73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위에 하신 법문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〇念起念滅(염기염멸)  謂之生死(위지생사)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  寂中(적중)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  靈知(영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이르나니, 공적(空寂) 영지(靈知)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가서 성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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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관청의 공문서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칠부(七部)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80% 정도 만큼.

* ; [주로용을 쓰다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고려 스님。 법명:혜근(惠勤) :나옹(懶翁) 당호:강월헌(江月軒) 속성:(),영해(寧海)사람。 20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어른들께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으므로 비통한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에 가서 요연(了然)에게 중이 되다.

요연여기 것은 무슨 물건이냐?”

혜근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거니와 보려 하여도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요연나도 너와 같아서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스님은 그곳을 떠나서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 양주 회암사에서 4 동안 좌선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중국 원나라 북경(北京)에서 지공(指空) 뵙고 계오(契悟) 있었고, 2 동안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서 법의(法衣) 불자(拂子) 받다.

복룡산에서 천암(千巖) 선실(禪室) 들어갔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은 뒤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다。칙명으로 대도(大都) 광제선사에 있다가 1358 귀국하여 가는 곳마다 법을 설하고 1360 오대산에 들어가다.

공민왕이 청하여 내전에서 법요를 듣고, 신광사에 있게 하다。 1371 왕사가 되고, 대조계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大曹溪禪教都總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 호를 받다。 뒤에 회암사를 크게 중건하여 문수회(文殊會) 열어 낙성(落成)하다。 1376(고려 우왕 2) 왕명을 받아 밀양의 영원사로 가다가 여주의 신륵사에서 입적(入寂) 세수(世壽):57, 법랍:38, 시호:선각(禪覺)。이색(李穡) 지어 세운 비와 부도가 회암사에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일취월장(日就月將 /이룰·나아갈 / /얻을·나아갈 )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고 성장함.

 

Posted by 닥공닥정

§(402)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No.402)—1989(기사년)동안거 결제 법어(89.10.15.) (용402)

 

약 16분.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지금 자리에는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광덕사 태화선원 대중, 회룡사 회룡선원 대중과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 결제에 방부(房付) 들인 금년에 용화사 법보선원에 보살님네는 백칠십이 명이라고 하는 굉장히 많은 보살님네가 방부를 들였, 선방에도 스물두 그리고 사무실 대중까지 하면은 삼십여 명이고.

용주사는 열여섯 스님네가 방부를 들였, 태화선원은 열네 분이 방부를 들였, 회룡사는 여덟 분이 큰방 대중이고 그런데, 외호(外護) 대중까지 모두 합하면은 이백여 대중이 금년 삼동(三冬) 이렇게 방부를 들이 안거(安居)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법문은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錄音法門)법문을 통해서 들었지만, 어떻게 하면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碍)하고 정말 알뜰하고 알차게 정진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몽산법어(蒙山法語)』에서 아주 요긴한 대목을 한마디 설하고자 합니다.

 

만약 여기에 함께 도를 닦고자 하면 세상에 모든 인연을 끊어 버려라. 부모·형제·은사 일체 인연을 끊어야 .

 

그러기 때문에 옛날에 선방에서는부모가 돌아가셨다 하는 부고장(訃告狀) 와도 종무소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해제하고서사, 부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본인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결제 중에부모가 돌아가셨다 부고가 왔단 말을 전하면, 사람인데 어찌 마음의 충격을 받겠습니까. 그러니 공부하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거든.

그래서 부모의 부고도 일러 주지 아니했는데, 하물며 그밖에 무슨 인연이 중해서 결제 중에 편지가 오고 가고, 전화가 오고 가고, 그것을 낱낱이 일러 주고 연락을 것이냐 그말이여. 공부는 그러한 식으로 가지고는 하나 마나여. 그러니 세속의 인연을 끊어 버려라.

 

다음에 모든 집착(執着) 전도(顚倒) 제거(除去) 버려라.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생각들, 모든 지견(知見), 모든 견처(見處) 놔버려야 .

조금 마음에 견처가 있는 가지고나는 한소식했다, 나는 무슨 초견성을 했다, 나는 무슨 공안을 이렇게 봤다이러한 생각들은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여. 구경각(究竟覺)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그러한 소견(所見)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공부가 이상은 진척이 없는 법이여.

 

구경각(究竟覺) 얻기 전에는 어떠한 견처가 있고, 어떠한 소견이 있고, 어떠한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것을 깨끗이 제각(除却) 버려야 정말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무서운 줄을 몰라. 수행자들이 조금 견처 있는 것이 깨달음을 가로막는 무서운 장애의 요소가 된다고 하는 것을 정말 철저히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해서, 참으로 생사대사(生死大事) 위해서 선원의 규칙을 순응을 . 지켜야 한다 그말이여.

규칙을 지켜야 하느냐? 규칙은 자신의 도업(道業) 위하고, 다른 분의 도업 성취를 위해서 그러한 규칙이 설정이 만큼 그걸 지켜야지, 규칙을 지키면 자기도 도에 장애가 일어날 것이며, 나아가서는 다른 대중들의 도업을 장애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선원의 규칙을 지켜야 것이다.

 

모든 인사(人事) 절단(截斷) 버리고, 먹고 입고 자고 일하고 청소하고 하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서 고대로 수용(受用) 해라 그말이여.

 

그리고 삼경(三更) 제외하고는 잠을 자지 말아라. 저녁 9시에 취침을 하면 이튿날 새벽 3시에 일어나는데,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결단코 수면(睡眠) 허락하지 말어라.

물론 좀더 정진을 하고자 하는 분은 9시에 취침 시간이지만처음에 9시에는 가만히 다른 스님네와 다른 대중과 같이 자리에 누웠다가 가만히 조금도 바스락거리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서 시간쯤 또는 시간쯤 일어나서 조용히 정진을 하다가 자고 그럴 수는 있습니다마는,

다른 분들이 자고 있는데 문을 열고 나왔다 들어갔다 가지고 그렇게 다른 분에게 방해를, () 끼쳐서는 아니 .

 

그리고 불허출가(不許出街) 불허부청(不許赴請).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댕기는 . 무슨 핑계를 대고 이리 나가고 저리 나가고, 부득이해서 나가지 않고서는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입승(立繩) 스님의 승낙을 받아서 나갔다가 바로 돌아오도록 그러려니와, 문밖에 나가지 .

그리고 어느 신도가 공양을 올린다 하고 싶다고 해서, 청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함부로 왔다 갔다 또는 그러지를 말어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전에는 경전이나 어록 같은 것을 보지 말어라.

경전과 어록도 확철대오하기 전에는 보지 말어야 하거든 하물며 선방, 지대방 모다 그런 데에 잡지니 신문이니 그러한 것이 있어서는 된다. 그런 것을 가지고 수행하는 사람이 세상이 어떻고, 정부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그러한 것을 알아서 것이냐.

 

비공계청(非公界請)이어든 불허열경(不許閱經)이다. 대중 공개적으로 금강경을 읽는다던지, 반야심경을 읽는다던지 그러한 때를 제외하고는 경전도 보지 말아라.

 

지금 이것은 몽산(蒙山) 스님이 대중을 위해서 특별히 이렇게 설하신 법문이지만, 용화선원 조실 스님 생존 시에 항상 점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하게 대중을 단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용화선원이나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광덕사 태화선원도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아주 선원 청규(淸規)로써 지켜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금년부터서는 이것을 정식으로 아주 청규(淸規) 결정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산문(山門) 밖에 출행(出行) 하지 . 둘째, 경이나 잡지나 신문 그런 것을 보지 . (그리고 하나가 뭐지?) 선방 안이나 선방 밖이나 입선(入禪) 시간이나 방선(放禪) 시간이나 묵언(默言) .

 

말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가 마디 되고, 마디가 마디 되고, 입을 벌렸다 하면은 거기에서 온갖 시비가 일어나고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화두(話頭) 놓치게 되고, 나도 놓치고 남까지 놓치게 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공사가 있던지, 그렇지 않으면 다과(茶菓) 시간을 이용해서 필요한 말은 간단히 주고받고 하는 것은 모르지만, 그것도 필요한 말이 아니면 다과 시간에도 조용하게 화두를 들면서 잔을, 경건한 마음으로 잔을 마시고 과일을 공양을 하는 것도 그것도 또한 수행자다웁고 멋있고 운치 있는 일이라고 것입니다.

 

수행자가 () 마시면서 한화잡담(閑話雜談) 하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 시간에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떠억! 화두를 들면서 차를 잔을 마시면 그것도 또한 수행의 부분이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문 밖에 들랑달랑하지 . 묵언을 . 신문 잡지 모다 경전까지라도 그런 보지 .

그리고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에도 있지마는 사무실이나 후원 출입. 그거 , 선방 스님네가 후원이나 사무실 들랑거리고 그런 것은 대단히 위신상 문제도 있고, 그러니 공부에도 방해가 되고 문란해지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조심하고.

 

이러한 대중적으로 수행인으로서 지켜야 별로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사소한 같지마는 그런 것을 여법(如法)하게 함으로 해서 대중의 법도(法度) 엄숙해지고, 공부하는 데에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정식으로 채택을 해서 그것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그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방부를 들일 때부터 그러한 규칙을 엄숙히 지킬 것을 선언을 하고, 서원을 하고, 맹세를 하고, 그것을 지킬 있는 사람만 방부를 받고 방부를 들이고, 일단 방부를 받고 결제를 이상은 이러한 청규를 모두 엄숙히 지켜서 철을 무장무애하게 성만(成滿)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4154~574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위에 하신 법문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〇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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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房付 ·거처 /·부탁할 )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외호(外護) ; 불법(佛法)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

*안거(安居 편안할 ,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부고장(訃告狀) ;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전도(顚倒) ; ①바른 견해·본연의 상태의 반대인 . 우리들의 미혹하여 있는 견해. 진리에 어긋나는 . 거꾸로 생각. 그릇된 생각. ②사전도(四顚倒). 일체 세간의 무상(無常), (), 부정(不淨), 무아(無我) 진리와 배반(背反) 견해를 취하는 . ③넘어지는 . 뒤집히는 .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견처(見處) ; (틀린)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 집견(執見,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 일어나는 장소. 유루법(有漏法) 다른 이름.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 견해, 세계관이라는 .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없다. 구경각(究竟覺)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 가리킨다.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제각(除却) ;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없애 버림.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 이부자리,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몽산(蒙山) : 남송과 ()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산문(山門) ; 사원(寺院 ) 말한다. 산사(山寺)라고도 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들랑달랑 ; ‘들락달락(자꾸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양)’ 사투리.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가지의 글을 합쳐서 권으로 엮은 .

《계초심학인문》은 불교에 입문한 초심 행자가 알아야 범절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발심수행장》에는 수행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적혀 있고, 《자경문》에는 수행인이 스스로 일깨우고 경계해야 내용이 담겨 있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 아울러 이르는 .

 

*성만(成滿) ; 원만(圓滿 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하게 성취(成就)하는 . 실현함. 달성함.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 (세등09)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법문(法門)이라고 허는 것이 입으로 설헐 것이 있고, 귀로 들을 것이 있는 법문은참법문이라고 수가 없어.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설() 없이 법을 설해야 하고, 들은 바가 없이 들어야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대중스님네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자주자주 들으면서 정진을 애써서 오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이기 때문에 법문을 설사 설한 있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설한 없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자주 듣고 자주 채찍질을 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신심을 일깨우고, 나태(懶怠) 빠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을 가해 나가야 우리의 목적 달성을 단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진(精進) 하는데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써야 하며, 정진을 여법(如法) 나가면은 차츰 우리의 경계(境界) 어떻게 진취있게 나가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가지고 좋은 경계가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계를 살려 나갈 모르고, 애써서 도달한 좋은 경계를 살리지 못하고서 거기에서 그릇 빗나가 버리는 애석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경지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알고 거기에 집착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벌써 결제(結制)—어떻게 지냈는지 반살림을 지내고, 앞으로 해제도 20여일 밖에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러헌 말씀을 택해 왔습니다.

 

 

정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에 의심(疑心)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종(一種) 하고, 말을 하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애를 쓴다고 해도 본참공안,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본참화두에 의심이 없다고 하면은 정진은 옳은 정진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에 의심이 있어야 반드시 크게 깨달을 수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 문제라든지 그밖에 천칠백 공안은 말할 것도 없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루에는 수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있어서 의심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심을 허기로 하면은 보고 듣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의심 아닌 것이 없어. 의심, 의심, 한량없는 의심을 똘똘 하나로 뭉쳐서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면서 정진을 하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본참화두에 간절(懇切)하고 돈독(敦篤) 의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간절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다.

 

법문이 비단 녹음된 조실 스님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것만이 법문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발심을 하고 신심을 일으킨 사람은 바람 부는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고,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건 또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흔들어 놓는 일이건, 그러헌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올 있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일으킨다면은 법문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아니한 , 이것이 우리 정진에 있어서 가장 병이다.

모든 인연세속에 대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중생활 나가는데 있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일체 인연을 놔버려. 누가 잘하건 못허건 그것에 말려들어서는 벌써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못허는 것을 봐도 화두를 들고, 누가 아픈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일체 인연을 놔버리고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하루 종일 다맛 자기 화두를 들고 들고, 생각[別念] 일어난 알면 생각 버릴려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으로 화두를 ! 들면 되는 것이다.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해야 하지마는 있으면은 앉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져나가는 것이 가장 힘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면 앉어서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느냐? 지나치게 눈을 ! 부릅뜨고 억지로 힘을 써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지나치게 몸뚱이를 억제하고 구속하고 무리하게 몸뚱이를 다루어도 되는 것이다.

공연히 헛심을 들여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치게 몸을 억누르고 구속을 가하면은 혈액이 혈액순환 하는 데에 이상이 생겨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그밖에 혈기(血氣) 고르지 못한 병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맛 단정(端正)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무자(無字) 허는 이는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혼침(昏沈) 가지고 꾸벅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한두 소리내어) 화두를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5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5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 소멸(消滅) 되고. ‘마가 소멸된다 것은 혼침도 그것이 (), 산란심(散亂心) 그것도 ()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 안에서 일어나는 (), 모든 것이 (), ()라고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

 

그러니 ()라는 놈이 북적북적하고 그러면은 눈이 안정이 되는 것이고, 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뚱이도 안정이 되아서 괴롭고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때에 이렇게 () 들어갔을 때에, 정에 들어간 고요한 것으로서 능사(能事) 삼아서는 안되아. ‘ 좋다. 이러헌 경지가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벌써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렇게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되고 해서 말로 없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화두를 잊어서는 된다. 그럴 때에 화두를 깨끗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만약에 그러한 고요해진 경지에서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 데에 잠기고, 적적한 데에 () 가지고서 아무리 그러한 경지로 오래오래 나간다고한들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 되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다맛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리만을 말씀을 하셨지, 이렇게 고요한 () 들어가지고 신통(神通) 나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일체 말씀을 하시지 했다.

 

헌들(?) 그래 가지고 오래 지내면은 뭣이 알아지기도 하고 신통도 나고 틀림없이 그런 것은 그렇지마는 견성(見性) 하지 못하고 신통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러헌 신통이 먼저 나는 사람은 그것은 외도(外道), 그것은 벌써 삿된 길에 떨어진 사람이라, 자기도 생사해탈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까지 그르치고 외도 마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목 고요하고 조촐해질 화두를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놓지 아니허되,

있으면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는 것이 아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앉어서 하루에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밖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항시 앉어서 단정히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고, 그러다 잠이 오면 일어나서 바람 쐬고 들어와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혼침에 떨어져 가지고도 계속 일어나지도 않고 앉어서 조는 것으로서 정진을 삼고, 앉아 있는 것에 집착을 가지고 그러헌 정진도 옳은 정진이 아니다.(처음~2051)

 

 

 

 

 

(2/3)----------------

 

이렇게 공부를 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공부가 잘된 같지 아니하고, 계속 몸도 괴롭고 마음도 답답하고 이래서그런데 그럴 때에 공부가 안되는 알고 대단히 번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데,

깨끗이 깨끗이 잘되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맑지를 못하고 몸도 뒤틀리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럴 때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좋은 중요한 고비인데,

좋은 고비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서 공부가 못된 알고 몸부림을 치고 번민을 하는데, 고비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막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그럴 때에 아까 말한 대로 살며시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서 맑은 공기도 쐬고 그렇게 포행(布行) 거니는 가운데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야 고비를 참으로 올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되지,

공연히 번민하고 화두도 놓쳐 버리고 몸부림치고 공부를 그럭저럭 번민으로써 넘어간다면은 애써 공부해 가지고 참으로 좋은 고비 넘어갈 데에 가서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 된다 그말이여.

 

아주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러한 고비를 수없이 차례를 그러헌 고비를 넘기고 나면은 인자 수월하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가 되아가.

그렇게 얼마 동안 나가다가 ! 변해 가지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에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가지고 지혜스럽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서 고비를 넘기고.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성성적적하게 순일하게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 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답답허고 지루하고 몸과 마음이 덤덤하고 답답하고 멍멍하고 이러헌 고비가 오드라도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고 그래야 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 다져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를 못하고,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공부는 옳은 공부가 아니여.

어쨌든지 성성한 가운데에 공부를 나가야 하는데, 성성하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 수밖에는 없고, 고요해지면은 그것이 ()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에 가서 가지가 있는데삿된 ()’바른 ()’ 있다 그말이여.

삿된 ()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삿된 정이여. 고요하고, 일체 마음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진 가운데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 나가야 그것이 바른 ()이지, 화두만 놓쳤다 하면은 그것은 벌써 삿된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명심을 .

 

그렇게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일체 혼침과 산란심이 끊어져서 그렇게 고요하고 정한 데에 들어갔다가 일어설 때에 몸과 마음이 경청(輕淸)해서,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 화두를 들려고 하지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일체처에 공부를 애써서 단속할라고 하지 해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때에 함부로 몸을 거동을 한다든지, 함부로 큰소리로 웃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들어갔던 좋은 경지가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경지에서 아주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자세히 지혜스럽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고요하고 조촐한고요 ()’, ‘조촐헐 ()’, 정정(靜淨) 글자를 여의어서는 되는 것이다. 고요한 것이 고요할수록 고요해지면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조촐한 것이 지극(至極) 경지에 도달하면은 (), 빛이 통달(通達)하게 된다.

 

기운(氣韻) 엄숙해지고 맑아지면은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 우리의 움직임일체 행동, 생활 경계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은 가을 하늘과 같아서, 새파란 가을 하늘에 구름 없는 상쾌하고 깨끗하고 새파란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은 그러헌 경지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첫째 과정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경지를 타서 공부를 단속해 나가야 한다.

 

가을 들에 가면은 농사도 짓고 맑은 물이 출출출출 출출출, 깨끗한 가을 들에 나가면은 가을 들물이 흘러가는데 그러한 가을 들물과 같고, 오래된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그러한 경지, 그래서 적적하고 성성해서 우리의 마음길이 끊어진다 그말이여.

일체 번뇌 망상이 저절로 끊어져 버리고, 일체 혼침도 거기에서는 물러가 버리고, 심지어 우리의 육신이... (녹음 끊김)(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들려 있다 그말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체 우리의 중생의 티끌이 쉬어 없어지고 (), 빛이 발하게 된다. 이것이 둘째 과정이다.

 

만약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가지고 지각심(知覺心) 내면은—‘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깨닫기를 기다리는, 생각이라도 그러헌 생각을 일으키면은, 알기를 기대한다든지, 깨닫기를 기대한다든지 이렇게 되면은 순일(純一) () 끊어버린 것이 되어서 ()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이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지각심을 일으키는깨닫기를 기다린다든지, 뭣이 알아지기를 기다린다든지, 무슨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그러헌 지각심만 내지 아니하고,

오직 동정(動靜) 일여(一如)하고, 오매(寤寐)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해서 마치 깨끗한 물에 달빛이 비치면은 아무리 물결이 일어나도 활발발(活潑潑) 달빛이 변함이 없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흔들어도 우리의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해.

 

외부로부터 어떠헌 충격을 받드라도 순일무잡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보고 듣고 느끼고 간에 경지가 조금도 지장 없게 되어서, 안으로도 적적해서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면 이것이 셋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 터지면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날이 머지않다 그말이여.

 

셋째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자기 자신도 공부 지어 나가는데 있어서 지혜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공부를 나가야 하지마는 주변에 있는 대중들도 역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벌써 밖으로 보면은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면은 밖으로도 보면은 아무라도 보면은 아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을 자꾸 찝쩍거려서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도록 하면은 죄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서로서로 서로서로 보호를 하고 아끼고 조심하면서 공부를 닦아 나가야 된다.

 

그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일으킬라 해도 일으켜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어떤 충격을 가해도 동요함이 없이, 이렇게 저절로 그렇게 되아 가는 , 그것이 셋째 과정인데, 셋째 과정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주일, 오래가도 일주일 가서 결국은 의단(疑團) ()하면서 확철대오 한다.

과거에 고봉(高峰) 스님도 그러헌 과정을 겪으셨고 그밖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러헌 경지를 거쳐서 깨달으신 분이 많은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마치 계란이, 닭이 알을 21 동안을 품고 있게 되면은 안에서 병아리가 차츰차츰차츰 거의 병아리가 되었을 때에 기일이 ! 차면은 밖에서 애미가 좃고,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 좃고 것이동시에 안에서 좃고, 밖에서 좃고 해서 ! 터지게 되면서 병아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맷돌을 무거운 맷돌을 아래짝과 위짝과 맞추는데 있어서 좀해 맞는다 그말이여. 이리 쪼금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허다가 찰크닥! 우아래짝이 맞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 자기를 깨닫게 되고 불조(佛祖) 득인증처(得人憎處) 잡아 ()하게 된다.

 

불조(佛祖)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일대사(一大事)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지마는 불조의 허물이 하나가 있다.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제호를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오후(悟後)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외도 마구니가 되어 수도 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2052~4004)

 

 

 

 

 

(3/3)----------------

 

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 해야 하고, 불조의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 보림(保任)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한바탕 거쳐서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허지 아니하고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있는 면이 있고,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헌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그러헌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 일으키게 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말해 주어도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근기와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경지에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아따, 도인이다. 거리낌이 없고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 줄을 모르고, () ()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죽고,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

 

그리고 공부는 () 없는 것이여.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하고 인자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더이상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끝났으니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세계에 육도법계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가 자리(自利) 이타(利他) 둘이 아니고, 동시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것도 없고 () 것도 없고, () 없고 ()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별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차등(差等)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금년 겨울에 이렇게 좋은 스님네와 좋은 보살님네들이 모여서 이렇게 처음부터서 열심히 열심히 정진을 허더니마는 중간쯤에 와서 더욱 신심이 돈발(頓發)하고 여법히 정진을 하고 해제가 이렇게 가까워 올수록에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원장 스님이나 입승 스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봐도 능히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벌써 ()살림 지내면은 공부할 마음이 풀어져 가지고 공부가 되지를 않고, 하루하루가 빨리 해제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가서 애를 먹고 흔히 그러헌 것인데,

금년에 세등선원에 모인 대중은 전혀 그러헌 기색(氣色) 보이지를 않고 날짜 가는 것이 오히려 애닯고 너무 어떻게 시간 날짜가 지내간지 모르게 벌써 이렇게 지내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만큼 신심(信心) 분심(憤心)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간절해서 공부가 여법허게 잘되어간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여일 남았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지내간 동안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공부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진로해탈(塵勞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라

나무~아미타불~

 

생사해탈(生死解脫)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보통 마음으로 보통 수행해 가지고 성취할 있는 그러한 보통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話頭) 정말 알뜰히 간절히 다잽이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죽을 ()’자를 이마빡에다 붙이고 정말 철저히 단속을 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것이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매화 몽우리가 열려서 향취가 우리의 코에 들어올 수가 있다. 강추위를 허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매화꽃이 피기는 펴도 향취가 없는 것이여. 되게 강추위를 가운데에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에 피어야 매화꽃이 배나 향기로운 것이다.

우리가 되게, 간절히 그리고 골똘히 애써서 정진한 뒤끝이라야 확철대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렁저렁 그저 시시비비와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그렁저렁 지내는 가운데에 어찌 하늘과 땅을 놀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울리게 있는 그러헌 확철대오가 어찌 얻어질 수가 있겠느냐?

 

금생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 받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 헐랴면은 그만큼 철저하게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철두철미하게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간 데에서 목적 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여.(4005~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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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나태(懶怠 게으를 /게으를 ) ;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그릇 ; 옳지 않고 잘못되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p164-166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헛심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혈기(血氣) ; ①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元氣) 이르는 . ②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 ③혈액과 기식(氣息 숨을 쉬는 기운) 아울러 이르는 .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

*단정히(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흐트러짐이 없이 얌전하고 바르게.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살모시 ; 살며시(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 ; 마구니.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

*산란(散亂 흩을 ,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 : ①계()•()•() 3(三學) 하나. []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능사(能事 능할·잘할 / ) ; ①잘하는 . ②쉽게 잘해 있는 .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 곧바로[] 가리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 ②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 ③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 ④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 ⑤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 ⑥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2/3)

 

*번민(煩悶 번거로울·괴로워할·어지러울 /번민할·마음이 답답할·걱정할 ) ; 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 ; ‘울타리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수월하다 ;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아 하기가 쉽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투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지극하다(至極-- 이를·매우·궁극·극진히 ·깊을 /·다할·막다른 지경·매우 ) ; (마음이나 정성이)더없이 극진(極盡)하다(매우 정성스럽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 모셔 놓은 .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

*향로(香爐 /화로 ) ; 향을 피우는 쓰는 작은 화로.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활발발(活潑潑) : 고기가 기운 좋게 위로 뛰노는 모습.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단(疑團) ()하다 ;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의 덩어리[疑團]’ 깨지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참선법 A’ 에서.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봉(高峰) 스님 ;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담법문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애미 ; ‘어미 사투리. *어미 ; 어머니 낯춤말. ②새끼를 낳은 암컷의 동물.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우아래 ; 위아래(위쪽과 아래쪽).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3/3)

 

*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보살이 근기(根機)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 /인연·이유·연줄 ) ; ①시기인연(時機因緣)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묘할·신묘할·젊을 )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 하며, 학파들을 백가(百家) 부른다. 음양가(陰陽家) 추연, 유가(儒家)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 묵자, 법가(法家) 한비자, 도가(道家)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 설함에, 교묘하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다리 )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 디딤[]( 입장에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 ; [주로없다’, ‘않다’, ‘못하다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기색(氣色 기운 /모양··얼굴 ) ; ①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얼굴빛[]으로 드러나는 기운[]). 얼굴빛. ②어떠한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할 있게 하여 주는 눈치나 낌새.

*애닯다 ; 애달프다. *애달프다 : (마음이나 사연 따위가)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 닳도록 쓰리고 아프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게송) 진로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다잽이하다 ; 다잡이하다.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몽우리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아직 피지는 않고 망울만 맺혀 있는 ).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Posted by 닥공닥정

§(577)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No.577)—96 11 첫째일요법회(96.11.03) (용577)

 

약 15분.

 

그래서 몽산(蒙山) 스님은 만약 여기에 와서 같이 참선 공부를 하고자 할진대는 세속의 인연을 버리라 이거거든. 일가친척과 모든 인연을 끊고, 집착 전도(顚倒) 제거해 버려야 하거든.

선방에 가지고도 편지질 하고, 편지가 오고가고, 꺼떡하면 여기저기 전화가 오고 전화를 걸고, 그것이 모두 세상 인연과 집착 전도를 끊어버리지를 못한 증거거든.

 

옛날에는 한번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결제에 들어가면 부모나 은사(恩師) 스님이 돌아가셨다고 부고(訃告) 와도 결제(結制) 중에는 본인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아니하고, 해제(解制) 때까지 사무실에서 보관을 했다가 해제한 다음에사 그것을 본인에게 전달을 했다 그말이여.

 

요새도 선방에서는 그런 법도를 가급적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 그렇게 해서 진실로 생사대사를 위해서 선방의 규칙을 자진해서 순응(順應) 하고, 인사(人事) 끊어버리고,

먹고 입는 것은, 수용하는 것은 형편 따라서 밥이 나오면 밥을 먹고, 죽이 나오면 죽을 먹고, 찰밥이 나오면 찰밥을 먹고, 국수가 나오면 국수를 먹고, 만두가 나오면 만두를 먹고, 후원에서 성의껏 마련해서 공양이 들어오면 고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한다 그말이여.

 

잠은 삼경(三更) 외에는 수면을 허락하지 말아라. 일반적으로 삼경이라 하면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6시간인데, 선방에 따라서는 10시나 11시쯤 자고, 새벽에는 2, 3 이렇게 해서 서너 시간밖에 자고 정진하는 시간을 많이 잡은 그런 선방도 있습니다.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이고.

동안에 일주일씩 특별히 가행정진(加行精進)하는 시간을 두어서 그렇게 하기도 하고, 용맹정진납월팔일(臘月八日)이라든지 그런 특별한 때에는 용맹정진(勇猛精進)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마는 몸뚱이를 지나치게 제약을 하고 들볶는다고 해서 정진이 잘되는 것은 아니여.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잠을 많이 자고,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에요. 적당하니 먹고, 적당하니 주는 것이우리가 철만 공부하고 말아버릴 것도 아니고, 해제가 끝나도 산철에도 정진을 해야 하고, 다음 철도 공부를 가지고, 몸이 다할 때까지 한결같이 공부를 나가야 입장에서는.

 

며칠간 무리를 해서 잠을 자고, 일주일간 무리를 가지고 득력(得力) 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한다면, 일주일 아니라 또는 달이라도 잠을 자고 해서 용맹정진을 한다 하지만,

물론 그렇게 해서 힘을 얻은 분도 더러는 있을런지 모르나, 근기(根機) 약한 사람은 그러다가 얻는 것보다는 오히려 잃는 것이 많고, 건강을 해쳐 가지고는 평생 동안 고생하는 사람도 내가 봤습니다.

 

그래서 용화선원에서는 특별한 용맹정진은 아니하고, 항상 평범하게, 평범한 가운데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서, 9시에 자는 것이 일반이지만 처음에 가만히 자는 척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시간쯤 정진을 하고 잔들 그것이야 상관이 없는 일이고.

잠을 자는 문제보다는 있을 간절한 마음으로 생각 생각을 여법(如法)하게 단속해 나가는 것이 정진에는 훨씬 유익하다 그거거든. 잠을 적게 놓으면 그것이 쌓이면, 이튿날 정진하는 시간에 노상 꾸벅거리고 졸고 정신을 차리거든.

 

장좌불와(長坐不臥)! 그것 좋죠. 10 장좌불와 또는 30 장좌불와 그것 좋지만, 장좌불와 분을 가만히 보면 낮에 노상 졸아. 얼굴을, 코를 방바닥에다 처박고 코를 골면서 입선 시간에 그렇게 한다 그말이여. 그러느니 5시간 내지 6시간 주고, 대신 이튿날 깨끗한 정신으로 정진을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거거든.

 

그렇게 여법하게 정진을 가면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지 말자. 일주문 밖에 목욕하는 날이라고 해서 나가 가지고 시내로, 서울로 이리저리 다니다가 늦게 돌아오면 이튿날 정진에 지장이 있거든.

나가서 걸음, 걸음 다니면서 화두를 든다고 해도 하근기(下根機) 시내로, 서울로, 어디로 돌아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놓치는 시간이 많고, 돌아오면 그것이 이튿날까지 영향이 있어서 사중(寺中), 도량 내에다가 목욕탕을 꾸몄다 그말이여. 그래서 시내에는 있으면 나가지 않고도 동안을 정진할 있도록.

 

그전에는 신심 있는 신도들이조촐히 공양거리를 만들어서 준비를 했으니까 스님네가 잠깐 오셔서 공양을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정말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공양이죠.

부처님 때에도 부처님과 제자들을 신도가 청하면 단체로 가서 공양을 받으시고 법문을 주시고 그렇게 돌아오시고, 어피차 그때는 발우를 들고 나가서 걸식을 가지고, 동냥을 가지고 와서 공양을 하셨기 때문에 신도 집에서 단체로 청해서 가서 공양을 받으신다고 해도 규칙에 어긋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독으로 초청을 받은 것은 금했습니다. 부정식이라 해서 그것을 금했지만, 대중적으로 나가서 공양 받은 것은 그것은 괜찮았었지만.

 

지금 한국의 선원에서는 어느 신도가 초청한다 하면은~’하니 가서 공양을 즐겁게 맛있게 드시고, 좋은 법문도 드리고 오신다면 좋은 일이기는 하는데,

신도 편에서는 좋은 일이라, 복도 짓고, 청정한 스님네를 초청해서 공양을 올렸으니 환희심도 것이고, 업장도 소멸이 되고 청정한 스님네들이 집에 발을 디뎠다 가셨으니 집에 모다 잡귀도 쫓겨날 것이고 여러 가지가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되지만,

 

수행과정에 있는 스님네로서는 번씩 갔다 오면 먹어서 좋기는 좋으나, 잘못하면 배탈이 수도 있고 이튿날 정진하는 지장이 있을 수가 있어서 있으면 용화사에서는그전에는 그러한 기회가 종종 있었으나 여러 가지가 번폐스러워서 지금은 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확철대오 하기 전에는 경전이나 어록이나 일체의 책을 보지 말아라. 그리고 대중적으로 법당에서 금강경을 독송한다든지, 반야심경을 독송한다든지, 그러한 때를 제외하고는 경전도 보지 말아라 이거거든.

 

이렇게 전일(專一)하게 동안을 여법하게 정진을 해서 만약에 견성도통(見性道通) 하지 못한다면은, 산승이 너희들을 대신해서 내가 지옥에 가겠다

몽산 스님은 대중한테 이러한 정말 처절하리만큼 간곡한 그런 법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여법이 하면 반드시 되기 때문에 몽산 스님은 대중 앞에 그렇게 다짐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몽산 스님의 간절한 법문을 마음에 새겨서, 여법하게 정진을기왕 부모를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서 출가한 마당이면 기왕이면 그렇게 해야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리에는 많은 도반 스님네들도 법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소남녀의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비록 머리는 깎지 않았고, 출가는 했지만,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마당에서는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화두를 잡드리하고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해야 하고, 생각을 하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을 하고, 말을 하되 말함이 없이 말을 하고, 밥을 먹되 먹음이 없이 밥을 먹어라

말은 아까 몽산 스님의 법어 속에 담겨있는 그러한 법문 내용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서 하루하루를, 시간 시간을, 분을 그렇게 다져나가면 부처님의 뜻을 스스로 터득을 하게 것입니다.(3624~5055)

 

 

 

[참고] 위에 하신 법문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원문(原文). 『몽산법어』(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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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蒙山) :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 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전도(顚倒) ; ①바른 견해·본연의 상태의 반대인 . 우리들의 미혹하여 있는 견해. 진리에 어긋나는 . 거꾸로 생각. 그릇된 생각. ②사전도(四顚倒). 일체 세간의 무상(無常), (), 부정(不淨), 무아(無我) 진리와 배반(背反) 견해를 취하는 . ③넘어지는 . 뒤집히는 .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스승.

*부고(訃告)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또는 그러한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순응(順應 순할 /응할 ) ; 상황의 변화나 주위 환경에 맞추어 부드럽게 대응함.

*인사(人事) ; ①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예의로 간주되는 . ②사람으로서 해야 .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달을 이르는 . 음력 12 8.

석가모니가 35세의 12 8 샛별이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 이루던 .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안되던 것이 할라고 해도 저절로 잘되어질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힘을 얻었다(得力)’하는 .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득력이라고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 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근기(下根機 아래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소질이나 근성,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

*전일(專一 오로지 / ) ; ①마음과 힘을 모아 오직 곳에만 쓰다. (사람이나 사물이)한결같고 변화가 없다.

*견성도통(見性道通) ; 견성통종(見性通宗). 자기 성품을 보아 참이치를 깨치고 불조의 종지(宗旨) 통달한다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4/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14)—몽산24-4. 휴휴암주좌선문(4)() (갑인 74.06.08)

 

약 10분.

 

의상(倚床) 오수족(午睡足)이요  창외하일지(窓外夏日遲)니라

나무~아미타불~

소조(小鳥)는 첨단제(簷端啼)  풍송노수지(風送老樹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의상(倚床) 오수족(午睡足)이다. () 의지해서 오수(午睡) ()했다. 낮잠이 족했어.

창외(窓外)에는 하일지(夏日遲). 창밖에는 여름날이 더디구나.


소조(小鳥) 첨단제(簷端啼)헌데, 적은 새는 처마 끝에서 울고.

풍과노수지(風過老樹枝)로구나. 바람은 늙은 가지에 지내는구나.

 


여까장 ()이다. ()이라는  이렇다.

합이언지(合而言之)컨대는 ()해서 말을 헐진대는 치연작용(熾然作用)하되,

치연작용(熾然作用)이라는 것은 세상에 그저 뭣을 하든지, 아무리 역경 속에서 별짓을  하드래도  치연(熾然) 가운데에서 불타는  속이라도 정체(正體) 여여(如如)하다.  정체는 여여하다.


어디 정체(正體)가 없어질 리가 있나?  근본 당처(當處), 생사 없는  당처,  몸뚱이 끌고댕기는 주인공은 여여허다.

 

종횡득묘(縱橫得妙). 종횡(縱橫)아무리 무슨 역경 속에서 풍랑 풍파 속에서 무슨 짓을 허든지 말든지 () 얻었어. 생사 없는  해탈대각(解脫大覺) 묘를 얻었다 그말이여.

사사무애(事事無碍)를—그래서 일일이 걸림이 없는 것을, 무슨 일을 당하든지 거가 무애(無碍) . 어디가 걸림이 있나?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 청산(靑山) 어찌 녹수(綠水) 걸릴까 보냔 말이여.


감기가 들어서 당최  목이  잼겨서 말이 나와야지? 거다 이빨까장  놨으니 말이 당최 안 나와서 못허겄네. 


일일이 걸림이 없는 것을 이르되 좌선(坐禪)이라고 한다. 좌선, 참선허는 좌선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정체가정당한  , 본래면목,  대각처(大覺處)가, 깨달은 각처가여여해서 종횡(縱橫)에도 () 얻고일체 일일이 걸림이 없고, 그걸 갖다가서 좌선이라고 한다.


약언(略言)컨댄, 간략히 말을 헐진댄 여시(如是)어니와, 이와 같거니와,

상거(詳擧)하면, 자세히   같으면 비지묵(非紙墨)으로 능궁(能窮)이다. 종이와 먹으로써 능히 다할  없다. 그저 간략히말허자면 이렇다.

 


 다음에 나가대정(那伽大定)이라는 것은 ‘어찌 ()’  ()’  ()’ ‘정할 ()’.

나가대정(那伽大定),   알기 어려와. 무정무동(無靜無動)이며, 나가대정을 해석한 거여.


나가대정이라는 것은 () 없으며 () 없다. 고요한 것도 없으며 () 것도 없다.

진여묘체(眞如妙體) 진여의 묘체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

 

시지불견(視之不見)이며 봐도  수가 없으며, 청지불문(聽之不聞)이요 들어도 들을 수가 없으며,

공이불공(空而不空)이요 비었어도  것이 없으며, 유이비유(有而非有)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며,

대포무외(大包無外)하야, 크게  허공을 뒤집어  만한  대포(大包)라도 밖이 없다.

세입무내(細入無內). 아무리 가는 티끌, 터럭끝 만헌데 들어가더래도 안이 없다.


신통지혜(神通智慧), 신통과 지혜와 광명수량(光明壽量) 대기대용(大機大用) 그놈이 무진무궁(無盡無窮)하다.

인자  지경 가서는 (어디 ) 신통이 없으며, 어디 죽음이 거가  있으며, (어디 ) 광명 지혜가 없으며, 대기(大機) 대용(大用) 그놈이 무진무궁하다.


유지지사(有志之士)뜻이 있는 참선객들아! 의선참구(宜善參究)해라,  마땅히  참구(參究) 해라. 네가 너를 깨닫는법이 이렇다. 이놈을  하면  된다.

 

급착정채(急着精彩)하야급히 정신을 부딪쳐서,

니가  곳도 아지 못하고 죽어  길도 아지 못하면서, 세상에 나와서 하는 짓이라고는  밖에는 지을  모르고,  지은  몸뚱이 가지고는 그만 한번 거꾸러지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이나 삼악도(三惡途)에  거꾸러지고 마니 이걸 생각해 봐라. 어떻게 그렇게 급하게   수가 있겠느냐?


이대오(以大悟) 위입문(爲入門)이니라. 크게 깨달음으로써서 () 들어올 것이니라.

 

환지일성(㘞地一聲 화지일성) 후에는숨바꼼질 땅에 한 소리를 냅대  후에는,

환지일성이라는 것은 어린애들이 서로 숨바꼼질할 , “내가 어디  숨을 테니까  찾아라” 오냐!  숨어라,  찾으마 그래 찾다가서는 찾아 놓면은 하하!” 웃는 것을 환지라 .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내가 나를 이렇게 몰랐으니 내가 한번 이렇게 찾다가, 한번 옳게 내가 나를, 내 모양을,  얼굴을, 내가 바로 찾아 놓으면, 그만 허허!” 어린애들이 숨바꼼질을 허다가 서로 찾아서 웃드끼, 그렇다 그말이여.


환지일성 연후에 허다영묘(許多靈妙) 개자구족(皆自具足)하리니.

한번 그렇게  낯반대기를 내가 ! 찾아서 나를 깨달라  뒤에야사 허다영묘(許多靈妙), 허다한 신령스러운 () 것이  구족(具足)헌다 거기서. 깨달라 가지고는 거기서 인자 구족(具足).. 그럴 거란 말이여.


한번 깨달라 가지고는 대번에 그렇게  것이 아니라, 깨달은 후에 인자 거기에서 영묘(靈妙) 갖춰사 그렇게 된다고  했어? 이렇게 .

그런데 어찌 대번 한번 깨달라 가지고는 다시 거기에 무슨 후수지묘(後修之妙) 없다고  모도 그런 소리를 허면서, 인가가  뭐냐고 그러면서  나와서 그렇게  수가 있냐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전수(傳受) 해서 사자상속(師資相續)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  이렇게  가지고는 차츰 인가(印可)해서, ()해서 이렇게 전통(傳統) 나오는 것이 이것이 좌선법(坐禪法)이다.

좌선법은 오늘 아침에... ? 감기가 들어서 설법을 못허겠구만.(처음~1015)()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1~94

 

合而言之(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치연작용)호대  正體如如(정체여여)하야  縱橫得妙(종횡득묘)하야  事事無礙(사사무애)  謂之坐禪(위지좌선)이니라  略言如是(약언여시)커니와  舉(상거)홀진댄  非紙墨能窮(비지묵능궁)이니라

 

합해서 이를진댄 치연(熾然) 작용하되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종횡에 묘를 얻어서 일일에 걸림이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니라。 간략히 이르건댄 이렇거니와, 자세히 이를진댄 종이와 먹으로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那伽大定(나가대정)은  無靜無動(무정무동)하며  眞如妙體(진여묘체)는  不滅不生(불멸불생)하야  視之不見(시지불견)  聽之不聞(청지불문)하며  空而不空(공이불공)이며  有而非有(유이비유)라

大包無外(대포무외)하고  細入無內(세입무내)하니  神通智慧(신통지혜)와  光明壽量(광명수량)과  大機大用(대기대용)이  無盡無窮(무진무궁)하니

 

나가대정(那伽大定) () 없고 () 없으며 진여묘체(眞如妙體) () 없고 () 없어, 보되 보지 못하며듣되 듣지 못하며, ()하되 공이 아니며, ()로되 유도 아니라

크기로는 [] 없이 둘러싸고 가늚[] 들어서는 [] 없으니, 신통과 지혜와 광명과 수량과 대기(大機) 대용(大用) 무궁무진하니

 

有志之士(유지지사)는  宜善叅究(의선참구)하야 急着精彩(급착정채)하야 以大悟(이대오)로 爲入門(위입문)이니라

㘞地一聲後(화지일성후)  許多靈妙(허다영묘)가  皆自具足(개자구족)하리라  豈同邪魔外道(기동사마외도)의  以傳受(이전수)로  爲師資(위사자)하며  以有所得(이유소득)으로  爲究竟者哉(위구경자재)리오

 

 있는 사람은 마땅히  참구하야 급히 정신을 차려서 크게 깨달음으로 문에 들어옴을 삼을지니라.

‘아!’하는  소리 후에 허다한 영묘(靈妙)  자연히 구족하리라。 어찌 사마외도(邪魔外道) 서로 전수(傳受)함으로써 스승 제자를 삼으며, 소득이 있는 것으로써 구경(究竟) 삼는 자와 같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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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 성하다(--,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 ()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정체(正體) ; 바른 진리의 (). 본체. 본질. 본래면목. 주인공.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그곳. 또는 이곳.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없이 아주). .

*나가대정(那伽大定) : 나가는  또는 코끼리。 물에서는 용이 제일 힘이 세고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제일 힘이 세기 때문에부처와 아라한을 나가(那伽) 한다.

나가대정은 대용왕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으로 대용왕이 깊은 못에서 장수를 안보(安保)하여 미륵불이 출세함을 만날 원력으로 정에 들어 있는 것。 여기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관계 없이 깊은 정에 들어 있는 것을 나가대정이라 한다.

*무진무궁(無盡無窮) ; 끝도 없고 다함도 없음. 무궁무진(無窮無盡).

*참구(參究 헤아릴 ,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 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 힘쓰는 소리 화) : 배를 끄는 소리。 힘을  때에 크게 내는 소리。 물건을 잃었다가 갑자기 찾았을 때에 얼결에 내는소리。 저절로 나오는 소리。 화지일성(㘞地一聲)•화지일하(㘞地一下)등이 그것.

*숨바꼼질 ; ‘숨바꼭질(아이들 놀이의 하나. 여럿 가운데서  아이가 술래가 되어 숨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인데, 술래에게 들킨 아이가 다음 술래가 된다)’ 사투리.

*웃드끼 ; 웃듯이. ‘~드끼 ‘~듯이 뜻을 가진 사투리.

*낯반대기 ; 낯바대기('··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 속되게 이르는 ). 낯판대기.

*사자(師資) ; ①학문이나 덕행을 닦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스승. ②스승과 제자. 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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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3/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13)—몽산24-3. 휴휴암주좌선문(3) (갑인74.06.07)

 

약 17분.

 

산승무외물(山僧無外物)이요  유유천년심(惟有千年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일성안(長天一聲雁)이요  서산낙일몰(西山落日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분산승(本分山僧)은 무외물(無外物)이다. 외물이 없어.

외물(外物) 무엇이 있어? 무슨 물건이 있어? 흉중무물(胸中無物)인디 가슴에 () 없는데 뭐가 있어?

 

세상 무슨 공명, 권리, 지위  그까짓 것은 산승(山僧)은 물론  아니지마는 가슴 가운데에도 뭐가 있어?  마음 가슴 가운데에도 무슨 ?

 모도  지견(知見) 상량(商量) 그런 일체 이치 번뇌까장도  거가서 붙들 못한 것인디, 내외(內外)  외물(外物) 없는  아니라 내무일물(內無一物)이지. 밖에도 아무 물건이 없고 안에도 아무 물건이 없다. 뭐가 있나? 생사가 없는데!

 

세상에 이러헌 정법, !  , 유유천년심(惟有千年心)이다. 오직 천년심뿐이다.

천년 마음, 천년심(千年心)이면은 천년뿐인가? 백억 천년도 거기  들어 있지.

 

오직 천년심이다.  무너짐이 없는 마음, 지위 권리가 없는 마음.

 부귀영화(富貴榮華)거그는 부귀영화도 없는 마음인디, 천하에 부귀영화다. 생사가 없으니  생사 없는 상락아정(常樂我淨) 백정낙(白淨樂)이 들어있다 그말이여.

 

 

중생, 중생 모도  나를 알지 못한  중생들은 죄만 짓기 마련이다. 나면 죄를  지어 ()이다. 그저 눈만 뜨면 죄업만 짓는 것이다.

 탐심·진심·치심 탐진치(貪瞋痴) 있어 가지고는 그저 죄업만 퍼짓는 것이 중생이다. 과거 그렇게 지어 나온 업(業)도 말로  수가 없는데 금생에  그렇게 자꾸 지어 모은다.

 

그런데 우리 본분산승들은 발심 출가를  가지고는 도를 닦아 나가는데 과거 죄업을 숙업(宿業)을 자꾸 참회(懺悔)한다.

무량 다생겁래에 지은 죄를 아침마다 이렇게 참회한다 그말이여. 예불(禮佛)이  예경참(禮敬懺)이거든. 예참(禮懺)이거든. 그게 참법(懺法)인데 예참법, 우리 지금 이렇게  나가는 예참법 이외에  있어?

 

다생겁래(多生劫來) 지은 죄업을 원멸(願滅) 사생육도법계(四生六途法界) 유정다겁(有情多劫)...’ 유정다겁생래(有情多劫生來)에  지은 죄업을  참회하지 않나 그말이여.

 

 금생에  어디 이렇게 도를 닦으니까 어디 짓는가? 우리가 무슨 살생, 도둑질, 사음질 무슨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등이 있는가? 탐심, 진심, 치심 그것이 어디 있어?  짓제.

! 이렇게 닦아 나가는 우리 본분학자(本分學者)여.  만행(萬幸)하고도 경행(慶幸)하도다. () 이상 (以上) 있을 수가 있나.


장천(長天)에는 일성안(一聲雁)이다.   하늘에는  소리 기러기다. 꾸울꿀~ 날라가는 기러기. ! 그놈의 기러기  소리여.

 기러기  소리가 말후일구(末後一句) 그말이여. 말후일구를 그걸 말을 한들  수가 있나?

말후일구는 알지를 못하지. 암만 해논다 한들 깨달라서 내가 ()하기 전에는.

그놈을 갖다 써놨어. 기러기 우는  갖다 그대로  놨어. 말후구(末後句)..


서산(西山)에는 낙일몰(落日沒)이다. 서산에는 ? 낙일몰이다,  떨어진 것이다.

거가 무슨  천만 도리, 천만 이치,  무슨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그런  등등 붙일 것이 없어.

 

 

어유차별경(於有差別境) 입무차별정(入無差別定) 위지좌(謂之坐).

좌선에 나가서,  모든 차별경에, 그저 세상 일체 차별(差別)의 경(境)에서  차별정(差別定) 드는 것을, 일체 차별 경계에서 차별정에 든다.    알아들을  있을까?


크면 큰놈, 적으면 적은 , 희면 희고, 검은  그저 내지 두두물물 화화촉촉 일체 경계  차별 가운데에서 차별 없는데 들어가는 ().  차별 중에서 차별이 없지. 차별 그놈을 여의고 떼고 차별 없는  아니여.

 놈은  놈대로 그대로가 본래 ?  () () 아니니,  () () 아니니 () 가히 () 있음이 없으며,  () () 아니니 () 가히 () 있음이 없으며.

 

! () () 아니지. 그러니  () 있는 유경(有境) 유경(有境) 아니니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을 리가 있나?  무경계(無境界) 무경계(無境界) 아니니 거기에  무슨 () () 아니니 () 무슨 ? 뭣이 붙어 있나. 일체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차별경계(差別境界)에서 차별경계 없는  들어가는 것을 그것을 () 한다. 참선 하는 ().

어무차별지(於無差別智) 시유차별지(示有差別智) 위지선(謂之禪)이다.

 일체 차별이 없는 데서 차별지(差別智) 보이는 것이 그것이 ()이다.

 


! 그러면은 가는 놈도 없고, 오는 놈도 없고,  일체 경계가  없어만 버릴  같으면은  () 가지고는 뭐가 있어? 생사(生死)가 없으면, 생사 없는 그것만 가지고는 뭐여?

거기서  인자 있다. 생사가 없다마는 그대로 생사가   있지. 일체 생사 경계에서 생사 경계가 그만 그대로 붙지 못혀.

 

 우리 참선 정법이라는 것은 『이건   있다,  없다, 역유(亦有) 역무(亦無). 또한 있지마는 또한 없다. 역무(亦無)지만 역유(亦有). 또한 없다마는  있다』 이렇게  경계다 그말이여.

 

합이언지(合而言之)   같으면은모도 합해서 말할  같으면은 치연작용(熾然作用)이다.


거기에 분별상 망념상, 일체  업상 번뇌상이 () 곳에서 있다.  깨닫지 못한 미한 곳에서 이놈 중생 작업 작용이  업(業)만 짓는 작업 작용뿐이다. 생사 업장(業障)뿐이여. 합해서 말할  같으면.

 

그놈이 본래 없고, 없는 () 없지마는 유상(有相)까지도, 있는 놈까장도 없다.

하지마는 그대로가 두두물물(頭頭物物) 총가옹(總家翁)이요, 두두물물이  그저 생사 없는  도리가 바로 비유(非有) 비법상(非法相)  도리다. () 아니요 () 아니요 법상(法相) 아닌  도리여.

오직 깨달라서 () 버리면은  도리가 그대로가 그만 우리 본분학자의 근본도리여. 


어디 여의고 있나, 어디 떼고 있나, 우리 부처님께서 그렇게 다겁을 닦아서 신통 변화가 낭연무진(朗然無盡)해서 낭발무애(朗發無碍)해서 말로  수가 없지마는 평생에  신통변화  일이 없어. 변화  일이 없어.


허다가     없어 중생교화  때에는  한번  병을 앞에 놓고 끌어 보아라.” 그런 짓은 부처님이  놓고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짓이라는 것이여.

그까짓 짓이 무슨 짓이여?  하나 그거 손가락만한  하나 앞에 놓고,  군중이 몇억 군중이  들어와서 쇠줄을 걸어놓고 댕겨도 꼼짝 요동  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대로 누진통(漏盡通) () 번질  같으면은 그만 부동 경계에 앉어서는 티끌 하나도 () 않는 도리가 있다 그말이여.

그놈을  무슨 신통에다가 붙일 것이 아니라 그만 무애지경(無碍之境)에다가 붙여 보란 말이여. 걸림 없는  증처(證處)에다 붙여 놓을  같으면  들어맞어.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깨달라 정한 곳이 여여(如如)해서. 여여라는 것은 그건  말을 쎄(혀)를 내룰  없어.

정체(正體)가 여여(如如)해서 종횡득묘(縱橫得妙). 종횡득묘를 . ()으로나 무슨  ()로나, 울로나 아래로나  () 얻어 버렸어. 생사죄가 그대로 없어. 어디가 있나?

 

이러헌 우리 참선법. 종횡묘득을 해서 사사무애(事事無碍), 일일이 걸림이 없다. 이것이 (). 참말로 ().


 앉은 것이 좌착(坐着)? 가만히만 앉었으면 되아?  앉었는   무엇이여?

참으로 ()라는 것은, 좌선 뜻이 이렇다. 이게 좌선이니라. 앉어서 ()하는 것이 이렇다 그말이여.

 

약언여시(略言如是)커니와간략히 말할  같으면은 이와 같거니와, 상거(詳擧), 자세히 말을 들어서 하자면은 비지묵(非紙墨)으로 능궁(能窮)이니라. 종이와 먹으로써 다할 수가 없다. 아무리 써서 별걸  해도 다할 수가 없어.

 


우리는 이러헌 좌선을 해야지. 능묘좌선(能妙坐禪), 능증좌선(能證坐禪) 능히 () 얻고, 능히 ()허는  좌선을 해서 생사해탈을 어서 그대로 ()해야지.

()허지 못허고 견성만  가지고도그거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保任) 못해 놓면, () 못해 놓면 도로 잃어버려. 보배를 얻었다가 잃어버리면은 다시 찾지 못혀.


그건 어떻게  본래 얻지 못헌 보배는 어쩌다가  이렇게 가다오다 뜻밖에 얻을 수는 있지만, 얻은 놈의 보배를 한번 잃어버린 뒤에는 다시  찾는다.

견성을 아무리 했다 하지만 () 못할  같으면은, 도로 그만 오후재미(悟後再迷) 되어 버리면은오후(悟後) () 버릴  같으면은  후회다.  후회고.


이러헌 법이 있는 줄을 바로 알아 가지고 믿기만  놔도 거기는  무진(無盡) 보배 마니주(摩尼珠) 묻혀 있는 줄을  알고 판다. 파면은 틀림없이 거기에서 무진 보배 마니보주(摩尼寶珠) 나온다.


우리가 인자 이러한 법을 알았으니, 『내가  찾는 법』을 알았으니, 알고야   수가 있나?    없다 이말이여.

 다행하고 만행하다. 어쩌다가  법을 우리는 발견해서, 부처님께서 알려 주어서 우리는 이만큼 믿어 행해 나가니,  알뜰히 알뜰히 인자 조심조심 인자 물러가지 말아야 한다. 퇴전(退轉)하지 말아라.

 

내일 아침 법문에는 인자  나가대정(那伽大定) 법문을 하겠어.(처음~1645)()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1~92

於有差別境(어유차별경)에  入無差別定(입무차별정)이  謂之坐(위지좌)요  於無差別法(어무차별법)에  示有差別智(시유차별지)가  謂之禪(위지선)이라

 

차별(差別)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이 좌(坐)요。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보이는 것이 선(禪)이라.

 

合而言之(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치연작용)호대  正體如如(정체여여)하야  縱橫得妙(종횡득묘)하야  事事無礙(사사무애)  謂之坐禪(위지좌선)이니라  略言如是(약언여시)커니와  舉(상거)홀진댄  非紙墨能窮(비지묵능궁)이니라

 

합해서 이를진댄 치연(熾然) 작용하되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종횡에 묘를 얻어서 일일에 걸림이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니라。 간략히 이르건댄 이렇거니와, 자세히 이를진댄 종이와 먹으로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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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山僧無外物  惟有千年心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寄蓬萊子()’ 게송 참고.

*(게송) 長天一聲雁  西山落日沒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秋江別友 게송 참고.

*본분산승(本分山僧) ; 본색납자(本色衲子), 본분납승(本分衲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또는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스님.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상량(商量 헤아릴 , 헤아릴 ) ; 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 서로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 변하여  헤아려 생각함.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즐거울 / /청정할 )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 네 가지 ().

열반경(涅槃經)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 안락하므로 ()이고, 망집(妄執) () 여의고 대자재(大自在)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이고, 번뇌의 더러움을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이다.

*백정낙(白淨樂) ; 영원하고 한결같은 진여(眞如) (). 열반(깨달음) ().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참회(懺悔 뉘우칠 ,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차례에 걸쳐 ·보살(·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예참(禮懺) ; 예경참(禮敬懺).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예배하고 죄를 참회함.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 .

*본분학자(本分學者)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학자.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 ()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 .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끝의 . ③임종의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 청량국사(淸涼國師) 징관(澄觀)이 저술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서문(왕복서 往復序)에 나오는 구절.

[참고] 故我世尊이  十身初滿에  正覺始成하야  乘願行以彌綸하시고  渾虛空爲體性하시니  富有萬德이요  蕩無纖塵이로다

그러므로 우리 세존(世尊)께서 십신(十身)이 만족해지자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서원(誓願)과 수행(修行)에 의지하여 법계를 두루 감싸며, 허공과 합하여 체성(體性)을 삼으시니, 부유함에는 만덕(萬德, 無盡之德)을 가지셨고, 텅 비어서 가는 티끌(일체 번뇌, 사량분별)도 없도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가옹(家翁) ; 집안의 주인(主人). 주인공. 진리.

*()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오후보림(悟後保任),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무진(無盡) ; 다함이 없을 만큼 매우.

*마니주(摩尼珠) ; 마니(摩尼)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ṇi 의 음사(音寫). 주(珠), 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밑으로 전락(轉落).

*나가대정(那伽大定) : 나가는  또는 코끼리。 물에서는 용이 제일 힘이 세고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제일 힘이 세기 때문에 부처와 아라한을 나가(那伽) 한다.

나가대정은 대용왕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으로 대용왕이 깊은 못에서 장수를 안보(安保)하여 미륵불이 출세함을 만날 원력으로 정에 들어 있는 것。 여기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관계 없이 깊은 정에 들어 있는 것을 나가대정이라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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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2/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09)—몽산 24-2. 휴휴암주좌선문(2) (갑인74.06.02)

 

(1) 약 16분.

 

(2) 약 7분.

 

(1)------------------

 

고목별춘색(枯木別春色)이요  영양괘벽상(羚羊掛壁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산유역진(靑山遊歷盡)이요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고목(枯木), 마른 냉기가 봄빛을 이별했고, 더군다나 나무는 말랐는데 봄빛을 이별했으니 봄빛이 없어. 
영양괘벽상(羚羊掛壁上)이라. 영양(羚羊)이라는 짐승은 뿔따구를  석상(石上) 돌머리에다가 걸어버리는데, 영양은 걸어. 그러니 그놈이 자취도 없고 매달려 가지고 따악 벽상(壁上) 걸어버린다 그말이여.

 

공부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마른 냉기가 춘색(春色) 이별했고, 영양(羚羊)이란 놈이 댕기다가 뿔을 벽상에 걸어버리면은 발자취도 없다. 어디 자취가 있나? 아무 것도 없지.

 

별것이 있는 줄을 안다 그말이여.

별것이 있고, 도를 통하면은 별것을 알고,  이치를  보고, 그런  안다 그말이여. 그것 !


그렇게 ‘이치(理致) 아니다. () () 아니다. 색상 , 모양 ,  아니라고’

범부의 뜻도 아니요. 중생의 , 중생의 알음알이 그런 것도 아니요. 성해(聖解) 아니요. 성해 나는 것도 아니요. 그런 것까장  떼 버리고 여의어 버렸는데,  거냔 말이여? 뭣이냐 그말이여?


그렇지마는  없어.  없어. 하나도 있는 것이 없어.

 없다마는   있다. 없는 것이 없어.

, 이런 놈의   . 그런 일이 어디 있어?  없고  있다?


여기는 고목(枯木) 춘색(春色) 이별했고, 영양(羚羊)이란 놈이 뿔을 벽상(壁上) 걸어버렸다.


청산유역진(靑山遊歷盡)인데, 청산(靑山) 전부 댕기면서 유역(遊歷)해서 어느 산골짜기고 어디를 막론하고  역진(歷盡) 했다.  찾아댕기면서 모두 지내 다했다.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이다. 장부(丈夫) 능히 일을 마쳤다.


오늘 아침 게송(偈頌) 아무 것도 없는 ,  일체 색상 경계  여의고  버리고, 일물(一物)도 없는 경계,

거기 나가서   있는 거지, 하나도 없는 것이 뭐가 있나? 없다가 보니 있다. 그런 게송(偈頌)이여.

 

 

회광반조(廻光返照)하야, () 돌이켜서()이라는 것은  심광(心光), 마음 광명을 돌이켜서,

무슨 마음이 퍼뜩   같으면은, 그놈이 그저 일체 망념이  외경(外境), 바깥 경계에 모도 가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무엇이다 그저 온갖  분별 경계, 그놈을 거두라 그말이여.


 () 돌이켜라. 그놈도 모두  () 나가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무슨 천하 만삼라(萬森羅)를  그놈이 말을 하고, 그놈이  일체 경계에 범하고.

그놈을 돌이켜. 척! () 돌이켜서 반조(返照)해라. 도로  화두(話頭)를 비추어.  화두를 거각(擧却) .

‘이뭣고?’ ! ‘이뭣고?’한 놈을 ! 추켜들면은 그만 제대로 반조가 되어버리지.


무슨 망념이 어디가 붙어? 망념이 제대로 그만 밖의 경계에 아무 것도 없어, 외식제연(外息諸緣) 그대로 되어버리고, 내조(內照) 안으로  화두 하나가 그대로 나오지. ‘이뭣고?’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조주(趙州) 판치생모라는 것만 찾는 거지,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어찌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런  가서 분단 내지 말란 말이여.  분단이 무슨 분단이 있나?


‘판치생모’라고 했는데, 『조주는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나? 뿐이지.

거가서 공연히 요놈 찍어 붙이고 저놈 찍어 붙이고, 요것이 옳은가 저게 옳은가, 그거 아니라 그말이여.


 탁근(托根)하에서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의근(意根)  뿌럭대기(뿌리)에서 이치를 붙여 자꾸 그래싸면 아무짝에도 못쓰는 화두여.

판치생모라고 했으면 그대로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뿐이지. 『판치생모라니? 『어찌 판치생모여?  뿐이지.


거가서, 판치생모에 가서 무슨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나?’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나?’  그런 분별 짓지 말라 말이여.

그거 화두상에  의근하(意根下) 탁근(托根)이여. 뿌럭대기에서 모도 망상 짓는 것이여. 거기서 얼마가 화두가 손해난 거여.


『판치생모? 뿐이지, 조주  찾는 것이지.

일체 공안(公案)   본분납승(本分衲僧) 수리(手裏) 떨어져 있거늘, 저번에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내가 그렇게  했어?

유일등인(有一等人) 갱향타무자상(更向他無字上)하야 토자미(討滋味)하나니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치(鈍置) 놈들이 아니냐.


무자(無字) 의지(意旨), 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 의지, 판치생모 뜻이 조주(趙州) 이여. 조주에게 있는데, 따로 찾지 말라 그말이여.

그런께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래야 하거든. 그러면 판치생모라는 뜻이 바로 조주 이거든. 그놈이 무슨 다른  아니여.


 수가 없으니까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가자(假字)해서 조주  찾는 것인데, ‘판치생모 따로  내던져 버리고 조주  찾는  아니거든.

 

『이뭣고?』하면 『이뭣고? 그놈』이 바로  뭣고?’ 뜻인데, 따로 찾을  있냐 그말이여. 똑같은  아닌가.


『‘이~?’』한  자리, ~’ 뭣고? 거가서 주각(註脚) 내지 말란 말이여.

 주각을 무엇이라고 하나? 분별이라고도   있고, 그놈을 따져서 모두 해석이라고  수도 있고, 이것이다 저것이다 논상논하(論上論下)라고  수도 있는 것이고.

 


() 돌이켜서 비춰라.  () 돌이켜 비추라고 하니까, 무슨 이상스런 () 돌이킬라고 말어.

 마음이 어수선해서 사방 모도 흐트러져서 참선을 한다고 앉았지마는 마음은 모도 나가서  분별 경계에 떨어져. 사방 모도 안 간  없이  마음  마음이 그저 이리 일어났다가 저리 일어났다가, 그저 어디 가서 한번 돈벌이를  봤다가  별짓을  해본다 그말이여.


그거 중생심이란 그뿐이지, 다른  없어. 앉었으나 누웠으나 가나오나 행주좌와에  일어나는 마음은 그뿐이여.

그저 잘산 , 못산 , 그저 과거에 잘한 , 못한 , 그저 시시비비, 그저 일체 망상 분별심 밖에는 없어.


그놈 밖에 없으니그놈 가만 두어. 그걸 없앨라고도 말고, 거둘라고도 말고, 그놈 돌이킬라고도 말고, 대체 무슨  심마()? 이것 뭣꼬? 이뭣고?’ 이놈이 뭐냔』 말이다.


도대체 한번 전제(全提)로, 이뭣고?’ 놈이 뭣고? 한번 그렇게도  .

그래가지고는 그만  다음에는  뭣고? 『이~?』한 놈이  화두 거각 아닌가.

 뭣고? ‘이~? 놈’이   없는 이라 그말이여.

~?’ 놈을 이뭣고? 요렇게 돌이키라 그말이여. 『이뭣고?


조주 스님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물으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으니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찌 판자 이빨에  났다고 했는고? 단(單)! 그뿐이여. 그러면 그놈이 그만 그대로 회광반조(廻光返照).

일체 망념은 거기에 도무지 따라 오도 않고, 없고, 어디 그놈이 본래 일어나는 곳이 따로 있나?

그러니께 화두만 그대로 『이뭣고?.   기맥히지.    이상  어떻게 ?


그렇게 하고  하고, 그렇게 하고  하고,  먹고  입으면은 먹을 사이인들 틈이 있나? 옷을 입는다고 한들 틈이 있나? 틈이 어디가 있어! 그렇게 회광반조(廻光返照) 해라.

화두 하나   없는  나오고, 판치생모 하나 의단독로(疑團獨露) 하면 그게 반조(返照), 반조 모양이여, 그것이.


철법근원(徹法根源)해라. 법의 근원을 사무쳐라.

 법의 근원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붙지 못한 곳이요, 중생, 제불(諸佛),  마음이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마음·부처·중생이 차별 없는 , 무슨 거기에 차별이 있어?

아무 것도 () 없는 , 법의 근원을 사무쳐라. 그걸 ()이라 한다.


() 그게 선이지, 다른  () 아니다.

 알고 앉았거나, 비추고 앉았거나, 제가 무슨 천하 세계에 없는 이치를 장만해 가지고 앉았거나, 그거 외도선(外道禪)이여. 외도선 그거   것만 못한 것이여, 외도선이라는 것은.

가만히 앉어서 세계를 능단(能斷)해도세계를 능히 끊고 세계를 뒤집어 놨자, 그런 것은 () 아니여. 고런  하는 것은 외도여.

 

(선이라는 것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 증득하는 것이지! (처음~1531)

 

 

 

 

 

(2)------------------


불위역순뇌(不爲逆順惱)하며역순(逆順) ()하지 말며.

누가 거스른다고 거기에 그만 골이 나서  견뎌서 그놈을 그만 원수를 갚을라 하고, 무슨 거다가서 별별 계획을  갖다 야단을 치며,

 순경계(順境界) 나를 좋게 만드는 데,  마음이 좋아서  견뎌서 그만 엎어지고, 그러한 역순경계(逆順境界)에도 뇌롭지 말아라. 거가서 수고롭지 말아라.


고런 ()이나, ()이나  상관이 있나? 그까짓 .

나를 () 거슬르거나, 나를 () 좋게 만들어 주거나, 그까짓  도인이, 공부인이 놀아나지 말어라 말이여. 그런  불리지 말란 말이여.

도인이거든, 공부인이거든 고렇게 행을 해라. 역경계 순경계 거기 한번 초월해라.


불위성색전(不爲聲色轉)하라. 성색(聲色) ()하지 말아라.

소리와 색에 좋은 음성이라든지 소리와  좋은 모양이라든지, 그런 기가 맥힌 절묘한 예쁜 사람이라든지, 미인이라든지, 무슨 소리 좋은 가무 명창이라든지, 고러헌   ()하지 말아라.


그런  마음을 갖다가서 거기다 붙여서  하따! 좋다 엎어지고 그것 그래  것이냐? 공부인이라는 것은 성색전(聲色轉)  되야 된다.

그까짓  일체 경계가 좋거나 말거나 그러한  내가 무슨 () 것이 있나? 그걸 위지좌(謂之坐) 한다.


좌선(坐禪)이여. 시방 좌선 얘기한 것이여. 참선 좌선이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낱낱이 간택해  것이여.

 


촉유즉명유일월(燭幽則明愈日月)이요. 화두가 밝게 되면은 화두가 역역고명(歷歷孤明)해서—‘외로울 ()’, ‘밝을 ()’, 고명(孤明)이라는  홀로 밝는 것이다 그말이여. 제일 밝아. 적이 없어.

화두가 고명(孤明)해서  다른 마음이 조금도,  터럭끝 만큼도 섞이지 않고 화두가 온전히 된다. 명유일월(明愈日月)이다. 일월(日月)보다도  밝는 것이다. 일월이 거기 비유할 수가 없다.


촉유즉명유일월(燭幽則明愈日月)하고, 밝은 즉은 일월(日月)보담도  하고,

화물즉(化物則) 물건을 화한즉, 역승건곤(力勝乾坤)이라.  힘이 건곤(乾坤) 이긴다. 물건을 ()  역승건곤 한번 어디 응대한  건곤을 이긴다. 하늘과 땅이 거그 붙들 못혀. 그런데 무슨 망념이 거기 붙을까 보냐?


이건 화두를  자꾸  하고  하고, 그저 하면은 망상으로 싸우다가, 망상 경계가 한번 제대로 물러가 버리고물러갈 것도 없이 그대로 잦아져 버리지.  자리에서 잦아져 버리지, 어디 일어난 곳이 있나? 그런 때가 이제 오지.


그래 자꾸 처음 초학자들이 화두를 그렇게  잡드리를 해야지, 하다 말다가 그만  하다가 퇴타(退墮)하고,  하다가 말고,

퇴타가 무슨 물러가 퇴타한 것이 아니라, 공부할 때에도 밤낮 퇴타를 하거든, 공부 지어 나갈 때도.


이렇게  때가일체 망념이 붙지 못하고 역승건곤(力勝乾坤) 때가 있어. 건곤이 도무지 와서 어쩌지 못혀. 그걸 ()이라 한다. 좌선(坐禪)이라는  이런 지경이 있다.

 


어유차별경계(於有差別境界) 일체 차별 번뇌 망상 경계에,

입무차별정(入無差別定)일체 차별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을,

일체 차별 경계에서경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차별 경계 속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별짓을 한바탕   본들, 거기에 화두가 () 들어서, 도무지  요동이 없는 것을 그것을  이르되 ()이라 한다.

인제 그런 경계가 오거든. 그걸 () 한다. 그런 경계를 () 한다.


 어무차별지(於無差別智) 일체 차별지 없는데, 시유차별지(示有差別智) 위지선(謂之禪)이라 한다.


차별지(差別智)가, 도무지 아무 것도 차별지가 없는데 천만사 하나도 무슨 지혜(智慧) 없어.

헌데 거기가서 일체 차별지가 있거든. 하나도 없어진 법이 없고 그대로 차별지가 있다 그말이여.

없는데 있다 그말이여. 어디 없으면 아주 없나? 그것을 ()이라 한다.


좌선법은 여까장 말을 했어.  밑에 가서 인자 합론(合論)이 있는데, 합론은  내일 아침에 말해.. 기운이 없어서 많이 설허덜 못해.(1537~2234)()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0~91

撼不動(외감부동)하며  中寂不搖(중적불요)가  謂之坐(위지좌)요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徹法根源(철법근원)을  謂之禪(위지선)이라

 

밖에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속으로 고요하야 흔들리지 아니할  좌(坐)이요。 광(光)을 돌이켜 반조(返照)하야 법의 근원을 사무치는 것을 일컫되 선(禪)이라.

 

不爲逆順惱(불위역순뇌)하며  不爲聲色轉(불위성색전)을  謂之坐(위지좌)요  燭幽則明愈日月(촉유즉명유일월)하고  化物則力勝乾坤(화물즉역승건곤)을  謂之禪(위지선)이요

於有差別境(어유차별경)에  入無差別定(입무차별정)이  謂之坐(위지좌)요  於無差別法(어무차별법)에  示有差別智(시유차별지)가  謂之禪(위지선)이라

 

() 경계와 () 경계에 뇌란(惱亂) 아니하며, 성색(聲色) 굴림이 되지 아니함을 ()요。 어두운  비취면 밝음이 일월(日月)보다 더하고, 만물(萬物) 교화(教化)할지면 힘이 건곤(乾坤) 능가함을 ()이요.

차별(差別)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이 좌(坐)요。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보이는 것이 선(禪)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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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고목별춘색~’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心禪子行脚()’ 게송 참고.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 성자(聖者) 지혜]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만삼라(萬森羅)  ;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일체 공안(公案)   본분납승(本分衲僧) ~ 둔치(鈍置) 놈들이 아니냐’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p77~78 참고.

觀其道箇無字하건댄  性命이  落在*本色衲子手裏어늘  有一等人이  更向他無字上하야  討滋味하나니  豈不鈍置平生이리요.

 무자(無字) 이른 곳을 보건댄 성명(性命) 본색납자의  안에 떨어져 있거늘,  무리 사람이 다시  무자(無字) 향하야 자미(滋味)를 찾나니, 어찌 평생을 어리석게 보냄이 아니리오?

*본색납자(本色衲子) : 본분납승(本分衲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가자(假字) ; 글자를 빌다(빌리다).

*전제(全提) ; 전부분이 들고 일어남(全分提起) . 본래 그대로 나타냄. 전부를 그대로 나타내 보임. 전체를 모조리 그대로 들고 나오는 .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전제는 조주 스님은 어째서 ()라고 했는고?’ 단제(單提)는 그냥 ~’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 들여다 보는 .

*() ; 오직 그것뿐임을 나타내는 .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2)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 번뇌할·괴로워할·괴롭힐·화낼 뇌) ; 뇌란(惱亂). 괴로워서 마음이 어지러움. 또는 남의 마음을 괴롭고 어지럽게 만듦.

*수고롭다 ; 어떤 일을 하기에 괴롭고 고되다.

*불리다 ; ‘불다(바람이 일어나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다)’ 피동사(被動詞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하여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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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1/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08)—몽산 24-1. 휴휴암주좌선문(1) (74.06.01새벽) (전508)

 

(1) 약 17분.

(2) 약 7분.

 

 

(1)------------------

 

구주한남객(久住漢南客)  관서행승유(關西幸勝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안초염일(楓岸初染日)이요  소우과강추(疎雨過江秋)니라

나무~아미타불~

 

구주한남객(久住漢南客)이다. 오랫동안 한량없는 겁(劫)을 이렇게도 정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나를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질만   객으로만 고향 소식을 모르고 객지로만 돌아댕기는 우리 인생이다.

관서행승유(關西幸勝遊). 어쩌다가 다행이 금생에는  좋은 도량(道場), 정법도량, 나를 찾을  해탈 도량을 왔냐 말이여. 이런 불법도량(佛法道場) 왔는가 말이여.


풍안초염일(楓岸初染日)이다. 그만  일생이라는 , 이게 잠깐  만나기는 만났다마는  단풍 시절이  닥쳐온다. 그만 ,  무슨 기한  없다. 그저  그만 낙엽 시절이 돌아와. 뚝뚝 떨어지는 낙엽 시절이 앞에 닥쳐와.

소우과강추(疎雨過江秋)니라. 성근 비는 강추(江秋) 지낸다.   지내듯, 그만 바람에  지내듯 해버릴 거여. 잠깐 가버릴 것이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얻었다’고, 정법문에 들어왔다’고 해서 이걸 가지고 ()하게 족을 삼지 말아라.

어느덧 번갯불 같이 가버리는 우리 일생이 계산할 것이 있나? 아무 계산도 없다.

 

 

부좌선자(夫坐禪者)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다

. 휴휴(休休)라는 스승이 있어. 휴휴(休休)라는 큰스님이 있다 그말이여. 큰스님이 있었어.

‘쉴 ()자’가  자여. 휴휴암주(休休庵主).

암주(庵主)라는   닦는 항상  처소를 ()이라고 . 암주(庵主)라고.


 암자(庵子), 조그만한 그런  닦는 암주로 있어서 닦는 이가  그런 조그만헌 바위 틈새기  조그만한 암(庵) 그런  있었지, 무슨 야단스러운  대찰 주지나 무슨  권리나, 무슨 어디 그런  했나?


서산 스님도 일평생을 그래 했고, 원효 스님 같은 이도 일평생을 () 짓고 들어앉어 계셨고, 나옹 스님도 그랬고.

보조 스님도 당시에 그랬지보조 스님이 인자 송광사 처음 초창(初創)  놓으니까 커졌지, 처음에야 어디 무슨 적굴인데 .


그러한 () 계시는 휴휴 큰스님이여. 휴휴(休休), ‘ ()’자가  자여.

휴휴 큰스님이신데,  스님이 공부하시는 좌선문(坐禪文) 지어놨다.

 

 

대저 참선이라는  좌선(坐禪)() 하는  좌선은, 참선은수달호지선(須達乎至善)이다. 모름지기 지선(至善) 달호(達乎)한다.

지극히 선(善)한()자 라는  착할 ()’자 인데, 착할 선자 라는 것은 아무 것도 그름이 없는 것이다.   () 잘할 ()’자다. 착한 것뿐 아니라 잘한다 ()자여.


잘한다.  잘해라. 조금도  틈이 없이 화두  지극히  나가는  (), ‘잘할 ()’자여. 지극히 잘해야 한다. 보통 해서는  되는 것이다.

말만 참선한다 앉아서, 참선  되나? 지극히 지선(至善) 달호(達乎)해라.

 

당자성성(當自惺惺)해라. 마땅히 스스로 깨끗 깨끗이 해라. 흐리터분하니 그렇게 지내지 말어라.

시시때때로  생각을 깨끗이 해라. 일념(一念)을 깨끗이 단속하면은 차츰 일념,  일념  일념이지.


 처음 앉어서  일념이 깨끗하면은  일념,  일념, 밤낮 일념,  찾고  찾고 화두를  연속하고 연속해서.   재미난 것은 그뿐이여.

일체 망념이 없는  , 일체 망념이 없고   없는 놈만 자꾸 들어 붙이면은 거그 같이 도무지 수행이 없고, 그렇게 깨끗하고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어.

 

  !  생각을 잘하면,   생각이 일어나면  그놈 ‘이뭣고?’ ‘이뭣고? ‘'뭣고?' 이놈이  뭣고?’ 아! 이놈  들어가는  무슨  놈이 거기 붙으면은 고약스럽지.  못된 것이 붙어 놓으면 아무짝에도 못쓴다 그말이여.

 

  없는 , ! 그놈   뿐이지,  놈이  있어? 단속할 것이 그뿐이지. 그게 ()이여. 잘한 놈이여.


마땅히 스스로 깨끗 깨끗이 해라.  당념(當念) 깨끗해야지,

뒤에 그만    망념(妄念) 들어와 가지고 고놈이  망념이 붙고,  망념에 망념이 붙고, 자꾸 그거 사량분별이 붙고, 별것이  때려 붙으면은 그만 시끄럽고.


 혼자 있어도 공연히 시끄러워.  혼자 공연히 장난이 일어나고.

고것 모두가 내게서 일어나는 것이지, 어디 경계에 있나? 


절단사상(截斷思想)해라.  사상(思想) 붙이지를 말아라.

무슨 생각을 붙이나?  사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라.

 

어디 ‘이뭣고?’한다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한다든지, 어디 가서    놈이 붙을  있나?  놈이 일어날  있나? 그놈 때문에, ‘이뭣고?’ 때문에, 그거 당념(當念)이여.

‘이뭣고?’  당념. 그놈이 그만 일체 번뇌 망념을  그놈 절단 내버리는 거여.


당념 그놈이 모든 임금과 같아서 거기에 무슨 ...어디서 생겨 나올 것이여 그놈이?  어디서 붙어 나올 것이여 그놈이?

절단사상(截斷思想)해라. 사상을 도무지 끊어라. 끊을  아니여, 없어 그대로.

 


불락혼침(不落昏沈)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

그만 앉으면 '참선한다' 그만 눈을 감고 잔다 그말이여. 그만 ~’하고 자면 무한정이지. 그거 참선이여, 그것이? 고거 참선이여, 고런 것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량계교(思量計)를 붙여서, 그저  생각,  생각 그저 이리... 그게 참선이여, 앉어서?

그까짓 것이 어디가 붙어?


천하에 참선같이 쉬운 것은 없다 그말이여.  . 지극히 절대 당념(當念)만 단속해 보란 말이여.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 . 거기서 무슨 미치거나, 무슨 잡념이 있어서무슨 잡념을  가지고 미치거든. 잡것이  붙어 가지고 미치고. 고약하지.

   없는 ‘이뭣고?’만  나가는 , 미치다니 무엇이 미쳐?


 힘들 것이 무엇이 있어? 하나도 힘들 것이 없지. 안 되니께 그놈 안 되어 억지로 그만 할라고 하니까 힘이 쓰이고, 육단(肉團) ()하고 그러지.


그런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되, 그걸 () 한다. 가만히 앉어서  나가는 (). 

 

재욕무욕(在欲無欲)! () 있지마는 () 없다.

()이라는 것은 하고자  ()’, ‘욕심 ()’.  () 있어. 세상 경계(世上境界), 반연 경계(攀緣境界) 있어. 반연을 떼고 욕심을 여의고 일체 물질 경계를 여의고 뭐가 있나?


그 내 몸뚱이도 없어야 할까?

 몸뚱이 가지고 몸뚱이가 없어야지. () 있어서 () 없어야지.

() 중에모두 이런 경계, 모든 세상 경계, () 중에있드래도 () 없다. 그저 분다(紛多) 경계에 있드래도 분다한 경계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야지! 그런 분다한 경계를 없앨라고 하면 되아?  경계 중에 있어야지.

하지마는  경계가 들어오지를 못혀. 


거진무진(居塵無塵)티끌 반연 경계, 티끌 세계에 있지마는 티끌이 없어.

이것이 재욕무욕(在欲無欲)이요욕심에 있어도 () 없고,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는 경계가   세상에서 내가  모든 세상 경계를   나가면서도 없는 것이여.

그걸 여의고 떼고 없으면은 그런 경계가 어디 있나?

 

바로 세상에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처자를 데리고 자식을 그저 포자농손(抱子弄孫) 하면서 인구를  나가는 것이, 그러면서  ‘이뭣고?’를 하나 다뤄 나가는 것이 그것이  참선이여.

그런 것이 없이 경계를 여의고 떼고 혼자 틈새기로만 어디 찡겨 바위 틈새기로 들어갈라고 하는 , 그것 소승(小乘)이여.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걸 갖다가 ()이라 한다.

() 있어도 () 없으며,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으며 욕심에 있어도 욕심이 없으며, 티끌 세계에 있어도 티끌이 없는  사람이 어디 혼자 조용한 곳에 들어와서 공부를   같으면은 얼마나  철저할 것인가. 정중(靜中).


요중(鬧中) 있어서도 !  () 없는데시끄러운 것이 없고 욕심이 없는데, 고요한 곳에 들어와서 고요한  공부하면은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중(靜中)!

그러니 세상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를  그렇게  나갈  같으면은 정처(靜處)—조용한 , 정처에 와서는  잘할  사실 아닌가.


요처(鬧處), 정처(靜處) 무슨 관계할 것이 있나. 항상 ‘이뭣고?’ 하나 뿐이다.

당념(當念) 지선(至善)이다.  당념이 항상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나가는‘이뭣고?’ 하나  나가는 그놈이 항상 그저 떠날 틈이 없다. 여읠 틈이 없고 버릴 틈이 없다. 그걸  ()이라 한다.


재욕무욕(在欲無欲) 거진이진(居塵離塵)욕심에 있어도 욕심이 없고, 티끌에 있어도 티끌이 없고,  경계가  ()이다.(처음~1638)

 

 

 

 

 

(2)------------------

 

 외불방입(外不放入)하고밖으로 () 들어오지 않고,

아무리  밖의 경계에 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망념 경계가 있든지, 소용없어. 화두 하나 밖에는 그놈 밖에는 없어. 세상 그런 밖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드래도 항상 이놈 뿐이다.

 잘하는 것이, 달호지선(達乎至善) 이거여.  달호지선 하는 법이여.


내불방출(內不放出) 위지좌(謂之坐) 한다.  안으로 방출(放出) 없어.

암만 안으로 생각  할라 해도, ‘이뭣고?’를  할라 해도,  할라고  놈이 그놈이 ‘이뭣고?’여.

방출(放出)  ‘이뭣고?’여. 내던져 버릴라고 해도 ‘이뭣고?’여.


! 내버릴라 해도 항상 ‘판치생모’는   없으니내가 나를 몰랐으니,  내가! 그놈이,   없는 놈이 항상 방출을 해도 ‘이뭣고?’다. 그것  묘한 경계지. 화두를 해볼  같으면은 이런 경계가 와야 .


억지로 이놈을 하니까 그만 잠이 퍼와서 그만 졸고 앉었다가  깨면은잠잔 사람은 깨어날  같으면은, 물론 그것은 그만 잡념이네. 그렇게 잠잔 사람은 깨어나도 잡념이여. 깨어나면 그만 망상 잡념밖에 없는 것이여.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래야 그놈이 오매(寤寐) 성성(惺惺)하지.  때나,  때나 성성하지.


 방출이 안으로는 방출이 없어. 암만 내버릴래야 화두가 어디 나가는 법도 없고, 그걸 () 한다. 

 


무착무의(無着無依)하야어디 가서 () 없고, 의탁(依託) 없다.   마음이 어디 의탁처가 있나? 어디 () 곳이 있나?

 마음 난 대로, 그저 마음이란 이놈이 어디 마음두면  대로, 어디 그렇게 그저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놈이니, 그놈이 어디 () 있고 () 있나?

어디 () 있어? 붙은 데가 어디 있어?  의지한 데가 어디 있어? 항상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러니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무착무의(無着無依)해서 일어나고 멸하는 데도 없이 항상   없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의단독로(疑團獨露) ! 그놈이 상광현전(常光現前)하다.

항상 광명이 무슨 훤허니 불처럼 밝아서 광명이 아니라, 항상  영령(靈靈) 그걸 ()이라 .


‘어디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왔다갔다 이놈이 없이 화두 일념(一念) 항상 현전(現前)하는 것이 그것이 ()이다. 참선하는 법이 이것이 ()이여.

 


외감부동(不動)하고밖으로는 부동(不動) . 밖으로 외감() 아무리 흔들려대도 ()  .

아무리 밖의 경계가  별별 일이  있어도 화두 하나 현전 독로(獨露)하면은  독로가 깨진 법이 없어. 흩어진 법이 없어. 그까짓 바깥 경계가 아무리 요동을 친들, 속에 화두 마음이 어디 이리저리 흩어지고 그런 법이 없어.


그놈을 깰래야  수가 없어!  같은 ,  같은     있고,  불에 집어넣으면 녹을  있고 하지마는,    없는 의단독로내가 지금 나를 몰랐으니까  그걸  깨달라 알아야   아닌가!

그러면  당념(當念) 지선(至善)하면, 그대로 의단이 독로하면은 그건   없어. 누가 깨뜨릴 수가 없어. 암만  갈래야 가져가지를 못혀.


그래서 밖으로 아무리 흔들거려도 () 아니하며 중적불요(中寂不搖). 중적(中寂)해서 흔들거리는 법이 없다. 중적(中寂)이란  중적(中寂)—‘가운데 ()’, ‘고요 ()’,

중적(中寂) 내나 해야 아무리 ‘이뭣고?’를 누가 가져 갈래야  가져가고, 아무리 그놈을 깰래야   없고, 내버릴래야 내버릴  없는 경계, 그건 천하가  하늘과 땅이 흔들거려도 소용없어.


그걸 중적(中寂)이라 . ‘가운데 ()’, 적적(寂寂)   없는 경계를 ()이라 .

  없는 의단(疑團) 밖에 () 없어! 그놈이 적적해서 온당하게 화두가 드러나서 흔들거려지지 않는 것을 그걸 () 한다. 좌선(坐禪) 여까장 말해 주었어.(1639~2310)()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89~90

夫坐禪者(부좌선자)는  須達乎至善(수달호지선)하야  當自惺惺(당자성성)이니  截斷思想(절단사상)하고  不落昏沈(불락혼침)을  謂之坐(위지좌)요  在欲無欲(재욕무욕)하며  居塵離塵(거진이진)을  謂之禪(위지선)이요

 

대저 좌선(坐禪)이라 함은 모름지기 지극한 () 통달하야 반드시 성성(惺惺) 할지니, 사상(思想) 절단해 버리고 혼침에 떨어지니 아니함을 일컫되 ()이요。 () 처해 있으되 욕이 없으며, () 있으되 진을 여의는 것을 일컫되 ()이요.

 

外不放入(외불방입)하며 內不放出(내불방출)을  謂之坐(위지좌)요  無着無依(무착무의)하야  常光現前(상광현전)이  謂之禪(위지선)이요

撼不動(외감부동)하며  中寂不搖(중적불요)가  謂之坐(위지좌)요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徹法根源(철법근원)을  謂之禪(위지선)이라

 

밖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안에서도 놓아 내지 아니하는 것을 일컬어 ()이요, 주착(住着)함도 없고 의지함이 없어 언제나 광명이 앞에 나타남이 ()이요

밖에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며 속으로 고요하야 흔들리지 아니할  좌(坐)이요。 광(光)을 돌이켜 반조(返照)하야 법의 근원을 사무치는 것을 일컫되 선(禪)이라.

 

 

 

 

------------------(1)

 

*(게송) 구주한남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贈敏禪子 게송 참고.

*휴휴암주(休休庵主) : 몽산화상을 말함。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초창(初創 처음 초/비롯할·만들 창) ; 절을 처음 세움.

*사량계교(思量計較)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분별(思量分別)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당념(當念) ; 바로  생각.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육단(肉團) ; 육단심(肉團心)—[]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 의탁한 .

*반연(攀緣 매달릴·의지할 /인연 ) ; ①대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 대상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혼란. ②인식함. ③인식 대상. ④얽매임. 집착함. ⑤인연에 끌림.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분다(紛多 어지러울·많은 분/많을 다) ; 많이 어지러움. 엉클어짐이 심함.

*포자농손(抱子弄孫) ; 아들을 품고 손자와 놀다.

 

 

 

 

------------------(2)

 

*오매(寤寐 잠이  ,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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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03)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동산 숭장주가 행각을 떠나는 제자에게 하신 법어.(송담스님)

 

**송담스님(세등선원No.03)—병진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76.05.29) (세등03)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18분.

 

(1/3)----------------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황벽(黃檗) 스님께서 읊으신 게송으로서,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진로(塵勞)는 곧 그것이 생사(生死)인데,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삼복(三伏)에 이 더위를 무릅쓰고 정진을 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설산에 들어가서 6년 또는 12년을 그 고행을 하시면서 수행을 하신 것도 그것도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와 무량(無量) 보살이 출현하셔서 애를 쓰신 것도 또한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하라. 긴히 승두(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해라.

승두는 화두(話頭)다 그말이여. 화두를 터억 잡고서 한바탕 해봐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번 차운 것이 뼛속에 사무치지 아니할진대는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매화꽃이 그 눈 속에서 매화꽃이 피는데, 되게 강추위를 한바탕 한 뒤라야, 강추위를 겪어야만 그 매화꽃이 피게 되는데 추위를 지내지 아니하고서는 어떻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

 

정진을 한바탕 되게 해야 그래야 깨달을 수가 있다.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있어야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다. 그러한 게송(偈頌)이었습니다.

 

 

오늘은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라고 하는 분이 그 제자를 행각으로 내보내면서 해 주는 법문을 말씀하겠습니다.

 

대저 행각(行脚)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목적으로 하는 것이냐?

도로써, 이 도(道)로써 회포(懷抱)를 삼아야 할 것이니라. 생사해탈 하기 위한 수행을 하기 위해서 이 행각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그 피땀 흘려서 지은 농사, 농부가 피땀을 흘리고 그 농사짓는 가운데에 얼마나 많은 방생(傍生)들이 피해를 입었냐 그말이여.

요새는 더군다나 농사짓는데 그 해충이 옛날과 달라서 심해서 일 년이면 한번 농사짓는데 몇 번씩을 그 독한 농약을 뿌려서 그 많은 중생을 모다 죽이고 그래 가지고 얻은 그 곡식이다.

 

그리고 그 곡식이 우리한테 올 때까지 그 피땀 흘려서, 못 먹고 못 입고 해서 번 그 돈으로 신도가 시주(施主)를 해서 그래 가지고 우리 입에 먹을 것이 들어오고, 입을 것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공양(供養)만 받고서—그런 무서운 공양, 그것이 낱낱이 우리가 도업을 성취하거나 못하거나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갚아야 됩니다.

도업을 성취 못하면은 소나 말이나 돼지나 또는 종이 되어 가지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고, 우리가 도업을 성취하면은 법(法)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 무서운 그 공양을 받고서 등한(等閒)히 시간을 보내지 말아라.

 

모름지기 ‘날 생(生)’자 ‘죽을 사(死)’자, 생사(生死) 이 두 글자를 이마빡에다가 딱 못을 쳐서 박어서 붙여 놓고,

열두 때 가운데에, 지금 24시간이지만 옛날 시간으로는 (), (), (), (), (), (), (), (), ()(), (), () 12시간으로, 그것이 옛날 한 시간이 지금 두 시간과 마찬가지여.

 

12시간 가운데에 얼굴 껍데기를 폈다 오그렸다 하면서—그러니까 화두를 들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 무엇고?’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간절히 화두에 의심하는 거동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얼굴 가죽을 폈다 오그렸다 하면서 이 화두를 타파(打破)해 이거 하나를 밝히기 위해서 간절히 간절히 이것을 밝히고야만 말아야 옳은 것이다.

 

어째서 이 ‘날 생(生)’자, ‘죽을 사(死)’자 두 글자를 이마빡에다 써 붙이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벌써 그것이 내생(來生)인데, 우리 인생이 부모 뱃속에 들어갈 때 사형선고를 이미 받아 놓은 사람들이다 그말이여, 우리는.

 

천고(千古) 만고(萬古)에 생겨났다 안 죽은 사람 없으니까, 우리도 조만(早晩)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것이여. 밤낮 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또 젊다고 안 죽고, 늙어서만 죽는 것도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천하 허망하게 죽는 것이고 다맛 언제 죽을 중 그 사형집행일만 모를 뿐이지, 우리 언도(言渡)는 다 받아 놓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처지(處地)에—마치 우리의 처지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여름에 물웅덩이에 있는 물이 거의 다 밭아져서 조금 남은데,

여름에 가물고 비가 안 올 때에는 물웅덩이에 물이 차츰 차츰 차츰 말라 가지고는 거의 물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그 못 웅덩이 속에 크고 작은 송사리, 붕어 모다 그런 고기들이 호닥호닥호닥호닥호닥호닥호닥,

 

물이 넉넉하면은 그 안에서 물속에서 자유스럽게 헤엄을 치면서 물을 마시고 살 텐데,

그 물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없기 때문에 목은 마르고 서로 저희끼리 저 물웅덩이 밑바닥에서 바글바글바글바글 호닥호닥호닥 팔닥팔닥팔닥팔닥 뛰면서 그러다가,

완전히 물이 말라질 때에는 그놈들이 시들시들시들 해 가지고는 말라비틀어 죽는데,

 

그 조그만한 웅덩이에서 물이 밭아져 갖고, 그 고기들이 팔닥팔닥팔닥 호닥호닥호닥 부글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 인생이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몇 조금 안 가면 그날이라도 비가 쏟아지거나 그날이라도 물을 대주면은 그놈이 살아나겠지마는 그날 하루만 불과 몇 시간 안 있으면 그놈이 다 쭉 늘어져서 뻐드러지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의 인생의 처지가 꼭 그와 같은 처지다 그말이여.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우리가 무슨 정황이 있어서 히히닥거리고 잡담하고 또는 사소한 일에 시비하고,

무슨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잘못했네, 잘 먹었네, 잘못 먹었네, 추호(秋毫)도 그럴 정황(情況)이 없고 여지(地)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날 생(生)’자 ‘죽을 사(死)’자 생사(生死) 두 글자를 이마빡에다 써 붙이라』 그 말은 ‘그 생사에 대한 그 무상(無常)한 생각이 우리의 머리에 떠나서는 안 된다’

‘그 생사 무상을 철저히 염두(念頭)에 두라’는 뜻이여, 『이마빡에다가 못을 치라』는 말은.

 

염두에 두고, 그저 자나깨나 하루에면 열두 시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입선(入禪)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정 몸이 괴로우면은 방선 시간에 지대방에서 허리를 잡는다 하더라도 그 시간에도 누워서라도 화두를 간절(懇切)히 들을지언정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을 하지 말아라. 

 

떼를 따르고 떼를 따라서 둘씩 셋씩, 넷씩 다섯씩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앉아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잡담을 하면서 헛되이 보내는 사람은 얼마 안 가서 숨 한번 나갔다 들어오지 못하면 내생인데,

 

내생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네가 그 무섭고 그 무서운 시주의 밥을 먹고서 도업을 성취하지 못했으니,

‘니 밥값을 내놔라. 니 밥값이 얼마냐?’하고 밥값을 따지는 날이 올 텐데, 그때에 가서 내가 너의 스승으로서 ‘이러한 당부하는 말을 일러주지 않았다’고 염라대왕 앞에서 말을 하지 말아라.

 

스승이 나를 채찍질을 안 해 주시고, 꾸짖어주지 아니했기 때문에—이렇게 ‘그 염라대왕 앞에 가서 그 밥값을 따질 것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이러한 간절한 말을 내가 안 해 주었다고,

스승이 그때 나를 그렇게 해 주었으면 내가 오늘날 이 염라대왕 앞에서 이런 일을 안 당할텐데, ‘스승이 말을 안 해주고 내싸두기 때문에 내가 이러한 신세가 되었다’고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만약 공부를 할랴고 하는 데에는 날마다 자기의 공부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뿐만이 아니라 시시(時時)로, 그 잡담하다가 히히닥거리다가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앗! 내가 또 속았구나’ 시시때때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시시때때로 타산을 해. ‘이 공부가 옳게 하고 있나? 딴 생각은 하고 있지 않나?’

아침에 도량석(道場釋)을 시작할 때부터서 저녁에 취침할 때까지 잠시도 헛되이 보낸 일이 없이, 그렁저렁 보낸 일이 없이 생각 생각에 자기를 반성하고,

 

‘이게 내가 이 웬일이냐!’ 히히닥거리고 잡담을 하다가도 퍼뜩 돌이켜서 뉘우치고 화두를 들고,

‘내가 이럴려고 여기를 왔던가? 내가 이럴려고 중이 되었든가?’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라.

 

이렇게 공부를 해 간다고 할진대는 반드시 집에 이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도업을 성취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말이여.

 

 

어떠한 도 닦는 사람, 어떠한 사람들은 참선한답시고 경(經)도 보지 않고, 부처님께 예불(禮佛)도 하지도 않고,

좌복 위에 앉아서 꾸벅꾸벅 그저 졸음이나 자고, 좌복 위에 앉았다 하면은 꾸벅거리고, 꾸벅거리다가 조금 잠이 나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면은 번뇌 망상과 쓸데없는 생각으로 번뇌 망상 속에서 사로잡혀 있고,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조금 또 가라앉을만 하면 또 꾸벅꾸벅 혼침(昏沈) 속에 빠지고, 혼침이 조금 나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면 그때부터서는 번뇌 망상으로 세월을 보낸다.

 

입선 시간에는 그렇게 하고 또 방선 시간이 되어서 죽비(竹篦)를 치고 방석에서 일어서면은 그때부터서는 또 옆에 사람하고 잡담으로 또 세월을 보내고,

이러한 식으로 지낸다고 하면은 56억 7천만년 후에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시게 되는데,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참선을 한다고 해도 도업을 성취 못할 것이다.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데, 과거에 부처님 역대조사들이 그런 식으로 지내 갔고 도업을 성취한 분들이 아니여.

다 공부를 해서 힘을 얻고 다 생사해탈하는 그런 불보살이나 역대조사들이 다 우리보다도 몇 십 배 수승한 근기(根機)를 가지시고 태어나셨건만 생명을 걸고 다 도를 닦은 분들이다 그말이여.(처음~20분35초)

 

 

 

 

 

(2/3)---------------

 

시시때때로 정신을 차리고 또 정신을 차려서 자기에게 주어진 이 화두 하나, 이 한 개의 화두를 들되,

밤이나 낮이나 어디서 무엇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나, 세수를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소제를 할 때나, 입선 시간 방선 시간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으라 하니까 어떤 분은 ‘관세음보살’ 주력(呪力)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신 분이 있다 그말이여.

이 화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것이 무엇이냐?’ 말이여.

‘이것이 무엇인고?’ 그렇게 화두를 한 번 들어 가지고 알 수 없는 생각이 떠억 있는 동안에는 또 들고 또 들고 안 해도 돼. 

 

한 번 든 화두가 2분이나 3분이나 5분이나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나타나 들려져 갖고 있는 동안에는 안 들고, 들어져 있는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돼.

그러다가 그 화두가 그냥 무력(無力)해진다 말이여. 의심이 또록또록 하지를 못하고, 그냥 스르르 하니 무력해지면은 다시 그때 가서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또 화두를 그렇게 들되, 딴 생각이 어느 틈에 들어오는지 딴 생각이 들어와 가지고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다가 그런 줄 알면 또 그때 가서 ‘이뭣고?’ 그러고.

 

화두는 들고 있는데 딴 생각이 와서 자리는 잡지 않고, 딴 생각이 슬쩍 그냥 스쳐만 가버린 경우에는 그것은 겁날 것이 없는 것이여.

그건 문제시 하지 말고 계속 아까부터 들고 있던 그 화두만을 간절히, 묵묵히, 골똘히 그 의심을 관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화두를 간절히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할지언정,

방석 위에 우두거니 아무 매카리 없이 화두를 든 것도 아니고, 안 든 것도 아니고, 입선했으니까는 그저 시간만 지키기 위해서 일없이 그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석에만 오래 앉아 있는 것으로 장기를 삼어 가지고 노상...

참선이라 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 의심하는 데에 가서 있는 것이지,

화두 놓쳐 버리고 방석 위에 우두거니 앉었거나 또는 졸기만 한다거나, 무엇을 어떻게 지내든지 화두 놓치고 앉었는 것은 그것은 이 공부가 온당하니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될 수 있으면 앉어서 하는 것이 가장 공부 득력(得力)하기가 쉬웁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앉었는 데에만 집착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입선 시간에는 될 수 있으면 앉아서 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으니만큼 앉어서 하되, 입선 시간에도 너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이 혼침에 빠져 가지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그런 때에는 살며시 옆에 공부하는 대중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나가서 한 5분 바람을 쐬 가지고 그리고서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또 방선 시간에도 시간 나는 대로 앉아서 정진을 하되 앉었기로만 작정을 하지 말고,

졸음이 오거나, 정 공부가 깨끗하지를 못하고 몸이 비틀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해서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살며시 나가서 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고 한 5분만 바람을 쐬고서 또 들어와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포단(蒲團) 위에 죽은 사람처럼,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들지 아니하고 우두거니 앉었는 것으로 공부를 삼지 말어라.

 

어쨌든지 공부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하고, 적적(寂寂)하면서 성성(惺惺)해야지,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허들 못하면은 그 공부는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또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허들 못해도 그것은 옳은 공부가 아니다. 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동시에 겸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공부를 해 나갈 때 주책없이 잡념이 막 분분(紛)히 일어나.

삼동(三冬)에 눈이 올 때 그 수천 송이, 만 송이 눈이 펄펄펄펄 내리듯이, 또 먼지가 퍼일어나듯이 그렇게 잡념이 일어나서 그럴 때에는,

잡념 그놈을 물리치기 위해서 그 애를 쓰고, 그놈 일어난 것을 짜증을 내고 심술을 내고, 그 일어나는 것에 그 ‘일어난다’고 신경질을 내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어라.

 

그놈을 안 일어나게 할려고 그놈하고 싸우고 몸부림치고 짜증을 내고 그러지를 말어라. 그럴수록에 무장 더 일어나는 것이다.

 

그 번뇌와 망상과 혼침이 일어날 때, 그놈 일어나는 놈을 없이 할려고 갖은 애를 쓰고 그놈과 더불어 싸움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놈 물리칠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을 간단하게 물리쳐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거 물리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병이 생겨 가지고 가슴이 답답한 병, 소화가 안되는 병, 골치 아픈 병, 온갖 병이 그놈 처리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 분(粉)가루 같이 일어나는 그 천 가지, 만 가지 지내간 과거의 일, 현재 닥치는 일, 앞으로 다가올 일, 또는 지내간 일도 아니요, 현재에 닥치는 일도 아니요, 미래로 닥칠 가망성 일도 아닌 천하에 허무맹랑한 생각까지도 퍼일어난다 그말이여.

지내간 일 생각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 생각했다, 얼토당토않은 일을 생각하다가,

 

그놈을 어떻게 해야 물리치느냐? 그것만 물리치는 방법만 알면은 공부 안된다고 한탄할 것이 없어.

 

천하 간단한 것이, 일어난 생각 그놈은 고대로 놔둬 버려야 해.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를 말고 고놈은 고대로 놔둬버리고 화두만 떡! 들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만 척! ‘어째서 무라 했는고?’해 버리면 아까 퍼일어난 생각은 자취가 없어.

화두를 척 들어버리면 아까 그렇게 주책없이 일어난 생각이 어디로 간 곳이 없는데,

 

정 그렇게 해도 화두는 잘 들리지를 않고, 혼침은 퍼일어나 가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왔다갔다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인 것이다.

그렇게 하면은 졸음도 달아나고, 그 답답하고 그런 가슴속도 시원해지고 머리도 깨끗해진다 그말이여.

 

그러면 다시 또 방석 위로,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공부를 하는데,

오른다리를 놓고 왼다리를 거기다 포개 놓고, 손을 오른손을 놓고 왼손을 포개 놓고 하는 것이 보통의 정식이지마는,

 

이 번뇌 망상이 퍼일어나고 혼침이 일어날 때는 그렇게 하지를 말고,

엄지손(가락)을 먼저 오그리고 그 다음에 네 손가락을 그 위에다 포개서 쥐고서, 이 주먹을 엎어서 양 무릎 위에다가 탁 놓고, 그리고서 공부를 해 보라 그말이여. 훨씬 정신이 나고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등어리만 꼬부라지고 허리만 꼬부라졌다 하면은 혼침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등뼈를 쭉 펴야 한다.

 

쭉 펴고서, 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정진을 하면은,

언제든지 떠억 새로 앉아서 정진을 할려고 할 때는 숨을 깊이 빨리 들어마셔 갖고 한동안 참았다가 입으로 다 ‘후—’하고 입으로 쏵 내뿜어.

또 한 번 그렇게 하고, 두 번을 그렇게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앉으면은 정신이 깨끗하다 그말이여.

 

펄펄 끓는 물에다가 차운 물 한 바가지를 퍼부순 거와 같애.

아까 그 졸음과 산란심이 퍼일어날 때에 밖으로 나가서 바람 쐬고 포행(布行) 좀 하고, 그러고 들어와서 떡 두 주먹을 쥐고 허리 쭉 펴고 호흡을 2번을 그렇게 하고 딱 앉어 보란 말이여. 정신이 깨끗해져. 

 

이렇게 처음부터서 쭉 이야기한대로 그렇게 정진을 해 가면은—하루를 그렇게 해, 이틀을 그렇게 해, 열흘을 그렇게 해, 한 달을 그렇게 해,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착실히, 간절히, 여법(如法)히 해 가면은 반드시 집에 이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향(他鄕)으로 타향으로, 고향(鄕)을 잃어버리고 타향으로 타향으로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객지(客地) 생활 하고 있는 그러한 사람과 같애.

 

우리도 불보살(佛菩薩) 역대조사와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지 못하고, 우리의 본성(本性)을 아지를 못하고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자기의 부모와 형제와 정든 고향을 어떻게 6․25동란과 같은 그러한 피난통에 부모를 잊어버리고, 어릴 때 말이여.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고 객지 신세로 떠돌아다니는 그러한 신세와 같은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갖은 노력을 하고 백방(百方)으로 알고 수소문(聞)을 해 가지고 자기의 고향이 어디며 자기의 부모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거와 같이,

이렇게 가행정진 용맹정진, 열심히 정진을 한 끝에 결국은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집에 이른 데에, 고향에 돌아가는 데에다 비교한 것이다 말이여. 고향에 돌아가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공부가 잡히지를 않고, 화두가 잘 들리지를 않고, 공부가 된 것 같지가 않다 그말이여. 그러되 번뇌심(煩惱心)을 내지를 말아라.

이게 아주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공부가 안되면은 누구를 막론하고 번뇌심이 나기 마련이고 짜증이 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여.

 

벌써 번뇌심, 그 짜증이 무엇이여? 그 짜증은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날이면 벌써 마구니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여 그것이.

일체 번뇌 망상을 하다가도 화두 척! 들어버리면은 마구니한테 붙잡혀 있다가 마구니를 뿌리쳐 버리고 도망해 나온 것이여. 안전지대로 오는 것이여.

 

그런데 ‘화두가 안 들린다’고 번뇌심을 내면은 그것은 벌써 마구니한테 벌써 잡혀갖고 있는 것이다. ‘번뇌의 마구니’한테 그것이 잡혀 갖고 있는 것이여. 

 

또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 산란 속에 빠져 있다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공부가 잘되고 화두가 순일하게 잘 들리고, 머리도 쾌청하고 가슴도 후련하니,

아주 몸도 뒤틀리고 괴로운 것이 없어지고 깨끗하니 공부가 잘되어간다고 해서 그렇게 될 때에, 그렇게 된다고 해서 또 환희심(歡喜心)도 내지 말아라.

 

환희심을 내면은 벌써 ‘환희의 마구니’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여. 환희의 마구니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그놈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벌써 번뇌의 마구니가 들어와 있거나, 환희의 마구니가 들어와 있거나, 화두 놓쳐버리면 모두가 마구니여.

화두 하나 척! 추켜들면은 일체처가 바로 정진 도량이고, 화두 하나 놓쳐버리면은 아무리 방석 위에 앉았어도 그 자리가 벌써 마구니에 붙잡혀 있는 자리다.

 

그래서 어쨌든지 화두를 들어야 하는데,

그 사실은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라 했는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말은 한마디에 지내지 못하지만은 이 화두 하나 옳게 들 줄 아는 사람은 공부가 한 걸음 한 걸음 되어가고 있는 사람이고,

화두 하나를 옳게 들 줄을 모르면은 아무리 방석에서 30년 40년을 방석에 앉았고, 그래서 궁둥이로 그 방석을 7개를 방석을 뚫어도 공부 옳게 된 것이 아니다.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그 화두 하나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옳게 딱! 들 줄 아는 사람이면은 그 사람이야말로 참 옳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20분38초~40분3초)

 

 

 

 

 

(3/3)----------------

 

어떻게 드는 것이 옳게 드는 것이냐?

 

화두는 제일 못쓰는 것이 따지는 것이 제일 못쓰는 것이여.

따져. 이리저리 따져서 들어가는 거.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무자(無字)도 다맛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따지지 말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고렇게만 해야지,

‘없다는 말인가? 있다는 말인가?’ 무자를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경전에 있는 말, 조사의 어록에 있는 말,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가지고 그러한 상식 지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파고 들어가고 하는 건 절대로 금물(物)인 것이여.

 

다맛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뭣고?’화두 하는 분은 ‘이뭣고?’그저 ‘이뭣고?’여.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거라야지, ‘이것이 불성(佛性)인가? 이것이 자성(自性)인가?’ 이리저리 자꾸 따지면 못쓰는 것이여.

 

따지면 벌써 그 따지는 것도 그것도 화두가 아니요, 따지면은 중생심(衆生心)이여. 중생심만 더 조장(長)을 하는 것이여.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 따지거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으로 따지거나, 그동안에 큰스님네한테 들은 법문 그러한 걸 가지고 따져도, 따지면 벌써 자기 생각이여. 따지는 생각은 자기 생각이여.

자기 생각으로 따진 것은 번뇌 망상이여 그것이.

 

우리가 여기 앉아서 참선 하는 것은 화두 의심(疑心), 그놈을 간절히 들고 또 들어야 공부가 되어 가는 것이요, 마구니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내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마구니를 몰아내는 방법은 화두 드는 데에 있는 것이여.

 

‘화두 놓쳐버렸다’고 하는 것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나침판(羅針판)을 잃어버린 거와 마찬가지여.

항시 그 배 운전대 앞에는 나침판이 붙어 갖고 있는데, 그것이 수시로 그 바늘이 움직이면서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말이여.

 

그놈에 의지해서 선장이 운전하는 것이지, 그놈이 고장이 났거나 그놈이 없어졌다고 하면은 그 배는 어디가 동쪽인지 어디가 남쪽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저히 도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화두가 이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너서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언덕에 도달하는 ‘내가 나를 깨닫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나침판이여, 화두가.

그래서 그 나침판을 잠시도 놓치는 날에는 어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환희마(喜魔)가 마음에 들어오거나, 번뇌(煩惱)의 마구니가 마음에 들어오거나, 그밖에 병을 잡아내기로 하면은 한량이 없어.

일체 병(病)이 다못 화두 하나 드는 것으로서 일체 병이 물러서는 것이고, 화두 하나 옳게 들면은 병이 들 이유가 없는 것이여.

 

번뇌가 일어나도 또는 신경질이 나거나, 몸이 아프거나, 골치가 아프거나, 일체 망념이 일어나거나, 다맛 화두 하나 척! 화두 한번 들어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그 찰나에 없어지는 것이여.

 

 

‘시시때때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간절히 간절히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라.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 하루빨리 칠통(漆桶)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 해 가지고 돌아와서 내 등어리를 밀어다오’

 

‘등어리를 밀어달라’하는 말은 옛날에 그 상좌(上佐)가 나가서 행각(行脚)을 해 가지고 큰 선지식 밑에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확철대오 해서 돌아왔다 그말이여.

은사(恩師) 스님한테 돌아왔는데, 밤낮 그 스님은 경(經)만 보고 있어. 강사(講師) 스님이라 경만 보고 있어.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저 경 보는 것으로써 그저 공부를 삼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옆에서 게송(偈頌)을 읊으기를,

방에 들어왔던 벌이 창문이 환하니까, 그 창문 창호지 발라진 환한 데로 나갈라고 툭 부딪쳐갖고 툭 떨어지면 또 다시 자꾸 그 창문 있는 데로만 나갈라고 그런다 말이여.

열어놓은 데로는 나갈라고 안 하고, 창문이 환하니까 그 창문이 나가는 문구녁인 줄 알고 그리 자꾸 부딪쳐갖고 또 확 맥히면 또 그 부딪치고 부딪치고 하니까,

 

“빈 문으로는 나갈라고 하지 아니하고 그 창 발라진 데로 나갈라고 하니, 백 년을 그 구멍을 뚫을려고 그 문에다가 부딪친들 언제 나갈 겨를이 있겠느냐?”하는 내용의 글을 읊으니까,

그 스승이 ‘무슨 소리인고? 참 그 이상한 글을 지었구나’ 그러고.

 

그 다음에 또 목욕탕에 스님이 목욕을 하시는데—목욕탕에 들어가서 등을 밀어드리면서, 등어리를 턱! 한 대 치면서 “법당은 좋다마는 부처가 영험이 없구만” 아! 그런다 말이여.

요리 돌아보면서 “너 이놈, 그 무슨 소리냐?”하고 성을 폭 내니까, “영험 없는 부처가 방광(放光)은 할 줄 아네” 아, 이랬다 말이여. 그 스님 등어리를 척! 치면서.

 

이놈이 어제는 내가 경을 읽고 있는데 이상한 글을 짓더니, 오늘은 또 등을 탁! 치면서 건방진 소리를 한다 그말이여.

‘이놈이 평소에 조벽없는 놈도 아니요, 나가서 공부한다고 그래서 잘 공부하더니 이놈이 미쳤나?’ 암만 생각해도 그냥 둘 수가 없다 그말이여.

 

“너 그동안에 다니면서 무슨 스님한테 가서 공부했냐?”

“아무아무 큰스님한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 밑에서 공부 어떻게 했냐?”

“약허약허해서 그 스님한테 인가(印可)를 맡어 갖고 왔습니다”

 

“아! 그래야. 네가 정말 그렇다면 아무리 네가 내 상좌라지만은 벌써 도업을 먼저 성취했으니 법을 청해야지”

그래 가지고 법을 정식으로 청해 가지고 그 상좌의 법문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그 스승이.

 

‘단리망연(但離妄緣)하면 즉여여불(卽如如佛)이여. 다만 망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다’하는 그 법문을 듣고서 스승이 상좌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 한 그러한 역사가 있는데,

‘어서 칠통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해서 돌아와 가지고 내 등어리를 밀어다오’한 말이 그 출처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공부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고, 참선을 10년 20년 한 사람이나, 1년 이태한 사람이나 오래오래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공부 많이 하고, 출가한 지가 얼마 안 된다고 공부가 미숙하고 그런 것도 아닌 것이여 이것은.

 

어쨌든지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은 일주일 만에 깨달은 사람도 있고, 열흘 만에 깨달은 사람,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지,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또는 올바르게는 해도 간절하지를 못해 가지고 그렁저렁 한다고 하면은 아까 말한대로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해도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고,

올바르게 하면은 오늘 어떻게 될는지 그건 모르는 것이여.

 

우리는 언제 깨달을는지 모르기 때문에 1분 1초도 헛된 생각을 하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말 많이 하는 것도 그것도 습관이라, 말을 해야 소화가 되고, 말을 해야 조금 기운이 나고, 나중에는 그렇게 되어서 말을 안 하면 소화도 안되고 답답하고 상태가 안 좋고 이렇게까지 되는 것이여.

그래서 그러한 습관이 되기 전에, 이렇게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하고 우리 출가해서 이 자리에 와서 이렇게 지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부모를 모시고, 처자 권속을 거느리고 가정을 이루면서 동시에 사회 국가에도 자기의 기술과 능력껏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보편타당한 생활 태도인데,

 

부모도 모시지 아니하고, 자식도 낳아 길르지 아니하고, 사회 국가에 무슨 봉사하는 것도 없고, 이렇게 농사도 짓지 않고, 그 무서운 시주 밥을 먹고, 시주가 갖다준 옷을 입고 그리고서 도를 열심히 안 닦으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깎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아니하고 일생을 이렇게 지내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루, 한 때인들, 1분 1초인들 우리가 그렁저렁 지낼 수 있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말이여.

뼈 아프게 느끼고, 뼈 아프게 무상을 느끼고 우리의 처지가 그러헐 처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정말 깊이깊이 느껴서 열심히 공부 하시길 바랍니다.

 

1초 1초가 모여서 1분 1분이요,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요,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하루,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1년이요, 1년 1년이 모여서 일생이 되고,

그 일생 일생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니까, 그 무량겁 무량겁 하지마는 사실은 1초 1초여.

 

1초 1초가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량겁 생사를 면할려면은 1초 1초 단속하는 길이 가장 요긴한 것이다.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 단속 잘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해탈을 하는 것이고,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 아니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야기 할 때마다 이 말을 내가 강조를 하지마는 너나 할 것 없이,

이건 내가 여러분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여.

여러분은 그 덕분에 듣게 되는 것이지 사실은 이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여.

 

내가 무슨 도(道)를 다 성취를 해서 선지식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한테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수행의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나 자신에게 일르는 말을 여러분은 그저 덕분에 듣게 되는 것이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깊이깊이 명심을 해서 오늘 하루를 또 열심히 간절히,

어제까지 잡담 많이 하는 사람 오늘부터서는 그 잡담이 절대로 없어질 것이고, 어제까지 그렁저렁 무상한 줄 모르고 지내던 사람도 오늘 이 시간부터서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지고 간절히 간절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이 말대로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40분4초~57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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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황벽(黃檗)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무량(無量) ; ①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 ②[불교]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화엄경》에 나오는 백이십 수(數) 중 한 수의 이름이다.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되게 ; 아주 몹시.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장주(藏主) ; 경장(經藏)을 관리하는 직위。 큰 선원(禪苑)에서 대장경을 2부로 나누어 동과 서에 비치하므로 동장주(東藏主)와 서장주(西藏主)가 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회포(懷抱 품을 회/안을 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방생(傍生 곁·옆 방/날 생) ; 몸을 옆으로 누이고 다니는 생물. 벌레, 날짐승, 물고기 따위를 이른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천고(千古) ; ①아주 오랜 세월. ②아주 먼 옛날.

*만고(萬古) ; ①[‘만고의’, ‘만고에  쓰여]오랜 세월 통해 변함이나 유례 없음. ②매우 먼 옛날. ③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만(早晩 일찍 조/늦을 만) ; 이름 늦음 아울러 이르는 .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처지(處地)당하고 있는 사정이나 형편.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뻐드러지다(부드럽던 )굳어서 뻣뻣하게 되다.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황(情況 사정·형편 정/하물며 황) ; 어떤 사물 처해 있는 조건이나 상태.

*여지(地)없다(무엇)달리  말할 필요 없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염두(念頭) ; 마음속. 마음의 속.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내싸두다 ; ‘내버리다(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돌보지 아니하다)’의 사투리.

*시시(時時)로 ; 때때로(경우에 따라서 가끔).

*시시때때 ; 시시(時時, 지나가는 시각 시각)를 강조하는 말. 시간이 흐르는 매 순간.

*도량석(道場釋) ; 목탁석(木鐸釋). 절에서, 아침 예불 하기 전에 천지 만물을 깨우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는 뜻으로 목탁을 치면서 주위를 도는 의식. 주로 천수경을 소리 내어 외우거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등을 부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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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무력(無力)하다(무엇)위세 영향력 없다.

*우두거니 ; 우두커니. 정신없이 또는 얼빠진 듯이 멀거니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 나타내는 .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맥(脈 기운이나 힘)을 속되게 이르는 말.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포단(蒲團) : 좌선할 때 까는 방석.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적적(寂寂) ; 고요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주책없이일정한 줏대 없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없이.

*분분히(紛- 어지러울 분) ; ①떠들썩하고 뒤숭숭하게. ②무엇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게.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의 준말.

*등어리 ; ‘등’의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피난통에 ; 피난하는 판국에. *통: 명사 에서 ‘통에  쓰여어떤 일이 벌어진 환경이나 판국(판局, 일이 벌어져 있는 형편이나 국면)

  나타내는 .

*백방(百方) ; [주로 ‘백방으로’, ‘백방의  쓰여]온갖 방법이나 방면.

*수소문( 찾을 수/바 소/들을 문) ; 세상에 떠도는 소문 두루 찾아 알아봄.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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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금물(物) ;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조장(長)이나 경향  심해지도록 도움주로 부정적 으로 쓴다.

*나침판(羅針판) ; 나침판(羅針盤). 항공, 항해 따위에 쓰는 지리적인 방향 알아내는 계기 하나.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칠통(漆桶)을 타파(打破) ; 칠통(漆桶)은 옻칠을 한 통으로, 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이므로 칠통에 비유한 말이다.

‘칠통을 타파한다’는 말은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귀래위아개배(歸來爲我揩背) : 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가 행각하야 백장(百丈)선사를 만나서 깨달은 후에 돌아오거늘,

은사스님이 목욕하며 때 밀게 하니, 사(師)가 등을 만지며 이르되 ‘좋은 불당(佛堂)에 부처 성스럽지 못하다’하거늘 스승이 돌아보니, 사(師)가 이르되 ‘부처 비록 성스럽지 못하나 능히 방광(放光)하는구나’하고,

 

또 스승이 경을 볼 때에 벌이 창에 와 나가려 하거늘 사(師)가 보고 송(頌)을 읊되,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鑚故紙  何日出頭期

빈 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창문에 부딪히니 어리석구나

백 년을 옛 종이를 비벼댄들 어느 날에 나갈 기약이 있으리오?

 

스승이 경을 놓고 묻되 ‘네 행각하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사(師)가 이르되 ‘백장화상(百丈和尙)의 가르치심을 받아 이제 스승덕을 갚고저 하옵니다’ 스승이 재계(齋戒)하고 사(師)를 청하야 설법하라 하거늘 사(師)가 좌(座)에 올라 이르되,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영광(靈光)이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나며, 체(體)는 진상(眞常)이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진성(眞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 다만 망연(妄緣)을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라

하니, 스승이 그 말에 깨달았다.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후생(後生)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