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5/7) 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전강선사(No.309)—몽산시 총상인(5) (계축73.07.06) 2개정절, 덕산 귀방장 (전309)

 

 

(1/2) 약 34분.

 

(2/2) 약 36분.

 


(1/2)----------------

상봉친아사(相逢親我師)나  백발황화추(白髮黃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천애기다객(天涯幾多客)이  공송백운비(空送白雲飛)오
나무~아미타불~

참 만행(萬幸)으로, 참 다행(多幸)으로 어찌허다가 옳은 스승을 만났구나. 우리 부처님을 만났어.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만났어. 우리 부처님을 만났단 말이여. 옳은 옳은 스님, 나를 제도헐 스승.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은 아무 허송, 소용없어. 도문(道門) 아니라 뭐 별걸 만났어도 스승 아니면 소용이 없어. 매사가 그렇지. 학교도 옳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그저 더군다나 이 우리 정법은 참, 스승을 옳게 만나야 하지. 허다한 교(敎)가 많이 있지마는 우리 부처님의 교(敎)를, 부처님의 정법을 만났어. 얼마나 다행하고, 얼매나 참 더헐 수 없는 법이지.

허지마는 백발황화추(白髮黃花秋)로구나. 백발이 되아 가지고는 누른 꽃 핀 가을이여. 이렇게 늦게 만나고, 이렇게 말세에 만나고, 또 진작 오지 못허고 늙어서 오고, 허예 늙어 다 죽게 된 만년(晩年)에사 만났단 말이여.

아! 그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때 한번 나왔드라면은, 삼천년 전에만 나왔어도 부처님 계실 때, 아! 그때 부처님 바로 뵙고 그저 언하(言下)에 부처님의 제도 받아서 대각(大覺)을 이루었을 텐데, 이 말세에 만났으며, 또 그것도 그렇지마는 이 몸 얻어 가지고도 또 부처님 법을 만나되, 나이 다 그만 지내버리고 젊은 건강한 때 지내버리고 늙어서 죽게 될 때 왔단 말이여.

천애기다객(天涯幾多客)이, 천하에 모도 이 많은 사람들이 공송백운비(空送白雲飛)다. 속절없이 백운(白雲) 가듯기, 구름 백운 흩어지듯기 모도 그래 버리고 도문(道門)에서 도(道)를 얻은 자가,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한 자가 몇이나 되겄냔 말이여? 참 귀엽다.
우리 대중은 이렇게 모도 모아서 이렇게 짜고 앉아서, 그저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이렇게 철저히 해 나가니 그 어떠헌 무루복(無漏福)이여? 해탈복이여? 지금 이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을 더군다나 허니, 가행정진허는 가운데에서 공부를 참으로 잘해 가야 않겠는가?


신심(身心)이 경청(輕淸)하야, 이렇게 화두 하나를 따악 관(觀)허고 해 나가는데, 몸뚱이와 마음이 두 쪼가리 양단(兩斷) 나지 말고, 몸이나 마음이나 한데 그대로 따악 묶아져 가지고는 이(理)나 사(事)나, 몸뚱이는 잔뜩 게을코 마음으로만 헌다고 허니 안되아.
몸이나 마음이나 한 뭉테기가 되아 가지고 한덩어리 되아 가지고는 신심(身心)이 경청(輕淸)혀. 개볍고 깨끗혀. 신심(信心)이 철저허면은 몸이 어디 게으른 법도 없고, 몸이 흐린 법도 없고, 몸이 우선 개볍고, 마음이 깨끗혀. 꽉! 믿고 화두를 잘 해 나가봐! 그 몸이 얼마나 개벼우며 마음이 얼마나 깨끗헌지 말헐 수가 없지.

신심이 없이 그대로 떡 선방(禪房) 와 있을락 하면은 공연히 그만 게을코 마음이 흐리고 일시인들 불안해서 불안해서 못 있는 것이여, 게으른 사람은. 눕고만 싶고 어디 혼자 가서 그만 거 무슨 잡담이나 같이 모도 그런 사람끼리 만나서 잡담이나 하고. 못혀, 일시인들 못하는 것이여, 불안해서.
그러고 그렇게 신심이 없고 공부헐 마음이 없는 사람이 왜 해필 선방에 와서 도 닦는 선방에 와서 지낼라고 허냐 그 말이여. 밥이나 얻어먹을랴고? 이리저리 놀면서 그만 세월이나 보내고 밥이나 얻어 먹을랴고?

자불수도(自不修道)허고, 자기도 도 닦지 아니허면서 남까지 방해하고? 그거 안되아. 차라리 어디 가서 거지 짓을 헐지언정 선방에 들어오는 법이 없는 것이여.
똑 선방에는 도 닦을 마음 철저헌 마음, 발심(發心)헌 마음으로 들어와야, 나도 해태(懈怠) 없이 도(道)를 잘 닦아 나가야 남도 뽄보고, 나도 이롭고 다른 이도 이(利)허게 맨들고, 대중께 모범이 되어야 허지. 제일가는 모범이 되어야 하지.

게을러서 해태(懈怠)나 하고 한화잡담(閑話雜談)이나 하고, 뒷방에 가만히 들어가서 낮잠이나 자고 그럴라면은 그러헌 대죄(大罪)를 지을라면, 시주것 먹고 그 소 될, 뭐 소만 됨사—지옥 타산반전(打算飯錢), 지옥에 들어가서 지옥고 받고 밥값 다 갚고, 밥값을 뭐 시주 밥값을 돈으로 갚나? 내 몸뚱이로 받지. 내 몸뚱이 막 찌르고 썰고 갖다가서 펄펄 끓는 가마솥에 찌져 내고 모도 그런 보(報)를 받고 나와서 소가 되는 것이지, 대번에 소가 되면 좋게? 그런 죄를 왜 짓느냐 그 말이여.

신심(信心)이 철저해서—생사, 죽고 사는 생사죄업(生死罪業)이 제일 그 무서우니까, 발심 안 헐래야 안 헐 수 없고, 도 안 닦을래야 안 닦을 수 없고, 이렇게 신심이 철저해야지. 그러면은 몸뚱이와 마음이 쪼가리가 나지 않고 한덩어리가 되아 가지고는 그 몸이 개볍기가 한량이 없어. 신심으로 허기 따문에. 그러니 마음이 그 깨끗허기가 한량이 없어. 몸뚱이는 개볍고 마음은 깨끗혀.

일체처(一切處)에 생력(省力)이다. 일체처에 힘이 덜려버렸어. 아무 뭐 힘들 것도 없이 그대로 깨끗헌 신심뿐이고, 개벼운 신심(身心)뿐이여. 하나도 몸뚱이에 뭐 무거울 것 없어.
그 신심(信心)으로만 해 봐. 더 못해서 한(恨)이지. 헐수록 무엇을 놓고 들수록 청정한 대중에서 신심껏 허니까 그것이 한량없는 복이 되고. 내 집이니 내 물건이니 없고 공중(共衆), 모두 모여서 도 닦는 이 도문(道門)에.

저 동중(動中)에, 동(動) 가운데, 그러헌 신심 철저헌 신심으로 무엇을 허는 동(動) 가운데,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앉었는 정(靜) 말고, ‘고요 정(靜)’ 자—동(動) 가운데 동(動)헌 가운데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도, 갔다 왔다 하고 이렇게 동(動)헌 가운데에서 화두가 일편(一片)이 되았어. 몸뚱이는 갔다 왔다 하지마는 화두는 타성일편이 되았다. 그대로 따악 깨끗한 물에 달빛 떨어져 있듯기, 달빛 비추어 있듯기, 동(動)헌 가운데 화두가 따악 나타나 있다.

그러드래도 그때에 가서 각당자세용심(卻當仔細用心)해야 한다. 참 그때에 각당자세용심(卻當仔細用心)을 해라. 마땅히 그 조심해라. 그 화두가 만약에 그때에 어디로 도망갈라.
그 철저히 나타나 그렇게 분다한 가운데에도, 장(場) 가운데를 설사 장 가운데 있드래도, 사람 가운데 분다한 가운데 있드래도, 화두가 그때에 가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참 조심헐 때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갔다고, 에따! 인자 마음대로 되니까 방심허지 말아라 그 말이여. 그때가 참으로 화두만, 만약 그때에 틈이 생기면은 틈 생긴 가운데에 잡념도 들어오지마는 잡념보담도 마구니가 들어와. 내 화두 밖의 조금만 다른 생각을 내면은 그 생각 따라서 마구니가 들어온다. 그놈 마(魔), 그거 숭악한 놈이지.(15분43초)

자세히 분명히 철저하게 의단독로(疑團獨露), 알 수 없는 활구선(活句禪), 그 활구선이여. 그렇게 공부(工夫)를 추진해라. 그렇게 잡드리를 해라. 그래서 시종(始終)에 불리정정이자(不離靜淨二字)니라. 처음이나 종(終)이나, 시(始)도 종(終)도 없이 깨끗허고 그 참다운, 깨끗허고 참다운 의단(疑團) 그놈 의심 하나뿐이니라. 의단(疑團)! 알 수 없는 의심 한덩어리뿐이다.

정극변각(靜極便覺)이다. 화두가—일체 망념(妄念)이 거기에 아무리 낼래야 낼 수도 없고—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고, 추역불거(推亦不去)허고 아무리 밀어도 가지 않고, 댕겨도 그대로 있고, 의단(疑團) 하나 독로(獨露)해사 알 수 없는 큰 대의(大疑), 그 큰 의심(疑心), 대의(大疑)거든!
그놈이 화두(話頭) 의단이 그대로 그만 틈 없이 한덩어리 되아 번지면은 변각(便覺)이다. 각(覺)밖에는 없어. 깨달은 각(覺)밖에는 없어. 공안(公案)밖에는 깨달을 것이 없는 것이여. 화두 공안, 고인(古人)이 말씀해 논 화두 공안.

암만 그놈을, 붙여 봐도 붙여서 아는 거, 생각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선(禪)이 아니여, 각(覺)도 없고. 팔만사천 다라니문(陀羅尼門)이 그 중생 마음 따라서 별별 성취를 다 헌다 했지마는, 다라니(陀羅尼)허다가 견성(見性)허는 법은 없어. 다라니 그거만 자꾸 외우니, 그건 뭐 알 수 없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그러고만 앉었지, 그게 어디 그 의단이 있는가?
의심(疑心)이 없고 의단(疑團)이 없기 때문에 깨달은 법이 없어. 그러기에 제일 대병(大病)이 의심 없는 게 대병이여.

그저 그런 것 해서 업장(業障)이나 좀 녹아질란가, 뭔 복(福)이나 세상 유루복(有漏福)이나 한정 있는 복이나 성취헐라는가, 돈이나 좀 벌라는가, 병이나 나을란가, 요새 모도 병 잘 나순다고 그게 선지식(善知識)이라고 찾아가서 거가 미쳐 가지고는 수수 만 명이 딸려 있대.
여기 있는 신도도 나가서—자기는 가만히 앉어 작법해 준다고 앉었고, 자기네들이 가서 인자 빌면은 병이 낫는대. 그런다고 해 가지고는 수수 만 명이 모여서 그러헌 그 짓을 허고 있거든. 그것 뭐여? 그것이 어디 불법(佛法)인가? 불법이라는 것은 오직 각(覺)이여. 그래야 깨닫는 것이다.

그 정극(淨極), 그렇게 철두철미허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헐 것 같으면은, 여지없이 될 것 같으면은 그 의단 탁! 깨달으면서 광통달(光通達)이다. 광명, 생사 없는 해탈광(解脫光)이 툭 터져 버려.

기숙풍청(氣肅風淸)해야 그 깨달은 기운이 청풍(淸風) 같여. 맑은 바람 같여. 맑은 그 바람이 그 얼마나 그 청풍이 좋은가. 안 이른 곳이 없이 청풍이 스르르르 불면은 그 몸뚱이에 잔뜩 더위와 그 번뇌가 그만 스르르르 없어져 버리고, 척 깨끗헌 청풍 같다.
확철대오허면은 중생집(衆生執)이 그만 물러 빠져버리면서 하! 그 경계가 비유허자니 청풍이지, 청풍(淸風)이 그것 당헌가? 청풍 백 배고 청풍 만 배지.

동정경계(動靜境界)가, 그때는 동(動)과 정(靜)과 모든 일체 경계가 여추천상사(如秋天相似)다. 비유컨댄 가을 하날에 구름 한 점 없는 청천(靑天) 같여, 터억 깨달라 버린 경계가. 이것이 일개정절(一箇程節)이다. 공부해 나가는데 일개정절(一箇程節) 이개정절(二箇程節)이거든?
농일상담일상(濃一上淡一上)하야 무자미시(無滋味時)에 잘 공부를 참 잡드리해 나갈 것 같으면은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고, 인제 요렇게 된 것은 일개정절이다.

변의승시진보(便宜乘時進步), 마땅히 때를 타서 그 진보(進步)혀. 그와 같이 의단을 깨달라서 그 경계(境界)가 깨달은 경계가 징추야수(澄秋野水) 같다. 징추(澄秋), 맑은 가을에 들물 같다. 맑은 가을에 들물이 뭐 깨끗해서, 아무것도 거기 뭐 텁텁헌 거름물 농사지을 때 여름에 그 비 와서 황톳물 같은 거 하나도 없고, 징추(澄秋)에 가을 물 같여, 그 경계가. 비유허자니 그렇지, 그거이 당할 것인가?

여고묘리향로상사(如古廟裏香爐相似)하다. 옛 사당에 향로(香爐), 옛 사당에 향로 그대로 떠억 놔둔 것 같다 그 말이여. 부동(不動) 경계가, 깨달은 경계가, 깨달은 그 경계가 무슨 우리 중생 경계처럼 이리 망상 경계처럼 번뇌 경계처럼 그런 것이 없고 망상과 번뇌와 일체가 거기에는 붙지 못허고, 비유컨댄 똑 빈 법당에 향로 거(居)허듯기 가만히 그 동정(動靜)이 여일(如一)허게 그러헌 경계다.

적적성성(寂寂惺惺)해야, 그 가운데에도 적적허고 성성해서 심로불행시(心路不行時)여. 심로(心路)가 행(行)허지 못.. 없어. 심로가 어디 행하냐, 행하는가?
중생이 심로(心路)가 있어서, 우리 중생이 마음 길이 있어서 이 생각 저 생각 모두 일어나 가지고는 그놈이 번뇌가 되아 가지고는 안 이른 곳이 없고, 안 범헌 곳이 없지. 툭 깨달라서 법당에 향로처럼 되고, 들물 가을에 들물 같고, 가을 하늘 같은디, 뭐 무슨 놈의 동념(動念)에 망상 번뇌가 있겠는가? 마음 길이 행(行)치 못혀. 없어.

또한 이 환신(幻身)이, 이 환(幻) 몸뚱이가, 내 가지고 있는 이 몸뚱이가 재인간(在人間)이라도, 이 인간에 있어. 없는 게 아니라 그 몸뚱이 있지 '깨달랐다'고 '견성했다'고 이 몸뚱이가 없나? 이 몸뚱이가 분명히 있어. 이렇게 생존시.. 성숙에 이 몸뚱이는 분명히 있어.

단견개화두(但見箇話頭), 다맛 이 화두 면면부절(綿綿不絶)이여. 그 내 해 나가는 공안이 면면부절이여. 솜과 같이 한덩어리 되아 떨어질 곳이 없고, 따악 그 화두 일편(一片)된 그 경계가 그대로 부절(不絶)이여. 끊어짐도 없고, 달아남도 없고, 그 경계가 추천상사(秋天相似)니 뭐, 가을 하날 같고, 들물 같고 고묘리(古廟裏), 사당에 향로(香爐) 같은디, 어디 '없다 있다' 허겄는가?

도자리(到這裏)해야, 이러헌 때에 진장식이광장발(塵將息而光將發)이다.
티끌, 이 중생 소집(所執), 중생 티끌 마음, 그 숭악한 기멸심(起滅心),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밤낮 어느 때 한때 쉰 때 없는 놈의 중생 마음, 중생의 그 일어나는 마음 티끌 마음, 그놈의 마음이 어디 무슨 뭐 일시(一時)인들, 무슨 시(時)가 있나? 밤낮 일어나고 멸하고. 이놈의 짓 이거.

그것은 그만 그대로 어디 그대로 그놈이 깨달은 광장발(光將發)이여. 그놈 가지고 그만 깨달라 버려. 장식(將息)은, 그대로 그 티끌 마음, 중생 마음은 거기서 그만 그놈이 낮 되니 해 올라오니 어두운 놈은 언제 갔냐 말이여? 껌껌헌 밤은 어디로 갔냐 그 말이여. 간 곳도 온 곳도 없지.
일월(日月)이 툭 떠올라 오니 어디 가서 새카만 검은 흑(黑) 밤이, 검은 밤이 어디 있냐 그 말이여. 어디로 갔으며, 어디로 왔어? 그 자리에서 그만 훤해 버렸지. 이것이 제이개정절(第二箇程節)이다.

일개정절, 이개정절, 이게 이것이 이개정절(二箇程節) 공부(工夫) 들어가는 그 어사(於斯)에, 이러헌 때에 약생지각심(若生知覺心)허면, 만약 지각심(知覺心)을 내면—화두 하나 지금 온당히 되아 가는 경계여, 이것이. 무슨 확철대오헌 경계가 아니라. 화두가 떨어지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콱! 덩어리 된 경계여.
만약 '어서 깨달라야겄다'는 깨달을 마음을 두네. 화두가 이렇게 되았는데, 화두가 일편(一片) 되았는데, '어서 깨달라야겄다' 깨달을 마음을 내네, 각심(覺心)을.
그 각심(覺心) 낸 것이 좋지, 어서 깨달라야겄은게. 허지마는 그 각심 내는 것이 큰 대(大) 마구니다 그 말이여. 그 마음도 내서는 안 되아.

즉단순일지묘(則斷純一之妙)니라. 그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헌 그 일편 덩어리를 끊어버리고 깨버리는 마구니여, 그것이. 내 자심마(自心魔)여, 깨달을 마음 두는 것이.
그 순일(純一)헌 묘(妙)를, 알 수 없는 그 묘를 끊어버리는 마구니 마음이여, 그것이. 그런 마음도 두지 말아라, 깨달을 마음도. 대해야(大害也)니라. 그거 보통 해로운 게 아니다. 큰 대해(大害)여.

아! 깨달을 마음도 내지 안 해야 할 것이어늘 거다가서 무슨 무엇을 분석해 붙여? 요리 분석해 붙여 가지고 '견성이다' 생각해 가지고 '견성이다', 뭘 하나 요리저리 산술(算術), 무슨 그런 것 생각허다가서 아는 것이 뭣이 있으면은 고런 고런 알음알이를 붙여서 견성했다고 헐 것이여?
그 미친놈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제가 다 환희 알면서 건방진 소리, 손을 한번 쑥 내밀기도 허고, 할(喝)을 한번 허기도 허고. 그놈 잡아 물으면 더 꼼짝 못허는 것이.

아! 만공 스님께서—그 대혜인가 그 사람이 견성을 했다고, “제가 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탁마(琢磨)하러 왔습니다”
“어 그려! 그 좋지. 그 견성을 내놓소”

게송을 지어 가지고 와서, “견성헌 게송을 지어 가지고 왔습니다. 보십시오” 그러고 드리니까.
“하! 견성 오도송을 지었어?” 한 손으로 따악 받아서 물팍 밑에 접어 놓고는 또 한 손을 처억 냈다. “그 게송 밖에 견성을 내놓소”

그 암말도 못허니까, 그만 그 자리에서 작대기로 모가지를 뚜드려 패버렸다. “이 건방진 놈아! 견성을 해 가지고 견성을 했다고 해야지, 견성을 못해 가지고 견성했다는 놈이 어디 있어? 요런 놈은 쫓아내버린다”고, 대혜를 쫓아냈다 그 말이여. 그러헌 디 가서 모도 대중이 발심을 허고, 그러헌 디 가서 못된 것을 모도 간택하고, 그런 것이여.

내가 혜우란 놈이 여그 와서 “그거 아닙니다” 그러더길래, 그래 요 자식 “그거 아니면 일러봐라” 하고는 입도 벌리기 전에 주먹으로 두 번을 후려 패버렸더니 도망가 가지고는 시방 저 대흥사 북암인가 어딘가 지내다 갔다든가 어쨌다든가 하는데. 그래도 그게 신학대학을 졸업허고 예수교 믿다 들어온 놈인데. 덕숭산 정혜사만 지내오면은 다 그러네.
거기서 왔다는 수좌는 이 양말을 “양말 한 짝이요!” 견성했다고 또 이러고, 아! 이런 놈의 꼴이 있는가? 세상에. 여자도 굉장하게 견성을 허고 나와 지금. 그런 놈의 견성을 해서 뭣혀? 아무리 말세라고 그러고 있네. 거 스승의 허물이지. 조실 스님의 허물이여.

조실 스님이, 그 내가 '잘못 가리켰다'는 것을 내가 비방한 건 아니여. 허되 학자를 그런 학자를 여지없이 버릇을 고쳐서 도를 닦게 만들아야지. 아! 그만 이놈 그 무슨 뭐 수수께끼 뭐 알듯기 고런 것 같이 아! 이렇게 가리켜 놓으니, 그게 돌아댕기면서 모도 그렇게 만들아 놓네.
그러니 그것이 큰일이여. 나 마구니 되고, 남 모도 마구니 맨들고, 부처님의 법이 그렇게 되아버리고. 되겄어? 참 큰 대해(大害)여. 그러헌 대해가 없어.(처음~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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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과자(無此過者)는, 이러헌 허물이 없는 자는—공부해 나가다 '잘된다'고 지각심(知覺心)을 내야(내서) 그래도 이렇게 순일(純一)헌 묘(妙)를 끊는데 큰 대해(大害)인디, 글쎄 거다 알음알이를 둬 가지고 어디 가면 그만 아무도 없는 데 가서는 제가 선지식(善知識)이락 하고, 제가 안닥 하고, 법문이나 하고, 그러고 댕겨서야 써? 큰일나지.

이러헌 허물이 없는 자는 동정(動靜)이 일여(一如)허다. 동(動)허나 고요헌 디나 똑 한결같다. 항상 화두 하나뿐이지.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만 평생해도 좋아.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鈍)허게 두질 않느냐?' 저 조주(趙州) 저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에 그런 말이 있어.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하게 두지 않느냐?' 고놈을 고렇게 새기거든. 고렇게 새기는 건 아니여. 그 글은 그런 게 아니여.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치(鈍置)헌 놈이 아니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을 턴디. 그것은 다른 말이여.
허지마는 고 문자가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허게 두지 않느냐?' 요래도 되고. '기불둔치평생(豈不鈍置平生)이냐? 어찌 평생을 둔치헌 놈이 아니냐?' 그러면, '언하(言下)에도 대오(大悟)할 턴디, 어찌 도리어 둔하냐?' 요렇게 해도 되고.
얼른 깨달을라고 애쓰지 말고 화두 독로(獨露)를 이놈을 평생을 해도 좋다 이 말이여. 그렇게도 새겨도 되야. (무자십절목) 본문(本文)에는 그런 게 아니여.

평생을 깨닫지 못허고 임명종(臨命終) 시까지 그 사량(思量) 분별(分別) 계교(計較)만 없으면은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 귀여운 것이여. 화두 그렇게 다루어 나가는 것 참말로 좋다 그 말이여.
무엇이 푹 나올 줄 알고, 천지 밖에 가서 무엇이 푹 나올 줄 알고, 이놈을 들입대 그만 사견(邪見)으로 찾으니, '찾다가 죽는다'고 해도 그래. 해봤던들 그거 뭐 더 없어 더, 더 없어.

미(迷)해 가지고서는—눈 병신 나 가지고, 눈병 들어 가지고 하늘 쳐다보면은 눈꼽째기에서 모도 제 눈에서 모도 피어 가지고 허공에 꽃이 사방에 모도 피어 있는데, 눈병이 나아 가지고 보면은 아무것도 없어. 깨달라 가지고 보면 더 없어. 뭐가 있어? 그런 법이여. 생사도 없는 법이여.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이놈을 들입대 그만... 그거 참! 중생 소견으로 중생견으로 찾고 있거든? 아니여. 그거 아니여.

오늘 법문은 부지런히 해도 안 되고, 이놈을 입으로만 들입대 해도 안 되고, 천천히 그 되새겨 나가야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기운도 없고 그래서 듣기에 좀 대단히 어색하지마는 그대로 잘 들으란 말이여.

동정경계(動靜境界)가 한결같여. 오매(寤寐)가 성성(惺惺)혀. 자나깨나, 잠은 잤지마는 깨어나 보면 화두는 그대로 있네. 잘 때나 잠 안 잘 때나 화두가 그대로 있어. 그걸 오매성성(寤寐惺惺)이락 햐. 꼭 있어. 그런 경계가 있어. 인제 해 보면 알어. 잠은 잤지마는 자고 일어나면 화두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여.

화두(話頭)가 고만 오매(寤寐)가 현전(現前)혀. 앞에 항상 독로해. 여투수월화(如透水月華)하다. 물을 뚫고 물속에 들어가서 백혀 있는 달빛 같다. 암만 달(물) 속에 달이 있는데, 달 위에 물 있는 놈을 그릇으로 퍼내 봐라. 그놈을 물로 다 품어 봐라, 달이 없는가?
그 물 다 품어버리면은 없지. 허지마는 그 바닷물, 달 백혀 있는 그 큰 물 언제 다 떠내며, 암만 떠내 봐 그 물밑에 달빛이 없어지는가?
고와 같다. 공부라는 게 고와 같이 되아 나간다. 우리 시방 화두 참선 다루어 나가는 공부법이 그려. 뻘로 들으면은 아무것도 아니여. 자세히 들어봐야...

툭 깨친 경계가 아니여, 시방 화두(話頭)해 나가는 경계지. 화두 의단독로(疑團獨露)헌 놈을 이렇게 잡드리를 허고, 이렇게 다루어 나가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게 쉽게? 좀 허다 말다 안 되면은 내던져 번지고, 망상 난다고 돌아댕기거나 하고 그저, 그럭저럭 좀 허다 말다 하고. 안 되아.

경허 큰스님이 앞에다가 칼을 딱—이놈의 중생, 이놈의 거 죄나 퍼 짓고 생겨 나온 것이 독사 같은 몸뚱이, 나 죄만 짓게 만드는, 내 주인공이 죄만 짓게 맨드는 업신(業身) 몸뚱이, 이 보신 몸뚱이, 요녀러 것을 둘러쓰고 댕김서 죄(罪)만 퍼 짓는 거,
한 시간 살면 한 시간 죄 짓고, 두 시간 살면 두 시간 죄 짓고, 일 년 살면 일 년 죄 짓고, 일생 살면 일생 죄만 퍼 짓는 놈의 죄업(罪業) 몸뚱이, 요것을 둘러쓰고 댕김서 살아 뭣할 것이냐? 살면 그거 뭣하는 것이여? 도(道) 없이 살면 뭣혀? 나를 내가 알지 못허고 살면 뭣혀?

살았자 동념이, 몸뚱이는 가만히 있지마는 안 멕여 주냐? 멕여야 할 것이고, 입혀야 할 것이니, 멕이고 입히는 것이 다 모도 시은(施恩)이니, 물건은 시은이 아닌가? 또 어머니 아버지가 날 몸뚱이 키워주고 나 모도 멕여주는 몸뚱이, 그건 모도 시은 아니고 뭣이며?
이놈의 독사 같은 몸뚱이, 독사란 놈이 산목숨 개구리나 잡아먹을라고 밤낮 고놈만 찾다가 어디 있으면 탁 차서 남의 목숨 깨물아 퍼 먹는, 우리 인생 이 몸뚱이가 보신 몸뚱이, 죄 몸뚱이가 그런 것이단 말이여.

요까짓 놈의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 뭣하냐? 이놈을 그만 항복 받아야겠다. 항복을 받기 위해서 칼을 새파라니 갈아 가지고 앞에다 따악 놓고, 천장암에서. 조끔만 요러면 칼 그 날카로운 칼날이 콧등이를 푹 찔러버리든지, 입을 쿡 쑤셔버리든지, 대갈빡 모가지를 찔러버리든지, 요래 버릴라고 작정하고 앉어서 공부를 허는데 3년을 했어, 3년을. 그 3일도 못헐 턴디 3년을 그렇게 했어. 그저 졸면은 쿡 찔러 죽을라고 작정하고. 무섭게 허셨지.

그 중이 되아 가지고서는 강(講)만 허다가, 글 다 배워 가지고 강(講)만 허다가, 그 늘 강설(講說)이지. 부처님 말씀이 이런 말씀 저런 말씀 그저 인과 말씀 뭐 그저, 그런 말만 그저 배워 가지고 허다가, 홀연히—하도 일러 쌓고 그 이력(履歷) 봐 가지고는 인자 선생한테 이력 다 마친 후에 인자 강사(講師)가 되아 가지고 남을 가르키다가, 홀연히 발심(發心)을 해.
그 발심이 되어야 혀. 암만 법문을 많이 보고 글을 많이 읽었어도 발심을 못허면, 내가 내 마음을 발(發)하지 못허면은 못혀. 거 묘(妙)허지. 발심이 되아 가지고서는 그렇게 용맹심을 갖추어 가지고, 앞에다 칼을 딱 꽂고 3년을 허다가 3년만에 대오(大悟)를 했어.

허! 무슨 말씀에 대오(大悟)를 했는고 하니—중이, 중이 말이여, 속인 말고 중이. 중 되어 가지고 중이 도(道) 닦지 못허고 시주것만 먹으면, 가만히 놀고 앉어서 퍼먹기나 하고 남의 것 시주것이나 먹으면,
뭐 겉으로는 도(道) 닦는 체허지마는 뭐 도 닦는가? 뭐 속에 도(道)여?
도(道)도 닦지 않으면 무슨 낯반대기 무슨 면목으로 선방에 들어와서 시주것 얻어먹냐 그 말이여. 그건 암만 먹으라고 해도 못 먹는 것이여. 안 되는 것이여. 양심상 안 되아.

'중이 시주것만 먹고 헛되이 지내면 소 되니라' 뭐 틀림없이 소 되아. 밥값 다 가서 지옥에 들어가서 갚고 나와 소 되아. 타산반전(打算飯錢)허고 나와서 소가 되아. 염라대왕이 타산반전(打算飯錢)허니까. 도(道) 닦지 않는 인간은 전부 다 염라국으로 가니까.
'중이 도(道) 닦지 못허면은 소가 되느니라' 아! 도(道) 닦다가, 칼을 바솨놓고 용맹정진 도 닦다가 그 말이 밖에서 썩 들어오네. '중이 시주것만 먹으면 소 되아서 소로 농사 지어주고 시은(施恩)을 갚아주는 법이다' 그 말이 척 귀에 들어오면서 활연대오를 했네.

그러니 그때에 마침 참 그 속인(俗人)이여. 속인도 견성헌 이가 많았어, 옛날에는. 저 『염송』에 보면 속인이 더 도(道)를 깊이 닦고 더 크게 닦았어. 처사도 아니라도 도 닦는 이도 있었어.

판치생모(板齒生毛)에 송(頌) 하나가 있는데, '판치생모?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한 데 그 송(頌)이 있는데, 그 송(頌) 기가 맥혀. 그대로 가리켜 놨거든 그거.

구세소림자허엄(九歲少林自虛淹)인데, 구세소림자허엄인데...
(쟁사당두) 쟁사.. 그 밑에 뭐지? (당두) 쟁사당두? (일구전입니다) 엉? (일구전입니다) 옳지! 쟁사당두일구전(爭似當頭一句傳)고. 나무~아미타불~

잘해 논 줄은 알지마는 잊어버려서 못혀. 하! 그것 나, 밤낮 허든 건데 이렇게 잊어버려. 뭐? (판치생모유가사)

판치생모유가사(板齒生毛猶可事)요 석인답파사가선(石人踏破謝家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기가 맥혀. 꼭 송(頌) 하나밖에 없구만. 참 무서운 공안(公案)일수록에 송(頌)이 많지 못혀. 아무리 사람이 많애도 보들 못허니 헐 수가 있어야지. 못혀.
판치생모 화두 나온 뒤에 지금 깜깜하구만. 내가 조주(趙州) 스님 그 사십 몇 문답에 있는 놈을 끄집어 내놨거든. 와서 뭐 '통이빨'이라고도 허고, '뭐 별일 있는가?' 그러기도 허고, 일대 선지식이 시방 한국에서 제일가는 선지식들이 그러고 앉었어. 이름은 제일이여. 뭐 신도가 제일 많고. 해도 공자님 이빨이가 통이빨이니, 앞 이빨 털이니, 이러고 있어. 허! 기가 맥혀. 못혀.

세상에 못헐 것은, 거 바로 보지 못허고는 학자 가리키들 못혀. 가리킬 수가 있어야지? 판치생모 같은 것을 깨달라 가지고 들어가서 물으면은 어떻게 대답을 혀? 대답 못혀.

기껏 법문을 허다가, 하! 그것 대답을 해 놓고도 세상에 그 나중에 깨달아.. 나중에 알아놓고 보니 죽을 지경이지. 그런 짓을 해 놓고는 “견성했다”, “알았다”고, 내가...
내가 그 혜봉 스님 찾아가서 글쎄 그것 조사선(祖師禪)은 못 일렀다고, 용케 물었거든 참! 혜봉 스님 같은 이가 패철을 차고 풍수 노릇을 했지마는 묻는 법을 좀 봐.

(전강) "무자의지(無字意旨) 반(半)만 일러주시오"
(혜봉) "무(無)!" 그러니.

(전강) "그게 반(半) 될 리가 있습니까?"
(혜봉) "그러면 수좌는 어떻게 허겄는고?
(전강) "무!"

(혜봉) "자, '거년(去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今年)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그랬으니, 송곳까장도 없다고 했으니" 그 무자 법문에 이상 없지. "없다고 했으니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못 일렀닥 했으니 어떻게 일러사 조사선(祖師禪)이 되겄는고?"

그거 물은 법문 좀 보아. 어디 딴것 물을 것도 없고, 그 자리에서.
그 격외(格外) 하나 아무 놈이라도 쓰면 좋지 그 뭐.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뭐 뭘 못혀, 조사선 그만 아무 놈이나 하나 갖다 써 놓으면 다 되지.

안되아. 된 법 없어. 고따구 놈의 법이 법이여? 아무때나 쓴 게 법이여? 공안이라고 뭐 격외라고 아무때 갖다..
격외는 똑같지 뭣이여? 호미 들고 밭 매러 간다고 해도 격외(格外)요, 쟁기 들고 논 갈러 간다고 해도 격외요, 숟갈로 밥 떠먹는다는 것도 격외요, 젓그락으로 반찬 먹는다는 것도 격외요, 아! 뭐 못혀? 천하에 뭐 입 못 벌릴 게 뭐여?
고런 놈의 입 벌린 것 되들 안 혀. 공안법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여. 허어 참!

'능각첨첨첨사추(菱角尖尖尖似錐)라' 그 말은 퍽 좋지. 미묘허지.
노장이 아무 말도 안 혀. 양구... 귀방장(歸方丈)이라드니 오직 해야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세상에 생각해 보니 기맥히지.

내가 그 저번에 아침에 내가 대중께 일러놓았지만 녹음법문(錄音法門)에 해 놔야지. 『염송(拈頌)』에 다 해놓지 않았어? 염송 법문에도 96전에도 답이 다 있어.
그렇지마는 여기서 일렀지마는 그 함부로 떠벌리고 대니지 말어. 어디 가서 그렇게 일렀다 소리 허지 말어.

자! 거가서 한마디씩 거가 한번 거가서 선지식 스님네 앞에 가서 반다시 '그 어떻게 했으면은 그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습니까?' 그렇게 된 법문을 한번 물어봐. 아! 그래야 그 서로 탁마(琢磨)가 되고, 부처님의 정법을 상성(相成)해 나가지, 흥성해 나가지, 탁마상성(琢磨相成)해 나갈 거 아니여?(55분10초)

아무때나 그만 어디서 그렇게 했다고 노래 부를 거여? 이 녹음(錄音)에 불가불 헐 수 없어 헌 것이고, '달다' 그놈도, 그러면 '달다' 그놈도 파설(破說)이여? '달다' 그놈, 선지식 스님네가 다 일렀는데 나는 안 일러? 그 '달다' 일러놨더니 내 도장원(都壯元) 했지.

용성 큰스님 앞에 내가 제일귀(第一句) 답도, 그거 제일귀 답으로는 『염송(拈頌)』에도 없다, 이렇게 나왔어.

(용성)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전강) "예?"

(용성) "어떤 게 제일구(第一句)여?"
(전강)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지

(용성) "아니다!"
(전강) "어떤 게 제일구(第一句)입니까?"

(용성) "영신아!"
(전강) "예!"

(용성) "일구(一句)를 내가 일러 마쳤다"
(전강)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지.

(용성) "전신(轉身)을 못했구나!"
(전강) "전신구(轉身句)를 물읍소사"

(용성) "여하시전신구(如何是轉身句)냐?"
(전강)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

그 말씀 끝에 두 말씀도 않고 귀방장(歸方丈) 갔다가, 사흘 후에 50명 대중 가운데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당신이 그렇게 말씀허신 것이 참말로 더 거룩헌 거여. 거룩허지.
만공 스님은 그 말을 듣고 "허어! 용성 스님이기 따문에 속은 줄을 알았다. 용성스님이기 따문에 속은 줄을 알으셨다" 또 만공 스님도 기맥히지. 허!

“무!” 내가 그렇게 했닥 하지마는 그 해석 아니여. 파설 아니여. 어디 그 파설(破說)인가?
그렇지마는 "어떻게 했으면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는가?" 허는 디 가서 그놈을 내놓지 않고 그대로 파묻어 두면은 진실헌 학자한테는 좋아. 그놈을 인제 확철대오헐 때 발견해야 하지.
허지만 거그는 조금 진실한 학자한테 좀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이요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라고 했으니까, 설파는 아니여.

어디 가서 선지식 스님한테 탁마할 때 학자가 반다시 그놈을 물어봐야 되야. 아! 그래야 선지식도 바로 그 자리에서 간택헐 수 있는 것이고, 선지식이 학자한테 대오(大悟)허는 수가 있어. 선지식이 학자한테도 대오허는 수가 있거든?

암두 스님이 척 바리때를 가지고 가니까, 덕산(德山) 스님이 바리때를 가지고 큰방으로 이렇게 나가시니까 암두(巖頭) 스님, 제자가 묻기를 "종미명고미타(鐘未鳴鼓未打)인디,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지발향심마처거(持鉢向甚麽處去)오. 바리때를 가지고 어디를 갑니까?" 허니께 도로 그만 바리때 가지고 방장(方丈)으로 돌아갔거든.
그래 '그 우리 스님이 말후구(末後句)를 몰랐다'고, '말후구를 몰라 가지고는 조실 스님으로 계신다'고. 어쨌냐 그 말이여. 그게 탁마여. 당신에 법사 스님이지마는 벼락 나지.

그러면 덕산 스님이 잘 못 일러서 말후구를 몰랐다고 벼락 낸 거여? 어쩐 까닭을 알어야지. 하! 이런!
그 덕산 스님 가풍이니까, 덕산 스님은 '부처 뭐요?' 부처님을 물어도 방맹이요, 조사를 물어도 방맹이요, '방(棒)은 어따 칠랍니까?' 해도 방맹이요, 덕산 가풍을 막 써?
못 써. 거기서 못 써.

왜 못 써? 어째서 못 쓰냐 그 말이여? 기가 맥혀.
그래 가지고는 깨달랐다고 해 가지고는 큰 입을 벌리고 있네.

무서운, 덕산 스님이 그때 무서운 답이여. 말로 헐 것이 없어. 그걸 알아 가지고 암두 시비(是非)헌 걸 봐야 되야.

"니가 어째서 나를 '말후구를 몰랐다'고 나를 네 이놈, 네가 이놈 그렇게 비방 반대허고 이놈아! 그러냐?"고.
그런께 암두가 얼른 쫓아 들어가서 덕산 스님 귀에다 대고 밀계(密契)를 했어. 은밀히—뭐 모르지? 무슨 밀계인지 모르지. 뭐라고 헌께 "옳다! 옳다! 내가 알았다. 옳다!" 하! 그러니까, 허! "우리 암두한테 내가 옳다!"
"우리 스님이 말후구를 인자 바로 알았지마는 바로 보았지마는 내 밀계에 바로 깨달랐지마는 지득삼년(只得三年)이다. 3년밖에는 못 살 것이다" 과연 지득삼년(只得三年)이거든. 3년밖에는 못 살았거든. 허어! 그건 해석 붙이지 못혀.

거기에 그 모도 송구(頌句)에 가서 무치대충(無齒大蟲)이라 그랬어. 덕산 스님을 무치대충이라. 이빨이 없는 큰 벌거지다 그랬어. 무치대충이라는 것이 무엇이여?
무치대충이라는 건 그건 또 그거 그걸 갖다가서 그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호랭이를 무치대충(無齒大蟲)이라 그려, 호랭이를. 이빨이 없는 큰 벌거지다. 늙은 호랭이다 그 말이여, 말하자면. 그까짓 그 모도 한문 투에 팔리지 말어.
바로 말하자면 늙은 호랭이라 그 말이여. 늙은 호랭이란 놈이 이빨이 없다 그 말이여. 그 늙은 호랭이란 놈이 얼매나 지혜가 있어? 그놈이 무서운 놈인데. 더 지혜가 있다 그 말이여.

그만했으면 암두가 '바리때 가지고 어디로 가요?' 헐 때, 아무 말씀도 없이 방장(方丈)으로 돌아가는 그걸 알아. 어째서 가풍(家風)도 쓰지 않고 아무 말도 않고 방장으로 돌아갔냐 그 말이여.


용맹, 가용맹정진(加勇猛精進) 대중을 위해서 해 나가는 공부 절차를 내가 이렇게 얘기해 준 것이여.

그래 어디까장 했는고 하니, 투수월화(透水月華), 물속에 지금 떨어져 비추어 물속에 백혀 있는 달빛, 암만 물 퍼도 고대로 가만히 있어. 동정(動靜) 가운데 이렇게 화두가 한 번 되아 나가야 한다 그 말이여.
있다 없다, 그저 일어났다 멸했다, 갔다 왔다 허다가 으 뭐 세상에서 들어올 때에는 '꼭 내가 나 찾아야겄다'고 들어와 가지고서는 들어와 보니 모도 잠이나 자올고 앉었으니께, 선각자가 졸고 앉었으니께 들어와서 보고는 '아이고! 별수 없구만, 도 닦아도' 그래 가지고는 퇴타심(退墮心)을 내는 것이여.

그런 것 아니여. 졸고 앉었거나 똥을 싸고 앉었거나, 도문(道門)에 들어왔으니 내가 내 목적 달성해야 하고, 내 발심 내가 해야 하고, 나 찾아야 하는 것이여. 더욱 믿어야 하는 것이고, 더욱 나가야 하는 것이여. 그렇게 개벼히 개벼운 마음으로 남 모냥다리나 보고 조금 있다 홱 나갈라면서, 왜 들어와? 뭣 때문에 들어와?

그래 처음에 이렇게 시험해 봐. 도학자(道學者)를 시험해 봐.
쫓아내 보기도 허고, 별별 짓도 다 해 보다가 인자 학자가 될 만한 그 학자의 자격이, 학자 자격이 나타나야사 그때 가서 인자 참 옳게 인자 승적(僧籍)도 다 해주고, 도첩(度牒)도 주고 그런 것이여.
대번에 무슨 들어왔다고 계(戒) 좀 줬다고 중이고, 계 줬다고 그게 중으로 간주해 줘? 안 해줘. 그거 소용없어. 인자 3년을 한 3년 겪어봐야 하고, 제방(諸方)에 내놔 봐야 하는 것이여. 중 되면 인자 제방에 나가야 하니까.

된 데서만 가만히 폭 파고 앉았어? 여기도 가서 인자 한 철 지내고, 이렇게 많이 벗이 다 도반이 째여서 지냈으니까 인자 사방 가도 알거든. 허니 여 가서도 한 철 지내고, 저 가도 한 철 지내야 도가(道家) 풍속도 알고, 인자 그래 선지식도 다 인연 있는 선지식을 친견하고, 그런 것이거든.

여기는 또 기본 재산이 아무것도 없이 토굴 지어놓고 있는데, 겨우 모아서 한철 살림 어떻게 이렇게 먹고 나면은 아무것도 없지. 반찬까장도 다 없어져버려. 반찬 여간 좀 맨들아 놓았던 거, 토굴에서 좀 맨들아 놔, 장아찌 겉은 것이든지 된장... 그 이게 법문이구만. 때꼽째기 같은 법문이지만 이게 법문이여.
된장 같은 거, 그 뭐 장 같은 거, 뭐 장아찌 남생이, 깻잎파리 남생이, 요런 것을 맨들아 놔도 한 철 먹고 나면 그것도 없구만. 된장도 없지. 깻잎파리 뭐, 장아찌 뭐 그런 것도 다 없지. 해제하고 나면 없어. 아무것도 없어. 해줄 것이 없어. 틀림없어.

양식(糧食)도 다 없지. 깨 같은 거 뭐 팔아서 한 철 살림, 콩 같은 거 팔아서 해 놓면 다 없어. 없으면은 그때 가서는 뭐, 하나 둘도 지키기도 어려와.
그러면 인자 산철에 어떻게 어떻게 애를 써서 댕기면서 그저 설법도 법문도 허면 돈도 좀 주고 어쩌고 그저 이러면은 그런 것 모아 가지고 또 인자 쌀가마니라도 어떻게 맨들아 팔아 가지고는, 또 한 철 겨울살림 허면 또 없어. 긍게 산철 살림은 못허는 것이여.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만공 큰스님도 그 어른은 기도 기본 재산이라도 조금 있고, 정혜사 수덕사 논밭도 있는디, 절도 본래 지어 논 절에 그런 디 계셔도 학자가 찾아오면은 보낼 수 없고, 아 그만 그냥 지내다 보면 살림 중에 떨어져. 양식이 떨어지면은 그만 탁발(托鉢)허러 나가. 동냥 탁발을 모도 나가면 가서 모도 나가서 둘씩 셋씩 나가서 탁발을 해 가지고 와 지냈거든.

나도 작년엔가 언제 하도 양식이 식량이 없어서 시커먼 옷을 입혀서 서울을 내보냈더니, '아! 어디 저런 중이, 저런 중들이 어디서 나와, 일본 중인가?' 왼통 모도 보고 놀래드래. 그래 며칠 댕기다가 뭔 뭐 몇 푼이나 해 가지고 왔던가? 왔어. 그리고 사서, 그까짓 것 사서, 뭣 사서 찻값인가 사서 차 달여 먹으라고 그래버렸지. 나 뭐 별것 없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어, 해제허면은 뭐 다 뭐 그대로 모두 나가지 뭐, 있을 수 없거든. 살림 여 살림도 안 허는 살림 산철에는 헐 수가 없어. 안 나갈래야 안 나갈 수가 없는 것이여.

노자(路資)를 주어? 누가 노자 주어? 옛날에 노자가 어디서 기부가 오면은, 수좌가 그래도 돌아댕기다가 돈냥 남은 것 가지고 기부해서 넘 주었어. 사중에 준 것도 없어.
노자 한푼 노자 얻은.. 나 아직 그렇게 댕김서 공부했어야 어느 절에서 노자 줘서 노자 받아 가지고 간 데 없어. 지금은 모도 저 큰 절 돈 많은 디서 여비 준께, 아! 이런 가난한 절 토굴에서도 여비 줄줄 알고 모도 여비 달락 하네. 그때는 그래도 내가 돈냥 어디 갔다 와서 있은께 줬어. 지금은 돈 한푼도 없어.

어떻게 그만 세상이 그냥 막 들이 올라가 버리든지, 그전 돈 천 원이 지금 돈 백 원도 안되아. 그러니 무슨 돈냥 뭣 이리저리 맨들아 돌아댕기면서부텀 그 맨들아 가지고, 아! 저금을 떡 해 놨더니 저금이 이자가 하나도 없어.
이자가 없으니 그까짓 놈의 거 일 분가 뭐 이쩐가 어쩐가 그까진 저금을 가지고 뭣 원금은 있고 저금 찾아서 쌀이라도 팔아서, 아! 어떻게 해야 헐 텐디, 모지라는데 뭐 할 수 있어야지 그까짓 거. 보리 팔라고.. 보리도 팔 것도 없어. (34분12초~1시간9분38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