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6/7) 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전강선사(No.311)—몽산시 총상인(6) (계축73.07.09.새벽) (전311)

 

 

(1/2) 약 40분.

 

(2/2) 약29분.

 


(1/2)----------------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야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멸멸이(生滅滅已)허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 부처님께서 그 사구게(四句偈)를, 고 법문을 들으실라고 인행(因行) 시에, 성불허시기 전 인행 시에 그 사구게 법문을 들으실라고 몸뚱이를 바쳤어. 위법망구(爲法忘軀)라. 그 법을 듣기 위해서 망구(忘軀)라, 몸뚱이 바쳐, 몸뚱이 죽는 것을 잃어버렸다 그 말이여. 그때에 그 몸을 안 바쳤으면 그 사구게 법문을 얻들 못했거든.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야, 모든 행(行)이 무상(無常)해서—모든 행이 무상혀. 뭐 전체가 다 무상혀. 죽는 것밖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밖에 없으니 죽었다 살았다 하는 그것이 모도 제행(諸行)이지 무엇인가? 그 제행 속에, 죽었다 살았다 하는 속에 모도 제행(諸行)이, 모든 행(行)이 들어 있지.
우리 중생의 제행(諸行), 모든 행이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밖에 없거든. 그 죽었다 살았다 헌 것밖에 없으니 그거 생멸법(生滅法) 아닌가?

생(生)해 죽었다 멸했다 죽었다 멸했다, 이거 멸(滅)허는 것이 어디 아주 멸헌 것인가?
그까짓 몸뚱이 얻었다가 내버리고 또 얻었다 내버리고 허는 가운데에, 공연히 이놈의 중생 생(生), 일어나는 마음으로써 죄만 퍼짓는 생! 그래 가지고 죽어서 또 죄 받는 죄!
하! 이거, 그 생멸법이 무상해서 참 아무것도 아니여. 없는 거, 공연(空然)헌 거. 그 중생, 중생 업(業) 지어 죄 받는 사(死)가 아! 이거 뭐 아무것도 아니지 무엇이여?

그 생(生)과 멸(滅)이 생(生) 없어지고 멸(滅)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生)도 없어져 번지고 멸(滅)도 없어져 번져. 어디 생(生)이 있으며 멸(滅)이 있을 것인가? 우리 마음자리가 우리 성품자리가 어디 생(生)이 있고 멸(滅)이 있는가? 생멸(生滅)이 본래 없는 건데.
생멸 본래 없는 고놈만 깨달라 아! 증(證)해 버리면, 생멸멸이(生滅滅已)면, 그 생멸이 다해버렸다 그 말이여. 그곳에 나아가서는 생사 없는 해탈 정법이라, 해탈 본각(本覺)이여. 본각법, 고 법(法) 하나를 얻으실라고 부처님은 몸뚱이를 바쳤다 그 말이여.

그 법(法)을 가졌으되 생멸(生滅)이 멸이(滅已)해 버린,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그러헌 큰 대도인(大道人)이, 천상천하에 없는 도인이 나찰(羅刹) 귀신이 되아 가지고, 나찰 귀신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이놈의 귀신 몸뚱이가 얼마나 컸던지 말도 헐 수 없이 큰 귀신인데, 사람 같은 걸 그저 그 가로 삼켜 버려. 가로 집어삼켜 버린다 그 말이여.
왜 그런 큰, 천하에 없는 대도사가 도인이 왜 사람 잡아먹는, 사람을 먹고 사는 나찰 귀신이 되았을까? 그 이상하지? 이상하지 않어?
아! 왜 사람을 죽을 사람도 살리와 주는 좋은 선신(善神) 행이 되든지, 귀신이 되드래도 착헌 귀신 행이 되든지, 아 무슨 그럴턴디 어째서 해필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 되었냐 그 말이여. 그 악헌 귀신이 되아 가지고.

그래도 그 사구게 법문을 떠억 가지고 중생을 제도허는 데에,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혀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해야사 적멸(寂滅)이 위락(爲樂)이니라' 아 그 법을 가지고 있으니, 어째 그렇게 악헌 귀신이 되아 가지고는 사람을 모도 잡아먹고 있음서도 그러헌 법문을 가졌다고, 아! 우리 석가모니불 인행(因行) 시에 그 나찰 귀신한테 가서 생사 없는 법이 있단 말을 듣고는 믿고 가서, 그 법을 물으니께,

"아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설법헐 수가 있나? 너를 내가 먹어야 되겄다"
"아 세상에 그 몸뚱이 없으면 도(道)도 못 닦고, 귀 없으면 법문도 못 듣는데, 저를 잡아 잡수시면은 귀도 없고 몸뚱이도 없고 법문을 뭐가 들으리까?"

"아 이놈아 네 귀도 없고 몸뚱이도 없는, 네 생사도 없고, 죽고 사는 생멸도 없는 네 법신(法身)이 있는데 법신이 듣지. 귀 없는 법신. 그까짓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된 몸뚱이 거기에 뚫버진 구녁 그 귓구녁 그것으로 듣는 것보담도 네 향상(向上) 법신으로 듣지. 그러니 네 육신 몸뚱이 그건 바쳐라"

그렇게 해서 "그러면 그렇게 헙소사" 하고, 그 몸뚱이를 바쳤지. 안 바쳐?
그 몸뚱이 아까운 줄은 다 알고, 죽기 싫은 건—뭐 누가 없어? 암만 뭐 해탈도 아니라 무슨 정법을 믿었기로이, 아 이 몸뚱이는 더 애끼지, 누가 그렇게 바치겄어?

"잡숩쇼" 그 바쳤다 그 말이여. 아 그러니께 아 그만 입에다 그만 넣고서는, 입에다 넣고서는 일러주었지. 아 입에다가, 그 큰 입으로 꽉 물고는 일러주었단 말이여.
그게 위법망구(爲法忘軀)여.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그렇게 바친 거여. 그만큼 믿어야사 선객(禪客)이고, 도 닦는 학자고, 그렇게 믿는 학자래야사 불퇴전(不退轉)이다. 정법(正法)에 물러가는 법이 없어.

조금 와서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라, 해탈법이라, 정법이라, 인생 죽고 사는 인생 문제가 붙지 못헌 법이다' 이렇게 어떻게 듣고 와서 한 철 좀 허다가, 두어 철 좀 허다가—한 철이나 뭐 허나? 그만 달아나 버리고, 그만 퇴전해 버리고, 그런 것이여. 천(千)이면은 구백 명쯤 타락하고 열 명이나 될까? 이런 거여.

신심(信心)만 물러가지 아니하면은 꼭 되는 것이 이것이여.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실패헌 법이 없어. 퇴타(退墮)를 허기 따문에 실패를 허지. 퇴타만 없으면 실패한 법이 없는 거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법이니까. 그 찾는 그 자리에 있는 꼭! 있는 법이니까. 없는 법이란 말이지, 꼭 있는 법이거든.

이렇게 소소(昭昭)허고 이렇게 역력(歷歷)헌 고명헌 형단(形段) 없는, 형단이 없고 모냥이 없고, 이까짓 몸뚱이에서 기계에서 나온 것이지, 그 진신 향상 이 법신은 어디 그 그 소리가 나나, 뭔 눈이 있나, 귀가 있나, 입이 있나? 아무것도 없지마는 천하에 신령허고.
아 그놈, 그 가지고 있는 놈 그놈 툭 봐버리는 것인데, 그게 실패가 어디 있어? 실패가 무슨 실패 있어?

땅을 파 가지고 금(金) 같은 거 발견헌 것 그런 것은 땅속에 있는지 없는지, 없는 디도 있고, 암만 파도 없는 디 있고, 어쩌다가 있는 디 있고 허지마는, 바닷속에 그렇게 마니보주(摩尼寶珠)가 많이 들어 있지마는 그놈은 꼭 들어 있는 데를 발견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못 찾고 마는 것이지.

허지마는, 아 가지고 있는 놈이여. 진상수(鎭相隨)헌 놈이란 말이여. 항상 나를 따라댕기는 놈, 항상 나를 그놈이 동용(動用) 전부 그놈이 들어서 가지고 있는 놈 이놈, 이놈 하나를 왜 모르고 이렇게 미(迷)해 깜깜해 가지고 중생으로만 이 고(苦)를 받고.
중생고(衆生苦), 중생은 고(苦)밖에 없고 생사고(生死苦)밖에 없는데 생멸고(生滅苦)밖에 없는디, 왜 왜 깨닫지 못허고 왜 믿었다가도 퇴타(退墮) 타락해 버리고 마냐 그 말이여.


화두를 해 나가는 가운데 화두 현전(現前)이, 저번에 이렇게까장 했지? 화두(話頭)가 현전(現前)하는 것이 따악 앞에 독로(獨露)해 나타나는 것이, 뭣 같이 비유허자면 뭣 같으냐 하면은 깨끗헌 물에 달이 떡 달그림자가 비춘 것 같다. 물속에 달빛이 환하니 비춘 그와 같이 화두가 현전독로(現前獨露)를 해야 한다.

탄랑중(灘浪中)에 있지마는, 물이 그놈이 항상 그 깊은 깨끗헌 바닷물이라도 바람도 없지마는 자체가 그대로 있는 법이 없어. 아무리 바람이 없지마는 풍정(風停)하야도 파상동(波尙動)이다. 바람은 없다마는 바다 물결은 항상 동(動)헌다. 일렁일렁 일렁일렁.
우리 중생의 마음이 바닷물과 같여. 가만히 있을 때가 없어. 어느 때라도 무슨 망상이 있든지 항상 망상 있는 것이 바다 물결 동(動)헌 거와 똑같다. 그 묘하지. 그냥 있을 때가 없어. 한 일념 일순간도 그냥 있을 때가 없어. 뭔 마음이 일어나든지 일어나 가지고 있지. 그걸 중생 생, 일어나는 마음이여.

그 아무리 물이 출렁거리고 흔들거리고 야단쳐도 거기 물달은, 물달 달빛은 물속에 그대로 있어서, 그대로 있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간 법이 없어. 고 자리 암만 흔들거리는 그 속이라도 달은 고대로 꽉! 백혀 있다.
그러허니 우리가 화두(話頭) 하는 마음이 설령 바닷물 같이 뭔 마음이 일어난닥 하드래도 고까짓 일어나는 마음 그까짓 건 관계를 허지 말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疑心)만, 알 수 없는 걸 의심이라 하니까 의심이 다른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것만 있어 가지고 그만—그냥 그대로 알 수 없는 거 근쳐버리고 말아버리면 그걸 의심이라고는 허지 않는데—알 수 없는 그놈이 또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고 자꾸 의심이, 알 수 없는 놈이 자꾸 일어나는 걸, 그걸 의심(疑心)이락 해야.
알 수만 없이 뿐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그놈이 또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고, 뒤집어 봐도 알 수 없고, 거각(擧却)해 봐도 알 수 없고, 들입대 이놈을 그만 자꾸 그 자리에서 거각을 혀. 들어서 알 수 없는 놈을 자꾸 챙겨.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판치생모여? 판자 이빨에 털 나?' 판자 이빨에 털 나는 것이 어디 있겄는가 말이여?

그 수수께끼처럼만 알아버린다면은 그 참선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또 거기에서 뭔 해석을 붙여 놓으면 또 그 아무것도 아니지, 죽은 참선이고. 모도 거다 분단을 내고, 그런 건 선(禪)이 아니거든? 그 뭔 선(禪)이여?
거기서 주먹이나 뿔끈 들어 가지고 그 도리(道理)락 하고, 모도 그저 그만 파설(破說)이나 해서 모도 전허고, 가리킨다고 허면서 그러고 앉었네. 선(禪) 가리킨다고 허면서. 그게 그게 제일 무서운 것이여.

미득위득(未得謂得)허고, 얻지 못헌 걸 얻었닥 하고, 미증위증(未證謂證)허고, 증(證)치 못헌 걸 증했닥 하고, 그래 가지고서는 수수께끼처럼 해석을 붙여서 알았닥 해 가지고, 조실노릇 허면서 남 가르키는 거, 그러기에 스승 가리기가 그렇게 어려워.

참 '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이 도문(道門)에는 사람 얻기 어렵다' 참 어려와. 옳은 스승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와.
해석이나 해주는 스승, 알려주는 스승, 그래 가지고 인가해 주는 스승, 그것 참! 원수라도 그런 원수는 없네. '원수 원수' 해도 깨닫지 못헌 사람이 앉어서 인가해 주는 원수 같은 게 없어. 그러니 인가(印可)한 것을 참 진(眞)원수로 알아야 한다.
참 옳은 인가(印可)야 왜? 참으로 옳은 인가를 말허는 거 아니여. 가짜 인가(印可) 말이여. 자기도 보지 못했는데 남을 어떻게 인가헐 것인가? 참 그것이 진짜 원수여.

촉불산(觸不散)이요. 활발해, 활발발(活潑潑)해서 물속에 딱! 나타난 그 달은 아무리 물결이 흔들거려도 깨끗헌 물결이 아무리 출렁거려도 그대로 있는 것이 활활 발발하다. 활발발(活潑潑)해서 그대로 꽉 있다.
촉불산(觸不散)이다. 아무리 대질러서 그 물달을, 물에 비춘 달을 건질라고 해도 건질 수 없고, 조리질을 해 봐도 소용없고, 거다가서 물이나 우게다 판자나 뭐로 덮어버리면 안 나타날란가 모르지마는, 세상없이 그놈을 퍼내도 있고, 뭐 그대로 백혀 있다.

화두가 아무리 천하 없는 저 장(場) 가운데를 가도, 장꾼들 뭔 얘기를 헌지 즈그끼리 헌 소리가 귀에는 와각와각와각 들린다마는 화두(話頭)는 그대로 현전(現前)허다. 그걸 촉불산(觸不散)이라고 혀. 대질러도 흩어지지 않는다.
탕불실(蕩不失)이다. 아무리 끓여도 잃지 않는다. 끓는 것은 아 물이 펄펄 끓으니 그 얼마나 퍽퍽퍽퍽 끓으니 그 위에 더 급허고 무섭고 그 뭐 이상스러운 놈의 시끄러운 그 경계 아닌가? 그러헌 지경 경계도 잃지 않어. 화두가 도망가지 않어. 화두를 얼마나 철저히 이놈을 참 거각(擧却)해 다루어 놨던지 화두가 그렇게 현전해 가지고는 잃어지들 안 혀.

이렇게 된 이가 있어? 이렇게 된 화두래야 참으로 활구(活句)다. 활구참선법이여.
무슨 거다가 해석,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는 것도 그만두고 깨달을 마음, '어서 왜 안 깨달아지는고?' 이런 제기! 그저 헐 따름이지 깨달아지지 않는 것을 한탄혀?

그래서 그 경계가 중적불요(中寂不搖)허고, 중(中)으로 고요해서, 중적(中寂)이란 건 '가운데 중(中)' 자, 중(中) 자는 사람 몸뚱이 가운데도, 몸뚱이도 이 가운데 이 배꼽 그 가운데거든. 한복판 가운데, 가운데를 제일 중요허다 해야. 그러니 화두를 항상 중적불요(中寂不搖)허게 중(中)에다 두어라 이게여.
배꼽 밑에 그 제하일촌(臍下一寸) 거다가 가만히 화두염(話頭念)을 두면은 화두가 미끄러지기도 않고, 울로 올라와서 상기(上氣)도 되지 않고 중(中)에 따악 있거든. 저울대 딱 놓으면은 저울대 따악 그대로 딱! 몇 근이 나타나듯기.
화두가 중적(中寂)해서 불요(不搖)헌다. 가운데 가서 딱! 화두가 백혀 가지고는 흔들거려지들 안 해. 아무리 화두를 내버리고 흔들래야 흔들어지도 않고, 그대로 따악.

외감부동의(外撼不動矣)다. 밖에서 아무리 별짓을 다 해도 그 화두 마음이 동(動)허지 않는다. 어떠헌 경계가 있다 한들 무슨 경계에 동(動)헐 것인가? 그까짓 놈의 동(動)이 내 화두 하나뿐인데.
이것이 이렇게 된 때가 어떤 지경이든지 화두가 그대로 현전(現前)허는 것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도 허고, 그 지경이 제삼개정절(第三箇程節)이다. 정절(程節)이라는 것은 한 층 올라가, 한 층 밟아 올라가는 것, 또 한 층 밟아 올라가는 것, 또 한 층 밟아 올라가는 것, 그 세 번째 정절이다. 그러헌 경계 시험을 해 보시란 말씀이여.

법문을 이렇게 잘 듣고 화두 다루는 법을 이렇게 잘 알아 가지고는 항상 이놈을 공부허는 것이여. 화두 하나 매(昧)허지 않고 현전(現前)해 나가는 거, 앞에 딱 나타나는 거. 그 앞에 나타나는 그놈이 앉었으면 나타나고 서면 없어지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그런 게 아니여.
앉어서 화두가 현전(現前)헌 놈이 밥 먹을 때도 들어와서 현전허고, 옷 입을 때도 현전허고, 일체처에 현전허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현전헌 경계가 제삼개정절(第三箇程節)이여.

이렇게 화두만 잘 잡드리해 나갈 것 같으면은 이게 참선법인데. 글쎄 거기서 무슨 잡생각이 일어나 가지고는 견성도 못헌 것이 견성헌 체해 가지고는 넘한테 '견성했다'는 말 들어서 선지식 노릇헐라고 그런가? 그 뭣할 것이여? 그거. 아! 이러헌 마음을 갖추어야사 이게 본분학자(本分學者)지.

삼개정절(三箇程節)만 들어갈 것 같으면은 삼개정절에 가서는 의단(疑團)이 파(破)하네. 알 수 없는 의단이 의심이 삼개정절(三箇程節)까장 올라갔으니 삼개정절 올라가서는 그 의단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안 파(破)해질래야 안 파해질 수가 없어. 닭이란 놈이 알을 품고 있으면은 그놈이 제때가 되면은 '따르르르' 소리가 나면, 그 소리 듣고 있다가 탁! 쫏으면 병아리가 폭 나오듯기 고런 시절이 있어.
뭉테기가, 알 수 없는 뭉테기가 극칙 극칙 극칙 3번 이놈이 극칙(極則) 되아 가지고는, 아 그만 그 뭉테기가 알 수 없는 뭉테기가 툭! 터져. 안 터질 수 없어. 그놈이 터지면은 중생견 중생 창자가, 생멸(生滅) 창자가 툭! 불거진다 그 말이여.

그놈의 그 뭐 뭐 의단 파(破)하니까, 무슨 그 의심(疑心) 알 수 없는 놈 파(破)하는 그것이 뭣이여?
그 중생견, 모도 중생 색상견, 중생의 그저 그 기멸, 중생의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그 번뇌 고름 사발 같은 주머니가 푹! 터져.

그것 참! 그 선하자(禪荷子) 스님이 하도 도(道)를 닦아도 도가 안 닦아지니까, 공부가 하도 안 되니깐 관음기도나 헌다고 관세음보살님한테 백일기도를 올리는데, 뭐 쌀이 있나 뭣이 있나, 한번 쌀 갖다가 올려 가지고는 찐 놈을 되쪄서 올리고 되쪄서 올리고, 백일기도를 허되 다른 원(願)을 허고 헌 게 아니라, 대도견성(大道見性)허기를 원(願)을 허고 백일기도를 했다.
대도견성(大道見性) 원(願)을 허고 백일기도를 마친 날, 아 그만 대체 그만 웬 포수가 나오더니 총을 한방 탕! 놓은디 툭 깨버렸네. 그 지나(支那)의 종남산이, 중국의 종남산이 드르르르 허고 우니까 그 때 천자(天子)가 있어서, 아마 천자가 참 큰 도인 천자가 있었든 것이여.

"하! 이 종남산(終南山)이 우니 이 웬 일입니까?" 하니까 "응, 그 소국(小國)에" 우리나라를 소국이라고 했다 그 말이여. "그 소국(小國)에 선하자라는 중에 아만통 터지는 소리다" 이랬거든. 그 아만통이락 했어. 견성이 그것이 아만통 터진 것이다 그 말이여.
중생의 아만통, 중생의 아만통이 망상 가운데 큰 망상이지. 뭣이여? 모도 거만, 아만, '내가 제일이다', 아소심(我所心)에서, 내가 제일이라는 아상(我相) 가운데에서 퍼 일어나는 망상이지.

그 중생의 그 모도 번뇌장 터진 의단이여. 의단(疑團)이 파(破)하면은 정안(正眼)이 개(開)한다. 내 바른 눈이 열린다.
우리가 지금 어디 눈이 바른 눈인가, 이것이? 맨 눈으로써 색(色)이나 보고 '좋다 나쁘다', 상(相)이나 보고 상이 모도 상 덤벵이 그것이 '옳다 긇다', 모도 이러고 앉었지? 어디 그 눈이 바른 눈인가? 생사 없는 해탈 정법을 바로 보는 눈인가?

정안(正眼)이 개(開)할 것이다. 정안(正眼)이 개(開)한 것이 근의(近矣)리라. 삼개정절(三箇程節)만 올라갈 것 같으면은 이러헌 지경이 꼭 있는 것인데, 허다 말다, 공연히 들어와서 '화두를 허면은 견성헌다, 성불헌다, 생사해탈헌다' 그런 것만 껍딱으로 봐 가지고 들어와서 실질로 앉어서 실지로 한번 해보니 안 되거든. 그 말과 다르고.
대번 들어와서 그만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헐 줄 알았더니, 해 보니 더 망상이 나고, 더 번뇌가 나고, 더 분별이 나고, '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허니까, '에! 그거 뭐 소용없다. 그만 해 봐도 안되더라. 우리보덤도 더 먼첨 들어간 그 선객들 모도 공부헌다고 앉었는 거 맨 잠만 자고 앉었더라. 그까짓 짓 천하에 헐 거 아니드라' 도리어 정법(正法)에 더 멀리 물러가는 것이여. 전부 그렇지.

그 물러가지 않고, 넘이야 잠을 자거나 똥을 싸거나, 넘이야 믿거나 말거나 않거나, 그저 내 규칙 내가 딱 세워 놓고, 그 한바탕 해보지?
추지임타황엽낙(秋至任他黃葉落)이요. 가을이 반다시 올 때가 있어. 새파라던 그 냉기 잎사귀가 누래짐서 떨어질 때가 와.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니라. 봄이 와 봐라. 봄날이 뜨뜻허면 그 멀쩡헌 땅에 시퍼런 백초(百草)가 일백 꽃이 다 나오고, 일백 풀이 다 나오고, 그런 때가 있어.

홀연축착(忽然築着)이요, 합착(磕着)하리라. 이렇게만 똑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축착합착(築着磕着)이라.
축착(築着)이라는 건 대쪽, 그 지나(支那)의 어록 말인데, '대쪽 맞듯 맷돌 맞듯 헌다' 그 말은 뭔 말이냐 허면은 대쪽을 큰 대, 왼통 통대를 딱! 빠개 놨다가 고대로 딱 맞추면 틈도 잘 보이지 않고 맞촤지거든. 그대로 딱! 짜개 가지고 있다 딱 맞추면. 고걸 축착(築着), 대가 그대로 딱 맞는다 그 말이여. 합착(磕着)이라 하는 것은 맷돌, 웃짝 아랫돌 갖다 딱! 맞추면 고대로 딱 맞아 돌아가는 걸 합착이락 햐.

축착합착(築着磕着)이란 말은 왜 놨느냐? 고렇게 고인(古人) 공안에 가서 대쪽 쪼갠 놈 딱 맞추듯기 딱 맞아버려. 맷돌 갖다가 웃짝 아랫짝 딱 놓듯이 딱 맞아버려. 고걸 축착(築着)이고 합착(磕着)이라 그려.
그러면은 공안이 있는디, 도인(道人) 천(千)이 있으면, 천 명이 다 공안 한마디씩 말씀을 해 놨으면 고놈이 딱 딱 이사(理事)에 다 들어맞아. 이(理)와 사(事)가 들어맞는 것을 격외(格外)락 햐. 격외가 다른 게 아니라, 없는 걸 격외라 하는 게 아니라, '뜰 앞에 잣냉기다' 저기 있는 놈 그대로 갖다 논 거여. 그걸 격외락 햐.

그게 일체 공안이 다 격외(格外)거든. 격외(格外)라도 다르거든. 이놈 학은 학대로, 까마구는 까마구대로, 구렁이는 구렁이대로, 독사는 독사대로, 일체 그 격외가 고 세상에 있는 고놈 고대로 딱딱 맞아야 되지, 엉뚱헌 놈 갔다 붙여놓으면은 되들 안 혀.

구렁이 꼬랭이에는 구렁이 꼬랭이를 이어야지, 구렁이 꼬랭이에다가서 독사 꼬랭이를 이으면 그 구렁이 꼬랭이가 아니여. 구렁이 대갈빡에다가서 독사 대가리를 갖다 붙여놓으면 구렁이도 아니고 독사도 아니여. 고런 것이 그 공안이 아니다 그 말이여. 공안법이라는 건 딱 딱 있어서, 딱 일러놓으면 변통 없는 것이거든. 들어보면 또 아는 것이고. 견성은 못해도 알기는 허거든.
내 늘 말했지마는 묏자리를 생전 모르다가 딱 써놓고 묏자리 땅 가 딱 해서 포장 딱 해 놓으면은 들 나. '하따야! 그 명당(明堂), 참 명당이로구나!' 뭔 그 와(窩) 겸(鉗) 유(乳) 돌(突), 사상(四像) 가운데에 16도장법 같은 거, 뭐 그런 것은 몰라도, 봐도 '아 명당 명당자리가 저렇구나' 이렇게 안단 말이여. 그건 안닥 해야, 그것을.

봐, 내가 저번 날 혜봉 스님한테 법문답(法問答) 잘못하고 큰 일.. 내가 그걸 참 그 뒤에 발견 못 했으면은 영원히 나는 그 공안에는 매장 당한 공안이고, 그 노장님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고, 내가 그래 이 뭐 법문집에라도 불가불 일러놔야 되겠길래 내가 그놈 일러놨지마는 두고 보란 말이여, 인제 두고 봐 어떠헌고. 거기서 그놈 여의고 있는가 두고 봐.
그 어디 파설(破說)인가? 파설 아니여. 그건 설파가 아니여. 아 무(無)가 어디 없어서? 맨 무(無)인디. 조주 무자가 어디에 없어? 맨 무(無)인디.

무(無), 그놈을 어떻게 해석을 해 놓아사—뭐 오직 해야 그 무(無)를 갖다가 대혜 선사(大慧禪師)는 무(無)! 불시진무지무(不是眞無之無)며, 이 참으로 없다는 무(無)도 아니며, 불시유무지무(不是有無之無)며, 있다 없다는 무(無)도 아니며, 불시허무지무(不是虛無之無)며, 비어서 없다는 무(無)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파설이지. 그러나 필경 그 무(無), 그놈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무(無)가? 무(無)가 무슨 도리여?
'없다'는 무(無)도 아니지, '있다'는 무(無)도 아니지, '있고 없다'는 무(無)도 아니지, '허(虛) 비어서 없다'는 무(無)도 아니지, 그 뭔 무(無)여 그러면? 그거 파설(破說)인가? 파설 아니여.

그때에 참으로 그 물은, 그 물은 조대가 조리가, 조리도 그렇고 조대도 그렇고 이사(理事)도 그렇고, 그 두고 보란 말이여. 그놈을 딱 일러놓아사 후래에 감(鑑)이 되지. 귀감((龜鑑)이, 선(禪)에 선감(禪鑑)이 되아. 내가 그래서 해 논 것이지, 뻘로 해 논 거 아.. 이태까지는 않다가 내가 해 논 거여.
여기에 여기에 이렇게 모아 있지마는. 이거 봐, 내가 그건 뭐 세상없이도 안되니까. 견성 못헌 것이 견성헌 체허고 발을 듦서 “양말 한 짝이요” 어쩌고 무슨 뭐 “내가 일렀소” 그런 건 다 쫓겨나지 않어? 그런 걸 뭘라고 여다가 밥을 멕여 길러. 왜 길러, 그것을?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은 법문이라도 듣고 차츰 법문이나 들어서 정법이나 믿을 그런 소질이 있지. 그 뭣해? 뭣헐 거여? 그거. 아무작에도 못쓰는 것이여.

이렇게 되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만 되아서 삼개정절(三箇程節)만 올라가면 아무리 하근선이라도 하근(下根)이 이렇게 정절(程節), 하나 둘 셋 정절에 올라가서 의단만 탁 파(破)해버리면은 정안(正眼)이 열려 버릴 것이다. 그래서 축착(築着)이요, 합착(磕着)이니라. 천칠백 공안에 하나도 맥힘이 없어. 맥혀도 또 자기가 다 발견하고.
조주 스님 같은 이도 말 배때기, 나귀 배때기를 세 번 들어갈 뻔.. 그렇게 밝은 어른도 법(法)을 쓰다가 세 번 말 배때기에 들어갔다고, 나귀 배때기에 들어갔다고, 면치 못했다고 했어. 허니 그래도 혹 실수가 있다 그 말이여, 공안에. 허지마는 그거 뭐 뭐 그거 가다 오다 혹 실수 하나가 있을 수 있지, 없을 수는 것이여.

낱낱이 천칠백 공안이 이치야 어디 다르고, 뭣허고 헐 것이 있나? 낙처(落處)야?
허지마는 그 격외(格外)에 딱 나가서—격외라도, '판치생모다. 판치(板齒)에 생모(生毛)다' 하는 것은 그 자리에 격외인디, 참 그 자리서 그대로 격외여. 저 '뜰 앞에 잣냉기다' 그게 아니여. 그 자리에 격외인디, 참 견성(見性), 바로 깨닫지 않고는 도저히 못 봐. 못 볼 놈이거든.

시방 한국에 처억 그 퍼트려 놨더니, 말만 내놓으면 저 죽는 거여. 벌써 알아. 허어! 내놓으면 알거든. 또 아무 말도 안 해도 알지, 몰라? 그거 환하지. 경계에 들나는디.
뭐 통이빨이니, '공자님 이가 통이빨이다, 성현 이빨이가 통이빨이다, 이빨이가 이 32개 아니고 통 하나 한 통이빨이다' 고런 놈의 소리가 어디 있어? 또 '앞 이빨이다' 그 뭐 뭣이여?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그 말이여?

내가 내가 그 판치생모를 그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헌다고, 조한천인가 어떤 박사가 막 한 번 내놨다가, 내 법문 네 번인가 세 번인가 내 얼매나 반박을 내 놔.
『염송(拈頌)』에 「설화(說話)」도 불에 태워버리라고 헌 건데, 세계대전에 '앞 이빨 털'이라고 해 논 고것이 조주의(趙州意)여? 고것이 판치생모의(板齒生毛意)여?
막방여래정법륜(莫謗如來正法輪)하라. 무간 아비지옥에 (안) 들어갈라거든 정법륜(正法輪)을 비방치 말라고 얼매나 해 놓았어? 어디 뒤에 말이나 한마디 있어?

그 판치생모의(板齒生毛意)가 세상에 그거 무슨 의(意)냐 그 말이여? 내 그 사람들한테 물어 놨으니 세계의 불교학자들이 세계의 큰스님네가 모도 모여서 지도자 대회를 헌닥 해서 거기에 물을 때에 판치생모를 하나 물어놓고 내가 답 안 할 수 없어서, 아니 그 답에는 안 해.. 거기는 안 했지마는,
거 저 달마바란가 누가 나와서 겨울날에도 한전허고, 잠 눈 속에서 자고 그런 도인이 나왔닥 해서, 내가 그 '나도 이렇게 물었으니 한마디 답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러고, 내가 그거 답허되, '여하시 판치생모(如何是板齒生毛)냐?' 내가 답을 허되 '무수호손도상수(無鬚猢猻倒上樹)니라. 수염 없는 늙은 원숭이가 냉기를 거꾸로 올라가느니라' 내가 고렇게만 해 놓았어. 그것이 고 거다가 얼푸시 내가 하나 해 놓았지. 제 눈이 있으면은 바로 볼 것이고.

못 봐. 그걸 일러 놓았자 소용없어. 내가 갖다가 그걸 파설(破說)로 내가 막 일러놀까? 안 되아.(처음~39분54초)





(2/2)----------------

홀연축착합착(忽然築着磕着)이다. 이러헌 견성시절이 오리라.
왜 이러헌 때가 앞에 반다시 곧 올 턴디, 사량분별 계교 망념만 가지고 참선헌다고 앉었냐 그 말이여. 왜 '사(死)' 자도 아니고 죽은 참선도 아니여 그것은. 무슨 참선인가? 사량 참선인가? 망상 참선인가? 글안으면 무슨 잠자는 참선인가? 왜 한바탕 용맹심을 가다듬아서 왜 한바탕 못혀?

내가 언젠가 어저께도 법문했지마는, 어째? 이런 때가 어디 있어? 이만큼 그래도 이 말세에.
전장(전쟁) 다 없어. 그 참 우리 백성을 우리나라 백성을 이렇게 생각해서 어쩔 수 없으니 세금도 좀 모도 좀 덜 내든 것 더 내게 맨들아 가지고는, 또 갖다가 그대로 새마을 사업을 이렇게 해주고, 농촌이 이렇게 부흥허게 맨들고, 우리 참선허는 학자가 산간(山間)에 앉어서 도 잘 닦게 맨들아 주고 허는 이러헌 대통령 외호헐 때 해줄 때, 한번 닦아야 혀.

아따 그놈의 육이오(六二五) 때 우리 그 전장 당시에 안 지내봤는가? 그때 어떻게 참선혀? 공중에서는 자꾸 쏘아 죽일락 하는디 숨기가 바쁜디 어떻게 해? 그때에도 참말로 참선허는 이는 옳게 헐 수 있지.
나는 그때 우게서 기총소사(機銃掃射) 한다고 팡팡팡팡팡팡 하얀 것이 총 속에서 퐁퐁퐁퐁 나와서 막 터지면은 그 바닥이 막 벌건 철알이여. 아! 그런 놈의 디서 똥깐으로 들어가 숨었네. 똥싸는 디는 그놈이 안 들어올 겐가, 그 총알이? 아! 똥 싸는 데 가서 정랑(淨廊) 구녁에 들어가 숨었어. 안 들어올 줄 알고 숨었을까? 급헌께. 같이 또 있든 김한섭이는 새암, 저짝 새암 고지 밑에 가서는 엎져서 묻고. 그러면 거그는 안 떨어지나? 그렇게 위급헌께 별놈의 짓이 다, 땅속에 가서, 저 저 뒷간에 가서 다 숨어봤다 그 말이여.

숭악한 놈의 디서 피난하는디, 아 그런 시기에도 “에라 이놈 참선만 되게 허면은 안 죽을 수도 있다. 넨장 칠” 아 이런 생각이 다 난다 그 말이여. 백지(白地) 인자 그 길 급헌께.
그거 헌다고 소용이 있어? 죽을 놈 죽고, 맞을 놈 맞지, 별수가 있어?

대통령 장모님이 여기를 오셔서 "어쨌든지 그저 우리 딸 병만 낫우아 주면은 내가 신심을 다 허겄소. 꼭 그렇게 허시오" 허고 부탁하고 갔는디, 아 그 따님은 병이 낫지 못허고 죽었네. 아 병나면은 자기 죄업으로 병이 나 가지고 죽는 것을 기도 드린다고 어떻게 면허나?
그러면 부처님이 어찌 중생 업(業)을 대신 못헌닥 했어? 「중생 업을 대신 못헌다. 제가 생사 죄를 지었으면 제가 생사 죄를 받는 법이다」 이렇게 알려는 주었을지언정 부처님이 대신 다 갖다 받든 못혀. 암만 부처님이 천하에 능(能)이 있지마는 아무리 신통 변화에 능(能)이 계시지마는 중생 업을 대신 못혀. 그러면 왜 중생 죄 못 짓게 한목 다 안락세계(安樂世界)로 인도허고, 생사 없는 해탈세계로 보내지, 이래 두어?

그 하나도 달리, 「너 어서 견성혀. 너 어서 너 찾아. 어서 성불해서 생사해탈해라」 이것이 제도 아닌가? 이 한 말씀 가르켜 주시는 것이 천하에 은혜여. 이것을 알아야 할 거 아니여.
'에따, 기도 드린다고 해서 병 낫어 준다니, 병도 못 낫어 주니 그까짓 게 뭔 도인(道人)인가?' 이렇게 불법(佛法)을 믿어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상견 외도(相見外道)가 되아 가지고는 안 되거든. 그 상견 모도 그렇게 불법을 믿는 건 상견(相見)이여, 사견(邪見)이고.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색(色)으로 날 보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음성이 좋아서 부처다 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고 부처님이 사견 외도(邪見外道)라고 안 해 놓았어? 그러니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되거든.

'자기 죄를 자기가 짓고 제가 제 병 앓다가 죽었구나. 오냐, 그래 너는 그 생사 죄를 짓고 네 죄로 네가 죽었다마는, 네 죽지 않는 네 본연 네 대각(大覺)을, 네 본각(本覺)을, 어서 본래 네가 너를 깨달라서 본각 성취를 해라' 아 그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실상(實相)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 가(假)를 가짜를 믿어 가지고는 그만 중간에 퇴타(退墮)해 버려. 그걸 누가 '퇴타해라' 한 게 아니라 자기가 퇴타한 것이여. 그 자기 허물밖에 안 되고, 자기는 영원히 정법에 물러가는 것밖에는 안 되거든?
그러니 사견(邪見)과 상견(相見)을 보고서는 물러가는 것은 제가 속고 제가 거기서 그만 아비지옥(阿鼻地獄) 들어가고, 무간지옥 들어가고, 소 배때기 들어가는 것이여. 그걸 알아야 혀.
뭐 그거 믿어 주거나 말거나, 그 뭐 그거 하나 믿는다고 무슨 뭐 장하고 나쁠 것이 무엇이 있나?


졸지절(啐地絶)하며 폭지단(爆地斷)하야 통명자기(洞明自己)하야,
아 그만 졸지절(啐地絶)이라는 것은 아까 내나 미리 말했지마는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쪼르르 소리 나면 탁! 쫏으면 폭 나오는 것이여. 고걸 견성(見性) 지경에다 툭! 깨는 지경에 비유했거든.
폭지단(爆地斷)이라, 한번 대포를 팍! 쏘면은 그 바위가 맞으면 바위가 툭 갈라지고, 땅이 맞으면 땅이 툭 벌어지고 그러헌 지경이단 말이여. 그러헌 지경이 와. 번천복지(飜天覆地)라, 그만 땅이 뒤집어져서 그 툭! 터지는 그러헌 지경이 온다 그 말이여. 폭탄 한번 떨어지면 툭 터지듯기.

그래서 통명자기(洞明自己)다. 자기를 통명헌다. '고을 동(洞)' 자를 '통'허면은 '밝을 통(洞)' 자거든. '고을 동(洞)' 자가 '통(洞)'허면 '밝다'고 허는 거여.
통명자기(洞明自己)다. 내가 나를 통명(洞明)해 버린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담도 더이상 통명(洞明)혀. 탁! 그만 뭐 밝다고 헐까, 너룹다고 헐까, 크다고 헐까, 이놈이 그만 그 뭐 통명(洞明)이여. '밝을 명(明)' 자가 그 붙었어! 그 지경은 깨달라 보아야 알지, 깨닫지 못헌 사람이 알 수 있나?

자기(自己)를 통명(洞明)헌다. 세상에 제를, 저를 저가 통명헌 것이여.

"나 견성했습니다. 스님께 견성 탁마(琢磨)를 헐라고 왔습니다"
"일러봐라"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입니다" 견성헌 경계가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아! 그거 말이지, 뭐 다른 것이 무엇이 있어? 뭐 견성했다고 다른 겐가?
그래 쥐가 괴(고양이)밥인디 괴밥이 쥐를 먹었으니, 제가 저를 집어삼켰다 그 말 아닌가? 생각해 봐.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니께.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괴밥이 쥔디, 쥐가 괴밥 먹었거든.
제가 자기한테서 제한테서, 하늘도 제한테서 하늘이 생겨 나왔고, 땅도 제가 맨들아 내놓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도 제가 맨들아 내놓았고, 화화초초(花花草草)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제가 맨들아 놓았지. 내가 이름 지어놓고, 내가 만들아 놓고, 내가 상(相) 붙여 놓고 했지, 누가 했어? 우주 삼라만상이 내게서 일어났다 그 말이여.

내 마음 하나 없으면, 내가 '하늘이다 땅이다' 하는 마음 하나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닌가? 이치가 그렇지 않는가?
뭐 하늘이 하늘이락 했나? 땅이 땅이락 했나? 만물이 내가 만물이닥 했나? 꽃이 내가 꽃이다 하나? 일체 제상(諸相)이 뭐 명상공(名相空)에 들어가보면 똑같지 않는가? 이름과 상(相)이 본래 공(空)했는데, 내가 모도 들어 붙인 거 아닌가? 중생 아상(我相)으로 중생심으로 모도 맨들아 내논 거 아닌가?

그러면 내가 나를 집어삼켜 버렸다 그 말이여.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니 괴(고양이)란 놈의 쥐니까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니, 내가 고양이(쥐)가 지 몸뚱이 집어삼켰으니, 내가 우주 삼라만상을 맨들아 냈으면 맨들아 낸 내 자체, 중생 번뇌장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 말이여. 중생 번뇌장 터져 버린, 없어져 버린 그곳이다 그 말이여. 그것 가지고는 그걸 견성이라고 못혀. “아니다!”
그거 그거 이거 “아니다. 다시 일러라” 한게 “반기(飯器)는 이파(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벌써 다 장만해 놓고 헌 소리여. 환해버려. 바로 깨달른 사람이거든.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그 뭔 소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를 가서 한번 해봐.

반기이파(飯器已破) 알겠어? 알면 안다고 소리를 치고 나와서 한번 일러봐. 뒈진 놈의 소리 말고. 뒈진 놈의 소리 헐라거든 애초에 어서 물러가 속가에나 가!
작대기로 냅대 그만 한번 쏠 테니까, 그따구 소리 말고 나와서 일러봐. 웃음서 삐끗삐끗 웃음서 그 가짜 짓 말고. 행동머리를 고치라고 해도 입을 벌리고 있어. 저런 놈의 소리를 헐라면은 차라리 중 옷을 입지 말아야지.


통명자기(洞明自己)라. 자기를 통명해서 착패불조(捉敗佛祖)의 득인증처(得人憎處)다. 불조(佛祖)의 인증처(人憎處)를 착패(捉敗)해야 한다. 그건 무슨 소리지? 내가 이 법문 내가 오랜만에 허는 갑만?
불조(佛祖)가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勘破)한다. 그건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여. 여까장은 알아두어. 불조패궐처가 있어.
부처님 패궐처, 패궐(敗闕)이라는 것은 허물이여. 누여. 불조패궐(佛祖敗闕)이라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거는 그만 둬. 그렇게만 알아둬. 네가 너를 깨달라 놓고 처꺽 깨달라 놓고 보면, 불조패궐처를 착패(捉敗)해라.

그러고 나서, 그 지경 가서, 그만큼 바로 깨달라 가지고는, 뭐냐? 우의견대종장(又宜見大宗匠)해라. 또한 마땅히 큰 대종사(大宗師)를 봐야 한다. 바로 견성허신 큰스님을 찾아가야 한다.
그 사람 잡아먹는 나찰(羅刹) 귀신이라도 견성도인(見性道人)이면은 모냥 보지 말고 가거라. 몸뚱이를 가서 바치드래도 찾아가야 한다. 모냥 없어. 모냥 없어. 모냥다리 보지 말고, 상(相) 보지 말고.

왜 문수보살 보현보살 같은 이가 우리 부처님 당시에는 양족(兩足) 제자인데, 그다음에는 모도 거리 노상에 가서 거지가 되아 가지고 댕기면서 쌍림부대사(雙林傅大士)로 나와서 생고기 장사를 했으며, 왜 왜 포대화상(布袋和尙) 개뼉다구를 지고 댕김서 개뼉다구 장사를 했으며, 거지한테 거지 떼 중에 들어가서 뭇 거지가 모도 모가지를 홀켜 가지고, 하도 우습게 생겼은게 뒤끌면은 "잉~" 울다가 또 "히히" 웃다가, 가서 어디 가서 동냥이나 해 다가서는 모아놓고 갖다가 놓고는 “나는 이렇게 허고 있다. 봐라” 그러면 이놈이 뺏아가고 저놈이 뺏아가고 모도 이러헌 보시를 했으며.
왜 그랬어? 왜 그렇게 세상에 볼 수 없는 거지 행동을 나투었으며, 볼 수 없는 그러헌 비린내 나는 생고기 장사를 엮어 짊어지고 댕기면서 팔았으며, 그 썩어진 개뼉다구를 약이라고 팔고 돌아댕김서 “사시오” 그랬으며, 왜 그랬어?

그것은 상견 중생(相見衆生) 사견 중생(邪見衆生)을 위해서 그렇게 헌 것이여. 그러헌 대도를 증(證)해 가지고는 다시 나와서 그 천신(賤身)을 얻어 가지고는 사견 중생, 한바탕 또 그 사견중생 따문에 그렇게 사견 상견을 보인 것이거든.
그래서 모도 중생 교화를 해 나가는 가운데 상수(相隨)중, 같이 되아 가지고, 노름쟁이한테 가서는 노름쟁이가 되고, 한량한테 가서는 한량이 되고, 뭐 백정 놈한테 가서는 백정 놈이 되고, 개고기 개 잡아 파는 놈한테 가서는 개 잡아 파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그렇게 모도 우리 부처님이 각색(各色)으로 다 나투어서 중생교화 하는 것이 그렇다 그 말이여.

그러니께 우의견대종장(又宜見大宗匠)하야 또한 큰 대종장, 참말로 바로 깨달라서 교화하시는 종장(宗匠) 그런 대종사가 있거든 찾아가 단련(煅煉)을 구(求)해라. 옳은가 그른가 낱낱이 법을 탁마(琢磨)를 해라. 그 탁마 안 하면 안 된다.
암만 첫째가 견성 하나, 공안 하나 봤다고 아무개가 아무개 헌다고 그래 가지고 입을 열어서 중생 교화 못한다. 공안 공안이 다 그래도 탁마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안 경계 다르고, 이치 달라? 그것 틀려, 안 돼. 모도 그만 '없는 도리'로만 막 가리켜버려? 그거 안 되아. 그런 눈을 멀리고 앉었어?

큰! 큰 단련(煅煉)을 구(求)해라. 탁마(琢磨)를 크게 해라. 그래서 성법기(成法器)니, "옳다!" 모도 인증해 주고, 참으로 옳은 스승이 되고 옳은 법을 바로 가리키고 그런 법기(法器)를 이룰 것이니.
불가득소위족(不可得少爲足)이니라. 설사 옳게 공안 하나 깨달랐닥 하드래도 조금 탁마(琢磨)도 없이 저 혼자 조금 깨달랐다고 해 가지고 조금 얻은 것이 있어 가지고 고것으로 족(足)을 삼아서 중생 교화나 하고, 그렇게 위족(爲足)허지 말아라.

오후(悟後)에, 깨달은 후에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만약 이러헌 큰스님을 서로 만나서 그 단련(煅煉), 그 탁마를 못허면은 미면불요후사(未免不了後事)니라.
오후사(悟後事)를 바로 마치들 못허고, 법이 이렇닥 해가지고 제가 고것 옳게 되도 못허고, 탁마도 못허고 앉어서 저 혼자 도인노릇 허고 있다가 오후사를 면치 못허고, 도로 오후(悟後)에 재미(再迷)해 버리니라. 오후(悟後)에 미(迷)해 버려.
견성했다고 “에이! 아무 데라도 가서 인자 나는 견성했으니 그대로 지내겄다”고 그러고서는, 가서 그만 그럭저럭 그저 그 제멋대로 지내다가 매(昧)해 버리고, 도로 그만 마찬가지여.

기해(其害)가 비일(非一)이니라. 그 해(害)가 참 적지 않다. 도문(道門)에 들어왔다가 조금 얻어 가지고 얻었닥 해 가지고 뒤에 그만 도로 미(迷)해 버리고 그만 타락해 번지면은 참 그 해(害)가 비일비이(非一非二)다. 남이 보드래도 모도 그걸 보고서는 많이 타락하고 남까장 모도 타락시키는 법이다. 여까장 해 두지.


이게 참 많은디, 편이 많은디 이거, 여러 날 허겄네 인제 또.. 해제 안에 다 해 줘야겠는데..
저 대중이 두 시간씩 보청(普請).. 보청을 그걸 안 혀? 우리가 보청을 해야 살지. 아침때 저녁때 한 시간씩 해야, 아 우리가 그저 삼시(三時) 먹고 사는 일도 허지. 그거 우리가 모도 은혜 갚는 것이고.
이런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이지. 조금 조금씩 해서 대중이 서로서로 살아 나가면서 도 닦는 거 아닌가? 남의 일 어디 해 주는가? 이 모여 있을 때 행자(行者)들도 쏵 나오고.

앉아서 가만히만 앉었다고 공부허는가? 그것이 가행정진(加行精進)이지. 그거 이 모도 팔 것 파고 일허면서 화두허는 것이 그것이 참 가행정진이여. 앉었다고만 가만히 돌아만 앉었으면 되는가? 잠 안 자올고 좋지.
인자는 채소 갈 시기가 돌아왔는데도 아무도 뭐—아 뭐 많이 해 봤다고 그래서, 그런 것이나 좀 봐줄 줄 알고, 좀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허자고 허면 다 헐 터이니 해놨더니, 암말도 안 허고 보니께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가지고 어떻게 선방에 지낼라고 머리 깎고 중이 되아. 그래 가지고 중 될라면은 뭐 천하 쉽게? 가만히 앉어서 그만 와 선방 밥이나 먹고? 소용없어. 한 철 지내면 두고 보면 알지. 천하 없이 해도 못 지내는 것이여. 여기서는 지낼 수가 없어. 옷 벗고 퇴속해야지 안 돼.

행자(行者)들도 와서 그저 가만히 와서 뭣허는 거여? 그런 거 저런 거 있어도 일도 살살 빠지고 도피해, 행자 뭣 혀? 한 철 겪어 봐서 안 되면 그대로 가는 것이여. 입든 옷 고놈 입고 가는 거여.
어디 가서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학자가 안 되고 그냥 그냥 어디 그럴라고 해서는 되들 안 혀. 다 겪어 보는 것이여.

아 그래서 입문(入門)이여. 문에 들어와서 저 용화 스님 매니로 참 늦게 중이 되었지마는 천지평 노장님처럼 그 뭐 그 눈치가 빨라서, 아 행자헐 도리를 다 허구만, 그 노인들이. 기가 맥혀. 그래서 '용화 스님!' 소문이 나, 이 도문에는 그러헌 소문이 나야 하는 것이지.
뭔 일을 하나 뒤로 살살 도피험서, 알고도 그러는가 모르고도 그러는가 모르지마는, 아 공자님 말씀에도 오비성현(吾非聖賢)이여. 내가 성현이 아니여 견사구의이라고 했으니, 견사(見事)가 다 있으면은 아 그런 일을 능히 좀 안(案)을 내서 이렇게 이렇게 허자고 그러면은 다 따라서 헐 것이란 말이여.

아는 이가 헌디 왜 안 따라서 혀? 뭐 거기에 아만(我慢)을 두고 '내가 머냐(먼저) 중 되았으니, 머냐 들어왔으니 내가 제일이고, 뭐이 그까짓 가리킬 것 뭐' 그래서 되아?
어저께 들어왔닥 하드래도 아는 이의 지휘를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아는 이가 옳게 시키면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 그게 원융산림(圓融山林)이요, 평등산림이요, 네 산림이 아니고 내 산림인디, 나는 왜 가만히 앉어서 밥 해다 주면 그놈 떡 밥만 받고 막 그만 그놈은 막 먹으면서 배끼(배꼽)에 푹푹 나오게 막 드리 퍼먹고서는 앉어서 졸기나 헐라고 험서 허기 싫어서 도피허고. 그런 것을 뭐라고, 뭐라고 그런 것을 갖다가 여그서 둘 것이냐 그 말이여. 되들 안 해.

시방 시기가 돌아와 중복(中伏) 시기면 여그서는 다 배차(배추) 같은 거, 무수(무) 같은 거 가는데, 갈 생각도 않지. 저 무시(무) 저놈 내가 “갈아 가지고 덮어라” 그래 가지고 그때 갈아 가지고 덮어선 씨를 내려 가지고 저만큼 키워 놨으니 요새 인자 저놈 그래도 먹게 되았다 그 말이여. 배차 저놈도 고렇게 심어 가지고 고렇게 내.. 그 가문디 났거든. 나 저래 길렀거든.
아 이러헌 원융산림, 어디 누가 따로 있나? 아 그런 소견도 내 가지고 길러 가꿔서 모도 여러 스님네가 먹고 도 닦게 만들면 그 자비심(慈悲心)이 약하(若何)오? 그 얼마나 좋은 마음이며.
뒤로써 그저 독사 같은 놈의 몸뚱이 좀 더 못 놀리워서 한(恨)이고, 좀 더 나 혼자 한가롭게 못 지내서 한이고. '나는 그거 알 것 없다' 그러헌 사람이 그러헌 몰자비(沒慈悲), 그러헌 무자비(無慈悲)한 사람이 참선해서, 도 닦아서, 견성성불해서, 일체 중생 교화를 혀? 그러지, 그래서는 안되아.

때가 되았으니 인자 무시(무) 갈 생각도 좀 허고. 아 책임 하나 가졌으면 책임도 이행해야 하고, 감원(監院)이니 별좌(別座)니 해 주었으니 감원 별좌가 그런 것도 좀 해야 한디, 뭐 어떻게 감원 별좌여?
또 말이라도 주지(住持)면, 주지면 주지지, 아! 주지도 그런 소견을 좀 내야 하는 것이고. 뭐 맨 이름만 떠억 가지고는 내비 놔두고 시기를 실시(失時)혀? 시기가 다 넘어갔는디 벌써. 이게.. (오늘 허겠습니다)

오늘이 뭣이여? 오늘이 며칠인데, 오늘 뭣이여? 오늘만 헌다고 혀? 네모 빤뜻허게 탁 해 가지고는, 거름 갖다가 우에 촥 흩여 가지고는, 퐁퐁 파 뒤집어서 딱 엎어놓았다가, 또 며칠 후에 또 한바탕 뒤집었다, 한 서너 번 그놈을 갈이를 해야 하는 것이여.
그놈 거름과 거름이 한데 섞여서 거름 독소가 다 빠져나가 버린 뒤에, 그래 인자 다시 파서 골라 가지고 골 탁 쳐서, 그 골 친 디다가 요새 그 디디티(DDT)인가 뭔 틴가 그런 거 벌거지, 땅에 그 못쓸 벌거지 있는 거 다 뒈지게—그놈 헐 수 없는 놈의 벌거지는 할 수가 있나?—사르르르 헡친 뒤에 씨를 거그다 헡고는 하! 이래야 헐 것 아닌가?
나 하나 잘해서 대중이 잘 먹고 살고 삼동산림(三冬山林)을 헐라면 지금 잘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벌써 씨갓이는 다 사 뭐 그런 것은 뭐, '나는 씨갓이 다 사 다 저 신장에 다 놨으니, 좋은 씨 다 해 놨으니, 그래놓고 보자' 하고 내 시방 가만두고 볼라는 것이여.

인자 중복(中伏) 지내가면은 여그 음력은 다 그런 것부텀 가려야 한디, 중복이 지내가도 아무 소용..
내비둬버려, 나 병들어서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어저께도 두 때만에 먹었어. 하도 배가 고파서 오늘밤에 오늘밤 새벽 한 시쯤인가 되아서 아 저놈 하나 깨어났길래 “야 국 좀 데도라. 나 좀 뭣 좀 먹어야겄다”고 해서 메밀국수를 삶아 논 것을 엊저녁에도 먹지 못허고 아까사 먹었어. 그놈 먹고 나니까 배가 조금 고픈 기는 없어져서, 그래 내가 올라와서 우리 대중께 우리 대중 모도 공부인들 공부 좀 허게 법문 좀 해 줘야겄다고 올라온 거여.

내가 이만저만허게 아파서 죽을 뻔 헌 사람이 아니여. 이티 동안에 그만 작년 올, 아! 내가 죽어 가지고는 따로 나와서 송장, 내가 나를 보고 법문을 했네.
그때에 의사가 와서 그 '숨 떨어졌다'고까장 다 다 듣고, 그 '임종 법문(臨終法門)을 백힐라면 녹음기를 갖다가 백히라'고 그 말 다 들어, 내가. 다 들었어 그 혼백이, 그 앉어서.

그렇게 아파 가지고 배가 이만헌데, 배가 이렇게 들어가 버리고 이렇게 말랐는데, 어저께도 가서 헐 수 없이 가서 법문 아침때 해 주고 점심때 해 주고 왔어, 그저껜가 칠석날.
그러고도 그날 되짚어 와서, 아! 내가 돈푼이라도 그저 어떻게 한푼이라도 아! 어디서 그저 또 주면 그놈 갖다가서는 씨갓이 사 오고, 내가 어저께 가 씨갓이 다 사다 놓았어.
아! 서로서로, 나도 내 자랑 같애서 좀 미안하지마는 나도 대중을 위해서 내가 헌 것인께, 이 말 한마디를 자랑이거나 말거나 뭣이거나 대중께 헌다 그 말이여. 대중도 듣고 다 그러헌 역량을 갖추라는 그거지.

낱낱이 다, 내가 내 몸만 위(爲)허지를 말고, 내가 내 몸만 위헌 것은 좀 많이 자고, 좀 많이 놀고, 좀 많이 게으름 부리고, 내 혼자 살살 도피주의, 그거 영사영겁(寧似永劫)을 침륜생사(沈輪生死)언정, 생사 지옥고(地獄苦)를 받을지언정 소승심(小乘心)은 발(發)허지 말어라. 너 혼자만 살고, 네가 제일이고, 너만 편안하고, 그러지 말아라. 부탁 안 했어?

자! 내가 뭐 시비도 아니고, 오늘은 아침에 운력 시간에 조금 시간 두 시간씩 연장했다니 한 시간 20분이더니.. 네모 반뜻하게 요짝을 딱 맨들아 가지고는 거름 갖다가 촥 헡여. 행자들이 똥지게 짊어지고 3년 살어야 하는 것이고, 육조 스님 방애 찧어서 7천 명 대중 날마당 쌀 다 대주고, 땡초 절에 가서 15년을 공양주 노릇했어, 견성해 가지고도. 그 몸뚱이가 다 닳도록. 그것이 보살심이고, 그것이 행자가 도(道) 배우는 도(道) 마음이여.

내가 대중 흩어지기 전에 요편을 내가 다 설해줄 터니까, 각기 정념(正念)해서 각기 정념을 다 가다듬아서 설법을 잘 들어. 설법이라니! 천하에 설법, 안 뒤에는 허는 법이여!

모르면은 지옥 아비지옥에 들어가도 모르는 것이여. 곧 가도 아비지옥인지 뭔지 몰라. 문 탁! 닫히고 지옥고 받을 때, 그때도 아비지옥인지 모르고 받는 것이여.
소 배때기에 들어가 소가 되아 가지고 '내가 소 되았다'고 해 알아? 그러니 그것이 분허지. 참 원통허지. (39분59초~1시간9분8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