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초파일)2025. 9. 17. 15:53

§(144) (게송)문성시증시~ /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 / 부처님 제자(弟子)가 되면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

『법화경』에 '옷 안에 보배 구슬' 비유 / 그 보배를 찾는 공부가 불법이요 참선. 궁극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 소리를 듣는 그때, 눈으로 무엇을 볼 그때 '이뭣고?' 이것이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그 찰나더라.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을 부르다가, 맨 끝에 가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보시라 / 전강선사께서 최상승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용화선원을 창설 / 업장소멸을 해야 소원성취가 된다. 가장 수승한 업장소멸 방법은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설해 드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많고도 많은 법문(法門)을 설하셨습니다.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나오셔서 설하신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 '이 뭣고?' 이 법 하나를 설하시고 전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끔 이 용화선원을 창설하신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이 주안에다가 자리를 잡으신 목적도, 바로 우리들에게 이 최상승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이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송담스님(No.144)—1981년(신유년) 부처님오신날(81.05.11) (법회부처님오신날)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20분.


(1/3)----------------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요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요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불기(佛紀) 2525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80세를 일기(一期)로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열반에 드신 해를 1년으로, 원년(元年)으로 해 가지고 금년이 2525년이니까, 80세에 열반하신 그 해가 불기(佛紀) 1년이니까 2525에다가 79를 보태면 오늘이 부처님 탄생하신 그 햇수가 되는 것입니다.
2525에다가 79를 보태면은 2604년이 됩니다. 2604회 「부처님 오신 날」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 신자는 마땅히 부처님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기(西紀)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을 일 년으로 해서 금년이 1981년이 되지만,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일 년으로 해 가지고 불기(佛紀)를 지금 따지고 있으니까, 부처님 나신 생신으로 따진다면 2604년이라 하는 것을 우리 불자(佛子)들은 잘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불기에 대해서 경전에 따라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세계 불교학자(佛敎學者)들이 여러 가지로 깊이 연구한 결과 2525년으로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2600년 전 인도(印度) 가비라 왕국(迦毘羅王國)에 태자(太子)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가비라 왕국이 어디냐 하면 지금의 네팔(Nepal) 나라인 것입니다. 네팔 나라에 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은 탄생을 하셨습니다.
태자로 태어나셔서 그 태자의 모든 영광과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온갖 고행(苦行)을 다 겪으시고,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를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그 모진 고행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인간 석가(釋迦)로 볼 때에는 당신의 생사(生死) 문제,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왜 늙어서 병들어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서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항시 마음속 깊이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러시다가 마침내 출가(出家)를 하셔서 '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출가를 하셔서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 그 많은 무서운 고통을 견디시면서 도(道)를 닦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석가로 보지 아니하고, 저 구원겁(久遠劫) 이래로 진묵겁(塵墨劫) 전에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중생(衆生)들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 태어나셔 가지고, 일부러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서 대도를 성취한 그 모습을 우리 중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심으로써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고해(生死苦海)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이렇게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역사, 『팔상록(八相錄)』 또는 여러 가지 부처님에 대한 전기(傳記)를 읽어 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진리(眞理)의 몸으로서의 부처님 또는 일단 사바세계에 사람의 몸을 받아서 태어나신 이상은 인간 석가(釋迦)로서 보는 그러한 부처님의 역사,
각도에 따라서는, '부처님은 저 허공에 오색구름 위에 계시고 한 걸음 옮기실 때마다 그 발자죽에서는 연꽃이 피어나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위대하고 신성하고 거룩하신, 우리 중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러한 훌륭하신 부처님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각도를 바꿔서, '인간 석가(釋迦)다. 일단 인간의 세계에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신 부처님은 설사 대도(大道)를 성취한 성현(聖賢)이시지만, 우리가 언제라도 가까이 모실 수 있고 가까이 가서 무엇이라도 여쭈어 볼 수 있고 무슨 괴로움이라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따뜻하고 자애로우신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성현이다'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 그러한 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부처님' 하면 굉장히 우리하고 거리가 멀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의 할아버지시다. 언제라도 가까이 가서 여쭈어보면 무슨 일이라도 자상하게 인자하게 일러주실 수 있는 그러한 어른이다. 사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우리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 것이 훨씬 우리들에게 더 가깝고 고마우신 성현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어려운 진리를 우리에게 가리키고 설명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하고 우리하고는 아주 바탕이 달라서 도저히 전혀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진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부처님은 그 본바탕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다.

옛날에 ‘양반이다’ ‘상놈이다’ 이러한 계급(階級) 의식이 강할 때, 특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 나라는 네 가지 계급이 있어서 인종(人種)의 차별이 대단이 심했습니다마는—바라문 계급이라든지, 또는 왕족 계급이라든지, 또는 일반 농민 서민 계급이나, 또는 노예 계급, 이러한 사(四) 계급이 있어서 노예들은 바라문이나 왕족의 옆을 지내가지를 못하고 옷만 스쳐가도 큰 벌을 받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계급 타파(打破)를 부르짖어서 부처님의 제자를 만들 때는 농민도 출가(出家)를 허락을 하셨고, 백정(白丁)도 출가를 허락을 하셨고, 또는 왕족이나 바라문(婆羅門)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한 것에 구애(拘礙) 없이 허락을 하셨냐 하면, 동쪽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나 서쪽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나 또는 맑은 물이나 흙탕물이나 일단 물이 바다에 흘러들어 오면, 바다는 깨끗하다고 해서 받아들이고 더럽다고 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에 물을 추호도 차별 없이 다 받아들였습니다.
일단 받아들이면 어떠한 종류의 물이라도 바다에 도달하면 짠맛! 짠맛으로 변하고 마는 것처럼, 어떠한 계급의 인종, 어떠한 죄 많은 사람이라도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면 다 부처님의 혈통을, 진리(眞理)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부처님의 진리(眞理),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해서 불제자(佛弟子)가 되었습니다. 불자(佛子)가 된 이상 우리도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죄 많은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부처님과 같은 성현(聖賢)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자격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에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옛날에 어떤 큰 부자,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들을 하나를 낳아 놓고 그 아들이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렸을 때 그 장자 부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에 가장 훌륭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먹고 쓰고도 남을 만한 그러한 훌륭한 보배 구슬을 그 어린애기한테 전해 봤자 소용이 없어서 자기가 가장 믿는,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그 보배 구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그 보배 구슬을 어린아이의 옷 속에다가 넣고 잘 꿰매 놓았습니다. 그리고서 그 자기 친구에게, "이 간난애기 품 안에다가 보배 구슬을 넣고 잘 꿰매 놨으니 이 아이가 크거든 자네가 ‘이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주어 가지고 그 어린아이로 하여금 먹고 입고 사는 데 궁(窮)함이 없이 잘 살도록 일러주기를 바라네" 이렇게 부탁을 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에 간직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이 자기 몸안에 있는 것을 전연 인식하지를 못하고, 부모 없는 자식이 되어서 고향(故鄕)을 떠나 가지고 천하를 얻어먹고 돌아다니면서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자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그 소년이 자기의 친구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친구의 유언(遺言)에 따라서 그 어린 거지 아이의 몸안에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안에 있는 보배 구슬을 꺼내 가지고 그걸 가지고 집도 사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식량도 사고 또 부릴 사람도 사고, 이래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하는 옷 안에 구슬, 「옷 안에 구슬」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습니다.(처음~20분46초)




(2/3)----------------

이 비유는 우리 안에, 우리는 이 지수화풍(地水火風)—흙 또 물 또 불기운, 바람기운, 이 네 가지의 원소(元素)가 모여 가지고 이 육체(肉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네 가지 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는 일단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한 무상(無常)한 존재에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 속에 영원히 쓰고 또 쓰고 쓰고 남에게 주고 그래도 끊임없이 바닥이 날 줄 모르는 그러한 보물이 이 몸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우리 몸안에 그러한 훌륭한 보배가 있다고 한 사실을 우리에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일러주시기 위해서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에 탄생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배 구슬이 우리 안에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

몸을,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해부(解剖)를 해 보아도 그 구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몸뚱이를 빨가뱃겨 놓고 온 몸을 두루두루 다 살펴보고 눈, 코, 입, 귀, 아홉 구멍을 다 뒤져도 그 보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아홉 구멍을 다 두루 살펴봐도 없다면 대관절 어떻게 해서 우리 몸안에 그러한 위대한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보배 구슬!
여러분들은 ‘다이아몬드’라든지 무슨 그러한 오색(五色)이 찬란한 그러한 보석을 보면 굉장이 기뻐하고 부러워하고 갖고자 원하시지만, 그러한 물질로 된 보배는 언젠가는 내 몸으로부터 떠나고야만 마는 것이고, 아무리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도둑을 맞거나 불에 넣으면 타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부서지거나 또 형편이 어려워지면 내 몸으로부터 떠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일생 동안 복(福)이 있어서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칠십 년 팔십 년 이승을 다 살고 갈 때에는 그것은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왜? 죽을 때 관 속에 넣어 가지고 가면 되지 않느냐!
관 속에 그 보배, 보석을 가지고 가 본들 썩어 가는 육체와 함께 묻어 놓은 뿐이지 내가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몸뚱이는 목숨이 끓어지자마자 10분이 되면 벌써 내장부터 버글버글 썩어 들어 갑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몸으로부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영혼은 이미 떠나가고 없기 때문에 시체와 함께 그 보석을 묻어서 같이 묻어 놓아 봤자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물질로 된 보물을 욕심내고 간직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금생 일생 동안 실컷 쓰고 남고 또 이승을 하직(下直)하고 다시 새 몸을 받을 때에도 그 가지고 갈 수 있는 그러한, 불에 넣어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훔쳐갈 수도 없고 도둑맞을 수도 없는 그러한, 그러한 보배를 우리는 찾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화장(火葬)을 해도 타지 않는 것이냐?"
"이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안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가 있으며, 있는 증거를 내 보여라"

지금 이 송담(松潭)이 여러분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송담의 말을 귀를 기울이고 지금 듣고 계십니다.
"그 듣고 있는 놈이 무엇이냐?"
"귀가 듣지 무엇이 듣느냐?"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이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
지금 이 법상에 올라와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저의 모습을 여러분들은 보고 있습니다. 눈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이 있습니다.

그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공부를 하는 목적, 돈을 버는 목적, 정치를 하는 목적, 모든 목적이 보다 더 잘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행복(幸福)하게 살기 위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하고, 예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돈 많이 번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가 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궁극에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불교(佛敎)를 30년, 40년, 평생토록 절에를 다니면서 아들이나 손자나 손녀가 "불교가 무엇이냐?", "뭣 하러 절에 다니느냐?" (녹음 끊김) ...고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說)하신 팔만장경(八萬藏經) 속에서 많은 경전(經典)을 읽고 연구하고 해서 교리적으로 밝은 지식을 쌓으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전혀 교리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그저 소박한 신앙심으로 그저 절에 와서 공양을 올리고 절을 많이 하고 '어쨋튼지 우리 아들 명 길고 잘살게 해 주십시오' '우리 딸 좋은 데로 시집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 신랑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손이 발이 되도록 10년 20년 30년을 한결같이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다니신 분, 참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하고 기특하고 훌륭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거기에서만 근쳐서는 아니되겠다 이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소박(素朴)한 신앙(信仰)도 대단히 좋고, 어떠한 참선을 하신 분도 또한 그러한 소박한 신심도 가지고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종교인다웁고, 또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또 겸허(謙虛)한 자세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시골 할머니와 같은 소박한 신심도 가져야 하고, 그러나 거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참나를 깨닫는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진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요새 과학 문명이 발달이 되어서, 물질문명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젊은 사람들, 지식층에서는 그러한 소박한 신앙을 강요해 봤자 잘 먹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참나를 깨닫는 참선법(參禪法)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이 불법(佛法)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보겠다. 나의 인간성을 개조하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고 우리의 인간의 본성(本性)을 찾는 그러한 수행법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보겠다'
한마디에 탁! 인식을 하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歸依)한 분을 나는 많이 만났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최상승법을 널리 그리고 높이 선양할 때가 바야흐로 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 문명의 첨단을 걷고 있는 서양사람들이 불교에, 이 참선법(參禪法)에 뜨거운 관심을 나날이 가져가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한국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젊은 분들이 이 참선을 들으려고 그러고, 알려고 그러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옛날에는 절에 오신 분이 대부분 오십 · 육십이 넘은 할머니들만이 절에 오시고, 혹 젊은 부인들은 집안 모다 남편이나 시어른 몰래 친정어머니하고 같이 생남불공(生男佛供)하기 위해서 극히 비밀리에 살짝 왔다가, 와서 공(功)만 들이고 가시던 그러한 때가 불과 십여 년 전에까지도 그래 했었던 것을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면 거의 90%가 젊은 분들이고,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는 겨우 1할 정도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자체는 남녀노소가 없지만 이 시국이 이 시대가 불법,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야만 이 시대를 건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0억 인구 속에 이 최상승법을 믿고 적극 실천한 사람이 과연 몇 프로나 될 것인가?' 생각할 때에, 아직도 우리 불자(佛子)들이 더 신심을 내서 이 불법을 선양(宣揚)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입으로만 '불법', '참선' 하고 떠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철저하게 실천을 해서 나날이 새로와지고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우리 자신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일가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이웃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연히 따라오도록 이러한 수행, 이러한 수행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포교(布敎)의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을 하면서 인연(因緣) 있는 사람에게 권고한다면 따라오지 아니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다, 소리를 듣는 그때가 바로 참나로 돌아가야 할 때다.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요,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산을 보던지 나무를 보던지 또는 사람을 보던지 어떠한 색상(色相)을 본 바로 그때가, 그곳이 참나로 돌아가야 한, 돌아가는 그 곳이다 이것입니다.

'참나는 어떻게 찾는냐?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야만 있느냐, 부처님을 모신 절에만 가야만 찾느냐?'
그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든지 또는 들에서든지 또는 직장에서든지 기차나 버스 속에서든지, 어디에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릴 때 그때 '이 무엇고?' 눈으로 무엇을—산을 보고 새를 보고 기차를 보고 사람을 보고 무슨 빛깔, 청황적백(靑黃赤白) 무슨 빛깔을 보던지, 무슨 모냥을 보던지 볼 그 찰나가 바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참나, 자성불(自性佛),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는 그 찰나(刹那)더라 이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 분 일 분,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가고 닦아가고 공부해 간다면,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더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만 출세하신 것이 아니라,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 할 그 찰나(刹那)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라.(20분47초~41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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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 말씀하시기를,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염부제(閻浮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다음 부처님으로, 다음 교주(敎主)로 탄생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한 생각 한 생각,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에도 '이 뭣고?'를 놓치지 아니할 때, '이 뭣고?'를 관조(觀照)할 때, 그때 그때가 바로 미륵불이 하생(下生)한 때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을 듣고서 여러분 가운데에는, '아하! 내가 여태 불교를 믿어도 헛믿었구나.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태어나신 줄 알았는데, 한 생각 한 생각마다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그 부처님을 뵈올 수가 있다니, 당장 이 자리에서 부터서라도 내가 이 최상승법, 이 참선(參禪)을 하리라' 가만히 내가 눈을 감고 살펴보니까, 이를 악물고 그렇게 결심하신 분이 지금 상당히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말씀을 듣고서도, '그 소리가 뭔 소리냐,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전혀 믿지 아니하고, '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야지, 다 그런 거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고집을 부린 분도 개중(個中)에는 또 몇 분이 계신다 이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미타불만 불러야지 다른 것은 나는 안 하겠다' 그러한 철저한 결심이 있는 분은 계속해서 '아미타불'을 불러도 좋습니다. 또 '나는 부처님한테 맹세하기를, 죽을 때까지 관세음보살만을 부르겠다'고 맹세하신 분이 계시다면 좋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죽을 때까지 열심히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은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육백만 번 부른 만큼의 공덕(功德)이 있다고 한 사실을 나는 이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아니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실컷 부르세요. 부르다가, 맨 끝에 가서 떠억 마음을 가다듬고, ‘이 뭣고?~~~’ 이렇게 한 번 해 보시라 그 말이여. 대관절 여태까지 '관세음보살'을 내가 실컷 불렀는데, '이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한 번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시라 이 말씀입니다.

백팔 염주(百八念珠)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 한 번 부를 때마다 염주알을 이렇게 이렇게 굴리시는데, 다 백팔 번을 굴리면 마지막에 가서 제일 큰 염주알이 딸크닥 걸립니다.
그 염주알 걸릴 때, 그때 떡!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이 뭣고?~~~' 해 보시라 그 말이여. 그렇게만 해 보신다면, 백팔 번 염불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 백팔 번 염불하는 그 공덕을 탁! 합쳐 가지고 그 공덕을 야무지게 뭉쳐서 성불할 수 있는 단계로 비약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하시다가 나중에는 '관세음보살'보다도 '이 뭣고?'가 더 하고 싶은 때가 꼭 올 것입니다. 그때는 여지없이 뒤도 돌아보지도 말고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은 고대로 놔 버리고—버리려고 할 것도 없어. 그냥 고대로 놔 버린 채 '이 뭣고?'만 열심히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에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열심히 한 그 공덕이 완전히 푸욱 썩어 가지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가지고 머지않아서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설해 드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많고도 많은 법문(法門)을 설하셨습니다.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나오셔서 설하신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 '이 뭣고?' 이 법 하나를 설(說)하시고 전(傳)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끔 이 용화사를, 용화선원(龍華禪院)을 창설하신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이 주안에다가 자리를 잡으신 목적도 바로 우리들에게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이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계속해서 이 최상승법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인 진리의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십니다. 지금 우리 용화사 법당 이 탁자에 모셔진 부처님입니다.
다른 절 부처님은 전부 손을 이러한 모습으로 하시던지, 또는 이러한 모습으로 하시던지, 이런 모습으로 하든지, 모다 손 모습이 다른데, 용화사 부처님 모습은 딱 이렇게 손이 되어 가지고 있거든! 이 부처님의 모습은 바로 비로자나불,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이다 그 말이여.

말하자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화신불(化身佛)이여.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화신(化身)으로,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나신 부처님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너희들은 이 육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32상(三十二相)을 받아서 태어난 이 육체의 석가모니불을 믿지를 말아라. 진리, 여래(如來), 진리,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너희들 자신 속에 있는 부처님을 믿어라. 그것을 깨달라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진리의 표상(表象)이 바로 우리 절에 모셔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 진리의 부처님, 참나, 아트만, 그 부처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깨닫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이여. 이 법을 믿는다면 여러분들이 돈과 쌀과 떡과 꽃, 온갖 공양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뜩차도록 공양(供養)을 올린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오늘 들으심으로 해서 여러분들은 가장 훌륭한 공양(供養)을 올리신 것이고, 그것을 실천을 하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거기에서 성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많은 절을 합니다마는, 예배(禮拜)라고 하는 것은 공경진성(恭敬眞性)이요 굴복무명(屈伏無明)이다. 참된 성품, 참된 나 자신의 성품(性品)을 공경하는 것이 이것이 부처님께 예배드린 가장 가까운 예배다.
나무나 쇠나 흙으로 빚어서 만든 부처님께 절하는 공덕도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내 몸안에 있는 참부처님을 공경하고 그것을 닦기 위해서 '이뭣고?'를 하는 이 공부야말로 억만 배, 백억만 배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굴복무명(屈伏無明)이다', 무명(無明)을 굴복(屈伏)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다. 예배(禮拜)의 의의는, 바로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하는 이상의 예배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따라서 '이 뭣고?'를 하면서 기도도 하고, '이 뭣고?'를 하면서 공양도 올리고, '이 뭣고?'를 하면서 예배를 올린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소원을 달성을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용화사를 여기에다 창건한 목적이 그것이요, 이렇게 법당(法堂)을 크게 지어 가지고 법회 때마다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바도 바로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은 입을 통해서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법(法)을 설(說)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에서 연중무휴로 전파를 발송을 해 가지고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우리 자신이 다이알만 딱! 맞추면 그 방송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듯이, 끊임없이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 최상승법, 위대한 진리의 법문을 설하시고 계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 비로자나 부처님의 사신(使臣)으로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신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반하신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도 부처님으로부터 77대의 법맥(法脈)을 이으신 도인(道人)이십니다마는, 그 도인만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누구라도 부처님의 진리법(眞理法)을 전해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법을 이어받으려면, '이 뭣고?' '이 뭣고?를 함으로써 그 다이알을 비로자나 부처님과 다이알을 맞추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리해야만 진리법을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구현(具現)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604회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기어코 실천해서 금생(今生)에 이 몸으로 진리를 구현하겠다'고 하는 각오를 튼튼히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아울러서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 사부대중 여러분은 크고 작은 모든 원(願)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축원을 합니다.
최상승법을 들었기 때문에, 듣고 실천을 하려고 각오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원은 보다 더 빨리 성취가 되실 것으로 나는 믿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소원을, 다 소원을 갖지만 성취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 더디 되는 사람, 빨리 되는 사람, 왜 그 차이가 있느냐 하면 과거에 지은 업(業)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업(福業)을 많이 지은 사람,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뜻대로 잘됩니다. 부자도 되고, 높은 벼슬도 되고, 아들딸도 낳고, 오복을 다 겸비하지만, 과거에 복(福) 지은 것은 적고 죄(罪) 지은 것은 많으면, 그 지은 죄의 장애(障礙)로 인해서 우리의 소원은 그렇게 목마르게 바래지만 잘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지은 업(業)의 장애물을 녹여 없애는 방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염불하고 기도하고 경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한 방법보다도 훨씬 수승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언제 어데서라도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쉬운 방법,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를 드립니다.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원컨댄 법계(法界)에 모든 중생들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다.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일시(一時)에 성불(成佛)하여지이다.

앞으로 일주일 뒤, 음력 사월 보름날은 하안거 결제날입니다. 여름 석 달, 여름 음력 4월 15부터 7월 15일까지 석 달은 하안거(夏安居)라 해 가지고 특별 수련 기간입니다.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이 특별 수련에 동참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직접 오셔서 공부를 못 하신 분도 참례를 하시면 좋고, 또 백일기도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또 법회가 있고,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를 하는 법요... (녹음 끊김) (41분10초~61분3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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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불기(佛紀) ; 불가(佛家)에서 쓰는 연기(年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구원겁(久遠劫 오랠 구/멀 원/가장 긴 시간·겁 겁) ; 아득하게 멀고[遠] 오랜[久] 시간[劫].
*진묵겁(塵墨劫 티끌 진/먹 묵/가장 긴 시간·겁 겁)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팔상록(八相錄) ;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 중요한 사항(八相)으로 헤아려 지은 부처님 일대기.
*팔상(八相) ;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 이 8가지 중에서 성도(成道)가 특히 중심이므로,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생애의 모습. 팔상(八相)은 경론(經論)에 따라 여러 설이 있다.

①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兜率天)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모습.
②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 일곱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선언하는 모습.
③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네 성문으로 나가 동•남•서문에서 각각 늙은•병든•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에 나가서는 스님을 보고서 출가의 뜻을 두는 모습.
④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무상(無常)을 깊이 생각하고, 수행을 위해 백마를 타고 시종을 데리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⑤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⑥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6년의 고행후,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에 달하려는 것을 알고,악마가 모든 수단을 다해 석존을 방해하나, 전부 물리치고 악마의 항복을 받는 모습.
⑦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최초로 5명의 비구에게 설법하는 모습.
⑧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사계급(四階級) ; 인도 카스트(caste) 제도의 네 계급. 인도 특유의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사종성(四種姓), 사성(四姓), 종성(種姓), 카스트 제도(caste制度)라고도 한다.
사제(司祭) 계급인 브라만(brahman), 귀족과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평민인 바이샤(vaiśya), 노예인 수드라(sudra) 계급으로 나뉜다. 현재는 2,500종 이상의 카스트(caste)와 부카스트(副caste)로 나뉜다. 카스트에 따른 직업의 세습이나 카스트 간의 통혼 금지 따위의 엄격한 규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옷 속에 보배 구슬을 꿰매다’ ; 『법화경(法華經)』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 나오는 비유.
*의주유(衣珠喩) ; 『법화경(法華經)』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 나오는 비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다’는 비유로 계주유(繫珠喩), 또는 의리계주(衣裏繫珠)의 비유라고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갔다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데, 친구가 급한 볼일이 있어 그의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고 밖으로 나가니,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는 술이 깨자 그 집을 나와 방황하면서 음식을 구하느라 갖은 고생을 하는데, 훗날 우연히 만난 친구는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던 사실을 말한다는 내용. 여기서 가난한 자는 중생을 상징하고, 친구는 부처님을, 보배 구슬은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누구나 이처럼 귀중한 보배[佛性]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하고 있으며, 선종(禪宗)에서 자가보장(自家寶藏)이라는 용어로 널리 활용된다.
*자가보장(自家寶藏) ; '자기집[自家] 보배 창고[寶藏]' 중생이 각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리킴.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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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 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남불공(生男佛供 날 생/아들 남/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아들[男]을 낳기[生] 위하여 올리는 불공(佛供).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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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본이름은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 1권. 유송(劉宋)의 저거경성(沮渠京聲) 번역.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12년 뒤에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도솔천의 정경을 묘사한 다음,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을 만나기 위한 수행법을 설함.
*미륵(彌勒) : 대승보살. [산스크리트어(범어)]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音寫)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보처보살(補處菩薩) : 보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줄임말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태어나면 성불하여 부처님의 자리[處]를 메우는[補] 것이 예정된 보살을 일컫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수기(受記)를 받아 미래에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을 이른다. 부처님 생존시에 아일다(阿逸多, Ajita)가 도를 열심히 닦아 도솔천에 왕생하여 이 보살의 위치에 올랐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태어나기 전에 호명(護明)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이 보살의 위치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도솔천보다 낮은 사천왕천이나 도리천·야마천에는 게으름과 욕정이 남아 있고, 도솔천보다 상위의 천들은 고요한 선정에 들어 있어 중생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音寫).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사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사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佛典)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 · 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청정법신(淸淨法身) ;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예배(禮拜 예절·절·의식 예/절 배) ;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절을 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법맥(法脈 불법佛法 법/혈맥血脈 맥)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을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온,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의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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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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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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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5. 9. 15. 15:06

§(341) (게송)안견이문원불격~ /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에 즉(卽)해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드는 것이 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 / 여래(如來)의 정법(正法)은 상주불멸(常住不滅). 부처님께서는 상주설법(常住說法) /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로써 우리 마음에 기초를 튼튼히 함으로써 민주화는 올 것 / (게송)근백참현인 광음막허도 금생미명심 적수야난소.


‘중생이다, 부처다’, 무슨 ‘번뇌다, 보리다’ 그런 분별심을 냄으로써 그 분별의 쇠사슬에 맥혀 가지고 거기서 나아가지를 못한 거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맡을 수 있는 거, 혀로 맛볼 수 있는 거, 몸으로 촉감하는 거,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리고 취할 것이 없는 것들이여.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자기(自己)로 돌아올 줄 알아야 돼.

무엇이 자기냐?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이놈,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는 거여. 이것이 바로 똑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여.

지금 불법(佛法) 시대가 말법(末法)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최상승법을 바로 믿고 실천을 해 나가면 여래(如來)의 정법(正法)은 상주불멸(常住不滅)이여. 부처님께서는 상주설법(常住說法)이여. 우주 법계에 가득차 있는 모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바로 부처님께서 상주설법하시는 바로 그 법문(法門) 아닌 것이 없고, 경전 아닌 것이 없고.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하심팔풍경계)

 

약 20분.


안견이문원불격(眼見耳聞元不隔)하고  주명야암절상량(晝明夜暗絶商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래성현하다사(本來成現何多事)ㄴ고  절기당기자부장(切忌當機自覆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견이문원불격(眼見耳聞元不隔)이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원래 조금도 맥히지 않는다, 간격이 없더라. 눈으로 여러 가지 색상을 보는 것이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는 것이 원래 간격이 없어.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주장자(柱杖子)를 터억 들어서 대중에게 보이고, 그리고서 그 주장자로써 법상(法床)을 탕! 한번 치시고서,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밭에 내리니 천 점의 눈송이다.

이런 게송(偈頌)을 읊으셨는데, 눈으로 주장자 들은 것을 보건, 눈으로 꽃이 피고 잎이 지는 청황적백의 모든 것을 보건, 또 귀로 주장자 치는 소리를 듣거나, 자동차 소리나 개 짓는 소리를 듣거나 원래로 조금도 막힌 것이 아니다,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주명야암절상량(晝明夜暗絶商量)이다. 밝은 낮이나 어두운 밤에 상량(商量)을 끊어 버려라. 일체 분별 ・ 시비 ・ 비교 ・ 사량 그런 걸 끊어 버려라 그 말이여.
귀로 무슨 소리를 듣고, 그 듣는 그 소리에 대해서 그리 쫓아가 가지고 온갖 분별 사량심을 내고, 눈으로 무슨 사람을 보거나 모든 사물을 보고서 거기에 대한 온갖 사량분별을 내고 시비심을 내. 그것이 바로 경계(境界)에 속는 것이여.

이쁜 사람을 보면은 거기에 집착을 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든 사람을 보면은 미운 생각을 내고, 자기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은 좋아서 환영을 하고, 자기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면 진심(瞋心)을 내고 미워하고.
그 한마디 자기 비방하는 소리를 듣고서 속에 ‘요놈 가만 놔둬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갖은 악한 방법으로써 끝내 그 사람을 갖다가 못살게 굴고, 모가지를 띠어 버리고 그러한 일이 동서고금의 역사에 참 많습니다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실천하는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칭찬한다고 해서 또 내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해서 그렇게 거기에 빠져서 집착할 것도 없고, 나를 좀 험담을 하고 욕을 하고 나를 좀 해롭게 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확! 진심(瞋心)을 내 가지고 보복을 하고 미워하고 끝끝내 그 사람을 못살게 하고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거기에 떨어지지 않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를 비방하는 말을 듣더라도 거기에 동요가 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해서.

본래성현하다사(本來成現何多事)냐, 본래, 본래 다 이뤄져. 우리가 본래, 새로 도(道)를 닦아서 성불(成佛)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맛 깨닫지 못할 뿐이지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부처님이거든,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어.
그걸 ‘저 부처님이나 닦고, 최상근기(最上根機)나 닦고 그러지 우리는 참선(參禪)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렇게 세속에서 살기 바쁘고 일이 복잡한데 무슨 참선을 하냐?’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보지도 아니하고 미리서부터서 자포자기하고 그러지를 말라 그 말이여.

절기당기자부장(切忌當機自覆藏)이여. 모든 기틀을 당해서, 모든 경계를 당해서 스스로 덮어 버리지 말아라. 스스로 매(昧)해 버리지 말아라. 경계에 속아 가지고 거기에 빠져 버리면 그게 자기가 자기를 갖다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리는 거고, 바로 성불할 수 있는 기회를 갖다가 잃어버린 거다 그 말이여.

견성성불,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야 성불을 한다’ 이렇게 소승 경전에 그렇게 표현이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거든. 한번 뛰어 가지고 바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중생이다, 부처다’, 무슨 ‘번뇌다, 보리다’ 그런 분별심을 냄으로써 그 분별의 쇠사슬에 맥혀 가지고 거기서 나아가지를 못한 거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맡을 수 있는 거, 혀로 맛볼 수 있는 거, 몸으로 촉감하는 거,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리고 취할 것이 없는 것들이여.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자기(自己)로 돌아올 줄 알아야 돼.

무엇이 자기냐?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이놈,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는 거여. 이것이 바로 똑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여.

천 가지 만 가지 부처님의 방편법(方便法)이 있지만 그러한 방편법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훌륭하지만, 방편법이라 하는 것은 원래 오래 거기에 묶여 있어서는 아니되는 거여. 방편은 잠깐 거기 디디고서 저 건너로 건너가야지,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부처님의 참다운 뜻을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면은 통살을 버려 버려야 하고, 물을 건너가면 배는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야지, 육지에 가서도 배를 짊어지고 다니고 끌고 다니려고 한다든지, 고기를 잡은 뒤에도 계속 통살을 메고 다닌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여.

지금 불법(佛法) 시대가 말법(末法)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최상승법을 바로 믿고 실천을 해 나가면 여래(如來)의 정법(正法)은 상주불멸(常住不滅)이여. 부처님께서는 상주설법(常住說法)이여. 우주 법계에 가득차 있는 모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바로 부처님께서 상주설법하시는 바로 그 법문(法門) 아닌 것이 없고, 경전 아닌 것이 없고.

이 정법을 믿지 않고 최상승법을 믿지 않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정말 이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世)요, 말법시대(末法時代)인 것입니다.
투쟁으로 자기도 멸망하고 남도 멸망하는 이러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악독한 세계를 불법이 아니고서는 막을 길이 없고 제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온통 투쟁의 세계가 되었고, 우리나라도 지금 민주화(民主化)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최상승법을 믿고 자기 마음을 비우고 그러한 마음으로 해 나가지 아니하면 아무리 입으로 민주화를 떠들어 봤자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민주화는 모두가 다 마음을 비우고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과 명리(名利)를 떠나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고 인류 평화를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고서는 민주화는 오지를 아니한 것입니다.

정치가(政治家)와 정객(政客), 때로는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정말 민족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생각해서 경륜을 가지고 정치를 한 사람은 정치가라 하는 것입니다. 정치가라 그러는 거고.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불타고, 자기의 한 당략(黨略)에 빠져 가지고 설쳐대는 사람은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꾼인 것입니다. 그런 정치꾼들이 날뛰어 가지고서는 이 나라에 민주화는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인류의 평화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서 우리는 참 노력을 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온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사리사욕과 당략에 떨어져서 날뛴다 하더라도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로써 속살림을 해 나가고, 자비와 지혜로써 갑옷을 삼고 등불을 삼고, 정말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 돼. 그 수십 층 건물도 벽돌 한 장 한 장이 바로 놓임으로써 건물이 준공이 되는 것입니다.
천하없이 많은 벽돌을 갖다 놨어도 바로 쌓지 아니하면 그것이 집이 되지를 않고, 설사 쌓는다 하더라도 이리 삐딱 저리 삐딱 해서 중심을 잃어버리고 100층을 쌓은들 그것은 그 건물은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 100층을 쌓은들 기초가 튼튼히 되지 아니하면 그 건물은 언젠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로써 우리의 마음에 기초를 튼튼히 함으로써 민주화는 올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지혜와 자비로써 탁! 마음을 가다듬고서 보면 어느 사람이 정치꾼인가, 어느 사람이 진정한 정치가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하노니  광음막허도(光陰莫虛度)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미명심(今生未明心)하면  적수야난소(滴水也難消)니라
나무~아미타불~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하노니, 삼가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 사룁나니,
광음(光陰)을 막허도(莫虛度)어다. 광음(光陰), 시간, 세월을 헛되어 보내지 마십시오.

금생(今生)에 미명심(未明心)하면, 금생에 이 마음을 깨닫지를 못하면,
적수(滴水)도 야난소(也難消)니다. 방울 물도 녹이기 어려우니라. (54분43초~1시간13분58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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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안견이문원불격(眼見耳聞元不隔)~ ; 중봉명본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30권 '無隱' 게송.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법상(法床 부처님의 가르침 법/평상 상)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게송)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제15권 「奉先深禪師」 참고.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47) 有人(유인)이  來害(내해)어든  當自攝心(당자섭심)하야  勿生瞋恨(물생진한)하라  一念瞋心起(일념진심기)하면  百萬障門開(백만장문개)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해롭게 하거든 마땅히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지어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느니라.

註解(주해)  煩惱雖無量(번뇌수무량)이나  瞋慢(진만)이  爲甚(위심)이니  涅槃云(열반운),  塗割(도할)에  兩無心(양무심)하라 하시니  瞋如冷雲中(진여냉운중)에  霹靂起火來(벽력기화래)니라

번뇌가 비록 한량없으나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하니 『열반경』에 이르기를 「창과 칼로 찌르거나 향수와 약을 발라 주더라도 두 가지에 다 무심하라」하시니, 성내는 것은 찬구름 속에서 벼락치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과 같으니라.

*불법(佛法 부처 불/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❶]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대정장29, p.525c21)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 ❷]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대정장11, p.346c3)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상근기(上根機 위 상/뿌리 근/베틀 기) ; 상근(上根).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소질과 능력을 지닌 사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자/헤치다·업신여기다 포/스스로 자/버리다·그만두다 기)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삼(三)+아승지(阿僧祇)+겁(劫). 아승지겁(阿僧祇劫)은 보살(菩薩)이 발심(發心)한 뒤 부처가 될 때까지의 수행의 기간. 이 수행의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라 한다.

아승지(阿僧祇)는 산스크리트어 asanga, asaṃkhya를 음역(音譯)한 말, 무수(無數) • 무앙수(無央數)로 ‘헤아릴 수 없는 큰 수’를 의미. 아승지는 산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장 큰 수 중의 하나(10의 56승)이고,
겁(劫)은 산스크리트어 kalpa의 음역. 대시(大時) · 장시(長時) · 분별시분(分別時分)이라 번역.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 단위. 무한히 긴 시간. 연•월•일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말함.

세 부분으로 나눈 수행의 기간은 경론(經論)마다 설이 일정하지 않다. 보살의 50계위를 3기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기도 한다.
①제1아승지겁(阿僧祇劫) - 보살 수행의 단위 가운데 10신(信)•10주(住)•10행(行)•10회향(回向)의 40위(位).
②제2아승지겁(阿僧祇劫) - 10지(地) 가운데 초지(初地)부터 7지(地)까지.
③제3아승지겁(阿僧祇劫) - 8지(地)부터 10지(地)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는 일·십·백·천·만·억·조 정도이고, 조의 만배는 경(京), 경의 만배는 해(垓), 해의 만배는 자(秭)이다. 자(秭) 다음으로 각각 만배씩 더하여 양(穰) · 구(溝) · 간(澗) · 정(正) · 재(載) · 극(極) · 항하사(恒河沙)가 이어진다.
아승지는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 수’를 뜻하는 항하사(10의 52승)의 만배이며, 아승지(10의 56승) 다음으로는 나유타(那由他-10의 60승) · 불가사의(不可思議-10의 64승) · 무량대수(無量大數-10의 68승)가 이어진다.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산스크리트어(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 · 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9분10초)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 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이놈,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말법(末法 끝 말/부처님의 가르침 법)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 · 수(受) · 심(心) · 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상주불멸(常住不滅 항상 상/머무를 주/아닐 불/꺼질·없어질·멸할 멸) ; ‘항상 머물고 사라지지 않는다’
변함없는 본질을 유지하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를 나타낸다. 법신(法身) 또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한다. 열반(涅槃) 등의 무위법(無爲法)에만 해당하는 속성이며 어떤 유위법(有爲法)에도 이러한 본질은 없다.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 • 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 • 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게송)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 광음막허도(光陰莫虛度) ;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4~135. (가로판 p139~141)
(59)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註解(주해)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成] 지속되고[住] 파괴되고[壞] 없어져[空]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生] 머물고[住] 변해 가고[異] 사라져[滅]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成],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住], 쇠퇴하여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壞], 모든 것이 괴멸되어 허공만 있는 과정(상태)[空]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게송) 금생미명심(今生未明心) 적수야난소(滴水也難消) ;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시키기 어려우니라’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에서.
自從耕種 至于口身 非徒人牛 功力多重 亦乃傍生 損害無窮 勞彼功而利我 尙不然也 況殺他命而活己 奚可忍乎 農夫 每有飢寒之苦 織女 連無遮身之衣 況我長遊手 飢寒 何厭心

밭 갈고 씨 뿌리는 것에서부터 먹고 입는 데 이르기까지 비단 사람과 소의 공력이 많고 무거울뿐 아니라 또한 벌레들이 죽고 상한 것도 그 수가 한량없도다. 다른 이를 수고시켜 내 몸을 이롭게 하는 것도 오히려 못할 것인데, 하물며 남의 생명을 죽여 내 몸 살리는 일을 어찌 차마 하겠는가? 농부도 늘 춥고 배고픔의 고통이 있고, 베 짜는 아낙네도 늘 몸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항상 손을 놀리거니 어찌 춥고 배고픔을 마음에 싫어하겠는가?

軟衣美食 當恩重而損道 破衲蔬食 必施輕而積陰 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 頌曰 菜根木果慰飢腸 松落草衣遮色身 野鶴靑雲爲伴侶 高岑幽谷度殘年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은 시은(施恩)이 무거워 도를 덜게 하지만, 떨어진 옷과 나물밥은 반드시 시은이 가벼워 음덕을 쌓는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今生未明心] 한 방울의 물도 소화시키기 어려우니라[滴水也難消]. 게송으로 말하노라. 풀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송락과 풀잎으로 몸을 가리며, 들 학과 푸른 구름 벗으로 삼아 높은 산 깊은 골에 남은 생애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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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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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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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5. 9. 14. 11:07

§(341) 양무제 부인 치(郗)씨의 진심(瞋心) / 치씨의 천도를 위해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을 저술 / 수행을 해 나가는 데에는 자기가 자기를 이겨야 한다 / 부처님과 조달과의 인연.
진심(瞋心), 목련존자의 전생, 홍도 비구 이야기 / 진심을 다스리는 훌륭한 방법은 참선법 / 탐진치 삼독(三毒) 가운데에 최악의 독(毒)한 것이 진심 / 일념진심기(一念瞋心起) 백만장문개(百萬障門開).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인과 인연 비유)

 

(1) 약 20분.

 

(2) 약 17분.


(1)------------------

양무제(梁武帝)는 본래 옹주, 중국에 옹주(雍州)라는 데가 있는데, 천자가 되기 전에 옹주자사(雍州刺史)로 있었습니다. 옹주자사로 있었는데, 치(郗)씨라고 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황후(皇后)가 아니고 치씨 부인인데, 참 얼굴이 예쁘고 그런데 성질이 어떻게 표독하고 질투심이 강했어.
그래 가지고 양무제가 다른 여자와 가까이 한 꼴을 보지를 못하고,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오직 자기만을 위해 주고, 자기만을 사랑해 주고, 자기만을 갖다가 알아주기를 그렇게 바랬어.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그러면은 어떻게 강짜가 심하고 투기(妬忌)가 심하던지 도저히 용납이 없다 그 말이여.

그래도 그때 당시 임금이라든지 또는 원님이라든지... 옹주자사라 하면은 아마 원님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고관을 지내면은 다 첩실(妾室)도 있고 다 기생과 놀기도 하고 술도 먹고 그러기 마련인데, 이 치씨 부인은 그러한 꼴을 못 봐 가지고 나중에는 어떻게 독기(毒氣)를 피우다가 자기가 자기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가지고 집 앞에 있는 우물에 빠져 가지고 자살을, 투신(投身)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쫓아와 가지고 우물 속에 들어가 가지고 간신히 건지려고 가니까 어느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큰 무서운 독사, 아주 오색이 찬란한 금색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는 혀를 널름널름, 그래 가지고 깜짝 놀래 가지고 사람들이 접근을 못했어.
눈은 번쩍거리면서 오색이 찬란한 비늘이 번쩍거리면서 그냥 무서운 독사의 어금니를 갖다가 벌리고서 혀를 널름거리는 통에 혼비백산(魂飛魄散)해 가지고 구제하지를 못하고 기절초풍을 해 가지고 우물에서 다 기어나와 버렸다 그 말이여.

그런데 꿈에면 그 무제(武帝) 자고 있는 후궁(後宮)으로 무서운 독룡이 기어 들어와 가지고는—본래 처음에 들어올 때에는 구렁이로 들어와 가지고는 스르르르 깜짝할 사이에 본래의 그 치씨 부인의 모습이 되어 가지고 아양을 떨면서 품안으로 파고들어. 깜짝 놀래 가지고 양무제가 눈을 떠 보면은 간 곳이 없다 그 말이여.
아, 후궁에만 들어가면 그놈이 나타나 가지고 독사가 되었다 사람이 되었다 그런 통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꼬치꼬치 말라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그 연못에서 그냥 꼬리를 치면서 물을 치면은 거기서 안개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그래 가지고 양무제가 할 수 없이 그 우물 위에다가 치씨 부인의 사당(祠堂)을 짓고, 인자 초상화를 그려서 모시고, 그래 가지고 『자비도량참(慈悲道場懺)』이라 하는 십 권에 달한 참회하는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이라고 하는 십 권의 책을 저술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도량참법에 의해서 치씨 부인을 갖다가 원한을 풀고 그래 가지고 천도(薦度)하는 의식을 거행을 했는데.

그 치씨 부인이 결국은 그 공덕(功德)으로 그러한 업(業)의 몸뚱이를 벗어버리고 천상(天上)으로 올라가는데, 올라가면서 공중에서 소리를 치기를 “양무제한테 내가 그동안에 옹졸한 생각으로 그런 독을 품다가 결국은 투신 자살해서 이런 흉악한 몸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아주 복수를 해서 당신도 죽이고, 당신을 가까이 한 모든 여자를 갖다가 다 말려서 죽이려고 내가 작정을 했는데, 『도량참법』을 만들고 사당을 지어서 나를 고승을 청해다가 이렇게 천도를 해 주니, 내가 모든 원한을 풀고서 내가 천상에 올라가니 참 감사하다”고.
이렇게 올라간 뒤로는 다시는 꿈에 나타나서 괴롭히는 일도 없고, 그 우물에서 갖다가 꼬리를 치고 모다 그런 일도 없고 조용해졌는데, 그 뒤로 양무제가 지은 『도량참법』이라고 하는 참회법이 널리 세상에 행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극념(克念), 자기의 생각을 스스로 이겨야 한다. 수행을 해 나가는 데에는 자기가 자기를 이겨야 한다’ 하는 말씀이 계셨고, 부처님께서도 ‘백만 군사를 갖다가 호령을 해서 움직이고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자기가 자기를 이기고 다스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는 그런 말씀도 있지마는,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이기는 힘, 자기를 이기는 수행과 노력이 없이는 도업(道業)은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무슨 재물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색(色)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명예 ・ 권리에 대한 그런 일어나는 욕심을 이기는 것도 그것도 모두가 어려운 일이고 중대하지만, 그 여러 가지 가운데에 가장 수행하는 데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고, 자기가 무량겁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쌓아 온 모든 공덕을 한 생각에 멸진(滅盡)을 시켜 버리는 그 무서운 것이 바로 진심(瞋心)을 내는 것입니다.
이 진심(瞋心)이라고 하는 것은—우리가 사바세계에 살아가는 데에 정말 진심을 내지 않고는 살기가 어렵습니다. 크고 작은 모든 진심, 아마 이 세상에 사람이 지금 현재 40억이니 50억이니 하고 또 세계 역사가 생긴 이래로 몇천만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진심(瞋心)을 한 번도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몇 사람이 될는지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도 전생에 왕으로 계실 때에 어떤 문둥병보다도 더 무서운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무서운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무서운 창병(瘡病)이 걸린 거지를 나수기 위해서, 결국은 환자를 갖다가 치료해 주기 위해서 어명(御命)으로 치료하게 되는데 도저히 그 병이 하도 무서운 병이라 치료할 수가 없어.
그래서 “오직 이 사람의 병은 한 번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진심(瞋心)을 내지 아니한 사람의 피를 뽑아 가지고 약을 제조해야만 이 병을 낫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임금님께 그 의사가 “그러니 이 세상에 성 안 낸 사람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약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 자신이 한 번도 진심을 낸 기억이 안 나. 그러나 철이 들기 전 어렸을 때는 혹 몰라서 유모한테 가서 물어봤습니다. “내가 혹 철난 뒤에는 진심을 낸 기억이 없지만, 철이 나기 전 아주 어렸을 때는 내가 혹 진심을 냈느냐?”고 물어보니까, “정말 갓난아기 때부터서 진심을 내신 일도 없고, 철이 난 뒤로도 오늘날까지 진심 내시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어.
그래서 임금님은 의원에게 “내 피를 뽑아서 만들어라” 하니까 “어떻게 감히 상감마마의 옥체에서 피를 뽑을 수가 있습니까?” “괜찮다. 어명이니까 피를 뽑아서 해라” 그래 가지고 피를 뽑아 가지고 무서운 그 병을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 환자가 병을 낫고서 그래 가지고는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갖다가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괴롭힌 바로 조달(調達)이의 전신(前身)이고, 그 어진 상감마마는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인 것입니다.

어째서 상감마마로서 자기의 피를 뽑아서 무서운 병을 고쳐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10생을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부처님을 갖다가 못살게 굴고, 이생에는 부처님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로 태어나시니까 저도 사촌으로 태어나 가지고 가지가지 못된 방법으로 부처님을 죽이려고까지 하다가 결국은 생함지옥(生陷地獄)을 해서 무간지옥에 떨어졌습니다마는.

참, 소승불교에서는 ‘그런 죄를 지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부처님 몸에 피를 나게 한 죄로 생함지옥을 했다’ 이렇게 보지마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정말 조달이야말로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께 그렇게 큰 은혜를 갚았다. 조달이의 공덕이 아니면 어떻게 부처님이 그렇게 빨리, 그렇게 크게 대도를 성취를 하셨겠느냐. 조달이야말로 정말 부처님보다 먼저 깨달으신 선불(先佛)이시고 그렇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마는.
순행(順行)으로 항상 뜻을 맞추어 주고, 따라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고 그런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역행(逆行)으로 그 사람의 정신과 육체에 충격을 주면서 고통을 주면서 그래야만 보다 더 큰 발심(發心)과 분심(憤心)을 내 가지고 대도(大道)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비단 도문(道門)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속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칭찬하고 좋은 얘기만 해 주고 그러한 친구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로 삼지 말아라. 나의 단점을 지적해 주고, 충고해 주고 그러한 친구를 고맙게 생각할 줄 아는 그러한 사람을 친구로 삼아라’ 그런 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따라다니면서 갖은 악한 행동으로써 고통을 주었을 때, 그것을 갖다가 원수로 생각하고 미워하고 진심을 내고 복수를 하셨다면 부처님은 마침내 성불(成佛)을 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고통을 주어 왔지만 부처님께서는 한 번도 진심을 내거나 원한심을 내서 복수할 마음을 내지 않고, 보다 더 신심을 내고, 분심을 내고 그래 가지고 더욱 정진(精進)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방금 양무제, 그 치씨 부인이 그러한 악독을 품고서 투신 자살을 해 가지고 독사가 되어서 그렇게 했지만, 양무제는 그것을 독한 마음으로 구렁이를 잡아 가지고 태워서 죽일 수도 있고 그러겠지마는, 그것을 자비심으로써 사당을 짓고 또 『도량참법』을 지어서 큰스님네를 청해 가지고 천도를 잘 해주었으므로 해서 그 악독한 치씨 부인을 천상에 태어나게 했어.
비록 양무제가 그 당시 최상승법을 믿지를 못하고 달마 스님을 알아보지를 못했다고는 하지만, 양무제는 역사적으로 길이 잊지 못할 신심이 돈독한 천자였습니다.

이 진심(瞋心)! 진심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도 여러 경전에 진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서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련존자(目連尊者)도 오백 생을 두고 타살(他殺)을 당하고, 금생에 와서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부처님의 오른팔과 같은 그러한 성현이 되어 가지고도 그렇게 결국은 외도(外道)한테 타살을 당했습니다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백 생을 두고 그러한 성현이, 거룩한 수행자가 그렇게 아무 허물도 없이 그렇게 맞아서 돌아가셨느냐? 저 전생에 진심(瞋心)을 냈어.
자기 어머니가 자식 내외의 정분 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좋게 보지를 않고, 자식 며느리를 미워하고 못살게 구니까, ‘어떤 기운 센 장사가 나와 가지고 저 늙은이 때려죽일 사람이 없겠느냐?’고 이렇게 진심을 내고, 참 자식으로서 해서는 안 될 그러한 욕설을 퍼부은 그 과보(果報)로 오백 생을 두고 맞아 죽는 과보를 받았습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 10대 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神通)이 제일인데, 과거에 지은 업으로 금생에 맞아 죽기 때문에 그렇게 참혹하게 외도한테 맞아서 돌아가시게 되면서도 신통을 부릴 여유가 없었어.
그 도반인 사리불존자가 “자네가 신통이 제일인데 신통술로 피하던지, 외도를 갖다가 방어를 하던지 그러지, 어찌 자네가 신통을 어디다 두고 쓸라고 그렇게 참혹하게 맞았나?” 하니까, “내가 과거에 지은 업(業)이기 때문에 신통이란 ‘신’ 자도 생각이 안 났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 진심(瞋心)!(18분20초~37분55초)





(2)------------------

그리고 또 홍도 비구(弘道比丘)라고 하는 스님은 다겁(多劫)으로 수행을 잘 쌓아 가지고 머지않아서 곧 견성성불(見性成佛)할 단계에까지 왔는데, 문턱에다가 손을 거기다 걸치고서 터억 정진을 하다가 삼매(三昧)에 들었어. 그래 가지고 시간이 흐르는 중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가지고 문이 탁! 닫혀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깨져 가지고 깜짝 놀래 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까닭없이 진심을 폭! 냈다 그 말이여.
그 바람을 보고 성을 냈는지, 문짝을 보고 성을 냈는지 갑자기—삼매에 들었다가 그 삼매를 깨게 하고 손가락에서 피가 나오고 하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이 폭! 났는데, 그 진심(瞋心) 한번 낸 그 과보로 바로 뱀이 되었습니다.

독사가 되어 가지고, 독사가 되기는 했지만 워낙 다겁을 수행을 해 가지고 머지않아서 견성성불할 단계에까지 왔기 때문에 독사는 되었지마는 환하니 다 의식을 매(昧)하지를 안 해 가지고, 재를 갖다가 꼬리로 잘 요렇게 골라 놓고서 꼬리로써 글을 지었어.
‘다생에 내가 수행을 해 가지고 머지않아서 성불을 하게 되었는데, 일기진심수사신(一起瞋心受蛇身)이다. 한 번 진심을 낸 그 과보로 이렇게 뱀 몸뚱이를 받았다’ 한 그런 게송(偈頌)을 써서 그래서 ‘모든 수행자들은 이 게송을 벽에다 붙여 놓고, 크고 작은 모든 진심을 내지 않도록 하라’ 이러한 뜻의 게송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홍도 비구나, 목련존자나, 치씨 부인이나 그밖에도 경전에 나타난 진심(瞋心)의 무서운 것에 대한 말씀이 참 많지마는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고.

우리가 이 사바세계는 진심(瞋心)을 참! 안 내고 살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천상(天上)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여.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은 벌써 배가 불러져 있고, ‘어디 가고 싶다’ 하면 이미 그 자리에 와 있고, 무엇이고 내 마음먹은 대로 다 되고, 내게 조금도 해로울 일이라고는 일어나지를 않고 나타나지를 않어. 다 내 마음에 편안하고 즐겁고 좋은 일만 있는 곳이 천상입니다. 그러니까 천상에서는 진심(瞋心)을 낼 필요가 없죠.
지옥(地獄)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없어. 사사건건이 나를 괴롭히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일만이 있어.

그런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즐거움도 있는가 하면은 괴로움도 있고, 슬픔도 있는가 하면은 기쁨도 있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섞여 있어서 다행히 내 뜻대로 뭔 일이 잘 되는가 싶으면은 금방 꼬리를 이어서 속상한 일이 또 일어나고, 금방 이만하면 참 좋다 싶으면 뜻밖에 사고가 일어나 가지고 슬픔이 닥쳐오고.
형제간에도 정이 서로 의합(意合)이 되는가 하면은 서로 싸우고, 부자간에도 싸우고,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싸우고, 회사에서도 싸우고, 직장에서도 싸우고, 정치도 싸우고, 맨 싸움, 더군다나 이 말세(末世)는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인데, 투쟁이 치성하는 시대, 무엇이든지 그저.

서로 대화로써 해결하고, 타협으로써 해결하고, 양보로써 한다면 피차가 다 좋고 모든 일이 순리로 잘 풀려 갈 텐데, 사사건건이 한마디 두 마디 간 뒤로는 벌써 말이 거칠어지고, 제 욕심 챙기느라고 싸움을 하게 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나라도 시끄럽고, 회사도 그걸로 인해서 화합이 깨지고, 가정도 그걸로 인해서 화합이 깨지고, 부부간에도 그걸로 인해서 원수가 되어서 생이별 사이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인은 비교적 수행에 열중을 하다 보니 언제 성낼 겨를이 없겠지만, 그래도 한철을 지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크고 작은 속상한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거거든.

밖으로 확! 진심(瞋心)을 내서 표현을 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만, 밖으로 표현을 안 하고 속으로 진심을 내는 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꽉 참고—겉으로 목구멍까지 욕설이 나오고, 주먹이 쥐어지고, 곧 그냥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격분을 해도 꽉 참을성 있는 사람은 그놈을 참고서 속으로—표현을 하지 아니한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다 참 그만큼 참을성 있는 것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대승법(大乘法)에 있어서는 밖으로 표현한 것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현을 안 하고 속으로만 일어나도 이미 범(犯)한 것이 돼. 그래서 속으로 일어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어. 오히려 밖으로 표현해 버리고 그냥 바로 깨끗이 잊어버리는 편이 속으로 참고 은근히 오랫동안 간직을 하고 속상한 것이 더욱 나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밖으로 표현을 해 버리면 사람들은 보고 ‘저 사람 진심(瞋心)을 잘 내는 사람이다. 저 사람 수양이 덜 된 사람이다’ 할는지 모르지만, 한마디 욕설 퍼부어 버리고 금방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오히려 육체적으로도 좋고, 정신 위생상으로도 괜찮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 안 하고, 속으로 참고 참고 억지로 눌러 놓은 것은 나중에 위장병도 생기고, 신장병도 생기고, 고혈압도 생기고, 천식도 생기고, 기관지도 나빠지고 해 가지고 골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목가슴 밑에 주먹같은 적(積)이 생겨 가지고 일생 동안 그놈이 풀리지를 않고 화병(火病)이 나 가지고 결국은 죽게 되고 그러는데, 그 속으로 참는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참는 것이 그렇게 썩 훌륭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은 진심(瞋心), 일어나는 진심을 다스릴 수가 있느냐?
이것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다든지 모다 그러한 것, 평상시에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 이러한 육바라밀을 항상 평상시에 닦아 가면 차츰차츰 자비심(慈悲心)이 충만하고, 또 모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또 남을 잘 용서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해서 수행을 쌓아 나가면 그런 속상한 일이 당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잘 이해를 해 주고서 바로 용서를 하고 풀어 버리고 이렇게 되어 갑니다마는, 이런 것도 하나의 좋은 방편(方便)이 될 수가 있겠죠.

그러나 정말 훌륭한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인 것입니다.
단전호흡(丹田呼吸)! 단전호흡을 하면서 항상 ‘이뭣고?’ 참선을 하면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성낼 일이 없어지고, 특수한 경우에 성이 날라다가도 턱!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어 버리면 언제 자취가 없이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해 갖고 금방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일 년, 이태, 삼 년 꾸준히 수행을 해 나가다 보면 진심(瞋心)을 잘 내는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도 차츰차츰 진심을 내지 않게 되고 완전히 정신혁명(精神革命)이 일어나게 돼. 그래서 정신적인 체질 개선이 되어서, 뭐 인간 세상에 그까짓 일 가지고 성낼 만한 일이 여간해서 만나기가 어려워.
성내는 거, 탐심 내는 거,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걸 억지로 참아 갖고는 참 어려운 일이고, 수행을 통해서 항상 마음을 청정히 갖고 자비심으로써 생활을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진심(瞋心)이 순화가 되어서 승화(昇華)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진심(瞋心)이라 하는 것은, 여러 경전에 진심을 갖다가 진화(瞋火), ‘성낼 진(瞋)’ 자, ‘불 화(火)’ 자, 진화(瞋火)라고 이렇게 표현도 하셨습니다.
왜 진화(瞋火)라고 하냐 하면은, 그 성내는 열뇌(熱惱)가 마치 불과 같다. 왜 불과 같으냐 하면은 그 성을 내면은 무량겁에 지은 모든 공덕(功德)을 일시에 다 태워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진화(瞋火)라 그러고.
성을 내면은 벌써 눈도 붉어지고, 얼굴도 붉어지고, 몸뚱이도 뜨거워지고 그러고 마음도 갖다가 뜨거워져 가지고는 혈압도 오르고 그러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뜨겁게 하기 때문에 진화(瞋火)라 그러거든.

진심을 많이 낸 사람은 열(熱)이 항상 위로 쳐 올라가 가지고 그래서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눈이 붉어지고, 눈이 빨리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은 진화(瞋火)가 일어나지 않게 하느냐?
항상 자비심(慈悲心), 자비심으로써 자기 마음을 윤택하게 만들어. 부드럽고 서늘하고 윤택하게 만들면 자연히 진심의 불이 자취 없이 식어 버리고 사그라져 버린다.

이 진심(瞋心)이라 하는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는 근본이 탐진치 삼독인데, 삼독 가운데에 제일 악(惡)한 것이 바로 진심인 것입니다. 최악의 독(毒)한 것이 진심이다.

『화엄경』에도 말씀하시기를 ‘일념진심기(一念瞋心起), 한 생각 진심(瞋心)을 일으키면은 백만장문개(百萬障門開)다. 백만 가지의 장문(障門), 도를 갖다가 장애하는 문이 열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한 생각 진심을 일으키면은 모든 재앙으로, 진심을 일으키는 재앙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함경』에는 ‘부처님을 친견을 못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을 친견을 못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진심(瞋心)을 내는 그 과보로 부처님을 친견을 할 수가 없다’ 진심을 냄으로써 계속 삼악도(三惡途)를 돌다 보니 어떻게 부처님을 친견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탐심(貪心)도 나쁜 것이고 치심(癡心)도 나쁜 것이지마는, 차라리 백천만 번을 탐심을 낼지언정 한 번의 진심(瞋心)을 내지 말어라. 한 번 진심을 냄으로써 무량겁 쌓은 공덕이 일시에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탐심을 내면은 그걸 안 내면 그만이고, 욕심을 냈다가도 다시 버려 버리면 그만이지만, 진심을 한번 내면은 저 지은 몸과 마음, 저 죽이고 남을 죽여. 한 사람이 집안에서 진심(瞋心)을 내 갖고 있으면 전 집안 식구가 그 독(毒)으로 인해서 모두 기분이 나쁘다 그 말이여. 진심을 내서 누구를 뚜드려 패고 욕설을 안 해도, 혼자 진심을 내 가지고 미간을 찌푸리고 진심을 내고 있으면은 공연히 옆에 있는 사람도 모두가 다 기분이 나쁘다 그 말이여.

더군다나 집안 어른일 때에는 더 그렇고, 회사에 사장이나 과장이나 우두머리에 있는 사람은 더 한 사람이 그렇게 공연히 진심을 내면 전 부하 직원들이 모두 기분이 나뻐. 그래서 모다 의욕을 상실을 하고 그런 것이다 그 말이여. 나라에서도 웃어른이 진심을 내고 그러면은 전 밑에 각료, 백성들이 모다 다 그 해독(害毒)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거거든.(37분56초~5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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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天子) ; 천제(天帝)의 아들, 즉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군주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이라고 하였다.
*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투기(妬忌 샘내다·시기하다·투기하다 투/꺼리다·질투하다·시기하다·미워하다 기) ; 사랑하는 사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가 또 다른 이와 좋아하는 것을 지나치게 미워함.
*혼비백산하다(魂飛魄散-- 넋 혼/날 비/넋 백/흩을 산) ; (사람이)매우 놀라거나 혼이 나서 넋을 잃다.
*사당(祠堂 사당·제사 사/집 당) ; 조상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 ①총 10권으로 구성된 이 참법은 6세기에 중국 양무제(梁武帝)의 지시로 여러 학승이 502년에서 519년 사이에 편찬한 것으로 일종의 참회문 총서라고 할 만큼 여러 경전에 있는 참회의 방법과 내용을 일정한 체계로 엮은 것이다. 원(元)나라(1280-1368) 때 묘각지(妙覺智)가 재편집하였다.
별칭으로 『계운자비도량참법(啓運慈悲道場懺法)』, 『양황참(梁皇懺)』이라고도 하며, 주석서로는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한 조구(祖丘) 스님(?~1395)이 저술한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가 있다.

책의 첫머리에 생전의 악업으로 사후(死後) 구렁이가 된 황후 치씨를 제도하기 위해 양무제가 지공 선사 등에게 이 참회문의 편찬을 지시한 동기가 적혀 있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정삼업(淨三業)에 관한 것으로 참법을 행하는 이가 먼저 갖추어야 할 몸과 마음가짐에 대해 설한다. 제1권과 제2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현과보(顯果報)에 관한 설명으로 과보가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설한다. 제6권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자경(自慶)에 관해 설명으로, 자신의 업보를 해결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회향과 권유의 마음으로 예참하는 것에 대해 설한다. 제10권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이 참법은 고려대장경 보유부(補遺部)에 수록된 것으로 미루어 고려 고종 연간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현재에 유통되는 예참법은 각 권의 처음에 찬(讚), 향찬(香讚) 등이 있어 이 참법과는 다른 점이 있다.

②『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자비도량참법전(慈悲道場懺法傳) (제대법사諸大法師 집찬 | 변각성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이 참법은 양무제(梁武帝)가 황후 치(郗)씨를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치씨가 죽은 후, 몇 달이 되도록 무제가 항상 생각하고 슬퍼하여 낮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느 날 침전(寢殿)에 있노라니,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큰 구렁이가 전상(殿上)으로 기어 올라오는데, 벌건 눈과 날름거리는 입으로 무제를 바라보고 있지 아니한가. 무제가 크게 놀랐으나 도망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벌덕 일어나 구렁이를 보고 말하였다.

“짐(朕)의 궁전이 엄숙하여 너 같은 뱀이 생길 수 없는 곳인데, 반드시 요망한 물건이 짐을 해하려는 것이다”
뱀이 사람의 말로 임금께 여쭈었다. “저는 옛날의 치씨입니다. 신첩(臣妾)이 살았을 적에 후궁들을 질투하며 성품이 혹독하여 한 번 성을 내면 불이 일어나는 듯, 활로 쏘는 듯, 물건을 부수고 사람을 해하였더니, 죽은 뒤에 그 죄보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입에 넣을 음식도 없고, 몸을 감출 구멍도 없으며, 주리고 곤궁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비늘 밑마다 많은 벌레가 있어 살을 빨아먹으니 아프고 괴롭기가 송곳으로 찌르는 듯합니다.
구렁이는 보통 뱀이 아니므로 변화하여 왔사오니 궁궐이 아무리 깊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폐하의 총애하시던 은혜에 감격하여 이 누추한 몸으로 폐하의 어전에 나타나 간청하오니, 무슨 공덕이든 지어서 제도하여 주소서”

무제가 듣고 흐느껴 감개하더니, 이윽고 구렁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무제는 스님들을 궁궐 뜰에 모아놓고 그 사실을 말하고, 가장 좋은 계책을 물어 그 고통을 구제하려 하였다.
지공(誌公) 스님이 대답하였다. “모름지기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참법(懺法)을 정성스럽게 행해야 옳을 것입니다”
무제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여러 불경(佛經)을 열람하여 명호(名號)를 기록하고, 겸하여 생각을 펴서 참회문을 지으니, 모두 열 권인데 부처님의 말씀을 찾아서 번거로운 것은 덜어 버리고 참법을 만들어 예참하였다.

어느 날, 궁전에 향기가 진동하면서 점점 주위가 아름다워지는데 그 연유를 알지 못하였는데, 무제가 우러러 보니 한 천인(天人)이 있었다. 그는 용모가 단정하였다. 무제에게 말하기를, “저는 구렁이의 후신(後身)이옵니다. 폐하의 공덕을 입어 이미 도리천(忉利天)에 왕생하였으니, 이제 본신(本身)을 나타내어 영험을 보이나이다” 그리고 은근하게 사례하고는 마침내 보이지 않았다.
양 나라 때부터 오늘까지 천여 년 동안 이 참회본을 얻어 지성으로 예참(禮懺)하면 원하는 것은 모두 감응(感應)이 있었다. 혹시 그런 사실이 감추어지고 없어질까 두려워 대강 기록하여 여러 사람들께 알리는 바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 • 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멸진(滅盡 끄다·멸하다 멸/다하다·다 없어지다 진) ; 멸하여 없어짐 또는 없애 버림.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47) 有人(유인)이  來害(내해)어든  當自攝心(당자섭심)하야  勿生瞋恨(물생진한)하라  一念瞋心起(일념진심기)하면  百萬障門開(백만장문개)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해롭게 하거든 마땅히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지어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느니라.

註解(주해)  煩惱雖無量(번뇌수무량)이나  瞋慢(진만)이  爲甚(위심)이니  涅槃云(열반운),  塗割(도할)에  兩無心(양무심)하라 하시니  瞋如冷雲中(진여냉운중)에  霹靂起火來(벽력기화래)니라

번뇌가 비록 한량없으나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하니 『열반경』에 이르기를 「창과 칼로 찌르거나 향수와 약을 발라 주더라도 두 가지에 다 무심하라」하시니, 성내는 것은 찬구름 속에서 벼락치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과 같으니라.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창병(瘡病 부스럼 창/질병 병) ; 피부에 나는 질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어명(御命 다스리다·천자 제후에 관한 사물에 붙이는 높임말 어/명령 명) ; 예전에, 임금[御]의 명령(命令)을 이르는 말.
[참고] ‘어(御)’는 임금에게 관계된 말의 머리에 붙이어서 공경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 어가(御駕 : 임금이 타던 수레). 어진(御眞 : 임금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 어소(御所 : 임금이 계시는 곳). 어의(御衣 : 임금이 입던 옷). 어필(御筆 : 임금이 손수 쓴 글씨). 어모(御貌 : 임금의 용모를 이르던 말).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生] 지옥(地獄)에 떨어짐[陷].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정진(精進) : [산스크리트어(범어)]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비록 양무제가 그 당시 최상승법을 믿지를 못하고 달마 스님을 알아보지를 못했다고는 하지만’ ;
①  >>> 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②  >>> 이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목련(目連) ; 목건련(目犍連).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컫고,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과거 전생에 부모에게 한 악행의 과보로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賊) · 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보응(因果報應).
*인과응보(因果應報 인할 인/열매 과/응할 응/갚을 보) ; ①전생(前生)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②선(善)을 행하면 선(善)의 결과가, 악(惡)을 행하면 악(惡)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름.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①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音寫).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②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③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④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⑤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⑥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⑦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⑧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⑨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⑩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 · 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①신기(神奇 신비롭고 기이하다)할 정도로 묘(妙)하다. ②모든 것을 신기(神奇)롭게 통달(通達)함.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사(音寫)이며, 추로자(鶖鷺子) ·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역(漢譯)한다.
사리자(舍利子 · 舍梨子)는 샤리(Śāri)의 음역어 '사리'와 푸트라(putra)의 한역어 '자(子)'를 합한 것이다. 이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사리란 그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 어머니가 많은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제일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불렸다고 한다.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目犍連)과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Sañjaya)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 제도된 오비구(五比丘)중 한 분인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초기 경전의 여러 곳에 부처님께서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십대제자(十大弟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목련에게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그리고 또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어, 다비한 후 기원정사에서 장례를 치렀다. 수달장자는 존자를 위해 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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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겁(多劫) ; 매우 오랜 세월.
*겁(劫) ; (산스크리트어)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 • 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 • 세로 • 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 • 세로 • 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산스크리트어(범어)]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집중 · 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투쟁견고(鬪諍堅固 싸움 투/다툴 쟁/굳을 견/굳을 고) ;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이천오백 년을 불법(佛法)의 성쇠(盛衰)에 따라 나눈 다섯 시기 가운데 다섯 번째 시기. 수행승들이 자기 주장만 옳다고 싸워 불법이 자취를 감추는 시기이다.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적(積) ; 적취(積聚). 몸 안에 쌓인 기로 인하여 덩어리가 생겨서 아픈 병. 적(積)은 오장에 생겨서 일정한 부위에 있는 덩어리이고, 취(聚)는 육부에 생겨서 일정한 형태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덩어리를 이른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 · 도(度) · 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자비(慈悲) : [산스크리트어(범어)]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승화(昇華 오를 승/빛날 화)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친견(親見 가까이하다·몸소·친히 친/보다·뵙다·만나다 견) ; 몸소 가까이서 뵙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한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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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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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