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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지시(如是之時)에, 이와 같이 화두가 될 때에 공부를 득력(得力)이라 한다. 그걸 득력이라 해.
억지로 무슨 맨들라고, 억지로 그놈을 추켜들어 가지고는 의심을 따로 맨들라고?
알 수 없는 것뿐인데, 뭘 만들어 만들기는.
아! ‘이뭣고?’가 그대로 모르지, 어디 아는가?
‘이뭣고?’해 보지! 그만 모르는 놈뿐이지. 어디 아는 게, 뭐 어디서 생겨나?
무슨 거기에 소집(所執)이 있을 것이여.
알 수 없는 놈 하나 나와 가지고는, 그 처음이니까 알 수 없는 놈 하나 했다가는 금방 없어지고 딴 놈이 들어와서, 또 그놈 꺼져 버리고 또 멸해 버리고 또 딴 놈이 들어오고,
밤낮 그놈 망념(妄念)이 갈아들고, 그저 이놈 나오고 저놈 나오고 그저 별 생각이 다 나오고.
그놈을 그저 그것 나오거나 말거나, 뭔 망념이 어디서 제가 뭐... 내비두어 버려. 그 같은 건 나오건 말건.
그러니 ‘이뭣고?’만 챙겨. 꼭 ‘이뭣고?’가 그만...
판치생모(板齒生毛)만 찾어. 필경 '판치생모'는 조주(趙州) 뜻이니까.
일체 공안이 다, 그 공안이 큰스님네 뜻이여. 딱 맨들어 놨으니, 낙처(落處)는 천 공안이나 만 공안이나 깨달라 놓고 보면 똑같어.
그 낙처에 가서는 다른 법이 없어.
생사 없는 법 하나밖에 없지마는 경계에 따라 말이 다 다르거든. 다르나 그냥 확철대오 해버리면 암만 달리 해 놨어도—아무리 중생이 모두 중생견(衆生見)으로는 찾아볼래야 도저히 볼 수 없어.
툭! 깨서 중생견이 툭 절단(切斷)나 버린 뒤에사 그놈이 보이는 것이여.
뻘로 그 좀 ‘깨달랐다’고, ‘알았다’고, 요러고 대들어.
그 ‘알았다’했으니, ‘아니라’고 하면은 아닌 줄 알아야지. 빡빡 우기고 대들어?
고런 걸 뭣 할 것이여 그거. 아니니깐 아니다 하는 것인데, 벌써 세우고 대들고. 그것 참!
이렇게 현전(現前)된 것을 공부(工夫) 득력(得力)이라고 한다.
공부 득력 되었을 때, 화두(話頭)가 순일(純一)해서 그대로 참 제대로 화두가 그만 불거자거(不擧自擧)가 되었을 때 각요호지차개염두(卻要護持此箇念頭)해라. 문득 이 낱 염두(念頭)를 호지(護持)해라.
그 말은 저절로 화두가 자꾸 되어서 의심이 똑 불무더기 같이 일어날 때, 다른 마음 조금도 없이 화두만 온전히 일어날 때,
그럴 때에 그 염두(念頭)를—화두 그렇게 잘 일어나는 그 지경을, 화두를—보호를 해서 가져라. 잘 가져라.
자꾸 속념(續念)을 해, 염(念)을 일으켜서.
거그 조금만 잘된다고만 방념(放念)하면 못쓴다. 화두를 잘 가져라.
상상상속(常常相續)해라. 항상 항상 서로—이게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 말 같지마는 참 무섭게 화두 간택해 준 말이여.
상상상속(常常相續)해라. 항상 항상 화두를 상속(相續)을 해라. 알 수 없는 놈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게.
조금만 떨어져도 그 못쓴다. 그럴 때에는 아주 그 번뇌 망념이 더욱 들어오기 쉬워.
나는 막 모기가 물어서 여그 다리를 막 그냥 찝어 뜯고, 손을 막 쿡 찌르고 해도 기어이 참고 법문을 허요.
그걸 참고 법문 하는데, 아! 법문들을 때 고것 쫌 문다고 찰탁 때리지 마시오. 그 좀 그놈도 먹고 살아야지. 못된 놈이지마는 그걸 갖다 그래 기어이... 좀 잘 들으십시오. 참 잘 들어야 합니다.
항상 항상 상속을 해라. 참 거 좋은 말이지.
어좌중(於坐中)에 갱가정력(更加定力)이니라. 앉어서 공부하는데, 좀 앉었는데서 더 정력(定力)이 오느니라.
앉어서 그래도 해야 화두가 잡히고 자리가 잡히고 정력(定力)이 오지.
안 앉고 돌아댕기고, 조금만 해도 홱 일어나고, 그저 더웁다고 홱 일어나고, 그저 그렇게 경(輕)해서는, 공부해 나가는데 그 경(輕)해서는 안되느니라.
어저께 내가 “그 날을 좀 봐라. 그 오늘은 몇 도나 된가 봐라”했드니, 가보고 나서 “37도 입니다”
37도면 금년에 두 번이여. 나중에 또 보니까 38도여. 7도가 좀 넘었어. 8도는 다 못 됐는가 몰라도 조끔.
그때가 1시 인데, 에이 이놈! 이렇게 더울 때는 돌아댕겨도 더 더웁고, 자리를 옮겨도 옮길 때마다 더 더웁고,
에이 이놈, 또 내가 밤 정진할 때 앉었든 버릇으로 그만 걸상에 앉어서 역부러 1시부터 2시, 3시, 4시, 5시, 6시까지 앉었었어 내가.
6시까지, 뭐 찾아와서 날 볼라고 해도 내가 뭔 눈 뜨고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앉었었어.
그까짓 것 뭐, 즈그(저희) 할 말 있으면 즈그 하지 뭐, 내 소용없다 하고는 딱 그만하고.
여그(여기) 누가 들어오면 눈을 떴다가도 감고, 부채로 그만 얼굴을 가려 버리고, 그러고 앉어 봤다 그말이여.
다섯 시간을 결정하고 앉어서 그 더위를 더운 줄 몰랐어. 참말로 더위를 몰랐어. 내가 이거 실지여!
더웁다고 밤낮 그저 그만 쪼끔 났다 쪼끔 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거 훨씬 더 더웁고, 화두는 도망가고 없고, 화두 살림살이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어.
조금 더웁드래도 참고, 아무리 땀이 흐르드래도 좀 참고 닦아 가면서라도, 자리에 좀 앉어서 갱가정력(更加定力)할 것이다.
내가 어저께 지켜봤다 그만 한번 해 봤구만, 나도 더위를 못 견디다가.
어좌중(於坐中)에 갱가정력(更加定力)이다. 앉는 가운데에서 화두라는 것은 정력(定力)이 온다. 자리가 잡혀.
정력이 다른 게 아니라, 자리가 잡힌 것은 화두가 자꾸 연속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진다 그말이여. 화두의심이 난다 그말이여.
정력이 다른 게 아니여. 화두 없이 정력이 어디 있어?
화두가 의심이 그저 일어나면서 도망가지 않는 것을 정력이라 해야.
상자(相資)니라. 정력(定力)이 그놈이 자루가 되어, 딱 붙어가 되어, 딱 있어야 된다.
날라댕기는 짐승도, 굼벵이가 되어 가지고는 굼벵이가 몇 달 가만히 그놈이 들어가서 먹도 않고, 그 갑(匣) 속에 들어앉어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그놈이 거기서 툭 트고 나비가 되어 나오고, 날개를 그놈이 훌훌 나는 그러한 그 신통구(神通具)를 이 몸뚱이서 갖춰 가지고 나온다 그말이여.
우리 참선도 역시 ‘중생이 부처 되는 지경’인데, 거기서 한번 정력이 있어 가지고 한번 바로 깨지 못하고 되아?
아무 때나 좀 공부하다가 될 것 같으면 세상에 그 뭐..
상자(相資)니라. 그렇게 서로 상자가 되어야—정력이 되어 가지고 딱! 그 정력이 요동이 없어야사 위묘(爲妙)니라. 도(道)에 묘(妙)가 된다. 그게 참 도묘(道妙)다.
홀연축착합착(忽然築着磕着)이니라. 홀연히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할 것이다.
맷돌이라는 것이 하나 가지고 되나? 밑에 돌, 윗돌 그놈 갖다 딱 합하면은 고놈이 한데 딱 합해져야 거다 뭘 넣고 갈지. 고렇게 딱 맞아지고.
대쪽 맞듯 할 것이니라. 대쪽을 쪼개 놓았는데 쪼갠 놈 갖다 그대로 맞춰야 딱 맞지, 딴 쪽은 안 맞지? 제대로 쪼개 논 놈 제대로 갖다 딱 맞추면은 딱 맞지.
공안(公案)이 요렇게 탁 탁 깨달라지면은 저절로 맞아져 부러. 요럴 때가 오느니라.
심로(心路)가 일단(一斷)하면은 그때에사 심로가 끊어진다. 중생로(衆生路)가 끊어져. 중생 그 번뇌 망념길이 끊어져.
그놈의 번뇌 망념길이, 우리 중생의 번뇌 망념길이 끊어질 때가 있어? 끊어질 때가 있어?
졸고 앉아서 듣는 것 좀 봐라. 졸면 법문이 들어가나?
옆을 쳐다보지 마라. 즈그가 졸고 앉어서 옆 쳐다보니라고.
졸고 앉아서 법문이 들어가냐 그말이여. 눈을 뚝 뜨고 듣지 눈을 감고 듣지 말어.
화두 법문이여. 화두 법문! 화두 법문을 들어야 해.
누가 화두 법문을 할 거여? 화두 법문 할라면 내놔 봐, 할 사람 있는가?
화두 법문. 참선에는 화두 법문이 그만이여.
낱낱이 화두 법문 와서 대문대문(大文大文) 하라고 해 봐. 뭐 뭐 내 떨어놓고 말해.
한국에 누가 와서 할 사람이 있는가 해 보란 말이여.
내 이 자리에서 보면은 인자 “엣따, 자기만 그런 소리 하는가 보다”고 그럴 사람도 있어. 누가 못해? 아무 때나 할라면 다 하지.
심로(心路)가 일단(一斷)이다. 심로가 한번 턱! 끊어진 곳에 중생의 버르정머리 절단 나버리는 것이여.
중생의 버르정머리는 심로여, 마음길이여, 번뇌 망상길 밖에 없어.
잠자면 꿈꾸고—어쩌다 꿈 없을 때 있지마는, 잠자면서 꿈꾼 것이 생전에 그 모도 하던 버르정머리 그게 꿈에 나타나는 것이지. 만날 꿈뿐이여.
어쩌다 꿈 없는 지경이 있지. 꿈 없는 지경은 그 뭐이냐 하면 제8식장(第八識藏), 근본무명 식장이여 그것이.
심로(心路)가 제대로 끊어진다. 처꺽 한번 뒤집어 버린다.
변유대오(便有大悟)다. 그때 가서 대오가 있다.
바로 깨달은 대오가 거기에 바로 그대로 갖춰져 있어. 뭐 딴 데 있는 거 아니다. 대오니라.
오료(悟了)에, 깨달아 마친 뒤에는 갱문사건(更問事件)이 있어. 다시 무슨 사건이 있어.
갱문사건은 뭣이냐? 다시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물어야 한다. 다시 오후(悟後)에 인자 그때 가서 정말 스님을 찾아야 한다.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옳은 스승을 바로 찾아야 해.
이런 것 좀 일러줘. 이런 여그 바로 써 놓은 것 좀 일러줘. 저 홍콩 대사한테 좀 일러줘.
왜 그런 것 좀 잘 가르켜 주라고 하는데 안 가르켜줘? 이거 잘 써서 한문으로 얘기해 줘.
법문이 기가 맥히게 해 놓은 소리 아닌가. 딴소리 말고 요런 것 또 잘해서 해석해 주면 알 거여, 한문으로.
다시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물어라. 오후사건이란 게 참 무섭다.
제가 깨달라 가지고는 설사 옳게 깨달랐다 하드래도 깨달라 가지고는 공안에 탁마(琢磨)가 없으면 안돼.(처음~21분3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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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마라는 것이 거기에 중대한 것이여. 조끔만 잘못되어도 그 안돼.
그러니 오후(悟後)에 탁마가 있으니, 오후에 그 탁마(琢磨) 다시 그 사건을 물어서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처꺽 다 떼어 주면, 그때 가서는 바로 보았으니깐 하나도 걸림이 없거든.
그런 것 탁마 못하고, 자기 혼자 무슨 하나 깨달랐다고 그까짓 것 가지고 학자 앉아서 가르킨다고 했자 모도 잘못 가르키는 수가 있거든.
그래 조주 스님 같은 이도 여태 마복(馬腹)을 세 번 면치 못했다고. 바로 보지 못하고 남을 일러줬다 그말이여.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탁마가 없이 남을 바로 일러줘 놓고는 큰일이거든.
그 전백장(前百丈)도 말 한마디 일러주어 놓고는, 뭐 잘못 일러주었나? 바로 일러주었지.
“대수행인(大修行人)이 불락인과야무(不落因果也無)이까? 큰 수행인이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불락인과(不落因果)니라. 인과(因果)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그 인과에 떨어지지 않지, 뭐 인과에 떨어질게 뭐 있나? 무슨 인과에 떨어져. 소가 되고 말이 된다 한들.
위산(潙山) 스님은 “내가 죽은 뒤에는, 시주것을 많이 먹고 내가 여태까지 살았으니 시주 은혜를 갚을라니 할 수 없어 내가 시주 집에 가서 농우(農牛)가 되어, 시주 집에 가서 큰 농사 짓는 소가 되어 가지고,
협하서자(脇下書字)에, 갈빗대 밑으로는 ‘위산승(潙山僧)’이라 쓰고, 대갈빡에는 뿔을 이고 나올 것이니라” 그랬다 그말이여.
위산 스님 같은 그러한 큰스님이,
“내가 죽은 뒤에는 산하(山下)에 그 시주 집에 가서 내가 시주것을 많이 먹었으니 시주 집에 가서 큰 농우가 농사짓는 소가 되어가지고 오되, 이마빡에는 뿔따구를 뒤집어쓰고 갈빗대 밑에는 ‘위산승’이라 써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래 안 했어?
낱낱 갚지, 안 갚아? 시주 은혜를 안 갚은 줄 알어?
도만 닦으면 안 갚은 줄 알어? 도 닦아 가지고 견성해 가지고는 더 갚는 법이여. 낱낱이 갚는 법이여.
“위산승(潙山僧)이라고 할 것 같으면은 소가 아니고, 소라고 할 것 같으면 위산승이 아니니, 너희가 한마디씩 일러 봐라” 그 기가 맥힌 공안 아니냐 그말이여.
갱문오후사건(更問悟後事件)을 해라.
여기를 와서 일주일 동안이나, 얼마 동안이나 있을라고 하는 것은 그 법문 한마디라도 배워 가지고 갈라고 있는데, 한마디 일어준 법이 없지. 그렇게 부자비(不慈悲)해 가지고 뭣 되아.
요러한 데 가서 고런 말 하나 잘 일러주어. 일러주어서 알도록 해 가지고 한국의 그 활구참선 하는 법을 알려줘.
내게만 미뤄, 나만 하면 어떻게 할 거여 내가? 내가 어떻게 그런 말 저런 말 내가 다 갖다 보여?
아이고! 아침에 법문 이렇게 한마디 하고 나면 그만 종일 머리가 아파. 뭐 보통 괴롭지 않어. 하지마는 대중을 위해서 내가 하는 것이고.
아! 그 다음에 고런 것 하나 못 일러 줘? 쬐끄만한 요만한 걸 싫어해 가지고는 살살 도피하네. 그래 가지고 무슨 놈의 도학자(道學者)라고 해.(21분34초~25분4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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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송탑명산우(松榻鳴山雨)~’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西山休靜, 박경훈 역 |동국대학교역경원) p77 ‘우음(偶吟)’ 게송 참고.
*시자(侍者) ; ①시중(侍從)을 드는 사람. ②스승, 장로를 따라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승(高僧)의 가까이서 시중을 들고 명령에 따르며, 항상 용무를 다하는 제자를 말한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식장(識藏) ; 아뢰야식(識). 진여(眞如)인 여래장(如來藏)이 무명(無明)과 화합하여 아뢰야식(識)이 되고 일체의 사상(事象)을 나타내기 때문에 식장(識藏)이라 함.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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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수고(潙山水牯) ;
〇老僧百年後。向山下作一頭水牯牛。左脅下書五字。曰。潙山僧某
喚作水牯牛又是潙山僧。畢竟喚作甚麼即得。仰山出禮拜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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