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5/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끝)

**전강선사(No.355)—몽산법어 부록.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5 (계축73.12.28.새벽) (전355)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5분.

 

 

(1/3)---------------

천고무인문(千古無人問)이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허고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 된다'고, '화두가 안 된다'고 공연히 진심(瞋心)이나 내고, 한탄이나 허고, 그래 퇴타심이나 내고 그래? 그래 될 거여? 안 될수록에 허는 것이 공부고, 무슨 별념(別念)이 망념이 퍼 일어날수록에 그놈 그 가만 두어버려.
나건 말건 천겁 만겁에 그놈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놈이 없어질 것인가? 망상을 안 낼라고 헌들 안 날 수가 있나? 거 땅속에서 물 나오듯 헌 놈의 망상(妄想)이 땅속에 물 나온 놈 막으면 물이 안 나오나? 안 날라고 허면 안 나오나? 더 나오지.

나온 놈의 망상, 일어나는 놈의 망상, 그것을 왜 간섭혀, 왜?
두어버리지. 가만 두어버리고 안 될수록에 그 화두는 더 거각(擧却)해야지.

그저 찾어. '어째서 조주 스님은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판때기 이빨에 털 나?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의심(疑心)이 안 날라니... 의심이 무엇인디? 알 수 없는 놈이 그놈이 의심인데, 알 수 없는 놈 내놓고 따로 무슨 의심을 찾나? 알 수 없는 놈 밖에 무엇이 의심이여?

알 수 없단 말이여. '어따가 내가 놨는고? 내 그 보물을 내가 가지고 댕기다가 어따가 놨는고? 분명히 내가 어따 놨건마는 알 수가 없구나. 어따 놨는고?' 이겐디, 꼭 그건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헌 도리가 그놈이 그저 그만 그 자리에 있어. 바로 있어. 바로 있지마는 아! 이놈을 보지 못했단 말이여.

그저 찾아. 그 자리에 있는 놈, 거 찾는 거여. 그것 찾기 천하에 그보담 더 쉬운 것이 없어. 그보담 더 가까운 것이 없고. 거기는 무슨 뭐 공간도 없어. 시간이니 공간이니 없어. 얼마나 가까운지.
'판치생모?' 거 내 낯반대기여. 내 본래 낯반대기. 허! 거, 내 본고향(本故鄕)이여.

이놈을 이렇게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일구월심(日久月深)이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은 되지 안 되아? 얼른 그만 오늘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그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그렇게 급한 마음 또 들 건.. 급한 마음은 뭘라고 두어. 깨달을 마음도 두지 말아야지. 각심(覺心)도 두지 말라 했는데.
깨달을 마음도 두지 말고 그저 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그것 내놓고 뭘헐 것인가? 무엇을 해야 내 헐 일인가?

참! 천고(千古)에 무인문(無人問)이다. 천고(千古)에 어디 물을 곳도 없다.
어디가 물을 건가? 조사관(祖師關)을 바로 깨달은 그 스승이 어디가 있는가? 참 과연 그 스승 만나기 어렵고, 그러헌 스승이 바로 깨달은 스승이 아니면은 물을 필요도 없고, 물어봤던들 뭣혀? 천구만담(千句萬談)이 다 외도 외담이지 무엇이여 그거? 내게 공연히 쓰잘데 없이 누(累)만 되지 소용 하나 없는 것이여.

차도(此道)에, 이 도문(道門)에 사람 얻기 어렵다. 없어. 물을 곳도 없어.
참으로 옳은 스승을 만났거들란—만난들 알 수가 있나? 그저 '큰스님'이라고 할 것 같으면은 다 소문이 있고. 옛날에는 소문도 못 들어. 지금은 다 소문 들을 수 있고, 반다시 어떤 스님은 도(道)가 있다 없다는 것 다 알 수 있고, 원청 지금은 뭐 별것을 다 알 수 있고, 다 통할 수 있고.

그래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의식으로 찾아 알 수 없으면은, 들어서 어떤 스님이 큰스님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내가 믿어지거들랑 믿어버려. 아주 믿어버려. 안 믿으면 제 손해지, 그 큰스님 손해 아니여. 여지없이 믿어버릴 것 같으면은 그 큰스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만 내 그대로 생사해탈 도(道)여. 안 믿으면은 그 뭐 소용 하나도 없어.

천고(千古)에 무인문(無人問)이지. 사람 만나지 못허면은 어디가 물을 것이며, 만산(萬山)에 공두견(空杜鵑)이니라. 만산(萬山)에 속절없이 두견만 운다. 허, 두견성(杜鵑聲) 뿐이다. 두견성 그놈이 바로 참 제일구(第一句) 도리다. 두견성 소리나 듣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할까?

목동일성저(牧童一聲笛)인디, 먹이는 동자(童子)는, 소를 먹이는 동자는 젓대를 불고 돌아간다. 그 동자는 일 마친 동자지. 확철대오해서 생사(生死) 없는 대도를 통해 가지고는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구나.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다. 소를 타고 석양으로 돌아가는구나.


공부(工夫)가 미득입수시(未得入手時)에, 공부가 손에 들어오지 못할 때, 안 될 때—어느 때냐 공부허는 때가? 공부가 안 될 때 하는 거여.

그 도무지 헐라해도 그 공부가 입수(入手)치 않고 어디 그만 그 계(견)여입정(牽驢入井)처럼 역수탱주(逆水撐舟)처럼, 말 몰고 물에 들어갈란 것처럼, 말 몰고 나귀를 몰고 물에 들어갈라 하니 들어가나? 나귀가 기운이 더 센디, 나귀란 놈이 들어가? 아무리 댕긴들 물에 들어가지 않지.
흘러 내려가는 급수(急水)에 배가 떠내려간디 끄집어올리니 올라가나? 그놈이 좀체로 안 올라가지. 그놈을 끄집어올린 것처럼. 문자철우(蚊子鐵牛)라. 모기란 놈이 철우(鐵牛)를, 쇠소를 뚫는 것 같이.
그 안될 때에 그렇게 허는 거지. 잘될 때야 무슨 뭐 공부가 저절로 입수(入手)해서 저절로 될 때야 뭐 공부할라고 애쓸 게 뭐 있나? 가만 두어도 아! 순수(順水)에 유주(流舟)처럼 흘러 내려가는 물처럼 제대로 따악 화두가 추역불거(推亦不去)하고, 밀어도 가지 않고 가만히 독로(獨露)가 되어 있는데 그때야 뭐.

안 될 때 하는 것이 그것이 공부여. 그게 중생심 항복 받는 것이고, 중생의 망념이 거기서 그만 절단나는 것이고, 거기서 진취가 있는 것이여. 공부가 되어 가는 것이여.
'안 된다'고 내버리고 '망상 난다'고 그만 진심이나 내고, 성이나 내고, 지랄이나 하고, 방광(放狂)이나 놓고, 그래서는 되아? 점점 해 들어갈수록에 그 단순허고 정직허고 청정허고 깨끗허니 다루어 가야지.

함부로 덤부로 중을 맨들아 놓으니, 그만 아무때나 중 되어 놓으니, 중이 자격부텀 근본지식부텀 없어 놓으니 그만 모도 모아 가지고는 그 지내는, 그 모도 모아 지내는 대중 그 모도 짜여진 것이 잘못되어 가지고는 야단들이여. 지금 뭐 가만히... 그것 뭐, 왜 그래 왜?

딱 서로 그 참 그 도 닦을 도학자가 도를 닦을 마음을 가지고 들어와서 입산을 해서 같이 모아서 도반(道伴)이 되았거든, 서로서로 친절(親切) 정녕(丁寧)하고 서로서로 도반을 위해서 이타주의로 더욱 그 참 한 다발 묶어지고 한 뭉치가 되어 가지고는 뭐 그것 뭐, 한 철이 아깝고 한 철이 언제 간지 모르고 이거 용맹정진(勇猛精進)으로 아! 이렇게 좀 지내가지를 못허고는,
이놈 모아 가지고서는 그저 지내는 정도가 원청 지식이 박약하고 아무때나 모도 되어 놓으니까—그저 돌아댕기면서 깡패질이나 하고 주먹질이나 하고 허다가 그만 중이 되어 놓으니까, 맨 그런 것들이 갈 데 올 데 없으니께 들어와 가지고 중이 되어 가지고는, 모도 모아 지내는 행동 전체가 아무것도 아니여. 대중을 모도 능멸히 여기고 대중 가운데 함부로 덤부로 지내가면서 그저 장난이나 내고, 이 지경이다 그 말이여. 거 도문(道門)이 그런 건가?


공부(工夫)가 입수(入手)치 못할 때 그때에 막생번뇌(莫生煩惱)라. 번뇌를 내지 말아라. '안 된다'고 그만 그 번뇌를 내고 짜증을 내고 그러지 말아라. 공번뇌마(恐煩惱魔)가 입심(入心)이니라. 번뇌마가 마음에 들어올까 무섭다.
번뇌마가 마음에 들어오면은 그만 퇴속한다. '에이! 그놈의 것 공부도 안 되고' 퇴속해 버리고, 그만 대중에도 쫓겨나 버리고. 대중에 있을 수가 있나? 그런 행동을 허니. 어디라고 그런 행동허냐 그 말이여. 도문(道門)에서.

자불수도(自不修道)허고, 저도 닦지 아니하면은 쥐구녁에 찡겨 있듯기, 아무리 공부가 안 되더래도 저 혼자 안 되아 어쩔지언정, 대중에다 갖다가 모도 그만 그러헌 넘을 모도 공부 못하게 모도 번뇌가, 제 번뇌가, 제 망상 번뇌가 대중께 퍼져 가지고서는 도를 닦지 못하게 모도 만들어 놔. 똥 가지고 모도 넘한테 찌끌듯기. 큰일나지. 그 넘 도(道) 못 닦게 헌 죄가 어디냐? 그 말이여.

약각생력(若覺省力)이라도, 만약 공부허다가 그 무슨 견성한 '내가 이만했으면 견성했구나' 그러헌 그 생력(省力)이 있드래도, 공부 득력(得力)이 있닥 하드래도. 좀 깨달랐다 그 말이여. 조그만한 소소득족(小所得足)으로—뭐 바로 깨달랐나?—그 어떤 경계가 나드래도 말이여. 그 이것 나드래도 이것은 망상 경계는 아니고, 좀 생력(省力)이니까 힘이 덜렸으니까.
좀 수월한 경계를 얻었다 하드래도, 불가생환희(不可生懽喜)니라. '아따! 인자 내가 이만 했으면 견성했구나!' 하! 환희혀. 좋아서 그만 뛰고 즐거워서 야단치고 그러지 말아라. 공환희마(恐懽喜魔)가 입심(入心)이니라. 그때는 또 환희마(懽喜魔)가 마음에 들어와서 거기도 타락이 있느니라.

그 조금 어디 조금 얻어 가지고는 저 체중현(體中玄)이나 체중현 도리나 얻어 가지고 강사(講師) 지견(知見), 일체 없는 경계가, 일체 무애(無碍) 경계, 걸림이 없는 경계, 없는 도리가 턱 나오거든.
그 나오면은 그거 없는 도리가, 생각으로써서 '없는 도리다' 한 것 보담도, 내가 보는 경계가 달른 것이여. 바로 그 지경을 보아. 보면 말로 무애지경(無碍之境), 없는 지경(地境)과는 내가 직접 그 보는 경계가 달러.
그런 경계가 날 것 같으면은 환희심을 낸다 그 말이여. '허! 내가 인자 이거 견성을 했구나' 어쩌고 해 가지고는 야단이지. 저 혼자 인자 또 고까짓 걸 가지고는. 도학자가 소소역족(小所得足)으로 그까짓 것 좀 난다한들 거기서 모도 놀아나? 그 미친 것이거든. 환희심을 내지 말아라. 환희마가 마음에 들어오느니라.(처음~18분35초)




(2/3)---------------

종종병통(種種病痛)은, 가지가지 병통은 언지부진(言之不盡)이다.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그 말로 다할 수가 있나? 비단 그뿐인가? 별별 것이 다 마(魔)인디. 별별 지견이 다 마(魔)고. 무슨 뭐 앉었으면은 자도 않고, 가만히 화두만 들고 있어도 세계가 나타난 법도 있고, 광명이 나타난 법도 있고, 세계가 나타난 법도 있고 별별 지견이 다 나는데, 그것은 아무리 난다한들 그 사견(邪見), 삿된 사견이니까 제 마음에서 나는 것이지, 어디 그 경계(境界)가 들어온 것 아니여. 제 마음에서 모도 종종병통(種種病痛)이 나는 것이지.

그러헌 병통이 나드래도 그건 다 사견(邪見)이니깐, 부처님 말씀에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 나를 구(求)하면은 행사도(行邪道)라. 삿된 도라」 했거든.
그거 무엇일 것이여? 그까짓 녀러 것이. 그런 것이 나온다고, 세계가 부처님이 장엄을 허고 모도 온다고 거기에 좋아할 것이 뭣이 있으며, 거그 가서 그 사견에 떨어질 것이 뭣이 있어, 도학자가? 별별 병통(病痛)이 다 있다마는 그 말 다할 수 없다.

공중중(恐衆中)에, 대중 가운데에도 큰스님이 없고 바로 확철대오헌 스님이 없다면은 유노성형제판도자(有老成兄弟辦道者)가 있거든, 좀 나이 늙고 또 젊드래도, 늙으나 젊으나 그러헌 분들이 도(道)를 먼첨 좀 증(證)헌 분이 얻은 분이 있거들랑, 천만시시청익(千萬時時請益)해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그 도(道) 있는 스님한테 이익을 청해라. 어여 가서 정성스럽게 한마디를 물어도 정성을 다해서 성의를 다해서 깨끗이 가서 참 정직하게 물어라.

법담(法談)헌다고 “여하시(如何是) 뭐냐? 일러라!” 이런 행동하지 말고, “한마디 도득(道得)해라!” 이런 말하지 말고, 발을 들썩들썩허면서 “뭐 천성(千聖)도 불식(不識)인디” 어쩌고 허면서 그러헌 그 추허게 추행(醜行)을 해서 그렇게 묻는 법이 아니다 그 말이여.
어디 자고래(自古來)로 『염송(拈頌)』이라든지 어디 그러헌 디 가서 양구(良久), 방할(棒喝)이 있지마는, 법(法) 쓰는 것이 양구(良久)와 방할(棒喝)이지, 어디 어른 앞에 가령 그 꼭 할(喝)할 말이라도 “억!” 그런가? 그렇게 헌 거 아니여. 정성스럽게 그 허는 법이 있어. 그걸 내가 다 어떻게 이른다는 말은 헐 것 없으되, 견성허면 다 아는 것이지. 법 쓰는 것을 몰라? 용무생사(用無生死)를 몰라?

약무(若無)인대는, 만약 그러헌 큰스님이 없을진대는 헐 수 없어. 장조사(將祖師) 주공부지언어(做工夫之言語)해야, 꼭 도인(道人)네가 공부허다가 자기 당신 깨달은 경계를 말해 논 그런 법어(法語)가 있거든, 그런 법문이라도 잘 취해서 간일편(看一遍)해라. 한 편을 떡 보고. 그걸 밤낮 보지 말고, 고인(古人)의 그 견성해서 써 논 어록(語錄)이라도 한 편 봐 가지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공부 안 헐 것인가? 선지식이 있으면은 선지식 찾아 만나서 도 닦는 것이야 의호(宜乎)지마는 다시 더이상 없지마는, 없다고 해서 도를 안 닦을 것인가? 만약 인자 도를 이렇게 선지식이 없다고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 안 닦고 말아버릴 것인가? 인자 말아버리면은 이놈의 삼악도는 어떻게 허며, 이놈의 중생 몸뚱이는 언제 제도헐 것인가?

앞으로써 인자 삼재(三災)가 닥쳐오니, 그 사람 몸만 똑 받아서 나오드래도 몇 번 못 받아 와서 삼재가 닥쳐오니, 사람 몸뚱이 받았다 하드래도 이 몸 받아 가지고 잘 닦아서.. (녹음 끊김) 하니 뭐 도 닦았으니, 복은 많이 지었으니, 계행 닦았으니, 후세에 가서 좋은 몸뚱이 잘 받았으니, 복을 받을 터이니 그놈의 복 받다가 복진타락(福盡墮落)을 해 버리지. 복(福) 다 받으면 타락하지.
그 복이 그러기 따문에 그놈이 그것이 지혜복(智慧福)이래야 하지, 우복(愚福)은 못써. 지혜복을 받아 지어야지, 우복은 못쓴다 그 말이여. 어리석은 복(福), 복만 지어 놓으면 복 받다가 타락하니까.

아! 복, 복 받다가 내세에 타락해서 그 타락은 인자 삼악도(三惡途)밖에 갈 데 없으니, 복 받니라고 그 살생도 많이 하고 도둑질도.. 도둑질이란 게 어디 무슨 뭐 남의 물건만 돌라야 도둑질인가?
사기 협잡 모두 취재(取財)해서 부자된 것이 그게지? 맨 넘의 것 취재(取財)해서 부자된 것이지 제것이 본래 어디 있나? 제가 맨들어 논 돈이며, 제가 맨들어 논 논이며, 부귀가 제가 맨들어 논 것인가? 모도 제 협잡 속에서 온 것이지? 그러니 간탐(慳貪) 죄업에 떨어져 가지고는 그 죄짓기 마련이니, 죄 그놈 퍼지어 놓으면은 그놈 업(業)이 갈 곳이라고는 삼악도밖에 없어.

지옥 · 아귀 · 축생 밖에는 갈 데 없으니, 지옥 · 아귀 · 축생에 떨어질 것 같으면은 그놈의 일주야(一晝夜)가, 인간 일주야가 몇 겁인디 몇천 년 몇만 년인데, 그놈의 것 받다가 보면은 지옥 중에 가서 삼재를, 인자 앞으로 삼재가 다 닥쳐오는디 그 삼재를 지낼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지옥 중에 들어가서 삼재(三災)를 받을 것이니 삼재를 만날 것이니 언제 뭐 인취(人趣)에 나오나? 그놈의 그 삼재에 들어갈 것 같으면 삼재 속에서 무척 말할 수 없는 무수겁(無數劫)을 때려 지내야, 인자 또 그놈 받고 나와서는 인취(人趣)를 어디 나올 수 있나? 삼재에 들어간 놈의, 악취에 들어간 놈의 것들이.

그 삼악도에도 그래도 축생취(畜生趣)가 좀 나은디 축생이 제일 나은디, 축생취에만 가드래도 이 축생취에 나와서 축생이 되드래도, 아! 이놈, 대어(大魚)는 중어식(中魚食)허고, 중어(中魚)는 소어식(小魚食)허고, 만날 잡아먹는 것이 살생(殺生)이니 그놈의 살생죄 한량도 없이 지어 가지고는 축생으로 지어 가지고는 축생 그놈이 또 지옥으로 들어가니 어떻게 해?
그 지옥이 어디 무슨 뭐 죄 줄라고 따로 누가 장만해 놓고 있나? 제가 모도 받는 지옥이지? 제 업(業)으로 된 지옥이지?

아! 그러니 축생취에 들어가드래도 또 들어가고 들어가. 새 같은 짐승이 그 한량없는 목숨만 평생 먹고 살았으니, 그 새끼 쳐 놓고 그 물어다가 죽여서 모도 먹이고, 그놈의 죄에 벗들 못하네. 그 보(報)를 벗들 못혀. 한량도 없는 죄만 퍼짓고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언제 그놈이 인취(人趣)에 나와서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사람만 될락 해도 그렇게 난조(難遭)여. 만나기 어려와. 중생이 부처 되기 어렵듯기.
우리 중생이 터억 업(業)만 깨달으면은, 중생업만 벗어버리면은 곧 부처련마는 못혀. 업 따문에 중생 죄업 따문에 못헌다 그 말이여. 일체 짐승이 살생(殺生) 따문에 도로 들어가. 못 나와. 이렇게 얽혀서 죄고(罪苦)만 받는 중생, 언제 도탈(度脫)을 언제 한번 해탈(解脫)을 할 것이냐 그 말이여.

그러니 금생에 이 몸 만나 이 몸 얻었을 때, 이 몸 가지고 잘 닦아. 참 무수히 작량을 잘해서, 참 아주 지혜로 발심을 단단히 해서 단속해서 정진을 용맹(勇猛) 가용맹(加勇猛) 잘하란 말이다. 잘해서 금생에 결정코 내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임명종시(臨命終時)에 아무 걸림 없이 장애 없이, 바로 임명종시에. 앞으로 삼재 때문에 무서워서 더.

'에! 또 한번 더 이 세상에, 이 사바세계에 또 한번 나와서 닦아 가지고 나오리라' 그러다가 까딱하면은 후신(後身), 글씨 뒷 몸뚱이가 복진타락(福盡墮落) 되기 쉽다니까.
그러니까 이 몸 가지고 잘 닦아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바로 대오헐 것 같으면은 가고 올 것이 어디 있나? 어디 도솔천(兜率天)이 따로 있나? 하지마는 도솔천이 왜 또 부처님이 항상 모아서 계시다가 하강(下降)한 곳이 있거든. 도솔천으로 떠억 가야 혀.
갈 발이 있나? 뭣이 있나? 영령(靈靈)한 주인공이 발이 없고 뭐 가고 오는 거래종적(去來蹤跡)이 어디 있나? 가만히 그대로 화생(化生)한 것이지. 도솔천내원(兜率天內院) 발원(發願)을 해야 한다 그 말이여.

도솔천발원 내원 도솔천발원, 도솔천만 갈 것 같으면 반야학자니까, 항상 혜학(慧學)을 허는 지혜학(智慧學)을 허는 반야학자니까, 발원만 하면은 그대로 가서 응해 버려. 가서 도솔천에 가 나서 미륵님 받들고 계시다가 거그서 미륵님 친견하고 증(證)해 가지고, 확철대오해서 오증(悟證)해 가지고는 미륵님 하강시(下降時)에 나온다 그 말이여. 하강혀. 내려와서 중생제도해야지.
인자 그때는 권행(權行)으로 내려왔으니까 암만 사바세계 내려오드래도 그때는 뭐 타락한 법이 없어. 한번 깨달라 증(證)해 놓으면 타락 없는 법이 참선법(參禪法)이여. 그때는 여지없지. 그런께 그렇게 원(願)을 꼭 발원(發願)을 혀.
그래서 여그 '영불퇴전(永不退轉)하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하야 광도중생(廣度衆生)하고 임명종시(臨命終時)에 무제장애(無諸障碍) 왕생도솔내원궁(往生兜率內院宮)이라'

또 법보재자(法寶齋者), 우리 법보학자 아닌가? 법보학자들 모도 선망부모(先亡父母)도 도솔내원궁에 나셔서 확철대오(廓徹大悟)허라는 그거 아닌가.
과거에 큰스님네도 모도 도솔발원(兜率發願)을 했어. 내원궁 발원을 다했다 그 말이여. 뭐 우리만 못했을 것인가? 훌륭하신 큰스님네가 다 도솔내원 발원했어.

이렇게 금생에 모도 발원을 야물딱지게 철저히 허고, 화두를 그러나 저러나 생사해탈하는 화두(話頭), 생사 없는 도를 깨달은 이 화두법, 공안법 잘 다루어 나가. 그저 그만 그 듣고 그만 귀로 흘려버리지 말어. 이 정각선사가 아침에 언제 얘기헐 때 말허는 말, 그 좋은 말이여. 법문(法門)을 들어도 한 치 들을 사람이 있고, 인자 한 자 들을 사람이 있고, 한 치 들을 사람이 있고, 한 푼 들을 사람이 있고, 귀에만 부닥치다 말 사람도 있고, 그거 사실이거든. 그런께 한 자쯤이면 한 자면 한 자를 다 들어 버리란 말이여. 한 자를 다 믿어 버리란 말이여.
쬐금씩 듣다 말다, 신(信)허다 말다, 허다 말다, 그럴라면은 있을 필요.. 선방에 있을 필요가 없어. 한 치면 한 치 다 듣고, 한 치면 한 치를 다 믿고, 한 치면 한 치를 공부를 다 해야 혀. 세상에 내 공부 나 한 거, 내가 나 찾는 거, 원 쉽기도 그 이상 없고, 도(道)도 그밖에는 없고.

천만시시청익(千萬時時請益)해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회중(會衆) 가운데 공부 잘허는 스님이 있고, 선학자(先學者)가 먼첨 학자가 있거들랑 아주 이익을 청해서 잘 듣고, 없거들랑 조사공안, 도 닦아서 확철대오헌 공안 설법해 논 것을 일편(一遍)을 봐라. 그러면은 공부헐 마음이 자꾸 새로워지고 퇴타(退墮)할 마음이 없어지느니라. 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꾸뻑꾸뻑 자올지 마라! 나쁜 놈의 자석들. 뭣이여? 왜 해!
자온 놈 나가거라! 이놈의 자식들 같으니, 공연히 대갈빡만 깎고 들어와서 이놈, 선방 밥 먹기 좋은께 퍼먹고는, 법문 들을 때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즈그들을 위해서 아침 저녁도 안 먹고 며칠 굶고 앉어서 설법하고 앉었는데.
차라리 빌어를 먹고 댕길지언정 왜 선방에 와서 가만히 앉어서 앉어서 밥을 얻어먹고 도 닦는 놈의 녀석들이 앉으면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있다. 작대기로 이놈들 대갈빡을 비틀어지게 때려 놀라.(18분36초~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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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이제 이 도문(道門)에 사람 얻기 어렵구나. 선지식 스님은, 조실 스님은 학자(學者) 얻기 어렵고. 그 옳은 학자, 참으로 도(道) 배울 학자, 참으로 도 닦을 학자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렵구나. 왜 이렇게 어려우냐?

맨 그저 그만 이 '정화(淨化)한다'고 그만 정화한 뒤에 맨놈의 이 학자인가, 뭐이 중인가 들어온 것이 맨놈의 깡패여. 그냥 그만 그저 그만 주먹질이나 휙 허고는, '내가 주먹이나 쓴다' 하고는, 제가 쓰면 뭣할 것이여? 그까짓 것. 어따 쓸 것인고? 그놈의 주먹이.
나 그놈들 보면 더 “이놈의 자식, 네 주먹이 그리 세다니 한번 써봐라. 어따 쓸 것이냐?” 나 그러고, "도를 닦아야지! 도학자가 되어야지!"

이 자식들 모도 들어와서 도문에 와서 그런 버릇대기나 하고 맨 그뿐이여. 어디 저 선방에 들어올 것 같으면 장난이나 낼라고 들어와서, 그저 고런 놈들은 고봉(高峰) 스님 그저 법문을, 고봉 스님 규칙을 막 써야 되야. 막 냅대 쫓아버리고 다시는 그놈들 다시 여기 발길 못 들어밀게 해야지. 모도 만학초기(晩學初機)가, 처음 들어온 사람이 경모심(敬慕心)도 내지 않고, 그런 것들 따문에.

여그 인천 나가면은, 아 저 정공(正空)도 거 들었으니 알 것이네. 저 감옥소 포교(布敎)하는 참 진짜 포교, 감옥소 포교하는 대지라고 그 속인(俗人)이, 그 신도가 그 포교헌디 날마다 가서 공일(空日)마다 가서 거 포교하고 헌 사람인데, 당최 '중 사회'를 들여다보면 팍! 썩었다는 게여.
중이라는 게 뭐냐는 것이여. 그저 그만 어디 독살림이나 맡을라고 어디 댕기면, 그저 돌아댕긴 것 봐도 안데. 손을 휘뜩휘뜩 내두르고 거 무슨 영화나 볼라고 들어가서 영화 보고 웃고 '저것 봐라'고 야단이고. 중 모양 볼 것이, 무엇을 볼 것이냐 이기여. 기맥히다 말이여. 말할 것도, 들으라면 귀가 따가와 못 들어.

내가 그래서 헐 수 없어 문답이, 내가 답이 그랬어. “속인이 아무리 중이 별별 행동을 다하고 뭐 뭐 돌아댕기면서 거리에 나와 춤을 춘다 하드래도 중의 허물을 보는 사람은 중만도 못혀. 어디 그런 법이 있겠느냐”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도인(道人)이 81행(八十一行)이 있으되 광행(狂行)도 헌 이가 있는데 그런 광행을 헌 이도 보고 믿어야 하는 것이고, 아! 유마거사 같은 거사는 평생 똥을 싸고 누워서 병을 앓았다고, 그래도 가서 거 가서 믿어. 문수보살 같은 이도 가서 거가 법담을 모두 해 가지고 그 거기에 못 당하고 다 그런 일이 있고 헌데, 모양을 보고 그렇게 갖다가 비평 비방을 해서야 쓸 것이냐”고. 내가 어저께 법문을 해주니 아무 말도 못허기는 못했지. 허지마는 그러헌 비평을 듣고 있거든. 이거이 여간 아니여.

이번에 '종회를 열지 안 헌다' 하니까 쫓아와서 나한테 와서 상의하고, 나한테 와 도장을 첫 도장을 받았다 그 말이여. 저번에 말 안 턴가? 도장 찌르라고 그래서 "찔러야제. 그래야 한다"
왜 매년 종회를 열어 가지고서 종회에서 모도 잘못헌 것은 시정하고, 잘한 것은 공찬(共讚)하고 아! 이래 가지고서는 진보가 있어야 하고 아! 그런 것이지, 왜 종회를.. 한국승려대회에서 정해 논 종회를 유보헌 것이 무엇이여? 종정이라고 헌들 종정 혼자 마음대로 혀? 유보허고 그려?

승려대회라는 건, 우리 종교라는 것은 더군다나 불교 종교라는 건 특수종단인디, 어디 무슨 정치가 마음대로도 못할 것이며, 어디 그럴 수가 있어? 도장을 찍고 “승려대회 열어라” 찔러 주었는데, 그 찔러 준 도장을 보고는 경산이 쫓아왔다 그 말이여. 경산이 무슨 그 부장하고 쫓아왔어. 그 사람들이 나한테 쫓아올 때는 그 무슨 마음으로 쫓아왔어?

“도장을 받으러 왔습니다”
“뭔 도장?”

“여기 도장을 찔러야 하겠습니다”
“무슨 도장이여?”

“아! 좀 유보를 해야 되겄고, 종단을 지금 여러 가지로 조금 다시 연구헐 것이 모도 있어서 얼른 종회를 열지 못허고 있기 때문에 그래 찍으러 왔습니다”
“그러면 내가 대회를 열어서 종단을 열라고 대회를 허라고 했는데, 거기다가 도장 찔러 주고 또 내가 도장을 찔러? 열지 말라고 찔러? 이 이거 뭐냐 이거? 여그 찔러 주고 여그 찔러 주고 내가 양쪽에 그래 다 찔러 줘? 종회를 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좀 생각해서 연구해 가지고 얼른 내일모레는 못 열고, 한 달 후라도 그리 열 터니까 찍어 주십시오” 그랬다.
“한 달 뒤고 열흘 뒤고 간에 종단 종회만 연다 하면은, 금번 종회만 연다 하면 내가 찍어 주지. 종회를 연다는디 안 찍어? 종회 연다고 각서를 써라. 각서를 쓰면 내가 찍어 주마”

'종회 연다'는 각서를 맡고 찍어 줬다 그 말이여. 그러니 내가 어디 뭐 그 사람들 종회 열.. 저 사람들은 종회 안 열어주니까 대회 붙인다고 찍었고, 이 사람은 “종회 열어줄 테니 찍어 주시오” 헌께 찍어 줬다 그 말이여. 그랬더니 신문에 났데? 신문에 난 거 봤나? 신문 봤어? 신문 났다 그 말이여, 인제 '종회 연다'고.

그러고 인자 갈 때, 차 탈 때 내 그 말했지? “이렇게 해놓고 각서 써놓고 달리 이용허고 종회를 안 열면, 느그가 나를 한국불교에 대종사라고 해놓고 종사를 이용헌 것이고, 종사 대접을 그렇게 해서는 틀려. 종단이 못써. 그걸 주의허겄어?” 내 주의시켰다 그 말이여. 그 가서 우선간 연다고 했다 그 말이여. 그래 신문에 났데. 신문 안 봐?
인제는 종회 열지 뭐. 요 며칠 한.. 저번 어느 달인가 연다고 했은께 열지. 효과 있지 뭐 효과 없어? 그거 다 잘된 것이지. 지금 생각해 보니 '종회 연다'고 해놓고 각서를 써놨으니 안 열 수도 없는 것이고. 나 하라고 해서 헌 게 아니라, 아! 그놈이 공포될 거 아닌가? 신문도 날 것이고.


그 사람 얻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그러허니 참 조실 스님은 학자 만나기 어렵고, 옳게 닦고 옳게 믿고 참 사람 얻기가 어렵다 이 말이여. 그저 모도 거짓식으로 들어와서 이래 가지고 되야? 철두철미해야지. 잘허라는 것이여! 내가 흉만 보는 게 아니고 허물만 나툰 게 아니여!
또 학자들은 옳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참 만나기 어려와. 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게 스승이여. 옳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옳은 제자 만나기 어려운 것이여.

옳은 스승 만났고 옳은 제자를 얻었으면 백발백중이여. 틀린 법이 아니여, 이건 틀린 법이 없어. 금캐기보담도 쉽... 금은 땅속에서 캐는 것이지. 보배는 바닷속에서 얻는 것이지. 바닷물 다 퍼도 바닷물 퍼 가지고도 그 어려운 바닷물을 다 푸고 보배는 얻을 수 있지마는 참, 사람 만나기 스승 만나기는 그렇게 더 어려와.
그러헌 스승을 만났으면은 학자의 복이 그 이상 더 없고, 옳은 스승은 또 그 옳은 학자를 만났으니 꼭 목적 달성을, 학자 제접(提接)허기 위해서 아! 그 조실 스님이 되아 있으니 학자를 얻어야 할 것 아닌가?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출세했으면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학자가 믿어야 될 것이며, 설법 듣는 제자를 많이 얻어야 할 것 아닌가?

천만향전(千萬向前)하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앞을 향해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닦아라. 처음 앞을 미래 앞을 한 번 향(向)해 보아라. 금생에 안 깨닫고 어떻게 할래? 미룰 수가 있겠나?
한번 삼악도에 떨어져 보아라. 누가 너를 건지겠느냐? 누가 너를 건져주기를 바라겠느냐? 업력 중생(業力衆生)은 부처님도 구하기 어렵고, 업(業)을 대신 못한다 했는데 어떻게 헐래? 네가 짓고 네가 받는 업을. 앞을 향해서 한 번 향해 봐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향(向)해라.

망여(望汝)한다. 내가 너한테 바란다. 일찍이 타파칠통(打破漆桶)해라. 빨리빨리 칠통을 타파해라. 어서 속히 중생 네 캄캄한 칠통(漆桶)을 깨달라! 깨달라 가지고 어서 돌아오니라. 지극히 부탁하고 지극히 부탁한다. 완산정응선사 편 다 되었어.


뭐 여기 처음 들어와서 모도 학자들 모도 들어와 가지고서는 학인들이, 저 행자들이 들어와 가지고서는 법문도 안 듣고, 책장(冊張) 하나 안 배우고, 우두커니 그 참선헌다고 앉어 되아? 헐 수 없으니 내가 시간 있는 대로 올라와서 설법해 주니 잘 들어야 할 것 아닌가?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뭣허러 여기 왔냐 그 말이여. 여기에는 그렇게 온 놈들 다 쫓아내 버린다. 여그 그 밥 안 멕여.
억지로 멕이는 밥이여. 여기 뭐 불공(佛供)이 있나? 뭐 불공을. 불공을 뭐 뭐 암만 불공(佛供)을 온들 '새벽 3시에 헌다'고 헌께 누가 오나? '안 온다' 말은 못 허고, 해 논게 안 와.

또 어저께도 재(齋) 들어온다, 30명이 온다. 재 들어오지, 만년위패(萬年位牌) 모시지, 온다고 기별 왔다 그 말이여. 30명이 와서 '밥해 달라' 하고, 뭐 또 인자 그 헌다고.
만년위패나 모시고, 여기서 밥해 주지 않고—만년위패 받아 가지고 여다 해 놓고서는 그 영가(靈駕) 일년에 제사 지내주고, 아침저녁 축원해 주고 그뿐이지, 밥 먹여주고 무슨 뭣 상 채려주고 그런 짓은 없으니까 만년위패나 모실라면 모시고, 뭐 30명 데리고 와서 뭔 또 쌀을 얼매 가지고 와서 밥해 주고, 아 그런 것은 여관처럼 우리가 받지 않으니까 여기는 허지 않는다고 헌께 안 와 버려. 거 내가 거절해 버렸네.

그래 거절해 버리니, 뭐 뭐 기도 거절해 버리지. 기도!
기도나 밤낮 허고 뭐 무슨 목탁 땅 땅 치면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 짓 허고 있는 데 아니여. 다맛 참선허고 있는 덴디. 쏵 그 금(禁)해 버리니 뭐가 있냐 이 말이여. 허지마는 그러 않고 선방이 뭐 되야? 이게 진짜 선방이지.

딱! 근절해 버리고, 그까짓 돈 들어오고 뭣 들어오는 거 얼마 바래고, 근절해 버리고 도 닦고 앉었는 여기에서 식량이 무엇이 있냐 그 말이여. 식량도 없지마는 도 닦을 학자만 있으면은 굶는 법 없어. 아무 문제 없어. 그런 문제 없지마는 도 닦지 않는 학자를, 도 닦지 않는 행자 그런 것들은 기루고 멕일 수 없어.

더군다나 법을 듣는 디는, 종사(宗師)가 승좌설법(陞座說法)이어든, 조실 스님이 법상에 올라와 설법을 허거들랑 여리박빙(如履薄氷)해라. 깊은 물에 엷은 얼음 디디고 있는 것 같이.
그 엷은 어름 그 딱깍 깨지면 풍 빠져 죽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헌 지경을, 그러헌 그 위험한 얼음 위에 서서 있는 지경을 그걸 생각해라 말이여. 그렇게 들어라.

측이목이청현음(側耳目而聽玄音)해라. 이목(耳目)을 기울이고 현음(玄音)을 들어서 불람사발(不濫絲髮)이라. 사발(絲髮), 터럭끝 만큼도 어기지 말고 도를 닦아라, 안 했나?
법문 들으면서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그런 것들 뭣햐? 그거. 그러고도 들었다 햐?(35분5초~50분10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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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