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7.06.30 §(715) 전강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문제점이 있는 것이 바로 잡아진다 /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의심(疑心)입니다 / (게송)군금욕식무위리~.
  2. 2017.06.26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觀)하라.
  3. 2017.06.25 §(715) 호흡은 단전호흡을 권장 / 아직 화두를 안 탄 분은 이뭣고?를 산승은 권한다 / 이뭣고?는 천칠백 공안의 근본 화두. 어느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다.
  4. 2017.06.24 §(715) (게송)인인자유충천기~ / 초발 행자와 같은 근신하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수행 / (게송)흉중하애부하증~ / 일념(一念) 단속 /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生死)가 있다.
  5. 2017.06.16 §(663)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단지불회 시즉견성 / 이 공부 만나 실천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 (게송)오주차암오막식~ / 한 생각 단속에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다.
  6. 2017.06.08 §(627)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수 있다 / 황룡탕 / 여법하게 열심히 도 닦으면 정법시대.
  7. 2017.06.04 §(627) (게송)영화능기일~ /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도 닦을 수 있다 / 보현보살의 돼지 화현 / 스님의 인사 ‘잘 수용하겠습니다’ / 시주·보시는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715) 전강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문제점이 있는 것이 바로 잡아진다 /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의심(疑心)입니다 / (게송)군금욕식무위리~.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약 10분.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話頭)가 정말 참선(參禪)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잘되거나 못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初學者)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여러분이 무위(無爲) 이치를 깨닫고자 할진대는 천차만별 가운데를 여의지 말지어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하는 것은 육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리고 마음으로는 희로애락, 육체적인 정신적인 모든 상황이 천차만별인 것입니다.  천차만별 중을 여의지 말아라.

눈으로 무엇을 들어도 이뭣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어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바로 그놈을 여의고 찾을 것이 아니라, 무슨 소리가 들리면  소리에 즉(卽)해서 이뭣고?’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떠억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라. 다못 허공에 달이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여.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를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숭이는  속에 달이 비치니까  하늘에 있는 달이 떨어졌다고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달을 건질라고 하다가 빠져 죽은 설화가 있습니다. 달은 못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여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뇌나 망상이나 슬픔이나 기쁨이나  세계의 흥망성쇠나 생로병사가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니 경제니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마는 고구려나 고려 ・ 이조 ・ 신라 · 백제나 해방되어 가지고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적고 걱정스러운 일들은 끊임없이 옛날과 다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들이 꿈속에 일어나는 일이요,  중생(衆生)의 지은 업(業)으로 일어나서 일어나는 일이니, 설사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이라도 참으로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되면 우리로서는 화두를 단속하고 정진하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너무 말을 많이   같습니다.  철을 오늘 이러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지내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719~473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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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참고.

*무위(無爲)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 조작(造作: 만들다)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삼독(三毒) 소멸된 열반의 상태.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 ; 정중로월(井中撈月 우물 정/가운데·속 중/잡을·건질 로/달 월)  ‘우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진다’


[참고]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7 (東晉天竺三藏佛陀跋陀羅共法顯譯) ‘明僧殘戒之餘

佛告諸比丘  過去世時  有城名波羅奈  國名伽尸  於空閑處有五百獼猴  遊行林中  到一尼俱律樹  樹下有井  井中有月影現  獼猴主見是月影  語諸伴言  月今日死  落在井中  當共出之  莫令世間長夜闇冥  共作議言  云何能出  獼猴主言  我知出法  我捉樹枝  汝捉我尾  展轉相連  乃可出之  時諸獼猴卽如主語  展轉相捉  小未至水  獼猴重  樹弱枝折  一切獼猴墮井水中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세에 가시(伽尸)라는 나라에 파라나(波羅奈)라는 성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숲속을 유행 중에  니구율나무 밑에 이르렀을 , 나무 밑에 있는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이때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우물   그림자를 보고 무리들에게 말했다. “지금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꺼내줘야 하겠다 함께 의논했다. “어떻게 해야 꺼낼  있을까?”

우두머리가 말했다. “내가 꺼내는 방법을 안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꼬리를 잡고 그렇게 서로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있다 원숭이 무리가 우두머리의 말에 따라 서로의 꼬리를 잡고 늘어뜨렸는데 물에 이르기 전에 이어진 원숭이들이 너무 무거워 나뭇가지가 부려져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중생(衆生) :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정식(情識)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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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7.06.26 09:44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하라.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약 17분.

화두(話頭)를 옳게 든다고 하는 것은조실 스님께서 아까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 화두를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화두를  것이고,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山僧)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의 근본 화두라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화두 공안을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뚱이 끌고 다니는 , 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 그러한 주인공이 우리 사람마다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수가 있고 사람이라  수가 있습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性品)이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불성이라 하는 것은 짐승이나 지옥중생이나 벌레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성현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안했고, 축생이 되지 않고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 몸을 금생에 받아났습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아난 것만 해도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며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니였으면  육체는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우리는 갚어야 합니다. 세속에서 효자로서 장가가고 아들딸 낳아서 살면서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길도 있겠습니다마는  자리에는  부모와 가정과 인생을 버리고 출가를  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보시 돈이 모이면 부모에게 갖다 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리고 그러한 효도는 우리는 허락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효도는 어쨌든지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서 철저하게 정진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조그만한 좁쌀만한 효도가  것이나, 우리가  생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으로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을 단속을 해서 수행해 나가는 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고, 그렇게 단속해 나간 것이 효도 중에서 최고의 효도가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옷이나 음식을 해 드린 것은 그것은 잠시 편안하게 해 드린 것뿐이나 우리가 일념 단속을 해서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최고의 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을  온갖 방법을 다해도  어머니를 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해제날 대중공양(大衆供養)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제날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하면은 아무때나 스님네에게 공양한 것도 좋으나,

 닦는 스님네께 공양하는 일체 욕심을  버리고, 온갖 생각을  버리고서 오직 일념 단속해서  일념 단속하는  수행자,   내내  공부를   수좌(首座)에게 대중공양을 해라

그래가지고 목련존자가 탁발을 해가지고 해제날 대중공양을 해가지고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靑提)부인을 지옥을 벗어날  있도록 해 드린 것입니다.


절에 법당을 짓도록 부처님을 모신다 하면 서로서로 시주금(施主金)을 많이 냅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절을 지어서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셔야 도 닦는 스님네가  거기서  수행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게  정성껏 시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나, 참선 수행하는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있으면 시은(施恩)을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을 갚을려면은 시주것만 잔뜩  먹고 입고  먹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은 그것을 갚어야 하니 그것을좁쌀 서너  때문에 버섯이 되어가지고  은혜를 갚고.


부처님 말씀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떼가 가는데  소가 무엇인줄 아느냐? 왕년에 중들이 저렇게 소가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이 경전에 있습니다.  소가 되냐 하면은 소가 되어야  은혜를 빨리 갚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소가 되어야 몸이 성할 때는 일을 해가지고 갚고, 살아서 똥을 누면은  똥을 비료로 갚고, 죽게 되면은 가죽은 벗겨서 옷이나 신발이나 그런 것을 만들고, 고기는 오장육부를 다 해서 사람들에게 먹여서 갚고.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가 도를 철저히  닦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소가 되어서,  생(生)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    빚을  갚을 때까지 수십 생, 수백 생을 소가 되어서 갚어.


그래서 중은 시주것을 독약보다도  무섭게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절대로 소가  그런 분은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라도 시주것을 참으로 무서운  안다면  먹거나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말고.

무엇이, 보리밥이 들어오거나 찰밥이 들어오거나 국수가 들어오거나 들어온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그것을 맛있게 공양하고,  공양을  때에는 그것을 시주한 신도님들에 대한 간단한 축원(祝願)을 하면서 공양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시면 소화도 잘될 것이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나 원주(院主) 도감(都監)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런 소임을 맡으신 스님네들은 수행하는 도반(道伴)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마련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지금 그런 소임을 맡고 있어도 자기도 참선을 하는 분이고  다음 철이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수행을  것이고, 금생에 안 하더라도 내생에  출가해서  참선하게  것이니.

우리는 서로서로 혼자만 밤낮 하기가 어려우니까 금생에는 내가 공양주 사마 다음 생에는 지금 수행을 하시는 분이 내생에  원주도 살고, 주지도 살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  나만 이렇게 어렵게 공양주를 살고, 어떤 사람은 큰방에 가만히 앉아서 잘만 먹고 편안히 한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이라고 하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네도 전부 선배나 후배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고, 머리는  깎고 청신사 청신녀 신도 여러분도 비록 멀리 가까이 살고 있어도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날을 기해서 법당 안이나 법당 밖에 많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가 정말 참선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되거나  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2441~411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참고.


(63)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불자여。그대의   옷과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 옛날 어떤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 하니라.


(64)故로   要識披毛戴角底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 이르기를  수도인이 다섯  좁쌀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66)故로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15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〇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정원 가운데 나무에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생겼다.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가나제바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집에 가셨다. 장자가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비구는 도안(道眼)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있을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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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감(都監) ;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독하는 소임.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