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2017.03.01 20:06

§(475) (게송)차사본무생~ /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생사심을 깨뜨릴라면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게 화두를 들어라 /  필요한 말만 하라.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은 참나 깨닫는 사업이다 /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 회광반조(廻光返照) 일구월심(日久月深) 면면밀밀(綿綿密密) / (게송)막장사기매서동~.

금생에 일대사를 해결해야 / (게송)백일운위반~ /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은 세세생생에 좋은 선물 /(게송)화종목출환소목~


무량겁을 육도윤회, 생사고해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근원이 무엇이냐 하면 눈으로 보고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듣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이뭣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나가는 것이 생사심을 깨뜨리고,  마음길을 끊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여.

무슨 생사심, 무슨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즉각 이뭣고?’  일어나면  이뭣고?’ 자꾸 이뭣고?’ 간절한 의심으로 이뭣고?’ 거각(擧却)해 나가면 결국은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하게 된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조사관(祖師關) 뚫게 되고 참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재산은 활구참선해서 참나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밖에는 정말 우리가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곳이다. 충분히 믿을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있는 ,  사업은 참나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내생(來生)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송담스님(No.475)—92 6 첫째 일요법회(92.06.07)

(1/3) 약 19분. (2/3) 약 22분. (3/3) 약 20분.

(1/3)----------------


차사본무생(此事本無生)하니  수연처처명(隨緣處處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신료여사지(信了如斯旨)하면  귀가파문정(歸家罷問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사(此事) 본무생(本無生)이여  수연처처명(隨緣處處明)이다.

 일은 본래 남이 없어[無生]. 그러니 인연 따라서 곳곳마다  밝더라. 


차사(此事). 생사(生死). 일대사(一大事).  일대사(一大事) 문제, 생사(生死) 문제.


 생사 때문에 (), 나서 죽고 나서 죽고 하는  생사, 일대사 문제 때문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삼천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  일대사 문제 때문에  사바세계에 오셨고, 우리  법보제자 형제자매들도  일대사 문제 때문에 오늘 임신년 6 첫째 일요법회에  이렇게 운집(雲集) 하셨습니다.


생사 문제는  도리(道理)를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생사고해(生死苦海) 윤회(輪廻) 하지만, 그러나  도리를 확실히 깨달아 버리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남이 없어[本無生]


분명히 우리는  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  세상에 태어나서 늙어서 병들어서 죽는  고통스러운 생애를 가지고,  생만 그런  아니라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살아왔고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들은  도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생이, 남이 없다고 하는 ,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설해 주셨습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여름에는 더웁고, 겨울에는 춥고 이러한 상황이 남이 없는[無生] 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이 .

확실히 우리 눈에는 무상(無常)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우리 눈에 무상으로 보이는  모습이  우리 인생,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분명히 부모의 인연으로  세상에 몸을 받아났다가 차츰차츰 자라서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지마는, 그 춘하추동 순환하는 것이나 사람이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나 관점에 따라서는 똑같은 것이여.


똑같이 무상하고 믿을  없는 허망한 것으로 보면 한없이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지만,  본질에 들어가서는 다맛 인연 따라서 변화가 있을 뿐이지  본질에 있어서는 조금도 불어나거나 줄어들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꽃이  도리나, 가을에 단풍이 지는 도리가 바로 거기에 진리가 표현되고 있다. 진리가 설해지고 있다.


사람이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도 다못 인연 따라서 그러한 변화가 있을 뿐이지  본바탕에 들어가서는 남이 없고, 남이 없기 때문에 또한 () 없다 이거거든.

아직은 우리는 그러한 이치를 확실히 체달(體達) 못했지만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이 한결같이 그것을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생사 속에 본래 생사는 없다’고 하는 것을 ! 믿고, 다못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생각  생각을  단속해 나가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정말 뜻있게 알뜰하게 살아갈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료여사지(信了如斯旨)하면, 이와 같은 뜻을 확실히 믿어버리면,

귀가파문정(歸家罷問程)하리라. 자기의 본고향(本古鄕)에 돌아가는데 길을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있는 자리, 지금 하고 있는 , 밥을 먹을 때나 일을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거거든.


이와 같은 도리를 믿지 아니하면 밤낮 타향 객지에서 자기 고향이 어디가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사람 보고 물어보면 이쪽으로 가라고,  사람 보고 물어보면 저쪽으로...  갈팡질팡. 그날 하루를 공연히 다리만 아프게 방황하고 안정이 없는 종잡을  없는 피로한 하루를 살아가듯이.

인생이라는  대관절 해도 해도  일이 끝도 없고,  일을 겨우 겪으면   어려운 일이  앞을 가로막고. 흥망성쇠와 빈부귀천과 그러한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생로병사의 마주치는 곳에서 한(恨) 많은 인생을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법에 의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어떠한 어려운 , 어떠한 괴로운 ,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즉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들고 살아가면 어떠한 일을 닥치더라도 상관이 없거든.

화두를 들고 자기의 근본을 ! 가다듬는다면 어려운 , 슬픈 , 괴로운 , 억울한 일도  풀어 나갈 수가 있고,  사람 앞에는 풀리지 않는 일이라고는 없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일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처리해 나가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거거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에도 활구참선(活句參禪)  나가는데 관해 요긴한 법문을 간곡히  주셨는데,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생사의 고해 속에서 무량겁을 이렇게 오고,  앞으로 무량겁을 생사고해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근원이 무엇이냐 하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 우리의 생사심(生死心).

눈으로 보고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듣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이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생사심을 결국은 그놈을 깨뜨려 버려야 하는데, 억지로 그놈을 깨뜨리려고자 한다고 해서 깨뜨려지는 것이 아니거든.


 생사심을 깨뜨릴라면은 결국은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단속을 해라. 화두, ‘이뭣고?’


이뭣고?’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를 들고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  나가는 것이 생사심을 깨뜨리고,  마음길을 끊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여.


생사심(生死心) 억지로 그놈을 누를려고 한다든지, 억지로 끊을라고 한다든지,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 그러면 그럴수록  일어나는 것이여. 무슨 생사심, 무슨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즉각 이뭣고?’  일어나면  이뭣고?’


자꾸 이뭣고?’ 간절한 의심으로 이뭣고?’ 거각(擧却)해 나가면 결국은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화두가 들리게 되고, 화두를 들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터억! 독로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결국은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조사관(祖師關) 뚫게 되고 참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나가는 데에는 첫째, 말을 많이 해서는  . 좋은 말이고 궂은 말이고  필요한 말이 아니면 말을 될수록 아니한 것이 좋다.

 필요한 때라도 간단하게 한마디로써 줄여버려야지, 좋은 말도 너무 많이 하다보면 그것이 시비가 일어나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니까 결국은  시간을공부해야 , 화두를 들고 다그쳐 나가야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것이여.


말을 많이 아니해야 화두를 연속 끊어지지 않도록 단속할 수가 있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앉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일할 때나 항상 화두가 목전(目前)에 ! 있도록.

그렇게 할려면은 금강석(金剛石)과 같은 굳은 지조가 있어야 됩니다. 결심이 있어야 . 금강은 금강지(金剛志) 분(奮)  가지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이여.  생각이 만년(萬年)토록.


금강석과 같은 굳은 결심이 아니면 금방 주변 환경에 휩쓸려 들어간다 그말이여. 무슨  한마디만 들으면 자기도 거기에 참여해서 주거니 받거니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하게 되고.


하! 내가 인생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어. 이렇게 정법을 듣고 내가 어찌 그렁저렁 세월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인가.

시시각각으로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몸은 자꾸 늙어 가는데, 어찌 내가 정법을 알고 믿고서도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는가.  생각  생각,     하다가 퍼떡 깨닫고 ! 입을 다물고, 화두를 떠억 들고.(처음~192)



(2/3)----------------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 일어난  뿌리를 다시 관조하고 이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거든. 끝없는 회광반조를 되풀이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갈수록  수가 없어야 .

  없는 의심이 있으면은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럴 것이 아니라 이뭣고?’ 그놈을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그놈을 떠억! 관조(觀照) 하거든.


그렇게  나가다보면 차츰 조용해지고, 조용해지면은 자기도 몰래  꾸벅꾸벅 혼침(昏沈)  수가 있고. 혼침, ! 정신을 차리다보면  끝없는 망상(忘想)이 일어나.

졸지 아니하면 망상, 망상이 아니면 졸음, 참선할려고만 열심히 하다보면은 혼침과 산란심(散亂心) 번갈아 가면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만 없으면  공부를 잘할  같은데.  조용해지면 혼침이 오고, 혼침이 깨면은 산란심이 일어나고.


그래서 다생(多生)에  닦아 나가는 데 장애물로써 수마(睡魔) 막대(莫大)하다.  졸음이 오는  마구니란 놈이 굉장히 우리 도업(道業) 성취에 장애요소가 된다고 고인(古人)네들도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결국은 그놈한테 내가  버릴 수도 없고, 졸림이 온다고 해서 실컷 다리 뻗고  수도 없고. 혼침 산란이  닦아 나가는 데에는 멀리  수도 없고, 가까이  수도 없는 이상야릇한 도반(道伴)이여. 도반은 도반이되 친근히  수도 없고, 그놈을 멀리하고 싶어도 끈질기게 따라 붙어.


구참(久參)일수록에 혼침은  잘해. 이놈이 속이 떠억 망상이 가라앉으니까 그러니까 조용하다보면은 꾸벅꾸벅.   참선해서 얻은 것이 앉아서 조는 법을 배웠다고 어떤 분이 그러는데.

앉아서 졸면 10 20분은 금방 가고, 입선(入禪)하고 죽비하고 5분도  되어서 졸기 시작해 가지고 방선(放禪)할 때사 눈을 뜨거든. 그래서 입승(入繩) 스님이 자비가 있으면 가끔 돌면서  졸음을 깨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혼침이  때에는 허리를 쭈욱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혼자 정진할 때라면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왔다갔다 포행을  하고 그래서 정신이  맑아지면 다시 와서 정진하고 그러면  좋은데,

대중이 같이 한 방에서 입선할 때는 졸음이 온다고 밤낮 들랑날랑하기도 옆에 다른 도반들에게 미안하고, 앉아서 억지로 그놈을 쫓을라고 하면은 굉장히 용을 쓰고 꼬집어 뜯고 이를 악물고 해도 영판 여름에 더울    도망간다 그말이여.


어쨌든지 힘을 다해서 채찍을 가해 가지고  번이고  번이고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들어서, 그렇게  나가다보면 결국은  끈질기고 고약한 혼침과 산란도 결국은 나의 금강지(金剛志) 끈질긴 정진력(精進力)으로 그놈이 항복을 하고, 혼침도 달아나고 산란심도 달아나서 그래서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들릴 때가 오는 것이여. 순일무잡(純一無雜).


그래 가지고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다가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리가 띵하기도 하고, 온몸이 그렇게 이상하게 뒤틀리면서   정진이  안된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러더라도 분심(憤心) 내고 신심(信心) 내서 지혜롭게 알뜰하게 단속을  나가면 훨씬 공부가 수월하게  되어진다.


잘되다가  되다가,  되다가 잘되다가 끝없는 고비 고비를 넘겨서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일구월심 면면밀밀하게   나가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게 되고.

풍풍풍풍 솟아나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가듯이 마음도 ()하고, 경계(境界)도 적적(寂寂)해져서 그래 가지고 몸도 마음도 쾌락안연(快樂安然) 경계에 이르게 된다 그말이여.  시간  시간 앉았어도 조금도 몸이 괴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시간이 어떻게  줄을 몰라.


의단이 독로해서 그럴 때에  너무도 고요하고 너무도 편안하고 너무나 깨끗한 그런 경지가 오면 화두를 드는 것도 귀찮고, 오히려 화두 드는 것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를 흐트러지게 할까, 그런 생각도 있어서 화두를 들지 아니한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말이여.

아무리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더라도 항상  화두,   없는 의단(疑團)을 잊지 말고  거각해 나가야 한다.  관조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나가면,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이틀을 지내고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어떠한 수질각차(手跌脚蹉) 하는손발을 ! 접질린다던지 헛디딘다던지 어떤 그런 찰나에 확철대오 (廓徹大悟)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이, 모든 도인(道人)들이 그렇게 애를 써서 그런 과정을  경험을 하신 바여.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알뜰히 단속해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어.

우리의 교주(教主)이신 삼계 대도사(三界大導師)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이셨고, 모든 선지식들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신심(信心) 분심(憤心) 대의단(大疑團)으로 정진을 함으로써 결국은 그런 확철대오해서 대도사가 되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과정과 그러한 결과를 믿고 우리도 그렇게  나가는  이외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것이 없어. 다행히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할  있게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경행(慶幸)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수가 없어. 명예・권리・재산・자손・애정  믿지 못할 것들이여. 일생을 바쳐서 그런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꿈속에서 얻었다가 놓치는 것들이여.

명예도 그렇고, 권리도 그렇고, 재산도 그렇고 피땀 흘려서 일생을 노력을 해 봤자 결국은 허망하게 빼앗기고 허망하게  몸으로부터  떠나고야만  것이고, 죽을 때까지  거머쥐고 있어 봤자 황천(黃泉)으로  때에는 하나도 가지고가지 못한   몸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재산은 참선, 활구참선해서 참나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밖에는 정말 우리가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곳이다.

충분히 믿을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있는 ,  사업은 참나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그말이여.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내생(來生),  내생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세속에 많은 크고 작은 기업가들, 사업가들 있지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기도 어렵고, 설사 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2, 5, 10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사업이여.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고, 안되면은 잠을  자고 속이 타고.

그러나 그런 사업을 하지 말라는  아니라  따라서 사업할 사람은 하고, 무엇인가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오히려  우선해서 자기 진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런 사업을 하면 되면 되는 대로 좋고, 안되더라도 또 뚫고 나갈 길이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라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여세인쟁시비(不與世人爭是非)하고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나무~아미타불~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고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어다.

자기가 명예와 권리가  있다, 재산이 있다, 학식이 있다, 자기에게는 이러이러한 무슨 힘이 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것을 코에다 걸고 동서남북에다 그것을 팔아.


그것으로 그래 가지고 뽐내.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으로 뽐내고, 권리가 있는 사람은 권리로 뽐내고, 학식이 있는 사람은 학식으로 뽐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뽐내고, 수단이 있는 사람은 수단으로 뽐내고, 그래 가지고 자기 과시를 하고, 남에게 으시대고,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고. 그래봤자 그것이  조금 가는 것이냐 그거거든.


그러지를 말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기 마음,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로 발길을 옮겨라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해서 이뭣고?’ 열심히  나가면 설사 권리가 있다고 해서  권리를 남용(濫用)을 하는 법이 없고, 재산이 있다고 해서  재산으로 남을 짓밟을 리가 없어.

권리가 있더라도  권리를 뜻있게, 재산이 있어도  재산을 뜻있게  쓸지언정 어찌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해서 자기를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일을 할까 보냐. 


불여세인(不與世人)으로 쟁시비(爭是非)하라. 세상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시비(是非) 다투지 말아라.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길이길이  없이, 그런 시비로 싸우는 일이 없이 솔바람 소리를 들어라.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물론 여름  , 겨울  달을 선원에 들어가서 방부(房付)를 들이 정진을 하니까 대번에 그러한 솔바람 소리를 듣는  뜻을  아시겠지만, 가정 형편이나 모든 사정에 따라서 방부를 들이 못하고 세속에서, 세속의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가운데에도 항상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도회지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복잡한 소리가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것이 시비(是非) 끊어진 솔바람 소리로 들을 수가 있게  것입니다.


참선을   사람은 모든 귀로 들리는 소리가  시비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가  시비요. 서로 물고 뜯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거든.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시비(是非) 속에서 항상 화두로써 대처해 나가기 때문에 시비가 시비가 아니여. 이렇게 되도록 끝없는 발심(發心)과 끝없는 분심, 끝없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것입니다.(193~4026)



(3/3)----------------


언제 해도 내가 해야  일이고, 내가 함으로써만이  문제는 해결이 되어. 일대사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문제여.

금생에   놓으면 내가  일이 그만큼  늦어지고, 금생 일생에  하면은 일생이 늦어진 것이 아니라 금생에   놓으면 몇억 겁이 늦어질 수가 있어.


 그러냐? 사람 받아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사람 몸을 받았다고 해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불법을 만났다고 해서 활구참선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여.

금생에 만약에 지금  법문을 듣고, 지금   놓으면 내생에 사람  받아서 불법을 만나서 활구참선 만날  있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수가 없어. 지금을 놓치면은 영원히 미끄러지는 것이거든.



백일운위반(白日雲爲伴)하고  청소수작린(淸宵水作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궁세외락(無窮世外樂)  공락유수인(共樂有誰人)

나무~아미타불~


백일운위반(白日雲爲伴)하고, 낮에는 백일(白日), 낮에는 하늘에   흰구름을 도반을 삼고,

청소수작린(淸宵水作隣)이다. 맑은 밤에는 흘러가는 물소리로써 이웃을 삼어. 


도회지에는 매연이 가득차서 맑은 하늘도 보기가 어렵고, 맑은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도 듣기가 어렵겠지만, 정말 발심을 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도반(道伴)이여.


무엇을 보자마자, 눈에 무엇이 들어오자마자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기 때문에 하늘에  흰구름뿐만이 아니고, 달이 되었건 별이 되었건 해가 되었건 또는 푸른 나뭇잎이 되었건 지나가는 자동차가 되었건 무엇이고 눈에 띄면, 띄자마자 그놈에 즉해서 떠억 자기 본고향(本古鄕)으로 가는 화두를 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나의 도반이요, 나의 선지식이여.


산중에 맑은 물이 줄줄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뿐만이 아니라 귀로 들리는 것은, 자동차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나 밖에서 외우고 돌아가는 장사꾼의 소리나, 아이들이 웃고 소리지르는 아이들의 소리나 애기 우는 소리나  짖는 소리나, 전부가  소리를 듣자마자  소리로 따라가지 아니하고  소리에 즉해서 이뭣고?’ 화두를 떠억 들기 때문에,


 소리가 무슨 소리가 되었건, 음악 소리가 되었건  짖는 소리 들었건  소리에 즉해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는 바로 그것이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선지식의 법문(法門)이요, 도반의 충고요, 부처님의 설법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사람과  활구참선을   사람과의 하루의 생활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을   사람은 귀로  소리를 들으면 바로  듣는  소리로 쫓아가서 시비에 내가 끌려 들어가고, 무엇을 보면 좋다 나쁘다 그놈에 따라서 성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고  온갖 번뇌 망상이 거기서 벌어지는 건데.


참선한 사람은 듣자마자, 보자마자 떠억 자기의 마음의 고향으로 화두를 들고 단속을 하니, 하나는 시시각각으로 마음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고,  법을  믿는 사람은 계속 번뇌와 망상과 시비와 흥망성쇠와 생사고해 속으로 계속 끌려 나간다 그말이여. 그렇게 인생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무궁세외락(無窮世外樂),  끝없는 무궁한  세상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낙(樂)을 누구와 함께 같이  것인가.(共樂有誰人)


여간해서 이거 듣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공부!

여러분 가운데에는 친구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일가친척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여간해서  공부, 물론 권고해야 하고 손을 이끌고  법회에 참석하도록 하시겠죠. 그러나  말을 믿고 오기도 참 어려운 것입니다.


듣기도 어렵고, 듣고 믿기도 어려운데, 믿고서 조금 하는 척하다가 중단하는 사람이 태반이고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이것을 밀고 나가는 사람,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거든.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좋은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대단히 좋아하고, 무엇인가 좋아하면서도 내가 받고만 말아서 되겠느냐 보답을 해야겠다 그러니 받음으로써 오히려 부담을 느끼게 되는 거여. 받고  따먹고   씻을 수가 없거든.

그만큼 받으면은 그놈 못지않게  보답을 하고, 물론 주고받고 하는 것이 인생을 서로  재미있는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고,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그렇게 아무도  사람이 없고 받을 사람도 없다면 그것도  외로운 삶이라고  수 있겠지만.


주고받고, 받고  주고, 그렇게 서로 사람이라는  가는 , 오는 정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형편 따라서 좋은 일인데, 요새는 그런 선물도 차츰차츰 비싼 것으로 자꾸 치중해 나가서,  주기도   생각해야 하고 받고 나서도 굉장히 부담감을 느끼고, 그러니 별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생일 때나 무슨 혼사 그런 경우에 부담 없이 주고  부담 없이 받고 피차 그렇게 하면  좋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상당히 지성인이라고 할까,  인격적으로 향상된 사람들이라야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면서 부담스럽고 받으면서 부담스럽고, 주고받고 하는 가운데 굉장히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데 이것은 언젠가는 고쳐져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인데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 이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울 것도 없고 설사 권고해도 믿지 아니하면  그만인 것이고,  다음 기회에  기회가 오면은  권고해서 결국은 정법을 믿도록 사돈 간이나 일가친척 간이나 친구 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좋은 선물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사람에게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이,  인연으로 내생에 내가 잠시 망각을 했을 때에   사람이 나를  이끌어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고.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결국은  함께 해탈세계로 나아가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지인정기각제정(智因情起却除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심관망명위지(正心觀妄名爲智)하고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불은 나무에서 일어나. 나무를 비비면 거기서 열이 나가지고 결국은 불이 나는데,  불은 나무로 조차 일어나 가지고 결국은 나무들을  태워버리는 거여.

지혜는 우리의 중생심(衆生心)으로부터 지혜(智慧)가 나오는 거야. 중생심으로부터 지혜가 나와 가지고 마침내는 우리의 중생심, 정(情)을 인정, 감정  정(情)을  없애는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윤회도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중생의  정(情)감정 ・ 애정 ・ 탐착심 이러한 것이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서 육도를 윤회하지만  생각을 돌이키면, 돌이켜서 이뭣고?’.


돌이켜서 이뭣고?’하는 것도 내나 우리가 깨닫기 전이니까 그게  중생심이여.

 중생심으로 중생심을 돌이켜서 화두로 돌리면, 그게 바로 정심(正心)으로 망상을 돌이켜 관조하면, 망상 뿌리 일어나는 근본을 돌이켜서 관조하면 거기서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바로 지혜여.


 지혜는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 () 능히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묘력(妙力) 거기서 나온다 그거거든.


지금 번뇌 망상, 희로애락,  우리는 그것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 가지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울다 웃다가 근심 걱정하다가 시비하다가 싸우다가 원망하다가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고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오는데, 우리는 금생부터서는 그게 아니거든.

그런 생각 일어날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에 즉해서 떠억 화두를 들고  들고, 들고  들고. 놓친  알면  들고, 들다보면 놓쳐지면, 놓쳐지면  들고 해서 끝없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이렇게 나아가면 결국은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터억 깨닫게 된다 그거거든.



앞으로 머지않아서 장마철이 돌아옵니다. 오뉴월  삼복더위가 돌아옵니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건강을  지키는 법은모든 병이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되게 속을 상한 뒤끝에는 위장병이 생기고, 심장병이 생기고, 당뇨병이 생기고, 온갖 병이 지나친 슬픔, 지나친 노여움, 지나친 원망, 한탄 이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파도칠 때에 심장이 나빠지고 위장이 나빠지고 간이 나빠지고.

결국은 암도 되게 슬프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생각이 걷잡을  없이 일어나서  충격을 받게 되면 암이 생기는 거고, 간경화증도 생기는 것이고, 고혈압, 중풍 병도  그런 데에서 생겨나, 원인은.


그래서 평상시에 떠억 화두를 들고, 일어나는 자기의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그러면 자연히 우리의 정신이 순화가 되어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