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생활2017.03.31 07:19

§(014) 법당에서는 항상 입선(入禪)하시도록 / 새로운 분을 정법(正法)으로 인도하는 공덕이 매우 크다.


여기에는 어쨌든지 참선(參禪) 때문에 오셨고,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실라고 오신 것이지, 여기에 오신 마당에 무슨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에 들어오셨거나,  도량(道場)에 들어섰거나 또는 집에서  법회에 오시려고 하실 때부터 마음가짐이 조용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면서 오셔야 하고, 더군다나  법당에  들어서셨다 하면은 ! 방석을 갖다놓고 앉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약 5분.


그리고 매달 24, 그리고 그 밖에 법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신남신녀(信男信女)께서 많이 오시는데,  법당에 한번 들어오시면은 부처님께 참배를 하시거나 또는 참배가 끝난 다음에 자리에 한번  앉으시면은 입선(入禪)을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쨌든지 참선(參禪) 때문에 오셨고,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실라고 오신 것이지, 여기에 오신 마당에 무슨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에 들어오셨거나,  도량(道場)에 들어섰거나 또는 집에서  법회에 오시려고 하실 때부터 마음가짐이 조용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면서 오셔야 하고, 더군다나  법당에  들어서셨다 하면은 ! 방석을 갖다놓고 앉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집에서는 시끄럽고 복잡하고 해서  안되더라도  자리에 오신  마당에서는  명이 앉아 계시거나, 오십 명이 앉아 계시거나, 삼백 명이 앉아 계시거나, 밖에서는  분도  계신 것처럼 그렇게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 화두를 들고 입정(入定) 하셔야 합니다.


들어오셔서 들어오신 대로하기는 오랜만에 만나셨으니까 인사도 해야 하고, 정담도 있게 마련이고 해서 얘기하신 것이 그렇게 이해는   있습니다마는.

다른 회의 장소도 아니고  참선 법회인 만큼  들어오셨다 하면은 말없이 단정히 앉아서 입선을 하시도록. 대단히 그렇게 하심으로써  법회장이 엄숙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 자신들에게 많은 이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있으면은 이 24 관음재(觀音齋) 법회만큼은 11시 반에  시작할  있도록 각별히 유의하셔서... 10시 , 실례했습니다. 10시 반에  시작할  있도록 그렇게 조금 생각을 준비하시면은 능히 가능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법회를 거듭할 때마다 많은 신도분들이 오시면서 자꾸 친구나 친척 되시는 이웃 어른들을 모다 인도를 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몸만  법을 알고 공부하고 말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자기가 좋아하는 언니, 동생, 조카,  이러한 분들을 한 사람이라도  권고해서 같이 오셔서 같이  공부를 해 가지고 같이 행복하게 살고, 같이 생사해탈을 해야지, 자기만 좋고 말아버린다고 하면은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사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가만히 보니 오실 때마다 새로운 분을  분씩,  분씩 자꾸자꾸 이렇게 인도해서 오시는 분들이 차츰차츰 늘어나서, 그분들의 공덕(功德)은 절에다가 돈이나, 쌀이나, 무슨 그런 물질적인 보시를 하는 몇천만 배의 공덕이 그분에게는 있을 것이고, 소원을 성취하실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돈이나 물질을 희사(喜捨)한 것은 그것이 아까 말씀한 대로 한(限)이 있어서  복[有漏福] 받을 만큼  받아 버리면 그것으로써 끄터리는 비참하기가 마찬가지라고 말씀했죠.

그러나  사람 내지  사람  사람, 스무 사람, 내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정법(正法)으로 인도해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성취할  있도록 인도한  공덕이, 그것은 다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남도 공부하고, 나도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남도 공부할  있도록 이렇게 해서 우리의 도반(道伴)들이  사람이라도  많이 불어나도록 그렇게 모다 노력을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이만 이야기하겠습니다.(4842~532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 들어가는 .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身口意) 삼업(三業) 갈무리는 . ②수행하기 위하여  안에 들어앉는 .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공덕(隨喜功德)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희사(喜捨 기쁠 /버릴·베풀 ) ; ①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 베푸는 . 정사(淨捨 : 깨끗하게 내놓는 ), 정시(淨施 : 깨끗하게 베푸는 )라고도 . ②기껍게 자기의 의견, 생각을 버리는 .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버리는 .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 52초)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끄터리 ; ‘끄트머리(  부분)’ 사투리.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TAG 공덕, 희사
화두(공안)2017.03.29 14:07

§(014) 할아버지와 구렁이가 된 손자의 복수심, 개의 은혜갚기 / 조주 무자(無字) 공안.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도 아니요, 귀여워하다가 무의식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그렇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한테  복수심을 가지고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오거든,

하물며 우리가 내가  잘살고, 나가  벌고 나를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했을 때에 돌아올 과보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개를 많이 기르시는 분들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밥도  주고, 항시   듣는데 화두(話頭)도 일러주시고, ‘관세음보살’도   귀에다 대고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지  개가  살다가 내생에는 몸을 바꿔서 참선(參禪)을   있도록 항시 축원(祝願)을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를  때마다 항시 ‘이뭣고?’를 간절히 들어야 합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약 15분.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 어린 서너  먹은 손자를 데리고 심심하고 그러니까,  마을 어구에  정자가 있는데  정자 밑에는  열댓 길 되는 절벽이 있습니다.

 절벽 밑에는 새파란 강이 흐르고 있어서 대단히 경치가 좋기 때문에  절벽 위에다가 정자를 지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여름에는 거기 가서 놀고, 춘하추동  정자에 가서 모여서 놀고 시간을 지내고 그러는데,  할아버지도  어린 손자를 데리고  정자에 가서 놀고 있는데.


 손자는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뛰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깡충깡충 뛰다가 심심하면 할아버지한테 가서 안겼다가, 그러다 그냥 그놈이 너무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니까 할아버지 수염을  뽑고,  뽑고 그러는데 “야! 이놈아 수염 뽑지 마라. 아프다”

 한바탕 가서 깡충깡충 뛰다가 놀다가 와서   뽑으니까는 “아! 이놈아. 아퍼” 그러고 툭 밀어버린 것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가지고  어린 손자가 십여  되는 절벽 밑에 떨어져 가지고 즉사(卽死)를 했습니다.


이것은 떨어지라고  것도 아니고 수염을 뽑으니까 엉겁결에 무의식 중에 아파서 이리 떠민 것이 어린애가 나동그라져 가지고 절벽으로 떨어져서 죽었는데.

그래서 세상에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를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게 했으니, 그걸 할아버지가 북북 기어 내려가 가지고   속으로 들어가서  어린애를 간신히 건져내 가지고 보니 박살이 났다  말씀이여.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거 어린애를 끌어안고 울고불고하다가 해가 넘어갔습니다.


그래 집에서 할아버지가  오시니까,  애기 엄마가  할아버지가 흔히 낮에는  손자를 데리고 정자에 가신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 가서 보니까 절벽 밑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서,

“아, 할아버지 거기서  하십니까?” 죽은 손자를 안고 울면서 나를 죽여 달라”고, 자부(子婦)한테 나를 죽여 달라고 막... ,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래서 사실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린애를 할아버지,  명이 짧아서 이렇게 죽게  것이니 상심 마십시오. 자식은  낳으면 되지 않습니까?” 할아버지를  위로를 해서 어린애를 양지바른 데다 묻어 주었습니다.


제가 그전에는 나귀에 관한 얘기를 해 드렸고, 소에 대한 얘기를 해 드렸고, 오늘은 개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드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에서는  어린애를 갖다가 양지바른 데다 묻어주고는 계속  할아버지는 계속 상심해서  진지도   잡숫고, 잠도  주무시고,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는데,  아들이나 며느리나 집안 식구들은 할아버지를 갖은 방법으로 위로를 해드리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런데, 그러는 가운데에  달이 지나갔습니다. , 그런데 밤에면.. 집에 개를  마리 기르는데 개란 놈이  할아버지 자는  앞에  가지고,  할아버지가 간신히 어떻게 해서 밤늦게 잠이 한숨들라고 하면은 개란 놈이 와서  앞에 와서 짖고, 문을 긁고 야단이라 그말이여.

도저히, 그래서    잘라다가  자고,  이튿날 저녁에도  12시 자정이 넘어서 간신히    잘라고 하면  개가 와서 짖고 문을 긁고 해서  그냥  잠을  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를 여러 날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서   때문에 도저히 잠을  수가 없고 참으로 큰일났다해서 가족들이 의논을  가지고  개를 잡아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고 있는 차인데 내일이면은 저 개를 죽여 없애자 그렇게 의논을 했는데.

집구석이 좋지 못하려니까 손자가 그렇게 비명(非命)에 죽더니 개마저 그런다’고. ‘  때문에 재수때갱이가 없어서 이렇게 그런가 보다’고,  개를 죽여 없애기로 했는데.


그래서  개를 밤에 죽여 가지고 그것을 잡어서 삶았습니다. 삶았는데  속에 가서 새끼가 여러 마리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 죽인 바람에 새끼까지 모다 죽게 되어서, 개를 가마솥에다 넣어서 푹푹 고고 있는데, !  할아버지의 딸이 머지않는 곳으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는데,  딸이 새벽같이 쫓아왔습니다.


“아니! 아버지 여기  죽였습니까?

“오냐. 개를 죽여서 지금 고고 있다”


“아휴, 그런데   뱃속에 새끼가 들었던가요? 새끼가  마리 들었던가요?

“오냐. 새끼가  마리 들었더라. 그런데 니가 어떻게 알고 왔냐?


“아휴!  개를  죽였습니까? 아니,  개를 죽일 개가 아닌데  죽였습니까?

“거 약허이약허이 해서 죽였는데 니가 그것을 대관절 어떻게 알고 왔냐? 어제 밤에 그냥 죽였는데 어떻게 알았냐?


“다름이 아니라 내가 어젯밤 꿈을 꾸니까 우리집에서 키운 개가 나한테  가지고 하는 말이,

‘그   전에 죽은  손자가 구랭이가 되어가지고,  할아버지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잠만 들막 하면은 와가지고 문구녁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해꼬자 하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집의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크는 개로써  구렁이가 집에  들어가게 갖은 방법으로 막고, 물고, 뜯고 해서 쫒으면은  구랭이가 도망갔다가,   다음날 저녁에 할아버지가 잠이 들만 하면  구렁이가  나와 가지고  들어갈라고 하면 내가 짖고, 물고, 뜯고, 그냥 막고, 그냥 발로 방해를 하고 이렇게 해서 간신히 해서 쫓고, 쫓고 해서 며칠을 두고 지금  구렁이하고 실갱이를 하고 지금 싸움을 하고 있는데,


 집의 식구는 그것을 모르고 내가 집구석 망할라고 짖는다고  가지고 나를, 내가 새끼를  마리나  가지고 얼마  있으면  낳게 되었는데 나를 죽일라고 하니 나를  살려주시오

아! 그 현몽(現夢)을 대서 그래서 밤중에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이렇게 왔는데, 세상에  개를 죽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러한 실화가 있습니다.


그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도 아니요, 귀여워하다가 무의식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그렇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한테  복수심을 가지고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오거든,

하물며 우리가 내가  잘살고, 나가  벌고 나를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했을 때에 돌아올 과보(果報)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본래 사흘만 길러도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고양이는  년을 길러도 사흘 은공을 모른다하는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종종  개라고 하는 짐승이 그렇게 주인의 은혜를 자기의 생명으로써 갚은 경우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일본 등속에 많이 있고, 서양에도 그런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개를 많이 기르시는 분들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밥도  주고, 항시   듣는데 화두(話頭)도 일러주시고, ‘관세음보살’도   귀에다 대고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지  개가  살다가 내생에는 몸을 바꿔서 참선(參禪)을   있도록 항시 축원(祝願)을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를  때마다 항시 ‘이뭣고?’를 간절히 들어야 합니다.



중국에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한테 “저런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조주 스님이 “무()”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를부처님 경전에 보면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준동함령(蠢動含靈),  일체 꿈적꿈적한 그런 벌레까지라도  불성이 있다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런데 어째서 조주 스님은 없다고 했는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그것이 조주 스님으로 말하면은 옛날 불보살(佛菩薩)이 화현(化現)했다’고 하는, ‘중생 교화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할만큼 존경을 받을 만한  도인(道人)이십니다.  조주 스님은 벌써   미만의 소년 때에 견성(見性)을 하신 도인이고, 일백이십 세까지 사신 그러한 대도사(大道士)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거짓말하실 리도 없고, 조주 스님이 더군다나 그런 대도사가 거짓말하실 까닭이 없거늘, ‘어째서 개가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고?’ 자나깨나  스님은 의심을 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앉아서나, 누워서나,  먹을 때나,  입을 때나,   때나, 걸어갈 때나 어느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어째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해서 꿈속에서까지  의심이 일어날 정도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을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땅을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반가운 친구가 와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어떤 속상한 일이 닥쳐와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슬픈 일이 닥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그저 날아가는 새를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먼 데서 짖는 개소리를 들어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째서 ()라고 했나?’  생각 하나로  몸과 우주법계가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홀연히  의심이 터지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참선을 하려고  때에, 과거에 많은 도인들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어째서 ()라고 했는고?’  화두로써 많은 도인들이 여기서 나왔던 것입니다.

 가운데에 그 조주 스님이 ()라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화두를 드시는 분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조주 무자(無字)’도 역시 개로 인해서 나온 공안입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껍데기만 개지 그것이 개가 아닙니다. 우리도  생각에 개의 껍데기를 뒤집어 몇천만 번을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나왔을른지도 모르고, 앞으로  언제 얼마나 많이 개의 껍데기를 뒤집어  날이 올는 모릅니다.

한번 개가 되면은 참 그 껍데기 벗기 어렵고, 그러니만큼 어쨌든지 우리는  사람  받았을 때에 기어코....(녹음끊김)(3046~452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비명(非命) ; 제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함.

*약허이약허이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 남을 해치고자 하는 .

*현몽(現夢) ; ①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 꿈. ②꿈에 나타난 것을 이르는 말.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조주(趙州)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무자(無字) 화두 ;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 전강선사 법어집]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라고 하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없이  소리로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무자(無字)화두 드는 , 단제(單提) 전제(全提) 근제(勤提) ; http://emokko.tistory.com/364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근본 성품, 각성(覺性), 자성(自性).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움직일 /머금을·품을 /신령·신령할 )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한다.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이뭣고?’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1) 약 21분. (2) 약 11분.


(1)------------------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일을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있습니다마는,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있으면 하나라도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 10, 5, 3 또는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들으신 것이라고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있는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간단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대단히 경을 떠들어 봐도 알기가 어렵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암만 읽어봐도 읽어볼수록 점점  어렵고 그래서  불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어쨌든지 경전을 쉽게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늘날에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한 것을 종종 뜻있는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마는.


아무리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자꾸 간행을 한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불법이 성황을 이루고 많은 중생이 제도를 받느냐 하면은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경을 많이 읽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육두백판으로   안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요, 그런다고 해서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쨌든지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하는 놈이 무엇인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하지마는 생각 생각이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시간 시간이, 일 분 일 분마다, 일 초 일 초마다,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이 잡념이 되었건, 번뇌 망상이 되었건, 성을 내건 또는 슬프건, 무슨 생각이 일어났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만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8 뢰야식(賴耶識) 속에 고대로  녹음이 되어서 간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틈만 있으면 움이 터 나오고 있습니다.


무를 겨울에 땅속에다가 묻어놓으면 계속 거기서 움이 자라가지고  이듬해 무를 파 보면은 노랗게 싹이  나오고 있듯이,

우리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무량겁으로 생활해 내려오면서  속에 녹음되어 감춰져 가지고 있는, 싸여져 가지고 있는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 한없는 많은  종자(種子)들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종자가 무슨 기회만 있으면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움이  나오면서 그놈이  씨를 결실을  가지고 또다시 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