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생활2017. 3. 31. 07:19

§(014) 법당에서는 항상 입선(入禪)하시도록 / 새로운 분을 정법(正法)으로 인도하는 공덕이 매우 크다.

 

여기에는 어쨌든지 참선(參禪) 때문에 오셨고,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실라고 오신 것이지, 여기에 오신 마당에 무슨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에 들어오셨거나,  도량(道場)에 들어섰거나 또는 집에서  법회에 오시려고 하실 때부터 마음가짐이 조용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면서 오셔야 하고, 더군다나  법당에  들어서셨다 하면은 ! 방석을 갖다놓고 앉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용014)

 

약 5분.

 

그리고 매달 24, 그리고 그 밖에 법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신남신녀(信男信女)께서 많이 오시는데,  법당에 한번 들어오시면은 부처님께 참배를 하시거나 또는 참배가 끝난 다음에 자리에 한번  앉으시면은 입선(入禪)을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쨌든지 참선(參禪) 때문에 오셨고,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실라고 오신 것이지, 여기에 오신 마당에 무슨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에 들어오셨거나,  도량(道場)에 들어섰거나 또는 집에서  법회에 오시려고 하실 때부터 마음가짐이 조용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면서 오셔야 하고, 더군다나  법당에  들어서셨다 하면은 ! 방석을 갖다놓고 앉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집에서는 시끄럽고 복잡하고 해서  안되더라도  자리에 오신  마당에서는  명이 앉아 계시거나, 오십 명이 앉아 계시거나, 삼백 명이 앉아 계시거나, 밖에서는  분도  계신 것처럼 그렇게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 화두를 들고 입정(入定) 하셔야 합니다.

 

들어오셔서 들어오신 대로하기는 오랜만에 만나셨으니까 인사도 해야 하고, 정담도 있게 마련이고 해서 얘기하신 것이 그렇게 이해는   있습니다마는.

다른 회의 장소도 아니고  참선 법회인 만큼  들어오셨다 하면은 말없이 단정히 앉아서 입선을 하시도록. 대단히 그렇게 하심으로써  법회장이 엄숙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 자신들에게 많은 이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있으면은 이 24 관음재(觀音齋) 법회만큼은 11시 반에  시작할  있도록 각별히 유의하셔서... 10시 , 실례했습니다. 10시 반에  시작할  있도록 그렇게 조금 생각을 준비하시면은 능히 가능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법회를 거듭할 때마다 많은 신도분들이 오시면서 자꾸 친구나 친척 되시는 이웃 어른들을 모다 인도를 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몸만  법을 알고 공부하고 말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자기가 좋아하는 언니, 동생, 조카,  이러한 분들을 한 사람이라도  권고해서 같이 오셔서 같이  공부를 해 가지고 같이 행복하게 살고, 같이 생사해탈을 해야지, 자기만 좋고 말아버린다고 하면은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사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가만히 보니 오실 때마다 새로운 분을  분씩,  분씩 자꾸자꾸 이렇게 인도해서 오시는 분들이 차츰차츰 늘어나서, 그분들의 공덕(功德)은 절에다가 돈이나, 쌀이나, 무슨 그런 물질적인 보시를 하는 몇천만 배의 공덕이 그분에게는 있을 것이고, 소원을 성취하실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돈이나 물질을 희사(喜捨)한 것은 그것이 아까 말씀한 대로 한(限)이 있어서  복[有漏福] 받을 만큼  받아 버리면 그것으로써 끄터리는 비참하기가 마찬가지라고 말씀했죠.

그러나  사람 내지  사람  사람, 스무 사람, 내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정법(正法)으로 인도해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성취할  있도록 인도한  공덕이, 그것은 다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남도 공부하고, 나도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남도 공부할  있도록 이렇게 해서 우리의 도반(道伴)들이  사람이라도  많이 불어나도록 그렇게 모다 노력을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이만 이야기하겠습니다.(4842~532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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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 들어가는 .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身口意) 삼업(三業) 갈무리는 . ②수행하기 위하여  안에 들어앉는 .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공덕(隨喜功德)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희사(喜捨 기쁠 /버릴·베풀 ) ; ①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 베푸는 . 정사(淨捨 : 깨끗하게 내놓는 ), 정시(淨施 : 깨끗하게 베푸는 )라고도 . ②기껍게 자기의 의견, 생각을 버리는 .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버리는 .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 52초)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끄터리 ; ‘끄트머리(  부분)’ 사투리.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7. 3. 29. 14:07

§(014) 할아버지와 구렁이가 된 손자의 복수심, 개의 은혜갚기 / 조주 무자(無字) 공안.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도 아니요, 귀여워하다가 무의식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그렇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한테  복수심을 가지고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오거든, 하물며 우리가 내가  잘살고, 나가  벌고 나를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했을 때에 돌아올 과보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개를 많이 기르시는 분들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밥도  주고, 항시   듣는데 화두(話頭)도 일러주시고, ‘관세음보살’도   귀에다 대고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지  개가  살다가 내생에는 몸을 바꿔서 참선(參禪)을   있도록 항시 축원(祝願)을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를  때마다 항시 ‘이뭣고?’를 간절히 들어야 합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용014)

 

약 15분.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 어린 서너  먹은 손자를 데리고 심심하고 그러니까,  마을 어구에  정자가 있는데  정자 밑에는  열댓 길 되는 절벽이 있습니다.

 절벽 밑에는 새파란 강이 흐르고 있어서 대단히 경치가 좋기 때문에  절벽 위에다가 정자를 지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여름에는 거기 가서 놀고, 춘하추동  정자에 가서 모여서 놀고 시간을 지내고 그러는데,  할아버지도  어린 손자를 데리고  정자에 가서 놀고 있는데.

 

 손자는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뛰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깡충깡충 뛰다가 심심하면 할아버지한테 가서 안겼다가, 그러다 그냥 그놈이 너무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니까 할아버지 수염을  뽑고,  뽑고 그러는데 “야! 이놈아 수염 뽑지 마라. 아프다”

 한바탕 가서 깡충깡충 뛰다가 놀다가 와서   뽑으니까는 “아! 이놈아. 아퍼” 그러고 툭 밀어버린 것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가지고  어린 손자가 십여  되는 절벽 밑에 떨어져 가지고 즉사(卽死)를 했습니다.

 

이것은 떨어지라고  것도 아니고 수염을 뽑으니까 엉겁결에 무의식 중에 아파서 이리 떠민 것이 어린애가 나동그라져 가지고 절벽으로 떨어져서 죽었는데.

그래서 세상에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를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게 했으니, 그걸 할아버지가 북북 기어 내려가 가지고   속으로 들어가서  어린애를 간신히 건져내 가지고 보니 박살이 났다  말씀이여.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거 어린애를 끌어안고 울고불고하다가 해가 넘어갔습니다.

 

그래 집에서 할아버지가  오시니까,  애기 엄마가  할아버지가 흔히 낮에는  손자를 데리고 정자에 가신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 가서 보니까 절벽 밑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서,

“아, 할아버지 거기서  하십니까?” 죽은 손자를 안고 울면서 나를 죽여 달라”고, 자부(子婦)한테 나를 죽여 달라고 막... ,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사실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린애를 할아버지,  명이 짧아서 이렇게 죽게  것이니 상심 마십시오. 자식은  낳으면 되지 않습니까?” 할아버지를  위로를 해서 어린애를 양지바른 데다 묻어 주었습니다.

 

제가 그전에는 나귀에 관한 얘기를 해 드렸고, 소에 대한 얘기를 해 드렸고, 오늘은 개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드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에서는  어린애를 갖다가 양지바른 데다 묻어주고는 계속  할아버지는 계속 상심해서  진지도   잡숫고, 잠도  주무시고,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는데,  아들이나 며느리나 집안 식구들은 할아버지를 갖은 방법으로 위로를 해드리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런데, 그러는 가운데에  달이 지나갔습니다. , 그런데 밤에면.. 집에 개를  마리 기르는데 개란 놈이  할아버지 자는  앞에  가지고,  할아버지가 간신히 어떻게 해서 밤늦게 잠이 한숨들라고 하면은 개란 놈이 와서  앞에 와서 짖고, 문을 긁고 야단이라 그말이여.

도저히, 그래서    잘라다가  자고,  이튿날 저녁에도  12시 자정이 넘어서 간신히    잘라고 하면  개가 와서 짖고 문을 긁고 해서  그냥  잠을  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를 여러 날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서   때문에 도저히 잠을  수가 없고 참으로 큰일났다해서 가족들이 의논을  가지고  개를 잡아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고 있는 차인데 내일이면은 저 개를 죽여 없애자 그렇게 의논을 했는데.

집구석이 좋지 못하려니까 손자가 그렇게 비명(非命)에 죽더니 개마저 그런다’고. ‘  때문에 재수때갱이가 없어서 이렇게 그런가 보다’고,  개를 죽여 없애기로 했는데.

 

그래서  개를 밤에 죽여 가지고 그것을 잡어서 삶았습니다. 삶았는데  속에 가서 새끼가 여러 마리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 죽인 바람에 새끼까지 모다 죽게 되어서, 개를 가마솥에다 넣어서 푹푹 고고 있는데, !  할아버지의 딸이 머지않는 곳으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는데,  딸이 새벽같이 쫓아왔습니다.

 

“아니! 아버지 여기  죽였습니까?

“오냐. 개를 죽여서 지금 고고 있다”

 

“아휴, 그런데   뱃속에 새끼가 들었던가요? 새끼가  마리 들었던가요?

“오냐. 새끼가  마리 들었더라. 그런데 니가 어떻게 알고 왔냐?

 

“아휴!  개를  죽였습니까? 아니,  개를 죽일 개가 아닌데  죽였습니까?

“거 약허이약허이 해서 죽였는데 니가 그것을 대관절 어떻게 알고 왔냐? 어제 밤에 그냥 죽였는데 어떻게 알았냐?

 

“다름이 아니라 내가 어젯밤 꿈을 꾸니까 우리집에서 키운 개가 나한테  가지고 하는 말이,

‘그   전에 죽은  손자가 구랭이가 되어가지고,  할아버지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잠만 들막 하면은 와가지고 문구녁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해꼬자 하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집의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크는 개로써  구렁이가 집에  들어가게 갖은 방법으로 막고, 물고, 뜯고 해서 쫒으면은  구랭이가 도망갔다가,   다음날 저녁에 할아버지가 잠이 들만 하면  구렁이가  나와 가지고  들어갈라고 하면 내가 짖고, 물고, 뜯고, 그냥 막고, 그냥 발로 방해를 하고 이렇게 해서 간신히 해서 쫓고, 쫓고 해서 며칠을 두고 지금  구렁이하고 실갱이를 하고 지금 싸움을 하고 있는데,

 

 집의 식구는 그것을 모르고 내가 집구석 망할라고 짖는다고  가지고 나를, 내가 새끼를  마리나  가지고 얼마  있으면  낳게 되었는데 나를 죽일라고 하니 나를  살려주시오

아! 그 현몽(現夢)을 대서 그래서 밤중에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이렇게 왔는데, 세상에  개를 죽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러한 실화가 있습니다.

 

그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도 아니요, 귀여워하다가 무의식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그렇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한테  복수심을 가지고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오거든,

하물며 우리가 내가  잘살고, 나가  벌고 나를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했을 때에 돌아올 과보(果報)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본래 사흘만 길러도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고양이는  년을 길러도 사흘 은공을 모른다하는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종종  개라고 하는 짐승이 그렇게 주인의 은혜를 자기의 생명으로써 갚은 경우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일본 등속에 많이 있고, 서양에도 그런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개를 많이 기르시는 분들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밥도  주고, 항시   듣는데 화두(話頭)도 일러주시고, ‘관세음보살’도   귀에다 대고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지  개가  살다가 내생에는 몸을 바꿔서 참선(參禪)을   있도록 항시 축원(祝願)을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를  때마다 항시 ‘이뭣고?’를 간절히 들어야 합니다.

 

 

중국에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한테 “저런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조주 스님이 “무()”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를부처님 경전에 보면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준동함령(蠢動含靈),  일체 꿈적꿈적한 그런 벌레까지라도  불성이 있다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런데 어째서 조주 스님은 없다고 했는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그것이 조주 스님으로 말하면은 옛날 불보살(佛菩薩)이 화현(化現)했다’고 하는, ‘중생 교화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할만큼 존경을 받을 만한  도인(道人)이십니다.  조주 스님은 벌써   미만의 소년 때에 견성(見性)을 하신 도인이고, 일백이십 세까지 사신 그러한 대도사(大道士)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거짓말하실 리도 없고, 조주 스님이 더군다나 그런 대도사가 거짓말하실 까닭이 없거늘, ‘어째서 개가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고?’ 자나깨나  스님은 의심을 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앉아서나, 누워서나,  먹을 때나,  입을 때나,   때나, 걸어갈 때나 어느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어째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해서 꿈속에서까지  의심이 일어날 정도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을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땅을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반가운 친구가 와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어떤 속상한 일이 닥쳐와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슬픈 일이 닥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그저 날아가는 새를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먼 데서 짖는 개소리를 들어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째서 ()라고 했나?’  생각 하나로  몸과 우주법계가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홀연히  의심이 터지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참선을 하려고  때에, 과거에 많은 도인들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어째서 ()라고 했는고?’  화두로써 많은 도인들이 여기서 나왔던 것입니다.

 가운데에 그 조주 스님이 ()라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화두를 드시는 분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조주 무자(無字)’도 역시 개로 인해서 나온 공안입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껍데기만 개지 그것이 개가 아닙니다. 우리도  생각에 개의 껍데기를 뒤집어 몇천만 번을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나왔을른지도 모르고, 앞으로  언제 얼마나 많이 개의 껍데기를 뒤집어  날이 올는 모릅니다.

한번 개가 되면은 참 그 껍데기 벗기 어렵고, 그러니만큼 어쨌든지 우리는  사람  받았을 때에 기어코....(녹음끊김)(3046~452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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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非命) ; 제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함.

*약허이약허이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 남을 해치고자 하는 .

*현몽(現夢) ; ①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 꿈. ②꿈에 나타난 것을 이르는 말.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조주(趙州)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무자(無字) 화두 ;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 전강선사 법어집]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라고 하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없이  소리로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무자(無字)화두 드는 , 단제(單提) 전제(全提) 근제(勤提) ; >>> 법문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근본 성품, 각성(覺性), 자성(自性).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움직일 /머금을·품을 /신령·신령할 )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한다.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3. 27. 22:04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이뭣고?’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1) 약 21분.

 

 

 

(2) 약 11분.

 

 

(1)------------------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이를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있습니다마는,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있으면 하나라도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 10, 5, 3 또는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들으신 것이라고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있을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간단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대단히 경을 떠들어 봐도 알기가 어렵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암만 읽어봐도 읽어볼수록 점점  어렵고 그래서  불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어쨌든지 경전을 쉽게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늘날에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한 것을 종종 뜻있는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마는.

 

아무리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자꾸 간행을 한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불법이 성황을 이루고 많은 중생이 제도를 받느냐 하면은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경을 많이 읽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육두백판으로   안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요, 그런다고 해서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쨌든지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하는 놈이 무엇인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하지마는 생각 생각이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시간 시간이, 일 분 일 분마다, 일 초 일 초마다,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이 잡념이 되었건, 번뇌 망상이 되었건, 성을 내건 또는 슬프건, 무슨 생각이 일어났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만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8 뢰야식(賴耶識) 속에 고대로  녹음이 되어서 간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틈만 있으면 움이 터 나오고 있습니다.

 

무를 겨울에 땅속에다가 묻어놓으면 계속 거기서 움이 자라가지고  이듬해 무를 파 보면은 노랗게 싹이  나오고 있듯이,

우리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무량겁으로 생활해 내려오면서  속에 녹음되어 감춰져 갖 있는, 쌓여져 갖 있는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 한없는 많은  종자(種子)들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종자가 무슨 기회만 있으면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움이  나오면서 그놈이  씨를 결실을  가지고 또다시 거기에  저장이 되고, 저장된 씨에서는 계속 움이  나오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 아니면 악한 생각,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터무니없는 생각, 10년 , 20년 전에 있었던  또는 전혀 보고 듣지도 못한 뿌리도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잠시도  사이 없이 퍼일어났다 꺼졌다, 퍼일어났다 꺼졌다.

 

 가운데에 울다가 웃다가 몸부림치다가 그래가지고 성내다가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러는 가운데에 그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선업도 있고, 악업도 있고, 무기업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생각이 끊일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는 육도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불법을 만나서  법보선원에 이렇게 모이셨습니다마는, 이만큼 되실 때까지는 여러분들은 과거에 한없는 정법(正法)에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다행히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기왕 오셨을 바에는 활구참선법을 올바르게 배워서, 지도 받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면은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하실 것이고,

설사 인연이 무르익지 못해서 금생에 도업을 성취 못하신다 하더라고 올바르게만 공부하신다면은 내생에 다시  바꿔 나  공부를 하시게 되어서 결정코 내생에는 대도사(大道士)가 되어가지고 당신 자신도 생사해탈을 하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게 됩니다.

 

오직  길만이 자신도 해탈(解脫)하고, 남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건져낼 수가 있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떠한 착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생사해탈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찬 칠보(七寶)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를 한다 해도  복이 한량이 없어서 천당에 태어나고, 인도(人道)에 태어난다 해도 오복(五福)을 누릴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그러한 상(相)으로, 물질적으로 이룬 그러한 복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어서 타락이 있게 됩니다.

 

타락한 날에는   동안 복을 누리다 타락하거나, 억겁(億劫)을 누리다가 타락하거나  타락한  마당에 비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본래부터 가난했던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으면 별일이 없지마는, 한 삼사십  호강하고 잘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졌을 때의  비참한 것은 말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有漏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웬수(怨讐)’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말한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바로 유루복인데, 유루복은  유루복을 닦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짓고    있습니까?   짓고 높은 자리 올라갈  있습니까? 높은 자리 올라가고, 높은  부자를 누릴려고  때에  짓지 않고는 도저히 그런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을 획득하느라고 죄를 짓고,   복을 획득한 다음에   수용 하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고 하다 보니 권리도 부려야 하고, 호강도 해야 하고, 없는 사람 업신여기며 없는 사람을 개돼지처럼 종으로 부리면서   누리느라고 죄를 짓게 되고.

마지막에  복을  받아서 망(亡)해 갈 때에   있으면  복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과 귀(貴)와 권리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갖은 안간힘을 쓰다 보니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얻기 위해서 죄를 짓고, 얻어 가지고 누리느라고 죄를 짓고, 나중에 망해 갈  그놈을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되어서 삼생(三生) 웬수(怨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지위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지마는, 그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며, 차라리 우리가 무서워해야  만큼 '웬수거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돈도 웬수고 명예와 권리도 웬수면  소용없고, 그러면   파먹고 살아란 말이냐?’  이러한 의아심(疑訝心)을 가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필요하지마는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가 생명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을 하시게 되면은, 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노력도 하시고, 그런 얻어진 것을 필요하게 적절히 사용도 하시고  그것들이 인연이 다해서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불행해지거나 죄를 짓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활구참선을 하게 되면은 하는 가운데에 돈도 벌고, 명예도 누리고, 권리도 잡고 하신다면은 그것이 죄가  수가 없습니다.  짓지 않고 얼마든지 유효적절하게 얻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고, 마지막 그것이 나한테 떠난다 해도 모든 것을 인연에 돌리고.

그것이 떠남으로써 일반 사람은 아주 비참한 불행한 맛을 보게 되지만,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떠날 때에도 오히려 좋은 발심(發心)의 계기가 되어질 수가 있고, 참으로 발심할  있는 법문이 되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좋은 법이기 때문에 최상승 활구참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식해도   있고, 나이가 많아도   있고,  많은 중생일수록에 오히려  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냐?

경(經)을 공부한다든지 무슨 어려운 경책(經冊)을 학문을 한다고 하면은 젊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되겠지마는 이 활구참선은 맨주먹으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앓아누워 있는 사람은 앓아누워서도  수가 있고, 바쁜 사람은 바쁜 가운데도  수가 있고,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사람도 참선(參禪)하는 간단한 법만 지도 받으면은 어디서 언제라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이 법이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대답할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꼬집어서 아픈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배고파서  먹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꼬집어 뜯어서 아픈  알고 “아무개야!”하고 불러서 “예”하고 대답할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만  사람이면은  참선은 능히 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냐? ! 꼬집었을  “아야!”할 줄만 알면  아픈  아는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공부를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처음~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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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어떤 보살님은 이렇게 조실 스님이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하시고,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실 스님의  말씀을  알기 쉽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를 벌써  남짓을 해왔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전부 스님네나 또는 선방에 앉아서,  큰방에 앉아 계신 보살님만 하는 것이지 그밖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신 신도 여러분에게는 해당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전혀 이런 말씀을 들어도  말씀은 당신한테는 해당된 법문이 아니라’ 이리 생각하고 여태까지 5년 동안을 다니셨다 그럽니다.

그분은 대단히 진실하고, 아주 신심이 돈독한 분으로서 대단히 좋은 진실한 신도님인데, 어떻게  법문을 어디로 들으셨는가? 그것이 당신한테 해당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한테만 해당된 말이요, 나한테는 해당된 말이 아니다’해 가지고 나도 언제나 저런 공부를  볼꼬?’ 이리 생각하셨다 그럽니다.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그러한 착각을 하신 분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말씀은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해당된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고대로만 하시면 되는 것이지, 별도로 따로 지도를 받아야 하거나, 지금 자기에게는 해당된 말이 아니어서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누구라도, 지금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마는,  어린아이라도 다섯 , 여섯  먹은 어린아이라도  말씀만 조용히 들어서 귀담아듣고 고대로만 하면은 오히려 나이 많이 먹어서 학교도 많이 다니고, 지식도 많은 사람보단 아주 철이 하나도 안 든 다섯, 여섯  먹은 애라도 고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어린애가 훨씬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습니다.

 

광주에서 어느 신도분의 아들이 자꾸 자기 어머니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것을 보고서 절에 따라와서 구경하고  자기 집에서도 어머니가 조석으로 관세음보살 부른 것을 보고는,  어린애가 열이 40도가 넘어 가지고  몸부림을 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대단히 곤경에 빠져 가지고  견디게 되니까,

 어린애가 서서 벽에 붙여 놓은 관세음보살 사진 앞에  가지고는,  다섯  먹은 어린애가 합장을 하고 서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가지고   동안을 그렇게 하더니 !  쓰러져 가지고는 쿨쿨 잠을 한숨 자고 나더니 !  40도나 되던 열이 쏴악 식어 가지고.

 

! 병원에서도 얘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고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어린애가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십 분 남짓을 그렇게 부르더니 !  감쪽같이  병이 낫은 것을 제가  어린애를 봤습니다.

 

순수무구(純粹無垢)한 마음, 천진한 마음으로  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을 많이  보았다’고, ‘나는 아직 불교에 들어온 지가 얼마  되고 경도  번도  봤고, 그래서  같은 사람은 참선해 봤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지 말고, 금방 오셨더라도 조금도 상관이 없으니까 ‘이뭣고?

 

성이  때나 또는 슬픈 생각이  때나 또는 어떤 외로움을 느낄 때나, 가정 문제로 사회 문제로 자손 문제로 또는 내외간 문제로 해서, 어떠한 속이 상하고 슬프고 외롭고 또는 기쁘고 간에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 지금 당장 -하는 놈이 뭣고?’ 자꾸 생각 생각이 돌이켜서  번이고,  번이고 들고  들고,  생각이 생활 속에 저절로 ‘이뭣고?’하는 생각이 저절로 되어지도록까지 열심히 하십시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때도 ‘이뭣고?’ 잠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언제 잠이 든  모르게 공부를 하시도록, 이렇게 하시면은 무식할수록  좋고, 철이 안 들을수록  좋고, 연세가 많을수록  좋고.

 

연세 많은 분은 내가 인자 이 세상을, 이승을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항시 간절하게 자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무슨 미련이 있고,  잊을 것이 있어서  생각할 겨를이 있느냐 그말이야. 그 죽음이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이뭣고?’를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노인은 노인대로  공부하기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련도 있고 생각도 많아서  생각  생각하다가 그러지마는, 벌써 육십 칠십 넘으신 할머니는  좋습니다. 인제 자식 걱정할 것도 없고, 자기들  ()대로 살도록 놔두고, 나는 ‘이뭣고?’  좋아요.

 

마지막 숨질 , 그때 참으로 마지막 5, 3, 2, 1, 1 그때까지도 ‘이뭣고?’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을  있다면은 그분이야말로 바로 도인(道人)입니다. 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분이 도인이여.

마지막  거둘 때에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뭣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존시에 무슨 일에 애착이 있어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마지막 숨질 , 참으로  먹던 힘을 다해서 ‘이뭣고?’를 들을  있는 사람이면 도인입니다.

 

마지막 숨질 때,  사람이 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병한테 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힘을 총동원해도 그놈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죽게 되는 것이니 만큼,  죽는 순간에 화두가 들려지고, 들을  있다면  사람의 공부는 어지간한 공부입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그때그때 화두가 들어질  있는 사람이라야  몸뚱이  거둘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부처님께서 49 동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는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 말씀으로 줄여서 말하면 일념단속(一念團束)하는 , 생사심 단속해서거기에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단속해서 생사 없는 이치를  몸에 체달(體達)할  영원한 생사윤회는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험준하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세상 살아가는 속에 정신차려 이뭣고?’ 든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하면 누가 나를 위해서 닦아줍니까?(2027~304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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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참집(參集 참여할 참/모일 집) ; 어떤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모임.

*돋구다 ; 돋우다(감정이나 기운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다. 정도를 더 높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참구할·참여할 )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 오랫동안 () 닦은 .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 귀의한지 오래 되는 . 초학(初學) 상대어.

*조랑조랑 ; (어린 사람이) 계속하여 똑똑하게 글을 외거나 말을 하는 소리.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뢰야식(賴耶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 ; ()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 말한다. 그리고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3가지 () ··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②악심(惡心)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 과보를 받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보(七寶) : []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 (),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인도(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

유학(儒學) 오경(五經) 하나인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편에는 (), (), 강녕(康寧 : 건강),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 고종명(考終命 :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 말하는데, 청나라  적호(翟灝) 『통속편(通俗編)』에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억겁(億劫) ; 무한이 길고 오랜 세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 아울러 이르는 .

*웬수 ; ‘원수(怨讐)’ 사투리.

*부귀공명(富貴功名) ;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웬수거리 ; 원수(怨讐)  만한 재료. 웬수는 ‘원수(怨讐)’ 사투리.  법문에서는 , 지위, 명예, 권리 따위를 '원수거리'라고 말씀하셨다.

*의아심(疑訝心 의심할 의/의심할 아/마음 심) ;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

*최상승(最上乘)=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경책(經冊 불경 / ) ; 부처님 말씀() ().

*일자무식(一字無識) ;  글자도 읽을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또는 그런 사람.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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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 (명사)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를 이르는 말. (부사)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때에.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순수무구(純粹無垢) ; 순수하여 몸과 마음이 때묻지 않고 깨끗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어지간하다 ; ①(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보통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한 상태이다. ②(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꽤 상당하다.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보리도(菩提道) ; 범어(梵語) bodhi 음역(音譯) 보리(菩提)와 그 한역(漢譯)인 도(道)의 복합어. 보리와 같은 말이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17. 3. 25. 22:47

 

 

§(014)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한 생각 단속하는 데에 윤회를 여의는 길이 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 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송담스님(No.014)—76 2월 관음재일 법문(76.02.24.음) (용014)

 

약 7분.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이를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있습니다마는,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있으면 하나라도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 10, 5, 3 또는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들으신 것이라고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 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있을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간단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처음~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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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조실 스님 ;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참집(參集 참여할 참/모일 집) ; 어떤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모임.

*돋구다 ; 돋우다(감정이나 기운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다. 정도를 더 높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참구할·참여할 )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 오랫동안 () 닦은 .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 귀의한지 오래 되는 . 초학(初學) 상대어.

*조랑조랑 ; (어린 사람이) 계속하여 똑똑하게 글을 외거나 말을 하는 소리.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알림2017. 3. 20. 14:00

알려드립니다_()_


며칠전부터 음성법문(오디오 플레이어) 핸드폰에서 지원이 안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PC에서는 정상적으로 들으실  있으니 당분간 PC에서 법문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핸드폰, PC, 그리고 태블릿pc 에서도 법문을 원활하게 들으실  있게 열심히 신경써서 준비 중이오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용화선원 법문듣기(http://emokko.tistory.com)


-참선법문(http://chamsonbub.tistory.com)


-참선사전(http://chamsonsajeon.tistory.com)


-송담전강게송집(http://yongwhasunwon.tistory.com)



성불하십시오_()_

Posted by 닥공닥정
알림2017. 3. 2. 14:52

용화선원 법문 보고 듣기 (스마트폰, PC에서)


* 법문(法門)이란 진리의 법당(法堂)에 들어가는 문(門)*



          



    1.  iTunes(아이튠즈) 프로그램을 애플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운설치 

      iTunes 다운로드(무료)

   2.  웹주소:

         * 송담스님 영상법문

          http://itunes.apple.com/kr/podcast/id470223266
      * 유진스님 음성법문

           http://itunes.apple.com/kr/podcast/id470236271





         

               



  



스마트폰 - PC로 들을 수 있는 법문



    ◎  전강선사 법문


    1. 전강선사 일대기 (18편의 법문)

           초발심 자경문 (31편의 법문)

       2. 몽산법어 (38편의 법문)

           몽산법어 부록 (26편의 법문)

       3. 전강선사 법문 (200편 이상의 법문)


    ◎  송담스님 법문


        1, 영상법문 (최근에 하신 영상법문)

            - 선가귀감, 몽산법어, 언하대오 전자책포함

        2. 초심자를 위한 법어 (14편의 법문)

        3. 생활속의 참선법 (20편의 법문)

            - 참선법 A, B, C, D, E 포함

            -관음예문 전자책 포함

       4. 송담스님 법문 (300편 이상의 법문)


    ◎  환산스님 Dharma Talk

       환산스님과 함께 영어로 배우는 참선 (한글자막 있음)

        (BTN 불교 TV 방송)


     ◎  유진 법사스님 법문

         매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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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7. 3. 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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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게송)차사본무생~ /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생사심을 깨뜨릴라면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게 화두를 들어라 /  필요한 말만 하라.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은 참나 깨닫는 사업이다 /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 회광반조(廻光返照) 일구월심(日久月深) 면면밀밀(綿綿密密) / (게송)막장사기매서동~.

금생에 일대사를 해결해야 / (게송)백일운위반~ /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은 세세생생에 좋은 선물 /(게송)화종목출환소목~


무량겁을 육도윤회, 생사고해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근원이 무엇이냐 하면 눈으로 보고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듣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이뭣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나가는 것이 생사심을 깨뜨리고,  마음길을 끊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여.

무슨 생사심, 무슨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즉각 이뭣고?’  일어나면  이뭣고?’ 자꾸 이뭣고?’ 간절한 의심으로 이뭣고?’ 거각(擧却)해 나가면 결국은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하게 된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조사관(祖師關) 뚫게 되고 참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재산은 활구참선해서 참나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밖에는 정말 우리가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곳이다. 충분히 믿을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있는 ,  사업은 참나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내생(來生)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송담스님(No.475)—92 6 첫째 일요법회(92.06.07) (용475)

(1/3) 약 19분. (2/3) 약 22분. (3/3) 약 20분.

(1/3)----------------


차사본무생(此事本無生)하니  수연처처명(隨緣處處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신료여사지(信了如斯旨)하면  귀가파문정(歸家罷問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사(此事) 본무생(本無生)이여  수연처처명(隨緣處處明)이다.

 일은 본래 남이 없어[無生]. 그러니 인연 따라서 곳곳마다  밝더라. 


차사(此事). 생사(生死). 일대사(一大事).  일대사(一大事) 문제, 생사(生死) 문제.


 생사 때문에 (), 나서 죽고 나서 죽고 하는  생사, 일대사 문제 때문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삼천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  일대사 문제 때문에  사바세계에 오셨고, 우리  법보제자 형제자매들도  일대사 문제 때문에 오늘 임신년 6 첫째 일요법회에  이렇게 운집(雲集) 하셨습니다.


생사 문제는  도리(道理)를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생사고해(生死苦海) 윤회(輪廻) 하지만, 그러나  도리를 확실히 깨달아 버리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남이 없어[本無生]


분명히 우리는  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  세상에 태어나서 늙어서 병들어서 죽는  고통스러운 생애를 가지고,  생만 그런  아니라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살아왔고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들은  도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생이, 남이 없다고 하는 ,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설해 주셨습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여름에는 더웁고, 겨울에는 춥고 이러한 상황이 남이 없는[無生] 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이 .

확실히 우리 눈에는 무상(無常)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우리 눈에 무상으로 보이는  모습이  우리 인생,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분명히 부모의 인연으로  세상에 몸을 받아났다가 차츰차츰 자라서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지마는, 그 춘하추동 순환하는 것이나 사람이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나 관점에 따라서는 똑같은 것이여.


똑같이 무상하고 믿을  없는 허망한 것으로 보면 한없이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지만,  본질에 들어가서는 다맛 인연 따라서 변화가 있을 뿐이지  본질에 있어서는 조금도 불어나거나 줄어들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꽃이  도리나, 가을에 단풍이 지는 도리가 바로 거기에 진리가 표현되고 있다. 진리가 설해지고 있다.


사람이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도 다못 인연 따라서 그러한 변화가 있을 뿐이지  본바탕에 들어가서는 남이 없고, 남이 없기 때문에 또한 () 없다 이거거든.

아직은 우리는 그러한 이치를 확실히 체달(體達) 못했지만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이 한결같이 그것을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생사 속에 본래 생사는 없다’고 하는 것을 ! 믿고, 다못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생각  생각을  단속해 나가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정말 뜻있게 알뜰하게 살아갈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료여사지(信了如斯旨)하면, 이와 같은 뜻을 확실히 믿어버리면,

귀가파문정(歸家罷問程)하리라. 자기의 본고향(本鄕)에 돌아가는데 길을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있는 자리, 지금 하고 있는 , 밥을 먹을 때나 일을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거거든.


이와 같은 도리를 믿지 아니하면 밤낮 타향 객지에서 자기 고향이 어디가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사람 보고 물어보면 이쪽으로 가라고,  사람 보고 물어보면 저쪽으로...  갈팡질팡. 그날 하루를 공연히 다리만 아프게 방황하고 안정이 없는 종잡을  없는 피로한 하루를 살아가듯이.

인생이라는  대관절 해도 해도  일이 끝도 없고,  일을 겨우 겪으면   어려운 일이  앞을 가로막고. 흥망성쇠와 빈부귀천과 그러한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생로병사의 마주치는 곳에서 한(恨) 많은 인생을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법에 의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어떠한 어려운 , 어떠한 괴로운 ,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즉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들고 살아가면 어떠한 일을 닥치더라도 상관이 없거든.

화두를 들고 자기의 근본을 ! 가다듬는다면 어려운 , 슬픈 , 괴로운 , 억울한 일도  풀어 나갈 수가 있고,  사람 앞에는 풀리지 않는 일이라고는 없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일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처리해 나가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거거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에도 활구참선(活句參禪)  나가는데 관해 요긴한 법문을 간곡히  주셨는데,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생사의 고해 속에서 무량겁을 이렇게 오고,  앞으로 무량겁을 생사고해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근원이 무엇이냐 하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 우리의 생사심(生死心).

눈으로 보고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듣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이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생사심을 결국은 그놈을 깨뜨려 버려야 하는데, 억지로 그놈을 깨뜨리려고자 한다고 해서 깨뜨려지는 것이 아니거든.


 생사심을 깨뜨릴라면은 결국은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단속을 해라. 화두, ‘이뭣고?’


이뭣고?’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를 들고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  나가는 것이 생사심을 깨뜨리고,  마음길을 끊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여.


생사심(生死心) 억지로 그놈을 누를려고 한다든지, 억지로 끊을라고 한다든지,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 그러면 그럴수록  일어나는 것이여. 무슨 생사심, 무슨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즉각 이뭣고?’  일어나면  이뭣고?’


자꾸 이뭣고?’ 간절한 의심으로 이뭣고?’ 거각(擧却)해 나가면 결국은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화두가 들리게 되고, 화두를 들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터억! 독로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결국은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조사관(祖師關) 뚫게 되고 참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나가는 데에는 첫째, 말을 많이 해서는  . 좋은 말이고 궂은 말이고  필요한 말이 아니면 말을 될수록 아니한 것이 좋다.

 필요한 때라도 간단하게 한마디로써 줄여버려야지, 좋은 말도 너무 많이 하다보면 그것이 시비가 일어나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니까 결국은  시간을공부해야 , 화두를 들고 다그쳐 나가야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것이여.


말을 많이 아니해야 화두를 연속 끊어지지 않도록 단속할 수가 있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앉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일할 때나 항상 화두가 목전(目前)에 ! 있도록.

그렇게 할려면은 금강석(金剛石)과 같은 굳은 지조가 있어야 됩니다. 결심이 있어야 . 금강은 금강지(金剛志) 분(奮)  가지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이여.  생각이 만년(萬年)토록.


금강석과 같은 굳은 결심이 아니면 금방 주변 환경에 휩쓸려 들어간다 그말이여. 무슨  한마디만 들으면 자기도 거기에 참여해서 주거니 받거니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하게 되고.


하! 내가 인생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어. 이렇게 정법을 듣고 내가 어찌 그렁저렁 세월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인가.

시시각각으로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몸은 자꾸 늙어 가는데, 어찌 내가 정법을 알고 믿고서도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는가.  생각  생각,     하다가 퍼떡 깨닫고 ! 입을 다물고, 화두를 떠억 들고.(처음~192)




(2/3)----------------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 일어난  뿌리를 다시 관조하고 이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거든. 끝없는 회광반조를 되풀이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갈수록  수가 없어야 .

  없는 의심이 있으면은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럴 것이 아니라 이뭣고?’ 그놈을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그놈을 떠억! 관조(觀照) 하거든.


그렇게  나가다보면 차츰 조용해지고, 조용해지면은 자기도 몰래  꾸벅꾸벅 혼침(昏沈)  수가 있고. 혼침, ! 정신을 차리다보면  끝없는 망상(忘想)이 일어나.

졸지 아니하면 망상, 망상이 아니면 졸음, 참선할려고만 열심히 하다보면은 혼침과 산란심(散亂心) 번갈아 가면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만 없으면  공부를 잘할  같은데.  조용해지면 혼침이 오고, 혼침이 깨면은 산란심이 일어나고.


그래서 다생(多生)에  닦아 나가는 데 장애물로써 수마(睡魔) 막대(莫大)하다.  졸음이 오는  마구니란 놈이 굉장히 우리 도업(道業) 성취에 장애요소가 된다고 고인(古人)네들도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결국은 그놈한테 내가  버릴 수도 없고, 졸림이 온다고 해서 실컷 다리 뻗고  수도 없고. 혼침 산란이  닦아 나가는 데에는 멀리  수도 없고, 가까이  수도 없는 이상야릇한 도반(道伴)이여. 도반은 도반이되 친근히  수도 없고, 그놈을 멀리하고 싶어도 끈질기게 따라 붙어.


구참(久參)일수록에 혼침은  잘해. 이놈이 속이 떠억 망상이 가라앉으니까 그러니까 조용하다보면은 꾸벅꾸벅.   참선해서 얻은 것이 앉아서 조는 법을 배웠다고 어떤 분이 그러는데.

앉아서 졸면 10 20분은 금방 가고, 입선(入禪)하고 죽비하고 5분도  되어서 졸기 시작해 가지고 방선(放禪)할 때사 눈을 뜨거든. 그래서 입승(入繩) 스님이 자비가 있으면 가끔 돌면서  졸음을 깨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혼침이  때에는 허리를 쭈욱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혼자 정진할 때라면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왔다갔다 포행을  하고 그래서 정신이  맑아지면 다시 와서 정진하고 그러면  좋은데,

대중이 같이 한 방에서 입선할 때는 졸음이 온다고 밤낮 들랑날랑하기도 옆에 다른 도반들에게 미안하고, 앉아서 억지로 그놈을 쫓을라고 하면은 굉장히 용을 쓰고 꼬집어 뜯고 이를 악물고 해도 영판 여름에 더울    도망간다 그말이여.


어쨌든지 힘을 다해서 채찍을 가해 가지고  번이고  번이고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들어서, 그렇게  나가다보면 결국은  끈질기고 고약한 혼침과 산란도 결국은 나의 금강지(金剛志) 끈질긴 정진력(精進力)으로 그놈이 항복을 하고, 혼침도 달아나고 산란심도 달아나서 그래서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들릴 때가 오는 것이여. 순일무잡(純一無雜).


그래 가지고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다가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리가 띵하기도 하고, 온몸이 그렇게 이상하게 뒤틀리면서   정진이  안된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러더라도 분심(憤心) 내고 신심(信心) 내서 지혜롭게 알뜰하게 단속을  나가면 훨씬 공부가 수월하게  되어진다.


잘되다가  되다가,  되다가 잘되다가 끝없는 고비 고비를 넘겨서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일구월심 면면밀밀하게   나가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게 되고.

풍풍풍풍 솟아나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가듯이 마음도 ()하고, 경계(境界)도 적적(寂寂)해져서 그래 가지고 몸도 마음도 쾌락안연(快樂安然) 경계에 이르게 된다 그말이여.  시간  시간 앉았어도 조금도 몸이 괴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시간이 어떻게  줄을 몰라.


의단이 독로해서 그럴 때에  너무도 고요하고 너무도 편안하고 너무나 깨끗한 그런 경지가 오면 화두를 드는 것도 귀찮고, 오히려 화두 드는 것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를 흐트러지게 할까, 그런 생각도 있어서 화두를 들지 아니한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말이여.

아무리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더라도 항상  화두,   없는 의단(疑團)을 잊지 말고  거각해 나가야 한다.  관조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나가면,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이틀을 지내고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어떠한 수질각차(手跌脚蹉) 하는손발을 ! 접질린다던지 헛디딘다던지 어떤 그런 찰나에 확철대오 (廓徹大悟)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이, 모든 도인(道人)들이 그렇게 애를 써서 그런 과정을  경험을 하신 바여.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알뜰히 단속해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어.

우리의 교주(教主)이신 삼계 대도사(三界大導師)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이셨고, 모든 선지식들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신심(信心) 분심(憤心) 대의단(大疑團)으로 정진을 함으로써 결국은 그런 확철대오해서 대도사가 되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과정과 그러한 결과를 믿고 우리도 그렇게  나가는  이외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것이 없어. 다행히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할  있게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경행(慶幸)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수가 없어. 명예・권리・재산・자손・애정  믿지 못할 것들이여. 일생을 바쳐서 그런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꿈속에서 얻었다가 놓치는 것들이여.

명예도 그렇고, 권리도 그렇고, 재산도 그렇고 피땀 흘려서 일생을 노력을 해 봤자 결국은 허망하게 빼앗기고 허망하게  몸으로부터  떠나고야만  것이고, 죽을 때까지  거머쥐고 있어 봤자 황천(黃泉)으로  때에는 하나도 가지고가지 못한   몸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재산은 참선, 활구참선해서 참나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밖에는 정말 우리가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곳이다.

충분히 믿을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있는 ,  사업은 참나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그말이여.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내생(來生),  내생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세속에 많은 크고 작은 기업가들, 사업가들 있지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기도 어렵고, 설사 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2, 5, 10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사업이여.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고, 안되면은 잠을  자고 속이 타고.

그러나 그런 사업을 하지 말라는  아니라  따라서 사업할 사람은 하고, 무엇인가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오히려  우선해서 자기 진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런 사업을 하면 되면 되는 대로 좋고, 안되더라도 또 뚫고 나갈 길이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라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여세인쟁시비(不與世人爭是非)하고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나무~아미타불~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고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어다.

자기가 명예와 권리가  있다, 재산이 있다, 학식이 있다, 자기에게는 이러이러한 무슨 힘이 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것을 코에다 걸고 동서남북에다 그것을 팔아.


그것으로 그래 가지고 뽐내.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으로 뽐내고, 권리가 있는 사람은 권리로 뽐내고, 학식이 있는 사람은 학식으로 뽐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뽐내고, 수단이 있는 사람은 수단으로 뽐내고, 그래 가지고 자기 과시를 하고, 남에게 으시대고,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고. 그래봤자 그것이  조금 가는 것이냐 그거거든.


그러지를 말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기 마음,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로 발길을 옮겨라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해서 이뭣고?’ 열심히  나가면 설사 권리가 있다고 해서  권리를 남용(濫用)을 하는 법이 없고, 재산이 있다고 해서  재산으로 남을 짓밟을 리가 없어.

권리가 있더라도  권리를 뜻있게, 재산이 있어도  재산을 뜻있게  쓸지언정 어찌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해서 자기를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일을 할까 보냐. 


불여세인(不與世人)으로 쟁시비(爭是非)하라. 세상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시비(是非) 다투지 말아라.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길이길이  없이, 그런 시비로 싸우는 일이 없이 솔바람 소리를 들어라.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물론 여름  , 겨울  달을 선원에 들어가서 방부(房付)를 들이 정진을 하니까 대번에 그러한 솔바람 소리를 듣는  뜻을  아시겠지만, 가정 형편이나 모든 사정에 따라서 방부를 들이 못하고 세속에서, 세속의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가운데에도 항상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도회지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복잡한 소리가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것이 시비(是非) 끊어진 솔바람 소리로 들을 수가 있게  것입니다.


참선을   사람은 모든 귀로 들리는 소리가  시비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가  시비요. 서로 물고 뜯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거든.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시비(是非) 속에서 항상 화두로써 대처해 나가기 때문에 시비가 시비가 아니여. 이렇게 되도록 끝없는 발심(發心)과 끝없는 분심, 끝없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것입니다.(193~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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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해도 내가 해야  일이고, 내가 함으로써만이  문제는 해결이 되어. 일대사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문제여.

금생에   놓으면 내가  일이 그만큼  늦어지고, 금생 일생에  하면은 일생이 늦어진 것이 아니라 금생에   놓으면 몇억 겁이 늦어질 수가 있어.


 그러냐? 사람 받아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사람 몸을 받았다고 해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불법을 만났다고 해서 활구참선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여.

금생에 만약에 지금  법문을 듣고, 지금   놓으면 내생에 사람  받아서 불법을 만나서 활구참선 만날  있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수가 없어. 지금을 놓치면은 영원히 미끄러지는 것이거든.



백일운위반(白日雲爲伴)하고  청소수작린(淸宵水作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궁세외락(無窮世外樂)  공락유수인(共樂有誰人)

나무~아미타불~


백일운위반(白日雲爲伴)하고, 낮에는 백일(白日), 낮에는 하늘에   흰구름을 도반을 삼고,

청소수작린(淸宵水作隣)이다. 맑은 밤에는 흘러가는 물소리로써 이웃을 삼어. 


도회지에는 매연이 가득차서 맑은 하늘도 보기가 어렵고, 맑은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도 듣기가 어렵겠지만, 정말 발심을 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도반(道伴)이여.


무엇을 보자마자, 눈에 무엇이 들어오자마자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기 때문에 하늘에  흰구름뿐만이 아니고, 달이 되었건 별이 되었건 해가 되었건 또는 푸른 나뭇잎이 되었건 지나가는 자동차가 되었건 무엇이고 눈에 띄면, 띄자마자 그놈에 즉해서 떠억 자기 본고향(本鄕)으로 가는 화두를 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나의 도반이요, 나의 선지식이여.


산중에 맑은 물이 줄줄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뿐만이 아니라 귀로 들리는 것은, 자동차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나 밖에서 외우고 돌아가는 장사꾼의 소리나, 아이들이 웃고 소리지르는 아이들의 소리나 애기 우는 소리나  짖는 소리나, 전부가  소리를 듣자마자  소리로 따라가지 아니하고  소리에 즉해서 이뭣고?’ 화두를 떠억 들기 때문에,


 소리가 무슨 소리가 되었건, 음악 소리가 되었건  짖는 소리 들었건  소리에 즉해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는 바로 그것이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선지식의 법문(法門)이요, 도반의 충고요, 부처님의 설법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사람과  활구참선을   사람과의 하루의 생활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을   사람은 귀로  소리를 들으면 바로  듣는  소리로 쫓아가서 시비에 내가 끌려 들어가고, 무엇을 보면 좋다 나쁘다 그놈에 따라서 성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고  온갖 번뇌 망상이 거기서 벌어지는 건데.


참선한 사람은 듣자마자, 보자마자 떠억 자기의 마음의 고향으로 화두를 들고 단속을 하니, 하나는 시시각각으로 마음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고,  법을  믿는 사람은 계속 번뇌와 망상과 시비와 흥망성쇠와 생사고해 속으로 계속 끌려 나간다 그말이여. 그렇게 인생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무궁세외락(無窮世外樂),  끝없는 무궁한  세상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낙(樂)을 누구와 함께 같이  것인가.(共樂有誰人)


여간해서 이거 듣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공부!

여러분 가운데에는 친구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일가친척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여간해서  공부, 물론 권고해야 하고 손을 이끌고  법회에 참석하도록 하시겠죠. 그러나  말을 믿고 오기도 참 어려운 것입니다.


듣기도 어렵고, 듣고 믿기도 어려운데, 믿고서 조금 하는 척하다가 중단하는 사람이 태반이고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이것을 밀고 나가는 사람,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거든.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좋은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대단히 좋아하고, 무엇인가 좋아하면서도 내가 받고만 말아서 되겠느냐 보답을 해야겠다 그러니 받음으로써 오히려 부담을 느끼게 되는 거여. 받고  따먹고   씻을 수가 없거든.

그만큼 받으면은 그놈 못지않게  보답을 하고, 물론 주고받고 하는 것이 인생을 서로  재미있는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고,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그렇게 아무도  사람이 없고 받을 사람도 없다면 그것도  외로운 삶이라고  수 있겠지만.


주고받고, 받고  주고, 그렇게 서로 사람이라는  가는 , 오는 정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형편 따라서 좋은 일인데, 요새는 그런 선물도 차츰차츰 비싼 것으로 자꾸 치중해 나가서,  주기도   생각해야 하고 받고 나서도 굉장히 부담감을 느끼고, 그러니 별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생일 때나 무슨 혼사 그런 경우에 부담 없이 주고  부담 없이 받고 피차 그렇게 하면  좋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상당히 지성인이라고 할까,  인격적으로 향상된 사람들이라야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면서 부담스럽고 받으면서 부담스럽고, 주고받고 하는 가운데 굉장히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데 이것은 언젠가는 고쳐져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인데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 이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울 것도 없고 설사 권고해도 믿지 아니하면  그만인 것이고,  다음 기회에  기회가 오면은  권고해서 결국은 정법을 믿도록 사돈 간이나 일가친척 간이나 친구 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좋은 선물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사람에게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이,  인연으로 내생에 내가 잠시 망각을 했을 때에   사람이 나를  이끌어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고.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결국은  함께 해탈세계로 나아가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지인정기각제정(智因情起却除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심관망명위지(正心觀妄名爲智)하고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불은 나무에서 일어나. 나무를 비비면 거기서 열이 나가지고 결국은 불이 나는데,  불은 나무로 조차 일어나 가지고 결국은 나무들을  태워버리는 거여.

지혜는 우리의 중생심(衆生心)으로부터 지혜(智慧)가 나오는 거야. 중생심으로부터 지혜가 나와 가지고 마침내는 우리의 중생심, 정(情)을 인정, 감정  정(情)을  없애는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윤회도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중생의  정(情)감정 ・ 애정 ・ 탐착심 이러한 것이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서 육도를 윤회하지만  생각을 돌이키면, 돌이켜서 이뭣고?’.


돌이켜서 이뭣고?’하는 것도 내나 우리가 깨닫기 전이니까 그게  중생심이여.

 중생심으로 중생심을 돌이켜서 화두로 돌리면, 그게 바로 정심(正心)으로 망상을 돌이켜 관조하면, 망상 뿌리 일어나는 근본을 돌이켜서 관조하면 거기서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혜여.


 지혜는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 그 () 능히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묘력(妙力) 거기서 나온다 그거거든.


지금 번뇌 망상, 희로애락,  우리는 그것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 가지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울다 웃다가 근심 걱정하다가 시비하다가 싸우다가 원망하다가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고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오는데, 우리는 금생부터서는 그게 아니거든.

그런 생각 일어날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에 즉해서 떠억 화두를 들고  들고, 들고  들고. 놓친  알면  들고, 들다보면 놓쳐지면, 놓쳐지면  들고 해서 끝없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이렇게 나아가면 결국은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터억 깨닫게 된다 그거거든.



앞으로 머지않아서 장마철이 돌아옵니다. 오뉴월  삼복더위가 돌아옵니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건강을  지키는 법은모든 병이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되게 속을 상한 뒤끝에는 위장병이 생기고, 심장병이 생기고, 당뇨병이 생기고, 온갖 병이 지나친 슬픔, 지나친 노여움, 지나친 원망, 한탄 이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파도칠 때에 심장이 나빠지고 위장이 나빠지고 간이 나빠지고.

결국은 암도 되게 슬프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생각이 걷잡을  없이 일어나서  충격을 받게 되면 암이 생기는 거고, 간경화증도 생기는 것이고, 고혈압, 중풍 병도  그런 데에서 생겨나, 원인은.


그래서 평상시에 떠억 화두를 들고, 일어나는 자기의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그러면 자연히 우리의 정신이 순화가 되어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위를 이겨 나가는 데에도 화두를 들고 참선하면,  더위도 어떻게 삼복더위가 지나간  모르게, 옷만 젖어서 가끔 빨래만 하면 그럭저럭 하다 삼복이 지나가거든.


인생도 인생이  괴롭다, 슬프다 그러지만, 고해(苦海)라고 하지만,  참선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고해도 언제 어떻게 지나간  모르게,  새파랗고 맑은 호수 · 바다로 피서(避暑) 가서 뱃놀이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4028~6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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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차사본무생~’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05 ‘무능(無能)’ 참고.

*무생(無生) ; ①생겨남[] 없는 [].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

②성문사과(聲聞四果)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3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가리킴. 생사와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 법칙(法則)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 지어 가면서 변하여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되고 비가 되어, 다시 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감내(堪耐 견딜 감/견딜 내) ; 어려움을 참고 견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공안(화두)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공안(화두) 하나를 받아서, 그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금강지(金剛志) : 금강석과 같이 견고한 뜻。 일체 번뇌를 쳐부술  있는 굳센 의지.

*분(奮) ; 떨치다. 분발(奮發)함(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힘쓰다. 분격하다(憤激--). 일으킴.

*일념만년(一念萬年) : ‘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 나타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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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생각 일어날 때에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 동안거결제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번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 일어나는 곳을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 이거거든.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잇따라 있는.

*관조(觀照) ; ①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②지()로써 (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 (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 ()하여 바르게 아는 .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수마(睡魔) ; 참선할  어느새 잠이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 잠() 수마(睡魔) 일컫는다.

*막대(莫大)하다 ; 더할 수 없을 만큼 많거나 크다.

*마구니 ; ().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구참(久參 오랠 /참구할·참여할 )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 오랫동안 () 닦은 .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 귀의한지 오래 되는 . 초학(初學) 상대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쾌락안연(快樂安然) ; 쾌락하고 편안하다.

*수질각차(手跌脚蹉  /거꾸러질·넘어질 /다리 /미끄러질·넘어질 ) ; 각차수질(脚蹉手跌). (몸이 균형을 잃고) 손과 발이 미끄러지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만일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 선도(禪道) 불법(佛法) 평생동안 눈으로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   베면 모두  끊어져서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법도 정식(情識)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차를 마셔도  마시는  모르고, 밥을 먹어도  먹는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모르고, 앉아도 앉는  몰라 정식(情識)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 이루는 것이다.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일대사만을 밝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뿌린  쇄락하고, 씻어 말린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도인이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 말하리라.

원문에 있는 '驀然 脚蹉手跌' 몸의 균형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이 미끄러지고 손이 미끄러지는 것이니, 아차! 하는 순간을 말한다. 轉身移步 懸崖撒手. (원순 스님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교주(教主) ; 석가세존(釋迦世尊). ‘석가모니(釋迦牟尼)’ 높여 이르는 .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 중생을 열반(涅槃)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7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 19)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 만나 6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  갠지스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 2 15. 입적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 .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게송) 막장사기매서동~’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43 ‘자찬, 장해원사의 청으로(自讚 張海院使請)’ 참고.

*남용(濫用 퍼지다·넘치다·함부로 남/쓸 용) ; ①사물을 정해진 규정이나 기준을 넘어서 함부로 사용함. ②권리나 권한을 본디의 목적이나 범위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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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일운위반~’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182 ‘운간(雲澗)’ 참고.

*백일(白日 희다·환하다 백/해·햇볕·낮 동안 일) ; ①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날의 밝게 빛나는 해. ②환하게 밝은 낮.

*찰나(刹那 ·짧은시간 /어찌 )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동자(同字).

*즉해서(卽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게송) 화종목출환소목~’ ;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고덕송(古德頌, 고덕의 게송)’ 참고.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정심(正心) ; 바른 마음, 또는 마음을 가다듬음.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삼복(三伏)더위 ; 삼복(三伏 :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무렵의 몹시 심한 더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