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공안)2020. 2. 28. 12:56

§(345) (게송)인능생소소생능~ / 한마디 화두 속에 팔만대장경이 들어있고,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설법을 하고 계신 것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이뭣고?' 이 천하에 맛도 없고 뜻도 없는 재미도 없는 이 한마디 화두가 무량겁 쌓이고 쌓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벌어진 그 많은 업(業)을 다 소멸을 하고 생사윤회를 끊어 버리고서 확철대오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 소견으로는 까마득하게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이뭣고?' 한마디 속에 바로 팔만대장경이 다 들어 있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바로 이 한마디 화두 속에 살아 계셔서 설법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어떠한 재난과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이 한마디 화두를 턱! 거각할 때에 바로 삼세제불을 거기에서 친견(親見)하고 역대조사를 거기에서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0.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약 13분.

 

인능생소소생능(因能生所所生能)하고  능소구망생불생(能所俱忘生不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노방흡진경해수(老蚌吸盡鯨海水)여  산호지상월삼경(珊瑚枝上月三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능생소소생능(因能生所所生能)이다. 능(能)을 인연해서 소(所)가 생겨나. 능(能)은 주관을 말한 것이고, 소(所)는 객관을 말한 것이여. 주관으로 인해서 모든 객관이 생겨난 것이여.

소생능(所生能)이다. 또 그 객관으로 인해서 또 능(能)이 주관이 움직이게 된다. 능(能)과 소(所)는 서로 상관관계에 있어.

 

능소구망(能所俱忘)에 생불생(生不生)이다. 능(能)과 소(所), 주관과 객관이 함께 주관과 객관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없어지게 되면 생불생(生不生)이다. 생(生)하되 생(生)이 아니다.

 

화두(話頭)를 들어서 처음에부터 잘되는 사람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무량겁을 두고 우리가 익혀온 것이 주관과 객관 속에 서로 굴림을 받고 얽히고설켜서 육도(六途)를 돌고 돌아온 것인데, 어떻게 처음부터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꾸 한곳을 향해서 끈질기게 도전을 하면, 계속해서 또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고 안될수록에 더욱 열심히 하고, 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 내지 말고, 안되아도 안된다고 짜증을 내지 말고서 더욱 신심(信心)을 내고 더욱 인내심과 지혜심으로써, 신심으로부터서 신심으로 계속해서 해 나가면 어느 날 그렇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들어지지 않던 화두가 들려고 안 해도 턱! 들리게 된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망상(妄想)을 물리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고,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와. 그것이 능소(能所)가 구망(俱忘)이거든.

그러면 생불생(生不生)이여. 눈으로 하늘을 보되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산을 보되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땅을 보되 땅이 보이지 아니하고,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은 바가 없어. 밥 맛을 몰라. 밥이 된지 진지, 반찬이 짠지 싱거운지도 모르고,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공부가 되아 가는 것입니다.

 

노방흡진경해수(老蚌吸盡鯨海水)여. 늙은 조개가 저 고래가 살고 있는 그 넓고 넓은 바다의 물을 다 둘러 마셔.

마셔 버리면은 산호지상(珊瑚枝上)에 월삼경(月三更)이다. 저 바다 밑바닥에 있던 그 산호가 빠알간 산호 가지에 휘황찬 삼경(三更) 달이 찬란히 빛날 것이다.

 

오늘 조개! 조개가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듣다가 작대기에 꽂혀서 죽어 가지고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가 한량없는 복을 받다가, 자기가 복을 받는 것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리러 내려와서 그리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서 수다원과(須陀洹果), 소승사과(小乘四果)에 첫째 번 과(果)가 바로 이 수다원과인데, 이 성과(聖果)를 받은 설화를 했습니다마는.

 

이 늙은 조개가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 넓고 넓은 그 깊은 바닷물을 다 둘러 마실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이 '이뭣고?'

천하에 맛도 없고 뜻도 없는 이 재미도 없는 이 한마디 화두가 무량겁 쌓이고 쌓인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벌어진 그 많은 업(業)을 다 소멸을 하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끊어 버리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 소견으로는 까마득하게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이뭣고?' 한마디는—'이뭣고?' 한마디 속에 바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 있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바로 이 한마디 화두 속에 살아 계셔서 설법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어떠한 재난과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이 한마디 화두를 턱! 거각할 때에 바로 삼세제불을 거기에서 친견(親見)하고 역대조사를 거기에서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큰 소원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 '관세음보살을 불러라, 지장보살을 불러라, 아미타불을 불러라' 또는 '고왕경을 읽어라' 또는 '금강경을 읽어라' 이러한 방편(方便)을 설해 드리기도 합니다마는,

그러한 혹 하고 많은 방편이 다 뭉친들 다 합한들 어찌 이 한마디의 화두! 공안에다 댈 수야 있겠습니까?

 

어쨌든지 이 한마디에 목숨을 걸고 우리가 목숨 다할 때까지 가능하면 금생에 결정코, 금생 아니라 무량겁을 두고도 이 한마디로써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리라.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내가 문제삼을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오직 목숨 바쳐서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이것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외골수로 나가고,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듯이 외골수로 오직 이것 하나만을 향해서 전부를 바칠 때에 우리는 그 늙은 조개가 그 대해수(大海水)를 둘러 마시듯이 우리는 결정코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생사해탈하는 일이 이 적은 일이 아니여. 보통 일이 아니여.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긴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할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이 한바탕 그 추위가 뼛속에 사무치지 않을 것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요.

 

되게 강추위를 해야, 그 강추위 한 뒤끝에 매화가 피어야만 그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는 법입니다.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몸과 목숨을 바쳐서 정말 알뜰히 정진해야만 고인전지(古人田地), 고인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60분47초~1시간13분4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인능생소구생능~’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境由能境 能由境能’ p110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삼경(三更 석 삼/밤 시각 경) ;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이다.

*'오늘 조개! 조개가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듣다가 작대기에 꽂혀서 죽어 가지고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가 한량없는 복을 받다가, 자기가 복을 받는 것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리러 내려와서 그리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서 수다원과(須陀洹果), 소승사과(小乘四果)에 첫째 번 과(果)가 바로 이 수다원과인데, 이 성과(聖果)를 받은 설화를 했습니다마는'

[참고]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제4권.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漢譯) | 동국역경원.

 

물었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요, 축생의 스승은 아닙니까? 옛날 여래가 세상에 계시면서도 축생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라 합니까?"

 

수다라경(修多羅經)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은 첨파국(瞻婆國)에 계시면서 가라(迦羅) 못가에서 첨파국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이때 못 안에 무명조개[蛤 대합조개] 하나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를 듣고는 기뻐하여 곧 못에서 나와 풀뿌리 아래에 들어갔습니다.

 

이때에 어떤 한 소를 치는 사람[牧牛人]은 대중들이 둘러서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있음을 보고는 부처님에게 가서 법을 들으려고 하여 지팡이로 땅을 찌른 것이 무명조개 머리에 잘못 닿았습니다. 무명조개는 곧 목숨이 끊어져서 도리천에 나아 도리천왕이 되었으니, 그 복의 과보 때문이었습니다. 궁전의 세로와 너비는 바로 12유순이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은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기녀들의 오락 소리를 보고 깨달은 뒤에 곧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앞서 축생이었는데 무슨 인연 때문에 이 하늘 궁전에 태어났을까?'

곧 하늘 눈[天眼]으로 자세히 살피니, 앞서 못가에 부처님 설법을 들은 이 공덕 때문에 이 과보를 얻었기에 무명조개 천인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에게 가서 닿아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였습니다.

 

問曰 佛何以獨爲天人師 不爲畜生師耶 昔如來在世亦爲畜生說法 何以獨稱爲天人師

修多羅經說 爾時佛在瞻婆國 於迦羅池邊 爲瞻婆人說法 是時池中有一蛤 聞佛說法聲歡喜 卽從池出入草根下 是時有一牧牛人 見大衆圍遶聽佛說法 卽往到佛所 欲聞法故以杖刺地 誤著蛤頭 蛤卽命終生忉利天 爲忉利天王 以其福報故 宮殿縱廣正十二由旬

於是蛤天人 霍然而悟 見諸妓女娛樂音聲 悟已尋卽思惟 我先爲畜生 何因緣故生此天宮 卽以天眼觀 先於池邊聽佛說法 以此功德得此果報 蛤天人卽乘宮殿 往至佛所頭頂禮足

 

부처님은 아시면서 일부러 '너는 어떤 사람인데 갑자기 나의 발에 예배하고 신통ㆍ광명ㆍ상호가 견줄 데 없이 여기를 환히 비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명조개 천인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에 무명조개 몸이 되어

물속에서 먹이를 찾다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 듣고

나와서 풀뿌리 밑에 있었습니다.

 

어떤 소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팡이를 가져와서 법을 듣다가

지팡이로 저의 머리를 찔렀으므로

목숨을 마쳐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은 무명조개 천인이 말한 게송으로 사부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이때에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불도의 자취를 얻었고, 무명조개 천인은 수다원 과위를 얻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이 도의 과위를 얻고 기뻐하며 웃음을 머금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천인사라 합니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 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攙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於是蛤天人得道果已 歡喜含笑而去 故稱爲天人師

 

[참고] 『법원주림(法苑珠林)』 제17권 「제7 경법편(敬法篇)」 ’제3 청법부(聽法部)‘ 서명사(西明寺) 사문(沙門) 석도세(釋道世) 지음 | 동국역경원.

 

『선견율론(善見律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첨바라국(瞻婆羅國)의 가라못[迦羅池] 가에 가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못에 있던 대합조개 한 마리가 부처님께서 못가에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가 법을 듣고 있었다.

그때 또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앉아 대중을 위해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에게로 나아가 설법을 들으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다가 잘못해 조개의 머리를 찔렀다. 조개는 곧 그 자리에서 죽어 도리천에 났다. 그 복의 과보로 그 궁전의 가로 세로가 12유순이 되었다. 그는 여러 천녀들과 향락하다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善見律論云 昔佛在世時 到瞻婆羅國迦羅池邊 爲衆說法 時彼池中有其一蛤 聞佛池邊說法之聲 卽從池出 入草根下 聽佛說法 時有一人持杖放牛 見佛在坐爲衆說法 卽往佛所 欲聞法故 以杖刺地誤著蛤頭 卽便命終 生忉利天 以福報故 宮殿縱廣十二由旬 與諸天女 娛樂受樂 卽乘宮殿 往至佛所 頭頂禮足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물으셨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갑자기 와서 내 발에 예배하며 신통과 광명과 상호가 비할 데 없어 이 세간을 환히 비추느냐?"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저는 지난 세상에 대합조개로서

물 속에서 먹이 찾고 살다가

부처님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를 먹이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 들고 법을 들었는데

지팡이 꽂다 저의 머리 찔러

저는 죽어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조개였던 하늘 사람의 게송으로 사중(四衆)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도의 자취를 보았으며, 그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수다원과(須陁洹果)를 얻어 합장하고 떠났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劖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合掌而去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리천(忉利天) ; 욕계에 있는 육욕천(六欲天)의 하나. 도리(忉利)는 33이라는 뜻,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 33신(神)들이 사는 곳.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이 수미산인데, 이 수미산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왕인 제석(帝釋)이 있고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神)이 있어 33신.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 입류라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 · 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 · 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초기불교에서 - 성문(聲聞)으로서 - 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 · 계급취견(戒禁取見) ·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소승사과(小乘四果) ; 성문사과(聲門四果).

*사향사과(四向四果) ;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네 단계의 수행목표[向]와 그 도달경지[果]를 가리키는 말.

수다원(須陀洹 : 預流), 사다함(斯陀含 : 一來), 아나함(阿那含 : 不還), 아라한(阿羅漢 : 無學道)의 넷에 각각 향(向)과 과(果)를 배정하여 「수다원향 · 수다원과」 「사다함향 · 사다함과」 「아나함향 · 아나함과」 「아라한향 · 아라한과」의 여덟이 된다.

 

수다원향은 일체의 견혹(見惑 : 이론적인 번뇌)을 끊으며, 사다함향 · 아나함향에 의해 일체의 욕계(欲界)의 사혹(思惑 : 情意에 의한 습관적 번뇌)을 끊고, 아라한향에서는 삼계(三界 : 欲界 ·色界 ·無色界)의 사혹을 끊는다.

따라서 삼계의 일체의 견혹 · 사혹의 번뇌가 모두 끊어지면, 이 때에 아라한과(阿羅漢果)가 달성된다.

 

아라한과는 이 이상 배우고 닦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무학도(無學道 아라한)라고도 하며, 그 이전의 일곱은 아직도 상위(上位)가 있어서 배우고 닦을 필요가 있는 경지이므로 칠종유학(七種有學)이라고 한다.

예류(預流 수다원)에서 불환(不還 아나함)까지는 개울의 흐름이나 외갈래길로 상정(想定)하여, 흐름을 타고 있는 자가 예류(預流 수다원), 한 번 뒤로 돌아갈 상태에 있는 자가 일래(一來 사다함), 다시 되돌아가는 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상태를 불환(不還 아나함)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수도(修道), 성도(聖道)는 부파불교의 사향사과(四向四果), 대승불교의 보살십지(菩薩十地)를 말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외골수 ; 외곬. ①단 한곳으로만 트인 길. ②단 한 가지의 방법이나 방향.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고인전지(古人田地) ; 고인의 경지(境地). 고인의 깨달음.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Posted by 닥공닥정